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 행복도 꼴찌…인생 3막은 '발룬티코노미스트' 삶 사세요 [더오래]

    韓 행복도 꼴찌…인생 3막은 '발룬티코노미스트' 삶 사세요 [더오래]

     ━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80·끝)      2021년이 마무리되어 가는 10월과 11월 두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우리 헌정사에서 수많은 논란과 갈등을 빚었고 이제 다시는 기억의 페이지를 들추고 싶지 않은 두 대통령의 죽음을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그들이 남긴 교훈을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다 알다시피 오랜 친구이자 정권찬탈의 동지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한달여 만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하게 된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노 전 대통령은 권력 찬탈의 계기가 됐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인 10월 26일에 세상을 떠났고, 또 한 사람은 정권찬탈과정에서 지었던 과오를 뉘우친다며 백담사로 들었던 그날인 11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내 생각으로는, 우연치고는 필연에 더 가까운 종말이다. 어떤 필연일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온다는 속담대로 그 콩과 팥이 나만 잘살고,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적 사고가 낳은 결과가 아닐까. 이 세상에 거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모태신앙을 갖고 있는 내가 자주 강조하는 얘기, 벌을 받더라도 가끔 신의 존재를 의심할 때가 있지만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것과 이 세상에 ‘거저’는 없다는 사실만은 절대적으로 신뢰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 세상에 거저, 자연적으로 되는 게 어디 있는가? 두 전직 대통령의 암울한 말로는 나 혼자만 잘살면 된다는(소아적 이기주의) 생각과 행동이 낳은 필연적 결과다.   한라산 위로 떠 오른 태양. 새해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기원해 본다. [사진 한익종]   오래전에 나쁜 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나쁜 놈의 어원은 ‘나 뿐인 놈’ 아니었나 싶다. 나만의, 내 가족만의 이익을 위해서는 못된 일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 나쁜 놈이다. 선의 결과는 선이고 악의 결과는 악이다. 이를 두고 사필귀정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을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무모한 짓을 인간은 왜 반복할까? 자기합리화 증후군에 빠진 고양이 심리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나는 괜찮다’, ‘나는 아니다’는 고양이 심리. 그래서 제임스F 웰스는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고 개탄했나 보다.   자본주의의 미래 저자 폴 콜리어는 자본주의의 성공사례로 꼽히던 한국이 이젠 낮은 출산율, 포퓰리즘정책의 득세, 빈부격차의 심화, 사회갈등 등으로 인해 자본주의의 병폐와 자본주의의 고장이라는 사례의 대표적 국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류사회학자인 조한혜정 선생은 ‘선망국(先亡國)’이란 표현을 들어 오늘의 우리를 경고한 바 있다. 기업, 사회, 국가라는 공동체 이익을 위해 함께 했던 ‘이타’라는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고 사회 구성원 저마다 나만의 이익을 (우리끼리) 추구하는 개인이기주의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면서 나타나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꼬집었다. 더욱 암울한 미래는 이렇게 세계적 석학들이 우려 깊은 시선을 보내고 사회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그 이유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건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고,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는 사고 때문이다. 그러나 명심하자. 순망치한이다. 이웃이, 사회가, 국가의 한 축이 무너지면 나 또한 무너진다는 사실을. 여기서 우리는 ‘이타가 곧 이기’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우리나라의 현주소는 어딘가?   얼마 전 ‘세계 가치조사’가 실시됐는데. 그 결과가 우리나라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듯해 충격에 빠진 적이 있었다. 세계 80개국의 성인들에게 11가지의 가치를 제시한 후 후손들에게 가르쳤으면 하는 5가지의 가치를 골라보게 한 결과, 이타심을 가르쳐야 한다는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것이다. 행복도 조사에서 ‘어려울 때 찾아갈 만한 지인이 있는가?’라는 조사에서도 우리나라가 꼴찌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세대에게 환경의 중요성, 창의적 삶에 대해 설명하는 필자. 은퇴후 삶은 발룬티코노미스트적(봉사,경제활동) 삶이 필요하다. [사진 한익종]   베이비 부머 세대를 ‘오팔세대’라고도 한다. 보석 오팔은 수많은 균열을 통과한 빛이 무지갯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으로 베이비부머 세대를 칭송(?)하는 의미로 쓰인다. 이대로 우리 세대가 끝난다고 가정하면 나는 오팔은커녕 인류 역사상 후손들로부터 가장 ‘비난받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큰 이유는 나만 잘살겠다고 똘똘 뭉쳤고, 그 결과 후손들에게 이기주의적 가치관을 건네줌으로써 개인적 불행은 물론 환경파괴, 사회적 병폐의 양산 등 치유할 수 없는 미래를 남겨주는 세대로 남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아직 기회는 있다.   니체는 삶을 낙타, 사자, 어린아이와 같은 삶이라 은유적으로 말했다. 나는 그에 빗대 인생을 3막이라 말한 바 있다. 인생3막은 인생1, 2막과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인생3막은 인생2막인 직장생활의 투쟁적이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삶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인생2막과 다른 삶은 ‘함께’이며 함께의 기본은 ‘이타를 통한 이기의 달성’이다. 그런 측면에서 ‘발룬티코노미스트(봉사+경제활동)’의 삶을 제안한다.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의 연재 마지막 글을 ‘인생3막은 발룬티코노 미스트의 삶이다’로 정한 이유다.   관련기사[더오래]‘고독부’ 둔 선진국…나랏님이 노인 외로움 해결해준다?[더오래]두가지 은퇴 삶, ‘아, 옛날이여’vs‘오라는 데 많네’[더오래]'오팔세대' 원죄 떠안은 40대 교사 3명의 대화 푸르메재단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2.09 10:00

  • [더오래]연탄 도둑에 술 먹이고…정 넘쳤던 광산촌 판잣집 이웃들

    [더오래]연탄 도둑에 술 먹이고…정 넘쳤던 광산촌 판잣집 이웃들

     ━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214·끝)     몇 년째 코로나 팬더믹으로 일상이 힘들고 선거까지 겹쳐 어수선하다. 우리 동네 외딴 빈집 마당에 낯선 차가 들어가더니 젊은 남녀가 투덕거리며 짐을 내렸다. 빈집의 친척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궁금한 어른들이 며칠 후 버려진 짐을 들춰 보니 살림살이 같단다. 방을 빼고 난 허드레 짐을 사전 답사한 빈집에 버렸다는 것이다. 경찰도 조사차 다녀갔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시나리오로 써보고 싶은 잊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어쩌다 쫄딱 망해 혼수로 해간 많은 살림을 다 버리고 남편과 도망가 살던 광산촌이다. 그곳에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남편 또래의 젊은 부부가 있었다. 부모가 농사짓던 밭에 집을 지어 세를 주었는데, 열두 집을 두 줄로 나뉘어 개집처럼 다닥다닥 붙여 마주 보게 지은 판잣집이었다. 작은 방 한 칸과 부엌. 위험하지만 광부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만했다. 일하다가 죽으면 그나마 남은 가족만큼은 덜 힘들게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모여든 이들이다(한집은 부모를 모시고 다섯 식구가 살았고 나머진 비슷한 청춘의 혈기들. 나를 포함 임신한 부인이 5명이나 있었다).   광산촌에 살았던 적이 있다. 양철지붕의 빗소리부터 사계절의 변화까지 그 경험은 무엇에 비유할 수 없을만큼 생경하였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양철지붕의 빗소리, 여름과 겨울의 춥고 뜨거움은 무엇에 비유할 수 없이 생경했다. 아침이면 두 개뿐인 변소(화장실과는 다른) 앞에 줄을 서야 했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으러 또 줄을 서야 했다. 밤새 고인 물은 열두 집이 나누기엔 턱없이 모자라 한집에 한 동이씩만 할당이 되었다. 그걸로 밥하고 세수하고 설거지하고 빨래도 했다. 아파 죽을 것 같아도 물을 받아 놓은 후 기어들어가 죽어야 할 판이었다. 세입자는 주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장실 순번도 바꿔주고 줄을 서지 않아도 물을 받아주었다.   우리는 한 달에 5000원의 월세를 냈다. 사정이 생겨 못 내면 당장 방을 빼야 할 만큼 주인은 눈을 부라렸다. 주인 목소리가 크게 들리면 이웃들이 하나둘 나와서 집세를 못 내 고개 숙인 세입자 등 뒤에 마치 조폭처럼 든든하게 배경이 되어 서 있거나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돌았다. 그러면 주눅이 든 주인은 표정을 바꾸며 집세를 며칠 연기해 주었다. 그들보다 더 가난한 연탄 도둑도 들어왔다. 그럴 때도 그들은 함께 달려가 잡았다. 북 치듯 두드려 패고 나면 술잔이 돌고 돌아갈 땐 도둑의 양손에 연탄이 들려 있었다. 아이 못 낳는 한 여자는 배부른 여자들만 지나가면 째려보았는데 나는 화장실 갈 때도 그녀의 눈치를 보며 다녔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그녀는 2주나 산후바라지를 해주고 아이를 돌봐주었다. 남남이지만 서로에게 형제애 같은 정이 흘렀다.   어려운 일엔 굳게 뭉치던 그들은 연탄 한장으로 원수가 되어 주먹이 오갔다. 날마다 그럴만한 뉴스가 생겼다. 뉴스는 술판과 잘 어울렸다. 술은 야간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자의 손에 들려 아침부터 밥상으로 출근했다. 술이 수면제가 되지 못해 엇나가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우는 남자로, 쌍욕을 해대고 밤새도록 노래하는 사람으로 변신시켰다. 한집에서 들리는 그 소리는, 이어진 천장을 넘나들며 모두의 잠을 설치게 했다. 술만 먹으면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는 한 남자는 호박(머리)을 깨버리겠다고 소리치면서 문을 발로 탕탕 치며 밤새 돌았다. 정말로 숨소리도 들키면 머리통 깨지는 건 시간문제 같았다. 퇴근 후 느긋이 밥 반주를 하던 남편은 별일 아닌 듯 말했다. “그래서 술은 잘 배워야 하는 거야. 나를 봐라. 나는 6살부터 어른 무르팍에서 배워서 얼마나 품위 있나 말이다. 흠흠. 저렇게 응어리 풀어야 기운이 또 난다. 자자고마. ” 품위 있는 술꾼께서도 가끔은 내 집을 못 찾아 들어가 맞아 죽을 뻔 했다.   얼마 전 거기서 같이 살던 분이 신문의 내 글을 보고 연락이 닿아 지난 이야기로 긴 시간을 울고 웃었다. 그리곤 몇몇 분의 안부를 전해 주었다. 자신은 사업가로 잘살고 있고, 호박을 깨겠다며 돌아치던 누구는 진폐증으로 병원에 있으며, 누구는 목사가 되었고, 마지막까지 착하기만 하던 누구누구는 죽었단다. 이전엔 이웃과 함께 오가는 따스한 정으로나마 살아냈다. 현대는 아파서 죽기보다 외로워서 죽는다. 같이 있어도 고독하다. 그러니 내 삶에 뉴스가 없다면 나는 죽어서 살아 있는 것이다.   10년 후 세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나는 또 그때까지 살아있을까? 나이 들면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게 눕는 거라는 말이 있다. 힘들어 소리 지르고 욕을 하고 종내에 가진 것을 다 버리더라도 꿈과 소망은 절대 버리지 말자. 살아가는 이야기로 독자들과 함께한 지 4년이 지났다. 나를 작가로 만들어 준 중앙일보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글을 ‘[더,오래] 살다보면’의 마지막 회로 쓴다. 행여나 글로 다시 만나는 인연이 되는 독자는 두 팔 벌려 나를 안아주길 기원한다. 나도 또한 그럴 것이다.   관련기사"아끼다 똥된다"…나이 들면 좋은 것만 써야 하는 이유 [더오래][더오래]아무도 몰라주지만…나는 살아가는 얘기 쓰는 무명작가[더오래]홀로 걸으며 내 안의 나와 대화했던 달마고도길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2.09 07:00

