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얇은 노란 봉지 속 커피∙크림∙설탕의 황금비율, 뜨거운 물을 붓고 대충 휙휙 저으면 완성되는 한 잔의 차. 집과 회사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믹스커피의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원두커피가 인기라지만 가끔 달달한 믹스커피가 생각나는 날이 있어요. 조금 지치고 당 충전을 하고 싶을 때요. 구멍 송송 뚫린 네모난 비스킷을 푹 담가 먹는 재미도 있죠.

그런데 믹스커피가 한국의 발명품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976년 동서식품이 세계 최초로 만들었어요. 우리나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덕분에 한국인의 삶 속에 빠르게 파고들 수 있었죠. 지금은 원두커피에 밀려 예전만큼 존재감을 드러내진 못하지만, 믹스커피는 여전히 한 해 60억개씩(2021년 기준) 팔리는 국민 기호식품이에요.

오늘 비크닉에서는 믹스커피를 재해석한 브랜드 ‘뉴믹스커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뉴믹스커피는 ‘배달의민족’을 만든 김봉진 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새로 창업한 ‘그란데클립’에서 만들었어요. '클립처럼 사소한 것에서 가치를 찾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은 사명처럼, 매일 마시는 커피를 첫 무기로 내세웠죠. 지난 10일 현장을 찾아, 기획을 총괄한 김규림 그란데클립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만나봤어요.

뉴믹스커피 스틱. 사진 뉴믹스커피


광활한 우주가 펼쳐지는 3평짜리 공간

처음엔 믹스커피를 판다고 해서 옛날 다방 분위기를 재현했을 거라 생각했어요. 낡은 간판에 쓰인 촌스러운 글씨체부터 낡고 빛바랜 색깔의 소파, 7080 노래로 가득 찬 공간을 상상했죠. 뉴믹스카페 개업 안내 초대장에도 옛날 커피 자판기를 재현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상상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언뜻 보면 세련된 차 선물 가게 같은데, 들어가 보면 마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듯해요. 바닥에 깔린 블랙홀 무늬 미디어월과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 때문에 공간이 마치 계속 확장되는 것 같았죠. 고작 3평짜리 공간인데 광활한 우주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노래는 또 어떻고요. 밖에서 볼 땐 고요한 줄 알았던 공간에 처음 발 딛는 순간 강렬한 DJ 믹스음악이 귀를 두드려요.

전면이 거울로 이루어진 '뉴믹스커피' 내부 벽면. 서혜빈 기자

“카페에 입장하자마자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별거 아닌 믹스커피 한 잔 마시러 들어왔다가 공간에 완전히 압도될 수 있도록 이요.”

이렇게 강렬하고 역동적인 분위기로 공간을 꾸민 이유가 있대요. 공사장에서 열심히 일한 뒤 한 잔, 신나게 서핑한 뒤 한 잔. 믹스커피는 열정적인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빠르게 당 충전을 하고 싶을 때 찾는 음료예요. ‘100mL짜리 에너지 드링크’인 셈이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명상하듯 마셔야 하는드립 커피는 완전히 달라요. 믹스커피를 마실 때 사람들이 느끼는 역동성을 공간에 구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블랙홀 무늬 미디어 월로 이루어진 뉴믹스커피 내부. 사진 뉴믹스커피


‘한국다움’을 재정의하다…뉴코리안 스타일

뉴믹스커피가 믹스커피를 주요 메뉴로 선택한 이유가 있어요. 가장 ‘한국적인’ 음료라서죠. 의문이 들죠? 한국적인 음료라고 하면 식혜·미숫가루·수정과가 먼저 떠오르니까요. 김 디렉터는 기획 단계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대요. “과연 우리가 매일 마시는 음료가 식혜일까?” 곧바로 정답을 찾았죠. 바로 커피요. 요즘 한국인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음료니까요. 커피 세계 소비량 2위를 기록할 정도로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대단하죠.

“한국인은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게 아니라 타 마셨답니다”

김 디렉터는 다양한 커피 중에서도 믹스커피를 고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어요. 직관적이고 단순한 맛. 스페셜티 커피처럼 어렵게 공부하지 않아도 되죠. 믹스커피야 말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즐기는 대중의 맛이라고 생각했대요. 대신 ‘뉴믹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적인 맛을 더해 신메뉴를 개발했어요. 익숙한 듯 새로운 경험을 주기 위해서죠. 볶은쌀∙군밤∙녹차 맛 커피와 슬러시 커피가 탄생한 배경입니다.

군밤과 볶은쌀맛 믹스커피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간식. 서혜빈 기자

뉴믹스커피가 이렇게 ‘한국다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해외진출이 꿈이거든요. 우리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이 외국인의 마음을 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거죠. 마치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베트남 다람쥐똥 커피처럼 대표적인 한국 커피는 믹스커피라는 인식을 주고 싶었대요.

서울 성수동에 믹스커피 전문점을 연 '뉴믹스커피'. 서혜빈 기자

1호점을 성수동에 낸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외여행 가면 그 나라의 유적지를 방문하면서도 젊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에 가잖아요. 소위 ‘힙한’ 장소에서 요즘 그 나라의 문화를 흠뻑 느낄 수 있으니까요.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죠. 경복궁·인사동 같은 전통적인 공간만이 아니라 홍대·성수동에서도 한국을 느낀다고 해요. 실제로 BC카드가 지난 2월 발표한 ‘외국인 관광객 소비 트렌드’에 따르면, 2019년 대비 지난해 성수동의 외국인 매출 건수가 973% 증가했다고 합니다.

“한국적인 것과 한국다운 것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외국인들은 요즘 한국을 세련된 이미지로 봐요. 성수동이야말로 뉴코리안 스타일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이죠.”


사소함의 위대함, 배민 김봉진의 실험

김봉진 대표는 지난해 7월 우아한형제들을 그만두면서 알찬 중소기업을 여러 개 만들겠다고 발표했어요. 그란데클립은 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인 거죠. 회사는 6개 팀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각 팀은 사람들의 일상을 바꿀 수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실험하고, 구현하죠. 마치 창업팀처럼 일한다고 해서 팀을 ‘창업 캠프’라고 비유한대요. 뉴믹스커피는 6개 팀 중 세상에 첫 번째 도전장을 팀입니다. 김 대표는 뉴믹스커피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재밌다. 이걸로 가자”라고 호응했대요. 공간 벽면을 거울로 가득 채운 것도 김 대표의 아이디어였다고 합니다. 김 디렉터는 회사와 브랜드의 연결고리를 이렇게 설명해요.

김봉진 전 우아한형제들 대표. 사진 중앙일보

“작은 것을 포착해서 크게 키우는 과정. 우리 주변에 항상 있기 때문에 너무나 익숙해서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을 발견하는 일. 본연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움을 줄 수 있는 힘. 뉴믹스커피와 그란데클립 모토가 연결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뉴믹스커피' 팀이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 사진 김규림 디렉터 블로그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즐기는 믹스커피 한 잔

김 디렉터에게 브랜드의 미래를 물었어요. 재미난 대답이 돌아왔죠.

“뉴욕 월가 증권맨들이 증시 마감 후 마시는 음료가 되면 좋겠어요. 업무를 하얗게 불태운 뒤 찾는 에너지 드링크처럼 뉴믹스커피가 자연스럽게 생각나면 좋겠어요.”

세계를 향한 도전은 올해 말 시작될 거예요. 첫 진출 국가로 싱가포르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해요. 과연 뉴믹스커피는 외국인들이 찾는 한국 대표 커피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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