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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개성공단 30개 시설 무단 가동…통일부 "분명히 책임 묻겠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부가 8일 북한이 2016년 2월 전면 폐쇄된 개성공단 내의 한국 공장 30여곳을 무단으로 가동하고, 2020년 6월 폭파 후 방치해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에 대한 철거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한국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즉각 중지할 것을 촉구하면서다. 김정은 정권의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기조가 반영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은 여러 차례에 걸친 우리 정부의 촉구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 내 우리 기업들의 설비를 계속해서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남북 간 합의의 명백한 위반이자 상호 존중과 신뢰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지적한다"고 말했다. ━ "대북 인지전 가능성" 구 대변인은 "개성공단 내 차량 출입 움직임 및 무단 가동 정황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고 말씀드린 바 있다"며 "현재 30여 개의 기업의 시설이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계기관과 함께 위성 정보를 파악하고, 이와 별도로 야간 또는 주간에 육안으로 지속적으로 관찰해 오고 있다"며 "(이런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한 숫자"라고 설명했다. 지난 1월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앞서 중앙일보는 북한이 개성공단 내 한국 기업 소유의 공장 30여 곳을 무단으로 가동하고 있고, 북·중 접경지역 등지에서 개성공단에 대한 중국 기업의 투자나 일감 유치를 요청하고 있다는 정황을 단독 보도했다.(4월 18·20일자 1면) 북한의 불법행위 동향을 공개하고 경고 메시지를 발신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통일부가 대북 인지전에 가세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기조에 맞춰 관련 정보가 파악되는 즉시 대내외에 알려 "다 들여다보고 있다", "선은 넘지 마라"는 경고를 내놓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압박하는 전략을 선택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미는 지난 9월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당시 양국 간 협력 내용을 선제적으로 공개하는 방식으로 인지전을 펼친 바 있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통일부가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통해 대북 정보 분석과 정보 관련 협력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던 것과 연계된 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2020년 6월 개성공단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연락사무소 정리작업도 시작" 북한이 2020년 6월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비판하며 폭파한 남북연락사무소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구 대변인은 이날 "지난달 말부터 개성공단 내 연락사무소 건물의 철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이) 훼손된 건물의 잔해를 철거하는 중에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 철거하고 있는지는 확인해줄 만한 내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최근까지 잔해를 그대로 방치해왔는데 위성 사진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잔해 정리 작업이 시작된 정황이 포착됐다. 지난 8월 미국의소리(VOA)는 민간 위성업체 '플래닛 랩스'가 촬영한 위성 사진을 근거로 "남북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물 주변에 흩어져 있던 건물 잔해가 상당 부분 사라진 장면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구 대변인은 "북한이 우리 국민, 기업, 정부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그 어떠한 행위도 즉각 중지할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며 "정부는 우리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북한에 분명히 책임을 묻고 필요한 조처를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불법 행위에 맞서 비례성 원칙에 맞는 대응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다. 실제 정부는 지난 6월 북한이 개성공단 내 연락사무소를 불법적으로 폭파한 것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고자 북한을 상대로 447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제기한 첫 소송이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이 지난 6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0년 6월 북한이 폭파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건과 관련해 국내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북한이 개성공단 내 잔해를 철거하고 시설을 무단 가동하는 것과 관련해 "남북 관계 개선의 여지를 완전히 없애겠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ㆍ미 관측 장비로 충분히 들여다보이는 개성공단 내에서 무단 가동 및 철거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향후 공단 재개를 고려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남북 관계 개선 가능성을 접어두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 개성재단 해산 수순? 일각에선 정부가 검토하는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개성재단)의 해산을 위한 포석일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이번에 공개한 대북 동향이 특별히 새로울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통일부 구조개편이 시작된 지난 7월 개성재단의 연내 해산을 위한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개성재단 홈페이지는 접속조차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일부 직원의 희망퇴직까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곧 해산이 본격화될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지난 5월 30일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개성공단에서 선전구호로 추정되는 게시물(왼쪽 사진 속 붉은 동그라미)이 곳곳에 걸려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 2월 촬영한 같은 장소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 안팎에서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사용에 대한 소송 제기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대한 지원·관리와 더불어 재단에 주요 업무가 될 가능성이 컸던 '대북소송'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대북소식통은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잡음이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을 정리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는 전날 감사원이 발표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결과와 관련해선 "이번 감사에서 지적된 사항에 유념해 앞으로 남북관계 상황 발생 때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관련기사 [단독] '짝퉁 쿠쿠' 말고 또 있다…北, 개성공단 공장 30곳 무단가동 [단독]개성공단 몰래 돌리는 北...中자본 유치 정황 딱 걸렸다 [단독] "개성공단에 中 끼면 일 커진다" 정부 초강력 경고 배경 [단독] 개성공단 재단 해산 검토…통일부 인력 20% 감축 추진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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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 여성세습 하겠냐더니…'김주애'에 헷갈리는 韓정부
지난 11월 2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공군 주요 시설을 방문했다. 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인 김주애와 관련한 세습설을 놓고 정부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김정은이 공개 활동에 주애를 대동하기 시작한 지난해 말만 해도 정부 당국이나 대부분의 대북전문가는 북한 내 '봉건적 남존여비 인식', '가부장적 문화' 등을 이유로 꼽으며 '여성 지도자'의 등장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김정은이 주애를 계속 주요 군 관련 행사에 앞세우자 당국의 판단도 바뀌는 분위기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언급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 장관은 지난 6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를 계속 전면에 내세우며 '4대 세습'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북한에서 4대 세습에 의한 '여성 권력'의 탄생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이와 관련,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세습 과정에서 일종의 조기등판이라고 볼 수 있다"며 "김주애의 4대 세습 가능성을 열어놓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새별 장군'이 김정은의 유년시절 애칭이었던 만큼 북한에서 '새별(샛별) 여장군'으로 불리는 것으로 알려진 주애의 1인자 등극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10월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는 모습.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현송월 당 부부장 등 간부들이 함께 말을 타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정보 당국도 북한이 주애를 최소한 후계자 '후보군'에 올렸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당국은 '김정은의 첫째가 아들이라는 첩보가 있기 때문에 후계자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기존 입장에서 주애의 후계자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주애의 권력승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북한의 후계문제를 설명한 『후계자 문제의 이론과 실천』(김재천, 평양: 출판사 불명, 1989년)에선 "수령의 후계자는 어디까지나 인물을 본위로 하여 선출해야 한다"며 "남성이건 여성이건 청년이건 장년이건 관계없이 특출한 인물이면 후계자로 선출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적어도 주애가 후계자에 오르는 데 성별이나 나이를 문제삼는 제도는 없다는 얘기다. 다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입장이다. 북한에선 여전히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앞서 통일연구원은 2018년 발간한 『김정은 정권 핵심집단 구성과 권력 동학』이란 제목의 연구총서에서 "북한은 남성중심의 지배질서를 설파하는 유교 문화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개인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핵심집단은 여성의 진입장벽이 높다"고 분석한 바 있다. 지난 9월 8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정권수립 75주년 민방위무력 열병식 주석단에서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이 한쪽 무릎을 꿇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와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실제 김정은은 집권 첫해인 2012년부터 대내외에 노출되는 주요 직위에 여성을 적극적으로 기용했지만, 사실 이들은 모두 예외적 처우를 받는 북한 내 파워 엘리트들이다. 정상국가 지도자의 '퍼스트레이디'로 치장한 부인 이설주, 대남·대미 등 대외사업을 총괄하는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외교를 총괄하는 최영림 전 내각총리의 수양딸 최선희 외무상, 의전을 총괄하는 모란봉악단 단장 출신 현송월 당 부부장 등 대부분 백두혈통이거나 북한 권력의 핵심인 항일 빨치산을 비롯한 로열 패밀리 출신으로 '성분' 자체가 일반 주민과는 다르다. 또 김정은을 정점으로 하는 유일지도체계인 북한에서 잠재적인 후계자군인 최고지도자의 자녀 수나 성별·나이 등 구체적인 신상정보는 극비로 취급된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보당국이 김정은의 자녀와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고도 확인을 거듭하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김정은 첫째가 아들이라는 첩보가 있어 계속 확인 중"이라는 것이 김정은의 아들 존재 여부에 대한 국정원의 공식입장이다. 아들이 없다고도 단정하지 않는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정은이 어린 딸조차 자신의 리더십을 공고화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딸을 내세워 대내적으로는 백두혈통의 건재를 과시하는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정보 판단에 혼란을 유도할 수 있는 일종의 미끼처럼 던져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경섭 연구위원은 "북한이 후계자를 거론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가 김정은 후계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건 북핵이나 북한 인권 등 북한 관련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도움이 될 게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주애 띄우기'에 과민반응하는 게 오히려 김정은의 노림수에 말려드는 것일 수 있다는 취지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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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권 놓고 미국과 마주 앉을 일 없다" 핵 포기 없다는 김여정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4개월여 만에 담화를 내고 군사정찰위성 발사 문제를 논의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와 이를 주도한 미국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대화에도 대결에도 준비한다"고 밝혀 원론적으로 대화 가능성에도 여지를 뒀지만, 결국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기 전에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 "자주권, 협상의제 될 수 없어" 김여정은 30일 새벽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에서 미국을 향해 "조미(북·미) 대화 재개의 시간과 의제를 정하라고 한 미국에 다시 한번 명백히 해둔다"며 "주권국가의 자주권은 그 어떤 경우에도 협상의제로 될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우리가 미국과 마주 앉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북한과 언제 어디서든 만나 어떤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온 데 대한 반응이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에 쏘아 올린 군사정찰위성은 물론 자위력 확보 차원에서 개발한 것이라 주장하는 핵·미사일을 놓고 절대로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와 관련해 소집된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 유엔 웹티비 캡처 김여정은 유엔 안보리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극도의 이중 기준이 파렴치하게 적용되며 부정의와 강권이 난무하는 무법천지"라며 "단호히 규탄 배격한다"고 언급하면서다. 그는 "미국의 무기들이 공화국을 겨냥하지 않았다고 장담하기에 앞서 평양으로부터 불과 500~600km 떨어진 남조선의 항구들에 수시로 출몰하고 있는 전략적 목표(전략무기)들이 어디에서, 왜 왔는지를 명백히 해명해야 했을 것"이라며 북한의 안보리 결의 위반을 지적한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저격하기도 했다. 한·미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위성 발사는 문제 삼지 않으면서 왜 '자위권에 해당하는 정당한 주권 행사'인 자신들의 위성 발사만 규탄하느냐는 북한의 기존 입장과 동일한 주장이다. 대미·대남 등 대외문제를 총괄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여정이 담화를 낸 건 한·미 핵협의그룹(NCG) 첫 회의를 하루 앞두고 한·미의 확장억제 움직임에 경계심을 드러낸 지난 7월 17일 이후 넉달여 만이다. 