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

가수 조영남이 만난 사람들, 살아온 이야기

기사 44개

2021.12.25 00:02

총 44개

  • “화투 갖고 놀면 패가망신” 최후진술에 대법 법정 웃음꽃

    “화투 갖고 놀면 패가망신” 최후진술에 대법 법정 웃음꽃

    첫째, 내가 글쓰기에는 너무 늙었다는 것과 ‘조영남 미술 대작(代作) 사건’이라는 5년간의 긴 재판을 치르며 기진맥진한 상태인 데다 특히 그 긴 세월에 꾸물꾸물 글을 써서 이미 두 권의 책을 냈고, 그 책을 홍보한다는 명분으로 여러 TV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해 몸 상태가 총체적으로 바닥이 난 상태였다.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 등 책 두 권 펴내 나이 80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까(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아이고! 조영남이 어느새 그렇게 늙었나’ 하시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이 그렇게 됐다. 76세다) 우선 읽고 쓰는 데 금방 눈이 피로해지고 아파 왔다. 문학세계사 김요일 이사에게 글을 못 쓰겠다는 말을 한다는 게 여기까지 왔는데, 재판 중에 아픈 눈을 비비며 꾸역꾸역 글을 써서 한꺼번에 두 권의 책을 낸 게, 한 권은 현대미술에 관한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이고, 또 다른 한 권은 내가 평생 추종해 왔던 요절 시인 우리의 이상(李箱)을 셰익스피어 바로 밑으로 띄우기 위한

    2021.02.27 00:02

  • 죽었다 살아났더니, 이번엔 대필이라고?

    죽었다 살아났더니, 이번엔 대필이라고?

    중앙SUNDAY가 ‘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이런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이런 건 부장이나 국장회의에서 결정되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쯤은 저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지난 5년간 그림 대작 사건으로 죽었다가 간신히 살아났더니, 조영남이 그림뿐만 아니라 글도 대필로 쓴다는 소문이 파다하더군요.

    2021.02.27 01:16

  • 차중락 대타로 얼결에 노래…쎄시봉 주인 “야! 나오라우”

    차중락 대타로 얼결에 노래…쎄시봉 주인 “야! 나오라우”

    첫째 추측은 그때 다니던 대학과 교회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이다. 나는 고교성악 콩쿠르에서도 1등을 했고, 서울음대 재학생 오디션의 결과로 푸치니의 오페라 ‘쟌니 스키키’의 주인공을 맡아 당시 최고의 공연장인 광화문 소재 시민회관(지금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펼쳤을 만큼 촉망받는 성악가였는데 성악가의 최종 꿈인 오페라를 직접 해봤더니 어느 정도 계산이 섰다. 이런 교회에 대한 불만의 표출로 교회 대신 쎄시봉을 택했을 수도 있다.

    2021.03.06 00:02

  • 잡상인 행색인데 “조영남!” 연호…청바지 문화 광풍 덕 봐

    잡상인 행색인데 “조영남!” 연호…청바지 문화 광풍 덕 봐

    하루는 버스 안에서 나와 비슷하게 생긴 잡상인이 칫솔을 한 움큼 쥐고 "차내에 계신 신사 숙녀 여러분, 이 연필로 말할 것 같으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어쩌고저쩌고 칫솔을 들고 연필을 따발총처럼 소개하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쎄시봉에서 그때 받은 아주 특별한 환호는 다름 아니라 그때 ‘별들의 고향’의 최인호를 필두로 불기 시작한 청년 문화, 청바지 문화의 광풍의 초기 징조였고, 거기에다 조영남으로 촉발된 우리들에 대한 광풍 때문이었다. 가수도 아닌 가수가 되기 전 버스에서 일용품을 파는 잡상인 행색의, 아직은 이름 없는 무명의 가수지망생의 입장으로 당시의 최고가수 최희준을 능가하는 박수를 받았으니 내가 자뻑으로 그때의 송가인이었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21.03.13 00:02

