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독]국정원 前직원 "文정부때, 북핵 첩보 보고서는 쓰지도 말라더라"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조강수 논설위원 국가정보원이 최근 1급 부서장 27명 전원에 대해 내부 교육기관인 국가정보대학원에 대기발령 인사를 내렸다. 국정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적 청산, 조직 쇄신의 몸살을 앓아왔다. 6·25 때 밤엔 인민군, 낮엔 국군이 번갈아 점령군 행세를 하던 것과 비슷하다는 소리가 내부에서 흘러나온다. 급기야 지난 정부에서 국내정보 파트가 아예 폐지됐다. 하지만 정권에 따라 대북 정책 기조가 친북과 반북으로 갈리는 게 여전히 문제다. 지난 문재인 정부 5년간 인사 난맥상과 함께 대북 정보파트가 많이 허물어졌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그 실상을 들여다봤다.    지난달 어느 토요일, 서울 여의도의 한적한 오피스텔. 대북공작 업무를 오래 해온 국정원 전 직원 A씨와 마주앉았다. 그와의 만남은 스파이들이 접선을 하는 것처럼 은밀하게 진행됐다. 사업가 지인을 통해 연락이 닿았다. 오피스텔에 들어서니 주식 시세창이 떠 있는 여러대의 컴퓨터와 책상이 보였고 음료수와 물로 가득찬 냉장고도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1년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 제막식후 박지원 당시 국정원장에게 개정 국정원법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달 61년 전에 만든 ‘우리는 陰地(음지)에서 일하고 陽地(양지)를 指向(지향)한다’는 문구의 원훈석으로 교체했다. [뉴스1] 자리에 앉은 A씨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5월, 서훈 국정원장 취임 이후 국정원 적폐 청산TF를 동원한 인사 전횡과 이로 인한 대북공작국 기능 마비가 심각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9월쯤 국정원 2, 3급  30여명, 4급 30여명의 직원들이 경기도 판교에 있는 내부 교육기관으로 보내졌다. 보수 정권 10년 동안 소위 '잘 나간' 이들을 뽑아내 1년간 교육(직원들은 '삼청교육'이라고 부름)을 받도록 했다. 이들 중 절반은 '정치범', 절반은 '잡범'으로 불렸다. 정치범은 '국정원 댓글 공작' 담당자였거나 폐지된 국내정보 수집·분석 담당자들. 그들의 빈자리는 친문 인사들로 채웠다. 국정원엔 승진 최소 소요기간(계급정년)이 있다. 4급→3급 승진에 5년, 3급→2급 3년, 2급→1급 2년씩 걸린다. 그런데 갑자기 4급→3급 승진 연한 5년을 3년으로 줄이고 3급 이상은 아예 없앴다. 자격이 안되는 자기 쪽 인사 발탁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인 셈이다. 명분은 '세대교체'를 내세웠다. 지난 5년간 2계급 이상 승진해 현재 2급 이상인 고위 간부가 53명에 이르는 건 그 때문이란게 A씨의 설명이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이같은 인사 전횡의 주도자로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지낸 노모씨와 전 인사처장 소모씨가 꼽힌다. 노 전 실장은 정권 출범 당시 3급 부이사관에서 불과 1년만에 1급 관리관으로 승진했다. 이후 대북공작국장으로 영전하더니 박지원 원장이 부임(2020년 7월말)직후 비서실장이 됐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고향 친구(전남 장흥)라는 뒷배가 작용했다는 말이 많았다. 국정원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노 씨가 대북공작국장을 한 2년여동안, 주요 해외 거점을 폐쇄하고 진행중인 공작을 강제 종결하라고 지시하는 등 무리수를 둬 대북공작의 역량이 10년 이상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 전 실장은 영업사원들의 실적을 그래프로 작성해 관리하는 대기업 시스템을 대북 공작 업무 관리에 도입했는데, 이는 노무현 정부 때 도입했다 실패한 것이었다고 한다. 내밀하고 깊이 있는 첩보는 줄어들고 분량만 늘어나는 부작용이 컸기 때문이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2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소 전 처장 역시 정규 기수를 6~7기 뛰어넘어 3급 인사처장, 2급 대북전략국 단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서훈 전 원장이 4급 과장 시절 막내 직원으로 같이 근무한 인연이 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보수 정권시절의 간부 60여명을 적폐, 갑질, 조직 부적응 등을 이유로 보직을 박탈하고 지방 좌천하는 인사의 실무를 담당했다고 한다. 노 전 실장도 소 전 처장을 통해 자신이 근무했던 감사관실 후배 직원들을 대북공작국·방첩국·해외공작국 등 인기 부서로 대거 배치했다고 한다. 애초에 감사관실 출신 대북공작국 직원은 1~2명에 불과했는데 자꾸 늘리다보니 20여명이나 됐다. 대북 공작 부서가 잘 돌아갈 수 없는 구조였다는 의미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국정원 직원 400여명을 쫓아내자 그들이 '국사모'를 만들어 법정 투쟁, 10년 뒤 승소하는 일이 있었다. 그걸 거울삼아 문 정부는 보직은 주되 조직 내에서 왕따를 시키는 방식을 썼다고 한다.  다음은 A씨가 전한 대북 공작업무의 와해상이다.   -가장 심각하다고 느낀건 무엇인가.  "문 정부가 출범한 그해 말께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는 CIA 내부 분석 보고서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관심이 증폭됐다. 한미간에 정보 교환을 안 하니까 귀동냥으로나마 그런 사실을 들었다. 이에 대북 공작국에서는 북핵 관련 첩보들을 계속 수집했다. 북한이 핵개발과 관련해 자강도에서 뭘 하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공작관들에게 일절 수집한 첩보를 활용해 북핵 관련 보고서를 쓰지 못하게 했다. 책임질 수 없는 첩보는 보고하지 말라는 취지였다.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첩보는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이고 분석관들이 종합적으로 판단해 신빙성을 인정하면 정보로 생산된다. 정보는 국정원장을 거쳐 VIP(대통령)에게 보고돼 국정 운영의 자료로 쓰인다."    -강제 퇴직한 직원도 있나.    "내부 교육기관에 입소한 국정원 동료는 국정원 감찰과 세 번의 검찰 조사까지 받은 뒤 강제 퇴직을 당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관련한 보고서를 썼는데 4대강 사업을 미화했다는 이유였다. 4대강 캠페인을 했으면 모르지만 현재 상황, 문제점, 개선 방안을 일목요연하게 적은 보고서였다고 한다. 당사자는 얼마나 억울했겠나. 더욱이 4급 서기관(과장)을 형사 처벌까지 받게 하는 게 맞나. 정치적 문제가 생기면 1급 부서장에 책임을 물으면 된다. 2급 이하 직업 공무원들까지 문책하는 건 가혹하다. 북풍 사건 때도 안 그랬다. 검사가 신문을 하는데 국정원 내부 보고서 원본이 앞에 놓여 있어 깜짝 놀랐다는 직원도 있다. 감사관실과 '과거사 정비 TF'가 서버를 다 봤고 감사 자료를 그대로 검찰에 준 것이다. 검사가 놀라 '이 보고서를 저희가 봐도 되는 거냐'고 묻더라. 이런 일들이 여러 부처에서 벌어졌다."  A씨는 "지난 5년 동안 대북 공작의 씨를 완전히 말렸다. 국가적으로 봤을 때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라 이적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라며 "북풍 사건에 대북 공작국이 연루돼 박살이 났던 DJ(김대중 정부)때도 이번처럼 뿌리까지 자르지는 않고 계속 일은 할 수 있게 놔뒀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재임 중 알게된 정보들을 퇴임 후 번번이 얘기하면서 구설에 올랐다. 중앙일보  대북 공작은 애로가 많다.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사람들에게 공작원이 접근해 포섭하는 흑색 공작은 인력과 시간, 돈이 많이 들어간다. 중단하면 휴민트가 붕괴된다. 이병기 국정원장 시절, 국정원장 비서로 홍콩에서 블랙 활동을 하던 공작국 직원을 차출했다고 한다. 3급 직원이 졸지에 원장 비서실장을 거쳐 주런던 공사까지 지냈다. 개인적으로는 출셋길에 올랐다. 반면 예산이 10만달러 이상 투입된 홍콩 사업이 완전 마비됐다. 후배들 입장에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 대북 공작 직원들은 퇴직 후 민간 회사에 들어가려고 이력서를 쓸 때도 국가를 위해 쏟아부은 30년은 국가 기밀 사항이라서 잃어버린 것으로 치부, 기재하지 못한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북공작 국장을 지낸 또 다른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 중립을 강조하며 힘을 빼다보니 국정원이 껍데기만 남은 공룡처럼 됐다"며 "인사 또한 호남 인맥, 부산 인맥, 영포라인 등 자기 편 일색으로 단행해 줄 세우기 하니 수십 년 공들여 키운 국가적 자원이 낭비되고 국정원이 바로서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원 직원들의 계급제를 없애 정치권 줄 대기를 차단하고 국정원은 집행기능만 하고 국정원위원회 같은 별도의 통제기구를 둬 견제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A씨가 전한 난맥상과 관련,본지는 노 전실장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수차례 시도했으나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조강수 논설위원

    2022.07.05 00:17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4시간 51분(2019년 공직선거법) vs 17분(2022년 검수완박)…안건조정위 심사 여부가 핵심 변수

    조강수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 마감 일주일(지난 3일) 전에 공포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법안이 '헌재의 시간'을 맞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의장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동원,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법사위에 상정·가결했다. 이에 앞서 국민의힘이 26일 헌재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사흘 뒤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게 발단이었다. 해당 사건의 공개변론이 오는 7월 12일로 잡혔다. 이례적으로 신속한 움직임에 9월 10일 법 시행 전에 결론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검수완박 헌법 분쟁의 쟁점과 전망을 짚어봤다.   헌법재판소 건너편에서 바라본 전경. 헌재 재판관을 상징하는 9개의 무궁화 문양이 보인다. 조강수 기자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정문 앞은 한산했다. 헌재 건물로 눈길을 돌리니 외부 벽면에 부조된 9개의 무궁화 꽃이 보였다. 9명의 재판관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문양은 동일하지만 정작 문양이 가리키는 재판관들은 진보와 보수라는 두 축 안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현하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복수의 헌재 관계자는 "지금 내부적으로 권한쟁의 사건에 대해 검토를 하고 있는데 양설이 부딪치고 있다"고 전했다.   먼저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막기 위해 설치된 안건조정위원회를 건너뛰고, 정당 소속 국회의원을 편법 탈당시킨 문제 등은 중대한 법 절차 위반이라서 헌재가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다른 하나는 입법 절차가 기차처럼 쭉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건데 법사위원회에서 일부 하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본회의에서 통과됐으니 국회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지 않느냐는 견해다.  한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면서도 "얼마나 심각한 절차 위반인지, 민주주의에 끼치는 위험이 중차대한지를 공개 변론장에서 치열하게 논박하게 한 뒤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힘 유상범-전주혜 의원이 헌재에 청구한 검수완박 법안 관련 권한쟁의심판청구서. 조강수 기자 가처분 신청 외면한 헌재  헌재에 접수된 권한쟁의심판청구서부터 살펴봤다. 청구인은 국민의힘 법사위원인 유상범·전주혜 의원, 청구 대상은 박병석 국회의장과 박광온 법사위원장이다. 박 의장은 법안 발의자인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킨 뒤 법사위원으로 사보임하고, 야당이 소집을 요구하면 연장자가 위원장을 맡게 되는 규정에 맞추려 75세로 국회 최고령인 김진표 의원을 법사위로 이동시킨 책임자다. 박 위원장은 국민의힘 측이 깊이 있는 법률안 심의를 위해 요청한 안건조정위 회의를 개회 14분(전체 17분 소요) 만에 종결 선언한 뒤 법사위 의결을 거쳐 본회의에 상정한 게 문제가 됐다.   청구서에는 "이러한 일련의 검수완박 법안 처리는 국회법상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서 '위헌·위법'에 따른 무효"라고 적혀 있다. 이 사건의 법률대리인은 정치법(선거·국회·정치자금법) 전문가인 황정근 변호사다. 그는 안건조정위 구성과 의결이 국회법에 따라 작동했는지가 핵심 쟁점이라고 꼽았다. 2020년 5월 27일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심판사건(2019헌라5 결정)을 비교 사례로 들었다. 장제원 등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9년 8월 국회 정치개혁특위 안건조정위원장 등을 상대로 냈는데, 안건조정위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가결한 것은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한 사건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안건조정위에서 비공개 회의로 4시간 51분가량 심사했으므로...(중략) 안건조정위 구성 전 두 달 동안 정치개혁 소위에서도 심사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황 변호사의 주장은 이렇다. "그 사건과 이번 사건이 확연히 다른 게 두 가지다. 당시엔 비공개회의였지만 이번 안건조정위는 생중계됐다. 또 헌재는 당시 4시간 51분간 심사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단했으나 이번엔 17분간 아무 심사 절차가 없었음이 명백하게 나오는 회의록과 영상이 있다. 이런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난 것 자체가 처음이다. 원래 안건조정위는 소위원회 안건 상정→축조 심사 및 찬반 토론→표결의 3단계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런 걸 다 생략하고 의결만 했다. 명백한 하자로 인한 무효 사유가 아니고 아예 절차를 밟지 않은 부존재로 인한 무효 사유다. 필리버스터 종료를 위한 회기 쪼개기, 민형배 의원 '위장 탈당' 등은 어찌 보면 부차적이다. 편법이긴 하지만 불법은 아니지 않나."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유상범 의원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 신청서를 박광온 위원장에게 제출하고 있다. [뉴시스]  헌법 전문가들은 헌재가 본안 소송인 권한쟁의 심판청구에 앞서 제기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심리하지 않은 게 직무유기라는 해석도 내놨다. 헌법재판소법은 권한쟁의심판과 정당해산심판 등에서 가처분을 할 수 있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검수완박 법안의 본회의 상정(4월 30일 검찰청법, 5월 3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막기 위해 헌재에 가처분 신청을 했다. 하지만 헌재는 아무 조처를 하지 않았고 가처분의 실익은 사라졌다. 법원이 민사·행정 사건에서 가처분 신청이 접수되면 신속히 결정해 권리를 구제하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에 들어오는 가처분 사건은 사회적 파장과 중압감이 크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역으로 국정운영과 민생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헌재의 가처분 결정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권한쟁의 심판 사건에는 한계가 있다. 문제는 승소 결정의 주문이 '심의·의결권이 침해됐음을 확인한다'로 끝난다는 점이다. 사후적 위법 선언에 그친다. 법무부와 검찰의 고민은 이 지점에서 깊어진다.     한동훈이 총대 메는 모양새  검찰총장이 아직 공석인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황태자'로 불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총대를 메는 모양새다. 법무부는 지난 26일 검찰국장 직속으로 검수완박 헌법쟁점연구TF를 발족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을 위해 2013년 9월 차관 직속 TF를 꾸린 이후 8년 9개월 만이다.   검찰은 검수완박 법안의 내용과 절차가 모두 위헌이라고 본다. 내용의 위헌성부터 본다면 헌법 12조, 16조는 검찰의 영장청구권을 보장하는데, 영장청구는 수사권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그런데 검수완박 법안은 검찰의 수사 범위를 제약하기 때문에 하위의 법률로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논리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5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법무부는 전날 공직자 인사 검증 기능을 법무부 장관으로 위임하고 검사를 포함한 인력을 증원하는 내용을 담은 시행규칙 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연합뉴스  문제는 수사권과 영장청구권이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라고 보는 헌법학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엔 절차적인 흠결이 과거 사례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2020년 12월 오신환 의원이 관련된 권한쟁의 심판 때는 사보임 절차만이 문제가 됐으나 검수완박 법안에선 "꼼수 사보임부터 시작해 위장 탈당, 안건조정위, 본회의, 국무회의까지 모든 게 꼼수였다"(권성동 원내대표)는 입장이다.     검찰은 '검사의 수사권이 침해됐다'는 선언적 결정을 넘어서 헌법 위반에 근거한 법률 무효화 방안을 찾고 있다. 검찰이 이번 권한쟁의 심판과 관련해 헌재에 낸 의견서에는 '법률을 무효화시킬 만한 절차위반'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실 법률 무효화는 헌법재판소법상 헌법소원과 위헌법률제청을 거쳐야 가능하다. 현재 검찰은 중대한 절차 위반과 내용의 위헌성을 문제 삼아 법 시행 후 구체적 기본권이 침해됐을 때 제기하는 헌법소원, 전례는 없지만 국가기관인 검찰총장이나 검사 명의로 권한쟁의 심판청구를 하고 법의 무효를 주장하는 방안 등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한쟁의 심판의 경우 청구 취지가 '검사의 영장청구권이 침해됐음을 확인해 달라'는 건데 한 발 더 나가 '법률도 무효임을 확인해 달라'고 추가로 청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한쟁의 의결정족수는 헌재 재판관의 과반수, 즉 5명이 찬성하면 인용된다. 황정근 변호사는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주장을 안 해서 그렇지, 헌법상의 적법 절차 원칙을 위반해 제·개정된 법은 통째로 무효라는 결정을 헌재가 할 수 있고 할 필요도 있다"며 "다수당의 입법 폭주가 반복되고 있는 건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검수완박 법안의 생사여탈권은 헌재가 쥐고 있다. 헌재는 문재인 정부 때 재판관 9명 중 8명이 교체되면서 진보 우위로 바뀌었다. 진보 성향의 유남석 소장과 문형배·이석태·김기영 등 4명에 이미선(51·26기) 재판관이 주요 결정의 판도를 끌어간다.   안창호 전 헌재 재판관은 "헌법 12조의 적법절차 준수는 모든 권력에 동일하게 적용되며 입법부라고 예외가 아니다"며 "헌재가 오로지 헌법 가치와 헌법 질서 수호만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헌재가 계속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가 또 다른 형태의 재판 거래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조강수 논설위원

    2022.05.31 00:28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김명수(대법원장) 거짓 문건 사건, 작년 6월 임성근(전 고법 부장판사) 서면 조사 후 수사 중단

    조강수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 검찰 수사의 기조는 2019년 8월 조국 일가 비리 사건 수사를 경계로 '적폐 수사'와 '산 권력 수사'로 나뉜다. 전반부 수사는 죽은 권력에 대한 단죄였고 사법부까지 거침없이 치고 들어갔다. 후반부는 돌아온 '항명' 윤석열 검사가 검을 거꾸로 잡고 밀어붙인 수사였다. 검찰권력과 정치권력이 정면충돌한 충격파는 컸다. 대통령이 정점에 자리잡은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수사 중단과 축소 현상이 대법원장 허위공문서 사건까지 덮치더니 최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란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정의가 지연된, 멈춰진 수사들의 실상을 짚어봤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2월초 임성근 전 고법 부장판사와 '여당의 탄핵' 발언 및 사표 수리 거부 등을 두고 진실 공방을 벌였다. 당시 대화 녹취록 공개로 '거짓말'한 것이 드러나자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근조 화환들이 대법원 앞 인도에 진열됐다. 김성룡 기자 김명수,직권남용·허위공문서 작성등 혐의        지난 19일 창원지검 인권보호관 변필건 부장검사에게 연락했다. 그가 누구냐고? 2020년 9월부터 2021년 7월까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으로 근무할 때 채널A 강요미수('검언유착')사건 주임검사(수사팀장)였다.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9차례나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무혐의 의견을 보고했지만 모조리 묵살됐다. 한 검사장이 지난 6일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자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며 이를 '검수완박' 입법의 근거로 내세웠다. 이에 변 부장검사는 "채널A 사건은 정치권의 수사 개입 배제 방안을 논의하는 소재로 다뤄져야 한다"며 공개 반박했다. 그에게 연락한 건 채널A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또 다른 사건이 궁금해서였다. 그가 지휘했던 이른바 '김명수(63·사법연수원 15기) 대법원장 피고발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부터 보자. 2020년 5월 22일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임성근(58·17기)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표를 내려고 하자 김 대법원장은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지금 (여당이)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2월 초 민주당 판사 출신 의원들이 임기 만료를 앞둔 임 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을 가결(8개월 뒤 헌재서 각하)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공개됐다. 김 대법원장은 "탄핵 발언을 한 적이 없고 임 전 부장판사가 사표를 낸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임 전 부장판사의 녹취록 공개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몇몇 시민단체들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아픈 판사의 사직서를 장기간 수리하지 않았고 국회의 해명 요청에 거짓 서면을 대법원 명의로 작성해 제출했다"며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주임검사인 형사1부 부부장은 지난해 6월 두 차례에 걸쳐 임 전 부장판사와 사표 수리 과정에 등장하는 김인겸(59·18기)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현 서울가정법원장)을 서면조사했다. 한 수사 관계자는 "임 전 부장판사가 형사 재판을 받는 중이라 서면 조사를 원했다"며 "질문지를 10장 보냈더니 답이 10장 왔다"고 전했다. 그는 "둘은 대학 친구인데 사표 제출과 반려 과정에 대한 진술이 달라 두 번 조사했던 것"이라며 "실체적 진실을 상당부분 파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3년 만에 정식으로 열린 제59회 '법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본지 취재 결과, 서면진술서에서 주장이 엇갈리는 건 두 부분이다. 임 전 부장판사는 재작년 5월 22일 대법원장 면담 직후 사표를 김 전 차장에게 맡기고 왔다고 진술했다. "사표를 내밀었더니 '이걸 왜 나한테 내느냐'고 하더라. '11층(대법원장실) 올라가서 사표를 어떻게 내느냐'고 했더니 '하기야 법원장이나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사표 낼 때 차장한테 내고 간다. 보관하겠다'고 말했다."  김 전 차장은 처음엔 사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하다가 이후 "사표를 받은 건 맞지만 법원장을 통하지 않아 정식 사표는 아니다"라고 말을 돌렸다. 임 전 부장판사는 사표를 낼 때 스마트폰으로 찍어둔 사진을 찾아 증거자료로 첨부해 검찰에 냈다고 한다.    부장·부부장검사 지방 좌천,수사 중단  다른 하나는 임 전 부장판사가 "대법원장을 면담하고 나와 김 전 차장 방에서 차를 마시며 '대법원장이 탄핵 운운하며 사표를 못 받겠다고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반면 김 전 차장은 "그런 얘기를 들은 적 없다"고 부인한 것이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임 전 부장판사의 녹취록에 그대로 들어있다고 한다. 그는 김 대법원장을 만나기 직전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조 처장이 "가급적 사표가 수리되도록 노력하겠다. 다만 향후 시비 소지를 없애기 위해 치료경과 등에 관한 진단서 등을 보완해 달라"고 했다. 이에 김 대법원장 면담 직후 치료확인서, 수술증명서, 진단서 등과 함께 치료경과서를 작성해 법원행정처에 보냈다고 한다.  검찰 수사팀은 김 대법원장이 국회에 거짓 문서를 낸 것은 맞는데 고의 여부를 규명하는 게 관건이라고 봤다고 한다. 장기간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행위는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 직권남용의 소지가 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문제는 부장검사와 부부장검사가 지난해 8월 지방으로 좌천되면서 수사가 중단됐다는 점이다. 그 이후 사건이 어떻게 됐느냐고 묻자 임 전 부장판사측 관계자는 "검찰청 캐비닛에서 잠자고 있지요"라고 답했다. 후임 수사팀이 기소 여부 결정은커녕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 시기와 방법도 결정하지 않고 있는 건 지연된 정의의 대표적 사례다. 경찰은 더하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불거진 '대법원장 공관 리모델링 예산 4억7000만원 전용' 의혹으로 2019년 고발됐다. 이후 2년 5개월째 서울 서초서는 사건을 깔고 앉아있다.      작년 12월 시한부 기소 중지된 이상직 사건  수사 방해와 좌천 인사는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줄을 이었다. 문 대통령과 가족 관련만 세 가지다. 2020년 1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수사팀은 송철호 울산시장, 황운하 민주당 의원 등 15명을 기소했다. 수사 결과 청와대는 8개 부서를 동원해 송 시장의 공약 수립까지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모든 게 2014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 "내 가장 큰 소원은 송철호의 당선"이라고 했던 대통령과의 친분에서 시작됐지만 수사는 멈췄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수사팀부터 해체했다. 해당 재판 역시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의 노골적 뭉개기로 15개월 동안 공전했다. 2020년 11월 대전지검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시로 '월성 원전 평가성 조작 의혹 사건' 수사에 착수하자 추 전 장관은 윤 전 총장에 대해 직무배제 결정을 내렸다. 이듬해 6월 사건의 핵심 관련자들을 기소하기 직전, 이두봉 대전지검장은 인천지검장으로 발령났다.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59·수감 중) 의원이 태국의 저비용 항공사 타이이스타젯을 통해 문 대통령의 사위 서 모 씨 가족에게 특혜를 줬다는 권력형 비리 의혹은 전주지검이 수사중이다. 사위의 특혜 취업이 문 대통령에게 건네진 뇌물인지 여부가 핵심인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 석연찮은 이유로 시한부 기소중지됐다. 이재명 전 후보가 연루된 성남FC 후원금 사건은 수사를 막는 성남지청장에 반발해 차장검사가 사직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대장동 특혜 비리 사건도 멈춰서 있다.     서울동부지검 전경. 조강수 기자  그나마 서울동부지검에서 지난달 말 '산업통상자원부 인사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고발장 접수 이후 3년 2개월 만에 의욕적으로 재수사에 나섰으나 검수완박 입법 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9월께 산자부 박모국장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임기가 남은 산하 8개 공공기관장들을 광화문의 호텔로 불러 자진 사퇴를 압박했다는 게 핵심 혐의다. 동부지검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김은경 전 장관 기소로 마무리하고 한찬식 동부지검장 등 지휘부가 2019년 8월 좌천성 인사를 당해 검찰을 떠난 뒤 올스톱됐다. 민주당은 이 사건도 검수완박 추진 근거로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정치 보복 수사가 시작됐다"면서다.   만약 이번 국회에서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시행된다면 오는 9월부터 검찰은 여야 국회의원과 정권 고위층 비리의 핵심인 공직자 범죄(직권남용)·선거 범죄를 손대지 못한다. 고작 4개월의 시한부 수사만 남은 셈이다. "역으로 보면 아직 검찰에 4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 아닌가. 정의의 지연은 이제 범죄다." 어느 검사의 역설적 비유가 처연하다.   조강수 논설위원