  • [더오래]뇌출혈 분간 어려운 만취자…자칫하면 의사도 죽음

    [더오래]뇌출혈 분간 어려운 만취자…자칫하면 의사도 죽음

     ━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90)     술에 취한 중학생을 진료한 적이 있다. 섬에서 근무할 때였다. 학생 하나가 혼수상태로 보건소에 업혀 들어왔다. 친구들과 몰래 술을 마시다 사고가 발생했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머리를 다쳤다고. 일단 술로 인한 인사불성 상태로 보이는데, 아무튼 뇌출혈을 감별해야 했다. 취한 사람들은 원래 다치는 일도 많고, 뇌출혈이 일어나는 경우도 잦으니까.   두부 CT 검사를 해야 했다. 증상만으로 만취와 뇌출혈을 구분하는 건 히포크라테스 할아버지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시골 보건소에 CT 기계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하필 늦은 새벽 시간이라 섬에서 육지로 나가는 교통편도 여의치 않았다. “뇌출혈이 있으면 위험합니다.” 여러 차례 경고해봤지만, 보호자는 단순히 취한 게 아니겠냐며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펼쳤다. 진퇴양난이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학생의 팔에 링거를 꽂아두고 밤새도록 기도를 올린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린 학생의 소중한 생명과 어렵게 딴 내 의사면허를, 하늘이시여 부디 지켜주소서.’ 행여나 뇌출혈이 있으면 아이도 죽고 의사도 죽는 거니까…. “그런데 우리 아이 괜찮겠죠?” 보호자의 질문에 숨이 턱 막혔다. ‘걱정되면 어떻게든 아이를 큰 병원으로 데리고 나가셔야지, 나한테 뭘 기대하는 거지?’   응급실에서 취객들은 골치 아픈 존재다. 특히 정신을 못차리는 이유가 술 때문인지 뇌출혈 때문인지 짚어내기란 쉽지 않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전공의 시절에도 주취자를 많이 보았다. 그들은 종종 나를 시험에 들게 했는데, 한번은 뇌출혈을 놓쳤던 적도 있다. 인사불성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였다. 의식이 명료하지 않아 CT 검사를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의사고 간호사고 누군가 접근하기만 하면 환자가 발로 걷어차 버렸다. 도무지 손 쓸 도리가 없었다. 막막했다. 보호자도 문제였다. 술 마신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링거나 빨리 놓아주라고 화를 냈다. “아니 링거 주사는 무슨 수로 놓습니까? 다들 얻어맞기 바쁜 거 안 보입니까?” 할 수 없이 수면 마취로 환자를 완전히 재운 후 CT 검사를 진행하기로 계획했다. 다만 조금 위험했기에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검사를 위해 수면 마취를 할 건데, 혹시 너무 깊이 잠들면 기관삽관과 인공호흡기를 달 수도 있어요.” 하마터면 한 대 맞을 뻔했다.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환자는 한나절 푹 자고 일어나더니 그제야 술에서 좀 깨어났다. 드디어 협조가 돼서 두부 CT 촬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검사 결과가 최악이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선명한 뇌출혈 소견이 드러났다. 뒤늦게 부랴부랴 응급수술을 준비해야 했다. 당연히 보호자는 또 한 번 길길이 날뛰었다. 뇌출혈을 단순 음주로 오인해서 치료가 늦어졌으니 책임지라고 했다. 의료사고라며 고래고래 악을 질렀다. ‘혹시 이대로 환자가 죽으면 나는 감옥에 끌려가나? 이제 겨우 의사가 됐다고 어머니가 많이 좋아하셨는데…’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했던 걸까?   환자가 정신을 못 차리는 원인이 술이 아니라 뇌출혈 때문임을 족집게처럼 짚어낼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면 의사가 아니라 점쟁이일 테지. 결과만 놓고 보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명백했다. 링거나 놔달라는 보호자는 말로든 힘으로든 억눌러야 했다. 무조건 두부 CT를 검사해 뇌출혈을 찾아내고 즉시 응급수술까지 진행해야 했다. 그런데 과연 이게 쉬운 일일까? CT는 본디 환자가 움직이면 검사가 불가능하다. 협조가 필수라서 이런 경우는 수면 마취제를 써야 한다. 그럼 마취는 어떻게 시행할 것인가? 여럿이 달려들어 환자를 힘으로 제압한 후 억지로 주사를 꽂으면 되기야 될 테지. 그런데 그 광경이 과연 사람들 눈에 어찌 보일지 의문이다. 또 하나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수면 마취의 부작용이다. 목에 튜브를 꽂아 인공호흡기를 연결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술 취한 사람의 뇌출혈 여부 확인을 위한 대가라기엔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이럴 때는 위험과 이득을 보호자와 충분히 상의하며 최선의 길을 함께 찾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보호자는 전혀 내게 협조적이지 않았다. 분명히.   그 이후 나는 한동안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보호자가 결과론으로 나를 옭아맸기 때문이다. 다행히 환자의 수술 결과가 좋았기에 별일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혹시나 환자가 잘 못 되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일하고 있진 못했을 테지.   주취자의 진료의 어려움을 길게도 설명했는데, 그만큼 응급실에서 취객이 골치 아프고 보기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사건을 얘기하면, 대부분은 다음과 같이 쉽게 얘기하곤 하더라. “뇌출혈 환자를 단순 주취자로 오인한 의사 때문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 의료사고”라고. 속상할 때가 많다.   관련기사[더오래]환자도 아닌데…인공호흡기 꼽은 취객의 충격적 증언응급실서 '가슴 쿵쿵' 취객 몰린 男, 가슴에 '시한폭탄' 있었다 [더오래][더오래]휴일 싫다, 그러나 이번 크리스마스 만큼은…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2.07 09:00

  • [더오래]하루 1달러…맨손으로 폐선 뜯는 방글라데시 노동자

    [더오래]하루 1달러…맨손으로 폐선 뜯는 방글라데시 노동자

     ━  [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59·끝)     2008년 5월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한 컴패션어린이센터에 한국 후원자들과 방문했다. 후원자 중 마술사가 있어 묘기를 보여주자 어린이들은 충격이라도 받은 듯 환호성을 질렀다. 폐선들의 무덤과 그곳에 올라 하루 1,2 달러의 벌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기 전의 일이었다. [사진 허호]   2008년 컴패션에서 후원자들이 비전트립을 가는데 같이 가서 사진을 찍어주면 좋겠다고 제의해 처음으로 방글라데시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미리 그 나라의 사회상이나 역사 등에 대해 공부했을 텐데, 당시에는 그러지 못하였죠. 아쉬운 점이기도 하지만, 그때 도착한 방글라데시의 도시 치타공을 생각하면 미리 공부하고 가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어린이들의 까맣고 선한 눈망울과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를 경험하기도 전에, 다른 선입견을 가졌을 것 같았으니까요.   인구밀도가 세계 1위인 방글라데시는 히말라야산맥과 벵골만 밀림이 만나는 중간에 있는 데다 갠지스, 메그나, 브라마트 강이 중심을 이루어 수많은 지류가 전 국토를 가로지르는 그야말로 물이 많은 나라라고 합니다. 일찌감치 강 주변으로 넓은 농경지가 형성돼 있어 축복 받은 땅이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농경지의 풍요는 인구 증가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지나친 인구 과잉으로 방글라데시가 처한 가난의 요인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고 하지요.   치타공은 그러한 방글라데시의 제2의 도시입니다. 인구밀도가 어마어마하게 높다지요. 그만큼 높은 기온과 강우량으로 습하고 무더운 날씨로도 유명했는데, 수도인 다카에서 한 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내렸을 때에는 다카의 오염된 공기 때문인지 오히려 상쾌하고 시원한 느낌이었습니다. 컴패션어린이센터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꽃과 웃음이 버무려진 환영식과 놀이 시간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도 당시를 회상하면 웃음 짓게 할 정도로 즐겁기만 한 시간이었지요.   폐선들이 가득한 선박해체소를 보게 한 건 다름 아닌 동네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달음박질이었다. 위험천만한 작업 현장을 어린이들이 이리도 쉽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아버지가, 형이, 삼촌이 그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센터에서 마술도 보여주고 얼굴에 그림도 그려주고 식사도 하며 신나게 놀아주고 나자 후원자들은 기분 좋게 기진맥진해졌습니다. 역시 아이들과 노는 것은 동서양을 망론하고 체력이 필요한 법이지요. 사진가답게 저는 그들을 내버려 두고, 근처 마을로 어슬렁거리며 나갔지요.   구불구불하지만 시원하게 뻗은 시골길은 아이들로 가득했습니다. 카메라를 든 이방인이 낯설지도 않은지 제 앞에서 포즈를 잡거나 장난을 치며 왕성한 호기심을 발휘했습니다. 아이들과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며 시골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제 몸을 스쳐 달려가는 어린이들의 뒷모습이 보였고 그 끝에는 엄청난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형 폐선이 가득한 해안선과 그 폐선에 올라 목숨을 담보로 일을 하면서 하루 1달러를 간신히 버는 노동자의 안타까운 현실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치타공의 선박해체소. 수백 척의 배가 바다 위에 유령처럼 떠 있는 광활하고 적막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앞으로 작은 배들이 끊임없이 노동자를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한 척에 수만 톤에 이르는 폐선을 사람의 손으로 직접 해체한다고 했습니다. 느닷없이 폭발사고가 일어나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유독가스에 중독되어 바다로 뛰어내리기도 하며, 어디에서 볼트와 너트가 총알처럼 날아올지 모른다던 다큐멘터리가 보여주었던 폐선 해체 현장, 선박해체소.   나중에 기사로 보니, 이 선박해체소에서는 2만여 명의 노동자가 매년 200여 척의 대형 선박을 맨손으로 일일이 뜯어내어 100% 재활용된다고 들었습니다. 그 영상에서 기름 때로 까매진 노동자 면면을 직접 만나게 된 것입니다. 워낙 위험한 곳이어서 해외 다큐 팀이나 기자들은 그렇게 들어가기 힘들다는 곳을 아이들을 따라 산책하듯 만나게 된 것이지요.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말입니다.   배를 수선하기 위해 타르를 다시 바르는 마을 사람들. 까만 염소가 풀을 뜯는 모습을 배경 삼아 사뭇 평화로워 보였다. 해안선에 넘실대는 거대한 폐선들, 끊임없이 사람들을 나르는 작은 배들, 그리고 , 해안가의 평화로운 풍경은 질리지 않고 볼 수 있는 모습이기는 했습니다. 넋을 잃고 한참을 들여다보다 도망치듯 어린이센터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가난은 ‘기회’가 없는 것이라고도 정의됩니다. 당사자가 무엇도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하고 능력이 부재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기회라는 것을 찾아 떠나서 결국 다시 가난하게 되는 것이 도시 빈민의 삶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최대 물류도시이자 경제 중심지인 치타공 역시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도시였을 것 같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폐선에 올랐을 것이고 위험천만한 삶 속에서 기회를 잡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었겠지요.   이들이 잡은 기회가 그저 생존을 위한 기회가 아닌, 생활과 삶을 영위하는 기회였으면 참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센터로 얼른 돌아가 보고 싶었던 것은 진짜 기회를 잡은 어린 생명들의 말갛게 씻긴 얼굴이었던 것입니다. 밝게 웃던 그 어린이들 역시 폐선 속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자녀이자 손자 손녀일 테죠. 그 생각에 그나마 해안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앞에 얼굴을 들 수 있었습니다. 관련기사[더오래]볼리비아서 사진찍다 고산병…현지인은 코카차 마셔 [더오래]멀리선 예쁜 달동네…알고보니 출입 불가 우범지대[더오래]아듀! 2021…석양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3컷 사진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2.07 08:00

  • [더오래]유니세프 "기업 내 아동권리보호 부서 신설해야"

    [더오래]유니세프 "기업 내 아동권리보호 부서 신설해야"

       ━  [더,오래] 조희경의 아동이 행복한 세상(12)   아동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들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가지며, 정부는 아동이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유엔아동권리협약 제12조 제1항).    ━  코로나19로 아동의 디지털기기 사용 급증   코로나19 확산으로 2020년 2월 전국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고 아동의 일상은 학습뿐 아니라 놀이와 여가, 사회활동 대부분이 디지털 환경으로 옮겨졌다. 디지털 기기가 아동을 외부 세계와 연결해 주는 주된 창구가 된 셈이다. 인터넷 보급률이 109%에 달하는 우리나라 아동의 디지털기기 사용률은 98%에 달하고 하루 시간 이상 인터넷을 하는 아동이 약 63%나 된다(유니세프아동의회, 2021년). 2021년 아동의 일평균 디지털기기 사용시간. [자료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아동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수업뿐만 아니라 제페토나 로블록스 등 친구와의 놀이도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삶의 공간이 디지털로 이동하고 있는 만큼 디지털 환경에서의 아동권리 보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난해 2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제25호 디지털 환경과 아동권리에 대한 일반논평’을 발표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디지털 환경에서 모든 아동은 의견을 개진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아동의 의견표명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 제도, 프로그램을 논의할 때 다양한 배경의 아동들이 참여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도록 해야 하며, 아동을 콘텐트의 생산자이자 배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그에 맞는 역량을 키우도록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AI, 메타버스 등 최신 디지털 기술과 함께 살아가야 할 아동의 권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아동 최선의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환경에서 아동이 선택한 미디어를 활용해 모든 종류의 정보와 아이디어를 찾고 전달받고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잠재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역량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아동권리보호를 위해 아동들이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제안했다. [자료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아동의 디지털 환경과 관련된 의사결정과정에서 정부가 아동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유니세프아동의회는 아동 719명의 지지서명을 받은 아동정책을 제안했다.   첫째는 아동참여 증진이다. 교육방침, 아동복지 등 아동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분야의 디지털 환경개선을 위한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거나 실행할 때, 의사결정자는 아동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절차를 공식화해야 한다. 디지털 속에서 발생하는 피해가 성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동에게 더욱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문제임을 알리고 아동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인식 개선 캠페인이 전개되어야 한다.   둘째, 적절한 교육과 올바른 정보 제공이다. 아동은 건강한 디지털 생활에 필요한 적절한 교육을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지침과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학교 교과과정 내에 온라인 활동과 관련된 교육을 강화하고 아동뿐 아니라 보호자, 교사 등 아동권리협약 의무 이행자의 인식 제고를 위한 교육 자료를 개발하고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셋째,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아동보호장치 마련이다. 기업·기관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아동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의무 이행자(기업, 보호자, 입법관계자 등)는 디지털 환경에서 아동의 권리 피해 사실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규정을 보완하거나 신설해야 한다.   넷째, 유해 콘텐트 노출과 온라인 범죄 예방 및 구제다. 아동이 온라인에서 위험한 상황에 놓이거나, 유해한 콘텐트에 노출되지 않도록 모니터링하고 보호하는 규정을 보완하거나 신설해야 한다. 안전한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기업이 상업적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노출하는 광고를 제재해야 한다. 독립된 아동 권리 보호 상설부서를 신설해 상시 모니터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내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피해사례 예방과 함께 피해아동에 대한 후속 조치를 할 수 있는 절차와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삶에 필수적이며 아동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다. 아동의 삶의 터전이 될 디지털 세상에서 스스로 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존중해야 하는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오징어게임'도 다 볼수 있다···'엄마 몰래' 19금 즐기는 아이들 [더오래]SNS에 내 아이 사진 올렸다고…쇠고랑 찬 佛부모, 무슨 일 [더오래][더오래]'스마트폰 쥐고 태어난 세대'…디지털 세상 아동권리 보호해야 유니세프한국위원회 기획관리본부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2.04 14:00

  • [더오래]비가 와요! 시시하고 사소한 일상 용어의 소중함

    [더오래]비가 와요! 시시하고 사소한 일상 용어의 소중함

     ━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109)     지인들과 한 달에 한 번 작은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연초 시집 한 권을 읽고 나눴습니다. 김남조의 편지나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처럼 익숙했던 시들을 다시 읽으며,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변해 온 내가 느끼는 감동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죠. 제목만 알고 있었던 유명한 시들을 새롭게 읽기도 하고, 발표된 지 이미 오래된 시들이지만 내게는 처음인 시들을 읽으며 오랜만에 시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함께 밥 먹는 것이 참 중요하다. 밥을 먹으며 얼굴을 마주보는 행위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주고, 출근길에 건네는 ‘잘 다녀와’는 상대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된다. [사진 pixnio]   그 가운데 부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신달자 시인의 시 한 편을 만났습니다.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는 그녀의 에세이에 담긴 시라고 합니다.     ■  「 여보! 비가 와요   아침에 창을 열였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 그저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소한 일상용어들을 안아 볼을 대고 싶다   너무 거칠었던 격분 너무 뜨거웠던 적의 우리들 가슴을 누르던 바위 같은 무겁고 치열한 싸움은 녹아 사라지고 가슴을 울렁거리며 입이 근질근질 하고 싶은 말은 작고 하찮은 날씨 이야기 식탁 위의 이야기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뭐 그런 이야기 발끝에서 타고 올라와 가슴안에서 쾅 하고 울려오는 삶 속의 돌다리 같은 소중한 말 안고 비비고 입술대고 싶은 시시하고 말도 아닌 그 말들에게 나보다 먼저 아침밥 한 숟가락 떠먹이고 싶다 」    결혼 9년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고, 쓰러진 시어머니는 9년을 병상에 계시다 돌아가셨습니다. 남편도 결국 시인을 떠나고 시인은 유방암 판정을 받았죠. 한순간도 쉽지 않았을 그녀의 인생 안에서 쓰였을 시는, ‘여보! 비가 와요’라는 상쾌한 느낌의 시 제목과는 다르게 한 줄도 가볍게 읽히지 않습니다.   한편 시인의 삶을 떠나서 시를 접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부부가 함께하는 삶에 다가오는 여러 문장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시작한 많은 부부가 어느 순간에는 겼었을 격분과 적의, 무겁고 치열한 싸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치열한 순간을 지나 어느 순간 다가오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소한 일상용어들, 가볍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말들의 소중함을 생각해 봅니다.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이란 표현에선 살포시 공감의 웃음도 납니다.   시인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식사에 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함께 밥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밥을 먹으며 얼굴을 대하는 행위는 ‘네 곁에 내가 있어’라고 묵언 중에 말하며 응원해주는 것이죠. 아침 출근길에 던지는 ‘잘 다녀와’라는 말을 들을 때 ‘아, 내옆에는 나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있어’라고 느낄 수 있죠”   격분과 적의, 무겁고 치열한 싸움들로 지치는 순간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올해는 사소한 일상용어들의 소중함을,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 상대의 말에 조금 더 귀 기울 수 있기를 연초에 만난 시 한 편을 통해 한 번 더 다짐해 봅니다.   관련기사[더오래]고속도로서 싸우다 헤어진 부부…그길로 영영 이별[더오래]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더오래]굳이 나를 택한 그대여, 가만히 바라봐줘 굿 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28 13:00

