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뮌머리' 윤증, 뒷머리 끌어와 상투 틀어…5300년 전 알프스 미라 '외치'도 남성형 탈모 진행

    조선시대 '뮌머리' 윤증, 뒷머리 끌어와 상투 틀어…5300년 전 알프스 미라 '외치'도 남성형 탈모 진행

     ━  탈모인 1000만, 겨울이 더 시린 사람들   ‘여덟 시 통근 길에 대머리 총각/오늘도 만나려나 떨리는 마음/시원한 대머리에 나이가 들어/행여나 장가갔나 근심하였죠 ….’   가수 김상희가 1967년 내놓은 노래 ‘대머리 총각’ 일부다. 낭랑한 음색으로 부른 이 노래에 대해 김씨는 “당시 우울한 시기를 벗어나려는 사회상을 반영했다”고 훗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국내 한 조사에 따르면 ‘탈모 때문에 받는 최대 스트레스가 무엇이냐’는 질문(복수 응답)을 했더니, ‘조롱·연민·비웃음 등 남들의 시선(277명)’이라는 응답이 1위였다. 이어 ‘자신감·자존감 저하 등 심리적 위축(206명)’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외모(44명)’ 순이었다. 탈모로 시원하게 벗어진 머리로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노랫말 속 그 총각은, 정말로 우울했을지도 모른다.   탈모는 동서고금,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고민의 대상이었다.   명재 윤증 초상화. 뒷머리를 끌어와 상투를 튼 것으로 보인다. [중앙포토]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록에서 확인 가능한 탈모 치료의 역사는 기원전 1550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의 의학 문서인 ‘에베르스 파피루스’에는 탈모증 치료법도 있다. 하마·악어·수고양이 등의 지방을 섞어 머리에 바르라는 것. 현재 피나스테라이드·두타스테라이드를 이용한 탈모약의 원조쯤 되겠다.   기원전 400년 무렵 히포크라테스는 탈모증을 치료하기 위해 겨자무, 비둘기 배설물, 고추 등의 재료를 섞어 약을 만들었다.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탈모를 가리려고 월계관을 썼다고 한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연인 카이사르를 위해 불에 태운 생쥐, 곰의 기름, 사슴의 골수 등을 탈모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곰의 기름을 탈모약으로 쓴 건 『동의보감(1610)』에도 나온다. ‘머리털이 노랗게 시들어갈 때는 곰의 기름을 발라주고 빠질 때는 곰의 골수로 기름을 내어 발라준다’고 적혀 있다.   관련기사 7단계 탈모 약·이식 병행, 5단계 회복하기도…샴푸 믿다간 돌이킬 수 없게 될 것 탈모 치료 지원, 서울은 논의 보류하고 대구는 조례 실행 고민 이보다 앞서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1168~1241)가 자신의 탈모를 한탄했다. 그는 『동국이상국집』 제18권 ‘대머리를 자조함(頭童自嘲)’에 ‘털이 빠져 머리 홀랑 벗어지니/꼭 나무 없는 민둥산이라/모자를 벗어도 부끄럽지 않지만/빗질할 생각은 벌써 없어졌네’라고 남겼다. 그런데, 이규보는 ‘민둥산’을 한자 ‘禿山(독산)’으로 적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대머리’는 19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나 현재까지 이어진다. ‘대’의 의미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머리’와 같은 뜻인 ‘민머리’의 17세 표현이 ‘믠머리’(禿子)와 ‘고되(ㄷ+아래아+ㅣ)머리(禿頭)’인 것으로 보건대, ‘대머리’는 ‘고되(ㄷ+아래아+)머리’에서 변화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1991년 발견된 미이라 ‘외치.’ 최근 과학자들은 5300년 된 ‘외치’가 안드로겐 탈모를 겪었다고 밝혀냈다. [중앙포토] 그 17세기에 살았던 명재 윤증(1629~1714)도 ‘뮌머리’였다. 그의 초상화를 보면 당시 탈모인이 상투를 틀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알 수 있다. 탕건을 쓴 부위로 탈모가 보이는데, 뒷머리에 남은 머리카락을 모아 상투를 튼 것으로 보인다. 영조(1694~1776)도 탈모였다. 그런데 73세에 머리가 나자, 뛸 듯이 기뻐했다고 조선왕조실록이 전한다.   ‘대머리’를 소재로 한 책도 꽤 있다. 『아홉살 대머리』는 학업 스트레스로 대머리가 될 위기에 놓인 소년 경수를  그린 동화다. 스즈키 다쿠야의 『아직은 대머리가 될 수 없다』는 탈모에서 벗어나려는 자신의 역경을 담았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탈모인은? 5300여 년 된 미이라 ‘외치(Ötzi)’는 1991년 알프스에서 발견됐는데, 최신 유전자기법을 동원한 과학자들은 지난 8월 “외치는 생전 남성형 탈모가 진행 중이었다” 밝혔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2023.12.16 00:44

  • 일회용품 감축 풍선효과, 대체재 늘어 쓰레기만 더 쌓여

    일회용품 감축 풍선효과, 대체재 늘어 쓰레기만 더 쌓여

     ━  오락가락 일회용품 규제책   일회용품 규제 시행과 번복을 반복하는 동안 일회용품 소비량은 11년 새 2.6배 늘었다. [뉴스1] 비닐봉지 발명가의 의도는 완벽히 빗나갔다. 1인당 연간 533장 사용하고, 25분 내로 버려지는 비닐봉지는 사실 환경보호를 위한 발명품이었다. 스웨덴 공학자 스텐 구스타프 툴린은 오래 가는 봉지를 오래 쓰라고 만들었다.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 봉투는 금방 찢어지고 많이 버려져 산림파괴에 주범이 된다 생각했다. 그런 종이봉투 대체재였던 비닐봉지가 지금은 폐기량이 종이봉투를 넘어서면서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전락했다. 종이든 비닐이든 소비부터 줄여야 했는데 이를 망각한 결과는 뒤바뀐 결과를 낳았다.   ‘일회용품 규제 완화’ 한 달째다. 13일 찾은 중구의 A카페 카운터엔 종이 빨대와 플라스틱 빨대를 나란히 비치해뒀다. 매장 직원 윤기영(가명·29)씨는 “지금은 (종이빨대) 추가 발주는 안 하고 재고를 소진하고 있다”며 “더러워진 종이빨대는 재활용도 잘 안 되고 딱히 환경에 도움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근 B카페엔 플라스틱 빨대만 있었다. 직원 이규언(23)씨는 “계도기간에도 딱히 종이빨대를 안 썼다”며 “플라스틱 빨대를 필요할 때만 드리는 게 훨씬 덜 쓰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간 일회용품 규제가 근본 목적을 잊은 채 시행돼 왔단 얘기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버려지는 일회용품 총량을 줄이는 게 목적인데, 특정 품목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한 건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치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바다거북이를 발견하자 ‘빨대 사용을 줄이자’고 한 것과 같다. 정작 빨대는 바다쓰레기의 0.03%에 불과하다. 되레 46%는 폐그물망인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근본적인 고민이 없다보니 본말이 전도되기 쉽다는 얘기다. 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총량 줄이기 목표치를 두고 정확한 통계로 규제의 효과를 입증해야 하는데, 근본 질문을 잊다보니 정책이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난 20년간 일회용품 규제책은 오락가락 하기를 반복했다. 2003년 패스트푸드점에서 시작된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5년 뒤 폐지됐다. 2018년 카페 등 식품접객업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금지 규제가 시작됐지만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불가피하게 지자체별 자율 하에 한시 허용했다. 지난해엔 다시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등 규제 품목이 추가됐으나 지난 11월 계도기간은 무기한 연장됐다. 종이컵 사용 규제는 폐지됐다. 그 사이 일회용품 소비, 그중 플라스틱 소비량은 매년 늘었다. 시장에 ‘일회용품 감축’이란 시그널이 닿지 못한 셈이다. 2017년 전체 플라스틱 소비량은 798만t에서 2021년 1193만t으로 1.5배 증가했다. 11년 전인 2010년과 비교해도 2.5배 증가했다. 그중 가정, 일상생활 속 생활계 폐플라스틱은 11년 새 177만t에서 468만t으로 2.6배 늘면서 가장 많이 증가했다.   잘못된 시그널 탓에 대체재 소비도 늘어난다. 홍수열 소장은 “대체재를 찾고 사후처리 고민도 없다보니, 쓰레기 양만 늘어나는 규제의 풍선효과만 나타났다”며 “정말 일회용품 소비를 줄이려 했다면 대체재 소비도 함께 줄이는 대안을 고민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다윤(28)씨는 “텀블러를 3개씩 돌려쓰고 있는데, 이외에도 집에 시즌별로 나오는 리유저블컵이나 사은품, 선물받은 것까지 합치면 새것만 5개는 된다”고 말했다. 대체재도 환경보호 효과를 거두려면 애초에 사용하지 않거나, 오래 사용해야 효과가 있다. 영국 환경청에 따르면 종이봉투는 비닐봉지보다 3번은 더 사용해야 환경에 도움이 된다. 이외에 에코백은 7100회를, 텀블러는 최소 220회는 사용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일회용품의 ‘생산-소비-폐기’ 전과정이 잘 돌아가는지 재검토 없이 무작정 만든 규제는 헛바퀴를 돌 가능성이 크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가령 플라스틱만 해도 분리수거부터 점검하고, 불필요한 플라스틱 과다생산을 제한하는 등 관리 시스템만 제대로 정립해도 총량 관리가 가능한데, 규제부터 만들어 혼란만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이상훈 계명대 환경학부 교수는 “타국 대비 자영업, 서비스업 종사자가 많은 상황에서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여러 업종, 상품 중 일회용 비닐, 빨대 등만 집중 규제하는 건 정책적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일회용품의 생산~폐기 전과정상 환경영향 정도를 평가해 업체, 소비자, 시민이 납득할만한 규제 품목을 정해야 일관적으로 환경정책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실제 폐플라스틱의 국내 실질 재활용률은 20%대에 그친다. 통상 폐플라스틱은 재활용, 소각, 매립 방식으로 처리된다. 이 과정 중 소각해 물질을 변화시켜 에너지를 회수하는 걸 제외하고, 물질 그대로 재활용한 비율은 27%에 그친다. 폐기처리 기술 개발도 더디다.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별 연구개발 건수를 보면 선별 등 물리적 재활용 기술은 162건인 데 반해 화학적 기술은 3건(1.4%)이다.   규제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대체로 공감한다. 장용철 교수는 “일종의 일회용품 소비를 줄여가자는 시그널이란 측면에서 필요한 규제를 초지일관 이어가야 한다”며 “정책에 신뢰도가 있어야 생산-소비-폐기 전 단계의 당사자들이 기술투자 등 믿고 대비할 수 있고, 그게 순환경제를 만드는 추진력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중요한 건 근본 목적, 방향성이다.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원은 “환경 규제는 늘 총량 줄이기를 선행과제로 둬야 하고, 소비 단계에서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보다 일회용품 전생애주기 단위로 총량을 줄여가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2023.12.16 00:38

  •  “내년 미 금리 내려도…한국경제 회복 멀어”

    “내년 미 금리 내려도…한국경제 회복 멀어”

     ━  2024 경제 전망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국내 경제 관련 학계, 국책·민간 연구기관, 금융시장 전문가 등 경제 전문가 10명 중 9명은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를 ‘정점’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절반 가량(44.7%)은 내년 3분기부터 미국이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본지가 경제 전문가 41명을 대상으로 이번 주 긴급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11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상, 현재 금리는 5.25~5.5%에 이른다. 한국도 2021년 8월부터 10차례 금리를 올려 3.5%다. 경제 전문가 대부분은 이 같은 긴축시계가 멈췄다고 보는 것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내년 4분기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정부는 금리 인하 압박 속에 경기 부양 정책 추진에 집중할 공산이 크다”고 진단했다.   연준의 ‘피봇’(정책 전환)이 머지않았다는 것으로, 전문가 44.7%는 내년 3분기 연준이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보다 빠른 2분기라는 응답도 28.9%로 4분기(21.1%)나 1분기(2.6%)보다 많았다. 최광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실업률 등 고용 지표 추이로 봤을 때 내년 3분기 기준금리 인하가 유력하다”고 분석했다.   관련기사 “인플레 압력에 중국 침체 계속, 글로벌 경기 제자리 걸음” 초저금리 복귀 힘들어, 중물가·중금리·중성장 시대 온다 금리 내릴 징후에 채권시장 들썩, 미 국채 ETF에 투자금 몰려 해외 기관이나 연준 인사의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의 금융지주 바클레이즈와 글로벌 금융그룹 ING는 최근 연준이 내년 2분기부터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 준 내에서도 매파(긴축 선호)로 꼽히는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도 최근 “인플레이션 진정세가 3~5개월 계속되면 금리를 내리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물가상승률 추세를 고려하면 내년 상반기 정도가 된다.   세계경제를 짓누르던 긴축시계가 멈췄지만, 그렇다고 경기가 확 살아날 것 같지는 않다. 전문가 51.2%는 내년 세계경제 상황에 대해 ‘올해보다 조금 반등’이라고 답했다. ‘조금 하강’이라는 응답도 34.2%에 달했고,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본 전문가도 14.6%였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금리 자체는 정점이지만 인하를 시작한다고 해도 내년까진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는 것으로 기업 투자와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경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경제 지표는 다소 개선되겠지만 체감 경기는 힘든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금리 인하가 곧 과거 0%대 금리로의 회귀를 의미하진 않는다”며 “전쟁이나 공급망 리스크가 해결될 때까지 ‘중물가-중금리’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창균·오유진 기자 smilee@joongang.co.kr

    2023.12.09 01:19

  • “인플레 압력에 중국 침체 계속, 글로벌 경기 제자리 걸음”

    “인플레 압력에 중국 침체 계속, 글로벌 경기 제자리 걸음”

