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00년을 기념하다 [더 하이엔드]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00년을 기념하다 [더 하이엔드]

     1924년.   몽블랑이 대표 필기구인 ‘마이스터스튁(Meisterstück)’을 처음으로 선보인 해다. 당시 몽블랑을 애용하던 일부 고객들이 특별한 요청을 한다. 일요일 등 특별한 날에 쓰는 필기구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이었다. 때마침 몽블랑의 장인들이 뛰어난 장인정신을 발휘한 필기구를 만들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최초의 마이스터스튁 컬렉션이 탄생한다. 마이스터스튁은 그 이후 100년간 전 세계 필기구 애호가로부터 사랑받으며 필기 문화의 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다. 마이스터스튁 오리진 컬렉션의 캡. 사진 몽블랑    ━  마이스터스튁이 거쳐 온 시간   1929년 몽블랑의 카탈로그. 사진 몽블랑 몽블랑은 초창기 마이스터스튁부터 ‘4810’이라는 숫자를 상징적으로 사용했다. 4810은 몽블랑 산의 높이를 의미한다. 네 자리 숫자를 패키징과 캡에 뚜렷하게 표시했고, 1930년부터는 닙(펜촉)에도 각인했다.     1930년대 몽블랑의 브로슈어. 사진 몽블랑 1930년대 들어선 과감한 디자인을 시도한다. 원통형 쉐입, 싱글 보드 캡 링, 대담한 클립 디자인과 투톤 닙이 등장한다. 1937년에는 캡 부분에 세 개의 골드 링이 있는 첫 번째 마이스터스튁을 출시했다. 각 골드 링은 초창기에 회사 설립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세 사람을 나타낸다고 한다.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는 클래식이 귀환하고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재건과 혁신의 시기였다. 마이스터스튁도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세 개의 링과 펜촉 등 유명한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유선형의 룩을 선보였다.     1960년대의 몽블랑 필기구 제조 과정. 사진 몽블랑 1960년대는 대량 생산의 시대였다. 몽블랑도 효율적인 기술을 도입하고 현대적인 생산 방식과 소재를 계속 발전시켰다. 1970년대 초, 몽블랑은 럭셔리 브랜드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전통에 집중하는 결정을 한다. 1950년대의 시가형(cigar-shaped) 마이스터스튁을 부활시켰다. 날렵한 디자인은 단계적으로 없애고 클래식하고 매끄러운 모델의 제품군을 늘렸다. 1980년대에는 솔리테어(Solitaire)도 첫선을 보였다.   그 이후로도 전통의 디자인을 지켜나가면서도 마이스터스튁의 실루엣은 다양한 필기 환경에 맞춰 재해석됐다. 수많은 변형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이 필기구는 특유의 핵심 디자인 코드를 유지해 왔으며 필기 문화의 상징으로서 계속해서 영감을 선사하고 있다.    ━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디자인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오리진 컬렉션. 사진 몽블랑 마이스터스튁은 올해 100주년을 맞이했다. 몽블랑에선 100주년 기념 컬렉션인 ‘마이스터스튁 오리진 컬렉션(Meisterstück The Origin Collection)’을 선보였다. 오랜 세월을 거쳐 온 디자인 속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광범위한 몽블랑 아카이브에서 한 번도 현실화된 적 없는 오리지널 콘셉트를 재해석했다.   우선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각 에디션은 숫자 ‘100’과 연도 ‘1924’ 및 ‘2024’를 표시한 특별한 디자인 닙으로 장식했다.   처음엔 ‘마이스터스튁’이라는 이름을 다양한 언어로 번역했지만, 국제적인 성공이 계속되며 제품명 자체가 상징적인 것이 됐다. 그러면서 본래 독일어 버전만을 유지하게 됐다. 이런 제품명의 중요성을 반영해 오리지널 MEISTERSTÜCK 로고가 모든 에디션의 캡 옆부분에 새겨진다. 마이스터스튁 오리진 컬렉션과 초기 마이스터스튁 패키지. 사진 몽블랑   클립 드롭이 있는 에디션의 구부러진 클립은 다양한 클립을 고객이 선택할 수 있었던 1920년대에 존재한 매우 다양한 클립 버전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캡의 프레셔스 레진은 초기 마이스터스튁 필기구에 장식된 다양한 마블 효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오늘날의 한층 진보된 생산 기법으로 녹는 잉크를 연상할 수 있는 디자인을 의도했다. 또, 컬렉션의 디자인 영감이 된 오리지널 요소들에 경의를 표하며 모든 엠블럼은 각각의 에디션 컬러로 둘러싸여 있다.     알레산드라 엘리아(Alessandra Elia) 몽블랑 필기 문화 디렉터는 “디지털 시대의 정점에서도 마이스터스튁은 문화와 창의력, 연결성의 상징으로 여겨질 것”이라며 “이번 특별한 컬렉션을 통해 몽블랑 마이스터스튁의 디자인 속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발견하는 경험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이담 기자 park.idam@joongang.co.kr

    2024.04.19 08:00

  • “조향사에게 자유를 주니, 혁신적인 향이 태어났다”...프레데릭 말의 철학[더 하이엔드]

    “조향사에게 자유를 주니, 혁신적인 향이 태어났다”...프레데릭 말의 철학[더 하이엔드]

    “향 없는 인생?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플래그십 매장에서 만난 프레데릭 말. 정성룡 사진가   지난 12일 한국을 찾은 향수 브랜드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창립자 프레데릭 말의 이야기다. 2000년 그가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 브랜드를 만들어 내놨을 때, 세상이 주목했다. 새로운 컨셉의 향수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향수마다 각기 다른 모양의 병과 디자인, 마케팅을 전개하는 게 일반적인 향수 브랜드의 방식이다. 그런데 프레데릭 말은 달랐다. 각기 다른 조향사가 만든 향수를 모두 똑같은 디자인의 병에 담았고, 병을 포장한 종이 패키지는 마치 두꺼운 책처럼 디자인했다. 브랜드명 또한 책처럼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Editions de Parfums Frédéric Malle)’로 지었다. 책 같은 향수 패키지 덕분에 그의 향수 매장은 마치 잘 정돈된 책방 같은 느낌이 났다.    프레데릭 말이 책처럼 꽂혀 있는 자신의 향수 컬렉션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정성룡 사진가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대표 향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게다가 다른 향수에선 뒤로 숨겨져 있던 조향사의 이름을 앞으로 내세워 큼지막하게 향수병에 새겼다. 자신의 이름보다 향을 창조한 조향사의 이름을 공개하고, 그를 한 명의 아티스트로 대접했다. 2013년 국내에 들어왔을 때는 새로운 컨셉에 트렌드에 앞서가는 스타들이 그의 향수를 선택했다. 어느새 25년 차 향수 브랜드가 된 프레데릭 말은 지난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아시아 최초로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 한국의 둥지에서 그를 만났다.    이런 컨셉의 향수 브랜드를 어떻게 고안해냈나. “현대미술처럼 향수도 현대, 즉 그 시대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조향사들은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해 힘들어했다. 그들이 마음껏 향을 만들 수 있다면, 혁신적인 향이 나올 것이라 확신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아름다운 36개의 컬렉션이 완성됐다.”   조향사의 능력을 끌어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완벽한 자유를 준다. 우리 조향사는 시간에 대한 제약, 돈에 대한 제약이 없다. 자신의 향을 마음껏 만들어내기만 하면 된다."   패키지가 특이하다. 책처럼 만든 이유는. “프랑스 유명 출판사 갈리마드의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 폰트로만 차별점을 둔 단순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화려한 다른 향수 패키지들보다 매력적이었고, 조향사의 이름을 저자명처럼 쓸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 패키지나 광고, 향수병에 쓰는 예산을 아껴 향수 자체를 만드는 데 쓰고 싶어 향수병과 패키지를 최소화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플래그십 매장.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향에 좋은 원료를 쓰기 위해 간소화한 패키지들은 오히려 더 현대적인 매력을 풍긴다.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플래그십 매장 내에 설치된 시향 기기.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1962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향수와 친했다. 외할아버지 세르쥬 애틀러-루이체는 크리스찬 디올 향수의 설립자였고, 어머니 역시 회사 경영에 참여해 디올 향수의 제품 개발 디렉터로 세르주 루텐을 영입해 ‘소바쥬’ ‘쟈도르’ 등 향수 개발에 기여했다. 그는 미술사를 전공하고 광고·사진업계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결국 다시 프랑스 유명 향수원료 제조사인 루르 베르트랑 뒤퐁(Roure Bertrand Dupont)에 들어가 향수 세계로 돌아왔다.    향수 가문이다. 향에 대한 남다른 가르침이 있었나. “할아버지는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만난 적이 없지만, 어머니는 나에게 늘 ‘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떤 창작이든 타협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당신이 생각하는 ‘향수’란 무엇인가. “나 자신을 확장하는 방법.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도 전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좋은 향수는 자신의 일부와 같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향이 아니라 ‘냄새’다.”   여러 조향사가 작업하는 만큼, 하나의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제품을 관통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 같다. “두 가지 중요한 철학이 있다. 첫째는 새로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향수만의 독특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   오는 5월 출시하는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과 아크네 스튜디오의 콜라보 향수(왼쪽). 오른쪽은 올봄 한국에 잘 어울리는 향으로 프레데릭 말이 직접 꼽아준 향수 '엉 빠썽'.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36개 컬렉션 중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향수는. “우리 대표 제품인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Portrait of a Lady)’다. 향이 너무 정교해서 대중적이진 않겠다 싶었는데 많은 사람이 좋아해줘 놀랐다.”   봄이 왔다. 요즘 한국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향수는. “두 가지다. 화이트 라일락 향을 이용한 ‘엉 빠썽(En passant)’과 오는 5월에 출시하는 ‘아크네 스튜디오 파 프레데릭 말’이다. 엉 빠썽은 바람을 타고 흐르는 라일락 향을 느낄 수 있다. 아크네는 신선하고 우아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2024.04.19 05:00

  • 최상의 수면 돕는다... 172년 역사의 천연 소재 침대 [더 하이엔드]

    최상의 수면 돕는다... 172년 역사의 천연 소재 침대 [더 하이엔드]

    “최상의 수면을 취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잠에서 깨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 향상된 건강과 인간관계, 최상의 사고, 최고의 삶이 펼쳐집니다.”   스웨덴 하이엔드 침대 해스텐스는 172년의 역사 동안 최상의 수면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인다는 목표와 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해스텐스   스웨덴 하이엔드 침대 해스텐스(Hästens)는 고객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편안한 잠자리를 보장한다’는 침대 광고에 익숙한 우리에게, 해스텐스는 더 높은 수준의 결과를 논한다. 잠을 깊이 잔 뒤 느낄 수 있는 개운함과 에너지는 결국 최고의 삶을 만들어가는 근간이 된다는 것. 누구나 알고 있고 원하지만, 쉽지 않은 숙면. 해스텐스는 이미 172년 전 여기에 집중했다.      ━  자연과 하나된 침대   해스텐스는 1852년 스웨덴인 페르 아돌프 얀손에 의해 시작됐다. 19세기에 탄생한 유서 깊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이 그러하듯 해스텐스 역시 마차에 쓰이는 말 안장을 제작했는데, 이와 함께 만들었던 게 바로 침대였다. 페르 아돌프 얀손은 당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최상의 잠을 잘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하고 연구했다. 사람이 편안한 마구와 침대. 이 두 가지 제품의 제작 과정엔 한 땀 한 땀 정성 들이는 장인 정신이 필요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해스텐스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100여 년 전 해스텐스 공장에서 직원들이 침대에 사용할 말총을 손으로 꼬고 있는 모습. 말총은 편안하고 쾌적한 잠자리를 만드는 핵심 소재다. 사진 해스텐스   해스텐스가 완전한 침대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17년에 와서다. 페르 아돌프 얀손의 손자인 데이비드 얀손은 침대에만 주력하기로 결정했고, 좋은 침대를 만들기 위한 답을 자연에서 찾았다. 자연 재료만이 사람의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확신에서다. 당시 그는 침대 제작에 사용할 우수한 자연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홀스헤어 방적공장을 직접 세웠고, 지금 본사와 공장이 있는 셰핑 지역으로 본거지를 옮겼다. 1952년엔 스웨덴 왕실의 공식 침대 납품업체로 선정됐고, 이후 유럽을 포함한 세계 전역에 ‘명품 침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  브랜드 철학 보여준 25년 품질 보증   해스텐스의 놀라움은 이들이 제품에 대해 지키는 25년이라는 긴 보증 기간에도 있다. 보통의 공산품이 1년 정도의 보증기간을 가진다. 하지만 해스텐스는 한번 자신들의 침대를 산 고객이라면 이후 25년간의 품질 보증을 해주며 수리 등 애프터서비스를 해준다. 흥미로운 것은 25년 품질 보증이 일찍이 1940년대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한번 이들의 침대를 사면, 바꾸지 않고 수리해가며 오랜 시간 사용하게 한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인 삶의 방식을 완성하게 한다.    설립 초기부터 6대가 합류한 지금까지 이들의 변치 않는 가치는 기존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있다. 말총을 비롯해 양모, 순면, 아마 등 최고급 천연 재료만을 사용하고, 100% 수작업으로 일일이 끈을 꾀고 스프링을 만들어 붙이는 등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 세계 매장에 비치돼 있는 침대 모형. 침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 사진 해스텐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해스텐스 쇼룸에는 충전재 소재와 레이어를 확인할 수 있는 침대의 단면도가 비치돼 있다. 순면, 양모, 말총이 겹겹이 쌓여 있는 구조인데, 소재별로 역할이 다르다. 맨 위의 순면이 자면서 흘리는 땀을 흡수한다. 순면 바로 밑에 붙어 있는 양모는 수분을 발산하는 소재로, 순면이 흡수한 수분을 바로 밑의 말총으로 전달한다.   가장 중요한 소재는 말총이다. 말총은 빨대처럼 속이 비어 있는 기공 구조를 가진 섬유로, 통풍이 잘돼 땀 등 수분을 공기 중으로 증발시킨다. 우리의 갓을 말총으로 만든 것과 같은 이유다. 박상현 해스텐스 한국 영업 총괄은 "말총이 바로 자연통풍 시스템의 중요한 열쇠"라며 천연 소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말총은 머리를 땋듯 꼬아 밧줄 형태로 만들어 고온 건조해 사용한다. 그러면 마치 스프링처럼 고불고불해지는데, 특유의 탄성을 갖게 돼 천연 스프링 역할을 한다.     촘촘히 꼬아 밧줄처럼 만든 말총. 사진 해스텐스 고강도 스웨덴 스틸 소재로 만든 스프링을 손으로 하나하나 엮는 공정. 사진 해스텐스 척추가 편안하게 직선으로 유지되는 모습. 사진 해스텐스   침대 프레임 또한 내구성이 좋은 북유럽 소나무를 사용한다. 추운 지방에서 자라 생장 속도가 느린 만큼 단단해 시간이 오래 지나도 뒤틀림이 거의 없다. 강도 높은 스웨덴 스틸 소재로 만든 스프링은 소프트·미디엄·펌·엑스트라 펌 등 침대 강도를 결정하는 요소로, 독립적으로 움직여 옆에서 다른 사람이 뒤척여도 흔들림이 없다.     ━  국기보다 더 유명한 블루 체크   해스텐스의 명성만을 듣다가 처음 침대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블루 체크에 놀란다. 이들의 명성과 고가의 가격을 생각했을 때 상상했던 중후하고 무거운 느낌의 침대 대신, 흰색과 파란색 컬러를 사용한 경쾌한 체크 패턴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해스텐스 2000T. 사진 해스텐스 해스텐스가 지금의 블루 체크를 사용한 것은 1978년부터다. 데이비드 얀손의 딸 솔비이그와 결혼한 잭 리데가 4대 오너로 브랜드를 계승한 뒤, 스톡홀름 가구 박람회에서 처음 블루 체크 해스텐스를 발표했다. 당시엔 일반적이지 않은 모습에 혹평을 받았지만, 지금은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십자가가 그려진 스웨덴 국기보다 스웨덴을 대표한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브랜드 아이콘이 됐다.     블루 체크는 엔지니어 출신인 잭 리데가 바느질을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고안한 디자인이다. 한 땀의 삐뚤어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리데의 의지가 담겨있다. 해스텐스 침대 하나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40~150시간으로, 색상 차이가 거의 없는 화이트 체크의 경우엔 봉제에만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상위 모델인 비비더스의 경우, 침대 하나 제작에만 360시간이 소요된다.   ■ “최고의 침대를 통해 세상을 더욱 행복한 곳으로”  「 인터뷰ㅣ얀 리데 해스텐스 오너 겸 최고경영자 해스텐스 얀 리데 CEO. 사진 해스텐스   지금 해스텐스는 창립자 페르 아돌프 얀손의 4대손이자 5대 오너 겸 최고경영자(CE0)인 얀 리데가 이끈다. 그는 경영뿐 아니라 브랜드 철학과 가치를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세계적인 침대엔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해스텐스 침대 하나를 만드는데 360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긴 시간을 투자하는 이유는.  “완벽에 가까운 해스텐스 침대는 오직 숙련된 장인의 경험과 직관을 통한 작업으로 탄생하기 때문이다. 제작 전 과정이 장인 손끝에서 이루어지며, 밀리미터까지 침대의 모든 면이 완벽해야 하므로 상당한 시간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최상위 모델인 그랜드 비비더스의 경우는 600시간이 걸린다. 또한 작업이 올바르게 진행되고 있는지 장인이 직접 지켜보며 확인하는데, 이 또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렇듯 침대 하나마다 공들이는 이유는. “우리는 해스텐스의 이름이 최고의 품질과 장인정신의 동의어라고 믿는다. 해스텐스의 사명은 최고의 침대를 통해 세상을 더욱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 올의 삐뚤어짐도 허용하지 않는 장인의 바느질. 사진 해스텐스   장인정신, 너무 멋있다. 하지만 만족할만한 수익이 나오는지도 궁금하다. 이렇게 하고도 비즈니스가 가능한가.    “절대적으로 가능하다. 품질에 대한 높은 기준과 기업의 수익성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함께 공존하며 성장할 수 있다. 제품 품질과 장인정신은 해스텐스에서 172년에 걸쳐 존중받는 가치이자 우리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삶을 윤택하게 하는 제품을 선택함으로써 건강한 수면과 라이프스타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 같은 변화는 우리의 성장과 함께한다."   170년 넘는 역사 동안 해스텐스가 추구해온 것은 무엇인가.       “세상 많은 사람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도울 때, 풍요와 사랑은 자연스레 찾아온다는 믿음이 해스텐스를 관통하는 철학이다. 나는 이를 전파하기 위해 책 『When Business is Love』(사업이 사랑이 된 순간)를 썼다. 6대에 걸쳐 해스텐스에서 이어져 온 사랑·기쁨·평화·풍요를 전해, 세상의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고 더 많은 사랑과 기쁨, 평화를 경험하길 바란다. 사랑과 기쁨, 평화가 있을 때 세상의 많은 것이 쉬워진다.”   얀 리데가 해스텐스의 철학과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쓴 책 『When Business is Love』. 사진 해스텐스 좋은 수면에 대한 니즈는 날로 커지고 있다. 최근 수면 시장의 트렌드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젊은 고객의 숙면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양질의 수면을 위해 해스텐스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구매를 한다. 많은 사람이 해스텐스를 단순한 침대, 가구로 여기지 않고, 숙면과 회복을 위한 장기적 투자로 접근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삶을 위한 투자임과 동시에 지속가능한 소비라는 관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침대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편안함이 항상 1순위다. 당신이 지금 사용하는 침대의 느낌과 수면의 질은 어떤지, 부족하거나 원하는 부분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라. 침대에 누웠을 때 무중력 상태처럼 느끼는 동시에, 압박받는 신체 부위 없이 고르게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누운 상태에서 척추가 곧게 펴지며 근육이 충분히 이완시키는 느낌을 주는 침대를 찾아야 한다. 수면 중 최적의 온도와 습도도 중요한 요소인 만큼, 침대 내부 소재가 숙면에 최적화된 온·습도를 조성하는지 확인하는 게 좋다.”   세계 최고의 침대를 만드는 당신은 어떤 침대를 쓰는지 궁금하다.      “해스텐스 2000T다. 1978년 블루 체크를 최초로 도입해 스톡홀름 가구박람회에서 선보인 첫 모델이다. 올해로 46살(※사용한지 46년 됐다는 의미)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완벽한 컨디션을 자랑하며 나에게 매일 밤 최상의 숙면을 제공한다.”   6대에 걸쳐 가업을 잇고 있다. 가문의 가장 큰 유산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우리가 선택한 업에서 경지에 도달해라. 그렇게 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 지킬 수 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이다. 해스텐스는 최고의 침대와 수면 제품을 전함으로써 세상을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들고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많은 사람이 매일 밤 숙면을 통해 푹 쉬고 진정으로 깨어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해스텐스가 많은 사람의 휴식과 회복, 행복한 삶에 기여하고 함께하기를 바란다.” 」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2024.04.19 05:00

