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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중기 공장장 시절 춤으로 인기 끌어…노사분규도 해결
━ [더,오래] 강신영의 쉘 위 댄스(75·끝) 나는 과묵하고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다. 겉보기에는 내가 춤을 추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하기는 했다. 빡빡머리 고등학교 시절, 경주로 수학여행 갔을 때 여관 마당에서 모여 여흥의 시간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휴대용 야외전축이란 게 있었다.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자마자 용수철 튀듯 뛰어나가 몸을 흔들었는데 곧바로 학우들이 열광했다. 그날 밤 열화 같은 초대에 방마다 돌아다니며 춤 특강을 했다. 장판은 뜨겁고 마구 발바닥을 비비다 보니 발바닥, 발가락에 물집 잡혀 다음날 토함산 일출 보는 일정에 못 간 학우들이 많았다. 그전까지는 타교 출신이라고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는데 이 일로 학내에서 유명해졌다. 졸업 때까지 ‘춤선생’으로 불렸다. 춤을 일찍 배운 것은 동네 친구들 덕분이다. 학교에 다니면 출입이 금지되었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는 또래들이 동네 극장에 쇼 프로그램이 들어오면 가서 보고 흉내 낸 것을 보고 배운 것이다. 요즘처럼 유튜브나 동영상이 없을 때이므로 춤을 배울 데도 없었고 춤을 춘다는 것은 대단한 재주였다. 정동에 있던 TV 방송국에서 ‘젊음의 행진’이라는 하드록 연주 프로그램이 있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방청석에 들어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카메라에 자주 잡혔다. 무대로 내려와서 추라고 해서 본격적으로 춤을 춘 적도 있다. 다음날 학교에 가면 나는 영웅이었다. 당시만 해도 TV에 얼굴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었다. 대학에 진학하고는 신입생 환영회 무대에서 춤 솜씨로 유명해졌다. 그로 인해 졸업 때까지 4년간 역시 춤 선생이었다. 나이트클럽에 가면 자리에 앉지 않고 아예 플로어로 나가 통행금지가 풀리는 새벽까지 춤을 추고 오는 날이 많았다. 새벽 해장국집 할머니가 해장국을 말아 팔면서도 혀를 끌끌 차던 모습이 생각난다. 한심하게 봤을 것이다. 이때까지의 춤은 소위 막춤이었다. 트위스트, 소울 춤과 응용동작으로 춤을 만들었다. 귀를 찢는 듯한 음악도 좋았고 그에 맞춰 몸을 흔들 때의 쾌감 때문에 춤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프랑크푸르트 강가의 폐선에 춤추는 클럽에서 현지인들이 추는 춤을 보게 됐다. 우리나라 나이트클럽의 막춤과도 다르고 뭔가 매력이 있었다. [사진 pxhere] 20대에 미국 회사에 다녔었는데 그때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미국 사장이 추는 디스코를 처음 봤다. 그간 배운 막춤으로는 이상하게 음악과 맞지 않는 희한한 춤이었다. 춤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30대 젊은 나이에 중소기업에 임원으로 근무했다. 다른 임원들은 나보다 10년 연상이라 과묵하고 근엄하게 행동하던 시절이었다. 회사 창립 기념일에 외부에서 연예인을 초빙해 춤 경연대회를 했는데 내가 우승했다. 사장을 비롯해서 생산직 공원들까지 모두 놀랐다. 사회자가 소속을 묻는데 공장장이라고 하니까 믿지 않았다. 공장장은 나이도 많고 근엄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일로 회사에 노사분규의 큰 태풍이 불 때도 인기 있는 공장장으로서 무난히 노동조합 측과 잘 수습해 나갈 수 있었다. 춤은 세대, 계층을 불문하고 친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댄스스포츠를 처음 접한 것은 80년대 중반 서독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을 때였다. 프랑크푸르트 강가의 폐선에 춤추는 클럽이 있었다. 혼자 있으니 밤마다 갔었는데 현지인들이 추는 춤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나이트클럽의 막춤과도 다르고 뭔가 매력이 있었다. 알프스 산맥 아래 농부들이 초원에서 축제를 벌일 때 추는 포크 댄스도 그리 어렵지는 않은데 뭔가 규칙이 있어 품격이 있어 보였다. 우리 일행이 섞여 들어가 막춤을 추는데 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격이 달랐다. 그리고 라인 강 로렐라이 언덕 근처의 와인촌에서 충격적인 춤 사위를 보고 그 매력에 흠뻑 빠졌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와 십대의 손녀가 손님으로 와서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데 넋을 잃고 구경한 것이다. 알고 보니 자이브라는 춤이었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같이 추는 춤이라는데 더 매력이 있어 보였다. 저 춤을 언젠가 기어이 배우고 말리라는 결심이 섰다. 직장에서 자리가 잡히고 우리나라에도 댄스스포츠가 정식으로 들어왔다. 90년대에 중앙문화센터와 동아문화센터에서 부부 볼룸댄스로 화려하게 선을 보인 것이다. 거기까지는 집이 멀어 가까운 백화점문화센터에서 댄스스포츠에 입문했다. 그 후 더욱 정진해 경기대 댄스스포츠 코치 아카데미를 거쳐 댄스스포츠의 본고장 영국까지 가서 댄스스포츠를 배워 왔다. 올림픽공원 스포츠 센터 등 여러 곳을 거치며 댄스가 곧 생활이 됐다. 댄스엔조이라는 댄스 동호회도 만들어 절정의 한 시기를 보냈다. 가장 뜻깊은 일은 ‘댄스스포츠코리아’라는 잡지사에 편집 기자로 채용되어 일한 것이다. 전국 각종 댄스경기 대회에 잡지사 기자 자격으로 초대받고 댄스계에 발이 넓어졌다. 세계적인 프로 선수들을 만나 인터뷰한 것은 빛나는 훈장이었다. 마무리는 서울시 장애인댄스연맹에서 시각장애인들을 가르치며 같이 경기대회에 참가하면서 했다. 댄스를 봉사에 활용하고 선수로 활동하니 댄스에 입문한 보람을 느꼈다. 계속 춤을 배우며 끼를 발산하고 싶다.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 한다. 댄스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이다. ‘한 우물을 파라 그러면 결국 이긴다’라는 내 좌우명도 여기서 나왔다. [사진 pxhere] 그간 댄스에 대해 여러 가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여기저기 물어봤으나 만족할만한 답변을 듣기 어려웠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댄스스포츠 관련 책 9권을 냈다. 그중 3410페이지 책 ‘캉캉의 댄스이야기’는 내 대표작이다. 춤은 몸으로 설명하는 것이지 글로는 설명이 안 된다는 편견을 깨고 만든 책이다. 댄스는 문화사적, 심리적, 체육적 요소를 다 갖고 있다. 댄스에 발을 들여놓으면 패가망신한다는 편견 때문에 입문하지 못한 사람에 비해 행복한 시대를 누렸다. 희소가치 때문에 특별하다는 것과 건강에 좋다는 이유 덕분에 내 인생에서 댄스스포츠는 가장 나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이제 가능하다면 다시 혼자 추는 힙합댄스 등을 배우며 끼를 발산하고 싶다.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 한다. 댄스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다. ‘한 우물을 파라 그러면 결국 이긴다’라는 내 좌우명도 여기서 나왔다. 종로3가 전철역 12번 출구 쪽 유리벽에 캘리그라피로 장식되어 있다. 댄스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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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사진은 우리의 삶 닮았다…기다려야 하므로
━ [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34·끝)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지 4년이 되었다.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공부를 할수록 그렇지만 않다는 것을 알았다. 수많은 사진을 촬영해도 마음에 드는 사진 한장 얻기도 어려웠다. 멋진 장면을 촬영하려면 여러 번의 출사와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난 크리스마스 휴일에 2박 3일 일정으로 아내와 함께 영종도로 갔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카메라를 메고 떠났다. 처음 건너보는 인천대교는 길이가 21.38㎞나 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다리로 규모나 웅장함에 입이 벌어졌다.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촬영한 검은 구름 사이로 비치는 빛 내림 현상. [사진 조남대] 을왕리해수욕장 선녀 바위 쪽에서 해넘이 풍경을 촬영하려고 기다렸지만, 구름이 자욱해 빛 내림 사진 몇장 찍는 데 그쳤다. 아무리 캄캄한 어두움이 있을지라도 한 줄기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코로나와 추운 날씨로 인해 바닷가 식당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내 마음마저 허전하고 쓸쓸했다. 용유하늘전망대에 올라가자 인천공항을 비롯해 샤크섬과 무의도, 영종남로해안도로, 용유역 등이 눈 아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기온이 낮은 데다 바람까지 강해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다. 물 빠진 갯벌 가운데에 ‘샤크섬(원래 이름은‘매도랑’이지만 상어 등지느러미를 닮았다고 하여 샤크섬으로 불린다)’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샤크섬의 일출이 멋지다고 해 다음 날 아침 일찍 거잠포선착장으로 갔다. 새벽이라 선착장으로 들어가는 쪽문만 열려 있지만 벌써 20여 명 이상의 사진가가 삼각대에 카메라를 장착한 채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날씨가 추울 것 같아 옷을 두툼이 챙겨입었지만, 장갑을 미처 가져오지 않아 셔터를 누르려고 손을 꺼내자 금방 얼얼해진다.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것이 금방 후회된다. 샤크섬으로 떠오르는 태양. [사진 조남대] 수평선에 내려앉은 옅은 구름 속에 저 멀리 뿌옇게 보이는 송도신도시 부근이 불그스름해지더니 빨간 태양이 살포시 얼굴을 내민다. 손톱만 하던 해가 공이 튀어 오르듯 순식간에 하늘에 걸린다. 상어 지느러미 안쪽으로 들어오는 멋진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평상시는 상어 지느러미처럼 보이지만 각도를 잘 잡은 덕에 바닷속에서 솟아오르는 상어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듯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처음 와서 경이로운 모습을 포착한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샤크섬 앞에는 조그만 배까지 떠 있어 한 폭의 그림 같은 사진이 되었다. 어느 정도 사진을 촬영하자 주변에 있던 동호회원들은 인천대교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석산곶으로 간다며 서둘러 이동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인천대교의 일출 장면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다음날 새벽에 올까 하고 일기를 살펴보니 구름이 많을 것으로 예보돼 있어 추후 다시 날을 잡아 찾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상을 보며 출사 날짜를 물색하다 12월 마지막 날 새벽에 출발했다. 7시경 석산곶에 도착하니 대여섯 대 주차할 수 있는 조그만 주차장에는 벌써 차가 빼곡하다. 모퉁이에 겨우 주차를 하고 인천대교 방향으로 둑길을 따라 1㎞ 정도를 걸어가자 많은 사람이 삼각대를 세워놓고 해 뜨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출 시각이 7시 47분이니 아직 30분 정도 여유가 있다. 모두가 삼각대에 카메라를 장착해 놓고 있는데 나 혼자 카메라만 달랑 들고 온 모습이 프로들 틈새에 아마추어가 끼어 있는 것 같아 좀 창피하기도 했다. 적절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지만 해가 어느 쪽에서 떠오를지 가늠이 되지 않아 대부분 우왕좌왕한다. 일출 직전의 인천대교와 그 뒤로 보이는 송도신도시. [사진 조남대] 인천대교 주탑 위에 떠있는 태양. [사진 조남대] 한참을 기다리자 송도신도시가 마치 불에 타는 듯하더니 인천대교 주탑 좌측 부분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사진가들은 삼각대를 들고 달리기 시작한다. 기동력에서는 삼각대가 없는 내가 유리하다. 얼른 자리를 잡자 다른 사람들이 내 주위로 몰려든다. 아침 해는 주탑 좌측에서 솟아 서서히 떠오르면서 우측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태양이 주탑 꼭대기에 올라있는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조금씩 움직이며 촬영해야 한다. 처음보다 100여m 이상 이동하며 촬영한 결과 주탑이 횃불을 든 듯한 모습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옅은 구름이 낀 하늘로 인해 태양의 모습이 선명하지 않고 퍼진 모습이어서 한 번 더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새해 첫날은 해돋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몰려올 것 같아 둘째 날인 1월 2일 비슷한 시각에 다시 석산곶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다. 조금 더 지나자 몇 사람이 도착하는데, 사진 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광객이다. 바다 건너다보이는 송도신도시는 안개 속에 잠겨 있다. 일출 시각이 지났는데도 해는 얼굴을 내밀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애타는 심정을 부여안고 좀 더 기다리자 인천대교 한참 위쪽으로 해가 불쑥 튀어 오른다. 의욕이 넘쳐 기상도 점검해 보지 않고 무작정 나오다 보니 원하는 장면을 담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인천대교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두 번이나 더 나갔지만, 일기예보와 현지 해안가 사정이 달라 마음에 쏙 드는 사진을 촬영하지는 못하다 다섯 번의 출사 끝에 드디어 인천대교 주탑 사이로 떠오르는 멋진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다. 도전하고 기다린 끝에 얻은 뿌듯함이 이런 기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천대교 2개의 주탑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 [사진 조남대] 3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간에 쫓겨 지내다 보니 아직도 서두르는 습성이 남아있다. 사진은 기다리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원하는 장면의 사진을 카메라 앵글에 담기 위해서는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고 그냥 지나가 버릴 수도 있지만, 최고의 한순간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멋진 한장의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은 괴로움이 아니라 희망이 있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출사 나가서 촬영한 수백장의 사진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한장이라도 있으면 뿌듯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이라고도 한다. 준비하고 때를 기다려 도전하는 것은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결정적인 기회를 포착하여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환희와 즐거움 때문에 사진 공부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관련기사[더오래]“다음 생도 어머니의 아들로…”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더오래]황혼육아, 자식 키울 때 느끼지 못한 기쁨 있다 [더오래]서울 단골도…제주서 68년째 한우물 파는 80세 이발사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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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전체 국토의 70%가 스키장인 관광국가
━ [더,오래] 연경의 유럽 자동차여행(23·끝) 안도라공국은 피레네 산맥 깊숙이 들어앉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수도가 있는 나라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00km 떨어져 3시간이면 갈 수 있고, 프랑스 툴루즈에서도 비슷한 거리다. 공항이 없으므로 대개는 이들 두 도시에서 진입하면 되고, 스페인과 남프랑스를 묶어 여행하는 사람은 한번 찾아가 볼 만하다. 지도상으로도 엄청난 산속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알았고 서울의 4분의 3 정도 되는 작은 나라고 면세 국가라 유럽의 슈퍼마켓이라고 불린다는 정도만 알고 호기 있게 차를 끌고 겨울에 간 나는 가는 길이 상당히 험난해 진땀 흘려야 했다. 굽이굽이 산길을 넘어가는데, 이 동네 차들은 어찌나 빨리 다니는지 연방 내 차에 똥침을 놓는다. 비켜주면 금세 다음 차가 붙고 또 다음 차가 붙고 어쩌라고! 이 깊은 산속 나라를 혼자 운전해 갔던 일이 지금도 아찔하다. 바르셀로나에서 안도라 공국 가는 길. [사진 연경] 안도라는 스페인 카탈류나 지방과 붙어있는 나라고 가톨릭 국가이며 언어도 카탈류나어를 주로 사용하고 대외적으로는 프랑스 대통령과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교구인 우르젤의 주교가 공동 군주로서 지배하는 나라다. 유로를 사용하며 전체 국토의 70%가 스키장이란 점도 독특하다. 안도라가 역사에 등장한 것은 8세기다. 이미 이베리아 반도는 사라센 제국 치하라 이슬람화했다. 사라센을 물리치러 온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가 안도라에 머물면서 기독교를 지키고 있는 안도라의 공을 높이 치하해 독립 지위를 인정하는 문서를 만들어 아들 루이 왕에게 주었다고 한다. 1993년 신헌법이 제정되기까지 유럽에서 중세스타일의 유럽 봉건국가를 유지한 유일한 나라라고 한다. 1278년 9월 8일 우르젤 주교와 푸아 백작 간에 파레아제스(Pareatges) 협정 체결로 말미암아 독립한 이후 계속 공동 영주제가 되었다. 16세기에는 푸아 백작이 주권을 프랑스 왕실에 넘겨줌에 따라 안도라의 주권을 프랑스와 스페인 카탈루냐의 우르젤 주교가 가지게 되었다. 즉 안도라는 명목상 군주가 둘인 국가다. 실제 통치는 총독이 하고 의회를 구성한 의회민주주의 국가이고 수도는 안도라라베야다. 모나코 같은 작은 도시 국가인가 했는데, 웬걸 자연 속에 들어앉은 나라였고 국경 진입해서는 게이트에서 여권에 도장도 찍어주던 나라다. 수도 안도라라베야는 어찌나 교통체증이 심하고 도로가 좁은지 호텔을 빤히 보고도 잠시 정차를 못해 작은 시내를 몇 바퀴 돌았는지 모르겠다. 평지도 아니어서 곡예운전을 해야 한다. 안도라에서는 도심에 호텔을 정할 때는 반드시 주차장을 확인해야 한다. 내 경우도 분명히 주차장이 있는 호텔이라는 것을 알고는 갔는데 어떻게 진입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길이 없어 복잡한 도심을 몇 바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돌다가 가까운 주차장에 주차하고 호텔 체크인을 하러 갔었지만 호텔 뒤에 전용 주차장이 있어 차를 다시 옮겨야만 했다. 혼자 했던 여행의 서글픔을 절실히 깨달았던 안도라였다. 안도라에 60개나 되는 빙하호수가 있고 또 온천이 유명하므로 도심을 살짝 비켜 온천이 있는 리조트 호텔을 예약하는 것도 안도라를 즐기는 방법이다. 또 안도라는 주변 자연환경이 좋으므로 겨울철이면 스키를 즐겨보고 여름철이면 트레일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유럽 사람들은 안도라에 쇼핑을 하러 가거나 스키를 타러 많이 간다고 한다. 위스키값이 그렇게 싸다고 했지만 흥미가 없어 사 볼 생각은 안 했고 스키는 더더욱 타 볼 생각도 못 했다. 휘발유 값이 상당히 싸서 안도라에서 나올 때 차를 빵빵하게 기름을 먹여 나오기는 했다. 호텔 투숙객의 대부분이 스키어이었고 안도라를 빠져나올 때도 길에 스키어 천지였다. ■ 안도라 안도라라베야의 주차장(Aparcament Vinyes) 「 주차장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는다. 단지 도심은 길이 아주 좁고 복잡했다. 주소 Carrer Prat de la Creu, 52, AD500 Andorra la Vella, 안도라 」 스키와 온천과 쇼핑을 하지 않는다면 볼거리가 많지는 않아 호텔 주변의 성당을 돌아보는 정도로 안도라 여행을 마쳤지만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산을 바라만 봐도 청정지역임을 알 수 있다. 잠깐 머문 안도라에 대한 인상이 참 좋았던 것이 이 사람들의 친절도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찾아간 호텔은 도심에 있었고 그다지 좋은 호텔이 아니었는데도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융숭해 따뜻한 기억이 오래 남았던 안도라였다. 20세기 이후에 관광으로 먹고사는 안도라답다. 에스글레시아 데 산 에스테베.. [사진 MARIA ROSA FERRE on flickr] 안도라라베야 올드 타운. [사진 연경] 관광안내소 부근이 올드타운 중심이라 광장에 위치한 성당 부근과 상점만 둘러보았다. 성당은 안도라의 문화재에 등록된 유산이고, 11~12세기에 지어졌으나 20세기에 복원되었다 한다. 겨울이라 도심에서 보이는 산 쪽으로 난 트레일을 걸어보지 못했다. 안도라 전경. [사진 관광 홈페이지] 프랑스 툴루즈에서 안도라를 거쳐 바르셀로나로 간다면 베살루(besalu)와 절벽마을(Castellfollit de la Roca. 스페인 예쁜 마을 중 하나) 거쳐 우리나라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과 ‘왕좌의 게임’ 촬영지였던 히로나를 거쳐 가면 좋은데, 그 이야기는 후에 기회가 있으면 해보려고 한다. 안도라라베야에서 툴르즈로 가는 길. [사진 연경] 내가 처음 안도라에 간 것은 2월이었다. 체인도 없고, 있다 해도 감을 줄도 모르건마는 면세 국가 안도라에서 주유를 가득하고 엉금엉금 시속 20~30km로 기어가는데, 마을마다 스키어들이 꽉 차 있었다. 프랑스 국경 가까이 오니 길에 눈이 제법 많이 쌓여 바짝 긴장됐다. 프랑스 쪽으로 넘어오자마자 길가에 체인 감기 위해 정차한 차가 늘어서 있는 걸 보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체인 없이 올만 했던 거고 참다 참다 결국에는 체인을 감고 있는 셈이었다. 차 속에 들어앉아 있으니 저 사람들이 넘어갈 안도라 쪽은 이미 제설이 끝나 있음을 알려줄 수가 없었다. 인생사가 그렇다. 저 너머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있다면 지금의 수고를 미리 덜 수도 있고, 지금의 걱정을 미리 안 할 수도 있겠다마는 앞일을 알 수 없기에 조바심을 내고 준비도 하면서 맞아보는 것이다. 때로는 무방비로 맞닥뜨려 한 대 얻어터지고서야 정신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준비 잘해 무사히 넘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 준비도 안 했건만 조화 속으로 행운이 오기도 한다. 2월 안도라는 비 오고 눈 오고 날씨가 험상궂었음을 기억하며 안도라 이야기를 마친다. 관련기사[더오래]성모 마리아가 18번 발현한 가톨릭 성지[더오래]붉게 물든 툴루즈…2200년 된 프랑스 제4도시[더오래]파리 닮은 남프랑스 도시, ‘노스트라무스 소나무’로 유명 여행 카페 매니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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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원하는 댄스파트너 만나고 싶다고? 꿈 깨!
