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대선, 선거인단에 투표해 뽑는 간선제…올해는 11월 5일 사실상 결정

     ━  막 오른 미 대선…왜 다시 트럼프인가   미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은 크게 두 단계다. 공화·민주 양당이 대선 후보를 뽑은 다음, 두 후보가 경쟁해 최종 승자가 대통령이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이 매우 복잡해 미국인들도 이해하기 어렵다. 직선제가 아니라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국민들의 직접투표가 아닌 주별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의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한다. 미국 대선 제도를 일문일답으로 풀어보자.   코커스와 프라이머리가 다른 점은. “둘 다 당내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이다. 우선, 코커스는 정당의 당원대회다. 당원들이 모여 지지하는 후보들을 놓고 토론을 한 뒤 각자 지지 후보를 결정해 투표한다. 당의 성향에 충실하고 탄탄한 조직을 가진 후보가 유리하다. 프라이머리는 당원뿐 아니라 일반 유권자도 참여한다. 정당 대신 주 정부의 선거관리기구가 행사를 맡는다. 코커스와 달리 일반인 참여가 가능해 민심을 더 잘 반영한다는 특징이 있다.”   당내 경선에서 대선 후보를 뽑는 대의원은 어떻게 선정하나. “주별 경선에서 각 후보가 얻는 지지율에 따라 대의원을 후보들에게 배분한다. 민주당의 경우 경선에서 15% 이상의 지지율을 얻지 못한 후보의 지지자들은 2차 투표를 해야 한다. 15% 이상을 얻은 다른 후보를 다시 선택해야 한다. 이후 최종 지지율을 근거로 후보별로 대의원을 배분하게 된다. 공화당의 경우 주별로 최저 지지율 기준이 다르다.”   관련기사 “이민자가 미국 부·권력 탈취” 분노 등에 업고…트럼프, 더 강해져 돌아왔다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에 떨고 있는 지구촌 트럼프 91건 혐의 형사 기소, ‘1·6 의회 폭동’ 대선 전 유죄 땐 큰 타격 본선에서 대통령 선거인단은 어떻게 구성되나. “총 선거인단은 538명이다. 이 중 과반인 270명 이상의 지지를 얻는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4년마다 11월 첫째 월요일 다음 날인 화요일에 일반 유권자들이 대통령 선거인단을 뽑는다. 올 대선의 경우 11월 5일이다. 이들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투표는 실제 12월 17일 열린다. 대통령이 선출되는 날은 12월 17일이지만 선거인단에 지원한 사람들이 이미 누구를 지지할 것인지를 미리 공개하기에 이들에 대한 선출이 확정되면 누가 대통령이 될지도 결정된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2024.01.27 00:41

  •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에 떨고 있는 지구촌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에 떨고 있는 지구촌

     ━  막 오른 미 대선…왜 다시 트럼프인가   지난해 1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이 독일 비스바덴에 있는 미군 유럽·아프리카 사령부를 방문해 지휘관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공화당의 대선 후보 등극에 성큼 다가섰다. 이 기세라면 3월 말 전에 대의원 과반을 확보하면서 경선이 사실상 종료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미국 역사상 1892년 대선 이후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이 자신을 꺾었던 현직 대통령과 재대결을 벌이게 된다.   만약 오는 11월 5일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해 내년 1월 20일에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면 한국을 포함한 세계는 다양한 트럼프 리스크에 또다시 직면하게 된다. 예측 불허 트럼프의 일방적인 정책을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1기 행정부 당시와 트럼프 개인 성향을 기초로 어느 정도 추정은 가능하다.   군사 안보 차원에서 볼 때 트럼프는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의 해외 분쟁 개입을 극도로 싫어한다. 동맹 관계나 미국의 대(大)전략에 따른 기존의 전략적 가치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에 따라 유럽, 중동, 아시아 등 곳곳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장 즉각적인 영향이 미칠 곳은 우크라이나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할 것이 분명하다. 이미 공화당 유권자들 대다수와 중도층은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부정적인 터라 트럼프가 마주칠 정치적 반대도 거의 없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도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간의 입장차는 분명하다. 바이든은 젊은 세대와 미국 내 소수 인종을 신경 써야 하기에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이스라엘과 다른 노선임을 강조하는데 반해, 개신교 세력을 선거에 동원해야 하는 트럼프로서는 이스라엘 지지를 확고히 할 것이다.   관련기사 “이민자가 미국 부·권력 탈취” 분노 등에 업고…트럼프, 더 강해져 돌아왔다 트럼프 91건 혐의 형사 기소, ‘1·6 의회 폭동’ 대선 전 유죄 땐 큰 타격 미 대선, 선거인단에 투표해 뽑는 간선제…올해는 11월 5일 사실상 결정 어차피 이번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후보를 선택할지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다. 문제는 선거 때 투표하러 갈 것인지 말 것인지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바이든과 트럼프의 정책 차이는 투표율에서 중요 변수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대만 유사시와 관련해선 바이든이 대만에 대한 절대적 수호 입장이지만, 트럼프는 선거 기간 동안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심산이다. 우크라이나든 중동이든 대만이든 북한이든 자신의 임기 중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바이든의 안보 정책 실패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선전 중이다.   트럼프의 경제 리스크는 어떠할까. 일단 1기 행정부 당시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요구처럼 한국만 따로 치르는 비용 구도와는 다소 다른 전개가 유력하다. 현재까지 파악된 리스크는 수입 품목 전반에 걸친 10% 관세 부과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 공언 등이다. 1974년에 제정된 무역법의 301조에 근거한 관세 부과는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대한 적대감이 팽배한 미국 유권자들을 위한 맞춤형 통상 정책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나서서 미국의 소비자에게 돌아갈 피해와 물가상승 우려, 그리고 전 세계 국가들이 취할 대미 보복 무역 조치 가능성을 아무리 설파해도 선거 기간 중에는 공감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추후 미국 경제에 부작용이 드러나는 시점에 가서야 트럼프는 관세 인하를 유인책으로 유럽 및 아시아 국가들과의 개별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큰데, 2020년 초 중국과의 협상 타결이 전례다. 실제로 관세 부과보다 우리 기업에 더 심각한 트럼프 리스크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전면 폐기 시나리오다. 배터리를 포함한 에너지와 기후 환경 관련하여 이미 추진 중인 생산 및 투자 계획에 상당한 파급력이 미칠 전망이다. 청정에너지 산업과 기술에 약 370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세제와 금융 혜택을 부여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경우 지난 2022년 여름 입법 당시의 한국 전기차에 미칠 피해 우려는 거의 해결됐지만 우리 기업이 중국과의 배터리 산업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호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11월 5일에 대선과 함께 치러질 의회 선거도 중요하다. 현재 전망으로는 상원 선거에서 공화당 현역 의원이 출마하는 11곳 모두 낙승이 확실한 반면, 민주당이 지켜야 하는 23석 가운데 적어도 3석이 경합 중이고 그 중 이미 1석은 공화당에 빼앗길 것이 분명하다. 그 경우 2025년 1월 3일에 개원하는 새 의회에서 상원 공화당은 적어도 50석 이상을 획득하고 하원 공화당은 현재의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게 되므로 트럼프 1기 행정부 첫 2년(2017~2018)과 마찬가지로 공화당 대통령-공화당 의회 시대가 만들어진다. 다만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전면 폐기될지는 불투명하다. 우선 입법 과정으로만 보면 상원 의사규칙 자문관의 판단에 따라 인플레이션 감축법 폐기 법안을 예산조정절차에 태우게 된다면 필리버스터가 배제되므로 상하원 모두 단순 과반으로 폐기 법안의 통과가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포함된 막대한 규모의 세금 및 금융 혜택과 그로 인한 생산 투자 계획이 다수의 공화당 지역구에서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둘째, 인플레이션 감축법 안에 포함된 처방전 약값 인하, 특히 인슐린 비용을 한 달에 35달러 이하로 낮춘 점 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전부 폐기해 버리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이 공화당에도 따른다. 또한 폐기하더라도 이미 지출이 확정된 경우에는 예산 회수도 불가능하다. 만일 기후 위기 관련 조항들만 따로 떼어서 법 개정을 하려고 한다면 예산조정절차에 적용하는 것이 불분명해지며 민주당 상원의 필리버스터에 의해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트럼프가 당선되는 경우 안보 및 통상과 관련된 리스크가 적지 않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우리가 이미 트럼프의 정책 기조를 겪어봤기에 대처가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4.01.27 00:40

  • "상속세, 경제에 손실 입히는 세금…혁신기업 등장도 막아"

    "상속세, 경제에 손실 입히는 세금…혁신기업 등장도 막아"

     ━  글로벌 이슈 떠오른 상속세   에이먼 버틀러 애덤스미스연구소(ASI) 소장은 40여 년간 전 세계 시장경제 정책을 연구해온 자유시장주의자다. [사진 ASI] 상속세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이어 17일 상속세 완화 방침을 시사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국거래소에서 개최한 민생토론회에서 “소액 주주는 주가가 올라야 이득을 보지만,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며 “결국 주식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과도한 세제는 우리 중산층과 서민에게 피해를 준다”고 말했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으로 상속세를 지목하면서 사실상 세 부담 완화를 시사한 것이다. 사실 상속세 개편은 윤 정부가 출범 이후 공식화했지만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현재 속도 조절 중인 정책이다. 부의 대물림으로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란 국민적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주식시장 발전 저해’라는 논리로 상속세 개편 추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높은 세율, 불법으로 회피하고 싶게 만들어   이런 가운데 상속세 원조국인 영국이 오는 3월 상속세 단계적 폐지를 논의하기로 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정부는 기업 투자 활성화를 통해 경제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논리로 상속세 개편을 추진 중이다. 영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020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낮은 0.5%에 그쳤다.(국제통화기금) 올해 전망치도 0.6% 정도로 2년 연속 0%대 성장률이 예상된다.   과도한 상속세가 기업 투자에 걸림돌이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래서 스웨덴이 2005년, 노르웨이·체코가 2014년에 상속세를 전면 페지했다. 영국의 경제정책 싱크탱크인 애덤스미스연구소(Adam Smith Institute·ASI) 소장이자 공동창립자인 에이먼 버틀러(Eamonn Butler)는 “(상속세는) 경제에 손실을 입히는 세금이자, 혁신적인 기업이 등장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세금”이라고 말한다.   기업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투자를 늘리기 어렵고, 이게 결국은 나라 전체의 손실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그가 속한 애덤스미스연구소는 마가렛 대처 정부 시절 법인·소득세 인하를 통한 기업 투자 활성화 정책을 정부에 제안해 경제성장률을 확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1.53%였던 경제성장률은 2.46%로 1%포인트 가까이 올랐고, 매년 10% 넘게 치솟던 물가는 3%대로 낮아진 바 있다. 이후 ASI는 영국 경제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24일 이메일을 통해 버틀러 소장을 만났다.   영국 정부가 상속세 개편을 예고했다. “폐지까지는 갈 길이 남았지만 꼭 폐지되길 바란다. 집권당인 보수당은 지도자가 몇 차례 바뀌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팬데믹 기간 쌓인 부채 탓에 세제 정책에는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하지만 이 기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됐다. 과세 대상이 점차 확대되면서 지지자들은 이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선거를 1년여 앞둔 정부가 지지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여러 감세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상속세도 이 일환이다.”   상속세율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나. “구체적인 방식은 3월 발표 예정이다. 가장 좋은 건 상속세율을 낮추거나 점진적인 개혁을 하는 것이 아닌 폐지다. 기업과 경제의 생산성을 떨어트리는 세금은 하루빨리 없애는 것이 좋다. 세율을 낮추는 단계적 변화 방식은 언제든 원상 복귀될 수 있기 때문에 세금을 폐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영국에서 상속세가 200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상속세는 1812년 나폴레옹의 전쟁 자금 마련을 위해 도입됐다. 그 이후로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세수를 늘리고 싶어했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최근까지는 극소수에게만 적용되었기에 중요한 세금으로 다뤄지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범위가 3.76%까지 늘었다.”   상속세에 불만이 많다. “상속세는 애초에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세금이다. 모든 인류에게는 자신의 자식에게 무언가를 물려주고, 우리보다 더 나은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본성이 심어져 있는데, 이를 무시하는 세금이다. 이중과세 등의 문제도 있다. 그런데 세율도 너무 높다. 영국은 상속세율이 40%인데 이는 탈법이나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회피하고 싶게 만드는 수준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나 개인이 상속세 절세 방법을 찾는데 노동력이나 시간, 자금을 낭비하고 있다. 상속세 폐지로 가야 하지만, 그게 안 된다면 세율을 낮춰야 한다. 10% 정도라면 기업이나 개인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본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러나 일부에서는 상류층의 과도한 세습을 막고 양극화된 부를 재편하기 위해 상속세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상속세 정도의 허들조차 없다면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심화될 거란 시각에서다.   한국은 상속세율이 최고 60%에 이른다. “너무 높다(too high). 한국 경제에 명백한 손실(drain)이다. 상속세가 이렇게 높으면 아이디어가 있고 기술이 있어도 이를 바탕으로 한 창업 등 기업 일구는 일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렇지 않나? 한국의 우수 인력은 창업에 도전하는 게 아니라,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을 선호한다. 상속세를 개편해 돈의 흐름을 유연하게 한다면, 더 많은 돈이 이동할 것이고 창업 희망자나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는 일도 좀 더 용이할 것이다.”   한국에선 상속세 납부를 위해 기업 지분을 팔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의 기업은 상속세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다른 나라의 기업보다 많은 제약을 안고 있는 셈이다. 상속세는 생산적인 투자보다는 세금을 피하기 위한(혹은 피할 수 있는) 투자를 하게 만들고, 이는 결국 경제 전체를 고통 받게 만들 뿐이다.”   상속세, 더 많은 중산층에게 적용될 우려   상속세 폐지나 개편에 반대하는 주장 속에는 세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기획재정부도 지난해 세법 개정으로 올해 세수가 크게 줄어들 것을 우려해 상속세 개편에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23일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세제 개편으로 약 1000억~2000억원의 세수감소가 예상된다”며 “상속세 개편론에 대해 신중하게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밝혔다. 상속세마저 개편하면 세수가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다.   상속세 개편에 따른 세수 감소 우려는. “상속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영국만 해도 2022~2023년 상속세 수입은 70억9000만 파운드로 전체 세입 1조270억 파운드의 약 0.7%에 그쳤다. 이 정도라면 세율을 0%대로 낮춰도 사실상 타격이 없는 수준이다. 한국도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금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큰 건 정부 수입이 아니라 자본이다. 세수 감소가 걱정돼 상속세를 개편할 수 없다면 앞으로 그 어떤 세금도 줄일 수 없다.”   상속세 대상은 극소수라는 주장도 있다. “극소수에게 적용되는 세금이라도 잘못됐다는 인식이 있다면 줄이는 것이 맞다. 또 상속세가 향후 더 많은 중산층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상속세는 정부를 좀 더 부유하게 만들 순 있지만, 경제 전체는 훨씬 더 가난하게 만든다.”   한국은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고 본다. 기업이 자본의 절반을 상속세로 납부해야 한다는 건, 한국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투자가 부족하면 기업이 번창할 수 없고, 주가가 내려갈 수밖에 없다. 과도한 법인세와 양도소득세도 마찬가지다. 어떤 투자가 옳을지 고민해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 방법은 없나. “한국 경제는 자본 집약적 환경에서 창의적인 기업가를 위한 환경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컨대 자본이 대기업 한 곳이 아닌 더 많은 사람에게 분배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한다. 적어도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많은 사람이 자본을 빼앗기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 스웨덴·노르웨이 폐지…미국은 상속세 공제액 늘려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은 2000년대 이후 상속세를 단계적 축소 혹은 폐지해 왔다. 대표적인 사회주의 국가인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각각 2005년과 2014년에, 체코는 2014년에 상속세를 전면 폐지했다. 한때 상속세율이 최고 70%에 달했던 스웨덴이 상속세를 전면 폐지한 건 상속세로 인해 기업의 기반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1984년에는 과도한 상속세로 기업 승계를 포기한 스웨덴 기업 ‘아스트라’가 영국의 ‘제네카’에 인수돼 영국 기업 ‘아스트라제네카’로 합병됐고, 세계 최대 가구업체인 이케아는 상속세를 피해 네덜란드로 본사를 옮기기도 했다. 기업들이 줄줄이 해외로 떠나자 진보정당인 사민당이 나서서 상속세를 폐지했다.   공제 한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국가도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인데, 미국은 최고 40%의 상속세율을 유지하는 대신 상속세 공제액을 늘리는 방식으로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 500만 달러(약 66억원) 수준이었던 상속·증여세 면세 한도는 2018년 연방정부가 개정세법(TCJA)을 제정하면서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기준 상속세 면제 한도는 1292만 달러(약 172억원)에 달한다.   1985년 상속세를 폐지한 캐나다는 상속 시점에 부과하는 상속세 대신 물려받은 재산을 처분할 때 발생한 자본차익에 세금을 물리는 자본이득세를 부과한다. 상속 당시보다 상속 이후 차익에 대한 세금을 걷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중과세를 막을 수 있단 측면에서 한국이 참고할 만한 사례다. 」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2024.01.27 00:33

