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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簡體(간체)와 繁體(번체)
한자의 비밀 1949년 출발한 중국에서 문자개혁 운동을 제창하며 제정한 한자 자형을 간체자(簡體字) 혹은 간화자(簡化字)라고 하며, 이전의 자형은 번체자(繁體字)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를 우리 스스로도 중국을 따라 번체자라고 부르는 게 맞는 것일까? 우리가 간체자라 부르는 문자의 정식 명칭은 간화자이다. 간화자란 1964년 중국에서 제정하고 1968년 수정한 ‘간화자총표’에서 지정한 표준자형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표준자형이란 중국이 정치적 혹은 문화적 목적으로 제정한 자형을 말한다. 곧 이때의 표준은 중국에서 정한 표준으로 다른 나라와는 관계가 없다. 대만은 표준자형의 명칭을 ‘국자’라고 하고 있으며, 일본이나 기타 국가도 각자 다른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와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실제 간체자라는 용어는 간화자와는 다른 개념이다. 간체란 어떤 모양을 간략하게 해놓은 자체라는 의미로 간화자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은 한자 자형도 있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보면 중국에서 표준으로 삼고 있는 자형은 간화자이며, 간체자는 아니다. 더욱이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자기들의 표준이 아닌 한자 자형을 번체자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 이치에 맞지 않는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 자형이나 대만, 홍콩 등에서 사용하는 자형을 ‘번체’, 번잡한 글자, 곧 사용하기 어려운 복잡한 글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더더욱 지양해야 할 일이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한자의 자형은 전통 시대의 한자 자형이며, 홍콩과 대만 등에서는 이를 근간으로 해서 일부 자형을 수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영어에서 Simplified Chinese Character와 Traditional Chinese Character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문화를 보는 방법은 상대적이며 문화 나름대로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와 근거가 있다. 상대방의 용어를 비판과 검토 없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이유나 근거는 없다. 우리의 것이 있는 경우 더욱 그렇다. 이를 두고 시시비비를 가려 우리는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 할 필요도 없다. 간화자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간단하고 쉬운’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은 중국에서는 당연한 행위이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도 우리는 ‘번체자를 사용한다’고 말하는 것은 되짚어 생각할 문제이다. 같으면서도 다름, 이것이 세계이며, 세계를 보는 눈은 상대방을 인정하되 나를 잃지 않음에서 시작한다. 허철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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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짝’과 ‘적’
한자의 비밀 바야흐로 월드컵 기간이다. 보통 ‘월드컵’ 하면 여름에 개최되기에 ‘겨울 월드컵’은 왠지 낯설고 생경하게 느껴진다. 국제적인 체육 행사는 여름에 치러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카타르의 도하는 5월만 되어도 섭씨 38도에 육박한다고 하는 열대 지방인지라, 이곳에서 한여름에 체육 행사를 기획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이에 비해 도하의 11월 평균기온은 영상 19.5도에서 29.5도 사이이며, 이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북반구의 여름 날씨와 비슷하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에 도하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을 11월 말부터 12월 초로 정한 것은 오히려 ‘적합(適合)’한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우리가 자주 쓰는 ‘적합하다’라는 개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어떠한 시간과 장소 혹은 환경에 따라 좌우되는 상대적이면서도 유연한 개념이라 하겠다. 우리가 자주 쓰는 ‘적당(適當)하다’는 말에서 쓰이는 ‘適’이라는 한자는 왼쪽의 辶(辵, 쉬엄쉬엄 갈 착)을 의미 부분으로, 오른쪽의 啇(나무밑동 적)을 소리 부분으로 하는 형성자이다. ‘適’자는 ‘여자가 적당한 곳을 골라 시집간다’는 뜻에서 비롯되어, ‘적합하다’나 ‘적당하다’는 의미로 이행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적당한 곳으로 시집간다’라는 뜻으로 볼 때 ‘適’자는 ‘정식으로 혼인한 아내’를 뜻하는 ‘嫡(정실부인 적)’자와도 의미상 자연스레 연결된다. 정식으로 혼인한 아내는 평생을 함께하는 일종의 ‘짝’이라 할 수 있겠는데, 啇의 오른쪽에 攴(때릴 복)을 넣으면 ‘敵’이 되어 ‘짝’이 아닌 ‘적’이 된다는 것이 흥미롭다. 나이 지긋한 부부들 사이에서 서로를 농담 삼아 ‘웬수’라고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짝’과 ‘적’은 통하는 것일까? ‘짝’이든 ‘적’이든 이 둘은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흔하거나 예사로운 사이는 아닐 것이다. 한편 啇 옆에 扌(手, 손 수)를 넣으면 ‘摘(딸 적)’이 되는데, 손으로 열매나 잎을 따기에 앞서 그것이 적합한 것인가에 대한 전제가 선행된다는 점에서 ‘適’과 함께 음미해 볼 만하다. 월드컵 본선에 오른 32개의 대표팀은 그 자체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승패를 떠나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선정[摘]된 팀이 서로의 맞수[敵]가 되어 펼치는 경기들은 그 하나하나가 이미 ‘적합(適合)’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월드컵에 참가한 모든 감독과 코치진 그리고 선수들의 건승을 바란다. 홍유빈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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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淸心丸(청심환)
한자의 비밀 지난주에는 51만에 육박하는 수험생이 수능에 응시했다. 예전 학력고사를 본 수험생이 어느덧 수능 수험생의 학부모가 되었으니 쏜살같이 흘러가는 세월에 만감이 교차한다. 학력고사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 부모님이 챙겨 주신 청심환을 복용하면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던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수험생뿐 아니라 학부모조차 심리적 부담과 긴장을 해소하고자 청심환을 복용하던 시절이었다. 청심환은 심장의 열을 풀어 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처방으로 쓰였고, 중풍(中風)으로 말을 못하는 증상이나 어질어질하면서 속에 번열(煩熱)이 나고 갑갑한 증상을 치료하는 데도 널리 사용됐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신하들이나 사신들에게 청심환을 하사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 연행록(燕行錄)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조선에서 제조한 청심환이 중국에서 유행하고 품귀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린다. 심지어 중국 사신이 조선을 방문해 직접 청심환을 요청하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조선 사신은 청심환을 예단(禮單)과 정비(情費)의 용도로 사용할 뿐 아니라 중국 명소를 방문할 때 면폐(面幣), 면피(面皮) 명목으로 뇌물로 주거나 중국 문인들과 교류할 때 호의에 대한 답례로 혹은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했다. 중국에서는 가짜 또는 저질 청심환이 널리 유통, 매매되어 육안(肉眼)·촉진(觸診)·분해(分解) 등의 방법으로 청심환의 진위를 감별하는 상황까지 초래한다. 그중에는 손바닥에 청심환을 놓고 냉기의 여부에 따라 진위를 가리는 방법도 있는데, 냉기가 어깨까지 이르면 진품(眞品)이고 팔뚝에 이르면 범품(凡品)이며 손바닥에 그치면 가짜로 여겨졌다. 청심환과 관련한 다양한 사실과 정보는 이조원(李肇源)의 『청심환가(淸心丸歌)』에서 상세하게 드러난다. 이 책에 따르면 청심환은 중국에서 신단(神丹)으로 불릴 정도로 온갖 질병에 효험을 보였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의 생사 여부가 청심환의 유무에 결정되어 요동(遼東)에서 북경(北京)에 이르는 노정에는 청심환을 얻으려 몰려드는 인파로 장사진(長蛇陣)이 펼쳐질 정도였다. 청심환은 예나 지금이나 집집마다 구급약으로 상비하고, 여행 중 비상사태를 대비해 휴대하는 필수품 중 하나다. 이번 수능에 응시한 수험생과 학부모도 청심환을 복용하며 심신의 안정을 찾았으리라 생각한다. 최식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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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심심(甚深)
