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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고기 빠진 샤부샤부 밀키트지만 괜찮아…인생도 그런 것
━ [더,오래] 한재동의 아빠는 밀키트를 좋아해(10·끝) ‘만원의 행복’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새천년이 밝았을 무렵 인기를 얻었는데, 연예인들이 만원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형식이었다. 불과 십수 년 전에는 만원으로 일주일을 버텼다는데(물론 그 당시에도 무리한 컨셉이었다) 지금은 점심 한 끼에도 만원으로는 영 부족하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곁들인다면, 점심값도 상당한 부담이다. 밥벌이의 유일한 낙을 점심 시간으로 여기고 살아왔지만, 올라버린 물가에 가성비를 생각하게 된다. 가성비를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메뉴가 있다. 바로 샤부샤부 체인점의 점심 특선이다. 만 원 남짓한 가격으로 약간의 고기와 채소, 만두, 두부 등을 먹을 수 있었다. 준비된 재료를 다 먹으면 이어서 우려진 국물에 칼국수를 삶아 먹는다. 아직 끝이 아니다. 남은 국물에 밥과 달걀 등을 풀어 죽을 만들어 먹어야 비로소 제대로 샤부샤부 코스를 먹었다고 할 수 있다. 한 끼의 식사지만 마치 만화영화 속 로봇처럼 3단 변신을 한다. 왠지 모르게 크게 이득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칼국수와 죽까지 샤부샤부는 한끼에 다양한 변신이 가능하다. [사진 이마트몰] 풍성한 샤부샤부를 기대하고 고른 밀키트지만, 뼈아픈 실수가 있었다. 내가 산 밀키트는 고기나 해산물 등 메인 재료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샤브샤브 재료’ 밀키트였다. 처음에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대충 보고 사버린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어쩐지 싸다 했어!” 그리고 남 탓이 이어진다. “밀키트는 편하게 해먹으려 사는 건데 번거롭게 따로따로 사게 만들면 어떻게 해!” 그러나 어쩔 것인가, 이미 집에는 왔고 날씨도 쌀쌀해서 도저히 다시 고기 사러 나가지는 못하겠다. 그냥 채식한다고 생각하고 고기 없이 샤부샤부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차라리 밀키트에 ‘채식 샤부샤부’라고 쓰여있었다면 나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고기는 없지만, 아직 칼국수와 달걀죽은 해먹을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조리를 시작했다. 다행히 밀키트에는 생칼국수 면이 있었다. 집에 있는 찬밥과 달걀로 죽도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샤부샤부 밀키트 조리법 「 ① 들어있는 채소와 버섯을 깨끗이 씻고 알맞은 크기로 자른다. ② 물 1500mL에 동봉된 샤부샤부용 소스를 넣고 끓인다. ③ 채소와 버섯을 국물에 익혀 동봉된 간장소스 / 칠리소스에 찍어 먹는다. ④ 남은 육수에 칼국수를 넣고 5분간 끓여서 먹는다. 」 사실 채소와 버섯을 씻어 준비하는 것 말고는 조리라고 할만한 게 없다. 이 밀키트를 사야 하는 이유를 말해야 한다면 아마도 육수 소스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머지는 채소, 버섯, 간장소스, 칠리소스로 집에 있거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샤부샤부는 먹으면서 조리하는 음식이기에 우선 채소부터 먹기 시작했는데, 먹다 보니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았다. 배가 찼다고 칼국수를 포기할 순 없다. 들어있던 육수 소스 덕에 국물이 짭짤해서 그냥 끓여도 좋지만,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을 추가하길 권한다. 빨갛게 우러난 국물에 마늘 향이 배인 칼국수를 먹으면 명동칼국수가 부럽지 않다. 고기가 빠진 아쉬움이 조금 달래지는 것 같다. 오히려 채식하는 분께는 꽤 괜찮은 한 끼로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칼국수를 다 먹어도 국물이 상당히 남게 되는데, 적당량을 덜어서 찬밥과 달걀을 넣고 죽을 끓이면 이게 또 별미다. 육수가 짭짤하기 때문에 죽에 따로 소금으로 간하지 않아도 된다. 샤부샤부 전문점에서 넣어주는 다진 채소가 빠진 것이 아쉬웠는데, 다음에 또 먹는다면 샤부샤부용 채소를 조금 덜어서 죽을 할 때 넣어 먹으면 좋을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채식 샤부샤부를 먹게 되었다. [사진 한재동] 그간 밀키트를 사면 되도록 레시피에 적힌 대로 조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항상 메뉴얼 대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고기 빠진 샤부샤부 밀키트 덕에 채식 샤부샤부를 해먹게 되었다. 계획은 틀어지고 기대했던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오히려 정해진 조리법에서 벗어나 이것저것 추가하다 보니 나만의 요리가 된 것 같다. 밀키트 요리하면서 말하기에는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 어쩌면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닐까? 계획대로만 되는 삶이 어디 있으며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바보 같은 실수를 덮으려는 헛소리라고 타박하는 분도 있겠지만,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귀여운 실수로 자책하고 싶지는 않다. 세상에 나를 토닥여주는 건 자신 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련기사[더오래]남 먹는 것 보면 식욕이 솟구치는 음식, 라면과 '이것'개그맨 김준현의 최후 만찬 메뉴는 돼지갈비…당신은? [더오래][더오래]해외여행 못가는 슬픔 나라별 밀키트로 위로해볼까 직장인 겸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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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남 먹는 것 보면 식욕이 솟구치는 음식, 라면과 '이것'
━ [더,오래] 한재동의 아빠는 밀키트를 좋아해(9) 짜장면 영상이 식욕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처음 먹방이라는 장르가 생겼을 무렵 보다 보니 잃었던 밥맛이 돌아왔다는 인터뷰를 본 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와닿지 않았다. 내가 먹는 게 중요하지 남이 먹는걸 왜 보느냐는 부정적인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사실 내게는 예전부터 남이 먹고 있으면 참지 못하고 기어코 먹게 되는 음식이 2개 있다. 첫 번째가 라면이고 두 번째가 짜장면이다. 무한도전, 1박2일 등 리얼버라이어티 예능이 전성기일 때 강호동이 라면을 크게 한 젓가락 입에 넣거나 정준하가 짜장면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장면에서는 참지 못하고 냄비에 물을 끓이거나 중국집에 전화하고 말았다. 짜장면은 대한민국 어디서나 시켜먹을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 서민 대표 음식이다. [사진 면사랑홈페이지] 짜장면을 무슨 밀키트로 먹느냐고 반문하실 분들도 계실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면 어디서나 간단히 시켜 먹을 수 있고, 가격도 서민 음식의 대표 명사격으로 저렴한 편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밤중에도 영화 ‘기생충’으로 글로벌 유명세를 가지게 된 짜장라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밀키트를 구매하게 된 것은 배달앱이 보편화된 후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그릇만 배달시켜 먹기는 어려워졌고, 한우를 넣은 짜장라면이라도 짜장면의 풍부한 소스를 재현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깊은 밤 TV에서 짜장면을 맛깔나게 먹는 장면을 보게 되는 비상 상황을 상상해보자. 물론 언감생심 짜장라면으로 달랠 수도 있다. 하지만 양파와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차진 짜장면을 먹기 위해서는 밀키트가 필요했다. 과연 밀키트 안에는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다져진 양파와 돼지고기가 들어있었다. ■ 짜장면 밀키트 조리법 「 ① 끓는 물에 면을 넣고 3분 50초간 삶은 후 체에 밭쳐 찬물에 헹군다 ② 강한 불에 동봉된 향미유를 넣고 돼지고기를 2분간 볶는다 ③ 팬에 양파, 호박을 넣고 2분간 더 볶는다 ④ 짜장 소스를 넣고 1분간 골고루 섞으며 볶는다 ⑤ 뜨거운 물에 데친 면을 그릇에 담고 소스를 담아주면 완성 」 보통의 밀키트는 채소들이 잘 다듬어져 있더라도 씻어서 먹으라는 문구가 있기 마련인데, 짜장면의 경우 양파와 주키니호박을 별도로 씻을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다만 면을 삶을 때 물이 자꾸 넘쳤는데, 레시피에 친절하게도 면을 삶을 때 찬물을 조금씩 넣으라는 셰프의 팁이 적혀있었다. 돼지고기는 레시피대로 2분을 강한 불에 볶으면 거의 타는듯해 걱정했지만, 막상 완성되었을 때 식감이 좋다고 느꼈다. 면도 두툼해 정말 중국집에서 배달시켜 먹는 짜장면의 느낌을 제대로 살린 것 같다. 다만 2인분이라고 했는데, 막상 짜장면 곱빼기 정도의 양이었다. 더욱 아쉬운 건 동봉된 단무지가 터무니없이 적었다. 요즘은 자차이를 주는 곳도 많다지만 라면에 김치가 단짝이듯 짜장면에는 역시 단무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짜장면 밀키트는 면도 두툼하고 고기도 충분해 배달시켜 먹는 짜장면의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있었다. [사진 한재동] 새로 생긴 유명호텔 중식당에 5만 원이 넘는 짜장면을 판매한다고 해서 화제다. 트러플오일과 최고급 한우가 들어있다고 한다. 인터넷에도 자랑섞인 인증샷과 유튜버들의 리뷰가 있지만,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저 돈이면 우리 동네 중국집 짜장면이 몇 그릇일지부터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짜장면이라는 음식에 기대하는 것이, 최고급 식자재를 쏟아부어 만든 고급스러움이 아니라서 인 것 같다. 당구장에서 내기에 이겨서 얻어먹는 짜장면, 이삿짐을 나르고 방바닥에 주저앉아 먹는 짜장면, 그 옛날 졸업식을 마치고 먹었다는 짜장면 등 사람들이 최고로 꼽는 짜장면은 사실 맛보다는 장소와 상황에 따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개그맨 김준현의 최후 만찬 메뉴는 돼지갈비…당신은? [더오래][더오래]해외여행 못가는 슬픔 나라별 밀키트로 위로해볼까[더오래]고마운 밀키트…중국집선 찾기 힘든 중국의 대표 집밥 직장인 겸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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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가랑비에 옷 젖는' 구독료, 가계 재정 좀먹는다
━ [더,오래] 전호겸의 구독경제로 보는 세상(16·끝) 단기간은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참고 견딜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떤 형태로든 문제가 생긴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나와 맞지 않으면 오래 쓸 수 없다. [사진 pxhere] 연애, 직장, 사업, 성공 등의 중요한 단어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인간관계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나와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간은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참고 견딜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떤 형태로든 문제가 생긴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나와 맞지 않으면 오래 쓸 수 없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부모는 고민이 생긴다. 점점 자라나는 아이의 발사이즈에 딱 맞는 신발을 사야 할지 아니면 넉넉한 신발을 사야 할지 고민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끝나지 않는 고민이다. 옷은 크게 입어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신발은 그렇지 않다. 신발이 작으면 오래 걷기가 어렵고 발이 불편하다. 불편한 신발을 계속 신으면 물집이 잡히고 심하면 질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대로 신발이 크면 빨리 걷거나 달릴 수 없다. 때로는 큰 신발 때문에 넘어지기도 한다. 한정판 운동화, 에어 디올 조던1. [사진 나이키] 오산세종병원 박범석 원장(정형외과 전문의)은 “신발의 경우 유행이나 미적 감각을 위해 신발을 작게 신거나 높은 굽을 신을 경우 근저족막염과 같은 염증 등이 생길 수 있으므로 자신의 발에 맞는 신발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고 한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신발 브랜드와 모델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예쁘고 명품 신발이라도 딱 자기 발에 맞고 편해야 오래 신을 수 있다. 구독서비스도 마찬가지로 나랑 맞아야 한다. 구독경제에서도 신발처럼 본인에게 맞지 않는 서비스를 사용하면 돈과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아무리 혜택이 좋은 구독서비스가 생겨도 나와 관계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자신의 상황과 경제 규모도 고려해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좋은 구독서비스가 출시되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영양가 없는 구독서비스도 생기고 있다. 구독자는 본인에게 필요한 양질의 구독서비스를 선별할 수 있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 자신과 맞는 구독서비스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용해 보는 것이다. 일정한 기간을 정해두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때 판단을 너무 섣부르게 하면 안 된다. 적응하는 기간도 없이 제품을 판단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최근에는 무료 체험 기간을 제공하는 구독서비스도 많다. 이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주의할 점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빠르게 정리해야 한다. ━ 가랑비에 옷 젖는다 당신은 몇 가지 구독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습니까? 생각보다 자신이 몇 개의 구독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드물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구독서비스도 많다. 스마트폰을 보통 2년 약정으로 구독하고 있지 않은가? 정기적으로 금액을 내는 휴대전화 보험에 가입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나 OTT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도 많다. 이외에도 건강을 위해서 피트니스 구독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독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많아지고 있다. 구독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잠깐만 주위를 돌아봐도 이미 구독서비스는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용하는 구독서비스가 많아질수록 구독자는 지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옛말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구독서비스 하나의 구독료는 대부분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사용하고 있는 구독서비스 요금을 모두 합쳐보면 생각보다 지출 규모가 크다. 구독자가 인지하지 못한 채 불어난 구독료는 재정적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 구독서비스의 특징 중 하나는 한 번에 큰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적은 금액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받아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는 자신이 지불하는 구독료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지속적인 관심을 갖기엔 적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되려 구독서비스가 가성비가 좋다는 말을 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구독서비스에서 금액은 시간에 비례하여 늘어나는 성격을 지닌다. 그렇다고 모든 구독서비스를 해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우리 생활에 필요한 좋은 구독서비스는 계속 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구독서비스를 신청하고 소액이라고 해도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일정한 기간을 정해 전체 지불 구독료를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자신이 사용하지 않는 구독서비스가 있는지도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구독서비스를 신청하기 전에 각종 부채와 공과금, 필수 생활비 등의 다른 지출 부문을 살핀 후 구독서비스에 가입해야 한다. ━ ID 및 계정 공유 주의보 그 외에도 고려해야 할 사항은 많다. 혹시 자신이 중복되는 구독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는 가족과 공유해서 사용할 수 있는 구독서비스가 있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의 특정 요금제는 제한된 숫자의 디바이스에서 사용가능하다. 이 요금제에 가입하면 가정에 있는 컴퓨터, 휴대전화 등 다양한 기기에서 가족과 함께 시청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가족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약관에는 ‘가족구성원이 아닌 개인과 공유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경우 회원 서비스 사용을 종료시키거나 제한할 수 있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가족이 아닌 타인과 계정을 공유할 경우 약관, 형법, 저작권법 등의 위반 소지가 생길 수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불법 계정 공유에 대해 구독 서비스 회사들이 구독자 유치 경쟁이 치열한 지금은 문제 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소비자를 상대로 법적인 조치 및 계정 정지 등 다양한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순 없다. 특히, 선량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이와 관련되어 지속해서 환기가 필요하다. 또한 구독경제 세상의 도래에 따른 다양한 이슈에 대해 선제적인 입법 및 정책의 선행과 사회적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 하늘을 날려면 나에게 맞는 신발 찾아야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아버지의 피살이라는 가슴 아픈 일로 인해 정상의 자리에서 미련 없이 은퇴해 아버지와의 추억이 서린 야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농구 천재라 할지라도 그에게 맞지 않은 신발을 신었기 때문에 마이너리그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 인생이고 구독경제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가 선보인 '마이클 조던:더 라스트 댄스' 다큐멘터리.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과 소속팀 시카고불스의 1990년대 황금기를 다뤘다. [사진 넷플릭스] 마이클 조던도 자신에게 딱 맞는 농구화를 신고 돌아왔을 때 비로소 그는 농구장을 날아다닐 수 있었다. 당연한 하루 없다. 매 순간이 감사하다. 햇수로 3년동안 ‘전호겸의 구독경제로 보는 세상’을 기고하였다. 아쉽게도 이번 칼럼이 마지막회다. 구독경제라는 여정에 함께 해 주신 구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당부의 말씀을 전하며 마지막 칼럼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우리가 삶을 영위함에 수많은 생명의 희생이 수반한다. 오늘 우리가 먹었던 수많은 음식은 산에서 바다에서 강에서 목장에서 활기차게 살았던 식물과 동물들이다. 사회의 운영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편하게 오늘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선대와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의 고생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 순간 남에게 친절하고 삶에 감사해야 한다. 다들 자기만의 전쟁터에서 버티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숨을 쉬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됐다. 당연한 하루도, 당연한 순간도 없다. 매 순간이 감사하다. 감사함에서 신뢰가 나온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의 트렌드인 구독경제는 신뢰자본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신뢰자본이 부족하다. 만약 각자가 서로의 신뢰자본이 되어 서로를 응원해준다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서로 구독해줘야 한다. 관련기사[더오래]쿠팡 구독료 연말 기습 인상…아마존과 차이점은친구랑 본 넷플릭스 영화, 어느날 손배청구서 날아올지도 [더오래][더오래]넷플릭스 구독료 아끼려고 친구와 공유하면 불법일까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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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준현의 최후 만찬 메뉴는 돼지갈비…당신은? [더오래]