  • 상업위성만 우주청, 군사위성은 국방부…반쪽 사령탑 우려

    상업위성만 우주청, 군사위성은 국방부…반쪽 사령탑 우려

     ━  ‘한국판 NASA’ 우주청 5월 발족   다누리호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우주항공청 특별법(우주항공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23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한국판 NASA(미국 항공우주국)’로 불리는 우주항공청 설립이 확정됐다. 1958년 창설된 NASA는 비(非)군사적인 우주개발을 모두 관할하고 종합적인 우주계획을 추진한다. 김승조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명예교수는 “경제성이 있는 우주산업과 스페이스X(미국의 민간 우주기업) 같은 선봉장 육성을 위해선 우주항공청은 필수”라고 말했다.   “정부 기능 단계적으로 우주청에 이관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발표에 따르면 우주항공청 개청 시기는 오는 5월, 장소는 경남 사천이다. 관련 예산은 8000억원, 인력은 300명(연구 200명, 행정 100명) 규모다. 정부는 우주항공청을 중심으로 ▶혁신 우주항공 기업 2000개 이상 육성 ▶50만 일자리 창출 ▶2045년 국내 우주산업 시장 규모 420조원 달성을 통한 세계 5대 우주강국 진입 등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우주항공청은 (한국이) 2032년 달 착륙, 2045년 화성 탐사라는 목표 달성을 통해 글로벌 우주강국으로 도약하는 위대한 발걸음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우주항공청 설립은 그동안 국내 과학·산업계의 숙원 사업이었다. 우주산업 컨트롤타워가 들어서면 관련 생태계 구축과 기술 경쟁력 제고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미국 등 선진국처럼 민간 주도 우주산업 발전을 체계화할 수 있게 된 점에 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방효충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과거 미국과 소련의 패권 경쟁 수단에 국한됐던 글로벌 우주산업은 21세기 들어 민간 주도로 성장, 선진국형 고부가가치 창출 산업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며 “우주산업 분야에서 공동 연구·개발(R&D)의 체계화가 시급했는데 우주항공청을 통해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특히 우주산업은 외교·안보·국방 등의 분야와도 직결돼 ‘종합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하기 때문에 컨트롤타워가 필수다. 그동안 국내 우주산업은 과기정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가 역할을 분담해 전략을 마련하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 등의 국책 연구기관이 R&D에 매진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우주항공청이 설립되면 과기정통부와 산업부의 우주 관련 사무는 대부분 우주항공청으로 이관하고, 항우연과 천문연은 우주항공청 산하 기관으로 편입될 예정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일각에선 우주항공청이 자칫 ‘반쪽짜리 컨트롤타워’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외교·안보·국방 분야 정책 주체인 외교부와 국방부, 항공 정책과 규제를 담당하는 국토교통부의 우주 관련 사무는 우주항공청의 업무 범위에서 제외돼 이관이 불발됐기 때문이다. 우주항공청이 과학·기술·산업뿐 아니라 외교·안보·국방 분야에서 직접 상황을 조율하면서 우주산업 발전의 난점을 풀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물음표가 붙는 것이다. 예컨대 우주산업의 핵심 상용 기술인 위성은 국방에서도 매우 중요한 분야다. 하지만 이대로 우주항공청이 들어서면 상용 위성 기술은 우주항공청이, 군사 위성 기술은 국방부가 맡는 식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 일관된 정책 추진과 관련 R&D가 어려울 공산이 크다.   외교에서도 NASA 등과의 국제 협력 업무를 우주항공청이 수행해야 하는데, 외교부의 우주 관련 기능 이관이 없다면 외교부와 우주항공청이 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다. 국책 연구기관 중에서는 우주 정책 관련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의 우주항공청 편입이 불발돼 비슷한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러자 우주항공청을 유치한 경남도청은 문제 제기에 나섰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23일 “우주항공청이 우리나라 우주산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외교·국방·국토부의 우주 관련 기능뿐 아니라 STEPI 등 산하 기관의 연구 기능 모두를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구조로는 우주항공청이 본래 설립 취지답게 우주 분야 R&D와 정책을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로서 기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지사는 “단기적으로 모든 기능을 흡수할 수 없다면 (정부가) 장기 계획을 수립해 단계별 이관이 될 수 있도록 정부에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국방 분야의 경우 우주 안보 기능만은 우주항공청이 맡게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조직의 이관이나 파견 형태의 인력 교류는 계획하지 않고 있다. 이재형 과기정통부 우주항공청설립추진단장은 “외교·국방·국토부에서 추후에 이를 요청하면 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젊고 유능한 인사를 초대 청장 발탁해야”   한국의 첫 달 탐사선 다누리호 발사 장면. 다누리호는 2022년 8월 5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 버럴 미 우주군 기지에서 팰컨9 로켓에 실려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당장은 모든 정부 부처와 싱크탱크의 우주 관련 기능 흡수가 어렵더라도, 정부가 장기적으로는 이관에 나서야 우주항공청이 비로소 종합 컨트롤타워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특히 국책 연구기관들은 매년 정부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간 잘 해왔던 검증된 분야의 기술 또는 정책 개발에만 관성적으로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우주항공청을 중심으로 우주산업에서 기존에 미진했던 분야 고부가가치 창출을 도모하려면, 우주항공청에 모든 우주 관련 기능을 모아 자연스럽게 이런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 우려되는 문제는 인력 수급이다. 정부가 계획한 인력 300명이 많은 수는 아니지만, 컨트롤타워에 걸맞은 우수 인력으로 이를 채우려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 우주산업 분야 인력은 선진국 대비 열악한 육성 환경 탓에 지난해 기준 약 1만 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우주산업 분야 인재 육성에 일찌감치 전념했던 미국은 NASA 소속 인력만 1만7000명이 넘는다. 익명을 원한 한 대학 교수는 “가뜩이나 인력 공급이 부족한데 불확실한 미래를 감수하고 우주항공청에 들어가려는 인재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지역 균형 발전 도모라는 정부 취지는 이해하지만 우주항공청이 들어설 사천은 구직자 입장에선 비선호 격오지”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과학계 일각에서는 우주항공청의 입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정부는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는 ‘열린 채용’으로 이 같은 우려를 극복한다는 방침이다. 이종호 장관은 “해외에도 NASA 등에서 근무한 외국인, 또는 한인이면서 이중 국적인 우수 인재가 많다”며 “이들도 많이 채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국내 산업체 종사자뿐 아니라 항우연과 천문연 등 국책 연구기관 소속 인력까지 누구나 우주항공청 공채에 지원해서 합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우주항공청 소속 임기제 공무원의 경우 직급 관계없이 기존 보수 체계의 150%를 초과하는 연봉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한편, 사천의 주택·교통 등 정주여건 지원에도 나서기로 했다.   한편, 조직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외국인 청장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우주산업 분야가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다는 이유로 해당 조항은 삭제된 바 있다. 일반 연구직엔 외국인을 채용하더라도 청장은 내국인 임명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우주산업의 깜짝 강자로 떠오른 아랍에미리트(UAE)가 2014년 우주청을 만들면서 초대 청장에 30대 여성 과학자(사라 알 아미리)를 임명, 경쟁국 대비 과감한 의사결정으로 빠르게 우주강국 반열에 오른 것처럼 한국도 젊고 유능한 인사를 초대 우주항공청장으로 발탁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일각에선 전문성뿐 아니라 정부와의 교류, 내부 조직원 결속 등에 능한 정치력까지 갖춘 인사가 청장이 돼야 첫 출범 조직의 애로점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2024.01.27 00:31

  • "연극배우 연봉이 200만원? 가난한 이미지에 가두지 마세요"

    "연극배우 연봉이 200만원? 가난한 이미지에 가두지 마세요"

     ━  [비욘드 스테이지] 연극 ‘와이프’ 화제의 배우 이승주   화제의 연극 ‘와이프’에서 마초와 게이를 넘나드는 폭넓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이승주 배우. 김상선 기자 최근 소녀시대 수영의 연극 데뷔작 ‘와이프’ 공연 중 관객의 대포카메라 촬영 사건이 화제였다. 우리 관람문화에 무지한 외국인 관객이 벌인 해프닝이었다고 한다. 엉뚱한 이슈가 터졌지만 ‘와이프’는 연극계 블루칩 신유청이 연출한 보기드문 웰메이드 연극이다. 영국 극작가 사무엘 아담슨이 입센의 ‘인형의 집’을 창조적으로 해체해 성소수자와 다양성에 관한 담론을 제시한 작품인데, 2019년 국내 초연 당시 동아연극상 3관왕과 최초의 백상연극상까지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이번엔 수영 뿐 아니라 정웅인·김소진·박지나·송재림 등 매체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소녀시대 수영·송재림 등 출연 유명세   그런데 연극팬이라면 이보다 놀랄만한 재발견이 있다. 마초남 ‘로버트’에서 동성애자 ‘아이바’를 거쳐 하남자 ‘핀’으로 3단 변신하는 배우 이승주다. 2010년대 한태숙 연출의 ‘유리동물원’, 김광보 연출의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M.버터플라이’‘사회의 기둥들’ 등 굵직굵직한 작품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다 2017년 예술의전당 기획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를 끝으로 무대서 사라졌다. 1년 전 국립극단 ‘세인트 조앤’으로 조용히 컴백했지만, 이번에 신들린 ‘게이 연기’로 빵 터졌다. 뮤지컬계 게이 연기의 달인 김호영이 연상될 정도인데, 빈틈없이 반듯한 외모라 더 충격적이다.   “스테레오타입의 동성애자 연기는 처음이라 초기엔 힘들었어요. 요즘은 매체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전형적인 표현이 될까봐 오히려 안 찾아봤거든요. 아이바란 인물이 가진 상태에만 집중하니 연출님에게 ‘너무 남자답다’는 걱정을 듣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속된말로 ‘게이스런’ 몸짓이 조금씩 나오더군요. 역시 껍데기가 아닌 마음부터 채우는 게 옳은 선택이었나 봐요.”   걸그룹 소녀시대의 최수영(왼쪽)의 마초 남편 로버트도 이승주의 1인 3역 중 하나다. [사진 글림컴퍼니] 최초의 페미니즘 연극 ‘인형의 집’ 속 젠더 이슈가 현대에도 여전하듯, ‘와이프’도 1959년에서 시작해 1988년·2023년·2046년까지 시대별 에피소드의 순환구조 속에서 변함없이 소외받는 성소수자의 입장에 확대경을 댄다. 이승주는 막이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캐릭터로 변신하는데, 1인 3역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다. “로버트같은 인물, 아이바같은 인물, 핀같은 인물을 한 배우가 하는 게 정말 큰 의미가 있고, 셋이 전혀 다른 사람이지만 근간에 내가 있다는 걸 드러내는 게 관건이에요. 극단적인 캐릭터 사이 벽을 깨부수는 거죠. 세 사람을 가르는 시선은 하나의 틀일뿐, 그 틀로 사람을 규정할 수 없다는 뜻 같아요. 단순히 퀴어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과 연극에 관한 이야기죠.”   2막에 20대였다가 3막에 50대 다른 배우로 등장하는 아이바는 동성 커플 관계상 갑에서 을로 극명한 변화를 보여주면서 작가의 의도를 대변하는 캐릭터다. “연습 때 실제 성소수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는데, 딱 ‘50대 아이바’같은 분도 있더군요. 굉장히 시니컬하고 자조적인 태도였는데, 중년 게이로 산다는 게 그만큼 힘들고 외롭다고 해요. 젊어서는 당당히 싸웠지만 점점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는 거죠. 어쩌면 가장 소외된 계층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스테레오타입의 동성애자 몸짓을 찰지게 표현하는 이승주. [사진 글림컴퍼니] 그들에게 공감이 잘 되냐고 물으니 “대한민국의 40대 남자 연극배우만큼 소외된 계층도 없다”고 답한다. “좀 웃픈 얘긴데, 연극한다고 하면 밥은 먹고 다니냐, TV는 언제 나오냐, 돈도 벌어야지 그래요. 30대까지는 미래성을 봐줬다면, 40대인 나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소외 그 자체죠. 연극에서 기반을 다져 매체에서 잘되신 분들이 토크쇼에 나가 ‘연봉 200만원이었다’는 식의 얘기는 제발 안했으면 해요. 본인이 좋아서 했고 얻은 게 있다면 그 시간과 노력을 돈으로 견줄 수 없는데, 그런 얘길 하면 어떤 부모가 연극하라고 할까요. 러시아처럼 존경받진 못할지언정 어둡고 가난한 이미지에 갇히는 게 속상해요. 연극 덕을 봤으면 연극이 너무 좋고 너무 배웠다고 말해도 모자란데, 한 달에 20만원 받았다는 얘기만 하는 건 화가 나요.”   완벽한 외모 때문에 편견을 갖기 쉽지만, 이승주는 누구보다 연극에 진심이다. 하지만 연극인이 연극만으로 연극판에서 버티기 힘든 시대인 건 사실이다. 그가 무대를 사랑하지만 떠나야 했던 것도 그래서다. 영화 ‘악녀’(2017), 드라마 ‘스케치’(2018) 등 매체 문도 두드렸지만, 개점휴업 상태가 오래 갔다. “작품 하나 끝나면 몇 개월 쉬게 되는 그 시간을 못 견딘 거죠. 우연히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됐는데, 나름 성취감도 있더군요. 연기를 관두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세월이 갔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힘들 때마다 한태숙, 김광보 연출님이 ‘너는 연극배우다. 잊지 마라’는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혼자 많이 울었죠.”   5년 공백기 거친뒤 예민한 성격 둥글어져   연극 '와이프'에서 마초남 로버트를 연기하는 이승주. [사진 글림컴퍼니] 결국 다시 돌아온 것도 김광보 연출의 부름을 받고서다. 하지만 5년 만에 쿨하게 무대를 밟기란 쉽지 않았다. “미칠만큼 힘들었다”면서 오히려 데뷔무대답지 않은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수영을 추켜세웠다. “발가벗겨진 느낌이라 처음엔 무대에 잘 서있기도 힘들거든요. 그런데 수영이는 종류는 달라도 큰 무대에 많이 서봐서 그런가봐요. 혼자 준비한 것뿐만 아니라 리액션도 잘하고 되게 살아있죠. 영감을 주는 배우랄까요.”   공백기가 약이 된 면도 있다. 연기에 대해 병적으로 예민하던 성격이 조금은 둥글어졌다. “너무 깊게 파고들지 않으려고 해요. 전에는 첫 리딩 때 대본을 다 외워갈 정도로 필사적이었죠. 연출님한테 새벽에 카톡 보내고. 그저 잘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었는데, 그게 남을 불편하게 했다는 걸 쉬면서 깨달았어요. 본질은 그대로겠지만, 날카롭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전작인 ‘튜링머신’ 공연과 ‘와이프’ 연습을 병행하는 ‘겹치기’도 데뷔 이래 처음 해 봤다고. “스스로 가장 치열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지금 간절한 버킷리스트도 생겼다. “오래 전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을 봤거든요. 마치 연극을 찍어놓은 것 같은 오래된 흑백영화였는데, 왠지 모르게 온몸에 전율이 일었고 그 영향으로 연극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10년 전 ‘유리동물원’ 드라마투르그였던 이화여대 강태경 교수님이 최근 햄릿에 관해 쓰신 책을 보내주셨어요. ‘자네의 햄릿을 꼭 보고 싶다’는 편지와 함께요. 복귀 후에도 늘 불안했었는데, 한 사람의 작은 관심이 다른 사람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더군요. 죽을 때까지 연극을 놓지 말자고 결심했고, 햄릿도 꼭 하고 싶습니다.” 왕자형 외모에 살짝 미친 듯한 연기가 전매특허인 이승주 만큼 햄릿에 찰떡인 배우가 있을까.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2024.01.27 00:07

  • 간병비 ‘건보 지원 제도화’까지는 시간 걸려…소득공제 등 세제 혜택 선행 필요

    간병비 ‘건보 지원 제도화’까지는 시간 걸려…소득공제 등 세제 혜택 선행 필요

     ━  초고령 사회의 그늘    간병비 부담이 커지면서 ‘간병살인’ 같은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앙포토] ‘간병 지옥’. 연간 10조원에 이르는 간병비는 가뜩이나 빈곤한 노인들에게 큰 부담이다. 간병인 고용 등 간병에 필요한 제반 비용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간병인 매칭 플랫폼 케어닥에 따르면 2008년 206만원이던 월 간병비는 2021년 319만원으로 54%가량 증가했다. 서울대 김진현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2010년 연간 4조5470억원 수준이던 사적 간병비는 2022년 10조원대로 불어났다.   모든 간병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사회적 구조는 ‘간병살인’ ‘간병참사’와 같은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앞다퉈 ‘간병비 부담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총선 1호 공약으로 ‘간병비 급여화’를 내걸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만큼 정부와 여당도 간병비 급여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말 내놓은 ‘국민 간병부담 경감방안’에 따르면 간병비는 2027년부터 건강보험 급여항목에 포함된다.   관련기사 노인 1000만 시대, 빈곤율은 OECD 1위…공적연금 강화해 복지 사각 해소를 “폐지 수집 4만명, 하루 6600원 벌어…정부, 빈곤노동 악순환 고리 끊어야” 내년 7월부터 전국 병원 10곳에서 단계적으로 시행한다. 간병비 급여화가 이뤄지면 현재 100% 환자가 부담하는 간병비가 30~50% 수준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어림잡아도 연간 15조원 정도로 추정되는 추가 재정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2027년부터라고 단서를 단 이유도 여기에 있다.   1호 공약으로 내걸었던 더불어민주당 역시 재정 마련 방안이 없어 2027~2028년부터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건강보험 재정도 올해부터 적자로 돌아서고, 2028년께 고갈된다(국회예산정책). 문재인 정부 때 시행한 이른바 ‘문재인 케어’로 진료비 지출이 2022년 100조원을 넘어선 데다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결국 건강보험료율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요율을 손보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관단체 간의 합의도 넘어야 할 산이다. 간병비 급여화가 본격화되면 요양병원·요양시설·재가서비스업체 이용자 수가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이해당사자 간 갈등이 필연적이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의 간병부담 경감방안은 상급병원, 요양병원 등으로 환자가 쏠리는 현상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등 세부적인 정책 방향에 구멍이 많다”고 평가했다.   간병비 급여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남은 만큼 간병비를 경감할 수 있는 세제 혜택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간병비는 ‘사적 계약’ 등으로 분류돼 의료비 소득공제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교수는 “점진적으로 간병비를 급여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간병비 소득공제 등 하루빨리 간병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2024.01.20 00:56