김여정 명의의 담화와 관련해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김 부부장이 담화에서 밝힌 대로 대화와 대결 중 무엇이 진정 북한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무엇이 북한 주민의 민생에 도움이 될 것인지 스스로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북한은 이제라도 도발과 위협의 길에서 벗어나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올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 조건부 대화 가능성도 김여정은 미국에 대해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양면적 입장과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강권과 전횡의 극치인 이중기준과 더불어 조선반도(한반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악성인자"라고 비난을 이어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2일 오전 10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종합관제소를 방문하고 궤도에 진입한 정찰위성 '만리경-1'호의 작동상태와 세밀조종진행정형, 지상구령에 따른 특정지역에 대한 항공우주촬영진행정형을 점검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그러면서도 "앞에서는 대화 타령을 늘어놓고 뒤에서는 군사력을 휘두르는 것이 미국이 선호하는 '힘을 통한 평화'라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같이 준비돼야 하며, 특히 대결에 더 철저히 준비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일관한 대미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미국이 자신들의 자주권과 근본 이익을 인정한다면 조건부로 대화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미국을 향해 자신들이 가졌다고 주장하는 만리를 굽어보는 '눈(위성)'과 만리를 때리는 강력한 '주먹(미사일)'을 인정하라는 요구인 셈이다. 하지만 이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주장으로,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조건이다. 오경섭 연구위원은 "북한이 대화의 기본 조건으로 핵보유 인정과 대북제재 해제라는 기존 요구를 반복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김여정이 이날 "주권적 권리에 속하는 모든 것을 키워나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며 "공화국(북한)은 모든 유엔 성원국들이 향유하는 주권적 권리들을 앞으로도 계속 당당히, 제한 없이 행사해나갈 것"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첫 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신형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에 탑재해 발사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미가 각각 내세운 문턱이 높기 때문에 대화가 성사될 가능성은 여전히 작다"면서도 "김여정의 담화에 자주권을 인정한다면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겼다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담화 자체만 갖고 (북·미 간) 대화 가능성을 예단하기는 어렵다"며 "담화 자구에 지나치게 의미를 둘 사안은 아니며, 미국이 여러 경로로 북한에 대화가 열려 있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대화를 원하면 그에 응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 "안전고리 뽑아" 9·19합의 정지도 비난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9·19남북군사합의(9·19합의) 일부 효력정지 결정도 또 비판했다. 북한은 논평에서 "논리와 이치에 맞지도 않게 우리의 정찰위성 발사에 대한 '대응'으로 효력 정지라는 '조치'를 서툴게 고안해내며 마지막 '안전고리'마저 제 손으로 뽑아버렸다"고 반발했다. 국방부는 지난 24일부터 북한군이 DMZ 내 최전방 초소(GP) 복구에 나선 모습이 우리 군의 열영상장비(TOD) 등 감시 장비에 포착됐다고 27일 밝혔다. 사진은 북한군이 GP를 철거했던 장소에 경계호를 조성하고 고사총(무반동총)을 배치한 모습. 국방부 제공, 뉴스1 이어 "군사분계선 지역에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하겠다"고 밝힌 지난 23일 국방성 명의의 발표를 상기하면서 "괴뢰지역에 언제 어떤 화를 불러오겠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든 것과 같은 비참한 결과가 괴뢰 역적패당에게 차려질 것"이라고 위협했다. 한편 북한은 이날도 군사정찰위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대내외 선전을 이어갔다. 북한 매체들은 '만리경 1호'가 지난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해군기지를 새벽 2시 24분 50초에 촬영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같은 날 오전 10시 16분 42초에는 일본 오키나와의 가데나 공군기지를 촬영했다고 전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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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손 꼭 잡고 찰칵…'가죽무장' 김정은, 위성 추가 발사 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정찰위성발사성공에 공헌 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의 과학자, 기술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첫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기여한 공로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고 24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데드라인이라도 정해놓은 듯 지난 5월과 8월 1·2차 발사 실패 직후 다음 발사 계획을 내놓으며 조바심을 드러냈던 김정은도 성공을 부각하며 내부 결속까지 확고하게 다지는 모습이다. ━ 김정은 "정찰위성 보유는 정당방위권" 신문은 이날 김정은이 23일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을 찾아 "정찰위성 발사 성공으로 공화국 무력의 전투태세와 자위력 강화에 크게 공헌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의 과학자, 기술자, 일꾼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정찰위성 발사가 '자위권에 해당한 조치이자 정당한 주권 행사'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정찰위성의 보유는 적대세력들의 각양 각태의 위험천만한 침략적 행동들을 주동적으로 억제하고 통제관리해 나가야 할 우리 무력에 있어서 추호도 양보할 수 없고 순간도 멈출 수 없는 정당방위권의 당당한 행사"라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을 찾아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 발사 성공에 공헌한 과학자·기술자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 노동신문, 뉴스1 이어 김정은은 "우리 혁명사에 영웅적인 개척과 비약적인 발전의 상징어로, 대명사로 빛나는 '천리마' 명칭을 새긴 우리의 신형운반로켓이 공화국에 도래한 우주 강국의 새 시대를 예고하며 솟구쳐 올랐다"라며 "적대세력들의 군사적 기도와 준동을 상시장악하는 정찰위성을 우주의 감시병으로, 위력한 조준경으로 배치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이를 두고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번 발사 성공을 축제 분위기로 승화시켜 체제결속을 꾀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며 "국방 분야 성과를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저조한 민생분야를 커버하면서 올해 연말 결산 등 노동당 전원회의 준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추가 발사 의지도 재차 확인 단시일 내에 추가로 여러 개의 정찰위성을 추가로 발사할 것이란 점도 재차 강조했다. 김정은은 "정찰위성 발사의 성공으로 우리 공화국의 전쟁억제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했다"며 "더욱 분발하여 우리 당이 제시한 항공우주정찰능력조성의 당면 목표와 전망 목표를 향해 총매진해나가자"고 독려했다. 김정은이 언급한 '목표'는 정찰위성 추가발사를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정찰위성발사성공에 공헌 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의 과학자, 기술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앞줄 왼쪽부터 김정식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김정은의 딸 김주애, 김정은, 류상훈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장.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2일 김정은이 한반도 및 태평양 주변 지역에 대한 항공우주 정찰능력 조성계획을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 제출하겠다는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의 제의를 승인했으며, 회의에서 2024년도 정찰위성 발사계획을 심의·결정할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북한의 정찰위성 추가 발사와 관련해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은 23일 오전 국회 정보위원회 내년도 예산안 심사 회의에 출석해 "올해 내 추가 발사는 어렵지만, 내년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답했다. 김정은이 정찰위성 추가발사를 강조하는 것은 한국의 독자 정찰위성 사업인 '425 사업'을 의식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군은 오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 밴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첫 위성을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에 실어 발사할 예정이다. 군은 이번에 쏘는 전자광학(EO)·적외선(IR) 탑재 위성이 안착하면 2025년까지 고성능 영상 레이더(SAR) 탑재 위성 4기를 순차적으로 지구 궤도에 올려 대북 감시·정찰 능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들 위성이 전력화되면 독자 정찰위성을 통해 0.3~0.5m 해상도로 2시간마다 북한의 주요 군 시설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노동신문은 24일 정찰위성 만리경1호 발사 성공을 경축해 지난 23일 저녁 목란관에서 공화국 정부의 명의로 마련한 연회가 진행됐다"라고 전했다. 사진은 연회에서 김정은의 등장에 환호하는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관계자들의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이 때문에 김정은이 남측보다 선제적으로 독자적인 정찰위성체계를 갖춰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 딸 주애도 기념사진 촬영·연회에 참석 김정은의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기념사진 촬영 현장에는 딸 주애도 동행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사랑하는 자제분과 함께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에 도착했다"며 김주애가 공개석상에 등장했음을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정부 명의로 23일 저녁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정찰위성 발사 성공을 자축하는 연회에도 딸 주애와 아내 이설주와 함께 참석했다. 연회에는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소속의 간부, 과학자, 기술자들이 주빈으로 초청됐으며 김덕훈 내각총리와 최선희 외무상, 미사일 개발의 주역인 김정식 군수공업부 부부장과 장창하 미사일총국장 등도 배석했다. 북한이 정찰위성 발사 성공을 경축하여 지난 23일 목란관에서 북한 정부의 명의로 마련한 연회에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참석한 모습. 사진은 김정은과 딸 주애가 연회장에서 류상훈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장의 설명을 듣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이 군사정찰위성 성공 자축행사에 딸 주애 대동한 것을 두고 '핵·미사일을 계속해서 고도화겠다'는 의지를 재차 강조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찰위성 발사는 김정은이 2018년 1월에 열린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국방력 강화 5개년 계획의 5대 핵심 과제에 포함된 핵심 과업"이라며 "위성 보유는 김씨 일가의 중요한 업적이며 후대도 이를 지속해서 발전시켜 나갈 것이란 점을 대내외에 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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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괌 기지 찍혔나…김정은 "만리 보는 눈과 주먹 다 가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2일 오전 10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종합관제소를 방문하고 궤도에 진입한 정찰위성 '만리경-1'호의 작동상태와 등을 점검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2일 선제 핵 공격을 위한 핵심 자산으로 꼽히는 군사정찰위성 개발 성공을 공식화하며 한·미에 대한 위협 수위를 끌어올렸다. 북한은 또 위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령 괌의 미 공군 기지 촬영에 성공했다고 했지만, 사진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이 위성 발사를 주관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종합관제소를 방문해 전날 쏘아올린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의 작동상태 등을 파악했다고 전했다. 총국은 이 자리에서 김정은에게 "앞으로 7∼10일간의 '세밀조종공정'을 마친 뒤, 12월 1일부터 정식 정찰 임무에 착수하게 된다"고 보고했다. 통신은 새로 쏘아 올린 정찰위성의 성능을 과시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이날 오전 9시 21분에 위성에서 수신한 태평양의 미국령 괌 상공에서 앤더슨 미 공군기지 등 미군의 주요 군사시설을 촬영한 항공우주 사진을 확인했다고 전하면서다. 그러면서도 위성이 촬영한 사진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의 해상도를 갖췄는지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 북한은 미국을 겨냥한 전략핵무기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함께 자신들이 가진 각종 미사일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군사정찰위성을 보유하게 됐다고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김정은은 "공화국 무력이 이제는 만리를 굽어보는 '눈'과 만리를 때리는 강력한 '주먹'을 다 함께 수중에 틀어쥐었다"며 "우리의 위력한 군사적 타격 수단들의 효용성을 높이는 측면에서나 자체 방위를 위해서도 더 많은 정찰위성을 운용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언급한 '눈'은 위성을, '주먹'은 ICBM을 각각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2일 오전에 방문해 새로 쏘아올린 군사정찰위성을 점검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종합관제소의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러시아로부터 불법적으로 기술을 전수받았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한 듯한 발언도 내놨다. "국가가 자체의 힘과 기술력으로 항공우주정찰능력을 키우고 끝끝내 보유한 것은 공화국 무력의 발전에 있어서나 새로운 지역 군사 정세 국면에 대비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사변"이라고 평가하면서다. 김정은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대응해 군사적 공조를 강화하는 한·미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그는 "미제가 어제와 오늘 연이틀 남조선지역에 핵항공모함 '칼빈슨'호와 핵추진잠수함 '싼타페'호를 끌어들이며 남조선지역을 저들의 침략 무력의 전방기지로, 핵병기창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지역의 군사정세를 위태하게 하고 있는 미제와 그 추종군대의 행동 성격을 철저히 감시하고 장악하는 문제는 우리 국가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는 심각한 문제"라며 "우리는 이미 천명한 대로 다양한 정찰위성들을 더 많이 발사해 궤도에 배치하고 통합적으로, 실용적으로 운용하여 공화국 무력 앞에 적에 대한 가치 있는 실시간 정보를 풍부히 제공하고 대응태세를 더욱 높여나가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21일 오후 10시 42분 28분께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첫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통신은 김정은이 한반도 및 태평양 주변 지역에 대한 항공우주 정찰능력 조성계획을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 제출하겠다는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의 제의를 승인했으며, 회의에서 2024년도 정찰위성 발사계획을 심의·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전날 밤 기습 발사한 군사정찰위성과 관련해 "비행 항적 정보와 여러 가지 정황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위성체는 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다만 정상작동 여부에 대해서는 여지를 남겼다. 합참은 "위성체의 정상작동 여부 판단에는 유관 기관 및 한·미 공조 하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해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도 이날 KBS 라디오에 출연해 "(북한 위성이)정상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1차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장관은 만리경-1호가 다음 달 1일부터 정찰 임무에 들어간다는 북한 발표에 대해선 "과장된 평가"라며 "한미가 조금 빠르면 주말 정도에는 위성체의 정상 작동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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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불쑥 고체연료 IRBM 꺼내 괌 노렸다…"미·중 회담 위협"
