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 도발 단호 대응 … 대화 문은 열어둘 것"

    "북 도발 단호 대응 … 대화 문은 열어둘 것"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7일 낮(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박 대통령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허리를 굽힌 채 이야기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회담에 이어 오찬과 기자회견을 함께했다. [워싱턴=최승식 기자]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7일 낮(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 선언’(Joint Declaration in Commemoration of the 60th Anniversary of the Alliance)을 채택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의 대북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 입장도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입장을 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두 정상은 공동선언에서 “북한의 도발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에 대한 확고한 지지와 공고한 한·미 연합방위태세의 유지·발전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를 토대로 북한의 도발에 단호히 대응하되 대화의 문은 열어둘 것”이라며 북한의 변화를 촉구했다.  박 대통령으로선 한·미동맹과 미국의 확고한 방위 공약이란 토대 위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긍정적 입장을 확인함으로써 향후 대북 기조 실행에 힘을 얻게 됐다.  또한 두 정상은 공동선언문에 2009년 양국이 합의한 ‘동맹 미래비전’을 뛰어넘어 글로벌 파트너로서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는 의지를 담았다. ‘동맹 미래비전’이 선언적 의미가 강했던 반면 이번 공동선언엔 양국이 한반도의 장래와 북한 문제 등을 포함해 실질적인 ‘글로벌 파트너’로서 관계를 강화해 나간다는 구체적 내용이 들어 있다.  글로벌 파트너란 경제·군사 분야를 넘어 개발도상국 지원 등 지구촌 행복 증진에도 힘을 합쳐 노력한다는 동반자 개념이 포함돼 있다. 두 정상은 이를 위해 ‘나눔과 배려(sharing and caring)의 동맹’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두 정상은 박 대통령이 제안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서울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협의를 가졌다. ‘서울 프로세스’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동북아 국가들이 기후변화·중동 문제 등 비정치적 분야에서 신뢰를 쌓은 뒤 이를 바탕으로 협력의 영역을 넓혀가자는 동북아 국가 간 다자협력 구상이다.  두 정상은 비준 1년을 넘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충실한 이행 등 경제 협력도 강화키로 했다. 윤창중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 경제·통상 협력 증진에 대한 호혜적 해결에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전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북핵 문제에 한 목소리를 낸 두 정상은 정상회담에 이어 백악관 캐비닛 룸에서 오찬을 함께하며 공고한 한·미 연합방위태세의 유지·발전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한·미 간 포괄적 전략동맹을 지속 발전시켜 나간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워싱턴=신용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관계기사] ▶ 오바마 "제 아이들이 강남 스타일 가르쳐줬다" ▶ 朴대통령·오바마, 통역없이 단 둘이 10분간 산책

    2013.05.08 02:01

  • "김정은 만나면 변해야 산다고 말할 것"

    "김정은 만나면 변해야 산다고 말할 것"

    박근혜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유엔을 방문해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방명록에 ‘대한민국은 더 한층 번영되고 행복한 지구촌을 만들기 위해 유엔과 항상 같은 편에 설 것(The Republic of Korea will always stand side by side with the UN to promote a more prosperous, happier global community 2013. 5. 6 박근혜 Park Geun Hye)’이라는 내용의 글을 영어로 남겼다. [신화=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미국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6일(현지시간) 워싱턴으로 이동하기 전 뉴욕에서 CBS-TV의 마거릿 브레넌 기자와 만났다. 박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북한이 (연평도 포격과 같은) 도발을 한다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이 협박을 하고 도발을 하면 또 가서 협상을 하고, 어떤 대가를 지원하고, 그렇게 해서 한참을 가다가 또 도발이나 협박이 있으면 가서 협상을 하고 하는 것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문답.  ▶브레넌=“북한 김정은과 직접 대면할 의향이 있는가. 만난다면 어떤 메시지를 전하겠나.”  ▶박 대통령=“북한은 변해야 된다. 그것만이 북한이 살 길이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브레넌=“북측에서 박 대통령의 치맛자락에 대해 아주 강렬한 어조로 비난하면서 그것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하는데 어떻게 느끼나.”  ▶박 대통령=“어떤 사실을 가지고 얘기하지 않고 곁가지를 갖고 인신공격을 하거나 치맛자락이 어떻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벌써 논리가 빈약하다는 증거이고 그만큼 수세에 몰려 있기 때문에 팩트에 대해 말하기보다 딴 얘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해석한다.”  CBS는 이날 저녁 ‘이브닝 뉴스’를 통해 박 대통령과의 인터뷰 내용을 전했다. 3분58초 분량이다. 뉴스 앵커는 박 대통령을 소개하면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된 상당히 강인한(tough) 분”이라고 전했다. “대단히 흥미로운(fascinating) 분”이라고도 했다. CBS는 1974년 육영수 여사가 광복절 행사식장에서 피격되는 화면을 방송하면서 “그녀의 어머니는 북한 공작원에 의해 살해당했지만, 그녀는 2002년 아마도 그 암살을 명령한 장본인인 북한의 현재 통치자의 아버지인 김정일과 만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북한의 비난에 개의치 않는다”면서 “그 강인함으로 ‘아시아의 철의 여인(the Iron Lady of Asia)’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소개했다.  이에 앞서 박 대통령은 유엔본부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서도 “북한의 핵을 용납할 수 없고 북한이 저렇게 도발하고 위협하는 것에 대해서는 보상은 앞으로 있을 수 없다”며 “도발을 하면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북한은 핵도 보유하면서 경제도 발전시키겠다는 병진노선을 걸으려 하는데 그건 사실 양립될 수 없는 불가능한 목표”라며 “북한이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면 공동 발전의 길을 갈 수 있는데 자꾸 반대 길로 가기 때문에 안타깝다”고도 했다.  반 총장은 “박 대통령이 미국·중국 등 우방들과 긴밀히 협조해 가면서 원칙에 입각한 확고한 태도를 취하고 절제된 대응을 하고 있는 데 대해 국제사회가 상당히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 투명하게 지원해 나가려 하고 있다. 유엔과 힘을 합해 꼭 필요한 주민에게 지원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경한 대응을 전제하면서도 대북 지원을 언급한 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가 담겼다는 해석이다. 강태화 기자 [관계기사] ▶ "북 도발 단호 대응 … 대화 문은 열어둘 것" ▶ 오바마 "제 아이들이 강남 스타일 가르쳐줬다"

    2013.05.08 01:54

  • 북핵서 경제까지 … 60년 '동맹의 현' 다시 고른 두 정상

    7일(이하 현지시간) 백악관 오벌룸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의 가장 큰 수확은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의 채택이다. ‘공동선언’은 ‘공동성명’보다 한층 포괄적 의미를 담고 있다. 공동선언의 핵심은 군사·안보동맹을 넘어 경제동맹을 맺고 있는 양국이 앞으로 상호 신뢰에 기초해 ‘나눔과 배려의 동맹’까지 나아가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다. 나눔과 배려의 동맹을 유지하는 방안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과 원조 등을 함께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다.  상호 신뢰 구축을 토대로 교류·협력을 이끌어 내고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들인다는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오바마 대통령이 지지를 표한 점, 양국이 비준 1년을 넘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통상협력을 확대한다는 점 등도 굵직한 성과로 꼽힌다.  ‘손에 잡히는’ 성과도 있었다. 두 정상은 ▶미래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협력기반 마련 ▶국민체감형 편익 창출 ▶한·미 간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 등에서 구체적 성과를 만들어 갈 계획이라고 윤창중 대변인이 밝혔다. 윤 대변인은 “한·미동맹은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와 범세계적인 문제와 지구촌 행복 증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한·미 양국은 전문직 비자 쿼터를 신설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전문직 비자 쿼터가 확대될 경우 우리 국민의 미국 진출 기회가 넓어지는 효과를 갖게 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동포간담회에서 전문직 비자 쿼터 확대에 대해 “구체적으로 1만5000개를 목표로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FTA 체결국인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별도 쿼터(1만5000개 이상)를 신설하기 위해선 미국의 이민법 개정이 필요하다.  또한 양국 정부는 미래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와 미국 에너지부 간에 ▶양국 간 셰일가스(암석에 들어 있는 천연가스) 기술·정보 교류 ▶가스하이드레이드(천연가스가 저온 고압의 상태에서 물과 결합해 형성된 고체 연료)와 관련한 협력 확대 ▶청정에너지 공동연구 개발 등을 추진키로 했다.  양국은 정보통신기술(ICT) 정책협의회도 설립해 ICT와 관련한 내용을 신속히 서로 전파하고 우리 ICT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 등을 위해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한·미 대학생연수취업(WEST) 프로그램도 5년간 추가 연장키로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8월 정상회담 때 합의된 프로그램으로 올해 10월 만료 예정이다. 이는 일정 수의 한국 대학생들에게 어학연수 5개월과 인턴 12개월, 관광 1개월 등 총 18개월의 체류 일정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2009년 340명, 2010년 377명, 2011년 340명, 2012년 373명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왔는데 기간이 연장되면서 혜택을 받을 대학생들이 늘어나게 됐다.  아울러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미국 평화봉사단 간에 양해각서(MOU)도 체결하기로 했다. 미국 평화봉사단은 9000명, KOICA는 5000명 정도를 매년 해외에 파견하고 있다. 이날 브리핑 때 공개하지 않았지만 두 정상은 원자력협력협정, 전시작전통제권 회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협정(SMA)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주고받았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워싱턴=신용호 기자 [관계기사] ▶ "북 도발 단호 대응 … 대화 문은 열어둘 것" ▶ 오바마 "제 아이들이 강남 스타일 가르쳐줬다"

    2013.05.08 01:53

  • 8년 만에 한국전 참전비 참배 "그들 희생 없었다면 … "

    8년 만에 한국전 참전비 참배 "그들 희생 없었다면 … "

