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준호의 직격인터뷰] “원전 발전 충분했다면 가스 급등 충격 흡수했을 것”

     ━  주한규 원자력연구원장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난방비 급등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맹추위 속에 가정마다 평소보다 2~3배 이상 오른 난방비 고지서를 받아들고 경악하고 있다. 여당은 “지난 정부의 탈원전 및 신재생 확대 정책에 따른 천문학적 비용을 뒤늦게 떠안은 탓”이라고 주장하고, 민주당은 “난방비 급등은 무능한 윤석열 정부의 정책 결정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난방비 급등은 왜 일어났고, 누구의 잘못일까. 더 나아가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어떻게 가야 할까. 지난달 31일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찾아 주한규 신임 원장을 만났다. 그는 원자핵공학을 전공한 에너지 전문가다. 5년여 전까지만 해도 대학 연구실에만 묻혀 사는 ‘서생(書生)’이었지만, 2017년 5월 들어선 문재인 정권이 탈(脫) 원전 정책을 펴자 이슈의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동료 교수들과 함께 탈원전 반대 성명을 내고, 페이스북에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오류를 지적하는 글을 올리는 등 현실 참여형 에너지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대선 정국이 열리자 그는 윤석열 대선 후보의 캠프에 영입돼 원자력/에너지정책분과 위원장을 맡았다. 정권이 바뀌고 탈원전 정책도 막을 내리면서 지난해 12월 교수직을 잠시 내려놓고 제22대 원자력연구원장에 취임했다.     ■  「 문 정부, 낮은 가스값 믿고 탈원전 및 신재생 청사진 그려 가스 가격은 항상 요동친다는 점 잊은 채 미래 예측한 오류 원전 중심으로 태양광·풍력 더하는 ‘에너지 믹스’ 정책 펴야 ‘RE100’ 한국서는 불가능…원전의 ‘CF100’ 능력 주목해야 」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지난 정부 기간 탈원전에 반대 목소리를 높여온 현실 참여형 학자다. 지난달 31일 대전 원자력연구원 원장실에서 원전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난방용 에너지 대부분은 가스   난방비 폭등의 원인이 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가스 가격이 폭등한 게 가장 크다. 여기에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잘못이 배경으로 깔렸다. 국내 난방용 에너지는 연탄·전기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가스가 거의 전부다. 가스는 난방용뿐만 아니라 발전용으로도 사용되는데, 그간 탈원전으로 발전용 가스 사용이 늘어나면서 부족한 가스를 단기 시장에서 구매하게 돼 가스 도입 가격이 크게 올랐다. 원전 발전량이 충분했다면 가스 발전량을 줄여 국제 가스 가격 급등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었을 거다.”   지난 정부에서 원전 가동률이 오히려 늘었다는 주장이 있다. 팩트가 뭔가. “잘못된 주장이다. 지난 정부에서 평균 원전가동률은 71% 정도였다. 박근혜 정부 땐 81%였는데, 작년에서야 그때 수준으로 회복됐다. 이명박 정부 땐 원전 가동률이 90%를 넘었다. 2015년 확정한 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현재 신규로 가동돼야 할 원전들이 많은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탈원전이 없었더라면 작년에 신한울 1, 2호기 등이 가동됐을 거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급등한 가스값이 제때 반영되지 않았던 걸 현 정부가 떠안았다는 얘기인가. “그래프〈그림〉로 보여드리겠다. 주택용 가스 가격과 가스 도입단가 추이를 보자. 가스 도입단가는 2021년 하반기부터 급하게 오르기 시작했는데, 주택용 가스 가격은 그 이후로 2022년 4월까지 거의 일정하다가 이후 점차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정부 동안 가스 가격 급등 요인이 있었음에도 반영을 안 했다는 거다. 지금은 도입가격이 너무 올라 주택용 가스 가격을 안 올릴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지난 정부 출범 한 달 뒤인 2017년 6월 탈원전 반대성명을 내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료 인상 가능성과 세계 최고 원전 기술의 사장 가능성을 주장했다. “그대로 현실화하지 않았나. 그때 신고리 5, 6호기 건설이 약 30% 진행되고 있었던 걸 중단하려고 하는 시도가 있어 교수들이 저항했다. 돌이켜보면 2016년 즈음 셰일가스 양산의 영향으로 가스값이 아주 쌌다. 지난 정부는 그걸 믿고 신재생에너지를 확 늘리고, 보완 전원을 가스로 해도 된다는 논리로 탈원전을 추진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가스값은 항상 오르내린다. 가장 낮은 시점의 가격을 기준으로 미래를 예측하면 안 되는 거였다.”   에너지 가격 어느 정도는 올려야   비싼 난방비를 이대로 감수해야 하나. “지난해 말 정점을 찍었던 국제 가스 가격이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까지 내려갔다. 난방비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가스공사에 미수금 제도라는 게 있다. 그간 시세보다 낮게 잡았던 가스 가격을 어느 정도 보상받는 시스템이다. 이게 있어서 당장 반영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하는 게 습관이 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에너지 가격을 어느 정도 올려 시장에 신호를 주면서 에너지 효율도 높이고 소비도 절약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제 가스 가격이 또 급등할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에너지 안보를 얘기하는 거다. 에너지 자립도를 높여야 국제 정세 변동에 따른 영향에 둔감할 수 있다. 그 대안이 원자력이다. 원자력이 충분히 있으면 가스 수요를 장기간 예측해 장기 계약 가격으로 들여올 수 있다.”   탄소중립 때문에라도 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나라가 적지 않은데. “에너지를 둘러싼 환경은 나라마다 다르다. 재생에너지 여건이 좋은 나라들도 풍력이 유리한 나라, 태양광이 유리한 나라 등 제각각이다. 북유럽이 잘한다고 우리가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풍력 환경이 좋지 않다. 