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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퍼스펙티브] 좌파든 우파든 포퓰리즘 설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야
━ 포퓰리즘 유혹에서 벗어나기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세계가 포퓰리즘 정치로 홍역을 앓게 된 것은 대체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부작용과 커지는 경제적 불평등 같은 요인들이 그 배경에 있었다.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가 우파 포퓰리스트라면 버니 샌더스는 좌파 포퓰리스트이다. 그리스의 시리자,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스페인의 포데모스, 프랑스의 국민전선, 영국의 브렉시트,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를 통째로 장악한 핑크 타이드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온통 포퓰리즘의 전성시대로 보인다. ■ 「 한국, 고소득 국가임에도 우파보다 좌파 포퓰리즘 성향 강해 윤석열 정부가 우파 포퓰리즘인지는 논쟁적…좀 더 지켜봐야 국민의 삶 바꿀 수 있다면 개혁, 레토릭 머무른다면 포퓰리즘 전 정부 잘못 공격보다는 원칙에 입각한 시스템 개혁 힘써야 」 포퓰리즘의 핵심은 ‘적 만들기’ 퍼스펙티브 포퓰리즘은 흔히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한다는 뜻으로 ‘대중주의’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핵심은 대중이 아니라 ‘적’을 규정하는 데에 있다. 대중 혹은 인민의 적을 규정해놓고 대다수 인민을 그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정치 노선이다. ‘적’은 보통 그 사회의 ‘엘리트’라고 규정되지만, 외부의 적으로 규정될 때도 많다. 포퓰리즘은 인민의 뜻을 반영한다며 직접민주주의로 포장하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인민을 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포퓰리즘이라 하면 우파 포퓰리즘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우파 못지않게 좌파 포퓰리즘도 기승을 부린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북반구는 우파 포퓰리즘, 남반구는 좌파 포퓰리즘이 장악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고소득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우파 포퓰리즘,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국가들은 좌파 포퓰리즘으로 나뉘기도 한다. 흥미로운 예외 사례는 한국이다. 북반구의 고소득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좌파 포퓰리즘 성향을 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는 우파 포퓰리즘의 경향도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둘 중 무엇이 더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냐고 묻는다면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좌파 포퓰리즘은 흔히 반(反)엘리트주의, 반(反)기득권주의, 반(反)자본주의, 반(反)글로벌라이제이션, 사회정의, 평화주의, 민족주의 같은 흐름들과 손잡는다. 우파 포퓰리즘도 반엘리트·반기득권이라는 점에서는 좌파 포퓰리즘과 공통점을 갖지만, 소수자 집단의 권리를 내세우는 좌파 포퓰리즘과 달리 오늘날 북반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우파 포퓰리즘은 무엇보다도 이민자에 대한 적대적 태도라는 강력한 공통분모를 가진다. 반여성·반페미니즘에 대한 비판 윤석열 정부가 우파 포퓰리즘인지 여부는 논쟁적이다. 어떤 이들은 우파 포퓰리즘이라고 강력히 비판하기도 하는데, 필자는 아직 위태로운 줄타기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기득권 카르텔을 척결하겠다는 반복적인 강조는 포퓰리즘의 혐의를 풍기지만, 아파트 철근을 빼먹는 건설 카르텔처럼 구체적인 대상과 범죄를 적시할 수 있다면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윤석열 정부가 국제적으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은 여성가족부 폐지와 같은 반여성·반페미니즘 정책이었다. 다른 선진국의 우파 포퓰리즘을 관통하는 이민자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아직은 한국에서 충분한 조건 자체가 무르익지 않은 상태이다. 한국에서 유의미한 이민자 집단이라면 북한 이탈 주민, 조선족, 외국인 노동자인데, 이들의 인권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 정권의 성격을 규정할 정도의 충분한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합의 기회’ 외면했던 문 정부 결국 관건은 실력이다. 구체적인 타깃을 정확히 설정하고 국민의 삶을 바꾸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개혁이라 평가받을 것이고, 애매한 레토릭만 남발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데 써먹는다면 포퓰리즘이라 비판받게 될 것이다. 평가를 확정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문재인 정부와 현재의 민주당이 좌파 포퓰리즘인지 여부는 꽤 확정적이다. 대상이 분명치 않은 적폐청산, 부동산을 비롯해 경제적 상층에 대한 징벌적 세금, 북한과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비현실적 집착, 현직 장관이 나서서 죽창가를 운운할 정도의 민족주의와 반일감정 자극 등은 많은 전문가가 전형적인 좌파 포퓰리즘의 징후로 지적했던 것들이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선택이다. 문재인 정부 탄생의 배경이었던 촛불 광장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뿐 아니라 중도보수 성향의 국민까지 동참한 통합의 장이었다. 그는 통합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전무후무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포퓰리즘의 길을 선택하고 강성 지지층 뒤로 숨었다. 만약 그가 통합의 길을 선택하고 촛불 광장의 에너지를 사회적 대화와 타협으로 승화시켰더라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좌파 포퓰리즘 등장하기 좋은 환경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현 대표에 이르면 포퓰리즘적 특성은 더욱 짙어진다. 그의 대선 출사표 자체가 ‘억강부약(抑强扶弱)’,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는 포퓰리스트 구호였다. 지구 위 어느 나라도 하지 않는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상위 10% 국민에게 국토보유세를 부과해 재원을 충당한다는 구상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포퓰리즘 정책이었다. 언뜻 듣기에는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뜻을 새겨보면 남의 돈으로 내 정치 하겠다는 구상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이미 소득세도, 재산세도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더 이상 상층 국민에게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과 0.73%라는 표차로 거의 대통령에 당선될 뻔했다. 이재명이라는 걸출한 포퓰리스트의 등장은 그의 개인적 특성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가 더 이상 정치를 하지 않게 된다 하더라도 좌파 포퓰리스트는 계속해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쉽게 등장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이 마련되어 있고,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이후에도 오히려 현역 의원들이 앞다투어 충성을 인증하는 성공사례를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약 10년 전부터 한국 사회의 어려운 상황을 규정하는 세 개의 원인으로 양극화, 고령화,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해왔다. 양극화와 고령화의 부정적 효과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치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데, 지난 10년간 한국 정치는 양극화를 해결하기는커녕 나빠지는 사회 변화에 편승해 포퓰리즘으로 진화해버렸다. 재정학자들은 이미 고령화로 인해 향후 얼마나 급격하게 세수가 부족해질 것인지를 예측하고 대책을 촉구해왔고, 고령화의 진전에 있어서 한국보다 약 20년 이상 앞서있는 일본에서 나온 연구들은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들을 만들어내는지 생생하게 증언해준다. 그러니 현재 한국은 우파보다는 좌파 포퓰리즘이 등장하기에 더 좋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원칙 없는 증세와 원칙 없는 감세 정부가 편성한 긴축예산을 설명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세금 낼 사람은 빠르게 줄어들고 세금의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으니 재정을 투명화·합리화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역대 최고로 나랏빚을 늘려놓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안보와 경제에서 진보 정부가 더 낫다고 자랑하는 것은 공정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 정부 비판이 곧 현 정부 정책에 대한 설명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이루어진 감세 조치들은 전 정부의 비민주적이고 과격한 증세를 원상회복하고 국제경쟁력을 되찾는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전 정부 비판에만 집중하다 보니 국민의 눈에는 좌파 포퓰리스트를 비판하는 우파 포퓰리스트로 비친다. 당장 보수 언론에서조차 부자와 대기업 세금 깎아주더니 세수 펑크 났다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이대로라면 원칙 없는 증세와 원칙 없는 감세를 번갈아가며 되풀이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이고, 좌파 포퓰리즘이 득세할 수 있는 조건은 더욱 무르익어 갈 것이다. 목표는 시스템 개혁이 되어야 한다. “전 정부가 잘못했으니 바로잡는다”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나니 바로잡는다”가 되어야 한다. 좌파든 우파든 포퓰리즘 세력이 기생할 수 없는 객관적 조건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성공 여부에 따라 잠시 보류해두었던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도 결정될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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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의 퍼스펙티브] 밑빠진 독 방치한 채 국민 부담만 늘리는 건강보험
━ ‘눈 가리고 아웅’ 건강보험 재정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보건복지부가 내년 건강보험료 인상률 결정을 미루고 있다. 매년 8월 인상률을 결정해온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조규홍 장관은 낭비되는 재정을 줄이고 붕괴한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하는 데 건강보험 재정을 어디에 얼마나 써야 할지 먼저 가늠한 후 건보료 인상률을 결정하겠다고 한다. 올바른 판단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정부가 낡은 정책은 복지부동으로 방치하고 새로운 정책은 이익집단에 휘둘려 왜곡한 결과, 한편에선 ‘응급실 뺑뺑이’ 같은 필수 의료체계 붕괴 현상이 일어나고 다른 한편에선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이 줄줄 새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조만간 건보료를 결정한다고 하니 이제까지 정부가 건보 재정을 어떻게 관리해왔는지 한번 뜯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건강보험은 3조6000억원이라는 큰 흑자를 냈고, 쌓인 적립금은 무려 23조9000억원에 달한다. 언뜻 보면 정부가 건보 재정을 잘 관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 「 건보료 명목 인상률 낮아도 부과 대상 늘며 수입 크게 증가 지역가입자 소득파악률 90%대 됐지만 재산 기준 부과 그대로 병상 수 OECD 3배…불필요한 입원·수술 남발 재정 누수 막대 많이 걷고도 응급·소아·노인돌봄 등 써야 할 데 제대로 안써 」 매년 8.5%씩 늘어난 실제 건보료 수입 건보 재정을 알뜰히 관리해서 흑자가 날 수도 있지만, 보험료를 너무 많이 걷어도 흑자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2010~21년 사이 건보료 연평균 인상률은 2.3%로 같은 기간 근로자 평균 임금 인상률 3.0%에 비해 낮았다. 인상률만 보면 돈을 많이 걷은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같은 기간 실제 건보료 수입은 매년 8.5%씩 늘어나 보험료 인상률의 3.6배나 됐다〈그림 1〉. 〈그림 1〉 이런 마술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는 정부가 건보료를 매기는 대상을 확대해왔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건보료를 매기지 않았던 이자 소득과 임대 소득에 대해서도 보험료를 걷고, 직장에 다니는 아들·딸이 있어도 본인 소득이 있으면 건보료를 내도록 했다. 2010~21년 건보료 인상률은 연평균 2.3%였지만, 보험료 부과 대상 확대 효과를 포함한 실질 인상률은 연평균 5.3%로 명목 인상률의 2.3배에 달했다. 쉽게 말해 이제까지 국민은 정부가 말한 것보다 건보료를 2.3배 더 내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이 아플 때 병원비 걱정하지 않고 치료를 받게 하려면 보험료를 더 걷어야 하고, 또 소득이 있으면 보험료를 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듯이 정부에 유리한 숫자만 내세우는 건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당장 올해부터라도 국민이 실제로 내년에 건보료를 얼마나 더 내야 하는지 솔직하게 알려야 한다. 과도하게 큰 재산보험료 비중 〈그림 2〉 더 큰 문제는 건강보험료가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직장 은퇴자나 자영업자 같은 지역가입자에게는 소득뿐만 아니라 집이나 자동차 같은 재산에 대해서도 보험료를 매긴다. 1980년대 지역가입자에 대해서만 재산보험료를 매기기 시작한 이유는 ‘유리알 지갑’인 직장가입자와 달리 자영업자의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국세청에 따르면 자영업자 소득 파악률은 91.6%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이처럼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률이 크게 높아졌지만, 정부는 지역가입자의 재산보험료를 낮추지 않고 있다. 2021년 지역가입자 보험료 10조원 중 재산보험료가 무려 약 4.5조원(45%)을 차지한다〈그림 2〉.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률을 90%라고 가정하면 지역가입자의 합리적인 재산보험료는 소득보험료의 10% 수준인 0.55조원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재산이 있는 은퇴자나 자영업자는 8배나 더 많은 재산보험료를 내는 셈이다. 〈그림 3〉 서울 거주 연금소득자와 지방 거주 자영업자를 예로 들어 은퇴자와 자영업자가 얼마나 부당하게 과중한 재산보험료를 내는지 살펴보자〈그림 3〉. 은퇴해서 국민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이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가지고 있다면 월 22만원을 내야 하는데, 이 중 17만원(78%)이 재산보험료이다. 이 은퇴자의 재산보험료 공정하게 매기면 월 보험료는 4분의 1 수준인 5만원에 불과할 것이다. 은퇴한 노인이 아파트 한 채 있다고 연금수령액의 40%를 건강보험료로 내야 하는 게 공정한지 의문이다. 지방에서 작은 식당을 함께 운영하는 부부가 월 163만을 버는데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하고 있으면 월 26만을 건강보험료로 내야 하고, 이 중 11만원(44%)이 재산보험료이다. 이 자영업자의 재산보험료를 공정하게 매기면 월 보험료는 16만원으로 줄어든다. 은퇴자·자영업자 주머니 털어서야 선진국 중 재산에 건강보험료를 매기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며, 일본도 재산보험료 비중이 10%에 불과하다. 건강보험은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사회보장제도이다.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안정에만 매몰되어 재산보험료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인 은퇴자와 자영업자의 주머니를 날강도처럼 털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자영업자 소득 파악률을 반영하여 지역가입자 부담을 대폭 낮춰야 한다. 24조원에 달하는 큰 규모의 적립금이 쌓여있는 지금이 건강보험료를 공평하고 정의롭게 걷는 체계로 전환할 수 있는 적기이다. ‘소득 중심으로 건강보험 부과체계를 개편하여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라는 사실도 덧붙인다. 〈그림 4〉 이제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을 알뜰하게 써왔는지 살펴보자〈그림 4〉. 기형적인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여기저기 금이 가고 구멍이 난 항아리에서 물이 새는 것처럼 건보 재정을 낭비하게 한다. OECD 국가보다 3배나 더 많은 병원 병상을 환자로 채우기 위해서 병원과 의사는 의학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입원과 수술을 남발한다. 여기에 매년 건강보험진료비 약 11조원이 낭비된다. 고혈압,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자를 지속해서 관리해주는 주치의가 없어 심장병, 뇌졸중 같은 합병증이 더 많이 생긴다. 만성질환이 관리되지 않아 응급실과 중환자실 진료비 등으로 약 5~9조원이 낭비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손보험으로 인한 과잉진료로 약 5~8조원, 붕괴한 의료전달체계로 약 5조원이 낭비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재정 누수액을 모두 합하면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의 약 30%에 달하지만, 지난 20여년 간 정부는 낭비를 부르는 왜곡된 의료체계를 방치해왔다. 이처럼 막대한 재정 누수를 고려하면 돈을 알뜰하게 써서가 아니라 돈을 많이 걷어서 재정 누수에도 불구하고 흑자가 난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체감 안 되는 필수의료 지원 대책 마지막으로 돈을 써야 할 곳에 쓰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윤석열 정부는 ▶모든 국민이 자기 사는 곳에서 응급·소아과 같은 필수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축하고 ▶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해도 간병비를 걱정하지 않고 좋은 간호·간병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와 함께 요양병원 간병비 건강보험을 적용하며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집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지역사회 노인 돌봄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재정을 대규모로 투자해야 하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국정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정부가 추가로 투입한 건강보험 재정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1조원을 넘지 않을 것 같다. 지난 1월 정부가 응급, 중증, 소아 진료를 강화하기 위한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국민은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정부는 효과가 나려면 시간이 더 지나야 한다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정부 대책을 찬찬히 뜯어보면 기다려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언제까지 얼마나 돈을 들여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제도의 목표는 돈을 적게 쓰는 게 아니라 국민이 필요할 때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국민은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진료 대란으로 고통받고 불안한데, 써야 할 곳에 돈을 쓰지 않고서 흑자를 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다. 건보재정 흑자가 무조건 자랑 아냐 요약하자. 첫째, 건강보험료 명목 인상률과 함께 건강보험료 부과 대상 확대 등으로 인해 실제 국민의 보험료 부담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보여주는 보험료 실질 인상률을 함께 공개해야 한다. 둘째, 현재 소득보험료 대비 80% 수준인 지역가입자의 재산보험료를 10%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셋째, 병상 과잉 공급 등 왜곡된 의료체계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줄임과 동시에 윤석열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국정 과제를 이행하는 데 건강보험 재정을 제대로 써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요양병원 간병비에 건강보험 적용, 지역사회 노인돌봄을 확대하기 위해 어디에 얼마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할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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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동일의 퍼스펙티브] ‘무책임·방만 자치’ 전면 개혁해 주민 신뢰부터 얻어야
━ 새만금 잼버리 파행으로 떠오른 지방자치 무용론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지역균형발전사업 평가단장 하인리히(Heinrich) 법칙이라는 게 있다. 1920년 하인리히가 7만5000여 건의 산업재해를 분석해서 1:29:300이라는 법칙을 만들었다. 큰 사고 하나가 날 때까지 몰라서 그렇지 작은 사고 29건이 이미 일어났으며, 사고 징후는 300번이나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새만금 잼버리 사태도 개최지 승인에서부터 7년이 흘러 대회 중 일부 대원들의 철수 등으로 파행을 맞을 때까지 여러 작은 사고와 징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고들을 무시한 결과는 참담하다. 잘 쌓아온 국가 이미지는 실추됐고, 국민들의 자존심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남은 것은 오직 정치권의 ‘네 탓, 남 탓’뿐이다. 어찌보면 새만금 잼버리 사고조차도 더 큰 사고의 징후에 불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행사의 전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 「 지방행정과 중앙정부의 난맥 함께 보여준 잼버리 대회 그동안 쌓아올린 한국 지방자치제 성과에 찬물 끼얹어 그러나 ‘지방자치 무용론’은 분열·혼란 부를 위험한 발상 문제 단체장 책임 묻는 적극적 납세자 의식과 행동 필요 」 잼버리 파행의 원인을 열거하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지방자치 제도의 구조적 문제, 그동안 누적된 지방행정의 잘못된 관행, 관료들의 보신주의와 무사안일주의,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할 중앙정부의 국정조정능력 결여, 공동위원회 및 조직위원회와 잼버리 스카우트 연맹 관계자들의 협력적 리더십 부재는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장밋빛 성과와 흥미 위주의 언론 보도는 국제행사 준비와 관리에 대한 언론의 기본 역할 부재라는 한계를 그대로 보여줬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프레잼버리의 생략으로 최종 점검 기회를 잃어버렸고, 이상기후로 인한 폭염과 태풍 등도 실패의 원인으로 평가된다. 결정타는 열악한 화장실 문제 지난달 11일 전북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부지 모습. 조기 퇴영으로 인해 야영지의 각종 물품이 정리 되는 가운데 부지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겨나 있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야영장 내 화장실 문제가 국제사회가 잼버리를 실패로 평가하게 된 결정적 방아쇠(트리거) 역할을 하고 말았다. 이동식 화장실 설치에 투입된 예산이 129억원임에도 불구하고 잼버리 대원 121명당 한 개의 변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아무리 지역업체와의 독점계약상 문제가 있다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망신살이다. 세계화장실 시설과 문화의 효시가 된 수원시의 ‘공중화장실 설치 및 관리조례 제정’은 청주시의 ‘정보공개조례 제정’과 함께 부활한 한국지방자치의 가장 자랑스러운 대표 성과였다. 하지만 이번 잼버리 사태가 완전히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이렇게 처참한 결과를 놓고도 한심한 일들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부산에서 유치 총력을 기울이는 ‘2030 엑스포’와 충청권에서 준비 중인 ‘2027년 하계 세계대학경기대회(유니버시아드)’ 등 각 지자체의 국제행사가 차질없이 열릴 수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번 행사에 대한 치밀한 사후평가와 철저한 감사를 통해 잘못된 자치제도와 시스템, 관리역량과 관행, 낙후한 관료문화를 바로잡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저 몇사람 희생양으로 삼아 책임을 묻는 데 그친다면 유사한 사고들은 또다시 되풀이될 것이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팩트를 중심으로 과실을 정확히 규명해야 한다. 여론조사를 통해 그 책임이 중앙정부가 몇 %이고 지방정부는 몇 %인지를 따지거나, 책임 소재를 놓고 연령별·지역별·이념별 인식 조사를 한다든가 하는 일은 정쟁만 부추길 뿐이다. 문제 진단도 제대로 할 수 없고 대안도 찾지 못하는 부질없는 일이다. 중앙정부 역할 강화는 오산일 뿐 무엇보다 위험한 일은 겨우 자리잡아가는 지방자치의 싹을 자르는 행위다. 현재 일부 중앙 언론 및 부처를 중심으로 새만금 잼버리 파행의 주범을 지방자치의 무능과 타락으로 몰아 ‘지방자치 무용론’ 내지 ‘축소론’까지 들먹이는 분위기마저 보인다. 여기에 지방자치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이번 일을 계기로 중앙집권적 지휘·통제 체제로 돌아가 중앙정부 역할을 더 강화하는 쪽으로 국정운영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큰 오산이다. 중앙정부가 아무리 유능하다 해도 인구 5000만명이 넘고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이며, 한해 예산이 600조 원이 넘는 대한민국을 중앙정부 단독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앙정부에 권력이 다시 모이면 당연히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는 것이 만고의 진리이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가 중단되거나 축소되면 모처럼 싹틔운 국민주권 사상과 지역주인 의식은 사그라들고 만다. 중앙 정치의 극심한 분열과 혼란은 그대로 지방으로 전이될 것이다. 그 결과는 민주주의 퇴행과 지방 경쟁력 상실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국민과 주민이 지난 30여년 지방자치 경험을 통해 쌓아온 민주와 자치 의식을 포기하긴 결코 쉽지 않다. 지방자치의 후퇴는 오히려 상당한 반발과 저항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우리가 가야할 길,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우선 정상궤도를 이탈해서 헤매는 지방자치의 제도와 시스템이 올바른 길을 찾도록 전방위적인 자치 개혁이 필요하다. 지방자치의 기본원리는 자율성이지만, 주어진 권한만큼 책임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권한과 책임의 주체는 일원화해야 한다. 이 원리는 자치경찰제도와 교육자치제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권한과 책임 분산된 지방자치 시스템 이태원 참사와 청주 오송지하도 참사 등 대형 재해·재난, 묻지마 폭력·살인 등으로 지역 안전과 치안이 구멍난 것은 자치경찰제도의 결함이 큰 원인이다. 교사 폭행으로 교실 붕괴 위기를 맞은 배경에도 교육감 직선제를 비롯한 기형적인 교육자치제도가 자리잡고 있다. 지방행정, 지역치안 및 소방, 지방교육이 지방자치라는 큰 틀 속에서 서로 연계되지 않은 채 권한과 책임이 분산되어 있으니 제대로 시스템이 작동할 수 없다. 결국 지역의 문제를 지방 중심, 주민 중심, 현장 중심으로 풀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더 큰 정치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오랫동안 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온 정당정치가 21세기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자국 국민들로부터 크게 불신받고 있는 것이 정치 선진국들의 공통적 현상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국민이 직접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런 환경에서 대의제의 핵심 기제인 정당정치와 지방자치제가 직접 참정제와 조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포퓰리즘 정치와 팬덤 정치, 카르텔 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반지성적 확증편향 현상마저 일반화된 현실에서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찾기조차 쉽지 않다. 문제해결의 첫 출발은 우선 윤석열 정부의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컨트롤타워인 ‘지방시대위원회’의 역할에서 찾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전국 어디서나 잘사는 지방시대’라는 국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0개의 국정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지방분권 강화, 중앙과 지방의 협력, 자치단체 기관구성의 다양화, 자치경찰권 강화, 교육자치제 개선, 주민자치회 정착 등이 그것이다. 이들 과제의 실천을 통해 현 지방자치 제도와 관행을 개혁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골든 타임을 잃게 돼 지방이 주도하는 균형 발전은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지방시대위원회의 역할이 중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에 실망한 국민과 지역주민의 관심과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돈이 들더라도 불가피하게 하는 제도가 아니다. 세금부담을 최소화하되 더 많고, 더 좋고, 더 빠른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해서 주민의 선택과 지지를 받아야만 지방자치의 의미가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그리고 인근 지자체 간 연대와 협력이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결과를 못 내는 단체장과 지자체는 응분의 법적·정치적·재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단체장이 주민 직선으로 선출됐다 해서 지방자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단체장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도 아니다. 주민들도 방만하고 무책임한 행정, 단체장 및 관료들의 비리와 부패로 초래된 손해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과 함께 국고 환수를 요구하는 적극적 납세자 의식과 행동으로 무장해야 한다. 요컨대, 이번 새만금 잼버리 파행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각 지자체는 자치제도와 역량을 일신해야 한다. 중앙정부 역시 지방시대위원회를 통해 분권 및 지역균형발전 의지를 가시적 성과로 보여줘야 한다. 국민과 지역주민 역시 지방자치 개혁의 큰 물줄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지방자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현명한 판단과 건전한 비판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지방자치는 어렵고 험한 길이지만, 대한민국이 자유민주 체제를 재정립하기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지역균형발전사업 평가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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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형의 퍼스펙티브] 한·미·일과 한·중·일 두 바퀴가 ‘글로벌 중추국가’ 추동력