  • 산책길 만들고 정원 조성…이 브랜드가 나무 심기에 진심인 이유 [더 하이엔드]

    산책길 만들고 정원 조성…이 브랜드가 나무 심기에 진심인 이유 [더 하이엔드]

    클라랑스 코리아는 지난 8일 서울 동대문구 중랑천 산책로에 ‘클라랑스 로드-70 Years 70 Trees’ 이벤트를 진행했다. 브랜드 설립 70주년을 기념해 70그루의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중랑천 장평교 일대에 심어 산책로를 마련한 것. 식물 성분 기반의 스킨케어를 지향하는 클라랑스는 지난 2011년부터 전 세계에 76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어왔다. 클라랑스는 서울 동대문구 중랑천 장평교 인근에 70그루의 나무를 심은 '클라랑스 로드'를 조성했다. 사진 클라랑스    ━  중랑천에 200m 메타세쿼이아 산책길   서울 동대문구 중랑천 장평교 인근. 봄이면 천변을 화사하게 물들이는 장미와 튤립으로 유명해 ‘장미정원’으로 불리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의 볼거리는 단지 꽃뿐만이 아니다. 탐스럽게 조성된 꽃 화단 사이사이 배롱나무·영산홍 등 초록빛 나무들이 오밀조밀 자리한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좁다란 산책길 사이사이 시원한 나무그늘을 만들어줘 한층 쾌적한 걷기가 가능하다. 정원 한쪽 유난히 푸른 나무들이 밀집한 곳에 ‘클라랑스 가든’이라는 나무 푯말이 있다. 프랑스 스킨케어 브랜드 클라랑스가 조성한 정원이다. 지난해 5월 클라랑스 코리아가 서울 동대문구와 협약을 맺고 만든 정원으로, 배롱나무·쥐똥나무·산철쭉·영산홍 등 1000그루의 나무들이 자리한다.   클라랑스 로드에는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를 흡수하는 메타세쿼이아 70그루가 식재됐다. 사진 클라랑스 올해는 이 클라랑스 가든 옆에 시원하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산책길 ‘클라랑스 로드’도 조성됐다. 클라랑스 코리아는 지난 8일 브랜드 설립 70주년을 맞아 중랑천 산책로에 메타세쿼이아 70그루를 심었다고 전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를 흡수·분해해 도시의 공기를 청정하게 하는 대표적 친환경 수목이다. 약 200m 길이에 달하는 클라랑스 로드의 70그루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1년 동안 약 4872㎏의 이산화탄소와 2만2064㎏의 탄소를 저장해 온실가스 감소에 기여할 예정이다.    ━  2011년부터 76만 그루 나무 심어와   클라랑스는 지난 2011년부터 ‘클라랑스 나무 심기(Planting Trees with Clarins)’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프랑스 환경 단체 ‘퓌르 프로제(Pur Project)’와 함께하는 사회 공헌 활동 중 하나로, 지금까지 전 세계에 76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어왔다. 제니퍼 박 클라랑스 코리아 사장은 “나무 심기는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고 기후 변화를 막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라며 “클라랑스는 다양한 탄소 중립 활동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보다 아름다운 지구를 선물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클라랑스는 지난 2011년부터 '클라랑스 나무 심기' 글로벌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까지 76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사진 클라랑스   클라랑스의 나무 심기 캠페인은 클라랑스가 식물 성분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라는 점에서 울림을 더한다. 클라랑스는 성분의 80% 이상을 식물성으로 사용하는 등 식물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브랜드다. 클라랑스가 화장품의 원료를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수입하며, 주된 사회 공헌 활동으로 식목 사업을 하는 이유다. 이 밖에 클라랑스 그룹은 매년 탄소 사용과 관련된 실사용 자료를 나라별로 제출하게 함으로써 사용량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2020년 탄소 중립을 달성했으며, 2025년까지 탄소 발자국을 실질적으로 30%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  ‘1 더블 세럼 = 1 트리’ 캠페인 전개   오는 20일부터 내달 19일까지 더블 세럼 또는 더블 세럼 아이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에게는 나무 기증 인증서가 전달된다. 사진 클라랑스   클라랑스의 시그너처 제품을 활용한 나무 심기 캠페인도 진행한다. 클라랑스 코리아는 오는 20일부터 내달 19일까지 더블 세럼 또는 더블 세럼 아이 제품을 구매하는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1 더블세럼 = 1 트리(tree)’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제품을 구매한 모든 고객은 나무 기증 인증서를 받을 수 있는데, 이 인증서의 QR코드를 통해 클라랑스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한 뒤 나무 코드와 이름을 등록하면, 자신의 이름으로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이벤트를 통해 고객이 기증한 나무는 경북 울진 산불 피해 지역 숲 복원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클라랑스는 지난 2022년부터 매년 5월에 ‘1 더블 세럼 = 1 트리’ 캠페인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를 통해 강원도 산불 피해 지역에 2022년 소나무 1200그루, 2023년 소나무 4000그루를 심었다.     관련기사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 300점에 관심 폭발…사전예매 1위 '71캐럿 옐로 다이아' 자연의 기적 만든 티파니 [더 하이엔드] ‘구찌 신화’ 만든 디자이너 미켈레, 발렌티노도 성공시킬까 [더 하이엔드]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2024.04.19 05:00

  • 명품 불가리 이어 스벅 홀린 '도도새 작가'…새벽 5시 출근 왜 [더 하이엔드]

    명품 불가리 이어 스벅 홀린 '도도새 작가'…새벽 5시 출근 왜 [더 하이엔드]

    도도새 화가 김선우가 이번엔 자신의 에세이집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기’에 애쓰는 그는 글을 통해 또 다른 사유의 그림을 그리려 한다.    에세이집 랑데뷰 낸 화가 김선우. 사진 정성룡   1988년생 김선우 작가는 최근 가장 관심을 받는 젊은 작가다. 멸종된 조류인 도도새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그려낸다. 그의 도도새 연작은 2019년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540만원에 낙찰된 뒤, 2021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1억1500만원에 낙찰되면서 컬렉터들의 관심을 일시에 모았다. 지난해엔 여러 브랜드와의 협업 작업이 줄을 이었다. 럭셔리 브랜드 불가리와 협업해 가방을 만들더니, 스타벅스와는 도도새 컵을 제작했고, 갤러리아백화점엔 거대한 도도새 작품 전시를 개최했다.   올해 1년간 준비한 에세이집 『랑데부』를 출간했다. 다재다능한 작가의 면모를 떠올리며, 지난해 9월 서울 평창동 작업실에서의 만남을 다시 한번 이어갔다.   지난해 키아프 이후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정신없이 바빴어요. 지난해 연말 더 현대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까지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올해 4월에 토탈미술관에서 개인전이 한 번 더 잡혀 있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내년 4월로 개최 시기를 늦췄어요. 전시 간격이 짧아 작품 품질이 안 나올 것 같더라고요.”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계세요.  “오는 7월 말에 강릉시립미술관에서 전시 기회가 생겨 그 준비를 하고 있어요.”   김선우의 평창동 작업실엔 매일 성실히 그려내는 작업의 흔적이 역력하다. 사진 정성룡   스케줄이 비어 있을 때가 없어요. 작업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 어떻게 준비하세요.  “그냥, 쉴 새 없이 해요. 주말도 없이 일주일 내내 그림을 그려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딴생각 안 하고요.”   새벽 5시에 작업실로 출근해서 해 질 때까지 그림 그리는 ‘성실의 아이콘’이잖아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계속 그림을 그렇게 그릴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오히려 굴곡 없이 성실하게 하니 가능한 것 같아요. 작업에도 지구력이 생긴다고 할까요. 규칙적으로 하지 않거나 밤을 새워 한다면 못했을 것 같아요. 늘 똑같이, 몸과 정신을 관리하며 작업하는 루틴이 저에게 오히려 체력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하지만 아티스트의 작업은 창의력이 필요한 일이잖아요. 이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나요.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중간중간 여행을 꼭 가요. 생각을 환기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힘들어도 1년에 두 번 정도는 꼭 여행을 가려 해요. 일단 갑니다.”   에세이를 통해 "내 일과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는 그는 "글은 나의 또 다른 드로잉"이라 말했다. 사진 정성룡   올해도 역시 여행 계획이 세워져 있겠네요.   “5월이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돼서 거기에 갈 예정이에요. 일러스트레이터 루이스 멘도 부부가 운영하는 올모스트 퍼펙트라는 작은 에이전시의 프로그램이에요. 쌀 가게였던 3층 건물을 개조해 만든 레지던스에 한 달 반 정도 머물며 작업에 집중할 수 있어요. 프로그램 마무리는 3일간의 전시고요.”   여행이라고 했지만, 결국 그곳에서도 계속 일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그게 쉬는 것이더라고요. 일상과 다른 곳, 낯선 곳, 영감을 줄 수 있는 곳에서의 작업은 휴식의 또 다른 방법인 것 같아요.”   이렇게 바쁜데 이번에 책도 내셨어요. 어떻게 글 쓸 생각을 하셨어요. “사실 글쓰기는 그림처럼 매일 습관처럼 하는 일이예요. 저에게 글쓰기는 드로잉의 또 다른 표현 방법이거든요. 드로잉이라는 행위는 마음속에 어지럽게 떠도는 영감을 시각화하는 거잖아요. 형태를 그리면 그림이고, 글자로 표현하면 글이 되는 거죠.”      책 볼륨이 상당해요. 작업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글 쓴 시간만 순수하게 따지면 10년이 넘어요. 그동안 제가 쓴 글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뽑아서, 다시 다듬고 엮었어요. 그 시간만 1년이 넘게 걸렸네요.”   에세이 집에 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책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랑에 대한 이야기예요. 내 일을 사랑하게 된 이유와 그 사랑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한 사유의 글이죠.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당신도 사랑하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김선우 에세이집 랑데뷰. 사진 흐름출판사 관련기사 보석 넘어 예술…까르띠에 보물 300점, 16년 만에 한국 온다 [더 하이엔드] 접시 위 셰프의 음식 그대로…'재미'로 무장한 식탁이 온다 [더 하이엔드] '71캐럿 옐로 다이아' 자연의 기적 만든 티파니 [더 하이엔드] 소더비서 8억에 경매 낙찰된 오메가 문스와치...수익금 전액은 안과 의료 비영리 단체로 [더 하이엔드]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2024.03.23 05:00

  •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를 열망하게 하라"...샴페인 하우스 뵈브 클리코의 비기 [더 하이엔드]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를 열망하게 하라"...샴페인 하우스 뵈브 클리코의 비기 [더 하이엔드]

    “한국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가장 잠재력 있는 시장이다.” 서울 역삼동의 모엣 헤네시 사옥에서 지난 5일 만난 프랑스 샴페인 하우스 뵈브 클리코의 장 마크 갈로 최고경영자(CEO)의 말이다. 전날 홍콩에서 들어와 다음날엔 태국으로 떠날 예정인 그는 “이틀간의 짧은 일정이지만, 한국을 투어 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그는 까르띠에에서 경력을 쌓은 뒤 패션으로 영역을 옮겨 루이비통 북미·유럽 사장, 페라가모 미국 회장 등을 역임했다. 주류업계엔 2009년 샴페인 루이나의 사장이 되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고, 뵈브 클리코엔 2014년 CEO로 부임해 지금까지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프랑스 샴페인 하우스 뵈브 클리코의 장 마크 갈로 CEO. 사진 뵈브 클리코   뵈브 클리코로 대표되는 프리미엄 주류와 럭셔리 주얼리·패션의 세계는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나.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온 유산에 대한 존중이다.  이것이 모든 럭셔리 브랜드의 공통점이다. 또한 반대 개념처럼  보이는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가져가야 한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강력한 혁신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서로 다른 점은. “패션과 와인의 가장 큰 차이는 리듬이다. 내가 패션 회사에서 일할 때 계절은 두 개밖에 없는 것 같았다. 옷은 봄·여름과 가을·겨울로 두 계절씩 묶어 신제품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리 스프링(pre-spring)에 해당하는 크루즈 컬렉션이 나오면서 세 번째 시즌이 생겼고, 그다음엔 이른 가을에 입는 프리폴(pre-fall) 컬렉션이 생겨 1년에 총 4개의 시즌을 보냈다. 그래서 패션업계 사람들은 쉴 틈이 없다. 트렌드가 굉장히 빠르고, 짧게 지나간다. 반면 와인 특히 고급 주류의 시간은 매우 길다. 지난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라 그랑 담 2023 빈티지는 와인 메이킹 과정을 거쳐 이제 병에 담기 시작했는데, 이 샴페인을 마시려면 최소 10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그만큼 자연과 함께 오랫동안 호흡해야 하고, 경영 역시 빠르게 서두르기보다 천천히 침착하게 한다.”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 위치한 하우스의 빈야드 셀러. 사진 뵈브 클리코 지 샴페인을 생산한 해를 새겨 넣은 빈티지 계단. 사진 뵈브 클리코   많은 회사가 럭셔리 브랜드가 되길 원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환상적인 럭셔리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공격적이어서는 안된다. 겸손하고 침착해야 한다. 우리는 열망 혹은 선망성을 가진 브랜드를 럭셔리 브랜드라 정의한다. 뵈브 클리코가 속해 있는 LVMH 그룹의 아르노 회장이 항사 강조하는 게 '소비자로 하여금 우리를 욕망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열망하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 뵈브 클리코가 하는 일은. “무엇보다 집중하는 것은 탁월한 샴페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뛰어난 품질은 럭셔리의 기본 조건이다. 두 번째는 뵈브 클리코가 써온 역사와 스토리를 계승하고 세상에 알리는 일이다. 마지막으로는 뵈브 클리코의 에센스라 할 수 있는, 어떤 것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놀라움과 차별화된 무엇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뵈브 클리코는 1972년부터 우수한 여성 기업인을 선정해 상을 주는 ‘볼드 우먼 어워드(Bold Woman Award, 이하 BWA)’를 개최하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 27개국에서 450여 명의 혁신적인 여성 기업인 수상자가 배출됐다. 국내에선 2018년 시작해 뷰티 브랜드 클리오의 한현옥 대표가 처음 수상의 영예를 안았고, 심재명 명필름 대표(2019)와 김선희 매일유업 대표(2021)가 뒤를 이었다. 이후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됐다.    오랜 시간 BWA를 개최하고 있다. 어워드를 운영하는 이유는. “BWA는 창립자 마담 클리코(1777~1866)의 정신을 계승해 미래의 또 다른 위대한 여성을 발굴·지원하는 프로젝트다. 하우스의 시작인 마담 클리코는 20대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샴페인 하우스를 맡아야 했다. 여성이 회사를 경영한다는 게 매우 어려운 시대였지만, 그는 대담하고 강력한 의지로 하우스를 운영했고 성공시켰다. 1810년엔 아예 회사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딴 ‘뵈브 클리코 퐁사르당’으로 바꿨다(※프랑스어 뵈브 Veuve는 미망인을 뜻한다). 우리는 이 시대에도 마담 클리코와 같은 훌륭한 여성 기업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들을 돕고 싶다. 수상자는 상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계 여성 기업가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초대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도모할 수 있다.”   뵈브 클리코 창립자인 마담 클리코의 초상화. 20대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맡은 시아버지의 샴페인 하우스를 성공시키며 자신의 이름을 딴 뵈브 클리코를 만들었다. 사진 뵈브 클리코 올해 공개된 뵈브 클리코 라 그랑 담 로제 2015. 사진 뵈브 클리코   다시 샴페인 이야기로 돌아와서, 올해 공개하는 샴페인은. “ ‘라 그랑 담 로제 2015’다. 라 그랑 담(La Grande Dame)은 ‘위대한 여인’이란 의미다. 창립자 마담 클리코를 부르는 업계 동료들의 애칭이었다. 한 모금 머금고 있으면 부드럽고 풍부한 질감이 느껴지는데, 동시에 어떤 긴장감이 있어 감각이 극대화되는 샴페인이다.”   로제 샴페인, 언제 어떻게 먹는 게 좋은가. “로제 샴페인은 단맛이 강한 로제 와인과는 다르다. 모든 음식에 다 잘 어울려서, 식전주로 시작해도 좋고 스테이크나 관자 같은 해물 요리와 마셔도 좋다. 사실 화이트나 레드로 시작하면 식사 도중 한번은 와인을 바꿔야 하는데, 로제 샴페인은 그럴 일이 없다. 내가 직접 먹어보니 한식에도 잘 어울렸다.”   관련기사 보석 넘어 예술…까르띠에 보물 300점, 16년 만에 한국 온다 [더 하이엔드] 접시 위 셰프의 음식 그대로…'재미'로 무장한 식탁이 온다 [더 하이엔드] 본격적인 웨딩 시즌이 온다...오메가가 추천하는 예물 시계는 [더 하이엔드] 배우 지창욱, 금빛 입은 라도 시계를 손목에 얹다 [더 하이엔드]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2024.03.22 11:17

  • 접시 위 셰프의 음식 그대로…'재미'로 무장한 식탁이 온다 [더 하이엔드]

    접시 위 셰프의 음식 그대로…'재미'로 무장한 식탁이 온다 [더 하이엔드]

    최근 다이닝 업계의 눈에 띄는 트렌드는 바로 ‘펀(fun·재미) 다이닝’이다. 단순히 근사한 음식을 내는 것 이상으로, 마치 한 편의 공연을 감상하는 듯한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극적 경험을 선사하는 레스토랑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정 주제로 정교하게 구성된 공간을 활용해 마치 테마파크에 방문한 듯한 감각을 선사하는 카페도 있다. 밥 한 끼를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셔도 보다 확실한 만족감을 얻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  식탁은 흰 캔버스   식탁과 빈 접시 위에 3D 맵핑 기술로 구현된 애니메이션이 곁들여지는 다이닝 쇼, '르 쁘띠 셰프'의 한 장면. 사진 콘래드 서울 지난 29일 찾은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 2층 레스토랑 아트리오.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암전’과 함께 조명처럼 보였던 천장 LED 빔이 흰 식탁보를 화면 삼아 근사한 그림을 그려낸다. 식탁 가운데 놓인 흰 접시에는 코스 요리 대신 58mm ‘작은 셰프’가 등장한다. 오늘의 주인공이자, 앞으로 나올 음식을 만들어 내는 가상의 요리사다. 흥미를 돋우는 음악과 함께 등장한 셰프는 밭을 일구고 물을 주며 거대 당근을 키우고, 토마토를 수확하며, 자기 몸보다 큰 치즈를 옮긴다. 약 3분가량 작은 셰프의 분투가 끝나면 애니메이션과 동일한 음식이 접시에 서빙된다.     코스마다 3D 맵핑 기술로 구현된 애니메이션이 곁들여지는 이색 다이닝 쇼의 이름은 ‘르 쁘띠 셰프(Le Petit Chef).’ 벨기에의 스컬맵핑아트 스튜디오가 개발한 미디어 아트 다이닝으로 국내에선 콘래드 호텔이 지난해 11월 처음 선보여 오는 8월까지 진행한다. 반응은 좋은 편이다. 콘래드 서울에 따르면 점심·저녁 코스 합해 하루 16석 규모로 진행되는 이 코스는 예약 오픈된 3월분이 거의 마감됐다. 임승환 아트리오팀 리더는 “영화관 수준의 화면과 음향 효과로 음식 이상의 것을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고 있다”며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하다며 만족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각 코스마다 요리를 구성하는 재료를 찾는 작은 셰프의 고군분투가 주요 내용이다. 사진 콘래드 서울    ━  장엄한 미디어 아트 결합   롯데호텔 월드점 2층의 뷔페 레스토랑 ‘라세느’도 미디어 아트와 다이닝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지난 2월 별실 5개 중 하나를 방안 가득 영상이 재생되는 미디어 파사드 룸으로 꾸며 식사 경험에 시각적 즐거움을 더했다. 알프스 초원, 와이키키 해변, 치앙마이 풍등 등 자연 명소를 벽면 전체에 파노라마로 펼쳐 특별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방안 가득 자연 명소의 이미지를 재생시켜 시각적 즐거움이 있는 식사 경험을 제공한다. 사진 롯데호텔   미디어 아트를 활용해 색다른 시각적 재미를 선사하는 시도는 파인 다이닝 업계 얘기만은 아니다. 서울 성수동의 디저트 카페 ‘모리노키세츠’는 지하 1층에 천장까지 이어지는 폭포 형태의 미디어 아트 공간을 마련해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차와 디저트를 즐기고 싶어 하는 식도락가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테마도 시즌마다 바뀌어 현재는 오로라를 배경으로 이곳의 대표 메뉴인 파르페를 즐기는 이들이 많다. 오는 4월에는 벚꽃 테마로 바뀔 예정이다. 장엄한 폭포 형태의 미디어 아트가 상영되고 있는 디저트 카페의 한 공간. 사진 모리노키세츠    ━  이야기 속에 들어선 것처럼   영화의 이야기 구성단위를 의미하는 ‘시퀀스(장면)’는 최근 레스토랑과 카페의 공간 기획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됐다. 마치 영화 속에서 장면이 전환되듯 방문객의 동선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다이닝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레벨제로’는 공간을 옮겨 다니면서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도록 설계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정원에서 맛보는 전채 요리에서 시작해, 오픈 키친의 바 테이블로 옮겨 메인 요리를 맛보고, 디저트는 작은 테이블 공간에서 즐기도록 했다. 오감을 일깨우는 요리와 섬세하게 준비된 기물들, 공간마다 다른 분위기가 더해져 마치 공연 한 편을 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공간을 옮겨다니면서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도록 설계된 레스토랑 레벨제로 전경. 사진 미쉐린 코리아   공간을 활용해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선 듯한 몰입을 유도하는 인테리어는 최근 카페 업계의 중요한 트렌드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카페 ‘메일룸’은 편지를 테마로 색다른 공간 경험을 설계했다. 편지를 부치는 것처럼 손 글씨를 적어 음료를 주문하고, 받은 열쇠를 사용해 작게 구획된 각자의 메일함을 열어 음료를 받는 식이다. 작은 소품 하나도 우체국과 편지를 연상시키도록 정교하게 설계돼 마치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 소설 속 공간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메일룸 공간을 기획한 TDTD 장지호 대표는 “문을 넘어 내부로 들어갔을 때 완전히 반전된 느낌을 주는 ‘콘트라스트’ 기법을 즐겨 사용한다”며 “브랜드 스토리에 맞춰 잘 기획된 공간은 방문객들에게 음식 외에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콘텐트”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카페 ‘보잉’은 비행기 내부에 들어선 듯한 실감 나는 인테리어와 기내식을 먹는 듯한 메뉴 구성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편지를 테마로 색다른 공간 경험을 줄 수 있도록 설계한 카페. 사진 메일룸    ━  한 끼에 이렇게까지? 이렇게까지!   배달 앱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말 ‘2024 외식업 트렌드’로 ‘식사격차’를 꼽은 바 있다. 불황기와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과 돈을 최적화해 배분해야 하는 시대이다 보니 각 끼니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평소에는 배달이나 한 그릇 음식으로 시간과 돈을 최대한 절약하지만, 주말이 되면 매력적인 한 끼를 위해 긴 웨이팅과 큰 예산을 들여 만족스러운 다이닝 여정을 경험하려는 이들이 늘었다는 이야기다. 공간이나 미디어 아트 등을 활용해 재미있는 식사 경험을 하려는 ‘펀 다이닝’ 움직임은 이 같은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책 『트렌드 코리아』의 최지혜 공저자는 이를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로 설명한다. “한정된 자원인 돈(가격)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려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처럼, 24시간으로 한정된 시간을 구조 조정하듯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는 움직임”이라며 “한 끼를 즐기는 약 한 시간 정도의 시간도 맛있는 음식에 공간·아트 등 근사한 경험 거리를 더해 최대한의 만족을 얻으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71캐럿 옐로 다이아' 자연의 기적 만든 티파니 [더 하이엔드]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옷차림 공식...프랑스 명품 셀린느에 답이 있다 [더 하이엔드] 본격적인 웨딩 시즌이 온다...오메가가 추천하는 예물 시계는 [더 하이엔드]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2024.03.17 07:00

