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게 월드컵…아르헨 꺾은 사우디, 8년간 싸운 반군도 축하 [Focus 인사이드]

    이런게 월드컵…아르헨 꺾은 사우디, 8년간 싸운 반군도 축하 [Focus 인사이드]

     ━  전쟁의 빌미     1969년 7월 14일, 엘살바도르가 전격적으로 온두라스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온두라스에 거주하는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동안 양국은 전쟁으로 풀어야 할 만큼 쌓인 감정이 많았다. 기습의 효과에 힘입어 엘살바도르로가 초반에 우세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선이 정체됐다. 이때 미주기구(OAS)가 개입하며 7월 18일 정전이 이뤄졌다. 이처럼 나흘 동안 벌어져서 100시간 전쟁이라고 한다.   양측 합쳐 300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나왔을 만큼 비극적인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단지 군사적인 관점에서만 보자면 기간이 짧은 데다 규모도 작아서 제한적인 분쟁 수준이다. 20세기에 벌어진 수많은 여타 전쟁들과 비교한다면 어쩌면 소소한 사건으로 취급될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이 전쟁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유는 ‘축구전쟁(Guerra del Futbol)’으로 더 많이 알려졌을 만큼 축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온두라스에서 열린 멕시코 월드컵 중미 최종 예선 1차전의 모습. 사이가 나빴던 두 국가가 세 차례의 경기를 치르면서 상대에 대한 증오심이 증폭되었고 결국 전쟁을 벌였다. 트위터   그것도 4년마다 지구인을 미치게 만드는 FIFA 월드컵(월드컵)과 관련이 많다. 양국은 제9회 멕시코 대회 중미 예선 최종전에서 맞섰다. 앞서 언급처럼 워낙 사이가 나쁘다 보니 양국을 오가며 벌인 경기는 상당히 치열했다. 반칙이 난무한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고 원정 응원단이나 자국에 거주하는 상대 국민에 대한 테러까지 자행될 정도였다. 결국 제3국에서 최종전까지 벌이며 승패를 갈랐다.   축구전쟁 당시 엘살바도로군을 선봉에서 이끈 호세 메드라노. 온두라스에서는 침략자의 수괴로 엘살바도르에서는 학살당하는 자국민을 구한 영웅으로 여겨진다. 위키피디아   하지만 단교까지 할 만큼 예선전을 치르면서 양국 국민이 격앙됐고 결국 전쟁이 발발하기에 이르렀다. 갈등이 많이 내재한 상태이기는 했어도 어처구니없게도 월드컵이 전쟁의 도화선이 돼버린 셈이었다. 결과론이지만 당시 정황상 경기가 없었다면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전쟁을 벌일 구실이 될 만큼 축구에 흥분하는 이가 많고 그중에서도 월드컵의 위상이 대단하다는 의미다.   월드컵은 내셔널리즘이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엄청난 경쟁의 장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후 전체주의 이미지가 연상될까 우려해서 국가나 민족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는 독일 같은 경우도 월드컵에서만큼은 예외일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축구가 전쟁의 구실이 됐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 없는 엄청난 잘못이다. 오히려 건전한 경쟁을 통해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월드컵의 진정한 목적이다.    ━  평화의 도구     실제로 월드컵을 매개로 전쟁이나 분쟁을 멈춘 사례도 있다. 2002년 제17회 한국-일본 대회에서 브라질이 우승하자 카리브 해의 섬나라인 아이티가 이틀간 국가 휴일을 선포했다. 그 정도로 인기가 대단한 브라질 대표팀이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의 인솔로 2004년 현지를 방문해 아이티팀과 친선경기를 벌였다. 당시 브라질은 내전 중이던 아이티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했었는데 치안 유지에 애를 먹자 자국 대표팀을 동원한 것이었다.   이때 브라질은 무장 세력들에게 불법 무기를 반납하면 입장권을 준다는 흥미로운 미끼를 내세웠다.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적대시하며 싸워왔기에 무기 회수율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브라질 대표팀 방문 기간만큼은 무장 세력 간의 교전이 없었다. 경기 당일에는 경기장과 그 주변에 무려 10만의 관중이 운집했음에도 오로지 좋아하는 브라질팀을 응원하는 함성만 있었을 뿐이었다.   UN 평화유지군 장갑차를 타고 시내 퍼레이드중인 브라질 대표팀을 환영하는 아이티 시민들. 2002년 월드컵 우승팀의 방문으로 잠시간의 평화가 이어졌다. 브라질 축구협회   2006년 제18회 독일 대회가 열리기 직전에 코트디부아르팀 주장인 디디에 드로그바가 내전 중인 모국의 현실이 슬퍼서 전쟁 관계자들에게 경기 기간만이라도 싸움을 중지해 달라고 카메라 앞에서 애원했다. 결국 그의 노력이 받아들여 총성이 극적으로 멈추는 기적이 연출됐다. 비록 일주일의 짧았던 휴전이었지만, 자국 출신 슈퍼스타의 호소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이었다.   TV에 출연해 무릎을 꿇고 전쟁 중지를 호소하는 디디에 드로그바. 그의 절규가 커다란 울림이되어 월드컵 기간 중 일주일간 내전이 멈추었다. StMU Research Scholars   올해 제22회 카타르 대회에서도 그런 좋은 풍경이 보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를 격파하는 이변이 나오자 세계인이 열광했다. 많은 곳에서 축하가 답지했는데, 그중에는 지난 4월에 휴전할 때까지 8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와 전쟁을 벌였던 예멘 후티 반군 지도자까지도 있었다. 이런 사례들이 바로 월드컵의 진정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대회 때는 참가국을 모으기 급급했을 정도로 조촐하게 출발한 월드컵은 어느덧 세계인이 즐기는 거대한 축제의 장이 됐다. 본선에 참가하지 못한 나라의 시민이라도 단지 축구가 좋기에 경기를 보고 즐길 정도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2022.11.28 05:01

  • '빈 살만 효과' 성공하려면…무기 판매만 초점? 그러다 뒤쳐진다 [Focus 인사이드]

    '빈 살만 효과' 성공하려면…무기 판매만 초점? 그러다 뒤쳐진다 [Focus 인사이드]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방한으로 우리나라 업체들이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인 네옴시티 수주 등 좋은 성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에 의하면, 왕세자가 네옴 시티 건설 외에도 방산ㆍ원전ㆍ문화관광ㆍ수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파트너십 추진에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나서야 한다.   이달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오른쪽부터)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등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SPA 캡처    ━  사우디 변혁을 위한 비전 2030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성과를 얻으려면 빈살만 왕세자가 밀고 있는 ‘비전 2030’을 알아야 한다. 비전 2030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을 다룬다며 2016년 4월 25일 발표한 국가적인 프로젝트다. 비전 2030은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에서 벗어나고, 경제 성장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비전 2030 로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비전 2030은 ‘활기찬 사회’, ‘번영하는 경제’, ‘진취적인 국가’라는 3대 영역에 걸쳐 1단계인 주요 목표(Overarching objectives) 6가지, 2단계인 분기 목표(branch objectives) 27가지, 3단계인 전략 목표(strategic objectives) 96가지를 선정했다.   이를 뒷받침할 하부 구상에는 2030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 민간 부문에 1조 3000억 달러를 투자하는 샤렉 프로그램, 2024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기반을 두지 않는 외국 기업과 계약 체결을 중단하는 프로젝트 HQ 구상, 그리고 공공 및 민간 부문의 파트너와 협력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상품과 서비스가 국제적으로 선호되도록 만들려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이드 구상이 있다.    ━  방위산업 육성 노리는 사우디     사우디아라비아는 2021년 기준으로 국방비 지출 세계 6위지만, 무기 도입에서 세계 2위일 정도로 방위산업 역량이 미약하다. 빈살만 왕세자는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군 군사 구매의 50%를 자국 업체에서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국에 많은 공장 그리고 일할 인력이 필요하다.   사우디아라비아 방위산업 육성을 책임질 SAMI(좌)와 GAMI(우). 사우디아리바이정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비전 2030 발표 이전에도 방위산업 육성 전략을 추진하고 있었다. 2012년 5월, 당시 국방부 차관이었던 칼리드 빈 술탄 왕자는 방위산업을 육성하여 중요 핵심 부품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인력 문제로 많은 발전은 기대할 수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2017년 5월, 국영 방위산업 대기업 사우디아라비아 군사산업(SAMI)을, 같은 해 8월에는 우리나라 방위산업청에 해당하는 군수공업총국(GAMI)을 설립했다. SAMI와 GAMI가 본격적으로 해외의 무기 제작업체와의 합작기업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에도 많은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  해외 업체와 협력에 의존하는 상황     SAMI와 GAMI의 설립으로 자국에 세워진 업체들에 직접 투자할 길이 열리면서 차차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군용 무인항공기를 제작하는 자국 업체들과 잇달아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2019년 4월, 사우디에서 조립되어 출고된 첫 호크 훈련기 앞에 선 빈 살만 왕세자. 출처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   그러나, 자국 기업들이 만든 무인항공기는 운용하고 있는 전체 무기와 장비에서 볼 때 미미한 숫자에 불과하다. 비전 2030을 위해서는 자신들이 도입했거나 도입할 무기와 장비를 제작한 국가와 회사들과 협력은 필수적이다.     현지 합작 기업들은 성과를 내고 있다. 2019년 4월 초, 영국의 BAE 시스템에 주문한 호크 Mk165 제트훈련기 22대를 현지에서 조립 생산하여 출고했다. 2022년 3월에는 미국 록히드마틴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에 사용되는 요격미사일 발사기와 캐니스터를 사우디에서 제작하기로 했다. 레이시언 테크놀로지스와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용 부품을 현지 생산하기로 했다.     사우디는 이렇게 외국 기업들과 협력을 통해 자국 업체들의 방위산업 기술 습득과 인력에 대한 숙련을 모두 잡으려 하고 있다.    ━  아랍에미리트와 경쟁 구도 불가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자신들이 육성하는 방위산업이 걸프 지역 이슬람 국가들의 협력체인 걸프 협력 기구(GCC) 회원국과 협력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2020년 9월, GAMI 수장은 자신들의 연구 개발, 교육 및 모범 사례 공유를 통해 방위 부문 전반에 걸쳐 GCC 회원국 사이의 노력을 통합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외국 회사가 합작 기업의 형태로 진출하도록 하고 있다. SAMI   그러나, 이런 전략은 앞서 자체 방위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와 경쟁 구도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UAE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방위사업 육성에 나섰고, 현재는 국영 방위산업 대기업 엣지(EDGE), 그리고 정책을 총괄하는 타와준 경제위원회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UAE도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자국 기업 육성과 함께 외국 기업과의 합작 기업 설립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우리나라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두 나라는 방위산업과 항공우주 박람회에도 정성을 다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올해 3월 첫 국제 규모 방위산업 전시회인 국제 방산 전시회(WDS)를 열었고, 앞으로 2년마다 개최할 예정이다. UAE는 홀수 해에 국제 방위산업 전시 및 컨퍼런스(IDEX)와 두바이 에어쇼로 사우디보다 앞서 있다.     세계 무기 시장에서 큰손인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의 자체 방위산업 육성 전략은 걸프 지역에 무기 수출을 늘리려는 우리나라 정부와 업체들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중동 무기 시장은 단순한 판매 시장이었다면, 이제는 현지화 전략을 살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협력의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와 방위사업체들이 현지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최현호 밀리돔 대표ㆍ군사칼럼니스트

    2022.11.25 05:00

  • "포신 부러질 만큼 애용"…막강 자주포의 폴란드, 왜 K9 사나 [Focus 인사이드]

    "포신 부러질 만큼 애용"…막강 자주포의 폴란드, 왜 K9 사나 [Focus 인사이드]

     ━  어쩔 수 없는 불만     올해 체결된 우리나라와 폴란드의 방산 계약은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한국산 무기에 대한 동유럽 국가들의 관심이 급격히 고조된 반면 그동안 유럽을 텃밭으로 여겨오던 독일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미국은 M142 하이마스의 생산 확대에 미온적이었으나, K239 천무로 인해 방침을 바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양국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고 협박할 정도로 러시아도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 주변국들도 마찬가지다. 무기 수출에 미온적이었던 일본은 한국의 약진에 놀라 총리실 주도로 방위산업 활성화 정책을 마련 중이고, 그동안 염가를 앞세워 아시아ㆍ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 무기 공급자 노릇을 하는 중국은 한국의 부상을 매체에서 중요하게 보도할 만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북한은 한때 우방이었던 폴란드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는 대신 우리 정부를 극렬히 비난했다.   기본 협정을 체결한 지 불과 3개월도 안 된 10월 19일 현대로템 공장에서 열린 K2 전차 폴란드 갭필러 출고식. 동의를 얻어 한국군 물량을 먼저 제공한 것이기는 하나 이처럼 빠른 생산과 납품이 폴란드가 한국 무기를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다. 송봉근 기자   하지만 무엇보다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나라는 바로 폴란드다. 아무리 러시아의 위협이 있더라도 최대 40조 원 정도의 거대한 계약이 속전속결로 이뤄졌다면, 당연히 갑론을박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선호도가 높은 미국ㆍ유럽산 무기의 즉각 도입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한국산 무기를 선택한 점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폴란드 국내 업체에 불이익을 이유로 반대 의견도 많은 편이다.   소련제 T-72M1 전차를 기반으로 개발되어 1995년부터 실전 배치된 폴란드의 PT-91 전차. 국산 K1과의 경쟁에서 이겨 말레이시아에 납품하기도 했다. 이 정도로 폴란드의 방산 역량은 대단하다.   이는 한편으로는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다. 냉전 시기에 폴란드는 소련ㆍ체코슬로바키아와 더불어 동구권 무기의 주요 공급처 노릇을 담당했을 만큼 나름대로 상당한 방산 기반을 갖추고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가 소총도 만들지 못하던 1950년대부터 소련제 전차ㆍ장갑차ㆍ자주포ㆍ헬리콥터 등을 면허 생산해 수출까지 했고, 이렇게 축적한 기술력을 발판으로 자국산 변형 장비를 개발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래서 국내 기업들은 폴란드 기업과 제휴를 맺어 현지에서 상당량을 생산하고 사후 서비스도 맡길 예정이나 기득권 세력의 불만을 완전히 잠재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폴란드 야당은 총선에서 승리하면 계약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벼를 정도다. 특히 K2 전차, FA-50 경공격기, K239 다연장로켓과 달리 AHS 크라프(Krab) 자주포 때문에 K9 자주포에 대한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  자주국방 의지와 다른 현실     크라프는 2024년까지 총 122대 획득을 목표로 2015년부터 배치한 폴란드군의 주력 자주포다. 우크라이나에 18문이 공여돼 활약 중인데, 성능에 만족한 우크라이나군이 과하게 사용해서 포신이 부러지는 사례까지 나올 정도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이처럼 크라프는 서방을 대표할만한 성능을 지닌 자주포 중 하나 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급변한 작금의 상황을 대비하기에는 태생적으로도 여러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국산이라고 주장하나 엄밀히 말해 크라프는 면허 생산한 여러 구성품의 결합물이어서 신속한 생산과 배치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크라프의 개발 과정을 살펴보면 폴란드가 K9을 도입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크라프는 1997년 폴란드가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 신청을 하면서 개발이 시작되었다. 나토 회원국이 되면 강력한 동맹체의 보호를 받지만, NATO 규격에 따라 무기를 갖춰야 한다.   넥스터의 52구경장 155㎜ 주포를 장착한 AHS 크라프. K9 차체를 사용한 폴란드군의 주력 자주포다. 위키피디아   이때 폴란드는 국산 자주포를 개발해 기존 소련제 2S1 자주포를 순차적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나토 표준인 155㎜ 포를 제작은커녕 사용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기술을 습득려고 검증된 포탑을 면허 생산해서 국산 UPG-NG 차체와 결합하는 차선책을 택했다. 이때 폴란드는 평지가 많은 자연환경을 고려해 사거리가 길고 화력도 강한 52구경장을 포신으로 정했다.   39구경장 주포의 AS-90를 52구경장으로 환장한 브레이브하트. 폴란드는 브레이브하트의 포탑을 면허 생산해 자국산 차제와 결합한 크라프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영국이 브레이트하트 양산을 포기하면서 포신을 별도로 구해야 했다. militaryanalizer.com   이러한 조건에 따라 포탑 납품을 놓고 독일의 PzH 2000과 영국의 브레이브하트가 경쟁을 벌였다. 당시에 K9은 국내에 배치되기 전이어서 명함을 내밀지도 못했고, 치열한 경합 끝에 브레이브하트가 승자가 되었다. 폴란드는 브레이브하트 포탑을 면허 생산해 국산 사격통제장치ㆍ탄도레이더ㆍ통신장비 등을 탑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작 영국은 계약 직후에 브레이브하트의 양산을 포기했다.   브레이브하트는 39구경장 주포를 장착한 AS-90 자주포를 52구경장 주포로 환장한 성능 개량형인데, 냉전 종식으로 대대적인 군비 감축이 단행되자 영국 정부가 AS-90의 개량을 포기한 것이었다. 포탑은 AS-90과 브레이브하트가 동일했어도 포신을 별도로 구해야 하는 문제가 벌어졌다. 이에 AS-90 제작사인 BAE 시스템스가 추천한 프랑스 넥스터의 포신이 선정되었다. 하지만 더 큰 난관이 남아있었다.    ━  경쟁자면서도 각별한 인연     UPG-NG 차체가 사격 시 발생하는 반동을 견디지 못한 것이었다. 연사가 어려운 것은 물론 차체에 균열까지 발생하는 치명적인 문제점까지 드러났다. 제작사인 OBRUM은 2008년까지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크라프의 배치는 하염없이 지연됐다. BAE 시스템스가 AS-90 차체 사용을 권고했으나, 폴란드는 K9 차체를 선택했다. 가격과 품질도 좋았지만,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에 적극적이었던 점이 고려된 결과였다.   2014년 24대를 한국에서 직도입하고 96대는 폴란드 현지에서 제작하기로 계약이 이루어졌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렇게 완성한 크라프는 앞서 언급처럼 2015년부터 배치가 이뤄졌고, 폴란드가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큼 우크라이나에서도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그럼에도 포신ㆍ포탑ㆍ차체ㆍ구동 계통의 기술 제휴선과 공급처가 상이해서 구조적으로 양산에 애로가 많을 수밖에 없다.    폴란드산 UPG-NG 차체를 사용한 초기형 크라프. 발사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결함 때문에 실전 배치가 늦어졌다. 위키피디아   연간 생산량이 20문에 불과한 데다 이마저도 기복이 심해 2024년까지 예정한 122문의 조달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할 정도다. 더해서 조달 가격도 K9보다 비싼 것으로 알려진다. 일단 영국ㆍ프랑스ㆍ독일제 부품은 동급의 한국산 부품보다 고가다. 결과적으로 특정 자주포를 선정해 면허 생산하고 일부 부품을 국산화하는 방식이었으면 조금이나마 가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였을 것이다.   10월 19일 한화디펜스 공장에서 열린 폴란드 공급용 K9 자주포 출고식. 계약하자마자 크라프 1년 생산량보다 많은 24문의 K9이 폴란드로 갈 예정이다. 준수한 자국산 자주포가 있음에도 K9을 대량 구매할 수밖에 없는 폴란드의 고민이 담겨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송봉근 기자   결국 크라프가 겪은 우여곡절과 이후 드러난 여러 문제점은 평시라면 기술 습득과 국내 산업의 보호를 위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이나 그에 맞먹는 위기 상황이라면 좋은 무기를 신속히 도입하는 것보다 우선시할 가치가 없다. 더구나 가격까지 저렴하다면 마다치 않을 이유가 없다. 그 때문에 폴란드 정부는 국내외의 여러 반발을 무릅쓰고 K9의 도입을 결정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크라프 개발이 결코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당시 폴란드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것이 정답이었을지 모른다. 반면 K9이 약진하게 된 이유는 우리의 안보 환경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크라프와 K9은 비슷한 시기에 개발을 시작했지만, 냉전 종식과 신냉전의 시작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오늘날 다른 위치를 점하게 된 것뿐이다. 경쟁자이면서도 여러모로 인연이 많은 자주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2022.11.14 05:00

  • 이동표적 은밀히 쫓아가 파괴…우크라군이 띄운 '괴물 자폭드론' [Focus 인사이드]

    이동표적 은밀히 쫓아가 파괴…우크라군이 띄운 '괴물 자폭드론' [Focus 인사이드]