  • 노인 1000만 시대, 빈곤율은 OECD 1위…공적연금 강화해 복지 사각 해소를

    노인 1000만 시대, 빈곤율은 OECD 1위…공적연금 강화해 복지 사각 해소를

     ━  초고령 사회의 그늘   노인 1000만 시대, 노인 빈곤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사진은 새해 첫 날인 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 급식소를 찾은 어르신들이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 [뉴스1] “저는 애로운(외로운) 80 독고(독거) 노인임니다. 90년도부터 당뇨와 농내장(녹내장)을 알어(앓아) 왔습니다. 더 견딜 수 없어 이 길을 택한 검니다. 그리고 집주인 아줌마와 2동 사회담당 보조 아가시(아가씨)와 너무나 고마워슴니다.” 2005년 신변을 비관해 지하철에서 투신자살한 한 노인의 품에서 발견된 유서의 내용이다. 병원 진단서 뒷면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써내려간 유서 한 장은 이 노인의 지난했던 삶을 우리 사회에 뼈아프게 전했다.   그로부터 20년. 강산이 두 번 변할 세월이 흘렀음에도 노인 자살 문제는 나아진 게 없다. 지난해 10~29세 청년은 10만명당 28.6명이, 70세 이상은 10만명 중 98.4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흔히 자살하면 젊은 층의 극단적 선택을 떠올리지만, 평생 온갖 고난을 견뎌온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압도적이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르신들의 자살에는 주로 병들고 가진 것 없어 늘그막에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이타적 원인이 많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노인들의 극단적 선택은 빈곤과 깊은 연관이 있다. 2021년 6월 보건복지부 발표 ‘2020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이 자살을 생각하는 주된 이유는 ‘건강’(23.7%)과 ‘경제적 어려움’(23.0%)이었다. 선진국이라는 위상에 부끄럽게도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심각하다. 지난해 1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Pensions at a glance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0.4%로 OECD 38개 국가 중에서 압도적인 1위다. 이웃 일본(20.2%)이나 미국(22.8%)의 두 배 수준이다.   관련기사 간병비 ‘건보 지원 제도화’까지는 시간 걸려…소득공제 등 세제 혜택 선행 필요 “폐지 수집 4만명, 하루 6600원 벌어…정부, 빈곤노동 악순환 고리 끊어야” 노인 빈곤과 이에 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는 노인은 더 늘어날 것 같다. 노인 인구는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는데, 노인들의 경제적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 2022~2072년’에 따르면 올해 8월께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선다. 하지만 장기화하고 있는 고금리·불경기에 노인들이 가장 먼저 쓰러지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인 파산 신청자 10명 중 4명(41%)은 60세 이상이었다.   미비한 연금제도, 의료비 등이 빈곤 심화시켜   전체 신청자 2만745명 중 60세 이상이 8504명으로 가장 많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증가세다. 파산 신청자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부터 매해 25.9%→27.7%→31%→35.2%→38.4% 크게 증가했다. 이효선 한국노인상담센터 센터장은 “노인 파산이 늘고 있는 건 개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노후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파산 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재정상담 등을 활성화시켜 위기 대응력을 높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대책은 거의 없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지난해 3월 내놓은 대책은 대개 저출산에 맞춰져 있다. ‘결혼·출산·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 환경 조성’이라는 슬로건에서 보이듯, 고령화 대책은 뒤로 밀렸다. 저고위는 당시 후속으로 고령화 대책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과 추진 과제들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난해 하반기 고령화 논의를 위한 본위원회는 끝내 열리지 못했다.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낮은 출산율도 문제지만 고령사회 정책도 뒤로 밀려선 안 되는 시급한 과제”라며 “고령사회 정책은 노인 빈곤 문제를 중심으로 본격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더 늦기 전에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건강·의료 문제로 노인들이 빈곤층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하는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보건복지부와 배재윤 한국노인개발원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폐지 수집 노인 중 65세 이전 경제 활동 수행 경험이 있는 비율은 85.9%였다. 평균 경제 활동 기간은 23년 7개월이다. 은퇴 전 주된 직장에서 24년 가까이 일을 했지만 은퇴 후 빈곤층 추락을 면치 못한 셈이다.   이들이 노후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 주된 사유는 ‘건강 악화’(39%), ‘해고·명예퇴직’(26.1%)이었다. 이민아 교수는 “평균 수명은 올라가고 있지만 각종 질병으로 건강수명은 그만큼 늘지 않고 있다”며 “노인 건강관리 체계를 보다 촘촘히 만들어가는 것이 노인 빈곤 해결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2018년 기준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64.4세에 그친다.   그리스, GDP 16% 연금에 써…한국 4% 안돼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노인들의 빈곤층 추락을 막기 위해선 ‘공적연금 강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OECD 연금소득대체율은 평균 50.7%였지만, 한국은 31.6%에 불과하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국가에서 가장 핵심인 노후보장의 기제는 연금인데, 결국 연금제도의 미비함이나 고령화에 따른 의료 비용 등이 노인 빈곤을 심화하고 있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국민연금 개혁 정부안을 발표했지만 ‘맹탕 개혁안’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보험료율은 얼마나 인상될지, 노후에 받게 되는 연금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인한 연금 부족 우려에 대해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금 보험료 인상과 더불어 정부의 기여분 강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경쟁력이 뒤로 밀리긴 했지만 한국은 전 세계 13위의 수출대국임에도, 공적연금에 대한 국가 기여도가 매우 낮다는 지적이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이탈리아 등은 국내총생산(GDP)의 16%를 연금에 지출한 반면, 한국의 재정 비율은 4%에도 못 미친다. 허 교수는 “덴마크·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들은 우리보다 경제력이 앞서는 것이 아닌데도 정부가 이전소득이라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노인들이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원한다”고 전했다. 공적연금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비정규직 등 저임금 노동자도 공적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복지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민연금 등에서 소외되는 빈곤층을 위해선 기초연금 지원을 더 두텁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초연금은 올해 33만4000원으로, 전년보다 1만2000원 인상되는 데 그쳤다. 최소 생계비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통해 적어도 최소 생계비는 보장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한정된 재원이 문제라면 계층을 세분화해 기초연금이 더 절실한 사람들에게 더 두텁게 주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고령화 속도가 빠른 만큼 기업 정년 연장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공론화를 통해 논의를 해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2024.01.20 00:54

  • “폐지 수집 4만명, 하루 6600원 벌어…정부, 빈곤노동 악순환 고리 끊어야”

    “폐지 수집 4만명, 하루 6600원 벌어…정부, 빈곤노동 악순환 고리 끊어야”

     ━  초고령 사회의 그늘   배재윤 부연구위원 “유럽·일본 등 선진국에선 노인들이 폐지를 수집해 빈곤 탈출을 모색하지 않는다. 폐지 수집이 더 이상 노후 생계의 마지막 수단이어선 안 된다.” 1일 평균 5시간24분. 105.6㎏의 폐지를 줍지만, 손에 쥐는 건 하루 6625원이 고작이다. 일주일 평균 6일(하루 5.4시간)의 폐지 수집을 통해 월 15만9000원을 벌었다. 수입도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2010년 ㎏당 161원 수준이던 폐지 단가는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해에는 74원까지 떨어졌다. 이마저도 절반은 고물상이 가져간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는 국내 폐지 줍는 노인의 고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배재윤 한국노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은 “폐지 수집 노인이 전국 4만2000명에 육박한다”며 “열악한 환경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폐지 수집 노인의 일자리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가 폐지 줍는 노인 연구를 시작한 건 2022년. 그는 “출근길에 폐지 수집 노인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공적인 일자리로 흡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학계와 관계부처 등의 반응이 회의적이었다. “6·25 때부터 존재했다. 뚜렷한 대책이 없다” “자연소멸하게 놔둬라”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폐지 연구 계획이 일부 미디어와 정치권의 관심을 받으면서 조사가 급진전됐다. 2022년과 2023년 두 차례의 조사를 통해 우선 폐지 수집 노인의 전국 실태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 큰 결실이다.   관련기사 노인 1000만 시대, 빈곤율은 OECD 1위…공적연금 강화해 복지 사각 해소를 간병비 ‘건보 지원 제도화’까지는 시간 걸려…소득공제 등 세제 혜택 선행 필요 2022년 각 지자체를 통해 추산한 폐지 수집 노인 수는 전국 1만5000명 정도였으나, 지난해 전국 고물상을 중심으로 실태조사에 들어가자 전국 4만2000명에 육박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복지부는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올 상반기 전수조사를 통해 폐지수집 노인 지원 표준 조례(안)를 마련하고,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해 더 높은 소득과 안전을 보장할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배 연구위원은 “폐지 단가 상향 등 활동 지원에 초점을 맞춰선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기 어렵다”며 “우리 사회에서 폐지 수집 노인이 사라질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국내 폐지 수집 노인이 왜 이리 많나. “폐지 수집 노인들의 평균 연령이 76세다. 다른 대안이 없는 거다. 그 일 외에는 현금을 바로 만지기 어렵고, 다른 일자리 접근도 쉽지 않다. 사실 폐지 수집은 굉장히 비효율적인 고강도·저임금 노동이다. 어쩔 수 없이 빈곤 노동에 몰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신고 고물상이 난립하고 있는 실정도 우리나라에 유독 폐지 수집 노인이 많은 배경 중 하나다.”   고물상이 문제라는 얘긴가. “경기도(1만2989명), 경북(3514명), 충남(2852명)에 폐지 수집 노인이 많고 세종(97명)이나 제주도(347명) 등에 상대적으로 적다. 변수는 지역 고물상 수다. 고물상이 많은 곳에 폐지 수집 노인도 많았다. 현재 영세 고물상은 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할 수 있고, 이들은 어르신들과 계약 관계도 없이 절반의 수익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미신고 대상이어서 현황 파악도 쉽지 않다. 정부가 관리감독에 나선다면, 폐지 수집 노인은 내일부터라도 없앨 수 있다. 일본은 쓰레기를 공공재로 지정했다. 쓰레기가 공공재가 되면, 개인이 수집해서 팔 수 없다. 자원순환품 관리가 엄격한 유럽 등지에선 폐지를 수집해 빈곤 탈출을 하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빈곤 노인을 위해서는 고물상이 필요하지 않나. “당장은 그렇게 볼 수 있지만 결국 빈곤 노동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고리다. 제도권 일이 아니어서 다치거나 사고를 냈을 때도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어르신들이 매우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폐지 수집 노인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어르신들이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단가 하락이다. 폐지 수집 노인 103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1.6%가 ‘단가 하락’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이어 ‘경쟁심화’가 51%, ‘날씨’ 응답은 23%였다. 2018년 중국이 쓰레기 수입을 금지한 충격이 컸다. 2017년 ㎏당 144원이던 폐지 단가는 지난해는 74원으로 절반 가까이 폭락했다. 이 금액도 고물상이 절반을 가져가니, 어르신들은 ㎏당 30원대의 수입을 겨우 얻는 셈이다.”   일부에선 폐지 수집 단가를 지원하는 방안도 나온다. “폐지 수집 어르신들의 문제에 관해 어떻게 단가를 지원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선 안 된다. 지난해 일부 지자체에서 산모에 대한 지원금을 늘리니 관련 업계가 사용료를 대폭 인상한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부작용을 방지하려면 보다 정교한 방식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노후 빈곤 문제는 민간시장에 맡기지 말고 공적 영역에서 책임지는 형태로 가야한다. 복지부는 상반기 지자체를 통해 상반기 폐지 수집 노인의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폐지 수집 노인 지원 표준 조례(안)를 마련할 계획이다. 관건은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조다. 만일 이번에 전수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3년 뒤 혹은 5년 후 또 실태조사를 반복해야 한다.”   복지부는 노인 일자리 사업연계 계획을 내놨는데. “노인 일자리가 지난해 88만개에서 올해 104만개로 크게 늘어난다. 폐지 노인 4만여 명을 흡수할 수 있는 규모다. 교통봉사 등 공익형 활동 영역에선 최대 월 29만원과 상해보험 가입을 지원한다. 근로 능력이 높은 노인에게는 사회서비스형으로 월 76만원의 소득 활동과 산재보험을 지원한다. 공공 일자리를 경험해보면 굳이 고강도의 폐지 수집을 고집하는 경우는 적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폐지 수집 활동을 원한다면, 월 38만원을 받으면서 폐지를 줍는 ‘자원 재활용 시장형 사업단’에 참여하는 방안도 있다. 이러한 복지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연계 계획은 매우 고무적이다. 제도권 안에서 다른 일자리 경험을 가질 수 있고, 기타 복지서비스도 연계할 수 있다. 다만 노인 일자리로부터 얻는 수입은 용돈벌이 수준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노후에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을 국가에서 보장하는 제도적 개선이 바탕이 돼야 한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2024.01.20 00:51

  • 테러 자작극설, 아동학대 조작 영상…"아니면 말고" 유튜브 가짜뉴스 판쳐

    테러 자작극설, 아동학대 조작 영상…"아니면 말고" 유튜브 가짜뉴스 판쳐

     ━  양극단·증오 온상 된 정치 유튜브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습격한 김모씨가 지난 4일 부산지법으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근거는 없습니다.” 유튜브에 난무하고 있는 가짜뉴스의 시작은 대개 이렇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툭 던져진 한마디는 순식간에 알고리즘을 타고 다른 유튜브 채널에서 사실로 둔갑해 재생된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에 대한 ‘젓가락 쇼’ ‘자작극’ 등의 반응도, 배우 이선균씨의 극단적 선택의 배후에 마약 수사를 빌미로 한 정부의 기획이 있었다는 음모론도 모두 이렇게 시작됐다.   근거가 있다 해도 조작되는 경우가 적잖다. 지난 8일 친야 성향인 정치 유튜브 채널을 중심으로 확산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아동학대 현장’ 조작 영상이 단적인 예다. 이상신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처음엔 ‘진짜인가’ 의심이 가더라도 알고리즘에 의해 여러 채널에서 같은 정보가 계속 등장하다 보면 어느새 사실이라고 믿게 되고, 그러면서 진짜 정보는 관심 밖으로 밀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가짜뉴스는 유튜브에서 처음 접하는 빈도가 가장 높았다. 지난해 4월 한국행정연구원 조사 결과 응답자의 65.5%가 유튜브와 SNS에서 가짜뉴스를 접했다고 답했다. 국민의 한 달 유튜브 시청 시간이 1044억 분으로 모바일 앱 중에서도 압도적 사용 시간을 차지하는 걸 감안할 때 유튜브 가짜뉴스의 파급력이 위험 수위에 다다른 셈이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는 “유튜브는 기존 미디어와 달리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해 이용자 성향에 맞는 편향된 콘텐트만 반복적으로 자동 재생해 보여주는 시스템”이라며 “이용자도 비슷한 내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가짜뉴스를 더 쉽게 믿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관련기사 양극단·증오의 유튜브…한국 정치 판을 흔들다 “돈만 생각 선정적 내용 짜깁기 문제” vs “날 것 그대로 유튜브 속이 시원” 특히 유튜브 가짜뉴스는 비정치적 이슈라도 정치적 논란과 엮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에 현역 중진 의원이 연루돼 있다는 설이 일부 정치 유튜브에서 거론되면서 고소 사태까지 벌어진 게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정치적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과 맞는 정보만 찾아가려는 경향이 강한데, 이런 수요가 수익과 직결되다 보니 공급도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유튜버들도 팬덤층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메시지를 발산하려는 유혹이 커지기 쉽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29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이선균씨 발인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렇게 형성된 팬덤층은 실제로 자신의 성향과 맞는 정치 유튜브를 적극 후원하고 있었다. 유튜브 통계 분석 전문업체인 플레이보드가 지난해 유튜브 슈퍼챗(후원금) 순위를 집계한 결과 상위 5위 유튜브 채널 중 4개가 정치 유튜브였다. 강연곤 중앙대 교수는 “정치적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댓글과 후원금 등을 통한 온라인 정치 참여에 훨씬 더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가짜뉴스가 가짜라는 게 드러나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5월 일본 나고야공업대·도쿄학예대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3%는 팩트 체크 기사를 보여줘도 이를 무시하거나 외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 편향이 커진 탓이다. 유튜브 팬덤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연구위원은 “구독자에겐 정치 유튜브를 통해 맺어진 개인적 유대감도 중요한데,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허위 정보인 걸 알아도 좀처럼 태도를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는 사이비종교와도 비슷한 패턴”이라고 분석했다.   가짜뉴스의 폐해가 확산하면서 더 늦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유튜브가 지난해 8월 가짜뉴스 제재에 나선 것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유튜브는 먼저 “암 환자에겐 방사선 치료보다 비타민C가 효과적”이라는 등 생명에 위협이 되는 허위 정보부터 삭제하기로 했다. 엘리자베스 앨런 미국 국무부 공공외교·공보 담당 차관도 지난달 방한해 안보를 위협하는 가짜뉴스에 한·미 양국이 공동 대응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문제는 유튜브 가짜뉴스 처벌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유튜브는 언론이 아닌 1인 방송으로 분류돼 있어 유튜브 제재가 자칫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상업주의에 기댄 선정주의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유튜버들의 자정 노력엔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며 “이용자 개인은 물론 정부와 플랫폼 업체 등이 더 늦기 전에 머리를 맞대고 가짜뉴스 양산을 막기 위한 실질적·제도적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2024.01.13 01:00

  • “돈만 생각 선정적 내용 짜깁기 문제” vs “날 것 그대로 유튜브 속이 시원”

    “돈만 생각 선정적 내용 짜깁기 문제” vs “날 것 그대로 유튜브 속이 시원”

     ━  양극단·증오 온상 된 정치 유튜브   지난 5일 유튜브 채널 운영자들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입원 중인 서울대병원 앞에서 생중계를 준비하고 있다. 원동욱 기자 “오히려 나처럼 혼자 일하는 유튜버가 진짜 사실을 전달할 수 있다.”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건너편에서 영상을 찍고 있던 50대 보수 유튜버 김모씨는 “이젠 ‘진짜’ 기자들이 몇이나 있나 싶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취재진에 대한 반감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같은 현장에 있어도 꼭 기자들만 취재 허락을 해주고 우리는 무시한다”며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떻게든 영상을 찍으려는 내가 진짜 기자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어느 기자가 나를 정신병자처럼 기사에 묘사했는데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화가 치민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유튜브 채널은 전기통신사업법상 방송이 아니라 통신으로 분류된다. 또 정기간행물 등록을 하지 않은 유튜버의 경우 ‘언론’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20여 명의 유튜버들은 대부분 자신이 언론을 대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한편에선 유튜버들 스스로 자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구독자 3만여 명의 진보 유튜브 매니저 박모씨는 “그래도 상황을 봐가면서 영상을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번에 이재명 대표 피습 관련 브리핑을 하는 장소에도 몇몇 유튜버들이 억지로 뚫고 들어가 소동이 벌어졌는데 이런 행동은 스스로 이미지를 깎아 먹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양극단·증오의 유튜브…한국 정치 판을 흔들다 테러 자작극설, 아동학대 조작 영상…“아니면 말고” 유튜브 가짜뉴스 판쳐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A신문사 기자도 “유튜버들이 소란을 벌인 뒤 취재가 더 어려워졌다”며 “유튜버들은 자극적인 장면만 노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자정 노력이 전혀 뒤따르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방송사 촬영기자들 사이에선 “유튜버들 때문에 최소한 1시간30분 전에는 현장에 도착해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한 촬영기자는 “유튜버들은 언론사의 룰은 신경 쓰지 않고 포토라인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화도 나고 경쟁심도 생긴다”고 말했다.   정치 유튜버들의 이 같은 행태와 기존 언론과의 갈등 관계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엇갈리고 있다. 회사원 김일영(32)씨는 “돈만 벌면 된다는 식으로 선정적인 내용만 짜깁기하는 걸 보면 유튜브는 아직 멀었다 싶다”며 “정치 유튜버들이 제기하는 의혹만 가지고 사실인 양 말하는 사람들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반면 언론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니 유튜브가 성행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았다. 대학생 변재윤(27)씨는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언론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정제된 언론의 뉴스보다 날 것 그대로의 유튜브가 속이 더 시원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2024.01.13 00:58

