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즐]낡은 오크통에서 시간을 쌓아 농밀해진 와인 오프너

    [퍼즐]낡은 오크통에서 시간을 쌓아 농밀해진 와인 오프너

    [퍼즐] 손장원의 영감을 주는 도구(2)   6.25 전쟁 이후 이뤄낸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은 2차 세계 대전으로 폐허가 된 독일이 경제부흥을 일으킨 ‘라인강의 기적’에서 유래한다. 중부 유럽을 관통하는 라인강은 문화적 교류와 무역의 중요한 연결 통로다. 그 주변에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을 벗 삼는 여행은 수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로 꼽힌다. 네덜란드를 기점으로 독일, 프랑스 알자스 지방을 거쳐 스위스 바젤에 이르는 라인강 크루즈 여행 내내 잔잔한 물결의 멜로디에 맞춰 감성과 영감이 춤추고 들끓는다. 몇 안 되는 인생 절정의 순간들이다.   라인강에서 바라보는 네덜란드 남부, 킨더다이크(Kinderdijk) 풍차마을 [사진 손장원]   라인강변 마르크스부르크(Marksburg) 독일 고성 [사진 손장원]   라인 협곡(Rhine Gorge) 주변 마을과 포도밭 [사진 손장원]   독일에서 스위스 바젤을 향한 라인강 해질녘 풍경 [사진 손장원]   스위스 바젤을 관통하는 라인강 [사진 손장원]   독일 라인강 주변의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에는 13세기에 세워진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이 복합된 고성이 있다. 다양한 건축물 가운데 왕족의 조각상들로 꾸며진 프리드리히 궁이 가장 아름답다. 프리드리히 궁지하에는 전쟁 중에도 와인을 곁들인 만찬을 즐겼을 법한 동굴 카페 같은 멋진 공간이 있다. 한쪽에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와인 통과 그 위를 올라가기 위한 계단까지 있다. 와인 통은 세금으로 징수한 수십만 리터의 포도주를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수시로 와인을 즐겼을 왕족들의 호사스러운 생활이 상상이 된다.   안뜰에서 바라 본 하이델베르크 고성 프리드리히 궁 (The Friedrich’s Wing) 정면 [사진 손장원]   프리드리히 궁 지하 와인 카페 [사진 손장원]   하이델베르크 툰(Heidelberg Tun) [사진 손장원]   14세기에 설립된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철학가 칸트와 괴테를 비롯해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을 배출했다. 인문학의 도시 여기저기에서 유구한 역사의 흔적들을 느낄 수 있다. 그 흔적을 따라 걷다 보면 하이델베르크의 젖줄,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Neckar)강을 가로지르는 카를 테오도르 다리(Karl Theodor Bruke) 건너에 있는 철학자의 길(Philosophen Weg)에 다다른다. 숨이 차오르며 깨끗하게 비워진 머리는 신선한 영감들로 온전히 채워진다. 마치 고성의 지하 저장고에 있던 커다란 나무통에 담긴 거칠고 생생한 와인처럼. 그 안에서 숙성된 와인이 섬세한 향기와 깊고 부드러운 맛으로 변해가는 동안 세월을 잘 견뎌낸 영감들도 무르익는다.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 전경. 라인강의 지류 네카강과 칼 테오도르 다리(Karl Theodor Bruke) [사진 손장원]   20여년간의 뉴요커의 삶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서촌에 조그만 작업실을 열었다. 디자이너로서 경험과 감각들을 각박해진 현대인의 삶에 접목하는 일들을 구상하며 지난 삶에 묻힌 옛 흔적들을 봄꽃처럼 피우게 하고 싶다. 어머니께서 축하 선물로 주신 폐 오크(Oak‧참나무)통을 재활용한 원목 트레이를 꺼내고 테이블 위에 올려 보았다. 오크통의 풍만한 곡선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스며든 와인의 흔적은 그 자체로 최고의 예술작품이다. 이처럼 잊고 싶은 혹은 잊혀가는 기억들 안에서 지금의 나로 연결되는 조그마한 흔적들을 발견하기 시작한다면 다채로운 영감으로 가득한 일상과 예술의 무경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단순한 디자인이 가장 스타일리쉬하고 실용적임을 주장하는 이탈리아 모던 키친웨어의 선구자 KN인더스트리에서 폐오크통을 재활용하여 출시한 원목 트레이 [사진 손장원]   아틀리에 페르세발(Atelier Perceval)은 프랑스의 아웃도어 나이프를 제작하는 브랜드였다. 이후 미슐랭 스타 셰프 이브 찰스(Yves Charles)가 제안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탄생한 '9.47' 모델이 셰프들에게 호평을 받으면서 최고의 명품 커트러리 브랜드로 재탄생 되었다. 폐 오크통을 활용하여 리미티드로 출시된 페르세발 '9.47'은 시간의 흔적을 만지고 느낄 수 있어 실용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겸비한 나이프다.  폐오크통을 손잡이에 접목시킨 페르세발(Perceval)사의 스테이크 나이프 [사진 손장원]   와인의 흔적을 살린 페르세발(Perceval)사의 와인 오프너 [사진 손장원]   손장원 작가 puzzletter@joongang.co.kr

    2023.05.06 17:00

  • 흰티만 팔아도 구매전환율 90%.... 그 가게 마케팅 비결은? [퍼즐]

    흰티만 팔아도 구매전환율 90%.... 그 가게 마케팅 비결은? [퍼즐]

    [퍼즐] 도쿄에서 찾은 비즈니스 인사이트 By 시티호퍼스   「 드디어 3년여 만에 다시 도쿄로 떠날 수 있게 됐다. 도쿄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할까? 퍼즐이 준비한 책 『퇴사준비생의 도쿄 2』에 그 힌트가 담겨 있다. 시티호퍼스와 함께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찾아 지금 도쿄로 여행을 떠나 보자. 」   “왜 흰색 티셔츠 전문점은 없을까?”…고정관념을 깬 흰 티 편집숍   #FFFFFFT는 도쿄에 있는 흰색 티셔츠 편집숍이다. 이 낯설어 보이는 이름에 브랜드 콘셉트가 담겨 있다. RGB나 CMYK 외에도 16진수를 사용하는 색상 코드에서 #FFFFFF는 흰색을 의미한다. 마지막의 T는 티셔츠를 뜻한다. 그러니까 #FFFFFFT는 흰색 티셔츠를 파는 곳이다. #FFFFFFT 로 표기하고 브랜드 네임은 ‘시로티(シロティ·흰색 티)’라고 읽는다.   #FFFFFFT의 매장 입구. 제품은 물론, 문부터 벽까지 모두 흰색이다. 사진 시티호퍼스   흰색 티셔츠는 크게 고민하거나, 스타일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기본 아이템이다. 하지만 #FFFFFFT에서 파는 티셔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기에는 가격이 남다르다. 평균 약 1만엔(약 10만원)이 넘는 수준이고, 비싼 티셔츠는 가볍게 1만 5000엔(약 15만원)이 넘는다.   흰색 티셔츠일 뿐인데 이렇게 비싼 이유는 태그에 숨어 있다. #FFFFFFT의 티셔츠는 브랜드가 전부 다르다. 아메리칸 어패럴, 제이크루 등 캐주얼 브랜드도 있지만, 대부분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니치 브랜드다. 매장이 보유한 티셔츠는 60여 종, 누적으로 약 300종을 판매했다. 취급 브랜드는 80개가 넘는다. 물론 전부 흰색 티셔츠다.   #FFFFFFT에서 판매하는 각기 다른 브랜드의 흰색 티셔츠들. 사진 시티호퍼스   #1. 흰색은 무색이 아니라 당신에게 물드는 색 단순히 브랜드만 다른 것이 아니다. 문화이트, 베이지, 핑크 화이트 등 같은 흰색이라도 미세한 차이가 있다. 목 부분도 V넥, U넥, 라운드넥, 터틀넥 등 모양이 다르다. 원단에 따라 두께와 촉감이 천차만별인 건 물론이고, 소매와 밑단의 길이, 사이즈 핏 등에 따라 스타일도 다양하다. 서로 다른 스타일이니 나만의 취향을 찾는 재미가 있다. 그렇다면 #FFFFFFT는 어쩌다 이런 매장을 기획하게 된 걸까? 대표인 나츠메 타쿠야(夏目拓也)는 흰색 티셔츠 편집숍을 시작한 철학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흰색 티셔츠에도 종류가 있다. 목 부분, 원단, 핏 등 각각의 요소가 모두 다르다. 사진 시티호퍼스   흰색은 무색이 아니에요. 당신에게 물드는 색이죠. 흰색은 개성이 없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개성을 끌어내는 색이죠. 흰색은 표정이 없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표정에 주목하게 만드는 색이죠. 흰색은 무난하지 않아요. 당신을 속이지 않는 색이죠. 컬러풀한 게 때로는 노이즈가 돼요. 깔끔한 인생은 흰색에서 시작되죠. 하얀 티셔츠를 입는 날, 그날이 가장 당신다운 날이에요.                                                                                                      - #FFFFFFT 홈페이지에서 -   2016년부터 이처럼 흰색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가지고 흰색 티셔츠만 판매했다. 덕분에 세계 최초의 흰색 티셔츠 전문 편집숍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많게는 하루에 200장 이상 판매하니 단순히 콘셉트만 뾰족한 매장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에 1,000장은 너끈히 팔겠지만, 400장을 넘기기도 어렵다. 영업일 수 때문이다.   #2. 불편함의 다른 이름은 특별함 매장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연다. 토요일만 영업하다 고객의 요청으로 하루 늘렸다. 그렇다고 주중에 매장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닫아 놓는다. 느지막이 오픈해 영업시간까지 짧다. 토요일은 12~19시까지, 일요일은 12~18시까지다. 일주일에 13시간만 영업하는 셈이다. 이마저도 불규칙해 인스타그램에서 공지를 확인해야 한다.   #FFFFFFT의 흰 티는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 사진 시티호퍼스   체험형 쇼룸 아닐까? 요즘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경험하고, 실제 구매는 온라인으로 유도하는 매장이 늘어나는 추세다. #FFFFFFT도 그럴거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100%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판매가 이루어진다. 웹사이트에 실린 건 브랜드 소개와 매장 안내도가 전부다. 흰색 티셔츠를 사려면 직접 방문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영업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로스디(XD)와의 인터뷰에서 나츠메 타쿠야 대표는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조금 과장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고객과 하얀 티셔츠와의 만남이 '디즈니랜드의 쇼나 어트랙션'처럼 바로 그날, 그 순간에만 맛볼 수 있는 체험이 되었으면 해서예요.   대표의 진정성은 매장에 가보면 이해할 수 있다. 영업일 수가 제한적이니 고객은 문 여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 4~5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작은 공간에 직원이 2명이나 있다. 흰색 티셔츠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직원들이 고객의 궁금증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준다. 각자 ‘나만의 흰 티’를 찾을 수 있도록 입어보거나 구매할 수 있게 도와준다. 방문 고객의 90% 정도가 상품을 구매한다. 일반 의류 매장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구매 전환율이다.   #3. 흰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다채로움 티셔츠를 보다 보면 태그에 ‘For #FFFFFFT’라고 적힌 제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양한 브랜드가 #FFFFFFT를 위해 제작한 전용 한정판이다. 단순히 브랜드 이름만 추가한 것이 아니다. 대표가 직접 색상, 소재, 디자인 등을 요청해서 제작된 #FFFFFFT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진정한 한정판이다.   #FFFFFFT에서만 판매하는 한정판 티셔츠. 사진 시티호퍼스   또 다른 한정판이 ‘2 Pack’ 시리즈다. 흰색 티셔츠는 기본 아이템이라 마음에 들면 2장씩 살 수 있도록 세트로 판매한다. 물론 #FFFFFFT 전용 상품이고, 가격 할인 혜택도 있다.   #FFFFFFT의 2 Pack 시리즈. 사진 시티호퍼스   #FFFFFFT와 옥시크린이 협업해 출시한 티셔츠. 사진 #FFFFFFT   타업종의 브랜드와 협업에도 적극적이다. 2022년 5월에는 옥시크린과 한정판 티셔츠를 출시했다. 깔끔한 세정력을 자랑하는 옥시크린의 브랜드 이미지가 #FFFFFFT와 잘 어울린다고 판단해서다. 패키지에 일회용 세제를 동봉해 옥시크린을 체험해 볼 수 있게 했다.   심지어 ‘흰색 티셔츠 전문 세제’를 출시하기도 했다. 런칭 1주년을 기념해 1924년부터 세제를 만들어온 기무라 비누공업과 ‘#FFFFFFT for Laundry’를 공동 개발해 선보였다. 흰색 티셔츠는 특성상 땀과 먼지로 옷 색깔이 변하기 쉽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전용 세제를 개발해 한정판으로 판매한 것이다.   물론 개인과도 협업에도 열심이다. #FFFFFFT/EISAKU는 제임스 딘처럼 일본에 흰 티와 청바지 붐을 일으킨 일본의 중년 배우 요시다 에이사쿠와 협업이다. ‘일본의 흰 티는 요시다 에이사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다. 이처럼 #FFFFFFT는 흰색 티셔츠를 콘셉트 삼아 크리에이티브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반면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대표인 나츠메 타쿠야가 브랜드를 런칭하기 전 자신에게 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요시다 에이사쿠와 함께 만든 티셔츠. 사진 #FFFFFFT   #4. 업의 본질만큼 중요한 색의 본질   왜 흰색 티셔츠 전문점이 없을까?   나츠메 타구야는 고등학생 때부터 패션에 깊이 빠져들었다.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아무렇지 않게 산, 그러나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흰색 티셔츠’에서 시작됐다. 그때부터 국내외 모든 종류의 흰색 티셔츠를 모으기 시작했다.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흰색 티셔츠부터 몇천 원대의 PB 제품까지. 옷장이 흰색 티셔츠로 넘칠 때쯤, 흰색 티셔츠 전문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없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패션업계는 시즌마다 변화하는 트렌드와 니즈에 따라 신제품을 내놓고 매출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흰색 티셔츠 하나만 가지고는 트렌드에 대응하며 고객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패션 업계가 돌아가는 원리, 특히나 소매업체의 상식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나츠메 타구야는 오히려 패션과 무관한 업계에서 일했기에 고정관념을 탈피할 수 있었다.   흰색 티셔츠는 심플 (Simple)과 베이직(Basic)의 끝판왕이면서, 동시에 하얗기에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입는 사람의 개성이 직접 반영되죠.   나츠메 타쿠야가 그만의 흰색 티셔츠를 보는 관점이다. 그가 떠올린 흰색 티셔츠 편집숍을 패션 업계에서 상상해보지 않았을 리 없다. 업의 본질을 고려했을 때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그는 업의 본질이 아니라 색의 본질로 접근하여 흰색 티셔츠 편집숍도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패션 매장으로 만들 수 있었다. 색의 본질을 바탕으로 #FFFFFFT는 또 어떤 색을 입혀 나갈까? #FFFFFFT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  「 퇴사준비생의 도쿄 2 『퇴사준비생의 도쿄 2』  시티호퍼스 지음/ 트래블코드/ 1만8800원   '누구나, 언젠가, 한 번쯤 퇴사준비생이 된다'고 우리를 유혹했던『퇴사준비생의 도쿄』에 이은 6년 만의 후속작이다. 직관적인 제목에서 짐작했겠지만, 『퇴사준비생의 도쿄 2』는 올해는 꼭 창업하고자 마음먹은 당신을 위한 필독서다. 이 책은 와인병에 차를 담아 없던 시장을 연 티하우스, 업의 구조를 꿰뚫어 기발하게 원가를 낮춘 스시집, ‘향수 뽑기’를 시그니처로 삼아 시장의 허를 찌른 향수 편집숍 등 기존의 틀을 살짝 비틀어 새로워진 15곳의 브랜드를 깊이 있게 소개한다. 책을 통해 도쿄 곳곳을 여행하다 보면 도쿄는 역시 도쿄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도쿄, 당신의 비즈니스 인사이트 트립에 이 책이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 여행에서 찾은 비즈니스 인사이트, 시티호퍼스에서 만나보세요!  」    시티호퍼스 puzzletter@joongang.co.kr