    제4차 중동전쟁(1973년)의 가장 큰 교훈은 ‘정보의 실패’였다. 이를 거울삼아, 이스라엘은 세계 최초로 비행체에서 촬영한 영상을 실시간에 지상통제소에 제공할 수 있는, 현대적 개념의 ‘정찰드론’을 개발했다. 레바논 전쟁(1982년)에서 맹활약한 ‘스카우트(Scout)’ 정찰드론이 그 주인공이다.   이렇게 시작한 드론의 역사는 1990년대를 거치면서 ‘공격드론’으로 진화한다. 공격드론은 ‘무장형’과 ‘자폭형’으로 나뉜다. 전자는 비행체에 장착된 소형 정밀폭탄 혹은 미사일을 투하하거나 발사한다. 후자는 비행체가 폭탄 혹은 미사일 역할을 하면서 표적에 충돌하는 방식이다.   러시아군이 운용한 샤헤드 계열의 이란산 자폭드론 옆에 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지난달 17일(이하 현지시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이란으로부터 사헤드-136을 포함한 자폭드론 2400기를 도입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1일에는 추가로 샤헤드-136보다 폭발력이 5배 강한 아라시(Arash)-2 자폭드론 200여기도 이란으로부터 제공받을 예정이라는 첩보를 공개한 바 있다.   지난 4일 미국 국방부 사브리나 싱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 목록에 피닉스 고스트(Phoenix Ghost) 자폭드론 1100기가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의 스위치 블레이드(Switch Blade) 약 100기, 4월과 7월의 피닉스 고스트 약 800기를 합하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자폭드론의 전체 물량도 약 2000기에 달한다.    드론 전쟁이 정찰, 무장을 거쳐, 이제는 ‘자폭드론’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러시아와 미국의 자폭드론을 기술, 운용 방식, 혁신성 측면에서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제시한다면, 자폭드론의 진정한 가치는 은밀하게 비행하여 이동표적까지 정밀타격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  기술 : 중급 상용기술 vs. 고급 군용기술      전장에서 대규모 자폭드론의 운용은 이미 예견됐다. 2019년 9월 14일,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콰세프(Qasef)-1 자폭드론 10대를 운용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브콰이크(Abqaiq) 정유시설을 타격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군사전문가들이 주목한 것은 엔진ㆍ프로펠러ㆍ서보모터 등이 중국산을 포함해 인터넷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상용 부품이었다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군 관계자가 정유시설을 타격한 후티 반군의 콰세프(Qasef)-1 자폭드론을 살펴보고 있다. Conflict Armament Research   러시아의 샤헤드-131ㆍ136 자폭드론은 이륙단계에서 로켓 추진력을 활용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독일군 V-1 순항미사일에도 사용했던, 오래된 방식이다. 또한, 항법장치(INS+GLONASS)도 약간의 정밀도 저하만 감수한다면 저가 생산이 가능하다. 특히, 엔진은 중국산이고, 컴퓨터 프로세서ㆍ무선신호 송수신 모듈 등은 미국산으로 추정된다. 상용부품의 적극적인 활용은 제재 회피와 가성비 측면에서 유리하다. 실제로 1기당 가격은 약 2만 달러(순항미사일 대비 탄두 위력은 10분의1, 가격은 50분의1) 수준이다. 이러한 특성은 높은 엔진 소음과 느린 속도 때문에 실전에서 격추비율이 60~70%에 달하는 한계점을 일부 상쇄한다.   반면, 미국의 스위치 블레이드ㆍ피닉스 고스트에는 기본적인 항법장치(INS+GPS) 외에도 여러 첨단 기술이 추가된다. 우선, 자폭드론을 휴대용 캐니스터(Canister)에서 박격포처럼 발사하는 방식은 기술적 난이도가 높다. 미국 자폭드론에만 장착되는 저(低) 소음 엔진, 전자광학장치(EO/IR), 데이터 링크(Data Link) 등도 첨단 고급기술이다. 고스트 피닉스의 제원과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샤헤드 계열 보다 최소 2~3배 이상 비쌀 것으로 추정된다.    ━  운용 방식 : 사전계획 고정 민간표적 vs. 실시간 이동 군사표적     샤헤드-136은 시속 185㎞, 최대 사거리 약 1000㎞를 비행하여 표적을 타격한다. 하지만, 사전에 계획된 고정 표적만 타격할 수 있다. 순항미사일처럼 발사 전에 입력한 좌표 지역으로 비행하기 때문이다. 통상, 병력과 기동장비로 구성되는 군사용 전술표적은 수시로 위치가 변하기 때문에 부적합하다. 지난 9~10월, 러시아군이 자폭드론으로 집중 타격한 표적도 전력 시스템을 포함한 기반시설이었다.   스위치 블레이드 600 자폭드론을 휴대용 캐니스터(Canister)에서 박격포처럼 발사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AeroVironment, Inc.   반면, 미군은 수백㎞ 떨어진 적의 고정표적이나 기반시설을 타격할 경우 통상 순항미사일이나 공군 전력을 활용한다. 그래서 자폭드론은 군사용 전술표적을 타격하데 초점을 맞춰서 발전하고 있다. 작전반경은 30~40㎞에 불과하지만, 비행 과정에서도 표적변경이 가능하고, 이동표적까지 수십㎝ 단위의 정밀타격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스위치 블레이드는 휴대용 캐니스트에서 박격포처럼 발사할 수 있다. 화염과 발사음이 거의 없는 일명, ‘콜드런치(Cold Launch)’ 방식이다. 비행은 10~15분 동안, 고도 1㎞, 시속 100~160㎞로 이뤄진다. 비행과정에서도 소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목표 상공에 도달하면, 5~10분 동안 선회하면서 표적을 최종 선정하고, 운용자 조작에 따라 직접 충돌하여 파괴한다.    ━  혁신성 : 기존 순항미사일 대체 무기 vs. 새로운 게임 체인저     러시아가 운용하는 자폭드론은 ‘저가의 소형 순항미사일’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1944년 6월, 독일군이 V-1 순항미사일로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이 아니라, 영국 런던의 민간인을 타격한 것과 비교하기도 한다. 따라서 러시아의 자폭드론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가 이란으로부터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아라쉬(Arash)-2 자폭드론. 유튜브 캡처   반면, 미국의 자폭드론은 수십㎞ 거리의 이동표적까지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혁신적이다. 이러한 능력은 기존의 공격 헬기ㆍ무장 드론 등을 직접 운용하거나, 공군 전력을 지원받을 수 있는 ‘사단’ 이상 제대의 몫이었다. 이제는 스위치 블레이드ㆍ피닉스 고스트 같은 휴대용 자폭드론이 등장함으로써 ‘중ㆍ소대’ 단위까지도 이러한 능력을 구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미 상당한 전과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국방혁신 4.0 차원에서 자폭드론 개발 및 운용 확대 필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자폭드론의 대규모 운용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북한도 샤헤드-131ㆍ136과 같은 저가의 자폭드론을 대량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개전초기에 낙후된 공군력을 대체하면서 민간 기반시설 타격을 통한 공포와 혼란 조성을 기도할 수 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한국군의 대(對) 드론 방호체계 구축에 이러한 위협의 변화를 추가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군 일부 특수작전부대에서 운용하는 이스라엘 로템(Rotem)-L 자폭드론. 개인휴대가 가능히며 작전반경은 수㎞다. 수류탄 2개 폭발력을 가졌다. IAI   둘째, 자폭드론이 소부대에 새로운 차원의 능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군은 대대 이하 제대에서 구조적인 취약점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분대편성 인원이 모두 8명으로서 세계적으로 가장 적고(북한군 12명, 미군은 9명), 복무기간(18개월)도 현대전에 필요한 전술전기 숙달과 유지를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향후, 병역 자원 및 부대 수의 추가적인 감소도 예상된다.     따라서 자폭드론의 전력화 범위를 일부 특수작전부대에서 지상군의 소부대 단위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존 무기체계와 상승효과(Synergy Effect) 창출에 초점을 두고 진화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향후, 인공지능(AI) 기술과 적용된다면 그 효과는 더욱 증대할 것이다. 국방혁신 4.0 차원에서도 자폭드론에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이다. 방종관 한국국방연구원 객원연구원ㆍ예비역 육군 소장

    2022.11.09 05:00

  • "러 핵 써도 프랑스 안 쓸 것"…절실한 우크라 입장은 무시됐다 [Focus 인사이드]

    "러 핵 써도 프랑스 안 쓸 것"…절실한 우크라 입장은 무시됐다 [Focus 인사이드]

    12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러시아가 핵무기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더라도 프랑스는 핵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벤 윌리스 영국 국방부 장관은 “마크롱 대통령이 전략을 노출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좌관은 구체적인 대응계획을 밝히지는 않은 채,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사용하더라도 서방국가들은 핵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서방국가들 입장에서는 핵전쟁에 끌려들어 갈 가능성을 낮추자는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억제효과가 저하되면서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핵무장 국가 사이에서 비핵국가의 이익은 고려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미국 공군의 전략폭격기 B-52.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핵을 쓰겠다는 메시지를 내놓는 가운데 미국은 B-52를 유럽으로 보내 지난 16일 나토 동맹국과의 핵공유 훈련인 스테드패스트 눈에 참가시켰다. 미 공군   억제는 ‘상대적 능력’뿐만 아니라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의지’도 중요하다. 미국이 베트남과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크롱의 ‘핵무기 불사용’ 발언도 국내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즉, 핵무장 강대국의 여론은 비핵국가를 위한 핵무기 억제효과에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6·25 전쟁과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  6·25 전쟁, 유럽의 우려에 미국 스스로 ‘원자폭탄 불사용’을 천명     1950년 11월 30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중공군의 대규모 개입으로 충격에 받은 상황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기자들과의 질의 답변 과정에서 “원자폭탄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원폭 사용을 고려”라는 제목으로 세계 각국에 전파됐다.   유럽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미국이 한국 방어에 몰두하느라 유럽 방어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소련을 자극해 유럽이 핵무기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소련은 49년 8월 29일 원자폭탄 실험을 통해 이미 세계 2번째 핵무장 국가가 된 상태였다.   1950년 12월 6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앞줄 왼쪽),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 총리(앞줄 오른쪽), 딘 애치슨 국무부 장관(뒷줄 왼쪽), 조지 마셜 국방부 장관(뒷줄 오른쪽)의 모습이다. 트루먼 도서관   결국, 트루먼 대통령은 별도의 성명을 통해 ‘원폭 불사용’을 천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 총리는 미·영 정상회담(50년 12월 4~8일)에서 ‘확전불가, 원자폭탄 사용불가’ 입장을 공식화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결국, 공동성명에 “전쟁을 한반도로 제한하는 노력을 계속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50년의 애틀리 총리와 2022년의 마크롱 대통령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애틀리 총리의 전직 총리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미국은 최대의 무기를 스스로 포기했다. 원자폭탄이 중공에게 얼마나 큰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는지 모르고, 스스로 위협을 제거해준 결과가 됐다. 정치·전략의 실패치고 이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  쿠바 미사일 위기, 미·소는 ‘터키’와 ‘쿠바’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아     62년 10월 14일, 미국의 U-2 정찰기가 쿠바에서 소련의 중거리 핵미사일(IRBM)을 포착하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가 시작됐다. 10월 28일, 핵전쟁 위험성을 우려한 양측의 거래로 위기는 해소되었다. 소련은 쿠바에서 중거리 핵미사일 등을 포함한 공격무기를 철수했다. 미국도 쿠바 침공 포기를 공식 선언하였으며, 터키(튀르키예)에 배치된 중거리 핵미사일을 비공식적으로 철수했다.   미·소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튀르키예와 쿠바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 핵무장 국가들이 앉은 테이블에 비핵국가의 이익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던 것이다. 튀르키예와 쿠바의 안보에 직결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미·소는 당사국에 의견조차 물어보지 않았으며, 비밀주의와 일방주의로 일관했다.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대응을 위해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제일 오른쪽)이 커티스 르메이 공군참모총장(오른쪽에서 둘째) 등 군 지휘부와 회의하고 있다. CIA   62년 6월, 미국은 튀르키예와 협의해 15기의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 완료했다. 타격 목표는 모스크바와 동부 러시아 지역이었다. 미군 장성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총사령관이 지휘하되, 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서 발사하는 방식이었다. 임무 개시 4개월 만에, 미국은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소하려고 튀르키예 배치 중거리 핵미사일의 철수를 소련에게 약속했던 것이다.   62년 12월, 미국은 소련과의 합의사실을 숨긴 채 튀르키예에 중거리 핵미사일의 철수 얘기를 꺼냈다. 기술적으로 낙후해 군사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으며, 보완책으로 폴라리스 핵무기 탑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잠수함과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F-104 전투기 배치를 제안했다. 튀르키예는 미사일 철수가 완료될 때(63년 4월 24일)까지도 미·소간에 비밀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다음 해가 되어서야, 그것도 소련의 정보 유출로 인지할 수 있었다. 이 사례는 양국 관계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마치 쳤다.   쿠바가 최초에 원한 것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가입과 소련과의 동맹이었다. 하지만, 소련은 쿠바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았다. 62년 4월, 소련은 중거리 핵미사일의 쿠바 배치를 결정하고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그리고 미사일 배치를 설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약 체결을 추진했다. 8월에 이르러, 양측은 조약 합의문까지 작성 완료했다. 하지만, 10월 28일을 정점으로 미·소 사이에 위기가 해소되자 조약은 없던 일이 됐다.   소련도 협상 과정을 쿠바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10월 28일, 피델 카스트로 쿠바 총리는 미·소의 합의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 그는 합의 내용을 공식으로 전달하려는 주쿠바 소련 대사인 알렉산더 알렉세프의 면담 요청을 거부했다. 하지만, 소련의 압력으로 중거리 핵미사일 등을 철수하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철수를 확인하는 사찰단의 수용 거부, 관타나모 기지 반환 요구 등을 통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  ‘핵무장 잠재력 확보’가 기본적이고 현실적인 대책     역사는 핵무장 국가들 사이의 거래에서 비핵국가의 이익은 고려될 여지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이 ‘핵무장 잠재력 확보’를 위해 그동안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고 생각한다. 일본은 국제규범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미국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핵무장 잠재력을 확보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확장억제 강화’와 ‘한국형 3축 체계’도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전자는 동맹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후자는 ‘핵은 핵으로’라는 기본 전제를 극복할 수 없다. 전술핵 재배치, 핵무기 공유, 자체 핵무장 등은 실현 가능성이 작고 감내해야 할 어려움이 심대하다. 핵무장 잠재력 확보는 상대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고, 감내해야 할 어려움도 적다. 장기 기획·끈질긴 설득·담대한 협상 등을 통해 실현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일본 롯카쇼무라의 핵재처리 시설. 연간 800t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여 8t의 플루토늄을 생산한다. 일본은 반대하는 미국을 설득해 핵재처리 시설을 확보했다. 교도=연합   미래 대비의 핵심은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한국의 ‘핵무장 잠재력’ 확보는 당면한 북한의 핵 위협 억제에 기여하면서,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기본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억지와 억제=영어 ‘Deterrence’에 대해 학계에서는 억지(抑止)로 번역하지만, 국방부는 억제(抑制)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기고문에서는 ‘확장억제’ 등과 같은 고유명사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억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방종관 한국국방연구원 객원연구원ㆍ예비역 육군 소장

    2022.10.24 05:00

  • 김칫국부터 마신셈…북진 그 뒤, 한·미 '평양 통치권' 다퉜다 [Focus 인사이드]

    김칫국부터 마신셈…북진 그 뒤, 한·미 '평양 통치권' 다퉜다 [Focus 인사이드]

     ━  너무나 컸던 한국과 미국의 시각차      1950년 10월 1일. 감격스러운 북진이 개시됐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군이 수복한 북한 지역의 통치를 놓고 한국 정부와 유엔(엄밀히 말해 미국)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정부는 당연히 우리가 관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헌법에 정의한 것처럼, 북한을 우리의 영토로 봤기 때문이고, 설령 근거가 없다 하더라도 분단된 지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았기에 이북을 우리와 관련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던 이들도 없었다.   1950년 10월 1일, 국군 제3사단의 38선 돌파를 기점으로 역사적인 북진이 개시됐다.   하지만 미국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당장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연고를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38선이 승전국의 합의에 따라 그어졌으므로 소련이 군정을 실시한 이북은 이남과 엄연히 별개라고 본 것이다. 이처럼 38선 이북에 대한 우리 정부와 유엔군을 주도하는 미국의 시각 차이는 현격했다.   미국은 궁극적으로 통일을 반대하지 않았으나 한국이 곧바로 북한을 흡수하기는 곤란하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대신 새로운 통일 정부는 유엔의 결의를 거치고 총선 같은 합법적인 절차를 마친 뒤 수립돼야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형식상으로는 현재 진행 중인 전쟁도 유엔의 관리하에 있으므로 다양한 참전국들의 입장을 고려할 때 이런 절차가 합리적으로 보이기는 했다.   미국의 계획은 다음과 같이 3단계로 이루어져 있었을 만큼 구체적이었다. 먼저 1단계로 북한 지역의 질서 회복이 급선무이니 군사적으로 점령이 완료된 뒤 사회가 안정될 때까지 유엔군 사령부가 군정을 펼치고, 2단계로 한반도 전역에서 유엔의 통제 아래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를 실시한 뒤, 마지막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섬과 동시에 유엔군이 철군하며 군정을 끝내는 것이었다.   국군을 환영하는 함흥 시민들. 하지만 점령지 통치를 놓고 우리 정부와 미국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중앙포토   그래서 미국은 한창 북진 중이던 50년 10월 12일에 열린 유엔 총회 임시위원회에서 ‘유엔은 한반도 전역을 합법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정부를 공식 인정한 바 없다’는 내용을 가결시켜 북한에 대한 한국의 통치권을 부인했다. 한마디로 강대국만이 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자 유엔 결의가 통과된 당일 조병옥(趙炳玉) 내무부 장관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즉시 행정관을 파견해서 북한 통치에 들어갔다.    ━  떡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당장은 유엔군의 도움이 절실한 처지였기에 우리 정부는 명분으로 삼고자 미국이 계획하는 군정이 특별히 기간을 정하지 않았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45~48년 사이에 있었던 군정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아 거부감이 컸던 점이 사실 가장 큰 이유였다. 곧이어 10월 17일, 정부가 임명한 계엄사령관이 이북에 계엄령을 포고했고 10월 22일에는 평양 시장을 임명했다.   1950년 10월 30일 평양을 방문해 시민들의 환영을 받는 이승만 대통령. 하지만 중공군의 참전이 확인된 뒤였다. 중앙포토   예상을 벗어난 강경한 태도에 놀란 미국은 10월 23일, 유엔군 사령관 명의로 한국 정부에서 파견한 인원의 즉시 철수를 요구하고 대신 12명의 민간인을 관리위원에 앉혔다. 이로 인해 한국 관리와 유엔군이 임명한 행정관이 곳곳에서 대립했다. 당연히 점령지 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결국 전쟁 중에 이러한 대립은 곤란하다는 판단이 들자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양측은 유엔군 사령부가 임명한 요원이 통치를 담당하되 한국 정부와 사전에 협의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이런 대립과 타협도 10월 25일, 중공군이 전격적으로 개입하면서 한순간의 꿈으로 막을 내렸다.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은 중국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기에 설령 전쟁에 개입하더라도 형식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라 오판했을 만큼 중공군의 존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참전은 개전 초 미군의 참전처럼 6ㆍ25 전쟁이 또다시 극적으로 바뀌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기분 좋게 38선을 넘은 지 불과 두 달도 되지 않아 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을 능가하는 더 빠른 속도로 후퇴에 나서야 했다. 더불어 공산 학정을 경험한 많은 북한 주민들도 고향을 떠났다. 결국 천신만고 끝에 탈환한 서울을 석 달 만인 이듬해 1월 4일에 다시 내주고 난 후에야 중공군의 남진을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전시였으므로 수복 지역 통치권에 대한 다툼은 최대한 자제했어야 했다. 결국 쓸데없이 힘만 소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통한의 후퇴가 시작되기 직전인 1950년 11월 10일 발행된 통일기념우표도 당시의 성급함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다. 국가기록원   외교적 마찰도 불사하며 북한 지역 통치를 놓고 벌인 주도권 다툼은 잠시의 공염불에 불과했다. 전쟁 중 점령지 관리는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당시 한국과 미국은 점령지의 안정이 아니라 누가 통치권을 행사할 것인가라는 명분에만 집착해서 필요 이상으로 대립했다. 한마디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었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꼴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사례라고 생각된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2022.10.21 05:00

  • 中 쳐내려는 美, 최고동맹 이스라엘도 때린다…한국의 선택은 [Focus 인사이드]

    中 쳐내려는 美, 최고동맹 이스라엘도 때린다…한국의 선택은 [Focus 인사이드]

