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정치인의 '측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노무현의 측근, 이재명의 측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중앙포토]
‘노무현대통령의측근최도술ㆍ이광재ㆍ양길승관련권력형비리의혹사건등의진상규명을위한특별검사의임명등에관한법률.’ 2003년 12월에 제정된 이른바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법’의 공식 명칭입니다. 법에 아예 ‘노무현대통령의측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실 이 아홉 자를 빼도 특검 수사를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법안을 만든 야당 의원들이 수사 대상자들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넣은 것이었습니다. 이 법에 ‘측근의 정의’가 써 있는지를 살펴봤으나 없었습니다.

이 법에 적시된 3인은 그다음 해에 국회에서 의결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다시 등장합니다. 여기에 최도술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고교 동창 출신 최측근’으로, 이광재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분신 같은 최측근’이라고 기술됐습니다. 양길승씨는 ‘양길승 청와대 부속실장’이라고만 표현됐습니다.

2003년 특검법에 양길승씨 관련 의혹은 ‘살인교사 및 조세포탈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던 청주 키스 나이트클럽 소유주 이원호가 수사를 무마하기 위하여 행한 경찰 및 검찰 관계자와 양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에 대한 금품 제공 및 로비 의혹 사건’이라고 정리돼 있었습니다. 특검팀은 수사 결과 발표에서 양씨가 나이트클럽 사장 이씨로부터 금품을 받았음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수뢰 혐의가 벗겨졌습니다.

이 특검법이 만들어진 2003년 말에 노무현 대통령과 양길승씨는 3년도 채 되지 않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노 전 대통령 주변인 말을 보면 양씨는 2000년 12월에 서갑원 전 의원의 소개로 노 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양씨는 2002년 대선 경선과 본선에서 광주ㆍ전남 지역 ‘조직책’으로 활동하고 노무현 대통령 취임 뒤 청와대에 들어갔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때는 여소야대 국회가 법 이름에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지극히 비법률적인 표현까지 넣은 잔혹 시절이었습니다. 야당의 이런 힘 자랑이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과반 의석 확보라는 역풍을 불렀습니다.

한편으로는 2003년 당시는 정치적 낭만이 있던 때였습니다. 양길승씨의 청주 나이트클럽 술자리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대통령 측근’이라는 수식어가 빠짐없이 그의 이름 앞에 붙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그가 왜 측근으로 분류되느냐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내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은 다 측근이냐"고, “이광재ㆍ안희정쯤 돼야 측근이지 양길승은 아니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유동규씨 문제가 커지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그는 야당과 언론에 ‘측근의 정의’를 제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정진상ㆍ김용 정도는 돼야 측근이지 유동규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두 차례 성남시장 선거를 도왔고, 자신이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요직에 앉혔고, 나중에는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임명한 사람인데, 측근은 아니라고 합니다.

가깝다와 가깝지 않다, 친하다와 친하지 않다는 구분은 다분히 주관적입니다. 한쪽이라도 아니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이런 노랫말이 있습니다. ‘나와 짜장면을 먹었다면 그럼 엄청 우리 친한 사이. 나와 삼겹살을 같이 먹었다면 그럼 엄청 친한 사이. 쌈을 싸지 않고 먹는다면 그건 아직 우리 사이가….’ ‘라야’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친하다와 친하지 않다’)입니다. 이 지사가 유씨와 친하지 않다니 할 말은 없습니다. 짜장면, 삼겹살처럼 나름의 기준이 있나 봅니다. 이제 '측근'이라는 말은 제3자가 당사자들 동의 없이 쓰기 어려운 용어가 됐습니다.

그래도 국민의힘은 여전히 이 지사와 유씨가 매우 친한 사이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공동 책임"을 거론합니다. 관련 기사를 보시죠.

더 모닝's Pick
1. 윤희숙에 비교되는 윤미향
'윤 의원이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한 채 재판정에 서는 건 옳지 않다. 부친의 농지법·주민등록법 위반 의혹에도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의원이란 법적·사회적 방패를 내려놓고 평범한 시민으로 수사를 받겠다”며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곽상도 의원도 아들의 50억원 퇴직·상여금 문제로 의원직을 사퇴키로 했다. 정치인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이렇게 높아졌다. 윤미향 의원의 혐의가 이들보다 중하면 중하지 덜하지는 않다. 당장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의 결론 부분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2. 중국에서의 이상한 '네트워크 구축'
외교관들이 해외에서 주요 인사와 물밑 접촉을 하고 인맥을 쌓으라고 정부가 지급하는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라는 게 있습니다. 주중국 대사관의 경우 이 돈의 84.8%를 선물과 주류 구입 비용으로 썼습니다. 사람 만나서 밥 먹는 일은 별로 없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을 주창한 교수 출신의 '코드' 대사가 부임한 뒤 중국에서 고공 외교가 실종됐다는 얘기가 계속 나옵니다.

3. "북한에 다른 결과 기대, 미친 행동"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초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허버트 맥매스터가 “미친 행동의 정의는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북한을 협상에 참여시키기 위해 양보하고, 협상이 진행되면서 좌절감 또는 탈진에 성공 가망이 없는데도 양보에 양보를 거듭한 끝에 매우 약한 합의에 도달한다. 북한은 경제적 보상을 챙기자마자 합의를 위반하고, 다시 도발→양보→합의 위반 사이클을 시작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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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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