그나마 태양광 여건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인데, 여기에도 간헐성이라는 단점이 있다. 날씨가 나쁘거나 밤이 되면 발전을 못 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LNG 발전을 병행하든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2차전지형 ESS는 설치 비용이 너무 비싸다.”   우리나라에 맞는 현실적 에너지 정책은 뭔가. “결국 원자력이다. 원자력은 에너지 안보뿐 아니라 탄소중립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원자력은 온실가스가 나오지 않는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와 함께 탄소중립을 위한 효과적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원자력 또한 나라마다 여건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3년에 2기씩 건설해왔기 때문에 공급망이 안정적이고, 건설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미국 경우는 지난 30~40년간 원전 건설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든다. 대신 풍력이나 태양광은 싸다. 요약하자면 원자력을 중심으로 놓고,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를 붙이는 에너지 믹스(energy-mix)를 잘해야 한다.”   최근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100% 쓴다는 ‘RE100’ 가입을 선언하는데. “정범진 경희대 교수가 ‘RE100은 재생에너지 사기극 수준’이라고 말하는데, 표현이 강하긴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RE100이 정말로 실현되려면 ESS를 대폭 확대해야 하는데, 지금 어느 곳도 ESS를 활용해 RE100을 추구하지 않고 있다. 특히 한국 내에선 불가능하다. 대신 ‘탄소가 전혀 나오지 않는 에너지’라는 뜻의 ‘CF100’(Carbon Free 100%)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게 바로 원전이다.”   원전 비중 40%대로 늘려야   전체 발전에서 원전 비중을 얼마나 하는 게 좋을까. “지금 계획은 2035년까지 35%라고 돼 있는데, 40% 이상은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 최근 연구개발을 시작한 소형모듈원자로(SMR)가 2035년 이후 본격적으로 보급될 수 있을 거로 보인다. 그러면 원자력 발전 비중을 더 높일 수 있다.”   왜 SMR인가 “SMR은 안전성이 매우 높고 대형 원전과 달리 출력 조정을 하기 쉽다. 이런 장점 때문에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은 재생에너지 발전을 받쳐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원전은 핵폐기물 문제가 있지 않나. 고준위 핵폐기물의 영구저장소 설치도 어려운데, 임시저장 시설은 이미 포화 상태다. “사용후핵연료는 현재의 기술로도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다. 5㎝ 두께의 구리 용기에 담아 지하 500m 암반에 구멍을 내고 묻은 다음 주변 방수를 위해 벤토나이트라는 점토질의 광물질로 채우면 된다. 구리는 부식에 아주 강한 물질이다. 철기시대 유물은 제대로 남은 게 거의 없어도, 그 이전인 청동기 유물은 그대로 있지 않나. 벤토나이트는 수분을 만나면 딱딱해져서 물이 침투하지 못한다. 이렇게 3중 방벽을 하면 위험할 일이 전혀 없다. 실제로 핀란드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반핵운동가들이 위험을 과장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과도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주한규=서울대 원자핵공학 학·석사를 마치고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퍼듀대에서 원자핵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원자력연구소를 거쳐 2004년 모교인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2015년 미국원자력학회 석학회원으로 선정됐다. 2022년부터 원전수출전략추진위원회 위원과 외교부 과학기술외교자문위원회 원자력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제22대 원자력연구원장으로 취임했다. 최준호 과학ᆞ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2023.02.03 00:55

  • 소아과 문제 해법 없나..."의대정원 매년 1000명 늘리면 해결" [신성식의 직격인터뷰]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새해부터 난데없이 소아청소년과(이하 소청과) 진료 차질 때문에 야단이 났다. 산부인과·흉부외과·외과·응급의학과 등에 이어 의료 현장에서 소청과·신경외과 등의 한계 상황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자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2020년 9월 의사 파업 때 접어두었던 카드이다. 보건복지부는 "조속히 의료계와 협의를 시작하여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인구가 감소하고, 추가로 배출되는 의사가 매년 늘어 의사 부족이 아닌 공급 과잉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온다"며 반대한다.     신영석 한국보건행정학회 회장이 1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 했다. 배경 화면에 신 회장이 주도한 의사 인력 수급 추계 보고서가 띄워져 있다. 장진영 기자 신영석 한국보건행정학회장(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게 의사 인력 대책과 전공별 불균형 해소 방안을 물었다. 신 회장은 지난달 말 "2035년 의사 2만7000명이 부족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해 의대정원 논란의 불을 댕겼다. 신 회장은 "의대 정원 늘리기에 이미 실기(失期·시기를 놓침)했다. 시급히 정원을 늘리고 진료과목 간 불균형 수익 구조를 개선하면 소청과·산부인과 등의 인력 부족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  소청과 전공의확보율 28%로 급락    의사 부족이 심각한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부족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형병원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지방에 가면 도드라진다. 