━ [더,오래] 강신영의 쉘 위 댄스(74) 댄스를 배우면서 싱글 남자가 원하는 여성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은 대단히 희박하다. 내가 원하는 파트너란 내가 바라는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춘 이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이성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 이성이 내게 호의를 보여 같이 춤을 추게 될 확률은 더 희박하다. 남자는 대개 여성의 외모를 중시한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까지 좋으면 당연히 인기가 있다. 인성까지 좋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그런 여자가 어디 있을까? 댄스를 배우면서 원하는 여성 파트너를 만날 확률은 기차여행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여성과 좋은 인연으로 발전할 가능성처럼 희박하다. [사진 pixabay] 경우는 다르지만 재미있는 조사 결과가 있다. 장거리 기차 여행을 하는데 옆자리에 젊은 여자가 앉을 확률이다. 한국 영화 ‘그날의 분위기’를 보면 주인공이 젊은 남자인데 옆자리에 젊은 여성이 앉는다. 티격태격하지만 결국 좋은 인연으로 맺어진다는 줄거리다. 남자는 장거리 여행을 할 때마다 그런 꿈을 꾼다. KTX 전체 승객 중 대부분의 남성이 기대하는 젊은 여성은 전체 승객 중 17% 정도란다. 남자의 그 나잇대 승객 비율은 34%란다. 단순 비율로 봐도 여자 승객이 남자 승객보다 50% 적다. 하지만 이 수치만으로는 좀 수긍 안 되는 게 18%면 확률적으로 6번 중에서 1번은 만나야 한다. 서울에서 부산을 10번 정도 왕복하면서 20번 KTX를 탔다면 3번 정도는 옆자리에 젊은 여성이 앉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이건 여성승객의 열차 이용 패턴을 보면 답이 나올 듯하다. 기차의 젊은 여성승객 중 홀로 여행하는 여성은 눈에 띌 정도이다. 대부분 부부 동반이거나 미혼이라도 일행이 있거나 커플 동반이다. 업무상 단독으로 출장을 가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다. 기업은 여성을 적게 뽑는 데다 출장도 남자만큼 자주 보내지 않는다. 나 홀로 여행하는 여성이 많지 않으니 옆자리에 앉는 여성도 드물 수밖에 없다. 대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아저씨, 아줌마, 청년이 옆에 앉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젊은 여성은 친구와 함께 기차를 타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률상으로도 내 옆자리에 앉을 사람이 내가 바라는 젊은 여성이며 내게 호감을 가질 경우의 수는 몇 광년의 오차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댄스 파트너를 만난 사람들은 수많은 변수를 헤치고 만난 큰 행운이다. '있을 때 잘하라'는 얘기를 명심해야한다. [사진 pixabay] 댄스 파트너도 마찬가지다. 댄스스포츠는 커플 댄스이므로 남녀 비율이 반반이지만, 댄스계에는 여성은 절반이 넘는다. 남자는 댄스 외에도 할 게 많다. 여자가 남자보다 댄스를 더 좋아하는 것인지, 여성에게 잘 맞아서인지 모르겠으나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렇다면 댄스계는 소위 ‘물 반 고기 반’이다. 싱글 중년 남자의 시각으로 보자. 20대 젊은 나이의 여성은 완전히 세대 차이가 나서 상대가 안 되고 30대~40대 정도라고 보자. 그 나이면 결혼해 아이가 어릴 때라 바깥 활동이 여의치 못할 때다. 부부가 같이 나오는 경우도 많고 혼자 나오더라도 저녁 시간은 부담되므로 낮에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성 중에 낮을 할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남편이 있는 여성들이 다른 남자와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출 용의가 있는지도 중요한 포인트다. 단체 강습에서야 어차피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춤을 추게 되지만, 고정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내가 마음에 들어도 상대방도 같이 호감을 가져야 하므로 커플이 될 확률은 더 희박해진다. 혼자만의 짝사랑에 그칠 수도 있다. 더구나 다 좋더라도 춤은 체격 조건도 맞아야 하고 실력이나 열정, 성격 등이 맞아야 한다. 또한 집까지의 거리, 가용 시간, 가정 사정, 경제 사정 등 여러 여건이 맞아야 한다. 그러므로 댄스파트너를 만난 사람은 수많은 변수를 헤친 행운아다. 파트너가 있는 분은 ‘있을 때 잘하라’는 얘기를 명심해둬야 한다. 그러나 여성은 남자가 생각하는 만큼 그리 만만하지 않다. 건방진 여자, 오만한 여자. 지나치게 예민한 여자, 가르치려는 여자, 남자관계가 복잡한 여자 등은 보통 남자가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도 댄스를 하다 보면 파트너가 생긴다. 자천 타천으로 파트너로 맺어지기도 하고 서로의 호감이 맞아 떨어져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댄스계 밖에서 여자를 만나 같이 입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여성이 댄스에 대한 편견이 없어야 가능하다. 같이 시작하는 것보다는 남자가 먼저 시작해서 기초를 익히고 나서 여성을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자가 배워야 할 것들이 많고 여성은 뒤늦게 배워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편이다. 천신만고 끝에 그나마 원하는 조건에 맞는 여성 파트너가 생겼다 치자. 그다음부터는 관리가 중요하다. 여성이 불만이 없도록 끊임없이 배려해줘야 한다. 호감을 사야 하므로 돈도 많이 들여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몇십만 원짜리 레슨비나 몇 백만 원짜리 드레스도 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법적으로 남남이니 언제라도 헤어지면 그만인 사이다. 그만큼 헤어질 확률이 더 많이 상존한다. 그렇다고 새로운 여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기존 파트너와 쉽게 헤어질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여자의 한은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다. 기존 파트너 개인의 감정도 중요하다. 엄연히 그간 자타공인 파트너였는데 마음대로 파트너를 바꿨다가는 세인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부부가 파트너가 되는 방법이다. 키도 맞고 어차피 여러 가지로 잘 맞아서 부부가 된 것이다. 스킨십도 문제없고 귀가 시간이 늦어도 같이 갈 것이므로 아무 문제 없다. 그런데 부부라 할지라도 댄스 때문에 오히려 사이가 안 좋아지는 경우도 많다. 댄스를 하기 전에는 남편이 밖에서 뭐든지 잘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댄스를 시작하고 보니 남자가 몸치인 경우가 많다. 평소 하늘같이 존경하던 남편이 댄스에서는 죽을 쑤고 있으면 존재가치가 떨어진다. 서로 격의가 없으므로 거친 말도 쉽게 오간다. 내 경우에는 아내와 둘이 부부댄스반을 재미있게 오래 다녔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는 댄스 때문에 골프 등 다른 종목을 즐길 시간이 없다며 그만둔다고 해 낭패를 본 적도 있다. 부부 반인데 혼자 그 반에 남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관련기사[더오래]댄스에서 힘의 원천이 되는 ‘이곳’[더오래]건강 위해서라면… 라틴댄스 보단 모던댄스[더오래]교사는 춤을 좋아한다?…교원부 따로 두는 국내 댄스대회 댄스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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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암투병 어머니…지인이 내게 힘내라며 준 위스키 선물
━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55·끝) 어머니가 수술을 했다. 가장 어려운 수술 중 하나로 꼽히는 ‘휘플 수술’이다. 암이 생긴 췌장의 머리 부분을 절제하고 십이지장, 담도 등을 절제한 뒤, 장기를 다시 이어주는 수술이다. 6시간의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는 커다란 마약성 주사를 맞고 있는데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래도 지난 1년여를 항암의 고통 속에서 보내왔는데, 수술로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며 버텼다. 수술부위는 날로 아물어갔고 퇴원해서 회복에 최선을 다했다. 수술 후 2주가 지나 조직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날, 유난히 하늘이 맑았다. 지난 한 해 동안 온 가족에 드리운 먹구름이 걷어지려나 싶었다. 그러나 췌장암은 끈질긴 녀석이었다. 잘라낸 췌장의 절제면에서 암이 발견됐고, 림프절에서도 암이 발견됐다. 췌장암과의 전쟁에서 1차전 항암 19차례, 2차전 휘플 수술을 마쳤지만, 3차전이 남은 셈이다. 이제 방사선 치료와 지긋지긋한 항암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병원에서 나와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어머니.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소리 내지 않고 눈물 흘리는 모습이 백미러에 비친다. 나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데 하늘은 왜 이렇게 서럽도록 맑은지. 어머니가 볼까 백미러를 제꼈다. 집으로 향하는 30여분, 모자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물이 닿은 공기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나와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어머니. 건강할 땐 10년 더 건강하게 사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그 10년이 매우 귀한 것처럼. 어머니와 10년만 더 살고싶다. [사진 pixabay] 얼마 전 술자리에서 만난 의사가 “암은 현대병입니다. 인간의 수명이 늘면서 생겨난 병”이라고 말했다.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이 오래 살게 됐지만, 아이러니하게 암이라는 무서운 병을 만났다. 자연스러운 생의 도태를 거스르려는 인간에게 철퇴를 휘두르는 것인가. 극복해 가던 병 앞에 절망이 찾아오자 삶이란 허무함이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나오기 힘든 절망감. 암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5년이라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 암 환자가 치료를 시작한 지 5년 이내에 그 암으로 사망하지 않는다면, 효과적으로 암이 치료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는 암 치료를 시작한 지 채 1년이 안 됐다. 5년 생존율이 10%대에 불과한 췌장암이라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기침 소리 한 번 들리면 마음이 내려앉는다.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하는 지인이 위스키 한 병을 선물로 줬다. 싱글몰트 요이치 10년 미니보틀. 과거엔 흔했던 위스키지만 일본 위스키 붐이 일면서 절판되고 가격도 급상승한 위스키다. 귀해져서야 소중함을 안다. 건강할 땐 10년 더 건강하게 사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그 10년이 매우 귀한 것처럼. 어머니와 10년만 더 살고 싶다. 그래 봐야 어머니 나이 70대 초반이다. 관련기사[더오래]위스키 못 사서 안달인 '위린이'를 위한 팁 [더오래]“내 위스키, 세계를 볼 것이다” 위스키 전설의 100년전 예언 [더오래]바닐라 향이 코끝에…20년 만에 전성기 맞은 버번위스키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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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나의 사소한 밸런스게임, 군고구마 vs 붕어빵
━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92) 선택의 순간은 수시로 찾아온다. 아주 사소한 일부터 인생을 뒤흔들 막중한 문제까지. 이번엔 심각하고 중요한 선택은 뒤로하고 소소하고 재밌는 선택의 순간을 생각해봤다. 나만 해도 지극히 작고 사소하지만 몇십 년을 저울질해 오던 게 있다. 이른바 요즘 트랜드인 밸런스 게임이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여름이냐 겨울이냐’ 가 그것이다. 결론은 짜장과 겨울의 ‘승리’로 끝이 났다. 갱년기라는 그것은 매운맛과 더위를 좀체 당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동서고금을 평정한 밸런스 게임인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가 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선 ‘vs게임’에서 제외된 지 오래다. 그리고 소소한 재미를 주는 내 겨울의 밸런스 게임은 바로 그림 속의 ‘붕어빵 vs 군고구마’다. 겨울의 맛 붕어빵 vs 군고구마. 갤럭시탭S6. [그림 홍미옥]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면? 지금 인터넷상에서 펼쳐지는 밸런스 게임, 즉 ‘vs놀이’는 온갖 소재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너무 심각하거나 어려운 건 제외하고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인터넷 시대이니만큼 그에 어울리는 소재다. ‘데이터 가능한 휴대폰 배터리 5% vs 데이터, 와이파이 불가인 휴대폰 배터리 100%’ 음~ 살짝 고민이 되긴 한다. 나도 이게 뭐라고 당장 결론을 내리기는 애매했다. 또 두 가지 다 고르고 싶은 것도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전 과거로 vs 10년 후 미래로’ 어떤 걸 고르면 좋을까? 과거의 나를 만나 못다 한 말이나 꿈을 다시 그리는 상상은 즐겁다. 또한, 미래의 난 어떤 모습일지도 말도 못 하게 궁금하기는 하다. 좀 더 고민해 볼 일이다. [사진 한국 보건산업진흥원] 지난해 10월 한국 보건산업진흥원에선 세계 손 씻기의 날을 맞이해 재밌는 이벤트를 가졌다. 트렌드에 맞게 밸런스 게임으로 진행되었는데 ‘손 씻을 때 자동으로 비누칠 되는 능력 vs 손 씻고 나서 자동으로 건조되는 능력’이 그것이다. 글쎄, 천천히 비누의 향을 맡아가며 뽀드득 씻는 재미도 포기할 순 없고 뽀얗고 깨끗한 손수건으로 손을 닦는 그 느낌도 포기하긴 싫겠다. 이쯤이면 재밌는 고민이다. 군고구마냐 붕어빵이냐 우습지만 먹성 좋은 나는 초겨울이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등장하는 길거리 붕어빵과 군고구마가 굉장히 반갑다. 최소한 저것은 먹어줘야 겨울을 보낼 것 같은 생각이 드니 말이다. 개인의 취향 문제겠지만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코 붕어빵이다. 갓 구워낸 붕어빵은 들러붙은 거스르미 마져도 고소한 게 가히 일품이다. 우스갯말로 특급주거지(?)인 ‘붕세권’에 사는 나는 오가며 붕어빵을 사 들고 온다. 사실 코로나만 아니라면 바삭한 붕어빵은 그 자리에서 먹어야 제맛이긴 하다. 하지만 단번에 붕어빵을 선택하기엔 노랗고 뜨겁게 익어가는 군고구마를 내치기도 쉽진 않다. 동네수퍼에서 판매하는 추억의 군고구마. [사진 홍미옥]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서도 사랑받던 전 국민의 간식이자 때론 배고픈 자의 식량이었던 고구마이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빨간 장작불 위의 드럼통에서 하나씩 둘씩 고소함을 풍기며 나오던 군고구마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곧 겨울도 짐을 쌀 모양이다. 역대급 추위가 올 거라는 호들갑도 무색해졌고 동네공원엔 벌써 복수초가 노란빛으로 필 채비를 하고 있다. 코로나와 대선으로 온통 어지럽고 뒤숭숭한 세상이다. 사소하지만 재밌고, 쓸데없지만 나름 행복한 고민에 빠져 보는 건 어떨지. 군고구마냐 붕어빵이냐! 과연 당신의 선택은요? 관련기사[더오래]박물관서 찾은 구순 엄마의 다락방 찻잔세트 [더오래]안타까운 그리움으로 돌아본 우리의 리즈 시절 [더오래]21세기 우렁각시, 겨울나무를 껴안다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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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6개월 뒤 지구종말 온다는데…아무도 관심이 없다
━ [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128) 영화 '돈 룩 업' 프랑스의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는 ‘1999년 7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올 것이다’는 예언을 남겼습니다. 후대의 점성가와 예언가들은 이 예언을 두고 지구에 종말이 올 거라는 종말론을 펼쳤죠. 실제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에는 이 종말론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두고 수많은 음모론이 생기기도 했는데요. 정작 예언 시간인 1999년 7월 24일 오후 5시가 되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예언은 맞지 않았던 것으로 끝났지만 당시 사람들 사이에선 ‘지구에 종말이 온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만약 지금 수개월 내에 지구에 종말이 온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떨까요? 대학원생 케이트(제니퍼 로렌스 분)는 위성사진을 보던 중 전에는 보지 못했던 혜성 하나를 발견한다. [사진 넷플릭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가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천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 분)는 위성사진을 보던 중 전에는 보지 못했던 혜성 하나를 발견합니다. 이 소식을 대학원 동기들과 지도교수 랜들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에게 알리죠. 그들은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것에 흥분하며 그 혜성에게 ‘디비아스키'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때 한 대학원생이 “궤도와 혜성의 속도를 어떻게 알아내냐"는 질문을 하는데요. 이에 랜들 교수는 직접 계산해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닫는데요. 너비가 5~10km나 되는 그 거대한 행성이 정확히 6개월 14일 후 지구와 충돌할 거라는 예측이었죠. 이 어마어마한 사실을 제일 먼저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 분)에게 알렸지만 예상한 것과는 반응이 달랐습니다. 6개월 뒤에 모두 다 죽을 거라는 말에도 상황의 심각성을 따지기보다 돌아오는 자신의 선거에 영향이 있을까 우려했죠. 그리고 케이트와 랜들의 출신을 들먹이며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보자는 말을 합니다. 6개월 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도 자신의 지지율에만 관심 있는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 분). 대통령의 반응에 분노한 그들은 언론에 먼저 알리자며 인기 TV 프로그램 ‘더 데일리 립'에 나가기로 합니다. 그러나 진행자 브리(케이트 블란쳇 분)와 잭(타일러 페리 분)의 반응도 대통령과 다르지 않았는데요. 그냥 하나의 가십이라고 치부하는 듯 웃고 떠들기 바빴습니다. 