한자의 비밀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哀悼)하고 추모(追慕)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중 포털 사이트에서는 “깊이 애도합니다” “마음 깊이 추모합니다” 등의 문구(文句)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애도(哀悼)와 추모(追慕) 앞에 쓰인 ‘깊이’ ‘마음 깊이’의 뜻으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한자어가 있는데 바로 ‘심심(甚深)’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이 한자 ‘甚深’에 고유어 ‘-하다’가 붙어 형용사 ‘심심하다’가 되었다. 보통 ‘심심한’의 꼴로 쓰여 ‘심심한 애도(哀悼)’ ‘심심한 조의(弔意)’ ‘심심한 위로(慰勞)’ 등의 표현으로 자주 사용된다. 그런데 이 ‘甚深한’ 표현이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라는 뜻의 ‘심심하다’로 그 뜻을 오해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다는 문해력(文解力) 논란이 일었다. 그래서 그런지 포털 사이트에서도 이런 논란을 피하기 위해 ‘심심(甚深)한’으로 표현하지 않고 풀어서 썼는지도 모르겠다. 한자는 뜻글자라서 글자 자체에 의미를 담고 있다. 甚深도 글자마다 뜻을 담고 있는데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甚(심할 심)은 甘(달 감)과 匹(짝 필)로 이루어진 회의문자(會意文字)이다. 그런데 匹(짝 필)에 대해 원래는 匕(비수 비)인데 설문해자에서 잘못 해석된 것이라고 한다. 중국 서주(西周) 시기 금문(金文)에 처음 등장하며 수저에 음식을 얹어 먹는 모습을 표현했다. 본래의 의미는 ‘아주 즐겁다’인데, 나중에 의미가 ‘지나치다, 과도하다’로 파생되었고, 다시 ‘대단하다, 너무, 매우’ 등으로 파생되었다. 深(깊을 심)은 水(물 수)와 罙(무릅쓸 미)로 이루어진 회의(會意) 겸 형성문자(形聲文字)이다. 중국 상(商)나라 때의 갑골문(甲骨文)에 처음 등장하며 동굴 속에 손을 넣어 그 깊이를 알아보려는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본래 의미는 ‘깊이 탐색하다’라는 뜻인데, 나중에 ‘穴(구멍 혈, 굴 휼), 求(구할 구), 水(물 수)’로 조합되어 동굴 안 물의 깊이를 탐색하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불과 며칠 전 우리는 믿기 힘든 너무나 참담한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통탄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의 소중한 생명이 한순간 아무런 준비도 못 한 채 그렇게 떠나가 버렸다. 내 가족, 내 이웃을 다시 돌아보며 다시 한번 안타까운 인명참사에 심심한 위로와 조의를 표한다. 김시현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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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단풍의 계절
한자 기후 변화로 봄, 가을이 짧아지고 있지만 올해도 자연은 어김없이 우리에게 단풍이라는 아름다운 선물을 준다. 전국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며 가을에 깊이 잠기고 있다. ‘단풍(丹楓)’을 뜻하는 한자는 ‘丹(붉은 단)’과 ‘楓(단풍나무 풍)’을 더한 것으로 붉은 단풍나무라는 뜻이다. ‘丹(붉은 단)’은 중국 최초의 문자 갑골문에서 井(우물 정)에 가운뎃점을 더한 형상이다. 여기에서 井(우물 정)은 광산의 구덩이를 나타내고, 가운데 점은 진한 붉은색을 띤 광석인 단사(丹砂)를 나타낸 것이다. 즉, ‘丹(붉은 단)’은 단사를 캐던 구덩이를 뜻했고, 이로부터 단사와 같이 ‘붉다’는 뜻을 갖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단단함’의 특성을 바탕으로 의미가 확장되어 ‘정성스러운 마음’ ‘변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편단심(一片丹心)은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변하지 않는 마음을 나타낸다. ‘楓(단풍나무 풍)’은 뜻을 나타내는 木(나무 목)과 소리를 나타내는 風(바람 풍)이 합쳐진 형성자로 가을바람에 잎이 빨갛게 변하는 나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혹자는 잠자리 날개처럼 생긴 단풍나무 열매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는 것을 나타낸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丹(붉은 단)’과 ‘楓(단풍나무 풍)’을 합쳐 잎이 곱게 물드는 자연현상을 ‘단풍’이라고 불렀다. 한편, 현대 중국어와 일본어에서 단풍을 나타내는 단어는 모두 紅(붉을 홍)과 葉(잎 엽)을 더해 붉은 잎이라는 뜻으로 각각 ‘红叶(hongye, 紅葉의 간화자)’ ‘紅葉(모미지)’라고 표현한다. 즉, 한·중·일 세 나라에서 붉은색에 대한 인식은 같으나 우리나라에서는 丹(붉은 단)자를, 중국과 일본에서는 紅(붉을 홍)자를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는 楓(단풍나무 풍)자의 사용에서 알 수 있듯이 나무 전체를 반영하여 ‘단풍’이라고 명명한 반면, 중국과 일본에서는 붉은 잎의 특성을 반영하여 ‘紅葉’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 ‘단풍도 떨어질 때에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는 무슨 일이든 알맞은 때가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혹시 제때에 하지 못해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혹은 제때를 만나지 못해 몸과 마음이 지쳤다면, 잠시라도 가을의 선물, 아름다운 단풍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으시기를 바란다. 이선희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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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언문과 정음
한자의 비밀 세종대왕 탄신 600주년인 올해 10월 9일은 576돌을 맞은 한글날이었다. ‘한글’이라는 명칭은 20세기 초 주시경을 중심으로 한 국어학자들이 부르기 시작한 것인데, 여기서 ‘한’은 ‘하나’ 혹은 ‘크다’라는 의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언문(諺文)’ ‘언어(諺語)’ ‘정음(正音)’ ‘반절(反切)’ ‘가갸글’ 등이 예전에 ‘한글’을 이르던 말이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102권 세종 25년 12월 30일 경술(庚戌) 기사: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 … 是謂訓民正音).” 언문(諺文), 언어(諺語), 언서(諺書)는 진서(眞書)라 부르던 한자·한문과 대비하여 한글 및 한글로 쓴 것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諺(언)’은 의미 부분인 言(말씀 언)과 소리 부분인 彦(선비 언)이 결합한 형성자(形聲字)로 후대에 전해질 정도로 훌륭한 옛말인 언어(諺語)를 가리켰다. 이에 단옥재(段玉裁)는 『설문해자주(說文解字註)』에서 “경전에서 諺이라 칭해진 말치고 전대의 교훈이 아닌 것이 없었다(凡經傳所偁之諺, 無非前代故訓)”라고 언급했다. 옛말은 당시의 말로 주석이 필요했을 것이므로 당시의 유행하는 말, 속어, 속되다는 의미로 파생되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1443년에 세종이 창제한 우리나라 글자인 한글을 의미하기도 하고, 이를 반포할 때 찍어 낸 판각 원본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음(正音)은 훈민정음(訓民正音)과 관련 있다. ‘정(正)’은 갑골문(甲骨文)에서 점(●) 혹은 네모(囗)와 止(발 지)로 이루어진 회의자(會意字)로서 성을 정벌하러 간다는 의미였다. 네모(囗)가 가로획으로 변하여 오늘날의 자형이 이루어졌다. 정벌은 정당성과 정의가 선제되어야 했기에 정의라는 의미로 파생되었고, 원래 의미는 彳(조금 걸을 척)을 더해 征(칠 정)으로 나타내었다. 이후 치우치지 않다, 바르다, 곧다, 정직하다, 정의롭다, 정확하다, 한가운데, 표준 등의 의미가 파생되었다. ‘언문(諺文)’이 ‘정음(正音)’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에 대한 개념, 의미, 품사, 역할 등과 관련해서 학자들 간에 이견이 존재하지만, ‘한글’을 속되게 이르던 것과 표준이라고 인정한 것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타자(他者)에 대한 평가가 자기 자신에 대한 고백임을 기억하며, 한글 및 한글날에 대한 의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신아사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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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순방(巡訪)
