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독]의주비행장 보고 뒤집어졌다, 이병철 자른 김정은 분노

    [단독]의주비행장 보고 뒤집어졌다, 이병철 자른 김정은 분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정치국 확대회의(8기 2차)에서 “간부들의 직무태만”을 질책했다. 북한 매체들이 김 위원장의 이같은 '분노'를 그대로 공개했다. 직후 이병철 당 정치국 상임위원이 해임됐다.   정부 당국자는 13일 김 위원장의 질책과 이에 따른 이병철 해임의 배경은 의주 비행장(군공항)에 있는 방역 설비 미흡이라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정치국 확대회의가 열리기 전인) 지난달 하순 (평북) 의주 비행장을 방문했다”며 “북한이 중국과 교역 및 지원 물자의 야적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의주 비행장에 각종 시설을 건설중인데, 방역시설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크게 질책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북중 국경 군사공항인 의주비행장. 지난 3월 촬영한 사진으로 활주로 양옆이 공사장으로 변해 있다. 기존에 격납고로 사용하던 곳엔 철로가 들어섰다. [구글어스 캡처] 2019년 12월 촬영 구글어스가 촬영한 북중 국경 군사공항인 의주비행장. 활주로 양 옆의 공간이 비어있다. [구글어스 캡처]   북한은 코로나19가 시작된 지난해 1월 국경을 봉쇄했고, 이로 인해 식량과 물자 부족을 겪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월 김 위원장에 친서를 보내 “두 나라 인민들에게 보다 훌륭한 생활을 마련해줄 용의가 있다”며 대북 지원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제한적인 국경 개방을 통해 중국 등에서 지원받은 물품을 의주 공군 기지에 모아 놓고 ‘확실한’ 방역을 한 뒤 반출하려던 계획을 세운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의주 비행장은 북ㆍ중 국경에서 직선거리 2.5㎞, 국경 역인 신의주역에서 8㎞가량 떨어진 국경공항이다.    구글 인공위성 사진(지난 3월 17일 촬영)을 통해 확인한 결과 북한은 의주 비행장의 활주로 양 옆에 다양한 크기의 간이 건물을 지었다. 또 기존 공군기의 격납고로 사용하던 시설을 허물고 철로를 연결했다. 지난해 5월 촬영한 사진엔 없었던 건물이 활주로 옆 공터에 들어서거나 기초공사가 진행 중이고, 공군기 2~3대씩 서 있던 격납고엔 철길도 생겼다.   북중 국경 군사공항인 의주비행장. 지난 3월 촬영한 사진으로 활주로 양옆이 공사장으로 변해 있다. 기존에 격납고로 사용하던 곳엔 철로가 들어섰다. [구글어스 캡처] 2019년 12월 촬영 구글어스가 촬영한 북중 국경 공군기지인 의주비행장. 격납고엔 철로가 아니라 비행기 모습이 보인다. . [구글어스 캡처] 하지만 김 위원장이 공사현장을 직접 찾아 확인한 결과 건물을 지었지만 방역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을 확인했고, 이에 따라 외부 ‘수혈’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자 책임자인 이병철(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박정천 총참모장에게 책임을 물은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북한이 이병철을 해임하면서 "나라의 경제사업과 인민생활 안정에 엄중한 저해를 줬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이병철 등이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데는 국제 사회의 대북제재 등으로 인해 해외 장비 수입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첩보가 있다고 한다. 북한이 11일과 12일 연일 각종 매체를 통해 미국의 ‘인도주의’를 비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정치국 확대회의 직후 “(책임간부들이) 보신주의와 소극성에 사로잡혀 당의 전략적 구상실현을 저애했다”거나 “중대사건 발생”이라고 했을 뿐 이들의 해임 이유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북한 지역에 코로나 19가 발생했다거나 김 위원장이 식량난 해소 차원에서 주민들에게 제공하려던 군량미 부족 등 다양한 관측이 나왔다. 이번 '의주 비행장 공사'는 북한이 중국으로부터의 지원을 받기 위해 내부 준비에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2021.07.14 05:00

  •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충격, 긴장감 조성 유턴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충격, 긴장감 조성 유턴

     ━  김정은 집권 10년의 기록   북한이 지난달 29일 개최한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정치국 성원을 해임했다. 이병철(오른쪽 원)과 박정천(왼쪽 원)이 선거를 뜻하는 손을 들지 않아 인사 대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올해 집권 10년 차를 맞으며 홀로서기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조함이 엿보인다. 1년에 1~2차례 여는 전원회의를 1월과 2월 그리고 지난달에 열었다. 또 회의를 열면 여지없이 정치국원(상무위원, 위원, 후보위원)을 교체했다. 지난 1월 임명한 당 경제부장(김두일)을 한 달 만에, 당 선전비서(박태성)를 임명 6개월도 안 돼 해임했다. 지난달 29일에도 최고위급 간부의 해임과 ‘조동’(이동)이 있었다.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았다. 한 달도, 여섯달도 기다리지 못하는 모양새다. 대외 정세가 녹록지 않은 탓인지, 이 기회에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당시 국가 비상경영을 하며 나타난 병폐의 청산, 즉 북한식 적폐청산인지 내부 단속에 고삐를 죈다. 고모부 장성택과 군부 핵심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각각 2013년, 2015년 처형하며 긴장을 조성했던 것과 유사하다. 집권 초기 보였던 통치술을 10년이 지난 뒤에도 되풀이하는 모양새다.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직후 그를 따라 다녔던 수식어는 ‘파격’과 ‘이례적’이다. 부인 이설주 여사와 팔짱을 끼고 대중 앞에 나서는가 하면, 마이크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이 그랬다. 미국 프로농구계의 이단아로 불렸던 데니스 로드먼을 불러 만나고, 한국과 미국에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등 거침없이 외교무대에 뛰어들었다. ‘은둔의 지도자’로 불리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랐다. 형식적으로나마 정상국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 그가 요즘 달라졌다. “우리(북한)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게 하지 않겠다”(2012년 4월)던 김정은의 자신감은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겠다”(2019년 12월)로 바뀌었다. 북한은 연일 사상전을 강조하며, 주민 동원에 총력전이다. 140㎏을 넘겼던 체중은 시곗줄과 옷이 헐거워 보일 정도로 줄었다.   전환점은 하노이에서 열린 2019년 2차 북·미 회담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 노동당 통일전선부와 외무성이 ‘노선 투쟁’으로 불릴만큼 격론을 벌이며 치밀한 준비를 했다. 앞서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담판에서 새로운 북·미 관계 개선과 적대정책 철회라는 약속을 받아놓은 터라, 하노이 담판에서 제재 해제로 연결시키느냐가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는 공약의 성패를 가를 요소였다.   당시 논쟁에서 과거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다”는 외무성의 논리에 통전부는 싱가포르 1차 회담의 ‘성과론’으로 맞받았다고 한다. 통전부는 “과거 외무성의 협상은 1대 1이었지만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도 있지 않느냐”는 취지의 주장도 펼쳤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보다 적극적인 협상을 주장했던 통전부의 손을 들어 줬고, 2019년 2월 하노이 담판에 나섰다. 하노이 멜리아 호텔의 김 위원장 숙소는 회담 전날 밤새 불을 밝혔다. 회담장에 나타난 김 위원장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가 회담 준비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영변을 내놓을 테니 인민 생활과 관련한 제재 5개라도 풀라”며 접근했던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의 ‘NO’로 결렬됐다.   회담 결렬의 후과는 컸다. 정권 안정화→경제 발전 전략 마련→대외 행보→제재 해제→인민생활 발전(단번도약)으로 연결지으려던 5단계 국정운영 구상은 3단계에서 멈췄다. 무엇보다 주민들에게 회담 결렬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김 위원장으로선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최고 지도자의 결정은 오류가 없기에 신조로 삼고,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40년 넘은 북한 작동 논리(유일사상 10대 원칙)가 치명상을 입을 처지였다. 평양 주민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고 떠났지만, 빈손 귀국을 하게 됐다. ‘최고존엄의 영상(이미지)’은 흐려질 위기였다. 베트남 일정을 축소하고 귀국하는 기차 안에서 김 위원장은 “내가 이러려고 60시간 기차를 타고 왔냐”는 탄식을 했다는 후문이다. 김 위원장은 보름 뒤 초급 선전일꾼 대회에 서한을 보내 “수령을 신비화하지 말라”며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수령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직후부터 북한이 남북관계를 차단하고 나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노이 회담 결렬의 책임을 한국 탓으로 돌리기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중재인으로 각광받았던 청와대를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부부장이 대놓고 막말 공격을 한 게 방증이다. 손에 잡힐 듯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은 ‘장기전’으로 미뤄졌다.   이런 와중에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개정한 당 규약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표현을 대거 삭제했다. 또 차기 지지세력인 청년 동맹의 이름도 김일성·김정일주의 청년동맹에서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으로 바꿨다. 집권 10년 만에 홀로서기에 나서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코로나19와 자연재해, 대북제재로 불리는 삼중고로 녹록지만은 않다. 지난해 4월 15일(북한은 태양절)과 당창건 기념일(10월 10일)까지 각각 완공을 지시했던 갈마휴양지와 평양종합병원의 공사를 끝내지 못했다. 김 위원장의 ‘인민사랑’을 보여주려던 야심찬 계획이 대북제재 등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대외 협상이 재개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28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과 관련한 장문의 특집 기사를 실었다. ‘승리와 영광으로 빛나는 위대한 혁명영도의 10년’이란 제목이다. 신문은 “기적의 세월을 안아온 우리 조국의 10년, 참으로 많은 것을 보았으며 체험했다”고 지난 10년을 정리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의 말을 실었다. “10년간 나의 사업을 총화(결산)해보면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과 위대한 장군님(김정일)께서 열어주신 주체의 한 길을 따라 걸어온 나날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영원히 한 길을 가리라’, 바로 이것이 나의 신념이고 의지”라고 밝혔다. 하노이의 충격 이후 김 위원장은 46년을 지도자로 있었던 할아버지와 후계자 생활을 포함해 37년간 권좌에 있었던 아버지의 경험을 반추해 본 듯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극도의 경제난에 처했던 1997년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5년 뒤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통해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갖고 소원했던 북중 관계도 복원했다. 결국 외부와의 소통이 정답이었던 셈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남측 언론사 사장단 방북 때 전주 김씨의 시조 묘소 방문 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한 길’이 은둔의 길이 아닌, 외부와 소통하고 단번도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개방의 길이 되길 기대해본다.       ■ 고개숙인 두 남자, 그들의 운명은 「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달 3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를 방영했다. 이날 오전 노동신문 등 활자 매체에 이어 회의 결과를 동영상으로 제작해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다. 15분 3초 분량으로 편집된 영상에선 두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이병철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박정천 총참모장 등 김정은 시대의 핵심 군부 두 명은 회의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전 회의에서 김 위원장을 보거나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과 달랐다.   두 사람은 회의 막바지에 정책 결정 핵심기구인 정치국 성원을 선거하는 동안 각각 투표권이 있는 정치국 상무위원과 위원이었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손을 들지 않았다. 정치국은 회의 안건을 표결에 부쳐 투표를 할 때 손을 들어 찬성을 표시한다. 북한 매체들이 그동안 정치국 회의 결과를 전하면서 만장일치 찬성이라고 전했던 점을 고려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장면이다. 두 사람이 투표 안건에 반대했거나 이들이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내용 즉, 본인의 해임과 관련한 것일 수 있다는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특히 영상에서 “정치국 상무위원과 위원을 해임하고 선거했다”는 설명의 자료화면으로 이 장면이 방영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날 두 사람의 신상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당국은 아직 누가 이날 인사 대상이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각각 한 때 김 위원장과 맞담배를 피고, 군사 전술의 과외 교사로 알려지며 승승장구하던 이들이 실각한 것이라면 김 위원장의 공포정치가 재현될 신호탄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박수성 기자

    2021.07.02 00:34

  • 평양 심장부 수상한 지하도로…김정은 관사 확 뜯어고쳤다

    평양 심장부 수상한 지하도로…김정은 관사 확 뜯어고쳤다

    평양시 중구역 노동당 본부청사 옆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거처. 2015년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했다. [사진 구글 어스 캡처] 북한이 ‘김정은 시대의 랜드마크’로 꼽고 있는 ‘미래 과학자 거리’를 건설중이던 2015년 5월 평양 시내에 위치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집무실 겸 거처를 대대적으로 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글 어스가 촬영한 과거 위성사진을 본지가 분석한 결과다. 구글 어스가 2015년 5월 21일 촬영한 사진에는 평양시 중구역의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남남동쪽으로 250m(출입문 기준 직선거리) 가량 떨어진 김 위원장의 거처 일부가 공사장으로 변해 있다.    건물의 지붕 절반이 뜯겨 나간 상태이고, 부속실로 보이는 건물이 사라졌다. 또 건물 북쪽 부분의 연회장 또는 집무실로 사용될 것으로 보이는 시설의 대대적인 공사 흔적도 발견됐다. 정원을 재단장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다음해인 2016년 8월 7일 같은 지역을 촬영한 사진에는 사라졌던 부속실이 다시 생겼고, 지붕도 말끔하게 정리된 상태다. 2015년 초부터 그해 중반 이후까지 공사를 진행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①2009년의 당초 모습   평양시 중구역 노동당 본부청사 인근에 위치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거처. 2009년의 모습. [사진 구글 어스 캡처]  ━  ②2012년: 지하 출입구 새로 등장    평양시 중구역 노동당 본부청사 인근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거처. 2012년 촬영된 사진엔 건물 앞에 지하로 통하는 출입구(원안)가 등장했다. [사진 구글 어스 캡처]  ━  ③2015년: 지붕 뜯어내 대대적 공사    평양시 중구역 노동당 본부청사 옆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거처. 2015년 위성 사진에선 건물 지붕을 벗겨낸 채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사진 구글 어스 캡처]  ━  ④올해 1월: 말끔한 지붕과 외부 조경    지난 1월 촬영된 위성 사진. 지붕이 말끔하고, 외부 공간도 깨끗하게 정리돼 있다. [사진 구글 어스 캡처]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 위원장의 동선을 분석한 결과 2015년 5월 김 위원장이 동해안 지역에서 진행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실험을 참관하는 등 원산지역을 방문하는 등 공개활동을 14차례 했다”며 “2015년 김 위원장의 월간 평균 공개활동이 12.7회를 웃돌고, 대부분이 지방에서 현지지도를 집중적으로 한 점으로 이뤄 거처 공사기간중 지방 활동을 대거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김 위원장은 2009년 후계자로 내정된 뒤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북쪽으로 약 400m가량 떨어진 곳을 집무실로 사용했다”며 “이 곳은 김 위원장의 생모인 고용희(2004년 사망)가 생전 머물던 곳이었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2011년)한 뒤 김 위원장이 거처를 본부청사 옆으로 옮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평양 시내와 근교 뿐만 아니라 전국에 특각(별장)을 설치해 숙소로 이용하고 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살아 있을 땐 생모가 사용하던 시설을,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뒤엔 아버지(김정일 위원장)가 머물던 시설을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탈북자는 “김 위원장이 사실상 이곳을 거처로 사용하면서 인테리어 현대화 뿐만 아니라 도ㆍ감청을 방지하는 시설을 했을 가능성도 크다”고 추정했다.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평양 현대화를 위해 대동강변에 고층 아파트를 지어 과학자들을 입주시켰고, 2016년엔 평양판 신도시로 불리는 여명거리를 조성했다. 이 시기에 자신의 거처를 리모델링한 셈이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는 원산의 특각도 평양의 집무실 수준으로 리모델링하고, 특각 인근에 경마장을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 자신의 생모인 고용희의 묘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직선거리로 4㎞ 가량 떨어진 곳에 새로 조성했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의 거처 사진중 눈에 띄는 점은 건물 앞 도로에 지하로 진입하는 출입구가 생긴 사실이다. 정부 당국은 2010년말~2011년 초 지하 출입구를 설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직 정보 당국자는 “평양의 중심부, 특히 노동당 본부 청사 인근에는 유사시 최고 지도자의 이동을 위한 지하 도로가 있다는 첩보가 있다”며 “지하 진입 공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기 직전 이동의 편의를 위해 공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2021.05.12 05:00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돈줄 끊고 전담 경호팀 축소…김덕홍 비운의 망명객 되나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돈줄 끊고 전담 경호팀 축소…김덕홍 비운의 망명객 되나

     ━  황장엽·김덕홍 홀대한 대한민국 정부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김덕홍 전당 자료실 부실장이 중국 베이징 한국 대사관 영사부에 망명한 지 67일 만인 1997년 4월 20일 필리 을 경유해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중앙포토] 모든 것을 보장하고 도와줄 테니 망명만 결행해달라던 금석맹약(金石盟約)은 종잇장이 됐다. 입과 발을 묶더니 오랜 거처인 안가마저 살지 못하도록 다른 곳으로 내쫓았다.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해줄 요량이라 여겼는데 지난 연말 마지막 돈줄마저 끊었다. 새해 벽두부터는 전담 경호팀의 축소를 추진 중이다. 지난 1997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하며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함께 탈북·망명한 김덕홍 전 노동당 중앙위 자료연구실 부실장에게 닥친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정보기관이 82세의 노 망명객에게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속 깊은 아내는 내가 평양을 떠나던 1997년 1월 25일 아침에도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내 아내 박봉실은 우리의 정치 망명이 공표되던 날 자결을 택했다. 순박하고 단순하지만, 속대가 여간 아니게 굳은 내 아내는 그것으로써 곧 엄습할 어마어마한 고통과 굴욕과 두려움에 항거하고자 했을 것이며,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내가 처절하게 감내해야 할 가장 큰 빚과 살을 저미는 고통을 다소나마 덜어주려 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아내는 세월이 갈수록 나를 더더욱 아프게 한다.” (김덕홍 회고록 『나는 자유주의자이다』중에서)   김덕홍 전 노동당 자료연구실 부실장은 엄청난 망명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국행 직후 아내의 죽음을 접해야 했던 건 황장엽(2010년 사망) 전 비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체사상의 망명’ 또는 ‘북한 최고위급 동반 탈북’으로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뒤에는 두 사람의 피눈물이 배어 있었다. 다른 가족·친지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생사를 모르게 됐고, 제자들이나 친분이 있던 지인들은 모진 고초를 겪었다. 당시 우리 정보 당국은 ‘황장엽 여독 청산’의 대상 규모가 3000명 정도라고 파악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 못했을 리 없는데 망명을 결행한 건 1996년 2월 황 전 비서의 모스크바 주체사상 강연이 기폭제가 됐다. “주체사상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아닌 내가 만든 것”이란 황 전 비서의 언급은 북한 요원들에 의해 포착됐고 김정일은 냉랭해졌다. 황장엽은 김덕홍에게 “김정일이 나를 놔둘 것 같지 않다. 욕보기 전에 자살할 수 있게 독약을 구해달라”고 했고, 결국 정치적 망명을 택했다. 막판 결심을 굳히는 데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보낸 친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북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지고 황장엽과 김덕홍의 민간차원 대북사업을 지원하고 신변 안전을 보장하며 황장엽에게는 장관급 대우를, 김덕홍에게는 차관급 대우를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는 게 김 전 부실장의 전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대통령의 약속은 이젠 옛말이 됐다. 최소한의 생계보장을 위해 김덕홍 전 부실장에게 고문직을 부여해온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측은 지난해 12월 11일자로 “해촉 통보, 해촉 위로금 ○○○만원 지급 예정”이란 짤막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국가정보원 산하 조직인 이 연구원은 과거 황장엽 전 비서가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급작스러운 해촉 통보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지난해 11월 원장으로 부임한 김기정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문재인 정부와의 코드 맞추기 차원에서 김덕홍 밀어내기를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또 최근 친여 성향의 국정원장 출신 인사가 연구원 명예이사장으로 위촉되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원장까지 지낸 원로 인사의 용돈 벌이를 위해 김 전 실장의 돈줄을 끊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국전연 측은 “계약만료 건은 당사자가 장기간 고문으로 재직해온 점을 고려해 연구원이 10월 말 계약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연구 자문과 경영 조언을 위해 규정에 따라 명예이사장과 고문직을 운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신변안전 보장 차원에서 이뤄져 온 경호가 축소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부는 최근 청이 맡아온 김덕홍 전 부실장에 대한 경호를 관할경찰서로 이관한다고 통보했다. 이렇게 되면 오랜 기간 김 전 부실장의 의전·경호를 맡아온 전담팀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김 전 부실장의 측근은 “장기간 함께하며 자식처럼 여겨온 전담팀이 떠나면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호팀 안팎에서도 북한 최고지도자에 의해 ‘스탠딩 오더’(시한 없이 언젠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명령)가 내려진 상태인 탈북 인사의 보호에 빈틈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고 한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우선시하는 진보성향 정부가 집권할 때마다 황장엽·김덕홍씨를 비롯한 탈북인사들에 대한 압박성 조치가 이뤄지는 데 따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김 전 부실장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해 임동원 국정원장이 부임하고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되면서 당국과 관계가 꼬이기 시작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히고 있다. 대북 특사팀으로 간 국정원 고위 간부가 “황장엽이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면 용서해주겠다”고 한 김정일의 말을 전해오자 황 전 비서가 “정신 나간 놈”이라고 욕했고, 김 전 부실장도 “국정원이 김정일 심부름하는 곳이냐”고 따졌다는 것이다.   결국 국정원은 그해 11월 ▶외부강연과 출판 금지 ▶정치인·언론인 접촉 금지 ▶대북 민주화 사업 중단 등을 통보했고, 연구소 이사장직 해임 등을 언론에 발표했다. 또 2001년 미 의회와 단체 등에서 6건의 미국 방문 초청장을 받았지만, 신변안전 등을 내세운 김대중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이런 흐름은 이어져 2003년 7월 국정원은 “황, 김을 국정원 안가에서 사회로 배출한다”고 일방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인권 단체가 통제·구금 의혹을 제기한다”는 황당한 사유였고, 아무런 존칭이나 직책 거론 없이 ‘황, 김’으로 불렀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박에 황 전 비서의 미국 행을 마지못해 허용했지만, 김 전 부실장의 방미는 ‘신원조사 미 회보’ 등의 이유로 끝내 불허했다.   김 전 부실장의 명예가 회복된 건 박근혜 정부 들어서인 2014년 9월이다. 당시 관련 인증서를 가지고 온 정부 당국자는 “김 선생은 대한민국에 매우 소중한 분입니다. 그러니 건강을 꼭 회복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상황은 손바닥 뒤집듯 해졌다. “북한 땅을 밟지 못하고 하직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회복시켜준 명예만큼은 가슴 깊이 안고 황장엽 형님을 찾아갈 생각”이라던 노 망명객의 바람은 다시 바람 속 등불이 됐다.     ■ 박봉주 격려한 김정은, 새로운 경제라인에 동기 부여 「 박봉주 격려한 김정은 북한의 ‘경제사령탑’으로 불리던 박봉주(82) 전 노동당 부위원장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식료공장 지배인을 시작으로 북한의 대표적 석유화학 공장의 책임비서를 거쳐 당 경공업 부부장으로 발탁된 대표적인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다. 박봉주는 1984년 외국과의 합작투자를 위한 합영법 제정을 주도했던 강성산과 함께 북한에서 두 번이나 총리직에 오른 인물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실물 경제에 밝고 추진력 있는 박봉주를 ‘7·1경제관리 개선조치’ 시행 이듬해인 2003년 총리로 발탁했고, 김정은도 ‘경제 및 핵 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한 2013년 그를 총리에 임명했다. 그는 정치국 상무위원·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등에 오르며 김정은 정권에서 승승장구했다. 12월 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 마지막 날 휠체어를 타고 등장해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지만 지난해 각종 경제현장을 방문하며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정치국 상무위원 중 최고령이던 그는 지난 5일 개막한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모든 당직을 내려놓았다. 13일 조선중앙TV는 전날 당 8차 대회 폐막 소식을 전하며 새로 선출된 당 중앙 간부들의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던 김정은 총비서가 박봉주와 악수하고 귀엣말을 나누며 웃는 장면(사진)을 내보냈다. 경제실패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북한은 노구를 이끌고 최근까지 주요 경제현장을 시찰하던 박봉주를 김정은이 직접 격려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정유석 IBK경제연구소 북한경제연구팀 연구위원은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선포한 상황에서 경제 원로가 박수를 받으며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새로 구성된 경제라인에 힘을 실어주고 세대교체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1.01.15 00:30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집권 10년 맞는 김정은…“더 끔찍한 새해 될 수도”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집권 10년 맞는 김정은…“더 끔찍한 새해 될 수도”