참다못한 케이트가 “지금 이게 웃고 넘어갈 상황이 아니다. 6개월 후에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소리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갑니다. 이런 케이트의 말에도 사람들은 단지 그가 방송에서 욕을 하고 화를 낸 것에만 주목하며 그 영상을 짤로 만들어 조롱합니다. 어떻게든 세상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리려는 케이티와 랜들. ‘혜성충돌? 나는 모르겠고’ 일단 내 지지율에만 관심 있는 대통령 올리언. 그리고 혜성충돌로 인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업가와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 이들은 과연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요. 인기 TV 프로그램 ‘더 데일리 립'의 진행자 브리 역의 케이트 블란쳇과 잭 역의 타일러 페리. 영화 ‘빅쇼트'와 ‘바이스'로 우리에게 알려진 아담 맥케이 감독이 이번에는 지구종말이라는 소재를 유쾌하게 그려냈습니다. 6개월 뒤 다 죽는다는데도 각자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풍자하고 있죠. 이는 이익만 쫓다 정작 중요한 게 무엇인지 잊은 채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은데요.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재미도 있고 연기도 일품인데 보고 나면 왠지 울적해진다', ‘진짜 이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웃다가 서늘해진다’라는 평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케이트 블란쳇, 메릴 스트립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끌고 있는 티모시 샬라메와 가수에서 배우로 변신한 아리아나 그란데까지. 이 배우들을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놓칠 수 없겠죠. 그리고 한국 사람이라면 왠지 뿌듯한 장면이 곳곳에서 등장합니다. 혜성과 관련한 중대 발표가 전 세계로 방영될 때 서울역의 대합실이나 사찰이 나오기도 하고 극 중에서 톱스타로 분한 아리아나 그란데의 콘서트 티켓을 구입하는 장면에서 한국어가 등장하기도 하죠. 영화 속에서 한국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두 개의 쿠키 영상을 남겼는데요. 엔딩크래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 돈 룩 업 「 영화 '돈룩업' 포스터. 감독&각본: 아담 맥케이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케이트 블란쳇, 메릴 스트립, 티모시 샬라메, 아리아나 그란데 음악: 니콜라스 브리텔 장르: 코미디 상영시간: 139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21년 12월 8일 」 ■ 연재종료 안내 「 오늘은 여러분에게 아쉬운 이야기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더오래 서비스가 종료됨에 따라 2017년부터 연재해왔던 '만만한 리뷰'는 이번 회차가 마지막이 될 듯합니다. 그동안 대단할 것 없는 제 글을 읽어주시고 함께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어떤 곳에서 어떤 형태로 다시 돌아올지 알 수 없지만 다시 만날 그날까지 모두 '영화로운' 삶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 관련기사[더오래] "죽어버렸으면" 이 영화, 정말 '결혼 이야기' 맞나요[더오래] 얼마 안 남은 시간…내 아들의 새 부모를 찾습니다[더오래] 성탄절 난데없이 가족이 생겼다…나 다시 돌아갈래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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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정조가 해질녁 눈 내리는 광경을 시로 읊던 능허정
━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61) 창덕궁 후원 안, 옥류천. [사진 Daderot on Wikimedia Commons] ━ 옥류천 계곡을 나오면서 옥류천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동쪽을 보고 앉은 농산정(籠山亭)이 있다. 농산정은 이름은 정자인데 그 기능은 온돌방과 부엌이 딸려 있어 임금이 옥류천으로 행차했을 때 음식이나 다과를 준비하던 곳이다. 동궐도에는 농산정 남쪽으로 취병이 둘러져 있고 그 앞에 목교가 있었다. 정조는 1795년(정조19)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위해 화성 행궁으로 떠나기 전 후원 일대에서 가마꾼들에게 자궁(慈宮)의 가마를 메는 연습을 시키고 수고한 관원들에게 이곳 농산정에서 음식을 대접했다. 이 해는 어머니 혜경궁의 환갑이기도 했지만 두 분이 동갑이었으므로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갑이었다. 두 분 부모를 위한 생신 잔치를 위해 한양에서 아버지의 능이 있는 수원까지 길을 떠나야 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먼 길을 떠나기 전 조금이라도 편히 모시려는 효성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지체 높으신 분이 가마를 타고 갈 때 가마멀미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정조는 어머니를 모시고 후원 고갯길을 오가며 보다 편안히 가마를 모시기 위한 예행연습을 했던 것이다. 당시 가마꾼들이야 힘이 들면 서로 바꾸어가며 쉬기도 했을 터이지만 가마 타는 높으신 분은 꼼짝없이 목적지에 당도하기까지 좁은 가마 안에서 견뎌야 했을 터이니 여간 고생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조 19년(1795 을묘) 2월 25일 1번째기사 자궁(慈宮)의 가마를 메는 예행연습을 후원(後苑)에서 행하였다. 상이 현륭원(顯隆園)에 행차할 때 여러 날 수고롭게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자궁을 직접 모시고 먼저 예행연습을 한 것이었다. 농산정(籠山亭)에 이르러 행차를 수행한 신하들에게 음식 대접을 하고 대내(大內)로 돌아왔다. 옥류천 계곡을 떠나기 전에 아쉬운 마음으로 신선세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며 취한정 주련에 쓰인 시를 감상하고 출발하는 것도 좋겠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읽는다.) 일정화영춘류월(一庭花影春留月) : 온 뜨락의 꽃 그림자에 봄은 달을 붙잡고 만원송성야청도(滿院松聲夜聽濤) : 집안 가득 솔바람 소리는 밤에 파도소리 듣는 듯 구천로담금반중(九天露湛金盤重) : 높은 하늘의 이슬이 짙어 금쟁반이 무겁고 오색운수취개응(五色雲垂翠盖凝) : 오색의 구름이 드리워 푸른 지붕을 감싸네 ━ 청심정(淸心亭)과 빙옥지(氷玉池) 청심정. [사진 문화재정 국가문화유산포털] 청심정(淸心亭)은 옥류천에서 나와 되돌아가는 길 중간에 있다. 지금 창덕궁의 관람동선에는 제한 구역으로 되어 있어 답사나 특별 관람에만 허용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걸음이 느린 관람객이라면 숲속 멀지 않은 곳에 얼핏 보이는 청심정을 발견할 수도 있다. 후원의 정자가 물과 함께 배치된다는 일반적인 구조를 말했는데 청심정은 산 중턱이니 연지를 파지는 못하고 대시 물을 담는 석조를 만들어 정자 앞쪽에 두었다. 돌로 조각한 거북의 등에 어필 빙옥지(氷玉池), 얼음같이 맑은 물을 담는 석지를 만들고 정자에서 물을 감상하게 하였다. 청심정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거북 석상이 지금은 사라진 빙옥지 안 괴석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신선계에 대한 동경을 표현한 것이다. 지금은 울창한 나무로 가려져 잘 볼 수 없었지만, 꽤 높은 지대에 있어 청심정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서 보는 밤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숙종과 정조는 이곳에서 달구경을 하고 시를 남겼다. 숙종은 청심완월을 읊고, 정조는 상림 십경 중 제7경으로 청심제월(淸心霽月), 청심정에서 보는 개인 날의 맑은 달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옥 같은 이슬이 뜰에 내려 녹지 않는데/ (玉露侵階久未晞) 둥근 달 밝은 빛 비추기 때문이라/ (一輪桂魄玩明輝) 만리의 가을 하늘 대낮과도 같으니/ (萬里秋天如白晝) 난간에 기대어 달구경 하느라 밤잠 더뎌지네/ (憑軒愛月夜眠遲) -숙종이 청심정에서 달구경을 하고 쓴 ‘청심완월(淸心玩月)’이다. ━ 능허모설(凌虛暮雪) 청심정의 서북쪽에 있는 능허정(凌虛亭)은 후원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정자다. 어쩌다 특별한 후원답사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능허정은 후원의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가파르게 서 있다. 능허정의 쓸쓸한 풍경은 정조가 얼마나 시정(詩情)이 뛰어난 왕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정조의 상림십경(上林十景) 중 열 번째가 능허모설(凌虛暮雪)로 겨울날 해 질 무렵 능허정에서 눈 내리는 광경을 구경하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과연 언덕 아래로 펼쳐지는 능허모설은 석양에 물든 산비탈 계곡의 겨울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느끼게 한다. 해가 쌓이고 쌓여 저물어 가는 하늘에 / (歲色崢嶸欲暮天) 소소히 내리는 가벼운 눈이 가련도 하여라 / (騷騷輕雪也堪憐) 잠깐 사이에 산하를 두루 뿌리고 가니 / (須臾遍灑山河去) 옥 같은 나무와 꽃이 앞뒤에 그득하구나 / (瓊樹琪花擁後前) 창덕궁 후원은 오래된 원림과 그 자연과 곁들여 사람들이 여기저기 물가를 따라 정자를 세우고 인위적인 공간을 만들어낸 이차적인 자연이다. 일본처럼 오려낸 듯 반듯하고 정형화된 정원이 아니라 나무는 나무대로 물은 물대로 서로 어우러져서 흐르는 속에 사람들이 거닐고 꽃과 바람을 즐기는 공간이다. 옛 제왕과 그곳에 초대받은 관료들이 감동으로 즐기던 공간을 지금 우리도 함께 공유하고 있다. 관련기사[더오래]왕과 신하들이 술잔 띄우고 시 읊던 옥류천 계곡[더오래]정조 “임금은 나 하나, 이에 대한 도전 절대 용서 못해”[더오래]시험 못 본 관리 꼬집고 종아리 때리며 망신준 정조 조각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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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넌덜머리나는 옛친구의 바람피운 얘기…쪼잔한 걸까
━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10) 모임이 있어 아내와 서울에 다녀왔다.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자리였고, 아내는 재수 시절 종합반 친구들 모임이었다. 춥고 다급하던 재수 시절 친구들과도 우정이 쌓여 수십 년 후까지 만난다는 게 신기했다. 옛친구들과 만나면 소주에 고기 구워 먹으며 그간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시간이 흘러 서로 간에 공유할만한 점들은 하나둘씩 줄어들었지만,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이야기 나누다 보면 예전 그 친구 그대로임을 확인하게 된다. [사진 박헌정] 내가 만난 친구는 셋이다. 고등학교 때 거의 붙어 다녔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왁살스레 지냈거나 떠들썩한 추억이 많이 쌓인 것은 아니다. 그저 착하고 싱겁고 순진하던, 하지만 사는 곳과 생활양식이 엇비슷해 결국 한곳으로 모여든 순둥이들이다. 잠깐 소개하자면, 총무 역할을 맡은 쌀집 아들 상각이는 대학교 교직원이다. 학교 다닐 때는 점잖기만 한 줄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사방팔방으로 호기심과 재주가 대단한 친구다. 요즘은 취미로 프로당구 심판을 본다고 한다. 밥 먹으면서도 꼼짝 않고 책만 들여다보던 오현이는 행시에 붙어 중앙부처에 근무한다. 이사관인지 부이사관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내가 아는 공무원 중 가장 높다. 순발력 있고 허를 찌르는 조크와 부지런한 몸놀림이 특기인 광희는 단단한 중견기업 임원인데, 회사명이 ‘○○테크’여서 나 같은 문과는 충분히 설명 들었어도 이해가 쉽지 않다. 그동안 만남이 꾸준하지는 않았다. 총각 시절에는 자주 만나 술 마시고, 결혼할 때는 서로 품앗이하고(신붓감 구해주는 일부터 함진아비, 사회, 공항 라이딩 등), 아이들 어릴 때는 가족여행도 함께 다녔지만, 삶의 궤적이 달라지면서 점점 뜸해졌다. 이유는 따로 없다. 그저 각자 살기 바빠서 각자 열심히 사느라고 그랬다. 고등학교 친구를 수시로 만날 만큼 여유롭고 만만한 삶은 별로 없다. 언젠가 다른 친구와 통화하며 “왜 그렇게 연락 뜸하냐”고 했더니, 그쪽에서 “인마, 네가 먼저 연락 안 했잖아”해서 웃음이 나왔다. 먼저 연락하는 건 알겠는데 ‘먼저 연락 안 한다’는 웬 뚱딴지같은 개념인가 싶었지만, 명언이었다. 결론은 쌍방책임이다. 뜸했던 게 미안해 더 연락을 안 하게 되고 그러다가 끊기는 일이 빈번하다. 이 모임도 얼마 전부터 재개되었다. 소주에 돼지고기 구워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는 옛날 추억, 퇴직 얼마 안 남은 직장 이야기, 제2막을 어떻게 살지 고민, 자녀의 진학⸱취업…. 30~40년 전에 그랬듯이 이 개성 없는 모임에 걸맞게 그 어떤 특별함도 없는 주제다. 하루 두 개씩 도시락 까먹어가며 평범하게 학창시절을 보낸 우리 넷은 그 모습 그대로 성장했고, 각자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아이 둘씩 낳고 열심히 살았으며, 그대로 조금씩 늙어가고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학창시절을 복기해보면 우리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심성들이었다. 그래서 마음 편하다. 자아 강하고 활개 치고 온갖 멋을 다 부리며 모양내던 친구들보다 그저 순박하고 착실하고 심지어 촌스럽기까지 하던 대기만성형 친구들이 지금껏 남아서 내 재산이 되고 있다. 다들 눈앞에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면서 황소처럼 뚜벅뚜벅 걷다 보니 책임감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어 이즈음에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것 같다. 회사 친구가 전주에 일을 보러 왔다가 시간을 내어 잠깐 만났다. 누가 온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나를 잊지 않은 그로 인해 내 존재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사진 정광식] 모임 끝나고 이튿날 내려오는데, 회사 친구 광식이가 결혼식이 있어 전주에 온다고 해서 잠깐 보기로 했다. 회사에서 ‘친구’가 가능하냐고? 대학 동기라 서로 정답게 존중하며 지내며 20년에 걸쳐 서서히 친구가 되었다. 그는 지금 상무인데, 한때 기획실에서 같이 근무하며 나하고 경쟁 구도가 그려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똑똑하고 회사에 대한 애정도 큰 것을 알았기에, 괜히 경쟁해봐야 내 인생만 피곤해지겠다 싶어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내가 한 발 뺐다. 그 결과 그는 유능하고 책임감 있게 조직에서 성공하고, 나는 내 계획대로 행복하게 산다. 정력과 감정을 헛되이 소진하지 않았으니 현명한 판단이었다. 벌써 십여 년 전일이다. 그들 부부와 만나 커피 마시고, 집에 와서 과일 먹고 한참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저녁을 대접하지 못하고 보내서 너무 미안했다. 누가 내게 찾아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내가 그들에게 잊히지 않고 있으니, 그들을 통해 내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이런 일기 같은 내용을 쓰는 이유는 은퇴 전후에 어떤 친구를 만나 어떻게 교류할지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은퇴 후 시간 여유가 생기면 사람을 만나기도 쉽다. 그런데 옛친구를 반갑게 다시 만나 잘 노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거의 만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반갑게 만나보지만, 차츰 공통의 화제나 관심 분야가 없음을 느낀다. 습관적으로 그간의 자기 삶과 직장 이야기만 지루하게 늘어놓기도 하고, 가치관이나 정치적 견해가 완전히 대립할 때도 있고, 자신의 사회적 성취나 기준을 친구들 사이에 들이대려 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친구들이 골프 얘기만 해서 따분하다고도 하고, 볼 때마다 자기 바람피우는 이야기를 자랑스레 떠벌리는 친구가 넌덜머리 난다는 사람도 있다. 학생 때처럼 거친 말투와 심한 장난기가 남아있는 친구, 학교성적, 싸움, 갈등처럼 불편한 기억을 되살리는 친구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해 ‘그게 뭐 어떻냐? 쪼잔하게’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답을 어떻게 찾겠는가. 순식간에 흘러버린 ‘시간’ 탓이니, 해결책도 시간일 수밖에 없다. 예전 추억은 우리를 다시 뭉치게 해주지만 내가 살아온 것만큼 친구들도 파란만장했을 테고, 그래서 너나 나나, 우리는 전부 알게 모르게 꽤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다. 생판 초면보다야 낫겠지만, 새로 인연을 만들어나가는 것만큼의 신중함과 성의를 가지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만나자마자 등 후려치며 “야, 이 새끼야!” 하던 젊은 날의 괄괄한 성미는 잠시 가라앉히고서 말이다. 관련기사7억 받고 명퇴?…그 전에 꼭 읽어야 할 '명퇴남 6년 후' [더오래] [더오래]나눔, 친절 구매, 재난 부조…팁에 관한 몇가지 고찰 [더오래]"내 팀이 생겼다"…50대에 시작한 프로축구 덕질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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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성모 마리아가 18번 발현한 가톨릭 성지