  • K뷰티 핵심 성장 축은 ‘남성’…리뉴얼·신제품으로 맞선다 [더 하이엔드]

    K뷰티 핵심 성장 축은 ‘남성’…리뉴얼·신제품으로 맞선다 [더 하이엔드]

    남성의 외모를 가꾸는 일이 보편화하면서 국내 남성 뷰티 시장에 활기가 돌고있다. 8년 만에 신제품을 내고, 스킨케어 라인을 확장하는 등 화장품 업계도 남성 화장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나섰다.    ━  남성 스킨케어 소비 세계 1위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국내 남성 화장품 브랜드가 리뉴얼, 라인 확장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진 비레디 한국 남성들이 스킨케어에 소비하는 금액이 세계 1위로 나타났다. 시장조사 회사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연간 남성 스킨케어 소비액은 한국이 1인당 9.6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이는 2위인 영국(1인당 4.4달러), 3위인 덴마크(1인당 4.1달러)와 비교해도 2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1조 1100억원(2022년) 수준으로 2020년 이후 매년 성장 추세다.   실제로 외모 관리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의 ‘남성 그루밍 트렌드 리포트 2022’에 따르면, 남성 응답자 전체의 72%가 기초 화장품으로 피부를 관리한다고 응답했다. 정기적으로 눈썹 관리를 한다는 응답자가 40%, 피부과 등 전문 시설을 이용하는 비중도 16.3%를 차지했다. 해당 조사는 만 20~49세 남성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남성들의 뷰티 상품에 대한 관심도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남성 뷰티 제품 구매 시 본인이 직접 선택해 구매하는 비중은 75.8%였고, 제품 구매는 연평균 6회 정도 발생했다. 1인당 평균 7.7개의 피부 관련 제품을 사용한 경험이 있었으며, 기본 사용 제품으로는 로션·스킨·폼클렌저가 꼽혔다.    ━  스킨케어까지 라인 확장   국내 남성 뷰티 시장의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화장품 기업의 행보도 바빠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남성 뷰티 브랜드 ‘비레디’는 지난 2022년 11월 리브랜딩을 통해 ‘남성 토탈 스타일링 브랜드’로의 확장을 발표했다. 기존 메이크업에 국한됐던 상품 라인을 확장하고, 그레이·로꼬 등 신규 모델을 발탁했다.   비레디는 이런 리브랜딩을 통해 지난 2022년 11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164%의 성장을 기록했으며, 남성 MZ 고객들의 주요 구매 채널인 쇼핑 플랫폼 ‘무신사’에서 같은 해 11월 매출 기준 ‘남성 뷰티 브랜드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이후 향수 라인과 헤어 라인을 연이어 출시하며 남성 토탈 스타일링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올해 비레디는 첫 스킨케어 라인을 발표, 빠르게 성장하는 남성 뷰티 시장에 발을 맞춘다는 방침이다. 비레디는 지난 10일 첫 스킨케어 라인 ‘시카페인 트러블 리셋’을 출시했다고 밝혔다. 비레디는 남성 메이크업 브랜드로 시작해, 남성 토탈 스타일링 브랜드로 리뉴얼했다. 이달 초에는 첫 스킨케어 라인 '시카페인 트러블 리셋'도 발표했다. 사진 비레디   시카페인 트러블 리셋 라인은 피부 진정에 특화한 베타시토스테롤 성분과 모공 관리에 효과적인 카페인 성분을 함유한 고기능성 스킨케어 라인이다. 스트레스, 수면 부족, 외부 자극 등으로 인해 민감해진 피부를 위한 해결책으로 클렌징폼·토너·세럼·크림을 선보였다는 설명이다. 브랜드 첫 스킨케어 라인 론칭을 기념해 배우 이정하를 모델로 발탁해 활발한 홍보 활동도 전개할 예정이다.    ━  8년 만의 신제품, 향에 집중   국내 대표 남성 화장품 브랜드 오딧세이는 8년만에 신제품을 내고, 배우 이진욱을 앰배서더로 선정했다. 사진 오딧세이 그런가 하면 국내 대표 남성 화장품 브랜드 ‘오딧세이’는 지난해 11월 8년 만에 신제품을 냈다. ‘챕터 파이브’ 시리즈로 향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수향과 함께 작업한 감각적 향을 담아냈다는 특징을 지닌다. 신제품 출시와 함께 브랜드 앰배서더로 배우 이진욱을 발탁, ‘더 라이트웨이’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했다.   챕터 파이브 시리즈는 향을 강조했던 오딧세이 특유의 브랜드 헤리티지(유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이삼십대 남성들도 선호할만한 에센셜 오일 베이스의 세련된 향을 담아냈다. 수향과 향을 설계하고 20대 남성 인플루언서들의 조언을 받아 고감도의 향을 두 개의 라인에 반영했다. 시트러스 머스크 향의 ‘라이트하우스’ 라인과, 우디 머스크 향의 ‘생추어리’로 구성됐다. 세련된 에센셜 오일 베이스의 향을 담은 '챕터파이브' 시리즈. 사진 오딧세이   향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고질적 피부 고민인 노화 및 탄력, 주름 개선에 효과적인 성분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노화를 방지하는 항산화 성분 3종과 카페인과 아데노신 등 피부 탄력과 주름개선에 효과적인 성분을 배합했다. 또한 8년 만의 신제품 출시와 함께 배우 이진욱이 새롭게 모델로 합류했다. 독보적 분위기와 감각을 보유한 배우로, 오딧세이의 지향점과 맞닿아 브랜드 앰배서더로 발탁됐다.  관련기사 독창적 시간 해석... 기존 명품 시계와 다른 길을 걷는 이 브랜드 [더 하이엔드] 노르웨이 피오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들...북유럽 여행의 묘미 [High Collection] 압도적 아름다움의 비밀, 피부 유전자 코드를 해독하라 [High Collection]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2024.01.26 08:00

  • 셀럽들은 다 쓴다는 넥크림, 이서진 “10년째 쓴다” 목 주름 예방법 [더 하이엔드]

    셀럽들은 다 쓴다는 넥크림, 이서진 “10년째 쓴다” 목 주름 예방법 [더 하이엔드]

    “나도 10년째 쓰고 있다” 지난해 말 한 유튜브 방송에서 공개된 셀럽들의 ‘내돈내산(내 돈으로 내가 산)’템이 화제가 됐다. 나영석 사단의 유튜브 채널 ‘채널 십오야’의 ‘이서진의 뉴욕뉴욕6’ 얘기다. 해당 콘텐트에는 배우 정유미가 출연했는데, 자신이 직접 사용하는 제품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됐다. 특히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던 부분은 목에 크림을 바르는 부분.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외모로 유명한 그이기에 직접 사용한다는 화장품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유명 셀럽들의 '내돈내산'템으로 화제가 된 클라랑스 넥크림. 사진 채널 십오야 유튜브 화면 캡처   당시 정유미가 사용했던 제품은 클라랑스의 ‘엑스트라 퍼밍 넥크림.’ 하지만 더 놀라운 장면은 뒤에 이어졌다. 목에 크림을 바르는 정유미에게 배우 이서진은 맞장구를 치며 “나도 쓴다. 10년째 쓰는데, (같은 브랜드) 빨간색 제품이 더 좋다”고 말했다. 광고도, 협찬도 아닌 ‘찐(진짜) 정보’에 시청자들이 반응했다. 이후 ‘수퍼 레스토러티브 넥크림’은 이서진의 ‘10년템’으로 화제가 됐다. 수퍼 레스토러티브 넥크림. 목 피부의 주름과 잡티를 동시에 케어해 매끈하고 환한 목 피부로 가꿔준다. 사진 클라랑스    ━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 목 피부가 늙는다   목 피부는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눈가와 입가 등 얼굴 주름보다 평소에는 잘 눈에 띄지 않아 관리가 소홀해지기 쉽다. 하지만 또한 목 피부는 의외로 잘 늙는 부위다. 얼굴보다 피부가 얇고 피지선이 적어 쉽게 건조해진다. 평소에 신경 쓰지 못하다가, 어느 날 노화의 적나라한 흔적을 발견하는 부위다.   게다가 목은 수시로 움직이는 부위로 운동량이 많고, 외부에 항상 노출되어 있어 노화가 빠르다. 얼굴에는 자외선 차단제를 열심히 바르는 사람도, 목 피부는 놓치곤 한다. 무엇보다 최근 현대인들의 늘어나는 스마트 폰 사용 시간은 목 피부에 악영향을 준다. 스마트 폰을 사용할 때 무의식적으로 목을 앞으로 빼는 일명 ‘거북목’ 자세를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목주름을 야기하는 대표적인 잘못된 습관이다. 얼굴 피부보다 피지선이 적고 쉽게 주름지는 목 피부는 노화의 바로미터로 불린다. 사진 클라랑스   이런 여러 가지 요인으로 나이가 들어서야 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부위가 목이다. 같은 나이라도 목이 매끈하면 한결 어려 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목이 주름져 있으면 아무리 얼굴이 팽팽해도 나이 들어 보이기 쉽다. 목이 노화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이유다. 중년 여성들이 스카프를 애용하고, 터틀넥을 즐겨 입게 되는 이유도 목의 노화에 있다. 얼굴은 화장이나 시술로 어느정도 노화의 흔적을 가릴 수 있지만, 한번 주름진 목 피부는 되돌리기 어렵다.    ━  목 피부에 맞는 크림 따로 써야   목주름은 예방이 중요하다. 한번 생긴 목주름은 없애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피부가 워낙 얇아 피부과 시술로도 효과를 볼 수 없고, 매번 메이크업으로 커버하기도 쉽지 않다. 목 피부 관리의 핵심은 보습과 마사지다. 목 피부에 적합하게 배합된 전문 화장품 사용도 도움이 된다. 앞서 셀럽들의 ‘내돈내산’ 제품으로 알려진 클라랑스의 넥크림은 목 케어 카테고리에서 수십 년간 사랑을 받아온 제품이다. 1978년 넥크림 출시 이래 목 피부를 지속해서 연구해 현재의 7세대까지 제품 성능을 향상해왔다.   클라랑스 넥크림은 ‘목바라기 크림’으로 불리는 엑스트라 퍼밍 넥크림과, ‘빨강 넥크림’으로 불리는 수퍼 레스토러티브 넥크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바라기’는 넥크림의 주요 성분인 해바라기 씨 오일에서 따온 별칭이다. 두 제품 모두 해바라기 씨 오일과 옥신 성분, 캥거루 꽃 추출물 등 강력한 식물성 성분으로 만들어졌다. 엑스트라 퍼밍 넥크림은 주름 개선에 효과적이고, 수퍼 레스토러티브 넥크림은 주름 개선에 더해 미백까지 챙기는 이중 기능성 제품이다. 피부 고민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엑스트라 퍼밍 넥크림. 큰 꽃을 탄탄하게 지탱하는 해바라기 줄기처럼 목 피부를 건강하고 매끈하게 가꿔준다. 사진 클라랑스   ■ 클라랑스가 추천하는 효과적인 목 피부 관리법 「 1. 얼굴의 림프샘은 양쪽 귀와 턱 아래로 모여 어깨 양쪽 쇄골 안쪽으로 흐른다. 넥크림을 동전 크기만큼 짜 목선과 쇄골 주변까지 넓게 도포한 후 양쪽 귀 아래부터 목 방향으로 부드럽게 눌러 쓸어준다. 양쪽 쇄골의 움푹 들어간 홈은 검지와 중지로 들어 올리듯 깊게 마사지하면 림프 순환에 도움이 된다.   2. 아침 ·저녁을 기본으로, 낮에도 틈틈이 넥크림을 목에 발라 수분과 영양을 공급하면 훨씬 효과적이다. 」    관련기사 독창적 시간 해석... 기존 명품 시계와 다른 길을 걷는 이 브랜드 [더 하이엔드] 노르웨이 피오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들...북유럽 여행의 묘미 [High Collection] 미국판 조용한 럭셔리가 온다…‘케이트’ 국내 상륙 [High Collection]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2024.01.26 07:00

  • "크루그 샴페인은 여러 악기의 앙상블이 이루어지는 대형 오케스트라" [더 하이엔드]

    "크루그 샴페인은 여러 악기의 앙상블이 이루어지는 대형 오케스트라" [더 하이엔드]

    최근 몇 년 사이 와인 업계 최대의 관심사는 환경이다. 날씨와 지질 상태에 따라 맛이 확연하게 바뀌는 와인의 특성상, 급변하는 기후 조건을 포함한 환경 변화는 이들의 당면한 큰 난제이자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고급 와인일수록 기후와 환경 문제는 사업의 존속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이기 때문에 더 심각해진다. 하지만 프랑스 고급 샴페인 브랜드 '크루그'는 기후 조건 문제에 있어 일정 부분 자유롭다. 1843년 창립자 조셉 크루그가 하우스를 세울 때부터 "기후 조건과 상관없이 최고의 샴페인을 만들겠다"는 철학으로 태어난 샴페인이기 때문이다.       올리비에 크루그 디렉터가 크루그 하우스의 창립자이자 자신의 6대조부인 조셉 크루그 초상화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사진 크루그]   지금 크루그의 정체성과 방향을 제시하며 브랜드를 이끄는 사람은 창립자 조셉 크루그의 6대손인 올리비에 크루그 디렉터다. 그는 20여 년 전부터 매년 한두 번씩은 꼭 한국에 와 크루그, 더 나아가 '샴페인'이란 술을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지난달엔 서울에서 열리는 '샴페인 서울' 행사에 맞춰 내한했다. 지난달 16일 크루그가 속해 있는 모엣헤네시 샴페인즈 앤 와인즈 코리아(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그를 만나 샴페인과 크루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처음부터 고려한 기후 변화    "한국은 샴페인 산업에서 가장 기대가 큰 시장 하나로 성장했다. 처음 크루그를 한국에 소개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처럼 장인 정신이 깃든 샴페인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졌고, 또 열렬히 환호해줘 자주 오게 된다." 올리비에 크루그가 한국에 자주 올 수밖에 없다고 직접 밝힌 이유다. 그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를 떠올리며 "특히 샴페인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에 감동했는데, 우리의 장인 정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싶다면서 그랑 퀴베 두 가지 에디션의 차이나 푸드 페어링에 관한 질문을 받은 기억이 난다. 이는 상당히 성숙한 질문들이었다"고 회고했다.    크루그 하우스가 올해 출시한 그랑 퀴베 171 에디션. 2000~2015년 사이이 12개 연도 와인을 포함해 총 131종의 와인을 블렌딩해 만들었다. [사진 크루그]   그간 한국 시장의 샴페인 문화,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나 "처음 한국에 크루그를 소개했을 당시엔 샴페인의 소비층은 많지 않았지만, 소비층은 이미 상당히 상당한 지식과 성숙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시장 규모가 커지며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한 한국 고객은 거의 매일 인스타그램에 나를 태그한 게시물을 올리는데, 크루그의 특별한 보틀이나 크루그를 마시는 특별한 순간을 찍은 사진들이다. 이를 보면서 한국이 얼마나 빠르게 (샴페인 산업이)성장하고 있는 시장인지 직접 느낄 수 있었다."   크루그 샴페인은 여러 품종의 와인과 여러 해의 와인을 블렌딩해 만든다. 매년 날씨에 많은 영향을 받는 포도 작황과 상관없이 "늘 최상의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조셉 크루그의 철학 때문에 선택한 방식이다.    늘 좋은 와인을 만들겠다는 철학은 훌륭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한가. "그것이 크루그의 존재 이유다. 조셉 크루그는 다른 샴페인 제조사에서 일하며 좋은 샴페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황이 좋을 해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답답함을 느꼈다. 포도가 좋은 해에는 샴페인 하우스들은 단일 빈티지를 주로 사용하여 만든 밀레짐(millésimes)을 생산하고, 다른 해에는 여러 수확 연도의 와인을 혼합하는 노 빈티지(sans année) 샴페인을 생산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올해와 작년이 모두 작황이 좋더라도 같지는 않다. 포도밭의 구획만 달라져도 뉘앙스와 맛이 달라진다. 그래서 다양한 와인을 블렌딩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고, 결과 크루그가 탄생했다."   지금 하우스를 책임지는 디렉터로서, 크루그를 어떤 샴페인으로 규정하고 있나. "나는 크루그를 통해 매년 샴페인의 가장 풍부한 표현을 제공하고자 한다. 일관된 맛을 전달하기보다는 얼마나 풍부한 맛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집착한다. 그래서 샴페인을 논할 때면 항상 음악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크루그는 그중에서도 대형 오케스트라에 비유할 수 있다. 보통 우수한 샴페인이라면 자신만의 구체적인 스타일이 있기 마련이다. 소나타 형태가 될 수도, 재즈밴드 혹은 독주자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크루그는 이런 모든 형태를 한데 모은 결정체다. 오케스트라 안에서 각각의 악기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해 훌륭한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샴페인을 만드는 방식이다. "    ━  음악으로 표현한 샴페인   그의 말처럼 크루그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지난해 9월 세계적인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와 함께 크루그 2008년 빈티지를 솔로·앙상블·교향곡으로 표현한 제3악장 모음곡 'Suite for Krug in 2008'을 발표했다. 매년 음악가와의 협업을 진행하지만, 당시 협업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생전 마지막 작업으로 올리비에 디렉터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뜻깊은 프로젝트였다.   크루그를 위해 제3악장 모음곡을 작곡한 생전의 류이치 사카모토. [사진 크루그]   놀라운 협업이었다. 이런 협업 아이디어는 어떻게 탄생했나. "음악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다. 크루그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는 10년이 넘는데, 처음엔 연주자들을 초청해 샴페인을 마셨을 때 느낀 점을 음악으로 표현해 달라고 했었다. 지난해 류이치 사카모토와의 협업은 그의 작곡 스타일이나 그만의 음악적 스타일이 우리와 잘 맞다는 판단에 팀이 나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가 크루그 애호가란 사실도 주요했다."   음악과의 인연은 언제 시작됐나. "음악은 우리 가족 안에 항상 존재해 왔다. 크루그 가문은 항상 음악에 매료돼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 가족은 3대가 한 집에 모여 살았고, 방 창문을 열면 어디에선가 늘 음악이 들려왔다. 가족을 이어주는 공동 공간인 정원에선 누군가 음악을 연주하곤 했다. 내가 크루그 하우스에 입사한 첫날 아버지가 하우스의 장인 정신에 대해 강조할 때도 음악에 빗대어 설명하셨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곡한 제3악장 모음곡 'Suite for Krug in 2008'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모습. [사진 크루그]   매년 특별하게 출시하는 에디션이 있다. 올해는 어떤 샴페인을 공개했나. “올해는 그랑 퀴베 171 에디션과 로제 27 에디션이 출시됐다. 한병의 크루그가 되기 위해서는 7년의 숙성 과정이 필요하다. 171 에디션은 2000~2015년 사이의 12개 연도에 생산된 와인 131종을 블렌딩해 만들었다. 매년 출시하는 새로운 에디션은 각기 다른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와 같다. 오랜 경력을 가진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또 지난해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지 발견해내는 기쁨이 있다.”   마지막으로 크루그 샴페인, 제대로 즐기려면 어떻게 마셔야 할까. "일단은 너무 차갑지 않게, 섭씨 10~12℃ 수준의 적절한 온도에서 서빙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 샴페인이 가지고 있는 아로마(향)가 온전히 뽐낼 수 있도록 알맞은 잔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잔은 적당히 입구가 넓어 샴페인 표면이 공기와 알맞게 접촉할 수 있되 아로마를 잡고 있을 수 있는 것이 좋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2023.12.15 07:00