━ 한·중 수교 31주년과 대한민국 외교 전략 이규형 전 주 중국·전 주 러시아 대사 윤석열 정부의 ‘글로벌 중추 국가’ 실현을 위한 외교적 선명성이 부각되던 지난 8월 24일은 한·중 수교 31주년 기념일이었다. 지난 30년간 한·중 양국은 정치·경제·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긴밀한 교류와 양호한 발전 관계를 지속해왔고,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왔다. 양국 관계가 전반적으로 발전해 온 데는 지리적 인접성, 한반도 평화 및 안정 유지의 중요성, 경제적 필요성, 인적교류의 확장성, 역사·문화적 배경 등을 주요인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한·중 관계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 상황에서도 북한이 일으키는 여러 형태의 도발, 한·중 양국의 역사 인식 차이, 서해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 등은 그때그때 양국 관계를 경색시키고 긴장을 고조시키곤 했다. 특히 2017년 주한미군의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싼 이해 충돌과 이를 빙자한 중국 측의 전례 없는 보복 조치는 한·중 우호 협력 관계의 근간을 흔들었다. ■ 「 한·중 관계 발전하며 과제 쌓여 한·미·일, 한·중 우호 공존 가능 한국 핵심 가치·원칙 견지하고 한·중 관계 호혜 발전 추진해야 자신 낮추는 ‘과공 외교’는 금물 실사구시로 사안별 대응하길 」 대 중국 무역 첫 적자 기록 이규형의 퍼스펙티브 그런데도 지난 30년간 한국과 중국의 교역량은 거의 매년 증가했다. 2010년대 2200억 달러어치를 상회하고, 2021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3000억 달러 규모를 초과했다. 이는 양국관계에 있어 매우 뜻깊은 일이다. 그런데 지난 30년간 매년 몇백억 달러 규모의 대(對) 중국 무역 흑자 기조가 지난해 10월 첫 적자로 전환했다. 그 이후 올해도 적자 기조를 보이니 양국 관계에 새로운 변화의 시작인지 자문하게 한다. 공교롭게도 한·중 수교 31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대한민국 외교사에 큰 변곡점으로 기록될 만한 일이 있었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보다 미래지향적 한·일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한·일 관계 정상화를 재확인했다. 그리고 지난달 18일(현지 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된 역사적인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포용적 협력을 지향하는 3국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세 나라의 지도자들은 특정 국가를 배제하거나 소외시키는 배타적인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공동 대응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자유·평화·번영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는 포용적·건설적 협력체를 목표로 한다고 천명했다. 예상대로 중국은 3국 정상회의 결과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일 정상회의 사흘 뒤 “대만 문제와 해양 문제에서 중국을 비방 공격했고, 노골적으로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중국과 주변국 사이에 불화를 심었다. 이는 국제사회의 준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다”라고 비난하는 논평을 냈다. 이전보다 다소 절제된 중국 정부의 반응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관변 매체들의 논조를 보더라도 이후 한국 정부가 중국 측에 새로운 외교 정책 기조에 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지속해서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협력과 한·중 우호 협력 관계의 유지 발전이 결코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몫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중국 정부의 정책과 행동에 대해 한국 정부는 건설적 평가를 가감 없이 표명해야 할 것이다. 미·중 경쟁으로 세계화 후퇴 주지하듯이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함에 따라 세계화(Globalization)가 후퇴하면서 경제안보 중시, 보호무역 강화 등의 흐름이 거세다. 만성적 자원 부족 상황에서 수출 중심의 개방경제를 운용하는 한국엔 심각한 도전 과제가 야기되고 있다. 중국의 핵심이익을 둘러싼 비타협적 공세 외교인 ‘전랑(戰狼) 외교’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양비론적 입장은 한국이 기대해온 중국의 건설적 역할과 거리가 멀어 우리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은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지정학적 변화와 복합적 위기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인식과 전략적 판단의 결과물이 ‘자유·평화·번영의 인·태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한·일 관계 정상화, 한·미·일 관계 강화뿐 아니라 한·중 관계에 대해서도 양자적 개별 이슈를 넘어 인·태 지역 전략의 관점에서 새로운 정립을 모색하게 한다. 그런데도 중국 측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비롯한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에 대해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 편에 가담하고 미국의 정책을 맹종하는 것’이라고 폄훼한다. 이는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을 무시하고, 한국의 국제적 기여와 역할 확대 의지를 존중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아닌가 싶다. 필자가 10여 년 전 주중대사 시절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한국의 핵심 가치와 원칙, 그리고 사안별 입장을 담대하게 견지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한·중 관계의 호혜적 발전을 실현하고, 국제사회의 신뢰와 존중을 받는 정도라고 믿는다. 이제 새로운 한·미·일 협력시대를 맞아 지난 30년간 한·중 관계의 성과와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한·중 관계를 더 성숙하고 건전하게 발전시키길 바라며 몇 가지 제언을 하려 한다. 한·중·일 정상회의를 조속히 열어야 첫째, 우리가 견지해야 할 핵심가치와 원칙, 그리고 사안별 입장은 중국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일본 측에는 양국 관계 개선 의지에 상응하는 합당한 조치를 요구하고, 미국 측에는 한·미 원자력협정을 미·일 원자력협정 수준으로 개정해 균형적 지위와 대우를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을 3각 협력의 ‘약한 고리’로 보는 중국의 노림수를 차단하고, 한·미·일 신협력의 시너지를 한국의 대중 외교 레버리지를 높이는 역량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한·중·일 정상회의를 조속히 개최해 한·중·일 협력과 한·미·일 협력의 두 바퀴를 가동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글로벌 중추 국가 실현을 위한 추동력으로 활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국의 각계각층과 소통을 확대해 상호존중과 호혜 공영을 기반으로 공동이익을 추진하며 더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 양자 관계를 구현해 가는 것이 양국 모두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을 일관되게 지속해서 강조해야 한다. 한국 외교도 이 원칙을 견지하며 실천해야 한다. 특히 한반도 평화·안정 유지와 북핵 문제의 해결은 한·중 모두의 공동 목표이자 과제임을 각인시켜야 한다. 당연히 ‘하나의 중국 원칙’(One China Policy)은 준수하되 이로 인해 인류 보편적 가치와 유엔 헌장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셋째, 중국발 위협 요소(China Risk)에 대한 대응을 치밀하면서도 신축적으로 해야 한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탈중국화는 멀리하고 중국 시장과 여타 글로벌 시장을 이원화해 각각 맞춤형 국익 극대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과 체제가 다른 중국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이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지 고민해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포착되는 중국의 과도한 힘의 투사가 한국사회에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경계심을 높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을 낮춰 상대의 호감을 사려는 과공(過恭)은 외교에서 절대 금물이다. 외교뿐 아니라 비즈니스에서도 중국을 상대할 때는 중국인 특유의 문화를 잘 파악해 대처해야 한다. 기본원칙을 고수하되 상황에 따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로 사안별 해결을 도모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관성을 갖고 끈질기고 집요하게 대응하는 자세를 습관화해야 한다. 중국 근무 기피하는 외교관들 넷째, 중국에 대한 한국 사회 일각의 막연한 기대감이 우려스럽지만, 오해와 가짜 뉴스에 근거해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무차별 확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우리 외교관들이 중국 근무를 기피하고,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근무 지원자가 부족해 고참 직원들이 현지 공장에 계속 근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소식은 유감스럽다. 중국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정확히 이해해야만 한국의 대중국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강조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은 중국 연구 인력을 늘리고 현지 근무를 선호하도록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과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끝으로 정부는 외교 사안에 관한 정보를 수시로 정확하게 제공해 국민이 국제 관계 이슈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외교 현안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분열이 극심해 매우 유감스럽다. 이런 현실에서 “정치는 국경선에서 멈춰야 한다”는 점을 재삼 강조하고 싶다. 이규형 전 주 중국·전 주 러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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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퍼스펙티브] “기업 진출 막고 세금 드는 사업만 하니 발전 없어”
━ 새만금 잼버리 파행이 호남에 던진 과제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새만금 잼버리 파행 사태 한 달-. 지난 28일 문제의 잼버리 야영장터를 돌아봤다. 미궁에 빠진 사건의 실마리를 현장에서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전북 부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5분여를 달리니 새만금 간척지다. 884만㎡의 광활한 간척지, 미처 치우지 못해 나뒹구는 쓰레기 더미와 불볕더위를 피하기 위해 세웠던 그늘막만이 잼버리의 흔적으로 남았을 뿐 제멋대로 자란 잡풀과 진흙으로 뒤덮여 황량했다. 섭씨 25도, 비바람까지 흩뿌려 제법 서늘한 날씨였지만, 이곳은 달랐다. 자동차 문을 열자 후끈한 찜통 열기가 기습했다. 택시기사는 “바닷물의 염분 때문에 덥고 습도도 훨씬 높다. 36~37도 한여름 땡볕에 끈적한 습기까지 차올랐으니 어땠겠냐”며 “이런 곳에선 나무도 자라지 못한다”고 했다. 의문의 첫 단추가 풀렸다. 야영장으로 쓸 수 없는 땅이었다. 그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안을 찾지도, 제동을 걸지도 못했다. 견제 시스템의 부재, 뿌리 깊은 무비판의 관성이 재앙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 「 “전북을 희생양 만들어선 안 돼” “새만금 지키자”는 목소리 부상 스마트팜, 민주당 반대로 무산 “권력교체 없는 일당 독식 탓 커” 」 “전북도민 총궐기 상황 올지도 …” 새만금 잼버리에 참가한 세계 스카우트 대원들이 태풍 ‘카눈’ 상륙으로 야영장에서 철수하고 있다. 준비 부족 등이 드러나면서 잼버리 파행 책임을 놓고 정치권의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뉴스1] 전북도청에 이어 부안군청에도 감사원 감사반이 들이닥치면서 지역 정가는 긴장에 휩싸였다. 이날 전북 14개 시·군의회 의장 연명으로 “전북도에 책임을 지우는 감사나 감찰이 돼선 안 된다”는 성명이 나왔다. 호남 정치의 거물 정동영 전 의원은 며칠 전 기자 간담회를 열고 “여당이 잼버리를 두고 예산 잿밥이란 표현을 쓴 걸 보고 굉장히 모욕감을 느꼈다. 잼버리 실패로 전북도를 희생양 만들려는 흐름이 감지된다”며 “전북도민이 총궐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전북책임론 막아내고 새만금 지키기’가 전북과 호남 정치권의 새로운 어젠다로 급부상 중이다. 거리에서 만난 군민들 대다수도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60대 이모씨는 “전북이 뭔 잘못이여? 1000원 내려올 걸 500~600원 내려보내고 잘 치르라고 하니 그런 것이제. 물론 여기도 잘못된 게 있겄지만 현 정권이 문제지, 꺼떡하면 구 정권만 갖고 물어징께 난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장모씨도 “현 정부가 잘했어야지 왜 자꾸 문재인 대통령한테 잘못했다고 핑계를 대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외국인들이야 왔다 가면 그만이고, 천막도 거둬가 버리면 끝이제. 식당이나 좀 됐을까, 원래부터 잼버리는 군민들과 무관해요”라면서 “그라나도(그렇지 않아도) 안 좋은데 이번 일로 부안에 대한 이미지만 더 버려부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자유전 농지법이 외려 농민에 고통” 식당과 찻집 등 상가가 몰려있는 읍내. 한 식당에서 지역 유지 몇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지방 공무원 출신인 A씨와 도내에서 중소업체를 운영하는 B씨등 일행은 점심 중이었다. 60대 후반~70대 초반으로 보였다. 이들은 내게 명함을 주긴 했지만 기사에 실명 인용되길 원치 않았다. A=“행사 전부터 저런 뻘밭에서 어떻게 국제행사를 하느냐고 걱정이 많았어요. 군민들이 봐도 이해가 안 되니까요. 이성도 없고, 판단력도 없고…. 어떻게 하면 대회를 성공시킬 것인가 지역민한테 여론도 들어보고 연구도 하고 공감을 끌어내야 했는데 매사에 소홀했어요. 돈만 갖다 쓸 줄 알았지.” B=“아침 조기축구회도 50명이 뛰면 화장실이 5, 6개가 필요해요. 4만명이 오는데 350개를 지었대요. 4000개는 지었어야죠. 물도 맑은 물 놔두고 썩은 물을 끌어다 쓰고. 몇 년 전부터 건의가 많았지만 소용없어요. (스카우트 대원들) 철수는 잘한 거예요. 철수 안 했으면 난리 났을 거예요.” 박경민 기자 대화가 감사원 감사로 흘렀다. 잼버리 예산뿐 아니라 부안군의 일반회계까지 들여다보겠다고 하자 군청이 반발한다는 얘기였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잼버리 망친 게 윤석열 대통령의 탁상행정 때문이란 얘기가 많다”고 시중 여론을 전했다. 그러자 “여기는 민주당, 이재명 욕하면 큰일 나. 비판이 없고 매사 정치적 색깔로 따지니…. 비리도 정의로 둔갑시키잖아”라고 했다. 기초의원부터 국회의원까지 민주당 일색인 일당독식 정치가 호남을 견제와 감시의 사각지대로 퇴보시켰다, 기업 투자가 없어 지역 발전도 희망도 없다, 그러니 인재들이 고향을 등지고 떠나고 있다는 탄식이 이어졌다. 2016년의 일이다. LG CNC가 새만금에 스마트팜을 조성하려다 농민단체(전국농민회총연맹)와 민주당의 반대로 계획을 철회했다. LG CNC는 3800억원을 투자해 ICT(정보통신기술)를 바탕으로 스마트팜 설비와 솔루션 개발을 통해 해외 시장을 개척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수확 농산물은 전량 수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파산 직전에 처한 농민들의 상황을 외면한 채 굴지의 대기업이 토마토·파프리카까지 손대면 안 된다”는 민주당 의원들과 전농의 반발로 결국 계획을 접었다. B씨는 열변을 토했다. “농촌엔 거대 자본이 없기 때문에 이런 대기업이 주도하면 농민이 따라가게 되는 거예요. 덴마크를 봐요. 농민 몇만 명이 세계 시장을 좌지우지하잖아요. 농민들 보호한다며 기업을 못 들어오게 하는 게 말이 돼요? 노인들 다 돌아가시면 그땐 누가 농사지어요? 민주당이 경자유전(耕者有田) 앞세워 만들어놓은 농지법 때문에 오히려 농민들이 고통받고 있어요. 땅 거래가 안 되고 투자도 안 되니 농민들이 땅을 팔고 싶어도 팔지도 못하고…. 서울 사람들이 땅 사면 여기 땅이 서울로 가버린답니까?” “대기업 있었다면 막장 되진 않았을 것” 권력교체 없는 호남의 정치 지형에서 민주당은 ‘영원한 여당’이다. 비(非)민주당 세력의 발언권과 영향력은 전무하다시피 하다〈표 참조〉. 정의당 전북도당이 “파행의 원인은 잼버리를 명분 삼아 새만금신공항등 SOC 사업 추진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라며 “10조원 정도의 개발 자금의 실질적인 이익과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짚어야 한다”는 입장을 낸 정도다. ‘야당’의 빈자리를 대신해 최근 청년·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작지만 새로운 변화다. 이양승 군산대 교수는 권력 교체 없는 호남 정치가 호남을 역선택의 공간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한다. 전북 남원 출신인 이 교수는 통화에서 “부패는 도덕과 윤리의 문제다. 그러나 부패 시스템이 자리 잡은 곳에선 정상적인 사람도 부패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혼자만 청정하면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다”라며 “잼버리 사태는 민주당 독점 체제의 전라도 시스템이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권력의 분립, 견제와 감시 같은 민주주의 시스템의 부재 탓이란 주장이다. 호남 시민사회의 건전한 비판과 토론을 회복하자며 2020년 발족한 ‘호남대안포럼’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광주 출신 의사인 박은식 공동 대표는 “대기업의 농업 진출에 반대한다며 스마트팜 무산시키고 소상공인 보호한다며 복합쇼핑몰 입점을 거부했다. 자생적 성장 역량을 갖추게 해주는 기업은 몰아내고 대신 광주형·군산형 일자리, 광주 아시아문화전당같이 세금 들어가는 사업만 벌인다. 정치가 반기업 정서를 부추겨 세금으로 먹고사는 구조를 만드니 지역에 발전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견제 세력이 있었다면 잼버리 부지 선정을 중단시킬 수 있었고, 대기업이 들어와 있었다면 기업이 기반 시설을 해놨을 것이기 때문에 잼버리가 막장으로 끝나진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지난 27일 창립총회를 마친 호남대안포럼 전북지회의 신승욱 회장도 30대 청년이다. 그는 “새만금 사업 자금 유치에 억지로 꿰맞추다 보니 장소 선정부터 패착이 됐고 전북이 발전은커녕 공격을 받는 입장이 됐다”며 “분명히 자기 반성할 부분이 있는데도 지역감정으로 대응하고 현 정부 책임으로 떠넘긴다. 이러니 호남 혐오를 키우고 양극단의 대립만 커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화의 성지’ 호남이 ‘성역’이 돼버렸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희생을 정치가 도구로 징발한 탓이 크다. 보수 세력의 호남 고립 전략에 대한 피해의식이 권력에 대한 무서운 집념과 호남 정치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로 똘똘 뭉쳐 폭발적 힘을 발휘하는 운명 공동체가 됐다. 이걸 탓할 순 없다. 문제는 정치가 이런 집단의식을 특정 정당에 대한 숭배를 조장하는 데 악용해온 점이다. 공동체에 대한 열망과 에너지를 지역발전과 자치 역량을 키우는 데 쓰지 않고, 일당 독식 정치를 공고화하는 데 허비했다. 그 결과 정치 엘리트와 관료들은 출세와 입신양명의 기회를 누렸다. 하지만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2023년 전국 17개 시·도별 재정자립도를 보면 전남(28.7%)과 전북(27.9%)이 최하위다. 6개 광역시 중에선 광주광역시(46.2%)가 꼴찌다. 민주화를 위한 호남의 희생과 헌신에 견주면 너무 초라한 성적표 아닌가.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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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퍼스펙티브] “한국의 핵심가치 존중해야 공동 번영” 중국에 말해야
━ 한·미·일 3국 정상회의가 남긴 것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지난 3월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駐)북한 러시아 대사는 대규모 군사연습에 광분하는 미국과 그 추종 세력들의 도발 행위 때문에 북한이 부득불 정당한 대응 조치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러시아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한 전호(참호)에 서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의 핵 개발과 연이은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 행위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것이다. ■ 「 북·중·러 밀착 가속화, 평양 6·25 열병식 행사서도 연대 과시 대중 교역 중요하지만 중국의 ‘협박’엔 분명한 입장 보여야 한·미·일 최초의 독립 정상회의…한국의 협상력 더욱 커져 인도태평양의 전략적 가치 확인, 우리도 질적 전환 필요해 」 “북한-러시아, 같은 참호에 서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회견에서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그보다 두 달 앞선 1월에 나온 김여정의 담화는 국가 이름만 바뀌었을 뿐 마체고라 대사의 주장과 거의 판박이다. “끊임없는 군사적 위협과 압박 정책에 매달려온 미국과 서방의 패권주의 정책이 부득불 로씨야로 하여금 (중략) 선제적인 군사 행동에 나서도록 떠밀었다”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했다. 이때에도 역시 북한은 “로씨야 군대와 인민과 언제나 한 전호에 서 있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지난해 11월 중국과 러시아는 해·공군 합동군사훈련을 대규모로 실시했다. 양국 해군은 오키나와와 대만 사이의 해협을 통과해 일본 난세이 군도 부속 요나구니 해역에서 훈련을 실시했고,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폭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해 우리 공군기가 긴급 발진했다.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전승절’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 70주년 열병식에서는 김정은이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리훙중과 러시아 국방부 장관 세르게이 쇼이구를 대동하고 나타나 최신 무인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자랑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16년 사드 배치는 2013년부터 이어진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 사드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미국과의 경쟁에 집중하는 중국은 미국이 한국 안보를 핑계로 사드를 배치해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고 생각하지만, 걸핏하면 날아다니는 북한의 미사일에 노출된 한국에 사드는 생존의 문제일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을 겨냥해 배치해 놓은 중국의 미사일도 이미 1000기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정에도 사드 배치 후 이어진 중국 내에서의 한한령과 혐한 행위에 대한 방조는 이해할 수 있는 선을 한참 넘었다. 한국은 경제적·문화적으로 큰 피해를 보았고, 무엇보다 한참 피어오르던 양국 국민 간의 우호적 감정은 싸늘하게 식었다. 북한의 미사일은 이미 일본 상공을 수십 차례 넘나들었다. 자강도에서 발사한 탄도미사일의 재돌입체가 홋카이도 근처에 떨어지기도 했다. 2016년에도 북한은 저궤도 인공위성을 발사한다고 했지만 국제사회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라고 판단했고, 영공 침해를 우려한 일본이 요격하겠다며 강력히 경고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북한은 발사했다. ‘핵 선제 타격’ 협박하는 북한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한미일간 협의에 대한 공약’ 결과 문서가 캠프 데이비드 경내에 놓여 있다. [연합뉴스] 중국은 “한반도의 긴장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관련국들은 아무 행동도 취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10월에도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넘어가 기시다 총리는 긴급 대피명령을 내려야 했다. 기술력을 신뢰할 수 없는 북한의 미사일이 의도치 않게 어디에 떨어질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일본에 북한은 현실적 위협인 것이다. 2021년 초 북한은 ‘핵 선제 타격’을 운운하며 정초부터 남한에 대한 위협 수위를 전례 없이 끌어올렸다. 그래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북한과 비대면 방식으로라도 대화할 수 있다고 한껏 평화 제스처를 보냈다. 며칠 후 돌아온 대답은 김여정의 담화였는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족속들”이자 “처신머리 골라 할 줄 모르는 데서는 둘째가라면 섭섭해할 특등 머저리들”이라는 막말이었다. 북·중·러 합동 군사훈련 위협적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는 이런 맥락 속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 고문이었던 빅터 차 교수는 이번 정상회의가 ‘아시아 지역의 변화하는 위협 인식’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아시아 지역에서 위협의 판도가 과거와는 크게 달라지고 있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서 3개국 정상이 역사상 최초의 독립적인 정상회의를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북·중·러가 밀착하고, 다른 나라에 대한 침공과 도발을 서로 옹호하고, 합동 군사훈련을 하면서 우리의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고, 김일성이나 김정일 때 했던 것을 다 합친 것보다도 몇 배나 많은 군사적 도발을 하루가 멀다고 자행하고 있는 상황이 위협이 아니면 무엇인가. 이번 정상회의에 대해 중국은 ‘환구시보’를 통해 아시아에 ‘미니 나토’를 만드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번 회의 결과는 개입을 의무화하는 조약이 아니고 31개 회원국을 가진 나토와는 달리 호주·영국·미국으로 구성된 오커스(AUKUS), 미국·일본·호주·인도로 구성된 쿼드(QUAD)와 더불어 국가 간 소규모 연합들의 ‘조각보’(latticework)에 가깝다는 점에서 나토와는 다르다. 나토와 굳이 비교하려면 그동안 유럽과 아시아가 가지고 있었던 협력 네트워크의 구조를 봐야 한다. 유럽은 나토를 통해 모든 국가가 다른 모든 국가와 연합하는 ‘다자간 네트워크’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시아는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과 일대 일로 협력하는 ‘방사형 네트워크’ 형태였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이고 일본과 미국은 동맹이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는 텅 비어 있는 형태이다. 악화한 한·일 관계 바로잡아야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다자간 네트워크는 힘을 분산시키고 방사형 네트워크는 힘을 집중시킨다. ‘어부지리’의 고사성어가 바로 이 상황을 지칭한다. 지난 몇 년간 한·일 관계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힘을 빼는 형태인 것이다. 빈칸이 채워지면 한·미·일 관계에서도 한국의 협상력은 오히려 올라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주일 미국대사인 람 이매뉴얼은 며칠 전 브루킹스 연구소 포럼에서 이번 정상회의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중국의 전략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첫 번째 동맹과 두 번째 동맹이 결코 함께할 수 없으리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한·미·일 삼자간 협의는 인도태평양의 전략적 지형을 바꿔놓을 것이다.”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를 걱정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무역의존도 1위를 차지하기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중국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특히 남중국해 등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담긴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놓고 중국이 민감해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가 왜 이렇게 스스로를 검열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의 위기관리 책임 우리는 스스로 검열하는데 중국은 필요할 때마다 거침없이 우리에게 보복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하지 않는 ‘핵심 가치’를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실리만 따지기 때문에 한국은 실리로 위협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우리가 먼저 심어준 것이다. 우리의 가치를 다른 나라에 강요하자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의 핵심 가치만은 훼손하지 않아야 공동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한·미·일 정상회의를 정례화하고 캠프 데이비드 문건을 채택했다고 해서 반드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될 것이라고 가정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는 인도태평양에서의 전략적 위치를 질적으로 전환해야 할 상황이었고, 일단 첫 단추를 끼웠다. 변화에 따르는 불가피한 비용을 잘 관리해갈 책임이 윤석열 정부에 남았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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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의 퍼스펙티브] 금융자산 관리하듯 건강자산 관리해야 ‘웰빙’ 삶 가능
