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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6~7분이면 충전 OK”…중국, 전기차 이어 ‘수소차 굴기’ 박차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6~7분만 충전하면 대략 640㎞도 무리 없이 주행할 수 있다.” 지난달 방문한 상하이 자딩(嘉定)구의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 제조사 제칭커지(捷氫科技·SHPT)에서 만난 관계자는 수소차의 강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기차 등 다른 신에너지차에 비해 충전 속도와 주행 거리 등 효율 면에서 뛰어나다는 주장이다. 그는 대형 디젤 상용차를 수소차가 대체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 「 상하이·베이징 등에 시범구 지정 “수소차 관용 정책 필요” 목소리 보급 정체, 과다 경쟁 등은 위기 “잠재력 큰 만큼 한·중 협력 기대” 」 베이징 다싱 국제 수소시범구의 수소충전소. 중국 내 수소충전소는 428기로 세계 1위다. 신경진 기자 지난달과 이달 상하이와 베이징의 수소산업 시범구를 각각 방문했다. 현지 업체 관계자들은 수소차와 관련 산업의 확대를 확신했다. 상하이의 수소 장비 제조사인 리파이어(REFIRE) 직원은 “2017년부터 상하이에 7.5t 수소 트럭 500대, 광둥 포산(佛山)시에는 수소 버스 455대 등을 납품했다. 실적이 계속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파리기후협정으로 탄소 중립을 피할 수 없는 만큼 이제 수소차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상하이는 수소전지를 전기차 충전시스템으로도 활용한다. 푸둥의 한 쇼핑몰 주차장에는 리파이어와 충야파워테크놀로지가 협업한 급속충전 시설이 가동 중이었다. “별도 전력망이 없어도 10㎡ 자투리땅을 쾌속 충전소로 바꿀 수 있다”고 현지 직원은 설명했다. 지난 20일 찾아간 베이징 다싱(大興)의 국제수소시범구엔 베이징에서 창장삼각주까지 1300㎞에 이르는 수소 트럭 노선을 개척한 링뉴칭넝(羚牛氫能), 상장사 시노하이텍 등 수소 관련 기업 100여 곳과 충전소가 성업 중이었다. 리창 “수소에너지 발전 가속” 공식화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중국은 수소차 분야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중국의 ‘신에너지차 굴기(崛起)’에는 기술 관료의 역할이 컸다. 내연기관 전문가 출신으로 2010~2020년 공업정보화부 부장을 역임하면서 중국의 전기차 정책을 진두지휘한 먀오웨이(苗圩)의 저서 『차선 바꾸기 경주(換道賽車)』에는 추진 과정이 자세히 담겨있다. 먀오 전 부장은 “‘길’이 차를 기다릴지언정 차가 ‘길’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寧可‘路’等車 不讓車等‘路’)”라며 충전 인프라 강화를 강조했다. 중국이 내연기관차를 건너뛰고 신에너지차 강국이 된 비결이다. 수소차 분야에도 ‘길이 차를 기다리는’ 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소 충전소(총 428기)를 보유하고 있다. 상하이 자딩의 수소기업 제칭커지(SHPT) 전시실. 신경진 기자 중국의 본격적인 수소차 질주는 2020년 9월에 시작됐다. 재정부·공업정보화부·과기부·발개위·에너지국 다섯개 부처가 ‘연료전지차 시범응용에 관한 통지’를 발표하면서 베이징·상하이·광둥 포산시·허난성·허베이성의 5대 도시 클러스터를 수소 시범구로 지정했다. 클러스터마다 파격적 지원 정책을 도입하는 한편, 보급 확산을 위해 수소 ㎏당 가격을 35위안(6600원) 미만으로 유지하도록 규정했다. 먀오 전 부장은 중국의 글로벌 수소차 시장 석권을 자신했다. “중국 제품이 한걸음에 하늘에 오를 수는 없지만, 사용 장려 정책을 수립하고, 입찰과 구매에서 과거 실적에 대해 불합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며, 사용 중 발생하는 문제는 관대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시장이 성숙하고 자국산의 경쟁력이 오를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수소 산업 지원은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3월 리창(李強) 총리는 정부 업무보고에서 “첨단 신흥 수소에너지, 신소재, 혁신 신약 산업의 발전을 가속하겠다”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수소 분야가 국가 역점 사업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지난달 11일 찾아간 상하이 푸둥 쇼핑몰의 수소전지를 활용한 급속 충전 시설. 신경진 기자 물론 현재 업계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수소차의 높은 가격 때문에 보급은 지체되고, 관련 기업들은 미수금이 늘면서 ‘자금 보릿고개’에 직면한 상황이다. 지난 15일 중국 경제지 ‘제일재경’은 전환기를 맞은 수소차 업계의 현실을 전하기도 했다. 중국자동차제조협회 집계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이 생산한 수소연료전지 차량은 5631대, 판매 차량(전년도 재고 포함)은 5791대에 그쳤다. 전년 대비 49.4% 늘긴 했지만, 96개 기업의 합산이란 점을 고려하면 아직 ‘규모의 경제’와는 동떨어져 있음을 짐작게 한다. 실제 100대 이상을 판매한 기업은 15곳에 불과했다. 2024년 상반기 판매량은 2490대로 집계됐다. 김영희 디자이너 중복·과잉 투자 우려도 나온다. 중국의 31개 지방정부 중 27곳이 수소산업 계획을 세웠다. 7월 기준 등록된 수소 관련 기업 총수는 4000개사가 넘는다. 미수금이 쌓이면서 선수금 60% 없이는 계약부터 꺼리는 분위기다. 김영희 디자이너 업계는 보조금 확대를 요구한다. 49t 수소 트럭의 제조가는 120만 위안(2억2500만원)으로, 현재 보조금 37만 위안(6900만원)을 고려해도 판매가 50~60만 위안에 불과한 디젤 트럭보다 20~30만 위안이 비싸다. 제일재경은 49t 수소트럭의 판매가를 80만 위안, 수소 충전가격을 25위안/㎏으로 낮출 것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한·중 간 협력 아이템 가능성 김영희 디자이너 수소 산업은 한국과 중국 양국이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협력 아이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왕쥐(王菊) 국제수소연료전지협회(IHFCA) 비서장은 “한·중은 수소산업에서 협력 기회가 매우 많다. 잠재력도 큰 만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싱에서 만난 류화둥 수소에너지교류센터 주임은 “지금까지 보급된 수소 차량 규모는 중국이 1만8487대, 한국은 3만4000여 대로 수소산업은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미 중국 수소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2021년 1월 광저우시에 현대차 수소연료전지시스템 법인을 설립하고 20만㎡ 부지의 연료전지 공장을 준공했다. ‘에이치투(HTWO)’라는 수소 밸류 체인 브랜드도 구축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향후 시범 도시군 제도의 변화와 연료전지시스템 원가의 절감이 이뤄지면 본격적인 경쟁을 거쳐 살아남은 몇 개 업체가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면서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중국 수소차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이강표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국 수소 시장의 미래 잠재력을 고려할 때 보조금과 시장진입 등에서 현대차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한국 정부의 지속적인 관여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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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혁명 성지', 시진핑 탈빈곤 시범구로…징강산 '홍색경제' 현장[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지난달 23일 중국 장시(江西)성 징강산(井岡山)시의 중심 쇼핑가인 톈제(天街). 황금빛 마오쩌둥(毛澤東) 좌상이 눈에 띄는 매장에 들어섰다. 1.83m 마오 동상에 무려 14만2080위안(약 2700만원)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사장인 궈구이린(郭桂麟)은 “등신상은 기업체 대표들이 선호한다”라며 “코로나19 이전만큼 손님이 많지 않지만 마오 흉상의 인기는 여전하다”라고 전했다. 지난달 23일 찾아간 중국 장시성 징강산시 중심 교차로에 세워진 대형 마오쩌둥 동상 앞으로 “작은 불씨가 초원을 불태운다(星星之火 可以燎原)” 구호가 조명으로 빛나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지난달 23일 중국 장시(江西)성 징강산(井岡山)시의 중심 쇼핑가인 톈제(天街)의 마오쩌둥(毛澤東) 동상 전문 매장에 각종 크기와 모양의 동상이 전시되어 있다. 신경진 특파원 중국 외교부의 초청으로 뉴욕타임스 등 외신 특파원과 함께 찾은 징강산은 마오와 홍색(紅色)으로 덮여 있었다. 1927년 1차 국공합작 결렬 후 중국공산당이 주도했던 폭동에 실패하자 마오는 징강산에서 홍군을 조직해 게릴라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시 중심의 대형 마오쩌둥 동상 앞에는 '작은 불씨가 초원을 불태운다(星星之火 可以燎原)'란 구호가 선명했다. 남산공원 정상에 세워진 붉은 횃불 조형물은 이곳이 중국공산당의 '혁명 성지'임을 실감케 했다. 지난달 24일 징강산혁명박물관에 마오쩌둥의 “작은 불씨가 초원을 불태운다” 저서가 전시 중이다. “마오는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기본 사상을 제시해, 중국 혁명을 승리로 이끈 ‘징강산의 길’을 보여줬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신경진 특파원 지난 한 해 189만 명이 찾았다는 징강산혁명박물관에서 마오의 저서『작은 불씨가 초원을 불태운다 』를 볼 수 있었다. “마오는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기본 사상을 제시해, 중국 혁명을 승리로 이끈 ‘징강산의 길’을 보여줬다”라는 설명이 보였다.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및 북반구 저위도의 개발도상국)에 주력하는 최근 중국 외교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현지에서 만난 20대 현지 청년에게 마오에 대해 묻자 “영원한 스승”이라고 답했다. “교과서에서 마오의 어록과 시구를 배우며 자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3일 찾아간 징강산의 대표적인 빈곤마을 선산(神山)촌의 펑둥롄(彭冬連, 사진 앞) 촌민의 거실에 마오쩌둥의 초상화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다. 신경진 특파원 마오는 곳곳에 살아있었다. 대표적인 빈곤마을이던 선산(神山)촌의 80대 펑둥롄(彭冬連) 촌민의 거실에는 마오 초상화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초상화와 함께 걸려 있었다. 마당에는 '2016년 2월 2일 시 총서기가 여기에서 찹쌀떡을 쳤다'고 새겨진 비석이 사진과 함께 세워져 있었다. 펑전양(彭展陽) 촌 당서기는 “지난해 선산촌 관광객이 20만명을 넘어섰다”며 하루 500명 규모라고 했다. 펑 서기도 2016년 시 주석의 방문 이후 고향이 홍색 관광지로 바뀌면서 소득이 늘자 도시에서 농민공 생활을 접고 귀향한 케이스다. 마오의 징강산이 혁명의 요람이었다면 시 주석은 징강산을 빈곤 탈출의 시범구로 바꾸고 있다. 지난달 23일 징강산의 대표적인 빈곤마을이던 선산(神山)촌의 펑둥롄(彭冬連) 촌민 마당에 “2016년 2월 2일 시 총서기가 여기에서 찹쌀떡을 쳤다(習總書記在這打糍粑)”는 비석과 당시 사진 안내가 놓여 있다. 신경진 특파원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 탈빈곤 7년 농민 월 소득 25만원 빈곤과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선산촌 마을회관 알림판에는 “환빈(還貧) 방지 감시 대상” 포스터가 붙어 있다. 주택·교육·의료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은 시 향촌진흥국에 신고하라는 안내다. 2023년 연평균 소득 7800위안(148만원)을 빈곤 기준으로 규정했다. 마을 집집마다 빈곤탈출, 불안정, 가난위험, 돌발성 빈곤 가구 네 부류로 구분한 표지가 붙어 있었다. 빈곤호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다. 후난(湖南)성과 경계한 징강산시는 서울시 2.4배 면적에 인구 19만 명인 최말단 향급(鄕級) 행정구역이다. 지난 10년간 시 정부업무보고를 통해 확인한 소득 수준은 초라했다. 시 주석이 집권한 2012년 농민 1인당 연 소득은 6163위안(117만원), 도시 주민은 1만9462위안(369만원)에 불과했다. 농민 월 소득은 10만원에도 못 미쳤다. 가장 최신 자료인 2022년 연간 도시민 4만4509위안, 농민 1만5974위안으로 2.3~2.6배 늘었다. 그래도 월 소득은 도시 70만원, 농민 25만원 수준이다. 도농 격차는 2.8배 수준이다. 지난달 24일 랴오둥성(廖東生) 징강산시 시장이 외신 특파원단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지난 1월 31일 개최된 인민대표대회(시의회)에서 랴오둥성(廖東生) 징강산시 시장은 2023년 성장률을 4.5%로 발표했다. 목표치 8.5% 달성에 실패했다. 중국 전국 성장률 5.2%에도 못 미쳤다. 올해 성장률 목표는 6%. 관광객 수를 10% 이상 늘리고, 홍색 교육 훈련생 목표 48만명을 제시했다. 24일 만난 랴오 시장은 “해마다 징강산을 찾는 국장급 이상 고위직 간부만 2000명 선”이라며 “혁명의 초심을 새기는 홍색 교육 훈련과 천혜의 녹색 환경을 결합한 홍녹(紅綠) 융합이 발전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아프리카 잠비아 대통령이 징강산을 방문했다며 “홍색 관광이 전체 산업의 70%를 차지한다”고 했다. 각종 마오 굿즈 매출과 홍색 관광 소득을 앞세운 ‘레드노믹스(홍색경제)’ 전략인 셈이다. 중국 장시성 징강산시 진입로에 세워진 대형 조형물. 붉은 깃발을 형상화 했다. 신경진 특파원 ━ ‘징강산 모델’ 공동부유로 진화 이론화 작업이 한창인 ‘징강산 모델’은 시 주석의 소득 분배 전략인 공동부유로 연결된다. 장진(張瑾) 장시 재경대학 교수는 논문에서 징강산 모델을 “홍색 학습, 농촌 펜션, 홍색 명승지를 결합한 홍색 관광으로 향촌진흥을 돕는 모델”이라고 정의했다. “옛 혁명 근거지와 같은 저개발 지역에서 향촌진흥을 추진하고 공동부유를 실현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결론지었다. 지난 세기 마오쩌둥을 시 주석이 공동부유로 계승한다는 취지다. 징강산은 마오의 첫 번째 혁명 근거지였다. 1927년 8월 1일 중공은 장시성 난창(南昌)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키며 독자적인 군사투쟁을 시작했다. 오는 2027년 100주년을 맞는 인민해방군의 창건기념일이 난창봉기에서 유래했다. 중국 장시성 징강산혁명박물관에 전시 중인 마오쩌둥의 16자 유격전 전술. “적이 진격하면 도망친다. 적이 멈추면 교란한다. 적이 피로하면 공격한다. 적이 퇴각하면 추격한다(敵進我退 敵駐我擾 敵疲我打 敵退我追)”는 내용이다. 신경진 특파원 마오는 1934년 10월 대장정을 시작할 때까지 징강산 일대에서 지주의 토지를 몰수해 농민에게 나눠주는 ‘토지혁명’을 전개했다. 이한페이(易晗菲) 장시간부학원 강사는 “마오쩌둥의 신화가 시작된 징강산이 지금은 중공 간부 교육의 필수 순례지가 됐다”고 말했다. 빈곤탈출에서 공동부유로 진화 중인 징강산 모델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윤종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징강산 주민 소득이 지난 10년간 많이 증가했지만, 도농 격차는 여전하고, 언제라도 다시 빈곤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며 “징강산은 그나마 마오의 혁명 유산이라는 ‘행운’으로 관광객과 당 간부가 찾지만 대부분의 낙후 지역에서 마오와 홍색을 내세운 징강산 모델은 한계를 갖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징강산=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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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투자자 변신한 中지방정부…AI 정조준한 '허페이 모델'[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지난달 28일 중국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시 스피치밸리(聲谷)에 자리한 음성인식 인공지능(AI) 대표 기업 아이플라이텍(iFlytek)을 방문했다. AI 체험관의 안내원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귀여운 대형 트럭을 그려주세요”라고 말하자 생성형 AI 인지모델 서비스 스파크(Spark)는 날개 달린 트럭을 그려냈다. 지난해 5월 미국 오픈 AI사의 챗 GPT와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스파크는 텍스트와 그림 생성, 수학과 논리적 추론, 컴퓨터 코딩 등 다양한 기능을 지녔다. 지난달 28일 찾아간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폭스바겐 안후이 전기차 생산 라인의 기계가 전기차를 조립하고 있다. 허페이=신경진 특파원 중국 최대 음성인식 AI 기업 아이플라이텍이 서비스 중인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스파크가 그린 하늘을 나는 트럭. 허페이=신경진 특파원 아이플라이텍은 지난 1999년 중국의 '칼텍'(Caltech)으로 불리는 허페이 중국과학기술대학(USTC)의 박사생이었던 류칭펑(劉慶峰·51)이 교내 벤처로 창업한 곳이다. 1층 전시실엔 사람 귀에 안 들리는 초음파를 이용해 석유화학단지의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장치, 네 발로 움직이는 음성탐지 로봇 등 다양한 AI 제품이 있었다. 중국 최대 음성인식 AI 기업 아이플라이텍이 개발한 AI 교통관제 서비스. 시내 교차로 신호를 AI로 통제 전후의 차량 정체 시간을 그래프로 표시했다. 허페이=신경진 특파원 AI 전자칠판의 경우 중국 5만여 개 학교, 1억3000만명의 학생이 이용 중이라고 아이플라이텍 측은 소개했다. AI를 통해 허페이 전역의 교차로 신호를 통제해 차량 정체의 완화를 돕는 교통 슈퍼 브레인 서비스도 소개됐다. 지난달 28일 찾아간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폭스바겐 안후이 전기차 생산 공장 관계자가 “중국에서 중국을 위해”라는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허페이=신경진 특파원 허페이엔 전기차 공장도 있다. 지난해 전기차 생산량은 74만6000대로, 독일 폭스바겐도 진출해 있다. 이날 찾아간 폭스바겐의 이노베이션 허브에선 가상 3D 모델링 장비를 활용해 중국 내수 전용 신차를 개발하고 있었다. 어윈 가바르디 폭스바겐 안후이 최고경영자(CEO)는 “2030년 중국 전기차 시장 3위를 목표로 ‘중국 안에서 중국을 위해(In China For China)’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 市정부가 투자로 기업유치 한국인에겐 '명판관 포청천'으로 알려진 포증(包拯)의 고향이자 리커창(李克强) 전 총리의 고향인 허페이는 AI·양자컴퓨팅·핵융합·바이오테크·전기차·태양광·배터리 등 각종 미래 산업의 전진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야심 찬 이름이 붙은 '퀀텀대로'에는 20개 이상의 양자 전문 기업이 양자 컴퓨팅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 중앙일보는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 기자들과 함께 지난달 말 중국 국무원신문판공실과 안후이성 정부의 초청을 받아 허페이시의 첨단기업을 방문하고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인구 985만 명인 허페이의 지난해 성장률은 5.8%로 전국 평균(5.2%)을 웃돌았다. 한때 낙후 지역으로 여겨졌던 허페이의 주민은 이제 첨단 산업단지를 기반으로 중국 도시 평균을 훌쩍 넘는 소득을 누리고 있다.(표) 신재민 기자 허페이의 도약은 지방 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민간 기업의 결합을 토대로 했다. 이같은 허페이 모델을 두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고의 국가 자본주의'라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8년 LCD 제조사 징둥팡(京東方, BOE) 투자였다. 지방 재정 수입이 160억 위안(약 3조원)에 불과한 허페이는 당시 90억 위안(1.7조원)의 자금과 토지·에너지·대출 이자 보조 등을 제공하는 우대 정책 등으로 총 175억 위안(3.3조원)을 BOE에 투자했다. 이 결과 중국 최초로 LCD 패널 6세대 생산 라인을 구축했다. 허페이시는 투자 자금을 모으기 위해 지하철 건설까지 연기했다. 2017년 DRAM 제조사 창신메모리(長鑫存儲) 설립을 위해 지분을 투자했고, 2020년엔 전기차 업체 니오(NIO)에 70억 위안(약 1.3조원)을 투자했다. 허페이시의 지원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니오는 본사와 공장 일부를 허페이로 옮겼다. 2년 만에 니오가 경영난을 극복하자 주가가 급등했고 시 정부는 투자금의 5.5배를 회수했다. BOE와 니오에 투자한 기금 '허페이젠터우(建投)'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50억 위안(9528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다른 대도시가 학교 지원과 주택 보급에 힘쓸 때 허페이는 유망 기업에 투자한 것이다. 허페이가 ‘벤처투자자 지방정부’라고 불리는 이유다. 뤄원산(羅文杉) 안후이성 공업정보화 부청장은 “전문가팀이 산업을 면밀하게 연구하고, 허페이의 기반 기술을 점검한 뒤 전문 기관과 협의해 투자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1990년대 중국의 노동력과 외국 자본을 결합한 선전(深圳) 모델이 중국 남부를 세계의 공장으로 바꿨다면 허페이 모델은 산업 고도화를 원하는 도시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기업인 궈쉬안(國軒) 허페이 공장 관계자가 배터리 생산 라인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허페이=신경진 특파원 ━ 과기대 기반 중국판 실리콘밸리 미 스탠퍼드대학을 배경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정보통신(IT) 기업이 탄생한 것처럼, 허페이 모델의 중심엔 중국 과기대가 있다. 