     ━  2021년 김정은의 정치·국제 캘린더 들여다보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행사 직후인 지난 10월 14일 태풍 ‘마이삭’으로 피해를 본 대표적 비철금속 생산지인 함경남도 검덕지구 복구 현장을 방문해 조속한 공사 추진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2021년 새해는 북한 김정은에게 뜻깊은 시기다. 아버지이자 선대(先代) 수령인 김정일 사망(2011년 12월)으로 절대권력을 세습 받은 지 꼭 10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다. ‘꺾어지는 해’라는 특유의 표현까지 써가면서 5년, 10년 주기를 기념하거나 의미를 부여해온 북한엔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야심 차게 준비한 김정은의 신년 첫 이벤트는 1월 초순으로 잡힌 노동당 8차 대회다. 일당독재와 수령 유일 지배를 양대 축으로 하는 당(黨) 국가 북한에서 당 대회는 새로운 비전 제시와 투쟁 노선, 실적 결산이 어우러지는 잔칫상이다. 그런데 당 대회를 앞둔 평양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드러난다. 집권 10년을 맞는 김정은 체제의 고민을 진단하고 2021년을 조망해본다.    말 그대로 “끔찍한 한 해”였다. 누구의 쓴소리가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 자신의 평가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그는 “끔찍한 올해의 이 시간이 속히 흘러가고 좋은 일들이 차례로 기다릴 그런 날들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한 달 뒤 노동당 창건 75주년 연설에서 나온 그의 고백은 더욱 절박했다. “가혹하고 장기적인 제재 때문에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비상방역도 해야 하고 자연재해도 복구해야 하는 난관에 직면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토로했다. 안팎으로 닥친 3각 파도이자 ‘퍼펙트 스톰’이다. “인민들에게 보상 못 해 면목이 없다”고 고백하며 눈물을 보일만 하다.   문제는 2021년에 더 험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김정은의 신년 캘린더는 만만치 않은 일정으로 가득하다. 먼저 1월 8일 자신의 37세 생일은 노동당 8차 대회 와중에 맞을 수밖에 없다. ‘2021년 정초’ 개최를 예고했던 북한은 그제 김정은 주재 제7기 22차 당 정치국 회의에서 ‘1월 초순’ 개최를 알렸다. 최근 북한 인사와 접촉한 대북 소식통은 “1월 5일부터 10일까지 닷새 정도 일정으로 열린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2016년 5월 7차 당 대회는 나흘간 개최됐다. 그만큼 논의되고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새로운 비전의 부족이다. 특히 경제와 민생 챙기기에서 뾰족한 돌파구가 없다는 건 치명적이다. 김정은은 7차 당 대회 직전에도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 보이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하지만 속 빈 강정으로 드러났다. 결국 지난해 8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두 손을 들었다. 7차 당 대회 발 ‘5개년 경제전략’의 완전한 실패를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80일 전투’ (10월 12일~12월 30일) 돌입을 선언했다. 어제 북한은 80일 전투가 “8차 당 대회 소집을 위한 훌륭한 조건을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경제 성과보다는 당 대회 개최의 명분을 축적하려는 정치 선전사업이었음을 고백한 셈이다.   놀라운 건 김정은의 지시로 진행되던 대형 프로젝트가 줄줄이 좌초되거나 실종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첫 삽을 뜨고, 지난 10월까지 완공하라고 했던 평양종합병원은 아예 북한 매체의 보도에서 사라졌다. 강원도 원산 해변에 짓다가 만 리조트 단지인 갈마해안관광지구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이 5월 완공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했던 순천인비료공장도 가동 소식이 끊겼다. 최고지도자의 말이 먹히지 않는다는 건 동원 가능한 자원의 완전 고갈을 의미한다.   한여름 32회 도쿄 올림픽(7월 23일~8월 8일)의 열기가 김정은 체제와 남북 관계,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지켜봐야 한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의 달콤했던 기억을 가진 북한은 ‘어게인 2018’이란 달콤한 유혹에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경로를 밟을지는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호의’를 믿다가 재앙 같은 하노이 북·미 외교참사를 뼈저리게 경험했다는 점에서다. 서울~평창~판문점으로 이어진 무대가 일본 땅으로 옮겨지면서 남북관계 만이 아니라 한반도와 주변 세력의 각축전이 될 게임이라 선택이 쉽지 않다. 올림픽 개막엔 코로나19 상황도 절대적 변수다.   이즈음 미·중 간 충돌은 더 거세질 수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개최를 공언한 ‘민주주의 정상회담(Global Summit for Democracy)’과 시진핑 주석이 야심 차게 준비 중인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7월 1일) 기념행사는 마주 보며 달리는 기관차 격이다. 한국과 북한 각각 미·중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히 문재인 정부는 틈바구니에서 외교적 선택의 최적점을 찾아야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은 용납 않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굳은 의지는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과 노선을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북전단 금지법 제정에 대한 미국의 날 선 반응과 국제사회의 비판은 그 전조다.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는 김여정의 말이 나오자마자 법 제정을 서두르다 ‘청부 입법’이니, ‘하명법’이나 하는 비판을 받은 정부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가을엔 다시 한반도의 시간이 다가온다. 9월 18일은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남북한이 유엔 회원국이 된 지 30년을 맞는 날이다. 또 12월 13일은 남북 기본합의서(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한 지 30년이 된다. 남북 모두 그냥 넘기기 쉽지 않은 데다 유엔과 국제사회가 역할을 강조하며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12월 김정일 사망 10주기 행사장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중간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다. 엘리트와 주민 속에서 어떤 평가와 여론이 나올지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스스로 ‘애민(愛民)’을 표방하며 몸을 낮추는 이미지를 연출해왔다는 점에서다. 7차 당 대회 때의 실패를 8차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는 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김일성·김정일 시기 망하지 않고 그럭저럭 버텨왔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새해 북한 체제와 김정은을 짓누를 핵심 키워드는 ‘코로나19’다. 확진자가 없는 지구상 거의 유일한 청정국이라고 북한은 주장하지만, 긴장과 두려움의 손발 짓은 진실을 말하는 듯하다. 국제사회의 백신 확보 및 접종 어젠다에서 북한은 완전히 밀려나 있다. 천신만고 끝에 보유한 핵과 미사일은 그 효용이 반감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코로나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가 180만명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핵 공갈은 약발이 제대로 먹히기 어렵다.   김정은의 희망처럼 ‘끔찍했던’ 2020년은 다 흘러갔다. 하지만 ‘좋은 일들이 차례로 기다릴’ 호시절이 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 포기했던 병진노선…북, 은밀하게 회귀하나 「 북한이 내달 초 8차 노동당 대회에서 경제·핵 병진노선으로의 회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한반도전략연구실 책임연구위원은 29일 발표한 ‘미래로의 은밀한 회귀: 북한 8차 당대회 경제기조 전망’ 보고서에서 “제재로 인한 심각한 자원제약 상황에서 전반적 투자가 감소함에 따라 군수투자의 상대적 비중은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임 연구위원은 “대내외 환경 악화 때문에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을 전략적 과제로 추상화하고, 중단기적으로 경제발전과 국방력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병진노선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8차 당 대회에서 이러한 ‘결과론적’ 병진노선의 기조가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연구위원은 그 이유로 지난해 12월 열린 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도 경제건설 총력 집중노선의 유지를 재확인했지만, 외부환경으로 인해 병진노선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함께 암시했었다고 밝혔다.     실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원회의 결과 보고에서 “우리의 외부환경이 병진의 길을 걸을 때에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고 있는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가시적 경제성과와 복락만을 보고 미래의 안전을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8차 당대회에서 채택될 새로운 ‘5개년 계획’과 관련해 임 위원은 “악화된 대외환경을 감안하여 군수투자의 필요성이 역설되는 가운데, 최근 실적이 부진한 농업과 금속 부문에 특별한 강조가 두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

    2020.12.31 00:29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계산하겠다”…다시 도진 김여정의 대남 히스테리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계산하겠다”…다시 도진 김여정의 대남 히스테리

     ━  김여정은 왜 강경화를 타깃으로 삼았나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참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을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보좌하고 있다. 김여정은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의전 등을 챙겼지만, 최근들어 대남·대미 현안 등 통치활동 관여 폭을 넓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갈 데까지 가보자”고 역정 내던 그녀가 꼬리를 내린 건 오빠의 만류 때문이었다. 180억원 짜리 건물 하나를 백주에 폭파하고 나서야 남매의 직성이 풀린 것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그녀의 화병이 반년 만에 도졌다. 이번엔 말꼬리를 잡아 “두고두고 기억하겠다. 계산하겠다”며 목청을 높였다. 거친 말을 다시 쏟아내는 심사를 도무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아무튼 2020년을 이대로 보내기는 싫다는 몽니 꾼의 기질은 여전해 보이니 걱정이 앞선다. 거친 발언과 돌출 행동을 해온 전력을 찬찬히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얘기다.    김여정이 이번에 발끈한 건 북한 코로나19 실태에 의구심을 보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발언 때문이다. 지난 5일 바레인에서 열린 한 국제세미나 연설에서 “북한이 우리의 코로나19 대응 지원 제안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고 김정은 체제의 방역 대처에 문제를 지적한 걸 빌미 삼았다. 김여정은 어제 관영 선전 매체로 발표한 담화에서 “남조선 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중동 행각 중에 우리의 비상방역 조치들에 대하여 주제넘은 평을 하며 내뱉은 말들을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었다”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 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고 비난했다.   강 장관의 발언은 좀 생뚱맞은 측면이 있다. 김정은 정권이 코로나19에 고립적 태도를 보인 걸 두고 “북한을 더 북한답게 만들고 있다”고 비꼰 것이다.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면서 북한이 방역에 집중하는 데 문제가 있다면서 “이건 좀 이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문재인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데 집중력을 발휘해 온 강 장관에겐 탈선이다. 그렇다 해도 김여정의 대응은 지나치게 민감해 보인다. 별로 주목받지도 못한 중동 순방 중의 발언을 끄집어냈다는 측면에서다. 관련기사강경화 '북 코로나' 발언, 김여정 “두고두고 기억할 것”   김여정이 단 네 문장짜리 비난 담화를 낸 배경이 짐작 간다. 그녀는 담화에서 강 장관의 발언을 겨냥해 “그 속심 빤히 들여다보인다”고 했지만, 정작 드러낸 건 자신의 속내다. 문재인 정부에 쌓인 울화를 토해내겠다는 포석이 깔려있을 공산이 크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의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기는’ 식의 행태를 보인 것이다. 강경화 장관의 발언은 그저 기폭제일 뿐이다.   김정은·여정 남매에게는 꿈이 있었을 것이다. 2018년 4~5월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6월 열린 싱가포르 첫 북·미 정상회담은 두 사람을 부풀게 했다. 하지만 8개월 뒤 하노이에서의 만남은 김정은에게 굴욕을 줬다. 그 원통함을 미국에는 따지지 못하고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에 쏟아내려 했다.   그나마 미 대선 직전까지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었다. 지난 10월 김여정이 대미 특사로 워싱턴을 방문하는 깜짝쇼인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가 거론된 건 그중 하나다. 하지만 조 바이든 후보자의 승리는 김정은과 여정 남매에게 당혹감과 암담함을 남겼다. 대선 결과에 대해 아직도 사실 보도조차 못 하며 침묵하는 북한의 모습은 이를 반영한다.   이런 미묘한 시기 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세 관리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양상이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부임하자마자 국회 정보위에 “김여정이 위임통치를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김정은이 스트레스 경감 차원에서 일부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는 차분한 분석보다는 ‘위임통치’라는 자극적 용어를 택했다. “김여정이 후계자이자 2인자”라는 관측이 나오는 등 언론과 여론의 시선이 쏠린 건 당연했다. 김정은으로선 자신의 권력에 왈가왈부하는 모습으로 비쳤을 테고, 김여정에겐 오빠와 자신을 갈라치기를 하려는 ‘남조선의 오그랑수’로 읽혔을 수 있다.   김여정은 강 장관을 겨냥해 “정확히 들었으니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부에 짐을 떠안긴 것이다. 앞서 지난 6월에는 문 대통령의 연설을 트집 잡아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말까지 했다. 김여정이 이처럼 통제 불능의 상황을 보이는 건 든든한 뒷배인 오빠가 있기 때문이다. 또 무슨 저지레를 하든 이를 없던 일로 눈감아주거나 딱 부러진 대응조차 하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가 우습게 보인 이유도 있다. 엄청난 국민 세금을 투입해 지은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지만 사과 요구나 배상, 재방 방지 약속 등을 요구했다는 얘길 듣지 못했다.   압권은 김여정의 말 한마디에 정부·여당이 대북 전단을 막는데 전력 질주하고 법제화까지 추진한다는 점이다. 선봉장 역할을 맡은 게 이른바 민주화 세력을 자칭하는 이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다. 암울했던 권위주의 정권에서 ‘독재 타도’와 ‘민주 수호’의 숭고한 뜻을 알린 대자보와 전단의 가치를 모를 리 없는 그들이다. 통일문제 씽크탱크를 자부해온 한 국책 연구기관은 박사들을 동원해 대북전단 금지를 위한 논리를 개발해 연구보고서라고 내놓았다. 친여성향의 교수·전문가 그룹은 “대북전단법은 ‘김여정 하명법’이 아니라 ‘국민 하명법’”이란 해괴한 논리까지 들고 나왔다.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야당과 일부 비판 세력의 주장은 과한 측면이 있다. 평양 당국과 문재인 정부가 ‘하명’을 주고받기할 정도의 소통이나 신뢰가 가능하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심전심법’이나 ‘심기 챙기기 법률’ 정도가 적합하다. 청와대는 남북 정상 간의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며 그 증좌로 9월 문 대통령과 김정은 간의 친서를 뒤늦게 공개했다. 하지만 행간을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건 상대와의 교감이라기보다는 안타까운 현실 확인과 자기 위로뿐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북한은 지난 4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에서 ‘반동(反動) 사상·문화 배격법’을 제정했다. “반(反) 사회주의 사상문화의 유입·유포 행위를 철저히 막고 사상·정신·문화를 수호하기 위한 법”이란 게 북한 설명이란 점에서 주민의 사상의 자유를 억압할 악법임이 자명하다. 박물관의 유물이 된 줄 알았던 ‘반동’의 재림이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압박해 대북전단 금지법을 트랙에 올리더니 곧바로 또 하나의 갑옷을 입고 양수겸장으로 가겠다는 게 북한 태세다.  이런 상황에 눈감은 정부는 시시포스(Sisyphos) 왕이 울고 갈 대북 감싸기에 일로매진이다. 통일부 장관은 어제 “북한을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대한민국을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게 만드는 것과 직결된다”고 주장했다. 6건의 대북 코로나 방역물자 반출 승인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를 모두 거부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왕 나훈아의 독백처럼 ‘턱 빠지게 웃을 일’만 남게 될 듯하다.     ■ 코로나 3차 대유행에 긴장한 북, 백신 소식에는 침묵 「 북한 노동신문은 9일 평양 대동강변 미래과학자 거리에 위치한 기상수문국에서 방역활동을 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소개했다. [사진 노동신문] 세계적인 코로나19 유행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하던 북한 매체들이 국제사회의 치료제와 백신 개발 소식에는 침묵하고 있다. 9일 자 노동신문에는 코로나19 관련 기사가 10건 실렸다. 북한 비상방역 활동의 성과를 강조하면서, 해외의 코로나 전파 실태를 자세히 다뤘지만 치료제·백신 얘기는 빠졌다.   북한은 지난 7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웹사이트 ‘미래’의 과학기술 성과 코너를 통해 코로나19 후보 왁찐(백신) 개발을 주장한 바 있다. 당시 동물 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면역성이 확인됐고 임상시험에 들어갔다고 발표했지만, 북한의 열약한 보건·의료 시스템에 비춰 체제 선전과 결속을 위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라는 지적이 있었다.   10월 내놓은 북한의 비상방역법은 감염병의 위험성과 전파 속도에 따라 1급·특급·초특급으로 분류해 상황에 따른 대응체계를 규정했다. 북한 당국은 코로나 청정국임을 강조하면서도 지난 2일 코로나 대응 단계를 최고 수위인 ‘초특급’으로 끌어올리며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 세계가 코로나 19의 3차 대유행에 직면한 상황에서 북한 당국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유석 한국수출입은행 북한·동북아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내년 1월 8차 당 대회 준비를 위한 80일 전투의 우선 사업으로 비상방역을 규정한 상황에서 방역의 고삐를 죄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12.10 00:24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김정은의 ‘애민정치’ 띄우기…눈물보다 결단이 필요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김정은의 ‘애민정치’ 띄우기…눈물보다 결단이 필요

     ━  심상치 않은 북한의 최고지도자 찬양 열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 중 울먹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28분 간의 연설 앞부분에 올 한해 겪은 어려움을 토로하며 주민에게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다 눈물을 보였다. [조선중앙TV=뉴시스] ‘악어의 눈물(crocodile tears)’은 거짓과 위선을 은유한다. 이집트 나일 강(江) 악어가 사람까지 잡아먹고 죽은 이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는 고대 서양 전설이 유래다. 실제로 악어는 눈물샘과 턱의 씹는 동작을 관장하는 신경이 동일해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고 하니 과학적 근거가 없는 얘기가 아닌듯하다.   지난달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보인 공개적 눈물이 화제다. 김일성광장에서 한밤중 펼쳐진 노동당 창건 75주년 행사 연설에서 그는 “감사의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다”며 주민과 군 장병을 위로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연설을 이어가던 김 위원장은 끝내 눈물을 터트렸다.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파격이다.    어제 아침 평양에서 발간된 노동신문은 A4 용지 10장 분량의 긴 정론(政論)을 실었다. ‘인민의 목소리, 우리 원수님!’이란 감성적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당 창건 75주 김정은 연설에 시선을 집중한 정론은 “마음속 고백, 마음속 진정은 ‘고맙습니다’ 이 한마디뿐이라고 하시며 복받쳐 오르는 격정에 눈굽(눈 구석)을 적시신 우리의 최고 영도자 김정은 동지”라며 감격스러워 한다. 온 광장이 울음바다, 눈물바다가 됐다고 분위기를 전하더니 “그 격정의 28분간” “영원히 기억할 순간” 등으로 묘사했다.   북한 설명대로 김정은 연설은 잘 짜인 28분 분량의 모노드라마였다. 극장국가다운 연출이었다. 한밤중 레이저와 네온 조명, 그리고 군중의 환호가 어우러졌다. 양복 차림으로 등장한 최고지도자는 2020년 한해를 회고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가 9월 친서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끔찍한 올해”라고 말했던 그 시간이다. 감사와 위로의 말을 이어가던 그는 “노력과 정성이 부족해 우리 인민들이 생활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광장에 운집한 주민과 엘리트 및 군 장병의 시선은 김정은의 눈에, 귀는 그의 갈라진 목소리에 집중됐다. 전례 없는 솔직함에 ‘과오’와 ‘능력 부족’을 스스로 인정하는 최고지도자의 모습에 당원과 주민의 마음은 뭉클했을 수도 있다. 그 밤이 그대로 깊어갔다면 말이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연설 중후반 김정은은 핵과 전쟁억제력을 운운하며 “힘이 없다면 주먹을 부르르 쥐고 흐르는 눈물과 피만 닦아야 할 것”이라고 당위성을 주장했다. 이후 연설은 그의 눈물이나 미안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우리는 강해졌고 시련 속에서 더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말에서는 주민에게 무한 반복의 고통과 인내를 강압하는 폭정의 냄새가 풍겼다. “시간은 우리 편”이란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허풍에 가까웠다. 내년 1월 개최를 예고한 노동당 8차 대회의 청사진도 허망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딱 5년 전 7차 대회에서 “휘황찬 설계도”라며 김정은이 펼쳐 보인 ‘5개년 전략’이 “목표들이 심히 미진 되고 인민생활 향상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8월 19일 노동당 7기 6차 전원회의 결정서)를 빚었다면서도 재탕하려 든다.   전차와 이동식미사일발사대(TEL) 등이 굉음을 울리며 광장에 들어섰을 때 김정은의 눈물은 이미 말라 있었다. 신기한 장난감을 바라보듯 무기개발 총책 이병철과 총참모장 박정천을 연신 불러세우며 질문공세를 하는 김정은의 머릿속에 미안함과 눈물과 솔직함은 이미 휘발된 듯했다. 결말은 김정은의 파안대소로 채워진 해피엔딩이었다.   한 달 넘은 당 창건 75주 연설을 이제야 다시 거론하는 건 조짐이 좋지 않은 이유에서다. 노동신문 어제 정론에 드러나는 북한의 최근 실상은 김정은 찬양과 우상화의 광기가 느껴진다. 지난 8월 김정은이 수해 실태를 파악하러 나갔던 황북 은파군 대청리에서는 차바퀴 자리가 찍힌 흙을 붉은 천 주머니에 싸서 가보처럼 간직한 농민이 있다고 한다. 김정은이 직접 몰았던 일제 렉서스 대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의 바퀴 자국을 신성시하는 분위기 띄우기다. 김정은이 오간 길을 매일 아침 쓰는 할머니도 있다고 한다. “민심이 불덩이처럼 달아있다”고 정론의 필자는 풍을 친다. 이쯤 되면 “수령을 신비화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던 김정은의 실용주의는 실종상태다.   김정은의 지난 한 달은 쓸쓸하고 외로웠을 수 있다. 지난달 22일 중국군 6·25 참전 70주 참배행사 이후 25일간 공개일정이 없었는데도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지난 4월 ‘유고·사망설’의 트라우마일 수도 있지만, 국제무대에서 그의 존재감은 쑥 줄었다. 국제사회의 코로나 방역 연대나 미·중 갈등을 비롯한 굵직한 이슈에 북한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의기투합으로 반짝했던 북·미 관계나 국제무대 스포트라이트는 빛이 바래가고 있다. 사실상의 미 대선 결과 확정(지난 8일)에도 평양 관영 매체가 아직 사실 보도조차 못 하는 건 북한과 김정은의 고민을 대변한다. 김정은이 유세 기간에 자신을 폭력배(thug)라고 거듭 호칭한 조 바이든 당선인과 북·미 관계의 모멘텀을 그대로 이어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김정은에게 문재인 정부의 대북 구애 목소리가 제대로 들릴 리 만무하다. 그래서 통일부 장관이 지난 4일 판문점까지 달려나가 “남과 북이 새로운 평화의 시간을 다시 설계하자”고 목소리를 높인 건 헛발질에 가깝다. 그 시간 ‘라자루스’를 비롯한 북한의 해커 집단은 한국과 글로벌 제약사의 전산망을 누비며 코로나19 백신 개발 관련 정보를 탈취했다. 한국 땅에 태어났으면 스마트폰과 반도체와 전기차를 만들었을 인재들을 망신스런 국가 도적질에 동원한 것이다.   안타까운 건 나아질 기미가 없는 북한 주민의 삶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은 공동 보고서에서 “북한 전체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1010만 명이 식량 부족에 처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현실은 조선 시대 인구의 40%가량이 노비였다는 한 연구결과와 오버랩된다. 전쟁 전리품이나 이민족 복속이 아닌 같은 민족을 이처럼 많이, 오랜 기간 노예로 부려온 건 유사 사례를 찾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아프다. 봉건의 추억은 되살아나 ‘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판을 달고 있는 북한이 식량으로 주민의 삶과 충성도를 저울질하며 노예의 삶을 강요하는 건 아닌가.   북한 최고지도자의 웅변은 계속된다. 70년 넘게 ‘이밥에 고깃국’을 기다려온 순진한 주민을 향해 “인민이 노동당의 진심을 믿어줘 고맙다”고 울먹인다. 악어의 눈물만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11.19 00:25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확진자=0’ 북한 미스터리…코로나 남북협력 가능할까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확진자=0’ 북한 미스터리…코로나 남북협력 가능할까

