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아파트 사는 사람이 부암동 집 보러오는 이유 [더오래]

    강남 아파트 사는 사람이 부암동 집 보러오는 이유 [더오래]

     ━  [더,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14·끝)     “언니, 20억원 있으면 사. 가격 정말 괜찮게 나왔어.” 부암동 주민센터 골목길 끝자락에 사는 동네 엄마가 한 말이었다. 시댁과 한 대문 안에 각각의 집을 지어 사는 그녀는 시부모가 아파 아파트에 살다 이사를 왔다고 한다. 주변에 단독주택에 사는 아이 친구들 집은 대다수 그렇게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를 낳고 한 사람의 손이 아쉬운 아이 엄마들이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고, 한 대문 안에 두 집으로 혹은 아래, 위층으로 나눠 사는 집이 많았다.   아이 친구네 엄마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새로 지은 단독주택에 넓은 마당이며 부암동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감탄을 했다. “우리 남편도 나도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사는 게 꿈인데….” 그 말에 윗집에 집이 나왔다고 한 것이다. 부암동에 집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 부암동에 매물이 있지만 적당한 위치에 좋은 풍경을 품은 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괜찮은 집은 거주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알음알음으로 직접 거래하는 게 많아 부동산까지 가는 경우도 드물다. 까다로운 분은 자기가 애착을 가지고 살던 공간에 올 다음 주인을 아주 섬세하게 따져서 정하기도 한다.   부암동에서 적당한 위치에 좋은 풍경을 품은 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괜찮은 집은 주민들 사이에서 알음알음으로 직접 거래하는 게 많아 부동산까지 가는 경우도 드물다. [사진 김현정]   그 친구가 정보를 준 게 4년 전이다. 이때만 해도 강남 아파트가 10억 내외할 때였다. 지금은 가격이 더 올랐지만 그 당시에는 풍경이 좋고 제대로 된 집을 구하려면 20억원 정도 들었다. 우리 주머니 사정에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코로나 전까지는 틈틈이 집을 보러 다녔다. 주변 엄마들 사이에서 괜찮은 집 정보를 듣고 소개를 받아 집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어느 골목길에 어떤 풍경과 어떤 집이 있는지 파악이 됐을 때는 코로나가 와서 더 이상 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힘들어졌다.   작년 부동산이 들썩이며 전국의 아파트 값이 올랐다. 특히 강남에 10억원 내외하던 아파트 값은 불과 3년 사이에 20억~40억원을 하게 됐다. 오랫동안 이 동네에서 산 분들은 허탈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1986년 우리 빌라가 지어졌을 때부터 살아온 어르신 중에 한 분은 이런 얘기를 해줬다. 비슷한 시점에 그의 여동생은 비슷한 돈으로 은마 아파트를 샀다고 한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부동산 가격 차이가 10배 넘게 차이가 난다고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짓는다.   이 분 뿐만 아니라, 평창동, 구기동 오랫동안 사셨던 분은 모두 지금의 상황이 다 황당하다는 얘기를 한다. 주택을 매입할 때마다 해도 강남 아파트 값보다 훨씬 비싼 돈으로 집을 샀는데 지금은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을 하나 팔아도 강남의 아파트 한 채 사기가 어렵다는 말을 한다.   강남 아파트를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단독주택을 사거나 전세로 들어오는 사람도 늘었다. 단독주택에 전세를 얻어 살아보고는 큰 매력을 느껴 집을 지으려 알아본다고 한다. [사진 김현정]   최근에 더 두드러진 재미있는 현상도 볼 수 있다. 아파트 값이 오르자 굳이 비싼 집에 살 필요가 있나 하는 분이 많아졌다. 우리 동네로 집을 보러 많이 온다고 한다. 주로 강남 대치나 방배동 살았던 사람들이 아이들이 대학 들어가고, 은퇴를 앞두고 우리 동네 부동산 정보를 얻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 동네 부동산을 운영하는 분들 에 따르면 강남 아파트를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단독주택을 사거나 전세로 들어온다.  최근에 아는 사람 몇 분도 부암동과 구기동으로 전입했다. 그중 한 분은 구기동 단독주택 3층 건물을 통으로 전세를 얻어 살아보고는 큰 매력을 느껴 본격 집을 지으려 한다고 한다.   부암동을 비롯해 구기동, 평창동 등 동네 주민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파트가 대저택을 팔아도 살까 말까 할 정도로 훨씬 비싼 게 말이다. 물론 세상의 흐름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학군이나 지하철 역세권, 인프라의 편리함을 무시할 수 없음에도 그러한 현상이 안타까워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풍경은 말할 것도 없고, 층간소음 신경 쓸 필요 없이 넓은 마당이 있는 2~3층 단독주택보다 비쌀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아마 집에 대한 다양한 욕구들이 발현되고 인구가 줄어 사교육 수요가 줄어들면 이 동네의 집값도 강남 아파트 값 못지않게 오르지 않을까. 관련기사[더오래]도룡뇽 산다는 부암동 계곡…능금마을서 만난 할머니 방공호용? 부암동 집집마다 지하실이 있는 뜻밖 이유 [더오래][더오래]장례 2번, 결혼 3번, 출생 3명…2년새 몰아친 관혼상제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2.25 11:00

  • [더오래]도룡뇽 산다는 부암동 계곡…능금마을서 만난 할머니

    [더오래]도룡뇽 산다는 부암동 계곡…능금마을서 만난 할머니

     ━  [더,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13)     드라마 ‘커피프린스’에 이선균 집으로 나오기도 했던 산모퉁이 카페를 끼고 쭉 걸어가다 보면 여시제가 나오고 백사실 계곡으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도롱뇽, 버들치가 산다는 1급수인 계곡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능금 마을이 있다. 부암동이 서울 도심에 시골이라는 별칭이 있지만 이 마을이야 말로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산속에 텃밭이 여기저기 있고, 오래된 집들이 띄엄띄엄 보인다. 우리 가족은 이 동네에 오면 만나는 할머니가 있다. 아이와 산책길에 마을에 들어섰다 만난 할머니를 몇 년째 만나고 있는 것이다. 여름철에 가면 직접 딴 오이를 몇 개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와 산책길에 마을에 들어섰다 만난 할머니를 몇 년째 만나고 있다. 여름철에 가면 직접 딴 오이를 몇 개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사진 김현정]   조선시대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이 중국에서 능금 씨를 가져다가 심었다 해서 능금 마을이라고 이름이 붙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는 이 마을은 임금에게 바치는 귀한 능금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살구, 자두 등도 키우는 과수원 마을이었다고 한다.   연희동에 살던 할머니는 26살 이 마을에 와서 76살인 지금까지 40년 동안 살았다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던 마을은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려 왔다’ 던 ‘김신조’가 내려오고 나서 한 동안 시끄러웠다고 한다. 어려운 시절, 방 한 칸 만들어 집이라고 살면서 꽤 많은 가구가 있었는데, 김신조 사건 이후 서류상으로 땅이 아닌 사람은 다 내쫓겼다고 한다. 근처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민감한 지역이 되면서 군사보호구역 및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주민의 재산권이 제한되고 지금과 같은 마을이 된 것이다. 할머니는 “지금은 25가구 정도만 남았는데 이제 다들 나이가 들어 한 사람씩 가”라고 말한다. 얼마 전에도 능금마을에서 태어나 여기서 계속 살았던 80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자식들은 다 강남에 살아 빈집으로 남겨뒀다 한다. 그렇게 빈집이 몇 집이 있는데 자식들이 팔지는 않고 가끔 텃밭만 몇 가지 심어 두고 왔다 갔다 한다고.   5살인 우리 딸은 할머니만 사는데 왜 이렇게 차가 많은지 물어본다. 그러고 보니 자동차가 5대 정도 보인다. “할머니 차는 없고, 저 위에 사는 집 차도 있고, 저 아랫집 차도 있어. 저 차는 요 앞에 산 위에 있는 집 차고” 설명해주신다. 할머니들은 텃밭에 농사를 짓고 오가는 등산객에게 팔기도 하고, 아랫집 할머니는 도로가에 두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팔기도 한다고 했다. 부암동 주민센터 옆에 매일 자리 잡고 철마다 나오는 야채나 나물을 파는 할머니 세 분이 능금마을에서 온다는 얘기를 들은 참이었다.   70-80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다 묻어있는 것 같다. 한 사람 인생에 대하드라마 한 편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진 김현정]   할머니 집 앞에는 평상이 하나 놓여있고 옆에는 계곡이 흘렀다. 우리는 평상에 나란히 앉아 오이를 서걱 서석 잘라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자라고 싶은 데로 꼬부라진 오이는 수분이 제법 꽉 차서 맛이 좋았다. 70~80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다 묻어있는 것 같다. 한 사람 인생에 대하드라마 한 편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이렇게 생겨먹어도 우리 집안의 ‘유’씨에 유관순 열사도 있고, 나의 큰 아버지가 초대 국회의원을 하며 헌법을 만들어 놓으셨지”로 시작해 지금으로는 생각지도 못할 일들을 묵묵하게 뱉어내신다. “우리가 살 때는 마마나 홍역이나 유행병도 길게 가봐야 6개월이었는데 코로나는 2년을 가니, 원 참…” 하며 요즘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한 마디가 뼈가 있다.   한참을 앉아 수다를 떨다가 일어서는 김에 “할머니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었고 오이 좀 사 갈게요” 했더니 어디서 잔뜩 들고 오신다. “식구가 3명이라 다 못 먹어요, 조금만 주세요”해도 “다 들고 가”하며 바구니에 있던 오이를 다 털어내신다. 여기가 서울인가 착각이 든다. 어디 인심 좋은 촌구석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인사를 여러 번 하고 올라온다. 능금마을과 끝자락에 영화 ‘은교’를 촬영한 곳이 있다. 능금마을의 풍경과 좀 동떨어져 보이는 이 집은 제법 마당이 넓고 집도 번듯하다. 지난번 할머니가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크게 하는 분이 사는 곳이라 했던 것 같다. 관련기사여름엔 시위대, 겨울엔 빙판길…부암동 더는 아름답지 않았다 [더오래][더오래] 몸속에 저장된 자연주의 출산의 기억[더오래]장례 2번, 결혼 3번, 출생 3명…2년새 몰아친 관혼상제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2.23 11:00

  • 방공호용? 부암동 집집마다 지하실이 있는 뜻밖 이유 [더오래]

    방공호용? 부암동 집집마다 지하실이 있는 뜻밖 이유 [더오래]

     ━  [더,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12)   우리 빌라에는 집집마다 지하실이 있다. 그러고 보면 부암동, 구기동, 신영동, 평창동 집을 보러 가면 집마다 지하실이 하나씩 있었다. 지하실 크기도 제법 커서 아파트 알파룸 두 세배 규모로 짐도 넣을 수 있고 서재나 공부방으로 쓰는 집도 있었다.   우리 빌라를 분양할 당시부터 살았던 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80년대 후반 부암동, 구기동, 평창동에 ‘중앙하이츠’, ‘현대’ 등등의 이름을 달고 빨간 벽돌의 빌라가 많이 지어졌다고 한다. 빌라마다 지하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만들어진 고급빌라는 지하실을 운전기사 대기실로 썼다고 한다.   우리 동네 빌라에는 집집마다 지하실이 있다. 지하실은 다용도 공간으로 쓰기도 하고, 바를 만들거나 당구대를 놓아 사람을 불러 파티를 하는 집들도 봤다. 어느 집이나 지하실은 유용했다. [사진 김현정]   90년대에 들어서 일부 집은 지하실에 싱크대를 넣고 화장실을 만들어 상명대학교 대학생 자취방으로도 내주고, 전세로 집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지하실에도 주방으로 썼을 싱크대와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이후에는 대다수 창고로 쓰면서 필요한 짐을 두거나 다용도 공간으로 쓴다고 한다.   단독주택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지하실이 있다. 다용도 공간으로 쓰기도 하고, 바를 만들거나 당구대를 놓아 사람을 불러 파티를 하는 집들도 봤다. 어느 집이나 지하실은 유용했다. 특히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미술 재료나 작품을 보관할 수도 있어 요긴했다. 물건을 판매하거나 재료를 저장해야 하는 자영업자도 지하실은 중요했다.   그래서인지 지하실을 보고 집을 결정했다는 사람도 많았다. 때로는 페인트칠을 하고 공간을 개조해 책을 읽거나 공부방으로 쓰는 집도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집도 쓰지 않는 아이 물품이나 미리 산 용품들을 임시로 두기에 좋았다.   '방공호처럼 전쟁이 났을 때 대피하는 곳 아닌가'라고 의심했지만, 언덕길에 건물을 짓다 보니 기울기가 있는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지하 공간을 만들어진 것이었다. [사진 김현정]   어느 날 나는 궁금해졌다. 도대체 지하실이 왜 있는 걸까. 청와대 근처라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공격을 받는 공간이지도 않은가. ‘방공호처럼 전쟁이 났을 때 대피하는 곳 아니야?’라는 나름의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는 그 의심은 더 구체적으로 변했다. 그래, 이건 분단의 아픔이 드러나는 공간이야. 종종 남편에게 생생한 눈빛으로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했다. 아니, ‘김신조’도 이 동네로 내려왔잖아. 그때 법으로 지하실을 반드시 만들라고 하지 않았을까. 별소리를 다 하며….   그런데 그 이유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궁금한 나머지 구청 건축과에 문의를 해봤다. 지하실이 있었던 이유는 산을 따라 집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언덕길에 건물을 짓다 보니 기울기가 있는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지하 공간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친절하게 알려줬다. 나의 어설픈 추측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관련기사[더오래]장례 2번, 결혼 3번, 출생 3명…2년새 몰아친 관혼상제 [더오래] 몸속에 저장된 자연주의 출산의 기억여름엔 시위대, 겨울엔 빙판길…부암동 더는 아름답지 않았다 [더오래]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2.18 11:00

  • [더오래]50만 달러 있으면 미국 이민 가는 기회 곧 생긴다

    [더오래]50만 달러 있으면 미국 이민 가는 기회 곧 생긴다

     ━  [더,오래] 국민이주의 해외이주 클리닉(46·끝)     전문가들이 2022년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경제전문 종합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제 전문가 69명에게 올해 1분기 전망치를 조사했습니다. 이들은 오미크론 바이러스 확산, 노동력 부족과 인플레이션으로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10월 조사 때보다 1.2%포인트 낮춘 3%로 전망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또한 올해 미국 경제 실질 성장률 전망치를 작년 10월 5.2%보다 1.2%포인트 낮은 4.0%로 낮춰잡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제롬 파월 의장이 이끌고 있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과감하게 추진하고 있는 금리인상은 미국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됩니다. IMF는 또한 한국의 2022년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10월 전망보다 0.3%포인트 낮춘 3.0%로 수정했습니다. 이 전망치는 일본의 예상 경제성장률 3.3%보다 0.3%가 낮아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최저치라고 합니다. 한국의 대내외 경제환경에는 오미크론 확산, 물류대란, 유가와 원자재값 급등, 환율 불안 등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녹록잖은 환경을 뒤로하고 한국 기업들은 공격적으로 미국에 진출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전문가들이 연달아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오미크론 바이러스 확산, 과감하게 추진되고 있는 금리 인상 등이 그 이유다.   한국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지금까지 한 해 평균 100억 달러 이상 공격적인 미국 투자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업종별로는 금융업과 보험업이 29%를 차지하고, 이어 부동산 17%, 제조업과 도소매업이 각각 16%라고 합니다. 앞으로는 미국 정부와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제조업 분야의 비중이 더 커질 전망이라고 합니다. 또 예전에는 주식이나 채권 같은 전통적 투자를 중시했다면,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사모펀드, 헤지펀드, 부동산 등에 더욱더 공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에 미국 내 한국인 기술개발자와 핵심인력 그리고 2차 협력사업장이 이들 분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미국 내에서도 지난해 6월 30일 이후로 중단된 미국 투자이민(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을 하루라도 빨리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제까지 대부분의 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은 대체 투자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1992년부터 현재까지 370억 달러(대략 45조원)가 미국으로 유입되었습니다. 더욱이 미국의 기업 입장에서는 은행 금리보다 훨씬 저렴하게 투자이민 자금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비영리 산업 무역 협회인 IIUSA(Invest In USA)가 있습니다. IIUSA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의회가 EB-5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의 재승인을 진행 중이며, 2월에 프로그램이 재개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합니다. 아주 반가운 뉴스입니다. EB-5 프로그램은 지난해 10월 1일 미국 연방 정부 회계연도가 시작될 때 의회가 ‘임시예산(CR, Continuing Resolution)’을 통과시키지 않았다면 재승인했을 것입니다.   미국 의회는 지난해 12월 3일 ‘2022년도 통합 예산법안’을 다시 한번 통과시킬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과 공화당이 동의하지 않았기에 두 번째 임시 예산안이 처리되었는데, 오는 18일 끝나게 됩니다. 회계연도 1998년에서 2019년 사이에 해마다 제정된 임시예산의 기록을 살펴보자면, 각 해의 최종 통합 예산에 동의하기 전 의회에서 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민 전문가들은 올해 11월 중간선거가 있는 점을 고려해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임시예산이 이번 회계연도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1월 중간선거에서는 임기 2년의 연방 하원의원 435명 전원과 임기 6년의 연방 상원의원 34명을 선출합니다. 따라서 미국 의회가 이달 18일을 전후해 통합예산안을 전격 통과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미국 투자 이민을 원한다면 투자금 50만 달러의 자금출처에 소명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출처 구성에 따라 잘못된 서류 제출로 인해 투자자 가족의 이민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사진 pixabay]   현재 미국 이민국(USCIS : United States Citizenship and Immigration Services)에서는 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만을 위한 법안을 추진 중입니다. 이 법안에서 논의되는 투자금액은 70만~80만 달러 안팎이 될 것이라고 현지 전문가들은 예상합니다. 그렇게 되면 2022년 통합 예산안이 통과돼 미국 이민국의 금액 인상 법안이 나오기 전에 미국 투자 이민을 50만 달러로 진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됩니다.   이와 관련해 제가 있는 사무실로도 투자자의 문의 전화가 많이 오는데, 가장 많은 질문이 50만 달러 투자 이민을 위해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는 지입니다. 이민 변호사의 입장에서 우선 미국 이민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자금출처에 대한 구체적인 상담을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하라고 말씀드립니다. 예를 들어 같은 50만 달러의 투자금이지만 출처에 따라서 불필요한 서류나 잘못된 서류 제출로 후에 투자자 가족의 이민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관련기사[더오래]미국이민 도전해 볼만한 핫한 직군 뭐가 있을까?[더오래]사업과 영주권 두마리 토끼 잡는 ‘EB-5’ 직접투자[더오래]미 투자이민 ‘50만 달러 프로그램’ 재가동 움직임 국민이주 이유리 미국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2.09 11:00

  • [더오래]미국이민 도전해 볼만한 핫한 직군 뭐가 있을까?