━ [더,오래] 한재동의 아빠는 밀키트를 좋아해(8) 찹스테이크 삼십 년 전 나는 대전에서 사는 초등학생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가족 중 누군가의 생일에 다 같이 외식을 하러 갔다. 당시에는 한국에 패밀리 레스토랑이 생기기 전이라, 으레 그런 날은 크림수프가 나오는 경양식집에 가고는 했다. 그런데 그날은 목적지가 달랐다. 아버지는 우리를 빵집 2층에 있는 푸드코트로 데려가셨다. 지금은 전국구 유명 빵집이 된 성심당이었다. 나는 돈가스, 엄마는 오므라이스를 골랐던 것 같은데 아버지는 처음 보는 메뉴를 고르셨다. 바로 찹스테이크 였다. 어린 나이에 처음 보는 요리이기도 하고, 요리사가 화려하게 프라이팬으로 조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나에게는 찹스테이크가 축하 파티에 먹어야 하는 특별한 음식 같이 느껴졌다. 찹스테이크는 파티에 어울리면서도 조리법이 간단하다. [사진 WTABLE] 글을 쓰기 전에 찹스테이크의 배경지식에 대해 알아보려 했지만, 레시피 외에는 놀라울 정도로 정보가 없었다. 그나마 발견한 것은 서양에서의 찹스테이크는 우리의 떡갈비와 비슷한 형태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찹스테이크는 ‘Steak Bites’라는 깍둑썬 고기와 채소볶음이라는 것이다. 요리평론가도 아닌데 그런 것을 아는게 무슨 상관이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가족들에게 찹스테이크를 해주며 아는 체를 좀 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아쉬울 뿐이다. 밀키트를 산 것도 곧 발렌타인 데이인데 뭔가 파티분위기를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었다. 미리 말하자면 조리법은 그간의 밀키트 중에 가장 쉬운 편이었다. 밀키트에는 잘려져 있는 소고기 부채살과 각종 채소, 시즈닝을 위한 오일과 허브솔트 그리고 소스가 들어있었다. 채소를 씻는 것 외에는 재료 준비가 없다고 보면 된다. ■ 찹스테이크 밀키트 조리법 「 ① 핏물을 제거한 소고기를 오일과 허브솔트로 시즈닝한다. ② 웍이나 팬을 중불에 1분간 예열한 뒤, 강불로 소고기를 1분간 굽는다. ③ 채소를 넣고 강불에 2분간 볶은 뒤, 소스를 넣고 1분간 더 볶으면 완성 」 강한 불로 볶기 때문에 고기가 탈것 같았지만, 채소에서 물이 나와서 타지도 않고 소스를 섞는 것도 어렵지 않다. 다만 잘려져 있는 부채살 크기가 균일하지 않다. 어느 정도 고기가 익으면 큰 고깃덩이는 가위로 잘라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너무 큰 고깃덩이들은 찹스테이크 소스가 잘 배어 들지 않은 느낌이었다. 밀키트 소스의 빛깔은 시판하는 스테이크 소스와 비슷한데, 맛은 훨씬 새콤했다. 특히 양송이버섯과 궁합이 좋았다. 다음번에는 양송이버섯을 별도로 더 사서 추가해 봐야겠다. 전체적으로 요리가 새콤달콤하므로 만약 와인을 곁들인다면 달콤한 것보다는 드라이한 맛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으니, 파티를 준비한다면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밀키트에는 부채살 200g이 들어있다. 찹스테이크 2인분 양이다. [사진 한재동] 인터넷에 검색하다 보면 정말 스테이크 전문가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야르 반응 같은 생소한 단어부터 정밀한 구이법까지 배울 점이 참 많다. 다만 소스를 찍어 먹으면 고기 맛을 모르는 무식한 짓이라는 등의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거슬린다. 물론 파인다이닝에서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한 조리법이 중요시된다라고도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요리의 우열을 나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회에 초장 찍어 먹는 사람에게 맛을 모른다며 무시하는 꼰대처럼 여겨질 수 있다. 개그맨 김준현 씨는 최후의 만찬 메뉴로 돼지갈비를 먹겠다고 했다. 돼지갈비에 소주 먹다가 미련 없이 가겠다는 그의 말이 웃기면서도 동시에 침이 넘어간다. 사람들이 본인 최후의 만찬을 고를 수 있다면, 아마도 가장 비싸고 맛있다는 파인다이닝 요리 순으로 고르지는 않을 것이다. 본인이 가장 즐겨 먹었거나, 추억이 깃든 음식을 고르지 않을까? 어릴 적 추억덕에 발렌타인 기념 요리로 찹스테이크 밀키트를 고른 것처럼 말이다. 관련기사[더오래]해외여행 못가는 슬픔 나라별 밀키트로 위로해볼까[더오래]고마운 밀키트…중국집선 찾기 힘든 중국의 대표 집밥[더오래]몸 으슬으슬, 콧물 살짝…이럴 때 당기는 육개장 칼국수 직장인 겸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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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현명한 투자자는 강세장 두려워하고 약세장 좋아한다
━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105·끝) 한 남자가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요즘처럼 기온이 떨어져 몹시 추울 땐 하와이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소원 하나 들어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하와이까지 가는 다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자동차로 갈 수 있도록. 하느님은 바다 밑까지 교각이 닿아야 하니 얼마나 많은 콘크리트와 철근이 들겠느냐며 “할 수는 있는데 꼭 필요한 것 같지 않으니 다른 소원을 말해 보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는 한참 생각하다 입을 열었습니다. “하느님, 전 주식 투자를 잘하고 싶습니다. 도대체 바닥이 어디인지 알려주세요.” 하느님은 숨도 안 쉬고 말했습니다. “하와이까지 가는 다리를 4차로로 해주랴, 8차로로 해주랴?” 지하철은 그 운행시간이 비교적 정확해 약간 늦게 출발해도 도착시간을 대충 짐작할 수 있으나, 코코넛은 언제 그 열매가 떨어질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증시가 패닉상태에 빠지는 시점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사진 pixnio] 얼마나 주가 예측이 어려우면 하느님께서 하와이까지 가는 다리를 건설해주겠다고 반문했겠습니까. 물론 유머이지만 주가 예측이 그만큼 어렵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주식 투자와 관련한 참고서 중 『지하철과 코코넛』이란 투자심리학 책이 있습니다. 지하철은 그 운행 시간이 비교적 정확하여 약간 늦게 출발하더라도 도착 시각을 대충 짐작할 수 있으나 코코넛은 언제 열매가 떨어질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걸 비유한 책입니다. 어느 날 자수성가한 남자가 이젠 사업을 그만두고 인생을 좀 즐겨야겠다고 생각해서 유명한 휴양지로 휴가를 갔습니다. 그리고 모처럼 기분 좋게 술 한잔 걸치고 코코넛 나무 그늘에 누워 낮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코코넛 열매 하나가 그 사람 머리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는 충격으로 그만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부터 인생을 즐기려고 했는데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런데 하필 왜 그 시간에 코코넛 열매가 떨어졌냐는 얘기입니다. 그가 이 사건을 예측할 수 없었듯이 9·11사태나, 금융위기, 그리고 얼마 전처럼 주식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경우를 우리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시장을 예측한다는 건 신이나 가능할까, 인간이 하기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건 신에게 맡겨 놓고 우린 그저 기본에 충실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명한 투자자는 약세장을 좋아한다. 주식을 더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요즘 많은 사람이 주가가 폭락하자 두려움에 젖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명한 투자자는 오히려 이런 시장을 환영합니다. 워런 버핏의 스승이며 전설적인 투자자 벤저민 그레이엄에 의하면 현명한 투자자는 강세장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주식을 비싸게 사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약세장은 좋아합니다. 주식을 더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버핏도 햄버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평생 그걸 먹는다면 고깃값이 오르는 걸 좋아할까요, 아니면 내리는 걸 좋아할까요 하며 우리에게 우회적으로 묻습니다. 당연히 후자를 좋아할 거란 얘기입니다. 최근 이웃이 자기 지인의 얘기를 들려주었는데 그처럼 주식 투자를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가 처음에는 주위의 권유로 소액을 투자해서 재미를 좀 보았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집을 사려고 모아 두었던 돈에다가 빚까지 내어 주식을 몽땅 샀다는군요. 그런데 최근 시세가 폭락하며 울상이 되었습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책 『현명한 투자자』에서 얘기했듯이 투자를 해야지 투기를 하면 끝이 좋지 않습니다. 그럼 투자는 무엇이며 투기는 무엇인가요? 그에 의하면 투자는 철저한 분석 하에 원금의 안전과 적절한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고 투기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행위입니다. 주가가 폭락하자 정부에서 공매도를 한시적으로 금지한 적이 있는데 이런 공매도나 빚을 내어 투자하는 행위도 일종의 투기라 할 수 있습니다. 가능한 이런 형태의 투기는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주식 투자는 반드시 여윳돈으로 해야한다. 이런 원칙을 정해놓으면 감정에 휩쓸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주식 투자는 심리전이란 얘기도 있습니다. 손실을 봐도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좀 더 느긋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유리한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식 투자를 하는 돈은 반드시 여윳돈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돈도 전액을 투자하지 말고 반 정도만 투자하기를 권합니다. 만약 총액이 100이라면 50 정도가 되겠네요. 이렇게 하면 주식시세가 떨어질 땐 주식의 비중이 50 이하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때는 주식을 좀 더 사는 겁니다. 반대로 주식시세가 올라 주식의 비중이 50 이상이 되면 그땐 주식을 좀 파는 거고요. 이런 원칙을 정해놓으면 감정에 휩쓸리는 걸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식은 어떻게 해서든지 싸게 사야 합니다. 즉 제값에 사서 비싼 값에 파는 게 아니라, 싸게 사서 제값에 파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투자하고 싶은 욕심을 자제하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한편 얼마 전처럼 과매도로 주가가 폭락했을 땐 투자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렇지만 주식 투자도 신중하게 접근한 후 결정을 했으면 그땐 자기의 판단을 믿고 남의 말에 부화뇌동하지 않는 뚝심도 필요합니다. 투자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당부입니다. ■ 「 [더,오래]서비스가 종료됨에 따라 2018년부터 연재했던 ‘은퇴생활백서’는 이번 회차가 마지막이 될 듯합니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어느 곳에서 여러분을 마주할지 모르지만 좋은 인연이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신의 은총이 늘 주위에 깃들기를 빌며. 백만기 드림. 」 관련기사[더오래]은퇴 후 하고 싶은 일 1위 여행…실제는 TV시청[더오래]가난하지만…하루종일 웃음 넘치는 세네갈 마을임종 직전에야 알았다, 호주 환자들이 땅치고 후회한 5가지 [더오래]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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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반토막 난 넷플릭스 주가…위기의 구독경제 어디로 가나
━ [더,오래] 전호겸의 구독경제로 보는 세상(15)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이 지난 1월 28일 공개된 후 넷플릭스 TV쇼 부문 전 세계 1위를 하였다. 강남 센트럴시티 지하에 ‘지금 우리 학교는’ 팝업 존에 지난 3일 방문하였다. 개장 전임에도 불구하고 줄을 섰을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강남 센트럴시티 지하에 설치된 '지금 우리 학교는'팝업존. [사진 전호겸]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의 성공으로 넷플릭스가 웃고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구독경제의 대표 주자인 넷플릭스의 주가는 2022년 1월 21일 22% 폭락한 데 이어 이날 전 거래일 대비 2.6% 하락, 387.15달러로 마감했다. 2021년 11월 기록한 장중 최고치 대비 약 45% 폭락하였다. 블룸버그에서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뽑을 정도로 코로나 19의 수혜주였던 구독서비스 기업들의 위기감은 고조 되고 있다. 구독경제의 대표적인 기업인 넷플릭스와 펠로톤이 팬더믹으로 인해 성장했지만 시장에서는 추가 구독자 가입률 성장이 둔화하고 있어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송종섭 퍼시픽투자운용 투자본부장은 “구독서비스 기업의 주가 폭락은 전체적인 주식 시장의 하락에서 기인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주가는 구정 전에 요동쳤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수석 시장 전략가 마이크 윌슨은 지난 1월 20일 보고서에서 “나스닥을 포함해 미국의 주요 지수가 지금보다 10% 이상 더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윌슨은 “기업 실적이 이미 둔화하고 있지만 금리 인상으로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닷컴 버블과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언했던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 제러미 그랜섬도 지난 1월 20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 코로나19 팬더믹 이후 미국 증시에 심각한 슈퍼 버블이 생겼다”며 “슈퍼 버블이 터지면 S&P500 지수가 향후 45% 가까이 폭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 ESG의 필수 구독경제 시장 규모는 올해 약 330조원 전직 애널리스트인 보림 인터내셔널 김형탁 대표는 “구독서비스 기업의 주가 하락은 성장률 둔화뿐만 아니라 구독 비즈니스 자체에 대한 의구심과 시장의 우려도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 등 큰 시장에서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중국어 교육전문가 유혜선 작가는 “넷플릭스가 중국에서 정식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어 공식 루트가 아닌 우회 접속 프로그램인 VPN을 활용해 불법으로 콘텐트를 시청하거나 불법 다운로드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넷플릭스로서는 중국에서 경제적 수익창출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과연 구독경제 시장은 말 그대로 ‘하락장’인가? 우선 구독경제 시장의 성장 규모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몇 달 전에 영국 시장조사 기관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구독 시장은 2021년 약 260조원에서 올해는 약 330조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확실한 건 구독경제 시장이 지속해 성장하고 있으며, 더 성장하리라는 것이다. 또한 구독경제는 ESG, 메타버스가 화두가 될수록 더 성장할 수 밖에 없다. 특히 탄소 중립, RE100 등을 실현하려면 전처럼 다품종 대량생산 또는 다품종 소량생산도 아닌 딱 필요한 만큼 생산하여야 한다. 이런 비즈니스모델은 구독경제뿐이다. 구독경제는 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미리 구독 신청하기 때문에 물건을 다량 생산하여 유통하면서 발생하는 폐기물, 탄소 발자국 등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이제는 기업과 친환경은 뗄 수 없는 관계가 됐고, 환경문제는 자연스레 맞춤형 서비스 즉 구독경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지속성장 위한 구독서비스 기업들의 3가지 선택지 구독경제 시장은 나날이 더 커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급성장했다.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시장에 뛰어들고,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구독서비스 기업의 수익성에 대해 시장이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2021년 11월 애플의 통합 구독서비스인 애플원과 디즈니플러스가 뒤늦게 한국 구독경제 시장에 동시에 뛰어들었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경우 넷플릭스와 토종 OTT의 경쟁이었다. 그런데 작년 11월에 세계적인 OTT 강자인 디즈니플러스, 애플티비플러스가 동시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한국의 구독경제 시장도 태동기를 지나 성장기로 진입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해외 글로벌 기업도 한국의 구독경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구독경제 시장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막 시작된 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다. 