    2022.04.26 00:33

  • 신변보호 워치까지 등장...막장 펜트하우스 뺨치는 타팰 큰싸움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타워팰리스 1차 아파트 대로변에 두 개의 서로 다른 현수막이 나붙었다. 위는 비대위가 입주자대표 회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것이고 아래는 입대의 회장이 "횡령은 없다"며 반박하는 내용이다. 조강수 기자 서울 강남의 랜드마크이자 부(富)의 상징인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아파트 위탁관리업체 선정을 둘러싼 내부 갈등과 대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11~12월 새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가 관리업체 선정 방식을 공개경쟁입찰로 바꾸자 20년 동안 수의 계약으로 관리 업무를 맡아온 기존 업체가 반발하면서다. 강남 한복판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서 거친 비방과 물리력 행사, 고소·고발 등이 이어지며 막장 드라마 ‘펜트하우스’가 따로 없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아파트 관리의 전권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다툼 현장을 찾아가 봤다.     기존 관리업체들의 거센 반발  지난 16일 오후 5시 20분께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1차 아파트. 차가 거대한 나무의 입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 같다, 는 생각을 하며 지하 6층까지 내려갔다. 방문자 주차장소가 저 아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입주민 우대 및 사생활 배려가 감지됐다. 그런데 1층 주민생활지원센터 문 앞은 딴판이었다. 도떼기시장처럼 시끌벅적했다. 근무복이 다른 직원 20여 명이 둘로 나뉘어 대치 중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오가는 대화 내용은 대부분 반말이었다.     지난 16일 신규 선정 관리업체가 타워팰리스 1차 아파트 생활지원센터 앞에서 업무 인수인계를 요구하자 기존 관리업체 직원들이 막아서고 있다. 경찰이 출동하고 나서야 대치가 끝났다. 조강수 기자   "우리가 새 관리업체로 계약했고 업무 인수·인계를 받으러 온 거야. 업무 방해하지 마. 비켜."   "합법적으로 계약이 됐다는 증거를 가져와. 그러면 인계해 줄 테니. 불법 입찰·낙찰받고 어딜 들어와."    고성과 욕설이 이어졌다. 사정을 알아보니 새 출범한 10기 입주자대표회의가 의결·확정한 공개경쟁입찰 방식에 따라 우리관리㈜가 지난달 23일 신규 관리업체로 선정됐는데 업무개시일이 3월 4일이었다. 그러나 첫날부터 기존 관리업체인 타워PMC 직원들이 "불법 계약이라 원천 무효"라며 센터 사무실을 비워주지 않았다. 여러 번 진입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막혔다.   이날도 우리관리 직원 7~8명이 센터로 들어서자 타워PMC 직원 10여 명이 막아서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한 60대 주민이 양쪽을 나무랐다. "욕하지 마세요. 단지 격 떨어지게. 그리고 우리관리는 오지 말라는데 이번이 벌써 네 번째야. 필요하면 법원 영장하고 판결문 갖고 와요. 정당한 절차를 밟으라고. 나중에 타워PMC와 우리관리를 놓고 주민 투표로 결정할 때 와서 프리젠테이션(PT)하면 되잖아요." 한 여자 주민은 "여기가 놀이터야. 맨날 오게. 주민 설명회 없이 계약한 신정이 나와. 얼굴 좀 보자"라고 소리쳤다. 양측의 대치는 30분 뒤 경찰이 출동하고 우리관리 직원들이 물러난 뒤에야 풀렸다.        현장 분위기로만 보면 기존 업체와 그에 동조하는 일부 주민들의 기세가 등등했다. 하지만 목소리 크다고 옳은 건 아니다. 양측이 첨예하게 맞설 때는 이권이 걸려 있거나 이해관계가 복잡한 경우가 다반사다. 입주자대표회의 신정이(56·여) 회장을 직접 만나 경위를 물었다.  신 회장은 새 관리업체가 선정·발표된 다음날(2월 24일) 일부 주민들이 집으로 몰려와 1시간 동안 겁박한 일을 겪은 후 무서워서 호텔로 나와 지낸다고 했다.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해 긴급 연락용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았다며 손목을 내보였다. 그는 "지난해 12월 초 제가 입대의 회장에 취임하고 20여일 뒤 긴급회의를 열어 '주택관리업자 선정을 위한 공개경쟁입찰에 관한 건'을 동대표 6명 중 4명 찬성, 2명 반대로 가결을 공표했다"며 "그에 이어 다음날 입찰 공고를 낸 게 이번 사태의 발단"이라고 말했다. 또 "같은 달 31일 위탁 계약(2년)이 만료되는 기존 업체가 수의 재계약을 요청했지만 이는 전임 입대의가 지난해 10월 실시한 의견 청취에서 주민의 10% 이상(12.2%, 183세대)이 재계약에 반대하는 결과가 나와 불가능했고 관리규약상 무조건 공개경쟁입찰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민·형사 소송전으로 정면충돌  그러나 생활지원센터 근무자들과 일부 주민들이 "반대 의사를 표시한 동대표 한 명이 회의가 끝날 무렵 사퇴 의사를 밝히고 퇴장한 만큼 의결 정족수 미달로 무효"라며 반발했다. 유모 센터장은 "신 회장이 입대의 회의록을 가져가 안 내놓고 센터 근무자 임금을 체불한 사유 등으로 회장 해임 투표를 추진함과 동시에 법원에 소송을 냈다"고 주장했다. 양측이 주민여론전, 민·형사 소송전으로 정면충돌하면서 불과 3개월 만에 갈등의 골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 팼다.  특히 이 과정에서 신규 업체에 업무를 인수·인계해야 하는 센터 직원들은 사용하던 컴퓨터 내부 자료를 삭제해 업무를 방해했다는 게 신 회장 측 주장이다. 급조된 '주민비상대책위원회' 사람들과 함께 단지 내 방송실과 승강기 게시판을 장악하고 입대의 회장에 대한 비방 글을 퍼뜨려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회장 해임 투표의 효력을 놓고도 맞섰다. 유 센터장은 "선거관리위원회가 해임 투표 진행을 거부함으로써 간사인 센터장이 2월 3일 해임투표 공고를 강행했고 같은달 10일 투표 결과 주민 59% 투표, 87% 찬성으로 해임이 확정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신 회장은 해임 투표 공고와 함께 회장 직무가 정지된 기간에 3명이 공동관리하던 아파트 관리비 통장의 인감, 비밀번호, OTP를 변경해 110억원의 관리비를 횡령했다"고 말했다.  반면 신 회장은 선관위가 요건 미비로 반려한 해임절차 소명자료 요청서에 선관위원장 직인을 무단으로 찍어 회장 해임투표를 강행·가결했기 때문에 원천 무효라는 입장이다. 관리비 통장 재발급에 대해서는 "계약기간이 끝난 위탁관리회사와 생활지원센터의 불법적 자금집행을 막기위해 재발급 받은 것이지 횡령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3~25일 민원 실태 조사를 벌인 강남구청은 지난 18일 양측에 총 4가지 사안을 시정하라고 통보했다. 핵심은 해임 투표 관련 부분이다. 구청은 "1개월이라는 해임 일정을 맞추기 위해 선관위가 아니라 참관인과 관리사무소 직원이 선거를 진행한 것은 선거 절차의 중대한 하자"라고 판단, 회장 해임 투표 결과 및 회장 변경 신고서를 반려했다. 이에 대해 센터 측은 "구청의 판단이고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남구청은 신 회장을 상대로는 "우리관리를 낙찰자로 선정한 입찰절차는 공동주택관리법상 응찰 회사가 최소 3개사에 미달하는 2개사라서 제한경쟁입찰 요건에 맞지 않고 관리비 통장 인감을 회장 단독으로 변경한 것 역시 법령에 맞지 않는 행위"라고 통보했다. 또 입대위 입찰공고 의결(지난해 12월 21일) 회의록을 회의 후 5일내에 관리주체(센터)에 제출하지 않고 2개월여가 지나 최근 실태조사 기간에 제출한 것은 규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신 회장 측은 "3차 입찰 과정에서 센터가 응찰 서류를 숨기는 등 집요하게 방해해 1개사 서류는 회장이 직접 받고 적법 절차를 모두 거쳤다. 나머지도 일방적 주장인데 강남구청이 편향된 판단을 내려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강남구청이 21일 "회장 해임 투표는 선거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통보한 공문.   타워팰리스 2차도 공개입찰  타워팰리스1차 아파트는 4개동 1499세대 규모다. 1~3차 아파트 중 2002년에 가장 먼저 완공됐다. 그때부터 대기업 임원 출신이 설립한 타워PMC가 수의계약으로 1, 2차 관리용역을 맡아왔다. 앞서 재계약 반대라는 주민 의견 수렴 결과는 그동안 쌓인 불만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례로 타워 1차 아파트의 위탁 수수료는 지난해 관리업체를 공개경쟁입찰로 교체한 인근 타워 2차 아파트 대비 4.35배라고 한다. 지난 20년 동안 41억여원을 더 부담한 셈이다. 지난해엔 단지 내에 고급 스크린 골프장 신설을 추진한다고 해서 한동안 시끄러웠다고 한다.   더욱이 공개입찰로 위탁관리권을 따낸 우리관리는 공동주택관리 업체 순위(한국주택관리협회 2020년 기준) 1위다. 유착 의혹을 제기하기 어려운 구도다. 타워 2차 아파트의 강모(67·여) 입대의 회장은 "우리도 공개경쟁입찰 의결 이후 일부 주민들이 수의계약을 원한다고 몰려와 주민설명회를 열어 설득해야 했다"고 말했다. "타워PMC가 왜 세 차례 진행된 공개경쟁입찰에 응찰하지 않고 입대의 회장 해임에 매달렸는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무 개시일이 17일이 지났지만 신규 업체가 센터를 인수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기존 업체와 비대위 측은 관리비 입금 통장을 따로 개설하고 회장을 새로 뽑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분쟁 해결의 키는 법원이 쥐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1부는 지금까지 제기된 세 건의 관련 소송 가운데 회장 직무정지 및 입찰중지 가처분 신청은 지난 1월 중순 기각했다. "회장 직무를 정지하거나 입찰을 중지할 만큼 긴급한 사유가 없다"며 신 회장 손을 들어줬다. 조만간 입주자대표회의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사건의 결론이 나온다. 판결에는 승복해야 한다.   입주자대표회의를 지지하는 입주민들이 해임 투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입대의 제공  이곳 선관위원장을 지낸 한 입주민은 이렇게 진단했다. "지난 20년간 위탁관리를 도맡아온 업체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들이 파견한 직원들로 이뤄진 생활지원센터도 주민 통제 기구가 된 느낌이다. M·D아파트도 갈등이 심각하다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 아파트들이 어쩌다 이리 추락한 건지…."  (※이 기사 작성에 사회2팀 채혜선 기자가 참여했습니다.)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2022.03.22 00:36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성남FC 후원금 수사, 3년 7개월만에 원점...박하영(전 차장검사)"바른 길 가겠다"

    박하영 전 차장검사가 퇴임식을 갖고 떠난 다음날인 지난 11일의 성남지청 본관 전경 조강수 기자 수사 무마 의혹 사건이 성남지청에서 터졌다. 청내 1, 2인자인 박은정(50·사법연수원 29기) 지청장과 박하영(48·31기) 차장검사가 프로축구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수사를 놓고 부딪쳤고 박 차장이 항의 사직했다. 지난 2019년 3월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에서 파생한 안양지청 수사 외압 사건으로 이성윤 서울고검장 등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 내압(내부 압력)'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정치권력과 긴장 관계여야 할 검찰이 안에서 반목하며 나타난 현상이다. 막무가내 밀어붙인 검찰개혁과 정치인 출신 법무부 장관들에 의한 편향 인사로 둘로 쪼개진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내압 사태의 의미를 짚어봤다.   '성남FC 후원금' 사건 수사 방향을 놓고 박은정 성남지청장과 갈등을 빚다가 사표를 낸 박하영 당시 차장검사가 지난 10일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퇴임식을 마친 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야구의 희생번트에 빗댄 사직 사유  지난 11일 성남시 수정구 남한산성 입구역 4번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성남지청 정문이 보였다. 언덕배기를 걸어 올라 본관 건물로 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전자출입문과 코로나19 방역지침문이 막아선다. 방호원에게 기자 명함을 주고 지청장 면담을 신청했다. 얼핏 주변을 훑어보니 '청렴은 앞에 두기 부패는 거리두기'라는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고지식한 공무원식 패러디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리저리 연락하던 방호원이 외부 인사는 만나지 않겠다는 지청장 메시지를 전한다. 지청장실 201호, 차장검사실 214호로 적힌 안내판을 지척에 두고 성과 없이 돌아서면서 그러려니 했다. 예상대로였다. 가장 어려운 취재 중 하나로 검사 입 여는 것도 들어가지 않던가.    한 가지 단상이 머리를 스쳤다. 차장검사실은 비어있겠군. 맞다. 17년차 검사 박하영은 전날(10일) 이 건물 어딘가에서 퇴임식을 갖고 검사직을 던졌다. 지난달 25일 검찰 내부망에 사의를 표명한 지 18일 만이다. 자신의 사직을 야구의 '희생번트'에 비유했다. "자기가 살려고 대면 성공하기 어렵다"면서다. 그 역시 굳게 입을 닫았다. 그와 친한 검찰 선배를 통해 심경을 전해들었다. "박 전 차장이 '바른길을 가겠다. 자료와 기록은 다 남겨놨다'고 하더라. 나중에 수사에 응할 각오까지 한 듯했다."     이번 사건의 의혹은 두 가지다. 박 지청장은 왜 검사들의 수사 필요 의견을 거듭 묵살·반려했는지, 금융정보분석원(FIU) 자료 요청을 반려하라는 지시를 내린 김오수 검찰총장도 개입한 건 아닌지 여부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성남FC 사건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피고발인이라 폭발력이 크다. 성남지청은 지난해 6월께 네이버의 성남FC 후원금 40억 제공 건을 수사 지휘하던 형사3부 의견에 따라 박하영 전 차장검사 전결로 대검에 후원 기업들에 대한 FIU 자료 의뢰 요청서를 보냈다. 그러나 대검 반부패부는 "분당경찰서가 네이버를 포함해 후원 기업 여섯 군데를 수사 중이라 중복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려했다.   이후 김 총장도 박 지청장과 통화하다가 "그 사건 절차를 잘 지켜서 하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김 총장 측은 "노후화된 성남지청 청사 이전 문제로 통화하다가 잠깐 언급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묘한 건 그 직후인 8월께 박 지청장이 성남지청의 위임·전결 규정과 부서 업무 분담을 바꿨다는 점이다. 차장·부장검사 전결이던 FIU 자료 요청은 지청장 전결로, 특수·공안 수사 기능을 담당하던 형사3부는 성범죄·강력 전담으로 돌렸다. 이종배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 대표가 지난 9일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정문에서 박은정 성남지청장을 성남FC 사건 관련 직권남용, 직무유기, 선거법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더욱 깊어진 상호불신의 늪   이로 인해 "성남 FC 사건의 수사·조사는 지청장을 거치지 않으면 못하게 자물쇠를 건 것"이라는 의구심이 커졌다. 이때 생긴 불신의 골은 10월께 성남FC 사건을 송치받은 성남지청 형사1부가 검찰의 재수사 또는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 필요성을 보고하고 지청장이 반대하면서 깊어졌다. 특히 지청장이 수사기록 28권 8500여 페이지를 직접 검토하며 사건 처리를 지연시키자 박 전 차장이 항의성 사표를 냈고 내부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특수통 출신 공직자는 "국정원 댓글 사건 같은 중대 사건 때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 여부를 놓고 의견이 대립했지 수사를 막지는 않았다"며 "검사를 행정부 공무원과 동일시해 순치하려고 하는 특이한 유전자가 이 정부에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야권에선 친(親)정권 성향의 김 총장이 '방탄총장' 역할을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법률자문위원장)은 "계좌추적, 압수수색도 아니고 수사 얼개를 짜기 위한 FIU 자료 요청에 대해 검찰총장이 왈가왈부했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라며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 지휘 자체를 막는 경우를 처음 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박 지청장 측은 "지휘사항 등 필요한 과정은 서면으로 정리돼 있다"며 정당한 지휘권 행사였음을 주장한다. 이에 맞서 박 전 차장 측은 "해당 사건을 검토한 검사가 여러 단계별로 수사 압력 업무일지를 작성했다"고 강조한다.    둘은 주특기·경력이 다르다. 박 지청장은 여성·성폭력 사건 수사 경험이 많다. 2020년 초 추미애 전 장관에 의해 법무부 감찰관에 발탁됐다. 그해 말 윤석열 전 총장 징계 절차를 주도해 친정권 성향으로 분류된다. 당시 법무부 감찰관실 소속 후배인 이정화 검사는 "핵심 징계 사유인 ‘판사 사찰’ 의혹에 대해 죄가 안 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도 그 내용이 삭제됐다"고 폭로하며 책임자로 박 지청장을 지목했다.   박 전 차장은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등에서 근무했다. 서산지청 근무 때는 태안 기름유출 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그의 사시 동기생 검사는 "진중하고 바른 성품이다. 사직 사태가 터지자 '그 착한 애가~'라고 다들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내 편, 네 편' 편향인사 후유증인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편향 인사의 후유증이라고 진단했다. "조국 사태 이후 능력 불문하고 내 편 검사들만 요직에 기용한 탓이다. 적잖은 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가 있다. 검사의 무능은 수사 시스템마저 위태롭게 한다."(특수통 출신 김모 변호사)    사고가 터져도 신속히 수습하면 여진이 크지 않다. 하지만 김 총장은 진상 조사 지시(지난달 26일) 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친정권 성향의 신성식 수원지검장이 김 총장 지시 하루만인 27일 진상 보고를 끝낸 과정도 석연찮다. 예정돼 있던 수원지검장의 총장 정례보고일에 급히 한 진상 보고가 제대로일 리가 없다는 뒷말이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이 사건은 수원지검이 보완수사를 지시하고 성남지청이 분당서로 보완수사 요청과 함께 내려보내면서 고발 접수 3년 7개월 만에 원점으로 회귀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진상조사를 했으면 납득할만한 대책을 내놔야 하는데 지휘부가 전부 뒷짐을 진 채 떠넘기고만 있다"며 "김 총장이 켕기는 게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크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대선 전까지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전무하다. 다만 시간이 걸려도 진실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앞서 2019년 6~7월 이성윤 당시 반부패강력부장이 '김학의 불법 출금' 에 연루된 법무·검찰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못 하게 윽박지른 곳은 안양지청이었다. 당시 안양지청장·차장은 수사 중단 지시를 따랐다. 그러나 6개월 뒤 장준희 부장검사의 공익제보로 전말이 드러났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수사 무마 사건이 지청에서 잇따라 터진 이유는 뭘까.    "서울중앙지검은 껄끄러운 사건을 종종 수원지검으로 미루고, 수원지검은 산하의 성남지청과 안양지청으로 종종 미뤄요. 피의자 주거지가 있는 곳으로 보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두 곳의 지청장은 검사장이 아니잖아요. 외압에 아주 약하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예요."(수원지검장 출신 변호사)  경찰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경찰청 관계자는 "고발인이 이의제기해서 검찰에 넘긴 사건을 직접 재수사하지 않고 몇 달이 지나 다시 내려보내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며 "보완 수사 요청 사항이 여러 가지라서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이자 프로축구 성남FC 구단주였던 2015~2017년 네이버·두산건설·분당차병원 등 6개 기업이 총 161억원의 광고비와 후원금을 성남FC에 내고 성남시로부터 현안 해결의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다. 이 후보는 "합법적 공익활동"이라고 주장했고 야당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제3자 뇌물범죄"라고 공격했다.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2022.02.15 00:36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수사 경험 없는 판사 출신 3명 요직(처장·차장·수사3부장) 임명, 부실 수사 초래

    지난해 1월 2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공수처 현판식에 김진욱 초대 처장(오른쪽에서 셋째),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오른쪽 둘째), 윤호중 당시 법사위원장(오른쪽 넷째) 등이 참석했다. 공수처는 민간인 통신 사찰 의혹으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장진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마지막 신년사에서 "권력기관이 더 이상 국민 위에서 군림하지 못하도록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권력기관 개혁을 제도화했다"고 자평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출범을 공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군림 않는다던 공수처는 기자·야당 의원 등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견제와 균형은커녕 수사력 하향 평준화, 거악(巨惡)이 편히 잠잘 수 있는 나라 만들기라는 비난으로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은 더 커졌다. 출범 1년만에 만신창이가 된 공수처, 민생 사건 처리가 늦어진 국수본, 풀잎처럼 누워 잠자고 있다는 비난을 사는 검찰. 문재인 정부 권력기관 개혁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정부 과천청사 외곽에서 바라본 5동 건물 전경. 공수처가 이 곳에 입주해 있다. 조강수 기자 수사력 떨어지는 공수처  지난 7일 오후 정부 과천청사를 찾아 공수처의 문을 두드렸다. 출범 이후 수사 적법성 및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끊이지 않자 내부 검사 회의를 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였다. 방문 안내실에 신분증을 맡기고 공수처장실이나 대변인실을 연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번갈아 두 곳에 전화를 걸던 여직원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오전에 직원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전체 직원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김진욱 공수처장도 출근하지 않고 보건소에서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받았다고 하네요.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아요. 죄송합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로군, 하고는 돌아섰다. 나중에 전해 들으니 이날 공수처는 청사 5동 내 사무실 전층을 폐쇄한뒤 방역 소독을 벌였다. 문제는 공수처를 습격한 게 코로나19 바이러스뿐만이 아니고 소독해야 할 곳도 사무실만이 아니라는 거였다.    "공수처가 부실·편향 수사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수사의 ABC를 간과한 사고가 잇따랐다. 적법 절차가 무시됐고 피의자 방어권이 경시됐다. 김 처장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헌법상 적법 절차원칙 준수, 인권친화적 수사'와 정반대다. 이쯤되면 '수사팀 전원 물갈이'라는 초강력 소독약을 써야 맞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해체가 답이다."(전직 검사장)  공수처가 추락한 이유는 뭘까. 전·현직 검찰 특수통 5명에게 물었더니 네 가지로 분석했다. 결정적 사유로 수사에 대한 무개념에서 비롯된 무리한 수사, 부실 수사가 꼽혔다.    지난해 3월 7일 휴일에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관용차량으로 에스코트해 조사한 이른바 '황제조사'는 수사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한 대표적 사례다. 적법 절차 원칙도 무너졌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과 관련해 김웅 국민의힘 의원의 보좌관 PC를 무단으로 압수수색했다가 "위법성이 중대하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효력이 취소됐다.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한 체포영장→구속영장→재청구 영장은 모조리 "수사 미진"으로 기각되며 망신을 자초했다.  지난해 3월 7일 휴일에 공수처장 관용차량으로 갈아타 '황제조사' 논란 부른 CCTV 영상. [인터넷 캡처] 가장 심각한 건 마구잡이 통신자료 조회다.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유출' 사건에 대해 공수처가 지난해 5월말 '공제4호'로 정식 입건하고 수사3부를 동원해 수사에 나선 배경부터 의심스럽다. 수사 과정에서 언론인, 야당 국회의원, 윤석열 후보 부부, 한동훈 전 검사장 등은 물론이고 수사중인 사건과 무관한 기자 가족, 50대 주부, 정부 비판 인사들까지 332명(445건)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여기에 중앙일보 기자 70여명이 참여하는 편집국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통신영장을 발부받아 들여다본 정황까지 9일 드러나며 언론 자유와 편집권 침해 파문이 커지고 있다.      고검장 출신 공무원의 지적이다. "수사 능력을 젖혀두고 지휘부가 수사에 대한 개념, 엄중함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총이 주어졌으니 쏜다는 식이다. 왜, 어떻게, 누구를 겨냥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다."  두번째는 인사 패착. 공수처 조직표에 따르면 '공수처 검사'는 23명(정원 25명)이다. 그러나 직접 수사를 해본 경험이 전무한 판사 출신 3명이 공수처장, 차장(여운국, 우리법연구회 활동 경력), 수사3부장(최석규)의 요직을 꿰차고 있다. 통신 사찰 의혹의 진원지가 수사3부인 것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장 수사 경력이 있는 검사 출신은 고작 5명이다. 나머지 15명은 변호사(10), 공무원(2), 경찰(2), 공공기관(1) 순이다. 이러니 "동네 족구 선수들을 국가 대표 축구 선수로 발탁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애초부터 설계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고소·고발 건 외에 공수처의 자체 인지 수사가 0건인 이유다. "김오수 검찰의 미적대는 대장동 수사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쪽이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라면, 무능 공수처로 인한 최대 수혜자는 고발사주 사건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아닌가 싶다. 사법적 정의 대신 내편 봐주고 네편 찌르는 것만 보인다.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되묻게 된다. "(현직 검사장)    정치적 편향성이 세번째로 꼽혔다. 공수처 전체 수사 사건 중 친정부 시민단체가 윤석열 후보를 고발한 사건이 3분의 1이다. '야수처'(야당수사처)라는 비아냥마저 듣는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일찍이 "정치적 사건의 경우 여당과 야당 인사의 균형이 무너지면, 어느 쪽이건 정치적 목적의 수사로 몰아 승복하지 않는다"며 편향성의 위험을 경고한 바 있다  네번째는 입법 과정에서의 태생적 한계다. 원래 공수처장 제청시 추천위원 7명 중 6명 찬성 규정을 둬 여야 합의로 추대할 계획이었다. 이걸 더불어민주당이 일방적으로 5명 찬성시 제청으로 바꿔 단독으로 날치기 처리했다. 야당 추천 위원 2명이 반대해도 청와대가 처장 임명을 강행할 수 있게 됐다. 수사의 독립성·중립성 담보는 물건너갔다. 검찰 기소독점주의의 폐해를 극복할 '반부패 수사기구'라는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중국 국가감찰위원회를 연상케 하는 '정치적 수사기구'로 변질됐다는 의미다.   공수처 추락과 관련해 '혹시 말 못할 속사정이라도 있느냐'고 공수처 관계자에게 물었다. 그는 최근 "검찰 개혁한다고 만든 기관이 (통신 조회 건수와 관련해) 검찰 핑계를 대는 것도 좀 그렇다"며 "'유구무언이고 내부 점검중'이라고만 이해해 달라"고 답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3일 국회 공수처 사찰 규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선 공수처 폐지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민주당은 인력과 예산을 대폭 보강해 수사 능력을 키우겠다는 방침이다. 오른팔이 부러졌는데 왼팔을 수술하는 격이다. "부실 수사, 무리한 수사가 문제이니 수사 능력을 키우고 적법 절차를 지키게 하는 게 해법일 텐데 돈과 사람을 더 주자"는 발상이니 말이다.      검찰은 태업, 경찰은 지연  검찰도 만신창이다. '추미애·윤석열 갈등'으로 초래된 검찰의 이분법적 분열 구조는 여전히 공고하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6대 범죄로 수사권이 제한되고 김오수 검찰총장 취임후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수사를 한들 누가 좋아하느냐"는 자조적 인식이 팽배하다고 한다. 대형 로펌의 형사 담당 변호사는 "요즘엔 검찰이 수사하다가 관할권을 핑계로 경찰로 넘기는 사건도 늘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사건 자체가 줄고 수사도 오래 걸리며 검찰청이 유령 건물 같을 때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검·경, 공수처·국수본 등으로 수사기관은 늘어났는데도 내 사건은 물론이고 대형 부패 사범 등을 제대로 수사할 기관이 없다는 불안감이 커진다"며 혀를 찼다. 대장동 전담 수사팀은 출범 100일이 넘도록 이재명 후보 측근인 정진상 선대위 부실장을 소환조차 못하고 있다.  민생 치안 상황은 더 나빠졌다. 경찰청 국수본에 따르면 경찰의 평균 사건처리 기간은 55.6일(2020년)에서 지난해 64.2일로 8.6일 늘어났다. 형사 분쟁 해결에 법률 비용이 더 든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결론은 이렇다. 수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키를 잡고 있었더라면 권력기관 개혁이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법학 교수 출신 민정수석(조국 전 법무장관)이 칼자루를 쥐고 밑그림을 그리면서 70년간 유지된 형사사법 체계의 골격을 3년만에 바꿨다. 검찰 수사·기소권 분산을 통한 수사기관간 힘의 균형을 이상으로 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바이러스(정치 검찰)를 소독한다는 일념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력기관 개혁의 '설계자'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후회와 반성을 할까, 아직도 개혁에 배고프다고 성을 낼까.       조강수 논설위원

    2022.01.11 01:00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탐정 자격증 1만3000명…외형은 화려, 속은 빈 강정