문화대혁명(1966~76년) 당시 학자를 탄압하던 분위기에서 베이징에 있던 과기대가 1970년 허페이로 옮겨왔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과기대는 첨단 기술의 허브로 탈바꿈했다. 과기대 물리학 연구소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핵융합 에너지 원자로 중 하나인 실험용 첨단 초전도 용기 토카막(Tokamak)을 테스트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CRISPR)를 사용한 최초의 인간 실험도 2015년 허페이 병원에서 이뤄졌다. 지난 2020년 허페이는 ‘체인 보스(Chain Boss)’ 시스템을 도입했다. 시 정부가 반도체, 양자과학, 전기차, 생명공학 등 12개 첨단 산업별 기업 체인을 만들고, 각 체인에는 큰 그림을 그리고 감독하는 정부 관료를 배치했다. 우아이화(虞愛華) 당서기가 직접 집적회로 체인 보스를 맡았고 시장이 디스플레이 체인을 맡아 챙겼다. ━ 범용 AI 혁신 발전 행동 시작 올해 허페이는 리창(李强) 총리가 정부 업무보고에서 밝힌 ‘AI 플러스 이니셔티브’의 시범 도시로 나섰다. 지난 1월 뤄윈펑(羅雲峰) 시장은 업무보고에서 올해 6% 성장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신형 네트워크 인프라 개선을 가속화하고, 하이퍼 컴퓨팅 센터를 구축하며, 스파크 대형인지 모델의 핵심 기술 난관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아이플라이텍이 입주한 스피치밸리를 중국을 대표하는 소프트웨어 파크로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소개했다. 류칭펑 아이플라이텍 대표. 차이신 캡처 남대엽 계명대 교수는 중국의 AI 플러스 정책에 대해 “미국이 주도하는 하드웨어 봉쇄망을 AI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산업 고도화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라며 “첨단 산업을 지분 투자로 유치하는 허페이 모델은 중국과 경쟁 산업이 겹치는 한국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페이=신경진 기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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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자부하는 시진핑 지지도 90% 중 28.5%는 ‘거품’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세계 최대 홍보 컨설팅 회사인 에델만에 따르면 2021년 중국 인민의 정부 신뢰도는 91%로 10년 연속해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하버드대학 역시 여러 해 동안 비슷한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2년 3월 양회 기자회견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정부 지지율 91%'를 자랑했다. 앞서 2020년 12월 8일 정례 브리핑에서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 역시 하버드대 애쉬센터의 연구를 근거로 “중국공산당(이하 중공)과 정부가 향유하는 민중 지지율은 90% 이상”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제로코로나 방역을 고수하던 2022년 4월 25일 베이징 인민대학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환호하는 학생들에게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14일 발표된 2024 에델만 신뢰지수도 비슷했다. 지난해 11월 28개국 3만2000명을 조사한 결과 중국의 정부 신뢰도는 전년보다 4p 떨어진 85포인트를 기록했다. 사우디(86p)에 이어 2위로 내려앉았지만 미국(40p)보다 두 배 높았다. ■ 「 왕이·화춘잉 “당·정부 지지율 90%” 우회조사 결과 “50~70%가 최대치” “탄압 우려 反정부 시위 불참” 40% 카터 美교수 “중국, 러 보다 억압적” 」 에린 바고트 카터(Erin Baggott Carter)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남가주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남가주대 홈페이지 그런데 이 같은 중국의 정부 지지도에 약 28.5%의 ‘거품’이 포함됐다는 실증 연구가 중국연구 분야 세계적 학술지 『차이나 쿼터리』 온라인판에 지난 10일 공개됐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에린 카터(사진) 국제관계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직접 지지 여부를 묻는 기존 방식 대신 익명성을 보장하는 우회 질문으로 중국 지도자의 지지율이 통념보다 높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카터 교수는 애쉬센터 연구가 중국 국민이 “정치적 두려움 때문에 응답 중 자기 생각을 왜곡하지 않는다”는 가설을 전제했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 ‘선호 위장(preference falsification)’이라 부르는 현상이다. 일당(一黨)이 지배하는 독재국가에서 국민이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정치적 입장을 숨기는 ‘가짜 지지’를 일컫는다. ‘선호 위장’은 독재국가에서 보편적이며 중국이 예외이기는 어렵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 정치적 탄압 우려 빼니 지지도 ‘뚝’ 중국인들의 답변에서 ‘선호 위장’을 어떻게 측정할까? 연구팀은 2020년 6월과 11월 민간 시장 조사 업체에 위탁해 각각 2000명에게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는 나이·성별·수입·지역 등 14억 인구센서스 자료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선정했다. 먼저 직접 질문부터 던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리더십을 지지하나”, “중국 정부는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가”, “반(反)정부 시위에 참여할 것인가” 등을 물었다. 90% 이상의 피조사자가 정부에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시 주석 지지도는 6월 94%, 11월 96%로 나왔다. 8%만 정부 탄압이 두려워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연구팀은 이어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간접질문을 던졌다. 우선 응답자를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눴다. 첫째 그룹은 네 개 문장 중 몇 가지에 동의하는지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항목인지는 묻지 않았다. 네 개 문장에는 민감한 서술이 섞여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시진핑의 리더십을 지지한다/나는 매일 외식을 한다/절약은 일종의 미덕이다/나는 자연 친화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문장 네 개를 보여주고 몇 개에 동의하는지 답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그룹엔 민감한 문장을 뺀 세 문장만 제시했다. 둘째 그룹 역시 몇 개 문장에 동의하는지 물었지만 어떤 문장인지 밝힐 필요는 없다. 저자는 진짜 정치적 의견을 알아내기 위해 두 그룹의 답변 평균치의 차이를 추출했다.(표) 박경민 기자 문장을 열거하는 우회 조사 결과 중국 정부의 만족도는 50~70%로 떨어졌다. 시 주석 지지도는 65~70%로 조사됐다. 간접 질문도 ‘선호 위장’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기에 이 수치는 최대치라고 카터 교수는 지적했다. 중국의 ‘선호 위장’ 지수는 평균 28.5%로 밝혀졌다. 이 수치는 같은 방식으로 조사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지지도의 ‘선호 위장’의 3배, 독재국가 평균치 14%의 두 배였다. 중국 국민의 약 40%는 정부의 탄압이 두려워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카터 교수는 결론에서 중국인의 정치적 관점을 측정하는 조사에는 직접 묻는 방식을 사용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 이언 존슨 전 뉴욕타임스 베이징 특파원은 X(옛 트위터)에 “중국인이 설문 조사에서 생각을 숨긴다는 매우 유용한 사실을 증명했다”며 “중공이 광범한 합법성을 누린다는 여론 조사 결과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고 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6일 “중국 지도자들은 생각보다 인기가 낮다”며 “불만을 품은 시민이 자신이 소수라고 믿으면 당에 저항은 고사하고 정치적 이슈를 논의할 가능성도 적다”고 이번 연구를 소개했다. 2021년 6월 28일 베이징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공연 피날레에서 대형 스크린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습이 상영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2020년보다 시진핑 지지 훨씬 낮을 것” 카터 교수는 27일 중앙일보의 질문에 이메일로 답변을 보내왔다. -조사가 이뤄진 2020년과 지금의 중국은 많이 달라졌다. “지금 시 주석의 대중적 지지는 2020년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경제적 문제가 증가하고 펜데믹 시기 봉쇄에 대한 좌절감이 아직 남아있어서다.” -중국의 ‘선호 위장’ 수치가 러시아보다 3배 높다고 했다. 온라인 검열 때문인가.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 러시아와 중국을 비교해 지금과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선호 위장이 더 높게 조사된 것은 시민들이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잃을 것이 많다고 느끼는 러시아보다 중국이 더 억압적인 곳이라는 신호로 해석했다.” -“인민들이 독재자의 권력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한 안전하다”고 지난해 출판한 저서 『독재국가의 선전』 첫머리에 적었다. 중국은 안전한가. “안전하다. 권위주의 정치학의 대가 고든 털럭의 지적처럼 다른 독재국가와 같이 중국의 지배정당 역시 국민이 안전하다고 믿는 한 안전하다. 다만 널리 퍼져있는 선호 위장 때문에 정부의 대중 지지도가 실제 어느 정도인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만일 정부가 실제로 얼마나 인기가 없는지 알게 된다면 상당히 덜 안전해질 것이다.” 현재 카터 교수는 미·중 갈등에서 국내 요인을 파헤친 신간 『서로 바꾸기: 내부정치의 그림자 속 미·중관계(Changing Each Other: US-China Relations in the Shadow of Domestic Politics)』를 집필하고 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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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인구 4억 감소' 얘기도 나왔다…"올 신생아 49년이후 최저"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중국의 저출산 현상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올해 태어난 신생아가 지난해보다 10% 이상 줄면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란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왔다. 지난해 1000만 명에 이어 올해 900만 명 선이 무너질 전망이다. 결혼을 꺼리는 비혼(非婚)도 증가 추세다. 지난해 중국의 초혼 인구는 1051만7600명. 사상 처음으로 1100만 명 선이 깨졌다. 이혼율도 늘고 있다. 출산 적령기 여성 인구도 감소 추세다. 결혼할 여성이 줄고, 여성이 있어도 결혼이 줄고, 결혼을 해도 출산을 기피하고, 이제 신생아가 줄어든다. 풍부한 노동력과 거대한 소비시장을 뒷받침한 ‘인구 프리미엄’을 자랑하던 중국의 성장 엔진이 식고 있다. 중국의 한 신혼부부 커플이 혼인신고를 마친 후 결혼등기증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61년만에 마이너스 인구성장을 기록한 이후 올해 1949년 이후 최저 출생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정근영 디자이너 차준홍 기자 ━ “어지러운 사회, 아이까지 겪게 않겠다” 중국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배경에는 미래에 대한 뿌리 깊은 불안감이 자리한다. 연초 제로 코로나 정책을 기하며 ‘리오프닝’ 효과를 기대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청년 취업난이 치솟았다. 한국처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 대출이 유행했던 부동산 시장도 만신창이가 됐다. 2년 차 직장인 왕산어(王杉兒·25, 가명)는 중앙일보에 “내 아이를 키울 정도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다”며 “어지러운 사회에 아이까지 어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토로했다. 차오제 베이징대 의학원 주임 겸 중국공정원 원사. 의학과학보 캡처 의학계와 인구 전문가들의 전망도 잿빛이다. 차오제(喬傑) 베이징대 의학부 주임 교수 겸 중국공정원 원사는 지난 8월 “중국 신생아가 최근 5년 만에 약 40% 줄었다. 올해는 700만~800만 명 선에 그칠 것”이라며 “여성의 수태 능력을 촉진하는 연구가 인구 증진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차오 교수는 불임(不姙) 연구에 획기적 투자를 촉구했다. ━ 여성 줄고, 결혼 줄고, 출산 기피 인구 전문 싱크탱크인 ‘위와(育媧)인구연구’의 인구전문가 허야푸(何亞福)는 “올해 신생아는 지난해 보다 약 10% 줄어든 850만 명 내외”로 전망했다. 허야푸는 “가임적령기 여성의 지속적인 감소, 결혼을 꺼리는 비혼 풍조, 젊은 부부의 출산 기피 추세가 인구 감소의 3대 원인”으로 지적했다. 위와인구연구는 당국이 실질적인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지 못할 경우 2040년 12.77억 명→2050년 11.72억 명→2060년 10.32억 명→2070년 8.78억 명으로 인구 감소를 전망했다. 위와의 추산에 따르면 2070년 중국은 신생아 234만 명, 노동 인구 4.56억 명, 노인 인구 3.82억 명의 나라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지난 5월 제기한 중국의 성장이 이미 정점에 이르렀다는 ‘피크 차이나’ 이론의 중국 버전인 셈이다. 중국의 신혼부부 커플들이 베이징 자금성 성벽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61년만에 마이너스 인구성장을 기록한 이후 올해 다시 1949년 이후 최저 출생율을 기록할 전망이다. EPA=연합뉴스 한 여성이 평생 평균 몇 명의 자녀를 낳는가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TFR)은 지난해 중국이 1.09로 한국의 0.778을 뒤쫓고 있다. 인도는 지난해 2.0을 기록했다. 유엔 인구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이미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인구 대국을 차지했다. ━ 지난해 유아원 5610곳 문 닫아 신생아가 줄자 보육 시설의 감소세도 빨라지고 있다. 전 중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안후이(安徽)성 푸양(阜陽)시 린촨(臨泉)현(229만 명)에서만 올해 들어 50개 유아원이 문을 닫았다. 현 내 사립 유아원 전체의 4분의 1에 육박한다고 중국 경제지 21세기경제보도가 최근 보도했다. 2022년 한 해 동안 전 중국에서 유아원 5610곳이 문을 닫았다. 저출산에 따른 연쇄반응은 머지않아 초·중·고교와 대학교 등 중국의 교육 생태계 전반에 파급될 전망이다. 차준홍 기자 출산 양극화도 시작됐다. 첫째는 줄고 다자녀는 증가세다(표). 지난달 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신생아 956만 명 중 둘째는 38.9%, 셋째 이상이 15.0%를 차지했다. 첫째의 비율과 각각의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허야푸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첫째 비중은 46.1%로 2016년 이후 시작된 절반 이하 추세를 이어갔다. 첫째 비중은 2013년 924만 명에서 441만명으로 10년 만에 52.27% 감소했다. 첫째의 비중이 줄어든다는 건 아예 출산 자체를 꺼리는 딩크(Double Income No Kid) 부부가 늘고 있음을 뜻한다. 2016년 시작한 두 자녀 정책도 반짝 효과에 그쳤다. 2016년 1015만 명이었던 둘째는 지난해 372만명으로 줄었다. 세 자녀 정책도 마찬가지다. 세 자녀 정책을 도입한 2021년 전후로 셋째 이상은 149만→154만→143만 명으로 큰 변화를 보이지 못했다. 지난달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제13차 전국부녀자연합회 전국대표자대회 개막식에 참석한 여성들이 기립 박수를 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 2년 전 대비 이혼율 25% 폭증 이혼율 증가도 우려된다. 중국 민정부에 따르면 올해 1~9월 197만 쌍이 이혼했다. 2021년 같은 기간 대비 25% 늘어난 수치다. 지난 2021년 1월 발효된 개정 민법은 충동 이혼을 막기 위해 ‘냉정기간’을 마련해 이혼신고서를 제출한 지 30일 이내에 철회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줄어들었던 이혼율은 올해 다시 반등했다. 출산적령기 여성도 감소 추세다. 20~39세 여성은 오는 2030년까지 20%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여기에 지난해 연말 충분한 대비 없이 ‘제로코로나’ 방역 정책을 폐지하면서 급증한 사망자 통계는 아직 공식 발표 전이다. 내년 1월 2023년 인구 통계에 187만 명대로 추산되는 코로나19 사망자를 반영할 경우 저출산에 더해 중국의 인구 감소 폭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해는 61년 만에 처음으로 85만명 인구가 감소했다. ━ 전통적 가족관 부활, 효과 미지수 중국 당국은 저출산 해법으로 전통적인 가족관의 부활을 제시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30일 신임 여성단체 지도부를 집무실인 중난하이로 불러 “젊은이들의 결혼·출산·가정관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고 출산 지원을 촉진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국가 차원의 파격적인 출산 장려책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리창(李强) 총리는 지난 3월 전인대 첫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인구증감이 초래할 문제에 대해 깊은 분석과 연구 판단을 거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일각에선 저출산 해법은 아직 개최 여부가 불분명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1978년 이후 3중전회는 체제 개혁을 논의하는 장이었다. 이젠 저출산 대책이 중국 체제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현안이 됐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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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리창 vs 안보 차이치…시진핑 3기 진짜 2인자는 누구?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기업 채무를 잘 해결하라. 생산과 투자에 중요하다. 경제 회복을 위해 중요하다.” 리창(李强·64) 중국 총리는 지난 20일 국무원(정부) 상무회의에서 국영기업의 부채 해결을 촉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총리 취임 후 반년을 보낸 리 총리의 절박함이 묻어났다. 부동산 침체, 수출·투자·소비 부진에 시진핑(習近平·70) 3기 경제 사령탑 리 총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27일 옌안 혁명박물관을 방문한 20기 중앙상무위원 일곱명이 걷고 있다. 시진핑(가운데) 당 총서기 왼쪽에 서열 5위 차이치가, 오른쪽에 2위 리창이 있다. 신화=연합뉴스 “총서기는 이미 책임·요구·노선·방법은 물론 난제 해결의 ‘황금열쇠’를 제시했다.” 지난 5일 이른바 ‘시진핑 사상 교육 1기 결산 및 2기 배치 회의’에서 차이치(蔡奇·68) 정치국상무위원의 발언이다. 시진핑 3기 통일전선부·조직부·선전부·정법위·감찰위·공안부 일인자로 꾸린 중앙서기처를 지휘하는 서열 5위 차이치가 사실상의 이인자로 불리는 비결은 바로 충성이다. 중국 경제와 안보를 각각 책임지는 리창과 차이치의 경쟁이 치열하다. “방역과 경제·사회 발전을 잘 통합하며, 발전과 안보를 잘 통합하라”는 지난 2월 20기 2중 전회(2차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 결의를 리창과 차이치로 의인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외국에 고품질의 개방을 다짐하면서도 반(反)간첩법을 개정하고 간부에게 아이폰·테슬라를 금지했다. 우회전 깜빡이를 켠 채 좌회전하는 듯하다. 약체 총리 리창과 막강한 차이치 중 누가 진짜 이인자인지 분간도 어렵다. 이러한 경제와 안보의 부조화 배후에는 시진핑 특유의 ‘견제와 균형’ 용인술이 자리한다. 차준홍 기자 ━ 전용기 타지 않는 리창 총리 1959년 저장성 원저우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난 리창 총리는 지난 2016년 시 주석이 그를 장쑤성 서기에 임명하기 전까지 주목받지 못했다. 시진핑 사단 중 저장방(浙江幇)에서도 천민얼(陳敏爾·63)에게 밀렸다. 지난 3월 13일 인민대회당의 첫 내외신 총리 기자회견에서 기자가 본 리 총리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튿날 인민일보는 기자 회견 내용을 2면에 보도했다. 전임 리커창(李克强) 총리 회견이 줄곧 1면에 실렸던 것과 달랐다. 3월 17일 국무원 1차 전체 회의에서 그는 “이번 정부의 업무는 당 중앙의 결정을 관철하고 실천하는 집행자이자 행동파가 되는 것”임을 강조했다. 정책 개발 아닌 효율적인 집행을 요구했다. 개편된 국무원 사이트에는 총리 동정란까지 없앴다. 6월 취임 후 첫 프랑스·독일 순방에 전임 총리가 타던 전용기(專機) 대신 전세기를 탔다. 