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좀 더 나은 삶,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를 쫓아갑니다. 'Voice Matters' 김민정 기자입니다.

요즘 어디에 가나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얘기입니다. 천재적인 두뇌,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지닌 신입 변호사 우영우의 성장기를 담은 16부작 드라마인데요. 매회 저도 드라마의 호흡을 따라가며 미처 깨닫지 못한 제 편견을 마주합니다.

압도적인 우영우의 재능에 번번이 좌절하다 '공정'이란 단어를 활용해 역차별론을 펼치는 '권모술수' 권민우, 왠지 모를 질투심이 깔려 있지만 회전문을 제대로 지나지 못하는 우영우를 기꺼이 돕는 '봄날의 햇살' 같은 최수연 등 실제 우리 주변에서 만날 법한 인물이 드라마에 잘 녹아져 있습니다.

드라마에 대한 여러 평들이 SNS에 올라오는데요. 그 중 유독 눈길을 끄는 게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권모술수 권민우처럼 살면서 본인이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 줄 안다"는 촌철살인의 의견이었어요. 뜨끔한 부분도 있지만, 무심한 듯 세심하게 우영우의 곁에서 따뜻한 도움을 건네는 최수연에 아낌 없는 지지를 보내고 그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 만으로 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긍정적 신호라 읽힙니다.

[사진 픽사베이]

본성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내적 다툼을 하며 편견을 깨부수고자 노력하는 '워너비(Wanna Be) 최수연'을 위해 비크닉 Voice Matters는 D&I(Diversity & Inclusion,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D&I는 신체적 특성, 인종, 나이, 성별 등에 관계없이 각기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품는 것을 말하는데요. 의도하건 하지 않았건 사회와 일상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밑바탕이 돼야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우리가 매일 입고 생활하는 옷에 대해 얘기하려 합니다.


관심 밖의 500조 시장

옷은 우리 몸을 보호함과 동시에 때때로 나의 정체성과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먹고 때와 장소, 목적에 맞는 멋진 옷을 고를 선택지는 많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죠. 스스로 옷을 입고 벗기 어려운 지체 장애인이나 휠체어 사용자들에게는 내게 꼭 맞는 옷 한 벌을 손에 넣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선택할 수 있는 브랜드의 수도 절대적으로 적어요. 장애가 있어도 몸이 불편해도 내가 관심 있는 브랜드에서 내 체형, 모습에 어울리는 옷을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건 정말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일까요?

다행히 타미 힐피거를 비롯해 글로벌 브랜드 몇 몇은 이 같은 목소리에 화답했습니다. 지난 2016년 타미 힐피거는 비영리단체 런웨이 오브 드림(Runway of Dream)과 함께 장애 아동을 위한 의류 라인 '타미 어댑티브(Tommy Adaptive)'를 출시했는데요. 이후 꾸준히 관련 커뮤니티와 소통하며 매 시즌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핵심은 장애인, 비장애인 경계 없이 모두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어댑티브(Adaptive, 적응형) 패션을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타미 힐피거가 장애 아동을 위해 출시한 '타미 어댑티브' 라인. [사진 타미 힐피거 홈페이지 캡처]

글로벌 시장 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어댑티브 패션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3340억 달러(434조원)로 집계됐다고 하는데요. 2026년에는 4000억 달러(500조원)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시장에서 국내 패션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포용의 패션이 미국 또는 영국 등 유럽을 중심으로 활성화돼 있지만 국내 패션 시장에서는 여전히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죠. 관심 밖의 500조 시장인 겁니다.


'모든 몸'을 위한 패션

국내에서도 지난 2019년 '포용의 패션'을 여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장애인 전문 비즈니스 캐주얼을 내세운 브랜드 '하티스트'가 생겨난 건데요. 삼성물산 패션부문에서 내놓은 이 브랜드는 따뜻한 마음(heart)을 지닌 아티스트(Artist)들이 모여 뜻 깊은 일을 해낸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뜻 깊은 일'이라는 건 장애가 있건 없건 모든 사람, 모든 몸을 위한 패션을 추구한다는 의미입니다.

멋스러운 디자인뿐 아니라 장시간 앉아있고, 상체를 주로 쓰는 휠체어 사용자들을 위한 기능적 요소까지 꼼꼼히 고려하기 위해 패션 전문가, 재활의학과 전문의, 장애인 먼저실천운동본부 등과 협업 했습니다. 장애인을 앰배서더(홍보대사)로 선정해 홍보뿐 아니라 실제 제품 연구 개발에도 의견을 보탤 기회를 주기도 했고요. '장애인과 함께 제품을 만드는 것이지 그냥 그들을 위해서만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다'라는 브랜드의 지향점을 실현한 것입니다.