그래도 괜찮은 거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소아 환자 진료받기가 어려워졌다.  저출산에도 불구하고 소청과는 의사 업무량(진료량)이 늘고, 전공의 확보율도 괜찮았다(2014~2018년 100% 확보). 그런데 2020년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았다. 소청과 환자의 병원 방문이 반 토막 나면서 병의원 유지가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전공의 지원자들이 소청과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2020년 전공의 확보율이 71%, 2021년 37%로 떨어졌고, 지난해 207명 모집에 57명(28%)만 뽑는 데 그쳤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는데, 좀 나아지지 않을까.  올해 지원율이 16%로 떨어졌다. 전망이 절대 밝지 않다.   이미 배출된 전문의도 부족한가.    현재 소아과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건 아니다. 전공의 부족 문제는 다른 문제다. 전공의가 부족하면 진료에 당장 차질이 생긴다. 가천대 길병원의 경우 소청과 전공의가 없어 이들이 할 일을 전문의가 해왔는데, 더는 지속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병원들이 수익이 나면 중단할 리가 없다. 그렇지 않고 전공의마저 안 오면 어느 병원이든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길병원은 현재 소청과 전공의가 2년차 1명, 4년차 4명이 있다. 4년차는 2월 전공의 과정이 끝나는 데다 전문의 시험 준비에 매달려 있어 실제 전공의는 1명뿐이다.   소청과 동네의원도 부족하나.  개업 의원은 부족하지 않다. 의원에서 해결하지 못하거나 수술할 환자는 대형병원으로 가야 한다. 지금 같은 추세로 가면 길병원처럼 입원 환자를 받지 않는 데가 늘어날 것이다.       ━  전문의로 충원할 수 있게 충분히 지원해야   지금 당장 어떤 대책이 있나.  2017년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법률(전공의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주당 근무시간이 120시간에서 80시간으로 줄었을 때 호스피털리스트(입원환자 전담전문의)를 도입해 보완했다. 이번 소청과 문제를 해결하려면 병원들이 전문의를 채용할 수 있게 (예산이나 건강보험 재정으로) 충분히 보상해야 한다. 전국 수련병원(전공의가 수련하는 병원, 247개) 중 일정 규모 이상을 지원하거나 특정 지역을 지원하는 식으로 급한 불을 꺼야 한다. 또 수가를 올리되 수련병원의 수익이 늘게 수술 등의 수가를 올려야 한다.   신영석 한국보건행정학회 회장이 의사 인력과 관련해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른쪽 그래프는 2035년 의사 인력 부족 현황 추계이다. 신 회장이 연구했다. 장진영 기자 지금의 의사 부족 사태가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신 회장은 2011~2019년 자료를 토대로 미래 환경 변화를 예측해 추정했다. 그랬더니 2035년 2만53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나왔다. 의사의 성별·연령별 특성을 고려할 경우 2만 7232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내과계(소청과 포함)가 1만42명, 외과계(산부인과 포함)가 8857명 부족하다.   인구 감소가 이미 시작됐는데, 왜 의사가 더 필요하나.  노인, 특히 초고령 노인이 늘기 때문이다. 2040년대 초반까지는 의료 수요가 늘고, 그 후에는 감소한다.    ━  의료 이용 두 배인데 의사는 3분의2에 불과   다른 나라보다 의사가 적은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2020년 기준)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3.7명인데, 한국은 2.5명으로 훨씬 적다. 한국의 외래진료 방문횟수, 입원일수 등이 OECD 평균의 두 배 넘는데 의사는 3분의 2에 불과하다. 그러니 한국은 1~2분 진료하고, 선진국은 10~15분 진료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하나.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묶여있다. 2000년 의약분업 파동 때 줄어든 인원(약 200여명)이든, 전 정부가 추진한 연 400명씩 10년간 4000명을 늘리든 간에 빨리 결정해야 한다. 의사 양성에 10년 걸리기 때문에 이미 늦었다.   정원을 늘린다고 소청과·산부인과·외과 등의 기피과로 갈까.  연간 1000명씩 늘리면, 즉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지 않아도 (기피과로) 인력이 흘러갈 것이다.   다른 건 손보지 않아도 되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를 보면 2020년 의원급 의사의 연 소득이 2억5442만원(병원급 의사는 2억3690만원)이나 된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소청과 의원은 1억875만원으로 가장 적다. 안과·정형외과는 4억원이 넘는다. 이런 불균형 수익 구조를 그대로 두면 전공의가 소청과 같은 데로 안 간다. 낮은 곳의 문제는 제기되지만 높은 데는 얘기하지 않는다. 30년간 그랬다. 낮은 데를 올리자면 높은 데는 내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리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환자가 늘어도 수입이 크게 늘지 않고, 소청과처럼 환자가 줄어도 수입이 크게 줄지 않게 파이가 나뉘게 제도를 바꿔야 한다.   지역 근무를 조건으로 의사를 선발하면 어떠냐.  일본처럼 학비 등을 지원하고 10년 지방 근무(전공의 근무기간 포함)를 조건으로 시행하는 것을 검토해볼 만하다. 일본은 그 지역을 벗어나면 지원금의 수 배에 해당하는 페널티를 물게 한다. 다만 지역 의사와 일반의사 간 교류가 안 된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어 이런 점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    ━  미국은 전공의 양성에 2억 지원    전공의 교육비를 정부가 지원해야 하나.  미국은 전공의 한명당 18만달러(2억2185만원)를 지원한다. 전공의와 지도의사, 병원에 간다. 왜 지원하는지 의아해 할 수 있지만 면허 취득 후 국민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일본도 일부 지원한다. 이렇게 지원하되 필요한 분야 전공의 정원을 조정한다.   