    [더오래]미국이민 도전해 볼만한 핫한 직군 뭐가 있을까?

     ━  [더,오래] 국민이주의 해외이주 클리닉(45)   코트라의 2022년 미국 진출전략 리포트에 따르면 2022년 미국의 GDP는 4.9% 성장이 예상되고 코로나19 경기 침체에서는 완전히 탈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경제 상황과는 다르게 미국의 노동 통계국 (Bureau of Labor Statistics)에 따르면 코로나의 영향으로 작년 12월 기준 310만명이 직장을 찾지 못하거나 은퇴했다고 한다. 이렇게 은퇴 한 사람들은 미국 경제 부흥에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다시 잡마켓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2022년 주요 이슈를 살펴보면 자국 산업 보호 정책 및 동맹국과의 공급망 협력 강화 그리고 탄소 중립 정책이 본격화 된다는 것이다. 관련 분야로는 반도체, 전기차 및 배터리 그리고 IT 분야를 꼽을 수 있다. [사진 pixabay]   특히, 코로나로 인해 자녀들이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여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여성 인구도 이중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어, 미국 잡마켓에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미국의 이러한 위기의 노동 시장에서 기회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칼럼에서는 미국에서 한국 출신이 경쟁력이 있는 직종에 대해 알아보고 이런 직종 근무자들이 고학력독립이민(National Interest Waiver, NIW)을 통해 미국 영주권을 받고 미국 잡마켓에 진출하는 부분을 다뤄보려고 한다.   미국의 2022년 주요 이슈를 살펴보면 자국 산업 보호 정책 및 동맹국과의 공급망 협력 강화, 탄소 중립 정책 본격화다. 이와 관련되는 분야로는 반도체, 전기차 및 배터리, IT 분야를 꼽을 수 있다.   특히 탄소 중립과 관련해서 바이든 행정부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절반으로, 2025년까지 전력 부문의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2050년까지 대중교통 부문의 탄소중립을 위해 전기 스쿨버스 도입을 위한 50억 달러 전기 대중교통 버스 도입을 위해 50억 달러 지원을 예정하고 있다. 주별 정책을 살펴보면 캘리포니아 주는 2035년까지 신차와 트럭의 배기가스 배출량을 제로로 설정하고 있고 캘리포니아 주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하기 위하여 미국 자동차 빅 3사는 2030년까지 전체 생산치의 40~50%를 전기차로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미정부가 그린뉴딜 정책과 자국 위주 공급망 재편을 강조하면서 미국에서 전기차 산업에 가장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패권경쟁 과정에서 전기차·배터리를 더욱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으로 미국 내 자동차 시장이 이동함과 동시에 전기차의 중심이 될 배터리 생산과 관련한 업종이 미국 내에서는 핫할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이 미국의 주요 완성차 업체들과 협업 중이다.   미국의 전기차 배터리 분야의 국내기업의 시장점유가 높고, 국내에서 이런 분야의 학위, 연구, 특허, 경험 등이 있다면, NIW를 통해 영주권을 취득한다면, 미국의 잡마켓에서 환영 받을 수 있다. [사진 pixabay]   북미 전기차 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성장하는 시장으로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북미 전기차 시장 규모는 지난해 46GWh에서 2023년 143GWh, 2025년 286GWh로 가파르게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만 58%에 달한다.   우리나라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작년 말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의 발표 내용을 분석한 결과 2025년까지 미국 내 건설 예정인 대규모 배터리 생산설비 13개 중 11개가 국내 배터리 3사 관련 설비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11건 중 8건은 이미 지난해 투자 발표가 이뤄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1개 배터리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가 예정대로 이뤄질 경우 미국 내 전체 배터리 생산설비 중 국내기업의 설비 비중이 현재 10%대에서 70%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위의 통계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 기업들이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 우위를 차지하고 있고, 이 분야는 미국국익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로 이민국 심사관에게 어필할 수 있다. NIW의 경우 신청자의 예외적인 역량을 증빙함으로써 미국 내 고용제안에 대해 면제를 받고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카테고리로 최근 신청 자격에 관한 문의가 늘고 있다. 국내에서 이런 분야의 학위, 연구, 특허, 경험 등이 있다면 미국의 잡마켓에서 환영받을 수 있다.   관련기사[더오래]사업과 영주권 두마리 토끼 잡는 ‘EB-5’ 직접투자 [더오래]미 투자이민 ‘50만 달러 프로그램’ 재가동 움직임 [더오래]새 이민법 제정돼도 기존 투자자 보호하는 '그랜드파더' 김민경 국민이주 미국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2.02 11:00

  • [더오래]장례 2번, 결혼 3번, 출생 3명…2년새 몰아친 관혼상제

    [더오래]장례 2번, 결혼 3번, 출생 3명…2년새 몰아친 관혼상제

     ━  [더,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11)   임신 6개월쯤 오랫동안 암으로 치료를 받고 계셨던 형님이 돌아가셨다. 남편이 세세하게 애기를 하지 않아 그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가실 줄 몰랐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소식을 접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형님을 둘러싸고 모두들 울고 있었다. 삶은 아이러니 하다. 누군가 죽는 순간에도 나는 또 태어날 아기를 배속에 안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또 결혼을 한다.   동생이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나보다 10살이나 어렸던 여동생은 아빠의 빈자리가 컸는지 만나던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동생은 내가 결혼한 그 해 12월에 결혼을 했다. 동생 결혼식장에서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정작 나는 아빠 없이 씩씩하게 결혼을 했는데 동생이 결혼을 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딸이 결혼하면 이런 느낌일까. 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 엄마도 아니고 언니도 아닌 중간 역할을 해가며 동생에게 마음을 줬었는데, 그 아이가 커서 결혼을 한다니 마음이 복잡했다. 게다가 난 딸을 임신하고 있었고 참 인생 모를 일이다 싶었다.   우리는 때때로 지나간 사람과 삶들을 추억하고 아파하고 털어내다가 다시 붙잡고 그러며 새로운 생명을 맞아들이고, 그렇게 삶은 계속 된다. [사진 pxhere]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동생은 결혼한 후 얼마 뒤 임신했다. 나보다 몇 달 앞서 결혼한 동서, 나, 나의 여동생은 같은 해에 아이를 차례로 낳았다. 1월에 동서가 5월에 내가, 그리고 9월에 여동생이 아이를 낳은 것이다. 2년 사이 우리 부부는 양가 관혼상제를 몰아쳐서 했던 것 같다. 장례식 2번, 결혼식 3번, 그리고 새로운 생명 3명이 태어나는 걸 겪었다. 감정과 생각을 정리할 여유도 없이 지나갔던 일들에 정신도 없었지만, 사는 게 참 그랬다. 살아내는 게 참 그렇다고 해야 하나.   몰아쳤던 시간들이 정리가 되지 않아 그 시기를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울렁였다. 묵묵히 서서 그것을 지켜보고 정리하기도 전에 다음 삶의 과제가 있고 풀어야 하고, 또 다시 그 다음 과제가 오고 역할을 해야 했던 그 때를 그저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었음을…. 그 시간과 그 때의 나를 애도하고 떠나 보내준다. 꽤 오랫동안 지켜보고 묵상하고 물어보고 구하며 안아주고 보내줬다.   어떻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자식과 깊이 정 든 엄마라는 ‘나’가 있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건 연애하는 상대와도 달랐고, 부모나 형제와 가지는 마음과도 달랐다. 아이와 시간을 가지고 부대낄수록 사랑은 어떻게 더 깊어만 갔다. 문득, 우리 시어머니는 무슨 마음으로 살까. 암으로 첫째 딸과 둘째 딸마저 잃어버린 어머니 가슴은 헤집어 있을까. 맨 정신으로 살기 힘든 어머니는 약이 없으면 잠을 잘 못 주무셨고, 심장이 벌렁 벌렁거려 수술도 하셨다. 어린 자식을 두고 먼저 간 자식을 보는 엄마의 심정은 어떨까.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린 밥을 먹고 웃고 떠들며 지낸다. 때때로 지나간 사람과 삶들을 추억하고 아파하고 털어내다가 다시 붙잡고 그러며 새로운 생명을 맞아들이고, 그렇게 삶은 계속 된다.   관련기사[더오래] 몸속에 저장된 자연주의 출산의 기억여름엔 시위대, 겨울엔 빙판길…부암동 더는 아름답지 않았다 [더오래][더오래]하늘나라 아빠가 보내준 선물…아이를 가졌다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28 17:34

  • [더오래]사업과 영주권 두마리 토끼 잡는 ‘EB-5’ 직접투자

    [더오래]사업과 영주권 두마리 토끼 잡는 ‘EB-5’ 직접투자

     ━  [더,오래] 국민이주의 해외이주 클리닉(44)   해외로 진출한 기업이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경우를 ‘리쇼어링(Reshoring)’이라고 한다. 고향을 떠나 먼 곳에 있던 연어가 어릴 때 살던 곳으로 유턴한다고 하는 이 '리쇼어링'이 가장 두드러진 나라가 미국이다. 국내에서는 '연어 프로젝트' '기업 유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2013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시절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강하게 밀어붙인 이 '리쇼어링'은 최근 들어서는 글로벌 트렌드로 떠올랐다.   미국 제조업체들의 '기업 유턴'은 영국, 독일, 프랑스 등도 두드러졌다. 코로나 확산 이후 세계적인 공급망 병목현상이 확산됨에 따라 생산시설을 소비시장에 가까이 두는 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때도 그렇고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 때도 미국 정부는 자국 제조업체들의 '리쇼어링'을 유도하고 있기도 하다.   ‘리쇼어링’은 해외로 진출한 기업이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시절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강하게 밀어붙인 '리쇼어링'은 최근 들어 글로벌 트렌드로 떠올랐다. [사진 pixabay]   한국 정부도 다양한 혜택을 내세우면서 해외 진출 기업이 다시 국내로 유입하기를 바라지만 미국이나 유럽과 마찬가지이다. 산업통산자원부의 2021년 결산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유턴은 2020년에 견주어 2개가 늘어난 26개로 누적 100개를 돌파했다고 한다. 특히나 미국에 진출한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포스코, 한화, 코오롱 등 굵직한 대기업을 비롯해 우리은행, 하나은행,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금융사 현지 법인장 및 사무소장과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2022년에 일제히 투자를 대폭 늘리겠다고 밝혔다. 24개 기업 중에 14곳(58.3%)은 올해는 지난해에 견주어 10% 이상 투자를 늘리고, 6곳(25%)은 5%를 확대하겠다고 각각 답했다고 한다. 전체 기업의 83%가 미국 투자 확대를 발표한 것이라 코로나 시대의 흐름 속에 매우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라 할 수 있다.   산업자원부의 지난해 해외 진출 기업 가운데 국내가 아니라 미국에서 투자를 늘린다고 하는 것은 미국 경제에 대한 기대감이 녹아 있는 것. 아무래도 기업들은 국내보다는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내에 비해 규제가 적고 세금 감면, 국가차원의 재정 보조 및 기업 친화적 노동법 등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인 이유로 국내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및 개인 사업자들도 한국을 떠나서 미국에서 사업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필자가 일하는 투자이민 회사의 사무실로 미국 사업비자(E비자)나 주재원 비자(L비자)에 관한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문의가 많은 것으로 미국에 사업체를 차리면서 영주권 취득도 가능하냐는 점이 압도적으로 많다.   먼저 이에 대한 답변을 드리자면, 미국 이민제도 중에서 '미국 투자이민(EB-5)의 직접 투자'라는 카테고리부터 잘 살펴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이 제도는 외국인 투자를 통한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이민법에 따라 1990년에 만들어진 영구적 성격의 연방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 근로자를 위해 최소 10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에 투자하면 투자자와 배우자 그리고 21세 미만 자녀들은 한꺼번에 미국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에 사업체를 열고 순차적으로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다. 첫째 투자자 가족을 모두 합쳐서 이민법상 요구되는 최소 기준금액의 투자가 필요하다. 둘째로 새로 연 미국 사업체에서 2년 이상 미국인 근로자 정규직 10명 이상을 계속해서 창출해야 한다.   미국에 사업체를 열고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이민법상 요구되는 최소 기준금액자가 필요하며 2년 이상 미국인 근로자 정규직 10명 이상을 계속 창출해야 한다. [사진 Van Tay Media on Unsplash]   현재 미국 이민법상 최소 투자 금액은 50만 달러인데, 고용촉진 지역인 TEA(Targeted Employment Area)에서 가능하다. 그 외의 지역에는 100만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 고용촉진 지역이 되려면 전국기준 실업률에 견주어 50% 이상이거나 혹은 미국 이민국에서 지정한 '개발이 필요한 지역'이어야 한다. 고용창출과 관련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직접투자의 경우 새로 설립된 상업기업(NCE, New Commercial Enterprise)이 새롭게 창출한 고용창출만을 인정한다. 그리고 연방조세법을 관할하는 미국 국세청(IRS : Internal Revenue Service)의 급여 및 세금 신고서(W-2)를 사용하는 주 35시간의 근로 요구하는 정규직이 필수 요건이다.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는 지름길로 직접 투자를 선택할 때 주요한 결정 요소로는 새로운 영리 기업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해야 한다는 점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해당 기업에 대한 직접투자가 진정으로 필요하고, 적절한 수와 유형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 직접 투자하는 유형은 크게 창업, 프랜차이즈, 기존 사업체 인수의 세 가지로 나뉜다. 여기서 주의하실 점은, 미국에 있는 부동산을 사서 임차료를 받는 방식 등은 직접투자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자, 배당금, 연금, 저작권 수익, 임차료 등은 연방세법상 수동적 소득으로 보기 때문에 직접 투자 대상이 되지 못한다.   흔히 미국 투자이민의 직접투자 대상으로 레스토랑, 소매 및 도매 무역 사업들이 상당히 큰 비중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서비스업, 농업 제조업, 기술 사업에도 적합한 것이 직접투자다. 또한 미용실이나 편의점과 같은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지점을 설립하거나 기존 비즈니스 기업을 인수할 때와 확장 투자에도 유용하기도 하다.   또 하나 유의하실 점은, 부실 사업에 대한 투자의 경우 고용 창출에 포함되려면 직접 투자로 인해 창출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문제가 있는 비즈니스 투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미 이민국(USCIS : United States Citizenship and Immigration Services)에서 더욱 강도 높은 조사를 받는다는 것도 유념해야 할 사항으로 말씀드리고 싶다. 이와 함께 미국 투자와 관련한 비즈니스 모델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이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인력 현황 등 사업 계획에 명시된 것에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인 비즈니스에 대한 투자도 추천한다.   관련기사[더오래]미 투자이민 ‘50만 달러 프로그램’ 재가동 움직임 [더오래]새 이민법 제정돼도 기존 투자자 보호하는 '그랜드파더'[더오래]미국 투자이민 내달 진짜 재개될까…두가지 시나리오 이유리 국민이주 미국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26 11:00

