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방파제' 한반도여, 자긍심 가져라

중앙일보

입력 2015.01.02 00:14

수정 2015.01.02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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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는 학부 전공이 경제학이었다. 딱딱한 ‘강단 사학’에 갇히지 않고 전문지식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 주목받아 왔다. 그는 과거의 을미년들에 벌어졌던 곤경의 역사는 뒤집어 보면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응전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주 교수 뒤로 서울대 자하연 연못에 찍힌 그의 발자국이 보인다. 우리는 올해 어떤 발자국을 찍어나가야 할까.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을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양띠 가운데에서도 청양(靑羊)의 해라고 하네요. ‘동양철학’에 무지하여 푸른색 양의 해가 어떤 기운을 띤 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양이 워낙 온순한 동물이니 올 한 해는 부디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소박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을미년은 정말 평화로운 해일까요? 지난 역사상 을미년에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니, 웬걸, 을미년마다 어찌나 나라에 큰 변이 많았던지 더럭 겁이 날 정도입니다.

을미년 아침에 띄우는 편지 ② 주경철 교수 (서울대·서양사)
을미년 몽골·왜에 맞선 저력
두 나라 군사력 당시 최고 수준
대륙·해양세력에 휩쓸리지 않아

 멀리 거슬러 올라가 1235년에는 몽골과의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이 해에 몽골군이 3차 침입을 하여 우리 강토 여러 곳을 빼앗았습니다. 1595년에는 임진왜란 중이었네요. 이순신 제독의 활약과 명나라 원군의 도움으로 전세가 우리 편으로 기우는 듯했지만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져 이 해에는 명과 왜가 화의 교섭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300년을 건너 뛰어 1895년으로 가 보면 을미사변이라는 참담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조선 주재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가 낭인 무리를 이끌고 경복궁에 난입하여 나중에 명성황후로 추존된 민비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지요.

 1955년에는 두 해 전에 한국전쟁(6·25전쟁)은 휴전됐지만 아직도 폐허 상태에 있던 차에 극심한 보리흉년이 들어 모두들 살림 형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지난 을미년 해들을 되돌아보니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많이도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들의 의미를 한번 곰곰이 다시 생각해 봅니다.

 몽골 제국이 어떤 나라인가요? 상대적 기준으로 보면 몽골군이 인류 역사상 최강의 군대라고 흔히 이야기합니다. 서쪽으로 모스크바 공국을 넘어 폴란드와 헝가리까지 진격해 들어갈 때 많은 국가들은 대부분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고려는 비록 나중에 강화를 맺고 원(몽골)의 지배를 받게 되었지만 그 전에 무려 30년 동안 강력하게 저항했습니다. 몽골 제국의 공격을 받고 이 정도로 오래 버틴 나라는 없습니다. 그 후 몽골이 고려를 압박하여 양국이 함께 일본 정벌을 벌이지만 실패로 끝나는데, 그 이유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고려가 30년 항전하는 동안 몽골의 힘이 많이 소진됐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한반도는 대륙 세력이 해양으로 나가려 할 때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한 셈이지요.

 임진왜란은 그 반대 사례입니다. 왜는 명을 공격하러 가겠으니 길을 열어달라고 조선 조정에 명령합니다. 당시 일본의 군사력이 어느 정도였기에 중국을 정벌하겠다는 호기를 부린 걸까요?

최근 군사사(軍事史) 연구는 일본 소총 부대의 화력이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보아도 훨씬 더 강력하여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사무라이와 소총 부대를 겸비한 왜군 15만이 한반도로 밀려왔습니다.

 그 비슷한 시기에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전투로는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의 잉글랜드 공격을 들 수 있는데, 전성기 스페인이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 집결시킨 군대 수는 3만 명이 채 안 됩니다. 그러니 한반도에 들어온 왜군은 당시로서는 분명 세계 최강의 군대 중 하나였습니다. 그것을 끝내 격퇴한 것은 누가 뭐래도 대단한 위업입니다. 해양 세력이 대륙으로 공격해 들어갈 때 그것을 차단한 것이 한반도였습니다.

 같은 사건이라 하더라도 두 측면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걸핏하면 우리나라가 외세의 격전장이 되어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한 면이라면, 그것들을 모두 이겨내고 오늘 여기까지 당당하게 나라를 지켜왔다는 것이 또 다른 한 면입니다.

 이웃 나라 정치 깡패들이 왕궁에 쳐들어가 왕비를 살해하던 120년 전 을미년이 우리 역사의 가장 가슴 아픈 시기 중 하나이겠지요. 그 후에도 결코 순조롭게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 역시 특기할 일입니다. 세계경제사 책을 보다 새삼 놀란 일이 있습니다. 19세기에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었던 국가들을 보면 21세기에 대개 1인당 GDP가 5000달러 내외에 불과합니다. 세계사적인 경향성에 따른다면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 역시 지금쯤 그 정도에 도달하는 게 정상일 텐데, 지난해 거의 3만 달러에 육박했으니, 경제사 교과서에서 한국을 두고 예외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룬 국가라 하는 게 타당한 지적이겠습니다.

 지난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니 고통 속에서도 크나큰 성취를 이루어냈다는 데 대해 자긍심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렇지만 너무 급히 달려왔기 때문인가요, 돈 좀 벌었다고 졸부(猝富) 근성에 물들고, 약간만 건드려도 폭발해 버리는 포악한 성격이 되고, 조금 힘들면 바로 포기하고 마는 부작용도 눈에 보이네요. 지금 다시 힘든 상황이라 해도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막강한 저력을 가진 민족입니다. 새해에는 조금 너그러운 마음,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큰 뜻을 품고 살면 좋겠습니다.

◆주경철=1960년 서울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서울대 대학원 서양사학과를 거쳐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저서로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대항해 시대』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 등이 있다. 『경제강대국흥망사』 『유럽의 음식문화』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