     ━  ‘코로나 전쟁 승리’ 선언한 김정은의 속사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일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집단체조·예술공연 ‘위대한 향도’를 보기 위해 관람석에 등장해 간부와 주민의 박수갈채에 답하고 있다. [노동신문=연합뉴스] 코로나는 정치가 됐다. 최고지도자의 말 한마디에 지역이 봉쇄되는 계엄 수준의 비상조치가 내려지고, ‘의학적 감시대상자’는 봉건시대 역병 환자처럼 격리된다. 정확한 실태는 베일에 싸여있다. 관영 선전 매체는 ‘확진자=0’을 되풀이한다. 말 그대로라면 지구 위의 극히 예외적인 청정국이다. 바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다. 그곳에선 정치적 목적에 따라 방역이 춤춘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나라를 말아먹는 파렴치한 죄인’이 되는데도 체제 차원의 노동당 창건 기념행사(10월 10일)에는 수 만명 군중이 ‘노 마스크’로 운집한다. 미스터리 같은 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코로나 감옥 속에 살고 있다. 지구 상에서 가장 혹독한 봉쇄 조치다. 고립이라는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북한 코로나 사태와 남북협력을 논의한 통일보건의료학회 세미나에서 정진택 고려대 총장(오른쪽)이 축사를 했다. 앞줄 왼쪽부터 김영훈 고려대 의무부총장,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 전우택 연세대 의대 교수,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사진 통일보건의료학회] 김영훈 고려대 의무 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북한의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핵 개발에 체제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결과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했고, 코로나에 가장 취약한 구조가 돼버린 북한은 치명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김 부총장은 통일보건의료학회(이사장 김신곤)가 지난 8일 주최한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바이러스는 사회적 지위를 가리지는 않지만, 모두에게 평등하지는 않다”면서 기저 질환자 외에도 불평등한 사회나 가난한 사람이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열악한 코로나 방역 여건을 지적하며 남북공동질병관리본부 설립과 감염병 핫라인 구축, DMZ(비무장지대) 접경 지역 평화병원 설립 등 남북협력 방안을 제안했다.   ‘북한 COVID19 확산 실태와 창의적 남북 보건·의료 협력’이란 주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 기법을 활용해 노동신문의 코로나 관련 기사를 분석한 발제를 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따르면 최초 보도인 1월 22일 이후 9월 30일까지 8개월 10일간에 걸쳐 노동신문은 모두 1585건의 기사를 실었다. 남 원장은 “단기간 어느 한 이슈에 대해 노동신문이 이렇게 빈번하고 상세하게 보도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면서 “코로나에 대한 북한의 관심과 고민을 엿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어휘 빈도는 방역사업, 정치사업, 소독, 위생선전의 순이었다. ‘황해남도’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 데 대해 “이 지역에 환자가 발생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고 남 원장은 덧붙였다.   북한의 미온적 태도로 인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코로나 관련 대북지원이나 남북 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도 이날 세미나에서 제기됐다. 전우택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전 연세의료원 통일보건의료센터장)는 “북한은 돕기가 너무 힘든 매우 특별한 존재”라면서 “일반적으로 도움을 받는 입장에 놓인 존재가 보이거나, 보이기 기대되는 모습을 북한은 전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그러면서도 “북한에 대한 지원은 모순을 끌어안는 것이고, 모순을 견뎌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눈앞의 현상에 일희일비 말고 훨씬 더 큰 그림인 ‘한반도 평화와 공동체’를 보는 게 필요하다는 의미다. 김신곤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은 북한군의 해수부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으로 우리 국민의 대북 인식이 차가워졌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비극적 참사를 인도적 교류로 타개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1983년 북한의 아웅산 테러로 우리 관료와 국민 21명이 사망했지만,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1년 뒤 홍수 피해에 대한 북한의 대남 물자지원 제안을 전격 수용해 이산가족 고향 방문 등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는 것이다.   토론을 맡은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지금 상황은 정말 북한을 도울 방도가 없다”며 “톱-다운 방식의 협의에서 ‘보건·의료 협력을 진행하자’는 말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의기투합이나 결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신 회장은 북한 의료 실태에 대해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된 섬”이라며 “헬스 시큐리티(health security, 보건·의료 안보) 차원에서라도 북한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코로나19와 관련한 대북지원과 남북 보건·의료 협력에 대한 목소리가 당국은 물론 의료계와 민간 차원에서도 높아지고 있지만, 돌파구는 열리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완강한 입장을 보이는 여파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군사퍼레이드 연설에서 “단 한 명의 악성비루스 피해자도 없이 모두가 건강하니 이것이 얼마나 고맙고 힘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라며 북한이 코로나 청정지역임을 주장했다. 자신과 고위 당 간부는 물론 수 만명 주민까지 마스크를 모두 벗은 채였다. 정부 당국자는 “코로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최고지도자가 선포하는 자리인데 마스크를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코로나 방역과 관련한 엄정 대처를 지시하면서 “어떤 지원도 허용 말라”고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북한 대남라인과 방역 당국은 우리 민간단체 등에서 제안한 대북지원 물자를 챙길 엄두를 못 냈다고 한다. 지난달 12일 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도 김정은은 “최근에도 귀측 지역에서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악성비루스 확산” 운운하며 남측 코로나를 거론했지만, 남북 협력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도 친서에서  “서로 돕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이라며 남북 협력의 가능성이 사실상 차단된 형국임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 관련 남측의 대북지원 사례가 전무하다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일부는 올해 들어 3월 말부터 8월 12일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코로나 관련 대북 방역물자 반출을 승인했지만, 실제 북한이 수용한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소독제나 마스크·방호복·진단키트 등 17억6000만원어치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중국·러시아 등이 이미 지원을 하는 데다, 남측으로부터의 코로나 유입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정이 이런데도 통일부와 일부 단체, 전문가 그룹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묻지마식 대북지원 주장을 펼치고 있다.   북한은 당 창건 75주 행사 이후 ‘80일 전투’에 돌입한 상태다. 내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까지 경제·산업 전반에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노력동원 운동을 벌이겠다는 심산이다. 외부와의 차단벽을 더욱 높이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노동신문은 27일자 보도에서 “국경과 공중, 해상을 완전히 봉쇄한 지금이야말로 자립경제의 토대를 다질 호기”라고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했다. 핵과 미사일 도발로 자초한 대북제재에 설상가상으로 코로나와 태풍 피해까지 닥친 2020년을 김정은 위원장은 “끔찍한 해”(9·12 문 대통령에 보낸 친서)라고 표현했다. 감염병과 재해 극복을 위해 꼭 필요한 남북협력과 국제공조를 외면하는 독불장군식 리더십에 북한 주민은 그 어느 해보다 불안하고 고단한 겨울나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 북 관영매체 연일 코로나 상황에 촉각 「 조선중앙TV는 지난 27일 '죽음의 폭풍-악성전염병의 2차 파동'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전하며 주민들의 방역에 경각심을 장조했다. 28일자 노동신문에는 코로나19 관련 기사가 9건 실렸다. 근래들어 부쩍 기사 건수를 늘린 것이다.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행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코로나 전쟁 승리’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바짝 긴장한다는 방증이다. 외부 소식 알리는데 둔감하던 북한 매체들은 코로나 관련 뉴스는 거의 실시간으로 전한다. 조선중앙TV는 27일 ‘죽음의 폭풍-악성 전염병의 2차 파동’(사진)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에서 “세계는 악성 전염병의 2차 파동이라는 거대한 폭풍에 휘말려 들었다”고 강조했다. 영국·이탈리아·스페인 등 서유럽 국가의 코로나 재유행 상황을 전했다. 특히 “프랑스 감염자 수가 22일 4만1600여명으로 유럽에서 가장 많았다”며 경각심을 갖자고 촉구했다.   이런 움직임은 체제 차원의 노력동원인 ‘80일 전투’를 내년 1월 8차 당 대회까지 벌이겠다고 선언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김정은 정권 들어 2016년 7차 당 대회 전후 진행한 70일 전투·200일 전투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대북제재와 감염병, 태풍 피해로 인한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계획인데, 코로나가 관건일 수 있다. 북한은 비상 방역사업을 “80일 전투의 선차적 과업”으로 규정했다. 정유석 한국수출입은행 북한·동북아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최근 비상방역법을 제정하면서 북한의 방역정책이 완벽한 봉쇄에서 관리를 통한 확산 방지로 전환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10.29 00:32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2020년은 끔찍한 해”…얼굴 주름 깊어진 김정은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2020년은 끔찍한 해”…얼굴 주름 깊어진 김정은

     ━  연말 김정은 리더십 위기 닥치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일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치국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봉주 국무위부위원장,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이병철 노동당 부위원장, 김덕훈 내각총리. [조선중앙통신] 요즘 김정은 얼굴엔 주름이 짙어졌다. 36살 청년 지도자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 5일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안색은 전례 없이 어두웠고 잔뜩 찡그린 표정이 관영 조선중앙TV를 통해서도 확연히 드러날 정도다. 이마 오른쪽엔 새롭게 주름살 하나가 깊이 패었다. 왼편에 자리한 이병철 노동당 부위원장, 오른쪽의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한껏 긴장하고 있는 장면도 포착됐다.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앞둔 시점이라 고무된 최고 지도부의 면면이 연출될 법도 한데 속 상황이 그렇지 못한 듯하다. 어디서 무엇이 단단히 꼬여버린 것일까.    “트럼프의 코로나19 확진에 가장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을 사람이 평양의 김정은일 것.”   비공개 탈북 고위 인사인 K씨는 김정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낸 위로 전문을 이렇게 분석했다. 11월 미 대선에 파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대형 사건이나 이벤트를 의미하는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가 바로 트럼프의 코로나 확진이 돼버린 현실에 망연자실할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평양과 워싱턴이 교감했을지 모를 모종의 사안은 물 건너가는 분위기란 측면에서다.   트럼프-김정은이 공동 연출을 맡은 미 대선 직전 깜짝쇼의 주역으로는 김여정이 캐스팅될 게 유력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모멘텀을 잃어버린 북·미 관계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여동생을 투입한다면 최고의 흥행을 거둘 수 있다. 김정은-트럼프 간 정상회담의 메신저로 백악관을 2년 전 방문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나 2000년 가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미 특사로 워싱턴을 찾아 빌 클린턴 대통령과 만난 조명록 차수에 비할 바 아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7월 10일 대미 담화를 내면서 알 듯 말 듯 한 소리로 자신의 미국 방문 가능성을 암시했다.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의 인간적 신뢰가 두텁다는 점을 강조한 담화 말미에 뜬금없이 “미 독립기념일 축제를 잘 봤다. 그 장면을 담은 DVD를 꼭 얻고 싶다”고 말했다. 또 이런 사안에 대해 오빠인 김정은으로부터 허락을 받았다는 점을 덧붙였다. 우회적인 표현을 동원했지만, 행간에는 노골적인 방미 희망 의사가 담겨있다.    정부, 북·미 중재 시도했나   김여정 문재인 정부가 미 대선 직전 김여정의 방미를 주선하려 했다는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최근 보도는 주변국 시선이 김여정의 행보에 쏠려있었음을 보여준다. 한국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평양 당국이 띄운 ‘김여정 대미 특사 파견’ 카드에 문재인 대통령과 외교·안보 진용이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이미 북한으로부터 “오지랖 넓은 중재자”(지난해 4월)로 ‘공인’받은 상황이란 점에서다. 지난해 6월 판문점 북·미 정상회동을 주선한 듯 내세웠지만, 볼턴 회고록 등을 통해 구체적인 내막이 드러나 스타일을 구겼다. 그렇지만 대북 문제라면 지칠 줄 모르는 문 대통령과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포기했을 것이라 믿긴 어렵다.   찜찜했던 국가정보원의 ‘김여정 위임 통치’ 언론플레이도 이런 연장 선상이란 해석이 나온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지난 8월 20일 국회 정보위 첫 보고에서 “김정은의 권한을 김여정이 일부 위임받아 통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칫 북한과 김정은을 자극한 소지가 다분한 ‘금기’ 발언을 쏟아내자 국회 안팎에선 어리둥절해 하는 반응이 나왔다. 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국정원 입장이 맞느냐. 그대로 발표해도 되는가’라고 확인할 정도였다. 일각에선 국정원 판단을 근거로 해 ‘김정은 리더십의 위기가 온 것’이라거나 ‘김여정이 후계자로 등장할 것’이란 관측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런 국정원의 김여정 띄우기가 ‘방미 특사’ 행보에 뒷심을 실어주려는 ‘공작’이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발끈했어야 할 북한은 침묵했고, 공교롭게도 김여정은 두 달 넘게 공백을 보이다 이달 초 오빠를 수행하면서 외부 공개활동을 재개했다.   박지원 원장이 이끄는 국정원은 최고의 대북 악재 중 하나로 기록될뻔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북한 수역 내 피격 사망 건도 수완 좋게 처리했다. 문 대통령은 “내가 국정원장 하나는 정말 잘 뽑았어”라며 자신의 용인술에 스스로 감탄하고 있을지 모른다. 북측 앞바다로 떠내려간 우리 국민을 파도 속에 6시간 넘게 방치하다 총격 세례도 모자라 불까지 지른 북한 만행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대통령까지 꼼짝없이 규탄성 입장을 내야 했던 상황을 박 원장은 급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정은의 “대단히 미안” 언급이 담긴 노동당 통일전선부 명의의 대남통지문을 평양 측으로부터 받아내는 신공을 발휘한 것이다.    남북 정상 친서 ‘동상이몽’   박지원의 국정원이 아니었으면 문 대통령은 큰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사망 사건이 벌어지기 불과 며칠 전 김정은에게 보낸 친서에서 “국무위원장님의 생명 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던 그다. 공무원 피격 사망을 뒤늦게나마 보고받고 아찔했을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의 ‘사과’에 무게를 한껏 싣는 친여 성향 인사와 논객, 관변 매체의 여론몰이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김정은과 주고받은 친서 내용도 선제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언론 취재나 다른 루트로 그 내용이 알려질 경우의 후폭풍을 차단했다. 뜻밖의 인물이 국정원장에 발탁되자 고개를 갸웃하던 세인들은 이제야 ‘책사(策士) 박지원’의 쓰임새에 무릎을 치고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봄날을 다시 맞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지난달 초·중순 주고받은 문재인-김정은 친서는 두 정상 간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확인케 해준다. “서로 돕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는 문 대통령의 말에 김정은이 “끔찍한 올해의 이 시간들이 속히 흘러가고…”라고 답한 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관련 대북지원이나 협력을 강조하자 김정은 위원장이 ‘나 지금 엄청 힘들다’며 아닌 보살 하는 식의 응수를 한 셈이다.   문 대통령이 ‘국무위원장님’이라며 깍듯하게 호칭한 반면, 김정은의 경우 ‘문 대통령’ 수준에 그쳤다. 친서를 주고받는 채널은 있으면서도, 북한군의 총구 앞에서 황망하게 숨져간 국민의 생명을 구할 소통은 하지 않았다는 비판여론은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에게 두고두고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김여정 주도의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앙상블을 이루는 평양 남매의 만행은 남북관계에 대한 우리 국민 지지가 예전 같을 수 없음을 예고한다.    ‘경제 실패’ 인정 입장서 돌변   김정은이 스스로 “끔찍하다”고 고백한 2020년도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올 초 이른바 ‘정면돌파전’을 내세우며 호기롭게 출발한 김정은의 북한은 코로나 창궐사태에 이어 집중호우와 태풍이란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스텝이 꼬였다. 대북제재의 고통 위에 겹쌓인 피로감은 김정은의 고민을 깊게 할 게 틀림없다. 미 대선 결과가 김정은이 바라는 쪽으로 향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와 외교는 물론 내치에서도 딱 부러진 조언을 해줄 미더운 후견인이나 측근도 찾기 어렵다.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기여했다는 최측근 이병철 당 부위원장과 박정천 총참모장에게 원수 칭호와 훈장을 주렁주렁 달아주는 세리머니를 했지만 달라질 것은 없다. 김정은 집무실의 문고리를 잡고 있는 가수 출신 현송월의 손짓 눈짓 하나에 어찌할 줄 몰라 하면서 자기 앉을 자리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노동당과 군부의 간부들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흥미로운 건 경제 실패를 스스로 인정했던 지난달 19일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을 불과 한 달 보름 사이에 확 바꿔버린 대목이다. “계획됐던 국가 경제의 장성 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했다”고 밝혔던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일 정치국 회의에선 “(올해) 이룩한 승리와 성과에 도취돼 만세나 부르며 기세를 늦춰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내년 정초 8차 노동당 대회까지 80일 전투를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경제 실패 자인이 자칫 김정은 리더십 손상으로 이어질까 입장을 바꾼 기색이 역력하다.   ‘승리자의 대축전으로 맞이하자’고 외쳐온 노동당 창건 75주(10월 10일)는 실패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광장이 될 판이다. 지금 김정은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군사퍼레이드에 어떤 무기체계를 끌고 나갈지 정도를 결정하는 일일 것이다. 돌파구는 찾지 못하는데, 돌아갈 길도 마땅치 않은 딜레마다. 이마에 주름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10.08 00:32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김정은도 전기차·반도체 공장을 현지지도할 수 있으려면…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김정은도 전기차·반도체 공장을 현지지도할 수 있으려면…