     ━  [2024 경제 전망] 경제 전문가 41명 설문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에 따른 고금리 환경, 중국의 두드러진 경기 침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과 하마스까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전쟁…. 올해 글로벌 경제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4%로 제시했다. 연초 정부의 ‘상저하고’(상반기엔 저조했던 경기가 하반기로 갈수록 회복세를 나타낸다는 것) 전망이 무색한 수치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내년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1%로 이보다 높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이 각각 제시한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인 2.7%, 2.9%에 못 미친다.   전문가들은 내년 경제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중앙SUNDAY는 이번 주 주요 대학교 경제·경영학 전공 교수, 증권사 임원, 기타 국책·민간 연구기관 등의 전문가 4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 중 가장 많은 51.2%는 내년 국내·외 경제가 올해보다 ‘조금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가 그만큼 어려웠으며 내년엔 올해보다는 상황이 나아진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두드러지는 호황 등 극적인 반등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34.2%는 올해보다 ‘조금 하강할 것’으로, 14.6%는 올해와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예측했다. ‘호황’ 또는 ‘깊은 침체’ 등 극적인 상황을 예상한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다.   극적 상황 예측한 전문가 1명도 없어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경제에 가장 큰 위협 요소를 ‘인플레이션과 미국 등 각국의 통화 긴축’(63.4%), ‘중국의 경기 침체’(56.1%), ‘공급망 재편’(34.1%), ‘전쟁의 장기화’(12.2%) 순으로 꼽았다(복수응답). 그럼에도 경기가 조금 반등할 것으로 내다본 전문가들은 지정학적 리스크의 완화 가능성을 제시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내년에 미국과 러시아의 대선이 있다”며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제적 대립이 화해 모드로 전환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임 교수는 “이에 따라 기존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의해 발생한 공급망 교란과 원자재 가격 급등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며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위한 재정 투입과 민간 투자도 증가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내년 미 금리 내려도…한국경제 회복 멀어” 초저금리 복귀 힘들어, 중물가·중금리·중성장 시대 온다 금리 내릴 징후에 채권시장 들썩, 미 국채 ETF에 투자금 몰려 각국의 통화 긴축 완화 전망도 이 같은 조심스러운 낙관론에 힘을 실어준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등 주요국이 내년 상반기 중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통화 긴축에 집중하다가 상반기 말부터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긍정적으로 분석된다(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11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7.8% 증가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 등에 힘입어 대(對)중국 수출이 -0.2%로 전월(-9.6%)보다 개선된 게 컸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한국이 글로벌 수요 정상화와 인공지능(AI) 관련 반도체 특수, 공급망 다변화에 힘입어 내년 9~10%대의 명목 수출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반면 신중론을 제기하는 응답자도 적지 않았다. 내년 상황을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전망한 어윤종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인플레이션이 국내·외에서 진정되고 있지만 각국 중앙은행은 목표치에 도달할 것이라는 확신을 한 이후에야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며 “이 때문에 내년엔 민간 소비가 크게 증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6월 9.1%로 정점을 찍었던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올해 들어 1월 6.4%, 5월 4%, 10월 3.2%(이상 전년 동기 대비) 등으로 안정됐지만 아직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목표치인 2%엔 못 미치고 있다.   경기가 올해보다 조금 하강할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경기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을 이유로 꼽았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경제의 소비 중심 성장이 눈에 띄게 둔화 중”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국에선 소비의 원천인 가계의 실질가처분소득이 2020년 이후 감소세다.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상황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상의 효과도 본격적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과거 통계로 볼 때 미국 가계는 기준금리 인상 뒤 12~20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를 가장 많이 줄였다.”   “수출 재정비·신산업 진흥 정책 시급”   박광기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장은 “중국의 경우 내년 수출이 반등해 경제성장률이 다소 오르겠지만 글로벌 전체 성장을 이끌기엔 역부족”이라며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글로벌 수요 자체가 정체·포화 단계에 진입해 앞으로 신흥시장 잠재 수요를 개발하지 않는 한 글로벌 경제의 의미 있는 성장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도 “미국은 누적된 긴축 효과로 인한 경제성장률 하락, 중국은 부동산 등 건설 중심 성장의 한계 노출에 따른 구조적 하강이 예상된다”며 “한국은 순환적 경기 회복이 예상되지만 글로벌 전체로는 경기 둔화가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렇다면 미국은 언제 CPI 상승률 목표치 2%를 달성할 수 있을까. 가장 많은 31.7%의 응답자는 ‘2025년’을 예상했다. ‘2025년까지 달성하기 어렵다’는 응답도 17.1%나 됐다. 다만 ‘내년 4분기’(22%)와 ‘내년 3분기’(17%), ‘내년 2분기’(9.8%)를 예상한 응답자도 적지 않아 전체적으로는 48.9%가 내년 중을 예측했다. 내년 중 물가 안정이 어렵다는 의견과 가능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2025년을 예상한 박병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내년 4분기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정정책을 지속, (내년 중에는) 물가 하향이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관측했다. 반면 내년 4분기를 예상한 신승진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식품·에너지 물가와 주거비를 제외한 초근원(supercore) 인플레이션이 안정되고 있고 공급망 차질도 정상화되고 있다”며 “글로벌 제조업의 완만한 회복에 따른 상품 가격 하락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응답자들은 내년 물가를 자극할 만한 변수를 ‘공급망’(58.5%) ‘유가’(56.1%) ‘전쟁’(34.1%) ‘시중 유동성’(31.7%) 등 순으로 꼽았다(복수응답).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이대로 괜찮을까. 오는 14일 기준금리 발표를 앞둔 미국은 현재 5.50%(상단 기준), 한국은 3.50%로 사상 최대 수준인 2%포인트 격차를 유지 중이다. 일각에선 외화 유출 우려를 계속 제기 중이지만 한은은 가계부채 뇌관 등을 고려, 기준금리를 올해 1월 이후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응답자 대부분은 ‘조금 우려되나 큰 문제는 아니다’(73.2%)라고 진단했다. ‘전혀 우려되지 않는다’는 응답도 9.8%를 차지했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한국은 8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외순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한·미 기준금리 격차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다”고 전했다. 반면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국인 자금 유출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관건은 내년 상황에 대한 엇갈리는 전망 속에 정부가 어떻게 중심을 잡고 경제 정책을 짜임새 있게 펼치느냐다. 응답자들은 한국에 가장 시급한 경제 정책 과제를 ‘수출 재정비와 신산업 진흥’(31.7%)으로 꼽았다. 이어 ‘저출산 고령화 대책’(26.8%), ‘가계부채 문제 해소’(19.5%) 등 순이었다. 박광기 소장은 “한국은 50여 년간 수출 주도의 제조업으로 압축성장했지만 지금처럼 수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글로벌 환경에선 과잉 공급이 초래되면서 과다 경쟁이 발생하고, 이는 기업들의 생산성 저하와 부채 급증으로 이어진다”며 “전통산업에 묶여 있는 자본·노동력이 원활하게 첨단산업에 재배치될 수 있도록 정부가 물꼬를 터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라고 지적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고령화와 연금개혁의 절박함을 경고한 IMF 보고서의 상세 내용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저출산 고령화 대책 마련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 설문에 응답해 주신 분(가나다 순) 「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곽노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김상훈 KB증권 리서치센터장, 김성현 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 교수,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박광기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장, 박병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박춘원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서철수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신승진 삼성증권 연구원,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어윤종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이장균 BX연구소장,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임채운 서강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 정연우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 조원경 유니스트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최광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 」 이창균·오유진 기자 smilee@joongang.co.kr

    2023.12.09 01:05

  • 금리 내릴 징후에 채권시장 들썩, 미 국채 ETF에 투자금 몰려

    금리 내릴 징후에 채권시장 들썩, 미 국채 ETF에 투자금 몰려

     ━  2024 경제   지난달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전달 대비 0.626%p 급락했다. [연합뉴스] 기준금리 정점론이 확산하면서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 같은 채권시장으로 몰리는 등 금융 투자시장이 가장 먼저 반응하고 있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는 반대로 움직이는데, 현재 채권 금리가 최고점(채권 가격 저점)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하면 채권 가격이 올라(채권 금리 하락)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올해 11월까지 34조5941억원에 달하는 채권을 순매수했다. 이 중 지난달에만 약 3조4216억원의 채권을 순매수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조원 이상 늘어난 것으로, 월간 매수액으로는 4월 이후 최대다. 통상 연말에는 채권 투자가 줄어들었지만, 올해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주식형 펀드에서 채권형 펀드로의 자금 이동도 본격화하고 있다. 8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채권형 공모펀드 설정액은 최근 3개월간 2조5560억원 증가해 주식형(2조1980억원) 설정액을 3000억가량 앞질렀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해에는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이 예상되면서 12월 한 달간 순매수 규모가 2조원 밑으로 내려갔으나 금투세 도입이 유예된 만큼 연말 수요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내년 미 금리 내려도…한국경제 회복 멀어” “인플레 압력에 중국 침체 계속, 글로벌 경기 제자리 걸음” 초저금리 복귀 힘들어, 중물가·중금리·중성장 시대 온다 채권투자자들 자금이 쏠린 곳은 장기 국채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7일 기준 최근 3개월간 ETF 설정액(42조5839억원) 중 약 76%(32조9141억원)가 채권형 ETF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보다 미국 연준이 먼저 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기대에 20년 이상의 장기 미국 국채 ETF에 돈이 몰렸다. 최근 한 달간 순매수 1위를 기록한 채권형 ETF는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로 약 422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매수세는 국채와 회사채가 동시에 견인하고 있다. 올해 개인 투자자들의 채권 종류별 순매수 현황을 살펴보면 국채가 10조9078억원으로 가장 많다. 이어 회사채가 9조6766억원, 여전채(기타금융채) 8조216억원 순이다. 개별 종목에서도 초장기물인 장기 국채에 대한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채권은 잔존만기가 길수록 가격 변동이 크기 때문이다. 초장기물일수록 금리가 내려갈 때 더 많은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개인투자자 채권 순매수 상위 종목 1위는 30년 만기 국채(1414억원)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투자금을 적절히 분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본지 설문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1.7%가 내후년에야 물가상승률이 2% 이하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가가 안 내리면 금리 인하 시점이 뒤로 밀릴 수 있고, 채권 가격도 하락(채권 금리 상승)할 수 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물가를 고려하면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는 내년 상반기 내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금리 하락에 추격 매수로 대응하기보다는 비중을 줄이되 금리가 반등했을 때 재차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2023.12.09 01:02

  •  초저금리 복귀 힘들어, 중물가·중금리·중성장 시대 온다

    초저금리 복귀 힘들어, 중물가·중금리·중성장 시대 온다

     ━  2024 경제 전망    미국이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한다면 어느 정도 속도로, 어디까지 내릴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피봇’(정책 전환)이 다가오면서 금리 인하 속도와 저점이 어디인가 또한 전 세계의 관심사다. 이에 따라 글로벌 경제의 방향성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서는 대체로 인상 때 못지않은 속도로 금리가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 연준은 지난해 3월 베이비스텝(금리를 한 번에 0.25%포인트 인상)을 시작으로 1년 4개월 만에 5.25%포인트 인상해 현재 금리는 5.25~5.5%다.   관련기사 “내년 미 금리 내려도…한국경제 회복 멀어” “인플레 압력에 중국 침체 계속, 글로벌 경기 제자리 걸음” 금리 내릴 징후에 채권시장 들썩, 미 국채 ETF에 투자금 몰려 영국의 최대 금융지주 바클레이즈는 4일(현지시간) “연준이 내년에 금리를 1%포인트 인하하고, 2025년에도 1%포인트 추가 인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상승 때의 절반 정도 속도로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다. 미국 월가에서는 좀 더 하락 속도가 빠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트레이더들은 연준이 이르면 내년 3월부터 금리 인하를 시작해 연말까지 1.25%포인트를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예측대로라면 내년 말 금리는 4~4.25%가 된다.   월가, 내년말 금리 4~4.25% 예상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앞선 1일에는 글로벌 금융그룹 ING가 내년 2분기부터 0.25%포인트씩 6차례에 걸쳐 1.5%포인트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상승 때와 비슷한 속도다. ING는 2025년에도 연준이 4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해 그해 말에는 금리가 2.75~3%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연준의 그간 행보와도 맞아 떨어진다. 연준은 1960년대 말, 70년대 중반과 후반, 80년대 후반, 90년대 중반에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최근 1년처럼 급격히 금리를 인상한 뒤 인상 못지않은 속도로 금리를 내렸다.   베트남전 패배 후유증 등으로 물가가 무섭게 뛰던 70년대 말에는, 당시 연준 의장에 취임한 폴 볼커가 하루 만에 금리를 4%포인트 인상하기도 했는데, 이후 물가를 잡았다고 판단한 볼커와 연준은 인상과 비슷한 속도로 금리를 끌어내렸다. 연준은 이후에도 비슷한 행보를 했다. 조원경 유니스트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은 “물가 상승도 문제지만 이를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리면 부수적인 피해가 생기고, 이로 인한 경기 침체는 물가 상승보다 더 큰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볼커가 금리를 급격히 올리자 많은 기업이 고금리에 죽겠다고 아우성쳤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농민들이 워싱턴DC의 연준 건물로 몰려와 시위를 하기도 했다. 80년대 후반에는 급격한 금리 인상 탓에 미국의 지역 금융기관인 저축대부조합이 대거 자금경색 위기에 몰렸다. 미국 정부는 긴급 원조에 나섰고, 88년부터 91년까지 전국적으로 869개의 저축대부조합이 파산해 정부 자금지원을 받아야 했다. 90년대 중반에는 지금도 회자되는 ‘채권시장 대학살’(Bond Market Bloodbath)이 벌어졌다. 당시 3% 선이던 금리가 14개월 만에 6%까지 뛰면서 채권 가격이 폭락했고, 이로 인해 신흥국이 큰 피해를 입었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역시 이때 큰 손실을 입고 외부 자금을 수혈해야 했다. 최근의 상황도 비슷하다.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올해 들어 은행 파산이 잇따르고 있다. 3월 실리콘밸리 은행(SVB)을 시작으로 5월에는 2291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퍼스트 리버퍼블릭 은행이 문을 닫았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은행 파산이다. 지난달에는 시티즌스 은행이 문을 닫았다. 금융권의 연쇄 파산을 막고 경기 연착륙을 위해서는 내년부터는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게 금융시장의 판단이다. ING는 “인플레이션 완화와 고용시장 냉각, 소비지출 전망 악화로 현재 시장이 예상하는 것보다 금리를 더 많이 내려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생산량 원상 회복 가능성 희박   그렇다면 금리는 어디까지 내려갈까. 금융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직전으로 돌아가긴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고금리 여파로 커진 금융비용과 낮은 경제성장률,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로 인한 수출 위축 등으로 물가가 쉽게 잡히기 힘들 것이라는 진단에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금리 인하를 시작하게 되면 곳곳에서 숨통은 트이겠지만, 이것이 곧 과거 0%대 금리로의 회귀를 의미하진 않는다”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둔화했다고 해도 목표치 달성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전쟁이나 공급망 리스크가 해결될 때까지 중간 수준의 금리를 오래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실질 중립금리’ 상승으로 금리 인하가 시작되더라도 ‘중물가-중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코로나19 이전 실질 중립금리는 0.5% 수준이었으나 10월 블룸버그통신이 진행한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 현재 실질 중립금리는 1% 이상일 것이라는 응답이 50%에 달했다. 2%라는 의견도 35%나 됐다. 백석현 신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실질 중립금리가 1.5% 수준이라고 가정했을 때 목표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하려면 기준금리가 3.5% 이상은 돼야 한다”며 “향후 물가와 금리 모두 코로나19 이전으로의 복귀는 어렵다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금융시장에서는 ‘중물가-중금리’가 이어지던 90년대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본다. 한국은행도 지난 10월 “내년 이후 미국 경제는 5%대 고금리를 장기간 유지했던 1990년대 중반(1995년 3월~1998년 11월)과 유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 시기 미국은 경제성장률 하락과 고용시장 악화로 기준금리를 6%에서 4.75%로 인하했지만 98년까지도 물가상승률이 2%를 넘는 ‘중물가-중금리’가 3년간 이어졌다. 최인협 한국은행 통화정책국 정책총괄팀 과장은 “지금의 경제 흐름이 90년대 중후반과 가장 유사하다”며 “코로나19 이전의 초저금리 시대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저성장’까지 겹치면서 전 세계에서 ‘중물가-중금리-중성장’이라는 새로운 경제 기조가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0월 중기(5년) 경제성장률을 1990년 4월 이후 최저치인 3.1%로 제시한 바 있다. IMF는 “인구 고령화 등으로 생산성이 둔화하고 있다”며 “현재의 정책대로라면 글로벌 생산량이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황정일·오유진 기자 obidius@joongang.co.kr

    2023.12.09 01:02

  • 통행 막고 사고 유발하는 전동킥보드, 왜 무단 방치하나

    통행 막고 사고 유발하는 전동킥보드, 왜 무단 방치하나

    지난달 9일 서울 신촌역 인근 보행로에 킥보드가 방치돼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원동욱 기자 정영은(38)씨는 얼마 전 아이가 다쳐와 깜짝 놀랐다. 정씨는 “초등학생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가 골목에 쓰러져있는 공유 전동 킥보드에 걸려 넘어졌다더라”며 “크게 다친 것은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가끔 관리가 되지 않은 킥보드들을 보며 우려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전했다.   거리 곳곳에 방치되는 공유 전동 킥보드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시가 전동 킥보드 견인제도를 시행한 2021년 7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전동 킥보드 견인 건수는 12만9131건으로 집계됐다. 자치구별로는 마포구가 1만2581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송파(1만2234건), 강남(1만1092건), 성동(1만1065건), 영등포(1만205건) 순이었다. 현재 서울 시내에 배치된 공유 전동 킥보드는 약 4만3000대로 업체 5곳에서 운영 중이다.   지난 6일 신촌역, 강남역 등 서울 주요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살핀 결과 킥보드가 어지럽게 방치돼 보행자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마포구 주민 이정원(31)씨는 “지나가다보면 한두대도 아니고 몇대씩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어 통행에 굉장히 지장을 준다”며 “도시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소화전 앞까지 가리지 않아 긴급 상황 시 문제가 될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민 89.1%는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PM)를 무단 방치한 것을 본적이 있고, 이중 95.9%는 통행에 불편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시민들은 해결책으로 ‘PM 견인제도 강화(60.6%)’와 ‘업체의 관리능력 강화(45.4%)’를 꼽았다.   공유 전동 킥보드가 무분별하게 방치되는 이유는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형 이동장치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2020년 발의됐으나 국회 소관 상임위의 문턱도 넘지 못했다. 현재 공유 킥보드는 무단 방치를 해도 과태료가 없고 견인료만 부과한다. 킥보드를 견인할 경우 지자체는 경형 자동차에 준해 건당 4만원의 견인료와 30분당 700원의 보관료를 물린다. 올 9월까지 2년여 동안 51억6500만원을 부과했다. 대부분은 전동킥보드 업체가 부담하지만, 일부 업체는 약관을 변경해 마지막으로 탄 이용자가 내도록 한다. 업체가 담당 직원을 늘리는 대신 견인료를 내는 것으로 회수 책임을 지자체에 미루는 셈이다. 강남구에 거주하는 정경훈(26)씨는 “업체에 불법주차 민원을 넣어도 회수를 하지 않고 매번 같은 곳에서 불법 주차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에는 25개 자치구 중 7곳(광진·강서·마포·동대문·영등포·송파·중랑구)에 57명의 PM 안전관리 서포터즈가 배치돼 있다. 당장 길거리에 방치된 킥보드를 치우는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동구 주민 이원영(33)씨는 “이득을 보는 것은 업체인데 왜 자치구가 나서서 세금으로 뒤처리를 해주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는 “공유 킥보드는 처음 도입하는 신사업이라 선제적으로 주차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이제는 사업이 어느 정도 정착됐기에 업체에서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태료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경일 교통 전문 변호사는 “불법 주정차된 킥보드에 견인료 뿐 아니라 과태료를 추가로 부과하면 업체들이 경각심을 갖고 관리에 집중할 것”이라며 “관리 책임이 업체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방치할 경우 지자체나 경찰이 철저하게 단속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2023.12.09 00:39