  • 미슐랭 거장들 왜 거기서 나와? 한국인에 딱인 '루이비통의 맛' [더 하이엔드]

    미슐랭 거장들 왜 거기서 나와? 한국인에 딱인 '루이비통의 맛' [더 하이엔드]

    조희숙, 박성배, 조은희, 강민구, 이은지. 이름만으로도 걸출한 한식 셰프들이 뭉쳐 하나의 식당을 냈다. 그런데 그 장소가 놀랍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루이 비통 매장이다. 이번 한식과 프랑스 럭셔리의 만남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어떻게 모였을까.    걸출한 한식 셰프들과 루이 비통이 협업해 팝업 레스토랑 '우리 루이 비통'을 열었다. 왼쪽부터 조은희(온지음), 강민구(밍글스), 조희숙(한식공간), 박원배(온지음), 이은지(리제) 셰프. [사진 루이 비통] 우리 루이 비통(Woori Louis Vuitton). 이번 루이 비통의 팝업 레스토랑 이름이자 컨셉이다. 한식 파인 다이닝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한식공간의 조희숙 셰프를 수장으로 온지음의 박성배·조은희 셰프,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 리제의 이은지 셰프가 모였다. 한 명 한 명이 미슐랭에 이름을 올리거나 조명 받는 걸출한 셰프들인데, 이들을 모이게 한 루이 비통의 힘이 고맙게까지 느껴진다. 하나로 묶기엔 너무도 개성 강한 이들이기에 ‘우리’라는 이름 또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리 루이 비통은 지난 11월 1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의 4층 공간에 문을 열었다. 공간 인테리어부터 그릇·소품까지 곳곳에 우리의 문화 요소를 담아냈다. 한식 지평을 넓힌 국내 최정상 셰프들의 하모니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치솟는데, 루이 비통의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 문화를 녹여낸 공간과 프리젠테이션까지 더해졌다는 것은 루이 비통의 역대 팝업 레스토랑보다 이번 다이닝이 기대되는 이유다.    우선 공간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쪽빛을 테마로 잡았다. 한지 질감을 표현한 천장 장식과 쪽빛으로 포인트를 준 우드톤의 대형 벽 설치물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 음식은 셰프들의 개성을 잘 보여주는 메뉴로 구성됐는데, 이를 담아내는 그릇과 커트러리 등 테이블웨어는 이번 팝업 레스토랑에 맞게 새롭게 세팅했다. 다섯 명의 우리 루이 비통 셰프들을 직접 만나 협업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루이 비통의 내부. 한국 전통 색인 쪽빛에서 영감을 받은 파란색을 바닥과 의자, 가구의 포인트 컬러로 사용했다. [사진 루이 비통] 쪽빛을 포인트 컬러로 넣은 나무 조형물이 감싼 공간엔 루이 비통의 헤리티지를 잘 보여주는 여행용 트렁크가 오브제로 설치돼 한식과 프랑스 럭셔리 문화의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사진 루이 비통]   이들이 모인 동력은 조희숙 셰프였다. 평소 친밀하게 지내는 사이인 이들은 조희숙 셰프의 “루이 비통과 함께 해보자”는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루이 비통과의 협업,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조희숙 “루이 비통이라는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은 개인에겐 큰 영광이고, 특히 우리 식문화를 포함해 한국 고유의 문화가 어떻게 재해석돼 전달될지 기대감에 협업을 결정했습니다.” 박성배 “한식 장인을 키우고자 오랜 시간 노력한 온지음의 한식을 루이 비통에서 선보인다는 것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강민구 “한식과 한국 문화가 많은 관심을 받는 이때, 한식과 패션의 크로스오버는 꽤 의미 있는 행사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제가 많은 영향을 받은 한식 셰프님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더 하고 싶었어요.”    한 분 한 분이 한국 파인 다이닝계의 거장이신데요. 개성 강한 거장들이 모여 하나의 코스를 만든다는 게 어려웠을 거라 예상합니다.   조희숙 “저를 거장이라고 하는 것엔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거장이라고 한다면 그것까지 해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강민구 “같이 더불어 간다는 것은 자기 모양을 다듬어내고 깎아내고 또 상대의 모양에 맞추는 과정이 필요해요. 저희는 모두 각자의 것이 분명하지만, 자기 것을 양보하고 내놓을 수 있는 인간적인 관계가 먼저 형성돼 있는 셰프들이 모였어요. 우리도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여기서 펼쳐보고, 음식을 통한 소통이 우리 사이에서도 점점 더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스 구성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조희숙 “서로의 요리를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고 또 레스토랑에 오는 고객층에게 맞을 수 있는 두 가지 포인트에 집중해 각자 메뉴들을 내놨어요. 이를 모아서 살을 붙이고, 또 넘치는 것은 빼내 가면서 구성을 다듬어 나갔죠.”   우리 루이 비통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우리 한 입 거리'. [사진 루이 비통]   이번 우리 레스토랑의 식사는 음식을 다 같이 나눠 먹는 풍습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한 ‘우리 한 입 거리’로 시작한다. 한식공간의 감태 다식, 온지음의 곶감 치즈와 새우포, 밍글스의 송로버섯 닭꼬치가 어우러진 메뉴는 여럿이 즐겁게 하나가 되는 축제와도 같다. 이후 식사로는 한식 공간이 제철 나물과 함께 선보였던 전병, 온지음의 백화반, 금태와 캐비어를 곁들인 밍글스의 어만두 등이 메뉴로 구성돼 예약조차 힘든 한식 다이닝들의 정수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메뉴와 코스 개발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습니까. 조은희 “메뉴 중에서 각기 하고 싶은 메뉴가 있는데, 제 경우엔 그게 밥이었어요. 한국 사람은 밥을 굉장히 좋아하고, 또 밥은 그 안에 여러 가지를 담을 수가 있거든요. 한식은 자연이 주는 제철 재료의 맛이 가장 중요해서, 흰 뿌리 채소를 모아 하얀 비빔밥 백화반을 만들었어요. 뿌리채소라는 게 참 신기하게도 가을 겨울에 너무 맛있어져서 늘 놀라는 재료거든요.” 박성배 “더덕·도라지·무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나물을 이용한 백화반은 하나의 색을 내며 어우러지는 이번 팝업을 의미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은지 “저는 코스의 마무리인 디저트를 담당했는데요. 아무래도 컨셉이 모던 한식이고, 다른 멋진 셰프님들과의 협업이기에 ‘우리’라는 이름과 취지, 그리고 흐름에 맞는 메뉴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최대한 다른 메뉴와 잘 어우러질 수 있고, 차분하고 은은하게 끝마무리할 수 있도록 한식 재료를 프렌치 테크닉으로 풀어낸 한국배 타르트와 유자 약과를 만들었어요.”   우리 루이 비통의 백화반. [사진 루이 비통] 이은지 셰프가 만든 한식 디저트. [사진 루이 비통] 루이 비통 로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약과와 다식이 프랑스 디저트 마카롱과 함께 접시에 올랐다. [사진 루이 비통]   여러 셰프와 함께 하나의 코스를 완성한 경험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조희숙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색을 드러내기보다 다른 셰프들과 결을 맞추고 다듬는 과정을 가졌다. 이번 우리 루이 비통의 메뉴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새로운 창조물이다.” 강민구 “조희숙 선생님은 저와 밍글스에 한식의 어머니 같은 분입니다. 조 선생님이 세종호텔에 입사하신 해는 제가 태어난 해로, 그만큼 한식 발전에 힘써오신 겁니다. 전 세계 여러 셰프들과 협업을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한식에 조예가 깊으신 셰프님들, 특히 밍글스가 지금처럼 한식으로 분류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조희숙 셰프님과 함께한 작업이 뜻깊었습니다.” 조은희 “각 레스토랑이 추구하는 방향이 한식이어도 분명 다른데, 그 다름이 모여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 쉽진 않았습니다. 서로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의 방향을 이해하면서 하나의 코스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었습니다. 덕분에 셰프들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고, 다른 셰프들의 음식을 더 이해하고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됐습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도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 되길 바랍니다.”   관련기사 3000명이 숨죽였다…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편지 읽은 행사 정체[더 하이엔드] 거대한 수면 캡슐 만든 디자이너…패션 경계 넘는다[더 하이엔드] 신성한 것은 없다, 미스치프의 도발적 예술 [더 하이엔드]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2023.12.13 05:00

  • 신성한 것은 없다, 미스치프의 도발적 예술 [더 하이엔드]

    신성한 것은 없다, 미스치프의 도발적 예술 [더 하이엔드]

    쌀알보다 작은 루이비통 가방은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운동화 밑창에 요르단강 성수를 담아보면 어떨까. 이런 기상천외한 의문을 직접 실행하는 팀이 있다. 미술계 이단아 혹은 악동이라 불리는 아티스트 그룹, 미스치프(MSCHF)다.   기능보다 로고에 집착하는 행태를 풍자한 미스치프의 초소형 루이비통 가방은 최초 경매 입찰가의 4배가 넘는 8400만원에 판매됐다. 이들은 나이키 운동화에 요르단강 성수를 넣은 '예수 운동화'를 만들면서 "우리는 예수와 협업했다"고 주장했다. '브랜드 간 무분별한 협업'을 풍자한 것이다. 가브리엘 웨일리 미스치프 CEO. 사진 대림미술관    ━  보이지 않는 힘에 균열을 내다   '신성한 것은 없다(NOTHING IS SACRED)'는 미스치프의 슬로건이다. 장난·장난꾸러기를 뜻하는 영어 'mischief'에서 따온 이름에 걸맞게 이들의 작품에는 하나같이 세상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담겨있다. 허를 찌르는 상상력, 도발적인 주제의식으로 무장한 예술가 집단 미스치프. 당연한 것들에 반기를 드는 이들의 반항심은 젊은 세대에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전시가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들의 작품 세계를 이렇듯 대규모로 보여주는 첫 전시로, 미스치프 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아예 한달 가까이 서울에 상주하며 대림미술관과 함께 협업했다. 미스치프를 이끄는 가브리엘 웨일리를 지난 11월 9일 서울 대림미술관 옆 임시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달 9일 서울 대림미술관 옆 임시 사무실에서 가브리엘 웨일리를 만났다. 사진 대림미술관   Q. 세상을 풍자하는 작품을 계속 내놓는 이유는. "인간은 보이지 않는 힘의 구조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세상의 규칙에 균열을 내고 싶었다. 우리가 만드는 틈이 대화의 장을 열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변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Q. 주로 어떤 주제에 관심을 두나. "사람들이 잠깐 조명하는 이슈는 다루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스템에 집중한다. 미국 의료비 시스템 문제를 지적하는 '의료비 청구서' 프로젝트 등으로 기업과 정부 시스템 부조리를 지적했다."   Q. '신성한 것은 없다'는 전시 슬로건이 인상적이다. "전시 제목처럼 세상에 우리가 못 건드릴 것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종교에 농담을 던져선 안 된다거나 거대 브랜드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등의 절대 법칙 같은 것들이다. 세상의 작동 원리에 의문을 던지면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전시가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이 되길 바란다."   Q. 진짜 두려움이 없나. "항상 무섭다. 하지만 미스치프라는 팀 이름 자체가 무엇을 표방하는지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무거운 주제를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게 우리 팀의 특징이다."   나이키 운동화에 요르단강 성수를 넣어 만든 '성수 운동화'. 사진 대림미술관 실제 사람 피를 담은 '사탄 운동화'가 나온 뒤 나이키는 미스치프에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 대림미술관   철학을 전공한 가브리엘은 대학 때부터 독특한 프로젝트로 주목받았다. 대표적인 게 레스토랑 팁 자동 결제 앱이었다. 팁을 계산하려면 성별 버튼을 클릭해야 하는데, '여성'을 선택하면 표준 팁보다 22% 낮은 금액이 책정된다. 통상 여성이 남성보다 급여를 22% 낮게 받는 현실을 비꼰 프로젝트였다.   가브리엘은 대학 졸업 후 미국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에서 일하다 창업을 위해 퇴사한다. 2019년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이 무언가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자'는 목표로 미국 뉴욕에서 미스치프 그룹을 만들었다.    ━  스타트업처럼 움직이는 예술 집단   개발자·변호사·재무담당 등의 미스치프 팀원 30여 명은 직군 구분 없이 한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한다. 누구나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에 참여한다. 2주마다 작품 아이디어인 ‘드롭’(drop)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미스치프는 모자 천 개를 한꺼번에 사야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독점 문화'를 비판했다. 사진 대림미술관   Q. 작품 아이디어를 '드롭'이라 부르는 이유는. "무수히 발생하는 정보를 따라잡으려면 빠른 속도로 프로젝트를 선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아이디어를 공중에서 납치하는 듯한 신속성을 표현하는 최고의 단어라 생각한다."   Q. 드롭을 실제 작품으로 만드는 기준은. "모든 아이디어를 빠짐없이 문서화한다. '컨셉이 과연 흥미로운가', '아이디어를 한 문장, 세 문장, 더 많은 문장으로 설명해도 계속 흥미로운가', '우리가 제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아이디어를 평가한다. '돈을 벌 수 있는가 잃을 게 뻔한가'도 기준이지만 잃어도 괜찮다. 미스치프 프로젝트 대부분 손실이 더 크다. 첫 관문을 통과하면 6개월 뒤 다시 점검해 프로젝트 착수 여부를 판단한다."   Q. 어디서 작업의 영감을 얻나. "특정 사람·물건·기업으로 정의하기 참 어렵다. 주변에 펼쳐진 세상 모든 것이 가능성이 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행동을 관찰하면서 영감을 얻는다. 슬픔·분노·기쁨 등 사소한 감정까지 자극을 준다."    ━  워홀 작품 하나로 10배 수익   아이러니하게도 미스치프는 돈을 꽤 많이 번다. 데미안 허스트의 '스팟 페인팅'에 그려진 점 88개를 조각내 장당 60만원에 판매했다. 작품을 잘라내고 남은 틀까지 알뜰하게 팔아 그림값의 7배 이상 이익을 얻었다. 팝 아트 거장 앤디 워홀 작품 하나를 사서 999개 위조품으로 만들어 10배 넘는 이익을 얻기도 했다. 암호를 알 수 없는 아이폰에 가수 위켄드나 이방카 트럼프 등의 연락처를 담아 3000만원 넘는 가격을 내세우기도 했다. 누구나 암호를 풀기만 하면 유명인과 통화할 수 있다. 미스치프는 데미안 허스트 작품 '스팟 페인팅'을 조각내 판매했다. 사진 대림미술관   Q. 예술의 상업화란 비판도 받는데. "예술가는 왜 항상 굶주려야 하는가? 우리 머릿속의 수많은 '미친' 아이디어를 세상에 도전적으로 내놓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소송에 휘말리는 일도 많아 자본의 힘이 꼭 필요하다."   미스치프는 2020년 1월까지 약 1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에 이어 올해까지 시리즈B 투자를 받았다.   Q. 이들이 왜 미스치프에 투자할까. "미스치프의 미래에 배팅한다고 생각한다. 작품 판매 전까지 상업적인 성공을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테크 기업, 뮤직 레이블 등 여러 분야의 투자사 우리의 실험적 활동에 기꺼이 투자한다. 알렉상드르 아르노 티파니 수석 부사장도 그중 한 명이다." 미스치프를 한국에 알린 '빅 레드 부츠'. '아톰 부츠'라고도 부른다. 사진 대림미술관   Q. 예술가와 경영자 사이, 독특한 일을 하고 있다.   "아티스트로서 작품을 만들고 메시지를 던지는 일, 조직을 유지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게 내가 짊어진 짐이다. 어떨 때는 유리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위험 요소를 줄이고 비즈니스에만 집중하고 싶은 유혹도 생긴다. 흔들릴 때는 우리 팀이 어디에서 왜 출발했는지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지난 4년 반을 회고하며 또 그런 기회를 얻게 됐다."   Q. 내년 목표는. "생존이다."   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2023.12.09 08:00

  • 3000명이 숨죽였다…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편지 읽은 행사 정체[더 하이엔드]

    3000명이 숨죽였다…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편지 읽은 행사 정체[더 하이엔드]