즉, 구독 시장이 무한경쟁에 진입하면서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구독경제 전문가로서 수익확대 및 지속성장을 위해 구독서비스 회사들의 선택지는 크게 3가지로 보인다. 구독료 인상과 더 많은 파생 서비스 판매, 그리고 오픈 콜라보를 통한 새로운 생태계 조성(플랫폼화)이 그것이다. 구독서비스 기업들은 크게 3가지 방법으로 지속적인 매출 확대 및 성장을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쉬운 길은 구독료 인상일 것이다. 이미 넷플릭스 등이 일부 구독 상품 금액을 인상했다. 그다음에 파생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게임을 개발해 제공 중이다. 이미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자체적으로 넷플릭스 숍을 열고 이커머스 사업에 진출했다. 넷플릭스는 영화나 드라마 IP를 활용한 상품을 다양하게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작년에 미국 유통업체 월마트와 함께 운영하는 넷플릭스 허브에서 ‘오징어 게임’의 트레이닝복 등 자체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독점 콘텐트를 바탕으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소재를 서로 다른 장르에 적용해 파급효과를 노리는 마케팅 전략)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세 번째는 오픈콜라보를 통해 스스로 일종의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넷플릭스와 유통업계 글로벌 기업인 월마트와 함께 넷플릭스 허브를 만든 것도 그중 하나로 보인다. [자료 월마트 홈페이지 Netflix - Walmart.com] 구독서비스 기업들은 오픈콜라보를 통해 다른 기업이 구독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 수도 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자주 사용하게 되는 비대면 화상회의 앱 중에 줌(Zoom)이 있다. 줌은 마켓플레이스용 앱을 개발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줌 앱 마켓플레이스’ 등록 앱은 작년 초에 이미 1000개를 돌파하였다. 줌 앱 마켓플레이스에는 게임, 프로젝트 관리 및 메모 작성 앱을 포함한 수십 개의 서비스가 있다고 한다. 구독서비스 기업들은 구독료 상승을 통한 성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파생서비스와 오픈 콜라보를 통한 새로운 구독 생태계를 조성해 갈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구독자가 있는 넷플릭스 같은 OTT 회사들도 이커머스 플랫폼 회사로의 진화가 가능하다. 넷플릭스는 콘텐트 저작권을 구매한 후 구독자에게 제공하는 비즈니스로 엄밀히 따지자면 플랫폼 사업자로 보기 힘들다. 하지만, 넷플릭스도 자체 커머스 및 월마트와의 콜라보를 통해 이커머스 시장에 진입하였다. 넷플릭스, 줌 등 구독서비스 기업들은 궁극적으론 플랫폼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업종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2022년은 구독경제 회사들의 무한 경쟁의 원년이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승승장구하던 구독경제 관련 기업들이 과연 코로나19 엔더믹 시대에도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시장의 의문이 있다. 넷플릭스의 경우 1990년대에 DVD 구독서비스 회사였지만, 온라인과 모바일 시장의 발전에 발맞춰 진화하여 글로벌 OTT 기업이 되었다. 상상력과 오픈콜라보를 기반으로 진화하는 구독서비스 기업들에는 더 큰 성장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낙관주의자는 위기 속에서 기회를 보고, 비관주의자는 기회 속에서 위기를 본다" 고 처칠은 말하였다. 지금 우리는 기회를 보고 있는가? 위기를 보고 있는가? 관련기사[더오래]쿠팡 구독료 연말 기습 인상…아마존과 차이점은친구랑 본 넷플릭스 영화, 어느날 손배청구서 날아올지도 [더오래][더오래]넷플릭스 구독료 아끼려고 친구와 공유하면 불법일까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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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건물주가 재건축한다며 권리금 못 주겠대요
━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51) 2018년 개정된 상가임대차법이 적용되는 세입자는 한번 임대차계약을 하면 10년간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물주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10년간 임차인의 임대차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없습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한번 세입자와 임대차 관계로 엮이면 좋든 싫든 최대 10년을 봐야 하고, 월세나 보증금도 한 번에 5%밖에 못 올리는 상황이니 애초 세입자를 받는 것에서부터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건물주가 구체적인 철거나 재건축 계획이 마련되어 있다면 합법적으로 세입자와의 계약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진 pixabay] 물론 10년이 안 돼도 건물주가 합법적으로 세입자와의 계약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상가임대차법상 임대인이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사유로는 임차인이 3기 이상 월세를 안 내거나, 제3자에게 다시 임대를 놓거나 파손하는 경우 등 주로 세입자가 잘못했을 때입니다. 즉, 세입자의 잘못으로 건물주와 세입자의 신뢰가 깨졌다면 10년이 안 돼도 건물주가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세입자도 법상 주어진 10년의 임대차기간을 충분히 보장받으려면 3번 이상 월세를 미납하는 등 불찰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외에 세입자 잘못이 없어도 건물주가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건물주가 상가건물을 철거 또는 재건축할 때입니다. 상가임대차법상 임대인이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에 임차인에게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공사시기 및 소요기간 등을 포함한 철거 또는 재건축 계획을 구체적으로 고지하고, 그 계획에 따르는 경우(상가임대차법 제10조 제1항 제7호 가목)임차 기간을 10년을 채우지 않아도 건물주는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물론 세입자 입장에서는 월세도 밀리지 않고 잘 내고 있는데 재건축 때문에 10년의 기간을 보장받지 못해 다소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반대로 임차인의 갱신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재건축을 하지 못해 재산권 행사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는 측면을 고려해 법은 예외적으로 건물주에게 재건축할 때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도록 허용한 겁니다. 건물주가 재건축할 계획이 있다고 무조건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법상 건물주가 갱신을 거절할 시점에는 구체적인 재건축 계획이 마련되어 있어야 할 것이고 이런 사유를 임차인에게 고지하고 그대로 따르는 경우에 한해 인정됩니다. 실제 실효성은 다소 의문입니다. 설사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고지한 재건축 계획을 그대로 진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임대차를 갱신하지 못한 손해를 배상받으려면 이미 상가 건물을 떠난 임차인이 건물주를 상대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소송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설사 세입자가 큰맘 먹고 소송을 한다 해도 건물주가 자신에게 고지한 계획을 준수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할 것인데, 이 또한 만만치 않은 문제겠지요. 더 큰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재건축하면 새로운 임차인을 받지 못할 테니 기존의 세입자가 투입한 권리금을 회수할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습니다. 그런데 2018년 상가임대차법이 개정되면서 임대인은 법에 명시된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기존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과의 임대차 계약을 체결해야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기존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손해배상으로 물어주어야 합니다(법 제10조의4). 그러나 법상 임대인의 권리금 회수기회 의무를 면할 정당한 사유에 재건축은 없습니다. 따라서 건물주가 구체적인 재건축 계획을 마련한 후 임대차 종료 시에 기존 세입자에게 고지하여 임대차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고 해도, 임차인이 신규 임차인을 유치해 임대인에게 그와의 임대차 계약 체결을 요구하며 권리금 회수를 주장하면 임대인은 신규임차인과의 임대차 계약을 해야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상가임대차법상 인정된 정당한 사유에는 (임대인이) ‘상가건물을 1년 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제2항 제3호)가 포함됩니다. 재건축되는 건물은 당연히 영리 목적으로 이용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재건축에 든 기간을, 임대인이 신규 임대차 계약체결을 거절할 수 있는 ‘1년 6개월 이상 상가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그 경우 건물주는 세입자가 데리고 온 신규 임차인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필요는 없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위 1년 6개월의 조항은 임대차 목적물이 존치됨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철거 후 재건축으로 인해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 관한 규정은 아니기 때문에 재건축으로 인한 기간은 1년 6개월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는 판례가 많았습니다. 그 경우 건물주는 기존 임차인에게 적정한 권리금 또는 위로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분쟁이 정리될 겁니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은 ‘건물주가 상가건물의 임박한 재건축 계획을 이유를 고지해 신규 임차인과의 임대차 계약 체결이 결렬된 상태에서 공실 상태가 유지된 후 철거되어 1년 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경우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2항 제3호의 임대인이 신규임차인과의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할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2. 1. 14. 선고 2021다272346 판결). 위 사례에서 건물주는 임대차 기간이 지난 후에 건물을 제3자에게 매도했는데, 대법원은 ‘상가 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상태가 새로운 소유자의 소유 기간에도 유지될 것을 전제로 처분하고, 실제 새로운 소유자가 그 기간에 상가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며, 임대인과 새로운 소유자의 비영리 사용 기간을 합쳐서 1년 6개월 이상이 되는 경우’에는 정당한 사유가 인정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경우 건물주가 세입자의 권리금을 가로챌 의도가 없다고 보고, 건물주의 의무를 면해 준 겁니다. 반면 대법원은 얼마 전 건물을 재건축 또는 대수선할 계획이 있다면서 신규 임차인과의 임대차 계약 체결을 거절하고 1년 6개월 동안 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경우 건물주는 신규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배상해줘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19다285257 판결). 이 사건에서는 건물이 실제로 재건축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임대인이 재건축을 이유로 임차인에 대한 권리금 지급을 면하려면 임대차계약 체결 거절 당시 고지된 재건축계획이 어느 정도 구체화되었는지, 실제로 재건축이 이루어졌는지 등이 주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앞으로 임대인은 구체적인 재건축계획이 있고 이를 그대로 실행함으로써 1년 6개월 이상 상가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임차인의 임대차 갱신 요구도 거절하고 권리금도 물어줄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관련기사[더오래]권리금 놓고 6번 재판벌인 자영업자와 건물주…승자는?잘못 입금된 코인 100억, 맘대로 썼는데…대법 판결 '충격' [더오래][더오래]잠자는 제자 2명 강제추행한 교수님 무죄라네요, 왜?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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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물위를 걷다…영랑호 한복판서 바라본 설악산 줄기
━ [더,오래] 전명원의 일상의 발견(24) 속초엔 볼거리며 맛집이 참 많다. 동해바다는 맑은 날 그 잉크 빛만으로도 어디나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지만 말이다. 게다가 강릉의 경포호처럼 석호를 두 개나 가진 도시이기도 하다. 청초호와 영랑호가 그것이다. 청초호를 가본 것은 몇 해 전이었다. 우습지만 ‘포켓몬고’라는 게임이 잠시 속초에서만 가능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때 한국의 태초 마을로 속초가 알려져 인기였다. 나 역시도 그때 청초호에서 포켓몬들을 잡는 게임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생각을 하며 혼자 웃었다. 또 하나의 석호인 영랑호는 가본 적이 없었다. 속초에 여러 번 왔으나 이번이 초행이었다. 속초시의 북쪽인 영랑동, 장사동, 금호동, 동명동 일대에 걸친 석호 영랑호. [사진 전명원] 『삼국유사』에 따르면 영랑호는 신라의 화랑인 영랑이 이 호수를 발견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속초시의 북쪽인 영랑동, 장사동, 금호동, 동명동 일대에 걸친 석호로 둘레는 7.8km에 이른다. 하늘이 높고 푸른 겨울 오전의 영랑호는 잉크 빛으로 빛나 눈이 시릴 지경이었다. 호수 주변에 산책로가 잘 가꿔져 있고, 리조트가 들어서 이국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여행자에게 요즘 영랑호는 영랑 호수 윗길로 먼저 다가온다. 영랑호를 가로지르는 데크다리가 작년에 개설되어 볼거리를 선사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 호수를 가로지른다는 다리가 궁금했다. 그 다리에서는 해넘이도 일품이라고 했지만, 무엇보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의 경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울산바위를 비롯해 설악의 여러 봉우리가 한눈에 조망 되는 곳이라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둘레길을 걸었다. 길은 잘 가꾸어져 있었고, 그리 차가운 겨울 날씨가 아니어서인지 사람들은 많이 걸었다. 아쉬운 점은 푸른 호수를 따라 영랑 호수 윗길 다리를 향해 걷다 보니 흉물스러운 폐가가 더러 보인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기엔 너무 낡았고, 몇 채는 잔해만 남은 곳도 있었다. 알고 보니 예전에는 별장으로 쓰이던 건물이지만 대형산불로 소실되어 지금은 그저 버려진 집이라고 했다. 밤이라면 꽤 으스스했을 듯한 풍경이다. 잘 가꾸어진 집이었다면 그곳에서 바라보는 호수 전망이 너무 멋있었겠다. 하긴, 그러니 별장을 지었겠지만 말이다. 언젠가 흉물스러운 집은 다시 잘 정비되어 호숫가의 또 다른 볼거리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영랑호를 가로지르는 다리. 영랑 호수 윗길 다리를 건너 호수를 가로지를 수 있다. 다리 중앙에는 원형 광장도 있어 건너편 설악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즐기기 좋았다. 속초를 찾아올 때 고속도로 왼편으로 울산바위가 보인다. 그처럼 가깝게 보이지는 않으나 넓고 푸른 호수 가운데에서 설악산을 바라보는 느낌은 넓은 호수와 어우러져 그 탁 트인 청량감에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멀리 설악의 봉우리가 한 줄기로 이어져 시야에 들어온다. 그 설악산 줄기에서 울산바위는 이질적이면서도 기이해서 가장 눈에 띄었다. 호수 윗길 데크를 기점으로 설악산 쪽은 수면이 살짝 얼어있었고 바다 쪽은 그렇지 않았다. 오리 떼가 모여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머리는 물속에 넣은 채로 물밖에 다리와 꽁지만 내민 채 연신 물속의 무언가를 먹는 모습에 지나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여행에선 항상 웅장하고 멋진 풍경만이 눈을 사로잡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작고 소소한 모습에도 웃음이 터진다. 마음이 편안하게 이완되어 있기에 그 작은 것도 눈에 들어오고, 그 소소한 모습도 따뜻한 웃음으로 다가오는 것 아닐까. 푸르게 빛나는 영랑호의 한가운데서 보는 설악산 줄기.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겨울 하늘 아래 영랑호의 물빛도 참으로 청아했다. 여러 번 속초를 왔으나 영랑호가 처음이었다. 또다시 속초를 오게 된다면, 더 많이, 더 오래, 더 천천히 영랑호를 즐기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르게 빛나는 영랑호와 그 호수 한가운데에서 보이는 설악산 줄기는 며칠을 바라보아도 좋을 것이다. 관련기사[더오래]내돈 내고 걷는 ‘삼주만 해볼까 챌린지’[더오래]가로등이 하나둘씩…오후 5시에 하는 산책 맛[더오래]친구와 송년 시간 가졌던 용주사의 겨울 한낮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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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엄마 셔틀’ 덕에 차 안에서 경험한 10분 명상