오직 시 주석만 전용기를 탈 수 있는 의전을 확립했다. 리 총리의 몸사림 뒤에는 ‘이인자의 궁지’가 있다. 마오쩌둥 시대 류사오치(劉少奇)·린뱌오(林彪), 덩샤오핑 시대 후야오방(胡耀邦)·자오쯔양(趙紫陽)까지, 역대 이인자 중엔 비참한 말로를 맞았던 이들이 많다. 23일 차이치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판공청 주임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덕수 총리의 양자회담에 배석했다. CC-TV 캡처 ━ 시진핑 비서실장의 막강한 권력 지난 3월 차이치는 전인대에서 딩쉐샹(丁薛祥)과 바통 터치하며 시 주석의 비서실장인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았다. 명목상 동급자인 정치국 상무위원이 총서기의 비서실장이 됐다. 집단지도체제의 종식과 사실상의 당 주석제 부활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마오쩌둥의 경호 대장 출신으로 군대를 동원해 문혁 4인방을 체포했던 왕둥싱(王東興)이 중앙판공청 주임으로 상무위원에 오른 이후 첫 번째 파격이다. 당 실무를 처리하는 중앙서기처의 역대 어떤 선임자보다 막강한 권력도 누리고 있다. 넘버2 리창과 똑같이 초권력기구인 중앙국가안전위원회(국안위) 부주석과 중앙전면심화개혁위원회(심개위) 부주임까지 동시에 임명되면서다. 서열 3위 자오러지(趙樂際)에게 국안위 부주석만, 4위 왕후닝(王滬寧)에게 심개위 부주임만 맡긴 것과 대조적이다. 7인의 상무위원회를 국안위와 심개위 정·부직을 맡은 서열 1~5위까지의 일진(Tier I)과 그렇지 못한 이진(Tier II)으로 구분했다. ━ ‘내 사람 키우기’ 인맥 경합도 시작 리창과 차이치의 인맥 다툼도 시작된 듯하다. 지난 3월 리 총리가 출범시킨 내각은 장관급 27명 중 신임은 3명에 불과했다. 리 총리 측 인사도 이름을 올렸다. 2016년 장쑤성에서 호흡을 맞췄던 우정룽(吳政隆·59)을 국무위원인 국무원비서장에 앉혔다. 저장성장 시절 측근 왕강(王剛·51)을 장관급인 중앙선전부 부부장에 발탁했고, 브레인 캉쉬핑(康旭平·57)은 차관급인 국무원연구실 부주임에 임명했다. 리 총리가 내년 3월 전인대에서 진행될 장관 인사에 자기 사람을 얼마나 심을지 주목된다. 그러기 위해선 당정 인사권을 다루는 중앙서기처를 장악한 차이치의 견제를 뚫어야 한다. 차이치 인맥도 약진 중이다. 중앙조직부의 지역 간 간부 교류 프로그램을 이용해 베이징 서기 시절 호흡을 맞췄던 간부들을 전국 곳곳의 부성장(차관급)에 포진시켰다. 전 베이징시 비서장 다이빈빈(戴彬彬·55)은 산시(陝西)성 부성장, 전 퉁저우구 서기 쩡짠룽(曾贊榮·54)은 산둥성 부성장으로 영전했다. 쩡 부성장은 20기 중앙후보위원에도 발탁됐다. 물론 이들의 인맥 만들기가 파벌로 비쳐서는 곤란하다. 시 주석이 눈살을 찌푸리는 수준이 된다면 '넘버2'라도 권좌가 금방 위태롭기 십상이다. ━ ‘의도적 딜레마’…안보와 경제 충돌 리창과 차이치는 정책 우선순위도 충돌한다. 리 총리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 회복과 성장이다. 때문에 친시장적 조치가 절실하다. 우궈광(吳國光) 스탠퍼드대 선임연구원은 차이나리더십모니터 가을호에서 “지난 3월 양회 직후 국가 지도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새롭게 노력하기로 결정했다”며 “정권의 재정 능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반면 차이치에게 경제는 부차적인 이슈다. 그에겐 이념과 국가안보가 최우선이다. 지난 3월 말 공안 당국은 미국 컨설팅 기업인 민츠 그룹의 베이징 사무소를 폐쇄했다. 4월에는 상하이에서 베인앤드컴퍼니를, 5월에는 캡비전을 단속했다. 국가안전부가 SNS에서 외국인 간첩 고발을 권장하고. 대(對)미국 외교를 훈수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차이치가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공안과 안전부를 지휘하는 중앙정법위 일·이인자인 천원칭(陳文清)과 왕샤오훙(王小洪)이 차이치의 중앙서기처 멤버임은 분명하다. 리창의 경제와 차이치의 안보가 충돌하는 ‘의도된 딜레마’는 위험하다. 우 연구원은 ”당 수뇌부에서 벌어지는 긴장과 경쟁은 각급 지방정부와 다양한 정부부처로 복제되면서 다양한 불안정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리창과 차이치 둘 사이의 ‘견제와 균형’은 과거 공청단과 상하이방·태자당이 펼쳤던 노선 경쟁과 달리 충성파끼리 펼치는 이인자 다툼으로 볼 수 있다”며 “시진핑 노선의 독주를 견제할 정치 세력이 없다는 게 현 중국의 최대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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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 띄우는 중국 “조선 전장 달려가자”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지난 15일 단둥(丹東)시에서 북한 신의주가 내려다보이는 잉화산(英華山)을 올랐다. 정상에 덩샤오핑(鄧小平) 필체로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왔다며 한국전쟁을 일컫는 중국식 명칭) 기념탑’ 일곱 자를 금색으로 새긴 53m 탑이 보였다. 70년 전 1953년을 상징한다. 지난 15일 찾은 단둥의 항미원조기념관. 1층에선 한국전쟁 당시 중국 내 전시 총동원 캠페인인 항미원조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 전장으로 달려가자. 애국 공약(한국전쟁 시기 생산을 증대해 애국하겠다는 규약)을 체결하고, 애국 생산 경쟁 운동을 전개하자”는 구호가 걸려있다. 단둥=신경진 특파원 탑 옆으로 지난 2020년 9월 재개관한 항미원조기념관(이하 기념관) 본관이 자리한다. 한국전쟁을 놓고 북·중 혈맹을 넘어서 애국주의와 반미(反美)의식을 고취하고 나아가 대만 통일까지 염두에 두고 교육을 하는 현장이다. 주말을 맞아 6000명 예약이 마감돼 되돌아가는 관광객도 적지 않았다. 지난 15일 단둥 잉화산의 항미원조기념탑. 이 탑은 남쪽 북한 신의주 방향을 향해 서있다. 탑에 세로로 쓰여진 '항미원조기념탑' 글씨는 덩샤오핑의 필체다. 단둥=신경진 특파원 ━ 中 단둥·선양, 한국전쟁 부각 한창 “조선 전장으로 달려가자. 애국 생산 경쟁 운동을 전개하자.” 기념관 1층 ‘항미원조 운동청(廳)’에 걸린 선전 문구다. 한국전쟁 당시 전개된 전시 총동원 체제를 보여주는 전시물과 구호성 설명이 가득했다. “조선 내전이 폭발한 뒤 미국이 조선과 중국 영토인 대만을 무장 침입하자, 중국 인민은 각종 형식으로 미국의 침략에 항의했다.” “애국주의와 국제주의 사상의 선전과 교육에 따라 군대에 지원하고 전쟁에 참여하려는 열기가 끓어 넘쳤다.” “부모는 자녀를, 부인은 남편을 보냈으며, 형제가 앞다퉈 참전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흔했다” 등이다. 한국전쟁 투입을 위해 펼쳤던 인적·물적 동원 캠페인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중국 단둥의 항미원조기념관. 입구 로비에 마오쩌둥(왼쪽)과 펑더화이(오른쪽) 동상이 세워져 있다. 펑더화이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 사령관이었다. 마오쩌둥의 필체로 “항미원조, 보가위국”이 쓰여 있다. 단둥=신경진 특파원 기념관의 전시는 북한이 주장하는 한국전쟁 논리를 따랐다. 2층 정전협정 부분에는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 김일성, 펑더화이(彭德懷) 중국군 사령관이 서명한 정전협정 문건이 보였다. 벽에는 “(중국군의) 전쟁터에서 생사를 건 결투와 힘겨운 정전 담판 투쟁으로 미국은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려는 목적을 실현하지 못했다. ‘침략군’은 어쩔 수 없이 한국 전장에서 실패할 운명에 처했다…항미원조 전쟁은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며 ‘정전=승리, 유엔군=침략군·점령군’이라는 논리를 주장했다. 이는 북한과 다르지 않았다. 지난 14일 중국 단둥의 압록강변에서 중국 관광객이 한복을 입고 압록강 철교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단둥=신경진 특파원 한국전 발발도 자의적으로 설명했다. “1950년 6월 27일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파병과 조선 침입을 선포했다. 또 제7함대를 파견해 중국 대만해협을 침입했다”며 “7월 7일 미국 당국이 유엔 안보리를 조종해 ‘유엔군’을 조직하는 불법 결의를 통과시켰다”고 주장했다. 한국전쟁 강조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주도했다. 지난 2010년 10월 이른바 항미원조 출국(出國) 작전 60주년 좌담회에서 “위대한 항미원조 전쟁은 정의의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2020년 70주년에는 기념대회로 격상하며 항미원조 정신을 제시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애국주의, 죽음을 불사하는 혁명 영웅주의, 고난을 두려워 않는 낙관주의, 사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충성 정신, 인류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분투하는 국제주의 정신을 포괄한다며 이데올로기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기념관엔 마오쩌둥에게 참전을 요청하는 김일성 친필 편지도 있었다. 안내원은 “편지 진본은 국가당안관에서 보관 중”이라며 사본이라고 설명했다. ━ “미·중 경쟁에 한국전 가치 높아져” 중국 국정 교과서의 한국전 서술도 기념관과 같다. 중국 8학년(중2) 역사 교과서는 “위대한 항미원조 전쟁이 제국주의의 침략을 막고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켰으며 아시아 및 세계 평화를 수호했다”(p.11)고 서술했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2017년 새로 개정된 8학년 역사 교과서는 중국이 한국전쟁에 능동적으로 참전했으며 중국의 기여로 승리한 전쟁이라고 강조했다”며 “미·중 경쟁 국면에서 한국전쟁의 활용 가치가 높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4일 찾아간 중국 선양의 항미원조열사릉 기념광장. 중국군 전사자 20여만 명의 이름을 새겨져 있다. 선양=신경진 특파원 지난 14일 찾아간 중국 선양의 이른바 항미원조열사릉 기념광장 주위에 세워진 전사자 명단엔 마오쩌둥이 아들 마오안잉(毛岸英, 1922~1950)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선양=신경진 특파원 한국전쟁의 미화는 선양(瀋陽)에 조성된 ‘항미원조열사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4일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했던 후금(後金) 홍타이지가 묻힌 베이링(北陵) 공원 인근의 한국전 참전 중국군 묘지를 찾았다. 중앙에 세워진 기념비까지 1차~5차 전투, 하계 반격 전투(1953.5.13~7.27) 등 중국이 한국전쟁을 구분하는 명칭을 석판에 새겼다. 묘지 북쪽에는 한국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송환한 중국군 유해 913구를 안장한 기념광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주위에는 높이 3m의 검은 화강암 138개에 한국전 전사자 20여만명의 이름을 새긴 이른바 열사영명장(烈士英名墻)을 세웠다.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 1922~1950)의 이름도 보였다. 묘지 서쪽 기념관에는 단둥의 기념관과는 달리 중국군 유해 송환 사업을 “영웅 귀환”이라며 대대적으로 부각해 전시하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와 코로나19에도 유해 송환은 그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1년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국군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수습한 중국군 유해를 송환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실무 협의를 요청했지만 중국 측이 지금까지 답변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난 14일 찾아간 중국 선양의 이른바 항미원조열사릉 바닥에 중국이 한국전쟁을 구분하는 명칭이 새겨져있다. 중국은 1952년 1월부터 12월까지 미국의 중국 동북 일대에까지 세균전을 펼쳤다고 전시하고 있다. 선양=신경진 특파원 지난 14일 찾아간 중국 선양의 이른바 항미원조열사릉 기념관에 마오쩌둥의 장남인 마오안잉(毛岸英, 1922~1950)의 흉상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선양=신경진 특파원 오는 27일 북·중이 평양에서 거행할 이른바 ‘전승절’ 70주년 기념행사도 주목된다. 지난 60주년과 65주년에는 각각 중국 국가부주석과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평양을 찾았다. 북·중간 고위급 인적 교류가 코로나19로 중단된 가운데 올해는 왕야쥔(王亞軍) 주북한 중국대사가 대리 참석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양갑용 연구위원은 “관례를 깨고 중국의 고위 인사가 평양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미·중 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의 양해 아래 중국이 미국에 호의를 표시하는 북·미 등거리 외교술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오후 찾아간 중국 단둥 개발구와 북한 용천을 잇는 신압록강대교에 관광용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단둥=신경진 특파원 ━ 단둥 도심 ‘고려거리’ 문패 지워져 4년 만에 다시 찾아간 단둥은 큰 변화 없이 정체된 모습이었다. 다만 과거 남·북·중 삼각 교역이 활발하던 단둥 세관 앞의 ‘고려거리(高麗街)’는 문패의 글자까지 검게 지워져 한인 사회의 쇠락을 시사했다. 지난 14일 촬영한 단둥 도심의 한인 거리인 ‘고려거리’ 문패에 글자가 검게 칠해져 있다. 아래 사진은 지난 2019년 2월 23일 촬영한 ‘고려거리’ 문패. 단둥=신경진 특파원 현지에서는 중국이 건설한 신압록강대교가 가을께 개통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 현지인은 “북한이 막고 있는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중국이 인적왕래 재개와 연계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선양·단둥=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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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도 못 받는 호사…마오쩌둥이 흠모한 '조조'가 깨어났다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삼국지 조조(曹操, 155~220)의 진짜 무덤인 고릉(高陵)이 지난 4월 29일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지난 20일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540여㎞ 떨어진 허난성 안양시 인두(殷都)구 시가오쉐(西高穴)촌의 고릉박물관을 찾았다. 베이징에서 고속철도로 두 시간 거리였다. 입구에 15.6m 높이의 조조 기마상이 웅장했다. 관우(關羽)·제갈량(諸葛亮) 등 삼국지 영웅 누구도 누리지 못한 1만8488㎡ 초대형 박물관에서 말을 탄 채 사람들을 맞는 조조의 표정은 마치 흡족한 듯 했다. 조조와 동시대 인물평론가였던 허소(許劭, 150~195)는 “태평하다면 간사한 도적, 난세라면 영웅(君淸平之姦賊 亂世之英雄)”이라고 평했다. 지난 20일 찾아간 중국 허난성 안양시 인두구 시가오쉐촌의 조조 고릉 유적지 박물관. 입구에 15.6m 높이의 조조 기마상에 마오쩌둥의 필체로 ‘위무휘편(魏武揮鞭)’ 네 글자가 새겨져있다. 안양=신경진 특파원 조조의 고릉박물관 제1전시실에 전시 중인 조조의 유물. 왼쪽은 조조가 호랑이 사냥에 쓰던 큰 창의 이름인 ‘위무왕상소용격호대극(魏武王常所用挌虎大戟,)’라고 쓰인 돌 명패. 오른쪽 돌 명패에는 조조의 짧은 창을 지칭하는 ‘위무왕상소용격호단모(魏武王常所用挌虎短矛)’ 문구가 쓰여있다. 안양=신경진 특파원 기마상에는 마오쩌둥(毛澤東) 특유의 필체로 새겨진 ‘위무휘편(魏武揮鞭·위 무제가 채찍을 휘둘렀다)’ 네 글자가 적혀있다. 마오가 1954년 여름 베이다이허에서 지었던 ‘낭도사·북대하(浪淘沙·北戴河)’에 나온 시구이다. 이보다 오래 전인 3세기에 조조가 오랑캐 오환(烏桓)을 토벌한 뒤 시 ‘관창해(觀滄海)’를 지었던 바로 그 바닷가에서 마오가 지은 시였다. 시는 다음과 같다. 중국 허난성 안양의 조조 고릉박물관 지하 1층 제2전시실에 걸려있는 관도전투 그림. 안양=신경진 특파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 일은 천 년이 넘었고, 위 무제는 채찍을 휘둘렀다.(往事越千年 魏武揮鞭) 동쪽 갈석에 올라 시 한 수를 남겼다.(東臨碣石有遺篇) 스산한 가을바람 지금도 여전하지만 주인공이 바뀌었구나(蕭瑟秋風今又是 換了人間)” 마오는 시의 마지막 구의 ‘환료인간(換了人間)’ 네 글자로 조조의 후계자를 자처했다. 고릉박물관은 마오의 이 시를 따라 전시 테마를 정했다. 쿵더밍(孔德銘) 박물관장은 “박물관 기본 전시 명칭을 ‘왕사월천년(往事越千年)’으로 정했다”며 “마오쩌둥 시의 명구절에서 땄다”고 소개했다. “전시의 주제는 고고·역사·사회학의 연구 성과와 고릉에서 출토된 문물을 이용해 조조와 관련된 한(漢)·위(魏) 나라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72개 가짜 무덤은 소설 이야기 조조를 놓곤 그가 가짜 무덤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후세에 계속됐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선조가 “조조가 가짜 무덤을 만들었다는데 사실인가”라고 신하에게 묻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데 가짜 무덤은 소설 속 이야기이다. 명(明)대 작가 나관중은 『삼국연의』 78장에서 “조조는 거짓 무덤(疑塚) 일흔 두 개를 만들게 했다. 후대에 자신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모르게 하여 도굴을 피하려 함이었다”고 썼다. 실제 역사는 다르다. 송(宋)대 이전까지 조조 묘의 위치는 알려져 있었다. 진수(陳壽)는 『삼국지』 ‘무제기’에 “서문표(西門豹, 전국시대 척박했던 땅을 옥토로 개간한 업(鄴)성의 수령) 사당의 서쪽 언덕에 능을 만들고 봉분도 나무도 심지 말라”는 조조의 유언을 기록했다. 조조의 아들 위(魏) 문제(文帝) 조비(曹丕)는 부친의 검약 정신을 받든다며 고릉에 세웠던 건물까지 모두 허물었다. 645년 당(唐) 태종 이세민(李世民)이 조조묘를 찾았다. 고구려를 ‘정벌’하러 지나던 길이었다. “위기가 닥치면 제도를 바꿨고, 적을 헤아려 허를 찔렀다. 장수로는 지혜가 넘쳤으나 황제로는 부족했다(臨危制變料敵設奇 一將之智有餘 萬乘之才不足).” 송대 『자치통감』 197권에 따르면 당 태종은 조조를 한 수 아래로 평가했다. 송 태조 조광윤(趙匡胤)은 역대 제왕의 묘 10개를 꼽아 보호를 명령했다. 조조의 고릉도 포함시켰다. 여진의 금(金)이 고릉 지역을 차지하자 가짜 조조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공교롭게도 고릉에서 남쪽으로 40㎞ 떨어진 곳엔 금과 싸워 한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악비(岳飛)의 묘가 있다. 조조 고릉박물관의 묘실로 들어가는 신도(神道). 안양=신경진 특파원 고릉박물관 전시실은 지하에 조성돼 있다. 길이 33m, 폭 5m의 신도(神道, 묘로 가는 길)를 따라 관람객을 맞는다. 먼저 지하 2층의 제1전시실 ‘고릉중현(高陵重現)’. 2000년대 진행된 고릉의 발굴 과정이 전시돼 있다. 조조묘 확인에 결정적인 증거가 된 ‘위무왕상소용격호대극(魏武王常所用挌虎大戟)’이 적힌 석패(石牌)와 조조의 돌베개가 전시되어 있다. 위 무왕 조조가 늘 사용한 ‘호랑이를 사냥하던(挌虎·격호)’ 큰 창이라는 뜻이다. 후한 말기에는 실제 호랑이 사냥이 유행했다고 한다. 조조가 양자 조진(曹眞)을 최정예 기병대 호표기(虎豹騎)에 임명한 이유가 호랑이 사냥에 능했기 때문이었다. 조조가 쓰던 수정주(水晶珠, 수정구슬), 동련(銅鏈, 동으로 만든 사슬), 동인(銅印, 동으로 만든 인장) 등 핵심 유물이 전시 중이다. 지하 1층 제2전시실의 테마는 ‘초세지걸(超世之杰)’이다. 조조의 정치·군사·문학 방면의 업적을 모았다. “동한 말기의 걸출한 정치가, 군사가, 문학가, 삼국 조위(曹魏) 정권의 실제 건립자이자 서진(西晉) 왕조가 천하를 통일하는 기반을 닦은 인물”이라고 재평가했다. 213년 조조가 단점이 있다는 이유로 재능 있는 인재의 선발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명한 ‘취사물폐편단령(取士勿廢偏短令)’이 고릉박물관 지하 1층 제2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안양=신경진 특파원 ━ “단점 때문에 인재 놓치지 말라” 전시실은 조조의 현실주의 전쟁관과 능력주의 인재관을 강조했다. 손자병법의 주석서를 펴낼 정도로 병법에 밝았던 조조는 “무력에 의지하면 멸망하고, 문에만 의지하면 망한다(恃武者滅 恃文者亡)”고 썼다. 힘에 기반한 평화를 신봉하면서도 무력을 남용해 전쟁을 일삼는 데는 반대했다. 조조 병법의 키워드는“의로움으로 군대를 움직인다(兵以義動)”였다. 조조는 철저한 능력주의 인재관을 따랐다. 단점 때문에 재능 있는 자를 놓치지 말라던 213년 ‘취사물폐편단령(取士勿廢偏短令)’과 인재를 천거할 때는 도덕성에 구애받지 말라는 ‘거현물구품행령(擧賢勿拘品行令)’ 문구가 박물관 곳곳에 내걸려 있다. 고릉에서는 세 개의 두개골과 팔다리뼈가 발굴됐다. 남성 한 명 여성 2명으로 추정됐다. 조조로 판정한 남성은 60대였고, 여성은 50대와 20대로 밝혀졌다. 중국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허난성 안양시 고릉에서 발견된 조조묘 유골을 토대로 만든 조조의 초상(오른쪽). 왼쪽은 기존에 전해 온 조조의 영정. 출처=서우후 남성 유골을 토대로 해서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복원했다는 조조 초상화가 얼마 전부터 중국 SNS에서 인기다. 5세기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편에 따르면 조조는 추남이었다. 흉노 사신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부하를 앞세운 뒤 호위병으로 분장했다. 회담을 마친 뒤 사신에게 조조의 인물됨을 물었다. “위왕의 덕망도 고아했지만, 뒤에 서 있던 사람이 진정한 영웅 같더이다.” 관련기사 뉴스 인 뉴스 중국판 ‘인디아나 존스’ 조조묘 발굴 이야기허난 안양=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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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공들인 섬…인천공항 넘보는 '세계 1위 면세점' 키웠다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1145만 명. 