  • 팬덤 정치로 수억 버는 '신념 산업' 종사자 … 서울대병원을 휘젓다

    팬덤 정치로 수억 버는 '신념 산업' 종사자 … 서울대병원을 휘젓다

     ━  양극단·증오 온상 된 정치 유튜브   [연합뉴스]  “○○신문이라네요. 취재를 허용할까요, 말까요.”   그의 한마디에 유튜브 공간이 순간 들끓었다. “색깔이 다른데, 결사반대!” “거기는 괜찮아요.” “그래도 왜 왔는지 물어봐요.” 2022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막 이삿짐을 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현장을 취재하던 한 언론사 기자가 특정 성향의 유튜버와 마주했다. 그는 “무슨 원맨쇼를 하듯 유튜버가 구독자들과 실시간 회의하더니 ‘취재를 허가한다’고 통보하더라”며 “순간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벽에 맞닥뜨린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현장은 기자 반, 유튜버 반이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2일 서울대병원. 습격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에서 헬기로 이송되자 유튜버 60여 명이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꽂고 한 장면이라도 더 찍기 위해 병원 곳곳을 뛰어다녔다. 현장에 있던 지상파 방송 촬영기자는 “유튜버들이 한꺼번에 이리저리 몰려다니니 취재가 불가능할 정도”라며 “요즘 이런 현장에 가면 유튜버 7명에 기자 3명 비율일 정도로 유튜버들이 급격히 늘었다”고 전했다.   5대5에서 7대3. 1년 6개월여 만에 뉴스 현장은 유튜버 세상으로 바뀌었다. 특히 이들은 4월 총선을 앞두고 특정 진영에 기대며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그야말로 정치 유튜버들의 전성시대다. 기세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중앙SUNDAY는 이번주 이 대표가 입원한 서울대병원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다수의 유튜버를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한국 정치의 판을 뒤흔들고 있는 정치 유튜브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관련기사 “돈만 생각 선정적 내용 짜깁기 문제” vs “날 것 그대로 유튜브 속이 시원” 테러 자작극설, 아동학대 조작 영상…“아니면 말고” 유튜브 가짜뉴스 판쳐 “유튜버들이 브리핑장을 습격해 기자들마저 취재 제한을 받는 것 같아요.”(S방송사 기자) “왜 취재기자만 출입을 허용합니까. 우리도 알 권리가 있잖아요.”(유튜브 채널 운영자)   지난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피습 후 입원한 서울대병원은 아수라장이었다. 기자와 유튜버들이 뒤엉켜 이쪽저쪽으로 몰려다녔다. 파란 목도리를 두른 진보 성향의 유튜버들은 “대표님 힘내세요” “배후를 색출하라”고 외쳤다. 이날 기자회견이 공지된 서울대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 강당에는 유튜버 5명이 난입하기도 했다. 현장에선 “‘야! KBS 꺼져’ 등 유튜버들의 거센 항의에 KBS 기자가 잠시 카메라를 접기도 했다”는 말도 나왔다. 이날 ‘드물게’ 보수 유튜버도 있었는데 ‘다수’를 차지한 진보 성향 유튜버들은 그에게 “싸움 나기 전에 가라”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유튜브 뉴스 시청 5년 새 22%P 급증   정치 유튜버들에게 둘러싸인 이날 서울대병원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의 정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정재관 고려대 정외과 교수는 “이게 바로 양극화와 혐오가 심화된 한국의 정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진보 유튜버 입장에선 KBS가 문재인 정부 때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됐다가 현 정부 들어 보수 성향으로 바뀌었다고 보고 공세를 펴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같은 유튜버들조차 이념 성향이 다르면 ‘구역’을 침범했다며 상대에게 설 자리조차 주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선 정치 유튜버들이 주장하는 ‘알 권리’와 ‘팩트 전달’도 일방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입사 3년차인 KBS 카메라 기자는 “유튜버들은 성향에 따라 못 가거나 안 가는 현장이 있는 것 같다”며 “예를 들어 이태원 참사 기자회견이나 이번 서울대병원 현장은 보수 측에 불리한 측면이 있다 보니 보수 유튜버들이 스스로 안 가거나 제지를 당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보수단체 시위 현장의 경우 진보 유튜버들은 발을 못 붙인다. 현장에서부터 편 가르기가 심하다는 얘기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정치 양극화는 두 갈래다. 이념적 양극화와 정서적 양극화다. 정재관 교수는 “우리나라는 특히 정서적 양극화에 치중된 경향이 크다”고 진단했다. 유튜브는 이 같은 정서적 양극화에 날개를 달아줬다. 국내 유튜브 뉴스 시청률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포털을 통한 뉴스 소비(66%)가 여전히 1위지만 지난해 기준 국민의 53%가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본다(한국언론진흥재단). 2018년 31%에서 5년 새 22%포인트나 올랐다. 조사를 함께한 46개국 평균인 30%보다도 월등히 높다. 한 언론사의 정치 유튜브 시청률 조사(56.9%)와 비슷한 점으로 보건대, 이들 대부분이 정치 유튜브를 본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다양한 콘텐트 제공과 쉬운 접근성, 댓글의 익명성에 따른 고도화된 개인화, 강력한 추천 기능 등은 유튜브의 강점이자 단점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도 2021년 우리나라에서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 유통 문제가 가장 심각할 것으로 우려되는 플랫폼으로 유튜브를 꼽았다. 정치 양극화와 혐오의 정치를 부채질할 우려가 가장 크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우선 알고리즘.   박모(58)씨는 진보 성향의 유튜브를 구독한다. 그는 “운영자와 패널들의 사이다 발언이 후련하다. 이런 게 언론에서 보여줄 수 없는 팩트고 정보라는 생각이 들어 구독 중”이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 유튜브를 구독하는 이모(32)씨도 같은 말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또 있었다. “한번 보수(혹은 진보) 성향의 유튜브를 클릭하니 ‘무서울 정도로’ 관련 유튜브들이 추천되더라”는 것.   실제로 취재진은 ‘윤석열’로 검색한 뒤 뜨는 특정 이념 성향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봤다. 진보 채널에 들어갔던 기자는 처음엔 추천 동영상 20개 중 진보 채널이 4개만 떴다. 그러다 12회 차 접속 때는 13개로 폭증했다. 보수 채널에 들어갔던 기자는 추천 동영상 20개 중 보수 채널이 0개, 진보 채널이 2개였다. 그러다 보수 채널이 급격히 늘면서 12회 차에서는 보수 15개, 진보 4개로 역전됐다.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에게 물어봤다.   알고리즘에 따른 추천 동영상을 계속 보게 되면 어떤 현상이 발생하나.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확증 편향’이 강해진다. 확증 편향은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이다. 유튜브는 추천을 통해 확증 편향을 강화한다. 그런데 가용성 편향(생각하기 쉬운 게 실제로 일어난다고 여기는 것) 또한 강화된다. 특정 성향의 유튜브를 계속 보면 ‘세상의 여론이 이렇구나’ 생각하게 된다. 특이한 건 사고는 한쪽으로 쏠리면서 행위는 과격해진다는 점이다. 반대 여론은 사소하게 느껴진다. 이재명 대표를 습격한 범인도 ‘이게 국민의 뜻’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유튜버들이 자극적인 언어를 쓰는데. “사견임을 전제로, 돈이 되면 사람이 많이 모이고…. 다른 유튜버와 차별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 ‘부정성 편향’은 대중이 부정적인 정보에 주의를 더 기울이게 된다는 심리인데 ‘나도 부정적인 내용으로 유튜브를 하면 차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효과가 좋다는 걸 체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보수·진보 유튜브 중간지대는 없어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렇다면 정치 유튜브는 누가, 왜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누가, 왜 보는 것일까.   “기자들이 기사를 똑바로 쓰면 우리가 여기(서울대병원) 나올 이유도 없다.” 전업주부에서 진보 성향의 유튜브 채널 운영자로 탈바꿈한 오모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8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만난 보수 유튜버도 “언론이 진실보다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만 만들며 여론몰이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 유튜브 ‘공급자’들의 이런 생각은 ‘수요자’의 생각과 맞아 떨어진다. 정치 유튜브를 참고해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방송·신문이 다루지 않는 정보를 주기 때문(32.6%)’을 유튜브 구독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한국리서치). ‘방송·신문이 왜곡된 정보를 담기 때문(25.5%)’ ‘방송·신문이 특정 진영의 논리를 대변하기 때문(25.0%)’ 등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유튜브 뉴스는 60대 이상 시청률이 가장 높았지만, 지난해 20대·40대·50대 시청률이 10%포인트 이상씩 오르면서 순위가 뒤바뀌었다〈그래픽 참조〉. 진보 성향 이용자의 유튜브 뉴스 시청률은 62%를 기록하면서 보수 이용자(56%)와의 균형도 급격히 무너졌다. 한 유튜브 채널 운영자는 “보수 정부에 대한 반작용으로 진보 성향의 유튜브 채널이 급격히 늘고 이에 따라 진보 성향 유튜브 이용자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에게 물어봤다.   정치 유튜브가 왜 늘고 있나.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필터 버블’로 걸러진, 보고 싶은 정보만 보게 되면 나만의 세계에 빠지기 십상이다. 유튜브라는 미디어, 정치 유튜버라는 특정 성향의 운영자가 그걸 이용한다. 이 유튜버들은 정치적으로 강한 주장을 상품으로 내세운 ‘신종 신념 산업’ 종사자다. 예능 유튜브에 ‘강한 주장’이 실리나. 정치라서 가능하다.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내용도 서슴지 않아야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의 대안 마련도 미흡하다. “거대 양당은 이를 해소하긴커녕 편 가르기와 혐오만 부추기고 있다. 진영을 공고히 해야 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9일 구독자가 가장 많은 보수 채널 두 곳과 진보 채널 두 곳의 이재명 대표 피습 관련 댓글 4000개를 검색했다. 보수 채널에는 이 대표 사건에 대해 비꼬거나 의심하는 단어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자작(57회)’ ‘특혜(43회)’ ‘쇼·쑈(37회)’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진보 유튜브 채널의 경우 이 대표 사건의 배후가 의심된다는 내용이 적잖았다. 댓글 창에도 ‘배후(74회)’ ‘진실(54회)’ ‘의심(48회)’ 등의 단어가 많이 보였다.   보수에서 진보를 비하하는 단어인 ‘개딸(34회)’ ‘좌빨(27회)’의 경우 보수 유튜브 댓글에선 80회 이상 찾아볼 수 있었지만 진보 유튜브 채널에선 0건이었다. 반대로 보수 유튜브 댓글에는 ‘죄명(이 대표를 비하하는 말)’이란 단어가 67회 나왔지만 진보 유튜브 댓글에는 1건도 달리지 않았다. 보수 성향과 진보 성향의 유튜브에 모두 댓글을 다는 비율은 0.45%에 그친다는 한 조사 결과가 여실히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중간지대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진보 채널에선 ‘탄핵(56회)’ ‘무능(36회)’과 윤석열 대통령을 비하하는 단어인 ‘굥(21회)’도 심심찮게 보였다. 이처럼 양극화와 혐오를 부추기는 공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장승진 국민대 정외과 교수에게 물어봤다.   대안은 없을까. “보수 유튜브를 보면서 정치적으로 보수적 입장을 갖게 되고 민주당을 싫어했던 사람이 있는데, 진보 유튜브를 함께 보게 되면서 그런 극단이 꽤 완화됐다. 이 사람의 1년 뒤 시청 패턴을 보니 보통의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보수적 정치 입장이라도 진보 성향의 유튜브를 참고하면 추천 영상도 균형을 맞추게 되고 이를 통해 정치 양극화와 혐오도 한층 누그러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한국인은 자신의 뉴스 소비에 기반한 추천(37%)을 선호한다. 26개국 평균(30%)보다 더 높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정치 유튜버들은 갈수록 확산하는 추세다. 인기 있는 정치 유튜브 운영자(대표)들은 스스로를 언론인으로 부르거나 언론인 출신 또는 시사평론가들이 많지만 최근에는 오씨처럼 ‘일반인’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오씨가 운영하는 채널은 구독자가 3000명에 이른다.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만난 한 유튜버는 구독자가 3700명이었다. 구독자 180만 명, 슈퍼챗(구독자 후원금) 4억원 등 인기 정상인 정치 유튜브 대열에 올라서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현장’에 나가고 있다. 김홍준·원동욱·신수민 기자 rimrim@joongang.co.kr

