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서비스 구독자 여러분. 매주 월, 수요일 아침 보내드리는 뉴스 내비게이션 레터 서비스를 통해 주요 시사 현안을 정리해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주 토요일 밤 벌어졌던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태원 참사 놓고, 벌써 싸움 벼르는 의원님들께

참사가 벌어졌던 이태원 골목길

한 주의 시작을 대참사 소식과 함께하게 돼 마음이 아픕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는 상상도 못 했던 후진국형 사고입니다. 대형 재해나 전쟁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이달 초 130여 명이 숨진 인도네시아 축구장 압사 사고에 혀를 찼지만, 그보다 더 황당하고 비극적인 일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졌습니다.

안전 불감증 한국의 민낯이 또 한 번 드러났습니다.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핼러윈을 맞아 10만명 넘는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당국의 안전 대책은 소홀했습니다. 서울시와 용산구청은 코로나 19 방역이나 시설 점검 같은 의례적 대비만 했습니다. 사고 하루 전 "인파가 너무 몰려 사고 날 뻔했다"는 SNS가 다수 올라왔지만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이번 참사의 문제점과 책임 소재는 철저하게 따져야 합니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걱정이 앞섭니다. 안전 업그레이드 같은 생산적 논의 대신 진영으로 갈려 소모적 정치 공방을 벌이는 일 말입니다. 세월호 이후 대형 사고가 터졌다 하면 되풀이되는 한국 정치의 고질입니다.

벌써 조짐이 보입니다.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참사의 이유"라고 주장했습니다. 용산경찰서 인력이 대통령 출퇴근과 경호 업무에 집중 투입된 탓이라는 겁니다. 지금은 '비난할 때가 아니라 애도할 때'라는 당의 만류에 글을 내리기는 했지만, 주장 자체를 바꿀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지금은 여야가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지만, 상황이 다소 수습되면 야당의 책임 공세가 시작될 공산이 큽니다. 여당의 방어 논리도 작동할 겁니다. 여당 소속인 현 용산구청장 대신 12년 동안 재임했던 민주당 소속 전임자의 책임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으로 향하는 화살을 문재인 전 대통령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쪽으로 돌리는 작전을 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