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읽기] 외교관 푸바오, 돌아올까?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푸바오는 천생 외교관이다. 그의 태어남 자체가 판다 외교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상징하는 판다가 처음 한국에 온 건 1994년, 한중 수교 2년 만의 일이다. 수컷 밍밍과 암컷 리리 등 한 쌍을 보냈다는데, 나중에 밍밍이 암컷으로 밝혀져 놀라움을 안겼다. 오래 있지는 못했다. 아시아금융위기가 터지자 비싼 유지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99년 돌려보냈다. 판다 한 쌍의 연간 대여료만 100만 달러다.   1983년 워싱턴 조약이 발효되며 희귀동물을 다른 나라에 팔거나 기증할 수 없게 했다. 중국은 그래서 대여료를 받고 장기 임대하는 방식으로 판다 외교를 진행한다. 각국서 받은 대여료는 중국 내 판다 보호에 쓰인다는 게 중국의 설명이다. 판다의 한국 도입이 다시 거론된 건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때다. 박근혜-시진핑 정부 초기 한중 밀월 관계를 반영한다.   관람객과의 마지막 만남의 날이던 지난 3일 대나무 인형을 끌어안고 있는 푸바오. [연합뉴스] 그 결과 2016년 3월 푸바오의 아빠 러바오와 엄마 아이바오가 에버랜드 개장 40주년에 맞춰 한국에 왔다. 한데 공교롭게도 그해 7월 사드(THAAD) 사태가 터졌다. 2020년 초엔 코로나 사태가 덮쳤다. 한중 관계는 얼어붙었다. 이런 가운데 그해 7월 20일 푸바오가 용인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출생한 첫 판다로 ‘용인 푸씨’라는 애칭이 주어졌다. 운명처럼 힘든 시기 한중 관계를 밝히는 희망의 등불이 됐다.   푸바오는 2021년부터 공개돼 이제까지 3년여 동안 550만 시민을 만났다. 그런 푸바오가 내달 3일 한국을 떠난다. 멸종위기종 보전 협약에 따라 만 4세가 되기 전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규정에 따라서다. 지난 3일까지 진행된 작별 만남의 열기는 뜨거웠다. 오전 10시 개장이건만 새벽 3시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푸바오로선 한중 우호를 잇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셈이다.   한데 그가 중국으로 간다고 임무가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한국에선 조만간 푸바오가 잘 있는지를 보러 중국으로 갈 여행단이 조직되지 않을까 싶다. 벌써부터 푸바오의 신랑감 판다가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한국 내 식지 않는 푸바오 열기는 중국에 뜻밖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푸바오가 행여 제대로 중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그 비난의 화살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해법은 간단하다. 푸바오를 다시 한국으로 파견하는 것이다. 주한 중국대사관에는 한국에 몇 번씩 와 일하는 외교관이 많다. 푸바오에게도 한국에서 다시 근무할 기회를 주면 된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4.03.25 00:25

  • [중국읽기] 제2차 차이나 쇼크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G2(Group of Two)’. 미국과 중국을 일컫는 용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이를 전 세계 미디어로 퍼트린 사람이 바로 당시 블룸버그 칼럼니스트였던 윌리엄 페섹이다. 글로벌 경제에 대한 그의 통찰을 보여준다.   페섹이 최근 투자 전문 매체인 배런스에 칼럼을 썼다. ‘중국 디플레가 빠르게 글로벌 경제로 확산될 것’이라는 제목. 그는 “이번에는 의류·장난감 등 임가공 공장이 아닌 테슬라·애플·소니·삼성 등 첨단 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방 첨단 기업이 ‘차이나 쇼크’에 직면할 거라는 얘기다.   중국이 전기차 약진에 힘입어 작년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에 올랐다. 푸젠성 샤먼항의 전기차 선적 작업. [신화사] 이미 현실화하고 있는 흐름이다. 중국은 지난해 전기차 약진에 힘입어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으로 등장했다. BYD는 기존 강자 테슬라를 2위로 밀어냈다. 태양광도 그렇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지난해 글로벌 태양광 패널값은 25% 이상 급락했다. 유럽 태양광 업체는 줄 파산했다.   작년 중국 수출의 최고 히트 상품은 전기차·리튬배터리·태양광 등이다. 전체 수출액이 1조 위안(약 1400억 달러)을 돌파했다. 경기 위축으로 이들 제품의 중국 내수시장은 공급과잉 양상이다. ‘덤핑 수출’, ‘디플레 수출’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반도체 분야도 중국의 디플레 수출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반도체 전쟁(Chip War)』을 쓴 크리스 밀러는 파이낸셜 타임스(FT) 기고에서 “싸구려 중국 칩이 글로벌 시장에 쏟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동차·가전 등 일반 소비 용품에 쓰이는 범용 반도체 제품의 중국 생산량이 5년 후 지금의 두 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매출의 약 25%를 범용 반도체 공정에 의존하고 있는 대만 TSMC도 충격을 피할 수 없다.   ‘쇼크’의 시작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었다. 중국은 ‘세계 공장’으로 등장했고, 각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빨아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1차 쇼크가 주로 개발도상국의 제조업에 타격을 줬다면, 이번 2차 쇼크는 선진국 고부가 산업을 위협한다. 미국·유럽·일본 등 서방은 ‘첨단 분야만큼은 중국에 당하지 않겠다’고 방어벽 쌓기에 나선다. 첨단 공장 유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2차 쇼크가 더욱 극렬하게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다.   문제는 우리다. BYD의 전기 승용차가 호시탐탐 국내 시장을 노린다. BYD코리아는 상반기 안에 영업 조직을 짜기 위해 인력 확충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제2차 차이나 쇼크’는 이미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4.03.18 00:22

  • [중국읽기] 중국 총리, 낮춰야 산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오늘은 중국의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폐막일이다. 지난 31년간 이날은 중국은 물론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양회 폐막 직후 총리가 중국의 국정 상황을 직접 설명하는 총리 기자회견이 1993년부터 매년 열렸기 때문이다. 정보 얻는 게 하늘의 별 따기인 중국 상황에서 이는 매우 귀중한 자리였다. 한데 올해부터 이게 사라졌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더는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왜?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유일한 존엄’이 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위상에 조금이라도 누가 돼선 안 되기 때문이다. 양회는 원래 총리가 광을 내는 행사다. 개막일 정부업무 보고부터 폐막일 기자회견까지 모두 총리가 한다. 개성 넘치는 언사로 총리의 기개를 드러낸다. 총서기-총리 투톱 시스템일 때는 이게 가능했다. 한데 이제 그런 모습은 불경이다. 시진핑 비서실장 출신인 리창 총리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총리는 낮추고 시진핑은 돋보이는 행사로 양회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 시대 2인자 리창 총리는 존재감을 최대한 낮추는 것으로 생존을 꾀한다. [AFP=연합뉴스] 두 번째는 총리가 답해야 할 내용이 궁색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침체의 중국 경제를 어떻게 부양할 것이냐는 질문이 쏟아질 게 뻔하다. 한데 지난해 가을 열었어야 할 시진핑 집권 3기 5년의 경제정책 기조를 정하는 중공 제20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삼중전회·三中全會)를 아직도 개최하지 못하고 있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 아예 기자회견 자체를 없앤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세 번째는 시진핑 시대 리창 총리의 생존 전략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시진핑 3기는 상하이방 등 견제 세력이 사라졌다. 이제는 시진핑 파벌, 즉 시쟈쥔(習家軍) 내부의 파벌 싸움이 격렬하게 전개 중이다. 친강 전 외교부장과 리상푸 전 국방부장 등 고위 인사의 갑작스러운 낙마 배경엔 시진핑 사람들 간의 파벌 싸움이 작용하고 있다는 게 중국 사정에 밝은 이의 전언이다. 겉으론 부패 혐의 운운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대 파벌을 공격하는 고발이 줄을 잇고 있는 게 중국 현실이다.   현재 가장 격렬한 대립은 서열 2위 리창 총리와 5위 차이치 정치국 상무위원 간에 벌어지고 있다. 차이치는 시진핑의 경호를 책임지는 문고리 권력이다. 리창 입장에선 점수를 따는 것도 중요하나 실수를 안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외신도 상대해야 하는 총리 기자회견은 자칫 화를 부를 수 있다. 그럴 바엔 안 하는 게 낫다. 총리 기자회견이 사라지게 된 진정한 원인으로 보인다. 존재감이 사라져야 살아남는다. 시진핑 시대를 사는 리창의 처세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4.03.11 00:16