     ━  수해 복구에 올인하는 김정은의 속사정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이 황해북도 강북리 태풍 피해 현장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15일 보도했다. 복구된 살림집(주택) 내부를 살펴보는 김 위원장 뒤편에 보이는 철제 손잡이까지 황토색 페인트로 칠해진 방문이 낡고 조잡해 보인다. [조선중앙TV 캡처=연합뉴스] 북한을 제대로 알아가는 첫 발걸음은 겉과 속이 다른 체제 속성을 간파하는 것이다. 노동당 일당 독재와 세습통치의 폐해는 좀체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다 오른 방북길에서, 철저히 교육받은 안내원(감시원)의 어깨너머로 본 번듯한 모양새를 북한 체제의 속살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노동신문 꽤나 탐독했다며 책상에서 배운 지식을 내세워 북한 전문가연 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20대 청년·학생 시절 주체사상에 미혹된 후 헤어나지 못하고 반백 너머까지 그 섬망에서 못 벗어난 인사들이 우리 사회와 권력 곳곳에 포진해 있는 건 안타까운 현실이다.   북한의 그럴듯한 말이나 연출된 영상, 선전·선동에 이끌리기보다 그 속내와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요즘 수해 복구 현장을 잇달아 찾아 ‘애민(愛民)’ 메시지를 쏟아내는 김정은의 행보도 마찬가지다.    그제 관영 선전 매체인 조선중앙TV로 공개된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행보에서는 북한 체제의 표리부동이 적나라하게 감지된다. 태풍 피해를 본 황해북도 강북리를 찾은 김 위원장은 북한군이 동원된 복구 현장을 둘러봤다. “(인민군 장병의) 헌신과 고생 앞에 머리가 숙여졌다”는 김정은의 발언에서 군에 대한 두터운 신뢰가 묻어난다. ‘믿을 건 군대뿐’이란 인식이다.    드론까지 띄워 수해 복구 현장 보여줘   피해 현장을 근심 어린 표정으로 살펴보던 김 위원장은 새로 건설된 살림집 지구를 돌아보면서 “부유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 농촌으로 전변시키기 위한 책임적이고도 중요한 사업에 국가적인 지원을 대폭 증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붉은색 지붕에 단층과 복층으로 지어진 건물 50여 동을 돌아보면서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여기까지의 말과 행동으로만 보면 마치 1960~70년대 한국의 새마을운동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당대 우리 국가의 리더십 형상이다.   문제는 김정은이 주택 내부로 들어가면서 나타났다. 거실과 화장실·부엌 등을 돌아보며 찬장과 아궁이 등을 돌아보는 김 위원장을 쫓는 카메라의 앵글에는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집안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겼다. 그런데 방문짝이나 창틀 등의 모습은 새로 지은 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낡고 조잡해 보였다. 수해 현장에서 무너진 집을 정리하며 떼어온 것이거나 다른 지역의 것을 재활용하는 듯했다. 문짝은 철제 손잡이까지 모두 황토색 페인트로 새로 칠해져 있었다. 이례적으로 드론까지 띄워 촬영한 복구 현장의 원경(遠景)과 근접 촬영의 장면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김정은이 직접 챙기며 주민에게 공언한 ‘선물 주택’의 문짝 하나 제대로 만들기 어려울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북한 경제의 민낯이 드러난 순간이다.   이런 실상은 여타 지역의 수해 복구 현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12일(보도 기준) 김정은이 방문한 황북 은파군 대청리 홍수 피해복구 현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속을 들여다보면 헙수룩한 수해 복구 민생 챙기기 쇼에 불과하다는 게 확인된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은 여전히 수해 복구에 올인할 기세다. 그가 노동당 간부회의나 현장 방문 때 쏟아내는 말을 헤아려보면 올해 들어 자신이 내놓은 정책 노선이나 야심 찬 프로젝트가 모두 물거품이 된 걸 이참에 벌충하겠다는 기세다. 자칫 민심 이반을 부를 수 있는 재난 상황을 적극 활용해 간부들에 대한 책벌과 신속한 복구 지시, 현장 지휘 등으로 ‘민생 챙기기’ 코스프레에 나선 분위기도 감지된다.    파산한 김정은의 ‘정면돌파전’ 승부수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노딜 이후 김정은이 품었을 자괴감과 상실감은 최근 잇달아 발간되는 미국 전직 고위 관료와 저널리스트의 관련 글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판문점에서의 문재인-트럼프-김정은 회동은 그 ‘끝판왕’이라 불릴 만하다. 12월 워싱턴을 향해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하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를 위협했지만, 노회한 사업가 트럼프와 미 고위 관료들은 그것이 김정은의 가쁜 숨이라는 걸 금세 알아차렸다.     무기력감 속에 결국 김정은이 선택한 건 2020년 한 해를 이른바 자력갱생과 정면돌파전으로 버텨보자는 것이었다. ‘농사만 어느 정도 잘돼서 식량 문제만 풀리면 버틸 수 있다’는 취지의 김정은 신년 벽두 언급은 왠지 불안했다. 북한의 현실을 외면한 호기 부리기 수준의 분위기가 감지된 때문이다.   빨간불은 곳곳에서 켜졌다. 기초체력이 바닥난 경제는 이른바 ‘인민 경제 4대 부문’으로 불리는 전력·석탄·금속·철도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미처 시동이 걸리기도 전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라는 악재가 덮쳤다. 열악한 보건·의료망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북한은 중국은 물론 다른 나라들과 통하는 육해공 교통로를 봉쇄하는 조치를 취했다. 미국이 주도해온 대북제재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산소호흡기 역할을 해온 북·중 밀무역 루트까지 막는 말 그대로 ‘셀프제재’였다. 2500만 인구 중 핵심만 모인 평양의 300만 인구까지 동요 조짐을 보이자 김정은이 노동당 회의 안건으로 이들의 생활 보장 문제를 올리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결국 그의 올해 경제 청사진은 지난 8월 사실상 파국을 맞았다. 지난달 19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7기 6차 전원회의에서 “계획되었던 국가 경제의 장성 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했다”는 고백을 해야 했다. 이후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잇달아 열린 노동당 관련 회의에서도 ‘전면적 수정’ 등의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완주는커녕 3분의 2 지점도 넘지 못한 중도하차다.     3월 자신이 착공식 연설을 하며 직접 첫 삽을 떴던 평양종합병원 건설도 난관에 봉착해 내달 10일 노동당 창건 75주에 문을 열려던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야심 차게 건설에 들어갔던 원산 해양리조트는 아예 북한 관영 매체에서 실종상태다.    핵·미사일 기술자를 첨단산업 인력으로   수해 현장을 찾아 주민을 위로하고 복구에 투입된 군인 건설자들을 격려하는 건 나무랄 일이 아니다. 선대 수령이자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임기 중 엄두도 못 내던 일이다. 하지만 수해 현장과 협동농장·양계장 같은 곳만 찾아다니는 수준에 그쳐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이 말한 대로 발은 땅에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각국의 지도자들이 국가 생존과 경제를 위해 백방으로 뛰고, 경쟁하며 협력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인들은 코로나19에 대처할 백신 개발과 인공지능(AI)·전기차·반도체·바이오 등 차세대 먹거리를 만들고 찾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어느 참모가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며 냉대했던 한국의 기업인들이 그 중심에 서 있다.   잘 풀리는 듯하던 일이 꼬여버렸을 땐 어디서부터 생긴 문제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테이블로 복귀해 복기(復棋)해 보길 권한다. 망설이던 개혁과 개방의 길도 이젠 가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주민과 지식인들에게 인터넷을 허하고 핵·미사일 과학자와 생화학무기 개발자들을 AI와 바이오산업 등의 핵심 인재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전기차·반도체 공장을 꾸리고 김정은이 현지지도 해야 한다. 내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 위원장이 제시할 비전은 코로나 이전의 시대와 달라야 한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없이는 북한 체제의 생존은 어렵다. 그 어귀에는 비핵화란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 쌀과 시멘트·철강…국무위원장 전략 물자 「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수해를 입은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주민들에게 자신 명의의 예비양곡과 물자를 지원했다. [노동신문=뉴스1] 지난달 초 큰 홍수 피해를 본 황북 은파군 대청리 피해복구 과정에 투입된 것과 같은 김정은 위원장의 통치성 물자를 일컫는다. 김 위원장은 당시 노동당 회의에서 “국무위원장 전략 예비분 물자를 해제해 (조속한 복구를) 보장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북한 관영 매체들은 전했다.   김정은이 자신 ‘몫’으로 지칭한 물자는 김일성 시대 ‘주석 폰드’라 불리던 것과 유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은의 조부인 김일성은 쌀이나 시멘트·철강·목재 등 물품과 설비를 일정 수준 비축해뒀다가 시혜성으로 노동당 부서나 지역·기관·기업소 등에 보내줘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할 수 있게 했다. 김일성의 직책이 ‘국가 주석’인 데서 따온 것으로 탈북 인사들은 전하고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예비 물자 운용은 재난사태나 긴급상황 등에 대처하기 위한 목적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절대 권력자의 내탕금처럼 쌀과 건설자재를 따로 챙겨놓았다가 시혜 차원으로 내놓는 모습은 봉건 왕정 시대에나 어울린다는 비판도 있다. 필요한 전략 비축 물자는 최고지도자의 명의가 아니라 국가 체제의 공공재 형태로 준비하고 운용되는 게 맞는다는 지적이다. 」    이영종 통일북한 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09.17 00:23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그 해 여름처럼…벼랑 끝에 선 북한의 ‘주체 경제’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그 해 여름처럼…벼랑 끝에 선 북한의 ‘주체 경제’

     ━  김정은의 ‘정면돌파’ 전략은 왜 좌초했나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예정된 파국이었지만 너무 일찍 와버렸다. 자력갱생과 정면돌파를 내건 구호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붉은 깃발은 내려졌다. 진격의 나팔 소리 대신 정책 노선과 궤도 수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정은식 경제전략의 실패를 자인하는 현장이 돼버린 노동당 7기 6차 전원회의 얘기다. 지난 19일 평양의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열린 회의 결정서는 참담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계획되었던 국가 경제의 장성 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가 빚어졌다”는 게 핵심이다.   오는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승리자의 대축전’으로 만들자며 선전 선동에 박차를 가하던 게 불과 며칠 전인데 급작스레 분위기가 바뀌었다. 북한으로선 무엇보다 ‘수령 무오류’의 원칙에 치명타를 입은 게 뼈아플 수밖에 없다. 당 간부와 경제관료들이 너도나도 나서 ‘내 탓이오’를 연발하고 있지만, 김정은의 리더십에 금이 갔다. 내년 1월 노동당 8차 대회를 기약하자며 다시 고삐를 죌 기세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2020년 8월 노동당 전원회의는 1994년 여름의 데자뷔다. 26년 전인 그해 7월 국가주석 김일성은 경제일꾼 회의를 소집했다. 도무지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는 북한 경제 전반의 문제점을 짚고 간부들에게 직접 자극을 가하려는 자리였다. 당시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모순에다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까지 겹쳐, 그렇지 않아도 빈사상태였던 경제가 파산지경이었다. 개혁·개방을 택한 중국은 아직 북한에게 효율적인 원조나 구호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 1993년 12월 열린 당 6기 21차 전원회의에서는 제3차 7개년 계획 실패를 스스로 인정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열악했던 당시 상황은 김일성 사망 이틀 전인 1994년 7월 6일 소집된 경제부문책임일꾼협의회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북한에서 ‘일꾼’은 해당 분야 간부를 의미한다. 경제 분야를 책임진 노동당과 내각의 고위 관료들이 참여한 일종의 대책회의라 할 수 있다.   김일성은 이 자리에서 “가슴이 왜 이리 답답한가. 경제가 안 풀려 요즘은 끊었던 담배까지 다시 피우게 됐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경제 각 부문이 제대로 되는 게 없다”고 말한 뒤 부총리와 장관급 간부들을 하나씩 일으켜 세워 질책했다. 그는 “동무들! 농업·경공업·무역 제일주의는 당의 결정사항 아닌가. 화학비료는 남흥화학·흥남화학을 생산 정상화하도록 만들라우”라며 다그쳤다. 또 참석 간부들에게 “경제가 엉망인데 동무들은 회의에서 아무런 문제 제시나 답변을 못 하고 있다”라고 호통을 쳤다. 김일성은 끝부분에서 “이틀 뒤 다시 회의를 소집하겠으니 부문별로 대책을 세워 보고하라”고 지시했지만, 심근경색으로 숨지면서 회의는 다시 열리지 못했다.    경제 발목잡는 화학공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을 마친 뒤 장길룡 화학공업상으로부터 생산 공정을 브리핑 받고 있다. 장길룡은 8월 21일자 노동신문에 ’화학공업 부문이 제구실을 못한 건 화학 공업성 일꾼들이 전략적 안목과 사업성이 없이 일했기 때문“이란 반성문을 실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일성은 당시 화학공업부장 김환을 집중적으로 다그쳤다. 비료 생산의 정상화가 다급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화학공업 부문이 화근이었다. 경고음은 일찌감치 울렸다. 지난 6월 초 김정은이 주재한 노동당 정치국 회의의 주요 의제 중 맨 앞자리를 차지한 게 화학공업의 발전 문제였다. 이후 잇달아 열린 노동당과 정무국의 주요 회의에는 화학공업이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한다. 코로나19 대책이나 홍수 피해 복구 등도 주목받는 이슈였지만 김정은의 신경은 화학공업에 곤두서 있었다. 지난 4월 하순 건강 이상설로 장기 공백 상태에 빠졌다가 복귀한 그가 첫 공개활동을 시작한 자리가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이었다는 점만 봐도 화학공업에 김정은이 얼마나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난파 위기에 처한 북한 경제의 심각성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무엇보다 김정은이 야심 차게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줄줄이 중단 상태에 빠지거나 차질을 빚고 있다. 강원도 원산의 갈마 해안관광지구 건설은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기념일에 맞춰 완공될 예정이었지만 지난 4월 김일성 생일로 늦춰졌다. 하지만 이마저 맞추지 못했고 더는 북한 매체에서 언급이 없다. 대북제재 상황에서 원산에 수십 개 동에 이르는 대규모 해양리조트와 관련 시설을 짓는다는 게 무리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월 직접 기공식에 참석해 첫 삽을 뜨기도 한 평양 종합병원 건설도 김정은이 당초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까지 끝내라는 지시를 내린 건설사업이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슬그머니 내년 1월 8차 당 대회에 맞추려는 분위기다.   연초까지만 해도 북한은 기세등등했다. 미국이 비핵화만 요구하며 대북제재를 해제하지 않는다고 비난한 김정은 위원장은 정면돌파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곧이어 밀어닥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의 충격파는 컸다. 체제의 명운이 걸린 방역을 위해 외부로 통하는 문을 닫아걸면서 경제는 엉망이 됐다. 산소호흡기 역할을 해온 장마당 경제도 북·중 접경의 밀무역까지 사실상 전면중단되는 상황에 빠졌다. 중국 해관통계에 잡힌 북·중 간 공식 교역은 대북제재와 코로나 여파로 95% 감소했다고 한다. 그나마 사정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평양 거주 주민들의 생활 문제가 열악해지면서 민심이 흉흉해지자 김정은이 직접 노동당 회의 의제로 챙기는 일도 나타났다.    통일부와 국정원 엇박자   이런 심상치 않은 북한 내부의 상황 변화에 우리 정부 당국이 얼마나 기민하게 움직이며 방책을 마련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촉수 역할을 해야 할 국가정보기관은 엉뚱하게 ‘위임통치’ 카드는 꺼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정치 9단으로 불린 박지원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 보고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게 권한 일부를 위임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북한 관영 매체가 김여정의 최근 담화나 입장 발표 등에 ‘위임에 의하여’라는 표현을 쓴 대목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니 ‘위임통치’라는 말이 불러올 파장을 생각하지 못했다. 정보위원들의 입을 통해 김정은 권력의 이상 징후나 건강·후계 문제로까지 번지자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다.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의 권력 구도를 건드리는 자극적인 언급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에서 나왔다는 점은 불쾌할 수 있다. 북한이 당장 반응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향후 남북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정작 국민이 궁금해하는 북한 내 코로나 창궐 상황이나 김정은의 건강 문제 등에 대해서는 국정원은 입을 다물고 있다.   대북 주무부처를 자임해온 통일부는 남북관계의 현실과 청와대의 주문 사이에서 설 곳을 아직 찾지 못한 분위기다. 지난달 말 새로 부임한 이인영 장관이 물물교환 형태의 교역으로 남북 간 물꼬를 트겠다고 밝히자 통일부는 곧바로 남한의 설탕과 북한의 술을 맞바꾸는 사업이 성사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민간단체인 남북경총통일농사협동조합이 북한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와 1억5000만원 상당의 북한 주류 35종을 설탕 167t과 물물교환하는 프로젝트다. 언론에도 이런 사실이 공개되면서 기대치를 높였다.   사달은 엉뚱한 곳에서 났다. 북측 사업자가 유엔의 대북제재 대상인 노동당 39호실 산하 기관이란 점이 국정원에 의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업 승인부처가 제재 저촉 여부를 제대로 확인조차 않은 데다, 국정원과의 엇박자까지 나면서 이 장관은 출발부터 미덥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 와중에 일부 관변 성향 전문가 그룹의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들은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된 북한 경제에 대해 “내구력이 만만치 않다”는 식의 장밋빛 분석만 내놓곤 했다. 김정은 시대 들어 평양에 건설된 고층 주상복합 시설이나 뉴타운 형태의 거리, 화려한 네온으로 장식된 평양의 야경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책으로 국제사회가 내놓은 대북제재에 대해선 ‘무용론’을 주장한다. 중국이란 뒷문이 있어 제재의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얘기다. 북한의 장마당 경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제재에도 끄떡없다는 논리까지 쏟아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기관의 박사는 “북한이 경제실패를 자인하기 며칠 전에도 북한식 자력갱생 경제를 두둔하는 듯한 자료집을 내돌린 중견 연구자 그룹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집권 10년 맞는 내년 1월 당대회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4월  첫 공개 연설에서 “다시는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핵과 미사일 도발로 점철된 그의 집권 초반 호전적 행보는 대북제재를 자초했다. 그러면서도 2016년 5월 개최한 노동당 7차 대회에선 ‘경제’라는 단어만 142차례 쓸 정도로 민생을 챙기는 모습을 부각하려 했다. 그렇지만 결국 4년 3개월 만에 “인민생활을 뚜렷하게 향상시키지 못했다”고 인정하며 고개를 숙였다.   북한이 노동당 8차 대회 개최 시점으로 제시한 2021년 1월은 김정은 집권 10주년에 돌입하는 때다. 엘리트 간부와 주민들에게 뭔가 새로운 비전과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는 10월 당 창건 75주년에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기보다는 시간을 벌어 내년을 기약하겠다는 의미도 있다. 11월 미 대선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포석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과 5개월 뒤 북한이 처한 환경이 달라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제재와 코로나19의 후폭풍은 더욱 거세게 북한 경제를 뒤흔들 공산이 크다. 그때가 되면 김정은과 북한의 지도부는 대남·대미 문제나 경제 분야에서 좋은 기회와 호시절이 지나갔음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08.27 00:39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김정은 건강에 쏠린 한반도 주변국 정보기관의 눈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김정은 건강에 쏠린 한반도 주변국 정보기관의 눈

     ━  고노 일본 방위상 ‘김정은 건강 의심’ 발언 왜 나왔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일성 사망 26주기(8일)를 맞아 시신이 있는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조선중앙TV가 전했다. [뉴시스] 최고지도자의 건강은 어느 국가, 어떤 체제에서나 중차대하다. 특히 북한에서는 공동체의 명운이 걸린 사안으로 받아들인다. ‘수령 유일 지배’라는 시스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유고가 곧 북한 체제의 위기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집권 8년 차인 김정은 위원장은 건강 문제와 관련해 몇 차례 불안한 모습을 노출시켰다. 지난 4월 중하순 벌어진 ‘사망설’과 ‘유고설’ 소동은 국제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꼭 나와야 할 자리(4월 15일 김일성 생일 추모행사)에 불참하면서 들불처럼 번진 소문은 유력 글로벌 미디어인 CNN까지 대형 오보를 내는 상황을 연출시켰다. 3주 만에 공석 등장으로 “건재를 과시했다”는 평가를 받은 김정은의 건강 문제를 둘러싸고 한반도 주변 국가의 정보기관들이 최근 은밀한 첩보 수집 활동을 벌이고 있다. 어떤 단서를 포착했기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인지 추적해봤다.     “김정은 안위와 관련해 중대한 정보가 있는지 확인 차 방문했습니다. 혹시 알고 계신 내용이 있으신지 대답해 주십시오.”   베테랑 대북 정보 관계자 L씨는 지난달 중순 서울에 온 일본 정보당국의 오랜 지인과 만났다. 일본 측의 관심사는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특이한 대목이 있었다고 한다. 마치 뭔가 중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이를 확인하려 방한한 듯했다. L씨는 “위성을 통해 감청한 단편적이지만 결정적인 첩보의 의미를 파악해 ‘시인된 정보’(사실관계가 확인됐다는 의미)로 만들어보겠다는 의도가 감지됐다”고 말했다. 일본이 서울에서 활동하는 요원들 외에 복수의 대북정보 관계자들을 도쿄에서 직파한 사실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고 한다.    고노 방위상 “김정은 건강 의심”   열흘 정도 흐른 지난 6월 25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방위상은 김정은 건강과 관련해 “의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 체류 중인 외신 기자들의 모임인 외국특파원협회(FCCJ) 초청 기자회견에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거나 김정은 건강에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밝힌 고노 방위상은 기자들의 추가 질문에 “정보 사안을 논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한국의 베테랑 대북 정보 관계자들은 고노 방위상의 이런 언급에 대해 “흘려 듣기에는 찜찜하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내각조사실 등 일본 정보 담당 부처를 중심으로 김정은 건강에 대한 첩보수집 활동이 증가한 직후 고노 발언이 나왔다는 점에서다. 불과 두 달 전 김정은 건강 이상설이 휩쓸고 지나갔는데, 재차 이를 언급한 고노 방위상의 발언 배경을 둘러싼 다양한 관측이 나왔다.   김정은 관련 서울발 첩보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건 일본뿐만이 아니다. 중국과 대만·몽골 등이 활발한 정보 수집에 나서고 있다는 게 우리 방첩 담당자들의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중국의 경우 북·중 친선관계를 토대로 정보 교류가 이뤄지고 북한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최고지도자의 건강이나 권력 핵심의 동향 등 민감한 정보는 ‘거래’ 대상이 아니란 얘기다. 전직 고위 간부는 “북·중 간에는 통보제도라는 시스템이 있어 웬만한 정보는 상대측에 건네준다”며 “이 때문에 상호 간에 평양과 베이징을 무대로 정보전을 펼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우리가 중국 측에 신속히 관련 정보를 전해줬고, 이에 대해 중국 정보 당국이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대만의 경우 군 정보기관이 강세를 보이고 있고, 정교하고 깔끔한 일 처리로 국제 정보기관 사이에서 “닌자(忍者)처럼 일한다”는 평을 받는다. 몽골의 경우도 서울을 무대로 북한 관련 정보 수집에 공을 들이고 있어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미, “김정일 3년 내 사망” 적중   미국의 경우 대북 감시장비와 휴민트(HUMINT,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수집)를 무기로 북한 체제의 내부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김정은 건강은 관심 순위 1위로 꼽힌다. 2008년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순환기계통 이상으로 유고 상태에 빠졌다 그해 11월 복귀했다.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서울 거점 I.O(intelligence officer, 정보 수집 요원)들은 수집된 정보를 토대로 “3년을 넘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CIA를 비롯한 미 정보 당국의 정확한 판단을 가능케 한 정보 원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기도 했다.   물론 김정은의 건강 문제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아니다. 북한이 철통 같은 보안을 유지하기 때문에 대부분 베일에 싸여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 열차역에서 담배를 피운 김정은 위원장의 꽁초를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재떨이를 받쳐가며 챙긴 것도 자칫 타액 등을 통한 건강 또는 DNA 정보가 새나가는 걸 막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적성국이나 비우호 국가를 방문한 대통령이나 최고지도자급 인사의 배설물이나 모발 등을 고스란히 챙겨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창나이인 36살 청년을 두고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 건 무엇보다 불안정한 김정은의 건강 이력 때문이다. 2010년 9월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공개 석상에 처음 등장한 김정은은 건강해 보이는 ‘후계자’였다. 하지만 173cm 정도 키에 체중이 90kg 정도였던 그가 집권 이후 130kg 이상 되는 상황으로 급격히 비만해지면서 우려가 제기됐다. 공개 활동 시 다리를 절거나 뒤뚱거리는 모습을 보였고, 공장이나 협동농장 참관 시 전동카트를 이용하는 경우까지 나타났다. 결국 2014년 9월 건강 이상이 생긴 그는 40일간 공백을 보였고, 다시 등장했을 때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스트레스와 흡연·가족력 문제   의료 전문가들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과도한 흡연, 가족력을 김정은 건강의 3대 위협요인으로 꼽는다. 촘촘한 대북제재와 풀리지 않는 남북 및 북·미 관계, 그리고 경제난으로 인해 자신의 건설 프로젝트마저 차질을 빚는 상황은 공개회의에서 간부들을 질책하는 영상을 통해 드러난다. 줄담배를 피우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내 말을 도통 안 들으려 한다”는 부인 이설주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이 모두 심근경색으로 급작스레 사망했다는 점도 김정은 건강에 대한 우려를 높인다.   지난봄 사망설까지 나왔던 김정은 위원장은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건재를 과시했다. CNN뿐만 아니라 한국의 일부 매체와 전문가, 탈북 인사들이 잘못된 정보 분석과 오보 사태로 뭇매를 맞았다. 부정확한 정보와 분석으로 북한과 김정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하려 했다는 질타도 받았다. 하지만 이후 행보는 수상쩍은 대목이 적지 않다. 당 중앙군사위 확대 회의(5월 24일 보도)→정치국 회의(6월 7일)→중앙군사위 예비회의(6월 23일)→정치국 확대 회의(7월 2일)→김일성 사망 26주 참배 행사(7월 8일) 등 최소한의 동선만 드러냈다. 그나마 일부는 관련 영상도 공개 않았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김정은 건강문제를 둘러싼 관련국 정보기관의 첩보전은 지금부터가 진검 승부”라고 말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 최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 김정은 유고설에도 국정원 침묵…"정보위 가동해 국민에 알려야” 「 북한 최고지도부 핵심 인사의 신상 문제는 남북관계나 한반도 정세에 큰 파장을 부를 요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건강이나 여동생 김여정의 위상 변화, 부인 이설주의 동향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선 성역처럼 여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2018년 평창 겨울 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특사로 온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육성이 공개되는 걸 막으려 당국이 오디오를 삭제하고 영상을 언론에 제공했다가 ‘북한 눈치 보기’라는 논란이 일었다.   지난 4월 김정은 건강 이상설로 나라 안팎이 시끄러웠지만, 대북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은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청와대 대변인의 입을 통해 “이상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지만 이미 일파만파였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어느 여당 의원은 국정원 보고 한번 요구 않다가 김정은 등장 이후 ‘가짜뉴스 때리기’에만 몰두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청와대와 국정원의 이런 모습을 두고 이전 정부 때보다 퇴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7년 2월 황장엽 노동당 비서 망명 당시 정부는 언론사 편집·보도 국장을 한자리에 모아 민감한 관련 내용을 전하며 보도협조를 요청했다. ‘보안’을 이유로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정부 당국자들이 정작 정보관리에 소홀한 경우도 적지 않다. 노무현 정부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생모 고용희가 프랑스 파리에서 수술 중 숨진 정보를 쉬쉬하던 고위 당국자는 술자리에서 안줏거리 삼아 이를 발설해 언론에 뒤늦게 보도됐다.   국익에 긴요한 대북정보가 아니라면 국회 정보위 등을 통해 관련 사안을 국민이 믿을 수 있게 공개하거나, 청와대와 국정원이 언론에 설명해 대형 오보 사태를 막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07.09 00:35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하노이 ‘훈수’에 불만…김여정, 청와대에 “배신자” 말폭탄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하노이 ‘훈수’에 불만…김여정, 청와대에 “배신자” 말폭탄