    #1905년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타임스지(The Times)에 오페라 극장의 복장 규정에 대한 항의 편지를 썼다. 커다란 흰 새 장식을 머리에 얹고 극장에 온 한 귀부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의 편지로,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그의 작풍이 단지 극이나 소설에만 머물렀던 것이 아님을 얘기해준다.   #1934년 미국의 카피라이터 로버트 피로쉬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뉴욕에서 할리우드로 이주하면서 영화 배급사 MGM의 임원들에게 일자리를 구하는 편지를 여러 장 쓴다. 후에 영화 ‘배틀 그라운드’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게 될 그의 빛나는 경력의 첫 시작은 “당신과 같은 자리에 앉고 싶다”는 메시지가 담긴 한 통의 편지였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레터스 라이브 2023' 현장.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몽블랑   지난달 16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레터스 라이브(LETTERS LIVE) 2023’의 무대에 오른 편지들의 일부다. 117년 전 쓰인 첫 번째 편지를 무대 위로 소환한 이는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였고, 두 번째 편지는 배우 윌 샤프의 목소리로 낭독됐다.    ━  배우가 무대에서 명사들의 편지 읽어   레터스 라이브는 2013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무대에서 편지를 읽는 낭독 행사다. 연극이나 음악 공연이 아닌, 그저 편지를 읽는 다소 싱거울 수 있는 공연이지만 로열 앨버트 홀을 가득 메운 3000여 명의 관중은 길게는 2000년 전 쓰인 과거의 편지들이 낭독되는 순간을 숨죽여 ‘직관’ 했다. 레터스 라이브는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편지 낭독 라이브 행사로 편지 문학에 대한 헌사를 전한다. 사진 몽블랑   이날 약 두 시간 동안 소개된 편지는 27여 통. 명사들의 유명 편지만 무대에 오른 것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북아프리카에서 신호원으로 근무하던 청년이 애인과의 사이에서 주고받은 절절한 연애편지부터, 아버지 장례식을 끝낸 후 장례식장의 부적절한 ‘언사’에 대한 한 소설가의 항의 편지도 등장했다.     12세에 다낭성 난소증후군 진단을 받고 얼굴에 털이 자라는 다모증을 앓아 온 하남 카우르(Harnam Kaur)는 이날 무대에 올라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해 박수를 받았다.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는 하남 카우르. 사진 몽블랑    ━  온라인 ‘편지 박물관’이 시초   레터스 라이브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배우와 가수, 저널리스트 등 명사들이 무대에 올라 종종 시의성 있는 편지를 낭독해 화제가 돼 왔다. 카피라이터로 일했던 손 어셔가 2009년 ‘레터스 오브 노트(Letters of Note)’라는 온라인 사이트를 연 것이 레터스 라이브의 시초다. 전자 메일이 아닌 손으로 쓰는 옛날식 편지에 대한 애착이 담긴 사이트로, 가장 처음 올라온 편지는 월트 디즈니가 한 애니메이터 지망생에게 보내는 거절 편지였다.   온라인 편지 박물관은 단행본으로, 뉴스레터로, 라이브 행사로 옮겨졌다. 사진은 단행본 '레터스 오브 노트.' 사진 아마존 홈페이지 이후 약 1억2000여 명의 편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곳을 방문했고, 이 사이트에 올라온 편지들은뉴스레터로, 단행본으로 옮겨졌다. 2013년 출간된 책 『진귀한 편지 박물관(Letters of Note)』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현재까지 14권의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다.    ━  50차례 공연, 전날 출연자 정해지기도   레터스 라이브는 이 단행본의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출판사 케논게이트가 기획한 일회성 이벤트였다. 출판사 대표이자 레터스 라이브의 기획자 제이미 빙은 “편지는 인간이 관계를 맺는 가장 민주적이고 아름다운 방식 중 하나”라며 “관객들은 편지로 경험해 본 적 없는 시간과 장소로 이동하고, 하나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레터스 라이브는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50번 공연됐고, 약 300명의 공연자가 무대에 올라 수많은 편지를 읽었다. 레터스 라이브의 기획자 제이미 빙은 "편지는 인간이 관계를 맺는 가장 민주적이고 아름다운 방식"이라고 말했다. 사진 몽블랑   16일 열린 레터스 라이브 2023에는 베네딕트 컴버배치, 질리언 앤더슨, 올리비아 콜먼, 미니 드라이버 등이 등장해 청중들 앞에서 특별한 편지를 낭독했다. 관객들은 어떤 공연자가 어떤 편지를 읽을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이들을 맞이한다.   레터스 라이브 2023의 무대에 올라 편지를 낭독하고 있는 배우 올리비아 콜먼. 사진 몽블랑 제이미 빙에 따르면 가끔 공연 바로 전날 출연자가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대에 오르는 편지는 연출팀이 함께 정하고 각 편지와 맞는 공연자를 짝짓는 식으로 이뤄진다. 10년간 레터스 라이브에는 데이비드 보위, 모하메드 간디, 엘비스 프레슬리, 샬럿 브론테, 체 게바라와 같은 다양한 인물들이 쓴 편지가 등장했다. 제이미 빙은 “관객들이 쇼를 통해 기쁨이나 고통·공감·슬픔·분노·연민을 느꼈으면 한다”며 “결국 인류애가 레터스 라이브의 궁극적 주제”라고 말했다.   레터스 라이브 2023의 무대에 올라 편지를 낭독하고 있는 배우 미니 드라이버. 사진 몽블랑  ━  글쓰기 문화의 뿌리 공유, 몽블랑과의 협력   올해 레터스 라이브는 좀 더 특별한 여정을 기록했다.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몽블랑과 1년간 글로벌 스폰서십을 공식 출범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몽블랑은 1906년 잉크가 새지 않는 만년필을 선보이며 필기 문화에 혁명을 일으켰다. 글쓰기 문화에 뿌리를 둔 럭셔리 하우스와 편지의 영향력을 기리는 레터스 라이브의 동행은 썩 잘 어울린다.   빈센트 몬탈리스코 몽블랑 최고 마케팅 책임자는 “몽블랑은 글쓰기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연결 방식을 변화시킨다는 선구적 개념으로 시작된 브랜드”라며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사람들이 글쓰기에 담긴 힘을 재발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자 중 한 명이자 레터스 라이브 공동 프로듀서인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레터스 라이브는 소통과 표현의 수단으로서 편지의 중요성을 기념해 왔다”며 “몽블랑은 아름다운 필기구를 통해 사람들이 편지로 생각을 나누도록 100년 넘게 장려해 온 브랜드로, 둘의 결합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다”고 찬사를 전했다. 레터스 라이브는 올해부터 럭셔리 브랜드 몽블랑과 글로벌 스폰서십을 1년간 진행한다.   단 몇 초면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시대지만, 진심을 전하고 싶을 때는 여전히 편지를 쓴다. 이날 런던 로열 앨버트 공연장의 객석마다 몽블랑의 엠블럼이 표시된 디자인 엽서가 제공됐다. 참석자들이 엽서에 손편지를 적은 뒤 공연장을 나설 때 넣을 수 있도록 몽블랑 우체통도 마련됐다. 소통의 가장 오래된 수단, 편지의 힘을 새삼 확인했던 행사의 가장 완벽한 마무리였다.     관련기사 캐럴 사라진 자리 크리스마스 마켓…벌써 1만 명 몰려간 이곳 [더 하이엔드] 거대한 수면 캡슐 만든 디자이너…패션 경계 넘는다 못생긴 안경이 돌아왔다...올가을 ‘안경 선배’의 조건은 뿔테 [더 하이엔드]   런던=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2023.12.09 05:00

  • 프랑스 총리였던 아버지와, 컬렉터 아들…서울서 하나됐다 [더 하이엔드]

    프랑스 총리였던 아버지와, 컬렉터 아들…서울서 하나됐다 [더 하이엔드]

    아버지와 아들은 ‘예술’로 하나가 됐다. 2005년 프랑스 총리를 지낸 도미니크 드 빌팽과 그의 아들 아서 드 빌팽의 이야기다.    강명희 작가의 국내 최초 개인전을 들고 온 '갤러리 빌팽'의 도미니크 드 빌팽(왼쪽)과 아서 드 빌팽. [사진 갤러리 빌팽] 컬렉터이자 갤러리스트로 활동하는 도미니크와 아서 드 빌팽이 한국에 왔다. 두 사람이 세운 ‘갤러리 빌팽’이 주최하는 강명희 작가의 국내 개인전 '강명희: 시간의 색'을 열기 위해서다. 아시아에서 14년 동안 살며 아시아와 유럽 예술의 가교 역할을 자신이 업이라 생각한 아서는 예술에 조예가 깊은 아버지와 함께 가족의 성(姓)을 따 ‘갤러리 빌팽’을 세웠다. 세계정세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예술에 접근하는 아버지와 동서양의 문화예술을 편견 없이 넘나드는 열정적인 컬렉터 아들은 ‘갤러리’라는 유형이자 무형의 테두리 안에서 하나가 됐고, 우리에게 좀처럼 보기 어려운 전시를 선물했다. 지난 10월 30일 전시 준비가 한창인 서울 성수동 키르 서울에서 도미니크와 아서 부자를 만났다.     "도미니크. 아서. 여기에 이렇게 그림을 거는 게 어때." 백발의 강 작가가 두 사람을 다급하게 불렀다. 전시장에 마지막 전시 그림을 거는 순간이었다. 강 작가의 말에 두 사람은 프랑스어로 "이쪽이 더 좋을 것 같다" "이렇게 하는 건 어때"라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그림 한 점을 거는 데만 수십 가지 의견이 오갔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결국 자리가 정해졌다. 낡은 콘크리트 벽에 강 작가의 그림이 걸리자 폐허에 꽃이 피는 것처럼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키르 서울을 채운 강명희 작가의 그림들이 마치 건물에 꽃이 핀 것처럼 보인다. [사진 갤러리 빌팽] 도미니크 드 빌팽(왼쪽)과 아서 드 빌팽. 두 사람은 예술로 하나가 됐다. [사진 갤러리 빌팽]   -한국에 자주 오신다고 들었습니다.  아서 "사실 한국은 저에게 매우 친근해요. 홍콩을 중심으로 아시아에 살면서 1년에 한 번은 꼭 한국에 옵니다. 오랜 친구인 강 작가님을 보러 제주에 주로 가요. 가장 최근엔 지난 9월 아트 페어 기간에 왔어요." 도미니크 "저 역시 프랑스의 외교관으로, 정치인으로 그리고 강 작가의 친구로 서울과 제주를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 한국 외에도 아시에 전역에 정말 많이 왔죠."      2019년 홍콩을 기반으로 설립된 갤러리 빌팽은 컬렉터들에 의해, 컬렉터들을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갤러리 모델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빌팽이 한국에서 개최하는 첫 전시이자, 이들의 한국 아트 시장 진출을 알리는 선포식이다. 국내에 사무실을 내진 않지만, 앞으로 국내 아트 시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겠다는 선언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는 무엇인가요. 아서 "갤러리를 설립한 이유가 동서양 문화를 서로 교류하게 하고 싶기 때문이었어요. 이를 위해 앞으로 1년에 한 번은 꼭 한국에서 전시를 열 계획입니다. 한국 관객이 종전엔 보지 못했던 작품을 가지고 올 예정인데, 이번 전시가 그 첫 발걸음입니다."    제주도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강명희 작가. [사진 갤러리 빌팽] 한국에서의 첫 전시를 위해 갤러리 빌팽이 선택한 작가가 바로 이들의 35년 지기 강 작가였다. 사실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이름이 알려진 작가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로 이주해 활동했다. 서울과 지금 거주하는 제주를 포함해 세계 곳곳을 누비며 그림을 그렸고, 그의 그림은 퐁피두 센터(파리)·황성미술관(베이징)·국립현대미술관(과천) 등 굵직한 미술관에 걸렸다. 빌팽은 이번 전시에서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50여 점을 공개했다.  -첫 한국 전시 작가로 강명희 작가를 선택한 이유는요.  도미니크 "강명희는 이제 '작가'라는 개념을 넘어 하나의 상징이 된 사람입니다. 고비 사막과 파타고니아, 제주 등에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또 꽃·색·빛의 의미를 찾아내는 그림을 그림으로서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탐험하는 작품을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의 오랜 친구면서, 우리에게 가장 한국적인 작가이자 동시에 가장 세계적인 작가죠. 아서는 어렸을 때부터 그와 함께 성장했다고 말할 만큼 친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추구하는 바가 있을까요. 아서 " 우리가 대변하는 작가는 아주 적습니다. 강명희와 함께 자우오키, 안셀름 키퍼, 프랜시스 베이컨 등이 대표적이죠. 여기엔 이유가 있는데, 컬렉터의 입장에서 작가와 작품을 보기 때문입니다. 컬렉터가 자신에 맞는 작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작가에 대해 교육하죠. 이번 전시 역시 '강명희'란 작가를 한국인들이 알고 그의 작품을 제대로 볼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2023.11.19 08:00

  • [더 하이엔드]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풀어낸 마법 같은 이 샴페인

    [더 하이엔드]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풀어낸 마법 같은 이 샴페인

    눈앞에 일본 교토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하늘 한쪽이 어둑해지는가 싶더니 부드러운 보랏빛 노을이 마치 물에 물감이 퍼져나가듯 하늘을 채워나간다. 일본 교토 히가시야마 산에 있는 세이류덴 사원 앞마당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이 광경을 구경한다. 이들의 앞엔 한잔의 샴페인이 있을 뿐이다. 오롯이 혼자, 자연과 샴페인을 음미하는 시간. 샴페인 브랜드 돔 페리뇽이 ‘로제 빈티지 2009’ 공개를 겸한 ‘레벨라시옹 2023’ 이벤트다. 돔 패리뇽 로제 빈티지 2009 출시와 함께 한 일본 교토 행사. 사진 돔 페리뇽 돔 페리뇽의 시그니처 이벤트인 솔로 테이스팅을 위해 샴페인을 서브하고 있다. 사진 돔 페리뇽    ━  샴페인이 된 포도...‘물질에서 빛으로’   돔 페리뇽 레벨라시옹(Dom Pérignon Révélations)은 돔 페리뇽의 모든 와인 제조를 책임지는 셰프 드 꺄브(수석 와인 메이커) 벵상 샤프롱의 창조 작업과 과정을 보여주는 이벤트다. 올해는 ‘물질에서 빛으로(From Matter to Light)’ 를 테마로, ‘프레 아상블라주 2022’와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09’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모으기·집합·조립을 뜻하는 프랑스어 아상블라주는 숙성을 위해 셀러에 담기 전, 그러니까 와인이 되기 전 상태의 포도즙 혼합물을 말한다. 돔 페리뇽은 아상블라주를 최소 8년 이상 숙성시킨 뒤에야 보틀링(병에 담는 과정)을 한다. 보틀링 뒤에도 최상의 맛을 지니기까지 몇 년이고 숙성이 계속되니, 지난해 포도를 수확해 만든 아상블라주라면 최소 8년뒤인 2030년에나 맛볼 수 있다는 의미다. 돔 패리뇽 로제 빈티지 2009 출시와 함께한 만찬에서 뱅상 샤프롱이 스피치를 하고 있다. 사진 돔 페리뇽 올해 공개된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09’의 시음 모습. 사진 돔 페리뇽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09. 사진 돔 페리뇽 뱅상 샤프롱은 프레 아상블라주 2022를 공개하며 “올해의 창조 의도는 ‘물질에서 빛으로’”라 공표했다. 그러면서 동명의 전시를 마련했다. 사진가, 크리에이티브 그룹 등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포도 수확과 아상블라주 제조 과정을 사진과 일러스트 등 작품으로 만들어 세이류덴 사원에 선보였다. 샤프롱은 “고급 와인은 자연과 문화에 대한 것”이라며 “아상블라주를 처음 보는 이 순간을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해석으로, 물질에서 빛으로 이어지는 샴페인의 창조적 순환에 관한 궤적을 보여주길 원했다”고 말했다.    ━  수확 후 14년, 비로소 세상에 나온 샴페인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세상에 첫선을 보인 로제 빈티지 2009의 ‘솔로 테이스팅’과 이 샴페인과 같은 이야기를 담은 요리를 맛보는 저녁 만찬이었다. 1947년 지어진 세이류덴 사원 앞마당에서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헤드폰을 쓰고 샴페인을 홀로 마시는 솔로 테이스팅은 풍부한 로제 빈티지 2009의 맛을 더욱 인상적으로 만들었다. 로제 빈티지 2009는 2009년 수확한 포도로 아상블라주를 만들어 숙성한 샴페인이다. 세상에 샴페인이 나오기까지 14년이 걸렸다는 의미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맛의 절정기에 오른 로제 빈티지는 강렬하면서도 가볍고, 힘이 넘치면서도 절제된 맛이 났다. 빈티지답게 2009년 당시 수확한 포도의 매력을 골고루 반영하고 있는데, 뱅상 샤프롱은 “그해  여름은 온난건조한 날씨와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별문제 없이 포도가 익었다”며 “그만큼 균형미와 신선미, 관능적인 매력과 광물의 풍미가 넘쳐난다”고 소회했다. 요시히로 나리사와 셰프(왼쪽)와 돔 페리뇽의 셰프 드 꺄브 뱅상 샤프롱이 세이류덴 사원에서 진행한 디너 현장에서 요리와 샴페인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있다. ©Harold de Puymorin 사진 돔 페리뇽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생각한 나리사와 셰프의 요리. ©Sergio Coimbra 사진 돔 페리뇽    ━  자연과 사람의 조화   돔 페리뇽은 이번 빈티지 샴페인 공개를 위해 협업 셰프로 일본인 셰프 요시히로 나리사와를 택했다. 나리사와 셰프는 자연과 어우러져 살고 일하는 ‘사토야마(里山)’ 정신을 실천하며, 자기만의 독창적인 요리 세계를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슐랭 2스타를 받았고, 동명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나리사와’를 운영한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요리를 풀어내는 나리사와 셰프의 음식은 돔 페리뇽과 공통점이 있다. 돔 페리뇽은 자연에 모든 창조의 출발점을 둔다. 단순히 와인을 얻기 위한 포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포도를 잘 기르기 위한 땅과 햇빛, 날씨까지 모든 자연이 돔 페리뇽의 샴페인을 만들어내는 재료이자 동력이기 때문이다. 나리사와 셰프는 현장에서 “우리는 사람에 맞춰 자연이 변화하도록 강요하는 것 대신, 자연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에서 나리사와 셰프는 일본의 산과 숲에서 출발해 강, 논, 호수, 바다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7가지 코스의 만찬을 연출했다. 그는 로제 빈티지 2009를 “첫 모금에서 조용한 인상을 받았다. 돔 페리뇽은 마치 자연과 춤추는 와인 같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가 이루어졌기 때문” 이라 평하며 “이번 만찬에선 로제 빈티지 2009와 함께 ‘자연이 이렇구나’란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식사를 준비했다”고설명했다. 된장에 적신 사슴고기, 달콤한 강장으로 코팅한 훈제 비둘기 등 그는 요리를 한 편의 시처럼 서사를 담아풀어냈다.   행사를 마치며 뱅상 샤프롱에게 돔 페리뇽 로제 2009를 언제 마시면 좋을지 물었다. 그의 답은 명료했다. “인생의 모든 순간.”  교토=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2023.10.06 09:28

  • [더 하이엔드] 보테가 베네타와 날아 올랐다...강서경의 '버들 북 꾀꼬리’

    [더 하이엔드] 보테가 베네타와 날아 올랐다...강서경의 '버들 북 꾀꼬리’

    한국화에서 현실 세계로 튀어나온 듯한 가을의 ‘산’, 세상의 모든 소리를 흡수해버릴 것 같은 커다란 ‘귀’, 화문석과 철재로 만들어진 ‘자리’.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설치 작품들은 한국의 자연과 삶의 흔적이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지난 9월 7일 시작한 작가 강서경의 개인전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Suki Seokyeong Kang: Willow Drum Oriole)’다.   보테가 베네타의 후원으로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강서경 작가의 전시 '버들 북 꾀꼬리'. 강 작가가 직접 기획해 만든 '액티베이션'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보테가 베네타]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의 후원으로 리움미술관이 기획했다. 준비 기간만 1년 넘게 걸린 전시는 여느 전시에선 보기 힘든 130여 점에 달하는 작품 수와 리움 2개 층을 연결하는 광활한 전시 규모를 자랑한다. 작품은 리움미술관의 M2 전시장과 로비 전체에 설치됐다. 시간의 흐름 가운데 변화하는 자연과 그 속에 함께하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거대하지만 섬세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리움미술관 로비에 설치된 강서경 작가의 작품을 배경으로, 퍼포머들이 액티베이션을 선보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작품이다. [사진 보테가 베네타]  ━  경계 없는 한국 전통의 재해석    강서경은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회화의 확장 가능성을 탐구해 온 작가다. 그가 보여주는 작업은 평면,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경계가 없다. 대학에서 동양화와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전통 회화·음악·무용·건축 등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연구를 보여주면서도, 이런 전통을 동시대 예술 언어와 사회문화적 문맥으로 새롭게 재해석해 보여준다. 강서경의 작품엔 매체, 형식, 시대의 구분을 뛰어넘는 조형적·개념적 실험으로 가득 차 있다.    작가는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국내외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2019),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2018)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베니스 비엔날레(2019), 리버풀 비엔날레(2018), 광주비엔날레 (2018·2016) 등에 참여했다. 2013년엔 송은미술대상 우수상을, 2018년엔 아트바젤 발루아즈 예술상을 받기도 했다. "회화란 눈에 보이는 사각형과 보이지 않는 사각 공간을 인지하고, 그 안에 무엇을 채워 넣을지를 고민하는 작업"이라고 말하는 강서경은 그리는 행위의 기본틀인 사각 형태의 프레임을 전통에서 발견한 개념 및 미학과 연계하여 회화라는 매체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확장하는 기제로 활용해왔다. 화문석에서 영감 받아 탄생한 작품 '자리'. [사진 보테가 베네타] 강서경 작가의 개인전 '버들 북 꾀꼬리'의 작품들. [사진 보테가 베네타] 강서경 작가의 개인전 '버들 북 꾀꼬리'의 작품들. [사진 보테가 베네타]    ━  전통가곡 '버들은'에서 영감 받아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신작 영상의 제목인 '버들 북 꾀꼬리'는 전통 가곡 이수대엽(二數大葉)의 '버들은'을 참조한 것이다. 마치 실을 짜듯 버드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꾀꼬리의 움직임과 소리를 풍경의 직조로 읽어내던 선인들의 비유를 가져왔다. 강서경은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시각, 촉각, 청각 그리고 시·공간적 차원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는 "이번 전시 '버들 북 꾀꼬리'는 풍경의 개념을 모든 방향에서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다. 수천, 수만 마리의 꾀꼬리가 드넓은 산이 펼쳐진 풍경 속을 함께 또 각자 날아다니는 상상을 해보았다"고 전시의 영감을 설명했다.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존재와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더불어 관계 맺는 ‘진정한 풍경’에 대해 고민한 결과다.   전시는 마치 한 폭의 풍경화가 3차원으로 펼쳐져 공감각적으로 공명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는 사계를 담은 산, 바닥과 벽으로 펼쳐지는 낮과 밤, 공중에 매달린 커다란 귀, 작지만 풍성한 초원과 제 자리를 맴도는 둥근 유랑, 그리고 각자의 자리를 만들고 전시의 보이지 않는 틀이 되는 다양한 사각이 함께 한다. 관람객은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그 사이사이 존재하는 여백의 공간을 직접 거닐어 보며 각자의 움직임과 서사를 더하게 된다. 이렇듯 다양한 작품과 관람객이 함께 모인 전시는 각기 다른 존재들이 연결되고 관계 맺는 풍경으로 제시된다.   이번 전시는 강서경의 최대 규모 미술관 전시다. 여러 형식을 넘나드는 그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좋은 기회다. 그가 연작으로 보여줘 왔던 작품 '정井' '모라' '자리'를 포함해, 개인성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는 '그랜드마더타워' '좁은 초원' '둥근 유랑' 등 기존 연작에서 발전된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 더불어 '산' '귀' '아워스' '기둥' '바닥'처럼 한층 다변화된 형식으로 풀어낸 새로운 조각 설치를 보고 있자면, 한줄기 시원한 산바람이 스쳐 가는 듯 잔잔한 감동을 끌어낸다. 리움미술관의 곽준영 전시기획실장은 "강서경 작가의 이번 전시는 미술관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헤쳐 모인 각각의 작품들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 연대의 서사를 펼친다. 작가는 이를 통해 나, 너, 우리가 불균형과 갈등을 끊임없이 조율하며 온전한 서로를 이뤄가는 장(場)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전시를 소개했다. 평소 강서경 작가 작품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던 방탄소년단 RM이 전시를 찾아 관람하고 있다. [사진 보테가 베네타]    ━  장인정신으로 재해석한 전통이 공통점    보테가 베네타는 강서경 작업의 공예적 특징과 경계 없는 혁신성에 주목했다. 보테가 베네타의 마티유 블라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우리가 이런 훌륭한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를 후원할 수 있게 돼 기쁘고, 매우 영광이다”라며 강 작가의 작품에 경의를 표했다. 보테가 베네타의 앰배서더인 RM도 일찌감치 전시를 방문했다. 평소 몇 차례나 강서경 작가 작품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던 RM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전시 사진을 올리고 “한국 문화를 지원해준 보테가 베네타에게도 고맙다”는 글을 남겼다.   지난 9월 5일 진행됐던 전시 오프닝 나이트에서는 강서경이 직접 기획·연출한 퍼포먼스 ‘액티베이션(Activation)’을 처음 공개했다. 작가가 공간적 서사와 사회 속 개인의 영역에 대한 탐구를 시각화해 구상한 일종의 퍼포먼스다. 보테가 베네타의 후원으로 이번 전시와 출품작에 맞춰 재구성됐다.  많은 설치 작품들 사이로 여러 명의 무용수가 자리 잡고, 마치 바람에 흔들리듯 매우 느리고 유려한 동작으로 몸을 움직이며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조선시대 궁중무용인 '춘앵무'에서 영감 받아 만든 18개의 각기 다른 안무가 동시에 그리고 순차적으로 펼쳐졌다. 퍼포먼스는 이후 '움직임 워크숍'을 마련해, 강서경이 고안한 액티베이션 움직임을 예술 강사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예정이다. 전시는 올해 12월 31일까지.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2023.09.22 11:00