  • [중국읽기] 칭화대학의 ‘AI반’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굴욕’, ‘대참사’, ‘충격’….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뉴스에 붙은 제목이다. 실망과 아쉬움, 분노가 섞여 있다. 대체 한국과 중국의 과학기술 분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해 5월 베이징에서 중국의 주요 과학기술 인사가 참여하는 출판 발표회가 열렸다. 정부 기관인 중국과학원과 중국자연과학기금회가 3년여 진행해 온 『중국 과학기술 2035 발전 전략 총서』 출판 기념행사였다. 책은 물리·수학 등 기초 과학 분야 18권, AI·양자역학 등 미래 기술 19권을 포함해 모두 38권으로 구성됐다.   ‘중국 과학기술 2035 발전 전략 총서’. 38개 핵심 과학기술의 미래 발전 전략을 담았다. [사진 백서인 교수] 중국 과학기술의 현재와 미래 발전 전략을 총정리하는 프로젝트였다. 국가 최고 과학자(원사) 400여 명이 주도했고, 3000여 명의 학계 연구원들이 달려들었다. 백서인 한양대 중국학과 교수는 “연구의 넓이와 깊이에 질렸다”며 “중국의 과학기술 선진화 작업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혀를 찼다.   인재 양성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 최고의 이공계 대학인 칭화(淸華)대에는 ‘AI반(班)’이라는 학과가 있다. 정규 학과가 아니다. 수학·물리·전자공학 등의 학과 신입생 중에서 최고 인재를 다시 뽑아 반을 구성한다. 고등학교 때 전국 수학경시대회, 컴퓨터 경진대회 등에서 입상한 학생들도 선발 대상이다. 그들이 중국 AI 기술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칭화대에는 이 밖에도 컴퓨터 공학을 연구하는 야오반(姚班),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량신반(量信班)도 있다. 학생 선발, 교육 방법 등은 AI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외 최고 교수들을 초빙해 수업하고, 해외 유학을 지원하기도 한다. 대학이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얼마나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하는지 알 수 있다.   뒤에는 정부가 있다. 중국은 ‘국가 중점 연구개발 계획’에 따라 핵심 전략 기술을 선정하고, 자원을 몰아준다. 대상 기술은 항공우주·수퍼컴퓨터·AI·신에너지 등으로 생물처럼 확대된다. 정부와 기업, 대학, 연구소가 똘똘 뭉쳐 과학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정부는 R&D 예산 삭감으로 과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정부와 기업, 학계 사이에 끈끈한 ‘연구 네트워크’가 형성될 리 없다. 이공계 인재들은 과학기술을 외면한 지 오래다. 의대 신입생 2000명 확대 방침에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재수에 뛰어들 판이다. 그러고도 중국에 뒤졌다며 ‘대참사’라고 호들갑이다. 사필귀정(事必歸定),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데도 말이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4.03.04 00:22

  • [중국읽기] 중국의 ‘고품질 발전’ 뭘 말하나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내주 중국의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가 열린다. 핵심 키워드는? ‘고품질발전(高質量發展, high-quality development)’이 그중 하나다. 한데 이게 무슨 뜻인지 세계 투자자가 고민 중이라고 연초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모호하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 점이다. 2017년 19차 당 대회 때 처음 등장했는데 시 주석은 2022년 65차례, 지난해엔 무려 128차례에 걸쳐 고품질발전을 강조했다.   지난해 말 신년사에서도 두 번 언급한 데 이어 지난달 31일의 정치국 집단학습 주제는 아예 ‘고품질발전을 탄탄하게 추진하자’였다. 고품질발전은 덩샤오핑 시대와의 차별화를 꾀하는 시진핑 시대의 발전 전략이다. 덩 시대 중국의 모순은 생산력이 낙후돼 인민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덩은 “발전은 확고한 도리(發展是硬道理)”라며 성장을 밀어붙였다. 가난 해결에 나선 것이다.   올해 중국 양회의 키워드 중 하나는 시진핑이 강조하는 ‘고품질 발전’이 될 전망이다. [사진 신화망] 시진핑은 중국의 모순을 다르게 본다. 그동안의 성장으로 먹고사는 건 해결됐다. 이제 모순은 인민을 어떻게 하면 보다 아름답게 살게 하느냐 문제다. 그래서 여섯 글자를 더했다. “고품질발전은 신시대의 확고한 도리(高品質發展是新時代硬道理)”라고. 신시대는 시진핑 시대를 가리킨다. 즉 신시대인 시진핑 시대엔 고품질발전으로 인민이 아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데 시진핑이 집권 초 상황을 보니 중국의 고속성장 시대는 끝났다. 그래서 앞으론 중속으로 발전하는 게 뉴노멀(新常態)이 될 것이라 선언했다. GDP 지상주의는 끝난 셈이다. 지방 정부가 더는 성장률 목표치를 무리해서 잡지 않는 이유다. 시진핑이 원하는 건 전체 인민이 지역에 구분 없이 특히 환경 파괴 없이 두루 잘 사는 거다. 이런 바람을 반영한 게 2015년 나온 신발전이념(新發展理念)이다.   여기엔 혁신, 협조, 녹색, 개방, 공유(共享)의 다섯 개념이 들어간다. 혁신은 기술 혁신, 협조는 도농 및 지역 간 격차 제거, 녹색은 환경, 개방은 국내와 국외 두 개 시장 이용, 공유는 공동부유를 뜻한다. 그리고 시진핑은 이를 구현하는 방법으로 2017년 고품질발전을 제시했다. 이 다섯 가지 중 시진핑이 가장 강조하는 건 기술 혁신이다. 반도체 등 첨단기술의 자립 없이는 사회주의 현대화나 중국꿈을 실현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즉 미국에서 탈피해 중국의 기술자립을 이루자는 게 시진핑이 주창하는 고품질발전의 의미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4.02.26 00:16

  • [중국읽기] ‘AI 앵커’가 하고 싶은 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샤오위(小雨)’와 또 다른 ‘샤오위(小宇)’. 지난 설 명절 때 중국 항저우(杭州)방송에 등장한 AI(인공지능) 앵커 이름이다. 표정은 자연스러웠고, 말씨는 매끄러웠다. 그들 덕택에 실제 앵커 위천(雨辰)과 치위(麒宇)는 귀성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중국 언론은 자국의 AI 기술 수준을 과시했다며 환호했다.   ‘중국의 AI 굴기는 성공할 것이다.’ 새해 아침 ‘샤오위 앵커’가 중국인에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였다. 과연 그럴까.   항저우 방송에 등장한 AI 앵커 ‘샤오위’와 또다른 ‘샤오위’. 몸짓과 말씨가 실제 인물과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합뉴스] 2017년 5월 바둑기사 커제(柯潔)와 알파고의 대국이 벌어졌다. 3:0. 중국 바둑 천재는 처참히 깨졌다. 중국은 이를 일과성 행사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두 달 후 국무원(중앙정부)은 ‘차세대 AI 발전 계획’을 발표한다. “2030년까지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톱 AI 국가가 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굴기의 시작이다.   거리거리 설치된 CCTV는 14억 인구 전체의 얼굴을 찍을 기세였고, 그렇게 쌓인 데이터는 AI 안면 인식 기술로 발전했다. 정부는 ‘마음대로 찍어도 된다’며 기업에 날개를 달아줬다. 사회 감시 수요가 AI 기술을 앞당긴 셈이다. 중국 AI는 음성인식, 자율주행, 공장 로봇 등으로 확산하며 실력을 쌓았다. ‘샤오위 앵커’는 그 파생 품이다.   순조롭던 중국 AI 굴기에 브레이크가 걸린 건 2020년 11월이었다. 당시 등장한 챗GPT는 전쟁터를 대화형 AI 챗봇으로 바꿨다. 죽으라고 정상을 향해 달려왔는데 ‘엇, 여기가 아니네~’라는 꼴이다. 바이두(百度)가 어니봇(文心一言)을, 알리바바가 통이첸원(通義千問) 챗봇을 잇달아 내놨지만, 격차를 줄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그들에게 ‘1989년 천안문 사태’를 물으면 답을 못 낸다. 체제의 한계다.   반도체는 더 큰 문제다. 미국은 고사양이든, 저사양이든 중국으로의 AI 반도체 유입을 꽉 틀어막았다. 엔비디아의 GPU(그래픽 처리 장치)가 없는데 어찌 똑똑한 AI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미·중 기술 격차는 엄연한 현실이 됐다.   중국은 반격을 노린다. 정부는 주요 IT 빅 테크 기업, 대학, 연구기관 등과 스크럼을 짜고 AI 반도체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다. 기초 과학 역량은 충분하다. 중국은 AI 관련 논문에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미국을 압도한다. 중국이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면서 미-중 AI 패권 전쟁은 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 아직 죽지 않았어.” 그게 항저우방송국 ‘샤오위 앵커’가 세상에 전하려는 메시지였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4.02.19 00:29