  • [더오래]건축사 사무소, 건축 전공자도 기피하는 페이퍼 컴퍼니

    [더오래]건축사 사무소, 건축 전공자도 기피하는 페이퍼 컴퍼니

     ━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54)     건축설계 업무에서도 어느새 분업화가 되었다. 과거에는 건축사 사무소에서 건축주와 디자인에 관해 협의하고 디자인이 결정되면 건축도면과 함께 구조도면을 그렸다. 인허가 대행도 하고 시공도면이 나오면 공사비 산출을 위한 견적도 건축사사무소 직원들이 했다. 견적서를 만들 때는 여관을 잡아서 몇날 며칠 밤을 새우면서 작업했다. 인허가를 신청하거나 완료된 도면을 납품할 때는 밤새워 청사진을 구워내기도 했다. 착공하면 현장 감리를 하고 사용검사 관련 업무도 건축사 사무소에서 수행했다. 구조해석, 토목설계, 기계설계, 전기, 소방설계, 조경설계 등은 협력업체에 의뢰하고 취합해 최종 납품과 책임은 건축사 사무소에서 진다. 한마디로 건축설계의 총괄 지휘 역할을 건축사 사무소가 수행했다.   건축 설계업무가 세분화하면서 건축사 사무소의 업무도 축소되었다. 직원들은 현장에 나갈 일도 거의 없어 구조에 대한 지식이 약해졌다. [사진 pxhere]   이렇게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완료 단계까지 많은 분야의 업무를 수행하는 건축사 사무소 직원들은 전반적인 건축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건축 설계업무가 세분화하면서 건축사 사무소의 업무도 상당 부분 축소되었다. 특히 과거에 구조기술사사무소는 구조해석과 구조계산이 주 업무였으나 요즘에는 구조도면을 그려 건축사사무소에 납품하는 업무가 더 비중이 크다. 이렇게 구조기술사 사무소에서 구조도면을 작성하면 구조계산서를 근거로 건축사 사무소에서 구조도면을 그리는 것 보다 정확하고 책임소재도 명확해진다.    문제는 프로젝트 전체를 지휘해야 하는 건축사 사무소 직원들이 구조에 대한 지식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감리만 전문으로 하는 직원이 있는 건축사 사무소의 경우는 설계업무를 하는 직원이 현장에 나갈 일도 거의 없다. 그 결과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직원이 현장에서 발생하는 시공 상의 문제를 잘 알지 못하고 도면을 작성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이다. 특히 감리만 전문으로 하는 감리회사가 등장한 이후에는 건축사 사무소 직원은 아예 현장에 나갈 일이 없게 되었다.   또 다른 문제는 캐드와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도면을 양산하면서 공장에서 도자기를 찍어내는 것처럼 건축도면도 그렇게 되었다. 캐드 작업에서는 복사나 반복 작업이 너무 쉽다. 예를 들면 공사에 필요한 상세도를 새로 그리지 않고 어느 건물이나 적용해도 되는 공통 도면을 복사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건축물 주요 부위의 디테일도 새로 연구할 필요가 없다. 구조도면도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철근의 배열, 이음이나 정착에 대한 공통 도면이 있어 그냥 복사해 도면에 끼워 넣는다. 예를 들면 바닥 슬라브에 철근을 배열하는 구조 도면의 경우 손으로 그릴 때는 적정 간격을 찍어가면서 철근 한 가닥 한 가닥을 일일이 그렸다. 바닥판 상부와 하부에 배열되는 철근의 굵기와 간격을 머릿속에 훤히 꿰뚫고 있어야 도면을 작성할 수 있었고 현장에 나가면 철근 공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속도가 중요해진 건축설계 분야는 통합적인 설계도면을 해석하고 지휘할 인력 양성이 어려워졌다. [사진 pxhere]   건축설계 분야의 분업화가 진행되면서 이제는 건축도면만 전문적으로 작성하는 업체도 많이 생겼다. 대형 사무소 중에는 수주에만 집중하고 대부분의 건축도면 작성은 도면 전문 작성업체에 의뢰하기도 한다. 특히 아파트 설계의 경우는 건축사 사무소보다 도면 작성을 전문으로 하는 협력업체가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고 상세도면도 훨씬 잘 그린다. 아니 이제 도면을 제대로 그릴 수 있는 직원을 보유하지 못한 건축사 사무소도 많다. 건축설계에 집중하기보다 여기저기 협력업체에 일을 의뢰하고 독려하고 관리하는 일이 주 업무가 되기도 한다. 건축설계 분야에서의 페이퍼 컴퍼니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대로 일을 하는 건축사 사무소는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건축 전공자는 이제 건축 설계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유망한 건축 전공자가 연봉도 적고 업무 성취도도 낮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불확실한 건축사사무소를 선택하지 않고 대기업 개발부서나 금융권으로 진로를 택하는 이유다.   건축설계 분야는 이제 세분화와 더불어 속도전이 되었다. 관공서 발주에서는 공사도 그렇지만 설계의 경우도 당초 정해진 설계기간을 초과하면 그에 따른 지체보상금이 있다. 설계기간이 늘어나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디자인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 도면작성도 전문 업체에 의뢰해 버린다. 작금의 건축사 사무소는 오케스트라처럼 통합적으로 설계도면을 읽고 해석하고 지휘할 수 있는 인력 양성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 관련기사[더오래]건물 외벽에 설치된 계단 용도 알고 보니[더오래]윗부분이 사선으로 꺾인 흉물 건물 많은 이유 알고보니건축상도 받은 벽돌집 누수…내벽 뜯었더니 말문이 막혔다 [더오래] 프리랜서 건축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18 09:00

  • [더오래]집에서 만들어 먹던 칼국수, 지금은 왜 사먹어야 할까

    [더오래]집에서 만들어 먹던 칼국수, 지금은 왜 사먹어야 할까

     ━  [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105)   맛있는 귀농귀촌 - 면요리(2)   겨울이다. 해가 조금은 길어진 것 같아도 저녁 5시 반만 넘어가도 이내 캄캄해지니 겨울답다. 마스크를 어디를 다니기도 힘드니까 집으로 일찍 들어 가는 것이 일상이다. 아니면 아예 안 나오는 이들도 많다. 집에 들어 가면 무엇을 할까 궁리하면서도 마을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역시나 할 것은 먹는 것 밖에 없다.    근래에 전국 각지에서 면요리를 되새기면서 생각한 것이 세상에는 먹을 것이 참으로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먹을 것이 많으니 더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경기문화재단의 강헌 대표이사가 어느 팟캐스트에서 지나치듯 한 말이 기억이 난다. ‘한번 지나간 끼는 다시 돌아 오지 않는다’ 참으로 명언이다. 겨울이라고 한끼를 그냥 저냥 지나칠 수는 없다.   칼국수 국물 재료로는 메생이 ,굴 , 팥, 해물,, 도토리,, 건진, 심지어 기러도 있다. 기러기 칼국수는 충남 예산에 있다.[사진 pixabay]   겨울에는 무엇을 먹을까. 역시 뜨끈한 국물이 있는 국밥이 있고 시원한 메밀묵에 찹쌀떡이 생각난다. 그리고 겨울은 진짜 맛있는 수산물이 올라오는 계절이니 방어부터 시작해 온갖 생선회와 더불어 굴, 바지락, 매생이 대게를 즐길 수 있다. 시장에 가면 딸기와 귤과 유자, 감이 눈에 띈다. 겨울에는 홍시와 곶감은 또 어떻고. 말이 길어진다. 그렇지만 간단하게 떼워야 하는 점심에는 역시 국수가 제격이다.    연초에 귀농인 클럽에서 시작한 점심 메뉴는 칼국수였다. 신년 하례식 핑계로 단 4명이 모였다. 4명이 모인 이유는 당당하게 식당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4명이기 때문이다. 그 네명이 모여서 한 일이라고는 고작 점심을 뭘로 할까였다. 만장일치로 칼국수가 결정이 되었다. 다들 어제 술 한잔씩 했나 보다.   날이 추울 때는 칼국수다. 면을 반죽하고 밀어 넓적하게 만들고는 접어서 칼로 쓱쓱 썰어낸다. 여기에 육수를 무엇을 내느냐와 무엇을 잔뜩 넣느냐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다. 바닷가는 조개, 멸치, 바지락으로 육수를 내고 내륙은 닭과 사골, 양지로 육수를 낸다. 이도저도 없으면 고추장과 된장으로만 맛을 낸다. 장칼국수가 그렇다.네명이 앉아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면서 서로 한 마디씩 하는데 다들 온갖 칼국수를 먹어 봤단다. 메생이 칼국수, 굴 칼국수, 팥 칼국수, 해물 칼국수, 도토리 칼국수, 건진 국수가 나오더니 심지어 기러기 칼국수도 있단다. 기러기 칼국수는 충남 예산에 있다. 참고로 이 기러기는 철새로 날아 오는 기러기가 아니라 과거에 식용으로 잠시 육성했었던 기러기과의 새라고 일행 중 한명이 덧붙였다. 그는 생물학과 출신이다.   칼국수는 칼로 썰어서 칼국수라고 이름이 붙여졌고 국수의 원조 격이 아닐까라고 생물학과 출신이 말하니 다른 한명이 아니라고 한다. 칼도 없었을 때는 반죽을 그냥 찢어서 먹었을 것이니 국수의 원조는 수제비라고 주장한다. 그렇다. 수제비. 세상의 모든 칼국수 이름에 수제비를 대입하면 다 어울린다. 그는 또 제면기가 국수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칼국수보다 조금 더 세련된 것은 분틀 또는 제면기에서 나온 국수다. 제면기에서 면을 가늘게 뽑아 내면서 본격적으로 멸치국수, 잔치국수, 메밀막국수, 냉면이 나올 수 있었다. 짜장면, 짬뽕, 우동, 스파게티도 마찬가지다. 몸으로 누르는 분틀이 유압식으로 뽑아내는 제면기로 발전하면서 대량으로 면이 제조되어 밖에서 사 먹는 면요리가 발달하기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라면이 국수 시장을 제패했다고 봐야 한단다.   날이 추울 때 생각나는 게 칼국수다. 면을 반죽하고 밀어 넓적하게 만들고는 접어서 칼로 쓱쓱 썰어낸다. 육수를 무엇을 내느냐와 무엇을 잔뜩 넣느냐에 따라 맛도 다양하다. [사진 김성주]   다만, 집에서 해 먹는 면요리에 한계가 있음을 아쉬워했다. 수제비와 칼국수는 집에서 직접 해 먹고 멸치국수 정도는 동네 슈퍼에서 소면을 파니 가능하다. 그 이상은 육수와 고명이 어려워져서 집에서 하기가 어려워 결국 식당에 갈 수 밖에 없다. 냉면을 집에서 제대로 하려면 원가가 한그릇에 3만원 이상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밖에서 사먹으면 싸면 5000원, 비싸면 1만3000원이면 가능하니 경제적으로 이익이다. 면요리의 한계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집 국수와 가게 국수로 나뉘어졌다고 말한 그는 경영학으로 학위가 있다.    거기에 또 덧붙이기를 칼국수도 이젠 집에서 해 먹기가 어려워진 것이 아쉽단다. 반죽과 칼질을 능숙하게 하던 어머니 세대들이 사라져가고, 지금 가정집은 모든 면과 육수를 사서 쓰니 안타깝단다. 하긴 만두도 이제는 만두피를 사서 쓴다. 냉동 만두를 주문해서 끓여 낸다.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넓게 펴서 주전자 뚜껑으로 만두피를 찍어 내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러나 집에서 면 요리를 해 먹기가 어려워진 것은 주거 구조의 문제이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고 다른 한명이 주장한다. 예전에는 마당과 마루가 넓어서 얼마든지 반죽을 홍두깨로 밀어서 펼쳤지만 지금은 그런 공간이 없지 않은가. 그나마 우리 시골집이 마당과 마루가 넓어서 김장을 하고 장도 담그고 국수도 밀 수 있는데 도시의 아파트 구조에서는 불가능하니 현재의 주거 공간이 칼국수마저 어렵게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테리어를 공부했고 지금도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다.   김치를 저장하는 김치 냉장고를 모든 가정집에 한 대 이상을 보유한 시대이다. 집 안에 냉장고 갯수를 세어 보면 아마도 2~3개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김치를 담그는 공간은 부족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지만 정작 음식 하나 제대로 만들 공간 하나 없다. 아이러니하다. 실제로 집에서 고기 한점 제대로 굽지 못한다. 냄새가 윗층으로 올라가 폐를 끼칠까봐 조심스럽다. 거기에 메주를 띄워서 장을 담근다고? 상상도 못한다. 국수 만들겠다고 반죽하고 홍두깨로 쓱슥 미는 동안 반죽끼리 들어붙을까봐 밀가루를 척척 뿌려야 하는데 아파트 안에서는 어렵다. 청소하면 될텐데 이상하게 엄두가 안 난다. 예전에 살던 좁디 좁던 하꼬방에서는 다 했는데 말이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나가서 사 먹는게 제일 속편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지금 맛집이 유행하는 것이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 귀농인 클럽 회원도 집에서 음식을 장만해 먹기가 불편하니까 시골로 이사한 것이잖냐는 말에는 다들 공감했다.   귀농인에게 음식이란 일상에서 섭취하는 영양소의 의미이기도 하고 맛을 즐기는 식도락의 의미도 있지만 도시에서 음식 해먹기가 불편하니 이동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 편하게 먹자는 의미도 강하다. 소소한 농산물을 직접 키운다. 장에서 사온 배추와 당근, 돼지고기, 생선 따위를 여유있게 보관한다. 널따란 공간에서 김장을 하고 장을 담근다. 심지어 장독대가 있다. 그리고 숯불을 피워 생선을 굽고 고기를 굽고 전을 붙인다. 여러명이 모여서 박수치며 놀아도 신경이 안 쓰인다. 이런 공간이 필요해 귀농귀촌을 한 것이다.   칼국수를 먹으면서 생각해 봤다. 귀농인들은 어떻게 먹는 것이 중요할까. 지역 특성에 맞는 전통적이고 다양한 식생활 문화를 추구하는 슬로우 푸드에서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를 소비하여 탄소 발생을 줄이고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로칼푸드와 지산지소(地産地消), 신토불이(身土不二)는 모두 의미가 있다. 음식에 대한 태도는 사회적 의미와 효과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음식을 편하게 접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 칼국수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집이라면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이래저래해서 다음번의 귀농인 클럽 모임은 새해를 보람차게 보내자는 의미로 제주도로 가서 워크숍을 갖기로 하였다. 1년에 한번 하는 행사이다. 제주도로 가서 현지 농민들과 만나 토론도 하고 간담회를 하기로 하였다. 물론 속내는 제철을 맞은 고등어와 갈치회를 먹고 놀자는 것이다. 맛집 탐방을 하며 놀아보자는 제안을 한 사람은 바로 관광학을 공부한 필자였다.   관련기사[더오래]매운면, 야끼우동, 비빔짬뽕, 물짬뽕…전국 짬뽕 자랑어지간한 재력 없이 못 버틴다...제주 이주민 28% "떠나겠다" [더오래][더오래]귀촌 끝판왕…독일 교포들은 왜 여기에 꽂혔을까 슬로우 빌리지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15 15:00

