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디케의 저울'은 수평일까?

* 디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입니다.

대법관 43명 판결성향 데이터로 분석해 보니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국 사회에 논란이 있을 때, 그 종지부를 찍는 역할을 한다.
그들의 판단은 때론 일반인들과 같고 또 때론 다르다.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자.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국 사회에 논란이 있을 때, 그 종지부를 찍는 역할을 한다. 그들의 판단은 때론 일반인들과 같고 또 때론 다르다.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자.

양심적 병역 거부는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해야 할까?

2018년 대법관들의 판단은

"형사 처벌 등 제재로 병역의무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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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 침몰시 선장이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고 승객을 남겨둔 채 먼저 퇴선한 경우 살인죄로 볼 수 있나?

2014년 대법관들의 판단은

"선장이 퇴선명령으로 승객이 세월호 안에서 익사하는 것을 쉽게 막을 수 있었음에도 승객들을 대기시키고 먼저 퇴선하는 등 승객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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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최종 판단을 하는 13명의 대법관.
과연 그들은 어떤 성향을 갖고 있을까. 그 이념지형은 어떤 모습일까.
참여정부 시기인 2005년 9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용훈 전 대법원장 때부터 현재까지 12년 간 대법관 43명이 참여한 전원합의체 판결 236개를 서울대 폴랩과 함께 전수 분석했다.

이렇게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최종 판단을 하는 13명의 대법관. 과연 그들은 어떤 성향을 갖고 있을까. 그 이념지형은 어떤 모습일까. 참여정부 시기인 2006년 2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용훈 전 대법원장 때부터 현재까지 12년 간 대법관 43명이 참여한 전원합의체 판결 236개를 서울대 폴랩과 함께 전수 분석했다.

진보대법관 16명 vs. 보수대법관 27명

먼저 역대 대법관들의 이념지형을 살펴보자. 세로축은 임명 시기, 가로축은 왼쪽으로 갈수록 진보적, 오른쪽으로 갈수록 보수적인 판결성향을 나타낸다. 추세 차트는 이념지형의 범위와 중간값을 보여준다.

한규섭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가 이끄는 폴랩이 미국 연방대법관 판결 분석에 사용된 ‘잠재변수 모형’을 활용해, 2000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총 236개를 분석했다. 다수의 다른 대법관이 내린 결론과 상반된 소수 의견을 많이 낼수록 성향 점수가 올라가는 ‘다자간 상대적 위치 분석’ 방식이다.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을 분리해 각각 가중치를 매기고, 다수 의견과 결론은 같으나 논거를 달리하는 별개 의견도 별도의 가중치를 뒀다. -2~+2 사이의 결과값 숫자가 낮을수록 진보, 높을수록 보수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임명된 대법관 9명은 다른 대법관들에 비해 표본이 적어 상대적으로 이념성향 값이 안정화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 시기 대법관의 성향은 11월 1일 기준이다.

서울대 폴랩팀은 '잠재변수 모형'을 활용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총 236개를 분석했다. 소수 의견을 많이 낼수록 성향 점수가 올라가는 '다자간 상대적 위치 분석' 방식을 기반으로 가중치를 매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은 표본이 적어 상대적으로 이념성향 값이 안정화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 시기 대법관의 성향은 11월 1일 기준이다.

추세/중간값 보기
추세/중간값 off 추세/중간값 on
추세/중간값 off 추세/중간값 on

차트에 표시된 이용훈, 양승태, 김명수 대법관의 경우 대법원장을 맡은 이들이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에게 임기가 끝는 대법관을 대신할 후임 대법관을 지명하는 권한을 포함해, 법관 3000여명의 임명권 등 인사권, 조직 예산 등 행정권을 모두 갖고 있다. 흔히 대법원장의 이름을 따 OOO 코트(법정 ·Court)라 부르는 것도 대법원장의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시기 임명되어 대법관으로 6년 임기(2005년 2월~2011년 2월)를 마친 후 다시 대법원장으로 임명되어 6년(2011년 9월~2017년 9월)간 임기를 채웠다. 소위 '양승태 코트'라 불리는 시기다.

지난 12년 간 임명된 대법관들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 때 임명된 대법관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가장 넓었다. 대법관의 임기가 6년이다 보니 임명된 후 정권이 바뀌고도 직을 유지하는 대법관들도 많다.

추세, 중간값 차트에서 회색 영역은 대법관의 이념적 스펙트럼, 파란색 점은 중간값이다. 회색 영역이 넓을수록 다양한 성향의 대법관들이 포진해 있다는 의미다. 파란색 점은 중간값으로 당시 임명된 대법관들의 중간 정도 되는 이들이 위치다.

차트를 보면 노무현 정부 때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대법관이 많이 임명됐고, 대법관들의 이념 분포가 가장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정권에서는 스펙트럼이 다소 좁아지며 대법관의 평균 성향이 보수적으로 바뀌어 간다. 박근혜 정부 때는 중간값이 0.172 였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대법관을 많이 임명했다. 현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는 다시 중도 성향의 대법관을 임명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권 성향 닮은 대법원?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대법원장은 대법원의 구성을 공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시각을 지닌 대법관을 제청한다. 전원합의체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3명이 참여한다. 정권별 주요 대법관의 진보, 보수 성향을 확인해 보자.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12명) 가운데 진보 성향은 5명(김영란·김지형·박시환·이홍훈·전수안), 보수 성향은 7명(이용훈·김능환·김용담·김황식·양승태·박일환·안대희)이다.