  • "아끼다 똥된다"…나이 들면 좋은 것만 써야 하는 이유 [더오래]

    "아끼다 똥된다"…나이 들면 좋은 것만 써야 하는 이유 [더오래]

     ━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213)     출근길 라디오를 켜면 소소한 선물쿠폰이 나를 유혹한다. 새해라 더 푸짐하고 당첨 확률도 좋다. 나도 가끔씩 갓길에 차를 세워가며 보냈더니 짧은 문자가 줄줄이 당첨되었다. 커피, 케이크, 음료수, 책, 마사지 쿠폰 등등 갑자기 쿠폰부자가 되었다. 딸도 주고 지인에게도 나누니 기분도 덩달아 좋다.   라디오에 보낸 짧은 문자가 당첨돼 선물쿠폰을 받은 적이 있다. 쿠폰을 이리저리 나눠주고 나면 괜시리 기분이 좋다. [사진 Manish Das on Unsplash]   그런데 며칠 전 한 앱에서 문자가 왔다. 3개월 전 친구가 보내준 고급 선물이다. 사용할 유효기간이 지났다며 처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런 낭패가 있나. 벌써 두 번째다. 고급은 아까워서 아무도 안 주고 숨겨 놓은 놀부 심보가 들통 났다. 그 친구는 내게 안부를 물어볼 때마다 가끔씩 그날의 상황에 맞는 뜻깊은 선물을 보내주었다. 돈이 많다고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진정한 부자의 모습이다. 나는 돈을 어처구니없는 종이로 만들고, 내 돈으론 사 먹을 엄두도 못 내는 고급 음식을 아끼다가 썩혀 버렸다. 남들에게 보이는 나는 착한여자인데 내면의 나는 스쿠루지영감 꼴이다. 이런 나를 늘 격려해주는 멋진 친구에게 너무 미안하다.   얼마 전 비 오던 날 사과를 출시하느라 바쁜 과수원 지인의 호출이 왔다. 공판장을 지날 때면 늘 사과를 갖다 줘서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빚 갚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몇 시간이 안 되어 일이 끝났다. 일은 쥐꼬리만큼 도왔는데 차 휘발유도 가득, 이웃과 나눠 먹으라며 사과도 가득 실어 주신다. 그분을 만나면 귀거래사의 주인공 같다. 나도 본받아 자연을 사랑하고 아낌없이 나누는 마음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미안한 마음에 흠과를 주섬주섬 담으니 나를 나무라신다. 아끼고 아끼는 건 젊을 때 해야 하는 행동이라며 나이가 들면 그 어떤 것도 가장 깨끗하고 좋은 것을 자신에게 주란다. 지금은 그럴 나이란다.   과분한 사랑에 미안해하는 내게, 내가 도운 작은 시간이 10시간을 마무리한 것과 같은 효과를 주었다고 추켜 세워주신다. 보조자의 자리와 값어치도 설명하며 고마워한다. 한 계단만 올라가면 정상인데 다리를 삔 것 같은 상태에 누군가가 손잡아 주면 올라갈 수 있는 그 단계가 지금이란다. 돌아오는 내내 일당백의 가치가 생각났다. 아주 작은 봉사도 할 수만 있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해야겠다. 누군가에겐 일당백의 큰 의미가 있다. 노인정으로, 앞집으로, 싱싱한 사과를 배달하며 욕심을 나누니 몸도 마음도 가볍다.   외할머니는 내가 해준 한복을 곱게 보관만 하시다가 관속까지 가지고 가시고, 시어머니는 내가 사준 몇 벌의 내복을 고이 끌어안고만 사시다가 관속에 가지고 가셨다. 살아있을 때 받은 선물은 살아있을 때 활용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아까워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지인이 선물해준 최고급 이불도 꺼내 나를 덮어줘야겠다.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손에 쥐여 줘도 못 먹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지.   언젠가 카톡에 전해 도는 의미 있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중국 절강성 경제계의 왕 모 회장은 38세에 죽었는데 그 부인이 19억 위안(한화로 약 380억)예금을 가지고 그 회장의 운전기사와 재혼을 했다고 한다. 운전기사가 행복에 겨워 말했다. “전에 나는 내 자신이 왕 회장님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왕 회장님이 날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는. 운전기사는 그 공짜 선물을 유용하게 잘 쓰며 살다 갔을까나 궁금하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남에게 보여주는 삶으로 산 것 같다. 그것이 잘사는 삶이라 착각하며 살았다. 아직도 많은 것을 보물이라 부둥켜안고 아끼는 나를 바라본다. 올해는 남에게 보이는 나보다 내 안의 나를 최고로 대우하고 대접하는 해로 살아야겠다. 이렇게 하나하나 깨달아 가는 나를 크게 격려하며 말이다.   관련기사[더오래]아무도 몰라주지만…나는 살아가는 얘기 쓰는 무명작가 [더오래]홀로 걸으며 내 안의 나와 대화했던 달마고도길 [더오래]하루 2000원씩 주식 사모으기…올해 나의 10대 뉴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26 07:00

  • [더오래]결혼 왜 하냐는 비혼주의 친구에게

    [더오래]결혼 왜 하냐는 비혼주의 친구에게

     ━  [더,오래] 싸운다, 사랑하니까(4)    [일러스트 강인춘] 결혼은 왜 하니? “어머! 난 몰라, 8시 반이잖아.”속상했다.남편에게 미안했다.나는 또 늦잠을 자고야 말았다.남편은 어제 아침과 똑같이 오늘 아침에도물 몇 방울 찍어 바르는 고양이 세수를 하고,와이셔츠, 양말, 대충 꿰어 입고 신은 채출근 가방 챙겨 들고 현관문 박차고 뛰어나갔다.그러더니 순간, 탁~! 하고 다시 현관문이 열렸다.“어머, 어머! 자기야, 또 뭘 잊은 거야?”남편은 나의 말끝도 채 듣지 않고내 허리를 잽싸게 잡아챘다.그러고는 번개처럼 입술에 뽀뽀를 마구 퍼부었다.“아무리 바빠도 할 건 하고 가야징~”남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다시 바람처럼 휑하니 밖으로 사라졌다.“어머? 어머? 이게 뭐지?”정신을 가다듬으려다순간, 나는 뒤돌아서서 킥킥 웃고 말았다.〈내 친구 수나야, 기집애! 지금 나, 봤지?네가 결혼은 왜 하냐고 나한테 빈정댔잖아.바로 요 새콤달콤한 맛을 네가 몰라서 그래. ㅋㅋㅋ〉   〈추신〉“그래, 그래. 지금의 행복을 실컷 만끽해라.그리고 그 행복이 부디, 부디 영원하기를….”나를 그리는 그림 작가 선생이내 뒤에서 한마디 픽~ 던졌다.그런데 그 말이 나한테는 왜 질투의 비웃음으로 들릴까?정말 웃기잖아.   관련기사[더오래]'악녀'와 산다고 생각한 남자 어느날 거울을 보니 [더오래]“부부싸움? 남 일이야”…햇내기 부부의 오판 [더오래]팔순 노인이 신세대에게 쓰는 사랑의 텍스트북 일러스트레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25 13:00

  • 父 친구에 성폭행 당한 그녀…서양 최초 여화가의 슬픈 그림 [더오래]

    父 친구에 성폭행 당한 그녀…서양 최초 여화가의 슬픈 그림 [더오래]

     ━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54)     10년 전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 프랑스 여행을 갔다. 당연히 들러야 할 곳 중 하나가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수천 점의 예술작품을 단 몇 시간 안에 둘러본다는 것은 애당초 잘못된 계획이었지만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유명한 그림들을 실제 내 눈으로 본다는 것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수많은 인파 앞에 떡하니 놓인 모나리자, 승리의 여신 ‘니케상’, ‘밀로의 비너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런데 그림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아쉽게도 그저 쇼핑몰의 비싼 물건을 보듯이 지나쳤다.   내가 얼마나 무지한 미술관 관람을 하고 온 것인지, 그림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이후 그림과 관련된 책을 틈틈이 읽다 보니 이제 20권 남짓 책꽂이에 꽂혀 있다. 강의가 뜸한 요즘, 그림을 보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도 찾아본다.   밀레의 만종.   우리 모두가 다 아는 밀레의 ‘만종’을 고요히 들여다보면 멀리 그림 속 교회당에서 땡땡 종이 울릴 것 같다. 종소리를 듣고 분주히 일하던 부부는 일손을 멈추고 하느님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감사와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한다.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까지 경건해진다. 또 밀레의 ‘이삭줍기’란 작품을 보고 있다 보면 뉘엿뉘엿 지는 노을 아래 가난한 여인들 셋이 한 톨의 밀이삭이라도 더 주워 담고자 하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아마도 이 여인들은 빨리 집에 가서 이 밀로 배고파하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차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이들 삶의 고단함을 짐작한다. 이삭을 줍는 여인들 뒤로 이와 대비해 쓰러질 듯 높이 곡식더미를 쌓아올린 마차가 눈에 들어온다. 한편에는 빈 들판의 이삭을 줍고, 다른 한쪽에는 넘치는 풍요로움이 있다니….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한 폭의 그림과 작품을 고요히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그림과 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그림은 그 시대의 역사와 사회상이 드러나 있기도 하고, 평온함을 느끼게도 하며, 때론 위안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견물생심이라고 책이 아니라 실제 미술관에 가서 그 그림들을 다시 제대로 마주하고 싶은 욕구도 새삼 커지기도 한다.   그런데 서양미술에 관한 책을 보다 보면 “왜 이 위대한 미술가는 대부분 남성인가? 또 벗겨진 여성의 나체가 유난히 많은 것은 왜일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세상이 인정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 반 고흐, 피카소, 렘브란트, 세잔, 마티스…. 이들 슈퍼스타는 공통적으로 서구의 백인 남성이라는 것이다. 그럼 이들 대가에 견줄 만한 여성 미술가, 아니 미술가에 국한하지 않고 음악가, 과학자가 있다면 상기해 보기 바란다.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아예 타고난 재능이 없는 것일까?   몇 되지 않는 여성 미술가의 삶의 경험과 같은 주제의 남성 그림이 어떻게 다르게 묘사됐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아주 흥미로운 것이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7~1651·이탈리아)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최초의 여성 화가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그녀 작품은 성폭력과 관련된 끔찍한 복수와 연관돼 있다. 그녀는 그림을 통해 계속해서 “It’s true! It’s true!”라고 외치는 듯하다. 그녀의 간절한 이 외침은 왜일까?   여기엔 아버지 친구로부터 강간당하는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다. 젠틸레스키의 아버지는 일찍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던 딸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동료 화가인 타시에게 그림 지도를 부탁한다. 그런데 아내가 있던 타시는 젠틸레스키를 속이고 강간한다. 이를 알고 분노한 젠틸레스키의 아버지는 타시를 고발해 7개월간의 긴 재판이 이어진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고문을 당한 것은 타시가 아니라 젠틸레스키였다. 젠틸레스키는 스스로가 자신이 처녀였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젠틸레스키는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It’s true!”라며 자신이 죄가 없음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결국 타시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젠틸레스키는 로마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더러운 비난의 대상이 됐고, 그 도시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그림은 사무치는 복수심에 불타는 그림으로 표현된 것이다. 400년 전에 살았던 젠틸레스키에게 비수처럼 꽂힌 성폭력의 상처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사정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작품은 대부분 성경의 내용을 소재로 하고 있다. 첫 번째 작품은 그녀가 17세에 그린 ‘수산나와 장로들’이다. 이 작품은 다니엘서의 외경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데, 혼자 목욕하는 수산나에게 음욕을 품은 두 장로가 수산나를 겁탈하기 위해 작당해 모의하는 성서의 이야기가 그 소재다. 수산나와 요아킴은 유대인 부부다. 유명 인사인 남편 요아킴을 만나려고 수난나의 집은 손님이 많았다. 그중에 두 명의 유대인 장로는 아름다운 수산나를 탐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들 모두가 돌아가고 수산나가 정원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두 노인은 수산나에게 다가가 성관계를 요구했고, 만일 거절한다면 젊은 남자와 놀아나는 것을 보았노라고 고발하겠다면서 협박한다. 수산나는 협박을 거절하고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이때 수산나의 간절한 기도로 다니엘은 지혜를 주었고, 다니엘의 기지로 수산나는 누명을 벗게 된다. 이 성경의 소재는 젠틸레스키 외에도 수많은 화가의 그림 소재가 됐다. 그렇다면 서양 최초의 여성 화가가 그린 ‘수산나와 장로들’과 렘브란트, 루벤스, 틴토레토 혹은 다른 여러 작가에 의해 그려진 ‘수산나와 장로들’은 어떻게 다를까?   '수산나와 두 장로'. 1610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17세 때 그린 작품. 포머스펠덴의 쇠보른 가 소장.   남성 화가의 ‘수산나와 장로들’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성경 속 등장인물인 수산나를 빙자해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관음적 욕구를 채우고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수도 있지만). 거기에다 수산나를 탐하는 탐욕스러운 장로들의 범죄행위까지 스릴 있게 같이 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젠틸레스키의 수산나를 보면 벗고 있지만 나체의 몸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개를 돌리고 진저리치며 협박하는 두 장로에 대한 불쾌감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주체가 느껴진다.   왜 명화 속에 벗은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가? 책을 읽을수록 그 의문에 대한 답은 명확해진다. 명화 속에는 수산나와 같이 성서 속 인물 혹은 비너스와 같은 신을 등장시키면서 끝없이 여성의 벗겨진 모습을 등장시켜 왔다는 것이다.   예술가를 양성하는 기본적 필수 훈련 중 누드모델을 앞에 두고 인체를 드로잉하는 학습은 필수과정이었다고 하지만 여학생에게는 절대 접근할 수 없는 학습이었다. 불과 100년 전까지도 여성의 삶은 미술계뿐 아니라 거의 모든 면에서 무자비하게 닫혀 있던 사회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위대한 여성 예술가의 이름이 선뜻 떠오르지 않은 이유는 여성의 대부분은 심리적·사회적으로 재능을 키울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회 구조 때문일 것이다. 사회의 제도적 구조 자체가 소속된 인간들에게 어떤 요구를 하고 배제하는지에 따라 그 영향은 ‘화가’가 아닌 ‘여류 화가’라는 특별한 사람을 호칭하는 단어가 나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적어도 보여지는 세상은 많이 변화해 더 이상 여성이 ‘가정의 천사’가 돼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재주를 지닌 여성을 호명하지 않는 사회 구조가 있었다면 지금 사회는 재능을 사장하게 하는 불평등 사회 구조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가난하면 꿈도 가난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반짝이는 슈퍼 재주가 있다면 그 능력을 펼쳐내도록 돕고 지지하는 사회제도와 교육이 절실하다. 볕이 들지 않는 곳에 빛을 비추고자 하는 진정성 있는 지도자를 소망한다. 관련기사[더오래]아침 밥상 차려준 남편이 별로 고맙지 않은 이유[더오래]8인8색 갱년기 증상 난상토론장 된 2박3일 여행길[더오래] 당혹스런 영유아의 '성행동'…그냥 둘까, 제지할까 성ㆍ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25 07:00