북한이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용 고체연료 방식 미사일 엔진을 개발해 지상 시험에 성공했다고 15일 밝혔다. 노동신문은 15일 ″새형의 중거리탄도미사일용 대출력 고체연료 발동기(엔진)의 첫 지상분출시험을 11월11일에, 2계단 발동기의 첫 지상분출시험을 11월14일에 성과적으로 진행했다″라고 보도했다. 사진은 북한이 공개한 지상분출시험의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기존 액체연료 방식보다 은밀성과 기동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고체연료 엔진 카드를 꺼내든 건 한·미를 향한 위협의 수위를 높이려는 의도다. 특히 대내외적으로 이미 예고된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에 이목이 쏠린 가운데 사거리가 3000~5500㎞에 달해 태평양의 미국령 괌까지 영향을 미치는 IRBM 카드를 불쑥 꺼낸 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새형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용 대출력 고체연료 발동기(엔진)들을 개발하고 1계단(단계) 발동기의 첫 지상 분출 시험을 11월 11일에, 2계단 발동기의 첫 지상 분출 시험을 11월 14일에 성과적으로 진행했다"고 전했다. 해당 시험에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고, 관련 기술의 신뢰성과 안정성이 뚜렷하게 검증됐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다만 통신은 엔진시험을 진행한 장소는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해 12월에는 김정은이 참관한 가운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용 대출력 고체연료 엔진의 지상 분출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지난 4월과 7월에는 신형 고체연료 엔진을 장착한 ICBM인 '화성-18형'을 시험 발사했다. 고체연료 방식의 미사일 엔진은 기존 액체연료 방식과 달리 연료를 주입하는 과정이 없어 발사에 소요되는 시간이 짧고, 기동성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탐지를 피해 살아남을 '생존 확률'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설명이다. 노동신문은 15일 ″새형의 중거리탄도미사일용 대출력 고체연료 발동기(엔진)의 첫 지상분출시험을 11월11일에, 2계단 발동기의 첫 지상분출시험을 11월14일에 성과적으로 진행했다″라고 보도했다. 사진은 노동신문이 공개한 고체엔진 지상시험을 진행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은 이번 실험을 통해 이런 고체연료 엔진의 장점을 다양한 투발 수단에 적용해 미사일 역량을 높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그간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등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에는 이미 고체연료를 활용해왔다. 장영근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센터장(전 한국항공대 교수)은 "괌의 미군 기지를 목표로 할 수 있는 3000㎞급 IRBM의 개발 및 전력화로 공격력 다변화를 통한 전략적 우위 확보를 노리는 듯하다"며 "2020년과 2021년 열병식에서 각각 선보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4ㅅ'과 '북극성-5ㅅ'의 전력화 개발을 위한 개연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날 신형 IRBM 개발이 지난해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지난 2월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ICBM급인 '화성-18'형과 함께 중요한 국방 과제 중에 하나라고 강조한 것에 주목했다. 미사일 전문가인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북한이 전략무기인 ICBM급인 '화성-18형'과 함께 핵심 과제로 꼽았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기존 '화성-12형'에 해당하는 IRBM보다는 극초음속미사일일 가능성도 있다"며 "북한이 2단계 엔진 시험까지 성공했다고 밝힌 것도 중국이 보유한 극초음속미사일 '둥펑' 계열과 유사한 방식으로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보유한 액체연료 방식의 중거리 극초음속 미사일을 2단 고체추진 미사일로 변형시키면 괌까지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 3000~5500km에 해당하는 IRBM급으로 개발 할 수 있다는 게 권 교수의 설명이다. 북한이 2021년 1월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진행한 제8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공개한 수중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5형ㅅ의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 무기체계의 개발을 믿음직하게 다그칠 수 있는 확고한 담보 마련", "공화국 무력의 전략적인 공격력을 보다 제고하기 위한 필수적 공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 하는 대목이다.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며 국제사회가 관련 동향을 주시하는 가운데 예상치 못했던 'IRBM 고체연료 엔진 도발'을 들고 나왔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반도는 물론 미국령 괌 주변까지 겨냥한 미사일 카드로 이날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을 의식해 존재감을 과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술적 완성도에 의문이 있는 ICBM보다 실전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IRBM으로 위협 수위를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자신들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맞서 공조를 강화하는 한·미 및 한·미·일 군사협력에 견제구를 날리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 13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SCM) 뒤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함께 연 공동 회견에서 "(한·미 정상이 4월 합의한) '워싱턴 선언'에는 한반도에 대한 전략자산 전개 빈도를 높이겠다는 내용이 있다"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근 전략핵잠수함(SSBN)이 부산에 기항했고, 폭격기 B-52H가 한반도에 착륙했으며, 또 다른 항모도 곧 한반도에 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미 공군의 B-52H '스트래토포트리스' 전략폭격기가 15일 한반도 상공에 전개해 한국 공군과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제10차 북·러 경제공동위원회에 참가하는 러시아 대표단이 평양에 도착하는 모습. 사진은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러시아 대표단을 윤정호 북한 대외경제상 등이 순안공항에서 맞이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한편 노동신문은 이날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천연자원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러시아 대표단이 전날인 14일 평양에 도착해 제10차 북·러 경제공동위원회 일정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양국 간 장관급 경제협력 증진 협의체인 북·러 경제공동위원회는 1996년부터 2019년까지 총 9차례 열렸다. 이번 회의 개최는 지난 9월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당국자는 "(북·러가 이번 회의에서) 식량 지원, 나진·하산 중심의 러·북 간 경제·물류 협력 등 다양한 의제를 다룰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 문제까지 논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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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사태, 특등 전쟁상인 美 때문"…불법무기상 北 적반하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3~5일 중요 군수공장을 시찰하면서 완성된 122mm 방사포탄 만져보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북한이 미국의 대이스라엘 군사 지원과 쿠바 경제제재를 비롯한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난하면서 반미전선 확장에 골몰하는 분위기다. 정작 러시아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불법적으로 무기를 공급하고 있는 북한이 이런 적반하장식 주장에 나선 건 반미연대를 공고히 하는 한편 '잠재적 바이어' 국가들에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의도도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흑백을 전도하는 특등 전쟁상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동 사태가 오늘과 같은 지경에 이른 것은 이스라엘을 돌격대로 내세워 지역을 지배하려는 미국의 대중동 정책 때문"이라며 "미국은 이스라엘에 체계적으로 막대한 살인 장비들을 넘겨주고 그들을 침략과 살육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미국이 우방국에 최첨단 무기를 지원하거나 판매하는 것도 비난했다. "미국의 무기 제공이 이스라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라며 "미국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보호해야 한다'고 떠들면서 지원의 간판을 달고 다른 나라들에 숱한 무기를 팔아먹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엽합뉴스 이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 강화 등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최근 전략자산 수시 전개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또 북한과 러시아 간 불법 무기거래에 대해서도 조만간 추가제재 등 행동에 나설 전망이다. 실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전날 오후 한·미 외교장관 회담 직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북·러 협력은 쌍방향 관계이기 때문에 러시아가 북한에 지원하는 기술을 면밀히 관찰할 것"이라며 "군사 기술 이전을 막기 위한 추가 대러 압박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날 또 다른 노동신문 기사에서는 지난 3일 유엔총회에서 통과된 미국의 쿠바 경제 봉쇄 해제 촉구 결의안을 두고 "미국이 저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 나라들에 대해 실시하는 경제봉쇄 책동은 해당 나라들을 군사적으로 정복할 수 없는 데로부터 취하는 악랄한 적대행위"라고 했다. "쿠바에 대한 미국의 집요한 봉쇄 책동은 명백히 힘에 의한 패권 야망의 집중적 발로"라며 "종당에는 미국의 고립이라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다. 이는 쿠바를 비롯해 미국의 직·간접적인 제재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놓여있는 반미 국가들의 세력을 결집하는 것은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도 부당하다는 것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처럼 반미연대를 내세우지만, 사실 북한이 비호한 쿠바를 비롯,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나 다른 중동의 친이란 무장세력들은 모두 북한과 무기 커넥션을 갖고 있다. 이미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는 북한으로선 전쟁으로 생긴 예상치 못한 '특수'를 최대한 누리기 위해 이들과의 무기 거래 구상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하마스로부터 압수한 무기들을 손으로 가르키고 있다. 빨간 원안이 북한제 F-7 로켓으로 추정되는 무기. IDF 홈페이지 캡처 앞서 하마스 측도 북한을 거론하면서 연대가 공고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레바논 베이루트에 주재 중인 하마스의 고위 간부 알리 바라케는 지난 2일 레바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모든 적, 또는 미국이 적대감을 보인 나라들이 더 가까워지고 있다"며 "북한이 개입할 날이 올 수 있다. 왜냐하면 북한은 우리 동맹의 일부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북한이 이달 중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1일째 공개활동을 자제하며 '잠행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 관영매체가 공개한 김정은의 마지막 공개활동은 지난달 19일 방북 중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접견이었다. 북한 매체의 보도일(지난달 20일)을 기준으로 21일째 모습 드러내지 않고 있는 셈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9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접견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김정은은 지난달 19일 라프로브 외무장관을 접견하기 직전에도 21일 간 공개활동에 나서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속 조치, 미국과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중국과의 관계 재설정을 두고 장고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포함한 군사적 도발을 구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의 잠행 뒤에는 군사적 도발이나 대외메시지 발신이 뒤따르곤 했다는 이유에서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나 국방 분야에서 주민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마땅한 성과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며 "한해 사업을 결산하는 연말 총화 국면을 앞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김정은의 답답한 상황을 방증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6·25 따발총, 구식 불새-2…'어둠의 무기상' 김정은 돈버는 방법 [지구촌 위협하는 北무기] 하마스 고위간부 “북한은 우리 동맹…美 본토 공격할 능력 있다" 北군수공장 '2개의 전쟁'에 뜻밖 대목 "포탄 연 200만발 생산" [지구촌 위협하는 北무기] 푸틴 만난 김정은 22일째 모습 감췄다…위성발사 앞두고 장고?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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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삐라 살포는 선제공격"…김정은 '확성기 포비아' 드러냈나
탈북단체가 2011년 2월 임진각 인근에서 대북전단을 날리는 모습. 중앙포토 북한이 헌법재판소가 대북 전단 살포를 규제하고 처벌할 수 있게 한 이른바 '대북전단 금지법'을 위헌으로 결정한 것에 반발하며 군사적 위협까지 언급했다. 정보당국을 중심으로 북한이 이달 중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군사적 도발을 앞두고 명분 쌓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또 윤석열 정부가 최근 9·19 남북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하려는 움직임을 의식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삐라 살포 거점·괴뢰 아성에 징벌 불소나기"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8일 "괴뢰 지역에서 '대북삐라살포금지법'이 위헌이라는 결정이 강행되고 관련 지침 폐지 절차가 본격화되고 있다"며 "종전의 대응을 초월해 놈들의 삐라 살포 거점은 물론 괴뢰 아성(牙城)에까지 징벌의 불소나기를 퍼부어야 한다는 것이 격노한 우리 혁명무력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북한이 대북 전단법 위헌 결정을 빌미로 살포 원점은 물론 중요 시설까지 타격하겠다고 위협한 건 전단 살포를 그만큼 치명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해 8월 윤석열 정부의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을 비난하는 담화에서 대북전단에 대해 '격렬한 증오와 분격을 폭발시키는 더러운 오물'이라고 칭하며 적개심을 표출했다. 노동신문이 2020년 6월 4일자 2면 상단에 게재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 김여정은 담화에서 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에 불쾌감을 표하며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대북전단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김여정 하명법' 논란을 촉발했던 2020년 6월 6일 담화에서 김여정은 대북전단 살포를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이라고 비판하면서 대북전단 살포를 주도하는 탈북민과 관련 단체를 향해 "사람값에도 들지 못하는 쓰레기", "들짐승보다 못한 인간 추출물"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 4월부터 대북전단 다량 유입?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이날 북한 내 방역 컨트롤타워인 중앙비상방역지휘부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을 근거로 "지난 4월부터 대북전단이 북한에서 적지 않게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헌재의 지난 9월 26일 위헌 결정 이전에도 상당량의 전단이 북한 지역으로 유입됐다는 얘기다. RFA에 따르면 해당 문건에는 "남조선괴뢰들은 악질탈북자와 반동들을 내세워 지난 4월부터 서해와 강하천 등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 전파 위험성이 있는 물품들을 또다시 들여보내고 있다"며 "일부 국경 지역에서는 풍향 기구를 통해 살포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위험 적지물'이 발견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단체들이 2020년 5월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일대에서 대북전단과 소책자를 날리는 모습. 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뉴스1 문건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김정은 정권이 대북전단을 통한 정보유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대북전단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위험 적지물'이라고 지목하면서 주민들의 접촉 차단에 주력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차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단에는 북한 체제를 비하하는 내용은 물론 '최고 존엄'으로 칭하는 김정은 일가와 관련된 내용까지 담겨 있는 것도 북한 입장에선 껄끄러운 부분이다. 북한에서 금기시하는 '최고 존엄의 영상(이미지)'에 생채기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다. ━ 대북확성기 재개 염두에 뒀나? 통신은 이날 "반공화국 삐라 살포를 비롯한 심리 모략전은 곧 '대한민국' 종말의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라며 "삐라 살포는 교전 일방이 상대방을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벌리는 고도의 심리전이며 전쟁 개시에 앞서 진행되는 사실상의 선제공격"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2014년 10월 경기도 연천군 태풍전망대 인근에서 탈북자 단체가 대북전단을 날려 보냈을 당시 풍선을 향해 고사총을 발포한 것과 2020년 6월 당시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할 경우 상황에 따라 국지적인 대남 군사행동을 감행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대북 전단살포를 빌미로 2020년 6월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의 이런 예민한 반응은 최근 윤석열 정부가 남북 간 일체의 적대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9·19 남북군사합의의 효력정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과 연관된 측면도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앞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7일 대통령비서실 등을 대상으로 진행된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9·19 군사합의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9·19 군사합의는 군의 방어능력과 대응능력을 심대하게 저해하는 요소들이 포함된 합의라는 점에서 문제점이 있다"고 밝히며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시사했다. 정부는 또 북한의 도발이 지속돼 9·19 군사합의의 효력이 정지된다면 해당 합의에 따라 금지된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 있는지도 이미 검토해왔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월 4일 북한의 무인기 도발과 관련해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직접 내렸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앞두고 전형적인 명분 쌓기에 나선 모습"이라며 "9·19 군사합의의 효력정지로 과거부터 극도로 경계해온 대북 방송이 재개될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려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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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벌이 쏠쏠한데 '반동 날라리' 된다…北, 해외노동자 딜레마