의대나 공공의대를 신설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공공이니 뭐니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 국립대 의대는 교육여건이 갖춰져 있으니 여기에 정원을 추가하는 게 바람직하다. 40명짜리 신설 의대가 생기면 교육이 되겠느냐. 미국은 교육에 필요한 최소 정원을 80명으로 본다. 40명짜리 의대가 생기면 2017년 폐교한 서남대 의대 꼴이 될 거다.   의료 이용 체계는 어떻게 고쳐야 하나.  한국 의료의 이용과 공급은 자유방임 시장에 맡겨져 있다. 환자가 연 평균 17회 이상 병원을 방문하고 있다. 현행 시스템이 유지되면 방문 횟수가 계속 증가할 것이다. 그러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무조건 수도권의 큰 병원으로 올 게 아니라 지역 내에서 의료 이용이 완결될 수 있게 바꿔야 한다. 대신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은 건강보험료를 낮추고, 서울·수도권은 좀 더 부담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미국·영국·일본·독일 의대정원 대폭 늘려    병원이 많이 생긴다.  서울아산·서울대·세브란스 등의 9개 대형병원 분원이 수도권에 속속 들어선다고 한다. 그러면 7000개의 병상이 늘어난다. 전국의 의사·간호사 등 의료 인력이 연쇄적으로 수도권으로 빨려들 것이다. 의료비 지출을 조장하는 형태를 방치하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지금부터라도 관리해야 한다.   다른 나라는 의대 정원을 어떻게 하나.  프랑스가 정원을 장기간 묶었다가 2021년 풀었다. 교육할 여건이 돼 있다고 판단하면 대학이 알아서 늘릴 수 있다.       미국은 지난 20년 동안 의대 입학정원을 38% 늘렸다. 영국은 2002년 4300명에서 2021년 9280명으로 늘렸고, 그해 10월의과대학협회는 5000명 확대를 제안했다. 일본도 2007년 7625명에서 2019년 9330명으로 늘렸다. 독일은 2020년 9월 입학정원을 50%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유럽의 의료대기 수요 급증과 의사·간호사 부족 사태를 조명했다. 의사 부족이 선진국의 공통 현상이라고 했다.      ◇신영석=보건사회연구원에서 30년 넘게 보건의료 분야를 연구해온 전문가. 의사 보수나 인력, 진료 수가에 해박하다. 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올해 들어 한국보건행정학회장이 됐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01.20 00:46

  • "文정부 5년, 軍에 '평화타령' 주입…북 무인기에 뚫렸다" [장세정의 직격인터뷰]

    장세정 논설위원 수컷 꿀벌, 즉 수벌(雄蜂)에서 이름을 딴 드론(Drone·무인기)이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닌다. 지난 12월 26일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을 우리 군이 곧바로 포착했지만, 전투기도 헬기도 대공포로도 끝내 요격하지 못했다. 이번엔 단순 정찰 및 촬영만 하고 돌아갔다지만, 북한 무인기가 폭탄을 탑재하거나 심지어 생화학무기를 서울 상공에 뿌린다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월 29일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방문해 무인기 연구 현장 둘러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무인기 도발에 대응해 우리 군에 대대적인 드론 전력 강화를 지시했다. 사진 대통령실  자폭 드론이 동원된 우크라이나 전쟁 사례에서 보듯 바야흐로 '드론 전쟁 시대'가 열렸다. 그렇다면 북한의 드론 역량은 어디까지 왔고, 우리 군은 어디까지 대응이 가능할까. 국내 최고 무인기 전문가로 꼽히는 홍성표(66)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국방군사전략실장은 "북한의 킬러 드론 도발에 대비해 드론 대응 역량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28기 임관)한 뒤 수송기(L-2) 조종사로 활약하다 국방대 교수를 끝으로 대령으로 예편했고, 아주대 국방디지털융합학과 대우교수를 거쳤다. 홍성표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국방군사전략실장이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야외에 전시된 공군 T-41 훈련기(일련번호 T-054) 앞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며 북한 무인기 도발과 우리 군의 대응에 대해 진단하고 있다. 그는 "무인기 방어와 공세 역량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민규 기자   우크라이나서 입증된 드론 전쟁  -'드론 전쟁 시대'가 도래했다.  "우크라이나전쟁 초기 미국은 무인기 '스위치 블레이드' 700기를 제공했고, 러시아는 급히 이란제 샤헤드-136 무인기 2400대를 주문해 투입했다. 전투 요원이 투입돼 인명이 희생되는 것에 비하면 효율적이다. 적은 비용으로 만든 자폭 드론인데도 상대가 방어하기 쉽지 않으니 가성비가 굉장히 높은 무기다."  -미국·중국의 경쟁도 치열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능해진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이 결합하면서 최첨단 무인기가 맹활약하고 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과 영국은 MQ-9 리퍼 무인기에 헬파이어 로켓 14발을 장착해 연합 무인기 작전으로 테러리스트 5000명 정도를 제거했다. 2015년 시리아에서 지하드 존(무함마드 엠와지)이, 2020 이라크에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부대 총사령관이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즉사했다. 중국은 지난해 시속 200㎞ 속도로 고도 1㎞ 이하를 비행하는 소형·저속·저고도 드론을 근거리에서 고출력 레이저빔으로 격추할 수 있는 '드론 킬러'를 공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2월 21일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인기를 제공해 러시아에 큰 타격을 가했다. AFP=연합뉴스  -북한 무인기 수준은 어떤가.  "500대 정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상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정찰기가 주류다. MQM-107D, TU-143 등 자폭용 무인기도 100여대 정도 있을 거다. 중국 기술을 개량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에 발견된 무인기는 엔진 배기량이 35㏄, 연료는 4.5ℓ 정도로 기초적인 수준이었다. 2017년에는 배기량 50㏄, 연료는 7.5ℓ로 약간 좋아졌으니 이번에는 조금 더 성능이 향상됐을 거다. 