윤영호 서울대 기획부총장·서울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대한민국 국민의 총 건강 가치는 얼마일까? 필자가 이끄는 서울대 의대 스마트건강경영전략실 연구팀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국민 건강 수준, 대국민 조사 등을 통한 건강 가치 비율에 근거해 이를 분석했다. 우리 국민은 자신의 1년간 건강자산(health asset) 가치를 연간 소득의 3배 정도로 생각했다. 기업의 건강 경영에 투입한 비용 대비 투자수익률이 3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근거가 있는 수치라 할 수 있다. 연구팀은 2022년 기준 연간 대한민국 건강자산 가치를 약 4581조원으로 계산했다. 지난해 GDP 2150조원의 두 배를 넘는다. 건강자산 가치 손실은 약 2708조원. GDP를 웃도는 수준이다. (건강자산 가치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주관적으로 평가해 매긴다. 예를 들어 연간 소득 5000만원인 사람이 자신의 건강자산을 연간 소득의 3배로 인식한다면 그의 최대 건강자산은 1억5000만원이 된다. 자신의 건강 상태를 50점으로 평가한다면 건강자산은 7500만원, 건강손실도 7500만원이다.) ■ 「 소득·건강상태 등을 금액으로 환산해 ‘건강자산’ 산출 건강 개선 역량 진단 및 건강 불평등 해결 역할 기대 건강자산 많은 사람이 주도적 삶 영위할 가능성 높아 개인·기업·국가가 건강자산 체계적 관리할 필요 있어 」 2년 전보다 GDP가 증가함에 따라 총자산가치는 늘었지만, 건강자산 가치 손실 또한 커졌다. 국민 1인당 건강자산 가치는 연간 약 7760만원이며, 건강자산 가치 손실은 약 4587만 원이다. 2020년에 비해 소득도 조금 늘고 주관적 건강상태가 약간 좋아져 건강자산 가치는 늘었고, 건강자산 가치 손실은 약간 줄었다. 건강자산 가치, GDP의 두 배 이상 건강자산 가치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 연구팀의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수립한 건강자산 가치 시나리오를 예로 들어보자. 최고로 좋거나 매우 좋은 상태가 아닌 ‘건강 상태가 좋다’ 정도로 응답한 47세 남성의 경우, 최대 기대 건강자산 가치는 1억7414만원, 현재 건강자산 가치는 8707만원, 건강자산 가치 손실은 8707만원으로 계산됐다. 기대수명을 기준으로 추정한 평생 건강자산 가치는 21억1443만원이다. 이 시나리오는 40대의 건강 상태, 건강 가치 비율, 연 소득 및 기대 수명 평균값을 적용한 것이다. 박경민 기자 같은 건강 상태인 직장 생활 10년 차 30대 여성의 경우, 최대 기대 건강자산 가치는 1억2434만원, 현재 건강자산 가치는 6217만원, 건강자산 가치 손실은 6217만원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기대수명을 기준으로 계산한 평생 건강자산 가치는 27억1671만 원이다. 올바른 건강 투자로 최대 건강자산 가치에서 잃어버린 건강자산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 통계청 자료와 우리 연구팀 자료에 근거한 연령대별 건강자산 가치는 청장년 시기까지 증가하지만, 40대부터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 건강자산 격차에 따른 건강 불공정 문제는 저소득 계층일수록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낮을수록 건강이 나빠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바로 ‘유전무병(有錢無病), 무전유병(無錢有病)’ 현상이다. 건강자산 불공정 문제 심각 개인과 집단의 건강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 또는 집단의 건강한 행동과 습관, 조직과 사회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 질병을 조기에 찾아내기 위해 건강검진을 받고, 질병 위험에 대비해 생명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건강을 향상하려면 건강 행동과 습관을 형성하고 조직·사회의 건강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과 투자가 요구된다. 국민 건강 습관과 사회 환경을 바뀌기 위한 국가 정책과 기업의 건강 정책, 건강 투자가 중요하다. 박경민 기자 건강 상태에 따른 건강자산은 연간 소득과 건강 상태, 건강 가치 비율 정보를 고려해 전인적 건강 상태를 수치화한 것이다. 최대 건강자산은 신체·정신·사회·영성 등 전반적 건강이 모든 최고인 건강 상태를 가정해 계산되는 값이다. 건강 가치 비율은 개인이나 집단, 국가마다 다를 수 있으며, 건강 가치가 무한대일 수 있다. 건강자산 손실은 최대 건강자산에서 건강 상태에 따른 건강자산을 차감한 값으로, 현재 건강으로 인해 손해를 보고 있는 정도를 수치화한 것이다. 이렇게 건강과 소득을 조합해 건강자산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면 금융·토지 등의 자산 이외에 새로운 자산을 하나 더 가지는 셈이 된다. 가족 및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건강해야 가능하다. 여가와 사회생활을 즐기고, 취미 등 창의적 활동을 지속하고, 종교·봉사의 삶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개인에 따라서는 건강자산의 가치는 소득의 3배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가치 있을 수 있다. 특히 소득은 적으나 건강해야만 가능한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건강의 가치는 더욱 높을 것이다. 건강가치 고평가할수록 웰빙 유지 건강자산 가치는 개인 또는 집단의 건강 향상 노력 정도가 반영될 수 있다. 건강 향상을 위한 개인 또는 집단의 의지를 확인하고, 이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도록 지원하는 방법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건강자산 가치는 주관적 건강 평가에 기반하지만, 건강 등 주관적 웰빙의 중요성은 과학적으로 검증됐다. 주관적 웰빙이 좋을 경우 사망률이 낮고, 직무 성과나 생산성도 높다. 건강자산 가치가 높은 사람의 주관적 웰빙 지수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4.3배 높고, 우울 위험도는 32%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건강자산 가치가 높은 사람의 건강관리 역량(핵심·준비·실행 건강경영전략)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7배 양호했고, 운동·식이·금주 등은 물론 긍정적 생각, 주도적 삶,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같은 좋은 습관도 2~3배 더 긍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일상생활을 기록한 디지털 데이터나 인공지능 등의 도움을 받아 정량화·수치화가 이뤄지면 이런 주관적 웰빙을 더욱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건강의 금전 가치, 왜 필요한가 건강자산은 갑자기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1980년대 처음 도입돼 심리학·사회학·공공건강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건강자산은 개인, 지역 사회, 국가가 건강과 웰빙을 유지하고 건강 불평등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건강자산 개념을 도입하면, 결핍 위주의 사후적 접근법에서 벗어나 현재의 건강 상태를 사전에 평가해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인간의 건강이 신체적·정신적·사회적·영적 영역으로 구성된 만큼 경제적 자산뿐 아니라 웰빙 측면의 건강자산에도 평가와 관리가 필요하다. 자산 기반 접근법을 건강자산에 적용하면 개인·집단·사회·국가가 직면한 건강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개인의 특성, 사회적 상황, 주거 및 근무 환경, 행동 선택 및 의료 서비스를 포함한 건강 결정 요인을 건강자산 보호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자산 기반 접근법은 개인의 능력, 기술, 지식뿐만 아니라 사회와의 연결도 중요하게 여긴다. 건강자산은 금전적 가치로 환산해 개인의 건강에 대한 의사결정에 활용될 수 있다. 먼저 개인의 건강 가치 비율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거나 건강 상태를 향상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 좋은 건강 습관을 만들기 위한 동기부여로 활용 가치가 있다. 고령사회 건강자산 투자 절실 금연의 건강자산 가치를 예를 들어보자. 보건복지부의 금연 길라잡이 자료에 따르면 35세부터 44세의 경우 금연에 의한 수명 연장 효과가 9년이므로, 35세에 금연할 경우 통계청에 따른 기대여명이 49년에서 58년으로 연장된다. 이 경우 평생 기대 건강자산은 31억9000만원에서 38억6000만원으로 상승한다. 금연에 따른 수명 연장으로 6억7000만원의 건강자산이 늘어난다. 건강습관 변화에 의한 이런 금전적 이득을 금연의 동기부여에 활용할 수 있다. 일상생활을 기록한 디지털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통해 건강자산 가치 증식에 효과적인 건강 행동 패턴을 제시하고, 실행 계획을 맞춤 설계하며, 수행 여부를 점검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금연뿐만 아니라 건강 증진을 위한 신체 활동, 건강 식사, 감사 일기, 체중 조절, 절주 등의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건강의 중요성이 점차 커짐에 따라 건강자산 가치 모델은 건강 개선을 위한 개인의 역량을 진단하고 건강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기초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 세계적 건강 문제인 노화 현상을 건강자산 기반의 접근 방식으로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다. 개인과 기업, 지자체, 국가는 금융자산을 관리하듯이 건강자산 가치를 평가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윤영호 서울대 기획부총장·서울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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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식의 퍼스펙티브] 온실가스 감축 성공, 시장친화적 제도에 달렸다
━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하려면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지난 7월 25일 정부(환경부)는 2022년 온실가스 잠정배출량을 전년보다 3.5%(2360만 t) 감소한 6억5450만 t으로 발표했다. 그간 배출량 최고치인 2018년의 7억2700만 t보다 10% 감소한 수치다. 2010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온실가스 배출 감소가 반가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이 엿보인다. ■ 「 NDC 목표, 기업 노력에는 한계 수요조절 통해 온실가스 줄여야 한전 독점 전력판매 개방 통해 재생에너지 거래 활성화하고 배출권 거래시장도 키워가야 」 작년 온실가스 배출량 3.5% 감소 그쳐 퍼스펙티브 우선 전환(전력) 부문에서 원자력 발전과 재생에너지가 증가하고 석탄·LNG 발전 감소로 980만 t이 줄었다. 산업 부문은 1630만 t이 줄었으나 그 이유가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생산 감소 때문이다. 반면 건물부문은 겨울철 도시가스 사용증가로 3% 늘었다. 수송 부문은 전기차 확대와 산업경기 둔화로 경유 소비는 줄었으나 휘발유 소비는 늘면서 보합 상태였다. 결국 현재의 온실가스 감축 구조로는 경기가 회복되면 산업 부문 등의 증가량이 전력부문의 감소량을 상회할 가능성이 크다. 온실가스 감축 실천을 위한 혁신적인 사고가 필요한 이유다. 한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4억3700만 t으로 2018년 대비 40%(2억9000만 t)를 줄여야 한다. 2022년 실적을 기준으로 하면 2030년까지 2억1750만 t을 감축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2030년을 전제로 했을 때 공급(온실가스 배출자) 측면에서 온실가스를 ‘유의미하게’ 줄일 수 있는 부문은 전력부문과 용광로 철강 생산뿐이다. 나머지는 ‘수요조절 정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현재 이 부분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재생에너지 정책, 공급 확대만 치중 먼저 공급 측면을 보자. 전력부문에서는 원자력·석탄·LNG·재생에너지에 대한 정책 리셋이 필요하다. 전력원별 전 주기 온실가스 배출량(g/㎾h)은 석탄 820, LNG 490, 태양광 5, 원전 4, 풍력 4이다(산업통상자원부). 이 수치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발전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원전, 풍력 등 저탄소 전원을 늘리고 석탄, LNG 등 고탄소 전원을 줄여야 한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는 지정학적 이슈도 없고 환율 영향도 없다. 한국이 역량도 있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도 할 수 있어 산업으로의 육성도 가능하다. 단, 원자력은 고준위 방폐장 대책이 필요하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의 방법론이다. 박경민 기자 역대 모든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수요는 생각 않고 공급 정책만 폈다. 대규모 발전사업자는 발전량의 일정 비율만큼 재생에너지를 의무적으로 공급하게 했다(RPS·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 RPS는 2023년 13%에서 2030년에는 30%까지 확대해야 한다. 이 의무량 달성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재생에너지 인증서(REC)다. REC 발급은 재생에너지 생산 난이도(기여도)를 고려해서 1.0에서 5.5까지 가중치를 부여한다. 가중치 5를 받으면 재생에너지 100을 생산하고 인증서는 500을 받게 되는 방식이다. 발전사업자는 자체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 REC를 구매해서 RPS를 채운다. 그리고 기업도 이 REC를구입해서 RE100(기업이 필요한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사용)을 채우고 있다. RPS 의무량과 REC 가중치에 힘입어 단기적으로 재생에너지 공급이 급증했다. 그러나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재생에너지 생산은 기후와 날씨에 따른 간헐성과 변동성이 심하다 보니 전기 생산과 소비 시간의 불일치가 심했다. 이러한 전기를 저장(ESS)하기도 쉽지 않아 발전량이 많아지면 강제로 재생에너지 생산을 중단시키게 됐다. 전기를 나르는 계통(grid)의 부담은 생각지 않고 공급만 늘린 결과다. 또 하나의 문제는 REC 가중치를 잘 받기 위한 로비(조작)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나온 새만금 풍력 비리다. 가중치가 육상 풍력은 1, 해상풍력은 2~3.5다. 애초에 새만금 풍력은 육상풍력으로 분류되어 가중치 1을 받았다. 그런데 정부는 관련 고시를 개정해 이전에 없던 ‘연안 해상풍력’ 항목을 신설해 가중치 2.13을 부여했다. 이렇게 되면 사업자는 발전량은 같아도 수익은 연 150억원이 늘어난다. 결국 송전 제약으로 인해 재생에너지 공급은 제한되기 일쑤였고, 재생에너지 생산용량과 인증서는 따로 놀았다. 당연히 규모의 경제에 의한 원가하락→수요증대→생산증대→원가하락의 선순환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철 투입으로 철강 탄소 배출 감축 철강 부문에서는 용광로 공법에서 현재 기준에서 20% 정도 추가 감축 가능한 방안이 있다. 고철 사용이다. 쇳물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고철 투입량을 현재 10% 수준에서 30%까지 늘리는 것이다. 고철은 처음 철을 생산할 때 사용되는 코크스(유연탄)가 필요 없으므로 그만큼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연간 1억1600만 t이다(2021년). 쇳물 생산량의 10%를 고철 추가 투입으로 대체하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연 1000만 t 이상 줄일 수 있다. 2030년까지 포스코가 2018년 대비 20% 감축(사회적 감축 10% 포함)을, 현대제철이 12% 감축을 선언한 것도 고철 투입량 증대에 근거하고 있다. 이 정도가 공급(생산) 측면에서 온실가스를 유의미하게 줄일 수 있는 한도다. 전기요금 정치화로 수요 억제 실패 박경민 기자 남은 방법은 수요조절 정책이다. 쉽게 얘기해서 시장 활용 정책이다. 문제는 시장이 없거나 있어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대 모든 정권이 이 부분을 경시했다. 한전이 전기 판매를 독점하고 정부가 최종 소비자 가격을 조절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속으로는 병폐가 쌓이고 있었는데 말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기 요금의 정치화는 한전의 적자를 천문학적으로 늘렸다. 뒤늦게 전기요금을 찔끔 올렸지만, 전기요금 원가와 시장가격의 단절로 한전의 적자 구조는 그대로 있다. 이 문제의 악영향은 한전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장(가격)에 의한 수요조절이 불가능해지면서 에너지 과잉소비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온실가스 배출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푸는 첫 단추는 한전이 독점하는 전기 판매를 개방하는 것과 직결돼있다. 민영화가 아니다. 한전은 기존 사업을 그대로 하면서 신규 사업자에게 송배전망을 개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전기사업법 개정이 필요하다. 2016년 정부는 전력 소매 경쟁 도입 입법 발의를 했다. 그러자 당시 여당의 이훈 의원이 느닷없이 전기는 한전이 독점 판매하도록 한다는 반대 입법을 발의했다. 2017년 국회에서 두 법이 다투다가 둘 다 폐기됐다. ‘분산법’으로 지역별 차등요금 가능 다행히 정부가 또 나섰다. 지난 5월에 여야 합의로 통과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분산법)’이다. 이 법을 통해 지역별 차등요금제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한전 독점을 벗어나 지역 내에서 전력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거래가 활성화할수록 재생에너지 수요는 늘어나고 온실가스는 감축될 것이다. RE100을 달성하려는 기업의 지방 이전을 자극하는 측면도 있다. 재생에너지는 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4차 산업혁명과의 융합으로 새로운 산업의 성장 기회가 그 안에 있다.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이 전력 생산과 소비를 최적으로 연결하면서 재생에너지의 단점인 간헐성·변동성을 극복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 소비자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의 전기를 사용하는 스마트그리드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낭비되는 전기를 절약하고 전기를 한층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중요한 수요조절 정책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다. 한국은 이미 2015년부터 배출권 거래시장이 개설했다.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약 700여개 기업이 배출권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하고 거래소에서 남는 양(배출권)을 팔고 부족한 양은 구입하는 시장이다. 그러나 현재 이 시장은 기업에 온실가스 감축 유인을 주지 못하고 있다. 시장 참여자가 적고 거래되는 배출권 물량이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 진입 자격을 완화해 참여자를 늘리고 거래량을 키우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탄소배출권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유럽연합(EU) 사례를 좀 더 철저하게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배출권 거래시장이 투명하게 운영되고 가격 예측성이 높아지면 기업은 기민하게 움직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온실가스 감축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을 비롯한 새로운 산업도 육성될 것이다. 그러한 결실이 쌓이면 ‘2030 NDC’ 달성은 불가능해도 ‘2040 NDC’ 달성은 가능해질 수 있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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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명의 퍼스펙티브] 연금개혁 성공하려면 실상 투명하게 공개해야
━ 연금개혁 거부감 줄이는 방법은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국민연금 5차 재정계산위원회가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도 2기 위원회를 출범시켜 다양한 주제를 논의하고 있다. 여름 휴가 기간 소강상태에 있으나, 8월 말 개최 예정인 국민연금 공청회를 기점으로 연금 문제에 관심이 쏠릴 것 같다. 예정대로라면 공청회 이후 정부가 마련할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이 국무회의를 거쳐 10월 국회에 제출될 것이다. 10월에는 국회 연금특위 논의 내용도 가시권에 들어온다. 바야흐로 연금 이슈가 주목받을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있다 보니 연금 논의가 활기를 띠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대신, 세금 걷어 지급하는 기초연금 카드를 만지작거릴 가능성이 크다. 월 40만원으로 연금액을 인상하겠다는 대선 공약과 함께, 현재 노인 70%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겠다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다. ■ 「 연금 실상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개혁 거부 여론 높지만 관련 내용 학습 이후 연금개혁 지지율 극적으로 높아져 지급해야 할 연금액 대비 부족한 액수, GDP 130% 넘어 가입자당 7000만원 넘는 빚 진 국민연금 실상 공개해야 」 실상 모르면 고통스러운 개혁 반대 퍼스펙티브 최근 발표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연금 관련 조사 결과는 연금 문제를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성인 1026명 대상의 ‘2023 국민연금 현안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4.6%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5세 이상으로 상향하는 방안에 부정적이다. 현재 9%인 보험료 인상에도 70.8%가 부정적이었으며, 보험료 납부 기간 연장 방안 역시 53.5%가 동의하지 않았다. 가시적 개혁 효과를 보여줄 조치들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다 보니 개혁은 물 건너간 거 아니냐는 판단이 설 법도 하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결과다. 어찌 보면 이러한 결과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연금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더 부담하고 늦게 받으라고 하니 부정적으로 답변하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선택지가 있다는 전제 아래 답변했을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성공적 연금개혁을 이루어낸 영국 사례가 그래서 중요하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자문회의에서 서울과학기술대 김영순 교수가 발표한 ‘성공적 연금개혁을 위한 공적 협의와 시민학습: 영국 사례와 시사점’은 공론화 과정의 중요성을 환기한다. 영국은 연금개혁에 앞서 심층 의견 조사를 시작했다. 노동연금부가 11개의 질문을 준비하여, 12주 동안 102개 기관으로부터 1600개의 응답을 들었다. 이해 관계자와의 심층 협의, 지역 순회 토론회, ‘전 국민 연금의 날’이라는 이벤트도 열었다. ‘일하는 세대 연금 추가 부담’ 62% 찬성 영국의 ‘전 국민 연금의 날’ 조사에 사용한 문항 5개다. “첫째, 연금 소득자가 될 경우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보다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 둘째, 앞으로 더 많은 세금이 연금에 쓰여야 한다. 셋째, 개개인은 노후 준비를 위해 더 많이 저축해야 한다. 넷째, 연금 가입자들은 더 오래 일해야 한다. 다섯째, 고용주도 피용자의 연금 부담에 기여해야 한다.” 이 문항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 이대로라면 연금 소득자가 되었을 때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더 많이 부담하고, 더 오래 일하며, 고용주도 더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를 통해 연금개혁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각인시킨다. 단순 조사가 아니라 제대로 된 문항 구성과 관련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사전 학습이 중요하다. 우리는 연금에 대한 충분한 학습 없이 질문만 한다. 현황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다 보니 여전히 선택 여지가 많은 것으로 인식하여 응답한다. 앞서 언급한 경총 설문 역시 이러한 범주에 있다. 반면 영국 ‘전 국민 연금의 날’의 조사는 사전 학습의 중요함을 확인시켜 준다. 토론 전후 2차례의 공통된 질문의 응답에 큰 차이가 있다. 영국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토론 후 가난한 연금소득자로 사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이 1차 조사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부담을 더하고 연금 수급 연령은 상향 조정하는 것에 대한 동의 비율도 크게 늘었다. 소폭이기는 하나 고용주 부담 증가에 동의하는 의견도 많아졌다. 사전 학습과 제대로 된 설문이 끌어낸 결과이다. 우리에게도 유사 사례가 있다. 최근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K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특집의 연금 관련 조사가 그렇다. EBS 특집은 영국처럼 두 차례에 걸쳐 조사했다. 온·오프라인으로 10대부터 70대까지 전국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사전 지식이 없을 때와 비교하면 관련 내용에 대한 학습 이후 조사 결과가 극적으로 바뀌었다. 급락한 출생률로 인해 연금 받을 연령층이 이를 부담할 인구보다 많아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 자료를 보여준 뒤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일하는 세대가 연금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에 대해 62.4%가 찬성했다. “연금수령자가 금액을 덜 받도록 조정해야 한다”에 대해서는 인구 구조 변화를 학습한 이후의 찬성 비율이 55.4%로 절반을 넘겼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전달한다면 연금개혁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대통령의 의지와 리더십 중요 ‘명확한 증거에 기반을 둔 진단과 정책, 투명한 정보 공개와 적극적인 미디어 전략’이 성공적인 연금개혁의 전제조건이라는 김 교수 지적을 주목해야 한다. 연금개혁 추진 과정에서 알려지게 되는 각종 정보와 전문가 논쟁 내용이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학습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전문가 논의 과정들은 정부가 떠안아야 할 부담을 완화하는 기제가 될 수도 있다. 필자는 각종 위원회 등에서 전문가 논의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김 교수의 진단이다. “우리나라는 노조 조직률이 낮고, 자영업자와 취약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도 없다. 양당제하에서 대결주의적 정당 정치가 일상화된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국회 주도의 정당 합의형보다는 정부가 주도하는 공적 협의형으로 연금 문제에 접근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는 무엇보다도 권력 최상층부의 의지와 리더십이 중요하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영국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시작된 2002년 이후 최종 타협안이 나올 때까지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주 5∼6시간을 연금 관련 업무에 할애했다. 블레어 총리 시절 다우닝가 10번지 정책위원회 사회보장자문관이었던 가레스 데이비스는 “영국 총리실이 위치한 다우닝가 10번지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수많은 자료와 제안들이 쌓여있다. 중요한 건 총리의 시간, 노력, 가용자원이 어디에 쓰이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적지 않은 시간과 열정을 투입해야 성공적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 연금 미적립 부채는 시한폭탄 이러한 맥락에서 대통령과 주무 부처 장관이 개혁의 시급성을 강조했던 2006∼07년 상황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국민에게 개혁 불가피성을 납득시킨 수단은 빠르게 늘어나는 연금 미적립 부채였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연금 미적립 부채가 마치 머리 위에서 돌아가는 시한폭탄과 같다”는 표현이 연금개혁의 절박성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효과적인 수단이 있음에도 국민연금재정계산위와 국회 연금특위는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 공개를 거부했다. 미적립 부채란 이미 지급하기로 약속한 연금액 대비 부족한 액수를 의미한다. 필자 추산에 따르면 공무원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 미적립 부채는 적게 잡아도 국내총생산(GDP)의 130%를 넘는다. 33만 명이 가입한 사학연금 미적립 부채는 170조원으로, 가입자 1인당 5억원 넘는 빚을 졌다. 국민연금도 가입자 1인당 7000만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제대로 알린다면 개혁이 가능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해 개혁에 성공한 경험도 있다.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를 공개해야 한다고 거듭해서 주장하는 이유다. 최근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초고령사회 계속고용연구회’가 출범했다. 연금개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중요한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다. 다양한 형태의 고용 연장 옵션이 제시될 경우, 연금 납입 연령 연장 등 연금개혁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경사노위의 계속고용연구회처럼 개혁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연구와 필요한 조치를 병행하여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할 때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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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의 퍼스펙티브] 자치와 자율, 마을과 지방이 대한민국 소생 지름길이다