김영란 전 대법관을 비롯해 전수안·박시환·이홍훈·김지형 전 대법관이 가장 왼쪽에 위치했다. 이들은 진보적 판결을 많이 내려 ‘독수리 5형제’라 불리기도 했다. 이들 5명의 평균값은 -1.22 로 다른 역대 대법관의 평균치인 0.054보다 확연히 왼쪽에 자리한다.

보수(7명) 중에는 안대희 전 대법관이 가장 우측(1.63)에 위치했고, 김황식 전 총리가 그다음 오른쪽(1.3)에 자리했다. 두 사람 모두 대법관 퇴임 후 보수 야당에 몸을 담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13명) 가운데 진보는 6명(이상훈·이인복·김용덕·박보영·김신·김소영) 보수는 7명(고영한·박병대·차한성·김창석·양창수·신영철·민일영)이다. 전임자 대비 극단에 위치한 대법관도 눈에 띄게 줄었다. (+)값이나 (-)값 모두 1이 넘는 대법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상훈(-0.51) 전 대법관은 2012년 대법원 민사2부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에서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됐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현재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차한성(0.33)·박병대(0.25)·고영한(0.22) 전 대법관은 중도 성향을 보였다. 이들이 ‘양승태 사법부’ 시절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주목해볼만한 포인트다. 박보영 대법관(-0.05)은 퇴임 후 은퇴나 로펌행을 택한 다른 대법관과 달리 최초로 여수지원에 ‘시골판사’로 부임하기도 했다. 김소영 대법관이 이달 퇴임하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은 모두 법원을 떠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를 전부 채우지 못한 탓에 임명한 대법관 수가 5명으로 적다. 진보로 분류되는 대법관은 1명(박상옥), 나머지 4명(조희대·권순일·이기택·김재형)이 모두 보수다.

권순일 대법관(0.28)은 지난달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청구소송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손해배상 청구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제한 될 수밖에 없다”며 조재연 대법관과 함께 반대 소수 의견을 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제기한 증여세 취소소송에서 과세당국 손을 들어줘 재벌의 변칙적 부 이전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 그는 최근 법원행정처 근무 시절 ‘양승태 사법부’와 박근혜 정부 간 재판 거래에 가담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희대(0.10) 대법관은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을 두고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에서 "대한민국은 지금도 주변국이 군비를 증강하고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어 자위권 강화 필요성이 증대되는데 외국보다 군사적으로 엄중한 상황에서 정당화될 수 있겠느냐"고 묻는 등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항에서 보수적 모습을 보였다. 한편으론 조현아 전 대한항공 전무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를 최종 확정한 ‘땅콩 회항’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항공기가 다니는 길이면 지상과 공중을 불문하고 모두 항로에 포함된다”며 소수 의견을 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법원은 급격한 인적 변화를 겪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2년 차에 대법관 8명을 새로 임명했다. 8명 가운데 올 1월 취임한 안철상 대법관은 한 달 만에 법원행정처장으로 임명돼 전원합의체에 참여하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전원합의체 판결 숫자가 적어 성향 분류가 명확하지는 않다. 일단 2명(박정화·김선수)이 진보적 성향, 5명(김명수·조재연·민유숙·노정희·이동원)이 보수적 성향으로 분류된다.

현 대법원장인 김명수 대법관은 중도에 가까운 보수(0.12) 성향을 보였다. 그는 법원 내 학술단체 우리법연구회장,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 등을 맡았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출신인 김선수 대법관은 -0.04로 왼쪽(진보 성향)으로 분류됐다. 그는 노무현 정부시기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을 지냈다. 당시 민정수석이 문재인 현 대통령이었다.

현재의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 거부는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해야 하나?

2018년 대법관들의 판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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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처벌 등 제재로 병역의무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

2018년 11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오모(34) 씨 상고심을 ‘무죄’로 파기환송했다. 대법관 13명 중 9명은 무죄, 4명은 유죄라고 봤다. 이는 14년 전 2004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종교·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1명만 무죄, 11명이 유죄라고 판단했던 것과는 상이한 결론이다.

사회적 인식 변화에 맞춰 하급심(1·2심)에서 일부 무죄 선고가 있었고, 헌법재판소도 지난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양심적 병역거부 판례(2018년 11월 1일)

차트에서 볼 수 있듯 이번 종교·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해 현재 대법관들의 의견은 9대 4로 나뉘었다.

진보적이라고 분석된 4명 중 2명(50%)이 종교·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보수적이라고 분류된 대법관 가운데 유죄라고 판단한 사람은 9명 중 2명(22.2%)으로, 진보적인 대법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율이 낮았다. 수치로 봐도 유죄를 판단한 대법관 4명(평균값 -0.04)의 성향은 무죄로 판단한 9명(평균값 0.27)에 비해 진보적이었다.

임명권자 별로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7명의 대법관은 전원 무죄 판단을 내렸지만, 이명박 대통령(1명)과 박근혜 대통령(5명)이 임명한 6명 중 4명은 유죄로 판단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소영 대법관은 이번 양심적 병역거부 선고를 마지막으로 퇴임했다.

법관의 성향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예측 가능성을 제고할 뿐만 아니라, 대법원 판결이 대법관의 어떠한 법적 결단 때문에 이뤄졌는지를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관의 성향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예측 가능성을 제고할 뿐만 아니라, 대법원 판결이 대법관의 어떠한 법적 결단 때문에 이뤄졌는지를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홍엽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 칼럼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중에서 김홍엽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 칼럼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중에서

발행일 : 2018.11.29

  • 기획 정원엽, 김영민, 조소희
  • 디자인 이혜미, 임해든
  • 개발 원나연
  • 데이터 분석 서울대학교 폴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