     ━  기회와 혼돈 공존하는 탐정 산업   탐정 산업 메인 이미지 지난해 8월 5일 신용정보법 개정(40조 5항) 으로 43년 만에 ‘탐정’이라는 두 글자의 사용금지 족쇄가 풀렸다. 그 후 1년 4개월 동안 탐정업에 새로 진입한 인원이 1000~2000명대라고 업계는 추산한다. 기존의 탐정까지 합치면 5000~6000명이 활동한다. 그렇다고 탐정 사무소가 덩달아 늘지는 않았다. 이들이 즉각 영업전선에 뛰어든 게 아니고 임대료 까먹는 사무실 대신 온라인과 현장 중심으로, 나 홀로 영업 대신 탐정 협회나 연맹을 매개로 한 협업·공생 관계 구축을 생존전략으로 채택하고 있어서다. 이같은 현상은 탐정 명칭 사용 외에는 법적·제도적 정비가 진전된 게 없고 코로나 장기화로 의뢰 건수와 수임료가 준 탓이 크다. 혼돈과 기회가 공존하는 과도기의 탐정업계를 들여다봤다.   ■  「 협회·연맹 발급 자격증 2년간 급증 신규 진입만 16개월간 1000명 넘어 흥신소, 탐정 명칭 차용해 불·탈법 법·제도 정비해 제도권 흡수해야 」    윤리·보안의식 등 교육, 탐정사 140명 배출   지난 1일 오후 경기 화성시 동탄대로에 위치한 M타워 209호실로 찾아갔다. 탐정의 실상을 알기 위해 경력 10년의 임병수(47) 탑맨탐정사무소 대표의 사무실부터 탈탈 털기로 한 차였다. 책상 위의 방송용 마이크가 먼저 보였다. 그는 “내 이름을 딴 유튜브 탐정방송에 쓰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저걸로 의대생 손정민군 사망사건 때 경찰 초동 수사의 문제점과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했다”고 첨언한다. 한쪽 구석에 의사봉이 눈에 확 들어왔다. 어디에 쓰는 물건이냐고 물었더니 “올해 1월 창립한 ‘KCI한국탐정연맹’ 회의 때 사용한다”고 했다.   51세 아줌마 탐정 조인숙씨와 10년차 베테랑인 임병수 탑맨탐정사무소 대표. 연맹을 창립한 이유는. “국내 탐정협회 또는 연맹이 70여 개다. 지난해 말 이들에 민간 탐정사 자격증 발급권이 부여됐다. 자격증 심사 및 지도·점검 기관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다. 그런데 일부가 제대로 된 교육없이 흥신소·심부름센터 등 음성적 민간 조사업자들에게도 자격증을 장사하듯 마구 내주는 걸 봤다. 이러니 최근 송파구에서 발생한 전 여자친구 모친 살해 사건 같은 불상사가 벌어진다. 범인이 피해자 집 주소를 흥신소를 통해 알아냈다는 것 아닌가. 그런 일이 없도록 하려고 연맹을 만들어 현장 실무와 법·윤리·보안 의식을 집중 교육 중이다. 140여 명의 탐정사를 배출했다. 국가가 자격증 업무만 할 게 아니라 탐정법을 제정해 주무 부처를 정하고 탐정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 불·탈법의 싹을 도려내야 한다.”   수료생 중 여성 탐정도 있나. “51세의 아줌마 탐정(조인숙씨)이 기억난다. 20여년간 남편의 사업을 도우며 육아도 담당해온 억척 주부다. 큰 애가 군대 가고 작은 애는 대학생이 되자 뭘 할까를 고민하다가 이리로 찾아왔다. 드라마 ‘구경이’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더라. 잠복 근무를 해보더니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빡세다고 했다.”   언뜻 캐비닛을 보니 수상한(?) 장비들이 즐비했다. 호신용 장비, 몰래카메라, 도청기, 위치추적기를 탐지하는 신형과 구형 장비, 안경형·차키형 카메라, 드론 등 10여 가지가 전부 탐정용품이라고 했다. “이 모형 권총은 액상 최루액을 넣어 발사하는 호신용이다. 직진으로 5m까지 나간다. 2G폰 형태 휴대폰은 무전기 기능도 탑재돼 있다. 전국 각지의 탐정 수십~수백 명이 한꺼번에 공조 통신할 수 있다. 탐지기를 사용하려면 도감청 관련 중앙전파관리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드론 역시 국가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사생활 침해가 예민한 분야라서다.”   코로나로 의뢰 사건이 줄었나. “내 경우, 개인 유튜브 방송을 해선지 꾸준하다. 탐정만의 시장이 있다. 민·형사가 복잡하게 얽힌 ‘깡치사건’들이 많이 온다. 아는 형사들이 연결해 주기도 한다. 꼭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게 아니라 진실을 알고 싶다는 요청도 적지 않다.”   기억나는 최근 사건은. "경기도 안산에 사는 60대 여성이 남동생의 사인 규명을 의뢰해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가 ‘사인 미상’으로 나왔다며 사건을 종결했다. 지인들에게 둔기로 살해당했을 수 있다고 의심하는 사안이다. 사건 현장에서 동생의 머리가 함몰되고 피가 낭자한 걸 봤다고 한다. 술병이 40병이나 널브러져 있었는데 누군가 조작한 거 아니냐는 의심이다. 또 하나는 엄마와 자녀들이 사설 구급차를 불러 아버지를 한달 열흘 동안 강서구의 한 정신병원에 가두고 재산을 빼앗아갔다는 의혹 사건이다. 간신히 병원에서 나온 아버지가 형사 고소와 함께 아들 주소를 찾아달라고 의뢰했다. 경기도 모처에 사는 걸 확인해 알려줬다. 솔직히 말해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공권력의 사각지대가 더 늘어났다. 권한이 많아진 경찰은 업무가 늘자 사건을 그냥 종결하는게 많다. 워라밸이 우선인 것 같다.”   탐정스러운, 미스터리 사건도 있나. "도난당한 시가 300억원 짜리 피카소 그림 2점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아 흔적을 추적 중이다. 대기업 회장을 보좌했던 명화 수집가 윤모씨가 제시한 유일한 단서는 시내 유명 호텔에 명화 감정 창구를 연 뒤 그림을 갖고 잠적한 여성(유모씨)의 이름이 적힌 작품 보관증과 명함, 그림 보증서 2장뿐이다. 피카소 그림이 사실이라면 장물인줄 모르고 산 어느 재벌의 손에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법원에서 판결문을 받아 2차 추적을 계속할 것이다.” 대기업 회장 보좌진 출신 의뢰인이 찾아달라고 가져온 피카소 그림 두 점의 사진. 조강수 기자   직업병도 생긴다던데. "배우자 불륜 증거 찾는 사건을 많이 하다 보니 아내도 다시 쳐다보게 되더라. 가출 아이들도 많고 사연도 각각이다. 그런 걸 매일 듣고 보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재밌어서, 미쳐서 하지 않으면 못한다.”   탐정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개인 탐정을 넘어 기업 탐정으로 가야 한다. 기업 M&A 때 가치를 평가해 1조원대 살 것을 1000억원에 사도록 조언하면 부가가치가 높지 않나. 미국 탐정들이 주로 그런 일 한다. 국가 탐정도 필요하다. 국가정보원에서 아웃소싱 받아 강대국의 정보를 캐내 전달하는 것이다.”   국내 탐정업계는 과도기를 맞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시장이 커지고 있다. 경찰청에 민간 자격증 발급 기관으로 등록한 57개 탐정 단체 중 31개 단체가 34종류의 탐정 자격증을 발급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이승우 경위는 "현재까지 발급된 자격증 숫자는 지난해 5400건을 포함해 1만3205건”이라고 전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4~2019년 자격증 발급 건수는 4299건에 그쳤다. 지난 2년간 탐정 또는 탐정 예비군이 대폭 늘어났다는 의미다.   사무실 없는 탐정 사무소 수두룩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허수가 많다. 인터넷 검색창만 두드려봐도 금세 알 수 있다. ‘○○탐정사무소심부름센터’ ‘△△흥신소탐정사무소’ 등 혼용 명칭이 줄줄이 나온다. 과거의 심부름 센터, 흥신소가 탐정 명칭만 차용한 것이다. 경찰 출신 탐정 1호라는 박민호(57) 대한탐정협회(PDA) 사무총장은 "흥신소 등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며 탐정업 진출자가 늘고 있긴 하나 코로나 때문에 일감이 감소해 업계가 다 어렵다”며 "홈페이지에 서울에 본사, 전국에 지사가 수십개 있다고 올려놨어도 허위·과장 광고가 적잖고 사무실 없는 데가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울 시내 탐정사무소 5곳을 직접 조사했더니 대개 사무실이 없었다.   서울 서초동의 B사무소는 단독 주택에 입주해 있는 것으로 기재됐으나 현장에 가보니 유령 주소였다. 전화를 걸어 사무소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탐정은 주로 현장에서 일한다. 바쁘니 용건을 말하라”고 답했다. 국제업무단지 내 고층 건물로 주소가 나와 있는 M사무소는 "외국기업 고객이 의뢰하는 사건을 유치하려고 주소를 임시로 거기로 해 놓은 것이고 본사 사무실은 일산에 있다”고 밝혔다. 탐정 영업에 사무소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다. 다만 계약 취소, 수임료 마찰 등과 관련해 고객의 불만이나 피해가 발생할 경우 배상받기가 힘들다.   요즘 탐정업계의 키워드는 협업과 법제화다. 민간 협회나 연맹 중심의 협업·공생 전략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도모하는 게 대세다. 비용 절감을 위해 본사와 지사(센터)로 이분화, 프랜차이즈처럼 운영하는 곳이 많다. 강동욱 동국대 법대 학장은 "대부분의 OECD국가들이 ‘공인탐정’ 제도를 채택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등록제라서 사각지대가 많다”며 "신직업 창출의 관점에서 정부 부처가 관장하는 법 체계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국가 공인탐정제도는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그러나 여당 국회의원들은 무관심했다. 경찰마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권한이 비대해지면서 관심이 시들해졌다.   "이 정부 내내 희망고문당한 거다. 탈원전, 부동산 입법은 강하게 밀어붙이더니. 대선 공약 중에 제일 홀대받은 게 탐정 법제화다. 서울디지털대·중부대에 탐정학과가 개설, 운영 중이고 동국대에선 첫 탐정학 박사가 곧 나온다. 길은 멀지만 한 발 한 발 갈 수밖에 없지 않나.”(서울의 한 탐정) 조강수 논설위원

    2021.12.14 00:29

  • 절반 숨통 끊긴 명동…"폐업하면 다행"이라는 자영업자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  자영업자들의 잇따른 죽음   지난 27일 마포 맥줏집 여사장이 운영했던 선술집 유리벽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모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아래 놓인 화환에는 ‘자영업자님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씌어 있다. 조강수 기자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팍팍한 생계 대열에서 줄줄이 이탈하고 있다. 이미 스무 명이 넘었다. 공무원·직장인 등 월급쟁이는 견딜만한데 유독 상인들이 쓰러져간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25조원을 쓰는 정부가 이들에 대한 실질적 피해 보상은 외면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은 코로나19 방역 정책에 목숨을 저당 잡히고 산다는 점에서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채무자들과 다를 바 없다. 회사에서 해고된 뒤 치킨집·분식집을 열었다가 실패하고 4억원 빚을 진 자영업자가 그 주인공이 아닌가. 모든 죽음은 슬프다. 벼랑 끝에 내몰린 상인들의 극단적 선택은 더 그렇다. 그늘이 길게 드리운 K방역의 사각지대를 들여다봤다.    “정부가 살인자” 들끓는 분노   지난 27일 오전 서울 마포의 일본식 선술집(이자카야)을 다시 찾았다. 추석 연휴 직전인 15일에 비해 추모 메모가 10여 개에서 130여 개로 많이 늘어났고, 출입구에 둘러친 경찰의 출입통제선이 제거된 게 달라진 점이었다. 이곳 50대 여사장은 지난 7일 세상을 등졌다. 7월 12일 이후 연장에 연장을 거듭해온 ‘거리두기 4단계’로 매출 급감, 임대료 상환 압박 등 한계 상황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  「 끝나지 않는 거리두기 희망고문 빚더미 내몰린 상인들 극단 선택 마포 선술집엔 추모 메모만 가득 손실 보상하고 ‘위드 코로나’ 가야 」    건물 외벽에 붙은 메모는 다양했다. 맥주와 숯불 바비큐 통닭, 넉넉한 인심을 기억하는 단골 손님은 “비 오는 날 가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는데 사장님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지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곧 따라갈 거예요” “정부가 살인자다” 등의 동조 또는 분노도 있었다.   이태원의 어느 2차집 주인이 고인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에는 자영업자의 애환이 녹아 있다. “직장처럼 퇴사라도 하면 좋을 텐데 대부분의 가게는 시작했으면 물러날 곳이 없어서 그 끝은 봐야 하지요. 빚이 생기기 시작하거든요. (중략) 재난은 일어났고 거기에 국민은 있지만 국민을 보호하는 나라는 없더랍니다. 재난으로 피해입은 사람들을 잠재적 죄인 취급만 하더랍니다. 이게 자랑스러운 K방역인가 봅니다. 차라리 강하게 셧다운했으면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그렇게는 안 하고 천천히 피를 말리더군요. 확진자 늘면 너네들 탓이야 하면서. 숨은 좀 쉬게 해 줘야죠. 다른 선진국들의 절반이라도 지원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요.”   근처를 서성거리던 두 명의 50대 여성은 “우리도 자영업자”라며 “남의 일 같지 않아 직접 왔다”고 말했다.   마포 맥줏집 여사장에 이어 전남 여수의 치킨집 주인(12일), 강원도 원주의 유흥업소 주인(13일)이 비슷한 이유로 유명을 달리하자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가 실태를 파악했다. 안타까운 사연이 쏟아졌다. 병치료를 받던 노모와 동반자살한 자영업자 아들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그동안 자영업자들은 보증금(1년 월세분)을 소진하며 버텨왔지만 모임인원·영업시간 제한이 1년 6개월 이상 지속하며 한계상황에 부닥쳤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선택을 개인적인 일로만 치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방역 당국이 데이터나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집합금지 조치만 강제하면서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사회적 죽음’이라는 것이다. 추석 직전 국회 앞에 사흘간 설치된 ‘자영업자 합동분향소’에 조문객 수천 명이 몰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김기홍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거기 왔던 자영업자들은 ‘내 죽음에 조문 오는 느낌으로 왔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또 시민들은 대다수가 ‘K방역이 잘 되고 있다고만 생각했지 그 이면에 이렇게까지 처참한 그림자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추석 이후 확진자가 줄어들기는커녕 3000명 대로 급증하면서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명동 중심가엔 ‘임대’ 팻말 즐비   지난 16일 텅 빈 명동 메인 거리에서 나홀로 장사 중인 달고나 할머니. 상권도 죽었다. 서울 명동은 수년 전만 해도 화장품과 의류의 메카였다. 지난 16일 오후 6시께 찾은 명동 중심가는 스산했다. 도로 양편에 즐비했던 노점상 행렬은 온데간데없었다. 초입에 군것질거리를 파는 마차 하나, 그 맞은편에 달고나를 파는 할머니. 그게 다였다. 그 할머니는 40분 뒤 달고나 기구를 접더니 철수했다. “얼마나 어려우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뒀다. 질문도 답도 뻔할 것 같아서였다.   명동 중심가 건물은 두셋 건너 하나마다 ‘임대’ 팻말이 내걸렸다. 건물 공실률을 전수 조사했더니 81개 빌딩 내 255개 점포 중 106곳이 비어 공실률이 41.6%였다. 10곳 중 4곳이 문을 닫았다. 명동 뒷골목 상점들은 이른 시간인데도 불이 죄다 꺼져 있었다.   전국에서 가장 땅값과 임대료가 비싼 명동의 화장품 매장(네이처 리퍼블릭)은 사정이 어떨까. 이곳도 임대료를 인하받지 않으면 운영이 버겁다고 한다. “월세가 2억6500만원이었는데 코로나 이후 50%를 깎아 1억3500만원을 냈어요. 최근 건물주가 앞으로 1년간 월 1억원으로 더 내려줬어요. 땅값은 평당 12억~15억 하죠.”(회사 관계자)   이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수성가한 저희 회장님 이름 대면 사업자금 대출이 다 됐는데 지금은 ‘사회 물의 사범’으로 찍혀 돈 한 푼 안 빌려준다”며 “오죽하면 회장님이 ‘태어나서 이렇게 어려운 건 처음이다. 젊어서 구루마 끌고 옷 장사할 때도 이렇진 않았다’고 하겠느냐”라고 말했다. 실제로 명동 화장품 매장 가운데 58.6%가 문을 닫았다.   대기업 의류 부문 A사의 의류 매장도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다. 원래 이 건물은 보증금 100억원, 월세 1억9600만원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매출이 감소하자 건물주가 지난 7월 초부터 1년간 한시적으로 매출액의 20%로 조정해줬다고 한다. 앞서 명동 본점은 지난 3월 폐점했다. 신촌·홍대 주변도 상황은 똑같았다.   대한민국은 지금 상인도, 상권도 뜨거운 아스팔트 위의 물고기처럼 파닥거리고 있다. 사드 사태로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관광객이 끊겼고 일본과도 위안부 할머니 배상 문제 등으로 외교적 마찰을 빚으며 멀어졌다. 국내적으로는 현 정부가 4년 내내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압박하는 정책을 강행한 것이 주 원인이다. 소득 주도 성장 실험은 골목상권을 질식시켰고 2년 연속 최저임금 10% 이상 인상도 큰 충격파를 던졌다.   “상인들의 숨통을 조이는 거리두기 방역 지침을 철회,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고 상가임대료 인하, 대출금 및 손실 보상액 확대 등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즉각 시행하라.” 명동에서 만난 한 상인의 끝말은 이랬다.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것도 지겹다. 살리든 죽이든 맘대로 혀.”   ■ “폐업이라도 하면 다행, 빚 대물림 두려워” 「 김기홍 “코로나19로 병을 얻어 죽으면 천재(天災)지만 코로나가 가져온 경제적 사망선고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건 인재(人災)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소상공인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기홍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곧 끝날 것이라는 정부의 희망고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자영업자들”이라고 말했다.   경제 사정이 이토록 악화한 이유는. “대개 코로나 터지고 매출이 반 토막이 났다. 지난해 7월부터 영업시간 제한, 집합금지 조치가 취해지며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정부는 2개월 뒤면 거리두기가 끝난다고 반복하며 희망고문, 빚을 지고라도 버티게 했다. 처음엔 제1·2금융권에서 시작, 카드론→3금융권→일수 순으로 빚이 늘어간다. 코로나 1년 만에 보증금이 소진되자 건물주가 퇴거를 요구했다. 이때 폐업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빚을 일시 상환할 여력이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안 좋으면 목숨이랑 저울질하게 된다. 무엇보다 나이 드신 분들은 자식에게까지 빚을 대물림하는 걸 가장 두려워한다. 코로나가 끝나도 경제적 사망 선고를 회복하려면 오랜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OECD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지출 규모가 평균 16.3%다. 우리는 재난지원금까지 합쳐 4.5%다. 소극적 재정 지출에서 벗어나 정책 자금을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라도 지원해 주길 바란다. 미국·캐나다·일본 상인회 간부들을 만났더니 정부 지원으로 장사 못 하는 아쉬움은 있어도 힘든 건 없다고 하더라. 자영업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정부를 상대로 촛불시위, 거리두기 보이콧 등 더 강력한 시위방식을 채택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 조강수 논설위원

    2021.09.28 00:35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검찰개혁·적폐청산…국가 깊은 곳까지 파고든 북한 지령

     ━  ‘청주 간첩단’으로 본 대공수사   북한 지령을 받아 간첩 활동을 한 혐의를 받는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들이 2017년 5월 대통령선거 직전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주의 ‘행복한 국수집’은 서울에서 멀지 않았다. KTX를 타고 50분. 오송역에 내려 택시로 30분쯤 더 갔다.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알려준 뒤 “여기가 북한 간첩에 포섭된 사람들이 운영한 식당인데 김일성 주체사상 학습도 했다고 하네요. 같은 동네에 간첩이 암약하고 있었다니 무섭지 않으세요”라고 넌지시 물었다. 화들짝 놀라겠거니 하는 기대와 달리 기사의 대답은 무심하기만 했다. “방송에서나 봤쥬. 에휴, 관심 없유. 코로나19로 손님 떨어져 먹고 살기도 힘든데. 머선… ”   간첩의 발각이 뭐 새삼 놀랄 일이냐는 투였다. 그러더니 “아, 여기 저기 내놓고 간첩하고 비슷한 짓하는 사람들, 시민단체들 투성인데 간첩이 그들보다 더 위험한 짓 한 거 있유. 북한에서 공작금 받고 충성 맹세한 것 빼면 도진개진 아녀유?” 한다. 해가 지고 어슴푸레해질 때 멀리서 보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그 시간을 맞고 있는지 모른다.   ■  「 이석기 사건 이후 지역 거점 조직 간첩과 지역 활동가 분간 어려워 법원, 체포영장 3번 기각 수사 난항 국정원장, 직권남용 우려 승인했나 」     문이 굳게 닫힌 ‘행복한 국수집’   충북동지회 위원장 손모씨가 2년간 운영했던 '행복한 국수집' 자리. 문은 닫혀 있었고 인근 음식점 주인은 "1년여 전 다른 곳으로 이사갔다"고 기억했다. 조강수 기자 지난 18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창읍의 국수집 사무실은 굳게 닫혀 있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가정보원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위원장 손모(47·영장 기각)씨가 2017년부터 2019년 말까지 운영했던 곳이다. 손씨는 이 곳에서 최근 구속된 충북동지회 고문 박모(57)씨, 부위원장 윤모(50·여)씨, 연락 담당 박모(50·박고문의 아내)씨와 함께 북한 지령을 받아 미국산 스텔스기인 F-35A 도입 반대 운동, 통일밤묘목 100만 그루 보내기 운동 등을 전개했다고 법원이 발부한 구속영장에 기재돼 있다. 손씨의 아내 김모씨도 조직원이라고 하니 ‘부부 간첩단’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다.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보니 방치된 지 오래됐는지 집기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행복한 국수집엔 행복도, 국수도 더는 없었다. 맞은 편 지척에 생명공학연구원과 테크노파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근 상인은 “가게에 손님이 별로 없었다”며 “임차인이 1년여 전 건물주와 다툰뒤 폐점하고 이사갔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간부 출신인 손씨가 대표인 1인 인터넷 매체(충북청년신문)의 등록 주소지가 국수집 주소와 같았다. 또 5개 지국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이거나 경북 안동시의 키즈카페, 포항시의 부동산사무소로 확인됐다. 무늬만 언론사라는 것이다.   “이들은 반(反)보수 투쟁과 국가보안법 철폐, 국정원 해체 투쟁, 사법개혁·검찰개혁 투쟁을 전개하라는 북한 지령을 받고 보수재집권 기도를 분쇄하고 반보수 투쟁을 내밀기 위한 ‘사법적폐 청산, 검찰개혁 시민연대’를 (2020년) 1월 중순까지 결성키로 북한에 보고했다.”(박씨 등의 구속영장)   ‘조국 수호’를 외치는 시민단체들이 검찰 개혁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건 그렇다 치자. 공작금과 충성 맹세를 한 자생 간첩이 검찰개혁이라니. 그러나 대검 공안부장 재직 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끌어낸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의 목표는 대한민국 체제의 와해”라며 “통진당 목표에도 검찰을 없애자는 게 들어가 있었으니 검찰 개혁 테마는 대남공작의 지령이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투쟁 지령이 웬 말?   검찰개혁은 어느 한 정부에서 관철시키기 어려운 국가 정책적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민정수석은 불과 2년 만에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 1차 수사권을 넘겨주고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도 2024년까지 경찰로 이관하기로 했다. 그 틈새를 청주 간첩단이 들어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려 했다는 것이다. 인천지검장을 지낸 이정회 변호사(법무법인 솔루스 대표)는 “북한은 체제 수호에 걸림돌인 국정원과 국보법 철폐를 강력히 주장해왔다”며 “1차 수사기관인 검찰 공안부와 국정원 대공수사국을 해체 또는 약화하는 것은 북한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다”고 분석했다. 국정원이 수사했던 일심회 사건과 이석기 사건 개요 [인터넷 캡처]   과거 국정원이 수사해 전모를 밝힌 간첩 사건으로는 일심회(2006년 10월), 왕재산(2011년 7월), 이석기(2013년 8월)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청주 간첩단은 지역 조직이면서 국내 정치권 침투 사업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이중 왕재산 간첩단과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 정 의원은 “왕재산 역시 인천 지역을 전략적 거점으로 활동했다”며 “당시 2012년 총선에서 통진당을 지원하라는 북한 지령도 적발돼 2년 뒤 헌법재판소에서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나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일심회·이석기 사건은 중앙 정치 무대까지 진출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청주 간첩단의 대응은 한결같다. “문재인 대통령의 9·19 평양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정당한 NGO활동” “국정원의 조작 수사”라고 반박했다. 묵비권도 행사한다. 이정회 변호사는 “직파 간첩들은 남한 사회를 직접 보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선지 자백을 많이 하는데 자생 간첩들은 절대 안 한다”며 “어찌 보면 자생 간첩의 사상성이 더 투철한 것 같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황교안 전 대표가 지난 18일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청주간첩단의 21대 총선 부정선거 개입 의혹' 특검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통상 간첩사건에서는 압수수색영장과 함께 체포영장을 집행해 신병을 확보하는 게 상식이다. 수사 보안과 증거 인멸 방지를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에 청주지법은 지난 5월 초와 중순에 청구한 압수수색영장과 체포영장을 두 차례나 통기각했다. 세 번째 신청 때도 체포영장은 기각하고 압수수색영장만 발부했다. 그나마 5월 27일 연루자 4명의 집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수사팀은 윤씨 집 이불 속에 있던 4겹 밀봉 USB를 확보했다. 여기엔 4년간 오간 지령문과 대북 보고문 등 84건이 들어 있었다. 포섭 대상자만 60명에 달했다.   하지만 체포를 면한 손씨는 압수수색·소환조사 직후 잇따라 ‘국정원이 사건을 날조했다’ ‘국보법을 폐지하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국정원 수사상황은 물론, 북한 공작원의 실명을 적시해 도피 신호를 보냈다. 결국 7월 말 구속영장 신청 때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제4조(목적수행 간첩죄) 혐의까지 공개하며 영장 발부 필요성을 적극 설명해야 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그동안 증거가 있는 국보법 위반 사건에서 체포영장은 거의 발부됐었는데 정부가 바뀌어선지, 판사가 대공사건의 특수성을 몰라서였는지 이번엔 달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충북동지회 사건 수사를 승인·공개한 이유를 두고는 두 가지 해석이 나온다. 먼저 대공수사팀이 증거를 확보한 간첩 사건에 대해 중단 지시를 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박 원장은 이른바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고, 이 정부 들어 고위 공직자들이 직권 남용 혐의로 사법처리되는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다. 수사를 못 하게 하면 언젠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왜 지금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와 상반되게 간첩 사건을 수사하느냐”는 청와대 내 질책에 부닥쳤을 가능성이 크다. 한때 국정원장 사표설이 돌았던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청주 간첩단 사건 수사를 승인한 배경을 두고 관측이 무성하다. 박 원장이 지난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를 맞아 국립서울현충원 묘역 참배 후 이동하는 모습.[국회사진기자단]    국정원장, 못 말렸나 안 말렸나   또 다른 해석은 “내년 대선을 목전에 두고 수사 상황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간첩 수사가 정권의 압력으로 사장됐다’고 폭로했을 때의 충격파보다는 미리 공개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논리로 청와대를 설득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일심회’ 사건 수사를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이 청와대 인사들의 반대에도 밀어붙였던 상황과 유사하다. 수사 도중 김 전 원장은 교체됐지만 간첩단은 법적 단죄를 받았다.   헌법재판소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 비해 국가안보보다 북한 눈치보기에 급급하는 지금이 간첩들에게는 최적의 활동 공간일 것”이라며 “청주 간첩단 같은 조직은 다른 지역에서도 지역 활동가의 옷을 입고 버젓이 활동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회 변호사는 “암약하는 간첩들은 정부가 바뀌고 국민의 생각이 바뀌어야 세상 밖으로 내놓을 수 있는 ‘어둠의 자식들’ 아닐까 싶다”며 “북한이 검찰개혁 등 국가 정책의 깊숙한 부분까지 파고드는 경향이 강해지는 게 특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조강수 논설위원

    2021.08.24 00:32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김학의 진상규명 지시, 이사 해임 무리수가 역풍 불렀나

