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집이야!!

'평균 1억 2000만원' 서울에서 아파트 크기를 50㎡(2인 가구 크기 중간값)에서 75㎡ (3인 가구 중간값)로 늘려 이사하는 데 필요한 돈이다. 서울의 2인 가구가 3인 가구가 되는데 필요한 일종의 '최소 경비'인 셈이다. 여기에 결혼할 때 받은 대출 원리금 상환과 추가 생활비 부담을 더한다면? 시쳇말로 ‘무자식 상팔자’란 답이 나온다.

02. 정책 실패: 집이 없으면 애도 없다

애 셋? 부의 상징!

“오피스텔에 사는 한 아이 낳기 어려울 것 같아요.”

김준석(32·구두업체 직원), 노지현(29·여·간호조무사)씨는 재작년 결혼했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생각을 당분간 접기로 했다. 지금 사는 오피스텔(서울 노원구·전세 1억2000만원, 대출금 5000만원)에는 보행기 하나 놓을 공간조차 빠듯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울 만한 좀 더 넒은 아파트로 옮기려면 서울 외곽으로 가도 2억원 가량이 더 필요하다. 노씨는 “대출받을 엄두가 안 나는 금액”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의 '2015년 신혼부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신혼부부 둘이 합쳐 1년에 버는 돈은 평균 4732만원(세전)이다. 평균 부부 수입의 약 4배를 대출받아야 서울에서 아이를 낳고 살 만한 아파트 전세를 구할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주거가 불안정한 부부들은 결혼은 했어도 출산을 꺼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자기 집을 가진 부부의 45.8%가 "아이를 낳는 데 주택 문제가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지만, 월세로 시작한 부부의 경우 63%가 같은 답을 했다.

또 이런 경향은 최근 결혼한 부부일수록 더 두드러졌다. 1999년 이전 결혼 부부는 46.3%, 2010년 이후 결혼 부부는 67%가 “주택문제가 출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실제 출산율도 차이가 났다. 무상거주(부모가 집을 사 주거나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를 하다 자기 집을 산 부부의 자녀는 평균 2.2명, 전·월셋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해 현재도 전·월세로 살고 있는 부부의 자녀 수는 평균 1.62명이었다.

신혼집을 살 때 부모 도움을 받지 않은 부부의 출생아 수가 1.9명인 반면, 부모가 집값을 다 대준 부부의 출생아 수는 2.01명이었다.

집 따라 달라지는 자녀 수

자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모 지원 없음 1.9명, 부모 지원 50% 미만 1.95명, 부모 지원 50~100% 미만 2.0명, 부모가 주택 마련 2.01명 부모 지원 없음 1.9명, 부모 지원 50% 미만 1.95명, 부모 지원 50~100% 미만 2.0명, 부모가 주택 마련 2.01명

대출 갚으려면 맞벌이 필수, 애는 누가?

주거 문제가 출산을 좌우하는 현실은 육아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애를 낳으면 누군가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데, 부부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대출금 원리 상환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노지현씨는 “아이를 가져 일을 그만두면, 외벌이만으로 대출금 갚으며 육아비까지 감당해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안 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신혼부부 주거실태 조사에서도 맞벌이 이유로 ‘주택구입비 및 전·월세비 등 주택비용 마련’을 꼽은 경우가 31.9%로 가장 많았다.

더욱이 이런 주거비 부담은 갈 수록 커지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의 평균 전셋값은 2378만원이나 올랐다. 반면 경기 침체로 직장인들이 월급 인상이나 별도의 투자 소득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소득은 안 오르는데...자꾸 오르는 주거 비용

자료: 국토교통부 (2014)/단위: %
소득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
 2010년 수도권 20.9%, 광역시 16.4%, 도지역 14.4%, 2014년 수도권 21.6%, 광역시 16.6%, 도지역 15.8% 소득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
 2010년 수도권 20.9%, 광역시 16.4%, 도지역 14.4%, 2014년 수도권 21.6%, 광역시 16.6%, 도지역 15.8%

자연히 돈을 벌어 주거비에 쓰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각 가정의 월소득 대비 주거비 지출(RIR)은 2006년 19%에서 2012년 23%까지 올랐다.

김준석·노지현씨 부부처럼 아이가 생기면 이사를 가야하는 경우는 주거비 부담이 더 커진다. 집을 늘려가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바꾸거나 추가로 전세금 대출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출금리를 4%로 잡을 때 전세 대출로 2억원을 빌리면 매월 부담해야하는 이자만 60만원이다(20년·만기 일시 상환 기준). 원금은 빼고 이자만 해도 이렇다.

이런 상황에서 부부 중 한 명이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 두게 되면 주거비 부담이 또 늘어난다. 가계 소득이 더 줄기 때문이다.

김준석씨는 “정치권에서 남자도 육아휴직을 1년씩 쓰게 해준다는데, 돈 많은 사람들에게나 좋은 얘기”라고 말했다. “매월 300만원씩 들어오던 돈이 70만원(육아휴직 수당)으로 줄면, (기존) 대출금은 어떻게 갚고 이사갈 집 전세금은 어떻게 올려주냐”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적은 여성이 휴직을 한다해도 이전에 비해 대출금 상환 여력이 줄어드는 건 마찬가지다. 복직을 하게되면 갓 돌 지난 아이를 돌보는 데 드는 비용(베이비시터 인건비 등)이 추가로 들기 때문이다.