  • [중국읽기] ‘10년 징크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중국 비즈니스에 ‘10년 징크스’라는 게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제품이나 기술이 10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사례는 많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에어컨·냉장고 등 백색가전을 생산, 판매에 들어간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돈 많이 벌었다. 그러나 그 시장에 하이얼(海爾) 등 중국 업체가 뛰어들었고, 대략 10년이 지난 2000년대 중반 우리 브랜드는 밀려나야 했다. 건설장비인 굴착기도 그랬고, 주방 밀폐 용기 브랜드인 락앤락도 마찬가지였다.   백색가전, 기계, 철강, 조선, 자동차…. 중국의 산업 발전은 그 자체가 한국을 따라잡는 과정이었다. 그 ‘10년의 벽’을 넘어 여전히 버티고 있는 분야가 하나 있으니, 바로 디스플레이 기술이다.   OLED 디스플레이 분야 중국의 거센 기술 공세로 국내 업계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사진 LG디스플레이] 시작은 TV·PC 등에 쓰이는 CRT(브라운관) 모니터였다. 1990년대 중반 우리 브랜드 제품은 한때 중국 시장점유율 70%를 넘기기도 했다. 중국 기업이 보고만 있을 리 없다. 그들은 10여년 거세게 추격했고, 2000년대 중반 한국을 따라 잡았다. 바로 그 위기의 순간 우리 기업은 LCD 디스플레이로 갈아탔고, 그 시장을 10년 더 주도할 수 있었다. 중국은 또 추격했다. 현대전자의 LCD 부분을 인수해 만든 BOE가 대표 회사다. 추격 10년, 중국은 또다시 한국 LCD를 잡았고, 우리 기업은 2010년대 중반 시장 주도권을 그들에게 넘겨야 했다.   여기가 끝인가? 아니다. 우리는 또 다른 병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로 치고 나갔다. LCD로 CRT 모니터의 한계를 돌파했듯, OLED로 ‘10년의 징크스’를 깰 수 있었다. 가만히 있을 중국이 아니다. BOE 등 중국 회사들은 지난 10여 년 OLED 추격전을 펼치고 있다.   불길한 소식이 들린다. 지난해 삼성·LG의 세계 스마트폰용 OLED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은 51.8%로 전년 대비 14.4%포인트나 줄었다. 모두 중국이 쓸어갔다. 중국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48.2%. 한국의 OLED 아성을 흔들 기세다. ‘10년 징크스’를 떠올리는 이유다.   핵심은 혁신이다. CRT에서 LCD로, LCD에서 다시 OLED로 이어지는 혁신의 역사를 만들 수 있었기에 우리는 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게 없다면? 중국에서 나와야 하고, 산업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은 정부와 기업이 똘똘 뭉쳐 거칠게 기술 공세를 펼치고 있다. “우리는 과연 ‘10년 징크스’를 돌파할 혁신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정부와 기업이 답해야 할 문제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4.02.05 00:22

  • [중국읽기] 전화위복의 중국외교?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중국에 새 외교부장이 등장할 모양새다. 지난해 친강(秦剛)의 낙마 이후 왕이(王毅)가 대신하던 외교부장 자리에 류젠차오(劉建超) 발탁설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사실이라면 중국으로선 전화위복(轉禍爲福)이 아닐까 싶다. 싸움닭 대신 복스러운 이미지의 정통 외교관이 컴백하기 때문이다. 2월에 만 60세가 되는 류젠차오는 중국의 연례 정치행사인 오는 3월 양회(兩會, 全人大와 政協 회의) 때 정식으로 외교부장에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지린성 출신으로 베이징외국어학원에서 영어를 전공한 뒤 외교부에 들어간 류에겐 최연소 타이틀이 많이 붙었다. 37세이던 2001년 중국 외교부 사상 최연소 대변인이 됐고, 2013년엔 49세로 최연소 부장조리(차관보)가 됐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인데 자질과 자격 측면에서 외교부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변인으로 9년간 ‘중국의 입’ 역할을 한 데 이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 대사로 활동했다.   류젠차오 중국 대외연락부장이 오는 3월 새로운 외교부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랴오닝성과 저장성 등 두 곳에서 지방 관리로 근무했고 국가부패예방국의 부국장으로 중앙 부처의 경험 또한 쌓았다. 특히 중국 외교의 3대 부서 모두에서 일한 강점이 있다. 친정인 외교부에선 부장조리까지 했고, 당 중앙외사판공실에선 부주임, 대외연락부에선 현재 부장(장관)의 신분이다. 문무를 겸비한 셈이다. 얼마 전 미국과의 상견례에 해당하는 방미 때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류젠차오와 특별히 정식 회담을 가진 이유다.   친강이 주미 대사로 1년 반 있으면서 한 번도 블링컨을 만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미국이 류젠차오 대접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를 알 수 있다. 왜? 류는 지난 몇 년 동안 중국의 이미지를 먹칠한 전랑(戰狼) 외교관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저우언라이 외교의 맥을 잇는 인물이다. 베이징 주재 서방 외교관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류젠차오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대변인 시절 한국특파원단과 자주 어울렸고, 당시 결석을 앓던 필자의 건강까지 챙기는 섬세함을 보였다. 그는 또 외교부 부장조리 때는 한반도 사무를 직접 담당해 남북한 문제에 정통하다. 그의 발탁이 투쟁을 강조해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공격적인 외교 노선에 대한 조정으로 해석해도 되는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우리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유학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캠퍼스 시절을 떠올리며 말을 풀어나가면 냉랭한 한·중 관계에도 봄이 깃들지 않을까 기대된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4.01.29 00:10

  • [중국읽기] 현대차 충칭 공장의 쓰라린 이야기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결국 헐값에 넘겨야 했다. 약 1조6000억원 들여 지은 공장을 3000억원에 팔았으니 겨우 5분의 1 건지는 데 만족해야 했다. 현대자동차 충칭(重慶)공장 얘기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공장 준공은 2017년 7월이었다. 그런데, 준공식에 당연히 왔어야 할 한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쑨정차이(孫政才) 충칭시 당서기가 그였다. 오래된 인연이다. 쑨정차이는 2002년 현대차가 중국에 진출할 때 첫 둥지를 튼 베이징 쑨이취(順義區)의 수장이었다. 그는 줄곧 승진 가도를 달려 충칭시 당서기에 올랐고, 미래 총리로 거론될 만큼 잘 나갔다. 쑨 당서기와의 ‘관시(關係)’를 활용해 중국 내륙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게 현대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준공식이 열리던 바로 그 시간, 쑨정차이는 부패 혐의로 조사 받고 있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주도한 반부패 투쟁에 걸려든 것이다. 결국 쑨 당서기는 낙마했고, 현대 충칭 공장은 시작부터 삐걱댔다.   ‘중국에서는 이제 전기차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2023년 상하이 모터쇼의 BYD부스. [사진 셔터스톡] 쑨정차이가 건재했다면 순항했을까? 아니다. 현대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충칭 공장이 조업을 시작한 2017년, 중국의 한국 브랜드 공격은 집요했다. 현대차는 좋은 표적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애국주의에 흥분한 청년들이 현대차를 부수는 영상이 나돌았다. 품질도, 브랜드 가치도 애국소비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사드 직전 8%에 육박했던 시장점유율은 1%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데도 현대는 거의 동시에 충칭과 허베이(河北)성 창저우(滄州)에 공장을 건설했다. 팔리지 않는데 생산은 오히려 더 늘어나니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창저우 공장 역시 매물로 내놓은 상황이다.   ‘사드’가 아니었다면 순항했을까? 아니다. 현대는 시장의 흐름을 놓쳤다. 중국 자동차 시장의 대세는 전기차다. 승용차 시장의 전기차 침투율은 약 40%(작년 12월 기준)에 달한다. 신차 10대 중 4대가 전기차인 셈이다. 그 흐름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게 바로 충칭 공장이 준공된 2017년 전후다.   공장 짓기에 바쁜 현대차는 그 흐름에 합류하지 못했다. 기아차 EV5로 중국 전기차 시장을 공략한다지만 한참 늦었다. 중국 토종 업체의 물량 공세를 당해내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관시의 함정, ‘사드’라는 지정학 위기, 시장 대응 실패… 이 모든 게 합쳐진 결과가 헐값 매각이다. 지금도 적지 않은 우리 기업이 공장 매각, 탈(脫)중국을 모색하고 있다. 회사와 업종은 다르지만, 그 원인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4.01.22 00:19