  • [더오래]환자도 아닌데…인공호흡기 꼽은 취객의 충격적 증언

    [더오래]환자도 아닌데…인공호흡기 꼽은 취객의 충격적 증언

     ━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89)    나는 술 취한 사람을 혼수상태로 오인해 기관삽관을 한 적 있다. 환자는 기계음 가득한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다. 굵은 튜브가 입을 막고 있어 신음조차 낼 수 없는 상태로. 10여 년쯤 지난 이야기다.   의식불명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 길거리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남자였다. 의식상태는 혼수(COMA). 나는 지체 없이 응급처치에 들어갔다. ABC 중에서 제일 먼저 할 일은 기도(Airway) 확보였다. 입을 통해 굵은 관을 목구멍에 밀어 넣고 그 끝에 인공호흡기를 연결했다. 숨구멍을 열었으니 일단 급한 불은 껐고. 다음 수순은 혼수의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것인데. 문제가 있었다. 원인이 도통 짐작 가지 않았던 것. 젊은 사람이 왜 쓰러졌지? 사고가 있었을까? 모르겠다. 쓰러진 순간을 목격한 사람이 없다. 지병이 있었을까? 아니. 평소에 건강했다고 한다. CT, MRI, 뇌파 등을 검사해봤지만 어떤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의식불명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 길거리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남자였다. 의식상태는 혼수. 그런데 CT, MRI, 뇌파 등을 검사해봤지만 어떤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진 Ian Scargill on Unsplash]   만 하루가 지나고, 환자는 정신을 되찾았다. 목구멍에 튜브가 꽂힌 채로. 기계음 가득한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모르긴 해도 많이 두려웠을 터다. ‘여긴 어디지? 어찌 된 영문일까? 취한 중에 사고라도 당한 걸까? 내 팔다리는 멀쩡한 걸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를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아무 문제 없이 잘 회복 중이라고.   환자의 상태는 빠르게 좋아졌다. 수 시간 만에 삽관 튜브를 제거해냈다. 목에 꽂힌 튜브가 사라지자 그는 말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제야 내 의문이 풀렸다. 의식이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환자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순간 뒷골이 당길 정도로. 사건 당일, 그는 평소 못 마시는 술을 진탕 마신 후 기억이 끊겼다고 했다. 그랬다. 그는 환자가 아니었다. 그냥 술에 취한 사람이었다. 거기 대고 우리는….   이토록 황당한 일이 또 있을까? 내가 저지른 일이지만 나조차도 어처구니없었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백이면 백, 지금쯤 모두 혀를 차고 있을 것이다. “아니, 술 냄새도 못 맡는 돌팔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하지만 나도 변명은 있다. 길거리에 쓰러진 걸 신고한 사람도, 처음 출동했던 경찰도, 인계를 받아 응급실로 이송한 구급대도, 응급실의 수많은 의료진도, 연락받고 도착한 보호자도, 그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지만, 누구도 단 한 번도 음주를 의심조차 해보지 못했다. 바깥 날씨가 추워서였을까? 술은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세상은 그렇다.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종종 일어나는 법이다.   물론 술 때문이란 걸 알았다고 치료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만취 상태는 원래 위험한 법이니까. 토사물에 기도가 막혀 죽는 사건은 뉴스의 흔한 단골 소재다. 내가 본 환자 중에도 술 때문에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던 이가 있었다. 음주 상태에서 수면제를 먹었는데, 알코올과 수면제가 시너지를 일으킨 남자였다. 그는 거리에서 깊이 잠들었고, 그게 하필 추운 겨울이라 동사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꼬박 한 달을 매달려서야 겨우 남자를 살려낼 수 있었다.   음주건 뭐건 환자가 혼수상태라면 기관삽관 처치는 틀린 게 아니다. 더구나 응급실에서 생명과 직결되는 처치는 과할 정도로 시행하는 게 실력이기도 하다. 물론 단순 취객인 걸 알았더라면, 쓸데없는 검사는 좀 덜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수백만 원 넘게 나온 병원비는 좀 줄어들었을 터이고.   술을 깨겠다며 응급실에 와서 링거를 놔달라는 진상은 많이 봤지만, 인공호흡기를 달 정도로 의식을 놓은 환자는 처음 보았다. 그는 정말 비싼 술을 마신 셈이다. [사진 Vinicius amnx Amano on Unsplash]   그는 정말 비싼 술을 마신 셈이다. 유흥을 위해 하룻밤에 수백만 원짜리 양주를 먹는 사람은 제법 있겠지만, 엉뚱하게 병원비로 그만큼의 술값을 지불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술을 깨겠다며 응급실에 와서 링거를 놔달라는 진상은 많이 봤지만,(응급실은 술 깨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피 철철 나는 응급환자들 사이에서 숙취를 호소하고 싶으신가요?) 술에 꼴아서 인공호흡기를 달 정도로 의식을 놓은 환자는 처음 보았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길거리에서 얼어 죽진 않았으니까. 나는 그에게, 같이 술 마신 동료들이 누구였는지 물었다.   “왜긴요, 그 사람들이랑 다시는 같이 술 마시지 말라고 충고해드리려고 그러죠.”   관련기사응급실서 '가슴 쿵쿵' 취객 몰린 男, 가슴에 '시한폭탄' 있었다 [더오래][더오래]휴일 싫다, 그러나 이번 크리스마스 만큼은… [더오래]공부량 많은 ‘내외산소’ 전공의 수련기간 짧아진 사연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24 09:00

  • [더오래]볼리비아서 사진찍다 고산병…현지인은 코카차 마셔

    [더오래]볼리비아서 사진찍다 고산병…현지인은 코카차 마셔

     ━  [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58)     다녀본 컴패션 어린이센터 중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곳을 꼽으라면 볼리비아 고산 지대에 위치한 어린이센터다. 볼리비아 원주민 지역이었는데 우리 어린 시절과 퍽 닮아 동질감이 느껴졌다. 한 300여 명쯤 되는 어린이들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니 정말 좋아했다. [사진 허호]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꼭 들르게 되는 곳에 각 나라의 수도입니다. 대부분의 수도는 사실 어느 정도 비슷비슷한 대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요. 그런데 볼리비아는 첫인상부터 굉장히 남달랐습니다.   2010년인가, 볼리비아를 처음 갔는데 비행기에 타고 있던 중 곧 도착한다는 안내가 들려왔습니다. 차창으로 거대하고 높은 산맥이 보여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발아래 있던 산이 옆으로 보이면서 비행기가 내려섰습니다.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안데스 산맥 준봉들 중 하나에 위치한 엘 알토 국제공항은 나중에 찾아보니 전 세계에서 고도가 높은 공항 중의 하나였지요. 볼리비아의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하고 있는 행정수도 라파스로 가기 위해 도착한 공항이었습니다.   라파스는 평균 고도 약 3600m인 도시입니다. 우리가 내린 공항은 4200m라고 하더군요. 공항에서 내려다 본 라파스는 무슨 영화 ‘혹성 탈출’ 속 배경이나 외계의 도시를 방문하는 것 같은 생경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이토록 눈 아래 쫙 깔리는 경험은 거의 해본 적이 없었었기에, 자그마한 도시가 아니고 볼리비아의 수도가 그랬다는 것이 정말 신선했지요.   산속에 자리 잡은 도시이다 보니 차들이 다니는 도로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로 치면 시내버스 역할을 하는 게 케이블카였습니다. 우리에게 케이블카는 관광용이지만 여기는 여러 갈래의 시내버스처럼 다니며 정거장에서 사람들이 타고 내렸지요.   공항에서 본 볼리비아 행정수도 라파스. 도시 전체를 발아래에서 볼 수 있는 생경한 느낌이 아찔했다. 안데스산맥에 푹 감싸인 도시의 모습은 경이적인 경험을 안겨주었다. [사진 허호]   라파스는 3600m 고지에 있었고 공항도 4200m, 여기에서 더 올라간 4400m 고지의 어린이센터를 방문하면서 사진을 찍다 보니 좀 어질어질하더라고요. 어린이들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막 찍어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하더니 어지럽고 정신을 못 차리겠는 겁니다. 고산병이라고 하더라고요. 현지 사람들이 있는 민간요법으로 코카 차를 마시라고 하더군요. 이들은 민간요법으로 종종 코카 차를 우려먹는다고 하는데, 사실 이것을 강력하게 농축시켜 만드는 것이 바로 마약인 코카인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보편적인 방법이지만 한국인에겐 익숙하지 않고 아무리 약하게 우려먹는 차도 여러 잔 먹다 보면 마약 성분이 검출될 수 있다고 해서 마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빠르고 현실적인 해결 방법으로 산소호흡기로 산소를 흡입할 수 있도록 해주더라고요. 슈퍼에서 살 수 있는 산소캔이었는데 꼭 우리나라 부탄가스 통처럼 생겼습니다. 음료수 팔듯이 팔더라고요. 부탄가스 같다고 생각하면서 보니까, 한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수출한 제품이 그곳에까지 있었던 것이지요. 신기했습니다. 일회용으로 산소캔을 사용하고 좀 쉬니까 증상이 완화되었죠.   가장 높은 고산 지대 어린이센터가 위치한 마을은 적막했다. 마을의 형태는 있는데, 분위기가 정말 가라앉아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를 반겨주는 순박하고 볼이 빨간 아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는지도 모른다. [사진 허호]   어린이센터가 위치한 마을은 우리나라 단어의 ‘적막하다’라는 표현이 그대로 들어맞는 곳이었습니다. 집과 골목 등 마을의 형태는 있는데 마치 사방의 소리를 다 끈 듯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도가 높은 지대답게 처음 보는 하늘의 빛을 보여주며, 푸르다 못해 시퍼렇게 우리를 내리누르는 것 같았습니다. 고도가 높아 뛰어다닐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거리에 인적도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어린이센터에 가니까 세계 어딜 가듯 마찬가지로, 어린아이는 순수하고 밝았습니다. 거리의 모습과 상반되어서 그런지 더 반갑고, 살짝 동상 걸린 것처럼 볼이 튼 모습에 마음이 더 쓰이더군요. 우리 어릴 때 생각도 나서 더 해줄 게 없을까 하다 사진을 다 찍게 된 것이지요. 고산병 증상이 생겼던 건 아마도 그게 무리가 되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좋아하는 모습에 별로 힘들다 생각은 들지 않았지요.   중남미에서 원주민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가난한 편인데, 볼리비아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들이 우리 어릴 때와 참 많이 닮았다. 이 아이들의 볼이 튼 것처럼 난방시설이 좋지 않았던 그때, 우리도 겨울에 손등이 갈라지고 그랬었다. 가끔 잘 모르고 고산지대 볼리비아 어린이 사진을 보고 볼이 빨갛게 익은 게 귀엽다고 하는데, 자외선 차단제도 없이 고산지대에 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사진 허호] 볼리비아는 굉장히 자원이 풍부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휴대폰 배터리의 주요 원재료인 리튬 매장량이 전 세계 가장 풍부한 나라라고 하지요. 그런데 볼리비아가 많은 자원을 갖고도 부자가 될 수는 이유는 해안선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출에 한계가 있는 것이지요. 1879년 태평양전쟁으로 칠레에게 해안선을 빼앗긴 탓입니다.   자원이 풍부한 볼리비아의 비극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도 있었습니다. 볼리비아의 포토시 리코 산의 은광은 유럽의 대항해 시대의 엄청난 수탈이 일어났던 현장이었고 이러한 역사로 인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인디오들에게 은은 크게 가치가 없는 금속일 뿐이었지만, 스페인 지배자들에게는 달랐습니다. 이들은 인디오들을 갱도에 몰아넣고 가혹하게 은을 캐 갔습니다. 이 은이 유럽을 거쳐 중국에 다다랐을 때는 중국에서 은원보라는 화폐로 사용할 정도의 물량이었다고 합니다. 스페인인들의 수탈은 가혹해 이곳에서 당시 사망한 인디오들이 80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하지요. 이렇게 착취로 벌어들인 은 때문에 당시 부강했던 스페인마저도 경제적 불균형이 나타나 자멸했다는 평을 받게 되었지요. 그래서 ‘은의 저주’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풍부한 자원이 있음에도 경제적으로 열악한 모습을 보이는 볼리비아, 지금도 뉴스에서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보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기억되는 볼리비아는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순박하고 순수한 어린아이들입니다. 더욱 혹독해진 이 겨울, 볼리비아 어린이들이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관련기사[더오래]멀리선 예쁜 달동네…알고보니 출입 불가 우범지대[더오래]아듀! 2021…석양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3컷 [더오래]우범지대 어린이들…경찰 동행한 콜롬비아 빈민가 사진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24 08:00