  • [더오래] 몸속에 저장된 자연주의 출산의 기억

    [더오래] 몸속에 저장된 자연주의 출산의 기억

     ━  [더,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10)   명상을 할 때였다. 살아왔던 삶을 떠올려서 그 당시에 생각과 마음을 비워내는 명상을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명상 방법 중 하나였다.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그 당시의 마음을 마주하고 비워내고 있었다. 초등학교 반 친구들의 번호와 이름이 생각이 나는 것이다. 친했던 친구들의 이름도 가물거리는데, 마음속 깊이 마주하고 있자니 반 친구 한 명, 한 명 이름과 번호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명상이 끝났을 때는 다시 친구의 이름과 번호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최면도 이와 비슷한 방식이겠구나 그랬다.   출산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서 출산과 육아 관련 책을 찾아보다가 자연주의 출산에 관심이 생겼다. 차가운 수술대에서 아이를 낳기 싫었던 나는 수중분만을 계획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강렬한 기억이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이 많이 묻어있는 기억들은 몸속 어딘가에 숨겨 놓기도 하고, 기억을 비틀어 저장하기도 했다. 나 역시 있는 그대로의 기억들을 마주하면서 놀랐던 순간들이 많았다. 생존의 본능이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없애거나 그 기억을 다르게 생각하고 조작한다. 그러나 몸속 어딘가에는 그 순간의 기억이 있는 그대로 저장되어 있다. 기억을 마주하고 기억에 있는 묻은 생각과 감정, 느낌을 비워내는 과정을 통해 그것이 ‘진짜 나’라고 믿고, 알고 있는 생각을 깨부순다. 그 순간에 자기 속에 갇힌 마음에서 벗어나 원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다. 출산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서 출산과 육아 관련 책을 찾아봤다. 그러다 『즐거운 출산 이야기』라는 자연주의 출산을 한 부부의 책을 발견하게 됐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다리를 벌리고 아이 낳는 것이 싫었던 나는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공부를 했다. 다큐멘터리도 찾아서 보고, 자연주의 병원도 알아봤다. 자연주의 병원 대다수가 강남에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포기하려는 찰나 은평구에 수중분만을 하는 병원이 있었다. 수중분만을 할 계획으로 그 병원에 다녔다. (물론, 동네에 산부인과가 없어서 어차피 다른 구에서 출산을 해야 했다.) 예정일 새벽, 몇 분 간격으로 가진통이 오기 시작하고 남편과 나는 입원을 준비했다. 어차피 무통주사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통 간격이 짧아지고, 강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후에 입원을 했다.   그런데, 진통이 강해질 때부터가 문제였다. 아이는 나올 준비를 하고 자궁 아래로 내려왔는데 자궁이 조금도 벌어지지 않아 시작된 진통의 강도가 강해도 너무 강해서 위험한 상태였던 것이다. 수중분만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도 아이도 위급한 상태였다. 간호사는 상태를 지속해서 살피면서도 대학병원으로 가야 할 수도 있을 것이라 했다. 그렇게 12시간을 진통하고 다음 날 새벽 수중분만으로 아이를 낳긴 낳았다. 낳는 순간에는 남편도 나도 감격을 해서 아이를 힘껏 안아줬다. 신기하게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쪽쪽 빨고 있었다. 그 장면까지 기억이 나고, 그 뒤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대로 기절해버린 것이다. 하혈을 많이 해서 호흡기를 꽂고 수혈도 여러 팩을 받았다. 그때까지도 산부인과에서는 대학병원으로 가야 하나 의논을 했다고 한다. 수술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모든 사람의 출산이 이렇지는 않겠지만 출산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자연주의 출산도 좋지만 건강하게 출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사진 pixabay]   제왕절개 한 산모들보다 더 오래 입원을 하고 조리원으로 갔다. 일주일 정도는 소변 줄을 꽂고 누워 있어서 아이를 안지도 못했다. 그 후, 한 달 정도는 온몸이 부어서 제대로 걷지 못했던 것 같다. 담당 간호사도 의사도 “굉장히 위험했다”라고 여러 번 말을 했다. 조리원에서 이렇게 후유증이 오래 남은 산모는 처음 봤다고 했다. 아이를 낳고 몇 달은 출산의 강한 진통이 몸에 남아 잠에 들면 진통과 똑같은 통증으로 몸을 흔들었다. 잠을 자지 못했다. 몸이 진통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도 때때로 마음이 힘들 때면 출산의 고통의 꿈을 꿀 때가 있다. 출산 통증의 고통까지는 아니지만, 강한 진통의 기억이 잔상처럼 남아 그때의 마음이 떠오른다.   모든 사람의 출산이 이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출산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됐다. 출산 자체가 어떻게 되는 일인지 모르는구나. 어르신들이 옛날에 아이를 낳으러 방에 들어갈 때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자연주의 출산도 좋지만 ‘자연주의 출산’을 하고 안 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건강하게 출산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무통주사를 맞고 진통의 강도를 적게 느꼈다며 출산 후 고생을 덜 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나와 같은 기간에 임신한 동생이 몇 달 뒤 출산을 하게 됐다. 출산을 앞둔 동생에게 “산모도 아이도 건강하게 출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무통주사도 맞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되도록 덜 고통스럽게 출산하라”고 조언했다.   관련기사[더오래]하늘나라 아빠가 보내준 선물…아이를 가졌다[더오래]아빠 안녕…결혼식 앞두고 황망하게 치른 장례식 [더오래]앞집은 음악가 아랫집은 작가…예술가가 사랑한 동네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14 11:00

  • [더오래]새 이민법 제정돼도 기존 투자자 보호하는 '그랜드파더'

    [더오래]새 이민법 제정돼도 기존 투자자 보호하는 '그랜드파더'

     ━  [더,오래] 국민이주의 해외이주 클리닉(42)     20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그런데 인플레이션에 따른 물가 폭등으로 미국민의 지지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는 뉴스입니다. 최근 미국 경제방송인 CNBC는 지난해 12월 여론조사를 통해 바이든에 대한 국정 지지도가 44%에 불과하다고 보도했습니다. 임기가 채 1년도 안 되었지만 역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낮은 지지율이라고 합니다. 경제 상황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이 반영되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바이든이 추진했던 친이민 정책도 지지부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이민정책의 주요한 축이랄 수 있는 미국 투자이민(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이 지난해 6월 끝난 이후 재개가 되지 않고 있어 투자이민 희망자와 관련기업, 이민전문 변호사들을 노심초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랜드파더링 룰'은 새 법규가 제정되더라도 기존 고객을 기존 절차대로 그대로 진행할 수 있게끔 법적으로 기득권을 예외 인정하는 것이다. [사진 pxhere]   역사적으로 미국 투자이민 프로그램은 미국의 통합예산안 기간과 맞물려 1년을 넘기지 않고 해마다 단기간으로 연장됐습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경우 2021년 6월 30일을 기한으로 ‘미국 투자이민만을 위한 법’을 제정하라고 의회에 촉구했습니다. 이게 안전성을 보장하고 수속기간을 줄이고자 하는 이른바 ‘미국 투자이민 청렴성 개혁법안’입니다. 이와 함께 2021년 6월 22일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의 결정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해 인상했던 투자이민 금액도 90만 달러에서 50만 달러로 다시 하향 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뒤로 지금 시점까지 6개월 이상이 지났지만 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은 실질적으로 멈춘 상태입니다. 그 이유는 미국의 통합예산안이 아직도 통과되지 않은 데다 새로운 ‘미국 투자이민 청렴성 개혁법안’이 나와야 제도적으로 다시 수속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 투자이민 관련 변호사인 나에게 고객들이 최근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미국 투자이민 EB-5 리저널 센터 프로그램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나요?”   나는 이런 질문에 미국 투자이민은 결국 재개될 수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미국 이민국(USCIS) 역시 지난해 12월에 공지했는데, 그 내용을 추리자면 최우선으로 EB-5 리저널 센터의 고객정보 등록 갱신을 위해 관련 서류부터 챙겨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속적인 리저널 센터 자격 증명을 위해서입니다.   미국 이민 정책의 중요한 축인 투자이민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이 지난해 6월 이후 재개되지 않아 투자이민 희망자와 기업, 이민전문 변호사들이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사진 pixnio]   하지만 재개 시점이 늦어질 때마다 기존 투자자들의 수속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관련 업계에서는 미국 투자 이민 신청자뿐만 아니라 EB-5 리저널 센터 프로그램이 제때 운영되지 못할 경우를 가정해 ‘외국인 투자자 공정성 보호법(FIFPA : Foreign Investor Fairness Protection Act)’의 제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FIFPA는 EB-5의 모든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공정성 보호법입니다. 이 법안은 “최초의 이민청원, 신분 조정, 이민 비자 신청 등을 심사할 때 바로 첫 이민 청원이 접수된 당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것임을 명시한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 법규가 제정되더라도 기존 고객을 기존 절차대로 그대로 진행할 수 있게끔 법적으로 기득권을 예외로 인정하는 것을 ‘그랜드파더(Grandfather)’라고 합니다.   워싱턴 DC에 기반을 두고 전 세계 EB-5투자자를 대신해 보호해주는 비영리단체로 미국 이민투자자 연합(AIIA: American Immigrant Investor Alliance)이 있습니다. AIIA는 “현재와 미래의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얻으려면 최소한 기존 이민 청원서의 제출 투자자에게 이민 절차를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게 하는 기득권 조항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AIIA는 USCIS의 수석 고문 겸 이사 대행이었던 로버트 디바인 변호사와 협력해 투자자를 보호할 입법 문구의 초안을 만들었습니다. 비즈니스 이민과 소송에 관한 전문변호사인 로버트 디바인은 바로 이 FIFPA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투자이민 희망자가 이민 청원서를 처음 제출할 당시에 적용되었던 자격 규정에 따라 권리가 부여되고 그에 따른 이민 절차도 지속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디바인 변호사는 “IIUSA(미국 투자이민 비영리단체, Invest in the USA)와 EB5IC(미국 투자이민연합, The EB-5 Investment Coalition)도 우리가 추진하는 모든 제안에 기존 투자자 보호 조항을 포함하기로 약속했다”면서 “AILA(미국 이민변호사협회, American Immigration Lawyers Association)도 지지를 표명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이민 투자자 연합 AIIA가 법안으로 발의할 경우 상원과 하원 의원들의 FIFPA 제정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일부 의원은 그러한 법안을 공동 발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FIFPA의 내용이 논란의 여지가 없고 지지가 초당적이어서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AIIA’은 ‘외국인 투자자 공정성 보호법’을 입법화하기 위해 현재 미국 법무법인과 로비스트를 선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EB-5 독자적인 법안의 향방이 뚜렷해지면 정식 법안 통과 전까지 한시적인 법으로 기존 투자자에 한해 기득권을 예외로 인정해주는 일명 ‘그랜드파더링 룰(Grandfathering Rule)’을 시행하도록 의회에 압박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런 노력이 뒷받침된 EB-5의 새 법안이 하루빨리 제정되기를 희망합니다.   관련기사[더오래]미국 투자이민 내달 진짜 재개될까…두가지 시나리오[더오래]미 투자이민 가려면 I-924A양식부터 챙겨야[더오래]美이민, 찡그린 바이든의 이민정책 활용해야 열린다 이유리 국민이주 미국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12 11:00

  • 여름엔 시위대, 겨울엔 빙판길…부암동 더는 아름답지 않았다 [더오래]

    여름엔 시위대, 겨울엔 빙판길…부암동 더는 아름답지 않았다 [더오래]

     ━  [더,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9)   임신을 하고 보니, 부암동 산책길이 더 이상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았다. 임신 초기, 윤동주 문학관 근처를 산책하다 출혈이 있었던 경험으로 휴직을 하고 2주를 누워있었다. 그 후로도 아이를 잃을까 걱정스러워 윤동주 문학관 근처로 가지 못했다. 몸이 무거워진 뒤에는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게 힘들어서 산책을 할 수가 없었다. 평지를 찾아서 걸어 다녔던 것 같다. 임신한 몸으로 출퇴근 길에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것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만만하지 않았다.   눈이 오면 부암동 언덕길은 빙판으로 변해 낙상 사고 위험이 높아졌다. [사진 김현정]   나라도 어수선했다. 대통령 탄핵 시위와 탄핵 반대 시위가 끊이질 않던 2016년, 그때이다. 임신 초기였을 때 한 번은 시위 신고를 하지 않은 탄핵을 반대했던 시위대가 청와대 앞 도로를 막는 바람에 효자동으로 버스가 들어가지 못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버스에서 내려야만 했다. 버스도 택시도 들어오지 않았다. 난감했다. 게다가 지난달 산책길에 출혈이 있어 아이를 잃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나는 걸어갈 수도 없고 차를 탈 수도 없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길에는 시위대와 경찰들이 어수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가게 들어가기도 마땅하지 않았다. 얼른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청와대를 지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천천히 걸어갔다. 시위대와 경찰, 여러 사람과 부딪혀 혹시 문제라도 생길까 봐 배를 감싸 안으며 조심조심 걸어왔다. 청운동에 다다랐을 때, 버스가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저히 탈 수가 없었다. 다들 버스를 기다리던 상황이라 승객을 태우지도 못하고 버스가 지나가기도 했고, 태우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밀어 넣으며 몇 명 타지 못했다. 임신한 몸으로 사람들과 몸을 밀치며 타기에는 위험해 보였다. 결국 청운중학교를 지나 산을 하나 넘어 걸어서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소나기는 왜 내리는 건지. 어디 들어가 비를 피할 수도 없는 청운중학교가 있는 그 언덕길을 지나고 있는데 말이다. 좀 서러웠다. 그 이후로도 시위대로 자주 차에 갇혀 있는 적도 있고, 걸어간 적도 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임신 중반기에 접어든 한겨울, 눈이 많이 내렸을 때이다. 밤사이 내린 눈에 기온이 낮아 언덕길은 빙판길이 되었다. 남편이 먼저 출근을 하고 나도 출근을 하려고 길을 나섰다. 눈이 많이 내려서인지 우리 집 골목길까지 제설 작업이 이뤄지지 못했고 언덕길이 눈이 쌓인 채 그대로 얼어있었다. 살금살금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얼음 위에 쌓인 눈이 바람에 날려 얼굴을 때렸다. 생각보다도 바닥이 더 미끄러워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다리와 양팔을 옆으로 벌리고는 그 자세 그대로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때마침 눈을 치우려고 나온 이웃 어르신이 손을 잡아줘서 언덕길을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빙판길에 넘어져 팔, 다리가 부러진 이웃들이 여러 있었다.   처한 상황이 달라지자,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던 부암동이라는 곳이 한순간에 불편한 동네가 됐다. 임신 기간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생존의 문제와 맞닿을 정도로 이 공간이 어려웠다. 영유아 시기를 보내는 것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놀이터도 하나 없는 부암동에서 차도 없이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육아를 하는 것은 도를 닦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관련기사[더오래]하늘나라 아빠가 보내준 선물…아이를 가졌다"사리인가"…아빠 화장때 나온 작은 구슬에 빵 터진 사연 [더오래][더오래]아빠 안녕…결혼식 앞두고 황망하게 치른 장례식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07 11:00

  • [더오래]정초의 일본 풍물…100년 역사 대학생 역전 경주

    [더오래]정초의 일본 풍물…100년 역사 대학생 역전 경주

     ━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64)     1월 2일과 3일에 ‘하고네 에키덴(箱根駅伝)’이라 불리는 대학생 역전 경주 ‘도쿄 하코네 간 왕복 대학 역전 경주(東京箱根間往復大学駅伝競走)’가 개최되었다. 정월 연휴에 펼쳐지는 풍물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쿄 오테마치에 있는 골인지점. [사진 니혼테레비 캡처]   올해로 98회째다. 1920년에 시작되어 전쟁 때를 빼곤 죽 이어져 온 경기다. 도쿄의 오테마치(大手町)에서 출발해 가나가와현(神奈川県) 하코네(箱根)에 있는 아시노호수(芦ノ湖)까지 217.1km를 열 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이틀에 걸쳐 왕복한다. 시드권을 가진 10개의 대학과 예선을 통과한 10개의 대학, 총 20개의 대학이 출전한다.   첫날 다섯 개의 구간, 두 번째 날 다섯 개 구간이다. 첫날은 보지 못했고 3일 도쿄로 돌아오는 구간을 시청했다. 코로나 관계로 응원은 집에서 해달라는 당부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응원객들로 붐볐다. 100년을 넘기고 있는 경기다. 코스 주변에 사는 사람이라면 잠깐 나가서 응원해주고 싶은 심정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특히 지금 일본은 코로나 제5파라 불리는 위기 상황에서 벗어난 후, 감염자가 적어 잠잠한 상황이다. 그래서 가능한 일이지 싶다. 우승 행가레도 허가되었다.   처음 역전 경주를 봤을 때는 생중계로 이틀씩이나 대여섯 시간씩 투자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달리는 것일 뿐인데 뭐가 재밌는 거지 했다. 그 시간에 영화라도 한 편 보여주지.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역전 경주 방송이 켜져 있으면 빨려들 듯이 보기 시작했고, 지금은 꼭 보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한 한 보려 한다.   니혼바시 풍경. [사진 니혼테레비 캡처]   일 년에 단 한 번. 이날을 위해 전국 대학의 팀은 훈련한다. 역전 경주에서는 ‘다스키’라는 바통 대신 어깨에 두르는 휘장을 사용한다. 10명의 선수가 10개의 구간을 달리는 릴레이 경주이다. 다음 선수에게 다스키를 넘겨주는 것이 완주의 필수 요건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넘겨주지 못하면, 구간 완주를 기다리지 않고 다음 구간 선수가 출발하게 된다. 다음 선수가 뛸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완주로 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다스키를 잇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역전 경주의 목표는 대학마다 다르다. 끊이지 않고 다스키를 이어서 완주하는 게 목표인 대학, 시드권 안(10위 안)에 드는 것이 목표인 대학. 물론 최종 목표는 우승이지만 제각각의 목표가 있다. 예선에서 떨어져 출전을 못 하는 대학도 많기 때문이다.   역전 경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은 미우라 시온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를 읽고부터이다. ‘하고네 에키덴’ 출전을 다룬 소설이다. 역전 경주에 대한 선수들의 로망과 심정, 피나는 노력을 조금은 알게 되어서인지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스토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하고네 에키넨' 출전을 다룬 책 〈바람이 불고 있다〉. [사진 북폴리오]   2022년 우승팀은 아오야마가쿠인 대학(青山学院大学)이다. 강한 팀이다. 2021년은 고마자와(駒沢) 대학에게 우승을 빼았겼다. 아오야마가쿠인 대학이 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최강이라 불리는 팀이 지는 걸 보며 역전 경주의 재미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고마자와 대학은 3위였다. 상위권이니 전 우승자로서의 위상은 지킨 셈이다.   1, 2, 3 위가 정해지면 다음은 어느 대학이 10위 안에 들어서 시드권을 획득할 것인가에 관심이 쏟아진다. 시드권 안에 들면 다음 해에 예선을 치르지 않고 역전 경주에 진출할 수 있다. 추오(中央) 대학이 10년 만에 획득했다. 선수들이 골인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보낸다.   자 다음은 완주하는 선수들을 응원할 차례다. 기다리는 팀원들이 수고했다고 위로한다. 시드권을 놓친 팀의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스키를 잇지 못한 두 대학 선수들이 들어온다. ‘울지 마’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역전 경주를 보며 처음으로, 마지막에 들어온 선수와 그 팀원들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꼈다.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는 쓸쓸한 골인. 맞아주는 것은 팀원들뿐이다. 마지막 선수는 울 것 같다. 그러나 팀원들이 잘했다고 울지 말라고 등을 두드린다. 완벽하게 다스키를 잇는 팀이 되기 위해, 언젠가는 10위 안에 드는 팀이 되기 위해, 오늘의 속상함과 눈물은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번에 인상 깊었던 것은 다스키를 잇지 못하고 마지막 그룹으로 들어온 한 선수가 한 말이었다. “아 즐거웠다”. 이 한마디에 역전 경주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처음으로 출전한 대학의 선수였다. 하고네 에키덴의 코스를 달려보고 싶다는 꿈. 달리고 싶다는 목표. 드디어 출전해 달렸을 때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작업을 해야 하는데도 뒷전으로 미루고 역전 선수들의 분투를 지켜보지 않을 수 없는 지경까지 온 나. 이제 팬이라 해도 되겠다. 내일부터 한동안 우승팀 감독과 선수들이 텔레비전을 장식할 거다. 우승으로 이끈 비화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겠지. 그리고 2023년 제99회 대회를 향해 훈련을 시작할 것이다.   관련기사[더오래]“저 바다 너머 백제가 있었구나”…‘백제망향선’에 서다[더오래]우연히 찾은 임간학교…아들과 공유한 맛의 추억 [더오래]묘지가 길가에…재해와 공존하는 일본인의 운명적 삶 한일자막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06 08:00