    곽상도 국민의 힘 의원이 국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는 모습. 김상선 기자 지난 5월,문재인 대통령이 연루된 여러 건의 민·형사소송 상황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자신을 비방한 시민 김정식씨를 모욕죄로 고소한 건에 대해선 "성찰의 계기로 삼으라"는 경고와 함께 2년여 만에 취하했다. 최고 권력자가 시민을 고소한 것을 두고 비판 여론이 일자 물러섰다.  두 건의 민사·행정소송에는 '피고'로서 적극 대응했다. 국민의 힘 곽상도(61) 의원이 "김학의 성접대 의혹 사건에 대한 무리한 수사 지시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지난 3월 제기한 5억원대 민사소송 담당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에 3쪽짜리 답변서를 제출했다.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인 강규형(57) 전 KBS 이사의 해임이 부당하다는 행정 소송 2심 판결(서울고법 행정11부)에 불복해서는 상고했다. 대통령과 야당 국회의원,대통령과 교수간 '맞짱 소송'의 내막을 추적했다.    과거 대통령들,직접 책임질 일은 피해  지난 주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1014호 사무실에서 곽 의원을 만났다. 문 대통령 딸의 해외 이주 의혹과 아들의 전시 특혜 의혹 등을 제기, '대통령 저격수'로 통한다. 국가와 대통령 등 8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낸 이유부터 물었다. 그는 "이른바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에 의해 인권을 짓밟혔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2019년 3월 18일, 문 대통령이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에 대해 검경 지도부가 명운 걸고 철저히 진상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적극적으로 진실 규명을 가로막고 비호·은폐한 정황이 보인다'면서다. 며칠 뒤 과거사위원회가 '청와대 민정수석 때 김 전 차관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이 있다'며 나에 대한 수사를 권고, 3개월간 시달렸다." 곽상도 의원이 2019년 6월 문 대통령 등을 직권남용과 강요 혐의로 고소한 내용. 곽 의원 측 제공 곽 의원이 지난 3월 대통령 등 8명과 국가를 상대로 낸 5억원대 손배 소송에서 문 대통령이 낸 답변서. -보복 수사였다고 보나. "그렇다. 당시 문 대통령 딸 의혹을 폭로할 때였다. 무혐의로 사건이 끝난 직후 문 대통령과 조국 전 민정수석, 이광철 민정비서관, 이규원 파견 검사 등을 직권남용·강요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1년 반동안 캐비닛에 처박아 뒀다. 지난해와 올해 초 두 번 조사하더니 또 감감무소식이다." -형사 고소(2019년 6월)와 5억원대 민사소송(2021년 3월)간 시간적 간격이 길다.  "그동안 몰랐던 사실이 불법 출금 및 수사 무마 사건에 대한 공익 제보와 검찰 수사를 통해 새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학의 사건은 가짜 출국금지 신청서와 가짜 박관천·윤중천 면담보고서를 갖고 소설을 쓰면서 부풀려진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대통령의 수사 지시가 불·탈법 수사에 이어 소송 역풍까지 부른 셈이다. 마치 추미애 당 대표 시절 수사 의뢰로 자기네 편인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이 밝혀진 것과 닮았다."  한미정상회담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문 대통령은 미국에 머물면서 1.2심에서 패소한 강규형 명지대 교수의 해임무효 청구소송에 대해 상고장을 냈다. 뉴시스  그러나 이 사건 피고들의 입장은 다르다. 문 대통령은 답변서에서 "당시 법무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김학의 사건 등에 대해 보고를 받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당부했을 뿐 수사기관을 상대로 구체적인 수사 지휘를 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당부 중에 원고(곽 의원)를 특정해 언급한 사실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곽 의원은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대통령 지시 브리핑'이라고 적혀 있고 '반드시 엄정한 사법처리'라는 표현도 있다"며 "문 전 대통령과 조 전 장관이 과거 '검찰에 수사 지시를 해선 안된다'고 스스로 밝힌 게 있으니 당부라고 둘러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을 상대로 직접 소송한 계기는.   "권력 기관의 잘못에 대한 수사에서 제일 어려운 게 대통령이 지시를 했는지, 밑에서 알아서 했는지를 가리는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수사 지시 등을 직접 발표하는 쪽을 선호했다. 그래서 가능했다. 과거엔 대통령은 책임질 일은 피했다. 장관이나, 참모가 대신했다. 대통령의 책임 문제는 끝까지 규명할 것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이른바 검찰 '돈 봉투 만찬' 사건이 터지자 법무부와 검찰에 감찰을 지시했다. 이듬해엔 기무사 계엄 문건 관련 독립수사단 구성을 지시했다. 방산비리 척결, 군 갑질 문화 점검, 미투 운동 적극 수사 등까지 포함해 직접 지시한 게 줄잡아 10여건이나 된다. 이중 돈 봉투 만찬 관련자는 무죄가 확정됐고, 계엄 문건은 불기소로 사실상 종결됐다. 수사 도중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곽 의원은 "특이하게도 내가 고소장을 낸 이후부터 대통령의 직접 지시가 잠잠해졌다"며 "나중에 문제될 수 있음을 알았다는 의미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의 최근 모습.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깡으로 버텨  강규형 교수는 대통령을 상대로 한 해임무효 소송 1·2심에서 모두 승소한 유일한 사람이다. 야당 추천 KBS이사였던 그는 임기(3년) 만료를 8개월 앞둔 2017년 12월 이사 업무추진비(법인카드)의 사적 사용, 폭행 사건 연루 등 명예 실추를 이유로 해임됐다. 즉시 "방송 장악을 위한 표적 해임"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실제로 그의 해임 이후 고대영 KBS 사장 해임 등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  "4년 동안 가시밭길이었다. 1심은 판사가 세 번 바뀐 끝에 2년 3개월 만에 승소했다. 2심은 지난 4월 말 나왔다. 명예훼손·모욕·특수상해 등으로 고소·고발된 사건만 30여건이고 일부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받는 데만 3년이 걸렸다. 검사들이 4명이나 바뀌며 수건 돌리기 했다. 어느땐 검사 이름도, 얼굴도 모르겠더라. 압권은 언론노조가 야당 추천 이사 4명을 고발했다가 셋은 취하하고 나만 남긴 것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난 ‘업무추진비 327만원 유용’은 억지다. 개인적 식사비, 음료구입비로 152회에 걸쳐 94만원을 썼다. 1회 평균 6100원이다. 나보다 더 많은 업무추진비를 부당집행한 다른 이사는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 의미 없는 소송을 남발하면서 괴롭혔다. 리걸 허래스먼트(legal harassment·법적인 괴롭힘)다. 그들은 노조 기금으로 소송비용 내고 서류 하나만 작성하면 되지만, 나는 변호사 선임을 다시 하고 수임료를 내야했다. 소송 비용 1억여원을 마련하기 위해 연금 보험을 두 개 깼다. 형사가 안 되면 민사로 건다. 1심에서 지면 2심으로 간다. 며칠 전에도 승소한 건이 있다."  그는 "솔직히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깡'으로 버텼다"며 "나 한명이라도 역사에 방송 장악을 위한 정권의 무리수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부친은 육사8기 출신 고(故) 강창성 한나라당 의원. 박정희 정권 시절 하나회의 존재를 처음 알아냈고 5공화국을 출범시킨 신군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인물이다.   -대통령이 막판에 상고했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두 가지로 본다. 현직 대통령일 때 패소는 망신이니 확정판결 시기를 늦춰 퇴임 후 판결을 받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상고심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끝까지 진을 빼겠다는 것 아닌가. 김명수 대법원에 대한 기대도 있을 것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은수미 성남시장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어지지 않았나. 마지막 날(5월 20일) 상고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딱 맞았다. 미국 순방 중에 국가법무공단 실장 명의로 상고했다. 참 좀스럽고 민망하다."  강 교수 판결문을 훑어봤더니 "이사 해임은 재량권 일탈이며 남용"이라고 명확히 적혀 있다. 이런 문장도 보였다. "KBS 이사의 임기제는 공영방송의 독립성·공정성·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에서 마련한 것으로 보이고 그 임기 동안은 신분을 보장하려는 성격도 띤다. KBS 이사에 대한 해임처분의 기준은 다른 공공기관 등과 비교해 볼 때 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원칙이다. 이걸 확인하는데 대학교수가 수년간을 법정 투쟁으로 허비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의 독백이 귓전을 맴돌았다.         강 교수에 대한 해임은 위법하다는 취지의 지난 4월말 판시 서울고법 판결문. 강 교수 측 제공 조강수 논설위원

    2021.06.15 00:34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사라진 휴대폰 1주일 지나 찾기 시작한 경찰, 수사 불신 키워

     ━  의대생 실종·사망 사건이 커진 세 가지 이유   고(故) 손정민씨의 아버지 손현씨가 어버이날인 8일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앞에서 시민들로부터 카네이션을 받고 있다. [뉴스1] 사고인가, 사건인가. 실족사인가, 타살인가. 미세먼지 안에 갇힌 듯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 더욱이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그 옆에 있었던 친구도 입을 닫았다. 지난달 24일 밤 11시부터 실종 당일(25일) 오전 2시~4시 30분까지 유일한 동행자였던 동급생 친구는 “술에 취해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렇다고 유의미한 증거나 증언이 확보된 것도 아니다. 피해자 부모는 애가 타고 속이 썩어들어간다. 경찰이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인(死因)을 밝혀내야 하는 이유다. 어느 쪽도 억울함으로 인한 한이 남아선 안된다. 중앙대 의대생 손정민(22)씨 죽음을 둘러싸고 증폭된 미스터리와 경찰 수사의 문제점 및 향후 방향을 추적했다.   어버이날(8일) 오후 3시 정민씨가 숨진채 발견됐던 반포 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앞이 인파로 북적거렸다. 시신을 처음 발견한 차종욱 민간구조사를 필두로 일반 시민들이 정민씨 대신 부친 손현(50)씨에게 카네이션과 선물·손편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어린이날에 정민씨 발인이 끝나고 어버이날이 오자 힘내시라는 취지에서 마련했다고 한다. 손씨는 “결말이 날 때까지 버텨보겠다. 가혹한 진실이 될지, 끝없는 의문으로 갈지 저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반포나들목 근처에선 지나가던 모녀가 손씨를 보고 다가와 손을 꼭 잡았다. 울먹이며 “이웃 아파트에 사는데 힘 내라. 진실이 밝혀지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실종 전날 친구와 함께 들러 술과 돗자리를 샀던 인근 편의점에 들어가 “여기가 정민씨가 왔던 그 곳이냐”고 묻자 여직원이 힐끗 쳐다보더니 “네”라고 답하고는 이내 경계 모드로 돌입했다. 정민씨와 친구가 오간 반포나들목. 갈때는 둘이 갔으나 올때는 친구 혼자였다. 조강수 기자   이 사건이 국민적 관심을 끌게 된 이유는 뭘까. 첫째는 소탈했던 의대생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과 그 죽음의 원인과 진상을 밝히려는 간절한 부성애가 결합한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손씨는 아들 실종 이후 자신의 블로그에 ‘아들을 찾습니다’ ‘실종 5일째입니다’ 등의 글을, 사망 확인 후에는 ‘죄송합니다’ ‘국민 청원 및 변호사 선임’ ‘발인 그 후’ 등의 글을 이틀 간격으로 올렸다. 사망 경위가 석연치 않고 친구 가족의 행동이 뭔가 숨기는 듯 이상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시신에 깊이 팬 상처, 아들과 친구의 휴대전화가 바뀌고 친구의 아이폰이 사라진 점, 현장에서 신었던 신발을 버린 의혹 등을 거론했다. 이들 글엔 최대 9999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지난 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전면 수사 촉구 글에는 10일 현재 38만여명이 동의했다. 청원에는 “누가 들어도 이상한 친구의 진술, 그 친구는 조사하지 않고 목격자만 찾고있는 경찰,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은 친구 부모 등을 철저히 조사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적혀 있다.   어버이날 꽃 전달식 직후 반포나들목 인근에서 만난 손씨에게 물었다.   아들 친구와 그 가족들의 어떤 행동이 미심쩍었나. “실종 다음날(26일) 저녁 8시에 친구 집 앞에서 친구와 그 부모, 우리 부부가 5자 대면을 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달라고 호소하자 ‘술 취해서 기억이 안 난다’고만 했다. 자꾸 정민이가 가출이나 자살도 할 수 있다는 쪽으로 얘기했다. 2시간 반 동안의 일에 대해 달랑 하나 얘기한 게 있다. 우리 아들이 갑자기 자다가 일어나서 달리다가 넘어졌는데 신음 소리가 났다고 했다. 현장에서 신었던 신발은 더러워져서 버렸다고 했다. 의문만 잔뜩 떠안고 돌아왔다.”   가장 아쉬운 점은. “우리 집은 한강공원 코앞이라 뛰어가면 5분도 안 걸린다. 그날 오전 3시 30분에 친구가 부모에게 전화해 ‘정민이가 자고 있다’고 알렸을 때 우리 부부한테 전화 한 통화만 했더라도 정민이는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친구는 3시 30분에 전화한 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현재 수사의 초점은. “아들과 친구를 봤다는 서너명의 목격자를 만났다. 고성방가하는 두 남자라 기억이 난다고 했다. 뭐라더라. 진상, 약간 진상 짓을 했단다. 그들이 언제 둘을 목격하고 언제 한강공원을 떠났는지 타임라인을 그렸더니 오전 3시 30분 이후 걔네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이건 오전 4시 30분에 반포나들목으로 나올 때까지 잤다는 친구의 증언과 어긋난다. 그렇다면 그 1시간 동안에 정민이가 어떤 일을 당했을 확률이 99%다. 그때 친구랑 같이 있었든지, 따로 있었든지 간에.”   카네이션을 선물받고 가는 손현씨에게 일반 시민 모녀가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조강수 기자 자식을 둔 부모를 중심으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사건 증폭의 계기가 됐다. 일부 네티즌 수사대들은 사건 현장이 찍힌 CCTV나 정민씨가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분석한뒤 추론 제공, 조언, 제보를 하며 힘을 보탰다.   예컨대 정민씨가 실종 당일 오전 1시 56분에 39초 동안 찍은 마지막 동영상에는 친구가 큰 절을 하듯 엎드려 있고 ‘골든 건은 네가 잘못했어’ ‘골든 건은 어쩔 수 없어’라는 대화가 나온다. 그러자 네티즌들이 “골든 건은 의대에서 시험지 받자마자 답안지 제출하고 바로나가는 시험포기 행위를 뜻하는 은어다”“골든 건은 커닝행위다” 등의 다양한 분석을 내놨다. 경찰은 ‘골든’은 가수 지소울을 언급한 것으로 추정했다. 제이팍, 레이블 등 힙합 용어들이 나온 걸로 봐서 공통 관심사를 얘기한 것 같다는 것이다. 친구가 잃어버린 휴대전화의 색상이 빨간색인지, 회색인지를 두고도 인터넷상에서 갑론을박이 뜨거웠다.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도 일이 커진 원인 중 하나다. 유가족은 경찰이 초동 수사의 골든 타임을 놓쳤다고 판단했다. 사라진 휴대폰을 1주일이 지나서야 찾기 시작한 점, ‘정민씨 후두부 상처가 물길에 부딪혀 난 것 같다’는 예단을 발표해 수사 방향에 영향을 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손씨는 “이런 정황을 보고 있으면 경찰이 정말 단순 익사로 처리해 버리려는 것 아닌가 불안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손씨가 검찰에 진정서를 낸 이유다.   한 네티즌 수사대는 “진실은 휴대폰과 버려진 신발에 있을 텐데. 정황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 증거는 시간이 갈수록 인멸되고 있다”고 적었다. 또 다른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모욕죄로 고소한 분에 대해선 3개월간 핸드폰 압수, 포렌식하고 1년간 쫓아다니면서 경범죄 신고하며 괴롭혔다는데 그 십분의 일만 해도 벌써 진실 드러났겠다”고 썼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런 종류의 실종 사건에선 초기부터 강제수사를 할 수 있게 예외규정을 두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한곤 서초서 형사과장은 10일 “실종 단계에선 생존 여부를, 수사 단계에선 사인(死因)을 조사하는 것이라 업무가 다르다”며 “어제 정민씨 친구와 친구 아버지를 분리 조사하는 등 유족들이 제기한 문제를 하나씩 꼼꼼히 확인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법최면 조사’ 때 친구 측이 변호사를 선임해 대동한 것을 두고 유족 측이 뭔가 실수나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의심한다고 전하자 김 과장은 “최면 수사를 한다고 하니 대응차 선임한 것으로 안다. 유족 측이 경찰과의 소통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한 것과 비슷한 취지로 안다”고 말했다. 서초서는 최근까지 정민씨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사실 외에 수사 관련해선 함구하고 있다. 친구 측의 기본 입장은 일체의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라고 한다. 정민씨 시신이 발견된 수상택시승강장 주변에서 경찰이 휴대폰 등을 찾으려 수색하고 있다. 조강수 기자   전직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자식을 잃은 부모의 한을 풀어준 사건 중에 대표적인 게 2010년 12월 미국에서 발생했던 배우 이상희씨(영화 ‘추격자’‘도가니’ 등 출연)아들 진수 군(당시 19세) 피살사건”이라며 “정민씨 사건과는 차이가 있지만 한이 남지 않게 수사가 깔끔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 군은 미국 LA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재학생과 다투다 주먹을 맞고 쓰러져 숨졌다. 치명상이 아닌데 사망했다. 미국 현지 수사기관이 정당방위로 판단, 불기소 처분하자 이씨 부부는 국내에서 재수사를 요청했다. 이때 아들을 묻었던 관을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 갖다놓고 300여 일간 1인 시위를 했다. 이른바 ‘관 시위’다. 국과수의 재부검을 거쳐 청주지검이 폭행 치사 혐의로 가해자를 불구속 기소했고 집행유예 판결이 나왔다.   미국 유학 간 아들을 폭력에 잃은 이상희씨. 관 시위 끝에 가해자는 처벌됐다. 출처=굿모닝충청   정민씨 사건의 국과수 부검 결과는 이달 중순께 나온다. 그게 비극의 끝일지, 또다른 시작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차가운 강물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날의 진실을.   조강수 논설위원

    2021.05.11 09:57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예측 가능했던 사법부 인사, 진영 경쟁으로 변질됐다

     ━  검찰·경찰 인사와 비슷해진 법원 인사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 도로변에 근조화환이 늘어서 있다. 일반 시민들이 ‘김명수 사퇴’‘사법부 각성’ 등의 문구를 적어 보냈다. 맨오른쪽에 하얀 국화에 빨간 장미로 십자가를 형상화한 고급 화환도 보인다. 인근 주민은 "그만 내려놓고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라는 뜻으로 마련했다"고 말했다. 조강수 기자 지난달 순차적으로 단행된 법원과 검찰의 정기인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산 권력 수사 견제’와 ‘우리 편 유임·영전’으로 압축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먼저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부와 ‘산 권력’ 사건 재판부를 특별히 유임시키는 인사를 했다. 이어 박범계 법무장관도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에 앞장섰던 대검 간부들을 유임하는 인사를 강행, 윤석열 포위 구도를 유지했다. 강고화된 ‘내편 중용, 네편 유배’ 코드 인사를 통해 이미 기소된 사건의 재판에선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고, 현재 예봉이 꺾이지 않은 검찰 수사는 계속 견제하려는 ‘원대한(?) 계획’으로 읽혔다. 그나마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 파동 속에 검찰 인사는 소폭에 그쳤고 산 권력 수사팀도 생존했다. 오히려 법관 인사가 대법원장의 거짓말, 탄핵 거래보다 더 나쁘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왜 그런지 인사 배경과 문제점을 추적해봤다.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청사 앞. 100여개의 사법부 근조 화환이 도로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곳에서 마주친 지인 검사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반(反)윤 참모들에 의해 대검에 갇힌 것처럼 대법원장도 시민들이 보낸 근조화환에 갇힌 형국”이라고 말했다.     일단 인사혁신처 기획조정 담당자에게 공무원 인사 원칙이 뭔지부터 물었다. “국가공무원법 1조에 나와 있다. 인사행정의 근본 기준은 공정성이다. 40조에는 중앙부처 공무원 승진은 근무성적평정, 경력평정, 그 밖에 능력의 실증에 의하는 것(교육 성적 등)이라고 돼 있다. 능력주의, 실적주의다.”   이 기준에 법원 인사를 대비해보니 격차가 크다. 특정 사건 담당 판사들의 선택적 유임과 표적 인사가 난무했다. ‘요직 싹쓸이 코드 인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인사의 모순은 전국 최대 규모의 서울중앙지법에 응축돼 있다. 중앙지법원장에 성지용 춘천지법원장이, 형사수석부장에 고연금 부장판사가 발탁됐다. 둘 다 김 대법원장이 초대 회장을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며 2017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진상조사단에 참여했다.   법관 사무 분담 및 평정 등을 관장하는 민사1 수석부장에 임명된 송경근 부장판사는 2018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당시 “법원이 (양승태 대법원) 수사에 반대하면 국민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며 검찰 수사를 주장했다. 인사 설명 자료를 찾아보니 ‘민사1 수석 자리는 고법 부장판사 보직인데 이번에 인사 규칙을 개정, 지법 부장판사로 범위를 넓혔다’고 돼 있다. 송 부장을 위해 콕 집어서 개정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송 부장이 주도해 서울중앙지법 사무분담위원회가 내놓은 결정이 형사합의 36부 윤종섭 부장판사와 형사합의 21부 김미리 부장판사의 유임이다. 이로써 ‘사법 농단’ 사건 중 임종헌·이민걸·이규진 전 판사 사건을 맡은 윤종섭 부장판사는 6년째, 배석 판사 2명은 각각 4년, 5년째 근무하게 됐다. 판사들 사이에선 대법관 임기 6년에 빗대 ‘윤종섭 대법관’이라고 부른단다.   “판사 생활을 오래 했지만 6년 유임은 처음 본다. 경희대 출신으로 학벌에서는 법원 내 소수자다. 그래서 그런 건지, 천성이 그런 건지 속을 알 수 없는 판사다. 그런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기피 신청당한 걸 보면 유죄를 선고할 거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 것 같다. 그 점에선 재판 잘못한 것이고.”(A 고법 판사)   조국 전 장관의 입시 비리와 유재수 감찰 무마, 울산시장 선거 개입 등을 재판하는 김미리 부장판사도 4년째 서울중앙지법에 유임됐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재판은 기소 1년이 지났지만 개점휴업 상태다.   정반대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 담당 재판부 3명은 근무기한을 채웠다는 이유로 전원 교체됐다. 형사합의35부 박남천 부장판사는 서울동부지법으로, 배석 판사 2명도 자리를 옮겼다. 피고인 측에선 “박 판사는 증거를 꼼꼼하게 따지는 스타일”이라며 “거의 90%는 무죄일 것으로 예견했는데 재판장이 교체됐다”고 반응했다. 윤 판사와 박 판사의 차이는 자기 재판을 한쪽 방향의 심증을 갖고 진행했느냐 아니냐 외에는 찾기 어렵다고도 했다.   법원 인사에 정통한 전직 고위 법관을 만났더니 예전 인사 절차를 설명해준다. “매년 2월 정기인사를 위해 1년 전부터 준비한다. 먼저 인사 수요부터 계산해 신규 임용 플랜을 짠다. 인사 대상지를 서울·수도권, 중부권, 지방권 셋으로 나눠 수급 인원을 정한다. 지방으로 내려보낼 때와 서울로 다시 올릴 때마다 법관 경력순으로 할지, 성적순으로 할지, 여성에게 어드밴티지를 줄지, 부부를 같은 법원에 근무하게 할 건지 등을 끊임없이 검토하며 원칙을 좁혀간다. 1년 내내 원칙만 정했고 특정인 이름은 한 번도 안 나왔다. 막판께 인사가안을 갖고 왔는데 그때 1000명쯤의 판사 이름이 보였다. 그런데 다 후배들이라 아는 판사가 없더라. 까만 건 글자고 하얀 건 종이야. 개입할 틈도 없다. 사법연수원 성적이 승진 순서를 결정했으니까.”   법원장급 이상은 어떤가. “이전엔 대법원장의 인사권 행사라는 게 없었다. ‘0’(零)이었다. 수십년간 내려온 전통이다. 법원장급 이상 인사는 대법원장이 관여하지만 최종영·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누굴 법원장 시키라고 했다는 얘긴 들은 적이 없다.”   중앙지법 6년·4년 근무를 본 적 있나. “처음 본다. 차라리 룰(원칙)을 만들지. 예측 가능하던 사법부 인사가 수사기관인 검찰·경찰 인사처럼 누군가를 제치고 올라가는 경쟁체제가 됐다.”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던 김태규 전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보는 요즘 인사 기준과 방식은 뭘까.   “대법원장과의 친소관계가 중요하다. 오로지 진영만 본다. 먼 지방에 있어도 내편이면 끌어올린다. 이전과 제일 다른 게 각종 위원회다. 모든 인사에 위원회를 끌어넣었다. 대법관 추천위, 헌법재판관 추천위, 법원장 추천위, 사무분담위원회 등이다. 단점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법관들도 좋은 자리로 가려면 정치를 해야 한다. 법원이 정치판이 돼간다.”   법관들의 의견을 반영해 좋은 것 아닌가. “아니다. 공정해 보이지만 이전의 인사 관행을 깨기 위한 트릭이다. 이전 방식은 다음 자리가 예견이 된다. 인사권자 입장에서는 원하는 사람을 원하는 곳에 심기가 어렵다. 슬그머니 다중의 의사라는 명분을 내세워 주류 세력인 인권법연구회 회원들이 3~4명씩 무리를 지어 각종 위원회를 장악하고 의사 결정하는 구조다. 이들의 선정 기준은 대법원장이 원하는 것과 일치한다. 특정 사안, 특정 재판이 특정 방향으로 나가게 할 힘이 있다.”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던 김태규 전 부장판사가 최근 출간한 책. '법복은 유니폼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김명수 사법부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해체 등을 주장했다. 중앙포토   어떤 조직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개혁이고, 현재를 규정하는 것은 인사다. 특히 법과 정의의 보루인 사법부 인사는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인사가 한쪽으로 치우치면 판결도 기운다고 여긴다.   김명수 사법부는 ‘좋은 재판’을 모토로 내걸었다. 그러려면 ‘착한 인사, 공정한 인사’가 먼저다. 그게 없다면 불가능한 목표다.     ■ 88년 김용철 대법원장 사퇴시킨 2차 사법파동, 도화선도 법관 인사 「 박시환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만난 법조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 가지 과거 사건을 언급했다. 법관 인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면서다. 박시환(68·사법연수원 12기·사진) 전 대법관이 1985년 춘천지법 영월지원으로 좌천된 일이었다.   판사 출신의 중견 변호사는 “그해 인천지법 판사로 부임한 박 전 대법관은 반정부 시위로 재판에 넘겨진 학생 11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가 발령 6개월 만에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며 “곧바로 서태영 서울지법 판사가 법률신문에 ‘인사유감’이라는 글을 기고했고 그 역시 울산지원으로 좌천됐다”고 기억했다. 서슬 퍼렇던 독재 정권에서 벌어졌던 이른바 ‘법관 인사 파동’이다. 그는 “서 판사는 글에서 ‘장군을 일등병으로 보내는 인사’라고 질타했다”며 “즉결심판에서 무죄 썼다고 지방으로 인사 발령낸 것 하나로 그 난리가 났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사건은 3년 뒤 2차 사법파동의 도화선이 됐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1988년 2월 소장판사 일부가 사법부 수뇌부의 개편을 주장하는 성명을 낸 데 이어 서울·부산 지역 소장 판사 430여명이 ‘법원 독립과 사법부 민주화’를 요구하는 서명에 참여했다. 박 전 대법관은 그해 6월 김종훈·강금실·한기택 등과 함께 ‘우리법 연구회’ 모임을 만들었다. 결국 김용철 대법원장이 사퇴했다. 2005년 참여정부에서 대법관이 된 그는 진보적 소수의견을 많이 내놨다.   현직 법원 간부는 “그때로부터 36년이 지난 지금 사법부 인사가 지나친 ‘코드 인사’ ‘방탄 인사’로 비판받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며 “그것도 박 전 대법관이 창립한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타깃이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느냐”고 말했다. 」    조강수 논설위원

    2021.03.02 00:25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2019년 그날 파견 검사는 헌법 12조를 훼손했다