  • 돈만 주면 자립? 물어볼 어른 없어 힘겨운 시설 퇴소자들

    돈만 주면 자립? 물어볼 어른 없어 힘겨운 시설 퇴소자들

     ━  자립준비청년 보호망 구멍   “의존할 줄도 모르니 ‘진짜 나 혼자구나’ 생각했다.”   아동육아시설에서 퇴소한 지 올해로 7년차가 된 박강빈(25)씨는 최근에서야 ‘자립’에 대한 정의를 마쳤다. 4살에 보육원에 입소해 빨간 보육원버스를 타고 등하교 하던 때 박씨는 “드라마 속 비운의 주인공마냥 ‘나는 혼자’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며 “그러다 선배, 선생님을 만나 부족한 건 도움을 받고, 할 수 있는 건 해내면서 점차 ‘자존’, ‘자립’의 상태가 돼 갔다”고 고백했다. 퇴소 후 박씨는 2019년부터 지급된 자립수당부터 주거지원 등 지원책의 변화를 몸소 체감해왔다. 그는 “지원규모는 커져 가지만, 자립의 의미는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홀로 서게 하기’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정선욱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립의 전제조건은 충분한 의존”이라며 “유년기 시절부터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해가는 경험이 필요한데, 지금의 정책은 그런 중간과정 없이 ‘보호종료’ 이후 지원에만 치우쳐 있다”고 말했다.   최근 보호종료 5년 이내 자립준비청년은 누적 1만명이 넘었다. 자립준비청년은 보육원·공동생활가정·위탁가정 등 시설에서 살다 독립한 청년으로, 보호종료 연령인 만 18세가 끝나면 독립해야 한다. 지난해 6월부터 24세까지 보호연장이 가능해졌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보호종료 5년 이내 자립준비청년 수는 지난해 1740명, 올해까지 누적 1만1403명이다.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지원은 늘고 있다. 먼저 자립준비청년에게 ‘종잣돈’과 같은 자립정착금은 대폭 상향됐다. 자립준비청년이 가장 많은 서울시는 지난해 1000만원에서 올해는 1500만원으로 늘렸다. 지자체별로 상이하던 자립수당 역시 상향 평준화됐다. 매달 지급되는 자립수당은 2019년 30만원에서 올해 40만원, 내년엔 50만원으로 인상될 예정이다. LH지원 등 주거지원 수혜비율도 늘었다. 2017년 퇴소 청년의 39%가 수혜를 받았다면 2021년 65%로 확대됐다.   문제는 자립준비청년은 아직 독립할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몰라도 물어볼 ‘어른’이나, 자립을 위한 사전 준비가 없다. 이소은(가명·20)씨는 만 18세가 되자 독립의 부푼 꿈을 안고 LH전세자금 지원을 받아 집을 구했지만, 나중에 전담기관 선생님을 통해 부동산없자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전자립지원전담기관 전담인력인 윤진 사례관리사는 “반전세로 계약해 월세를 3배 부풀려 받고는 웃는 얼굴로 깎아주는 거라 하는데, 사회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은 믿을 수 밖에 없다”며 “시세도 모르고, 물어볼 사람도 없다보니 발생한 일”이라고 말했다. 촘촘한 지원체계 없는 경제적 지원은 ‘돈만 주면 끝나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자립의 첫 걸음인 취업도 쉽지 않다. 자립준비청년은 일반청년과 달리 취업 유예기간을 두기 어렵기 때문에 빨리 취직이 가능한 임시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마저도 적응하지 못해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 실제 보호종료아동의 실업률은 16.3%로 일반청년보다 7.4%포인트 높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무조건 풀타임 취업이 아니라, 단계적 직업훈련을 통해 적응해가며 상승이직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원책의 빈틈 탓도 있다. 3개월 인턴십 제도인 ‘일 경험’은 지원 시 기초생활수급비가 끊기다보니 아예 시도조차 않는 경우도 있다.   가장 중요한 정서적 지지체계는 부실하다. 자립준비청년에게 10회 전액 무료로 우선지원하는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이 대표적이다. 윤진 사례관리사는 “올해 하반기에 지원을 받게 해주려고 신청하려 했지만 이미 상반기 예산이 소진돼 신청이 마감 됐다더라”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보호종료아동 2명 중 1명은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럴 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해 아예 ‘도움이 필요없다(22.2%)’거나, ‘이야기할 수 있는 멘토(15.8%)’를 꼽은 경우가 많았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연구관은 “동일한 상담 프로세스, 중복 콘텐트에 별 도움을 못 느끼거나 본인이 원할 때 받지 못한 결과”라며 “아직 그런 미스매치를 채울 만큼 밀도 높은 서비스가 준비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자립지원 전담인력 정원을 지난해 120명에서 올해 180명, 내년엔 23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자립지원 전담인력은 지원기관에 상주하는 인력이다. 하지만 전담인력 1인당 담당할 청년 수는 70.8명에 달한다. 그나마 있던 인력 중 40%가 퇴사했고, 평균 근속기간은 5개월에 못 미친다.   전문가들은 충분히 의존할 수 있도록 지지체계를 촘촘히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선욱 교수는 “자립의 의미부터 ‘충분히 의존하는 것’으로 먼저 바뀌어야 한다”며 “그런 충분한 의존 지지체계를 만들려면 지금처럼 보호종료 이후부터가 아니라 유년기부터 지원·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보호종료기간을 연장할까 고민하기보다 시설의 중도퇴소자들을 조기발견해 지원망의 구멍을 메우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허민숙 연구관은 “자립준비청년들은 아직도 비빌 언덕이 없다”며 “가정폭력 등 심적 트라우마가 커서 좌절 시 충격이 크기 때문에, 세컨드 찬스라고 하는 재도전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2023.12.09 00:29

  • 국민 74%가 게임하고 이용자 60% “자녀와 함께 즐겨”

    국민 74%가 게임하고 이용자 60% “자녀와 함께 즐겨”

     ━  [위상 높아진 e스포츠] 게임의 사회학   지난달 4일 부산에서 열린 ‘리그오브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경기를 보러온 관객들이 함께 응원하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 라이엇 게임즈] “다 같이 미드(게임 맵의 중앙)로 모여서 한타(게임의 승부를 좌우하는 수준의 대규모 교전)하시죠!”   리그오브레전드(LoL)가 시작됐고 이원재(30)씨가 4명의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서울에 있는 18세 동갑내기 친구 장영준·김명진군도, 천안에 있는 35세 김호연씨도, 청주에 있는 26세 정원재씨도 모두 이씨의 지시에 따라 미드로 모였다. 미드 ‘한타’. LOL을 하지 않는 사람이 들으면 무슨 말인지 감도 안 잡히는 단어들이지만 게임에 참여하는 5명의 팀원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게임의 맵 곳곳에서 긴박하게 전투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위치와 상황에 대한 빠르고 간결한 설명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시작한지 30여분이 지난 뒤, 격렬한 교전 끝에 이씨의 팀이 승리했다. 팀원들은 “다들 고생하셨습니다”라며 서로를 격려했다. 그들은 일면식도 없지만 이미 온라인 전장을 함께 누빈 ‘전우’다. 5명의 팀원이 각자 정해진 포지션에서 제 역할을 다 해줬기에 이룰 수 있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각자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른 5명이지만 LoL을 하는 40~50분의 시간동안은 온전히 게임 캐릭터와 전략에 몰두해 승리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나아간다. 진정한 메타버스다.   16~35세 5명이 한 팀 만들어 게임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꼭 승리라는 목표가 없어도 메타버스를 형성하는 게임도 있다. 2003년 4월 29일 출시 돼 오늘날까지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넥슨사의 ‘메이플 스토리’다. 출시 연도에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됐을 정도의 긴 시간이다. 출시 당시부터 비트맵 방식으로 제작된 귀여운 캐릭터와 아기자기한 아이템, 디테일한 게임 세팅으로 사랑을 받았던 메이플 스토리는 역할수행게임(RPG)를 선호하면서도 도트 케릭터에 대한 대한 향수가 남아있는 유저를 흡수했다. 회사원 이희선(33)씨는 “요즘도 퇴근하고 게임에 접속해 메이플 스토리에서 함께 플레이 하던 사람들을 만난다”며 “벌써 함께 길드(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게임을 즐기기 위해 만든 모임)를 시작한지 10년이 지났다”고 전했다. 이씨는 “매년 오프라인에서 모임도 하고 행사도 하다 보니 웬만한 친구들보다 길드원들과 가까워졌다”며 “결국 레벨업이나 게임 자체보다도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콘텐트를 공유할 수 있다는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작년 수출 11조, 유해물 취급받던 게임 이젠 미래 먹거리 ‘입롤’ 수차례 실현한 페이커, 인기는 조던·메시 급 메이플 스토리를 오래 플레이한 이들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만날정도로 그 친밀도가 깊다. 지난 4월 ‘메이플 스토리’ 서비스 20주년을 기념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진행한 ‘메이플 스토리 팬 페스트’ 행사의 입장권 6000여매는 3분이 채 되지 않아 전석 매진됐다. 이 행사에 참가한 권지열(35)씨는 “행사가 있을때마다 만나다보니 길드원들을 동네 친구들보다 자주 볼때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게임엔진 회사 ‘유니티’의 ‘멀티플레이어 보고서’에 따르면 멀티게임 유저가 게임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능으로 ‘친구들이 이미 플레이 중인 게임’과 ‘게임 안에서 친구와의 채팅 기능’이 각각 34%, 31%로 2, 3위를 차지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이미 수많은 유저가 어려서부터 즐겨왔던 메이플 스토리는 승패가 있는 게임이 아니기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친구와 함께 같은 콘텐트를 공유할 수 있다. 이씨의 말대로 친구와의 채팅 기능 역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길드를 만들고, 아이템을 교환하는 등 메이플 스토리가 가진 커뮤니티성은 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게임이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자 커뮤니티가 되고 있다”며 “예전처럼 중독성있게 게임을 플레이하기보다 이용자들과 즐기는 방식의 게임 유형이 늘어났다”고 전했다. 김 평론가는 또 “어려서부터 게임에 익숙했던 세대들이 지금의 기성세대가 됐다”며 “아이들과 본인이 했던 게임을 함께 즐기기도 하고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것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에는 어려서 부터 PC방에서 LoL을 접한 10대·20대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90년대말부터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등 온라인 게임에 익숙한 4050세대도 자녀들과 함께 행사장을 찾았다. 초등생 아이들과 현장을 방문한 이유성(46)씨는 “게임이라는 공통 콘텐트를 통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대회를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며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 어른들이 다들 모여서 고스톱을 치곤 했었는데 그게 온라인 게임으로 바뀐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의 ‘2022 게임이용자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59.3%가 ‘자녀와 함께 게임한다’고 응답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30년만 지나면 집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윷놀이 같은 전통놀이가 아니라 함께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모든 놀이가 그렇듯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적응하고 있고 그게 지금은 온라인 게임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은 꾸준히 그 형태와 종류를 바꿔가며 발전했다. 1990년대까지는 오락실 전성시대라 할만큼 길거리에 오락실이 넘쳐나던 시대였다. 2000년에 전국에 2만5341개 오락실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는 갤러그, 스트리트파이터 등의 콘솔, 아케이드 게임이 주를 이뤘다. 1989년 4월 출시된 닌텐도 게임보이는 1억대 이상 판매되면서 휴대용 게임기의 시대를 열었다. 다만 당시 게임과 오락실의 이미지는 ‘애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남성 위주 게임 콘텐트 다양화 필요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1998년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됐고 이는 대한민국 e스포츠와 청년문화의 뿌리가 된 시작점이었다. 세대를 넘어서 PC방을 놀이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했다. PC의 발전을 토대로 다른 ‘대규모 롤플레잉게임(MMORPG)’ 중심의 온라인게임이 급성장했다. 이 결과 1990년대 대표적인 1세대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가 PC 통신을 기반으로 MMORPG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만화가 김진의 ‘바람의 나라’를 원작으로 하는 ‘바람의 나라’는 고구려와 부여 등 한국적인 배경과 그래픽으로 국내에 온라인 게임 열풍을 일으켰고, 리니지는 국내 RPG 게임 최초로 공성전(성을 공격하는 전투)이라는 획기적인 콘텐트를 통해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단합을 이뤄냈다.   2000년대에는 ‘디아블로2’가 한국의 게이머들에게 강렬하게 다가오며 PC방을 점령했다. 또한 비슷한 시기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는 반복적인 사냥에 지쳐있는 RPG게이머들에게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바탕으로 퀘스트 위주의 레벨업 방식을 제공해 인기를 끌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LoL’, ‘배틀그라운드(배그)’ 등 다양한 게임의 성공이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게임은 ‘오락실’과 ‘애들’을 벗어나 ‘10대에서 50대까지 온 가족이 즐기는 여가 문화’로 발전했다. 콘진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의 74.4%가 게임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1488억달러였던 글로벌 게임시장 규모는 2022년 2031억 달러로 성장했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화, 드라마보다 게임의 산업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다”며 “페이커 등 유명 프로게이머들의 인기를 통해 게임이 양지화되고 국가 브랜드를 대표하는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런 흐름 속에서 게임중독과 사행성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김영호 을지대 중독재활학과 교수는 “게임사용 장애의 특징은 다른 약물등의 중독보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게 어렵다는 것”이라며 “이는 중독에 대한 치료시기를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게임에 몰입하다 보면 현실 세계에서 건강한 상호작용이 줄어들 수 있다”며 “이게 심해지면 이인증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고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위 학회장은 “초기 게임 진입에 너무 많은 돈을 투자하게 하거나, 확률형 아이템, P2E(게임 내 재화를 암호화폐를 통해 현금화할 수 있는 장르의 게임) 게임 등은 사행성을 지나치게 조장해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며 “과도한 사행성은 엄격하게 규제해야 게임 업계와 이용자들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전했다.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또한 “우리나라 게임 개발사들이 좋은 게임을 만들기보다 어떻게 하면 게임을 가지고 돈을 벌지에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젊은 세대들은 한국 게임을 떠나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e스포츠에 대한 인기나 선수들의 능력에 비해 국내 게임 개발 능력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위 학회장은 “e스포츠 강국이라고 평가 받는 한국이지만 두터운 선수층에 비해 LoL과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하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시스템, 선수, 문화 등 다방면에서 e스포츠 강국이 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청사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태진 교수는 “게임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남성들에게 조금 치우친 감이 있다”며 “문화가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 되면 새로운 소비자 유입이 어려워지고 이는 해당 문화가 쇠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2023.12.02 00:52

