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이나인사이트] 현대 중국이 잊은 명대 가구 철학 “겸허해야 고귀하다”
━ 명나라 가구에 깃든 중국의 품격 한인희 건국대 중국연구원 상임고문 지난해 10월 8일 소더비 홍콩 가을 경매에서 홍콩의 명문가 후손이자 유명한 소장가인 조셉 호텅(何鴻卿)의 소장품 경매가 있었다. 이 경매에서 명나라 말기의 교의(交椅, 접이식 의자)인 ‘황화리원후배교의(黃花梨圓後背交椅)’가 눈길을 끌었다. 최종 낙찰가격은 1억2460만9000홍콩달러(약 198억5800만원). 중국 좌구(坐具) 경매 역사상 최고가의 기록을 세웠다. 명나라 말기 ‘교의’ 200억원에 낙찰 중국 명대 고가구값이 고가라는 점을 주장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왜 한·중·일 3국 가운데 중국만이 의자와 같이 높게 앉을 수 있는 가구들을 사용했을까가 궁금하다. 역사적으로 한·중·일 문화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주거방식이다. 한국은 주로 ‘구들’, 일본은 ‘다다미’ 바닥에 앉아서 생활했다. 중국도 고대에는 ‘바닥에 꿇어 앉는(跪坐)’ 주거방식이었다. 이처럼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는 방식을 ‘석지이좌(席地而坐)’라 하며 여기엔 예치와 계급사회의 전통이 스며들어 있다. 지금 중국에서 사용하는 ‘주석(主席)’이라는 용어도 이러한 역사적 전통에서 비롯됐다. 즉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는 인사를 가리켰다. 이러한 ‘석지이좌’ 습속은 상나라와 주나라 시기부터 위진남북조까지 약 1700여년간 이어졌다. 그렇다고 생활 속에 가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이 시기 가구에 다리가 높은 탁자나 의자가 없었을 뿐이다. 중국인이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다가 의자나 침대 위로 올라간 것은 생활상의 혁명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변화의 핵심은 불교와 호족의 영향이었다. 불교가 전래하자 다리를 내리고 앉을 수 있는 좌구인 접이식 의자 호상(胡床)이 중국에 들어왔다. 특히 위진남북조 시기는 한족과 이민족 간의 대융합 시기였다. 황화리원후배교의(黃花梨圓後背交 椅), 강향단나무로 만든 둥근 등받이 접이식 의자. [사진 한인희] 이로 인한 다양한 변화가 한족과 한족 정권에 나타났다. 단순한 변화를 넘어 사유방식, 행위특성, 생산방식, 풍속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른바 ‘호화(胡化)’가 이뤄졌다. 호인들의 ‘다리를 내리고 의자에 앉는’ 이른바 수각이좌(垂脚而坐) 생활방식이 점차 유행하게 된 것이다. 불교의 전래는 가구의 제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구 디자인에서 불교 건축양식인 곤문(壼門) 장식이 크게 유행했다. 명·청 시기 가구에 나타나는 말발굽형(馬蹄型)의 다리 선각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이렇게 해 수미좌(須彌座) 조형 역시 명식 가구의 핵심적 디자인이 됐다. 탁자의 면과 다리 사이에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것과 같은 형태의 속요형(束腰型) 가구의 탄생이 바로 그것이다. 간결·소박한 문인 정신 반영 명식(明式) 가구란 명대 및 청대 전기 강희·옹정·건륭 시기까지 제작된 가구들을 지칭한다. 이 시기 가구는 중국 전통 가구의 황금시대였다. 그렇다면 특별히 명대에 가구 문화가 발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명대 사회의 안정, 경제적 부유, 문화적 번영에 기인한다. 생활에서 담박하고 고상한 문화적 내함을 주요한 가치로 생각한 이어(李漁)·문진형(文震亨) 등 많은 문인 지사들이 직접 가구 설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들 관료 지식인들은 명대 가구의 특징인 간결하고 소박한 가구 제작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중국 명식 가구는 쑤저우(蘇州)의 것을 최고로 친다. 청 도광(道光) 시기 발행된 ‘소주부지(蘇州府誌)’ 기록을 보면 “오중(吳中)의 인재가 우수하기는 실로 천하 최고다. 백공(百工)의 기예 가운데 기교에서 보면 이들을 절대로 따라오지 못한다.” 여기서 말하는 오중이 바로 쑤저우 지역이다. 황화리남관모의(黃花梨南官帽 椅), 강향단나무로 만든 남방 지역 관모 형태 의자. [사진 한인희] 중국 고가구 분야 최고 명저인 『명식 가구 연구』를 집필한 왕세양(王世襄)은 명식 가구에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 즉 목재미·조형미·구조미·조각미·장식미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목재의 아름다움을 으뜸으로 쳤다. 그만큼 명식 가구는 어떠한 목재를 사용했는가가 핵심이다. 명식 가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우선 목재 자체의 재질, 무늬, 빛깔과 광택의 아름다움을 깊이 고려해 가구 자체에 조각이나 장식을 최소화했다. 이들 가구는 동남아 등지에서 수입한 황화리(黃花梨)·자단(紫檀) 등 재질이 우수한 경목(硬木)으로 제작됐다. 접이식 의자 ‘교의’는 중국 전통 가구 중 하나로 송나라 그림에도 등장한다. [사진 바이두] 둘째, 조형적으로 간결함을 강조한다. ‘재료를 적게 사용하고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했다. 장인들은 불필요한 부분은 최소화하고 꼭 필요한 부분만 남겨야만 완벽하며 완전하다고 판단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이미 ‘저탄소’ 가치를 실천한 셈이다. 셋째, 구조 분야에서 정밀한 맞춤을 중시했다. 짜 맞춤하는 장부의 구조가 핵심으로, 전통적인 짜 맞춤 방식인 순묘(榫卯, 숫장부와 암장부) 기법을 사용하였다. 특히 장부의 교합, 철제 못을 사용하지 않은 점, 그리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았다. 넷째, 장식에서도 직선과 곡선 배치의 조화를 강조한다. 사각 안에 원이 있고, 원 가운데 사각이 있으며, 장단과 굵기 등 방향적인 측면에서도 대비를 강조했다. 이는 변화를 추구하면서 조화와 통일을 이루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숫장부와 암장부, 선과 면, 사각과 원은 중용과 함축의 문화적 특징을 보여준다. 명품은 단순할수록 값도 높아져 지난해 10월 소더비 홍콩 가을 경매에서 명나라 말기 접의식 의자 ‘황화리원후배교의’가 약 198억 5800만원에 최종 낙찰돼 중국 좌구(坐具)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 텅쉰왕 캡처] 다섯째, 조각은 간결하고 여백을 처리할 필요가 있는 경우로 최소화했다. 이러한 예술 풍격은 명식 가구 아름다움의 정수이며, 당시 문인들에게 존재했던 기개이기도 했다. 이는 당시 문인들이 이름을 떨치고 출세하는 것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내적인 침잠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완전한 조화, 심경과 만물이 일체를 이루도록 했다. 결국 명식 가구가 추구하고자 했던 철학은 번잡한 장식이나 불필요한 가공을 하지 않고 간결함을 강조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으로, 고상하고 우아하면서도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했다. 이렇게 볼 때 명식 가구는 서양의 가구가 추구한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을 강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박하면서 고아하고 간결한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아이러니하게도 명품은 단순할수록 고가이며, 최고 예술의 경지는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숨겨질수록 더 고귀하다. 이러한 전통에도 현재의 중국은 대외적으로 거칠고 투박한 행태를 자주 보인다. 자신들의 선조들이 보여준 겸허하고 안으로 깊이 침잠하는 명식 가구의 미적 가치에서 교훈을 얻을 수는 없을까. ■ 최고 권력의 상징인 명나라 교의(접이식 의자) 「 현재 남아 있는 명대 고가구 진품은 약 1만여 점으로 추정한다. 자금성에 소장된 고가구가 7000여 점에 달하는데, 이중 명대 고가구는 겨우 300여 점에 불과하다. 물론 중국 내의 각 박물관과 소장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명식 가구들을 보유하려는 붐이 일고 있다. 해외 여러 박물관에서도 중국 명식 가구를 경쟁적으로 소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영국 브리티시 뮤지엄 등 대형 박물관에서 특별하게 소장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중국고전가구박물관이 명대 명품 고가구 1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명대 가구 소장가로 우선 미국인 로버트 엘스워스를 꼽을 수 있다. ‘명대의 왕’이란 별칭이 있는 그는 중국 고대예술품의 최고 수장가다. 미 캘리포니아 중국고전박물관 관장을 역임한 커티스 에바르트는 자신이 수집한 명대 가구로 상하이에 ‘산쥐(善居)’라는 고전가구점을 오픈했다. 필리핀의 비라타는 1960년대부터 명대 가구를 수집한 컬렉터로 유명하고, 영국인 소장가 휴고 모스는 다양한 명식 가구 소장자다. 명나라 말기에 제작된 교의가 고가로 평가되는 이유는 왜일까. 진품 교의는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었다. 오직 최고 권력자만이 앉을 수 있는 의자다. 중국에서 소위 ‘첫 번째 교의에 앉다’라고 하면 수령이 됐다는 뜻이다. 이러한 교의는 황제가 나들이하거나 하면 쉽게 접을 수가 있어 휴대하기 편하다. 그러나 하중을 잘 견딜 수 있어야 했기에 보존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10여 개 정도만 남아 있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명대 가구에 사용된 핵심적인 목재는 황화리(黃花梨)다. 청대에 자단(紫檀)이 주목을 받았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청대는 좋은 황화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자단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도 황화리와 자단을 발견하면 황제에게 보고하도록 규정했던 귀한 목재다. 지금도 중국에서 황화리와 자단은 수출금지 품목이다. 황화리는 컬러가 담황색으로 은은하며 목질이 안정적이다. 추위나 더위에 변형되지 않고 갈라지지도 않으며 쉽게 굽어지지도 않는다. 목질이 치밀해 장식이 선명하며 고아한 인상을 줘 명대 지식인의 큰 사랑을 받았다. 」 한인희 건국대 중국연구원 상임고문
-
[차이나인사이트] 제조업→서비스업 무게 이동, 중국 소비자들 지갑 여나
━ 2023년 중국경제 기상도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정책시(政策市).’ 중국 주식시장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다. 시장 수급보다 정부 정책에 의해 주가가 더 크게 움직인다는 이야기다. 경기가 불황일 때, 정부의 간섭이 심할 때 ‘정책시’의 성향은 더 두드러진다. ‘시장에 앞서 정부를 읽어라’라는 중국 증시 격언도 있다. 지금이 그렇다. 시장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부동산 시장은 수년째 침체 상태에서 헤매고 있고,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했던 IT기업도 축 처져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 일꾼이었던 민영 중소기업 역시 힘들다. 그간 추진해온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소비 수요마저 꽁꽁 얼어붙었다. 여기에 미국의 압박까지 더해져 ‘좋다 할 게 없다’고 할 정도다. 지난해 중국의 경제성장률(GDP) 예상치는 대략 3%대 초반. 정부의 목표치(5.5%)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래서 더욱 ‘정책’을 봐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중국은 국가가 전면에 나서 경제를 끌어가기 때문이다. 주택·전기차·헬스케어 대대적 지원 새해 중국 경제 회복은 경제 자립을 위한 내수 확대에 있다. 사진은 봉쇄 완화 후 상가로 나온 베이징 시민. [EPA=연합뉴스] 힌트는 역시 지난달 15~16일 이틀간 열렸던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찾아야 한다. 두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알리바바와 위챗 등 ‘빅테크 기업’ 풀어주기다. 신화사가 발표한 공보는 ‘플랫폼 기업이 디지털 경제 발전을 주도하는 동시에 일자리를 창출하며, 국제 경쟁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국유기업과 민간기업에 대한 동등한 대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민간기업의 재산권과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자본의 무질서한 확장을 막겠다는 1년 전 회의 결과와는 180도 전환이다. ‘공동부유’라는 단어는 아예 없다. 지난 2년여 동안 진행했던 주요 IT기업에 대한 정리 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양평섭 박사는 “민영기업을 살리지 않고는 성장을 되돌릴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둘째 내수 확대다. 공보는 ‘내년 경제 운용의 최우선을 소비 회복과 확대에 둬야 한다’고 못박았다. 주택 개선, 신에너지 자동차, 의료 건강 등 구체적인 영역도 제시됐다. 정부도 소비를 늘릴 계획이다. 기존 재정 사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늘리는 한편 새로운 국가 프로젝트 발굴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나라 곳간을 풀어 소비를 부추기겠다는 뜻이다. 이유는 충분하다. 올해는 시진핑 3기 정부가 출범하는 해다. 실적을 보여줘야 한다. 박한진 중국경제관측연구소 소장은 “정치적 상황으로 볼 때 중국은 성장을 위한 ‘최대치’를 끌어낼 수밖에 없다”며 “올 내내 다각적인 내수부양 정책이 발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판 ‘홀로서기’에 주력 새해 중국 경제 회복은 경제 자립을 위한 내수 확대에 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허난성의 한 물류센터 모습. [AFP=연합뉴스] 중국 경제는 글로벌 흐름과 맞물려 돌아간다. 세계화가 고조됐던 1990년대 중국은 국제 분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2001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기도 했다. 지금은 반대다. 미·중 무역 전쟁,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화 흐름이 퇴조하면서 중국 역시 다른 길을 선택했다. ‘홀로서기’가 그것이다. 중국은 중앙경제공작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이었던 지난달 14일, ‘내수확대 전략 계획 요강(2022~2035)’을 발표했다. 2015년 발표된 ‘중국 제조 2025’가 제조업 고도화 방안을 담았다면 ‘내수 확대 전략 2035’는 서비스산업 고도화를 내용으로 삼고 있다. 요강은 2035년까지 내수시장을 어떻게 정비하고, 어느 방향으로 키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문화·의료·스포츠 등 전통 서비스 시장을 지원하는 한편 라이브 방송·공유경제 등 신형소비를 육성키로 했다. 녹색 소비, 농촌현대화, 유통체계 현대화, 브랜드 파워 강화 등 광범위한 내용이 담겼다. 황재원 KOTRA 정보통상협력실장은 ‘중국 내수 확대 2035’를 ‘쌍순환(雙循環)’ 전략과 결부해 설명한다. 그는 “중국이 그동안 국내시장 미성숙으로 제품 판매는 해외 시장에 많이 의존(수출)하는 경향을 보여왔다”며 “이제는 내수를 키워 생산도, 판매도 국내에서 하도록 산업 지도를 짜고 있다”고 말했다. 그게 바로 ‘쌍순환’이다. ‘쌍순환’은 경제 자립의 완성이요, 세계화의 퇴조에 대한 중국의 선택이다. 그 핵심이 바로 ‘내수 확대’다. 2023년 중국 산업의 저류에서 흐를 움직임이다. 중국 소비자 동향 주시해야 역시 코로나19가 변수다. ‘위드 코로나’로 인한 후유증을 얼마나 빨리 진정시키느냐에 올 경제가 달려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모건스탠리는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이후 2023년 중국 GDP 예상치를 기존 5.0%에서 5.4%로 올렸다. 씨티와 UBS 등도 성장률을 높게 잡았다. ‘중국 내수 확대 전략 2035’ 주요 육성 분야 후이판 UBS 아시아태평양투자총괄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경제가 올 3분기 코로나19 상황에서 완전 탈출, 강력한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며 “5%대 성장세를 회복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늦어도 하반기에는 중국 정부의 내수소비 확대 전략이 본격적으로 먹힐 것이라는 얘기다. 씨티은행이 보는 올해 중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5.6%. 이에 비해 미국 성장률은 0.7%, 유럽은 마이너스 0.4%로 전망했다. 중국 경제가 다시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2008년을 연상케 한다. 중국은 당시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에 대응해 약 4조 위안의 경기부양 자금을 풀었다. 서방 경제가 망가지고 있을 때 중국은 독야청청 10% 안팎의 성장세를 유지했다. 그 결과가 2010년 글로벌 넘버 투 경제 대국이었다. 당시 중국의 경제 굴기는 ‘공장(제조업)’과 투자가 만들었다. 2023년 중국 경제가 홀로 성장세를 보인다면, 그 힘은 소비자들의 지갑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중국 시장 동향을 연구하고, 그들 소비자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할 이유다. ■ ‘실세 총리’ 리창의 등장, 산업고도화 밀어붙일 듯 「 2023년 중국 경제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 중 하나는 총리 교체다. 오는 3월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물러나고 리창(李强)이 뒤를 잇는다. ‘리창 이코노미’의 시작이다. 리창에게는 두 가지 이미지가 따른다. 첫 번째는 테슬라 공장 유치다. 중국은 외국 자동차기업의 단독 투자를 허가하지 않는다. 100% 테슬라 공장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이런 조항을 무력화하고 중앙정부를 설득해 테슬라를 상하이로 끌어들인 사람이 바로 리창이다. 전기자동차 분야 미국을 잡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리창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그가 ‘비즈니스 친화형’이라고 말한다. 시장 생리를 잘 알고, 외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20억 달러 규모의 테슬라 공장 유치는 그 사례다. 두 번째 이미지는 코로나19다. 리창은 글로벌 경제 도시 상하이를 2개월여 봉쇄했다. 무장경찰을 동원해 아파트를 막기도 했다. 지난해 최대 정치 행사인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그의 정치적 성향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리창은 ‘시진핑 사람(習家軍)’이다. 시 주석의 정치 노선을 추종하고, 그의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다. 시진핑의 세력에 눌려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었던’ 리커창 총리와는 존재감이 다르다. 실세 총리의 등장이다. ‘비즈니스 친화형 개혁주의자’‘엄격한 당 노선 집행자’‘리창 이코노미’는 두 이미지 사이의 그 어디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이 설정한 범위 내에서 산업고도화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는 실세 총리’가 그의 자리매김이다. 리창은 저장(浙江)성 당서기 시절 알리바바를 내세워 IT산업을 키웠고, 장쑤(江蘇)성 당서기 때에는 노동집약 산업 퇴치에 나서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의 신임을 얻고 있는 그가 이젠 중국 산업을 바꿔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
[차이나인사이트] 대만해협이 불붙으면 한반도는 무사한가
━ 시진핑 3기 대만해협의 전쟁과 평화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중국학과 교수 중국 공산당 20차 당 대회 보고는 대만문제 해결을 당의 역사적 임무로 규정했다. 대만을 해방의 대상으로 여기던 개혁개방 이전의 결기가 느껴진다. 대만과 마주한 푸젠성에서 17년의 청춘을 보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통일대업 완수로 당과 국가에 대한 헌신을 마무리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꿈과 달리 대만문제가 잘못되면 어떤 치적도 빛을 잃고 장기집권 구도에도 금이 간다. 시진핑은 대만문제를 어떻게 다루려 하나. 미국의 전략적 대응은 무언가. 미·중 틈바구니에서 대만의 선택지는 있나. 대만해협이 불붙으면 한국은 무사하나. 다음 네 개 의문 속에 그 답이 있다. ■ 「 한반도·대만의 전쟁·평화는 한몸 미국은 중국 제어하려 대만 이용 중국은 북한 카드로 미국을 압박 한반도 평화 위한 미·중 협력 난망 」 미국, 대만의 독립을 원하는가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패권 경쟁하에서 대만해협과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는 상호 연동의 운명을 갖는다. 사진은 지난 9월 대만 화롄현에서 훈련 중인 대만 군인들의 모습. [AP=연합뉴스] 미국은 과거 중국의 개혁개방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으나 이젠 압박의 대상으로 치부한다. 미국은 수교 당시 대만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던 중국의 약속을 더는 믿지 않는다. 따라서 무기판매와 함께 그간 자제했던 대만과의 공식교류를 확대하는 한편 대만의 국제무대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케빈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가 신임 하원의장이 되면 친대만 움직임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만정책엔 한계가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발리 정상회담에서 대만해협의 평화를 위협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도 하나의 중국 정책 불변을 약속했다. 이는 중국의 강압적 통일 시도와 대만의 독립을 모두 반대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무력 공격을 제압할 미국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가 담보되지 않으면 섣불리 대만독립 지원 전쟁을 감행할 수 없다. 결국 미국이 원하는 대만은 독립주권국이 아니다. 인도-태평양 패권을 넘보는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불침 항모’ 대만을 이용할 뿐이다. 시진핑, ‘일국양제’를 고수할 것인가 20차 당 대회 보고에서 시진핑은 ‘대만문제는 중국인의 일이며, 반드시 중국인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평화통일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무력 사용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진핑의 경고가 당장 전쟁으로 비화하기는 쉽지 않다. 군사력은 미국보다 역부족이고 최근엔 유럽연합이 미국에 기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의 선택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첫째, 대만의 이탈 조짐과 외세 개입에 경고성 무력시위를 지속할 것이다. 둘째, 전면적으로 단절하기 힘든 양안 경협과 인적 교류를 고려해 대만 주민에 대한 유인책을 확대할 것이다. 셋째, 대만문제의 해법으로 ‘일국양제(一國兩制)’를 계속 유지할 것이다. 홍콩 사태로 큰 상처를 입었지만 ‘고도의 자치’로 분장한 일국양제의 간판을 내리진 않을 것이다. 통일과 독립, 시간은 누구의 편인가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골수 대만독립주의자다. 미·중이 대만의 미래를 좌우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동시에 그는 냉철한 현실주의자다. 독립을 향한 감성적 접근과 무모한 시도는 피하려 한다. 최근 대만은 미국과의 가치동맹, 국제사회의 반중 정서 확산을 계기로 중국의 공산독재와 대비되는 대만의 자유민주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양안관계의 안정적 관리 역시 차이 총통의 핵심 과제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양안교역은 크게 늘었고, 결혼·취업 등으로 양안교류는 대만 주민의 실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양안관계를 단순히 통일·독립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현실적 이유다. 대다수 대만인에게 양안관계는 체제·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다. 이를 무시하면 실패는 예정된 것이다. 이처럼 미·중 패권 경쟁의 최전선인 대만해협에는 전쟁과 평화의 요인이 병존한다. 대만은 마오쩌둥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시진핑의 중국이 싫지만, 교류 중단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간의 민간교류가 너무 깊고도 넓기 때문이다. 결국 현 상황에서 통일과 독립 모두 불가능하다. 시간은 통일과 독립 누구의 편도 아니다.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지속할 뿐이다. 한반도, 대만해협 위기와 무관한가 미·중 패권 경쟁 아래서 대만해협과 한반도의 안보적 연계는 불가피하다. 대만해협의 긴장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중국의 대북정책이 이념·혁명의 유대를 강조하는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2019년 시진핑의 평양방문 이후 새로운 차원의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선이 재건되고 있다. 대만문제로 시달리는 중국이 미국을 괴롭히는 데에 북한 만한 카드가 없다. 둘째,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미·중 협력은 당분간 재개되기 어렵다. 발리에서 바이든은 북한의 무력시위가 계속되면 미국의 군사력 증강이 불가피함을 강조하고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지만, 시진핑은 문제의 ‘핵심’을 살피라고 반문했다. 이는 북한의 불만을 외면하고 압박하면서 중국의 동참까지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중국으로선 미국이 대만문제에서 ‘담대하게’ 양보하지 않는 한 한반도 문제에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대만해협의 무력 충돌 시 미국의 군사적 개입 가능성과 주한 미군의 역할 검토가 불가피하다. 시진핑이 대만을 상대로 제한적 군사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도 대만해협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과 주한·주일 미군의 역할을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다. 현재 북한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의지와 능력은 크게 약화했으며 국제여론을 의식해 진정성 없이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할 뿐이다. 대북 제안의 담대함을 설명하는 윤 대통령에게 ‘북한의 의향이 관건’이라는 시진핑의 훈수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시진핑은 북한의 핵심 요구가 고려되지 않은 일방적인 담대함은 결국 국내 정치를 고려한 자기과시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 같다. 북한이 호응하면 그때 협력하겠다는 면피성 발언에서도 시진핑의 의중이 잘 드러난다. 결국 미·중 패권경쟁에서 촉발된 대만해협, 한반도의 안보 불안을 관리하기 위한 관련 국가들의 실효성 있는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 편협한 자국 이익과 국내 정치적 계산에 함몰된 대외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 특히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일부 국가 혹은 특정 정치세력이 독점해선 안 된다. 동북아 국제질서의 구조적 특성상 한 지역의 군사적 충돌은 그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식’ ‘중국식’의 체제와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패권경쟁 하에서 대만해협과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는 한 몸이다. 외교 안보적 지혜와 실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 대만의 강아지 다니는 길도 안다는 일본 「 미·중 패권경쟁의 거대한 그늘에 가려 대만문제에 대한 일본 요인을 소홀히 하기 쉽다. 일본 변수는 생각보다 심대하며 대만 문제의 향배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대만 문제 생성의 근원이 청조의 몰락을 앞당긴 청일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시모노세키 강화조약(1895년 4월) 이후 일본은 50년간 대만을 식민 지배했다. 일본이 대만 문제에 끼어들 때마다 중국은 일본의 ‘원죄’를 지적하며 반성하라고 비난한다. 일본에 남북분단의 원죄를 묻는 우리의 경우와 유사하다. 둘째, 일본에 대한 대만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매우 긍정적이다. 우리가 식민지배의 잔재 수습에 아직도 진통을 겪고 있는 반면, 대만에는 ‘친일 청산’ 분위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지도층과 일반 국민을 불문하고 일본과 대만의 정서적 유대는 매우 돈독하다. 차이 총통이 참여하는 공식 행사에서 아베 전 총리의 서거를 애도하는 묵념을 거행할 정도다. 일본은 대만의 강아지 다니는 길도 안다며 대만 문제를 자기 일처럼 여긴다. 셋째, 미·중 패권경쟁과 연계된 미·일 동맹 강화 과정에서 대만 문제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다. 중국의 제어가 급한 미국은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용인하고, 일본은 이를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변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특히 대만과 인접한 주변 도서 지역의 군사시설이 강화될 경우 대만해협 유사 시 무시할 수 없는 전략적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이처럼 역사, 상호인식, 안보적으로 대만문제와 일본 요인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중국이 점증하는 일본 요인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특히 중국은 지역 패권에 대한 일본의 야심,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 대만의 뿌리 깊은 친일 정서가 접목돼 대만 문제 해결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집권 3기를 시작한 시진핑이 대만문제 해결을 위해 대적해야 할 상대가 미국만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일본이 더 집요하게 중국을 괴롭힐 수도 있다. 」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중국학과 교수
-
[차이나인사이트] 한·중·일 협력 불가능? 한반도·환경 등 공동이익 찾아야