━ [더,오래] 연경의 유럽 자동차여행(22) 피레네 산맥 북쪽 기슭 해발 400m 지점에 위치한 루르드는 가브드포(Gave de Pau)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다. 1858년 이 마을에 사는 베르나데트 수비루라는 소녀에게 성모님께서 18번이나 발현했고 소녀가 성모님과 만났던 동굴을 찾는 이들에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면서 이곳은 1862년 정식으로 교황청의 인정을 받았으며 세계적인 성지가 되었다. 베르나데트(우리나라에서는 벨라뎃다)는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자(Que soy era Immaculada Counceptiou)’라고 밝힌 성모님의 존재를 세상에 용기 있게 전했으며 성모님의 요청에 따라 파낸 동굴 속의 샘물은 치유의 기적을 일으켜 교황청의 공식 인정을 받은 건만도 70건이나 된다. 가톨릭 성지 루르드는 피레네 산맥 깊숙한 곳에 있다. 어떻게 가야할까! 대략 난감이다. 항공으로 간다면 파리에서 국내선으로 공항을 갈아타야 한다(샤를 드골공항에서 오를리공항으로 이동). 기차로 간다면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루르드 행 기차를 탄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루르드에서 다시 택시나 버스를 이용해서 성지에 가야 되기 때문에 자유여행자는 정보를 많이 찾아야 한다. 루르드 역에 도착한다면 성지가 멀기는 해도 천천히 걸어갈 만한 거리이기는 하다. 자동차 여행자는 그나마 주차장만 찾아서 가면 되기 때문에 비교 불가일 정도로 편안하게 루르드에 도착한다. 가는 도중에 멀리 보이는 장엄한 피레네 산맥을 보면서 말이다. 가는 도로가 험하지는 않을까, 걱정할 일도 없다. 겨울에 이 길을 달렸는데 도로는 시원하게 잘 뚫렸고 풍경 또한 좋았다. ■ 「 주차는 묵는 호텔에 하고 도보로 다니면 된다. 만약 지나면서 루르드를 본다면 아래 주차장이 가깝기는 한데 성수기라면 비는 자리를 기다리던지 조금 먼 주차장을 찾아야겠다. 주차장 미리 주차요금 정산해 놓고 돌아본다. ① 좌표 43.099043267708964, -0.052266736867459924 ② 좌표 43.09593312501706, -0.05603255814547481 」 ━ 루르드 성지(Sanctuaires de Lourdes) 루르드 대성전. [사진 연경 제공] 강을 건너 성지로 들어서면 큰 광장이 있고 멀리 웅장한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편으로 보이는 동그란 건물이 인포메이션 센터다. 성전은 하나의 건물로 보이지만 서로 다른 세 개의 성당이 있음을 알고 봐야겠다. 1층은 1901년 세워진 로사리오 성당이고 2층의 성당이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의 성당이고 그 사이에 최초의 성당인 크립트라고 불리는 동굴 성당이 있다. 좌로부터 동굴성당,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 대성당. [사진 José Luiz on Wikimedia commons] ① 동굴 성당(Crypt) 루르드에서 첫 번째로 지어진 성당. 이 성당은 위아래로 큰 성당이 있어 놓치기 쉽다. 2층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성당 정문 계단 중앙 교황의 초상 아래 위치해 있다. 모르면 크립트를 찾으면 되겠다. 1862년 착공해 1866년 완공됐고 축성식에서는 베르나데트도 참례했다. 마사비엘 동굴 바로 위에 지어졌고 제대는 발현 장소 위에 설치됐다. 소박하고 단순하게 꾸며졌고 성체가 현시되어 있어 순례자들은 성체 조배 할 수 있다. 내가 갔던 그 겨울 이곳에 단체 성지 순례 오신 부산 교구 신부님들의 미사를 이 크립트에서 볼 수 있었는데 작고 소박한 경당이지만 의미 있는 곳이라는 점을 기억해야겠다. 개인적으로 아들이 오랜 냉담을 푼 장소여서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벅찬 곳이다. ②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 대성당(Basilica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13세기 풍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으로 1866년에 착공 1871년에 완공됐고 절벽 꼭대기에 지어졌다. 제대 위 3개의 스테인리스 창에는 성모 마리아의 일생이 그려져 있고 나머지 23개의 스테인리스 창에는 성모 발현과 성녀 베르나데트의 일생이 그려져 있다. 세계 각 교구에서 봉헌한 성모마리아 깃발을 보고 중앙 제대 왼편 경당에 있는 조선 제6대 교구장 리델(Redel)주교의 봉헌판도 찾아본다. ‘셩총을 가득히 닙우신 마리아여 네게 하례ᄒᆞ나이다.’ 라고 한글로 쓰여 있고 아울러 ‘조선 반도의 선교사들이 바다에서 심한 풍랑으로 고생하던 중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구원되었음을 기념해 서약에 따라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루르드 대성전에 이 석판을 설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③ 로사리오 대성당(Basilique Notre-Dame-du-Rosaire) 황금 관이 올려진 로사리오 대성당. [사진 연경 제공] 순례자가 너무 많아 새로 지은 성당으로(1889년 봉헌) 기둥이 없어 한 번에 2천여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대성당의 외관은 물고기와 밀알 모양으로 장식됐고 돔 위에는 황금 천상 모후의 관이 모셔져 있다. 발현하신 성모님께서 항상 묵주를 지니고 계셨다는 베르나데트트의 증언대로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를 묵상하는 15개의 경당이 있다. ━ 마사비엘 동굴(Grotte de Massabielle) 동굴성당 미사. [사진 연경 제공] 발현된 위치에 발현 모습 그대로 성모상이 안치되어있고 그 아래 아홉 번째 발현 시 명하신 대로 베르나데트가 땅을 파내자 솟구친 기적의 샘물이 있다. 환자와 순례자들로 붐비는 장소가 됐다. 대성당을 보고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성수대가 있고 그다음 동굴이 바로 나온다. ■ 「 루르드 침수(Going to the Baths) 주소 1 Route de la Forêt, 65100 Lourdes 루르드 성수 체험. [사진 홈페이지] 동굴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침수처가 있다. '가서 마시고 그곳에서 씻어라' 말씀하신 대로 전 세계 사람들이 치유의 은총을 구하며 모여들고 있다. 성수기에는 새벽부터 줄 선다고 하는데 코비드 상황에서는 다른 체험으로 바뀌었다. 」 ━ 성체거동 행렬과 로사리오 촛불기도 성체행렬. [사진 연경 제공] 성체 행렬은 매일 오후 5시 마사비엘 동굴에서 시작한다. 기수단, 환자와 장애인, 복사단, 사제단, 성체 순으로 움직이는데 야외 제대에서 성체현시를 하고 광장 지하의 비오 10세 대성당으로 행렬이 움직이고 로사리오 촛불 기도는 밤 9시 로사리오 대성당 앞에서 시작한다. 루르드를 그냥 보러 가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프랑스 남쪽, 피레네 산맥 기슭 아주 깊숙한 오지까지 찾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가톨릭 신자일 텐데 은총 가득한 이곳에서 침수도 하고 성체행렬도 따라가 보고 로사리오 촛불기도에도 참여해보면 좋겠다. 그러자면 숙박을 해야 하고 또 치유의 목적으로 루르드를 찾는다면 오래 묵어가야 한다. 자원 봉사자로도 참여할 수도 있다. 혹자는 이 거대한 성지를 불편하게 바라볼 수도 있지만 침수하면서 이토록 온화하고 따스한 봉사자를 만난 일이 있었던가, 나는 나에게 또 누구에게 그러한가를 물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루르드 성수는 성수대에 수도 시설을 만들어 놓아 마음껏 담아갈 수 있는데 담을 용기를 가지고 가야 한다. 베르나르테의 집. [사진 연경 제공] 십자가의 길 대성당을 등지고 오른편 언덕에 있다. 1처 위치 / 좌표 43.096430219096455, -0.05640823373085061 이제 강을 건너 베르나데트가 태어난 볼리 방앗간(Maison Natale de Bernadette-Moulin de Boly)과 뮤지엄을 본다. 1박 하는 여행자는 침수 시간만 잘 맞춘다면 여기까지는 볼 수 있겠다. 운이 좋다면 루르드에 상주하며 한국 순례자들을 돕는 수녀님(예수 성심 시녀회 소속)도 만날 수 있다. 현재 이분들은 한국으로 철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는 시절에 코비드 상황이 나아진다면 아마도 계실 것이다. ■ 까쇼(Le Cachot) 「 옛 감옥인 까쇼에 삶이 어렵게 된 베르나르테 가족이 2년을 살았었다. 방앗간 집 육남매 중 첫째로 태어난 베르나데트는 몸도 약하고 집안은 가난했으며 글도 배우지 못했다. 이 소녀가 땔감을 주우러 동굴 쪽으로 간 어느 날 흰 옷을 입은 여인이 눈앞에 나타나 첫 날은 묵주 기도를 알려 주었고 둘째 날에는 "하느님에게서 왔다면 남아있고 아니면 사라져라"는 요청에 여인은 더 가까이 다가와 준다. 세 번째 날에는 소녀에게 15일 동안 이곳에 와 주겠느냐고 묻더니 샘으로 가서 마시고 씻으라고 분부하기에 이른다. 베르나데트는 바닥을 긁어 파서 진흙물을 발견했고 씻었다. 여인은 이제 신부님께 가서 경당을 하나 세우고 행렬을 오게 하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16번 째 만남에서야 여인은 자신이 ‘임마꿀라다 꼰셉시온(원죄 없이 잉태 된 이)’임을 밝혔다. 베르나데트의 알림으로 성모님의 메시지와 요청은 세상에 알려졌으며 숱한 곡해와 의심의 눈초리 속에서도(왜 너처럼 하찮은 이에게 그처럼 고귀한 여인이 나타나느냐고 질시와 의혹이 넘쳤지만) 베르나데트는 자기 할 일을 했다. 세상에서 제일 긴 순례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루르드를 찾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프거나 건강하거나 부자이거나 가난한 자이거나 성인이거나 좌인이거나 당신은 세상의 빛입니다’ (루르드 벨라뎃다 성녀 전시관 영문 브로셔/윤유섭 비오 역 참고) 이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루르드 성지다. 」 루르드 호텔(Hotel Villa Plaisance) 루르드에 호텔은 넘쳐 난다. 극성수기만 아니면 루르드에서 숙소 못 구할 일은 없겠지만 한국 수녀님들의 추천 숙소가 있어서 올려 본다. 가족이 경영하는 호텔이고 성지와도 가깝다. 주차는 도로 주차나 공영주차장에 하면 되겠다. 3식을 제공하는 가족호텔로 식사도 무난하고 호텔 컨디션은 좀 오래되었다. 침대 상태가 별로이다는 평이 있다. 공동욕실을 써야 하는 점도 불편한 점 중 하나겠다. 루르드에서 오래 머무실 분 중에 숙박비를 줄여보고 싶은 분들에게 좋겠고 가족 같은 분위기의 호텔을 경험해 보고 싶은 분에게도 좋겠다. 관련기사[더오래]붉게 물든 툴루즈…2200년 된 프랑스 제4도시 [더오래]파리 닮은 남프랑스 도시, ‘노스트라무스 소나무’로 유명 [더오래]험상궂은 이민자 도시 오명 벗고 재탄생한 마르세유 여행 카페 매니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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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댄스에서 힘의 원천이 되는 ‘이곳’
━ [더,오래] 강신영의 쉘 위 댄스(73) 관절이란 우리 몸에서 뼈와 뼈가 만나는 접점이다. 뼈 자체는 딱딱해서 굴신이 안 되지만 관절 덕분에 몸을 전후좌우로 굽히기도 하고 늘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댄스에서 관절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몸에는 여러 관절이 있지만 댄스와 관련이 많은 관절은 아무래도 다리 쪽의 하지관절과 목관절이 될 것이다. 희한하게도 발목관절은 앞으로 굽혀지고 무릎 관절은 뒤로 굽혀지고 고관절은 다시 앞으로 굽혀지며 접어진다. 앞뒤 접이식이라 아주 효과적으로 몸을 줄일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남성, 여성, 연령에 따라 관절의 유연성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훈련 여하에 따라 정상 가동범위의 각도는 다소 차이가 있겠다. 일반적인 경우 각 방향별 정상 가동 각도라는 것이 있으므로 그것을 잘 이해하고 그렇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상 각도를 이해해야 부상 등 안전 사고를 막을 수 있다. 격투기에서는 이를 역이용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로 쓰인다. 사람에 따라 관절 유연성에서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각 방향별 정상 가동 각도는 정해져있다. [사진 pixabay] 고관절(股關節, coxa)은 체중을 몸통에서 하지로 부하 전달하는 구와 관절(ball and socket Joint)을 말한다. 고관절은 허벅다리 뼈가 골반 뼈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차렷 자세를 하지 않는 한 일상에서는 똑바로 펴 있지 않고 약간 히프 쪽으로 구부러져 접혀져 있다. 여기에 댄스 관련 포인트가 있다. 고관절의 정상가동범위를 각도로 보면 앞으로 굽혀지는 굴곡이 0~125도, 뒤로 펴는 신전 각도가 0~15도다. 두 다리를 똑바로 펴서 옆으로 벌리는 외전에서는 0~45도, 안으로 접는 내전은 0~30도로 외전보다 적다. 그래서 다리를 벌리는 외전에서는 그 이상 되는 각도는 부상의 위험이 따르며 내전은 외전보다 적어 내전 상태로는 잘 사용하지 않고 골반을 진행방향으로 돌려 사용하는 것이다. 라틴, 모던 모두 고관절을 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고관절을 제대로 못 펴는 경우가 많다. 흔히 고관절은 똑바로 펴진 것이 최대치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옆에서 보면 덜 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관절은 정상가동 범위 안에서도 뒤로 15도나 굽힐 수 있다. 이것이 제대로 펴져야 춤이 제대로 되는 것이다. 라틴댄스나 모던댄스 베이직 스텝 연습 때 강사들이 힙을 뒤에서 자꾸 밀어주는 이유가 본인은 충분히 폈다고 생각하지만 히프가 뒤로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고관절 펴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라틴댄스에서는 몸을 세울 때 가장 키가 커지게 하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곳이 고관절이다. 고관절을 펴야 기본 자세가 나오고 파워도 생기는 것이다. 흔히 고관절을 편다고 골반만 앞으로 내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배까지 나가는 것은 아니다. 배 부분은 오히려 등쪽으로 붙여 위로 올려 뽑아야 한다. 그래야 자세가 제대로 나온다. 모던댄스에서도 고관절의 중요성은 아무리 얘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골반 부분이 파워하우스에 해당하고 그 활용은 고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힙이 뒤로 빠지는 것도 고관절을 앞으로 접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뒤로 후진하면서 축이 되는 다리를 안짱다리로 하는데 이때 고관절이 펴져서 받쳐줘야 한다. 그래야 바디 컨택트가 떨어지지도 않고 파트너를 고관절로 받아 축을 만들 수 있다. 여성의 히프를 허벅지로 받쳐주는 동작인 ‘Same Foot Lunge’ 때는 고관절을 접어 포켓을 만들어준다. 그래야 여성의 힙이 기댈 수 있게도 만들어 주며 고관절을 펴는 힘으로 여성을 밀어주는 역할도 하게 되는 것이다. 댄스 라인을 보여주는 휘겨에서 이런 고관절의 기능이 필요할 때가 많다. 관절염이란 관절의 뼈와 뼈 사이 연골이 닳아 뼈끼리 부딪쳐 아픈 증상을 말하는데 주로 슬관절에 발생한다. [사진 pixabay] 슬관절(膝關節)은 ‘knee joint’라고도 하는데 의학용어로 무릎에 있는 관절이다.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할 때 쓴다. 흔히 ‘무릎이 아프다’고 하면 슬관절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보면 된다. 관절염이란 관절의 뼈와 뼈 사이 연골이 닳아 뼈끼리 부딪치게 되어 아픈 증상을 말하는데 주로 슬관절에 발생한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수록 많이 생기게 되는데, 60세 이상에서는 약 50%, 65세 이상에서는 약 70% 정도가 발생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드신 분이 관절이 아프기 시작하면 대부분 슬관절염을 의심하게 된다. 또한 무릎이 받는 하중은 체중 증가분의 5배라고 하는데 비만한 사람에게 체중의 부하가 무릎과 고관절에 많이 걸려 그 부위에 골관절염이 발생되기 쉽다. 댄스스포츠가 건강에 좋다는 얘기는 체중을 줄여 무릎이 받는 하중을 줄여주기도 하지만 댄스를 하면 슬관절 주변근육이 강화되어 슬관절이 받게 되는 부하를 덜어주게 되며 체중까지 줄여줘서 부하를 덜어준다는 것이다. 슬관절의 정상 가동범위를 보면 굴곡이 0~130도, 반대로 늘일 수 있는 각도는 0도이다. 이러한 가동범위 때문에 라틴댄스의 룸바 차차차에서 무릎을 펴서 뒤를 잠그는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슬관절은 뒤로 꺾을 수 있는 각도가 0이기 때문에 바디가 뒤로 흐르지 않게 제동 역할을 하며 몸이 펴져서 바디라인을 돋보이게 한다. 모던댄스에서의 슬관절 이용은 매우 중요한데 무릎이 앞으로 굽혀지면서 이동해야 춤이 끊어지지 않고 부드럽게 연결이 되는 것이다. 슬관절의 굴곡이 130도까지이므로 전진할 때 뒷다리의 방향도 진행방향으로 해야 충분히 파워를 실어 전진할 수 있다. 족관절(足關節)은 발목을 말한다. 족관절에서 굽히기에 해당하는 배굴은 0·~20도, 반대로 발등을 펼 수 있는 저굴 각도는 0~45도이다. 발을 팔자로 벌리는 ‘Toe turn Out’에서 외반전 각도는 0~20도, 안짱다리가 될 때 내반전 각도는 0~30도다. 발목 관절은 힘을 쓸 수 있는 중요부위인데 모던댄스에서 발목을 충분히 굽히라고 하는 이유는 그래야 슬관절과 함께 파워를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발레를 하는 사람이 발등을 잘 펴서 발끝으로 서 있는 것은 저굴 정상범위의 각도가 원래 45도나 되는데다 연습으로 발등을 더 펴주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안짱다리를 별로 할 일이 특별히 없기 때문에 사용을 안 하다 보니 정상가동 범위내에서 조차 잘 안되지만 안짱다리를 만들 수 있는 내반전 각도가 원래 30도나 된다. 일본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있는 안짱다리는 그래서 별 특별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다. 팔(八)자 걸음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 발을 외반전하여 바깥쪽으로 돌리기는 쉬울 것 같지만 안짱다리의 30도 보다 적은 20도 밖에 안 된다. 그래서 라틴댄스에서 많이 사용하는 팔자 형태인 ‘Toe turned Out’은 골반이 반대편으로 빠지고 무릎이 앞으로 최대한 나간 상태에서 무릎까지 밖으로 돌려 보조적인 역할을 해줘야 되는 것이다. 족관절만 바로 ‘Toe turned Out’을 하려고 하면 다리가 벌어져 보이거나 본인의 생각보다 덜 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목관절 후굴 각도 이상으로 고개를 젖힐 경우, 왼쪽 가슴을 내밀어 각도의 가동범위를 보충한다. [사진 청림라이프] 경부관절은 목관절을 말한다. 경부의 정상 가동 범위는 앞으로 굽히는 전굴 각도가 0~60도, 뒤로 젖히는 후굴 각도가 0~50도다. 고개를 돌리는 로테이션을 말하는 회선은 0~70도, 고개가 앞을 본 상태에서 좌우로 굽힐 수 있는 측굴 각도는 좌우 50도로 나와 있다. 댄스에서 전굴 각도는 거의 안 사용하지만 후굴 각도가 50도나 되므로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젖혀지는 경우가 있다. 탱고 PP포지션에서 남성은 고개를 왼쪽으로 거의 90도로 꺾어야 하는데 70도가 최대치이므로 그 보충을 남성의 경우 왼쪽 가슴을 앞으로 내밀어 보조적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관련기사[더오래]건강 위해서라면… 라틴댄스 보단 모던댄스[더오래]교사는 춤을 좋아한다?…교원부 따로 두는 국내 댄스대회[더오래]12cm…남녀가 춤출 때 이상적인 키 차이라는데… 댄스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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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위스키 못 사서 안달인 '위린이'를 위한 팁