  • 녹슬지 않는 스승 이백천 “오버 말고 힘 빼라” 가르침 줘

    녹슬지 않는 스승 이백천 “오버 말고 힘 빼라” 가르침 줘

    (수필가 피천득 선생의 큰아들, 일찍이 캐나다로 이민 갔다) 그리고 우리 쎄시봉 터줏대감 이백천 선생님, 나는 피천득 선생이라고 칭했는데 이백천 선생님께는 굳이 ‘님’자를 따로 덧붙였다. 나는 백천 선생의 가르침을 지금도 꼭 지켜야 한다고 속으로 다짐하고 있다. 백천 선생의 가르침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내가 지금도 ‘열린 음악회’에 나갈 정도로 팔리는 것은 바로 백천 선생의 가르침 덕이었다고 생각한다.

    2021.03.20 00:02

  • 이장희 작사 노래, 송창식이 윤여정 생일 선물로 불러줘

    이장희 작사 노래, 송창식이 윤여정 생일 선물로 불러줘

    제3회 때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에 대해 쓴다고 우리나라 최고의 테너 박인수 형과 내 친구 이동원이 부른 ‘향수’를 소개하던 중 작사가 정지용이 얼마나 위대한 시인인지 그걸 강조하느라고 정지용이 세계 최고의 서정시인이라고 쓰면서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에 이의가 있는 사람은 곧장 중앙SUNDAY 담당자에게 연락하라고 썼다. 내가 지금 "독자님! 정지용이 쓴 ‘향수’라는 노랫말 가사가 분명 노랫말 가사임에 틀림없지만, 독자님! 그 가사는 굉장히 훌륭한 순수시입니다. 김세환이 이렇다 할 노래가 없는 걸 알고 형주가 먼저 세환이한테 ‘길가에 앉아서’를 주고, 이어서 장희가 또 세환이한테 ‘좋은 걸 어떡해’를 주고, 창식이가 세환이한테 ‘사랑하는 마음’을 주고, 이번엔 장희가 형주한테 ‘비의 나그네’를 주고, 장희가 뒤늦게 나한테 준 노래가 바로 ‘불꺼진 창’과 ‘안녕’이다.

    2021.03.27 00:02

  • ‘펄시스터즈’와 결성한 트리오, TBC PD가 “됐어” 퇴짜

    ‘펄시스터즈’와 결성한 트리오, TBC PD가 “됐어” 퇴짜

    "만일 누군가 나에게 젊은 날 비타민 역할을 해준 사람이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오태석과 이백천 두 사람을 댈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우리는 첫 작품으로 손턴 와일더의 ‘우리 읍내(Our Town)’를 올리기로 하고 동아리 리더였던 문호근(문익환 목사의 큰아들. 배우 문성근의 형.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을 하다가 일찍 죽는다)과 그의 짝패 이건용(한예종 총장이 됨. 지휘자 금난새도 동급생이었다)이 연세대 재학 중이던 오태석을 연극 코치로 초빙해왔다. 요즘 우리가 미국 사람을 보는 느낌과 그때 우리가 느꼈던 미국 사람에 대한 느낌은 많이 다르다.

    2021.04.03 00:02

  • 한눈에 반한 후배와 첫사랑, 약혼 알고도 별 헤며 데이트

    한눈에 반한 후배와 첫사랑, 약혼 알고도 별 헤며 데이트

    나는 3년 전쯤에 잘 다니던 한양음대도 2년 때 중퇴했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서울음대는 돈 때문에 그만두게 된 것이고, 한양음대 때는 사랑 때문에 때려치운 것이었다. 너 내가 명자한테서 온 편지 한 번 읽었다고 내가 얼마나 너한테 혼났는 줄 알아?" 내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자 큰 누나는 계속 낄낄거리며 "야! 우리 집에 걔가 편지를 자꾸자꾸 보내길래 도대체 무슨 내용이 있을까 하고 딱 한 번 뜯어 보고 너한테 줬는데 내가 얼마나 너한테 혼났는지 모르지? 네가 펑펑 울면서 난리더라. 난 아버지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큰 누나나 작은 누나가 죽었을 때도 눈물이 안 나왔고 다 커서도 여자와 헤어질 때도 눈물이 안 나서 그랬다.