━ 대전환의 시대, 중국의 미래 장영희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국제정치의 현실주의자들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생존’이라고 말한다. 생존이 경제적 번영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면서 ‘궐위의 시대’를 맞이한 지구에 전쟁이라는 현실이 더해지면서 현실주의자들의 인정머리 없는 진단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속에 숨죽이고 있던 그들의 시대가 돌아온 것이다. 이 같은 변혁의 시대를 맞아 지난 18일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가 창설 10주년을 기념해서 한·중·일 3국 학자를 초청해 개최한 ‘대전환의 시대, 중국의 미래를 어떻게 볼 것인가’ 국제학술회의는 적지 않은 시사를 준다. ■ 「 중국을 유일 경쟁자 상정한 미국 민주화 대신 권력집중 빠진 중국 치킨게임으로 돌입한 미·중 대립 해법은 한·중·일 3국 교류 활성화 」 지구촌 시민들은 현재의 경제적 향유가 상호의존의 과실임을 잊고 자신의 국가에 가치와 정체성에 기반을 둔 외교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가치만을 강조하는 자기중심성만으로는 이익과 안보를 담보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자신의 권력과 능력의 크기에 따라 가치·이익·안보의 비율을 조율하는 외교적 위선을 발휘하는 게 주권 국가의 숙명이 됐다. 왜 대전환의 시대인가 미·중 대립의 돌파구로 한·중·일 3국의 글로벌 이슈 협력이 거론된다. 사진은 왼쪽부터 ‘아세안+3 정상 회의’에 참석한 기시다 일본 총리, 윤석열 대통령, 리커창 중국 총리. [뉴시스] 2018년부터 시작된 미·중 경쟁과 대립은 이제 신냉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경쟁이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면서 목적을 이루려는 행동이라면, 대립은 비용과 편익의 고려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제로섬’ 선택이다. 큰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를 무릎 꿇리겠다는 치킨 게임에 돌입한 것이다. 미국은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중국을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와 능력을 지닌 유일한 경쟁자”로 규정했다. 그리고 향후 10년을 미국의 핵심이익을 증진하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결정적 시기로 간주했다. 중국은 20차 당 대회 보고에서 세계가 ‘100년 만의 대변국’을 맞았다며 미국을 겨냥해 패권주의·강권주의·이중잣대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마쓰다 야스히로 일본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는 “현행 국제질서는 이미 균형을 잃었는데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하는 것도 어려운 상태”라고 말한다. 그는 미·중 대립과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글로벌화가 부분적으로 정체되고 일방주의·보호주의·역글로벌화의 사조가 대두했다고 진단한다. 중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차 당 대회 보고에서 “중국식 현대화를 통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쉬부(徐步) 중국국제문제연구원장은 중국식 현대화는 중국 공산당이 영도하는 사회주의 현대화라고 말한다. 여러 국가의 현대화가 갖는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중국 특색을 띠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 중국적 특색은 인구 대국의 현대화, 전체 인민의 공동부유를 실현하는 현대화,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현대화,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생하는 현대화, 평화발전의 길로 나아가는 현대화 등 다섯 가지에 이른다.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해 강한 리더십과 권력의 집중이 필요한 결과 20차 당 대회에서 일인체제 공고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은 중국의 미래와 관련해 세 가지 유형을 상정한다. 국제사회에서 협력적 자세로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중국, 권력이 커지며 자신의 의지를 투사하려는 공세적인 중국, 경제발전 이후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워지는 중국이 그것이다. 현재의 중국은 자기결정권을 지키기 위해 민주화를 포기하고 권력집중(極權)의 유혹에 빠진 모습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미·중 관계는 제도·담론·이념 경쟁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대만 문제에서도 힘의 대결을 준비하는 길에 들어선 모양새다. 과거 중국의 통일 담론이 중국이 현대화에 성공하면 대만 통일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는 입장이었다면, 현재 시진핑의 통일 담론은 중국이 현대화를 달성하기 위해선 대만 통일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이런 담론의 변화가 대만 문제를 더욱 풀기 어려운 구조로 만들고 있다. 미·중이 저마다 자기 주도권을 주장하는 가운데 여타 국가들은 미·중이 야기한 구조적 변화에 따라 발생할 커다란 비극과 재앙을 예감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같은 지정학적 중간국이자 통상문화국가는 능력을 발휘할 시장과 무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한·중·일 학자들은 모두 현재의 위기 속에 서로 간의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같은 시공 속에 있는 한·중·일이 각기 다른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탕스치(唐士其)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주희(朱熹)의 ‘이일분수(理一分殊)’ 사상을 예로 들어 이치가 같더라도 서로 다른 상황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한다. 중국과 서구가 각기 다른 맥락에서 상이한 개념으로 각자의 정치를 표현하고 있지만, 상당히 유사성이 많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식의 자주성을 제창하는 게 지식의 창출에 도움이 되지만, 지식의 공통성을 무시하면 지식의 진보를 방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중국과 서구의 소통 가능성을 역설한 것이다. 구조적 비극, 출구는 어디에 있나 물론 이러한 구조 속에서 동아시아의 협력을 실천한다는 건 분명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마쓰다 교수는 동아시아보다 작은 범주인 일본-중국-한국의 협력은 여전히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한·중·일 3국이 공동의 이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적 상호의존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환경 문제 등 글로벌 이슈에서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협력 가능한 영역에서부터 실천에 나서자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선 우선 상호이해를 위한 교류부터 회복해야 한다. 유학 및 관광 등 인적 교류 강화가 중요하고, 민감한 첨단기술을 제외한 경제관계 강화도 긴요하다. 또 기존의 다자협력기구를 통한 관계 회복도 절실하다. 양자적 관계가 권력의 비대칭성 속에 상호존중을 구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다자적 관계를 통해 공동의 규범을 만들고 실천해야 하는 게 출구 전략의 첫 단추가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지 않는 다자적 관계를 통해 제3의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미·중의 권력장으로부터 벗어나 외교적 자율성을 발휘할 공간을 확보하고 오히려 미·중을 중재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 투쟁 앞세운 중국, 한국에 대한 ‘뒤끝 외교’ 우려 「 시진핑 3기의 한·중 관계는 어떻게 될까. 성균중국연구소가 배출한 학자 10명(강수정·김도경·김현주·서정경·양철·이기현·이영학·이주영·이홍규·황태연)은 한·중 관계가 주변화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우선 시진핑 주석이 ‘감히 투쟁하고 투쟁을 잘하는(敢于鬪爭 善于鬪爭)’ 투쟁 정신을 강조하며 미국의 중국 견제와 압박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며, 이로 인해 향후 미·중 전략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중국은 특히 개혁개방 노선과 결별하고 정체성의 정치를 강화함으로써 민주주의 국가들과는 ‘가치의 거리’를 더 벌리고 협력 공간도 크게 줄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선진국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게 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주변국과 개발도상국을 회유해 미국의 예봉을 피하고자 하겠지만, 한국이나 일본 등 이웃 나라가 미국 편승을 분명히 할 경우 명시적 또는 묵시적 보복을 통해 국면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으로선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마음에 걸리겠지만, 한·일이 미국 편에 서는 등 관계의 구도가 분명해질 경우 한·중 관계가 주변화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투쟁 정신과 투쟁 능력을 강조하는 중국이 ‘뒤끝’ 있는 외교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우려 사항이다. 한국의 중국연구 방향성과 관련해 중앙중심적 시각에만 국한하지 말고 지방과 시민사회 등 좀 더 다양한 주체의 입장과 시각에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는 진단도 나왔다. 개별 국가의 국익을 넘어 지역주의와 다자주의의 시각과 실천이 중요하게 언급됐다. 또 서구 주류의 시각과 대항할 중국에 대한 내재적 접근과 비판적 중국학의 전통을 이어나갈 필요성이 제기됐다. 」 장영희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
[차이나인사이트] 미·중 경쟁 속 대만, 홍콩의 전철 밟을까
━ 20차 당 대회 이후 중국 대외정책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대만 영화 중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허우샤오시엔(侯孝賢) 감독의 1989년작 ‘비정성시(悲情城市)’다. 강자들의 쟁투(爭鬪)로 인해 농아인 주인공은 궁극적인 비극의 현실을 말없이 감내해야 한다. 약자의 아픔과 슬픔이 한국 현대사와 겹치며 깊은 울림을 자아냈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2009년 중국에선 ‘건국대업(建國大業)’, 30년 후인 2019년엔 ‘나와 나의 조국(我和我的祖國)’과 같은 애국주의 영화가 나와 대륙을 휩쓸고 있다. 그런 추세 속에서도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선 중국 영화 ‘먼지로 돌아가다(隱入塵煙)’가 경쟁 부분 후보작에 올라 관심을 모았다. 장애를 가졌지만 성실하고 정직했던 중국 한 빈농 부부의 고된 삶과 슬픈 결말을 그린 작품이다. ■ 「 바이든의 전방위 중국 압박에 ‘안보 강화’ 91차례 외친 시진핑 2027년 4연임 도전에 나설 경우 대만 통일은 중요 정치적 명분 돼 」 바로 이 영화가 중국에서 상영 금지됐다는 소식이 들려올 즈음 베이징에선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가 개최됐다. 20차 당 대회는 노쇠해진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불참과 무력해진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중도 퇴장을 통해 이젠 중국에서 견제할 수 없게 된 시진핑(習近平) 1인 지배체제의 시작을 전 세계에 알렸다. 치솟는 중국의 안보 우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은 지난달 16일 개최된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서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 포기를 약속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주석이 이번 20차 당 대회 ‘보고(報告)’에서 국가안보(安全) 29번을 포함해 인민, 경제, 식량 등 각종 안보를 무려 91차례나 거론한 점은 의외였다. 중국특색 사회주의가 33차례, 관심을 끈 공동부유가 8번 언급된 것과 비교할 때 중국 지도부가 느끼는 안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짐작할 수 있다. 왜 이렇게 안보 우려를 강조했나. 미·중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며 미국의 다양한 대중 압박이 한층 강도가 커진 게 그 주요 원인이다. 특히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인도-태평양(이하 인태) 지역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 사이에 군사·안보적 연계가 강화되는 움직임은 중국에 큰 우려를 안기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은 유럽에선 NATO를 중심으로 러시아를 견제하고, 아시아에서는 인태 전략으로 중국을 압박한다. 한데 최근엔 NATO의 주요국들마저 인태 관련 전략 문서를 발표하며 이 지역에 대한 관여 의지를 구체화해 중국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표 참조) 영국과 프랑스에 이어 독일과 네덜란드의 해군 군함들도 인태 지역에서 미국과 연합훈련 및 군사 활동을 펼쳤다. 2021년 9월엔 미·영·호 동맹(AUKUS)이 수립됐으며, 2022년 6월에는 NATO 정상회의에 AP4(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가 초청됐다. 미국은 이에 더해 EU와는 ‘무역·기술협의회(TTC)’를, 인태와는 ‘인태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체결하고 동시에 글로벌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 견제 내지 ‘탈(脫)중국’을 추구 중이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미국의 압박에 중국의 안보 우려는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미 분투 외치는 시진핑 시진핑 주석의 대미 대결 의지도 만만치 않다. 시 주석은 당 대회 ‘보고’에서 분투(奮鬪)를 무려 28차례나 언급했다. 또 인민해방군의 군사력 증강을 위해 대대적인 투자 강화 의사를 밝혔다. 대만 통일과 관련해선 무력 수단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점을 다시 천명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시 주석은 3연임 확정 후 첫 공식 일정으로 ‘군대 영도(領導) 간부회의’에 참석해 ‘건군 100주년 분투 목표’의 달성을 강조했다. 중국이 맞닥뜨린 군사·안보적 우려와 대만 통일을 위한 군사력 증강의 절실성에 대한 시 주석의 강한 의지를 확인해주는 대목이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미·중 갈등은 한층 더 깊어지고 대만 해협의 파고 또한 더욱 거세게 출렁일 전망이다. 미국이 경제 및 군사·안보적 압박을 가할수록 시 주석의 분투 의지 또한 강화될 조짐이기 때문이다. 또 대만 통일 목표는 시 주석의 정치적 명운이 걸린 사안이라 양보가 불가능하다. 중국은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진영화 구도에 대응해 개발도상국과의 협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시 주석은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이 보다 빠르게 이뤄지도록 돕고, 국제사회에서 그 발언권이 커지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중국은 미국 주도의 TTC와 IPEF에 대응해 자국이 주도하는 브릭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에서 개발도상국가를 대상으로 회원국 확대를 모색 중이다. 긴장과 불안의 대만 해협 시 주석은 이번 당 대회 ‘보고’에서 대만 통일과 관련해 무력사용 포기를 약속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는데 이 말에 과연 어느 정도 무게를 둬야 하나. 중국이 미국의 개입과 대만 내부의 저항을 물리치고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 주석이 대만 통일을 위해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걸 천명했다기보다는 중국의 주권과 통일에 대한 시진핑 지도부의 강경한 정치적 메시지를 대내외에 전하는 목적이 우선됐으리라 생각된다. 시 주석이 21차 당 대회가 열리는 2027년에 4연임에 도전한다면 대만 통일은 중요한 정치적 명분이 된다. 또 2027년은 중국 인민해방군 건군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중국은 건군 100주년에 맞춰 대만 통일이 가능한 군사력의 증강을 추구해왔다. 20차 당 대회에서 대만을 관장하는 동부전구 사령관 허웨이둥(何衛東)을 당중앙 군사위원회 위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군사위 제2부주석으로 발탁한 건 시 주석의 대만 통일 목표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한데 미국 또한 이를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2027년까지 대만 해협의 긴장과 불안은 계속 높아질 전망이다. ‘비정성시’의 주인공 량차오웨이(梁朝偉)는 홍콩 반환과 세기말적 홍콩인들의 불안을 투영한 왕자웨이(王家偉) 감독의 ‘아비정전(阿飛正傳, 1990)’에도 출연했다. 영화에 한 번도 나오지 않다가 끝나기 2분 전에 등장해 외출 준비를 하고 문을 나서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왕 감독은 그를 속편의 주인공으로 정하고 엔딩 장면을 찍었으나 흥행실패로 속편은 제작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속편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2019년 대규모 시위 이후 홍콩의 대륙화가 강경하게 진행돼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의 눈으로 홍콩을 그리기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만의 미래 세대는 2027년 전후 대만의 모습을 과연 누구의 눈으로 그려낼까. ■ 가치·국익 기반 외교하되 한·중 국민 갈등도 관리해야 「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로 한·중 관계의 도전 요인은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한국은 우선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견지돼온 한·중 관계의 기본 틀인 ‘공고한 한미 동맹의 기반 위에서 한·중 관계의 협력과 발전 증진 추구’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치 및 외교·안보 분야에서 한국은 국민과 합의된 가치, 정체성, 국익에 대한 입장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자외교에서는 한국의 가치와 국익에 관련된 입장을 이전보다 조금 더 명확하게 중국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 반면 한·중 양자 관계에선 절제된 용어와 메시지를 통해 양국 간 도전 요인을 관리하는 외교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또 한·미 동맹의 공고화는 필수이지만 그 공고화가 미·중 사이에서 미국을 선택했음을 의미하지는 않아야 한다. 아직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가치와 국익에 따른 현안별 대응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첨단기술에 관한 한국의 경쟁력 확보가 절박한 상황이며, 한국의 첨단기술과 인력이 쉽게 외국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법제적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한·중 FTA 후속 협상과 더불어 양국 사이의 경제 협력 확대, 도전 요인의 관리, 안정적인 산업 공급망 유지를 정례적으로 논의할 한·중 경제 협의체 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물론 미국 주도의 ‘신뢰가치사슬(TVC)’ 안착이 선행돼야 하지만 조속한 ‘탈중국’보다는 산업 공급망 안정을 위한 ‘China+1’ 중심의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 끝으로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한·중과 같이 가치와 체제가 다른 국가 사이에는 국민 간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 나아가 민족주의적인 반감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기에 따라 단기적인 양국 정부의 관리가 필요하다. 또 다양한 분야에서 장기적이고 정례적인 청년 세대 간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가치와 체제가 다른 양국이 서로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협력을 만들어 나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
[차이나인사이트] 시진핑 집권 연장은 ‘강한 중국’과 ‘강한 반발’ 함께 불러
━ 중국 공산당 20차 당 대회 16일 개막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가 오는 16일 개막한다. 중국 전국 38개 선거구에서 뽑힌 2296명의 대표가 당의 헌법인 당장(黨章) 개정과 중국 공산당을 이끌 약 370여 명의 중앙위원회 위원을 선출하는 작업에 나선다. 당 대회는 미래 5년 중국이 나아갈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추진할 인사를 알린다는 점에서 국내외 이목을 집중시킨다. 크게 네 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다. 첫 번째는 인사(人事)다. 핵심은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의 3연임과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퇴진 여부다. 두 사람은 2007년 17차 당 대회에서 나란히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했다. 시진핑의 3연임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대안 인사가 부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리커창은 총리 재임 10년을 채웠기 때문에 헌법 규정상 3연임은 불가능하다. 총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는데,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완전히 은퇴할 것인가는 여전히 물음표다. ■ 「 ‘시진핑 사상’의 당헌 명기 주목 장기집권 위한 사상적 기반 제공 중국은 국제적 지위 향상에 방점 한국의 전략공간 넓힐 기회 될듯 」 리커창 총리는 어디로 옮길까 오는 16일 개막하는 중국 20차 당 대회에 선 시진핑의 총서기 3연임이 확실시된다. 지난달 중국 국경절 행사에서 리커창 총리(왼쪽)와 건배하는 시진핑 주석의 모습. [연합뉴스] 시진핑은 연임하고 리커창은 물러난다는 일각의 비판적 시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리펑(李鵬)이 총리 10년 재임 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전례를 리커창이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시-리 모두 권력을 연장하는 모습이 과연 ‘신시대’를 강조하는 시대 분위기에 부합하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당장의 수정 여부다. 현시대를 이끄는 핵심 사상으로 중국이 내세우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과연 ‘시진핑 사상’으로 축약돼 당장에 명기될 것인지가 쟁점이다. 이름 석 자를 붙여서 지도이념을 확립하는 움직임은 ‘마오쩌둥 사상’ 이후 처음이다. 중국 공산당은 1945년 열린 7차 당 대회에서 ‘마오쩌둥 사상’을 전체 당의 지도사상으로 확립하고 당장에 적시했다. 이는 76년 마오가 사망할 때까지 그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사상적 기반이었다. 20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 사상’이 당장에 들어간다면 이 역시 중국이 선전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에 부합하는 동시에 시진핑 장기집권의 사상적 기반이 될 것이다. 세 번째 눈여겨봐야 할 건 향후 중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청사진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2035년 장기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또 지난해 가을 ‘역사결의(歷史決意)’를 통해 21세기 중엽에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겠다는 로드맵을 천명했다. 바로 이런 정책 방향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정책과 조치로서 향후 5년의 함축적인 ‘워딩(wording)’이 이번 당 대회에서 나타날 전망이다. 예를 들어 시진핑 정부는 집권 1기의 5년 동안 ‘반부패 투쟁’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정적을 제거하는 동시에 집권 정당성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 추진에 집중했다. 그리고 집권 2기 5년간은 격차 해소를 위한 차원에서 ‘소강(小康)사회’ 건설에 매진했고, 2021년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선 ‘소강사회 건설’의 완성을 선언했다. ‘소강사회’ 뒤를 이을 ‘공동부유’ 소강사회 건설은 성장과 발전에서 격차 문제 심화로 당에 대한 신뢰가 약화하는 시점에서 시진핑 정부가 이를 극복하고 ‘신시대’로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이제 시진핑 정부의 권력 연장 시기를 맞아 집권 1기의 ‘반부패 투쟁’, 2기의 ‘소강사회 건설’에 이어 앞으로 5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의 청사진이 구체적인 워딩으로 이번 당 대회에서 드러날 것이다. ‘공동부유(共同富裕)’가 확실하게 시진핑 3기의 국정 어젠다가 될지 지켜봐야 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마지막 포인트는 시진핑이 직접 발표할 ‘정치 보고’ 가운데 외교 관련 언급이다. 이는 중국의 향후 5년 대외관계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된다. 시진핑은 집권 1기 때는 종합 국력의 상승과 함께 ‘신형대국관계’ 건설을 주요 외교 방향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2017년의 2기 출범 때는 ‘신형국제관계’로 방향을 수정했다. 중국이 국제관계의 중요 행위자로 등장해 미국과 새롭게 세계 질서를 논의하려는 차원이었다. 현재 중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전략경쟁 심화, 국내 코로나 확산 지속, 경제성장 둔화 등 여러 국내외 난제에 직면해 있다. 내외 환경이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진핑은 집권 3기를 맞아 기존 대외관계와 다른 그림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물론 그 중심엔 미국 등 대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가 중심이 되겠지만, 주변국 관계와 개발도상국 관계도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국내외 압력에 직면한 중국이 대외적으로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가 중요한 관찰 포인트다. 이 같은 당 대회 관전 포인트와 함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중국의 움직임에 대한 세계의 반응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과정에서 시진핑의 집권 연장은 강력한 힘을 가진 중국의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대외관계로 나타날 것이고, 미국을 포함한 서방은 이를 도전으로 간주해 반발하며 중국을 더 강력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향후 국제질서는 더욱 복잡하고 불확실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파트너십 지위도 격상되나 중국을 둘러싼 인권 문제와 민주주의 문제, 대만 문제, 남중국해 문제 등은 언제든지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수단이자 전장(戰場)이 될 것이며, 이에 따른 갈등과 대립은 경제 위기가 고조되면서 한층 수위가 높아질 전망이다. 분명한 건 강력한 중국의 등장은 반드시 강력한 ‘반제(反制, 반격해 상대를 제압)’ 움직임을 부른다는 것이다. 중국에 한국은 이미 매우 중요한 주변국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전략적 가치 또한 높아지고 있다. 시진핑 3기 관련해 중국이 국제 의무 국가로 위상을 제고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 공간이 나타날 것이다. 중국도 글로벌 어젠다를 중심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의 파트너십 지위는 지속해서 격상될 전망이다. 중국의 국제적 지위 향상 기도가 우리에겐 전략 공간을 넓혀주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의 부상을 우리 사고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맷집을 키워야 하는 시기가 바로 당 대회인 것이다. ■ 군 지휘부 세대교체, 대만해협 파고 높아질 듯 「 시진핑 3기 정부의 주요 포스트에 누가 승선하느냐 여부는 중국의 향후 정책 방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가령 류허(劉鶴) 부총리가 유임하거나 승진하면 대미 관계를 중시하는 경제정책이 지속할 것이다. 그러나 허리펑(何立峰)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이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해 대외경제정책을 총괄할 경우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이른바 일대일로 연선 국가에 대한 관계 강화가 강조될 것이다. 2023년은 일대일로 제창 10주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편, 군 인사와 관련해 쉬치량(許其亮)·장유샤(張又俠) 등 군사위원회 부주석들이 은퇴하고 그 자리가 린샹양(林向陽) 동부전구 사령관 등 젊은 간부들에 의해 세대교체가 이뤄질 경우 중국이 대만을 중시한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자칫 대만 해협의 파고가 높아질 수 있다. 이른바 60년대 출생자인 ‘60후(後)’를 중시하는 인사 패턴과 함께 70년대생인 ‘70후’들이 대규모 중앙위원회에 진입하게 되면 중국 정치는 세대교체를 통한 세대정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난 8월 말 현재 ‘70후’ 108명 정도가 성부급 부직(省部級副職)에 진입해 당 중앙 조직부의 직접 관리를 받는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이 5년 후 파격 발탁의 혜택을 받는다면 ‘70후’ 가운데 차기 최고 지도자가 나올 수도 있다. 성부급 부직은 아니지만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아들인 후하이펑(胡海峰) 저장성 리수이(麗水)시 서기도 이번에 처음으로 당 대회 대표에 선출됐다. 후진타오 전 주석의 후광 여부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또 15년 만에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을 선임한 지난 2017년 제19차 당 대회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20차 당 대회에서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을 선임할 것인지도 당 대회 인사와 관련한 중요한 관찰 포인트다. 」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차이나인사이트] 중국은 어떻게 구글의 수수료 갑질에서 벗어났나
