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392~1897)
조선의 부국강병을 꿈꾸다
- 석재유구
- 대원각사비
- 원각사지
10층석탑
탑골은 유서 깊은 땅이다. 고려 시대 흥복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이다. 조선 세조는 이 자리에 원각사(圓覺寺)라는 더 큰 사찰을 개창했다. 도성 안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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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한양 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 [사진제공=서울역사박물관] -
서울 무관들의 연회를 담은 '탑동연첩' [사진제공=서울역사박물관] -
『열하일기』 등을 남긴 북학파의 거두 박지원 [중앙포토]
하지만 후대 연산군은 이곳을 연방원(聯芳院)이라는 기방(妓房)으로 바꿨다. 중종은 아예 사찰을 헐어버렸다.
폐사가 된 자리엔 대리석을 깎아 만든 하얀 탑만 덩그러니 남았다. 높게 솟은 백탑(白塔)은 도성의 명물이 됐고, 이 지역은 탑골이라고 불렸다.
조선 후기 북학파 지식인들은 이 탑골에서 회합을 했다. 탑골에 살던 박지원을 중심으로 이덕무ㆍ유득공ㆍ홍대용ㆍ박제가 등이 어울리며 ‘백탑파’를 형성했다.
이들은 주자의 학설을 무조건 추종하는 대신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외쳤다. 청나라의 발달한 문물을 수용하고 상공업을 진흥시켜야 한다며, 부국강병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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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한양 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 [사진제공=서울역사박물관] -
서울 무관들의 연회를 담은 '탑동연첩' [사진제공=서울역사박물관] -
『열하일기』 등을 남긴 북학파의 거두 박지원 [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