    2024.01.13 00:58

  • 뭔가 특별한 분위기에 홀려, 1인 5만원 '티 오마카세' 열풍

    뭔가 특별한 분위기에 홀려, 1인 5만원 '티 오마카세' 열풍

     ━  차(茶)에 빠진 MZ세대    티 오마카세 전문점 ‘코코시에나’에서 겨울 메뉴로 준비한 코스 중 홍도라지 차와 카나페. 김상선 기자 #티 오마카세 전문점 ‘코코시에나’ “이 차는 여린 쑥만을 따서 만든 것인데 향은 진하면서도 마셔보면 바닐라처럼 부드럽고 화이트 초콜릿처럼 달콤한 맛이 납니다. 같이 준비한 다식은 모나카이고 위에는 저희가 직접 만든 팥 앙금과 유자청, 라벤더 향을 입힌 크림을 올렸습니다. 쑥차의 진한 향과 잘 어울릴 거예요.”   #‘르 메르디앙 서울 명동’ 호텔 라운지 바 “이 차는 ‘티의 샴페인’이라고 불리죠. 인도의 대표적인 홍차 다즐링을 오랜 시간 차가운 물로 추출하면 색이나 맛이 샴페인과 비슷해서 그렇게 불러요. 연말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샴페인 잔에 준비해 봤습니다. 함께 낸 음식은 가을 제철 요리인 유자와 감자를 중심으로 감자·당근·완두콩 퓌레와 구운 관자 요리를 조합한 겁니다. 함께 즐겨보세요.”   '르 메르디앙 서울 명동' 호텔 라운지 바에서 준비한 차와 음식. 인도의 다즐링 홍차는 차갑게 우리면 샴페인과 비슷한 색과 달콤한 맛을 내기 때문에 '티(tea)의 샴페인'이라고 불린다. 서정민 기자 일본식 카페에서 티 오마카세로 '코코시에나'가 준비한 생강 홍차와 딸기를 곁들인 탕수육. 김상선 기자 요즘 MZ세대가 즐긴다는 ‘티(tea) 오마카세’ 전문점에선 여러 종류의 차와 함께 간단한 음식을 코스로 즐길 수 있다. 1인당 4만~5만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고, 예약도 미리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젊은 층이 많이 찾으면서 유행하고 있다.   한겨울에도 ‘얼죽아(얼어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를 찾는다고 외국에서도 소문난 한국의 MZ세대가 이처럼 커피가 아닌 차를 찾게 된 첫 번째 이유로는 ‘오마카세’ 열풍을 들 수 있다. 일본어로 ‘셰프에게 맡긴다’는 의미의 오마카세는 주로 고급 스시집에서 통용돼 왔다. 그러다 보니 ‘오마카세=고급 음식’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요즘은 한우를 비롯해 순대·커피·치킨·튀김·김밥 오마카세까지 별별 오마카세가 등장했다. 공통점은 손님이 직접 메뉴를 고르지 않고, 셰프가 알아서 다양한 코스로 음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가나 초콜릿 바’ ‘삼성전자 라이프 그로서리 스토어 바스켓’ 등 팝업 스토어를 통해 기존 브랜드에 흥미로운 콘텐트를 더해온 오프라인 마케팅 서비스 플랫폼 ‘프로젝트 렌트’의 최원석 대표는 “오마카세는 고급 문화라고 생각하는 MZ세대가 스시는 너무 비싸니까 그보다 비용은 저렴한데 분위기는 우아한 티 오마카세를 즐기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MZ세대는 늘 새로운 경험을 찾는데 이제 스페셜티 커피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또 커피는 ‘맛’으로 끝나는 반면 차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마시는 도구나 예법 등 고도로 발전된 ‘형식미’가 있기 때문에 체험하는 재미가 더 특별하다.” MZ세대에서 그동안 유행했던 음료 스타일을 보면 일본풍 카페, 에스프레소 바, 애프터눈 티 등이 있다. 2019년 코로나19 직전까지도 성수동의 ‘ERT’ ‘가배도’ 등을 중심으로 작은 정원이 꾸며진 ‘일본풍 카페’가 인기였는데 이때만 해도 ‘차’보다는 ‘분위기’가 우선이었다. 한 번에 마신 에스프레소 잔을 여러 층으로 쌓는 인증샷이 유행할 만큼 ‘에스프레소 바’가 유행했지만 워낙에 한국에선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친숙해 매니아층만 즐기는 것으로 그쳤다. 특급 호텔에서 주로 즐길 수 있는 ‘애프터눈 티’ 세트는 코로나 기간 동안 외국 여행을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줬지만 엔데믹 이후에는 파리의 리츠 칼튼 호텔이나 영국의 버버리 카페에서 ‘찐’ 애프터눈 티를 경험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역시 인기가 시들해졌다. 늘 새로움을 찾는 MZ세대의 발길이 ‘차’로 향하게 된 이유다.   다양한 차 체험 ‘티 클래스’도 인기 성수동 찻집 ‘맛차차’ 티 클래스를 찾은 젊은 고객들. [사진 최원석] 사실 티 오마카세 전문점이 아니어도 여러 종류의 차를 차례로 맛보면서 새로운 문화정보를 얻는 ‘티 클래스’도 인기다. MZ세대가 차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오마카세 유행에 편승한 일시적인 현상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차문화산업연구소 소장인 김세리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실제로 차 수요가 확연히 늘었고, 대학에서도 차 동호회가 늘고 활동도 적극적”이라고 했다. “원래 사람들은 마시는 것에 관심이 많고 늘 진심이다. 커피도 술도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 마시는 음료다. 그런데 코로나19 기간 동안 ‘이왕이면 건강하게 마실 수 있는 음료’에 관심이 많아졌다. 특히 예전에는 ‘차’라고 하면 ‘다도(茶道)’가 먼저 떠올라서 왠지 어렵게만 느껴졌다면, 요즘은 차를 파는 가게가 많아지면서 차도 커피처럼 캐주얼하게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접근성이 좋아졌다.”   의식주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이 준비한 티 클래스. 하동의 ‘도재명차’ 차와 전통 병과를 곁들였다. 서정민 기자 의·식·주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과 하동의 다원 ‘도재명차’가 함께 열었던 티 클래스에 참가한 디자이너 윤랑(35)씨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집에 혼자 있으면서 잡생각을 덜고 명상을 즐기기 위해 차를 즐기게 됐다”며 “원래 몸이 차가운 성질이라 음료를 마시는 게 늘 까다로웠는데 지인의 소개로 보이차를 마시게 되면서 차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너무 좋아졌고, 요즘은 국산차와 더불어 중국·인도·유럽의 다양한 차 종류를 찾아 마시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했다.   식음료 업계에서도 이런 ‘웰빙’ 키워드에 맞춰 국내산 웰빙 식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차 음료를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국내산 볶은 팥과 늙은 호박을 주재료로 한 ‘일화차시 호박팥차’, 티젠의 ‘제주 말차 초코 밀크티’ ‘해남 호지차 카라멜 밀크티’ 등이다. 커피를 주 메뉴로 하는 카페 브랜드들도 차를 이용한 신 메뉴 개발에 동참했다. ‘경산대추 생강차’ ‘나주 배숙’ 등 국내산 식재료를 활용한 전통 차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폴 바셋은 올 겨울 추운 날씨에 어울리는 신 메뉴 가을 티·라떼를 출시했다. 국내산 단호박 베이스를 활용한 ‘스윗 펌킨 라떼’와 청송 사과를 이용한 ‘애플 시나몬 티’ 등이다. 과일차 라인업 ‘따 시리즈’ 제품을 내놓고 있는 파리바게뜨는 국내산 사과의 달콤한 맛을 기본으로 하는 ‘따사과’를 내놓았다.   김세리 교수는 차 문화 확산의 또 다른 이유로 “혼자서도 여러 가지 다구를 이용해 놀이처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작정하고 차를 우려 마시려면 찻잔은 물론이고 여러 종류의 다구가 필요하다. 자사호(차를 우리는 주전자), 차판, 거름망, 숙우(주전자에서 우린 차를 담는 그릇), 찻잔 받침, 다건(찻잔에 묻은 차를 닦는 수건), 차통, 차 집게, 송곳(차를 분리할 때 쓰는 도구), 차칼 등이다.   tvN 예능프로그램 ‘바퀴달린 집 3’(2021년)에 출연한 배우 류승룡과 이하늬가 차 매니어임을 뽐내면서 직접 챙겨온 차 도구들로 캠핑장에서 차를 우리는 장면을 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던 것도 소꿉놀이 하듯 차를 즐기는 모습 때문이었다.   이처럼 차를 우릴 때는 엄격하면 엄격할수록, 또 캐주얼하면 캐주얼할수록 ‘도구’를 이용하는 재미가 있다. 기계로 내리는 에스프레소와 달리 거름망과 전용 주전자를 이용해 직접 커피를 내리는 ‘드립 커피’가 더 인기였던 것도 같은 이유다.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MZ세대에게 문화는 ‘놀이’로 먼저 인식되는 경향이 크다.   ‘코코시에나’ 김은지 대표에 따르면 주말에 준비된 4개 타임에는 주로 데이트 커플이 많이 찾아오고, 평일 3개 타임에는 다양한 고객이 참가하는데 의외로 젊은 직장인들이 단체로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기업의 동호회 비용지원을 이용하는 단체 손님이다. 김 대표는 이들의 체험 후기 중 “커피보다 좀 더 시간을 들여 천천히 힐링 타임을 즐길 수 있었고, 특히 차를 우리고 대접하고 마시는 풍경이 꼭 짧은 연극 공연을 보는 것 같아 즐거웠다”는 의견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놀이처럼 우아한 형식 즐기기 ‘르 메르디앙 서울 명동’ 호텔 라운지 바에서 티 오마카세 겨울 코스로 준비한 메뉴 중 기문홍차와 미니 파운드 케이크. 서정민 기자 여러 종류의 차를 마시면서 어울리는 음식을 페어링하는 경험도 재미가 쏠쏠하다. 대부분의 파인 다이닝 식당은 음식을 메인으로 하고 어울리는 술과 차를 준비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차를 위한 페어링은 차가 우선이고, 이에 어울리는 다과를 준비하게 된다. 때문에 이를 준비하기 위해선 오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 덕분에 셰프와 주인장이 장고 끝에 선택한 음식들은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보통 4~5코스로 진행되기 때문에 가벼운 브런치를 대신할 수 있어 가성비를 열심히 따지는 MZ세대에게도 차와 페어링 코스는 괜찮은 선택이다.   특히 여러 종류의 차 페어링 코스를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맛’과도 가까워질 수 있다. 한국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온지음에서 여는 티 클래스의 경우 모든 코스의 페어링 음식을 흑임자 다식, 유자과편, 잣유과, 깨엿, 유자경단 등의 전통 병과로 낸다. 말하자면 부드러운 질감, 자극적이지 않은 맛, 건강한 재료를 이용한 ‘할메니얼’ 입맛의 음식들이다.   ‘르 메르디앙 서울 명동’ 호텔 라운지 바에서 티 오마카세 겨울 코스로 준비한 메뉴 중 운남전홍차와 사과·자몽·토마토를 곁들인 새우 요리. 서정민 기자 ‘할메니얼’이란 식품 업계에서 유행하는 용어다. 할매 입맛과 밀레니얼 세대를 합친 신조어로 밋밋하지만 건강한 맛이 특징이다. 이 신조어 역시 코로나19 영향으로 ‘건강’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지면서 복고와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뉴트로’ 열풍과 함께 MZ세대를 사로잡았다. 이 취향에 맞추는 한편, 페어링 음식의 다양성을 위해 한식을 같이 준비하는 곳이 많다.   4~5종의 차 코스를 준비할 때도 중국·일본·인도·유럽 차와 함께 한국 차를 섞게 된다. 덕분에 ‘녹차’가 전부라고만 생각했던 한국 차의 새로운 맛에 눈뜨게 되고 자신만의 취향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차 전문가인 김 교수는 “담박하고 심플한 맛이 한국 차의 매력”이라며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유럽의 홍차처럼 향을 많이 더한 화려한 맛은 처음에는 좋지만 매일 마시긴 부담스럽다. 결국 여러 종류의 차를 다양하게 마시다보면 한국 차의 장점을 알게 된다. 또 한국 차는 녹차 유명 산지인 보성·제주·하동 말고도 지역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제조된다. 녹차, 발효차, 홍차, 떡차 등 종류도 다양하고 새로 개발되는 차도 많다. 시작이 중요할 뿐, ‘차’라는 문을 일단 열게 되면 한국의 맛에 점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 ‘오마카세’주방장에게 일임한다는 뜻 …‘맡김 차림’으로 하자는 의견도 「 일본어사전에서 오마카세(おまかせ)는 ‘(사물의 판단·처리 등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을 공손하게 표현한 말’ 또는 ‘(음식점 등에서) 주방장 특선, 주문할 음식을 가게 주방장에게 일임하는 것’으로 풀이돼 있다. 국내 외식업계에선 셰프가 그날 사온 최고의 제철 식재료로 요리해서 제공하는 서비스 방식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이를 두고 엇갈리는 두 개의 의견이 있다.   우선 우리말 ‘맡김 차림’으로 바꿔 부르자는 의견이 있다. “일식에서만 사용한다면 모르겠지만 요즘처럼 한우·삼겹살·김밥 등 한식을 중심으로 하는 업장에서까지 굳이 일본어를 사용한다면, 경복궁 들어갈 때 기모노를 입는 것과 같은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또 한편에선 “일본어라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소믈리에라는 단어를 전통주 앞에도 쓰는 것처럼 외래어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라고 말한다.   ‘빵(포르투갈어)’ ‘커피(영어)’처럼 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어가 어원이지만 우리말로 동화되어 쓰이는 어휘를 외래어라고 부른다. ‘밀크(우유)’ ‘머니(돈)’처럼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외국의 말은 외국어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아직 오마카세 표준어는 정해지지 않았다. 공공언어개선 ‘다음은 말’ 코너에선 우리말 순화어로 ‘주방 특선’이라 정의해 놓았다. 용례와 의미는 ‘주방장이 만드는 특선 요리. 대부분 주방장이 엄선한 제철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코스로 손님에게 낸다’이다. 2023년 5월 새말모임에서 정한 것이다.   오마카세가 외래어가 될지, 외국어가 될 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언어 사용에서 중요한 것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명료한 의미다. 외계어라 불릴 만큼 말도 안 되는 MZ세대의 신조어가 공공연히 통용되는 이유다. 미식 수준이 올라갈수록 글로벌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그 의미와 적용 사례가 맞는지, 단순히 유행을 좇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때다. 」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2024.01.06 02:09

  • 오사카 스시집 1인분에 317만원…일본, 미용·네일 오마카세도 있어

    오사카 스시집 1인분에 317만원…일본, 미용·네일 오마카세도 있어

    2023년 ‘가장 비싼 스시’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된 오사카의 ‘스시키리몬’. [사진 스시키리몬] 한국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유행하고 있는 ‘오마카세’는 ‘맡기다’라는 뜻의 동사 ‘마카세루(任せる)’를 명사화한 말로 요리사한테 제공할 음식을 맡기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건 스시다. 그날그날 신선하고 맛있는 해산물이 달라지고 가격도 변동되기 때문에 오마카세로 시키면 그날의 추천 해산물 위주로 스시를 만들어준다. 제공하는 스시의 개수가 정해진 경우도 있지만 그만 먹겠다고 할 때까지 나오는 경우도 있다. 먹은 내용과 양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가격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도 많다. 아예 오마카세밖에 없는 스시집도 있다.   오마카세 스타일의 스시집이 늘어난 건 1990년대라고 한다. 스시 오마카세는 기본적으로 1만엔이 넘는 가게가 많고 현재 최고로 비싼 가게는 오사카에 있다. ‘스시키리몬’이라는 스시집의 ‘극(極) 오마카세 코스’다. 1인분에 스시 20점이 제공되는데 가격은 무려 35만엔(약 317만원)! 2023년 ‘가장 비싼 스시’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록됐다. 최고급 참치와 전복·캐비어·트러플·푸아그라 등 고급 식재료를 써서 25년 이상 경력을 쌓아온 스시 장인이 만든다.   고급 프랑스·일본 식당에서 그때그때 제철 식자재로 나오는 오마카세 코스는 대부분 비싸지만 메뉴에 없는 것도 나오고 요리사가 자리에 와서 직접 설명해주는 등 특별히 대접받는 느낌이 있다.   일본에는 야키니쿠·덴푸라·디저트 등 오마카세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다. 내가 가장 자주 먹는 오마카세는 ‘쿠시카츠’다. 고기나 해산물, 야채 등을 꼬치에 꽂아 튀기는 요리로 오사카의 명물이다. 내가 주문하면 늘 비슷한 것만 먹게 되는데 오마카세는 뭐가 나올지 모르는 설렘도 있고 처음 맛보는 별종이 나오기도 해서 재미도 있다. 그 외에도 일본에서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오마카세로는 닭꼬치·오뎅 등 카운터에서 먹는 음식이 많다. 일본 오뎅은 어묵뿐만 아니라 계란·무·곤약 등 다양하다.   메뉴에 오마카세가 없어도 당연하게 오마카세로 나오는 가게도 있다. 도야마현은 물과 쌀이 맛있어서 사케로 유명한데, 이곳의 이자카야 중에는 사케 오마카세가 있다. 점주가 주는 대로 마시는 집인데, 어디에도 그렇게 쓰여 있진 않지만 손님이 뭘 마시고 싶다고 주문하는 건 안 된다. 대신 점주는 손님의 오늘 몸 상태나 1차로 뭘 먹었는지, 지금 기분은 어떤지 등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그럼 이거 마셔봐!” 하고 자신 있게 한 잔 내밀어준다. 처음 갔을 땐 당황스러웠는데 그 전까지 몰랐던 사케를 맛볼 수 있고, 왜 그 사케를 골랐는지 점주의 설명도 흥미로워서 도야마현에서 근무하는 2년 사이 자주 들렀다.   개인적으로 오마카세의 매력은 점주나 요리사와의 ‘대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뭐가 제철이고, 어떻게 조리했는지, 이 요리에는 무슨 술이 잘 어울리는지 등 음식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문가한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예 메뉴판이 없이 요리도 술도 오마카세로 나오는 가게도 있다.   오마카세가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라는 건 일본에서도 보도되고 있다. ‘사치의 상징’이라고 소개한 기사도 봤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중국·싱가포르에서도 유행이라고 한다. 다만 한국처럼 다양한 오마카세가 있는 건 아니고 대부분 고급 스시 코스를 가리킨다. 특히 미국에서는 영화 ‘스시 장인: 지로의 꿈’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스시 장인 오노 지로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장인에 대한 동경이 오마카세 인기의 배경이라는 건데, 한국에서는 이런 해석보다는 젊은 사람들의 ‘이벤트’에 가까운 것 같다.   원래 오마카세는 ‘맡기는 것’이라는 뜻으로 일본에선 음식 외의 분야에서도 쓰인다. 미용실이나 네일숍에서 “오마카세로 해 주세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전문가의 눈으로 나한테 어울리는 스타일로 해 달라는 얘기다.   일본 온라인 주문 사이트를 보면 꽃·케이크·과일·맥주 오마카세도 넘쳐난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기보다 가게에 맡기고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처럼 뭐가 올지 모르는 기대감을 즐기는 방법이다. 그 대표 격이 ‘후쿠부쿠로’가 아닐까 싶다. ‘행운의 가방’이라는 뜻으로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는 가방을 새해에 사는 풍습이 있다. 어떨 땐 지불한 금액의 몇 배 비싼 것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어서 복권을 사는 것과 비슷할 때도 있다. 이 또한 일본의 별별 오마카세 문화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2024.01.06 00:01

  • 손편지 대신 e카드·카톡 일반화, 연하장이 사라져간다

    손편지 대신 e카드·카톡 일반화, 연하장이 사라져간다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에서 시민이 연하장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손글씨로 연말연시 인사를 전하는 문화는 이제 낯선 풍경이 됐다. 1970년 바른손카드에서 출발해 한때 국산 카드·편지지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했던 바른컴퍼니는 이제 청첩장을 전문으로 하고, 더 이상 연하장을 제작하지 않는다. 창립 첫해 연하장 판매량이 130만 장에 달할 만큼 뜨거운 인기를 끌었지만 손편지를 주고받는 문화가 사라지며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10년 전 아트프린팅 사업을 따로 떼 분사한 비핸즈에서 일부 제작하긴 하지만 매년 100여 종에 달하던 가짓수는 물론 판매량도 뚝 떨어졌다.   박정식 바른컴퍼니 대표는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선 연말에 카드를 주고받는 문화가 오랜 관습으로 자리잡아 시장이 공고한 반면 국내 시장은 디지털화와 경기 침체로 수요가 크게 감소했다”며 “이제는 다소 가격대가 있더라도 좋은 품질을 요구하는 ‘문구 마니아층’의 수요를 잡기 위해 소량만 생산한다”고 덧붙였다.   카드를 제작·판매하는 업체도 크게 줄었다. 제지원료인 수입 펄프값이 급등하며 생산비용도 올라가고 있어서다. 인쇄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제지사인 한국제지·한솔제지·무림페이퍼는 이달 초부터 인쇄용지 가격에 적용하던 할인율을 8%포인트씩 축소하기로 했다. 제지가격은 통상 기준가에서 구매량에 따라 할인율이 적용된다. 기준가는 그대로지만 할인율이 축소되면 실질적으로 가격 인상 효과를 내는 것이다. 지난해 9월 할인율이 7%포인트 줄어든 데 이어 1년 여 만에 다시 축소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카드를 제작·판매하는 업체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일명 ‘충무로 인쇄골목’으로 불리는 서울 인현동에서 30여 년 간 인쇄업체를 운영하는 김형진(가명·61)씨는 “10년 전만 해도 연말이면 연하장 주문량을 맞추려고 밤샘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단골 거래처마저 점점 주문량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사례가 늘었다”며 “몇 년 새 종잇값도 많이 오르고, 현재 주문량으로는 남는 게 없어 가게 주변만 해도 벌써 서너곳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자체 디자인한 카드를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유정은(27)씨는 “연말은 물론 생일·결혼식 등 특별한 날도 카카오톡 등으로 e카드를 보내는 게 일반화됐다”며 “국산 업체는 갈수록 줄고, 해외 수입 브랜드는 소비자가가 최소 5000~6000원은 되다 보니 카드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카톡으로 대신한다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시장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1일, 2024년 갑진년을 맞아 푸른 용을 주제로 한 연하카드·엽서 10종을 발행했다. 올해 발행량은 121만5000장이다. 20년 전 발행량(1370만 장)과 비교했을 때 10분의 1 수준이다. 김상식 우정사업본부 사무관은 “관공서나 기업 수요가 대부분이고 개인 판매량은 적은 것으로 안다”면서 “전년도 판매량을 고려해 새해 발행량을 정하다 보니 팔리지 않으면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 우체국 앞 풍경도 달라졌다. 박정식 대표는 “일본은 신년에 연하엽서를 주고받는 문화가 정착돼 연말엔 ‘연하장 전용 우체통’을 둘 정도”라며 “업계 1~2위 업체의 경우 연하장 판매량만 연간 1억 장에 달할 정도로 큰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2001년 262억 통이었던 전체 우편물 양은 지난해 144억 통으로 절반 가량 줄었다. 일본우정사업청은 20일 내년 하반기부터 엽서·편지 운송료를 30%가량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매년 우편량이 급감한 데 따른 조치로, 일본에서 우편요금이 오르는 것은 30년 만이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2023.12.23 00:44

