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라이벌
런던의 '코피', 리우서 설욕한다
이.대.훈

이것이 태권도다

금메달 기대주가 동메달을 따고 이토록 찬사를 받은 적이 있을까.

19일 오전(한국시간) 2016 리우올림픽 태권도 남자 -68㎏급에서 동메달을 딴 이대훈(24) 선수 얘기다.

이대훈의 적극적인 경기 내용, 패배 후 승자의 손을 번쩍 들어준 스포츠맨십은 금메달이 아니어도 태권도 종주국의 자부심을 지켰다.

리우로 출발하기 전, 이대훈에게 물었다. "금메달 따면 어떤 세리모니 할 건가요?"
그때 이대훈은 이렇게 답했다.

"혹시라도 졌을 때 어떻게 할지는 생각하고 있다."

출전 직전 가졌던 이대훈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어떻게 따라 잡아요…질 거 같아요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태권도 –58kg급 결승전.

이대훈은 세계 랭킹 1위 스페인의 호엘 곤살레스 보니야(27·스페인)와 맞붙었다. 당시 이대훈은 20세, 올림픽 첫 출전이었다. 아시안게임(2010·63kg급)과 세계선수권대회(2011·63kg급)를 이미 제패한 후였다.

이대훈은 발차기 공격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그러나 곤살레스의 경기 운영은 노련했다. 3라운드. 곤살레스의 발차기가 이대훈의 콧대를 가격했다. 4개월 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부러졌던 코뼈가 겨우 붙으려던 참이었다. 이대훈은 피가 흐르는 코를 부여잡았다. 응급처치를 하러 물리치료사가 링 위에 올라오자 이대훈은 말했다. “어떻게 따라 잡아요… 질 거 같아요”

결과는 8대 17. 이대훈의 패배였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한 쓰라림이다.

체중 감량 탓? 실력 차이였다

당시 이대훈은 체중 5kg을 감량해 58kg급에 출전했다. 그의 원래 체급은 63kg이지만 올림픽에는 63kg급이 없다. 58kg급과 68kg급 중 고심 끝에 체중을 줄이는 쪽을 택했다.

언론에선 무리한 체중 감량이 패배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대훈은 “실력에서 밀렸다”고 담담히 말했다.

2012 런던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에서 이대훈이 호엘 곤살레스 보니야(스페인)과 대결 중 코피를 흘려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 [ 중앙포토 ]

런던 때보다 몸 상태 2~3배 좋다

4년의 시간이 흘렀다. 68kg으로 체급을 올린 이대훈은 2015년 12월 기준으로 세계 랭킹 1위 자리에 올랐다. 랭킹 6위까지 주어지는 리우 행 티켓도 가볍게 따냈다.

공교롭게도 숙명의 라이벌 곤살레스 보니야도 체급을 올려 68kg급에 출전한다. 체급을 바꾸면서 곤살레스의 세계 랭킹은 6위로 떨어졌지만, 방심할 순 없다. 이대훈 역시 곤살레스와 리우에서 다시 한 번 맞붙기를 바라고 있다.

곤살레스 보니야
  • 곤살레스 보니야
  • 27, 스페인
  • 남자-68kg급 세계랭킹 6위
  •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58kg급 금메달

곤살레스 외에도 라이벌은 많다. 알렉세이 데니센코(23·러시아/세계랭킹 2위), 자우아드 아찹(24·벨기에/세계랭킹 3위) 등 신진 세력의 도전은 거세다. 58kg급에서 이대훈은 장신(183cm)이었지만, 68kg급에서는 그리 큰 편이 아니다. 큰 키에서 오는 이점이 사라졌고, 체급을 올렸기에 아무래도 체력 부담이 있다.

알렉세이 데니센코
  • 알렉세이 데니센코
  • 23, 러시아
  • 남자-68kg급 세계랭킹 2위

그러나 이대훈은 체력에서 밀릴 게 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언호 박사(한국스포츠개발원)도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육량이 크게 늘어 이대훈의 몸 상태가 런던올림픽 때보다 몸 상태가 2~3배는 더 좋다"고 말했다.