    2023.03.30 08:30

  • [퍼즐] 휘저을수록(Churn) 맛과 향기가 풍부해지는 버터

    [퍼즐] 휘저을수록(Churn) 맛과 향기가 풍부해지는 버터

     ━  [퍼즐] 손장원의 영감을 주는 도구(1)   발악하며 불어대는 동장군의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봄동, 달래, 냉이, 전호나물, 다양한 두릅들이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이에 질세라 바다 향을 터질 듯이 품고 주렁주렁 열린 미더덕은 남해의 봄을 알리는 전령사이다. 봄비는 땅을 두드리고 얼어붙은 향기들을 퍼뜨리니 동면에 갇힌 오감을 깨우고 마음마저 휘젓는다.   스물세 살, 적지 않은 나이에 예술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은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공존하고 갈등과 타협이 반복되는 도시였다. 무채색 빌딩 정글 속에서 다름의 미학을 깨닫고 인생 절정의 시간을 보냈다. 반면 부모님이 정착하신 인근 코네티컷주 글래스턴베리의 작은 마을은 계절마다 다른 색이 입혀져 자연 변화와 향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때로 내가 뉴욕에서 갈팡질팡 헤매고 있을 때면 부모님 집으로 향하는 길은 탈출구가 되어 주었다.   미국 코네티컷주 글래스턴베리 로컬 농장의 가을 풍경 [사진 손장원] 미국 코네티컷주 글래스턴베리의 겨울 농가 [사진 손장원] 미국 코네티컷주 글래스톤베리의 봄 들판[사진 손장원] 미국 코네티컷주 글래스톤베리의 화훼 농장 [사진 손장원]   일명 15번 도로, 뉴욕과 코네티컷주를 이어주는 메리트 파크웨이(Merritt Parkway)는 미 북동부 지역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다. 싱그러운 들판과 호수들이 일렬종대로 마주하고 봄기운으로 들뜬 주변 농장들은 파머스마켓 오픈 준비로 분주하다. 계절을 만끽하며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겨우내 멈췄던 대화의 장이 다시 열려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재잘거리는 봄 소리는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갓 재배한 농작물이나 이를 이용한 가공품들이 주를 이루지만 빈티지 그릇이나 정감 어린 수공예품들을 마켓에서 만나게 되면 한층 즐거움이 더해진다.   한번은 분주한 마켓 한편에 커다란 유리통을 장난감 삼아 놀고 있는 아이가 눈에 띄었다. ‘Churn-craft’, 직역하면 ‘휘젓는 공예품’이라고 새겨진 유리병은 버터를 만드는 도구였다. 발명품은 아니었지만, 1920년대 가정에서 버터를 만들어 요리에 풍미를 더했던 도구를 재해석한 디자인이었다. 장인정신뿐만 아니라 재미와 옛 정서를 느낄 수 있는 훌륭한 디자인이었다. 1920년대 교유기(Churner)가 현대적 디자인으로 재탄생했다. [사진 손장원] 원유에서 교유기를 이용하여 버터와 버터밀크를 분리한다. [사진 손장원]   어릴 적부터 요리를 좋아해 주방용품에 관심이 많았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자주 학교 프로젝트의 주제로 삼거나 특별한 소재나 모양의 도구들을 모으기까지 했다. ‘버터 만드는 교유기(Churner)’를 재현하게 된 이야기는 마음과 머릿속을 휘젓는 감동을 전했다.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이야말로 최고의 디자인인 것이다. 이웃 농장에서 받은 신선한 우유를 마시고 놀이처럼 휘저으며 만들어진 버터밀크는 쿠키나 디저트로 재탄생한다. 버터는 응축된 행복감으로 요리에 풍미를 더한다.   ‘Churn’을 사전에서 검색하면 '속이 뒤틀리다','마구 휘돌다', 마케팅 용어로 '우왕좌왕하는 소비자' 등 부정적 의미가 눈에 띈다. 팬더믹과 함께 환경오염, 기후변화, 물가 상승, 전쟁 등등 지금 인류가 처한 비관적 현실을 반영하는 게 아닌가 싶다. 휘저을수록(Churn) 맛과 향기가 더 풍부해지는 버터를 음미해 보자. 쳇바퀴를 잠시 멈추고 내 안을 휘저어 볼 때이다. 낙관적이고 창의적인 생각들로 다시 채워지고 소소한 행복한 일상들이 펼쳐질 것이다.   불에 올린 버터가 노릇하게 끓고 헤이즐넛 향이 피어오르면 파프리카 파우더와 살짝 볶은 캐슈너트를 넣고 잘 섞는다. 카이막 치즈의 부드러운 고소함과 꾸덕꾸덕한 플레인 요거트의 산미가 조화를 이루면 그릇을 캔버스 삼아 붓 터치를 주고 녹은 향신료 버터와 과일들로 알록달록 색을 입힌다. 빵이나 크래커를 곁들이면 와인 한 잔과 함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무염 수제버터가 완성되었다. [사진 손장원] 수제버터, 카이막 치즈, 플레인 요거트, 캐슈너트, 과일을 이용한 와인 안주로 빵이나 난을 곁들여도 좋다. [사진 손장원] 손장원 작가 puzzletter@joongang.co.kr

    2023.03.26 09:30

  •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인가...북악산과 인왕산 품은 이 곳 [퍼즐]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인가...북악산과 인왕산 품은 이 곳 [퍼즐]

     ━  [퍼즐] 박나니의 한옥 이야기(13)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옥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고 있다. 회색빛 바다와도 같은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가 이런 주거 방식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훨씬 더 개방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지닌 우리의 전통 한옥에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이다. 전통적이라고는 하나 요즘 한옥은 한옥의 외관은 유지하되 내부는 현대적인 생활방식에 맞춰 변한 한옥이 많다. 한옥 이야기는 지난 2019년 발간된 책『한옥』에서 다루고 있는 한옥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전통 한옥 양식인 사랑채와 연결돼 있는 2층의 망루형 양옥. 붉은 벽돌로 지어진 조적조 건물과 목재로 지어진 한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사진 이종근]   부암정 북악산과 인왕산이 품고 있는 부암동은 예부터 무계동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기로 소문난 동네다. 무릉도원의 계곡과도 같은 곳이라는 의미가 무색할 만큼 부암동의 오래된 고택과 성곽길, 그리고 뒤편으로 펼쳐지는 인왕산의 풍경은 여러 선인들이 감탄했던 대관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탄생시킨 안평대군에게 이 일대는 무릉도원이었고, 『운수 좋은 날』의 소설가 현진건에게는 삶의 터전이었다. 이와 같은 훌륭한 경치를 따라 부암동주민센터 뒷골목을 걸어 오르면 부암정 또는 반계 윤웅렬 별장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붉은 벽돌의 조적조 건물은 문화혁명 이전 중국 상해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것으로, 양옥을 전통 건축에 접목시키고자 한 시도이다. [사진 이종근]   개화파 무신 윤웅렬 또한 이 풍광에 반했는지 구한말 별장의 터를 이곳으로 잡았다. 1906년 첫 건축 당시에는 2층 벽돌 건물만 서 있었는데, 이는 일찍부터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 양옥과 접목시킨 중국 상해의 건축물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건축됐다. 이후 윤웅렬의 셋째 아들 윤지창이 한옥을 증축해 오늘날의 부암정이 탄생했고, 2005년도에 현 집주인의 소유가 되었다.    부암정의 내부로 방문자를 초대하는 문. 이곳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다워 현 집주인이 부암정을 매입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진 이종근]   매입 당시 폐가 수준이었던 별장은 현 집주인에 의하여 복원되었고, 구한말 도입된 서구의 건축 양식과 우리나라 전통 건축 양식이 공존하는 사례 중 현재까지도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대문을 열고 부지 내로 들어서면, 거대한 바위가 방문자를 가장 먼저 맞는다. 아이를 점지하는 이 바위 옆으로 놓인 돌길을 따라 올라가야만 비로소 부암정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사진 이종근]   고택의 우람한 대문을 들어서면 특이하게도 집보다 연륜이 훨씬 오랜 거대한 바위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 바위는 만지면 아이를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 낙엽수들이 가득한 마당을 지나 본격적으로 부암정 내부로 들어가면 오른편에는 기역(ㄱ)자 모양의 안채, 안채의 왼쪽으로는 광채와 사랑채가 중정을 나란히 품고 있고, 기역자 모양의 사랑채 끝부분에 예의 2층 붉은 벽돌 건물이 있다. 이를 모두 뒤로 한 채 뒤뜰로 난 길을 걷다 보면 인왕산 열차바위가 눈에 들어오는데, 특히 비가 내린 뒤의 치마바위 전경은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부암정의 행랑채 내부에는 현대적인 생활방식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과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위한 공간이 공존하고 있다. 입식문화 공간 한편에 좌식문화의 전통적인 가구들을 배치했다. [사진 이종근]   사랑채는 특이하게 기와지붕 위에 테라스가 설치되어 있고 인접한 2층 양옥과의 조합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서까래와 대들보가 드러나 있는 천장 가장자리에 등을 설치하여 역광을 줌으로써 분위기는 평온하고 담백한 사랑채의 멋이 살아나고 있다.    천장에 보이는 서까래와 현대적인 생활 방식에 맞춰 지어진 부엌의 조합이 어색할 법도 하지만, 가구의 색깔을 목재와 맞추어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사진 이종근]   비록 많은 변형을 겪어 원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만, 창호를 액자로 삼아 이를 통해 보는 바깥 풍경은 어떤 미술품보다도 아름다워 우리나라 옛 한옥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집은 한 달에 2회 무료 개방한다.   부암정의 뒷마당. 집주인이 부암정을 복원하면서 땅도 가꾸어 다양한 약초들을 심어놓았다. 장독대와 한옥의 기와지붕, 주변 자연이 어우러져 서울 한복판 부암동이 아닌 시골집에 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이종근] 박나니 작가 puzzletter@joongang.co.kr

    2023.01.28 11:00

  • 요즘 당근마켓서 아파트 구한다...부동산 직거래 주의할 점 [퍼즐]

    요즘 당근마켓서 아파트 구한다...부동산 직거래 주의할 점 [퍼즐]

     ━  [퍼즐] 부동산 트렌드 NOW(8)     중고 거래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당근마켓에 최근 ‘부동산 직거래’라는 카테고리가 생겼다. 지역 거래를 기반으로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역 내 부동산 등 다양한 상품에 대한 직거래 수요가 많아졌고, 그중 부동산 직거래 서비스를 더욱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당근마켓뿐만 아니라 네이버 카페 등 최근 부동산 직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직거래의 장단점과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 알아보자.   부동산 직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당근마켓 [당근마켓 캡처]   과거 부동산 직거래는 가격이 급등하는 시기나 다주택자의 중과세를 회피할 목적으로 가족 등 특수 관계인 간 증여성 거래인 경우가 많았다. 참고로 정부에서는 부동산을 주변 시세보다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팔거나 반대로 비싸게 사더라도 편법 증여로 간주해 과태료를 부과한다. 편법 증여에 대한 금액기준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10억 이하인 경우 시가의 30% 한도, 10억을 초과하는 경우 최대 3억 한도로 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시세가 9억원인 아파트를 6억3000만원 미만으로 거래하거나, 시세 12억원인 아파트를 9억원 미만으로 거래할 경우 편법 증여로 간주될 수 있다.   이처럼 과거에는 주로 특수 관계인 간 증여성 거래로 직거래가 활용됐다면 최근 부동산 직거래가 활성화되고 있는 주요 요인으로는 부동산 거래 침체와 중개수수료 절감을 들 수 있다. 부동산 매수심리 악화로 아파트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매도인들이 상황에 맞게 집을 팔 수 없게 되자 지역 중개업소 외에 매수인을 찾을 수 있는 직거래 카페나 앱에 직접 매물을 올리게 되고, 직관적인 화면과 빠르게 매수인을 찾을 수 있다는 입소문 덕분에 관련 분야가 더욱 활성화됐다. 또 부동산 직거래 시 중개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는데 ‘공인중개사법’상 주택 매매거래 시 중개수수료율은 아래의 표와 같다. 15억원 아파트를 직거래할 경우 최대 1050만원의 중개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이 부각되면서 실제 네이버 카페에서 시작한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 부동산 직거래 카페 ‘파직카’, 부동산 직거래 앱인 ‘집판다’ 등에는 하루에 수십 건의 부동산 매물이 쏟아지고 있으며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하면서 소비자들의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  부동산 직거래 시 주의사항   과거에 부동산 직거래가 특수 관계인 간 거래로 국한됐던 이유는 직거래에 대한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래에는 큰 금액이 오고 가는 만큼 실제 당사자 확인부터 등기 이전에 따른 서류,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 등 여러 분야를 확인해야 하는데 거래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일반인이 모든 것을 챙기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본인이 거래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다면 가급적 전문가에게 맡기되, 부득이하게 부동산 직거래를 해야 한다면 반드시 아래 사항을 확인해야 한다.   1. 당사자의 인적사항 확인 거래 당사자의 진위 확인은 부동산 거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특히 매수인보다는 매도인의 인적사항 확인이 중요하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매도인 명의의 은행 계좌에 입금해야 법적 효력을 주장할 수 있다. 주민등록증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ARS 전화 ‘1382’와 정부24 사이트 ‘주민등록증의 진위확인’을 통해 가능하다. 운전면허증도 경찰청 ‘교통민원24’ 사이트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은행계좌도 매도인 계좌인지 꼭 확인한 후 계좌이체를 통해 거래기록을 남겨두도록 한다.   2. 공적 서류 확인 공적 서류에서 우선 살펴봐야 하는 서류는 등기부등본(등기사항 전부증명서)이다. 등기부등본은 크게 표제부(부동산 소재지, 면적, 용도, 구조 등), 갑구(소유권에 대한 사항), 을구(소유권 외 근저당 등 권리)로 나뉜다. ‘갑구’의 실소유자와 계약자가 일치하는지와 ‘을구’의 근저당권(대출)이나 압류 등 제한 사항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수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사항은 본 계약 직전, 중도금 납부 전, 잔금 당일에 걸쳐 여러 번 등기부등본을 발급해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전세사기 등 부동산 계약에 대한 범죄가 성행하면서 계약 후 잔금 이전까지 소유권이나 저당권에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커졌기 때문에 꼭 주의해야 한다. 등기부등본은 인터넷등기소)를 통해 열람 및 발급이 가능하다.   다음으로는 건축물대장과 토지대장을 확인해야 하는데 매매계약서상 건물 면적, 대지권 지분과 건축물대장, 토지대장 상 면적이 동일한지 확인하자. 대상물이 연립주택이나 단독주택일 경우 건축물대장에 ‘위반건축물’ 표시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건축물대장과 토지대장은 ‘정부24’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3. 현장 확인 중개업소를 통해 거래를 진행할 경우 공인중개사는 의뢰인에게 ‘중개대상물확인설명서’를 통해 중개물의 상태와 면적 등 기본적인 사항과 현장 하자와 같은 정보를 서면으로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직거래를 할 경우 매수인이 직접 확인해야 하므로 거래 전 현장 답사가 필요한데 현장에서 대상물의 누수나 결로 여부, 채광, 방음, 주변 혐오시설 등을 확인하고 하자가 발견되면 매도인에게 하자 보수나 금전적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   4. 기타 확인 사항 그 외에도 부동산 매매계약 시 주민등록등(초)본과 매도용 인감증명서는 잔금일 기준 3개월 이내 발급받은 것이어야 한다. 매수인의 경우 매도용 인감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 매매계약서상의 주소가 일치해야 한다. 아파트의 경우 잔금 전에 관리비 미납이 있는지와 공과금 정산 여부, 장기수선충당금 정산 등도 확인이 필요하다.   부동산 직거래 서비스를 하는 집판다 [집판다 캡처]   부동산 직거래 플랫폼의 과제는? 부동산 직거래에 대한 리스크를 해소해야만 관련 산업이 확장하고 플랫폼 업체의 수익성이 개선되는 만큼 리스크 해소는 플랫폼 업체들이 해결해야 하는 당면 과제다. 현재 부동산 직거래 플랫폼에서는 AI(인공지능) 권리분석을 제공해 매물의 등기부등본에서 근저당 여부 등을 자동으로 확인하고 매매대금을 명의이전 때까지 맡아주는 에스크로 서비스와 전자계약서 등 거래 안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플랫폼과 협약된 전문가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연결해주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부동산 직거래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부동산 직거래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다소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플랫폼 내 커뮤니티에서 쌓이고 있는 빅데이터에 있다고 본다. 플랫폼 내 커뮤니티 기능이 더욱 활성화되면 각종 리스크에 대한 해결 방안이 공유되고, 이런 부분을 플랫폼에서 시스템화한다면 부동산 직거래에 대한 리스크는 최소화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직거래 시장 전망 부동산 직거래는 특수관계인 간 거래를 넘어 이제 서울 아파트 거래량의 30% 비중을 차지하는 거래 방식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도 편의성과 비용절감이라는 강점과 커뮤니티 데이터를 내세워 앞으로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러한 장점들이 부각된다 하더라도 부동산 거래는 문제가 생겼을 때 발생하는 손실이 크고 거래가 완료된 이후에도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는 만큼 꼼꼼한 분석과 확인이 필요하다. 김웅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부동산 팀장 puzzletter@joongang.co.kr