  • [더오래]할아버지가 아빠된다? 손녀 입양 하려는 조부모

    [더오래]할아버지가 아빠된다? 손녀 입양 하려는 조부모

     ━  [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122)     어느 날 갑자기 손녀가 생겼습니다. 친구가 별로 없던 아들은 대학생이 되어 같은 과 여학생을 만나 금세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저희 집에도 놀러 왔는데 성격도 좋아 보였고 적극적이어서 결혼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생겼다고 하네요. 내가 키워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공부하라고 했어요. 손녀를 데리고 나가니 이웃들은 언제 늦둥이를 가졌냐고 물었고, 저희는 늦둥이가 생기니 새로 인생을 사는 것 같다고 농담을 하면서 아이를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비록 아들과 여자 친구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지만, 손녀를 자신들의 자녀로 출생신고를 했고, 아들이 제대하면 결혼식을 하기로 여자 친구 부모와 계획을 세웠어요.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들은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여자 친구와 아이를 입양 보내기로 했답니다. 나는 입양을 보내겠다면 차라리 우리 내외가 딸로 입양해 키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감정에 의해서 입양을 결정할 것이 아니라, 면밀하게 살핀 후 아이를 위해 꼭 입양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신청해야한다. [사진 pxhere]     ■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 종래 우리나라에서 입양은 조상의 제사와 가계의 계승을 위하여 행해졌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입양되는 자녀의 복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최근 대법원은 사례자처럼 조부모가 손자녀를 입양하겠다고 청구한 사건에서 입양의 요건을 갖추고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부합한다면 허가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21. 12. 23.자 2018스5 전원합의체 결정). 조부모가 양부모로서 아이를 입양해 양육하고자 할 여러 사정이 있어도 무엇보다 아이의 친생 부모가 생존하고 있는데 조부모가 입양을 하면 가족 내부 질서와 친족관계에 중대한 혼란이 초래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이유로 법원은 이 문제에서 무척 소극적이었습니다. 위 대법원의 사실심도 위와 같은 이유와 현 상태에서 조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는데 어떠한 제약이나 어려움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장래 아이가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받을 충격 등을 고려하면 신분관계를 숨기기보다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아이에게 이롭다고 볼 여지가 있으며, 조부모가 입양해 친생부모가 아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자녀의 복리를 위하여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조부모가 양부모로 아이를 입양해 양육하고자 할 여러 사정이 있어도 아이의 친생 부모가 생존하고 있는데 조부모가 입양을 하면 가족 내부 질서와 친족관계에 중대한 혼란이 초래될 것은 분명하다. [사진 pxhere]   이에 대해 대법원은 사건 본인의 친생모가 생존하고 있다고 해서 조부모가 자녀를 입양하는 것을 불허할 이유가 될 수는 없고, 조부모의 입양으로 가족 내부 질서에 혼란이 초래될 수 있더라도 이 사건의 구체적 사정에 비추어 입양이 자녀에게 더 이익이 된다며 입양을 허가했습니다. 친생부모나 자녀에 대한 가사조사나 심문 등을 통해, 이 사건 입양이 자녀에게 도움되는 점과 우려되는 점을 구체적으로 심리하고 이를 비교·형량해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더 이익이 되는지, 반하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원심 결정을 파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례자는 단순히 감정에 의해서 입양을 결정할 것이 아니라 입양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이의 친생부모를 위한 것인지, 아이를 자녀로서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사가 있는지, 사례자가 입양을 하면 아이의 복리에 어떠한 도움이 되고,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지, 아이는 사례자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렇다면 입양에 대한 의사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지 등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아이를 위해 꼭 입양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친생부모의 동의를 받아 가정법원에 신청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 관련기사성실했던 남편, 알고보니 출장때마다 성매매…이혼 할까요 [더오래][더오래]미국서 태어난 40 넘은 여성, 아빠 호적에 올릴 수 있나요?[더오래]‘성을 가는’ 친양자 입양, 독신자도 가능해진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20 07:00

  • [더오래]'악녀'와 산다고 생각한 남자 어느날 거울을 보니

    [더오래]'악녀'와 산다고 생각한 남자 어느날 거울을 보니

     ━  [더,오래] 싸운다, 사랑하니까(3)   [일러스트 강인춘] 이제 막 결혼식을 끝낸 부부의 자화상 이제 막 결혼식 행사를 끝내고 아내와 함께 팔짱을 끼고 퇴장하는 남자는옆에 있는 아내의 얼굴을 힐끗 돌아보고는 기겁을 했다.아내는 ‘악녀’의 얼굴로 변해 미소 짓고 있었다.“히히히. 내 남자야!이제부터는 내 마음대로 너를 요리할 수 있어.부디 내 명령에 항명하지 말고 무조건 따라야 해.나는 항상 네 위에 군림하는 여왕이니까.”아내, 아니 악녀의 미소 뒤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순간 남자는 고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아뿔싸! 결혼식 도로 물려? 아니면 싸워 이겨?’그로부터 남자의 고민은 1년, 아니, 10년, 20년이 지나50, 60년의 무수한 세월이 지났어도 변치 않고 그대로 계속되었다.때로는 울컥하는 마음으로 아내에게 대들기도 했지만그럴 때마다 백전백패였다.남자는 어쩌면 세상 끝나는 날까지이런 상황이 계속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아~! 이걸 어째.’남자는 창조주를 찾아가서 원망을 했다.“여자사람에게 속았습니다.세상의 모든 여자의 모습이 저렇다면저는 결코 처음부터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창조주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남자에게 한마디 던졌다.“어리석은 남자 인간아! 거울을 한번 보거라.아내를 탓하기 전에 네 얼굴도 ‘악남’으로 그려져 있잖아!너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왜 모르니.나는 항상 공평하게 남자, 여자를 만든단다.못난 녀석! 쯧쯧쯧.”남자는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들여다봤다.거울 속엔 머리에 뿔달린 험악한 악남 하나가 인상을 쓰며나를 정통으로 째려보고 있었다.‘우우우~’남자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관련기사[더오래]“부부싸움? 남 일이야”…햇내기 부부의 오판 [더오래]팔순 노인이 신세대에게 쓰는 사랑의 텍스트북 [더오래]미완성 조립품?…남편을 자기 식으로 길들이려는 딸 일러스트레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18 13:00

  • '오징어게임'도 다 볼수 있다···'엄마 몰래' 19금 즐기는 아이들 [더오래]

    '오징어게임'도 다 볼수 있다···'엄마 몰래' 19금 즐기는 아이들 [더오래]

     ━  [더,오래] 조희경의 아동이 행복한 세상(11)   아동들이 게임 플랫폼, 유튜브와 틱톡 등에서 성인물과 폭력물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사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2021년 지난 한 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힘이 나는 소식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전 세계 TV Show 부분 구글 검색어 1위를 차지한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Squid Game)’을 빼 놓을 수 없다. 오징어 게임은 어릴 적 추억의 놀이들을 모티브로 하여 대한민국 성인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률 1위라는 큰 화제를 불러왔다. 올해 초 미국 배우조합상(SAG)의 대상 격인 앙상블 최고 연기상 등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을 뿐 아니라 제79회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인 배우 최초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K-콘텐츠의 힘을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반면 아동권리 보호라는 관점에서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아동들이 틱톡이나 유튜브 등의 매체에서 유해한 콘텐츠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미국 비드엔젤 (VidAngel,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를 제외할 수 있도록 하는 미국 스트리밍 비디오 기업)은 오징어 게임 9개의 에피소드에 301건의 폭력과 유혈 장면, 305개의 욕설과 10개의 섹스 장면이 있다고 부모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미국 미디어 감시단체인 부모들로 구성된 ‘텔레비전·미디어위원회(the Parents Television and Media Council: PTC)’는 넷플릭스에서 아동 보호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오하이오 주립대학 교수 브래드 부시맨(Brad Bushman)의 연구 결과(폭력적인 미디어에 노출되면 공격적인 생각이 증가하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의 감정을 감소시킨다)를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아동들이 오징어 게임을 모방하는 사례가 증가하자 미국, 영국, 호주, 벨기에, 브라질, 태국 등 여러 나라의 학교들은 ‘오징어 게임이 폭력적이고 위험한 콘텐츠가 있는 시청 불가 영상임에도 자녀들이 부모 몰래 오징어 게임을 시청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오징어 게임은 국내 기준으로 청소년관람불가(18세 이상 관람가)이며, 미국에서는 TV-MA(성인 관람가) 등급을 받은 폭력성이 강한 영화로 아동의 시청을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동들은 게임 플랫폼, 유튜브와 틱톡 등에서 오징어 게임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틱톡과 유튜브에서 오징어 게임의 공식 예고편뿐만 아니라 일부 장면이 포함된 리뷰 영상을 아동들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아동들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여과 없이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PTC는 아동들이 넷플릭스를 통하지 않고도 오징어 게임을 간접적으로 시청할 수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며 “10대들이 로블록스(Roblox)나 마인크래프트(Minecraft) 같은 게임 플랫폼을 통해서 시청 불가 영상들을 볼 수 있으며, 이를 따라 하는 콘텐츠가 다양한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고 있다는 점을 부모들이 경계하고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아동 안전과 관련된 단체가 행사 홍보물에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사례가 있었다. 온라인에 게시한 지 하루 만에 부모들의 항의가 심해지자 급하게 사과문을 올리고 이미지를 교체했다.   국내에서도 아동 안전과 관련된 단체가 행사 홍보물에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사례가 있었다. 온라인에 게시한 지 하루 만에 부모들의 항의가 심해지자 급하게 사과문을 올리고 이미지를 교체했다. 이 뿐 아니라 아동용 장난감, 가면과 옷 등에도 오징어 게임의 녹색 체육복이나 가면 등 아이템들이 활용되었다. 얼마 전에는 유명 학습지의 광고모델로 오징어 게임의 남자 주연배우가 등장하기도 했다. 아동학습지 광고에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의 주인공이 모델로 나오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아동이 시청해서는 안 되는 부적절한 콘텐츠를 이용하여 아동대상의 마케팅을 하는 것은 기업들이 쉽게 행하는 심각한 아동권리 침해이다. 아동은 폭력적이고 유해한 콘텐츠 마케팅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존중받고 보호되어야 한다.   특히 온라인에서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 있는 유해한 콘텐츠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유니세프는 온라인 안전과 관련된 이슈와 기업의 책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첫째, 기업은 모든 정책과 프로세스에 아동권리를 고려하고 이를 반영한다: 정보통신기술(ICT)이 아동권리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예방하고 완화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함으로써 아동권리를 향상시킨다.   둘째, 기업은 아동 성 착취물 유통을 예방할 수 있는 표준 프로세스를 마련한다: 정부, 법 집행 기관, 시민 사회단체 등과 협력하여 아동 성 착취물을 제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셋째, 기업은 보다 안전하고 아동 연령에 맞춘 온라인 환경을 구축 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아동을 위한 더 안전하고 즐거운 디지털 환경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넷째, 기업은 아동과 부모, 교사들에게 아동의 안전과 책임 있는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할 수 있도록 교육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은 시민참여 증대를 위한 수단으로서 디지털 기술을 사용한다: 기업은 아동의 참여권을 지원함으로써 아동을 격려하고 권한을 부여한다.   디지털 콘텐츠는 아동의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그 중요성은 갈수록 커져갈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의 긍정적인 사용을 통해 디지털 콘텐츠가 아동 권리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예방하고 아동권리 보호와 실현에 앞장설 수 있도록 기업들은 아동권리 경영원칙에 기반하여 내부정책을 수립하여 준수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더오래]'스마트폰 쥐고 태어난 세대'…디지털 세상 아동권리 보호해야[더오래]미TV도 한류 바람…‘세서미스트리트’ 최초 한국계 캐릭터[더오래]위드코로나로 아동 감염위험↑…백신 글로벌 운동 펴야 유니세프한국위원회 기획관리본부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17 15:00

  • [더오래]고속도로서 싸우다 헤어진 부부…그길로 영영 이별

    [더오래]고속도로서 싸우다 헤어진 부부…그길로 영영 이별

     ━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108)   비 내리던 겨울밤, 택시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한 부부가 차 안에서 말다툼을 벌이게 됩니다. 잠시 후 졸음쉼터에 멈춘 택시에서 부부는 내리고 잠시 후 남편만 다시 택시에 탑승합니다. 택시 기사는 먼저 출발하자는 남편의 말에 목적지에 남편만 데려다준 후 고속도로 영업소에 전화해 아내만 쉼터에 남았음을 알리게 되죠.   안전순찰차량은 바로 주변을 살폈지만 아내를 발견하지 못했고, 아내는 다음 날 오전 고속도로 갓길에서 숨진 채 발견됩니다. 졸음쉼터에 남겨진 아내는 갓길을 따라 혼자 걸었고, 어둡고 비가 오는 밤 차선을 변경하던 화물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던 겁니다.   택시를 타고 고속도로에서 말다툼을 벌인 부부가 아내만 택시에서 내렸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수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사진 pixabay]   누군가의 유죄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그날 밤 부부가 다투지 않았더라면, 아내가 혼자 내리지 않았더라면, 남편이 혼자 떠나지 않았더라면, 기사가 말릴 수 있었다면, 순찰차량이 발견했더라면 등등 수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는 지난 연말의 기사 내용이었습니다.   친구와 만나 대화를 나누다 서로의 마지막에 큰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야겠다는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안타까웠던 기사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많은 순간 예기치 않은 이별은 찾아옵니다.   직업상 종종 음악회 사회를 보게 되는데 곡과 곡 사이에서의 안내자 역할을 하게 되는 콘서트 가이드의 경우 해설이 너무 길거나 너무 짧지 않게 시간 간격을 잘 맞추고, 너무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게 곡을 해설하는 내용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해설 시간이 조금 길어지거나 설명의 방식이 다소 어렵다고 해서 전체 흐름에 아주 큰 지장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콘서트 가이드의 역할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음악회 무대에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악기 연주자는 아니지만 목소리가 하나의 악기가 되어 오케스트라의 단원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음악극을 진행한 적이 있었죠.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가 한 번에 적힌 악보는 눈에 익숙하지도 않고 복잡해서, 자칫 흐름을 놓치면 현재 연주 되고 있는 부분이 어디 인지 다시 찾아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혹시나 타이밍을 놓쳐 전체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진행보다 더 긴장되었죠. 악기 연주자 만큼이나 지휘자와 눈을 맞추고 신호에 맞추어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저마다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다수의 연주자가 지휘자의 손끝에 집중하고 서로의 소리에 집중해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 내는 오케스트라의 모습이 가족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악기 소리가 너무 앞서거나 커서 전체의 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수많은 연습을 하는 것처럼, 귀에 들리는 음악은 아니지만 가족이 함께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화음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죠. 악기를 조율하는 것처럼 나라는 악기를 들여다보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저마다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다수의 연주자가 지휘자의 손끝에 집중하고 서로의 소리에 집중해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 내는 오케스트라의 모습이 가족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진 pxhere]   상황에 따라 때론 아내가 또 때론 남편이 가족의 지휘자가 됩니다. 지휘봉을 든 지휘자의 손끝에 집중하고 한 방향을 바라보지 않으면 금세 불협화음이 만들어집니다.   우리 가족이 만들어 낼 아름다운 화음을 위해 먼저 서로가 같은 악보를 보고 있는지 확인해봐야 합니다. 악보 속 음악 기호들이 같은 의미로 인식되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표현방식에 있어 합의도 필요하죠. 그리고 때때로 개인 연습의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합니다.   또 한해를 열심히 살아나갈 우리 가족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참아내지 못한 순간의 화가 혹여 큰 후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나와 우리 가족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관련기사[더오래]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더오래]굳이 나를 택한 그대여, 가만히 바라봐줘 [더오래]“여보, 라면?” “콜”…당신이 최고 야식 친구 굿 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14 13:00