포스트 코로나 원년을 맞은 지난 1월 중국의 대표적 휴양지 하이난(海南)을 찾은 관광객 숫자다. 지난해 1월 대비 72.1% 늘었다. 펑페이(馮飛) 하이난 성장(省長)은 올해 정부 업무보고에서 관광객과 관광수입 목표로 각각 20%와 25% 증대를 제시했다. 올 한 해 7200만 명의 관광객, 24조8000억 원의 관광수입을 올리겠다는 계산이다. 경제성장률 목표치는 9.5%다. 지난 23일 중국 하이난 싼야 동부 해안에 자리한 싼야 국제 면세시티 3층 화장품·향수 매장에서 중국 여행객들이 구매한 물건을 결제하고 있다. 지난 1월 음력설 연휴 1주일간 하이난 내 12개 국내 면세점은 총 486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싼야=신경진 특파원 중국 하이난 싼야 동부 해안에 자리한 싼야 국제 면세시티 전경. 축구장 17개 면적의 초대형 면세점을 운영하는 차이나듀티프리그룹이 오는 28일 인천공한 면세점의 10년 운영권 입찰에 참여한다. 싼야=신경진 특파원 지난 23일 싼야(三亞) 해변의 국제 면세시티. 축구장 17개(12만㎡) 넓이로, 국영 차이나 듀티프리그룹(中國免稅·CDFG)이 운영하는 내국인 전용 면세점이다. 자오징(趙晶) 마케팅 담당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면세 한도를 연 3만 위안(546만 원)에서 10만 위안(1820만 원)으로 늘렸다”며 “면세 종류도 38종에서 45종으로 늘려 성장을 견인했다”고 자랑했다. ■ 「 하이난 자유무역항 제2 홍콩 꿈꿔 1월 관광객 1145만명, 72.1% 증가 코로나 속 면세한도 늘려 폭풍 성장 시진핑 “소비가 경제 발전의 기초” 한국 기업도 수출 기회 노릴 무대 」 최근 중국의 보복성 소비는 숫자가 잘 보여준다. 지난 춘제(음력설) 기간(1월 21~27일) 하이난 내 12개 국내 면세점 총 매출은 25억7200만 위안(4863억 원)을 기록했다고 하이난 상무청이 발표했다. 하루 평균 681억원 규모다. 2019년과 비교해 세 배 이상 증가했다. 현장에서 만난 내륙 관광객들은 대부분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상하이에서 왔다는 20대 장(張)모씨는 “해외 관광 비자는 아직 번거로워 싼야를 찾았다”며 “면세 쇼핑으로 해외여행 기분까지 만끽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하이난을 기반으로 ‘굴기’(崛起·우뚝 섬)한 CDFG는 세계 면세점 업계의 판도를 바꿨다. 2019년까지 10위권 밖이던 CDFG는 2020년 세계 1위로 치고 올랐다. 2021년 매출은 약 13조 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시장 2위와 3위인 롯데 면세점과 신라 면세점의 매출액을 더한 것보다도 많았다. CDFG는 여세를 몰아 28일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 참여한다. 향후 10년 운영권을 놓고 한국 업체와 경합한다. 사업제안서(60점)와 가격(40점)을 합산해 결정되는 낙찰 결과는 세계 면세점 업계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이난에서 만난 한 중국 면세점 관계자는 “한국 면세점의 주요 고객과 성장 가능성까지 고려한 진취적 판단을 기대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CDFG가 중국 관광객의 한국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중국은 한국이 2002년 도입했던 내국인 면세점 사업을 2011년 뒤늦게 도입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3년 사이에 내국인 면세 한도를 1820만원까지 늘리며 급성장했다. 이제 한국의 간판 면세점 운영권을 넘보는 수준까지 왔다. 중국 면세 산업의 폭풍 성장 배경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있다. 2013년과 2018년에 이어 지난해 4월에도 하이난을 방문한 시 주석은 싼야 국제 면세시티를 직접 찾아 내국인 면세정책을 점검했다. 그는 “소비가 경제발전에서 기초 역할을 더 잘하려면 초(超)대규모 시장의 이점을 기반으로 삼아 더 나은 시장 환경과 법치 환경을 만들고, 신뢰의 경영과 양질의 서비스로 소비자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규제를 풀 테니 기업은 양질의 서비스로 내수를 견인하라는 지시인 셈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이난은 시진핑 시대의 개혁개방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2020년 중국 정부는 대만 면적(3만5960㎢)에 버금가는 하이난 전역(3만3900㎢)을 무관세 자유무역항으로 만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청사진에는 “시 주석이 직접 계획하고, 직접 배치하고, 직접 추진한 개혁개방의 중대 조치”라고 명기했다. 개혁개방의 시범구, 생태 문명 시범구, 국제 여행소비 센터, 국가급 중대 전략 서비스 보장구로 위상을 세웠다. 지난해 4월 11일 시진핑(왼쪽 세번째) 중국 국가주석이 하이난의 열대우림 지역인 우즈산 국립공원을 방문해 생태 관광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오른쪽 두번째가 하이난 자유무역항 건설을 진두지휘하는 선샤오밍 성 당서기다. 신화=연합뉴스 중국에서 시 주석 방문은 관광객 행렬로 이어진다. 이른바 ‘시진핑 효과’다. 지난 21일 하이난의 한라산 격인 해발 1867m 우즈산(五指山)에서 만난 주훙링(朱宏凌·45) 시 당서기는 “코로나 기저 효과로 춘절 기간 우즈산 관광객이 300% 늘었고 관광 수입은 400% 늘었다”며 “지난해 4월 시 주석이 우즈산을 방문한 영향”이라고 말했다. 대기 오염으로 악명 높은 중국에서 초미세먼지(PM2.5)와 미세먼지(PM10)가 모두 제로(0)인 열대우림 산악 기후를 활용한 로하스(LOHAS, 건강과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생활방식) 관광이 이 지역의 무기다. 제2의 홍콩으로 변신하려는 하이난을 한국의 중견 기업들도 주목하고 있다. 내국인 면세점을 활용해 중국 내수를 공략할 수 있는 교두보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이난을 관할하는 한재혁 광저우 총영사는 “지난해 하이난성 하이커우(海口)에서 열린 중국 국제 소비재 박람회에 이미 19개 한국 기업이 참가해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그는 면세 품목까지 다양해지면서 고가의 명품 브랜드가 아닌 한국 기업이라도 수출 기회를 노려볼 만하다고 했다. 하이난은 관광 이외에도 육·해·공 3대 미래 산업 육성에 나섰다. 조타수는 선샤오밍(沈曉明·60) 하이난 당서기다. 의학박사 출신으로 상하이 부시장, 교육부 부부장(차관)을 역임한 다채로운 이력의 선 서기는 2017년 하이난에 투입됐다. 지난해 4월 성급 당 대회에서 선 서기는 ‘사상 해방’을 앞세우며 “국가적으로 수요가 절박하고 하이난에 유리한 남번(南繁, 여름 작물인 벼·옥수수·목화 등을 가을에 수확한 뒤 겨울 동안 하이난에서 추가 번식하는 바이오산업), 심해, 우주 산업을 발전시키겠다”고 강조했다. 3대 미래산업 가운데 주력은 원창(文昌) 우주 위성 발사 기지다. 세계적으로도 숫자가 적은 저위도 위성 발사장으로, 차세대 운반로켓으로 불리는 창정(長征) 5호가 2016년 11월 이곳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싼야의 심해과학공정연구소는 심해 탐사선 ‘펀더우저(奮鬪者)’로 지난해 뉴질랜드 인근 해저 1만1000m 탐사에 성공했다. 하이커우·우즈산·싼야=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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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봉쇄서 180도 바꿨다…'극과 극' 中 방역, 왜 과학이 없나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다이내믹 제로(動態淸零, 동적 제로화)’ 총방침을 요지부동 견지하며 중국의 방역 방침과 정책을 왜곡·회의·부정하는 모든 언행과 단호히 투쟁하라.” 올해 5월 5일 열린 중국공산당(중공)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지침이다. 코로나19 청정국을 만든다는 ‘다이내믹 제로’ 정책은 국제적으론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제로 코로나는 지난 3월 17일 상무위원회에서 처음 공식화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다이내믹 제로를 견지해 전염병이 확산·만연하는 추세를 서둘러 억제하라”고 말하면서다. 지난 9월 27일 베이징 전람관에서 개막한 10년간 중국공산당의 업적을 전시한 ‘분투전진의 신시대’ 전시회의 코로나19 방역 성과 전시실. “생명지상, 거국동심, 사생망사, 존중과학, 명운여공”이라는 항역정신이 대형 부조로 전시하고 있었다. 신경진 특파원 중국에선 코로나 방역을 ‘인민전쟁·총체전·저격전’으로 부른다. 시진핑 주석이 “친히 지휘, 친히 배치(親自指揮 親自部署)”했다. 당사문헌연구원이 ‘19차 당 대회 이래 주요 사건 연표’에 공식 기록했다. 중국 방역의 최고 컨트롤타워는 상무위원회 7인 회의였다. 코로나 발생 이후 공개한 상무위원회 20회, 정치국회의 32회 회의록을 다시 살폈다. ━ ①2020년= “위대한 방역 정신” 승리 선언 중국의 방역은 지난 2020년 9월 8일 ‘전국 코로나 퇴치 표창대회’로 일단락됐다. 당시 시 주석은 “중국 인민과 중화 민족이 위대한 방역 정신을 만들어냈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앞서 76일간의 우한 봉쇄를 해제했던 4월 8일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일상화 방역’을 결정했고 지금도 적용된다. 지난 4월 14일 상하이 신국제박람센터를 개조한 격리병동 내부에서 한 방역 요원이 소독 작업을 하고 있다. 뒤로 “과학정준·동태청령(科學精准·動態淸零)”이라는 구호가 보인다. AFP=연합 ━ ②2021년= 오미크론에 봉쇄 일관 2021년은 평온했다. 정치국회의를 통해 “전염병 예방통제와 경제사회 발전을 통일적으로 계획하라”는 지침만 반복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이 “코로나 기간 중국서 생활한 당신들은 ‘몰래 좋아하면 된다(偸着樂·투착요)’”며 외국 방역을 우회해 조롱했다. 11월 24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세계보건기구(WHO)에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를 보고하며 상황이 돌변했다. 26일 WHO는 그리스 알파벳 열다섯 번째 ‘오미크론’으로 명명했다. 바이러스는 진화했지만 ‘승리’를 경험한 중국식 방역은 바뀌지 않았다. 12월 6일 열린 정치국회의는 “중국은 백 년의 변국과 세기의 전염병에 유연하게 대처했다. 경제 발전은 세계 선도적 위치를 유지했다”고만 했다. 기존 방역을 따라 12월 22일 인구 1300만의 서부 대도시 시안(西安)이 봉쇄됐다. 현지 기자 장쉐(江雪)가 “장안십일(長安十日)”에서 참상을 기록했다. 베이징 중국공산당역사전람관 4층 특별전시실에 전시 중인 조각 ‘전사의 갑옷(戰甲)’ 펑옌징(馮燕京), 2022년 작. 신경진 특파원 ━ ③2022년=“흔들림 없이 견지” 봉쇄 지속 해가 바뀌었다. 당국은 2월 4일 개막한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 주력했다. 폐막 닷새 뒤 열린 정치국 회의는 경직된 방역을 재천명했다. 3월 오미크론 확산세는 22개월 만에 코로나 상무위원회를 부활시켰다. ‘다이내믹 제로’를 공식화한 첫 회의다. 회의는 “사상의 마비, 전쟁 혐오 정서, 요행 심리, 해이한 마음가짐을 극복하라”며 “전염병을 통제하지 못한 간부는 즉시 기율과 규칙에 따라 조사·처리하고 엄중히 문책한다”고 결정했다. 확진자가 나오면 보건 담당 간부가 경질됐다. 회의 열흘 뒤 상하이를 봉쇄했다. 유전자 증폭검사(PCR), 사재기와 봉쇄는 일상이 됐다. 5월 5일 상무위원회가 재소집됐다. “중국의 방역은 당이 결정했다. 중국은 우한 보위전에서 승리했다. 대(大) 상하이 보위전에서도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이 6월 28일 우한을 찾았다. “중공이 이끄는 중국은 다이내믹 제로 정책을 실행할 능력과 실력이 있다. 최후의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했다. “인구가 많은 중국이 만약 ‘집단면역’, ‘당평(躺平·평평하게 눕기)’ 같은 방역을 하면 후과는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7월 28일 열린 정치국회의는 정치를 앞세웠다. “방역과 경제를 종합적·시스템적·장기적으로 봐야 한다”며 “특히 정치적으로 보고 정치 장부를 계산하라(算政治賬)”고 했다. 방역에 정치 개입을 공인했다. 10월 20차 당 대회 연설이 결정적이었다. 5년을 결산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에서 인민 지상주의와 생명 지상주의 원칙과 감염병의 해외 유입과 국내 재확산을 방지하는 원칙, 다이내믹 제로 원칙을 흔들림 없이 견지해 중요하고 긍정적인 성과를 이룩했다”고 평가했다. ━ ④2022년 11월= 민심 폭발, 사라진 ‘코로나 제로’ 당의 평가와 민심은 달랐다. 10월 13일 베이징 쓰퉁차오(四通橋)에 PCR 검사와 봉쇄를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11월 26일 상하이, 27일 베이징에서 방역을 반대하는 백지시위가 일어났다. 12월 6일 정치국회의에서 비로소 기조를 180도 틀었다. 핵산검사를 축소하고 자가격리를 허용하는 등 방역 최적화 10가지 조치가 나왔다. 11월 10일 상무위원회까지 등장했던 ‘다이내믹 제로’는 회의록에서 사라졌다. 중국식 방역에는 민주와 과학이 빠졌다. 대만의 국제관계학자 린취안중(林泉忠)은 “중국의 3년 방역에는 ‘덕선생(德先生, democracy)’의 그림자도 ‘새선생(賽先生, science)’의 존재도 없었다. ‘정치 리더십’과 ‘제도 우월성’만 강조했다”고 했다. 덕선생, 새선생은 1919년 오사운동 구호였다. 극과 극을 오가는 중국식 방역은 다른 분야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 홍콩 출신 국제정치학자 사이먼 선(沈旭暉) 박사는 “중공이 만드는 정책과 용어는 본질적으로 옳은 듯 틀린 듯 스스로 모순적”이라며 “때에 따라 골문을 옮기기 편하기 때문에, 당권파는 항상 정확한 게 된다”고 했다. 마오쩌둥 모순론의 정반합 철학처럼 ‘제로 코로나’와 ‘위드 코로나’를 순식간에 오가는 정책이 언제든 정당화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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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유령이 베이징을 떠돌고 있다…50년대 공영슈퍼 등장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중국에서 당 대회가 끝나자 과거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사회·경제 정책이 속속 되살아나고 있다. 과거 1950년대 식량과 생필품의 수요·공급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공소합작사(供銷合作社·공급판매협동조합)’가 되살아나 민영 업체를 압박하고, 식당을 포함한 ‘원스톱 시범마을’ 사업도 시작되면서 과거 회귀 여부가 논란이다. 베이징 도심 퇀제후(團結湖) 공영 슈퍼마켓 외벽에 “발전경제 보장공급” 구호가 적혀있다. 신경진 특파원 베이징 도심 퇀제후(團結湖) 공영 슈퍼마켓 외벽에 문화대혁명 시절 분위기의 그림과 ‘공소사(供銷社·공급 판매 조합)’ 이름이 걸려있다. 신경진 특파원 “경제발전 공급보장.” 베이징 쇼핑가인 싼리툰(三里屯)에서 멀지 않은 퇀제후(團結湖) 주택단지(社區·사구)에 최근 개업한 공영 슈퍼마켓 외벽에 붙은 구호다. 공급망 위기를 대비한 시설임을 암시한다. 지난 5일 찾아간 매장에 문화대혁명 분위기의 그림 위로 ‘공소사(供銷社)’라는 이름이 눈길을 끌었다. ‘공급 및 판매 조합’(영문 Supply and Marketing Cooperatives)이란 뜻이다. “마천루가 도시의 미래라면, 공소사라는 과거 기억에서 변변치 않던 음식을 맛보고, 인간의 백 가지 맛을 음미한다”는 알쏭달쏭한 문구가 보였다. 마오 시대의 유산을 재평가하려는 선전 문구다. ━ 문혁풍 그림에 “공급 보장” 내걸어 입구에 ‘편민복무중심’, 주민 편의를 위한 서비스 센터라는 간판을 달았다. 와이파이, 우산대여, 선물 포장, 응급 구호품, 잔돈교환, 생선 손질 등 다양한 서비스 안내문도 걸었다. 지난달 31일 주택건설부가 2년 후 전국 확대 시행을 예고한 ‘원스톱 생활편의센터’의 모델인 듯 확충 공사도 한창이었다. 13일 오전 베이징 도심 퇀제후(團結湖) 공영 슈퍼마켓에 인근 주민들이 식재료를 구매하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중간 규모 슈퍼마켓 형태의 매장 안에는 신선 야채·과일·육류·생선을 비롯해 즉석 식품과 생필품을 두루 팔고 있었다. 가격은 저렴했다. 인근 로컬 슈퍼 체인인 징커룽(京客隆)에서 6위안(1100원)에 파는 버섯이 4위안(740원), 20개 포장의 야채 만두는 15위안(한화 2800원)을 받았다. 20위안 정도인 시장가보다 쌌다. 가격차는 20~30% 정도였다. 자매 농촌에서 직구매한 농산품을 진열한 ‘향촌진흥 전용 매대’도 보였다. 한 점원은 “비싸면 공소사가 아니다”라며 직구를 통한 가격 경쟁력을 자랑했다. 손님은 대부분 인근 주민으로 보였다. 공소사의 연원을 묻자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 많았다. 중국에서 공소사가 굴기(崛起·우뚝섬)하고 있다. 관영 매체가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등 대도시의 공소사 부활 소식을 보도한다. 공소사 관련 주식이 최근 주식 시장의 상승세를 주도하고, SNS에는 과거 배급 경제 시절의 공소사와 양표(糧票) 사진이 범람한다. 중국 포털 바이두(百度)의 지도 애플리케이션에서 공소사를 검색하면 베이징에서만 100여 곳이 검색될 정도다. ━ 지난해 매출 1165조원으로 증가 전국 조직인 중화전국공소합작총사(中華全國供銷合作總社)는 지난해 매출 총액을 6조2600억 위안(1165조원)으로 공개했다. 전년 대비 18.9% 증가한 수치다. 글로벌 온·오프 유통기업인 알리바바의 지난 2022년 회계연도 총거래액(GMV) 8조3170억 위안의 75% 수준까지 성장했다. 1950년대 말 중국 대약진 운동 시기 인민공사의 공동식당. 벽에 “밥을 먹어도 돈을 내지 않는다”는 구호가 보인다. 바이두 캡처 공소사는 농촌이 도시를 포위하는 모습이다. 후베이(湖北)는 지난달 17일 이미 1373개의 기층 공소사를 재건했다고 호북일보가 보도했다. 소속 직원 규모는 지난 2016년 5만1500명에서 현재 45만2000명, 2025년 150만명으로 확대할 방침을 밝혔다. 20차 당 대회에선 량후이링(梁惠玲·60) 공소합작총사 이사회 주임이 중앙위원 205명 중 한 자리를 얻었다. 공소사 창설 73년만에 처음이다. 공소사의 정치적 위상과 확대 발전을 예고한다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 마오쩌둥 시절 보급된 뒤 쇠퇴 공소사는 1953년 토지 몰수와 분배를 마친 뒤 마오쩌둥이 농촌의 생산·유통·신용 3대 합작화 지침을 제시하면서 전국에 보급됐다. 그해 설립된 공소합작사는 총 3만2000개, 조합원은 1억5000만명으로 농민 90%가 참여했다. 개혁개방이 시작되자 공소사는 농촌에서 농자재 구매 채널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다 시진핑(習近平) 시대 들어 부활이 본격화됐다. 량후이링 주임은 올 초 업무보고에서 시 주석이 모두 10차례 공소사 관련 지시를 내렸다고 공개했다. 시 주석은 지난 2020년 9월 24일 열린 공소사 7차 당 대회에 “공소합작사는 농업과 농촌 발전을 이끈 중요한 역량이었다”며 “당과 농민을 잇는 교량이자 허브로 향촌진흥에 공헌하라”는 지시를 전달했다. 공소사 재건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지난달 31일 주택건설부와 민정부가 통지한 ‘완전 주택단지’ 시범사업이 공소사와 맞물리면서다. 문건에 따르면 각 시와 구 정부는 이달 말까지 3~5개 거주지구를 시범 단지로 선정해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2년간 시범 운용을 거쳐 2025년부터 전중국에서 시행할 예정이다. ━ 시장 통제, 계획경제 회귀 우려 통지문은 ‘완전 단지’ 건설 취지로 기층 거버넌스의 현대화를 제시했다. 단지마다 유치원·어린이집·노인지원센터·편의점·식료품점·이발소·세탁소·약국 등 생활 편의 시설을 모두 갖추도록 요구하며 식당까지 포함했다. 중화권 언론은 공동식당을 계획경제 시절 한솥밥[大鍋飯]과 공동취사를 강요했던 국영식당을 연상시킨다며 과거 회귀를 우려했다. 베이징의 독립기자 가오위(高瑜)는 트위터에 “80년대 사라졌던 합작사가 부활했다”고 지적했다. 차이샤(蔡霞) 전 중앙당교 교수는 “공소사가 독점했던 계획경제 시기에는 물자가 부족해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다”며 평양의 텅 빈 상점에서 공소사의 그림자를 봤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류루이사오(劉銳紹) 홍콩 시사 평론가는 “중국 경제가 수축하면 일부 지역에서 민생 물자의 공급 부족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당국은 위기와 사회 안정에 끼칠 영향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공소사 벽면의 ‘공급보장’이 구호만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이원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공소사의 부활과 거주단지 개편안을 보면 과거 계획경제 시절의 중국 지역 조직인 ‘단웨이’(單位·단위)의 그림자가 보인다”고 말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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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글씨로 "핵심을 충성으로 지킨다"…큰 일 앞둔 베이징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핵심을 충성으로 지키고, 강군의 포부로 분투하라(忠誠維護核心 矢志奮鬪强軍).’ 지난달 23일 찾아간 중국 인민혁명군사박물관 광장 화단에 12자 붉은색 구호가 선명했다. 여기서 ‘핵심’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뜻한다. 즉 핵심을 향한 충성이 오는 16일 개막하는 중국공산당(중공) 제20차 전국대표대회(20대) 주요 이슈다. 앞서 지난 7월 27일 이 박물관에서 전시를 시작했던 ‘신시대 국방 및 군대 건설 성취전’엔 시 주석이 참관했다. 지난달 23일 베이징 중국 인민혁명군사박물관 광장의 모습. “핵심을 충성으로 지킨다”는 대형 구호 뒤로 국방부 청사가 보인다. 신경진 특파원 “핵심을 충성으로 지키고, 강군의 포부로 분투하라(忠誠維護核心 矢志奮鬪强軍).” 12자 붉은색 구호가 베이징 중국 인민혁명군사박물관 광장 화단에 조성되어 있다. 베이징엔 오는 16일 중국 공산당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 충성하자는 문구가 부쩍 늘었다. 신경진 특파원 성취전 전시회장엔 가슴에 붉은 중공 휘장을 단 당원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20대 준비가 순조로움을 시사한다. 맞은편 ‘창당 100년 전람회’엔 “군사를 매우 주의해야 한다. 정권은 총대로 취득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마오쩌둥 어록이 걸려 있었다. “군사를 매우 주의해야 한다. 정권은 총대로 취득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마오쩌둥 어록이 베이징 중국 인민혁명군사박물관의 ‘창당 100주년 전람회’에 걸려있다. 