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또 다른 무신사의 공간 탄생


안녕하세요. 오늘의 비크닉을 전할 윤경희 기자입니다. 여러분 혹시 지난 주말 성수동 가보셨나요? 성수동의 '핫플' 리스트에서 또 한 곳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름하여 ‘E( )PTY(엠프티)’. 영문명 중간에 있는 괄호에 쌓인 빈칸( )은 오타가 아닙니다. 의도된 이름 표기, 맞습니다.

위치는 지하철 2호선 성수역 3번 출구에서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검은색 멋진 건물입니다. 원래 이곳은 ‘대신상사’라는 인쇄소가 있던 자리예요. ㅅ자 모양의 박공지붕 형태는 살리면서 건물 전체를 1년에 걸쳐 리모델링했어요. 브랜드 컬러인 검은색에 통유리를 사용해서 세련된 느낌을 잡았죠. 오늘은 이곳, 무신사의 새로운 공간을 들여다 봤습니다.


오래된 인쇄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성수동 엠프티. 사진 무신사


온라인 지존 무신사가 오프라인부터?


엠프티는 무신사가 새롭게 만든 온·오프라인 패션 커머스 플랫폼입니다.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잠재력이 있는 국내외 디자이너 브랜드를 집중해서 소개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디자이너들이 만든 옷·가방·액세서리 등을 모아 보여주는 감각적인 셀렉트샵(편집샵)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이번 성수동 매장은 엠프티의 오프라인 매장인데요, 오는 16일 온라인 플랫폼을 론칭하기 전에 먼저 공개했습니다.

자, 여기까지 봐도 기존 무신사와는 확실히 다른 점이 포착되지 않나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무신사가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이면서 ‘오프라인’을 가장 먼저 내세웠다는 겁니다. 이것은 확실히 무신사의 행보 중 새로운 실험입니다. 지난해 거래액 2조3000억원을 기록한, 국내 온라인 패션 커머스 생태계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무신사가 온라인에 앞서 오프라인으로 첫 단추를 끼웠으니 말입니다. 자신의 특기인 온라인 커머스에 더해 이번엔 오프라인 영역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인데요, 무신사의 새로운 꿈틀거림이 느껴집니다.

물론 무신사가 오프라인 공간을 선보이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미 지난해 홍대입구 인근에 무신사 스탠다드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 큰 성공을 거뒀어요. 이를 발판으로 올해 6월엔 강남역 부근에 2호점까지 확장했고요. 하지만 무신사 공간의 시작은 사실 공유 오피스 ‘무신사 스튜디오’부터로 봐야 해요.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국내 디자이너를 위한 공간으로, 동대문을 시작으로 지금은 성수동·한남동까지 3곳의 공간을 운영 중이랍니다. 앞서 2019년엔 무신사에 입점한 브랜드들의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홍대 경의선 숲길 인근에 만든 복합문화공간 '무신사 테라스'도 있었죠.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번 엠프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영역에서 각각 쌓아온 노하우를 한데 결합한 완전체로 보여요. 따로 놀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탄생부터 하나로 묶었어요.



무신사 스탠다드 스토어 홍대점. 사진 무신사


무탠으로 공부했다


바로 이전 작(作)인 무신사 스탠다드 스토어를 먼저 살펴볼게요. 무신사 스탠다드 스토어는 오픈한 지 1년 만에 100만명 이상이 다녀갔을 정도로 성공을 거뒀어요(홍대점 기준). 2호점인 강남점이 오픈하는 날도 입장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설 만큼 인기를 끌었죠. 하지만 이곳은 온라인에서 이미 5년 차에 접어든 ‘검증된’ 브랜드를 들고 나간 공간이었어요. 

무신사 스탠다드는 최초 연간 거래액 1조원의 원동력이 될 만큼 브랜드 인큐베이팅, 디자이너 협업, 물류통합시스템까지 무신사가 가진 노하우를 쏟아부은 자체 브랜드(PB)예요. 2017년에 시작해 이미 무신사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할 만큼 성공했죠. 

그런데 무신사는 왜 온라인에서 성공한 PB를 들고 오프라인 세계로 나갔을까요. 홍대점을 냈던 지난해 상황을 보면, 무신사는 그 1년 전인 2020년 이미 매출 3319억원에 영업이익 455억원을 넘길 만큼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어요. 10~20대 남성 소비자를 정조준한 무신사 스탠다드의 슬랙스(양복바지)는 이미 100만장 이상 팔린 상태였고요. 하지만 온라인 시장에도 한계는 있죠. 전년 대비 51%라는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선 고객과의 접점을 확대하기 위한 새로운 채널을 도입하는 게 필요했어요. 이때 선택한 게 바로 오프라인 매장이었습니다.