  • 작년 수출 11조, 유해물 취급받던 게임 이젠 미래 먹거리

    작년 수출 11조, 유해물 취급받던 게임 이젠 미래 먹거리

     ━  [위상 높아진 e스포츠] 게임의 경제학   게임 분야 구직자들이 지난달 26일 e스포츠단 T1의 서울 강남 e스포츠아카데미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뉴스1] ‘중독’ ‘폭력성의 원천’으로 지목되던 게임은 어느새 K-컬쳐를 이끄는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게임산업 매출액은 2021년 사상 최초로 20조원을 돌파, 지난해에는 21조1848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약 10%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K-컬쳐 열풍으로 음악, 영화, 방송 등의 콘텐트 수출액도 늘어나고 있지만 이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건 게임산업의 수출액이다.   지난해 게임산업의 수출액은 89억7338만 달러(약 11조원)로 전체 콘텐트 수출액(133억798만 달러) 중 67.4%에 달했다. 음악(7.2%), 방송(6.5%)의 10배에 달하는 규모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게임산업은 2013년 이후 꾸준히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효자 산업”이라며 “과거에는 중국 의존도가 높았지만 최근에는 북미, 유럽 등으로도 활발하게 진출하는 등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국민 74%가 게임하고 이용자 60% “자녀와 함께 즐겨” ‘입롤’ 수차례 실현한 페이커, 인기는 조던·메시 급 국내 게임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전후 개인용 컴퓨터(PC) 보급이 활성화되면서부터다. 친구·동료 등 여럿이 즐길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이 발달하면서 급속히 커지기 시작했다. 당시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 해외 게임 배급사에서 출시된 게임이 주를 이룬 가운데 넥슨의 ‘바람의 나라’ ‘메이플 스토리’, 엔씨소프트의 ‘리니지’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국내 게임산업은 폭발적 성장세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게임사 연 매출 10년 새 최고 10배 늘어   흔히 ‘3N’으로 불리는 대표 온라인 게임 3사(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의 연간 매출은 2012년 각각 1조5275억원, 7535억원, 2272억원 수준이었으나 10년이 지난 지난해 매출은 각각 2조5718억원, 3조3946억원, 2조6734억원으로 적게는 2배, 많게는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1일 기준 게임사 상위 5개사(넷마블·엔씨소프트·크래프톤·카카오게임즈·위메이드)의 시가총액은 약 40조원에 달한다. 게임산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개발자, 그래픽 디자이너, 사운드 엔지니어, 마케팅 전문가, 게임 스트리머, 리뷰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냈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게임은 한때 술, 마약, 도박과 함께 ‘4대 중독 물질’로 취급받는 등 오해도 받았지만 이제는 명실상부한 미래의 먹거리 산업”이라고 설명했다.   게임산업이 콘텐트 산업의 한 축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파생 산업도 만들어 내고 있다. 대표적인 게 PC방이다. 1994년 인터넷카페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 PC방은 2001년 약 2만3548개까지 늘어났다. PC방은 그러나 2010년대 이후 모바일 게임의 성장과 코로나19 당시 영업제한 업종 지정이 맞물리면서 다소 주춤하기도 했다. 임수택 한국인터넷PC협회장은 “한국 게임산업의 주춧돌 역할을 해온 PC방이 코로나19 위기로 심각하게 무너졌다”면서 “팬데믹 이후에도 야외 활동이 늘어나면서 PC방을 찾는 손님이 크게 늘진 못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약 2만개 수준이었던 PC방은 2010년대 이후 1만개 수준으로 매년 줄어들어 2021년에는 9265개로 감소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 활기가 돌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연간 PC방 개업 건수는 2019년 3438건에서 2020년 2757건, 2022년에는 2311건으로 매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올해 1~10월 개업 사업자는 2417건으로 지난해 개업 건수를 뛰어넘었다. 영업을 포기하고 사업자를 반납하는 단순 폐업 건수도 지난해 동기 대비 10%가량 줄었다. 떠났던 이용자들의 발걸음도 다시금 PC방으로 향하고 있다. PC방 게임 전문 리서치 서비스인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전국 PC방당 일평균 사용률은 2019년 23.76%에서 2020년 18.35%, 2021년 16.13%, 2022년 15.78%로 매년 낮아졌지만 올해 1~10월 기준 일평균 사용률은 19.41%로 반등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년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 1회 이상 PC방을 방문하는 게임 이용자의 월평균 PC방 이용횟수는 약 7.2회로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6.4회)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이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프로게이머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e스포츠 교육산업도 커지고 있다. e스포츠단 젠지(Gen.G)에서 운영하는 젠지글로벌아카데미는 올해 9월 기준 1만명 이상의 누적 수강생을 배출해냈다. 이 학원은 실제 선수들이 훈련하는 환경과 동일한 시설을 조성해 취미반, 취업반, 프로양성반으로 나눠 교육하고 있다. 젠지글로벌아카데미 관계자는 “최근 학원 수강 문의가 지난해 대비 50%가량 늘었다”며 “단순히 취미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물론 프로 선수나 관련 업계 취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학원을 주로 찾는다”고 전했다. 지난 월즈(Worlds) 우승팀인 티원(T1)이 운영하는 티원이스포츠아카데미의 4분기 수강 문의도 상반기보다 약 20~30% 늘어났다. 티원이스포츠아카데미 측은 “점심, 저녁을 제공해 실제 선수들과 동일한 훈련 일정을 제공하는 종일반과 취미, 온라인 수업반 모두 골고루 수강 문의가 늘었다”고 전했다.   주춤하던 컴퓨터 기기 판매도 게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다시 반등하는 모양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 세계 PC 출하량은 7060만대 수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 감소해 8분기 연속 하락했다. 하지만 가트너는 “윈도우 11 업그레이드로 PC 교체 수요가 늘어나면서 PC 시장이 올해 말부터 다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며 내년 PC 시장은 올해 대비 5%가량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특히 고사양 게임을 할 수 있는 게이밍 모니터 등 고가 제품을 출시하는 데 공을 들인다.   게임 시장 하반기 반등, 내년 본격 성장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올해 글로벌 게이밍용 모니터 출하량이 약 2080만대로 지난해(1980만대)보다 5%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월즈 우승팀 T1에 3년째 게이밍 모니터를 제공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올해 6월 출시한 게이밍 모니터 신제품(오디세이 OLED G9)은 예약판매 3000대를 돌파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기도 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한국·유럽리그 공식 모니터인 LG전자의 제품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PC시장이 가라앉고 있는 것과는 달리 게이밍 모니터 시장은 당분간 꾸준히 성장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게임산업은 당분간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잠시 주춤했지만 내년부터는 다시 성장 폭을 키워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달 들어 코스피에 상장된 주요 5대 게임사의 주가도 동시에 상승하면서 본격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모바일 게임 시장은 올해 하반기부터 반등이 나타났으며, 비게임 사업 철수와 인력 감축 등의 구조조정 후 점진적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동환·유승민 연구원은 “특히 글로벌 콘솔 게임 시장에서 차세대 디바이스인 PS5(플레이스테이션5) 보급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며 내년 성장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도 내년 다수의 콘솔 게임 출시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시장 확대에 따른 수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 교육·의료산업도 게임화 바람…미, ADHD 디지털 치료제 승인 「 단순 오락에서 출발한 게임은 이제 교육과 의료산업으로까지 확장됐다. 교육이나 스포츠 등 게임 외 영역에 게임적 요소를 더해 사용자의 참여와 흥미를 끌어내는 이른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게임화)이 그 예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게이미피케이션 시장 규모는 약 134억 달러(약 17조원)로, 2030년까지 약 968억 달러(약 126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이미피케이션의 주요 사례 중 하나는 외국어 학습 프로그램인 듀오링고다. 학습자가 단계별로 주어진 미션에 도전하는 게임 방식을 접목해 학습 의욕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 매일 목표를 달성하면 포인트 보상을 받고, 포인트로 자신의 캐릭터를 꾸밀 수 있게 하는 등의 흥미 요소를 더해 학습 습관을 들이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26주간 매주 일정 금액을 납입하면  리워드를 지급하는 카카오뱅크의 26주 적금 또한 대표적인 게이미피케이션 상품이다. 납입 시마다 카카오 캐릭터로 미션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고, 만기 시 추가 금리와 카카오 관련 상품을 보상으로 얻을 수 있어 참여자들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비대면 의료행위가 활발해진 코로나19 이후에는 게임이 디지털 치료제로 인정받으면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로 활용되는 게임은 주로 아동·청소년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노인 알츠하이머 등 만성질환 분야에서 활용된다. 202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세계 최초의 게임형 디지털 치료제로 승인한 모바일 게임 ‘인데버RX’가 대표적이다.   일반 레이싱 게임과 유사한 인데버RX는 게임이 유발하는 고도의 집중 상태를 ADHD 치료에 접목해 ADHD 증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이 같은 디지털 치료제 시장 규모가 전 세계 기준 2021년 34억 달러(약 4조원)에서 2026년에는 131억 달러(약 17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2023.12.02 00:50

  • ‘입롤’ 수차례 실현한 페이커, 인기는 조던·메시 급

    ‘입롤’ 수차례 실현한 페이커, 인기는 조던·메시 급

     ━  [위상 높아진 e스포츠] 레전드가 된 스타들   이상혁, 임요환, 장재호(왼쪽부터 순서대로) 지난 9월 22일 중국 항저우 공항에는 수백명의 팬들이 몰렸다. e스포츠 리그오브레전드(LoL) 종목에 참가하기 위해 입국한 페이커(Faker) 이상혁(27) 선수를 보기 위해서다. 아시안게임에서 대부분의 종목 입장권 가격이 50위안(약 9000원)부터 시작하지만 e스포츠는 400위안(7만000원)에 달한다. 비싼 가격에도 구하려는 수요가 많아 아시안게임 종목 중 유일하게 복권 추첨 방식으로 입장권을 판매했다. 중국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지난달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 티켓은 가장 비싼 24만5000원짜리가 온라인에서 300만원에 거래됐고, 경기를 생중계한 CGV 티켓 역시 2만8000원짜리가 8만8000원에 팔렸다.   페이커는 2013년 16세의 나이로 데뷔해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다. T1 소속으로만 활동하며 롤드컵을 4회, 이에 버금가는 국제대회인 MSI는 2회 우승했으며 한국리그(LCK)는 10번 제패했다. 최전성기인 2010년대 초반에는 “e스포츠계의 마이클 조던(당시 라이엇 게임즈 부사장이던 더스틴 벡)”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구미의 선수와 팬들은 ‘신(God)’이나 ‘메시’라고 불렀다. 2013년에서 14년까지 한국리그와 롤드컵, MSI를 제패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당시 별명은 ‘불사 대마왕(The Unkillable Demon King)’. 상대 공격은 피하고 내 공격은 맞추면 된다는 ‘입롤(입으로만 하는 실현 가능성 낮은 플레이)’을 실제 게임에서 여러차례 보여준 결과다.   관련기사 국민 74%가 게임하고 이용자 60% “자녀와 함께 즐겨” 작년 수출 11조, 유해물 취급받던 게임 이젠 미래 먹거리 이후 ‘예전만 못하다’는 평도 나왔으나 최근 롤드컵 우승과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여전히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국내 프로선수 중 최고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과의 계약에 따라 공식 언급은 없지만 국내외에서 50억~70억원 수준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021년 T1과의 재계약을 앞두고 중국리그(LPL)에서 2000만달러(당시 환율로 240억원)를 제시했지만 “한국리그에 남고 싶다”며 거절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현역 프로게이머 가운데 페이커와 비견되는 선수가 역대 최고, 최강의 워크래프트3 플레이어로 불리는 ‘문(Moon)’ 장재호(37)다. 최전성기로 꼽히는 2003~2006년에는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외계인’, ‘안드로 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주요 대회가 열릴때마다 그의 우승은 이미 정해진 것으로 치고, 상대가 한 판이라도 이길 수 있을지로 내기하는 수준이었다. 특히 중국에서 인기가 높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중국의 워3 프로게이머 리샤오펑(Sky)과 함께 성화봉송에 참여했다. 2015년 제대 후에는 예전만큼 확실하게 상대를 압도하지는 못한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2020년 월드사이버게임즈(WCG) 단체전 우승, 개인전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워3의 살아있는 전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선수들이 서슴없이 자신의 롤 모델로 꼽는 선수가 스타크래프트의 ‘황제(Emperor)’ 임요환(43)이다. 약소 종족이던 테란을 골라 섬세한 컨트롤과 참신한 전략으로 승리를 일궜다. 2000년대 초반 마린(해병)과 탱크를 실은 그의 드랍십(수송선)이 떠오르면 그의 팬은 물론 상대 선수의 팬들까지 상반된 마음으로 비명을 지르기 일쑤였다. 국내외 대회에서 수십차례 우승하며 ‘스타크래프트는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명성을 쌓았지만 그의 가장 큰 업적은 e스포츠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킨 점이다. 대회에서 상금을 받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임요환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게이머들이 연봉을 받고 기업의 후원을 받는 게임단에 들어가 정기적인 경기를 치르는 방식의 프로 리그 창설을 이끌어낸 데는 그의 지분이 컸다. SK텔레콤이 2003년 임요환을 끌어들여 T1 게임단을 창단할 당시 그룹 고위 관계자가 “농구로 치면 허재 정도 되느냐”고 물었다가 실무자가 “마이클 조던 급입니다”라고 답하자 바로 결제서류에 사인했다는 일화가 있다. 전성기 시절 그의 팬클럽 회원은 60만명으로 동방신기(90만명)에 이어 2위였다. T1 창단에 자극받은 당시 KTF 매직엔스는 박정석, 홍진호, 강민, 김정민, 변길섭을 영입해 ‘反 임요환’ 구도를 만들었고, 프로리그 활성화로 이어졌다.   이들은 게임만 잘했기 때문에 전설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프로게이머는 게임 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뿌리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임요환)”, “크게 성공하면 자기관리가 무너지는 선수들이 허다하지만 주변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끊임없이 자기관리를 하는 사람을 딱 두명 만나봤다. 임요환과 페이커다(최연성)”, “연습경기를 신청해놓고 자다가 상대가 나타나면 일어나서 게임하고, 끝나면  다시 경기 신청을 누르고 잔다. 무서웠다(동료 게이머 박준)”는 말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들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뛰어난 실력 만큼이나 구설 수 하나 없는 자기관리도 공통점이다. 누구보다도 노력하는 모습과 자기관리를 통해 ‘게임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들은 살아있는 전설로 손색이 없다. 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2023.12.02 00:47

  • "페이커 보자" 해외 관광객 5만명, 롤드컵 경제효과 2000억

    "페이커 보자" 해외 관광객 5만명, 롤드컵 경제효과 2000억

     ━  서울 ‘롤드컵’ 역대급 흥행   지난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3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서 한국 T1이 중국 웨이보에 승리했다. [뉴시스] “페이커에게 3대0으로 지더니 이번에는 손흥민에게 3대0으로 졌다.”   지난 21일 중국 선전 유니버시아드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2차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중국에 완승을 거두자 바이두와 왕이(넷이즈) 등 중국 포털사이트에는 이런 탄식이 잇따라 올라왔다. 지난 19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에서 우리나라의 SK텔레콤 게임단 T1이 중국 웨이보 게이밍을 격파한 것이 대표팀 축구 경기에서 진 것만큼이나 충격을 줬다는 얘기다. 롤드컵은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 개발사인 라이엇게임즈가 직접 개최하는 e스포츠 대회의 별명이다. 정식 명칭은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으로 매년 각국 리그를 제패한 최강의 팀들이 모여 승부를 겨룬다. 정식 약칭은 ‘월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e스포츠의 월드컵이나 다름없다는 의미에서 롤드컵이란 명칭이 널리 쓰인다. 롤드컵이 한국에서 열린 것은 2018년 이후 5년만, 서울에서 결승전이 열린 것은 9년만이다.   한국팀 T1 7년만에 승리, 페이커 4회 우승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는 T1 선수들. [사진 라이엇 게임즈] 롤드컵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거리 응원전이다. 결승전 당일 날씨는 영하 0.3도까지 떨어졌지만, 1만5000명이 넘는 관중들이 두꺼운 패딩과 핫팩, 목도리로 무장한 채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광장에 설치된 4개의 대형 스크린 앞에 모인 사람들은 추위도 잊고 T1에 열렬한 성원을 보냈다. 충북 청주에서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회사원 이태원(31)씨는 “월드컵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거리 응원까지 나왔다”며 “실제로 축구보다 더 많이,  쉽게 접하는 취미다보니 훨씬 더 열렬하게 응원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런 열기는 경기장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도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1만8000석의 입장권은 예매 10분 만에 매진됐다.   인기 걸그룹 뉴진스가 부른 올해 롤드컵 주제곡 ‘GODS’와 그룹 엑소(EXO) 멤버인 백현이 참여한 가상 아티스트 하트스틸(HEARTSTEEL)의 공연으로 막을 올린 결승전은 세계적인 스타 페이커(이상혁·27)를 앞세운 T1이 웨이보를 물리치고 7년 만에 정상에 오르면서 절정에 달했다. 어려서부터 PC방에서 LoL을 접한 10대·20대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90년대말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등으로 온라인 게임에 익숙한 4050세대들도 자녀들과 함께 서울 고척돔을 찾았다. 페이커·제우스·구마유시 등 LoL의 전설과도 같은 유명 프로 게이머를 직접 보기 위해 미국·중국을 비롯한 해외 팬들이 한국을 방문해 열기를 더했다. 라이엇게임즈와 업무 협약을 맺고 이번 롤드컵을 지원한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롤드컵을 즐기고자 한국을 찾은 누적 관광객은 5만 명에 달한다.   싱가포르에서 롤드컵을 보기 위해 방문했다는 칭(26)씨는 “페이커를 4년 전부터 너무 좋아해서 꼭 한번 직접 그가 플레이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며 “이번에도 결국 중요한 승부처에서 눈부신 활약을 해줬다”고 말했다. 칭씨의 말대로 페이커는 ‘신의 한 수’라고 불리는 판단으로 승리의 주역이 됐다. LoL은 다섯명의 선수가 팀을 이뤄 상대방 본진 깊숙이 있는 건물 ‘넥서스’를 파괴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탑·미들·바텀의 세 갈래로 나눠진 길을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때로는 1대1로, 때로는 5대5로 승부를 겨룬다. 길게는 한시간까지 경기가 이어지지만 이번 결승은 3세트까지 매 세트가 3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T1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중국 네티즌 “롤게임 지더니 축구도 져”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탑라이너 제우스(최우제·19), 미드라이너 페이커(이상혁·27), 정글러 오너(문현준·21), 원딜 구마유시(이민형·21), 서포터 케리아(류민석·21)로 이뤄진 T1은 e스포츠에서 축구의 레알 마드리드, 야구의 뉴욕 양키스에 비견되는 명문 구단이다. 이달 초 부산 동래구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이번 롤드컵 준준결승에서 중국 리닝게이밍(LNG)을, 준결승에서 중국 징동 인텔(JDG Intel)을 꺾고 결승에 올랐다. 롤드컵 4회, 한국 리그(LCK) 10회 우승으로 축구의 리오넬 메시에 비견할만한 ‘세최미(세계 최고 미드라이너)’라 불리는 페이커는 프로 게이머로는 나이가 들어 과거처럼 ‘신컨(신의 컨트롤)’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를 딛고 8강전과 4강전에서 잇따라 최고수훈선수(POS)로 뽑혔다. 결승전에서 웨이보가 페이커의 주요 챔프를 밴(선택하지 못하게 막는 것)하자 주력 챔프를 꺼내 든 제우스의 활약이 빛났다. 페이커가 ‘신컨’ 대신 ‘신판(신의 판단)’으로 ‘한타 싸움(선수들이 모두 모여 5대5로 겨루는 것)’의 포문을 열면 제우스가 ‘킬(상대방을 잡아내는 것)’을 쓸어담으며 승전보를 올렸다. T1은 7년만의 우승으로 44만5000달러(5억8000만원)의 상금을 받았고, 결승전 최우수선수(MVP)의 영광은 제우스에게 돌아갔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e스포츠의 첫 전성기를 열었던 ‘스타크래프트’ 이후 주춤하던 e스포츠는 롤드컵을 계기로 부흥기를 맞고 있다. 2011년 첫 대회의 총상금은 10만달러(약 1억3000만원)였으나 이후 한국과 중국 팀이 참여하면서 상금 규모가 100만달러(약 13억원)로 뛰었다. 올해 롤드컵 총상금은 222만달러(약 28억원)다. 이번 롤드컵은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다. 고척돔 티켓 판매만으로만 40억원의 수익을 창출했고 전 세계에서 롤드컵 결승전을 시청한 사람은 1억 명, 누적 접속자는 4억명에 달한다. 롤드컵 관람을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광화문 거리 응원을 위해 상경한 이들의 각종 소비도 주목할 만하다. 업계에 따르면 롤드컵 관련 기사에 노출된 서울의 도시 브랜드 제고 효과와 T1팀에 대한 홍보 효과 등 직간접적인 경제효과는 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롤드컵 공식 후원사인 코카콜라, 오포, 레드불 등 기업들도 성공적인 축제 행사 등으로 인한 부수적 광고 효과를 보게 됐다.   업계에서는 e스포츠가 K컬처의 한 분야가 될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T1 관계자는 “지난 12번의 국제 대회에서 국내 리그(LCK) 소속팀이 8번 우승을 차지했고, 중국 리그(LPL) 우승팀에서도 우리 선수가 주전으로 활약하는 등 우리나라는 ‘e스포츠의 종주국’ 다운 면모를 보인다”며 “스타크래프트의 임요환·홍진호, 워크래프트3의 장재호, LoL의 이상혁 등 ‘살아있는 전설’의 대를 이을 선수를 꾸준히 발굴하면 e스포츠를 K팝에 버금가는 문화 콘텐트로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흐름이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바뀌고 있다”며 “이번 롤드컵 흥행을 계기로 더욱 커질 e스포츠 산업에 맞춰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라이엇게임즈 CEO “한국 없었다면 e스포츠 자리잡지 못했을 것” 「 라이엇게임즈가 2009년 10월 출시한 리그오브레전드(LoL)는 10대에서 30대 남성들 사이에서 ‘국민 게임’으로 통한다. 2011년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지 약 3달 만에 시장 점유율 1위(게임트릭스 집계기준)에 올랐다.현재도 롤의 PC방 점유율은 39%대로 2,3위 게임(메이플스토리 11%, FIFA온라인4 10%)과 큰 격차를 보인다. 최근 라이엇게임즈의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한 딜런 자데자(사진)는 “한국이 없었다면 e스포츠가 하나의 문화와 현상으로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개최된 롤드컵이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 “광화문 광장 ‘팬 페스트’와 같은 다각적인 이벤트를 마련하고 K팝 그룹이 참여하는 주제곡을 내놓는 등 더 새롭고 흥미로운 콘텐트를 채우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수많은 플레이어와 e스포츠 팬은 물론, 큰 힘을 보태준 서울시와 부산시 등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롤이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데 비결은. “플레이어들과 깊게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항상 노력한다. 그것이 라이엇게임즈의 핵심 DNA다. 앞으로도 플레이어들에게 게임 안팎에서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미국 USC 출신의 게임광 마크 메릴과 브랜든 벡이 2006년 9월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창업한 라이엇게임즈는 워크래프트3의 유즈맵인 도타를 기반으로 한 팀 플레이 게임 LoL을 개발했다. 창립 초기부터 소규모 신생 게임 개발업체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투자에 나섰던 텐센트가 2015년 완전 인수했다. 창업자인 메릴과 벡은 게임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2017년 경영진에서 물러났다.   앞으로 목표는. “라이엇게임즈의 미션은 우리 플레이어들이 항상 더 만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게임을 중심으로 e스포츠와 음악,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콘텐트를 제공할 것이다. 이를 통해 라이엇게임즈를 세계 최고의 게임을 만드는 곳으로 이끄는 것이 목표다.” 」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2023.11.25 00:55