━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54) 지난 주 어느날 추운 날씨에도 전국 코스트코 매장 앞에 사람이 몰려들었다. 매장 오픈 몇 시간 전이었지만 줄은 계속 늘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매장이 오픈되자 사람들은 뛰기 시작했다. 가격상승과 품절이 염려된다는 이유로 특정 위스키를 사려고 몰려든 것이다. 서로 밀치며 고성과 욕설이 오갔고, 미처 구매를 못한 사람들은 씁쓸히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당일 준비된 위스키는 금새 동났다. 지난주 추운 날씨에도 어느 대형마트 앞에 오픈 전부터 사람들이 몰린 이유는 특정 위스키 때문이었다. 서로 밀치며 고성이 오갔고 구매를 못한 사람도 많았다. [사진 pixabay] 위스키 시장에도 ‘오픈런’이 시작됐다. 오픈런은 한정판 제품을 사려고 줄을 서고, 매장이 문을 열자마자 뛰어드는 것을 일컫는다. 최근 싱글몰트와 버번 위스키 시장 수요가 늘자 일어난 현상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작년 위스키 수입액은 1억 5434만 달러(1831억 원)로 2020년 대비 37% 늘었다. 위스키 소비가 유흥주점에서 자가로 변하면서 위스키는 ‘접대를 위한 술’이 아니라 ‘내가 마시고 싶은 술’로 영역을 확대했다. 이제 막 위스키를 시작하는 이들은 광고에 쉽게 휘둘린다. 자신의 위스키 취향도 알지 못한 채, 업체의 홍보와 누군가의 추천에 현혹된다. 위스키는 저마다 향도 맛도 천차만별이라 조금씩 맛을 보면서 좋아하는 위스키를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그런데 이런 재미를 느껴보기도 전에 누군가의 취향을 좇는 셈이다. 소주처럼 몇 개의 브랜드가 전부가 아님에도 몇 개의 브랜드에 몰리는 현상이 생긴다. 절대적으로 맛있는 위스키도, 절대적으로 맛없는 위스키도 없다. 특정 위스키를 못 사서 안절부절 못할 필요도, 사재기 해놓고 마실 만큼 위스키가 부족하지도 않다. [사진 pixabay] 재테크를 하겠노라고 위스키를 사는 사람도 있다. 위스키를 박스째 구입하는 ‘박스떼기’가 성행한다. 이렇게 위스키를 매점매석해서 품절되면 비싸게 되파는 ‘리셀테크’를 노린 것이다. 개인 간 주류거래는 불법임에도 암암리에 거래가 일어나고 있다. 위스키를 마시려는 소비자에겐 재앙이다. 텅 빈 매대 만큼 소비자의 마음도 휑해진다. 조급해할 필요 없다. 절대적으로 맛있는 위스키도, 절대적으로 맛없는 위스키도 없다. 특정 위스키를 못 사서 안절부절 못할 필요도, 사재기 해놓고 마실 만큼 위스키가 부족하지도 않다. 10년 가까이 위스키를 마신 지금, ‘위스키 기회비용’을 종종 생각한다. 위스키 산다고 쓴 돈이 다른데 썼다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무쪼록 위스키를 시작하는 이들이 위스키 기회비용을 적게 치렀으면 한다. 관련기사[더오래]“내 위스키, 세계를 볼 것이다” 위스키 전설의 100년전 예언 [더오래]바닐라 향이 코끝에…20년 만에 전성기 맞은 버번위스키 [더오래]1병 300만원…‘전설의 사자’ 스토리텔링한 위스키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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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다음 생도 어머니의 아들로…”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 [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33) 사는 동안 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이별하기도 한다. 어머니와는 배 속에 있을 때는 한 몸이지만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헤어지기 연습을 하다 결혼하면 좀 더 멀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다가 결국에는 하늘나라로 보내 드림으로써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을 한다. 어머니 49재를 지낸 암자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 조남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명절이나 휴가철 또는 부모님 생신과 같은 행사가 아니면 어머니 뵐 기회가 없어 떨어져 지내는 기간이 몇 개월이 될 때도 있었다. 아들만 여덟을 키우셨는데, 오랜만에 만나도 인사만 하고 나면 더 할 말이 없어 친구들 만나러 간다며 나갔으니 오히려 더 허전하셨을 것이다. 아들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셨지만 살갑게 대하는 딸이 없다 보니 어떨 때는 한숨을 쉬면서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딸도 하나 못 낳았는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하셨다. 그 당시는 어머니의 그런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결혼 후 남매를 키우다 보니 아들만 키우신 그때의 심정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시골 농원에서 모실 때 한가하게 골목길을 거니는 어머니와 장모님. . [사진 조남대] 언젠가는 서울에 오셨다가 일찍 출근하는 아들을 보지 못하자 다음 날 아들을 보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계셨다. 또 “아들이 수척해졌다”라며 며느리에게 “남편 보약을 지어주라”고 성화를 하셔서 어머니 덕분에 한약을 먹기도 했다. 퇴직 후 옛 추억을 소환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장모님까지 모시고 시골 농원에서 보름간 지낸 적이 있었다. 걸음걸이도 불편하고 귀가 어두워 생각했던 대화가 쉽지 않아 너무 늦게 모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아들이 어린애처럼 보이는지 사사건건 간섭이 심해 언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그때의 추억이 그립기만 하다. “자식은 효도하고 싶으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고전 구절이 떠오른다. 두 어머니를 모신 후 1년 만에 장모님이 먼저 하늘나라로 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셨다. 집에서 모시지 못하는 죄책감으로 수시로 뵈러 가다가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면회마저도 자유롭지 못했다. 바깥 사정을 잘 모르시는 어머니는 ‘자식들이 나를 요양원에 보내 놓고 찾아오지도 않는다’고 원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자주 찾아뵙고 휠체어도 밀어드리고 침대 옆에 앉아 다정스럽게 이야기라도 주고받았을 텐데 아쉬움만 가슴에 가득하다. 앙상하게 여위신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 한 달에 한 번밖에 안 되는 비닐 막으로 가로 쳐진 면회를 하면서도 “고맙다”, “건강해라” 하며 항상 자식 걱정이셨다. 살아 계실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끼셨는지 집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다. 가슴이 미어지면서도 그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해 자식으로서 도리를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러울 뿐이다. 어머니와 이별이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안과 질환으로 대학병원 외래 진료 후 근처 카페로 모시고 갔을 때 빵과 음료수를 맛있게 드시며 밝게 웃으시던 모습이 선히 그려진다. 요양병원에서 피를 토하셨다면서 큰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내려갔지만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신다. 귀 가까이 대고 “서울의 큰아들이 왔어요”라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자 눈을 뜨지도 않은 채 눈물만 몇 방울 흘리신다. 사람 몸에서 청력이 가장 늦게 없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자식의 목소리를 들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음을 울리며 일정한 파동을 그리던 심장 박동기의 그래프가 갑자기 아래로 뚝 떨어진다. 의사 선생님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신다. 요양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옮긴 지 10시간도 안 되어 아무리 소리쳐 불러 보지만 미동도 없으시다. ‘어머니’라는 부름에 눈물로 응답하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신 것이다. 제대로 하직 인사도 드리지 못한 채 어머니를 보내 드려야 하다니 한스러울 뿐이다. 장례식장에 차려진 어머니 빈소. [사진 조남대] 장례식을 마치고 화장을 한 후 유골함을 가슴에 안고 선산이 있는 고향 집에 들렸다. 열여섯에 시집와서 7대 종부로 20년 동안 사셨던 곳이다. 고향을 떠난 후에는 시제나 큰 행사가 있을 때나 들르시곤 하다가 이제 한 줌의 유골로 돌아오셨다. 마당을 한 바퀴 돌면서 어머니가 사셨던 집에 돌아왔다고 말씀을 드리는데 눈물이 앞을 가린다. 큰일을 앞두고 새벽에 일어나 정화수를 떠놓고 치성을 드리던 3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어머니를 반긴다. 아마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면서 “뒷산에 계신 조상들은 내가 잘 지켜 주고 있으니 너도 편히 쉬도록 하라”고 했을 것 같다. 미리 조성된 종중묘지 아버지 옆에 고이 모셨다. 20년 먼저 가 계시던 아버지가 “여보! 혼자서 자식 보살피느라 정말 고생 많았소”라고 하자, “영감 그동안 잘 계셨지요. 저도 이제 자식 곁을 떠나 당신 옆으로 왔어요”라며 진한 포옹을 하셨을 것이다. 종중묘지 아버지 옆에 어머니 유골을 안치하고 있는 필자. [사진 조남대] 팔공산 자락에 있는 암자에서 49재를 지냈다. 가족들이 모두 참석해 2시간에 걸친 제를 올리면서 어머니의 영혼이 다음 세상에서는 좋은 곳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간절하게 기도드렸다. 이제는 자식뿐 아니라 이 세상과도 이별하셨다. 이웃 사람들과 싫은 소리 한번 없이 베풀며 사셨으니 그토록 바라시던 극락으로 가셨을 것이다. 살아생전에도 형제들이 우애 있게 지내기를 바라셨는데 부모님과 형님이 안 계셔 이제 장남으로 막중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어머니는 우리와 영원한 이별을 하고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함께 했던 소중한 기억을 꺼내 보며 다음 세상에서도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못다 한 효도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람의 일생은 이 세상에 잠시 왔다 가는 소풍이라고도 한다. 어머니의 소풍이 얼마나 즐겁고 보람된 시간이었을까? 한평생 고생 많으셨지만, 아버지와 큰 소리 내며 싸우는 것 한번 보지 못할 정도로 금실이 좋아서 마음만은 행복했던 순간이 더 많았을 것 같아 조금은 위안이 된다. 불효자식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좋은 곳에서 영원토록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관련기사[더오래]황혼육아, 자식 키울 때 느끼지 못한 기쁨 있다 [더오래]서울 단골도…제주서 68년째 한우물 파는 80세 이발사 [더오래]아침상 차려주는 아내의 생일, 왜 이리 빨리 돌아올까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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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내 위스키, 세계를 볼 것이다” 위스키 전설의 100년전 예언
━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53) 제임스 뷰캐넌은 위스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1884년 런던에서 위스키 판매업을 시작했다. 1898년에는 ‘뷰캐넌스 블렌드(Buchanan's Blend)’가 공식 왕실 납품 위스키로 지정됐다. 1922년에는 작위를 얻기 위해 당시 5만 파운드(현재 가치 약 7억~8억 원)를 썼다고도 알려져 있다. 제임스 뷰캐넌의 블랙 앤 화이트. [사진 김대영] 특히 그가 만든 블렌디드 위스키 브랜드 ‘블랙 앤 화이트’는 현재까지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디아지오가 소유하고 있는 이 브랜드는 특히 남미 지역에서 인기가 많다. 한국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데, 흰 색과 검은 색 두 마리 테리어 품종이 마스코트다. 블랙 앤 화이트의 마스코트, 흑구와 백구. [사진 김대영] 얼마 전 위스키를 너무나 사랑하는 지인 댁에 초대를 받았다. 늘 모이는 사람에 맞춰 위스키 코스를 준비하는 그가 처음 내민 위스키가 ‘블랙 앤 화이트’였다. 1970년대 일본에서 수입하던 올드 보틀. 약간의 스모키한 향이 포함된 달콤한 몰트향이 지배적이고, 스모크햄과 비누향도 담겨있었다. 달콤했다가 씁쓸하게 여운을 남기는 것이 화이트로 시작했다 블랙으로 끝나는, 라벨 속 강아지 두 마리를 연상시켰다. 블랙 앤 화이트 1970년대 보틀. [사진 김대영] 잔을 반쯤 비우다 병에 달린 종이쪽지를 펼쳐봤다. 거기에는 제임스 뷰캐넌이 남긴 말이 적혀있었다. “나는 세계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내 스카치 위스키는 세계를 볼 것이다.” 뷰캐넌 씨의 자사 위스키에 대한 자부심이 잔뜩 담긴 문구다. 자기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술, 위스키의 철학에 딱 들어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본어로 적힌 제임스 뷰캐넌 씨의 말과 퀴즈. [사진 김대영] 제임스 뷰캐넌의 동명이인으로 미국 15대 대통령이 있다. 첨예한 노예제도 갈등으로 분열하던 미국을 봉합하지 못하고 실패한 대통령이다.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요즘, 불현듯 미국 15대 대통령의 실패 사례가 떠오르는 건 기우일까. 블랙 앤 화이트 뷰캐넌 씨의 말을 떠올리면 좋겠다. 그리고 그가 남긴 정책이 100년 넘게 사랑받은 위스키처럼 100년 뒤 한국 사람들을 행복에 취하게 만들기를. 관련기사[더오래]바닐라 향이 코끝에…20년 만에 전성기 맞은 버번위스키 [더오래]1병 300만원…‘전설의 사자’ 스토리텔링한 위스키 [더오래]“위스키 주세요” 취기 빌어 아버지 만나려는 ‘거리의 여인’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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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박물관서 찾은 구순 엄마의 다락방 찻잔세트
━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91) “혹시 다락방에 있던 그릇세트 어딨는지 모르냐?” 구순이 다 되어가는 친정어머니의 질문이다. 친정집의 다락방이라면, 주택을 떠나온 지가 언제인데…. 그렇다면 적어도 삼십여 년은 넘었다는 얘기인데 느닷없는 다락방이며 그릇은 무슨 얘기지? 더럭 겁이 났다. 혹시 치매 증상이 오신 걸까? 어떡하지?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재빠르게 오고 갔다. 연로한 부모님이 있는 자녀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추억의 다방을 재현한 장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패드7. [그림 홍미옥] 사연은 이랬다. TV 드라마에서 옛날 같은 곳이 나왔는데 당신이 좋아하던 그 커피잔 세트가 나왔다고 했다. 당시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지구촌의 화제여서 아폴로 상호를 건 가게가 많았다고 한다. 80년대의 E.T 당구장, E.T 다방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고 보니 친정집 다락방에 그런 게 있긴 했다. 내 기억에도 선명한 그 황실장미세트 그릇들은 어디 있을꼬? 지금이라면 엔티크, 레트로라는 이름을 달고 꽤 고가에 거래될 텐데 말이다. 갑자기 궁금해서 못 살겠다. ━ 친구의 찻잔엔 그리운 추억이 넘실대고 오래된 어머니의 찻잔세트는 추억을 소환한다. [사진 백주경] 의외의 장소에서 보물을 찾았다는 오랜 친구의 이야기다. 그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낡은 밥솥 안에 보자기에 켜켜이 쌓인 그릇을 발견했다. 그것은 친구의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던 장미꽃 찻잔 세트였다. 먼저 세상을 뜬 아내의 찻잔을 보자기에 꽁꽁 싸서 밥솥 안에 간직해 왔던 것이다. 못 되어도 50여 년은 훌쩍 지났을 옛날 찻잔들이다. 그날 친구는 찻잔 가득 부모님의 향기를 담아 시간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보아도 곱고 예쁜 그것들은 엄마의 부엌에서 딸의 식탁으로 이사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날부터 친구의 보물 1호는 밥솥에 숨어 있던 찻잔 세트이리라. 친구는 다락방 대신 밥솥 안에서 보물을 찾은 셈이다. ━ 양은도시락 흔들기와 레트로 열풍 레트로 열풍에 인기를 끌고있는 소품들. [사진 홍미옥] 너도나도 양은 도시락을 흔드는 장면을 보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신기하지 않다. 상하좌우로 도시락을 흔드는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유쾌하다. 고깃집의 사이드 메뉴로는 최고라는 옛날 도시락 이야기다. 반찬이라야 커다란 분홍 소시지와 김 가루, 그리고 계란 프라이와 볶음김치 정도에 불과하다. 별거 아닌 옛날 도시락 메뉴가 젊은 친구에겐 이벤트성 놀이로, 중장년에겐 향수 어린 추억으로 최고 인기를 누린지는 오래다. 뉴트로, 레트로 열풍이 가져온 현상이다.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나는 테마형 카페도 그 범주에 속한다고 보면 되겠다. 특히 향수를 자극하는 레트로 카페가 대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장년층이나 좋아할 감성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주 고객층은 젊은이다. 그들로서는 처음 보았을 게 분명한 꽃무늬 쟁반이나 다이얼식 전화기,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 불렸던 풍경화 액자임에도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땐 그랬지’를 말하는 우리와 ‘와~저땐 저랬구나’를 말하는 두 세대의 만남이라고 한다면 무리일까? 박물관에서 발견한 다락방의 보물 파주의 한 박물관에는 옛날 다방을 재현해 놓은 코너가 있다. 무심코 들여다본 그곳에서 앞서 말한 문제의(?) ‘다락방의 황실장미세트’를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면 비슷한 모양의 그릇이다. 사실 이름이 좋아 불로초라고 황실에서 사용했을 리 만무한 그릇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어렴풋한 기억을 풀어내자면, 70년대만 해도 온갖 ‘계’가 성행할 무렵이었던 것 같다. 목돈을 모으는 계는 물론이고 값나가는 그릇. 코트, 이불 등을 계라는 이름으로 장만하곤 했다. 카드 할부가 없던 시절이니 그럴 만도 했다. 젊었던 친정 엄마는 황실이라는 이름에 속아 넘어갔을 수도 있겠고 이쁜 그릇을 갖고픈 마음도 있었을 게다. 너무 아까워서 꽁꽁 싸서 다락방에 올려 뒀던 당신의 보물, 가끔은 색이 고운 홍차를 우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티타임을 즐기기도 했을까? 언제 버렸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 그릇 세트의 행방을 묻는 말은 날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몇 차례의 이사로 행방이 모호한 그것은 분명 상자째로 버렸을 것이 틀림없다. 혹시 이름도 우아한 황실장미세트는 돌고 돌아 몇십 년을 구비 돌아 여기 박물관으로 온 것일까? 아니면 노모의 기억 속 다락방에서 오늘도 자태를 뽐내며 한껏 우아함을 과시 중일까? 사소한 물건과 함께 따라온 추억이 못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관련기사[더오래]안타까운 그리움으로 돌아본 우리의 리즈 시절 [더오래]21세기 우렁각시, 겨울나무를 껴안다[더오래]50대 아저씨 눈물짓게 한 생일 문자폭탄의 정체는?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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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왕과 신하들이 술잔 띄우고 시 읊던 옥류천 계곡