  • [중국읽기] 0.49위안과 50위안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푸른 용의 해라는 갑진년(甲辰年). 희망과 기대로 시작해야 하는 새해이건만, 중국에서 최근 전해진 한 이야기는 인생이란 게 원래 슬픈 운명인가 하는 비감(悲感)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중국 지린성 출신의 32세 청년 리웨카이(李越凱)가 산둥성에서 목숨을 잃은 건 지난달 5일 밤 10시를 막 넘어서였다. 외식 배달일을 나갔다가 54세 아파트 경비원 자오리(趙力)와 실랑이가 벌어졌고, 자오가 휘두른 칼에 그만 젊디젊은 생을 마감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리웨카이는 고교 졸업 후 호주 유학을 떠났다. 호텔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보모로 일하는 어머니의 한 달 수입을 합쳐 7000위안 정도. 그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컸고 유학비로 100만 위안을 썼지만, 그는 6년 전 귀국 후 별다른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유학비용 중 절반은 빌린 돈으로 아직도 갚지 못한 상태. 그는 친척의 부름을 받아 산둥성에 가 배달일을 시작했다.   리웨카이와 자오리 간의 사건을 발표한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공안국 발표문. [바이두 캡처] “연애와 결혼은 생각 없고 돈을 좀 벌어 부모님의 어려움을 덜어드리겠다”는 소박한 포부였다. 부지런히 뛰어, 남이 수십 건 주문을 받을 때 그는 100건까지도 챙겼다. 배달이 늦어지면 고객의 혹평이 따르고 이는 벌점으로 이어진다. 회사는 이에 따라 배달원을 1급에서 6급까지 나누고 등급에 따라 건당 0위안에서 최대 0.49위안(약 90원)의 격려금을 준다. 중국에서 뛰어다니는 배달원을 자주 보게 되는 이유다.   그는 사건 당일 칭다오시의 한 아파트로 배달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이 아파트는 오토바이 출입 금지 규정을 만들고, 경비원이 이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2200위안의 월급에서 50위안(약 9140원)을 벌금으로 물렸다. 신속 배달을 통해 0.49위안의 격려금을 받으러 오토바이를 타고 단지 안으로 들어가려는 리웨카이와 50위안의 벌금을 물지 않으려고 이를 제지하는 자오리와의 싸움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리가 배달일을 시작한 지 불과 6일 만의 일이었다. 사건은 자연히 중국 청년의 취업난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6월 청년 실업률이 21.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자 7월부터는 아예 발표를 중단한 상태다. 사건을 접한 중국인들은 한결같이 마음이 아리다고 한다. 우리도 별반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이런 일이 한국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일어났다 해도 전혀 놀라울 것 같지 않아서다. 새해 우리 화두는 총선이 아니라 민생이 돼야 한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4.01.15 00:08

  • [중국읽기] 중국 회사에 존재하는 또 다른 권력 체계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익 추구다. CEO(최고경영자)가 총대를 메고 돈을 좇는다. 그런데 한 기업에 CEO 계통이 아닌 다른 명령 체계가 존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중국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중국이 지난달 29일 ‘기업법(公司法)’을 개정했다. 그중 이런 규정이 나온다. ‘종업원 수 300명 이상의 주식회사는 이사회에 반드시 종업원 대표를 포함해야 한다.’ 기업의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 종업원 대표를 참여시키라는 얘기다. 외국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 SK, 현대차 등 중국에 대규모 사업장을 둔 국내 대기업이 긴장하는 이유다.   중국의 기업법 개정으로 외자기업에 대한 당국의 경영 개입이 더 노골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사진 셔터스톡] 문제는 ‘종업원 대표’가 실제로는 공산당 조직인 ‘공회(工會)’의 대표라는데 있다. 공회가 종업원 관련 모든 활동을 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업원 대표’ 역시 공회가 뽑거나, 아예 공회 수장이 겸임하기도 한다. 기업법 개정안은 결국 투자 결정, 구조조정, 사업 철수 등 기업 의사 결정 과정에 당이 관여하겠다는 뜻이다.   오래 진행되어온 작업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지난 2017년 2기 집권을 시작하면서 당 건설을 강조했다. ‘당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당조직을 만들라’고 민영기업과 대형 외자기업을 압박했다. 당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었고, 국가의 기업 장악력은 더 세졌다. 이번 기업법 개정은 그 작업의 완결판이다.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공회는 당 노선을 기업에 전파하는 조직이다. 공산당 당장(黨章)은 공회의 역할을 ‘당 노선과 방침의 관철’, ‘기업의 법 준수 지도와 감독’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업이 당 노선을 잘 지키는지를 감시하겠다는 얘기다. CEO로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이사회 내용은 공회를 통해 당으로 보고되고, 공회를 통해 당의 지령이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공회가 적대적인 것은 아니다. 작은 기업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쓰레기 청소, 건전한 문화 조성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곳도 많다. 그러나 CEO 라인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권력 체계가 회사 안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업에는 부담이다.   시진핑 지도부는 요즘 개방 확대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빠져나가는 외국인 투자를 잡기 위해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간첩법으로 기업인 활동을 억제하고, 기업법으로 경영에 간섭하려 든다. 외자기업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그들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4.01.08 00:27

  • [중국읽기] 새해 한·중 관계는?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침체의 한·중 관계가 올해는 비상할 수 있을까? 먼저 그 외연부터 보자. 미·중 관계는 지난해 11월 바이든-시진핑 정상회담으로 안정을 찾았다. 미국은 대선에, 중국은 경제에 각각 올인하기로 하면서 11월까진 임시 휴전 상태다. 중·일 관계도 나쁘지 않다. 일본이 지난해 6월부터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인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여유가 생긴 시진핑 주석이 지난달 베트남을 찾는 등 이웃 나라 챙기기에 나선 배경이다.   한·중 관계 회복의 상징은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을 통한 정상회담 개최다. 이를 위한 분위기 조성이 필요한데 그 촉매제로 올해 한국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꼽힌다. 3국 정상회담에 중국에선 총리가 참석한다. 이게 얼마나 빨리 열리느냐가 새해 한·중 관계 회복 여부를 결정할 것이란 얘기다. 한국은 3국 정상회담의 이른 개최를 원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1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빠르면 2월 늦어도 중국의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가 끝난 직후, 즉 3월 안엔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3국 정상이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거다. 그래야 미·중 간 전략적 휴지기인 11월 안에 한·중 정상 만남을 추진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시 주석이 한국을 찾는 게 이상적이지만, 우리 국익을 위해선 윤석열 대통령이 먼저 중국을 방문할 수도 있지 않으냐는 말이 나온다.   한데 중국은 2025년 한국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시점에 맞춰 시 주석 방한을 추진한다는 계획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3국 정상회담도 급할 게 없다. 한국이 대만 문제를 언급해 중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상황에서 한국의 박자에 맞출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3국 정상회담이 한국 총선 이후로 미뤄지면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할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APEC에 맞춘 시 주석 방한도 윤 대통령 집권 후반기에 이뤄지는 것으로 한·중 관계 회복의 특별한 계기로 작용하기에는 미흡하다. 이 경우 한·중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지지부진 상태를 면치 못하고 그 피해는 양국 모두에 돌아간다. 이는 누구도 바라는 바가 아니다.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속히 열리길 기대한다. 3국 지도부의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한 일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이 있다. 외교는 타이밍이다. 푸른 용의 해라는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한·중 관계 회복의 특별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4.01.01 02:05