    중동의 이스라엘은 미국의 최고 동맹으로서 막대한 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국 압박이 이스라엘에 영향을 주고 있다. 9월 말, 미국 국방 매체에서 미국 정부가 중국이 이중용도 기술을 통해 군사 기술에 접근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이스라엘에 중국과 학술 및 연구 관계를 제한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  경제적으로 긴밀해지는 이스라엘과 중국     미국 정부의 이번 압박은 이스라엘이 지난해 중국과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한 협정 등을 통해 중국 연구기관들과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와중에 나왔다. 미국 정부의 목표는 이스라엘과 중국 연구 기관 사이의 협력을 최소화하거나 가능하다면 완전히 줄이는 것이다.   이스라엘제 팔콘 레이더를 단 인도 공군 조기경보기. 인도 국방부   중국은 자신들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첨단 기술을 얻기 위해 이스라엘로 눈을 돌리고 있다. 텔아비브 대학교 국제안보연구소(INSS)의 자료에 의하면, 2001년부터 2020년까지 이스라엘과 중국의 무역은 꾸준하게 늘어났으며, 특히 중국으로부터 수입이 크게 늘었다. 이스라엘이 중국에 수출한 품목 중 가장 많은 것은 51%를 차지한 전자부품이었고, 다음이 각각 8%를 차지한 측정 장비 및 산업 통제 시스템 그리고 화학제품이었다.     중국의 대이스라엘 투자 및 인수합병(M&A)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금액적으로 가장 많은 분야는 기술 분야이며, 그 뒤로 인프라 분야였다. 기술 분야에서는 의료기술·생명공학·생화학 등이 포함된 생명과학 분야가 가장 많고, 소프트웨어 개발 및 IT 기업에 대한 투자가 그다음이다.    ━  거세지는 미국의 압박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압박하는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1990년대 초반부터 중국과 관계를 진전시키기 시작했고, 중국 공군에 팰컨(Phalcon) 조기경보 레이더를 수출하기로 했다. 팰컨 레이더는 러시아제 IL-76 수송기에 장착되어 조기경보기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1989년 6월 일어난 천안문 사태 이후 미국은 중국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하고 동맹들에게 이를 따를 것을 압박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치적 문제로 세계 최대 시장이었던 중동에 무기를 팔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고자 중국과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있었다.   2000~2020년 이스라엘과 중국 무역 규모. INSS   미국은 이스라엘에게 중국에 대한 팰컨 레이더 판매 중단을 압박했고,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군사 원조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은 이를 받아들여야만 했고, 2000년 7월 팰컨 레이더 판매를 취소했다. 이후 한동안 정체 상태를 보이던 이스라엘과 중국의 관계는 2000년대 초반부터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부터 다시 이스라엘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 경고의 수준을 높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이스라엘 5G 통신망에 중국 화웨이 제품이 사용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의 이스라엘 하이테크 기술 분야별 투자 비율. INSS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한 후에도 미국의 압력은 계속됐다. 정권을 가리지 않는 미국 정부의 압력으로 인해 2020년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중국의 기술 투자 등은 상당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번에 언급된 이중용도 기술 협력 차단은 중국이 활용할 수 있는 마지막 끈을 자르겠다는 신호다.   이중용도 기술이란 민간과 군사 분야 모두에 쓰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사이버 능력, 소형 위성, 전자전 시스템 관련 데이터가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에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호정보(SIGINT) 등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는 기술을 연구하는 이스라엘 방위군 엘리트 기술부대에는 많은 이스라엘 과학자들과 학생들이 복무하고 있으며, 이들이 중국 학생들과 연구ㆍ개발을 함께 하면서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거세지는 대중국 포위망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압박은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중동지역 최고 동맹이라도 미국이 유일한 경쟁자로 언급한 중국에 첨단 기술이 흘러가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다른 동맹국들에게도 유사한 압력이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이미 반도체 관련해 압력을 받고 있다. 우리 업체들의 중국 매출이 크기 때문에 최대한 유예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미국이 언제까지 기다려주진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게도 중국이 악용할 수 있는 이중용도 기술에 대한 통제를 요구할 것이다.     중국의 이스라엘 하이테크 분야 투자 규모. INSS   이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인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미국에 동맹에게 이럴 수 있냐고 따진다면, 미국도 똑같이 따질 수 있다. 동맹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이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동맹들이 구축한 국제적 공조에서 이탈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우리도 더 이상 북한을 움직일 지렛대로써 중국을 바라봐선 안 된다. 중국은 북한의 핵을 오랑캐로 오랑캐를 다스린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수단으로 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최현호 밀리돔 대표ㆍ군사칼럼니스트

    2022.10.17 05:00

  • "北, 이미 이겼다"…핵 3단계 전략 2년뒤 완성, 곧 '충격적 행동' [Focus 인사이드]

    "北, 이미 이겼다"…핵 3단계 전략 2년뒤 완성, 곧 '충격적 행동' [Focus 인사이드]

    핵무기는 폭발력과 파괴력, 그리고 살상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해 지구 상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하려고 만들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단 두발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일본이 바로 항복해 전쟁을 연합군의 승리로 마무리한, 공포의 절대무기가 핵무기다.   우리는 무서운 절대무기인 핵무기를 북한이 사실상 보유했고, 실전에서 운용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무의식적으로 인식한 상태다. 김정은의 철저히 계산된 ‘대남·대미 핵위협 공개 및 각인전략’ 때문이다. 사실은 김정은이 집권 후 미사일을 80여 회 150여 발 이상 발사하고 이를 공개할 때마다 국내외 언론들이 속보로 그 위협의 실체를 전 세계에 신속히 홍보해 줬기 때문에 북핵·미사일 위협은 수많은 사람의 인식 속에 이미 각인돼 있다.     14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의 연쇄 도발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뉴스1   김정은은 지난 9월 8일 정권창건일을 하루 앞두고 핵보유를 공식화하고 핵무기 사용 원칙을 담은 법령을 채택했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핵무력 법제화로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가 불가역적으로 됐다”며 “절대로 먼저 핵포기, 비핵화란 없으며, 그 어떤 협상도 흥정물도 없다”고 못 박았다. 이걸 보고 가슴이 뜨끔할 사람들이 몇몇 있을 것이다.    법령 3항 핵무기 지휘통제와 6항 핵무기 사용원칙에는 ‘적대세력의 비핵공격 징후에도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 단행된다’고 명시해 대남 핵선제타격까지도 법제화했다. 이후 김정은은 9월 25일부터 당창건일 하루전인 10월 9일까지 전술핵 운용부대를 7차례나 방문해 핵탑재용 미사일 발사훈련을 지도하고도 일정기간 공개하지 않았던 자신들의 핵무기 실전운용 능력을 모두 언론에 공개했다.   그 결과 지난 5월부터 북한이 임의지역에서 발사한 다양한 실전용 미사일들을 공개하지 않았던 궁금증까지 해소하면서 핵무기가 실전에 배치됐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알림으로써 내부결속은 물론 대남·대미 핵무기 위협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또다시 성공했다.     특히 화성-12형 증거리탄도미사일(IRBM)은 일본 상공을 통과해 약 4500㎞의 최장 비행거리로 날아가 일본이 먼저 놀라고 미국도 놀랐다. 워싱턴 소재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안킷 팬다 핵무기 전문가는 “비핵화 고집은 실패이자 촌극”이라며 “북한이 이미 이겼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화성-12형은 2017년 2발을 괌 위협 목적으로 북태평양에 쐈을 때도 괌·하와이 주민과 관광객들이 대피하는 소동까지 벌어진 바가 있다. 화성-12형은 김정은이 하시라도 긴장을 조성하고 정세를 주도할 수 있음을 보여는 대미 위협 각인전략의 중요한 카드인 셈이다.   이렇게 김정은 정권의 북한이 자신들의 핵무기 능력(소형화+미사일)을 한·미와 국제사회에 각인시켜 온 단계는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단계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으로, 2013년 3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4차례의 핵실험 성공과 새로운 북극성 계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및 화성 계열 장거리 탄도 미사일(IRBM·ICBM) 발사에 성공하면서 김정은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던 시기다.   이 시기 북한은 핵무기 소형화 기술을 완성했고, 신형 백두산 엔진 개발로 화성-12형과 화성-14/15형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그리고 단거리·준중거리용 고체추진제 개발로 발사 시간 단축과 정밀 유도기술 향상에도 성공했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 초기부터 모든 미사일의 발사 장면과 제원을 다음날 공개했다. 미국도 화성-12/14/15형 발사 시부터 북한의 IRBM·ICBM 능력을 인정하고 '화염과 분노', '코피 작전'으로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사상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두 차례나 열렸다. 김정은의 대미 핵무기 위협 각인 전략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2단계는 2019년 5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약 3년여의 기간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2차 정상회담 간 핵군축 협상이 결렬되자 김정은은 다시 5월부터 1단계에서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고체추진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SRBM·KN-23/24/25), 극초음속 미사일, 미니 SLBM, 장거리 순항미사일 등 탐지와 요격이 어려운 저고도/극초음 속도/하강-상승(pull-up) 기술/정확도 향상 등 다양한 전술핵투발 수단을 고도화하고 발사플랫폼을 터널과 연결된 철도와 도로, 저수지 등으로까지 확장하는 등 전술핵무기 실전운용 능력과 생존성 향상에 매진해 왔다.   북한이 12일 '장거리 전략순항미사일' 2기를 시험발사하고 있다. 뉴스1   이러한 미사일의 발사 장면과 제원도 모두 공개했다.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TEL)에서 발사하는 고체 추진제 미사일은 감시도 어렵고 임의의 장소에서 24시간 기습발사가 가능하다. 이른바 '게임체인저'라고 불리는 SLBM 다음으로 생존성이 뛰어나 한·미의 선제공격에도 살아남아 제2격능력(세컨드스트라이크)이 가능하다는 점을 각인시킨 것이다. 자신들의 핵·미사일 발사를 감시도, 요격도, 응징도 어려우니 상대하지 말라는 의미다.     3단계는 지금부터 2025년까지 약 3년의 기간으로 북한의 국방발전 5개년계획(2021~2025년)이 마무리하는 기간까지로 예상할 수 있다. 이 시기 전술 핵탄두 위력을 과시하려는 7차 핵실험이 대남·대미 핵위협 각인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이며, 고체추진 ICBM, 3000톤급 이상 잠수함 진수와 SLBM, 군사정찰위성 등의 발사로 위협을 지속 각인시킬 것으로 보인다.     1~3단계 공히 북한의 대남·대미 핵위협전략은 ‘위협공개 및 위협각인’ 전략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북한식 억제전략’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한국과 미국에게 핵·미사일의 실 발사 장면과 제원을 보여줌으로써 미사일 종류별 성공적인 발사 사실과 정확도, 감시 및 요격회피 능력을 각인시키고자 의도했다. 내륙의 임의지역 특히 북·중 국경지역에 근접한 위치(무평리 등)에서도 은밀하게 발사할 수 있는 기습 및 생존능력까지의 위협을 한미가 스스로 깨닫고 자신들을 함부로 응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위협공개 및 각인전략’을 적극 구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가장 최근에는 전투기와 폭격기가 위협비행을 하고 동·서해 9ㆍ19 완충해역에서는 560여 발의 포사격까지 하고 있다. 혹자들은 무력시위라고 말하지만 필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김정은 시대 10년 이상을 가까이에서 보아 온 경험으로 볼 때 심상치 않은 대남·대미 군사도발징후로 읽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후계자 시절이었던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도발 시기와 유사한 점들이 보인다. 당시에도 전투기들이 잘 안하던 비행을 재개했고 특유의 기만활동도 있었다. 도발시기와 방법은 단정하기 어렵지만 ‘도발빌미 축적→긴장조성→군사도발→핵확전 위협/군축’ 주기 가동으로 이른바 ‘충격적 행동’을 시작할 때가 다가오는 듯하다.   핵 없는 우크라이나의 비극적인 참상과 핵을 가진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의 잔인함을 지켜보면서 핵을 가진 김정은은 안심하면서도 푸틴을 본받아 오판할지 모른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김정은의 핵무기 아드레날린을 자극할까 봐 우려하는 우리 국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정치권은 권력과 보신만을 위한 소모적인 정쟁으로 국민을 더 이상 속여서는 안 된다. 김정은의 비핵화 진정성을 확인했다고 주장하는 궤변도 철회돼야 한다. 핵무기는 특정세력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북한이 사실상 핵무장국이라고 인정하고 예상 위협에 실질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이 마냥 북핵·미사일을 머리 위에 얹고서 인질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호전적인 레토릭만을 반복하는 것도 이제는 식상하고 정답도 아니다. 머리 위의 북핵·미사일 위협 앞에서는 국민도, 국론도 통합해야 한다. 그래야만 올바른 국가안보정책과 대안이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장거리 전략순항미사일' 2기의 시험발사를 보고 있다. 뉴스1   우선 확장억제 강화 속 국지도발 대비태세를 최상으로 유지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체 핵무장’도 ‘전술핵 재배치’도 ‘핵공유’도 ‘핵자산 상시 순환배치’도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국가의 미래를 시급히 논의해야 한다.     김정은이 핵무기로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함부로 대하도록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2022.10.15 05:00

  • 러 벌벌 떠는 하이마스, 문제는 포탄 물량…한국에 던져진 고민 [Focus 인사이드]

    러 벌벌 떠는 하이마스, 문제는 포탄 물량…한국에 던져진 고민 [Focus 인사이드]

    현 시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을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면 ‘장기 소모전’이다. 3월 25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가 전쟁의 목표를 우크라이나 전체에서 동·남부로 조정함으로써 전투의 양상은 ‘기동전’에서 ‘소모전’으로 변했다. 9월 21일 러시아의 부분 동원령 선포를 계기로 전쟁이 ‘단기전’의 희망은 사라지고 ‘장기전’이 기정사실화했다.   우크리아니군이 2S7 피온 203㎜ 자주포를 쏘고 있다. 이 자주포는 냉전 시대 옛 소련이 생산했고, 러시아군의 주력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사격통제체계가 장착도 효율성이 낮다 .로이터=연합뉴스   장기 소모전에서는 ‘포병 화력’이 핵심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현대 전장에서 전·사상자의 대부분은 포병 화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 사상자의 58%,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 사상자의 70%, 6.25 전쟁에서 미군 전사자의 66%가 포병에 의한 피해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특성이 이런 추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쌍방이 모두 확실하게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밀도 방공무기가 공군력 운용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첨단 항공기와 정밀탄약, 미사일 등이 이미 상당 부분 소진됐다. 결국 전쟁이 장기화하고, 지상전투 중심으로 전개될수록 포병 화력의 중요성은 더욱 증대할 것이다.    ━  우크라이나 공세에 기반을 제공하다     7월, 영국 합동군사연구소(RUSI)는 러시아군의 일일 포병 사격발수를 2만발로 분석했다. 8월, 우크라이나 총사령관 발레리 잘루즈니는 “러시아 포병이 하루 4만~6만발을 사격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이 기간 동안 우크라이나의 일일 포병 사격발수는 약 6000발에 불과했다. 쌍방의 포병사격 발수를 비교해보면 최소 3배에서 최대 10배까지 격차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 수 있다.    러시아군이 그라드 다연장 로켓을 사격하고 있다. 사진 러시아 국방부   결국, 우크라이나군의 전·사상자가 급증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됐다. 6월 9일,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 올렉시 레즈니코프는 "최전선의 상황이 어렵다. 하루 전사자 100명, 부상자가 500명까지 증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기존에는 일일 사상자가 약 100명 미만이었음을 고려하면, 6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포병무기를 지원하면서 반전됐다. 155㎜ 자주포 및 견인포 4종(Krab·CEASER·M777·FH70) 약 150문, 대구경 다연장로켓 2종(HIMARS·M270A1) 약 50문이 지원되었다. 서방국가의 포병무기는 양적으로는 적었으나, 질적으로 러시아군을 능가했다. 다량의무유도 탄약 및 소량의 유도탄약(GPS+INS 항법장치 장착) 병행 운용, 실시간 표적획득 능력, 디지털화한 사격통제장치, 첨단 네트워크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격차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분야가 ‘대(對) 화력전’이었다. 포병으로 포병을 파괴하는 방식이다. 이는 실시간 표적획득, 신속하고 정확한 사격, 즉각적인 진지변환 능력이 핵심이다. 6월 말부터, 우크라이나군은 하이마스 다연장로켓 등을 활용하여 러시아 포병 및 탄약 저장시설 200여 개소를 파괴함으로 대 화력전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7월 말, 우크라이나 제93기계화보병여단 지휘관은 하르키우 지역의 러시아군 포병 사격을 10분의 1로 감소시킬 수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상대의 포병을 파괴하는 것은 적의 지상군에게 보다 큰 피해를 강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투의지까지 약화하는 이중효과가 있다. 9월 초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는 이러한 포병화력의 운용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  우크라이나 공세의 범위·강도·기간을 좌우     7월, 러시아 의회는 군수업체 노동자에게 초과 근무와 야근, 휴일 근무를 강제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또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측근인 데니스 만투로프 산업부 장관이 부총리 직책을 겸하도록 했다. 전쟁이 장기화함에 따라 군수장비 및 물자 생산을 독려하기 위한 조치로 판단된다.   9월 6일, 미국 정부는 “러시아가 포병 탄약 수백만발을 북한으로부터 구매하려 한다”는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약 2주 후,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와 탄약을 수출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음을 강조했다. 일부 언론은 러시아가 벨라루스와 시리아로부터 포병 탄약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폴란드의 AHS Krap 155㎜ 자주포는 한국의 K-9 차체에 영국제 포탑 , 프랑스제 주포 등을 통합해 만들었다. 일부 수량이 우크라이나에 제공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를 종합하면, 러시아가 군수 장비 및 물자의 증산에 돌입한 것은 분명하다. 포병 탄약이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제재로 취약해진 생산설비, 부품 부족 등을 고려하면 최소 1년 이상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러시아군이 포병 탄약의 보급에 어려움을 절감하는 시기는 올겨울부터 내년 봄이 될 가능성이 높다. 10월 초, 러시아군이 동부 도네츠크주의 리만과 남부 헤르손주의 두차니를 순식간에 피탈당한 것은 이러한 시기가 더욱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음을 의미한다. 러시아 군사지도자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편, 미국이 8월 24일까지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155㎜ 포병 탄약은 80만 6000발에 달한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조원(1발당 120만원)이다. 더욱이, 하이마스 다연장로켓(1발 당 무유도 약 5000만원, 유도 약 2억원)을 포함하면 약 2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군사 장비 및 물자의 총액 14조원에서 15%를 차지할 정도로 대규모다.   6월 9일,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 올렉시 레즈니코프는 “(서방국가 화포) 155㎜ 탄약의 확보 물량이 구(舊)소련 화포(152㎜ 이상)의 전쟁 이전 비축량보다 10% 이상 많다”고 설명했다. 당시, 그가 밝힌 155㎜ 화포 보유량은 150문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구소련 152㎜ 이상 화포가 740문(『2022년 밀리터리 밸런스』)이었음을 고려하면, 화포 1문당 포탄의 비축량은 5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2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우크라이나군이 운용하던 구소련 포병 무기의 탄약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2014년 시작한 돈바스 분쟁에 오랫동안 사용해 왔고, 친 러시아 반군에 의해 파괴된 물량, 그리고 러시아 침공 초기에 집중적인 사용으로 결과이다. 화포는 있으나 탄약 공급이 어려워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둘째, 155㎜ 포병 탄약의 가용 정도에 따라 우크라이나군의 작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 전투 강도에 따라 화포 1문이 일일 발사하는 탄약의 양은 80~100발(고), 40~60발(중), 10~20발(저)로 가정할 수 있다. 155㎜ 화포 약 150문과 포병 탄약 약 80만 6000발을 고려하면, 격렬한 전투에서는 60일(2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고, 중간 강도의 전투에서는 약 108일(3.5개월)이 가능하다. 향후,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도 포병 탄약의 가용 수준에 따라 범위·강도·기간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포탄 재고 및 생산능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8월 2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5㎜ 포탄 재고량이 불안할 정도로 낮은 상태이고, 증산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도 “하이마스 다연장로켓이 매우 효과적이지만, 탄약 소모율이 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우려를 드러낸 바 있다.    ━  미래 전쟁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는 위험하다.     미래 전쟁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는 ‘신속하고 결정적인 전투, 소규모의 사상자, 단기간에 전쟁 종결’이다. 1991년의 걸프 전쟁과 2003년의 이라크 전쟁 등이 영향력을 발휘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군사력의 질적·양적 측면에서 현격한 세대 차이가 존재할 때만이 가능한 전쟁방식일 수도 있다.   미국의 국방예산은 부동의 세계 1위이다. 2~10위까지 9개 국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정밀타격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과 충분한 수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전쟁의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많은 수량의 정밀타격 무기 및 탄약을 보유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 외에 누가 있을까. 미래 전쟁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이 지원한 M777 155㎜ 견인포를 쏘고 있다. AP=연합뉴스   반면, 우크라이나·러시아처럼 현대화 정도가 비슷한 국가 사이의 대규모 전쟁은 ‘장기 소모전’에 빠져들기에 십상이다. 개전 초기, 러시아의 양적 우위는 서방국가의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상쇄됐다. 문제는 6개월 혹은 1년 이상 장기간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탄약을 평시부터 보유할 수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영국 합동군사연구소(RUSI)는 미국조차도 ‘연간’ 포병 탄약 생산량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10~14일’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현실적인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 고가의 정밀탄약과 재래식 비(非) 정밀탄약을 어느 정도 비율과 수준으로 확보하는 것이 적절한지, 산업동원시스템은 잘 준비되어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우방국과 군수지원협정을 통해 전쟁지속 능력을 향상하는 방안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방종관 한국국방연구원 객원연구원ㆍ예비역 육군 소장