"사람은 무한대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어요." - 이대훈 인터뷰 중 -

'어금이' 반전 없도록

'어금이’, 어차피 금메달은 이대훈 것이라는 농담 반 진담 반 얘기다.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을 제패하고 세계랭킹 1위 자리에 올랐기에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다. 리우에서 금메달만 따면 이대훈은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을 달성한다.

“어남류라 확신했는데, 어남택이 됐잖아요. 이런 반전은 안되는데.”

‘어금이’에 대한 이대훈의 장난스러운 답변이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방영 당시에도 모두들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라고 확신했는데, 결국엔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이)이지 않았냐며 반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금메달을 따오겠다는 의지는 강하게 내비쳤다. 여유와 자신감이 엿보였다.

  • 이대훈
  • 남자 -68kg급
  • 2014년 아시안게임 남자 -63kg급 금메달
  •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63kg급 금메달
  •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58kg급 은메달
  • 출생 : 1992년생 2월 5일
  • 나이 : 24세
  • 신장 : 183cm
  • 발 크기 : 265mm
  • 장점 : 유연한 발차기

한 번의 발차기로 두 번의 타격을

이대훈은 긴 다리를 이용한 이중 앞발 돌려차기를 자주 구사한다. 이중 앞발 돌려차기는 무릎을 들어 올린 상태에서 몸통 상단 쪽으로 가볍게 발을 찬 뒤, 발바닥을 얼굴 상단까지 뻗는 동작으로 이어진다. 한 번의 발차기로 두 번 타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대훈은 상대방의 빈 틈을 포착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중 앞발 돌려차기의 성공률이 높은 이유도 정확한 타이밍에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Q.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고 들었다.

많이 온다. 하루에 1-2씩 할때도 있다. 그만큼 관심을 가져준다는 뜻이니 고맙다. 부담 없이 하려고 노력한다.

"단독보다는 단체 인터뷰 했으면"

다만, 단독 인터뷰보다는 함께 출전하는 동료들과 같이 하는 편이 좋다. 나한테만 몰리는 게 아쉽다.

Q. 응원 받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개그맨 유재석 씨, 아니 유느님을 정말 좋아한다. 실물로 한 번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최근에 태릉 선수촌에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을 찍으러 오셨더라. 진행하시는 모습에 또 한 번 반했다.

"유재석 실제로 보는게 소원이었다"

다음 소원은 유재석씨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다. 응원 해주신다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Q. 아이돌 못지 않은 외모다. 팬레터나 선물 많이 받을 것 같은데

하하. 못생기지는 않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눈이 예쁘다는 소리는 종종 듣는다. 근데 태릉선수촌에 나보다 잘생긴 사람들 널리고 널렸다.

선수촌 식당 한번 가봐라. 진짜다.

"못생겼다는 말보다는 듣기 좋네요"

받긴 받는다. 사실 좀 많이 받는다. ‘이걸 다 어떻게 썼지’ 싶을 정도로 정성들여 써 준 편지들도 많다. 너무 많이 왔을 때는 다 못 읽기도 하는데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Q. 만족하는 성격이 아니라고 들었다.

그렇다. 체력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력이 어느 정도 늘었다고 해도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람은 무한대로 발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무한대로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요령을 피우지 않는다. 더 죽도록 한다.

Q. 금메달 세리모니 준비하고 있나.

졌을 때 어떻게 할지는 생각하고 있다.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곤잘레스 선수를 더 축하해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정신이 없어서 손을 한번 맞잡아 들어 올려준 것 밖에 없다. 그게 내가 한 건지 곤살레스 선수가 한 건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끝났다.

"승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번 리우에서 혹시나 은메달에 머문다면,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금메달 딸 자신이 없단 말은 아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