━ 구글 인앱결제 갑질과 중국식 대처 서봉교 동덕여대 중국학과 교수 구글이 최근 국내 모바일 콘텐트 결제 수수료를 기존 15%에서 30%로 인상하는 인앱결제 의무화 정책을 강행했다. 구글의 갑질로 국내 콘텐트 사업자는 수수료 부담이 증가해 과거보다 두 배나 많은 4100억원의 결제 수수료를 추가로 부담하게 됐다. 사용자 또한 콘텐트 가격 인상에 따른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가 구글의 조치에 대응해 불공정 거래 조사 등으로 맞서고 있으나 국내 모바일 콘텐트 업계는 사실상 백기를 든 상황이다. 구글이 자신들의 결제 정책을 준수하지 못하는 앱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업데이트를 금지하고, 나아가 앱 자체를 삭제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 「 국내 앱마켓 시장 63% 장악 구글 결제 수수료 30%로 인상 강행해 과거보다 두 배 많은 수수료 내야 로컬 앱마켓 키운 중국 참고할 만 」 중국앱모음 바이두 구글이 인앱결제를 강행할 수 있는 건 국내 스마트폰 앱마켓 시장에 대한 독과점적인 지배력에 기인한다. 2019년 기준 시장 점유율이 무려 63%나 된다. 2위는 애플 앱스토어로 24%인데, 애플은 이미 수년 전부터 콘텐트 결제 수수료를 30% 부과하고 있다. 한데 SK텔레콤 등 통신사 연합 형태의 로컬 앱마켓인 원스토어는 최근 콘텐트 결제 수수료를 오히려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점유율은 11%에 그치고 있다. 국내 스마트폰 OS(Operating System, 운용 시스템) 시장은 결국 구글과 애플이란 글로벌 OS사 앱마켓에 의해 장악돼 있는 것이다. 구글은 어떻게 한국 시장을 장악했나. 구글은 삼성 등 전 세계 스마트폰 제조사들에 무료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OS를 제공했다. 대신 구글 앱마켓을 기본 홈 화면에 선탑재시키면서 독과점적인 시장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구글로고 구글 앱마켓에서는 경쟁 앱마켓의 프로그램이 입점하지 못하게 했고, 인터넷을 통한 다운로드 방식으로 경쟁 앱마켓을 사용할 경우엔 ‘보안 경고’를 표시해 소비자들이 다른 앱마켓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그렇다면 구글의 갑질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앱마켓 시장은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할 수 있다. 한국과 달리 중국에선 구글과 애플의 앱마켓 시장 점유율이 높지 않다. 2022년 현재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와 2위인 OPPO(21%)와 VIVO(18%)는 구글의 OS와 앱마켓을 사용하고 있다. 3위인 애플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6%이다. 화웨이(華爲)는 2019년까지만 해도 시장 점유율이 1위였지만, 미국의 제재 이후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해 현재 9%이다. 시장 점유율 10%의 룽야오(榮耀, Honor)는 원래 화웨이의 중저가 브랜드였다. 화웨이와 룽야오의 스마트폰에 2019년부터 사용되는 OS는 훙멍(鴻蒙OS, HUAWEI Harmony OS)이라는 독자 개발한 OS이다. 앱마켓(華爲鴻蒙應用商店) 역시 화웨이가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데 현재 절반 이상의 중국인들은 구글의 앱마켓 대신 로컬 비(非)OS앱마켓인 ‘제3자앱마켓(第三方應用商店)’을 통해서 모바일 앱을 사용하고 있다. 제3자앱마켓은 SNS 사업자 등이 운영하는 앱마켓을 의미한다. 우리의 경우로 예를 들자면 앱마켓 시장에서 카카오나 네이버의 앱마켓이 구글 앱마켓을 넘어서는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는 상황과 같기 때문에, 중국의 앱마켓 특징이 한국의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디지털 산업 전문 컨설팅 회사인 아이메이(艾媒) 리서치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제3자앱마켓의 중국 앱마켓 시장 점유율은 59.9%에 달했다. 특히 잉용바오(應用寶)는 중국 최대의 빅테크 플랫폼인 텐센트(騰訊)의 모바일 앱마켓으로 최근 앱마켓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중국에서 구글 OS를 사용하는 스마트폰 점유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앱마켓 시장에서 구글이 독과점적 지배력을 갖지 못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2010년 구글이 중국 검색시장 사업에서 철수한 뒤 중국 내 모바일 앱마켓 사업과 관련해 중국 정부와 긴장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텐센트와 같은 로컬 플랫폼 사업자들이 스마트폰 사용자에 대한 대규모 보조금 지급 등의 마케팅을 통해 앱마켓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텐센트는 2014년 자체 모바일 앱마켓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앱 사업자와 협력해 잉용바오를 통해 다운로드한 차량 서비스앱(디디다처)에 대한 무료 시승 이벤트를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이 이벤트의 성공 이후 전자상거래 앱(수닝이고우), 금융 서비스 앱(자오상은행), 여행 앱(화주지우뎬), 배달 앱(다중디옌핑) 등으로 잉용바오앱마켓을 통한 다운로드 이벤트를 이어가면서 무료 이용권, 할인 이벤트, 심지어 텐센트 모바일 페이 현금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앱마켓 시장 점유율을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시켰다. 텐센트 이외에도 모바일 보안과 검색분야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360치후(奇虎), 바이두, 알리바바 등 중국의 대표적인 모바일 플랫폼들이 제3자앱마켓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나아가 2018년 이후엔 텐센트나 알리페이 모바일 결제 플랫폼들이 간편 인증을 통해 일부 앱을 다운로드 하지 않고 실시간 접속 방식으로 사용하는 앱스트리밍(小程序) 방식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앱을 다운로드 하지 않기 때문에 저장 용량의 제한에서 자유롭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SNS 서비스나 모바일 결제 플랫폼에서 인증과 결제가 매우 편리하기 때문에 앱마켓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빠르게 상승 중이다. 중국과 한국의 법 규제가 상이한 측면은 있지만, 한국 소비자들이 구글 앱마켓이 아닌 대안적인 로컬 앱마켓 이용을 확대한다면 구글의 갑질에서 벗어날 수 있음은 자명하다. 디지털 콘텐트 소비가 스마트폰으로 일원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 성장동력의 핵심인 디지털 데이터의 확보와 국내 콘텐트 사업자의 수수료 부담 완화 등을 위해선 글로벌 OS사의 앱마켓에 밀리지 않고 로컬 앱마켓 사업자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 빅데이터 경쟁력과 한국의 로컬 앱마켓 중요성 「 스마트폰은 통신 이외에도 검색, 게임, 웹 소설, 동영상, 음악, 금융 등 일상의 많은 활동을 지원하는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생성되는 개인 데이터 정보는 맞춤형 추천 광고의 핵심 자원이고, 스마트폰 중심의 소비 패턴 변화는 기업 비즈니스의 디지털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측면에서 글로벌 스마트폰 OS와 앱마켓을 장악하고 있는 구글과 애플은 미래 비즈니스 성공의 핵심 경쟁력을 이미 확보했다. 한국도 2020년 데이터 3법의 개정 이후 개인맞춤형 추천 서비스, 스마트폰 간편 인증, 마이데이터 사업 등 모바일 플랫폼 기반의 새로운 비즈니스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구글의 인앱결제 갑질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의 로컬 플랫폼 경쟁력은 여전히 글로벌 빅테크 플랫폼에 비해 취약하다. 한국의 디지털 콘텐트 산업, 한국의 빅데이터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글로벌 OS사의 앱마켓에 대응할 수 있는 자체 경쟁 수단의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첫째, 한국의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자체 OS나 앱마켓의 개발과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국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의 우수한 하드웨어 제조업의 기반에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결합한다면 미래 글로벌 플랫폼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한국에서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로컬 IT 플랫폼이 글로벌 OS사에 대응해 자유로운 자체 앱마켓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책적·법적인 걸림돌을 제거해줄 필요가 있다.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디지털 환경에서 과거의 규제 관행이 새로운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에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 」 서봉교 동덕여대 중국학과 교수
-
[차이나인사이트] “고대부터 중국은 하나” 소수민족 우대책 없앨 듯
━ 중국이 새로 내건 ‘중화민족공동체’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한중관계사연구소 소장 지난 2월 초 중국 베이징에서 날아온 한 장의 사진이 한국을 흥분시켰다.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한복을 입은 조선족 여성이 등장한 것이다. 한국 언론에선 “중국이 우리 한복을 빼앗아간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중국 언론이 주목한 건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를 운반하는 중국 공민 100명 전체였다. 조선족 여성은 그저 중국 공민의 한 사람으로 등장시켰을 뿐이다. 중국의 목적은 개막식 행사를 통해 새로운 민족정책인 중화민족공동체를 전 세계에 선포하려는 데 있었다. ■ 「 1990년대 러시아 해체에 위기감 미·중 경쟁에도 대비하는 노림수 구석기시대 ‘중화DNA’ 형성 주장 “근대 이후 중화민족 형성” 뒤집어 겉으론 공동체 일체성 강조하나 실제론 한족 동화정책 밀어붙여 」 2022 올림픽 오성홍기 기수단 100명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 때 한국이 한복을 입은 조선족 여성에 주목했다면 중국 언론은 중화 민족공동체 선포를 위해 오성홍기를 운반하는 중국 공민 100명에 초점을 맞췄다. [연합뉴스] 중국의 민족정책은 그동안 1988년 페이샤오퉁(費孝通)이 제안한 ‘중화민족다원일체론’에 근거했다. “다양한 기원을 가진 각 민족이 근대 이후 자각해 중화민족을 형성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반해 중화민족공동체론은 중화민족이 근대 이전 이미 자연스럽게 존재했다며 근대 이후 급조된 민족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가 갑자기 공동체를 강조하는 민족정책으로 전환한 이유는 무언가. 가장 큰 원인은 중국도 구(舊)소련처럼 분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구소련은 1991년 해체돼 15개 주권국가로 쪼개졌다. 중국에서도 2000년대 후반 소수민족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자 중국 정부는 위기감을 느꼈다. 특히 2009년 7월 5일 신장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한족과 위구르족 간 대립은 중국 정부를 더욱 긴장시켰다. 당시 한 중국 학자는 필자에게 “이번 사건은 매우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귀띔했다. 왜? “이전엔 정부가 자제를 요청하면 한족들이 말을 들었는데 이젠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향후 한족과 소수민족 간 대립이 더욱 격화될 것이란 분석이었다. 국제질서 변화와 미·중 패권경쟁 격화도 중국 정부가 민족정책을 바꾸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중국은 서방 국가들이 티베트족이나 위구르족을 분열시키기 위해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949년 신중국 성립 이후 중국의 민족정책은 스탈린의 민족이론을 따랐다. 한데 이젠 민족자결을 강조하는 스탈린의 민족이론 영향으로 공동체 의식이 약화해 민족이 와해할 위기에 처했다고 중국은 판단한다. 마룽(馬戎) 베이징대 교수는 “21세기 중국에 닥친 가장 큰 위험은 국가분열이다. 민족자결권 이론에 따르면 어떤 민족도 독립할 권리가 있다. 소련은 이미 해체됐다. 민족자결은 해체를 부르는 이론”이라고 말한다. “진한(秦漢) 시기에 완성” 억지 논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의 광활한 영토, 유구한 역사, 찬란한 문화, 위대한 정신은 각 민족이 공동으로 창조한 것”이라는 ‘4개 공동(四个共同)’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현대 중국의 민족정책과 역사 및 문화연구는 각 민족의 일체성을 강조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유기적 운명공동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겉으론 중화민족공동체의 일체성을 강조하지만, 속으론 한족으로 동화시키는 정책이다. 이에 따라 소수민족을 동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제시됐다. 우선, 소수민족 신분을 폐지하고 한족과 동등하게 중국 공민으로서의 법률적 대우를 받게 하겠다고 한다. 따라서 중화민족만을 민족(nation)으로 표기하고, 다른 소수민족은 종족(ethnic group)으로 표기하자고 한다. 그리고 소수민족의 자치권, 소수민족 학생에 대한 학력고사 점수 가중치 부여 등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폐지할 것이라고 한다. 동화정책의 일환으로는 현재 소수민족 학생들에게 한어(漢語)와 한족사를 교육하고 이들 민족의 종교를 탄압하고 있다. 중화민족의 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근대 이전 중화민족이 역사적·문화적으로 이미 공동체를 이뤘음을 증명하는 연구 또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구석기 시대 말기 이미 ‘중화문명 유전자’가 형성됐으며 이후 한족을 중심으로 주변 민족을 통합해 진한(秦漢) 시기 완벽한 형태를 갖췄다고 한다. 모든 연구는 고대에서 현재까지 교왕(交往)·교류(交流)·교융(交融)을 통해 고대 족군(族群)이 중화민족공동체로 융합되는 과정과 방식을 설명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중화민족공동체론에 따르면 중국 변강에 거주한 종족들도 중화민족공동체의 유기적인 구성 부분이 된다. 중화질서를 형성하는 중요한 이념적 근거였던 ‘화이지변(華夷之辨)’도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화하(華夏)와 이적(夷狄)은 다르다’가 아니라 ‘화하와 이적은 일체다(華夷一體)’를 강조한다. 비록 역사상 분열이 있었으나 이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이뤄진 것으로 중화민족공동체는 파괴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청나라가 한족을 동화하기 위해 실시한 ‘만한 통혼제(滿漢通婚制)’도 화이일체의 근거로 제시한다. 한국 등 주변국과 충돌 불가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전날의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한 국가이며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독립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푸틴의 이 같은 발언은 유라시아주의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 알렉산드르 두긴 모스크바국립대 교수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가 낙후한 건 근대 이후 유럽과 미국 문명(대서양주의)이 러시아 등 대륙의 문명을 침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근대문명의 핵심가치뿐 아니라 서구에서 들어온 사회주의도 배척하며 러시아의 전통 종교·문화·관습을 회복해 러시아가 유라시아의 지배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구소련연맹의 국가들을 회복하는 게 목적이고, 중국은 현재 중국 내 민족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현상 변경국가에 해당한다면 중국은 현상 유지국가에 해당하는 셈이다. 시진핑 주석은 인류운명공동체(2012년), 아시아운명공동체(2015년) 등 모두 17개의 운명공동체를 제안했다. 연구에 따르면 인류운명공동체는 중국 전통의 천하주의와 마르크스의 ‘진정한 공동체’ 이론을 통합한 것으로, 대국인 중국이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중화민족공동체론이 인류운명공동체론과 결합한다면 유라시아주의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중국은 ‘화하’와 ‘이적’은 고대부터 모두 중화민족이었으며 변방에 거주한 민족의 역사와 문화도 모두 중화민족의 역사와 문화라고 주장한다. 앞으로 한국과 역사, 문화 방면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 민·관·학 총력전…주요 대학마다 ‘의식공고화’ 센터 「 중화민족공동체 개념이 관방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10년대 이후다. 페이샤오퉁의 중화민족다원일체론에 이은 두 번째 민족정책으로 제2대 민족정책으로도 불린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칭화대 후안강(胡鞍鋼)과 베이징대 마룽이 있다. 후안강은 각 민족의 신분을 취소하고 일체된 ‘국족(國族)’ 개념의 중화민족공동체를 형성할 것을 제안했다. 마룽은 소수민족과 중화민족이 모두 민족(nation)으로 불려 혼란스럽다는 점을 지적하며 56개 민족은 족군(ethnic)으로, 중화민족은 민족(nation)으로 부르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공민평등으로 민족평등을 대신하자고 말했다. 이 같은 중화민족공동체 구성 방안은 ‘대용광로’ 모델로 국가주의 민족정책의 성격을 띤다. 시진핑 주석은 2014년 ‘제2차 중앙 신장 공작좌담회(第二次中央新疆工作座談會)’에서 처음으로 ‘중화민족공동체 의식’ 수립을 제안했다. 이후 여러 차례 “중화민족공동체 의식” 공고화를 강조했고, 2018년에 처음으로 ‘중화민족’은 ‘중국 공산당 당장(黨章)’에 포함돼 새로운 민족정책으로 확정됐다.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정부기관과 대학, 학자들이 총동원되고 있다. 2020년 11월 중앙민족대학(中央民族大學)은 ‘중화민족공동체 의식 공고화 연구센터(鑄牢中華民族共同體意識研究基地)’를 설립했다. 설립식에는 통전부, 국무원 참사실,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등 정부기관과 베이징대를 비롯한 각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의 지도자와 전문가가 참가했다. 현재 각 지역의 대표 대학에는 모두 ‘중화민족공동체 의식 공고화 연구센터’가 설립된 상황이다. 역사적·문화적으로 중화민족공동체를 입증하기 위한 연구는 위구르족 및 몽골족과 관련된 내용이 많으며, 이들이 근대 이전 이미 중화민족공동체의 일부였음을 증명하는 게 목적이다.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 이전인 2021년 12월 24일 마룽 등이 참석한 ‘중화민족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하기 위한 역사적 논리와 현대적 실천’ 학술회의가 베이징에서 대규모로 개최되기도 했다. 」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한중관계사연구소 소장
-
[차이나인사이트] 우리에게 중국 넘어설 미래산업은 있나
━ 한·중 산업 경쟁력 기상도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가 중국에 꾸준히 무역수지 흑자를 거둬왔기에 한국의 산업 경쟁력이 중국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대중 경쟁우위는 점차 약화하고, 경쟁우위 산업도 점차 주는 추세다. 지난 10년간(2010~2019년) 산업별 한·중 간 경쟁력 변화를 보면, 우리가 중국에 대해 열위(劣位)였다가 우위로 전환한 산업은 조선과 담배 등 두 업종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가 우위에 있다가 열위로 떨어진 경우는 통신기기·전지·가전·전기기기·자동차·철도차량·섬유·제지 등 다수다. 우리가 경쟁우위를 갖는 산업이 축소되는 중이다. 이들 중 자동차·제지·철도차량을 제외한 대부분은 한·중이 세계 시장에서 모두 경쟁우위를 갖고 경쟁해온 품목이다. ■ 「 한·중간 경쟁력 격차 빠르게 줄어 유사 제품으론 중국과 경쟁 불가 틈새시장서 고급화로 승부하고 신제품 개발로 차별화 매진해야 」 업종별 엎치락뒤치락 한·중간 산업 경쟁력 격차가 줄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중국에서 열린 ‘2022 국제 빅데이터 산업 엑스포’에서 한 직원이 스마트 거울을 소개하는 모습.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에 대해 우리가 경쟁우위를 지키는 산업은 반도체·석유화학·기타 전자부품 등과 같이 세계 시장에서 중국은 열위이고 한국은 우위인 품목이다. 또는 정밀화학·특수 목적용 기계 등과 같이 중국은 세계 시장에서 열위이지만 한국은 열위에서 우위로 전환한 품목, 혹은 정밀기기·항공기·석유정제·비철금속 등과 같이 한·중 모두 세계 시장에서 경쟁열위에 있는 품목이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중국의 경쟁력이 빠르게 향상돼 세계 시장에서는 경쟁우위로 부상했지만, 아직도 한국에 경쟁열위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가 중국에 대해 경쟁열위인 품목은 컴퓨터·기타 수송 장비·유리·세라믹·기타 비금속광물·주조·의류·가죽·신발·가구·기타 제조업 등 세계 시장에서 한국이 열위, 중국이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품목이다. 또는 고무·시멘트·철강·조립금속 등 양국이 모두 세계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품목이다. 중국의 반도체·이차전지 약진 과거 중국 산업의 질적 취약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게 아이폰의 글로벌 가치사슬 구조였다. 2012년 9월 출시된 아이폰5의 판매가격은 약 600달러였는데, 최종 조립과 수출이 이뤄지는 중국에 남는 부가가치는 단순 조립인력에 주어지는 6.54달러로 판매가격의 약 1%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자체 기술력을 가진 중국의 로컬 스마트폰 업체들이 부상하면서 가치사슬의 고부가가치 부분도 중국이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또 관련 핵심부품들도 중국 로컬기업들이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과거 중국이 한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평판디스플레이에서도 최근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지난해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중국 업체 비중은 41.5%로, 33.2%인 한국 기업을 추월했다. 과거 이차 전지는 일본과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을 주도했지만, 지난해 전기차용 전지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중국의 CATL이 32.6%로, 20.3%를 차지한 LG 에너지 솔루션을 압도했다. 내연기관 차량에서는 중국 시장에서조차 외자계가 5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나 차세대 자동차인 전기차는 비야디·상하이GM우링 등 중국 업체들이 테슬라에 이어 세계 2, 3위 판매업체로 부상했다. 중국은 반도체를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지만, 반도체산업 내 경쟁우위 분야도 존재한다. 한국 기업이 메모리반도체와 고정밀 파운드리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반면 중국 기업은 저정밀 파운드리와 더불어 조립·패키징·테스트 공정에서 높은 세계 시장 점유율을 보인다. 더욱 치열해질 중국과의 경쟁 한·중 간 경쟁은 중국의 연구개발 및 4차 산업혁명 관련 투자의 빠른 확대, 코로나 19, 탄소 중립, 중국 소비수준 향상과 구조 변화, 미·중 무역 및 기술분쟁, 중국의 자체 공급망 강화 등 다양한 환경변화로 인해 갈수록 심화할 것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우리의 경쟁우위가 당분간 유지되는 분야는 반도체산업의 메모리반도체나 고정밀 파운드리, 디스플레이산업의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조선의 가스선과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과 수소 및 암모니아 연료전지 선박 등 차세대 선박 등이다. 우리로선 향후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특정 산업이 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중국과 명확히 차별화되는 제품을 개발해 생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비슷한 제품으로는 중국과의 경쟁이 쉽지 않다. 우리 제품이 중국보다 경쟁력이 높다 하더라도 중국의 애국주의 소비나 수요, 한국 브랜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으로 인해 중국 시장에서 생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종재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 전반에서는 기초연구보다 융복합을 통해 신제품 및 서비스 개발에 집중해 제품을 차별화하고 프리미엄화해야 한다. 향후 수요 확대가 예상되고 우리가 경쟁력을 일정 정도 확보한 분야는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유지 및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 실버·환경·문화산업 키워가야 제품 자체의 개발이나 제조 기술뿐만 아니라 관련 소재 및 부품, 장비 등도 같이 발전시켜야 하고, 관련 기초과학 연구도 강화해야 한다. 이의 대표적인 산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요가 크게 늘고 있고, 우리 기업이 일정 수준 경쟁력을 보유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 전지 등이다. 일반 제품으로는 우리가 중국 시장에서 생존하기 힘들다. 틈새시장에서 고급화 제품으로 승부해야 한다. 중국에 앞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로서는 중국의 실버마켓 공략도 좋은 전략이다. 또한, 선도적 탄소 중립 및 환경문제 대응과 더불어 관련 산업의 육성에 주력해 중국 시장 및 세계 시장에 선도적으로 진출해야 할 것이다. 문화 자체도 산업적 중요성을 지니지만, 문화와 결합한 제품 및 서비스 개발, 문화를 통한 브랜드 이미지 향상(광고) 등을 통해 국가 브랜드의 약점을 보완하는 요소로 활용해야 한다. 앞으로도 국내에서 스마트제조로 대표되는 생산방식의 혁신은 지속해야 한다. 제품이 대중화되면 결국 최종 경쟁력은 생산에 있다. 이와 더불어 산업환경 변화에 따라 우리 기업의 글로벌 배치전략도 빠르게 변화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미·중 분쟁 등에 따라 변화하는 시장이나 생산 여건을 적절히 고려해 생산기지를 글로벌로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우리 산업을 발전시키는 요소가 된다. ■ 한·중 반도체산업, 어디까지 왔나 「 중국도 반도체산업이 일정 수준 발전해 있고, 일부 부문에선 비중이 매우 높다.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의 59%를 점유하는 메모리반도체에선 아직 중국 기업의 존재감이 거의 없다.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의 19%를 점유해 대만 기업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점유율을 보이는 웨이퍼 가공(파운드리)은 중국도 16%를 차지해 비교적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보면 삼성이나 대만의 TSMC 등은 5나노 이하의 첨단 고정밀 파운드리가 가능하지만, 중국의 SMIC는 28나노 이상의 파운드리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부가가치가 낮은 조립·패키징·테스트 공정은 중국의 시장 점유율이 38%로, 세계에서 가장 높고 한국은 11%에 불과하다. 시스템반도체 및 설계, EDA&코어 IP 등은 주로 미국이 높은 비중을 보이고, 한·중은 모두 미미한 수준이지만, 한국이 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계(Logic)에서 중국 기업은 세계 시장의 5%를 차지하는 반면, 한국은 3%에 그치고 있다. 장비는 주로 미국·일본·유럽 등이 생산하고 있고 한·중 모두 취약하긴 하나 한국이 중국에 비해서는 다소 앞서 있다. 소재는 기술적 난이도 등에서 차이가 있지만, 한·중 모두 16%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보인다. 중국이 가장 취약한 부분 중 하나인 첨단 고정밀 파운드리의 경우 가장 큰 장애 요인 중 하나가 미·중 분쟁으로 장비도입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중국도 자체 장비산업의 육성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관련 기업의 기술 수준은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장비 중 하나인 노광기는 상하이마이크로전자장비가 생산하고 있으나 90나노 이상만 가공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당분간 메모리 및 첨단 고정밀 파운드리에서 중국이 우리를 추월할 가능성은 높지 않고, 집중적 노력이 이뤄지면 시스템반도체에서 중국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차이나인사이트] 러시아 손 들어준 중국, 미국·서방의 제재 부르나