    2023.01.28 09:00

  • [퍼즐] 2023년 내 집 마련 계획있다면 반드시 알아둘 것

    [퍼즐] 2023년 내 집 마련 계획있다면 반드시 알아둘 것

     ━  [퍼즐] 부동산 트렌드 NOW(7)     2023년 달라지는 부동산 제도의 핵심은 거래부담을 줄여 매물이 출현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이를 받아줄 수 있는 수요를 확보함으로써 부동산 시장이 다시금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주택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다. 즉 그간 투기세력으로 낙인 찍혀 온갖 규제의 타깃이 되었던 다주택자의 순기능을 인정하고 거래 주체의 역할을 강화했다는 점이 정부 정책의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거안정 특례보금자리론 운영, 생활안정∙임차보증금 반환 목적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등 자금경색을 해소해 시장 위험을 차단하고 시장 안정을 꾀한다. 취득세와 양도세 등 일부 제도는 규제 폐지가 아닌 완화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이 역시 점진적으로 폐지 수순을 밟아갈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칼럼에서는 올해 달라지는 부동산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향후의 부동산 시장 행보를 예측해보고자 한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한강변 아파트단지. [뉴스1]    ━  (1) 거래부담 완화   다주택자와 실수요에 대한 과도하고 징벌적인 부동산 규제가 정상화된다. 먼저 다주택자에 중과 적용됐던 취득세가 완화된다. 종전 8~12%의 취득세가 2주택자까지는 1주택자 기본세율과 동일한 1~3%, 3주택자는 4%(조정대상지역은 6%), 4주택 이상과 법인은 6%의 세율이 적용된다.   또 양도세 중과 유예기간이 오는 5월 9일까지 적용될 예정이었으나, 2024년 5월 9일까지 1년 연장된다. 다주택자는 중과세율보다 20~30%P 낮은 기본세율로 주택 거래가 가능해진다. 현재는 유예에 그치고 있으나 오는 7월 세제개편안을 통한 근본적 개편안을 마련할 것으로 명시하고 있어, 궁극적으로 양도세 중과는 폐지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 보유한 분양권과 주택, 입주권에 대한 양도세도 인하된다. 주택거래 활성화의 일환으로 1년 이내 단기로 보유한 부동산을 매각할 경우 종전 70%에서 45%로 낮춘 세율이 적용된다. 보유기간이 1년 이상 2년 이내라면 양도 시 적용되던 60%의 세율 역시 폐지되어 기본세율이 적용된다.   또한 다주택자가 규제지역 내의 주택 매입 시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됐지만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기준 30%까지 허용된다.    ━  (2) 임대차 시장 안정   임대차 시장에서도 많은 부분이 바뀐다. 우선 건설임대사업자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 매입임대사업자에게도 확대 적용되며, 등록임대주택사업에서 소외되던 아파트에 대한 혜택도 부활한다. 전용면적 85㎡ 이하 취득가액 6억(지방 3억) 이하 아파트도 임대주택 등록이 가능해지며, 면적에 따라 60㎡ 이하는 85~100%, 60㎡ 초과~85㎡ 이하는 50% 취득세가 감면된다.   조정대상지역 내 매입임대 등록 시 양도세 중과배제 및 종부세 합산배제 혜택도 부활한다. 의무임대기간을 기존 10년에서 15년으로 연장할 경우 추가 인센티브를 적용, 수도권 9억(지방 6억) 이하 아파트까지 세제혜택이 가능해진다. 등록임대사업자 담보대출도 일반 다주택자보다 높은 수준으로 확대 추진할 방침이다.    ━  (3) 세제 개편 및 기타 제도 변경   종합부동산세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금액이 12억으로 상향되고, 다주택자의 경우도 종전 6억에서 9억으로, 부부 공동명의 1주택의 경우 종전 12억에서 18억으로 상향된다. 기본세율은 일반 0.6~3%에서 0.5~2.7%로 낮아지며, 공시가격 합산 24억이 초과하는 고가 3주택자에 대해서만 중과가 적용되나 중과세율 역시 종전 1.2~6%에서 1.2~5%로 조정된다. 공정시장가액 비율은 현행 60%에서 80%로 조정되는데 이 때문에 실제 체감되는 종부세 감소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    세부담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주택의 경우 150%, 3주택 이상에 300%가 적용되던 세부담 상한을 150%로 일원화한다. 만 60세 이상 고령자 또는 5년 이상 장기보유한 1세대 1주택자의 경우 총급여 7000만원 이하로 종부세 100만원이 초과하는 경우 상속, 증여, 양도 시 납부유예 적용이 가능하다. 2022년부터 적용 시행한 일시적2주택, 상속주택, 지방의 공시가 3억 이하 저가주택 등에 대해 주택수 합산 배제하는 과세특례는 그대로 유지되며, 1세대 1주택 판정시에는 배제되지만 금액은 합산된다.   임대소득세 주택가격이 상당 부분 상승조정 되었음에도 종전과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던 고가주택의 기준이 종부세 공제금액과 동일한 12억으로 상향된다(종전 9억). 1주택 고가주택 보유자의 월세 임대소득 과세기준도 이와 동일하게 12억이 적용된다. 소형주택 10년 이상 장기 임대사업시 1호 75%, 2호 25% 적용되는 세액감면을 종전 2022년 말에서 2025년까지 연장 시행한다.    월세 세액공제율도 종전 10%(급여 5500만원 미만 12%)에서 12%로 확대한다(급여 5500만원 미만 15%). 무주택 근로자가 차입한 주택임차자금은 공제율 40%를 적용하고, 원리금 상환액 공제한도도 기존 3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확대 적용한다.    서민의 세부담 완화를 위해 과세표준 구간 금액도 조정된다. 종전 1200만, 4600만원이었던 구간을 1400만원, 5000만원으로 확대하여 1400만원 이하 6%, 1400만원 초과~5000만원 이하 15%, 50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 24% 등의 세율이 적용된다.   양도소득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양도세 중과배제가 1년 연장되어 2024년 5월 9일까지 적용되며, 분양권·입주권의 단기 양도세는 1년 미만 45%, 1년 이상은 일반세율이 적용된다. 2022년 말까지 적용 예정이었던 민간건설임대주택 장기보유특별공제 70% 특례(10년 이상 임대, 임대료 상한 5%) 및 공공매입임대주택용 토지 양도세 10% 감면안은 2024년 말까지 연장된다. 농어촌주택 및 고향주택에 대하여 주택수 합산 배제하는 특례 역시 기준시가를 종전 2억에서 3억으로 확대(한옥 4억)하고 2025년 말까지 연장된다.   증여세 증여의 경우 취득세 기준이 변경된다. 개별·공동주택가격 등 시가표준액을 적용하던 것을 2023년부터는 매매, 감정, 경매 등 시가인정액을 적용하게 되어 종전보다 높은 평가액이 적용된다. 부당행위 계산 적용기간인 이월과세 기간이 종전 5년에서 10년으로 변경된다. 기존에는 증여 후 5년 내 양도 시 증여자 취득가액 기준으로 양도차익을 계산하던 것을 10년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으로, 그만큼 종전대비 증여 활용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재건축 재건축의 경우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안전진단 기준이 달라진다. 구조안전성 50%→30%, 주거환경 15%→30%, 설비노후도 25%→30%, 비용편익 10% 등 평가항목 배점 비중을 개선하고 지자체의 자율적 판단 기준도 마련해 보다 빠른 사업 추진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조건부재건축의 점수 범위도 종전 30에서 45로 조정하여 45점 이하일 경우 바로 재건축이 가능하도록 개선된다.   청약 미계약분이나 부적격자가 생긴 경우 해당 주택에 대하여 시행하던 무순위청약 조건이 변경된다. 기존에는 당해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무주택자만 가능했으나, 이 중 거주지역 요건이 폐지되어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대상자격이 완화된다. 미계약분이 발생했을 경우 반복해서 청약을 진행해야 했던 현장의 불편을 감안, 본청약 후 60일이 지나면 파기해야 했던 예비당첨자 명단을 180일까지 보유할 수 있으며, 예비당첨자 수도 세대수의 500% 이상으로 대폭 확대된다. 실수요지만 가점 경쟁력이 낮아 당첨이 어려운 신혼부부나 청년을 고려해 100% 가점제가 적용되던 85㎡ 이하 청약에도 추첨제가 도입된다.   이 외에도 실거주와 분양권 전매제한 규제, 조정대상지역 내 양도소득 비과세 요건 중 하나인 2년 거주 등은 내년 초 완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며, 일부 구체적인 시행 시기가 확정되지 않은 내용도 있는 등 상당히 많은 부분이 바뀔 전망이다.   몇 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 발표로 시장이 기민하게 반응하는 가운데 벌써 바닥다지기를 마무리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지역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시장 반응을 살펴 진중하게 속도 조절을 하는 만큼 일시적인 효과에 그치지 않고 부동산 침체기에 활기를 불어넣을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윤희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부동산 팀장 puzzletter@joongang.co.kr

    2023.01.21 10:00

  • 십수년 추억보다 중한 이것...집을 비우니 숨 쉴 구멍이 생겼다 [퍼즐]

    십수년 추억보다 중한 이것...집을 비우니 숨 쉴 구멍이 생겼다 [퍼즐]

     ━  [퍼즐] 최창연의 원룸일기(14)     지난주 주말, 결혼식에 다녀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선본 남자와 연락은 계속하고 있냐고, 대체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다그쳤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은 딸을 둔 엄마가 아직 ‘해치우지 못한’ 딸에 대해 한소리 들은 마음이 이해되었다. 그래도 주말 드라마를 보며 느긋하게 쉬던 나는 그야말로 난데없이 뺨을 맞은 기분이었다.   통화를 끝내고 빨래를 걷으러 베란다로 나가자, 집에서 보낸 배추와 사과, 가을 무가 발에 걸렸다. 작은 베란다에는 뜯지도 않은 채로 방치된 상자(캔들 워머와 스탠드, 발 마사지기)와 부모님이 보내준 채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물건 하나를 잘못 꺼내면 주변의 것들도 우르르 쏟아졌다.   아빠가 수확해 보낸 배추가 상했는지 바닥에 물이 고여 있었다.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바닥을 닦다 보니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베란다 문을 닫으면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속은 엉망인 모습, 이게 내 진짜 모습은 아닐까? 정리되지 않은 공간이 나의 진짜 모습처럼 느껴졌다.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지친 날에 집에 오면 죄책감이 들었다.   [그림 최창연]   “그냥 버리면 되지 않아? 어차피 안 쓰잖아.”   잘 버리지 못하는 나를 동생은 이해하지 못했다. 동생은 새로 산 화장품이 피부에 맞지 않으면 버리거나 나눠주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억지로 먹지 않는다. 그에 반해 나는 피부에 안 맞는 화장품이라도 손에 바르자며 서랍에 넣어둔다. 먹지 않은 음식도 일단은 냉동실에 얼린다. 서랍에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이 많고, 냉동실에 까만 봉지들이 쌓여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버리고 정리하는 것을 배워야 겨우 해내는 사람이 있다. 부끄럽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다.   고민하다가 전문 정리 컨설턴트가 진행하는 정리 트레이닝을 신청했다. 여러 공간으로 나누어 신청할 수 있는데, 가장 엉망인 ‘주방 정리’를 신청했다. 프로그램은 3주 동안 진행되고 물건들을 버리고 재배치하고 청소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트레이닝 첫 주에는 물건을 비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트레이너가 매일 정해주는 아이템을 비웠다. 첫째 날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 두고도 안 먹었던 식품들을 정리했다. 둘째 날에는 코팅이 벗겨진 냄비를 버렸다. 셋째 날에는 안 쓰는 식기들을, 넷째 날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을 버렸다. 다섯째 날에는 쓰지 않는 튀김기와 전기냄비를 버렸다.   거의 매일 20ℓ 종량제 봉투 하나가 가득 찼다. 오래된 사기그릇은 불연성 마대자루에, 포장도 뜯지 않은 새것들은 중고 마켓에 싼값에 올리거나 무료 나눔을 했다. 소형가전은 인터넷으로 소형 폐기물 배출을 신청했다.   물건을 버리기 힘들 때마다 트레이너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 비우는 게, 결국 앞으로 비울 일을 줄이는 일이에요’. 물건을 버리면서 받는 충격이 앞으로의 삶을 바꾼다는 뜻이다. 크게 느끼는 죄책감과 후회가 소비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 한가득 버려지는 쓰레기를 보며 지구에 대한 미안함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작은 집 곳곳에 박혀있던 물건들의 양이 어마어마해 버릴 때마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그걸 본 친구들이 연락 왔다.   “설마 저 초콜릿 내가 여행 갔다가 선물로 줬던 거? 그게 언제 적이야?” “아니, 저 티백 이제 그만 보내줘요.” “우와. (17년 전의) 저 컵을 지금 보게 될 줄이야. 나 언제 잃어버렸는지 기억도 안 나.”   단체 컵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내 ‘이거 기억나?’라며 이야기를 하다 깨달았다. 다들 앞을 향해 걸어가는데, 나만 추억을 들고 그 자리에 남아 있구나. 이가 나간 컵을 왜 나는 여태 가지고 있었을까. 싱크대 구석에 넣어둔다고 추억이 그대로 보관되는 것도 아닌데. 지나간 일을 잡느라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룸에서는 정리가 어렵다는 말이 맞기도하고 틀리기도 하다. 좁은 공간에는 물건이 조금만 많아져도 금세 지저분해졌다. 하지만 그보다는 좁다는 핑계로 대충 물건들을 쑤셔 넣은 까닭이 더 크다. 마치 여기는 금방 떠날 곳인 것처럼. 엄마가 나의 싱글 생활을 인정하지 못하듯, 나도 지금의 생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쓰레기봉투를 가득 채워 내보낸 다음, 식탁 의자에 기대앉아 싱크대 찬장을 다시 바라보았다. 비우기만 했을 뿐인데도, 훨씬 마음이 가벼웠다. 숨 쉴 구멍이 생긴다는 표현이 이해되었다.   나에게 비우는 일은, 결국 과거를 잘 매듭짓고,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는 일에 가깝다. 그러니 봄이 오기 전까지 한동안 버리는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봄에는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기운이 들어올 것이라고 믿으며. 최창연 그림작가·물리치료사 puzzletter@joongang.co.kr

    2023.01.21 09:00

  • 전통적 한옥이 '딴채' 품었다…현대의 맛 제대로 살린 이 곳 [퍼즐]

    전통적 한옥이 '딴채' 품었다…현대의 맛 제대로 살린 이 곳 [퍼즐]

     ━  [퍼즐] 박나니의 한옥 이야기(12)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옥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고 있다. 회색빛 바다와도 같은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가 이런 주거 방식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훨씬 더 개방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지닌 우리의 전통 한옥에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이다. 전통적이라고는 하나 요즘 한옥은 한옥의 외관은 유지하되 내부는 현대적인 생활방식에 맞춰 변한 한옥이 많다. 한옥 이야기는 지난 2019년 발간된 책『한옥』에서 다루고 있는 한옥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어두운 색감의 목재와 기와지붕 덕분에 이 고풍스러운 주택은 자연스럽게 시골 풍경의 일부분처럼 느껴진다. [사진 이종근]   화동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리에 자리 잡은 화동재는 『한옥』에서 유일하게 도심이 아닌 곳에 위치한 한옥이다. 시골이라는 배경 탓에 이 집이 언뜻 앞서 소개한 가옥들보다 더 전통적인 집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전통적 외관과는 달리 현대적인 딴채가 함께 존재하는 집이다.   이 집에서 눈에 띄게 현대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공간이다. 단순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띤 이 공간은 목재가 곳곳에 사용되어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별채에 위치한 넓은 목욕탕은 한국의 온천에서 흔히 볼 수 있듯 가족 목욕을 위한 것으로 특히 손자손녀들에게 행복한 목욕 시간을 제공한다. 다이닝룸은 개방형 주방과 연결되어 있다. [사진 이종근]   주택의 정문이 위치한 딴채는 목욕탕이 있는 채, 부엌이 있는 채 그리고 안채와 사랑채를 겸하는 채 등 총 3채로 구성되어 있다. 목욕탕과 안채 사이에 위치한 정문으로 들어서서 좁은 통로를 지나면 도시형 전통가옥을 연상시키는 긴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이 마당을 가로질러 초목 사이로 걸어가다 보면 낮은 언덕 위에 한옥 본채가 나타난다.   이 집의 현대적 공간으로 이동할 때는 숲길을 지나가야 한다. 이 숲길은 전통 가옥과 현대식 공간을 자연스럽게 분리해줄 뿐만 아니라 비현대적인 부분을 시야로부터 가려주는 역할도 한다. 목욕시설이 있는 별채는 그 왼편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 이종근]   화동재의 인테리어는 전통 미학을 엄격하게 따라 최소한의 멋만 살렸다. 난방을 위해 설치한 온돌방은 바닥은 옻칠한 종이로, 벽은 한지로 마무리한 작은 공간이다. 한옥 본채에는 다락처럼 높게 만든 누마루가 있는데, 그 끝에는 둘러 막힌 현관이 위치해 날씨가 따뜻할 때는 누마를 개방함으로써 자연과 맞닿은 넓은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부엌은 주택 전체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며, 사람들에게 모임과 편안한 식사를 위한 장소를 제공해준다. 소나무 판자를 이어 만든 천장은 건축가 조송룡이 설계했다. [사진 이종근]   화동재는 별장으로 쓰이기 때문에 가족과 손님들이 여유 있게 쉴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집주인과 가족들은 현대적인 딴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데, 특히 부엌 칸과 안채는 밝게 탁 트인 공간이어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안성맞춤이다. 큼지막한 창문을 통해 안뜰이 보이고, 부엌 칸에서는 언덕 위에 있는 한옥 본채가 바라다보이는 이곳은 참 정겨운 장소이다.   온돌식 보일러 시스템을 사용하는 도심형 한옥에서 굴뚝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데, 이 굴뚝은 나무를 넣어 불을 지피던 전통 난로의 일부분이다. 툇마루의 두 면에 맞닿은 부분에서 발견되는 장식이나 콜라주 형식의 화강암 벽 그리고 외벽 아랫쪽에 움푹 파인 형태로 만들어진 돌절구는 한국 전통 디자인의 아름다움과 함께 장인들의 멋진 예술세계를 잘 보여준다. [사진 이종근]   이 가옥은 전통과 현대, 격식과 비격식, 세련됨과 소박함의 대비가 뚜렷해서 언제나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실용적인 생활공간인 딴채와 한옥 본채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딴채와 본채를 오가며 자연과 자연스럽게 접촉하게 되고, 본채가 현대적으로 바뀌어야 할 필요성에서 자유로워지며, 아울러 전통을 잘 보존해야 할 필요성을 더 각별히 느끼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   2000년에 지어진 이 집은 무성한 수목으로 둘러싸여 마치 수백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듯한 고풍스러움을 자아낸다. [사진 이종근] 박나니 작가 puzzletter@joongang.co.kr

    2023.01.15 09:00

  • 골프는 안 늘고 운전실력만 늘더라? 장롱면허 탈출한 사연 [퍼즐]

    골프는 안 늘고 운전실력만 늘더라? 장롱면허 탈출한 사연 [퍼즐]