     ━  김정은·여정 남매가 문재인 정부에 등 돌린 막전막후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북측 마술사가 5만원권을 100달러 지폐로 둔갑 시키자 문재인 대통령이 파안대소하고 있다. 연락사무소 폭파 등 북한의 도발 행동이 이어지면서 남북관계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매직쇼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중앙포토] 김여정 스스로 ‘말 폭탄’이라 부를 만큼 거칠고 자극적이다. A4 용지 7쪽 분량의 장문엔 원망·비방을 넘어 저주 섞인 표현까지 등장한다. “채신머리 역겹게 하고 돌아가니 그 꼴불견 혼자 보기 아깝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조롱한다. 고위 탈북 인사가 “남매의 한이 담긴 듯하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 17일 나온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 얘기다. 북한 문제라면 극한의 인내를 보여주던 청와대도 즉각 발끈하며 “무례하고 몰상식한 행위”(윤도한 국민소통수석)라고 받아쳤을 정도다. 2년 전 평창 겨울올림픽 특사로 방한해 오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화 사절’로 자리매김했던 김여정은 온데간데없다. 그녀가 표면적 이유로 내세운 대북전단 문제가 어제오늘의 이슈가 아니란 점에서 더 깊숙한 배경과 속사정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걸까.   “하노이로 향하는 전용 열차 안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서울로 3차례 전화를 걸었다. ‘영변만 내놓으면 틀림없는 거냐’며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워싱턴의 전략과 분위기를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 캐물은 것이다.”   막후접촉 사정에 밝은 한 대북 전문가는 이렇게 귀띔하며 남북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기 시작한 시점을 지난해 2월로 꼽았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첫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뜻밖의 승기를 거머쥔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2차 회담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가까워진 문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고, 한·미 채널로 파악된 미국 쪽 분위기를 전달해줬다.   하지만 협상 테이블 상황은 확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α’를 요구했고, “김정은이 협상에 임할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며 판을 깨고 워싱턴으로 돌아가 버렸다. 평양까지 3800㎞ 거리를 열차로 60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귀환길은 김정은에게 말 그대로 굴욕이고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시간이었다.    “우리 오빠 두 번 망신당해”   두 달 후 평양 최고인민회의에 나온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오지랖 넓은 중재자”란 비난을 퍼부었다. 6월 말 판문점 남북·미 회동에 나온 김정은의 표정은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트럼프와 만남에 반색하면서도 문 대통령에게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미덥지 못하다’는 시그널을 연신 보냈다. 가끔 어색한 미소만 흘렸다. 얼마 뒤 문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북한은 폭발했다.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과 ‘2045년 통일’을 언급하며 평화경제를 강조한 문 대통령에게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거칠게 비방했다. 서울~평양 핫라인이 불통되고, 북측에서 “남조선 당국과 마주 앉을 생각 없다”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특이한 건 북한이 지난해 대남 비난 과정에서부터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줄기차게 요구한다는 점이다. 겉으로 드러난 뚜렷한 마찰 요소가 없다는 점에서 내막을 모르는 이들은 ‘저지른 잘못’이 뭔지 어리둥절하다. 이와 관련 복수의 대북 정보 관계자와 경협 사업가들은 “하노이 노딜에 대한 책임이 문재인 대통령과 참모에게 있다는 게 북한 당국의 인식”이라고 전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해외에서 만난 북측 인사가 ‘우리 최고 존엄이 문 대통령을 신뢰했다 큰 망신을 당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베이징의 북한 통전부 관계자로부터 ‘탁현민(현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란 말을 들었다”고 귀띔했다. 하노이 협상 타결을 믿고 남측 당국과 탁씨의 조언에 따라 이벤트까지 준비했는데 허사가 됐다는 얘기다.   주목할 점은 김여정 제1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우리 당국을 “배신자”로 지칭한다는 점이다. 김여정은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깨깨(‘하나도 남김없이 몽땅’이란 의미) 받아내야 한다”(6월 13일 담화)며 ‘쓰레기’(대북전단을 날린 탈북민)보다 이를 방관한 ‘배신자’를 더 앞세우고 있다. “못된 짓 하는 놈보다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6월 4일 담화)고 주장한 연장선이다. 하노이 불만이 쌓인 데다, 5월 말 대북 전단까지 터지자 “우리 오빠를 두 번 망신줬다”는 생각에 전면에 나섰다는 게 대북 소식통의 분석이다.   6월 들어 파상 공세를 펼쳐온 김여정의 대남 대립각 세우기는 오빠 김정은에 의해 일단 제동이 걸린 모습이다. 23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주재한 김정은이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하라”고 지시한 때문이다. 북한은 도발 드라이브를 걸면서 치밀하게 단계적 장치를 만들었다. 김여정이 주 공격수로 나서면서 군사 행동은 총참모부에 넘겼다. 총참모부는 중앙군사위에 승인을 받는 절차를 밟게 했다. 김정은은 중앙군사위 본회의가 아닌 ‘예비회의’라는 걸 열었다. 여차하면 본회의에서 보류 조치를 해제하거나 입장을 바꿀 여지를 남긴 것이다.   당초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를 위협과 도발의 최고 수위로 잡았을 가능성도 있고, 대남 전단 살포나 전방 확성기 방송 재개 준비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했을 공산도 크다. 대북제재로 교과서 만들 종이도 없다던 북한이 1200만장의 컬러 전단을 만들려면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교과서 용지 없다더니 전단 1200만장 찍어   고작 3㎞ 가청거리의 낡은 스피커로 23㎞ 밖에서도 잘 들리는 한국군의 대북방송에 맞서는 게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했을 법 싶다. 남풍(남→북)이 주로 부는 여름철에 대남전단 살포를 공언한 것도 패착이다. 우리 국민의 대북 여론도 악화일로다.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에 북한도 다시 긴장하는 분위기다. 김정은이 중앙군사위를 사상 처음으로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한 건 눈여겨볼 대목이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김정은의 ‘군사행동 유보’는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유야무야 넘길 순 없다. 국민 세금 170억원이 투입된 남북 교류의 상징 건물을 무자비하게 폭파시킨 김정은·여정 남매의 맹동주의적 노선엔 따끔한 질책과 재발 방지 조치가 필요하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금강산 면회소 등을 몰수·동결했던 것과는 결이 다르다. 불만이 있더라도 대화 테이블에서 풀어야지 막말과 건물 폭파로 치닫는 건 외교도 대남도 아닌 야만이다.   군사합의나 연락사무소 파기를 위협하는 김여정 담화에 “대화를 하자는 의미”라는 낙관적 풀이로 국민의 화를 돋우고, 북한으로부터도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고 힐난 받는 정치권 인사들은 이제 입을 다물었으면 한다. 평양을 향한 짝사랑은 유효기간을 넘긴 지 오래다. 북한은 통일전선사업의 ‘대적(對敵) 사업’ 전환을 공식화했다. 또 김정은의 대변인이자 2인자인 김여정은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적(敵)은 적일 뿐”이란 말을 던졌고, 남북관계 속기록에 또렷하게 담겼다.    북한도 “운전자론 무색” 주장   이른바 대북 전문가들도 심기일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 맞춰 “북한이 영변을 양보하는 건 통 큰 비핵화 조치”라고 운을 띄우자 일부 관변 학자들은 “영변이 북핵의 80~90%이고, 어쩌면 전부”라는 식으로 맞장구를 쳤다. 지금 문재인 정부 장관·안보실장·국정원장과 주요국 대사를 비롯한 요직을 거머쥐면 2년 남짓 따뜻하게 권력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교수·박사·연구원 등의 코드 맞추기와 막차 타기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잿밥에 관심이 쏠려 있으니 제대로 된 분석이나 전망·대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 2년은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결정적 시점이 될 수 있다. 냉철한 대북 인식과 로드맵을 갖고 김정은 체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위한 전략을 짜야 한다. 북한 입맛에 맞추거나 따라가는 방식의 회담과 교류는 사상누각이란 게 이번 사태의 교훈이다. 2018년 9월 방북 때 문 대통령이 15만 평양 시민 대중연설을 한 걸 두고 북한이 왜 볼멘소리를 하는지, 옥류관 주방장까지 나서 왜 대통령을 타박하는지 국민은 알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 막후를 책임진 정의용 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잡음에 답해야 한다. 북한의 공연한 트집 잡기라면 당당하게 따져 묻는 대국민 서비스를 하는 게 공복의 도리다.   최악은 북한 최고지도자 남매가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6차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도발에도 불구하고 2018년 새해 벽두 유화적 신년사와 평창 겨울올림픽 특사 파견에 현혹됐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북한에 단 하나의 최고 존엄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5178만명의 존엄한 국민이 있다는 결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북한과의 현란하고 어지러운 판당고(Fandango·스페인 춤)는 여기까지면 족하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06.25 00:39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파주에 산림협력센터…막힌 남북관계 돌파구 될까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파주에 산림협력센터…막힌 남북관계 돌파구 될까

     ━  대북 산림지원 전초기지 될 남북산림협력센터 준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 함경북도 경성군의 중평남새온실농장과 양묘장 조업식에 참석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군사시설을 철거한 자리에 건설한 이 양묘장에서 소나무·잣나무 등 묘목을 연간 2000만 그루 생산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시스] 육로를 이용해 방북길에 나서거나 배를 타고 북한 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남북 간 확연한 차이가 드러나는 경계선을 마주하게 된다. 울창한 숲과 민둥산으로 대비되는 남북한의 산림 생태계다. 굳이 비무장지대(DMZ) 철책선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북한 땅에 접어들었음을 실감케 한다. 한국이 6·25 전쟁 이후 황폐해진 산림 복구에 성공해 세계적으로 모범적 사례로 평가받는 반면 북한은 여전히 산림 빈곤국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통일 한반도를 지향해 가는 과정에서 이 문제는 반드시 극복돼야 할 사안 중 하나로 꼽힌다.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산림 분야 협력에 공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첫 가동에 들어간 파주 남북산림협력센터를 찾아 대북 산림녹화 지원 사업의 실태를 짚어보고 가능성을 타진해봤다.    3일 오전 북한 접경 지역인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남북산림협력센터가 문을 열었다. ‘숲으로 남북을 잇다’라는 주제로 열린 준공식 현장은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설렘이 오랜만에 흘러나왔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불똥이 남북관계에까지 튀는 바람에 서울과 평양의 소통창구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3차례 남북 정상회담 후속 조치 차원의 첫 사업으로 산림 분야 협력을 제시했지만 제대로 된 진전을 보지 못해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속에서 열린 이번 센터 개소가 모처럼의 기지개인 셈이다.   주최 측인 박종호 산림청장 외에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김거성 대통령 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등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센터 가동에 거는 정부의 기대가 크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재강 경기도 평화 부지사와 최종환 파주시장, 파주가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윤후덕·박정 의원,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부사장)이 함께 자리했다. 박종환 한국자유총연맹 총재와 정성헌 새마을운동중앙회장 등 단체 대표와 대북 산림지원에 관심을 보여온 권병헌 미래 숲 대표, 정광선 아시아녹화기구 상임대표, 지영선 생명의 숲 공동대표, 정은조 남북산림협력포럼 이사장,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장 등도 참석했다.   박 산림청장은 준공식 환영사에서 “남북산림협력센터는 산림청의 그간 치산·녹화 경험과 남북 교류 노하우를 집대성해 조성한 시설”이라며 “이곳에서 마련된 묘목과 산림 과학기술 체계는 향후 남북이 함께 한반도 산림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활용할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축사를 통해 “남북한이 기후 변화에 함께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산림협력은 그 열쇠가 될 것”이라며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남북 간 협력의 폭을 넓혀야 하는데, 산림 협력이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센터 개설의 의미를 강조했다. 행사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은 기념 식수로 8년생 모감주나무를 심었고, 한라산부터 백두산까지 남북한 명산 10곳의 이름이 붙여진 조형물에 단풍나무 묘목을 심는 이벤트를 펼쳤다. 모감주나무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이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 심은 것과 같은 수종이며, 단풍나무는 2015년 남북 종자 교류 당시 북한에서 가져온 것에서 양묘해냈다고 산림청 측은 설명했다.   북한 땅인 개성과 평양에 가까운 파주는 대북 교류와 지원·협력의 거점으로 안성맞춤이다. 남북산림협력센터를 북한 지역 녹화사업과 한반도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의 전초기지라 부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17.4(1=1만㎡) 부지에 예산 50억 원이 투입된 산림협력센터는 스마트 양묘장(연면적 4020㎡)과 3층 구조의 관리동으로 구성됐다. 스마트 양묘장은 ICT(정보통신) 기술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최첨단 양묘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조병철 산림청 남북산림협력단장은 “산림 분야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 유일하게 물자 협력의 성과를 내는 분야”라면서 “산림협력센터를 거점 삼아 수준 높은 산림 협력을 차질없이 이행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장을 찾은 기자가 복합자동제어 온실에 들어서자 3cm 정도 자란 소나무가 밤톨 정도 크기의 포트 수십만 개에 담겨 빼곡히 줄지어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바로 위에는 고압식 에어포그 시스템이 분주히 오가며 안개 모양의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센터 관계자는 “물의 증발 효과를 통한 가장 경제적인 냉방 시스템으로, 균일한 온도를 유지해 준다”고 설명했다. 묘목의 생육에 가장 적합한 기온과 습도 범위 값을 설정해주면 환경 자동화 시스템이 이를 알아서 조정해주고, 성장에 필요한 영양액도 자동으로 농도와 공급량을 계산해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이곳에는 온대 중·북부 기후에 적합한 묘목 10종 200만 본이 생산·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 지역과 가장 가까운 곳에 남북산림협력센터를 마련한 건 북한 지역의 풍토에 최대한 적합한 양묘가 가능하고, 서울과 자유로를 통해 비교적 신속하게 접근 및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북한과 산림협력 문제가 합의되고 이행할 경우 묘목과 자재 준비가 빨리 진행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묘목을 자체로 생산해 공급하고 짧은 동선을 통해 북한에 제공할 수 있어 보안 유지에도 유리하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귀띔했다.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인해 유엔과 국제사회가 촘촘하게 쳐놓은 대북제재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특히 미국은 문재인 정부가 독자적인 남북 협력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제재 틀을 준수해야 한다”는 신호를 잇달아 보내고 있다. 지난 4월 국내 비정부기구(NGO)인 ‘국제푸른나무’가 유엔으로부터 대북 산림지원 사업을 제재 예외로 인정받은 건 희소식이다. 물론 스마트 양묘장 등 첨단 설비를 북한에 들여보내는 문제는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북한 당국이 산림협력을 비롯한 남북 간 협력·지원 사업에 여전히 거부감을 보이는 것도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를 애타게 하는 대목이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1월 산림청과 ‘숲으로 이어진 남북 평화 공동체’ 실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북한에 대한 묘목·기자재 지원과 병충해 방지 등 산림 분야의 협력과 지원에 국민 공감대를 이루고, 뜻을 같이하는 NGO와 힘을 합친다는 입장이다. 이하경 주필은 산림협력센터 준공식 축사에서 “중앙일보는 남북 언론교류의 물꼬를 트고 북한 지역 문화유산 답사와 경제참관단 파견을 성사시켰으며, ‘예산 1% 대북지원에 쓰자’는 캠페인과 평화 오디세이 프로그램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의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 남북산림협력센터 기념 식수목으로 선택받은 모감주나무 「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제3차 평양 남북 정상회담 숙소로 사용한 백화원초대소 영빈관 앞 정원에 남측에서 가져온 10년생 모감주나무를 심은 뒤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당시 노동당 부위원장) 등 북측 인사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대북 산림지원용 묘목이 자라게 될 경기도 파주 남북산림협력센터 앞마당에는 3일 모감주나무 세 그루가 심어졌다. 센터 준공식 기념식수목으로 최종 낙점된 3.5m 높이의 모감주나무는 이천시 장호원읍 한 묘목원에서 8년간 길러졌다.   모감주나무는 무환자나뭇과에 속하며 꽃과 열매가 아름다운 활엽수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충남 안면도를 중심으로 서해안에 많이 분포하고, 내륙으로는 대구 근교와 월악산 지대에서 군락지가 발견된다. 꽃은 황금색을 띠고 열매는 복주머니 모양인데, 종교계에서 사용되는 염주의 재료로 쓰인다. 이 나무를 통해 남북의 교류·협력이 지속 가능한 번영을 이루고, 축복이 깃들길 바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남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도 있다.   모감주나무는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숙소인 백화원초대소 마당에 공동으로 기념식수(사진)한 적이 있다.     산림청 측은 “모감주나무는 ‘번영’과 ‘축복’을 상징하는데, 특히 양 정상이 남북관계의 발전을 기원하며 심은 나무와의 연결성을 강조하려고 기념 식수목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남북 정상은 같은 해 4월 판문점 정상회담 때는 소나무를 심었다.     김지수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06.04 00:27

  • "제재로 북 장마당 절반 무너져…스트레스 쌓이는 김정은"

    "제재로 북 장마당 절반 무너져…스트레스 쌓이는 김정은"

     ━  문재인 정부 후반기 대북정책 진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선언문에 서명하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정부가 지난 10일로 출범 3년을 넘겼다. 문 대통령 5년 임기의 중후반에 접어든 것이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21대 국회 구성을 위한 지난달 총선 승리에 더해, 최근에는 70%에 달하는 여론조사 지지율까지 나타나면서 정책 추진에 탄력을 붙이려는 모양새다.     문제는 경제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한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파를 안길 것이란 전망과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또 하나의 중대한 복병은 북한과 한반도 정세다.   13일 서울 중구에 자리한 콘퍼런스 하우스 ‘달개비’에서 조찬 모임으로 열린 한반도포럼(위원장 박영호)을 찾아 분석과 전망을 들어봤다.    “남은 임기 2년 동안 문재인 정부는 결국 북한 문제에서 성과를 내고자 시도할 것이다. 특히 남북 관계-신(新) 남방-신 북방-K방역을 아우르는 외교·안보 영역에서의 업적 만들기에 집착할 가능성이 크다.”   포럼 주제 발표를 맡은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향후 대북 및 한반도 정책 추진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환경 요인으로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와 경제 상황의 개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꼽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방한에 우리 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올여름과 하반기 사이에 성사될 것이란 전망이 가능하고, 이때부터 내년 말까지의 기간이 한반도 안보와 평화에 매우 중요할 것이란 전망이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외교부 차관)은 토론에서 “180석을 얻은 여당의 총선 압승이 대북정책에 별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인휘 교수가 “여당의 대승으로 ‘평화 프로세스’ 추진을 위한 동력을 확보했다”고 진단한 데 대한 문제 제기다. 신 전 차관은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것이고 북·미 관계는 지난해 초를 기준으로 데크레셴도(decrescendo, 음악 용어로 ‘점점 여리게’)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2월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뒤 양측이 소강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불똥이 튄 남북관계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다. 신 전 차관은 “북한의 태도를 바꿀 유일한 요소가 대북 제재인데, 뚫린 구멍이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상당한 약발을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대북제재는 핵을 고집하면 경제가 무너지게 하겠다는 게 기본 의도인데, 중국과 러시아가 뒷문을 열어주는 상황이지만 북한 경제의 회복을 가로막는다는 차원에서 보면 제재의 효과는 여전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사용 가능한 대응 카드는 협상이나 도발, 또는 버티기 등 3가지 정도인데 버티기조차 어렵다는 게 북한으로선 가장 힘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부분이 김정은에겐 엄청난 스트레스이고,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코로나 사태로 북한의 대외교역은 1월 말 이후 전무하다시피 하고, 이 때문에 시장(장마당)의 50%가 무너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북한 경제가 제대로 버틸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북한 체제와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로 인한 ‘셀프 제재’(국경 봉쇄를 의미)까지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이 현재 한국·미국과 대화를 할 여건에 있지 않고 체제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밖으로 나올 여지는 당분간 없다는 것이다.   한·중 관계와 관련, 이용준 자유아시아연구원장(전 외교부 북핵 대사)은 중국의 대(對) 한반도 정책에 비판적 입장을 드러냈다. 이 원장은 “시진핑 주석 방한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가 중국과 더 결속력 있는(binding) 관계를 맺는다고 중국이 북한 문제와 관련해 우리 편을 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괜히 중국이 우리 측을 압박하는 빌미만 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수십 년간 중국에 가져온 환상을 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태환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은 "북·중이 긴밀해지고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큰 변동은 감지되지 않는다”면서 "무엇보다 중국이 코로나 사태와 미·중 갈등으로 인해 북한을 챙길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딜레마에 빠진 한반도 비핵화 협상과 남북문제 타개를 위해 K-방역 물자와 노하우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전 교수는 "아태지역 주둔 미군에게 우리가 방역 물자를 제공하는 문제를 한·미 동맹 차원에서 제안해볼 만하다”고 밝혔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도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국내 대일(對日) 여론이 경직된 상황에서 K-방역을 돌파구 마련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진단 키트와 마스크를 여분이 있는 범위에서 지원하되, 정부가 곤란하면 민간단체나 기업이 나서는 모양새를 갖춰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후반기 대북정책 진단 포럼 참가 전문가들은 북한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제의에 묵묵부답하거나 거부반응을 보이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대국민 연설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독자적인 정책 추진’ 의사를 밝힌 만큼 김정은 위원장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은 "김정은 위원장이 올바른 판단력을 보여줘야 할 때”라며 북한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3차례 정상회담을 하고, 트럼프 미 대통령과도 2차례 회담했는데 미국의 다른 대통령이 들어서거나 트럼프가 연임에 성공하고 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란 얘기다. 김석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북제재가 더 지속되면 국영기업과 엘리트뿐 아니라 북한 주민의 민생에도 영향을 미친다”면서 북측의 거부로 정부 차원의 대북접근이 어렵다면 국제기구를 통한 현실적 지원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포럼 사회를 맡은 박영호 위원장은 "마스크를 낀 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각계 전문가분들이 우리 정부의 향후 대북정책과 한반도 정세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과 전망을 주셨다”면서 "앞으로도 장마당 실태와 엘리트들의 의식 변화 등 북한 내부 정세,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 등 핵심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올해 시진핑 방한부터 내년 말까지가 중요 「 박인휘 이대교수 주제 발표 요지   21대 총선 결과 여당의 대승으로 ‘평화 프로세스’ 추진 동력이 확보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시점으로 예상되는 올 여름~하반기에서 대선 시즌에 돌입하는 내년 말까지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국제질서는 수년간 진행된 ‘국제자유질서 변화’ 논의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으며 한국과 같은 중견국에도 외교적 공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미·중 갈등이 악화되는 상황도 북한·비핵화 문제 해결에 영향을 주는 요소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환경을 무릅쓰고 남북관계의 변화를 시도하느냐가 문제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정부의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국제환경적 차원의 동력은 약화됐다. 다만 강대국의 리더십이 실추한 상황에서 한국의 위상 강화 기회가 발생할 수도 있다. 북·미대화도 동력이 실종됐으며, 트럼프는 2017년 위기 이후 북한 문제를 잘 관리해 한반도 안보가 잘 유지되고 있다는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기념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독자적 정책을 시사했다. 하지만 북한은 대중 및 대러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들의 반응도 긍정적인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제안에 쉽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는 남은 임기 내 북한 ‘비핵화’를 위한 초기 단계 진입을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코로나 피해로 인해 외교정책의 코스트 드리븐(cost-driven) 측면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대외관계에서 ‘선택적 협력’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역할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대중 접근 노골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남북미 대화’, ‘남북중 대화’ 등의 새로운 접근법이 가능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05.14 01:02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CNN은 ‘김정은 위중’…한·미 정보 미묘한 온도차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CNN은 ‘김정은 위중’…한·미 정보 미묘한 온도차