    박근혜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워싱턴 한국전 참전기념비 헌화를 위해 이동하며 ‘19인의 군인상’ 중 하나를 지나고 있다. 박 대통령 왼쪽은 에릭 신세키 미 보훈처장관. [최승식 기자]6일 오후(현지시간) 4시30분 미국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Arlington National Cemetery)에 21발의 예포가 울려퍼졌다. 검정 정장 차림의 박근혜 대통령은 가슴에 손을 얹고 전쟁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남북전쟁, 제1·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과 걸프전에서 전사한 22만여 명의 미국 참전 용사가 안치돼 있는 곳이다. 존 F 케네디 등 전직 미국 대통령들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워싱턴을 찾은 박 대통령은 첫 일정을 이곳에서 시작했다.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새로운 한·미관계의 전제인 ‘굳건한 혈맹’을 확인하려는 취지였다. 박 대통령의 이날 행보는 52년 전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정과 동일했다. 박 전 대통령도 1961년 첫 방미 때 워싱턴에서 알링턴 묘지부터 참배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알링턴 국립묘지에 이어 한국전 참전기념비(Korean War Veterans Memorial)를 찾아 참배했다. 에릭 신세키 미 보훈처장관을 비롯해 한·미 참전용사들과 역대 연합사령관들이 박 대통령을 맞았다. 박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헌화대 양옆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의장대가 도열해 있었다. 박 대통령은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문구가 새겨진 기념비 앞에서 고개 숙여 묵념했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한국전에 참전해 희생하신 분들과 역대 사령관들께 국민을 대표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며 “그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번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6·25전쟁에 참전한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5년에도 이곳을 참배했었다. 그는 “(8년 전에도) 워싱턴 도착 후 바로 이곳에 왔고 오늘도 바로 이곳에 왔다”고 했다. 특히 “올해가 정전 60주년이자 동맹 60주년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곳을 찾는 방문객이 1년에 300만 명이 넘는다고 들었다”며 “이는 한국과 미국 국민 모두가 한국전을 계기로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생한 역사였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참배를 마친 박 대통령은 기념비 공원에 있는 ‘19인상’ 중 한쪽 팔이 잘린 조각상의 실제 주인공이 이날 함께 참배한 미국 예비역 대령 ‘웨버’라는 소개를 받자 “아… 젊으셨을 때 모습 같은데…”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저녁 만다린 오리엔탈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한 박 대통령을 동포들이 휴대전화 등으로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승식 기자]  ◆“맞춤형 동포정책”=박 대통령은 이날 저녁 워싱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동포들을 만났다. 뉴욕에 이은 두 번째 동포간담회다. 박 대통령은 전날 입었던 한복 대신 흰색 재킷에 갈색 바지 정장 차림이었다.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박 대통령이 입장하자 450여 명의 동포가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이날도 ‘글로벌 한민족 네트워크’의 구성 계획을 밝혔다. 그는 “지구촌 곳곳에 있는 재외동포 인재야말로 글로벌 맞춤형 인재”라며 “동포 청년들에게 창조경제 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현장 맞춤형 동포 정책을 찾아서 영사 서비스라든지 삶의 어려움을 먼저 찾아서 선제적 맞춤형 지원으로 바꿔 나가겠다”고 했다. 국정운영의 원칙인 ‘현장 중심’ 행정을 동포사회에도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수행단에 임종훈 민원비서관이 포함된 것도 동포들의 현장 민원을 꼼꼼히 챙기라는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날 뉴욕에서 교민들의 목소리를 청취한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재외국민용 주민등록증 발급 ▶전문직 비자 쿼터 1만5000개 확대 ▶동포 자녀의 한글·역사교육 실시 등을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일본의 우경화 문제를 언급하며 “워싱턴에서 일제 강점기에 억울하게 빼앗겼던 대한제국 주미공사관을 동포 여러분 노력으로 되찾게 됐는데 워싱턴 동포사회가 우리 역사를 바로 세워준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워싱턴=신용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관계기사] ▶ "북 도발 단호 대응 … 대화 문은 열어둘 것" ▶ 오바마 "제 아이들이 강남 스타일 가르쳐줬다"

    2013.05.08 01:53

  • [브리핑] 북, 무수단 미사일 2기 격납고로 옮겨

    북한이 동해안에 배치했던 2기의 무수단 미사일을 철수시켜 격납고로 이동시켰다고 CNN방송 등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CNN은 익명의 미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전하고 미사일이 다른 발사대로 옮겨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이번 움직임으로 즉각적인 미사일 발사는 없을 것이며 또다시 미사일이 발사 대기 상태가 되려면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철수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미 CBS방송은 “이번 조치가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한·미 합동 군사연습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이뤄졌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13.05.08 01:47

  • "중국 군사력 실체 몰라 더 겁난다"

    "중국 군사력 실체 몰라 더 겁난다"

    중국의 국방력은 도대체 어느 수준일까. 이 질문에 미국 국방부가 내놓은 답이 재밌다. “중국의 국방력은 그 정확한 실체를 아무도 알 수 없어 무섭다”였다.  미 국방부가 6일(현지시간) ‘중국 인민해방군 전력에 관한 2013년 연례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지난해 통과된 국방수권법에 따라 펴낸 92쪽짜리 보고서에서 미 국방부는 중국이 첨단 무기 개발은 물론이고 우주 전력에까지 광범위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적었다.  보고서는 중국이 2015년까지 인공위성 100개를 추가로 발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2019년까지는 순수 자체 기술로 생산한 항공모함을 선보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옛 소련이 만들다가 재정난 때문에 중단한 항공모함을 사들여 개·보수를 한 뒤 지난해 첫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진수했다.  보고서는 중국의 최신형 대함 탄도미사일인 둥펑(東風)-21D의 실전 배치도 처음으로 언급했다.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둥펑-21D은 사거리가 1500㎞로, 미군의 서태평양 지역 작전에 큰 위협 요인이 된다고 평가돼 왔다. 미국 군사전문가들은 둥펑-21D가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인 조지워싱턴함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도 지녔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헬비 미 국방부 동아시아 부차관보는 브리핑에서 “중국이 자국에서 멀리 떨어진 목표물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있어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중국이 미사일 개발과 사이버전 능력 확대에 치중하고 있다”며 “스텔스 기능을 갖춘 5세대 전투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통합방위군 개념도 확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핵무기를 담당하는 중국의 제2포병 부대가 최근 들어 활동이 활발해졌다”며 “몇 개의 신무기와 공격용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으며, 과거의 미사일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포착됐다”고 밝혔다.  헬비 부차관보는 “중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군사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며 “이 보고서에는 당장 우리가 답할 수 없는 수많은 의문들도 담았다”고 말했다. 중국이 군사 분야에 관해 내부 보안을 강조함에 따라 정확한 분석을 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미 국방부는 군사력 강화 못지않게 주변국들을 겨냥한 중국의 영토 확장 외교도 분석했다. 보고서는 “2012년 9월부터 중국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에서 부적절하게 설정한 영해기선을 쓰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행위는 국제법적으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설정한 영해기선에 대해 미 국방부가 국제법에 위반된다는 주장을 한 건 처음이다.  미 국방부는 중국이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대응과 달리 북한을 변호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군사적 능력을 감추는 건 물론이고 전략적 목표와 의사결정 과정을 숨기고 있어 역내 국가들에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2013.05.08 01:23

  • [취재일기] 애국가 안 부르는 통합진보당의 모순

    [취재일기] 애국가 안 부르는 통합진보당의 모순

    하선영정치부문 기자 국가보훈처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제하고 공식 추모곡을 공모하고 나서자 야권이 들썩이고 있다. 특히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국민의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민중의례’를 해온 통합진보당의 반발이 거세다.  오병윤 원내대표는 6일 기자회견을 열어 “5·18이라는 살아 있는 역사를 죽이지 말라”면서 “국민통합이라는 박근혜정부 정치철학과도 맞지 않다”며 비판했다.  홍성규 대변인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을 오롯이 상징하는 노래입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이미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5·18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것이며, 나아가 지난 민주화운동 전체를 송두리째 거부하겠다는 것입니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논평에는 ‘5·18 민주영령들을 욕보이고 유족들과 민주시민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겠다는 행태’이자 ‘망동’이란 표현도 담겼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통합진보당의 주장처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빠지지 않고 불려 온 만큼 그 상징성을 무시할 순 없다. 보훈처가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불온시하는 마음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분명 경직된 자세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통합진보당의 반발이 납득이 간다는 뜻은 아니다. 통합진보당은 바로 ‘애국가’에 대해 그런 경직된 자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애국가’가 대한민국 정당 중 유독 통합진보당에서 괄시당해왔음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지난해 7월 강기갑 전 의원, 심상정 의원 등이 지도부 출범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부른 게 민노당 시절까지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을 정도로 말이다. 이석기 의원은 지난해 “‘애국가’는 국가(國歌)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다.  심 의원 등이 탈당하고 ‘애국가’는 통합진보당에서 다시 사라졌다. 이정희 대표 등 3기 지도부는 지난 3월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만 제창했다. “왜 그때 ‘애국가’를 부르지 않았느냐”고 기자가 묻자, 홍성규 대변인은 “원칙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당 자체 판단의 범주 안에 속하는 문제”라고 모호하게 대답했다. 만약 통합진보당이 ‘애국가’를 존중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언급했다면 보훈처에 대한 비판이 더 설득력이 있었을지 모른다. 왜 당 행사에서 꼭 ‘애국가’를 불러야 하느냐고 통합진보당이 묻는다면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애국가는 대한민국을 오롯이 상징하는 노래입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며 나아가 지난 대한민국사 전체를 송두리째 거부하겠다는 것입니다.” 하 선 영 정치부문 기자

    2013.05.08 00:54

  • 朴대통령, 김정은 '독기어린 치맛바람' 발언 듣고…

    朴대통령, 김정은 '독기어린 치맛바람' 발언 듣고…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북한이 도발한다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미국 CBS 방송과 가진 인터뷰를 가졌다. 진행자 마거릿 브레넌은 “2010년 발생한 사건(연평도 포격·천안함 폭침)과 같은 공격이 군사적 대응이 필요한 도발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박 대통령은 “그렇다”라고 답하며 북한의 협박과 도발에 협상을 하고 대가를 지원하는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한반도 긴장에 대해 ‘독기 어린 치맛바람과 무관치 않다’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인신공격을 하거나 치맛자락이 어떻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벌써 논리가 빈약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그만큼 수세에 몰려 있기 때문에 어떤 사실, 팩트에 대해 말하기보다 딴 얘기를 하는 거라고 저는 그렇게 해석한다”고 설명한다. 진행자는 북한 김정은과 만날 생각이 있는지, 또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물었다. 이에 박 대통령은 “북한은 변해야 한다. 그것만이 북한이 살 길이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라며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한편, 이날 진행자로 나선 CBS 마거릿 브레넌 기자는 박 대통령을 맞아 두 손으로 악수를 하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 모습은 국내 네티즌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일으켰다. 온라인 중앙일보 사진 CBS 인터뷰 영상 캡처

