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313 Time to build a consensus

2020-05-26 00:00:00





5월 18일

My ethics teacher looked serious one day in May 1996, when the season was changing from late spring to early summer. He began the class by saying, “I was a high school student just like you … When gunshots became clear at night, I hid in a small room, with windows covered with blankets.” He ended the class by saying, “My mother discouraged me from going outside even in broad daylight.” As my memories are fading, I only remember the story in general. But the teacher speaking with his hands tightly holding onto the desk remains clear in my memory like a photograph.

입술이 두꺼운 윤리 선생님은 표정이 무거웠다.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는 1996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여러분과 같은 고등학생 무렵이었다”로 시작한 수업은 “총소리가 또렷해지는 밤에는 이불로 창문을 가리고 작은 방에 숨어 지냈다”를 거쳐 “해가 중천인데도 어머니가 밖에 나가지 말라고 말렸다”로 끝났다. 기억이 희미해진 탓에 그의 말은 줄거리만 남았지만교탁을 움켜쥐고 얘기하던 모습은 한장의 사진처럼 또렷한 이미지로 머릿속에 박혔다.

I cannot presume why he talked about his dark memories from 16 years earlier. Perhaps he wanted to hold on to his fading memories. As an economic boom allowed people to live comfortably, people’s memories were getting blurry at the time. The May 18 Special Act was passed in December 1995, but there was no room for holding onto painful memories.

24년 전 그가 왜 16년 전의 어두운 기억을 꺼냈는지에 대해선 나로선 짐작하기 힘들다. 아마도 그 또한 희미해지는 기억을 붙잡고 싶었을 게다. 먹고 살기 딱 적당한 호황이 찾아온 그 무렵은 모든 게 흐릿하던 시절이었다. 95년 12월 5・18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타인의 아픈 기억을 붙잡을 수 있을 만큼의 작은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I am reminded of the teacher in May because he confessed that someone close to him was killed by the martial law army. It was very shocking for me. The textbook reflecting the fifth and sixth curriculum only explained the May 18 Democratic Uprising in a few sentences. There were no statistics of victims or dates for the events. All I learned about May 18 was a dry sentence, which read “a clash between citizens and suppressing forces. In the process, shockingly, a number of innocent citizens were killed.”

5월이 찾아오면 그가 생각나는 건 가까운 누군가가 계엄군의 총에 사망했다는 고백 때문이다. 내겐 큰 충격이었다. 5・6차 교육과정을 반영한 교과서는 5・18을 단 몇 줄로 설명했을 뿐이었다. 희생자 통계도 사건이 발생한 날짜도 없었다. ‘시민들과 진압군 사이의 충돌’이란 감정을 찾기 힘든 건조한 단어로 나열한 문장이 내가 배운 5・18의 전부였다. 돌이켜보면 24년 전 5월의 그날, 교탁 뒤에 선 그는 상당한 용기를 내야 했을 것이다. 어떤 종류의 사실은 꺼내 드는것만으로도 큰 결단이 필요한 법이다.

In my memory, my teacher 24 years ago was not angry about what happened in Gwangju in May 1980. He did not show any tears. He only shared the raw memories with his students. But he must have plucked up the courage to discuss the subject on that day in May 24 years ago. Some facts take determination to bring them up. It must have been his way of cherishing the memories of the victims. Has he gotten over the trauma?

24년 전 그는 80년 5월 광주에 대해 크게 분노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어떤 종류의 눈물도 없었다. 차곡차곡 쌓아둔 날 것 그대로를 꺼내 우리에게 들려줬을 뿐이다. 아마도 그게 5・18을 추모하는 그만의 방식이었을 게다. 궁금하다. 그는 5월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났을까. 올해도 누군가에게 40년 전 광주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까.

May is here again. A few more bills have been enacted and several presidents have now attended the memorial ceremony. But not much has changed. Truth and lies clashed again this year too. The lies that are covered with superficial arguments attract people’s attention. On the other side is the truth with resignation and sorrow. It is the time to search for a national consensus.

다시 5월이 찾아왔다. 그동안 몇 개의 법이 신설됐고 몇 명의 대통령이 추모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진실과 거짓은 올해도 충돌했다. 그럴싸한 모습으로 치장한 거짓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맞은 편엔 체념과 슬픔이 쌓인 진실이 서 있다. 난 24년째 과거를 지배하려는 거짓의 탐욕을 지켜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진실이 교과서에 적힌 건조한문장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