  • [중국읽기] ‘황제 실종’ 사건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올 한 해 중국에서 나온 여러 뉴스 중에서 ‘가장 중국다운’ 기사를 뽑으라면, 기자는 지난 10월 보도된 ‘황제 실종 사건’을 꼽겠다. 명(明)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숭정제(崇禎帝)를 다룬 책 『숭정: 부지런했던 망국의 임금(崇禎: 勤政的亡國君)』이 출판 며칠 안 돼 서점에서 사라져야 했다는 기사다.   출판사는 인쇄 문제로 회수한다고 했지만, 항간에서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었기에 금서가 됐다’는 얘기가 나돈다. ‘패착의 연속이었고, 착오는 거듭됐다. 열심히 정사를 돌볼수록 나라는 망해갔다.’ 책 표지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책은 정말 시 주석의 역린을 건드린 걸까.   책 『숭정』의 표지. 부지런히 취한 정책이 어떻게 망국을 불렀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지난 10월 판금 된 후 서점과 인터넷에서 사라졌다. [유튜브 캡처] 시진핑 주석의 나라 운영은 ‘중화 민족주의’와 ‘강성 권위주의’의 결합으로 요약된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몽(中國夢)’을 외치며 애국을 강조한다. ‘위대했던 중화 민족의 부흥’, 중화 민족주의는 그렇게 현실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중국몽 실현을 위해 선택한 게 바로 보다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다. 국가 권력은 점점 더 당으로 모였고, 당의 이념이 정치와 경제를 압도했다. 권위주의 국가는 국민의 생각을 통제하려 한다. 체제에 반하는 사상을 차단하지 않으면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구글·유튜브 등 서방 인터넷을 차단하고, CCTV 등을 활용한 디지털 감시 체제를 강화하는 이유다. 책 『숭정』이 사라져야 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권력의 집중은 나라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지만, 그런 한편으로는 ‘정책 실패’의 위기도 키운다. 코로나19 때 무리한 봉쇄가 경제에 충격을 줬던 건 이를 보여준다. 공동부유 이념이 부동산 업계의 시장 논리를 압도하니 경제는 타격을 받는다. IT 플랫폼 기업의 고삐를 죄니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   그동안 중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느슨한 권위주의 정치’와 ‘포용적 경제’ 덕택이다. 중국 정치는 지난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꾸준히 민간에 대한 개입을 줄여왔고, 민간의 자율과 혁신을 부추겼다. 그게 중국 경제를 글로벌 ‘넘버 투’로 올려놓은 핵심이다. 시진핑 시대 ‘중화 권위주의’가 이 논리를 부정하면서 경제는 주춤하고 있고, 국민의 피로감은 높아가고 있다.   『숭정』이 시 주석을 겨냥한 책은 아니다. 그런데도 독자들은 서점에 진열된 책을 보며 그들의 지도자를 떠올렸고, 책은 서점에서 사라져야 할 운명이 됐다. ‘숭정제 실종’ 사건은 2023년 중국 사회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12.25 00:13

  • [중국읽기] 세상이 둘로 나뉘나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이달 초 중국을 다녀왔다. 출장지는 광둥성 광저우. 중국 신화사 주최의 세계미디어정상회의에 세계 101개 국가 및 국제기구에서 197개 미디어, 450여 언론인이 참석했다. 로이터와 AP 통신사 대표 등은 가짜 뉴스 등 언론이 처한 위협에 목소리를 높였다. 한데 내 관심은 온통 주최 측이 소개한 ‘신시대 인문경제학’에 쏠렸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듣다가 순간 깜짝 놀랐다. 이게 바로 ‘시진핑 경제학’이 아닌가 하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신시대 인문경제학’의 골자는 이렇다. 맨 밑에 세 개 요소가 있다. 마르크스주의, 중국 현실, 중국 전통이다. 마오쩌둥은 마르크스주의에 중국 현실을 더해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를 이뤘다. 시진핑은 여기에 중국 전통을 더한다. 그래서 나온 게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상’이다. 그리고 이 시진핑 사상 위로 ‘시진핑 경제사상’과 ‘시진핑 문화사상’의 실천적 과정을 거쳐 ‘신시대 인문경제학’이 탄생한다.   이달 초 중국서 열린 세계미디어정상회의. ‘신시대 인문경제학’이 소개돼 관심을 끌었다. [신화=연합뉴스] 신시대 인문경제학은 사람(人)과 문화(文)를 두 축으로 해 발전한다. 서구의 물질 만능보다 사람 중심의 경제발전을 통해 시진핑 주석의 집권 3기 비전인 ‘중국식 현대화’로 나아가겠다고 주장한다. 중국식 현대화는 “현대화는 서구화가 아니다”라는 시 주석의 생각을 담고 있다. 중국식으로 현대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진핑은 집권 초 중국 경제학자들에게 케인스주의 등 서구 이론이 아니라 중국 전통에서 중국의 경제발전 논리를 찾으라고 요구한 바 있다.   신시대 인문경제학은 바로 그런 10년 전 시진핑의 요구에 대한 일종의 답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은 인류운명공동체 건설이다. 중국은 바로 신시대 인문경제학을 인류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경제 스탠더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중국이 근년 들어 잇따라 글로벌 표준을 내놓고 있는 게 떠오른다. 2021년엔 글로벌발전이니셔티브(GDI), 2022년엔 글로벌안보이니셔티브(GSI), 그리고 올해는 글로벌문명이니셔티브(GCI)가 나왔다.   중국이 글로벌 스탠더드 제시를 계획적으로, 또 야심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히 세상이 이제 중국 표준과 서방 기준의 둘로 나뉘겠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중국은 미국을 대체할 의도가 전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나 행동에선 이미 미국 대체에 나선 모양새다. 그런 중국의 야심이 한낱 객기로 끝날지 아니면 현실이 될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12.18 00:31

  • [중국읽기] 중국이 요소수 수출을 막은 진짜 이유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다시 요소수다. 화학비료 연료인 인산암모늄도 위험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 수출 통제로 한국 산업은 또 긴장 모드다. 중국의 진짜 의도는 뭘까. 올해 3월 5일 리커창 당시 총리가 전인대(의회)에 보고한 ‘2023년 정부 업무 보고’를 다시 본다. 답은 거기에 있었다.   보고는 올해 중국이 추진할 주요 산업 정책 방향 3개를 제시했다. 그중 하나가 ‘발전과 안전의 병행(發展和安全幷擧)’이다. 산업정책을 짤 때 국가 안전(안보)을 함께 고려하겠다는 뜻이다. 미·중 경쟁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읽힌다.   리커창 전 중국 총리가 지난 3월 5일 경제 안보를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정부 업무 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언론은 희토류 산업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중국은 작년 초 ‘중국희토류그룹(中國稀土集團)’이라는 국유기업을 발족시켰다. 중국알루미늄·중국우쾅(五鑛)·간저우(贛州)희토류 등 기존 3개 자원개발 회사에서 희토류 부분만을 떼어내 만들었다. 여기에 2개의 연구 기관이 참여한다. 국가가 희토류 생산 및 공급을 직접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수출입 분야 정부 개입은 더 커진다. 요소수든, 인산암모늄이든 국가 안전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준다고 판단되면 정부는 수출 통관을 막는다. 갈륨·마그네슘·흑연 등에서 확인된 일이다. 자원 무기화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2023 정부 업무 보고’가 제시한 또 다른 산업 정책은 ‘공급망 강화 및 보완(强鏈補鏈)’이다. 보고는 “산업 서플라이 체인을 점검하고, 우수 자원을 핵심 기술 개발에 투입해 공급망의 빈틈을 채우겠다”고 했다. 국가가 산업 공급망 관리에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드는 모습이다.   3번째 정책 흐름은 ‘신형거국체제(新型擧國體制)’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기업·학계(연구기관)·시장 등을 잇는 국가 혁신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뜻이다. 보고는 “신형거국체제로 핵심 기술 개발의 글로벌 조직 역량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 3개 정책 방향의 핵심은 산업과 안보의 결합이다. 국가 안전에 영향을 주는 품목은 정부가 나서 수출을 통제하고, 공급망을 새로 짜고, 개발 자원을 몰아준다. ‘전시 경제 체제’를 방불케 한다. 이 체제에서 요소수는 작은 품목일 수 있다. 그들에게는 사소한 품목이 우리에게는 ‘멘붕’급 충격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너무 안이하다. 여야는 제2의 요소수 사태를 막겠다고 만든 ‘경제안보 공급망 지원법’을 정쟁으로 미루고 미루더니,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지난 8일 부랴부랴 통과시켰다. 그러니 전쟁하듯 달려드는 중국의 산업 전개에 여지없이 또 당한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12.11 00:17