전문가 인터뷰

“임대료 부담이 저출산 이끈 주범”

조영태 교수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출산을 장려하려면 주거 안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집을 사주지는 못한다 해도 과도한 임대료 상승은 막아줘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 2차 기본계획 집행기간(2011~2015년) 동안 보육·양육 지원에만 골몰했다. 정작 부동산 정책은 저출산 정책과 완전히 반대로 갔다.

박근혜 정부 경제팀은 2014년 8월 LTV(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를 완화해 소비 심리를 자극했다.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과도한 대출을 끼고 집을 산 집주인들은 전세를 줄이고 반전세·월세를 늘렸다.

결국 전·월세 임대 주택이 필요한 청년 세대들이 집주인들의 대출 이자를 떠안은 셈이 됐다. 2년마다 주거 비용이 어떻게 치솟을지 모르니 혼인·출산을 계획하기 어렵고 연간 출생아 수는 바닥을 쳤다.

“집값 불안하면 둘째 안 낳더라”

이삼식 교수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화대책기획단장

지금 저출산 문제는 두 가지 축이 핵심이다. ‘주거 불안정’과 ‘둘째 출산 의욕저하’다. 흔히 주택을 결혼의 장애물이라고만 이야기하는데, 사실 혼인·출산의 초기 비용이라고 봐야 한다. 특히 주거가 불안정한 전·월세 거주 부부들은 ‘둘째’를 낳을 때 주거 비용이 분수령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내 집 마련을 한 뒤 혹은 집을 넓힌 뒤 둘째를 갖자”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첫째와의 터울, 후천성 난임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제껏 단기적으로 출산율 지표를 올리는 데 급급했던 것이 정책 실패의 요인이다. 보육ㆍ양육 지원은 ‘급한 불을 끄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 특히 출산율은 정책 몇 가지로 조절하기 어렵다. 5년 뒤가 아닌 50년 뒤를 내다보고 사회구조를 재편하는 데 힘쓸 때다.

언 발에 오줌누기식 정부 정책

80조원. 정부가 저출산·고령사회 1·2차 기본계획 집행기간(2006~2015년)동안 쓴 예산이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은 1.25명(2007년)에서 1.17명(2016년)으로 되려 줄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국토교통부의 신혼부부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답이 보인다.

'양육비 지원' 같은 육아 정책에 대한 신혼부부들의 선호도는 2014년 53.4%에서 2015년 49.4%로 떨어졌다. 반면 ‘신혼부부 공급 주택 확대’ ‘주택 마련 대출제도’ 같은 주택 정책에 대한 선호도는 35.5%에서 41.8%로 올랐다. 특히 소득이 적은 신혼부부일수록 주택 정책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정부의 주거 지원 대책은 미흡한 실정이다. 한 해에 약 25만 쌍이 결혼하지만, 올해 신혼부부에게 지원하는 행복주택은 1만8000채 뿐이다. 전체 지원 대상자의 10%를 밑도는 수준이다. 입주 자격도 까다롭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월 소득 577만원(평균 소득의 120%) 이하여야 한다.

천현숙 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 연구위원은 “현재 신혼부부 주거 정책은 저소득층 지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는 일종의 복지 정책이지 저출산 정책이 아니다”라며고 지적했다. 천 위원은 “출산장려를 위해서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복지과는 별개로 부부가 생애 주기에 걸쳐 안심하고 자녀를 기를 수 있는 주거 사다리를 놔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획재정부도 저출산·고령사회 2차 기본계획 집행 후 “임신과 출산 자체에 관한 지원은 늘었지만, 주거 등 결혼전후 지원대책이 부족했다”는 평을 냈다.

신혼부부와 정부 정책의 미스매치

신혼부부는 갈수록 '주택 지원 정책' 원하는데

신혼부부들이 원하는 지원정책은?
육아지원정책 2014년 53.4%, 2015년 49.4%,  주택마련지원정책 2014년 35.5%, 2015년 41.8%, 생활안정지원정책 2014년 11%, 2015년 8.8% 육아지원정책 2014년 53.4%, 2015년 49.4%,  주택마련지원정책 2014년 35.5%, 2015년 41.8%, 생활안정지원정책 2014년 11%, 2015년 8.8%
자료: 2015 신혼부부(혼인1-5년차) 2702가구 조사/단위: %

신혼부부 주택지원은 턱없이 부족

3차 저출산·고령사회 대책(2016~2020년)
3차 저출산·고령사회 대책(2016~2020년)
주체 정책 내용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투룸형 행복주택 공급 5년간 5만3000호
경기도 임대주택 '따복하우스'공급 2020년까지 7000호
충북 단양군 임대아파트 공급 188가구 중 신혼부부에게 15% 우선 공급

출범 당시 대통령 직속이었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때 복지부 장관 직속으로 위상이 축소됐고 사무국이 5개 과에서 1개 과로 줄었다. 2013년 다시 대통령 직속으로 환원됐지만 한번 축소된 사무국은 복원되지 않았고, 담당자들도 싹 바뀌었다. 지난해 국정조사에 출석한 사무국 직원들 중 1차·2차 실행 사업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 때문에 위원회에서 주택 관련 인구정책을 제대로 수립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부처 간 협업이 중단되고 주무부처(복지부) 위주로 일을 처리하다보니 아무래도 출산과 양육 관련 복지에 힘을 줄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보험연구원은 “저출산 대책을 필두로 하는 인구정책은 그간 출산율을 높이는 인구조절 정책에 방점이 찍혀이었지만 효과가 미미했다"며 "이제는 고용·주거 등을 안정시키는 근본적인 인구대응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