한자의 비밀 대통령의 해외 순방(巡訪)이 큰 화제가 되었다. 순방(巡訪)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나 도시 따위를 차례로 돌아가며 방문함’을 의미한다. 『우리말샘』 사전의 표제항으로 올라간 해외 순방(海外 巡訪), 순방국(巡訪國)의 예문이 보여 주듯이 요즈음 순방은 대통령의 해외방문과 연관되어 주로 사용되는 추세이다. 순방(巡訪)의 ‘순(巡)’은 ‘쉬엄쉬엄 갈’ 착(辵)과 ‘시내’ 천(川)의 결합으로, 강의 물길(川)을 따라 가는(辵) 것을 말한다. 방(訪)은 말씀 ‘언(言)’과 사방 ‘방(方)’의 결합으로, 사방(方)으로 찾아가 묻고(言) 답을 찾음을 말한다. 한자 어원으로 보자면 순방은 의견을 묻고 답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두루 다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옛날 중국에서 천자가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던 일’을 순수(巡狩)라고 하였다. 『맹자』 ‘양혜왕’ 하편 4장 5절에 ‘천자적제후왈순수(天子適諸侯曰巡狩)’라는 대목이 나온다. ‘천자가 제후가 다스리는 지역을 가는 것을 순수(巡狩)라고 한다’로 풀이된다. 맹자는 천자의 순수는 백성의 어려움을 살피고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순수의 수(狩)는 개 견(犬)에 지킬 수(守)가 결합된 한자이다. 수(狩)는 사냥개를 동원해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짐승을 잡는 ‘사냥’을 뜻한다. 수(狩)가 포함된 순수는 왕이 사냥을 하듯이 통치권 강화를 위해 나라 안을 두루 다니는 정벌 행위로 볼 수 있다. 순수에 함의된 ‘사냥’과 ‘정벌’을 잘 구현한 역사 속 인물이 중국의 진시황이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후 다섯 차례 자신이 정복한 지역을 순수했지만 백성의 어려움을 살피기보다 권세를 과시하는 것에 급급해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순행(巡幸)도 임금의 거둥[擧動]을 뜻한다. 왕이 궁궐 밖으로 가는 것을 행행(行幸), 선릉으로 행차하는 것을 능행(陵幸), 온천에 가는 것을 온행(溫幸) 등으로 분화되어 사용되었다. 과거 왕의 순수와 오늘날 대통령의 순방의 기본적 차이는 말(言)에 있다. 예전 순수는 감시하고 사찰하여 왕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면 오늘날 국가 지도자의 해외 순방은 국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상대방과 의견을 나누고 답을 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순방에서는 국가 지도자의 말의 내용과 구사하는 어휘, 말하는 태도 등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진숙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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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태풍은 큰 바람?
한자의 비밀 역대급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강타하고 빠져나갔다. 문득 드는 생각, 태풍을 한자로 써 볼까? 흔히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클 태 자를 어떻게 쓰지? 사전을 찾아본다. 예상외의 글자가 보인다. 태풍(颱風)! 뒤에 나오는 바람 풍(風) 자는 익숙한데, 앞에 나오는 글자가 영 생소하다. 클 태(太) 자가 아니다. 무슨 글자일까? 태풍의 태는 태풍 태(颱)라는 한자이다. 바람 풍(風)을 부수로 하여 글자의 의미를 담았다. 별 태(台)는 글자의 소리를 보이는 역할을 했다. 이런 한자를 형성자(形聲字)라고 한다. 전체 한자의 약 80%가 형성자라는 통계가 있다. 이 한자는 역사가 길지 않다. 1634년의 문헌 『복건통지(福建通志)』에 등장하지만, 1716년의 문헌 『강희자전(康熙字典)』에는 등재되지 않았다. 『복건통지』는 대만을 포함한 푸젠성 지역의 기후나 풍속 등에 대한 기록인데 반해, 『강희자전』은 당시의 자서(字書)와 운서(韻書)를 종합한 중앙의 자전(字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颱는 특정 지역의 방언을 표기하던 제한된 사용의 한자가 한참 뒤에야 중앙 언어로 편입된 사례로 보인다. 이 한자는 용례도 많지 않다. 현대 한국어에서 표제어가 가장 많은 『우리말샘』에서조차 颱가 사용된 단어는 총 31개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모든 사례가 태풍의 합성어 또는 태풍을 포함한 관용 표현에 제한된다. 결국 颱는 태풍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태풍 전용 한자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왜 태풍(颱風)일까? 태풍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당시의 외래어에 대한 음역어라는 견해가 설득력 있어 보인다. 영어에서 태풍을 나타내는 타이푼(Typhoon)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티폰(Typhon)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소리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생소한 한자 颱를 활용하고, 바람의 한자 風을 결합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그렇다면 음역어로서의 태풍이라는 단어가 정착되기 전에는 어떤 단어를 사용했을까? 역사서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회오리 구(颶) 자를 사용한 구풍(颶風)도 보이고, 빠르다 질(疾) 자가 사용된 질풍(疾風)도 눈에 띈다. 이번 태풍으로 제주를 비롯한 남부 지역에 피해가 컸다. 모쪼록 우리 사회가 힘을 합쳐 재난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돌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임현열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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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傘(우산 산)’
한자 우산 없이 갑작스러운 비를 만났을 때, 어느 가게의 천막 아래에서 언제쯤 비가 그칠까 하염없이 하늘만 올려다본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혹은 우산을 챙겨 나왔더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하루종일 거추장스러웠던 날도 있다. 오락가락한 비 소식이 잦은 요즈음, 우산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운 존재이지 않을까. 우산을 의미하는 한자 ‘傘(산)’은 우산을 편 모양을 본뜬 상형자이다. 과거에는 지금의 쓰임과는 달리, 왕과 왕족이 행차할 때 햇볕과 비를 가리기 위한 의장용 기구였다. 본래 의미부인 ‘糸(실 사)’와 소리부인 ‘散(흩을 산)’이 합쳐진 ‘繖(산)’과 같이 쓰였는데, 점차 ‘傘(산)’의 쓰임이 우세해졌다. 사용 목적에 따라서는 비를 막기 위한 우산(雨傘), 해를 가리기 위한 양산(陽傘)으로 구분된다. 한국과 중국과는 달리, 일본어의 경우 양산이라는 표현보다는 ‘日傘[히가사, ひがさ]’를 더 자주 사용한다. 의장용 기구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우산은 신분이 높은 특정 계층만 쓸 수 있었고 일반 백성들은 도롱이나 삿갓 등으로 비를 막았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서양식 우산과 양산은 19세기 말께 들어왔다. 편복산(蝙蝠傘)이라고 불렸는데, 우산을 펼쳤을 때의 모양이 편복(蝙蝠), 즉 박쥐의 날개 모양과 흡사하다고 하여 일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이 한국어로 차용되면서 박쥐우산(양산)이 됐다. 박쥐양산은 햇볕을 가리는 용도뿐만 아니라, 쓰개치마나 장옷 등의 대용으로 얼굴을 가리는 패션 장신구이자 신여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판촉이나 기념 선물로 우산이 자주 애용되지만, 중국에서 우산 선물은 피하는 것이 좋다. 우산의 ‘伞[산, sǎn]’과 ‘헤어진다·흩어진다’는 의미의 ‘散[산, san]’이 성조만 다를 뿐 발음이 같아서 우산을 선물하면 실제로도 관계가 멀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에서 우산은 사랑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相合傘[아이아이가사, あいあいがさ]’라고 하여 남녀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우산이라는 표현이 있다. 화장실 벽이나 교실 칠판의 한 귀퉁이에 우산 모양을 그리고 우산대 양쪽에 남녀의 이름을 써넣은 것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래 봬도 일본 에도시대(1603~1867) 때부터 행해졌던 일종의 낙서 문화다. 우산은 긴 역사만큼이나 부르는 명칭도 여럿이고, 나라마다 다양한 문화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최승은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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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부끄러움
