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난민 문제를 논할 때 우리 과거도 한 번쯤은

아프가니스탄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서 해외로 탈출하기 위해 기다리는 한 가족의 아이를 미군 병사가 안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버밍엄에서 해마다 ‘크러프츠(Crufts) 도그 쇼’가 열립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1886년에 시작), 가장 큰 명견 경연대회입니다. 이 행사의 주요 후원자 중 하나가 삼성전자입니다. 대형 컨벤션센터 곳곳에 삼성전자 로고가 걸립니다. 1993년에 후원을 시작했으니 어느덧 30년 가까이 됐습니다.  

 2013년에 그곳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영국인이 기르는 진돗개가 출전해 눈길을 끌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저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개에 대한 애정 때문에 삼성전자가 후원을 시작하게 됐으리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의 삼성 관계자 설명을 들었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90년대 초에 삼성전자가 유럽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는데 동물보호단체 등이 ‘개 먹는 나라의 상품’이라며 불매운동을 벌였다. 한국인 모두가 개를 먹는 것은 아니고, 함께 사는 반려견을 먹는 것도 아니라고 해명을 해도 잘 먹히지 않았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고 크러프츠 후원이 그중 하나였다. 삼성은 개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삼성전자 유럽 수출품이 TV, 전자레인지 등의 중저가 가전제품이었습니다. 일본이나 독일 제품에 비해 디자인이나 성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가성비’가 좋아 팔리는 상품인데, ‘개 먹는 사람들이 만든 물건’이라는 이미지가 드리워졌으니 수출 역군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보신탕' 문화에 따른 한국인 멸시가 아주 오래된 과거의 일만도 아닙니다. 제가 프랑스와 영국에 특파원으로 있을 때도 이따금 “아직도 한국인은 개를 먹나?” “너도 개를 먹나?” “개 먹어 봤나?” 등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개를 보면 잡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비둘기, 달팽이를 먹는다. 비둘기를 보면 먹고 싶은가?  문화의 차이일 뿐이다”고 쏘아붙여 보이고 하고, “요즘에는 개고기 먹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타협적 답변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이민 1세대들의 ‘가정 폭력’도 한국인 이미지를 어둡게 했습니다. 남편이 부인을, 아버지가 자식을 상습적으로 심하게 때려 경찰에 붙잡혀 갔다는 게 현지 언론에 종종 보도됐습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우리는 가정 폭력에 매우 관대한 민족이었습니다. ‘명태와 여자는 두드려야 부드러워진다’ ‘매 끝에 정 붙는다’ 등의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폭력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남존여비’ 를 굳게 믿고 여성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가정 폭력은 해외 거주 한국인의 이미지를 나쁘게 했습니다. 게다가 한국인 특유의 생활력과 문화도 현지인들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한국인은 악착스럽게 돈을 벌고, 이웃에 인색하고, 자신들도 마이너리티면서 다른 마이너리티들을 깔본다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한인 상점이 주요 타깃이 됐던 1992년 ‘LA 폭동’을 기억하시죠? 그 뒤로 한인들도 많이 달라졌고, 지역 공동체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과거의 나쁜 이미지를 많이 털어냈다고 합니다.  

 한국인도 과거에 해외에서 결코 환영받지 못한 이방인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 오래된 과거도 아니고 어쩌면 지금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착한 이들도 조화롭게 사는 법을 배우고, 현지인들의 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서로 공존의 길을 찾은 것입니다. 

 한국에서 난민 문제를 꺼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난민 수용에 찬성하는 의견을 내면 정치인이든, 기자든 ‘비난 폭격’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서로 이야기하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만 담쌓고, 빗장 걸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나라의 등급이 너무 올랐습니다.  

 먹고 살기 어려워서, 정치적 문제 때문에 미국과 유럽 등에 체류(상당수는 불법으로)하다가 정착한 한인 이민 1세대들도 큰 틀에서는 난민이었습니다. IMF 사태 속에서 외국으로 떠난 ‘경제적 난민’도 많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해외로 보내진 수많은 입양자들도 경제적, 문화적 난민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김구 선생님도, 김대중 전 대통령도 한때 난민이었습니다.  

 한국의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 문제를 살핀 기사를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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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만밀. 배달 음식, 반찬 가게, 밀키트의 앞 글자를 모은 조어입니다. 배반밀로 식사를 하는 가정이 급격히 늘었습니다. 거리두기 때문에 외식 하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매번 집에서 밥을 해 먹기도 힘드니 자연스럽게 이런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코로나 시대가 끝나도 이런 추세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도 합니다. 코로나19가 많은 것을 바꿔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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