━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81) 이번 겨울방학에는 ‘엄마 셔틀’ 횟수가 늘었다. 아이가 중3이 되니 학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셔틀버스를 타고 오기 어려운 데다, 그렇다고 노상 피곤하다고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시내버스를 타라고 말하기가 안쓰러워 학원이 끝나는 시간이면 매번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이제 겨우 중3인데 밤늦게까지 밖에서 공부하는 게 맞나 싶다가도, 학원 외에 다른 대안을 찾기도 쉽지 않아 늘 고민 중이다. 그 날은 오랜만에 혼자 나섰다. 평소에는 잠깐 바람이나 쐬자며 남편과 동행하는데, 그 날은 남편이 일이 있었다. 학원 근처 골목에 차를 주차했다. 아이가 나올 때까지 10분 정도 남았고, 시동을 껐다. 순간 차 안이 조용해졌다. 적막한 밤, 차창 밖 골목이 오롯이 눈에 들어왔다. 9시 이후 모든 식당과 숍들이 문을 닫아 그런지 걸어 다니는 사람도 드물었다. 간판의 불은 꺼진 지 오래고, 골목 양옆 건물의 사무실도 대부분 비어 있어 보였다. 갑자기 마주한 고요한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명상의 시간은 의식해서 만들지 않아도 된다. 일상 속 한 순간에 호흡을 고르고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시작인 것이다. [사진 Jane Palash on unsplash] 그러고 보니 나에게 소리가 없는 시간은 드물다. 아침에 일어나면 유튜브를 켜고 요가를 하고,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뉴스를 틀어 놓는다.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라디오와 함께하고, 잠시 혼자 걷더라도 팟캐스트 채널 속 패널들의 입담에 빠지거나 음악을 골라 듣는다. 사무실에서는 동료들의, 집에서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옆자리를 채우고, 카페나 식당을 가도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BGM이 가득하다. 음악도 뉴스도 누군가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작은 공간, 사람도 차도 지나가지 않는 어두운 밤거리. 이상할 정도로 차분해졌다. 이런 게 평화로운 상태(shanti, 샨티)라는 건가. 차창 밖의 시선을 나에게로 돌리고, 내 몸의 작은 움직임과 숨소리에 집중했다.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10여 분이 그렇게 충만할 수 없었다. 명상이라는 게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잠깐 차 안에서 머무는 동안에도 가능하다니. 주변의 모든 것과 거리를 두고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잠깐이라도 마련할 수 있다면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명상을 할 수 있다! 명상을 하면 마음이 안정되는 것과 동시에, 몸에 에너지가 조금씩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얼마 전에 만난 선배는 차 명상 수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차가 전하는 향과 맛에 집중하고 그것을 음미하는 자신에게 집중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의 행복감을 전하며 나에게도 해보라며 권했다. 선배의 얼굴이 이전보다 훨씬 맑아진 듯했다. 명상으로 박사과정을 마친 선배도, 스님이 진행하는 명상 수업을 꾸준하게 듣는 선배도 있다. 심리학 공부를 마친 뒤 명상과 상담 클래스를 운영하는 후배도 있다. 회사의 동아리 중 하나도 명상 수업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변의 많은 사람이 자신을 찾아가려 노력 중이다. 코로나19 이후 마음 둘 곳을 찾고 싶은 이들이 많아진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 생각한다. 행복해지는 기본 조건은 행복한 상태를 우리가 의식하는 데 있으며, 이것의 토대가 되는 것이 마음챙김이라고 전하는 틱낫한 스님의 책 '모든 발걸음마다 평화'. [사진제공 불광사] 지난주 세계적 명상 지도자 틱낫한 스님이 입적하셨다. 스님의 여러 가르침 중 걱정과 불안, 망상에 한눈팔지 말고 호흡과 발밑에 마음을 집중하라는 ‘걷기명상’에 감화되어, 한동안 따라 했던 적이 있다. 작년에 재출판된 스님의 책 『모든 발걸음마다 평화-매일의 삶에서 실천하는 마음챙김의 길』(불광출판사)은 실생활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방법으로 ‘호흡’과 ‘미소’에 관해 이야기한다. 숨을 쉴 때 어떻게 들이마시는지, 내쉴 때 어떻게 내쉬는지 인식하고 바라보고 느껴보는 과정. 이렇게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내가 숨 쉬고 있는 ‘현재(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고 과거에 대한 회한과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또 의도적으로라도 미소를 띠는 시간을 가져보라 권한다. 미소 짓는 연습은 수 백개의 얼굴 근육을 이완시키고, 이렇게 근육을 움직이다 보면 실제로 즐거울 때 보이는 신경계 반응을 끌어내는 효과를 일으킨다고 한다. 스님의 부고 기사를 찾아 읽으며 ‘호흡’하고 ‘미소’지으며 ‘걷는’ 시간을 다시 한번 챙겨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변에 신경을 쓰고,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애쓰고, 마음대로 안 되면 상처받는 일상에서 잠시 비켜나 힘을 빼고, 숨을 쉬고, 나 스스로에게 미소 짓는 시간 말이다. 혼자 차 안에 앉아 아이를 기다리는 10분을 사용하든, 명상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동호회나 수련회에 참여하든, 어쨌든 ‘마음챙김’이 필요한 때다. 관련기사[더오래]실감하며, 참여하며…새롭게 박물관 체험하기[더오래]새해 목표, ‘탄소발자국 줄이기’ …그 계기가 된 영화[더오래]눈내리던 날…외식메뉴 투정하던 딸과 차 안 가요 떼창 전 코스모폴리탄·우먼센스 편집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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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부인의 실수로 사람 잡아먹는 호랑이 된 사나이
━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78) ■ 「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깊은 골에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 전동 같은 앞다리, 동아 같은 뒷발로 양 귀 찌어지고, 쇠낫 같은 발톱으로 잔디 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는 듯, 자래 정신없이 목을 움츠리고 가만히 업졌것다. 」 이제는 앞의 한 문장만 들어도 머릿속에서 혹은 입으로 ‘흥얼흥얼’ 노랫가락이 딸려 나온다.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본래는 ‘수궁가’의 한 대목인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자라가 토끼 간을 구해오라는 명을 받고 육지로 떡하니 올라섰는데, 막상 토끼가 어떻게 생긴 인물인지,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을지 난감하니 그저 “토생원 계시오~”하고 겨우 목소리를 내어 본 게 “호생원 계시오~”가 되었고, 어디서 나를 부르는가 하고 호랑이가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묘사되는 호생원의 생김새는 큰 덩치에 쇠낫 같은 발톱을 가진 데다 주홍 입을 떡 벌리고 우뚝 선 모습이다. 흔히 산골짜기에서 마주치는 호랑이는 그렇게 아가리를 크게 벌린 채 위협적인 자태로 등장한다. 그렇기에 호랑이는 실제로도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였고, 그 덕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 땅에서 말 그대로 씨가 말라버렸던 것인데, 사람이 호랑이로 변해버린 이야기가 있으니 그 성정(性情)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참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옛 이야기에서는 ‘여산대호’라 불리는 큰 몸집과 떡 벌린 아가리로 포효하는 호랑이가 위협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아이들도 놀려 먹으며 퇴치하는 대상으로 만들어 지기도 한다. [사진 pixabay] 전라남도 해남 어디에 한 선비가 살았다. 어머니의 병이 위중하여 고명한 의원을 찾아갔더니 의원은 황개 300마리를 먹어야 낫는 병이라고 하였다. 쪼들리는 형편에 개 300마리를 구할 도리가 없었던 선비는 뒷산에 움막을 지어놓고 어머니 병을 고칠 수 있는 법을 찾기 위해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한 책에서 호랑이 변신술을 배워, 밤마다 호랑이로 변신하여 돌아다니며 개를 잡아 오기 시작하였다. 선비의 부인이 그 사실을 알고는 끔찍이 여겨 남편이 호랑이로 변신해 나간 사이에 그 책을 불태워버렸다. 그 책을 보고 주문을 외워야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책이 불타 버린 것을 알게 된 남편은 부인도 잡아먹고는 그길로 집을 나가 팔도를 돌아다니며 사람을 잡아먹었다. 영화 ‘로렌조 오일’처럼 불치병에 맞서 치료법을 연구해 알아내는 이야기도 있건만, 이 선비는 어머니를 살리겠다고 책 붙들고 앉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서 얻어낸 게 주문을 외우고 재주를 넘으면 호랑이가 될 수 있는 술수였다. 그렇게 호랑이가 되어서는 부지런히 개를 잡아 와 어머니께 달여드렸으니 효자는 효자이되, 한번 그렇게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 이는 번듯한 인간으로서의 인성(人性)을 호랑이의 수성(獸性)에 잠식당하였다.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마저 잃은 그는 이젠 개뿐만 아니라 사람을 마구 잡아먹으며 조선 팔도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팔도를 돌아다니는 황씨 선비라 하여 이름이 황팔도다. 황팔도 때문에 온 나라에 곡소리가 끊기지 않을 지경이 되자 나라에서는 전국의 포수들을 불러들여 황팔도를 잡아 오라 명을 내렸다. 충청도 보령에 최 포수라는 유명한 포수가 몰이꾼들과 함께 황팔도를 잡겠다고 나섰다. 황팔도가 지나갈 것으로 짐작되는 길목을 지키고 서 있는데 몰이꾼들이 황팔도 지나간다고 소리치며 뛰어왔다. 그런데 최초수가 보기엔 그냥 조금 큰 강아지 같은 게 보여서 ‘저건 아닌가 보다’ 하고 그냥 있는데, 사람들이 총 안 쏘고 뭐 하느냐고 아우성을 치는 통에 방아쇠를 당겼더니, 그놈이 펄쩍 뛰었다 떨어지는데 하도 크고 무서워서 최포수는 뒤로 벌떡 자빠져버렸다. (『한국구비문학대계』 4-5, 601-606면, 구룡면 설화18, 황팔도 전설, 임태순(남, 64)) 그렇게 잡고 보니 황팔도의 귀에 갈래갈래 털이 나 있었는데, 그 가닥을 세어 보니 전부 200가닥이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황팔도가 사람을 200명은 잡아먹었다고 생각했다. 그 지역 사또는 최포수가 산군을 잡았다며, 그 벌로 삼대 3개로 최포수의 종아리를 세 번 때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 끝에 구연자와 청중들끼리도 “무슨 주문을 읽어서 사람이 호랑이가 되고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 하느냐”, “아니, 근데 뭐 도통한 사람들 이야기도 있잖느냐”, “정성이 워낙 있으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어른들이 보셨다는 얘기를 조그만 할 때 들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이게 진짜 있는 일이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러니까 전설이지, 이러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한참 나눈다. 이야기가 그렇게 황당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다 거짓부렁이라고도 하고 그렇지만, 사람이 호랑이가 된다는 것은 존재적 변화를 상징한다고 할 것이다. 부모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극적인 의지는 한겨울에도 딸기를 찾아 나서는 효자나, 약수를 구하기 위해 서천서역 머나먼 길을 찾아가야 했던 바리데기,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에게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 자신 고유한 모습을 간직한 상태에서 움직였다면, 황팔도는 자신의 처지에서는 이루기 힘든 일에 맞닥뜨려서 자기 모습을 버리는 쪽으로 움직였다. 자기 모습을 버린다는 것도 긍정적인 방향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황팔도의 경우엔 스스로 짐승이 되고자 하였던 것이니 그 변화가 긍정적인 결말로 가기도 쉽지는 않았겠다. 더 문제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수성이 폭발한다는 것이다. 다른 자료에서는 호랑이가 되어 떠돌던 황팔도가 한 번이라도 어머니가 계시던 집을 보고 죽겠다고 다짐하고는 산에서 내려오다 포수들이 숨어 있는 것을 보고는 “내 생명은 이것으로 끝이다. 더이상 살고 싶지도 않다” 하고 외치고는 포수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높은 벼슬아치가 된 어릴 적 친구를 만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 친구에게서 담배를 얻어 피운 것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내력이 되었다고 하는 변이형도 있다. 본인 스스로 극도로 좌절한 상태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황팔도 전설’이 되어 전해지고, 효행도 좋지만 무리한 방법을 쓰거나 좋지 못한 마음으로 행했을 때는 끝이 좋을 수 없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대표적인 민화 호작도(虎鵲圖). 권력자를 상징하는 호랑이는 바보스럽게, 민초를 대표하는 까치는 당당하게 묘사되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엄마로 둔갑한 호랑이가 아이들을 해치려 덤빈다는 점에서 이 호랑이는 엄마의 다른 모습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 것처럼, ‘황팔도 전설’에서는 부모를 위한 갸륵한 마음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아가게 된 길이었지만 호랑이가 되어 개를 잡아 오고, 급기야 부인을 해치고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투철한 의지나 신념이 가질 수 있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해가 바뀌고 명절을 맞이하는 와중에 우리 사회는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그 와중에 인간으로서의 합리적 이성이나 판단보다는 각자 개인의 신념이나 의지에 따라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된다. 계속 먹을 것을 요구하며 이성을 잠식하는 수성의 호랑이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별주부 자라의 부름에 ‘흥앵흥앵’ 우는 소리를 내며 내려오던 호랑이는 자라에게 그것을 물려 함경도까지 도망갔다. 아이들만 있는 집에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아이들이 집에 있던 강아지를 한 마리씩 던져 주다가 그래도 가지 않자, 방 안 화로에 돌멩이를 달구어 그걸 집어던졌더니 덥석 물었다가 호랑이가 도망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산대호(如山大虎)’라 불리는 큰 몸집과 떡 벌린 아가리로 포효하던 모습은 외부 세상의 위협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우리 이야기들에서는 그런 존재를 아이들도 놀려 먹으며 퇴치하는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였다. 권위, 권력, 신념, 의지 등에 함부로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그 대상을 별것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수가 될 수 있다. 관련기사[더오래]기름 강아지로 호랑이 여러 마리 잡는 방법[더오래]한방에 파리 7마리 잡은 자신감으로 왕이 된 재봉사[더오래]긴머리 풀고 피칠갑…억울하게 죽은 원귀의 자기진술법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초빙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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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노루 모피 50장→10장… 과중한 공납 줄여준 청백리
━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119) 한라산 중턱인 제주 곰솔공원에 세워진 이약동의 산신단 사적비. [사진 제공 김천문화원] ━ ① 모피 공납 50장을 10장으로 제주목사 이약동은 1470년(성종1) 부임 이후 현지 구석구석을 돌아본 뒤 섬사람들에게 부당하게 부과되는 공납을 줄여 달라고 조정에 간청한다. 공납을 둘러싼 아전 등의 횡포를 사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뜻밖에 성종 임금이 화답한다. “폐단이 적지 않다. 당장 공물 수량을 줄이라.” 노루 모피는 50장을 10장으로, 진주 등은 있을 때만 올리도록 바뀌었다. 과중한 공납을 일거에 줄인 적폐 청산이었다. ━ ② 사냥 임시 거처는 장막으로 이약동은 수령이 사냥을 나가면 백성들이 임시 거처를 짓느라 노역에 시달리는 것도 알게 됐다. 당시 제주 3읍 수령은 군사훈련을 겸해 자주 사냥을 나가면서 야영했다. 그때마다 섬사람들은 수령이 임시로 거처할 집을 지어야 했다. 이약동은 사냥이 군사훈련이어서 이를 폐지할 수는 없어 임금에게 고통을 줄일 방안을 하소연한다. 성종이 다시 답을 내린다. “임금의 거가(車駕)가 가는 곳도 장막을 설치하는 것이 전부인데 신하들이 이럴 수가 있나?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라.” ━ ③ 한라산 산신제 자리 정상에서 중턱으로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시대 제주목사 관아. [사진 제공 김천문화원] 제주목사는 이번엔 한라산으로 눈길을 돌린다. 그는 한라산 산신제를 지내는 산천단을 정상에서 중턱으로 내린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탐라지(耽羅誌)』에 전하는 이 업적은 제주 사람들이 오래도록 칭송한 적폐 청산의 결정판이다. 산천단은 고려시대 처음 조성돼 조선 초까지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봄과 가을 제사 때는 많은 관리와 군졸이 동원돼 제물을 지고 며칠씩 산을 오르고 야영해야 했다. 봄과 가을 한라산에는 눈과 비가 자주 내리고 기상이 나쁠 때가 많아 동원된 섬사람들은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심지어 동사자도 발생했다. 이약동은 이러한 폐단을 조정에 보고한 뒤 산천단을 한라산 중턱 지금의 곰솔공원으로 옮겼다. 그 뒤 산신제로 고통을 겪는 폐단은 사라졌다. ━ ④ 말채찍까지 반납 1472년 이약동은 제주목사로서 3년 직임을 마치고 제주도를 떠난다. 그는 재임 중 착용하던 의복이나 사용하던 기물을 모두 관아에 반납했다. 그리고 육지로 떠나는 나루터로 향한다. 그가 한참 말을 타고 가는데 갑자기 손에 든 말채찍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이것도 관물인데. 그는 다시 관아로 돌아가 말채찍을 걸어 놓았다. 후임자들은 이를 청렴으로 여겨 오랫동안 그대로 두었다. 세월이 지나 그 채찍이 없어지자 섬사람들은 바위에 그 채찍을 그렸고 이후 그 바위는 괘편암(掛鞭岩)으로 불렸다. ━ ⑤ 바다에 던져진 선물 갑옷 경북 김천시 양천동 하로서원 청백사에는 조선시대 청백리로 녹선된 이약동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진 송의호] 이약동은 이제 육지로 떠나는 배를 탔다. 조금 뒤 광풍이 불고 파도가 일어 배는 파선 위기를 맞는다. 그러자 그가 일어나 말한다. “나는 제주도에서 사리사욕을 취한 게 없다. 일행 중 누구라도 섬 물건을 챙긴 자가 있으면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죽은 뒤에도 섬사람들이 우리를 탐관오리라 하지 않겠는가?” 마침내 한 군졸이 이실직고했다. “행차가 막 떠나려는데 섬사람 하나가 갑옷 한 벌을 바치면서 바다를 건넌 뒤 사또께 전해 달라고 해 숨겨 왔습니다.” 이약동은 “그 정성은 알았으니 그 갑옷을 바다에 던지라”고 지시했다. 갑옷이 바다에 던져지자 파도가 잠잠해졌다. 갑옷이 던져진 곳은 투갑연(投甲淵)으로 불렸다. 경북 김천시 양천동 하로서원(賀老書院)에 배향된 노촌(老村) 이약동(李約東·1416~1493)의 제주목사 시절 이야기다. 노촌은 제주도 선정(善政)이 알려져 이후 이조참판까지 올랐으며 청백리로 녹선되었다. 4번과 5번 이야기는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도 등장한다. 공직자의 청렴은 시대와 무관한 의무이다. 관련기사청각장애인에 세례 거절한 신부, 30년 지나 후회한 이유 [더오래][더오래]조총 이긴 활…조선 선비에 무너진 사무라이 왜군 [더오래]한국판 백이·숙제…고향서 독립운동한 향산과 유천 형제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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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해외여행 못가는 슬픔 나라별 밀키트로 위로해볼까