한자의 비밀 ‘부끄럽다’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리말샘에 보면 ‘일을 잘 못하거나 양심에 거리끼어 볼 낯이 없거나 매우 떳떳하지 못하다’라는 의미와 ‘스스러움을 느끼어 매우 수줍다’라는 의미로 구분한다. 첫 번째 의미에 해당하는 글자가 恥라는 한자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나라에 도가 없는데 국록을 받아먹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가 없는데 부하고 귀하게 사는 게 부끄러운 일이다(邦無道穀恥也, 邦無道富且貴焉)”고 했다. ‘恥’란 귀와 마음이 결합한 글자로, 몇 가지 어원이 등장하지만 어떤 설명에서도 귀와 마음이 결합하여 마음에 부정적인 작용, 즉 양심이 귀를 빨갛게 한다거나 패배의 상징으로 귀를 거두어들였기 때문에 귀를 잃는 것은 치욕이라는 의미와 연결된다. 중국 베이징에는 위엔밍위엔(圓明園)이 있다. 청 강희제부터 건륭제까지 150년에 걸쳐 조성된 가장 큰 별장이었다. 위엔밍위엔은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이곳을 파괴하고 전소할 뿐 아니라 이곳의 수없는 보물들을 약탈해 간다. 이곳을 방문하면 당시에 폐허가 된 뒤 어떠한 것도 정리하지 않은 유적들 뒤로 “나라의 치욕을 잊지 말고, 중화를 다시 일으켜 떨치자(不忘國恥, 振興中華)”라는 큰 간판이 보인다.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이라는 뉴욕의 한복판에는 9·11 테러추모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테러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 이외에 이곳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과 이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린 이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감추려 하지 않는다. 기꺼이 내어놓고 개방하며 무엇이 진실이며, 이것들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부끄러움은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심에 부끄러워 자기도 모르게 귀가 빨개지듯 모른 척 감춘다는 것은 자신을 속일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을 속이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양심에 따라 잘못된 것을 고치고 거울로 삼아 생각과 행동을 고치는 것이 부끄러움에 벗어나는 길이다. 사람다움은 자기로부터 한발짝 떨어져 자신을 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다. 혹 부끄럽다면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며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않음(過則勿憚改)’이 삶의 중요한 가치와 덕목이 되어야 함을 다시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허철 경성대학교 한국한자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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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冷(찰 냉)’과 ‘氷(얼음 빙)’
한자의 비밀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요즘 시원한 여름철 별미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그중에서도 냉면은 단연 대표적이다. 냉면(冷麵)의 ‘냉(冷)’은 ‘차다’ ‘차게 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자전인 『설문해자』에서 ‘冷’은 ‘차갑다’의 뜻으로, 의미를 나타내는 ‘仌(얼음, 고드름)’과 소리를 나타내는 ‘令(령)’이 합쳐진 것이라고 하였다. 국어에서 ‘냉-’은 ‘차가운’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여러 단어와 결합하여 파생된다. 예컨대, ‘냉면(冷麵)’ ‘냉국(冷국)’ ‘냉채(冷菜)’ 외에도 일상 언어에서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냉과(冷菓)’ ‘냉잡채(冷雜菜)’ ‘냉주(冷酒)’ ‘냉차(冷차)’ 등과 같은 음식명이 있다. 최근에는 라면을 차갑게 만든 ‘냉라면’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흥미로운 점은 시원한 음료를 표현할 때, ‘냉수(冷水)’ ‘냉커피(冷coffee)’와 같이 한자어 ‘냉-’과 결합하기도 하고, ‘시원하다’ ‘차갑다’라는 고유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어에서는 얼음을 뜻하는 한자 ‘冰(빙)’으로 표현한다. 예컨대, 냉수는 ‘冰水[빙쉐이]’, 냉커피는 ‘冰咖啡[빙카페이]’, 시원한 맥주는 ‘冰镇啤酒[빙전피지우]’ 등과 같다. 현대 중국어에서 ‘冷’은 주로 ‘춥다’의 뜻으로 쓰이며, ‘冰’은 ‘얼음’ ‘차갑다’의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冰(빙)’은 금문에서 ‘仌’으로 그렸다. 이는 고드름이 아래로 드리운 모습에서 온 것으로, 얼음이 될 때 체적이 불어나 위로 부풀어 오른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후 얼음이 물에서 만들어짐을 강조하기 위해 ‘水(물 수)’를 더해 ‘冰’의 형태로 쓰이다가 다시 획수를 줄여 ‘氷’으로 축약되었다. 『설문해자』에서 ‘冰’은 ‘물이 굳어짐’의 뜻으로, ‘仌(얼음, 고드름)’과 ‘水(물)’가 합쳐진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현대 중국어에서는 본자인 ‘冰’을 쓰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氷(얼음 빙)’이 정자로 쓰여 중국과 자형을 달리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과 중국은 모두 한자 문화권이며 지리적으로도 가깝지만, 시원한 음료라는 동일한 대상에 의미는 같지만 각각 다른 글자로 표현함을 알 수 있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별미도 먹고, ‘시원하게’ 탁 트인 풍경도 바라보고, 답답했던 일도 ‘시원하게’ 해결되고, ‘시원하게’ 하하 웃으며 모든 이가 건강하게 여름을 보내기 바란다. 이선희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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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사람과 곡식(穀食)
한자의 비밀 사람과 곡식은 가꾸기에 달렸다. 곡식은 사람 손이 많이 가고 부지런히 가꿔야 잘되며, 사람은 어려서부터 잘 가르치고 이끌어야 훌륭하게 성장한다. ‘자식 농사’처럼 곡식이 사람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것은 곡식이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곡식(穀食)’은 사람의 식량이 되는 쌀, 보리, 콩, 조, 기장, 수수, 밀, 옥수수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곡물(穀物)’을 뜻한다. “곡(穀)”은 의미 부분인 禾(화: 벼)와 소리 부분인 殼(각: 껍질)이 결합한 것으로 단단한 껍질이 있어 낟알을 벗겨야 하는 곡식을 가리키는 글자다. 고대 농경문화에서는 곡식을 봉급으로도 받았으므로 봉록, 봉양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됐으며 생장하다, 좋다는 의미로도 파생됐다. 곡식의 총칭으로 국어에서 ‘곡식’ 혹은 ‘곡물’을 혼용하는 것에 비해 중국어와 일본어는 ‘곡물’(gǔwù·구우, こくもつ 고쿠모츠)을 사용한다. 중국어·일본어에서 곡식은 ‘곡식을 먹다’, ‘곡물을 상식(常食)으로 하다’라는 동사적 의미이자 명사인 곡물의 의미도 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어와 구분된다. 한편, 곡식과 낟알은 영어로 grain이며, 1grain은 0.0648g으로 낟알의 무게다. 