     ━  공익 신고로 불거진 김학의 불법 출금의 진상   김학의 전 차관이 2019년 3월 23일 오전 비행기가 떠나고 난 뒤 111번 탑승구를 배경으로 서 있다. 동행자가 찍어 당일 김 전 차관이 휴대폰으로 본지에 보낸 것이다. 당사자 요청에 따라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으나 사태가 확산됨에 따라 21개월만에 공개한다. [사진 김학의] 그땐 정말 긴가민가, 알쏭달쏭했었다. 어느 쪽이 맞는지 궁금 답답했었다. 2019년 3월 23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이 저지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규정에 없는 부당한 조치라고 소리 없이 ‘절규’했다. 법무부는 검사의 긴급 출국금지 요청에 따른 적법한 결정이라고 일축했다. 국민 대다수는 닷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 특권층 비리’라며 철저 수사를 지시한 ‘별장 성접대’ 의혹 당사자보다는 법치행정 주무부처의 발표를 더 신뢰했던 것 같다. 지난해 말 국민권익위원회에 날아든 한 건의 공익신고가 묻혀있던 진상의 일단을 드러냈다. 축약하자면 ‘국가권력 남용에 따른 기본권 침해 의혹 사건’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살아있는 권력’ 수사 목록에 추가됐다. 이를 둘러싼 법철학적 논란, 피해자 겸 수감자 김 전 차관의 딜레마를 추적했다.   지난주 늦은 밤 인천공항을 찾았다. 김 전 차관이 2019년 3월 22~23일 지나간 경로를, 시간대에 맞춰 따라가보기 위해서였다. 곧장 3층 출국장으로 올라가 발권 및 탑승수속 창구 L구역으로 갔다. 그가 3월 22일 금요일 밤 10시25분 태국 방콕행 왕복항공권(타이에어아시아항공 0시 20분발)을 구매한 곳이다. 항공사 직원은 “0시 20분발 비행편이 있긴 한데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월·화·목 운행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김 전 차관이 통과한 T1 4번 출국장 앞에는 시간이 늦어선지 인적이 없었다. 그 이상 들어갈 순 없었다. 표 없는 사람 출입금지가 당연한데도 가슴이 답답했다. 하물며 비행기표 사서 탑승을 학수고대하다 출발 10분 전에 긴급 출금 통보를 받고, 빈 좌석을 싣고 떠나가는 비행기를 속절없이 바라봐야 했던 이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그때 맞닥뜨린 건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거대 석상, 진격의 거인이었을 듯하다. 이때부터 김학의의 시간과 동선은 역방향으로 흘러갔다. 4시간여 갔던 길을 되돌아 결국 집으로 향했다. 가택 연금된 셈이다. 다만 불복의 흔적은 남겼다. 비행기가 떠나고 난뒤 탑승 게이트에 홀로 남은 자신의 사진을 찍어두고 공항 직원이 작성을 요구한 ‘출국취소 신청원’에 펜으로 X표시를 한뒤 사진을 찍어뒀다. 그는 같은 날 오전 5시께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중을 생각해 기록을 남겨둔 것”이라고 말했다.〈중앙일보 2019년 3월 28일자 25면〉 관련기사[단독] 김학의 "출국금지 후 취소신청서 쓰래서 X표 쳤다"   이틀 뒤 김 전 차관은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의해 수사 의뢰됐다. 조사단에 파견 갔던 이규원 검사가 긴급출금 요청서에 미리 기재(‘3·25일경 대검찰청에 뇌물수수 등 수사 의뢰 예정’)한 그대로였다. 이후 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은 1심에선 무죄가 선고됐으나 지난해 10월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정의 실현 vs 명백한 불법   〈중앙일보 2019년 3월 28일자 25면〉 반전이 일어난 건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 1, 2차 공익신고서가 접수되면서다. 신고자에 따르면 이규원 검사는 긴급출금 요청서에 가짜 사건·내사번호를 넣어 조작했다. 당시 법무부 장·차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과 휘하 공무원들, 대검 간부 등은 민간인의 출입국 정보를 사찰하거나 수사 중단 외압을 가한 공모자로 지목됐다. 사실이라면 검찰개혁과 정의를 입버릇처럼 외쳐오던 법무부·검찰 간부들이 공문서 위조·조작에 가담한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당시는 중대한 혐의를 받고 있던 김 전 차관이 심야에 국외 도피를 목전에 둔 급박하고도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정당성을 주장했다. 성범죄와 뇌물 혐의의 잠재적 피의자에 대한 사법 정의의 실현 측면에서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이에 판사 출신 방희선 변호사는 “김 전 차관이 선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는 공항에 나갈 때 조사중인 사건이 전혀 없는 평범한 시민이었다”며 “그런데도 검사가 가짜 서류를 만들어 출국을 막은 것은 외국 같으면 중죄로 처벌받는다”고 잘라 말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신체의 자유(제12조)와 거주이전의 자유(제14조)인데, 이는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제한할 수가 없다”며 “불법 출금 사건은 굉장히 위험한 비민주적 사고에 기반한 헌법 파괴 행위”라고 강조했다. 헌법 제12조는 국가의 사법절차나 권력행사는 반드시 적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듀 프로세스(Due Process)’ 원칙이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김 전 차관 사례를 통해 드러난 사찰과 불법 긴급출금은 국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기에 중차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불법 긴급출금은 민간인을 불법 체포한 것과 유사한 인권 침해”라는 진단도 나왔다.   불법 출국금지 사건을 수사중인 수원지검이 지난 21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압수한 물품 상자를 들고 철수하고 있다. [뉴스1]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독일 사례를 들면서 “이 사안은 법철학적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예전에 독일에서 아이 유괴 사건이 발생했다. 공범 한 명을 검거한 경찰이 가혹행위를 통해 아이를 데리고 있는 다른 공범의 소재를 파악, 아이의 생명을 구했다. 범인을 폭행해서라도 아이의 생명을 구한 건 칭찬받을 일이다, 그렇다 해도 폭력을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논란이 격렬했다.” 이 논란의 결말은? 경찰은 기소됐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최근 자택·사무실을 압수 수색당한 이규원 검사의 가짜 서류 작성과 관련해 수사기관 고위 관계자는 “정의감이 넘쳐 형사소송법의 룰(절차)을 무시하고 돌격했다가 부대 전체를 전멸로 이끈 형국”이라며 “정의감 있는 검사일수록 법적 절차 준수가 수사의 생명임을 더 잘 알고 있었을 법도 한데…”라고 안타까워했다.   피신고자 중 차규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 25일 “익명의 공익신고자가 검찰 관계자로 의심된다”며 공무상 기밀유출 혐의로 고발할 뜻을 비치면서 양측의 공방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일 밤 11시께 인천공항 출국장 내 L구역은 한산했다. 김학의 전 차관은 2019년 3월 22일 오후 10시 25분 태국행 왕복티켓을 구매하고 발권한 뒤 T1 4번 출국장을 통해 출국심사를 마쳤다. 조강수 기자   김 전 차관이 비행기를 타고 출국했다면 자기주장대로 1~2주만에 귀국했을지, 아니면 해외 도피 행보를 벌였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령 해외 도피의 길로 들어서 수사가 장기간 지연됐다 하더라도 국가 권력이 미래의 범죄를 상정해 기본권을 침해해선 안되는 것이었다. 공권력의 잘못은 가혹하리만치 철저하게 규명하고 단죄해야 한다. 그래야 기본적 인권이 다시 짓뭉개지지 않는다.     ■ 김학의의 딜레마…“진상 규명 반갑지만 대법원 선고에 영향 미칠까 걱정” 「 아이러니한 건 피해자인 김 전 차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시로 수원지검 형사3부(이정섭 부장검사)가 진행중인 불법 출금 의혹 수사 소식을 달갑게만 여기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김 전 차관을 1~2주에 한 차례씩 면회했다는 측근 변호사로부터 근황과 입장을 전해 들었다.   예상보다 불법 출금 관련 의혹이 빨리 터진 것 같다. “맞다. 정권이 바뀌고 사건화될 줄 알았는데.”   김 전 차관은 어떻게 지내나. “(구치소) 안에서 신문 꼼꼼히 보고 관련 기사도 (제가) 우편으로 보내줘 주의깊게 읽고 있다. 구치소에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면회가 제한되고 있다. 이번주는 다 막혔다.”   늦었지만 묻혔던 진상이 드러나게 돼 좋아하나. “진상규명하고 싶은 마음은 있겠지만 겉으로 표현하는 것조차도 거북스러워한다. 이것 자체도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다.”   검찰 조사에는 협조할 계획인가. “(국가권력 남용의) 피해자로 조사한다는 얘기가 수원지검에서도 나온다. 그런데 뇌물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어서 부담스러워 한다.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지 않을까 걱정한다. ‘원래 나쁜 사람인데 긴급 출금 갖고 떠드느냐’는 식으로 몰아갈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2019년 3월 비행기 타기 직전 출금 통보받고 되돌아왔을 때 상황은. “그때 긴급출금 자체가 위법이라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더라. 왕복 티켓 끊고 나갔는데 국민 여론에는 ‘도피 시도범’으로 찍혔다. 그네들(이규원 검사 등)도 당시 내부적으로 위법하다는 것 확실히 알고 있었다. 부랴부랴 수사 의뢰한 것만 봐도 그렇다. 신속하게 피의자 만들어야 했으니까.” 」    조강수 논설위원

    2021.01.26 00:31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큰 사건 따라 널뛰는 것이 권력 사정기관의 숙명

     ━  국정원 댓글 사건, 엇갈린 운명들   선거는 중독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종종 마약에 비유된다. 출마하면 반드시 이기고 싶어한다. 거기에 독이 있다. 편법·탈법은 물론 때론 불법도 동원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한 2012년 대선 직전엔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에 의한 댓글 조작 사건’이 있었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한 2017년 대선 전엔 ‘드루킹 사건’(민주당원 인터넷 여론조작 사건)이 있었다. 각각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연루돼 있다. 이런 대형 사건들은 나라를 뒤흔들어 놓는다. 그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검사의 운명도 순식간에 뒤흔들고 뒤바꾼다. 국정원 댓글 사건 처리를 둘러싼 청와대·법무부와 검찰 수뇌부 간 갈등이 채동욱 검찰총장을 혼외자 문제로 축출하는 사건을 불렀고,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이 항명 사태 이후 좌천된 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최근 검찰총장 후보자 지명에 이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많다. 칼잡이 채동욱·윤석열과 이들을 지휘했던 검사 선배 황교안·곽상도를 중심으로 큰 사건에 따라 널뛰는 사정기관 인사들의 엇갈린 운명을 쫓아가 봤다.    반복되는 대선 여론 조작의 유혹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곽상도 의원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대국민 토론회 참석 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25일 오후 수소문 끝에 찾아간 서울 역삼동 스타우스 오피스텔 607호 앞은 고즈넉했다. 문 앞엔 ‘택배 문앞에 두고 가주세요’라는 쪽지가 무심히 붙어 있었다. 초인종을 눌렀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우편물을 확인해보니 시민 박모씨가 실 거주자였다. 인근 부동산에 문의했더니 607호실과 구조가 같은 다른 방을 보여줬다. 17평 규모이고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85만원 정도가 시세라고 했다. “이런 작은 데서 그런 큰 일이...”라고 혼잣말하며 부동산 직원에게 “이 오피스텔이 예전에 시끄러웠던 데 아녜요”라고 살짝 물었다. 퉁명스럽게 “아 그거 뭐” 하곤 그만이다. 아주 오래된 옛이야기 지절대듯이.   여기가 바로 6년여 년 전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2012년 12월 11일 밤 전국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607호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로 심리전단 소속 국정원 여직원 김하영씨가 선거 여론 조작 활동을 벌이다 적발되자 40여 시간 ‘셀프 감금’을 하며 경찰의 오피스텔 진입을 막았던 그곳 말이다. 별것 아닌 것 같았던 이 소동은 추후 경찰·검찰 수사를 거치며 국정원의 조직적 선거 개입 사건의 단초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해 벌어진 댓글 사건의 여파가 잠복해 있다가 집권 3년 차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한다. 이 사건으로 감옥행 급행열차를 탄 이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서울시 공무원 출신으로 행안부장관을 거쳐 국정원장에 발탁된 그는 2013년 3월 말 퇴임식도 없이 슬그머니 물러났다. 재판에선 1심 국정원법 위반 유죄, 공직선거법 무죄(2014년), 2심 둘 다 유죄(2015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에서 “하급심에 오류 있다”며 파기환송했으나 정부가 바뀐 지난해 법원은 징역 4년 실형과 선거법 유죄를 확정했다.    오늘의 윤석열 만든 건 국정원 댓글 사건   채동욱 당시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이 2006년 12월 ‘론스타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이 윤석열 검사. [중앙포토] 댓글 사건 발생 직후 경찰 수사를 거쳐 넘어온 원 전 원장 사건을 원점에서 재수사하고 적용할 범죄 혐의와 구속·불구속 기소 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했던 이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다. 그에게 물었다.   당시 상황이 어땠나. “원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데 윤석열이 팀장인 특별수사단과 대검 수뇌부의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반대했다. 자신이 공안 검사 출신으로 선거법 전문가라서 잘 안다면서다. 검사들을 설득해 선거법 위반은 적용하되 불구속기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공소시효 만료 며칠 전에 재가를 받았다. 그런데 50여일 뒤 혼외자 사건이 터졌고 나는 검찰을 떠났다. 그때 청와대가 국정원을 개혁하는 게 정도였으나 거꾸로 갔다.”   채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던 2017년 5월 말 변호사로 개업해 일하고 있다. 현 정부 및 윤석열 후보자와의 친밀한 관계가 소문이 나면서 수입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라고 한다.   “오늘의 윤석열을 만든 9할은 국정원 댓글 사건이었죠. 거기가 발화점이었어요. 그 사건 수사 도중 국정원 직원을 승인 없이 체포한 것을 두고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갈등을 빚었고, 그게 그해 10월 서울고검 국정감사장에서의 이른바 항명 사태로 번지며 ‘검화(檢禍)’가 된 거죠. 만약 항명과 좌천이라는 키워드, ‘나는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강단진 발언이 없었더라면 문재인 대통령의 눈에 띄어 서울중앙지검장에 이어 2년 만에 검찰총장 후보자까지 오르는 초(超)스피드 발탁이 가능했을까요. 그가 지나온 궤적을 되짚어보면 그 또한 지독한 운명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검찰 고위 간부)    ‘때가 되면 윤석열을 총장 시키겠구나’   윤석열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은 두텁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에 잠시 몸을 담았던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여당 중진 의원이 전화해 ‘대통령이 검찰총장 자리에 윤석열을 보임하겠다고 하는데 괜찮은 거냐’고 물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고검 검사를 검찰총장에 임명하면 검찰 조직이 붕괴할 것이라며 반대 이유를 댔다. 나중에 그 의원이 ‘당시 대통령이 몇번이나 정말 안 되느냐고 묻더라’고 말해 ‘때가 되면 윤석열을 총장 시키겠구나’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윤석열은 칼잡이, 강골·강성 검사로 알려져 있다. 그를 잘 아는 검찰 간부들은 의외의 평가를 한다. “마음이 여리다”는 것이다. 물론 약한 것과는 다르다는 전제를 달아서다. 상사의 부당한 압력에는 굴복하지 않지만 부하 검사 의견은 잘 들어주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윤석열은 기억력이 뛰어나고 머리가 비상하다고 한다. 채동욱 전 총장은 “아주 치밀하고 해박한 법이론가”라고 평한다. 다른 지인은 “한번은 미국의 긴즈버그 대법관 얘기를 하는데 살아온 여정, 요소요소에 등장하는 법무부 차관·대법원장 등의 영어 이름을 술술 기억하고 얘기해 깜짝 놀랐다”며 “긴즈버그 책을 세 번 읽고 영화까지 본 내가 부끄러웠을 정도”라고 말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국정농단 사건 때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올해 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대표가 됐다.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수위를 달리며 대권을 노리는 잠룡 정치인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기자가 ‘윤석열의 총장 지명을 보고 옛날 생각(국정원 댓글 사건)이 나서 전화했다’고 하자 황 대표는 “건강 괜찮아요, 지금은 어디에 있어요”라고 근황을 묻더니 곧 회의장에 들어가야 한다며 끊었다. 예의 신중한 스타일은 변함이 없어 보였다.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은 “원세훈 사건을 원칙대로 수사하라”며 박 대통령의 의중을 채 전 총장에게 전달했던 곽상도 전 민정수석에게서 들어야 했다. 댓글 사건 후 2개월 만에 허태열 비서실장과 함께 전격 교체됐던 그는 “그해 6월 중순 윤석열 수사팀의 발표문을 보면 선거 개입에 관여한 댓글 60여 개뿐”이라며 “황 장관은 그 정도로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세 차례 보완지시를 했고 나도 선거법 적용과 구속은 무리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씨 건은 1심 무죄, 2심 유죄, 3심 무죄 취지 파기환송으로 엇갈린 것도 그 때문인데 그 사이 정권이 바뀌고 원씨의 선거 개입 자료가 나오면서 유죄가 최종 확정된 것”이라며 “처음 수사 때보다 기소 후에 더 많은 증거가 확보된 특이한 케이스”라고 덧붙였다.   현재 자유한국당 의원인 곽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다. 문 대통령 아들과 딸의 비위 의혹을 줄기차게 추적, 폭로하며 저격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곽 의원은 윤석열에 대해선 “칼잡이는 원래 권력이나 재벌에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수사를 할 때 쓰는 표현인데 지금은 (적폐수사의) 앞잡이 아닌가”라고 날을 세웠다. 경찰 단계에서 수사를 맡았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수사과정에서 축소와 은폐를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현재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이다. 김 전 청장은 1·2·3심 모두 무죄를 받고 재기를 모색중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모양새만 달라져 현재도 진행형이다. 친문(親文) 핵심인 김경수 지사는 댓글 조작을 통한 여론 조작 가담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보석으로 풀려나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마약같은 대선 여론 조작의 치명적 유혹, 비장한 각오로 끊어야 한다. ‘내로남불’,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 오피스텔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조강수 논설위원

    2019.06.27 00:05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공무원이 등 돌리면 나라 못 움직여”

     ━  세종시, 공무원 복지부동 현장 가보니   지난 16일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입주해 있는 정부세종청사 6동 앞에서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근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정책이 잘 되면 아무 말 안하다가 못 되면 관료 탓한다“고 말했다. [조강수 기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수현 대통령 정책실장이 마이크가 켜진 걸 모른 채 “국토부 관료들이 이상한 짓을 한다”고 ‘관료 탓’ 뒷담화한 게 지난 10일이다. 며칠 뒤 KTX를 타고 오송역에 내려 세종시로 향했다. 가는 길은 뿌옜다. 미세먼지인지, 안개인지 잔뜩 내려와 오리(五里)의 분별이 난망했다. 거대한 인공 도시에 듬성듬성 들어선 정부 부처 건물들도 흐릿했다. 갑자기 얻어맞은 국토교통부와 세월호 사건으로 초토화된 해양수산부, 채용비리 수사로 어수선한 환경부 등 건물 속 공무원들의 어정쩡한 현실과 닮아 있었다.   “마이크 밀담은 공무원에 대한 이번 정권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 준 거 아닌가요. 잘 되면 청와대 공, 못 되면 공무원 탓인 거죠. 여기 분위기요? 푹 가라앉아있죠. 500조에 육박하는 전 부처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공무원들만 해도 신바람이 안 난대요. 경제정책은 청와대와 장관이 결정해 지시를 내리면 따르느라 밑에서 위로 아이디어를 내기 힘든 구조예요. 이 정부에선 과거 정부보다 예산과 재정 확대를 우선시하다 보니 이 분야 직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죠.”   사무실에서 만나는 게 부담스러운지 청사 1층 휴게실로 내려온 경제 부처 중간 간부가 16일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공무원으로 살아가기 어떤가. “예전엔 기재부가 권한이 세고 승진도 빨랐으나 이젠 일은 많고 승진은 가장 느린 부처가 됐다. 최근 잘 나가던 부장, 과장이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외교부 북미과장은 SK로 갔고. 인재는 떠나고 신규 사무관들은 오기를 기피한다. 공무원들의 눈치보기는 더 심해졌다. 결정적 이유는 장관을 넘어서 차관, 실·국장 인사까지 청와대와 국회가 관여해서다. 공무원의 꿈은 일단 ‘차관’인데, 실현이 어려워졌다. 정치권에 휘둘리고 청와대 눈치 보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찾으니 일을 시킬 수가 없다.”   복지부동의 신풍속도가 있다면. “업무 회의를 국장급 따로, 과장급 따로 하는 경우가 많다. 다 같이 모여서는 안 한다. 카톡 대화방 사용은 줄고 요샌 간부 텔레그램방에서 업무 지시를 한다. 그런 대화방도 과장들끼리, 국장들끼리 단절돼 있다. 동료끼리는 안전하다는 믿음이 깨졌다. 신재민 사무관 폭로 사건 이후로 장·차관이 주재하는 회의에 사무관 배석 관행이 사라졌다. 장·차관→국장→과장→사무관에게 1대1로 하방 지시한다. 업무지시가 전화로 내려오면 녹음도 한다. 정책 보고서를 만들 때 ‘과수’(과장 수정), ‘국수’(국장 수정)라고 표기한 파일을 만들어 보관한다. 정책이 A안에서 B안으로 바뀐 과정도 기록한다. 나중의 책임 추궁에 대비해 기록을 명확히 해둔다는 것이다. 회의 자료를 주면서 준비한 안건 전체를 주지 않고 각자 해당되는 부분만 잘라서 제공하더라는 얘기도 들었다. 부처 간 업무 협조도 예전 같지 않다. 자료 공유 요청하는 이도, 받는 이도 껄끄러워한다. 본연의 업무에 쓸 역량이 엉뚱한 데서 낭비된다.”   정부 정책 추진의 올바른 방향은.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했지만 민생에 직접 영향을 끼친 건 아니었다. 현 정부에선 더 강력한 정책들이 쏟아졌다. 국민 각자에게 영향이 가는 것들이다. 나쁜 정책은 없다. 항상 속도가 문제다. 속도를 낼 때 공무원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국가 재정과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지는 공무원이 잘 안다. 세월호같이 큰 배가 넘어진 건 갑자기 운전대를 꺾어서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향하는 정부 정책의 전환 속도가 완만해야 하는 이유다. 5년 단임제의 폐해일 수 있다.”   중앙부처 공무원 출신의 권석창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이전 청와대의 지시나 정책 방향에 따라 일을 한 관료들을 형사처벌함으로써 공직 사회 복지부동을 초래한 것은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권 전 의원은 공무원 복지부동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엔 전 정부 국정과제 실천에 앞장섰더라도 뇌물 등의 비리가 없다면 감사를 통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선 블랙리스트 작성, 국정교과서 개편 등 전 정권의 정책을 수행한 사람들이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등 혐의로 감옥에 갔다. 그 시기에 해외 파견이나 교육받으러 간 공무원은 무탈하다. 이러다 보니 서로 국정과제 담당 요직에 가지 않으려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현 정부 관심사업인 도시재생사업추진단에 가기를 희망하는 공무원이 없어 인사난을 겪었다고 한다.”   다른 부처들에 비해 통일부와 복지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한 복지부 공무원은 “우리는 괜찮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을 때 북한 상대하는 통일부와 사회적 약자에게 혜택 주는 복지부가 제일 신나서 일했던 것과 같다. 적폐 논란도 거의 없다. 복지부는 치매 환자 및 아동 복지, 건강보험 확대 정책을 통해 더 가진 사람 것 받아 골고루 나눠 주는 일을 주로 한다.”   대한민국 헌법 7조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 보장을 규정한다. 그러나 허울뿐 아닌가. 공무원(公務員)들은 여전히 고달프고 갈팡질팡한다. ‘공무원(空無員)’이 돼가고 있다는 자조 섞인 한탄도 나온다. 영혼 없다는 소리까지는 모르나 머리마저 비어서야 되겠나.   “국민의 정부 때 공무원을 개혁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로 세웠기에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하고 규제를 혁파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당시 그들을 직접 만나보니 봉급 인상보다 공정한 인사를 더 원하더라. 공무원이 등을 돌리면 나라를 못 움직인다. 국가 전체의 위기가 와도 감지하지 못한다.”   김성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이사장의 공무원관(觀)을 곱씹어 본다.     ■ 제주도선 무사안일 행정…위미리 해안가서 1조원대 펀드사와 펜션간 분쟁 「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 제주 위미리 해안가에 건축중인 단독주택 모습. [조강수 기자] 지난 20일 바람이 세차게 부는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해안가. 국내 헤지펀드 1위 업체인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 2015년 건축허가를 받은 연면적 1562㎡ 규모의 연수원과 연면적 399㎡ 단독주택의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제주 올레길 5코스와 인접해 있어 경관이 수려한 데다 완공되면 앞쪽 ‘지귀도’ 조망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건물 신축 과정에서 시청에 내야 하는 설계도면 일부를 누락하고 단독주택 공사를 위해 3m 높이로 지반을 높이는 성토작업을 벌인 것이다. 특히 성토작업으로 지상 2층 주택이 사실상 3층이 됐다. 이로 인해 옆집 펜션의 조망권을 직접 침해하면서 1년 가까이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핵심 쟁점은 무허가 형질변경(개발행위)이다. 건축법상 50cm 이상 성토를 할 경우 개발행위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거기에 필요한 토목공사 도면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청이 원상복구 시정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담당 공무원들은 나 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건축 허가를 받은 후 2년 이내에 착공하지 않아 건축 허가 취소 대상인데 봐 줬고, 그 취소 기간 동안 건축 심의, 증축 설계 변경 등을 허용해 직무를 유기했다는 것이다.   이날 서귀포시청에서 만난 오모 사무관은 “형질 변경 도면과 서류는 내지 않았으나 부지 종·횡 단면 등이 표기된 건축허가 도면으로 갈음해서 허가했다”며 “펜션 측이 조망권의 피해를 보는 건 맞지만 건축 허가를 취소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주민 600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 7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는 이단비(48·여)씨는 “제주도 전체가 난개발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게 된 데는 서귀포시청과 제주도청 공무원들의 무사안일한 일 처리도 한몫했을 것”이라며 “통큰 재량 행정의 근거가 뭔지 납득이 안 간다”고 말했다.   서귀포시에선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조성 사업이 대법원 판결로 무효가 된 일도 있었다. 콘도와 상가를 분양해 관광수익을 얻을 목적으로 한 휴양형주거단지를 주민복지시설인 ‘유원지(遊園地)’에 인가한 것은 명백한 하자이므로 토지수용 및 인허가를 취소한다는 거였다. 토지를 강제 수용당한 토지주들의 개별 반환 소송이 18건에, 대상 부지만 48만㎡에 달한다. 」    조강수 논설위원