소매 접합 부분에 신축성 있는 원단을 사용해 활동하기 편하게 만든 액션 밴드, 붙였다 뗐다 쉽게 할 수 있는 마그네틱 버튼, 유린백(소변백) 등 보조기구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한 벨크로(찍찍이) 여밈 바지 밑단 등은 모두가 함께 고민한 결과물입니다.

지퍼 부분에 고리 스트링(사진 왼쪽)을 만들고, 바지 밑단을 벨크로(찍찍이) 여밈으로 처리해 몸이 불편한 이들도 쉽게 옷을 입고 벗을 수 있다. [사진 삼성물산 하티스트]


하티스트는 이제 출시 4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냉정히 말해 영업이익을 내는 구조는 아닙니다. 비이커 등 삼성물산 여타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의류와 동일한 고급 원자재를 사용해 생산하지만 제품가는 대폭 낮춰 판매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현재 삼성물산 온라인몰(SSF)을 통해서만 판매하고 있는데, 구매자의 편의를 위해 배송도 모두 무료로 해줍니다.

숫자로만 보면 일찌감치 접었어야 할 사업이지만 하티스트는 그냥 뚜벅뚜벅 지금처럼 걸어 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브랜드 론칭부터 상품기획을 담당해온 부정연 수석은 "고객 중 한 분이 하티스트 옷을 입고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얘기했다"며 "왜 이 브랜드를 끝까지 지속해야 하는지 그 답을 알려 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삼성물산 하티스트의 2022년 SS(봄여름) 라인. [사진 삼성물산]


"눈 뭉치를 같이 굴려요"

하티스트는 계속해서 뜻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지금은 20~40대를 타깃으로 한 비즈니스 캐주얼을 선보이지만, 앞으로 아동복 라인까지 확장할 계획도 있다고 하네요. 올해는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적극적인 협업도 한답니다.

국내 최대 온라인 패션 플랫폼 한 곳과 장애인·비장애인 상관없이 누구나 편하고 멋스럽게 소화할 수 있는 '슬랙스(정장바지)' 라인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현재 하티스트 브랜드 매출의 40% 이상이 바지라고 하는데요. 협업 하는 패션 플랫폼 역시 자체 브랜드를 내놓고 슬랙스 라인에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하티스트와 협업 결과물이 어떤 따뜻한 바람을 일으킬지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당장 오는 10월에는 발달 장애인을 위한 공기 주입 조끼(베스트)를 만드는 소셜벤처 '돌봄드림'과 협업 결과물을 내놓는데요. 대개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아이들은 환경에 민감하거나 유난히 섬세한 감각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민감성은 때때로 과도한 자극으로 이어져 오감 중 하나 이상이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게 자극되는 감각 과부하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 감각 과부하를 덜기 위해 담요 등으로 몸을 감싸거나 압박 조끼를 착용케 하는 등 깊은 압력을 주는데요. 적절한 압박으로 누군가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을 전하는 것이지요. 심부 압박으로 착용자에게 안정감을 주는 돌봄드림의 공기 주입식 조끼 '허기(HUGgy)'가 이와 같은 겁니다. 이 조끼에 삼성물산의 감각적 디자인 등이 더해져 곧 세상에 나올 예정입니다.

부 수석은 대화를 이어가는 중간중간 "눈 뭉치를 같이 굴리자"는 말을 자주 했는데요. 포용의 패션을 널리 알리고 필요로 하는 곳에 잘 닿게 하기 위해서는 여럿의 힘이 필요하다는 말이겠지요. 장애인의 적극성, 활동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헬스케어 등 다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스타트업들과 적극적인 협업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습니다.

하티스트 앰배서더(홍보대사)가 활동하기 편한 바지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삼성물산]


포용의 힘

신체적 특성 등에 관계없이 각자의 존재 방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포용은 단순히 착한 일, 자선활동이 아닙니다. 1808년 이탈리아 발명가 펠레그리노 투리가 세계 최초의 타자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도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여자 친구를 위한 포용에서 시작됐죠. 있는 그대로 그를 품으며 시력을 잃어도 힘겹지 않게 글을 써 내려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겁니다. 포용의 힘이 사회를 혁신 하는 마중물이 됐다는 건 이렇듯 이미 오래 전 증명이 된 셈이죠. 기회를 찾고 시장을 확대할 창의적인 무언가를 바라나요? 그렇다면 해답은 분명합니다. 포용의 힘을 느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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