필자에게 있어 GRAIN은 성별(Gender), 연구(Research), 나이(Age), 흥미(Interest), 이름(Name)으로 ‘나’라는 존재의 일면으로 다가온다. 곡식, 낟알, grain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각자에게 묻고 싶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과 평가가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고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기대하도록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의 기울기는 언제나 가변적이다. 오로지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곡식 외부의 현실을 직시하고, 껍질 내부의 낟알을 재정립하자. 과거를 객관적 사실로 인정하고, 삶의 주체로서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 작은 낟알이 인류의 에너지원 역할을 해 온 것처럼, 미약하지만 단점을 극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시켜 주변을 이롭게 하는 존재,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살아내는 미래지향적인 존재가 되기를 다시 한번 다짐한다.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마른논에 물 들어가는 것하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게 가장 기쁘다.” 신아사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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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霖雨(임우)
한자의 비밀 장마를 나타내는 한자어 중 ‘霖雨(임우)’라는 단어가 있다. ‘霖雨(임우)’는 ‘霖(장마 림)’과 ‘雨(비 우)’로 구성된 한자어로 한국·중국·일본 등 한자문화권에서 모두 장마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인다. ‘雨(우)’는 상형 글자로, 갑골문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의 모습을 본떠 그린 것이다. ‘霖(림)’은 숲(林)에 비(雨)가 내리고 있는 모양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국 漢(한)나라의 許愼(허신)이 쓴 중국의 가장 오래된 字典(자전)인 『說文解字(설문해자)』에 따르면, 이 글자는 의미를 나타내는 ‘雨(우)’와 소리를 나타내는 ‘林(림)’으로 구성된 형성 글자로, 사흘 이상 내리는 비를 뜻한다. 이 두 글자가 합쳐져 ‘계속해서 내리는 큰비’를 의미하다가, 지금은 주로 여름철 장마를 의미한다. ‘霖雨(임우)’는 『세종실록』에 ‘지난가을에 장마 비[霖雨]로 인하여 소금을 굽지 못하였다’ 등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에 장마로 인한 나라의 재난과 관련된 기록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霖雨(임우)’는 장마라는 뜻 이외에도 적절한 때 내리는 ‘時雨(시우)’, 또는 단비인 ‘甘雨(감우)’를 의미한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유교 경전 중 하나인 『書經(서경)』 ‘說命上(열명상)’에 商(상)나라 高宗(고종)이 신하 傅說(부열)에게 “만약 큰 강을 건너면 그대를 배와 노로 삼을 것이며, 만약 큰 가뭄이 들면 그대를 단비로 삼을 것이다(若濟巨川用汝作舟楫, 若歲大旱用汝作霖雨)”라는 구절이 유명하다. 여기 나오는 ‘霖雨(임우)’는 이후 많은 동양 고전에서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윤택하게 하는 인재 혹은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보필하는 재상 등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됐다. 장마는 때에 따라 사람들에게 근심을 주는 ‘霖雨(임우)’가 될 수도 있고, 모두가 기다리고 바라는 ‘霖雨(임우)’가 될 수도 있다. 올해 장마는 세상을 윤택하게 하는 ‘임우’가 되길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이 쓴 시 한 구절을 읽으며 장마의 끝을 기다려 본다. 꽃을 심고 사람들은 꽃만을 볼 줄 알지(種花人只解看花)/꽃이 진 뒤 잎이 더욱 화사한 줄은 깨닫지 못하네(不解花衰葉更奢)/정말 좋구나. 한 차례 임우가 지나간 뒤(頗愛一番霖雨後)/여린 가지마다 돋아나는 연노란 싹들이(弱枝齊吐嫩黃芽). (丁若鏞(정약용) 『茶山詩文集(다산시문집)』 제3권 ‘池閣(지각)’ 중) 노혜정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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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안면부지(顔面不知)의 아는 사이
한자의 비밀 6/18 코와 입은 완전히 가린 채 타인을 식별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두 눈뿐이었다. 안면부지(顔面不知)의 마스크 생활도 어언 2년이 훌쩍 넘었다. 지난 5월에야 마스크 착용 기준이 완화됐다.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마주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있음을 예상해 본다. 안(顔), 면(面) 모두 다소의 쓰임 차이는 있지만 얼굴을 뜻하는 한자다. 안(顔)은 ‘彥(선비 언)’과 ‘頁(머리 혈)’이 결합한 모습으로, 중국 후한 시대 허신이 쓴 『설문해자』에는 눈썹과 눈의 사이라고 적고 있다. 애초에는 미간 부분을 지칭했던 것이 이후 얼굴 전체를 뜻하게 된 것이다. 면(面)은 얼굴의 윤곽과 눈 하나를 본뜬 글자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얼굴을 뜻한다. 다른 신체와는 달리 겉으로 드러나기에 사물의 표면(表面), 방면(方面) 등으로 의미가 파생됐다. 안면(顔面)은 곧, 사람 머리의 눈, 코, 입 등이 있는 앞쪽 면을 의미한다. ‘안면이 있다’는 말은 한두 번 만나거나 인사를 나눈 적이 있어 눈, 코, 입의 얼굴을 아는 정도의 사이라는 뜻이며, ‘면식(面識)’도 비슷한 의미로 상대방의 다른 정보는 알지 못하더라도 오고 가며 얼굴은 아는 정도의 관계를 말한다. 몇 번 얼굴을 마주하면서 예전부터 알고 있는 관계인 구면(舊面)이 되고 지인(知人), 친구 등으로 칭해질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일본어로 아는 사람을 뜻하는 말 중 ‘가오미시리(顔見知り)’ ‘가오나지미(顔馴染み)’라는 표현이 있는데, 얼굴을 마주한 횟수로 내심 어느 정도의 아는 사람인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반대로 ‘안면부지(顔面不知)’는 얼굴을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초면이라 낯선 사람을 일컬을 때 쓰인다. 얼굴을 안다는 것은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분별하는 기준이며, 관계 형성에 있어 초보적인 단계이기도 한 것이다. 그동안의 마스크 생활로 인해 눈, 코, 입의 다 갖춰진 상대의 얼굴이 익숙하지 않아 마스크를 벗은 낯선 얼굴에 흠칫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주 만나며 일상을 공유하는 ‘아는 사이’이지만 얼굴은 낯선, 웃지 못할 관계를 만들어 냈다.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더라도 계속 착용하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오히려 익숙해져 버린 마스크 문화가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을 듯하다. 마스크로 안면의 대부분을 덮은 세상 속에서 ‘대인 관계의 시작=안면 트기’라는 공식이 재정립되끼까지는 변화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최승은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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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다양한 뜻 가진 知