━ [더,오래] 한재동의 아빠는 밀키트를 좋아해(7) 팟타이 동남아시아의 음식을 처음 먹어본 것은 베트남 쌀국수가 숙취에 효과가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다. 술병에 고통받는 몸을 해장하려 프랜차이즈 쌀국수 식당을 찾았다. 과연 술이 단박에 깨버리고 말았다. 다만 그것이 진한 국물도, 수북한 숙주나물 덕분도 아닌 고수의 생경함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고수를 먹어본 적이 없었으니 당연히 빼달라는 요청도 하지 않았고, 쌀국수 위의 고수를 잔뜩 집어 입에 넣었다. 마치 비누를 한가득 씹은 느낌이었다. 그때의 충격으로 한동안 동남아시아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그 선입견을 깨준 것이 바로 팟타이였다. 몇 년 전인가 CNN에서 세계 음식 베스트 50위를 선정했는데, 팟타이가 무려 5위로 선정되었다. (참고로 김치는 12위, 불고기는 23위) 마침 회사 근처 태국음식점에 식사를 간 김에 팟타이를 시켜보았다. 물론 고수는 빼달라고 했다. 두툼한 쌀국수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넣고 갖은 채소, 해산물과 함께 볶아서 나왔는데 비주얼이 굉장히 알록달록했다. 동남아시아 전통 문양의 접시에 담겨나오니 매우 화려해 보였다. 팟타이는 굉장히 화려한 색감의 요리다. [사진 unsplash] 이번에 구매한 팟타이 밀키트는 가격이 만 원이 넘어서 식당에서 사서 먹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세부적으로 따지고 보면 2인분 양을 사는 것이니 훨씬 저렴하다고 할 수 있으나, 처음 가격을 보고는 주저한 것은 사실이다. 유통기한이 임박해 할인하지 않았다면 구매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아무래도 밀키트라는 것은 식당에서의 가격보다는 훨씬 저렴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는가 보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 요리다 보니 밀키트 안에 비닐 팩 가짓수가 많았다. 2개의 수란과 넉넉한 새우의 양은 만족스러웠다. 날달걀이 아닌 수란을 사용한 이유가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추리해보건대 날달걀을 쓸 경우 파손의 위험이 커서 수란으로 제공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만약 팟타이의 맛을 위한 레시피의 비결로 수란을 쓰신 거라면 부디 나의 무식함을 용서하기 바란다. ■ 팟타이 밀키트 조리법 「 ① 냄비에 쌀국수면을 넣고 3분간 끓여준 뒤 찬물로 씻어둔다. ② 새우를 찬물로 씻어 키친타올로 물기를 제거한다(내장을 제거하면 더 좋다). ③ 팬을 중불로 1분간 예열한 뒤 오일과 수란을 넣고 1분간 저어가며 스크램블로 만든다. ④ 새우를 넣고 중불로 1분간 볶은 뒤 쌀국수를 넣고 1분간 더 볶는다. ⑤ 소스를 넣고 중불로 1분간 볶은 뒤 숙주나물과 부추를 넣고 1분간 더 볶는다. ⑥ 접시에 담고 땅콩을 골고루 뿌려준다. 」 팟타이를 완성하고 한입 입에 넣으니 기존에 알던 팟타이와 맛이 너무 달랐다. 가장 근래에 방콕에 다녀온 아내도 맛을 보더니 독특하다고 말했다. 다시 밀키트 포장지를 보니 그냥 팟타이가 아니고 유명 태국 식당의 레시피를 이용한 팟타이 밀키트였다. 아마도 레시피를 개발한 셰프의 의도된 특별함이겠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먹었던 나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유명 식당의 레시피를 재현한 팟타이 밀키트. [사진 한재동] 온라인에서 밀키트 리뷰를 찾아보니 연남동에 있는 유명 태국음식점의 레시피를 사용한 팟타이라고 한다. 태국 현지의 맛을 잘 살려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맛집이라고 한다. 체인점에서 먹던 팟타이 맛과 달라 뭔가 잘못된 줄 알았더니, 사실 이게 진짜 현지 팟타이의 맛일 줄이야. 글을 쓰며 팟타이의 어원을 찾아보았더니, 팟은 볶음이라는 뜻이고 타이는 태국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태국 볶음’이라니, 정말 태국의 국가대표 요리라고 할 수 있겠다. 새삼 세상 참 좋아졌다고 느낀다. 이제는 줄을 서지 않아도 외국 현지의 맛을 집에서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못간지도 꽤 되었는데, 각 나라의 대표 요리라도 밀키트로 해 먹으며 위로해야겠다. 관련기사[더오래]고마운 밀키트…중국집선 찾기 힘든 중국의 대표 집밥[더오래]몸 으슬으슬, 콧물 살짝…이럴 때 당기는 육개장 칼국수 [더오래]홧김비용이라고? 살까말까 할 때는 사라! 직장인 겸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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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 재산 다 뜯기고 요양원 버려져, 기억도 안나는 끔찍한 일
━ [더,오래] 김성우의 그럴 法한 이야기(31) A(남·80)는 청주에서 2남 1녀의 차남으로 태어나, 19세 되던 해 빈손으로 상경했다. 밤낮없이 일해서 상당한 재산을 모으게 되었고, 늦었지만 결혼도 하였다. 그런데 슬하에 자녀가 없어 형님의 아들 B(60)를 양자로 입양하려고 하였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동네 사람의 소개로 고아를 양자로 들였는데, 부인이 사망한 2014년경 이후로는 성인이 된 양자로부터 폭행과 학대를 당하게 되었다. A는 견디다 못해 조카인 B의 집으로 피신하였다. A는 그즈음부터 치매를 앓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났을 때쯤 그 양자를 파양(罷養. 양자 관계를 끝내는 것) 하였다. A가 뇌 검사 등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2017년경에는 A 소유이던 시가 50억 원 상당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 소재 지상 5층 건물이 B 명의로 이전 등기되었다. 2018년경부터 A는 요양원에서 홀로 지내게 되었는데,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된 A의 여동생 C가 A를 다른 요양원으로 옮기고, B를 비롯한 다른 친척들의 접근을 막은 채 A의 은행 계좌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정기예금을 해약해 치료비로 사용하였다. 그러자 조카 B는 A가 치매로 인지능력이 거의 없는데, A의 여동생인 C가 다른 친척들의 접근을 막은 채 A의 예금 등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A의 성년후견인이 되어 A의 신변을 보호하고 재산을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가정법원에 성년후견 재판을 신청하였다. B는 제 뜻을 이룰 수 있었을까? 후견은 정신적 문제의 정도에 따라 그 종류가 나뉜다. 일반적으로 후견인은 가족 중에서 합의하에 추천된 사람으로 지정된다. [사진 pixnio] 사례에서는 부인도 자녀도 부모도 없는 A를 둘러싸고, A의 추정상속인인 형제자매 또는 그들의 자녀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입양된 양자가 A를 잘 모셨더라면 A가 이런 진흙탕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평안한 노후를 맞았을 것이고, 양자도 향후 단독 상속인으로서 A의 재산을 상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A에게 치매가 점점 진행되고 단독 추정상속인이던 양자가 파양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조카 B가 처음부터 A의 재산에 욕심을 낸 것은 아닐 수 있다. 예전에 자신을 입양하려고 했던 작은 아버지 A가 자신의 집으로 피신할 때만 해도 A를 진심으로 보살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A의 정신상태와 판단력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앞으로 나 죽으면 이 재산은 어려울 때 날 보살핀 너에게 다 주겠다”는 A의 지나가는 말을 고모 C나 다른 사람들의 방해가 있기 전에 즉시 실행하고 싶었을 것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한 정신적인 어려움이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음을 인정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준비가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사진 pixnio] ‘성년후견제도’는 질병, 장애, 노령 등으로 인한 정신적 장애로 혼자서는 자신의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후견인)의 도움을 받아 사무를 처리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도움을 주는 사무에는 재산에 관한 사무도 있지만, 거주지나 치료 방법을 결정하고, 어떤 사람과 만날지, 어떤 전화나 우편을 받을지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신변에 관한 것도 있다. 후견에는 그 정신적 문제의 정도에 따라, 혼자서는 거의 사무를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중한 경우에 시작되는 좁은 의미의 ‘성년후견’과 일정한 몇몇 사무에 한해 후견인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한정후견’으로 나뉘고, 특정한 사무에 대해서만 지원을 받는 ‘특정 후견’도 있다. 후견을 받아야 할 사람(피후견인)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기 전에 후견인을 누구로 할지, 후견인에게 어떤 권한을 줄지에 대해서 후견인이 될 사람과의 계약을 통해 미리 정해둘 수도 있는데, 이것을 ‘임의후견’이라고 한다. 후견인은 가족들 사이에 정서적으로 피후견인과 가장 가깝고 피후견인을 잘 돌볼 수 있는 사람, 보통은 가족 중에서 합의로 추천된 사람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족들이 서로 후견인이 되려고 하거나, 되지 않겠다고 싸우고 있는 경우, 돌볼 적당한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변호사나 사회복지사와 같은 전문가가 선임되기도 한다. 장애인의 정신상태나 판단력에 문제가 없어야 앞서 이루어진 장애인 재산의 처분이 유효하다. 재산 침탈과 관련된 성년후견 사건에서 이미 재산을 많이 받은 대부분의 사람이 후견개시에 반대하는 이유다. [사진 flickr] 인지능력에 장애가 있는 사람의 재산 침탈이 문제가 되는 성년후견 사건에서, 인지능력 장애인을 보호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재산을 이미 많이 받은 사람, 보통 그를 모시고 있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후견개시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장애인의 정신상태나 판단력에 문제가 없다고 해야만, 이미 이루어진 장애인 재산의 처분이 유효하게 될 것이고, 앞으로도 남은 재산을 자신이 조종하고 지배하는 대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례에서는, A의 재산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당 건물을 받은 B 쪽에서 먼저 후견 신청을 하고, 오히려 나중에서야 A의 신병을 확보한 여동생 C 쪽에서는 A의 정신이 멀쩡하다고 주장하였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알게 된 것은 A에게 당초 분당 건물 외에도 20여억 원의 예금이 더 있었고, C가 B로부터 A의 신병을 탈취한 2018년경까지만 해도 10억 원 이상의 돈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B는 이 돈마저도 C가 마음대로 쓰는 것을 눈 뜨고 보지 못했다. 정신감정 결과 A는 중증 치매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결국 A에게는 성년후견이 개시되었고, 성년후견인으로는 B나 C가 아닌 전문가 후견인인 변호사가 선임되었다. 그런데 후견인이 A의 재산 상태를 조사해 보고는 A에게 남아 있는 재산이 불과 200만 원이 전부라는 사실에 경악하였다. 알고 보니 성년후견 재판이 진행되는 사이에 여동생 C가 A의 뜻을 빙자해 C의 아들에게 10억 원을 증여한 것이다. 지금은 후견인에 의해 C의 아들과 B에 대한 재산 환수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재산을 다시 A에게로 돌려놓으려면 증여 당시 A에게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치매의 특성상 A가 과거의 특정 시점에 그러한 상태였다는 것을 입증하기는 용이하지 않다. 더욱 씁쓸한 것은 A는 이제 그들의 목적을 다 달성한 B나 C는 물론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요양원 6인실에서 아무런 재산도 남아 있지 않은 채 외롭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재산을 제 뜻대로 쓰이도록 하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안하게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 가족이 여럿 있다거나 재산이 풍족한 것만은 아닌 듯싶다. 존엄하고 아름다운 삶의 계획과 정리를 위해서는, 치매나 갑작스러운 뇌출혈, 사고로 인한 정신적인 어려움이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음을 인정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준비가 될 것인지 지금 고민해야 한다. 관련기사[더오래]재산분할 끝냈는데…이혼한 아내가 국민연금도 나누재요식물인간 남편 두고 불륜 저지른 아내…'진흙탕 싸움' 반전 결말 [더오래][더오래]식물인간 돌봄 책임 누구? 이혼한 아내일까 어머니일까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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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은퇴 후 하고 싶은 일 1위 여행…실제는 TV시청
━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104) 어느 사람이 죽어 하늘에 올라가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이어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도 행렬 뒤에 서서 앞에 있는 사람에게 이게 무슨 줄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느님이 방금 하늘에 오른 사람들을 면담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앞을 보니 하느님이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너는 내가 준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하며 묻고 있었습니다. 그도 줄에 서서 기다리다가 그의 차례가 다가오자 슬그머니 뒤로 돌아가 다시 끝줄에 섰습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하느님에게 드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그의 차례가 왔습니다. 하느님은 그를 보고 빙그레 웃으시며 너는 세상에서 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잘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누구나 세상에서 한 일이 있을 거라며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십니다. 그는 마지못해 울면서 대답했습니다. “하느님, 길가의 돌 하나 주어 신작로 끝에 옮겨 놓은 것밖에 한 일이 없습니다.” 먼 훗날 하느님 앞에 섰을 때 과연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보니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진 pxfuel] 위의 글은 정종수 시인의 ‘길가의 돌’을 나름대로 각색한 것입니다. 시인이 어떤 배경으로 이 시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내용이 꼭 저를 겨냥한 것 같아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시의 주인공은 아마 살아생전 큰일은 하지 못했고 사람들이 다칠 것을 염려하여 길가의 돌을 하나 주어 옮겨 놓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겸손하게 하느님에게 답한 것입니다. 글을 읽고 난 후 내가 죽어 하느님 앞에 섰을 때 과연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보니 그와 마찬가지로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돌 하나라도 신작로에서 치워 놓은 일이 있었던가 하며 지난 생을 돌아봅니다. 어쩌면 일부 사람에겐 돌 하나를 주어 옆으로 치워 놓는 게 뭐 그렇게 대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도 생각만 하지 정작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보기 드뭅니다.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어느 날 길모퉁이에 서서 웃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던 행인이 그에게 “무엇을 보고 그렇게 웃고 있냐”며 물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저 길 한가운데 있는 저 돌이 보이시오? 내가 오늘 아침 여기 온 이후로 열 명의 사람이 그곳에 걸려 넘어졌고 그걸 불평했지요.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다른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그 돌을 치워 놓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일전에 어느 연구소에서 은퇴를 앞둔 직장인들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설문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1위는 여행이었습니다. 누구나 이처럼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실제로 하는 취미활동은 TV 시청이었습니다. 왜 여행을 가지 않는지 물어보니 돈이 들어서 그렇답니다. 흔히 여행을 멀리 가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집 밖에 나서기만 하면 여행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 2위는 자원봉사였습니다. 자신도 이제는 우리 사회를 위하여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은퇴한 시니어들이 실제로 봉사하는 비중은 7%에 그쳤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머리와 몸이 따로 움직입니다. 봉사하는 비율이 왜 그렇게 적은가 알아보니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또 막상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 자원봉사를 한다면 어려운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그런 일 하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고,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은 또 누군가 하겠지 하는 마음에서 지나칩니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일도 안 하고 쉬운 일도 안 하고 결국 생각에만 그치고 맙니다. 배가 제일 안전한 곳은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지만 그게 배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사진 pixabay] 배가 제일 안전한 곳은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배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닙니다. 배는 파도라는 위험을 무릎 쓰고 대양을 헤쳐나가기 위해 건조된 것입니다. 인간도 이 지구별에 가서 여러 가지 모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오라고 하느님께서 삶이란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신이 주신 능력을 10%도 활용하지 못하고 죽는답니다. 모험을 너무 두려워하고 현실에만 안주하기 때문입니다. 전반기 생을 너무 안이하게 살았다면 남은 생은 하느님이 주신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생각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전해보기를 권합니다. 물론 실수도 하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많은 걸 배울 겁니다. 나 혼자 달라진다고 우리 사회가 변하겠느냐고 물을 필요는 없습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하여 하늘에 올랐을 때 하느님의 질문에 답할 몇 가지는 지니고 있어야겠습니다. 먼저 살았던 사람이 주는 교훈입니다. 관련기사[더오래]가난하지만…하루종일 웃음 넘치는 세네갈 마을임종 직전에야 알았다, 호주 환자들이 땅치고 후회한 5가지 [더오래][더오래]암 환자가 투병 의지 불태운 병원 음악회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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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권리금 놓고 6번 재판벌인 자영업자와 건물주…승자는?