    2019.05.23 00:06

  • "공수처법보다 수사권조정법안이 더 무섭다"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패스트트랙 격전지 국회 본관 가보니   지난 26일 새벽 국회 본관 7층에서 더불어민주당 당직자와 방호과 직원 등이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 법안 제출을 위해 빠루와 쇠망치를 동원해 의안과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뉴스1] 정답은 국회의원이다. 질문이 ‘대한민국에서 반칙과 특권이 난무하는 직업군이 어디냐’라면 말이다. 국민의 표를 받아 대표로 선출되지만 선출되는 그 순간 당에 표를 고스란히 갖다 바치고 예속이 된다. 입법 때 당론이 먼저고 민의는 뒷전이다. 무슨 조직폭력배 집단같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대화와 타협과 절차는 과감히 무시한다. 그러니 민의의 전당이라는 곳에 빠루(‘노루발못뽑이’)와 해머(‘쇠망치’)가 8년만에 재등장한 게 이상할 까닭이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야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검경수사권조정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에 태우는 과정은 야합의 정점을 찍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던 ‘식물국회’가 몸싸움이 난무하는 ‘동물국회’로 급전환됐다. 패스트트랙에 숨겨진 비밀코드를 추적해봤다.   여야 4당이 국회에서 패스트트랙 지정을 가결한 다음날(30일) 서울 여의도의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전쟁같은 공방이 끝난 후의 적막감이 전 층에 흘렀다. 격전지를 돌아봤다. 원래 사법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열릴 예정이던 220호(제5회의장)·445호(행안위 회의실)부터 들렀다. 뜻밖에 445호의 문이 열려 있었다. 들어서니 창문을 통해 봄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곧바로 실제 사개특위 의결이 이뤄진 506호실(문체위 회의실), 정개특위 의결이 진행된 604호실(정무위 회의실)로 향했다. 604호에 가니 내부가 어둑어둑했다. 단상 옆에 덩그러니 서 있는 태극기가 보였다. 문득 전날(29일)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만난 검찰 관계자의 의미심장한 말이 떠올랐다. 지난 30일 찾은 국회 본관 604호. 전날 정개특위가 선거법 개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의결한 곳이다. 치열했던 격돌의 흔적 하나없이 고즈넉했다. [조강수 기자]   “패스트트랙에 태웠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이번에 선거제, 공수처,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표결 처리할 법안 순서를 정해놓은 걸 잘 봐야 한다. 처리 기한인 330일 뒤는 총선을 앞둔 시점이다. 지역구 의석이 28석 줄어드는 선거법과 ‘누더기’가 된 공수처법은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수사권 조정만 남는다. 청와대와 여당의 복심이 그것같다. 조국 민정수석의 페이크(속임수) 아닌가 싶다. 선거제·공수처 패스트트랙이라고 포장하고 수사권 조정을 관철시키려는 의도라고 본다. 문제는 수사권 조정이 민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는 국민들이 진짜 잘 모르는 게 바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숨겨진 검찰 장악 비밀 코드라고 했다. 해당 안에 따르면 검사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범죄 등 중요 범죄와 경찰 공무원의 직무 범죄, 이들 각 범죄와 관련한 위증·증거인멸·무고 등 범죄만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그리고 향후 검찰 수사 대상의 범위를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도록 위임했다. 그게 결정적 문제 조항이라는 거였다. “국회에서 수사권 조정을 논의하는 순간 검찰은 국회에 대해서 꼼짝 못한다. 하물며 대통령이 마음대로 국무회의를 열어 수사권을 줬다 뺐었다 하면 어찌 되겠나.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무소불위 권력기관이라서,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문제가 있어 공수처를 만든다고 하고는 정작 검찰의 고삐를 더 세게 쥔 격이다. 조국 수석의 검찰 장악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지금까지 검찰 인사에 목 매느라 ‘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힘들었다면 이젠 제도에 더 목이 매달리게 생겼다.”   빠루가 8년만에 재등장해 ‘동물 국회’ 논란을 불렀던 국회 본관 의안과 702호실의 지난 30일 모습. [조강수 기자] 관련기사"수사권 조정안, 민주주의 위배" 문무일 해외출장 중 정면반박 무슨 의미인가. “이 상황에서 공수처가 생겨 대통령, 여야 국회의원, 청와대 친인척, 장차관, 군 장성,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 등의 비리를 수사해서 기소 또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로 보냈다 치자. 검찰이 공정한 판단을 내리기 쉽겠나. 공수처에서 아무리 의지를 갖고 수사를 해도 검찰에서 더 왜곡시킬 수 있는 구도가 됐다. 공수처가 수사해 기소까지 할 수 있는 직군은 판·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이다. 그런데 경찰 고위직 비리는 검사가 계속 적발, 처벌해 왔다. 사법부 수사로 100여명의 판사가 적폐 낙인이 찍혔고 이후 판사도 검사를 미워하니 남는 건 검사 뿐이다. 검사 비리 수사·기소처라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막판에 공수처의 기소 대상에서 빠졌는데. “2014년 특별감찰관제 도입 때와 2015년 김영란법 제정 때 슬그머니 자기들은 적용 대상에서 뺀 것을 연상케 한다. 명백한 반칙이자 특권 행사다. 특히 공수처법은 그동안 사개특위에서 아예 논의된 적이 없다. 볼썽 사나운 타협이 이뤄진 것이다.”   검찰은 공식적으로는 공수처 신설은 받아들인다는 입장이지만 경찰에 1차적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수사권 조정에는 반대해왔다. 문제는 타협의 결과 본래의 모습에서 이탈한 공수처법은 큰 혼선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기소 대상자인 판사·검사·경무관 이상 경찰 간부 등 세 직군에 대해서만 기소권을 준 것도, 뇌물 받은 사람은 공수처가 기소하고 뇌물 공여자는 검찰로 보내 기소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사태의 심각성은 형사 사건들이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최근의 별장 성접대 사건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현직 검사 때 적발됐다고 치자. 사건 연루자가 10여명 된다고 하면 뇌물수수, 음주운전, 공갈·협박 등의 여러 범죄가 줄줄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김학의는 검사고 윤중천은 민간 건설업자다. 이 경우 김학의는 공수처가, 윤중천은 검찰이 기소해야 한다. 수사중에 국회의원의 혐의가 나오면 검찰로 송치해 기소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소 시효, 뇌물·김영란법 위반 등 적용 법규에서 공수처와 검찰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기소하면 공소 유지를 누가 하나. 두 기관의 합의절차 규정이 없고 중재 기구도 없다.”(김웅 대검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   법조계에선 이번 패스트트랙 강행의 배경으로 청와대와 조국 민정수석을 지목한다. 대통령 공약 1호가 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지난 1~2월엔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 개혁의 관철을 강도높게 주문했다. 조 수석도 지난 1월 “국민 여러분, 도와달라”는 글(행정부와 여당의 힘만으론 부족하다는 취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필두로 지속적으로 검찰 개혁을 압박해왔다. 특히 2004년 참여정부가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가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을 때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비서실장이 모두 “공수처 수사 대상에서 국회의원을 빼고서라도 제도 개혁을 추진했어야 옳았다”고 후회했다고 한다. 이는 조 수석이 지난 2월말 공수처 신설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에 답하며 “야당 탄압 수사가 염려되면 국회의원 등 선출직을 수사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집권 세력의 전략적 선택 아니냐는 것이다.  바른미래당이 오신환·권은희 의원을 사·보임하는 강수를 둔 배경에 대해 검사장 출신 로펌 변호사는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의 지역구가 군산이다. 잠재적 경쟁자였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중앙대 앞 흑석동 상가 건물 문제로 낙마하면서 협상의 여지가 생겼고 그래서 김 원내대표가 사·보임의 총대를 맨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또 사·보임 절차와 관련한 민주당의 설명은 거짓말이다. 2003년 국회법 48조 6항 개정시 회의록과 국회법 해설서에 딱 나와 있다. 임시회의는 길어야 30일이니 그 동안에는 사보임 못하게 하는 취지다."라고 말했다.  국회법 해설서 사보임 관련 국회법 해설서 사보임 관련 국회법 해설서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702호 의안과로 갔다. 지난 26일 새벽 민주당 사람들이 패스트트랙 의안을 팩스로 접수하려다 여의치 않자 직접 서류 접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던 곳이다. 이때 빠루와 쇠망치가 등장했고 여럿이 다쳤다. 당시의 격렬함을 웅변하듯 문 전체가 스티로폴과 청테이프로 땜질이 돼 있었다. 그 앞에서 국회사무처 직원 둘이 “이걸 보러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는데”라고 농담을 주고 받고 있었다. 지나가는 직원에게 내가 “저거 안 고치나요”라고 묻자 그가 씩 웃더니 “고쳐야죠”라고 하고는 휙 지나갔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의원총회에 당일 몸싸움 과정에서 획득한 빠루 한 자루를 들고 나왔다는 보도가 기억났다. 나 원대대표실에 가서 그 빠루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사무실에서 가져왔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실 직원이 빠루를 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 26일 새벽 더불어민주당 당직자들과의 치열한 몸싸움 도중 획득한 것이라고 했다. [조강수 기자]  반칙의 상징 빠루는 묵직하고 고약하게 생겼다. 그게 국회사무처 방호과에서 가져왔든, 민주당이 딜리버리를 요청했든 경악스런 사태다. 독일어에서 ‘나는 정의롭다’와 ‘나는 복수했다’라는 문장은 모음 하나 차이라고 한다. 니체의 『짜라투르투스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 나온다. 특혜와 특권이 200여가지가 넘는 국회의원들이 반칙도 왕(王)이라면 힘없고 빽없는 시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조강수 논설위원

    2019.05.02 00:03

  • "물컵 던지고 소리 질렀다고 기업 치나" 조양호 상가 가보니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고 조양호 회장 빈소 겉으론 차분했지만    지난 16일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운구차량이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공항동 본사 앞을 지나고 있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유해는 장지인 용인시 하갈동 신갈 선영에 안장됐다. [뉴스1] 또 장례식장에 갔다. 죽음을 기사로 다루는 건 문재인 정부 들어 세번째다. 2017년 변창훈 부장검사의 납골당을 찾았고 2018년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에 이어 이번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상가에 앉았다. 이들의 죽음에는 공통점이 있다. 혹독한 수사를 받던 도중이었다.  ‘적폐’ 프레임에 갇힌 검사와 군인은 몸을 던져 영혼의 자유를 취했다. 대기업 회장은 공식적으론 ‘병사’였다. 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국가권력 오·남용에 따른 죽음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딸들과 아내의 언행에 11개 권력기관이 수사·조사에 나서고 개인을 넘어 기업 문제로 수사를 확대하더니 급기야 국민연금공단의 ‘스튜어드십 코드’ 발동으로 경영에서 배제됐다. 그 충격이 컸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한항공 대표이사 연임에 탈락한지 10일만의 죽음, 그 속을 들여다봤다.   지난 13일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빈소 입구에 붙어 있던 안내판 조강수 기자   장례 이틀째인 지난 13일 오후 6시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양주 조씨인 조양호 회장의 빈소에선 고인에게 식사를 올리는 ‘상식’이 진행중이었다. 제삿상에 밥과 국,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절차다. 부인 이명희씨는 보이지 않고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 차녀 조현민 전 전무가 참석했다. 나라를 뒤흔든 여러 사건의 진원점이라는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차분하고 조용했다. 망자를 위한 곡소리와 권력에 대한 원망의 장탄식이 한데 뒤섞여 시끄러우리라고 본 예상은 빗나갔다. 상갓집 분위기도 특실 1호와 일반실 12호를 터서 널찍하다는 것과 화환이 즐비한 것을 빼고는 여느 상가와 차이가 없었다. 장례식장에는 죽음보다 삶이 더 많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아버지의 죽음 곁에서 자녀들의 삶이, 인연과 관계가 존재의 춤을 췄다.   어느 순간, 앞 쪽 테이블에 검은 상복을 입은 조현민, 뒷쪽 테이블에 상주 조원태, 대각선 쪽 테이블에 흰 소복의 조현아가 동시에 자리했다. 이들 중 한명이 일어설 때마다 깜짝 놀라곤 했다. 키가 너무 커서 잠시 ‘장신의 숲’에 온 것은 아닌가 착각에 빠졌다. 기내식 담당 임직원 등을 맞은 조현아가 일어서자 일행 중 한명이 “언니, 힘내세요”라고 말했다. 조현아가 쓴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취재차였지만 얼떨결에 조문도 했다. 상주에게 “심려가 많겠습니다”라고 인사하자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참았다. 갑자기 아버지를 잃은 상주가 무슨 말을 할까 싶었다. 얼핏 문재인 대통령의 조화가 눈에 들어왔다.   상가 체류 시간이 길어지자 대한항공 사람들의 입이 조금씩 열렸다. 고인에 대한 회고부터 시작했다.  “회장님이 우리 회사에서 가장 열심히 일했다. 항공사 특성상 전자메일 결재 시스템이 일찍 도입됐다. 한번은 토요일 새벽 4시쯤에 보고 메일을 보냈는데 30분 만에 답장이 와서 깜짝 놀랐다. 그 시각에 깨어 있으리라곤 생각 못했다.”(A임원)   “조 회장의 생애는 딱 세 가지 단어로 압축된다. 가족과 회사, 효도다. 술 한잔 안 하고, 담배 한개비 안 피웠다. 양복, 넥타이도 20~30년 된 것 그대로 썼다. 구두도 닳은 것 신었다. 검소했다. 직원들에게 엄격했는데 정비사보다 정비를 더 많이 알고 비행기도 직접 몬다. 정경유착도 없다. 그러다보니 박근혜 정부 때는 최순실 눈 밖에 나서 졸지에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내쳐지고 이번 정부에선 기업 회장직에서 떨려난 것 아닐까.”(B임원)   자연스레 수사 오·남용 문제로 옮겨갔다. “죄형 법정주의? 죄에 맞는 형벌을 내려야 승복하지. 물컵 사건 이후 경찰 광역수사대가 조 전 전무의 특수폭행, 업무방해, 관세법 위반 등을 조사했지만 무혐의(공소권 없음)로 종결됐다. 별건, 별건, 별건 수사가 이어졌다. 가족 중 아무도 구속이 안되자 가장을 기업에서 끌어내린 셈 아닌가. 기네스북에 오를 얘기다. 물컵 던지고 경영권 뺏겼다. 회사는 13분기 연속 영업이익을 냈는데. 수사가 진행된 1년 6개월여 간 조 회장은 몸무게가 12㎏이 빠져 맞는 옷이 없더라. 얼굴은 폭삭 늙어버렸다. ” 지난 13일 조양호 상가 풍경. 문상객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벽면 가운데 조 회장의 생애를 정리한 영상이 계속 리플리이되고 있었다. 조강수 기자   국민연금의 사내이사 선임 부결은 어떻게 보나. “1997년 금융 위기로 주가가 폭락하고 경영권이 투기 자본에 넘어갈 우려가 생겼다. 그걸 막으려고 99년 정관을 개정해 사내 이사 선임은 특별 결의(전체 주주의 3분의 1 출석에 3분의 2 찬성)에 의하도록 규정했다. 이번에 64%로 2% 부족해서 부결됐다. 20년만에 역풍 맞은 격이다. 특히 ‘대기업 대주주의 위·탈법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지난 1월 대통령이 경고한 이후 국민연금이 움직였다. 이게 정치권 기웃거리지 않고 경영에만 신경 쓴 대가라면 억울하지 않겠나.”   한진가(家)의 법률대리는 법무법인 광장이 맡고 있다. 20여명의 민·형사, 행정 사건 전문 변호사들이 방패로 투입됐다. 상가를 찾은 변호사 중 지인을 만났다.   유족들 심경은. “조원태 사장이 첫날 문상 온 변호인단에 두 가지를 부탁드렸다. 회사를 지켜달라는 것과 회장님(부친 조양호)의 명예 회복이었다. 첫째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로 닥친 위기 상황에서 방어를 잘 해달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내년 주주총회에도 관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봐서다. 둘째는 조 회장의 공범으로 한진의 계열사인 정석기업 원종승 대표 등이 불구속기소된 사건들에서 무죄를 위해 힘써달라는 거였다.”   재판이 다 끝난 것 아닌가. “조 회장 본인 사건들은 사망에 따른 공소 기각으로 종결됐다. 하지만 공범이 기소된 사건은 거액의 횡령·배임과 피해액 반환, 약사법 위반과 부당이득금 반환 등의 민·형사소송이 다 걸려 있다. 큰 건만 대여섯이다. 우리는 공범의 무죄를 받아야 한다. 지면 채무가 상속이 되니까 재판에서 이겨야 한다. 형사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으면 조 회장의 명예 회복이 가능하다. 이전(※조 회장 생전)에는 여론 재판의 우려가 컸지만 이제는 증거 재판이 가능해졌다고 본다.”   조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에 영향을 끼친 요인을 꼽는다면. “무리한 수사와 정부의 갑질이 아닐까. 조 전 전무가 물컵 던진 것 물론 잘못했다. 이명희 여사가 소리 지른 것 잘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개인의 잘못을 갖고 기업을 치나. 대책회의 때 조 회장은 ‘죄를 억지로 만든다’고 억울해 했다. 무슨 약국을 동업했다고 하질 않나. 아들의 인하대 편입학 건으로는 교육부까지 나섰다. 개인비리인데 기업 비리 수사로 확대하다보니 무리한 수사, 무리한 영장청구가 되고 법원에서 기각되고 당하는 사람들은 황당하고 그러니깐 또 몸이 아프고.”   마지막 바람은 뭐였나. “자신이 유치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총회를 성공리에 마쳐 국내 항공산업의 위상을 정립하는 걸 마지막 소명으로 알고 마무리하고 싶어 했다. 오는 6월초 열리는 IATA 총회는 항공업계의 올림픽으로 불린다. 항공회사 CEO라야 의장이 된다. 사내이사 연임 불발로 그게 물건너갔다. 폐가 하얗게 변하면서 기능이 저하되는 폐섬유증이 지난해 11, 12월 악화돼 간이 호흡기를 착용했다. 다행히 올해 1월께 미국에서 한 수술이 성공적이었다. 상태가 호전됐고 완쾌됐다고 봤는데 느닷없이 비보가 날아들었다.”   상가 한켠에서 한진의 상황을 5공화국 시절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공중분해된 국제그룹에 비교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대도, 상황도 다르긴 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도 있다. ‘권력 개입’의 부작용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5공화국의 부실기업 정리를 비판하며 이런 말을 했다. “국제그룹 정도 규모의 기업을 정리하려면 먼저 객관적인 분석이 있어야 했다. 경제정책가들은 그런 일을 다시는 해서는 안될 것이고 경제계도 다시 그렇게 당해서는 안된다.”   수사기관과 정부의 압박은 기업을 힘들게 한다. 아마추어 복서가 무하마드 알리에게 두들겨 맞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늘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상가를 나오며 든 생각이다.   조강수 논설위원

    2019.04.18 00:05

  • [단독] 김학의 "출국금지 후 취소신청서 쓰래서 X표 쳤다"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법조계 혼돈의 축약판 서울동부지검   요즘 법조계의 ‘핫 플레이스’는 단연 서울동부지검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와 ‘이전 정부의 특권층 비리’라고 대통령이 직접 규정한 무혐의 종결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성폭력 사건’)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정부 기관인 검찰 조직과 임시 행정 기구인 검찰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이 한 건물에 동거하는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이 1년째 이어지고 있다. 여기다 진격의 동부지검이 야심 차게 청구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 사전구속영장을 동부지법 영장전담판사가 26일 기각했다. 그 결정문에는 정치적 견해가 담겨 있어 사법부에 대한 국민 불신에 기름을 부었다.     한 검찰 간부는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정의 실현이라는 목적은 같은데 두 사건을 겨냥한 칼날은 서로 다른 진영을 노리고 있다”며 “이런 형국에 일선 법원의 신진 세력까지 목소리를 보태면서 동부의 상황이 사법 시스템 균열상의 축소판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태국으로 떠나려다 출국이 제지된 김학의 전 차관이 지난 23일 새벽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귀가하고 있다. [JTBC 캡처] 지난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서울동부지검 청사는 뜻밖에 한산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금요일 오후, 시간은 햇살과 노는 듯 느릿느릿 흘렀다. 불문곡직하고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한찬식 서울동부지검장을 면담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바깥에 일이 있어서 좀 일찍 퇴청했다”고 말했다. 이번엔 김학의(63·사법연수원 14기) 전 차관의 부인 S씨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 뜻밖에 받는다. 건강부터 물었다.   희귀병을 앓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남편 사건 터지고 이듬해인) 2014년부터 희귀성 난치병이 생겨서 스테로이드제를 계속 먹고 있다. 이런 일을 당해보니 가족과 형제들이 모두 참 힘들다.”   문재인 대통령의 철저 수사 지시 다음날 진상조사 기한이 2개월 연장됐다. “신랑이 잘못한 거로 벌을 받으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특수강간이라는 더러운 누명을 씌우는 게 말이 되나. 공무원에게. 황교안(자유한국당 대표)하고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 죽이려고 왜 우리를 미끼로 쓰나. (자기들은) 천만년 권력 잡고 살 수 있을 것 같나 보죠.”   지금 남편은 어디에 있나. “서울에 없다. 전화 안되는 곳에 있다.”   그러나 웬걸? 이날 두 사건의 뇌관이 시차를 두고 연쇄 폭발했다. 저녁 뉴스엔 김은경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보도가 나왔다. 자정께는 김 전 차관의 인천공항을 통한 해외 출국 시도와 법무부와 진상조사단 파견 검사의 ‘긴급출국금지’ 조치를 통한 비행기 탑승 직전 출국 저지 소식이 뒤따랐다. 미국 마약수사국(DEA) 직원들이 마약밀매범을 체포할 때 등장하는 드라마 같은 장면이 인천공항에서 재연된 것이다. 이 출국 소동은 김학의 사건 재수사를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과거사위는 사흘 만에 재수사 권고를 내렸다.   출국 소동 직후 S씨에게 연락했다. 그는 “나도 병 치료 때문에 힘들고 불안한 데다 어차피 조사기한이 2개월 연장돼 장기전이 될 테니 태국의 친구 집에 가서 2주 정도라도 숨 좀 돌리고 오라고 내가 남편 등을 떠밀었다”며 “나중에 도주했다는 소리 듣기 싫어 안 간다며 산사에 있던 사람(김학의)에게 잘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모자를 눌러 쓰고 목도리도 두르고 나갔는데 이름이 특이해 발견된 것 같다”며 “도주하려면 4월 초 돌아오는 왕복 티켓을 끊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김 전 차관 부인은 “공항에서 잘 가라고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출국을 제지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차를 돌려서 다시 갔다”고 하더니 갑자기 “신랑 바꿔드릴까요”라고 묻는다. 깜짝 놀라 우물쭈물하는데 예전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대전고검장에서 법무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던 2013년 3월 이후 6년 만의 통화는 엉겁결에 이뤄졌다.   인천공항 사건으로 깜짝 놀랐다. “참으로 면목이 없다. 나는 조국에 뼈를 묻을 거다.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뭐 먹고 사나. 미리 출국금지돼 있는지 확인했는데 안 돼 있어서 공항에 나갔다. 밤 12시 20분 이륙하는 태국행 비행기표를 산 뒤 오후 11시께 출국심사대를 통과, 출국장에서 기다렸다. 출발 10분 전 비행기에 타려고 하는데 공항 직원들이 문 앞에 와서 ‘검사가 처분을 내려 못 나간다’고 하더라. 어느 검사냐고 물었더니 답은 안 하고 출입국관리 규정을 갖고 와서 보여줬다. 출입국관리법 4조에 ‘출국 심사할 때에 거부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출국심사대를 통과한 후의 긴급출금은 듣도 보도 못했다. 이미 출국 심사를 마쳤다고 했더니 ‘이의 신청을 하라’고 했다. 비행기 떠나가는데 무슨 이의신청이냐고 따지자 ‘협조해 달라. 지금 떠나면 진짜 도피다’라고 하더라. 비행기도 딜레이(출발 지연)시켜 놨다고 하면서. 혹시 몰라서 비행기 다 가고 아무도 없는 111번 게이트의 사진을 찍어뒀다.”(※법무부는 “진상조사단 파견검사가 소식을 듣고 동부지검 사무실로 들어가 긴급출금요청서를 작성, 장관의 승인을 받아 적법하게 출금했다”고 설명.) 김학의 전 차관이 지난 22일 자정께 타고 가려 했던 태국 방콕행 비행기 출국장. 비행기가 출발한 직후에 현장을 찍어 문이 닫혀 있다. [김학의 일행 제공]   그 뒤엔 어떻게 됐나. “몇 시간 있다가 출국장·출국심사대 등으로 빠꾸(백)하는데 나갈 때보다 더 복잡한 절차를 거쳤다. 입국할 때는 간이신고하면 되는데 가방 다 뒤지고 면세점에서 물건 산 것 없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출국하려다 급한 일이 생겨 자발적으로 쓰는 출국취소 신청원을 주고는 작성하라고 했다. 강제로 출국 금지된 사람에게 무슨 신청서냐고 따졌다. 그래서 신청원 서류 자체에 펜으로 ‘X’(거부의사) 표시를 한 뒤 (일행에게) 사진을 찍어두라고 했다.”   요즘 심경이 어떤가. “집사람도 나도 힘들다는 표현 갖고는 모자라고, 살아 있는 송장이다. 사건은 2006~2008년 것이라고한다. 나도 빨리 수사로 전환되는 게 좋다. 진상조사단에서 수사와 무관한 인신공격성 설들이 너무 나온다.”   대통령이 사회 특권층 비리로 규정했다. “권력형 비리의 표본은 나하곤 거리가 먼 것 같다. 내 인생이 송두리째…. 내 인생에 좋은 건 하나도 없다.”   만나서 직접 인터뷰를 하는 건 어떤가. “수사에 집중해야 할 때라 곤란하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26일 법원의 영장기각으로 석방되고 있다. [뉴스1] 김학의 사건은 문 대통령이 지난 18일 ‘정의’ ‘특권층 비리’를 언급하며 철저 수사를 지시한 세 가지 사건 중 가장 폭발력이 크다. 장자연·버닝썬 사건과 달리 경찰과 검찰 수사 라인에 대한 청와대, 법무부·검찰 고위층의 수사 방해 의혹이 주요 수사 항목으로 추가됐기 때문이다. 사건 당시의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곽상도 민정수석(현 한국당 의원)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는데, 실제로 25일 발표된 과거사위의 재수사 권고 내용엔 곽 의원 등 2명이 수사 대상에 추가됐다.   수사 대상이 된 당일 밤 곽 의원을 만나 심경을 물었더니 “아무리 내가 문다혜(대통령 딸)씨 가족 문제를 추적, 제기해 왔다지만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면서 “얼마 전 검찰 간부를 만났는데 ‘대통령 건 좀 살살하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재수사 권고장에 적시된 경찰 질책, 수사라인 인사조치 의혹 등에 대해 반박했다.   이전의 특수강간은 빠지고 뇌물 혐의로만 재수사 권고된 김 전 차관 수사는 어찌 될까. “과거 수사 때 딱 성폭행 혐의만 보고 돈거래를 입증하기 위한 계좌추적, 압수수색을 안 했는데 그게 잘못이다. 내가 알기에 동영상 CD의 대화 내용을 보면 성폭행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굳이 성폭행만 수사했다면 미리 프레임을 잡고 의도적으로 오조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성접대와 돈 거래 쪽에 포커스를 맞출 가능성이 크다.”(당시 수사 관계자)   동부지검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는 김은경 전 장관 영장 기각으로 일단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동부지검이 왜 저러나 궁금해 대검 간부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왔다. “어느 검찰청에 보내도 비슷할 걸. 이제 검사들은 어떤 사건을 맡더라도 5년 뒤엔 반드시 리뷰(재수사) 당할 것을 알고 있고 거기에 대비해야 하거든.”   조강수 논설위원

    2019.03.28 01:30

  • "2000만원 경찰 안줬다···버닝썬 대표, 승리 지키려고 조작"

