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화천대유 대주주와 권순일 전 대법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기자와 대법관의 잦은 만남, 지극히 비상식적입니다

변호사 단체와 시민단체가 권순일 전 대법관을 고발하기 위해 검찰에 들고 온 서류 봉투. [뉴스1]
 대법원 담당 기자가 대법관을 상대로 취재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대법관을 따로 만나는 일 자체가 드뭅니다. 출입처가 대법원인데, 대법관의 방에 가기가 어렵습니다. 기자들이 ‘출입’은 하는데 그 출입처의 핵심 인사를 대면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인 곳이 한국의 대법원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대법원 판결에는 ‘단독’ 보도가 사실상 없습니다. 판결 뒤 15일이 지나야 그때까지 보도되지 않은 판결에 대해 독자적으로 보도할 수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모든 대법원 판결이 ‘포괄적 엠바고’로 묶여 있게 됩니다. 국민의 이목이 집중돼 온 사건에 대한 판결은 선고 당일에 보도하지만, 나머지 중 일부는 기자단이 보도 날짜를 합의해 정하고, 이 두 가지 경우에 포함되지 않은 사건은 각 언론사가 판단해 15일 뒤에 보도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법조 기자단’이 정한 규칙이 그렇습니다. 

 몇 년에 한 번 정도 개별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이 원심을 그대로 인정하기로(또는 파기하기로) 했다’는 예고성 보도가 나오기도 하는데 엠바고 파기로 간주해 보도를 한 언론사의 법조팀 기자 전체가 1년 정도 모두 출입을 정지당하는 벌을 받습니다. 따라서 개별 사건에 대한 대법원 소부나 전원합의체의 판결 방향을 알기 위해 법관들을 별도로 만나고자 하는 ‘동기’가 생기기 어렵습니다. 이런 엠바고 관행이 과연 옳으냐는 논쟁이 10여 년째 지속되고 있는데요, 여하튼 현실은 이렇습니다.

 둘째, 대법관에게 사건 내용과 판결 방향에 관해 묻는 것은 금기시돼 있습니다. 물어볼 수는 있지만 대개 헛일입니다. 심리가 이렇게 진행 중이고, 결과는 이럴 것 같다고 말하는 대법관을 본 적이 없습니다. 대법관은 그 누구에게도 판결의 방향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판결 뒤에도 판결문에 적힌 내용 이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납니다. 기자에게 사건 관련 내용을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대법관이 있다면 그가 정상이 아닙니다. 따라서 대법관에게 사건 관련 사항을 묻는 것은 실례입니다. 물을 수는 있지만 묻는 사람이 이상해집니다. 

 셋째,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법원 출입 기자가 대법원을 취재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사법부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법원행정처(대법원 소속) 관련 사안은 관심의 대상이지만 재판에 대한 취재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법조팀장이 대법원 출입 기자 역할까지 맡습니다. 법조팀은 통상 대법원, 대검, 법무부, 서울고검, 서울중앙지검, 서울고법, 서울중앙지법 출입 기자로 구성돼 있고, 각 언론사의 팀장이 이들이 취재하고 쓰는 모든 기사에 관여합니다. 언론사에서 제일 바쁜 자리 중 하나입니다. 몸은 대법원에 있지만 대법원 사건을 취재하지는 않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러므로 전직 또는 현직 법조 기자가 특정 대법관을 그의 방에서 자주 만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런 불편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게 일반적 대법관입니다. 아무리 사적으로 친한 기자라고 해도 주변 시선이 의식돼 특정 기자를 자기 사무실로 자주 오게 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권순일 전 대법관과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 전 기자의 관계는 더욱 이상해 보입니다. 김 전 기자가 2019년 7월 16일부터 지난해 8월 21일까지 권순일 대법관실을 8차례 방문했다는 대법원 출입 기록이 공개됐습니다. 김 전 기자는 당시 전직 대법원 출입 기자였습니다. 그는 “2019년 2월 대법원 기자실을 떠난 후에도 10여 차례 대법원 청사를 방문했지만 대부분 후배 법조 기자를 만나거나 구내 이발소에 가기 위한 것이었고 권 전 대법관은 인사차 서너 차례 방문했다. 출입신고서에 후배 법조기자 이름을 적으면 그가 출입구까지 나를 데리러 와야 하기 때문에 편의상 ‘권순일 대법관’이라고 (갈 곳을) 적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후배 기자나 이발소에 가려고 대법관 이름을 댔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기가 어렵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상합니다. 약 1년 동안 기자가 인사차 대법관 방에 서너 번 가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김 전 기자와 권 전 대법관의 관계를 규명하는 수사도 필요해 보입니다. 전ㆍ현직 대법관들의 명예가 걸린 일입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구속 뒤 검찰 수사가 김 전 기자를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를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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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낙연 후보 캠프 대변인인 이병훈 의원이 “경선이 끝나도 내년 3월 9일 선거일까지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대장동 사태로 더불어민주당 경선 종료 이후에도 급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이 전 대표도 “여야 모두 걱정과 불안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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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주주의, 주어지는 것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언론의 자유 등 가치 있는 자산들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을 목도하고 있다.” 곧 퇴임하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독일 통일 기념일(10월 3일)에 던진 대국민 메시지의 한 대목입니다. “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고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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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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