고객 입장에서도 무신사의 오프라인 매장은 반가웠어요.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을 좋아하는 지금 소비자들에게 온라인에서 익숙한 브랜드를 몸으로 ‘경험’하는 새로운 공간이 생긴 것이니까요. 브랜드를 몰랐던 사람에겐 온라인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를 처음 만나는 기회이기도 했죠.

다시 무신사의 입장으로 돌아오면, 무신사 스탠다드 스토어는 온라인의 오프라인 확장 실험이었어요. 이미 성공한 ‘내 브랜드’를 기반으로 하기에, 어느 정도의 성공은 분명 자신할 수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대표 상품 슬랙스는 오프라인 확장 후 더 많이 팔려서 지금까지 누적판매 300만장을 기록했습니다.

또 다른 공간 무신사 테라스는 형태로만 보면 엠프티와 가장 가까워요. 입점 브랜드의 옷과 콘텐트를 오프라인에서 보여준다는 것을 대전제로 잡고 있거든요. 무신사 테라스는 팝업스토어와 페스티벌 등 브랜드가 자신의 콘텐트를 보여줄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임을 내세웁니다. 무신사는 테라스의 입점 브랜드를 별도 카테고리로 정리해 운영하는 등 이곳에서 온·오프라인 융합을 위한 여러 실험을 했어요. 무신사 테라스로 실험 결과를 얻고(1단계), 이를 기반으로 무신사 스탠다드 스토어를 열어 성공적인 오프라인 매장 운영 경험(2단계)을 축적했죠. 이렇게 쌓은 노하우를 응집한 결과물이 바로 엠프티(3단계)인 겁니다.


엠프티 1층은 해외 디자이너 브랜드를 주로 선보인다. 사진 무신사


새로운 실험, 디자이너 편집샵


지난 3일 공개한 성수동 엠프티 매장은 ‘국내와 해외 시장을 아울러 패션과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하는 독창적인 셀렉트숍’을 표방하고 있어요. 무신사가 "기성 틀에 얽매이지 않고 실험적인 작업을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담은 새로운 도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깁니다. 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었을까요. 해외 브랜드를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미 명품을 소개하는 ‘무신사 부티크’도 있는데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엠프티를 총괄하는 전영용 무신사 트레이딩 브랜드 사업본부장이 해줬어요.

덩치가 큰 무신사는 이제 메인 스트림(주류 패션)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소개하고 싶은 디자이너 브랜드와 편집숍은 감도가 중요한데, 그것을 담을 수 있는 별도의 그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국내 브랜드만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어 해외 디자이너에까지 영역 제한을 두고 싶지 않았어요. 대만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제3세계 브랜드도 조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거든요.”

엠프티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진정성 있는 브랜드로 채워 나가겠다는 의미를 이름에 담았어요. 이미 유명한 브랜드보다 자신만의 철학을 보유한 브랜드를 중심으로 큐레이션을 선보이겠다는 것이죠. 시작을 함께 한 브랜드는 약 60여 개 정도, 내년 봄·여름 시즌은 80개까지 늘릴 예정입니다. 구성은 해외 디자이너 브랜드 70%, 나머지 30%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잠재력 있는 국내 브랜드로 채웠어요. 브랜드 선택 기준은 무엇보다 스토리텔링! 지금 매장에서 보여주는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 '아뜰리에 미미' '미스타' '나타샤 징코'가 바로 이 기준으로 선택한 브랜드들입니다. 전 사업본부장은 “내년엔 영국의 도버스트리트 마켓과 공식 협약을 맺고, 런던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봄 시즌부터 선보일 예정”이라고 귀띔해줬어요.


박공지붕 모양까지 그대로 살린 엠프티 1층의 LED패널. 사진 무신사


무신사, 다 계획이 있구나


여기까지 살펴본 엠프티는 시작부터 글로벌을 타깃으로 하고 있었어요. 온라인 플랫폼의 영문 버전을 동시에 론칭하는 이유도 한국 브랜드는 해외에, 해외 브랜드는 국내에 소개하겠다는 목적이 있죠. 한국에서 벗어나 이젠 글로벌 커머스 플랫폼으로 발돋움 하고 있었습니다.