    2022.10.07 05:00

  • 푸틴, 결국 국내에 전선을 긋다…'패전의 전조' 괴벨스 총력전 [Focus 인사이드]

    푸틴, 결국 국내에 전선을 긋다…'패전의 전조' 괴벨스 총력전 [Focus 인사이드]

     ━  총력전 선언이 어려웠던 이유     1943년 2월 18일, 집회에서 나치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는 이제부터 독일은 총력전에 돌입할 것이라는 연설을 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독일이 가장 우선시했던 것은 전쟁이었다. 특히 300여 만이 넘는 대군을 동원해 속전속결로 끝내려 했던 독소전쟁이 예상과 달리 장기전으로 바뀌면서 하염없이 국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이미 총력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1943년 2월 18일, 열린 군중 대회에서 총력전 의지를 밝히는 요제프 괴벨스 선전상. 찬성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동원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위키피디아   괴벨스의 연설 전까지 나치는 국민이 전쟁 때문에 일상이 바뀌었다고 느끼지 않도록 총력전이라는 단어를 삼가고 있었다. 연합군 폭격기가 폭탄을 던져도 전투는 베를린에서 수천 ㎞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고, 선전 매체도 연일 독일군의 승리만 보도 중이었다. 점령지에서 엄청난 수탈이 자행되고 포로ㆍ유대인에 대한 극심한 노동력 착취 덕분에 물품 공급도 크게 부족하지 않아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6개월간 모든 것을 쏟아붓다시피 하며 벌인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하자 더 이상 예전 방식으로 전쟁을 이끌기는 곤란했다. 결국 총력전 체제로 전환하게 되면서 독일이 일방적으로 밀리던 1944년 군수 물자의 생산량이 최고조에 이를 수 있었다. 대신 청소년과 노인은 징집 대상이 됐고, 여성들은 공장으로 달려가 생산을 담당해야 했다. 또한 필연적으로 내핍이 강요되었다.   총력전 선언에 따라 동원된 노인으로 구성된 국민돌격대. 사실 이 정도라면 무모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 종전을 모색해야 하지만 나치는 끝까지 항전을 택했다. 위키피디아   상식적으로 평화 시처럼 일상을 영위하며 전쟁을 벌이기는 어렵다. 국력이 압도적인 미국마저 참전과 동시에 전시체제로 전환했을 정도였다. 침략을 당했기에 당연했다 치더라도 한창 중국을 침략 중이던 일본도 1938년에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고 즉각 총력전을 실시했다. 전쟁이 발발하면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 총력전 선언을 주저한 독일의 행태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이는 지난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 때문이었다. 당시 독일은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많은 곳을 점령하고 남의 땅에서만 싸웠다. 단순히 종전 직후 전선만 놓고 본다면 독일이 우세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봉쇄된 상태에서 장기간의 총력전을 벌이다 보니 국민이 더 이상 배고픔을 견딜 수 없었다. 반란까지 일어날 정도로 후방이 혼란스러워지면서 결국 독일의 항복으로 전쟁은 끝났다.   제1차 대전 당시 치킨 스프 배급을 기다리는 베를린 시민들. 당시 총력전을 벌인 독일은 봉쇄를 당해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렸고 결국 전쟁에서 졌다. 이 때문에 나치는 국민의 동요를 우려해 총력전 언급을 삼갔다. Populus Fennica Patriam   그런데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른 제재가 가혹한 데 대한 반동으로 내부의 적 때문에 독일이 무너졌다는 음모론이 사회에 퍼졌다. 이를 이용해 나치는 정권 획득에 성공했기에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면서 후방 안정에 최대한 공을 들였다. 그래서 총력전 언급을 회피했던 것이다. 그래서 총력전 선언은 그만큼 상황이 어렵다는 의미였다. 다시 말해 괴벨스의 연설은 독일 패전의 예고편이었다.    ━  약속을 깼기에 믿을 수 없다     지난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동원령을 선언했다. 이는 어느덧 7개월째로 접어든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는 신호탄이다. 그동안 특별 군사작전이라는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둘러대었지만, 동원령을 발동했다는 자체가 총력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러시아가 전시체제로 전환한 것은 아니나 동원령이 내려진 이상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키이우 시내에 전시된 격파된 러시아군 장비들. 이처럼 자신의 의도대로 전쟁이 진행되지 않자 푸틴은 동원령을 발동하기에 이르렀다. AP=연합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을 때만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상식이므로 침공을 단행하는 쪽은 총력전까지 고려하지 않는다. 설령 실질적으로는 총력전이어도 앞서 언급한 나치의 사례처럼 국내 외에 국가 기능이 전쟁 이전처럼 원활히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부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러시아 정부는 30만 명만 소환하는 부분 동원(Partial Mobilization)이라며 어떻게든 의미를 축소하려 한다.   하지만 무수한 시위와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이들을 보면 러시아 국민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일단 변명의 여지 없는 침략 전쟁이니 적극 참전할 만한 동기부여가 어렵다. 또한 전쟁을 시작했을 당시에 절대 동원령 발령은 없을 것이라던 약속부터 무참히 깨졌기에 앞으로 정부의 말을 믿기 어렵다. 더구나 기득권 세력은 제외되고 변방이나 소수민족 위주로 징집되는 소식 또한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999년 제2차 체첸 전쟁,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2014년 크름반도 병합, 2015년 시리아 내전 개입처럼 푸틴 대통령은 전쟁이나 도발을 상당히 많이 주도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군사적 성공을 거두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 나름대로 명분이 있어 국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런 연이은 성공 때문에 어느덧 푸틴은 1940년 독불전쟁 이후의 히틀러처럼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 되었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부분 동원령을 선언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런데 추후 거론될 수 있는 책임을 면하기 위해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국방부와 총참모부의 제안에 동의를 표하는 형식을 취했다. 로이터=연합   그래서 예상을 벗어난 현재의 상황은 분명히 푸틴에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동원령을 발동하고 노골적으로 핵무기 사용을 거론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부분적 동원을 추진하자는 국방부와 총참모부의 제안을 지지한다”는 궤변으로 철저하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연설을 통해 강제적으로 동의를 얻어낸 괴벨스보다 더욱 영악한 인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2022.10.01 05:00

  • '요격 방패' 급한 독일, 이스라엘 애로3 택하자…미국 딴지 왜 [Focus 인사이드]

    '요격 방패' 급한 독일, 이스라엘 애로3 택하자…미국 딴지 왜 [Focus 인사이드]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의 위협을 애써 무시하면서 군축에 물들어 있던 유럽 각국이 군비 증강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이 가운데 독일의 변화가 제일 크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2월 말 국방 정책의 전환을 선언하고 1000억 유로(약 1130억 달러)의 방위 기금을 책정하기로 했고, 나토 핵 공유 프로그램을 위해 미국제 F-35 스텔스 전투기 도입을 결정했다.   2019년 7월 알래스카에서 시험 발사에 성공한 애로 3. 사진 IAI  ━       ━  유럽 미사일 방어망 주도하려는 독일     독일의 변화는 미사일 방어 시스템 도입에서도 드러났다. 독일은 지난해까지 운용 중이던 미국제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대체할 TLVS라는 프로그램을 추진해왔다. 지난해 3월 드론 방어에 집중하기 위해 패트리어트를 개량하고 TLVS를 보류하기로 했는데, 전쟁으로 계획을 전면 수정한 것이다.   9월 초, 전 독일 공군 사령관은 미국 국방 매체와 인터뷰에서 독일 정부가 8월 말 정부 회의를 통해 이스라엘에서 애로 3 미사일 방어 시스템 도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독일의 애로 3 도입 검토는 올해 3월 알려지기 시작했다.     애로 3 시스템의 탐지 센서인 그린파인 레이더. 사진 IAI   전 독일 공군 사령관은 독일의 방공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단거리 방공, 패트리어트 미사일 시스템의 현대화가 아니라 탄도미사일 방어라고 강조했다. 독일이 탄도미사일 방어에 관심을 가진 것은 베를린과 불과 500㎞ 떨어진 거리에 있는 러시아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 때문이다.   칼리닌그라드에는 사거리 500㎞의 이스칸데르-M 단거리탄도미사일로 무장한 러시아 해군 미사일 여단이 주둔하고 있다. 칼리닌그라드는 남쪽으로 폴란드, 동쪽과 북쪽은 리투아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이들 국가들에게 위협이다.     독일은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위협을 강조하면서 유럽에서 자신들이 주도하는 방어망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9월 말, 숄츠 총리는 체코 프라하의 한 대학에서 EU를 위한 대공방어망에 대한 독일의 비전을 밝혔다.     독일 관계자들은 에어버스의 공대지 작전 센터 전투 관리 시스템과 연계한 저고도ㆍ중고도ㆍ고고도에서의 위협에 대한 다양한 대응책을 가진 ‘독일의 방패(German Shield)’ 개념을 설명했다. 하지만, 독일 업체들이 가지지 못한 대응책이 외기권 요격 시스템이고,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 이스라엘에서 애로 3를 도입하려는 것이다.    ━  독일이 선택한 애로 3     독일은 미국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와 이스라엘제 애로 3를 검토한 끝에 애로 3를 선택했다고 한다. 애로 3는 이스라엘이 대기권 밖에서 적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 정부의 예산을 지원받아 개발한 미사일 방어 시스템으로, 이스라엘의 IAI와 미국의 보잉이 공동 개발했다. 고도 100㎞이상에서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으며, 최대 사거리는 2400㎞에 이른다.   목표 탐지를 위해 우리나라도 도입한 그린파인 레이더, 개량형 슈퍼 그린파인 레이더, 미국이 사드에 사용하는 AN/TPY-2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애로 3 개발이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미국은 2019년 1월에는 이스라엘에서, 2019년 7월에는 미국 알래스카에서 표적 미사일 요격 시험에 성공했다.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 배치된 이스칸데르-M 단거리탄도미사일. 사진 로소보로넥스포르트   독일은 슈퍼 그린파인 레이더를 세 곳에 배치하고, 미사일 발사대도 분산할 예정이다. 발사 지휘 통제는 유뎀에 있는 국가 지휘소에서 이루어진다. 슈퍼 그린파인 레이더는 탐지거리가 약 900㎞에 이르기 때문에 독일에 배치하면 폴란드ㆍ루마니아ㆍ발트 3까지 커버할 수 있다. 이들 국가들은 미사일만 도입하면, 독일이 제공한 정보로 요격할 수 있다는 것이 독일의 구상이다.    ━  미국 침묵의 의미는     하지만, 애로 3 해외 판매에 있어 이스라엘과 함께 권한을 쥔 미국이 아직까지 허가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유럽을 방어하기 위해 EPAA라 불리는 미사일 방어 계획을 수립하여 실행하고 있다.     이 계획의 핵심은 루마니아 남부 데베셀루와 폴란드 북부 레드지코보에 설치되는 이지스 어쇼어 시스템이다. 루마니아 기지는 이미 가동에 들어갔고, 폴란드 기지는 예정보다 늦어졌지만, 2023년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폴란드 기지는 칼리닌그라드까지 200㎞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 기지에서 SM-3나 SM-6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충분히 방어가 가능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유럽 탄도미사일 방어망 계획. 출처 RFA   하지만, 미국의 애로 3 판매 허가에 대한 침묵은 애로 3와 경쟁 관계인 자국산 사드 판매를 위한 것일 수 있다. 이스라엘 정부와 업체 관계자들은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지만, 전 이스라엘 정보국장과 이스라엘 업체의 전직 임원은 미국이 계약에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외부에 휘둘리지 않는 독자적 수출의 조건, 기술 자립     우리나라는 최근 여러 건의 방위산업 수출이 성공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부 핵심 체계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해외에 수입을 의존하는 품목이 우리의 수출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이런 사례는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온전한 수출 권한을 가지지 못한다면, 핵심 장비의 도입선을 수출에 유연한 입장을 가진 국가로 교체하거나, 우리가 개발하고 생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 무기 수출 시장은 동맹이라는 틀이 작동하지 않는 경쟁 시장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춰야만 한다. 최현호 밀리돔 대표ㆍ군사칼럼니스트

    2022.09.28 05:00

  • [Focus 인사이드] 서해 국민 피살 책임을 피하려 한 문재인 청와대

    [Focus 인사이드] 서해 국민 피살 책임을 피하려 한 문재인 청와대

    9월 22일은 서해에서 실종됐던 우리 국민이 북방한계선(NLL) 이북 해역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지 2년째 되는 날이다. 2년 전 문재인 정부는 서해 NLL 이남 우리 해역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NLL 이북 북한 해역에서 식별됐다’는 군의 첩보를 보고받고도 6시간여 동안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어떠한 국가적 행동도 보여주지 못했다. 밧줄에 묶여 해상에서 끌려다니고 있었다는 데도 말이다.    이윽고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사살하고 시신까지 불태웠지만,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했다. 이는 구조ㆍ대응조치를 실기하는 것은 물론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보고를 지연했다는 의혹을 키우는 대목이다. 우리 국민과 국제 사회가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함께 북한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규탄하며 공분했었다.   2020년 9월 22일 북한군이 피살한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의 부인이 지난 6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이씨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대독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   정치권에선 우리 국민이 피살됐음에도 불구하고 '월북 프레임'과 '북한 눈치보기'라는 정쟁에 휘말렸다. 법원이 유가족에게 알 권리를 공개하라고 판결했지만, 정부는 오히려 항소하며 우리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면하려 한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제 윤석열 정부에서 진상규명이 진행 중이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최우선 책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당시 관련 부처들로부터 보고받은 각기 다른 정ㆍ첩보를 어떻게 융합한 뒤 종합적으로 판단했고, 그를 바탕으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려고 조치하는 의사정책 결정을 제대로 거쳤는지 지금이라도 우리 국민은 소상하게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가 자국민의 안위와 관련한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해당 국가(정부 수뇌부)가 가장 먼저 관련 정보를 신속히 종합해 상황을 판단하면서 적시적인 조치를 위한 정책 결정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국가의 행위에 대해 미국의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결정의 에센스(Essence of Decision)』에서 정책결정 과정’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음의 세 가지 정책결정 모델(제1모델-‘합리적 행위자 모델’, 제2모델-‘정부조직행태 모델’, 제3모델-‘정부정치 모델’)을 제시했다. 그의 모델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적용해 보자.   첫째, ‘합리적 행위자 모델’은 국가 행위자인 최고 지도자(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의식ㆍ가시적 대응조치’를 취할 때 바로 그 국가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국민과 국제 사회가 신뢰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서해 공무원 피살 과정에서 ‘의식ㆍ가시적인 대응조치’를 신속하게 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상적 행위에 대해 국민은 물론 유엔 인권위원회를 포함한 국제 사회가 규탄했었다. 실종된 우리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식별됐고, 피격 후 시신이 불태워지는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전개했지만, 당시 문재인 정부는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면서 마치 북한의 반인륜적 행위를 비호하는 듯한 정책결정 과정을 보여 줬다.   아마 이러한 과정들이 비정상적이며 반인권적, 비합리적 행위라고 인식됐을 가능성이 크다. 2004년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한 한국인 피랍사건 때처럼 지리ㆍ시차적으로 먼 해외도 아닌 가까운 서해 앞바다에서 우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고, 국민을 분열시킨 데 책임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에게 남아 있다고 본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2년 10월 22일 백악관에서 쿠바 해상봉쇄를 발표하고 있다. 소련이 쿠바에 준중거리탄도미사일과 핵탄두를 배치하면서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 상황의 한 장면이다. 당시 위기에서의 정책 결정 과정을 연구한 그레이엄 앨리슨은 『결정의 에센스』라는 책을 펴냈다. 내셔널 아카이브   둘째, ‘정부조직행태 모델’은 정부를 구성하는 부처들이 각각의 입장이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 수뇌부가 각 부처에 대한 올바른 조정 통제력을 가져야만 올바른 정책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개념이다. 국민이 위기 시 해당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체계적으로 보호 또는 구조하기 위해서는 국가(정부)가 ‘표준행동절차’ 즉 ‘매뉴얼’에 기초해 정부 부처를 장악하고 주도적으로 정책결정과 조치를 신속하게 해나가야 한다는 모델이다. 정부 수뇌부의 전문성과 조정통제 능력이 위기 시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부 조직이 따로따로 책임을 분담해 자기 역할만 내세운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종된 우리 국민의 위치가 식별되고 피살되기까지의 상황에 대한 국가정보원, 국방부, 해양경찰의 각기 다른 정ㆍ첩보를 종합판단하고 조치할 곳은 당시의 청와대(정부)였다. 특히 북한과 관련된 사안이었던 만큼 대북 간사기관인 국정원이 관련된 정ㆍ첩보를 종합하고 판단하는데 적극적 역할을 해야 했다.    또 국가(정부) 차원에서는 각 정부 부처로부터 보고되는 첩보나 정보를 융합평가하고 상황을 판단해 해당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정책결정 과정이 이뤄져야 했다. 부처에 책임을 미루거나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잠을 이룰 시간조차 없었을 텐데도 만약 그랬다면 직무유기다. 이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아닐까?   일례로 안보관련 부처별 실종이나 월북 추정 평가첩보, 시신 소각 평가첩보, 그리고 조치해야 할 사안 등은 국가가 정부 차원에서 종합판단하고 책임 있게 조치해야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국방부에게 ‘시신을 소각한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수정지침을 내린 행위는 크게 잘못됐다. 이는 정부가 각 부처의 조정통제를 뛰어넘어 ‘정부 정치의 정보 개입’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청와대 정보융합비서관실에서 각 부처의 정ㆍ첩보를 융합해서 그렇게 판단했다고 관련 부처에 하달하면 그만이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상위 부서 고위직들의 구태로밖에 볼 수 없다.   정부가 개별 부처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당시 해경이 실종자 개인 정보와 주변 탐문자료, 그리고 다른 부처인 국방부 첩보(SI) 등을 종합하여 월북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한 행위는 큰 틀에서 잘못됐다고 볼 수 있다. 마땅히 정부가 책임지고 종합판단하여 발표했어야 옳았다.   인천시 옹진군 대연평도 당섬 선착장에서 어선이 출어하고 있다. 연합   셋째, ‘정부정치 모델’은 정부 수뇌부만이 아니라 정부의 최종 결정에 참여하는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정책결정자들(장관급)이 각 부처의 정치적 전문성을 갖고 위기상황을 판단하고 올바른 정책결정을 지향하도록 절충ㆍ균형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개념이다. 제1모델(합리적 행위자 모델), 제2모델(정부조직행태 모델)과도 연계성이 있다.   ‘정부정치 모델’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적용한다면, 당시의 안보관계 장관들이 해당 부처별로 서로 다른 첩보평가 내용을 정부(국가)의 입장이나 성향에만 맞추려 했는지를 잘 따져 봐야 한다. 언론에 이미 보도된 대로, 만약 당시 국정원이 해경이나 국방부의 추정 월북판단과는 상이하게 실종 표류로 판단한 최초 첩보 보고서를 삭제했다면 이는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 하지 않았다는 의혹으로 불거질 수 있고, 국정원법을 어긴 것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결국 국가정보기관이 정부의 입장만을 따르려는 이른바 ‘정치가 정보에 개입하거나, 정보가 정치에 개입’하는 잘못된 행위로 평가받을 수 있다. 에브릴 헤인스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의회 인사청문회에서 “정보에 관한 한 결코 정치가 자리할 여지가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대목을 곱씹어 봐야 한다.   또한 해경이 소위 청와대 모 행정관의 역할 등에 영향을 받아 법적 근거가 불충분한데도, SI에 경도된 나머지 성급하게 “월북 추정”이라는 발표를 단정적으로 했다면 이는 잘못이다. 국방부 역시 눈치보기나 상부 지시로 SI를 삭제하고, 만약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월북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평가를 보완했다면 이 또한 잘못된 행위다. 왜냐하면 실종이나 월북판단 여부는 핵심 증인이자 피해자인 해수부 공무원이 이미 피살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단순 첩보만으로 법적 요건을 완전하게 충족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간과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제2모델(정부조직행태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 보호라는 본질에 대한 객관성을 잃으면서 제3모델(정부정치 모델) 과정에서 정책결정자들이 주관적으로 정치적 편향성에 경도됐고, 제1모델(합리적 행위자 모델) 과정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에도 부정적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북한군에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의 친형 이래진 씨(오른쪽)가 9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유엔인권사무소에서 엘리자베스 살몬 신임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악수하고 있다. 뉴스1   이제 서해에서 피살된 우리 국민의 명예가 회복하고 있다. 5000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은 모두 똑같이 고귀하다. 국가는 이들을 반드시 지켜줘야 하는 최우선적 책무를 갖고 있다. 외부의 안보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합당하게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국민과 국제 사회의 신뢰로부터 멀어져 갈 수밖에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조사 결과, 관련 첩보를 가진 각 부처가 독립적인 판단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면 시정해야 마땅하나, 사건 경과의 어느 시점에선가 정부의 정치적 행위에 누군가 직ㆍ간접적으로 개입했다면 그는 우선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또한 각 부처 고유업무 처리 과정에서의 시시비비는 해당 조직 및 고유 업무를 위축하게 하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에도 유의해야 한다.   앞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유사한 사례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에서라도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상 규명이 철저하고도 신중하게 마무리 돼야 한다. 국가를 분열시키는 정치 수단으로 국가 구성의 핵심 요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이용해서는 누구라도 절대로 용납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2022.09.22 05:00