  • [더오래]미국 투자이민 내달 진짜 재개될까…두가지 시나리오

    [더오래]미국 투자이민 내달 진짜 재개될까…두가지 시나리오

     ━  [더,오래] 국민이주의 해외이주 클리닉(41)     코로나 사태로 지구촌 전체가 뒤숭숭한 2021년이었다. 파란만장한 신축년이 막을 내리고, 2022년 임인년의 막이 오른 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2021년은 ‘미국 투자이민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이 베일이 걷었다가 다시 닫는 곡절을 겪었다.   1990년 미국 의회가 외국인 직접 투자와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든 ‘미국 투자이민 프로그램(EB-5)’. 이어 1992년 한시적으로 제정된 ‘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은 약 30년 동안 예기치 못한 풍랑을 겪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지난해 6월 중단되면서 재개가 미뤄진 상태다. 이로 인해 EB-5의 기존 투자자와 투자 예정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해 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일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망해본다.    TEA지역은 미국의 평균 실업률의 150% 넘는 곳이나 인구가 2만명 미만의 소도시를 지칭한다. TEA 지역 여부에 따라 투자이민 프로그램의 최소 투자자금 규모가 달라진다. [사진 Joe Parks on Flickr]   지난해 미국 투자이민법 개정안과 관련해 투자자금 규모와 더불어 ‘TEA(Targeted Employment Area)’지역 지정의 권한 이전이 최대 관심사였다. TEA지역은 미국의 평균 실업률의 150% 넘는 곳이나 인구가 2만명 미만의 소도시를 지칭한다. 1990년 투자이민 프로그램이 처음 도입될 당시 최소 투자자금 규모는 TEA지역의 경우 50만 달러였다. 그리고 TEA지역이 아닌 경우는 100만 달러로 2배나 더 많았다.   그리고 그 투자자금 액수를 결정하는 권한은 30여년 동안 주 정부에 있다가 2019년 11월 21일부터는 국토안보부로 옮겨 갔다. 이때 최소 투자금 규모가 바뀌었는데, TEA지역은 90만 달러, 그리고 비TEA지역의 경우 180만 달러로 상향 조정되었다. 그렇지만 투자이민법 현대화 개정안은 미국 외 다른 나라들의 투자이민 프로그램과 비교해 최소 투자금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고 약 30년 동안의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렇게 2019년 11월 상향 조정된 EB-5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의 최소 투자자금은 2021년 6월 22일 북부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의 판결이 있기 전까지 약 18개월 동안 유지되었다. 그렇지만 이 판결은 EB-5의 현대화 개정안 규정이 행정절차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무효화했다. 그리고 그 이후 최소 투자자금은 TEA지역 50만 달러, TEA지역 아닌 곳은 100만 달러로 다시 그 규모가 원래대로 조정되게 되었다.   그런데 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은 최소 투자금의 변동 이외에 또 다른 골칫거리가 있다. 바로 이 프로그램이 계속 진행되지 않고 잠시 휴식기에 접어든 것이다. 그 이유로는 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은 1992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돼 법적으로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강제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제정된 EB-5 프로그램은 직접투자 형태 방식으로 투자자가 최소 투자금 이상의 액수를 투자한 뒤에 그 사업을 직접 운영해야 하는 조항이 있다. 그리고 10명의 미국인 노동자가 주 35시간 이상 일하는 등 실제적 고용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가 실제 미국에 직접 투자로 10명의 고용을 일으키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큰 인기는 없었다.   또 고용 창출의 경우 투자된 자본에 비례해 계산되는 방식인 RIMS, IMPLAN 모델 등을 이용한 방안이 허용되었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의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 이 한시적 프로그램은 미국의 예산안에 붙인 옴니버스법안 형태로 매년 재연장되어 2021년 6월 30일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0년 12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을 의회 통과 예산안과 별개의 독립법안 형태로 하는 방안에 서명하면서 2021년 6월 30일까지만 적용됐다. 이로 인해 EB-5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은 2021년 7월 1일부터는 이 프로그램을 유지할 법이 생길 때까지 재개되지 못하고 잠시 쉬고 있을 뿐이다. 이 휴식기에는 기존 이민국에 접수된 투자이민 청원 심사는 물론 새로운 청원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러면 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이 과연 재개될 수 있을지 알아보자. 미국 투자이민 이해 당사자와 이민 변호사들에 따르면 프로그램이 재개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예산안과 별도의 법안이 된 투자이민 프로그램을 예산안에 다시 붙이는 방법이다. 미국의 회계연도는 원래 10월 1일부터 다음 해 9월 30일까지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1일이 되기 전에 미국 의회는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그 뒤에 ‘임시예산안’을 처리하고 나서 예산안에 대한 논의 기간을 12월 3일까지로 늘려놓았다. 그리고 이 12월 3일이 되기 직전에 다시 한번 임시예산안을 통과시켜 이 예산안의 논의 기간을 2022년 2월 18일로 연장해놓은 상황이다. 그래서 미국의 투자이민 이해당사자들은 로비스트들을 동원해 EB-5 리저널 센터 프로그램을 다시 예산안과 함께 통과시키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달 18일 정도에 이 예산안이 의회통과가 된다면 미국 투자이민 프로그램은 마침내 재개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그동안 미국 의회에서 처리하지 못했지만 ‘투자이민 개혁법안’에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을 재개시키는 조항을 넣어 의회를 통과시키는 것이다. 개혁 법안에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장치가 담길 예정이다. 최근 들어서는 해외 투자이민 프로그램 홍보 회사의 미 이민국 등록 의무화 등 투자이민에 대한 투명성 제고의 법안이 발의되는 추세이다. 미국 정가에서는 이 투자이민 개혁법안에는 최소 투자금도 명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최소 투자금은 70만 달러에서 80만 달러 사이가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러면 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으로 영주권을 받고 싶은 투자자는 현재의 휴식기를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까? 무엇보다 먼저 미국 이민국에 이민 청원을 하기 전에 최소 투자금을 미국의 투자처에 송금을 해야 한다. 투자금 송금을 위해서는 국내의 관할 세무서에서 해외 이주 예정자 자금출처 확인원을 발급받아야 한다.    관련기사[더오래]미 투자이민 가려면 I-924A양식부터 챙겨야[더오래]美이민, 찡그린 바이든의 이민정책 활용해야 열린다[더오래]6개월째 멈춘 美대사관 인터뷰…‘투자이민 문’ 언제 열리나? 김민경 국민이주 미국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2.01.05 11:00

  • [더오래]하늘나라 아빠가 보내준 선물…아이를 가졌다

    [더오래]하늘나라 아빠가 보내준 선물…아이를 가졌다

     ━  [더,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8)   신기한 일이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난다. 아빠를 보내고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를 가졌다. 임신을 하면 마냥 기쁠 줄 알았는데…. 둘 다 생각이 많았다. 책임감이라는 막중한 무게가 우리를 짓눌렀다. 아이를 가졌다는 기쁨보다는 우리 앞에 있는 현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 부부는 임신을 확인하고 일주일은 멍하게 보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는 계획보다 아이를 일찍 가지게 됐다. 시어머니는 우리의 나이를 걱정하셨다. 결혼식을 올린 이후부터 내게 매일같이 전화를 해서 아이를 빨리 가지라는 얘기를 하셨다. “어젯밤에 무 캐는 꿈을 꿨는데 아들 꿈이다”며 “소식이 없니” 혹은 “네가 혹시 문제가 있는 거 아니니”하며 “한의원에서 한약이라도 해 먹으라”는 말도 하셨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어머니의 걱정 섞인 말이 불편하면서도 ‘혹시 불임이면 어쩌지’ 생각이 많아졌다. 그렇게 결혼식을 올린 지 몇 달 만에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남편도 나도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응급실에 앉아있을 땐 그저 이 아이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 순간 아이와 나는 강하게 연결됐다. [사진 pixabay]   그러던 어느 날, 남편보다 먼저 퇴근한 나는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뭔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확인을 해보니 속옷이 피에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먼저 임신을 한 동서가 임신 초기 속옷에 피가 비쳤는데 출근을 했다가 유산을 한 경험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피가 비치면 바로 병원을 가보라는 동서의 말이 생각이 났다. 택시를 타고 집에서 가까운 삼성병원 응급실로 가달라고 했다. 아이를 잃을까 두려웠다. 아이를 가지고 기뻐하지 못했던 마음이 죄책감처럼 밀려왔다.   아이를 잃었을까 봐 눈물을 흘리며 응급실에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환자가 많았다. 북악 스카이웨이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자동차와 접촉 사고가 나는 등 상해 환자가 많았다. 병상에 자리는 없었고 좁은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피는 계속 흘렀다. 몇 시간을 기다려 어렵게 당직 의사를 만나 검사를 했다. 초음파 상으로 아이가 보이기는 하지만 자궁에 피가 고여 있는 게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임신 초기에는 유산되는 경우가 많으니 당분간 누워서 지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어떻게든 아이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 순간 아이와 나는 강하게 연결됐다.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임신 기간이 좋았다고 한다. 물론 임신하는 동안 겪는 여러 가지 신체적 변화에 마냥 편했다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 입덧, 부종, 불면증 등 임신 기간이 쉬웠던 건 아니다. 다시 하겠냐고 하면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내 배 속에 작은 생명이 움직이고 발로 차던 그 느낌이 참 좋았다. 희망, 기대, 궁금함…. 이런 단어로 가득할 때였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절로 생기던 시간이었다.   정작 태몽은 친정 엄마가 꿨다. 아빠가 하염없이 펼쳐진 꽃밭에서 꽃을 한 송이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기뻐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아빠가 보내 준 선물이었을까.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콧노래를 부르며 기뻐하셨겠지….   관련기사"사리인가"…아빠 화장때 나온 작은 구슬에 빵 터진 사연 [더오래][더오래]아빠 안녕…결혼식 앞두고 황망하게 치른 장례식[더오래]앞집은 음악가 아랫집은 작가…예술가가 사랑한 동네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1.12.31 11:00

  • [더오래]미 투자이민 가려면 I-924A양식부터 챙겨야

    [더오래]미 투자이민 가려면 I-924A양식부터 챙겨야

     ━  [더,오래] 국민이주의 해외이주 클리닉(40)     지난주 성탄절 연휴는 지구촌 전체가 우울하기만 했다. 코로나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오미크론 바이러스의 공습으로 항공 7000여편이 결항되고 유럽에서는 철도운행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 하루 확진자가 최근 들어 평균 20만명에 육박하고 오미크론이 50개주 전역으로 확산되어 워싱턴DC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미국 국토안보부 소속의 정부기관인 미 이민국(USCIS)이 이달 둘째 주에, 회계 연도 2021년의 각 비자들의 데이터를 홈페이지에 업데이트했다. 이들 자료에는 이민 혜택, 체류자격, 영주권 부여 등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코로나에 인플레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 미국 투자이민 트렌드가 어떻게 달라질지 알아볼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미국 투자이민(EB-5)의 리저널 센터 프로그램에 대한 통계를 살펴보자.   [자료 미이민국 USCIS]   EB-5 리저널 센터 프로그램으로 이민국에 이민을 청원할 경우 1단계 영주권이라 할 수 있는 ‘I-526’이라는 이민국 양식을 쓴다. 지난 6월 투자이민 규모를 90만 달러로 올리지 못하게 하는 ‘베링(Behring) 리저널센터 소송’으로 6월 23일에서 30일까지 일시적으로 50만 달러 접수가 가능했던 적이 있다. 당시 전세계적으로 접수된 숫자는 445개였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달마다 18~50개가 접수된 상황과 비교하면 최대 2472%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한 셈이다. 미국 투자이민을 신청할 수 있는 액수로 50만 달러 규모가 되는 마지막 기회인지라 전 세계의 EB-5 신청자가 급격히 늘어난 덕분이다.   EB-5 관련 인물로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 이민국 서비스 국장으로 일하다가 2021년인 올해 2월에 미국의 국토안보부 장관이 된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가 있다. 그는 EB-5에 적극적이었다. 쿠바 출신인 그가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임명된 뉴스가 나온 직후 미 투자이민 업계의 변호사와 수속 전문가들은 EB-5 수속절차가 한층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왜냐하면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는 과거 미국 투자이민 프로그램 사무소 설립과 투자이민 심사를 전담하는 고급 공무원 채용 등 인재 확보에 앞장을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전력을 기울인 2019년과 2020년의 EB-5 처리 기록 숫자는 과거 몇 년간과 비교해 보면 너무 초라하기만 했다.   [자료 미이민국 USCIS]   미국 이민국에서 각 이민 비자 분류 양식별로 처리 속도를 따져보자면, 올해에는 1단계 영주권인 I-526 양식의 처리속도가 가장 느렸다. 참고로 미국 이민국의 처리 속도 기준은 이민 희망자의 한 단계 평균 수속기간이다. 이 때문에 I-526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앞으로 수속을 시작하는 사람의 수속 기간을 예측하는 잣대도 아니다. 단지 미국 이민국에 몰린 청원서 숫자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에 불과하다. 단지 이민을 희망하는 경우 어느 시점까지 처리되어야 할지 미 이민국을 대외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정보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다.   현재 미국 투자이민 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의 수속 절차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미국 의회가 하루라도 빨리 EB-5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보이지 않는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EB-5 업계에서는 9월, 10월, 12월 등에 미국 의회에서 내년도 미국 통합 예산안 통과와 함께 미국 투자이민 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 재승인을 기대해 왔다. 그러나 현재 2021년 12월 27일 기준으로 아직도 재승인되지 않았다. 이제는 신규 접수를 할 수 없고, 이민국이나 대사관 단계의 수속에 계신 분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2월 20일에 USIS의 EB-5 리저널 센터 프로그램에 관련된 심사 공지 사항을 띄웠다. EB-5 리저널 센터 프로그램은 이민국 단계에서 아래와 같이 두 가지 심사를 한다고 한다. 첫째는 미국 투자이민 신청자 본인의 자금출처 검사다. 둘째, 미국 투자이민 신청자의 프로젝트의 검사도 이루어진다. 이달 20일 이민국에서 공지한 것은 리저널 센터들의 정보 등록 갱신을 하라는 내용으로, I-924A 양식을 이달 28일까지 제출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빠른 심사가 가능하고 지속적인 리저널 센터 자격 증명을 위해서다. 기본적으로 해당 연도의 9월 30일 현재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지정된 지역 센터는 같은 해 12월 29일 또는 그 이전에 필수 증빙 서류와 함께 절대적인 심사기준인 I-924A 양식을 제출해야 한다.   미국 투자이민 전문 변호사로서 무엇보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I-924A를 제출하라는 요청 자체가 미국 투자이민 EB-5 리저널센터 프로그램은 계속될 것이라는 기본적인 근거를 깔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투자이민이 재개돼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길 기원한다.   관련기사[더오래]美이민, 찡그린 바이든의 이민정책 활용해야 열린다[더오래]6개월째 멈춘 美대사관 인터뷰…‘투자이민 문’ 언제 열리나?[더오래]벼랑 끝 '셧다운' 탈출한 미국…그럼 멈춰선 투자이민은? 이유리 국민이주 미국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1.12.29 11:00