    2013.05.07 15:10

  • [사진] 바이오엔지니어링 연구소 방문한 김정은 제1위원장

    [사진] 바이오엔지니어링 연구소 방문한 김정은 제1위원장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평양의 국립과학원 산하 바이오엔지니어링 연구소를 방문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과학기술의 힘으로 경제강국건설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조선중앙통신이 6일 배포했다. [로이터=뉴시스]

    2013.05.07 10:53

  • "정상회담은 외교의 시작 … 존중·신뢰 첫 단추 잘 끼우길"

    "정상회담은 외교의 시작 … 존중·신뢰 첫 단추 잘 끼우길"

    “정상회담은 외교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외교가에서 자주 회자되는 말이다. 그만큼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7일(현지시간)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첫 단추를 잘 끼울지 한·미 양국의 외교가는 물론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 한·미 정상회담에 관여했던 전직 주미대사들로부터 경험담과 함께 이번 회담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선 김대중 정부에서 주미대사를 지낸 양성철 전 대사는 과거경험에서도 지혜와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2001년 3월 7일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케이스로 지금도 회자되는 회담이다. 양 전 대사의 회고.  “회담 전부터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빌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와는 대외 정책이 다른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이 갑자기 당선됐다.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2월 말에 하기로 했던 미·일 정상회담을 3월 초로 미루면서 양보를 원했지만 국가 간 약속이라 우리는 예정대로 강행했다. 앞서 2월 27일 서울에서 있었던 김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한·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한국이 미·러 간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을 지지한 것도 문제가 됐다.”  부시 대통령이 개정을 원했던 ABM협정을 김 대통령이 보란 듯이 지지하면서 일이 꼬였다. 급기야 부시 대통령은 김 대통령을 만나 ‘이 사람(This man)’이라고 호칭해 결례 논란을 불렀다. 양 전 대사는 “부시 대통령이 좋은 단어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며 “방미 직전 워싱턴포스트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 대통령을 ‘지상의 성자(earthly saint)’라고 극찬한 글이 게재됐는데 부시 대통령의 (불편했던) 심리적 반응으로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회담을 기억하는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 미국 대통령 앞에서 김 대통령이 햇볕정책의 정당성을 1시간가량 가르치듯 설교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양 전 대사는 “이번 정상회담은 치밀하게 의제를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정상회담(2008년 4월 19일)은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된다. 이태식 당시 주미대사는 “ 한·미 동맹을 강화하자는 데 정상끼리 공감대가 있었고 타이밍도 좋았다”고 회고했다.  이 전 대사는 “박 대통령에겐 첫 정상회담인 만큼 존중과 신뢰를 형성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구체적 사안에서 이견이 있더라도 잘 관리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대북 정책에서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미국의 포괄적 대북 접근방식은 큰 틀에서는 같다.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개정 이슈도 시한을 2년 연장해 회담 분위기가 좋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이명박-부시 회담은 대외적으론 성공으로 평가받지만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를 서두르는 바람에 회담 직후 촛불 시위가 벌어져 국내에선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정상회담의 성과도 반감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신뢰와 존중을 쌓은 성공적 정상회담의 사례로 1998년 6월 9일의 김대중-클린턴 정상회담이 꼽힌다. 외교관들이 “역대 한·미 정상 중에서 가장 콤비가 잘 맞았다”고 평가할 정도다.  “상호 존중과 배려 때문에 두 정상의 나이 차이(22세)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당시 이홍구(전 총리) 주미대사는 회고했다. 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나이 차이(9세)는 문제가 안 될 것이란 얘기다. 이 전 대사는 “클린턴 대통령이 한국의 민주화를 높게 평가했고 김 대통령의 대북 대화정책도 지지하는 입장이어서 큰 이견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 전 대사는 박근혜-오바마 회담에 대해 “전작권 환수와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는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면 해결이 가능하다”며 “이슈를 너무 벌리지 말고 한반도 문제 해결 방안을 찾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장세정 기자 [관계기사] ▶ 해외동포도 한국민 … 박근혜, 뉴욕 선언 ▶ '15차례 기립박수' 朴대통령 뉴욕 연설 내용 보니

    2013.05.07 00:54

  • "개성공단 전력공급 10분의 1로 줄여"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6일 “개성에 많은 양의 전기가 들어갈 필요가 없어 1만~2만㎾ 정도 배전 방식으로 송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한 류 장관은 “문산 변전소를 통해 하루에 10만㎾가 가던 것이 10분의 1로 줄었다”는 민주당 박병석 의원의 질의에 이렇게 답했다. 류 장관은 “많은 양이 들어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4월 27일부터 바꿨다” 고 설명했다. 개성공단 단전·단수와 관련해 류 장관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며 “앞으로 상황을 지켜보면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권호 기자

    2013.05.07 00:51

  • [브리핑] 한·미 해군 연합훈련 돌입

    [브리핑] 한·미 해군 연합훈련 돌입

    한·미 해군이 6일부터 서해에서 대잠(對潛)훈련에 돌입했다. 훈련에 관여하고 있어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10일까지 서해안 일대에서 적 잠수함을 탐지하고 추적해 타격하는 한·미 연합 대잠훈련을 실시 중”이라며 “연례적인 훈련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미군은 이번 훈련에 로스앤젤레스(LA)급 핵추진 잠수함인 브리머톤(6900t)을 파견했다. 우리 해군은 구축함(4500t) 등 수상함과 잠수함, P-3C 대잠초계기, 링스헬기가 참여했다. 한·미 해군은 또 10일을 전후해 미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9만7000t·사진)함이 참가하는 연합훈련도 실시할 예정이다.

    2013.05.07 00:49

  • 개성 7인 귀환작전, 청와대·합참 생중계

    개성 7인 귀환작전, 청와대·합참 생중계

    코드명 오퍼레이션 넵튠 스피어(Operation Neptune Spear). 미 중앙정보국(CIA)이 주도해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에 은신 중이던 오사마 빈 라덴(9·11 테러 주범)을 사살한 작전이다. 일명 제로니모(Geronimo·오사마 빈 라덴 지칭) 제거 작전으로도 불렸던 당시 상황은 백악관 벙커로 고스란히 중계됐다. 작전에 투입됐던 미 특수부대 네이비 실 대원의 헬멧에 장착된 카메라는 인공위성을 통해 백악관에 실시간으로 장면을 전송했다. 백악관 상황실을 찾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합동특수작전사령부 마셜 브래드 웹 준장 옆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이 영상을 보고 있는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지난 3일 청와대와 국방부(합동참모본부)에서 펼쳐졌다. 개성공단에서 우리 국민 완전철수 결정(지난달 26일) 이후 북한 측의 불허로 귀환치 못하고 있던 7명의 귀환 장면을 우리 당국자들이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군사분계선(MDL)에서 4.1㎞ 떨어진 북한 출입국사무소에서 홍양호 개성공단관리위원장 일행 7명의 출발준비부터 전해졌다. 당시 화면을 지켜봤다며 익명을 원한 정부 당국자는 “이전 같았으면 유선으로 여러 단계를 거쳐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며 “군의 감시장비를 통해 실시간으로 현장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다른 당국자는 “군에 감시장비 동원을 요청해 이뤄졌다”며 “영상만으로 봐서는 마치 인질 교환 장면을 연상케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상황실을 방문해 영상을 함께 시청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생중계를 위해 군은 무인정찰기(UAV)와 신형 열상감시장비(TOD)를 준비했다. 2000년대 초부터 우리 군 군단급에 배치된 무인정찰기는 이들의 귀환 예정시간에 맞춰 날아 올랐다. UAV는 이날 일부 취재진에 목격되기도 했다. 고성능 카메라를 탑재한 UAV는 휴전선 이남에서 비행하며 개성공단 남단에 위치한 북한 출입사무소에 초점을 맞췄다. 홍 위원장 일행이 공단을 출발해 출경수속을 하는 장면부터 이들이 탑승한 4대의 차량 앞뒤에 북한군 지프 2대가 호위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우리 차량이 MDL을 넘어서도 중계는 이어졌다고 한다.  이들은 평소와 달리 MDL을 넘어 한 차례 정차했다. 우리 초병들의 신변확인을 위해서다. 평소 같으면 곧바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로 향했겠지만 남북이 당초 합의한 대로 우리 인원들이 무사히 MDL을 넘으면 1300만 달러를 실은 현금수송차를 출발시키기로 했다. 그래서 MDL상에서 신원확인 절차를 밟은 것이다. 홍 위원장 일행을 안내해온 북한군 차량은 잠시 뒤 현금 수송차량을 호위해 북으로 돌아갔다.  이 같은 영상은 휴전선 이남 지역에 배치된 초소의 TOD 영상에도 담겼다. 공중과 지상에서 다원 중계가 이뤄진 셈이다. 군은 최근 주야간 구분 없이 10㎞ 이상의 거리를 감시·녹화할 수 있는 장비를 배치했다. 이로 인해 우리 초소에서 직선거리로 7~8㎞ 떨어진 개성공단 지역은 손금 보듯 감시가 가능해졌다는 게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적대행위 중지해야 공단 정상화” 북한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은 5일 “(한·미) 해상합동훈련을 구실로 핵탄을 적재한 ‘니미츠’함 항공모함이 부산항에 들이닥치게 된다”며 “먼저 (한·미가) 적대행위를 중지해야 개성공단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미 양국군은 이번 주말 연합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정용수 기자

    2013.05.06 03:00

  • 박 대통령 방미 출국 7일 오바마와 회담

    박근혜 대통령이 5일 미국 방문을 위해 출국하면서 정상외교 무대에 데뷔했다. 박 대통령은 한국시간 6일 오전 뉴욕에 도착해 동포 간담회를 하면서 10일까지 5박6일간의 취임 후 첫 해외순방 일정을 시작한다. 이날 저녁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도 만난다. 이어 박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회담 직후 두 정상은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공동 기자회견을 연다. 정상회담 이후 8일에는 미 의회의 초청으로 열리는 상·하원 의원 연설이 예정돼 있다.  박 대통령은 방미에 앞서 2일부터 공식 일정을 최소화하고 정상회담 준비에 몰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첫 미국 방문에 나서기 이틀 전인 2008년 4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방미 일정과 목표 등을 설명했으나 박 대통령은 별도의 행사 없이 허태열 비서실장 등에게 “방문 기간 중 국정에 공백이 없도록 해달라”고 짧게 당부하곤 순방길에 올랐다. 강태화 기자