신경진 특파원 중국 최대의 정치 행사인 20대 당 대회가 임박했다. 5년마다 열리는 당 대회는 이듬해 3월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함께 향후 5년간 국정을 이끌 당과 국가 지도부를 추인한다. 정책을 담은 정치보고와 강령을 담은 당장(黨章·당의 헌법) 수정안도 심의·확정한다. 5년 전 제시한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 목표 시한인 2035년까지 이행할 구체적인 계획이 16일 개막식에서 시진핑 총서기가 낭독할 정치보고에 담긴다. 20대 주요 관전 포인트다. ━ 군 인사도 주요 관전 포인트 지난달 21일 베이징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국방 및 군대 개혁 세미나’에 참석한 리차오밍(왼쪽) 상장, 허웨이둥(가운데) 상장, 류전리(오른쪽) 상장. 각각 육군사령관, 군사위부주석, 중앙군사위 위원으로의 승진이 예상된다고 베이징 내부 사정에 밝은 홍콩 성도일보가 보도했다. CC-TV 캡처 군 인사도 20대 주요 관전 포인트다. 지난달 21일 세미나에 참석한 리차오밍(李橋銘·61·상장) 전 북부전구 사령관 가슴의 육군 표식을 볼 때 류전리(劉振立·58·상장) 육군 사령관 후임으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홍콩 성도일보가 23일 예측했다. 젊은 류전리 상장은 중앙군사위 기관 흉장을 패용했다. 차기 중앙군사위 진입이 예상된다. 리차오밍 상장은 지난 2013년 7월 당 이론지 『홍기문고(紅旗文稿)』에 구소련 해체 이유를 당군(黨軍)의 부재에서 찾은 “소련군대 ‘비당화(非黨化)’의 역사 비극”을 기고해 시 주석의 관심을 받았던 실세 장군이다. 허웨이둥(何衛東·65·상장) 전 동부전구 사령관도 주목된다. 시 주석의 정치적 기반인 푸젠(福建) 31집단군 참모장 출신이다. 성도일보는 먀오화(苗華·67·상장) 정치공작부 주임과 함께 허 상장을 권력서열 25위의 중앙정치국에 입국(入局)할 중앙군사위 부주석 후보로 전망했다. 지난달 26일 차이치(蔡奇, 사진 가운데) 베이징 당 서기가 ‘시 지도 간부 회의’를 소집해 임박한 20대 당 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베이징TV 캡처 ━ ‘제로 코로나’ 피로감이 복병 20대의 복병은 중국이 자랑해 온 ‘제로 코로나’다. 봉쇄를 불사하는 방역으로 인한 피로감이 사회 전반에 누적되면서다. 당 중앙위원회는 최근 지방에 “방역과 사회 안정 유지 업무의 특수한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할 것”을 통보했다고 대만 연합보가 지난달 22일 보도했다. 특히 대학 방역과 시위를 암시하는 대학생 사건에 주의하도록 지시했다. 지난달 26일 차이치(蔡奇) 베이징 당 서기는 ‘시 지도 간부 회의’를 소집했다. “당의 20대 서비스 보장 업무를 훌륭히 수행하는 것은 당 중앙이 우리에게 부여한 영광스러운 정치 임무이자 중대한 정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국경절 연휴 대학 교정 방역에 전력을 다하라”고 하달했다. 시진핑 3연임이 굳어지면서 20대 인사는 후계 구도와 차기 총리 인사가 주목된다. 하지만 여전히 베일 속이다. 당 중앙위원회를 구성하는 370여명의 중앙위원 및 후보 중앙위원의 선출 방식도 주목된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17대를 앞둔 지난 2007년 6월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총서기는 투표를 적극 활용했다. 영도 간부회의를 소집해 ‘민주추천표’로 불리는 오렌지색 투표지로 63세 미만 장관급 간부 및 군구급 이상 장성 200여명 중 정치국원 및 상무위원 후보를 선출했다. ‘참고용’이란 꼬리표가 붙었지만 투표는 투표였다. 시 주석은 이런 투표를 놓고 “표의 무게가 지나치게 강조된다”며 “멋대로 한 투표에 진짜 민의는 없다”며 선호하지 않았다. 2017년 19대에 앞서 직접 57명을 면접했다. 19대 지도부 선발을 놓고 “당과 국가 지도자라고 ‘철 모자’는 아니다. 나이가 부합한다고 계속 지명하지 않았다. 인선의 근거는 정치표현, 청렴도, 업무 수요이며 유임과 전직, 승진과 강등 모두 가능했다”고 중국 관영지는 설명했다. 실제 정치국원 중 67세이던 리위안차오(李源潮), 64세 류치바오(劉奇葆)와 장춘셴(張春賢)이 정치국에서 퇴출됐다. 지난달 19일 당 중앙판공청이 돌연 ‘능상능하’(能上能下·능력에 따른 발탁과 조기 퇴임이나 강등을 규정한 인사 정책)’ 규정을 발표했다. 노령 위원들을 겨냥한 한 출국(出局, 정치국 퇴출) 인사의 예고편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 왕치산 국가부주석 진퇴 주목 지난달 30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열사기념일 행사에서 시진핑(사진 오른쪽 두번째) 중국 국가주석과 왕치산(사진 왼쪽) 부주석 등 중국공산당 수뇌부가 인민영웅기념비에 헌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왕치산(王岐山·74) 국가부주석의 진퇴도 주목된다. 19대 정치보고를 검토한 지난 7월 말 장관급 간부 세미나 주석단에 7명의 상무위원 옆으로 당직이 없는 왕 부주석이 앉았다. 후계자가 맡았던 국가부주석 직을 고령의 왕치산이 다시 연임한다면 후계 압박 없이 2027년 시진핑 4연임을 암시하는 복선 인사가 된다. 베이징의 한 전문가는 “왕치산 부주석의 진퇴는 중공 후계 구도와 맞물려 20대의 핵심 관전 포인트”라며 “단 5년 전과 마찬가지로 왕 부주석의 연임 여부는 내년 3월에야 판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밖에 96세 노령인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개막식에 참석해 존재감을 과시할지 여부, 20기 1중전회 다음날 인민일보 1면에 실릴 신임 총서기 사진의 크기, 현재 “조국통일 완성”에 그친 당 헌법에 “조국의 완전한 통일 실현”으로 대만 정책이 강화될지 여부 등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관련기사 리커창 인민일보 1면인데 시진핑 11면…中권력투쟁설 무슨일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시진핑 탁월한 영수"…충성경쟁, 묻어버린 칭호도 부활시켰다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중국 콘클라베' 비밀회의 끝났다…시진핑 밀착수행 50대 정체 '대만 봉쇄'로 시선 끌었다…시진핑이 아끼는 58세 장군의 미래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시진핑 장기집권 확정할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10월 16일 개막 [단독] 中 왕이 후임에 친강·마자오쉬 경합…한국과 의외의 인연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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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봉쇄'로 시선 끌었다…시진핑이 아끼는 58세 장군의 미래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지난 15일 중국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의 명단 304명이 발표됐다. 중국공산당(중공) 제20차 전국대표대회(20대) 참가자 리스트다. 5년 전 대표 303명 중 35명(11.6%), 19대 중앙위원 42명 중 15명(35.7%), 후보중앙위원 23명 중 6명(26.1%)만 다시 뽑혔다. 대만 해협과 한반도, 남중국해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시진핑(習近平·69)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3기 군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중앙군사위 재편이 임박했다. 지난해 9월 6일 중국 베이징 국방부 청사에서 시진핑 주석이 린샹양(林向陽·58·상장) 당시 중부 사령관에게 상장 계급장을 수여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린 상장은 올 3월 동부전구 사령관으로 이동해 이달 초 대만 봉쇄 훈련을 지휘했다. 사진 중국중앙방송(CC-TV) 캡처 이미 2019년부터 중국군 5대 군종인 육군·해군·공군·로켓군·전략지원부대와 동·서·남·북·중 5대 전구 지휘관은 상장(上將·대장) 인사로 전원 교체됐다(표). 모두 20대 대의원에 선발돼 중앙군사위 진입을 노린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을 앞둔 지난 1월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겸 중앙군사위 주석이 야전 전투복 차림으로 중부전구 연합작전 지휘센터를 찾아 대좌(대령) 이상 장교들과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신화=연합뉴스 올해 들어 시진핑 주석은 군 활동을 강화했다. 시작은 1월 4일 1호 명령이었다. “과학기술의 변화(變), 전쟁의 변화, 적의 변화를 주시하라”며 “일류 훈련으로 20대의 승리 개막을 맞이하라”고 지시했다. 춘절을 앞두고는 전투복 차림으로 수도 방어를 책임진 중부전구 연합작전 지휘센터를 찾아 “20대 승리”를 다시 명령했다. 3월 7일에는 “사회 안정을 수호하는 업무에서 지방과 협조하며, 각종 돌발 상황을 적시에 처리하라”며 사회 안정에 군 역할을 지시했다. 시 주석이 3연임 금지, 격대지정(隔代指定, 최고 지도자가 차차기를 지정하는 관례), 개인숭배 금지 등 덩샤오핑(鄧小平)의 금기를 하나씩 허무는 배경에 군이 있다. 1927년 마오쩌둥은 “정권은 총구에서 나온다(槍杆子裏面出政權)”고 했다. 이후 중국 최고 지도자는 국가주석도 중공 총서기도 아닌 중앙군사위 주석이었다. 중국군 인사에 밝은 구자선 인천대 중국학술원 상임연구원은 “2015년 말 시진핑은 1985년 덩의 군 개혁 이후 처음으로 대대적인 군 개혁을 단행했다”며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와 확연히 다른 군 장악력을 보여준 증거”라고 말했다. 실제 두 전임 지도자는 군을 장악하지 못했다. 덩샤오핑은 은퇴했던 ‘중국 항모의 아버지’ 류화칭(劉華淸·1916~2011)을 군사위 부주석 겸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임명해 군 실력자 양상쿤(楊尙昆)·양바이빙(楊白氷) 형제로부터 장쩌민을 보호했다. 총서기 취임 2년 뒤에야 군사위 주석에 오른 후진타오는 군사위 숫자를 11명으로 늘려 자기 사람을 진입시켰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시진핑은 달랐다. 집권 즉시 전직 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徐才厚)와 궈보슝(郭伯雄)을 숙청했다. 2017년 부주석 유력 후보 팡펑후이(房峰輝), 장양(張陽) 상장을 날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신중국 수립을 위해 전사한 장군보다 시 주석이 낙마시킨 별의 숫자가 더 많다고 보도했다. 지난 1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겸 중앙군사위 주석이 랴오닝 선양의 북부전구 사령부를 찾아 대좌(대령) 이상 장교들과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리차오밍(李橋銘·61·상장) 북부전구 사령원의 중앙군사위 승진설이 유력하게 나온다. 신화=연합뉴스 20대의 관전 포인트는 군사위 부주석 인사다. 쉬치량(許其亮·72)·장유샤(張又俠·72) 현 부주석의 후임 경합이 치열하다. 시진핑 직계인 푸젠 출신 현 위원인 먀오화(苗華·67·상장) 정치공작부 주임의 승진이 유력하다. 제2포병 출신 현 군사위 위원 장성민(張升民·64·상장) 기율위 서기는 국방부장설이 나온다. 남은 부주석 자리를 놓고 세 가지 전망이 엇갈린다. 첫째, 류전리(劉振立·58·상장) 육군 사령관이다. 전쟁 참전 경력이 강점이다. 1986년 베트남과 량산(兩山) 전투에 최전선 중대장으로 투입됐다. 36차례 공격을 막아냈다. 1등 전공을 받았다. 이후 2등 공훈 한 차례, 3등 공훈을 세 차례 받았다. 2014년 베이징 방어를 맡은 38군(현 82군) 군단장에 발탁됐다. 량궈량(梁國良) 홍콩 군사평론가는 부주석 0순위로 류 상장을 꼽았다. 육군 출신이 맡아온 선례에 적합하다. 19대 중앙위원인 그는 군사위 부주석이 겸직하는 20대 정치국 인선에 적합하다. 시 주석의 군 인맥인 동부전구(과거 난징군구)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 유일한 약점이다. 둘째, 린샹양(林向陽·58·상장) 동부전구 사령관의 발탁이다. 중화권 시사평론가 리옌밍(李燕銘)은 중앙일보에 “대만 정세와 관련 있는 고위 장성이 군사위 부주석에 임명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린 상장은 구 난징군구 출신을 일컫는 ‘동남군’ 대표 주자다. 지난 2015년 항전 승리 70주년 열병식과 2019년 건국 70주년 열병식 지휘를 모두 맡았다. 시 주석의 애장(愛將)이다. 그는 푸젠성 푸칭(福淸) 출신이다. 난징군구 에이스 부대로 대만 선봉 부대인 31집단군 사병에서 사단장, 부군단장에 오른 상륙작전 전문가다. 이후 서부 란저우(蘭州) 군구 47집단군, 군 개편 후 중부전구 82집단군을 거쳐 2019년 동부전구 72집단군까지 3개 집단군 군단장을 역임했다. 전군 내 유일하다. 지난해 9월 상장 승진과 함께 중부전구 사령관에 임명됐다. 지난 3월 SNS 매체 정즈젠(政治見)이 린 상장의 동부전구 사령관 이동을 의도적으로 공개했다. 이달 초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원의 대만 방문 직후 린 상장은 대만 봉쇄 실전 훈련을 주도했다. 부주석 승진을 위한 확실한 실적을 쌓았다. 약점은 당 대회 경력이 없다는 점이다. 20대에서 중앙위원 겸 군사위 위원에 머물고, 21대 정치국원 겸 군사위 부주석으로 기용할 가능성도 있다. 셋째, 연령 제한을 파기하는 리쭤청(李作成·69·상장) 연합참모부 참모장 카드다. 리 참모장은 1979년 베트남 전쟁에서 1급 공훈 표창과 함께 ‘전쟁 영웅’ 칭호를 받았다. 미군과 달리 실전 경험이 없는 중국군의 약점을 커버할 수 있는 인사안이다. 차차기 다크호스로는 젊은 창딩추(常丁求·55·상장) 공군 사령관이 꼽힌다. 구자선 연구원은 “공군이 우대받는 상황에서 전도가 무척 밝다”고 말했다. 둥쥔(董軍·59·상장) 해군 사령관은 미국과 군사 관계를 책임질 차기 국방부장을 놓고 장성민 기율위 서기와 경합 중이다. 발탁 인사도 주목된다. 시 주석은 2012년 웨이펑허, 2017년 장성민 중장을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발탁하며 상장으로 승진시켰다. 시 주석의 복심인 중사오쥔(鍾紹軍·54·중장) 중앙군사위 판공청 주임이 나이와 야전 경력 부족을 딛고 군사위에 진입할지 주목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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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탁월한 영수"…충성경쟁, 묻어버린 칭호도 부활시켰다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집권 중국공산당(중공)의 20차 전국대표대회(20대) 전초전이 지난달로 마무리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신장 등 14개, 올해는 4월 말부터 지난달 30일까지 베이징 등 17개 성이 지방 당 대회를 열고 지도부 교체와 20대 대의원 선출을 마쳤다. 더 높은 자리를 노리는 지방 제후들은 시진핑(習近平·69) 주석을 향해 충성 경쟁을 펼쳤다. 이들의 정치보고에 담긴 20대 핵심 키워드는 마오쩌둥 사후 사라진 ‘영수(領袖)’ 칭호의 부활이었다.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의 국가박물관에서 공산당원들이 당상징 앞에서 입당선서를 외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난달 16일 톈진 당 대회 개막식에서 리훙중(李鴻忠·66) 서기는 “시진핑 총서기는 영명하고 탁월한 영수”라며 모두 7차례 ‘영수’를 외쳤다. 차이치(蔡奇·67) 베이징 서기는 27일 “총서기의 지략, 선견지명과 영수의 풍모”를 말했다. 지난해 11월 류닝(劉寧·60) 광시 서기는 영수를 5차례 언급했다. 마오쩌둥과 화궈펑 이후 폐기됐던 ‘영수’ 칭호가 13개 성 정치보고에 총 36차례 등장했다. 20대에서 확정할 당장(黨章·당의 헌법) 개정안에 ‘시진핑 동지를 영수로 하는 당 중앙’을 넣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제후들은 ‘영수’를 호명함으로서 충성을 증명하고 승진을 공개 구애했다. 덩샤오핑은 ‘영수’ 대신 자신과 마오, 장쩌민을 ‘핵심’으로 불렀다. 시 주석은 지난 2016년 18기 6중전회에서 이 표현을 거머쥐었다. 이듬해 19대 당장에 자신의 ‘핵심’ 지위를 기재했다. 지난 1일 중국 베이징의 국가박물관에 전시 중인 중국공산당 상징을 한 관람객이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영수 호칭은 5년 전 ‘핵심’과 ‘시진핑 사상’ 기재 방식을 따르고 있다. 당시 2016~17년에는 14개 지방이 정치보고 제목에 ‘시진핑’을 명기했다. 이번에는 4개 지역 제목에 ‘영수’가 들어갔다. 시진핑의 정치적 고향인 저장의 위안자쥔(袁家軍) 서기는 ‘시진핑’ 이름 석 자를 총 58차례 호명했다. 반면 한정(韓正) 부총리가 대의원으로 선출된 하이난의 선샤오밍(瀋曉明) 서기는 ‘시진핑’을 18차례 언급하는 데 그쳤다. 시진핑 이름은 31개 지역에서 도합 994차례 들어갔다. 시진핑과 당 중앙 수호를 규정한 ‘양개유호(兩個維護)’는 모두 148차례 언급됐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공산당 정치 체제에서 정치보고는 중요하다. 사상통일의 상징이어서다. 당 이론가들은 정치보고를 “가장 중요한 경국대업(經國大業,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큰 문장)”으로 부른다.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은 “정치보고는 전국대표대회가 선출한 차기 지도부가 향후 5년간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위임하는 문서”라며 “관례에 따르면 당 대회 직전 개최되는 7월 말 중앙당교의 장차관급 간부 연수반 수료식의 당 총서기 연설에 정치보고 초안이 담긴다”고 설명했다. ‘풀이 바람보다 먼저 눕듯이’ 지방 정치보고를 통해 중공의 향후 지침을 미리 엿볼 수 있다는 의미다. 문건에는 사회·경제 정책도 담겼다. 지난달 폐막한 베이징·상하이·저장·지린·후베이 정치보고에 ‘제로 코로나’가 기재된 점도 주목된다. 검사·격리·봉쇄를 통한 제로 코로나 달성을 의미하는 ‘다이내믹 제로(動態淸零·동태청령)’란 용어는 총 36차례 등장했다. 이 용어는 지난해 문건에선 주로 ‘취업자 0명인 가정을 없애겠다’는 의미로 쓰였다. 그런데 올해는 제로 코로나 정책 의미로 ‘다이내믹 제로’가 총 23차례 등장했다. 중국의 ‘코로나 쇄국’은 가을 20대 정치보고에 ‘제로 코로나’ 지침을 어떻게 명기하느냐에 따라 더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 빈부 격차를 줄이고 함께 잘살자는 ‘공동부유’도 비중 있게 다뤘다. 31개 지역 모두 총 185차례 언급했다. 공동부유 시범구로 선정된 저장은 총 34차례 공동부유를 말했다. 광시(15차례)·후베이(10차례)가 뒤를 이었다. 신장과 구이저우는 단 한 차례에 그쳤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차관급 이상인 지방 당 조직의 상무위원 물갈이도 큰 폭으로 이뤄졌다. 새로 선출된 지방 상무위원 392명 중 70년대생(70허우·後)은 68명(17.34%)을 차지했다. 한국 21대 지역구 국회의원 253명 중 70~80년대생 비율인 14.62%보다 많다. 특히 지방 상무위원 중 50년대생은 2.8%인 11명에 불과했다. 40~50년생 24.11%로 고령화가 심한 한국과 대조를 이뤘다. 중국의 권력 승계를 연구해온 이재준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진핑 키드’로 불리는 ‘70허우’ 약진에 대해 “새로운 세대의 유입을 통해 당이 시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논리”라고 말했다. 그는 “고령화된 한국 정치와 차이가 있는 부분이지만, 중공은 오히려 새로운 세대의 발탁이 독재 권력을 강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됐다”며 “과거 마오쩌둥은 화궈펑 등 지방의 젊은 공산당 간부를 중앙 당조직으로 발탁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고, 이들이 문혁 수혜자가 됐다”고 지적했다. 20대를 앞둔 중국의 정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이달 말 20대 정치보고 초안 검토가 시작된다. 이어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퇴직 원로와 현직이 만나 인사안, 정치보고, 당장 수정안 등 모든 현안을 놓고 최종 협의에 나선다. 안치영 원장은 “사실상의 종신제를 노리는 시진핑 세력을 향해 원로 견제 세력이 경제·외교·건강 등 변수를 내세워 ‘조건부 3연임’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74세 고령의 왕치산 국가부주석이 지난달 23일 장쑤에서 대의원에 당선된 점도 주목된다. 19대 중앙위원이 아니면서도 서열 8위 의전을 받는 왕 부주석이 내년 3월 국가부주석에 재선출될 경우 오는 2027년 시 주석의 4연임을 위한 사전 포석이 될 수 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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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 인민일보 1면인데 시진핑 11면…中권력투쟁설 무슨일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6월까지 모든 조치를 취해 경제 회복을 쟁취하라. 경제는 경제만이 아닌, 중대한 정치문제다.” 지난 25일 ‘전국 경제 지표 안정 화상 회의’에서 흘러나온 리커창(李克强·67) 총리의 육성이다. 이날 회의는 31개 성·시 간부와 2844개 현급 간부 등 10만명이 참석해 지난 1962년 마오쩌둥이 소집했던 ‘7000인 대회(확대 중앙공작회의)’에 빗대 ‘10만인 대회’로 불린다. 지난 2020년 2월 시진핑(習近平·69) 주석이 간부 17만명을 화상 소집했던 회의에 이은 두 번째 규모다. 중국공산당(중공) 기관지 인민일보는 14일자 2면에 리 총리의 9000여자 연설을 뒤늦게 실은 데 이어 17일과 18일자 1면에는 시 주석의 기사가 사라지고 서열 2·3·4위인 리커창·리잔수·왕양의 동정만 게재됐다. 당시 17일부터 19일까지 리 총리는 윈난에서 민생과 취업을 챙겼다. SNS를 도배한 리 총리 현장 영상이 인기를 증명했다. 지난 25일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베이징 인민대회당 금색 대청에서 전국 공안계통 표창 수여자와 기념 촬영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마치 ‘시·리 갈등설’을 반박하는 듯 시 주석과 리 총리의 위상 차이가 드러나는 앵글의 사진이 26일자 인민일보 1면에 실렸다. [신화=연합뉴스] ━ 군대 조직은 여전히 시진핑 지지 리 총리의 부상은 외신이 먼저 주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 “시 주석의 정책에 대한 당내 불만이 확산 중”이라며 ‘리커창 대망론’을 띄웠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 “한정 부총리가 리창 상하이 당서기 퇴진을 요구했다”는 당내 갈등을 폭로했다. 상하이 봉쇄로 시진핑 사단이 위기라는 분석을 보탰다. 