북한은 중국·러시아는 물론 이란의 공격용 무인기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무인기 500여대 보유한 듯  -북한의 이번 도발 의도는.  "정찰용이지 공격용은 아니었다. 국지도발은 엄청난 보복이 두려우니 몰래 무인기로 정찰한 것 같다. 격추되지 않고 촬영해 갔지만 침투하다 발각됐고 한국의 드론 전략을 강화하는 계기를 만들어줬으니 득보다 실이 클 것이다. 이번엔 사진 촬영용으로 운용했지만, 경로 비행을 하니 특정 표적을 겨냥해 작동하면 공격용으로 변할 수 있다. 무인기에 고성능 폭탄이나 생화학무기를 장착해 운용할 수도 있지만, 생화학무기를 살포하면 전쟁범죄다."  -무인기 침범은 군사합의 위반 아닌가.  "적대 행위를 금지한 정전협정과 9·19 군사합의 위반이다. 9·19 합의에 따르면 2019년 11월 1일부터 무인기는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동부지역은 15㎞, 서부지역은 10㎞까지가 비행금지구역이다. 북한의 도발에 우리 군은 비례적 정당방위 차원에서 무인기 송골매를 북측 5㎞ 상공까지 진입시켜 정찰 비행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북한이 다시 도발하면 9·19 효력 정지를 검토한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지난 2017년 6월 강원도 인제에서 발견된 북한 무인기를 국방부가 브리핑룸에 전시한 모습. 연합뉴스 12월 28일 합동참모본부가 국회 국방위원회에 보고한 북한 무인기의 항적. 12월 26일 한국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의 식별 경로다.   -우리 군의 대응을 어떻게 봤나.  "영공을 침범한 무인기를 반드시 잡았어야 했는데 잡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조종사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격추 시도를 하는 게 맞다. 조종사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격추해야지,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적기를 놓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피해를 감수할 수 있어야 국방이 제대로 굴러간다."   문 정부 시절 훈련도 한 번 못 해  -요격 체계가 있었지만 쓰지 못했다.  "2014년 북한 무인기가 청와대를 촬영한 이후 2015년 최대 20㎞ 밖에서 무인기를 탐지하고 3㎞ 내에서 격추할 수 있는 탐지·요격 자산인 '비호 복합 체계'를 갖췄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한 번도 훈련하지 못했다고 한다. 2018년 당시 문 대통령 지시로 4개 중대 규모로 '드론봇 전투단'을 지상작전사령부 산하에 편성했지만, 무기와 장비는 제대로 갖춰주지 않았다. 말로만 편성하고 후속 조치가 없었으니 국민을 속인 셈이다. 이번에 KA-1 경공격기가 출동하다 추락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 5년간 군의 대비태세가 완전히 문드러졌다."    -대비태세가 어쩌다 이 지경인가.  "그날 마침 경기도 남양주 갈매에 있었는데 비행기 소리를 듣고 하늘을 봤더니 우리 군 항공기 4대(KA-1 경공격기 2대와 전투기 2대)가 체공비행 중이었다. 서쪽에서 한강을 따라 서울(광진구 부근 상공)로 날아온 북한 무인기를 요격하려고 출동했을 텐데 끝내 발포하지 않았다. KA-1과 아파치 헬기까지 투입했지만 2m짜리 무인기를 잡는 데는 가성비가 낮은 작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작전 중에 민간의 피해를 우려해 요격을 안 했거나, 충분히 요격할 수 있는데도 다른 어떤 목적이 있어서 안 했을 수 있다."   군인은 정치인·외교관과 달라야  -그게 무슨 의미인가.    "문재인 정부의 영향이 있다고 본다. 지난 5년 내내 장병들에게 매주 정신교육을 하면서 남북 대결 구도를 어떻게든 모면해야 한다, 우리가 조금 양보하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효과적인 국방이라고 계속 주입했다. 전방 부대 대대장들이 이런 얘기를 입에 달고 다녔다. 군인은 적을 보면 박살 내겠다는 자세를 갖는 게 당연하다. 부대는 예봉을 유지하다가 결정타를 날려야 하는데, '평화 타령'으로 예봉이 꺾이면 멈칫거리게 되고 자꾸 눈치를 보다 보면 시기를 놓치게 된다. 군인은 정치인·외교관과 달라야 한다." 2018년 9월 20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두 사람은 앞서 9.19 군사합의에 서명했지만 북한은 이를 무시하고 도발을 계속해 왔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의 무인기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훈련이 지난 5년간 없었다.사진은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천마. 중앙포토  -기술적 한계는 없었나.  "무인기를 요격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소프트 킬'은 방해 전파로 교란해 강제로 착륙하거나 목표를 잃어버리게 하는 방식인데, 스푸핑(Spoofing)이라고도 한다. 극히 드물지만 이란이 미국 드론을 스푸핑으로 강제착륙시킨 적이 있어 미국이 깜짝 놀란 일도 있었다. '하드 킬'은 레이저 무기나 대공포·미사일·항공기로 드론을 파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2m 이하는 물론이고 5m짜리도 요격이 쉽지 않다. 공중에서 레이다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2m짜리 무인기를 요격한다는 것은 노련한 조종사라도 쉽지 않다. 작은 무인기를 잡을 적합한 '파리채'가 마땅하지 않다. 시속 180㎞인 KA-1 경공격기가 시속 120㎞인 북한 무인기를 격추하려면 비행 속도가 2배 이상은 돼야 한다. 따라서 100이면 100 모두 격추할 수는 없으니 조종사를 과도하게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비행금지구역도 일부 뚫렸는데.  "합참이 북한 무인기 항적을 정밀하게 분석했더니 대통령실 반경 2해리(3.7㎞)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P-73)의 북측 일부를 침범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 무인기의 비행 고도가 1~3㎞인 데다 장착한 카메라의 정밀도가 낮아 이번에 북한은 군사 정보로 유의미한 정찰 사진을 확보하지는 못했을 거다."   무너진 군기 다시 바짝 조여야  -대통령실에 근접했는데 '재밍'이 작동했나.  "대통령 경호 차원에서 너무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재밍(Jamming, 전파 교란) 등을 가동할 경우 국민의 불편이 우려되다 보니 가급적 최적화해서 관리하는 것으로 안다. P-73은 원래 항공기나 미사일 도발을 전제로 하는 거라 2m도 안 되는 무인기에까지 적용할 상황은 아니었을 거다. 