  • [더오래]아무도 몰라주지만…나는 살아가는 얘기 쓰는 무명작가

    [더오래]아무도 몰라주지만…나는 살아가는 얘기 쓰는 무명작가

     ━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212)     1월의 첫 주다. 글쟁이라고 하는 문인들이 신문을 가장 기다리는 달이다. 그들에겐 한해의 결실을 격려하고 매듭지어주는 희망과 기대가 큰 시기다. 1월 3일 자 여러 신문엔 여러 문학 분야의 1등을 차지한 이름이 주르륵 올라왔다.   ‘00신문사 등단작가’라는 타이틀. 글 쓰는 사람에겐 로망이며 최고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나도 글쓰기를 참 좋아하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이라 생각해 본적도, 꿈도 꾸어 본 적 없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1월의 첫 주가 되면 글쟁이라고 하는 문인들이 신문을 기다린다. 그들에겐 한해의 결실을 격려하고 매듭지어주는 희망과 기대가 큰 순간이다. [사진 Pixnio]   작년의 어느 날, 문인 모임 중에 등단작가 한 분이 글 쓰는 사람은 등단해야 진정한 문인이라며 등단을 목표에 두고 글을 쓰라고 하신다. “등단이 돈 주고 살 물건이면 사겠구먼….” 구시렁거리면서도 괜스레 주눅이 들었다. 오만가지 핑계를 대지 않아도 내 글은 그 단어를 논할 수준이 아닌지라 그냥 흘려들었다. 그런데 2년 전 콘텐트 작가 수업의 인연으로 멘토가 되어주는 백승○ 선생님이 안동까지 내려와 미션을 주었다. 그리곤 문장을 첨삭하고 수정해주며 함께 다듬는 작업도 해주셨다.   “부끄럽다니요, 어딘가에 목표를 갖고 쓰다 보면 등단은 못 해도 꾸준한 글쓰기의 경험이 쌓여 내 분야의 진정한 프로가 되는 거지요. 재수, 삼수, 십수생도 있어요.“   그래 참여하는 것이 목표다. 그리하여 12월 초순 신문사 두 곳에 이렇게 저렇게 써놓은 두 개의 작품을 기름치고 주물러 제출했다. 그런데 나의 철딱서니 없는 마음은 어느새 1등을 향해 그림을 그리고 수상 소감, 상금을 써야 할 곳도 이미 다 계획되었다. 우리 클럽의 정식으로 등단한 회원들도 돌려 읽으며 모두 어깨에 뽕을 넣어주니 이거야말로 제사도 지내기 전에 몰래 먹어보는 떡 맛이다. 내가 몰래 다시 읽고 또 읽어도 감동과 재미 그리고 완벽한 글이다. 하하하.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1월이 왔다. 지루하게 지나간 3일 아침, 터미널 자판기에 꼽힌 신문이란 신문은 다 사 들고 들어왔다. 대문짝만하게 실린 등단 명단엔 눈에 익은 제목과 내 이름 비슷한 글자도 없다. 이젠 차선책이다. 심사평을 기대하는 거다. 심사평에 내 글이 간당간당하게 붙어 심사위원의 마음이 흔들렸다는 말만으로도 대단한 거 아닌가? 꿈에 계시라도 있으려나 기대하고 오래도록 잤지만 어느 날보다 잘 잔 다음 날 당선작과 함께 올라온 작품 심사평에도…. 당근 없다.   200만 원 상금을 받으면 반은 불우이웃돕기로, 그 반의반은 작가모임에 기부하고 나머지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선생님들께 선물할 물건목록까지 다 뽑아 놨는데 죽 쒔다. 흐흐흐. 그래도 날 받아놓은 여행자의 설레는 마음같이, 새로운 미션으로 연말연시를 맞이했으니 그보다 더 즐겁고 알뜰한 시간이 또 있을까.   올해는 자서전을 써보려고 한다. 우리 나이에 딱 맞는 ‘하루 세 줄만 쓰기’로 시작해보는 거다. [사진 flickr]   다시 시작하는 1월이다. 1월은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기에 너무 좋은 달이다. 무엇을 시작해도 보람차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있어 좋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글도 잘 쓰지만 요즘은 활동을 안 하시는 지인이 농담한다. “내 인생 글로 쓰면 발가락으로 써도 등단했을 것이여. 하하하.” 메타버스를 타든 마을버스를 타든 그 일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길을 나서던가, 손가락이라도 움직여야 시작되는 거다. 새해엔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 보며 나에게 자서전 쓰기 미션을 주자. 우리 나이엔 딱 맞는 ‘하루 세 줄만 쓰기’로 시작해보는 거다. 나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쓴다. 등단은커녕 아무도 몰라주지만 그래도 나는 멋진 무명작가라고 나를 격려한다. 나 그리고 이웃의 하찮고 허접한 이야기를 소중하고 즐거운 일상으로 바라보며 글 보따리를 푼다. 최선을 다해 쓰다 보면 서툰 글도 프로가 된다는 진리를 느껴보고 싶다. 신문에 오른 수많은 등단작가에게 부러운 축하를 보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동요 곡이 나의 일상 같아 킬킬거리며 따라 불러본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 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개굴개굴 개구리 목청도 좋다.𝅘𝅥𝅮𝅘𝅥𝅱𝅗𝅥𝆹𝅥𝅯‘ 관련기사[더오래]홀로 걸으며 내 안의 나와 대화했던 달마고도길[더오래]하루 2000원씩 주식 사모으기…올해 나의 10대 뉴스[더오래]올해 배추 농사는 흉작이라지만 김장 인심은 풍작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12 07:00

  • [더오래]“부부싸움? 남 일이야”…햇내기 부부의 오판

    [더오래]“부부싸움? 남 일이야”…햇내기 부부의 오판

     ━  [더,오래] 싸운다, 사랑하니까(2)   [일러스트 강인춘]   세상에 싸우지 않는 부부는 없다   “너는 항상 그랬잖아?”“자기는 뭘 잘했는데?”   “미쳐요!”“미치다니? 그걸 말이라고 해?“   “쿵!”“쾅!”   결혼하면 부부 중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일상의 지뢰밭이 주위에 널려있다.그것은 양말, 치약, 수건의 자질구레한 것에서부터시가, 시부모, 처가, 술, 명품 백 등등의 크고 작은 지뢰들이다.부부 싸움은대게 이런 것들을 무심코 밟아서 터지기 시작한다.세상에 싸우지 않는 부부는 없다고 한다.태초에 아담과 이브에서부터19세기를 지나 오늘에까지 줄곧 1도 변함없이부부의 전쟁은 끈임없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어쩌면 지구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도바퀴벌레가 죽지 않는 것처럼‘부부 싸움’ 역시 영원할지도 모른다는 설이근자에 들어 너무 쉽게 난무하고 있다.부부 싸움!방금 결혼식을 끝내고 나온 햇내기 부부는 얼굴을 마주 보며“우리에겐 해당하지 않는 단어야”하며콧방귀 뀌듯 ‘픽~’ 웃어 버린다.   정말 그럴까?왜 웃음이 나오지?사실은 우리 부부도 처음엔 이들 신혼부부처럼 그랬다.한 치 앞을 몰랐던 멍청이들.당신들과 나.어휴~! 관련기사[더오래]팔순 노인이 신세대에게 쓰는 사랑의 텍스트북 [더오래]미완성 조립품?…남편을 자기 식으로 길들이려는 딸[더오래]술 취해 늦게 귀가한 남편에게 딸 “누구세요? 아저씨” 일러스트레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11 13:00

  • 응급실서 '가슴 쿵쿵' 취객 몰린 男, 가슴에 '시한폭탄' 있었다 [더오래]

    응급실서 '가슴 쿵쿵' 취객 몰린 男, 가슴에 '시한폭탄' 있었다 [더오래]

     ━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88)     ■  「 어느 밤. 늦은 시간. 한 남자가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린다. 막무가내다. 어떻게 왔냐는 의사의 물음은 들은 척도 않고 큰 소리로 짜증만 부린다.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거리며 길길이 날뛴다. 안전요원이 제지하려 애써 보지만 도저히 통제 불능. 척 봐도 취객, 누가 봐도 취객. 어지간히 만취하지 않고선 응급실에서 저런 행동을 하지는 못할 터. 상황을 빨리 수습해야 한다. 다른 응급 환자들이 피해를 보기 전에. 전화기를 들고 112를 누른다. 」  ST 분절 상승 심근경색 환자는 필사의 의지로 십수분 거리에 있는 우리 응급실을 찾았다. 그리고 한 의사의 세심함이 그의 생명을 구했다. [사진 camilo jimenez on Unsplash]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졸국을 두 달 앞둔 치프 레지던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4년의 전공의 세월, 짧고도 긴 시간 속에서 그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환자의 회상을 풀어내고 있었다. 이야기의 초반은 식상했다. 취객의 난동은 응급실에서 툭하면 일어나는 흔한 사건이니까. 하지만 도입부가 끝나고 반전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순식간에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침 한 모금 삼킬 수 없었다.   전공의는 밖으로 끌려나가는 남자에게서 뭔가 쎄한 느낌을 받았다.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냥 감이었다. 어쩌면 의사의 촉이라고 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끌려가는 남자를 쫓아가 물었다. 혹시 가슴이 아파서 그러는 것이냐고.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온몸으로 발버둥 쳤다. 그 발버둥이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무언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어쩌면 취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찝찝함을 남길 수는 없었다. 남자를 침대로 데려와 심전도 검사를 시행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ST분절이 상승한 심근경색 소견이었다. 심근경색 중에서도 가장 급한 케이스다. 재관류 시술이 늦어지면 분 단위로 생존 가능성이 뚝뚝 깎여져 나가는 질환. 이름하여 ST분절 상승 심근경색. 응급실에서 시간을 다투는 초응급 질환 중 하나이다. 남자는 취객이 아니었다. 언제 심장이 멎어 쓰러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존재. 즉 환자였다. 심장을 옥죄어오는 통증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사람들은 취한 것으로 오해했다. 왜냐? 환자는 언어장애가 있었으니까. 의사 표현을 제대로 못 했으니까.   재관류 시술을 마친 후 환자는 안정을 되찾았다.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자 종이와 펜으로 필담을 나눌 수 있었다. 급작스러운 흉통이 발생했고 이내 죽음의 공포가 찾아들었다고 했다. 가까운 응급실을 찾았으나 문전에서 쫓겨났다. 오해를 받아서. 증상을 차분히 표현하지 못한 탓이다. 두려움과 통증이 그의 사고를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ST 분절 상승 심근경색 환자가 응급실에서 쫓겨나는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 벌어졌다. 선수들끼리는 안다. 그대로면 머지않아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천만다행히도, 그의 심장은 꽤 긴 시간 허혈 손상을 버텨냈다. 그 사이 그는 필사의 의지로 십수분 거리에 있는 우리 응급실을 찾았다. 그리고 운 좋게 한 의사를 만났다. 겨우 쪼렙 전공의에 불과한 의사였지만, 그에게만큼은 세상에 더 없을 진짜 명의를 만난 셈이다.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응급실을 홀로 찾을 수 있다. 그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의사로서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사진 Natanael Melchor on Unsplash]   치프 레지던트의 얘기를 듣고서 안도와 감탄의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세심함이 한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 중 누군가가 그때 그 순간에 거기 있었더라면, 그 남자가 환자란 걸 알아볼 수 있었을까? 아니다. 그가 아니면 누구도 못 해냈을 것이다.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짬밥이 몇 배나 많은 교수지만,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일말의 자신감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응급실을 홀로 찾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누군가 응급실에서 아무 말 없이 발만 쾅쾅거린다면? 의료진이 묻는 말에 응하지 않고 성질만 부린다면? 당연히 쫓겨나기 십상 아닐까? 하지만 그는 어쩌면 환자일지 모른다. 진짜 급한 환자일지도 모른다. 하필 언어 장애가 있어 단지 표현을 못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과연 그런 가능성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으며, 얼마나 주의하며 의사로서 응급실에 서 있는지 의문이다.   깨닫는 바가 크다. 졸국을 앞둔 전공의가 떠나기 전에 내게 남기는 선물이 아닌가 싶다. 이 지면을 빌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너의 경험을 항상 마음에 담고 네 몫까지 더 열심히 환자를 볼게. 잘 가라. 군대.”   관련기사[더오래]휴일 싫다, 그러나 이번 크리스마스 만큼은… [더오래]공부량 많은 ‘내외산소’ 전공의 수련기간 짧아진 사연 [더오래]초초대형 하나로 ‘빅뱅’…응급의사가 보는 병원의 미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10 09:00

