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언론의 '중과실' 보도로 거론되는 과거 사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언론의 '악행'으로 지목된 '만두 파동' 실상 이렇습니다

지난 25일 새벽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 법사위에서 통과시킨 뒤 주먹 인사를 나누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뉴스1]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잘못된 보도에 의한 민간인 피해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하는 것이 ‘불량 만두' 파동입니다.

2004년 6월 4일 경찰청이 불량 만두 생산자에 대한 수사 결과를 브리핑했습니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단무지 자투리로 불량 만두소가 만들어졌고, 그 불량 만두소를 사용한 불량 만두가 제조ㆍ판매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경찰과 기자단은 보도 시점을 6월 7일 조간으로 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그날부터 대대적으로 이 사건이 보도됐습니다.

경찰은 관련 단무지 제조업체 세 곳과 무말랭이 제조업체 네 곳, 그리고 불량 만두소 사용 만두 제조업체 스물다섯 곳을 적발했다고 했습니다. 경찰이 배포한 자료에 업체들은 영문 이니셜로만 표시돼 있었습니다. 7일 신문과 방송 역시 업체 실명을 적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났습니다. 언론사 사회부마다 전화통에 불이 났습니다. “집 냉동고에 있는 만두를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가르쳐줘야 할 것 아니냐” “어떤 만두는 괜찮은 것인지 왜 알려주지 않느냐” “만두 회사에서 돈 받았냐” 등의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사실 기자들도 고민했던 문제였습니다. 어떤 업체가 적발됐는지를 공개하지 않으면 관련이 없는 업체도 애꿎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의 말하는 혐의 내용을 믿고 취재로 확인된 업체 실명을 공개하는 것이 옳으냐, 애매하게 이니셜로만 표기해 사실상 소비자들이 모든 업체의 만두를 다 기피하게 하는 게 옳으냐의 딜레마적 상황에 빠졌습니다. 경찰이 이니셜로만 업체명을 발표해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경찰의 수사 내용을 검증하기까지 보도를 미룰 수도 없었습니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세균 검출을 확인했다는데 언론사가 독립적으로 재검증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하루가 지난 8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갑자기 홈페이지에 관련 업체 실명을 공개했습니다. 그때부터 언론도 업체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니셜로 감추는 게 의미가 없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그즈음에 언론사에는 시민들의 또 다른 항의가 쏟아졌습니다. 기자들이 이 사건을 4월에 알고도 보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비난했습니다. 4월 말에 한 방송사 기자가 법원에서 단무지 자투리를 만두소 재료로 공급한 업체의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사실을 포착했습니다. 그 회사가 취재에 돌입하자 경찰이 기자단에 엠바고(보도 유예)를 요청했습니다. “지금 보도가 나가면 어떤 업체가 불량 만두소로 만두를 만들었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관련자가 잠적하고 증거도 모두 사라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기자들이 엠바고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사건은 한 만두 제조업체 대표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남기며 극단적 선택을 하고 이후 국무조정실의 조사에서 경찰이 불량이라고 판단한 만두소와 만두가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다는 결론이 나면서 ‘언론의 책임’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첫째 문제는 여러 언론이 ‘쓰레기 만두’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이었습니다. 위에 썼듯이 경찰의 첫 발표 때 ‘쓰레기로 버려지는 단무지 자투리로 불량 만두소가 만들어졌고’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습니다. 둘째는 왜 유해성 검증을 하지 않고 ‘받아쓰기’만 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국무조정실 검증 과정에서 국과수는 세균이 나온 것은 맞는데 그게 어느 과정에서 오염된 것인지가 불분명하고 가열하면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게 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언론이 신중했어야 했다는 지적, 일리가 있습니다. 경찰 자료에 ‘쓰레기로 버려지는’이라는 표현이 있다고 해도 ‘쓰레기 만두’라는 자극적 표현은 피하는 게 바람직했습니다. 경찰의 수사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수사 과정을 되짚어 볼 필요도 있었습니다. 증거 자료는 다 경찰에 있는 상황에서 그게 어느 정도 가능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차분하게 사건을 대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위에 다소 장황하게 설명했듯이 기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업체 이름을 공개한 것이 아니고, 이른바 ‘허위조작정보’라는 것을 만든 것도 아니었습니다. 경찰의 허술한 수사, 언론이 독립적ㆍ객관적 검증을 하기가 매우 곤란한 종류의 사건 발생, 급히 보도하지 않기 어려운 안전의 문제가 대두. 이 세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결과적으로 과도하게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도가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 사건을 놓고 “언론사 문을 닫게 할 정도로 배상금을 물렸어야 할 사안”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2004년 6월 7일에 언론이 이 건을 보도하지 않았어야 했을까요?

 두 명의 만두소 공급업자는 법원에서 유죄 판결(집행유예)을 받았고,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일부 만두 제조업체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는데 패소했습니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때의 일입니다. 재판부는 “수사 발표의 핵심 내용은 비위생적인 불량 만두소가 국내 유명 만두 업체 등에 납품돼 만두의 원료로 사용됐다는 것이고, 국민 보건ㆍ위생상 공익성이 인정되고 발표 내용의 기본 사실관계 또한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여당은 이처럼 합당하지 않은 사례까지 들이대며 '언론징벌법' 처리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법이 시행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해 보면 그 답이 유추됩니다.


더 모닝's Pick
1. 이재명 지사 청탁금지법 위반했나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자료에 이재명 지사에게 무료 변론을 제공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습니다. 이 지사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변호인으로 참여했지만 돈은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공직자가 무료 변론을 제공받는 것은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비용이 100만원 이상에 해당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됩니다.

2. 카불 공항 인근에서 수십 명 사망
 카불 공항 외곽에서 발물이 터져 미군 10여 명이 포함해 수십 명이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테러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누가, 왜 그랬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걱정했던 일들이 하나둘 현실로 나타납니다. 카불 공항에서 이륙한 이탈리아 수송기가 총격을 받았다는 뉴스도 나옵니다.

3. 김의겸 의원 특혜 대출도?
 국민권익위가 김의겸 부동산 관련 의혹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때 대출 특혜 여부도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김 의원이 구입한 서울 흑석동 건물에는 임대할 수 있는 가게가 4개인데 대출 서류에는 10개로 적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대출을 담당한 은행 지점의 책임자는 김 의원의 고교 후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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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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