━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 이성현 하버드대 페어뱅크 중국연 방문학자 중국은 결국 러시아에 대한 지원 때문에 미국과 서방의 제재에 직면하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를 지지할 경우 그에 따른 “후과(consequences)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이후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은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악화일로의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국내적으로는 일관되게 러시아를 지지하고, 국제적으론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는 걸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반면 미 정부는 중국이 러시아에 대해 독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보고, 중국 스스로 부여한 ‘책임 있는 대국(負責任的大國)’이란 위상에 걸맞게 서방에 합류하거나 아니면 ‘중재자’로서 건설적인 역할을 하라고 촉구 중이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시진핑이 세계 무대에서 진정한 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크라이나와 미국 편을 들 것”이라며 “시진핑이 올바른 선택(the right choice)을 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 「 북핵 중재 때 북한 의심 산 중국 러시아 침공 비난은 한사코 거부 미 제재 피하려 대러 제재 시늉만 미·러 사이 딜레마 빠져 고민 중 」 사회주의 아군에 대한 자살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월 4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금지구역 없는 중·러 협력’을 다짐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중국은 러시아를 소외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중국이 동조한다는 건 같은 사회주의 아군을 약화하는 ‘전략적 자살골’이라고 본다. 어차피 러시아 다음 미국의 타깃은 중국이 되지 않겠느냐는 이유에서다. 중국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 경험을 토대로 이 같은 ‘교훈’을 배웠다. 당시 북한은 동맹인 중국이 미국 편을 들고 있다고 의심하면서 중국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중·러 간 ‘금지구역이 없는 협력’을 다짐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는 중·러가 미국 및 서방과 장기간 냉전적 대결을 펼치겠다고 예고한 것과 다름없다.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건 같은 사회주의 진영인 러시아 시각에서 볼 때 오해를 살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은 중국이 러시아를 위해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순간이다. 경제 규모가 중국의 10분의 1에 불과한 러시아에 비해 중국은 미국 및 유럽연합과 훨씬 더 큰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중국이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만약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서방이 중국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결정적인 문턱을 넘게 된다. 그러잖아도 껄끄러운 미국 및 서방과의 관계를 더 악화시키지 말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중국 관세청에 따르면 중국은 서방의 대러 제재에 마치 호응이라도 하듯 지난 3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10% 이상 줄였다. 중국이 지난 3월 러시아에서 수입한 원유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1%나 감소해 전체 수입량의 15.0%에 그쳤다. 이에 따라 중국의 최대 석유 수입국도 러시아에서 사우디아라비아(16.1%)로 바뀌었다. 일각에선 이런 제스처를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해석한다. 친강(秦剛) 주미 중국대사의 언론 인터뷰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친강은 “중국과 러시아 간 협력에 금지구역은 없지만, 마지노선은 존재한다(中俄合作沒有禁區但有底線)”고 말했다. 그러나 이게 중국이 국제적인 공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결정적 신호는 아니다. 그보다는 중국이 잘 활용하는 외교적 선전 전술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큰소리만 치고 실천은 안 해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항구를 지키고 있는 러시아 군인들 모습. [EPA=연합뉴스] 앞서 언급한 북한 사례에서 중국 정부는 당시 대북 수출이 금지된 이중 용도(dual use) 품목 및 기술 목록을 무려 236쪽 분량으로 발표했다. (2013년 9월) 당시 중국의 이러한 제스처는 중국이 국제적인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됐다. “중국이 말 아닌 행동으로 대북제재에 나섰다”고 한국 언론은 찬사를 보냈다. 외교부 당국자도 “중국이 그동안 자국 기업들에 안보리 결의안을 잘 이행하라고 구두로 독려한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강한 이행 의지를 담은 정부 공고문을 발표하고 또 구체적 목록까지 세세하게 공개한 적은 없었다”며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훗날 미국이 중국에 관련 대북 제재를 어떻게 이행했는지 문의했을 때 중국은 관련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 ‘천둥소리만 크고 빗방울은 가늘다(雷聲大雨點小)’는 말처럼 큰소리만 치고 실행은 시늉만 냈던 셈이다. 허장성세 전술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제재 행동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패턴이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한 2013년 당시에도 중국의 4대 국영은행 가운데 하나인 중국은행은 북한 조선무역은행과의 거래를 중단했다고 발표했고 당시 이 놀라운 소식은 외신 헤드라인을 장식했지만, 실제로 이뤄진 일은 거의 없었다. 전문가들이 중국의 대북정책을 보여주기식 ‘전술적 수준’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보이는 중국의 태도는 중국의 대북 제재 당시 행태와 유사하다. 중국 최대의 국영 석유화학기업 시노펙이 러시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하는 뉴스가 나오거나 차량공유기업 디디추싱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중단한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방은 중국의 이런 조치에 일련의 희망을 품고 중국을 제재하려던 생각을 접는 등 정보 혼란을 겪는다. 디디추싱은 후에 관련 뉴스를 부인했다. 미국과 서방이 중국에 대한 심각한 제재를 고려할 경우 중국은 자국의 외교 전술에 따라 이를 막으려는 조치를 서두를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의 합리적 우려는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하자 드미트로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선 “몹시 애석하다(痛惜)”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 줄타기 중국은 향후 서방과 러시아, 양쪽 모두와의 관계를 크게 해치지 않는 모호한 줄타기를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양측 모두를 만족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궁극적으론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을 의식한 ‘친(親)러시아’ 노선을 선택할 것이다. 왕이는 지난 3월 “국제 정세가 아무리 악화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는 포괄적·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끊임없이 전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2018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북·중우호관계가 “일시적인 일로 인해 변하지 않아야 한다(不應也不會因一时一事而變化)”고 천명한 것과 유사하다. 일부 관측통은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과장됐다고 일축한다. 시진핑과 푸틴이 공유하는 건 ‘진정한 우정’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공동의 적’이란 것이다. 이 같은 시각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위기는 중국과 러시아 간 소위 ‘무한한 우정(沒有止境的友好)’을 시험하는 계기가 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중국 내부에서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한 심오한 재평가의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전자는 ‘공동의 적’을 갖는 게 주는 통합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고, 후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어느 쪽에 더 유리한가 「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①푸틴의 전쟁을 막지 못한 점, ②우크라이나에 미군을 직접 파병하지 않겠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은 점 등 이른바 ‘유약한 리더십’으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미국에 전략적으로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다. 첫째, 미국이 가장 우려한 것은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하지만 군대를 직접 파견하지는 않음으로써 미군 병력을 여전히 인·태 지역에 유지할 수 있었고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중국의 ‘오판’을 막았다. 둘째, 미국이 중국 하나만 상대하기보다 중국과 러시아를 한꺼번에 상대하기가 더 쉽다는 ‘역발상’이 대두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함께할 때, 국제사회는 그것이 더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단결하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중국을 ‘멀리 떨어진 위협’으로만 간주했던 유럽이 미국과 인식의 간극을 좁히는 계기가 됐다. 셋째, 동맹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푸틴이 영토 야욕을 채우기 위해 기꺼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목도한 국제사회는 시진핑의 대만 침공 가능성도 ‘설마’가 아닌 실존적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집권 때 상당한 부침을 겪었던 미국의 동맹 체제가 다시 결속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동맹의 협력 폭과 깊이를 더하는 계기가 된 것도 국제정치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 이성현 하버드대 페어뱅크 중국연 방문학자
-
[차이나인사이트] 한·중 5년, 윤석열·시진핑 소통에 달렸다
━ 중국과 우정쌓기 고려해야 할 10가지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은 변검(變臉)의 나라다. 순식간에 얼굴이 바뀐다. 어떤 게 진짜 모습인지 알기 어렵다. 자신의 진정한 목적을 위해 쉽사리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중 관계 역시 중국의 다양한 모습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관계의 이면을 제대로 파악하는 건 무척 힘들다. 한·중이 수교한 지 올해로 30년이다. 이 30년은 우리가 사회주의 중국의 시장경제를 경험한 시기이지 중국 공산당의 지도이념과 정책을 공부하고 체험한 시기는 아니다. 그나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풍파를 겪고 나서야 중국 공산당 대외 관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 「 중국에서 친구란 이익 교환 관계 체면은 중국 주고 우린 실리 확보 분열 노리는 중국 선전술 대비를 중국 상대할 전담기구 검토해야 」 중국과 우정 쌓기란 쉽지 않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11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로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낸 축하 서신을 받고 있다. [뉴스1] 중국인과 깊은 우정을 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혹자는 “나는 중국 친구가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서로의 필요라는 이익을 배제한다면 과연 믿음만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중국에서의 친구란 서로의 관심에 덧붙여 상호 편리함이나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다. 중국인의 인간관계는 서로의 이익 보존을 신뢰와 체면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국가와의 관계도 바로 이 같은 개인 간의 관계가 확장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로 국익을 추구하되 이를 동반자(伙伴) 관계 등과 같은 아름다운 수식어로 꾸미는 것이다. 중국인 이해도 어렵고 중국 공산당 파악은 더 어렵지만, 이웃이라 못 본 척하고 지낼 수도 없다. 어떻게 할 건가. 보름 후면 출범할 윤석열 새 정부가 새겼으면 하는 ‘중국과의 관계 10가지 고려 사항’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한·중 관계에도 특수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정학적인 측면과 양자 관계라는 차원에서 한·중 간엔 영해를 포함한 안보 문제와 인적 교류, 경제와 문화, 역사 문제 등이 있다. 한·중이 협력해야만 해결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한·중 관계를 국제 관계 중 미·중 관계나 한미동맹 구조의 하위 차원에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미·중 전략경쟁의 시대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어느 한쪽에 너무 깊게 관여하거나 기대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될 것이란 점이다. 미·중 마찰이 전방위로 확대되는 측면도 있지만, 때론 대립과 타협이 반복적으로 이뤄지며 조정될 가능성 또한 크다. 조 바이든 미 정부는 중국과의 경쟁과 대립 외에 협력도 말한다. 우리로선 미·중이 갈등을 빚으면서도 협력하는 부분에 어떻게 동참해 우리의 지분을 챙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중국엔 체면을 안기고 우리는 실리를 얻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중국은 속으론 실리를 추구하면서도 겉으론 체면을 내세운다. 체면은 존중으로 세워줄 수 있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모두 ‘상호 존중’을 강조한다. 중국과 협상할 때 중국 문화에 정통해 부드러우면서도 중국을 설득할 논리를 갖춘 이를 파견한다면, 중국엔 체면을 선사하고 우리는 실리를 챙길 기회가 열릴 것이다. 북한의 중국 대처술 공부해야 네 번째는 북한의 중국 다루기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중국을 심적으로는 좋아하지 않지만, 생존의 차원에서 중국을 적절하게 활용 중이다. 한반도의 중국 전문가는 사실 북쪽 지역에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인의 이성과 감성, 체면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특히 북한은 생존을 위해 중국 정치와 최고 지도자의 심리 상태에 대한 연구가 깊다. 북한을 남북문제 차원에서만 보지 말고 북·중 관계에서 북한이 어떤 정치 행태를 보이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다섯 번째는 우리 국민을 상대로 ‘중국 바로 알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대외 전략은 동쪽에서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되 실은 서쪽을 치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이 많다. 또 민간 생활과 관련이 있는 분야에 대한 공격을 통해 해당 국가 정부에 압력을 가하려 한다. 상대국의 여론을 분열시키는 전략도 곧잘 구사한다. 중국이 두려워하는 건 상대 국가의 민심 단결이다. 새 정부는 중국의 선전 전략을 우리 국민이 잘 이해하게 해 중국의 의도대로 여론이 흘러가도록 둬선 안 될 것이다. 여섯 번째는 중국발(發) 공급망 문제가 야기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한 사전 대응책 마련이다. 우리의 대중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경제적인 이익 창출이다. 중국도 이를 잘 안다. 그런 탓에 중국은 때로는 고의로 또는 중국 국내 경제의 원인으로 한국에 불리한 경제 정책을 자주 펴곤 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지난해 말 요소수 사태, 그리고 최근 중국 코로나 확진자 급증 시 한국산 의류를 감염원으로 지목하는 행태 등 중국발 리스크는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경제안보 차원에서 중국을 관리할 상설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 일곱 번째는 한·중 간 공공외교의 강화 필요성이다. 나라의 사귐은 국민 간 친함에 있다는 말 또한 있지 않나. 특히 언젠가 남북한 협력이 이뤄지면 중국은 철도로 우리와 연결되는 지역으로, 매년 양국의 엄청난 인적 교류가 예상된다. 양국 민간의 우호 증진과 지방 도시 간 교류 강화는 미래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에 주춧돌이 될 것이다. 새 정부의 중국 정책에 바짝 긴장 여덟 번째는 중국의 한국 새 정부에 대한 우려를 어떻게 한·중 발전의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중국은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한국의 새 정부가 사드 추가 배치나 쿼드 가입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까 많은 걱정을 하며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민감한 안보 문제에 있어 한·중이 어떻게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아홉 번째는 한·중 소통이 꼭 만나야만 가능한 게 아니고 간접 교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안보 문제에서 중국과 직접 소통하기 어려운 경우 언론을 통한 간접 소통도 방법이다. 중국 정부가 인민일보나 환구시보를 통해 자신의 의중을 넌지시 드러내듯이 우리 새 정부도 미디어 활용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중국과의 소통 중 가장 중요한 건 최고 지도자 간 소통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상당한 공력을 쏟아야 한다는 점이다. 수천 년 황제를 모신 역사 전통에 시진핑 1인 체제가 강화되며 시진핑의 입장이 중국 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한·중 정상 간 어떤 대화 채널을 구축할 수 있는가에 미래 한·중 관계 5년이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국내 중국 전문가 망라한 ‘지혜의 연못’ 필요 「 한국의 일부 학계 인사나 정부 관리는 중국으로부터 자신이 한국을 대표하는 중국 전문가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역으로 이런 중국과의 관계를 이용해 한국에서 중국과의 개인적인 인맥을 자랑하며 영향력을 펼치고 싶어한다. 한데 이들의 한·중 인맥과 영향력이 정말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 같은 일부 중국 전문가들의 이기적 영웅주의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 정부는 중국 정부로부터 홀대를 받는 한국의 정치인과 기업인, 학자, 언론인의 경험과 판단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이들을 홀대하는 이유는 한국 입장에서 중국의 여러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툭하면 한·중 관계가 나빠지게 된 게 한국의 언론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한·중 관계가 나빠지게 여론몰이를 한 중국 정부와 언론은 책임이 없는지 반문하고 싶다. 새 정부가 주목할 건 한국엔 이미 수교 30년에 걸쳐 많은 중국 전문가가 배양돼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중국을 오래 상대한 외교관에서 중국 현지의 기업 현장에서 수많은 중국인과 이익 다툼을 벌인 기업인, 한평생 중국 공부를 한 학자, 중국 대륙을 발로 뛴 언론인 등 다양하다. 정부의 역할은 이들의 지혜를 모아 정책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여러 화살을 모아야 힘이 더 세질 것 아니겠나. ‘중국 자문위원회’ 같은 생명력 있는 지혜의 연못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들의 아이디어를 가로채 자신의 것으로 활용하려는 얄팍한 장사꾼 같은 정부 관리가 있어선 안 된다. 지혜와 힘, 그리고 예의를 동시에 갖춘 국가에 대해선 아무리 이웃 강대국이라고 해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이런 지혜의 연못에서 대중 정책이 나오면 한·중 간엔 서로 존중할 수밖에 없는 국가 관계가 형성되고 양국 국민 또한 서로를 존중하게 될 것이다. 」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차이나인사이트] 한·중 차이 인정하고 협력 가능한 문제부터 풀어야
━ 새 정부의 중국 접근법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한·중 양국이 수교 30주년을 맞았다. 한국에선 미래 5년을 이끌 새 대통령이 탄생했고 중국은 오는 가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3기 체제가 출범한다. 두 나라 모두 지난 30년을 돌아보며 ‘삼십에 확고한 신념을 갖는다’는 삼십이립(三十而立)이란 말에 걸맞게 미래 30년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현대 한·중 양국의 첫 번째 조우는 1950년 6·25 전쟁이다.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 구호 아래 통일 한국의 출현을 눈앞에서 저지한 적성국의 모습으로 한국 앞에 등장했다. 그러나 한·중은 1992년 8월 24일 40여 년에 걸친 반목을 청산하고 역사적인 수교를 단행했다. 양국 공히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및 공동 경제 번영을 수교 목표로 내세웠지만, 속내에선 차이가 났다. ■ 「 한·중 수교 30년, 상호 마찰 잦아 반쪽 짜리 성적표 남겼다는 평가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외교 펼쳐야 친중·반중 소모적 대립 사라져야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은 지난달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마련된 당선인 사무실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로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낸 축전을 전달받았다. [연합뉴스] 중국은 한국과의 양자 관계보다 ‘대국 외교’ 전략 차원에서 한반도 문제 재단에 나섰다. 한반도에 대한 전통적 영향력 복원에 힘을 쓴 것이다. 반면 한국은 북한에 대한 제어와 광활한 중국 시장에 방점을 찍었다. 이런 면에서 현대 한·중 관계는 전통적인 한·중 유대의 복원이라고 하기보다는 새로운 국제관계의 시작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수교 초기 한·중 관계는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에 입각했다. 껄끄럽고 민감한 정치안보 이슈는 이견(異見)으로 남겨두고 쉬운 것(low-lying fruits)부터 먼저 교류를 확대해 점차 어려운 문제에 접근하자는 선이후난(先易後難)적 사고를 기반으로 했다. 하지만 이념과 체제가 달랐던 만큼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양국 관계는 제도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공감대를 찾기 어려운 북한이라는 이질적 요소를 안고 출발했고 한국은 북·중 간의 특수한 관계를 제어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우호적이지만 영역별로는 불균형적인 관계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수교 이후 잠깐의 밀월 기간을 제외하면 한·중 관계엔 북핵이나 북한 문제 등을 차치하고라도 크고 작은 바람이 끊이지 않았다. 경제적인 이익을 둘러싼 2000년의 마늘 분쟁이 시작이었다. 2004년엔 중국의 고구려사 빼앗기로 인식되는 동북공정(東北工程) 문제가 불거지며 한·중 간 역사전쟁이 벌어졌다. 특히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 나타난 중국의 북한 감싸기 태도는 북·중 특수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한·중 관계의 한계를 실감케 했다. 2016년 터진 사드 사태는 지금까지도 양국 관계에 커다란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최근 한복과 김치 등을 둘러싼 문화 갈등은 중국의 진정한 속내가 무엇인지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결국 수교 당시의 목표를 반추해보면 경제 교류는 괄목할 발전을 했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및 한반도 비핵화 등 안보 상황은 이렇다 할 진전이 없이 한·중 간 ‘최소주의’적인 관계만이 유지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북핵은 더욱 고도화되고 북·미 관계는 더욱 경색됐다. 한·중 수교가 반쪽짜리 성적표를 남겼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본래 외교란 한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국제 활동으로 당연히 고도의 협상을 통해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하는 철저하게 계산된 실리적인 행위다. 기대와 희망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란 이야기다. 이는 중국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를 되묻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한·중 사안별 입장과 대응 방안.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현 정권 말기엔 북한에 주도권마저 내주었다. 특히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운 미·중 사이에서의 어정쩡한 태도는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원자재 수급에서 불안이 노정된 경제안보에서도 능동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의 지정학적 어려움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새로운 외교관계 설정을 천명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구축 시도를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하고 남북관계로 국제관계를 재단하려 했던 현 정부의 시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또 그동안 소외됐다고 여겨지는 한·미 관계 복원 및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을 받아온 대중 외교의 ‘상호주의 강화’를 강조한다. 중국은 이에 대해 우려가 크다. 한국의 새 정부가 북핵 문제와 관련해 더는 문재인 정권처럼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포괄적인 한·미 동맹 확대 복원이 한·미·일 삼각공조 강화나 미국 중심의 중국 배제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지면서 더 강력하게 중국을 견제하게 될까 우려한다. 한국의 새 정부가 북핵 위협에 대한 대처와 한국 외교의 정상화 차원에서 한미 동맹 강화를 꾀하는 건 중요하다. 또 우리의 정체성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중국의 행위에 대해 분명하게 대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중국과의 경제교류 중요성과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 대한 기대로 인해 중국에 대해 제대로 할 말도 하지 못하고 중국 눈치기로 일관했던 과거 정권의 우(愚)를 반복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적으로 돌릴 이유는 없다. 시장으로서의 중국은 여전히 중요하다. 또 한국의 대중 의존도 감소 역시 다변화보다는 사안별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미국에 대한 전략적 명료성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이 때문에 다자적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국내 상황을 친중(親中)과 반중(反中)으로 갈라치기를 하는 잘못을 범해선 안 된다. 당당한 대중 외교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중국과의 갈등이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상대를 자극하는 언사는 자칫 우리의 대중 레버리지 상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중 미래 30년의 물꼬를 트는 단계에 선 새 정부로선 새로운 대중 접근법이 요구된다. 그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협력 가능한 양자적 문제의 해결을 우선하는 이중구동(異中求同)의 자세가 돼야 할 것이다. ■ 정치·외교에서 문화·역사로 갈등 번져 「 한·중 관계가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미·중 마찰 심화와 북핵 고도화 등 정치·외교적 문제가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민간이나 비(非)정치 분야로 갈등이 확대·재생산되는 추세가 일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중국의 부상이 애국주의 풍조로 연결되며 한국에 대한 역사와 문화의 왜곡이 여과 없이 분출되고 있다. 특히 한·중 미래 세대는 논쟁의 일선에서 대립과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세계적 국가로 부상한 중국의 힘을 만끽하려는 중국 국민과 21세기 문화 아이콘인 한류 보유국 한국 국민 누구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 특히 중국 경제력의 외교 무기화 추세가 여전히 한국에 강력하게 작동할 소지가 있으며, 이는 중국의 의도와 관계없이 한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갈등 요소로 대두하고 있다. 미·중 갈등과 관련해 출현한 ‘대만해협의 안정’ 문제, 그리고 계속되는 중국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 무단 진입도 양 국민의 감정을 크게 자극할 소지가 있다. 양국 정부가 강조하듯이 서로가 중요한 국가라면 양국의 현상과 현실을 직시하고 마찰과 갈등은 최소화하며 상호이익은 극대화하는 실질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양국 간 다양한 대화 기제가 있음에도 이게 정치에 종속돼 있다 보니 문제가 발생해도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중 정부는 비정치 분야의 정치화 방지와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상호 소통 관리시스템 구축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양국의 여론 탓만을 할 게 아니라 경제는 시장에 맡기면서 국제 전략 관계 등의 거대 담론보다는 양국 관계의 실질적 신뢰 구축에 필요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해 하나하나 풀어가는 기제가 절실하다. 」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
[차이나인사이트] 중국 ‘미국과 갈등 장벽 넘어라’ 1만 강소기업 키운다