  • '폴란드 대박'으로 만족해선 안된다...K방산 당장 돈 써야할 곳 [Focus 인사이드]

    '폴란드 대박'으로 만족해선 안된다...K방산 당장 돈 써야할 곳 [Focus 인사이드]

    최근 K-방산 전성기를 알리는 소식이 자주 들리고 있다. 호주, 아랍에미레이트(UAE)에 이어 폴란드에서의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의 대형 수출계약 성사 소식 등이다. 지난 50여년간 국방 연구개발 현장에서 갖은 위험을 무릅쓰고 묵묵히 기술개발에 매진한 연구자들과 개발한 기술을 활용해 가성비 높은 무기체계로 생산한 방산업체 종사자들의 피땀과 눈물 덕분에 방산 경쟁력이 축적된 결과가  이제 국제 방산시장에서 폭발적으로 발현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 교체기라 하더라도 일관된 자세로 국내 기술 개발과 방위산업 육성정책을 추진해온 정부 정책 또한 큰 몫을 하였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세계 4대 방산 수출국가로 만들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이나 취임 초기부터 직접 방산 세일즈 정상외교에 나서는 모습은 방산육성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일관성 측면에서 국내 방산업계에는 극히 고무적인 일이다. 향후 당분간 방산 관련 희소식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거안사위(居安思危), 편안할 때 미래에 닥칠 위험과 곤란에 대비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K-방산의 열풍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방위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16일(현지시간) 폴란드 민스크 마조비에츠키시(市)에서 폴란드 군비청과 FA-50 전투기 48대 수출 이행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식에서 강구영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장(오른쪽)과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이 악수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1970년대 기본병기 국산화를 시작으로 80~90년대 성장기를 거처 전차ㆍ잠수함ㆍ전투기 등 육해공 각군의 무기체계 대부분을 자체 개발하는 수준으로 성장해 국가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에도 기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방위산업을 구조 측면에서 살펴보면, 재래식 무기체계를 중심으로 투자됐으며, 방산에 종사하는 기업과 매출액이 주로 이 분야에서 나온다. 기동(전차ㆍ장갑차), 함정 등이 전체 국내 방산 매출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플랫폼 중심의 무기체계를 가성비 높게 안정적으로 제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기반과 세계 9위 수준에 이른 국방 기술력이 결합해 현재의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국방분야에서 기술력과 안정적 제조 능력을 동시에 갖춘 나라는 독일 등 극히 소수 국가로 한정된다. 따라서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은 꿈이 아니라 조만간 현실이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활용한 무기체계가 개발되고, 이들이 전쟁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게임체인저로 등장하고 있다. 하드웨어적 요소가 강한 기존 재래식 무기체계와 달리 인공지능(AI)ㆍ무인ㆍ로봇ㆍ우주/위성 등으로 상징되는 신기술의 특성은 소프트웨어적 요소가 강함을 알 수 있다. 즉, 신기술이 지배하는 미래 전장환경을 고려하면, 기존의 재래식 무기체계에 신기술을 통합 적용하고 융합하는 것이 미래 방산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가 가진 국방 기술력과 제조업의 강점 분야가 바뀌어야 미래에도 K-방산의 열풍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의 특성이 하드웨어적 요소에서 소프트웨어적 요소로 변화할수록 기술 경쟁력은 물적 기반보다는 인적 기반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즉, 소프트웨어적 신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전문인력 양성이 미래 경쟁력 확보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K2 전차를 생산하고 있는 현대로템 공장. 현대로템   반면, 2018년 4월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발표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AIㆍ클라우드ㆍ빅데이터ㆍAR/VR 등 4차 산업혁명 핵심부문을 중심으로 심각한 인력난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방산은 드론ㆍ로봇ㆍ신소재 분야를 중심으로 신속한 대응이 필수적이란 점을 고려할 때 신산업 분야의 전문인력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수준별 인력 현황을 고려할 때, 첨단산업의 경우 고급 인재가 특히 부족하다.    일례로 핵심 분야인 AI 전문가 수는 2018년 기준으로 미국ㆍ프랑스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15개 국가 중 14위)으로 분석된다. 4년이 지난 현재도 그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과감한 기술개발예산 증액과 국방 R&D 구조 개편 등 여러 노력에도 불구, 신기술 분야의 전문인력 부족은 기초ㆍ원천기술 개발을 어렵게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에 맞게 새로운 획득 방산 전문인력을 선제적으로 양성ㆍ확보하기 위한 체계적이며 장기적 플랜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편, 미국ㆍ일본ㆍ중국ㆍ이스라엘 등 주요국은 기술패권 경쟁시대에서 미래전장을 선도하기 위해 기존 하드웨어 플랫폼 중심의 무기체계뿐만 아니라 AI 등 첨단 신기술을 중심으로 무기체계의 성능과 운영, 군사전략 시행 등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소프트웨어 분야의 미래 국방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1972년 4월 3일 국산병기 시험발사 행사에서 시제품을 살펴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왼쪽에서 네번째). 정부기록사진집   방위산업의 지속적인 성장, 이를 위한 인재양성을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일자리 창출 등 신기술 분야 산업육성과 인재양성을 연계해 국방 R&D 예산을 투자하여야 한다. 방위산업에 신기술 분야 기업의 진입ㆍ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국방 R&D 투자를 확대하고 방산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우수 인재의 양성과 유입도 가능하다고 본다.   즉 양자물리ㆍ인공지능 등 신기술 분야에 국방 R&D 예산 투자를 집중하고 군이 초기시장을 창출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군이 신기술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신속시범획득사업과 신속시제연구개발사업 등을 과감하게 확대 시행해야 한다.   둘째, AI·우주 등 방산 신기술 분야 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정규 교육 과정 신설을 제안한다. 신기술 개발에 강점을 가진 대학과 방사청ㆍ국방과학연구소(ADD) 등이 협약을 맺어 국방 R&D 수행 및 방산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첨단학과(계약학과)를 학부 과정에서 설치하고 석ㆍ박사과정으로 이어지도록 하여 대학 입학자부터 전문 연구자에 이르기까지 양성하는 정규과정을 신설 및 확대해야 한다.   독일 육군 병사가 군사용 로봇독 울프강 001의 사진을 찍고 있다. AP=연합   현재, 방위산업에 특화한 대학 학부 정규과정은 전무한 실정이다. 학부과정 교육 프로그램은 졸업 후 즉시 방산현장 또는 획득 방산관련 부서 등에서 업무 수행이 가능토록 현장 중심의 내용으로 짜여져야 한다. 그래야 방산현장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적 기술능력을 갖춘 인력양성이 가능하다.   또한 학업수행→군복무→취업 등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대학 측이 국방부ㆍ방사청ㆍ방산업체 등과 협업하며 학생 개개인에 대한 진로 지도가 이뤄져야 한다. 이스라엘에서 운영 중인 탈피요트 제도는 그 모범이 될 수 있다.   셋째, 한국형 ‘획득방산인력 양성 및 관리법’(가칭)을 제정하고, 민군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획득분야 재직자 등의 자격관리 등을 규정한 미국의 국방획득인력개선법(DAWIA)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획득 방산 기술을 개발ㆍ보유한 전문인력을 양성ㆍ관리하는 기본법의 제정이 시급하다고 본다.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이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캐너버럴 미 우주군 기지에서 발사하고 있다. AP=연합   최근 K-방산의 흐름이 나타나면서, 북한 등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에 의한 기술탈취 시도가 급증하고 있다. 또한 재직자뿐만 아니라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기술매수 또는 인력 자체 매수를 시도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여 대외무역법, 방산기술보호법 등에서 각종의 장치를 마련하고 있으나, 전문인력 특히 퇴직자의 해외 유출 등에 대한 대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이를 위해 ‘획득방산인력 양성 및 관리법’을 만들어 양성ㆍ재직ㆍ퇴직에 이르는 전 과정을 관리하는 각종의 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소 논쟁적인 주제가 될 수 있으나, 획득 방산분야 기술 연구 개발자 및 계급 정년이 있는 현역 장교들의 취업제한 폐지 또는 완화를 강력히 제안한다. 현재, 획득 방산기술의 최고 산실인 ADD의 경우 책임연구원(약 15년 이상 재직해 방산기술을 연구한 최고 전문가)급 이상은 퇴직 후라도 3년간은 국내 방산업체 취업이 금지돼 있다. 현역 중령 이상 장교도 취업금지 대상이다.   의사결정의 왜곡 등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취업제한의 근본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나 기술개발 전문가와 계급 정년이 있는 현역 장교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ADD의 퇴직자들이 국내 방산업체에 취업할 경우 민군간 기술교류 및 국내 방산기업의 기술 수준 향상 차원에서 그 긍정적 효과가 취업제한을 통한 사회적 이익보다 클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획득 방산분야 재직 중인 현역 장교들의 경우 취업제한으로 인한 전문성 활용기회 상실 측면에서 국가적 손실과 개인적 손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제도의 개선을 검토할 시점이라고 본다.   지난 6월 프랑스에서 열린 최대 국제 방산전시회 유로사토리에서 각 업체들이 내놓은 군사용 무인기. AP=연합   중동ㆍ동남아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로부터 각광을 받는 K-방산의 추세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첨단기술의 집합체인 무기체계로 세계 최고인 유럽시장에서까지 각광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기술 수준과 제조업 능력의 결합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증거라고 본다.    4차 산업혁명으로 표현되는 신기술이 지배하는 미래에도 K-방산 전성기의 지속을 위해서는 고졸부터 대학→대학원→(군복무)→취업→퇴직 후 재취업 등에 이르는 전 과정을 아우르는 획득 방산 전문인력, 특히 소프트웨어적 요소가 강한 신기술 분야의 인력양성 관리 방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기존 연구진 및 전문가들의 전문성 활용을 위해 기술 연구 개발자 및 계급 정년이 있는 현역 장교들의 취업제한 폐지 또는 완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장

    2022.09.20 05:00

  • [Focus 인사이드] 9·19합의로 무력화한 UAV 정찰..유사시는 어떻게?

    [Focus 인사이드] 9·19합의로 무력화한 UAV 정찰..유사시는 어떻게?

    2018년 9월 19일 9ㆍ19 남북 군사합의로 한국군 전 전선지역에서 북한군 활동을 감시하고 있던 군단급 무인정찰기(UAV) 비행이 제약을 받았다. 기존의 군사분계선(MDL) 이남 북상 제한선인 약 3마일(5.4㎞)로부터 서부지역은 MDL 이남 10㎞까지, 동부지역은 MDL 이남 15㎞까지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됐다.    이에 따라 우리 전방부대가 무인정찰기로 전선지역의 북한군을 근접 감시하는 활동이 사실상 전면 중단됐다. 지난 5년 동안 전선지역 UAV 근접 감시활동 중지 기간에 북한군은 전술핵으로 무장하고, 실제 운용 태세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에 강조까지 했다. 그동안 평화 제스처로 북한군의 전략전술에 농락당하지 않았느냐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지 않을까 걱정되는 시기다.   육군 군단급 무인항공 정찰기 RQ-101 송골매. KAI   주지하는 바와 같이 휴전선 155마일로 이어지는 전선지역 MDL 일대는 6.25 전쟁 때 정전협정을 앞두고 남과 북이 서로 관측이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기 위해 백병전이 치열했던 고지군으로 형성돼 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69년 동안 전선지역에선 수백에서 수천 번의 대남 침투 및 도발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군은 다양한 지상감시 장비를 관측이 유리한 고지군에 설치 및 업그레이드하며 북한군 활동을 감시하고, 공중에서는 군단ㆍ사단ㆍ대대급까지 전력화한 UAV가 이를 도왔다.   전선지역에 설치ㆍ운용하는 다양한 종류의 지상감시 장비는 가시선, 즉 직선으로 볼 수 있는 범위로만 감시가 가능하다. 따라서 전선지역에서 동서로 이어지는 높은 고지군의 북측 지역 후사면은 지상감시 장비로는 관측ㆍ감시가 어렵다.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한군의 장사정포들이 바로 이 같은 고지 후사면에 배치돼 있다. 사격진지도 모두 남쪽에서 직접 볼 수 없는 곳에 있다. 이에 따라 유사시 북한군이 포나 중화기, 전차 등을 고지 후사면 사격진지로 은밀하게 이동시킬 경우나 전선지역에서 모종의 도발을 예상할 경우를 대비해 우리 군은 군단급 예하에 공중감시 자산인 다양한 UAV를 배치했다.   이러한 전선지역 UAV를 공중으로 수 킬로미터 고도로 띄워 올리면 고지 너머 북한의 종심지역으로부터 남쪽의 북한군 전선지역 부대로 연결되는 도로 또는 개활지의 화포, 전차, 탄약 및 보급차량 등의 일부 활동을 감시할 수 있다. 전선지역 UAV로 북한군 종심지역에서 전선지역으로 이동하는 군사활동을 제한적이나마 나름대로 감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선지역 UAV로 최소 2~3년 동안 감시활동한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한다면 특정 시점ㆍ지역에서의 북한군 활동이 일상적인 활동인지, 아니면 은밀한 활동인지, 또는 새로운 활동인지 등 도발이나 화기 전진배치 등과 관련한 징후를 판단할 수 있는 유용한 첩보로 활용할 수도 있다.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군사합의문서명식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왼쪽에서 둘째)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서명을 마친 뒤 합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   또한 전선지역 UAV는 공중감시 간 북한군 장사정포나 전차, 차량 등을 동영상(FMVㆍFull Motion Video)으로 지속 추적할 수 있는 특수기능이 있어 북한군이 도발 시 ‘감시→결심→타격’을 지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북한군이 국지도발을 한다면 도발원점이나 예상도발 지역으로 북상시켜 감시할 수 있는 기동성있는 감시자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9ㆍ19 군사합의 이후 군단급 UAV는 비행금지구역 설정 때문에 지난 5년 동안 유사시 비행경로를 날아보지 못했으며, 감시지역에 대한 정찰도 한번도 시행할 수가 없었다. UAV는 공중에서 운용하기 때문에 비행경로 상에서 북한지역 감시가 가능한 위치에 있는 위협적인 무기체계의 활동을 감시하는 실전적 훈련이 매우 중요하다. 조종사의 기량 숙달을 위해 지상통제소를 통한 무인정찰기 조종 및 비행, 실제표적 감시, 기복이 심한 산악지형 특성과 안개, 풍속 등 계절별 비행 기상조건 극복 훈련과 숙련도는 유사시 작전의 성패를 좌우한다.     전방의 열영상감시장비(TOD) TAS-815K. 밤에도 감시할 수 있다. 2012년 개발됐다. 이 같은 지상 감시장비는 가시선만 볼 수 있는 한계가 있다. 한화시스템   가장 최근인 지난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무력정책을 법제화하고, 세부조항에서 ‘적대세력의 핵 또는 대량살상무기 공격이나 임박징후 판단 시 핵타격이 자동으로 즉시 단행된다’는 핵무기 사용조건과 지휘통제 내용 등을 공개했다. 핵미사일을 개발한 핵무장 국가로서 핵무력정책까지 완성한 북한의 향후 행동은 미지수지만, 최악의 경우 전술핵무기들(KN-23/KN-24/KN-25)을 전개하면서 대남 군사도발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 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우리 군이 핵무장한 북한군의 국지도발에 최우선적으로 대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9ㆍ19 군사합의로 북한군 군사도발 징후를 수집하는 실전적 근접 감시비행을 못해 온 정보감시정찰(ISR) 자산은 바로 전선지역 UAV다. 북한이 전선지역에서 대남 군사도발로 위기상황을 타개하고 핵무장국 지위를 행세하려는 시나리오에 대비하려 한다면, 유사시 전선지역 UAV 비행금지구역 해제가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조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2022.09.19 14:00

  • 괴팍한 장군, 전투력 최강…패튼 전차도 그랬다, K2가 갈 길 [Focus 인사이드]

    괴팍한 장군, 전투력 최강…패튼 전차도 그랬다, K2가 갈 길 [Focus 인사이드]

     ━  반공주의자의 이름이 붙여진 전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와 서부전선에서 독일군을 격퇴한 저돌적인 선봉장으로서 명성이 드높은 조지 패튼은 미국 기갑부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수행하는 부하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만큼 성정이 모나고 괄괄했지만, 실전에서의 지휘력은 당대 미군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마디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싸움만 잘하는 무인이었다.   그런데 그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이름이 회자했다. 전후 미국이 주력으로 사용한 일군(一群)의 전차들이 패튼으로 명명됐기 때문이다. M46, M47, M48 전차의 공식명이었다. M60 전차는 이름이 부여되지는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 패튼이라고 불렸다. 이들 전차는 일정한 플랫폼을 유지하며 개량한 형태로 진화해왔기에 흔히 패튼 시리즈라고 한다.   유럽 전역이 끝난 직후인 1945년 6월 9일 벌어진 LA 환영 행사에서 참석한 조지 패튼. 극렬한 반공주의자였는데, 공교롭게도 냉전 시기에 활약한 전차들이 그의 이름으로 명명됐다. 위키피디아   현재 패튼시리즈는 개발국인 미국에서는 퇴역했지만,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일 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한국군도 주요 사용자 중 하나인데, M48A3K와 M48A5K는 잔존가가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오래됐음에도 일선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 중이다. 종합적인 기갑 전력은 우위지만, 양적으로 여전히 북한군이 더 많은 전차를 보유하고 있기에 2선급 전력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군을 기준으로 최초의 패튼인 M46이 데뷔한 1949년부터 M1 에이브럼스 가 본격적으로 배치되면서 물러난 마지막 패튼인 M60이 활약했던 90년대 초까지의 기간은 세계를 살얼음판 같은 긴장 상태로 몰아넣었던 냉전 시기였다. 즉, 패튼이라는 이름은 냉전 동안 공산주의에 대항한 많은 서방 국가의 주력 전차를 의미하며 세계 곳곳에서 활약한 것이다.   M68 105㎜ 주포를 장착한 M48A5K 패튼. 퇴역할 시점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국군의 주요 전력으로 활약 중이다.   냉전이 시작하기 직전에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지만, 패튼이 공산주의를 극도로 혐오했던 인물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인연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서 만찬장에서 만난 소련군 장군을 면전에서 욕하고 항복한 독일을 무장시켜 함께 소련을 공격하자고 주장하는 장면까지 묘사됐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는 툭하면 공개 석상에서 그런 의견을 자주 드러내 워싱턴 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어쨌든 미국에서도 극단적인 반공주의자로 인정받았던 패튼의 이름을 딴 이들 전차는 냉전 시기에 수많은 미국의 동맹국이나 친서방 국가에서 주력으로 활약했다. 같은 시기에 소련이 개발하여 공산권이나 친소 국가에 대량 보급한 T-54, T-55, T-62, T-64, T-72 전차와 각지에서 자웅을 겨루었는데, 한마디로 당대를 상징하는 호적수들이었다. 특히 대규모 기갑전이 자주 벌어진 중동은 그야말로 혈전의 장이었다.    ━  냉전의 종식이 불러온 변화     80년대 이후 제3세대 전차가 본격 등장하면서 2선급 장비로 물러났지만, 이처럼 패튼 시리즈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무력이 극단적으로 대치했던 20세기 후반 동안 당당한 지상의 왕자였다. 그래서 마치 약속한 것처럼 냉전의 종식과 함께 패튼으로 명명된 전차들이 정상에서 내려온 모습은 상당히 흥미로운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온 평화가 오랫동안 계속되기를 모두가 원했다.   패튼 시리즈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던 시기와 달리 냉전의 종식으로 90년대 이후 무기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줄면서 제3세대 전차는 개발된 지 40년 가까이 된 현재까지도 각국에서 주력으로 계속 사용 중이다. 물론 꾸준히 개량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전차가 등장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만큼 변화가 극심했던 그 이전 세대 전차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는 없다시피 했다.   냉전 당시 소련이 서베를린에서 미국ㆍ영국ㆍ프랑스 군대의 철수를 요구하면서 1961년 6월 4일부터 11월 9일까지 베를린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졌다. 그해 10월 27일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대치 중인 미국 육군의 M48 패튼(아래)과 소련 육군의 T-55. 결국 미ㆍ영ㆍ프는 소련의 요구를 거절했고, 소련은 베를린 장벽을 쌓았다. 미 육군   2000년대 이후에 새롭게 등장한 전차도 한국의 K2, 러시아의 T-14, 일본의 10식, 중국의 99식 정도에 불과한데, 최근 폴란드 수출이 확정된 K2를 제외하고는 생산량이 의미 있는 수준이 아니고 T-14는 양산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이유로 올해 초까지만 해도 M1 에이브럼스, 레오파르트 2 같은 기존 제3세대 전차가 개량돼 계속 사용될 것으로 예상됐다.   최근에서야 개념이 전혀 다른 제4세대 전차의 개발에 대한 논의가 본격 시작되었지만, 이 또한 새로운 전차가 절실히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조금씩 개량하는 방식으로는 기존 전차의 성능을 더 이상 향상하기 어려운 한계점까지 왔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패튼 시리즈가 주력으로 활약하던 시기와 비교해 제3세대 전차 시대에 변화가 적었다는 점은 그만큼 평화가 이어졌다는 의미였으므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연막을 뚫고 강을 건너는 K2 전차. 위키미디어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소련의 전성기를 재현하려는 러시아와 세계 2위의 경제 강국이 된 중국이 노골적인 대외 팽창에 나서면서 새로운 동서 대립이 시작됐다. 특히 올해 초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대만 위협은 본격적인 신냉전 시대가 도래했음을 만천하에 고했다. 그리고 탈냉전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던 유럽을 중심으로 그동안 소홀했던 군비에 대한 투자가 재개되었다.   이처럼 상황이 바뀌자 패튼 시리즈처럼 중차대한 임무를 새롭게 담당할 주인공이 도래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면서 한국의 K2 흑표가 후보 중 하나로 급격히 부상했다. 지난 2019년 어렵게 제3차 생산분 54대를 인가받았지만, 올해 초까지만 해도 향후 생산라인 유지에 고민이 많았던 점을 상기한다면 그야말로 극적인 반전이라 할 수 있다. K2가 과거의 패튼 시리즈처럼 새로운 위기의 시대를 책임질 주인공이 되기를 기원한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2022.09.19 05:00

