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없는 정상화도 한 방법 … 한·일 다양한 채널 필요"

중앙일보

입력 2015.01.02 01:17

수정 2015.01.02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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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과거에 묶인 채로 국교 정상화(1965년 6월) 50년을 맞았다. 두 나라의 발목을 묶은 ‘과거사 망령’은 일본이 가해자다. 하지만 일본만 탓하며 빗장을 걸어 잠그기만 한다면 한국 외교의 숨통이 막힐 수 있다고 외교계 원로들은 걱정했다. 원로들이 제시한 한·일 관계를 풀 5대 해법은 이렇다.

 ① “큰 판을 읽어라. 모든 바둑돌은 연결돼 있다”=이명박 정부에서 외교장관을 지낸 유명환 전 장관은 “한·일 관계 악화는 한국 외교의 중심축인 한·미 동맹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며 “좋은 한·일 관계는 중국·러시아에 대한 지렛대로도 작용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외교 수장이었던 송민순 전 장관도 “한·일 관계 악화는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일본의 소극적 내지는 비협력적 자세로 연결되는 문제를 낳기도 한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 초대 외교장관과 노무현 정부 주미대사를 지낸 한승주 전 장관은 “한국 외교는 바둑판과 같아서 한쪽 모서리 끝에 있는 돌이 움직이면 정반대편에 있는 돌이 영향을 받는다”며 “큰 판을 시간·공간적으로 연결시키는 연계적 사고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역대 외교장관 5인, 꼬인 한·일 관계 해법 말하다
예민한 문제는 피해가는 지혜를
"한·일 정부, 독도에 침묵 지키자"
과거 고노 장관의 제안도 현실적

 ② “정상회담 없는 정상화도 괜찮다. 접촉면부터 늘려라”=유 전 장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등이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기 전에 양국 정상이 국빈방문 등의 격식을 갖춰 만나는 것은 국민감정상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런 만큼 “다자회의 등 국제행사 무대에서 만나 실무적으로 정상 간에 할 일을 논의하는 등 접촉면을 늘려갈 필요가 있다. 연초에 한·중·일 3국 장관회담부터 열어 3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주일대사와 외교장관을 지낸 공로명 전 장관은 “82년 전두환 정권 때 한국이 일본에 경협자금을 요구해 양국관계가 악화되자 일본 정치인 30여 명이 각기 따로 한국을 찾아 전 대통령을 면담하는 등 관계를 풀려고 노력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가지도, 일본에서 오지도 않는다. 외교는 결국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다양한 채널 간 접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③ “피해자 한국이 먼저 손 내밀면 주도권 챙긴다”=한 전 장관은 “우리가 먼저 정치적 용기를 발휘해 일본에 보다 높은 차원의 대응을 해야 한다”며 “가해자인 일본에는 혐한이 있지만, 도리어 피해자인 한국에는 혐일이 없다. 우리 국민의 너그러움과 대국적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 전 장관도 “한국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19세기 말에서 1945년까지에 멈춰 있다. 피해자인 우리가 먼저 과거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50년 동안 한·일 관계를 주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④ “일본이 스스로 변화할 ‘마중물’을 줘라”=공 전 장관은 “일본이 변할 수 있는 마중물(펌프에서 물이 나오도록 먼저 부어주는 물)을 줘야 한다”며 “위안부 국장급 협의에서 우리 안을 치밀하게 마련하되 일본이 원하는, 안 받을 수 없는 내용을 포함시키고 그 일부를 흘려서 협상을 주도해야 한다”고 예까지 들어 조언했다. 김대중 정부 외교장관을 지낸 이정빈 전 장관은 “과거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교장관이 독도에 대해 ‘한·일 정부가 서로 공식적으론 침묵을 지키자’고 제안했는데 우리가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감안해 이에 응했다”며 “한·일 관계에서는 이처럼 예민한 문제를 피해갈 수 있는 여러 현실적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⑤“국제사회와 소통하고 설득하라”=한 전 장관은 “최근 한·미·일 정보교류협정처럼 한국은 정상회담 없이도 일본과 협력의 노력을 끊지 않고 있다”며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끼리 입 꽉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한·일 관계가 지역 전반에 장애를 주는 일은 없을 것이란 입장을 충분히 국제사회에 설명해야 한다. 교과서적인 원칙만 되풀이해선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장세정 외교안보팀장, 정용수·유지혜·유성운·정원엽·위문희 기자 zh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