    2013.05.06 01:34

  • 현대아산 개성공단 쇼크 "70억 경협보험 신청"

    “남북경제협력에 나설 수 있는 대기업은 현대뿐입니다. 최근 북한의 개성공단 폐쇄까지 몇 년 동안 손실이 크지만, 남북관계 개선은 아산 정주영 회장의 마지막 뜻이지 않습니까.”  개성공단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우리 측 공단 잔류인원 7명이 3일 귀환한 직후 현대아산 직원의 한숨 섞인 한마디다. 현대아산은 2008년, 9년 만에 금강산 사업이 좌초된 데 이어 이번에는 개성공단 개발 사업까지 타격을 받는 상황에 몰렸다.  사실 개성공단 개발은 2000년 8월 당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고 정주영 명예회장 5남)의 면담에서 김 위원장의 제안으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현대아산은 개성공단의 총개발업자로 지금까지 10년 동안 총 318억원을 투자비로 들였고, 직원숙박시설인 송악프라자뿐만 아니라 호텔·주유소·자재공장 등 기반시설을 지었다. 개성공단 부지를 추가 조성하기 위해 북으로 올려보낸 건설자재 수십억원어치도 그대로 남아 있다. 송악프라자 내 면세점 상품도 시가 3억~5억원 정도다.  현대아산은 개성공단 사태 이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후속조치 등 대책수립에 나섰다. 최대 70억원 한도의 남북경협보험이라도 받겠다는 게 회사 입장이다. 현대아산은 2008년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총 1조4000억원가량의 피해를 보았지만 경협 보험금(50억원)도 신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 중단 때처럼 ‘폐쇄→동결→몰수’로 이어지는 사업중단 수순을 밟을까 봐 두렵다”며 “우선 개성공단의 불씨를 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이 회사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2013.05.06 00:48

  • [해외칼럼] 핵무기론 안보 보장 못한다

    [해외칼럼] 핵무기론 안보 보장 못한다

    가레스 에번스전 호주 외무장관 지난 4월 22일부터 5월 3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선 2015년 개최될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회의에 대비해 189개국 대표단이 모였다. 오늘날 의도적으로 핵전쟁을 일으킬 나라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대표단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오늘날 핵 관련 정책에선 30년 전 냉전 시대의 계산법이 횡행하고 있다. 핵 억지력의 논리와 상호확증 파괴의 역학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자국의 핵미사일이 미국의 선제공격에 의해 지상에서 파괴될까봐, 그리고 자국의 보복 능력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에 의해 약화할까봐 걱정하면서 추가 군축회담에 소극적이다. 또 약 1000기에 이르는 전략 핵무기를 몇 분 내에 발사할 수 있는 비상대기 상태로 유지할 것을 고집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 또한 자국 핵미사일의 발사대기 상태를 해제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의 2000기에 이르는 대량파괴무기가 고도의 대기 상태로 서로 겨누고 있다. 그 탓에 사람이나 시스템에 의한 오류, 또는 사이버 공작에 의해 파국이 일어날 위험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소위 핵 억지력 논리는 눈덩이 효과를 만들어낸다. 러시아와 미국은 세계의 핵무기 1만9000기 중 1만8000기를 보유하고 있다. 양국이 자신들의 무기고를 대량 축소하지 않는다면 여타의 핵 보유국에 핵무기를 줄이라고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재래식 무기와 미사일 방어망이 미국에 비해 열세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또 현재 240기로 추정되는 핵미사일 숫자를 늘리고 현대화하는 중이다. 이에 발맞춰 인도 역시 무기고를 확충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이 나라는 NPT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 100기를 보유 중이다. 그리고 파키스탄은 인도를 앞서기 위해 더욱 노력할 예정이다.  진상을 말하자면 핵 보유국 중 핵무기를 궁극적으로 제거하기 바라는 국가는 아무도 없다. 주된 이유는 냉전의 논리와 언어가 계속해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국가의 경우는 대외적 지위와 특권이라는 요인도 여기에 한몫 거들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군축을 지향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희망적인 미사여구는 바로 이런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핵 보유국 중에서 자국 핵무기의 폐지는 고사하고 숫자라도 상당히 줄이겠다는 계획표를 제시할 나라도 전혀 없다. 이들 국가의 핵무기 보유량, 핵분열 물질 비축량, 군 현대화 계획, 이미 발표한 독트린, 이미 알려진 배치 관행 등의 모든 요소는 한 방향을 가리킨다. 핵무기를 무한정 보유할 것이며 이들 무기가 자국의 안보 정책에서 계속 역할을 할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  오늘날 중동과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핵 클럽에 가입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어느 때보다 크다. 하지만 핵 보유국들이 군축을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핵확산금지체제를 구축하는 데 실질적인 힘을 보태기 어렵게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핵무기 보유는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정당화될 수 있지만 너희 나라 것은 그렇지 않아”라는 식의 이중 기준을 목격한 지도자들은 필연적으로 냉혹한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더욱 안전하고 제정신인 세상을 만드는 길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핵보유국이 냉전 시대의 사고 틀을 깨고 오늘날 상황에서 핵 억지력의 전략적 가치를 재검토하며 핵무기고를 보유하는 데 따른 막대한 위험을 다시 측정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핵무기는 문제이지 해결책이 아님을 핵 보유국들은 인식해야 한다. @Project Syndicate 가레스 에번스 전 호주 외무장관

    2013.05.06 00:36

  • [사설] 개성공단 폐쇄는 남북한 비전의 소멸

    지난 주말 개성공단에 남았던 7명의 남측 인원이 철수함으로써 북한 땅엔 남한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됐다.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빌미로 북한이 남측 인원의 개성공단 출입을 막은 지 꼭 한 달 만에 인적이 끊기게 된 것이다. 북측이 근로자 5만3000여 명의 출근을 중단시킨 지는 24일 만이다. ‘최후의 7인’이 북측 당국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공단 운영 정상화를 여러 차례 촉구했지만 반응을 보이지 않던 북측은 어제 8월 예정인 한·미 합동 ‘을지 프리덤 가디언’ 연습까지 문제 삼고 나섰다. 개성공단을 대남 압박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북측의 태도가 그저 답답할 뿐이다.  북한은 사실상 모든 종류의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하는 억지를 부렸다. 공단이 가동된 2003년부터 지금까지 한·미가 군사훈련을 거른 적이 없는데도 북측은 올해 유독 심하게 떼를 쓰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이런 태도가 앞으로 1~2개월 이상 이어질 경우 개성공단은 실질적으로 폐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데 있다. 개성공단이 사라지면 남북한이 경제적 손실만 입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개성공단의 소멸은 남북한이 협력을 통해 언젠가는 경제공동체로, 나아가 통일국가로 달려갈 수 있다는 비전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비전마저 없다면 남북 관계는 냉전시대 ‘바닥 없는 대립의 악순환’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북한은 남북한 사이의 모든 문제를 군사적 대치와 연결 지으려는 1차원적인 대립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이 아무리 수십 수백 개의 핵폭탄을 갖는다고 해도 무력으로 남측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헛된 꿈일 뿐이다. 그런 허망한 일에 사로잡혀 개성공단마저 없애버리는 상황을 초래한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북한이 무력으로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는 것뿐이다.  개성공단은 한반도 분단이 영구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의 화수분이다. 남이든 북이든 모두에게 말이다. 공단을 없애는 건 화수분을 깨버리는 바보짓이다. 북한은 미래로 향한 희망을 내팽개치지 말라.

    2013.05.06 00:34

  • [김진의 시시각각] 한·중·일 지도자, 가문의 대결

    [김진의 시시각각] 한·중·일 지도자, 가문의 대결

    김진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지금 한·중·일에선 화려한 가문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지도자가 모두 역사적 인물의 후손인 것이다. 이웃 3국에서 이런 일이 생긴 건 현대사에서 처음이다. 이 대결의 승패가 역사를 좌우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시중쉰(習仲勳)의 아들이다. 시중쉰은 1930년대 중국 서북 지역에서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을 이끌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에는 국무원 부총리까지 지냈다. 90년대에는 덩샤오핑(鄧小平) 등과 함께 ‘8인 원로’를 구성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다. 기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상공장관을 지냈고 전후 A급 전범으로 징역을 살았다. 기시는 57~60년 총리를 지내면서 일본의 재건을 이끌었다. 기시의 동생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는 6년(64~70년)이나 총리를 맡았다. 그의 재임 때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다시 일어섰다. 올림픽을 치렀고 패전으로 빼앗겼던 오키나와도 돌려받았다.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는 기시의 사위이며 아베 총리의 아버지다. 그는 82~86년 외무장관을 지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와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에게 패해 총리가 되진 못했지만 신타로는 주요 국가지도자였다. 그를 포함하면 아베 가문에선 총리급이 4명이나 나왔다. 4인은 모두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야마구치현은 메이지 유신 주역들을 배출한 권력의 뿌리다. 야마구치 사단은 군국주의로 무장해 한반도 정복과 대동아공영권을 향해 질주했다.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도 이곳 출신이다. 아베 총리의 몸에는 이런 야마구치 피가 흐르고 있다.  박정희·시중쉰·기시 3인은 20세기 역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부닥쳤다. 개인적으로는 모두 옥고(獄苦)를 치렀다. 박정희는 남로당 활동으로 사형판결을 받았다. 시중쉰은 반당분자로 몰려 16년이나 감옥에 있었다. 기시는 A급 전범으로 옥살이를 했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와 아베의 작은할아버지 사토는 1965년 1차 대결을 벌였다. 한·일 협정 당시 각자가 해당국 지도자였던 것이다. 사토는 협정으로 전후 정리를 끝내고 부흥정책으로 내달렸다. 박정희에게 협정은 생사(生死)의 승부수였다. 국내에선 격렬한 반대시위가 정권을 위협했다. 박정희는 계엄령으로 버티면서 협정을 밀어붙였다. 그러고는 일본에서 받아낸 청구권 3억 달러를 경제개발에 쏟아부었다.  위대한 가문에서 태어난 국가 지도자는 종종 조상과 경쟁하곤 한다. 그래서 부국강병의 업적주의에 쉽게 빠져든다. 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91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물리쳤다. 그래도 후세인 정권은 살려두었다. 아들 부시는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고 후세인을 아예 없애버렸다.  시진핑은 화평굴기(和平起)를 넘어 ‘패권 중국’을 향해 돌진한다. 아베는 제국주의 일본의 영화(榮華)를 재현하려 한다. 야마구치 사무라이의 혼이 그의 등을 밀고 있다. 중·일 ‘부흥 전쟁’에서 한국의 박근혜는 무엇을 할 것인가.  박 대통령은 경제부흥을 주요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가문의 대결에서 이는 필수과목이다. 부흥 없이는 대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흥만으론 부족하다. 중국의 패권과 일본의 우경화를 뛰어넘으려면 한 차원 높은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적 흡수통일이다. 통일로 7500만 ‘한국 문명(the Korean Civilization)’을 완성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통일 기반 구축도 국정목표에 넣었다. 그러나 기반 구축만으론 약하다. 보다 적극적으로 ‘통일 시작’이라는 판을 벌여놓아야 한다. 김정은 정권을 단호하게 압박해 변화를 폭발시켜야 한다.  통일이 되면 2500만 인류가 폭정(暴政)과 기아로부터 해방된다. 이런 일을 이루면 박근혜의 역사는 시진핑이나 아베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들이 패권이라면, 박근혜는 문명이다. 가문의 대결에서 박근혜는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2013.05.06 00:31