  • [더오래]멀리선 예쁜 달동네…알고보니 출입 불가 우범지대

    [더오래]멀리선 예쁜 달동네…알고보니 출입 불가 우범지대

     ━  [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57)    2010년, 콜롬비아 외곽의 시골 동네. 동행했던 컴패션 한국 후원자의 후원 아이다. 알고 보니, 후원자는 최근 알게 된 지인의 형님이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지인의 형님이라는 말은, 사실 그리 깊은 관계가 아니라는 의미. 그런 작은 연인데도 관계가 형성되면 뭔가가 남다르다. 아이의 화사함은 그래서 더욱 곱게 사진에 담겼는지도. [사진 허호]   컴패션에서 많은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을 만나러 다니다 보면, 멀고 먼 중남미에 가볼 기회들도 있지요. 중남미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하지만 중미라고 말하는 중앙아메리카 대륙만 해도, 멕시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와 같이 많은 나라가 속해 있습니다. 남아메리카 대륙은 어떤가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콜롬비아, 우루과이 칠레, 페루와 같은 서로 문화도 다르고 인종도 다른 나라들이 포함되지요.   컴패션을 통해 중남미 어린이들을 만나다 보면 이러한 인종적, 문화적 차이들이 어떻게 생겨났나 조금씩 파고들게 됩니다. 최초의 흑인 독립국가 아이티 이야기도 알게 되고, 아이티의 지원을 받고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등을 해방시켰던 크리올(중남미 식민지에서 태어난 스페인계 백인 후손들) 출신 볼리바르 장군 이야기와 같은 대서사시도 접하게 되지요. 이 사람은 비록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이들 나라에서는 국부로 일컬어집니다. 볼리비아라는 국호도 볼리바르의 이름을 따른 것입니다.   뭘 이런 것까지 줄줄이 읊냐고요?   제가 그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만나서 눈을 마주치고 어린아이의 등을 토닥여 주기도 하고 박수도 쳐주고. 부모와 만나 속 사정을 나누고 정감 어린 인사를 하기도 했었지요. 그러다 보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이런저런 관련된 것들을 찾아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같은 콜롬비아 외곽 시골마을의 컴패션 어린이 가정. 거리 곳곳에 색감이 넘쳐나는 콜롬비아를 둘러보는 일은 굉장한 눈호강이다. 온전한 천을 구하기 어려워 침대보를 조각조각 기워 만들었을 이들 사정이 짐작된다. 그럼에도 예술품처럼 화려한 색감의 조각보에서는 가진 것 안에서 자녀를 향한 부모의 최선이 읽힌다. 그 긍정에 절로 설득된다. 삶은 고달프겠지만, 그래도 이들은 괜찮을 거라고. [사진 허호]   지금 한국 드라마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지요. 꾸준히 보는 편은 아닌데, 몇 년 전 제가 흥미진진하게 봤던 넷플릭스 시리즈는 ‘나르코스’라는 미국 드라마였습니다.   ‘나르코스’는 스페인어로 마약 중계상을 뜻하는데, 1980년대 콜롬비아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실화를 드라마화한 것입니다. 마약과 범죄의 온상지로 여겨지는 콜롬비아 뒷골목의 시초가 되었다지요. 에스코바르는 메데인 카르텔이라는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 마약으로 돈을 벌어 추정 자산이 33조원을 넘어 세계 최고 갑부에 오르기도 했다죠. 군대, 비행장, 동물원까지 갖춘 자신의 집에 돈을 쌓아 두었다가 지폐가 썩어가자 서민들에게 돈을 뿌려 인기가 엄청났지만, 결국 미국 마약단속국에 의해 피살됩니다. 드라마는 범죄가 난무하고 선인도 악인이 되는 비극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콜롬비아가 처한 사회상도 잘 보여줍니다.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 정리되지 못한 좌우의 대립, 정치부패, 엄청난 빈부 격차 등 혼돈으로 얼룩졌죠.   이 드라마를 보기 전 저에게 콜롬비아는 후원자와 어린이들과의 사랑스러운 만남의 여운이 식지 않았던 나라였고, 가정방문으로 만난 부모와 자녀들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정감 넘쳤지요. 지인의 후원 어린이는 유독 화사하게 제 카메라에 찍혔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실화를 극화한 것이지만 그들의 현실을 어느 정도 담아 제게 보여주었지요. 이들이 살벌하게 활약한 주 무대는 사실 제가 만난 어린이와 부모들이 주로 거주하는 빈민가였습니다. 배경에 등장하는 골목의 풍경은 우리가 만났던 마냥 따뜻했던 형제와 이웃이었던 컴패션 가족을 만났던 곳이기도 했지요. 드라마를 통해서 그들의 삶의 곡절과 엄연한 현실을 거꾸로 보게 된 것이지요.   페루의 수도 리마 한복판에 높이 솟은 산. 리마 어디에서나 항상 저 산을 볼 수 있다. 산의 신시가 시의 한 일면은 알록달록 예쁘게 벽을 칠한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보는 것과 전혀 다르게, 방문조차 어려웠던 극악의 범죄 도시였다. 그 안에 컴패션 어린이센터가 두 개나 있었다. [사진 허호]   그동안 수많은 컴패션 국가를 방문해 경찰과 현지 직원들과 동행하면서까지 사진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아예 입장조차 하지 못했던 동네를 페루에서 만났습니다.   페루의 수도 리마 한복판에는 서울의 남산과도 같은 높다란 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도심 어디에 가도 그 산이 보였지요. 도심에 위치한 산이어서 그런지 산 중턱까지 집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중 한 단면으로 보였던 구역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외벽을 알록달록 각각의 색으로 페인트칠해 멀리에서 보면 굉장히 예뻤지요.   알고 보니, 이곳은 리마 가운데에서도 굉장히 열악한 빈민가였고, 주민들은 페인트를 살 돈이 없어서 버린 페인트를 주워다 칠을 하다 보니까 한 가지 색으로 칠하지 못하고 각양각색의 색을 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멀리에서 보면 알록달록 색감이 예쁜 마을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곳은 컴패션 어린이센터가 두 곳이나 있을 정도로 열악한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에 거주하는 컴패션 교사들도 마음대로 못 돌아다니는 우범지역이라고 했지요.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어 보고 싶다고 하자, 저를 안내해 주었던 컴패션 직원이 얼굴이 파래졌습니다. 카메라를 살짝 꺼내기만 해도 강탈당할 것이라면서요. 결국 초입에 발만 살짝 걸치고 찍은 것이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진이 되었습니다.   멀리에서 보면 그렇게 아름다운 동네가 공권력은 고사하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조차 함부로 못 돌아다니는 지역이라니. 10여 년 넘게 컴패션에서 전 세계를 다니며 사진을 찍었지만 처음으로 들어가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아마 그들도, 똑같은 삶의 면면들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것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던 때였습니다.   컴패션에서 어린이를 만나러 갈 때는 삶을 보게 됩니다. 사람 자체를 만나러 가는 것이니까요. 드라마 ‘마르코스’에서 드러났던 사회 전반적인 문제나 후에 공부한 고고한 역사를 놓치는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만나, 가정 안에서 오손도손 앉아 이야기하며 갖는 만남에서 느껴지는 관계의 정, 사랑, 감사는 절대 놓칠 수 없는 큰 선물이지요.   보이는 것 이면에는 늘 무엇인가가 있지요. 정말 어렵고 누추하고 열악한 지역을 다녔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정말 큰 축복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2022년에 들어섰습니다. 2022년에도 변함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하고 있겠지요. 어떤 면을 보고 경험하게 되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진짜 만남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관련기사[더오래]아듀! 2021…석양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3컷[더오래]우범지대 어린이들…경찰 동행한 콜롬비아 빈민가[더오래]떠나야 하지만…갈 곳 없는 필리핀 철거민촌 아이들 사진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10 08:00

  • [더오래]팔순 노인이 신세대에게 쓰는 사랑의 텍스트북

    [더오래]팔순 노인이 신세대에게 쓰는 사랑의 텍스트북

     ━  [더,오래] 싸운다, 사랑하니까(1)   [일러스트 강인춘] 새 연재를 시작하면서   "싸운다! 사랑하니까"   타이틀 그대로 우리 부부는젊은 날,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수많은 날을 숱하게 싸워왔다.그러면서도 팔순이 넘는 이 나이까지 서로 떨어지지 않고끈끈하게 붙어 있는 걸 보면 아내나 나나, 그 본바탕에는'사랑하니까'라는 이름의 진분홍 색깔의 하트(hart)가변색을 마다하는 앙탈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아직도 그 흔한 '졸혼(卒婚)' 마저 하지 못하고촌(?)스럽게 꽁꽁 붙어사는 걸 보면 말이다.   이제 나는 부끄러움도 잊은 채 '싸운다'라는 낯 뜨거운 부부 애증의 많은 기억을 이곳에 한 장씩 펼치려고 한다. 혹시라도 나의 ‘그림 에세이’를 보는 어느 신세대에게는 나름대로 결혼생활 사랑의 텍스트북이 될지도 모르니까.   "아내와 수시로 싸우다니? 뻔뻔하지 않아?" 독자들이 보기도 전에 나 자신에게 먼저 묻는다. 물론 아니다. 아내나 나나 서로 사랑이 메말라 미워서 보기 싫었으면 소리치며 울고불고할 것도 없이 까칠한 성질대로 즉시 각자 '바이바이~!' 헤어졌을 것이다.   오늘, 팔순 노인의 내 얼굴엔 두꺼운 철판이 깔려있다. 타이틀 그대로 우리 부부는 〈싸운다! 사랑하니까〉로 또 하루를 무난히 넘긴다.   *부첨 어쩌면, 이 글을 할망구 아내가 보고 있다면 콧방귀를 뀌며 눈을 흘기고 입을 삐죽일 것이 뻔하다. 어휴~! 갑분싸!   관련기사[더오래]미완성 조립품?…남편을 자기 식으로 길들이려는 딸[더오래]술 취해 늦게 귀가한 남편에게 딸 “누구세요? 아저씨”[더오래]남편이 미웠다 예뻤다…갈대 같은 아내의 마음 일러스트레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04 13:00

  • [더오래]내년은 검은 호랑이 해…인도 숲서 7~8 마리 서식

    [더오래]내년은 검은 호랑이 해…인도 숲서 7~8 마리 서식

     ━  [더,오래] 신남식의 야생동물 세상보기(41)     다가오는 새해 2022년은 육십갑자(六十甲子)로 임인년(壬寅年)이고 호랑이해가 된다. 음양오행설에 따라 임(壬)이 북방위인 검은색이기에 검은 호랑이(黑虎)해라 부르기도 한다. 2010년 경인(庚寅)년은 경(庚)이 서방위인 흰색이라 백호(白虎)해라 불리기도 했다.   호랑이의 피모색은 본디 복부의 흰색을 제외한 몸 전체가 황색 바탕에 검은색의 세로줄 무늬를 가지고 있다. 검은 호랑이(이하’흑호’라 함)는 검은색의 세로줄이 넓게 펴져 황갈색을 많이 가리는 모양이다. 백호는 바탕이 흰색이고 세로줄은 진한 갈색이거나 희미하게 보인다. 흑호와 백호는 호랑이의 아종이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부탄에 분포하는 벵갈호랑이 종이다. 학명도 공히 ‘Panthera tigris tigris’로 표기된다. 백호는 국내의 동물원에서 볼 수 있고 예로부터 청룡 주작 현무와 함께 사신 중의 하나로 잘 알려져 있으나 흑호는 좀 생소한 면이 있다.   백호는 예로부터 사신 중의 하나로 알려졌다. 백호는 벵갈호랑이의 백색변종으로 붉은색과 노란색 색소인 페오멜라닌의 부족으로 나타난다. [사진 에버랜드동물원]   포유동물의 모색은 멜라닌색소에 의한다. 멜라닌에는 검은색·갈색의 유멜라닌(eumelanin)과 붉은색·노란색의 페오멜라닌(pheomelanin) 두 종류가 있으며 멜라닌 사이의 양 비율 분포가 모색을 결정한다. 백호는 페오멜라닌 색소가 부족하고, 흑호는 유멜라닌이 과도하게 축적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호랑이는 근친교배의 영향으로 더 자주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백호의 기록은 인도에서 170년전부터 내려오고 있다. 1907년부터 1958년까지 20여마리가 포획되었다 한다. 현존하는 백호는 1951년 인도의 르와 지방에서 포획된 9개월된 수컷 ‘모한(Mohan)’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듬해 모한과 황색의 벵갈호랑이 사이에서 흰색유전자를 가진 황색호랑이가 태어났다. 이 황색호랑이와 모한의 번식이 다시 시도돼 4마리 중 1마리의 백호를 얻은 후부터 수가 늘어나게 됐다. 이후 미국과 유럽의 동물원에 보내져 증식이 많이 이루어졌다. 야생에서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아 보고되지 않고 있어 절멸된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은 에버랜드동물원이 1989년 미국의 오마하동물원과 신시내티동물원에서 분양 받은 개체가 번식에 성공해 지금에 이른다.   유멜라닌이 과도하게 축적되면 흑호가 태어나는데, 근친교배의 영향으로 더 자주 나타날 수 있다.{데일리 미러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흑호에 대한 이야기도 주로 인도 지역에서 300년전부터 목격담이 전해지나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다. 인도에는 흑표범도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흑호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었고 황색 호랑이가 그늘에 가리면서 검은색으로 착시되는 사례도 많았다. 1992년 인도에서 머리와 등이 검은색인 호랑이 모피가 압수된 것이 가장 확실한 최초의 기록이다. 이 모피는 뉴델리의 국립자연사박물괸에 보존되어 있다. 1999년에는 인도동부의 오디샤주 산림보호구에서 관리원이 2마리의 흑호를 목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2014년 인도에서 5살된 백호가 4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이 중 1마리가 검은색을 띄었다. 이후 검은색을 띈 새끼호랑이의 분만기록이 몇 차례 있었다. 최근에는 오디샤주 산림보호구에서 야생 상태의 흑호를 촬영한 사진이 공개된 바도 있다. 야생에서 7~8마리정도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호랑이는 먹이사슬의 최상에 위치하며 용맹과 기개를 상징한다. 홀로 다니지만 외롭게 보이지 않고, 소리 없이 이동하지만 숨어 다니지 않고, 야간에 활동하지만 교활하지 않고, 언제나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사진 서울동물원]   전 세계적으로 야생에 서식하는 호랑이의 개체수는 4000마리 정도로 점차 감소 추세다. 한반도에 분포했던 시베리아호랑이는 500마리 정도가 유지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은 야생에서 멸종된 상태이나 1986년과 1987년 미국을 시작으로 2011년 러시아, 2017년 체코에서 시베리아호랑이를 도입하고 증식에 성공해 7개 동물원에서 55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동물원의 수용시설이 부족하여 번식을 제한하는 실정이다. 다행하게도 2018년에는 경상북도 봉화에 위치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내에 백두산호랑이보전센터가 설립되었다. 3만8000m²의 넓은 부지에 여유 있는 동물 우리와 안전시설을 갖추고 있어 향후 한국내 호랑이번식기지로서 역할이 기대된다. (시베리아호랑이는 지역적으로 한국호랑이, 아무르호랑이, 만주호랑이, 우수리호랑이 등으로 불리며 중국에서는 동북호랑이, 한국에서는 백두산호랑이라 불리기도 한다.)   호랑이는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가장 큰 생물체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고대신화나 민속에 가장 많이 등장했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영화나 문학에 자주 나타나는 가운데 국기 문장 마스코트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서는 단군신화에 처음 등장한 후 수많은 전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민속의 중심에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였으며 축구 국가대표팀의 문장이기도 하다.   한국의 민속에서는 산신령이 호랑이를 타고 있는 모습을 그렸으며 호랑이 자체를 산신으로 여기기도 했다. 신화와 민담에서는 쑥과 마늘을 먹고 담배를 피웠으며 곶감에 놀라 도망가기도 했다. 한때는 사람에 해를 끼친다 하여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다. 한민족의 삶과 문화에 가장 깊이 연관된 동물이 된다.   시베리아호랑이는 한국의 야생에서는 절멸되었으며 국내 7개 동물원에서 55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경북 봉화에 백두산호랑이보전센터가 설립되어 번식기지로서의 역할이 기대된다.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는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상에 위치하며 용맹과 기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호랑이의 특징을 잘 나타낸 글귀가 하나 있다. “홀로 다니지만 외롭게 보이지 않고, 소리 없이 이동하지만 숨어 다니지 않고, 야간에 활동하지만 교활하지 않고, 언제나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임인년에 바라보는 호랑이는 더욱 그러할 것 같다. 새해는 우리 사회도 언제나 당당함을 잃지 않는 삶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관련기사[더오래]수족관의 ‘흰돌고래’, 망망대해가 꼭 보금자리일까[더오래]홀로 못 사는 홍학, 왜 외다리로 서서 쉴까?[더오래]거북보다 느린 네발 동물…나무가지에 매달려 생활하죠 서울대 명예교수·(주)이레본 기술고문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1.12.29 13:00