     ━  [퍼즐] 서지명의 어쩌다 골퍼(11)       골퍼에겐 운전이 늘 이슈다. 골프백과 보스턴백 등의 짐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골프장이란 곳이 주로 도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4명이 라운딩을 한다고 했을 때 동반자들끼리 짝을 맞춰서 이동하게 마련이다. 동반자 중에 4개의 골프백과 짐이 실리는 트렁크나 좌석이 큰 대형차나 SUV를 갖고 있으면 가장 좋다. 한 대의 차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로 골프 인구가 한창 늘 때는 소위 ‘국민 아빠차’로 불리는 한 대형 SUV 차량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단다. 지금은 중단됐지만 한 모빌리티 플랫폼에서는 골프 전용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도심의 도로와 주차장 등에 초보운전을 알리는 다양한 문구의 스티커가 차량에 부착돼 있다.   모든 게 골프 때문이다. 골프 덕분에 장롱 깊이 묵혀두었던 운전면허증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됐다. 무려 14년 만이다. 내가 운전을 멀리하게 된 건 끔찍한 도로주행의 기억 때문이다. 도로주행 시험은 5번 만에 울면서 패스했다. 한두 번 떨어지니 놀리던 지인들이 4번째 실격당한 뒤 울먹이자 오히려 위로했다. 그 위로가 마뜩잖았던 나는 운전면허 따위 없어도 잘 살겠다고 파워 당당하게 선언했지만, 조롱인지 위로인지를 떠나 거리 위의 다른 차들 때문에 무서워 다시는 운전대를 잡고 싶지 않았다. 모든 차가 나에게 달려들 것만 같은 생각과 함께 도로 위 무법자들이 빵빵거리며 손가락질을 헤댈 것 같았고, 공간지각 능력이 떨어지는 데다 타고난 길치이자 방향치인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서울은 대중교통이 너무 편하게 잘 돼 있기도 했다. 운전하지 않으면 눈과 손이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내가 감당하기엔 비싼 유지비, 빡빡한 주차공간 등 운전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사실 그만큼 운전을 해야 할, 하고 싶은 이유도 많았지만 애써 무시하고 삼십여년을 살았다.    골프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아직 내 운전면허증은 장롱에서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골프를 시작한 이후로 차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졌다. 코로나 덕분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탓이기도 했다. 30대 미션 중 하나인 오너드라이버가 되자는 계획을 실천하기에 시간이 너무 안 남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뚜벅이 골퍼에게는 운전이 간절했다. 나는 골프를 시작한 뒤로도 오랫동안 뚜벅이 생활을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은 택시를 타고 가기도 했고, 주로는 함께 라운딩을 나가는 동반자의 차를 타고 함께 가기도 했다. 주유비나 도로교통비를 지불하거나 밥이나 차를 사는 등으로 보답하고자 했지만 늘 신세를 지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같이 라운딩을 나가는 동반자들에게 괜히 민폐인 것 같아 눈치가 보였다. 아마도 지난한 눈치골프의 시작이 여기서부터였던 것 같다.   수도권의 한 골프장에 부착된 주차 안내문   골프를 시작한 이후 생긴 여러 가지 로망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골프연습장이다. 날씨 좋은 한가로운 주말 골프백을 싣고 골프 연습장에 들러 트렁크에서 골프백을 꺼낸 뒤 한쪽 어깨에 메고 올라가 여유롭게 연습하는 모습이다. 이게 뭐 대단하냐 싶지만 뚜벅이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운전을 하지 못하면 연습장을 갈 때도 운전을 하는 친구나 가족의 힘을 빌려야 한다. 골프를 주체적으로 잘 즐기려면 운전이 필수다.     또 하나 동틀 녘에 하는 운전이다. 어느 주말 이른 새벽, 동반자 차를 얻어 타고 골프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동반자는 미안하다는 말을 연거푸 하는 내게 “골프장에 가는 길에 하는 새벽운전은 내게 해방”이라고 했다. 이제는 나도 안다. 도로 사정이 한적한 새벽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운전하는 맛을 말이다. 물론 돌아오는 길의 사정은 다르다.    어느덧 오너드라이버 3년 차.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듯, 남이 해주는 운전이 최고라고도 하지만 아직은 운전이 즐겁다. 연수를 받고 초반엔 시외 골프장은커녕 골프연습장 가는 길에도 헤매기 일쑤였지만 골프 덕분에 장거리 운전이 금방 늘었다.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할 것 없이 방방곡곡 누비고 다닌다. 주차는 여전히 어렵지만 말이다. 다만 안타까운 건 골프보다 운전 실력이 빨리 는다는 점이다. ‘뭐든 늘면 좋은 거니까’라고 위로해본다.      ■ 골린이 Tip 「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주차하기 골프장에 들어오면 바로 주차장으로 가기 전에 클럽하우스 앞으로 가야 한다. 클럽하우스 입구에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골프백이 들어 있는 트렁크를 열면 골프장의 직원들이 골프백을 내린 뒤 트렁크를 닫아준다. 이때 운전자를 제외한 동반자가 있다면 먼저 내려 준다.     일반적으로는 직원들이 미리 골프백을 내려주지만 요즘 가성비를 내세우는 골프장의 경우 선 주차 후 직접 캐디백을 갖고 이동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주차할 때는 후면주차 보다는 전면주차를 하는 게 좋다. 골프백을 싣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 서지명 기자 seo.jimyeong@joongang.co.kr

    2023.01.15 09:00

  • [퍼즐] 오래된 빌딩 증축하고 엘베 설치했더니 수익률 '쑥'

    [퍼즐] 오래된 빌딩 증축하고 엘베 설치했더니 수익률 '쑥'

     ━  [퍼즐] 부동산 트렌드 NOW(6)      최근 몇 년 사이 부동산 시장에도 성형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리모델링을 통해 건물의 내·외관을 한층 개선함으로써 임대료와 자산가치 상승을 함께 도모했다는 사례를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단독주택을 근린상가빌딩으로 바꾸거나, 노후화된 빌딩 외관을 단장하거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낡고 오래된 주택이나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후 재매각하는 방법으로 차익을 보고 있다. 부동산 리모델링이 대중화된 만큼 이제는 더 이상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실사례를 통해 좀 더 살펴보자.   수십 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명예퇴직한 후 부동산 투자처를 물색 중이었던 A씨. 어느 날 평소 안면이 있던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건물주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노후화된 근린상가건물 하나가 급매로 나왔는데 혹시 투자해볼 생각이 있냐는 것이었다. 부동산 중개인의 다소 뜬금없는 말이 미덥지 않았지만 일단 발품 팔아 현장답사를 해본 후 매입 여부를 고민키로 했다.   부동산 중개인이 소개한 물건은 준공된 지 30년 이상 된 낡고 오래된 3층짜리 근린상가건물이었다. 해당 건물의 대지면적은 463㎡(140평), 건물 연면적은 926㎡(280평)로 엘리베이터는 따로 없었다. 임대현황을 살펴보니 1층은 중국음식점, 슈퍼마켓, 분식집, 약국, 문구점, 꽃집 등이 있었고, 2층은 내과 병·의원과 한의원, 3층은 성인PC방과 당구장으로 채워져 있었다. 지하층은 모두 공실 상태였다. 부동산 등기사항전부증명서(구, 부동산 등기부등본), 건축물관리대장, 토지대장, 지적도 등을 통해 물건 분석을 하고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를 방문해 시세조사와 상권분석까지 모두 마쳤다. A씨는 투자에 흥미를 느낄만한 몇 가지 재밌는 사실을 찾아냈다.   부동산 리모델링이 대중화된 만큼 이제는 더 이상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사진 pexels]   첫째, 소개받은 근린상가건물은 아파트 대단지(기존 아파트 830세대 및 신규 아파트 1520세대)로 진입하는 초입에 있어 안정적인 상권 확보가 가능해 보였다. 배후지 총 2350세대 아파트의 입주민이 출·퇴근이나 등·하교 시 반드시 해당 건물 앞으로 지나가야 했다.    둘째, 도보 5분 거리 내 지하철역 개통이 예정돼 해당 근린상가건물 앞 유동인구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상권의 확장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상가 앞으로 지나다니는 유동인구 수가 중요하다. 지하철이 신규 개통될 경우 과거 마을버스나 승용차를 이용했던 사람 중 적지 않은 사람이 지하철을 이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동인구의 증가는 상권의 확장 및 활성화, 임차인의 매출액 증가로 이어졌고, 이는 임대료 상승으로 되돌아왔다. 신규 지하철역 개통은 부동산 투자 시 확실한 매력 포인트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셋째, 비록 외관은 낡고 노후했지만 비교적 튼튼하게 건축돼 골조가 튼튼했다. 대지면적이 넓은 반면, 건물의 연면적은 작아 증축 또는 리모델링 시 그 효용성이 매우 커질 것으로 기대됐다. 실제로 토지이용계획확인서를 열람해본 결과 용도지역이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확인됐다. 서울시의 경우 3종 일반주거지역의 건폐율이 50%이고, 용적률이 평균 250%임을 고려할 때 현재 3층 규모의 건물은 향후 2~3개 층 증축이 가능해 총 5층 내지 6층 규모로 확장이 가능하다. 또 대지가 넓은 만큼 리모델링 시 엘리베이터 설치가 용이하다. 증축으로 인한 임대면적의 확대, 엘리베이터 설치에 따른 건물의 기능향상 등을 기대할 수 있어 임대수입의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됐다.   끝으로 임대현황표를 살펴보니 8년 이상 된 장기임차인이 많았던 반면, 임대료 수준은 주변 시세보다 20~30%가량 저렴했다. 게다가 임차인 중 일부는 임대인(건물주)과 개인적 친분이 두터워 오랫동안 임대료 인상 없이 사용해온 상태였다. 이런 상황은 A씨에겐 오히려 매력 포인트이자 호재다. 해당 건물의 경우 상권이 양호한 만큼 향후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 후 우량 임차인으로 교체한다면 큰 폭의 임대료 증액도 가능해 보였다.    A씨는 이 건물을 시세보다 다소 저렴한 금액에 매입하기로 결정했고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합의된 부동산 중개수수료(매매가의 0.4%)와 취득세(매매가의 4.6%)를 포함해 35억원을 넘기지 않았다. A씨는 1년 6개월 후 약 5억원을 들여 엘리베이터 설치와 3개 층 증축 공사를 포함한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를 마쳤다. 2022년 말 기준 해당 건물의 시세는 90억원을 호가한다. 매월 들어오는 임대료 3000만원을 제외하고 부동산 가치상승으로 인한 투자수익률만 157%에 달했다. 이동현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puzzletter@joongang.co.kr

    2023.01.07 10:01

  • [퍼즐] 5평 원룸이면 혼자 살기 충분?…적어도 몇 년은 살아봐라

    [퍼즐] 5평 원룸이면 혼자 살기 충분?…적어도 몇 년은 살아봐라

     ━  [퍼즐] 최창연의 원룸일기(13)      ‘5평 원룸이 충분하다’라는 말은, 적어도 그 공간에서 몇 년은 살아본 뒤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독립해 나만의 집이 생겼을 때는 너무 기뻤다. 처음 해보는 요리에 스스로를 기특해하고, 냉장고에 맥주캔을 채워 넣으며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실감을 했다. 축하하러 온 친구들과 좁은 방에 누워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옹기종기 잠들 땐 여행 온 기분이었다. 청춘의 방에는 추억이 차곡차곡 쌓인다.   5평의 방은 크지 않았지만 있어야 할 건 다 갖춘 집이었다. 1구 인덕션과 개수대 하나, 싱크대 아래 9kg 소형 드럼세탁기가 빌트인 되어있었다. 책상과 옷장이 옵션으로 딸린 집이었다. 거기에 3단 서랍장과 옷걸이 행거까지 들여놓으니 작은방의 3분의 1 정도가 채워졌다.   있을 것은 다 있는데, 문제는 모두 조금씩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빠듯함은 사람을 조바심 나게 한다. 1구 인덕션으로는 김치찌개를 끓이며 동시에 계란 프라이를 할 수 없어 허둥댔다. 개수대가 하나라 설거지도 바로 해치웠다. 친구들이 여럿이 오면 그릇이 부족해 일회용품을 썼다. 빨래 건조대를 펼치면 화장실로 가는 길이 막혀서 마르는 순서대로 얼른 개었다. 이사 후, 나의 첫 공간을 어떻게 꾸밀까 알아보다 결국은 아무것도 들이지 않는 게 가장 쾌적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림 최창연]   그 집에서 나온 뒤, 지금의 원룸으로 이사 왔다. 집주인의 말로는 이 일대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원룸 건물이라고 했다. 옛날에 지어진 덕에 방이 아주 컸다. 새로 올리는 원룸 건물들은 아주 잘게 쪼개져 있었다. 많이 쪼갤수록 많은 세입자를 들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건물이 많이 낡았음에도 이 집을 선택한 이유는 크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식탁과 전자레인지를 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고향으로 보내던 이불과 계절 옷도 베란다에 보관했다. 김치찌개를 끓이면서 함께 계란 프라이를 부칠 수도 있고, 밥을 먹은 뒤 설거지를 쌓아둘 수도 있었다. 오래 널어두는 빨래는 바싹 말랐다. 공간이 조금 더 넓어졌을 뿐인데, 마음이 훨씬 여유로워졌다.   한 사람에게는 얼마의 공간이 필요할까? 얼마 전, SNS에서 청년 주택의 기준 평수가 5평이라는 것에 여러 다른 이야기가 오고 갔다. 거칠게 나누면, 그 정도 가격에 신축 건물 5평이면 감사할 일이라는 이야기와 적어도 7평은 되어야 인간적인 삶이 가능하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서울 중심가의 쾌적한 신축 건물에 저렴한 가격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복지이다. 원룸텔이나 고시텔에 비하면 훨씬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5평이 인간다운 생활의 필요충분조건을 만족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5평 안에 필요한 것을 갖출 수는 있지만, 충분하다고 느끼기는 부족하다.   국토교통부가 정한 최저주거기준은 1인 14㎡(약 4.2평)이다. 2인은 26㎡(약 7.8평), 3인의 경우엔 36㎡(약 10.5평)로 정해져 있다. 2011년에 정해진 기준이고, 청년 주택은 이 기준에 맞추어져 있다. 최소한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공간일 뿐이다.   코로나를 겪으며 공간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코로나 확진이 되고, 동생이 따로 격리할 공간이 없어 급하게 숙소를 알아볼 때 느꼈던 속상함, 한 사람이 온라인 화상 모임을 할 때 나머지 한 명은 다른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9평의 공간도,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니 엄청 답답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일만 하는 존재가 아니듯이, 집은 잠만 자고 나가는 곳이 아니다. 나의 공간에 필요한 가전과 생필품 외에 취향도 채우고 싶다.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옷도, 계절 가전도 많이 필요하다. 우리 집만 해도 공기청정기, 가습기, 제습기를 계절마다 번갈아가며 튼다. 그런 것들을 모두 두고도 여유 공간이 남아 내가 좋아하는 액자를 걸고, 화병을 둘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공간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금의 답답함을 견딘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아끼며 버틴다고 해서, 넓은 아파트에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필요한 것들이 다 있는데도 조바심이 날 때면, 마음이 슬퍼진다.   절실한 누군가에게 청년 주택의 5평은 필요한 도움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에게 그 공간은 너무 좁아서 벗어나고 싶은 곳일 수 있다. 주거공간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 머물러 사는 공간’이니까. 그러니 5평이면 충분하다는 그런 이야기는, 적어도 그 공간에서 몇 년은 살아보고 이야기하자. 최창연 그림작가·물리치료사 puzzletter@joongang.co.kr

    2023.01.07 09:00

  • 대문 밖은 허름, 속은 '세련' 그 자체…창성동 한옥의 매력[퍼즐]

    대문 밖은 허름, 속은 '세련' 그 자체…창성동 한옥의 매력[퍼즐]

     ━  [퍼즐] 박나니의 한옥 이야기(11)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옥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고 있다. 회색빛 바다와도 같은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가 이런 주거 방식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훨씬 더 개방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지닌 우리의 전통 한옥에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이다. 전통적이라고는 하나 요즘 한옥은 한옥의 외관은 유지하되 내부는 현대적인 생활방식에 맞춰 변한 한옥이 많다. 한옥 이야기는 지난 2019년 발간된 책『한옥』에서 다루고 있는 한옥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찰스 임즈(Charles Eames)가 디자인한 솔질 된 알루미늄과 가죽 안락의자 그리고 오토만이 이 작은 현대 한옥의 전반적 분위기를 잡아준다. 집안 전체에 사용된 은회색 화강암 바닥 타일은 시각적으로 탁 트인 느낌을 안겨준다. [사진 이종근] 창성동 집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건축가이자 집주인인 서승모 소장이 설계한 서울 서촌 창성동 도심 속의 도시형 전통 가옥이다. 이 집은 조그마한 한옥이 현대적 생활방식에 얼마나 잘 맞추어 개조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이다. 서촌은 경복궁 동쪽 일대의 한옥마을로 유명한 북촌과 대비해 경복궁 서쪽 지역을 일컫는 별칭이다. 경복궁을 기점으로 좌·우측에 위치한 서촌과 북촌은 서로 닮은 듯 다른데, 서촌 일대의 한옥들은 북촌에 비해 크기도 작고, 1930년대 대규모 한옥지구 개발의 여파가 닿지 않아 전체 규모 또한 작다.   안뜰이 채광과 환기에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그 넓이는 더 많은 생활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바닥에 쌓여 있는 책과 잡지들은 거실과 식당을 구분하는 일종의 칸막이 역할을 한다. [사진 이종근]   서촌 일대에 있는 한옥들은 필지가 작기 때문에 좁은 공간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서 소장이 처음으로 한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바로 한옥의 독특한 양식에 따른 건축의 어려움 때문이었는데, 이 창성동 가옥에서는 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마당의 규모를 축소해 햇빛이 가득한 ‘라이트 박스’로 변형시켰다. 그 덕에 생활공간은 안뜰에 더 가깝게 위치하게 되었고, 처마의 길이를 줄이는 방법으로 자연 채광을 극대화했다.    이 집은 고전적 건축 기법을 사용해 작은 공간이 좀 더 큰 공간으로 이어지도록 지어졌다. 이 기법은 인식의 허점을 찔러 같은 공간도 더 넓게 느껴지도록 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주방은 비록 작지만 에어컨과 세련된 주방기구들뿐만 아니라 충분한 수납공간과 선반들을 갖추고 있다. [사진 이종근]   붙박이장과 창고는 집의 외벽을 따라 설치했으며, 서 소장의 지극한 요리 사랑에 맞추어 탄생한 현대적인 부엌에도 붙박이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좁은 부엌을 넓고 사용하기 편리하게 설계했다. 이처럼 집주인이 독신으로 살며 처음 이 한옥을 개조할 당시부터 현재의 가족을 꾸리기까지 이 창성동 가옥은 많은 변화와 진전을 보여왔다.   부엌에서 식당으로 이어지는 풍경은 개방형 선반들을 비롯한 붙박이 가구들이 좁은 공간 안에서도 얼마나 단정하고 알뜰하게 설치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진 이종근]   이 가옥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한때 마당이었던 공간을 활용해 만든 긴 유리 복도이다. 비록 생활공간은 아니지만 콘크리트 바닥 위에 삼면이 유리로 둘러싸인 이 공간은 필립 존슨의 글래스 하우스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서 소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햇빛을 복도와 통로에 잘 들게 하기 위해 좁은 남향 창문에 세모난 덮개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탁 트여 있지 않은 공간은 욕실뿐이다. 전통과 과격하게 결별한 형태로 구성된 이 집은 하나로 이어지는 큰 공간을 가구 배치를 통해 용도에 따라 분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사진 이종근]   서 소장이 개조한 이 가옥의 또 다른 특징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공존이다. 한옥의 미적인 매력과는 별개로, 전통적 요소를 수용하는 것은 비용을 절감해줄 뿐만 아니라 예산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단계적인 개조가 가능하도록 해준다. 한옥 리모델링은 대체로 뼈대를 남기고 전체를 보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집주인인 서 소장은 느긋하게 외부 형태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솜씨 좋은 요리사이기도 한 이 한옥의 건축가는 20세기 중반의 복고풍 분위기를 내는 친밀한 느낌의 식사 공간을 집안의 한 부분에 만들어 놓았다. [사진 이종근]   대문 밖에서 바라보면 영락없이 허름한 고택이지만, 이와 대비되는 하얀색의 현대식 대문은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각과 전통을 공존시킨 이 창성동 집은 도시형 한옥 중에서도 매우 눈에 띄는 가옥이다. 박나니 작가 puzzletter@joongang.co.kr