  • 핵무기 쓰면 전쟁 승리한다? 한미동맹 과소평가한 北의 오판 [Focus 인사이드]

    핵무기 쓰면 전쟁 승리한다? 한미동맹 과소평가한 北의 오판 [Focus 인사이드]

    북한이 전에 없던 ‘전략적 명료성’을 추구하고 있다. 추석을 앞둔 9월 8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과 핵무력정책에 관한 법을 공개했다. 김정은의 입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비핵화에 반하는 의지와 핵사용 구상에 대해 국내외에 명확한 뜻을 드러냈다.     시정연설에서는 제재가 100년간지속한다 하더라도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을 추구하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다. 이를 위해 절대로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핵은 ‘국체’이고, 핵보유국의 지위는 ‘불가역적인 것’이 될 것이라 했다. 북한이 받는 제재가 핵무기 때문인데도, 핵이라는 법적 무기를 보유함으로써 보건ㆍ경제 등 다른 사업 전반에서의 전면적 발전을 위한 역사적 진군과 투쟁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2일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는 김정은 당 총비서. 이 자리에서 핵무력 정책과 관련한 법령이 채택됐다.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불과 4개월 전 무렵인 지난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창건 90돌 열병식 연설을 통해 핵의 ‘사용’ 가능성과 그 조건에 대해 직접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어떤 세력이든 북한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할 경우”라는 핵사용 조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북한은 이러한 관심에 답하듯, 이번 핵무력정책에 관한 법에서 사용의 원칙과 사용할 경우를 구체화했다.   북한은 핵무기가 외부의 침략과 공격에 대처한 최후의 수단임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고 밝혔다. 또한 “비핵국가들이 다른 핵무기보유국과 야합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한”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해석하자면, 한국이나 일본이 미국과 함께 북한에 위협을 가하면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원칙으로 명문화한 것이다.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천궁-II의 발사대. 3축 체계의 한 축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의 핵심 전력이다. 한화디펜스   핵을 사용할 경우에 대해서는 북한의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핵 또는 비핵 공격이 감행되거나 임박했을 경우를 포함했다, 이는 한국 국방부가 발전시켜온 이른바 3축 체계의 킬체인(Kill Chain)과 응징보복(KMPR)의 타격 대상들이다. 또한 “국가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를 언급하면서, 설령 핵지휘통제체계가 공격을 받았다 하더라도 “핵타격이자동적으로 즉시 단행”될 수 있다고 밝혀두었다.     또한 북한은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적 필요로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전쟁 초기나 중기에 핵무기를 사용하여 북한이 승리하는 쪽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처럼 핵무기 사용으로 상대의 전쟁 의지를 없애고 장기전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은 지난 4월 5일 김여정 부부장의 언급에서도 드러나 있었다.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면, 한미가 보복하지 않거나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법령에 여전히 모호한 부분을 남겨두기는 했다.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도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핵정책의 명료성이 크게 높아졌다. 굳이 그렇게까지 공개할 필요가 없는데 구체적으로 부연 설명하면서까지, 북한은 북한 입장에서 핵사용을 고려할만한 위협 상황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핵정책의 명료성을 높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억제 효과를 높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핵보유국들은 계산된 전략적 모호성을 추구하고 있고, 북한도 그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료성을 추구할 때는, 오인과 오판에 의한 전쟁의 위험성이 커질 때, 즉, 상대가 나의 의지와 능력을 명백히 과소평가 혹은 과대평가한다고 믿을 때이다. 북한의 경우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의지와 능력을 과소평가한다고 판단해 이 같은 명료성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억제 효과를 높이고자 했던 북한의 의도와 달리, 한국에선 북한 핵미사일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불가피한 안보 딜레마 속에서, 현재 거론하고 있는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핵공유, 자체 핵무장 등 정책적 대안은 분명히 중장기적으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선적으로는 북한이 과연 이 같은 의지에 부합한 탐지ㆍ지휘통제, 발사 능력을 갖고 있는지 냉정하게 검토하면서, 한미동맹의 의지와 능력을 보다 명료하게 밝히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북한이야말로 한미동맹의 의지와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ㆍ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에서 양국은 북한의 7차 핵실험 준비·핵무기 보유 법제화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엄중한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공유하면서 전술핵 등 북한의 어떠한 공격에 대해서도 압도적, 결정적으로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한ㆍ미 동맹은 어떤 상황에도 대비하고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전경주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2022.09.18 05:00

  • 방산업체 암흑기였던 90년대…10년 전 시행착오의 보복이었다 [Focus 인사이드]

    방산업체 암흑기였던 90년대…10년 전 시행착오의 보복이었다 [Focus 인사이드]

    국내ㆍ외적으로 한국의 방산수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CNN은 한국의 방산수출이 ‘메이저리그에 진입했다’고 표현했다. 최근 폴란드를 포함한 대규모 수출계약을 보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평가라고 생각한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폴란드에서 수출 1차분 본계약이 체결된 K2 전차와 K9. 자주포. 폴란드 국기와 합성한 이미지. 폴란드 국방부 트위터   이러한 성과의 진정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국방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지난 50년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은 ‘투자’와 ‘성과’ 사이에 ‘약 10년’이라는 간격(Lead Time)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과정이 없는 결과가 없듯이 축적이 없는 도약도 없다.    ━  1970년대, 담대한 도전     60년대 말까지, 한국은 국방비의 절반 이상을 미국의 군사원조에 의존해 왔다. 70년대 초, 한국은 국방과학연구소를 설립(70년)하고 기본 병기의 국산화(71년)에 나섰다. 군대를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당시 여건에서 국방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독자적인 군사력 건설에 도전하는 것은 무모함에 가까웠다.    1972년 4월 3일 국산병기 시험발사 행사에서 시제품을 살펴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왼쪽에서 네번째). 정부기록사진집   하지만, 2가지 측면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결단이었다. 첫째, 군사력 건설의 출발점을 국방과학기술로 잡은 것이다. 방위산업과 연계된 중화학공업 육성을 경제정책으로 병행 추진한 것도 상승효과(Synergy Effect)를 발휘했다. 방위산업과 중화학공업 육성은 동전의 양면이었던 것이다. 둘째, 국방비의 3.2%(70년대 후반기 연평균)를 연구개발에 투입했다는 점이다.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재원조달이 불가능했다. ‘방위세(75~90년)’라는 특단의 조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  80~90년대, 시행착오와 정체     80년대에 들어서자 방산수출이 연평균 약 1억 달러를 넘어섰다. 83년에는 3억 달러를 달성하기도 했다. 방산 업체의 가동률도 약 60~70% 수준으로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문제점은 내재해 있었다. 국방비 중에서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예산의 비중이 연평균 2.3%까지 저하한 것이다. 80년대의 작은 성과는 70년대의 과감한 투자가 10년이라는 시간 간격을 두고 나타나는 효과였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1987년 9월 18일 육군 승진 사격장에서 열린 88전차 명명식. 이날 88전차(K1 전차)는 연막 속에서도 고속기동을 하면서 표적을 정확하게 명중했다. KTV 유튜브 캡처   90년대엔 80년대 시행착오의 보복이 시작됐다. 방산수출은 연평균 7000만 달러 수준으로 급락했고, 방산 업체의 가동률도 약 50%대로 떨어졌다. 방위산업에 대한 위기론이 대두했다. 유일하게 긍정적인 신호는 국방비에서 연구개발 예산의 비중이 연평균 약 3~4% 수준으로 완만하게나마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성과로 이어지기에는 정도가 약했고, 시간이 필요했다.    ━  2000~2010년대, 도약을 위한 축적     2000년대 방산수출은 연평균 1억~2억 달러, 방산 업체의 가동률은 약 50% 수준이었다. 본격적인 회복세라고 보기 어려웠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2006년에 시작한 국방개혁이 방위산업과 방산수출에 추동력을 제공한 것이다. 특히,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국방비 대비 연구개발 예산의 비중을 선진국 수준인 약 10%까지 점진적으로 증액한다’는 내용을 명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2000년대 후반, 국방비에서 연구개발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까지 늘어났다.     2001년 10월 31일 경남 사천비행장에서 열린 T-50 골든이글 훈련기 출고 기념식. 국가기록사진   2010년대는 방위산업과 방산수출의 성장 가능성이 가시화되는 시기였다. 방산수출이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달성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성장세 보다는 약 10억~30억 달러 사이를 오르내리며 등락을 반복했다. 방산 업체의 가동률은 약 60~70%로서 제조업 평균에 근접했으나, 이윤이 제조업 평균의 약 2분의1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다행히, 국방비에서 연구개발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6~7%까지 상승하면서 본격적인 도약을 위한 에너지가 축적되고 있었다.    ━  2020년대, 선순환 구조를 안착시키기 위한 노력 필요       방위산업진흥회에 의하면(계약기준), 2021년 수출액은 약 75억 달러이고, 2022년은 약 15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정부에서도 ‘방산수출 4대 강국 진입’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비전은 2000년대부터 본격화된 국방 연구개발에 대한 예산 확대가 성과로 이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스톡홀름평화연구소(SIPRI) 통계에 의하면, 세계 방산시장(2017~2021년)에서 한국은 8위로서 2.8%를 점유하고 있다. 1위 미국이 38.6%, 2위 러시아가 18.6%, 3위 프랑스가 10.7%이고, 4~8위까지 국가들이 2~5% 수준의 점유 비율을 보인다. 한국이 점유 비율을 5%까지 끌어올린다면 중국ㆍ독일ㆍ이탈리아ㆍ영국 등을 제치고 4위권에 진입할 수 있다. 최근 5년간 177%에 달하는 높은 방산수출 증가율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2015~21년 국방과학기술 수준 변동 추이. 국방기술진흥연구소   하지만 ‘도달’하는 것보다 ‘안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안착은 ‘지속성’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국방 연구개발과 방위산업 및 방산수출의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평가한 한국의 국방과학기술 수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1년 기준, 미국을 ‘100’으로 가정했을 경우 한국은 ‘79’로서 세계 9위로 평가되었다. 2008년의 세계 11위에서 2015년까지 9위로 2계단 상승한 다음, 이후 현재까지 순위가 정체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방산수출이 세계 4위로 상승한다면, 국방과학기술의 수준도 최소한 그와 대등한 수준이 돼야 한다. 국방과학기술이 방위산업과 방산수출을 선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지속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국방비 대비 연구개발 예산의 비중을 선진국 수준인 약 10%(2021년 기준, 미국은 15%)까지 더욱 높여야 한다. 이를 원동력으로 삼아, 방위산업의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현재의 약 15% 수준에서 약 3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리고 방위산업에서 강소기업의 역할이 확대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첨단 무기체계의 부품 국산화 비율도 한층 더 높일 필요가 있다.   2015~21년 무기체계별 기술수준ㆍ순위 변화 추이. 국방기술진흥연구소   방산수출의 성장을 여객기의 비행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은 공항 활주로를 이륙한 비행기가 순항고도를 목표로 엔진 출력을 급격히 올리면서 상승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순항 고도에 안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몇 년 사이에 결정될 것이다. 향후 3~5년의 기간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지금의 노력은 5~10년 후 성과로 나타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다 멀리 보면서 국방 연구개발과 방위산업 및 방산수출의 선순환 구조가 안착할 수 있도록 진력하는 것이다. 방종관 한국국방연구원 객원연구원ㆍ예비역 육군 소장

    2022.09.08 05:00

  • 獨전차 세계대전 달릴 때, 소달구지 끌던 韓…라이벌 된 비결 [Focus 인사이드]

    獨전차 세계대전 달릴 때, 소달구지 끌던 韓…라이벌 된 비결 [Focus 인사이드]

     ━  선망의 대상     독일은 고정 관념처럼 돼버린 제조업 강국이라는 위상 덕분에 상거래에서 이득을 많이 보는 대표적인 나라다. 실제로 제2차 산업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기계ㆍ화학 분야는 세계 최고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판매자가 갑질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쟁력이 독보적이다. 지난 2015년 ‘디젤 게이트’로 알려진 사기극이 밝혀졌음에도 독일제 자동차의 명성은 변함이 없을 정도다.   무기 분야에서의 위상은 더욱 대단하다. 역사가 오래됐거니와, 20세기에 있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포함해 실전에서 전과가 많았기에 독일제 무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패전국인 관계로 전후 오랫동안 무기의 개발과 보유에 제한을 받아 왔으나, 지금은 세계 방산 시장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특히 전통의 육군 강국답게 지상군 무기는 최정상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레오파르트 2는 미국의 M1 에이브럼스와 더불어 40여 년 가까이 서방 전차 시장을 반분하고 있는 절대 강자다. 국산 K2가 이러한 공고한 아성에 도전 중이다. 위키피디아   그래서 독일제 무기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6ㆍ25 전쟁 이후 미국제 무기에 대한 의존도가 크기에 거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한국 해군의 본격적인 잠수함 역사를 개막한 장보고급처럼 의의가 상당한 무기를 공급받기도 했다. 최초의 국산 전차인 K1의 탄생에 본의 아니게 독일의 역할이 작용했던 사례처럼 종종 방산 거래에 있어 독일을 지렛대로 삼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에 우리 정부는 북한에 뒤진 기갑 전력 격차를 해소하려고 미국에 M60 전차의 면허생산권을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은 기존에 공급한 M48 전차면 충분하다며 거절했다. 아무리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박정희 정권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어도 당시 예멘ㆍ에티오피아에도 M60이 공급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상당히 불쾌한 결정이었다. 더구나 한국은 냉전 시대 서방의 최전선이었다.   독일 전차의 도입을 우려한 미국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최초의 국산 전차인 K1이 탄생할 수 있었다. 위키피디아   이에 정부는 서독과 접촉에 나섰다. 마침 서독은 레오파르트 2 전차의 개발을 완료해 배치를 눈앞에 둔 시점이었기에 단종할 레오파르트 1 전차의 생산 시설을 한국으로 이전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M60과 맞먹는 레오파르트 1의 한국형을 개발해 공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우리 정부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자 화들짝 놀란 미국이 부랴부랴 국산 전차의 개발을 돕겠다며 나섰다.   서독은 미국의 핵심 동맹이지만 전차를 비롯한 기갑 장비는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던 사이였다. 특히 서유럽은 독일제 전차의 텃밭과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마저 독일제 전차를 도입하면 동아시아 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기에 미국이 다급하게 나왔던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M1 에이브럼스 전차의 기술을 기반으로 탄생한 전차가 바로 현재 국군의 주력인 K1이다.    ━  시대의 변화가 바꾼 모습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리가 처음에 염두에 두었던 M60보다 성능이 좋은 제3세대 전차를 적기에 도입하고 국산 전차 시대를 앞당길 수 있게 된 데는 이처럼 독일의 존재가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이후에도 국산 장비를 개발할 때 동종의 독일제 무기는 당연한 벤치마킹 대상이자 성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기술력이 부족해 국산화에 애를 먹던 부품의 주요 공급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받아 온 국산 기갑 장비가 어느덧 K9 자주포를 시작으로 세계 방산 시장에서 독일제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다. 독일의 PzH 2000 자주포는 향후 배치 예정인 국산 K9A2 이전 모델보다 성능이 좋다고 우리도 인정하는 명품이다. 하지만 K9이 성능이 크게 뒤지지 않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하다는 강점을 내세워 시장을 공략하자 현재 PzH 2000은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다.   현존 최고의 155㎜ 자주포라는 평가를 받는 PzH 2000의 사격 모습. 하지만 K9의 2.5배에 이르는 엄청난 가격 때문에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위키피디아   전차는 더욱 극적이다. 국산 K2가 현존 최고의 전차 중 하나라는 명성을 가진 레오파르트 2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K2는 최대 1000대로 알려진 폴란드의 전차 도입 사업에서 유일하게 구매자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철옹성 같은 독일 전차의 장벽을 허물고 처음으로 유럽에 진출하게 됐다. 노르웨이에서도 최신형인 레오파르트 2A7을 상대로 선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자주포. 전차와 더불어 3대 필수 기갑 장비 중 하나인 장갑차도 마찬가지다. 약 17조 원 규모의 최신예 장갑차 400대 도입을 계획 중인 호주에서 국산 AS21 레드백이 독일의 KF41 링스와 경쟁 중이다. 독일제 장비의 성능이 뛰어나기에 참여한 모든 사업에서 한국의 수주를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제가 여러 후보 중 마지막까지 남아 독일제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현재 호주에서 독일의 KF41과 치열하게 채택 경쟁 중인 AS21 장갑차. 이뿐 아니라 현재 여러 나라에서 국산 장비가 독일제의 맞상대로 부상한 상태다. 앞으로도 이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한화디펜스   우스갯소리로 독일 전차가 명성을 써 내려 간 제2차 대전 당시에 소달구지를 끌었던 나라가 오늘날 경쟁자가 되었다는 자체가 대단한 반전이다. 그래서 설령 경쟁에서 패해도 국산 무기가 난공불락 같은 독일제 장비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부상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극적인 변화는 지난 30년간 국제 정세의 변화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냉전 종식 후 대다수가 군축에 나섰던 반면 우리는 주변의 군비 경쟁으로 말미암아 투자를 꾸준히 해온 덕분에 독일을 비롯한 선도국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새로운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서방에서 필요로 하는 무기를 적시에 공급해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됐다. 어렵게 차지한 이런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2022.08.26 05:00

  • 무기 은밀히 숨긴 곳, 적이 스스로 알린 격…이스라엘 '인지전' [Focus 인사이드]

    무기 은밀히 숨긴 곳, 적이 스스로 알린 격…이스라엘 '인지전' [Focus 인사이드]