━ 2022년 중국경제 8가지 포인트 중국은 지난 4~11일 개최된 양회(전국인민 대표대회, 정협회의)에서 올해 성장률 목표를 5.5% 내외로 제시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범상치 않다.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서방의 정치적 보이콧 사태로 얼룩지더니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우리 경제와 밀접한 중국 경제도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4%로 추락하면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중국은 이에 금리와 지급준비율을 인하했다. 선진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과는 역행하는 조치다. 지난 주말 폐막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중국 경제가 당면한 3대 압력으로 수요 위축, 공급 충격, 시장의 기대 약화를 꼽으며 ‘안정’을 강조했다. 경제 운용이 쉽지 않다는 거다. 우리는 올해 중국 경제에서 무얼 주목해야 하나. 여덟 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 「 전문·정밀·특색·혁신화 4대 목표 작은 거인기업 5년간 두 배 확대 올해 성장률 5.5%로 높게 제시 안정적인 성장·고용에 무게 실어 」 청년 일자리 창출에 승부 걸어 첫 번째는 중국이 안정적 성장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로 5.5% 내외를 제시했다. 지난해 목표인 6% 이상에 비해 낮긴 하지만 이는 지난 2년간의 평균 성장률인 5.1%보다 높다. 또 시장의 전망치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적극적인 성장 의지를 표명해 시장의 기대심리를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도가 읽힌다. 위축된 시장의 기대심리를 전환함으로써 투자와 소비를 회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사용했던 소비 확대조치도 소환하고 있다. 두 번째는 고용 안정이 중국 정부의 매우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리커창 총리는 “고용은 민생문제인 동시에 발전 문제”라고 언급했다. 중국은 청년층 조사실업률이 14.3%에 달하고, 올해 시장에 진입하는 신규 졸업생은 1076만 명에 이른다. 청년 일자리 창출이 경제는 물론 사회안정의 시금석인 것이다. 여기에 농민공과 퇴역 군인까지 고려하면 올해 신규취업 수요는 1600만 명에 달한다. 한데 리 총리는 올해 도시지역 신규 취업 목표로 1100만 명을 제시했다. 중국 경제가 5% 이상의 성장률을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세 번째는 중국 당국이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건전성 중시를 밝힌 점이다. 중국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재정 적자가 누적됐다. 또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관리가 어려운 지방정부 융자기구의 부채 규모가 상당한 정도(39조3000억 위안)에 달해 지방정부의 재정 여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재정 건전성 관리가 중요 과제로 부상한 이유다. 이에 재정 적자율을 지난해(3.2%)보다 낮은 2.8%로 설정했다. 다른 한편으론 지방의 재정집행 여력을 강화하고 기업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기업의 조세부담 경감 규모가 지난해 1조 위안에서 올해는 2조5000억 위안으로 확대했다. 환경·부동산 통제 완화할 듯 네 번째, 중국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가운데 실물경제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할 것이란 점이다. 통화정책의 기본 기조는 통화량(M2)과 사회융자규모 증가속도가 기본적으로 명목 경제성장률과 일치하도록 조절하고, 거시 레버리지 비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급준비율과 금리 인하, 금융기관의 대출을 확대해 시장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계획인 것이다. 올해 경기 운용에서 통화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다섯 번째는 환경과 부동산 분야에 대한 통제가 다소 완화할 것이란 점이다. 지난해엔 ‘쌍탄(2030년 탄소배출 피크, 2060년 탄소중립 실현)’ 관련 업무에서 적극적인 추진을 요구하다 보니 전력난이 발생한 바 있다. 올해는 질서 있는 이행으로 에너지 공급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선 투기는 근절하겠지만, 장기 임대주택 공급을 늘려 주택 구매자의 합리적 수요를 충족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조치는 중국 정부가 안정적 성장을 더 중시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다. 여섯 번째는 중국 정부가 저출산 및 노령화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강화하기로 한 점이다. 지난해 중국 인구는 자연증가율이 3.4‰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며 48만 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중국의 생산연령 인구는 2010년을 정점으로, 경제활동 인구는 2015년을 정점으로, 출생자 수는 2016년을 정점으로 감소세가 지속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노령인구(65세 이상) 비중이 14.2%로 국제연합이 규정한 노령사회에 진입했다. 이에 중국은 지난해 8월부터 ‘세 자녀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영아의 양육비를 개인소득세에서 특별 세액공제하고, 중국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맞춰 정년 연장도 추진하고 있다. ‘제로 코로나’ 유지할 수 있을까 일곱 번째로 중국은 강소 중소기업을 육성해 미·중 마찰 시대의 공급망 형성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케 하겠다는 점이다. 중국은 전문화(專), 정밀화(精), 특색화(特), 혁신화(新)된 ‘전정특신(專精特新)의 작은 거인(小巨人)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5000여 개에 달하는 작은 거인 기업을 향후 5년 안에 1만 개로 확대할 방침이다. 지난해 9월에는 이들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가 될 베이징 증권거래소를 개설했다. 마지막으로 미·중 마찰과 코로나 재확산이 중국 경제의 중요 리스크가 될 것이란 점이다. 2020년 초 중국이 미국산 제품을 추가 구매하기로 한 약속은 그 이행률이 57%에 불과했다. 현재 미국의 대중국 견제는 반도체를 넘어서 신기술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최근엔 미국에 상장된 5개 중국 기업을 상장폐지 위험 리스트에 올렸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코로나 사태와 겹치면서 다소 주춤했던 미·중 갈등이 다시 확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의 국가 주도적 경제시스템을 둘러싼 중국과 선진국 간 경제체제 경쟁도 가열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오는 가을 20차 당 대회를 통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3기 정부를 출범시켜야 하는 중국으로선 강경한 대응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에 더해 중국은 여전히 방역에 중점을 두고 제로 코로나 정책을 지속해 갈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문제는 전 세계가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과연 언제까지 유지해 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 개방보다 경제안보에 무게, 한국에 미칠 영향 「 중국의 대외통상전략 중심이 과거 ‘개방을 통한 국내의 개혁 촉진(以開放促改革)’에서 이젠 ‘경제안전 보장과 국제적 영향력 확대’로 전환되고 있다. 덩샤오핑은 대외 개방을 외국의 자본과 시장을 활용해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시장을 결합하는 개혁의 추진 동력으로 삼았다. 장쩌민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성사시켰고, 후진타오는 WTO 가입을 국내제도 개혁의 동력으로 이용했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첨예화하면서 중국은 경제안전과 자립을 중시하는 통상전략을 강화 중이다. 그 대표적인 전략이 쌍순환전략과 일대일로 이니셔티브(BRI)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통상전략은 중국 고립화에 대한 대응전략에 더 가깝다. 과거의 통상전략이 대외 개방에 방점을 두었다면 현재의 통상전략은 방어적 기제를 강화하는 형태다. 이는 경제안보를 이유로 한 자체 공급망 강화와 반외국제재법 제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중국의 통상전략 변화는 한·중 경제협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중국의 개방형 통상전략은 한·중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그러나 최근 안보 중시형 자기방어적 통상전략은 양국 경제협력에 위험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THAAD) 사태에서 중국이 시장을 무기로 우리를 압박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 중간재 수출의 27.4%가 중국으로 향하고 있고, 우리가 수입하는 중간재의 28.4%를 중국에서 들여오고 있다.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33%가 중국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이 공격적 성향의 통상전략으로 우리를 압박할 경우 한·중 경제협력은 근본적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해 한·중 무역액은 우리 통계로는 처음으로 3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 숫자는 양국이 상호 불가분의 협력 파트너임을 뜻한다. 시진핑 주석은 한국의 대통령 당선인에 보낸 축전에서 수교 당시의 ‘초심’을 강조했다. 그러나 ‘초심’은 한쪽에만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수교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상호 존중에 기반을 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재건되기를 기대해 본다. 」 양평섭 현대중국학회 회장·KIEP 선임연구위원
-
[차이나인사이트] 중국에 탄소배출 떠맡기는 ‘오염 외주화’ 더는 안 통해
━ 탄소중립 속도 내는 중국 한국이 겪는 미세먼지의 32%는 중국에서 온다. 지난해 1월 16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의 모습. 중국발 미세먼지 탓에 도심이 뿌옇게 보인다. [뉴스1] 지난해 연말 국내를 긴장시켰던 이른바 ‘중국발(中國發)’ 요소수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차분한 복기가 필요한 사안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해 가을 중국에 전력난이 발생했다. 주요 원인은 국제 석탄 가격이 오르며 전력생산 단가는 오르는데 전력판매 단가는 고정돼 있어서 발전소들이 손실을 피하기 위해 발전량을 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중앙정부가 지방별 탄소감축 목표를 할당하고 압박하자 지방 정부들은 석탄발전을 굳이 늘리고자 하지 않았다. 환경문제에 눈돌린 중국의 선택 이후 중앙정부는 전력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 가격체계를 유연하게 손봐서 전력생산 회사들의 재무제표를 개선해 주고, 지방정부의 석탄사용 제한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참고로 중국에는 사용 가능한 석탄이 1886억t이나 매장돼 있다. 2019년 중국이 생산하고(38억t) 수입한(2억3000만t) 양을 합쳐도 40억t 남짓이므로 중국에 석탄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중국이 석탄사용 감축을 추진한 이유는 대기오염에 대한 인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함이지, 석탄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취임 이후 경제·정치·문화·사회와 함께 생태문명(生態文明)을 오위일체(五位一體) 건설 목표로 설정할 정도로 환경문제를 중시하고 있다. ■ 「 중국 의존도 높은 한국의 딜레마 요소수 사태도 탄소 감축에 기인 미세먼지 갈등 등 상황 복잡해져 충격파 적게 공급망 다변화해야 」 중국은 이번 전력난 타개 조치를 전후해 부수적으로 철강과 석유화학 제품의 해외 반출을 통제했다. 에너지를 전력생산에 집중하기 위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다른 부문의 생산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석유화학 부산물 중 하나인 요소수의 수출 통제로 한국 경제에 차질이 생길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화물차와 소방차가 멈춰설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까지 번졌지만, 다행히 양국 간 협의를 통해 당초 계약물량을 차질 없이 인도받기로 하면서 우려했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한편 곧 봄이 오면 ‘중국발’ 미세먼지 얘기가 또 나올 것이다. 2019년 한·중·일 공동연구에서 한국이 겪는 미세먼지의 32%가 중국에서 온 것임이 확인됐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비중이지만 한국인은 미세먼지를 곧 중국과 등치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지난해 6월 한국의 한 매체가 체계적으로 조사한 반중감정 실태에 따르면 ‘황사·미세먼지 문제’가 한국인이 중국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요소수 사태도 중국발이었고 미세먼지도 중국발이지만 이 둘의 성격은 정반대다. 요소수 사태는 중국이 탄소감축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고, 미세먼지는 중국이 탄소를 배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요소수 생산 감축을 고집한다면 그만큼 미세먼지는 덜 날아올 것이고, 요소수 생산을 늘린다면 미세먼지는 더 많이 붙어올 것이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결국 우리는 안정된 요소수 수급과 깨끗한 공기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셈이다. ‘네덜란드의 오류’가 말하는 것 중국이 요소수 수출을 제한하자 한국은 화물차가 멈춰설 위기를 맞기도 했다. [뉴스1] 물론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지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요소수를 생산하거나 요소수를 다른 데서 수입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양자택일의 딜레마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 요소수를 생산하건,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건 간에 발생하는 오염물질 총량은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오염물질이 국내에서 발생한다면 우리나라 공기가 좀 더 오염될 것이고, 호주에서 발생한다면 호주 공기가 좀 더 오염될 것이다. 아무튼 지구적 차원에서 오염의 총량은 같다. 환경문제를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을 ‘네덜란드의 오류(Netherlands Fallacy)’라고 부른다. 네덜란드의 환경이 깨끗한 이유가 실은 오염 발생 산업을 해외로 옮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에 빗대자면, 우리나라의 대기가 중국보다 깨끗한 이유는 요소수와 같이 오염이 발생하는 품목의 생산을 중국에 맡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탄소 배출량이 적은 선진국들은 과연 탄소 소비도 적게 하는가? 그렇지 않다. 2020년 한 해 동안 EU 국가들은 중국으로부터 약 60억 유로 상당의 철강제품(HS코드 73)을 순수입했다(87억 수입, 27억 수출). 그만큼의 탄소와 오염을 중국에 떠맡긴 셈이다. 오염의 외주화다. 즉 우리가 체감하는 미세먼지 중 3분의 1은 중국에서 온 것이지만, 그중 상당 부분은 중국이 다른 나라의 오염물질 발생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그 다른 나라에는 우리 자신도 포함된다. 이렇듯 요소수와 미세먼지로 대표되는 한·중 간 경제·환경 관계는 이미 충분히 복잡하지만, 상황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전 세계가 탄소감축을 위한 공조를 시작한 것이다. 상당량의 탄소배출을 외주화한 유럽도, 그만큼의 탄소배출을 떠맡은 중국도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 각 나라는 국가별 탄소 감축량(NDC) 목표를 약속했다. 중국은 2030년 탄소배출 정점을 찍은 후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미 2018년 탄소정점을 지난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약속했다. 이에 더해 유럽은 탄소국경조정세를 도입해 체계적으로 탄소배출에 대한 불이익을 줄 작정이다. 국제사회의 압박이 더 심해지고 중국이 탄소절감을 급격하게 추진한다면 우리나라는 제2, 제3의 요소수 사태를 맞을 수 있다. 지난해 11월 무역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중국에 80% 이상을 수입 의존하고 있는 품목이 1850개이며 90% 이상 의존품목은 1275개다. 역시 같은 달 산업연구원은 우리나라가 전체적으로 수입에 특화돼 있으면서 중국에 70% 이상 수입을 의존하고 있는 1088개 취약품목을 선별해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발 공급망 리스크는 세 가지 이유로 올 수 있다. 첫째, 중국의 탄소절감 노력이다. 우리는 요소수 사태로 이미 예고편을 겪었다. 둘째, 정치·외교적 압박이다. 우리는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중국도 그럴 수 있다. 셋째,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다. 우리는 2020년 초 중국이 코로나 셧다운을 시행했을 때 ‘와이어링 하네스’라는 전기부품 하나를 수입하지 못해 자동차 생산라인 전체를 멈춰야 했다. 중국에 지진이나 홍수가 와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국산화’라는 쉬운 답안은 없어 우리는 이런 세 가지 상황에 모두 대비해야 하지만, 특히 중국의 탄소절감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탄소절감은 상수이지만 정치·외교와 자연재해는 변수다. 중국은 탄소절감을 하겠다고 공언했고, 그에 따른 정책을 체계적으로 집행하고 있다. 그럴 때 어떤 품목의 생산이 줄어들 것이며 그것이 우리나라의 공급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리 준비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의 셈법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우리 자신도 탄소 절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국산화’라는 쉬운 답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답은 중국을 포함한 주요국과의 정책 공조, 국내 생산, 수입선 다원화, 탄소 배출량 거래라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나올 것이다. 이러한 준비를 하지 않은 채 NDC 목표 달성만을 추구한다면 경제와 산업 부문이 받는 충격으로 탄소 절감에 대한 반발(backlash)이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가을 중국이 겪은 전력 부족 사태는 우리가 겪을지도 모를 사태를 미리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통상·외교적 역량이 집중적으로 필요한 어려운 시기가 닥쳐오고 있다. ■ 탄소를 줄일 것인가, 소비를 줄일 것인가 「 탄소절감과 공급망 안전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할 마법은 없을까. 궁하면 통한다고 방법이 없지는 않다. 바로 기술개발과 소비절감이다. 탄소를 덜 배출하는 기술을 도입하거나 개발할 수 있다면 중국과 우리나라가 직면한 딜레마는 사라진다. 그러나 그 길이 물론 쉬운 건 아니다. 탄소배출 3대장이라고 불리는 철강·석유화학·시멘트 산업은 촉매제와 연료로서 탄소 물질을 이중으로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테면 철광석에서 철을 분리하는 촉매제로도 석탄이 쓰이고 고로를 데우는 연료로도 석탄이 쓰인다. 즉 철강생산을 하려면 탄소배출은 필연이다. 최근 석탄이 아닌 수소를 촉매제로 사용하는 혁신적인 원리가 개발되긴 했지만, 포스코를 비롯한 산업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마법은 소비절감이다. 우리가 전기와 물자를 아껴 쓴다면 탄소절감과 공급망 안전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다. 한데 이 방법은 기업의 매출액 감소를 뜻하게 되므로 인기 있는 정책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인구가 감소하면 곧 소비절감과 같은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이는 인구감소의 긍정적 측면이다. 」 최필수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
[차이나인사이트] 무한 공급력, 반개방성…경제이론으론 설명 못하는 중국
━ 한중 수교 30년, 다시 보는 중국경제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가까운 톈진 항의 모습. 중국은 2022년 경제 운영 방침을 안정 속 전진으로 확정했다. [신화사=연합뉴스]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았다. 강산이 세 번 바뀔만한 시간에 중국경제와 양국 경제교류가 이루어낸 성과는 놀랍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기준 경제규모가 1992년 세계 13위였으나 2010년 일본을 제쳤다. 미국을 넘어 세계 1위가 되는 게 시간문제로 다가온다. 같은 기간 1인당 GDP 세계 순위는 133위에서 64위로 뛰어올랐다. 한·중 경제교류는 매년 가파른 성장을 거듭했다. 30년간 우리나라 전체 수출 규모가 약 8배 늘어난 것도 대단한데, 대중국 수출액은 60배 이상 팽창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장세다. 해외 직접투자와 인적 교류도 최근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중국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수교 30주년에 돌이켜보는 지난 장면과 지금의 현상들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앞만 보고 달리다 멈추면 주변이 보인다고 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과거와 현재의 흐름을 결정지은 일들이 있었다. 미래 방향을 암시하는 일들도 오버랩된다. 중국은 양적 성장의 대명사로 통했다. 우리도, 세계도 모두 중국을 그렇게 보았다. 경제가 발전하면 서구식 정치적 민주화로 이어진다는 게 서방의 단정적 예상이기도 했다. 중국이 한동안 성장하면, 병목에 걸리거나 중진국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어떻게 전개됐나. 중국은 양적인 성장을 하면서도 여러 차례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끊임없이 질적 성장을 모색해왔다. 아시아 외환위기의 파고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후 ‘제10차 5개년 계획(10·5 계획, 2001~2005)’ 시기부터 질적 성장으로 전환했다. 내수 확대와 구조조정에 나섰고, 제12차 5개년 규획(12·5 규획) 시기부터는 균형과 조화, 지속 가능한 발전을 표방했다. 지난해 시작된 14·5 규획은 경제산업의 자주화, 디지털 경제, 녹색경제, 쌍순환 전략에 방점을 찍었다. 이런 사이에 GDP 수치 위주의 경제성장률은 해마다 낮춰왔다. 경제가 추락하리라는 ‘경착륙’ 예측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구조조정과 개혁, 성장방식의 전환으로 지금 중국은 충격 없는 ‘롱 랜딩(long landing)’에 가까운 모습이다. ■ 「 자본주의면서 사회주의인 경제 성장률 하락 ‘경착륙’ 예측에도 성장방식 전환 통해 빠른 복원 이젠 중산층 확대로 혁신 꾀해 」 앞으로는 첨단기술 기반의 미래 신산업을 핵심으로 한 신(新)경제 요소로 유효수요를 자극하고, 전체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도록 한다는 목표를 추진 중이다. 중국이 경제발전 후에는 정치적 민주화로 갈 것이라는 서방의 예측은 하나의 가설로 끝나고 말았다. 중국은 더욱 자본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더욱 사회주의적인 색채도 띠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국가 구조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한 것은 중국 경쟁력의 실체다. 중국은 세계적 규모의 위기 국면에서 늘 빠르고 강한 복원력을 보였다. 아시아 외환위기 때 그랬고,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때 그랬다. 최근엔 코로나 19의 충격에서도 가장 빠르게 회복했다. 중국은 세계화의 최대 수혜국이면서 역설적으로 세계가 어려울 때 나 홀로 성장하는 모습이었다. 그 이면에는 중국 경제의 특성이 자리 잡고 있다. 무한한 공급능력, 글로벌 시장수요에 대한 긴급 대체 가능성, 그리고 반(半)개방성 등이다. 무한한 공급능력은 전 세계가 중저급 상품에 관한 한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중국산 없이 살아보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인류는 중국이 생산한 제품을 사용하며 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이 내다 팔면 값이 떨어지고, 중국이 사면 값이 오른다. 중국이 사지 않으면 팔 데가 마땅치 않고 중국이 팔지 않으면 공급망 대란이 일어나는 상황이 됐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일반 법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반 개방성은 많은 외국 기업들의 원성을 샀지만, 중국 스스로는 외풍에 강한 경제 체질을 다지는데 유효했다. 중국경제와 한·중 경제교류의 양적인 성과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잘 보이지 않는 중요한 흐름이다. 이렇게 중국은 우리가 ‘알 듯 말 듯 한’ 나라가 되어갔다. 이런 모든 변화상은 서방의 경제이론만으로는 더는 설명하기 어렵게 됐다. 중국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만남은 무엇을 남겼는가? 정부의 시장개입이 과도하거나 변덕스러울 경우 발생하는 역효과를 말하는 ‘샤워실의 바보’ 현상은 중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던가? 중국의 제도적 모호성 때문에 기업의 경영환경이 악화한다는 시각이 있지만, 그 모호성이 과거 오랜 기간에 걸쳐 경영 현장에서는 시장 규모를 키우고 혁신 창업 기업의 성장 동력이 된 측면도 있다. 제도적 차원의 혁신 움직임을 보자. 중국은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해 과거엔 개인과 기업에 보조금을 나눠줬으나 지금은 중산층 확대로 가고 있다. 그 방법론이 이른바 ‘공동부유’다. 모든 사람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사교육과 부동산, 인터넷 기업에 대해 잇따라 고강도 규제정책을 내놓은 건 국민생활과 인구문제에 부담을 주는 요인을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차원으로 읽힌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은 뿌리기술전문 다국적기업 육성이다. 레노보와 알리바바 같은 기업들이 후보군이다. 과거 세계화의 추종자이자 학습자 역할에 그쳤던 자국 기업들을 발언권과 가격결정권을 가진 규칙 제정자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중국 명문대학들이 창업 요람으로 탈바꿈하는 추세는 칭화대학에서 시작해 이제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 문과 중점인 베이징대학은 스타트업 대학기업을 만들어 연간 매출액 14조 원의 수익을 올린다. 경제·경영학이 강한 상하이 푸단대학은 다국적기업과의 관계를 다지고 있다. 서방의 주류 경제학을 학습하면서 개혁개방 시대를 맞았던 중국 학계가 꾸준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중국 증권사 연구소들은 서방의 거시경제와 미시경제의 중간 지점 즉 국가와 개인의 연결 부분인 기업 영역을 대상으로 ‘중시(中視, meso)’라는 경제 개념을 활용하고 있다. 학계는 사회주의 이념의 특수성으로서 정치경제학적 연구에 집중해왔는데 ‘동방경제학’이란 새로운 연구 영역도 자리 잡아가고 있다. 공자와 맹자의 경제사상에서 출발해 마르크스 이론과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의 개혁과 시진핑 시대를 연결하는 이론화 작업이다. 최근엔 중국이 균형발전을 위한 도시군 육성 전략에 나서면서 ‘공간정치경제학(spatial political economics)’이라는 세부 분야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 정치경제학과 기업관리학을 공부한 필자의 눈에는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쓰려는 채비로 해석된다. ■ 앞으로 30년 협력 틀은 ‘다름과 어울림’의 구조돼야 「 교류와 협력은 상대가 있는 만큼 어느 한쪽의 희망 사항만을 반영하면 오래가지 못한다. 세계적인 조류와도 보조를 맞춰야 한다. 수교 당시와 비교할 때 지금의 중국은 체급이 달라졌다. 더 큰 변화는 경제 성장모델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바꿔왔다는 점이다.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중은 이제 교류 협력의 틀을 새롭게 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30년의 특징은 일본을 선두로 하고 한국과 아시아 신흥강국-중국-동남아 순으로 발전하는 동아시아 ‘기러기 대형’ 이었다. 중국은 한국의 기술과 투자·상품이 필요했다. 이제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됐고 새로운 해외 협력수요가 절실한 시점이 됐다. 한국은 세계 경제의 재편과 공급망 위기, 중국의 급부상, 미·중 장기적 갈등에 놓여있다. 다가올 30년 협력의 기본 틀로 ‘다름과 어울림’의 구조가 필요하다. ‘다름과 어울림’은 세계 경제의 추세적 변화인 다자간 관계 강화에 기반을 둔 양자 교류 확대다. 한국과 중국은 이제까지의 교류 경험을 통해 서로 무엇이 다른지 알게 됐다. 각기 내수시장 규모가 작거나 구조가 취약해 해외 협력의 범위를 최대한 넓혀야 하는 공동의 과제도 안고 있다. 중국의 경우엔 자유무역협정 체결 때 양자 협정보다는 다자 협정에 더 관심을 두기도 한다. 앞으로 양국은 다자 구조의 틀 속에서 서로의 관계를 강화하는 게 마찰을 줄이고 시장 기회를 확대하는 길이다. 안전판도 든든하게 정비해야 한다. 대중에게는 생소하기까지 한 화공 약품이 전체 산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한국도 중국도 겪은 바 있다. “목에 걸리는 것은 소뼈가 아니고 생선 가시”라고 한다.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중국은 2010년부터 11년 연속 제조업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원재료를 수입에 의존한다. 지난해 전 세계 철광석의 59%, 석탄의 54%를 중국이 소모했다. 대두와 석유는 각각 33%와 16%다. GDP 규모는 세계의 17.4%인데, 탄소 배출량은 30%를 넘어선다. 이 모든 요소는 언제라도 중국 경제에 부메랑이 될 수 있고, 한국에는 공급망 충격으로 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양국 간 대화 채널을 확대하고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한·중 경제교류 협력은 더는 성장 속도와 규모를 척도로 삼지 말아야 한다. 」 박한진 KOTRA 아카데미 원장
-
[차이나인사이트] 대만이 무너지면 역내 다른 국가는 안전한가