  • [더 하이엔드] 이게 종이라고?....박스 쌓고 붙여 만든 경이로운 '시간의 교차로'

    [더 하이엔드] 이게 종이라고?....박스 쌓고 붙여 만든 경이로운 '시간의 교차로'

    지난 9월 6~9일 열렸던 프리즈 서울에서는 샴페인 하우스 ‘루이나’의 특별한 전시가 공개됐다. 지극히 평범한 소재인 판지(card board)로 경이롭고 독창적인 세계를 조각해내는 프랑스 아티스트 에바 조스팽(Eva Jospin·47)의 ‘프롬나드(Promenade(s))’다. ‘산책로’라는 의미의 설치 작품으로, 종이로 만들어 서정적이면서도 장대한 풍경이 펼쳐졌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 전시된 '루이나 카르트 블랑슈 2023 프로젝트'로 탄생한 작품 '산책로' 일부. 프랑스 아티스트 에바 조스팽의 작품이다. Eva Jospin, 4 Fôrets for the Carte Blanche PROMENADE(S), 2022. [사진 Benoit Fougeirol]   1729년 설립된 최초의 샴페인 하우스인 루이나는 2023년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 프로젝트로 에바 조스팽을 객원 아티스트로 초대했다. 에바 조스팽은 루이나의 심장인 프랑스 상파뉴 지방 렝스의 풍경을 고부조(홈이 깊어 평균보다 높게 도드라진 부조)·그림·자수 등으로 재현했다. 루이나의 대표적인 퀴베 샴페인, 블랑 드 블랑 제로보암(Blanc de Blancs Jeroboam) 리미티드 에디션. 병이 담긴 나무 상자에 여러 겹의 판지로 조각한 미니어처 백악갱 장식이 들어있다. 25병 한정.[사진 루이나]   루이나는 프리즈와 아트 바젤을 포함, 전 세계 30개 이상의 국제 미술 박람회에서 예술가의 작품을 공개하는 카르트 블랑슈 프로젝트를 2008년부터 진행 중이다. 백지 수표·위임장이라는 의미처럼, 재능 있는 아티스트에게 전권을 주고 기량을 뽐내도록 한다. 지난 7일, 프리즈 서울 2023 개막 하루 뒤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에바 조스팽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9월 7일 오전. 프리즈 서울 2023 개막 하루 뒤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에바 조스팽을 만나 인터뷰 했다. [사진 Flavien Prioreau]    ━  왕의 대관식 열리던 땅   프랑스 북부 상파뉴 지역의 중심지이자, 루이나 하우스가 위치한 렝스는 야트막한 구릉 지대와 백악갱(석회 지하 동굴)이 혼합된 지형으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에바 조스팽은 이런 렝스의 떼루아(포도 재배 환경)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찾았다. 프랑스 상파뉴 지역 렝스에 위치한 루이나 하우스에 방문한 에바 조스팽. 에바 조스팽은 이 곳의 특별한 자연 환경 등 떼루아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찾았다. [사진 Mathieu Bonnevie]   물론 단순히 포도밭이 위치한 지형보다, 풍부한 자연경관을 만들어낸 시간에 주목한다. 특히 렝스는 프랑스인들에게는 유명한, ‘왕의 대관식’이 치러졌던 역사적 장소. 작가는 “상파뉴의 테루아에는 자연뿐 아니라 수백 년간 와인을 만들어왔던 인류의 행위, 그 행위 속 시간,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뒤섞여 숨 쉬고 있다”며 “식물과 광물이 가득한 자연 사이 층층이 스며든 시간의 결을 작품에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루이나 샴페인 블랑 드 들랑 에바 조스팽 리미티드 에디션 [사진 JOSEPH JABBOUR]    ━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산책로   에바 조스팽은 지하 공간부터 공중의 세계, 뿌리부터 하늘 등 다양한 층위의 풍경을 병치, 모호하면서도 신비로운 산책길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렝스에 있는 메종 루이나의 풍경이 꼭 그렇다”며 “여기가 땅인가 싶으면 포도나무 뿌리가 보이고, 와인이 숨 쉬는 백악갱은 미로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프리즈 서울이 진행됐던 지난 9월 6~9일 전시장에 선보였던 에바 조스팽의 설치 작품 ‘프롬나드(산책로)’ 중 일부. 세부 작품명은 걸작(Chef d‘oeuvre_1). [사진 bfougeirol]   에바 조스팽은 그림·조각품·자수 등 작품이 회전목마처럼 돌아가도록 설치, 한 곳에 있으면서도 산책로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도록 연출했다. 옅은 황갈색 종이는 겹겹이 연출돼,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지층 같다. 종이는 그 자체로 나무와 숲을 떠올리게 하고, ‘산책로’라는 타이틀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지극히 평범한 소재인 종이가 경이로운 풍경으로 탈바꿈한 작품은, 단순한 과일인 포도가 환상적 샴페인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은유한다. 여러 겹의 종이를 붙여 자르고 조각해 만든다. 작품 '산책로'의 일부,로 세부 작품명은 '걸작(Chef d'oeuvre _6). [사진 Benoit Fougeirol]    ━  5~6명 팀, 4개월간 판지 자르고 붙이고   에바 조스팽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판지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현한다. 우리에게는 택배 상자로 더 익숙한 바로 그 재료다. 그는 “판지는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어 대규모 조각 작품을 만드는데 적합하다”며 “산업적 재료면서도, 누구나 나무라는 원료를 알고 있는 친숙한 소재라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대규모 작업을 주로 하는 에바 조스팽의 아틀리에에는 5~6명의 팀원이 있다. [사진 Laure Vasconi]   판지를 절단하고 풀로 붙인 뒤, 이를 다시 층층이 쌓은 다음 조각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작업에는 전기톱부터 조각기, 체인톱 같은 다양한 도구가 사용 된다. 거의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다는느낌이 들 만큼 거대한 규모로 작업하길 즐기는 그의 아틀리에에는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5~6명이 팀원이 있다. 이번 프롬나드 작품은 팀원들과 함께 약 4개월간 작업한 결과물이다. 종이로 만든 작품이지만, 주로 커터와 조각기, 체인톱 등 다소 거칠고 다양한 도구가 사용된다. [사진 Joseph Jabbour]    ━  “예술은 다양한 관점 포용해야”   최근 전쟁과 정원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는 그는 다음 작품으로 아비뇽 교황청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후기 고딕 양식의 궁이자, 그 유명한 ‘아비뇽 유수(로마 교황청을 남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이전한 사건)’가 일어났던 장소다.   마지막으로 이번 프로젝트로 어떤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질문하자 작가는 “좋은 작품은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기 보다는 관람객이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게 다양한 관점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프롬나드를 통해 서로 다른 세계가 어떻게 추출되는지, 수세기를 걸친 시간이 어떻게 교차하는지 각자의 상상에 따라 이리저리 거닐어 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에바 조스팽의 이전 작품. Eva Jospin, The Christian Dior Spring-Summer 2023 Show, 2022. [사진 Adrien Dirand] 관련기사 [더 하이엔드] "아트 페어의 뜨거운 인기는 자연스러운 것"...프리즈 서울 2년차 패트릭 리 디렉터의 속얘기 [더 하이엔드] 10명의 한국 작가 인터뷰...'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다' [더 하이엔드] 아트와 사랑에 빠진 대한민국… 명품도 여기 빠질 수 없다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2023.09.15 06:00

  • 티파니 매출 뛰게 한 '레드루 혁신'…"청담동에도 들어선다" [티파니 글로벌 CEO 단독 인터뷰]

    티파니 매출 뛰게 한 '레드루 혁신'…"청담동에도 들어선다" [티파니 글로벌 CEO 단독 인터뷰]

    지난 13일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 지역에 티파니의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가 문을 열었다. 사진 티파니   글로벌 명품 업계에서 미국 파인주얼리 브랜드 티파니 앤 코(티파니)의 파격적 혁신이 화두다. 2021년 프랑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에 158억 달러(약 21조원)에 인수된 후 2년 만에 세계 곳곳에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하면서다.    변화의 핵심은 ‘완전히 새로운 매장 경험’이다. 지난 4월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 매장을 ‘랜드마크’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했고, 7월 일본 도쿄 긴자 매장 리오프닝에 이어 13일에는 도쿄 오모테산도에 새 스토어를 열었다.     이런 혁신의 한 가운데 안소니 레드루 티파니 글로벌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지난 12일 오모테산도 스토어 사전 오프닝 현장에서 레드루 회장을 만나 티파니의 변화에 관해 물었다.   안소니 레드루 티파니 글로벌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사진 티파니    ━  “매장 아닌 ‘문화 허브’…고객과 감정적 교류 할 것”   도쿄 오모테산도 티파니는 768㎡(약 232평) 규모 2개 층으로 이뤄졌다. 최근 블랙핑크 로제와 협업으로 화제가 된 ‘락 로제 에디션’부터 티파니 보석 디자이너 엘사 페레티의 주얼리 컬렉션까지 다양한 상품이 전시돼 있다. 입구 부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끌고, 매장 곳곳에는 미술 작품이 포진했다.    2층에는 보석 디자이너 잔 슐럼버제 등 거장의 작품이 즐비해 마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레드루 회장은 “단지 보석 판매만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이 만나는 장소로, 티파니에 푹 빠져 경험할 수 있는 몰입형 매장”이라고 설명했다.    도쿄 오모테산도 매장 2층 전경. 정 가운데 VIC 공간이 자리하고, 앞으로 쟌 슐렘버제 등 티파니의 역사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티파니   티파니의 매장 전략은 지난 4월 뉴욕에 재개장한 ‘티파니 랜드마크’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빵을 먹으며 쇼윈도를 응시했던 바로 그 장소다. 10층 규모의 랜드마크는 2개층에 걸친 브랜드 아카이브 전시관, 데미안 허스트·줄리안 슈나벨 등의 예술 작품, ‘더 블루 박스 카페’ 등 다이닝(식사) 공간 등을 품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새 매장을 줄줄이 오픈했다. 효과가 있었나. 뉴욕 랜드마크 오픈 후 매장 매출이 두 배 뛰었고, 고객 체류 시간도 눈에 띄게 늘었다. 랜드마크에는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조사 결과 입장한 73%의 고객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층으로 이동했다. 이는 소매 업계에선 드문 일이다. 지난 주말에 왔던 한 한국의 VIC(최고 고객)는 45분 방문 예정으로 왔다가 4시간을 머물고 갔다. 다이닝 공간 덕분도 있지만, 과거 30~40분 머물고 갔던 VIC들이 최근 더 많이 머물고, 더 자주 방문하고 있다.     최근 다른 럭셔리 브랜드들도 매장에 공을 들인다. 매장은 고객이 가장 통합적으로 브랜드를 경험하는 곳이다. 우리는 특히 매장에서 고객과 ‘감정적 교류’를 하고 싶다. 코로나19 기간 고립감을 느꼈던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고, 실제로 경험하는 것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추세다.    지난 4월 재개장한 뉴욕 맨해튼 5번가의 티파니 랜드마크(The Landmark) 전경. 사진 티파니    ━  “2025년 서울에도 티파니 플래그십”   티파니는 현재 세계 주요 도시에서 25개의 플래그십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매장들을 순차적으로 확장 혹은 리뉴얼할 계획이다. 이른바 ‘리로케이션(기존 점포 폐점 후 같은 상권 이전 출점)’ 전략이다.    전 세계 플래그십을 모두 리뉴얼하나. 동일하게 ‘리뉴얼’ 전략을 가져가진 않을 것 같다. 영국 런던 본드 스트리트 매장은 확장할 계획이고, 프랑스 파리에는 새로운 플래그십을 오픈할 것이다. 플래그십이 없는 서울도 이미 계약이 돼 있어 2025년 말 강남구 청담동에 개장할 예정이다. 지금 오모테산도 매장 대비 두 배 이상 규모다. 한국에선 지금까지 티파니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판단이 들어 더 공들이고 있다. 얼마 후 온라인 몰을 오픈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한국을 겨냥해 5~7개 프로젝트가 예정돼 있다.    12일 티파니 오모테산도 매장 오픈을 기념한 사전 행사에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왼쪽부터 일본의 배우 아야카 미요시, 안소니 레드루 CEO, 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 신타로 키츠다 티파니 일본 지사장. 사진 티파니    ━  비욘세·지민(BTS) 모델 세우고 나이키와 협업   12일 사전 행사에 참석한 유명인들. 왼쪽부터 한국 배우 한효주, 미국의 모델 헤일리 비버, 한국 가수 엔하이픈의 제이크, 성훈. 사진 티파니   레두르 회장은 앞으로 티파니가 추구할 혁신의 핵심 전략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전설적 보석 디자이너 쟌 슐럼버제의 디자인인 ‘바위 위에 앉은 새’와 비욘세다. 비욘세는 지난 2021년 티파니의 새 캠페인에 128.54캐럿의 옐로우 다이아몬드를 착용하고 등장해 화제가 됐다. 또 갤 가돗, 헤일리 비버, 지민(BTS), 로제 등 스타들을 기용했고, 지난 3월에는 나이키와의 협업 컬렉션을 발매했다. ‘바위 위에 앉은 새’처럼 하이 주얼리(초고가 보석) 정신을 추구하면서도, 젊은 감성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12일 사전 행사에 참석한 미국 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가 티파니의 상징물인 '바위 위에 앉은 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티파니   티파니 하면 떠오르는 블루 박스 속 실버 제품은 대중 인지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최근 부쩍 하이 주얼리를 내세우는데.   둘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 티파니의 역사적 실버 제품들은 하이 주얼리보다 비싸고, 세공 수준도 높다. 실버가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요즘 고객들은 하이 주얼리에 실버 제품을 섞어 착용한다. 물론 매출 면에서 최근 하이 주얼리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은 맞다. 지난 3년간 티파니의 하이 주얼리 매출이 이전 동기 대비 5배 늘었다. 새로운 티파니의 전략이 잘 작동하고 있다. 내년이면 ‘블루 웨이브’가 느껴질 정도로 티파니가 업계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이다.       ■ 안소리 레드루 티파니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 1999~2011년 카르티에에서 북미 소매 부문 부사장을 지냈다. 이후 해리 윈스턴 글로벌 영업 부사장을 거쳐 타파니앤코로 옮겼다. 2015년 LVMH그룹에 합류했으며 북미 루이뷔통 사장 및 최고경영자, 루이뷔통 글로벌 상업활동 총괄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 관련기사 산호·조개·불가사리의 신비…'보석 박힌 바다' 진짜 존재했다 [더 하이엔드] [더 하이엔드] 라운드 컷 가고 하트 컷 왔다...가장 대담한 다이아몬드의 귀환 [더 하이엔드] 도도새, 세르펜티 만났다...불가리와 협업 가방 만든 한국 작가 김선우도쿄=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2023.09.15 05:00

