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탓인지, 날씨 탓인지 밥 먹는 게 영 시원찮습니다. 수저를 들고 깨작거리며 넋 놓고 있는 아이의 이름을, 날 선 목소리로 부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협박하죠. “너 그렇게 안 먹으면, 키 안 큰다. 동생보다 작으면 어쩔래?”

억지로 아이의 입을 벌려 밥을 밀어 넣으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나중에 어른 돼서 이렇게 말할걸? ‘억지로라도 먹이지 그랬어!’” 제 행동을 합리화하는 말인 걸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강별철 꿈꿀자유 대표는 서울대 의대를 나온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입니다. 제주도 서귀포에서 명의로 이름을 날리던 개원의기도 했죠. ‘경이롭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캐나다로 이민을 간 건 아이를 위해서였습니다. 아이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강 대표는 어느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온갖 좋다는 병원을 찾아다닐 때 사실 이 말을 듣고 싶었어요. ‘정신질환은 암이나 심장병처럼 그저 운이 없어서 걸린 것일 뿐,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말을 캐나다에 와서야 들었어요.”

그 말을 듣고, 식탁 앞에서 아이를 다그치는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혹시나 나 닮아 키가 작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거든요. 아이가 안 먹는 것도, 아이가 작은 것도 모두 제 탓인 것만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라고요.

강병철 대표를 만난 건 성조숙증 때문이었습니다. 코로나19 와중에 은밀하게 늘고 있는 질환이거든요. 그는 말했습니다. 불안해하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라고요. 왜 우리는 이렇게 불안하고 조급한 걸까요? 혹시 아이의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다고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요? 강병철 대표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뇨, 부모의 잘못이 아닙니다.”



저희 동네 공원 입구엔 종종 유기농 우유 홍보 부스가 차려집니다. 홍보 부스엔 아무 우유나 먹으면 성조숙증에 걸린다는 뉴스를 캡처해 만든 패널이 세워져 있고요. 패널엔 성조숙증에 걸리면 키가 안 큰다는 내용이 큼지막하게 편집되어 있습니다. 뉴스 패널을 볼 때마다 유기농 우유를 정기배달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코로나19로 성조숙증 아동이 늘었다고 합니다. 성조숙증을 소아비만과 관련이 높은데, 코로나19로 신체 활동이 줄어든 탓입니다. 혹시 우리 아이도 하는 생각이 드시죠?

그런데 강병철 대표는 “대부분 성조숙증은 별다른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아이의 키에도 큰 영향이 없다고 하고요. 성조숙증인 아이들은 이미 키가 많이 자라 있는 상태라서, 성조숙증 때문에 키가 덜 자라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강 대표는 “병원에서 4~6개월간 경과를 관찰하자고 하면 느긋하게 기다려도 되는데, 그 기간을 참지 못하고 온갖 검사와 치료를 시작한다”며 우려했습니다. 안 써도 되는 사회적 비용이라는 거죠. “사라는 사람과 사지 말라는 사람 중 누가 진실을 말할 것 같으냐”고까지 했습니다. 

느긋해 보이기만 한 그를, 처음엔 믿어도 될까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여러분도 직접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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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이가 발달이 늦거나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의심해본 적 있으신가요? 양육자라만 한 두 번 쯤 그런 경험 있으실 겁니다. 저도 아이 돌 무렵에 눈동자 초점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병원에 다녔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신의진 교수의 괜찮아 부모상담소를 찾아온 상담자분 사연에 더 감정 이입이 됐어요. 

상담자분은 아이가 자폐인 것 같다고 걱정하고 계셨어요. 유난히 청각이 예민하고, 의미 없는 행동, 이를테면 허공에 뭔가를 그리는 행동 같은 걸 반복했거든요. 규칙이나 규율이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고요. 기사를 보고 찾아보니 자폐 아동의 특징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신의진 교수는 “발달 지연과 장애는 다르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어요. 어떤 행동이나 증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정도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비슷한 행동을 하는 아이 중에 하위 25%에 속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어야 자폐를 의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오늘 상담은 혹시 아이가 발달 장애가 아닌지 의심스러운 양육자라면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발달 지연과 발달 장애는 전문가도 구분하기 어렵다고 하니, 걱정되신다면 반드시 전문가를 찾아보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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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누구나 볼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책이라고 합니다. 아마 양육자라면 공감하실 거예요. 아이 읽어주려고 펼쳤는데, 내가 더 감동한 경험 있으시잖아요. 오늘 소개할 책도 그런 책입니다.

“손녀 돼지는 혼자서 옥수수 귀리죽을 쑤었습니다. 그리고 한 그릇을 다 먹었습니다. 손녀 돼지는 그릇을 씻어 찬장에 넣었습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손녀 돼지는 죽음을 직감하고 삶을 정리 중인 할머니와 함께 막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길이었어요. 할머니를 침대에 눕히고, 혼자서 저녁을 차려 먹죠.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 죽어도 우리는 먹어야 합니다. 자야 하고요. 어쩔 수 없는 그 생명 현상이 야속하기도 하고, 또 경건하기도 합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수저를 들고 있는 손녀 돼지 모습이 가슴을 내려앉게 했죠.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 『할머니가 남긴 선물』은 아이보다 제 마음에 더 와 닿았습니다. 얼마 전에 저 역시 할머니와 영영 헤어졌거든요. 9살 아이는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책을 읽었지만, 중요한 장면의 의미를 알지는 못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오히려 “이 책 별로야”라고 말하기까지 했죠. 할머니 돼지는 죽고, 손녀 돼지 혼자 남겨졌으니까요.

그게 삶이라는 걸 9살 어린이가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오늘 읽은 이 이야기가 언젠가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겪을 때 분명 힘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와 이 책을 함께 읽었어요. 여러분도 아이와 함께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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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자가 필요한 모든 콘텐츠, hello! Parents에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다음주에도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금요일엔 hello! Par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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