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셋째 주 <114호>

'당신의 10년 후' 하면 그려지는 그림이 있으신가요? 코로나 이후 개별화된 나노 사회에서는 각자의 삶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각자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을 따라 내 진심에 더 귀를 기울이는 거지요. 김현주 필진은 어느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자연 속에서 나의 삶을 이해하며 '자연의 철학자'가 되어 사는 삶을 바란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진심'이신가요?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77) 2021.12.09
 10년후 꿈···'찐' 시골살이하며 '자연의 철학자' 되는 삶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들꽃 가득 핀 꽃밭을 보게 됐다. KBS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자연의 철학자’ 중 첫 회 ‘너는 꽃이다, 30년 플로리스트의 꽃밭’이 방송되고 있었다. 은은한 색의 높고 낮은 꽃들이 화면에 가득했는데, 60대 부부가 가꾸는 정원이라고 했다. 허리를 뒤로 붙이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충청남도 아산에 위치한 이 꽃밭은 30년간 꽃집을 운영하는 아내 현숙 씨가 오랫동안 가지고 싶었던 바람이었다고 한다. 남편 창식 씨는 아내의 소망을 이루어 주기 위해 땅을 알아봤고, 교원으로 퇴직한 이후 아내를 따라 이곳에서 꽃밭을 일구고 꽃을 가꾸고 있다. 뒤늦게 꽃에 빠져버린 남편은 조경관리사 자격증까지 땄고, 지금은 아내 옆에서 누구보다 즐겁게 정원 가꾸기에 몰두하고 있다. 꽃 한 송이를 허투루 여기지 않은 친정어머니의 꽃 사랑을 물려받은 과수원집 딸 현숙 씨는 결혼 후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꽃집을 시작했고, 그렇게 30년 세월을 꽃과 함께 보냈다고 한다.

엄마의 영향 때문인지 부부의 세 딸 중 둘째와 셋째 역시 플로리스트와 식물 인테리어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손녀와 손자들도 시간 될 때마다 꽃이 가득한 정원에 들러 한나절 뛰어놀고 간다. 꽃이 주는 아름다움, 생동감, 위로를 아는 3대, 아니 4대의 가족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꽃을 가꾸는 게 아니라 꽃이 우리를 가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을 주러 가는 데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얘네들이 나한테 말을 걸고 있구나”라는 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바람 불고 비 오면 꽃이 쓰러지는 걸’ 알지만 언제나 ‘풀 한 포기를 응원’하는 이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됐다.

10년 후 프로그램 속 부부의 나이쯤 됐을 때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자연의 변화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그 변함없는 변화의 속도에 감사함을 느끼며, 거기서 몸과 마음을 움직이며 생활하고 싶다는 마음은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 ‘귀농, 귀촌하는 시니어가 되겠다’는 것 보다 일상의 소통 방식을 단순화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계획이다. 여럿 대 여럿, 빠른 소통, 바쁜 일정이 아닌 오롯이 나와 중요한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마음 말이다. ‘로컬’이 ‘힙’하다는 트렌드로서의 ‘러스틱 라이프(rustic life, 시골 지향 라이프스타일)’를 지향하는 게 아닌, 급하지 않지만 어긋난 적 없는 자연의 속도에 맞춰 살고 싶다는 마음!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읽기 시작한 책이 있다. 빅데이터 분석기업 바이브 컴퍼니의 연구자들이 펴낸 『2022 트렌드 노트-라이프스타일의 시대에서 신념의 시대로』(북스톤)가 그것이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마케터의 마음으로 지금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라이프스타일은 무엇인지 예측하고 그 트렌드로 누구보다 빠르게 나의 일상을 채우기 위해 분주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의 움직임보다 나의 마음에 집중한다(내가 변했다 싶었는데 책은 이것 역시 트렌드라 짚어낸다).

2000년대는 하고 있는 일과 직업이 무엇이냐를 강조하는 책임감이 중요한 덕목이었던 시대였다면, 2010년대에는 안목과 취향이 중요한 라이프스타일이 강조된 시대가 되었고, 그리고 2020년대는 ‘진심’이라고 표현되는 신념이 중요한 시대라고 책의 에필로그에는 적혀 있다. 지금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라이프스타일에서 벗어나 그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에 적용해볼 수 있는 단계가 되었지만 더는 그것만으로는 새로움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더욱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나노 사회에서는 각자의 삶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기에, 내가 무엇에 ‘진심’인지가 삶의 지향을 만들어 낸다.

나의 진심, ‘찐’ 바람은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자연 속에서 나의 삶을 이해하는 것, ‘자연의 철학자’가 되어가는 삶이다. 그런데도 당장은 시작할 수 없으니, 우선은 다른 이들의 삶을 보고 예측하고 기대하는 수밖에. 다음 주 이 시간, TV 앞에서 말이다.

전 코스모폴리탄·우먼센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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