━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60) 연경당 장락문 앞의 괴석. [사진 이향우] 후원의 정자 옆에는 곳곳에 기이한 괴석을 담은 석분이 놓여 있다. 사람들은 괴석을 통해 오묘한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깊은 산수(山水)간의 풍경을 보았다. 애련정 뒤편에 놓인 두 개의 괴석은 200여 년 전 동궐도에 그려진 대로 남아 있고, 승재정이나 존덕정에도 괴석을 놓아 대자연을 함축된 모습으로 즐기던 흔적을 볼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집 뒤뜰이나 후원 정자 곁에 괴석분을 두고 괴석에 이는 바람소리를 즐겼고 눈 내리는 풍경을 즐겼다. 그들은 괴석을 내 마음에 들여놓을 수 있는 또 다른 자연으로 아끼고 사랑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조선의 선비들은 너도나도 ‘괴석치레’를 하느라 열을 올렸다. 요즘 남자들의 시계나 커프스 버튼, 또는 구두 등 명품치레 같은 호사로 생각할 수 있다. ━ 옥류천 영역 옥류천 영역의 태극정과 청의정. [사진 이향우] 창덕궁 후원에서 정자가 많이 세워진 곳은 옥류천 영역이다. 옥류천은 마치 창덕궁 후원의 별세계 같은 의미를 가진 특별한 골짜기다. 후원을 즐기는 방법은 최대한 느리게 걷고 느리게 생각하며 그 느린 시간 동안 자연과 교감하기이다. 만약 누군가 창덕궁 후원 옥류천 계곡을 보고 싶거든 옥류천으로 가는 숲길을 걸으며 자연이 그려놓은 그림과 소리, 공기까지도 몸으로 느끼면서 숲과 교감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옥류천 계곡으로 내려가기 전에 언덕 정상에서 만나는 정자는 취규정이다. 취규란 별들이 규성으로 모여든다는 뜻으로 규성(奎星)이란 이십팔수(二十八宿)의 열 다섯째 별자리로 문운(文運)을 주관한다고 하는 별이다. 옛사람들은 이 별이 밝으면 천하가 태평하다고 했다. 어쨌든 취규정은 별을 바라볼 만큼 높은 위치에 있는 정자이다. 후원 언덕길을 오래 걸어 숨이 찰 때는 서두르지 말고 이 취규정에서 한 숨 돌리고 가는 것도 좋다. 돌과 물과 정자가 있는 후원에서 가장 깊숙이 자리한 곳이 옥류천이다. 창덕궁 후원에 지은 대부분의 정자들은 커다란 못을 파고 물을 담아 주변에 정자를 세우고 자연과 교감을 했다면 이곳은 계곡을 그대로 살려 그 주위에 정자를 세우고 일대를 소요한 듯이 보인다. 한국의 정자는 우선 지나치게 자연을 압도하지 않고 자연과 어울려서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지어졌다. 이는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을 가장 가치 있게 생각했던 옛사람들의 사고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노자의 무위자연으로 어떤 일이건 너무 억지로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그냥 두라는 자연관이다. 그런데 동양인이 생각하는 자연이라는 말을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하면 영어단어 ‘nature’ 보다는 비틀즈의 노래 ‘Let It Be’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인데 자연은 스스로 내버려 두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스스로 유지해 간다는 관점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인공물을 가장 최소화한 것이 후원의 정자이다. 비틀즈의 노래 가사처럼 자연은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이다. 옥류천. [사진 이향우] 옥류천 계곡은 인조 14년(1636)에 창덕궁을 품고 있는 응봉(鷹峯)자락의 물길을 소요암 뒤쪽으로 끌어들이고, 계곡과 함께 자연의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최소한의 인공적인 변형을 주어 주변을 조성했다. 취한정을 지나 옥류천 골짜기로 들어가면 소요정(逍遙亭)이 있다. 노닐 소(逍), 거닐 요(遙)자를 써서 유유자적한다는 뜻의 소요정이다. 그리고 너럭바위에 보이는 ‘ㄴ’자형 물길은 유상곡수연을 하던 흔적이다. 너럭바위에 얕은 홈을 파서 물길을 만들고 물이 떨어지는 폭포를 만들었다.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은 원래 삼짇날 정원에서 술잔을 띄우고 자기 앞으로 떠내려 올 때까지 시를 읊던 연회로, 동양의 선비나 귀족들이 즐겼던 연회다. 왕실에서는 종종 군신 간에 서로 화답하는 놀이로 유상곡수연을 즐겼다는 기록이 보이는 데 유상곡수연의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알려진 것은 4세기경에 쓰인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로, 문인들을 모아 굽이진 물줄기에 줄서 앉아 시를 지으며 즐겼다는 내용이다. 소요정에 앉아 바라보는 커다란 바위에는 인조 어필로 옥류천(玉流川)이라 쓰여 있고 그 위에 1670년 숙종이 지은 오언절구가 있다. 군주이기 이전에 선비로서의 풍류를 즐기신 왕의 여유를 읽을 수 있다. ■ 「 비류삼백척(飛流三百尺) : 흩날리는 물길은 삼백척인데, 요락구천래(遙落九天來) : 아득히 먼 하늘로부터 떨어져 흐르네 간시백홍기(看是白虹起) : 그 모습 보고 있으니 흰 무지개 일고, 번성만학뢰(飜成萬壑雷) : 온 골짜기에 우레 소리 가득하다. 」 ━ 상림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제왕의 시 동궐도. 고려대소장본 사본. 상림삼정 옥류천 지역에서 소요정, 태극정, 청의정을 경치가 뛰어난 상림삼정이라 하고 숙종은 태극정을 제왕이 수신하는 장소라고 말했다. 지금의 모습은 기둥만 있지만 아직도 기둥에는 문을 달았던 문날개가 남아있고 동궐도에는 태극정(太極亭)에 창호문이 달려있다. 태극정에서 후원에 거둥한 임금에게 음식이나 다과를 올렸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소요정에서 바라보는 태극정의 왼편으로 현재 궁궐의 유일한 초가정자 청의정이 있다. 64괘와 천원으로 표현된 청의정은 하늘의 태극을 상징하는 정자다. 그리고 청의정을 건너는 돌다리 아래 수조의 물속에 태극이 숨어 있다. 옛 사람들은 이처럼 건축물에 뿐만 아니라 숨겨진 물속에도 우주의 원리를 부여해 놓고 그 큰 의미를 이해하려고 했다. 청의정 앞 연지는 어느 시점엔가 논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현재 문화재청 창덕궁 관리소에서 직원과 시민들의 참여로 예전 왕의 친경례를 소박한 의미로 재현하고 있다. 실은 이곳 청의정 논에서의 벼 수확은 썩 신통치 않지만 궁궐 안에서 농사를 짓던 국가의식이 현대에까지 전해져오는 데에 의미를 두어야겠다. 관련기사[더오래]정조 “임금은 나 하나, 이에 대한 도전 절대 용서 못해”[더오래]시험 못 본 관리 꼬집고 종아리 때리며 망신준 정조 [더오래]출세 꿈꾸던 선비·이몽룡이 과거시험 치른 창덕궁 '춘당대' 조각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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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억 받고 명퇴?…그 전에 꼭 읽어야 할 '명퇴남 6년 후' [더오래]
━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09) 연초부터 금융계를 중심으로 희망퇴직이 이어진다. 경쟁이라도 하듯 수백에서 수천 명씩 감축하겠다고 발표하고 그 대상도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50대에서 진작에 40대로 내려왔다. 그런 발표에는 특별퇴직금으로 몇 년 치 급여를 더 주고, 재취업지원비, 건강검진비, 자녀학자금 등 이것저것 잘 챙겨주겠다는 조건이 붙는다. 금융권의 특별퇴직금은 억대는 기본이고 6억~7억원에 이르는 곳도 있다. 나는 2016년에 명예퇴직했다. 회사에서 일괄 시행하는 것이 아니었고, 나 혼자 신청한 것이라 주변에 알리지 않고 오랫동안 차분히 미래 경로를 구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온 지 만 6년,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갔다. 그동안 한 일은 여러 매체에 쓴 글이 120회, 가끔 강의하러 다니고, 책 한 권 내고, 남의 책 두 번 만들어 주고, 해외 한 달 살기 네 번, 틈틈이 아내 업무 돕고, 글과 관련한 부업하고, 지방으로 이주하고, 대학원 다니고, 책 읽고, 이것저것 배우고, 술 마시고, 살림하고, 어깨까지 머리 길러보고, 강아지 키우고, 병원 다니고, 코로나도 걸려보고…. 그 사이에 두 아이는 대학 진학과 취업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다. 조직에서 전성기를 보낸 후 남은 몫의 시간을 가지고 사는 삶은 이렇다. 아직도 꿈에 옛 직장 사무실과 사람들 형체가 왜곡된 채 나타난다. 주변에서는 후회 없냐고,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 대답은 잠시 후에 하겠다. 정년퇴직의 개념이 희미해진 시대라서 중년에 이른 직장인이라면 누구든 마음속에 퇴직 시점에 대한 무거운 고민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사진 박헌정] 중년 직장인 마음 속에는 퇴직 시점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늘 있을 테고, 퇴직을 진지하게 생각 중이라면 어느 날 사내 전산망에 뜬 희망퇴직 공고에 심장이 요동칠 것이다. 조직 내 경쟁과 직장생활의 피로감, 미래 계획과 현재 입지에 대한 고민…. 청춘을 보낸 직장을 떠나려는 저마다의 사정을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할까. 시간을 두고 연착륙을 준비하는 정년퇴직과 달리 희망퇴직은 서둘러 결단을 내려야 하기에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차분히 미래를 생각하며 판단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퇴직 고민의 핵심은 단연 ‘돈’이다. 몇 억의 특별퇴직금은 남은 인생에 어떤 힘이 되어줄까? 나는 2~3년 치 급여를 더 받고 나왔다. 내 연봉이면 신입사원 몇 명의 몫이었으니 회사는 자발적으로 빠져주는 내게 고마웠는지 특별승진을 비롯해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마치 내 자리에 대한 권리금을 챙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사실 나의 몫은 회사의 이득에 비하면 적은 것이었다. 내가 3년 치 임금을 더 받고 나와 그 3년을 집에서 보낸다면 받은 돈을 다 쓰는 셈이고, 회사에 그대로 눌러앉아 3년을 버틴다면 그다음부터는 그보다 훨씬 큰 금액이 내 몫으로 쌓이는 것이다. 3년 정도 시간은 정말 금방 지나간다. 게다가 목 좋은 곳의 권리금은 버틸수록 올라가기도 한다. 금융권을 중심으로 희망퇴직이 매년 정례화하고 있다. 요즘은 50대에서 40대, 심지어 30대까지 희망퇴직 신청 대상이라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온다. [사진 박헌정]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 돈을 받고 나오는가? 그 대답은 ‘오죽하면’일 것이다. 내부적 압박이나 어떤 한계로 인해 새로운 계기가 필요할 수 있다. 희망퇴직 또는 명예퇴직은 정년까지의 기대수입과 명예퇴직금 사이의 차액으로 정년까지의 시간을 구매하는, 일종의 ‘쇼핑’이다. 그렇게 산 시간은 자유나 휴식이 될 수도 있고, 더 큰 기회가 될 수도 있고, 후회와 한숨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직장에서 전성기에 받던 만큼의 돈을 바깥에서 벌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러니 조직에서 제시하는 논리와 내 상황을 잘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희망퇴직, 명예퇴직이라는 말에는 존엄, 존중, 선택 같은 느낌이 담겨있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몇 년 후에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회사는 조직의 순환과 생존을 위해 끝없이 껍질을 벗어야 한다. 그들은 탈피(脫皮)하고 나는 탈출한다. 이 두 개가 잘 맞아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조직은 나보다 계산이 뛰어나다. 양쪽 모두에게 윈-윈일 수 있어도 그 저울은 늘 회사 쪽으로 기울기에, 눈앞의 목돈에 현혹되지 말고 퇴직의 의미부터 차분히 생각하면 좋겠다. 퇴직은 ‘혼자’가 되는 일이다. 인간은 본래 혼자라는 철학적 명제와 달리, 혼자라는 건 생각보다 낯설고 불편하며, 적응하기까지 고통스러울 수 있고 끝까지 적응 못 하는 사람도 있다. 곧바로 재취업하지 않는 한, 돈 버는 것도 혼자, 노는 것도 혼자, 일상생활도 혼자 해야 한다. 스마트폰, 컴퓨터 프로그램, 바뀌는 제도…. 지금껏 조직에서 누군가에게 도움받던 것도 혼자 알아가야 한다. 나오는 순간 주변에는 사람이 없다. 여전히 소중한 가족과 아내도 생각하던 것과 다를 수 있다. 나의 경우 작가로 전직했지만 내 글은 지인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잘 안 본다. 그들이 내게 애정이 없을까. 천만에. 그들은 나를 아주 사랑한다. 다만 그 마음속에 할당해놓은 나에 대한 비중이 내 기대치보다 훨씬 적은 것이다. 그게 내가 내린 ‘혼자’의 정의다. 퇴직 후 한동안은 자유를 즐겨보겠지만 아직 완수해야 할 책임이 많이 남은 40~50대에게 극한의 자유는 공포일 수 있다. 따라서 결정하기 전에 신중하게 미래 경로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사진 박헌정] 혼자서는 자유롭다. 자유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자유로운 생활에 대해 너무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자유는 묶인 끈이 남들보다 조금 더 긴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듯이 회사 바깥도 그다지 자유롭지 않다. 당분간은 직장에 매이지 않고 내 앞에 오롯이 확보된 시간에서 자유를 느껴보겠지만, 웬만한 직장인 출신에게는 무제한의 자유가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 아직 젊은 40~50대의 에너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할만한 일이 그리 다양하지 않다. 명예퇴직금 크기에만 쏠리지 말고 퇴직 후에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히, 신중하게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나의 경우 구상하던 대로 일하고 있기에 적당히 재미있고 평화롭다. 물론 속도와 생산량도 감소해 적당히 심심하기도 하다. 수입이 아주 적고 퇴직금으로 먹고살려니 소비를 줄이는 리폼도 필요했다. 신중해야 한다. 노후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퇴직 문제를 언급하거나 일반화하는 게 주제넘은 일일 수 있지만, 나의 경험과 느낌을 조심스럽게 밝히는 것이니 각자의 생각이나 상황과 다르더라도 너그럽게 읽어주면 좋겠다. 관련기사[더오래]나눔, 친절 구매, 재난 부조…팁에 관한 몇가지 고찰 [더오래]"내 팀이 생겼다"…50대에 시작한 프로축구 덕질"밝은 얼굴만 본다"…전주 한옥마을 3년 살아보니 뜻밖 행운 [더오래]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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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붉게 물든 툴루즈…2200년 된 프랑스 제4도시
━ [더,오래] 연경의 유럽 자동차여행(21) 툴루즈는 파리, 마르세유, 리옹 다음으로 프랑스에서 4번째로 큰 도시다. A380을 만든 에어버스 본사가 있는 첨단 항공 산업 도시로도 유명하다. 프랑스 지도 맨 아래쪽 잘록한 부분의 중심에 있는 도시로 피레네 산맥에서 발원한 가론 강이 툴루즈를 지나 대서양을 향해 보르도 쪽으로 흘러가는 곳이다. 이곳에서 미디 운하를 시작해 동쪽의 오드강과 연결했다는 그 툴루즈다. 이 고장에서 나는 점토로 만든 붉은빛 벽돌로 건축한 건물이 많아 ‘장미 도시’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카피톨 광장을 중심으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에 볼거리가 몰려있으므로 주차는 도심 한복판 카피톨 광장 지하에 한다. 툴루즈가 기록에 언급된 시기는 기원전 2세기 로마 정복시기 부터다. 5세기 후반 서고트족이 세운 왕국의 수도였으며 6세기 샤를마뉴 대제의 정복으로 프랑크 왕국의 도시가 된 곳이다. 이후 9세기 중반부터 400년간 아키텐 공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툴루즈 전경. [사진 Tonio94 on Wikimedia Commons] ■ 주차장 「 parking indigo capitol 좌표 43.604114, 1.442875 툴루즈 시내 진입하면 먼저 상당한 대도시라 놀라게 되는데 이 주차장은 시청 광장 지하에 있고 요금은 비싸지만 관광하기에는 좋은 위치에 있으므로 잠깐 들르는 여행자라면 여기 주차한다. 」 툴루즈 여행 지도. [자료 연경] ━ 카피톨 광장(Place du Capitole)의 시청 툴루즈 시청. [사진 Velvet on flickr] 툴루즈 구시가 대표 광장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시청도 있고 광장에는 상점과 카페,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광장 바닥에 툴루즈 백작의 문장이었던 오크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카피톨은 툴루즈의 시청을 말하는데, 과거 툴루즈의 정치를 담당했던 의원들을 ‘카피톨’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시청 안뜰의 이름은 ‘앙리 4세의 뜰’이고, 앙리 4세의 동상과 캐피탈 가문의 문장이 있다. 멋진 계단 홀에는 툴루즈 출신 화가 장 폴 로랑과 아들이 그린 그림들도 있고, 이층 홀에는 툴루즈 출신 신인상파 화가 앙리 마르탱의 작품도 10점 있다. 시청이 아니라 훌륭한 뮤지엄에 온 것 같다. 미디 운하 건설을 주도한 리케의 흉상 부조를 찾아보자. 카피톨 광장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세르넹 성당과 미디운하가 있고 서쪽에서는 자코뱅 수도원과 가론 강을 볼 수 있다. ■ 빅토르 위고 시장(Victor Hugo Market) 「 시간 7:00~14:00(월요일 휴업) 툴루즈에 일찍 도착했다면 신선한 농산물, 해산물을 살 수도 있고 식사도 할 수 있는 빅토르 위고 시장에서 여행을 시작해 본다.(2층 카페테리아에서 식사를 할 수 있음) 」 ━ 타우르 노트르담 성당(Notre-Dame du Taur) 카피톨 광장에서 세르넹 성당을 가다 보면 만나는 작은 성당이다. 타우르 노트르담 성당. [사진 Didier Descouens on Wikipedia Commons] 245년 그리스도교를 전하기 위해 파견된 세르넹 주교는 이단 미트라교 사제의 음모로 붙잡혀 두 발이 묶인 채 밧줄에 묶여 밧줄이 끊어질 때까지 황소에 끌려다녔다. 밧줄이 끊어진 자리가 바로 이 성당이 세워진 자리고 거리의 이름도 ‘황소 거리’다. 세르넹의 주검을 거둔 두 여인은 아무도 파 가지 못하도록 이 자리에 깊게 묻었고 훗날 그 위에 성당이 지어졌다. 중세 성인의 시신이나 물건들은 ‘성유물’로 여겨져 순례의 대상이 되었는데, 세르넹의 성유물은 후에 세르넹 성당으로 옮겨졌다. 왼쪽 벽면에 장 루이 베자르드가 그린 ‘생 세르낭의 순교’, 오른쪽 벽에 그려진 14세기 프레스코화 ‘야곱의 계보’, 제단 왼쪽의 베르나르 베네제 그림 ‘요셉의 죽음’을 챙겨 보고 모셔진 검은 성모님도 찾아본다. 무료로 볼 수 있고 규모는 작지만 엄숙미가 느껴진다. ━ 생 세르넹 사원(Basilique Saint-Sernin de Toulouse) 주소 Basilique Saint-Sernin de Toulouse 지하 묘지 시간 월~토: 10:00~17:45, 일요일 14:00~17:45 생 세르넹 사원. [사진 ZbebVial on Wikimedia commons] 황소 거리를 지나 높은 탑을 보면서 찾아갈 곳은 생 세르넹 사원이다. 투박하고 육중한 성당은 중세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의 전형인데, 프랑스에서 가장 큰 로마네스크 성당이니 당대 얼마나 많은 순례객이 툴루즈를 거쳐 갔을지 짐작이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 아를의 길에 속해 있는 툴루즈에는 중세 많은 순례객이 모여들었는데 4세기 후반 이 성당의 건축을 시작한 생 실비우스 주교가 순례자의 복장으로 방문객을 맞아주고 있다. 유럽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크 왕국의 카를루스 대제(프랑스어로 샤를마뉴)가 많은 성유물을 기증하면서 툴루즈는 순례객들로 북적였고 성당은 계속 증축되어 11~12세기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위에서 보면 라틴식 십자가 모양(세로가 긴)의 건축이고 가운데에 65m 높이의 팔각형 종탑이 서 있다. 툴루즈 최초 주교 세르넹 성인을 기념하는 성당에는 세르넹 성인의 성 유물이 옮겨져 모셔져 있고 샤를마뉴 대제가 기증한 유물은 따로 보존되어 있다. 오르간은 아리스티드 카바이에콜의 걸작으로 꼽힌다. 카르카손 시테를 복원한 중세 건축의 복원 전문가 비올레 르 뒤크의 손을 거쳐 오늘날 모습으로 복구된 성당은 미디운하와 함께 199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툴루즈 시는 올드 타운 전체를 지정받기 위해 공사를 확장하고 있다고 한다. 생 세르넹의 성유물 제대. [사진 PierreSelim on Wikimedia Commons] ━ 미디 운하(Canal du Midi) 세르넹 성당에서 북쪽으로 1.1km 정도 곧장 걸어가면 미디 운하를 볼 수 있지만 다시 올드타운으로 돌아와야 하므로 자동차 여행자는 ‘Parking enedis/좌표43.613665, 1.432517’ 입력하고 미디 운하로 가면 된다. 