기술적으로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북한 무인기가 한국 영공을 침범하자 육군 5군단 장병들이 방공 무기체계인 20mm 발칸을 운용하는 모습. 문재인 정부 때는 훈련이 없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대비태세 점검 훈련이 계속되고 있다. 중앙포토  -우리 방공체계에서 보완할 부분은.  "전면전에 대비한 한·미 동맹의 방공체계는 매우 우수하다. 다만 국지 방공과 지역 방공으로 나뉜 국가 방공체계를 이번 무인기 도발을 계기로 전반적으로 점검할 필요는 있다. 특히 비호복합 체계가 작동하지 못한 이유 등을 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 군의 자세와 전력을 다시 바짝 조여야 한다. 북한 무인기를 막는다고 예산을 퍼부어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방어 무기와 공격 무기의 적정선을 찾아 균형 있게 전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쪽지 예산 3000억원을 지역구로 빼갔는데 그 정도 예산이면 북한 무인기 대응 수단을 상당히 많이 확보할 수 있다." 김은송 인턴기자가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  관련기사 "수해 막을 빗물터널 6개 무산…박원순, MB식 토건이라 반대" [장세정의 직격인터뷰] [장세정의 직격인터뷰]‘대형산불=4월 강원도’ 공식 깨져, 대응도 달라져야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죄 지은 자들이 검찰 비웃어" "인사 그물 쳐 법원 정치화" [장세정의 직격인터뷰] 힘 세진 중국, 한국을 '우리 아닌 너'로 여기며 충돌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2023.01.06 01:25

  • "수학 1등급 94%가 이과…문과침공은 文정부 책임" [윤석만의 직격인터뷰]

     ━  정성국 한국교총 회장   윤석만 논설위원 교육 이슈는 계륵과 같다. 복지공약처럼 많은 예산이 들진 않으면서 입시정책 하나만 바꿔도 티가 크게 난다. 선거 때면 듣기 좋은 공약이 난무하지만 당선 뒤엔 모른 척하는 정치인이 많다. 유권자들 역시 자녀 입시가 걸렸을 때만 반짝 관심을 보이고 이내 잊어버리기 일쑤다. 교육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이유다.   최근 이과생들의 ‘문과 침공’ 현상도 이런 측면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수학의 영향력이 너무 커 문과생의 손해가 크지만 정부는 대안조차 못 내놓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양재동 교총회관에서 만난 정성국 한국교총 회장은 “수능 절대평가 전환 무산 뒤 대책을 제때 내놓지 못한 문재인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  「 지난해 수능 만점 기준 ‘미적분’은 147점, ‘확률과 통계’는 144점 문 정부 수능 절대평가 공약 철회, 영어만 절대평가인 기형 구조 진보교육감 집권 10여년간 기초학력미달 증가, 교내 정치화 심각 ‘성평등’ 빠진 새 교육과정 “헌법 36조대로 양성평등 명시했어야” 」    이과생이 유리한 통합수능   한국교총의 정성국 회장은 최초의 초등 교사 출신 회장이다. 1971년생인 그는 지난 20일 인터뷰에서 “변화에 대한 13만 회원들의 열망이 ‘X세대’인 저를 선출했다”며 “새로운 시대에 맞는 현장 중심 교육정책이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교총] 올해 수능이 왜 논란인가. “재수생 등 졸업생 응시자가 1996년 이후 역대 최다(28%)였다. 그 이유는 이번이 두 번째인 문·이과 통합수능 때문이다. 문과, 이과 수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의 조합으로 시험을 보는데, 이과생이 주로 선택하는 ‘미적분’의 표준점수 만점이 문과생 다수가 보는 ‘확률과 통계’보다 높아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만점이 100점으로 고정된 원점수와 달리 표준점수는 시험이 어려울수록 만점이 높아진다. 선택과목 간 상대 비교를 위해 응시자의 점수 분포를 토대로 점수를 보정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능에서 ‘미적분’의 표준점수 만점은 147점, ‘확률과 통계’는 144점이었다. 모든 문제를 다 맞혔다 해도 문과생이 이과생보다 3점 낮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수학능력’만 평가하는 시험이라는 말도 있다. “주요 과목 중 영어는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입시에서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시작된 문·이과 통합수능으로 수학의 변별력만 너무 커졌다. 그렇다 보니 수학 점수가 높은 이과생이 인문계열 학과에 교차 지원하는 ‘문과 침공’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단적인 예가 수학 1등급 비율이다. 서울중등진학연구회가 지난해 수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등급 받은 학생의 94.2%가 ‘미적분’과 ‘기하’ 응시자였다. 문과생이 주로 선택하는 ‘확률과 통계’ 응시자는 5.8%에 불과했다. 올해 수능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올해 수학 1등급의 93.5%가 이과생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학생들은 다양한 재능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 수학도 여러 재능 중 하나다. 다양한 방식으로 역량을 평가해야 하는데, 특정 과목의 영향력만 지나치게 큰 것은 잘못이다. 수학적 재능이 필요 없는 전공을 선택하는데도, 수학 성적에 따라 당락이 좌우된다면 불합리한 것 아닌가.”   물거품 된 수능 절대평가 공약   왜 이런 일이 생겼나. “문재인 정부는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공약했다. 첫 단추가 영어였다. 하지만 국어·수학까지 모두 절대평가로 바꾸는 것에 대한 반발 여론이 있었다. 그러다 ‘조국 사태’가 터지고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정시가 오히려 확대됐다. 그 결과 수능 절대평가 전환도 무산됐다.”   정부가 대안을 내놔야 했지 않나. “교육부가 대책을 세워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차일피일 미루면서 여기까지 왔다. 문제는 2025년 고교학점제 실시로 고교 내신이 절대평가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능은 더더욱 절대평가 전환이 어렵다. 그렇다고 영어를 또다시 상대평가로 바꾸기도 힘들다. 