━ 대한민국 최중심 문제, 인구②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정치학 〈7월 6일자 퍼스펙티브에서 이어집니다〉 인구문제에 대해 주목해야 할 다음 선현은 몽테스키외다. 그는 높은 탁견과 통찰을 통해 인류에게 삼권 분립을 포함한 민주공화국과 민주주의의 결정적 토대를 제공한 최고 현자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인구문제에 대해서도, 오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깊이 경청할만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선 몽테스키외에 따르면, 두 사람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결혼이 이루어진다. 즉 자연은, 생존의 어려움에 의해 저지되지 않는다면, 인간을 충분히 결혼으로 이끈다. 인간은 안전한 생활공간이 제공된다면 기본적으로 결혼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결혼 거부가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보장조차 넘어서는 인위적 장애 요인으로 인한 현상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 「 전쟁·기근 인한 감소는 회복 가능 악습·악정이 초래한 감소는 불치 서울 집중, 결국 어떤 결과 빚었나 중앙집중·승자독식은 국가 자살 」 그에 따르면 신흥국민은 번식하여 그 수가 크게 증가한다. 그러나 국가가 틀을 갖추면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이 견해 역시 주목을 필요로 한다. 일반적으로 신흥국가들은 인구의 빠른 증가를 경험하고, 선진국가들은 출산의 감소를 목도한다. 또, 한 나라에서도 초기에는 인구가 빠르게 성장하다가 발전 및 성숙을 한 뒤엔 인구가 정지되거나 줄어드는 현상이 발견된다. (인간 욕망체계의 진화 및 문명의 발전·성숙과 관련하여 이 문제에 대해선 매우 깊은 견해들이 나와 있다. 이 난제는 뒤에 살펴볼 것이다.) 나아가, 몽테스키외는 빈곤한 사람들이 자식을 많이 갖는다면서, 이는 신흥국민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라고 유비한다. 그러나 부와 출산의 관계에 대한 이런 인식은 훗날 경험적으로 반대와 지지의 흐름 모두에 직면했다. 결혼과 출산은 자연적 인간 본성 퍼스펙티브 몽테스키외는 통치의 가혹함은 자연적 감정을 파괴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는 자식이 자기가 경험한 그토록 잔인한 주인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 여성들 스스로 낙태를 하지 않았는가 말한다. 이때 그가 말하는 통치는 지배나 인간관계의 동의어다. 또는 정치·정부와 같은 뜻이다. 인간공동체의 가혹성이 초래하는 인간의 사회적 성정이 생래적 인간 본성을 억누르고 변화시킬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출산 거부다. 지금 이 나라의 현실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몽테스키외의 견해는 국가체제의 성격과 인구문제의 상관관계에 대한 것이다. 나라가 작은 단위의 자치 체제들(그의 표현을 빌리면 ‘작은 공화국’)로 이루어져 있을 때는 주민들이 많았다. 그리고 인구를 늘리기 위한 법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고대의 최고의 철학자가 왜 일정 규모의 인구수(플라톤은 『법률론』에서 5040명을 말한다. 그러나 플라톤에 대한 몽테스키외의 언급은 약간 논란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요한다)를 언급했는지 예거한다. 그러나 몽테스키외의 설명과 주장은 경험적 사례에서 더욱 선명하다. 그는 인구문제에 관한 한 작은 도시와 작은 공화국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여기에서 말하는 공화국은 오늘날의 주권국가가 아니라 자치·자유·자율성을 갖는 마을이나 도시, 또는 지방이나 지역 단위체를 의미한다. 그가 볼 때 그리스는 도시로 이루어진 국가였다. 그들 작은 도시들과 작은 공화국들은 안으로는 시민의 행복을 목표로 삼았다. 작은 영토와 큰 행복으로 인해 시민의 수는 증가하였다. 이탈리아·시칠리아·소아시아·스페인·갈리아·게르마니아는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작은 (공화국) 국민으로 가득했고, 그리하여 주민들은 넘쳐났다. 따라서 주민들을 증가시키기 위한 법은 필요하지 않았다. 로마 시대의 인구 늘리기 정책 그런데 이 모든 작은 자치 공화국들이 하나의 큰 공화국에 합병되자 인구가 감소했다. 몽테스키외는 로마 승리 전후의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상태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큰 공화국은 도시나 지방의 자치와 자율을 박탈한 단일한 중앙 집중 정부를 말한다. 그는 티투스 리비우스와 플루타르코스를 인용하면서 옛날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음에 틀림없었을 지방이 황야로 변모했음을 언명한다(리비우스). 또, 신탁을 받을 장소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신탁은 끝났다고 말한다(플루타르코스). 이는 신탁을 받을 인간의 소멸로 더는 신탁을 내릴 수가 없다는 말이다. 플루타르코스의 ‘신탁이 끝났다’는 말은 인간 문제와 인간의 물음에 대한 모든 응답의 완전 중지를 뜻한다. 지금 우리의 숱한 마을과 지방과 도시들은 인간의 이성과 지혜는 물론 신탁과 응답의 중지상태로까지 들어가고 있다. 그는 로마인은 스스로 무덤을 팠다고 진단한다. 그리고는 인구 상실을 회복하기 위한 로마의 노력을 상세히 열거한다. 그는 내부 분란과 삼두정치와 추방제도가 로마가 행한 어떤 전쟁보다도 로마를 치명적으로 약화시켰다고 본다. 그 결과 시민들은 얼마 남지 않았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 카이사르가 내전 후에 호구조사를 실시했을 때 가장은 15만 명에 불과했다. 결국 로마는 많은 법률과 제도, 특혜와 특권, 처벌과 제약을 통해 시민들을 결혼시키고 출산을 장려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나라의 영속을 위한 당시의 특권과 특혜들을 보면 오늘 우리 사회의 편견과 논란은 부끄러울 정도이다. 몽테스키외는 당시의 법과 제도들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하고 한 가지만을 소개한다. 지금도 남아있는 인구주택 총조사를 의미하는 현상과 단어(census)의 출발이 로마이며, 그를 관장하는 독립적 직위(censor, 감찰관·인구총감·호구총감이라는 뜻)를 따로 설치했을 뿐만 아니라,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는 직접 이 직위를 맡으려고까지 했다. 오늘날 대통령이 인구 부총리나 인구부 장관 직을 설치하고 이를 직접 맡는 것과 마찬가지다. (필자는 한국의 경우 난제 중의 난제인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구 부총리나 인구부의 설치가 필수라고 본다.) 대한민국, 안락사로 가지 않으려면 몽테스키외에 따르면 시민의 수를 증가시키기 위한 로마의 규칙들은 공화국 제도가 충실한 역량을 갖고 있어서, 용기나 대담성이나 단호함이나 명예에 대한 사랑이나 덕성에 의해 손실을 회복할 동안에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장 현명한 법과 조치들도 죽어가는 공화정체를 포함하여 통치와 정치가 무너뜨린 것을 회복하게 할 수는 없었다고 본다. 우리에게 가장 쓰리고 아픈 말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말한다. 인구감소는 많은 작은 자치·도시·지방 공화국들을 끝없이 중앙으로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몽테스키외는 인류의 인구문제를 일별한 뒤 자신의 조국 프랑스에 대해서도 엄중 경고한다. 옛날에는 프랑스의 모든 마을이 수도였다. 오늘날에는 커다란 수도 하나밖에 없다. 예전에는 국가의 모든 부분이 권력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하나의 중심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이 중심이 국가 자체인 것이다. 권력도 자원도 교육도 병원도 주택도 금융도, 한마디로 힘과 돈과 기회가 모두 서울로 몰려, 산업화 시기의 ‘서울 집중’과 민주화 이후 시기의 ‘수도권 집중’이라는 두 단계를 거치면서 지금 한국 공동체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것이 차례대로 중앙집중 심화→지방 황폐화→지방소멸→최악의 서울 출산율→국가 전체 인구절벽→인구소멸(→국가소멸)로 가는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점을 깨닫는 데는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늘의 한국민들에게 이 현자의 마지막 결론은 가장 무섭다. 국가의 인구수가 특수한 사건·전쟁·페스트·기근으로 감소하는 경우에는 구제할 길이 있다. 남은 사람들이 이 불행을 만회하려는 노동과 근면의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감소가 내적 악습과 악정에 의해 오래 지속할 경우 불치병이 된다. 그곳에서 인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걸린 만성 질병으로 소멸한다. 정녕 더 중앙 집중하고, 더 진영으로 갈라지고, 더 승자 독식하고, 더 저질스럽게 적대하며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우려는가? 그 불치병은 대한민국을 안락사라는 끝장으로 안내할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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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찬의 퍼스펙티브] 한국 내 이란 동결 계좌 8조원…국익 지킬 방안 찾아야
━ 미국-이란 관계 정상화 비밀 협상 신동찬 법무법인 율촌 파트너변호사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미국과 중국이 화해 무드를 이어갈 무렵 “코끼리들이 싸울 때만 잔디밭이 망가지는 게 아니다. 그들이 요란스럽게 사랑을 나눠도 잔디가 상한다”고 말했다. 강대국들이 갈등할 때뿐만이 아니라 사이가 좋을 때도 약소국들의 권익이 짓밟힐 수 있음을 경계했다. 지금도 미국은 중국과는 반도체 및 대만 문제로 첨예하게 부딪히고, 침략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는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면서 충돌하고 있다. 또 하나의 적대국과는 비밀리에 관계 개선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뜻밖에도 상당수 우리 기업들에는 기회이자 위험이 되고 있다. 이 나라는 바로 미국이 ‘불량국가(rogue state)’라고 지칭한 이란이다. ■ 「 미국의 경제제재로 이란산 원유 수입대금 국내 원화 계좌에 쌓여 미-이란 협상서 한국 등에 있는 이란 동결 자산 해제도 논의할 듯 한국 선박 나포했던 이란, 자금 반환 요구하며 국제 소송 움직임 미국과 소통하면서 이란에 미수금 있는 국내 기업도 보호해야 」 오만·뉴욕 등지에서 꾸준히 만나 FILE PHOTO: Atomic symbol and USA and Iranian flags are seen in this illustration taken, September 8, 2022. REUTERS/Dado Ruvic/Illustration/File Photo 지난 6월 영국의 이란 전문 매체가 미국과 이란이 오만과 뉴욕 등에서 비밀협상 중임을 보도했고, 서방 주요 통신과 신문의 후속 보도가 이어졌다. 1979년 2월 이슬람 혁명 당시 이란 측이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직원들을 444일이나 인질로 잡았던 이래, 미국과 이란은 오랜 적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아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연두교서에서 이란을 북한과 당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집권 중이던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의 하나로 지칭했다. 특히 이란이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강력한 우방인 이스라엘을 노린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의혹이 2000년대 중반에 제기되자 미국은 전례 없는 포괄적 국제 경제 제재로 대응했다. 그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이란은 핵개발 의혹이 있는 자국 내 시설들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기로 하고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 사회는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포괄적 이란핵합의(JCPOA)가 타결됐다. 하지만, 오바마의 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JCPOA를 파기하며 대(對)이란 경제 제재를 일방적으로 부활시켰다. 오바마 시절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이 2020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를 꺾고 집권했지만 이란핵 합의가 금방 부활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관계 개선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회와 위기, 한국에도 큰 여파 초강대국 미국과 중동의 강자 이란이 다시 화해한다면 좋은 일 아닐까.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제재 부활로 이란과의 사업과 교역 기회가 막혔던 한국 기업엔 요즘 다시 불기 시작한 중동 붐을 확산시킬 절호의 기회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외신에 흘러나오는 양국 간 비공식 협의 내용을 살펴보면 한국에 마냥 희소식만은 아니다. 이란 관련 사건 일지 그 이유는 미국과 이란 간 비밀 협상에서 큰 ‘팻감’으로 쓰일 수 있는 게 바로 한국에 있는 이란 동결 자금이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이나 외신 등에서 70억 달러 규모라고 보도된다. 국내 시중은행 두 곳에 있는 원화계좌라 달러 환산 금액은 달라질 수 있다. 정확히 공개된 적이 없지만 대략 8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비밀협상이라 이란이나 미국 모두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양국 간 비공식 합의안은 JCPOA를 전면 재복원하는 것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내년 대선에서 트럼프와 재대결해야 할 가능성이 큰 바이든 대통령에게 JCPOA 전면 재복원은 이란에 지나치게 유화적이라는 공격을 당할 빌미가 될 수 있다. 대신 부분적·잠정적인 합의로 양국 간 긴장을 낮추는 정도일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이란이 IAEA의 핵사찰을 일부 수용하고, 핵무기 제조에 쓰일 수 있는 우라늄 농축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한다. 또 이란이 억류 중인 미국인들을 석방하는 대신, 미국은 해외의 이란 자산을 이란이 국내로 반입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2010년 한국-이란 원화 결제 합의 문제는 ‘해외의 이란 자산’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한국에 있는 동결 자금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이란 자금이 국내 시중은행 두 곳에 동결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이란 핵개발 의혹에 따른 국제사회의 이란 경제 제재와 관련이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 핵합의 5년여 전인, 2010년 7월 1일 그때까지 이란에 대하여 시행했던 제재 중 가장 강력한 제재인 포괄적 이란 제재법(CISADA) 시행을 시작했다. CISADA의 핵심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위한 자금원이 될 수 있는 이란의 석유·가스 분야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들에 대한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을 가혹하게 집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이는 당시에 이란에 진출한 한국 건설사·정유업체·종합상사 등 3000여 개 기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미국의 양해 하에 이란과 한국 간 교역을 국제 제재를 준수하며 진행하고, 미 달러화를 국제 금융망을 통해 거래하지 않으며 한국과 이란 간 원화 결제계좌를 만들어 한국 기업들의 이란 교역을 정리해 나가기로 이란과 합의한다. 한국과 이란 간 원화 결제계좌란 당시 연간 110억 달러 규모(전체 원유 수입량의 9.7%)로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던 국내 정유사들이 원화로 대금을 지급하고, 이란 측에서는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계좌로 받기로 한 것이다. 국제통화가 아닌 원화를 받은 이란으로서는 달리 쓸 곳이 없었기 때문에, 해당 계좌에 쌓인 원화를 이란이 한국에서 수입하는 가전제품과 철강 제품 등의 대금으로 정산하는 용도로 쓰기로 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이란 간 원화결제시스템이었다. 원화결제시스템은 국제 사회의 이란 경제 제재 중에도 양국 교역을 지탱해 주었고, 2015년 7월 JCPOA 타결로 이란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가 해제된 이후에도 활용됐지만, 2018년 5월 트럼프가 JCPOA를 파기하고 그 다음 해 5월 이란에 대한 모든 제재 예외 인정도 거부했다. 미국의 강력 제재로 다시 동결 이 상황에서 국내 시중은행이 이를 계속 운영한다면, 미국의 이란 제재 법령에 따른 강력한 제재를 받아 국제 금융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한-이란 간 원화결제시스템은 중단됐고 이 계좌는 동결됐다. 이란은 그간 줄기차게 한국 측에 이 자금의 반환을 요구해 왔고, 2021년 1월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하던 한국 유조선을 이란의 이슬람혁명 수비대(IRGC)가 나포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당시 나포가 인질극이 아니냐는 지적에 이란 정부 대변인은 “한국 정부가 70억 달러를 볼모로 잡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미국과 이란 간의 협상이 타결돼 원래 이란 소유인 돈을 돌려주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겠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한국-이란 간 원화 결제 계좌가 2019년 5월 갑자기 닫히는 바람에 상당수 한국 기업도 이란 측 상대방 바이어 등으로부터 받아야 할 물품 대금 등을 떼인 경우가 많았다. 그동안 이 미수금을 회수할 경우에 미국의 이란 제재 대상에 오를까 봐 냉가슴만 앓았던 경우도 있다. ‘닭 쫓던 개’ 신세 되지 말아야 한국 정부는 그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이란과 진행하였던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을 주시해 온 것으로 안다. 하지만 미국-이란 간에 벌어지는 비밀협상 내용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이란이 한국 기업에 빚진 돈을 동결 자금에서 갚지 않고 이란 중앙은행 명의 계좌에서 돈을 모두 찾아간다면, 미수금이 있는 국내 기업은 자칫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국제 사회로의 복귀를 다짐하는 이란으로서도 미수금이 있다면 제대로 변제하는 것이 국제 거래를 하는 책임 있는 당사자의 자세일 것이다. 이란에서 받을 미수금 규모는 몇 년 전 정부가 코트라를 통해 조사한 적이 있는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그동안 연체 이자가 붙었을 테니 정부가 정확한 규모를 재조사할 필요가 있다. 미국도 동맹국인 한국의 기업들이 오랜 적대국 이란에 돈을 떼이고, 이란이 한국산 가전과 철강 제품 등을 공짜로 쓰게 되는 상황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이란과의 관계 개선, 변수 많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미동맹이 공고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달 18일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담도 열린다. 한국 정부는 튼튼한 한미동맹의 기반에서 미국-이란 간 협상에서도 한국의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비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이란 관계 변화에 따라 한국도 이란과의 무역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 바이든이 재선되면 이란 핵합의가 부활할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된다면 이란 시장이 다시 열린다. 이 시장을 한국 기업이 놓칠 수는 없다. 반면 트럼프나 공화당의 다른 후보가 당선된다면 이란과의 무역 지속은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으니 신중히 해야 한다. 아울러 최근 이란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 국가 소송을 제기하기 위하여 이란 의회에 승인을 요청했다는 취지의 외신 보도가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미국과의 비공식 협상에서 협상 카드로 쓰면서 한국 정부도 압박하기 위한 이란 정부의 양면 작전일 수 있다. 이렇게 치열한 국익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 한층 분명해졌기에, 이란과 거래했던 국내 기업과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더욱 절실해졌다. 신동찬 법무법인 율촌·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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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퍼스펙티브] “파격적 특권 포기한 정당이 총선서 지지받을 것”
━ 지금 왜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인가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국회부의장실에 들어서니 울프 흘름 부의장이 손수 맞이하고 직접 커피를 뽑아 탁자 위에 놓았다. 인터뷰가 끝나자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 3선 의원인데도 따로 보좌진이 없었다. #총리 지명 1순위이던 모나 살린 당시 부총리는 법인카드로 초콜릿을 산 게 드러나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사법 처리를 받진 않았지만, 자녀 탁아소 비용 연체, 유모 영수증 미처리 등 윤리적 책임은 피할 수 없었다. ■ 「 ‘심부름꾼’ 임무 잊은 특권국회 “위임한 권한 회수하자”가 민심 비리·범죄엔 불체포특권 없애고 대선·지선 때 3억 모금 폐지해야 」 주차위반에 장관 낙마하는 스웨덴 스웨덴 린네대 최연혁 교수가 저서 『스웨덴 패러독스』에서 소개한 스웨덴 정치인의 일상이다. 이외에도 의원거주 지원금을 실제와 다르게 신고해 정계를 떠난 당 대표, 주차 위반이나 TV 시청료 미납이 드러나 중도 낙마한 장관 사례 등이 줄줄이 나온다. 특권은커녕 일반 시민보다 혹독한 잣대로 감시받는 공복(公僕, 국가의 심부름꾼)의 모습이다. “특권이 무려 186개”라는 한국 국회의원과 대비된다. 항공기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고, KTX를 공짜로 타는 건 빙산의 일각이다. 1년에 수억원의 국고 지원을 받고도, 후원회·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모금한다. 비리를 저질러도 체포되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고도 면책특권 뒤에 숨으면 그만이다. ‘대통령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의원이 단적인 예다. “합리적 의심”이라던 그의 주장은 모두 허위로 밝혀졌지만 어떤 징계나 처벌도 받지 않았다. 특별한 대접을 받으면 특권을 누리는 걸 당연시하게 되고, 결국엔 군림하려 든다. 지금 정치가 그렇다. 자유로운 의정활동의 버팀목으로 주어진 공적 권한을 사유화하고 특혜를 누리면서 사회 통합과 국가 발전은 오히려 멀어져가는 퇴행을 보이고 있다. 한 전직 의원은 “정치인의 관심사가 국가 발전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재선과 자기 당의 집권에만 쏠려 있는데 놀랐다”고 고백했다. 지지자로부터 욕먹고 낙선을 각오하면서 바른 소리를 하는 ‘쓴소리파’ ‘소신파’도 멸종해가고 있다. 최 교수는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공적 권한을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하는 걸 감시하고 특권의식을 갖지 못하게 투명성을 높인 스웨덴 모델이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린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한다. 내년 22대 총선(4월 10일)을 앞두고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국회의원 특권 폐기 운동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회의원 보수, 세계 최고 수준” 지난 4월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라는 시민단체가 발족, 공직자의 특권 포기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섰다. 운동을 주도하는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은 “한국 국회의원 월급이 액면가로는 미국·일본에 이어 세 번째지만 국민소득 대비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며 “온갖 특권을 누리면서 입신양명을 위해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니 정치가 부패·타락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보수를 근로자 평균 임금(400여만원) 정도로 낮춰 국가를 위해 봉사할 사람이 정치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재민 기자 ‘국회의원 수당 등 지급 기준’에 따르면 2023년 의원 연봉은 1억5426여만원이다. 일반 수당과 급식비, 정근수당, 명절 휴가비, 입법활동비 등을 합친 금액이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1285만원꼴이다.〈표1 참조〉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3만2661달러, 420만원) 대비 3.7배다. 미국·영국·일본의 의원 보수가 국민소득 대비 약 2.5배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 의원들의 보수가 높다”는 비판은 타당하다. 신재민 기자 이와 별도로 의원실 지원 경비로 평균 1억여원가량 추가로 받는다. 사무실 운영비, 업무추진비, 의원 차량 유류비, 출장비, 입법자료 발송비, 정책 개발비 등이 포함된다. 〈표2 참조〉 의원들은 또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7·8·9급 비서 각 1명, 유급 인턴(1명) 등 모두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보좌진 총급여는 5억2000여만원. 의원 1명에게 연간 7억원이 넘는 경비가 들어가는 셈이다. 문제는 ‘고(高)비용’이 정치의 ‘생산성’에 역행한다는 점이다. 정세균 국회의장 시절이던 2016년 국회의원특권내려놓기추진위원회에 참여했던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국회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업무수행에 필요한 권한조차 특권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국민 불신이 높아졌고 국회의원을 특권집단으로 인식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3권분립 강화와 행정부에 대한 견제 역할을 기대하며 국회의 권한과 위상을 높여줬지만, 정작 국회는 국민의 ‘대리인’임을 망각하고, ‘정치 엘리트’라는 특권의식에 포획돼 민의를 수용하지 못하자 국민이 위임했던 권한을 회수하려 나섰다는 게 김 교수의 해석이다. 선거공영제의 모순, 꿩 먹고 알 먹기 운동본부는 선거공영제란 이름으로 정당과 의원에게 과다한 나랏돈이 쓰이는 걸 바로잡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 의원들은 1년에 1억5000만원, 선거가 있는 해는 3억원까지 정치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다. 그러나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액을 국고에서 환급받는다. 3억원을 모금해 선거자금에 다 썼어도 국고에서 3억원을 환급받으니 3억원이 고스란히 남는 구조다. ‘꿩 먹고 알 먹기’ ‘도랑 치고 가재 잡기’다. 특권폐지 운동에 참여한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은 “도무지 말이 안 된다”며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 차별적 특혜 대접을 받으니 우쭐해지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최 전 총장은 또 “국회의원이 자기 선거(총선)가 아닌, 지방선거나 대선 때도 3억원까지 모금할 수 있다”며 “그런데 이 돈을 대선이나 지방선거에 사용하면 공직선거법 위반이 된다. 쓰지도 못하는데 왜 3억원까지 모금해야 하나”고 의문을 제기했다. 지방선거가 있던 ‘2022년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 현황’을 보면, 국민의힘 장제원(3억2103만원), 민주당 김남국(3억3014만원), 이원욱(3억2269만원), 정청래(3억516만원), 박주민(3억407만원) 의원 등 여야 실세들이 모금 상한액을 넘는 정치자금을 모았다. 선거를 명분으로 모금한 건데 선거 지원에 쓰지 못하는 모순일 뿐만 아니라 같은 선출직인 지방자치단체·의원과의 형평에도 맞지 않는 특혜다. 지난해 여야 의원의 평균 모금액은 1억8900여만원이었다. 선거비용 이중 보전에 헌법소원 중앙당에 대한 선거비용 이중 보전 문제는 더 심각하다. 장 이사장은 “평소엔 정당에 경상보조금을 주고, 선거가 있는 해엔 선거에 쓰라고 미리 선거보조금을 주고, 선거 후엔 선거에 쓴 비용을 또 보전해줘 막대한 돈을 이중으로 안기고 있다”며 “지난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선관위도 심각성을 느껴 개정 의견을 냈지만 국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 덕분에 776억원(2021년)이던 국민의힘 재산은 지방선거가 있던 2022년엔 1255억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민주당도 464억원에서 929억원으로 재산을 불렸다. 기막힌 ‘선거 테크’가 아닐 수 없다. 여야는 선거 때 득표전략으로 ‘특권 폐기’를 써먹곤 번번이 폐기했다. 지난 대선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자신과 소속 의원들의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오자 모두 부결시켰다. 비난 여론이 고조되자 이번엔 ‘정당한 영장 청구’라는 단서를 단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을 혁신안인 것처럼 둔갑시켰다. 꼼수다. 시대착오적인 불체포·면책특권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 입법부가 왕에 대한 비판 발언을 보장하기 위해 명문화된 이래 미국·영국·일본·독일 등 선진국들도 불체포·면책특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런 입법 취지와 배경 때문에 국내 학자들 간에도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문제는 운용이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도입 배경이나 정신은 없어지고 인신구속과 범죄행위에 대한 회피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게 문제”라며 “불체포특권을 규정한 나라에서도 형사 사건이나 개인 범죄엔 적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면책특권의 경우 ▶영국은 명예훼손시 의회 내부에서 징계하고 ▶독일은 ‘중상적 명예훼손’에 대해선 면책특권을 적용하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다. ‘방탄국회’‘막말국회’ 사라져야 이준한 교수는 “국민에게 봉사하지 않으면서 과도한 혜택을 누리는 넌센스를 바로잡으려면 내년 총선 때 정당이 이를 총선 공약화하고 개혁 경쟁이 불붙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호기 교수도 “선거 판도를 결정짓는 두 축은 인물·정책 대결과 혁신 경쟁인데, 국민의힘과 민주당간 인물·정책 대결이 변별력이 있겠는가”라며 “1990년대 이탈리아 오성운동이 관용차 금지, 3선 제한 등의 파격적인 특권 포기로 각광받았듯이 내년 총선 판도는 특권 포기를 선도하는 정당이 여론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복의 본분을 망각한 채 변질된 ‘특권국회’ ‘방탄국회’ ‘막말국회’. 이쯤에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 다시 국민이 나설 때다.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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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천의 퍼스펙티브] 압축 성장 한국형 경제 기적 뒤 ‘반기업 정서’ 그림자