━ 출렁이는 미-중-대만 삼각관계 지난달 초 미 의회 대표단이 대만의 차이잉 원 총통을 예방했다. 차이는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공격하면 미국이 대만을 방어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대만중앙통신 캡처] 대만해협의 격랑이 심상치 않다. 중국이 연일 무력시위 강도를 높이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대만방어 의지를 표명했다. 이에 맞춰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미군의 대만 주둔 사실을 흘렸다. 그러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불장난하지 말라고 반발했다. 이들이 대립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중-대만의 ‘삼각관계’에서 칼자루를 쥔 미국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변심을 제국주의 속성의 재발이라고 분노한다. 하지만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바로 너 때문’이라고 중국을 비난한다. 문제는 이들의 다툼이 대만해협을 벗어나 동아시아, 나아가 한반도 안보상황과 연계된다는 점이다. ■ 「 중국의 평화해결 믿지 않는 미국 대만에 무기 팔며 생존공간 지원 시진핑 “머리 깨지고 피 흘릴 것” 차이잉원 “대만 수호는 세계 임무” 」 미국은 왜, 어떻게 변하고 있나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대만문제의 부상은 당연하다. 미국은 중국과 수교 이후에도 대만을 ‘사실상의 주권국’으로 간주해왔다. 중국을 의식해 모호한 입장을 취했을 뿐이다. 바이든 정부가 가치·이념·기술 동맹의 다자차원으로 반중 전선을 확대하면서 미국은 대만을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로 지칭한다. 미국의 새 대만정책은 중국이 대만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이란 기대를 포기하고 대만과 관련한 내부규제를 완화하는 데서 출발한다. 미국은 이미 미·중 관계의 기초인 ‘3개 공보(公報)’에 명시된 대만의 기존체제 유지, 방위공약, 무기판매 등의 합의사항을 재검토하는 동시에 관계 증진을 위한 법적 조치를 마련했다. ‘타이베이법(TAIPEI Act)’을 통해 대만의 국제사회 진출을 지원하는 한편 무기판매 축소를 명시한 1982년의 ‘8.17 공보’와 각종 비밀 외교문서까지 공개하며 중국의 약속 불이행과 사실 왜곡을 비난한다. 미국이 대만정책을 수정한 이유가 중국 때문임을 강조한다. 특히 1972년 ‘상하이 공보’와 79년 ‘수교 공보’의 핵심 합의인 ‘양국 이익과 세계평화 증진’을 중국이 크게 훼손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과의 기존 합의보다 대만에의 ‘방어용 무기 제공’과 ‘제반 위협의 대처능력 유지’ 필요성을 명시한 ‘대만관계법’을 토대로 새 정책을 추진 중이다. 대만에 제공할 무기의 양과 질은 중국이 하기에 달렸다고 경고한다. 시진핑의 전략적 대응과 선택지 미국은 대만문제를 장기간 방치했다는 자성과 함께 대만과의 관계를 미·중 관계의 ‘일부분’이 아닌 독립적 관계로 전환 중이다. 또 국제사회가 민주주의 성공 사례인 대만을 새롭게 인식할 것을 호소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최근 대만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나 세계보건총회(WHA)에 참여하지 못한 현실을 개탄했다. 이는 대만의 국제적 ‘생존 공간’ 지원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의 친대만 행보에 시진핑은 괴롭다. 바이든은 허풍선이 트럼프보다 훨씬 힘든 상대다. 바이든의 미소에 숨겨진 단호함과 중국을 꿰뚫어 보는 내공이 큰 부담이다. 자연히 시진핑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우선은 대만문제가 협상이나 타협·양보의 대상이 아니라는 초강경 입장을 고수하며 그 결기를 보여주는 무력시위를 계속할 것이다. ‘힘’에 의한 압박으로 대만의 이탈방지에 주력하겠다는 이야기다. 중국을 괴롭히는 세력은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頭破血流)’이란 시진핑의 살벌한 경고는 미국과 대만을 함께 겨냥한 것이다. 차이잉원의 대응은 차이잉원 입장은 지난 10월 말 CNN과의 인터뷰에 잘 나타난다. 차이는 미·중 패권 경쟁을 계기로 대만의 외교적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대만의 민주체제 수호는 동아시아와 세계의 공동 임무라고 역설한다. 자유대만이 무너지면 역내 다른 국가는 과연 안전할 것인지 반문한다. 또 중국의 무력공격 가능성이 있다며 가치동맹국 미·일의 지원을 기대한다. 미군 주둔 사실을 의도적으로 확인한 건 이런 맥락에서다. 대만문제, 어디로 가나 대만문제는 미·중 관계와 긴밀하게 연동돼 있다. 미·중 관계의 향배가 대만문제의 변화 범위와 내용을 규정한다. 미국의 대중정책은 압박 일변도가 아니라 사안별 협력, 경쟁, 대결의 복합전략이다. 대만문제는 대결 영역이지만 미국의 전략은 대만독립이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대만카드의 활성화다. 미국이 대만의 독립성향을 과도하게 부추겨 필요 이상으로 중국을 자극할 이유가 없다. 대만도 이 점을 모르지 않는다. 현실적 능력에서도 미국의 대만정책엔 한계가 있다. 대만의 외교공간 확장은 미국 혼자서는 힘들며 국제사회의 호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처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결국 미국은 대만의 주권 회복과 국제사회 복귀를 위해 헌신할 의지와 능력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 이게 바이든이 시진핑에게 ‘상식적인 가드레일(commonsense guardrails)’ 설정과 대화를 제안한 이유다. 중국도 대만에 강온 양면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이 불가피한 무력사용은 신중을 기할 것이다. 미·중 군사력 격차가 줄었다지만 전쟁의 달인 미국과 맞서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다. 더욱이 미국은 혼자가 아니다. 만약 초기에 제압이라도 당할 경우 장기집권을 꿈꾸는 시진핑은 회복불능의 치명상을 입게 된다. 2022년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반중 정서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것도 우려스럽다. 그러나 중국의 자제력은 대만의 이탈 조짐과 미국의 방조 수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대만도 미국의 반중 전략에 계속 편승만 할 수는 없다. 양안관계의 특수한 현실 때문이다. 인적 교류가 단절된 코로나 상황에서도 양안 교역은 크게 늘었다. 중국은 대만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큰 손이다. 대만이 중국을 떠나 그만한 교역 및 투자 대상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 수십만의 대만인들이 중국인 배우자와 결혼하고 그 몇 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중국에서 활동하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홍콩의 좌절을 지켜보며 일국양제(一國兩制)의 허상을 확인했지만 그렇다고 대만의 미래를 미국에만 맡길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하다. 대만인의 독립의지와 그 실현 가능성은 별개이다. 이처럼 미·중 패권경쟁의 최전선인 대만해협은 전쟁과 평화의 요인이 병존한다. 한데 중국의 무력시위와 군사적 긴장에만 이목이 쏠리고 양안관계의 고유한 특성과 현실이 과소 평가된다. 양안 사이엔 타협불가의 정치안보 사안만 있는 게 아니다. 뼛속까지 독립주의자라고 비난받는 차이잉원도 시진핑과의 대화를 원한다. 결국 중국과 대만은 통일도 아니고(不統), 독립도 아닌(不獨) 평화공존(不武)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 중국 과도하게 의식, 한-대만 관계 위축돼선 안돼 「 “행운을 빈다!” 지난 5월 백악관 한미정상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만관련 질문을 받자 바이든이 한 말이다. 한국의 난처한 입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이든의 말은 지혜롭게 대응하란 주문이다. 대만문제에서 최적의 전략을 구하기란 그 누구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동안 양안 갈등에 관여할 의지와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동참을 요구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전략적 선택의 선행 과제는 무력충돌 가능성과 양안관계에 대한 객관적 진단이다. 첫째, 대만해협의 전쟁 가능성과 우리의 개입 능력을 절대 과장해선 안 된다. 한국전쟁 이후 대만해협과 한반도 안보상황은 민감하게 상호작용하는 관계다. 대만해협의 무력충돌이 우리에겐 남의 일이 아니다. 반드시 대만해협과 한반도 평화의 유불리를 전략적 선택의 최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대만해협과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는 한 몸이다. 미국이 대만을 두둔하면 중국은 북한을 감싼다. 둘째, 양안관계의 특성과 현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 양안관계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복잡미묘한 구조를 갖고 있다. 특정 시기 어느 하나의 현상에만 주목해 단정적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한편 대만문제의 대응과정에서 한-대만 관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1992년 이전의 관계 회복은 불가능하지만 ‘하나의 중국’을 전제로 한 관계발전에 소극적일 이유는 없다. 대만이 한국의 5~6위 교역대상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건 거대한 한중 관계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과도하게 의식해 우리 스스로 위축될 필요는 없다. 최근 많은 국가가 대만과의 관계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중요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미국의 대중 압박에 동참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국익 관점에서 소홀했던 부분을 다시 살펴볼 뿐이다. 우리도 대만관계에 불필요한 제약이 있다면 이를 개선해야 한다. 물론 이는 불합리한 관행의 시정, 보편적 권한의 회복이라는 실무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 문흥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
[차이나인사이트] 미·중 남중국해 공방이 한반도 해역 풍랑 높인다
━ 미·중 남중국해 충돌 위기 남중국해에서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뒤쪽)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카가함이 연합훈련을 하는 모습. [사진 미 해군] “남중국해의 풍랑은 계속 높게 일겠습니다.” 일기예보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대결적 태세를 취하며 상대 입장을 불신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한 남중국해에서 양국 충돌의 가능성은 급격하게 높아질 것이란 뜻이다. 미국의 지속적인 항행의 자유작전(FONOP)과 지난 9월부터 시행 중인 중국의 해상교통안전법은 모두 상대를 겨냥한 조치다. 특히 안전법의 경우 군사용뿐 아니라 비(非)군사용 선박도 ‘위험성’이 있으면 중국에 통보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물론 미국은 중국에 통보할 리 없다. 또 중국 인공섬의 ‘영해’를 인정하지 않기에 이는 또 다른 대립의 장(場)이 되고 있다. 남중국해의 가장 큰 이슈는 중국의 주권 주장 및 군사화와 이에 대한 미국의 거부전략 간 충돌이다. 중국은 9단선 주장 외에도 “국가의 주권과 안보 및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겠다고 공언한다. 이를 위해 중국은 2014년 이후 이제까지 실효 지배 중인 7개 산호초를 매립해 군 장비 및 시설을 설치 중이다. 예를 들면 7개 인공섬 전부에 레이더 및 접안 시설을 설치했다. 또 그중 세 곳엔 활주로도 건설했다. 다만 현재까진 수송기 이착륙만이 가능하고 전투기 운용은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다. ■ 「 미, 쿼드·오커스 결성해 중국 견제 중국은 러시아와 협력으로 대응 미·중 충돌 전선이 남중국해 넘어 대만해협과 한반도 해역도 위협 」 지난 3월 필리핀의 전관경제수역(EEZ) 안에 위치한 휫선(Whitsun) 암초 인근 해역에 중국 해상민병대를 포함한 어선 220여 척이 정박한 사건이 있었다. 중국은 모두 어선이고 풍랑 때문에 대피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필리핀은 풍랑은 지나갔고 어로 활동이 없는 무장 선박이며 인근 암초에 불법 구조물을 설치했다고 반박했다.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은 이 사건은 중국군의 ‘회색지대(전쟁 직전의 낮은 긴장 행위)’ 전략으로 보인다. 중국군의 처음엔 가볍게 그러나 뒤엔 묵직하게 나가는 전경후중(前輕後重) 전통을 볼 때 ‘해상민병대→해양경찰→해군’ 순이 예상되는 것이다.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 안에 떼지어 정박 중인 중국 선박들. [EPA=연합뉴스] 남중국해 ‘군사화’에 대한 미국의 비판에 대해 중국은 ‘평화적 이용’과 재난 발생 시 ‘긴급 구호소’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중국이 평화적 이용을 강조하기 위해 해방군보를 포함한 관영언론에 소규모 도서관을 설치, 운용하는 사진을 게재했다는 점이다. 도서관은 시사(파라셀)군도의 융싱(우디)도에 설치됐는데 이 섬엔 레이더·미사일 기지와 3000m 이상의 활주로도 깔려있다. 중국 남단에 위치한 하이난섬에서 융싱도까지 거리는 직선으로 334㎞로 전투기 운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하이난섬에서 난사(스프래틀리)군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쩡무안사(제임스 암초)까지는 무려 1800㎞로 전투기의 작전범위를 벗어난다. 미국은 이들 인공섬이 모두 고정 타깃이라 필요 시 폭격을 통해 초토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중이 정례적으로 문제로 삼는 이슈는 양측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다. 미국은 항행의 자유 작전을 명목으로 남중국해에 구축함을 파견하면서 국제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비행과 항행, 그리고 작전”을 한다는 원칙을 고수 중이며 중국의 인공섬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중국은 꾸준히 미국의 행동에 맞불을 놓고 있는데 미 군함의 무단 진입을 추적·퇴출시켰다는 주장을 반복한다. 이에 미국은 다시 중국의 주장이 ‘틀렸다(false)’며 미 군함은 어느 국가의 영토에서도 퇴출당하지 않았다고 팽팽한 기(氣)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눈여겨볼 건 양측의 공방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세 차례에 불과했던 미국의 항행의 자유 작전이 2020년엔 아홉 차례, 그리고 올해 1~9월 사이 벌써 여덟 차례나 전개됐다. 우리 입장에선 나날이 심각해지는 남중국해 상황을 다른 해역, 즉 대만해협과 동중국해(센카쿠 또는 댜오위다오), 그리고 한반도 해역 등의 상황과 연계해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대만해협은 남중국해로 향하는 통로일 뿐 아니라 중국이 정례적으로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해·공군 전력을 진입시키며 긴장을 높이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해 중국 공군의 대만 ADIZ 진입은 380여 회였는데 올해는 10월 한 달간 196회 등 열 달 동안 벌써 700회에 이르고 있다. 중국은 또 동중국해의 ‘분쟁화’를 시도 중이다. 특히 센카쿠 열도가 중국의 영해 내에 있다고 주장하며 일본의 실효 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2020년 8월 미국과 일본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현상 변경 시도를 규탄하면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양자 간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한반도 해역은 서해와 동해로 나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해의 경우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외에도 이어도에 대한 중국의 주장이 계속되고 있으며 한중 간 영해 경계도 획정돼 있지 않은 상태다. 동경 124도에 대한 중국 해군의 활동을 고려할 때 이슈별로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는 중국과의 ‘해군회의’ 개최를 통해 일괄 타결하는 게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군사기지 분포. 미국은 필요 시 폭격을 통해 이들 인공섬을 초토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포토] 한편 동해에선 중국 잠수함의 활동이 용이할 뿐 아니라 중국·러시아의 합동 작전 역시 심심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올해도 중·러 ‘해상연합-2021’ 훈련이 지난달 14∼17일 연해주 남쪽 해역에서 실시됐다. 이처럼 각 해역 간의 연계성과 해역 내 갈등과 관련된 당사국들의 입장, 그리고 중국의 공세적인 해양 정책 등을 고려할 때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공방이 거칠어질수록 대만해협과 동중국해, 한반도 해역에서의 군사적 갈등 역시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쿼드(Quad), 오커스(AUKUS) 등 협의체를 활용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국가 간 협력을 구체화할 경우 중국은 이를 자국 핵심이익에 대한 도발로 인식하고 더욱더 강경한 군사적 대응을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자 할 것이다. 중국의 전문가들은 “쿼드와 오커스는 중국과 러시아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중·러 양국의 합동 훈련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일어난 풍랑이 대만해협과 동중국해를 넘어 혹여 한반도 해역에까지 밀려들 가능성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다. ■ 세계 주요국은 왜 중국을 싫어하나? 「 스티븐 월트 미 하버드대 교수는 힘·능력(power· capability)뿐 아니라 위협(threats)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덩치가 커도 위협적이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중국은 덩치도 크고 대외적으로 위협적이다. 중국 당사(黨史)를 오래 연구한 안치영 인천대 교수는 중국이 부상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일련의 행동이 외부의 우려를 낳았다고 본다. 대표적인 예가 늑대외교(戰狼外交)다. 또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일대일로’‘인류운명공동체’ 등 많은 언행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과 같은 ‘오랑캐’들의 합창을 가장 두려워했다. 간헐적으로 발간되는 중국 『국방백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테마가 ‘외환(外患)’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이라는 강적이 있고 대내적으로는 절대적으로 사회 안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실은 어떤가? 미국과 호주 그리고 캐나다의 대중국 인식은 지난 5년간 급속히 악화했고 유럽의 주요국도 유사한 추세를 보인다. 영국·프랑스·독일·스웨덴 등이 이 범주에 속하는데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응답자가 80% 이상이다. 가장 부정적인 인식은 일본으로, 응답자 10명 중 9명 이상(91%)이 중국을 ‘싫어한다’(dislike)고 대답했다. 한국의 경우도 대중 인식이 악화 중인데 4명 중 3명(75%)이 중국을 싫어한다고 조사됐다. 최근 한국 내 학계와 재계의 ‘중국열’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빙하기’를 맞은 모양새다. 내년 8월 24일이면 한·중 수교 30주년이라 정부 간 공식 차원의 준비가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 국민의 냉담한 대중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새로운 30년’의 시작이라는 자세로 하나씩 풀어가야 할 것이다. 」 김태호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외과 교수
-
[차이나인사이트] “김치·한복도 중국 것” 문화로 한국 공격하는 중국
━ 한·중 문화충돌 최근 중국에선 연예인 대신 ‘중국’을 사랑하는 팬클럽 ‘아이중(izhong)’이 뜨고 있다. ‘중국’이 중국 인민의 유일한 아이돌로 각광받는다. [둬웨이 캡처] 중국에서 전통문화 붐이 한창이다. 정부 차원에서 전통문화 계승 및 활용방안을 분주하게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말엔 김치·한복 등 누가 봐도 자명한 한국문화를 중국문화라고 주장해 한국인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그리고 세계 각국에 공자학원을 세워 중국문화를 전파 중이다. 중국은 지금 ‘문화’로 자국민을 통제하고, ‘문화’로 다른 나라를 공격 및 교화하려 한다. 중국에선 어떻게 문화가 무기가 되는 걸까. 중국에서 문화가 사회통제 수단으로 사용된 건 고대로 올라간다. 문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며 따르는 가치와 관습, 신념, 상징적 실천을 말한다. 한데 고대 중국에서 문화는 정신적 영역을 강조하며 야만과 차별되는 문명, 진보, 고급의 의미를 가졌다. 고대 중국은 독특한 문화관념을 갖고 있었다. 중국은 혈통이 아니라 문화로 화하(華夏)와 이적(夷狄)을 구분했다. 공자는 “주례(周禮)를 따르면 화하이고, 따르지 않으면 이적”이라 했다. 주례는 주나라의 예악문화를 말한다. ■ 「 중국서 문화는 문명·고급 등 상징 이념전파·정치투쟁 도구로 이용 문화우월주의·패권주의 안 변해 “한국은 문화도둑·문화속국” 폄하 」 “다른 국가는 야만” 뿌리 깊은 편견 아이중이 만든 이모티콘. 아래엔 “누구도 중국을 무시할 수 없다”고 써 있다. [웨이보 캡처] 고대 중국인은 중국만이 예악문화를 가진 선진문명이고 다른 국가는 야만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중국 통치자들은 “이적을 예악문화로 교화해(文治敎化)” 정치적으로 통합된 공동체인 천하질서를 세우고자 했다. 천하질서는 수직적 등급제를 바탕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이적이 동심원을 그리며 둘러싸고 있다는 상상의 정치질서 인식으로, 기미(羈縻)와 조공(朝貢)제도로 구체화했다. 예악문화로 교화한다는 건 곧 중국문화로 동화시켜 천하질서를 실현하는 걸 말한다. 고대 중국은 중국 중심의 우월적 문화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관념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시진핑(習近平) 정부는 문화자신(文化自信)과 문화강국(文化强國)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시 주석은 “중국특색사회주의문화에 대한 문화자신을 확고히 하고, 중국특색사회주의문화 발전의 길을 견지해 문화강국을 건설할 때만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을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화자신은 ‘중국특색사회주의문화’에 대한 자신을 일컫는다. 중국 정부는 문화허무주의가 만연했다며 문화자신 정책을 실시한다. 문화허무주의는 ‘중국특색사회주의문화’를 부정하고 서구 자본주의 문화를 추구하는 걸 말한다. 중국 정부는 문화허무주의자들의 목적은 당의 지도력을 약화시켜 자본주의 길을 가기 위한 여론 조성이라고 한다. 문화강국은 ‘중국특색사회주의문화’를 세계에 전파해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으로 인류운명 공동체 건설의 구체적 실천 방안이다. 인류운명 공동체는 중국 공산당이 건립하려는 최고의 국제질서 강령이다. 고대 천하질서 관념의 주요 요소인 화이부동(和而不同), 협화만방(協和萬邦), 천하일가(天下一家), 천하대동(天下大同)을 계승한 고대 천하질서의 현대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은 문화강국 건설을 위해 전파공정(傳播工程)도 실시 중인데 대표적인 사업이 공자학원이다. 문화자신이 국내 반정부 세력을 겨냥한 것이라면 문화강국은 국제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중국 내 혐한 사건 분야별 분포 현대 중국에서 문화는 여전히 문명, 진보, 고급이란 뜻이 있다. “문화가 없다(没有文化)”는 말은 “학력이 낮다” “무식하다” “교양이 없다”는 의미다. 이처럼 문화가 갖는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중국에서 문화는 정치투쟁 도구가 됐다. 중국에서 문화 논쟁은 단순히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아니다. 5·4 시대 이후 혁명투쟁의 첨예화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중국화에 따라 문화비판은 종종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바뀌었다. 문화대혁명이나 1980년대의 전반서화론 모두 문화를 키워드로 한 정치투쟁이었다. 현재도 중국에서 문화운동은 이데올로기 투쟁이며 정치투쟁이다. 시 주석은 “문화는 한 국가, 한 민족의 영혼”으로 “자신의 문화를 배반하거나 포기한 민족은 역사적 비극을 맞이했다”고 한다. 이로써 문화는 중국 또는 중화민족과 일체화됐고 국가 흥망과 관련된 문제로 반드시 충성하고 지켜야 할 애국의 대상이 됐다. 중국 공산당은 문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응집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인민의 지혜를 모아 사회주의 현대화를 추동할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중국 공산당은 문화로 교화하면 대중을 쉽게 동원할 수 있음을 잘 안다. ‘중국특색사회주의문화’는 5000여 년의 문명발전 중 잉태된 ‘중화 우수 전통문화’와 당이 인민을 이끌고 혁명, 건설, 개혁 중 창조한 혁명문화와 사회주의 선진문화를 말한다. 즉 전통문화와 사회주의문화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걸 일컫는다. 현재 중국의 많은 연구자는 마르크스주의가 외국에서 들어온 게 아니라 중국 전통문화, 특히 유교에서 기원했음을 연구하고 있다. 지금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건 유교와 사회주의의 결합이다. 필자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혐한(嫌韓) 사건 60개를 문화, 한류, 역사, 정치, 경제, 기타로 나눠 분석한 바 있다. 2004년 시작된 혐한은 2008년 정점을 찍고 퇴조했다가 2016년 이후 다시 고조됐다. 따라서 2004년에서 2015년은 혐한 1단계, 2016년 이후를 혐한 2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표1〉을 보면 전체 혐한 사건 중 문화가 50%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역사문제는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문제이지만 중국에서 혐한으로 비화한 예는 많지 않다. 〈표2〉와 〈표3〉을 보면 혐한 1단계에선 다양한 분야가 혐한의 대상이지만 2단계에선 문화와 한류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한류도 문화의 일부란 측면에서 볼 때 혐한의 주요 대상이 문화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전파공정은 세계가 대상이다. 한데 특히 한국에 대해 문화공격이 많은 이유는 무언가. 첫째, 전통의 문화관념이 현재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2004년 한국이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신청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중국인들은 분노했다. “한국이 중국의 문화발명권을 인정하지 않고 몰래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한다”며 한국을 ‘문화도둑’으로 인식하게 됐다. 한국 ‘사드’ 배치 이후 더욱 노골적 한국을 문화도둑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전통문화관에 근거한다. 고대 한국은 스스로 문화를 발명할 능력이 없기에 한국문화는 중국에서 전파된 것이라고 한다. 둘째, 중국 정부의 전통문화 부흥정책 영향이다. 문화자신과 문화강국의 핵심 자원은 전통문화로, 중국에서 전통문화 붐이 일어났다. 자문화 우월주의와 문화패권주의는 타문화를 정복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했다. 특히 역사적으로 문화교류가 많았던 한국은 주요 타깃이 됐다. 2016년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 이후엔 더욱 노골화해 한국을 중국의 ‘문화속국’이라 주장하고 있다. 셋째, 한류팬의 애국주의 대열 투항을 들 수 있다. 중국 애국주의 네티즌인 소분홍(小粉紅)의 핵심은 ‘청년 인터넷 문명지원자’와 한류팬이다. ‘청년 인터넷 문명지원자’는 2016년 이후 중국 정부에서 대학생 이상 학력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모집한 인터넷 댓글 부대다. 한류팬은 일찍이 매국노라는 비난을 들어왔는데, 사드 사건 이후 입지가 좁아지자 애국주의 대열에 투항했다. 한류팬의 풍부한 자료 제공과 고학력의 ‘청년 인터넷 문명지원자’가 결합하면서 한국에 대한 공격이 증가한 것이다. ■ 연예인 비판하는 중국, 진정한 아이돌은 국가 「 최근 중국에서 연예인 팬덤 문화가 비판받고 있다. 홍색 정풍운동 대상이 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앞두고 내부 단속에 들어간 게 한 원인으로 꼽힌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뜰 수 없듯이 천하에 영웅은 둘일 수 없다. 중국에서 영웅은 오직 공산당, 특히 지금은 시진핑 주석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 젊은이의 영웅은 연예인이다. 2019년 9월 인민일보는 ‘#우리는 모두 아중(阿中)이라는 이름의 아이돌이있다#(#我們都有一個愛豆名字叫阿中#)’라는 해시태그를 올렸다. 이후 중국을 지극히 사랑하는 팬클럽인 ‘아이중(izhong)’이 활동을 시작했다. 아이중은 “나는 중국을 사랑한다”는 뜻도 된다. 여성회원들은 중국을 ‘아중 오빠’라 부른다. 이들은 “국가보다 중요한 아이돌은 없고, 조국이야말로 진정한 아이돌”이라고 한다. 이제 ‘오빠’에 환호하던 이들이 ‘중국’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중국’ 혹은 ‘시진핑 주석’은 중국 인민의 유일한 아이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차이나인사이트] 미국 “중국 공산당의 불통·비협조 교정하겠다”