북한 당국이 코로나19로 인한 국경폐쇄로 중국과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지역 등에 남겨졌던 해외 파견 노동자들을 본국으로 송환하기 시작했다. 외교가에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주춤했던 신규 노동자 파견도 곧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아파트 신축현장에서 집체 노동을 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강동완 동아대 교수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북한과 공개적으로 무기거래에 나서면서 제재를 무시하기로 결심한 틈새를 노려 북한 당국이 대놓고 대규모 신규 노동자를 러시아 극동지역으로 파견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서는 외화벌이 숨통이 트이는 셈이지만, 동시에 위험 부담도 있다. 북한 해외노동자들은 김정은이 두려워하는 한국 등 외부 문화를 북한 내에 확산시켜 체제 유지를 위협할 수 있는 요인도 되기 때문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북한 고려항공은 지난달 24일부터 화·목·토요일 등 주 3회 평양과 베이징을 오가는 정기노선 운항을 재개했다. 이에 앞서 평양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노선도 지난달 16일부터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같이 매주 월·금요일에 정기운항이 다시 이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코로나19 팬데믹 후 3년 6개월 만에 러시아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노선 운항을 재개했다. 외신에 따르면 고려항공은 지난달 16일부터 매주 월·금요일에 평양-블라디보스토크 정기노선의 운항을 재개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고려항공 정기운항의 1차적 목표는 코로나19로 외국에 발이 묶여 있던 노동자들의 본국 송환으로 보인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내년 3월 29일까지 매주 2회 블라디보스토크와 평양 사이를 오가는 북한 고려항공 JS271편의 '정기 운항'이 공지됐다"며 "넉 달 동안 주기적으로 노동자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기존 노동자 송환 뒤 새로운 노동자를 파견하는 것이 뒤이은 수순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러시아의 묵인 하에 당분간은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편법 비자 발급 등에 애쓰지 않아도 대규모 파견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실제 김정은의 지난 9월 방러기간 중 북·러 양국은 연해주를 비롯한 극동지역에서 농업특구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과 극동지역 인프라 개발 등을 논의했는데, 관련 사업이 실제 진행된다면 대규모 노동자 파견은 시간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해외노동자 파견이 김정은에게 득만 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등 현지에서 장기간 생활하면 자연스럽게 외부 문물을 접하게 되고,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 일반 주민에게 '자본주의 날라리풍'을 전파하는 창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파견한 여종업원들을 관리하던 보위성 소속 부지배인이 지난해 말 명명을 시도했다 체포된 이후 폐쇄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의 북한 식당 고려관의 모습. 지난 4월 말 고려관이 운영되었던 점포에선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사진 강동완 동아대 교수 이와 관련, 일반적으로 해외 파견 노동자들은 귀국하면 북한 당국의 강도 높은 사상 교육을 받는 것은 물론 일거수일투족을 삼엄한 감시 속에서 지내야 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제재가 본격화하기 전 러시아에서 일하는 북한 해외 노동자들의 근무 기간은 통상 5년 내외였는데, 코로나19에 따른 국경봉쇄가 3년 넘게 이어지면서 노동자들이 현지에 머무는 기간은 더 길어졌다. 이에 따라 북한 사회의 모순을 깨닫게 된 노동자들이 탈북을 시도하는 사례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북한 당국이 해외 파견 노동자에 대한 사상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이들의 송환을 서두른 이유이기도 하다. 주민들의 사상 이완을 막기 위해 '반동문화사상배격법'까지 만들어 한국 등 외부 문화의 접촉을 강력하게 단속하는 김정은으로서는 해외 노동자들이 대북 정보 유입 통로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확실한 외화벌이 수단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해외 파견을 멈추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해외 노동자 파견을 통한 외화벌이가 당장은 김정은 정권의 든든한 '돈줄'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론 체제 내구성을 위협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통제와 억압으로 사상 이완을 차단하려 할 것"이라며 "하지만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외부 문물 접촉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없기 때문에 파급효과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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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정찰위성 발사' 날 잡았나… 오는 18일 '미사일 공업절' 제정
북한이 지난해 11월 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O 화성-17형의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북한이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11월 18일을 '미사일공업절'로 제정했다. 10월 중 재발사를 공언했다 미뤄진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 등 군사적 도발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노동신문은 5일 최고인민회의(한국의 국회격) 상임위원회가 상무회의를 열어 '미사일공업절을 제정함에 관한 문제' 등을 안건으로 상정해 전원 찬성으로 채택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2022년 11월 18일에 대해 "세계적인 핵 강국, 최강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국의 위용을 만천하에 떨친 날"이라며 "우리식 국방 발전의 성스러운 여정에 특기할 대사변이 이룩된 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사일공업절 제정은 "우리 국가의 무진 막강한 국력을 더욱 억척같이 다져나갈 조선노동당과 공화국 정부, 온 나라 전체 인민의 확고부동한 의지의 발현"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북한이 2017년 11월 29일 ICBM '화성-15형' 발사와 동시에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된 것으로 추정되는 '로케트공업절(11월 29일)'이 있는데도 북한이 새로운 기념일을 지정한 것에 주목했다. 불과 11일 간격으로 미사일 관련 기념일이 나란히 포진하게 됐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 매체들은 로케트공업절 제정 5주년인 지난해에도 별다른 언급이나 동향 없이 잠잠했다. 이에 대해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경제난으로 주민들이 민생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국방력 강화를 추동하기 위해 기존 성과를 강조하고 기념일 지정을 통해 새로운 성과를 제도적으로 강제하려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 5월 31일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을 발사하는 모습.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발사 후 2시간 30여분 만에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은 정권이 유일하게 성과를 내세울 수 있는 국방 분야를 통해 내부 결속에 나선 것"이라며 "발사 실패 직후 군사정찰위성 재발사를 예고할 정도로 조바심을 내비치는 김정은의 심리상태를 방증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사일공업절 제정은 군사정찰위성의 3차 발사 일정과 맞물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앞서 두 차례의 위성 발사 실패 뒤 10월 재발사를 예고했지만, 아무런 설명 없이 10월을 넘겼다. 북한은 미사일공업절을 제정하며 화성-17형이 수차례 실패를 거쳤으나 결국 성공한 점을 강조했는데, 이 역시 실패를 거듭 중인 위성 개발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지난 1일 국회 정보위원회가 비공개로 진행한 국정감사 보고에서 "10월로 공언한 (위성)발사일이 미뤄지는 가운데 최근 엔진과 발사장치 점검 등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북한이 러시아에서 기술 자문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 성공 확률이 높아질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도 지난 3일 취임 후 첫 기자 간담회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위성)기술 지원을 얘기했기 때문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러시아에서 구체적 기술 지도가 와서 시간이 지연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고 말했다. 북한이 실제로 미사일공업절을 맞아 3차 위성 발사를 시도한다면, 이는 북·러 정상회담(9월 13일) 이후 약 두 달 만에 러시아의 '원 포인트 레슨'을 받아 기술적 결함을 극복한 것으로 판단했다는 뜻으로 볼 정황이 상당하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3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 참석해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뉴스1 일반적으로 인공위성 발사에 사용하는 장거리 로켓은 위성을 보호하는 상단 덮개인 페어링 부분만 탄두로 교체하면 ICBM으로 즉시 전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북한의 위성 발사용 로켓 발사를 ICBM 시험 발사와 동일하게 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재 결의 2270호를 채택한 2016년 3월 당시 "비록 위성 발사나 우주발사체로 규정될지라도" 북한의 발사를 막아야 한다고 콕 짚어 규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밖에 이번 최고인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선 내각 산하에 있는 교육위원회를 다시 교육성으로 개편하기 위해 2010년에 채택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915호의 효력을 없애기로 했고 간석지 건설과 관리에 필요한 법적 요구를 보완할 수 있도록 간석지법 등을 수정했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10월에 예고했던 3차 군사정찰위성의 발사가 미뤄지는 것을 두고 나오는 대내외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이달 30일 한국군의 독자 정찰위성 발사 예고에 맞서 한반도에서 우주개발을 포함한 군사적 주도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동신문은 이날 한·미·일 군사협력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며 "한반도와 지역에 대결과 전쟁의 격랑을 몰아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전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서도 한·미·일 군사협력이 한반도 정세를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뜨릴 수 있는 잠재적 요소"라고 지적하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러시아와의 불법 무기 거래와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 등 자신들의 군사적 도발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쌓기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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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평양에 '상륙'한 에스티 로더 화장품
북한이 세계적인 화장품 명품으로 평가 받고 있는 '에스티 로더' 화장품을 평양화장품 공장에 전시했다고 대외 선전매체인 '조선의 소리'가 지난 2일 전했다. 평양화장품 공장은 '은하수'라는 브랜드로 화장품을 생산하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화장품의 품질을 지적하곤 했다. 특히 지난 2015년 2월 김 위원장은 이곳을 현지지도 하면서 "외국산 마스카라는 물에 들어가도 유지되는데 우리 제품은 하품만 해도 너구리 눈이 된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북한이 이번에 전시한 에스티 로더 화장품은 김 위원장이 직접 제품을 보내줬다고 한다. 조선의소리는 "(김 위원장이)세계적인 화장품들과 비교 분석하여 시야를 넓히도록 조치를 취해줬다"고 설명했다. 평양화장품 공장에 전시된 에스티 로더 화장품. [사진 연합뉴스] 통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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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작이라는데 "배고파 귀순"…北 '고난의 행군' 때보다 더 어렵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5일 "서해곡창 황해남도의 농장들에서도 알곡 생산 계획을 성과적으로 수행한 자랑을 안고 결산분배가 연이어 진행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소형 목선을 타고 지난 24일 강원도 속초 인근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주민 4명이 귀순 이유로 "배고픔"을 호소한 가운데 모순되게도 북한 관영 매체들은 연일 '풍작'을 선전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주장하는 풍작이 사실이라 해도 식량 증가분이 크지 않아 만성적인 식량난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권은 풍년을 자축하지만, 배고픔에 시달리다 탈북하는 주민들은 계속 나올 수 있다. ━ 北, 연일 '풍작' 선전, 곡물값도 안정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5일 자신들의 최대 곡창지대인 황해남도 지역의 가을걷이 소식을 전하면서 "농장들의 포전(논밭)마다에는 예년에 없는 흐뭇한 작황이 펼쳐졌다"며 "일부 포전에서는 2배 이상의 소출을 거뒀다"고 주장했다. 이는 북한 당국이 지난달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러 당시 러시아 측의 식량 원조 제안을 고사하면서 '올해 상당히 괜찮은 수준의 수확량을 달성했다'고 밝힌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또 북한 입장에선 식량문제 해결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추진한 김정은의 성과를 부각하려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도 북한 지역의 올해 식량 작물 작황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내놨다. 