━ 한국 대기업의 역사적 책임은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자본주의 이전’ 경제와 ‘자본주의 이후’ 경제에서 달라지는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기업의 등장이다. 대기업은 자본주의의 핵심(core)에 해당한다.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시대가 되면 ‘반(反)기업 정서’가 확산한다. 자본주의에 우호적인 시대가 되면 ‘친(親)기업 정서’가 확산한다. 자본주의 탄생 이래 대기업에 대한 반감과 호감은 역사적으로 공존했고, 시차를 두고 출렁거렸다. 한국의 경우, 서구와 구분되는 반기업 정서의 역사적 유래가 존재한다. 이 지점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우리는 한 단계 높은 사회적 통합을 달성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 「 1969년 ‘닉슨 독트린’으로 박정희 정부 안보 위기감 고조 방위산업 육성과 수출 겨냥해 중화학공업 정책 드라이브 주저하는 대기업에 파격적 과세 혜택 부여하며 참여 유도 대기업, 계층사다리 복원과 사회통합 위해 더 적극 나서야 」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021년 7월, 한국을 선진국으로 지정했다. 회원국 만장일치였다. 식민지의 경험이 있는 제3세계 국가 중 최초이고 유일한 경우다. 한국은 어떻게 선진국이 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다. 성장 중심에는 수출 - 중공업 전략 퍼스펙티브 그 중 하나는 박정희 정부가 주도했던 ‘수출-중화학공업 중심 산업화 전략’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이건희로 상징되는 한국 기업인들의 ‘기업가 정신’이다. 박정희 정부의 국가주도 산업화와 민간 대기업의 기업가 정신은 서로 맞물려서 작동했다. 이 두 요소가 어울리며 한편으로는 ‘한국형 경제기적’을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형 반기업 정서’를 만들었다. 한국형 경제기적과 한국형 반기업 정서가 어떻게 연결됐다는 말인가? 이를 알려면, 박정희 정부 시절 대기업의 성장과정을 알아야만 한다. 대기업과 관련해 박정희 정부의 경제 정책은 크게 두 번의 변곡점을 겪었다. 첫번째 변곡점은 수출 노선의 채택이다. 채택 연도는 1964년이다. 이 노선의 채택으로 박정희 정부는 수출 기업에 대해 파격적인 수준의 금융 혜택을 제공한다. ‘무역금융’ 혹은 ‘수출금융’으로 불리는 정책이다. 〈표 1〉 김영옥 기자 〈표 1〉을 보자. 1966~72년의 기간 동안 일반 대출금리는 23.2%였다. 무역(수출)금융 금리는 6.1%였다. 무역금융 대비 일반대출의 금리 격차는 무려 17.1%포인트였다. 배율로 보면 3.8배였다. 수출 기업 중에는 대기업 비중이 중소기업보다 더 컸다. 결과적으로 ‘대기업을 더 많이’ 지원하게 된 셈이다. 닉슨 독트린이 부른 충격 둘째 변곡점은 중화학공업 노선의 채택이다. 채택 연도는 1973년이다. 당시 중화학공업은 선진국이나 하는 산업이었다. 저개발 국가는 경공업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것으로 평가됐다. 박정희 정부가 중화학공업 정책을 편 이유는 안보위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1960년대 중후반에 걸쳐 강력한 흑인 민권운동과 베트남 반전운동에 직면한다. 닉슨 정부는 1969년에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다. 골자는 ‘아시아가 공산주의 위협을 받더라도 우리는 간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1972년 2월, 닉슨은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한다. 한국전쟁 기간에 서로 죽고 죽이는 원수로 지내다가 서로 화해하게 된 것이다. 베트남 반전운동→닉슨 독트린→중국과의 데탕트 과정을 거치며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전면 철수할 조짐을 보였다. 한국의 안보위기 상황에서 박정희 정부는 ‘자주 국방’을 추진했다. 자주 국방의 연장에서 방위산업 육성을 추진했다. 방위산업 육성에는 돈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외국에서 차관 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빌려주는 나라가 없었다. 결국 차관 도입은 실패했다. 이런 난관을 맞아 당시 청와대 김정렴 비서실장과 오원철 제1비서관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요지는 ▶모든 군사 무기는 조립과 분해가 가능하다 ▶한국 대기업들에게 방위 산업을 분담시킨다 ▶정부는 국방과학연구소를 통해 대기업이 생산한 부품에 대해 정밀한 품질관리를 실시한다 등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전시에는 방위산업, 평시에는 중화학공업’을 겨냥했다. 박정희 정부가 잘한 것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초점을 단지 자주 국방에만 맞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출 100억 달러 달성과도 연동했다. 한국 경제사에서 중화학공업은 ‘안보정책’이자 ‘경제성장 정책’이었다. 안보위기, 유신, 대기업의 결합 문제는 한국 대기업들 입장에서는 방위산업도 중화학공업도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일이었다는 점이다. 중화학공업은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어야 했고, 성공 확률도 극히 희박했기 때문이다. 자본의 회수 기간도 지나치게 길었다. 불확실성은 매우 컸지만 기대 수익은 불투명했던 것이다. 박정희 정부는 절반은 당근으로, 절반은 협박으로 대기업들에게 중화학공업(방위산업)을 관철했다. 김영옥 기자 〈그림 1〉을 보면, 정부가 중화학공업을 위해 대기업에 얼마나 강력한 세제 혜택을 줬는지 알 수 있다. 1973년 이후 중화학공업과 경공업에 대한 세율이 확 갈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중화학공업은 법인의 유효한계세율이 20% 미만이었다. 반면 경공업은 50%대 수준이었다. 중화학공업은 대기업이 하는 사업이다. 경공업은 중소기업이 주류를 이룬다. 대기업에는 20% 미만의 세율이, 중소기업에는 50% 수준의 세율이 적용된 셈이다. 말하자면, 1000개 기업 중 950개의 중소기업에는 높은 과세를 하고, 그렇게 걷은 돈을 50개 대기업에 몰아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박정희 정부는 1973년 1월 중화학공업 선언을 앞두고 1972년 10월에 유신을 선포했다. 즉, 중화학공업+파격적인 대기업 지원+유신 독재는 하나의 패키지였다. 박정희 정부의 정치적 반대편에는 중소기업 지원+대기업 특혜반대+유신 반대(민주화)의 패키지가 있었다. 한국의 반기업 정서가 왜 형성되었나고 물었지만, 정확하게는 ‘반(反) 대기업 정서’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이 유행하기 전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의미하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경영’이 유행했다. 서구의 대기업 발전 역사와 한국 대기업 발전의 역사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서구의 대기업은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 없이 스스로 성장했다. 한국 대기업은 달랐다.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에 힘입어 성장했다. 게다가 성장 과정에 유신 독재가 결합되어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안보+독재+성장 동맹’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한국은 ‘기적의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 한국 대기업은 서구와 달리 ‘기업의 역사적 책임’(Corporate Historical Responsibility, CHR)이 있다고 봐야 한다. CHR 경영의 필요성 대기업의 역사적 책임을 환기하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갖는가? 현재 대한민국에 닥친 난제를 돌파하기 위해서다. 한국 사회는 미중 패권, 글로벌밸류체인(GVC)의 급진적 재편, 급진적인 에너지 전환, 인구구조의 극단적 역전이라는 4대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위기다. 정치권, 글로벌 대기업, 시민사회가 원팀이 되어 협력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정치권은 대기업의 역할을 보다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대기업도 해야 할 책무가 있다. 반기업 정서의 ‘역사적’ 유래를 성찰하고 계층사다리 복원과 사회통합을 위해 더욱 나서야 한다. 그 아픔과 미움을 보듬어야만 우리는 진실되게 단결할 수 있고, 현재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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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의 퍼스펙티브] 인공지능에 너무 의존 말고 두뇌 활발히 써야
━ AI 시대 생존법 이광형 KAIST 총장, 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분과장 챗GPT의 열풍이 거세다. 일반 회사에서 이용하고, 교육 현장에서 이용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챗GPT가 질문에 대하여 똘똘하게 답을 주고 있고, 심지어 질문에서 요구하는 그림도 그려준다. 현재 추세로 보면 인공지능(AI)의 발전과 활용은 더욱 가속될 것 같다. 이처럼 놀라운 속도의 AI 발달에 따라 우리 인간도 많은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떠오르는 것이 일자리의 변화이다. 교육과 회사의 업무에서 상당 부분 AI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이제는 인간의 창의적인 영역까지 AI가 침투해 오고 있다. 소설을 쓰거나 음악을 작곡하는 일은 이미 놀라운 일이 아니다. ■ 「 뇌세포 사용할수록 발달하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쇠퇴 인공지능에 맡긴 채 복잡한 일 피하면 인간 두뇌는 퇴화 AI 시대 창의력 필요한 연구개발 중요성은 더욱 커져 AI 기술 개발 및 활용 관련한 일자리는 계속 늘어날 전망 」 물론 AI를 이용할 때는 마지막 단계에서 인간이 점검하고 최종 승인을 해야 실제 적용된다. 처음에는 인간이 AI가 적절하게 일 처리를 했는지 정신 차려서 볼 것이다. 그러나 몇 년 동안 AI가 일을 잘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다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케이 버튼을 누를 것이다. 우리는 요즘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는다. 처음에는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길을 알려주는지 확인하면서 운전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비게이션을 믿고 따른다. 이제 우리 인간은 복잡한 길거리 지도를 외우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골치 아프게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도 없어졌다. 휴대폰 의존에 전화번호 기억 못 해 퍼스펙티브 이처럼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지면 우리의 뇌는 어떻게 변할까? 우리의 뇌는 약 1000억 개의 뇌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뇌에 있는 뇌세포도 근육에 있는 근육세포처럼 자주 사용하면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쇠퇴하게 된다. 우리는 사고로 다리를 다친 사람이 한 달 동안 누워 있으면, 다리 근육이 눈에 띄게 축소된 것을 보게 된다. 우리 신체가 각 부위에 따라서 역할이 다르듯 뇌에서도 각 영역에 따라서 기능이 다르다. 예를 들어서 뇌의 앞부분에 있는 전두엽은 주로 사고 작용을 많이 한다. 복잡한 일을 해결하든지 또는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곳이 바로 전두엽이다. 우리의 삶은 일상생활 속에서 골치 아픈 복잡한 일들이 많다. 모두가 전두엽이 할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인생은 골치 아픈 일들의 연속이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동안 전두엽은 계속하여 발달한다고 볼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좀 더 지혜로운 의사결정을 하는 경향이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닌가 한다. 우리 뇌의 귀 부근에는 측두엽이 있다. 이곳은 기억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글을 읽든지 말을 듣고 의미를 이해한 내용을 이곳에 저장한다. 학교에서 시험공부를 하기 위하여 암기하는 내용은 바로 측두엽에 저장된다. 학교 공부를 할 때는 측두엽 발달이 왕성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암기를 하는 일이 드물다. 그때에는 측두엽의 발달이 둔화할 것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감소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나이가 들면 뇌의 기능 중에서 기억력이 가장 먼저 감소하는 것 같다. 실험 결과는 없지만 필자는 아마 평상시에 암기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이 가장 먼저 쇠퇴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나이 들면 전개 빠른 영화 이해 어려워 실제로 필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봤다. 우리는 가끔 인터넷 접속을 시도할 때, 본인 인증을 위해서, 휴대폰을 통해서 보내주는 암호를 입력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보통 여섯 자리 숫자를 준다. 휴대폰에서 얼른 암호를 읽고 입력해야 한다. 그런데 여섯 자리 숫자를 한꺼번에 외우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앞 세 자리 입력하고 다시 뒤 세 자리를 읽어서 입력하곤 했다. 과거에는 그러지 않았다. 긴 전화번호도 금방 외웠다. 나를 과거로 되돌리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여섯 자리를 통으로 외워서 입력하는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몇 달이 지나자 이제는 적응이 되었다. 나의 암기 능력이 향상된 것이다. 뇌의 뒤쪽에는 후두엽이란 곳이 있다. 이곳은 눈을 통해서 들어오는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부분이다. 시신경을 통해서 들어오는 영상을 이해하는 역할을 한다. 얼굴에 있는 눈은 정상이더라도 이 부분을 다치게 되면 시각 처리 작용을 상실하게 된다. 나이가 들게 되면 템포가 빠른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다. 분명히 영상을 봤는데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후두엽의 쇠퇴에서 온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어린이들은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통해서 많은 영상을 보면서 자란다. 과거 어린이들보다 영상 처리 정보량이 많고 속도 또한 말할 수 없이 높다. 아마 현재 어린이들은 후두엽이 무척 발달해 있을 것이다. 편안한 길 추구하다간 뇌 위축 그럼 약 30년 후 우리 인간의 뇌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전화번호나 길거리 지도를 외우는 일은 너무나 오래전 일이다. 숫자를 암산하는 일도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되어 있을 것이다. 비서가 전화를 받고 일정 관리하는 일은 AI가 잘할 것이다. 변호사나 변리사가 판례를 모아서 분석해주는 일도 먼 옛날의 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의사도 환자 개인별 데이터에 의해서 AI가 진단하고 이에 맞는 처방을 해주면, 그것을 추인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한마디로 해서 인간은 불편하고 골치 아픈 일은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간은 아주 편안한 가운데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것이다. 30년 후에는 주 3일 또는 주 4일 근무하며, 여가를 어떻게 즐길까 하는 것이 고민거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있다. 그런 생활을 한 두 해가 아니라 10년 20년 거듭하고, 일생을 여유롭고 한가하게 놀면서 지낸다면 인간의 뇌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의 뇌는 매우 적응력이 빠르다. 그리고 언제나 편한 길을 선택한다. AI에게 복잡한 일을 시키면 되기 때문에 굳이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 전화번호를 휴대폰이 저장해주기 때문에 굳이 외우려 하지 않는다. 이런 생활을 약 10년 했더니 이제는 외우려 해도 외워지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뇌이다. 미래 일반 대중의 뇌는 상당히 쇠퇴해 있을 것이다. 복잡한 일을 하지 않는 전두엽은 현재에 비해 작아져 있을 것이다. AI가 지식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굳이 암기하지 않아도 되는 측두엽도 위축되어 있을 것이다. 책이나 신문을 읽는 것보다 영상을 통해서 정보를 흡수하는 경향에 따라서 언어를 담당하는 부분은 위축되고, 영상을 처리하는 후두엽은 발달할 것이다. 아마 미래에는 상당히 둔감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AI 선진국에는 일자리 늘어 물론 이러한 뇌 수축 경향성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지식을 습득하고 복잡하고 창의적인 일을 처리하는 사람의 뇌는 다를 것이다. 지식을 AI에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뇌 속에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의 측두엽은 계속 발달할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남다른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의 전두엽은 계속해서 발달할 것이다. 대표적인 창조 작업이 예술인데, 상당 부분의 예술도 AI가 대신하게 되면 남아 있는 창조 활동은 어디일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연구개발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구개발은 AI가 대신할 수 없고,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AI를 만들고 활용하는 연구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좋은 AI를 만들기 위해 글로벌하게 경쟁하는 사람의 뇌는 쉴 수가 없다. 그래서 뇌가 계속 발달한다. 뇌가 발달한 사람을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 말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머리가 나쁜 사람이라 말한다. 이러한 AI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AI에 의존하지 말고, 복잡한 일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머리가 좋아져 미래의 리더가 될 수 있다. 국가 입장에서는 AI가 대신할 수 없는 분야의 인력을 집중적으로 양성하는 것이다. AI 분야가 대표적이다. 첨단 AI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 서비스를 만드는 일자리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AI가 보급되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AI 선진국에서는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다. 이광형 KAIST 총장·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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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퍼스펙티브] 나토 정상회의 참여한 한국, 러·중 눈치 볼 때 아니다
━ 요동치는 국제질서, 한국의 전략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칸이 용골대에게 물었다. ‘저것이 무엇이냐?’ (중략) ‘조선 국왕이 무리를 거느리고 명을 향해 원단의 예를 행하는 것이옵니다.’ (중략) 대청 황제 칸이 이역만리 조선 땅에 와 일월성신의 신년을 영접하는 봉우리 아래에서, 갇힌 성안의 조선 국왕이 명에게 예를 올리고 있었다. (중략) ‘지금 포를 쏴서 헤쳐버릴까 하옵니다.’ (중략) ‘냅둬라. 저들을 살려서 대면하려 한다.’ (중략) 행궁 마당이 조용해질 때까지 칸은 성안을 내려다보았다. 임금이 무도를 마치고 다시 북경을 향해 절했다. 종친과 신료들이 임금을 따라서 절했다.” (김훈, 『남한산성』) ■ 「 미·중 충돌 등 신냉전 시대, 안보·경제·기술 블록화 가속 우크라 전쟁은 남의 일 아니야…러·중·북 견제에 공감대 경제·군비 10위 국가 한국, 더 이상 지정학 탓할 수 없어 국제 무대서 주요 플레이어로 뛰며 글로벌 외교 펼쳐야 」 400년 전 인조의 삼전도 굴욕 지난 11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대통령궁에서 열린 나토 동맹국과 파트너국 만찬에 앞서 각국 정상 및 배우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조선의 왕은 청나라 군대에 포위된 상황에서도 망해가는 명나라를 향해 예를 올렸다. 그는 청나라 황제가 쉽게 거둘 수도 있었던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줄도 몰랐다. 그의 무지는 며칠 후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땅에 머리를 찧는 삼전도의 굴욕으로 돌아왔다. 1636년 병자호란에서 350년이 지난 1987년 미국 시카고 대학의 역사학 교수 브루스 커밍스는 한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일부 국가들이) 세계 경제에서 빠르게 부상한 것은 두 개의 헤게모니 시스템 속에서 상품 사이클을 잘 탔기 때문이다. 1945년까지는 일본 제국주의, 그리고 그 이후에는 미국 헤게모니를 말한다.” 이러한 평가 속에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산업화의 기적은 없다. 한국의 성공은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 헤게모니의 철저한 종속변수일 뿐이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의 약한 고리” 그로부터 다시 35년이 지난 2022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시니어 펠로인 앤드루 여(Andrew Yeo) 교수는 이렇게 쓰고 있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고, 군비지출 세계 10위이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을 가지고 있고, BTS와 블랙핑크,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을 만들어낸 나라이다. 그럼에도 인도태평양의 다른 나라들은 한국을 이 지역의 중요한 플레이어라고 보지도 않고 다자간 안보협력의 파트너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을 민주주의 파트너 국가 중에 ‘가장 약한 고리’라고 보기도 하며, 한국이 지금까지처럼 인도태평양 이니셔티브로부터 계속 거리두기를 한다면 ‘2류 동맹(second-tier ally)’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까지 말한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중요한 플레이어가 되기를 원한다면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극복해야 한다.”(원문에서 일부 요약) 병자호란부터만 따지더라도 좁게는 한반도에, 넓게 봐도 동북아에 갇혀 지낸 지 400년이다. 거슬러 올라가자고 들면 몇백 년을 더 올라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터이다. 우리가 늘 한탄하는, 강대국 사이에 끼인 지정학적 위치 때문일까. 아니면 분단 때문일까. 동북아에 갇혀 지내는 것의 필연적 결과는 국제정세의 종속변수가 된다는 점이다. 인도태평양 개념 제시한 일본 그런데 국제정세는 다시 한번 요동치고 있다. 신냉전은 단순히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아니다. 안보적이고 군사적인 대립만도 아니다. 러시아·중국·북한이 밀착하고 있고, 미국은 인도태평양과 대서양을 가로질러 동맹을 규합하고 있다. 냉전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안보 차원을 넘어 경제적이고 기술적인 블록화까지 동반하고 있다. 국제질서의 규칙이 새로 쓰이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는 여전히 종속변수로 남아 있어야 할까. 지정학이나 분단 탓만 할 일이 아니다. 한때 우리와 마찬가지로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던 일본은 지난 30년간 치열한 노력 끝에 이제는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당당한 서방의 일원으로 대우받고 있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인도태평양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베 전 일본 총리가 만들어서 미국에 전파한 것이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일본의 동의가 없이는 한국은 인도태평양의 주요 플레이어로 인정받기 어렵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우리가 국제정세를 대하는 태도는 지난해 4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국회 화상 연설 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300명 국회의원 중 달랑 60명만 참석해서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심드렁한 모습을 보였다. 그때까지 젤렌스키는 23개국 의회에서 화상 연설을 했는데, 미국·영국·일본을 비롯해 대부분 나라의 의회는 의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차 기립박수를 보냈다. 다른 나라의 불행에 무관심한 나라가 국제무대의 주요 플레이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더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대만해협과 한반도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더욱 강력하게 재탄생한 나토 이번 나토 정상회의의 의미는 누가 뭐래도 나토와 아시아태평양 4개국(AP4)의 연결이고, 그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러시아, 중장기적으로는 중국과 북한을 억제하는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쇠락하는 것처럼 보였던 나토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더 강력하게 재탄생했다. 대서양의 나토와 태평양의 AP4를 한 자리에 끌어모으는 리더는 미국이다. 비록 유일한 수퍼파워의 지위가 일정 부분 쇠락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동맹을 규합하는 데 더 절박하고 ‘뜻을 같이하는(like-minded)’ 국가들이 모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심지어 영세중립국 스웨덴조차 나토에 가입했다.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의 정상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맞잡은 사진은 이런 변화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미국 중심 국제질서에 종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큰 의미는 없다. 어차피 세계의 양극은 미국과 중국이고, 미국을 중심으로 모인 나라들 사이에 유럽·아세안·인도 등을 상대로 한 수평적 다자 관계를 충실히 해나가야 미국에 대해서도 지렛대를 가질 수 있다. 혼자만 빠지면 왕따가 될 뿐이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우리를 적대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도 한국이 적극적인 글로벌 전략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중국·러시아의 미래 예측 어려워 시진핑 3기의 중국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예측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한국이 중국의 눈치를 보는 동안 북한의 핵 능력은 수십 배 증가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첫날부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고, 이미 벨라루스에 핵탄두 배치를 끝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와그너 그룹의 수장 프리고진이 모스크바를 향해 하루 1000㎞를 진군하던 날 미국은 푸틴의 안위를 걱정했다고 한다. 그나마 핵무기가 푸틴의 통제하에 있어야 최소한의 합리성을 기대할 수 있는데, 그가 갑자기 끌려 내려온다면 어느 정신 나간 강경파가 핵무기를 손에 넣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적극적인 글로벌 전략을 포기한다고 해서 중국이나 러시아가 언제까지나 우리를 적대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하다. 경제적인 효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세계 6~7위권으로 평가되는 한국의 방위산업은 탄탄한 제조업 역량의 뒷받침과 빠른 제조공정, 최상위를 점하는 미국산 무기와의 호환성 등 여러 장점에 힘입어 올해 200억 달러 수출을 가뿐히 넘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년 전에 비하면 무려 120배 성장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각국은 군비를 강화하고 있어서 시장이 더 커지고 있고, 이번 나토 정상회의 이후 그간 회원국들의 규범적 기준이었던 GDP 대비 2% 군비지출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서 시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새로운 질서, 용감하게 신중하게 최근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집속탄(소위 ‘강철비’라 불리는 무차별 살상 폭탄) 제공 논란에서 보듯이 살상용 무기로 돈을 버는 것에 대한 윤리성 논란이 없지 않으나, 어차피 군비 생산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 국제적인 규범 아래서 이루어지도록 관리해나가야 할 일이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말이 맞는다면 한국은 지독하게 운이 좋았던 셈이다. 우리에게 아무 발언권도 없이 만들어진 국제질서가 우연히도 우리에게 유리했다는 뜻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고, 한국은 뒷전에 물러날 수 없는 국제적 위상을 가지고 있다. 국가의 명운을 걸고 용감하고 신중하게 나서야 한다. 우리가 단 한 번이라도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글로벌 전략을 논한 적이 있었던가.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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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도의 퍼스펙티브] 사우디·이란 국교 정상화, 그래도 갈 길 먼 중동 평화
