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KT 통신 두절 사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인터넷 없는 세상, '체험 공포의 현장'입니다

25일 서울의 한 상점에 붙은 안내문. [뉴시스]

기사를 쓰고 있는데 정보 검색을 위해 접속을 시도한 한국 포털 사이트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노트북 하단을 보니 인터넷 접속 표시 그림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랜 선을 노트북에서 뺐다가 다시 끼우고, ID와 패스워드를 새로 입력해 봤습니다. 허사였습니다. 호텔 로비로 뛰어갔습니다. 직원에게 인터넷이 끊긴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아이고, 올 게 왔구나. 기사를 어떻게 보내지?’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기사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2011년 1월 29일 오전 카이로 시내 쉐라톤 호텔에서의 일입니다.

전날에 이집트 전역에서 인터넷 불통 사태가 시작됐습니다. 30년 독재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축출을 위한 시위가 퍼지자 이집트 정부가 인터넷과 통신을 차단한 것이었습니다. 청년들이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반정부 활동을 전개하며 시위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이에 맞서 정부가 ‘암흑세계’를 만들어버렸습니다. 제가 묵고 있던 호텔에서는 그날은 인터넷이 됐습니다. 그래서 다른 호텔에 있던 한국 기자들이 소문 듣고 제가 있던 곳으로 짐을 싸서 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인터넷이 사라졌습니다. 

인터넷 없는 세계는 기자에게는 끔찍한 곳입니다. 검색이 되지 않으니 과거사, 인물 등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집니다. 본 것, 들은 것, 원래 알고 있던 것을 총동원해 기사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기사를 회사로 보내는 것도 문제입니다. 29일 그날에는 호텔 전화로 회사로 연락했습니다. 호텔의 유선전화까지 끊기지는 않았습니다. 국제부 후배에게 기사를 불렀습니다. ‘기사를 부르다’는 글이 아니라 말로 기사를 보낸다는 뜻의 언론계의 관행적 표현입니다. 노트북에 쓴 기사를 한 줄, 한 줄 읽었습니다. 쉼표, 중간 점, 따옴표 등의 부호를 말로 표현해야 했습니다. 기사 하나 부르는데 20분 정도 걸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인터넷과 무선통신이 두절된 상태에서 소요 사태가 이어지는 거리로 나섰습니다. 시위대를 향해 이집트 보안대가 총을 쏘던 때였습니다. 불행한 일이 닥쳐도 그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스마트폰 의존이 덜할 때라 아주 막막하지는 않았습니다. 스마트폰에 깔린 애플리케이션(앱)이 몇 개 없을 때였습니다. 폰이 주로 전화통화와 문자 전송의 용도로 쓰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인터넷과 통신이 차단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호텔에서조차 신용카드가 무용지물이 되니 모든 소비에 현금을 써야 합니다. 카드로 현금을 인출할 수도 없습니다. 가진 돈을 아끼며 살아야 합니다. 직접 보고 듣는 것 말고는 정보가 없으니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르게 됩니다. 대규모 혼란이 벌어진 곳에 있으면 그게 공포로 다가옵니다. 세상과 단절됐다는 느낌, 고립감이 듭니다. 휴양지 같은 곳에서 ‘디지털 디톡스’를 하기도 한다는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인터넷 프리’의 세계는 고통입니다. 모든 사람 접촉과 만남이 아날로그 형태로 돌아갔습니다. 현지에서 고용한 통역사와는 매일 다음 날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헤어졌습니다. 위험한 곳에 가기 싫어 그가 안 오면 그만이었습니다. 제가 연락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날 사람은 집이나 사무실로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이집트는 외부 세계와 단절됐습니다. 무역을 할 수도 없었고, 금융 거래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은행 문은 내내 닫혀 있었습니다. 카이로는 삽시간에 원시적 도시가 됐습니다. 다행히 인터넷과 무선통신은 닷새 만에 복원됐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는 것, 기사를 전화로 부르거나 종이에 손으로 써 팩스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카드로 현금을 뽑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절실히 느끼는 ‘체험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어제 KT의 85분 먹통 사태로 곳곳에서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만약 다른 주요 통신사들도 동시에 마비가 됐다면, 그런 상태가 85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오래 지속됐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외부의 ‘사이버 테러’가 미사일 공격보다도 무서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사태를 정리한 기사를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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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rning's pick

1. 미국은 생각이 다른 '종전선언'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하기엔 종전선언의 구속력이 상당하고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중앙일보의 분석 기사가 전한 미국 측의 시각입니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일 뿐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문재인 대통령, 2018년 9월 미 폭스뉴스 인터뷰)”는 생각과 달리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종전선언의 실질적 파급력과 법적 효력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종전선언에 대한 한미 양국 정부의 입장은 여기에서 갈립니다. 시각이 완전히 다릅니다.   


2. "이재명 시장이 그만두게 했다"

“나는 그렇게밖에 인식을 못 한다. ‘정 실장’ ‘유동규’ ‘시장님’ 이렇게 말하는데 당연히 그렇게 이해했다. 임면권자가 한 거다. 정이나 유가 나를 그만두라고 할 수 있겠나.”   황무성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의 말입니다. 그는 대장동 개발 사업 공모 직전에 사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재명 당시 시장이 자신을 쫓아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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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둑 원리로 보는 대선

<바둑 고수들이 승리의 공통점으로 거론하는 단어는 ‘두터움’이다. “공피고아(攻彼顧我).” 상대를 공격하려면 먼저 자신의 약점이나 치명적 반격을 부를 소지를 보완해 두텁게 다지고 가라는 가르침이다. 삶과 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최고의 경지는 사석(捨石) 작전이다. 그 돌들을 버리더라도 미래에 큰 곳의 이득을 선택하는 것, 지혜롭고 현명한 길이다. 분명히 진정성 있게 스스로를 털고 큰 곳으로 가라. 134일 앞의 승부. 대통령 후보들의 ‘두터움’을 기대해 본다.> 중앙일보 편집인이 쓴 칼럼('두터움의 힘')의 말미에 있는 문단입니다. 주요 대선 주자들이 꼭 읽어 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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