한자 그래서 ‘온고(溫故)’란 “(어떤 사건이 일어난) 까닭이나 이유를 반복하여 (물이 데워지는 것처럼)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다”라는 의미가 된다. 과거를 깊이 알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지신(知新)은 어떨까? ‘知’는 ‘矢’와 ‘口’가 합쳐진 글자이다. ‘矢’는 화살을 나타내며 화살은 사냥이나 전쟁을 의미하고, ‘口’는 말을 뜻하여 사냥이나 전쟁에 관한 말을 의미하게 된다. 수렵사회에서 화살을 이용한 수렵은 성인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소양이자 지식이었으므로 이 글자는 ‘알다, 깨닫다, 이해하다’라는 뜻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시 ‘관장하다, ‘주도하다’라는 의미로 파생되거나 ‘경험’이나 ‘상식’ 등의 명사로 사용된다. 따라서 ‘人不知而不溫’과 ‘溫故而知新’ 두 문장에 사용된 ‘知’의 의미는 다르다. ‘人不知’에서는 다른 사람의 이해를, ‘知新’에서는 자신의 배움 혹은 수확을 의미한다. 흔히 ‘知’와 혼동해서 사용하는 ‘智’는 병사와 전쟁에 관한 일을 말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고 발전된 한자는 의미가 비슷하면서도 모양도, 활용도 다르다. 어떤 사람도 의미 없지 않은 만큼, 어떤 한자도 의미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자의 사용 또한 고정되거나 획일화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가 고정화, 획일화된 선입견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이런 태도가 오히려 진실을 가린다. 진실은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 배경과 이유를 오랜 시간 깊이 있게 살피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허철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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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추앙(推仰)을 외치다
한자 ‘추앙(推仰)’은 일상에서 낯선 단어다. 그런데 최근 한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나를 추앙해! 난 한 번도 채워진 것이 없어. 나를 추앙해!’라고 절규한 장면이 큰 화제가 되면서 요즘 SNS에서 ‘추앙’이 다양한 모습으로 패러디되고 있다. 드라마에서 결핍을 채워 줄 절대적 지지와 응원을 뜻하는 ‘추앙’이 삶에 지친 우리들의 마음에 위로를 준 모양이다. ‘추앙’의 사전적 의미는 ‘높이 받들어 우러러보다’이고, 추앙의 대상은 대부분 범접하기 어려운 위치의 위인이나 성인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일반적 기준의 추앙 대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갑질당하는 계약직이고 남자친구의 배신으로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이다. 추앙을 요구받은 남자 주인공은 낮에는 싱크대 공장에서 일하며 밤에는 술로 세월을 보낸다. 오늘날 ‘추앙(推仰)’은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한자어로, 중국과 일본의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중국에서 ‘推仰’의 의미로 ‘敬仰’ ‘景仰’ ‘推崇’이 사용되고, 일본어에서 ‘あおぐ(仰ぐ)’ ‘敬うやま(敬)う’가 사용된다. ‘推仰’은 영어로는 ‘존중하다(respect)’나 ‘경외하다(revere)’보다 ‘숭배하다(worship)’에 가깝다. 숭배자는 숭배 대상이 가치 있다고 생각해 숭배한다. 추앙에서 추(推)는 손 수(手)와 새 추(隹)의 결합으로 손(手)으로 새(隹)를 멀리 날아오르게 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설문해자』에서 ‘隹’에 대해 “꼬리가 짧은 새를 추(隹)라 하고, 꼬리가 긴 새를 조(鳥)라 한다”고 했다. 자형에 근거해 “목이 잘록해 소리를 잘 내는 새를 鳥, 목이 짧아 잘 울지 못하는 새를 隹라 한다”라는 해석도 있다. 이러한 해석에 한정해서 보면, ‘隹’는 대부분 꼬리가 짧고 잘 울지도 못하는 새이고 새 중에도 덜 사랑받는 새일 가능성이 높다. 앙(仰)은 人(사람 인)이 의미부이고 卬(나 앙)이 소리부다. ‘卬’은 앉은 사람(卩)이 서 있는 사람(人)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추앙’의 기존 용례에서 그 대상은 주로 위대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隹’의 한자어원으로 유추해 보면 그 대상이 꼭 그렇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 시대에 ‘推仰’이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들은 끊임없는 비교에 지치고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누군가의 조건 없는 응원이 절실한 사람일 것이다. ‘모양 빠져’ 보이는 사람끼리 서로를 ‘추앙’해 높이 날아오르는 해방을 상상해 본다. 이진숙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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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스승(師)의 참된 의미
한자의 비밀 ‘스승의 날(5월 15일)’은 1964년에 만들어졌으며 이듬해 기념일로 지정됐다. 이날은 세종대왕 탄신일(誕辰日)로 ‘이 세상의 모든 스승이 세종대왕처럼 존경받는 시대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됐다. 스승은 무당을 나타내는 무격(巫覡)에서 ‘여자 무당’을 말한다거나 중(僧)을 나타내는 ‘사승(師僧)’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우리가 흔히 스승이라 하면 ‘선생(先生)님’을 지칭하는데 先生이라는 단어는 보통 연장자에게 쓰였다. 그러다가 고려시대 이후 학문적으로 덕망이 높은 사람, 혹은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 혹은 학예가 뛰어난 사람, 혹은 각 관청과 관아의 전임자를 가리키는 일종의 존칭 또는 경칭으로써 고대사회부터 근대사회까지 오랫동안 사용되던 호칭이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先生이란 호칭을 영어의 미스터처럼 보편적으로 성인 남자의 성씨, 혹은 본명 뒤에 붙이는 경칭으로 사용하는데, 특정 직업이나 기술 또는 학식이 풍부한 사람에 대해선 별도로 ‘스승 사(師)’를 사용해 ‘노사(老師)’라고 칭한다. ‘사(師)’는 본래 ‘퇴(𠂤)’로만 썼는데 이를 가로로 눕히면 구릉(丘陵)이 돼 ‘작은 언덕’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끝없이 펼쳐진 황토 평원에서 구릉의 기능은 홍수를 막아 주기도 하고, 쳐들어오는 적을 조기에 발견해 방어할 수 있도록 해 줬으며 심지어는 하늘과도 통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고대 중국인들은 성(城), 왕릉(王陵) 등을 구릉에 세웠고, 성과 왕릉이 위치한 곳은 반드시 군대의 병졸(兵卒)들이 지키도록 해 ‘군사(軍師)’라는 뜻도 있다. 이후 군대의 ‘지도자’라는 뜻으로 확대돼 ‘스승·모범’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됐으며 ‘의사(醫師)’처럼 특정 직업이나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부르는 호칭에 사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의미들을 종합적으로 유추해 볼 때 스승이란 경험이 풍부한 지도자로서 인생이라는 험난한 여정에서 우리를 안전하고 이로운 곳으로 안내해 줄 한 줄기 빛 같은 존재이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북두칠성 같은 든든한 존재라 생각한다. 즉, 스승의 역할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기본적인 책무와 교육자로서의 소명 의식에는 변함이 없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수 있는 나침반 같은 참된 스승(師)이 더욱더 절실히 필요해지고 있다. 곽현숙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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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다름과 같음의 공존(共存)
한자의 비밀 동아시아 지역에서 한자 사용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역사 속에서 다양한 함의를 담은 어휘가 생성, 변용돼 사용되고 있다. 우리말 어휘 중에도 우리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한자를 변용해 만들어진 게 많다. ‘초밥(醋밥)·온돌(溫突, 突은 우리말 ’돌‘의 음차 표기)’ 등은 고유어와 한자가 결합한 어휘고, ‘깡패(gang牌)·깡통(can桶)’ 등은 한자와 영어가 결합한 어휘다. 또 ‘각광(脚光)·연미복(燕尾服)’과 같이 외래어를 번역한 어휘도 있고, ‘도대체(都大體)·무려(無慮)’와 같이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우리말로 귀화돼 한자가 결합된 형태인지조차 알 수 없는 말도 있다. 특수한 역사적 배경 아래 만들어진 ‘수라(水剌)·개판오분전(開飯五分前)’이나 다른 나라와 다르게 변용한 邑面洞里(읍·면·동·리) 같은 행정단위도 있다. 시선을 우리말에서 한자문화권 전체로 확대해 보면, 나라별로 한자가 훨씬 더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고전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사회·경제’와 같이 다른 의미로 변용된 경우도 있고, 우리가 쓰는 ‘점심(點心)·노파(老婆)’ 같은 어휘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 그런가 하면, airport를 공항(空港, 한국·일본)과 기장(機場, 중국)으로, train을 기차(汽車, 한국/일본) 혹은 화차(火車, 중국) 등으로 달리 쓰거나 구분해서 쓴다. ‘섭씨(攝氏)·화씨(華氏)’ 같은 과학 용어나 ‘방정식(方程式)·분수(分數)’ 같은 수학 용어, ‘책상(冊床)·교실(敎室)·도로(道路)’ 등과 같은 일상어는 한·중·일이 모두 동일한 형태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한자의 사용은 자유롭지 않은 듯하나 자유롭고, 어휘의 생성과 변용은 고정된 듯 보이나 고정돼 있지 않다. 