탈북민 출신인 김혁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 매체가 공개한 영상에 나온 알곡의 수, 여문 정도 등으로 미뤄볼 때 올해 수확한 벼의 상태가 지난해보다 크게 양호하다"고 평가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4일 김덕훈 내각총리가 "농업부문을 비롯해 당이 제시한 올해 목표 점령을 위해 총매진하고 있는 인민경제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료해(점검)했다"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내 곡물 가격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북한 전문매체인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북한 내 옥수수 가격은 지난 20일 기준 1㎏당 2550원(북한 화폐 단위 원)으로 올해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9월 1㎏당 6800원까지 올랐던 쌀 가격도 5700원까지 떨어지면서 일반 주민들이 체감하는 식량 수급 상황도 소폭이나마 좋아졌을 가능성이 있다. ━ "식량난 해소엔 역부족" 이처럼 봄 가뭄, 여름 홍수, 일조량 부족 등 기상악화로 작황에 타격을 받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북한 지역의 식량 작물 작황은 예년 수준을 회복할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만성적인 식량난을 해소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유석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 주민들이 개인적으로 경작한 곡물이 나오면서 시장 가격이 일시적으로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러시아에서 쌀·밀가루 등을 들여온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당국이 2021년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는 김정은의 언급 이후 집중적으로 식량문제 해결에 매달리고 있지만, 자체적 노력이 아니라 기상여건이나 외국으로부터의 수급 등 외부 요인이 식량 작황에 더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조선중앙TV는 지난 8월 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계농장과 월랑농장을 방문해 "태풍에 의한 농작물 피해를 가시기 위한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했다"고 18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캡처, 노동신문 통일부는 북한의 연평균 식량 부족량을 약 80만t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만성적인 식량난은 사회주의 시스템 자체의 한계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자영농에 준하는 수준으로 농업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단순 증산을 통한 식량 문제 해결은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 '고난의 행군' 시기보다 더 어려워 실제 북한의 최근 1인당 양곡 공급량은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못 미친다는 분석도 나왔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지난 12일에 발표한 '배급과 시장의 충돌'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2020~2022년 북한의 1인당 양곡 공급량이 182㎏으로 급감했는데, 이는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4~1999년 1인당 양곡 공급량인 201㎏을 하회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임 연구위원은 북한에서 물리적·심리적으로 심각한 공급위기가 닥친 원인으로 '배급-시장 병립체제'에서 정부가 일괄 통제하는 '양곡전매제'로 양곡 유통제도를 전환한 것을 지목했다. "북한의 식량 사정은 알려진 것보다 더 나쁠 가능성이 크며, 피해는 주로 저소득층에 집중되고 있을 것"이라면서다. 2020년 10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강원도 김화군 수해 복구 현장을 방문해 벼 낟알을 살펴보는 모습. 중앙조선TV 캡처, 연합뉴스 북한이 앞으로도 장마당을 배제한 채 곡물의 생산·유통을 직접 통제하는 '신양곡정책'을 토대로 각 지역의 농장에서 생산한 양곡을 계획에 따라 철저히 입도선매한다면 내년 초 춘궁기를 앞두고 또다시 식량 부족 사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정부는 올해 초 북한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다수 발생한 배경에 대해 "첫 번째로 전년 대비 생산량이 감소했고 두 번째로 북한 당국에서 식량 공급과 유통을 하는 정책으로 변화하는 동향이 나타나 유통 문제의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2023년 2월 21일 통일부 당국자)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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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경직된 체제 그대로 드러낸 북한의 아시안게임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1. 지난 2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19차 아시안게임 여자 탁구 복식 결승전. 남북이 격돌한 경기에서 북한 차수영 선수는 1·2·4·5게임(세트)에서 서비스 폴트(부정 서비스)를 범했다. 한국은 북한팀의 서비스 폴트가 없었던 세 번째 게임만 북한에 내주고 4대 1로 승리해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공교롭게도 북한팀이 서비스 폴트를 한 게임은 한국 승리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2. 전날인 1일 남자 축구 8강전. 후반 35분 북한 골키퍼가 몸을 던져 수비하는 과정에서 일본 선수와 부딪혔고, 심판은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결국 이날 경기의 결승골이 됐고, 1대 2로 패한 북한 선수들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심판에게 몰려가 손과 몸으로 밀치며 거친 항의를 이어갔다. 북한 코치진의 만류로 ‘소동’이 끝났지만 북한 축구팀은 게임에서도 매너에서도 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3. 지난달 30일 여자 역도 55㎏급 시상식.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건 북한 강현경 선수는 메달리스트와 시상자가 함께 하는 기념 촬영 직전 자신의 목에 걸린 금메달을 두 손으로 빼들고 이날 시상에 나섰던 김일국 북한 체육상(북한 올림픽위원장)에게 주려고 했다. 강 선수가 승리의 기쁨을 북한의 체육수장과 나누고, 감사의 뜻을 전하려는 듯했지만 김일국이 이를 저지하며 머쓱해지는 순간은 생중계됐다. ■ 「 역도·체조 등 개인경기서 두각 필드에선 웃음도 기쁨도 실종 남자 축구팀의 거친 매너 논란 국제 흐름과 먼 ‘우리 식 경기’ 」 지난 2일 항저우에서 열린 19차 아시안게임 탁구 여자 복식 결승에서 한국의 신유빈 선수가 공을 넘기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 전지희·신유빈 조가 4대1로 승리했다.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8일 막을 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191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했다. 북한은 금메달 11개와 은메달 18개, 동메달 10개로 종합 순위 10위(총메달 수 11위)를 기록했다. 5년 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금 12개·은 12개·동 13개)와 비교하면 금메달은 하나 줄었지만, 전체 메달 개수는 두 개 늘었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국경을 꽁꽁 닫았던 북한은 2020년 1월 이후 최소 3년 반 넘게 국제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북한의 전력은 베일 속에 가려졌지만 ‘무시 못 할 미지의 상대’로 여겨졌고, 뚜껑이 열리자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특히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역도와 사격, 체조 등에선 발군이었다. 국제무대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의 성적은 기대 이상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무시 못 할 미지의 상대’ 주목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한의 한계는 명확했다. 우선 개인 종목 위주의 특정 종목 쏠림이다. 과거 한국이 태권도나 양궁 등 일부 종목에 ‘의지하던’ 것처럼. 북한이 성과를 낸 종목은 역도나 체조·사격 등 자신과의 싸움 위주의 종목이었다. 6개의 금메달을 딴 역도는 북한 전체 금메달의 절반을 넘겼다. 계란에 정신력을 주입하면 바위를 깰 수 있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강조대로 북한 선수들은 선진 기술보다 정신력에 방점을 두는 눈치였다. 혼자 하는 경기에서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내기도 했다. 반면, 상대와의 싸움 특히 조직력과 전략, 전술이 지배하는 구기 종목은 초반 탈락이 일쑤였고, 야구나 롤러스케이트, e스포츠 등 고가(高價)의 장비가 필요하거나 자본주의 ‘냄새’가 나는 경기엔 아예 출전 자체를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필드에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북한 선수들에선 체제의 경직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경기에서 감독과 코치의 전술 지시는 보조다. 결국 선수의 몫이다. 그런데 북한 선수들은 경기가 한 번 꼬이면 풀어내질 못했다. 여자 탁구 복식 결승전이 대표적이다. 2018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딴 차수영이었지만, 서브 때 라켓을 쥐지 않은 손이 테이블 안에서 토스해선 안 된다는 아주 기본적인 실수를 연발했다. 물론 여자 복식 세계 랭킹 1위인 한국과 맞붙어 실력차도 있었지만 북한 선수는 실수 이후 경기 내내 경직돼 있었고, 실타래를 풀지 못했다. 2m5㎝ 신장의 센터 박진아에게만 의지하며 다양한 플레이를 펴지 못해 예선과 동메달 결정전 모두 한국에 패한 여자 농구 경기 내용 역시 다르지 않았다. ‘공격 앞으로’에 묻힌 스포츠 정신 난동에 가까운 흥분 상태를 보인 축구는 국제사회의 도와 선을 넘는 공격성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직후 축구학교를 만들고, 전국에 인조잔디 구장을 건설하는 등 축구 육성에 나섰다. 이번 대회에 나선 선수들이 딱 김정은의 육성 세대다. 그런 내부 사정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수 있지만 그들에게선 ‘공격 앞으로’의 성향만 있었을 뿐 스포츠 정신도, 심판도 경기의 일부라는 격언은 소용없었다. 점수를 따도, 경기에서 이겨도 북한 선수들이 대부분이 보인 무덤덤함과 무표정은 기쁨의 자유를 경박스럽게 여기는 눈치였다. 패배를 내일의 자양분으로 삼겠다는 다른 나라 선수들과 달리 경기에 진 북한 선수들은 죄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러니 ‘경기에 지면 아오지로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지 않겠나. 강현경 선수 역시 국제무대에서 자기가 딴 메달을 자국 고위 당국자에게 주려는 광경은 흔치 않다. 북한은 ‘우리 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모두 국제 기준과는 거리가 있다. 지난 5일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홍콩의 톱스타 배우 저우룬파(주윤발)는 K컬처의 일부인 한국 영화의 강점을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 영화의 가장 큰 경쟁력은 자유일 겁니다. 소재가 넓고, 창작의 자유가 많은 점을 높이 사요. 가끔은 ‘이런 이야기까지 다룰 수 있어?’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과거 홍콩 영화는 한국 영화가 범접할 대상이 아니었고, 저우는 그런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랬던 그가 자유를 바탕으로 한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높이 산 건 결국은 예술이나 스포츠 할 것 없이 정답은 유연함이라는 뜻일 거다. 미국 프로농구(NBA)의 광팬인 김 위원장은 이번 대회를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스위스에서 유학 생활을 한 그에게도 북한 선수들의 경직성이 분명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가 그들을 어떻게 보는지도…. 우물 안 개구리가 밖으로 나가면 어느 정도는 뛰어다닐 수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길을 잃거나 환경 적응에 실패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주체’ 그리고 ‘우리 식’이 우물 안의 개구리를 뜻하는 게 아니길 바란다.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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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하마스 기습 비장의 패러글라이딩…"개성도 생산 정황"
조선중앙TV가 2016년 12월 11일에 공개한 북한군 제525군부대(총참모부 작전국) 직속 특수작전대대의 청와대 타격 훈련모습. 당시 영상에는 특작부대원이 패러글라이딩으로 침투하는 모습이 담겼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알아크사 홍수'로 명명한 이스라엘 기습 작전을 감행할 당시 전동 패러글라이더로 허를 찌른 가운데 북한 역시 남침에서 비슷한 방법을 활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최근 정보당국은 개성공단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는데, 북한이 남측 기업의 생산설비를 무단으로 가동해 패러글라이더를 만들고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분석 중이다. 17일 관련 사정에 밝은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군에서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패러글라이더를 생산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며 "레저용 제품을 군사용으로 전용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북한이 패러글라이더를 특수부대의 후방침투나 생·화학무기 살포용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개성공단 폐쇄 당시 A기업이 300여개의 패러글라이더 완제품을 두고 나왔다"며 "하마스가 이스라엘 침투에 패러글라이더를 활용하자 당국에서도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문제가 된 생산설비는 개성공단에서 패러글라이더를 생산하던 A기업 소유로 추정된다. 해당 기업은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 당시 완제품과 원부자재 상당량을 개성에 두고 내려왔다고 한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완제품과 3개월 동안 생산할 수 있는 분량의 자재, 반제품을 남겨두고 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개성공단 가동 당시 패러글라이더 생산에 북한 노동자가 투입됐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북한은 패러글라이더 생산에 필요한 설비와 자재뿐 아니라 숙련된 인력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북한군 제525군부대(총참모부 작전국) 직속 특수작전대대가 2016년 12월 청와대 타격을 가정한 훈련을 진행하는 모습. 노동신문 군 당국은 이미 2017년 9월 북한이 패러글라이더를 대남 침투수단으로 활용하는 정황을 포착했다. 당시 북한군 특수전 부대는 패러글라이더를 이용해서 한·미 연합사령부를 기습 침투하는 훈련을 수일간 반복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군은 2016년 12월에도 제525군부대(총참모부 작전국) 직속 특수작전대대가 한국군의 참수작전에 대응해 청와대 타격을 가정한 훈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패러글라이더를 활용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패러글라이더는 조작이 쉽고 무게가 3~4㎏에 불과해 장비 무게가 가벼운 편이다. 레이더로 포착하기도 쉽지 않고, 소리 없이 저공으로 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북한군 특수전 부대원들이 패러글라이더를 접어서 등에 메고 산으로 올라간 뒤 비행하는 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박용한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하마스의 패러글라이더 침투를 통해 북한이 대남 비대칭 공격에 활용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확인됐다"며 "북한이 패러글라이더 부대를 통해 생·화학무기까지 사용한다면 전쟁이 우리의 예상과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2013년 4월 승용차에 물품을 가득싣고 남측으로 입경하는 개성공단 관계자를 취재진이 둘러싸고 취재하는모습. 중앙포토 일각에선 사전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A기업은 2007년 10월 전략물자에 해당하는 약 5㎞ 길이의 패러글라이더 실과 천을 당국의 승인 없이 개성으로 반출했다가 적발됐다. 당시 산업자원부는 통일부에 해당 물자를 회수할 것을 통보하면서 "반출된 품목인 생산 소재 중 패러글라이더의 실과 천 등이 전략물자에 해당되며, 제조기술은 향후 군용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하지만 북한의 고강도 도발에 대응해 개성공단 폐쇄를 속전속결로 진행하면서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이제와 실질적 위협으로 진화할 우려가 커진 셈이다. 당시 상황에 밝은 전직 당국자는 "당시 정부가 결정한 지 하루 만에 공단 폐쇄가 전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물자까지 다 들어 내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폐쇄 이전에도 공단이 중단됐던 사례가 있었음에도 관련 대책이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이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할 가능성이 있는 생산설비나 제품의 경우 신속하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뒀어야 했다"고 말했다. 정영교·이근평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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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해진 신의주-단둥, 러엔 '선불 거래'…北 과감한 거래 시동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 로이터, 연합뉴스 '대미 장기전'을 예고한 북한이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 러시아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밀착하면서 생존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우려한 대로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운송하는 정황이 포착됐고, 동시에 북한 신의주와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을 잇는 신압록강대교의 개통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북한이 러시아와 인접한 나진항을 통해 러시아에 군사 장비와 탄약을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이 1000개 넘는 컨테이너 분량의 군사 장비와 탄약을 러시아에 제공했다"면서 러시아가 나진항 부두에서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모습이 담긴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해당 사진에는 지난 9월 7∼8일 나진항 부두에 컨테이너가 쌓인 모습과 같은 달 12일 러시아 국적 선박인 앙가라(Angara) 호가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각종 시설이 포진해 있는 동부 두나이항에 컨테이너를 싣고 와 정박한 모습이 담겨있었다. 