미디 운하는 도시를 크게 돌아 서쪽의 가론 강과 합류한다. 미디운하. [사진 pixabay] 툴루즈에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다. 이제 다시 올드타운으로 돌아와 중세 고딕양식의 걸작으로 불리는, 도미니크 수도회에서 세운 자코뱅 수도원을 찾아간다. 역시나 이 지역 특산인 붉은 벽돌로 세운 육중한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은 중세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유물을 제대에 모셔 놨다. 중세 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신학에 접목시킨, 아오스딩과 더불어 가톨릭 신학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유물에 대해 오늘의 우리는 무덤덤하지만 당대 이 수도원이 가진 자부심은 대단했을 것이다. 실제로 토마스 아퀴나스는 툴루즈와는 연관이 없었지만 도미니크회 본산이 자코뱅 수도원이므로 여기도 모셔졌을 것이다. ━ 자코뱅 수도원(Couvent des Jacobins) 자코뱅 수도원. [사진 연경] 시간 화~일요일 10:00~18:00 요금 교회 예배당 무료, 수녀원, 회랑, 전시회 통합 5유로 토마스 아퀴나스 제대. [사진 Didier Descouens on Wikimedia Commons] 도미니크회에서 세운 최초의 수도원으로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하나의 기둥에서 뻗어 나간 천정의 야자수 모양 조각이 인상적이고 수도원 회랑도 백미다. 아세자 관. [사진 연경] 과거 이 도시가 얼마나 부를 쌓았는가는 아세자 관을 가보면 안다. 염료와 곡물 교역으로 부를 쌓은 피에르 아세자가 세운 건축물로 소장품이 알차고 건물 또한 아름답다. 툴루즈를 부의 도시로 만든 것은 대청이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파란 염료였는데 16세기 옷이나 커튼 등을 염색하는 것이 유행하면서 이를 거래한 상인은 큰 부를 쌓았고 대표적인 상인이 바로 아세자였다. ━ 퐁네프다리와 오귀스탱 미술관 오귀스탱 미술관. [사진 Didier Descouens on Didier Descouens] 파리에만 퐁네프다리가 있는 게 아니다. 아세자 관에서 나와 가론 강변 쪽(서쪽)으로 300m만 걸어가면 툴루즈에서 가장 오래된 16세기 다리를 만나고 아세자관에서 동쪽으로 400여m만 움직이면 14세기에 건축된 수도원 건물에 개관한 오귀스탱 미술관을 만난다. 고대 로마시대 유물부터 중세, 20세기 초반까지의 작품을 두루 소장하고 있다. 여기까지 보면 툴루즈 여행에서 하루를 다 소모할 것 같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시작돼 4세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고딕양식을 수렴한 생테티엔 대성당(Cathédrale Saint-Étienne) 검은 성모님이 모셔진 도라드 노틀담 사원(Basilique Notre Dame la Daurade)등 크고 작은 아름다운 성당과 예배당들, 뮤지엄들이 곳곳에 있어 여행자는 마음이 바쁘겠다. 툴루즈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향으로 그는 툴루즈 대학 출신이라고 한다. 대학이 있어 거리에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또 오늘에 와서는 항공 산업의 메카로도 유명한 툴루즈지만 여행자로선 가톨릭 성지 루르드, 중세 요새 카르카손을 갈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또 가까이 고색창연한 알비에는 툴루즈로트렉 뮤지엄이 자리하고, 코르드 수르 시엘 같은 예쁜 마을도 가깝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 안도라 공국을 가 볼 수 있는 곳이다. 봄에 여행을 시작한다면 툴루즈에서 탄 강의 프랑스 예쁜 마을 코스를 시작해 볼 수도 있겠다. 관련기사[더오래]파리 닮은 남프랑스 도시, ‘노스트라무스 소나무’로 유명 [더오래]험상궂은 이민자 도시 오명 벗고 재탄생한 마르세유[더오래]파리 가봤다고 끝? 찐프랑스는 여기에 있다 여행 카페 매니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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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건강 위해서라면… 라틴댄스 보단 모던댄스
━ [더,오래] 강신영의 쉘 위 댄스(72) 댄스스포츠를 오래 한 탓인지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보는 편이다. 도시인은 대부분 발걸음이 빠르다. 생활 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시간을 쪼개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려니 걸음걸이도 빨라진다. 분 단위로 움직이는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때도, 승하차 시, 그리고 출구를 향해 나갈 때도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민폐를 끼친다. 흐름에 맞춰야 하는 것이다. 첨단산업인 반도체업종에서는 초격차 경쟁력을 강조하다 보니 직접 관계 하지 않는 사람도 숨이 탁탁 막힌다. 일반인도 컴퓨터나 SNS를 다루는 손놀림이 현란할 정도로 빠르다. 그렇게 움직이다 보면 걸음걸이도 당연히 빨라진다. 걸음걸이는 습관이라 멀리서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걸음걸이에도 정석은 있지만 몸에 밴 탓에 쉽게 고치기 어렵다. [사진 Pixabay] 걸음걸이는 습관이다. 멀리서 걸음걸이만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걸음걸이의 정석은 가슴을 펴고 시선은 약간 위로하여 똑바로 걷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똑바로 걷는 사람을 보기가 대단히 어렵다. 나름대로 몸에 밴 걸음걸이가 있어 쉽게 고치기 어렵고 고쳐야 한다는 필요성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걸음걸이에 따라 품격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불량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바른 자세로 당당하게 걸으면 품격이 있어 보인다. 좌우로 어깨를 흔들며 걸으면 조직 폭력배처럼 보인다. 어딘가 쑥스러워 자신이 없거나 거들먹거리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몸이 흔들리면 팔도 건들거리게 된다. 발을 일자로 똑바로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팔자걸음을 걷는 사람도 많다. 댄스스포츠에서는 걸음걸이의 일종인 스텝을 할 때 요구되는 방식이 있다. 룸바, 차차차 같은 라틴댄스에서는 ‘인히어런트 턴(Inherent Turn)’이라 하여 자연스러운 ‘팔(八)’자 걸음이 자주 쓰인다. 반면에 왈츠, 폭스트롯 같은 모던댄스에서는 ‘일(一)’자 걸음을 요구한다. 두 발을 모았을 때는 11자 형태가 된다. 그 이유는 라틴 댄스는 안쪽 허벅지 근육을 주로 사용한다. 파트너와의 텐션에서 안정적으로 버티기 위해서도 일자보다는 약간의 팔자 스텝이 기능적으로 합당하다. 모던댄스에서는 가까이 붙어 서로 발이 교차되려면 확실한 일자 스텝이 되어야 한다. 팔자로 애매하게 하고 있으면 진행하는 사람에게 발이 걸린다. 특히 회전할 때 발이 걸리면 밸런스를 잃어 위험하다. 댄스대회에 나갈 때 선수 등 번호가 호명되면 손을 들고 플로어로 나간다. 이때 건들거리며 걸으면 볼 것도 없이 감점 대상이다. 채점표에는 그런 항목이 없지만, 이미 심사위원의 눈 밖에 나는 것이다. 춤은 시작도 안 했지만, 걸음걸이를 보면 모던댄스의 기본자세가 되어 있는지가 보인다. 플로어에서 춤을 출 자리를 잡았을 때 이리저리 쳐다보는 것도 마찬가지로 보기 흉하다. 눈동자만으로 다른 선수들과의 거리 등을 고려해 자리 잡는 것이 요령이다. 라틴댄스는 젊은이가 선호하고 나이 든 사람은 모던댄스를 선호한다. 물론 댄스파티에서는 둘 다 즐기고 있지만, 모던댄스로 전향한 사람은 모던댄스 위주로 춤을 즐긴다. 그렇게 모던댄스를 오래 하다 보면 모던댄스 쪽으로 동작이나 몸이 굳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발도 모던댄스에 맞춰 일자 형태로 춤을 추고 일상에서 걸을 때도 일자 스텝을 쓰게 되는 것이다. 건강 측면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자 걸음을 권고한다. 팔자걸음에 비해 좋은 점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팔자걸음을 걷는지 알아보려면 신발의 뒷 굽 어느 쪽이 많이 닳아 있는지 보면 된다. 팔자걸음을 걷게 되면 발을 비롯한 신체의 변형이 오게 된다. [사진 pixabay] 건강관리 서적에 보면 팔자걸음이 건강을 망친다는 것이다. 라틴댄스는 ‘Toe turned Out’ 동작이 많아 팔자로 다리가 벌어지니 뜨끔하고, 모던댄스는 11자 보행 자세를 취하므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주장의 논리는 발 반사구에 있다. 발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체의 축소판이자 각종 장기가 연결되어 있어서 걸을 때마다 발 반사구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발 반사구는 발 안쪽에 있어서 팔자걸음을 걸으면 발 반사구를 피해간다는 것이다. 팔자걸음을 걸으면 발 외측이 땅에 닿아 어깨관절, 팔꿈치 관절, 무릎관절에는 영향을 미치지만 미미하다고 한다. 그러나 안쪽은 발가락 부분이 신경 기능 관련 반사구가 있고, 앞꿈치 쪽은 대사기능 관련 반사구, 오목한 볼쪽은 소화기능 반사구, 발뒤꿈치 전은 배설기능 반사구, 뒤꿈치는 생식기능 반사구가 있고, 안쪽 전체적으로는 척추기능 반사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반사구를 자극해주면 연관 기능이 활발해지는데 그렇지 않으면 퇴화한다는 것이다. 팔자걸음을 걷게 되면 발에 변형이 오게 되고 그다음은 무릎 변형, 고관절 변형, 골반 변형, 허리·등·어깨·목·턱의 변형이 오고 통증이 온다는 것이다. 다시 턱은 늑골에 영향을 줘서 내장 쪽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이다. 팔자걸음은 뒷꿈치가 먼저 바닥에 닿으면서 앞꿈치 안쪽으로 체중을 받는데 그렇게 하면 외지 무반증이 오며 중요한 발 반사구는 거의 피해버리는 꼴이 된다고 한다. 11자 걸음을 걸어야 하는 이유로 우리 발에서 엄지발가락이 관절이 다른 발가락에 비해 하나 없지만, 유난히 두꺼운 이유가 바로 체중을 감당하라고 그렇게 설계된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팔자걸음을 걷는지 11자 걸음을 걷는지 알아보려면 신발의 뒷 굽이 어느 쪽이 많이 닳아 있는지 보면 된다는 것이다. 뒷굽 바깥쪽이 많이 닳아 있으면 팔자걸음이라고 한다. 발 바깥쪽에 굳은살이 박혀 있거나 티눈이 있는 것도 그 증거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팔자걸음이 많은데 그 원인으로 좌식문화와 양반걸음, 정상위를 주로 하는 성생활, 임신과 비만으로 인한 팔자걸음, 등에 업는 육아문화, 보행기 사용, 어른들의 보행 습관 등이 꼽힌다. 선채로 짝발을 하거나, 앉아서 다리를 꼬는 습관, 바닥에 앉을 때 한쪽으로 치우친 자세, 무릎을 세운 자세, 책상다리, 누웠을 때 발을 포개거나 엎드려 한족을 무릎을 구부린 자세 등에서 팔자걸음으로 한쪽 다리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서양인은 입식 문화라서 다리가 X자형인데 반해 우리는 좌식문화라서 O자형 다리가 많다고 한다. 그러므로 서양 방식으로 가벼운 팔자걸음을 권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다. 요즘은 라틴댄스도 발을 팔자로 너무 많이 벌리는 것을 재고해 보라고 한다. 발을 11자로 하고 있으면 무릎을 굽혔을 때 다리가 벌어지지 않지만 팔자로 하고 있을 경우 무릎을 굽히면 다리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모던댄스는 철저히 11자 걸음을 요구하지만 편의상 약간 팔자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11자로 발을 하고 있으면 밸런스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비보에 들어가기 전 정지 자세 때 밸런스가 불안할 때 무릎을 약간 구부리는 것이 요령이다. 스텝의 시작에서도 발이 팔자로 벌어져 있으면 본인은 똑바로 11자로 가고 있는 것 같지만 뒤에서 보면 팔자로 전진하는 모양새다. 젊었을 때는 잘 모르지만 나이 들면 팔자걸음의 병폐가 나타난다고 하니 젊었을 때는 라틴댄스를 하고 나이 들면 모던댄스를 하는 것이 좋다는 이론적 근거를 찾은 셈이다. 관련기사[더오래]교사는 춤을 좋아한다?…교원부 따로 두는 국내 댄스대회 [더오래]12cm…남녀가 춤출 때 이상적인 키 차이라는데…[더오래]춤 추는 사람이 짜증이 없고 덜 피곤한 이유 댄스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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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바닐라 향이 코끝에…20년 만에 전성기 맞은 버번위스키
━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52) 한국에서 판매되는 버번 위스키 종류가 매우 다양해졌다. 판매량 많은 유명 브랜드는 진작 수입됐고 싱글배럴, 캐스크스트렝스, 고숙성 위스키까지 수입된다. 최근에는 낯선 브랜드까지 한국 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야말로 버번 위스키 전성기라 부를 만하다. 다양한 버번 위스키 수입이 전성기를 규정하는 척도라면, 1990년대를 ‘1차 버번 위스키 전성기’라 할 수 있다. 지금 못지않게 다양한 브랜드는 물론, 희귀 한정판까지 수입됐다. 그러나 IMF 이후 경제가 안좋아지면서 명맥이 끊겼다. 최근 한국에 수입된 에반 윌리엄스, 엘라이저 크레이그 등도 당시 수입됐다. 1990년대에 수입된 에반 윌리엄스 싱글배럴, 엘라이저 크레이그 18년 등은 몇 년 전까지도 오래된 주류상가에 방치되어 있었다. 최근 버번 위스키 붐이 일면서 누군가의 술장으로 옮겨갔지만. 언젠가 맛본 엘라이저 크레이그 23년. [사진 김대영] 몇 년 전, 운 좋게 동네 주류샵에서 에반윌리엄스 싱글배럴과 엘라이저 크레이그 12년, 18년을 구입했다. 당시에는 아직 위스키 소비층이 얇았고, 오래된 위스키에 프리미엄도 붙지 않았다. 엘라이저 크레이그 12년은 가격이 싼데 맛도 좋아서 고기를 먹는 자리에 가져가 세 병 정도를 금세 비웠다. 18년은 1970년대 보틀이라 좋은 일이 생길 때 마시려고 아껴두고 있다. 에반 윌리엄스 싱글배럴 1987과 1991. 1990년대 정식수입된 버번 위스키. [사진 김대영] 에반 윌리엄스 싱글배럴은 마신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맛이 선명할 정도로 화사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테이스팅 노트를 살펴보면, “따르자마자 시트러스 향이 매우 풍부하게 올라온다. 마치 따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향을 있는 대로 쏟아낸다. 한 잔 마시자 기분 좋은 상쾌함과 함께 바닐라의 달콤함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여운이 긴 편이다. 기분 좋은 향이 코를 계속 자극한다”고 적혀있다. 에반 윌리엄스 싱글배럴 2013. [사진 김대영] 이렇게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보니 최근 수입된 에반 윌리엄스 싱글배럴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맛을 봤더니 시트러스 향과 바닐라의 달콤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피니시가 짧은 건 아쉬웠지만, 좋은 버번 위스키라고 생각했다. 이 위스키도 20년이 지나면 1990년대 에반 윌리엄스처럼 풍성한 맛을 낼 수 있을까. 2022년은 위스키 재고가 쌓이기 힘든 시장 환경이라는 게 안타깝다. 관련기사[더오래]1병 300만원…‘전설의 사자’ 스토리텔링한 위스키[더오래]“위스키 주세요” 취기 빌어 아버지 만나려는 ‘거리의 여인’"우리가 뭔 식당이야" 밤 9시 문닫는 사장님의 울분 [더오래]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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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얼마 안 남은 시간…내 아들의 새 부모를 찾습니다
━ [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126) 영화 ‘노웨어 스페셜' 아이가 태어난 후 처음 만나는 세상은 부모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부모라는 존재는 아이에게 세상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오늘은 서로에게 세상의 전부인 부자가 갑자기 찾아온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주는 영화 ‘노웨어 스페셜'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창문 청소부인 아빠 존(제임스 노튼 분)과 그의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다니엘 라몬트 분).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창문 청소부인 존(제임스 노튼 분)에게는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다니엘 라몬트 분)이 있습니다. 여유로운 형편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하기에는 부족한 게 없었죠. 그런 그에겐 이제 두 가지 숙제만 남았습니다. 이제 겨우 네 살인 아들에게 자기 죽음을 설명해야 하는 것과 그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줄 사람을 찾는 것. 초보 아빠 존에게는 그 어느 쪽도 쉬운 일은 없었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영국의 입양 제도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요. 영국의 경우 부모가 없거나 분리되어 살아야 할 환경에 처한 아이가 있다면 기관에서 입양 가정을 선정합니다. 아이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러 조건을 고려해 선정한다지만 이런 조건을 맞추려면 ‘자신이 낳은 아이조차 기를 수 있는 부모는 없을 것’이란 말까지 나올 만큼 까다롭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특수하게 친부모 존이 새 부모를 찾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복지사와 함께 마이클의 부모가 되어 줄 가족을 찾아 나서는데요. 위탁가정을 많이 해본 부부, 부모를 일종의 직업처럼 여기는 부부, 친자와 양자 포함해 아이가 많아도 너무 많은 부부, 그리고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어 홀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여성까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만나게 되죠. 처음에는 그저 몇몇 부모를 만나보면 마이클에게 가장 좋은 부모를 찾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 부모를 통해 자신의 존재도 모두 잊고 행복하게 산다면 더할 나위 없을 줄 알았는데, 가족들을 만나 볼수록 어떤 선택이 마이클에게 가장 좋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만약 자신이 잘못된 결정을 한다면 아이가 겪게 될 불행이 내 탓이란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죠. 마이클에게는 존이, 존에게는 마이클이 둘도 없는 친구이자 부자 관계인데 존의 병세가 심해지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그 와중에 병세가 점점 심해지는 존은 이제 일을 할 수도, 마이클과 몸으로 놀아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침대나 소파에 누워 있는 일이 많아졌고 책을 읽어주거나 공원에서 산책하는 일이 전부였는데요. 어느 날 나무 아래서 놀고 있던 마이클이 아빠를 불러 딱정벌레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존은 “몸은 여기 남아있지만 영혼이 떠나버린 것”이라며 딱정벌레를 통해 죽음에 관해 설명하죠. 