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좋은 브랜드를 탐닉하는 윤경희 기자입니다. 코로나 19로 잠시 잃어버렸던 여행을 다시 찾아가고 있는 요즘입니다. ‘여행’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물건은 아마도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인 러기지(luggage)일 겁니다. 우리에겐 ‘트렁크’나 물건을 옮긴다는 의미의 ‘캐리어’란 말이 더 익숙한데요, 이 가방을 돌돌 끌고 시작하는 여정은 설레임 그 자체죠. 그런데 가방이라고 다 같은 가방이 아닙니다. 특히나 가방이 무겁거나 길이 험할 때는 ‘좋은 여행 가방’이 절실해 집니다. 물건의 안전한 보관과 내구성, 부드러운 바퀴의 움직임과 핸들의 고정력까지 기능적인 면은 물론이고, 여행의 감성을 높여주는 디자인과 브랜드 철학까지 놓칠 수 없습니다. 많은 여행 가방 중에서도 고급 여행 가방의 대명사는 바로 ‘리모와(RIMOWA)’죠. 오늘은 바로 이 리모와의 세계로 들어가보려 합니다.


올해 전개하는 리모와의 인제니어스쿤스트(Ingenieurskunst) 캠페인. 사진 리모와

여행용 러기지가 해외여행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민간 항공기 시대가 열리면서 비행기에 적재하기 적합한 딱딱한 사각 박스 모양의 캐리어가 각광받기 시작했죠. 이전까지의 박스형 가방과 다르게 끌고 다니기 좋게 바퀴도 달았고요. 이 안에 수트를 잘 접어 넣으면 주름지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어 ‘수트케이스’라고도 불립니다. 특히 세계의 부호들은 고급 수트케이스를 사용했는데요, 그 중에서도 초경량 은색 알루미늄 소재로 만든 러기지가 여행가방계의 럭셔리로 자리 잡았죠. 네, 맞습니다. 바로 리모와입니다.


럭셔리 캐리어의 시작

리모와는 1898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났습니다. 처음엔 나무로 만든 여행용 가방 회사였어요. 어느 날 공장에 화재가 나 모든 재료가 소실되고 알루미늄 금속 부품들만 남았죠. 이를 본 설립자 파울 모르스첵(Paul Morszeck)는 불에도 견디는 가벼운 금속을 이용한 여행용 가방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개발에 착수합니다. 이 즈음 아들 리차드 모르스첵이 사업을 함께 하게 되는데요. 그는 개발에 힘을 쏟은 결과, 1937년 금속 소재로 된 수트케이스를 발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아는 리모와 알루미늄 캐리어의 첫 모델입니다.

리모와란 이름은 당시 자신의 이름을 따서 바꾼 회사명 ‘리차드 모르스첵 바렌차이헨(Richard Morszeck Warenzeichen)’의 앞 글자를 딴 만든 것이에요. 바렌차이헨은 상표(트레이드마크)란 뜻의 독일어로, 한글로 풀이하면 ‘리차드 모르스첵 표’ 정도가 되겠네요.


그루브 디자인에 영감을 준 융커스의 비행기. 사진 리모와

리차드는 소재뿐아니라 디자인에서도 혁신을 이끌어냈어요. 1950년대 브랜드를 상징하는 디자인 ‘그루브’ 무늬를 가방에 접목했죠. 그루브는 길게 파인 홈(그루브)을 나란히 배치하는 디자인 스타일로, 동체 전체를 금속으로 만든 독일 항공사 융커스의 F13 비행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죠. 리차드는 이를 알루미늄 소재에 적용해 여행용 트렁크를 만들었고, 알루미늄의 가벼움과 견고함에 표면의 마모 방지와 미학적 가치까지 더합니다.