  • 꿈을 담은 월간 다이어리 쓰세요, 인생이 확 바뀝니다

    꿈을 담은 월간 다이어리 쓰세요, 인생이 확 바뀝니다

     ━  다이어리의 계절, 전문가 솔루션   김익한 교수가 자신이 대표로 있는 ‘문화제작소 가능성들’에서 만든 월간 다이어리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타성의 자기계발을 하는 10만 네트워크의 운영자’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하고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을 다이어리에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연말은 ‘다이어리의 계절’이다.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만만찮은 다이어리를 사면서 사람들은 새해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한 달 정도 열심히 쓰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이어리를 꼼꼼하게 썼는데 삶이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을 향해 ‘대한민국 1호 기록학자’인 김익한 명지대 명예교수(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는 명쾌한 솔루션을 제시한다. “월간 다이어리를 써라.”   김 교수의 설명이다. “기록은 지적 행위라기보다는 습관이다. 연간 다이어리는 365일 날짜가 찍혀 있고 하루 한 쪽만 쓰도록 돼 있다. 그날 일정과 해야 할 일을 쭉 써놓으면 끝이다. 며칠 쓰다 보면 하기로 했던 걸 제대로 못한 걸 발견하고 자포자기 심정이 된다. 다이어리에는 일정과 계획은 기본이고, 자신의 꿈과 그것을 향해 나가는 과정의 느낌·감정 같은 걸 담아야 한다. 언제든지 들춰보고, 반추하고, 씩 웃어도 보고, 너무 사랑스러워서 볼에 비비고 싶은 다이어리로 만들어야 한다.”   김 교수는 ‘문화제작소 가능성들’의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구독자 30만 명인 유튜브 채널 ‘김교수의 세 가지’와 교육 프로그램 ‘아이캔대학’을 운영 중이다. ‘문화제작소 가능성들’에서는 월간 다이어리를 직접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김 교수가 월간 다이어리 사용법을 설명했다. “맨 앞에는 꿈을 적어 놓는다. 이루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언어로 구체화한 ‘자기선언’,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매우 디테일하게 써 놓는 ‘버킷리스트’ 등이 있다. ‘일주일’은 꿈을 이루기 위해 전략적으로 시간을 배치하는 단위다. 일주일 계획에는 ‘해야만 하는 일’ ‘중요한 일’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이 꼭 들어가야 한다. ‘하루’는 실행력의 시간이다. 하루 계획은 시간대별로 과제를 나열하는 식이 아니다. 시간별로 과제를 정하는 건 진심을 담지 않은 게으른 상상에 불과하다. 하루를 오전, 오후, 저녁 이후로 나눠 한두 가지 정도씩 중요한 일을 정하고 여유를 남겨 놓는 게 좋다.”   하루치 다이어리에는 뭘 쓸까. 한줄 메모 식으로 ‘일상’을 쓴다. 누굴 만났고, 무슨 얘기를 했고, 뭘 먹었고…. 그날이 그날 같지만 적다 보면 조금씩 다른 느낌을 알게 된다. 조금 특별했던 감정, 책이나 유튜브에서 본 좋은 문장, 떠오르는 아이디어 등도 한 줄씩 써 넣는다. 이렇게 하루 30줄을 썼다면 그만큼 다이어리를 폈다는 뜻이다.   자기 전에 그걸 읽어보면 나의 하루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습관이 되면 하루를 영화처럼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 꿈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를 알게 된다. 자존감도 덩달아 커진다.   김 교수는 매주 토요일 오후 5시에 일주일치 다이어리를 다시 본다. 한 주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하는 그 때가 그에게는 ‘가장 달콤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매월 말일에는 똑같은 방식으로 한 달을 정리하고 계획한다.   김 교수는 잘못된 메모 습관도 짚어줬다. “사람들은 대부분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 메모해야지’ 한다. 그런데 기록이라는 건 적어놓고 나중에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핵심 내용을 기억하기 위한 작업이다.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 기록해 놔야지’ 하면 ‘기억하지 않아야지’ 하는 무의식이 작동하게 된다.”   생각하지 않고 하는 메모, 길게 쓰는 메모도 좋지 않은 습관이다. 또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다이어리를 쓰고 현란한 색깔이나 스티커로 장식하는 것도 본질을 벗어난 행위다.   김 교수는 책을 읽으면서도 메모할 것을 제안한다. 단, 책을 보고 쓰면 안 된다. 50쪽 정도 되는 한 장을 읽은 뒤 떠오른 생각들을 몇 줄 적는다. 이렇게 300쪽 책을 다 읽으면 한두 페이지 정도로 ‘자신이 정리한 책’을 갖게 된다. 이 내용을 자신의 말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다면 그는 책 한 권을 완전히 씹어서 소화한 것이다.   ‘아이캔대학’에서 이 방법으로 공부한 40대 주부는 “내 마음의 키가 쑥쑥 자라서 거인이 된 느낌이었어요. 나는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내 아이는 거인 엄마의 어깨에 올라타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해 줄 겁니다”라는 소감을 남겼다고 한다. 김 교수의 저서 『거인의 노트』(다산북스) 제목도 여기서 따 왔다. 책은 1년 만에 10만 부 넘게 팔렸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가 학력 서열사회, 직종 서열사회로 고착돼 버렸다. 국민의 90%는 ‘내가 좀 무능력하고 지적이지 않고, 공부를 해서 나를 성장시킬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자신을 지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와 실질적 방법이 있다. 그 중심 콘텐트가  메모와 기록이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메모와 기록을 통해 꿈을 현실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정영재 문화스포츠에디터 jerry@joongang.co.kr

    2023.12.23 00:43

  • 7단계 탈모 약·이식 병행, 5단계 회복하기도…샴푸 믿다간 돌이킬 수 없게 될 것

    7단계 탈모 약·이식 병행, 5단계 회복하기도…샴푸 믿다간 돌이킬 수 없게 될 것

     ━  [탈모인 1000만, 겨울이 더 시린 사람들] 허창훈 대한모발협회 이사 진단·조언   허창훈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피부과 교수가 탈모 7단계에서 5단계로 회복한 환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 교수는 탈모샴푸는 지루피부염을 막는 정도지, 탈모 치료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상선 기자 “머리 잠깐 숙이시고…좀 만져보겠습니다. 음…3단계네요.”   궁금했다. 내 머리 상태는 어떤가 하고. 탈모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전문의의 진단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탈모가 심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허창훈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피부과 교수(대한모발학회 총무이사)는 “관리가 필요해요”라고 이어 말했다. 촬영하던 사진기자도 ‘3단계’ 판정을 받았다. 허 교수는 “나도 사실 1단계 직전의 탈모인”이라고 털어놨다. 지난달 22일 허 교수의 5평(16.5㎡) 작은 연구실에 모인 세 명 모두 탈모였던 것. 탈모는 그만큼 흔한 질환이다. 흔한 만큼 머리로는 고민의 골이 깊지만, 몸은 ‘내일’을 기약하며 치료에 소홀하다. 머리 시리도록 찬바람 부는 겨울, 중앙SUNDAY는 허 교수와 함께 탈모의 현주소를 찾았다. 한 해 중 이즈음이 탈모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조선시대 ‘뮌머리’ 윤증, 뒷머리 끌어와 상투 틀어…5300년 전 알프스 미라 ‘외치’도 남성형 탈모 진행 탈모 치료 지원, 서울은 논의 보류하고 대구는 조례 실행 고민 “겨울에 비니를 쓰고 다닐 수밖에 없어요. 머리가 사라지면 얼마나 시린지, 머리가 풍성한 사람은 모를 겁니다.”   김병민(55)씨는 그러면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허 교수가 “남성형 탈모 진행을 7단계로 나눈다”고 했는데, 김씨는 “막바지로 향하는 6~7단계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먹는 약 부작용? 98~99%는 증상 없어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난 11일 김병민씨가 전한 집안이 이랬다. ①아내의 머리에서 이탈한 머리카락이 뭉쳐 서부영화에 나오는 회전초(回轉草)처럼 마루에 굴러다닌다. ②출산 후 친정에 온 딸이 샤워를 끝낸 뒤, 욕조 배수구 거름망에는 모발이 한 움큼 모여 물을 틀어막고 있다. ③아들은 취업이 잘 안 되면서 스트레스에 치였는데, 동전만한 공터가 머리 두세 곳에 생겨 우울하다고 했다. 이러다가 취업도 못 하는 것 아닌가 싶단다. 그리고 김씨는? ④‘포기’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탈모 인구 1000만 명’ 중 일부다. 허 교수는 1000만 명이 ‘추산’이라고 말했다.   탈모인이 1000만 명이나 되나. “정확한 통계는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출처로 한 통계가 있는데, 신빙성이 없다. 건강보험공단은 병원 치료를 받은 환자를 공개할 뿐이다. 그게 2020년 기준 23만여 명이다. 그 밖의 노화나 유전적 요인에 의한 탈모인은 빠진 것이다. 다만 2019년 한국갤럽에서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2%가 자신을 탈모라고 대답했는데, 우리나라 성인 4000만 명을 대입하면 880만 명이고, 탈모 위험군까지 합하면 1000만 명이라고 추산한 것이다.”   탈모는 사전적 의미로는 ‘머리카락이 빠지는 증상’이다. 하지만 탈모는 ‘빠지는 것’과 ‘가늘어지는 것’ 등 두 가지 형태가 있다. 빠지는 탈모로는 동물의 털갈이 같은 ‘휴지기(休止期) 탈모’가 있다. 가을과 요즘 같은 초겨울에 휴지기 탈모가 온다.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가장 유력한 가설의 하나가, 여름 이후의 일조량 감소다. ①번 김병민씨의 아내 경우, 계절적인 휴지기 탈모일 가능성이 높다. 출산으로 인한 탈모(②번 딸)도, 병원 입원 후 탈모도 휴지기 탈모다. 별다른 치료 없이 대부분 3~4개월 뒤 회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또 다른 빠지는 형태인 ‘원형탈모(③번 아들)’와 가늘어지는 형태인 ‘남성형 탈모(안드로겐 탈모·④번 김씨)’다.   “소리 없이 다가온 원형탈모로 2년간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회사원 신인섭(54)씨는 “내가 설마 걸릴 거라고 생각 못 했고, 어디든지 숨고 싶었다”고 했다. 신씨는 현재 회복된 상태다. 허 교수는 “원형탈모는 심각한 질환”이라고 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원형탈모가 얼마나 심각한가. “원형탈모는 자가면역질환이다. 호르몬과 관련된 안드로겐 탈모와 다르다. 원인은 불분명하다. 스트레스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병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하지만 충격은 막대하다. 원형탈모는 두피뿐만 아니라 눈썹·속눈썹·수염에도 생기기 때문에 사회생활이 힘들 수 있다.”   원형탈모는 자존감 저하, 우울증 등을 수반하기도 한다. 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원형탈모증 환자의 평생 정신과 장애 유병률은 66~74%, 우울증의 평생 유병률은 38~39%로 확인됐다. 또 다른 연구는 원형탈모증 환자의 13~38.5%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위험이 있다고 보고했다. 원형탈모 치료제로는 과거 스테로이드를 많이 썼는데, 지난 2월 면역질환을 치료하는 잭(JAK·야누스키나)억제제가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성인에 한해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한 달 비용이 60만원에 이른다. 허 교수는 “신씨의 경우 불행 중 다행으로 치료 기간이 짧았고, 그만큼 심리적인 위축도, 치료비용도 덜했다”고 전했다.   “저 같은 6~7단계 탈모인은 치료를 해도 소용없겠죠?”   김병민씨는 안드로겐 탈모를 겪고 있다. 단계, 단계마다 늦었다고 생각했고 치료를 미루고 미뤘다. “탈모 방지 샴푸를 쓰고, 머리에 좋다는 음식도 먹는데 도무지….” 김씨처럼 본인의 탈모 심각성을 알면서도 치료를 받지 않는 사람이 많다. 한국갤럽의 2019년 조사에서 ‘자신이 탈모’라고 여긴 22%(1500명 중 329명) 중 ‘심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절반에 가까웠다(46%). 그런데, 대안(복수응답)으로는 ‘아무것도 안 한다(47%)’가 1위였다. 이어 ‘샴푸 등 모발 관리제품 사용(41%)’, ‘민간치료요법·건강기능식품 시도(12%)’가 뒤를 이었다. 허 교수는 “샴푸는 지루피부염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탈모에 효과가 없다”며 “탈모 초기라고 샴푸만 사용하다가 치료 시기를 놓쳐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고 강하게 말했다. 〈그래픽 ‘탈모, 진실 혹은 거짓’ 참조〉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김병민씨 같은) 탈모 7단계도 거슬러 갈 수 있나. “가능하다. 35세에 처음 내원한 환자가 있었다. 당시 7단계였다. 그도 치료를 포기하고 모발이식을 하러 왔다가 일단 약을 먹고 보자고 했다. 이후 모발이식 등을 병행해 5단계로 되돌렸다. 그렇다고 누가 약이 잘 듣는지, 안 듣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 40대 이전에 탈모가 있을 경우 99% 현 상태 유지가 가능하고, 40대 이후라도 90% 정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를 놓치게 되면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은 70%로 줄어든다.”   건보 적용, 증상·단계 설정 쉽지 않아   역시 비용이 문제인데. “과거 먹는 탈모약이 비싸다고 두피 영양제에 의존한 사람이 많았는데, 휴지기 탈모에 다소 도움이 되지만 탈모 환자의 90%가 겪는 안드로겐 탈모에는 효과가 전혀 없다. 탈모약은 제너릭(generic·특허가 풀린 오리지널 의약품과 같은 주성분, 복용법, 효능·효과를 가진 의약품)이 나오면서 값이 급격하게 내려갔다. 치료법은 크게 네 가지다. 치료 효과 순서대로 모발이식, 먹는 약, 레이저, 바르는 약이다. 최근에는 먹는 약인 피나스테라이드·두타스테라이드 등 두 가지 계열의 약제를 주사제로 바꾸려고 실험하고 있다. 결과가 좋게 나와 현재 3상 임상연구 중이다. 또 유전자 수준에서 탈모를 막아주는 si-RNA 방법도 호주에서 임상시험 중이다.”   먹는 탈모약의 부작용으로 성기능 감퇴 등에 대한 우려가 있다. “어떤 약이든 부작용이 있다. 먹는 탈모약의 부작용은 1~2%로 나타난다. 바꿔 말하면, 98~99%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탈모로 인한 자존감 저하, 우울증을 겪는 것보다 치료가 낫다는 수치다. 탈모이고, 탈모에 대한 고민이 크다면, 탈모약을 먹어야 (머리카락을) 지킬 수 있다. 왕도(王道)는 없다.”   지네딘 지단, 주드 로, 브루스 윌리스, 제이슨 스타뎀(왼쪽부터 순서대로) “약값이 비싸잖아요. 그래서 여기를 성지(聖地)라고 하지요. 탈모 성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에서 만난 이모(32)씨는 한 병원에서 나와 약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탈모로 고민하는 2030세대 일부는 이런 ‘성지 순례’를 하고 있다. 이들은 ‘진료비와 처방약 가격이 합리적이면서도 약 효능이 우수한 곳’을 탈모 성지라고 부른다. 이곳과 함께 충북 청주시, 울산광역시 등의 병원도 성지로 꼽히지만, ‘일산 탈모성지’ ‘광명 탈모성지’ 등 웬만한 도시에서는 검색으로 뜬다. 한 인터넷 카페에는 ‘요새 ○○ 탈모 성지 다녀온 분 계신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는데, ‘지난달 다녀왔고 3개월 진료비 5000, 약값 90알이 5만 얼마였어요’ ‘지지난달에 6개월 처방전 5000원, 약값 6만3000원 나왔네요’ ‘동지여, 힘내세요 ㅜㅜ’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탈모 성지가 떠오른 건 2030세대의 탈모가 증가했기 때문일까. 허 교수는 “숫자가 늘어나는 건 맞지만 실제로 늘어나는 건지, 병원 찾는 이가 늘어나는 건 지 더 연구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엠브레인이 지난 3월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30.3%가 탈모를 경험했고, 이 중 연령별로는 20대 14.1%, 30대 23.4%, 40대 29.0%, 50대 33.3%였다.   탈모 성지를 찾는 이들 중 일부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비대면 진료와 대리처방을 받고, 미리 정한 약품으로 택배 배달을 받기도 한다. 모두 불법이다. 이씨와 함께 온 박모(33)씨는 “얼마나 절실하면 그러겠느냐”고 옹호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에는 #탈모 게시물이 60만개에 육박한다. 대부분 절박과 절실을 이용한 광고다. 허 교수는 “법 테두리 안에서 진료를 받는 게 가장 빠르고 안전하다”고 정리했다.   가발에 의지하는 탈모인도 많다. “가발은 탈모인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숨어 지내는 탈모인도 꽤 있는데, 이들을 밝은 곳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한데, 가발은 2년에 한 번꼴로 바꿔줘야 하는데 의료용품으로 분류돼 있지 않아 비싼 값에 살 수밖에 없다.”   탈모에 대한 진단도 애매하지 않은가. “탈모는 질환이 맞지만, 몇 단계인지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당뇨처럼 수치로 객관화되지 않으니까. 만약 탈모에 대한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면 어느 단계부터 할 것인가? 지금 일부 지자체에서 청년을 대상으로 탈모 지원을 하는데, 중장년 탈모인에게는 공평한 것인가? 안드로겐 탈모보다 심리적 충격이 큰 원형 탈모에 대한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안드로겐 탈모를 제외할 수 있는가? 또 건강보험 재정이 그 정도로 넉넉한가? 고민할 부분이 많다.”   허 교수는 일단 답을 내놨다. “지금 당장,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라”는 것. 그는 자신도 탈모약을 먹는다고 했다. 그는 “25년 정도 탈모를 연구한 사람 머리가 휑하다면, 누가 나를 믿겠냐”고 반문했다. 이번 주말 찬바람이 분다. 머리가 다시 시리다.     ■  「 원형탈모=면역계인 T임파구가 자기 모발의 일부분을 외부 물질로 잘못 인식해 공격하면서 탈모가 진행되는 자가면역질환.   안드로겐 탈모=안드로겐(남성호르몬) 중 하나인 테스토스테론이 디하드로테스토스테론(DHT)이라는 탈모 유발 호르몬으로 변해 모낭을 공격해 생기는 질환. 헤어라인과 정수리 쪽에서 모발이 가늘어진다. 여성형 탈모도 안드로겐 탈모에 속하는데, 주로 정수리에서 진행된다. siRNA=소간섭(small interfering) RNA의 약자. 특정 단백질의 생산을 억제함으로써 유전자 발현을 방해한다. JAK 억제제=면역과 염증, 세포 성장을 조절하는 야누스키나아제(Januskinase)를 억제하는 약물. 류머티즘과 아토피 피부염, 궤양성 대장염 등의 치료에 사용된다. 」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2023.12.16 00:52