  • [더오래]美이민, 찡그린 바이든의 이민정책 활용해야 열린다

    [더오래]美이민, 찡그린 바이든의 이민정책 활용해야 열린다

     ━  [더,오래] 국민이주의 해외이주 클리닉(39)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지난주 한때는 활짝 웃다가 이제는 찌푸려져 있다고 한다. 미국 의회가 지난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상향 안건을 극적으로 처리하여 연방정부의 채무 불이행(디폴트)사태는 일단 면해 환하게 웃었지만, 그다음 날 2조 달러 규모의 사회복지 예산안의 연내 통과가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하루 확진자가 10만명에서 60만명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바이든 대통령의 얼굴은 더욱 구겨져 있다고 한다. 급기야는 21일(현지시각)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연설을 할 예정이다. 그런 한편에선 코로나 사태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제 활성화의 한 해법으로 일자리 만들기에 나설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바이든은 ‘반(反)이민’이 아닌 ‘친(親)이민’정책을 펴려는 것도 그 일환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민자를 포용적으로 받겠다는 정책이 구체화되었다. 사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미국은 어떻게 보면 세계 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만들었다고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미 연방정부 차원의 이민 정책은 전무했다. 간단한 신체검사와 입국 심사를 받고 이민 허가 도장을 받는 것으로 이민이 가능했을 정도였다. 단 귀화는 1790년 법률로 ‘자유로운 백인 외국인’에 한정해 놓았다. 이민은 남북전쟁 후 흑인에게 확대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까지 계속되었다. 18세기 조선인을 태운 첫 이민선 갤릭 호가 하와이의 와이아루아 사탕수수 농장에 도착, 모쿠레이아 캠프에 짐을 풀었을 당시에도 신체검사와 간단한 입국 심사만으로 미국에 정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연방정부 차원에서 크게 세 개의 이민 법령이 제정되었다. 먼저 ‘1882년 이민법령 (The Immigration Act of 1882)’은 장애인, 범법자, 노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입국을 금지했다. 같은 해 제정된 ‘중국인 제외법령 (The Chinese Exclusion Act)’은 중국 출신 이민자의 귀화, 즉 시민권 획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게 된다. 이어 ‘1924년 이민법’은 신규 이민자의 본래 국적에 따른 할당제를 추가하기에 이른다. 이는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비자 쿼터제를 유지하는 근간이 되었다. 이처럼 미국 최초 이민 정책은 강력한 이민 규제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이러한 강력한 이민규제는 수차례 연방 법원 등에서 위헌 여부가 다투어졌다. ‘1943년 이민법령 (The Immigration Act of 1943)’은 중국인 제외법령을 무력화해 중국 출신 이민자의 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또 ‘1952년 이민 및 국적법(The 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 of 1952)’을 통해 ‘자유로운 백인 외국인’에 한정된 할당제를 폐지하기에 이르게 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4년 ‘이민 개혁 행정 명령’을 통해 포용적 이민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불법 이민자 400만명에게 합법적인 신분을 부여하려고 했던 오바마의 시도는 의회의 반대에 ‘대통령 직권에 의한 행정명령’이라는 형식을 취하게 된다. 하지만 이 행정명령도 연방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아 실행되지는 못했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가 바통을 이어받아 불법 이민자에게 합법적인 신분을 주기 위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영주권 적체 해소를 위해 특정 이민비자 인터뷰를 전격 면제했다. [사진 pxhere]   한편 2016년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강력히 이민을 규제하면서 미국인의 고용증대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2017년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특정국의 미국 입국을 제한하는 ‘반이민 행정명령’을 선포한다. 이 이민 정책은 원안에 이어 수정안마저 항소법원에서 집행정지 처분을 받아 폐기 수순을 밟게 되었다. 당시 미국의 취업이민 카테고리였던 EB-3로 이민을 시도하던 신청자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한동안 이 EB-3프로그램 때문에 미국 대사관 인터뷰를 통해 이민 비자를 받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민자들을 포용적으로 받겠다는 정책이 구체화하고 있다. 이민변호사로서 최근의 변화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미국 국무부는 영주권 적체 해소 목적으로 특정 이민비자 인터뷰를 전격적으로 면제했다. 인터뷰 면제 대상자는 2019년 8월 4일 이후 이민비자 발급이 승인된 신청자다. 비자발급을 담당하는 영사의 재량에 따라 인터뷰가 면제된다. 이와 함께 전화나 이메일로도 추가서류를 구비할 수 있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과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해당 비자 신청서 승인을 받았으나 미국에 입국하지 못한 4만9000여명이 대상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이민 신청자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취업이민 카테고리인 EB-3이다. 미국 이민국에서 승인 난 취업 이민 청원을 국무부 소속의 미국 대사관 영사가 비자 인터뷰에서 재심사라는 명목으로 다시 이민국으로 돌려보내는 AP(Administrative Process) 혹은 TP(Transfer in Process) 등이 비자 발급에 가장 큰 난관이었다. 이렇게 이민국으로 비자발급 처리가 다시 돌아가면 기존 1~2년이면 끝나던 수속절차가 무려 5년까지 늘어져 중간에 수속을 포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에 미국 이민국으로 돌아간 비자 발급이 다시 미국 국무부로 재확인 절차를 통해 되돌아오고 있다. 이 부분도 포용적 이민정책의 하나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의 이민정책은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이민을 고려하는 투자자는 현재의 포용적 이민정책을 현명하게 활용해 먼저 이민 수속부터 진행하는 것을 고려해 보자.   관련기사[더오래]6개월째 멈춘 美대사관 인터뷰…‘투자이민 문’ 언제 열리나?[더오래]벼랑 끝 '셧다운' 탈출한 미국…그럼 멈춰선 투자이민은?[더오래]억만장자 일론 머스크가 LA에서 텍사스로 이사한 이유 김민경 국민이주 외국(미국)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1.12.22 11:00

  • [더오래]건물 외벽에 설치된 계단 용도 알고 보니

    [더오래]건물 외벽에 설치된 계단 용도 알고 보니

     ━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53)     며칠 전 일본 오사카의 작은 건물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영상을 보면 한 층 면적이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이고 불이 난 4층 이외의 층으로 불이 번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인명피해가 이렇게 큰 이유는 건물에 계단이 하나밖에 없는 데다 계단 근처에서 화재가 발생해서 피난이 불가능했을 거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만약 계단이 두 개라면 한쪽에 문제가 생길 경우 또 하나의 계단으로 대피가 가능하겠지만, 계단이 하나인 경우 그 계단에 문제가 생가면 대피가 불가능하다.   큰 사건이 터지고 난 뒤 법을 만드는 것을 반복하기 보단, 미리 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진 pxhere]   건축법에는 안전에 관한 조항이 있고 그중에 피난계단에 관한 규정이 있다. 우선 피난계단은 피난층이나 지상으로 통하는 ‘직통계단’이어야 한다. 직통계단이란 대피자가 계단으로 피난층이나 지상으로 이동하는 동안 어느 층에서든 특정 공간을 거치지 않고 온전히 계단만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용도와 규모에 따라 두 개 이상의 직통계단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건물 용도별로 한 층 바닥 면적이 200㎡(약 60평)에서 400㎡(약 120평)를 넘으면 이에 해당한다. 가장 흔한 용도인 근생(근린생활시설)건물의 경우 3층 이상으로서 그 거실바닥 면적이 400㎡를 넘으면 두 개의 직통계단을 설치하게 되어 있다. 대부분의 규모가 작은 근생 건물은 한 층 면적이 이에 못 미치기 때문에 하나의 계단만을 설치한다. 이 규정에 조금 초과하는 근생 건물은 인허가 과정에서 한 층 규모를 400㎡ 미만으로 줄여 계단을 하나만 설치하기도 한다. 소규모 건물에서 계단을 두 개 설치하면 공사비가 오르기도 하고 비상계단은 평소에 빈 공간으로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공간이 평소에는 늘 비어있다고 해도 비상시에는 그 어떤 공간보다 중요한 공간이 된다는 것을 자각한다면 규모를 축소해 계단을 하나만 설치하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그렇다고 규모가 작은 건물에도 공간효율을 무시하고 피난계단을 두 개씩 설치하라고 강제할 수 없다.   건물 용도별 기준 면적을 초과하는 경우 법적으로 두 개의 피난 계단을 두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두 계단이 인접해 있어 피난 계단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 가장 좋은 배치는 평면의 대각선 위치에 계단을 설치하는 것이다. 피난 계단이 제 위치에 설치돼 있다고 해도 비상계단에 물건을 쌓아두어 통행이 어렵거나 비상구를 잠가버려 비상시 역할을 못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한 비상구는 피난방향으로 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법 규정 이전에 상식적인 범주에 든다. 그러나 문의 개폐 방향이 거꾸로 되어 있어 가끔 다중이용시설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참담하다. 안전 불감증이 더 위험하다고 하겠다.   직통계단이란 대피자가 계단으로 피난 층이나 지상으로 이동하는 동안 어느 층에서든 특정 공간을 거치지 않고 온전히 계단만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설치물이다. [사진 pxhere]   주택은 규모가 작아 안전이나 피난의 규정에 별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안전과 피난에 대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최근에 ‘소방관 진입창’을 설치하는 규정이 생겼다. 대형 시설에서 창이 작거나 깨기 힘들어 소방관이 진입하지 못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후 생긴 법인데, 2층 이상의 신축 주택도 해당한다. 규정을 요약하자면 소방차가 접근하기 쉬운 도로나 공터에 면한 창문 중의 하나를 깨기 쉬운 유리를 사용해 소방관이 진입할 수 있는 크기로 만들라는 것이다. 창문 가운데에 역삼각형 붉은색 스티커를 붙이고 한쪽 모서리에 망치 타격지점도 표시하게 돼 있다. 주택은 소방차가 진입할 수 있는 넓은 도로나 공터에 면하지 않은 것도 많다. 특히 북측 벽은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 창을 작게 디자인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소방관 진입창을 강제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창문의 크기도 문제지만 보안을 목적으로 철망이나 쇠 파이프로 창을 다 막아 버린 집도 많다. 이런 경우 비상시 소방관의 진입도 불가능하지만 거주자의 탈출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큰 사건이 터지고 나면 법 규정을 만드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위험을 보는 눈이 안전의 시작’이라는 말처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건축에서 안전에 대한 규정은 조금 과해도 좋겠다.   관련기사[더오래]윗부분이 사선으로 꺾인 흉물 건물 많은 이유 알고보니 건축상도 받은 벽돌집 누수…내벽 뜯었더니 말문이 막혔다 [더오래][더오래]농막에 화장실 설치는 불법…일하다 생리현상 해결은? 프리랜서 건축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1.12.21 09:00

  • [더오래]매운면, 야끼우동, 비빔짬뽕, 물짬뽕…전국 짬뽕 자랑

    [더오래]매운면, 야끼우동, 비빔짬뽕, 물짬뽕…전국 짬뽕 자랑

     ━  [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104)    맛있는 귀농귀촌 - 면요리(1) 달력을 보니 아뿔싸란 탄식이 절로 나온다. 벌써 연말이라니. 괜한 조바심에 곰곰이 올해 뭐했나 싶은데 별로 한게 없다. 그래서 작년에 뭐했나 수첩을 열어 보니 역시 작년에도 특별히 한 게 없다. 재작년도 별반 다른게 없었다. 그랬더니 안심이 된다. 그동안 별 거 없이 살아 놓고는 새삼스레 뭘 한게 있나 살펴 보는게 이상한 거다. 올해도 별일 없이 탈 없이 잘 지냈다.   그래도 뭐 하나 남는게 있을텐데 하며 노트북을 열어 보았다. 하나 있었다. 음식들이다. 구글 클라우드에 빼곡이 올려져 있는 사진들을 보니 온통 음식이다. 모두 농촌에 가서 일을 하며 먹었던 음식들이다. 일부러 맛집이라고 멀리까지 찾아가지는 않는다. 그저 가다가 들렀던 곳이지만, 그 때 함께 수저를 들었던 사람들의 기억이 남아 있으니 소중한 사진들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특이하게 면 요리 사진들이 많다. 작년과 다른 게 밥보다는 면을 더 많이 먹었다. 올해는 면식수행을 했나 보다. 기억나는 면 요리를 소개하련다. 철원 동송막국수. [사진 김성주]   해마다 연초엔 강원도 철원군에서 나를 불러 청년농 지원사업 심사를 맡긴다. 철원의 청년들은 대부분 도시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귀농·귀촌인이다. 특이하게 상당수가 민통선 안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짓는다. 철원 파프리카가 활성화된 것에는 이들의 수고가 컸다. 청년 농부들에게서 철원 농업의 빛나는 미래를 본다. 매우 대견한 친구들이다.   겨울 철원군은 너무 춥다. 그래서 꼭 점심에는 막국수를 즐긴다. 영하의 날씨를 뚫고 들어가 살얼음이 뜬 막국수를 먹는 즐거움을 아는가.  막국수는 춘천, 철원, 인제, 홍천과 같은 내륙 지역의 막국수와 강릉, 양양, 삼척과 같은 바닷가의 막국수가 조금 다르다. 메밀과 전분을 얼마나 배합하느냐에 따라 찰기와 향이 달라진단다. 지역마다 다른 맛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춘천은 막국수와 닭갈비가 어울리고, 인제에서는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트레킹하고 내려와 먹는 막국수가 일품이다. 양양과 삼척과 같은 바닷가 막국수는 김 가루를 많이 뿌려주는 특징이 있다.   강릉 메밀 순면막국수. [사진 김성주]   100% 메밀로만 막국수를 내는 집이 강릉에 있다. 나무 분틀로 직접 면을 뽑아낸다. 주인장이 메밀면 위에 슬쩍 간장과 들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며 먹으라고 주는데 향이 기가 막히다. 고수는 들기름도 치지 않고 먹는다는 주인의 말에 양념을 더 치려는 욕구를 꾹 눌렀다. 사실 몇 년 전에도 와서 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진짜 맛이 없었다. 그새 내가 늙었나 보다.   메밀국죽은 메밀쌀을 된장과 막장을 넣어 죽으로 쑨 것이다. 국물이 많아 국으로도 보이고, 칼국수면을 넣어 주니 면요리로도 보인다. 근데 진짜 아무 맛도 없다. 곤드레나물을 넣었다고 해도 맛을 못 느낀다. 쓰디쓴 된장국이랄까. 게다가 메밀은 보리보다 더 까칠하다. 그러나 먹다 보면 음식 투정이 사라진다. 어려웠던 시절 강원도 산촌민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메밀이 없으면 옥수숫가루로 만든 올챙이 국수를 먹었다. 산간 지방에서 많이 나는 옥수수를 전분으로 내어 걸쭉한 반죽을 구멍 난 바가지에 담아 눌러 내린 것을 뜨거운 물에 삶은 것이 올챙이 국수이다. 끈기가 없으니 면발이 툭툭 끊어져 내리니 생긴 게 올챙이 같다고 해 올챙이 국수이다. 이 또한 특별한 맛은 아니다. 하도 싱거워서 간장 양념을 듬뿍 치게 되는데 간을 맞추다가 너무 짜져서 물을 들이켜게 된다. 그래도 정겹다. 평창과 정선의 시장 골목에 앉아 올챙이 국수와 함께 배추전, 메밀전병, 수수부꾸미를 세트로 먹으면 강원도 사투리가 절로 나온다. 맛있드래요.   그래도 올챙이 국수는 적어도 세 번은 먹어봐야 제맛을 알 수 있으니 평양냉면보다 어렵다.   속초 회냉면. [사진 김성주]   냉면은 서울과 경기쪽에 유명한 식당이 많지만 적어도 비빔냉면은 강원도 동해바다 쪽이 강세이다. 왜냐하면 함흥냉면이라는 것이 함흥으로부터 직렬로 이어지는 곳이 속초니 말이다.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이 속초와 강릉 쪽에 많이 살았다. 그래서 이곳에 가면 함흥냉면 집이 많다. 특히 명태회 무침을 올린 회냉면이 일품이다. 명태 말고 가자미를 쓰는 곳도 꽤 있다. 맨 위의 고성에서 아래 삼척까지 이어지는 강원도 동해 라인을 따라 답사를 하면 막국수와 회냉면이 왔다 갔다 한다. 물론 강원도 끄트머리에서 막국수와 냉면이 끊어지고 경북에서는 국수로 이어지다가 부산에 가서 밀면으로 냉면이 재탄생한다.   서산 간장 냉면. [사진 김성주]   냉면과 명태가 만나 생긴 것이 회냉면이라면 냉면과 생선회가 만난 생긴 것은 물회다. 물회는 회를 국수처럼 말아 먹는 것이다. 어떤 집은 물회 안에 소면을 넣어주기도 한다. 오징어 물회는 오징어를 국수처럼 썰어 넣는다. 필자는 넓은 의미에서 물회도 냉면으로 본다. 물냉면처럼 시원한 육수가 찰랑거리는 물회가 있으면 육수 없이 회와 양념장, 채소가 잔뜩 들어간 비빔냉면과 비슷한 비빔 물회가 있다. 물론 차게 먹어야 하기에 얼음이 반드시 있다.   여름에 막국수, 냉면, 물회라면 겨울에 자주 찾는 국수는 아무래도 우동이다. 뜨끈한 육수에 담아 먹는 것으로는 잔치국수, 칼국수, 라면 등등이 있겠지만 나는 우동을 좋아한다. 육수가 멸치이건 가다랑어이건 소고기이건 MSG이건 우동이 좋다. 우동을 좋아하는 이유는 감칠맛과 함께 부드러운 면발 때문인 것 같다.   서울이나 부산에 있으면 가츠오부시로 육수를 낸 일식 스타일의 우동을 주로 먹지만 농촌으로 가면 진한 멸치 육수를 사용한 우동을 찾는다. 그런데 소도시로 가면 특이한 우동들이 있다. 일부러 찾아가는 우동이다.   충청북도 옥천에 가면 꼭 먹는 우동 요리는 ‘물쫄면’이다. 이름이 웃기다. 그래도 국수의 성격을 잘 설명한다. 멸치 우동 육수 안에 쫄면을 넣어서 물쫄면이다. 쫄면의 단단한 면발이 진한 멸치 육수에 담겨 입 안을 긴장시킨다. 쫄면이 면을 뽑다가 우연히 실수로 생긴 질기 면인데, 물쫄면은 실수로 비빔쫄면이 육수에 잠기게 되어 만들어진 것 같다. 실수로 만들어진 창의적인 우동이다. 그래서 나는 물쫄면을 우동계의 비아그라, 3M 포스트잇으로 부른다. 물쫄면이라 부르는 이 음식은 옥천과 영동에서만 봤다.   통영 우짜. [사진 김성주]   물쫄면만큼 창의적인 우동이 통영에도 있다. 우동과 짜장의 콜라보인 ‘우짜’다. 우짤라고 이런 걸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우동에 짜장 소스를 부은 것이다. 비주얼이 매우 안 좋다. 비비면 비빌수록 안 좋다. 우동의 연갈색 투명한 육수에 검은 짜장이 번진다. 진짜 우짜게 될라고 이런지 모른다. 그런데 맛있다. 통영 주민들은 우짜를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우짜 식당을 찾아 달라는 내 부탁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지역 주민의 표정이 기억난다.   남원 짬뽕. [사진 김성주]   요즈음에는 짜장면보다는 짬뽕을 더 쳐주는 것 같다. 값도 짬뽕이 천원 정도는 비싸다. 지역을 다니다가 끼니때가 되어 무엇을 먹을까 고민한다면 그냥 중국집에 가라고 권하고 싶다. 기왕이면 허름한 집을 가보라. 신세계가 열린다. 기본적으로 업력이 20년 이상 된 집이 많다. 그 지역에서 나는 산물을 많이 쓰기 때문에 향토성이 짙다. 바닷가는 해물이 좋고, 내륙은 버섯과 야채가 좋다. 여기서 잘하는 중국집을 소개하는 건 무의미하다. 직접 현지에 가서 둘러 보다가 동네 수퍼 아저씨나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면 된다. 짬뽕은 아줌마보다는 아저씨들이 더 좋아하니까 중년 남성에게 묻는 게 유리하다.   짬뽕은 당연히 칼칼한 육수가 가득하게 담긴 국물 면요리이다. 그런데 이 짬뽕 또한 지역마다 변주가 있어 놀랍다. 경상북도 예천에 가면 매운면이라고 있다. 볶음짬뽕이라고 해야 할까. 항아리 뚜껑 같은 접시 가득히 국물이 없는 짬뽕이 나온다. 이름도 단순하게 매운면이라고 불린다. 이것을 먹으려면 시내의 중국집에 가면 되는데 예천 중국집의 특징은 OO반점이 아니라 OO식당이다. 외관이 백반집 같아 보여도 중국집이고 대체로 맛있다.   이 음식이 그대로 대구로 가면 야끼우동으로 불린다. 그리고 경상북도 거창과 전라북도 정읍에 가면 비빔짬뽕으로 팔린다. 국물이 자박한 비빔짬뽕은 집마다 맛과 느낌은 조금 다르다. 전라북도의 비빔짬뽕 내지 볶음짬뽕은 같은 지역의 물짜장과 비슷하다. 물짜장도 생소할 것이다. 전주나 군산, 남원에 가서 물짜장을 찾으라. 나름 지역 전문가 냄새를 풍길 수 있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지리산에 올라가다 보면 운봉읍이라고 제법 큰 거리가 있다. 지리산 중턱 오지로 보여도 인구들이 꽤 있고 귀농·귀촌 장소로 선호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그냥 배고파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던, 할아버지가 웍질을 하던 중국집에서 인생 짬뽕을 맛본 적이 있다. 재료나 불맛 모두 특이할 게 없지만 초등학교 시절 경험했던 첫 짬뽕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갑자기 어릴 적 살던 서울 청량리의 거리가 막 떠올랐다. 전화국 옆 중국집에서 이 맛을 느꼈었는데 여기서 이 맛을? 아마 40~50년 전의 조리법을 썼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관련기사[더오래]귀촌 끝판왕…독일 교포들은 왜 여기에 꽂혔을까 [더오래]농촌에 울려퍼진 ‘무궁화꽃이…’…노인·아이 하나 되다어지간한 재력 없이 못 버틴다...제주 이주민 28% "떠나겠다" [더오래] 슬로우 빌리지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1.12.18 15:00