엠프티의 전개 주체에서도 전략이 녹아 있어요. 엠프티는 무신사의 자회사 '무신사 트레이딩'이 전개해요. 전신은 알파인더스트리·로우로우 등 여러 패션 브랜드의 온라인 총판을 가진 '이누인터내셔날'로, 무신사가 2019년 인수해 플랫폼에서 소개할 해외 브랜드를 선별, 연결하는 창구로 운영하다가 지난달 초 사명을 아예 무신사 트레이딩으로 바꿨어요. 20년 가까이 해외 브랜드를 수입 전개한 업력을 가진 회사로 탄탄하게 엠프티의 초석을 세운 겁니다. 회사가 다른 만큼 엠프티는 독립된 플랫폼이자 커머스 브랜드로 운영해요. 본체인 무신사가 가진 브랜드 유통·마케팅 인프라는 지원받지만요. 

엠프티의 공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층에 있는 가로 11m 세로 6m 규모의 LED 미디어 파사드예요. 박공지붕 모양까지 그대로 살린 화면인데, 여기에 엠프티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디지털 영상으로 보여줘요. 매장에 들어간 사람이 뒤를 돌아보면, 현실과 완전히 구분된 온전한 ‘엠프티 월드’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죠.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들어와 뒤를 돌아보는 것처럼요.


옷과 함께 보여주는 아트북과 프린트 베이커리의 아트피스들. 사진 무신사


결국은 콘텐츠.


이 화면을 보고 엠프티에 대한 많은 물음표가 해소되는 기분을 느꼈어요. ‘왜 그 어렵다는 해외 디자이너 편집샵을 할까’ ‘왜 공간부터 열었을까’ 같은 질문에 미디어 파사드를 통해 ‘콘텐트’라는 답을 내놓더군요. 무신사가 잘하는 10~20대가 함께 즐기는 패션 콘텐트를 만드는 거잖아요. 해외 패션 브랜드에 무신사의 콘텐트를 입히는 작업이 이곳에서 벌어질 것이라는 걸 의심할 필요가 없었어요.

처음부터 일반적인 것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의 미션 중 하나는 ‘브랜드를 가장 예쁘게 보여주는 스팟’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오프라인 공간 구성 원칙에 따르지 않았고, 나라나 남성·여성도 구분하지 않고 걸었어요. 쇼핑백도 매 시즌 다르게 디자인해요. 이런 모든 것이 하나의 콘텐트라고 생각하거든요.” _전영용 무신사 트레이딩 브랜드 사업본부장

국내 브랜드 소개도 소홀하진 않았어요. 눈에 띄는 것은 무신사가 엠프티를 통해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와 협업한 상품을 소개한다는 계획인데요. 이미 충성도 높은 여성 고객을 보유한 '유노이아’와는 단독으로 남성 라인을 선보였어요. 또 다른 여성복 ‘2000아카이브’와는 단독 상품을 출시하고 콘텐트를 협업한답니다. 

지금 국내에 있는 국내외 디자이너 브랜드 중심의 굵직한 패션 편집숍은 신세계의 분더샵, 삼성물산 패션 부문의 텐꼬르소꼬모와 비이커 정도를 꼽을 수 있어요. 여기엔 이유가 있는데, 패션으로 잔뼈가 굵은 대기업들이 아니고서는 디자이너 편집샵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취급하는 제품은 소비자에게 ‘잘 모르는 브랜드인데, 가격은 비싸다’는 평을 피하기 힘들거든요. 하지만 감도를 유지하기 위해 매 시즌 새로운 상품을 선보여야 해서 운영사 입장에선 재고 부담이 상당합니다. 그렇다고 한 점만 팔아도 매장이 유지될 정도로 상품 가격이 비싼 건 또 아니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선 편집숍의 생명력이 길지 않았어요.

과연 엠프티는 어떻게 될까요. 저는 ‘무신사니까 오히려 잘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걸어보고 싶습니다.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에도 좋은 토종 편집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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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과 짜증, 이웃이나 친구에 대한 험담, 아니면 희망과 영적 담소를 나누기도 하겠지요. 서로 나누고 있는 그 무엇이 바로 우리의 내면 풍경일 겁니다.” 쉬운 언어로 종교를 넘어 마음을 돌아보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 흔들리는 마음에게’ 속 구절입니다. (원문 보기)

이번 추석에는 가족들과 따뜻한 이야기 나누는 즐거운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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