━ 바이든·시진핑 충돌 지난 3월 미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 왼쪽부터 왕이 중국 외교부장, 양제츠 중국 정치국 위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 [중앙포토] 미국은 지난달 말 아프간에서의 철군 완료로 20년 전쟁의 마침표를 찍었다. 일각에선 미군이 쫓기듯이 빠져나갔다며 비웃는다. 그러나 중국은 웃을 수 없다. 미국이 ‘아프간 망신’을 감내한 배경엔 앞으로 ‘중국 때리기’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만남도 아직은 요원하다. 오는 10월 말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미·중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시진핑이 화상 참여에 그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며 불투명한 상태다. 두 정상의 회동 시점이 미뤄지는 가운데 미·중은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이는 우리에게 호흡을 길게 갖고 미·중 격돌의 시대에 대처해야 한다는 걸 시사한다. 바이든 정부의 대중 정책 신호탄은 지난 1월 27일에 있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중국의 인권탄압을 ‘대학살(genocide)’이라고 정의하면서다. 이어 지난 7월 미 국무부 등 6개 부처는 신장의 강제노동 및 인권유린과 관련된 기업에 대해 투자와 교역 금지령을 내렸다. 바이든 정부의 대중 강경정책 중심엔 인권문제가 자리한다. 홍콩과 신장·티베트 등에서의 중국의 인권탄압 문제는 민주당인 바이든 정부의 심기를 크게 건드린다. 바이든은 이를 기존의 양국 갈등 현안과 연계시켜 제재의 명분으로 활용한다는 계산이다. ■ 「 충돌의 장기화 대비 나선 미·중 시진핑 집권기간 내내 갈등할 듯 미·중 격돌의 풍랑 헤쳐 나가려면 한국도 국익 중심 내부 단합 이뤄야 」 눈여겨볼 건 바이든 정부와 전임인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대중 강경정책엔 하나의 공통된 목표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중국 공산당의 행위를 교정하겠다는 것이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미국은 초지일관 ‘포용(engagement)’ 정책을 견지했다. 교역과 교류가 중국의 민주화를 이끌 것이란 확신에서였다. 미국이 83년 이래 대중 무역에서의 만성적인 적자를 감내해온 이유다. 그러나 2013년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꿈에서 깨어났다. 중국이 이제까지 미국의 개방된 사회와 시장을 역으로 이용만 했다는 의심을 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미국의 지식재산권과 첨단과학기술을 훔쳐갔다는 비난과 함께다. 트럼프는 이를 2017년 미·중 무역전쟁의 도화선으로 이용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행동 교정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의 압박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2012년에 나온 ‘신형대국관계’ 구축 전략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대국이 서로 충돌과 대항을 하지 않고 협력하는 걸 전제로 한다. 전체적으로 안정 국면을 유지하는 가운데 상호 존중하면서 윈-윈 할 수 있는 협력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주장한다. 미 국가안보전략 보고서(NSS)로 본 미국의 대중인식과 중국의 대응 시진핑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관제(管制, 관리 및 통제)’를 들었다. 2011년 6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다. 시진핑에 따르면 미·중 양국은 갈등 현안에 대한 입장 차이가 너무 커 이를 단숨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니 대신 관리 및 통제의 방법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관제’는 아무리 민감하고 입장 차이가 큰 문제라고 하더라도 대화와 협력을 통해 서로 윈-윈 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자는 의미다. 시진핑은 이에 대한 당위성을 미·중 양국이 처한 상황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는 현실에서 찾았다. 우선 미·중 양국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너무 낮아 전략적 대립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또 서로를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전략적 오판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게다가 영토분쟁과 해양질서 문제로 미국이 동맹 강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에 갈등의 확대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중국적 방안에 대해 시진핑은 상당한 자신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2017년 19차 당 대회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세계의 권력 구도에 균형이 이뤄졌다’고 기술한 것이나 시진핑 스스로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말한 것 등이 그런 예다. 한편 미국의 대중 강경책은 2017년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에 바탕을 둔다. 여기서 미국의 번영과 안보, 자유 국제질서에 대한 위협세력으로 중국이 암시됐다. 그리고 지난 3월의 ‘국가안보전략 중간 지침’과 국가정보국장실의 4월 ‘연례 위협평가’ 보고서에선 중국이 명기됐다. 이들 보고서의 공통된 결론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장기화할 것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출간된 밥 우드워드의 『격노(Rage)』는 대중 강경정책의 목표가 설정된 경위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에 대한 중국의 초기 대응 태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중국의 불통과 무성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절실하게 경험한 미국은 중국 공산당의 행동을 교정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바이든 정부는 대중 제재의 명분으로 중국 공산당의 인권탄압을 선택했다. 물론 이에 대해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고 있다. 중국 정부와 학계가 역할을 나눠 미국에 반격을 취하는 모양새다. 중국 정부는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王毅) 외교부장, 외교부 부부장인 러위청(樂玉成)과 셰펑(謝鋒) 등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미·중 갈등의 원인이 미국이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잘못 설정한 데서 비롯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미·중 전략적 경쟁 관계를 협력·경쟁·갈등 등 세 분야로 나눠 접근하는 방식부터 비판한다. 갈등과 경쟁의 해결은 협력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건강한 협력관계의 발전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 인권은 내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협력의 대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상호 존중의 원칙에 따라 각자도생의 결정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가치와 주장의 보편성은 부인한다. 반면 왕지스(王緝思)와 옌쉐퉁(閻學通) 등 중국 학계의 대미 공격 포인트는 정부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 이들은 중국과의 국력 격차가 좁혀지며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걸 미국이 두려워하고(fear) 질투하기에(envy)미·중 갈등이 벌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경제 이익의 논리에 따라 협력의 당위성을 부각한다. 특히 옌쉐퉁 칭화대 교수는 지난 여름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더 강해지는’이란 기고문에서 첨단기술 부문에서 미·중 간의 수준 격차가 현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폈다. 또 왕지스 베이징대 교수는 같은 학술지에 기고한 ‘중국에 대한 음모?’란 글에서 미·중 양국에 어떻게 뿌리 깊은 인식의 차이가 생겼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중국 내정 관련 발언이 불순한 의도와 목적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중국 공산당이 1950~60년대 폴란드·헝가리·체코 사태의 배후 세력으로 미국을 단정한 사례를 역사적인 예로 들었다. 이런 미국의 불순한 행위를 그는 ‘보이지 않는 손(a hidden hand)’에 비유했다. 바이든 취임 이후 8개월이 지나고 있다. 아직도 미·중 충돌의 방향은 불명확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명확해졌다. 두 나라 모두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입장에선 이를 최소한 시진핑의 집권 기간으로 정의해도 무난하다. 아마도 이 기간 우리는 두 나라의 힘의 균형이 교차하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른다. 최소한 경제 분야에선 미·중 간 1, 2위 자리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 자연히 우리 외교도 분기점에 놓이게 된다. 우리가 양국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당하는 압박을 받느냐, 아니면 우리가 이들에게 우리 국익에 유리한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건 우리가 먼저 내부적으로 우리 국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정하고 이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뤄 단합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미·중 충돌이 일으키는 거센 풍랑을 헤쳐나갈 수 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
[차이나인사이트] 시진핑의 ‘국가주의’ 모델 세계에 통할 수 있나
━ 중국식 정치체제모델의 형성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시장경제를 수용하면서도 국가 주도의 성장을 추진하는 국가주의 체제의 성공을 통해 중국몽을 실현하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부상을 ‘중국식’ 문명형성 및 세계질서의 재구성과 연결해 사고한다. 이는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미국에 “서로 다른 제도와 문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함께 찾자”고 주장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은 세계 2차대전 이후 보편가치로 간주해온 자유, 인권, 민주, 시장경제 등과 같은 서구적 가치 및 제도의 중심축과는 다른 ‘중국식’ 제도와 가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문명형성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진핑(習近平) 정권은 이른바 ‘4개 자신’을 강조하고 공산당 영도를 핵심으로 한 ‘중국식’의 제도와 이론, 그리고 문화에 기초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길을 갈 것을 분명히 하면서 2035년까지의 중기 목표와 신중국 건설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의 장기 목표를 제시한다. 이는 중국의 정치개혁 방향에 대한 패러다임적 인식의 전환을 뜻한다. 신중국 건설 100주년 장기 목표 세워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선 당 주도의 경제발전이 일정 수준 이뤄지고 시민사회가 성장하면 민주화의 길로 갈 것이란 암묵적 합의가 존재했다. 그러나 2010년을 전후로 서구식 민주화의 길이 아닌 중국식 정치체제 형성의 길로 가야 한다는 시각이 힘을 얻는다. 따라서 현재 중국 학계의 논쟁도 현 정치체제의 ‘(민주적) 전환’이 아닌 현 체제를 어떻게 ‘보완’해 보다 완비된 중국식 정치체제를 형성할 것인가로 전환되고 있다. 서구와 견줄 중국식 문명의 기초가 될 중국식 통치제도와 정치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이 구상하는 중국식 정치체제모델의 특징은 무언가? 이에 대한 답은 시진핑 정부가 제시하는 중국식 통치(治理)제도와 정치체제모델에 대한 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진핑 시대 진입 후 중공은 중국식 발전경로와 제도건설을 강조하고, 공산당만이 이런 중국식 발전경로를 이끌어갈 핵심 세력임을 분명히 했다. 중공은 중국의 ‘일체(東西南北中, 勞農學兵)’를 영도하면서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이끌 주도적 권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진행한 일련의 통치방식 제도화는 ‘국가주의 체제’의 형성을 가져왔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 4개의 자신감 국가주의(statism)란 국가와 그 구성원 사이의 수직적, 유기체적, 권위주의적 관계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는 개념이다. 국가가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 집단, (시민)사회보다 우월하며 그 구성 요소를 초월하는 가치를 갖는다는 반개인주의적이고 국가지상론적 가치를 강조한다. 이런 국가주의는 20세기 초 중국 지식인들이 반(半)식민화와 국가분열이란 민족적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독일로부터 도입해 논의한 적이 있다. 아편전쟁 이래 서구와 일본 제국주의에 짓밟히면서 반식민지와 분열에 처한 상태에서 통일국가 건설과 민족부상에 대한 민족적 열정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하는 기초가 된 것이다. 시진핑 시대에 등장한 국가주의 체제도 ‘천추의 위업’인 중화 민족의 부상이란 중국몽 실현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시진핑의 통치목표인 중국몽 달성과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제도적 배치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다. 그 결과 자유와 민주, 인권 등의 보편가치는 주변화되고 국가의 통합과 안정(이른바 大一統)이 최고의 가치로 강조된다. 그리고 이를 해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막기 위해 사회 모든 영역에서 국가권력의 통제가 강화됐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시민사회에 대한 전방위 통제 시도 공산당 ‘중앙’과 당의 ‘핵심’인 시진핑 주석에게 권력이 고도로 집중된다. 또 중앙집권적 통치에 기초해 사회 모든 영역으로 당 조직망 건설의 확대를 통해 통제가 강화된다. 사이버 영역에 대한 통제 강화, 엘리트와 대중에 대한 사상교육 등 시민사회에 대한 전방위적 통제에 기초해 정치사회적 안정을 이끌어낸다. 동시에 빈곤퇴치 운동, 반부패 운동 등을 통해 ‘인민 중심의 발전 사상’을 강조한다. 시대별 중국식 정치체제모델 비교 즉 대중의 지지에 기반을 둔 ‘민본적 권위주의 통치(賢能統治)’를 실행해 통치의 정당성을 제고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중국의 부상을 보장하며 인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걸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런 국가주의 체제는 권력이 ‘당 중앙’과 최고 지도자에게 고도로 집중된 당국가체제의 사회에 대한 전면적 통제라는 점에서 전체주의와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를 수용해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을 추진하고, 강제적 통제만이 아니라 대중의 지지에 기초하고자 한다는 점, 그리고 전통사상과 사회주의 이념, 그리고 민족주의적 목표를 결합한 통치이념을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전체주의와는 구분된다. 또 민주화라는 장기적 방향성을 전제로, 시장경제체제에 공산당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결합해 안정 속 성장을 꾀하고자 한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의 신권위주의 체제와도 다르다. 국가주의 체제의 지속과 발전은 공산당의 공고한 통치 지위와 함께 시진핑의 안정적인 장기집권이 이뤄질 때 가능하다. 국가주의 체제의 등장이 시진핑의 통치 목표인 중국몽 달성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제도적 기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지도자가 시진핑의 통치 목표와 방식을 계승할 경우에도 이 체제가 지속할 수 있겠지만, 최고 지도자의 교체는 불가피하게 정치발전 노선에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 국가주의 체제의 지속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산당이 대미 패권전쟁의 핵심 세력 현시점에서 볼 때 시진핑 정권이 장기 집권으로 갈 가능성은 크다. 중단기적으로 국가주의 체제가 불안정한 형태를 띠겠지만, 결정적으로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 그 이유는 중공 내 이른바 “백 년 미증유의 (국가 간 세력 구도의) 대변화 국면” 속에서 중국의 부상을 이끌며 미·중 간 패권 경쟁을 승리로 이끌 핵심적 역량이 공산당이라는 데는 일종의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또 시민사회의 역량이 미약한 데 반해 시진핑의 당·정·군에 대한 지지기반은 공고하고 시진핑을 대체할 수 있는 엘리트 내부 세력도 가시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을 강국으로 부상시키고 인민의 삶의 질을 역사상 전례 없이 제고시켰다는 공산당의 업적에 대한 중국인들의 지지도 높아 경제적 상황이 급작스럽게 쇠퇴 국면으로 접어들지 않는 한 결정적인 위기 국면은 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중공은 서구와 다른 ‘중국적’ 특징을 지닌 매력적인 제도와 가치에 기초한 정치체제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 일련의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주의 체제가 정치사회적인 불안 요인을 통제하고 중국몽 실현을 위한 사회적 통합과 안정을 보장하는 정치체제모델로 자리함과 동시에 국제사회로부터 수용 가능한 ‘매력적’인 ‘중국식 정치체제모델’로 발전하는 건 결코 녹록한 문제가 아니다. 경제력과 군사력을 중심으로 한 국력 증강을 통해 중국몽 실현을 위한 대일통을 보장하는 통치형식이라는 국가주의 체제의 순기능적 역할 부각은 역설적으로 현재의 국가주의 체제와 결정적으로 다른 정치체제(이른바 중국적 특징을 지닌 민주주의 체제 등)로의 전환에 대한 압박을 상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국가주의 체제가 사회와 개인의 창의성과 다양성, 자발성의 성장을 제한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중공 100주년의 시점에서 시진핑 정권이 강조하는 중국식 정치체제모델은 중국몽 실현이라는 중화민족의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정 역사적 단계에서의 ‘과도적’ 정치체제 모델은 될 수 있으나, 글로벌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이끌 보편적이고 매력적인 정치체제 모델로 발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국가주의(Statism) 「 국가주의’란 국가가 개인, 집단, 사회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며 반개인주의적이고 국가지상론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사고를 지칭한다. 중국의 국가주의는 중국의 독립, 통일, 사회 진보라는 가치가 개인의 자유, 민주, 계몽주의적 가치를 압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 이정남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교수
-
[차이나인사이트] 중국 “AI 주도 미래전쟁선 미국과 해볼 만” 판단
━ 시진핑의 ‘강군몽’ 이상국 한국국방연구원·국제전략연구실장 미·중 경쟁은 현재 기술패권 다툼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궁극적인 승부는 군사력의 우열에서 가려질 공산이 크다. 다음 달 1일 건군 94주년을 맞는 중국 인민해방군은 강군몽(强軍夢)을 주창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독려 아래 미군 따라잡기에 안간힘이다. 특히 인공지능(AI)과 기계가 주도하게 될 2035년 이후의 미래 전쟁에선 내심 해볼 만하다는 판단도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글로벌 AI 강군’을 꾀하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움직임을 살펴본다. 1927년 남창봉기(南昌起義)를 계기로 창건한 중국 홍군(紅軍, 인민해방군 전신)은 오랜 기간 ‘좁쌀과 소총(小米加步槍)’으로 상징되는 열악한 전투 장비에 의존해 혁명투쟁을 전개했다. 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마오쩌둥(毛澤東) 통치 시기까지 중국군은 비록 핵무기 개발엔 성공했지만, 이데올로기 열정에 매몰되고 상시적인 전쟁 대비 등으로 인해 재래식 무기의 현대화를 추진할 수는 없었다. 79년 개혁개방 이후 30여년간 중국군은 경제가 견실해질 때까지 도광양회(韜光養晦, 어둠 속에서 조용히 힘을 기름)의 길을 걸어야 했다. 이 시기 중국군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등 일부 비대칭 무기를 제외하곤 눈에 띄는 발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와 함께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선명해지자 중국군의 현대화는 공개적인 형태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행보가 빠르다. 다양한 미사일 개발 및 항공모함 건조는 물론 현대적인 전투기·수상함 등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 눈여겨볼 건 중국군이 강군몽 구상 아래 광범위한 제도개혁을 이뤘다는 점이다. 세계를 시야에 둔 신(新)군사전략 마련, ‘정보화 전쟁 승리, 정보화 군대 건설’의 공식화, 실전에 초점을 맞춘 군 상부구조 개혁 및 중앙군사위원회 조직 개편, 상시적인 합동작전지휘센터 운용, 5대 전구(戰區) 설치, 육군사령부 독립과 우주사이버 전문의 전략지원부대 설치 등 한둘이 아니다. 중국 해군이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함 갑판 위에 대열을 맞춰 ‘중국몽(中國夢)’과 ‘강군몽(强軍夢)’을 표현하고 있다. [중국군망 캡처] 중국군은 이를 발판으로 현재 근해 및 서태평양을 넘어 원양에서 그 존재감을 강화해가고 있다. 그리고 2020년 중국군은 새로운 3단계 발전 전략을 설정하고 미래 인공지능시대의 전쟁 승리와 글로벌 강군 건설을 위해 ‘기계화·정보화·지능화 융합 발전’에 매진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지속적인 군사 현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군의 전체적인 실력은 미군에 미치지 못한다. 미 군비통제비확산센터에 따르면 중국은 국방비 지출 규모와 핵탄두, 재래식 전력, 항공모함, 해외기지 등 제반 영역에서 미국에 밀린다. 이는 육·해·공 전통의 전장 공간에서 글로벌 차원의 대규모 전쟁이 발생하면 미군이 우세하다는 걸 말한다. 중국 군사전문지가 소개한 중국 신형 항모 중심의 함대에 스텔스기가 가세한 상상도 [사진 웨이보] 그렇다면 미군이 중국 주변의 안보 이슈에서도 압도적인 우위에 있을까? 미군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지난 3월 미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데이비드 오크매넥 선임연구원은 대만해협 ‘워 게임(war game)’에서 미군이 패배한다는 분석 결과를 소개했다. 그는 전쟁 개시 불과 몇 분 만에 대만 공군이 전멸하고, 태평양 지역의 미 공군 기지들이 공격을 받으며, 미 전함과 전투기는 중국의 장거리 미사일에 의해 저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전혀 엉뚱한 소리는 아니다. 중국군은 역내 상황 발생 시 중국 본토, 근해(우리의 원해), 원해(우리의 원양)에 전개된 병력의 합동작전으로 대응한다. 그런데 해상과 대(對)잠수함 작전능력의 한계, 주변국 공군력의 향상 등으로 중국군은 본토 병력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군은 우주작전, 사이버 전자전 등으로 상대방의 지휘통제 시스템과 국가의 핵심 기능을 마비시킨 이후 주요 전략거점을 미사일로 정밀 타격함으로써 상대의 전쟁 수행 의지를 무력화시켜 전쟁의 승기를 잡으려 할 것이다. 이것이 미국도 두려워하는 중국의 전쟁체계 마비전이다. 지금의 해·공군 훈련은 미·중 전략경쟁에서 자국의 의지와 결심을 보여주기 위한 차원이다. 한편 중국군은 미사일 부대를 동원해 해상 및 공중으로부터의 강대국 개입을 차단할 것이다. 이 경우 미군의 전략전술 통신의 인공위성에 대한 절대적 의존은 아킬레스건이 된다. 미 CSIS의 우주위협평가 2021년 자료가 적시하는 중국군의 우주-사이버전 능력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때문에 중국군은 지역 안보 이슈에서는 일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15~30년 이후 미래 글로벌 군사경쟁은 또 어떻게 될까? 전투기와 항공모함 등 재래식 군사력, 해외 군사기지, 글로벌 군사정보통신 네트워크, 실전경험 요인 등을 따져보면 중국의 ‘세계 일류 군대 건설’ 구상은 무모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사람이 주도하는 육·해·공 위주의 작전이 특징인 전통적인 전쟁이 계속되는 한 중국의 강군몽은 실현되기 어렵다. 지난 5월 남중국해를 지나는 미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 [사진 미 해군] 그러나 지금과 크게 다를 2035년 이후의 미래 전쟁환경은 중국에 기회다. 우선 미래 전쟁은 인공지능과 기계가 주도해 나갈 것으로, 중국으로선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AI 특허 출원이 세계의 74.4%를 차지하고, 세계 드론 시장도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연속 8년 세계 최대의 산업용 로봇 생산 국가이기도 하다. 또 미래 전쟁은 기존의 육·해·공은 물론 심해와 우주를 포함하는 물리 공간의 통합, 현실 세계와 가상세계의 통합 환경에서 진행될 전망으로 중국군은 이에 대비해 이미 ‘평행군사체계’ 등 다양한 군사이론을 발전시키고 있고 기술력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중국은 2035년경까지 육·해·공, 우주 통합의 글로벌 정보통신네트워크를 구축할 전망으로 이 영역에서 미·중 격차는 곧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은 세계 5세대 통신의 30% 이상의 특허를 보유 중이다. 6세대 통신기술도 선두를 달리고 있어서 현실세계와 가상세계 및 물리역(생물역)·정보역·인지역·사회역을 통합한 실시간 작전환경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구축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은 최근 국방연구소와 교육기관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수만 명의 교수와 연구 인력을 새롭게 충원했다. 결국 중국은 미래 AI를 기반으로 한 전 영역통합전시대의 잠재적 전쟁능력 차원에서 미국과 선두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중국의 군사적 부상과 AI와 기계가 주도하는 전쟁 시대를 맞아 한국의 안보는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나. 그 해답은 AI와 기계, 군대보다는 오히려 인간과 민간, 정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로선 우선 한중 전략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필수적이다. 다음으로 미래 전쟁은 쉼 없는 기술개발 전쟁으로 인재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미래전은 AI를 중심으로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양자정보통신, 합성생물기술, 뇌공학, 사회시뮬레이션기술의 발전이 좌우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 기술의 발전은 주로 민간 시장이 주도하고 있고 발전 속도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군 일방의 판단과 신무기 도입 중심의 기존 방식으론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안보 위협에 대응할 수 없다. AI 시대 국가안보는 핵심 과학기술의 끝없는 발전과 신속한 전력화, 급변하는 상황에 대해 기민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시스템 구축 여부에 달려있다. 그리고 물리역과 정보역·인지역·사회역 통합 안보환경은 민간과 군, 전시와 평시의 경계를 약화시킨다. 결국 공학과 생물학, 사회과학의 융합형 인재 양성과 안정적인 공급이 절박하다. ■ 키워드 「 물리역(物理域) 군사적 교전 등이 발생하는 육·해·공, 우주 4개 차원의 지리적 공간역 정보역(情報域) 정보를 생산, 조직, 처리, 공유하는 정보 유통역 인지역(認知域) 개별 또는 집단의 정찰, 이해, 의사결정, 결심, 평가 중의 사유 인식역 사회역(社會域) 집단 내부 또는 집단 간 상호작용, 의사결정 등이 이뤄지는 사회 활동역 」 ■ 중국군 3단계 발전 구상과 대만해협 전쟁 가능성 「 중국의 3세대 지도자 장쩌민(江澤民) 시기 이래 중국군은 3단계 군사력 발전 노선을 견지해 왔다. 1단계는 2020년까지 기계화·정보화 건설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루고, 전략 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2단계는 2035년까지로 군사이론의 현대화, 군대조직 형태의 현대화, 군사인력의 현대화, 무기 장비의 현대화를 전면적으로 추진해 국방과 군대의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3단계는 21세기 중엽까지로 세계 일류 군대 건설이다. 이후 2020년에 이르러 중공당 중앙은 새로운 3단계 발전전략을 제시했다. 국방 현대화의 가속화를 통한 부국과 강군의 통일 실현 차원에서 2027년 건군 100주년의 목표를 새롭게 추가했다. 이에 따라 중국군은 2027년 건군 100주년 목표 실현, 2035년 군 현대화 기본 실현, 21세기 중엽 세계 일류 군대 건설이라는 단기·중기·장기 발전 목표를 새롭게 설정했다. 최근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의 빈번한 군사 활동으로 미·중 무력 충돌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을 전쟁에 끌어들여 중국의 지속적인 발전과 전략적 부상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 일각의 술수로 인식하고 경계하는 눈치다. 이들은 대만 통일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글로벌 강국 건설과 국제구도를 우선시하면서 대만 문제를 다루겠다는 입장이다. 미국도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건 아니란 입장을 계속 밝히고 있다. 따라서 대만 정부의 독립 선언 같은 행동이 없는 한 대만해협 전쟁은 없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군사활동은 강대국 전략 경쟁에서 기가 꺾이지 않기 위한 힘겨루기 성격이 짙다. 」 이상국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
-
[차이나인사이트] 한반도서 자국 이익유지 노린 김정은-시진핑 교집합