    2022.12.31 10:00

  • [퍼즐] 그깟 추위가 대수랴…겨울 골프의 맛

    [퍼즐] 그깟 추위가 대수랴…겨울 골프의 맛

     ━  [퍼즐] 서지명의 어쩌다 골퍼(10)       야외에서 하는 많은 스포츠가 그렇지만 골프만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스포츠가 또 있을까. 비와 바람도 그렇지만 더위와 추위도 골퍼들에게 쥐약이다. 특히 추위만큼은 웬만한 열정 골퍼들도 감내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골퍼들에게 겨울은 비수기다. 추운 날씨 때문이다. 동계기간에는 휴장하는 골프장도 많다. 그래서 골퍼들끼리 “올해 시즌오프 했어”라는 식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잔디는 누렇고, 땅은 얼었다 녹기를 반복한다. 아무래도 누런 잔디 위에서 치는 게 초록한 잔디 위에서 치는 맛보다 덜할 것이며, 얼어 있으면 볼이 튀어 치기가 어렵고 녹으면 녹은 대로 발이 질퍽거리기 일쑤다.     수도권의 한 골프장에서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눈은 또 어떠랴. 눈이 오면 골프장은 운영을 위해 눈을 페어웨이 가장자리로 쓸어내는데 기온이 내내 영하권을 맴돌다 보면 녹지 않은 눈이 쌓여 가뜩이나 좁은 페어웨이가 더욱더 좁아진다. 게다가 추우면 몸이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추워서 옷을 껴입다 보면 샷도 잘 안 될뿐더러 얼은 땅 위에서 샷을 하다 보면 부상의 위험도 높다. 공이 엉뚱한 곳으로 튀어 날아가거나 눈 위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공을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골프에 바짝 재미가 붙었는데 겨울이라는 이유로 쉬려니 아쉽기도 하다. 그까짓 추위가 대수더냐. 35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얼음팩을 머리에 이고 지고 얼음을 아작아작 씹어가면 라운딩을 했는데 추운 겨울이라고 못할 게 뭐냔 말이다. 해가 비치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안 춥다, 그늘집에서 먹는 정종과 어묵의 맛을 모르는 자는 자고로 진정한 골퍼라고 할 수가 없다(?), 눈 오는 날 눈 쌓인 그린 위에서 퍼팅하면 공이 굴러가다 눈이 뭉쳐져 눈사람만큼 커지는 거 못 봤냐(?)는 식의 이상하고 다양한 썰들에 혹하기도 했다.     쌓인 흰 눈 위로 떨어진 골프공   실상은 골프를 치지 않을 이유가 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겨울골프의 맛을 꼽아보자면 가성비다. 그린피가 봄이나 가을 시즌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일부 골프장에서는 그린피를 특가로 내놓기도 하고 식사 포함 등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기도 한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전국 회원사 골프장의 2022~2023년 동계 혹한기 휴·개장 현황을 조사한 결과 73개 골프장이 휴장 없이 운영한다고 밝혔다.    또 하나 예측 불가한 맛(?)이 있다. 땅이 얼어 있다 보니 공이 잘 튄다. 언 땅 위에 떨어진 공이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다. 예를 들면 300m 파4홀에서 친 티샷이 페어웨이에 떨어진 뒤 통통 튀어 그린 근처에 떨어지는 식이다. 어찌 보면 겨울골프는 실력보다 운이 더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스코어는 장담할 수 없다.     눈밭에서 치다 보면 쌓인 눈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그림처럼 흩날린다. 그야말로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다. 눈 덮인 환상적인 설원에서 즐거운 한 때를 즐길 수 있다. 해가 뜨면 다행인데 해가 없는 날 바람까지 불기 시작하면 눈물 콧물이 흐르고 손과 발은 꽁꽁 얼어 샷은 커녕 움직이기도 쉽지가 않다. 후반으로 갈수록 추워서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어렵사리 18홀을 돈 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면 천국이 따로 없다.   눈밭에서 치다 보면 쌓인 눈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그림처럼 흩날린다. 눈 덮인 환상적인 설원에서 즐거운 한 때를 즐길 수 있다.    다만 겨울골프를 슬기롭게 즐기기 위해서 알아둘 게 있다. 새벽 타임의 첫 티는 최대한 지양한다. 새벽녘에 겨울 찬바람이 얼마나 추운가. 최대한 새벽 칼바람은 일단 피하고 보자. 땅도 더 얼어 있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땅도 새벽 대비 녹아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겨울에 5시간가량 외부에서 골프를 즐기려면 철저한 방한 대비가 필수다. 얇은 옷을 여러 겹 겹쳐 입고 특히 손과 발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겨울용 장갑이나 핫팩 등을 준비하는 게 좋다. 목과 귀를 비롯해 필요하면 얼굴 전반을 감싸주는 아이템으로 마련하자.    추운 겨울 날씨 특성상 몸이 굳은 상태에서 몸을 무리하게 움직였다간 손목, 허리, 어깨, 무릎, 목 등에 부상을 입거나 이미 부상을 입었던 곳이 더 악화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꼼꼼하고 충분한 준비 운동이 중요하다. 라운드를 시작하기 전 근육과 관절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팔, 어깨, 손목, 허리, 목 등 몸 전체를 스트레칭하고 라운딩을 하면서도 틈틈이 스트레칭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골린이에게 겨울골프는 몹시 매운맛이다. 따뜻한 실내 스크린 골프장에서 좀 더 단련해야겠다. 장비도 점검하고 실력도 갈고닦을 수련의 시간으로 삼아야지. 따뜻한 봄이여 어서오라!     ■ 골린이 Tip 「 겨울골프 요령   1. 하프스윙으로 부드럽게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 평소보다 몸이 위축된 경우가 많다. 풀스윙보다는 3/4 또는 하프스윙 정도로 평소 대비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스윙을 하자.        2. 클럽은 평소보다 한 클럽 크게 일반적으로 차가운 공기는 뜨거운 공기보다 밀도가 높아 평소보다 비거리가 덜 나올 수가 있다. 골프공 역시 낮은 기온에 노출되면 비거리 손해가 생긴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겨울에는 비거리가 짧아질 수 있으니 한 클럽씩 길게 치는 걸 추천한다.     3. 컬러볼 필수 눈 위로 공이 떨어질 가능성을 대비해 흰 공 사용은 최대한 지양하자.    」 서지명 기자 seo.jimyeong@joongang.co.kr

    2022.12.30 11:29

  • [퍼즐] 혼인신고 안 하거나 늦게 하는 게 트렌드라고?

    [퍼즐] 혼인신고 안 하거나 늦게 하는 게 트렌드라고?

     ━  [퍼즐] 부동산 트렌드 NOW(6)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30대 중반 김모씨는 2024년 완공을 앞둔 경기도 구리시 인근에 주택 분양권을 보유하고 있다. 신혼집은 예비신부 직장 근처인 강서구에 마련할 예정이다. 김씨는 강서구에 아내 명의로 주택 구입을 희망하고 있지만 투자한 분양권 때문에 고민이다. 보유한 분양권으로 인해 취득세나 보유세 등 세금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으로 인한 일시적 2주택 비과세 특례를 적용받기 위해 혼인신고를 늦추려고 한다. 혼인으로 인한 일시적 2주택 비과세는 혼인 전 각자 1주택을 보유한 사람끼리 결혼할 경우, 5년 내 먼저 양도하는 주택에 대해서 비과세 혜택을 준다.   소득이나 재산 규모와 상관없이 부동산 관련 세금 부담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할 회피의 대상이다. 다만 부부가 혼인신고를 미루고 세금 부담을 줄이는 해법(?)이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     혼인으로 인한 일시적 2주택 비과세는 혼인 전 각자 1주택을 보유한 사람끼리 결혼할 경우, 5년 내 먼저 양도하는 주택에 대해서 비과세 혜택을 준다.[사진 pxhere]   재무적 관점에서 부동산 매입을 목표로 최대한의 저축 비율 설정하고 부부가 투명하게 자금을 관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김씨 부부 합산 수입은 1억원가량이며 결혼 전까지 약 1억5000만원을 저축했다. 30대 중반 직장인 기준 중·상위 소득수준에 속해 중위가구소득 이상이며, 미래 현금유입도 안정적이고 소득도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김씨 소득 대비 주택구매력지수(HAI)와 비교해 보자. 주택구매력지수란 우리나라에서 중간 정도의 소득을 가진 가구가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아 중간 가격 정도의 주택을 산다고 가정할 때, 현재의 소득으로 대출원리금 상환에 필요한 금액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주택구매력지수가 100보다 클수록 중간 정도의 소득을 가진 가구가 중간가격 정도의 주택을 큰 무리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주택구매력지수가 상승하면 주택구매력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아파트의 구매력지수는 11월 기준 35.0으로 통계 이래 가장 낮다. 주택가격이 고평가돼 있기 때문에 금리가 낮아도 대출받아 집을 사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부동산 시장이 하향 안정화되는 시점이 매입 시기일 수 있겠지만 매입가는 여전히 높고 금리도 상승하는 시기에 무리하게 주택을 매입하기보다는 목표 저축액을 꾸준히 마련하면서 좀 더 시기를 저울질할 필요가 있다.     다만 분양주택이 전세계약이 안 될 경우 직접 거주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입주 시점에 해당 지역에 과잉 공급이 되거나 전세계약이 안 될 경우 강서구 신혼 전셋집에서 분양주택으로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분양주택 매각 시점을 따져보자. 전세 계약을 하거나 직접 거주를 한다 하더라도 양도세 비과세 요건 시점은 2028년으로 예상한다. 잔금 때문에 전세 계약을 했다면, 거주 2년 요건을 채우기 위해 세입자를 내보내야 한다. 만약 여기서 이슈가 발생한다면 2030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고 6~8년간 혼인신고를 안 할 수 있는가? 분양주택의 양도차익이 크지 않다면 빠른 시점에 매각하는 것이 적절하다.   분양주택이 2024년 준공쯤 시기적절하게 임차 계약이 된다면 전세금을 분양 잔금으로 어느 정도 납부할 수 있지만, 전세계약이 늦어지게 될 경우 잔금 때문에 추가대출이 발생할 수도 있다. 분양주택의 중도금 대출과 잔금 관련 대출, 신규주택 매입에 대한 대출까지 고려해야 한다. 금리 인상 시기에 무리하게 주택을 추가로 매입하기보다 보유한 분양주택을 안정적으로 만든 후에 매입을 고려하자. 분양주택은 양도차익 큰 기대 없이 매각 가능한 시점에 매각하고, 강서구 인근에 똘똘한 아파트 한 채를 매입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   또 하나의 대안으로 오피스텔을 신혼집으로 고민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오피스텔은 내·외부가 깔끔하고 역하고도 가까우며 층간소음도 덜한 데다 편의시설도 한 건물에 있어 편리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파트는 신축의 경우 전세금이 부담이고, 구축 아파트는 인테리어나 주차문제, 층간소음, 낡은 내부 인테리어가 마음에 걸린다. 정답은 없지만 주택 구입을 계획하고 있다면 아파트 전세를 추천한다. 매매가 흐름이나 매물정보 등의 유용한 소식은 단지 이웃이나 상가 부동산, 입주민 커뮤니티에서 얻기가 좋아서다. 장기적 거주관점에서는 아파트에 사는 것이 도움이 더 많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화용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부동산 팀장 puzzletter@joongang.co.kr

    2022.12.24 12:01

  • [퍼즐] 겨울에 맛있는 제주 '파'…파에서도 단맛이 납니다

    [퍼즐] 겨울에 맛있는 제주 '파'…파에서도 단맛이 납니다

     ━  [퍼즐] 강병욱의 제주 식재료 이야기(5)    이번에 알아볼 식재료는 다양한 음식에 사용되는 ‘파’다. ‘파’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파’에 관련된 짧은 이야기를 먼저 소개해 보려고 한다. 오랜만에 시집간 딸의 집에 들렀는데 가난했던 딸은 보리밥에 파국뿐인 한상차림을 차려냈다. 모처럼 오신 친정아버지에게 간장 푼 물에 파만 썰어 넣은 파국을 낼 수밖에 없었던 딸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하지만 딸의 형편을 눈치챈 아버지는 ‘파는 단전을 보하고 보리는 굶주림을 가시게 한다. 이 두 가지 모두가 자양에 좋은 것이니 고맙게 먹으마’라며 딸의 마음을 위로했다고 한다. 자식의 상황을 배려하기 위한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인데, 아버지의 마음과 ‘파’라는 식재료가 합쳐져서 마음을 울린다. 우리에게 무한한 이로움을 주는 ‘파’는 튀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다양한 식재료의 조합을 이끌어 주는데 그 모습이 마치 아버지의 모습과 같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주재료 혹은 부재료로 빠지지 않는 식재료인 ‘파’. 파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신기하게도 아직 파의 원종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파의 원산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현재 학계에서는 중국의 서부지역인 천산, 즉 파르마 고원 지역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3000년 전 중국 서북쪽에서 재배를 시작했고, 중국은 파를 총이라고 쓰는데 2200년 문헌인 『산해경』에는 파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또 중국 문헌에는 파 품종이나 재배 방법 기록이 있어 오래전부터 파의 재배 방법이 발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파는 11~12월에 수확하며 가장 맛있다. 지금 시기에 차를 끌고 농장 쪽으로 가다 보면 곧 수확을 준비하고 있는 대파를 볼 수 있다. [사진 강병욱]   한국에서는 신라시대 때 파를 재배한 기록이 있지만 훨씬 오래전 북방을 통해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기록에는 ‘마당은 갈라서 파, 마늘밭이 되었다’(『고려사절요』)라고 적혀있으며, 『향약구급방』에 파가 약재로 등장한다. 고려 때 이규보의 문집에도 파와 관련된 시가 나온다. 시를 잠깐 살펴보면 ‘술자리에 좋은 안주가 될 뿐 아니라, 고깃국에 파를 넣으면 맛이 배가하니 그 아니 좋은가’라는 구절이 있다. 파는 이미 오랜 시간 음식의 감초 역할을 하면서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잠시 이야기했듯 파는 음식의 감초뿐만 아니라 약재로도 사용됐다. 파의 비타민과 단백질은 소화를 돕고 땀을 잘 나게 하여 죽으로 끓여 먹으면 감기에 효과적이다. 특히 초기 감기 치료에 효과적인데, 잠자기 전에 흰 줄기를 끓여 마시면 감기가 낫고, 생강을 섞어 다려 마시면 감기로 인한 두통이 멎는다. 파가 몸을 따뜻하게 하고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기침이 심할 때는 파를 잘게 썰어서 헝겊에 싼 뒤 콧구멍에 대고 숨을 쉬면 좋다고 한다. 어린 시절 기침에 감기가 심할 때면 어머니께서 헝겊에 파를 싸주셨다. 당시에는 파가 냄새가 나고 어린 나이에 버티기 힘들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감기에 걸리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끔 냉장고에 파를 찾아 응급처방을 해본다.   오신 채의 하나이기도 한 파는 입춘 날이면 시식으로 먹는 음식에 포함된다. ‘자극이 강해 먹으면 음욕을 일으키고 화를 내게 하며 수행을 방해한다’ 하여 불교에서는 오신채를 금하지만 입춘오신반이라 하여 이른 봄에 나는 매콤한 파, 산갓, 당귀 싹, 미나리 싹, 무 다섯 가지 햇나물로 생채를 만들어 봄의 미각을 돋우었다. 오신채를 구하기 어려운 지방에서는 잎이 푸르고 대가 노랗고 뿌리가 희며 실뿌리가 검은 파를 붉은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으로 오신채를 대신하기도 했다. 이는 파가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효과가 뛰어나서 겨우내 쌓인 피로와 독소를 제거하고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파에는 칼슘, 염분, 비타민 등의 영양소도 풍부하지만 특이한 향취가 있어 생식하거나 요리에 많이 쓴다. 하지만 양념으로 많이 이용하는 만큼 파를 주재료로 한 음식은 그리 많지 않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파강회, 살짝 데쳐 무친 파무침, 코끝이 톡 쏘는 파김치, 고기에 꿰어 지진 파산적 정도다. 음식의 감초로도 많이 사용한다. 생선회와 생선찌개에 파를 넣거나 같이 먹으면 파가 생선 비린내를 중화하고 해독해 준다. 요리의 간단한 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을 대표하는 조미채소 중의 하나인 파는 냉과 열에 강해 연중 재배하며 주로 봄과 가을에 재배한다. 겨울에 동사하며 휴면한 파를 여름 파형이라 부르고, 겨울에 생육을 계속하는 파가 겨울형이다. 겨울형 대파는 저장성이 여름 파형보다 더 좋다. 전남 진도군이 파의 최대 산지지만 전국에서 재배하며 제주도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제주산 파는 제주어로 대파는 ‘큰 파’, 실파와 파마늘은 ‘패마농’으로 부른다. 제주파는 11~12월에 수확하며 가장 맛있다. 지금 시기에 차를 끌고 농장 쪽으로 가다 보면 곧 수확을 준비하고 있는 대파를 볼 수 있다.   가장 맛있다는 제철 제주파를 가지고 간단한 음식을 한번 만들어 보았다. 겨울 시즌에는 많은 파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고 하는데 파무침, 제주말로는 큰 파무침을 추천받았다. 레시피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대파와 양념만 준비하면 90%는 끝이다. 대파는 먹기 좋게 잘라주고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준비하며 찬물에 넣어 색과 영양소가 날아가는 것을 방지해 준다. 양념장은 기호에 따라 변경이 가능하다. 약간의 간장과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주면 가장 기본 장인 양념장이 완성된다. 데친 대파와 양념장을 잘 섞어주면 큰 파무침이 완성된다.    생파를 먹으면 매운맛과 약간 씁쓸한 맛이 나지만 살짝 데치면 그 향이 사라진다. 양념장 맛이 처음 입에 넣었을 때 많이 올라오지만 계속 씹으면 제주파만의 단맛이 조금씩 올라온다. 대파에서 단맛이 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진 강병욱]   생파를 먹으면 매운맛과 약간 씁쓸한 맛이 나지만 살짝 데치면 그 향이 사라진다. 양념장 맛이 처음 입에 넣었을 때 많이 올라오지만 계속 씹으면 제주파만의 단맛이 조금씩 올라온다. 대파에서 단맛이 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육지와 같이 다양한 양념을 입혀서 먹을 수 있지만, 제주에서는 한정된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이런 간단하면서도 담백한 요리가 많이 발달했다.    제주파의 또 다른 특징이 하나 있는데 육지의 파보다 조금 더 진한 색깔의 오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레스토랑에서는 다양한 오일을 만들어서 사용하는데, 그중 대파를 활용한 오일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육지에서 생산된 대파를 활용한 오일을 생각하며, 제조한 대파로 오일을 만들어 봤다. 육안으로도 확실하게 차이가 날 만큼 진한 초록색의 오일을 만들 수 있었다. 그 향만으로도 군침을 돋게 하는 파는 어떤 식재료보다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뿜어낸다. 코끝이 간질간질 해지는 초겨울을 이겨낸 파를 먹으며 건강도 챙기고 우리의 식재료도 챙겨 보자. 넘은봄 셰프 puzzletter@joongang.co.kr

