변화가 생긴 것은 고교 때다. 당시 새벽마다 학교에 딸린 목장에서 일했다. 1935년 개교할 당시 학교가 위치한 미국 버몬트주는 낙농이 주요 산업이었기 때문에 생긴 전통이다. 지금은 예술로 학교의 중심이 옮아갔지만 여전히 이 전통을 중요시하고 있다. 졸업을 하려면 잠을 떨치고 찬 공기를 마시며 새벽 5시30분까지 목장에 가야 했다.
목장에 들어서면 35마리의 소가 “음매~ 음매~” 하며 나를 환영했다. 먹이인 풀을 나눠주고 나선 우리 예쁜 젖소들이 전날 밤 쌓아 놓은 쇠똥을 치웠다. 소들이 먹는 것에 집중하면서 음매 소리가 그쳤고, 무거운 쇠똥을 운반용 외바퀴에 옮겨 싣는 착착 소리만 들렸다. 갑자기 소들이 다시 “음매~”거리며 나를 불렀다. 꽉 찬 젖통이 아프니 얼른 우유를 짜내 달라고 외치는 소리다. 두 마리씩 옮겨서 젖통을 씻고 우유를 짠 뒤 젖통에 약을 바르고 다시 옮기는 작업을 꼬박 한 시간 동안 반복했다. 그제야 아침 7시가 되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목장 일은 고교 시절의 좋은 추억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목장 일을 하면서 우유를 덜 먹게 됐다는 점이다. 우유 한 잔에 들판 몇 ㎡, 풀 몇 ㎏, 쇠똥 치우는 몇 시간, 젖통을 보물처럼 다루는 손 몇 개 등 얼마나 많은 자원과 노동이 들어갔는지 잘 알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젖소를 돌보고 우유를 짜면서 일과 농산물의 가치를 배운 셈이다. 우유 덕분에 다른 것의 진정한 가치도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예로 부추 하나가 얼마나 작은 씨에서 나왔는지도, 양털이 얼마나 깎기 힘든지도 알게 됐다.
공부를 좋아하지만 이를 통해 알거나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안다. 책을 읽는 것만 교육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는 것도 좋은 교육이다. 체험으로 교육을 받은 덕분에 오늘 마시는 우유는 어릴 때 들이켜던 그것보다 훨씬 맛있다.
타일러 라쉬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