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넷째 주 <111호>

성호르몬 감소로 심리적, 신체적 변화를 겪는 시기 갱년기는 남녀를 막론하고 찾아온다고 합니다. 신체적인 증상 외에도 상실감이나 우울감과 같이 정서적 불안감이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여러 증상이 있다 보니 갱년기를 그저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인생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손민원 필진은 25년 지기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며 건강하게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하는데요. 스스로를 잘 돌보면서 우리 모두 갱년기 지혜롭게 극복하자고요!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52) 2021.11.22
8인8색 갱년기 증상 난상토론장 된 2박3일 여행길

25년이 넘는 친구들이 있다. 아이들이 코흘리개 시절부터 공동육아를 하다시피 하면서 정을 쌓아 온 친구들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을 견뎌오면서 모임도, 만남도 미루다가 12인승 차를 빌려 드디어 2박 3일의 여행길에 올랐다. 얼마나 할 말이 많았던지 서울에서 전남 신안군까지 가는 다섯 시간이 넘는 운전 길에 우리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정말 열심히 살아온 친구였다.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자녀교육을 챙기고 가족의 건강을 살펴 왔다. 우리의 대화는 늘 그랬듯 아이들과 가족, 우리를 둘러싼 이웃이 주인공이었다. 거기에 정작 자신의 몸, 생각, 감정을 돌보는 것에 대한 대화는 거의 없었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하며 또 다른 인생의 중요한 문제인 성장한 아이의 결혼과 취업, 퇴직하는 남편, 연로한 부모의 돌봄 문제 등에 대해 경험과 생각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제 새로운 주제어가 등장했다. 바로 준비 없이 폐경기를 맞이하는 우리 몸의 변화인 것이다. 얘기하다 보니 8명의 여성 몸 안에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전투가 치러지고 있었고, 이를 참아내고 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 장거리 여행을 온 여행자의 몸은 고단할 것이다. 그러나 한결같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떤 친구는 약의 도움을 받아야만 잠을 청하고, 어떤 친구는 이틀 동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 눈으로 불면의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갱년기의 지표 중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이 수면의 질이 낮다는 것이다. 알람을 두 개, 세 개 켜놔도 아침 기상이 너무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갱년기 이후 수면은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잠을 잔다는 것이다. 잠이 들고 인기척에 한 번 잠을 깨면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지속된다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불면의 시간, 잠 못 드는 사람의 머릿속은 낮에 있었던 해결되지 못한 사소한 문제들로 각본을 짜기도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에 문제가 부풀려지기도 한다. 하루 이틀의 불면은 견디겠지만 계속되는 불면은 사람을 고통에 빠뜨린다. 낮에 수행할 일의 능력을 떨어뜨리고 무기력해지며 신경을 예민하게 한다.

다른 한 친구는 ‘별일도 아닌 일에 정신을 놓고 길길이 뛰었어’라며 내가 잘 통제되지 않고 우울감이 커 병원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예전에는 영화를 봐도 행복하고 친구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기분전환이 됐는데, 이젠 모든 것이 시큰둥하고 재미가 없다고 한다. 이 또한 갱년기에 자주 나타날 수 있는 정신적 문제일 것이다.

또 하나의 증상은 갑작스러운 열감이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상상하기 힘든 증상이다. 원래 무척 추위를 타던 나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열감에 정말 당혹스럽다. 보통 가슴이나 머리에서 불이 훅하고 오르며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얼굴이 달아오른다. 몸살이 난 것처럼 몸에 열이 느껴지고 때론 메스껍기까지 하다. 어떤 친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타나고, 어떤 친구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느낀다고 한다. 여름이면 더 괴롭다고 하는 친구도 있고, 겨울에 증상이 더 심한 친구도 있었다. 정말 8명이 제각기 갱년기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 열감은 폐경 이후 최장 5년 정도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여성 갱년기 증상에 관한 방송을 보다 보니 이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젠 수치가 바닥이라는 표현을 몸이 신호로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나를 봐 주세요’ 하는 신호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갱년기 여성은 ‘왔다 가는 열’로 증상을 가볍게 여기고 시간이 지나 증상이 없어지기만을 기다린다. 열감 증상이 없어지는 것은 내 몸이 다시 정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몸이 아무리 비정상이라는 신호를 열감으로 표시해도 응답하지 않으니 이제 민감성을 상실한 것이지 몸의 균형을 찾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또 다른 친구는 폐경에 접어들면서 시뻘건 덩어리로 월경의 양이 어마무시해 내 몸의 모든 피가 배출되는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고도 했다. 불안함에 수시로 화장실을 가야 하고, 월경 기간엔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라고 했다. 하도 힘들어 병원에 가서 아이도 다 낳았으니 자궁적출을 하면 어떤지 의사와 상담도 했다고 한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나이가 들면서 갱년기 증상이 이렇듯 다양하게 여성의 몸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이 친구는 월경과다로 의사로부터 철분제 복용 권고를 받았고, 호르몬 치료 또한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공통으로 겪는 병증으론 질위축증, 관절염, 건망증, 뱃살을 중심으로 한 체중 증가, 동맥경화로 인한 약 복용 등의 경우가 다수였다. 백설공주의 마귀할멈 정도로 허리가 꼬부라져야 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수시로 골밀도를 체크할 필요성도 있겠다 싶었다. 폐경 이행기는 약 3~10년 정도까지 지속하는데 대부분의 여성은 이 경험을 하는 것이다. 친구들의 증상은 제각기 조금씩 다르지만, 사춘기만큼이나 치열한 갱년기 증상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중년 이후의 갱년기 증상에 대해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나아지는 것쯤으로만 여겼다.

한국 사회에서 ‘아줌마’는 어떤 대상인가? 버스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가방을 던지는 ‘교양 없는’ ‘억척스러운’ ‘아름답지 못한’이란 부정적 수식어가 따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동료 갱년기 여성은 세상이 말하는 부정적 편견이 담긴 ‘아줌마’란 표현보다 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여성이고 깨어나 더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는 여성, 과거의 실수를 더는 되풀이하지 않고자 하는 단단한 사람들이었다. 지금껏 다른 사람을 챙기며 그들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 자신에게 더 집중하는 시간도 필요하겠다.

건강한 노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길목에 선 갱년기 여성인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했다. 필요한 의료적 지원을 받는 데 주저하지 말자고, 적절한 운동을 하자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느끼자고, 좋지 않은 사람과 멀리하고 기쁜 것과 가까이하자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돌봄과 더불어 주변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년 이후의 여성의 삶 또한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성ㆍ인권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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