또 10월 1일에는 컨테이너를 실은 열차가 러시아 티호레츠크의 탄약고에 도착한 모습 등이 위성사진에 포착됐다. 13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공개한 대러시아 북한 무기 수송 경로 지도. 사진 미국 NSC 미국이 이번에 공개한 첩보가 사실이라면 북한은 기존에 보였던 대외 협상 패턴과도 다른 과감한 거래에 나섰다는 의미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이나 한국과 협상에 임할 때는 선택지조차 먼저 공개하길 꺼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러시아와의 거래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전부터 실제 무기를 보냈다는 점에서다. 이는 그만큼 김정은이 조급한 상태이며,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고립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일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 전까지 북·중 간 최대 교역 거점이었던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신압록강대교 인근에서는 최근 차량 이동량이 증가하면서 개통이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신압록강대교는 중국이 22억 위안(약 4077억원)을 투입해 2011년 1말 공사를 시작해 2014년에 완공했지만, 북한이 신의주 방향으로 연결되는 접속도로 건설을 별다른 설명 없이 미루면서 개통이 지연됐다. 이후 간헐적으로 북한이 연결 도로와 세관·방역시설을 건설하는 모습이나 랴오닝성 당국이 교량 안전점검을 진행하는 움직임 등이 포착되면서 일부 외신들이 교량의 개통 가능성을 보도한 바 있다. 미국 북한전문 매체인 38노스가 13일 신압록강대교(2014년 10월 완공)가 곧 개통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의 북한전문 매체인 '38노스'는 13일(현지시간) 위성사진을 분석해 지난주 신압록강 대교에서 차량 활동이 증가했다며 곧 완전히 개통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신압록강대교 일대를 지난 12일 촬영한 위성사진에는 중국 세관 구역에서 버스로 추정되는 대형 차량이 접근하는 모습이 담겼고 북한 지역에서도 크레인 트럭 등 여러 종류의 차량과 건축 자재로 추정되는 물체가 포착됐다. 위성 사진만으로는 차량 통행의 목적과 목적지를 판단할 수 없지만, 신압록강대교가 수년간 전혀 사용되지 않았던 만큼 이례적인 수준의 통행이라는 게 38노스의 분석이다. 이런 정황은 북·중·러의 밀착을 과시하고 싶은 북한의 속내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북·러가 밀착하는 와중에도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 등을 고려해 삼각 군사협력 구도에는 선을 긋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북한이 나름의 ‘각개격파식 접근’에 나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이 자신들과 불필요하게 연루되지 않겠다는 중국 측의 분위기가 감지되자 공통 관심사인 경제·무역을 중심으로 관계 회복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라며 "중국이 최근 자국에 수감 중이던 탈북민의 북송에 나섰기 때문에 이를 모멘텀으로 삼아 양국 관계를 한층 더 심화시키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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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러 주최 국제포럼서 '국제수송' 논의…무기거래 우회로 찾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회담을 진행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 중앙재판소 대표단이 러시아가 주최한 국제 법률 포럼에 참가해 '국제 수송 문제'를 논의했다. 이를 두고 북·러가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무기거래를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화물 운송과 관련된 법률적 미비점을 보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6일 러시아 최고재판소 주최로 제12차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제법률연단(포럼)이 지난 5일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국제경제관계 참가국들의 민족적 이익과 권리 보호의 균형'을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는 최근영 중앙재판소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측 대표단과 함께 중국, 베트남, 라오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16개국의 대표단이 참가했다. 두만강 하구 북·중·러 접경 중국 측 팡촨(防川)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러대교(철교). 왼쪽은 러시아 하산역, 오른쪽에는 북한 두만강역이 있다. 중앙포토 통신은 이번 포럼에서 외국 투자 보호 및 국제 수송 협조에서 기업 권리 보호와 각국의 사법적 이익 사이의 균형 보장과 관련한 문제가 토의됐다고 전했다. 토론에 참여한 북한 대표단의 단원은 "우리 공화국에서 나라들 사이의 경제 관계를 확대 발전시키기 위한 대외경제법 규범들이 완비되고 외국인 및 외국기업 투자 관련법, 합영·합작법들이 새로 채택·수정 보충되었다"고 소개하면서 자신들이 기업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인 기준을 인정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는 북한이 외국 투자자 보호와 국제 수송 분야에서 법률·제도상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스탠다드'를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동서발전이 수입한 러시아 시베리아산 유연탄 4만7000t을 실은 화물 열차가 2015년 4월 20일 함경북도 나진항에 도착한 모습. 통일부 제공, 뉴시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북·러 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재개와 관련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힌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주목했다. 안병민 북한경제포럼 회장은 "북·러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 철도 운행을 본격화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에 법적인 미비점을 보완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나진-하산 프로젝트 재개로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중국횡단철도(TCR) 등 대륙철도와의 연결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북·러 양국이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업이다. 러시아 입장에선 극동 지역의 풍부한 자원과 곡물 등을 수출할수 있는 부동항을 확보할 수 있고, 북한도 나진항 사용에 따른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있을 뿐더러 나진항 일대를 극동 무역의 요충지로 발돋움시킬 기회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블라디보스토크 크네비치 군비행장에서 극초음속미사일 킨잘이 장착된 미그-31 전투기를 만져보는 모습. EPA, 연합뉴스 일각에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러 간 무기거래에 대해 경고하는 상황에서 이번 포럼을 통해 무기거래를 위한 우회로를 찾는 한편 자신들의 열차 운행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을 지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면도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편 미국 CBS는 5일(현지시간) 익명의 미국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북한이 러시아에 대포를 이전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CBS는 "이번 무기 이전이 새로운 (무기) 장기 공급의 시작인지, 혹은 북한이 대가로 무엇을 받는지는 명확지 않다"면서도 "(북·러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군사협력이 이번 주 형태를 갖춰가는 모양새다"라는 분석을 덧붙였다. 미국 민간위성 업체인 '플래닛 랩스'가 지난 22일 북·러 접경지역인 두만강역 인근에 있는 차량기지를 촬영한 위성사진의 모습. 사진에는 화물과 열차로 보이는 물체가 다수 포착됐다. RFA 홈페이지 캡처 전문가들은 북·러 양국이 열차를 이용해 무기거래에 나설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포탄의 경우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주로 철도로 운송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북한이 지난달 북·러 정상회담 직후부터 접경지역인 두만강역 인근에서 화물 운송을 준비하는 정황이 위성사진에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앞서 자유아시아방송(RFA) 지난 3일 미국 민간위성 업체 '플래닛 랩스(Planet Labs)'가 지난달 22일부터 지난 1일까지 두만강역에서 약 1.2㎞ 떨어진 차량기지 일대를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화물과 열차로 보이는 물체가 다수 포착됐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11월 정상회담 조율"…美·中 '경쟁 규칙' 모색, 韓에 돌파구 되나 김정은 귀국 뒤 수상한 화물열차…"北, 러에 탄약 보내는 듯"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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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 담화전 시동건 北…美 WMD 전략에 "억제력으로 강력 대응" 반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27일 북한 해군절(8.28)을 맞아 해군사령부 작전지휘소를 방문해 모자이크 처리된 한반도 지도를 손으로 가리키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북한이 미국 국방부가 최근 북한을 '지속적인 위협'으로 평가한 것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면서 군사적인 대응을 예고했다. 미국이 중국을 '추격하는 도전'으로, 러시아를 '심각한(acute) 위협'으로 각각 묘사한 것에 비하면 완곡한 평가임에도 기다렸다는 듯이 꼬투리를 잡아 비난의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핵무력' 헌법화 이후 각종 담화를 쏟아내면서 국제 여론전에 나선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앞서 명분 쌓기를 시도하는 것이란 분석이다. ━ "엄중한 군사정치적 도발" 북한 국방성 대변인은 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의 '2023 대량살상무기(WMD) 대응 전략'에 자신들이 '지속적인 위협'으로 명시된 것을 거론하며 "또 하나의 엄중한 군사 정치적 도발"이라고 반발했다. 대변인은 "'지속적인 위협'에 대해 말한다면 지난 세기부터 공화국(북한)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사상 유례없는 핵 위협과 공박을 계단식으로 확장 강화해온 세계 최대의 대량살육무기 보유국이며 유일무이한 핵 전범국인 미국에 어울리는 가장 적중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19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를 방문해 미국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잠수함 켄터키함에 승함하는 모습. 뉴스1 이어 한·미 양국 정상이 지난 4월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워싱턴 선언에 따라 지난 7월 핵협의그룹(NCG)을 가동한 데 이어 미 해군의 전략핵잠수함(SSBN)인 켄터키 함을 부산항에 기항시킨 것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무분별한 망동이야말로 전 지구를 파멸시킬 가장 엄중한 대량살육무기 위협"이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미 국방부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에 공개한 '2023 WMD 대응 전략'에서 "북한이 자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전력을 우선시해왔다"고 지적하면서 "북한의 역량 개발은 북한이 물리적 충돌의 어느 단계에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 군사대응 예고도 북한은 이날 담화에서 군사적 대응을 시사하는 발언도 내놨다. 국방성 대변인은 "제반 사실은 우리 공화국 무력으로 하여금 중장기성을 띠고 날로 무모해지고 있는 미국의 대량살육무기 사용 위협에 철저한 억제력으로 강력 대응해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미 제국주의 침략자들의 군사 전략과 도발 행위에 가장 압도적이고 지속적인 대응 전략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지난달 26~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회의에선 "핵무력강화정책의 헌법화" 문제가 상정돼 "전폭적인 지지찬동 속에" 채택됐다고 조선중앙TV가 지난달 28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이 최근 담화를 통해 미국의 군사적인 위협에 맞서 자신들의 핵보유와 위성발사가 정당한 주권국가의 권리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며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비롯한 군사 도발을 앞두고 대외적인 여건 마련에 골몰하는 듯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실제 북한은 지난달 26일부터 이틀간 한국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핵무력강화 정책을 헌법에 명시한 이후 국제사회를 향한 담화전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지난달 30일 최선희 외무상을 시작으로 외무성·원자력공업성·국방성 관계자들이 잇달아 담화를 쏟아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반제자주연대, 미국의 이중잣대 비판, 유엔 대북제재 배격, 핵무력 헌법화의 정당성 등이 담화의 주요 내용"이라며 "국제사회와의 논리전에서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하는 동시에 핵무력 강화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 5월 31일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을 발사하는 모습. 이 로켓은 엔진 고장으로 서해에 추락했고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발사 후 2시간 30여분 만에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국방부, 北 '핵무력' 헌법화에 경고 한편 국방부 이날 북한이 '핵무력 정책'을 헌법에 명시한 것과 관련해 "핵 사용을 기도한다면 정권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방부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북한은 작년 9월 법제화했던 '핵무력 정책'을 이번에 그들의 헌법에 명시했다"며 "파탄난 민생에도 불구하고 핵포기 불가와 함께 핵능력을 고도화하겠다는 야욕을 더욱 노골화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한반도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심각한 위협"이라며 "우리 군은 북한의 어떠한 공격에도 압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한미 연합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선제 핵 공격'을 감행할 수 있도록 명시한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한 데 이어 최상위법인 헌법에 핵무력을 명시하면서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차 표명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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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귀국 뒤 수상한 화물열차…"北, 러에 탄약 보내는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달 북·러 정상회담 직후부터 양국 간 접경지역인 두만강역 인근에서 화물 운송을 준비하는 정황이 잇따라 포착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무기거래를 이행하기 위한 후속 조치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 "수상한 화물 움직임 포착" 자유아시아방송(RFA) 3일 미국 민간위성 업체 '플래닛 랩스(Planet Labs)'가 지난달 22일 두만강역에서 약 1.2㎞ 떨어진 차량기지 일대를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화물과 열차로 보이는 물체가 다수 포착됐다고 전했다. 이틀 뒤인 지난달 24일에도 선로에 각각 200m·300m 길이의 컨테이너 화물이 늘어서 있었고, 20m 길이의 열차 2·3량이 각각 세워져 있는 모습이 식별됐다고 한다. 미국 민간위성 업체인 '플래닛 랩스'가 지난 22일 북·러 접경지역인 두만강역 인근에 있는 차량기지를 촬영한 위성사진의 모습. 사진에는 화물과 열차로 보이는 물체가 다수 포착됐다. RFA홈페이지 캡처 김정은이 러시아 방문 일정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간 지난달 18일 이후 이런 화물·열차가 계속 관찰되고 있다는 게 RFA 측의 분석이다. 실제 위성사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과 이달 1일에도 해당 지역에서 화물과 열차가 다수 포착됐다. 지난달 14일 차량기지가 사실상 텅 빈 상태였던 것과는 비교되는 풍경이다. 이와 관련, 정성학 한반도안보전략연구원 영상분석센터장은 RFA에 "화물·열차의 수량이 (날짜별로)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열차에 화물을 싣고 (러시아로) 운송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해당 열차가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것이라면 두만강역이 기착지인데, 역이 아니라 역에서 상당거리 떨어진 차량기지에서 화물과 열차가 식별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미국 민간위성 업체인 '플래닛 랩스'가 북·러 접경지역인 두만강역 인근에 있는 차량기지를 지난달 28일과 이달 1일에 각각 촬영한 모습. 