    2021.04.10 00:02

  • 60대에 처음 다 함께 노래, 쎄시봉 5명 ‘방탄노인’ 떴다

    60대에 처음 다 함께 노래, 쎄시봉 5명 ‘방탄노인’ 떴다

    그때 나는 이미 10년 가까이 MBC 라디오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라는 방송국 대표 프로그램에 지금은 TV 홈쇼핑 계에서 여왕 노릇을 하는 최유라와 함께 메인 MC를 맡고 있었다. "아저씨! 이번에 아저씨 친구들 한 번 불러모으는 게 어때?" 이 짧은 한마디가 우리들 다섯 명, 송창식·윤형주·이장희·김세환 그리고 조영남 말년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줄이야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우리는 장희가 너무 오랜만에 노래를 해서 고국에 있는 여자를 생각하느라 심정이 격해서 노래를 차마 이어갈 수가 없는 줄 알았는데 쇼가 다 끝나고 세환이가 "형! 왜 노래를 안 한 거야?" 하고 물으니까 장희 왈 "야 시캬 그다음 가사가 생각나질 않는 거야" 하는 바람에 최초일 수 있었던 다섯 명의 공연은 물 건너가고 이제야 60 노인이 되어서 함께 노랠 부를 수 있게 된 거다.

    2021.04.17 00:02

  • 쎄시봉 영혼 스승 김성수 신부 “하나님, 잘 봐주세요” 기도

    쎄시봉 영혼 스승 김성수 신부 “하나님, 잘 봐주세요” 기도

    최 PD를 통해서 우리는 김 신부님이 영국에서 신부 수업을 마치고 영국 신부(?)와 함께 서울로 오게 됐다는 것이었고 강화도의 부잣집 아들이라는 것과 함께 고등학교 때 별명은 개뼉다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신부님 냄새도 안 풍길 뿐 아니라 길을 가다가 수틀리면 "이 자식이 저 자식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우리와 다른 점이 어느 구석에도 없는 성공회 신부님이 과연 신부님 노릇이나 제대로 할까 싶었는데 내가 쎄시봉 식구들 중에서 제일 먼저 ‘딜라일라’라는 외국 노래 한 곡으로 높이 떴고, 우리들 모두의 영혼 담당 리더였던 김 신부님의 근황이 늘 궁금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따금 고개를 돌려 볼 때마다 우리의 김 신부님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신부님은 금방 큰 교회의 담당신부로 올라가고 우리는 늘 "뭐라구? 그 신부님이 성공회에서 제일 높은 주교가 됐다구? 뭐? 성공회대 총장이 우리가 아는 그 김성수 신부님이라구?", 묻게 됐다.

    2021.04.24 00:02

  • 평양 공연 때 MC가 “고향 봤나?”…“깜빡 졸아” 답해 웃음꽃

    평양 공연 때 MC가 “고향 봤나?”…“깜빡 졸아” 답해 웃음꽃

    ‘일사후퇴 때 피난 내려와 살다 정든 곳 두메나 산골 태어난 곳은 아니었지만 나를 키워준 고향 충청도.’ 분명히 시작부터 ‘일사후퇴’ 얘기도 쓰고 ‘태어난 곳은 아니었지만’이라는 설명에 ‘나를 키워준 고향 충청도’, 이렇게 썼고 사람들이 이 노래를 골백번씩 들었을 텐데도 한사코 조영남 고향은 충청도라고 그런다. 어릴 적 어떻게 피난 왔는지 기억 안 나 나는 사실 어머니 김정신 권사님한테 어째서 나에 관한 생년월일이 남편 조승초씨와 다를 수가 있느냐 하며 DNA 검사라도 시행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그런 기술도 없었기 때문에 누나, 형, 그리고 오랫동안 부산대 음악교수였던 동생 조영수 교수도 아무 검증절차 없이 그냥 형제, 동생이려니 하고 살아왔다. 집에 와서 내가 평양 공연을 간다고 했더니 큰 누나와 형은 잘 됐다고 하면서 평양 가는 길에 황해도 남천을 지나가게 되니 고향을 잘 보고 오라는 것이었다.