━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50)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영업자의 고난의 행군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상권이던 명동 공실률이 40%를 넘어서고, 대출 원리금을 갚을 엄두가 나지 않아 폐업조차 못 하고 손실보상금으로 겨우 유지하던 사업자는 상가임대차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장사를 계속할지 고민일 겁니다. 이제 끝나는 임대차 계약의 세입자는 종전의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을 겁니다. 임대차 기간이 종료돼도 만약 신규 세입자를 유치해 기존에 투입한 권리금을 조금이라도 회수하면 그나마 다행일 테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우리 상가임대차법에는 2015년부터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다. 임대차 기간이 만료되는 상가 건물의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을 주선해 권리금 계약을 체결하려고 하면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면 안된다. 사진 pxhere] 그래서 우리 상가임대차법에는 2015년부터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임대차 기간이 만료되는 상가 건물의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을 주선해 권리금 계약을 체결하려고 하면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면 안됩니다(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1항 제4호). 즉, 임대인은 정당한 거절 사유가 없다면 종전 임차인이 데리고 온 신규 임차인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해야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종전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물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임대인은 종전 임차인이 데리고 온 신규 임차인을 의도적으로 거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임차인을 유치해 직접 권리금을 챙길 수 있습니다. 종전 임차인으로서는 자신의 권리금을 회수할 길이 없게 되는 것이죠. 위 규정은 임대인이 임차인의 권리금을 가로채는 경우를 막기 위해 마련된 겁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임대인인 건물주의 입장에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내용입니다. 임대차계약도 계약이고, 그 계약의 당사자는 임대인과 신규 임차인입니다. 상대방인 신규 임차인을 고를 수 있는 자유 또한 계약 당사자인 임대인에게 있음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위 규정 때문에 임대인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종전 임차인이 정한 신규 임차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물론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임대인은 종전 임차인이 데리고 온 신규 임차인과의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전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에게 보증금이나 월세를 지급할 자력이 없거나, 임대인이 적극적으로 신규 임차인을 유치해 종전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지급하도록 한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상가임대차법에는 그 외에도 ‘임대차 목적물인 상가건물을 1년 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아니한 경우’도 정당한 사유에 포함하고 있습니다(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2항 제3호). 그런데 이 조항은 명확하지 않아 상당히 논란이 되었습니다. ‘1년 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라는 과거형인데, 일단 주어가 빠져 있어서 누가 상가건물을 사용하는 경우인지부터 혼란스러웠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임대차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상가를 사용했던 사람은 임차인입니다. 그런데 위 규정을 ‘임차인이 1년 6개월 이상 상가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경우’라고 보면 잘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임차인이 임대차보증금이나 월세를 꼬박 지급하면서 1년 6개월 이상 상가를 비워두는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때 임대차 종료 시 종전 임차인이 권리금을 받아갈 여지도 없을 겁니다. 종전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에게 보증금이나 월세를 지급할 자력이 없는 등 정당한 사유에서는 신규 임차인과의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할 수 있다. [사진 flickr]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위 규정은 ‘임대인이 1년 6개월 이상 상가건물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물론 종전 임차인과의 임대차가 종료되는 시점에 임대인이 상가 건물을 사용하는 상황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 규정은, ‘임대차기간이 종료된 후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임대인이 임대차건물을 다른 곳에 임차하거나 스스로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도 않은 경우’에 한해 적용됩니다. 임대인이 1년 반 이상 건물을 비영리 목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는 임차인의 권리금을 가로챌 의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최근 대법원 또한 동일한 취지로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19다285257 판결). 사례를 보겠습니다. A는 2010년부터 당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 보장된 5년(현재는 10년) 동안 2015년까지 상가건물에서 음식점을 운영해 왔습니다. 그리고 2015년 임대차계약 종료 무렵 음식점을 넘길 생각으로 새로운 임차인 B를 주선해 B와 권리금 계약도 체결하고 건물주에게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해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지요. 그런데 뜻밖에 건물주는 건물을 재건축 또는 대수선할 계획이 있다면서 B와의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했는데요. 그러자 A는 건물주를 상대로 권리금 회수를 방해했다면서 권리금 상당액인 약 1억3500만원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건물주는 A와의 임대차 계약이 종료된 후 실제로 1년 6개월 동안 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기에 손해배상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고, 파기환송심인 2심은 이 경우는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2항 제3호가 적용된다면서 건물주가 B와의 임대차계약을 거절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건물주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대법원은 위 규정에 따른 상가사용의 주체가 임차인이 아닌 임대인이라는 점은 2심과 동일하게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임차인의 손을 들어준 셈입니다. 실제로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2항 제3호 규정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임대인이 임대차 종료 시에 향후 1년 6개월 이상 상가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하고, 실제로도 1년 6개월 이내 상가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건물주는 그런 사유가 아니라 건물을 재건축 또는 대수선할 계획이 있다면서 B와의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했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건물주가 1년 6개월 동안 상가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점을 A에게 임대차종료 시에 고지하지 않은 이상 B와의 임대차계약을 거절할 정당한 사유가 인정될 수 없다는 게 법원 취지입니다. 참고로 이 대법원 사건은 벌써 이미 2019년에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어서 재상고 되었다가 또 파기환송된 사건으로 현재까지 6번, 재재상고될 경우 7번의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3번째 재판인 종전 대법원 사건에서도 ‘임대차 기간이 지난 경우에도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 있는 판결이 내려졌는데요(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7다225312, 2017다225329 판결), 이 사건 분쟁으로 권리금에 관한 논의가 진일보했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습니다(물론 한 사건으로 수많은 소송비용을 들여가며 무려 6번이나 재판을 해야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건물주는 건물을 재건축 또는 대수선할 계획이 있다고 임차인 A에게 고지했는데, 이처럼 재건축 또는 대수선하는 경우도, ‘1년 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경우’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1년 6개월의 조항은 임대차목적몰이 그대로 존치됨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철거 후 재건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 관한 규정은 아닙니다. 결국엔 건물주는 A에게 권리금을 배상해주어야 할 겁니다. 이렇게 대법원 판례로 논란이 있었던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2항 제3호 규정에 대한 해석이 정리되었습니다. 다만 판례 취지에 따르더라도 건물주가 1년 반 건물을 비워둘 각오를 하면, 1년 반 후에는 임대인이 직접 주선한 신규 임차인에게 직접 소위 말하는 ‘바닥권리금’(또는 ‘지역권리금’)을 챙기는 것은 막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그러려면 1년 6개월 동안의 보증금과 월세를 모두 포기해야 하는데, 건물주 입장에서도 실제로 그리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관련기사잘못 입금된 코인 100억, 맘대로 썼는데…대법 판결 '충격' [더오래][더오래]잠자는 제자 2명 강제추행한 교수님 무죄라네요, 왜?[더오래]훈육이라고요? ‘사랑의 매’도 안됩니다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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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내돈 내고 걷는 ‘삼주만 해볼까 챌린지’
━ [더,오래] 전명원의 일상의 발견(23) ‘삼주만 해볼까 챌린지’에 참가했다. 말 그대로 3주간 3㎞ 이상을 걷고, 30페이지 이상 읽은 책을 매일 인증하는 모임이다. 참가비를 낸다. 3주간 15일 이상을 인증하면 책 한 권을 준다. 10일 이상 인증 시엔 음료권이 있다. “돈까지 내가며 걷는다고?” 지구 반대편의 언니는 한국의 낯선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웃었다. 그렇다. 돈까지 내가며 걷는 희한한 챌린지는 요사이 은근 주변에 많다. 만보 걷기, 책 읽기, 심지어 쓰레기 줍기 챌린지도 하니 바야흐로 챌린지의 시대인지도 모를 일이다. 돈을 냈으니 걸어야지, 챌린지 달성하면 책을 준다니 해야지…. 이런 마음이 없을 리는 없다. 그런데 이게 ‘챌린지’라는 이름이 붙게 되자 그런 것과 별개로 어느 만큼 자발적인 강제성을 띄며 의욕이 붙기 시작했다. 겨울 아침 공기는 차갑지만 청량하다. 젊은 아기엄마는 언젠가 팬더믹의 가운데를 통과하던 추운 겨울 아침을 떠올릴 것이다. 나도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오전 한때 그렇게 걸었다. [사진 전명원] 작년 1월 세탁기까지 얼려버리던 강추위 속에서 만보 걷기를 시작한 나였다.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이글대는 한여름 잠깐을 빼고는 참 열심히 걸었다. 가장 걷기 좋은 봄가을도 있었다. 겨울이 다시 와도 나는 잘 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시작이 그 추운 겨울이었는데도, 내리는 눈 속에서 잘 걸었던 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겨울에 시작하는 것과 시작한 이후 다시 겨울을 맞는 느낌이 달랐다. 추워지자 꾀가 났고, ‘이불 밖은 위험해’를 외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눈 속에서도 걷던 시작의 설렘이 사라지고, 처음의 의욕이 사라진 탓이었을까. 그렇게 겨울이 되면서 나의 동네 산책은 일주일이면 한두 번을 겨우 할까 말까 한 정도가 되었던 요즘이었다. 챌린지라는 이름이 붙자 다시 새로운 시작의 느낌이 든 것은 사실이다. 어쨌거나 양말을 신고, 두툼한 옷을 껴입고, 모자를 쓰고 집 밖을 나섰다. 오전에 동네를 걷다 보니 어린이집을 가는 아이들이 올망졸망 엄마 손을 잡고 서서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똑같은 가방을 메고, 안쓰럽게도 작은 마스크를 하나씩 끼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장난을 쳤고, 젊은 엄마들은 아이 손을 잡은 채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팬더믹 속에서도, 겨울의 강추위 속에서도 이어지는 일상의 모습이었다. 오래전 딸아이가 아기였을 때 천안으로 이사해 잠시 살았다. 나는 부모와 떨어져 살아 본 적이 없었다. 결혼해서도 친정 근처에 살았으므로 첫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천안으로 이사해 살았던 시기는 내가 유일하게 부모 곁을 멀리 떠나 살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부모 곁을 떠난 빈자리는 이웃이 채워주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엔 아이들 친구가 부모들 친구로 이어진다는 말이 맞았다. 딸아이 또래의 아기 엄마들을 만났고, 함께 아이를 키웠다. 그렇게 네 아이는 함께 자라고, 친구들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놀았다. 함께 놀았고, 간혹 싸웠고, 다 같이 세발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질주했다. 자라며 어린이집도 모두 함께 다녔다. 나는 오후에 과외수업을 했다. 내가 수업하고 있는 동안 딸아이는 자기 방에서 그림책에 낙서하며 놀았다. 나를 흉내 내느라 온통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려놓기도 했다. 더러는 내가 수업할 동안 심심하게 혼자 방에서 놀고 있을 아이를 생각한 이웃들이 데려가 자기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태우고, 모래 놀이를 하며 돌보아 주었다. 그 시절 천안에서의 한때는 이웃공동체이며, 육아공동체이기도 했던 따뜻한 사람들과의 한 시절이었다. 오늘 아침 만났던 젊은 아기 엄마들처럼 우리도 아침이면 아이들 손을 잡고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아파트 입구에서 함께 웃었다. 버스에 타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고, 누군가의 집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기도 했던 아침이 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며칠 동안 기온이 뚝 떨어진 겨울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겨울 아침 공기는 차가웠으나 청량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깔깔거리는 아기들을 바라보니 웃음이 났다. 아이는 자라고, 젊은 아이 엄마는 언젠가 팬더믹의 가운데를 통과하던 추운 겨울 아침을 떠올리며 그리워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오전 한때 그렇게 걸었다. 관련기사[더오래]가로등이 하나둘씩…오후 5시에 하는 산책 맛[더오래]친구와 송년 시간 가졌던 용주사의 겨울 한낮[더오래]바다 건너 언니와 얼굴 마주보며 안부 나누는 세상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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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국가핵심기술’ 해외로 빼돌리면 3년 이상 징역
━ [더,오래] 박용호의 미션 파서블(19)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핵심기술 하나가 국가 안전보장과 국민경제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전략기술을 선정해 국가적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산업기술’이란 제품 또는 용역의 개발·생산·보급 및 사용에 필요한 제반 방법 내지 기술상의 정보 중에서 행정기관의 장 등이 산업경쟁력 제고나 유출방지를 위해 관련 법령에 따라 지정, 고시, 공고, 인증하는 기술을 말한다. [사진 pxhere] 우리 정부도 지난해 12월 22일 제20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구도 속에서 우리나라 기술주권 확보를 위해 추진해 나갈 ‘국가 필수전략기술 선정 및 육성 보호전략’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하였다. 그중에는 반도체·이차전지 등 국가첨단전략기술, 100대 소부장 핵심전략기술을 국가 핵심기술로 추가 지정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산업기술’·‘국가핵심기술’로 지정이 되면 관련 법령에 따라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받고 관리된다. 만일 우리 회사가 보유한 기술이 산업기술 또는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일까. ━ 산업기술·국가핵심기술이란 ‘산업기술’이란 제품 또는 용역의 개발·생산·보급 및 사용에 필요한 제반 방법 내지 기술상의 정보 중에서 행정기관의 장 등이 산업경쟁력 제고나 유출방지를 위해 관련 법령에 따라 지정·고시·공고·인증하는 기술을 말한다. ‘국가핵심기술’은 산업기술 중 하나로,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관련 산업의 성장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 및 국민경제의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로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정한 것을 의미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및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해당 기술이 국가안보 및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관련 제품의 국내외 시장점유율, 해당 분야의 연구 동향 및 기술 확산과의 조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국가핵심기술을 선정한다. 산업기술과 국가핵심기술은 한 번 유출되면 그 피해를 복구하기 어려워 강력한 보호와 이에 상응하는 각종 제한을 받는다.. [사진 pixabay] 산업기술로 지정되면 어떤 보호 받나 산업기술은 절취 등 부정한 방법으로 산업기술을 취득 또는 공개하는 행위가 금지되는 등 강력한 보호를 받게 된다. 산업기술을 보유한 기업(이하 대상기관)은 산업기술 침해행위로 영업상의 이익이 침해되거나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 법원에 그 행위의 금지 또는 예방을 청구할 수 있다. 또한 침해행위를 조성한 물건의 폐기, 침해행위에 제공된 설비의 제거, 그 밖에 침해행위의 금지 또는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도 함께 청구할 수 있다. 산업기술 침해행위를 고의로 행한 경우라면, 그 행위자는 손해로 인정되는 금액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징벌적으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국가핵심기술을 외국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침해행위를 한 경우 그 행위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15억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산업기술의 경우엔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이다. 국가핵심기술·산업기술에 대한 침해행위는 이를 계획하고 준비만 해도(예비, 음도) 처벌 대상이 된다. 국가핵심기술 지정된 경우 각종 제한도 부과 우리 회사가 보유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앞서 언급한 강력한 보호도 받게 되지만, 이에 상응해 각종 제한도 받게 된다. 국가핵심기술을 보유, 관리하는 대상기관은 국가핵심기술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보호구역의 설정·출입허가 또는 출입 시 휴대품 검사, 전문인력의 이직 관리 및 비밀유지에 관한 계약 체결 등의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가로부터 연구개발비를 지원받아 개발한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대상기관이 ① 해당 국가핵심기술을 외국기업 등에 매각 또는 이전 등의 방법으로 수출하고자 하는 경우, ② 해외 인수 합병·합작투자 등 외국인투자를 진행하려는 경우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대상기관이 ① 승인을 얻지 아니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승인을 얻어 국가핵심기술의 수출을 한 경우, ② 외국인 투자로 인한 국가핵심기술의 유출이 국가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해당 국가핵심기술의 수출 금지 등의 조치를 명할 수 있다. 산업기술과 국가핵심기술의 성격상 한 번 유출되고 나면 사후에 그 피해를 복구하기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산업기술 또는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대상기관의 입장에서는 피해를 보지 않도록 사전에 보안 등 조치에 온 힘을 쏟고, 유출 시에는 신속한 법적 조치를 취하여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상기관은 관련 법령상 각종 제한 사항(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사전 승인 등)도 충분히 숙지해 산업기술, 국가핵심기술 등을 활용한 영업활동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관련기사[더오래]각서 썼는데 경쟁업체 이직했다면 퇴직금 토해내야 할까?[더오래]공원용지 지정된 임야, 장기간 그 시행 미뤄진다면[더오래]비상장주 샀다가 경영권 얹어 되팔았다…증여세 내라고?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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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실감하며, 참여하며…새롭게 박물관 체험하기