     ━  버닝썬 연루 전직 경찰 강모씨 단독 인터뷰   폭행사건에 이어 고객에게 마약을 판매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경찰 수사를 받는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이 지난달 16일 영업 중단을 결정했다. 직원들이 다음날 짐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강남의 유명 클럽 ‘버닝썬’ 사건 수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손님 김상교(29)씨와 직원 간 폭행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이 사건은 현재 ▶ ‘물뽕’(GHB) 판매 등 마약 투약 ▶아이돌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30·본명 이승현)와 유리홀딩스(라멘체인점 법인)가 연루된 성접대 의혹 ▶클럽과 경찰 간 유착 및 뇌물수수 등으로 확대된 상태다. 서울지방경찰청은 광역수사대 1·2계와 마약수사계, 사이버수사대를 총동원해 실체 규명을 하고 있다. 일단 경찰은 버닝썬 이문호(29) 공동대표의 마약 투약 혐의를 확인하고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지난달 27일엔 승리를 소환조사했고 2017년 2월 베트남에서 ‘해피 벌룬’으로 불리는 환각 물질을 흡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 이중 경찰관 유착 의혹 부분 수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해 7월 7일 발생한 미성년자 출입 사건을 무마하는 과정에서 전직 경찰 강모씨(44)씨가 버닝썬 공동대표 이성현(46)씨로부터 2000만원을 받아 이중 230만원을 강남서 경찰관 2명에게 줬다는 게 사안의 골자다. 경찰은 지난달 13일 당시 출동했던 경찰관과 해당 사건 담당 형사의 동의를 받아 계좌 추적을 벌였고 이를 근거로 지난 6일 강씨와 이 대표를 동시에 소환해 조사했다.   두 사람의 진술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5일 소환조사 때는 돈을 전달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28일 2차 조사 땐 “현금 2000만원을 강씨의 중고차사업 동업자인 이모씨를 통해 줬지만 그 돈 중 일부가 경찰관들에 전달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 대표가 진술을 번복한 건 경찰에서 마약 조사 동의를 거부한 날이었다. 이에 강씨는 경찰과 이성현 대표간에 모종의 딜이 있었던 것이라고 ‘플리바기닝’ 의혹을 제기했다. 이 대표는 6일 조사에선 "강씨에게 돈을 직접 줬다"고 또 다시 말을 바꿨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마포의 한 사무실. 청·장년 6명이 줄줄이 들어온다. 그중 다부진 체격의 인물은 행색이 남루했고 얼굴은 초췌했다. 강씨는 “요새 며칠째 잠을 잘 자지 못하여서 몰골이 말이 아니다”라고 낮게 말했다. 그는 10여년 전 경찰을 떠나 현재는 수입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 말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경찰 로비 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해 풀려났다. 그는 “2000만원 로비 의혹은 이성현 대표 등 3명이 공모, ‘승리’를 보호하고 금품을 받아낼 목적으로 지어낸 얘기”라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특히 “돈이 오가는 과정에 등장하는 관련자들의 진술이 계속 번복되고 있어 진술의 신빙성에 의심이 간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 당사자가 인터뷰에 응한 건 처음이다. 강씨 외 일행은 A화장품 회사 이사인 강씨 친형 등이었다.   지난해 7월 7일 발생한 미성년자 출입 건 무마 조로 버닝썬 이성현 대표에게서 현금 2000만원을 전달받은 적 있나. “전혀 없다. 2000만원은 나의 외제중고차 사업 동업자 이모씨가 조작한 금액이다. 원래 내가 이씨에게 개인적 빚이 있는데 버닝썬 사건이 터지자 내 친형을 압박해 돈을 빨리 받으려고 꾸민 것이다. 실제로 이씨는 ‘미성년자 출입 건이 문제가 될 경우 버닝썬에서 판촉 행사를 한 차례 열었던 A화장품 회사가 광고계약을 맺은 유명 아이돌그룹 측에 거액의 위약금을 물을 수 있다’고 압박했다고 한다. 결국 형은 이씨에게 3억원을 줬다. 이 과정에서 이씨와 이성현 대표 등 세명이 협력한 것 같다.”   근거가 뭔가. “이 대표가 지난달 A화장품 회사 대표와 친형에게 전화를 걸어 ‘미성년자 출입 무마 건이 알려지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고 알렸다. 그런데 그 전화는 그달 16일 이 대표 등 3명이 서울 옥수동 커피숍에 같이 모여서 건 것이다. 그런 상황이 그대로 녹화된 CCTV를 확보해 갖고 있다.”   2000만원과 관련해 공여자·전달책 등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는데. “이씨는 처음 경찰 조사 땐 ‘지난해 8월 이성현 대표에게서 받은 2000만원 중 일부를 강씨와 함께 차에서 경찰관 2명(팀장 200만원, 수사관 30만원)에게 줬다’고 진술했다. 그러다 이달 초 조사에선 ‘이 대표를 만난 적은 있지만 돈거래는 없었다. 2000만원이 100만, 500만, 500만, 300만, 340만원 등 분산 입금된 5개 계좌 중에도 경찰 명의는 전무하다’고 말을 바꿨다. (※현재 경찰은 차명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특히 이씨는 이 대표가 자신에게 해외 도피를 주문하며 도피 자금으로 1억 30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는 사실도 경찰에서 털어놨다.”   해외에 나가달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 “미성년자 출입 무마 건으로 이씨는 이 대표도 동시에 압박했다. 이 대표는 승리를 보호하고 르메르디앙서울 호텔 쪽으로 불똥이 튀지 않게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고 한다. 그것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1억 3000만원 중 8000만원은 전달책인 버닝썬 직원 노모씨가 중간에서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 노씨는 이 건으로 긴급체포됐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곧 풀려났다.”   버닝썬 건과 관련해 누구 부탁으로 경찰과 접촉했나. “승리의 고향 후배인 최모씨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7월 7일 새벽에 ‘문제가 생겼으니 알아봐 달라’는 카톡 문자를 보냈다. 그는 버닝썬의 MD(머천다이저)로, 아오리라멘 체인점을 두어개 운영한다. 승리의 측근이다. 그 문자를 다음날 확인했다. 당시 나는 A화장품의 판촉 행사를 대행하고 있었다. 그달 25일에도 버닝썬 내 판촉 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강남서 경찰관에게 연락해 사건번호와 담당 부서 등을 알았다. 일주일 뒤 담당 형사를 찾아가 만났는데 판촉 행사 진행에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일은 저절로 해결됐다. 설사 청탁을 했다 치자. 미성년자 출입 사건 기록을 삭제하고 그 미성년자를 구급차에 태운 뒤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방식으로 사건을 무마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10년 전 그만둔 전직 경찰이 현직 경찰에게 230만원 주고 해결할 사안인가.” 버닝썬의 경영진 상황이 나타나 있는 법인 등기부등본. 승리와 승리 어머니 내용도 보인다. 인터넷 캡쳐   경찰은 단서가 있으면 수사한다. “수사의 방식이 문제다. 내 경우에도 제보자→공여자→나를 조사해야 하는데 제보자·공여자 조사 없이 나부터 긴급체포했다. 주요 사건일수록 법의 테두리 안에서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버닝썬이 지난해 2월 개장 이후 1년여간 성폭력·마약·폭행·납치감금까지 120여건의 112신고가 접수됐는데 조사조차 안 되고 기록도 없이 유야무야됐다. 그 뒤에 누가 있는지 등 본질적인 것을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되묻고 싶다.”   이에 대해 서울경찰청 광수대 관계자는 “이성현 대표의 2000만원 관련 진술 번복은 마약 조사를 안 하는 조건으로 플리바기닝한 게 전혀 아니다”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성현 대표 측 관계자도 “경찰이 조사중인 사안인만큼 수사에 성실하게 임해 진실이 밝혀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씨는 6일 오전 서울경찰청 광수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다시 들어가 조사를 받았다. 그에겐 영장이 재신청될 가능성이 있다. ‘민생 사건 종합 세트’ 같은 버닝썬 사건은 경찰 수사 능력의 신뢰 여부에 대한 또 하나의 시험대 성격이 짙다.   조강수 논설위원

    2019.03.07 00:03

  • "자랑스럽진 않아도 부끄럽지는 않게 살겠다"

     ━  스카이 캐슬 그 이후 … 검사 양성소의 하루   최근 종영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에는 서울 법대→사시 최연소 합격→차장검사→명문 사립대 로스쿨 교수로 상승한 세탁소집 아들이 나온다. 그는 자기 가정을 케네디 가문처럼 만들기를 소망한다. 두 자녀에게 계급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야 한다며 의대·법대에 가라고 몰아붙인다. 좋은 대학에 간다고 경쟁이 종결되나? 아니다. 또 다른 캐슬이 기다리고 있다. 10개월의 교육을 마치고 다음달 초 전국 일선청에 배치되는 신임 검사 68명도 새 출발선에 섰다. 이중 누군가는 검찰총장이 되고 누군가는 평생 검사로 살것이다. 어떤 이는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 사법 농단 사건과 법란(法亂), 적폐 수사와 검찰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전히 검사들은 배출된다. 그 원점을 찾아가 검사의 초심을 들여다봤다.     지난 14일 오후 소병철 법무연수원 석좌교수가 경기도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에서 신임 검사들을 상대로 검사의 자세와 할 일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주제는 ‘검사는 무엇으로 살고 어디에 서 있는가’이다. [우상조 기자]       지난 14일 오전 8시께 강남역 5번 출구 앞.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으로 가는 통근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옆자리에 카이스트(전기전자과)를 거쳐 고려대 로스쿨을 나온 이영준(31·변호사시험 4회) 신임 검사가 앉았다. 울산이 고향인 그는 "사당역 근처에 살며 자취 생활 8년째로 접어든다"고 말했다.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입시 코디의 도움을 받은 적 있나   "자라면서 그런 코디 구경도 못했다. 지방은 교육열이 약해서..." -어떤 검사가 되고 싶은가 "소소한 정의를 실현하고 싶다. 음주운전, 폭행 등 민생 사건의 피해자·가해자에게 적절한 처분을 내리는 것이다. 지난해 3개월간 검찰청 실무 수습을 하며 내 처분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음을 알고 책임감을 절감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교육이 뭐였느냐고 묻자 주저없이 "롤플레잉 조사"라고 말했다.  법무연수원 검사교수에 피의자 역할을 맡긴 뒤 신임 검사가 2시간 내에 신속·정확하게 조사하는 방법을 실습을 통해 익히는 것이다. 일단 6시간 동안 실제 사건 기록 내용을 파악하고 추궁할 핵심 포인트를 메모로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 원래 조사 역량 강화를 위해 도입했는데 신임 검사에게 피의자 역할도 맡겨보니 그 고충을 알게 돼 인권 감수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됐단다.     나는 직접 피의자 역할을 맡아 조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오후 2시, 임시로 꾸민 검사실. 경찰대를 나와 경찰로 근무하다 로스쿨에 간 강정은(36·여) 신임 검사가 컴퓨터 앞에 앉더니 나를 향한 피의자 신문에 돌입했다. 강 검사는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직업 등을 차례로 묻더니 피의자의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참여조력권'을 고지했다. 대상 사건은 강남에서 10억원대를 투자해 포장마차를 공동 운영해온 부부간 다툼이었다. 원래 포차는 남편 명의였는데 20대 여성과 외도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2011년 12월부터 3개월 사이 명의가 세 차례 바뀌었다. 아내 단독 명의→50대 50→아내와 남편 지분 80대 20의 차례로 변경됐다. 남편은 관련 서류에 자필 서명이 있는 50대 50 명의 변경을 제외한 나머지 두 차례 명의 변경은 아내가 임대차 계약서, 동업계약서 등을 위조한 것이라며 2014년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남편이 무고한 혐의가 짙다며 수사에 나섰다.     법무연수원에 임시로 마련된 검사실에서 조강수 논설위원이 롤플레잉 체험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피의자 조00씨. 80대 20 명의 변경 때 피의자가 다른 용도로 발급받은 인감증명서를 아내가 몰래 가져가 사용했다고 주장했지요. 동사무소에 확인해 보니 이틀 전 직접 인감증명서를 뗀 기록이 있어요. 어찌된 거죠?   "그럴 리가 없는데요." -피의자가 아내 지분이 80%로 돼 있는 걸 알고 있었다는 대화 녹취록은 물론, 심지어 지분 90%를 아내에게 준다고 말한 녹취록도 우리가 갖고 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완강히 부인하자 강 검사가 인감증명서 발급서류와 녹취록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숨이 턱~ 막혔다. 이때 양복 안 주머니에 둔 휴대폰이 울렸다. 받으려 하자 "조사 끝나면 시간 줄 테니 끄세요"라는 낮은 목소리가 귓전을 찔렀다. 얼른 집어넣고 무고를 인정한다고 자복하고 나서야 조사가 끝났다. 실제로 1시간여동안 추궁을 당해보니 '극한 조사'였다. 예리한 다그침에 내가 취재 기자인지, 아내 무고범인지 헛갈렸다. 잠시 후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강 검사는 "1주일에 한건씩, 그간 9~10건의 롤플레잉 사건 조사를 실습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자랑스럽지는 않아도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참 어려운데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검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박지영 검사교수(부장검사)는 "어제 신임 검사 2명에게 피의자 조사를 4시간 받았는데 끝나고 나니 속이 메슥메슥했다"며 "검사 책상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의 앞과 뒤는 천양지차로, 피의자가 돼 모니터 뒷면을 절박하게 바라보는 심정을 경험해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조은석 법무연수원장은 "사건이 오래 지속되면 관련자들이 겪는 고통이 심각하다"며 "진정한 인권 보호는 검찰이 사건 관계자를 빨리 소환해 정확하게 조사하고 신속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인데 지난해 롤플레잉 조사를 처음 도입했더니 성과가 좋아 최근 검찰 수사관 교육에도 포함시켰다"고 소개했다.   법무연수원에서 교육 받고 있는 신임 검사들. 왼쪽부터 문승철, 김시현, 정영지, 최건호 검사. [우상조 기자]       낮 12시. 출신 고교·대학·로스쿨이 각기 다른 4명의 신임 검사를 만났다. 변시 4회 문승철(31·부산대 로스쿨), 변시 7회 김시현(34·여·서강대 로스쿨), 정영지(30·여·고려대 로스쿨), 최건호(30·서울대 로스쿨)검사였다. 종합일간지 기자를 지낸 김 검사는 "일반인의 법 감정과 법조계의 기준 사이에 괴리감이 큰 것 같다"고 우려했다. 미인대회 입상자(미스 유니버시티 인기상) 인 정 검사는 선교사인 친척을 따라 필리핀으로 유학가는 바람에 검정고시로 로스쿨에 진학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안양지청 실무 수습 때 보이스피싱용 대포 통장 유통 조직원 25명을 검거해 이중 22명을 기소하고 3명을 지명수배하는 성과를 올렸다.   -어떻게 수사했나 "애초엔 대포 통장 하나를 개설한 94년생 피의자를 검거했는데 집요하게 추적, 주거지 압수수색에서 통장 10개를 발견했다. 또 휴대폰 포렌식 등을 통해 유령회사를 40여개 만든 단서도 확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했다."   -실무 수습 기간중 기억나는 일은   "일용직 청소부 아주머니가 대포 통장 대여 혐의로 송치된 사건을 검토한 후 선배 검사를 설득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엄벌이 원칙이었지만 딸을 혼자 키우는 미혼모에 수술비 마련을 위해 그랬던 점을 참작했다.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형사처럼 인간적으로 고민한 순간이었다. 아주머니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고 검사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신임 검사들은 이날 이찬희 신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소병철 법무연수원 석좌교수의 강의도 들었다. 이 회장은 "검사에게 중요한 건 수사 능력보다 인권의 수호자라는 원래의 가치"라면서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검사가 마약·조폭 잡범들까지 수사하며 경찰화됐으나 이젠 검사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소 석좌교수는 '검사로서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는 "판·검사는 중립성이 생명이며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중립을 지켜야 하고 적어도 중립적으로 보여져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나하고 같은 편이냐 아니냐가 가장 중요한 잣대인 정치의 세계와는 달라야 한다"고 주문했다.   취재를 마친 뒤 분당선을 타고 귀경하던 중 박지영 검사교수가 들려준 남편(고범석 전 사법연수원 교수)의 퇴임식 장면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난 12일 퇴임식에서 남편이 초임 판사 때 퇴임 부장판사가 선물한 '작고 낡은 자'를 부임지마다 갖고 다닌 사연을 얘기하는 데 눈물이 났다.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눈금과 똑같은 기준을 갖고 있는 자를 보면서 스스로를 담금질했다는 대목에서다. 자는 변하지 않는 원칙과 기준인데 요즘 법조인으로서 더욱 그 의미를 곱씹게 된다."     내가 만난 검사들의 초심은 맑아 보였다. 문제는 사욕과, 불순한 환경을 만나 오염되고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디 '검사가 된 것 자체가 성공'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소소한 정의와 원칙을 지켜줬으면 한다. '검사캐슬'까지 시청해야 한다면 서글플 것 같아서다.     조강수 논설위원

    2019.02.21 00:03

  • '손혜원 의혹'의 그곳···"창성장 예약 꽉 차, 웃어야 할지"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손혜원 의혹’ 게스트하우스서 1박 2일   지난 23일 오후 손혜원 무소속 의원의 현지 기자회견을 보려고 몰려든 인파로 창성장 앞 길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목포=조강수 기자] 적산(敵産)가옥. 네 글자에는 일본제국주의에 시달리며 살았던 민간인들의 아픈 역사와 기억이 담겨 있다. 시간이 그 가옥에 숨죽이고 숨어서 발효를 계속해왔다. 그러면서 어엿하게 존재가치를 입증한다.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것이라고 다 아름다운 건 아니다. 조선총독부로 쓰였던 중앙청이나 경찰 고문실 등은 징그럽지 않은가. 일제시대 때 목포의 일본인 거주지역인 남촌과 달리, 조선인들이 주로 살았다는 ‘북촌(北村)’의 적산가옥들 때문에 소용돌이에 휩싸인 만호동·유달동 일대를 가 봤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면(面) 단위 전체가 통째로 ‘근대역사문화공간(문화재 지구)’으로 지정되면서 감춰졌던 사실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문화공간 지정 1년여전부터 건물 수십채를 조카·남편 재단 등의 명의로 매입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관에 전시된 일제 시대 목포5거리 모습. 적산가옥들이 즐비하다.[목포=조강수 기자]   이른바 ‘손혜원 타운’ 의 원점에 게스트하우스 ‘창성장’과 길 건너 나전칠기박물관 건립 예정 부지, ‘손소영 카페’가 있다. 창성장과 카페를 두고는 손 의원이 매입 자금을 대 조카들에게 증여한 것인지, 차명 보유한 것인지 진실공방이 한창이다. 창성장의 경우 건물 매입 시점이 이 지역의 등록문화재 지정 1년여전인 2017년 6월이라서 투기 의혹이 제기됐다. 공교롭게도 게스트하우스 정식 오픈일(작년 8월 10일)이 지정 고시(작년 8월 6일) 나흘 뒤인 것으로 최근 드러나면서 의혹이 커지고 있다.   “아까 왔던 의사 부부가 창성장에서 잔다던데요. 오늘 목포에 왔는데 12만원을 내고 별채를 예약해서 잔다고 분명히 얘기했어요. 별채는 적산가옥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어 다른 방보다 더 비싸답니다.”   지난 23일 저녁 목포시 구도심의 한 음식점 사장과 대화를 나누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아까 오후에 찾아갔을 때만 해도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인적조차 없었는데 어찌된 일이지? 의심을 하면서도 1%의 가능성이 있다면 뚫어봐야 하는 게 도리다. 후배 기자들의 도움으로 114에 확인해보니 전화번호 등록이 안 돼 있다. 창성장 간판을 찍은 사진에서 전화번호를 알아내 걸었다. 이번엔 주인도 종업원도 아닌, 지나가던 투숙객이 받았다가 끊고는 감감무소식. 수소문 끝에 네이버 블로그(목포창성장)나 카카오톡 친구맺기를 한뒤 댓글을 남기면 예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예약 접수를 하자 신기하게도 목포창성장님이 ‘몇 분이세요’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한 명이라고 답했더니 ‘농협 352-XXXX-XXXX-XX 채○○. 성함과 투숙일 (숙박비) 7만원이요. 현재 방 2개 남았어요’라는 문자가 다시 왔다. 아마도 여성 채씨는 창성장의 청년 소유주 3명 중 한 명인 듯했다. 30분 내로 가서 카드로 결제하면 안 되느냐고 하자 지금 4, 5호실이 남았는데 문의가 너무 많아 즉시 결제 여부를 결정한 후 연락달라고 했다. 곧바로 결제하고 4호실을 골랐다. 창성장에선 나이 지긋한 여성 분이 나와 안내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손 의원의 올케인 문모씨였다. 4호실은 침대방이었다. 화장실이 좁았고 철제 문이 옛날 감옥을 연상케 했다. 책상, 의자, 스탠드는 빈티지급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건물 전체를 둘러봤다. 붉은 색과 초록 색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건물 외벽은 전문 작가의 솜씨가 들어갔단다. 또 1, 2층마다 5개의 방이 있었는데 건축 구조가 독특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손님들도 4인 가족, 연인, 부부, 취재 기자 등으로 다양했다.   창성장 2층에서 바라본 풍경. 분재들과 객실 창문이 보인다. [목포=조강수 기자] 창성장은 리모델링할때부터 손소영 카페와 마찬가지로 손 의원의 손때가 많이 묻었다고 한다. 지난해 정식 오픈 때는 직접 와서 투숙객들과 민어회로 축하 파티를 하고 다음날 사진도 공유했다. 목포 창성장 블로그와 카카오톡을 담당하는 이모 실장도 손 의원 회사 직원 출신이다. 이실장에게 물었다.   창성장의 연원은.“원래 일제강점기에는 목조건물로 지어진 고급술집(‘요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밀실이 많은 구조다. 1960년대 초 한국인이 인수해 2층 여관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시멘트 재질로 바꿨다. 영업을 하다 장사가 안돼 10년정도 비어 둔 곳을 인수해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했다. 상호는 여관명을 그대로 쓰고 있다.”   이 실장은 “이달은 물론이고 다음달 중순까지도 예약이 거의 찼다”며 “이번 손 의원 투기 의혹 사건이 터진 후 약간 과장해서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할 수 있지만 솔직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분간이 안 간다”고 말했다.   24일 찾아간 손소영 카페 문에는 ‘임시휴무’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목포 손소영 카페 앞 게시판 풍경 [목포=조강수 기자]   목포의 시선은 엇갈렸다. 도심 재생의 불빛을 던진 정치인이라는 시선과 음습한 사익 추구자라는 비판적 시선이 공존했다. 창성장 입구 건물에서 40여년간 오토바이 수리점을 운영해왔다는 정성률(84) 할아버지는 손 의원을 두둔했다.   “구세주여. 목포시민들에게는. 창성장을 포함해 20년간 못 파는 집들 사서 리모델링해 근사하게 만든거여. 그걸 투기로 몰아선 안 되제잉. 우리가 국회의원 10번 찍어주고 대통령까지 만들었어도 목포에 공장 하나 지은 사람 있다요?” 지난 23일 정성률 할아버지(모자 쓴 이)가 "손혜원이 큰일을 햇다"고 얘기하고 있다. [목포=조강수 기자]   지난 23일 손혜원 의원 기자회견을 앞두고 시민단체 활빈단 회원이 플래카드를 들고 기습 1인 시위를 벌였다. 서울 마포에서 왔다는 시위자에게 주민들은 "여기는 목포여. 시위는 마포 가서 해"라고 말했다. [목포=조강수 기자] 인근 공업사 사장은 입장이 달랐다. “작년 국정감사 때 선동렬 전 야구대표팀 감독에게 ‘출근도 안 하고 연봉 받는 거 아니냐’고 악담하는 걸 봤는데 너무하대잉. 부동산 투기 문제는 시민운동가라면 모르나 국회의원이 할 일은 아니제. 처음부터 솔직했어야 헌디. 거짓말을 숨기려다보니 일이 커진 것 아니라요?”   24일 오후 손 의원의 이른바 ‘헛간 기자회견’이 열렸던 나전칠기박물관 건립 부지를 하룻만에 다시 찾았다. 텅 빈 목조 건물이라 먼지가 풀풀 났다. 손 의원은 23일 회견에서 “제대로 박물관을 만들려면 500평 규모는 돼야 하는데 현재 300평 정도 산 상태에서 더 이상 추진할 힘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투기·차명 의혹, 이해충돌 회피 위반 등에 대해선 강력 부인했다. 전남종합예술인협회 정형영(50) 대외협력이사는 “이 사건의 본질은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피감기관에 정책 대안 등을 제시하면서 뒤로 부동산을 여러 채 샀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견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나직히 말했다. “검찰 수사에 대비해 일찌감치 한 자락 깔고 가려는 전략적 회견 같다. 그런데 도대체 손혜원의 저 근거없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거지?”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나전칠기박물관을 지으려고 남편 재단 명의로 매입한 건물의 입구. 좁은 골목을 지나야 내부가 나온다. [목포=조강수 기자] 신년 기자회견 때 근거없는 정책 추진의 자신감의 출처를 물었던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은 답을 못했지만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손 의원은 어땠을까. 혹시 그의 자신감의 근거에 ‘대통령을 만들어 낸 것도 나고 대한민국 최고의 브랜드 네이머도 나’라는 자부심 외에 대통령 가족과의 친분관계가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적산가옥에는 죄를 묻기가 어렵다. 인간의 은밀한 욕망이 문제다. KTX를 타고 올라오면서 스마트폰으로 재생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폐부를 더 깊숙이 파고 들었다. 그럴수록 ‘다스는 누구 것이냐’ 처럼 ‘창성장은 진짜 누구의 것이냐’는 의문도 스멀스멀 불어났다.   조강수 논설위원

    2019.01.28 00:03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김태우 "감찰한다며 여자관계 캐서 협박···부끄러웠다"

     ━  성폭력 ‘미투’에 이은 공무원 미투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는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 동영상이 공개됐다. [뉴스1] 2018년은 ‘미투(#MeToo)운동’의 해였다. 1월말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시발점으로, 성(性) 권력의 어두운 그늘이 통째로 드러났고 각계의 권력자들이 줄줄이 처벌됐다. 지난 연말 시작된 김태우의 폭로와 신재민의 동조는 미투의 공무원판 성격이 짙다. 여성들의 미투가 성추행·성폭행 등의 사적 피해에 대한 항거였다면 이른바 ‘공투’는 국가 권력의 운용, 즉 공권력의 불법 또는 부조리에 대한 폭로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특히 미투에선 “~를 당했다”는 폭로가 주류인 데서 보듯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지만 공투에서 실행자인 공무원(5~6급)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그러기에 “내가 겪었는데 부끄러웠다”는 참회록 형태를 띠고 있다.    “김태우요? 검찰 전체에서 계좌 추적의 최고 전문가죠. 예전 대선자금 수사와 삼성 특검 수사 때 계좌추적을 총괄했던 이광호 수사관의 수제자입니다. 계좌추적을 잘 하려면 첫째 창의력, 둘째 사명감이 필수 자질입니다. 수사관이 하루에 들여다보는 돈 거래가 수천건입니다. 그 중에서 범죄 혐의를 발견하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또 예전에 계좌추적을 하려면 은행에 가서 마이크로 필림을 샅샅이 뒤져야 했어요. 문서 보관 창고에 먼지가 많아서 툭하면 감기 걸리고 눈도 나빠져요. 검사들은 출세해서 좋지만 수사관들은 힘들죠. 사명감없이는 못합니다.”   대검 중수부와 범죄정보실에서 김태우 수사관을 부하직원으로 데리고 썼다는 검찰 간부 출신 K변호사는 지난 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수사관은 대검 중수부와 범죄정보실 두 군데서 대부분 근무한 베테랑이라고 평가하면서다.    김 수사관이 왜 폭로했다고 보나.  “내가 일할 땐 범죄 정보 담당 직원에게 불법적인 일만 하지 말라고 가이드라인만 주고 어디서 누굴 만나는지, 뭘 하는지 묻지 않았다. 정보를 얻으려면 궂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국 민정수석 등이 진영 논리로 첩보와 동향 보고서를 불공정하게 다루고 김 수사관이 바라보라는 달은 안 보고 손가락에 때가 묻었다며 감찰을 시키니 20년 공무원 인생을 걸고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 아니겠나. 그는 인사 때마다 지방과 서울 근무를 왔다갔다하는 검사들과도 다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인을 어떻게 정리했는지를 잘 아는데 공무원으로서의 자긍심을 무너뜨리니 반발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나.” 청와대 특감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한 김태우 수사관. [장진영 기자]   김 수사관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를 비교한다면.“둘 다 자기 분야에서 엘리트였다. 또 국가 권력의 운용,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부당성을 폭로했다. 상부의 불법적 감찰 지시와 청와대 비서실의 부조리한 정책 개입 및 압력 의혹 등에 대해서다. 하지만 폭로 이후 행보가 확연히 다르다. 김 수사관은 청와대와 대결 의지를 불태우는 반면 신씨는 자살 소동 후 입원중이다. ‘죽으면 믿겠지’라는 심정이었다고는 하나 2015년 뇌물 리스트를 남기고 숨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건에서 보듯 당사자가 숨지면 진실 규명은 더 어려워진다.”   같은 날 자정께 김 수사관과 통화를 했다.   신재민씨와는 아는 사인가.“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접점이 있다. 지난 5월 백복인 사장 연임을 막으라는 취지의 ‘KT&G 인사 개입 문건’의 유출자가 신씨임을 이번에 알고 깜짝 놀랐다. 사실 당시 청와대에서 민간업체인 KT&G 사장을 쫓아내라고 지시했다. 그걸 담은 기획재정부 내부 문건이 국회로 유출되자 민정수석실에서 우리를 보내 보복 감찰을 한 것이다. 그 때 우리가 신씨를 찾아냈어야 하는데 못 찾았다.”   청와대는 ‘정당한 감찰’이라고 하는데…“당시 민정 비서관실에서 감찰을 나갔다. 민정에선 공직자감찰을 하면 안된다. 거긴 민심 동향 및 분석을 하는 곳이다. 공직자 감찰은 반부패비서관실 특감반의 업무다. 당시 민정 비서관실에 요원이 2명 밖에 없어서 인원이 모자라자 날 데리고 갔다. 올해 초 과기정통부 감찰도 나갔다. 감사관과 부하 직원의 휴대폰을 털어오고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조사 후 두 명 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다른 부처 감사때는 여자 관계를 캐서 자백도 받았다. 정보유출 감찰한다면서 뒤졌다가 안 나오면 사생활 갖고 협박하는 비겁한 행위를 저도 했다. 그런 게 양심에 찔렸다. 부끄럽고 잘못된 일이었다. 내가 처음 윗사람에게 대든 게 민간업체인 공항철도 임직원의 비위건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였다. 대놓고 민간인 조사를 시켜 반발심이 생겼다. 제가 거부하니까 4개월 뒤 딴 사람 시켜서 조사했다. 지금 폭로하는 것은 제가 잘했다는 게 아니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직권남용의 주체는 그들(상부)이고 저는 도구로 쓰였다. 신재민씨가 부끄러웠다고 한 게 저하고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   과거 정권에서 그런 일탈이 없었나.“그동안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일해봤지만 이번처럼 폭압적으로 감찰한 적은 없었다. 예전에는 청와대 내부에서 정보가 새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감찰하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외부로 나가서 특수부 같이 압수수색도 하고 소환조사도 한다. 본인 동의서 달랑 한장 받는 영장 없는 압수수색이라서 더 나쁘다. 대통령 비서실 직제 7조에 특감반의 업무범위나 조사 방법이 다 나와 있다. 강제력에 의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관계만 파악해서 필요하면 수사기관에 이첩하라고 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 시절 만든 것이다. 휴대폰 포렌식하고 직접 불러서 조사하는 것은 해당 법령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검찰 수사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잘못을 꼽는다면.“민간 부분 첩보 중 폐기하지 않은 시멘트 업계 갑질 관련 보고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참고 자료로 이첩했다고 인정하지 않았나. 감찰 대상이 아닌 민간 기업 건이라서 이첩시켰다는 건 말이 안되는 얘기다. 자기들 논리대로라면 폐기시켰어야 한다. 민간인 사찰 중에 가장 나쁜 게 이첩이다. 하명 수사 아닌가.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아들 채용비리도 민간인 부분인데 금융감독원에 이첩시켰다고 했다. 그 자체가 직권남용의 범죄 혐의를 자백한 것이다. 그런 게 최소 6~7개 된다.”   국회에서 조국 민정수석이 방어를 잘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조 수석이 교수 출신이라 순수한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거짓이 많았다. 엄중 경고 했다는 데 저는 경고 받은 적 없다. 오히려 회식 자리에서 반부패비서관이 실적이 많다며 한 얘기가 있다. ‘우병우한테 쫓겨난 분을 풀라. 원없이 일해라’라고 말했다. 첩보와 동향 보고 합쳐서 130건 썼고 그중 4건만 킬 당했다. 97%가 채택됐다. 대개 민정수석실까지 다 보고됐다.”   신 전 사무관이 입원해 있는 분당서울대 병원 81병동 출입구. [조강수 기자] 7일 저녁 고려대 인터넷커뮤니티 ‘고파스’에 공고가 하나 떴다. “신재민 교우님의 빠른 쾌유와 정의로운 행동을 응원하기 위해 불꽃놀이 퍼포먼스 행사를 연다”는 거였다. 정작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주최측에 연락해 보니 “반대하는 학우들이 있어서 취소한 걸로 안다”고 했다. 신씨의 폭로를 두고 정의로운 행동이라며 지지하는 측과 경솔한 폭로라며 비난하는 측이 팽팽히 맞서는 현실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신씨가 지난 3일부터 입원해 있는 분당서울대병원 81병동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패엔 정신건강의학과 검사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관악서 피해자보호 담당자는 “가족들은 조용하게 퇴원하길 원했으나 주치의가 신씨의 상태가 안 좋다며 입원 치료를 권유해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신씨는 세상을 보는 눈이 기성세대와 다른 ‘신종 공무원’으로, 정부의 KT&G 사장 교체 압박 및 적자국채 발행 압력 의혹을 폭로했다"며 "이 과정에서의 부조리와 청와대의 거짓말에 화가 많이 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검찰에 신씨에 대한 고발장을 들고 간 동료 사무관이 평소 신씨와 친했던 사이라서 충격을 크게 받았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이충재)은 8일 "신씨의 폭로는 개인적 일탈이 아닌 구조적 문제"라며 "제2, 제3의 신씨가 나타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주장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런 폭로는 투명사회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고통"이라며 "누구 말이 맞고 틀리냐의 문제보다 정직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들은 부조리, 부당한 것에 대한 잣대가 이전 세대보다 엄정하다"고 말했다. 이어 "감정대립사회, 분노사회에선 다툼이 발생했을 때 양쪽 다 치명적 피해를 보는 만큼 정부도 투명하고 포용하며 책임지는 자세로 비판의 목소리를 듣는 훈련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서를 써놓고 잠적했던 신재민 전 사무관이 지난 3일 발견된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L호텔.[조강수 기자] 신씨의 폭로대로 기재부가 하룻만에 1조원대 바이백을 취소하고 세수가 많은데도 적자 국채를 발행하려 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들이다. 청와대 행정관이 육군참모총장을 카페에서 만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것도 비정상이다. 현장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하다지만 국가 전체가 ‘주사(主事)의 나라’가 된 것은 아닌지 입맛이 씁쓸했다.   조강수 논설위원 