    2021.05.01 00:20

  • 아버지, 하교 후 화투 몇 판 맞상대 해야 자유시간 줘

    아버지, 하교 후 화투 몇 판 맞상대 해야 자유시간 줘

    타작 마당서 매일 딱지·구슬치기 그때 옥분이나 재평이가 마당으로 나오면 "야! 떡 먹어라" 하면서 건네주고 아이들은 "웬 떡이냐" 하면서 입에 넣었다가 "퉤퉤퉤" 질겁을 하면 나의 작업은 성공한 거다. 그런데 근엄하기 짝이 없는 교장 선생님이 거나하게 취해 장터에서 우리 마당 쪽으로 오시다가 "어이쿠" 하면서 심청이 아버지처럼 논두렁에 발을 헛디디시는 걸 우리가 달려가 구출해내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지서방네 할아버지나 우리 교장 선생님보다 더 재밌는 사람은 바로 우리 아버지 조승초(趙勝楚)씨였다.

    2021.05.08 00:02

  • 어릴 적 클래식·트로트 동시에 빠져 ‘잡탕 가수’ 될 수밖에

    어릴 적 클래식·트로트 동시에 빠져 ‘잡탕 가수’ 될 수밖에

    나의 쎄시봉 친구 이장희의 노래 중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그때 미국 LA 이장희의 카페 로스가든에 딸린 아파트에 두 달 이상 머물러 있었는데 딱 한 가지 장희가 걸핏하면 통기타를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 ‘나는 누구인가’가 문제였다. 호기심으로 나의 화투 작품을 지켜보다 하루는 "오빠! 나도 화투 작품 하고 싶은데 가르쳐주지 않을래?" 해서 나는 즉시 "좋아, 이건 보기보다 훨씬 쉬워.

    2021.05.15 00:20

  • 대학생 때 강은교 만나, 시 ‘혜화동’ 작곡 약속 못 지켜

    대학생 때 강은교 만나, 시 ‘혜화동’ 작곡 약속 못 지켜

    사진을 그대로 걸어놓은 것도 있고, 사진으로 만든 콜라주(사진과 그림을 섞는 기법) 작품도 걸려 있다. 그래서 희영이 사진은 늘 이사갈 때마다 식당이나 나의 안방 벽에 붙여 놓았기 때문에 그 옛날 KBS의 김재현 PD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가 그림 속의 인물이 누구냐고 묻고 대답하던 중 문득 "이것으로 아예 TV 프로그램을 만듭시다" 해서 만든 TV 프로가 바로 지금의 ‘TV는 사랑을 싣고’다. 성희영의 얼굴 작품을 보면 내가 순식간에 청소년 시대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고 또 내가 생애 최초로 좋아했던 여자가 저토록 아름다운 소녀였다는 생각이 나를 스스로 흐뭇하게 만든다.

    2021.05.22 00:02

  • 미대생 가수 김민기 “음대 형은 그림 그려야 해, 핫핫핫”

    미대생 가수 김민기 “음대 형은 그림 그려야 해, 핫핫핫”

    문제는 내가 김민기 이장희 송창식 윤형주의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그중에 ‘아침 이슬’을 쓴 김민기나 ‘모란동백’을 쓴 이제하는 당장이라도 노벨문학상을 탈 만한 실력가라고 큰소리를 쳤다는 점이다. 내 글을 읽는 독자님들 중에 "뭐라구? 고작 유행가 가사 나부랭이를 쓴 친구들이 노벨문학상을 탄다구?" 하실까 봐 나의 노파심에서 2016년 미국의 유행가 가수 밥 딜런이 진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걸 새삼 일러두는 바이다. 나는 그자가 만든 노래 ‘아침 이슬’을 녹음한 적이 있는데(금년이 ‘아침 이슬’이 세상에 나온 지 꼭 50년 만이라고 한다), 거기에 이어서 한대수의 노래 ‘행복의 나라로’를 조영남 김민기 둘 만의 통기타로 연주해낸 희귀한 LP판 ‘조영남 애창곡집’을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2021.05.29 00:02

  • 영문학자 장영희 “한 번 갔다 온 조영남과 사귀는 건 억울”