━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80)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란 문구를 읽는 순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유의 방’이라니. 작년 11월 국립중앙박물관에 마련된 이곳은 넓은 전시실 안에 오롯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만이 전시되어 있다. 번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고요 속에서 무념무상하는 시간은 생각만 해도 매력적이지 않은가. 이미 다녀간 사람만도 10만명이 넘었다고 하니,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나만이 아닌 듯했다. 기온이 뚝 떨어진 주말 오후 남편과 함께 박물관으로 나섰다. 다른 전시장은 제쳐 두고 2층으로 올라갔다. 어두운 방, 극장에 들어가듯 새어 나오는 불빛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마치 무대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객석의 관람객들은 불상이 전하는 느낌을 담고 싶은 듯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위치한 '사유의 방'. 잠시의 사유를 원하는 관람객이 조용히 반가사유상 주변을 돌며 감상을 하고 있는 모습 자체도 또 다른 감상의 소재가 된다. [사진 김현주] “반가의 자세는 멈춤과 나아감을 거듭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움직임 가운데 있습니다. 한쪽 다리를 내려 가부좌를 풀려는 것인지, 다리를 올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갈 것인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반가의 자세는 수행과 번민이 맞닿거나 엇갈리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살짝 다문 입가에 잔잔히 번진 ‘미소’는 깊은 생각 끝에 도달하는 영원한 깨달음의 찰나를 그려 보게 합니다. 이 찰나의 미소에 우리의 수많은 번민과 생각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불상을 설명하는 글을 읽고 나니 불상의 얼굴이 달라 보였다. 사유하고 번민하는 모습이 친근했고, 깨달음의 미소가 부럽기도 했다. 반가사유상을 보며 ‘치유와 평안’을 얻는다는 말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감상이 증폭되는 건 공간의 역할이 컸다. 들어오는 문과 나가는 문이 달리 배치된 어두운 전시실은 흡사 동굴처럼 고요했고, 섬세하게 비치는 조명은 오로지 불상만을 집중하게 하였다. 오감을 인식하게 만드는 실감 콘텐트가 관심을 받고 있는 요즘, 이곳에서 머문 시간은 다른 의미의 실감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실감 영상관에서 감상한 두 편의 작품이다. 금강산이 찬란하게 변하는 모습에 압도당했고, 왕의 행렬에 흥이나 저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사진 김현주] 생각 난 김에 ‘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실감 콘텐트’를 전하는 디지털 실감 영상관으로 향했다. 이곳 역시 개장 이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아오고 있는 곳이라 알고 있었지만 들어가 보는 건 처음이었다. 영상관 입구에서 만난 ‘책가도’는 관람자가 참여할 수 있는 반응형 영상이었는데, 거기서부터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상 속 책장 그림에 직접 물건을 골라 담을 수도 있고, 액자에 자신의 얼굴을 넣을 수도 있었다. 전시장에 방문한 아이들의 얼굴이 책장 가득 놓여 있는 조선시대 그림이라니, 문화재를 이런 방식으로 친근하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이 반가웠다. 영상관 1에서는 두 편의 실감 영상이 펼쳐졌는데, 그중 하나가 금강산의 사계를 담은 ‘금강산에 오르다’였다. 정선의 ‘신묘년풍악도참’, 김하종의 ‘해산도첩’,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을 바탕으로 웅장한 금강산의 아름다움이 음악과 함께 영상으로 구성되었다. 다음 영상은 정조의 화성행차와 낙성연을 소재로 한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 하다’였는데,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때문인지 더 몰입해 감상할 수 있었다. 두 편의 영상이 방에 가득 비치는 동안 금강산 한중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화성 축제에 참여하는 백성이 된 것 같기도 했으니 문화재와 확실히 소통은 한 셈이다. 박물관과 전시회에 영상 등 디지털 기술이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술을 통해 얼마나 작품에 가까이 갈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해보니 예상한 것보다 몰입감이 높았다. 작품에 대한 친근감과 호기심이 더 생기고 이해도 빨라지는 것 같았다. 서울공예박물관의 ‘공예작품 설치 프로젝트 Object9’. 작품의 시작부터 결과까지를 연결시켜 보여주는 전시 방식이 흥미로웠다. [사진 김현주]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서울공예박물관의 전시를 보면서도 작품을 전달하는 새로운 방식에 감탄했다. 공예문화부흥을 위해 서울시가 2021년 개관한 이곳은 박물관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공예작품을 체험할 수 있다. 박물관 내부와 외부 공간을 공예가와 함께 만드는 ‘공예작품 설치 프로젝트 Object9’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 9점이 박물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작품처럼이 아니라 관람객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생활의 도구처럼 놓여 있었다. 이를테면 박물관 외벽의 한쪽을 감싸듯 설치한 4000여개의 도자기 조각은 강석영 작가의 ‘무제’이고, 박물관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천장에 설치된 붉은 색 유리 오브제는 김현철 작가의 ‘시간의 흐름’이라는 작품이다. 이런 식으로 9명의 공예작가의 작품은 관람객의 의자가 되기도, 안내데스크 역할을 하기도 하며 실감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작가의 코멘터리와 작업과정을 담은 영상, 작업할 때 사용한 소재와 도구들이 작품별로 목조 설치물 안에 전시가 되어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와 친근감을 배가시켰다. 결과물로서의 작품뿐 아니라 그것의 발원지인 작가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하나의 작품이 되는 흥미로운 체험이었다. 한동안 박물관을 안 가봤더니 이렇게 달라져 있다.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전하는 공간이 아닌 그것을 통해 예술의 과정을 체험하고, 그 안에서 쉴 수 있게 하는 공간이 된 듯했다. 디지털 뉴딜, 과연 모든 것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창조해야 하는 때다. 하긴 ‘사유의 방’도 ‘힐링동산’이란 이름으로 제페토 안에 만들어졌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다양한 실감을 경험하기 위해 캐릭터와 함께 가상 공간에 만들어진 ‘사유의 방’에도 들어가 봐야겠다. 관련기사[더오래]새해 목표, ‘탄소발자국 줄이기’ …그 계기가 된 영화 [더오래]눈내리던 날…외식메뉴 투정하던 딸과 차 안 가요 떼창 [더오래]10년후 꿈…‘찐’ 시골살이하며 ‘자연의 철학자’ 되는 삶 전 코스모폴리탄·우먼센스 편집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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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에 세례 거절한 신부, 30년 지나 후회한 이유 [더오래]
━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118) 울릉도 북쪽 천주교 천부성당에 몸담았던 최 베다 신부의 이야기다. 울릉도에 ‘아바’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청각 장애인으로 입으로 낼 수 있는 소리가 ‘아’와 ‘바’ 밖에 없어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울릉도에는 성당이 두 곳이며 천부성당은 국토의 가장 동쪽에 자리한 성당이기도 하다. 경북 울릉군 북면 천부성당의 모습. [사진 천부성당] 아바는 동네와 조금 떨어진 집에 혼자 살았다. 그는 글을 몰랐으며, 겨울에 파도가 치면 해변으로 밀려 나온 미역을 말려 팔고 봄이 되면 산나물을 뜯으며 살았다. 한번은 그의 집을 돌아본 신자가 “아바라는 사람이 사는 게 너무 어렵고 또 작년 장마에 산에서 토사가 밀려와 구들이 막혀 불도 못 피우고 겨우살이를 한다”는 것이었다. 신자들은 “우리가 구들을 손봐주자”며 면사무소에서 시멘트와 모래를 구해 그 집을 찾아갔다. 그는 성당 신자들이 자기 집을 고쳐준다는 것을 알고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하루면 끝날 줄 알았던 일이 사흘이나 걸리게 되었다. 마지막 날 아바는 불을 피우고 밥을 짓기 시작했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밥을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신자들은 대충 일한 뒤 갑자기 모두 도망가 버렸다. 무슨 까닭이었을까. 아바와 부엌은 너무 지저분했다. 거기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아바의 새까만 손가락은 된장찌개 그릇을 쑥쑥 드나들었다. 그걸 본 사람들이 그 음식은 못 먹겠다며 달아나 버린 것이다. 그래서 신부는 혼자 남아 독상을 받았다. 신부는 음식을 억지로 먹었다. 아바는 지저분한 얼굴에 머리도 엉망인 채 신부 옆에 앉아 식사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베다 신부는 그때부터 차려 놓은 음식은 어떤 경우든 먹어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그는 이후 그걸 실천하고 또 무슨 음식이든 가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구들을 고쳐준 뒤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아바가 성당에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일요일이면 한복을 차려입고 입에 립스틱을 바르고 성당에 제일 먼저 나와 앉았다. 시계도 볼 줄 모르고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 아바가 미사 시간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십자를 긋는 성호경도 옆 사람을 보며 따라 했다. 2016년 재건축을 하기 이전의 천부성당 스케치. 천부성당은 국토의 가장 동쪽에 자리한 성당이다. [사진 천부성당] 한참 지나 신부에게 고민거리가 생겼다. 이 아바에게 세례를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였다. 베다 신부는 인근 성당 신부와 상의했다. 결국 세례를 주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바는 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심신이 박약한 한정치산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신부는 세례를 주지 못한 채 임기를 마치고 이듬해 울릉도를 떠났다. 베다 신부는 “3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아바에게 세례를 주었어야 했다”며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고 회상했다. 교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그렇게 타고났을 뿐이었다. 비장애인도 교리 과정을 마치고 물어보면 아무것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더욱이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신자가 수두룩하고 세례를 받은 뒤 하느님을 떠난 사람도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바에게 세례를 주지 않은 것이 후회로 남아 있다. 베다 신부는 덧붙인다. “세례의 조건은 교리를 많이 아는 것보다 마음속 하느님에 의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관련기사[더오래]조총 이긴 활…조선 선비에 무너진 사무라이 왜군[더오래]한국판 백이·숙제…고향서 독립운동한 향산과 유천 형제[더오래]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 왜 뒤늦게 ‘복자’ 추진되는 걸까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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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고마운 밀키트…중국집선 찾기 힘든 중국의 대표 집밥
━ [더,오래] 한재동의 아빠는 밀키트를 좋아해(6) 마파두부 즐겨보는 TV쇼에 스타트업 대표들이 나왔다. 그들의 대화 중에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다. 앞으로 모든 집안일을 아웃소싱하게 될 것이고, 집밥조차 밀키트가 대신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문득 집밥이라고 부르는 음식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사람들에게는 각자 자기만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내게 집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굉장히 불효막심하게도 어머니가 차려주신 식사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뜨끈한 찌개에 몇 개의 반찬, 그리고 가끔 곁들여지는 고기반찬이 떠오른다. 스스로 차려 먹는 식사는 라면, 햄 등 대부분 레토르트를 벗어날 수 없다. 기껏해야 볶음밥 정도가 ‘요리를 했다’라고 할 수 있으니, 가족들에게 집밥을 차려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집밥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우스갯소리 중 ‘한국의 어머니들은 먹을 수 없는 미지의 음식’이라는 대목이 마냥 우습지만은 않다. 마파두부는 중국의 대표적인 집밥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포토] 마파두부는 중국의 대표적인 가정식 요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의 중화요리에서는 짜장면, 짬뽕, 볶음밥에 비해 인기가 없는 메뉴라서 중국집에서도 쉽게 찾기 어렵다. 사 먹어본 적도 드물고, 만들어서 먹어본 적은 없다. 집에 두부가 있다면 두부조림을 할지언정 마파두부를 만드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이국적인 느낌이 오히려 밀키트로 마파두부를 구매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보면 밀키트는 집밥보다는 글로벌한 밥상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 마파두부 밀키트 조리법 「 1. 연두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고, 잘려있는 채소를 물에 씻어준다. 2. 팬을 강불에 30초간 예열하고 산초풍미유를 반정도 넣고 준비된 돼지고기와 야채를 넣고 강불로 2분간 볶는다. 3. 마파소스와 물150ml를 넣고 강불에서 90초간 잘 저어주며 볶는다. 4. 연두부와 남은 산초풍미유를 넣어 90초간 볶아주면 완성. 」 요리명에 두부가 들어가 있지만 사실 마파두부의 씬스틸러는 잘게 썰린 돼지고기와 채소다. 밀키트가 아니었다면 채소 다듬고, 돼지고기 다지는 것에 진을 뺐을 것 같은데, 밀키트는 채소와 돼지고기가 다져져 있고 이것을 넣기만 하면 돼서 편했다. 역시 요리에 들어가는 노동력 대부분은 재료 준비인 걸까. 레시피는 언뜻 보기에는 간단해 보였으나 디테일이 쉽지 않았다. 우선 연두부 자르기부터 어렵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라는데, 연두부를 플라스틱 용기에서 꺼내는 것부터 쉽지 않다. 연두부 특성상 잘 부스러지기 때문에 결국에 거의 순두부처럼 으깨지다시피 되고 말았다. 산초풍미유를 요리의 맨 처음과 마지막에 반씩 나누어 넣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냥 두 개로 나눠 포장하면 될걸’이라는 불만이 들 무렵, 밀키트의 가장 큰 단점이 쓰레기 배출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이런 불편 정도는 감수하는 게 맞다. 안 그래도 밀키트라는 어마어마한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파두부. [사진 한재동] 완성된 마파두부는 단순한 매운맛이 아니라 혀가 얼얼해지는 강한 통증의 매운맛이었다. 어디선가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고 한 걸 본 것 같은데 딱 그 느낌이었다. 예전 베이징을 여행할 때 먹어봤던 마라롱샤를 먹을 때의 향과 맛이 났다. 당시에는 마라라는 향신료가 생소했고, 혀가 너무 얼얼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주변에서 쉽게 마라 향신료 요리를 접할 수 있어선지 생소하진 않지만, 여전히 혀의 통증은 익숙하지 않다. 밥 한 공기를 다 먹고 나서도 마파두부가 반 이상이 남았다. 필연적으로 냉동고에 있던 만두가 떠올랐다. 만두를 에어프라이어로 튀긴 뒤에 그 위에 남은 소스를 부어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았다. 마치 탕수육 소스를 군만두에 부어서 먹는 탕수만두처럼 말이다. 결과는 대성공. 중국 요릿집에서 어서 빨리 이 메뉴를 출시하기를 바란다. 짭짤하고 바삭하니 이만한 맥주 안주가 없다. 관련기사[더오래]몸 으슬으슬, 콧물 살짝…이럴 때 당기는 육개장 칼국수[더오래]홧김비용이라고? 살까말까 할 때는 사라![더오래]독실한 불교신자의 크리스마스 음식, 비프스튜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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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기름 강아지로 호랑이 여러 마리 잡는 방법
━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77) 호랑이해니 호랑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다. 아시다시피, 우리 옛이야기에서 호랑이는 사람 잡아먹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효자, 효부를 도와주는 산신령이기도 하다. 지난번엔 호랑이도 한 손으로 눌러 버리는 힘 센 선비 이야기도 했었지만, 호랑이는 힘으로만 잡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거의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호랑이 잡는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다. 별별 기상천외한 방법이 다 등장하는데, 이런 이야기는 그냥 건조하게 하면 재미없다. 구연 자료의 사투리를 거의 그대로 옮겨 본다. ■ 「 한 사람이 강아지를 기르는데 아마 이 사람이 강아지를 귀엽게 기르던 모양이여. 강아지를 기르면서 참기름만 디립다 멕여서 길렀대. 뭐, 발발이 같은 쪼끄만 강아지를 키우는데, 참기름만 멕여서 아주 강아자기 반들반들하구 고만 매끈매끈하던 모양이야. 주인이 산골에 초가 삼간 짓구서 혼자서 살든 모양인데 밤에 이놈으 강아지가 나갔다 들어오믄 아주 땀을 흠싹 흘리구 들어오구 흠뻑 젖어서 들어오구 그런다 말이여. 거 이상하다 하구서 밤에 가만히 지켜봤대. 밤이 이슥해지니까 산에서 범이 수십 마리가 내려왔대. 내려와 가지구서는 입을 인저 범이 ‘아’ 하구 벌리믄 인저 강아지가 범의 입으로 쑥 들어가믄, 이 매끈매끈하니까 응 밑구멍으루 쓱 나온다 말여. 또 다른 놈이 그 번갈아 가믄서 인지 강아지를 물어 놓어믄 또 밑구멍으루 나오믄 또 다른 놈이 물구, 그래 여러 번 하니까 그만 강아지가 털이 홈싹 젖어서 그렇게 나오더래. ‘야, 이거 호랑이 잡을 수가 났다.’ 하구선 강아지 허리에다가 끊어지지 않는 삼노끈을 든든하게 강아지 허리에 잡아매서는 내보내니까, 범이 강아지를 집어삼키믄 밑구멍으루 나오구 또 다른 놈이 집어삼키믄 밑구멍으로 나오구 해서 범 여러 마리를 줄줄이 꿰어놓은 거야. 그렇게 하구선 줄 한쪽 끝을 느티나무에 매두고는 절굿공이로 이놈 때려잡구, 저놈 때려 잡고. 범 수십 마리를 잡았다구. 이 허황한 얘기지만 인제 시골서 그런 얘기가 있어요. (한국구비문학대계 1집 1책, 272~273면, 수유동 설화 13, 구연자 김용규) 」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산 호랑이. 강아지를 참기름 먹여 키웠다는 거나, 참기름 먹여 키웠더니 강아지가 반들반들 매끈매끈했다는 거나, 그놈을 범이 꿀떡 삼켰더니 반들반들 매끈매끈해 똥구멍으로 그냥 쑥 나왔다는 등의 내용이 꽤 허황되긴 하다. 그걸 보고는 또 강아지 허리에 삼노끈을 매달아 호랑이를 줄줄이 꿰어 잡고, 그렇게 엮여 꼼짝달싹 못 하는 호랑이들을 절굿공이로 때려잡았다는 것까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제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랬을까. 다른 버전에서는 게으름뱅이 아들이 어느 날 어머니에게 모시를 달라고 해 새끼줄을 꼬고 몇 날 며칠 기름을 발라 길들이고, 강아지를 한 마리 얻어 달라고 해 기름 발라 키워서는 모시 새끼줄에 기름 강아지를 묶어 호랑이 수십 마리를 잡기도 하였다. 구연자는 이 이야기를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 호랑이 얘기해 달라고 졸라서 들은 것이라고 하면서, 이 얘기를 듣고 ‘잔등이가 부러지게’ 웃었다고 한다. 그래서 호랑이 잡은 게으름뱅이 이야기는 안 잊는다고 한다. (한국구비문학대계 4집 4책, 284~287면, 웅천면 설화 17, 구연자 황용연) 여기에 등장하는 게으름뱅이의 모습은 아주 전형적인 것이다. 