  • 北군인, 탈북하다 들켜 "아랫동네 갈껍네다" 하면…

    북한에서 탈북자를 감시하는 국경경비대 군인들이 중국보다 남한에 간다고 하면 더 잘 보내준다는 증언이 나왔다. 5일 북한소식 전문매체 ‘뉴포커스’는 탈북자의 말을 인용해 최근 북한 국경경비대원들의 비리가 과거와 달라졌다고 전했다. 2010년 탈북했다는 30대 여성은 “과거에는 탈북하려다가 보위부에 잡히면 식량과 물자를 사러 중국에 잠깐 갔다 올 거라며 돈을 주면 못 본 척해줬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랫동네(한국) 간다고 해야 오히려 잘 보내준다”고 밝혔다. 또 다른 40대 탈북자는 “북한 주민들이 중국에 숨어 지내다 공안에 잡혀 북송되면, 그 과정에서 국경경비대원들도 처벌을 받는다. 시범으로 총살된 군인들도 있다. 이에 군인들이 돈을 요구하면서 ‘너네 어디 가니?’라고 묻는다. ‘아랫동네(남한)에 간다’라고 하면 ‘잘 가라, 제발 붙잡혀 오지 말라’고 할 정도다”라고 전했다. 이런 탈북 유행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바로 국경경비대 군인들이라고 한다. 국경경비대원들이 ‘아랫동네’라는 표현에 안심하는 이유는 한국에 먼저 탈북한 가족이나 친인척들이 돈을 주고 브로커를 고용한다는 사실을 그들도 잘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탈북자들인 경우 강 건너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숨어 지낼 곳, 탈북비용 등 남들보다 안전해서 국경경비대원들은 그런 조건의 탈북자인지, 아니면 무작정 연고없이 탈북하는 사람인지 판단하려고 “어디로 가는가?”고 묻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놓고 “한국에 간다” “남조선 간다”라는 말은 절대 안한다고 한다. ‘아랫동네’라면 한국을 지칭하는지 다 아는데 굳이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불편하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3.05.05 15:24

  • "육군 치우친 군사전략 수정…해군·공군 비중 높여야"

    "육군 치우친 군사전략 수정…해군·공군 비중 높여야"

    채명신 장군이 빈틈없는 안보를 전제로 '평화적인 북한 관리'를 주문함에 따라 군사·해양 전문가인 유삼남(72·사진) 한국해양대 석좌교수를 만나 그 구체적인 방법론을 들어봤다. 북한과의 충돌 우려가 가장 높은 지점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 해양 부문이란 판단에서다. 유 교수는 40년간 해군에 몸담은 끝에 김영삼 정부에서 해군참모총장, 김대중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각각 역임했고 이후 9년간 한국해양연맹 총재를 지냈다. 유 교수는 “육군에 치우친 우리 군사전략에서 공군과 해군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며 군 최고회의기구인 안보전략회의에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과 함께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모두 참여토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한반도 관리를 위해 정부는 대북특사 제도를 신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북한의 도발을 막는 데 주력하고 미국은 일본의 우경화를 막는 데 힘써야 한다는 제언도 곁들었다. 박근혜정부 들어 눈에 띄는 군 출신 인사들의 고위직 진출에 대해선 “군 출신 인사는 전역 후 몇 년간 정부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명신 장군이 월남전에 참전했던 고엽제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보상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당연하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보상과 명예를 줘야 나라의 존립기반이 생긴다. 이젠 대한민국에 그만한 국력이 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는 ‘통일을 위해 전쟁을 한다는 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뿐’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정전상태라는 엄중한 현실을 잊어선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전쟁 대신 대화를 할 수 있는 조건은 압도적인 억제력을 갖춰야 한다는 거다. 유비무환이 중요하다. 김구 선생은 ‘안보는 산소 같은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린 핵무기가 없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는 나라(북한)가 어떻게 전쟁을 일으키겠는가? 다만 북한이 기습적으로 어리석은 도발을 할 수 있다는 경계심은 갖고 있어야 한다. 북한 단독으로 전쟁할 힘은 없고, 있다면 국지도발밖에 없다. 2003년 이라크전쟁 이후 무기체계가 더욱 발달해 가공할 위력을 갖게 됐다. 전쟁이 개시되면 30분이 아니라 몇 분 만에 남북이 공멸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남북이) 어떤 오판도 해선 안 될 것이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어떻게 봐야 하나. “북한은 ‘군대라는 지붕이 튼튼해야 안전하다’는 마키아벨리의 논리에 너무 경도된 것 같다. 지붕만 튼튼하면 뭐 하나? 안에 살림살이가 없는데 말이다. 북한의 기득권 세력 10만 명은 잘산다. 특히 북한군 고위 간부 1500여 명은 ‘개혁·개방이 되면 우리 입지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북한은 개혁·개방으로 나가야만 살 수 있다.”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개시할 때 군인 출신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신중론을 폈는데. “맞다. 전쟁에 대해선 군인들이 민간 정치인보다 더 신중할 수 있다. 무기란 게 뭔지, 전쟁을 하면 어떤 피해기 생기는지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에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상’이라고 했다.” -일본이 최근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1930년대 군국주의 식으로 가고 있다. 이런 일본 때문에 한·미·일 협력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미국엔 한·미 동맹도 중요하지만 아직은 미·일 동맹이 더 중요할 것이다. 미국은 일본에 이지스함 기술도 전수했다. 우리의 딜레마다. 우리는 아직도 일본에 배워야 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우경화를 계속하면 일본의 장래는 불행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대륙별로 영국과 이스라엘·일본이 연대의 축이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중국·러시아와 각각 갈등하고 있다. 이런 일본 때문에 미국의 아시아에서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 “맞다. 이미 중국에선 일본 차나 일본 상점들이 ‘나는 중국과 중국인을 사랑한다’는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중국 내에서 반일감정이 고조되면서 나온 방어 제스처다. 곧 한국·러시아도 같은 상황이 될 것이다.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선 중국은 북한에 자제를 설득해야 하고 미국은 일본의 자제를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자중자애해야 한다.” -우리 안보를 위해 해군과 공군이 강화돼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맞다. 공군과 해군이 강화돼야 한다. 미국이 해군과 공군을 지원해 주니까 한국군은 지상군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 우리 군의 안보전략회의에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모두 참여하게 해야 한다. 2010년 천안함 사태 때 해군이 그 회의의 주요 위치에 끼지 못했다. 큰 문제다.” -제주 해군기지 논란은 어떻게 봐야 하나. “기지는 필요하다. 제주도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다. 일제시대 일본은 군인 7만 명을 제주도에 파견했다. 그만큼 군사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짓되 세계에서 처음으로 화석연료가 없는 섬이 되도록 지원하면 어떨까. “맞다. 호주의 시드니나 미국 샌디에이고 등은 모두 중요한 해군기지인 동시에 세계적인 관광지다. 제주도도 그렇게 되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대북특사를 신설해 북한과의 대화를 조직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좋은 생각이다. 남북이 지금처럼 치킨게임만 계속하면 결국 공멸한다. 공식·비공식 대화채널이 모두 필요하다. 국회가 대북특사제도를 만들고 청문회에서 통과시켜 활동반경을 보장해야 한다. 특사의 임기는 5년 또는 그 이상으로 하고,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출마는 금지시켜 남북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과거 대북채널로 활동했던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나 정주영 전 현대 회장처럼 기업인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존폐 위기에 놓인 개성공단은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에 대한 투자는 중국도, 독일도 실패했다. 개성공단마저 실패하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믿음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공단이 불안하지 않아야 투자가 일어난다. 앞으론 북한에 투자를 하더라도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 유엔 등 국제조직이 함께 참여해 신뢰를 높이고 리스크에 공동 대응하게 해야 한다.” -정부가 러시아와 북한을 거쳐 우리 땅에 들어오는 천연가스관 사업을 구상 중인데. “러시아와 협력하는 게 중요한 사안이다. 한·미, 한·중 정상회담에 이어 한·러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다만 가스관 사업은 위험한 요소가 있는 만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다국적 기업들의 공동 참여가 필요하다.” -후배 군인들이 박근혜정부에서 국정원장 등 요직에 올랐다. “군인은 정치에 참여해선 안 된다. 군복을 벗은 뒤에도 최소한 몇 년은 외부에 있다가 정부에 들어가야 한다. 또 군의 인재 등용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한쪽으로만 승객이 몰리면 버스는 기울어진다. 육군과 해군, 공군의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일례로 합참의장 밑에는 육·해·공군 작전부장이 모두 있어야 한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이익을 추구하고 행복을 찾는 것이다. 행복한 삶이란 본인도 남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국가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나는 장관에서 물러난 뒤 기업체에 가지 않았다. 건강이 중요하다. 건강을 위해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또한 후학을 키우는 게 큰 행복이다.” 유삼남 해양대 석좌교수. 1941년 경남 남해생. 해군사관학교(19기) 졸업. 해군 정보참모부장·작전사령관을 거쳐 97년 제21대 해군참모총장에 임명돼 2년간 재직했다. 예편 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19번)로 당선됐고 2001년엔 제 8대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됐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사단법인 한국해양연맹 총재를 지냈다. 대담=이광재 객원 칼럼니스트

    2013.05.05 01:21

  • "북핵 맞서 핵무장 하는 건 어리석은 짓"