  • [중국읽기] ‘피크 차이나’ 다시 불거지나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매사에 음양이 있듯이 중국 경제도 그렇다. 밝고 어두운 면이 혼재한다. 최근 판궁성(潘功勝) 중국인민은행 총재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 5.0%를 무난하게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의 20%가 중국으로 향하는 우리에겐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어두운 이야기도 들린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단체관광이 불가하던 2017~19년 유커(游客)의 월평균 한국 방문은 41만6000명. 한데 지난 8월 단체관광을 풀었음에도 올해는 월 14만4000명으로 3분의 1 수준이다. 왜? 중국의 경기 둔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상하이와 선전엔 도산과 감원, 실업의 세 가지 바람이 분다고 한다. “8000여 곳에 이력서 제출했고 27개 회사 면접을 봤지만 다 떨어졌다”는 절규가 인터넷 공간을 지배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중국인을 짓누른다. 그 결과 해외여행보다는 저축을 늘리고 있다.   중국 경제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8일 상하이 선물거래소를 방문했다. [사진 신화망] 일본 노무라증권은 중국 가계의 초과 저축을 무려 7200억 달러(약 928조5000억원)로 추산한다. 눈여겨볼 건 중국 당국이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말 중국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등 6개국에 대해 1년 한시의 비자 면제 조치를 밝혔다. 그도 그럴 게 지난 상반기 중국을 찾은 외국인은 약 50만 명. 2019년 1400만 명보다 96%가 줄었다.   주중 미 대사관에 따르면 현재 중국 유학 중인 미국인은 350명. 2019년 1만1000명보다 97%가 감소했다. 중국 공항이 썰렁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투자사 록펠러 인터내셔널의 루치르 샤르마 회장이 중국의 세계 속 GDP 비중이 2021년 18.4%에서 올해는 17%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해 화제다. 중국은 1990년 1.7%를 바닥으로 지난 30여 년간 그 비중을 계속 확대해 왔다.   2010년 일본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선 이후 미국 추월이 시간문제로 꼽혀왔다. 한데 이제 33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 속 중국 GDP 비중이 줄게 됐다. 연초 유행한 중국의 성장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피크 차이나’ 논란이 다시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우리는 0.15%포인트 동반 하락한다고 한다. 추운 겨울을 맞은 중국 경제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셈이다. 낙관도 비관도 금물이다. 중국 경제 상황에 대한 더욱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연말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12.04 00:14

  • [중국읽기] 영토 넓혀가는 화웨이의 ‘훙멍OS’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중국에도 천지창조 신화가 있다. 반고(盤古)라는 이름의 신이 하늘을 열고 땅을 펼쳤다. 반고 이전의 시기는 ‘훙멍(鴻蒙)’이라 했다. 원시의 기(氣)가 뭉쳐있는 혼돈의 세계다. 화웨이가 독자 개발한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훙멍’이라고 이름 지은 연유다.   ‘훙멍OS 기술자를 찾습니다.’ 징둥·메이퇀·알리바바 등 중국의 전자상거래 플랫폼 기업들이 훙멍 앱 개발자 구하기에 나섰다. 1억 연봉은 기본. 훙멍의 흡입력은 그만큼 크다.   아직 화웨이 스마트폰이 전부다. 다른 브랜드 폰은 여전히 구글 안드로이드, 또는 iOS(애플)를 쓴다. 그런데도 훙멍을 무시할 수 없는 건 국가가 뒤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업정보화부 산하 조직인 ‘개방 원자 재단(Open Atom Foundation)’이 그 실체다.   화웨이 ‘훙멍OS’가 스마트폰에서 가전·자동차·스마트공장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화웨이는 훙멍 소스를 모두 이 재단에 ‘헌납’했다. 그다음부터는 재단이 나선다. 산업별 적용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조율하고, 해당 소스를 공개한다. 원하는 기업 누구든 가져다 쓸 수 있다. 민간 기술 훙멍은 그렇게 국가 재산이 된다. 바이두의 블록체인 플랫폼인 ‘슈퍼체인’, 텐센트의 저전력 사물인터넷(IOT) 시스템 ‘타이니’ 등도 같은 방식으로 뿌려지고 있다. 중국 특유의 국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화웨이는 훙멍OS를 사용하는 단말기가 모두 7억 개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세계를 놀라게 한 5G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가 핵심축이다. 영토는 이제 스마트폰을 넘는다. 화웨이와 자동차 회사가 함께 만든 ‘즈제(智界)’ ‘아이토(AITO)’ 같은 전기차에도 훙멍OS가 깔렸다. 이들 차량의 내비게이션·에어컨·영상 등은 화웨이폰과 완벽하게 연동된다. 훙멍이 얼마나 빨리 확산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산물이다. 2019년 5월 미국은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압박 강도를 높였다.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 몰아내겠다고 별렀다. 이에 화웨이는 훙멍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그해 8월 첫 버전을 내놨다. 현재 중국 시장점유율 16%. 미국이 훙멍의 약진을 도운 꼴이다.   훙멍의 성공 여부는 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미국의 기술 제재가 중국 스마트 기술의 표준 독립을 앞당기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반도체·전기차·AI 등에서도 목격되는 현상이다. 훙멍이 만든 자기들만의 세상에서는 블록 외부 기업과의 협력 공간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훙멍의 영토 확장을 경계하는 이유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11.27 00:14

  • [중국읽기] 대만해협 파고 잦아들까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바이든 대통령을 신뢰하나?” “시진핑 주석을 믿는가?” 지난 15일 미·중 정상에 던져진 기습 질문이다. 시 주석이 미소로 응수한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을 “독재자”라 부르는 것으로 답했다. 둘 다 상대에 신뢰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만났다. 왜? 국익은 물론 각자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싫어도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氣) 싸움만 요란했을 뿐 별 성과는 없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시 주석의 발언 하나는 눈에 띈다. “앞으로 수년간 대만공격 계획은 없다”는 거다. 시 주석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과거 시 주석이 미국에 한 약속을 뒤집고 남중국해 인공섬을 군사기지화 한 전례가 있지 않으냐는 지적이 당장 나온다. 하지만 시 주석이 세계가 지켜보는 회담에서 그저 빈말만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대만이 분열의 길을 가지 않는 한 양안(兩岸) 사이에 ‘제3의 전장’을 만들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왼쪽부터 주리룬 국민당 주석,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 마잉주 전 총통, 커원저 민중당 후보. [연합뉴스] 같은 날 대만에선 꽤 의미 있는 일이 벌어졌다. 내년 1월 13일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야권 후보자 둘이 전격적으로 단일화에 합의했다. 이제까지 판세는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라이칭더(賴淸德) 민진당 후보가 단연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친중 성향의 국민당 허우유이(侯友宜)와 중도인 민중당의 커원저(柯文哲)가 2, 3위를 다투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라이칭더가 승리하고 양안 간엔 화약 냄새가 진동할 게 뻔하다.   한데 국민당과 민중당이 이날 후보 단일화를 발표했다. 당초 18일엔 여론조사를 토대로 총통과 부총통 후보까지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다소 이견이 발생해 미뤄졌다. 그렇다고 단일화 자체가 물 건너간 건 아니다. 커원저가 “국민당도 밉지만, 민진당을 더욱 원망한다”고 말하고 있어 총통 후보 등록 마감일인 24일까지는 단일화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대선판이 크게 출렁이게 됐다.   앞선 조사에서 국민당과 민중당이 힘을 합칠 경우 어느 후보가 나서든 민진당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야권이 승리할 경우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총통 집권 때와 같은 양안 밀월기가 오지 않겠냐는 섣부른 전망마저 나온다. 자연히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집권 내내 바람 잘 날 없던 대만해협 파고가 과연 내년부터는 잦아들 수 있을까 비상한 관심을 끈다.   대만에 전쟁이 터지면 ‘제4의 전장’은 한반도가 될 것이란 일각의 예측이 결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11.20 00:22