이 아들은 열다섯 살, 스무 살이 되도록 방 안에서 잠만 잔다. 더 구체적으로는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싸는’ 게으름뱅이다. 어찌 보면 아주 효율적인 동선과 움직임을 보여주는 창의적인 인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정말 차려주는 밥만 축내면서 아무 생각 없이 놀고먹은 사람이었다면 굳이 태모시를 구해 달라고 해 그걸로 새끼를 꼬거나, 강아지를 참기름 먹여 키우는 생각을 해내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앞의 이야기에 비해 그나마 그럴듯한 배경이 마련되는 셈이다. 호랑이는 종종 안전한 집 안을 벗어났을 때 바깥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목숨마저 위태롭게 하는 위협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그것은 백인재(百人岾) 고개와 같이 사람이 100명은 모여야 넘어갈 수 있는 산이 있던 것처럼 사람을 해치는 무서운 호랑이가 실제로 깊은 산 곳곳에 그 큰 아가리를 떡 벌리고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내게 다가오는 세상은 그렇게 호랑이의 아가리와 같이 나를 집어삼킬 듯 무섭게 다가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침 이 글을 쓰던 중, 오래전 직장 동료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몇 년 만에 대하는 이름이라 ‘이분이 누구시더라...’ 한참 갸웃갸웃하다 겨우 떠올리고 전화를 받았다. 반가워하는 듯하면서도 이미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 있는 것이 그야말로 기분이 쎄 했다. 역시나, “돈 얘기다” 하고 말을 시작한다. 다른 동료에게도 전화를 했었다고 하는데, 그 친구는 “얘기를 들어줄 수는 있다”고만 했단다. 한참 붙들고 하소연을 했던 모양이다. 기름 강아지로 호랑이 잡은 이야기를 쓰다가 생각한다. 법원이니 노동청이니 한 번도 가 볼 일이 없던 사람이 송사에 휘말리고 법원에서 날아오는 서류를 받아보면서 너무너무 겁이 났다고 하는데, 이런 세상이 호랑이일까, 몇 년 만에, 그것도 신년 초에 연락해서는 다짜고짜 도와달라고 하는 이런 전화를 무서워하며 받게 되는 이 마음이 호랑이일까. 현대 사회의 '기름 강아지'는 이렇게 기름 구덩이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검색된다. 다행히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이들을 살렸지만, 기름 바른 강아지로 호랑이도 때려잡던 그 시절, 그 이야기가 낭만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현실이다. [사진 Animal Aid Unlimited 유튜브 캡처] 하필 나는 오전에 『별것 아닌 선의』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독서 모임을 했다. 아주 사소한 선의가 동심원의 파장을 일으키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참가자들의 경험담을 듣고 감동 가득 받았던 차다. 마침 그걸 알기라도 하듯이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 오죽하면 나한테까지 전화를 했을까 싶으면서 눈물콧물 훔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어쩔 수 없이 얼마를 보내주기로 하였다. 분명 세상은 호랑이처럼 무서운 것이지만 기름 강아지 같은 귀여운 방법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호랑이 잡는 이야기들 대부분 꽤 발랄한 내용을 가진 걸 생각해 보면, 두려움에 잠식당하기보다 강아지에게 기름칠하듯 엉뚱하지만 효과적인 방법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여유를 우리 옛이야기들이 알려주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런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 세상살이가 그리도 어려운 것일 테지만, 다음 호에도 쓸 호랑이 잡는 이야기들이, 기왕 맞닥뜨린 호랑이 앞에서 조금이라도 여유를 갖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관련기사[더오래]한방에 파리 7마리 잡은 자신감으로 왕이 된 재봉사[더오래]긴머리 풀고 피칠갑…억울하게 죽은 원귀의 자기진술법 [더오래]“용이다!”이말에 용틀임 관둔 이무기 ‘꽝철이’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초빙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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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가난하지만…하루종일 웃음 넘치는 세네갈 마을
━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103) 직장에 다닐 때는 은퇴를 기다리다가 막상 그때가 되면 퇴직을 다시 고민합니다. 준비가 미흡한 것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매월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직장에 근무하다가 전혀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이처럼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비교적 은퇴를 일찍부터 준비했다고는 하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민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에게 용기를 준 책이 있습니다. 단순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입니다. 덕분에 소박한 생활을 하는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미국의 한 젊은이가 스무 살 때 아프리카 세네갈의 작은 마을에 봉사하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그곳엔 수도, 전기, TV, 카메라 등 문명의 이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시골이었습니다. 세네갈 어느 마을 사람들은 항상 식량이 부족했고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는 데서 오는 근심도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누구보다 행복했으며 더 친밀하고 보람 있는 공동체 생활을 했다. [사진 pixabay] 400여 명의 주민은 몇 개의 오솔길을 따라 올망졸망 모여 있는 수수한 진흙 움막에서 살았습니다. 마을을 통틀어 자동차는 한 대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저자가 방문한 해는 7년 동안의 가뭄이 시작된 해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인생의 어떤 일도 그때의 일만큼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회상합니다. 세네갈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의 미국인들보다 유쾌하고 활발했으며 정다웠습니다. 사람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 때나 들판에서 일할 때나 항상 웃고 노래하고 놀았습니다. 어디서나 웃음이 넘쳐흘렀습니다. 그 마을에서는 배를 잡고 웃지 않고는 15분도 견딜 수 없었다고 얘기합니다. 화나는 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풀었고 곧 웃음이 뒤따랐습니다. 물론 세네갈 작은 마을의 생활이 좋았던 것만은 아닙니다. 마을 주민들은 영양실조와 피부병과 기타 질병으로 고생했습니다. 언젠가는 죽어가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는 항상 식량이 부족했고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는 데서 오는 근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여건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그 마을 주민들은 누구보다 행복했으며 더 친밀하고 보람 있는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세네갈에서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 대학을 졸업합니다. 그리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결혼해 예의 미국인처럼 풍요로운 생활을 즐깁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항상 시간에 쫓기고 바빴습니다. 10년 동안 변호사로 일하며 성공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단순한 삶을 살아가기로 작정합니다. 편리함을 버리면 사람이 보인다. 물질적 안락함을 포기하면 내적인 평화를 얻는다. [사진 pxhere]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이 TV에 방영되었습니다. 좀 더 쉽고 좀 더 빠르게 살기 위해 만들어진 인간의 조건들. 이를테면 휴대전화, TV, 자동차가 없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실험에 참여했던 주인공들은 자동차 없이 살면서 그동안 잊어버렸던 산책의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편리함을 버리자 사람이 보였던 겁니다. 그도 그랬습니다. 물질적 안락함을 포기하자 내적인 평화가 왔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삶은 풍요로움보다는 자유를 선택한 것입니다. 생을 살면서 느끼지만 많은 걸 동시에 얻을 순 없습니다. 어느 하나를 택하면 다른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편리함을 추구한다면 공해 속에 사는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고 좋은 환경을 원한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이치입니다. 그는 단순한 삶을 살면서 자연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대해 일체감을 느꼈습니다. 당연히 지구자원을 보존하는 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쓰레기가 버려지고 있는데 어찌 보면 그 쓰레기가 우리 후손의 삶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릅니다. 더 나아가 티베트의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가 존재한다면 우리가 내다 버린 그 쓰레기 속에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지구 환경보존을 언급하다 보니 또 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존 로빈스입니다. 그는 세계적인 아이스크림 기업 배스킨라빈스의 유일한 상속자였으나 상속을 거부하고 환경운동가가 되었습니다. 존은 축산업의 문제점에 대해 침묵하면서 아이스크림을 통해 돈만 벌려고 하는 아버지와 결별하고 아내와 같이 캐나다 빅토리아의 외딴 지역으로 떠납니다. 그곳에서의 생활비는 1000달러 이하로 줄였다고 해요.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00만 원 남짓한 돈입니다. 사실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도 자기가 받았습니다. 그는 10년 이상을 방 하나짜리 통나무에서 칩거하며 본인의 생각을 글로 펴냅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당연히 아버지와의 관계는 멀어졌습니다. 심지어 아버지는 그가 미쳤다고까지 말하지요. 그러나 자식을 이기는 아버지가 어디 있나요. 결국 세월이 지나면서 뒤늦게 아버지는 자식과 화해를 합니다. 특히 임종을 앞둔 그의 어머니가 한 말이 인상 깊습니다. “얘야. 네가 물질적으로 부자라고 할 수는 없으나 사랑이 아주 많다는 건 분명하구나.” 어머니는 긴 호흡을 하고 다시 말했습니다. “사실 결국엔 그게 더 중요하지.” 얼마 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언론 매체에서 여러 정보를 쏟아낸 적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은퇴자금이 얼마나 필요한가 입니다. 과연 은퇴자금 얼마나 있어야 할까요? 일부 금융회사에선 7억원이 필요하다, 또는 10억원이 필요하다며 많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합니다. 왜 그렇게 목돈이 필요한가 물었더니 그 돈을 자기네 회사에 맡기면 매월 생활비에 상응하는 이자를 준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겸연쩍게 웃으며 사실은 자사 상품을 팔기 위한 공포마케팅이라고 고백합니다. 소비수준이 높다면 많은 돈이 필요하겠지만 검소한 삶을 산다면 생활비가 그리 많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연구기관들의 조사 결과를 보면 두 사람의 부부가 살아가는데 월 200여만 원이 필요하답니다. 그렇다면 그런 생활비가 나올 수 있도록 현금흐름을 만들어 놓으면 됩니다. 직장 생활을 정년이 될 때까지 한 사람이라면 우선 국민연금으로 그 반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집 한 채 정도는 있을 겁니다. 이 집을 통해 주택연금으로 나머지 반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년까지 근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며 틈틈이 개인연금을 통해 그런 틈새를 메울 수 있도록 대비하여야 합니다. 한편 돈을 모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씀씀이를 줄이는 겁니다. 남의 눈을 의식해 경조사에 지나치게 돈을 쓴다든가 기업의 광고에 휘둘려 명품 핸드백이나 외제 자동차 같은 불필요한 생필품에 큰돈을 지출한다든가 하는 소비를 자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활비의 최저선을 낮추면 낮출수록 당신은 더 자유스러울 수 있습니다. 흔히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시간이 돈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돈이야 노력하면 지금이라도 벌 수 있는데 시간은 그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은 부자가 될 것인가, 시간이 많은 부자가 될 것인가. 그것은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관련기사임종 직전에야 알았다, 호주 환자들이 땅치고 후회한 5가지 [더오래][더오래]암 환자가 투병 의지 불태운 병원 음악회[더오래] 잘하면 대박 잘못하면 쓰레기…미술투자 '이것'부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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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멋쟁이는 장갑도 맞춤으로…겨울 장갑 고르는 법
━ [더,오래] 양현석의 반 발짝 패션(97) 액세서리 중 겨울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장갑이다. 요즘은 등산할 때나 운동할 때 등 사용 목적에 따라서 다양한 장갑이 있다. 장갑도 옷의 스타일에 따라서 골라야 한다. 장갑을 고를 때는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가’를 생각하고 구매해야 돈이 아깝지 않다. ━ 장갑 사이즈 본인이 입는 옷의 사이즈는 대부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장갑 사이즈는 어떠한가?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를 알고 있는가? 옷도 자기 몸에 딱 맞추기 위해서는 맞춤복을 제작해서 입어야 한다. 장갑도 자기 손에 딱 맞게 맞춤 제작해야 자기 손에 가장 잘 맞는다. 현실적으로 장갑을 맞춤으로 제작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기성품의 장갑 사이즈는 S·M·L로 구분하는 정도이다. 대부분의 브랜드는 손의 길이(가운데 있는 손가락 끝에서 손바닥이 손목과 만나는 선 1번)와 손 너비(손의 가장 넓은 부분의 전체 둘레 2번)의 두 가지 측정값을 기준으로 크기를 결정한다. 특히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브랜드는 이런 사이즈 차트를 제공하고 있다. 손에 잘 맞는 장갑은 앞뒤로 여유가 남아 헐렁한 장갑보다 보온성과 착용감이 뛰어나다. 손목을 완전히 덮는 길이와 코트나 다른 외투의 소매로 완전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위로 올라와야 장갑의 기능이 극대화된다. ━ 남성 장갑의 종류 장갑은 옷의 스타일을 구분하는 만큼 정확하게 구분되지 못한다. 대부분 남성 장갑을 크게 드레스와 스포츠용으로 분류한다. 드레스용은 더 어두운 색상과 장갑의 재질도 가죽을 주로 사용한다. 스포츠용은 두꺼운 재질과 많은 재료가 복합적으로 사용되어 기능성을 높이도록 만들어진다. ━ 드레스 장갑 드레스용 장갑은 비즈니스 수트나 코트에 잘 어울린다. 일반적으로 블랙 색상에 염소 가죽이나 송아지 가죽이 소재로 사용된다. 장갑 윗면에 스티치 라인이 올라간 것이 포인트다. 대부분의 드레스 장갑에는 너클로 향하는 3개의 스티치가 있으며 너클로 향할수록 넓어지는 디자인이다. 안감은 캐시미어와 토끼털과 같은 가볍고 컴팩트한 라이너가 최대한 얇게 되어있는 것이 좋다. ━ 캐주얼 장갑 드레스용 장갑은 주로 어두운 색상이고, 가죽을 사용한다. 스포츠용은 재료를 복합적으로 사용해 기능성을 높였다. [사진 pixabay] 대부분의 중년은 드레스 장갑보다 캐주얼 장갑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여러모로 상호 교환되어 착용하기 편해서 드레스 장갑보다 실용성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캐주얼 장갑은 드레스 장갑보다 색상이 다양하고 재질도 다양하게 나와 있다. 버건디, 카키 등의 짙은 색조는 여유롭고 우아한 느낌을, 밝은 색상의 선명한 색조는 발랄하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돼지 가죽은 울퉁불퉁한 질감을 가지며 사용하면 할수록 매끄럽고 부드러워진다. 고급스러운 돼지가죽은 캐주얼 재킷과 스웨터에 잘 어울린다. 스웨이드는 부드러운 표면으로 인해 편안한 착용감을 가진다. 특히 브라운 색상은 캐주얼 스포츠 재킷과 같이 연출하면 가장 좋은 선택이다. 양모의 니트 장갑은 가죽 재질로 된 장갑보다 신축성이 좋아 착용감이 뛰어나지만, 혹한의 추위에는 보온성이 떨어진다. 요즘 나오는 캐주얼 장갑은 장갑을 벗지 않고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손가락 끝에 작은 전도성 패치를 부착해 편의성을 제공한다. 관련기사[더오래]올 겨울은 가죽 재킷으로 중년의 멋짐 뽐내보세요[더오래]키 작은 사람이 거위털 패딩?…겨울옷 핏 맞추는 법 [더오래]키 작은 중년 더 작게 보이는 스웨터 잘 입으려면 패션 디자이너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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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가로등이 하나둘씩…오후 5시에 하는 산책 맛
━ [더,오래] 전명원의 일상의 발견(22) 어딜 가든지 아침 일찍 갔다. 명품 사겠다고 오픈런하는 것도 아니면서 백화점에도 문 열자마자 들어갔고, 점심 약속은 무조건 식당 오픈 시간에 맞춰 잡았다. 이렇게 늘 무얼 해도 아침 일찍 시작하는 사람에게 오후란, 돌아오는 시간이고 마무리하는 시간이지 시작하는 시간은 아니었다.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서야 산책을 하러 집을 나섰다. 출근하는 삶을 살던 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의 동네 산책코스는 보통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을 넘지 않는다. 거의 같은 길을 산책한다. 산책의 즐거움을 알게 된 초기에는 이리저리 열심히 코스를 바꾸어 보았는데 늘 같은, 지금의 코스를 걸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 항상 같은 길을 걷지만 한 번도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길의 풍경은 늘 바뀌었고, 길을 걷는 나의 생각도 총천연색으로 다양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곧 해가 저물어올 시간에 산책을 나선 일은 거의 없는 듯하다. 걷는 동안 하늘이 조금씩 그 색을 바꾸고 있었다. 붉게 노을이 물들었고, 보라색에 가까운 빛으로 서서히 바뀌는 것을 보았다. 나의 산책 코스는 대로를 사이에 두고 타원형으로 도는 형태인데, 그렇다 보니 같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갈 때와 올 때가 사뭇 다르다. 같은 도로변인데도 방향만 바뀌면 또다시 새로운 기분이 드는 것이다. 오늘은 방향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도 느껴졌다. 해가 조금씩 저물고 있었으므로, 가는 길과 오는 길의 하늘색이 달랐고, 어두워지는 빛의 색감이 달랐기 때문이다. 해가 저물어왔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보랏빛으로 바뀌며, 어두운 푸른빛이 감돌 즈음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사진 전명원] 집이 점차 가까워오면서, 주변도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어둠이 섞인 푸른빛이었다. 느긋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걷고 있을 즈음 갑자기 눈앞이 ‘반짝’ 했다. 뭐지? 멈추어 서서 눈앞을 보았을 때, 가로등이 빛나고 있었다. 점차 사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므로 길가의 가로등이 점등되는 순간이었다. 주변 빛이 아직 남아있을 때 가로등은 반짝일 뿐이었지만, 곧 어둠이 내려오자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걷다 말고 가로등을 한참 바라보았다. 해가 뜨고, 머리 위에 태양이 있었다. 하루 종일 햇살이 좋아 거실 안쪽까지 깊숙이 볕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해가 저물어왔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보랏빛으로 바뀌며, 어두운 푸른빛이 감돌 즈음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집에 도착했을 즈음엔 이미 해가 지고 어두워졌지만 밤새 가로등은 빛을 낼 것이었다. 길을 밝히고, 주변의 나무와 풀들을 밝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비추겠지. 다시 해가 떠오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밤은 다시 밝게 빛나는 가로등으로 인해 또 한 번의 빛을 맞이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을 생각했다. 해가 저물었지만 아직 오늘이 끝난 것은 아니다. 남은 밤은 가로등 빛에 의지해 빛날 것이다. 내일 새벽이 오기 전까지 길을 비추어줄 가로등이 있으니 이 밤, 좀 더 멀리까지 걸어도 좋겠다. 관련기사[더오래]친구와 송년 시간 가졌던 용주사의 겨울 한낮[더오래]바다 건너 언니와 얼굴 마주보며 안부 나누는 세상[더오래]3시간에 만원…나무향기 가득한 숲속 나만의 서재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