언어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라고 본다면, 다양한 어휘의 생성과 변용을 깊이 있게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모든 존재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배우게 된다. 다양한 것이 뒤섞여 공존하는 세상, 그것이 어휘의 세계인 동시에 우리의 세계이다. 세상은 자아와 타자, 시와 비, 흑과 백이라는 이분법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다양함 속에 전체를 조망하고 포용하는 인식에서 세계의 조화로움을 찾을 수 있다.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를 인정하는 세상, 그리고 그 변화의 원인과 과정을 살펴 현상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인 셈이다. 허철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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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소풍(逍風) 가기 좋은 날
한자의 비밀 4/9 소풍의 구성자로 ‘風’(바람 풍)자를 쓴 것은 아마도 한국어 ‘바람을 쐬다’가 관용적으로 ‘기분 전환을 위해 바깥을 거닐거나 다니다’는 의미로 사용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 소풍이란 단어를 누가,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정확한 출처는 찾을 수 없으나, 광복 이후 일제의 잔재가 남은 일본어 계통 단어인 ‘원족’의 대체 단어로 꾸준히 제시돼 왔으며, 90년대를 전후해 봄나들이를 대표하는 한국어 표현으로 자리 잡게 됐다. 원족은 일본어 단어 ‘遠足 (えん‐そく: 엔-소쿠)’을 한국 한자음으로 옮긴 것으로 『일본국어대사전』에서는 “학교에서 운동과 견학을 목적으로, 교사의 인솔하에 움직이는 작은 여행”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의 ‘소풍’보다는 그 목적이 분명해 보인다. 유사 이래 중국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됐던 표현으로는 ‘답청(踏青)’을 들 수 있겠다. 파란빛 새싹(靑)이 움튼 초목을 밟는다(踏)는 뜻이다. 청명절을 즈음해 조상의 묘소를 돌보고, 돌아오는 길에 야외에서 자연을 즐기던 풍습이 ‘답청’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내려온다. 이처럼 한·중·일 삼국은 봄나들이를 일컫는 명칭과 즐기는 방식에서 조금의 차이를 보인다. 2022년 봄나들이 방식으로 ‘소풍(逍風)’을 추천한다. 유유자적 느릿느릿 한가롭게 바람 한번 쐬고 오자. 우리 일상에 다시 완연한 봄이 올 때까지, 올해는 딱 소풍, 逍風 정도가 좋을 것 같다. 김미령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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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새 대통령은 어떤 패(牌)를 달 것인가
한자의 비밀 대통령 당선인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명패(名牌)를 갖게 됐다. 당선인은 지금의 청와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문패(門牌)를 달기를 원하는지 용산 지역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패(牌)를 내놓았다. ‘牌’(패)는 ‘片’(조각 편)이 의미부이고 ‘卑’(낮을 비)가 소리부이다. ‘片’은 왼쪽의 세로획은 나무줄기를, 오른쪽 위의 획은 나뭇가지를, 아래 획은 나무뿌리를 의미한다. 비(卑)는 일반적으로 밭 전(田)과 칠 복(攴)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고, 밭(田)에서 이를 강제하는(攴) 모습을 그렸으며 이 때문에 ‘시키다’의 뜻이 나왔고,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의 의미로부터 지위가 ‘낮다’는 뜻이 생긴 것으로 풀이한다. 금문을 토대로 한 비(卑)에 대한 또 다른 견해는 비(卑)를 왼손(屮, 좌)과 單(홑 단)의 아랫부분처럼 뜰채 모양의 사냥도구로 구성됐다고 보고, 뜰채를 든 사람은 말 탄 사람보다 지위가 낮고 힘든 일을 하므로 비(卑)에 ‘낮음’과 일을 ‘시키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그러면 패(牌)는 뜰채처럼 생긴 것으로 적의 공격을 막는 방패(防牌)의 의미로 사용되다가 이후 나뭇조각으로 만든 표식 등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하영삼, 『뿌리한자』). ‘패거리’의 어원은 조선시대 ‘패(牌)’에서 유래한다. 원래 이 ‘패’는 ‘조선시대 관청에서 함께 번을 서는 한 무리의 조’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 장용위에 속한 군사 50명을 거느리던 사람을 패두(牌頭)라고 했다. ‘패거리’라는 말은 ‘패(牌)’와 ‘비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거리’가 결합된 파생어로 ‘패’를 낮추는 말이다. 한 집단 이익만을 추구하는 패거리는 깡패와 다를 바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깡패(-牌)는 ‘폭력을 쓰면서 행패를 부리고 못된 짓을 일삼는 무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나온다. 깡패에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깡패’라는 단어 앞에 ‘음색, 분위기’ 등과 같은 가치중립적인 단어가 오면서 ‘깡패’라는 단어도 긍정적 의미도 가지게 됐다. 음색이 독보적인 가수를 ‘음색 깡패’라고 하고, 음원 강자를 ‘음원 깡패’, 분위기가 아주 멋있는 사람을 ‘분위기 깡패’라고 한다. 대통령 당선인이 임기 동안 분열과 대립을 지양하는 진정한 국민의 대통령으로 소임을 다해 임기 후 ‘공약 깡패’, ‘책임감 깡패’, ‘매력 깡패’ 등의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패(牌)를 달기를 기대한다. 이진숙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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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코로나19, 그리고 역병(疫病)
한자의 비밀 2022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19와 전쟁 중이다. 코로나19의 정확한 명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다. 중국에서는 ‘신형관상병독폐렴(新型冠狀病毒肺炎)’이라 표현하고 약칭으로는 ‘신관폐렴(新冠肺炎)’이라고 한다. 여기서 ‘관상(冠狀)’은 바이러스의 형태가 왕관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명명된 ‘코로나’의 영어 의역(意譯)이고, ‘병독(病毒)’은 병을 유발하는 독이라는 뜻의 바이러스를 의역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신형코로나바이러스(新型コロナウイルス)’로 표기하는데 ‘코로나(コロナ)’는 영어의 ‘Corona’ 발음을 그대로 옮긴 것이고, ‘바이러스(ウイルス)’는 라틴어의 어원인 ‘virus’ 발음에서 따온 듯하다. 이렇듯 같은 한자문화권이라 할지라도 한·중·일 모두 다른 방식과 형태로 코로나19를 표기하고 있고 이를 통해 외래어를 수용하고 표현하는 각국의 언어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최근에 중국에서는 코로나19를 ‘신관역(新冠疫)’이라는 새 용어로도 표현하는데 이 용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을 선언한 이후 중국에서 새로 등장한 어휘다. 기존의 코로나바이러스를 의미하던 ‘新冠’의 끝에 ‘疫’자를 첨가한 것으로 역(疫)은 ‘疒(병들어 기댈 녁)’이 의미부고 ‘殳(창 수)’가 소리부로 ‘전염병’을 뜻하며 반드시 몰아내어야 할 ‘역병(疫病)’을 뜻한다. 그래서 이 글자가 들어간 말은 홍역(紅疫)을 비롯해 두역(痘疫·천연두), 서역(鼠疫·페스트), 호역(虎疫·콜레라) 등 모두 돌림병과 관련된 병명(病名)들이다. 흔히들 우리 신체에 문제가 생겨 아프거나 건강하지 못하면 ‘병(病)’자를 통해 그 상태를 나타내는데, 병(病)의 정도나 범위, 전파 방식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다른 한자어와의 결합을 통해 질병의 종류와 특징을 설명한다. 코로나바이러스도 ‘전염병(傳染病)·감염병(感染病)·역병(疫病)·유행병(流行病)’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들의 개념이나 성격이 모두 같지는 않다. 각각의 상황에 따른 적절한 어휘 선택의 사용이 필요할 것이다. 돌림병은 모두 집단생활과 관련된 것들로 그 역사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 만들어졌다. 역사에 남을 초유의 돌림병인 코로나바이러스, 더이상 우리에게 낯설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친숙해지고 싶지도 않은 그 이름, 세상에 그 어느 병(病)이 친숙할 수 있겠냐만 이제는 정말 우리와 결별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곽현숙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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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왕좌(王座)와 다모클레스의 칼