  • 탈모 치료 지원, 서울은 논의 보류하고 대구는 조례 실행 고민

     ━  탈모인 1000만, 겨울이 더 시린 사람들   “세대 갈등 우려가 있고, 정책 우선순위나 다른 질병과의 형평성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김철희 서울시 미래청년기획단장).”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탈모로 인한 부담과 고통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이소라 서울시 의원).”   지난 3월 3일, 이 의원이 대표 발의한 탈모 지원 조례안 심의 중 격론이 벌어졌다. 서울에 사는 19세 이상 39세 이하 청년이 경구용 탈모 치료제를 사면, 서울시가 치료비 일부를 주는 내용이다. 결국 이날 심의 보류가 났고, 현재까지 9개월 넘게 흘렀다. 하지만 당시 서울시 의회 관계자는 “지원 근거가 미약해 ‘보류’로 정해 놓고, 논의는 하되 재논의는 안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시에서의 청년 탈모 지원 논의는 무기한 보류한다는 얘기다.   탈모 치료비 지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놓으면서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이제는 각 지자체의 탈모 지원 조례 이슈가 달궈진 상태다.   관련기사 7단계 탈모 약·이식 병행, 5단계 회복하기도…샴푸 믿다간 돌이킬 수 없게 될 것 조선시대 ‘뮌머리’ 윤증, 뒷머리 끌어와 상투 틀어…5300년 전 알프스 미라 ‘외치’도 남성형 탈모 진행 충남 보령시는 올해부터 탈모 치료 지원비를 주고 있다. 지역에서 1년 이상 거주하면서 탈모증 진단을 받은 만 49세 이하 시민이 대상이다. 지원액은 1인당 최대 200만원이다. 서울 성동구도 올해부터 1인당 연 20만원의 탈모 치료 바우처를 주고 있다. 성동구에 3개월 이상 거주한 39세 이하 주민이 탈모증 진단을 받으면 된다.   대구시는 지난해 12월 관련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1년 이상 대구에 거주한 19~39세 청년 중 탈모증 진단을 받은 사람에게 경구용 탈모 치료제 구매비용 일부를 지원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직 실행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아토피·암 환자 등이 탈모보다 우선 지원대상이라는 여론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시 사하구도 지난 5월 관련 조례안을 통과시켰지만, 보건복지부는 “이 사업은 전국으로 확산할 것으로 보이고 건강보험 재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며 제동을 건 상태다.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때는 복지부와 협의를 의무적으로 거쳐야 한다.   허창훈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환자가 많은 안드로겐 탈모를 지원하는 건 재정의 부담을 초래할 수 있고,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세대 차별이 아닌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며 “이슈만 만드는 것 같아 충분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2023.12.16 00:44

  • 조선시대 '뮌머리' 윤증, 뒷머리 끌어와 상투 틀어…5300년 전 알프스 미라 '외치'도 남성형 탈모 진행

    조선시대 '뮌머리' 윤증, 뒷머리 끌어와 상투 틀어…5300년 전 알프스 미라 '외치'도 남성형 탈모 진행

     ━  탈모인 1000만, 겨울이 더 시린 사람들   ‘여덟 시 통근 길에 대머리 총각/오늘도 만나려나 떨리는 마음/시원한 대머리에 나이가 들어/행여나 장가갔나 근심하였죠 ….’   가수 김상희가 1967년 내놓은 노래 ‘대머리 총각’ 일부다. 낭랑한 음색으로 부른 이 노래에 대해 김씨는 “당시 우울한 시기를 벗어나려는 사회상을 반영했다”고 훗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국내 한 조사에 따르면 ‘탈모 때문에 받는 최대 스트레스가 무엇이냐’는 질문(복수 응답)을 했더니, ‘조롱·연민·비웃음 등 남들의 시선(277명)’이라는 응답이 1위였다. 이어 ‘자신감·자존감 저하 등 심리적 위축(206명)’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외모(44명)’ 순이었다. 탈모로 시원하게 벗어진 머리로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노랫말 속 그 총각은, 정말로 우울했을지도 모른다.   탈모는 동서고금,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고민의 대상이었다.   명재 윤증 초상화. 뒷머리를 끌어와 상투를 튼 것으로 보인다. [중앙포토]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록에서 확인 가능한 탈모 치료의 역사는 기원전 1550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의 의학 문서인 ‘에베르스 파피루스’에는 탈모증 치료법도 있다. 하마·악어·수고양이 등의 지방을 섞어 머리에 바르라는 것. 현재 피나스테라이드·두타스테라이드를 이용한 탈모약의 원조쯤 되겠다.   기원전 400년 무렵 히포크라테스는 탈모증을 치료하기 위해 겨자무, 비둘기 배설물, 고추 등의 재료를 섞어 약을 만들었다.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탈모를 가리려고 월계관을 썼다고 한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연인 카이사르를 위해 불에 태운 생쥐, 곰의 기름, 사슴의 골수 등을 탈모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곰의 기름을 탈모약으로 쓴 건 『동의보감(1610)』에도 나온다. ‘머리털이 노랗게 시들어갈 때는 곰의 기름을 발라주고 빠질 때는 곰의 골수로 기름을 내어 발라준다’고 적혀 있다.   관련기사 7단계 탈모 약·이식 병행, 5단계 회복하기도…샴푸 믿다간 돌이킬 수 없게 될 것 탈모 치료 지원, 서울은 논의 보류하고 대구는 조례 실행 고민 이보다 앞서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1168~1241)가 자신의 탈모를 한탄했다. 그는 『동국이상국집』 제18권 ‘대머리를 자조함(頭童自嘲)’에 ‘털이 빠져 머리 홀랑 벗어지니/꼭 나무 없는 민둥산이라/모자를 벗어도 부끄럽지 않지만/빗질할 생각은 벌써 없어졌네’라고 남겼다. 그런데, 이규보는 ‘민둥산’을 한자 ‘禿山(독산)’으로 적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대머리’는 19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나 현재까지 이어진다. ‘대’의 의미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머리’와 같은 뜻인 ‘민머리’의 17세 표현이 ‘믠머리’(禿子)와 ‘고되(ㄷ+아래아+ㅣ)머리(禿頭)’인 것으로 보건대, ‘대머리’는 ‘고되(ㄷ+아래아+)머리’에서 변화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1991년 발견된 미이라 ‘외치.’ 최근 과학자들은 5300년 된 ‘외치’가 안드로겐 탈모를 겪었다고 밝혀냈다. [중앙포토] 그 17세기에 살았던 명재 윤증(1629~1714)도 ‘뮌머리’였다. 그의 초상화를 보면 당시 탈모인이 상투를 틀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알 수 있다. 탕건을 쓴 부위로 탈모가 보이는데, 뒷머리에 남은 머리카락을 모아 상투를 튼 것으로 보인다. 영조(1694~1776)도 탈모였다. 그런데 73세에 머리가 나자, 뛸 듯이 기뻐했다고 조선왕조실록이 전한다.   ‘대머리’를 소재로 한 책도 꽤 있다. 『아홉살 대머리』는 학업 스트레스로 대머리가 될 위기에 놓인 소년 경수를  그린 동화다. 스즈키 다쿠야의 『아직은 대머리가 될 수 없다』는 탈모에서 벗어나려는 자신의 역경을 담았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탈모인은? 5300여 년 된 미이라 ‘외치(Ötzi)’는 1991년 알프스에서 발견됐는데, 최신 유전자기법을 동원한 과학자들은 지난 8월 “외치는 생전 남성형 탈모가 진행 중이었다” 밝혔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2023.12.16 00:44

  • 일회용품 감축 풍선효과, 대체재 늘어 쓰레기만 더 쌓여

    일회용품 감축 풍선효과, 대체재 늘어 쓰레기만 더 쌓여

     ━  오락가락 일회용품 규제책   일회용품 규제 시행과 번복을 반복하는 동안 일회용품 소비량은 11년 새 2.6배 늘었다. [뉴스1] 비닐봉지 발명가의 의도는 완벽히 빗나갔다. 1인당 연간 533장 사용하고, 25분 내로 버려지는 비닐봉지는 사실 환경보호를 위한 발명품이었다. 스웨덴 공학자 스텐 구스타프 툴린은 오래 가는 봉지를 오래 쓰라고 만들었다.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 봉투는 금방 찢어지고 많이 버려져 산림파괴에 주범이 된다 생각했다. 그런 종이봉투 대체재였던 비닐봉지가 지금은 폐기량이 종이봉투를 넘어서면서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전락했다. 종이든 비닐이든 소비부터 줄여야 했는데 이를 망각한 결과는 뒤바뀐 결과를 낳았다.   ‘일회용품 규제 완화’ 한 달째다. 13일 찾은 중구의 A카페 카운터엔 종이 빨대와 플라스틱 빨대를 나란히 비치해뒀다. 매장 직원 윤기영(가명·29)씨는 “지금은 (종이빨대) 추가 발주는 안 하고 재고를 소진하고 있다”며 “더러워진 종이빨대는 재활용도 잘 안 되고 딱히 환경에 도움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근 B카페엔 플라스틱 빨대만 있었다. 직원 이규언(23)씨는 “계도기간에도 딱히 종이빨대를 안 썼다”며 “플라스틱 빨대를 필요할 때만 드리는 게 훨씬 덜 쓰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간 일회용품 규제가 근본 목적을 잊은 채 시행돼 왔단 얘기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버려지는 일회용품 총량을 줄이는 게 목적인데, 특정 품목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한 건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치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바다거북이를 발견하자 ‘빨대 사용을 줄이자’고 한 것과 같다. 정작 빨대는 바다쓰레기의 0.03%에 불과하다. 되레 46%는 폐그물망인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근본적인 고민이 없다보니 본말이 전도되기 쉽다는 얘기다. 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총량 줄이기 목표치를 두고 정확한 통계로 규제의 효과를 입증해야 하는데, 근본 질문을 잊다보니 정책이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난 20년간 일회용품 규제책은 오락가락 하기를 반복했다. 2003년 패스트푸드점에서 시작된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5년 뒤 폐지됐다. 2018년 카페 등 식품접객업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금지 규제가 시작됐지만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불가피하게 지자체별 자율 하에 한시 허용했다. 지난해엔 다시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등 규제 품목이 추가됐으나 지난 11월 계도기간은 무기한 연장됐다. 종이컵 사용 규제는 폐지됐다. 그 사이 일회용품 소비, 그중 플라스틱 소비량은 매년 늘었다. 시장에 ‘일회용품 감축’이란 시그널이 닿지 못한 셈이다. 2017년 전체 플라스틱 소비량은 798만t에서 2021년 1193만t으로 1.5배 증가했다. 11년 전인 2010년과 비교해도 2.5배 증가했다. 그중 가정, 일상생활 속 생활계 폐플라스틱은 11년 새 177만t에서 468만t으로 2.6배 늘면서 가장 많이 증가했다.   잘못된 시그널 탓에 대체재 소비도 늘어난다. 홍수열 소장은 “대체재를 찾고 사후처리 고민도 없다보니, 쓰레기 양만 늘어나는 규제의 풍선효과만 나타났다”며 “정말 일회용품 소비를 줄이려 했다면 대체재 소비도 함께 줄이는 대안을 고민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다윤(28)씨는 “텀블러를 3개씩 돌려쓰고 있는데, 이외에도 집에 시즌별로 나오는 리유저블컵이나 사은품, 선물받은 것까지 합치면 새것만 5개는 된다”고 말했다. 대체재도 환경보호 효과를 거두려면 애초에 사용하지 않거나, 오래 사용해야 효과가 있다. 영국 환경청에 따르면 종이봉투는 비닐봉지보다 3번은 더 사용해야 환경에 도움이 된다. 이외에 에코백은 7100회를, 텀블러는 최소 220회는 사용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일회용품의 ‘생산-소비-폐기’ 전과정이 잘 돌아가는지 재검토 없이 무작정 만든 규제는 헛바퀴를 돌 가능성이 크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가령 플라스틱만 해도 분리수거부터 점검하고, 불필요한 플라스틱 과다생산을 제한하는 등 관리 시스템만 제대로 정립해도 총량 관리가 가능한데, 규제부터 만들어 혼란만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이상훈 계명대 환경학부 교수는 “타국 대비 자영업, 서비스업 종사자가 많은 상황에서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여러 업종, 상품 중 일회용 비닐, 빨대 등만 집중 규제하는 건 정책적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일회용품의 생산~폐기 전과정상 환경영향 정도를 평가해 업체, 소비자, 시민이 납득할만한 규제 품목을 정해야 일관적으로 환경정책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실제 폐플라스틱의 국내 실질 재활용률은 20%대에 그친다. 통상 폐플라스틱은 재활용, 소각, 매립 방식으로 처리된다. 이 과정 중 소각해 물질을 변화시켜 에너지를 회수하는 걸 제외하고, 물질 그대로 재활용한 비율은 27%에 그친다. 폐기처리 기술 개발도 더디다.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별 연구개발 건수를 보면 선별 등 물리적 재활용 기술은 162건인 데 반해 화학적 기술은 3건(1.4%)이다.   규제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대체로 공감한다. 장용철 교수는 “일종의 일회용품 소비를 줄여가자는 시그널이란 측면에서 필요한 규제를 초지일관 이어가야 한다”며 “정책에 신뢰도가 있어야 생산-소비-폐기 전 단계의 당사자들이 기술투자 등 믿고 대비할 수 있고, 그게 순환경제를 만드는 추진력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중요한 건 근본 목적, 방향성이다.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원은 “환경 규제는 늘 총량 줄이기를 선행과제로 둬야 하고, 소비 단계에서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보다 일회용품 전생애주기 단위로 총량을 줄여가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2023.12.16 00:38

  •  “내년 미 금리 내려도…한국경제 회복 멀어”

    “내년 미 금리 내려도…한국경제 회복 멀어”

     ━  2024 경제 전망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국내 경제 관련 학계, 국책·민간 연구기관, 금융시장 전문가 등 경제 전문가 10명 중 9명은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를 ‘정점’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절반 가량(44.7%)은 내년 3분기부터 미국이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본지가 경제 전문가 41명을 대상으로 이번 주 긴급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11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상, 현재 금리는 5.25~5.5%에 이른다. 한국도 2021년 8월부터 10차례 금리를 올려 3.5%다. 경제 전문가 대부분은 이 같은 긴축시계가 멈췄다고 보는 것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내년 4분기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정부는 금리 인하 압박 속에 경기 부양 정책 추진에 집중할 공산이 크다”고 진단했다.   연준의 ‘피봇’(정책 전환)이 머지않았다는 것으로, 전문가 44.7%는 내년 3분기 연준이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보다 빠른 2분기라는 응답도 28.9%로 4분기(21.1%)나 1분기(2.6%)보다 많았다. 최광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실업률 등 고용 지표 추이로 봤을 때 내년 3분기 기준금리 인하가 유력하다”고 분석했다.   관련기사 “인플레 압력에 중국 침체 계속, 글로벌 경기 제자리 걸음” 초저금리 복귀 힘들어, 중물가·중금리·중성장 시대 온다 금리 내릴 징후에 채권시장 들썩, 미 국채 ETF에 투자금 몰려 해외 기관이나 연준 인사의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의 금융지주 바클레이즈와 글로벌 금융그룹 ING는 최근 연준이 내년 2분기부터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 준 내에서도 매파(긴축 선호)로 꼽히는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도 최근 “인플레이션 진정세가 3~5개월 계속되면 금리를 내리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물가상승률 추세를 고려하면 내년 상반기 정도가 된다.   세계경제를 짓누르던 긴축시계가 멈췄지만, 그렇다고 경기가 확 살아날 것 같지는 않다. 전문가 51.2%는 내년 세계경제 상황에 대해 ‘올해보다 조금 반등’이라고 답했다. ‘조금 하강’이라는 응답도 34.2%에 달했고,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본 전문가도 14.6%였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금리 자체는 정점이지만 인하를 시작한다고 해도 내년까진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는 것으로 기업 투자와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경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경제 지표는 다소 개선되겠지만 체감 경기는 힘든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금리 인하가 곧 과거 0%대 금리로의 회귀를 의미하진 않는다”며 “전쟁이나 공급망 리스크가 해결될 때까지 ‘중물가-중금리’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창균·오유진 기자 smilee@joongang.co.kr

    2023.12.09 01:19

  • “인플레 압력에 중국 침체 계속, 글로벌 경기 제자리 걸음”

    “인플레 압력에 중국 침체 계속, 글로벌 경기 제자리 걸음”