그러자 시진핑이 한발 뒤로 물러나고 리커창이 대신할 수 있다는 이른바 ‘습강이승(習降李昇)’ 주장이 퍼졌다. ‘제로 코로나’를 고집하는 시 주석의 방역 우선 노선과 리 총리의 경제 우선 정책의 엇박자도 노출됐다. 인민일보는 26일 리 총리의 ‘10만인 대회’를 1·4면에, 경제 위기론을 부정하는 시 주석 노선을 11면에 실었다. 같은날 상반된 입장의 기사와 평론이 실린 것은 이례적이다. 중화권 트위터에선 ‘리의 부상과 시의 퇴조(李上習下·이상습하)’가 이달 2일 내부 수뇌 회의에서 결정됐다는 소문까지 유포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장기화, 봉쇄 일변도 방역에 대한 반발, 미·중 충돌 격화까지 악재가 연이으면서 시·리 갈등설은 권력투쟁설로 확대됐다. 중국 공산주의 체제에선 보기 힘든 권력투쟁설까지 등장했지만 전문가들은 현재까지는 중국 권부의 이상징후가 노출됐다는 관측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중국 엘리트 동향에 정통한 정치 컨설팅 업체 서시우스 그룹(Cercius Group)의 알렉스 페이예트 대표는 리커창 부상을 ‘독이 든 선물’에 비유했다. 그는 중앙일보에 “시 주석이 리 총리에게 업무를 수행할 충분한 공간을 제공한 것”이라며 “리에게 경제를 바로잡거나 아니면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독이 든 선물’을 줬다”고 말했다. 리 총리가 발언권을 얻은 건 향후 코로나19 수습과 경제 회복 여부에 대한 책임까지 지는 걸 전제로 했다는 취지다. 그는 “리의 행보가 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 머문다면, 차기 상무위원(전인대 위원장) 자리와 교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공 20차 당 대회(20대)를 6개월여 앞두고 군대 조직이 여전히 시 주석을 지지하는 만큼 리 총리가 모멘텀을 얻었다는 증거는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단 페이예트 대표는 “시진핑 반대 세력이 자기 파벌에 유리하도록 당내 갈등을 조장하는 선전 활동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의 국제 정치 분석가 N.S. 라이언스도 시진핑 퇴진설은 “권위주의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승리했던 서구의 냉전 경험을 중국에서 다시 말하고 싶은 서구 언론의 판타지”라고 말했다. 홍콩의 류루이사오 시사 평론가는 최근 명보에 “1959년 루산(廬山) 회의의 교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반좌(反左)는 곧 반우(反右)로 돌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루산 회의는 군대 실권자 펑더화이 국방부장이 대약진 운동을 마오쩌둥의 오류라며 비판했다가 반당 집단으로 몰려 숙청당한 사건이다. ━ “배우 내세우는 권력의 극장일 뿐” 시 주석의 세 번째 임기를 확정할 중공 20대에 참가할 지방 대의원 선출이 코로나19로 인해 19대보다 늦어지고 있다. 5년 전 5월 30일까지 15개 지방의 대의원 선출이 완료됐던 데 반해 올해 완료된 곳은 6곳에 불과하다. 광시·구이저우·하이난·헤이룽장·광둥·칭하이가 선출을 끝냈고, 쓰촨·간쑤·산시·충칭·산둥 5곳은 30일 현재 지방 당대회를 열고 대의원을 뽑고 있다. 우궈광(吳國光) 캐나다 빅토리아대 교수는 “중공 당대회는 지도자가 정당성을 확인받기 위해 배우를 내세워 연기하는 ‘권력의 극장’일 뿐”이라며 “규칙을 제정하거나 누가 규칙을 제정할지 결정하는 일반적 의미의 의회가 아니다”고 분석했다(『권력의 극장』 홍콩중문대, 2018). 1986~89년 자오쯔양 당시 총서기의 정치개혁 실무기구였던 ‘중앙정치체제개혁연구실’의 연구원을 역임한 우 교수는 “민주주의는 선거 절차의 확실성과 투표 결과의 불확실성이 특징인데 반해, 중공식 정치는 절차와 과정의 불확실성을 이용해 결과의 확실성을 보장받는다”며 민주주의 선거와 중국 선거의 차이를 설명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이번 상황을 놓고 20대에서 마오쩌둥과 버금가는 ‘영수(領袖)’ 칭호와 3연임을 원하는 시진핑 세력과 이것까지는 막고 싶은 다른 정치 파벌이 당대회 폐막일까지 막후에서 치열하게 경합과 협상, 타협을 펼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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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中 전기차 굴기…배후엔 700만대 실시간 ‘빅데이터’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완충된 배터리로 바꿔주는 환전소(換電站)가 베이징에만 60곳이 넘습니다.” 16일 찾아간 베이징의 가족형 쇼핑몰인 솔라나(藍色江灣)의 전기차 매장 직원의 말이다. 가격의 20~25%를 차지하는 배터리를 임대 방식으로도 판다며 1억원 대 가격 부담을 낮출 수 있다고 권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이 브랜드는 최근 매달 1만 대 가까이 팔린다고 했다. 매장 실적은 밝히길 꺼렸다. 중국 공업정보화부가 베이징이공대에 위탁해 구축 운영중인 ‘신에너지차 국가 모니터링(監測·감측) 및 관리 플랫폼’ 화면이다. 지난 1월 21일 화면으로 모니터링하는 전기차 대수가 700만40대로 표기되어 있다. [사진=전동차량국가공정연구센터 웨이신] ‘신에너지 자동차 국가 모니터링 및 동력 배터리 회수이용 원천 종합 관리 플랫폼’ 화면.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 10월 29일까지 중국내 차량 배터리 정보가 담겨있다. 총 1062만5698팩으로 한국 배터리 업체 주력 제품인 삼원계 배터리가 384만팩, 인산철원료의 이원계 배터리가 374만개로 표기되어 있다. [사진=전동차량국가공정연구센터 웨이신] 16일 베이징의 가족형 쇼핑몰 솔라나의 한 중국 전기차 브랜드 매장에서 고객들이 전시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신경진 기자 이곳 솔라나에만 지난 1년 사이에 전기차 매장이 9곳 생겼다. 패션 매장 등을 중국 토종 웨이라이(蔚來·니오), 리샹(理想·리오토), 샤오펑(小鵬·엑스펑), 지후(極狐·아크폭스), 가오허(高合·하이파이)가 대체했다. 화웨이 전자 매장도 전기차 아이토(AITO)를 전시·판매한다. 볼보를 인수한 지리(吉利)는 지커(Zeeker) 팝업 매장을 운영한다. 외국계는 폭스바겐과 포드 두 곳뿐이다. 최근 기름값이 치솟자 가족용 SUV 교체 수요가 많다며 월 충전비 2만원이 영업 포인트라고 자랑했다. 지하 주차장에는 브랜드별로 마련된 충전 부스와 시승 차량이 곳곳에 보였다. 전문 스타트업이 운영하는 인근 범용 충전소도 쇼핑객 차량을 맞아 성업 중이었다. 16일 베이징의 쇼핑몰인 솔라나에 입점한 중국 토종 전기차 브랜드 매장들. 이곳 쇼핑몰에만 지난 한 해 동안 전기차 매장이 9곳 들어왔을 정도로 중국에선 전기차가 급성장하고 있다. 신경진 기자 중국의 전기차 굴기에 가속도가 붙었다. “가솔린은 건너 뛰고 전기차로 앞서가자” 분위기다. 마치 한국의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슬로건이 연상될 정도다. 은종학 국민대 중국학부 교수는 “전기차는 부품이 적은 대신 자율주행·멤버십·콘텐트로 연관 산업 확장성이 풍부한 배터리·충전 기반의 인프라 산업”이라며 “거대한 시스템이 된 신에너지차 산업을 탄소 중립과 결부시켜 범국가적으로 전략 육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21년 상위 10개국 전기차 판매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중국의 전기차 굴기는 숫자가 말해준다.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332만 8000여 대, 세계 50%를 차지했다. 2위 독일의 69만대, 3위 미국 67만대의 다섯 배에 육박한다(표). 그럼에도 공안부에 등록된 차량 4억200만대 가운데 신에너지 차량은 891만5000대로 2.9%에 불과하다. 올 1분기 신규 차량의 16.91%인 111만 대가 등록했다. 확장력이 아직 엄청나다는 의미다. 중국 전기차 산업의 숨겨진 무기는 전 중국을 주행 중인 700만대가 실시간으로 쏟아내는 빅데이터다. 이를 수집·저장·분석하는 플랫폼을 전기차 보조금과 연계시켜 자율주행과 보험 등 미래 산업용 데이터로 가공하고 있다. 시작은 국가가 나섰다. 지난 2017년 국무원(정부) 공업정보화부가 베이징이공대에 ‘신에너지차 국가 모니터링(監測·감측) 및 관리 플랫폼’과 ‘동력 배터리 국가 원천 관리 플랫폼’ 구축을 위탁했다. 소개 영상은 “차량 상태와 지리정보(GPS) 등 운행 데이터를 실시간 채집·저장·분석한다”며 “세계적으로 최대 규모인 신에너지차 빅데이터 플랫폼”이라고 설명한다. 또 “차량 배터리의 생산·판매·사용·보존폐기·회수이용 등 모든 주기 정보를 관리해, 생산 정보를 조사하고 유통을 추적할 수 있으며 단계별로 나눠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고 했다. 배터리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국가가 실시간으로 관리해 오염을 막고 재활용을 용이하게 했다는 취지다. 신에너지차 국가 모니터링 및 관리 플랫폼 등록 차량 대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중국 신에너지차 월간 주행거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플랫폼 관리 센터의 주임인 왕전포(王震坡) 베이징이공대 교수는 “신에너지차는 국가의 중점 발전 산업”으로 “플랫폼은 사고 예방, 보조금 산정, 산업 발전을 위한 빅데이터 확보 기능을 한다”고 과거 한 포럼에서 말했다. 이 센터가 등록 차량 대수가 700만 대를 돌파한 올 1월 21일 공개한 화면에는 중국 내 전기 차량의 누적 주행 거리 2235억㎞, 누적 탄소 감축 총량 8734만t이 나와 있다. 전기차 기업 309개사가 만든 7017개 모델이 주행 중이며, 하루 416만대가 7250만㎞를 주행했다고 집계했다. 지구 적도를 1800여회 돌고 있는 셈이다. ━ 경찰도 전기차 정보 실시간 공유 베이징이공대가 수집하는 정보는 중국 경찰도 공유한다. 장량웨이(姜良維) 공안부 교통관리과학연구소 부주임은 현재 공안부도 자체적으로 베이징과 우시(無錫)에 신에너지차 예방제어(防控), 정보공유 양대 플랫폼을 운영한다며 “차량모니터링, 운행경로, 위험분석, 도로 상황, 고장신고, 특별관리, 불법조사 용도”라고 학술지 『도로교통관리』(2022년 2호)에 발표했다. 경찰이 모든 전기차의 운행 정보를 자체 감시 플랫폼에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 전기차 생태계는 산업적으로도 이미 한국을 넘어섰다. 전기차 배터리 세계 1위 닝더스다이(寧德時代·CATL)는 15일 인도네시아에 39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말 양산을 시작할 독일 공장에 이어 두 번째 해외 공장을 세워 해외 공급망을 강화하겠다는 복안이다. CATL은 가성비와 안전성이 뛰어난 이원계(인산+철) 배터리를 내세워 한국 업체의 주력인 삼원계(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은종학 교수는 “중국이 배터리·전기차 산업에서 기술과 시스템을 고도화하면서 서구와 경로가 다른 ‘판을 뒤엎는 혁신(disruptive innovation)’까지도 도모하고 있다”며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 전략을 다차원적으로 설계할 때”라고 말했다. 베이징=신경진특파원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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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기회보다 위기…중국 “제2의 러시아 아니다”
12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타이베이 근교 린커우의 난스푸 실사격 훈련장을 찾아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인민해방군 대표단 회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은 서방의 강력한 대응과 우크라이나 국민의 맹렬한 저항에 놀라 불안에 빠졌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분석이다. 지난 8일 하원 청문회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후 러시아 상황을 보는 베이징의 위기감을 꼬집었다. 침공 17일차였던 지난 12일 후시진(胡錫進) 전 환구시보 편집인은 SNS에 “중국의 대미국·대서방 정책이 ‘러시아화’ 되어선 안 된다”고 썼다. 중국은 제2의 러시아가 아니라는 취지로 “친구(러시아)를 지키고, (미국·서방과의) 적대감을 풀고, 자기 일을 잘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대만 수복을 노리는 중국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반면교사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참전하지 않은 점만 중국에 기회 요인일 뿐 위기 요인 일색이다. 전가림 호서대 교수는 대만이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가능성은 적다며 네 가지 이유를 꼽았다. 첫째, 중국은 1989년 천안문 유혈 진압 이후 국제 제재의 위력을 체험했다. 2000년 이후 에너지 수출로 급부상한 러시아와 달리 개혁개방으로 성장한 중국은 제재에 취약하다. 둘째, 군사력 측면에서 전쟁 경험, 신무기 개발 능력 모두 러시아에 못 미친다. 셋째, 정치적 요인이다. 중국 내부의 시선을 대만 통일로 돌려야 할 만큼 최고 지도자의 정적(政敵)이 없고 정치적 모멘텀이 약하다. 1958년 진먼다오(金門島) 포격전은 마오쩌둥의 정치적 위기 시점과 겹친다. 넷째, 섣부른 무력 사용은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포위망에 정당성을 줄 수 있다. ━ 대만해협 전쟁은 이미 시작? 내부 계산과 달리 중국의 레토릭은 험악해지는 추세다. 지난 5일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올해 정부업무보고를 낭독하며 “확고하고 민첩하게 군사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군사투쟁’은 러시아의 ‘특별 군사 행동’과 일맥상통한 표현이다. 해방군이 대만에서 취할 군사행동이라고 홍콩 명보가 지난 9일 지적했다. ‘군사투쟁’은 지난해 11월 중국공산당(중공)의 세 번째 역사결의에 처음 등장했다. “‘대만독립’ 분열 행위를 두려워 떨게 하라”며 총구의 방향을 명확히 했다. 리 총리는 또 “신시대 당의 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총체적 방략을 관철해야 한다”며 “양안 동포는 민족 부흥의 영광스런 위업을 마음을 합쳐 이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총체적 방략’ 역시 세 번째 역사결의에 나온 용어다. 대만 통일을 위한 마스터 플랜이 곧 나온다는 예고인 셈이다. 지난 2020년 11월 대만 타이중(臺中) 지역에서 진행된 군사훈련 기간 M60 탱크 대열이 시가지를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대만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12일 대만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방탄 헬멧과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타이베이 외곽 린커우(林口) 실탄 사격장을 시찰했다. 새로 도입한 예비군 14일 동원 훈련 실태를 점검했다. “우크라이나 상황은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서 국제 연대·지원 외에도 전 국민의 단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재차 증명했다”고 했다. 차이 총통의 발언은 『역사의 종말』의 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가 우크라이나 국민과 달리 대만인의 저항 의지가 우려된다는 발언이 배경이다. 후쿠야마 교수는 지난달 27일 한 포럼에 대만의 징병제 폐지를 우려하며 “대만은 미국이 구해줄 거라 기대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차이 총통은 중국의 심리전을 경고했다. 지난달 25일 “대만해협이라는 천연요새와 지정학과 전략적 위상을 가진 대만은 우크라이나와 다르다”며 “중국의 인지작전(Cognitive warfare) 방어를 강화해 외부 세력과 내부 협력자가 우크라이나 비상사태를 이용해 공황 조성을 위해 가짜정보를 조작해 대만 사회의 민심과 사기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의 인지작전 수행 모델.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중, 통일전선·인지작전 강화할 듯 우크라이나 지도자와 국민이 보여준 격렬한 저항과 러시아의 전격전 실패를 목격한 중국은 군사행동보다는 통일전선과 선전강화에 주력할 공산이 크다. 대만은 지난해 국방백서에서 “중공은 회색지대 위협으로 전쟁 없이 대만 탈환을 도모할 것”을 경고했다. 회색지대 전술의 하나로 내부 혼란을 조성해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한 인지작전을 네 가지 형태로 구분했다. 〈표 참조〉 중국의 관영 매체를 활용한 해외 선전모델, 댓글 부대를 동원한 핑크모델, 특정 콘텐트나 기사를 농장에서 작물을 기르듯 퍼뜨리는 농장모델, 현지 협력자를 포섭해 이용하는 협력모델 네 가지다. 선보양(沈伯洋) 타이베이대 교수는 지난 2020년 대만 총통 선거 당시 인터넷과 SNS를 분석해 실증적으로 증명했다. 통일전선도 업그레이드했다. 전가림 교수는 “전통적으로 중국은 변방의 소수민족 지역에 한족을 대거 이주시켜 장악하는 방식에 능하다”며 인구를 활용한 통전술을 지적했다. 홍콩의 중국화에는 1997년 반환 당시 649만 명이던 인구가 중국인 이주로 760만 명 넘게 급증하면서 홍콩의 정체성이 바뀌었고 대만에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대만해협 위기가 한반도에 끼칠 영향은 어떨까. 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전 해군대령)은 “대만해협에서 만약 군사 충돌이 벌어질 경우 한반도로 불똥이 튈 가능성은 북한에 달렸다”며 “북한은 6·25 당시 미 7함대 학습효과로 1958년 진먼다오 포격전과 1996년 대만 미사일 위기 당시 도발을 자제한 선례가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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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한·중은 이사 갈 수 없는 가까운 이웃”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 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입장하는 대한민국 선수단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 한·중은 이사 갈 수 없는 가까운 이웃이다.” 중국의 공공외교를 진두지휘하는 린쑹톈(林松添·62) 중국 인민대외우호협회 회장은 한·중의 지리적 관계를 강조했다. 올해로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여론 악화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지난달 28일 베이징 협회 본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다. 린 회장은 쑨원(孫文)과 저우언라이(周恩來)의 부인인 쑹칭링(宋慶齡), 덩잉차오(鄧穎超)가 명예회장을 맡았던 이 협회의 10대 회장이다. 리셴녠(李先念) 전 국가주석의 딸 리샤오린(李小林)이 전임 회장이었다. 린 회장은 시진핑 주석이 정치적 기반을 닦은 푸젠 출신의 장관급 외교통이다. 린 회장은 한국 내 반중(反中) 감정의 원인으로 코로나와 미국 요인을 들었다. 2시간여 동안 린 회장은 직·간접적으로 미국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미·중은 서로 좋아할 수도, 싸울 수도, 헤어질 수도 없다는 ‘삼불론’도 펼쳤다. 중국 보다는 미국 쪽에서 원인을 찾는 그의 입장은 한·중 관계를 미국과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중국 내부의 시각을 보여준다. 한국의 한 중국 전문가는 “한·중 관계를 국제 질서의 종속 변수로 보는 현재 중국 당국자의 보편적 입장”이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28일 베이징 천안문 인근의 중국 인민대외우호협회 본관 접견실에서 린쑹톈 인민대외우호협회장이 중앙일보 인터뷰에 답변하고 있다. [중앙포토] 최근 몇 년간 한국 젊은 세대의 대중국 호감도가 악화됐다. 한·중 공동의 노력이 시급하다. “한·중 공동의 우려라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상호 이해와 우호의 기초가 약하다. 코로나19가 정상적인 교류까지 막은 탓이 크다. 둘째 미국이 패권적 지위와 기득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지정학적 정치와 이념 충돌을 선동하고 있다. 뉴미디어 영향을 받는 한국 젊은이의 오해가 생겼다.” 중국이 생각하는 해법은? “여론 악화는 일시적 현상이다. 대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동양이 뜨고 서양은 저무는(東昇西降·동승서강) 추세는 의지로 바꿀 수 없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다. 둘째, 기회를 잡고 한·중이 함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수교 30주년을 기회로 205쌍의 양국 우호 도시와 기업·싱크탱크·언론매체, 무엇보다 청소년 교류를 준비하고 있다.” 곧 한국 대선이다. 민감한 문제지만 한국 차기 정부에 중국이 바라는 점은? “한국 대선은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말할 권리가 없다. 중국은 한국 국민의 정확한 선택을 존중한다. 새로운 정부는 협력과 발전의 동반자로 중국을 우선 할 것이며, 믿음직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2018년 이후 북·중 관계가 좋아졌다. 중국이 남북, 북미 관계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용의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것은 남북과 동북아, 세계 각국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 공동의 책임이기도 하다. 아시아는 우리 고향이다. 평화·조화·화목·공영을 지켜 모두가 좋은 나날을 지내도록 가꿔야 한다.” 올해에도 미·중 관계가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나? 미·중 관계를 묻자 린 회장은 늑대와 양치기 우화부터 꺼냈다.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며 “그의 말을 듣고도 행실을 다시 살펴본다(聽其言觀其行)”는 공자의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미·중 모두 서로를 버릴 수는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미국을 바라보는 중국 지도층의 인식으로 들렸다. “미국의 잘못된 인식과 전략적 오판 탓이 크다. 미국이 국가 부강, 민족 부흥, 국민 부유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미·중 관계는 좋아질 수 없다. 