한자의 비밀 곧 새 대통령이 뽑힌다. 누가 그 자리에 앉을 것인가? 옛날, 왕은 절대지존 그 자체였다. 그래서 공자도 왕(王)자를 두고 천지인(天地人)을 뜻하는 삼(三)과 ‘꿰뚫다’는 뜻의 곤(丨)으로 구성되어, ‘온 천하 만물을 하나로 꿰뚫을 수 있는 존재’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갑골문을 보면 그렇지 않다. 모자나 도끼를 그렸다고 하지만, 둘 다 권위의 상징물이다. 이 단순한 상징물이 공자라는 성인에 의해 우주만물의 지배자로 멋지게 변신했던 것이다. 왕의 자리는 최고라 모두가 탐하지만 그만큼 항상 위태했다. ‘다모클레스의 칼(Sword of Damocles)’이 상기된다. 기원전 4세기 초, 시칠리아 최고 통치자의 측근이었던 다모클레스는 임금의 화려한 연회에 초대받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리, 너무나 아름다운 양탄자, 향기로운 향수, 지상 최고의 음식들, 금은보화로 가득한 방, 미남미녀의 시중을 받는 그 자리가 한없이 부러웠다. “그렇게 부러우면 자네가 이 자리에 앉아보겠나?” “감사합니다.” “자, 여기에 앉게. 오늘 하루는 자네가 임금이네.” 감격에 겨워 왕좌에 앉아 왕 놀이를 하던 그가 우연히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아니, 날이 시퍼런 커다란 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실 한 가닥에 위태로이 매달려 머리를 노리고 있지 않은가? “아뿔싸! 이것이 바로 임금의 자리였구나!” 한나라 허신의 『설문해자』에서는 왕(王)자를 “온 천하가 다 귀의하여 돌아오는 자리이다(天下所歸往也)”라고 풀이했다. 왕(王)과 독음이 같은 왕(往)을 가져와 공자의 해석을 교묘하게 발전시켰다. 사실, 공자가 이미 왕을 한없이 존귀한 존재로 만들었지만, 거기에는 아직 왕 자신도 “천지만물의 이치를 꿰뚫어야 하는 존재”라는 책무가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그렇지 못한 왕은 왕의 자격이 없고, 세상의 이치에 통달한 존재라는 증명을 무한히 요구된다는 점에서 언제나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허신의 이 한마디로 왕의 위태로운 외부는 제거되고, 외부 없는 세계가 확립됐다. 그의 한마디 해설로 왕의 유한성이나 취약성이 사라졌다. 허신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 등극할 ‘왕’의 권위를 강화하고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한 정교한 작업들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해설로 바꿀 수 있는 본질은 없다. 다모클레스의 칼처럼 위태한 자리가 왕좌(王座)임을 새겨야 한다. 하영삼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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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大選(대선): 뽑아서 부려 쓸 자
한자 이제 大選(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누군가를 가려 뽑는 일’이란 관점에서 選(가릴 선)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볼까 한다. 사실 이 글자는 꽤 많이 쓰인다. 選擧는 물론 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어휘만 봐도 競選(경선)·選好(선호)·選擇(선택)·選出(선출)·當選(당선) 같은 것이 있으니 말이다. 『한자어원사전에 따르면 ‘選에는 제사에 쓸 것을 뽑아 보낸다는 뜻이 있다. 巽의 갑골문을 보면 두 사람이 꿇어앉은 모습을 그렸고, 辵은 마을이나 부족의 구성원 각자가 제사를 위해 중심부로 물건을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選은 제사상에 바치는 祭物(제물)처럼 구성원을 위해 희생할 사람을 뽑아(巽) 중앙으로 보낸다(辵)는 뜻이 되며, 여기에서 선발하다·파견하다 등의 뜻이 파생했다’고 한다. 한자 이 뜻풀이에서 관건은 ‘뽑혀서 희생할 자’, 大選이란 맥락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 보면, ‘국가 공동체의 성원인 국민의 손에 뽑혀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충분히 돼 있는 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국민은 무엇을 해야 하나? 당연히 ‘뽑는 일’, 投票(투표)다. 뽑혀서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충분히 돼 있는 사람한테 ‘표를 던지는 일’인데, 이와 관련해서 좀 더 흥미를 끄는 쪽은 ‘투표’를 뜻하는 영어 vote다. 온라인 영어어원사전은 명사 vote를 이렇게 풀고 있다. ‘15세기 중반, 어떤 제안, 후보 등과 관련해서 자신의 소망이나 선택을 공식적으로 표현한 것을 의미했는데, 이는 맹세·소원, 신한테 한 약속, 엄숙한 서약·헌신 같은 뜻을 가진 라틴어 votum에서 비롯했다.’ 이처럼 중대한 사회적 실천으로서 投票, 그리고 選을 有權者(유권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함께 고려해 볼 때, 이번 大選의 의미는 한층 더 분명해 보인다. 국민은 ‘뽑혀서 희생할 자’한테 투표한 다음 뽑힌 이를 ‘잘 부려 쓸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뽑혀서 희생할 자’의 그 각오에는 ‘국민한테 자신을 잘 부려 써 달라고 자청하는 것’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의 위에 君臨(군림)하려는 자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從僕(종복)이 되려는 자, 그런 자를 뽑아 부려 쓸 권리가 국민한테는 있는 것이며 국민이 有權者로 불리는 까닭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전국조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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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올바름과 정당(正當)
한자 1/29 편견 없는 세상이란 가능한 것일까? 불가능에 가까운 듯 보이는 이 명제를 실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름으로 지칭되기도 하는 사회적 운동도 그중 하나이다. 이 ‘정치적 올바름’이란 표현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언어적 표현이나 문화적 관습에 반대하고 그것의 개선을 지향하는 사회적 운동을 가리킬 때 쓰이곤 한다. 이것은 영어의 Political Correctness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사실 영어에서도 1980년대에 들어서야 앞서 설명한 뜻을 갖게 됐고, 운동의 양상과 말뜻은 지금도 변화하는 중이다. 이렇게 의미가 가변적인 표현은 원어를 고스란히 직역하거나, 혹은 특정 시기의 뜻만 반영해 옮긴다 한들 정확(正確)한 번역이라 하기는 어렵다. 그 때문일까.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아예 번역을 포기하고 영어의 발음을 흉내 낸 ‘포리티카루 코레쿠토네스’ 혹은 그것을 줄인 ‘포리코레’로 통용되는 실정이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평이하게 쓰이던 말을 가져와 새로운 단어를 만들면, 생소한 사물이나 개념을 친숙하게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이미 알고 있는 말의 뜻에 섣불리 기대어 새로운 단어가 가리키고자 하는 내용을 오해하게 하는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한국어 표현을 들여다보면 구성하는 단어는 평이하기 그지없지만 그것이 타당(妥當)하게 이해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만약 의미가 적절히 이해됐다면 그것을 갈음할 만한 유의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텐데, 과연 ‘정치적 올바름’에서 ‘올바름’은 어떤 단어로 바꿔볼 수 있을까? ‘정치적 올바름’은 중국어로는 政治正確(정치 정확)으로 번역되며, 일본어에서도 드물기는 하지만 政治的 妥當性(정치적 타당성) 혹은 政治的 正當(정치적 정당)이라는 한자어로 옮기곤 한다. 즉 正確(정확)·妥當(타당)·正當(정당)이라는 한자어가 ‘올바름’과 대응하는 것이다. 이들 단어에서 핵심적 의미는 ‘일정한 기준이나 조건에 이상적으로 부합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正(바를 정)과 當(마땅할 당)에 의해 대표된다. 그러한 맥락에서 正當(정당)함은 운동을 부르짖는 이들이 갖는 도덕적 우위를 나타내는 말로 이해될 법도 하다. 신웅철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