  • "사리인가"…아빠 화장때 나온 작은 구슬에 빵 터진 사연 [더오래]

    "사리인가"…아빠 화장때 나온 작은 구슬에 빵 터진 사연 [더오래]

     ━  [더,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4)     나의 친가는 영적인 것을 많이 찾아다녔다. 여러 종교를 믿었던 친가는 불교에 정착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와 고모들을 따라 절에 다녔다. 주말이면 전국에 있는 절을 찾아다니는 것이 우리 가족의 여행이었다. 명절이 되면 스님에게 절을 하고 용돈도 받았다. 고모 4명과 아빠가 다니는 절은 다 달랐고 마음을 두고 만나는 스님들도 다 달랐다. 덕분에 내 용돈은 두둑했다.   아빠는 얼마 남지 않는 생을 두고 작은 암자에 방을 하나 받아 조용히 수행을 시작했다. 사람 한 명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방에 책상과 옷가지, 이불이 전부인 살림살이였다. [사진 불교문화사업단]   내가 6살 되던 해, 아빠는 장이 파열되는 사고를 당하고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의사는 아빠가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빠를 끌어안고 울었던 내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아빠가 얼마 남지 않는 생을 두고 선택했던 삶은 평소 마음을 뒀던 절에 들어가 조용히 수행하는 것이었다. 아빠는 작은 암자에 방을 하나 받아 들것에 실려 들어갔다. 움직일 수는 있었으나 거동은 불편했던 것 같다. 우리는 자주 아빠를 만나러 절에 갔다.   사람 한 명 누우면 꽉 찰 것 같은 작은 방에 책상과 옷가지, 이불이 다인 살림살이였다. 어렴풋한 기억에 아빠는 책을 읽거나 기도를 했다. 몸이 나아져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법당에서 절을 하거나 주변을 산책했다. 주지 스님에게 용돈을 받았던 기억도 있고, 가끔 또래 동자승이 놀러 오면 같이 장난을 치며 뛰어다니던 것도 생각이 난다. 2년을 넘게 절에서 지냈던 아빠는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을 회복해 나왔다.   우리 가족은 그 뒤에도 주지스님이 죽는 날까지 그 절에 자주 갔다. 주지스님은 90이 넘어 입적했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는 치매를 앓았다. 우리가 잠깐잠깐 뵙기에는 치매라기보다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며 자연히 기억이 소멸되어 가는 듯했다. 그래도 평생을 해온 새벽 기도만큼은 잊지 않았다고 한다. 의사는 고기를 조금이라도 먹으라고 했지만 스님은 먹지 못했다. 몸의 기억은 참 무섭다, 몸이 기억하는 습관은 기억이 사라져 가는 순간에도 세포 세포에 저장되어 있듯 그렇게 살아있다. 죽는 날까지 새벽기도를 했다고 한다.   아빠의 장례식이 끝나고 아빠를 화장할 때였다. 장의사가 화장한 뒤 우리에게 작은 구슬 같은 것을 몇 개 줬다. 순간 우리는 ‘사리인가’ 했다. 갑자기 뒤편에서 지켜보던 아빠 친구 한 분이 “아이고, 덕아(아빠 이름이 인덕이다), 네가 그렇게 열심히 절에 다니더니 사리가 나왔구나” 연신 사진을 찍고, 불교계에 전화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난리가 났다. 나도 한술 더 떠서 “아빠 몸에서 사리가 나오다니” 하며 펑펑 울었다. 한참을 소란을 피우다 장의사에게 “사리가 맞나요?”하고 물어봤다. 화장터를 청소하던 장의사는 “고인이 손목에 차고 있던 염주입니다”하고 무표정으로 덤덤하게 답을 해줬다.   장의사가 화장 한 뒤 우리에게 작은 구슬 같은 것을 몇 개 줬다. 사리인가 했지만, 생전에 아빠가 늘 하고 있던 염주였다. 덕분에 슬픔이 가득한 화장터에서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사진 pixabay]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이내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남편은 애초에 그럴 것 같았다고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다들 흥분해 있어 말을 못 했다고 한다. 아빠는 늘 손목에 염주를 하고 있었고, 염을 할 때도 평소 차고 있었던 염주를 그냥 뒀었다. 우리 모두 염주를 그냥 뒀던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연신 사진을 찍으며 ‘덕아’하고 이름을 불렀던 뚱보 아저씨(내가 부르던 별명)는 “네가 마지막까지 큰 웃음을 주는구나”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마치 아빠가 원래도 그런 사람이었다는 듯.   우리 가족은 모이면 어김없이 사리 사건을 이야기한다. 숙연하고 슬픔이 가득한 화장터에서 일어난 작은 해프닝에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아빠를 떠나보낸 슬픔에 아직은 서로가 짠하다. 꿈에서라도 아빠를 보고 싶었지만 난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엄마는 “죽은 사람이 꿈에 나타나는 것은 좋은 게 아니다”라며 아빠가 좋은 곳으로 가서 꿈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 한다.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정답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명상도 하며 쫓아다녔지만 여전히 난 아빠가 어디를 갔는지는 알지 못한다.   관련기사[더오래]아빠 안녕…결혼식 앞두고 황망하게 치른 장례식[더오래]앞집은 음악가 아랫집은 작가…예술가가 사랑한 동네고지서 들고와 집안 훑고간 경찰 [더오래]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1.12.17 11:00

  • [더오래]6개월째 멈춘 美대사관 인터뷰…‘투자이민 문’ 언제 열리나?

    [더오래]6개월째 멈춘 美대사관 인터뷰…‘투자이민 문’ 언제 열리나?

     ━  [더,오래] 국민이주의 해외이주 클리닉(38)   미국행 투자이민 수속을 맡고 있는 이민 전문변호사로 올해는 정말이지 너무나 괴로웠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수속이 더딘 가운데 미국 투자이민 EB-5프로그램이 6월 30일을 기점으로 멈춰서 있는 ‘대기’상태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미국 투자이민 EB-5프로그램이라는 제도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지난 6월 30일 이후 신규 접수를 아예 못하고 있다. 10월부터는 미국 이민국(USCIS)과 대사관 인터뷰도 사실상 멈춰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투자이민 수속의 모든 단계가 대기 상태로 있는 것은 아니다.   자녀의 취업과 학업, 영주권 수속으로 미국 이민국의 승인과 대사관 인터뷰를 기다리는 투자자가 많다. 현재로서는 미국 투자이민 프로그램이 재개되어야 다시 수속을 진행할 수 있다. [사진 pxhere]   미국 투자이민 수속 가운데 영주권자 신분 이후 단계의 수속인 ‘I-829’는 현재로는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영주권자 신분 이전 단계의 수속으로 미국 이민국 자금출처 심사인 ‘I-526’ 심사와 대사관 인터뷰는 2021년 10월 이후 대기상태다. 요즘 수많은 한국인 신청자가 대사관 단계에서 기다리고 있지만, 대사관에서 도 비자 발급을 하고 싶다고 해서 자체적으로 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미국 투자이민 EB-5 프로그램 단계마다 심사의 차이와 비자 발급의 수속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이 제도가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숙지해야 한다. 미국 투자이민 EB-5프로그램은 외국인 직접 투자로 미국 사회의 지역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1990년 만들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닥친 후로는 명실공히 미국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기 부양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EB-5 프로그램은 2008년부터 현재까지 최소 369억 달러(대략 43조5000억원)의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에 큰 몫을 했다. 더욱이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은 투자이민 프로그램을 통한 외국인 투자가 더 절실해진 상황이다. EB-5프로그램은 미국의 통합 예산안에 포함되어 진행된다. 미국의 회계연도는 10월 1일부터 다음 해 9월 30일까지로, 보통은 9월 30일 이전에 의회에서 다음해 예산안을 처리한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12월이 된 지금도 통합예산안이 완전히 통과되지 않았다.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는 미국 이민국은 원활하게 수속이 이뤄지지 않는다.   지난 몇 년 동안 다음해 통합예산안이 통과되면 자동으로 재허가가 이뤄지는 수순을 밟았다. 그간 EB-5프로그램은 1년이 넘지 않게 단기간 연장되는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 이 때문에 예산안에 자동으로 따라붙는 제도가 아니라 별도의 법안인 ‘미국 투자이민 청렴성 개혁법안(EB-5 Reform&Integrity Act)’이라는 이름으로 좀 더 안전하고 빠르게 수속 절차를 처리하려는 움직임이 지난 몇 년간 거듭됐다. 투자이민의 개혁법안은 무엇보다 미국의 경제발전과 직결되기에 현재는 공화당의 척 그래슬리 상원의원과 민주당의 패트릭 레이히 상원 임시의장이 당의 입장과 관계없이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외국인 직접 투자로 미국 사회 지역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국 투자이민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 이후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기 부양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사진 pxhere]   미국 투자이민이 재개되려면 다음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라도 만족하면 된다. 첫째, 미국의 내년도 통합예산안이 통과되는 경우다. 둘째로는 미국 투자이민 전담 법안이 통과되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이 둘 다 계속 대기 상태로 늦춰져 있다. 미국의 내년도 통합예산안은 하원은 통과했지만 상원에서 아직 처리되지 않고 있다. 임시 예산안 통과가 예상되는 2022년 2월 18일이 분수령이 될 수 있다. 미국 투자이민법은 오는 17일 통과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통합예산안이나 투자이민법 둘 중 어느 하나가 먼저 통과되는 경우, 투자이민 수속은 즉각 정상 재개된다. 다만, 상원에서 통과시킬 수 있는 법안의 수에는 한계가 있어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 투자이민 업계 관계자, 특히 연방정부 로비스트에 따르면 현재 투자이민 법안보다 한층 더 중요한 법안에 부딪혀 투자이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바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에 들고 나왔고 야심 차게 추진했던 경제 회생의 ‘더 나은 미국 재건(Build Back Batter)’ 법안이다. 미국의 사회복지를 50년 만에 대폭 확충하려는 이 법안에는 인프라 투자와 교육‧의료 등 사회복지를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에 착수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내년 하반기에는 2년마다 상원의원 3분의 1을 새로 뽑는 중간선거가 예고되어 있다. 미국 정가는 짝수해마다 열리는 중간선거에 집중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상원의원은 현재 100명으로 34석을 놓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격돌한다. 물론 하원의원 전원과 주지사 50석 가운데 34석을 선출해야 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참고사항으로 보통 굵직한 법안들은 짝수해보다 홀수해에 통과되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 자녀의 취업과 학업, 영주권 수속으로 미국 이민국의 승인과 대사관 인터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투자자가 많다. 현재 상황에서는 미국 투자이민 프로그램이 재개되어야 다시 수속이 진행될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 한해에 미국 투자이민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민비자의 숫자는 대략 700개. 그런데 2020년과 2021년 2년 동안 1년 치 분인 700개 이민비자를 한국에서 소화하지 못했다. 이번에 관련 법 통과로 다시 ‘투자이민의 문’이 열린다면 주한 미국 대사관이 한시라도 빨리 비자발급을 해줄 것이라고 본다. 다음 칼럼에서는 미국 투자이민 EB-5 프로그램 재개 소식을 들고 찾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관련기사[더오래]벼랑 끝 '셧다운' 탈출한 미국…그럼 멈춰선 투자이민은?[더오래]억만장자 일론 머스크가 LA에서 텍사스로 이사한 이유[더오래]40대 초반 은퇴한 파이어족, 미국에 이민가는 이유는? 이유리 국민이주 외국(미국)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1.12.15 11:00