  • “괜찮은 일자리 없어” 15~29세 청년 41만명 그냥 쉰다

    “괜찮은 일자리 없어” 15~29세 청년 41만명 그냥 쉰다

     ━  니트족 우려되는 청년 급증    “쉬지만 쉬는 게 아니죠.”   민지영(가명·26)씨는 쉰 지 햇수로 2년차다. 대학 졸업 후 ‘진로 찾기’를 하고 있다. 민씨는 “정부지원금을 받아 컴퓨터 수업도 들어봤지만 취업까진 이어지지 못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소희(가명·29)씨는 간호대 전공을 마치고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몇 개월 전 그만뒀다. 3교대의 업무가 생각보다 힘들었고 원하던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간호전공 특성상 대개 졸업과 동시에 바로 취업하다보니 다른 진로를 알아볼 기회는 극히 드물다.   이들 같은 ‘쉬었음 청년’은 올해 41만명에 달한다. 15~29세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청년 중 지난 한 주간 ‘그냥 쉬었다’고 응답한 경우다. 평균 잡아 41만명의 청년이 그냥 쉬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39만명에서 5.1% 증가했다. 코로나 이후 3년 간 감소세를 보이다 올해 반등했다. 이들은 어떤 정규교육 과정에도 속하지 않고 직업훈련에도 참여하지 않는 상태의 미취업자 청년을 뜻하는 니트(NEET)족과도 개념이 다르다. 육아·가사를 한 경우는 제외되고, 구직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어 ‘구직 단념자’라고 할 수도 없다. 실업자 통계에 잡히지도 않아 그 실태가 피부에 잘 와 닿지도 않는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럼에도 ‘쉬었음 청년’ 증가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는 언제든 니트 상태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욱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 해도 이들이 노동시장으로 빠르게 진입하지 못해 적체할 경우 근로의욕 상실로 이어질 여지는 다분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쉬었음 청년’을 보면, ‘20대 초반, 여성, 대졸’ 위주로 늘었다. 전년 대비 20대 초반은 1만6000명, 여성은 1만5000명, 대졸은 2만8000명 각각 증가했다. ‘20대 후반, 남성, 고졸’에서 주로 나오던 기존 패턴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처럼 ‘쉬었음 청년’이 늘어난 이유로는 ‘코로나 효과’가 가장 먼저 꼽힌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실장은 “올해 ‘쉬었음 청년’의 70%가 대체로 전직이 있는 경우였다”며 “단기적으로 봤을 때, 코로나 이후 배달 수요가 줄면서 라이더 채용이 감소하거나, 임시선별소와 같이 보건의료분야에서 종사하던 직종이 번아웃으로 쉬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기준 배달 일자리 공고는 전년 대비 70%가량 줄었고, 같은기간 20대 플랫폼 종사자 수는 11.3% 빠졌다. 대졸 ‘코로나 학번’이 제대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김기헌 실장은 “20대 초반, 대졸의 경우 코로나 시기 비대면 수업을 받고 졸업한 청년”이라며 “비대면 활동으로 선후배, 교수간 네트워크 쌓는 게 어려워져 경력·수시채용에서 중요한 인적 네트워크의 도움을 못 받은 것도 노동시장 진입을 늦췄다”고 분석했다. 조대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졸업하자마자 시험 준비를 시작했는데 ‘괜찮은 일자리’의 진입 장벽이 풀리지 않자 준비 기간은 길어지고 쉬는 상태가 된다”며 “20대 초반에 대학을 졸업하는 경우가 많은 여성에게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간 쉰 청년 비율은 점차 늘고 있는 것도 적신호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년 이상 쉬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44.2%(15만2000명)로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코로나 이전인 2018년(35.6%, 8만3000명)보다 8%포인트가량 높아졌고 숫자로는 거의 두배가 됐다. 같은기간 3년 이상 쉬었다고 한 청년도 13.3%에서 17.8%로 늘었다. 조대연 교수는 “미취업기간 3년 이상이 되면 6개월 미만일 때보다 구직활동하는 비중이 53%에서 36.5%로 떨어진다”며 “쉬고 있는 상태가 장기화하면 구직의욕이 떨어져 니트 상태가 될 수 있다. 특히 청년 니트는 결혼, 출산까지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전관리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단기적인 코로나 효과를 제외하면 ‘쉬었음 청년’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자리 미스매치’다. 청년들은 ‘쉰 이유’로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32.5%)’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다음일 준비를 위해’(23.9%)였다. 전년 대비 각각 4.7%포인트, 4.4%포인트 높아졌다. 실제로 ‘쉬었음 청년’의 78%가 이직준비자다. 상당수가 첫 일자리를 ‘징검다리 직장’ 삼아 원하는 일자리로 가려는 경우다. 하지만 경기 침체기로 기업이 경력직, 수시 채용 위주로 전환하면서 이들이 소위 말하는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인크루트에 따르면 지난해 정규직 정기공채는 17.4%에 불과하지만, 수시·상시채용은 52.5%다. 대기업 정기공채는 최근 4년간 가장 적었다. 실제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청년 일자리는 3분기 연속 감소세다. 2분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20대 이하 일자리는  6만8000개(2.1%)가 줄었다.   전문가들은 ‘원하는 첫 일자리’에 갈 수 있도록 조기 지원제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기헌 실장은 “한국은 영미처럼 ‘이직을 권하는 사회’가 아니다보니 스카우트를 통한 상승 점프가 어려워 청년에게 ‘첫 일자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며 “정부가 고등학교·대학교 재학 단계부터 조기 개입해 학교 졸업부터 노동시장 진입까지의 시간을 줄이는 게 쉬는 청년을 줄이는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연합(EU)의 ‘유스 개런티’처럼 정부·지자체가 청년 취업을 함께 준비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스 개런티는 가령 5개월 이내 니트 상태의 청년에게 정부가 1년 동안 계속 접촉하면서 일자리를 알선하며 취업을 돕는다.   우리 정부도 지난 15일 1조원 규모의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방안’을 발표하며 ‘쉬었음 청년’ 지원에 나섰다. 재학시 조기 개입을 강화해 일을 경험할 기회를 확대하고, 재직 중에는 조직적응 프로그램을 도입해 상담 지원 강화하며, 구직시에는 ‘청년성장프로젝트’를 신설하고 ‘청년도전지원사업’을 개선한다는 내용이다. 취약청년을 위한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13억원) 도입, 가족돌봄청년자기돌봄비(연 200만원) 신설 등도 포함한다. 하지만 이런 ‘공급자 위주 제도’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혜진 강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취업지원제도(옛 취업성공패키지)와 같이 고용노동부가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는 학원 및 기관을 지정하기보다  수요자인 청년 본인이 원하는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바우처 형태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장기간 쉰 경우 구직의욕이 떨어지기 때문에, 신청을 받기보다 직접 찾아가 프로그램을 알려주고 챙겨주는 지자체 단위의 멘토링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2023.11.25 00:45

  • 거야 반대로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 3년째 제자리…원전 멈춰 설 우려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폐기’ 정책이 최대 고비를 맞았다.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 시설 포화 시점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고준위 폐기물 영구저장시설을 마련할 수 있는 근거법은 국회에서 공회전만 거듭하고 있다. 거대 야당 반대로 법안은 3년째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2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22일 올해 마지막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고준위 특별법)을 심사했다. 하지만 핵심 쟁점으로 꼽혔던 ‘부지 내 저장시설 규모’와 ‘방폐장 확보 시점 명시’ 등을 두고 여야는 또다시 평행선을 달렸다. 지난 1년간 10여 차례의 회의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던 쟁점이다.   특별법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보관하는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마련의 근거를 담고 있다. 부지 선정과 함께 이를 전반적으로 담당하는 조직 설립, 유치 지역 지원 방안 등도 포함돼 있다. 산자위는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양당 지도부 차원의 정무적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여야 원내지도부로 이관했다.   고준위 특별법이 여야 지도부의 정치적 타협 대상이 됨에 따라 법안 통과는 더욱 안갯속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오르는 절차를 감안했을 때 이달 내 소위를 통과하지 않으면 향후 총선 정국 등과 맞물려 법안이 자동 폐기될 수 있다. 문제는 원자력발전소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소가 포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현재 가동 중인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소가 2030년부터 포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올해 3분기 기준 저장률이 78.7%에 달하는 한빛원전이 2030년, 한울원전은 2031년이다. 임시저장시설 건설에 최소 7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칫 멀쩡한 원전도 사용후핵연료 저장소를 확보하지 못해 멈춰 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원전을 품고 있는 부산 기장군 등 5곳 지방자치단체는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이 사실상 영구저장시설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원전업계와 지자체에서는 임시저장시설이 포화 단계에 접어든 만큼 정쟁을 배제하고 조속한 법안 처리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고준위 특별법 제정이 무산될 경우 전체 원전이 멈출 우려가 있고 원전 수출에도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돈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은 “원전을 운영 중인 상위 10개국 중 고준위 폐기물 처리장을 위한 부지 선정도 못한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특별법이 하루빨리 제정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2023.11.25 00:44