━ 중동에 이는 화해 바람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 연구소 대우교수 지난 3월 10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7년 적대 관계에 마침표를 찍고 외교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이래 중동 각국은 서로 으르렁거리거나 냉대했던 나라와 악수하며 화해하기에 바쁘다. 시리아와 손을 잡기 위해 사우디·아랍에미리트·요르단·이집트·튀니지·튀르키예가 움직이고, 이란은 사우디에 이어 이집트·바레인과 관계를 정상화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카타르는 바레인·사우디·아랍에미리트에 이어 이집트와도 화해 분위기다. 이집트는 튀르키예와 관계를 정상화했고, 사우디는 하마스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중동 정세를 잘 모르는 사람은 화해의 악수보다도 “이렇게나 많은 나라가 그동안 서로 척지고 있었던가?” 하고 놀란다. 또 여러 나라가 관계를 개선했거나 하려고 시도하는 나라가 시리아라는 사실에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복잡한 사연의 주인공이 시리아인 이유는 이란의 중동 지역 내 영향력 때문이다. ■ 「 사우디, 지난 3월 이란과 적대관계 끝낸 데 이어 시리아와도 화해 이집트·튀르키예 관계 정상화 등 적대적 국가간 해빙 무드 본격화 국제전 양상 시리아 내전이 변수…각국 이해 얽혀 정리 쉽지 않아 미군은 이라크 접경서 이란군 진입 막고 시리아는 미군 철수 요구 」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란 영향력 커져 퍼스펙티브 2003년 3월 미국은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였다. 아랍 순니(20%), 아랍 시아(60%), 쿠르드인(20%)으로 구성된 이라크에서 소수 순니파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면 친이란 시아파가 권력을 잡아 이란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 우려하여 사우디는 미국을 말렸다. 2005년 1월로 예정된 의회 선거에서 시아파가 승리하도록 이란이 돕고 있다는 의심이 짙어지고 있던 2004년 12월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는 “시아파가 주도하는 이라크가 이란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고, 이를 시리아, 헤즈볼라, 레바논의 관계에 비춰보면, 걸프 국가는 물론 (중동) 지역 전체를 매우 불안하게 만드는 새로운 초승달이 등장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란 주도의 ‘시아 초승달’ 탄생을 걱정하였다. 결국 사우디와 요르단의 불길한 예감대로 판도라 상자가 열려 역내 질서가 무너지고 이란은 아랍국가의 공적이 되었다. 사실 이란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 당시 ‘(이라크) 카르발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라는 구호를 내걸어 주변국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이맘 알리의 무덤이 있는 이라크 나자프와 함께 카르발라는 시아파의 3번째 이맘 후세인이 순교한 성지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건재하는 한 카르발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갈 수 없었는데, 이란이 ‘거대한 악마’(Great Satan)라고 부르는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준 덕에 테헤란에서 바그다드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린 셈이다. ‘시아 초승달’을 ‘이란의 육교(Iranian land bridge)’라고 부르기도 한다. 테헤란에서 지중해까지 이란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통로다. ‘시아 초승달’로 부르든 ‘이란의 육교’로 부르든 간에 사담 후세인 몰락 이후 이란은 아라비아반도 북부에 진격할 공간을 만들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 물리친 ‘친이란’ 헤즈볼라 2006년 7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가 남부 레바논과 이스라엘이 맞닿는 국경 지역에서 이스라엘 군인 2명을 죽이고 2명을 인질로 잡으면서 34일간 전쟁이 벌어졌다. 헤즈볼라의 공세로 이스라엘 민간인 43명, 군인 1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규군도 아닌 헤즈볼라에 이스라엘이 처참하게 당한 것이다. 로켓 3970기가 이스라엘 땅에 떨어졌고, 이스라엘이 입은 경제 손실은 16억 달러에 이르렀다. 억압받는 자를 해방한다는 혁명 정신에 따라 이스라엘의 시온주의 해체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이란이 만들고 지원한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군의 무패 신화를 깼다는 선전전이 반이스라엘 정서를 가진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먹혔다. 이란은 2006년 헤즈볼라의 무공을 예로 들면서, 이란과 이스라엘의 국경선은 헤즈볼라의 거점인 남부 레바논이라고 자랑했다. 헤즈볼라를 이기지 못하는 이스라엘군이 이란군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자신감이다. 그런데 최전선인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과 총을 겨누고 있는 ‘왕관의 보석’ 헤즈볼라에 자금과 무기를 건네려면 반드시 시리아를 확보해야 한다. 시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레바논에 진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리아 붕괴에 함께했던 아랍국가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은 종교적으로 알라위파로 넓은 의미에서 시아파에 속하긴 하지만, 시리아와 이란은 종교가 아니라 반미·반이스라엘 연대감으로 뭉친 나라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생하자 시리아 정부를 수호하기 위해 이란은 전력을 기울였다. 2020년 미국이 바그다드 공항에서 드론으로 폭살한 이란 혁명수비대 최정예부대 ‘고드스(예루살렘)군’ 사령관 솔레이마니가 시리아를 지키며 ‘시아 초승달’ 수호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란이 시리아를 지킬 때, 이란의 영향력을 차단하고자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국가는 시리아 정부를 무너뜨리고자 온 힘을 기울였다. 시리아 내전이 국제전이 된 이유다. 22개 아랍국가가 아랍의 대의에 맞게 의견을 조정하며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아랍연맹은 시리아가 2011년 ‘아랍의 봄’ 바람을 탄 반정부 시위를 가혹하게 진압하고 아랍연맹이 제시한 평화안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면서 11월 시리아의 회원 자격을 정지하였다. 반정부 시위가 내전으로 확장하였는데, 이란의 지원과 러시아의 개입으로 시리아 정부는 12년째 건재하다. 반정부군 편에 섰던 아랍에미리트가 2018년 먼저 시리아와 외교관계를 정상화했다. 올해 2월 대지진 참화를 계기로 시리아를 바라보는 눈이 부드러워지면서 사우디가 지난 4월 시리아와 대사급 외교를 재개하고 항공로까지 열기로 합의하며 시리아를 다시 아랍연맹의 품으로 보듬으려 움직였다. 물리적으로 싸워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대화로 풀어보겠다는 뜻이다. 시리아 주민들에게 지진은 악몽이었지만, 알아사드에게는 기회의 창이 된 셈이다.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 갈등 아랍의 심상찮은 움직임에 대응하고자 지난 5월 3일 이란 대통령은 13년 만에 국빈 자격으로 시리아를 방문했다. 이에 뒤질세라 5월 7일 요르단 주도로 아랍연맹은 시리아의 회원 자격을 되살렸다. 미국과 서유럽은 아랍연맹이 자국민 50만 명을 죽인 독재자를 인정하고 시리아의 회원 자격을 되살리려는 시도를 멈추어야 한다고 외쳤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회원 자격 부활 이전에 이미 여러 아랍국가와 시리아가 외교관계 정상화나 관계 회복 절차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2주 후인 5월 19일 사우디 제다에서 열린 제32회 아랍 정상회담에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알아사드 대통령의 복귀 무대를 화려하게 꾸며 주었다. 한껏 고무된 알아사드는 외세 개입 없이 아랍이 함께 문제를 풀 수 있는 역사적 기회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란과 러시아와 혈맹을 맺고 아랍 형제를 저버린 자의 오만한 발언을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을 표현하기라도 하려는 듯 카타르 국왕은 알아사드의 연설 직전 자리를 떴다.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가장 친서방적인 카타르는 시리아 내전에서 새로운 정치권력이 들어서는 것을 돕고자 반군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줄기차게 시리아의 아랍연맹 재진입을 반대해 왔다. 12년 내전 시리아, 중동의 린치핀 사우디와 이란이 베이징에서 악수하면서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한 시리아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외교관계 정상화 움직임과는 달리 내전을 가장한 12년의 국제전을 정리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시리아 영토는 현재 시리아 정부군이 64%를 장악하였고, 나머지 36%는 쿠르드인이 주축인 시리아민주군(26%), 튀르키예군과 여러 반군(10%)이 차지하고 있다. 미군은 이라크 접경지역인 알탄프를 지키며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들어오는 이란군을 막고 있다. 시리아는 미군과 튀르키예 철수를 요구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레바논 남부 헤즈볼라와 같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군사기지를 이란이 시리아 땅에 건설하려고 할 때마다 이스라엘은 공습으로 가차 없이 파괴한다. 미국은 이란의 영향력을 이라크에서부터 막고자 1만4000명 정도의 미군을 이라크에 주둔시키고자 이라크 정부에 요청하면서, 이란을 경제적으로 지원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에 이란은 이라크 정부에 미군 주둔을 허용하지 않는 법을 집행하라고 요구한다. 치열한 신경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마차에 달린 바퀴가 빠지지 않으려면 마차 축에 바퀴를 결속하는 린치핀을 끼워야 한다. 시리아는 중동의 린치핀이다. 시리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중동에 진정한 평화란 없다.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 정상화로 시리아 내전을 대화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시작한 것 같지만, 서로 지쳐 주먹을 잠시 내려놓았을 뿐, 시리아를 내 편으로 잡아두려는 치열한 눈치 싸움의 장이 열렸다. 갈 길은 여전히 멀고 먹구름은 가득하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 연구소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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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의 퍼스펙티브] 압축성장 대한민국, 압축소멸의 길로 들어서는가
━ 대한민국 최중심 문제, 인구 ①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정치학 식물도 인간도 나라도 웃자라면 안 된다. 인류의 긴 경험과 통찰을 응축한 종교와 신화, 서사와 문학을 보면 ‘벼락 출세’한 사람들의 ‘벼락 몰락’에 대한 언명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 지혜는 동양과 서양, 고대와 근대를 막론한다. 즉 시간과 장소를 불문한다. 분야와 영역도 불문한다. 물론 개인과 집단도 모두 포괄한다. 서양과 동양의 어떤 깊은 지혜들은 벼락 성공과 벼락 멸망의 문제를, 발을 디딜 수 없는 허공과 웃자란 작물에 비유하여 깊은 깨달음을 준 바 있다. 종교와 예술과 학문을 넘는 여러 분야에 걸친 통찰들에 비추어 ‘벼락 출세’와 ‘벼락 몰락’, ‘벼락 성공’과 ‘벼락 멸망’ 사이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현대에 들어서는 이를 상징하는 문학과 예술의 주인공들이나, 실증적으로 분석한 철학·심리학과 사회과학의 연구들도 종종 접하게 된다. 몇몇 작가는 이를 탁월하게 형상화하여 세계적 문학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하였고, 어떤 일급 사상가는 이를 통해 한 인간집단의 생멸과 궤적을 설득력 있게 해석한 바 있다. ■ 「 물질지표만 보면 화려한 성과 출산율 등 인간지표에선 최악 다윈 ‘종의 멸절’ 통찰 참고해야 인구문제는 결국 정치의 문제 」 벼락 성공과 벼락 몰락의 상관관계 박명림의 퍼스펙티브 여기에 다다르면 인간 문제는 시간과 장소를 넘어 어떤 높은 일관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동서를 막론하고 고전고대 시대부터 벼락 성공과 벼락 소멸을 드러내는 언어와 표현, 사례와 예화들이 존재했던 걸로 봐서, 개인과 집단과 나라를 막론하고 내적 탄탄함이 갖추어지지 않은 너무 빠른 외적 성공의 결과는 거의 예정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아니, 적어도 그 미래에 대한 우려는 유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지하듯 대한민국은 현대 인류사에서 ‘압축 성장’의 상징과도 같은 나라다. 실제 대한민국은 오늘날 물질적 성공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경제와 국방, 기술과 상품, 이른바 ‘부국강병’에 가장 성공한 나라의 하나다. 국가발전의 요체인 그 분야들의 세계 순위는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그리고 자주 강조하였듯, 자살과 저출산을 포함하여 인간지표들은 세계 최악수준이다. 물질지표와 인간지표의 극적인 모순을 말한다. 출산과 인구문제의 인류사 최악의 지표와 흐름은 이 공동체가 인구소멸과 공동체 절멸의 단계에 진입하였고, 그것이 더욱 빨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압축 성장’과 ‘압축 발전’에 조응한 ‘압축 소멸’ ‘압축 멸절’ 단계에의 진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인간지표를 생명·인간성·정신·문화·윤리·공동체로 보든, 물질지표를 상품·문명·성장·발전·산업·기술로 보든, 후자만의 독주는 이미 전자의 소멸을 내장하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요컨대 미리 결론을 말하자면,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물질지표의 벼락 발전’에 ‘인간지표의 벼락 악화’의 요인이 숨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인간공동체가 후자를 낳는 전자의 최고 성취만을 끝없이 고수하고 집착한다는 데에 있다. 사람이 급속히 사라지는 발전을 더욱더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 압축 소멸과 벼락 소멸의 최고 중심문제가 출산문제를 포함한 인구문제라는 점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주장과 이론, 역사와 사례를 몇 차례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인구문제의 역사와 해법, 궤적과 현실에 대한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선현들의 앞선 진단과 주장을 들어보기로 한다. 인구문제에 대한 근대 최초의 본격 담론은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에 의해 제기되었다. 영향에 못지않게 논란과 비판도 많이 받은 주장이다. 그는 “인구증가에 어떠한 억제도 가해지지 않는다면 세계인구는 25년마다 2배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이는 “확실하다”고 말한다. 반면 “생존자원은 인간이 일하기에 가장 유리한 조건에서조차도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상이한 증가율이 가져올 필연적 결과는 대단히 충격적일 것”이라면서 영국과 세계를 사례로 기하급수적 증가와 산술급수적 증가를 대비한다. 맬서스와 다윈의 문제의식 세계의 경우 “인구 총수는 1→ 2→ 4→8→16→32→64→128→256으로 늘어날 것이지만 생존자원은 1→ 2→ 3→4→5→6→7→8→9로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인구에 대한 궁극적 억제요인은 식량부족이다. 그러나 직접적 억제요인은 생존자원 부족으로 야기되는 타락한 풍습과 질병, 그리고 생존자원과는 무관한 인간을 약화하고 파괴하는 정신적 물질적 문제들이다. 일단 후자에 대한 그의 진단은 주목을 요한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맬서스를 직접 언명하는 동시에 생물 진화 문제의 한 전거로 삼는다. 그는 모든 생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생존 경쟁을 ‘맬서스의 원칙’이라고 부르며, 이를 “모든 동물계와 식물계에 훨씬 강력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실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 쌍의 생물에서 유래된 자손들이 지구를 모두 덮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느리게 번식하는 인간조차도 25년 만에 그 수가 두 배로 늘어날 것” “이러한 비율이라면 불과 몇 천 년 만에 지구는 인간들로 발 디딜 틈도 없어질 것”이라고 언명한다. 한 번 멸절한 종의 재출현은 불가 다윈의 주장에서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통찰은 종의 멸절에 대한 언명이다. 그가 인구문제를 종의 문제 이해의 한 전거로 삼았다면 우리는 거꾸로 그의 종의 멸절 설명을 인구문제로 다시 갖고 올 수 있지 않나 싶다. 『종의 기원』의 많은 분석이 ‘종의 멸절’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종의 멸절’이 ‘종의 기원’ 못지않은 핵심 논지라는 점은 종종 간과된다. 그는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오늘의 인류와 한국에 가공할 두려움과 충격을 안겨준다. (물론 이하는 종의 멸종에 대한 분석을 인간집단에 유비한 것이라는 한계를 전제해야 한다.) 첫째, 모든 면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은 같은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즉 한 종 내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둘째, 한 종은 멸절된 이후에는 절대로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치열한 경쟁과 자연선택의 결과 패배하여 한 집단이 사라지면 다시 출현하는 일은 없다. 세대 간의 연결이 끊겼기 때문이다. 셋째,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미세한 차이의 선택이 반복되면서 종의 멸절은 진행되며, 생물 변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갑작스러운 물리적 조건보다는 생물 상호 간의 관계이다. 다윈의 생물학적 주장을 듣고 나면, 태어나서 관에 들어갈 때까지 죽음을 향한 최악의 생존경쟁에 빠져 허덕이는 대한민국 인간공동체가 지금 당장 뭔가 특단의 조치를 결행하지 않으면 앞으로 이 ‘인간’ 공동체가 다시는 회복·소생·지속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에 빠지게 한다. 애덤 스미스 “후한 보수가 인구 늘려” 이제 인구문제에 대한 사회적 진단으로 넘어가 보자. 『국부론』을 보면 근대 경제학의 비조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인구문제에 대한 통찰에서도 매우 남달랐다. 그는 분명하게 노동에 대한 후한 보수, 즉 고임금은 인구를 증가시킨다고 본다. 높은 보수는 필연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자극한다. 즉 높은 보수는 부의 증대의 결과인 동시에 인구증가의 원인이다. 나아가 인간의 근면을 증대시킨다. 빈곤은 결혼을 억제하지만 저지하지는 못한다. 또한 빈곤은 출산에는 유리한 듯이 보이지만 아이들 양육에는 매우 불리하다. 스미스가 보기에 노동에 대한 후한 보수를 불평하는 것은 나라의 최대 번영의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대해 한탄하는 것이다. 물론 한 나라의 인구는 식량에 의존한다. 즉 생산물로써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의 수에 비례한다. 무엇보다도 잘 다스려진 사회는 보편적으로 부유하다. 즉 통치가 잘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최하층 국민까지도 보편적인 풍요를 누리게 된다. 여기에서 그는 후한 보수와 평등과 풍요, 나아가 인구 문제가 잘 다스리는 정치의 문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하는 부분에서의 그의 주장은 이와 상충하는 동시에 보완적이다.) 시장 경쟁의 원리를 주창했다고 알려진 그로부터 우리는 인구문제에 대한 반대 울림을 듣는다. (계속) ※박명림 교수의 인구문제 관련 ‘퍼스펙티브’는 앞으로 두 차례 더 이어집니다.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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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의 퍼스펙티브] 소아진료 붕괴, 땜질 처방에 상황만 더 나빠졌다
━ 소아청소년과 의료 대란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소아 진료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지난 5월 서울에서 급성후두염에 걸린 5살 아이가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 사건은 우리나라 소아 진료체계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고 호흡이 가빠져 119구급차로 응급실을 찾았지만, 대학병원을 포함해 네 군데 병원은 진료가 어렵다며 아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5번째 병원에서 ‘입원하지 않고 응급진료만 받겠다’는 약속을 하고 간신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집에 돌아간 이후 숨을 쉬기 힘들어하다가 갑자기 사망했다. 만약 이 아이가 입원해서 급성후두염 치료를 계속 받았더라도 사망했을까? 참고로 급성후두염은 기도를 잘 관리하기만 하면 거의 사망하지 않는 질환으로 사망률은 3만명당 1명 수준이다. 앞으로 언제든지 비슷한 사건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작년 말 소아청소년과학회 조사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수련병원 중 24시간 소아 진료가 가능하다고 응답한 병원은 38%뿐이었다. 대부분의 대학병원과 큰 종합병원인 수련병원조차 24시간 소아 응급환자를 볼 수 없거나 새 입원환자를 받을 수 없으니 작은 병원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 「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정부 지원으로 중소병원 진료는 위축 1.5배 월급 줘야 소아과 의사 겨우 채용…몸값만 올리는 결과 당직 면제 내걸고 소아과 전문의 채용하기도…응급환자 피해 대학·중소병원이 협력해 환자 책임지고 진료하도록 유도해야 」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이 원인은 아니다. 소아 인구가 줄어들면서 소아청소년과 의사 1명이 보는 환자 수는 지난 10년간 서서히 줄고 있다(그림 1). 10년 전보다 응급환자는 56%, 외래환자는 66%, 입원환자는 87%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많은 환자를 보고 있고, 국민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의사들이 같은 환자를 보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므로 장기적으로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더 많아져야 한다. 전공의뿐 아니라 전문의도 당직 서야 서울 시내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에 붙어 있는 폐업 안내문. [연합뉴스] 소아청소년과 환자는 줄어드는데 정작 응급환자가 진료를 거부당하고 입원을 못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몇 년째 들어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4년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평균은 40%에 불과하다. 올해는 25%까지 낮아졌다. 밤에 당직하면서 응급환자와 입원환자를 보는 전공의가 부족하니 대학병원이 응급실 진료를 축소하고 새로 입원환자를 받지 못하는 대학병원이 많아진 것이다. 소아 진료체계가 붕괴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전문의도 당직을 서는 선진국과 달리 전공의에게 ‘당직 독박’을 씌워서 지탱해 온 후진적 병원 운영체계에 있다. 따라서 소아 진료체계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큰 병원이 전문의를 더 고용해 당직을 서도록 하고, 다른 한편으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을 높여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제대로 된 대책을 추진하고 있을까? 지난 2월 정부가 내놓은 소아진료 개선 대책을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먼저 소아 진료의 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이 없다. 위기의 근원에 대한 진단 없으니 기형적 의료체계를 고치기 위한 제도 개혁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 손쉽게 해결하려는 땜질식 처방만 난무한다. 어린이 공공전문센터 혹은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늘리기처럼 기존 정부 정책을 재활용한 것이거나, 소아 건강관리 시범사업처럼 언제 본 사업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한가한 생색내기 대책이거나,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같은 추상적인 대책을 반복하고 있다. 물론 이런 대책이라도 단기적으로 없는 것보다 낫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소아진료체계의 생태계를 망가뜨릴 가능성이 높다. 정부 정책이 대형병원 쏠림 부추겨 김현서 디자이너 첫째,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식의 정부 대책은 소아 진료체계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중소병원들의 진료 기능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대신할 소아과 전문의를 채용하도록 정부가 지원금을 주니 중소병원 소아과 의사들이 대학병원으로 옮겨 가고 있다. 오랫동안 경증환자만 보던 동네 의원 소아과 의사들은 대학병원에서 응급환자와 입원환자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연히 중소병원의 소아과 진료 기능이 위축되고 그 결과 경증환자들이 대학병원으로 다시 몰리는 악순환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10년간 종합병원과 병·의원의 소아 환자 비중은 감소한 반면 상급종합병원 환자는 늘고 있다(그림 2). 정부 대책은 대형병원 쏠림으로 점점 약화되어 가는 중소병원들의 진료 기능을 더욱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소아과 전문병원으로 역할을 키워 온 소아아동병원들에서 의사들이 빠져나가면 우리나라 소아진료체계의 허리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질 수 있다. 둘째, 정부 대책은 소아과 의사를 포함한 대학병원 의사의 몸값을 건강보험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려놓을 가능성이 높다. 대학병원은 기존 교수 월급의 1.5배를 줘야 겨우 소아과 의사를 채용할 수 있다고 한다. 대학병원이 새로 채용한 전문의가 교수가 되는 경로를 만들지 않고 채용하다 보니 그 정도 월급이 아니면 올 사람이 없는 것이다. 김현서 디자이너 소아과 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중소병원도 기존보다 급여를 더 올려줘야 대학병원으로 옮겨 간 의사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 이렇게 연쇄적으로 소아과 의사의 몸값이 올라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고, 이는 대학병원 소아과 교수와 다른 과목 교수의 월급도 끌어올리게 될 것이다. 소아 환자를 적게 보는 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의사가 옮겨 오도록 하는 정교한 정책 없이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단순한 방식을 쓰니 뜻하지 않게 연쇄적인 의사 몸값을 올리고 있다. 결국 모든 병원 의사의 월급이 기존보다 1.5배 이상 올라가거나 기존 대학교수들의 거부감으로 전문의가 새로 충원되지 못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밖에 없을 것 같다. 정부의 후진적 지원 탓에 부작용 우려 셋째, 대학병원이 소아 응급환자와 입원환자를 잘 진료하는 데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소아과 의사를 채용하면 돈을 주는 원시적인 정책을 쓰니, 의사는 늘었는데 소아 응급환자는 여전히 진료를 못 받고 입원을 못 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 대책으로 소아과 의사가 귀한 몸이 된 까닭에 일부 병원에서는 당직을 안 서는 조건으로 입원환자를 전담할 전문의를 채용한다고 한다. 그 결과 의사 수는 늘었지만, 밤에는 의사가 없어 소아과 응급환자는 계속해서 입원을 못 하게 된다. 정부의 후진적 지원 방식 탓에 돈을 쓰면서도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크지 않을까 걱정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김현서 디자이너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지역 단위로 소아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들이 협력해서 자기 지역의 환자를 책임지고 진료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대학병원과 지역 소아과 병의원이 협력해서 대학병원은 중환자를 보고, 중소병원은 경증과 중등증 환자를 잘 나눠보도록 하면 불필요한 진료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지역 내 병원들이 협력하면 소아과 의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다. 어디에 소아과 의사가 더 필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아과 주치의를 도입하면 아이들 건강도 잘 관리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부모들이 믿을만한 의사가 없어 우선 큰 병원을 찾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실손보험·비급여 진료 방치 말아야 둘째, 투입이 아니라 성과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 의사를 채용할 때는 절반만 지원하고, 응급환자와 입원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때 나머지 절반과 잘하는 지역에 대한 보너스를 얹어서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의사를 채용했는데 여전히 응급환자가 치료를 못 받거나 입원을 못 하는 일이 없어진다. 셋째, 소아과 진료 위기를 포함해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붕괴시키고 있는 비급여와 실손보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이 급격하게 낮아진 이유는 도수치료와 미용주사, 인공수정체 같은 비급여 진료가 급증하면서 다른 과목 의사들의 수입이 급격하게 늘어나 큰 수입 격차가 생겼기 때문이다. 2017년 평균 대비 3000만원 낮았던 소아과 개원의 수입은 2019년 6400만원으로 벌어졌고, 작년에는 1억원가량 격차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소아과 개원의 수입은 근로자 평균 임금의 5배로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 이 같은 비급여 진료 때문에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치료해야 할 대학병원 의사들이 개원가로 빠져나가고 있고, 그로 인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의 의사 부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2022년 기준 개원의 수입은 대학교수처럼 월급을 받는 의사에 비해 수입이 1.8배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그림 3). 지난 정부가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의 문제를 방치한 결과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치료해야 할 의사들이 의학적 근거가 없는 도수치료와 미용주사를 하는 동네 의원으로 빠져나가게 하고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 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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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퍼스펙티브] 노관규의 ‘생태도시’ 실험, 대한민국을 흔들다