    "북핵 맞서 핵무장 하는 건 어리석은 짓"

    지난달 30일. 베트남전이 종식된 지 38년이 되던 날이다. 6·25와 베트남전의 영웅 채명신(87·사진) 장군을 만났다. 24세 나이에 백골병단을 이끌고 북한 땅에서 게릴라전을 펼쳤고, 39세에 주월한국군사령관에 임명돼 국내 최초의 파병전쟁을 지휘했다. 한 번 겪기도 힘든 전쟁을 두 번이나 지휘한 백전노장이다. 하지만 그는 전쟁광이 아니라 평화주의자다. “전쟁은 가장 잔혹하고 가장 비극적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 전쟁을 혐오한다. 하지만 안보라는 버팀목 없이 부르짖는 평화주의는 오히려 전쟁을 부추긴다”는 그의 말엔 전쟁의 참혹성을 뼛속 깊이 체험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통찰이 담겨 있었다. 그는 “북한 핵에 맞서 핵무장을 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필요가 없다”며 “북한의 위협이 사라질 때까지 전시작전권 전환은 연기돼야 하고 한미연합사는 존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이촌동 채 장군의 자택에서 7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는 장군이 20대 후반 시절 만난 경북 영덕 재력가 집안 출신의 미녀 문정인(부인)씨와의 추억담으로 시작됐다. -부인이 이화여대 홈커밍 퀸이었다. 결혼한 사연이 궁금하다. “20대 후반 대령 시절 만났는데 한눈에 반해 엄청나게 쫓아 다녔다. 장인이 납북돼 홀몸이 된 장모는 딸을 내게 줄지 결정을 내리시지 못했다. 답답해진 나는 경북 영덕의 처갓집 어른을 찾아가 큰절을 했다. 그러면서 ‘내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고 어머니는 이북에 있다. 내 가진 건 몸뚱이밖에 없지만 정인이(부인)를 굶기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분이 쾌히 승낙하면서 장모를 설득해 결혼할 수 있었다. 나는 장모를 아주 존경한다.” -장모를 존경하는 이유는. “당시 대령 월급이 쌀 사고 콩나물국 먹으면 바닥나는 수준이었다. 그러자 장모가 나 몰래 아내에게 생활비를 보태주며 ‘남편한테 돈 얘기 하지 말라. 그러면 남편은 돈의 노예가 되고, 부패한 사람이 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동기생 김익권 장군이 ‘네 장모 같은 분이 있다면 도시락을 열두 개 싸 들고 다니며 청혼하겠다’고 할 정도였다. 오늘날 한국 여성들이 우리 장모 같았으면 좋겠다.” -부인은 어떤 분인가. “아내도 장모에게 바른 교육을 받았다. 아내 때문에 내가 살 수 있었다. 50년 가까이 당뇨병을 앓았지만 합병증이 하나도 없는 건 전적으로 아내 덕이다. 아내는 매일 아침 6시30분이면 내 혈당을 조사하고 먹거리를 철저히 챙겨준다. 아내에게 감사한다.” -6·25가 터지기 전 북한에서 김책과 김일성을 만났다는데. “소련군 소좌였던 김책의 주선으로 46년 2월 8일 평양학원 개원식에서 김일성을 만났다. 김일성은 ‘채 동무, 사람이 필요한데 평양에서 함께 일합시다’라고 말했다. 나는 모셔야 할 홀어머니가 있었고, 그와 생각도 맞지 않아 응하지 않았다. 김일성은 호남형이었지만 덧니가 심했다. 나중에 치아를 교정했다고 한다.” -왜 월남했나. “45년 8월 해방과 함께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기계와 쌀·잡곡을 전부 소련으로 실어 갔다. 젊은이들이 반발하면서 그해 말 신의주에서 처음 학생시위가 터졌다. 소련군은 학생들을 기관총으로 갈겼고 많은 사람이 숨졌다. 그때 도망친 사람들이 서북청년단을 조직해 좌익과 싸웠다. 나는 모태신앙이다. 목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이듬해 김일성의 외삼촌인 강양욱 목사가 북조선인민위원회 서기장에 선출되면서 기독교를 철저히 부수기 시작했다. 탈북을 결심했다. 어머니와 생이별하고 삼팔선을 넘었다. 그런데 남한에 오니 여기서도 서북청년단과 좌익이 싸우고 죽이는 게 반복됐다. 조선의 장래는 총칼이 난무하고 피를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사 5기(당시 조선경비사관학교)에 응시해 합격했다.” -6·25를 겪으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49년부터 삼팔선 일대에서 개시된 게릴라전이다. 200여 명의 중대를 이끌고 매복과 기습으로 전공을 쌓아 대대장으로 발령 났다. 그러자 부대원들이 나랑 헤어질 수 없다고 붙잡았다. 상부에 ‘대원들과 함께 있고 싶으니 중대를 대대로 해 달라’고 청했는데 받아들여져 특별 중대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6·25가 터지면서 인민군 복장을 한 ‘백골병단’을 만들어 사선을 넘나들었다. 국군의 체면과 기개를 위해 이북 후방에 침투하는 유격대를 직접 조직한 거다.” -‘51년 1월 1일 오후 2시35분 일생일대의 실수를 했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그때 황해도 곡산에서 작전 중이었다. ‘정초에 굶으면 1년을 굶는다’는 말 때문에 사전 정찰 없이 (식량을 구하러) 민가에 들어갔는데 주민의 밀고로 인민군에 포위됐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35분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우리가 남한 군인인 줄 아느냐? 위장한 거다.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자 밀고자가 인민군들에게 우리가 국군이라고 일렀다.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부하들에게 ‘손들고 나가 항복하라’고 명령한 뒤 총을 머리에 겨눴다. 부하들에게 ‘하느님의 가호를 빈다’고 말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소리가 났지만 방아쇠가 터지지 않았다. 다시 일발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부하 정영식이 나를 붙잡으며 ‘하느님이 죽지 말라는데 왜 죽습니까’라고 외쳤다. ‘하느님의 목소리’란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번쩍 났다. ‘빨리 나오라우’ 하며 들이닥치는 적병에게 1탄,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 2탄, 따발총을 든 다른 적병에게 3탄을 발사해 모두 세 명을 죽이고 극적으로 탈출했다. 그런데 그 집에 있던 젊은 아낙과 어린이는 인민군이 쏜 따발총에 즉사했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김일성의 오른팔이었던 길원팔 노동당 제2비서를 생포한 일화가 유명한데. “백골병단으로 활동하던 중 인제에서 길원팔을 생포했다. 김일성 작전명령서와 부대 배치도 등 중요 정보도 포획했다. 그런데 길원팔과 얘기해 보니 일본 스가모 고등사범을 나온, 아주 똑똑한 군인이었다. ‘너를 죽이기 아깝다. 너희가 말하는 인민을 위해 진짜 일을 해 보자’고 전향을 권유했다. 하지만 길원팔은 ‘어떻게 너 같은 인물이 썩어빠진 이승만 정권에 충성을 바쳐 게릴라전을 하는지 모르겠다. 네 손에 죽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일성이 자신에게 준 권총으로 자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13세 된 남녀 아이를 남한으로 데려가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총알 한 방을 장전한 권총을 놓고 방 밖으로 나왔다. 길원팔이 그 총으로 나를 죽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의 인물됨을 믿었다. 잠시 후 방 안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길원팔을 묻어준 뒤 부하들에게 ‘비록 적이지만 훌륭한 군인이다’고 얘기하고 ‘받들어총’을 시켰다. 그때 데리고 온 아이 2명 중 여자는 숨지고 남자는 살아서 서울대학교까지 공부하도록 도와줬다.”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은. “50년대 후반 백골병단 생존자들과 강릉을 찾았다. 당시 9사단 참모장이 박정희 대령이었다. 박 대령은 ‘죽을 줄 알면서도 이북에 들어가 게릴라전을 하니 대단하다’며 고깃집으로 데려가 위로해 주었다. 피 묻은 내 점퍼를 자신의 털 달린 좋은 점퍼와 바꿔주기도 했다. 그런 인연으로 5·16에 참여했고 국가재건최고회의 감찰위원장을 맡게 됐다.” -마음만 먹으면 더 높은 요직에 등용될 위치였는데. “난 내 약점을 잘 안다.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정치에 필요한 돈과 조직도 없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월남전에 반대했는데. “전쟁에서 이기려면 명분이 있어야 하고 지도자가 사심이 없어야 한다. 월맹의 호찌민은 자주독립의 명분을 가지고 있었고 월맹·월남 국민 모두에게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반면 월남은 썩었다. 외국이 도와줘도 국민이 따라오지 않는 월남은 진다고 보았다.” -그런데도 월남전에 참전한 이유는. “현실을 직시했다. 월남전이 격화되면 미국은 우리 서부전선의 주한미군 2·7사단 7만 명을 빼갈 것으로 봤다. 당시는 김일성의 군대가 우리보다 강했을 때다. 미군이 2개 사단을 빼간 뒤 김일성이 밀고 내려오면 승산이 없었다. 월남에 파병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조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파병은 정당했다. 또 파병을 통해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경제가 일어선 걸 잊어선 안 된다.” -월남에서 미군 휘하가 아닌 독자 지휘권을 관철했다. “박 대통령은 미군의 지휘를 받는 게 좋다고 판단했지만 나는 반대했다. ‘사령관에 임명했으니 내게 맡겨달라’고 했다. 미군과의 회의석상에서 ‘이 전쟁은 군사전쟁이 아니고 정치전쟁이다. 세계 최강의 미군이 석 달 반 동안 부락 하나 점령 못하고 있다. 다른 대응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군의 지휘를 받지 않는 한국군은 얼굴도 보지 않겠다’던 라슨 장군이 ‘당신 말이 맞다”고 해 독자 지휘권을 인정받았다. 그 덕분에 맹호부대 주둔 지역에 태권도를 보급해 심리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69년 월남 전역을 성공리에 마치고 귀국했지만 72년 대장 진급에 실패했다. 유신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내가 대통령이라도 나처럼 직언하는 사람은 피곤해서 참모총장으로 안 쓸 것이다. 박 대통령은 내 건의를 다 들어줬지만 한 가지만 예외였다. 장기집권 반대가 그것이었다. 72년 초 대구에서 박 대통령이 ‘한 잔하자’고 해 만났다. 박 대통령은 ‘채 장군, 김대중에게 정권을 맡기면 나라가 잘될까?’라고 물었다. 짐작되는 바가 있어 ‘각하가 스스로 정권을 연장하겠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채 장군이 정치를 뭘 안다고…’라고 말했다. 나는 ‘3선 개헌 때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눈물까지 흘리지 않았느냐’고 받아쳤다. 두 달 뒤 대구에서 다시 박 대통령을 만났다. ‘채 장군, 아무리 생각해도 집권을 연장해야겠어. 욕을 먹더라도 내가 십자가를 메야겠어’라고 하더라. 그래서 ‘십자가란 말을 함부로 쓰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채 장군은 기독교 신자지… 그 말이 맞아’라고 했다. 나는 ‘장기집권 하지 말라. 루스벨트가 4선을 한 건 국민이 하라고 해서 한 거다. 장기집권은 각하를 죽이는 길이다’고 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더라. 얼마 뒤 중장 계급 정년일인 5월 30일이 되자 유재홍 국방장관이 나를 불러 박 대통령의 친필서류를 보여줬다. ‘채명신 중장 예비역 편입’이라 써 있더라. 만감이 교차했다. 전역식을 마치고 정문을 나서는데 도열한 장병들의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됐다. 그해 스웨덴 대사로 부임했고 이어서 그리스·브라질 대사를 했다. 79년10월 26일 브라질에서 박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었다. 아내가 ‘부부로 산 57년 동안 당신이 그렇게 슬퍼한 날은 없었다’고 하더라. 박 대통령에게 ‘각하를 죽이는 길’이라 말한 게 너무나 가슴 아팠다. 브라질 대사를 끝으로 공직을 마감했다.” -북한 핵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북핵을 겁낼 필요 없다. 북한이 핵을 쓰면 북한은 없어진다. 북핵에 맞서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럼 주변의 모든 나라가 핵을 가지려 할 것이고 외국기업들은 다 나가버릴 거다. 북한은 절대 오래가지 않는다. 다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우리가 단독으로 제어할 능력은 부족하다. 북한의 위협이 사라질 때까지 전시작전권 전환은 연기돼야 하고, 한미연합사도 존치돼야 한다.”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월남전 당시 장병들이 김치를 먹고 싶어 했다. 그런데 고국에서 온 김치 깡통 뚜껑을 따자 핏물이 나왔다. 기술이 없어서 녹이 슬었던 거다. 나는 ‘여러분이 이걸 안 먹으면 2주 뒤 일본 김치가 도착할 것이고, 김치 값은 일본 사람 손에 간다’고 했다. 그러자 장병들이 ‘핏물이라도 먹겠다. 고국의 부모형제에게 돈이 가게 해 달라’고 했다. 나도 울고 장병들도 다 울었다. 박 대통령께 이 사연을 적어 보냈다. 그러자 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질 좋은 김치 통조림과 군화·군복이 공수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런 애국심으로 일어선 민족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모든 게 만족스럽진 않다. 하지만 권력과 돈이 생기는 자리에 친인척을 쓰지 않는 노력은 평가해 줘야 한다. 대통령이 일할 수 있도록 (국민이) 도와줘야 한다. 또 박 대통령은 월남전 전사자와 부상자, 고엽제 피해자들을 지원해 주면 좋겠다. 호주는 월남전 참전용사에게 매달 2200달러를 준다. 우리도 매달 그 절반인 120만원은 줘야 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적에 포위돼 자결을 결심한 적이 있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그때마다 이순신 장군의 말씀을 따랐다. ‘살려고 발버둥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란 신념이 그것이다. 군복을 벗은 오늘에도 그런 마음으로 산다. 후배 군인들도 나라를 사랑한다는 얘기를 입으로 백번 해봐야 소용없다. 애국을 행동으로 실천하라.” 채명신 한국전쟁 당시 20대 나이에 중대장으로 참전했고 1965년 육군작전참모부장 시절 주월한국군 초대사령관에 임명돼 4년8개월간 지휘했다. 당시 주월 미군으로부터 독자적인 작전권을 확보하고 태권도를 이용한 심리전과 대대급 소규모 작전으로 탁월한 전과를 올렸다. 69년 이세호 장군에게 사령관직을 물려주고 귀국한 그는 군인의 최고 영예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지만 3년 뒤 대장 진급이 좌절되며 2군사령관(중장)으로 전역했다. 1926년 황해도 곡산 출신으로 평양사범학교를 나와 교사로 일하다 47년 월남한 뒤 육사 5기로 군 생활에 들어섰다. 5ㆍ16 당시 5사단장으로 병력을 이끌고 동대문까지 진출해 박정희 장군의 쿠데타를 지원했다. 전역 후 스웨덴·그리스·브라질대사를 지냈다. 81년 공직에서 물러난 뒤 미국 하버드대 등에서 연구원으로 공부하다 88년 귀국했다. 베트남전참전동지회와 6ㆍ25 참전유공자회 회장을 지냈다. 『베트남전쟁과 나』 『사선을 넘고 넘어』 등의 저서가 있다. 이광재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그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17, 18대 국회의원과 강원도지사(2010~2011년)를 지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역임했다. 1965년생(48세)으로 원주고와 연세대 법대를 졸업했다. 대담·글=이광재 객원 칼럼니스트·전 강원도지사