미·중은 전략핵을 보유했다. 후과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미·중은 싸울 수 없다. 미국이 중국과 ‘디커플링’을 시도하지만 이미 ‘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내가 있는’ 이익 공동체 상태다. 미국이 금융·첨단기술·인재에서 앞서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버릴 수 없다. 이 때문에 미·중은 아직 헤어질 수 없다. 결국 미·중은 서로를 인정하고 평등하게 잘 지낼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화상 정상회담 이야기가 있었다. “한·중 양국 정상은 코로나 이후 여러 차례 전화와 서신 등을 통해 전략적 소통을 유지했다. 정상 외교는 양국 관계에 항로와 방향을 정하고, 청사진을 그리는 중요한 작용을 한다. 중국은 정의용 외교장관이 부임 후 첫 방문지로 중국을 찾은 점을 중시한다.” 베이징 겨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이 주목할 부분은?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의 동계 스포츠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3억 4600만명이 빙설 스포츠를 즐기게 됐다. 거대한 소비 시장과 산업 공간이 생겼다. 겨울 스포츠가 한국과 중국에 거대한 비즈니스 기회를 줄 것이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70주년인 2023년은 한국에 사실상 미국의 해”라며 “수교 30주년인 올해가 한·중 관계를 복원할 마지막 기회임을 중국이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월 11일 베이징 중앙당교에서 시작된 2022년 성·부(장관)급 주요간부 토론회에 참석한 린쑹톈(사진 원 안) 중국 인민대외우호협회 회장이 시진핑 주석의 연설을 듣고 있다. [CC-TV 캡처] ☞린쑹톈 회장=1954년 설립된 중국 최대 민간 우호 협회인 인민대외우호협회의 10대 회장이다. 지난 2020년 4월 취임했다. 외교부 아프리카 국장, 라이베리아·말라위·남아프리카 대사를 역임했다. 지난 1월 초 시진핑 주석이 참석해 올해 중국의 시정 방침을 공유한 중앙 당교 성·부(장관)급 주요간부 토론회에 참석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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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국대선 간섭' 유감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1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접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해 11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 후보실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와 면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한국 대통령 후보는 선거 기간 중국과 관련한 민감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길 희망한다.” 지난 20일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및 베이징 동계 올림픽 기념 국제 학술대회’에서 추궈훙(邱國洪) 전 주한 중국대사가 한 말이다. 현직이 아닌 전직이라지만 이웃나라 대선에 대해 얘기하는 자체가 민감한 일이다. 그는 “일부 한국 정치가의 언행이 중국 관련 민감한 문제를 다뤘다”며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 뒤 좋은 한·중 관계의 시작을 위해 기초를 잘 닦자”고 말했다. ‘일부 한국 정치가’라는 표현 자체는 더욱 예민할 수 있다. 이에 앞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해 연말 주한 미 상공회의소를 찾은 자리에서 “한국 국민, 특히 청년들 대부분은 중국을 싫어한다”고 거론해 여야 간 충돌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한국 20대 대통령 선거 중국 관련 주요 발언 일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 측 인사들이 한국 대선을 놓고 민감한 얘기를 꺼내고 있다. 지난해 국민의힘과 중국 측의 공방이 출발점이다. 지난해 7월 12일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가 미국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중국을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같은 달 15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중국 레이더를 거론했다. 그러자 중국은 싱하이밍(邢海明) 대사와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이 직접 나서 항의했다. 지난 20일 화상으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학술 대회’에서 추궈훙 전 주한 중국대사는 “미국은 한국에 줄서기를 요구하겠지만 중국은 한국에 그런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ZOOM 캡처] ━ “한국 대선,북풍 대신 중풍” 당시 차오스궁(曹世功) 중국 아·태학회 위원은 “한국 보수 세력이 악랄한 역풍, 즉 중국 바람(涉華逆風·섭화역풍)을 일으켰다”며 “미국 버락 오바마와 특히 트럼프와 바이든 경선 수법을 닮았다”고 비난했다. 관변 중국국제문제연구기금회(CFIS)가 운영하는 ‘국제망’ 기고에서다. 미 대선의 단골 이슈인 ‘중풍(중국 때리기)’이 북풍을 대신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만약 보수세력이 집권한다면 한·중 관계에 어려움이 더 많아질 수 있지만, 결국 양국 공동의 이익에 기초한 민심이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가 ‘중풍’을 다시 주장했다. 류룽룽(劉榮榮) 산둥대 교수와 쑨루(孫茹)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CICIR) 세계정치연구소 부소장이 학술지 『평화와 발전』 최신호에 공동 게재한 ‘미·중 전략 경쟁 배경 아래 한국의 대미 정책 조정’이란 논문에서다. 류 교수와 쑨 부소장은 “한국이 대선 시즌에 들어서면서 여야의 일상적이던 ‘북풍(北風)’은 불지 않고 반대로 ‘중풍(中風ㆍ중국 관련 이슈)’이 분다”고 주장했다. 류 교수는 그러면서 “한국 집권당의 정치적 계보(뿌리)에 따라 미·중 사이에 기울기가 큰 차이가 있다”며 “한국 보수 세력은 이념과 가치관의 영향을 크게 받고 친미 정도가 높으며 중국을 혐오·적대시하는 정서를 공유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진보 세력은 이념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고, 미·중에 대한 인식과 입장이 더 객관적이며 자국의 전략적 자주를 더 중시하고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인터뷰를 인용했다. ━ “친미ㆍ친중 꼬리표 국민분열 노린 음모” 뤼차오(呂超) 랴오닝대 교수는 지난 20일 학술대회에서 “한국 정부가 미·중 대립 속에서 ‘한쪽을 선택하지 않는’ 태도는 한국의 현재 국정과 이익에 부합하고, 중국의 이해와 긍정을 얻었다”며 “한국이 정파 별로 ‘친미’ ‘친중’ 꼬리표를 고의로 붙이는 것 자체가 국민 분열을 부추기려는 음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 대선 국면에서 중국 측 발언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부정적인 한국의 대중 여론을 고려할 때 주권과 내정 불간섭 원칙에 위배될 수 있는 중국 인사의 부적절한 발언은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선 후보 역시 국내 정치를 외교로 연장하지 않으면서 국가 정체성과 국익을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한·미 공동성명후 격상된 한ㆍ중 외교 중국이 한국 대선에 민감한 또 다른 이유엔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결국 미국에 기울었다는 ‘의심’이 자리한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지난해 5월 21일 워싱턴 한·미 공동성명이 4월 미·일 공동성명보다 중국에 끼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평가가 공유되고 있다. 당시 한·미 공동성명은 영문 A4 용지 7장(1만7725자)으로 미·일 성명의 5장(1만4285자)보다 많았다. 부속 문건을 합하면 3만4000여 자와 2만4000여 자로 더 큰 차이를 보였다. 내용에서도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비롯해 기후·글로벌 보건·5G·6G·반도체·공급망 회복력 등 글로벌 이슈를 빠짐없이 다뤘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민주적 가치와 인권 협력까지 담았다. 미·일 성명에 없는 내용이다. 쑨 부소장은 “한국이 미국과 경제·과학기술·가치관·안보·외교 등 핵심 영역에서 협력을 강화하면서 미·중 전략 경쟁의 중요 영역에 더 많이 개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후 중국은 한·중 외교를 격상했다. 지난 11월 16일 미·중 화상 정상회담 바로 다음 날 우장하오(吳江浩) 부장조리(차관보)가 장하성 대사를 만나 베이징 주재 대사 중 처음으로 미·중 회담을 백브리핑했다. 25일에는 양제츠(楊潔篪) 정치국위원이 장 대사를 댜오위타이(釣魚臺)로 불러 접견했다. 12월 2일에는 톈진(天津)에서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과 양제츠 회담이, 23일에는 최종건 외교차관과 러위청(樂玉成) 외교부 상무부부장(차관) 간 전략대화가 이어졌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가장 빈번한 고위급 연쇄 접촉이었다. 중국은 이 기간 사드 배치 후 처음으로 중국 내 한국 영화 상영을 허용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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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1200만 쑤저우시에 71년생 1인자…中 정치권 ‘70허우 전성시대’
인구 1200만 명의 대도시 쑤저우시의 랜드마크인 ‘동방의 문’ 빌딩. 진지후(金鷄湖) 호수변에서 쑤저우 공업단지를 마주하고 서있다. 신경진 기자 “쑤저우(蘇州)시 지역 총생산액(GRDP)이 역사적인 2조 위안(약 376조원) 단계에 올라선 시점에 중책을 맡았다. 1200만 쑤저우 시민이자 심부름꾼이 되겠다.” 지난달 30일 쑤저우시 권력 서열 1위인 당 서기에 임명된 1971년생 차오루바오(曹路寶·50)의 첫마디이다. 쑤저우는 경제 규모로 상하이·베이징·선전·충칭·광저우를 잇는 6대 도시다. 지난해 GRDP 2조 위안 클럽에 가입했다.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의 107조원(2019년)과 비교해 경제 3.5배, 인구 3.7배의 대도시가 젊은 수장을 맞았다. 지난달 28일자 중국공산당 장쑤성 위원회 기관지 신화일보 2면에 전날 폐막한 당 대회에서 선출된 중공장쑤성 14기 위원회 서기, 부서기, 상무위원회 위원의 사진과 인적사항이 실려있다. 차오루바오(오른쪽 맨 아래) 쑤저우시 서기를 포함해 3명의 70년대생 정치인이 포함됐다. [신화일보 캡처] 차오 서기는 장쑤성(江蘇省) 상무위원 12인에도 선출됐다. 전달 27일 폐막한 중공(중국공산당) 장쑤성 당 대회 선거에서다. 성급 상무위원회는 향후 5년간 지방 내 최고 권력기구다.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의 7인제와 달리 지방은 12~15인제로 굴러간다. 중공은 내년 가을 20차 당 대회(20대)를 앞두고 18일까지 신장(新疆)·산시(山西)·허난(河南)·안후이(安徽)·장시(江西)·장쑤·후난(湖南)·허베이(河北)·광시(廣西)·푸젠(福建)·네이멍구(內蒙古)·윈난(雲南)·시짱(西藏)·랴오닝(遼寧) 등 14개 지방 당 대회를 완료했다. 31개 지방과 군·무장경찰·국유기업 등 총 40개 선거구 중 3분의 1을 넘었다. ━ 14개성 상무위원도 70년대생 약진 14개 당 대회는 총 181명의 상무위원을 선출했다. 중앙의 부부장(차관)급이다. 70년대생(70허우·後)이 29명(16.02%)을 차지하며 약진했다. 50허우는 5명(2.76%)에 불과하다. 한국의 586세대인 60년대생은 147명(81.22%)으로 일단은 다수다. 50·60·70년대생 비율은 3:81:16이다. 이 비율이 규정이라면 내년 20대에 참석할 당 대표 2300여 명 중 ‘70허우’는 368명 가까이 늘어난다. 70허우는 3연임이 확실시되는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의 유력한 후계 그룹이다. 후계 구도에서 86세대를 ‘스킵(건너뛰기)’하고 70허우로 직행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70년대생 건너뛰기와 대조를 이룬다. 한국에선 1985년생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와 81년생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 등장으로 586과 MZ(밀레니얼, Z세대) 사이에 낀 70년대생 소외 현상이 퍼지는 분위기다. 따라서 중국 70허우는 20대 중앙·후보중앙위원에 대거 진입할 전망이다. 시진핑도 44살이던 1997년 푸젠 부서기로 15대에 후보중앙위원에 선출됐다. 대신 득표 순위는 최하위 151위였다. 이후 15년간 16대 중앙위원→17대 상무위원→18대 총서기로 대권 레이스를 달렸다. 반면 지난 19대는 세대교체를 무시했다. 70허우 후보위원 2명에 그쳤다. 중국 70년대생 신임 지방 상무위원 겸 대도기 당서기.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 금융전문가들 대거 포진 두드러져 70허우 상무위원 29명 중 11명이 주요 도시 일인자에 전진 배치됐다. 〈표 참조〉 수백만 인구에 작은 국가 GDP에 버금가는 도시를 맡겼다. 단련이 목적이다. 지난 2017년 11월 당시 난징시 상무위원 겸 선전부장이던 차오루바오 현 쑤저우 당서기가 국제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웨이보 캡처] 70허우도 화답했다. 차오루바오는 1일 쑤저우시 이론학습센터에서 중공 19기 6중전회 정신 학습대회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다음날에는 시 당위(黨委)를 소집, 리스크 방지와 바텀 라인 사수 방안을 논의했다. 경제위기 등 잠복한 위기부터 틀어막았다. 9일에는 타이후(太湖)를 찾아 생태 보호를 시찰했다. 12일에는 구도심을 찾았다.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쑤저우·항저우”로 유명한 옛 고성(古城)의 보호와 재생을 지시했다. 차오 서기는 과거 난징(南京) 구청장 근무 당시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건설하며 구도심 재생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쑤저우에서 자기 색깔을 드러내려는 행보다. “누각 한 층을 더 올라(更上一層樓)” 가겠다는 의지의 표시이기도 하다. 70허우는 지방의 금융 위기를 막는 파수꾼의 주력이기도 하다. 네이멍구 몽골족 자치구 황즈창(黃志强·51) 금융부주석은 중국은행 랴오닝성분행장, 수출신용보험공사 부총경리, 중신집단 부총경리 등을 역임한 금융통이다. 허베이 최연소 상무위원인 거하이자오(葛海蛟·50)와 18일 랴오닝성 상무위원에 선출된 장리린(張立林·50)도 금융부성장이다. 여성도 있다. 궈닝닝(郭寧寧·51) 푸젠성 금융부성장은 중국농업은행 부행장을 거쳐 2018년 푸젠에 임명됐다. 지난 11월 30일 폐막한 시짱(티베트) 짱족 자치구 당 대회 폐막식을 보도한 당 기관진 12월 1일자 서장일보 1면. 70년대생 4명을 포함한 15명의 상무위원이 시진핑 주석 사진과 중공 역대 당 총서기 사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오른쪽 아래) [서장일보 캡처] ━ 충성스러운 젊은 간부 양성하라 최연소 70허우는 1976년생 런웨이(任維·45) 시짱 자치구 부주석이다. 칭화대에서 화력발전공학을 전공한 런 부주석은 중국의 한전격인궈뎬(國電)을 거쳐 다탕(大唐)그룹 부총경리를 역임했다. 전력방(幇)으로 분류된다. 75년생 장훙원(張紅文·46) 안후이(安徽)성 부성장, 이리자티 아이허마이티장(46) 신장 총공회(總工會·노동조합) 주석도 있다. 칠상팔하(67세 유임 68세 은퇴) 규정을 따르면 이들은 2042년 24대까지 권력 핵심을 노릴 수 있다. 14개성 신임 지방 상무위원 연령 분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중공은 지난달 6중전회에서 통과된 ‘역사결의’에서 당에 대한 절대 충성을 후계 기준으로 제시했다. 천시(陳希) 중앙조직부장은 지난 1일 인민일보에 “덕과 재능을 모두 갖추고, 충성스럽고 깨끗하며 과업을 감당할 높은 수준의 전문화된 간부, 특히 우수한 젊은 간부를 배양·선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계의 3대 요건으로 충성·청렴·능력을 제시했다. 또, 간부의 성장 경로를 최적화할 것과 과감한 임용, 엄격한 감독을 요구했다. 차오루바오 등 11인의 시 서기가 탄생한 배경이다. 당성(黨性)과 전문성을 모두 요구했던 마오쩌둥 시대의 ‘우홍우전(又紅又專)’ 인사 원칙이 부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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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김일성 “약속한 바와갓치 중국인민군 출동 절대로 필요”
올해 6월 개관한 베이징 중국공산당 역사전람관 2층의 6·25 한국전쟁 코너에 “환영 중국인민지원군 영광 귀국, 경축 항미원조 투쟁의 위대 승리”라는 구호와 “개선문” 가로 표지가 보인다. “정전=승리”라는 이미지를 연출했다. 신경진 기자 베이징 ‘중국공산당 역사전람관’ 2층에 전시 중인 김일성 친필 편지다. 1950년 10월 1일 북진하는 유엔군에 쫓겨 절박하게 마오쩌둥에게 군대 개입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신경진 기자 베이징 ‘중국공산당 역사전람관’ 2층에 전시 중인 김일성 친필 편지다. 1950년 10월 1일 북진하는 유엔군에 쫓겨 절박하게 마오쩌둥에게 군대 개입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약속한 바와갓치(원문 그대로) 중국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로 필요하게 됩니다(밑줄)”라며 사전 참전 약속을 암시한 문구가 눈에 띈다. 신경진 기자 “존경하는 모택동 동지 앞…적군이 38도선 이북을 침공하게 될 때에는 약속한 바와갓치(원문 그대로) 중국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로 필요하게 됩니다.” 13일 찾아간 베이징 ‘중국공산당 역사전람관’(이하 역사관) 2층에 전시된 김일성 친필 편지의 문구다. 1950년 10월 1일 마오쩌둥(毛澤東)에게 썼다. 한글 원본과 중국어 번역본이 6·25 한국전쟁의 중국식 명칭인 ‘항미원조전쟁’ 유물 가장 앞자리를 차지했다. 단둥(丹東) 항미원조기념관에 전시하던 편지가 수도 베이징에 입성했다. ‘1급 문물’ 표식이 없어 진품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내년 3연임을 노리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왜 김일성 편지를 베이징에 공들여 새로 지은 중공(중국공산당) 100년 역사관 한가운데 전시했을까?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김일성 편지를 베이징 역사관에 전시한 것은 단둥과 차원을 달리한다”며 “미·중 전략 대결 국면에서 한·미동맹에 맞서 북·중 연대를 강화하고, 세계 전략을 북한과 함께하겠다는 의도”로 분석했다. 김일성 편지는 개혁개방과 미·중, 한·중 수교 이후 잊혔던 한국전쟁이 중공 역사 속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증거다. 지난 6월 당사문헌연구원이 출판한 어린이용 만화『중국 공산당역사』도 “북한노동당이 중국에 출병 지원을 요청했다”고 그렸다. 한국전쟁 개입을 김일성 친필 편지로 정당화하려는 의도다. 올 6월 개관한 베이징 중국공산당 역사전람관 2층의 6·25 한국전쟁 코너. 이곳엔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의 유품도 전시돼 있다. 사진 내 왼쪽은 한국전쟁에서 마오안잉이 입었던 셔츠로, 실물임을 뜻하는 ‘일급문물’ 표시가 돼 있다. 신경진 기자 김일성 편지 속 마오의 ‘약속’ 역시 실재했다. 마오는 1950년 5월 13~16일 베이징을 찾아온 김일성과 박헌영을 만나 “만일 미군이 참전한다면 중국은 병력을 파견해 북한을 돕겠다”고 말했다(『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박명림 교수는 “마오의 ‘개입 약속’은 소련의 공군 지원을 전제한 조건부 약속이자 격려성 발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하지만 김일성은 확약으로 믿었고, 스탈린은 미국과 중국을 한반도에 묶기 위해 유엔군 참전을 반대할 수 있는 상임이사국이면서도 의도적으로 표결에 불참했을 뿐만 아니라 공군 지원도 거부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마오는 결국 스탈린의 의도적인 ‘배신’에도 참전을 결정했고 한국전쟁은 치열한 3년간의 공방전으로 이어졌다. 1950년 11월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미군 7사단 31연대(일명 ‘북극곰 연대’)의 부대깃발. 중국공산당 역사전람관 2층에 전시돼 있다. 신경진 기자 김일성 편지 옆에는 최근 중국에서 폭발적으로 흥행하고 있는 영화 ‘장진호’에 등장한 미군 7사단 31연대(일명 ‘북극곰 연대’)의 부대 깃발도 보였다. 애국심 고취를 위해 패배하지 않았던 한국전쟁의 기억을 소환했다. 특히 한국전쟁 코너 전체를 “환영 중국인민지원군 영광 귀국, 경축 항미원조 투쟁의 위대 승리”라는 구호와 “개선문” 가로 표지로 장식해 승리 분위기를 조성했다. 정전협정문과 체결 당시 사용했던 벼루와 붓을 개선문 정중앙 아래에 배치했다. “정전=승리”라는 이미지 연출이다. 지난 6월 문을 연 중국공산당 역사전람관. 남북 기둥은 동서로 28개를 세워 창당부터 건국까지 걸린 28년을 표현했다. 신경진 기자 지난 2019년 1월 개관한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중국역사연구원 건물과 뒤로 올해 6월 문을 연 중국공산당 역사전람관이 보인다. 신경진 기자 역사관 건립은 창당 100년에 맞춰 시진핑 주석이 지시했다. 베이징 정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중축선에 자리한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바로 북쪽이다. 역사관 바로 남쪽에는 중국역사연구원 건물을 세웠다. 2019년 1월 개관했다. 개관 축전에서 역사 경험을 총괄해 역사의 규칙과 추세를 밝히라고 요청했다. 용맥(龍脈)으로 불리는 중축선 일대에 역사 타운을 조성한 셈이다. 시 주석은 집권 초부터 역사를 중시했다. “‘그 나라를 멸망시키려면 반드시 그 역사를 제거하라(滅人之國 必先去其史)’고 옛사람이 말했다. 