  • 이스라엘이 '배수의 진' 확실히 쳤다면 전쟁 없었을지도

    이스라엘이 '배수의 진' 확실히 쳤다면 전쟁 없었을지도

     ━  게임이론으로 본 세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단체 하마스 사이에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21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자지구 북부 경계 지역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랍의 유명한 장군 타릭 이븐 지야드(Ṭāriq ibn Ziyād)는 711년 약 7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을 침공했다. 아무리 지금부터 1300년 전이라고 하지만 겨우 7000명의 군사로 한반도보다 더 넓은 스페인의 영토를 정복하겠다고 나섰다면 무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타릭 장군은 7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영토의 60% 이상을 정복한다. 이런 기적 같은 군사적 성공을 거두었기에 아프리카와 스페인 사이의 바다를 지브롤터 해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7000명 군대로 스페인·포르투갈 정복   그런데 이런 타릭 장군의 스페인 정복 과정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온다. 군대를 이끌고 스페인에 상륙한 후 타릭 장군은 자신들이 타고 온 배를 불태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타릭의 부하들은 배를 불태우면서 스페인 정복에 대한 타릭 장군의 의지를 확인했을 것이다. ‘스페인 정복에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모두 죽는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배를 불태운 덕분인지 전투에 임했던 타릭의 군사들은 스페인을 몇 년이라는 단시간에 정복하게 된다.   동양에서는 강이나 바다를 등지고 진을 펼쳐서 도망갈 곳이 없는 군사들이 죽을힘을 다해서 싸운다는 의미에서 ‘배수의 진(背水之陣)’이라고 부르는 전략이다. 서양에도 이런 배수의 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데 ‘Burning the Bridge Behind’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군대가 일단 다리를 건너간 후에 건너온 다리를 불사른다는 뜻이니 결국 배수의 진이 되는 셈이다. 타릭 장군의 경우에는 다리가 아니라 배를 불사른 경우지만 말이다.   그런데 게임이론에서는 배수의 진에 대한 해석이 일반인들과는 좀 다르다. 일반인들은 배수의 진을 친 군대가 죽을 각오로 전투에 임해 승리한다는 의미라고 보지만, 게임이론 전문가들은 배수의 진 의미를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전략이라고 본다. 바다를 건너서 아프리카로부터 타고 온 배를 모두 불살라버린 타릭의 군대와 맞서게 된 스페인 성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이전에는 “용감하게 싸워서 한 달만 성을 지키면 적은 지쳐서 아프리카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부하들을 격려할 수 있었겠지만, 이제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는 “적군 7000명을 한 명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야 우리가 살 수 있다”라는 것이 명백해진 것이다. 과연 적군 7000명을 모두 죽이는 것이 가능할까? 성안의 군인과 백성들은 확신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때 타릭 장군이 “항복하면 모두 살려주지만, 저항하면 모두 죽이겠다”고 하면 스페인 성주나 그 부하들은 항복이라는 선택이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랍의 장군 타릭 이븐 지야드. [위키피디아] 겨우 7000명의 군사로 저 넓은 스페인 영토의 성들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마도 타릭의 배수의 진에 지레 겁먹은 스페인의 성주들이 스스로 성을 나와 항복한 경우가 많았기에 타릭의 스페인 정복은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배수의 진이 훌륭한 전략인 이유는 죽을힘을 다해 싸워서 전투에서 승리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죽을 힘을 다해 싸울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 적군이 겁을 먹고 항복하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투를 보면서 새삼 배수의 진 전략을 떠올리게 된다. 우선 분명히 밝힐 것은 지금부터의 게임이론적인 분석은 순수하게 전략적인 차원의 것이므로 어느 쪽이 비인도적이고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는 논의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놓고 이스라엘의 허술한 방비와 명성이 자자한 이스라엘의 첩보기관인 모사드가 하마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게임이론적으로 보았을 때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전략적 실수는 배수의 진 전략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이었다.   현재 이스라엘 군사 행동으로 판단해 보면 이스라엘은 전 세계의 지탄을 받더라도 가자지구의 하마스를 완전히 섬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고, 의료 시설이 파괴되면서 전 세계가 이스라엘을 비난하지만 이스라엘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이다. 그런데 하마스는 이런 이스라엘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을까? 전문가들 중에는 하마스가 오히려 스스로 죽어서 소멸하더라도 이스라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두 명도 아니고 그 수많은 하마스의 전투요원이 모두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죽이면서까지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도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민간인들을 죽이고 인질을 납치했을 때는 이스라엘이 인질의 안위와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피해를 두려워해서 하마스를 소멸시킬 수준의 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마치 타릭의 군대가 스페인의 성을 공격하기는 해도 싸우다 지치면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마음으로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것이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을 받고도 한참 동안 가자지구의 공격을 하지 못했고, 미국과 주변 아랍 국가들의 눈치를 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스라엘군의 상황을 보면 이스라엘군은 하마스를 완전히 소탕해 뿌리 뽑기까지는 어떤 비난과 희생도 감수할 것으로 보인다. 알고 보니 이스라엘군은 철수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는 마치 타릭의 군대가 죽기 전에는 아프리카로 돌아갈 생각이 없지만 타고 온 배를 불살라버리지 않은 격이다. 배가 바닷가에 묶여 있으니 스페인 성주들은 타릭의 군대가 싸우다 지치면 배를 타고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성에 숨어서 방어를 하고 있었는데 몇 달이 지나도 타릭의 군대가 아프리카로 돌아가지 않고 결국 성이 함락되는 상황이 바로 현재의 하마스 상황이라고 보인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전략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있다. 하마스에게 만일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하마스는 완전히 소멸될 것이라는 인식을 이스라엘이 미리 심어 주었다면 지금의 비극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즉 타릭 장군이 배를 불살라 버린 것과 같이 이스라엘이 하마스에게 명확한 시그널을 주었다면 양측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이번 비극적인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배수의 진은 자신의 군대가 죽을힘을 다해서 싸운다는 의지를 적에게 미리 보여주어 적의 전의를 상실시키는 것인데, 이스라엘은 하마스에게 그런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고 이는 전략적으로 치명적인 실수이다. 내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이번 전쟁에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명백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과 북한의 상황이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후퇴·양보할 것이라는 환상 주면 안 돼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북한이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대한민국의 영토를 점령한다면? 주요 도시에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대한민국은 바로 북한으로 쳐들어갈 수 있을까? 혹시 ‘이 정도 피해는 참아야지 전면적인 전쟁이 벌어지면 수많은 젊은이들이 생명을 잃을 것’이라면서 전쟁을 반대하는 의견은 나오지 않을까? 또 정말 우리의 군사적 우방이라고 하는 미국과 일본은 서울에 떨어진 미사일을 마치 미국과 일본 영토에 떨어진 미사일이라고 생각하고 북한을 응징할 것인가? 혹시 ‘지금 한국을 도와서 북한을 공격하면 북한이 핵무기를 동경이나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쏠지 모르니 한국인들을 진정시키고 전쟁을 피하자’라는 의견이 나오지는 않을까?   전면전은 너무 피해가 클 터이니 그냥 대한민국이 피해를 참고 견디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국내외에서 반드시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견은 당연히 일리가 있는 의견들이다. 문제는 북한이 이런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은 배수의 진이 아니므로 대한민국을 공격하면 맞서 싸우지 않고 오히려 후퇴하고 양보할 것이라는 착각과 환상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과 그 우방들이 북한에 대해서 확실한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에는 가장 중요한 전략인 것이다. 과연 우리가 어떤 배와 다리를 불살라야 북한에게 확실한 배수의 진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을지 정부와 국민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1991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게임이론의 권위자로 『경제학 비타민』 『인생을 바꾸는 게임의 법칙』 등의 저서가 있다

    2023.11.25 00:01

  • 부산 엑스포 유치 결정 D-10, 결선투표서 대역전 노린다

     ━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결정 D-10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 선정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정부와 재계가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마지막 총력전에 나섰다.  현재까지의 판세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뒤지고 이탈리아에는 앞서는 것으로 분석되지만 양자 대결로 좁혀지는 결선투표에서 막판 대역전극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는 20~23일 영국을 국빈 방문한 뒤 곧바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25일까지 2박 3일간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대표들을 대상으로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지난 6월 BIE 총회에서 영어로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하며 부산 엑스포 지지를 호소한 지 5개월 만이다. 2030 엑스포 개최지는 부산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이탈리아 로마 등 3개 도시가 후보로 나선 가운데 오는 28일 파리에서 열리는 BIE 총회에서 182개 회원국 대표의 비밀 투표로 결정된다.   관련기사 한국, 경제 발전 경험 전수 ‘글로벌 사우스’ 국가 공략 집중 삼성·SK·현대차·LG 등 대기업, 세계 곳곳 돌며 막판 총력 지원 사격 사우디, 오일 머니 앞세워 한국이 확보한 표 빼앗기 작전 28일 부산시민회관서 파리 투표 생중계 보며 대규모 응원전 한덕수 국무총리도 지난달에 이어 지난 12~15일에도 파리를 찾아 BIE 대표들에게 부산 지지를 요청했고 박진 외교부 장관도 이달에만 두 차례 파리를 방문해 유치 활동을 벌였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재계 주요 인사들도 20일부터 투표 당일까지 파리에 머물며 막판 표심 확보를 위한 ‘릴레이 유치전’에 나설 예정이다.   2030 엑스포는 28일 1차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 득표하는 도시가 없으면 1·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실시해 더 많이 득표한 도시가 개최지로 결정된다. 유치전 초반에는 사우디가 막강한 ‘오일 머니’를 앞세워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표심을 공략하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최근 격차가 좁혀져 막판 역전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박신홍 기자, 부산=위성욱 기자 박신홍 기자, 부산=위성욱 기자 jbjean@joongang.co.kr

    2023.11.18 01:46

  • 삼성·SK·현대차·LG 등 대기업, 세계 곳곳 돌며 막판 총력 지원 사격

    삼성·SK·현대차·LG 등 대기업, 세계 곳곳 돌며 막판 총력 지원 사격

     ━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결정 D-10   SK텔레콤이 파리 에펠탑 인근 선착장에서 ‘플라이 투 부산’을 주제로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을 펴고 있다. [뉴스1]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 선정을 위한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를 앞두고 재계도 막판 총력전에 돌입했다.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주요 대기업들도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해외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는 한편 총회가 열리는 프랑스 파리를 비롯해 유럽 주요 지역에서 대규모 광고전에 나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9월 중동 3개국을 돌며 부산 엑스포 지지를 요청한 데 이어 지난 8일(현지시간)에는 남태평양 쿡제도에서 열린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을 찾아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을 벌였다. PIF에는 엑스포 개최지 투표권을 가진 11개 국가가 포함돼 있는 만큼 부산 엑스포 홍보엔 최적의 장소였다. 이 회장은 시티베니 라부카 피지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도 삼성의 글로벌 사회적 책임(CSR) 프로그램인 ‘삼성 솔브포투모로우’를 소개하며 지원을 당부했다. 삼성은 최근 파리의 길목인 샤를드골 공항에 14개의 광고판을 설치하는 등 막판 홍보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관련기사 부산 엑스포 유치 결정 D-10, 결선투표서 대역전 노린다 한국, 경제 발전 경험 전수 ‘글로벌 사우스’ 국가 공략 집중 사우디, 오일 머니 앞세워 한국이 확보한 표 빼앗기 작전 28일 부산시민회관서 파리 투표 생중계 보며 대규모 응원전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부산엑스포 민간유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만큼 가장 적극적으로 유치 활동에 앞장서 왔다. 최 회장도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 특사로 유럽 3개국을 방문한 데 이어 지난 4월 방한한 BIE 실사단을 위해 환영식을 여는 등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엑스포 공식 심포지엄에선 “솔루션 플랫폼을 통해 각국 현안에 맞춤형 해법을 제시하겠다”고 밝혀 BIE 회원국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최 회장과 SK그룹 최고경영자들이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면담한 인사는 160여개국 800여 명에 달한다.   현대차그룹도 파리 주요 명소와 쇼핑몰의 270개 디지털 스크린을 활용하며 부산 엑스포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지난 6월 인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지난 9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등 주요 국제 행사에 ‘BUSAN IS READY’라고 적힌 차량을 제공하며 자동차 회사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나가고 있다.   LG그룹도 구광모 회장이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지원 사격을 펼치는 등 그룹 차원에서 총력 지원에 나서고 있다. 현재 파리·런던·브뤼셀 등 유럽 주요 도시에 대형 광고판을 내건 데 이어 ‘부산 엑스포 버스’ 2030대를 동원해 투표 당일까지 파리 시내 곳곳을 돌게 하는 막판 대규모 홍보전도 전개 중이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2023.11.18 01:22

  • 한국, 경제 발전 경험 전수 ‘글로벌 사우스’ 국가 공략 집중

    한국, 경제 발전 경험 전수 ‘글로벌 사우스’ 국가 공략 집중

     ━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결정 D-10   지난달 10일 2030부산월드엑스포 범시민유치위원회가 부산시청 광장에서 개최한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기원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엑스포 유치에 대한 소망을 담아 비둘기를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D-10, 열흘 앞으로 다가온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경쟁은 사실상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와 양자 대결 양상이다. 오는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개최지 선정 투표가 예정돼 있는 가운데 정부도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막판 표밭 다지기에 돌입했다. 그동안 정부는 물론 재계와 시민단체 등이 합심해 부산 엑스포 유치에 전력을 다해온 만큼 투표 당일까지 한 표라도 더 확보하려는 노력을 지속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각오다. 정부는 막강한 오일 머니의 힘을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에 밀려 초반 불리했던 판세를 점차 뒤집으며 9회말 2사 후의 끝내기 홈런과 같은 막판 역전을 꿈꾸고 있다.   최대 관건은 많은 표를 가지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표심이다. ‘글로벌 사우스’는 선진국들이 주로 모여 있는 북반구 지역과 달리 상대적으로 저개발된 국가들이 지구 남쪽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유래된 말로 아프리카 55개국과 중남미 20개국, 동남아시아 11개국, 중앙아시아 6개국, 태평양 도서 지역 16개국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들 국가 중 상당수는 경제적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국제정치적으로도 미국과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물론 러시아·중국 등 권위주의 진영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며 독자적 행보를 보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관련기사 부산 엑스포 유치 결정 D-10, 결선투표서 대역전 노린다 삼성·SK·현대차·LG 등 대기업, 세계 곳곳 돌며 막판 총력 지원 사격 사우디, 오일 머니 앞세워 한국이 확보한 표 빼앗기 작전 28일 부산시민회관서 파리 투표 생중계 보며 대규모 응원전 정부는 특히 182개 BIE 회원국 중 가장 많은 49개 회원국이 있는 아프리카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28일 BIE 총회에서의 표결은 1국 1표 방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미·러·중 등 주요 국가들의 표심 못지않게 ‘중간 지대’에 속한 개발도상국가들의 전략적·개별적 이해관계가 승패를 가를 것이란 판단에서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2030 엑스포 유치전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회성 뭉칫돈보다 장기 경제 지원 카드   정부도 이 같은 구도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그동안 다양한 대응책을 강구해 왔다. 아프리카 국가들 공략을 둘러싸고 최대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정면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오일 머니’를 앞세운 사우디의 막판 대규모 물량 공세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차별화된 전략을 통해 한국과 부산의 강점을 최대한 부각시켜야 한다는 게 정부와 재계의 공통된 진단이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정부는 특히 이들 국가가 경제 개발·발전과 기술 현대화에 목말라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경제 개발 경험과 21세기 최첨단 정보통신(ICT) 기술을 적극 공유하는 카드를 십분 활용하고 나섰다. 둘 다 사우디는 갖고 있지 못한 분야인 만큼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에 더해 아프리카 연합과 카리브 공동체, 태평양 도서국 포럼 회원국 등을 대상으로 공적개발원조(ODA)를 확대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기술·경험 공유와 원조 확대라는 현실적·실용적 카드로 최대한의 효과를 노리는 전략인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엑스포는 세계 각국이 한 자리에 모여 연대하고 글로벌 이슈와 과제를 논의하는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집중하면 한국의 경쟁력이 명확히 보일 것”이라며 “사우디의 개별전 전략에 대해 평가하기에 앞서 우리가 가진 경쟁력과 장점을 설명하고 각 회원국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사우디의 핵심 공약인 차관이나 금전적 지원은 일회성인데 반해 한국과의 관계 구축은 장기적 차원의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교섭 전략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은 물론 이재용 삼성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계 주요 인사들은 지난 1년 내내 세계 각국을 돌며 일대일 접촉을 통해 설득 작업을 벌였다. 경쟁국인 사우디가 주로 자국 초청 행사에 주력한 데 비해 우리는 아프리카·중남미와 태평양 도서국까지 직접 찾아가 발로 뛰는 모습을 보이며 정성을 다하자는 전략이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정부는 또한 아직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은 국가들을 대상으로 “부산 엑스포가 전 세계 청년들에게 문화 예술과 국제 협력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는 장이 될 것”이란 점도 중점적인 홍보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최근 전 세계 젊은층 사이에서 ‘K-컬처’ 붐이 일고 있는 분위기를 적극 활용해 부산 엑스포를 통해 미래 세대의 교류가 크게 확대될 것이란 점을 집중 홍보하는 게 예상보다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또한 사우디와 차별화되는 한국만의 강점이란 분석이다.   로마 조기 사퇴 안 해야 2차 투표서 결판   BIE 표결은 1차 투표에서 3분의 2를 득표하는 후보지가 나오지 않으면 1,2위로 후보지를 압축한 가운데 결선투표가 치러진다. 결선투표는 과반수 득표 후보지가 나올 때까지 반복된다. 현재까지의 판세로는 부산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결국 결선투표에까지 갈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의 지휘 아래 시시각각 판세를 점검해 온 정부는 1차 투표에서 이탈리아 로마를 지지할 것으로 보이는 유럽 국가들의 표를 2차 투표에서 최대한 흡수할 경우 충분히 막판 뒤집기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BIE 총회 직전 영국과 프랑스를 방문하는 것도 막판 득표 전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현지에서는 로마가 투표 당일 1차 투표 직전에 유치를 포기할 경우 판세가 크게 요동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부산과 리야드가 1차 투표에서 곧바로 양자 대결을 벌이게 되면서 자칫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 외교 소식통은 “이탈리아 측을 상대로 유치전에서 중도 포기하지 말고 투표장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자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며 “우리가 접촉한 회원국들 가운데에는 한국이 2차 투표에 진출하면 지원하겠다는 나라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정진우 기자 tzschaeit@gmail.com 