  • [더 하이엔드] "아트 페어의 뜨거운 인기는 자연스러운 것"...프리즈 서울 2년차 패트릭 리 디렉터의 속얘기

    [더 하이엔드] "아트 페어의 뜨거운 인기는 자연스러운 것"...프리즈 서울 2년차 패트릭 리 디렉터의 속얘기

    서울에서 두 번째로 열린 ‘프리즈 서울’이 오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지난해 9월 처음 서울에 소개돼 4일간 7만명이 다녀갔다. 프리즈가 해외 컬렉터와 유명 해외 갤러리를 끌고 온 덕분에, 4000억 원대에 머물던 한국 미술시장 규모는 1조원대를 넘어섰다.    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 디렉터. 전민규 기자   프리즈 서울의 디렉터는 한국계 미국인인 패트릭 리다. 17년 차 갤러리스트로, 한국에서 일한 지는 20년이 됐다. 2002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땐 금융업계에서 일했지만, 예술에 관심이 커 작가와 작품 구매자를 이어주는 갤러리스트로 전업했다. 그동안 ‘원 앤 제이’ ‘갤러리 현대’ 갤러리를 거쳤고, 지난해 프리즈 서울의 디렉터가 됐다. 페어가 한창인 지난 9월 7일 오후 패트릭 리 디렉터를 만났다. 프리즈, 넌 대체 뭐니.    ━  ‘쉬운 예술잡지’에서 세계 2대 아트페어로   프리즈는 대학생이 만든 잡지에서 시작한 아트 페어다. 1991년 영국 옥스퍼드대 학생이었던 매튜 슬로토버, 아만다 샤프, 톰 기들리가 ‘지금 가장 떠오르는 신진 작가와 작품’을 실기 위해 창간한 잡지다. 이름 프리즈(Frieze)는 데미안 허스트가 기획한 전시 ‘프리즈(Freeze)’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시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두 사람은 3년 뒤 의기투합해 같은 발음이 나는 이름의 미술잡지를 만든다. 2003년엔 런던 리젠트 파크에서 페어를 열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제1회 프리즈 런던'이다. 이후 프리즈는 미국 뉴욕, 로스앤젤레스와 서울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지금은 ‘아트 바젤’과 함께 세계 2대 아트 페어로 불린다.   프리즈 서울은 2022년부터 시작해 2026년까지 5년간 키아프와 협업해 페어를 개최한다. 올해는 그 두 번째로 지난해 110여 개 갤러리에서 120여 개로 참여 갤러리 수도 늘었다.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페이스, 데이비드 즈위너, 페로탕 등 글로벌 메이저 갤러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을 찾는다. 국내 갤러리는 국제갤러리, 갤러리 바톤, PKM갤러리, 리안갤러리 등 18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갤러리현대와 학고재, 가나아트, 우손갤러리는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 자리를 마련했다.   패트릭 리 디렉터는 지난 8월 22일 중앙일보와 만나 서울 강남 sll사옥에서 '아트 테크' 투자자들을 위한 실전 가이드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전민규 기자   프리즈는 무서운 기세로 세계를 확장 중이다. 이런 확장 속도, 어떻게 가능했나.   “1991년 잡지가 세상에 나온 뒤부터, 모든 프로젝트는 매우 장기적이고도 유기적으로 만들어졌다. 처음엔 잡지, 그다음은 커뮤니티가 생겼다. 프리즈 잡지를 좋아하는 큐레이터, 아티스트들이 모인 커뮤니티였다. 자기 일을 진지한 태도로 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점점 커졌고, 실제로 작품을 보여주는 페어가 열리게 됐다.”   다른 아트 페어 대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무엇이라 판단하나. “우선 프리즈 서울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에 기쁘게 생각한다. 프리즈가 지금의 아트씬을 즉각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일 거라고 보고 있다. 프리즈에 오면 지금의 트렌드도 알 수 있고, 또 뜨는 아티스트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과 갤러리가 한곳에 모인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유명 작품부터 ‘포커스 아시아’에서 보여주는 신진작가의 작품, 고대 유물까지 모아 놓은, 품질과 다양성의 힘으로 보고 있다. 사실 프리즈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유명한 작품들을 볼 수 있겠나.”   프리즈 서울만이 가진 차별점은. “아무래도 아시아 지역이라는 지리적 조건이겠다. 아시아 작가의 작품을 궁금해하는 많은 컬렉터를 연결하는 것, 여기에 프리즈 서울의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시아의 유명 갤러리, 큐레이터, 기관의 참여와 지원을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프리즈가 개최 도시마다 성공했던 비결 중 하나가 바로 해당 도시와의 탄탄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프리즈 기간, 서울 전체가 아트로 들썩인다. “그래서 우린 ‘프리즈 아트 페어’와 함께 ‘프리즈 위크’란 용어를 쓴다. 한국은 많은 갤러리, 박물관이 이 기간에 반짝반짝 빛을 내길 바라고, 이를 프리즈에 오는 해외 컬렉터와 일반 관람객들이 경험할 수 있게 연결한다. 우리는 플랫폼이다. 이 시대의 예술을 담는 ‘스냅샷’이 되려 한다. 지금 존재하는 최고의 예술을 누구나 볼 수 있는 한장의 사진, 하나의 장면으로 만들어 내길 바란다.”   지금 한국인들이 왜 이렇게 아트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하나요.   “한국인은 영화, 음악, 패션을 좋아한다. 창의적인 문화 자체를 좋아하고, 이를 즐기는 것 또한 좋아한다. 다음 스텝으로 아트를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한국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의 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뛰어나다. 지금 해외 갤러리나 큐레이터들이 한국 미술이 ‘핫해졌다’고 많이 말하는데, 그건 한국 미술을 이제 보기 시작했을 뿐이다.”   아트,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보는 ‘눈’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우선은 많이 봐야 한다. 많이 보면 취향이 생기고, 점점 더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찾다 보면 안목이 생긴다. 한국엔 정말 좋은 예술 공간들이 많다. 미술관, 갤러리, 비영리 독립공간 등을 찾아다니면 된다. 작품을 보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 작가의 작품을 추적하면서 전시를 이어 보면 더 도움이 된다. 책과 잡지 등 자기 자신을 교육할 수 있는 자료도 많이 보길 바란다. 실제로 나도 그렇게 시작했다.”     ■ [프리즈 서울 2023] 놓치면 아쉬워... 눈여겨볼 갤러리들 「 프리즈 서울 2023에 참가한 갤러리 '에바 프레센후버'의 작품들. [사진 갤러리 에바 프레센후버]  ━ 테데우스 로팍(Thaddaeus Ropac)    1983년 설립된 테데우스 로팍은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 걸쳐 갤러리를 가지고 있다.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60명 이상의 아티스트가 소속돼 있다. 주요 국제 아트페어에서 주요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번 프리즈 서울엔 코리 아카젤, 알바로 바링턴, 게오르크 바젤리츠, 로버트 라우센버그, 다니엘 리히터, 알렉스 카츠 등 걸출한 작가들의 작품을 가져왔다.     ━ 로빌런트+보에나(Robilant+Voena)  올드 마스터 그림의 선도적인 갤러리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로빌런트 보에나(R+V)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뮤지엄·브루클린 미술관, 루브르 아부다비, 베니스 갤러리에 델 마칸데미아 등 많은 왕실 수집가와 박품관에 작품을 판매한다. 이번 프리즈 서울엔 카날레토, 르누아르, 피카소, 폰타나, 샤갈, 톰블리와 현대작품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배리 액스 볼, 하루미 클로소프스카 데 롤라 등의 작품을 보여줬다.    ━ 실린더(Cylinder)  2020년 서울에 설립된 실린더는 기관에 들어가는 미술과 현장에 살아있는 미술 사이의 연결하는 중계자를 자처하는 갤러리다.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는 유신애 작가의 솔로 부스 ‘포스트 트루스(Post Truth)’로 참여한다. 유 작가는 2015년 스위스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후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다 2020년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열린 전시 '페트리코어'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 갤러리 에바 프레센후버(Galerie Eva Presenhuber)  스위스 취리히와 오스트리아 빈에 기반을 둔 갤러리로, 두 도시 출신 아티스트들의 현대미술 작품을 소개한다. 수 윌리엄스 카렌 킬림닉, 더글라스 고든, 칸디다 회퍼 및 안젤라 불로치와 같은 글로벌 아티스트의 스위스 첫 전시를 개최했다. 피터 피슐리 데이비드 바이스, 우고 론디논, 우르스 피셔 및 장 프레데릭 슈나이더를 포함한 스위스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들고 왔다.          」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2023.09.09 15:00

  • [더 하이엔드] "나에게 예술은 욕망의 언어"...쿤 작가의 욕망 예술

    [더 하이엔드] "나에게 예술은 욕망의 언어"...쿤 작가의 욕망 예술

    “예술은 나에게 욕망의 언어다. 그것을 통해 비로소 내 욕망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 쿤의 말이다. 그는 현대인의 욕망에 대해 그리는, 아니 만들어 내는 작가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그린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잘라서 모으고, 이를 정교하고 놀라운 감각으로 편집해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 또 다른 회화 작품에선 3차원적 입체감을 주기 위해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고, 또 케이크 성형 도구로 물감을 짜 얹는다. 사용 매체도 대학에서 전공한 디자인 외에도 회화·패션·미디어아트 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말 그대로 멀티 아티스트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3개의 캐릭터로 표현하고 있는 쿤 작가. 장진영 기자   그의 작품엔 늘 자신만의 페르소나가 등장한다. 2000년 도깨비 소년 ‘사쿤(SAKUN)’, 2013년 치유하는 고양이 ‘쿤캣(KUNCAT)’, 가장 최근 달항아리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쿠니쿠니(KuniKuni)’다. 이들은 가상현실의 아바타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약 10년 주기로 하나씩 탄생한 세 캐릭터는 모두 그가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지만, 실존 인물과 하나씩 연결돼 있다. 사쿤은 쿤 작가 자신, 쿤캣은 어머니, 쿠니쿠니는 아버지다.     지난 8월 20일 쿤 작가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장진영 기자   “계획했던 것은 아니지만, 10년 주기로 탄생한 캐릭터들은 당시 내가 가장 집중했던 인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0대엔 ‘나’와 싸우고 화해하고 대화하곤 했죠. 사쿤은 내 모습의 투영으로 입이 발달하고 눈은 모양만 있죠. 귀는 아예 없고요. 보지 않고 남 얘기도 듣지 않던 내 모습이었던 겁니다.” 여행지에서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만든 쿤캣은 큰 귀가 쫑긋 서 있고, 양 눈동자 색이 다른 큰 눈을 가지고 있다. ‘OO의 엄마’라 불리던 한국 여성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대상인 새로운 종(種)으로 그려내고 싶어서였다.   이번 키아프 서울 2023에 출품하는 쿤 작가의 콜렉터 연작 '콜렉터85(Collector 85)'. [사진 쿤 작가] 곰 캐틱터 쿠니쿠니가 중앙에 등장한 신작 '콜렉터 84(Collector 84)'. [사진 쿤 작가] 쿤 작가의 신작 '콜렉터 70(Collector 70)'. 뒤에 쿠니를 태우고 카레이싱 중인 쿤캣의 모습을 그렸다.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케이크 성형틀까지 동원해 올록볼록한 질감을 줬다. 만져도 되는 작품이라고. [사진 쿤 작가]   왜 '캐릭터'인가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접해온 환경과 관련있다 생각해요. 저는 서울 여의도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만화,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를 자연스럽게 접한 세대죠. 힙합에 기반을 둔 미국 뮤지션들의 음악도 그렇고요. 이것들이 자양분이 되서 지금의 작품으로 나타났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지금 현대미술을 하는 작가들 작품에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같을 거라고 봅니다."   캐릭터를 창조할 땐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각자의 방식이 있겠지만, 저는 제 자신과 가족을 녹여냈어요. 제 분신이었던 사쿤은 한국 도깨비예요. 남말 안 듣고 반항기였던 20대에 만들었더니, 동공과 귀는 없고 입이 가장 발달했죠.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거죠. 10여 년뒤에 탄생한 고양이 쿤캣은 '너, 나, 우리'의 개념이 제게 들어온 시기여서 눈과 귀가 커요. '나'만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사름을 바라보는 시각이 제 안에 생기면서 생긴 변화죠. 그리고 늘 나를 지겨봐준 어머니가 뮤즈여서도 그렇고요."   그의 작업에 자유롭게 등장했다 사라지곤 했던 3개의 캐릭터는 이제 또 다른 캐릭터들과 함께 콜라주 기법을 통해 하나의 캔버스에 모였다. 캐릭터를 “현대인들의 감정을 보여주는 이모티콘이자 감정 그림”이라고 설명하는 쿤은 이들을 통해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욕망하는 현대인이 모습을 ‘컬렉터’ 시리즈에 담았다. 캐릭터는 손바닥만 한 크기부터 엄지손톱만큼 작은 크기까지 각기 다른 몸집을 가졌고, 다양한 표정과 컬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을 아름다운 균형감을 지키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하며 하나씩 붙여나가는 노동집약적인 작업방식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 쿤의 시선과도 닮아있다.     관련기사 10명의 한국 작가 인터뷰...'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다' [더 하이엔드] 앨범 내듯 미디어 작품 내고 싶어...작가 김웅현의 대단한 상상[더 하이엔드] 무심히 툭 서있는 통나무, 이게 작품이다…조각가 나점수 시심 [더 하이엔드] “자꾸 오징어 그리는 이유는요...” 작가 남진우의 아름답고 끔찍한 우화[더 하이엔드]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2023.09.07 09:19

  • [더 하이엔드] 10명의 한국 작가 인터뷰...'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다'

    [더 하이엔드] 10명의 한국 작가 인터뷰...'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다'

    '키아프 서울·프리즈 서울 2023'을 맞아 한국 작가 10인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다' 시리즈를 준비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쿤, 김명진, 김웅현, 이정민, 박형근, 이만나, 나점수, 정정엽, 정직성, 남진우 작가(사진은 인터뷰에 참여한 아티스트를 한 장으로 합성했다). 중앙일보 사진부   다시 한번 한국이 예술로 들썩이고 있습니다. 지난 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시작한 키아프 서울·프리즈 서울이라는 걸출한 두 아트페어 덕분입니다. 두 페어의 개최 기간에 맞춰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아트 이벤트도 참 많습니다.  예술에 대한 관심이 폭증한 이때, 한국 작가들에 대해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중앙일보가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창의성을 오랜 시간을 들여 묵묵히 작업해 나가는 작가 10인을 '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다' 인터뷰로 소개합니다. 키아프가 올해 처음으로 선정 발표한 '키아프 하이라이트 작가' 중 시간적·지리적으로 인터뷰가 가능했던 한국 국적의 작가들로 김명진, 김웅현, 나점수, 남진우, 정정엽, 정직성, 박형근, 이만나, 이정민, 쿤 작가입니다. 작업실로, 갤러리로, 스튜디오로 직접 뛰어가 작가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중앙일보 사진부도 총출동했습니다.   지난달 열린 '키아프 서울·프리즈 서울 2023' 기자 간담회에서 키아프 운영을 맡고 있는 한국화랑협회의 황달성 회장은 "프리즈를 통해 많이 배운다"면서, 키아프의 무기로 "작품 가격이나 유명세로는 키아프가 프리즈를 상대할 수 없다. 우리는 한국의 젊음을, 작가들의 신작을 많이 선보이겠다"고 힘주어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선언을 들었을 때만해도 내심 '황 회장의 무리수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 작가들에게 아트 페어를 위해 신작을 내라는 주문이 가능할지 의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작 준비로 한창인 작가들을 직접 만나보니 황 회장의 선언이 작가들에게 새로운 과제이자 동력이 됐더군요. 이미 완성해 놓은 그림을 출품해 파는 것을 아트 페어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마치 교수님에게 받은 과제를 제출하듯 새로운 작품을 그리고 만들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어요. 실제로 점묘화를 그리는 이만나 작가는 "아직 반도 못했다"고 앓는 소리를 냈지만, 그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직접 작가들을 만나 보니 왜 이들이 스스로를 "노동집약형 작가"라 말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누가 작가를 자유로운 직업이라고 말했던가요.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12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하며 이 루틴을 지켜가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바로 한국 작가들이었어요. 이들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이번 키아프 서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주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에 많은 사람이 모여듭니다. 프리즈 서울의 걸출한 해외 작가 작품과 함께 코엑스 1층의 키아프 서울에도 꼭 들러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인터뷰 보기 "예술은 나에게 욕망의 언어"...쿤 작가의 욕망 예술인터뷰 보기 한국 아티스트 정직성이 포착한 '일상적 숭고의 순간'인터뷰 보기 콩·팥·벌레까지...모욕당한 것들을 그리는 작가, 정정엽인터뷰 보기 ‘파워포인트’ 미디어 아트...이정민 작가의 아날로그적 선긋기인터뷰 보기 이게 점이라고? 작가 이만나가 점 하나 하나로 그려낸 '더 이상 거기에 없는 풍경'인터뷰 보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담는다...사진가 박형근의 세계인터뷰 보기 “자꾸 오징어 그리는 이유는요...” 작가 남진우의 아름답고 끔찍한 우화인터뷰 보기 무심히 툭 서있는 통나무, 이게 작품이다…조각가 나점수 시심인터뷰 보기 美·홍콩이 먼저 진가 알아챘다…젤리맨 신나게 노는 팝초현실주의   인터뷰 보기 앨범 내듯 미디어 작품 내고 싶어...작가 김웅현의 대단한 상상윤경희·유지연 기자 annie@joongang.co.kr

    2023.09.07 08:19

  • [더 하이엔드] 아트와 사랑에 빠진 대한민국… 명품도 여기 빠질 수 없다

    [더 하이엔드] 아트와 사랑에 빠진 대한민국… 명품도 여기 빠질 수 없다

    서울 곳곳에서 예술의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5일 한남동을 시작으로 6일 청담동, 7일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갤러리들의 야간 전시와 파티도 서울을 아트의 도시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탠다. 세계 2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 서울과 국내를 대표하는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이 오늘(7일) 개막한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동시 개최로 그야말로 아트 업계 최대 전쟁이 시작됐다. 참고로 지난해 페어장을 찾은 사람은 무려 7만여명이다(누적 방문 기록 제외). 공식 집계 자료는 없지만 두 페어에서 발생한 총 매출 추정가는 6500억여원에 이른다.  이제 아트 시장은 미국과 영국∙중국 등 아트 시장을 주도하던 다른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프리즈엔 30개국의 120여 갤러리가 참가한다. 키아프엔 국내외 210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작품을 사지 않더라도 양쪽 전시관에 내걸린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7일 공식 개막하는 키아프 서울의 입구 전경. [사진 이현상 기자] 공식 개막에 앞서 VIP와 기자들을 위한 선 오픈 날인 6일 오후 페어 현장인 코엑스를 찾았다. 코엑스 주변의 옥외광고판과 건물 내부의 미디어월에선 전 세계 유수 명품 브랜드의 캠페인 영상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생각해보면 명품 브랜드의 VIP 고객 대다수가 아트에도 관심이 많다. 그러니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들이 미디어월을 차지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키아프는 코엑스 1층에서 프리즈는 3층에서 열린다. 1년 만의 거대 아트 전쟁터에서 ‘명작’을 찾기 위한 ‘큰 손’들의 발걸음과 열띤 취재 경쟁으로 전시관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코엑스에는 티파니와 같이 세계 정상급 브랜드의 광고가 쉴 새 없이 노출되는 중이다. [사진 이현상 기자]   아트페어와 손을 맞잡은 다양한 업계 선두주자들 코엑스 3층의 프리즈 서울엔 세계 정상급 갤러리들이 자리를 잡았다. 페이스∙하우저앤워스∙화이트큐브∙가고시안 등이 대표 갤러리다. 국제갤러리∙갤러리 현대∙PKM 갤러리 등 국내의 굵직한 갤러리도 부스를 세웠다. 고대 유물부터 20세기까지의 작품을 소개하는 특별 전시 섹션인 프리즈 마스터스, 아시아의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포커스 아시아도 놓쳐서는 안 될 전시 공간이다.   프리즈 서울에서는 놓쳐서는 볼거리가 또 있다. 바로 세계적인 브랜드의 부스 관람이 그것. 대부분 프리즈의 글로벌 공식 후원사이거나 프리즈 서울의 파트너로, 자신들이 선보이는 제품을 아트와 결합한 작품을 선보이거나 페어 성격에 맞춰 부스를 갤러리처럼 꾸며 놓았다.   브레게의 프리즈 서울 2023 부스 전경. [사진 이현상 기자] 지난해 이어 올해에도 프리즈 서울에 공식 파트너로 참여한 스위스 파인 워치 브랜드 브레게가 대표적이다. 브레게는 큐레이터 심소미와의 협업을 통해 ‘스트리밍 타임’이라는 주제로 부스를 꾸몄다. 브레게가 시계 브랜드인 만큼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시간에 대한 생각을 스트리밍에 빗대어 표현하려 한 것. 이에 심소미는 스트리밍 방식을 구현하기 위해 한국의 신진 아티스트인 안성석과 정희민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브레게 부스를 장식한 정희민 작가의 회화 작품. [사진 이현상 기자] 안성석 작가는 브레게 요청으로 스트리밍 타임에 대한 해석을 디지털 영상으로 선보였다. [사진 이현상 기자] 작가 정희민은 스크린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시간과 감각의 불일치를 묘사하는 4점의 회화를 부스에 내걸었다. 꽃이라는 매개를 작가의 시선에 따라 독창적으로 표현했다. 부스 벽면에는 감각적인 디지털 영상이 흘러나왔다. 또 다른 작가인 안성석의 작품이다. 디지털 작품 속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모습이 마치 모래시계 같다. 그는 작품 속에서 계속 변화하는 세상과 흐르는 시간의 불확실성을 탐구했다. 2인의 작품 이외에도 브레게는 최근 공개한 파일럿 워치 타입 XX를 비롯해 트래디션, 클래식 등 대표 컬렉션을 진열해 작은 아트 피스로서 시계의 매력을 함께 보여주었다. 샴페인 하우스 루이나 부스 전경. [사진 이현상 기자] 브레게 부스 옆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샴페인 하우스인 루이나의 부스가 있다. 샴페인 한 잔으로 목을 축이기도 하고, 전시관을 오가는 사람의 만남의 장으로 제격이다(단 샴페인은 사서 마셔야 한다). 루이나는 프리즈 참가를 기념해 에바 조스팽(Eva Jospin)이 작업한 설치 작품을 부스에 설치했다. 조스팽은 판지를 활용해 루이나 하우스가 위치한 프랑스 렝스 지역의 숲을 표현했다. 종이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세밀하다.  카르트블랑슈 2023의 초청 아티스트 에바 조스팽의 설치 작품. 판지를 이용해 만들었다. [사진 이현상 기자] 참고로 루이나는 프리즈와 아트 바젤를 포함해 전 세계 30개 이상의 국제 미술 박람회에서 예술가의 작품을 공개하는 카르트블랑슈(Carte Blanche) 프로젝트를 2008년부터 진행 중이다. 단어를 해석하면 백지 위임장, 즉 루이나는 이런 활동을 통해 재능 있는 아티스트가 자신의 재량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준다.   LG 전자는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올레드 TV로 생생하게 구현했다. [사진 이현상 기자] 프리즈 서울의 헤드라인 파트너로 참가하는 LG전자는 거장 김환기의 작품을 디지털로 변환한 영상을 올레드 TV를 통해 생생하게 구현했다. 명암과 검은색 표현이 탁월한 데다 시야각이 좋은 화면 덕에 작가가 표현한 우주 공간 속 별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반짝이는 듯했다. 부스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을 만했다.  LG 올레드 부스에서는 김환기 작가의 희귀작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사진 이현상 기자] 재단법인 환기재단과의 협업으로 이뤄진 만큼 김환기 작가의 여러 걸작을 감상할 수 있다. 부스 입구에 건 작품은 무려 40년 만에 대중에게 공개된 것이라고 관계자가 말했다.   전기차인 i5 차량에 인공지능 디지털 영상을 매핑한 BMW. [사진 이현상 기자] 앤디 워홀∙데이비드 호크니 등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차량에 래핑하는 아트 카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에도 큰 관심을 내비치는 BMW. 이들이 프리즈 서울에 꾸린 부스도 쉽사리 지나치기 힘들었다. 이들은 일렉트릭 AI 캔버스라는 작품을 공개했다. 순수 전기로 구동되는 BMW i5 차량을 캔버스로 활용, 현대 예술가인 정수정∙에스더 말랑구∙코헤이 나와∙에릭 N.맥∙구지윤∙빈우혁 등의 디지털 영상 작품을 쏘아 올렸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통해 만든 이미지를 i5 차량에 투사하는 데다 거울을 사용해 이미지를 증폭시켰다. 창의력을 발휘하는 도구로서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세계 유수의 작품을 경험하는 동시에 브랜드가 아트를 대하는 방법을 확인할 수 있는 프리즈 서울은 9일, 키아프 서울은 10일 폐막한다. 관련기사 [더 하이엔드] 앨범 내듯 미디어 작품 내고 싶어...작가 김웅현의 대단한 상상 [더 하이엔드] 도도새, 세르펜티 만났다...불가리와 협업 가방 만든 한국 작가 김선우 美·홍콩이 먼저 진가 알아챘다…젤리맨 신나게 노는 팝초현실주의 [더 하이엔드] [더 하이엔드] “자꾸 오징어 그리는 이유는요...” 작가 남진우의 아름답고 끔찍한 우화 [더 하이엔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담는다...사진가 박형근의 세계   이현상 기자 lee.hyunsang2@joongang.co.kr