리모와의 알루미늄 러기지는 당시 영화감독과 사진작가 등 예술가들의 눈에 먼저 들어요. 부서지기 쉬운 고가의 촬영 장비를 가지고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 알루미늄 소재의 리모와 가방은 더 없이 좋은 보호장비였어요. 이들의 리모와 사랑에 창립자의 3대손인 디터 모르스첵은 1976년 세계 최초로 방수 처리된 열대 지방용 카메라 케이스를 개발하기도 했고요. 지구촌 각지를 돌며 가방에 상처가 날수록 오히려 리모와는 더 멋있어졌어요. 표면에 난 상처는 그만큼 여행을 많이 했다는 증표이기도 했으니까요. 감각 좋은 아티스트들이 사용하는 모습에 일반인들도 이 가방에 열광하게 되면서, 리모와는 럭셔리 캐리어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러기지에 담긴 진화한 그루브. 사진 리모와


독일 엔지니어링의 예술을 보여주다

리모와는 예술적인 캠페인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작가와의 협업으로 캐리어를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가방을 소재로 예술 작품을 만들기도 해요. 이를 통해 120년 넘게 이어온 혁신과 장인정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번엔 ‘독일 엔지니어링의 예술’을 주제로 한 캠페인 ‘인제니어스쿤스트(Ingenieurskunst, 엔지니어링의 예술)’를 전개하고 있어요. 독일의 엔지니어링은 세상 어느 곳으로든 평생의 여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리모와 캐리어의 본질이라는 것과 최고의 기능성을 보장해주는 소재 및 제조 공정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캠페인의 지금의 리모와를 있게 한 1930년대 ‘클래식’ 제품과 이를 소재로 만든 움직이는 키네틱 작품이에요. 설치 작품에는 실제 클래식 제품의 리벳 6000개, 양극산화 알루미늄 180장, 그리고 클래식 캐빈 수트케이스의 쉘(껍질)이 사용됐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들판의 풀처럼 알루미늄 판이 물결치고, 풍차의 한 부분처럼 수트케이스 쉘이 회전하는 등 로봇처럼 움직이는 키네틱 작품이 세계 곳곳을 순회하며 몰입형 AR체험이나 이미지로 보여져요. 예술로 독일 엔지니어링을 표현하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보여주죠.

캠페인의 설치 작품에 담겨 있는 의미도 놀라워요. 이번 키네틱은 제품에 들어가는 크롬, 매트 등 다양한 피니싱과 재질을 가진 재료들을 가지고 브랜드의 엔지니어들이 섬세한 수공업이나 중장비를 사용해 가방을 만드는 한편의 교향곡 같은 관계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리모와의 마케팅 본부장 에밀리 드 비티스는 “아이코닉한 러기지를 탄생시킨 철두철미한 장인정신에 대한 경의”라고 설명했어요.


움직이는 알루미늄 패널을 여러 개 배치해 만든 키네틱 작품. 사진 리모와


다프트 펑크, 아노말리 베를린... 창의성 담다

이번 캠페인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아노말리 베를린’과 협업했어요. 캠페인 필름에는 세계적인 일레트로닉 듀오 뮤지션 ‘다프트 펑크’의 곡 ‘어라운드 더 월드(Around the World)’를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했는데, 독일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가 관현악 버전으로 새롭게 연주했습니다. 리모와는 이 과정을 결혼을 뜻하는 독일어 “호흐차이트(Hochzeit)”라고 말했는데요, 리모와 엔지니어들이 하나의 가방을 만들기 위해 2개의 알루미늄 쉘을 처음으로 결합했던 순간을 그렇게 표현한다고 합니다.

캠페인과 함께 클래식 모델도 한층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했어요. 1930년대의 모습에 현대인의 여행 패턴을 녹여냈죠. 손잡이엔 그립감을 높여줄 수 있도록 가죽 핸들을 달고, 이를 파프리카·오션·허니 등 8가지 색상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어요. 이와 함께 바퀴도 사용자가 원하는 것으로 고를 수 있어 사용자의 취향에 맞게 커스텀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바퀴엔 완충 장치가 달린 축과 볼 베어링을 장착한 휠 시스템을 탑재해 안정성과 이동성을 높였고요. 미국 입국시 문제가 없도록 TSA(미국교통안전청) 잠금장치도 장착했어요. 이음새에 틈을 없앤 설계로 안전성도 높였습니다.


인제니어스쿤스트 캠페인의 소재가 된 ‘클래식’ 모델. 사진 리모와


비행기 활주로에 줄지어 인제니어스쿤스트 캠페인의 키네틱 작품. 사진 리모와


리모와는 올해 또다른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올해 7월부터 판매한 모든 수트케이스의 모든 기능을 평생 보장하는 ‘평생 보증 서비스’를 론칭한 겁니다. 일반적인 캐리어의 품질 보증 기간은 1년이죠. 여행의 평생 동반자가 되겠다는 리모와의 의지가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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