  • [중국읽기] “한국 시장은 참 쉽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중국 웨이하이(威海)에서 물류 회사를 운영하는 가오(高) 사장. 한국 소비자가 주문한 중국 직구 상품을 인천으로 보내는 일을 한다. 직접 인터넷 스토어를 운영하기도 한다. 요즘 사업이 어떠냐는 물음에 엉뚱하게 대답한다.   “한국 시장은 참 쉽다.”   한국에서 장사하기 쉽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는 질문에 그는 ‘비어 있는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가성비 제품과 경쟁할 만한 한국 상품군이 없다는 얘기였다. 확인을 위해 인터넷 쇼핑 사이트를 뒤졌다. 그랬다. 골대는 비어 있었다.   지난 11일 ‘솽스이’ 특수를 맞아 물품 준비에 분주한 중국의 한 인형회사. [신화통신=연합뉴스] 전기면도기를 보자. 브라운, 필립스, 파나소닉…. 한국에서 인기 있는 제품은 대부분 해외 브랜드다. 이들의 쿠팡 가격은 쓸 만하다 싶으면 6만원이 넘는다. 고급형은 40만, 50만원에 달한다. 한국 기술이 만든 중저가 브랜드는 없다. 중국 구매사이트 알리익스프레스(이하 알리)는 달랐다. 검색창에 ‘전기면도기’를 치니 1만원대 중국 제품이 수두룩하게 떠오른다. 좀 고급스럽다는 ‘샤오미’ 제품도 3만원 선이다. ‘손색없는 품질, 그런데도 터무니없는 가격’. 가오 사장이 말한 비어 있는 시장이다.   거의 ‘폭격’ 수준이다. 우리는 올 1~9월 약 2조2217억원 어치의 중국 상품을 해외 직구로 샀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우리의 최대 해외 직구 대상국은 이제 미국이 아닌 중국이다. 아마존보다 알리를 더 찾은 셈이다. 중국의 ‘솽스이(11월 11일)’ 쇼핑 축제에 한국 소비자들이 열광할 정도다.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품 원가 자체가 경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들은 거대 대륙 시장이 있기에 더 많이 팔 수 있고, 그만큼 원가를 줄일 수 있다. ‘규모의 경제’다. 국내 기업은 도저히 그 원가를 맞출 수 없으니 시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쉽다’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중국 의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핵심 소재를 중국에 의존하고, 중간재 수출도 중국에 기댄다. 이젠 생산뿐만 아니라 소비도 중국에 의존해야 할 판이다. 한국 소비시장이 대륙의 ‘규모의 경제’에 편입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극복 방법은 하나, 혁신이다. 기술 혁신, 산업 구조 개혁만이 ‘규모의 경제’를 이길 수 있다. 그게 안 되니 ‘쉬운 한국’이라는 말을 듣는다. 요즘엔 오히려 중국 기업이 더 혁신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가성비 높은 BYD 전기차를 알리에서 주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골대가 비어 있으면 골은 먹히기 마련이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11.13 00:32

  • [중국읽기] 중국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철판도(鐵板圖)는 뭐고 추배도(推背圖)는 또 뭔가. 최근 여러 중화권 사이트를 살피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 말들이다. 둘 다 예언서란 공통점이 있다. 2017년 알려진 철판도는 예언이 철판에 못을 박듯 딱딱 들어맞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화제가 된 건 철판도의 마지막 장 그림 때문이다. 네 마리의 검은 새는 날고 있는데 한 마리 흰 깃털의 새(白羽毛鳥)는 산에 부닥쳐 추락한다.   여기서 백(白)과 우(羽)를 더하면 습(習)이 된다. 은연중 중국의 5세대 지도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겨냥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철판도를 봤다는 이의 일방적 주장인 데다 철판도의 존재 자체도 의심을 사 문제다. 한데 근자엔 당대(唐代) 이래 천서(天書)로 중국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란 말을 듣는 추배도 또한 거론된다. 추배도 이름은 왕조의 흥망을 다룬 60장의 그림 중 마지막이 사람의 등을 떠미는 모습에서 나왔다.   당대( 唐代) 제작 된 추배도(推背圖)는 중국판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서란 말을 듣는다. [사진 바이두] 추배도는 현재 6종의 판본이 존재하는데 46번째 그림이 문제다. 여기엔 “한 군인이 활을 갖고 나는 백두옹(白頭翁)이라 하니 동쪽 문 안에 금검(金劍)이 숨겨져 있고 용사는 후문에서 황궁으로 들어온다(有一軍人身帶弓 只言我是白頭翁 東邊門裏伏金劍 勇士後門入帝宮)”는 글이 적혔다. 어떤 군인이 황제를 해치려고 활과 칼을 숨겨 뒷문으로 들어온다는 내용이다.   이게 현재 상황을 예언한 거냐 여부로 중화권 뒷골목이 시끌시끌하다. 호사가들은 시 주석이 현재 중국 로켓군 장군들을 비롯해 군부에 대한 반부패 숙청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게 군(軍)에서 나올 자객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란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또 황제를 해할 용사가 누구냐, 중국의 프리고진은 누구인가를 따진다. 황당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예언서들이 횡행하게 된 시대 분위기다.   시진핑의 집권 3기 1년이 이제 막 지났다. 그동안 백지 시위를 야기한 코로나 사태 재폭발, 부동산이 고꾸라지며 벌어진 경기 침체, 역대 최악의 청년 실업률에 이어 여름엔 홍수가 베이징 근교를 집어삼켰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과 리커창 전 총리가 세상을 떴고, 친강 외교부장과 리상푸 국방부장이 혼외 스캔들과 부패 추문 속에 낙마하는 등 우환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진핑은 새 지도부를 자신의 친위대인 시자쥔(習家軍)으로 꾸렸지만, 누가 활을 든 용사인가 색출에 혈안이 될 정도로 안전에 대한 우려는 오히려 더 커졌다는 말이 나온다. 예언서가 판을 치게 된 배경이겠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11.06 00:20

  • [중국읽기] ‘자유·국제주의’ 사조의 사망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중국 국무원(정부) 산하 발전연구중심(DRC)은 대표적인 정부 싱크탱크다. 경제 정책을 기획하고 제시한다. DRC가 세계은행과 함께 ‘차이나 2030’ 보고서를 낸 건 2012년 2월이었다. 중국 경제의 장기 발전 방향을 담았다. 보고서 작성을 기획한 사람이 바로 27일 고인(故人)이 된 당시 국무원 부총리 리커창(李克强)이었다.   핵심 키워드는 두 개, ‘시장’과 ‘글로벌’이었다. 보고서는 모든 경제 정책 결정에서 시장을 중심에 두고, 세계 경제와의 동반 성장 체제를 구축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권력층의 주류 사조였던 자유주의, 국제주의가 반영됐다. 리커창이 꿈꾸던 2030년 중국의 미래 모습이기도 했다.   2016년 10월 한 창업 전시회에서 청년들에게 사인해주는 리커창 전 총리. [사진 중국정부망] 리커창은 보고서 내용을 정책에 반영하려 애썼다. ‘대중창업 시대를 열자, 모든 사람을 혁신에 뛰어들게 하라!’ 그는 총리 2년 차였던 2014년 9월 톈진(天津)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이렇게 외쳤다. IT분야 청년들이 환호했다. ‘대중창업, 만중혁신(大衆創業 萬衆創新)’이라는 슬로건은 금방 경제 현장으로 퍼져나갔다.   창업, 혁신 붐이 일었다. 중국은 어느 다른 나라보다 먼저 인터넷 쇼핑을 정착시켰고, ‘인터넷 택시’를 도입했다. ‘베이징에서는 거지도 위챗으로 구걸한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그즈음이다. 마윈(馬云)이 당시 세계 최고가로 알리바바를 뉴욕 증시에 상장한 것도 2014년 9월의 일이다. 인터넷 혁명으로 시장은 활력이 돋고, 기업은 젊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리커창 경제’는 바로 그 시간 내부 깊은 곳으로부터 도전받고 있었다. 그해 6월 베이징에서 중국 공산당의 경제 관련 최고 협의기구인 중앙재경영도소조(中央財經領導小組)가 열렸다. 소식을 전한 신화통신 보도에 뭔가 특이사항이 하나 있었다. 관행적으로 총리가 맡아오던 소조 조장에 ‘시진핑(習近平)’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 경제 권력은 빠르게 시진핑 일인(一人)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시진핑 세상’이다. 지금 중국에서는 리커창의 ‘대중 혁신’ 대신 국가가 자원을 집중적으로 동원하는 신형 거국체제가 강조된다. 민영기업보다 국유기업에 돈이 몰리고, 글로벌 협력보다 자력갱생이 중시된다. 당(黨)을 앞세운 시진핑의 10년 통치에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중국 정계에 자리 잡았던 자유, 국제주의 사조는 명맥이 끊길 처지다. 대신 ‘중화 권위주의’가 그 자리를 채운다. 리커창의 죽음은 그렇게 자유, 국제주의의 사망과 맥을 같이한다. 명복을 빈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10.30 00:40