  • [더오래]홀로 걸으며 내 안의 나와 대화했던 달마고도길

    [더오래]홀로 걸으며 내 안의 나와 대화했던 달마고도길

     ━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211)     지난 글에 내년엔 돈을 모아 산티아고 길을 걸을 거라고 자랑했다. 어쩌면 나는 그 길을 영원히 못 가보고 뻥만 치다가 끝날지도 모른다. 여행경비야 만들겠지만, 일용인부의 삶을 사는 내가 40일이나 되는 시간을 낸다는 것은 꿈이다. 무릎이 닳아 일을 못 하게 되었을 때야 만들어질 시간인데 그러면 어차피 걷지도 못하는 시간 아닌가. 그렇지만 해마다 목표를 정해놓고 황당한 이야기 같은 꿈을 꾼다. 곧 이루어질 것처럼 떠들어 대고, 그날이 올 것처럼 걷고 또 걷는다.    금요일이면 신문에서 오만 길을 보여준다. 길은 나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속삭인다. ‘이름만 다르지 길은 길이잖니?’   허황한 꿈속에서 헤매는데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열흘의 연말 휴가가 주어졌다. 긴 시간이다. 올망졸망한 귀여운 손자들에게 납치되어 시간을 허비하면 너무 아쉽다. 나는 신문에 소개된 해남 남파랑길 코스를 가위로 오려내어 시간 보따리에 싸 들고 탈출하기로 한다. 휴가가 주어진 첫날 아침, 중무장한 복장에 몸통(카드)만 챙겨 길을 나선다.   긴 여정에 앞서 문지방을 나서는 일이 가장 어렵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에베레스트를 열 번도 넘게 오른 산악인도 가장 힘든 일은 문지방을 나서는 일이라 했다. 나 역시 혼자라는 두려움에, 빈약한 체력에, 안 가도 되는 백 가지 이유가 나를 가로막았다. 그래도 무사히 문지방을 넘고 나와 1차 관문은 가볍게 넘었다.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기로 하고 대중교통편을 섭렵한다. 집 나서면 개고생이라지만 힘들어도 해보고 싶다. 치매 예방에도 좋다. 한국은 참 살기 좋은 나라다. 화살표와 신호등을 해석하고 한글만 읽을 줄 알면 60대 중반의 어리버리한 나도 혼자서 구석구석 너무 쉽게 간다. 거기에 앱을 사용한다면 앉아서 구만리다. 일정 메모 날씨와 교통편 현지상황 길 안내까지 다해주는 비서다. 안동에서 버스와 기차를 타고 환승하고 또 환승한다. 가져간 책을 다 읽으면 다음 환승지에 도착, 그렇게 마을버스까지 바꿔 타고 출발지점인 해남에 도착했다.   전 일정을 계획하고 방랑자같이 혼자 다니겠다는 각오로 출발했는데 안동에 살다가 전라도로 귀농한 친구가 연락되어 더 반긴다. 시간이 되는 구간은 동행하기로 했다. 친구가 있으니 든든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특별한 작품이 된다. 인생살이도 그렇다. 사진은 해남 남파랑길. [사진 손민호]   며칠 동안은 근교의 섬을 찾아 둘레길을 걸었다. 조금씩 거리를 늘렸다. 5일째 되는 날 드디어 이번 여행길의 하이라이트인 남파랑길 90코스를 완주했다. 친구와 그의 후배 그리고 나, 셋이서 걸었다. 동행한 젊은 사람은 이틀 동안 다리에 알이 배여 힘들었다며 어르신(나)은 괜찮은지 걱정한다. 나는 다음날 삼문산 1코스를 또 걸었다. 흠, 어떤 일에도 리허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섬 투어로 걸었던 것이 연습이 되고 체력이 되었다. 달마고도 길은 은둔자의 길이다. 홀로 길을 걸으며 내 안의 나와 대화하고 안부를 물을 수 있어서 좋다. 그날은 산 정상에 지어진 도솔암까지 올라갔다. 그 길은 너무 가파르고 위험했다. 후둘거리는 걸음에 삐끗하여 헬리콥터에 실려 내려오는 상상을 한다. 올라가다 보니 정상이다. 그런데 근처까지 차로 오를 수 있는 길이 있다. 인생살이랑 비슷하다. 허무한 느낌이 잠시 든다.   젊었을 땐 작은 산을 오를 때도 정상까지 코스를 염두에 두니 지레 두려워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했다, ‘마음 가는 데까지’라는 생각으로 걷다 보면 어느새 그 험한 정상에 올라가 있었다.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중국의 험난한 꼭대기에 움막 같은 절이 하나 있었단다. 차도 마차도 길이 험해 못 올라오는 곳이었다. 그 험한 길을 70이 넘은 초로의 스님이 들어오는 것이다. “이 험난한 길을 어떻게 오셨습니까?” 노스님이 합장하며 답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왔지요.”   행여나 나에게 기회가 주어져 산티아고 길을 가게 된다면 지금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인 작품일 것이다. 평범한 시간이 특별한 이야기가 되는 소소한 행복. 내 삶이 그런 거 같다. 오늘 신문에도 ‘한국의 산티아고 길’이라며 멋진 길을 소개해 내 눈과 마음을 어지럽힌다. 나는 가위질을 하며 또 오려낸다. 고이 접어 수첩에 넣고 제2, 제3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리허설한다.   관련기사[더오래]하루 2000원씩 주식 사모으기…올해 나의 10대 뉴스[더오래]올해 배추 농사는 흉작이라지만 김장 인심은 풍작[더오래]입장료 냈더니 70% 쿠폰 환불…나의 소소한 행복여행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1.12.29 07:00

  • [더오래]미완성 조립품?…남편을 자기 식으로 길들이려는 딸

    [더오래]미완성 조립품?…남편을 자기 식으로 길들이려는 딸

     ━  [더,오래] 강인춘의 깍지외할미(52·끝)   [일러스트 강인춘] 남편은 미완성 조립품으로 나에게 왔다   남편은 미완성 조립 상태로 나와 결혼했다.그런 남편을 내 방식대로 맞추어 조금씩 조립해 본다.나에게는 가슴 설레는 꿈이 있었다.신혼생활에서부터 내 나름대로 알뜰살뜰하게 살림을 해서우리만의 행복의 꿈을 빨리 이뤄보자는 것이었다.그러나 남편을 다시 조립하다 보면어느 때는 참으로 난감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조립상태가 너무 엉성했기에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그래도 나, 나름대로 인내심을 가지고오늘도 한 조각 한 조각을 정성스레 다듬어 끼어 맞춘다.과연 내 마음에 맞는 남편의 조립은 언제 완성될지….   어쩌면 친정 엄마가 알게 되면지나친 과욕이라고 한 바가지 욕을 먹을 지도 모른다.   오매! 어찌까? 지집아야.참말로 느자구 없는 욕심을 부리는구먼.내가 니들 사는 거 지켜 봉께 니는 껀덕 허면 못난 냄편 탓이라고어쩌고저쩌고 하능디 지발 함부러 껄떡대지 말어.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개성이 있게 태어 났능디그걸 니 맘에 꼭 맞게 억지로 맨들라고 허면 되겄냐?부부라는 건 어느 한쪽이 모자라면 내 한쪽을 떼어다가서로 어울리게 맞춰가면서 사는 것인디어찌 싸가지읎게 니 욕심만 챙기면 되것냐?   니는 빈틈 하나도 읎는 완벽한 인간이여?시상에 완벽한 인간은 읎당께.글고 완벽한 인간은 인간미가 읎어.사람 냄새가 읎고 기계 냄새만 나는 로보트란 말이여.   지집아야?냄편을 탓하기전에 우선 니 자신부터 흠이 없는지 돌아보란 말이여.참말이여. 시상 암끗도 모르는 놈이지 맴대로 하는 것 맨큼 무서운 게 없고 마임.먼 말인지 알아듣건냐?"엄마의 완벽(?)한 잔소리는 오늘도 끝이 없다.이번에도 내 생각이 또 틀렸나 보다.   관련기사[더오래]술 취해 늦게 귀가한 남편에게 딸 “누구세요? 아저씨”[더오래]남편이 미웠다 예뻤다…갈대 같은 아내의 마음 [더오래]설거지 못한다고 꾸짖는 아내에 베란다로 나간 남편 일러스트레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1.12.28 13:00

  • [더오래]휴일 싫다, 그러나 이번 크리스마스 만큼은…

    [더오래]휴일 싫다, 그러나 이번 크리스마스 만큼은…

     ━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87)   잔잔한 캐럴을 들으며 텅 빈 거리를 걸었다. 양쪽으로 늘어선 트리는 화려한 배경이다. 세상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비록 관객은 하나도 없지만.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코로나19라는 먼저 찾아온 불청객 때문에 예년만큼 반갑진 못하지만. 사람들은 집 안에 갇혀 오래된 명화를 즐기는 게 고작이다. 밤늦은 거리엔 인적이 없다. 덕분에 캐럴 가득 반짝이는 거리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응급실에서 시달리느라 인제야 퇴근한 보람이 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강화된 거리 두기가 그것이다. 누군가 오미크론이 성탄절 선물이라고 헛소리를 했다던데,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코로나19 폭발로 응급실이 미어터질까 봐 노심초사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라도 거리두기를 강화한다니 그저 감지덕지할 따름이다.   크리스마스라지만 코로나19라는 먼저 찾아온 불청객 때문에 예년만큼 반갑진 못하다. 사람들은 집 안에 갇혀 오래된 명화를 즐기는 게 고작이다. [사진 pxhere]   9시면 사람들은 술 마실 곳이 없을 것이다. 고작 해봐야 모텔이나 찾을 테고. 그래. 괜찮다. 모텔은 괜찮다. 그 정도는 응급실에서 충분히 감내할만하다. 거기서 일어나는 사고는 발기 지속증이나 은밀한 부위의 골절 정도에 불과할 테니까. 아침엔 얼굴 벌게진 커플이 원하는 사후피임약 처방쯤일 테고. 어려울 게 전혀 없다. 코로나 환자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다.   더구나 술 취해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을 테니, 그 또한 반가운 소식이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다쳐서 응급실에 실려 오고도 끝까지 센 척하는, 그런 인간들을 어르고 달래서 치료받게 하는 거에 비하면 모텔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매년 이날 응급실에서 겪던 시달림이 올해는 없을 테니, 그 또한 감지덕지할 따름이다.   코로나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밤늦게까지 즐기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2년 내내 코로나에 시달린 응급실에게, 고생하는 의료진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올 크리스마스는 주말이다. 또 하나의 축복이다. 쉬는 날은 이렇게 겹쳐야 제맛이다. 크리스마스는 대체 공휴일도 아니다. 그러니 하나의 온전한 행복이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된 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날은, 남들 쉬는 날이다. 세상엔 뭔 놈의 쉬는 날이 그리도 많은지. 주5일 근무네, 공휴일이네. 최근에는 누구의 발상인지 대체 공휴일까지 생겨 내 심기를 건드린다. 세상 모두가 쉬는 즐거운 날, 응급실만 굴러가고 있다는 피해 의식이 자꾸 나를 비뚤어지게 만든다. 더구나 휴일은 평일보다 일도 더 힘들다. 주변 병원이 모두 쉬니, 갈 곳 없는 환자들이 전부 응급실 문을 두드리기 때문에. 남들이 쉬는 날은 우리에게 고통일 따름이다. 그래서 응급실은 휴일이 밉다.   게다가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휴일에 일하기 싫었으면 응급의학을 하질 말던가?” 이렇게 코웃음 치는 이들을 보면 나는 묻고 싶다. “세상과 자기 직업에 불만이 하나도 없으신가요? 싫은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가지셨나 봐요? 아버지가 대기업 오너이신가보죠? 부럽습니다.”   예전에는 응급실 구석에 조그만 크리스마스트리도 만들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럴 정신도 없다. 코로나 19가 모든 걸 빼앗아 갔다. [사진 Luis Melendez on Unsplash]   아무튼 작년부턴 대체 공휴일이 잔뜩 생기는 바람에 그만큼 일이 많아졌다. 아무런 보상도 없다. 남들 모두 행복한데 나 혼자 뚱 해있는 거, 그거 얼마나 짜증 나는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남들에겐 휴일을 선물했으면 소외된 우리에겐 피자라도 한판씩 쏴주든가! 정 없는 사람들아! 그래서 나는 이렇게 휴무일과 주말이 겹치면 너무 즐겁다. 소소한 기쁨이다. 어찌 그리 마음을 못되게 쓰냐고? 쉬는 날 피 말리며 응급실에서 일하는 고통. 그거 누구도 알아주지 않더라. 그러니 심통을 부릴 수밖에!   예전엔 응급실 구석에 조그만 크리스마스트리도 만들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럴 정신도 없다. 코로나 19가 모든 걸 빼앗아 갔다. 응급실이 언제는 한가했겠느냐마는, 그래도 바쁜 시간을 쪼개서 억지로라도 여유를 즐겼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다. 하루하루가 너무 큰 고통이다. 심적인 여유가 없다. 겨울이 더 싫다. 산타 할아버지도 나다니지 말고 그냥 집에만 계시면 좋겠다. 괜히 빙판길에 골절이라도 당하면 큰일이니까. 아파도 치료해줄 여력이 없다. 요즘 응급실 사정이 그렇다. 많은 환자가 구천을 떠돌고 있다. 코로나 때문이다. 환자들의 울음이 그치질 않는다. 다들 선물 받기는 애초에 글렀다. 이럴 땐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서 쉬는 거다. 지금 아프면 누군가의 생일이 당신의 기일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집에서 쉬세요. 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 저도 얼른 들어갈게요. 당신을 위해.   관련기사[더오래]공부량 많은 ‘내외산소’ 전공의 수련기간 짧아진 사연 [더오래]초초대형 하나로 ‘빅뱅’…응급의사가 보는 병원의 미래 [더오래]대기시간 뻥튀기되는 응급실…그래도 무소식이 희소식?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1.12.27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