사진에는 각종 화물과 열차로 보이는 물체가 다수 식별됐다. RFA 홈페이지 캡처 ━ "무기거래 본격화 가능성 커" 위성사진만으로 화물의 내용물을 정확히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여러 정황상 북·러 양국이 열차를 이용해 무기거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브루스 베넷 미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RFA에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이나 지대공 미사일은 비교적 무겁지 않아 항공편으로 운반이 가능하지만, 포탄은 무게가 무거워서 주로 철도로 운송한다"며 "북한이 열차를 이용해 무거운 탄약과 포탄을 러시아 측에 전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무기체계와 호환되는 북한의 122·152㎜ 포탄과 122㎜ 다연장 로켓포탄 등이 철도로 공급됐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5일 중요 군수공장 시찰하면서 자체적으로 생산한 122mm 방사포탄을 살펴보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정책 조정관도 이날 RFA에 "북한은 대포와 탱크, 로켓을 위한 아주 많은 양의 탄약을 비축하고 있다"며 "러시아에 구소련의 무기를 기반으로 한 포탄을 공급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는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제1위원회(군축·국제안전 담당) 기조발언에서 북·러 간 군사 협력을 우려했다.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 AP, 연합뉴스 황 대사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이나 군사력 증강에 기여하는 북·러 간 어떤 협력도 다수의 유엔 안보리 결의를 명백하게 위반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러시아에 안보리 결의에 대한 완전한 이행을 촉구하는 한편 북한에 추가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와 완전한 비핵화의 길을 선택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 당 창건일 앞두고 내부단속 나선 北 한편 노동신문은 이날 제1차 도·시·군 인민위원장 강습회가 9월 29일부터 10월 2일까지 당중앙위원회 회의실에서 진행됐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이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 78주년을 앞두고 사실상 지방행정기관장 역할을 하는 각 지역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불러모아 역할 분발을 촉구하는 모습이다. 북한이 2021년 3월 당시 시·군 노동당 책임비서 강습회를 진행하는 모습. 북한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지방행정기관장 역할을 하는 각 지역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대상으로 강습회를 열었다. 뉴스1 신문은 강습회에서 "모든 시·군을 정치와 경제·문화의 각 방면에서 우리 국가 특유의 발전 면모와 자기 지역의 특성이 응축된 지방도시, 문명한 고장으로 전변시킬 데 대한 문제"가 다뤄졌다며, ▶지방 공장들을 개건 현대화해 인민 소비품 생산을 늘리고 ▶건설 역량을 강화해 농촌 살림집(주택) 건설을 비롯해 지방 건설을 힘 있게 전개하는 문제 등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각 지역 인민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고 있지만, 경제난 속에서 지방의 자력갱생을 추동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중앙 정부에서 지방의 경제적 어려움을 직접 챙기는 모습을 연출해 내부결속을 도모하려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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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잡한 성묫길, 트랙터까지 동원…비슷한 듯 다른 北추석 풍경
조선중앙TV는 지난해 추석 당일인 9월 10일 '제18차 대황소상 전국민족씨름경기' 결승전을 녹화 방송했다. 매체가 이 대회를 추석 당일 방송에 편성한 것은 2019년 이후 3년 만이다. 대황소상 씨름경기는 생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개최됐으나, 2020년과 2021년 추석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자연재해의 여파로 추석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편성에서 빠졌다. 연합뉴스 북한에서도 추석은 대표적인 민속명절이다. 하지만 올해 북한 달력을 살펴보면 당일인 29일 하루만 쉰다. 임시공휴일과 개천절까지 이어 엿새 간의 긴 연휴를 보내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민속명절은 북한 정권 수립 초기부터 '봉건잔재(封建殘滓)'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일성은 1967년 5월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교시를 내렸고, 추석과 음력 설 등은 한때 북한 달력에서 사라졌다. 그랬던 추석이 다시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당시 북한 당국은 조총련을 비롯한 해외 동포를 대상으로 고향 방문 사업을 추진했는데, 성묘는 동포들의 중요한 방북 목적 중 하나였다. 이런 과정에서 민속명절은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낡은 유물이라고 배척받던 성묘는 1972년부터 허용됐고, 대표적인 명절인 추석과 음력 설도 1988년과 1999년에 각각 복원됐다. 노동신문은 지난 2월 6일 "사랑과 정으로 아름다운 사회주의생활과 더불어 우리 식의 멋과 향기가 나날이 꽃펴 나는 내 조국에 민속명절 정월대보름의 정서가 한껏 넘쳐났다"라며 각지에서 정월대보름을 맞아 행사가 진행됐다고 전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 주민들의 추석 풍경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추석 당일에는 송편·설기떡이나 지짐·전 등 음식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고 조상의 묘를 찾는다. 집에서 가까운 경우에는 대부분 걸어서 다녀오지만, 평양과 같은 일부 대도시에서는 성묫길에 차량을 타고 이동하기도 한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추석은 평양에서 차량이 가장 많이 동원되는 날 중에 하나"라면서 "시내와 외곽에 있는 공동묘지를 오가는 버스가 배차되지만, 수요보다 턱없이 부족해 공장·기업소에 등록된 트럭·트랙터까지 거리로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의 명절 귀성·귀경길 정도의 극심한 교통체증은 아니지만 도로가 성묘 인파와 차량으로 혼잡하다는 설명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부 부유층의 경우에는 문어·순대·털게는 물론 파인애플·바나나와 같은 수입과일까지 성묘상에 올리지만, 가난한 주민은 소주병 하나만을 들고 조상을 찾는다고 한다. 묫자리를 단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묘비에 고인의 영정을 조각하고 묫자리 주변을 대리석으로 꾸며 자신들의 위세를 과시한다. 반면 일반 주민들의 경우에는 변변한 묘비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게 탈북자들의 설명이다. 2018평창겨울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2018년 2월 8일 오전 강원도 강릉선수촌에서 열린 북한 선수단 입촌식에서 선수들이 강강술래를 하고 있다. 뉴스1 성묘를 마친 추석 당일 오후에는 각 지역 공원에서 민속놀이가 펼쳐진다. 주민들은 씨름·그네뛰기·소싸움·강강술래 등을 즐긴다. 달맞이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저녁 시간대 TV에서는 외화를 더빙해 방영하는데,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이 때문에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경계가 느슨해지는 명절 저녁 외화 방영 시간을 틈타 탈북을 감행하는 경우도 많았다는 탈북자의 증언도 있었다. 물론 북한에서 최고 명절은 정치 기념일인 김일성 생일(4월 15일)과 김정일 생일(2월 16일)이다. 북한 당국은 매년 이들의 생일을 기념해 가정마다 특별배급을 하고 아이들에겐 당과류(과자·사탕 등) 간식을 선물로 제공하면서 김씨 일가의 우상화에 힘을 쏟는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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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무력정책' 헌법화…김정은 "강위력한 정치적 무기 마련"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가 지난 26~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개최됐다고 28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이번 회의에선 '핵무력 정책'을 북한 헌법에 명시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지난 26일부터 이틀간 한국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핵무력강화정책을 헌법에 명시했다.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선제 핵 공격"을 감행할 수 있도록 명시한 핵무력 정책을 법령으로 채택한 데 이어 최상위법인 헌법에도 핵무력을 명시하면서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핵무력 국가 기본법으로 영구화" 노동신문은 28일 최고인민회의(14기 9차)가 지난 26~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참석해 연설했다고 보도했다. 회의에선 핵무력 강화 방침을 규정하는 헌법 개정안이 최우선 의제로 다뤄졌다. 보고자로 나선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공화국은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 나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담보하고 전쟁을 억제하며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핵무기발전을 고도화한다"는 내용이 개정안에 담겼다고 말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가 지난 26~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개최됐다고 28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회의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참석해 연설을 했다. 노동신문, 뉴스1 이어 "무장력의 사명이 국가주권과 영토완정, 인민의 권익을 옹호하며 모든 위협으로부터 사회주의제도와 혁명의 전취물을 사수하고 조국의 평화와 번영을 강력한 군력으로 담보하는 데 있다는 내용도 수정보충안에 반영됐다"고 밝혔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차 표명하며 대남위협의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라며 "특히 영토완정까지 거론한 것은 핵전쟁을 통해 한반도의 공산화도 추진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이날 연설을 통해 "국가최고법에 핵무력 강화 정책 기조를 명명백백히 규제한 것은 현시대의 당면한 요구는 물론 사회주의 국가 건설의 합법칙성과 전망적 요구에 철저히 부합되는 가장 정당하고 적절한 중대조치"라며 "국가의 기본법으로 영구화된 것은 핵무력이 포함된 국가방위력을 비상히 강화하고 그에 의거한 안전 담보와 국익 수호의 제도적, 법률적 기반을 튼튼히 다지며 우리식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을 촉진시킬 수 있는 강위력한 정치적 무기를 마련한 역사적인 사변"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1~12일 전술미사일 생산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핵무력 질량적으로 급속 강화" 또 김정은은 중대과제로 "핵 무력을 질량적으로 급속히 강화하는 것"을 주문하면서 "핵무기 생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이고 핵 타격 수단들의 다종화를 실현하며 여러 군종에 실전배비하는 사업을 강력히 실행"할 것을 강조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사실상 준비를 마쳤다고 평가받는 7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오경섭 연구위원은 "핵실험을 포함해서 다종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며 "당분간 한반도에서의 긴장 고조는 불가피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 "서방 패권에 반기 든 국가들과 연대" 김정은은 현 국제정세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반동세력이 '신냉전' 구도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는 미국이 "침략적 성격이 명백한 대규모 핵전쟁 합동 군사연습을 재개하고 조선반도(한반도) 지역에 핵전략자산들을 상시배치 수준에서 끌어들임으로써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핵전쟁 위협을 사상최악의 수준으로 극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블라디보스토크 크네비치 군비행장에서 극초음속미사일 킨잘이 장착된 미그-31 전투기를 만져보고 있다. EPA, 연합뉴스 그러면서 "일본, '대한민국'과의 3각 군사동맹 체계 수립을 본격화함으로써 전쟁과 침략의 근원적 기초인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끝내 자기 흉체를 드러내게 됐으며, 이는 그 무슨 수사적 위협이나 표상적 실체가 아닌 실제적인 최대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한·미 핵협의그룹(NCG) 출범과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합의 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특히 김정은은 "제국주의자들의 폭제의 핵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핵보유국의 현 지위를 절대로 변경시켜서도, 양보하여서도 안되며 오히려 핵무력을 지속적으로 더욱 강화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라며 반미 연대를 위한 외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기존의 방침을 재차 확인했다. 이는 군사분야를 포함해 문화·교육·경제 등에서 러시아와 전방위적인 협력을 모색하고 있는 러시아는 물론 사회주의 우방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반미연대를 가속하겠다는 의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중·러 연대를 더욱 공고화하겠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라며 "연대 수준을 군사협력으로 확장시켜 전쟁억지력을 높여나가겠다는 측면도 내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장애인권리보장법·관개법·공무원법 심의채택(제정) ▶금융부문 법집행 정형총화(결산) ▶국가우주개발국→국가우주개발총국 격상 등의 안건이 논의됐다. 이밖에 기계공업상에 안경근, 국가건설감독항에 이순철, 수매량정상에 김광진, 중앙은행 총재에 백민광을 각각 지명하는 조직문제도 다뤄졌다. 김정은으로부터 지난달 "국가 경제를 말아먹었다"며 공개석 상에서 맹비난을 받았던 김덕훈 내각 총리는 노동신문 보도에서 주석단 착석 인사 중에서 가장 먼저 호명되면서 건재를 확인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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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월북 미군 추방한다…"북러 밀착에 이용가치 떨어진 것"
월북한 미군 병사 트래비스 킹. 로이터=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7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무단으로 월북한 주한미군 소속 트래비스 킹 이병을 추방하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관련 조사가 끝났다며 "해당 기관에서는 공화국 영내에 불법 침입한 미군 병사 트래비스 킹을 공화국법에 따라 추방하기로 결정하였다"고 전했다. 북한의 추방 발표는 킹 이병이 JSA를 견학하다가 무단으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으로 간 지 71일 만이다. 다만 킹 이병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추방할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은 그간 북한에 억류했던 미국 민간인들은 항공편을 통해 베이징으로 내보낸 경우가 많았다. 북한이 킹 이병의 추방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 측과 비공개 협의에 나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통신은 "해당 기관에서 조사한 데 의하면 트래비스 킹은 미군 내에서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 불평등한 미국사회에 대한 환멸로부터 공화국 영내에 불법 침입하였다고 자백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18일 킹 이병이 영내에 불법으로 침입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미군 내에서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을 품고 월북을 결심했다는 자백을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앞서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킹 이병의 월북 사건을 외교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필요에 따라 내부 결속이나 체제 선전에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 등이 유엔군사령부 등을 통해 접촉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있는 소통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관계기관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북·러 밀착으로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킹 이병을 외교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축으로 하는 밀착을 통해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킹 이병의 활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웜비어 사태로 인권 문제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던 만큼 불필요하게 미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킹 이병의 신변 안전을 놓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과 비슷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우려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웜비어가 사망한 이후인 2017년 9월부터 줄곧 북한 여행을 금지하고 있어 웜비어 사건 이후 북한으로 넘어간 미국 국적자는 킹이 처음이다. 웜비어의 부모는 아들이 북한에 구금됐다가 2017년 식물인간 상태로 귀환해 사망했다며 2018년 4월 미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8개월의 소송 끝에 "북한 정권은 웜비어 유족에게 5억113만4683달러(약 5992억원)를 배상하라"는 승소 판결을 받은 후에 관련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AP통신은 27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북한이 트래비스 킹 이병을 중국으로 추방했으며, 미 당국이 그의 신병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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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소기의 목적 달성"…북·러 간 '위험한 거래' 이행 본격화하나