    2023.11.18 01:22

  • 28일 부산시민회관서 파리 투표 생중계 보며 대규모 응원전

    28일 부산시민회관서 파리 투표 생중계 보며 대규모 응원전

     ━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결정 D-10   부산을 대표하는 갈매기 캐릭터인 ‘부기’가 부산 엑스포를 홍보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17일 오전 부산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전동차에서 내리자 역 구내와 대합실 곳곳에 걸려 있는 엑스포 유치 기원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배우 이정재씨가 환하게 웃고 있는 가운데 ‘세계를 변화시킨 엑스포, 이제 대한민국이 도전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홍보 포스터도 통로 한가운데 설치돼 오가는 시민들이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부산시청 1층에 들어서자 부산을 대표하는 갈매기 캐릭터인 ‘부기’가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 결정 D-11’이라고 적힌 안내판을 들고 시민들을 맞이하며 엑스포 유치 결정이 드디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은경(47·주부)씨는 “부산 엑스포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는데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안내판을 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는 것 같다”며 “투표에서 좋은 결과가 나와 부산이 다시 재도약하는 계기가 됐으면 싶다”고 말했다.   오는 28일 엑스포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후보 도시인 부산의 유치 열기도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이미 부산역과 지하철역·김해공항은 물론 서울역과 인천공항·롯데월드타워 등 전국 주요 관문 곳곳에는 ‘BUSAN IS READY(부산은 준비됐다)’ ‘HIP KOREA(힙 코리아)’ ‘2030 BUSAN EXPO(부산 엑스포)’ 등 엑스포 유치 기원 문구가 내걸리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관련기사 부산 엑스포 유치 결정 D-10, 결선투표서 대역전 노린다 한국, 경제 발전 경험 전수 ‘글로벌 사우스’ 국가 공략 집중 삼성·SK·현대차·LG 등 대기업, 세계 곳곳 돌며 막판 총력 지원 사격 사우디, 오일 머니 앞세워 한국이 확보한 표 빼앗기 작전 또 최근에는 LG전자 등 대기업과 부산시가 함께 준비한 대형 버스가 부산 엑스포 유치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내걸고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샹젤리제 거리 등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가 열리는 프랑스 파리 도심의 명소와 외곽 곳곳을 순회하며 부산 엑스포를 홍보하는 데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시민들도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너도나도 힘을 보태고 나섰다. 당장 개최지 선정 일주일 전인 오는 21일과 투표 당일인 28일 부산 곳곳에서 엑스포 유치 응원 행사가 펼쳐진다. 2030부산월드엑스포 범시민유치위원회 등이 공동 주관하는 21일 행사에는 시민 1000여 명이 참가해 “부산 이즈 레디”를 외치며 부산 엑스포 유치 염원을 한데 모을 예정이다. 이어 디데이(D-Day)인 오는 28일 오후 8시30분엔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파리에서의 투표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부산 엑스포의 성공적 유치를 위한 대규모 응원전을 펼칠 계획이다.   부산시도 BIE 총회 투표 당일까지 총력전을 펼쳐 꼭 엑스포를 유치하겠다는 각오다. 이를 위해 박형준 부산시장은 아직 유보적 입장을 보이는 BIE 회원국 방문을 위해 지난 13일 출국한 데 이어 오는 20일엔 파리로 입성해 투표일까지 머물며 막판 득표 활동에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 박 시장과 부산시는 그동안 엑스포 유치를 위해 150여개국 인사들과 접촉하며 부산 엑스포 홍보 활동을 펼쳐 왔다.   박 시장은 특히 투표 당일 현지에서 진행되는 최종 프리젠테이션(PT) 준비에도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후보 도시 모두 최종 PT 연사나 내용 등을 극비에 부치고 있을 정도로 신경전이 치열한 상황에서 부산시의 PT가 현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경우 현재 박빙인 접전 양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박 시장은 “부산시민은 물론 온 국민의 관심과 응원을 추진력으로 삼아 마지막까지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것”이라며 “반드시 좋은 결실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부산=위성욱 기자 부산=위성욱 기자 we.sungwook@joongang.co.kr

    2023.11.18 01:16

  • 사우디, 오일 머니 앞세워 한국이 확보한 표 빼앗기 작전

    사우디, 오일 머니 앞세워 한국이 확보한 표 빼앗기 작전

     ━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결정 D-10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왼쪽)가 지난 6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리야드 엑스포 공식 홍보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정부는 막판 역전극을 노리고 있다. 문제는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경쟁국 사우디아라비아의 막판 물량공세 역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그간 BIE 회원국을 상대로 막대한 차관을 약속하는 등 오일 머니를 뿌리며 표심을 끌어모은데 이어, 리야드가 개최지로 선정될 경우를 전제로 사후 보답 형태의 ‘성공 보수’까지 약속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외교 소식통들의 전언에 따르면 최근 한국이 표 격차를 좁히며 쫓아오는 기세에 맞서 사우디는 재차 ‘한국 표 빼앗기’ 작전까지 펼치고 있다. 한국이 정상 회담이나 물밑 접촉을 통해 표심을 확보한 국가 리스트를 추린 뒤, 해당 국가들을 재차 접촉해 큰 선물을 약속하는 식이다. 한 소식통은 “오셀로 게임에서 흑이 백으로, 백이 흑으로 판세가 뒤집어지는 것처럼 회원국들의 표심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사우디는 지난 11일 개최지 선정의 ‘캐스팅보트’로 꼽히는 아프리카 50개국을 초청한 가운데 리야드에서 사우디·아프리카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리야드 선언’을 공동 채택했다. 사우디가 이날 정상회의에서 내건 최대 화두는 ‘경제 협력 강화’였다. 사우디 국영 SPA 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는 이 자리에서 향후 10년간 아프리카에 250억 달러(약 32조3000억원) 규모의 투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또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에 50억 달러 상당의 개발원조기금을 제공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관련기사 부산 엑스포 유치 결정 D-10, 결선투표서 대역전 노린다 한국, 경제 발전 경험 전수 ‘글로벌 사우스’ 국가 공략 집중 삼성·SK·현대차·LG 등 대기업, 세계 곳곳 돌며 막판 총력 지원 사격 28일 부산시민회관서 파리 투표 생중계 보며 대규모 응원전 이에 더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도 향후 10년간 10억 달러가 넘는 프로젝트와 아프리카 개발 이니셔티브를 출범하겠다는 계획을 직접 발표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아프리가 연합 국가의 주요 20개국(G20) 정회원 가입에 지지를 표명하고 아프리카 국가의 대사관 수도 40개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2018년 아프리카 담당 장관직을 신설한 뒤 아프리카 지역에 특별히 공을 들여온 사우디가 엑스포 개최지 투표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표심 확보를 위해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당근책을 제시한 셈이다.   이처럼 BIE 회원국을 상대로 한 자금 공세와 별개로 사우디는 이미 최소 78억 달러(약 10조원)의 엑스포 투자를 약속했다. 엑스포가 열리는 2030년을 목표로 초대형 허브 공항인 ‘킹 살만 국제공항’을 신설해 엑스포 부지와 직통으로 연결하겠다는 계획도 공표했다. 사우디가 이 같은 공격적 마케팅에 나설 수 있는 배경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내세운 ‘비전 2030’의 핵심 이벤트로 엑스로 유치를 활용하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 비전 2030은 사우디가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관광을 비롯한 산업 다각화에 나서겠다는 국가 차원의 중장기 프로젝트다. 여성의 자동차 운전과 취업 장려 등 점진적 개혁 정책을 펴고 있는 사우디로선 엑스로 유치에 성공할 경우 국가 이미지 개선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한다. 외교 소식통은 “사우디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선 엑스포급 행사 유치는 정권의 명운과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사우디의 또 다른 강점은 다국어 방송 등 미디어 매체를 통해 급속히 확대된 글로벌 영향력이다. 현재 사우디는 아랍권 국가들을 대상으로 무려 19개의 24시간 아랍어 방송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사우디 대형 방송사인 MBC(중동중앙텔레비전센터) 그룹이 중동·북아프리카(MENA)의 아랍 세계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이들 무료 방송 채널의 시청자는 1억6500만 명에서 2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우디는 이를 아랍권 국가에 리야드 엑스포를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유용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우디의 ‘야심’은 리야드 엑스포 일정에서도 드러난다. 통상 엑스포는 봄인 5월에 시작해 가을인 10월에 끝나는 게 관례다. 하지만 리야드 엑스포는 2030년 10월 1일 시작해 이듬해 3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마침 2031년 3월 31일은 이슬람 정기 성지순례인 ‘하즈’가 시작되는 날이다. 이슬람 달력으로 12번째 달에 하는 ‘하즈’를 다녀온 사람에겐 존경의 의미로 이름 앞에 ‘엘 하즈’라는 호칭을 붙일 만큼 성지순례를 중시하고 있다. 전 세계의 수많은 무슬림이 성지순례의 메카 중 한 곳인 리야드를 방문할 때 리야드 엑스포를 먼저 관람한 뒤 엑스포가 끝나는 날에 맞춰 ‘하즈’를 시작하도록 일정을 짠 것이란 얘기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정진우 기자 tzschaeit@gmail.com 

    2023.11.18 01:15

  • AI 활용, 보이스피싱 전화 차단시켜

    AI 활용, 보이스피싱 전화 차단시켜

     ━  범죄 안전망 넓힌 주역들   지난 10일 제8회 대한민국 범죄예방대상 시상식에서 총 29개 수상자를 선정했다. 사진은 SK텔레콤의 범죄동향분석회의 참여 모습. [사진 경찰청]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으니 수사에 협조하셔야 합니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말투. ‘보이스피싱’이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이 말투에 속아 피해를 본 사례는 최근 5년간 15만6000건, 연평균 3만여건에 이른다. 그러나 매년 증가하던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는 지난해 2만1832건으로 전년 대비 30%가량 줄었다. 경찰과 금융권, 통신사 등 민관 협업을 통해 보이스피싱 방지에 나선 결과다.   이 과정에서 국내 1위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은 인공지능(AI)·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종합 전기통신금융사기 대응 시스템’을 개발하고 국내 최초로 보이스피싱 전화 차단 기술을 상용화했다. SK텔레콤이 지난해 차단한 보이스피싱 발신 전화는 10만4990건에 이른다. 이에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홀에서 개최된 제8회 대한민국 범죄예방대상 시상식에서 SK텔레콤은 대통령 표창의 영예를 안았다. 경찰청과 중앙일보가 공동주최하는 대한민국 범죄예방대상은 민간의 치안 활동을 격려하고 자발적인 참여 의지를 끌어내기 위해 2016년부터 매년 개최된다.   관련기사 흉악범 늘어나 국민 불안감 확대…이젠 검거보다 범죄 예방이 중요 서울 강남구의 조명형 플랜터. [사진 강남구청] 올해 대한민국 범죄예방대상에선 총 29개 기관 및 단체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들은 다양한 기술을 범죄 예방에 활용하고, 외부 기관과 협업에 나선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강욱 심사위원장(경찰대 교수)은 “이번 대한민국 범죄예방대상에선 민관 협업 사업과 첨단 기술 활용 사례가 많아, 공동체 치안의 빠른 발전을 실감했다”며 “범죄가 발생하기 전에 이를 예방한다면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최근 이상 동기 범죄를 비롯한 흉악범죄로 인해 국민의 불안이 증가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 경찰과 공동체 구성원 간의 협력이 중요한 시기”라며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활발한 치안 협력 참여는 국민의 평온한 일상 회복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SK텔레콤의 강종렬 안전보건 최고경영책임자(사장·가운데). 최영재 기자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경기도 안산시와 서울시 강남구는 ‘AI 기술’과 ‘민관 협업’을 통해 성과를 냈다. ‘범죄 없는 안전 도시 안산’ 만들기에 나선 경기도 안산시는 전국 유일의 로보캅 순찰대를 운영했다. 시민 안전 지킴이, 방범 CCTV 통합관제센터, 가정폭력·성폭력 공동대응팀 등에도 행정력을 집중했다. AI 국민 안전 실증 시범 도시 추진과 스마트 안전 기술 사업 확대, 범죄예방 디자인 환경 개선 사업 등 마을별 셉테드(범죄예방 환경설계) 사업도 지속 추진할 계획이다.   1인 가구, 다세대·다가구 밀집 지역이 많은 서울시 강남구는 2021년부터 범죄예방 디자인 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에서는 지역주민, 경찰,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하는 민·관·경 거버넌스 프로그램을 적극 도입했다. 피해자 인터뷰와 현장 실사는 물론 경찰에서 제공한 범죄통계와 AI 위험 분석도, 범죄 히트맵 분석, 전문가 자문 등을 활용해 지역의 특징과 문제를 분석한 것이다. 이렇게 도출한 범죄예방 디자인 솔루션을 적용해 괄목할 만한 범죄예방 성과를 달성했다는 평가다.   제8회 대한민국 범죄예방대상 수상자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을 받은 충청북도 제천시는 스마트시티 통합플랫폼을 활용해 시민 안전을 강화했다. 스마트시티 통합플랫폼의 정보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관내 유관기관 및 시 산하 기관과 상시 협력 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시민 안전을 위해 운영 중인 안심 비상벨과 어린이 및 치매 노인 긴급신고, 여성 긴급신고 등은 스마트시티 통합플랫폼과 연계했다. 제천시는 지능형 CCTV, 불법 주정차 차량 정보 표출시스템, 스마트 가로등, 보안등 시설물 등을 통합플랫폼과 추가 연계할 방침이다.   김중곤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문제 원인 진단과, 합리적인 수단을 활용한 범죄예방 활동이 매우 인상 깊다”며 “다양한 기관과 단체가 저마다의 역량으로 지역사회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범죄예방 활동을 수행한 결과, 대한민국 곳곳이 예년보다 훨씬 안전해졌다”고 평가했다.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2023.11.18 00:01

  • 흉악범 늘어나 국민 불안감 확대…이젠 검거보다 범죄 예방이 중요

    흉악범 늘어나 국민 불안감 확대…이젠 검거보다 범죄 예방이 중요

     ━  범죄 안전망 넓힌 주역들    조지호 경찰청 차장은 “범죄 예방 시스템 강화는 국민적 요구”라고 말했다. 최영재 기자 “범죄가 발생한 뒤 검거하는 것보단, 사전 예방이 중요합니다.”   최근 범죄 동향을 설명하던 조지호 경찰청 차장은 범죄 예방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최근 들어 범행 수법이 잔혹해지고 교묘해지면서 예방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단 것이다. 범인을 검거해도 범죄 피해를 복구하기 어렵단 점도 예방을 강조하는 이유다. 조 차장은 “근래 들어 절도나 강도처럼 전통적인 생계형 범죄는 감소하는 추세인데 흉악범죄와 조직적 지능범죄가 늘었다”며 “이에 맞춰 범죄 예방 시스템을 강화하라는 게 국민적 관심이자 요구”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흉악범죄가 잦았다. “상상하기 어려웠던 범죄가 벌어지면서 국민의 불안감이 급속도로 확대됐다. 범죄 양상이 변하면서 경찰도 이에 맞춰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그동안 경찰에선 이미 발생한 범죄를 추적해서 검거하는 데 중점을 뒀다. 검거 실적이 우수한 경찰관에게 포상이 따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검거보단 범죄 예방이 국민에게 더 이익이다. 예컨대 올여름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같은 사례만 보더라도, 무고한 국민이 생명을 잃었다. 피의자는 범행 10여분 만에 검거됐으나 인명 피해를 되돌리기 어렵다. 강력범죄 검거율이 90%를 웃도는 상황에서 범죄 예방에 중점을 두며 대응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지난 9월 발표한 경찰 조직개편안을 통해 치안 업무의 중심을 검거에서 예방으로 옮겼다. 개편안에선 검찰청에 범죄예방대응국을 신설하고 각 시·도 경찰청에도 관련 부서를 꾸리기로 했다. 형사기동대와 기동순찰대를 신설하고, 범죄정보시스템도 광역화하는 것으로 개편했다. 기동순찰대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범죄 의지가 꺾이는 효과가 있다.”   관련기사 AI 활용, 보이스피싱 전화 차단시켜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할 텐데. “범죄예방국 설립과 더불어 행정직 2900명을 현장 투입하기로 했다. 다만 인력과 예방 효과가 비례하는 건 아니다. 가령 전국적으로 설치된 CCTV도 범죄 예방 효과가 크다. 전국적으로 CCTV를 늘리면 범죄예방에 효과적일 것으로 본다. 물론 CCTV 관제센터에도 인력이 필요한데, 관제 인원을 늘리기보단 이상행동이 있을 때 자동으로 인지하고 알려주는 지능형 CCTV를 확대할 계획이다.”   사기 등 지능형 범죄도 예방할 수 있나. “지능형 범죄는 전통적 범죄와는 전혀 다르다. 범죄자를 검거해도 피해 금액을 회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기 범죄와 관련한 범죄정보를 분석해야 한다. 영국 등 선진국에선 사기 정보를 분석해서 예방도 하고 실제 수사도 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우리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수법은 분석해서 예방 교육을 하고, 전문적인 수법은 수사에 활용해야 한다.”   마약 범죄도 급증했다. “마약은 함정 수사가 아니면 검거조차 쉽지 않다. 워낙 조직적이고 국제적인 데다 비밀리에 움직여 예방이 쉽지 않은 분야다. 식약처와 마약 성분 분석을, 관세청과는 마약 해외 반입을 사전에 차단하는 식으로 협업하고 있다. 투약자를 잡는 것보다 공급선을 잡는 게 마약 범죄 예방에 효과적이기 때문에 법무부와도 협업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예방을 강조하면 검거 현장이 홀대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국민은 경찰에 요구하는 게 많고 기대치가 높다. 그런데 국민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건 현장의 경찰관들뿐이다. 현장 경찰관이 국민의 어려움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한국을 세계 최고의 치안 선진국을 만들었다고 본다. 예방을 강조하더라도 경찰 활동이 현장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은 변함없다. 현장의 경찰관들을 위해 내근직이나 지휘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탈주범’ 김길수 검거 형사들이 특진에서 제외되면서 논란이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모두가 특진하는 것이지만, 한계가 있다. 그럴 경우 누가 핵심적인 공헌을 담당했는지 따진다. 범죄자를 먼저 발견한 것과 검거한 것을 두고 사안별로 따져봐야 한다. 가령 검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 헌신했다면, 현장 경찰관의 공적에 무게가 실릴 것이다. 반면 범죄자 윤곽조차 찾기 어려웠는데 행적을 확인했다면 그 공적이 크다. 공적을 비교하는 건 현장의 판단을 존중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앞으로 경찰의 방향성은.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는 게 경찰의 책무다. 지금 범죄 예방 중심으로 시스템을 바꾸는 이유는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는 시스템을 짜려는 것이다.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만약 경찰 지휘부와 국민의 요구가 다르다면 일선 경찰관은 국민의 요구를 따르는 게 맞다. 경찰 내부적인 문제에 휩쓸리거나 개인적 이해관계에 빠지지 말고, 국민의 요구에 어떻게 응답할지 고민해야 한다.”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2023.11.18 00:01