     ━  김정은 유고설 어떻게 생산·유통되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 참석 후 열흘 넘게 공개 활동을 중단하면서 신변이상설이 번졌다. 사진은 지난해 2월 말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동당역에 도착한 김 위원장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김정은 신변 이상설로 한반도와 주변이 어수선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전 세계가 긴장하는 와중에 북한 이슈 쪽으로 급선회한 형국이다. 증권시장 마저 출렁였다. 김정은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에도 꿈쩍 않던 국제사회의 시선이 그의 건강 상태에 모인 건 절대권력을 거머쥔 최고지도자의 건재 여부가 곧 북한 체제의 명운과 결부된다는 믿음에서다. 한국 정부와 청와대의 잇따른 부인에도 불구하고 유력 글로벌 매체가 앞다퉈 ‘뭔가 이상하다’며 관련 의혹을 쏟아내고 있고, 서울과 워싱턴·도쿄 등의 대북 관측통도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를 둘러싼 신변이상설은 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지, 또 어떤 시스템으로 만들어져 확산되는지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해본다.     1986년 11월 중순 서울에선 ‘김일성 피격 사망’이란 충격적 보도가 터졌다. 북한 국가주석 김일성이 암살됐다는 뉴스로 국제 사회는 떠들썩했다. 대통령 주재 긴급 각료회의를 열었고, 북한군 최전방 부대에 조기(弔旗)가 게양됐다거나 김일성의 죽음을 의미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국방부 보고가 이어지면서 사망은 사실인 것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보도 이틀 뒤인 같은 달 18일 김일성은 평양을 방문한 몽골 인민혁명당 서기장 잠빈 바트뭉흐를 맞기 위해 순안비행장에 등장했다. 미군 감청부대의 잘못된 첩보가 진원이라는 주장부터 국방부 책임론, 북한 공작설 등이 쏟아졌지만 미스터리로 남았다. 한국 언론사에는 손꼽히는 대형 오보 사태로 올라있다.   2008년 8월 중순 불거진 김정일 건강 이상설은 북한 권력 구도와 관련해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국가정보원은 “순환기 계통 이상으로 쓰러졌다”고 보고했고, 청와대 고위 인사는 “혼자 양치질은 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해 정상적 통치는 불가능한 상황일 수 있음을 내비쳤다. 마침 북한 정권 수립 60주년인 9·9절 행사에 김정일이 불참하면서 신변 이상설은 증폭됐다. 김정일 사망을 암시하는 통화 내용이 대북 감청망에 포착됐다는 소문까지 나오면서 혼선을 키웠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같은 해 11월 공개활동을 재개했고, 아들 김정은으로 후계권력을 넘기는 작업을 본격화했다. 관련기사김여정 대행론 도는데…침묵하는 북한, 모른다는 미국 왜끊이지 않는 신변 이상설…배경은 비만·흡연    간부 질책 정치국 회의 뒤 모습 감춰   이번 김정은 국무위원장 유고설은 할아버지인 김일성 생일(4월 15일) 참배 행사에 불참하면서 촉발됐다. 집권 첫해인 2012년부터 빼먹지 않던 금수산태양궁전(김일성·김정일 시신 안치 시설) 방문을 거르자 이상설이 나왔고, 호사가의 입에 올랐다. 일부 탈북자나 북한 관련 유튜버들은 나름대로 ‘소식통’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김정은이 극비리에 평양에 들어간 외국 의료진으로부터 큰 수술을 받았다”는 등의 주장을 제기했다. 앞서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김정은이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박봉주 국무위 부위원장을 심하게 질책하는 장면이 조선중앙TV로 공개되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후유증이란 관측까지 나왔다. 하지만 구체적인 근거나 징후가 없는 상황이라 관망해보자는 견해가 우세했다.   불을 붙인 건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다. 그는 17일 ‘분석자료’라는 글을 통해 김정은 건강에 이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그는 14일 벌어진 북한의 순항 미사일 시험 발사를 거론하며,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해 김정은이 유고 상태일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세종연구소는 전두환 대통령 집권 시기 그의 아호를 따 만든 일해(日海)재단을 모태로 하는 나름 비중 있는 국가정책 연구재단이다. 이곳의 북한연구센터장 직함을 가진 정 박사의 ‘분석’이란 점에서 서울 주재 외신을 중심으로 관심이 증폭됐다. 물론 세종 측은 “정 박사의 개인 의견에 불과하다”며 선을 긋고 있다. 돌출성 언론플레이를 못마땅해하는 시각도 내부에 있다.   사흘 뒤 나온 미 CNN 보도는 김정은 이상설을 크게 키웠다. 미 고위 관리를 인용한 기사는 “김 국무위원장이 수술을 받은 후 중태에 빠졌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근거 없는 보도’라며 김정은이 간부들과 지방 체류 중이라고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우리는 모른다”며 가능성을 일축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는 “CNN이 보도를 내놓을 때 많이 신뢰를 두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사실 CNN은 대북 보도에서 대형 오보를 낸 전력이 있다. 2014년 11월엔 ‘김경희 사망설’을 보도해 큰 파장을 불렀다. 김정은이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2013년 12월)했는데, 고모 김경희 마저 숨졌다는 점에서 충격을 던졌다. 하지만 김경희는 지난 1월 말 평양에서 열린 설맞이 공연에 김정은·이설주 부부와 김여정(김정은의 여동생) 노동당 제1부부장과 함께 참석했다. 정보 당국 고위 인사는 “김경희 사망설을 주장하던 노동당 간부 출신 탈북자 이모씨가 우리 정부와 갈등을 빚다 미국으로 망명했는데, CNN이 그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다가 낭패를 본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미 당국의 판단을 토대로 할 때 CNN의 이번 보도도 대형 오보일 공산이 있다. 국제 이슈에서 신속하고 신뢰성 있는 매체로 자리했지만, 북한 문제에선 잇단 고배를 마신 셈이다. 미 외교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의 편집장 해리 카자니아스는 CNN의 이번 보도에 대해 “단 한 곳의 말만 믿고 쓴 건 기사도 아니다. 그것은 쓰레기”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근거 없는 오보인데 외신 실리기도   김정은 관련 오보 사태는 북한 체제의 폐쇄성에 근본 원인이 있다. 정보기관이나 당국이 북한 정보를 이런저런 이유로 신속히 공개 않고 독점하다 보니 문제를 키우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 눈치를 보느라 최고지도자나 그 가족 관련 사안 등 민감한 대북 정보 공개를 꺼리는 경향이 커졌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의 코로나19 관련 실태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지만, 정보당국의 보고나 자료공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직 정보기관 간부는 “2년 전 판문점 정상회담을 열어 ‘문재인-김정은 핫라인’ 개설 등 남북관계의 새 시대를 공언했던 정부가 대북 정보에 깜깜하거나 북한 감싸기에 연연한다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뉴스의 출발점이라 할 서울의 대북 전문가와 탈북 인사, 언론 매체의 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깊이 있는 연구보다는 선정적 분석자료를 만드는 데 치중하고, 믿거나 말거나 식의 유튜브 콘텐츠를 쏟아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언론도 북한 관련 전문 인력 양성과 투자에 나서야 한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 전문가나 탈북 인사, 대북 매체가 근거 없이 주장·보도한 내용이 며칠 후 미국과 일본의 매체에 크게 보도되는 나쁜 고리를 끊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렇지 못하면 북한 관련 정보를 미·일 당국 발표나 매체에 의존해야 했던 1990년대 이전 상황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경고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04.23 00:30

  • 끊이지 않는 신변 이상설…배경은 비만·흡연

    끊이지 않는 신변 이상설…배경은 비만·흡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4년 10월 무릎 수술때문에 40일간 잠적했다 지팡이를 들고 등장해 평양 위성과학자 주택지구를 현지지도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TV]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984년생으로 올해 나이 36살이다. 혈기왕성할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2012년 집권 이후 끊임없이 건강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130kg안팎으로 추정되는 과체중과 음주 및 흡연은 전문가가 꼽는 김정은의 건강 적신호 주요 원인이다.   2014년 6월 북한 매체가 공개한 영상에서 김 위원장의 오른쪽 이마에 약 5㎝의 흉터가 포착됐다. 당시 그가 술을 마시고 가구 모서리 등에 부딪쳐 생긴 상처라는 설이 나돌아 관심을 끌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일본인 요리사로 알려진 후지모토 겐지는 2016년 평양을 방문한 후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하룻밤에 와인 10병을 마셨다는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김정은은 줄담배를 피는 애연가로 알려져 있다. 관영 매체를 통해 군부대나 공장·기업소 방문 물론이고 병원이나 육아원 같은 금연구역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그의 모습이 드러난다. 관련기사[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CNN은 '김정은 위중'…한·미 정보 미묘한 온도차김여정 대행론 도는데…침묵하는 북한, 모른다는 미국 왜   2018년 4·27 판문점 정상회담 중 국군 의장대 사열 행사 이동 과정에서 지나치게 땀을 흘리는 듯 보였으며, 지난해 말 간부들과의 백두산 등정 시에는 눈밭에 앉아 숨을 고르는 모습이 포착돼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이란 관측에 제기됐다. 지난 15일 김일성 생일 참배 행사 불참은 여전히 의문스런 대목이다. 정부 당국의 브리핑대로 신변에 큰 변고가 있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2~3월 무리한 일정 강행이나 시술 수준의 의료조치로 인해 공개활동이 어려웠던 것이란 말이 나온다.    김지수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2020.04.23 00:05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미국을 너무 모르는 김정은과 참모들…멘토가 필요하다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미국을 너무 모르는 김정은과 참모들…멘토가 필요하다

     ━  북한의 대미인식 한계와 대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서부전선 대연합부대 포사격을 참관했다. [뉴스1] 북한은 미국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북·미 정상회담 국면은 물론 핵·미사일 대치, 워싱턴을 향해 거친 ‘말 폭탄’을 쏴대는 상황에 늘 갖는 궁금증이다. 혹자는 북한에 후한 점수를 준다. 북한의 완승으로 끝난 미 해군 정찰함 푸에블로(AGER-2) 피랍(1968년)까지 연원을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1990년대부터 벌어진 북핵 문제 등 현안이 북한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왔다는 측면에서다. 미국은 뭔가 어리숙한 데 반해 북한은 갖은 지략으로 핵 보유와 체제 유지를 이뤘다는 주장도 있다. 마치 북한이 칠종칠금(七縱七擒)하며 미국을 요리해 온 듯한 관점이다.   하지만 본질을 파고들면 미국의 힘 앞에 좌절하는 북한 당국과 최고지도자의 고뇌가 드러난다. 70년 세월을 넘어 말 그대로 ‘백년숙적’으로 치닫는 북·미 관계의 출로를 찾으려는 몸부림이다. 역사적 사실관계를 이탈해 반미 선전·선동으로 버텨온 피로감도 감지된다.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그의 핵심 참모들이 쏟아낸 대미 메시지를 짚어보면 그 한계는 더 또렷해진다.    “나는 해외의 이름난 대학으로 가지 않겠소. 우리 공화국에는 수령님의 존함을 모신 훌륭한 대학이 있지 않소. 난 이곳에서 공부하고 조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소.”   평양 남산고급중학교를 다니던 김정일은 노동당 간부로부터 해외 유학을 권유받았다. 내각 수상인 김일성의 후계자가 될지도 모를(결국 1974년 후계자로 결정) 이에 대한 배려다. 김정일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리고 1960년 9월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이 스토리는 ‘주체 조선을 위해 공부하고 애쓴 장군님의 혁명 일화’로 각색돼 당 간부에게 회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자녀교육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유명 여배우 성혜림과의 사이에 낳은 장남 김정남(2017년 2월 북한의 독극물 테러로 피살)은 물론 고용희와의 슬하에 있던 차남 김정철, 막내 김정은, 딸 김여정을 모두 스위스로 보냈다. 자신의 ‘김대 졸업장’에 때늦은 후회를 했거나, 자식들만큼은 서방 유학을 경험토록 하겠다는 뜻일 수 있다. 물론 조기유학인데다 성인이 되기 전 평양으로 귀환시켰다는 점에서 한계는 있다. 당시 스위스 대사관의 철저한 경호·의전을 받았고, 전설적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을 흠모해 유니폼과 신발을 수집하는 게 취미였다는 뒷얘기가 동창생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정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브리핑 중 코로나 진단키트를 꺼내 살펴보는 모습.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이목이 코로나19에 쏠려있는 가운데 최근 잇따라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김정은의 북·미 관계 셈법이 무엇인지 주목된다. [AP=연합뉴스] 김정일 사망(2011년 12월)으로 권력을 세습한 김정은 위원장은 적잖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김일성·김정일과 달리 서방 유학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본 젊은 리더십(당시 27세)은 뭔가 다를 것이란 생각에서다. 부인 이설주와 함께 미국 문화의 상징인 미키마우스 캐릭터가 등장하는 공연을 보고, 패스트푸드를 파는 식당에서 팝콘을 나눠 먹는 놀라운 장면이 이어졌다. 평양의 청년 지도자가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란 관측까지 대두했다. 하지만 10년 가까운 김정은 집권 성적표는 퇴행적이다. 핵과 미사일 도발로 대북제재를 자초했고, 고통은 고스란히 2500만 주민의 몫이 됐다.     김정은의 대미인식도 대립과 적대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 신년사를 대체한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지난해 12월 말) ‘보고’에서 김 위원장은 북·미 관계의 답보 책임을 미국에 떠넘겼다. “미국의 본심은 대화와 협상의 간판을 걸어놓고 흡진갑진(일하는 척 흉내를 내며 속임)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날강도’ 등으로 미국을 몰아세우며 “충격적 실제 행동에로 넘어갈 것”이란 위협을 쏟아냈다. 지난달 17일에는 3000병상 규모로 추정되는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서 “적대 세력의 더러운 제재와 봉쇄를 웃음으로 짓부시자”며 반미를 내부 통치에 활용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2014년 11월 황해남도 신천박물관을 찾은 김 위원장은 “미제야말로 인간살육을 도락으로 삼는 식인종이며 살인마”라고 주장했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이 주둔하지도 않은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북한은 “미제가 황해남도 신천 주민 3만5000명을 학살한 현장”이라고 왜곡 선전한다. 김정은이 잘못을 바로잡기보다는 ‘반미 사상 교양’으로 몰아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구를 못 찾는 대미외교   미국 문제를 맡은 핵심 참모의 면면도 신통치 않아 보인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총괄한 북측 인물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다. 군부 강경 인사로 도발 총책인 정찰총국장을 지낸 인물을 갑자기 대미라인에 포진케 한 후유증은 컸다. 결국 지난해 2월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의 파국은 북한이 미국의 패를 읽는 데 실패한 때문이다. 30년간 스위스 대사 등을 지내며 김일성 비자금 관리와 김정은 형제 유학 뒤치다꺼리를 맡은 이수용을 당 부위원장(지난해 12월 해임)에 앉혀 외교를 총괄하게 한 것도 패착에 가깝다.   지난달 30일 외무성 신임 대미협상 국장이 내놓은 담화는 출구를 찾지 못한 북한 대미외교의 현주소를 드러낸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대북제재 언급을 비난한 담화는 시종일관 북한 당국이 미국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 든다. “미국의 노림수를 어항 속 물고기 들여다보듯 한다”거나 “백악관에서 기침 소리만 나도 누구 기침이며 왜 그런지 정확히 간파한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미국을 설득할 논리나 새 제안 없이 “건드리면 다친다”는 말로 끝낸 담화는 맥아리가 없어 보인다. 불과 8일 전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친서 교환에 화색을 드러냈던 담화와도 궤를 맞추지 못했다. 북한 전략가들은 ‘치고 빠지기식’ 전술로 상대를 혼선에 빠트리려는 것이라 착각할지 모르지만, 외부 시선은 최근 평양발 대남·대미 메시지가 전례 없는 엇박자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김여정, 습작 수준의 저급한 ‘담화’   문제는 김정은과 그의 참모들이 미국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고 식견을 높여준 인물이 평양 권력 내부에 없다는 점이다. 현지 유학을 거치고 미국 관련 현안을 수십 년 챙겨온 전문가들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향방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우물 안 개구리’ 격인 노동당과 군부 인사가 대미전략을 제대로 짜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최근 김정은의 최고 멘토이자 대변인으로 등장한 여동생 김여정은 습작 수준의 저급한 ‘담화’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를 극렬 비난해 역량 부족을 드러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로 북·미 모두 집중력을 잃고 한반도 현안도 후순위로 미뤄진 듯하다. 하지만 곧 화급한 숙제로 다가올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김정은에게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반도 정책, 대북 현안을 다루는 워싱턴의 속내와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전해줄 현인(賢人)이 필요한 이유다. “건드리면 다친다”는 김일성 시절의 고슴도치 전략으로 회귀한 듯한 평양의 답답한 메시지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 ‘경제의 정치화’ 극복해야 김정은 체제 정상화 「 정치가 지배하는 북한 경제 북한 경제는 왜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한때 북한은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산업시설과 중국·소련의 원조, 풍부한 지하자원 등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대기근에 이어 20년 넘게 만성적 경제난을 겪고 있다.   저자는 1970년대 초까지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3배나 높았던 북한 경제의 위기 원인을 ‘경제의 정치화(politicalization of economy)’에서 찾았다. 북한이 택한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경제의 정치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생태환경을 지녔다는 것이다. 정치가 지나치게 개입해 간섭·통제하면 경제가 위축돼 갈 길을 잃고, 위기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20년 넘게 북한을 연구한 조영기 국민대 초빙교수의 신간 『정치가 지배하는 북한경제』(사진)는 북한 경제의 정치화를 분석하고, 그에 따른 정상화 방안을 모색했다. 특히 김일성 유일지배체제가 등장하면서 ‘경제의 정치화’ 현상이 더욱 강화된 점에 주목한다. 이 때문에 북한의 경제는 주민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독재자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문제가 북한 경제 곳곳에 파고들며 암적 존재가 됐고, 경제 위기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북한 경제의 정상화는 ‘경제의 정치화’에서 벗어나 ‘경제의 경제화’로 체질을 바꾸는 것이라 제안한다. 또 북한 경제의 정상화를 위한 체제 이행 전략(system transition strategy)과 산업화 전략(industrialization strategy)도 제시했다.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04.02 00:35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코로나 국난’ 속 국가 정보기관이 보이지 않는다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코로나 국난’ 속 국가 정보기관이 보이지 않는다

     ━  국정원, 새로운 위협으로부터 국민 지켜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국가 정보기관의 대처 방식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감염병 창궐 등 새로운 위협에 맞설 창의적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할 국정원이 사실상 존재감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다. [국정원 홈페이지 캡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20일 국내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 오늘로 53일째를 맞았지만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확진자가 8000명에 육박하고 사망자는 60명 선을 넘었다. 정부가 ‘방역 모범 사례’ 운운하며 셀프 칭찬을 이어가는 동안 대구·경북을 제외하고도 서울과 지방 곳곳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이 마스크 부족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송구스럽다”는 말을 연발하고 있고, 국무총리는 아예 대구에 머물며 방역 전선을 지휘하고 있다.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국가 위기 상황에서 존재감을 찾아보기 힘든 곳이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관을 자처해온 국가정보원(원장 서훈)이다. 국가 위기 국면에서 국제 정보와 국내 동향을 기민하게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처해 안보와 국민을 지켜야 하는 공복이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예방 정보’란 기치를 내걸고 뒷수습이 아니라 위기 사태를 사전에 막아내는 스마트한 정보기관이 되겠다던 대국민 공약은 어디로 갔을까.    포털에서 국가정보원과 코로나를 연관 검색어로 찾아보면 제일 먼저 뜨는 기사 하나가 있다. 서훈 국정원장과 직원들이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과 취약 계층에게 8535만8000원의 성금을 지난 6일 기탁했다는 소식이다. 그 외에 코로나 창궐 사태와 관련해 국정원의 움직임이나 대안제시 등을 전하는 뉴스는 없다. 벌써 몇 달째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국가 경제는 물론 정치·안보 상황에 미칠 상황이 심각할 것으로 예측되는 비상사태 속에서 국정원이 ‘성금 모으기’ 말고 할 일이 없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자연스럽다.   북한의 코로나 사태와 관련한 동향을 국정원 측이 지난 3일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는 내용은 확인된다. 코로나19와 관련해 북한 당국이 7000~8000명의 주민을 격리조치 했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 노동신문을 통해 국회 보고 이틀 전 보도한 내용이다. 대북정보 수집이라기 보다는 언론에도 전해진 공개 정보를 보고한 셈이다. 북한 상황이 궁금해진 국회 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북한 보위부가 2월 8일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외국에 알린 혐의로 한 여성을 체포했다’는 등의 첩보성 전언이 사실인지 알려달라 요청했지만, 국정원의 답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정보 능력이 없어 몰랐거나, 코로나 사태에 대해 언급했다가 북한에 미운털이 박힐까 봐 눈치를 보는 경우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코드에 맞지 않는 부정적 정보인데 어느 I.O(intelligence officer, 정보 수집 요원)가 눈치 없이 적극적으로 뛰겠는가”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복지부동(伏地不動)에 가까운 이런 난맥상은 해외파트도 마찬가지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지난해 12월 첫 환자가 발생하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고, 올해 들어 한국으로의 전파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여러 차례 이어졌지만 국정원이 이에 얼마나 잘 대처했는지는 미지수다. 중국 현지 실태뿐 아니라 한·중 간의 인적·물적 교류 상황, 우리 교민에 미칠 파장이나 정부 대책 등 꼼꼼하게 챙겨야 할 일들이 적지 않았다. 중국 현지에 외교관 등으로 합법 체류하고 있는 국정원 소속 화이트 요원들이 나서고, 필요할 경우 추가 인력을 투입해서라도 반드시 선제적으로 정보 대처를 했어야 한 사안이다. 익명을 요구한 안보 전문가는 “우한 현지를 오간 신천지 교인 등의 동향은 국정원 요원들이 영사 보호나 한·중 갈등 소지를 사전에 막는다는 차원에서라도 챙겼어야 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신천지가 집단 감염의 진원지로 돼버린 상황에서 국정원의 정보 수집과 보고 역할에 궁금증이 가는 대목이다.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국정원법에 명시된 국내 보안정보(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 이외의 국내 정보 수집 활동이나 이를 지시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 했다. 각 기관이나 학원·노동·언론 분야에 출입하며 관련 정보를 수집하던 담당관을 폐지했다. 이른바 국가정보기관의 ‘탈 정치, 탈 권력’을 선언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나 신천지 동향 등에 대해 챙기지 못한 건 이런 직무 범위를 벗어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국정원은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규정에 얽매여 국민의 안전과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고 국격을 손상시킬 수 있는 사태에 아예 손을 놓고 있다면 국가 정보기관으로서의 올바른 자세는 아니라는 지적이 더 설득력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미 FBI(연방수사국)의 기민한 대처를 국정원이 본받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FBI는 지난달 20일 코로나 사태가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번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다량 구매해 비축했다. FBI는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코로나19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있고, 미국 전역에 널리 퍼졌을 때 보급하기 위해 전국에 보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때는 미국 전역의 코로나 누적 확진자가 15명에 불과했고, 사망자가 없던 시점인데도 정보 당국이 나선 것이다. CNBC 방송이 FBI의 마스크 구매에 대해 “코로나가 대유행 병이 될 가능성에 정부 기관이 어떻게 대비하는지 잘 보여준다”고 평가한 대목을 국정원을 곱씹어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취임한 서훈 국정원장은 2년 9개월을 보냈다. 초기엔 이른바 적폐청산의 칼날 속에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전직 원장이 줄줄이 구속됐다. 수십 명에 이르는 실·국장과 단장급 전직 간부의 경우 보수단체에 광고비 등을 지원한 관행이 문제시되면서 ‘국고손실죄’ 혐의로 징역형을 살고 있다. 파렴치범으로 몰리고 변호사 비용 부담에 연금마저 박탈되면서 삶이 파탄에 이른 경우도 있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상관들의 명을 받아 벌어진 일을 왜 우리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2018년 2월 평창 겨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 김여정(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의 청와대 특사 방문과 같은 해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9·19 평양 공동선언은 국정원의 역량과 존재감을 과시하는 계기였다. 하지만 대북 특사 파견 때 서훈 원장 등 일행이 김정은 앞에서 받아쓰기 하는 듯한 의전 모양새엔 실망감이 나오기도 했다. 또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가수 현송월의 남한 행차에 과도하다 싶은 대우를 한 점도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코로나19 사태에 존재감이 없는 듯한 국정원의 모습은 국가 위기상황에 국가 정보기관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새로운 과제를 남겼다. 교조적이고 비현실적인 ‘직원 복무규정’에 얽매여 나 몰라라 하는 태도는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전대미문 새로운 종류의 인간 안보(human security) 위협에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스스로의 규정에 얽매여 획일화된 조직보다는 창의적 해법과 적극적, 선제적 대응으로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국가 정보기관을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 코로나로 문 닫은 북한, 자력갱생으로 내부 단속 「 우리의 것이 제일이야 북한 노동신문은 11일 “남의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의 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발전시켜 보물로 만들자”며 자력갱생을 통한 사상 교양의 고삐를 당겼다. 이 신문은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자력갱생으로 흥하는 길을 열어 나가자’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통해 이른바 ‘자력갱생’형 공산품의 우수 사례를 소개했다. 대북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한 국경 폐쇄 조치가 한 달 이상 이어지면서 생필품 부족이나 가격 폭등이 우려되자 내부결속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북한은 국산품 애용도 독려하고 있다.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11일 『우리의 것이 제일이야』(사진)라는 제목의 화첩을 발간했다. 이 책자는 북한에서 최고로 인기가 높다는 화장품·신발·건강식품·학용품 등의 북한 자체 생산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이 너도나도 찾는 민들레 학습장” “세계와 경쟁하는 은하수 화장품”과 같이 소비자들의 구매 의욕을 자극하는 광고성 카피도 눈길을 끌었다.   화첩은 “현대적으로 꾸려진 생산기지들에서는 명 제품, 명 상품들이 대량 생산돼 인민들에게 자기 힘, 자기 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한껏 안겨주고 있다”면서 “우리의 것이 인민들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로 사실상 셀프제재에 돌입한 고립 상황 속에서 경제적으로 발전한 정상국가의 이미지를 연출하려는 것”이라며 “체제 결속과 김정은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도모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김지수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03.12 00:11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느긋해진 트럼프에 속타는 김정은…“도발 쉽지 않을 것”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느긋해진 트럼프에 속타는 김정은…“도발 쉽지 않을 것”