━ 순천만 국제 정원박람회 성공 스토리는 어떻게 가능했나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인구 28만명의 소도시 전남 순천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해 전국의 관광객을 빨아들이는가 하면, 경쟁도시 고흥·창원을 물리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형 우주발사체 단(段) 조립장을 유치했다. 며칠 전엔 순천대학교가 교육부 지원 ‘글로컬대학 예비지정 대학’에 뽑혀 활력을 더하고 있다. 성공 스토리의 주역은 ‘생태도시’를 밀어붙여온 노관규 순천시장(무소속)이다. 10년만에 두번째로 열린 순천만 국제 정원 박람회(4월1일~10월31일)는 그의 ‘특허품’이다. 개장 80일(6월19일 기준)만에 목표 대비 61%의 관람객(490만명) 유치와 목표 수익의 93%(235억원)를 달성했다. 고용 창출 2만5000명, 생산유발 효과는 1조5926억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다. ■ 「 공장·아파트 회색 개발 포기 삶의 질 바꿀 ‘생태도시’로 전환 50여 지자체, 순천 배우기 열풍 “수도권 접고 올 만한 가치 입증” 」 순천만 정원박람회의 명물로 떠오른 ‘그린 아일랜드’. 차가 달리던 아스팔트 도로 위에 잔딧길을 조성, 시민들이 맨발로 걸어 다닐 수 있게 했다. [사진 순천시청] 이보다 놀라운 건 전국에 불고 있는 ‘순천 배우기’ 열풍이다. 50여곳의 지방자치단체를 포함, 230개의 연구소·기관이 순천을 벤치마킹중이다. 개막식에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것을 비롯해 수도 서울의 오세훈 시장, 박완수 경남지사, 최민호 세종시장등 숱한 정치인이 순천을 찾았다. 공무원 시찰단 방문도 끊이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지난 18일 순천을 찾았다. KTX 순천역에서 도보로 5분거리의 동천 선착장에서 요트를 타고 정원으로 향했다. 60만평의 대지에 영국·미국·네덜란드·멕시코등 세계 정원과 다채로운 테마정원이 이어져 있다. 교통체증·잡상인·쓰레기가 없어 쾌적한 순천만 정원, 느림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외국 같다”는 관람객들의 탄성을 뒤로하고 박람회조직위 사무실에서 노관규 시장과 만났다. 인구소멸 위기 속 순천 인구는 늘어 노관규 처음엔 시 의회와 시민·환경단체의 반대가 거셌다던데. “공장 짓고 아파트 지어야지 무슨 생태냐, 천지가 산이고 들인데 무슨 정원이냐는 조롱이 쏟아졌다. 그러나 중소도시가 대도시 흉내 내 경쟁력이 있겠나. 세계사적으로 봤을 때 아파트·공장 짓는 회색 개발은 한계에 왔다.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는 자연을 기초로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업단지가 없는데도 순천 인구는 늘었다. “호남 22개 시·군중 13개가 소멸 위기인데 오히려 순천은 광주·전주에 이은 세 번째 도시가 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순천에 온 건 여기서 일할 고급인력들이 이 정도 정주여건이라면 순천에서 살고 싶다는 여론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생태도시로 방향을 정하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경쟁요건을 갖춘 게 굉장한 효과를 낸 것이다.” 우리에게 정원 문화는 낯설다. 역사적으로도 정원 가꾸기(gardening)와는 거리가 멀었거니와 산업화와 함께 아파트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정원과 단절됐다. ‘정원’ 하면 ‘텃밭’을 떠올리기 쉽지만, 텃밭은 생산과 노동의 공간이고 정원은 여가와 휴식의 공간이란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원박람회는 역발상의 산물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는 발상을 전환해 시민에게 감동을 주는 창의시정을 강조해왔는데, 그 사례를 순천에서 봤다”고 극찬했다. 순천의 목표는 관광도시인가. “관광도시 이상의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의 과제가 수도권 일극체제 해소 아닌가. 공기업 강제 분산시키고 공장부지 만들어놓고 가라고 하지만 안 된다. 수도권을 포기하고 올 만한 다른 가치가 있어야 한다. 아이 키우고 자신들이 재충전하고 노후까지 보낼 수 있는 도시라는 걸 보여준 게 순천이다. 수도권 일극체제를 나눠 지고 국가균형 발전의 해법을 제시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4차선 아스팔트 도로를 잔디광장으로 노 시장의 정원박람회 구상은 2009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흑두루미의 97%가 월동한다는 일본 이즈미(出水)시를 견학, 몸집이 큰 흑두루미가 의외로 전깃줄에 걸려 많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순천만 일대 283개의 전봇대를 뽑고 전선을 없앴다. 전세계 흑두루미 1만8000마리의 60%가 넘는 1만여마리가 찾아오는 세계적 흑두루미 월동지로 자리잡으며 순천만이 되살아났다. 올해는 업그레이드된 실험을 했다. 초고층 아파트 단지 밀집지역인 오천동 앞 4차선 아스팔트 도로 1.2㎞ 구간을 잔디로 덮어 맨발 산책이 가능한 잔디 광장(그린 아일랜드)으로 바꿨다. 정원이 도심의 일상 속까지 스며들어온 것이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0년 전부터 순천시청에서 정원박람회 실무를 이끌어온 최덕림 총감독의 말이다. “전봇대 뽑기로 직접 피해를 보는 농민이 5000명, 가족까지 따지면 1만~2만표가 떨어질 수도 있었다. 정치인으로선 어려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손해 보더라도 미래를 위해 가자’는 시장의 결심으로 순천만 생태계 보전지구로 지정할 수 있었다.” 최 총감독은 “반대하던 시민들도 요즘은 이 정도로 살기좋은 도시가 된다면 불편은 감내할 수 있다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며 “‘노 시장이 고생하고 수고하셨다’는 얘기를 들으면 보람을 느낀다”며 달라진 민심을 전했다. 고졸 출신 검사, 순천시장만 세 번 노 시장은 특이한 이력의 정치인이다. 고졸(순천매산고) 출신으로 구로공단 노동자→세무공무원을 거쳐 4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 검사가 됐다. 2000년 수원지검 검사를 끝으로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다. 2006년(민주당)과 2010년(무소속) 연거푸 순천시장에 당선됐으나 총선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신 그는 지난해 세 번째로 순천시장(무소속)에 취임하며 10년만에 부활했다. 시련이 그를 더욱 단련시킨 것일까. 노 시장은 “닥치는대로 잡다하게 책을 읽었다. 비로소 고민하던 것들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성공하는 리더십의 요체는. “도시는 지자체장이 공부한만큼 발전한다는 걸 깨달았다. 공부를 해야 생각의 눈높이가 높아져 과거로 회귀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 아무리 시장의 역량이 있어도 철학과 비전을 현실로 실현시켜주는 건 공무원이다. 공무원을 설득하고 그들이 긍지와 가치를 느끼게 하는 게 시장의 리더십이다. 또 시민들 눈높이가 그 수준이 돼야 한다. 시장-공무원-시민의 3합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공무원 설득의 비결은 뭔가. “시장의 무기는 인사권이다. 칸막이를 허물어 행정·토목·해양등 필요한 직능을 한군데로 합쳐 일할 수 있게 하고, 과장에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고르라고 했다. 1명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인사를 냈다. 시장이 인사권을 포기하고 권한을 준만큼 책임도 지게 한 것이다.” 시민 설득이 쉽지 않았을텐데.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주지 않고 전액 정원박람회에 썼다. 도시의 근본적 동력을 만드는 데 사용한 거다. 직접 24개 읍·면·동을 돌며 시민들을 설득했다. ‘여러분이 다섯아이 부모다. 넷째 대학등록금이 고민인데 다섯째가 명품 운동화 사고 싶어한다. 부모라면 밤새 고민 끝에 명품 운동화를 포기하고 대학 등록금에 쓰자고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더니 고맙게도 시민들이 따라와주더라.” 오세훈-노관규의 특별한 인연 정치권에선 오세훈 서울시장(국민의힘)과 노 시장의 특별한 인연과 협력에도 주목한다. 각각 무상급식 파동과 총선 낙선으로 정치적 공백기를 맞았다 10년만에 나란히 부활했다. ‘정원과 같은 도시 서울’과 ‘생태도시 순천’을 표방, 협력 중이다. 오 시장이 간부들을 데리고 박람회를 관람했고, 지난달엔 노 시장이 서울시 팀장급 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특별강연을 하기도 했다. 노 시장은 “프랑스·영국·독일 등 정원문화가 발달한 나라는 제국을 이뤘거나 꿈꿨던 나라들”이라며 “오 시장의 인문적·철학적 눈높이가 굉장한 수준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기초단체장인 내게 강연을 하게 한 건 오 시장이 가슴과 통이 크고, 사람을 널리 구하고 쓰려 한다는 의미”라고도 했다. 오 시장은 “정원박람회 같은 큰 규모의 행사를 하려면 보통 대학교수나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하는데, 10년 전에 일한 사람을 다시 발탁해 권한을 주고 일하게 한 용인술이 놀랍다”며 “세계사에 유례없는 일을 해낸 순천이 지방행정 업그레이드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호평했다. “순천에 월트 디즈니 만드는 게 꿈” 인터뷰 말미에 노 시장은 “꼭 하고싶은 말이 있다”며 애니메이션 클러스터 사업을 설명했다. “순천 3개 대학에 애니메이션 학과가 있다. 졸업하면 수도권에 올라가 고시텔·원룸 전전하다 우울증 생기고 가족도 힘들게 한다. 지방도시도 고급문화산업을 할 수 있게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 월트 디즈니같은 회사를 왜 순천에 못 만드나?” ‘정원 쓰나미’를 몰고온 ‘노 작가’(시청 직원들은 노 시장을 이렇게 부른다)의 꿈이 이뤄질 것인가.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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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퍼스펙티브] 우주는 최후의 프론티어, 우리의 미래를 키워야
━ 이미 막 오른 우주전쟁, 그 승자는…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이제 세계 7대 우주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고 연구원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도 감사할 일이다. 대다수 국민에게 우주란 미지와 환상의 세계일 뿐이다. 1969년 강렬했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중계방송, 1992년 우리별 1호, 1999년 아리랑 1호, 2013년 나로호, 그리고 지난해와 올해의 누리호 2, 3차 발사 같은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이다. 발사 장면을 먼발치에서나마 지켜볼 수 있는 나로우주센터 주변에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모인 부모들은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는 인류의 대장정에 언젠가는 자신의 자녀도 동참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 「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우주 강국 진입했지만 이제 시작 단계 미지·환상의 세계에서 안보·경제·정치 등 현실의 세계로 진입 미국 앞서가고 중국 바짝 추격, 한국도 더 머뭇거릴 여유 없어 현장 엔지니어들의 긴급 성명 “총체적 국가 전략 새롭게 짜야” 」 아폴로 11, 냉전 경쟁체제의 산물 우주 강국을 향한 지구촌 경쟁이 뜨겁다.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지난달 25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현실은 이런 낭만적인 동경보다 훨씬 냉엄하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자체가 1950년대에 촉발된 냉전적 체제 경쟁의 산물이었다.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 1호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최초의 우주인이 되자,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보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마침내 1969년 소련을 추월하고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인간의 발자국을 찍는 데 성공한 것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오늘날 지구 궤도에는 약 8000개의 인공 물체가 존재하고, 그중 작동하는 인공위성은 약 3000개다. 지금까지 쏘아 올린 인공위성의 수를 국가별로 보면 미국이 압도적인 1위로 약 6200개, 러시아가 1500개, 중국과 영국이 약 600개, 일본이 200여 개, 인도·프랑스·독일 및 캐나다가 각각 100여 개, 한국과 호주가 30여 개 등이다. 인공위성을 하나라도 쏘아 올린 나라는 80개국이 넘는다. 걸프전, 인류 최초의 우주전쟁 우주 전쟁은 이미 현실이 된 지 오래다. 1991년 걸프전은 인류 최초의 우주 전쟁으로 기록된다. 비록 우주 공간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역사상 최초로 GPS(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에 의지해 끝없는 사막에서 현 위치와 경로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고, 그 덕에 이라크군이 상상도 못 한 속도와 정확성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오늘날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자동차 내비게이션 기술의 원조이다. 걸프전 이후 우주는 가장 중요한 안보적·군사적 목표가 되었다. 미국은 이미 1954년 공군 산하에 우주개발 부서를 설치했고, 베트남전 이후 미국의 모든 군사적 개입에 관여해 왔으며, 2019년 정식으로 우주군을 창설해서 8600명의 인원이 복무하고 있다. 중국도 2015년 중화인민해방군전략지원부대를 설치하고 우주·사이버·정치·전자 영역의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도 지난해 12월 우주작전대대를 창설했고, 이미 몇 년 전부터 미국과 우주 연합훈련에 참여하는 등 우주전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자국 기술로 자국 땅에서 발사체를 쏘아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북한의 동향을 알기 위해 미국 등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어서 안보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앞으로 모든 전쟁은 우주로부터의 지원이 승패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주요 우주 강국들이 앞다투어 위성공격 미사일 혹은 위성에 대한 사이버 공격 수단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중 우주 주도권 경쟁 가속 우주를 둘러싼 최대 경쟁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아직 중국은 미국의 상대가 되지는 못하지만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면서 맹렬한 추격전을 벌이는 중이다. 한국이 세계 7대 우주 강국이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중국을 따라가기에는 언감생심이고, 아시아에서 중국 추월의 의지를 불태우는 나라는 인도뿐이다. 우주를 둘러싼 잠재적 갈등의 폭과 깊이는 어마어마한 데 비해서 우주 활용에 대한 국제 규범은 1967년 우주조약에 머물러 있다. 우주조약은 핵과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우주 궤도에 올릴 수 없다는 광범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어서 위성공격 미사일 등을 막을 수 있는 조항이 없다. 군비경쟁의 특성상 어느 한 나라라도 실제로 위성을 공격하거나 위성을 무기화한다면 다른 모든 나라도 일제히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이고, 우주는 준 전시상태로 돌입할 수도 있다. 미국은 주요국들과 양자 간 협약인 아르테미스 합의를 계속 시도해왔지만 중국· 러시아·인도는 여기에 서명하지 않고 있다. 아르테미스 합의에 서명하는 것은 미국의 우주 주도권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중국이 동참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가속하고 있는 미·중간 테크놀로지 블록화까지 가세해서 이대로 가면 미국 중심의 우주와 중국 중심의 우주로 갈라질 것으로 보인다. 우주 강국의 반열에 첫발을 디딘 한국은 조만간 이 질문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우주자원 개발, 청정 원자력 기대 우주 탐사의 경제적인 효과도 중장기적으로는 막대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우주산업의 고용창출과 낙수효과도 크지만, 자원 개발의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구 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달에는 100만톤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헬륨3을 가져올 수 있다면 삼중수소를 대신해 핵융합반응에 사용할 수 있다. 삼중수소란 일본이 방류하겠다고 하는 후쿠시마 오염수에 섞여 있다고 해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는 물질인데, 이것을 대신하여 헬륨3을 사용할 수 있다면 방사능이 전혀 발생하지 않고 동시에 청정한 원자력 발전이 가능하다. 2017년 시작된 미국의 유인 우주 탐사 계획인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는 NASA 외에도 유럽·일본·호주·캐나다·이탈리아·룩셈부르크·영국·아랍 에미레이트·우크라이나·뉴질랜드 등이 참여하고 있고, 한국도 2021년 5월 합류했다. 특히 일본은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의 독보적 파트너가 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주 자원 활용에 있고 이미 이를 위한 법률까지 통과시킨 상태이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 오리진으로 대표되는 우주 탐사의 민영화는 최근 들어 가장 두드러진 추세 중 하나이다. 한국 민간기업 참여 아직 미흡 이번 누리호 발사에도 한국항공우주산업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다수의 기업이 참여했지만, 국제적인 추세에 비하면 아직 우리 민간 기업의 시장 참여와 수익 창출 여건은 열악한 편이다. 우주산업의 낙수효과를 원한다면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영역이다. 이처럼 우주로의 진출은 단순히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호기심과 낭만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첨단 과학기술과 체제경쟁, 안보, 전쟁, 군대의 재편성, 테크놀로지 블록과 국제정치, 에너지나 환경과 같은 전 지구적 위기의 돌파, 우주 기업의 등장과 세계 경제의 재편 등을 동시에 조율하고 다루어야 하는 초거대 프로젝트이다. 정부 부서로 친다면 기재부·과기부·국방부·외교부·교육부·산자부· 중기부·환경부 등이 동시에 관여해야 할 일이다.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산업화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라고들 말하고, 그 출발점에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같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거시적 안목과 투자가 있었다. 이제 산업화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고 인공지능과 우주 탐사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제 우주 강국으로의 첫걸음을 뗀 우리는 과거 성공의 연장선이 아닌 전혀 새로운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정책 조율과 거시적 안목 절실 며칠 전 누리호의 주역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엔지니어들이 낸 성명서는 그런 의미에서 진지한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현장의 엔지니어들은 일곱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지만, 핵심은 우주외교·우주안보·우주국방·우주산업을 총괄할 수 있는 총체적 국가전략과 그에 걸맞은 ‘선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OECD 여러 국가의 정부 역량을 비교분석 해보면 한국에 가장 부족한 것이 정책 조율과 장기적 지속 능력이다. 항우연 엔지니어들의 요구는 사실상 그동안 거의 모든 정책 영역에서 제기되어 왔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후의 개척지(Final Frontier)’라고 불리는 우주 탐사의 영역에서 뒤처지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정부의 거시적 안목과 현장의 절절한 경험이 융합되는 결론이 얻어지기를 기원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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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젊다" 생각 하나에…암·심혈관질환 사망 위험 30% 줄여 [윤영호의 퍼스펙티브]
━ ‘젊은 노인’을 위한 메타 건강혁명 윤영호 서울대 기획부총장·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자신의 건강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주관적이지만 전반적인 건강을 나타내는 평가로 세계적으로 국가 간 건강 상태를 비교하는 대표적인 기준으로 사용된다. 물론 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타당성이 검증된 기준이다. 그렇다면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사회적·영적 건강은 어떤가. 건강검진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들었다 하더라도 이 질문에 많은 국민이 건강을 자신하지 못한다. 나이 들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픽 참조〉 ■ 「 “나는 10년은 젊다” 믿으면 상상치 못할 건강 효과 유발 반면 외로움은 하루 15개비 담배 피우는 것만큼 해로워 삶의 목적이 강한 사람은 심장마비 발생 위험 79% 감소 긍정적 사고, 원활한 교류, 사회봉사가 백세시대 장수법 」 고가 건강검진, 웰빙식품의 한계 아무리 부자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가 고가의 명품 첨단 건강검진을 받더라도 원시시대 생존에 필요한 유전과 신체를 가진 동물적 존재의 생물적 건강만을 체크할 뿐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금연·절주와 함께 적절한 유산소 운동, 균형 잡힌 음식 섭취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안다. 이것들 역시 생물학적 건강 관리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에서 끊임없이 자극받는 소유욕으로 값비싼 명품으로 몸을 치장하고 좋은 차와 집을 가진들, 온갖 건강식품과 웰빙 제품을 구매하고 미용수술을 받은들 노화되고 병들어 가는 자연의 법칙을 역행할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동안 불로장생(不老長生)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건강 욕구에 대한 미련은 남는다. 수렵·채집 시대, 농경 시대, 산업 시대를 거치면서 신체적 건강, 사회적 건강, 정신적 건강이 중요해졌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에는 영적 건강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인간은 동물로 태어나 신이 되고자 열망하지만 사실상 이는 불가능하다. 매번 다시 굴러 내려간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일을 영원히 하는 시시포스와 같이 부조리한 삶을 반복해야 한다. 인간의 목표는 행복, 전인적 혁명 하지만 인간은 절망하지 않으며 의미를 찾고 행복을 꿈꾼다. 지적 능력, 따뜻한 마음, 영적인 공감력, 자아실현과 봉사의 삶을 갈망하는 인간이 되려면 전인적 건강 혁명이 필요하다. 차준홍 기자 기계뿐 아니라 의사결정 주체자를 넘어 모든 존재에 대한 이타적 사랑을 꿈꾸는 ‘인간 존엄함’의 뿌리인 전인적 건강이 메타 건강이다. 영국 메타헬스아카데미는 인간을 신체·정신·사회적 존재로서 이해하고 개인의 건강과 발달, 웰빙을 통합한다. 메타 건강은 적극적으로 건강을 향상하고 질병을 극복하기 위한 혁신적인 방식이다. 전인적 건강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의학적 타당성이 명확하다. 우울과 자살 생각을 줄이며 장기 생존에도 중요하다는 사실도 검증되고 있다. 미국 공중보건 책임자인 비베크 머시 의무총감은 지난달 “사회적 단절은 배고픔이나 갈증과 같이 몸이 생존을 위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이며, 비만이나 흡연 같이 심각한 국민 건강의 중대 과제”라고 말했다. 외로움은 조기 사망 가능성을 26∼29% 높이고 심장병과 뇌졸중 위험은 각각 29%, 32% 올린다. 하루 15개비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 그는 사회적 단절을 줄이기 위해서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사람들과 적어도 하루 15분씩은 보내야 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지역 공동체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고 했다. 건강의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헌법을 비롯한 어떠한 법률에도 건강의 정의는 찾아볼 수 없다. 가치와 양심, 목적이 있는 삶 암 치료가 끝났지만, 후유증으로 인한 얼굴과 목의 통증 때문에 고생하는 65세 환자에게 삶의 목표를 물었다. “두 딸이 팔순 잔칫날 1억원을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건강을 회복해 꼭 받아서 유럽 여행을 갈 거예요.” 그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겠다는 봉사의 목표도 세웠다. 미국 최초의 노인 장기 관찰 코호트 연구인 ‘건강 및 퇴직 연구’에 따르면 삶의 목적이 강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사망 위험도가 59% 낮았으며, 심장마비 발생 위험도 79% 감소했다. 목적이 뚜렷하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우울증과 자살도 줄어든다. 비록 노화에 따른 신체적인 쇠락과 물질적인 빈곤은 피할 수 없을지라도, 고통을 견디어 내고 다시 건강하게 살아야 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가치와 양심에 따라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면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 건강한 삶의 충만감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또 스스로 자기 나이보다 젊다고 생각하면 정말 젊어지고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앤드루 스텝토 노화 연구에 따르면 실제 나이보다 젊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암이나 심혈관질환 등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30% 감소했다. 긍정적이고 주도적으로 높은 목표를 세운 사람들은 사망률이 낮아진다. 긍정의 힘이 우리가 상상치 못할 건강 효과를 불러온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나는 10년은 젊다”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10년은 젊어 보인다”라고 칭찬하자. 아무리 미용수술로 젊게 보인들 생각이 젊지 않다면 소용없다. 사랑과 배려, 최고 건강법은 베풂 봉사하는 삶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살게 한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주당 2시간 이상, 1년에 100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한 사람은 사망 위험이 감소했다. 신체 기능도 좋아졌다. 긍정적 정서, 낙관주의, 삶의 목적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으며 생산성도 향상되었다. 자원봉사는 개인의 건강 자산만이 아니라 사망률을 낮추고 분명히 사회적 자산도 늘리는 효과가 있다. 봉사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의미 있는 일을 위한 희생이 나의 신체적 건강과 수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역설적이면서도 희망적이다. 백세시대에 봉사활동은 사회에도 기여하고 자신의 건강도 챙기는 지혜이며, 건강한 삶을 촉진하는 위대한 방법이다. 우리에게는 사람과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목표를 위해 아직 할 일이 많다. 인간의 위대함은 학습한 능력을 갖추고 목표를 세우고 실패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며 자아실현을 넘어 세상과 사람들에게 이바지함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위대함은 베풂에 있다. 베풂은 돈만이 아니다. 시간·나눔·배려·친절·인사·사랑의 봉사다. 그 크기가 작더라도 이러한 마음이 바탕이 되어 삶에 의미와 가치가 부여된다. 늙더라도 봉사하는 삶을 살자. 저출산과 고령화를 이겨내는 법 저출산·고령화를 대비하는 정부나 금융권, 기업들, 사회단체들은 긍정, 목적, 사회관계, 봉사가 건강과 장수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삶의 목적, 긍정, 사회관계, 봉사는 사람들이 절망감을 이겨내어 활발하고 건강한 삶을 살게 해 우울증, 수면장애, 인지기능 장애를 극복하게 한다. 또 심장과 관련된 건강한 신체 활동, 식이 요법, 금연 등 건강 행동을 개선한다. 우리 몸에서 염증 반응을 줄이며 스트레스와 관련된 신경호르몬의 활성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결국 감염, 호흡기 질환, 당뇨병, 뇌졸중 및 각종 암 등 다양한 질병의 발생률을 낮추는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돈이 권력이자 품격인 시대에서 어떻게 인간적 자존감과 품위 있는 삶을 지킬 수 있을까. 지금부터라도 신체적 건강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태도의 정신적 건강,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회적 건강, 삶의 의미와 목적, 봉사 등의 영적 건강에 신경 쓰자. 나이가 들더라도 좋은 습관을 만들어 건강을 지키면 사회 환경도 건강해져 생산적 활동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사회적 의료비를 절감하여 자신과 사회에 좋은 일이다. 삶의 목적, 사회관계, 긍정, 봉사는 행복하게 오래 사는 백세시대의 건강 지혜다. 노년에는 위대한 삶을 위해 메타 건강으로 혁명하자.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의 말처럼 백세시대에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자만이 건강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건강검진 시장, 디지털 헬스케어, 건강기능식품 등 건강 관련 신산업들은 건강의 사회적 가치와 지속가능한 사업적 가치를 향한 건강 가치 창출 산업으로 변신해야 할 메타 건강혁명의 미래를 읽을 필요가 있다. 윤영호 서울대 기획부총장·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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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의 퍼스펙티브] 지난해 미·중무역 사상 최대…갈등과 협력 함께 봐야