    나토의 인지전 연구 보고서 표지. 나토   19일 대전 자운대의 육군대학에서 이승찬(준장) 총장 주관으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연구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는 2부에 걸쳐 다섯 가지 주제로 육군 대학에서 교육 중인 학생 장교들이 발표했다. 세미나에는 육군 대학 학생 장교들 외에도 병과학교, 합동군사대학, 그리고 외국군 위탁교육생 등이 참석해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한 분석에 관심을 가졌다.     행사에 초청받은 필자는 모든 주제가 흥미로웠지만, 1부 마지막 주제였던 ‘우크라이나군의 인지전’이 인상 깊었다. 인지전(Cognitive Warfare)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등 서방권에서는 최근 들어 관련 보고서들이 나오면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  국내에는 생소한 인지전     국내에선 아직 인지전에 대한 정의조차 없지만, 인간 두뇌의 취약성을 악용하여 개인을 해킹하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표현으로는 인간의 정신적 취약점을 자극하여 불안정하거나 마비시키기 위해 이해와 의사 결정 메커니즘을 변화시키는 전쟁이다. 궁극적으로 표적의 행동에 행위자의 의도를 반영시키되, 행위자의 개입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거나, 인식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토는 인지전을 염두에 두면서, 기존에 구분하였던 하늘, 땅, 바다, 우주, 그리고 사이버의 다섯 가지 ‘영역(domain)’에 ‘인간(human domain)’을 포함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가짜 뉴스 등을 이용한 회색지대 전략이 널리 알려졌지만, 인지전은 행동의 변화까지 유도하는 보다 치밀하고 공격적인 전략이다.   인지전은 사이버, 정보, 심리 및 사회공학 능력을 통합하여 이루어진다. 나토   인지전을 사용하는 것은 물리력을 활용한 전쟁 이전에 승리하기 위해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이버, 가짜뉴스 및 오보, 심리 및 사회공학을 통합하여 인지 영역을 공격한다.      ━  SNS를 이용한 인지전     인지전은 이미 여러 전쟁에서 실행됐다. 현재까지 알려진 인지전 사례는 주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이루어졌다     러시아군은 2014년 크름반도와 돈바스에서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SNS를 이용한 인지전을 하이브리드 전쟁의 일환으로 벌였다. 2020년에는 아제르바이잔군이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 전쟁에서 자신들이 아르메니아군을 타격하는 영상을 공개하여 아르메니아군의 전투 의지를 꺾고, 국내에선 국민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효과를 얻었다.   이스라엘은 오래전부터 하마스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   이것은 인지전의 낮은 단계로 기존 심리전과 유사하다. 더 발전된 SNS를 이용한 인지전은 2021년 5월 일어난 이스라엘군과 가자지구 하마스 사이의 충돌이었다. 5월 13일, 이스라엘 정부는 언론을 통해 가자지구에 군사력을 투입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5월 14일에는 이스라엘군이 트위터에 가자 지구 공격을 시작했다고 올렸고, 세계 여러 매체들이 이를 뉴스로 전했다.     하마스는 지상전을 준비하기 위해 지하 시설에 은폐해둔 장비를 꺼냈는데, 이 과정을 무인정찰기 등으로 지켜보던 이스라엘군에 의해 은닉 장소가 들통났다. 이어 정밀 유도무기를 사용하여 확인한 주요 거점을 타격하여 많은 피해를 줬다. 게다가 하마스가 민간인 지역에 무기를 배치하는 장면을 SNS로 공개하면서 군사 작전의 정당성을 선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인지전을 수행했다. 우크라이나는 대통령, 정부, 국방부, 심지어 각급 제대까지 SNS를 활용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어 외에 영어로 된 내용도 올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했다.    ━  우리에게 멀지 않은 위협     위에 소개한 사례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들이지만, 가까운 곳에서도 인지전은 벌어지고 있다. 바로, 대만을 상대로 하고 있는 중국의 인지전이다. 중국군은 2003년 공식적으로 인지전을 공식적인 전술로 채택했고,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대만을 향해 인지전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 긴장이 높지 않은 시기에는 대만인들을 포용 방식을 사용했지만, 미국과 갈등이 격화되면서는 가짜 뉴스를 통해 대만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중하고, 내부 분열을 초래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8월 5일 중국 국방부가 공개한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 중국 국방부   지난 8일, 대만 국방부는 중국 공산당이 1일부터 이날 정오까지 대만에 272건의 가짜 뉴스를 퍼트리려 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가짜 뉴스를 군인과 민간인의 사기 저하(130건), 무력 통일 분위기 조성(91건), 대만 정부의 권위 공격(51건) 등 3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중국의 인지전은 가짜 뉴스에 한정하지 않는다. 대만 일부 도시 상공을 가로지른 탄도미사일 발사도 공포를 심어주기 위한 인지전 시도다.   중국의 인지전이 대만을 상대로 하고 있지만, 언제 우리를 향할지 알 수 없다. 중국은 자신들의 주장만을 관철하기 위해 일방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배치된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THAADㆍ사드) 체계다.     북한도 중국의 사례를 빌어 우리에 대한 인지전을 시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행히 우리 육군은 육군비전 2050과 지상작전사령부의 정의를 통해 대비하고 있지만, 군 차원의 문제가 아닌 국가 차원의 종합적 대비가 필요한 문제다. SNS를 통한 가짜 뉴스 대응에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고, 외부 세력의 국내 여론 개입 시도도 확인해 막아야 한다. 최현호 밀리돔 대표ㆍ군사칼럼니스트

    2022.08.24 05:00

  • [김민석의 Mr.밀리터리] 대만 사태, 강 건너 불 아니다...학익진 같은 대비책 세워야

    [김민석의 Mr.밀리터리] 대만 사태, 강 건너 불 아니다...학익진 같은 대비책 세워야

    대만 사태로 앞당겨진 미·중 충돌 시나리오 푸틴·시진핑 만난 뒤 우크라이나 침공 이어 대만사태 벌여 중, 대만 포위해도 미 해군 항모·이지스함 적극 개입 어려워 대만 사태 나면 북한도 핵·미사일로 도발할 가능성 있어 불안해진 국제정세, 이순신처럼 선제적으로 전략 세워야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지난 주말 영화 ‘한산: 용의 출현’(감독 김한민)을 보았다. 수년 전 같은 감독이 제작한 영화 ‘명량’을 관람했기에 기대를 많이 했다. 이순신 장군(박해일 분)이 고심 끝에 창안한 학익진(鶴翼陣) 전술은 대승을 거두었다. 이순신의 함대는 학익진 전법으로 바다에 성을 쌓듯이 왜군(일본군)의 함대를 둘러싼 뒤 집중포화를 쏟아부었다. 왜군 함대는 순식간에 궤멸했다. 이순신의 완벽한 승리였다. 영화 ‘한산’은 1592년 8월 12일 남해안 한산도 앞에서 벌어진 한산대첩을 재연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왜군은 그해 4월 13일 부산포에 상륙한 지 4개월 만에 평양성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선조는 한양을 떠나 의주로 피신했고 국토는 초토화됐다. 왜군이 서해안과 호남지역만 점령하면 전쟁이 끝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왜군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그때 이순신 장군이 나타났다.   한산대첩 당시 이순신 장군이 운영한 학익진도로 우수영전진도첩에 나와있다.   해상에서 처음 사용한 학익진 전법 당시 왜군은 해상에서의 학익진 전법은 듣도 보도 못했다. 학익진은 지상전투에서나 사용했었다. 이순신 장군은 창의적인 학익진 외에도 가능한 모든 조건을 유리하게 활용했다. 우선 학익진으로 왜군 함대를 완전히 포위한 뒤, 왜군 전함이 조선 수군 전함인 판옥선에 설치된 함포 유효사거리 안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왜군이 조총을 쏘면 방패로 막았다. 그러다가 함포 유효사거리에 완전히 들어오자 판옥선은 일시에 함포를 발사했다. 조총은 함포보다 사거리도 짧고 파괴력은 없다. 인명살상용이다. 그러나 함포는 왜군 전함 자체를 파괴했다. 밑바닥이 U자형으로 평평해 제자리 선회가 쉬운 판옥선을 좌우로 돌려가며 함포를 쐈다. 판옥선의 좌측에 설치된 함포를 쏘는 동안 우측 함포에 포탄을 장전하면서 판옥선을 돌려 곧바로 우측 함포를 발사하는 식이다. 단단한 소나무(적송)로 만든 판옥선과 거북선은 상대적으로 무른 삼나무나 전나무로 제작한 왜선에 충돌해 파괴하기도 했다. 이른바 충파(衝破)전술이다. 거북선이 왜군 함대 속에 들어가 좌충우돌하며 함포를 쏴 왜군 함대를 교란했다. 지리적 이점도 최대한 이용했다. 이순신은 좁은 해협인 견내량에 숨어있는 왜군 전함을 학익진을 펼 수 있는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해 격멸했다. 이순신의 전술과 전략은 천재적이다. 그래서 임진왜란과 이어진 정유재란의 7년 전쟁에서 23전 23승을 거두었다. 이런 연전연승은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무이하다. 학익진을 해상에서 처음 사용해 완승한 한산대첩을 세계 4대 대첩에 넣는 이유다. 명량해전에선 겨우 13척으로 왜군 전함 133척에 승리했으니 그 평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해군사관학교에 전시된 거북선   이순신은 한산대첩으로 왜군의 진격을 중단시켰고, 명량해전에서 왜의 수군을 와해시켰다. 마지막 노량해전은 전쟁을 끝냈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발트함대를 격멸한 일본 함대사령관 도고 헤이아치로는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승리한) 넬슨 제독에 비견되는 군신이다’는 언론의 칭찬에 “군신에 어울리는 인물이 있다면 이순신이다”고 말했다. (이학수 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 이순신의 위대한 승리는 우연히 이뤄진 게 아니다. 그는 임진왜란 1년 2개월 전인 1591년 2월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자 거북선 건조에 들어갔다. 전쟁에 대비한 것이다. 3척으로 추정되는 거북선은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하루 전에 완성됐다.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는 “신이 일찍이 왜적의 난리가 있을 것을 걱정하며 특별히 거북선을 만들었사온데...”라고 적고 있다(김종대, 『여해 이순신』).   중국의 대만 포위 훈련에 미국 대처 못 해 임진왜란을 장황하게 얘기한 이유는 이런 전쟁이 반복될까 우려해서다. 임진왜란 이후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은 병자호란(1637년)-청일(1894년) 및 러일전쟁(1904년)-태평양전쟁(1941년)-한국전쟁(1950년) 등으로 이어졌다. 기우일 수도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사태를 보면 국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베이징 동계 올림픽 직전인 2월 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뒤, 같은 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의 지난주 대만 방문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도를 넘었다. 중국은 작정한 듯이 대만을 포위해 미사일과 야포를 쐈다. 푸틴과 시진핑이 짠 것처럼. 중국은 전에 없이 강한 발톱을 드러냈다.   그런데 중국의 이번 대만 포위 훈련사격에서 나타난 문제는 미국이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중국은 대만 주위에 6개의 사격 표적 구역을 설정해 미사일과 야포를 쏘았고, 대만 영공을 침범하기도 했다. 더구나 사격 표적 구역 가운데 3곳은 대만 영해에 겹쳐 있었다. 명확한 주권침해다. 중국이 대만을 주권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대만이나 미국은 관망만 했다. 만약 이런 사태가 다른 나라에서 발생했다면 피해국은 응분의 무력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어쩌면 중국은 대만이 대응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대만이 군사적으로 받아치면 중국은 몇 배로 대만을 공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도 미국이 쉽사리 개입할 수 없다는 게 현 상황이다. 미 해군이 중국 탄도미사일 위협을 감수하고 대만 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 태세가 아직 부족해서다. 중국은 미 해군 항공모함이나 이지스 구축함이 개입해올 경우에 대비해 내륙에 탄도미사일을 대거 배치해두고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17을 비롯해 항모 킬러로 불리는 둥펑-21D 등은 미 항모와 구축함을 격침할 능력이 있다.   중국 탄도미사일 위협에 미 항모 접근 못 해 중국이 이번 사격훈련에서 둥펑 미사일을 11발이나 쏜 이유도 미 해군의 접근을 경고한 조치로 보인다.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의 스이 대변인은 지난 5일 둥펑 미사일 발사에 대해 “정밀타격과 지역 거부능력을 점검했다”고 말했다. 미 해군이 유사시 대만을 돕기 위해 진입하면 둥펑 미사일로 정밀 타격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미 항모 로널드 레이건함은 필리핀 인근에 비상 대기했다. 미국은 이런 상황이 빨라야 2025년, 늦으면 2030년쯤 발생할 것으로 생각했다. 중국이 2025년 이후부터 제1도련선 안으로 미 해군 진입을 막는다고 한다. 이른바 반접근/거부(A2AD)전략이다. 2030년은 중국이 대만에 상륙작전 능력을 갖추는 시기다. 그래서 미국은 스텔스 구축함과 무인 함정으로 구성된 유령함대(Ghost Fleet)를 2025년쯤 창설할 계획이었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미국은 항모타격단을 보내기 전에 유령함대를 선봉에 세워 중국 함정과 내륙 탄도미사일 기지를 제거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중국이 제1도련선을 차단했고, 미 해군 세력은 접근도 막았다. 중국이 선수를 친 셈이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은 큰 충격에 빠졌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중국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추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형세가 이미 기울어졌다. 중국이 앞으로도 대만을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다는 게 증명됐다.   중국의 바시 해협 차단은 해상수송로 위협 중국이 이번 군사훈련을 감행하면서 바시 해협을 일시 차단한 것은 보통 심각하지 않다. 중국 국방대학교 멍샹칭 교수는 지난 5일 언론 인터뷰에서 “대만 남부 해역에 설정한 2개의 훈련구역은 대만과 필리핀 사이의 바시 해협을 봉쇄하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바시 해협은 동남아·인도·중동·아프리카·유럽을 오가는 한국과 일본의 해상물동량이 지나는 관문이다. 중국이 미국의 견제를 받지 않고 한·일의 해상수송로를 차단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미·중 군사적 긴장은 커졌고, 충돌 예상 시기도 앞당겨질 것으로 판단된다.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행동에 북한까지 가세하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 공산당 마오쩌둥의 지원을 받아 북한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도발했을 때와 유사한 형국이다.  이젠 미국이 대비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서두를 것이다. 일본도 복잡해진 국제정세에 대비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고 방위비도 올릴 것이다. 한국은 대만 사태와 직접 연동돼 있다. 미국이 대만과 한반도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기엔 한계가 있다. 한국이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충무공 이순신의 거북선과 학익진처럼 창의적이고 치밀한 유비무환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제1도련선=필리핀~대만~오키나와 서쪽~일본 남부의 섬을 잇는 가상선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2022.08.11 00:45

  • K방산 '폴란드 대박' 마냥 못 웃는다…그냥 두면 안 될 그래프 [Focus 인사이드]

    K방산 '폴란드 대박' 마냥 못 웃는다…그냥 두면 안 될 그래프 [Focus 인사이드]

     ━  탄력받는 세계 4위 방산수출국 목표     유럽 각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군사력 강화를 서두르는 가운데, 폴란드가 우리나라에서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를 대량 구매하기로 했다. 1차 도입 분량만 K2 전차 180대, K9A1 자주포 48문, 그리고 FA-50 경공격기 48대다, 이후 폴란드에서 우리 업체의 기술 지원을 받아 수백 대의 전차와 자주포를 현지 생산할 예정이다.   폴란드가 지난달 27일 FA-50 경공격기, K2전차, K9자주포 등 구매 기본계약을 한국 방위산업체와 체결한 뒤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현호 한국항공우주산업 대표, 이용배 현대로템 대표,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부장관, 손재일 한화디펜스 대표, 세바스찬 흐바워크 국영방산기업 PGZ 회장. 국방부 공동취재단   이번 수출의 최종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건국 이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덕분에 2022년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밝힌 향후 5년 내 세계 4대 방위산업 수출국 진입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수출에 앞서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적인 방위산업 수출국으로 발돋움했다. 세계 무기 수출입 통계를 발표하는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17~2021의 5년간 우리나라는 세계 방위산업 수출국 6위에 올라섰다. 수출 점유율은 2.8%를 차지했는데, 2012~2016 기간의 1%에 비교하여 177%라는 높은 성장을 기록했다.     우리나라 방위산업 수출의 발전은 국내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산업부와 방위사업청에 의하면, 2021년 방위산업 수출은 72억 5,000만 달러(계약 기준)를 넘어 역대 최고의 실적으로 세계 10대 방위산업 수출국이 되었다.    ━  성과 아래 감춰진 업체들의 어려움     이런 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방위산업계는 가동률과 영업 이익률 모두 제조업 평균을 훨씬 밑도는 어려운 상황이다. 2020년 10월  산업계 경영 실태 자료에 의하면, 2019년 국내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이 4.4%인데 비해 방산업체 영업이익률은 3.4%에 불과했다. 평균 가동률도 제조업은 73.2% 지만, 방산업체는 72%로 낮았다.   2011~2020 방산업체 영업이익률 현황. e-나라지표   이전 통계는 더 암울했다. 2018년 영업이익률은 제조업 평균 7.3%, 방산업체 2.4%, 가동률은 제조업 평균 73.5%, 방산업체 71.2%였다. 2017년에는 영업 이익률에서 제조업이 평균 7.6%를 기록했지만, 방위산업은 0.5%에 불과했다.     수출은 군에 납품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어 방산업체들에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이번 폴란드 수출과 같은 수주가 꾸준하게 필요하다. 최근 인도·태평양과 유럽을 중심으로 군비 확충 움직임이 일면서 우리 무기의 수출 확대에 청신호가 켜졌다.   그러나, 우리 방위산업은 완제품 수출 위주로 구성돼 해외 수주를 따지 못할 경우와 딸 경우의 수치 차이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이런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국내의 우수한 부품 및 소재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필수적이다.     그동안, 우리 업체들은 외국에서 무기를 도입할 때 반대급부로 제공되는 대응구매(off set)에 따라 부품 등을 수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응 구매에 따른 수출은 물량이 한정적이며, 기한이 정해져 있어 업체들이 기피하는 경우가 많아 무기 도입에 따른 대응구매 물량 해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해외에 부품·기술더 적극 수출해야.     우리나라의 방위산업 수출은 완제품 수출에 더해 부품과 소재, 기술까지 수출하는 전방위 수출 전략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출 무기류의 국산화 비율을 더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차나 자주포 등 지상 장비의 국산화 비율은 높지만, 아직 항공기와 전투함정의 국산화 비율은 선진국 대비 낮다.   림팩 2022 훈련 기간동안 전시된 국산 유도로켓 비궁. LIG 넥스원   외국제 부품 및 장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국산 부품과 장비의 개발을 더욱 촉진하고 이것들을 외국제 장비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럽과 이스라엘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사용하는 미국에 자신들의 장비를 팔기 위해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일부 현지 법인은 미 국방부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주계약업체 지위까지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경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어, M2 브래들리 보병전투차를 대체하는 미 육군 사업에 한화 디펜스가 개발한 레드백을 제안하고 있지만, 미국 주계약업체로 오쉬코시 디펜스와 협력하고 있다.    ━  미국 시장 진출 위한 선결과제 RDP-MOU     하지만, 미국 시장이 점점 닫히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미 의회는 미국산 물품 구매 의무를 강화하는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바이 아메리카 정책은 우리 무기는 물론이고 부품의 진출에도 걸림돌이 된다.     2020년 9월 9일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미시간주 전미자동차노조를 방문해 ‘미국산 구매’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의 조치로 인한 피해를 완화하기 위해 방산 분야 자유무역협정(FTA)이라 불리는 ‘상호 국방조달 협정(RDP-MOU)’ 체결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엄청난 규모의 미국제 무기를 도입했지만, 캐나다와 영국 등 28개국과 맺은 RDP-MOU는 아직 서명하지 않았다. 우리 부품 및 소재 기업들의 진출을 위해서도 미국 국방 조달사업 참여시 가격 페널티 적용 면제 등의 혜택을 받는 RDP-MOU 체결이 시급하다.     세계 많은 국가에 수출되는 미국제 무기에 우리의 기술과 부품이 들어가면 방위산업의 기반인 부품과 소재 업체들의 기술 개발 능력도 더욱 강화되고, 세계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최현호 밀리돔 대표ㆍ군사칼럼니스트

    2022.08.05 05:00

  • 왜 美전투기 아닌 한국 택했나…폴란드는 '나치 악몽' 기억했다 [Focus 인사이드]

    왜 美전투기 아닌 한국 택했나…폴란드는 '나치 악몽' 기억했다 [Focus 인사이드]