    2023.09.07 00:03

  • [더 하이엔드] 앨범 내듯 미디어 작품 내고 싶어...작가 김웅현의 대단한 상상

    [더 하이엔드] 앨범 내듯 미디어 작품 내고 싶어...작가 김웅현의 대단한 상상

    1998년 북한으로 간 소 떼는 어떻게 됐을까. 금 모으기 운동 때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미래에 인간의 신체가 퇴화한다면. 시뮬레이션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에 사람들이 더는 상상하지 않는다면.   작가 김웅현의 작품 주제는 뜬금없고 엉뚱하다. 다만 가만히 살펴보면 옴니버스 영화처럼 작품마다 어떤 부분은 때로는 촘촘하게,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 멜로부터 액션·공포·SF까지 장르도 다양하고 전체를 아우르는 ‘큰 주제’가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작품들 사이 공통분모는 미디어와 게임 세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점. 그리고 동시대인들의 ‘보급형 정체성’에 대해 연구한다는 점이다.주로 영상·퍼포먼스·설치 작업을 한는 김 작가를 지난달 24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김웅현 작가를 만나 인터뷰했다. 김현동 기자    ━  우리 시대의 ‘보편성’은 무엇인가   1984년생인 김 작가는 미술을 시작하면서 나는 누구일까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는 비슷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1980년대 생 또래 집단에 대한 궁금증으로 번졌다. 자연스레 한 세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역사적 사실을 떠올렸다. IMF 시절 금 모으기 운동이나, 한 시절을 풍미했던 ‘스타크래프트’ 게임처럼.     작가는 미디어를 통해 보도된 사회적 이슈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게임이나 온라인 등 가상현실 요소를 조합한 뒤, 허구의 설정을 가미한다. 같은 세대가 공유하는 이미지 정보를 중심으로, 대중매체와 게임·밈·역사·패션 등을 섞는다. 이후 메모 같은 짧은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구체적 이미지로 구현한다.     김웅현, '헬보바인과 포니' 퍼포먼스 중 일부, 2016 예를 들어 대표 작품 ‘헬보바인과 포니(2016)’는 1998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1001마리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역사적 사건과, 미국 게임제작사 블리자드의 게임 ‘디아블로’ 속 소 캐릭터를 결합한 작품이다. 현실에서 소는 온순하게 남북 평화를 상징하지만, 게임에 등장하는 소는 커다란 창을 들고 주인공을 공격한다. 작가는 북한에 갔던 소 가운데 한 마리가 다시 남한으로 돌아와, 작가에 의해 도축된다는 상상을 영상과 설치, 퍼포먼스로 표현했다.     특히 실리콘으로 소 모형을 만들어 실제 도축하는 것처럼 살점을 떼어 내 관객들에게 판매했던 퍼포먼스는 김 작가를 대중에게 알렸던 ‘신박한’ 시도였다. 현장에서 소를 썰어 조각당 1만원에 팔았고, 240점이 완판됐다.     미디어·게임에서 출발한 작품들이 많다. 회화를 전공했지만 어떤 작품을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들여다 봐야 하는데, 일단 관찰한 게 나의 하루 24시간이었다. 일기보다 더 자세히 적어봤는데, 하루 중 18시간을 인터넷에 접속해 있더라. 놀러 가도 핸드폰 지도를 보고 찾고, 영화 예매도 핸드폰으로 하니까. 결국 내가 활동하는 환경이 ‘웹(web)’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림을 그려도 웹에 그리는 게 맞겠다 싶었다. 이후부터 현실과 웹을 비교해가면서 탐구하는 방법론이 생겼다.     ‘금 모으기’ ‘소떼 방북’ 등 역사적 사실을 끌고 왔는데. 또래 집단의 정체성이 궁금했다. 우리 세대가 윗세대와 단절이 일어난 첫 세대가 아닌가 생각했고, 1990년대 역사적 사실 중 ‘금 모으기 운동’이 이런 단절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들이 금 모으기 운동할 때, 우리는 ‘스타크래프트’에 몰두해 있었으니까. (웃음)   김웅현 작가의 '쇼미더머니' 영상 설치 작품, 2016.   현실과 가상 세계의 단절 같은 건가.   1990년대에 현실과 다른 온라인 세상이 펼쳐지면서, 우리 또래만 아는, 혹은 또래 중에서도 어떤 온라인 문화에 접한 세대만 아는 이야기들과 모두가 아는 이야기들을 병치해두었을 때 단절이 명확히 보였다.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다른 공간에 있다는 느낌이다.      ━  관객은 나의 힘   김 작가의 ‘쇼미더머니(2016)’는 금 모으기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갑자기 2016년 대한민국에 두 번째 금융위기가 찾아오고, 기득권층은 모두 해외로 도피했으며, 가난한 청년층만이 남겨졌다는 황당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스타크래프트 제작사 블리자드가 개입, 나라 빚을 갚아주는 대신 ‘SHOW ME THE MONEY’라는 문구를 치는 게임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건다. 관람객들은 게임 부스에서 실제로 게임에 도전하지만, 계속해서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짜여있는 구조 앞에서 탄식한다.   '쇼미더머니(2016)' 퍼포먼스 전경.   관객 참여형 작업이 많다.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객이다. 관객이 없다면 산속에서 혼자 붓글씨 쓰는 것과 뭐가 다를까. (웃음) 회화가 감상의 대상이라면, 미디어 작업은 경험의 대상이다. 관객들이 와서 내 이야기를 즐기고 경험하고, 내가 심어 놓은 각종 덫에 걸렸으면 좋겠다.     어떤 반응이 가장 기분 좋나. 어떤 반응이든 좋다. 사실 작업하는 게 많이 고통스럽다. (웃음) 그런데도 계속 하는 이유는 작품을 매개로 관객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내 생각을 유추하거나 공감하거나 하는 다양한 반응들이 작업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김웅현, Hindenburg lounge, HD video, 3D animation, footage, color, sound, 15min, 2022    ━  ‘소유할 수 없는 예술’을 고민하다   김웅현, 밤의 조우 Night Meeting, HD video, sound, color, 30min, 2019 김 작가는 미디어 작가로서 영상이나 설치, 퍼포먼스 같은 형태 없는 예술의 유통에 관심이 많다.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보다 새롭게 경험하게 할 순 없을지, 혹은 소유하게 만들 수 없을 지를 고민한다. 지난 2016년부터 5년 간 비물질 예술 행사 ‘퍼폼’을 운영하기도 했다. 주로 김 작가와 같은 미디어 작가들이 참여하는 단체 기획전이다. 이번 키아프2023에 출품하는 작품도 ‘영상 작업물의 소유’에 관해 고민한 결과물이다.     키아프 서울에 출품하는 작품은 ‘정물화’다. 16세기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영감을 받은 움직이는 정물화다. 바니타스는 해골이나 유리잔, 깃털 등 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그림인데, 그 헛헛함이 지금 시대에도 통한다고 생각했다. 온갖 미디어에 둘러싸인 현대의 바니타스를 상상해 신체를 확장하거나 퇴화시키는 기구들을 모아 3D 영상 작업을 했다.     ‘소유’를 염두에 뒀다고.   TV 자체를 액자 형태로 만들어서, 이를 판매하는 형태다. 미디어 영상 작품도 듣고 싶을 때 꺼내 듣는 음악 앨범처럼 꺼내 볼 수 있는 형태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앞으로 비디오 작가들도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델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수처럼 김웅현 1집, 2집을 내 보면 어떨까.   김웅현 작가가 2023 키아프 하이라이트에 출품하는 작품을 들고 있다. 상암 스튜디오. 김현동 기자   왜 소장이 중요한가, 감상만으로는 안 되나. 내 작업을 꾸준히 따라오는 관객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시간이나 돈을 소비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그 작품이나 작가에 깊숙이 몰입하기 어렵지 않나. 설치 작품을 만들 때도 가능하면 관객들이 경험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드는 이유다. 영상 작업도 회화처럼, 앨범의 형태로 소장 가치가 있게 만들면 ‘덕질’ 하듯이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예전 작품을 찾아보고 하는 적극적 관객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 김웅현 작가는... 「 1984년생.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회화 전공, 동 대학원 졸업. 2011년부터 지난해 갤러리2에서 연 ‘구겨진 인간(Crumpled Man)’까지 다수의 개인전을 열고 기획전에 참여했다. 제2회 일현트래블그랜트(일현미술관·2012)를 수상하고, 중앙미술대전(중앙일보·2012) 작가로 선정됐다.  」   ■  「 다시 한번 한국이 예술로 들썩이고 있습니다. 오는 9월 6~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키아프 서울·프리즈 서울이라는 걸출한 두 아트페어 덕분입니다. 두 페어의 개최 기간에 맞춰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아트 이벤트도 참 많습니다. 예술에 대한 관심이 폭증한 이때, 한국의 작가들에 대해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중앙일보가 출품 준비에 한창인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키아프가 올해 처음으로 선정 발표한 '키아프 하이라이트 작가' 중 시간적·지리적으로 인터뷰가 가능했던 한국 국적의 작가들입니다. 직접 작가들을 만나보니 왜 이들이 스스로를 "노동집약형"이라고 말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창의성을 오랜 시간을 들여 묵묵히 작업해 나가는 작가 10인을 매일 1명씩 '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다' 인터뷰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 관련기사 무심히 툭 서있는 통나무, 이게 작품이다…조각가 나점수 시심 [더 하이엔드] 美·홍콩이 먼저 진가 알아챘다…젤리맨 신나게 노는 팝초현실주의 [더 하이엔드] [더 하이엔드] “자꾸 오징어 그리는 이유는요...” 작가 남진우의 아름답고 끔찍한 우화 [더 하이엔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담는다...사진가 박형근의 세계 [더 하이엔드] 이게 점이라고? 작가 이만나가 점 하나 하나로 그려낸 '더 이상 거기에 없는 풍경' [더 하이엔드] ‘파워포인트’ 미디어 아트...이정민 작가의 아날로그적 선긋기 [더 하이엔드] 콩·팥·벌레까지...모욕당한 것들을 그리는 작가, 정정엽 [더 하이엔드] 한국 아티스트 정직성이 포착한 '일상적 숭고의 순간'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2023.09.06 18:52

  • 무심히 툭 서있는 통나무, 이게 작품이다…조각가 나점수 시심 [더 하이엔드]

    무심히 툭 서있는 통나무, 이게 작품이다…조각가 나점수 시심 [더 하이엔드]

    하얀 갤러리를 배경으로 배를 가른 나무판들이 바닥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통나무 하나가 무심히 툭 서 있을 뿐이다. 깎아 놓은 그대로의 나무들은 마치 조미료 없는 음식 같다. 의미를 곱씹을 것도 없이 순하고 심심한데, 자꾸 가만히 응시하게 만든다.     지난 5월 성수동 더 페이지 갤러리에서 열린 나점수 개인전 '함처, 머금고 머무르다' 전시 전경. [사진 더 페이지 갤러리]   지난 5월 서울 성수동 ‘더 페이지 갤러리’에서 열린 조각가 나점수의 개인전 ‘함처(含處), 머금고 머무르다’의 풍경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조각가 나점수(54)는 당혹스러울 만큼 비어있는, 그래서 낯설기도 한 추상 조각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작가의 조각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기보다 자연의 상태에 집중한다. 흔히 말하는 형태를 만드는 조각이 아니라, 물질이 어떤 상태로 전환된 모습을 슬쩍 놓아두고, 제시한다. 혹은 가끔 일으켜 세우는 정도다.     30여 년 조각 작업을 해온 나 작가는 “어렸을 때는 펼쳐진 세상을 실제 그대로 옮기고 싶은 욕망이 컸지만 하다 보니 고스란히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의지를 갖추고 형태를 만들기보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부분이나 전체를 유심히 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나점수 작가가 지난달 29일 서울 성동구 더 페이지 갤러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작가 뒤로 보이는 작품은 키아프 2023 출품작 '무명(無名, 나무 채색,90x27x10 cm, 2020)'. 김현동 기자    ━  시심(詩心) 찾기   작가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작업실은 경기도 양주의 한 유원지 인근이다. 모두 숲으로 둘러싸여 계절마다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나 작가에 따르면 낮에는 남루해도, 빛이 황금색으로 바뀌는 석양쯤에는 시심의 원천이 샘솟는 곳이다. 작업장 옆 큰 바위가 있어 종종 찾아가 옆의 부스러진 자갈과 구르는 먼지를 감상한다는 작가는 같은 지구에 살면서도 ‘지구를 낯설게 보는’ 사람이다.     낯설게 보다 보니 자연은 시시각각 변화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숲이지만, 숲 안에서도 새로 태어나는 나무가 있고, 썩어가는 나무가 있었다. 갓 태어난 새싹들과 흩어져없어져 버리는 낙엽들의 순환 과정을 몇 년씩 지켜봤다. 그리고 어느 시점, 서로 다른 나무들의 시간을 잠깐 붙들어 전시장에 부려 놓는다.   나점수, 무명(無名), 나무(채색), 51h x 16.5w x 26.5d, 2018~2023   작품들이 철학적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조용히 살펴보려고 한다. 자연을 어떻게 시적인 감각으로 전환해 바라볼 수 있을지, 시심을 찾다 보니 처음에는 그냥 들여다본다. 뭔가 움직이면 거기서부터 사유를 시작한다.      ━  수천 번의 톱질과 수만 번의 끌질   나점수 작가는 ‘구도의 작가’로 불린다. 단순해 보이는 작품도 들여다보면 끝 모를 섬세함이 깃들어있다. 접합 부위가 보이지 않는 작품들은 통나무에서 얇은 판재가 될 때까지 깎아 들어간 것이다. 마치 ‘도’를 구하는 사람처럼, 나무를 껴안고 씨름한 결과다.     작업 과정은 어떠한가. 이제 됐다고 하는 ‘완성’의 지점이 있는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완성되어 있는 물질이 있다. 다만 가지고 오면, 있던 장소와 연관 돼서 발생했던 시심이 작동하기 어려워진다. 이때 손을 대면서 내면에 떠올랐던 어떤 정서적 상태가 부각되는 시점의 느낌이 나오면 멈춘다.     나 작가에게 나무라는 물질은 순수하고 위선이 없는 친구다. 습도가 모자라면 이내 갈라져 버리고, 손을 대면 대는 형상대로 변화한다. 자연으로부터 받은 정서와 감성을 인식한 뒤, 손을 움직여 나무를 조각해 그 특정한 정서의 형상을 찾아가는 것이 작가의 방식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목적성이 아니라 정신이 드러났으면 한다”고 했다.   지난 5월 성수동 더 페이지 갤러리에서 열린 나점수 개인전 '함처, 머금고 머무르다' 전시 전경. [사진 더 페이지 갤러리] 나점수 작가가 29일 서울 성동구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김현동 기자   평소 작업 과정을 ‘수행’에 빗대기도 하는데.   작가들의 수행이 유행처럼 되어버린 것 같아 불편하다. 작업하면서 고민이 많은 사람일 뿐이지, 실제로 수행하고 참선에 이른 분들과 비교할 수 없다. 아마도 나무를 조각하기 위해 끌이나 전기톱 같은 위험한 도구들을 쓰고 노동에 가깝게 작업하기 때문에 그런 말들을 하는 것 같다.      ━  관객 몫이 절반,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봐야   자연을 대면하며 느낀 정서를 나무에 담아 미술관에 전시해두었지만, 같은 나무 조각을 보고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를 것이다. 작품의 이름도 ‘무명’ ‘식물적 사유’ 등 의미를 지칭하지 않았다. 여백이 많은 작품은 관객의 자의적 해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치 시 같다.     관객들이 뭘 봐야 할지 고민할 것 같다. 허공에 있는 구름을 외로운 심정으로 보면 외로워 보이고, 기쁠 때는 마음껏 깨끗해 보이는 게 아닐까.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것도 시심에 따라 달라 보일 것이다. 오히려 관객에게 어떻게 봤는지 역으로 물어본다. 형태가 지닌 정서적 뉘앙스를 살펴보는 경험 정도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점수, 무명(無名), 나무(채색), 174h x 18w x 7.2d, 2018   조각은 덜어내는 것 화가가 꿈이었던 나 작가는 고교 시절부터 조각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조각은 만들어 놓고 보면 앞면과 측면, 뒷면의 형태가 모두 다르다는 매력이 있었다. 과거의 조각은 대상과 정확히 일치하게 하는 기예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나 작가는 “지금 하는 조각은 묘사라기보다 덜어냄에 가깝다”며 “떠오른 감정에 유사하게 맞아떨어질 때 멈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각이라는 말을 여전히 쓰지만, 덜어내는 것과 다가가는 것, 멈추는 것을 생각하는 게 내 일”이라고 말했다.     키아프에는 어떤 작품이 출품되나 ‘무명’이라는 작품이다. 정해지지 않은 상태, 막연한 상태의 정서를 구현하고자 했다. 어떤 형태를 만들어야겠다가 아니라, 방치되어 있던 것들을 가지고 와서 붙여보면서 형상을 구성했다. 그러다 보니 거칠고 들판 같은 느낌이 났고, 심리적 상태로 드러난다 싶어 걸어두었다.   나점수, 무명(無名), 나무(채색), 90x27x10 cm, 2020   벽에 거는 작품이다.   벽은 나에게 생존의 공간이다. 우리나라에서 미술품을 놓을 공간이라고 한다면 주로 벽이니까. 아파트 생활을 하니 공간이 한정되어 있고 입체적인 조각을 두기 쉽지 않다. 조각만이 갖는 장점이 있는데, 보여주고 싶어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폭이 넓지 않은 것 같다.     조각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조각은 ‘압축된 폴더’ 같다. 회화처럼 그림 안에 공간이 있고, 서사를 풀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어서 의미를 풀어가기가 쉽지 않다. 의미를 풀기보다, 작품들이 머금은 에너지와 함께 호흡했으면 한다.  나점수 작가가 지난달 29일 서울 성동구 더 페이지 갤러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김현동 기자     ■ 작가 나점수는... 「 1969년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과와 동대학교 대학원 조소과 졸업. 14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기획전에 참가했다. 2016년 김종영 미술관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2003년 송은문화재단 지원상(개인전), 1998년 청년미술제 본상, 1997년 뉴프론티어 대상 등을 수상했다. 작가의 작품은 장욱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포항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   ■  「 다시 한번 한국이 예술로 들썩이고 있습니다. 오는 9월 6~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키아프 서울·프리즈 서울이라는 걸출한 두 아트페어 덕분입니다. 두 페어의 개최 기간에 맞춰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아트 이벤트도 참 많습니다. 예술에 대한 관심이 폭증한 이때, 한국의 작가들에 대해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중앙일보가 출품 준비에 한창인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키아프가 올해 처음으로 선정 발표한 '키아프 하이라이트 작가' 중 시간적·지리적으로 인터뷰가 가능했던 한국 국적의 작가들입니다. 직접 작가들을 만나보니 왜 이들이 스스로를 "노동집약형"이라고 말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창의성을 오랜 시간을 들여 묵묵히 작업해 나가는 작가 10인을 매일 1명씩 '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다' 인터뷰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 관련기사 美·홍콩이 먼저 진가 알아챘다…젤리맨 신나게 노는 팝초현실주의 [더 하이엔드] [더 하이엔드] “자꾸 오징어 그리는 이유는요...” 작가 남진우의 아름답고 끔찍한 우화 [더 하이엔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담는다...사진가 박형근의 세계 [더 하이엔드] 이게 점이라고? 작가 이만나가 점 하나 하나로 그려낸 '더 이상 거기에 없는 풍경' [더 하이엔드] ‘파워포인트’ 미디어 아트...이정민 작가의 아날로그적 선긋기 [더 하이엔드] 콩·팥·벌레까지...모욕당한 것들을 그리는 작가, 정정엽 [더 하이엔드] 한국 아티스트 정직성이 포착한 '일상적 숭고의 순간'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2023.09.05 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