    2013.05.05 01:18

  • "공장 내 온도·습도 관리 안 되면 기계·금형·재료 손상"

    ‘최후의 7인 귀환’으로 개성공단에 남측 인원이 사라진 뒤 첫날인 4일, 공단에 회사를 남겨 둔 기업인들은 더 노심초사다. 공단이 아예 폐쇄된 것도 아니고 남북 모두 정상화 여지를 남겨 놓은 듯해 기계를 재가동시키고 원재료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유지해야 한다는 조바심은 커진다. 문제는 공장 내 온도와 습도의 관리다. 기계는 민감해 닦고, 조이고, 기름 치지 않으면 쉽게 망가진다. 재료도 보관 온도에 민감하다. 적정 온도를 넘어가면 상하고 버려야 한다. 3일 귀환한 홍양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위원장은 “공단 내 기업 자산에 안전장치를 해 놓고 나와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 안전장치 수준이 공장 문을 잠가 도난에 대비하는 정도일 뿐 기업 특성을 반영한 설비의 안정적 운용, 원재료의 적절한 보관을 위한 대비는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에서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 ㈜에스제이테크는 공장의 원재료 보관실 온도를 0도로 유지해 왔다. 이를 위해 온도·습도 관리장비도 설치했다. 유창근 대표는 “이달 중순까지 온도·습도 관리가 안 된 채 공장을 방치하면 상당수 기계와 금형이 망가지고 원재료는 못쓰게 될 것”이라며 “북측 근로자라도 나와 조치를 취해 줬으면 하는 심정”이라고 답답해했다. 금형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도 역시 발을 동동 구른다. 금형은 면이 매끄러운 상태를 유지하도록 끊임없이 관리해 줘야 하는데 방치하면 녹이 슬고 면의 상태가 유지되지 못해 제품 생산이 불가능해진다. 화장품 용기를 생산해 온 태성산업 배해동 회장도 “금형 800벌을 비롯해 개성공단 공장에 들어간 설비 투자액만 300억원이 넘는다”며 “기계·금형 관리를 위해 우리 기술자들이 빨리 올라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성공단 진출기업인 대화연료펌프의 유동옥 회장은 “공장 재가동 시기가 너무 늦어지면 공장은 망가지고, 고객은 떨어져 나가 개성엔 공장 껍데기만 남을 것”이라며 “열흘 이내에 결정이 나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3일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정상화 촉구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남북한의 즉각적 대화 ▶생산 완제품 반출 ▶방북 승인을 요청했다. 통일부 김형석 대변인은 “설비에 대한 맞춤형 관리를 위해서는 해당 기업 직원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처음부터 북한이 거부한 것”이라며 “입주기업의 심정은 십분 이해하지만 우리 측 인원이 없는 상황에서 북측 근로자가 들어간다면 여러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의 대남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4일 “개성공업지구가 완전 폐쇄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괴뢰 패당의 태도 여하에 달렸다”며 남측 책임론을 주장했다. 염태정·전수진 기자