     ━  코로나 창궐 사태 속 김정은의 생존전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김여정(왼쪽)·조용원(오른쪽) 노동당 제1부부장 등 주요 간부들과 함께 백마(白馬)를 타고 백두산을 등정했다. 북한이 ‘혁명의 성지’라 주장하는 백두산에 ‘백두혈통’으로 선전하는 김씨 일가 세습통치의 상징인 백마 타고 오르는 모습을 통해 김 위원장 위상이 굳건하다는 것을 과시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조선중앙TV 캡처=연합뉴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중국발 코로나19 유탄에 휘청이고 있다. “단 한 명의 감염자도 없다”(2월 19일 자 노동신문)는 공식 입장에도 불구하고 발병설이 퍼져 흉흉한 데다, 체제 전반에 속속 충격파를 미치고 있다. 지난 8일 창군절 기념 군사 퍼레이드가 취소된 데 이어 16일에는 김정일(2011년 사망) 국방위원장 78회 생일 기념 보고대회도 열지 못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선 아버지의 생일상을 차리지 못한 셈이다. 지난해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어 미국의 대북제재 장기화에 대응한 ‘정면돌파전’을 선언했지만 코로나19 비상방역체계 가동에 금세 추동력을 잃어버렸다. 김정은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흥미를 잃었다는 워싱턴발 보도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후견인 역할을 해온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경황이 없다. 김정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제 아침 통일부 공보실의 대북·통일 관련 기사 스크랩엔 달랑 하나의 기사만 실렸다. 중국 어선이 북한 수역에 들어가 조업하는 바람에 우리 어민들의 오징어 어획량이 5년 새 20% 수준으로 급감했다는 내용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참가나 남북 정상회담 개최 때 A4 용지 100쪽이 넘는 분량의 기사가 빽빽하게 실리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오징어가 스크랩 체면을 살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대북 이슈와 남북 관계 공백에다 코로나19 창궐이 가져온 북한 뉴스의 완전 실종사태가 현실화한 것이다.    코로나 의식해 간부들과 거리두기   이런 상황은 김정은에겐 존재감 상실과 마찬가지다. 한때 서울의 신문·방송뿐 아니라 유력 외신의 톱기사를 장식하던 그가 세인들의 뇌리 속에서 잊히고 있는 것이다. 2020년 신년사를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 보고문으로 대체한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 대화에 대한 기대를 접을 것임을 시사하며 정면돌파전을 선언했다. 직접 경제 현장을 챙길 기세였지만, 코로나 감염병이 발목을 잡았다.   김정은을 이른바 ‘최고 존엄’으로 내세우며 절대시하는 북한 체제에선 만에 하나라도 방역망이 뚫리면 큰일 난다는 위기의식이 공유된다. 김정일 생일을 맞아 그의 시신이 보관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은 김정은이 예전과 달리 핵심 당 간부들과 뚝 떨어져 참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월 25일 설 명절 축하공연 관람 이후 22일 만에 공석에 모습을 보인 김정은은 다시 은둔에 들어갔다. 사실상 자가격리에 접어든 형국이다. 공장·기업소 등 경제현장 방문은 김재룡 총리가 대신하고 있다는 게 노동신문의 보도다.   코로나19 때문에 북한이 얼마나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는 북한 관영 매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이례적으로 중국을 비롯한 코로나 발생 국가의 확진자·사망자 숫자를 거의 실시간으로 알리고, 하루 여러 차례에 걸쳐 조선중앙TV와 제3 방송(내부용 유선방송) 등을 통해 캠페인 보도를 내보낸다. 한국의 발병 상황을 팩트 위주로 소상하게 전하는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과거엔 대남 비난의 소재로 쓰는 데 급급했지만 이번엔 주민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들은 북한 장마당의 물가와 환율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과 함께 북·중 접경 지역의 밀무역 루트를 통한 감염 전파와 북한 당국의 단속 강화 뉴스도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의 속을 타게 하는 건 트럼프 미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관측일 수 있다. 미 CNN 방송이 지난 10일 보도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대선 전에 김정은 위원장과 3차 정상회담을 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전했을 때만 해도 사실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보좌관이 이틀 뒤 “또 다른 (미국과 북한 간의) 정상회담이 적절한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내면서 상황은 심각해졌다. 오브라이언이 지난 6일 “미·북 비핵화 협상이 대선 등 미국의 국내 정치 일정에 전혀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언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아니냐는 측면에서다.   문재인 정부에 대립각을 세워온 김정은으로서는 ‘개별관광’ 제안도 마뜩잖은 듯하다. 유엔과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의 서슬이 퍼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밀어붙이는 금강산 관광 재개나 개성공단 재가동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을 북한 대남파트에선 내렸을 공산이 크다. 북한 입장에선 문재인 정부가 제재를 뛰어넘어 남북관계를 추진할 의지나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북한 매체는 19일 문 대통령을 ‘남조선 집권자’로 폄훼하며 “사대와 외세 굴종의 냄새가 푹푹 풍긴다” 거나 “아직 정신이 덜 든 모양”이라는 비방을 펼쳤다.   김정은의 심기를 한층 불편하게 만든 최악의 뉴스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국회의원 출마가 아닐까 싶다. 2016년 탈북 망명한 태 전 공사는 지난 11일 4·15 총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의 지역구 출마 첫 일성은 한국 정착 후 얻은 이름 ‘구민(救民)’에 따라 북한 민중을 김정은 독재에서 구출해내겠다는 것이었다. 태 전 공사는 유창한 영어를 무기로 외신회견을 통해 김정은 비판 메시지를 잇달아 쏟아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 섣부르게 대응했다간 북한이 낭패를 볼 수 있고, 공개 유세 등에 나선 그에게 위해를 가했다가는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처가 쉽지 않다. 태 전 공사에게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을 퍼붓던 북한이 아직 아무런 반응을 내지 못하고 함구하는 것도 이런 고민 때문으로 보인다.    올 가을 후계자 등장 10년 맞아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진 김정은으로선 그야말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판이다. 오는 9월은 그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란 직함과 북한군 대장 칭호를 받으며 공개석상에 처음 등장한 지 꼭 10년이 되는 시점이다. 후계자 추대 이후 10년간의 리더십을 평가받는 자리일 수 있다. 10월엔 노동당 창건 75주년이 잡혀있다. 2016년 5월 열린 7차 노동당 대회에서 야심 차게 발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마무리해야 하는 해이기도 하다.   적지 않은 전문기관과 학자·연구자 그룹에서 이런 압박감에 시달리는 상황이 이어질 경우 김정은이 도발국면으로 전환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관측에도 힘이 실린다.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하던 김정은이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서 기가 꺾였고, 수세적 내부 관리 국면으로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이란 최고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지난달 폭살시키는 등 김정은에게 분명한 경고를 보냈다. E-8C 조인트 스타즈(J-STARS) 지상 감시용 정찰기를 18일 한반도에 전개하는 등 대북압박을 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미국 재선이 있던 2004년과 2012년 북한의 도발이 없었고, 지난달 8일 김정은 생일에 시진핑이 보낸 축하 서한에도 도발 자제 메시지가 실려있었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코로나 사태로 리더십에 위기를 겪고 있는 시진핑, 재선 가도를 달리는 데 집중하고 있는 트럼프의 인내심을 시험할 도발을 감행하는 건 김정은에게 나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김정은, 백두산 등정 때 후계자로 여동생 김여정 지명" 「 안찬일 박사가 19일 유튜브 에서 김정은이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을 후계자로 지목했다고 주장했다. [유튜브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의 후계자로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지명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탈북 1호 박사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은 20일 자신의 유튜브인 ‘안찬일TV’를 통해 “지난해 10월 김정은이 백두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수행한 간부들에게 ‘이제 나의 후계자는 김여정 동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안 이사장은 "김정은의 건강이 좋지 않아 지난 1월 프랑스 의료진이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을 치료했다”면서 "젊은 나이(36)에도 불구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점이 후계 지명을 서두른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에 적대적인 인사들을 잇달아 제거하고 있는 점도 의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5일 설 명절 축하공연에 김정은이 고모 김경희 노동당 전 부장을 6년 만에 등장시켰고, 그 옆자리에 김여정이 앉도록 한 것도 이른바 ‘백두혈통’으로 불리는 ‘김씨 일가’를 부각하려는 의도였다는 게 안 이사장의 분석이다.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와 사이에 세 자녀를 뒀지만, 모두 10살 이하의 어린 나이로 파악되고 있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후계자를 공개하면 권력 누수가 있을 것이란 점에서 김정은이 조기 지명을 했을 것인지는 다소 의문”이라며 "추가 정보 확인이 필요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02.21 00:29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방역망 뚫리면 체제 위협”…‘셀프 제재’ 돌입한 평양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방역망 뚫리면 체제 위협”…‘셀프 제재’ 돌입한 평양

     ━  신종 코로나 유입될까 문 닫아건 북한   지난해 말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새해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북한이 선전·선동을 강화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산과 물이 잇닿은 인방(隣邦)’이라며 혈맹 관계를 과시해온 이웃 국가 중국에서 창궐하는 데다, 열악한 북한의 방역체계가 아킬레스건이란 판단에서다. 한번 뚫렸다가는 김정은 체제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생각도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외부로 통하는 육·해로와 하늘길을 완전히 차단하는 일이다. 노동신문을 비롯한 관영 매체는 “이 위험한 전염병이 우리나라에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한사람 같이 떨쳐 나서야 한다”며 대책을 다그치고 있다. 북한의 교역과 인적 왕래를 막아온 대북제재에 반발해온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스스로 장벽을 쌓는 ‘셀프 제재’에 나선 형국이라 말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두고 마주하던 찰나 회담장인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선 북측 경호·의전 요원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김정은이 서명할 방명록과 책걸상을 소독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분무기로 소독약을 뿌리고 흰 천으로 팔걸이와 등받이 등 곳곳을 닦아냈다. 서명용으로 준비된 펜도 소독했다. 도청장치나 폭발물 등 위협 요소를 찾아내는 작업보다 소독에 더 공을 들이는 모습은 우리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정작 방명록에 글을 남길 때 김정은 위원장은 준비된 펜이 아닌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건넨 필기구를 사용했다. 북측이 김정은의 신변 경호에 얼마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세균이나 화학 물질을 활용한 은밀한 테러나 위해(危害)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는 모습은 북한 경호팀의 중요 체크포인트라는 게 대북 정보 관계자의 귀띔이다.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독극물인 VX를 이용해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북한 당국으로선 누구보다 그 위험을 잘 알 수밖에 없다.   백두산 지역이 영하 40도를 기록했다는 일기예보. [조선중앙TV 캡처] 최근 입수된 북한의 내부 문헌에는 손에 피부병이 걸린 여성 지배인을 최고지도자의 공장 현지 방문 시 접견자로 선발했던 고위 간부가 ‘수령을 제대로 보위 못 한 반역자’로 단죄되는 장면이 담겨있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지자 해외 방문을 다녀온 최용해 노동당 비서는 아예 평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방에 한동안 격리됐다. 김정은과의 접촉은 금지된 것으로 우리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이처럼 감염병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해온 북한으로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 큰 걱정거리일 수밖에 없다. 사태의 심각성으로 볼 때 2002년 중국에서 발생해 퍼졌던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2012년 발병한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보다 훨씬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감염병에 취약한 북한으로선 자칫 체제의 명운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는 절박감까지 감지된다. 윤효성 평양시 위생방역소장은 5일 조선중앙TV에 출연해 “지금 코로나비루스 차단을 우리 국가의 안전과 인민의 생명과 관련된 중대한 사업으로 보고 전 국가적으로 힘있게 대책을 다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내각 보건성과 농업성·상업성 등 중앙기관 책임일꾼(주로 장관급을 지칭)이 참여하는 노동당 중앙비상방역지휘부가 구성됐고, 의심환자 검진에 매일 3만여 명이 투입되고 있다. 평양피복공장과 사동옷공장 등에선 생산 라인을 풀 가동해 하루 수만 개의 마스크를 생산하는 중이다.   북한이 유달리 사태의 심각성과 대응 장면을 관영 매체로 공개하는 것도 주목된다. 과거 감염병의 확산이나 재난·재해 발생 사실,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숨기는데 급급했던 것과 차이가 난다. 6일에도 조선중앙TV는 오후 3시 30분 정규방송 시작 직후부터 7분 안팎의 ‘신종 코로나 비루스를 철저히 막자’는 내용의 캠페인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밤 11시 종료 때까지 3차례 반복했다. 오후 보도와 밤 종합보도, 마감뉴스에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비중 있게 다뤘다.   한국에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전한 5일 조선중앙TV. [조선중앙TV 캡처] 전담 앵커를 두고 관련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우한 지역을 중심으로 중국 내 감염 실태와 대응 조치를 소개하고 국제 사회로의 확산 추세와 예방책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구체적인 수치를 그래픽 자료로 보여주면서 그날그날 “남조선에서도 감염자 00명, 의진자(의심되는 환자) 00명이 발생했다”고 보도하는 식이다. 특히 중국 상황을 전할 때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듯 “하루 사망자 기록의 최대치”라는 표현도 쓰고 있다.   북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환자는 단 한명도 없다는 점을 관영 매체들은 강조한다. 지난 2일 송인범 보건성 국장이 ‘감염자 없음’을 밝혔지만 외부에서 은폐 의혹이 이어지자, 6일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신형 코로나비루스 감염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탕개(물건의 동인 줄을 팽팽하고 긴장감 있게 죄어주는 기구)를 늦춰선 안 된다”고 우회적인 주장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노동신문이 강원도 비상방역지휘부의 움직임을 전하면서 “격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원들을 고정시키고 보호복과 마스크를 비롯한 의료품을 원만히 보장해주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밝힌 대목을 들어 환자 발생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가뜩이나 팍팍한 북한 경제와 주민 살림살이에 주름을 더하고 있다. 지난 연말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를 연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의 대화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정면돌파전’을 선언했다. 노동당 창당 75주년을 맞는 올해 이른바 자력갱생을 기치로 경제력 다지기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미처 본격적인 착수도 하기 전에 신종 코로나 먹구름이 북한에 밀려들었다. 김정은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간의 정상외교는 물론 북·중 국경을 통한 교역이나 밀무역도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과 서방의 대북제재에도 든든한 뒷심이 됐던 중국 지도부와 북한 경제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해온 비공식 거래가 모두 무너질 판이다. 노동신문이 6일 정면돌파전의 관철을 촉구하며 노동당 간부들에게 “시키는 일이나 하는 월급쟁이, 기회주의자로 살고 있는 것 아니냐”고 다그친 건 이런 내부 긴장감을 반영한다.   북한은 신종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문을 연 평안남도 양덕 온천관광지구에 예약이 넘쳐나고 이미 2만5000여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선전한다. 2013년 개장한 강원도 마식령스키장도 스키 관광으로 붐빈다는 게 평양방송의 보도다. 김정은이 주도해 건설한 시범 관광지를 부각 선전하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하지만 중국인 관광객이 완전히 끊긴 데다 북한 주민들도 잔뜩 위축된 상태라 실제 상황은 선전과 다르다고 한다. 주북 러시아 대사관은 지난 4일 페이스북을 통해  “호텔·상점 등에서 외국인 대상 영업이 중단됐고 신임 외교관의 부임도 중단됐다”고 전했다. 홍수 등 재난 때마다 구조와 대책 마련을 주문하며 ‘민생 챙기기’ 이미지를 띄우던 김정은 위원장은 신종 코로나 사태에 침묵하고 있다.     ■ 강릉 무장공비에 김격식까지 띄우는 북 「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때 자폭·사살 된 25명의 북한 무장공비를 ‘자폭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북한이 이들 시신이 묻힌 ‘조국해방전쟁 참전 열사릉’에 만든 부조 형태의 조형물. [조선중앙TV 캡처] 북한이 1996년 9월 잠수함을 타고 동해 상으로 침투했다 자폭·사살된 북한 무장 요원들을 ‘강릉의 자폭 용사’로 찬양하고 나섰다. 조선중앙TV는 6일 강원도 강릉으로 침투했던 김동원 소장(사건 당시 대좌)을 비롯한 25명의 북한군을 “수십만 적군들의 포위 속에서도 영웅적 위훈을 발휘했다”고 치켜세웠다.   중앙TV는 이들이 잠수함을 타고 침투한 뒤 문제가 발생하자 “장수봉 앞이다, 돌파할 가능성은 없다. 전원 자폭을 각오한다”는 전문을 북으로 날린 뒤 ‘김정일 장군 만세’를 외쳤다고 전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송환받은 이들의 유해를 ‘조국해방전쟁 참전 열사릉’에 묻히도록 조치했다면서, 김정은이 “전쟁 참가자는 아니지만 적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영웅”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는 또 천안함 폭침 도발의 주역으로 알려진 김격식(2015년 사망) 전 인민무력부장을 김정은이 “충직한 전사”라고 격찬한 사실을 소개했다. 김 위원장이 “인민군 부대 방문 때 김격식 동무를 자주 데리고 다녀야겠다”며 두터운 신임을 밝혔다는 것이다. 김격식은 2009년 2월 군 총참모장에서 황해도 지역을 관할하는 북한군 4군단장으로 옮겼고, 이듬해 3월 천안함 폭침과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을 주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이 강릉 무장공비와 김격식에 대한 찬양 보도를 최근 되풀이하는 건 김정은의 대남 대립각 세우기 맥락이란 해석이 나온다 」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02.07 00:33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평양 총독부’에 사로잡힌 그들…위기의 대북정책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평양 총독부’에 사로잡힌 그들…위기의 대북정책