     ━  당장 구할 수 있는 전투기     1938년 9월 29일, 독일 뮌헨에 모인 영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의 수뇌들은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차지하는 대신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더 이상 영토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약소국 주권을 무시한 이른바 뮌헨 협정이었다. 하지만 1939년 3월, 독일이 보헤미아-모라바를 직할 보호령으로, 슬로바키아를 독립시켜 괴뢰국으로 삼으면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약속은 6개월 만에 깨졌다.   불과 6개월 만에 뮌헨 협정을 깨고 1939년 3월 15일 체코 프라하에 입성하는 독일군. 교전만 없었다 뿐이지 군대가 동원된 명백한 침략이었다. 이제 독일의 다음 목표는 폴란드가 되었다. 라디오 프라하   이제 독일의 다음 목표가 폴란드라는 사실은 명백해졌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폴란드는 영국,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군비 증강에 나섰다. 침략에 150만명을 투입할 예정인 독일군에게는 열세였어도 폴란드군 또한 100만명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강군이었다. 야포의 질과 양도 부족하지 않았다. 기갑전력은 격차가 컸으나, 당시 독일군의 주력인 1호, 2호 전차는 방어력이 빈약해서 무조건 두려워할 상대가 아니었다.   문제는 항공 전력이었다. 당시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독일 공군은 2300대의 각종 최신 작전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폴란드 공군도 600대의 전투기ㆍ폭격기를 포함해서 1400대를 보유했지만, 문제는 대부분이 구식이라는 점이었다. 모두 국내 제작사인 PLZ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것은 긍정적이었지만, 성능이 떨어졌다. 특히 제공권을 놓고 싸워야 할 P.11 전투기로 독일의 Bf-109 전투기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폴란드 공군의 주력인 PLZ P.11 전투기. 하지만 캐노피가 없는 구식 구조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독일의 주력인 메셔슈미트 Bf 109 전투기를 상대하기에는 성능이 부족했다. 위키피디아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은 이후 서서히 위기가 고조하고 있었음에도 위정자들이 권력 다툼에 매몰돼 군비 투자를 게을리한 결과였다. 당장 폴란드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해외에서 전투기ㆍ폭격기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당시 Bf-109와 대등하게 상대할 수 있는 전투기라면 1938년 8월부터 배치에 들어간 영국의 스핏파이어가 유일했다. 폴란드는 다급히 구매를 타진했으나 영국은 자국 물량이 우선이어서 1941년 이후에야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고심 끝에 폴란드는 스핏파이어보다 성능이 떨어져도 당장 공급이 가능한 전투기 확보에 나섰다. 그렇게 해서 1939년 8월 초에 프랑스와 M.S.406 전투기 120대 도입 계약을 맺었다. Bf-109에게는 열세지만, P.11보다는 좋기에 택한 차선책이었다. 그리고 계약을 맺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8월 29일, 1차분 40대의 선적이 이루어졌는데 노르웨이 국적 화물선이 무기라는 이유로 수송을 거부하며 출항이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그러던 9월 1일, 마침내 전쟁이 발발했다. 고군분투하던 폴란드군을 가장 괴롭게 만든 것은 예상대로 독일 공군이었다. P.11이 열심히 출격해서 저지에 나섰으나, 결국 제공권을 빼앗겼고 이후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탄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폴란드의 항전 의지를 꺾기 위해 실시한 바르샤바 공습으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화물선은 9월 15일이 돼서야 우여곡절 끝에 출항했으나 폴란드로 직접 갈 방법이 없었다.   프랑스의 모랑솔니에 M.S.406 전투기는 한창 개발 중인 드와탱 D.520 전투기가 배치되면 2선으로 물러날 예정이었다. 물량에 여유가 있어 당장 급한 폴란드가 120기를 구매했지만 인도받지 못했다. 위키피디아   그래서 관계가 좋았던 루마니아를 통해서 보내려고 도착항을 콘스탄차로 바꾸어 향하던 중 폴란드가 항복하며 전쟁이 끝났다. 물론 40대의 M.S.406이 제때 도착했어도 전쟁의 판도를 바꾸기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한 것이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었던 폴란드 조종사들은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폴란드에서는 도착하지 못했던 M.S.406이 두고두고 아쉬움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  오래된 아쉬움을 달래 줄 희망이 되기를     지난달 27일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를 생산하는 국내 업체들과 폴란드 정부 간에 무기 거래에 관한 기본협정이 체결되었다. 구체적인 세부 계약이 남아 있고 향후 변동 가능성도 충분하기에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공식 반응을 삼가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도 당황했을 만큼 규모가 큰 데다 폴란드의 적극적인 대시에 힘입어 번갯불에 콩 볶듯이 일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2022년 7월 27일, 폴란드 현지에서 이루어진 국산 방산물자의 구매에 관한 기본협정식. 실제 도입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고 규모도 크다 보니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다. 국방부 공동취재단   급하게 추진한 만큼 폴란드뿐 아니라 주변국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다. 특히 48대를 구매하기로 한 FA-50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 부정적 반응도 상당하다. 이들의 주장을 크게 요약하자면 F-35나 F-16, 라팔, 유로파이터, 그리펜 같은 전투기가 있는데 어째서 FA-50인가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전투기들의 작전 능력이 FA-50보다 뛰어난 것은 명백한 사실이어서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현재 서방 전투기의 수급 상황을 모르기에 나온 발언이다. 일단 거론된 전투기들은 원하는 시일 내에 도입이 불가능하다. 폴란드가 지난 2019년에 32대를 주문한 F-35만 해도 납품은 2025년 이후부터 5년 동안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F-16, 유로파이터는 생산라인이 닫히기 직전이고 라팔, 그리펜의 도입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쓸만한 중고기를 획득하기도 전보다 어려워졌다.   그래서 옛 소련제 전투기의 퇴출과 F-35의 배치 전까지의 공백을 시급히 메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FA-50이다. 경공격기여서 작전 능력이 앞서 언급한 전투기에는 미치지 못하나, 만일 러시아의 침공이 있으면 본토 방어나 지상군 저지 같은 임무는 충분히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주력인 F-16과 향후 도입될 F-35의 조종사 양성에 상당히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도 매력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마치 당장 스핏파이어를 도입할 수 없어 M.S.406으로 전력을 향상하려 했던 과거 사례의 데자뷔라 할 수 있다. 실제로 FA-50 도입을 찬성 의견 중에는 구해 놓고도 도착이 늦어 사용하지 못했던 M.S.406을 거론하며 최대한 빨리 FA-50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필요할 때 사용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런 점에서 FA-50은 현재 폴란드에게 시의적절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폴란드는 물론 우리도 불과 6개월 전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벌어진 결과다. 그만큼 폴란드가 러시아에 대해 느끼는 위기의식은 대단하다.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동맹체가 있음에도 폴란드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1939년에도 영국과 프랑스는 동맹이었지만 정작 독일이 침략했을 때 자를란트로 제한적인 진군을 했던 정도를 제외하면 도움을 준 것이 없었다.   폴란드가 구매할 예정인 FA-50 경공격기. 제때 공급이 이루어져서 M.S.406에 대한 폴란드의 오래된 아쉬움까지 함께 풀어주기를 바란다. KAI   그래서 폴란드는 현재도 나토와 별개로 스스로 지킬 힘을 최대한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뒤에서 백업해주어야 할 독일의 태도가 신뢰를 주지 못하는 데다 불과 80여 년 전에 비참한 망국을 경험했기에 조바심이 큰 것은 당연하다. 갑자기 이루어진 거래지만 FA-50이 원하는 시일 안에 공급이 이루어져서 폴란드에게 도움이 되고 M.S.406에 대해 간직해 온 오래된 아쉬움까지 함께 풀어주기를 바란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2022.08.04 05:00

  • 상상의 러군 향해 40년 칼 갈았다...'강철비' 美하이마스 비밀 [Focus 인사이드]

    상상의 러군 향해 40년 칼 갈았다...'강철비' 美하이마스 비밀 [Focus 인사이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 사상자의 58%,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 사상자의 70%, 6ㆍ25 전쟁에서 미군 전사자의 66%가 포병에 의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포병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지난 5~6월,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 포병의 사격발수는 우크라이나의 약 10배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미군의 M-142 하이마스. AP=연합   하지만, 미군의 M-142 고속기동 다련장 로켓(HIMARSㆍHigh Mobility Artillery Rocket System)이 우크라이나에 도착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7월 말 우크라이나 제93기계화여단 지휘관은 “하이마스로 하르키우 동남쪽에 위치한 러시아 탄약고를 타격한 결과 포격이 10분의 1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도 하이마스를 최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할 목록에 올렸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지원된 하이마스는 12문(4문 추가지원 예정)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극적인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련장 로켓이라는 무기체계가 소련(러시아)과 미국에서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일찍 시작했으나, 정체된 러시아     “포병은 현대전의 신이다.”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 한 말로 알려져 있다. 다련장 로켓을 포병의 주력 무기로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도 소련이었다. 독특한 형상과 무시무시한 발사음 때문에 ‘스탈린의 오르간’이라고 불린 BM-13(구경 132㎜, 약 1만대 생산)이 대표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다양한 파생형(BM-8/구경 82㎜, BM-31/구경 300㎜)이 생산됐다.   BM-13 다련장 로켓(일명, 스탈린의 오르간) 발사 장면 Real History Online   다련장 로켓의 단점은 낮은 정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은 일시에 다량의 화력을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을 보다 중요시했다. 예를 들면, BM-13 다련장 로켓 4문은 7~10초 동안 40만㎡의 면적에 총 4.35t의 고폭탄을 투발할 수 있었다. 효과는 재래식 화포 72문의 집중사격과 동일하다. 공격 초기 폭 1~2㎞ 구역을 집중적으로 타격하여 돌파구를 형성하거나, 방어 작전에서 적 주력 부대가 밀집된 지역을 타격하는 방식이었다. 일명, ‘카츄사(Katyusha)’로 통칭하는 소련의 다련장 로켓은 T-34 전차, IL-2 대전차 공격기와 함께 ‘소련을 구한 3대 무기체계’가 됐다.   이러한 군사적 전통은 냉전기간에도 이어졌다. 소련은 1960년대 BM-21(구경 122㎜), 70년대 BM-27(구경 220㎜), 80년대 BM-30(구경 300㎜) 등 다련장 로켓을 개발하면서 구경과 사거리를 지속적으로 확장했다. 80년대 소련군은 ‘전투력의 70%가 포병으로부터 창출된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냉전 해체 이후, 러시아군은 다련장 로켓의 발전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현재도 60년대 생산된 BM-21을 운용하고 있으며, 주력은 70~80년대 생산된 BM-27ㆍ30이다. 개량된 BM-30 다련장 로켓은 2027년 후반기에나 배치될 예정이다. 전체적인 측면에서 러시아 다련장 로켓은 구경 확대와 사거리 연장에도 불구하고, 기술 수준 및 운용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늦게 시작했으나, 혁신한 미국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군도 T34(Calliope, 구경 114㎜) 같은 다련장 로켓을 운용했다. 하지만 생산량이 수 백문에 불과했기 때문에 포병의 주력 무기체계가 될 수는 없었다. 지상군도 압도적인 항공력 덕분에 다련장 로켓을 포병의 주력 무기체계로 발전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M-270 MLRS 사격 훈련. 중앙포토   70년대 후반, 미군은 소련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한 군사혁신을 추진했다. 75년 기준, 미군 대비 소련군의 지상병력은 2.5배(미국 97만명, 소련 239만명), 전차는 5배(미국 8700대, 소련 4만2000대)에 달했다. 가장 큰 고민은 ‘유럽 평원을 가로질러 파도처럼 들이닥칠(일명, 제파식 공격) 소련의 기갑부대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였다.   해결책은 ‘소련군을 종심지역에서부터 타격하여 근접지역에서는 약화된 적과 전투하는 것’이었다. 장약의 폭발력으로 포탄을 발사하는 포신 포병은 공학적 한계 때문에 구경 및 사거리의 획기적인 증가가 어려웠다. 대안은 대구경 다련장 로켓이었다. 73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대규모 항공기 손실이 발생하자, 독자적인 종심타격 수단이 필요하다는 지상군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 M270 다련장 로켓(MLRSㆍMultiple Launch Rocket System, 구경 227㎜)이다. 77년에 개발을 시작해, 83년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91년, 걸프전쟁에서 활약한 덕분에 이라크 병사들로부터 ‘강철 비(Iron Steel)’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후, 진화적인 성능개량 과정을 거쳐 정밀타격과 신속성, 미사일과 통합 운용능력 등을 확보할 수 있었다.    ━  1~2분 안에 적에게 강철비를 뿌려     첫째, 정밀타격은 로켓에 첨단 항법장치(GPS+INS)를 장착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유도로켓(GMLRS)은 92㎞ 이내의 표적을 10m 이내 오차로 타격할 수 있다. 러시아군의 다련장 로켓은 이러한 능력이 없다. 물론, 비용 측면에서는 부담이 된다. 무유도 로켓은 1발당 3000~4000만원이지만, 유도 로켓(GMLRS)는 최소 1억원 이상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탄약 조달의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보도가 있다.   미군의 M-142 하이마스는 C-130 수송기로 쉽게 옮길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군은 전 세계 어디라도 신속한 화력지원을 할 수 있게 됐다. EPA=연합   둘째, 사격통제체계를 디지털화함으로써 신속한 사격이 가능토록 했다. 예를 들면, 표적 접수→사격제원 계산→발사대 지향→발사까지 모든 과정이 버튼 조작으로 총 1~2분이면 가능하다. 그리고 재장전은 포드(Pod) 형태 탄약포장과 유압 장치를 활용하여 5분 이내에 이뤄진다. 반면 러시아군의 아날로그 사격통제장치와 수동 재장전은 3~5배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셋째, 정밀타격과 신속성은 다련장 로켓의 운용범위를 더욱 확장했다. 최초에 의도했던 종심표적 타격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대(對) 화력전 수행까지 가능해진 것이다. 즉, 무인기와 대(對) 포병탐지레이더를 활용하여 적 포병 및 탄약 집적소 등을 탐지하여 정밀타격으로 파괴하는 방식이다. 사격 후 신속한 진지변환 능력은 M270의 생존성을 보장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전장의 주도권 장악과 적 포병에 의한 아군 인명 피해를 감소시키는 효과로 연결될 수 있다.     또한, 육군전술미사일(ATACMS, 구경 600㎜, 사거리 300㎞) 발사도 가능하다. 표적의 특성에 따라 로켓과 미사일을 선택함으로써 전술적 융통성이 대폭 넓어진 것이다. 이것 역시 러시아군의 다련장 로켓과 차별화 된 능력이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은 전(全) 지구적 차원의 전투력 투사를 위해 M270 계열을 C-130 수송기에 탑재할 수 있도록 개량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다련장 로켓이 M-142 하이마스다. 차체를 장갑차 형태에서 5t 표준 차량으로 교체하고, 발사대에 1회 장전 가능한 로켓 수량을 절반(12→6발)으로 줄인 것을 제외하면 M270 계열과 성능이 동일하다.     2022년 6월, 우크라이나에 지원된 하이마스는 육군전술미사일이 제외됐다. 미국이 확전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하이마스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40년간 진화적 혁신의 산물이다.    ━  혁신은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       군사혁신에서도 합목적성이 중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생각한 전차 운용의 목적은 제1차 세계대전처럼 ‘참호를 돌파하는 수단’에 한정돼 있었다. 반면, 독일군의 생각은 전차를 ‘적지 종심기동을 통한 전과확대의 수단’까지 확장됐다. 다련장 로켓에 대한 러시아군의 생각은 정체됐지만, 미군의 생각은 지속적으로 확장됐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천무의 사격 모습. 한화   한국군의 천무도 M270 계열의 다련장 로켓과 대등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 향후, 전술지대지 미사일과 통합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능력도 구비할 예정이다. 해외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미래 전장에서 화력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이다. 첨단 기술을 적용한 지속적인 성능향상을 통해 운용범위를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혁신이란 어느 시점에 완료될 수 없다.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정체는 현상 유지가 아니라 퇴보를 의미한다. 러시아와 미국의 다련장 로켓 발전과정이 한국의 국방혁신에 교훈이 되기를 기대한다.   ☞ 포병 무기체계 구분=통상 발사체를 기준으로, 포탄을 발사하는 포신 포병과 로켓을 발사하는 로켓 포병으로 구분한다. 기고문의 주제인 다련장 로켓은 로켓 포병을 의미한다. 최근 사거리 1000㎞ 이사의 단거리 지대지 미사일(SRBM)도 포병 무기체계에 포함하는 추세로 발전하고 있다. 방종관 한국국방연구원 객원연구원ㆍ예비역 육군 소장

    2022.08.02 05:00

  • 힘 떨어진 美 핵억지력…핵전쟁 부를 수 있다, 이 두나라의 오판 [Focus 인사이드]

    힘 떨어진 美 핵억지력…핵전쟁 부를 수 있다, 이 두나라의 오판 [Focus 인사이드]

    바야흐로 3차 핵시대에 들어섰다.     핵폭발   2차 세계대전부터 냉전의 붕괴까지인 1차 핵시대에는 미국과 소련 사이의 전략적 균형으로 인한 억제가 작동했다. 두 패권국은 상호 비등하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서는 압도적인 수천 기의 핵무기를 보유했다. 한 쪽이 다른 쪽에 사용하는 순간 사용한 쪽 역시 공멸할 것이므로, 핵무기는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할 무기로 인식됐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는 양국의 군사적 대립으로 핵사용 직전까지 갔던 사례로서, 역설적이게도 전 세계적으로 핵사용을 더욱 금기시하는 계기가 됐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기 직전, 1998년의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은 2차 핵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들뿐 아니라 북한ㆍ이란ㆍ리비아ㆍ시리아 등 소위 불량국가들, 심지어 테러리스트들로의 핵 확산이 우려된 시대였다. 이처럼 새롭게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보유하려는 행위자들은 이미 핵을 보유한 강대국에 비해 취약하고 비합리적이다. 그래서 심각한 위협을 받으면 핵사용을 무릅쓸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핵에 의한 안정성이 크게 낮아짐에 따라, 핵안보와 ‘핵무기 없는 세계’에 대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2차 핵시대는 미국의 핵능력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서로 핵을 사용하려 한다 해도, 미국이 가진 핵능력으로 이를 억제할 의지는 없었다. 미국의 핵능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시를 강타한 9ㆍ11 테러가 일어났고, 3000명에 이르는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가 자국민들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것에도,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ICBM을 개발하는 것에 대해서도, 미국이 가진 핵은 억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북한은 5월 24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미국 전역에 핵공격을 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이다. 노동신문   3차 핵시대는 다량의 핵을 보유한 강대국들에 의해 미국 주도의 패권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을 배경으로 한다. 2014년에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사건은 이전 시대와는 다른 특징의 핵시대를 예고했다. 전략폭격기와 핵타격 모의실험 등 러시아가 드리운 핵 그림자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을 성공적으로 위협했고, 미국은 이를 막지 못했다. 지금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3차 핵시대에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적수였던 러시아뿐 아니라 또 다른 주인공, 중국이 있다. 중국은 2030년까지 약 1000기의 핵무기를 가질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2049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군을 건설하겠다는 시진핑 주석의 포부(강군몽ㆍ强軍夢)를 고려할 때, 미국과 러시아 수준의 핵능력 증강도 고려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핵능력 고도화는 주춤했던 미국과 러시아의 핵능력 증강을 재촉하고 있다. 이들은 전에 없이 사용 가능성에 무게를 두며, 핵전력 현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제 양자가 아닌 삼자에 의한 핵 경쟁인 것이다.   삼자 간의 핵 경쟁은 그 자체로 계산이 훨씬 복잡해진다. 셋 중에 둘이 한 편을 하자고 하면, 균형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둘의 핵무기를 합친 양과 비등해져야 한다. 또한 미국이 상대하는 나머지 둘은 미국을 먼저 때리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일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핵전력 사용 가능성으로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원한다. 중국은 아직 미국보다 열세인 핵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맞고서 반격을 하기보다는 먼저 타격을 해서 적의 능력을 급격히 약화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사이버와 같은 신흥 기술은 전략적 균형을 위협할 수 있게 됐다. 로이터   이처럼 3차 핵시대는 강대국 간의 군비경쟁에 초점이 맞춰진 점에서 1차 핵시대와 닮았지만, 급격히 낮아진 핵 안정성은 2차 핵시대를 닮아 있다. 그런데 핵 안정성을 낮추는 것은 행위자 때문만은 아니다. 핵무기와 비핵 전략무기와 결합은 핵 균형의 명료함을 무너뜨리고 있다. 전략적 임무에 사용될 수 있는 극초음속활강체(HGV), 사이버 무기, 인공지능(AI) 등 신흥 기술에 기반을 둔 능력이 핵태세와 결합하면서, 빈틈없이 억제가 가능하다고 믿겨지는 상황에 구멍이 늘고 있다.     예컨대, 센서 기능, 실시간 데이터 처리, 표적 추적 및 정밀 타격의 능력 향상은 이전에는 은밀하게 기동 가능했던 핵무기를 쉽게 찾고 정확히 손상시킬 수 있다. 또한 적의 핵 지휘통제통신체계의 디지털화는 적의 약점을 틈탈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침투에 취약한 도전을 야기하고 있다. 더불어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해서는 미사일 방어 임무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요격 방법과 지원 인프라가 발전되고 있다.     2007년 9월 6일 이스라엘 공군은 전투기를 동원해 시리아가 비밀리에 짓고 있는 원자력발전소를 폭격했다. 작전명은 '상자밖(Outside the Box)'. 왼쪽은 폭격 전, 오른쪽은 폭격 후 위성사진. 북한이 시리아 원전 건설에 도움을 줬다고 한다. 이스라엘군   이제까지의 국제정치 아래에서는 핵이 주는 전략적 안정에 의지해 전술적 도발로 인한 불안정을 감수하고, 대신 더 큰 정치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장담이 어렵다. 안정-불안정의 경계는 더는 예전만큼 두텁지 않다. 핵이 보유한 폭발력과 기존의 예측 범위를 극복한 첨단 무기체계의 결합,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 중국, 러시아의 경쟁은 오인과 오판에 의한 핵확전의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남의 동네 얘기가 아니라, 한반도와 국경을 접한 두 국가와 한국의 동맹국 간에 벌어지는 얘기다. 전경주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2022.08.0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