    2013.05.05 00:28

  • 전력 노출 쉬운 평지라 재배치 가능성 희박

    전력 노출 쉬운 평지라 재배치 가능성 희박

    임진강 남쪽 기슭의 도라산에서 북을 보면 너른 개성평야가 펼쳐진다. 그곳에 개성공단이 있다.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이었던 이 공단이 폐쇄의 문턱에 서면서 그곳으로 북한 2군단 군사력이 재배치돼 남북 긴장이 격화될 것이란 걱정이 나오고 있다. 2군단은 북에서 ‘작은 무력부, 국방부’로 불릴 만큼 강한 전투부대로 평가받는 데다 서울과 가장 가까운 북한 군사력이라 근거가 있는 우려다. 3일부로 남측 인력 철수가 완료된 공단이 폐쇄될 경우 ‘남한을 위협하는 새로운 무력거점’이 될 것인지 군사적 관점에서 살펴봤다. [사진=중앙포토] 비무장지대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지나 개성공단으로 이어지는 지형은 평탄하다. 지역을 관할하는 북한 2군단 6사단의 모습은 경계병을 제외하면 보기 어렵다. 진입로 옆 산기슭에서 방사포를 실은 군용 트럭들이 모습을 드러내던 금강산과는 다르다. 2군단 군관 출신 탈북자 김학천(가명·52)씨는 “주요 군사력은 공단 서쪽과 북쪽의 산 뒤에 배치했고 공단까지는 철책 같은 방어시설만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군사분계선(MDL) 북쪽 2~3㎞ 구간은 1만·6000·3000볼트의 3중 고압선이 차례로 가로지른다. 각 고압선 뒤론 폭 20m 모래밭~3m 높이 고압 전기 철망~날카로운 창이 꽂힌 2m 깊이 함정~밟으면 소리가 나는 마른 잡목을 깔아 놓은 녹지 저지물~교차 매설된 지뢰밭이 이어진다. 전방근무를 한 예비역 육군 장성은 “우리의 북침 의도가 없음에도 북한은 침략을 당할 것처럼 이런 시설물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김씨는 “공단이 있는 분지에도 원래부터 이렇다 할 군사시설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 예비역 장성도 “공단을 건설할 때 포병부대를 이동시켰다는데 실제론 북한군 보병부대 막사만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 공단 폐쇄 뒤 이곳이 새롭게 무장 군사지역이 될 것인가. 김씨와 한국군 관계자들은 모두 전환이 어려우며 그 이유로 ‘평탄한 지형’의 문제를 가장 크게 꼽는다. 김씨는 “북한군의 교리 자체가 벌판에 부대를 세우는 것을 금한다. 비행장을 제외한 군사시설은 평야에 절대 짓지 않는다”며 “중요한 군사시설은 모두 산의 북사면 기슭에 만든다”고 말했다. 예비역 장성들도 ‘움직임이 모두 남측에 노출되고 감지되는 벌판에 북한이 부대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민주당 백군기 의원도 “공단은 남북 완충지란 의미는 크지만 노출돼 있어 군사적 가치는 크지 않다. 군부대를 거기까지 재배치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공단이 개전 초 공격루트 되진 않을 것” 북한은 6사단 전방지역의 군사력 배치를 완료해 공단 부지의 전략적 의미가 크지 않다는 이유도 거론된다. 김씨는 “공단은 남쪽으론 열려 있지만 서·북 방향의 산들은 그 자체가 폭탄이며 군사시설”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산속을 파내 갱도화한 뒤 폭탄·암모니아 같은 폭발성 물질을 대량으로 겹겹이 쌓아 놓았다. 남쪽에서 공격해 오면 이를 폭발시켜 대형 산사태로 저지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반 병사들이 굴을 뚫어 놓으면 밤에 특수부대가 비밀리에 폭약을 장착했다”며 “임진강변 북쪽에 접해 있는 산들은 모두 그렇게 돼 있어 폭발하면 산사태로 강을 메우고 남한 군대도 매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공단을 둘러싼 산들의 북사면엔 10㎞ 간격으로 1·2선 지하시설이 있다. 20년 전 완공된 이 갱도들엔 장사정포·방사포들이 있다. 공단 뒤 개성 진입로에는 탱크 저지를 위해 76㎜ 직사포 6문, 82㎜ 비포(무반동포) 4문, 120·150㎜ 평곡사포 각각 8문 등으로 화망이 구성돼 있다고 한다. 이런 군사시설은 ‘전진 배치 사단과 관련된 교리’에 따라 건설돼 있다. 이에 따르면 사단들은 전쟁 시 6·25 때처럼 남하하지 않는다. 선제 포사격으로 공격군의 길을 확보한 뒤 최대 지하 400m까지 파놓은 갱도에 숨어 작전하며 전쟁 종료 때까지 현지를 사수한다. 북한 2군단 6사단의 이 같은 임무는 개성공단 존재와 관계없다는 것이다. 서부전선 상황에 정통한 한 예비역 장성은 “남북 모두 상호 대치하는 ‘접촉부대’의 임무는 공격군을 위한 통로 개척과 상대방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라며 “북한군의 이런 교리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공격부대와 관련, 국방부 관계자는 “수도권 공격을 하는 부대는 20만 명 규모의 특수부대일 것”이라고 했다. 김씨와 예비역 장성들은 “여기에 2군단 뒤에 배치된 부대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후방부대는 815훈련소(기계화군단), 820훈련소(기갑군단), 620훈련소(포병군단) 등이다. 한 예비역 장성은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의 육상 기동부대는 서해로 들어온 특수부대가 서울을 혼란에 빠뜨린 뒤 진입할 것”이라며 “개성공단이 전쟁 초부터 공격 루트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밖에 군 구조를 바꾸는 데 따르는 어려움도 지적된다. 김씨는 “북한의 부대 배치는 주둔형이어서 재배치가 어렵다. 최근까지도 2군단 내 과거 동료들과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그들의 의견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서부전선 상황에 정통한 예비역 장성도 “북한군 부대는 붙박이에 가깝다. 김정일 사망 전에 기계화 부대들이 약간 전진한 정도이며 변화가 없다”고 했다. 국방부 관계자도 “개성공단 인근의 군사력 변화는 지금까지 큰 게 없다”고 말했다. 북한군 부대는 거의 붙박이 시스템 공단이 폐쇄돼도 북한이 ▶이곳에 2군단 주요 부대를 전진·재배치하거나 ▶공단 부지에 새로 군사력을 강화해 남측에 위협 강도를 높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공단의 군사적 활용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는 수도권을 노리는 장사정포나 방사포를 전진 배치시킬 가능성이다. 예비역 장성은 “공단 부지로 2군단이 장사정포대를 전진 배치하면 사거리를 3~4㎞ 정도 늘릴 수도 있다”며 “그러나 평지에 전진 배치하면 전력이 남한에 모두 노출되고 1차 타격 목표가 된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예비역 장군도 이에 동의하며 “이를 막으려면 땅굴을 파야 하는데 남한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까지 하려 들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더 중요한 의미는 공단이 폐쇄되면 북한의 서부전선 남침로에 장애물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개성~문산 구간은 6·25전쟁 때 북한의 주요 남침로였다. 예비역 장성은 “공단이 없어지면 북한의 초기 작전이 쉬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공격할 경우 남침 징후는 미리 파악되고 사전에 공단은 철수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가정은 의미가 없다. 다만 북한이 군사·전략적 고려와 관계없이 공단이 폐쇄될 경우 이곳에 무력을 ‘무조건’ 증강시킬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안성규 기자, 이금용 객원기자

    2013.05.05 00:27

  • "北기쁨조 중 성적으로 만족 주는 조는…"

    북한 기쁨조의 진실을 무엇일까? 기쁨조에 정통한 탈북자인 장해성 전 조선중앙TV 기자와 방송인 김정원씨를 JTBC가 3일 단독 인터뷰했다. 이들은 “기쁨조 안에 행복조, 만족조, 가무조가 있었다. 만족조는 성적으로 만족을 주는 조, 행복조는 안마 등을 해주는 조”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07년 탈북, 북한에서 가수활동 했나? [김정원/탈북 방송인 : 그렇다, 가수로 활동했었다.] [장해성/전 조선중앙TV 기자 : 저와 나이 차이가 많고 제가 한국에 온지 17년이 되었다. 그래서 알 수가 없었다.] -‘왕재산경음악단’은 김정일의 기쁨조인가? [김정원/탈북 방송인 :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북한은 출신 성분이라는 것이 있다. 저희 집안은 다들 외국에 계시고 5촌이 정치범 수용소에 가셨다.] [장해성/전 조선중앙TV 기자 : 저는 김일성 경호원을 1년6개월 했다. 지금 보면 상당히 감회가 새롭다. 대학도 김일성 대학 철학과를 나왔다. 중앙 방송에서도 정치부 기자를 하고 드라마 작가도 하고 나름대로 잘 나갔다. 북한에서 해서는 안될 말을 했었다. 6.25전쟁도 북침이라고 친구와 술 먹으면서 얘기했는데 정보국에 말이 들어가서 탈북하게 되었다. 아내도 사망했다.] -북한에서도 ‘기쁨조’라 부르나? [김정원/탈북 방송인 : 공개적이지 않지만 북한 주민끼리는 기쁨조라고 칭한다. 김일성이나 김정은이 현지시찰 했을 때 피로감을 풀어주기 위해 기쁨을 준다는 의미이다. 수재학교가 따로 있다. 예술학교라고 하는 평양의 금성고등학교에서 7살부터 발탁해 체계적으로 키운다.] [장해성/전 조선중앙TV 기자 : 기쁨조는 75년도에 나왔다. 처음에는 인민국 협조단에 18명 정도 있었다. 실력보다는 예쁘기만 했으면 됐었다. 북한에서 온 사람은 음팔이라고 하면 다 아는데, 이 사람이 김일성 앞에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하면서 김일성이 좋아했다. 김정일이 자기 아버지에게만 안겨주기에는 부러웠는지 예술단에서 예쁜 사람들만 뽑아 김정일 주위를 빙빙 돌게 만들었다.] [김정원/탈북 방송인 : 기쁨조 안에 행복조, 만족조, 가무조가 있었다. 만족조는 성적으로 만족을 주는 조, 행복조는 안마 등을 해주는 조이다. 이것도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는다.] [장해성/전 조선중앙TV 기자 : 기쁨조 하다 퇴직한 사람을 봤는데 고급 아파트에 들어가게 해준다. 가스레인지도 보기 힘든데 그런 것들도 준비해줬다. 그러나 기쁨조를 나올때 각서를 쓴다. 절대 내부에서 있었던 일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 [김정원/탈북 방송인 : 휘파람을 부른 가수도 교수로 일을 하고 있다.] -북한에서 유명한 한국 음악은 [김정원/탈북 방송인 : 저도 많이 불렀는데 찔레꽃이라는 노래가 엄청나게 유행이 되었었다. 또한 혜은이씨의 감수강도 많이 들었다.] [장해성/전 조선중앙TV 기자 : 예전에는 한국의 유행가들을 우리도 많이 불렀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부르면 큰일이 되었기 때문에 부르지 못했다.] [김정원/탈북 방송인 : 계몽 노래라고 불렀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18번 낙화유수, 그때 그사람, 베사메무초 이런 것들도 다 영화로 방영이 되면서 폭발적으로 반응이 왔다.] -북한에서 유명한 한국 가수는? [김정원/탈북 방송인 : 그 당시에는 다 숨어서 불렀으나, 심수봉·설운도씨 하면 대부분 다 알았다. 주현미 씨보다 김연자씨가 더 인기가 많았었다.] -북한 앵커들은 왜 격양된 어투로 말하나 [장해성/전 조선중앙TV 기자 : 67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이상벽이라는 사람이 서울처럼 부드럽고 고운말을 쓰자며 교육을 했었으나 김일성 교시에서 남조선 서울말은 여자들이 남자를 꾀는 것에 맞는 말이지 혁명하는 시대에 전투적인 분위기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 이상벽이 틀려먹었다고 하며 엄청나게 혼쌀났다.] [김정원/탈북 방송인 : 적들에게는 심장을 찌르고 주민에게는 심장을 울리는 화술법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한국방송을 모니터 하나? [장해성/전 조선중앙TV 기자 : 당연하다. 중앙통신사에서 남측 방송을 낱낱이 체크한다. 나는 주로 대남방송어를 많이 쓴 사람이고 여기 소식을 많이 알았다. 남한 사람들이 흥미 없어 하는 내용들, 예를 들어 포항제철소, 광양제철소의 생산량이 얼마고 하는 등등을 다 알았다. 남한에 내려와서 조사를 받는데 너무 기초적인 것을 물어봐서 그런 거 물어보지 말라고 했을 정도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3.05.05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