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육성 신년사는 대담했다.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며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제안하는 모습은 2013년 처음 카메라 앞에서 신년사를 할 때의 불안한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지난해만 해도 김 제1위원장은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목소리를 따라 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발음도 부정확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뚜렷한 발음에 억양을 넣어가며 자신감 있게 원고를 읽었다.
◆남북관계=이번 신년사는 과거 신년사에 비해 대남 메시지에 특히 공을 들였다. 제목이자 한 해 정책목표인 구호도 ‘조국해방 70돌이 되는 올해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자’였다. ‘통일’이란 단어를 18번 사용했고, 분량도 전체 1만504자 중 2007자로 5분의 1을 남북 문제에 할애했다. 대남제안 내용도 파격적이었다. 다음은 남북관계에 관한 발언 요지다.
통일 18차례 언급된 신년사
발음 뚜렷, 불안한 모습 안 보여
"고위급 접촉, 부분별 회담 할 수도"
대화 전제로 한·미 훈련 중단 거론
선군 정치와 핵·경제 병진노선 유지
다만 파격 제안엔 전제도 있었다. 김정은은 “남조선에서 해마다 벌어지는 대규모 전쟁연습 속에서 신의 있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고 북남관계가 전진할 수 없다. 무모한 군사연습을 비롯한 모든 전쟁책동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막힌 책임도 남쪽에 돌렸다. “지난해 우리는 북남관계 개선과 조국통일을 위한 중대 제안들을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하여 성의 있는 노력을 다했지만, 내외 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으로 응당한 결실을 보지 못하고 북남관계는 도리어 악화의 길로 줄달음쳤다. 상대방의 체제를 모독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동족을 모해하는 불순한 청탁놀음을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미 관계=김정은은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로 압박해오는 데 대한 불만도 강하게 드러냈다. 그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우리의 자위적인 핵 억제력을 파괴하고 우리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려는 기도가 실현될 수 없게 되자 비열한 인권소동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무분별한 침략책동에 매달리지 말고 대담하게 정책전환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 개발 위협도 담았다. 김정은은 “오늘의 현실은 우리가 선군(先軍)의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핵 억제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을 억척같이 다지고 국권을 튼튼히 지켜온 것이 얼마나 정당하였는가 하는 것을 뚜렷이 실증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곤 “우리 사회주의 제도를 압살하려는 적들의 책동이 계속되는 한 선군정치와 병진노선을 변함없이 견지할 것”이라고 했다.
◆내정·경제=북한 내부를 향한 메시지도 다소 변화가 있었다. 북한은 최근 몇 년간 신년사 맨 앞에 경제정책을 밝혔지만 올해는 ‘정치사상강국’ 건설을 앞세웠다. 김정은은 “당의 위력한 무기인 사상을 틀어쥐고 사상사업을 공세적으로 벌이자”고 강조했다. 경제분야에선 농·축·수산을 3대 축으로 삼아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강국 건설’을 목표로 삼았다. 관광지 및 경제개발 지역에 대한 강조도 눈에 띈다. 김정은은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들을 비롯한 경제개발구 개발사업을 적극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말해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이 주요 대남 요구사항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김정은은 2012년엔 신문 공동사설 형태로 신년사를 발표했다가 2013년부터 조선중앙TV를 통해 녹화방송 형태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정원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