노동신문은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6차 정치국회의가 9월20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진행됐다"며 "김정은 동지께서 회의에 참석했다"고 22일 보도했다. 사진은 이번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지난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8기 16차)를 열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성과를 논의했다. 당 최고 정책 결정기관인 정치국 회의 소집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측과 합의한 사안을 이행하기 위한 후속 조치 독려가 목적이라는 분석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정치국 회의가 지난 20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렸다고 22일 전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김정은의 방러 결과에 대한 보고를 청취했다. 정치국의 위임에 따라 이날 보고에 나선 김성남 당 중앙위원회 국제부장은 "북·러관계가 새 시대의 요구해 부응해 새로운 전략적 높이에 올라서고 세계 정치 지형에서 근본적 변화를 일으켰다"고 밝혔다. 신문은 "정치국은 김정은 동지의 러시아 방문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데 대해 높이 평가했으며 해외방문 성과를 열렬히 축하했다"고 설명했다. '소기의 목적 달성'이라는 표현으로 미뤄 탄약 제공을 대가로 김정은이 원하는 핵기술 이전 등을 얻어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이번 러시아 방문을 평가하고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정치국 회의를 개최한 것으로 보인다"며 "러시아 방문을 단일 의제로 다룬 정치국 회의는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마지막 일정으로 러시아 자연부원생태학(천연자연부) 장관과 연해주 행정장관이 마련한 연회에 참석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회의에서는 이번 러시아 방문이 갖는 의의에 대해 분석하고 전망적인 북·러관계 발전계획들이 소개됐다고 신문은 전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논의한 것으로 보이는 북·러 양국 간 군사·경제·농업 분야의 협력, 교육·사회문화 교류, 인도적 지원 등의 합의 내용을 설명하고 이를 구체화 시키기 위한 방안을 다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엄중한 경고에도 무기거래를 축으로 하는 북·러 간 전방위적인 교류와 협력은 곧 가시화될 전망이다. 앞서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은 지난 17일 자신의 텔레그램에서 러시아와 북한 정부 간 위원회 회의가 오는 11월 평양에서 열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군사 분야는 물론 무역·관광·농업·교육 분야 등의 러시아 측 대표단이 조만간 대거 방북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지난 14일(현지시간) "일대일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북한에 방문할 것을 초청했다"며 "푸틴 대통령은 이 초대를 감사히 수락했다"고 밝힌 만큼 양국 정부 간 협의에 이어 푸틴 대통령의 답방까지 연내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 자신의 러시아 연방 방문을 수행한 대표단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은 이날 정치국 회의에서 "모든 분야에서 쌍무관계를 보다 활성화하고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한 건설적인 조치들을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각 분야의 협조를 다방면적으로 확대 발전시키기 위한 북·러 해당 부문들 사이 긴밀한 접촉과 협동을 강화해 두 나라 인민의 복리 증진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귀국 직후 정치국 회의를 열어 "방문성과를 공고히 다지기 위한 실천"을 각 분야에 주문한 만큼 북한 당국이 러시아와 논의한 사안들을 본격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방안을 속도감 있게 강구해 나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치국 회의를 열어 김정은의 방러 성과를 부각해 내부결속을 도모하는 모습"이라며 "한·미를 향해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과시하는 것은 물론 러시아 측에 협의 내용을 신속하게 이행하자는 메시지를 발신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정은은 이날 정치국 회의 직후 자신의 러시아 방문을 수행했던 대표단과 기념사진을 촬영했고, 러시아 방문 성과 축하를 위해 정치국이 마련한 저녁 연회에도 참석했다. 관련기사 北 '백두혈통 특사' 中에 보낼까…항저우 대표단장엔 장관급 [단독] 김정은이 우주기지 갈 때, 北경제팀은 따로 움직였다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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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백두혈통 특사' 中에 보낼까…항저우 대표단장엔 장관급
김일국 북한 체육상이 2018년 7월 3일 오후 평양 옥류관에서 열린 남북통일농구경기 남측 방문단 환영만찬에서 환영사를 하는 모습. 김 체육상은 지난 19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북한 대표단장으로 파견됐다. 뉴스1 북한이 오는 23일 개막하는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김일국 체육상(장관급)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했다. 대표단장으로 체육상을 파견한 것을 두고 중국과 북한 간 고위급 교류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폐막 전까지 별도의 '고위급 특사단'을 파견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분석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1일 "우리나라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인 김일국 동지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중국에서 진행되는 제19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19일 평양에서 출발했다"고 전했다. 당초 외교가에선 북한이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백두혈통'급 인사를 중국에 특사로 파견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이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을 비롯해 '최측근 고위급 인사'가 항저우에 파견될 가능성이 거론됐다. 2014년 10월 4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당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등이 북한 선수단이 입장하자 일어나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공동취재단. 다만 북한이 추가로 김정은의 특사 격인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는 관측도 있다. 북한은 2014년 10월 인천에서 열린 제17회 아시안 게임 폐막식에도 예정에 없던 실세 고위급 3인방을 대표단으로 파견한 전례가 있다. 당시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용해·김양건 당 비서로 구성된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을 계기로 남북은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에 합의하는 등 대화 국면이 조성되기도 했다. 통일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단과 만나 "구체적으로 고위급 인사가 갈지 안 갈지 예단할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전례로 보면 별도의 고위급 인사보다는 체육상이 대표단을 인솔해 갔다"고 말했다. 실제 사례를 보면 북한은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2006년 토리노 겨울 올림픽,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2012년 런던 올림픽에는 체육상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만 파견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의 경우에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특사단을 파견한 측면이 있다는 게 통일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북한 선수단이 21일 오전 중국 항저우 선수촌에서 이동하는 모습. 장진영 기자 고위급 북한 인사의 파견이 없다면 한국 정부 대표로 아시안 게임 개회식에 참석하는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의미 있는 접촉도 어려울 전망이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한덕수 총리와 김일국 북한 체육상이 항저우에서 만날 가능성에 대해 준비하고 있냐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만약에 만나게 된다면 원론적인 입장에서 대화로 나누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통일부는 인천 해안에서 최근 북한 주민으로 추정되는 남성 시신 1구를 발견, 북한 당국에 인도받을지 알려달라고 통보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부는 9월 10일 인천 석모도 상리 해안에서 북측 주민으로 보이는 사체 1구를 발견해 인근 병원에 안치하고 있다"며 "사체는 신장 170cm, 남성이며, 배지 및 복장, 메모 등의 유류품으로 미루어볼 때 북측 주민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측은 인도주의와 동포애 차원에서 사체와 유류품을 판문점을 통해 9월 26일 오후 3시 북측에 인도하고자 한다"며 "북측은 남북통신선을 통해 입장을 신속히 알려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통일부는 북한이 지난 4월 7일부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및 군 통신선을 통한 연락에 응하지 않고 있어 언론을 통해 북측에 시신 인도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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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김정은 5박 6일 러시아 방문 손익계산서는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2020년 12월 2일. 한·미 정보 당국자들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주목했다. 영화 ‘공작’에서 ‘흑금성’(박채서)의 파트너이자 북한 대외경제위 처장으로 나왔던 이명운의 실제 인물인 이호남(70대 초반) 국무위원회 고문이 나타나서다. 정찰총국 출신인 그는 54세의 G씨를 데리고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북한이 국경을 폐쇄하며 인적 왕래가 불가능했던 때다. 김 위원장의 비준(재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남북 접촉 창구 역할을 했던 이호남은 이듬해 4월 20일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 체류하며 “이번에 들어가면 은퇴할 것 같다”며 G씨를 소개하고 인수인계했다. 그러나 정보 당국은 그의 러시아 방문 목적을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해 북한이 대외 접촉 거점을 이동하기 위한 사전작업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북한이 그동안 중국의 베이징이나 선양, 단둥에서 진행하던 ‘외부인’ 접촉 무대를 블라디보스토크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이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러시아 다가서기가 하루 아침의 결정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 「 북미 협상 막히자 러시아행 첨단군사시설 ‘족집게 과외’ 전시 러 활용해 제재 무력화 중국과는 일단 거리두기 태세 」 외톨이 외교, 득인가 실인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오른쪽)과 태평양함 대사령부 관계자들이 지난 16일 부대를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해 경례하고 있다. 이들 왼쪽 뒷편에 정차해 있는 승합차 전면에 부착된 현대자동차 엠블럼이 눈에 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3년여 뒤.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 땅을 밟았다. 러시아와 전략적으로 협력하고,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게 북한 자체의 평가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전과 후 네 차례나 시진핑 주석을 만나 상의하는 등 김 위원장에게 중국은 든든한 뒷배였다. 그런 중국 대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된 러시아에 김 위원장이 손을 내민 건 의외다. 북한이 관심을 끌었을지 몰라도 집중 감시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김 위원장의 이번 러시아 방문은 여러 면에서 궁금증을 낳는다. 북한의 의도는 뭘까. 김 위원장은 러시아의 위성과 미사일 개발의 상징인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4시간여 푸틴 대통령을 만난 뒤 김 위원장은 콤소몰스크나아무레로 이동해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을, 크네비치군비행장에선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함께 항공우주군 장비를 살펴봤다. 추르킨 지역의 해군부대와 태평양함대를 찾아 대잠호위함에 올랐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러시아의 후속 기술 지원 여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다음달 정찰 위성 발사를 공언하고, 핵잠수함 개발에 나서겠다는 김 위원장과 북한 인사들에게 러시아의 군사시설 참관 자체가 족집게 과외인 건 분명하다. 결정적 순간마다 러시아 찾는 북한 북한 지도자는 건국 이후 절박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러시아(옛 소련 포함)를 찾았다. 1949년 2월 김일성 주석(당시 내각 수상)이 선물을 잔뜩 싸들고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을 찾은 게 대표적이다. 김 주석은 스탈린과 남침을 상의하고 차관과 전쟁 물자 지원을 약속하는 ‘조(북)·소 양국간 경제적 및 군사적 협조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6·25전쟁을 석 달여 앞두고도 급히 모스크바로 달려갔다. 전쟁이 끝난 53년 9월엔 전후복구를 위해 손을 벌렸다. 이번을 포함해 17차례의 북·러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북한에겐 매번 ‘결정적’ 순간이었다. 김 위원장 역시 무기 현대화의 마지막 퍼즐 맞추기에 러시아 카드를 꺼냈다. 자립을 강조하는 북한이지만 대북제재와 3년 6개월 넘게 셀프 봉쇄에 따른 경제난의 돌파구도 필요했다. 연해주 주지사를 만나 농업 및 관광과 관련한 협의를 한 게 이를 보여준다. 북한은 이번에 러시아의 식량 지원 제의를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대신 개점 휴업 상태인 북·러경제위원회의 재가동을 통해 북한 인력을 대규모로 수출하거나 러시아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간접 지원을 받을 가능성은 남아있다. 북한이 연해주 지역에서 직접 밀을 재배해 들여오는 방안도 예상된다. 러 활용 대북제재 판깨기? 북·러 정상의 협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향후 어떤 협력을 하더라도 대북제재에 저촉될 가능성이 크다. 서방 국가들은 양국의 무기거래를 경계하고 있다. 북한과 군사협력을 중단하라는 지난 19일 한국 정부의 요구에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는 “북·러 무기거래는 근거 없는 추측”이라며 일축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군사협력 이외에 다른 목적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김 위원장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대북제재 해제를 주문했다. 그만큼 북한에게 대북제재 해제는 절박하다. 미국과 거래가 불발하자 중국과 러시아는 자신들이 찬성표를 던졌던 대북제재 완화를 유엔 안보리에 공식 요구했다. 이후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쏴도 북한편을 들고 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78차 유엔 총회 연설에서 기능 부전에 빠진 유엔 안보리의 개편을 요구할 정도다. 북·중·러는 당분간 유엔의 이런 입장을 바꿀 것 같지 않다. 러시아는 오히려 김 위원장에게 대북제재 품목인 소총과 무인기(드론)를 선물했다. 또 해외 여행 금지대상인 이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조춘룡 당 군수공업부장을 수행원으로 받아 들였다. 북한과 러시아가 노골적인 제재 허물기에 나선 셈이다. 다가서는 북·러와 달리 북·중관계는 상대적으로 삐걱거림이 감지된다. 미국과 갈등 중인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거리를 두고 있다. 북·러 밀착을 외형적으로는 방관하고 있다. 그러나 신냉전의 한 축인 중국이 북·러 협력에 소극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당장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김 위원장이 귀국한 다음날인 18일 모스크바를 찾았다. 다음달 푸틴 대통령의 방중 계획도 확정했다. 러시아가 2국 3각 게임에 나서는 모양새다.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은 핵과 미사일 시위가 먹히지 않자 외부로 시선을 돌렸다. 전쟁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시선을 고려치 않는 우방국 러시아에 다가서면서 제재 무력화를 꾀하고, 북·미 거래의 중개인 역할을 할 여지가 있는 중국에는 일단 거리를 두는 건 치밀한 계산의 결과일 수 있다. 항공기로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김 위원장은 열차를 타고 열흘 간 평양을 비웠다. 그가 비행기로 미국을 다녀 온다면 더 큰 이익이 되지 않을까.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