     ━  국격 지키는 남북교류 모색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금강산을 방문해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하고 있다. 2008년 관광이 중단되자 북측이 동결·몰수 해 방치한 건물이다. 북한이 ‘2월 철거’를 통첩했지만 정부는 대북제재를 회피하는 방식의 관광을 추진 중이다. [AP=연합뉴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건 진리다. 정부 대북정책 추진도 고장난명(孤掌難鳴)이자 줄탁동기(啐啄同機)다. 아무리 좋은 구상과 로드맵을 담았다 해도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 한발도 나가기 어려운 건 분단 역사와 남북교류사가 입증한다. 상대방이 ‘마음은 굴뚝 같은데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채근하고 밀어붙일 필요도 있다. 설득의 전략이 주효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그럴 겨를이 없거나 국면이 영 아닐 때 상대를 압박하고 재촉하는 건 사태를 더 꼬이게 할 공산이 크다. 자칫 화를 키울 우려도 있고 돌이키기 힘든 상흔을 남긴다. 뿔이 날 대로 나 온갖 험한 말로 몽니를 부리는 평양의 집권자와 당국을 향해 연일 구애 공세를 하는 문재인 정부를 지켜보며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갖게 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취재차 떠난 금강산 관광길에서 우리 초등학생 방북객에게 소감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북한 너무 좋아요. 호텔 침대도 편안하고, 햄과 소시지·고기 반찬도 최고예요.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달라요”라는 말이었다. ‘아뿔싸’ 하는 생각이 뒤통수를 쳤다. 북한 금강산을 찾았지만 그 소년이 묵은 호텔 방과 제공받은 식사는 우리 기업인 현대아산이 현지에 짓거나 리모델링해 운영 중인 시설이었다. 양식 뷔페로 근사하게 차려진 식사도 마찬가지다. 학생의 잘못이 아니었다. 인솔 교사나 가이더, 제대로 된 방북 교육을 해야 하는 정부 부처 중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니 초등생들의 ‘북한 찬양’은 당연한 일이었다.   꽤 오래전 에피소드지만 금강산 관광이 회자할 때마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이다. 김대중 정부 집권 첫해인 1998년 11월, 처음 출항한 금강산 관광은 ‘햇볕정책의 옥동자’로 불렸다. 그해 6월 정주영(2001년 작고)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 떼 방북으로 결실을 본 남북 교류와 경협 프로젝트란 점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현대에 금강산 독점권을 주는 대신 관광 대가로 북한에 9억4200만 달러(한화 1조 985억원)를 지급하는 럼섬(Lump Sum, 총액확정) 방식의 계약에 따른 사업이다.   가곡 한 구절처럼 ‘짓밟힌 지 그 몇 해~’하면서 금강산을 그리며 안타까워하던 국민이 앞다퉈 관광에 나서면서 반짝 호황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6월 관광객 억류 사태가 터지고, 북한이 사소한 트집을 잡아 벌금을 물리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점차 매력을 잃어버렸다. 북한의 군사 도발까지 겹치며 관광객 숫자가 급감하자 정부는 관광 활성화에 기관·단체가 협조할 것을 요구했고, 국민 세금인 남북협력기금을 투입해 취약계층이나 학생들을 단체 관광에 나서게 했다. 보조금을 노린 관광업체와 모집책까지 가세했다. ‘현장 체험을 통한 북한 바로 알기’라는 금강산 관광의 취지는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넉 달 만인 2008년 7월 터진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은 금강산 길을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우리 관계 당국은 시신 부검 등을 통해 북한군 병사가 여성 관광객을 등 뒤에서 조준 사격해 사망케 한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북측은 공동 현장조사와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등 필요한 최소한의 후속 조치를 거부하며 늑장을 부렸다. 관광길에 나섰다 참변을 당하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국민 여론은 싸늘해졌다. 여기에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면서 ‘관광 대가로 보낸 달러가 핵·미사일로 돌아왔다’는 비판까지 등장했다.   비극은 예고돼 있었다. 1200명의 승객을 태우는 금강호 첫 출항에 앞서 해상안전 문제가 제기됐다. 우리 국민을 태운 선박이 북한 수역을 운항하는 동안 화재나 좌초, 기관 고장 등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구난·구조할 것인가 하는 이슈였다. 북한의 열악한 재난 대처 능력에 맡길 수 없는 노릇이라 우리 해경이나 군 당국의 장비와 병력을 투입하는 문제가 검토됐지만 북한의 거부로 불발됐다. 관광 시작을 서두른 정부는 결국 ‘선(先) 안전 대책, 후(後) 출항’이란 원칙을 접고 배를 북한 장전항으로 보냈다.   남북 화해 기류에 도취한 당국자와 전문가·언론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관광 중단 후 부산~제주 노선에 투입된 또 다른 관광선 설봉호에서 2011년 9월 해상 화재가 발생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 배는 금강산을 340차례나 오간 간판급 관광선이다. 정부 당국과 현대아산 측은 뒤늦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해경의 신속한 투입으로 사망자는 없었지만 금강산 관광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대형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란 점에서다.    제재 피한 ‘개별 관광’ 아이디어 쏟아내   대북 제재의 틈새 벌리기 묘안을 궁리해온 정부가 새해 벽두 금강산 관광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모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별관광 형식’을 예시하면서 군불 때기가 이어지고 있다. 북한으로 직접 들어가는 방식과 제3국을 거치는 관광,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남북 연계 관광 등 3가지 형태가 거론된다고 한다. 대통령이 운을 떼자마자 엘리트 관료와 관변 학자·전문가가 신박한 ‘개별관광’ 상품을 내놓고, 유엔 대북 제재 문구를 요리조리 해부해 회피 가능한 아이디어임을 설파하고 있다.   2018년 8월 금강산 이산상봉에서 헤어지는 남북 가족.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대의명분을 팽개친 꼼수로는 국민과 국제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정부 주도의 금강산 관광 띄우기는 과거 혈세를 투입해 무차별적으로 관광객 머릿수를 채우던 상황의 데자뷔다. 통일부는 이산가족의 개별관광 구상을 내비치며 경비 지원까지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실향민들은 시쳇말로 “이산가족이 왜 거기서 나와”라는 볼멘소리를 한다. 이번 설에도 이산상봉은 감감무소식인데 관광 운운하는 정부가 못마땅하다는 얘기다. 2년 전 8·15 상봉 이후 정부의 대북정책 리스트에서 이산가족 문제는 실종됐다. 13만 3000여 명의 상봉 신청자 가운데 이미 8만 명이 한을 풀지 못하고 숨졌다.    북한, 우리 국민 안전 챙길리 없어   관광 강행은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공언해온 정부의 기조와도 어긋난다. 무엇보다 총격 사망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책 마련이 없는 상태다. 대통령에게까지 입에 담기 힘든 모욕과 험담을 퍼붓는 북한이 관광객에 이런저런 해코지할 거란 건 불문가지다. 당국 차원의 신변보장 약속도 뒤집는 북한이 ‘개별관광’에 나선 우리 국민을 챙길 리 만무하다.   지금 북한에는 우리 국민 6명이 억류돼 있다. 무기노동교화형을 받은 김정욱 선교사는 6년 3개월을 넘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대화 과정에서 억류 대학생 오토 웜비어와 한국계 시민권자를 최우선으로 구출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트럼프와 문 대통령에게 납치 일본인 문제를 김정은에게 전해달라며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대통령이나 고위 당국자가 없다. 2018년 4월 판문점 첫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과 4차례 만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을 돌려달라”는 말을 끝내 꺼내지 못했다. 김정은과 북한 앞에서는 유독 나약해지고 말을 잃어버리는 걸 두고 “평양총독부에 사로잡혀 항변 한 번 못한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금강산 개별 관광 강행 입장에 해리 해리슨 주한 미 대사가 대북제재 문제를 거론하자 “신(新)조선 총독부냐”며 당·정·청이 발끈한 걸 빗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코린토스의 왕 시시포스(Sisyphus)는 무거운 바위를 끊임없이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려야 한다. 오만과 거짓된 언행으로 제우스신의 분노를 사는 바람에 무한 반복의 천형을 받은 것이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북 참모, 관련 부처 장·차관과 핵심 당국자들이 쏟아내는 대북 메시지는 시시포스를 방불케 한다. 대책 없는 짝사랑과 일방통행을 넘어 스토커 수준을 넘나드는 대북정책의 부끄러움은 왜 국민 몫이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실타래처럼 얽힌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의 딜레마 속에 나흘간의 명절 연휴를 맞았다. 팍팍해진 살림 속에 국민의 우려와 고민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까지 번질 수밖에 없다. 마치 N극만 가진 듯한 문재인 정부의 나침반에 국제사회의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요컨대 “잘못된 그 발걸음 멈추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자 우방 국가의 호소다.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의 설맞이 회고와 성찰이 절실한 이유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01.24 00:19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중국의 대북 경고…“핵 고집 땐 간부·가족 가혹하게 처벌”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중국의 대북 경고…“핵 고집 땐 간부·가족 가혹하게 처벌”

     ━  중국 공산당 비밀 문건에 드러난 북·중 밀월   지난해 6월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1 경기장에 모인 10만 평양 주민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시 주석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은 북·중 밀월관계를 보여준다. [사진 신화망 캡처] 육성 신년사는 김정은의 친정(親政) 리더십을 보여줘 온 아이콘이다. 조선중앙TV 앞에 2500만 주민이 모여앉은 새해 아침 그는 직접 시정연설 형태의 통치 구상을 펼쳐왔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12월 사망)이 노동신문 등 3개 일간지 공동사설 형태로 신년사를 갈음했던 기형적 형태에서의 탈피이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신년사를 건너뛰었다. 연말 나흘간 열린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 내용을 간추려 관영 매체로 전달하는 선에 그쳤다. 꼬여버린 북·미 관계에 대한 회한과 대북제재에 대한 원망이 절절히 묻어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원회의 보고 키워드는 ‘정면돌파’로 모아진다. “나라의 형편이 눈에 띄우게 좋아지지 못했다”며 고백할 정도로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그는 어떻게 ‘자력갱생’을 통한 대북제재 돌파 카드를 들고나올 수 있었을까.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가 단독 입수한 중국 공산당 내부 문건 속에 그 답이 숨어있을 수 있다.   “중국 당과 국가는 조선(북한)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키고 조선 정부의 안정과 계승성을 전적으로 담보해야 하며, 조선반도의 평화를 흔들림 없이 확고히 유지해야 한다.”   중국 공산당 중앙판공청(辦公廳)의 내부 문건은 북한 정권의 존립이 중국의 국익에 긴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서방 적대세력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중국의 중요한 군사적 완충 지역일 뿐 아니라, 우리 당의 ‘중국식 사회주의’의 고수를 위해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정치적 전략지대”라는 구절도 같은 맥락이다.   2017년 9월 15일 작성된 문건은 북핵 문제의 보다 철저한 해결을 위한 중국과 북한 사이의 긴밀한 의사소통과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판공청은 밝히고 있다. 과거 중앙비서청으로 불린 중앙판공청은 중국 공산당 중앙위 직속 기관으로 총서기(시진핑 국가주석)를 포함한 핵심 지도자의 통신·보안 등 일상사무를 담당한다. A4 용지 5쪽 분량의 문건은 주로 ‘당(黨) 대 당’ 차원의 대외 교류를 담당하는 공산당 대외연락부에 하달됐다.   문건이 만들어진 시점은 북한이 6차 핵 실험을 감행한 지 8일 만인 같은 해 9월 1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결의 2375호를 발표한 직후다. 함북 풍계리에서 이뤄진 핵 실험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로켓(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단행했다”고 발표하면서 국제사회에 충격을 줬다. ‘6차 실험은 핵 개발을 완성했다는 의미’라는 관측도 나왔다. 대북 정유제품 공급에 연간 상한선(2018년부터 연간 200만 배럴)을 부과하고, 석탄·섬유 등의 공해 상 선박 환적을 금지하는 등의 그물망 제재가 추가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공산당 판공청 내부문건. 판공청 문건은 북한의 핵 실험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불쾌감을 담고 있다. “최근 조선의 집권통치자들은 우리와의 충분한 협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핵 실험을 위해 또다시 제멋대로 독단적 행위를 벌여 국제공동체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 대목이 그것이다. 문건은 또 미국이 북한을 반대하는 전쟁에 돌입하면 아태지역 등에 엄청난 영향과 충격을 미칠 것이라며 “일본과 한국의 수도인 서울의 안보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판공청은 “북한의 반복적인 핵 실험은 중국에 대한 엄청난 국제적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고 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책임 있는 국제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북한에 엄중 경고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당 대외연락부에 주문하는 내용도 문건에 담겼다. 북한을 달래려는 5개 항의 구체 계획도 실려있다. 첫째, 대북 교역 확대와 북한 주민의 생활 향상을 약속하면서 민수용 원유 생산품의 경우 “중국은 제재에 형식적으로 동참할 것”이라며 계속 공급 방침을 밝혔다. 둘째, 중국 내에서 거래할 수 없게 된 북한 무역회사들이 중국 회사에 대한 업무위탁이나 제3국 거래를 통해 숨통을 틀 수 있도록 했다. 셋째, 대북 민생·인프라 지원을 2018년에 전년 대비 15% 늘리고 향후 5년 동안 매해 10%씩 늘린다는 항목도 있다. 넷째, 중국 은행의 대북거래 중단조치는 국영은행에만 적용한다고 밝혀 금융제재에 구멍을 뚫어줬다. 다섯째는 최신 중단거리 탄도미사일과 특수 군수품에 필요한 최첨단 과학기술을 북한에 더 많이 지원하겠다는 파격적 제안도 담았다.   채찍과 함께 당근을 제시한 건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대북제재에 대해 마뜩잖아하는 중국 지도부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판공청 문건은 “역사적 경험은 어떤 유엔 결의안으로도 조선 통치자들의 핵 실험 연기 또는 완전한 포기를 끌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핵 개발에 대한 의지와 결심을 더욱 굳게 할 뿐이란 주장이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인식도 확인할 수 있다. 문건은 “조선이 즉각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며, 단지 앞으로 새로운 핵 실험을 계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 중국의 (대북) 지원이 즉시 증강한다는 담보를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조선이 제재에서 벗어난 몇 해 이후부터 조건이 무르익으면 점차 개혁을 실시하며, 최종적으로 조선반도의 비핵화 요구를 실현할 것을 (중국은) 요구하고 있다”며 베이징 측의 북핵 해결 로드맵을 정리하고 있다.   2년여 전 만들어진 중국 공산당 내부 문건이 주목되는 건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 때문이다. 전원회의 보고에서 김 위원장은 북·미 대화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며 “충격적 실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위협했다. 또 “머지않아 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란 말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구체적 도발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연말 ‘평양발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하는 요란을 떨었지만 불발된 건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선 미국과 이란의 군사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일행이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절멸하는 사태를 목도한 평양 권력 핵심부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시선은 김정은의 전원회의 보고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한 북한 내부 사정에 쏠린다. 그는 주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자력번영 하자”고 호소했다. 집권 첫해인 2012년 4월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식언(食言)이 됐다. 판공청 문건에 담긴 대북 조치들은 은밀한 경로로 북·중 간에 이행되거나 평양 쪽으로 건네졌을 공산이 크다.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버티기 모드로 들어간 김정은의 뒷배엔 중국의 선물 보따리가 놓여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을 들고 버틸 경우를 거론하며 “조선의 간부들과 그 가족 성원들에 대한 처벌을 위한 가혹한 특별조치들을 일방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중국 판공청 문건의 끝 대목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 평양은 지금 ‘김정은 말씀’ 암기 열풍 「 북한 주민의 새해는 최고지도자 신년사를 ‘암기학습’ 하는 거로 시작된다. 올해는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 보고문으로 대체됐지만 외우는 수준으로 내용을 숙지해야 하는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관영 매체들은 연일 “암기식이 아니라 실효성 있게 학습하라”고 독려하지만, 탈북민들은 “말뿐이지 어차피 달달 외워야 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5일 자 노동신문이 “항일유격대원들은 적들의 추격으로 행군을 계속할 경우에도 앞 동무의 배낭에 글을 써 붙이고 걸으며 학습했다”고 독려한 대목에서 그 고충을 짐작할 수 있다.   한겨울 날씨 속에 평양과 지방 도시별로 전원회의 관철 군중 집회도 연이어 열렸다. 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궐기대회에선 대미 비난과 함께 “정면돌파전에서 기본전선은 경제전선”이란 구호가 제시됐다.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핵탄과 맞먹는 위력을 가진다”는 주장도 나왔다.   새해를 맞아 김일성·김정일 시신을 참배하고 순천의 비료공장을 방문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일 36회 생일을 맞았다. 하지만 아직 북한 당국이 기념일로 정하지 않은 때문인지 조선중앙TV 등 매체들은 침묵했다. 대신 김정은의 3대 세습 당위성을 강조하며 ‘백두혈통’을 내세우는 분위기다. 김정은의 지난해 말 백두산 군마(軍馬) 등정을 담은 기록영화 ‘영원히 가리라 백두의 행군길을’ 방영했고, “백두산 정신으로 성과를 달성·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등의 보도를 잇달라 내놓으며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사상 교양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김지수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20.01.10 00:23

  •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송금 받아 아이 컴퓨터 샀어요…힘 내십시오, 남편 동지”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송금 받아 아이 컴퓨터 샀어요…힘 내십시오, 남편 동지”

     ━  아내의 편지로 본 해외 북한 노동자의 삶과 희망   지난 23일 러시아 극동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평양행 항공편을 기다리고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에 따라 전 세계 모든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의 송환 시한인 22일에 맞춰 러시아에서도 북한 노동자들의 철수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 강동완 교수] 지난 22일은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에게 만감이 교차하는 날이었다. 오랜 기간 헤어져 있던 북한 가족과의 만남을 위해 평양행 고려항공편에 오르는 기쁨이 얼굴에 번졌고, 더 이상 외화벌이를 할 수 없게 된 안타까움도 함께 했다. 이날은 북한 정권의 돈줄을 죄는 유엔의 대북제재 조치에 따라 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 해외 북한 노동자의 강제귀환 조치가 마무리되는 시한이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 파견된 노동자들의 경우 편법을 동원해 계속 체류하며 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상당수 인원은 평양 귀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북한 체제가 해외노동으로 챙긴 달러를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이나 확산에 사용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취해진 귀환 조치로 노동자들의 삶은 물론 북한 민생에도 불똥이 튀게 됐다.    “편지도 찾고 돈도 받았어요. (아이가) 얼마나 기뻐하던지, 그 날로 컴퓨터도 사고 매일과 같이 해요. 난 보면서도 때려죽어도 못할 것 같은데, (아이는) 동무네 집에 가서 좀 하더니 이제는 조작할 줄 알더군요. 앓지 말고 건강하신지요. 여기서 매일 들려오는 소리가 로씨야에서 철수한다는 소리뿐이에요. 거기는 어떤지. 작년 8월부터 돌아오신다고 하니 한동안은 마음이 막 설레었어요. 의지의 화신, 불굴의 화신 000동지, 힘내십시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보낸 북한 아내의 편지다. 이역 땅에서 가족을 위해 고생하는 ‘세대주’(남편의 북한식 표현)를 향한 그리움과 함께 건강을 염려하는 애틋함이 드러난다. 해외 노동을 통해 번 돈이 북한 가족에게 전달돼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는 밑천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도 있다. 남편을 ‘불굴의 화신’으로 치켜세우며 격려해주는 표현에서는 든든한 가장에 대한 아내의 존경심마저 느껴진다.   해외 노동으로 번 돈이 북한의 가족에게 절대적인 경제력이 된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아내는 편지에서 “어쨌든 살기 힘든데 송금받고 한숨 좀 돌렸어요”라고 말한다. 또 “아직 남에게 빚은 없어요. 어떤 사람처럼 남에게 빚지고 먹고 살지는 않아요. 힘들어도 내 손으로 바득바득 살아가요. 그래도 정말 힘들 땐 당신이 보내주세요”라며 해외송금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음을 고백한다. 이어 아내는 “당신이 보내 준 돈을 정말 아껴가면서 맞춰나가요. 한쪽으로 내가 버는 게 겨우 밥술이나 뜰 정도예요”라며 근근이 살아가는 가정에 남편이 보내주는 돈이 큰 보탬이 되고 있음을 알린다.   이 편지를 받은 남편은 6년 동안 해외에 파견돼 고된 노동을 했다. 아이의 얼굴을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다고 한다. 어쩌다 편지와 함께 사진이라도 들어있으면 몇 날 며칠을 들여다보며 그리움을 달랬다. 이 편지를 입수한 동아대 강동완 교수는 “한 통의 편지를 쓰는 동안 여유가 없었던 듯 뒷장으로 갈수록 글씨를 날려서 썼더라. 타국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연필심을 꼭꼭 눌러가며 쓴 편지를 보며 가슴이 울컥했다”고 전했다.    평양 귀환 줄이어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의 송환일이 다가오며 북한 고려항공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는 평양행 항공편을 일시적으로 늘린 것으로 파악됐다. 23일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서 ‘12시 20분 평양행 고려항공 JS-272편’ 탑승 수속을 안내하는 모습. [사진 강동완 교수] 북한 해외 노동자의 평양 귀환 시한을 막 넘긴 이번 주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은 평양행 비행기에 오르려는 사람들도 넘쳐난다. 북한으로 가져갈 짐과 선물 보따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탑승 수속을 밟고 있는 장면이 이어진다. 주로 건설현장에서 일해온 남성 노동자와 함께 식당이나 봉제공장 등에서 근무한 여성들도 많이 눈에 띈다.   23일에는 낮 12시 20분 출발하는 고려항공 JS-272편을 포함해 하루 두 편의 고려항공이 운항됐다. 공항 측에 따르면 고려항공은 지난 9일부터 20일까지 2주간 평양~블라디보스토크 항공편 운항을 주 2회(월·금요일)에서 주 5회(평일 매일 운항)로 늘렸다. 현지 북한 노동자들의 철수를 위해서다. 북한은 이번 주 들어서도 임시 편성 고려항공기를 이용해 귀환을 도왔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는 북한 노동자 때문에 운항되고 있지만 노동자가 사라지면 노선도 없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해외노동에 대한 대북제재 조치는 2017년 12월 결정됐다. 그해 김정은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으로 평가되는 ‘화성-15형’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등 잇단 도발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자초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해외 북한 노동자와 이들을 감독하는 북한 관리들을 2019년 말까지 전원 송환시키도록 한 대북제재 결의 제2397호를 채택했다. 실제 시행에 들어가는 시점은 결의안 채택 후 24개월이며 유엔 회원국은 내년 3월 22일까지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우리 정부 당국은 해외 체류 북한 노동자가 약 10만 명인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동남아시아와 중동 등 29개 국가에서 연간 약 5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산된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가 지난 16일까지 파악한 데 따르면 48개 국가가 북한 노동자 2만3000여 명을 돌려보냈다. 러시아가 1만8533명으로 가장 많았고, 카타르(2471명)와 쿠웨이트(904명)가 그 뒤를 이었다. 약 5만 명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경우 절반 이상을 돌려보낸 것으로 밝혔지만 구체적 숫자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근로자 송환조치에 얼마나 협력할 것인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쪽에서는 전통적 우방인 중·러가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 조치에 형식적으로 응하면서 실제로는 변칙적으로 북한 노동자를 계속 고용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중·러가 지난 16일 안보리에 제출한 문건은 북한 노동자의 송환 조항을 해제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값싼 북한 인력을 활용해온 자국 내 기업의 입장을 고려해 단기 연수나 관광, 출퇴근 방식을 동원한 인력 활용을 용인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의 대북제재 조치에 어떤 식으로든 호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견해도 만만치 않다. 중국 외교부는 “결의가 유효한 한 중국은 국제적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규정에 따라 문제를 처리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고, 러시아 외무부는 “모든 유엔안보리 결의를 기한 내에 이행할 것”이라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치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나 트럼프 대통령과 이런저런 이유로 엮여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두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제재에서 이탈하는 건 부담이란 얘기다.    해외 파견 위해 3000달러 뇌물   북한 노동자 송환조치는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된 당사자뿐 아니라 그물처럼 얽힌 북한의 외화벌이 시스템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들은 해외 파견을 위해 약 3000달러의 뇌물을 간부에게 바친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 파견의 경우 비행기 값 200달러에 뇌물을 더해 500달러 정도는 더 건네야 한다. 단체합숙을 하며 북·러 당국 간 합의에 따른 건설공사 등을 맡아 하는 ‘집체노동’의 경우 월급이 5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첫 파견 후 2년 정도는 이런 생활을 면키 어렵다.   하지만 러시아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되고 탈북 우려가 없는 것으로 검증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개인별로 러시아 업체 공사나 개인 주택 수리·보수에 나서 돈을 벌어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청부노동’으로 불리는 일을 하는 경우 1000달러 정도의 계획분(북한 당국에 바쳐야 하는 충성자금)을 바치면 나머지는 개인이 차지할 수 있다. 청부일을 하는 북한 노동자의 경우 러시아어로 ‘전기·난방·레몬트(리모델링)·집수리’라는 글귀와 핸드폰 번호가 적힌 명함을 뿌리기도 한다. 보다 많은 일감을 따내는 게 핵심인 만큼 오랜 기간 현지에서 청부노동을 하며 신뢰를 쌓은 귀국 노동자의 핸드폰은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한 북한 노동자는 “내가 속한 회사 300명 가운데 약 30여 명이 청부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 경우 북한 회사의 대표나 고위 간부에게 일정한 뇌물을 줘야 한다. 해외 파견이 중단되면 노동자가 목돈을 쥘 기회가 사라진다. 인력 선발이나 현지 청부노동, 충성자금 갹출 과정에서 이권이나 뇌물을 챙기던 회사 대표와 지배인, 이들로부터 상납받아온 노동당 고위 간부들의 삶도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19.12.27 0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