  • [중국읽기] 애플은 중국에서 안녕한가?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애플 CEO 팀 쿡은 지난주 내내 중국에 있었다. 지난 3월 이후 7개월 만에 또 갔다. 이해가 간다. 신작 ‘아이폰15’의 중국 판매량이 전작(14시리즈)보다 부진했고,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화웨이에 내줘야 했다. 애플의 한 해 중국 판매액은 약 740억 달러(약 100조원, 2022 회계연도). 전체 매출의 약 20% 수준이다. 중국 판매가 주춤하면 애플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 위기감이 쿡을 중국으로 다시 불렀다.   “공무원들은 아이폰 갖고 출근하지 마.” 중국 정부의 이 조치에 애플 주가는 출렁였다. 중국의 ‘애플 밀어내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잽 수준의 견제에도 애플은 카운터 펀치급 충격을 받는다. “애플은 과연 중국에서 안녕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애플 CEO 팀 쿡(왼쪽)이 지난 19일 베이징에서 딩쉐샹(丁薛祥) 중국 부총리와 만나고 있다. [신화통신] 삼성도 그랬다. 한때 중국 시장의 20% 이상을 차지했던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는 지금 존재감 제로(0)다. 시작은 2015년 터진 노트7 발화 사건이었다. “중국 정부는 이 사건을 빌미로 집요하게 ‘갤럭시 밀어내기’에 나섰다”고 삼성 관계자들은 회고한다.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당시 삼성 갤럭시는 탈(脫)중국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2008년부터 시작한 베트남 공장 건설이 마무리되면서 이전 작업을 하나하나 진행 중이었다. 삼성은 2018년 톈진(天津)공장, 2019년 후이저우(惠州)공장 문을 닫았다. 현재 삼성 폰 절반 이상이 베트남에서 생산된다. 공장 뺄 때 시장도 모두 반납하고 나와야 했던 셈이다.   기술도 원인이다. 당시 오포·비보·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기술 수준은 삼성을 능가할 만큼 올라와 있었다. ‘시장 줄게, 기술 다오’ 식의 중국 외자 유치 공식은 더는 통하지 않았다. 설상가상 2016년 ‘사드’라는 지정학 위기가 터졌고, 갤럭시는 퇴출 수순을 밟아야 했다.   지금 애플 상황은 삼성 데자뷔다. 애플은 공장 다각화를 추진 중이다. 삼성이 그랬듯, 베트남과 인도로 간다. 기술도 중국 기업을 압도하지 못한다. 최근 발표된 화웨이 5G폰은 7나노 칩을 국내에서 조달하는 등 국산화율 90%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사드보다 더 큰 지정학적 리스크가 애플을 짓누르고 있다.   미·중 갈등이 어떻게 번지느냐에 따라 중국의 애플 불매 ‘지령’은 공직 사회를 벗어날 수 있다. 시장·공장 모두 중국 의존도가 높은 애플로서는 이래저래 중국 정부의 눈치를 봐야할 처지다. 팀 쿡의 아슬아슬한 ‘100조 줄타기’가 시작됐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10.23 00:36

  • [중국읽기] ‘실크로드 화물 열차’ 공허한 기적 소리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지금 이 시각, 중앙아시아의 어느 초원에는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화물열차가 굉음을 내며 달리고 있을 터다. 중국과 유럽의 주요 도시를 잇는 ‘중국-유럽 화물 열차’다. 낙타가 오가던 실크로드를 열차가 달리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8641회가 오갔다.(중국 국가철도국 발표) 하루 47회꼴이다. 이들이 실어 나른 컨테이너 숫자만도 93만6000개에 달했다. 지난해 대비 약 29% 늘어난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실크로드’는 활기를 띠고 있다. 열차는 유럽 25개 나라, 216개 도시에 뻗친다. 덕택에 중국은 2020년 미국을 제치고 EU(유럽연합)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유럽 화물열차야말로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정책의 최대 성과’라고 중국 언론은 치켜세운다.   중국 저장성(浙江省) 이우(義烏)에서 스페인 마드리드를 향해 출발하는 ‘중국-유럽 화물열차’. [신화뉴스] 일대일로 10주년이다. 베이징에서는 17일 ‘제3회 일대일로 정상 포럼’이 열린다. 중국의 올해 최고 외교 이벤트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주재한다. 그런데 유럽 대표가 없다. 2019년 제2회 포럼에는 정부 대표단을 파견했던 유럽 각국이 이번에는 발을 빼는 모습이다. G7(서방선진 7개국) 중 유일하게 일대일로에 남았던 이탈리아마저 탈퇴 수순을 밟는다.   열차는 활발하게 오가지만, 정치적 교류는 끊기는 이유가 뭘까. 일대일로에 숨겨진 중국의 의도를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미래 문제의 해법을 과거에서 찾곤 한다. 일대일로가 그렇다. 실크로드가 만들어진 건 한나라(漢·BC206~220) 때다. 그 길을 타고 동서양 문물이 가장 왕성하게 오간 건 당(唐·618~907) 시기였다. 한나라는 강국이었고, 당나라는 흥성했다(强漢盛唐). 세계 최강의 그 역사를 오늘 재연하겠다는 게 시진핑 주석이 주창하는 ‘중국몽(中國夢)’이다. 일대일로는 그 실현 방안이었던 셈이다.   “중국몽은 글로벌 패권에 대한 도전이다. 일대일로는 이를 위한 ‘차이나 벨트’ 만들기에 불과하다.” 서방 국가의 생각이 그렇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저개발국가의 부채만 늘렸다는 문제도 여러 곳에서 제기됐다. 이번 3회 포럼이 2회 때보다 덜 주목받는 이유다.   10년 전 시 주석은 일대일로를 주창하면서 ‘허쭤공잉(合作共嬴)!’을 강조했다. ‘협력으로 상생하자’는 외침이다. 그러나 지금 일대일로는 “상생은 사라지고 중국의 경제 이익, 지정학적 노림수만 남았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 목소리에 중앙아시아 초원을 가르는 기적 소리마저 공허해지고 있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10.16 00:28

  • [중국읽기] 마윈은 왜 아시안 게임에 초대받지 못했을까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중국 항저우(杭州)는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도시다. ‘항저우 미인’은 중국에서도 최고 미인으로 꼽힌다. 시내 서호(西湖)는 그 아름답기가 춘추시대 말 미인계로 오(吳)나라를 망하게 한 서시(西施)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동파가 즐겨 먹었다는 둥퍼로우(東坡肉),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룽징차(龍井茶)도 항저우를 대표하는 이미지다.   이런 항저우가 지금은 베이징, 선전(深圳) 등과 어깨를 견주는 ‘디지털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번 아시안 게임이 세계에 보여주려 했던 게 바로 ‘디지털 항저우’였다. 개막식에 여실히 드러났다. 디지털 성화 주자는 가상 현실을 통해 항저우 서호를 건너 주 경기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실제 인간과 디지털 인간이 함께 성화에 불을 붙이는 장면은 최고 하이라이트였다.   항저우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서 디지털 성화봉송자가 점화하고 있다. [사진 아시안 게임 조직위] 선진 기술은 경기장 곳곳에서 목격됐다. 로봇 강아지는 육상 멀리 던지기에서 원반을 회수했고, 무인 자율주행차는 경기장을 분주히 오갔다. 2분이면 따끈하게 끓여 내주는 ‘라면 자판기’가 선수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경기 운영도 말끔했다는 평가다. 첨단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종합상황실 덕택이다. 관영 CCTV에 비친 종합상황실은 경기장의 이상 여부를 3D로 실시간 점검하고 있었다. 출입증 발급, 매달·순위 집계, 선수촌 관리, 식단 등 수많은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처리됐다. 알리바바 그룹사인 알리 클라우드의 클라우드 시스템이 한몫했다. 정보 전송 속도가 기존 5G보다 10배나 빠른 화웨이의 5.5G 통신 인프라가 있었기에 운영 가능했다는 게 주최 측 설명이다.   ‘미인의 도시’ 항저우를 디지털 도시로 만든 주역은 마윈(馬云)이다. 그는 1995년 항저우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고, 1999년 지금의 알리바바를 설립했다. 2014년에는 회사를 당시 사상 최대 규모로 뉴욕 증시에 상장하기도 했다. 항저우가 중국 인터넷 혁명의 진원지이자 디지털 성지로 급부상한 계기다. ‘마윈이야말로 이번 항저우 아시안 게임을 주목할만한 이벤트로 만든 최고 공로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 번쯤 나올 법도 했다. 성화 봉송은 아니더라도 관중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스쳐 비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마윈은 초대받지 못했다. ‘기피 인물’이라도 된 듯했다. 중국 미디어조차 ‘마윈은 왜 없지?’라고 묻는다.   항저우를 중국의 디지털 성지로 만든 최고의 민영기업가 마윈, 그의 부재는 오늘 중국을 읽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됐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10.09 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