     ━  [2024 경제 전망] 경제 전문가 41명 설문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에 따른 고금리 환경, 중국의 두드러진 경기 침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과 하마스까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전쟁…. 올해 글로벌 경제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4%로 제시했다. 연초 정부의 ‘상저하고’(상반기엔 저조했던 경기가 하반기로 갈수록 회복세를 나타낸다는 것) 전망이 무색한 수치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내년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1%로 이보다 높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이 각각 제시한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인 2.7%, 2.9%에 못 미친다.   전문가들은 내년 경제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중앙SUNDAY는 이번 주 주요 대학교 경제·경영학 전공 교수, 증권사 임원, 기타 국책·민간 연구기관 등의 전문가 4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 중 가장 많은 51.2%는 내년 국내·외 경제가 올해보다 ‘조금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가 그만큼 어려웠으며 내년엔 올해보다는 상황이 나아진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두드러지는 호황 등 극적인 반등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34.2%는 올해보다 ‘조금 하강할 것’으로, 14.6%는 올해와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예측했다. ‘호황’ 또는 ‘깊은 침체’ 등 극적인 상황을 예상한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다.   극적 상황 예측한 전문가 1명도 없어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경제에 가장 큰 위협 요소를 ‘인플레이션과 미국 등 각국의 통화 긴축’(63.4%), ‘중국의 경기 침체’(56.1%), ‘공급망 재편’(34.1%), ‘전쟁의 장기화’(12.2%) 순으로 꼽았다(복수응답). 그럼에도 경기가 조금 반등할 것으로 내다본 전문가들은 지정학적 리스크의 완화 가능성을 제시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내년에 미국과 러시아의 대선이 있다”며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제적 대립이 화해 모드로 전환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임 교수는 “이에 따라 기존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의해 발생한 공급망 교란과 원자재 가격 급등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며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위한 재정 투입과 민간 투자도 증가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내년 미 금리 내려도…한국경제 회복 멀어” 초저금리 복귀 힘들어, 중물가·중금리·중성장 시대 온다 금리 내릴 징후에 채권시장 들썩, 미 국채 ETF에 투자금 몰려 각국의 통화 긴축 완화 전망도 이 같은 조심스러운 낙관론에 힘을 실어준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등 주요국이 내년 상반기 중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통화 긴축에 집중하다가 상반기 말부터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긍정적으로 분석된다(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11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7.8% 증가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 등에 힘입어 대(對)중국 수출이 -0.2%로 전월(-9.6%)보다 개선된 게 컸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한국이 글로벌 수요 정상화와 인공지능(AI) 관련 반도체 특수, 공급망 다변화에 힘입어 내년 9~10%대의 명목 수출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반면 신중론을 제기하는 응답자도 적지 않았다. 내년 상황을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전망한 어윤종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인플레이션이 국내·외에서 진정되고 있지만 각국 중앙은행은 목표치에 도달할 것이라는 확신을 한 이후에야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며 “이 때문에 내년엔 민간 소비가 크게 증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6월 9.1%로 정점을 찍었던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올해 들어 1월 6.4%, 5월 4%, 10월 3.2%(이상 전년 동기 대비) 등으로 안정됐지만 아직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목표치인 2%엔 못 미치고 있다.   경기가 올해보다 조금 하강할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경기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을 이유로 꼽았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경제의 소비 중심 성장이 눈에 띄게 둔화 중”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국에선 소비의 원천인 가계의 실질가처분소득이 2020년 이후 감소세다.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상황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상의 효과도 본격적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과거 통계로 볼 때 미국 가계는 기준금리 인상 뒤 12~20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를 가장 많이 줄였다.”   “수출 재정비·신산업 진흥 정책 시급”   박광기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장은 “중국의 경우 내년 수출이 반등해 경제성장률이 다소 오르겠지만 글로벌 전체 성장을 이끌기엔 역부족”이라며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글로벌 수요 자체가 정체·포화 단계에 진입해 앞으로 신흥시장 잠재 수요를 개발하지 않는 한 글로벌 경제의 의미 있는 성장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도 “미국은 누적된 긴축 효과로 인한 경제성장률 하락, 중국은 부동산 등 건설 중심 성장의 한계 노출에 따른 구조적 하강이 예상된다”며 “한국은 순환적 경기 회복이 예상되지만 글로벌 전체로는 경기 둔화가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렇다면 미국은 언제 CPI 상승률 목표치 2%를 달성할 수 있을까. 가장 많은 31.7%의 응답자는 ‘2025년’을 예상했다. ‘2025년까지 달성하기 어렵다’는 응답도 17.1%나 됐다. 다만 ‘내년 4분기’(22%)와 ‘내년 3분기’(17%), ‘내년 2분기’(9.8%)를 예상한 응답자도 적지 않아 전체적으로는 48.9%가 내년 중을 예측했다. 내년 중 물가 안정이 어렵다는 의견과 가능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2025년을 예상한 박병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내년 4분기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정정책을 지속, (내년 중에는) 물가 하향이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관측했다. 반면 내년 4분기를 예상한 신승진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식품·에너지 물가와 주거비를 제외한 초근원(supercore) 인플레이션이 안정되고 있고 공급망 차질도 정상화되고 있다”며 “글로벌 제조업의 완만한 회복에 따른 상품 가격 하락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응답자들은 내년 물가를 자극할 만한 변수를 ‘공급망’(58.5%) ‘유가’(56.1%) ‘전쟁’(34.1%) ‘시중 유동성’(31.7%) 등 순으로 꼽았다(복수응답).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이대로 괜찮을까. 오는 14일 기준금리 발표를 앞둔 미국은 현재 5.50%(상단 기준), 한국은 3.50%로 사상 최대 수준인 2%포인트 격차를 유지 중이다. 일각에선 외화 유출 우려를 계속 제기 중이지만 한은은 가계부채 뇌관 등을 고려, 기준금리를 올해 1월 이후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응답자 대부분은 ‘조금 우려되나 큰 문제는 아니다’(73.2%)라고 진단했다. ‘전혀 우려되지 않는다’는 응답도 9.8%를 차지했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한국은 8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외순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한·미 기준금리 격차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다”고 전했다. 반면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국인 자금 유출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관건은 내년 상황에 대한 엇갈리는 전망 속에 정부가 어떻게 중심을 잡고 경제 정책을 짜임새 있게 펼치느냐다. 응답자들은 한국에 가장 시급한 경제 정책 과제를 ‘수출 재정비와 신산업 진흥’(31.7%)으로 꼽았다. 이어 ‘저출산 고령화 대책’(26.8%), ‘가계부채 문제 해소’(19.5%) 등 순이었다. 박광기 소장은 “한국은 50여 년간 수출 주도의 제조업으로 압축성장했지만 지금처럼 수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글로벌 환경에선 과잉 공급이 초래되면서 과다 경쟁이 발생하고, 이는 기업들의 생산성 저하와 부채 급증으로 이어진다”며 “전통산업에 묶여 있는 자본·노동력이 원활하게 첨단산업에 재배치될 수 있도록 정부가 물꼬를 터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라고 지적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고령화와 연금개혁의 절박함을 경고한 IMF 보고서의 상세 내용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저출산 고령화 대책 마련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 설문에 응답해 주신 분(가나다 순) 「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곽노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김상훈 KB증권 리서치센터장, 김성현 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 교수,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박광기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장, 박병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박춘원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서철수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신승진 삼성증권 연구원,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어윤종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이장균 BX연구소장,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임채운 서강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 정연우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 조원경 유니스트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최광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 」 이창균·오유진 기자 smilee@joongang.co.kr

    2023.12.09 01:05

  • 금리 내릴 징후에 채권시장 들썩, 미 국채 ETF에 투자금 몰려

    금리 내릴 징후에 채권시장 들썩, 미 국채 ETF에 투자금 몰려

     ━  2024 경제   지난달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전달 대비 0.626%p 급락했다. [연합뉴스] 기준금리 정점론이 확산하면서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 같은 채권시장으로 몰리는 등 금융 투자시장이 가장 먼저 반응하고 있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는 반대로 움직이는데, 현재 채권 금리가 최고점(채권 가격 저점)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하면 채권 가격이 올라(채권 금리 하락)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올해 11월까지 34조5941억원에 달하는 채권을 순매수했다. 이 중 지난달에만 약 3조4216억원의 채권을 순매수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조원 이상 늘어난 것으로, 월간 매수액으로는 4월 이후 최대다. 통상 연말에는 채권 투자가 줄어들었지만, 올해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주식형 펀드에서 채권형 펀드로의 자금 이동도 본격화하고 있다. 8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채권형 공모펀드 설정액은 최근 3개월간 2조5560억원 증가해 주식형(2조1980억원) 설정액을 3000억가량 앞질렀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해에는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이 예상되면서 12월 한 달간 순매수 규모가 2조원 밑으로 내려갔으나 금투세 도입이 유예된 만큼 연말 수요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내년 미 금리 내려도…한국경제 회복 멀어” “인플레 압력에 중국 침체 계속, 글로벌 경기 제자리 걸음” 초저금리 복귀 힘들어, 중물가·중금리·중성장 시대 온다 채권투자자들 자금이 쏠린 곳은 장기 국채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7일 기준 최근 3개월간 ETF 설정액(42조5839억원) 중 약 76%(32조9141억원)가 채권형 ETF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보다 미국 연준이 먼저 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기대에 20년 이상의 장기 미국 국채 ETF에 돈이 몰렸다. 최근 한 달간 순매수 1위를 기록한 채권형 ETF는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로 약 422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매수세는 국채와 회사채가 동시에 견인하고 있다. 올해 개인 투자자들의 채권 종류별 순매수 현황을 살펴보면 국채가 10조9078억원으로 가장 많다. 이어 회사채가 9조6766억원, 여전채(기타금융채) 8조216억원 순이다. 개별 종목에서도 초장기물인 장기 국채에 대한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채권은 잔존만기가 길수록 가격 변동이 크기 때문이다. 초장기물일수록 금리가 내려갈 때 더 많은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개인투자자 채권 순매수 상위 종목 1위는 30년 만기 국채(1414억원)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투자금을 적절히 분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본지 설문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1.7%가 내후년에야 물가상승률이 2% 이하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가가 안 내리면 금리 인하 시점이 뒤로 밀릴 수 있고, 채권 가격도 하락(채권 금리 상승)할 수 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물가를 고려하면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는 내년 상반기 내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금리 하락에 추격 매수로 대응하기보다는 비중을 줄이되 금리가 반등했을 때 재차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2023.12.09 01:02

  •  초저금리 복귀 힘들어, 중물가·중금리·중성장 시대 온다

    초저금리 복귀 힘들어, 중물가·중금리·중성장 시대 온다

     ━  2024 경제 전망    미국이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한다면 어느 정도 속도로, 어디까지 내릴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피봇’(정책 전환)이 다가오면서 금리 인하 속도와 저점이 어디인가 또한 전 세계의 관심사다. 이에 따라 글로벌 경제의 방향성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서는 대체로 인상 때 못지않은 속도로 금리가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 연준은 지난해 3월 베이비스텝(금리를 한 번에 0.25%포인트 인상)을 시작으로 1년 4개월 만에 5.25%포인트 인상해 현재 금리는 5.25~5.5%다.   관련기사 “내년 미 금리 내려도…한국경제 회복 멀어” “인플레 압력에 중국 침체 계속, 글로벌 경기 제자리 걸음” 금리 내릴 징후에 채권시장 들썩, 미 국채 ETF에 투자금 몰려 영국의 최대 금융지주 바클레이즈는 4일(현지시간) “연준이 내년에 금리를 1%포인트 인하하고, 2025년에도 1%포인트 추가 인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상승 때의 절반 정도 속도로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다. 미국 월가에서는 좀 더 하락 속도가 빠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트레이더들은 연준이 이르면 내년 3월부터 금리 인하를 시작해 연말까지 1.25%포인트를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예측대로라면 내년 말 금리는 4~4.25%가 된다.   월가, 내년말 금리 4~4.25% 예상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앞선 1일에는 글로벌 금융그룹 ING가 내년 2분기부터 0.25%포인트씩 6차례에 걸쳐 1.5%포인트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상승 때와 비슷한 속도다. ING는 2025년에도 연준이 4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해 그해 말에는 금리가 2.75~3%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연준의 그간 행보와도 맞아 떨어진다. 연준은 1960년대 말, 70년대 중반과 후반, 80년대 후반, 90년대 중반에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최근 1년처럼 급격히 금리를 인상한 뒤 인상 못지않은 속도로 금리를 내렸다.   베트남전 패배 후유증 등으로 물가가 무섭게 뛰던 70년대 말에는, 당시 연준 의장에 취임한 폴 볼커가 하루 만에 금리를 4%포인트 인상하기도 했는데, 이후 물가를 잡았다고 판단한 볼커와 연준은 인상과 비슷한 속도로 금리를 끌어내렸다. 연준은 이후에도 비슷한 행보를 했다. 조원경 유니스트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은 “물가 상승도 문제지만 이를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리면 부수적인 피해가 생기고, 이로 인한 경기 침체는 물가 상승보다 더 큰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볼커가 금리를 급격히 올리자 많은 기업이 고금리에 죽겠다고 아우성쳤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농민들이 워싱턴DC의 연준 건물로 몰려와 시위를 하기도 했다. 80년대 후반에는 급격한 금리 인상 탓에 미국의 지역 금융기관인 저축대부조합이 대거 자금경색 위기에 몰렸다. 미국 정부는 긴급 원조에 나섰고, 88년부터 91년까지 전국적으로 869개의 저축대부조합이 파산해 정부 자금지원을 받아야 했다. 90년대 중반에는 지금도 회자되는 ‘채권시장 대학살’(Bond Market Bloodbath)이 벌어졌다. 당시 3% 선이던 금리가 14개월 만에 6%까지 뛰면서 채권 가격이 폭락했고, 이로 인해 신흥국이 큰 피해를 입었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역시 이때 큰 손실을 입고 외부 자금을 수혈해야 했다. 최근의 상황도 비슷하다.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올해 들어 은행 파산이 잇따르고 있다. 3월 실리콘밸리 은행(SVB)을 시작으로 5월에는 2291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퍼스트 리버퍼블릭 은행이 문을 닫았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은행 파산이다. 지난달에는 시티즌스 은행이 문을 닫았다. 금융권의 연쇄 파산을 막고 경기 연착륙을 위해서는 내년부터는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게 금융시장의 판단이다. ING는 “인플레이션 완화와 고용시장 냉각, 소비지출 전망 악화로 현재 시장이 예상하는 것보다 금리를 더 많이 내려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생산량 원상 회복 가능성 희박   그렇다면 금리는 어디까지 내려갈까. 금융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직전으로 돌아가긴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고금리 여파로 커진 금융비용과 낮은 경제성장률,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로 인한 수출 위축 등으로 물가가 쉽게 잡히기 힘들 것이라는 진단에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금리 인하를 시작하게 되면 곳곳에서 숨통은 트이겠지만, 이것이 곧 과거 0%대 금리로의 회귀를 의미하진 않는다”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둔화했다고 해도 목표치 달성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전쟁이나 공급망 리스크가 해결될 때까지 중간 수준의 금리를 오래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실질 중립금리’ 상승으로 금리 인하가 시작되더라도 ‘중물가-중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코로나19 이전 실질 중립금리는 0.5% 수준이었으나 10월 블룸버그통신이 진행한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 현재 실질 중립금리는 1% 이상일 것이라는 응답이 50%에 달했다. 2%라는 의견도 35%나 됐다. 백석현 신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실질 중립금리가 1.5% 수준이라고 가정했을 때 목표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하려면 기준금리가 3.5% 이상은 돼야 한다”며 “향후 물가와 금리 모두 코로나19 이전으로의 복귀는 어렵다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금융시장에서는 ‘중물가-중금리’가 이어지던 90년대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본다. 한국은행도 지난 10월 “내년 이후 미국 경제는 5%대 고금리를 장기간 유지했던 1990년대 중반(1995년 3월~1998년 11월)과 유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 시기 미국은 경제성장률 하락과 고용시장 악화로 기준금리를 6%에서 4.75%로 인하했지만 98년까지도 물가상승률이 2%를 넘는 ‘중물가-중금리’가 3년간 이어졌다. 최인협 한국은행 통화정책국 정책총괄팀 과장은 “지금의 경제 흐름이 90년대 중후반과 가장 유사하다”며 “코로나19 이전의 초저금리 시대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저성장’까지 겹치면서 전 세계에서 ‘중물가-중금리-중성장’이라는 새로운 경제 기조가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0월 중기(5년) 경제성장률을 1990년 4월 이후 최저치인 3.1%로 제시한 바 있다. IMF는 “인구 고령화 등으로 생산성이 둔화하고 있다”며 “현재의 정책대로라면 글로벌 생산량이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황정일·오유진 기자 obidius@joongang.co.kr

    2023.12.09 01:02

  • 통행 막고 사고 유발하는 전동킥보드, 왜 무단 방치하나

    통행 막고 사고 유발하는 전동킥보드, 왜 무단 방치하나

    지난달 9일 서울 신촌역 인근 보행로에 킥보드가 방치돼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원동욱 기자 정영은(38)씨는 얼마 전 아이가 다쳐와 깜짝 놀랐다. 정씨는 “초등학생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가 골목에 쓰러져있는 공유 전동 킥보드에 걸려 넘어졌다더라”며 “크게 다친 것은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가끔 관리가 되지 않은 킥보드들을 보며 우려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전했다.   거리 곳곳에 방치되는 공유 전동 킥보드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시가 전동 킥보드 견인제도를 시행한 2021년 7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전동 킥보드 견인 건수는 12만9131건으로 집계됐다. 자치구별로는 마포구가 1만2581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송파(1만2234건), 강남(1만1092건), 성동(1만1065건), 영등포(1만205건) 순이었다. 현재 서울 시내에 배치된 공유 전동 킥보드는 약 4만3000대로 업체 5곳에서 운영 중이다.   지난 6일 신촌역, 강남역 등 서울 주요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살핀 결과 킥보드가 어지럽게 방치돼 보행자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마포구 주민 이정원(31)씨는 “지나가다보면 한두대도 아니고 몇대씩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어 통행에 굉장히 지장을 준다”며 “도시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소화전 앞까지 가리지 않아 긴급 상황 시 문제가 될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민 89.1%는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PM)를 무단 방치한 것을 본적이 있고, 이중 95.9%는 통행에 불편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시민들은 해결책으로 ‘PM 견인제도 강화(60.6%)’와 ‘업체의 관리능력 강화(45.4%)’를 꼽았다.   공유 전동 킥보드가 무분별하게 방치되는 이유는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형 이동장치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2020년 발의됐으나 국회 소관 상임위의 문턱도 넘지 못했다. 현재 공유 킥보드는 무단 방치를 해도 과태료가 없고 견인료만 부과한다. 킥보드를 견인할 경우 지자체는 경형 자동차에 준해 건당 4만원의 견인료와 30분당 700원의 보관료를 물린다. 올 9월까지 2년여 동안 51억6500만원을 부과했다. 대부분은 전동킥보드 업체가 부담하지만, 일부 업체는 약관을 변경해 마지막으로 탄 이용자가 내도록 한다. 업체가 담당 직원을 늘리는 대신 견인료를 내는 것으로 회수 책임을 지자체에 미루는 셈이다. 강남구에 거주하는 정경훈(26)씨는 “업체에 불법주차 민원을 넣어도 회수를 하지 않고 매번 같은 곳에서 불법 주차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에는 25개 자치구 중 7곳(광진·강서·마포·동대문·영등포·송파·중랑구)에 57명의 PM 안전관리 서포터즈가 배치돼 있다. 당장 길거리에 방치된 킥보드를 치우는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동구 주민 이원영(33)씨는 “이득을 보는 것은 업체인데 왜 자치구가 나서서 세금으로 뒤처리를 해주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는 “공유 킥보드는 처음 도입하는 신사업이라 선제적으로 주차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이제는 사업이 어느 정도 정착됐기에 업체에서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태료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경일 교통 전문 변호사는 “불법 주정차된 킥보드에 견인료 뿐 아니라 과태료를 추가로 부과하면 업체들이 경각심을 갖고 관리에 집중할 것”이라며 “관리 책임이 업체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방치할 경우 지자체나 경찰이 철저하게 단속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2023.12.09 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