━ 요동치는 미·중관계와 한국의 선택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정치학 21세기 세계의 양강을 구성하고 있는 미·중관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많은 시나리오와 전망이 난무하고 있다. 곧 대결과 충돌로 치달을 것이라는 주장부터 평화 공존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많은 예상이 존재한다. 세계질서를 좌우하는 두 대국의 관계이니 만큼 관심의 집중과 다양함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범람하는 많은 주장이 과연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상당히 많은 진단과 주장이 실제 역사보다 이념적·종족적·문명적 편견과 오해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 「 미·중의 오늘과 내일 보려면 이념·종족·문명적 편견 걷어내야 중국의 부상은 지난 반세기에 걸친 ‘미·중 장기협조체제’ 덕분 탈냉전에 대한 반성 필요…무너진 건 동구 사회주의였을 뿐 한국은 세계 반도체전쟁의 중앙, 자유과 경제 함께 지켜내야 」 갈등·대결 국면이 깊어진 오늘 퍼스펙티브 가장 큰 오진은 바로 미·중관계 자체에 대해서다. 첫째로 미·중관계에서 갈등과 대결의 측면이 더욱 심화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협력과 공존의 측면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갈등이 체제와 가치의 측면이라면 협력은 시장과 구조의 측면이다. 아직 열려있는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정치와 경제, 관료와 기업, 외교와 교역의 차이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미·중무역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점은 갈등만을 강조해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반대로 역사 오해 역시 심각하다. 20세기의 공산당 1당체제 국가 중 살아남은 대표적인 세 나라는 중국·베트남·북한인데, 그들은 모두 동아시아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냉전 시기에 미국과 직접 대규모 전쟁을 치른 나라들이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차이점이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말한다. 한국 역시 이들 세 나라와 직접 대전쟁을 치른 나라였다는 점에서 미국과 함께 유이한 사례였다. 유럽에서는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얄타체제의 등장과 함께 더 이상의 연장전이 없었다. 그리하여 소련 해체·탈냉전·동구 붕괴·독일 통일은 곧 2차대전 전후 체제인 얄타체제의 종식을 의미했다. 사회주의도 종언을 고했다. 동아시아와 유럽의 근본적 차이 그러나 2차대전 종식 이후에도 중국혁명·한국전쟁·베트남전쟁이라는 세 번의 연장전을 통해 냉전시대의 대전쟁을 치러낸 동아시아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전쟁의 동맹과 적대, 즉 국제 편대에 관한 한 유럽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진영과 연합하여 주축국에 맞선 때의 사회주의였다. 그들은 비군사적 대결상태인 냉전을 제외하면 자본주의 진영과 직접 충돌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의 군사적 전쟁을 치른 체제였다. 그것도 세계 최강 미국과의 전쟁을 치른 나라들이었다. 따라서 한국과 세계는 한 세대가 경과한 탈냉전에 대해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진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탈냉전이 실제 국가체제와 이념구조에 관한 한 소련과 동구의 붕괴라는 점을 잊고 있었다. 물론 독일 통일을 포함해 사회주의 가치의 조종과 종언도 분명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진영이 ‘하나의 전체로서’ 모두 몰락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더 깊은 성찰과 평가가 필요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현실 사회주의의 변형과 재형성, 변혁과 적응을 통한 연장과 재등장에 대한 오랫동안의 무지와 간과에 대한 반성을 말한다. 중국을 포함해 그것은,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이른바 자기변태와 변형전이를 통해 재등장한 것이 아니라, 물밑에서는 사실 계속 지속하고 있던 내면 속성이자 체제였던 것이다. 실제로 안에서는 헌법 조문과 체제 가치도, 권력구조와 정당 명칭도 본질적으로는 변한 것이 없는데,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고 외부에서 의제한 측면이 더 크지 않았나 하는 데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탈냉전, 우파·좌파의 동시 오판 따라서 이 문제는 탈냉전 이후 세계의 학문과 담론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요한다. 요컨대 “세계체제 밖은 없다” “세계화의 밖은 없다” “시장경제 밖은 없다”는 동일한 전제에 근거한, 우파들의 오만한 승리주의-역사종언론과 좌파들의 전일적인 (세계)다중(多衆)저항론-세계내전론의 동시 오판과 동시 오류를 말한다. 역사에 단급하고 무지했던 둘은 끔찍할 정도의 오류였다. “세계체제 안에서” “세계화 물결에 올라타서” “시장경제보다 더 시장적으로”, 그것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중국이 자신들의 이념과 체제를 고수하는 가운데 일정한 대안 질서의 구축과 체제 도전 수준으로까지 성공할 줄은 세계의 담론과 지식, 정책과 대응은 철저히 놓쳐왔던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중국의 급속하고도 긴 부상이 40~50년에 걸친 ‘미·중 장기협조체제’의 산물이라는 점은 그동안 간과되어 왔다. 한국전쟁 이후 냉전 시대 동안 미국과 중국은 소련에 대한 견제·봉쇄·붕괴라는 이익에서 완전히 일치하였다. 미국과 중국은 1970년대 이후 소련 견제와 붕괴를 위해 서로를 최대한 활용하고 협조하였다. 최근의 무역갈등에 이르기 전까지 미국과 중국 경제의 호황과 발전은 각각 중국의 저임금과 저가생산, 미국의 특혜와 중국의 세계시장 진입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체제와 이념이 다른 국가들 사이의 역사상 보기 드문 ‘장기 협조체제’였다. 소련 차별과 중국 우대의 이중주 초기의 데탕트와 미·중수교를 제외하더라도, 1980년대 공산제국을 붕괴시킬 때 레이건 정부의 소련에 대한 차별과 중국에 대한 특혜는 놀라웠다. 이를테면 1985년 2월 파리에서 개최된, NATO 회원국 및 일본이 참석한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에서 군사 목적으로의 전환이 가능한 컴퓨터와 통신장비의 수출 통제 강화를 포함하여 소련권에 대한 서방측 민간 고도기술의 수출품목 규제를 더욱 체계화하였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고도기술의 수출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합의하였다. 정반대였다. 나아가 미국 정부는 1985년 6월 대중국 상업 목적 고도기술의 수출을 자유화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한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는 달리 일본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약과 압박을 가하였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20년·30년의 국제적 뿌리요 단초로 지적되는 플라자합의(1985)와 미·일 반도체협정(1986)을 말한다. 가치와 이념의 측면에서는 둘 다 이해할 수 없는 합의였다. 기술과 시장점유율에서 역사상 어느 세계제국보다도 막강한 철옹성이었던 일본의 ‘전자제국’과 ‘반도체제국’은 이후 몰락해갔다. (물론 이 요인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세계 반도체 1, 2, 3위 기업을 포함해 세계 10대 상위기업 중 6개가 일본기업이었으나 오늘날 일본기업은 하나도 없다. 당시 미국은 일본과 안보와 가치와 이념 면에서는 철저히 같이 갔다. 마치 당시 중국과 경제와 무역 면에서 같이 갔듯이. 미·소·중과 미·일·중, 두 개의 3각관계 오늘의 중국은 미국-소련-중국의 하나의 긴 3각 관계와, 미국-일본-중국의 또 하나의 긴 3각관계를 보면 자명해진다. 전자의 3각 관계에서는 미·중은 철저하게 소련의 봉쇄·고립·붕괴라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였다. 후자의 3각관계에서는 일본 억압과 중국 배려가 두드러졌다. 그 두 개의 3각관계 중심에 미·중 무역과 경제 관계가 관통하고 있었다. 이념과 국익의 공존을 말한다. 물론 이 두 3각관계의 또 하나의 혜택 국가는 단연 한국이었다. 한·미동맹과 안보강화, 한·중수교와 무역흑자, 한·일의 전자·반도체 역전을 말한다. 외교가 즉 통상, 안보가 즉 경제 한국은 과거 세계 냉전(cold war)과 오늘의 세계 반도체전쟁(chip war) 모두의 세계 중앙이다. 전자는 이념과 장소로, 후자는 공급망과 기술로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최고의 가치와 최고의 이익은 같이 간다. 생존과 주권의 문제는 최고의 가치인 동시에 최고의 이익이다. 한국은 건국 이래 외교와 통상이 국가의 가치수호와 이익증진의 제일 통로이자 동시 경로였다. 외교가 통상이고, 안보와 평화가 경제요 국익인 나라다. 둘을 분리하거나 어느 하나의 맹목에 빠지면 안 되는 까닭이다. 특히 소련 ‘이념’ 제국과 일본 ‘반도체’ 제국의 동시 붕괴에서 보듯이, 가치와 이익의 서로 다른 칼을 갖고 당대 ‘정점의 패자(霸者) 때리기’에 익숙한 제국들과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꿰뚫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경계의 중심과 정점의 패자는 늘 협공을 받는다. 가치와 이익, 자유민주주의와 반도체는 얼마든지 함께 지킬 수 있는 것이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것은 건국 이래의 지난 외교와 통상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그 지혜를 놓치면 안 된다.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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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명의 퍼스펙티브] 부채도 안 밝히는 국민연금, 개혁할 의지는 있나
━ 말만 무성한 연금개혁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국회 연금특별위원회가 2기 활동을 시작하며 연금 개혁 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도 본격적인 재정 안정 방안 논의에 들어갔다. 연금 논의의 고삐를 당기고는 있으나, 찜찜한 구석도 많다. 특위가 개최했던 공청회, 납득하기가 어려운 국민연금 재정추계 내용에 대한 해석 때문이다. ■ 「 세계은행 “향후 지급할 연금액 중 부족 액수 공개해야” 권고 한국은 2007년 수용했다가 이후 중단하며 연금개혁 헛돌아 국민·공무원·군인·사학연금 부채 합하면 GDP의 130% 넘어 보험료율도 25년 내내 제자리, 젊은 세대에 빚만 떠넘길 건가 」 국회 연금특별위원회 2기 스타트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발전 방안, 국민연금 수익률 제고 방안이 지난 4월 말 개최된 특위 공청회 주제였다. 공청회 전에 이미 특위 경과보고서에 구체적인 재정 안정 방안 내용이 없어 맹탕이라는 비판을 받았었다. 공청회에서도 재정 안정 방안이 다루어지지 않다 보니, 보여주기식 특위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가장 중요한 기초 자료 없이는 제대로 된 공론화가 어렵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위도 개혁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 거듭 공개를 요구했던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는 재정추계전문위원회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또 5년 뒤로 미루어졌다. 미적립 부채란 이미 지급하기로 약속한 연금액 중 부족한 액수를 의미한다. 특위가 사학연금 미적립 부채를 공개했는데도,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 공개는 왜 어렵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여러 가지 미적립 부채 계산 방법이 있으며, 확정 부채가 아닌 미적립 부채를 공개하면 혼란만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이번에도 받아들여졌다. 이에 반발해 재정추계전문위 위원 한 명이 사퇴했다. 세계은행은 1994년 발간한 『노년 위기의 모면』에서 2차 대전 이후 신생국 대부분이 지속 불가능한 공적연금에만 의존하다 보니, 그대로 방치할 경우 국가적 재앙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세계은행 보고서가 공적연금 기능을 약화하고 사적연금을 활성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국내 비판이 있음에도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서둘러 공적연금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파탄이 날 일은 없으며, 나라가 존재하는 한 연금은 지급한다.” 그동안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국민을 안심시키려고 해 왔던 말이다. 30∼50년 뒤의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MZ 세대 등 미래 세대에게는 이러한 말들이 무책임하게만 보인다. 그래서 연금제도의 건강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필요하다. 다양한 잣대를 활용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만 객관성이 확보될 수 있다. 소득대체율 올리면 재정 안정 불가능 필자는 세계은행과 하버드대가 1999년 하버드대에서 공동 개최한 연금개혁 논의에 한국 측 참가자로 참여했었다. 당시 세계은행은 공적연금에 미적립 부채 개념을 적용해 지속 가능성을 평가하라고 권고했다. 이런 영향이었는지 2007년 국민연금 개혁에서는 미적립 부채 개념을 활용했다. 그런데 이후 한국에서 미적립 부채 개념이 부정당하고 있다. 지난 16년 동안 연금 개혁을 하지 못했던 배경이 이러한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 기인했다고 보다 보니, 미적립 부채를 공개하라고 거듭 요구하는 것이다. 2018년 국민연금발전위원회와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에서는 공적연금 강화란 명목으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면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동시에 인상할 경우 재정 안정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득세했다. 현재 가동 중인 국회 연금 특위에서도 유사한 주장이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안철수 국회의원실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10%포인트 올리고 보험료를 단 3년 만에 12%까지 3%포인트를 올려도 국민연금 누적 적자는 대폭 늘어난다. 국민연금 기금 소진 연도는 2055년에서 2058년으로 3년이 연기되나, 국민연금이 채택하고 있는 70년의 재정 평가 기간 말인 2093년에 가면 국민연금 누적 적자가 1404조4000억원(2023년 불변가격)이나 증가한다.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쳐서 지금까지도 기금 소진 시점 몇 년 연장하는 것을 재정안정방안이라면서 국민과 정치인을 호도하고 있다. 실상은 천문학적 규모의 연금 부채를 후세대에 전가하는 방안인데도 말이다. 이러한 주장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잣대가 미적립 부채 개념이다. 미적립 부채 규모를 제대로 알아야 세대 간 공평하면서도 지속이 가능한 연금 개혁이 가능하다. 누적된 부채 규모도 모르면서, 어찌 세대 간 형평과 공정성을 말할 수 있겠는가. “연금 수급자와 오랜 기간 가입한 자들의 고통 분담 없이, 젊은 층과 미래세대 부담만 가중하는 제도 개편안을 어떻게 개혁안으로 부를 수 있겠나”라는 젊은 층의 불만을 경청해야 한다. 중병 걸린 공적연금 건강 상태 우리 공적연금 건강 상태는 흔히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나쁘다. 최근 공개된 사학연금 미적립 부채는 170조원에 달한다. 33만명 가입자 1인당 5억원의 빚이 있다는 뜻이다. 사학연금이 기금 운영 평가에서 탁월한 평가를 받았음에도, 사학연금의 미적립 부채는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필자가 거듭 공개를 요구하는 국민·사학연금 미적립 부채,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까지 합하면 최소 GDP의 13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주요 선진국은 부과 방식으로 재원 조달 방식을 전환했다. 제도 개혁 필요성이 있기는 하나,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개혁할 필요가 있다. 기금 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기금 소진 시점이 5년 연장되어, 2060년까지 소진 시점을 늦출 수 있다.” 이는 지난 3월 말 발표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보도자료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서울 출생률이 0.59로 급락했고, 연금 받을 인구가 가장 빠르게 늘어날 국가에서의 상황 인식치고는 너무나 안이해 보인다. 지난 1월 중간발표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연금 개혁을 실기하여, 동일한 수준의 재정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보험료를 2%포인트 더 부담해야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확정된 추계 결과를 발표하면서는 이처럼 위기의식이 없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다. 이번에도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다면 더 악화한 여러 요인으로 인해 동일한 수준의 재정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3%포인트 정도를 더 부담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하지 못해 발생한 2%포인트에 3%포인트를 더하면 5%포인트를 더 부담해야 한다. 지난 25년 동안 보험료율을 단 1%포인트도 올리지 못했던 나라가 우리이기에, 너무나 안이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핀란드의 공적 연금 통합 운영 지난 25∼26일 아시아·태평양 지역 연금 전문가 회의가 개최되었다. 먼저 OECD 사무국이 회원국들이 운영 중인 자동안정장치 내용을 발표했다. 이후 독일·핀란드·일본에서 운영 중인 자동안정장치 내용도 발표되었다. 이들의 자동안정장치 운영 현황을 듣고 있노라니 숨이 막혀왔다. 가급적 빨리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해야 할 나라가 우리인데도, 국회와 정부 어디서도 자동안정장치 필요성을 언급하지 않아서다. OECD 연금 전문가 회의에 참석했던 이스모 리스쿠 핀란드 연금센터 기획국장의 발표가 주목받았다. 연금 운영 환경이 우리보다 훨씬 우호적임에도 핀란드 소득 비례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은 24.4%이고, 공적연금은 통합 운영되고 있다. 우리에게 있는 퇴직연금(국민연금 가입자), 퇴직수당(공무원연금 가입자) 혜택은 없다고 했다. 보험료 외에 연금 재정에 투입되는 세금까지 고려하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실제 부담률이 월급 대비 28% 수준이라고 한다. 이미 도입된 준자동안정장치 작동이 멈춰질 경우, 즉 연금 수급 연령을 63세로 고정할 경우 보험료율이 47%까지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개인별 연금 현황 보여주는 통계 절실 우리보다 훨씬 많이 부담하고 있음에도, 연간 연금 지급률 기준으로 핀란드 공무원연금 가입자는 우리보다 훨씬 적게 받는다. 국민연금액에 부과하는 핀란드의 높은 연금소득세를 고려하면 퇴직연금 혜택이 가능한 우리나라 국민연금 가입자(퇴직연금 가입 대상자 중 실제 가입한 53%의 근로자)의 노후 소득 보장 수준은 핀란드보다 더 높다고 봐야 한다. 외국의 현황이 이러함에도 그동안 사실에 기반한 논의를 소홀히 해왔다. 특정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연금 논의 방향이 결정되어 오다 보니,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우리는 한여름에 열심히 일하는 개미를 비웃는 베짱이가 득세하는 형국이다. 제대로 된 공론화를 위한 기초 자료 확보 차원에서 ‘포괄적 연금 통계’ 생산 시기를 서둘러야 한다. 누가 어떤 제도에 어떻게 가입하고 있는지, 개인연금을 포함하여 개인별 연금 가입 현황을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연금 통계를 생산해 내야 한다. 제대로 된 통계가 있어야 바람직한 연금 개혁이 가능할 수 있어서다. 통계청을 통계처로 격상하자는 류근관 전 통계청장의 주장을 실행에 옮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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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퍼스펙티브] 비호감 정치에 혐오는 최고조, 제3세력은 안 보여
━ 2024년 총선, 신당 바람 불까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한국 정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두 축으로 한 양당 체제로 고착화했다. 양당 구도를 깨려는 제3신당 실험도 여러 번 있었다. 그간 숱한 신당이 명멸했다. 제3신당 실험에 대한 정치사적 평가는 잠시 접어두자. 주목할 점은 선거 때면 제3지대 신당론이 출현하는 현실이다. 견고해 보이지만 틈새가 갈라져 있거나 지층이 불안정하다는 반증이다. 지난 경험에서 보듯, 작은 균열이라도 분출한 선거 민심과 결합하면 예측 불허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금태섭 1년이 채 남지 않은 22대 총선(2024년 4월 10일). 이번엔 ‘금태섭(전 민주당 의원) 신당론’이 대두했다. “수도권 30석”이 목표라지만 현재로선 미풍도 느껴지지 않는다. 신당의 필요조건이랄 수 있는 ▶걸출한 리더 ▶정책과 비전 ▶새 인물 수혈이 보이지 않는다. 공염불로 끝날지 모른다. ■ 「 ‘적대적 공생’ 양당 체제에 불신 “제3세력 나오면 지지받을 것” 여야 현역들, 온실 안주하려 해 “강성팬덤 있는 게 선거엔 유리” 편가르기 정치에 새 바람 일까 총선 끝난 뒤 신당 출현 전망도 」 그러나 “비호감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불신이 임계점에 달하고 있어 믿을만한 제3세력이 나오면 민심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윤여준 전 의원)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 삶과 유리된 채 정치 생명 연장만을 노린 포퓰리즘, 위선과 비리, 증오와 혐오를 퍼 날라 재생산하는 편가르기 정치에 자정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높다. 지성과 합리를 밀어내고 정치를 양극단으로 내모는 광풍 정치, 강성 팬덤 현상도 제3의 정치세력 출현을 재촉하는 요인이다. 2024년 총선, 과연 제3당 실험은 성공할까. TK 석권한 자민련, 호남 휩쓴 국민의당 이정민의 퍼스펙티브 역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제3신당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통일국민당(14대 총선 31석), 고 김종필(JP) 총리의 자유민주연합(15대 총선 50석),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20대 총선 38석)이다. 대선주자급의 정치 리더가 깃발을 들고 지역 맹주나 명망가들이 가세해 성공한 경우다. ‘반값 아파트’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운 통일국민당은 민생을 파고드는 실용주의로 기성 정치권과 차별화했고,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계와 갈등하던 JP는 이른바 ‘원조 보수론’을 앞세워 충청과 TK(대구·경북)를 공략했다. 안철수 의원은 ‘새 정치’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어 바람을 일으켰다. 자민련과 국민의당은 위력적이었다. 거대 양당의 핵심 지지기반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자민련은 충청은 물론 수도권과 강원에서도 당선자를 냈고, 특히 비(非) YS 정서가 팽배했던 TK를 집중 공략해 대구 지역구 13석 중 8석을 석권했다. ‘원조 보수’라는 프레임에 걸맞은 박준규·박철언 전 의원 같은 TK 거물들을 결합한 전략이 먹혀들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새정치+호남’ 연합군의 승리였다. 김한길·박지원·정동영 전 의원 등 문재인 세력과 갈등하던 동교동계와 호남 중진들이 분당(分黨)해 호남 지역구 28석 중 23석을 거머쥐는 이변을 낳았다. 정당 비례대표 투표에선 제1당 민주당(25.5%)보다 높은 26.7%를 득표했다.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씨는 “국민의당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호남의 지지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의원 간 갈등과 진박감별사 사태, 공천 파동으로 새누리당을 이탈한 중도와 보수까지 견인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양당 모두에서 동시 균열이 일어나고 ▶유명세가 있는 인물군이 가세했을 때 신당은 탄력을 받는다. 신당 성공의 방정식이다. 반면 2000년 민국당 사태는 이와 대비된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물갈이 공천’에 반발, 김윤환·조순·이기택 전 의원 등 공천 탈락한 중진들이 영남 기반의 신당을 창당했지만 영남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한 대참패로 끝났다. 한나라당이 ‘새 정치’ 명분을 선점한 데다 “민국당 찍으면 DJ 돕는 것”이란 정서가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20대의 50%가 무당층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난 대선 이후 무당층이 계속 늘어 30%(5월 둘째 주 조사 28%)에 육박하고 있다. 무당층은 평소엔 늘었다가 선거가 가까워져 오면 줄어들지만, 이번엔 2030, 특히 20대의 이탈이 급증한 게 특이점이다. 2022년 1월 평균 34%이던 20대 무당층은 꾸준히 늘어 지난달엔 53%에 달했다. 같은 기간 30대는 26%→36%로 증가했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부터 지난 대선까지 높은 투표율을 보였던 20, 30대가 진보·보수 양당으로부터 지지를 철회한 상태”라며 “내 삶은 개선된 게 없고 정치는 오히려 더 후퇴해 양극단의 혐오를 만들어내는 데 실망해 불신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20대의 이탈이 신당의 동력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지난 대선 땐 개딸(개혁의 딸)이나 이준석 키즈 등 20대가 조직화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파편화돼 있다. 이들이 집단화하려면 서로 공유할 정치적 연결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며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또 “20대를 견인할 아이돌 같은 인기를 끌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라며 인물 부재를 지적했다. 과거 절대적 지지를 보냈던 영남·호남 민심도 예전만 못하다. 국힘의 대구·경북(51%), 부산·울산·경남(40%) 지지율은 저조하다. 과거엔 대통령의 높은 인기가 집권당의 지지율을 견인했지만, 막 집권 1년을 넘긴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27~37%(지난 20주 통계)의 박스권에 갇혀 있다. 한국갤럽의 5월 둘째 주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대구·경북에서 52%, 부·울·경에선 당 지지율보다 낮은 37%였다. ▶안철수·이준석·나경원 사태에서 드러난 당내 민주주의 실종 ▶일방통행식 리더십과 줄세우기 ▶지지부진한 부패 수사와 무능으로 보수·중도 지지층이 이탈, 관망으로 돌아섰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민주당도 비슷하다. 70% 이상 높은 지지를 보이던 광주·전라의 민주당 지지율은 53%로 떨어졌다. 대장동, 돈봉투, 김남국 의혹 등 사법 리스크와 입법 폭주, 팬덤에만 의존한 이재명 체제에 실망한 탓이다. “이재명 체제와 타협 정서가 더 커” 구심력보다 밖으로 튕겨 나가려는 원심력이 더 클 때 분당 사태가 벌어진다. 정치권에선 우선 이재명 체제를 주목한다. 이 대표가 사퇴하거나, 거꾸로 비 이재명계에 대한 공천 배제 등 잡음이 커질 경우 이탈 세력이 생길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양당의 적대적 공생을 유지하는 틀이 무너질 수 있다고 본다. “이재명 후보가 될까 봐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던 중도층의 선택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내 기류는 다르다. 이재명 사퇴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이탈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공천이 보장된다면 이 대표와 타협하는 쪽을 택할 의원들이 많다. 강성 팬덤이 선거에는 나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 중진 의원은 설명했다. 이상민 의원도 “5% 중도를 얻으려다 5% 열성파를 잃을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정서”라고 당내 기류를 전했다. 현재 수도권 121석 중 100석(83%)이 민주당 의원이다. “수도권 민심을 볼 때, 지금 구도가 나쁘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금 전 의원)는 분석이다. 현 구도를 깨려면 국민의힘이 개혁 공천을 해야 하지만, 좋은 인물군 발탁이 쉽지 않고 기성 정치인이 반발할 것이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당 깃발을 앞세울 지역 맹주 혹은 중간 보스를 찾기 힘들어졌다는 것도 신당 창당엔 부정적 요인이다. 그간의 학습효과로 양당 모두 ‘모험’보다 ‘온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높아져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정당 기대” 그래서 신당의 출현이 총선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재명 체제의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비명계는 같이 못 갈 것이고, 패배하면 희망 없다고 본 세력들이 총선 후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배종찬 소장)는 예측이다. 국민의힘이 패배할 경우 분당 수순을 밟게 될 수 있다. 신당론자들은 양당 체제에 대한 반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궤적을 살아온 민주적·합리적인 세력이 등장하면 기대를 모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금태섭 전 의원은 “과반수 득표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으로 끝났고 통합정치의 기대를 걸었던 문재인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도 편가르기 정치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의 뛰어난 정치인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판타지가 식상해졌고 유권자도 이제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