국내외 적대 세력은 자주 중국 혁명사, 신중국사를 가지고 트집을 잡고, 힘껏 공격하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멸시한다. 근본 목적은 민심을 어지럽히고, 중국공산당의 영도와 중국 사회주의 제도의 전복을 선동하는 데 있다.” 당 총서기에 갓 취임한 2013년 1월 5일 중앙당교 연설 발언이다. 시 주석은 소련공산당이 망한 이유로 레닌과 스탈린을 부정한 역사 허무주의를 꼽았다. 내년 가을 20차 당 대회에서 최종 확정할 그의 3연임 수단도 역사다. 지난주 당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에서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결의(역사 결의)’를 통과시켜 교두보를 마련했다. 시 주석은 역사 다루기에 능하다. 중국공산당 역사전람관 1층 벽에 그려진 초대형 벽화. 타일 100장 600㎡ 면적에 만리장성을 그린 ‘장성송(長城頌)’이다. 신경진 기자 역사관 1층에 들어서면 타일 100장 600㎡ 면적에 만리장성을 그린 초대형 벽화 ‘장성송(長城頌)’이 시선을 압도했다. 이어 청(清)말부터 중공 100년 역사를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명심하자’라는 주제로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는 중공 역사를 네 부분으로 나눴다. 1장 ‘중국공산당 건립, 신민주주의 혁명 위대한 승리 쟁취’는 1층 전체를 차지했다. 문화혁명을 포함해 마오쩌둥 집권기는 2장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 진행’이란 제목으로 정리해 2층 절반에 해당했다. 덩샤오핑(鄧小平)ㆍ장쩌민(江澤民)ㆍ후진타오(胡錦濤) 치세를 합친 3장 ‘개혁개방 실행, 중국 특색 사회주의 창립과 발전’은 2층 나머지와 3층 일부에 전시했다.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9년은 4장 ‘중국 특색 사회주의 신시대 진입, 소강사회 건설 완성,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전면 건설 새로운 여정 시작’으로 이름 붙였다. 3층 대부분을 차지했다. ‘역사 결의’가 확립한 ▶마오쩌둥 시대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 시대 ▶시진핑 시대의 ‘3단계론’을 우회 공개한 셈이다. 중국공산당 역사전람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올 6월 개관한 베이징 중국공산당 역사전람관 3층의 중국공산당 성립 100주년 기념 전시. 역사전시관에 끝난지 불과 4달 정도 지난 행사를 전시해 놓았다. 신경진 기자 ━ ‘공산당 정신’ 23개…習 어록 18개 전시관 곳곳에 걸린 ‘공산당 정신’이 특이했다. 혁신·분투·희생을 뜻한다는 ‘홍선(紅船) 정신’을 시작으로 옌안(延安) 정신, 항미원조 정신 등 총 23개 ‘정신’이 보였다. 마지막은 ‘위대한 창당 정신’이 지난 7월 1일 시진핑 천안문 연설 사진 옆에 자리했다. 정신마다 중공 역대 지도자 어록을 걸어놨다. 어록의 주인공은 시진핑 18개, 장쩌민 2개, 후진타오 2개, 저우언라이(周恩來) 1개로 시 주석이 압도했다. 지난 3월 양회에서 우더강(吳德剛) 중앙당사문헌연구원 부원장은 ‘공산당 정신’은 총 91개라고 꼽았다. ‘정신’을 강조하는 시 주석의 지시로 숫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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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아프간의 심장 와칸 계곡, 중국의 화약고 찌르는 단검 되나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새도 날아가다 깎아지른 산에 놀라고/사람은 좁은 다리 지나기 어렵구나./평생 살아가며 눈물 흘리지 않았는데/오늘따라 천 줄기나 뿌리는구나.(鳥飛驚峭嶷/人去難偏樑/平生不捫淚/今日灑千行).” 신라 승려 혜초(慧超)가 실크로드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에 남긴 시다.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의 국경 92.45㎞와 맞닿은 와칸 계곡을 건너며 노래했다. 혜초가 지날 당시 와칸은 불교 문화가 꽃피는 호밀(胡蜜)로 불렸다. “차가운 눈 더미는 얼음에 얼어붙었고, 차가운 바람은 땅을 쪼갤 듯 사납다…파미르 고원을 어찌 넘을 것인가”라며 두 번째 시도 남겼다. 혜초의 실크로드 여행은 723년 중국 명주(明州, 지금의 닝보)에서 출발해 727년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에서 끝났다. ‘세상의 지붕’으로 불리는 파미르 고원 아래 호밀국을 지나며 “산골짜기에 살아 집이 협소하고 가난한 백성이 많다”며 “승려도 있고 절도 있어 소승(불교)이 행해진다”고 적었다. ■ 「 혜초·고선지·마르코 폴로가 통과 당 제국, 아랍 연합군에 패해 몰락 ‘제국의 무덤’ 원조는 탈라스 전쟁 중 “아프간은 영웅, 굴복한 적 없어” 신장 독립 지원 ‘ETIM’ 존재는 부담 」 신장 우루무치와 파키스탄 국경 쿤자랍 고개를 잇는 1948㎞ 길이의 카라코람 하이웨이(국도 314번)에서 바라본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의 국경 와칸 계곡의 끝자락. [사진 위키피디아] 실크로드의 십자로 아프간은 불교로 중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어 군대가 부딪쳤다. 747년 당 현종(玄宗)이 고구려 유민 고선지(高仙芝)에게 기병과 보병 1만을 주며 파미르 원정을 명했다. 당과 경합하던 티베트 강국 토번이 세력을 넓혀 당의 서역 경영을 방해하자 내린 결정이다. 지금의 신장(新疆) 쿠차에 있던 안서도호부를 출발한 고선지는 카쉬가르와 타쉬쿠르간을 지나 아프간의 와칸(호밀), 파키스탄 접경인 길기트(소발률), 발루치스탄(대발률)을 차례로 정복했다. 와칸 남쪽 길기트에서는 왕과 부인인 토번 공주까지 포로로 잡았다. 고선지는 승전보를 상관을 무시하고 황제에게 직보했다. 화가 난 상관이 고선지에게 “개의 창자를 먹는 고려노(高麗奴)”라 욕했다고 『구당서』가 기록했다. 파미르 승전의 공으로 안서사진 절도사(총독)에 임명된 고선지는 751년 중국 세력에 맞선 아랍 아바스 왕조 연합군과 아프간 북쪽 키르기스스탄의 탈라스에서 맞붙었다. 탈라스 전투는 당 제국의 진로를 바꿨다. 안사의 난이 이어지며 쇠락이 시작됐다. 중앙아시아에서 중국 영향력은 쇠퇴하고 이슬람이 휩쓸었다. 티베트가 세력을 확장했고 톈산 북방 초원은 투르크계 민족이 장악했다. ‘제국의 무덤’ 아프간에 당 제국이 첫 희생양이 됐다.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다시 와칸 계곡을 지났다.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의 맹주로 휩쓸 때다. 1271년 베네치아에서 출발한 마르코 폴로는 “보칸(Vocan, 지금의 와칸)이라 불리는 사방이 사흘 거리밖에 되지 않아 그리 크지 않은 지방에 도착했다”며 “주민은 마호메트를 신봉하고 나름의 언어를 갖고 있으며 내로라하는 전사들”이라고 『동방견문록』에 기록했다. 이슬람이 바미얀의 불교 문화를 대체했다. 탈라스 전쟁의 결과다. 아프가니스탄 와칸회랑.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탈레반의 귀환은 탈라스 전쟁을 되살린다. 중국 싱크탱크 안바운드의 설립자 천궁(陳功)은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디플로맷에 최근 ‘당 왕조와 아프간, 제국의 무덤’이란 기고문을 싣고 “고대 실크로드를 부활시키려는 중국의 비전, 즉 ‘일대일로(육·해상 신 실크로드)’는 아프간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라시아 대륙을 섬에 비유하면 심장부는 중국·러시아·인도와 같은 주변부 강대국이 아닌 아프간이라며, 아프간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 대륙의 지배적 영향력을 갖는다고 했다. 이어 “미군의 아프간 철수는 8세기 당 제국의 철수와 마찬가지로 구시대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아프간=제국의 무덤론’을 당 제국으로 확대했다. 아프간의 전략적 가치는 1979년 소련의 침공 당시 중국의 공식 성명에 잘 나온다. 그해 12월 31일 자 인민일보에 실린 규탄 성명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인도양으로 남하해 해상 통로를 통제하기 위한 절차이자 석유 생산지를 착취하고 유럽을 우회 포위하며, 세계 패권을 도모하려는 전략”이라고 풀이했다. 사설은 “소련의 군사 점령은 히틀러식 ‘신질서’일 뿐, ‘외세 위협을 물리쳤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적반하장”이라고 비난했다. 영국에 이어 소련은 아프간 침공 10년 뒤 퇴각했다. 미국은 20년이 걸렸다. 중국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왕원빈(王文斌) 외교부 대변인은 1일 “아프간은 영웅의 나라, 역사상 굴복한 적이 없다. 중국은 아프간에 손해를 끼칠 생각이 없고, 아프간 역시 중국에 손해를 끼칠 생각이 없다”는, 1964년 11월 마오쩌둥이 베이징에서 모하마드 자히르 샤 아프간 왕을 접견하며 남긴 어록을 인용했다. 마오가 당의 좌절까지 염두에 둔 발언은 아니었을 듯하다. 아프간의 길쭉한 와칸 계곡에 지난 10년간 미국은 50㎞의 도로를 닦았다. 와칸은 ‘일대일로’로 부활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의 화약고 신장을 찌르는 단검이 될까? 일단 압둘 살람 하나피 탈레반 정치국 부장(副長)은 2일 우장하오(吳江浩)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와 통화에서 일대일로 참여를 희망했다. 하지만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탈레반이 국제사회와 공조하는 낙관적 시나리오와, 공포 통치와 내전 격화로 난민·테러·마약이 인접국으로 번지는 비관적 시나리오는 여전히 모두 가능하다”며 “신장 독립을 노리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이라는 중국의 역린을 아는 탈레반과 이슬람국가-호라산(IS-K)은 모두 중국에 부담”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이 와칸은 군대로 막을 수 있겠지만, 타지키스탄과 파키스탄을 우회하는 유입까지 막으려면 ‘일대일로’ 역시 주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와칸 계곡 「 와칸 회랑으로도 불리는 아프간 북동부의 동서 400㎞, 남북 13~30㎞의 좁고 긴 계곡 지형. 고대 실크로드의 십자로로 현장·혜초·고선지·마르코 폴로 등이 지나갔다. 미국이 아프간 재건의 목적으로 와칸에 500만 달러를 투자해 50㎞의 도로를 건설 중이었다. 」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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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대등한 외교 상징이던 주중 공관…당당한 외교 기억해야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 톈진 자죽림 공관 톈진(天津)시 중심가 해방북로와 하이허(海河) 사이 자죽림(紫竹林) 교회당을 지난 17일 찾았다. 입구 안내판의 QR 코드를 스캔했다. 자죽림 지명 유래가 흘러나온다. 인근에 사찰 터가 있었다고 한다. 이 절터가 한국 최초의 근대적 해외 공관인 톈진 공관의 자리다.(『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가다』) 1882년 임오군란 뒤 조선이 청(淸)과 톈진에서 맺은 불평등 통상조약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의 산물이다. 청 역시 상무위원 진수당(陳樹棠)을 서울에 파견했다. 지금의 명동 땅 6500평을 2000냥에 샀다. 현 중국 대사관터다. 조선은 베이징이 아닌 톈진으로 갔다. 사신으로 청에 머물던 김윤식이 나섰다.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의 막료 주복(周馥)이 자죽림터를 제시했다. 땅과 수리비로 은 4000냥을 국고에서 지불했다. 방 22칸, 복도 4칸으로 된 기와 건물이었다. 1884년 4월 공관장인 주진독리(駐津督理) 남정철이 부임했다. 그의 월급이 50냥이던 시절이다. 지난 17일 중국 톈진(天津)시 해방북로와 하이허(海河) 사이의 자죽림 교회당에서 중국인 부부가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인근 자죽림 절터에 1884~95년 조선의 첫 해외 상주 공관인 톈진 공관이 자리했다(사진 1). 신경진 기자 톈진 공관 가동은 1891년 워싱턴 공사관 구매에 앞선다. “본 관청은 본국 (해외) 상주 외교 사절의 시초이다.” 규장각 외교문서 『주진독리공서장정저고(駐津督理公署章程底稿·1883)』는 서문에 조선 최초의 해외 공관이라고 적시했다. “명목은 다르지만 체제는 같다”라고도 했다. 당시 톈진에 주재한 열강의 영사관과 같다는 의미다. 자죽림 공관은 11년간 운영됐다. 다시 17일. 자죽림 교회당 블록 모퉁이 르네상스 양식의, 일제 시절 있었던 조선은행 건물에 들어갔다. 경비원은 “톈진시 교통운수위원회 사무실”이라며 “조선은행 흔적은 없다”고 했다. 손성욱 선문대 교수는 “톈진 공관은 위치 기록이 없어 현재 정확한 장소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베이징 동교민항 공사관 1917년 세워진 베이징시 동교민항 34호의 프랑스 인도차이나 은행 건물이다. 옛 대한제국의 공사관 자리다(사진 2). 신경진 기자 이튿날 베이징 천안문 광장과 맞닿은 골목인 동교민항(東交民巷)을 찾았다. 이 골목이 청말 열강의 외교 단지를 동서로 관통했다. 베이징 경찰박물관(36호) 옆 베이징 공안국 부속 건물(34호)을 살폈다. 프랑스 인도차이나 은행(東方匯理銀行·동방회리은행) 건물이다. 1917년 세워진 절충주의 양식의 3층 붉은 벽돌 건물이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아쉽지만 인접한 옛 미국 시티(花旗)은행, 현 경찰박물관을 관람했다. 두 건물은 청말 베이징 내성의 남쪽 성벽과 맞닿았던 미국 대사관 터에 세웠다. 34호 터가 바로 중국과 한반도의 조공·책봉 관계가 사라지고 제도(帝都) 베이징에 처음으로 들어섰던 대한제국 공사관 자리다. 청은 1894년 한반도에서 벌인 청일전쟁에서 졌다. 패전으로 조선과 사대(事大) 관계가 끝났다. 1897년 대한제국이 들어섰다. 1899년엔 청과 ‘한청통상조약’을 맺었다. 대등한 외교 조약이었다. 2항에 상호 외교 관원 파견을 규정했다. 1899년 반(反) 외세를 내건 의화단 운동으로 베이징은 혼란에 빠졌다. 이듬해 8국 연합군(영국·미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오스트리아·러시아)이 진주했다. 주청 공사 파견을 늦췄다. 1901년 고종은 미국 주청 공사의 3층 건물을 공관으로 사들였다. 박제순 주청 공사가 1903년 4월 공사관에 입주했다. 고종의 내탕금(內帑金·황제 통치자금) 15만원이 들어갔다. 박 공사는 톈진 주진독리를 역임했다. 청 조공국 가운데 베이징 공사관은 대한제국이 유일했다. 당시 공사관 지도(사진③)가 규장각에 전한다. 네 개 건물이 자리했다. 1번 ‘아파트/호텔 뒤 미니스테’ 건물이 베이징 공관이다. 베이징 공관은 톈진 공관과도 연결된다. 손성욱 교수는 “1900년 의화단 운동 당시 일본 헌병대가 톈진 공관에 난입해 건물을 훼손했다”며 “박제순이 1903년 주청공사로 부임한 뒤 일본에 배상금을 받아 부족한 베이징 공관 운영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톈진 공관의 소유권이 조선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청대한공사관지도’. 로마자 1번 건물이 베이징 공사관이다(사진 3). [사진 규장각] 서울 명동과 달리 베이징 동교민항 공사관의 운명은 기구했다. 1905년 11월 일본과 맺은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됐다. 공관의 존립 근거가 사라졌다. 고종은 당시 프랑스 회사와 베이징 공관을 담보로 금전 관계를 맺었다. 공관은 일본 정부를 거쳐 프랑스 인도차이나 은행에 매각됐다. 지금은 동교민항 어디에도 공사관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담장에 붙은 ‘동교민항 34호’ 표지판이 전부다. 베이징과 톈진 공관은 1992년 한·중 수교 교섭에서도 거론되지 않았다. 교섭에 나섰던 권병현 제4대 주중대사는 “동교민항에 있던 공관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역사의 망각 속으로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전해왔다. 두 공관의 역사적 가치는 크다. 과거 대등한 한·중 외교의 상징이다. 손성욱 교수는 “대한제국은 베이징 공사관을 세워, 공간적으로 대등한 주권 국가 관계를 재차 확인했다”며 “과거 상국(上國)의 수도에 동등한 관계를 나타낸 상징적 건물이었다”고 평가한다. 공관을 기억하려는 움직임도 시작됐다. 올 3·1절 102주년 기념 베이징 독립운동 사진전에서다. 홍성림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 이사는 “내년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베이징과 톈진 공관 부지에 안내 표지를 세워야 한다”며 “구한말 중국과 당당한 외교를 펼쳤던 현장을 기억하려는 당국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이징·톈진=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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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시진핑식 ‘경제실험실’ 찾은 이용남, 경비행기 탑승 왜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지난 8일 오후 제2회 중국-중·동유럽 국가 박람회가 열린 저장(浙江)성 동부 닝보(寧波) 국제무역전람중심에 이용남(61) 주중 북한대사가 들어섰다. 중국이 중·동부 유럽 국가와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지난달 리투아니아의 탈퇴에도 17+1로 불리는 중국의 유럽 공략 교두보는 건장했다. 이용남 대사는 먼저 슬로베니아와 중국 합작 회사의 2인승 경비행기에 앉아봤다. 마스크를 벗고 포즈도 취했다.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직접 조작하는가 하면, 동유럽 상품을 라이브방송으로 판매하는 부스를 자세히 주시했다. 중국산 경비행기 부스에서는 휴대폰을 꺼내 연신 사진을 찍었다. 9일에는 12년 연속 세계 최대 물동량 1위를 기록한 닝보·저우산(舟山) 항구 중 촨산(穿山) 컨테이너항을 찾아 중국의 물류망을 살피는 등 경제 행보를 이어갔다. 대외무역상·부총리를 역임한 ‘경제통’ 이용남 대사는 지난 2월 부임 후 첫 지방 방문지로 저장을 선택했다. 31개국 대사들과 함께 ‘세계가 이 창문을 주목하게 하라-주중 대사 저장 투어’에 참가했다. 이용남 대사는 왜 저장부터 찾았을까? 중국에선 최근 “중국이 가는 길을 묻거든 저장을 보게 하라”는 말이 나온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치적 고향이자, 알리바바 등 민영기업의 요람인 경제 강성(強省)이어서다. 11일에는 저장성을 공동부유 시범구로 만들겠다는 당과 정부의 공식 ‘의견’(이하 의견)이 인민일보에 게재됐다. 시진핑 주석의 대표 업적인 빈곤 척결과 덩샤오핑(鄧小平)의 선부론(先富論)을 지나 ‘더불어 잘살자’는 사회주의 공동부유의 실험실로 저장성이 선정됐다. 시진핑표 ‘88전략’ 전도사 위안자쥔 지난 8일 저장(浙江)성 동부 닝보(寧波)에서 열린 제2회 중국-중·동유럽 국가 박람회장에서 이용남 주중 북한대사(오른쪽)가 슬로베니아의 피피스트렐 경비행기에 시승했다. 이 대사는 8일부터 10일까지 취임 후 첫 지방 방문으로 저장성에서 경제 행보를 이어갔다. 신경진 기자 “저장성은 지금 ‘88전략’을 세우고, 중요한 대외 창구를 만들며, 사회주의 현대화의 선행자로서 공동부유 시범구를 건설하고 있다.” 8일 후춘화(胡春華·58) 부총리와 박람회 개막식에 나란히 입장한 위안자쥔(袁家軍·59) 저장성 당서기가 시 주석을 불러냈다. 지역의 강점을 배가(倍加)시키는 프리미엄 플러스 정책인 ‘88전략’을 언급하면서다. 저장의 일인자 위안자쥔은 5월 16일자 인민일보 기고문에서도 “저장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중요한 발상지”라며 “시진핑 총서기가 저장 근무 기간 창조적으로 ‘88전략’을 만들었다”고 찬양했다. 88전략은 저장성이 갖춘 ‘8대 프리미엄’을 위한 ‘8대 조치’를 줄인 이름이다. 시장 시스템, 지리적 위치, 산업 클러스터, 도시·농촌 조화 발전, 생태 환경, 산림과 해양의 조화, 사회 환경, 인문 등 8대 장점에 각각의 맞춤형 정책을 내놨다. 2003년 저장성의 시정방침으로 탄생했다. 위안자쥔은 88정책의 충실한 전도사다. 그는 “88전략의 지도 아래 저장을 개방 대성에서 글로벌 경제에 깊이 녹아 들어가도록 비약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분배보다 성장 앞세운 ‘공동부유 시범구’ “함께 부유해지는 것은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이자 인민 대중의 공통 바람이다.” 저장성 주민 평균 가처분 소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11일 발표된 ‘의견’은 서두에서 선부론의 종결을 선언했다. 대신 “발전의 불균형·불충분 문제는 여전히 두드러지고 도농 및 지역 간 발전과 수입·분배 격차가 커졌다. 공동 부유는 경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당의 집권 기반이 달린 중대한 정치 문제”라며 공부론(共富論)의 시대를 알렸다. ‘의견’은 공동부유의 실현 방법을 담았다. 혁신·경쟁·효율·시장이다. 분배는 다음이다. 총 8개 장 28개 조항으로 이뤄진 ‘의견’은 성장을 다룬 2장을 분배를 다룬 3장에 앞세웠다. 분배보다 성장이 우선임을 명확히 한 셈이다. 저장성 개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성장을 위해 5조는 항저우·닝보·원저우(溫州)의 자주 혁신 시범구를 건설해 인터넷 플러스, 바이오 헬스, 신소재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8조는 “시장 주체의 활력을 격발시키겠다”며 “민영 기업의 발전을 막는 각종 장벽을 부수고, 기업의 부담 절감 시스템을 만들며, 시장 진입 네거티브 리스트 제도를 시행하고, 반(反)독점과 불공정 경쟁을 막을 사법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친시장 정책을 제시했다. 2025년 1인당 GDP 2만 달러 목표 11일 저장성 정부는 ‘고질량 발전 공동부유 시범구 건설 실시 방안(2021~2025년)’을 통과시켰다. 2025년까지 1인당 GDP 13만 위안(2265만원) 달성이 목표다. 미화 2만348달러다. 중국은 지난 3월 2035년 장기 목표로 GDP 2만 달러를 제시했다. 저장성은 이 목표를 10년 앞당겼다. 여기에 디지털 경제 기여 비율 60%, 1인당 GDP 격차를 2.1 이내로 줄이겠다고 다짐했다. 중산층 확대를 위해 가구당 연평균 가처분 소득 10만~50만 위안(1742~8710만원) 그룹의 비율을 80% 이상으로, 20만~60만 위안(3484~1억453만원) 그룹은 45% 달성을 내세웠다. 중산층을 두껍게 키워 사회를 안정시키겠다는 노림수다. 홍창표 코트라 중국지역본부장은 “저장의 경제 규모는 4위지만 가처분 소득과 저축은 전국 1위”라며 “저장은 한국의 대중국 투자의 3.5%에 불과한 미지의 시장이지만 소비 잠재력을 고려할 때보다 많은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신경진 베이징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