영화는 끝까지 존이 어떤 병에 걸려 죽게 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똑바로 걷지 못한다거나 손의 떨림, 수척해지는 존의 외모에서 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충분히 신파로 흘러갈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내내 그 누구도 눈물 쏟는 일 없이 담담하게 흘러가는데요. 그 모습에서 관객은 더 먹먹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은 전작 ‘스틸 라이프’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뤘는데요. 우연히 본 신문 기사를 통해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합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하여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노동자 계층의 싱글대디 캐릭터를 만들어냈는데요. 아내는 마이클을 낳고 자신의 나라로 되돌아갔고 가족이나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아들을 누군가에게 맡겨야만 하는 상태. 여기에서 아들과 아빠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사랑은 감동적입니다. 이 영화에서 신의 한 수는 마이클 역에 다니엘 라몬트 배우를 캐스팅한 것. 네 살짜리의 순수함이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신의 한 수는 마이클 역의 다니엘 라몬트 배우를 캐스팅한 겁니다. 첫 장면부터 귀여움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그는 결정적인 장면에서 아이다운 순수함을 보여줌으로써 한순간에 관객들의 심장을 내려앉게 하는데요. 아빠 역의 제임스 노튼과도 실제 친부자 사이 아니냐 할 정도로 진정한 부자 케미를 보여줍니다. 이제 선택권이 많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더 늦기 전에 마이클의 부모가 되어줄 가족을 결정해야만 하는데요. 과연 존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 노웨어 스페셜 「 영화 '노웨어 스페셜' 포스터. 감독&각본: 우베르토 파솔리니 출연: 제임스 노튼, 다니엘 라몬트, 에일린 오히긴스 음악: 앤드류 사이먼 맥칼리스터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96분 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일: 2021년 12월 29일 」 관련기사[더오래] 성탄절 난데없이 가족이 생겼다…나 다시 돌아갈래"취향은 있어" 담뱃값 오르자 월세 빼버린 자발적 홈리스女 [더오래][더오래]이런 잡지가 있다면 평생 유료회원하겠다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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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황혼육아, 자식 키울 때 느끼지 못한 기쁨 있다
━ [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32) 아내는 6살 손녀와 4살 손자를 돌보고 있다. 나도 아침, 저녁 하원 시간에 아내와 함께 손주들을 챙겨준다. 이런 과정에서 아내는 젊은 엄마들과 어울려 큰 언니처럼 지내고 있으며, 나도 덩달아 황혼 육아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아침에 딸네 집에 도착해 자는 손주들을 깨우면 온갖 핑계와 트집을 잡아 꾸물거리기 때문에 밥 먹이고 옷을 입혀 데리고 나가는 것도 여간 어렵지 않다. 겨우 집을 나서면 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그네나 미끄럼틀을 타며 한바탕 놀고 난 다음에야 집 앞으로 오는 유치원 버스에 몸을 싣는다. 손자는 같이 놀던 친구들이 어린이집에 간다며 하나둘 놀이터를 떠나야만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긴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네 살 손자를 보노라면 집에서 마음 놓고 놀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그럴 수도 없어 애처롭기 그지없다. 어린이집에 도착해 선생님 손을 잡고 웃으며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제부터는 내 일을 할 수 있고 육아로부터 해방됐다는 것이 이렇게 가뿐할 줄이야. 손주들과 시소를 타며 함께 놀아주는 할아버지. [사진 조남대] 은퇴하거나 나이 들어 이제 좀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려고 하는데 황혼 육아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은 것 같다. 손자의 어린이집 같은 반 여자 친구도 근방에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데려다주는데, 아침마다 만나다 보니 서로 낯이 익어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다음 바로 앞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났다. 아직 은퇴하지 않았지만, 건강도 좋지 않은데 손녀 육아의 한 부분을 맡아 힘은 들지만, 자식 키울 때 느끼지 못한 기쁨을 맛본단다. 이웃에 있어 자주 만나는 데다 공통의 화제가 있다 보니 금방 친해졌다. 아내의 친구 부부는 김포에서 서울의 아파트에 사는 손녀를 돌보기 위해 월요일에 딸네 집으로 와서 돌보다 금요일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손주를 돌보다 보니 주위의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갖고 싶어도 마음 놓고 돌봐줄 사람이 없어 갖지 못한다는 말이 이해된다. 또 첫째 키우는 것이 힘들어 둘째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한다. 정부는 출산율이 세계 최저라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경력단절 없이 마음 놓고 직장에 다닐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또래의 아이들. [사진 조남대] 오후 4시 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아파트 놀이터는 왁자지껄하다. 한쪽 등나무 아래 벤치에는 엄마와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아이 키우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밥을 안 먹으려고 해서 걱정이다”, “아침에 깨우기가 힘들다”, 또는 “네 살인데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등 육아의 어려움을 쏟아낸다. 서로 겪고 있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남자아이들은 킥보드를 타거나 놀이터를 뛰어다니다 뒹굴기도 하고 신나면 양말을 벗어 던지고 흙장난을 친다. 기어 다니는 개미를 잡아 경주시키기도 하고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심지어는 발로 밟아 죽이기도 하고, 넘치는 활기를 주체하지 못해 다투기도 한다. 여자아이들은 그네나 시소를 타거나 소꿉놀이를 하며 잘 놀다가도 금방 삐쳐서 울기도 한다. 엄마나 할머니들은 아이들이 노는 틈틈이 간식을 가져와 나누어 준다.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 오더라도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하나씩 돌아갈 수 있도록 충분히 가져온다. 다음 날에는 다른 어머니가 간식을 챙겨 오기 때문에 어떤 날은 간식으로 배가 불러 저녁 숟가락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해질 녘이 되어도 노는데 빠져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떼를 쓴다. 어떤 날은 너무 심하게 놀아 집에 들어오면 땀범벅이 된 몸으로 씻지도 않고 꾸벅꾸벅 졸면서 밥을 먹다가 잠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런 손주의 상태를 파악하고 잘 대처해야 유능한 돌봄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는 것 같다. 자식 키울 때보다 더 조심스럽고 또 자식들 눈치가 보일 때도 있다. 놀이터에서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사진 조남대] 아내는 이웃의 엄마들과 카톡방을 만들어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고, 아이들을 등원시킨 다음 점심을 같이 먹기도 한다. 주변 산을 산책하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며 워킹맘인 딸을 대신해 큰언니 노릇하며 함께 어울린다. 요즈음 인기 있는 ‘카봇’이라는 장난감을 한 아이가 가지고 놀면 다른 집 아이들도 사 달라고 조른다. 그러면 젊은 엄마는 구매를 원하는 아이들의 장난감 종류와 수량을 확인하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저렴하게 공동구매한다. 어떤 엄마는 전통시장을 갔더니 싸고 맛있는 것이 있다고 카톡방에 올리면 함께 사기도 하고, 지방 여행 가서 유명 빵집에 들르면 여유 있게 사서 집집이 돌리기도 한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여자 아이들. [사진 조남대] 얼마 전에는 다른 곳에서 이사 와서 낯이 설은 할머니가 갑자기 손자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한다며 손녀를 좀 돌봐달라고 하자 이웃에서 돌아가며 보살펴주어 한시름 놓기도 했다고 한다. 아내의 마당발 덕분에 우리 딸도 손주 친구의 엄마들과 친해져 주말 저녁에는 자녀들을 재워 놓고 한 집에 모여 포도주를 마시며 밤이 이슥하도록 놀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초인종이 울려 대문을 열어 보니 위층에 사는 손녀 친구가 동생과 함께 엄마 심부름으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김치전을 한판 가져왔다. 또 시골에 계시는 친정어머니가 김치를 보내왔다며 이웃에 몇 포기씩 나눠 주기도 한다. 도심 아파트에서 돌담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훈훈한 시골 정취가 느껴진다. 손주들을 돌보면서 비슷한 형편의 조부모를 만나 친해지기도 하고, 아내는 젊은 엄마들과 어울리며 육아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자식 키울 때는 맞벌이하며 육아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정신없이 키우다 보니 후회스러운 점도 없지 않았다. 이제 여유 있게 손주들을 돌보자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림이 그려진다. 손주들이 좋아하는 ‘뽀로로’나 ‘카봇’ 같은 장난감 이름도 익히고, 많이 웃고 손주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는 인자한 할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중에 손주들이 커서 ‘조부모의 보살핌으로 인성이 올곧게 자랐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면 더는 바람이 없을 것 같다. 관련기사[더오래]서울 단골도…제주서 68년째 한우물 파는 80세 이발사[더오래]아침상 차려주는 아내의 생일, 왜 이리 빨리 돌아올까[더오래]화분을 웃는 얼굴로…긍정바이러스 넘치는 경비 아저씨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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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1병 300만원…‘전설의 사자’ 스토리텔링한 위스키
━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51) 세계적인 블렌디드 위스키 조니워커 브랜드를 가진 디아지오가 2001년부터 매년 출시하는 한정판 싱글몰트 위스키가 있다. 바로 디아지오 스페셜 릴리즈(Diageo Special Releases)다. 8~10개의 디아지오 소유 위스키 증류소에서 캐스크 스트렝스 한정판으로 출시된다. 서로 다른 향과 맛이 분명해서 위스키의 다양성을 체험할 수 있다. 2021년은 증류소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의 생명체'를 스토리로 시리즈를 만들었다. 라가불린의 사자, 몰트락의 늑대, 오반의 여우, 카듀의 붉은 나무 등…. 다양한 전설과 함께 오크통도 다채롭다. 꼬냑과 레드와인을 담았던 오크통에서 숙성하고, 피트향이 가장 센 오크통을 선별했다. 마스터 블렌더 크레이그 윌슨(Craig Wilson) 씨는 "기존 위스키들이 가진 맛과 향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디아지오 스페셜 릴리즈 2021 ‘LEGENDS UNTOLD’. [사진제공 김대영] 가장 기대되는 위스키는 라가불린 26년이었다. 숙성기간, 오크통(셰리), 1병에 300만 원대라는 가격 등 모든 걸 따졌을 때 맛있을 수밖에 없는 위스키라서다. 사자 한 마리가 해가 지는 동굴 안에서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커다란 붉은 보석이 눈에 띄는 라벨. 아일레이 섬의 왕이 동굴에 숨어 지키고 있는 루비라고 한다. 이 루비의 강렬한 붉은색이 라가불린 위스키의 특징을 표현한다고. 라가불린 26년 (1994년 증류 PX / Oloroso seasoned first fill casks 44.2%). [사진제공 김대영] 오랜 숙성을 거친 위스키답게 향부터 다양했다. 향을 맡으려고 코를 댈 때마다 계속 변한다. 고숙성 위스키는 한 시간 정도 향만 맡아도 재미있는 이유다. 가장 많이 느껴지는 건 고기 훈연향. 여기에 달콤한 셰리 뉘앙스가 함께 하고 산미도 느껴진다. 시골에서 아궁이에 불을 땐 뒤, 새벽에 일어났을 때 재에서 피어나는 그 향이 맛으로 느껴진다. 뒤늦게 이어지는 다시 한번 바비큐 느낌과 햇빛 많이 받은 건포도에서 느껴지는 신맛. 한자리에서 맛본 8종의 디아지오 스페셜 릴리즈 2021. [사진제공 김대영] 나머지 7종의 싱글몰트도 저마다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강렬하게 느껴지는 스파이시한 오렌지향, 달콤한 꽃향기와 레드 와인 뉘앙스, 화이트 초콜릿과 버섯향, 달콤한 맥아향, 신선한 포도줄기향, 신선한 레몬향과 짭짤한 후추향까지. 싱글몰트 위스키를 취미로 삼는 이유가 다양한 맛을 느끼기 위함이라면 매우 좋은 교보재다. 증류소 전설과 위스키 맛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생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관련기사[더오래]“위스키 주세요” 취기 빌어 아버지 만나려는 ‘거리의 여인’ "우리가 뭔 식당이야" 밤 9시 문닫는 사장님의 울분 [더오래][더오래]없어서 못파는 싱글몰트 위스키…한정판 ‘그들만의 리그’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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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안타까운 그리움으로 돌아본 우리의 리즈 시절
━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90) 네, 다섯 살쯤 되었을까?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시간이 멈춰 서 있다. 커다란 깜장 색안경을 쓴 꼬마가 활짝 웃고 있다. 친구인듯한 인형을 꼭 끌어안은 품새와 앙증맞은 원피스 차림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잔뜩 멋을 부린 브론즈 액자 틀 속의 아가씨도 보인다. 아마도 그 시절엔 내로라하는 멋쟁이였음이 분명하다. 긴 머리 위에 살포시 얹은 베레모와 엄지장갑, 싱그런 미소와 손짓은 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 '우리들의 리즈시절'. 아이패드.프로크리에이트. [그림 홍미옥] ━ 우리도 있었다, 빛나던 리즈시절! 언젠가부터 주위 친구나 지인들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너 나 할 것 없이 꽃 사진으로 통일되어 가고 있었다. 봄이면 전국 팔도에 피는 벚꽃을 시작으로 여름이면 풍성하고 탐스러운 수국이 벚꽃을 대신한다. 가을이야 말할 것도 없이 오색찬란한 단풍 혹은 코스모스, 국화가 그 자릴 약속이나 한 듯이 차지하고 나섰다. 간혹 결혼을 일찍 한 지인들은 사랑스러운 손주 사진이 온갖 꽃들을 물리치고 자신을 표현하는 한 컷으로 등극한다. 어느 날, 그렇게 꽃이나 손주가 장악(?)한 단체 대화방 프로필 사진첩에 재밌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도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 아가씨는 한껏 치장을 하고 있었다. 만화 속에서 보던 공주님 같은 화관에 풍선처럼 부풀린 소매의 드레스 차림이었다. 게다가 새침한 미소는 어찌나 이쁘던지…. 당연히 단체 대화방은 난리가 났다. 몇 살 적 모습이냐, 왜 이렇게 이쁜 거냐! 혹시 전직 왕족이었냐부터 시작해 왕자님은 어디 갔느냐까지 온갖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때 드레스를 입고 사진 찍기가 유행이었다는 대답과 함께 모두는 시간을 되돌리기에 바빠졌다. 나도 그랬노라고, 나도 소녀시절이 있었노라고, 우리도 빛나는 리즈시절이 있었다고! 사진속으로 떠나는 우리들의 리즈시절. [사진 김윤희, 박영애] ━ 사진으로 떠난 추억의 시간여행 세상 시크하고 늘씬한 롱다리 처녀도 등장하고 모범생 스타일의 화사한 봄 처녀도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흑백사진 속에서 뛰놀던 귀여운 꼬마들도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뭔가를 입에 물고 엄마 옆에 서 있는 자그만 어린아이, 야외로 소풍 나간 가족들 사이에서 반듯하게 서 있는 소녀 등등 꽤 긴 시간 동안 우리들의 시간 여행은 계속되었다. 행여 질세라 볼이 터질 듯이 빵빵한 여섯 살의 나도 흑백사진으로 그 대열에 동참했다. 유치원 재롱 잔치였던 듯싶다. 무용복을 입고 어른처럼 화장을 하고 있는 내가 있다. 지금으로선 믿을 수 없게 젊던 엄마가 내 옷매무새를 만지고 있다. 백콤을 잔뜩 넣어 부풀린 머리 모양의 내가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아마도 동네 미장원 원장의 솜씨였음이 분명하다. 보고 있자니 어렴풋이 그날이 생각날 것 같기도 하다. 몇십 년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던 일들이 흑백사진 한장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 즐겁고 유쾌함으로 때론 안타까운 그리움으로. ━ 지금도 진행형인 우리들의 리즈시절 흔히들 하는 말, ‘리즈시절’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아래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리즈(Leeds)시절’은 지나간 전성기를 일컫는 신조어다. 처음에는 축구와 관련된 표현에서만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현재는 전성기, 황금기 등과 같이 찬란했던 과거 시절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태어났을 때가 리즈 시절이었어’, ‘내 인생의 리즈 시절은 지금인 것 같아’처럼 사용할 수 있다. 굳이 원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먹게 되는 게 ‘나이’다. 2022년 임인년을 맞으면서 또 한 살을 먹고야 말았다. 우스갯말로 해마다 꼬박꼬박 먹다 보니 내 나이가 몇 살인지조차 잊어버릴 지경이다. 가끔 연로하신 부모님 나이를 헷갈려 하듯 말이다. 지나고 보니 구겨진 흑백사진 속 통통한 소녀도, 공주님 같던 아가씨도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들의 리즈시절이었던 셈이다. 몇 년 후일지는 몰라도 어린 손주를 품에 안은 우리들의 모습도 그 순간만큼은 가장 빛나는 시간이 될 게 분명하다. 다가올 시간도 내가 오롯이 꾸려나가야 할 시간이다. 그렇다면 그 시간 속 주인공인 우리들의 리즈시절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계속~~ 관련기사[더오래]21세기 우렁각시, 겨울나무를 껴안다[더오래]50대 아저씨 눈물짓게 한 생일 문자폭탄의 정체는?[더오래]만원 한 장 들고 떠난 시장 여행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