━ 북·중 우호조약 체결 60년 이상숙 국립외교원 연구교수 북한이 침략을 받을 때 중국의 자동개입을 명기한 ‘북·중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이하 북·중 우호조약)’이 11일로 60주년을 맞는다. 1961년 7월 11일 체결된 북·중 우호조약은 20년 단위로 연장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2001년 조약이 20년 연장돼 2021년까지 조약의 유효성이 확보됐고, 올해 체결 60주년을 기념해 그 연장 여부가 확인될 것이다. 굴곡 많은 60년 세월 동안 북·중 우호조약 또한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으나 북·중은 현재 이 조약을 폐기하거나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 이면에 자리한 김정은-시진핑(習近平) 북·중 두 지도자의 셈법은 과연 무엇일까. 북·중 관계를 안보동맹으로 보는 건 북·중 우호조약에 기인한다. 이 조약에 안보협력 내용이 포함돼 있고 지금까지도 이 조약이 존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중은 서로를 동맹국가로 표현하지 않고 ‘전통우호관계’라 칭한다. 북한에 중국군이 주둔하지 않고 있고 양국 합동 군사훈련 등과 같은 안보협력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북·중은 양국 관계가 한미동맹과 같은 안보동맹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특히 북·중 관계는 강대국과 약소국 간 비대칭 동맹에서 발견되는 강대국의 안보지원과 약소국의 자율성 교환이란 관계가 성립되지 않기에 일반적인 비대칭 안보동맹과도 차이가 있다. 북·중 우호조약의 체결 배경은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중국과 소련 간 중·소 분쟁이다. 중·소 양국으로부터 안보지원을 받던 북한은 중·소 분쟁으로 양국 모두로부터 안보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소련 및 중국과 각각 안보지원 조항이 포함된 안보동맹 조약을 체결했다. 북한이 중·소와 체결한 조약 내용을 보면 북·중 우호조약은 안보조항인 제2조에 ‘지체 없이’란 문구를 삽입해 북·소 우호조약보다 더 긴밀한 관계라는 점을 부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지난 2019년 6월 21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 방문을 마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송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조약 제2조는 “체약 일방이 어떤 한 국가 또는 몇 개 국가의 연합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해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해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으로 북·중 우호조약은 안보동맹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또 조약 제7조는 조약의 수정 또는 폐기에 대해 쌍방 간 합의가 없는 이상 계속 효력을 갖는다고 규정해 어느 일국이 조약을 파기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북·중 우호조약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북·중 우호조약이 북·중관계의 전모를 설명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양국은 이미 조약의 일부 조항을 위반했으며 또 이에 대한 어떤 제재 수단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약 제3조는 “체약 쌍방은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집단과 어떠한 행동 또는 조치”에도 참가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중국은 한국과 수교함으로써 이 조항을 위반했다. 또 조약 제4조는 “일체 중요한 국제문제들에 대해 계속 협의”한다고 함으로써 대외 문제와 관련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공동 협력하자고 했지만, 북한은 핵 실험 시 중국과 협의하지 않고 독자적인 행동을 취해 이 조항을 위반했다. 결국 탈냉전 이후 북·중 우호조약의 실효성은 크게 약화됐다. 북·중 관계 주요 일지 북·중 양국은 상대국의 조항 위반을 비판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게 조약의 폐기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탈냉전 이후 북·중 관계의 변화로 인해 북·중 우호조약은 양국 관계를 규정하는 유일한 것이 아니라 양국 관계의 바탕이 되는 상징적 의미가 됐다. 또 북·중 우호조약의 각 조항이 엄격한 실효성을 가지는 건 아니며 조약의 각 조항을 꼭 준수해야 하는 절대적 의무 또한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북·중 안보동맹에 변화를 야기한 건 1970년대의 미·중 데탕트였다. 냉전 시기 북·중 동맹은 한미동맹에 대항하는 성격을 가졌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이루면서 북·중 양국은 대미 위협인식에 있어서 차이가 발생하였다. 실제로 중국은 70년대의 데탕트 시기부터 한반도 정책을 미·중 관계와 한반도의 안정이란 두 개의 렌즈로 보기 시작했다. 특히 1976년에 발생한 ‘8·18 판문점 사건’은 북한의 도발이 한반도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중국에 각인시켰고, 이를 기점으로 중국은 북한의 도발 억제를 강화했다. 이후 한·중 수교는 북·중 관계가 북·중 우호조약의 틀을 벗어나 갈등이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한·중 수교는 북·중 양국 간의 다양한 갈등을 표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그 대표적인 게 북한 핵문제다. 실제로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에 대해 중국은 북한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러한 북·중 관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중 양국이 우호조약을 폐기 또는 수정하지 않는 원인은 조약의 유지가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김일성 북한 수상(왼쪽)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1961년 7월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중 우호협력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한 뒤 악수를 나누며 웃고 있다. 조약은 20년마다 갱신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바이두 캡처] 먼저 중국의 경우 한미동맹에 대한 외적 위협에 대항하고 북한의 불안정성을 제어하기 위해 조약의 유지를 지지한다. 중국은 북·중 우호조약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한미 양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개입을 고려하기 때문에, 북·중 우호조약이 한반도의 무력 충돌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에 따라 북·중 우호조약을 유지하는 게 한반도의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조약 유지 목적은 또 한반도 유사시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고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 없게 하려는 데 있다. 미·중 경쟁이 강화되는 시진핑 시기를 맞아 중국은 한미동맹 강화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며 이는 북한의 입장과 일치한다. 북·중 양국은 대미 위협인식에 대해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접점을 찾을 수는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조약 유지의 비용이 커지더라도 조약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북한 역시 한미동맹이라는 외적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북·중 우호조약이 필요하다. 한반도 문제가 한미 양국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북한은 중국이 개입하는 게 일정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김정은 시기 북한은 안보위협 해소를 위해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하면서 핵무력을 통해 국방력을 강화하였고 2017년 11월엔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한미동맹과 대항하기 위해선 중국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북한은 북·중 우호조약이 존재함으로써 한미 양국이 한반도에 대한 중국 개입을 우려하게 되기 때문에 조약의 존재가 한국 주도의 무력 및 흡수통일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결국 김정은-시진핑 시기 북한과 중국은 북·중 우호조약 유지에 대한 교집합을 갖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에서의 각각의 이익 유지를 위해 양국은 북·중 우호조약의 존속을 지지하고 있다. ■ 미·중 경쟁속 재조명받는 북·중 우호조약 「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동맹국들과 협력해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것이다. 미국과 EU 국가들은 지난 6월 브뤼셀에서 개최된 NATO 정상회의와 런던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를 통해 대중정책에 대한 협력을 확인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대한 중국 책임론까지 겹쳐지면서 미국과 EU의 대중국 압박정책은 가시화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대외 상황은 1989년 중국의 6·4 사건(천안문 사태) 이후와 유사하다. 당시 미국과 EU 국가들은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서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축소하고 중국을 압박했다. 이때 중국이 선택한 정책은 주변국과의 관계 강화였으며 이 시기 북·중 협력도 강화됐다. 1970년대 미·중 데탕트 시기 이후 중국의 대미 위협인식 약화가 북·중 관계의 변화를 가져왔다면, 미·중 경쟁 시대 중국의 대미 위협인식 강화는 북·중 양국의 협력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북핵 문제로 인한 북·중 양국 간 안보갈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북·중 양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대미 정책에서 접점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특히 미국이 신장(新疆)과 홍콩 문제를 비롯한 중국의 인권 이슈를 제기하고 사회주의 이념 문제를 언급할수록 북한과 중국의 협력 공간은 확대될 것이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지난 1일 김정은 총비서가 시진핑 주석에 보낸 축전에 중국과의 이념 유대를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에 따라 북한과 중국은 북·중 우호조약의 유효성에 대해선 모호성을 유지한 채 조약을 유지할 전망이다. 북·중 관계의 긴장과 갈등은 상존할 것이지만 최소한 한미 양국의 이익에 따라 한반도 상황이 변화되는 것은 제어하려 할 것이다. 결국 북·중 우호조약은 한반도에서 소극적인 분쟁예방 기능을 하면서 현상유지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북·중 우호조약의 유지는 북핵 및 한반도 평화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역할을 고려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통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개최된 것이 북·중 정상회담이라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비록 시진핑 주석이 북한보다 한국과 먼저 정상회담을 한 중국의 첫 지도자였다고 할지라도, 2008년 차기 지도자로서 북한을 방문한 바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이상숙 국립외교원 연구교수
-
[차이나인사이트] 중국의 굴기는 왜 세계를 불편하게 하나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술원장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은 사실상 중국의 유일 정당이자 집권당이다. 오는 7월 1일은 중공 창당 100주년 기념일이다. 1921년 세워진 중공은 국민당과의 혁명전쟁에서 승리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이후 올해까지 72년간 중국을 이끌어오고 있다. 중국은 최근 중공 창당 100주년 경축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중국 중앙방송인 CCTV에선 ‘금일중국(今日中國)’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각 지방의 휘황찬란한 발전을 자랑하고 있다. 또 ‘산하세월(山河歲月)’이라는 100부작 다큐멘터리에선 중공이 어떤 희생과 헌신으로 중국과 중화민족을 이끌어왔는지를 그리고 있다. 중공이 100년의 분투를 통해 중국과 중화민족을 근대의 치욕에서 구원했고 이젠 다시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런 장면에는 중공의 자신감이 짙게 묻어난다. 한데 중공의 이 같은 자신감과는 달리 중국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곱지 않다. 중국 외부의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외부 인식의 변화는 물론 중국의 빠른 발전과 관련이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론 중국의 굴기에서 보이는 중국의 태도 변화가 그 원인이다. 2010년 중국의 G2 부상은 새로운 초강대국의 등장을 의미한다. 새로운 초강대국의 등장은 세계질서의 재구성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기존 질서를 불안정하게 한다. 새로운 질서의 구성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기존 이익을 침해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초강대국의 등장에 대한 기대와 불안, 그리고 견제가 공존한다. 중국 공산당은 7월 1일로 창당 100주년 기념일을 맞는다. 1921년 7월 23일 창당했지만 초기에 정확한 창당일을 몰라 1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중앙포토] 후진타오(胡錦濤) 시기 중국은 자신의 부상이 야기할 외부의 불안과 견제를 완화하고자 나름 애를 썼다. 중국의 부상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평화로운 부상(和平崛起)”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2012년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등장 이후 그러한 입장은 급변했다. 시진핑 시기 중국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의 하나가 대외적으로 중국의 입장을 거칠게 천명하는 ‘전랑외교(戰狼外交)’다. 전랑외교는 돌출된 사례가 아니다. 시진핑 시기 이뤄진 일련의 변화가 외교 영역에서 집약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봐야 한다. 시진핑 시기 중국에선 중국의 발전 전략에 대한 세 가지 변화가 있었다. 중국의 장기 발전 목표 수정, 중국 모델의 제기, 그리고 대외전략 수정이다. 중국은 개혁과정에서 2049년까지의 장기적 발전 목표인 ‘두 개의 100년 분투 목표’를 수립한 바 있다. 두 개의 100년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을 가리킨다. 중국의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개혁 초기 장기적 발전 목표를 제시하는데, 그것이 87년 13차 당 대회에서 3단계 발전 전략으로 확정된다. 3단계 발전 전략이란 ▶1980년의 GDP를 1990년까지 두 배로 늘리고 ▶20세기 말까지 다시 그것을 두 배로 증가시키며 ▶21세기 중엽엔 기본적인 현대화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중공은 97년 15차 당 대회에서 21세기 중반인 건국 100년 즈음에 사회주의 현대화의 기본적 실현을 목표로 하는 ‘두 개의 100년 분투 목표’를 제시하고, 2002년 16차 당 대회에선 창당 100주년까지 소강(小康)사회의 전면적 건설을 목표로 내세운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주요 일지 한데 시진핑은 2017년 19차 당 대회에서 ‘두 개의 100년 분투 목표’를 전면적으로 수정한다. ‘두 개의 100년 분투 목표’를 2020년과 2035년, 그리고 2050년의 새로운 3단계로 구분하고, 발전 목표를 전면적으로 조정한 게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까지 전면적 소강사회 실현을 완성한다는 걸 전제로, 사회주의 현대화의 기본적 건설을 2035년으로 앞당긴다. 또 두 번째 100년 즈음인 2050년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겠다고 한다. 사회주의 현대화의 기본적 건설은 중진국 수준의 발전을 뜻한다.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은 세계를 앞장서서 이끌어가는 국가를 말한다. 세계를 앞장서서 이끌어가겠다는 건 패권국가로서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패권국가 중국은 또 하나의 초강대국 등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시진핑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중국몽(中國夢)’으로 제시하며, 현재의 국제정세를 “100년에 없는 대변동의 국면”이라고 보는 것과 관련된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유일한 문명이자 세계의 중심으로서 중국적 보편과 질서를 형성해왔던 중화제국의 역사적 영광을 회복하겠다는 걸 뜻한다. 또 ‘100년에 없는 대변동의 국면’이란 중화가 쇠락한 근대 시기에 형성됐던 세계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국면이다. 결국 중국의 부상이 뜻하는 건 중국이 단순히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는 차원을 넘어 보편과 질서를 형성해왔던 제국의 부활이자 새로운 보편의 형성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공이 19차 당 대회에서 ‘중국 방안’을 제공해 인류 문제의 해결에 공헌하겠다고 한 것은 이와 관련된다. ‘중국 방안’은 중국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개발도상국의 현대화 모델이다. 이런 중국 모델의 제기는 중국의 성공에서 비롯된 ‘네 개의 자신감(四個自信)’에서 출발한다. ‘네 개의 자신감’은 2012년 18차 당 대회에서 제기한 중국의 길, 중국의 이론, 중국의 제도에 대한 자신감과 시진핑이 2016년 중공 창당 95주년 기념식에서 언급한 중국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합친 것이다. 이는 개혁개방을 통한 발전과 중국의 사회주의와 혁명 과정에서 형성된 제도와 이론뿐 아니라 중국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긍정을 의미한다. 중공이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건설 및 혁명, 중국 전통문화의 계승자로서 그런 경험과 자신을 활용해 중국적 보편을 창출하겠다는 이야기다. ‘중국 방안’은 아직은 불명확하다. 그러나 제도에 대한 자신감은 공산당 독재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포함한다. 이는 18차 당 대회 이후 당의 영도와 권력 집중을 다시 강조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정치체제 개혁과 민주를 강조하지 않고 ‘국가 관리체제와 능력의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당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관리체제의 합리화가 모색 방향의 하나다. 미국이 2020년 ‘대중전략 보고’에서 중국의 경제발전이 시민 중심의 자유로운 개방적 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실망감을 표시한 배경이기도 하다. 중공이 공산당 독재의 보편성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공산당 독재에 대해 강조를 하는 건 서구의 관점에서 볼 때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중공은 또 대외정책의 원칙을 변경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질서에 대한 중국적 담론을 제기하고 있다. 시진핑 시기 중국은 인내하면서 할 일을 한다는 ‘도광양회 유소작위(韜光養晦 有所作爲)’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한다는 ‘분발유위(奮發有爲)’로 대외정책의 원칙을 바꿨다. 미국이 표방한 ‘아시아로의 회귀’에 대응해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를 제기하고, 인류운명공동체 운운과 같은 국제질서에 대한 중국적 담론의 제기도 이와 관련된다. 그건 중국이 자신의 위상에 걸맞은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고 중국의 발언권을 확보하면서 중국적 질서를 모색해나가겠다는 것이다. ■ 서구 쇠락 기미에 중국 지도자 흥분했나 「 중국은 ‘중국 방안’을 통해 중국적 보편을 제시하고, ‘중국의 담론’으로 국제질서를 재구성하는 초강대국을 꿈꾸고 있다. 미국 중심의 질서와 근대 이후 서구적 가치에 대한 도전이다. 2018년 시작된 미·중 충돌은 중국의 부상과 변화로 인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2008년 미국의 경제위기와 유럽의 극우파,미국의 트럼프 등장 같은 경제적 쇠락 및 정치적 퇴조와 관련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지도자들이 다소 흥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미·중이 충돌하자 중국 당국자들은 자신의 목표는 대외적 메시지가 아니라 대내용일 뿐이라고 한다. 시진핑은 2021년 신년사에서 ‘강국’이란 표현을 빼고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만을 이야기했다. 이는 중국이 현 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한 결과다. 하지만 양국은 이미 미·중 충돌이란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중국이 제시하는 ‘중국 방안’과 ‘중국의 담론’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홍콩이나 신장(新疆)에서 벌어지는 일은 중국의 내정 여부를 떠나 중국의 실천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중국 방안’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일대일로’도 그렇다. 저발전 지역에 대한 개발의 유효성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은 과거 제국주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나치게 빨리 자신의 목표를 드러냈다는 걸 뜻한다. 일정한 좌절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중국은 반복적으로 재생하면서 지속해 온 유일한 세계 제국이다. 좌절에도 불구하고 중국적 질서와 보편을 만들어가려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초강대국 중국’은 우리에겐 상수다. 그건 우리의 위치가 현재의 보편 제국 미국과 미국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보편을 추구하는 중국의 사이에 끼어있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다. 지난 2000년간 중국 옆에서 생존을 추구해야 했던 조상들의 지혜를 재검토하는 노력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술원장
-
[차이나인사이트] 디지털 위안화 실험, 달러패권 도전 아닌 보조금 지급 용도
━ 중국, 비트코인 때린 까닭 중국 베이징의 번화가 왕푸징 쇼핑몰의 한 매장 계산대에 놓인 디지털 위안화 결제 단말기. 디지털 위안화( 數字人民幣, e-CNY) 사용을 환영 한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신경진 기자 중국이 최근 비트코인을 때린 배경으로 ‘디지털 위안화(e-CNY)’ 도입이 거론된다. 디지털 위안화는 디지털 형식의 전자결제용 위안화다. 디지털 화폐와 전자 지불을 합친 개념으로 DCEP(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라 불리기도 한다. 현금을 대체할 수 있는 디지털 위안화를 중국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개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왜? 국내에선 디지털 위안화를 미국의 달러 기축통화 시스템에 도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하는 의견이 많다. 이 때문에 정작 재정지원금 지급 수단으로서의 디지털 위안화 중요성에 주목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달러 중심의 글로벌 금융시스템에서 분리돼 운영되는 디지털 위안화의 등장은 위안화 국제화와 달러화에 대항하는 글로벌 통화주권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디지털 위안화는 미 정부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존 글로벌 결제시스템 활용의 금융제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중 대립이란 최근 국제정치 상황으로 인해 디지털 위안화가 지나치게 민감한 정치·경제적 이슈로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디지털 위안화가 국제결제 수단으로 활용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일상적인 금융거래 사용에서도 제약이 많아 현금뿐 아니라 위챗페이와 같은 모바일 결제 플랫폼들을 대체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첫째, 지난 수년간 디지털 화폐(이하 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와 관련한 논의 중에선 ‘CBDC를 비트코인과 유사한 형태로 거래되지만, 그 가치는 안정화된 일명 스테이블 코인으로 가정하고 국제결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만약 CBDC가 코인(또는 토큰형 CBDC)으로 발행돼 개별적인 지급수단(스마트폰)에 내장된 가치를 가진 전자적 정보로 존재한다면 비트코인과 같이 전 세계 어디서나 비밀번호만 입력해 자유롭게 거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위안화는 반드시 기존 은행의 금융계좌에 연계된 모바일 전자지갑 형태로만 발행되기 때문에 원칙적으론 계좌기반의 CBDC라는 게 확인됐다. 디지털 위안화를 활용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결제대금이 부족하면 디지털 위안화에 연계된 본인의 은행계좌에서 예금이 자동으로 인출돼 결제된다. 현재 중국의 알리페이나 한국의 카카오페이에서 은행계좌를 연계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스마트폰에 설치된 중국농업은행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의 실제 사용 화면. [웨이보 캡처] 이런 의미에서 디지털 위안화는 디지털 화폐이면서 동시에 모바일 결제 플랫폼 앱(App)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존 모바일 플랫폼과는 달리 디지털 위안화는 자신의 은행계좌로 이체하는 건 제한한다. 이러한 계좌기반의 디지털 위안화가 국제결제 수단이 되기 위해선 ① 중국 내 지급결제 계좌 정보 ② 해당 국가의 지급결제 계좌 정보, 나아가 ③ 국제결제 청산 시스템에서 국가 간 계좌의 지급과 결제에 대한 금융거래 정보가 승인되는 복잡한 국제금융 및 국제정치적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둘째, 디지털 위안화 실험과정에서 확인된 CBDC와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슈가 분산원장(거래정보 데이터를 여러 기관이나 저장 장소에 분산해 저장하는 기술) 방식의 개인 스마트폰 간 거래 문제였다. 실험과정 중 지급결제 망을 통하지 않는 ‘펑이펑(碰一碰)’ 기능이 소개되면서 이 기능이 마치 현금처럼 개인의 스마트폰 간에 결제 망을 통하지 않고도 디지털 위안화를 거래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디지털 위안화 실험이 진행되면서 지급결제 기능에 기존 모바일 결제 방식인 QR 코드 방식 외 NFC(비접촉 근거리 통신) 방식이 추가됐고, 이것을 ‘펑이펑’이라 지칭했다. NFC 방식은 스마트폰에서 발생한 지급정보가 먼저 결제 망을 통하지 않고 POS 단말기에 직접 전달되는 일종의 분산원장 기술이 적용된다. 그렇지만 디지털 위안화의 펑이펑 기능은 쌍방 모두가 결제망에 접속하지 않는(雙離線) 개인 간 스마트폰 거래, 예를 들면 비트코인 방식의 완전히 분권화된 분산원장 거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향후 디지털 위안화 기술이 더 발전해 현금처럼 결제 망을 통하지 않는 개인 간 스마트폰 거래 기능도 도입될 것이란 전망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필자는 디지털 위안화의 정책적 목표는 현금거래나 위챗페이의 개인 간 송금 서비스를 대체하는 게 아니고, 재정지원을 통한 소비 확대라고 생각한다.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화의 도입 목적으로 소매결제 시스템의 업그레이드와 세대교체, 그리고 정부의 재정집행 역량 강화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모바일 지급결제 사용이 보편화돼 있기 때문에 일부 매장에선 거스름돈이 준비되지 못하는 등 현금 사용 시 불편함이 존재한다. 따라서 중국인이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 결제에 현금처럼 언제든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위안화를 도입해 결제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기 위해 많은 외국인이 중국을 방문할 때 중국 정부가 공인하는 디지털 위안화를 스마트폰에 넣어서 상점이나 택시를 이용할 경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아가 중국은 거대한 국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국가로 지방정부의 재정지출 비중이 중앙정부의 재정지출보다 높다. 2019년 기준으로 정부 재정예산 집행의 85%를 지방정부에서 진행한다. 지방정부 차원의 소액 재정지출에 대한 재량권도 높은 편인데, 지방정부 차원에서 집행하는 복지나 지원금 등의 예산집행 과정이 투명하지 못해 곧잘 부정부패로 연결되곤 했다. 또 재정집행의 행정적인 절차나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문제도 있었다. 따라서 디지털 위안화를 활용해 재정집행의 목표 개인들에게 직접적이고 신속하게 복지예산이나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는 디지털 지급 수단을 보유한다는 건 매우 중요한 정책적 목표가 될 수 있다. 디지털 위안화를 지나치게 국제정치적인 이슈 차원에서 접근하는 건 BIS를 포함한 국제 금융기관에서 강조하고 있는 CBDC의 도입과 국제 연계의 필요성, 한국은행의 ‘동전 없는 사회’와 같은 스마트폰 시대의 결제 환경 개선 중요성과 세계 금융환경의 변화 등을 간과하게 할 우려가 있다. ■ 디지털 위안화 실험과 한국은행의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 「 중국 정부의 디지털 위안화 도입 이유를 알리페이의 모바일 지급결제 독과점 문제와 개인 금융정보 데이터의 확보라고 주장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디지털 위안화에선 현금거래나 알리페이, 위챗페이를 대체할 만큼의 경쟁력이 보이지 않는다. 현금만큼 익명성이 확보된 것도 아니고 모바일 결제와 연계된 다양한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디지털 위안화를 보조적인 정책적 용도가 아니라, 전면적이고 유일한 지급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우선 현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시스템 운영비용부터 고려해야 할 것이다. 중국 정부가 민간 모바일 결제회사처럼 개인 맞춤형 광고와 연계된 O2O 수익모델이나 데이터 기반 사업다각화 전략을 추진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2015년부터 추진 중인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은 정부의 정책목표와 집행예산의 가성비 문제와 관련해서 한 흥미로운 사례가 된다. 이 사업은 편의점 등에서 현금결제 시 잔돈을 개인 스마트폰 전자지갑 계좌에 이체시켜 주는 사업이다. 동전 발행비용의 절감, 가맹점들의 동전 준비, 동전 소지의 불편함과 같은 정책목표에 누구나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프라인 신용카드 결제가 보편화해 있는 한국에서 이 정책의 기대성과가 높지 않아, 사업 추진과 홍보 등에 필요한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중국 정부 역시 디지털 위안화 사업 추진에서 예산투입 대비 정책효과를 고려할 것이다. 원래 ‘현금 없는 사회’라는 용어는 알리페이가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제시한 기업 전략목표였다. 」 서봉교 동덕여대 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