교육부가 할 일을 제때 하지 않아 난맥상이 돼버렸다.”   당초 고교 2, 3학년만 절대평가로 전환한다고 했다가 최근에 1학년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는데. “방향은 옳다. 1학년만 상대평가로 놔두면 입시지옥이 된다. 교육 정상화를 위해선 줄 세우기 공부를 개선해야 한다. 요즘 학생들은 스트레스가 매우 크다. 교실이 내신 집중 학생과 포기 학생으로 나뉘고, 옆자리의 친구는 경쟁자가 된 지 오래다. 지나친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학생들의 정서적 불안을 부추긴다.”   입시 스트레스는 큰데 기초학력은 떨어졌다. 무엇이 문제인가. “일단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 줌과 같은 온라인 수업은 아이들의 집중력에 한계가 있다. 지난 10여년 간 진보 교육감들의 문제도 있다. 대표적으로 평가를 터부시한다. 그러나 시험을 보지 않으면 학생들이 뭐가 부족한지 알 수 없다. 줄 세우자는 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자는 의미에서 평가는 꼭 필요하다.”   교육감 직선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말로는 정치적 중립이라지만, 실제 교육감 선거 현장을 보면 어느 곳보다 정치적이다. 능력과 덕망을 두루 갖춘 교육자인데 조직과 돈이 없어 선거에 나서지 못하는 분도 많다. 이런 분들이 출마할 수 있도록 선거공영제를 하거나 교육 관계인으로 한정한 제한적 직선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심각한 교권침해, 무기력감 커져   교육감들의 이념 편향도 문제 아닌가. “진보 교육감들이 교내 민주화나 학생인권이란 미명 아래 학교 현장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학교 입장에선 교육부가 아니라 시·도교육청의 압박이 훨씬 크다. 학생인권 같은 경우도 권리만 강조하고 책임과 의무는 소홀히 여긴다. 되레 요즘은 교권침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0년 1197건이었던 교권침해는 2021년 2269건으로 늘었고 올 상반기에만 1596건을 기록했다. 유형별로는 2021년 기준 모욕·명예훼손(56%), 폭행(10.5%), 성적 굴욕감(8.8%), 성범죄(2.9%) 등 순이었다. 학교별로는 중학교(53.9%)가 과반을 차지했고, 나머지는 고등학교(35.4%)와 초등학교(10.7%)였다.   교권침해를 막을 순 없나. “학생이 수업시간에 딴짓을 해도 교사가 제지할 권한이 없다. 교실 뒤로 나가 서 있으라고 하면 학대 행위로 걸릴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학교 분위기를 흐리는 아이들이 있어도 그저 방치할 뿐이다. 그러면 다른 학생들이 손해를 본다. 교사들은 무력감이 커지고 일부는 폭력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마침 지난 8일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법적으로 교권침해 행위가 명시됐고, 이에 따라 학생을 지도할 근거가 생겼다. 궁극적으로 다수 선량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교권침해 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할 수 있는 법안(교원지위법)도 추가로 개정해야 한다. 적어도 출석정지, 전·퇴학 등의 징계는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새로운 변화, MZ 교사 부상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 ‘성평등’ 명시 여부를 놓고 갈등이 많았다. “야당 측 위원 3명이 표결을 거부하고 퇴장했는데 결과가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게 교육자로서 맞는 일인지 묻고 싶다. 나와 다른 생각도 인정하는 게 민주주의다. 이들의 행동은 일종의 정치적 액션 같아 보였다. 국가교육위원이 정치인처럼 진영에 따라 거수기 노릇을 해선 안 된다.”   지난 14일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야당 측 위원인 정대화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김석준(부산)·장석웅(전남) 전 교육감이 의결을 거부하며 퇴장했다. 이틀 후 정 회장을 포함한 10명의 위원은 성명을 통해 “6번의 전체 회의와 2차례 소위원회에서 합의점을 찾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며 “합의정신을 파기한 것은 중도 퇴장한 3명”이라고 비판했다.   ‘성평등’을 삭제한 건 인류 보편적 가치에 어긋나 보인다. “교육부가 제시한 ‘성에 대한 편견’이란 표현으로 통과됐는데, 나는 반대 의견을 명확히 했다. 교육과정은 정확한 근거를 토대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헌법 36조에는 이미 ‘양성평등’ 조항이 있다. ‘성평등’이 제3의 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어 교육부가 반대한 거라면, ‘양성평등’이란 표현만큼은 넣어야 했다.”   교육계에서도 MZ노조가 부상하고 있다. “젊은 교사 중심인 교사노조연맹 회원 수가 전교조와 비슷하다. 전교조가 이념 투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교육의 본질에 집중하지 못한 전교조는 반성해야 한다. 교총은 전 세대를 아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3만 회원이 초등교사 출신의 X세대 회장을 선출한 것은 이제 교총에도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는 뜻이다.”   ◆정성국=한국교총 75년 역사상 최초의 초등교사 출신 회장이다. 1971년생으로 부산교대를 졸업하고 25년간 평교사로 재직했다. 지난 7월 교총 회장으로 취임해 3년 임기를 시작했다. 윤석만 논설위원

    2022.12.23 00:44

  • [문병주의 직격인터뷰] “판사 아니어도 법원장 추천하고 후보 될 수 있어야”