    2022.12.24 10:00

  • [퍼즐] 1월에 쓴 새해 목표 얼마나 이루셨나요?

    [퍼즐] 1월에 쓴 새해 목표 얼마나 이루셨나요?

     ━  [퍼즐] 최창연의 원룸일기(12)     12월이 되면 신중하게 다이어리를 고른다. 다이어리가 모두 비슷해 보여도, 디자인과 크기부터, 종이의 질감과 구성까지 각양각색이다. 개인적으로는 하드커버로 튼튼하게 제본된 디자인을 좋아한다. 가름끈도 꼭 있어야 하고, 속지는 광택이 없고, 도톰해야 한다. 만년형 다이어리에 날짜를 쓰다가 틀린 이후로는 무조건 날짜가 적혀있는 것으로 고른다. 마음에 쏙 드는 다이어리를 위해 온라인 문구점과 대형 서점에 있는 문구 코너를 들락날락하며 오래 고민한다.   다이어리를 고르다 보면, 새해의 기대감이 조금씩 차오른다. 365일의 새로운 하루가 단단하게 내 손에 잡힌다. 새로운 다이어리를 펼치면 분주한 연말의 마음도 차분해진다. ‘올해도 이렇게 가버렸네’라는 의기소침한 마음에서, ‘앞으로는 이곳으로 가보자’라는 씩씩한 마음으로 옮겨간다. 새해엔 어떻게 살아볼까?   매년 다이어리의 첫 장에 그해의 목표를 10개 정도 적어왔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카페에 앉아 거창한 목표를 적다 보면 모두 이룰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문제는 목표를 세우고는, 12월까지 까맣게 잊고 지낸다는 사실이다. 1월에 써둔 목표를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목표를 세우는 것만 좋아하고 달성하는 건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걸.   [그림 최창연]   한다면 하는 사람들, 목표를 세우면 몰입해서 이뤄내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반면 나는 뒤가 무른 사람이라서 새해 단골 목표가 다이어트인데, 어젯밤에도 떡볶이를 먹었다. 10㎏ 감량이라는 목표를 10년째 첫 줄에 쓰고 있다. 목표가 10년 동안 그대로일 수 있다니. 한결같은 것일까, 한심한 것일까.   연초에 세운 커다란 목표들을 이루지 못해 괴로운 마음이 들 때 지난해의 다이어리를 읽어본다. 다이어리에는 주로 할 일을 적어두는 편이지만, 빼곡히 적어둔 할 일들 사이로 간혹 짧은 메모도 적혀있다.   지난 3월의 나는 동료와 이야기를 하고 돌아와 교만함이나 편견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었다. 5월의 나는 10년 장기근속 상여금을 받고 기분이 이상하다고 썼다. 7월 달리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을 무렵, 더 오래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다. 9월부터 영어 10문장 외우기를 시작했다. 10월의 나는 부모님과 함께 소백산으로 여행을 다녀와서 행복하다고 썼다.   다이어리를 넘기다 보면 한심한 마음이 사라지고, 스스로에게 조금 너그러워진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대화, 올해 갔던 여행지, 새롭게 시작한 달리기… 반복되는 업무와 매번의 다짐, 계속되는 실망 속에도 중간중간 마음을 다잡은 내가 있다. 애를 쓰는 내가 있다.   지난해가 아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계획에도 없던 러닝을 시작한 것은 잘한 일이다. 우연히 시작한 달리기로 체지방 3㎏을 감량했다. 붓기가 많이 줄어서 보는 사람마다 살이 빠졌냐고 물어본다. 무엇보다 체력이 정말 좋아졌다. 체력이 좋아지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었고, 일어난 김에 영어 공부까지 시작했다.   말하자면 나는 커다란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는 것보다 조금씩 새로운 습관을 쌓아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커다란 목표 10개보다 삶을 이루는 작은 습관 하나가 훨씬 힘이 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은 습관은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예상치 못한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습관을 지속하다 보면 조금씩 내가 바뀌어 간다.   올해의 다이어리에는 커다란 목표 대신 유지하고 싶은 습관을 적었다. 첫째. 출근할 때 지하철에서는 SNS를 하지 않고, 그날의 영어 문장을 외운다. 둘째. 일주일에 2번 이상은 달리기를 한다. 만들고 싶은 새로운 습관도 적는다. 셋째. 점심을 먹을 때엔 천천히 씹어 먹는다. 적어도 15분 이상!   이 작고 평범한 목표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줄까? 작고 좋은 습관을 오래 지속하고 싶다.   “일상의 습관들이 아주 조금만 바뀌어도 우리의 인생은 전혀 다른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1퍼센트 나아지거나 나빠지는 건 그 순간에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그런 순간들이 평생 쌓여 모인다면 이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의 차이를 결정하게 된다. 성공은 일상적인 습관의 결과다. 우리의 삶은 한순간의 변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임스 클리어,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최창연 그림작가·물리치료사 puzzletter@joongang.co.kr

    2022.12.24 09:00

  • [퍼즐]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한옥…모토한옥

    [퍼즐]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한옥…모토한옥

     ━  [퍼즐] 박나니의 한옥 이야기(10)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옥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고 있다. 회색빛 바다와도 같은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가 이런 주거 방식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훨씬 더 개방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지닌 우리의 전통 한옥에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이다. 전통적이라고는 하나 요즘 한옥은 한옥의 외관은 유지하되 내부는 현대적인 생활방식에 맞춰 변한 한옥이 많다. 한옥 이야기는 지난 2019년 발간된 책『한옥』에서 다루고 있는 한옥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모토한옥 이 집은 가족들 간의 소통과 연결을 도와주는 개방된 공간으로 가득하다. 붉은색 프레임을 지닌 거실 거울은 부모로 하여금 자녀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보살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진 이종근]   관광객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서울 삼청동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모토한옥은 개량 한옥의 세련됨과 색다름을 보여주는 좋은 건축 예시이다. 건축가이자 현 집주인인 시모네 카레나(Simone Carena) 소장은 그의 가족들이 즐기면서 자랄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을 만드는 쪽으로 한옥 개조를 구상했다. 북촌 일대에 있는 다른 한옥들과 같이 이 한옥은 1930년대 대규모 한옥지구 개발의 일환으로 건축되어 가회동 일대의 가옥들에 비해 소박한 모습이다. 이는 삼청동 일대의 한옥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한옥에서의 안뜰이 이 집에서는 야외 놀이를 위한 데크로 변형되었다. 데크의 테두리에는 나무로 된 고정 의자들이 설치되어 있다. 처마 아래에는 자전거를 걸 수 있는 고리가 부착되어 효율적인 공간 수납을 가능하게 해준다. [사진 이종근]   1990년대 개발제한구역 지정 해제 이후 모토한옥 인근에는 현대적인 빌딩이 여러 채 들어섰다. 새로 지어진 건물들로 인해 전망이 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시모네 소장은 마당의 높이를 올려 새로 들어선 빌딩들이 내려다보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마당을 높임으로써 창출된 공간은 그의 가족들을 위한 지하실로 바뀌었고, 마루에는 햇빛을 반사할 수 있도록 거울을 부착한 선반을 채광창 안에 설치해 지하실로 들어오는 자연 광선의 양을 최대한 늘렸다. 이 햇빛 선반은 높은 천장의 개방감을 극대화해 공간을 넓게 보이도록 하는 효과도 만들어낸다.   거실의 ‘담소 자리(conversation pit)’는 옆집 기와 선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게 설계되었다. 이 독특한 구조 덕분에 거실에 앉으면 멀리 있는 현대식 고층빌딩들은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진 이종근]   남쪽으로는 가옥의 아름다운 모습과 더불어 삼청동 일대 및 서울 도심의 전망이 펼쳐져 있고, 서쪽으로는 경복궁과 인왕산의 풍경이 부엌 위로 드리워진다. 부엌 한켠에 만들어진 자그마한 앉을 자리에서 보이는 이 아름다운 광경들이야말로 모토한옥이 가진 가장 멋진 장점 중 하나다.    이곳은 놀이와 업무가 모두 가능한 매혹적인 공간으로, 전통과 창의성이 다채롭게 얽혀 있다. 집의 분위기는 테마 컬러(Theme Color)인 밝은 초록색으로 조화롭게 일치감을 이룬다. [사진 이종근]   시모네 소장은 모토한옥에 추가된 층과 전망대 외에도 건축물 곳곳에서 빛과 색깔을 이용한 실험을 진행했다. 부엌 수납장뿐만 아니라 집안 각지에 연두색을 배치한 것은 한국 전통 수묵화의 대표 주제 중 하나인 대나무로부터 받은 영감을 표현한 것인데, 이는 자연을 집안으로 들여오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입구와 데크 바닥의 채광창 그리고 천장의 가장자리에 설치된 얇은 창문들은 지하층과 지상층 모두에 풍부한 햇살을 제공한다. 고정형 나무 의자가 설치된 야외 데크와 더불어 부엌 위쪽에 설치된 작은 파티오에서는 동네와 그 너머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사진 이종근]   햇살은 외부로 향하는 창문 앞에 포개놓은 기와 사이로 들어와 거실을 환하게 비추고, 마루 위에 설치한 채광창에서 들어오는 햇빛은 부엌을 밝게 물들인다. 주택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부엌이 건축물의 중앙 기점이 되는 것은 이탈리아 출신인 시모네 소장의 문화 계승 의지가 뚜렷하게 엿보이는 대목이다. 대대로 건축가였던 집안에서 자란 시모네 소장은 방문 없는 구조의 주책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이 가옥에도 방문이 없는 개방형 구조를 그대로 적용했다.   안뜰 겸 데크를 에워싸는 유리벽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이 소개한 ‘유리 한옥’의 느낌을 자아낸다. 존슨은 미국 코네티컷에 유리로 만든 집을 소유한 저명한 건축가이다. [사진 이종근]   2000년대 초에 진행된 대다수 한옥 리모델링은 1930년대 한옥지구 개발로 건축된 도시형 한옥들 속에서 전통적인 한옥의 매력을 지켜주는 동시에 완전한 주거 공간으로 변모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 덕분에 모토한옥 역시 전통적인 매력과 함께 시모네 소장 부부와 세 명의 아들이 살아가는 데 편리한 주거공간으로서의 장점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다. 여기 한 발짝 더 나아가, 모토한옥은 보급형 생활한옥을 21세기에 걸맞은 현대적 주거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나니 작가 puzzletter@joongang.co.kr

    2022.12.17 10:00

  • [퍼즐] 신3고 시대...부동산 갭투자는 여전히 유효한 투자법일까?

    [퍼즐] 신3고 시대...부동산 갭투자는 여전히 유효한 투자법일까?

     ━  [퍼즐] 부동산 트렌드 NOW(5)      해외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흔한 부동산 투자기법이 있다. 이른바 ‘갭투자’다. 지금은 주택시장 약세 여파로 다소 주춤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지방까지 갭투자는 인기 있는 부동산 투자기법 중 하나였다.   사실 갭투자라는 용어가 부동산시장에 등장한 지는 제법 오래됐다. 하지만 부동산 투자에 문외한인 사람조차 쉽게 인지할 수 있을 만큼 널리 알려진 것은 최근 몇 년 사이가 아닐까. 물론 여기에는 아파트 투자 열풍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갭투자는 전셋값과 매매가격의 차이, 즉 갭(gap)이 작은 부동산을 전세보증금을 끼고 최소한의 자금으로 매입한 뒤 훗날 매매가격이 상승할 때 매각해 시세차익을 거두는 투자방식을 말한다. 따라서 부동산 매입 이후 반드시 시세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본적인 대전제 하에 투자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갭투자의 주된 목적은 시세차익이다. 저금리 기조와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맞물리면서 갭투자가 유망 투자기법으로 떠오른 것이다. 부동산 투자 동호회나 모임, 경매학원을 찾는 30~40대가 급증한 것도 부동산 갭투자 열풍과 관련 깊다. 아파트 매매가 실거주 목적이 아닌 갭투자 목적으로 변질한 모양새다.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서울시내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매물 전단이 붙어있다. 2022.10.16/뉴스1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부동산 갭투자의 특징을 알아보자. 첫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비율)이 높아야 한다. 당연하지만 매매를 통한 입주보다는 전세 입주를 선호할수록 전세가율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통상 전세가율은 지역이나 개별단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전세가율이 높은 매물을 찾아다니고, 부동산 전문가의 컨설팅까지 받으면서 발품 파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소액투자가 가능할수록 인기다. 실제로 전세가율이 낮은 서울 강남 고가아파트의 경우 갭투자용으로 인기가 없는 반면, 전세가율이 매우 높아 사실상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일부 수도권 외곽 및 지방 아파트 단지는 오히려 인기가 많다.   셋째, 거주보다는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단기적이고 투기적인 성향을 보인다. 갭투자의 성패는 얼마나 빨리 많은 차익을 남기고 빠져나오느냐에 달려있다. 같은 값일 경우 다세대나 연립주택, 단독주택보다는 대중의 선호가 높은 아파트를 사고파는 게 좋다. 갭투자가 유행하던 한때 회자하던 수용성(수원·용인·성남), 안시성(안산·시흥·화성), 오동평(오산·동탄·평택) 등은 서울 아파트 규제 강화 이후 풍선효과를 노린 갭투자자들이 대안으로 발굴해낸 또 다른 결과물이었다.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강남권 아파트에서도'역전세난'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1월 둘째 주(14일 기준) 서초구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보다 0.74% 하락해 2021년 이후 최대 하락폭으로 송파구(-0.77%)와 강남구(-0.53%)의 낙폭도 심화되고 있다. 사진은 28일 서울 강남구 대모산에서 바라본 강남권 아파트의 모습. 2022.11.28/뉴스1   투자자가 부동산 갭투자를 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투자해 큰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전세보증금을 안고 매입하는 투자 속성상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가지고도 큰 수익을 바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주택담보대출이 까다로워지고 대출금리가 급격히 올라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그 효용성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갭투자는 자칫 부동산시장 악화로 매매가격이 하락할 경우 손실이 확대되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부동산이라는 상품은 설령 갭투자라고 하더라도 주식이나 다른 재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돈이 들어간다. 그만큼 투자에 실패할 경우 상당한 후폭풍을 감내해야 한다. 따라서 매각 시점에는 구입한 가격 이상으로 시세가 상승해줘야 한다. 자칫 부동산시장이 하락기로 전환할 경우 패가망신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형성되며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또 변화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거시적 환경과 분양물량, 입주물량, 교통, 상권, 학군 등 수많은 미시적 환경에 따라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을 쉽사리 예측하거나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아울러 부동산 갭투자는 전셋값이 급락하거나 전세수요가 급감해 세입자를 구할 수 없는 상황, 즉 역전세난이 발생할 경우 이른바 ‘깡통주택’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 경우 투자자 본인은 물론, 세입자에게까지 연쇄적인 피해를 안겨줄 수 있어 사회적으로도 그 후유증은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과거 부동산시장이 하락국면으로 접어들던 시기에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입주물량이 과다하게 쏟아지면서 심각한 역전세난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깡통주택이 넘쳐나 결국 사회적·국가적 이슈로 크게 부각된 적도 있었다. 일례로 2017~2019년 사이 신도시 아파트 입주물량 급증으로 경기도 화성, 남양주, 김포, 인천 서구 등에서 심각한 역전세난이 발생했고, 비슷한 시기에 울산, 창원, 거제 등은 지역경제 파탄에 따른 아파트 가격 급락으로 깡통주택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시작된 신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여파로 부동산 갭투자에도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무엇보다 고금리가 문제다. 고금리 후유증에 이미 국내외 주식시장은 급락을 경험했고, 지금도 약세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현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감마저 커지고 있다. 신3고 사태가 부동산시장마저도 얼어붙게 하고 있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갭투자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부동산 갭투자는 ‘양날의 검’과 같다. 자기자본이 아닌 타인자본(전세보증금)을 상당수 끼고 부동산을 매입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투자해 큰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만일 운이 따른다면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성과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투자자가 매각을 원하는 시기에 시장 상황이 나빠져 가격이 급락하거나 마땅한 매수자를 찾지 못하거나 전세 만기가 돌아왔으나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예기치 못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갭투자를 고려하고 있다면 실행하기에 앞서 반드시 경기전망과 입주물량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 경기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거나 인근 지역에 대규모 입주물량이 예정돼 있다면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과장된 광고나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충분한 자금운용계획 없이 섣불리 갭투자에 나서는 어리석음도 경계해야 한다.  이동현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puzzletter@joongang.co.kr