    2019.01.10 00:02

  • [논설위원이 간다] 김태우 "새누리 2명 사표 반발…환경부가 문건주며 말해"

     ━  감찰 결과 나온 날 울분 토한 김태우 수사관   서울동부지검 수사관들이 지난 26일 청와대 특별감찰반 사무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조국 민정수석 등을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서다. [연합뉴스] 나이 마흔셋, 두 아이의 아빠는 6급 공무원이다. 그가 ‘분노의 화염’을 내뿜고 있다. 권부의 중심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향해서다. 민정수석실 감찰반원이었던 그는 “나를 기용했던 상관들의 거짓말과 배신감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자신이 탈법 사찰의 실행자였고 민정수석실의 묵인 또는 지시가 있었다고 스스로 폭로했다. 그가 작성한 동향 및 첩보 보고 리스트에선 우윤근·이강래·김상균 등 여권 인사, 김학송 등 야권 인사는 물론 민간인의 이름도 튀어나왔다. 급기야 블랙리스트 의혹까지 불거졌다. 그가 돈키호테가 될지, 다윗이 될지는 미지수다. 타칭 ‘미꾸라지’ 김태우 검찰 수사관을 인터뷰해 그의 ‘유전자(DNA)’를 들여다봤다.   강추위가 몰아친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앞은 을씨년스러웠다. 이 별관엔 청와대의 이인걸 전 특감반장과 김태우 수사관 등 원대 복귀된 8명의 특감반원이 지난해 7월부터 근무했던 사무실이 있다. 전날 서울동부지검 수사팀이 찾아와 압수수색을 해 간 뒤라선지 주변이 어수선했다. 착잡한 마음으로 김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찰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성동 별관에서 압수수색을 하는 사이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창성동 별관 근무는 어떻게 했나.“매일 오전 7시 30분까지 출근해서 10시 무렵까지 전날 수집한 정보와 자료를 갖고 회의를 했다. 전체 회의는 1주일에 2~3회 했다. 전체회의 말고도 특별한 사안 있으면 데스크와 특감반장에게 개인 면담 보고했다. 10시부터 나가서 점심·저녁 약속하고 차 마시고 밤늦게까지 술 마시며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그 과정에서 당구 치고 볼링 치며 만나는 수사관도 있고 오후 4시부터 저녁 식사하는 사람도 있고 각자 나름대로 활동했다.” 관련기사사퇴 종용 '문건'대로 환경공단이사장 사표한국당 “인적 청산을 6급 한명이 다 했다니…주사 정권인가”대검, 김태우 해임 요청…김 “날 쓰레기로 만들려는 것”   지금까지 ‘미꾸라지’‘유전자’‘불순물’ 중에서 제일 격분했던 청와대 반응은 뭔가.“저는 미꾸라지라고 부른 것 등 때문에 분노한 게 아니다. 말하는 수준이 놀라웠지만 그걸로 화가 나진 않았다. 거짓말하는 것에 화가 났다. 저한테 다 보고받고 건건이 나한테 시키고 ‘야 이건 너무 좋다. 국정농단 냄새가 풀풀 나고 좋네’라고 하더니….”   이날 조간신문엔 문재인 정부 때의 블랙리스트 의혹이 대서특필돼 있었다.   특감반이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을 작성한 경위는.“청와대 특감반이 출범한 게 지난해 7월 4일이다. 당시 감찰 대상인 대한민국 전체 공공기관 330여곳의 사장(또는 이사장)·감사 등 660여명 리스트를 특감반 1980년생 막내 경감이 밤을 새워 가며 엑셀로 만들었다. ‘공공기관 알리오’(www.alio.go.kr) 사이트에 나오는 기획재정부 지정 공공기관 리스트를 참고해서다. 리스트 항목에 출신 성분과 잔여 임기, 특이 이력을 적었다. 맨 마지막 오른쪽 칸에 세평과 동향이 들어간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 전문위원 출신이다, 박근혜 대선 캠프 때 어디 있었다, 지난 정부 BH(청와대)에 있었다는 식이다. 그 작업을 막내도 하고 우리도 했다. 그 엑셀 자료를 갖고 특이 이력자 중에서 임기가 5~6개월 이상 남은 사람을 소팅하니(추려내니) 약 200명쯤 된 걸로 기억한다. 그들을 특감반원 8명이 정부 부처별로 나눠 맡은 뒤 동향을 파악해 보고했다. 이인걸 특감반장이 그걸 반부패비서관(박형철)에 보고했다. 당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가 일자리 만들어 줘야지’라는 말도 했다. ‘블랙리스트’란 제목의 명단을 만든 건 아니지만 이런 게 블랙리스트 아닌가.” 자유한국당 김용남 전 의원이 23일 '청와대 특별감찰반 첩보 이첩 목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런 일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만 청와대에 세 번째 파견 나온 것이고 나머지 특감반원 7명은 청와대 근무 초짜였다. 나는 이명박 정부 때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건, 박근혜 정부 때 정윤회 문건 파동 등 위험한 일 많이 봐서 사정을 잘 안다. 그런데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특감반 출범하자마자 사정을 잘 모를 때 이인걸 특감반장이 시킨 것이다. 이 일로 회의도 많이 했고, 심지어 이인걸 특감반장이 다른 사정기관에서 올린 공공기관장 세평 보고서를 같이 주면서 참고하라고 했다. 우리만 한 게 아니고 국무총리실도 한 것으로 안다. 총리실은 민간인 사찰로 덴 경험이 있지만 공공기관이라서 괜찮다고 봤을 수 있다. 하지만 감찰 대상이라 하더라도 목적이나 방법이 불순한 의도가 있는 리스트 작성이라면 잘못이다. 이건 찍어내기다, 찍어내기…. 임기가 남아 있으면 큰 비리가 아닌 이상 마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환경부가 작성을 시인한 산하기관 8곳 임원 동향 파악 문건은 그중 일부인가.“그렇다. 환경부는 ‘김 수사관이 달라고 요청해서 준 것이고 윗선에 보고 안 하고 줬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나는 지난해 1월 18일쯤 운영지원과장한테 해당 자료를 받은 거로 기억한다. 당시 감사관실에 첩보 확인차 갔다가 운영지원과에 들렀는데 대화 도중 우연히 내가 ‘산하 기관에 별일 없느냐’고 묻자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산하기관 임원의 동향 문건을 줬다. 그걸 주면서 ‘사표 잘 받고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 쪽 인사 2명이 반발한다’고 했다. 그 문건을 그대로 이인걸 특감반장에게 줬다. 버스 타고 상경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미리 사진 찍은 걸 텔레그램으로 전송도 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내가 담당하는 부처가 환경부·국토부·노동부·과기정통부 등 네 곳이다. 만약 환경부에 내가 먼저 자료를 요청했다면 다른 세 곳엔 왜 안 시켰겠나. 꼬리자르기 하는 것이다.”   민정수석실 윗선에선 어떻게 됐나.“그건 알 수 없다. 저흰 이인걸 특감반장에게 보고했다.”   청와대를 겨냥해 폭로하는 이유는 뭔가.“오늘 대검 감찰 결과에서 정보 반출 및 골프 접대 혐의로 해임의 중징계를 요청했기에 나는 곧 잘릴 것이다. 지금 잃을 게 없는 사람이다. 그동안 일하면서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친여당 쪽 인사에 대한 첩보보고서는 하나도 채택이 안 되고, 과거 정부 사람들 잘못을 보고하면 좋아하더라. 특감반 오자마자 쓴 게 김학송 전 도로공사 사장의 일감 몰아주기 건이다. 처음엔 당연히 야권 제보가 더 많았다. 여권은 근무하다 보니 첩보가 들어왔다. 작년에 처음 쓴 게 우윤근 주 러시아대사의 금품수수 의혹 건이었다. 이어 철도시설공단 김상균 이사장의 비위 의혹 건, 쫓겨나기 직전에는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의 납품 특혜 의혹 건과 A장관의 비위 건을 보고했다. A장관 건은 두세 번 썼다. 그러다 보니 내가 오랜 기간 미움을 받았고 표적감찰 당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여야 안 가리고 보고서를 썼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러진 않았다. 친여권 인사 관련 보고를 하더라도 건강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야지, 보고서 쓴 사람을 미워해서 되는가.”   A장관 건은 뭔가.“지금은 시기가 아닌 것 같다. 나중에 얘기하겠다.”   김 수사관은 특감반 출범 이후 생산한 첩보보고서 20건 중 18건을 혼자 썼다고 한다.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청와대 근무가 처음인 다른 특감반원들이 5~6개월 적응하는 동안 거의 혼자서 일했다. 그런데 부려먹을 만큼 부려먹고 억울한 일 당하자 보호는커녕 감찰 요청하고 내치는 모습에 배신감을 느꼈다. 또 이 일이 정당한가에 대한 고민, 첩보 활용을 선별적으로 하는 이중적 모습에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아이가 6세, 3세 둘이다. 참으려고 했지만 인간적 모멸감, 울분에다 더 이상 청와대의 행태가 묵과할 수 없다고 봐서 문제 제기에 나섰다.”   청와대 세 번 근무는 어떻게 가능했나.“이명박 정부 말기에 민정수석실에 들어가 1년 일했고 박근혜 정부 때 유임돼 1년 4개월을 더 근무했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부임하면서 오래된 사람 나가라고 해서 복귀했다. 이번 정부 출범 후 6급 수사관 전원에게 청와대 민정수석실 파견을 원하는 사람은 지원하라는 쪽지가 와서 응시했다. 박형철 반부패비서관과 이인걸 특감반장이 면접 보고 15분 뒤 전화해 같이 일하자고 해서 합류한 게 인연이 됐다.”   김 수사관이 지난해 7월 청와대 캐비닛 문건(※과거 정부의 국정농단 자료)을 발견한 당사자라는 설이 있다.“아니다. 캐비닛 문건의 존재도 모르다가 언론 보도가 난 뒤 알았다. 안종범 경제수석실 산하에서 캐비닛을 관리했던 기재부 출신 인사들을 나눠서 조사한 게 우리 감찰반원들이었다.”   청와대는 감찰 대상 아닌 첩보는 보고하지 말라고 했다는데.“한 번도 들은 적 없다. 이상한 것 갖고 오면 경고했다고 하는데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그럼 내가 경고를 수십번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어떤 공무원이 시키지도 않은 일 하겠나. 할까요 말까요 물었더니 해보라 해서 하는 거지. 반부패비서관실에서 테마를 정해줬다, 참여정부 인사의 비트코인 보유 상황, 지역 토착 비리, 불공정 갑질 등 갖고 오라고 했다. 테마에 맞춰서 민간부문이라도 시멘트 회사의 불공정 갑질에 대한 첩보 지시를 받고 생산했다. ”   범죄 정보 분야의 전문가로 꼽히는 검찰 고위직 출신 S변호사는 “통상 7급 검찰직으로 들어온 수사관은 범죄정보 직군에서 6급을 달고 청와대에 파견 가 5급으로 진급하는 게 꿈이라고 한다”며 “이런 승진 욕심 때문에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기도 하지만 윗사람이 싫어하는 정보는 절대 생산을 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건의 진실은 검찰 수사를 통해 가려지게 됐다. 석동현 변호사는 “향후 쟁점은 민간인 사찰 유무, 권력 실세의 비리 첩보 묵살 여부, 외교부 등 공무원들에 대한 위력 감찰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중 특별감찰반이 민간인 신분이자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된 박용호 전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장을 사찰했다는 의혹 등 민간인 사찰 건은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다.   이른바 ‘적폐 수사’에 올인해온 문무일 검찰총장의 검찰은 시험대에 올랐다. 살아있는 권력을 앞에 두고 있어서다. 이쯤 되면 ‘재판 거래’ 프레임에 갇혔다고 항변하는 수사대상 판사들처럼 청와대 사람들도 이젠 ‘사찰 프레임’에 갇혔다고 억울해하진 않을까.   조강수 논설위원

    2018.12.28 00:04

  •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몸 던지기 나흘 전 이재수 “나 살자고, 없는 걸 있다고 하나”

     ━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죽음 그 이후   박지만 EG회장이 지난 11일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안장식이 열린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을 찾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참 얇다. 살얼음같다. 작년 이맘때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방해 혐의로 수사를 받던 변창훈 검사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한 시간 앞두고 숨졌다. 지난주엔 세월호 참사 관련 사찰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영장 기각 나흘 뒤 살얼음을 깨고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검사의 죽음 뒤에는 친정인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었다. 군인의 갑작스런 죽음 뒤에도 수갑 채우기 등 인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지자 측근들은 대검 중앙수사부의 모욕적 조사가 원인이라며 검찰 개혁을 촉구했다. 현 정부가 출범 후 가장 먼저 검찰조직에 칼을 댔지만 똑같은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이재수의 삶과 죽음을 추적해봤다.   지난 10일 서울 일원동의 한 장례식장.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제복을 입은 채 영정 사진 속에 잠들어 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유족 동향을 사찰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지난 7일 투신해 숨진 그가 지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오후 9시께 갑자기 장례식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일본에 머물던 박지만 EG그룹 회장이 급거 귀국해 문상을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 회장은 고인과 고교·육사 동기다. 고인의 아들 이모(32·대기업 사원)씨가 정혼녀와 함께 박 회장을 찾아와 인사했다.   “결혼할 여자친구입니다.”(이씨)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장가를 갔어야지.”(박 회장)   “...네...”(이씨)   “아버지는 정말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한번도 화 내는 걸 본 적이 없어. 아버지가 자네 혼낸 적 없지?”(박 회장)   “네”   “그런 사람인데...이번에 대단한 사람인 줄 알게 됐어. 부하에 대한 사랑, 일에 대한 책임감이 크신 분이야.”(박 회장)   장례식장에 문상 온 이 전 사령관의 측근에게 고인과 박 회장이 어떤 사이인지 물었다.   “박지만 회장이 결혼할 때 이 장군이 함잡이를 했고 신원식 장군(전 합참 작전본부장)이 말잡이를 했다. 셋이 친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박지만을 육사에 보낼 때 따돌림 당할 것을 걱정해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에게 동반자를 선발해 같이 보내라고 했고 이 장군이 선발된 것으로 안다. 같은 소대에서 근무했다. 성품이 원만하고 착하다. 이 장군은 MB정부 때 육군본부 선발관리실장을 하다가 박근혜 사람이라고 해서 2군 인사처장으로 쫓겨났다. 그때 스스로 ‘유배간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너 박지만 친구 아니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40년 친구를 친구 아니라고 해서 별 하나 더 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묻더라. 김관진 합참의장이 국방부 장관에 발탁되면서 이 장군이 살아났다. 인사사령관을 거쳐 기무사령관이 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대장 진급은 떼논 당상이라고 했는데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의 견제로 박해를 받다가 결국 전역했다.”   지난 11일 서울 문정동 H오피스텔 13층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재수 전 사령관의 지인 사무실로, 나흘 전 투신하기 직전 방문한 곳이다. [조강수 기자] 다음날 이 전 사령관이 숨진 서울 송파구 문정동 H오피스텔을 찾았다. 암호화폐 사업을 한다는 13층 지인의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홋수는 아예 지워져 있었다. 그가 떨어진 건물 내 1층 로비를 바라보니 까마득했다. 창문을 통해 서울동부지법과 서울동부지검 건물이 뚜렷이 보였다. 길 하나에 사법기관을 두고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나, 안타까웠다.   이 전 사령관의 죽음을 둘러싸고 변호인 측은 과잉·압박 수사가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이 전 사령관 측 석동현 변호사를 만나 수사의 문제점을 물었다.   구속영장이 기각됐는데 숨졌다.“차라리 구속됐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옆에서 보니 몇 달 동안 살아도 산게 아니었다. 특히 자신이 구속되면 직권남용 혐의를 넘어서 정치관여죄까지 적용하려 들 것으로 걱정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청와대,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까지도 해가 미칠 지 모르는 상황에 대해 답답해했다.”   검찰 조사에 문제는 없었나.“먼저 검찰 조사가 두세번 이뤄지고 영장이 청구될 줄 알았는데 한번 조사후 청구돼서 놀랐다. 11월 23일 첫 소환조사 때 ‘다음엔 대통령 비서실장 또는 국가안보실장(김관진 전 장관) 등 윗선에 대해 물을 테니 준비해 오라’고 했다. 그래서 한두번 더 조사할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날(24일) 호의로 임시 거주할 집을 빌려준 지인과 그 회사에 전화해 압박을 했다. 회사 재산 빌려준 게 배임인 줄 알고는 있느냐며. 이사직은 있으나 사무실도 없는 EG에 대해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 과잉 수사의 조짐도 있었다. 영장실질심사 때 수갑 채운 것도 심각한 문제다. 군인에게 모욕감을 줬다. 수갑은 도주 우려와 난폭 행위 가능성 외엔 채우지 말도록 명문화 돼 있다. 김경수·안희정씨 등에겐 채우지 않았던 것과도 배치된다. 이 전 사령관은 실질심사 전날에도 집을 구하러 다녔다. 구속될텐데 집은 뭐하러 구했느냐고 묻자 ‘세종시에 있는 아내가 올라오면 머물데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변호사인 나도 울컥 했다.”   영장 기각을 예상 못했나.“전혀 못했다. 이 전 사령관과 그 부하 참모장의 실질심사가 나란히 잡혔다. 변론 전에 95%는 구속이라고 얘기하고 실질심사를 포기하자고 했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도 진술 을 거부하고 법원 재판 과정에서 진술을 하자고 권유했다. 그런데 그가 법에 있으니 실질심사를 하자고 했다. 앉아서 칼 맞기는 싫다며. 실질심사 시작되자마자 판사가 기무사가 왜 상황 파악만 하면 되지 사태를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등의 의무없는 일을 하느냐고 강하게 나무라길래 ‘다 틀렸다. 99% 발부구나’ 생각했다. 검찰이 기무사 서버에서 꺼낸 자료를 갖고 청와대, 국방부 장관에게 한 보고 중에 다의적인 보고를 범죄 혐의라며 30여분간 프리젠테이션 했다. 이어 내가 구두 변론에 나섰다. ‘기무사가 한 일은 사찰이라는 이름의 동향 보고보다 긍정적인 대민 업무가 더 많았다. 그래서 백서까지 만들었는데 그 중의 몇 가지 항목을 문제삼아 4년여가 지나 단죄하는 것이 정의인가. 이 법정 안에 당시 팽목항에 가본 분 있느냐. 당시 어디까지가 임무이고 어디까지가 사찰인지도 불분명했다.’ 마지막에 판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기각됐다. 그럼에도 몸을 던진 것은 저주의 굿판을 그만 끝내달라는 말없는 웅변 아닌가 싶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김관진 전 장관 측 인사는 검찰의 강압·별건 수사조짐이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 공안 2부가 국내의 여러 정보가 들어있는 기무사 서버와 경찰청 정보국을 압수수색해 수백건의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안다”며 “이 전 사령관은 ‘검찰은 모든 걸 알고 있는데 나는 아무 것도 아는게 없다’고 불안해 했다”고 전했다. 이어 “영장 기각으로 서울구치소에서 나온 날 만났는데 CCTV가 있다며 공개된 장소를 피해 건물 아래쪽에서 대화를 나눴다”며 “내가 살자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할수도 없고 없다고 하자니 주변 사람들이 다쳐 고민이라고 하더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기무사령관의 직속 상관은 대통령이라서 ‘위선을 불라’고 다그칠 사안이 아니며 영장 기각 후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영장을 재청구하지 않기로 결정했었다”며 “다만 수갑 착용 여부와 관련,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3차장 산하는 대부분 안 채우고 공안 수사를 지휘하는 2차장 산하는 대부분 채우는 식으로 운영돼 와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수 전 사령관이 투신한 문정동 H오피스텔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울동부지검과 마주보고 있을 정도로 지척이다.오른쪽 작은 건물이 해당 오피스텔이다. [조강수 기자] 요즘 법조계에선 검찰 수사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유독 많다. 특히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한 수사는 집요하다. 검찰과 경찰, 감사원이 달라붙어 싸이버 댓글 사건과 관련해 정치 관여 및 수사 축소 혐의, 세월호 사건 관련 공문서 손괴 및 기무사 민간사찰 연루 혐의, 기무사 계엄 문건 사건, 방산 비리, 제주 해군기지 보고 누락 건 등을 조사했거나 조사가 진행중이다. 김 전 장관은 한 차례 구속됐다가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됐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문무일 검찰총장은 전국의 특수부를 없애는 등 수사 기능을 축소하는 개혁을 추진하는데 서울중앙지검에서만 대형 수사가 진행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잉수사가 금도를 넘어섰다는 법조계 안팎의 비판은 무성하다. 한 검찰 원로가 들려준 이야기는 죽비 소리다. “맹장이 아파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의사가 가위를 넣고 꿰맸다고 개복 수술을 합니다. 봉합해놓고 거즈가 남았다며 또 수술. 막판엔 메스를 놓고 닫았다며 재수술하자 환자가 고함을 쳤답니다. ‘야. 아예 배에 지퍼를 채워라’. 지금 수사가 이런 식 아닙니까?”     ■ 구속영장 청구서와 문건으로 본 이재수 전 사령관의 혐의와 반박 「 이재수 전 사령관의 반박 문건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두 가지 혐의가 기재돼 있다. 세월호 유가족 사찰 및 속칭 ‘좌파 집회’ 첩보의 보수단체 제공이다. 적폐 수사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이른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다.   먼저 사찰 혐의는 2014년 4~7월 세월호 유가족들의 인적사항, 무리한 요구사항, 성향, 진도 현장 및 안산 합동분향소 관련 분위기 등을 파악해 세월호 사태의 조기 종결이나 사태 해결, 대통령이나 여당의 지지율 회복에 필요한 각종 제언을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것이다. 이 중 사찰 첩보 사례로는 ‘진도 지역 실종자 가족들의 경우 가족들을 위한 구강청결제 대신 죽염을 요구하였다’, ‘자녀 생일에 따른 미역국 등 지원 요구’, ‘유가족 대변인은 정의당 출신으로 인터넷 자료 참고’ 동향 등이 적혀 있다. 또 첩보 제공은 15차례에 걸쳐 세월호 추모 집회 등 좌파 및 진보단체들의 집회·시위 첩보 15건을 수집하고 이중 4건을 재향군인회에 제공한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본지는 이 전 사령관이 한달여전 직접 작성한 A4용지 5페이지 분량의 반박 문건(사진)을 확보했다. 여기엔 세월호 관련 수사 개시 이후 개인적 소회와 세월호 민간사찰 의혹이 성립될 수 없는 12가지 이유가 적혀 있다. 이 문건에서 그는 “참사 발생 직후인 4월 19일부터 미국·캐나다 정보기관 방문 출장이 예정돼 있었으나 급거 취소하고 구조활동에 전념했다”며 “지금와서 부대원들이 야전부대 원복조치 등 불이익을 받거나 가혹하게 질책당하는 것을 보며 무력감과 자괴감이 들어 허탈한 생각마저 들었다”고 적었다. 이어 “기무사가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원이라는 명목하에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조성을 목적으로 불법 사찰행위를 계획·실행했다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사고발생 이후 투입된 군의 활동상황과 부대의 지원내용을 세부적으로 기록해 향후 유사한 국가재난 발생시 참고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백서 형태로 남긴 기무사 자체 기록을 문제삼아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며 “의도적 사찰을 시행한 부대라면 이런 기록을 스스로 남겼을 리 만무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법원은 팽팽히 맞선 양측 주장을 영장실질심사 때 듣고 구속의 필요성이 없다며 영장 기각 결정을 내렸으나 이 전 사령관은 나흘만에 숨졌다. 」    조강수 논설위원

    2018.12.14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