    영문학자 장영희 “한 번 갔다 온 조영남과 사귀는 건 억울”

    세상에! 이럴 수가! 이름이 꼭 중국 이름 같다고 여겼던 서울대 영문과 장왕록 교수가 바로 장영희의 아버지라니! 나는 그날 추모 노래로 ‘오! 마이 파파’ 등 몇 곡을 불렀다. 생일 콘서트엔 행복전도사 최윤희를 비롯, 말(馬)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김점선이 장영희와 시종 함께했다. 그런데 장영희와 김점선은 어느 부분의 어느 장면을 얘기하며 감탄감탄하는 모습을 보며 그때 나는 아하! 저자들은 내가 범접하지 못하는 문학의 딴 세상에 들어가 있구나.

    2021.06.05 00:20

  • 최인호, 1시간만에 ‘그건 너’ 가사 뚝딱…쎄시봉 정신적 반장

    최인호, 1시간만에 ‘그건 너’ 가사 뚝딱…쎄시봉 정신적 반장

    나는 그 옛날 미국에서 인호형을 만나 미국 서부 여행을 함께 했고 그때 인호형이 단편소설 ‘깊고 푸른 밤’을 영화 대본으로 썼었어" 하는 것이었다. 니가 ‘그건 너’ 가사를 인호와 함께 썼다며?" 물었더니 "맞아 형! 내가 1절을 만들어 놓고 강근식과 연습을 하면서 인호형한테 전화를 했더니 한 시간 후에 2절 가사가 왔어"라는 것이다. 인호가 만들었다는 2절 가사는 "어제는 비가 오는 종로 거리를/ 우산도 안 받고 혼자 걸었네/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 녀석이 ‘너 미쳤니?’ 하면서 껄껄 웃더군/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이렇다.

    2021.06.12 00:02

  • 신화에 꽂힌 이윤기, 유행가 4절까지 몽땅 외워 놀라

    신화에 꽂힌 이윤기, 유행가 4절까지 몽땅 외워 놀라

    이윤기는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천하의 명작 소설을 우리말로 번역해 놓았는데 우린 처음부터 형은 조르바, 동생은 카잔차키스로 정해 놓고 밤새 낄낄댔다. 그리스 로마 신화 경전은 기독교 경전(신약 구약 성경)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우리의 이윤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경배한 게 아니라 이슬람 격언을 너무 경배한 것인가.

    2021.06.26 00:02

  • 잘나가던 마광수, 『즐거운 사라』로 버림받아 우울증 걸려

    잘나가던 마광수, 『즐거운 사라』로 버림받아 우울증 걸려

    그런데 마광수같이 거침없이 써 젖히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대학교수, 그것도 다른 대학도 아닌 기독교 계통인 연세대학의 교수가 된 거야. 그런데 『가자! 장미여관으로』 표지에 실린 그림은 거기 사인을 보니까 마 교수 당신 그림이던데 그 표지 그림은 지금 어딨나! 마: 그건 진작에 팔렸죠. 그때 그러니까 법정에 끌려가게 만든 건 『가자! 장미여관으로』 가 아니라 『즐거운 사라』 였지? 마: 그랬죠.

    2021.07.03 00:02

  •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신고산타령 바꿔 불러 강제입대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신고산타령 바꿔 불러 강제입대

    나는 요란한 박수를 받으며 통기타를 들고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무대 앞으로 나가 기타의 A 마이너 코드를 쾅! 튀기며 ‘신고산이 우우르르으으’까지 ‘신고산타령’의 도입부로 들어간 다음 마땅히 ‘함흥차 떠나는 소리에’로 나가야 하는데 순간 몇 주 전 TV에서 본 와우아파트 붕괴 모습이 떠올라 가락을 따라 ‘와우아파트 무너지느은 소오리에에에 얼떨결에 깔린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누나아아 어랑어랑어허야’로 노래를 이어갔다. 이대 신입생 환영회서 이태영 학장과 인연 그럼 어떤 연유로 이태영 학장님이 DDR 딴따라 가수 조영남을 구하러 시골까지 내려오게 된 건가. 이태영 학장님 집에 한 달 간 머물면서 많은 문화충격, 가령 온통 집안 식구가 서울대 이화여대에 박사 변호사여서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 집에 모여든 김대중 등 정치인들이 모여 토론을 벌이다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우리들과 똑같은 모양의 언어로 다투는 장면을 보며 사람은 인격수양이 중요하구나! 하는 식의 문화충격을 크게 받게