    2022.12.10 10:00

  • [퍼즐] ‘감을 믿지 말자’…2만2000보 걸은 후 깨달은 것

    [퍼즐] ‘감을 믿지 말자’…2만2000보 걸은 후 깨달은 것

     ━  [퍼즐] 최창연의 원룸일기(11)     친한 친구가 경기도에 아파트 전세를 얻었다. 서울 도심에서 꽤 멀고 전세금도 비싸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집을 방문하자 그 선택이 이해되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아파트 단지, 가지런한 보도블록, 부드럽게 여닫히는 창문과 시원한 전망, 그중에도 가장 놀란 건 엘리베이터에도 에어컨 바람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지방 본가도 구축 아파트인 나로서는 처음 보는 시설이었다.   넓은 식탁에서 친구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소파에 앉아 창밖 풍경을 보는데, 마음속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 집에 돌아온 나는 인터넷으로 내 집 마련 부동산 강의를 수강 신청했다.   무주택자인 나도 부동산에 대해 종종 걱정한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데 결국은 집값이 내려가지 않을까? 무리해서 대출했다가 집값이 내려가면 어떡하지? 내가 아파서 일을 못 하게 되면 어쩌지? 집값 걱정이 무색할 만큼 최근 몇 년간 집값은 큰 폭으로 올랐다. 10년을 모으면 살 수 있을 것 같던 구축 아파트가 이제는 30년을 꼬박 모아도 사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하는 걱정은 그냥 변명에 불과했다는 것을. 아무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걱정만 했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온다. 할 수 없다는 변명을 하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공간에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지 않았다. 처음으로 3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강의를 신청한 이유는 내가 꿈꾸어볼 수 있는 집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강의는 온라인으로 한 달간 수강했다. 첫 수업은 적정 예산을 계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내가 현재 가진 종잣돈과 대출할 수 있는 금액을 최대로 더하니 3억 5000만원 정도의 돈이 나왔다. 부동산 앱에서 그 금액으로 구할 수 있는 아파트를 검색했다. 경기도 외곽까지 한참을 가서야 몇 개를 겨우 찾았다. 출근을 하려면 1시간이 넘는 지역이지만 일단 가능한 아파트 목록을 모았다.   [그림 최창연]   두 번째 수업 과제는 분위기 임장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부동산 강의를 들으며 ‘임장’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임장’이란 ‘현장에 임한다’라는 뜻으로 직접 발품을 팔아 그 지역을 알아보는 것을 뜻한다.   임장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분위기 임장(분임)이란 구 단위로 나누어 한 지역을 걸어 다니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 외에도 부동산에 전화해 인터넷에 올려진 매물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 보는 ‘전임(전화 임장)’, 그리고 직접 매물을 보는 ‘매임(매물 임장)’ 등이 있다.   10월 중순, 같은 수업을 듣는 분들과 모여 경기도 어느 지역으로 분임을 갔다. 지하철역에서부터 그 지역의 대장 아파트(시세를 주도하는 아파트)부터 주변 상가를 돌아보며, 크고 작은 단지 20개 정도를 돌아다녔다. 걸으면서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지역인지, 지금 매매가가 적정한지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모두 기초반을 듣는 사람들이므로 사실 아무도 정답을 알지는 못했다. 단지들의 매매가를 검색하며 이렇게 낡고, 작고, 오르막에 있는 아파트도 역시 비싸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분위기임장에서 내가 한 생각은 ‘나는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가?’였다. 건물만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까지 모두 나의 집이다. 살기 좋은 곳은 주변의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고 교통이 편리해 집값이 잘 내려가지 않는다. 좋은 집이 곧 좋은 투자이기도 했다. 그것보다 더 많이 생각한 것은 ‘나는 집을 위해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였다. 집값이 오르길 기다리며 노후 주택에 거주하거나, 1시간 반이 넘는 장거리 통근을 할 수 있을까? 몸테크는 여전히 나에게 어렵게 느껴진다. .   쉬지 않고 2만 2000보를 걸은 우리는 너무 추워 근처 기사식당에 들어가 허겁지겁 9000원짜리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국밥을 먹으며, 요즘 하는 짠테크를 이야기했다. 그러다 보니 막연한 걱정은 사라졌다. 정확히는 걱정이 사라진 게 아니라, 막연함이 사라졌다. 대신 구체적이고 선명한 고민이 남았다.   분임 이후, 시간이 나면 부동산 앱을 켜고 내가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종종 찾아본다. 멀리 외곽으로 나가다 보면 아득한 기분이 드는데, 그럴 때는 가만히 우선순위를 따져 본다. 집을 사고자 했던 이유의 가장 위에는 당연히 내가 있다. 열심히 일하며, 사랑하는 이를 챙기고, 편하게 휴식하는 공간에 대한 욕구가 있다.   부동산 강의를 통해 얻은 교훈이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는 ‘감’을 믿지 말고 제대로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막연히 집값이 내려가길 기다리며 한탄하고 있을 게 아니라. 또 하나, ‘좁쌀은 굴려봤자 좁쌀’이라는 생각도 버렸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지금 모으면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힘이 된다. 열심히 쓰고 있는 가계부가 허튼짓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내가 아낀다.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내가 고민한다. 쪼개서 생각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내가 원하는 삶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2만 2000보를 걷고 콩나물국밥을 먹은 그 날의 나처럼, 하루하루에 열심히 임해보고 싶다. 최창연 그림작가·물리치료사 puzzletter@joongang.co.kr

    2022.12.10 09:00

  • [퍼즐] 누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인왕산 풍경의 맛…삼청동 반송재

    [퍼즐] 누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인왕산 풍경의 맛…삼청동 반송재

     ━  [퍼즐] 박나니의 한옥 이야기(9)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옥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고 있다. 회색빛 바다와도 같은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가 이런 주거 방식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훨씬 더 개방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지닌 우리의 전통 한옥에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이다. 전통적이라고는 하나 요즘 한옥은 한옥의 외관은 유지하되 내부는 현대적인 생활방식에 맞춰 변한 한옥이 많다. 한옥 이야기는 지난 2019년 발간된 책『한옥』에서 다루고 있는 한옥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반송재 서울 종로구 삼청동 언덕 중간쯤에 위치한 반송재는 전통 건축문화 전문가인 이문호 소장이 설계해 2010년에 완공된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화강암 재질의 담장 안에는 두 채의 한옥이 맞닿아 있는데, 각각 45평 규모의 부지에 생활공간을 넓히기 위해 설치한 반지하와 15평 규모의 마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집의 누마루에서는 창문을 통해 인왕산의 숨 막히는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사진 이종근]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집주인은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사학자로서 이 반송재를 연구소 겸 자택으로 쓰고 있다. 전통 한옥은 남성 중심으로 활용되던 사랑채와 여성 중심으로 활용되던 안채의 분명한 분리에서 볼 수 있듯 성별에 따라서 공간을 뚜렷이 구분하곤 했는데, 이 집의 주인 또한 공간의 기능에 따라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채와 주거공간 및 서재가 있는 안채를 확실하게 구분했다.   위채의 반지하는 밝고 흥미롭게 꾸며져 있다. 이 공간이 갖고 있는 멋진 특징 중 하나는 캐나다계 미국인 건축가 겸 디자이너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1980년대에 디자인한 카드보드 가구 시리즈 ‘Easy Edges’ 중 하나인 유명한 안락의자가 비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진 이종근]   이문호 소장은 1990년대 중반, 남부 지방에서 건축학적 가치가 담긴 한옥 복원 작업을 맡으면서 한옥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북촌 한옥지구에 관심을 갖고 북촌 일대 보존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녀의 지극한 한옥 사랑은 사랑채 안에 위치한 조그마한 누마루에 인왕산의 전망을 담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진다. 이처럼 반송재에는 한옥 관련 활동을 열정적으로 해온 집주인의 오랜 경험과 전문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집주인은 집 안에서 거주와 업무를 모두 해결한다. 그 결과 집은 따뜻한 주거용 공간인 동시에 항상 사람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느낌을 준다. [사진 이종근]   반송재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가옥의 비율이다. 처마 길이와 건물 높이의 조화는 한옥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1930년대 도시형 한옥들은 공간의 한계로 인해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 반면에 반송재는 비율과 건물 사이 간격을 통해 전통 한옥단지의 아름다움을 재현해내고 있다.   위채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풍경 중 하나는 비단 마루의 아름다운 나뭇결뿐만 아니라 격자무늬 사이로 보이는 안뜰의 고혹적인 풍경이다. 그림을 그려놓은 듯 아름다운 이 풍경은 오래된 소나무의 그림자까지 살짝 곁들여져 더 운치를 띤다. [사진 이종근]   안채의 반지하에 위치한 연구소에는 수천 권의 미술 서적과 연구 자료와 함께 집주인이 소장한 골동품들이 가득한 반면, 사랑채의 반지하는 접객과 휴식의 공간으로 한층 높고 넓게 개방되어 있다. 안채 마당에서 들어오는 햇살은 현대식 가구들로 채워진 새하얀 부엌을 곱게 물들인다. 박나니 작가 puzzletter@joongang.co.kr

    2022.12.04 10:00

  • [퍼즐] 캐디 없는 골프 어때?

    [퍼즐] 캐디 없는 골프 어때?

     ━  [퍼즐] 서지명의 어쩌다 골퍼(9)      얼마 전 술에 취해 골프를 치던 고객이 경기 진행을 돕는 캐디에게 “무릎을 꿇으라” 폭언하는 등 갑질을 저질러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술에 취한 일행들이 캐디에게 ‘경기 진행을 재촉한다’는 이유로 막말을 했고 이 캐디는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했다고 한다.      몇 년 전 한 배우의 캐디 갑질 논란 사건도 있었다. 그 배우는 플레이를 하면서 매너 없이 행동한 캐디 때문에 기분이 나빠 골프장에 캐디피 환불을 요청하고 골프장 홈페이지와 SNS 등에 골프장과 캐디를 비하하는 글을 올렸다. 반면 캐디는 그 배우가 플레이가 진행되지 않을 만큼 홀마다 사진을 찍어대고 일행과 대화를 나누느라 늑장 플레이를 했다고 항변했다. 이에 그 배우는 기자회견까지 열며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시비를 가리고자 했다.    하나의 시선으로 보기 힘든 두 사건이지만 캐디 갑질 논란은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해묵은 논란이다. 현장에 없었던 사람으로 잘잘못을 따지기엔 적절하지 않지만 캐디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본다. 매너 없는 캐디 때문에 불쾌했던 경험도 있고, 안하무인 플레이를 하는 골퍼도 본 경험이 있기에.    김주형이 6번 홀에서 버디를 한 후 캐디와 축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캐디(Caddie)는 골퍼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크게는 카트를 운전하고, 골프백을 운반하고, 골프채를 건네는 일을 한다. 골퍼가 친 공의 위치를 확인하고, 찾아내는 일도 하며 골프채와 골프공을 닦고 관리하는 일도 한다. 공이 떨어진 지점에서부터 홀컵까지의 거리를 안내하며 공략법을 안내하기도 하고, 골프공이 그린 위에 올라갔을 때 공이 홀로 들어가기 쉽게 라이(lie, 골프에서 공이 멈춰 있는 위치나 상태)도 봐준다. 에이밍(aming, 목표물을 겨냥하는 일)을 돕기도 하고 전문 캐디의 경우 스윙 교정을 해주기도 한다.    프로선수의 경기를 보면 캐디는 단순한 보조 이상으로 경기장의 지형과 기후 등을 고려해 선수에게 경기 전략을 제시하는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프로선수 캐디의 경우 억소리 나는 연봉을 받기도 하고 담당하는 선수가 경기에서 우승하게 되면 우승 상금의 10% 가량을 인센티브로 받기도 한다고. 일부 프로선수의 경우 배우자나 가족이 캐디를 자처하기도 한다. 박인비 선수의 남편 남기협 골프코치의 경우가 그렇다.    지난달 말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남편 남기협 코치를 캐디로 맞아 호흡을 맞춘 박인비. [뉴스1]   길지 않은 초보골퍼의 라운딩 경험 중 캐디 때문에 불쾌했던 경우는 이렇다. 골퍼의 샷이나 행동을 보고 한숨을 쉰다거나 무시하는 식이다. 자신의 불편한 컨디션과 심기를 티 내 분위기를 해치는 경우도 있다. 카트를 자신이 유리하게 이용하고, 골프채를 잘못 가져다주거나 스코어를 잘 못 적은 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험도 해봤다. 경기 운영을 돕기는커녕 캐디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캐디 때문에 기분이 상하는 걸 넘어 플레이 자체를 망쳤다.   물론 무례한 골퍼도 많다. 어찌 보면 국내 캐디 문화는 골프라는 스포츠가 뿌리 깊은 접대 문화와 기득권자들의 과시용 목적에서 시작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반말, 욕설, 성희롱 등의 발언을 일삼는다. “야”, “너”라고 부르며 “채 갖고 와”, “이거 해” 하는 식이다. 자신의 샷이 잘못되거나 플레이가 잘 안 될 때 캐디 탓을 한다. 캐디 들으라는 식으로 화끈거리는 성희롱 발언을 거침없이 하는 경우도 있다.   대다수의 평범한 캐디는 적당히 친절하고, 골퍼의 요청에 성실히 임한다. 좋은 기억을 남긴 캐디는 초보 골퍼가 무안하지 않도록 티 안 나게 라운드에 잘 섞일 수 있게 돕고, 적당한 유머와 센스로 분위기를 만들었다. 초보 골퍼입장에서 경기를 진행하면서 잘 모르는 걸 물어보면 잘 답해주고 (요청이 있을 시)에이밍을 봐주고, 라이를 잘 봐주는 캐디도 좋다. 캐디 덕분에 플레이가 즐거운 걸 넘어 스코어가 좋아지면 더할 나위 없다.   초보 골퍼 시절엔 온갖 눈치가 보이기 마련인데 캐디라는 존재도 그랬다. 동반자만 해도 충분히 부담스러운데 시누이가 한 명 더 있는 기분. 최근에는 캐디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이미 외국 골프장에서는 골퍼들이 직접 카트를 운전해서 다니는 골프장이 많고, 아예 카드 없이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캐디가 필요했던 가장 큰 이유는 캐디백을 이동해야 했기 때문인데 무인주행, 원격주행이 가능한 카트를 이미 대다수 골프장에서 이용할 수 있어서다.   로봇 캐디. 성호준 기자   요즘은 국내에도 노(No) 캐디 플레이가 가능한 골프장이 늘고 있다고 한다. 골프장 입장에서는 캐디가 없으면 진행이 느려져서 꺼리기도 하지만, 캐디 인력 관리가 어려운 일부 골프장은 이에 동참하고 있다고. 골퍼 입장에서는 캐디피를 안내도 되니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캐디가 없으면 카트도 직접 운전하고 채도 알아서 꺼내 써야 한다. 당연히 에이밍도 라이도 직접 봐야 한다. 플레이하기에도 몸과 마음이 바쁜 마당에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다. ‘아, 이래서 캐디가 필요하구나’ 싶으면서도 캐디 없는 플레이도 충분했다.    심지어 요즘엔 로봇캐디도 등장했다고 한다. 로봇캐디는 골프백을 싣고 이용자를 쫓아 코스 정보와 홀까지 남은 거리를 안내하는 등 캐디의 역할을 대신한다. 시누이가 부담스러운 초보골퍼는 노 캐디 플레이가 좀 더 확산했으면 하고 바라본다.      ■ 골린이 Tip 「 골프 카트는 면허 없이도 운전할 수 있나? 기본적으로 골프 카트는 운전면허 없이도 운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골프장 내에서는 코스별로 카트 도로에 깔린 유도선을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는 구간이 많다. 온오프 스위치 등으로 시동을 걸고 정지하게 되는데 이용이 크게 어렵지는 않다. 다만 여전히 골프장 내 안전사고가 왕왕 발생하는 만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급한 커브길 등에서는 속도를 낮춰 운행하는 등 주의가 필요하다.  」 서지명 기자 seo.jimyeong@joongang.co.kr