  • 5대 은행 이자이익 첫 30조 돌파…초과이익 환수 힘 실려

    5대 은행 이자이익 첫 30조 돌파…초과이익 환수 힘 실려

     ━  은행 ‘횡재세’ 도입하나   올해 초 ‘은행은 공공재’라며 은행권의 고통 분담을 요구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또 다시 ‘은행의 종노릇’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은행권을 강하게 질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들께서는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이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3일 하나은행이 소상공인에 대한 1000억원 상당의 금융 지원 방안을 발표한 배경이다.   전문가들, 취약계층 지원 확대 권고   그런데 이와 별도로 금융당국은 은행의 자발적 사회 환원과 관계없이 초과 이익을 환수하는 방안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고금리로 은행의 이익만 과도하게 늘어나, 이를 통제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한 고위관계자는 “은행이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두는 배경에는 과점과 담합이 있다는 게 거의 명백하다”면서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해야 하는데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은행 초과 이익을) 시스템적으로 걷어서 어려운 데 쓰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시스템’이란 이른바 횡재세(windfall tax)다.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은행의 초과이익 환수에 대해 “어떤 방법이 좋을지에 대해 우리나라 특성에 맞춰 종합적으로 계속 고민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초과이득세라고도 불리는 횡재세는 정상적인 경영 활동으로 거둔 이익이 아닌, 외부 요인으로 거둔 초과 이익에 대해 매기는 일종의 세금이다. 다만 세금 형태일 수도 있고, 기부금 등의 형태일 수 있다. 어떤 형태가 됐든 횡재세는 경제 위기 때 외부 요인이나 독점적 지위 덕에 발생한 초과 혹은 과다 이익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취지다.   최근 이탈리아가 은행을 상대로 도입했고, 미국에서는 정유사에 횡재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는 최근 대통령의 발언 등으로 급부상하고 있지만, 사실 올해 초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한국판 횡재세’ 법안을 발의하면서 화두를 던졌다. 당시 횡재세를 두고 논란이 일었지만, 이후 은행 개혁 목소리가 잠잠해지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하다 최근 고금리 장기화, 대통령의 발언 속에 논란이 커지는 양상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은행에 대한 횡재세 도입 주장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대출금리 상승에서 출발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대출금리가 치솟고 있고, 이로 인해 은행은 ‘가만히 앉아서’ 이자이익으로 초과 이윤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5대 은행의 이자이익은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사상 처음으로 30조원을 돌파했다. 5대 금융지주의 경영 실적 공시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올 3분기 누적 이자이익 총액은 30조9366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는 KB국민은행이 7조3319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신한은행이 6조2563억원, 하나은행 5조9648억원, NH농협은행 5조7666억원, 우리은행 5조6170억원 순이다.   이자이익이 확 늘어난 것은 맞지만 은행도 할 말은 있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5대 대형은행의 순이자마진(NIM) 2.67%로, 국내 5대 은행 1.63%보다 1%포인트 이상 높다. 국내 은행에 ‘과도한 이자장사’라는 꼬리표를 붙이기엔 금융선진국인 미국보다 NIM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마진율도 점점 둔화하고 있다. 3분기 주요 은행의 NIM은 2분기(1.67%)보다 0.02%포인트 낮은 1.65%였다. 대출금리가 오르고 있지만, 예금 이자 등 자금 조달에 드는 비용도 그만큼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일부에서 주장한 것처럼 ‘쉽게’ 벌거나 ‘과도하게’ 번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은행은 이자이익 등으로 번 돈으로 ‘퇴직금 잔치’를 벌이면서 비난이 커졌다. 1일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은행 경영현황 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5대 은행은 지난해 희망퇴직을 단행하면서 2357명에게 1인당 평균 3억5548만원의 희망 퇴직금을 지급했다. 은행별로는 하나은행이 4억794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KB국민은행(3억7600만원)·우리은행(3억7236만원)·NH농협은행(3억2712만원)·신한은행(2억9396만원) 순이었다. 이는 퇴직자의 기본퇴직금을 뺀 금액으로, 실제 희망퇴직자가 받은 돈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출연금 늘려 이익 환수 전망도   금융당국이 은행의 초과 이익을 환수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나선 만큼 횡재세는 어떤 형태가 됐든 조만간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은행 과점 구조에 대한 개혁 목소리가 드높았던 연초와 달리, 이번엔 은행권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보단 정치 공세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은행의 과도한 이익 추구를 통제할 필요는 있지만, 정부가 이익을 직접 환수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대마진이 늘어나는 것을 금융당국이 감독하는 방식으로 이익이 소비자에게 직접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도 횡재세 반박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내은행 기업 가치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국내 은행은 취약계층 등을 위한 사회공헌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며 “양적완화 조치로 예금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없었던 유로지역 은행과는 제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초과이득세 논의의 실효성이 없다”고 밝혔다.   횡재세 도입 논란에 세금 형태보단 취약계층에 대한 은행권의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는 권고도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기간에 피해 업종은 헬스, 교육시설, 교통 등 명백하지만 수혜기업에 대해선 논란이 있어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다”며 “초과이익 환수는 국가에 대한 세금이 아니라, 은행이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은행연합회가 최근 발표한 ‘2022 은행 사회공헌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권의 사회공헌활동 총금액은 1조2380억원으로 지난해(1조617억원)보다 1763억원(16.6%) 증가했다. 2006년 보고서 발간이래 가장 많은 규모다. 다만 최근 순익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당기순이익 대비 사회공헌 비중은 줄었으나, 올해는 연초부터 사회공헌 확대에 힘써온 만큼 금액과 비중 모두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은행의 출연금·기부금을 늘려 초과 이익을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위원회가 12월 정책 서민금융 효율화 방안을 발표하는데, 여기에 재원 확대 방안이 담길 예정이라는 것이다. 은행 등 금융사는 2021년부터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이하 서민금융법) 시행령’에 따라 가계대출 잔액의 0.03%를 서민금융 재원으로 출연하고 있다. ‘이익공유제’의 일환으로 도입됐으나 금융권의 반발이 커 2026년 일몰되는 한시법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은행은 매년 1000억원 정도를 출연하고 있다.   정부는 은행 출연금에 복권 기금 등을 더해 기금을 조성, 정책 서민금융상품을 운영한다. 금융당국은 세금 형태는 제도적으로 이중과세 문제가 있어 도입이 쉽지 않은 만큼 은행의 출연금을 늘리는 형태로 사실상 횡재세를 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문제는 있다. 출연금은 서민 금융 지원에만 쓸 수 있어 사용이 제한된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 영국, 에너지 업체에 최대 45% 횡재세…헝가리는 제약·통신사에 부과 「 횡재세 도입과 관련한 논란은 비단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긴축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가가 급등하고 물가가 치솟으면서, 초과이윤을 누리는 기업에 대한 횡재세 논의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8월 “유럽 전역에서 횡재세가 도입되거나 제안된 사례가 30건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올 1월부터 국민 생계비 위기를 해결하고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에너지 업체 이익에 대해 최대 45%에 달하는 횡재세를 새롭게 부과했다. 전기·가스 업체에 대한 횡재세 세율도 2028년 3월까지 35% 수준으로 올릴 예정이다. 체코는 올해 1월부터 횡재세를 도입했다. 금리 인상 등으로 발생한 초과이익이 최근 3년간 연평균 과세표준액의 120%를 넘는 경우 초과액에 대해 60%의 횡재세를 부과한다.   헝가리는 은행권을 비롯해 에너지 기업, 제약사, 통신사 등에 횡재세를 거두고 있다. 이탈리아는 8월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막대한 추가 이익을 거둔 은행에 “40%의 세율로 일회성 세금을 물리겠다”는 특별법을 승인했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ECB)이 테클을 걸면서 이를 백지화하고, 은행이 납부해야할 세금(초과수익)의 2.5배를 준비금으로 쌓는 경우 세금 부과대상에서 제외되도록 대폭 수정했다. 횡재세 부과가 은행 부문이 경기 침체 여파에 더 취약해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 배현정·김남준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2023.11.04 00:49

  • 애정·일확천금 유혹의 기술 진화, 마음의 약한 고리 공략…검사도 속수무책 당해

    애정·일확천금 유혹의 기술 진화, 마음의 약한 고리 공략…검사도 속수무책 당해

     ━  전청조 사건으로 본 사기 백태   사정당국에 적발된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의 증거품. [연합뉴스] 파라다이스그룹 회장의 혼외자이자 성(性)전환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의 펜싱 대결.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 이른바 ‘전청조 사건’에서 사기 전과자 전청조(27)씨가 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 남현희(42)씨와 결혼하기 위해 한 것으로 알려진 거짓말이다. 전씨가 경호원을 대동하고 51조원의 통장 잔액이 찍힌 가짜 애플리케이션(앱)을 보여줬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씨는 결국 사기 등 혐의로 지난달 31일 경찰에 체포됐다. 남씨 외에도 전씨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대중의 시선은 엘리트 체육인 등이 어떻게 저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수 있는지에 쏠리고 있다. 51조원은 현재 코스피 시가총액 4위 종목(삼성바이오로직스)보다 많은 액수다. 상식적으로 국내 어떤 재벌도 통장에 이만한 현금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기의 세계에 ‘절대’란 없으므로 방심은 금물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전씨가 감쪽같은 가짜 앱을 쓴 것처럼 각종 기술의 발전으로 사기 수법도 진화하면서 고학력·고소득자마저 사기꾼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112 전화 걸면 보이스피싱 조직 연결   테라·루나 코인 피해자들은 권도형 대표를 경찰에 고소했다. [연합뉴스] 1일 충남경찰청에 따르면 현직 서울대 교수 A씨는 검사와 금융감독원 직원 등으로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 전화에 속아 10억원을 뜯겼다. 자신의 은행 계좌가 범죄 조직의 자금 세탁에 이용돼 공범으로 곧 구속될 것이라는 말에 A씨는 처음엔 신빙성을 의심, 112에 신고했다. 그런데 112를 통해 연결된 서울중앙지검에선 해당 내용이 사실이라며 A씨를 현혹시켰다.   알고 보니 A씨 휴대전화에 이미 악성 앱이 깔려서 A씨의 112 전화가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연결되는 구조였던 것이다. 검거된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런 수법 등으로 5년간 1891명을 상대로 총 1500억원가량을 뜯어냈고, 피해자 상당수는 A씨 외에도 의사나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직원 등 고학력·고소득자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가하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암호화폐 열풍 속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기술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역시 고학력·고소득자 대상의 사기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최근 광주지검에 따르면 B씨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고수익과 원금 보장을 약속, 13명한테서 미술품과 연계된 NFT 관련 투자금 등 명목으로 약 28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관련기사 전청조 19억 사기 혐의 구속…“범행 인정, 수사에 적극 협조” 보이스피싱 하루 평균 22억원 피해…피해자 비난 겁나 당해도 신고 안 해 블록체인 전문 곽상빈 변호사는 “NFT는 복제가 불가능하지만 발행은 자유롭다는 점을 사기꾼들이 악용하기 쉬운 분야”라며 “국내에서 NFT 투자 설명회를 통해 투자자를 모집, 수개월간 수익금을 지급하면서 이들을 안심시킨 다음에 추가 투자자 모집이 어려워지면 잠적하는 식의 투자 사기가 급증해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전청조씨처럼 거짓된 애정 관계를 형성한 뒤 돈을 뜯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 로맨스스캠(Romance Scam)도 기술 발전으로 날개를 단 사기 유형이다. 인천서부경찰서에 따르면 C씨는 지난해 채팅 앱에서 만나 연인 행세를 한 사기꾼의 말을 듣고 한 사이트에 유료로 가입했다. 사기꾼이 속한 조직이 연루된 사이트였다. 이후 사이트에서 환전 아이템 구입 등의 각종 비용을 요구했고, C씨가 수천만원을 입금했을 때 사기꾼과 해당 사이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이처럼 신기술과 함께 천태만상으로 진화한 사기 수법들이지만 그 기본 바탕엔 사람 심리의 취약한 부분에 대한 겨냥이 있다. 자신이 어렵게 이룬 사회적 지위 등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A씨의 사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심(B씨에게 투자한 13명의 사례), 외로움(C씨의 사례) 등이다. 배상훈 프로파일러(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는 “대부분의 사기는 수법이 정교해서가 아니라 피해자의 판단이 흐려져 발생한다”며 “사기꾼은 교묘한 언행으로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현직 검사도 비슷한 원리로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검사 D씨는 유아용 카시트를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해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판매자를 찾았고, 그가 자신의 신분증과 함께 교회 부목사라며 교회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줘서 믿었는데 사기꾼이었다(『여자 사람 검사』(서아람·박민희·김은수)).   찰스 폰지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기 수법 중 하나로 지금껏 이어지는 ‘폰지 사기’도 이를 입증하는 사례다. 1920년대 미국에서 활동한 사기꾼 찰스 폰지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다단계 사기를 가리킨다. 폰지는 당시 해외에 있던 국제우편 쿠폰을 대량 매입한 뒤 미국에서 유통시키면 환차익을 거둘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유혹했다. 그러면서 투자한 지 45일 후 원금의 50%, 90일 후 100%에 달하는 수익을 지급할 것을 약속해 수개월 만에 막대한 규모의 투자금을 모았다. 하지만 이렇게 모인 당대 수많은 엘리트의 욕망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당시 미국에선 그렇게 많은 쿠폰을 유통할 수 없었고, 쿠폰 환전에만 45일이 넘게 걸렸다. 폰지의 사업은 나중에 들어온 투자자들의 돈으로 간신히 버티다가 결국 순식간에 몰락했다.   처벌 약해 감옥 갔다 나와서 또 사기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이후 폰지 사기는 지난해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등이 연루된 암호화폐 테라·루나 사태(가격 99% 이상 폭락) 같은 모습 등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피해를 입은 투자자 다수는 테라·루나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글로벌 암호화폐 투자 업계의 거물 중 한 명인 마이크 노보그라츠 갤럭시디지털 CEO는 팔에 루나 관련 문신까지 했다가 해당 사태 직후 “나의 문신은 투자에서 겸손을 요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할 것”이라며 자책하기도 했다. 살면서 이룬 성취를 통해 스스로의 판단을 과신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고학력·고소득자들이 부풀어 오른 욕망을 제어하지 못했을 때 얼마나 쉽게 사기 피해에 노출될 수 있는지가 드러난 또 하나의 사례라 할 만하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사기 공화국’이라는 표현이 유행할 만큼 사기 범죄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 23만1489건이던 국내 사기죄 발생 건수는 지난해 32만5848건으로 5년 사이 40%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검거 건수는 18만3974건에서 19만1900건으로 약 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사기 수법이 지능·고도화하면서 피해 급증과 동시에 검거율은 수직 하락 중이라는 얘기다. 전체 범죄 대비 사기죄의 비중도 2017년 13.9%에서 2021년 20.6%로 높아졌다. 일본은 2019년 4.3%에 불과했던 것과 대조된다.   동종 재범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기 재범은 3만3063건으로 음주운전 등의 교통 재범(4만8949건) 다음으로 많았다. 낮은 양형 기준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현행법상 1억원 미만 일반 사기는 기본 6개월에서 1년 6개월의 징역, 수법이 불량하거나 동종 재범인 경우도 2년 6개월의 징역에 그친다. 1조원대 사모펀드 사기를 저지른 김재현 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의 징역 40년이 가중 처벌 요소를 포함한 역대 최고 형량이다. 이와 달리 미국에선 1990년대에 보험 회사를 상대로 4억5000만 달러(약 6070억원)어치 사기를 친 숄람 와이스에게 징역 845년, 1970년대 초부터 2008년까지 세계 136개국 투자자들을 상대로 175억 달러(약 23조원)어치 폰지 사기를 벌인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징역 150년 등 사실상 종신형까지 선고할 만큼 사기죄에 대한 엄벌주의를 고수한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금전적 처벌도 약해서 2021년 기준 사기죄 피해액의 45.6%만 회수되고 있다. 일각에서 “사기 쳐서 목돈부터 챙긴 뒤 감옥살이 좀 하다가 나와도 이득”이란 얘기마저 나오는 이유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기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사기죄 발생과 사기 재범 급증 등 악순환을 낳고 있다”며 “처벌을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외에도 최근 연령대별로 피해를 입기 쉬운 사기 유형에 대한 국민들의 숙지가 필요하다고 당부한다.   예컨대 청소년층의 경우 보험 사기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기꾼이 자동차 사고 보험금을 편취할 목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청소년을 모집, 아르바이트인 것처럼 모르고 참여하게 한다”며 “결과적으로 고의로 자동차 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나누는 범죄에 가담하게 된다”고 전했다. 중·장년층은 분양권을 미끼로 가계약금을 가로채는 등의 분양권 사기, 노년층은 신용카드로 세금을 대신 납부해주면 그 수수료를 지급하겠다고 유인한 뒤 결제액을 가로채는 등의 카드대납 사기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2023.11.04 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