  • [더오래]아빠 안녕…결혼식 앞두고 황망하게 치른 장례식

    [더오래]아빠 안녕…결혼식 앞두고 황망하게 치른 장례식

     ━  [더,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6)   부암동에 신혼집을 자리 잡고 이 공간의 매력에 알아갈 때쯤, 부산 친정집에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전화였다. 믿어지지 않았다. 전날 밤에도 아빠와 연락을 했었다. 아빠는 결혼하는 딸에게 당신이 뭘 해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라”, “잘 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빠는 우리에게 인사도 없이 잠을 자듯 그렇게 가셨다.   나와 가족의 장례식을 생각만으로 수십 번은 해본 것 같다. 내가 했던 명상의 한 방법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그 마음을 버리기 위함이었다. 실제와 같은 마음으로 하기 위해 생각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죽고 실제처럼 장례식을 해봤다. 교통사고로 죽어보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 높은 건물에서 물건이 떨어져 죽어보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자연스럽게 죽기도 했다. 가족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이 갑자기 중병이 들어 돌아가시기도 하고, 연세가 지긋해진 부모님이 마당에 앉아 하늘을 보다가 잠이 들 듯 돌아가시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어떤 죽음이든 죽음은 죽음이다. 떠남과 이별, 상실은 늘 그렇듯 어디 한 부분을 떼어놓는 것 같은 고통이었고, 알 수 없는 죄책감이었다. [사진 flickr]   생각으로 장례식을 열고 죽음을 받아들이면 스스로에게 남아 있는 마음과 부모님께 못했던 말을 꺼내보는 거다. 그러면 마음 깊숙이 있던 여러 가지가 튀어나온다. 기대와 원망, 사랑, 후회 등등 생각으로 하는 것인데도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 순간에 실제 일어난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후회도 많이 했다. 반복하다 보면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인정한 뒤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부모와 여러 갈래로 이어져 있는 마음 중 일부를 끊어내기도 했다. 때때로는 그렇게 울고불고 눈물 콧물 다 짜낸 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사랑해’하며 낯간지러워 평소에 못 했던 말도 여러 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상에서 했던 장례식은 생각으로 했던 것이고, 눈을 뜨고 나면 부모님은 늘 그 자리에 계셨다. 이제는 눈을 떠도 볼 수 없는 실제 일어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떤 죽음이든 죽음은 죽음이다.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말이다. 죽은 사람과는 더 이상 대화를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떠남과 이별, 상실은 늘 그렇듯 어디 한 부분을 떼어놓는 것 같은 고통이었고, 알 수 없는 죄책감이었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비명이 새어 나왔다. 곧 결혼인데,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었고 아이를 낳으면 같이 여행도 가고 싶었다. 아빠와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불현듯 화도 났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고. 인사할 시간도 주지 않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아빠의 죽음이 아빠의 의지도 아닌데 마치 아빠 탓인 듯 그렇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이내 아빠라는 한 사람의 인생이 그저 안쓰러웠다. 애달프기만 했다.   그렇게 결혼식을 앞두고 아빠의 장례식을 했다. 아빠는 살아있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단지 몸이 차가웠다. ‘아빠 일어나요. 나 왔어’ 하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데 그곳에는 이미 아빠는 없었다. 우리 가족은 아빠 손을 잡으며 ‘사랑해’라는 말만 계속했던 것 같다.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손님을 맞이했다. 장례식에 와준 고마운 분들에게 실없는 소리를 그렇게 했다. 난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떠들었던 것 같다. 나를 본 사람들은 ‘속없는 사람처럼 웃고 떠들었다고 했다.’   관련기사[더오래]앞집은 음악가 아랫집은 작가…예술가가 사랑한 동네고지서 들고와 집안 훑고간 경찰 [더오래][더오래]‘여행가고 싶다’이말 없어졌다…부암동과 대치동 차이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1.12.10 11:00

  • [더오래]“저 바다 너머 백제가 있었구나”…‘백제망향선’에 서다

    [더오래]“저 바다 너머 백제가 있었구나”…‘백제망향선’에 서다

     ━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63)   “저 끝에 백제가 있었나?” “그럼 저쪽에 한국이 있다는 거네?”   백제망향선을 의식하며 바라본 경치. 저 멀리 백제(지금의 광주)를 바라보며 고향을 그렸을 백제인들의 심정을 상상해 본다. [사진 양은심]   일본에서 한국이라면 반나절이면 갈 수 있건만, 코로나 19에 발목이 잡힌 지도 벌써 2년을 넘기려 하고 있다. 일본 생활 30년. 이번처럼 한국 방문이 어려운 적은 없었다. 한국에 갈 수 없다면 일본 내라도 둘러보자고 마음을 돌렸다. 정들면 고향이라지. 한국에서 살아온 날보다 일본에서 살아온 날이 길어졌다.   예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절이 있었다. 시가 현(滋賀県)에 있는 백제사(百済寺·햐쿠사이지)다.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호(琵琶湖)의 동쪽에 있는 절로 약 14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스카 시대 606년 쇼토쿠 태자(聖徳太子)가 백제인을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고구려에서 온 혜자(恵慈) 스님과 백제에서 온 관록(観勒) 스님이 관계하고 있다고 해 관심을 가지게 된 절이다.   두 스님을 알게 된 것은 2021년 7월 쇼토쿠 태자 서거 1400주기를 기념하는 특별전에서였다.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쇼토쿠 태자(聖徳太子)와 호류지(法隆寺)’(59회 글 참조). 두 스님은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었다. 혜자 스님은 23년에 걸쳐 쇼토쿠 태자와 함께했다. 고구려로 돌아갈 때는 태자와 저세상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622년 쇼토쿠 태자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혜자 스님은 623년 같은 날에 숨을 거두어 생전의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아직도 눈에 선한 관록(観勒) 스님의 조각상은 앙상한 몸에 강렬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602년에 일본으로 와서 역법과 천문 지리에 관한 지식을 전했다. 특히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백제사의 장소 선정과 방위 결정 등에 관여한 흔적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606년 절이 완성된 후에는 공양승으로 오랫동안 백제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제 그 백제사에 간다.   본당 안 모습. 한국의 절과는 모습이 전혀 다르다. 안에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비불(秘仏)이어서 볼 수는 없다. [사진 양은심]   백제사는 일본의 ‘단풍 100선’에 뽑힌 절이지만 도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는 않았다. 도쿄에서 더 먼 오사카나 교토까지는 자주 가면서 시가 현은 굳이 가려 하지 않는다. 신칸센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동행한 친구들도 시가 현은 처음이라 했다.   백제인을 위해 세운 절이어서인지 백제에서 온 관록 스님이 관여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백제사와 백제(지금의 광주)는 같은 위도에 있다. 북위 35도선. 이 선을 백제사에서는 ‘백제 망향선(百済望郷線·Pecche Nostalgia Line)’이라 부른다.   백제망향선. [사진 백제사 홈페이지]   주차장에서 절 입구를 향해 걷기 시작하자마자 벚꽃이 눈에 들어왔다. 추운 계절에 피는 벚꽃이다. 잘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꽃이 아주 작기도 하거니와 단풍에 눈이 팔려 못 볼 수도 있다. 10월에서 늦으면 2월까지, 해를 넘겨 핀다고 해서 장수 벚꽃(長寿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일본의 옛 절의 대부분은 깊은 산 속에 본당이 있다. 현대식 주차장이 있지만, 차에서 내릴 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걷기 편한 신발은 필수다. 돌계단을 하염없이 오른다. 종종 이런 푸념이 들린다. “왜 이렇게 험난한 곳에 절을 세운 거지?” 나는 속으로 답한다. “그야 수행이 목적이었을 테니까요. 우리 같은 관광객을 불러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을 겁니다.” 혼자서 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절이었다. 수행하듯이 묵묵히 계단을 오르며 생각에 잠기고 싶어지는 절이었다.   지천회유식 정원. 돌다리를 건너면 연못 안에 사는 잉어들이 먹이를 달라고 달려든다. [사진 양은심]   본당으로 가기 전 연못이 나온다. 연못 주변을 걸으며 감상할 수 있는 ‘지천회유식 정원’이다. ‘세키가하라(関ヶ原)’라는 영화의 촬영 장소로도 쓰였다. 영상과 사진으로만 보던 연못의 돌다리를 건너본다. 팔팔한 잉어들이 입을 쩍쩍 벌린다. 동행한 친구가 먹이를 주고 있었다. 죽은 듯이 조용한 산사에 팔팔한 잉어들. ‘살아있음’을 느꼈다. 잉어도 나도 살기 위해 숨을 쉬며 먹이를 섭취한다. 1400년이란 역사를 가진 산사에서 잉어와 나는 순간을 살아내는 동지였다.   연못을 돌고 나오니 산길이 이어졌다. 다시 계단이 나오고 거대한 짚신을 장식한 문이 보인다. 문을 들어서면 다시 계단. 그 계단을 오르면 본당이 있다. 본존불인 십일면관음보살상(十一面観音菩薩)은 비불(秘仏)이어서 볼 수 없었다. 백제의 용운사에 있었던 불상과 같은 나무로 만든 불상으로 쇼토쿠 태자가 조각했다는 설도 있다. 전국시대(戦国時代),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불교탄압 때에는 스님들이 산속으로 옮겨 지켜낸 불상이라 한다. 3m에 달하는 불상을 8km나 옮겼단다. 맨몸으로 오르기도 힘든 산길을 어찌 옮겼을까. 누군가 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걸어들어갈 수는 없으나 탄성을 지르게 되는 절경이다. [사진 양은심]   내려올 때는 완만한 오솔길을 택했다. 무릎을 보호해야 하는 나이이기에. 산사의 경치는 오를 때 다르고 내려올 때 다르다. 바람에 흩날리는 빨강, 노랑, 갈색의 낙엽들이 축복으로 느껴진다. 전망 좋은 곳에 발을 멈추고 ‘백제 망향선’을 의식해본다. ‘저 산과 바다 너머에 백제가 있었구나.’   일본인과 한국인이 느끼는 백제사는 전혀 다를 것이다. 역사를 알면 더더욱 말이다. 백제사. 百済寺(햐쿠사이지). 다음엔 봄이나 여름에 오고 싶다.   관련기사[더오래]우연히 찾은 임간학교…아들과 공유한 맛의 추억 [더오래]묘지가 길가에…재해와 공존하는 일본인의 운명적 삶[더오래]2020도쿄올림픽 마라톤, 소말리아 난민의 쾌거 한일자막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1.12.09 08:00

  • [더오래]벼랑 끝 '셧다운' 탈출한 미국…그럼 멈춰선 투자이민은?

    [더오래]벼랑 끝 '셧다운' 탈출한 미국…그럼 멈춰선 투자이민은?

     ━  [더,오래] 국민이주의 해외이주 클리닉(37)     오미크론이라는 기존 델타변이보다 2배나 전파력이 강한 새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 EU,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주 한국까지 강타했다.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의 메카’라 할 수 있는 미국은 캘리포니아, 하와이, 뉴욕, 메릴랜드, 콜로라도, 펜실베이니아 등으로 감염이 번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 의회는 지난 3일 연방정부 셧다운(업무정지)을 막기 위해 내년 2월 18일까지 연방정부에 대한 자금 지원을 하기 위한 임시지출 법안을 상‧하원에서 모두 통과시켰다. 상원은 임시지출 법안을 찬성 69 반대 28로, 하원은 아프가니스탄 피난민 지원금 70억달러(8조2593억원)를 추가하는 한편, 정부가 11주 동안 더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221대 212로 처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그간 우려했던 미국 사상 초유의 정부 마비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 연방정부의 2022 회계연도는 지난 10월 1일 이미 시작됐지만, 의회는 9월 30일까지 예산을 처리하지 못한 채 임시지출 법안만 통과시킨 상태였다. 이 법안은 지난 3일 자정을 기해 시한이 종료될 예정이어서 추가 임시지출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셧다운이 불가피했다.   '미국 의회는 연방정부 셧다운을 막기 위해 내년 2월 18일까지 연방정부에 대한 자금 지원의 임시지출 법안을 미 상‧하원에서 모두 통과시켰다. [사진 pxhere]   앞서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이 100인 이상 기업에 대한 코로나 백신 의무화를 철회하지 않으면 셧다운 방지를 위한 임시 예산안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초긴장 상태에 놓였던 의회가 잠시 합의해 약 석 달 동안 예산 문제를 논의할 시간을 벌게 됐다고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은 전하고 있다. 이 법안은 내년도 본 예산안에 대한 초당적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전년도 수준에서 연방기관에 임시로 예산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AP통신은 이번 임시지출 법안 통과가 정부 지출을 둘러싼 벼랑 끝 전술의 사례 중 하나라고 전했다. 미국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 멕시코 국경 장벽을 둘러싼 예산을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35일간 셧다운 되는 등 지난 20년간 몇 차례 셧다운과 부분 폐쇄를 겪은 바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결국 냉철한 머리가 승리해 기쁘다”며 “정부는 계속해서 열려있을 것이다. 불필요하며 비용이 많이 드는 셧다운의 위기에서 우리를 돌아나올 수 있게 해준 의원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이 법안과 관련해 의원들에게 반대표를 던질 것을 촉구했다. 공화당 하원의원 가운데 찬성표를 던진 것은 일리노이주의 애덤 킨징거 의원이 유일하다. 이제 법안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만 남았다.   이와는 별도로 이번에 처리되지 않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이 줄곧 지켜봤던 미국 투자이민(EB-5) 법안의 포함여부에도 관심이 많다. 리저널센터(RC)를 통한 미국 투자이민은 지난 7월 1일부터 멈춰서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년 2월 18일 이전에는 어떤 형태로든 임시지출 법안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면 무려 6개월간 멈춰 있던 미국 투자이민 법안은 과연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재가동될 것인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글로벌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외국의 투자자들이 아직도 미국을 정치와 경제의 글로벌 리더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의원들은 현행 EB-5 제도가 사기 사건에 악용되기 쉽고, 투자금이 주로 도시 지역 개발사업에 쓰이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해왔다.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투자이민 관련 리저널센터, 개발사 그리고 이민 변호사 모임인 IIUSA에 따르면 일시중단된 미국 투자이민으로 인해 150억 달러 상당의 자금을 투자한 3만2590명의 투자이민 신청자와 가족들이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여기에다 미국 내 48만6931명이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고 한다. 그래서 투자이민 프로그램의 투명성과 청렴성을 높이는 새 법안 발효로 미국 투자이민 재개를 예상하는 전문가가 많다. 당연히 이 법안은 발의가 된다고 하면 내년 2월 18일까지 의회를 거뜬하게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새 투자이민 법안이 새해 2월 중순 통과돼 미국 투자이민이 재개된다면 하루라도 빨리 'EB-5의 초특급열차'에 올라타야 한다. [사진 pixabay]   미국 투자이민(EB-5) 프로그램은 미국경제라는 엔진에 투자이민을 희망하는 외국인 투자자의 현금이 투입돼 대규모 일자리를 이끄는 수레바퀴 같은 존재이다. 1990년 미국 의회가 외국인 직접 투자와 함께 미국 지역사회에서 일자리 창출을 통해 미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번 투자이민 개혁법안(EB-5 Reform Bill)에 포함된 사항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그동안 2년 이상 걸렸던 이민 수속 기간과 관련된 부분이다. 현재 미국 이민국의 인지대는 3675달러. 그런데 이 인지대 비용을 무려 13.6배나 올린 5만 달러를 지급한다면 그 반대급부로 현재 2년6개월에서 3년 걸리던 수속 기간을 180일로 지금보다 2년 이상 단축시킨다고 한다. 또 비자 발급이 늦춰져 미국 투자이민 청원 승인을 이민국에서 받고도 미국에 입국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임시 입국 허가조치 등이 포함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이민법 개정이 통과되면 어느 정도 일정한 조건을 갖춘 투자자와 그 가족은 임시 입국을 허가해 영주권 취득 전이라도 미국 내 체류와 취업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음으로 미국 투자이민(EB-5) 프로그램 투자자를 모집·운영하는 리저널센터의 재가동에 따른 대응과 이민 관련 업체에 대한 투명성에 대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예비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미국 투자이민을 진행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혹시라도 새 투자이민 법안이 새해 2월 중순 통과돼 미국 투자이민이 재개된다고 하면 하루라도 빨리 ‘EB-5의 초특급열차’에 올라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런 기회는 지속해서 정거장에 들르는 정기열차가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올 6월 보름간 이뤄졌던 ‘50만 달러 EB-5투자기회의 창’이 다시 열린다면 더더욱 빨리 접수해야 한다. 예비 투자자들은 자금 준비와 그에 따른 자금 출처 증빙 등 미국 이민 전문 변호사와 반드시 꼼꼼하게 상담해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관련기사[더오래]억만장자 일론 머스크가 LA에서 텍사스로 이사한 이유[더오래]40대 초반 은퇴한 파이어족, 미국에 이민가는 이유는?[더오래]미국 투자이민, 꼭 챙겨야 할 체크포인트 3가지 김민경 국민이주 외국(미국)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2021.12.08 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