    2022.12.04 09:00

  • [퍼즐] "임대수익 확정해드립니다" 이 말 믿었다간 낭패

    [퍼즐] "임대수익 확정해드립니다" 이 말 믿었다간 낭패

     ━  [퍼즐] 부동산 트렌드 NOW(3)       오래되고 낡은 지역이 재개발, 신도시, 뉴타운 등의 이름과 더불어 탈바꿈하면 역할과 위상이 달라지곤 한다. 택지가 개발되면서 거주민이 유입되면 그에 맞춰 필요한 기반시설과 상업시설이 함께 조성된다. 이때 ‘분양’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많은 수요자를 현혹하는데 이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상가 오피스텔 분양 매매. 연합뉴스   상권을 평가할 때 체크해야 할 사항이 제법 많다. 입지조건의 구성요소와 적정한 상권 인구, 통행량, 동선, 영업력, 경합성 등 상권을 자세하고 빈번하게 들여다봐야 보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동일 상권 내에서도 유난히 공실이나 손바뀜이 잦은 점포가 있는가 하면,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자그마한 상가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끊이지 않는 점포도 있다. 상가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알짜 입지를 선정하고, 그 입지에 맞는 임차인을 유치하는 등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데 신규 점포나 상권의 경우 이러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어 자칫 함정에 빠지기 쉽다.   신규 상권의 경우 잘 짜인 각본처럼 층별 혹은 구역별 임대전략을 통해 임차인을 유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MD 구성이라고 한다. 흔히 안정적인 우량 임차인으로 꼽히는 병∙의원이나 학원 등을 집중적으로 유치하는 전략이 이에 해당한다. 1층 상가의 경우 편의점이나 약국, 은행, 카페 등을 유치하기도 하는데 일반 음식점이나 아직 임차가 확정되지 않은 점포도 권장 업종 또는 입점 예정이라는 문구와 함께 카탈로그에 높은 기대수익률 등을 표기해 수요를 현혹하곤 한다.   사업 시행 주체로부터 일정 기간 높은 임대수익을 보전해준다는 내용의 임대수익확정서를 제시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말로만 그치지 않고 서류상으로 약정서를 써준다고 하니 혹시 모를 상황에도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 같아 더 안심된다.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선임대 확정, 확정수익률 등의 문구를 보면 일단 긴장해야 한다. 통상 신규 상권의 경우 입점 점포를 미리 확보해 높은 확정수익률을 제시하거나 임대료 예측치를 바탕으로 높은 수익률이 확보 가능한 유망상가라는 표현을 곁들여 분양한다. 하지만, 해당 상권에 어떤 유형의 소비자가 유입되고 어떤 동선을 통해 이동하며 어떤 소비패턴을 보이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채워진 임차인 구성은 입점 초기 상권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임차업종에 충분한 수익구조가 나오지 않아 이탈하거나 변경되기 일쑤다. 이 과정에서 공실이 발생하거나 균형임대료가 당초 제시된 것보다 낮은 수준에서 수렴되기도 한다. 통상 상권이 안정돼 수익률 구조가 적절하게 나오기까지 최소 3~5년 이상이 소요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정 기간 일정 수준의 임대료를 보전해준다는 조건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눈앞에 제시된 수익률이 절대적인 안전장치가 아니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례로 2010년경부터 입주를 시작해 조성을 시작한 청라국제도시의 경우 2017년 하반기에야 상권이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2016년 말 첫 입주를 시작한 위례신도시의 경우 2020년까지도 유령도시 신세를 면하지 못하다 2021년 하반기부터 1층 상가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교통망 계획에 차질이 생긴 부분이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상권 자체가 안정화돼 돌아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어차피 여유자금인데 버티면 된다는 수요라면 그나마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겠지만, 수익형 부동산의 특성상 투입 자금 대비 월 현금흐름이 나타나야 하는 수요라면 이러한 공백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보증된 임대료 기간을 겨우 채우거나 그마저도 다 채우지 못한 채 헐값에 되팔고 빠져나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거래마저 되지 않는 경우에는 이도 저도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자금이 묶여 적지 않은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사진 pxhere]   임대수익확정서를 받은 경우라면 안전할까? 시행사가 아닌 임대관리회사에 일임해 임대수익확정서를 받게 한 뒤 보장 주체가 다르다며 말을 바꾸거나 발뺌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고의로 부도를 내는 경우도 있다. 운영수익을 공유하는 형태로 투자자를 유치하는 호텔 등의 경우 수익이 나지 않는다면 약속된 수익을 지급하지 않기도 하는데, 이 또한 법적으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치는 사실상 없다. 그나마 진짜 임차인이 있다면 다행이다. 심지어 유령임차인을 내세워 분양하는 경우도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초기 진입 상권의 가장 큰 장점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우수한 입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상권이 완성되면서 상가의 목이 달라질 수도, 임차인의 잦은 교체나 공실이 발생하는 등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수도 있다. 미래의 불확실한 수익에 베팅하는 만큼 이러한 단점을 명확히 파악해 접근해야 하며, 제시된 수익률보다 다소 보수적인 수익률 수준을 고려해 의사결정 하는 것이 좋다. 나아가 안정적인 성향의 투자자라면 초기에 진입하기보다 상권이 어느 정도 안정돼 본격적으로 돌아가는 시기에 제값을 주고 들어가는 편이 오히려 현명하다. 결국 제시된 확정수익은 불확실한 수익을 일부 보전해주는 일종의 할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윤희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부동산 팀장 puzzletter@joongang.co.kr

    2022.11.26 11:00

  • [퍼즐] “딱히 쓸 일도 없는데”...마흔 넘어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

    [퍼즐] “딱히 쓸 일도 없는데”...마흔 넘어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

     ━  [퍼즐] 최창연의 원룸일기(10)      말레이시아의 카메룬 하이랜드는 넓고 푸른 차밭 사이로 군데군데 게스트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는 관광지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높은 고원지대라 날씨가 시원해 현지인들이 자주 여행을 오는 곳이라고 했다. 이곳을 여행 일정에 넣은 까닭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밤마다 캠프파이어를 하기 때문에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곳이라는 가이드북의 설명 때문이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4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도착한 카메룬 하이랜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동양인은 나와 내 친구밖에 없었다. 밤이 되니 정말로 캠프파이어가 열렸는데, 가이드북과 다른 점은 술에 취한 외국인들이 굉장히 영어를 빠르게 말했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그 대화에 거의 끼어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심심해진 우리는 일찍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창밖으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속이 상했고, 나는 그곳에 머무는 내내 감기로 고생했다.   딱히 쓸 일이 없는 영어를 왜 공부하느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이다. 15년도 넘은 일인데, 여전히 그 서러움이 생생하다. 어디 그때뿐일까. 출입국 심사대에서의 긴장감, 성희롱하는 가이드에게 한마디 못하고 눈을 피했을 때의 슬픔,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남들 따라 웃을 때의 씁쓸함. 시킨 메뉴가 잘못 나왔는데 그냥 먹을 때의 기분. 웬만하면 오케이를 해버린 순간들이 내 안 어딘가에 고여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라는 책을 읽고,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아침마다 회화 문장을 10개 정도 외우고 있다. 출근길 2호선에서 마른 입술로 영어를 따라 읽다 보면 발음이 꼬인다. 전치사도 자꾸 빼먹는다. 오늘 10문장 외우면 어제 외운 것은 반 이상 까먹는다. 그럼에도 계속 말하다 보면 어느새 입에 달라붙는 외국어의 느낌이 좋다.   [그림 최창연]   이 책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꾸준한 오늘이 있기에 내일은 무한하다.’ 이 문장을 요즘 자주 되뇐다. 사실 40살이 넘으면서 앞으로의 나날도, 지금까지의 날들과 별반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지만, 내일에 대해 기대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채롭고 극적인 경험들은 모두 지나가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종종 우울했다.   그런데 아침마다 꾸준히 영어 문장을 외우면서 내 안의 무언가도 바뀌었다. 극적으로 영어를 잘하게 되지는 않았는데, 꾸준한 노력이 주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날 회화 주제에 따라 이런저런 상상도 한다. 가령 카페에 가면 어떻게 주문해야 할까? 아메리카노 말고, 오트 밀크를 넣은 라테를 먹어야지. 길을 잃으면 어떻게 물어볼까? 구글맵으로 찾지 말고 꼭 현지인에게 물어보자고 다짐한다. 한국에 관해 물어보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한국은 가을이 여행하기 좋은 날씨라고 말해주어야지.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전 세계를 누비는 사람이 되어있다. 낯선 곳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원하는 것을 또박또박 말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아직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일이 남아있다는 기대감도 든다. 시험이 없는 외국어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마음속에 고여있는 서러움의 웅덩이가 조금 줄어드는 느낌이다.   인생에 어떤 행운이 깃든다면, 나는 다시 캠프파이어에 앉아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기회를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매일 10문장씩 외우고 있지만 그때의 나도 영어가 서툴 것이다. 그래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조금 더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천천히 말을 해주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영어 공부가 즐겁다. 더 멀리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꾸준한 오늘이 만드는 무한한 내일을 생각한다. 그런 꿈들을 나는 작은방 한 칸에서 꾼다. 2호선을 타고 가는 직장으로 가는 30분 동안 이런 꿈을 꾼다. 이것이야말로 새우잠을 자면서도 고래꿈을 꾼다는 말에 어울리는 일이 아닐까. 최창연 그림작가·물리치료사 puzzletter@joongang.co.kr

    2022.11.26 10:00

  • [퍼즐] 꿩으로 엿을 만든다고?…겨울철 보양식으로 먹는 '꿩엿'

    [퍼즐] 꿩으로 엿을 만든다고?…겨울철 보양식으로 먹는 '꿩엿'

     ━  [퍼즐] 강병욱의 제주 식재료 이야기(4)   제주는 예로부터 땅이 척박해 농사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육지와는 달리 단백질 공급원도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제주 한라산과 오름의 초지에는 고열량, 고단백질의 꿩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이를 이용한 식품이 많았는데 오늘 소개할 꿩엿도 그중 한 가지다.   꿩은 우리나라 전역에 번식하는 흔한 텃새로 농어촌, 산간초지, 도시공원 등에서 서식하는 대표적인 사냥새인 동시에 우리 민족과 친숙한 텃새다. 지방마다 꿩에 대한 민요가 전해 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말로는 보통 수컷을 장끼, 암컷을 까투리, 새끼는 꺼병이라고 한다.     꿩은 강한 야성을 지녀서 길들이기 어려운 새로 알려져 있다. 철망 속에 가두어 두면 철망에 계속 머리를 박기 때문에 일반 새장보다 크고 자연적인 풀이나 나뭇가지 등을 넣어서 자연과 유사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야생에서 꿩을 만나면 그냥 숲속에 머리를 박고 꼼짝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제 머리만 숨기면 남도 보지 못할 줄 아는 것이다. 머리 나쁜 사람을 두고 ‘꿩 머리’라고 놀리는 이유가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꿩의 수컷은 몸길이가 80~90㎝ 정도며, 그중 꼬리와 깃이 40~50㎝인 것도 있다. 깃은 금속 광택이 있는 녹색이며, 머리 양측에는 귀 모양의 깃털이 서 있다. 깃은 암컷보다 수컷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암컷은 몸길이가 55~65㎝이며, 꽁지깃은 20~30㎝로 짧고, 깃털은 황토색 바탕에 고동색 얼룩무늬가 있다.   꿩은 우리나라 전역에 번식하는 흔한 텃새로 농어촌, 산간초지, 도시공원 등에서 서식하는 대표적인 사냥새인 동시에 우리 민족과 친숙한 텃새다. 우리말로는 보통 수컷을 장끼, 암컷을 까투리, 새끼는 꺼병이라고 한다. [사진 강병욱]   꿩의 산란기는 4월 하순에서 6월까지이며, 10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포란 기간은 약 21일이며, 알에서 막 깨어난 새끼는 곧 스스로 활동하고 먹이를 찾는 조숙성 조류다. 산란기를 거쳐 겨울철에 가장 살이 찌고 영양이 풍부해 제주 사람들은 이때 꿩을 잡았다. 농한기인 겨울에 여럿이 함께 들판을 누비며 꿩을 사냥했다. 꿩 사냥 자체가 즐거운 절기 놀이였고, 꿩엿은 중요한 세시 음식이었다.   옛 문헌을 찾아보면 꿩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본초강목』에서는 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것이 마치 화살 같다. 한 번 날아서 그대로 떨어진다. 크기가 닭만 하고, 아롱진 빛깔에 수놓은 깃털을 지녔다. 수컷은 몸체가 아름답고 꽁지가 길다. 암컷은 무늬가 어둡고 꽁지도 짧다. 성질이 싸움을 좋아한다.”    『삼국사기』에서는 꿩을 왕에게 바쳤다는 여러 기록이 나온다. 꿩을 왕에게 바쳤다는 것은 그것이 드물고 귀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루에 쌀 서 말의 밥과 꿩 아홉 마리를 먹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꿩은 일찍부터 우리 민족이 식용으로 사냥했던 야생조류임을 알 수 있다.   꿩은 예부터 보양 식품으로 주목받았다. 선조들은 까투리 육회, 꿩만두, 꿩 밀국수, 꿩고기 떡국 등을 겨울철 보양식으로 즐겨 먹었다. 특히 꿩고기는 고단백 알칼리성 식품인 데다 불포화 지방산이어서 몸에 이롭다. 기운을 돋우고 당뇨에 좋으며, 간에 좋아 눈을 밝게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맛이 시고 무독하여 몸에 좋으며, 설사를 그치게 한다. 그리고 꿩은 귀한 음식이나 미독이 있어 생식하여서는 안 되며, 9~12월 사이에 먹으면 괜찮다고 한다. 또한 누창을 고친다고 하여 치료제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사실 꿩을 ‘엿으로 만들어 먹는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제주에서 다양한 식재료를 찾아보고 경험해 보면서 꿩이라는 식재료를 활용하는 것은 정말 극소수였다. 지인의 소개로 중상간쪽에 있는 꿩 요리 전문점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꿩을 활용한 코스요리를 선보이고 있었다. 굉장히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꿩 샤브샤브였다. 손질된 꿩도 처음 보았지만 뜨거운 국물에 꿩을 살짝 데쳐 먹는 행위 자체가 독특했다. 식감은 생각보다 부드러웠고 깔끔했다. 꿩고기 안에서 나오는 담백한 기름이 입안에서 맛을 돋웠고, 육수까지 더 감칠맛 나게 하여 주었다. 또 메밀이 주 생산지인 제주에 걸맞게 메밀로 만든 국수를 마지막에 꿩 샤브샤브에 넣어 먹는데, 이것 또한 일품이었다. 일반적으로 닭의 뼈를 활용해 육수를 내는데, 꿩의 뼈로 육수를 만들면 전혀 새로운 맛이 나올 것 같았다. 닭보다는 기름기가 적고 담백한 맛이 더 깊은 느낌이었다.   그럼 제주에서 만들어 먹었던 꿩엿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우선 겨울철 꿩을 잡아 털을 제거해 손질한다. 손질한 꿩으로 육수를 끓여야 하므로 손질한 꿩을 깨끗이 씻는다. 씻어준 꿩을 물에 넣어서 2시간 정도 푹 삶는다. 삶은 꿩은 건져내 푹 식히고, 식힌 꿩은 뼈를 제외한 살을 얇게 뜯어 준비한다. 닭계장에 들어가는 고기의 크기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꿩을 넣고 삶은 육수에 깨끗이 씻은 찹쌀을 넣어주고, 찹쌀이 타지 않게 힘을 주어가며 섞어준다. 찹쌀이 타기 시작하면 타는 향이 올라오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조리된 찹쌀과 엿기름을 섞어 발효 과정을 거쳐 발효된 엿기름 건더기를 걸러내어 6시간 정도 푹 조린다. 엿물이 어느 정도 졸아들면 손질한 꿩을 넣어서 계속 조린다. 조청과 같은 질감이 느껴지면 꺼내어 식힌다. 완전히 식으면 꿩엿이 완성된다. 만드는 과정은 어렵지 않지만 하나의 꿩엿을 만들기 위해 3일의 시간을 밤을 새워가며 작업해야 한다고 한다. 한국의 음식은 어느 것 하나 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없다.   꿩엿의 맛은 일반 엿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꿩고기가 그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오래 씹으면 작은 꿩고기 씹는 맛을 느낄 수 있어 일반 엿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사진 강병욱]   많은 사람이 꿩엿을 생소하다고 느낄 것이다. 나 역시 너무 생소했고 맛 또한 새로웠다. 일반 엿과 다른 점이라면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엿을 먹으면 꿩의 살코기가 은은히 씹힌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푹 고았기 때문에 덩어리가 진 식감이 아닌 어린아이도 부드럽게 씹어 먹을 수 있는 식감이다. 일반 엿이 들어가는 소스를 대신해서 꿩엿을 넣어 소스를 만들어 보니 향은 더 깊어졌고, 좀 더 새롭고 신비로운 느낌이 났다. 처음 맛을 보면 꿩엿에 대한 매력에 듬뿍 빠질 것이다.    그럼 꿩엿은 일반 엿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꿩엿은 지방이 적고 단백질 함량이 많아 위와 장에 부담을 주지 않아서 노인이나 회복기 환자의 보양식 혹은 어린이의 감기와 천식 예방에도 쓰였다 한다. 특히 겨울철, 뜨거운 물에 살짝 넣어 먹거나 원액 그대로 한 숟갈 먹으면 겨울에 감기 한번 걸리지 않는다고 어르신께서 말씀해 주셨다. 꿩엿의 맛은 일반 엿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꿩고기가 그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오래 씹으면 작은 꿩고기 씹는 맛을 느낄 수 있어 일반 엿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꿩엿은 손수 꿩을 사냥하는 노력과 귀한 곡식으로 오랫동안 엿을 고아 내는 노고가 있어야만 얻어지는 음식이었다. 곡식으로 허기를 면하기에도 어렵던 시절에 곡물을 삭히고 오랫동안 고아 곡물로 단맛을 내고 야생에서 꿩을 수렵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집안 어른과 아이들의 건강을 염려하고 기원하는 마음에서 이뤄졌다. 꿩엿은 연로한 어르신에게 우선 드리는 효성의 음식이자 귀한 아이를 위한 집안 어른의 사랑이 담긴 자애의 음식이었다. 넘은봄 셰프 puzzletter@joongang.co.kr

    2022.11.26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