    2021.07.10 00:02

  • 보안사 연극단에 파견, 노주현·김영옥 등과 공연 ‘행운’

    보안사 연극단에 파견, 노주현·김영옥 등과 공연 ‘행운’

    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훈련소 하면 나에게 가장 크게 떠오르는 생각은 훈련 6개월간 나의 고질병인 졸음과의 정면대결이었다는 것이다. 조교가 무슨 얘기만 하면 잠이 쏟아져 왔고 나는 크게 작심을 하고 계획을 세운다. 이태영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를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여의도 이태영 법률상담소에 잘 간직하셨다가 몇 년 전 내 쪽으로 고스란히 돌려줬다.

    2021.07.17 00:02

  •  “작년에 왔던 각설이…” 박정희 앞에서 불러 불경죄 몰려

    “작년에 왔던 각설이…” 박정희 앞에서 불러 불경죄 몰려

    진중권, 미술 대작 1심 재판 때 정교한 증언 그리하여 1심 재판 때 나는 어렵게 진 교수의 연락처를 알아내 조심스럽게 내 재판 때 증언자로 나올 수 있느냐 타진했고 놀랍게도 진 교수로부터 흔쾌한 답변을 받아냈다. 1심 재판 때 증언석에 앉은 진 교수의 피고인 조영남에 관한 방어 논리는 정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신고산타령’을 ‘와우아파트 타령’으로 바꿔 불러 새벽에 홍성 법원으로 끌려간 것도 그랬고, 우쭐대면서 육군 참모총장 출근차에 ‘승전’ 경례를 붙였다가 조사받게 된 것도 그랬고, 대통령 앞에서 ‘황성옛터’ 대신 ‘각설이타령’을 불러 남한산성 군 감옥 문턱까지 간 것도 그랬다.

    2021.07.24 00:02

  • 기독교인데 무교회주의, 함석헌 ‘씨알’ 같은 맘씨에 반해

    기독교인데 무교회주의, 함석헌 ‘씨알’ 같은 맘씨에 반해

    그러다가 언어 구사 능력에서 김동길 박사님과 막상막하인 아나운서 김동건 형님(선배님이라 할까 했는데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형님으로 정했다. 아! 우리네 존칭의 편치않음이여!)과 함께 김동길 김동건 조영남 3인 TV 토크쇼 ‘낭만논객’을 했던 적이 있다. 한참 전 1985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6년 전 김동길 박사님이 당시 정치계에서 잘 나가던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을 향해 "3인은 낚시나 가라" 했으니 그 여파가 어떠했겠는가! 그래서 김 박사님은 미리 계획된 미국 서부지역 전도 집회에 참석한다고 미국 LA에 오셨던 건데 사람들은 3김은 낚시를 보내놓고 정작 본인은 미국에 몸을 숨겼다고 수군거렸다. 팔로알토의 영숙이 누님네 집에서 김 박사님과 함께 숙식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아침 김 박사님이 나한테 "어이 조 군! 우리 총장님 전화 좀 받아봐" 하시는 거다.

    2021.07.31 00:20

  • 말러 교향곡에 심취한 고르바초프, 우아하고 친절

    말러 교향곡에 심취한 고르바초프, 우아하고 친절

    "그럼 저 사람들은 누구인가?" 내 방 벽에 걸려 있는 사진 틀 속에 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다. 고르비와 찍은 사진 가장 자랑스러워 내 방 왼쪽 벽에는 17점의 작은 콜라주 작품들이 걸려 있고 TV가 있는 앞면에는 26점의 사진 틀이 걸려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왜 그렇게 오랫동안 꼭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었을까 궁금해하면서 내 방에 걸려 있는 내 방의 벽화(사진들)를 이미 소개한 것들도 있지만 맥없이 보여 드리려는 참이다.

    2021.08.07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