     ━  -대한변호사협회 이종엽 회장-   문병주 논설위원   각 법원 소속 판사들이 투표로 법원장 후보를 선정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논란 속에 확대 시행된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역점 정책으로 2019년 일부 법원에서 시작된 이 제도는 내년까지 법원장 임기가 남은 인천지방법원을 제외한 전국 지방법원에 도입된다. 대법원장의 ‘치적 알박기’란 비판에도 지난 6∼8일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에서도 최종 후보 확정을 위한 전자 투표가 진행됐다.   앞서 5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이 제도의 포퓰리즘화에 대한 일부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했다. 다만 김 대법원장이 득표수와 상관없는 코드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모였다.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근처 건물에 새로 둥지를 튼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종엽(59) 회장은 “국민이 피해를 받는 재판지연의 한 이유로 비판받는 제도를 더 개방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협회 사무실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 등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  법원장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을    많은 문제 제기에도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예정대로 확대되고 있다.    “제도의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다. 법원 인사시스템이 폐쇄적으로 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로 봤다. 그런데 의도가 변질했다. 인기투표가 돼 선배 법관들이 후배들의 눈치나 보고 인심이나 얻으려고 하다 보니까 열심히 연구하고 판결할 유인책이 사라졌다. 사법 포퓰리즘이 확대되는 이유다.”  어떤 식으로 개선돼야 하나.  “법원 외부에서 충분한 경륜을 쌓은 법조 경력이 있는 재야 법조인이 추천돼야 한다. 그러려면 대법관이나 검찰총장 후보자를 추천하기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듯이 각 법원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만들어 추천하고 심사해야 한다. 이들 후보자 중에서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이 임명하면 된다. 선거를 통한 법원장 후보 추천은 재판 지연의 원인이기도 하다.”  판사들이 1주일에 판결문 2개만 쓰겠다고 한다는 말도 들린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문화가 법원에도 번지고 있다. 이런 문화가 법원장 후보 추천제도와 같은 시스템과 결합하면서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단기적으로 독일처럼 재판지연 보상제도 혹은 지연 경고제도를 도입하면 좋겠다. 재판받는 당사자가 재판이 너무 길어진다고 판단할 때 상급법원에 이의를 제기해 해당 재판부에 경고하거나 국가에 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런 경고가 누적된 판사는 재임용 심사 등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된다. 나아가 늦어진 판결 탓에 제때 재산권 구제를 못 받았을 경우 국가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할 수 있는 재판지연보상법을 만드는 방안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  미국식 증거개시제도 도입 필요       대한변협에서 도입하자고 하는 미국식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는 무엇인가.    “재판이 본격 진행되기 전 단계에서 양측이 신청하는 상대방 보유의 관련 증거를 모두 오픈하도록 하게 하고, 공개하지 않을 경우 강력한 제재를 가하여 신속하게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도록 한다. 한마디로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도 재판에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우리의 재판제도처럼 사실 규명을 위해 오랜 공방을 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이른 시일 내에 실체가 드러나 분쟁이 조기에 종결되는 효과가 있다. 우리 법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증거의 채택 여부와 증거 가치 판단을 판사가 혼자서 다 한다. 지금의 재판제도에서는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고 버티고 숨기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를 막을 방법도 딱히 없다. 그러니 판사에게 증거신청을 했다가 거부당한 쪽은 불만을 가지게 되고, 판결을 불신하게 된다. 재판지휘권이 판사에게 전속된 것이 불신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대법원에서는 대법관들이 처리해야 할 사건이 너무 많다며 대법관 수를 늘리겠다고 방향을 잡았는데.  “지금처럼 대법원에도 사건이 적체된 상황에서는 단기적으로 대법관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1심을 충실히 하면 이런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증거개시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사건의 90%가 1심에서 완전히 종결된다. 항소심, 상고심 재판이 정체될 이유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또한 재판 당사자가 승복하는 재판이 많아져 사법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사건이 많다고 대법관을 계속 늘린다면 대법관 권위 자체도 가벼워질 수 있다.”       ■  「 인기투표 비슷하게 변질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개선 필요 재판지연에 대한 보상ㆍ경고제 도입해 국민권익 보호해야   대장동 관련 의혹 해소 없이 권순일 전 대법관 개업 안 돼 검수완박, 경찰 수사 역량과 법률가적 소양 고려하지 않아   」   ━  법률가적 양심으로 처신해야      대장동 개발 특혜 비리 사건과 관련해 대한변협이 권순일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막고 있는데.  “우리나라 최고 사법기관에 어른으로서 각종 중요한 사건과 정책적인 판단에 많이 관여를 한 분이다. 사법적ㆍ정치적 중립성이 유지해야 하는데 현직 시절에 그렇지 않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어느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여했는지 국민적 관심사가 돼 있다. 법조인으로서 당연히 그 의혹이 해소되기 전에는 변호사로서 활동하는 것이 매우 부적절하다고 본다. 권순일 방지법을 준비 중이다.” 권순일 전 대법관. 연합뉴스  권 전 대법관은 퇴임 후 대장동 개발 사업에 참여한 화천대유자산관리 고문으로 일하며 월 1500만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장동 일당이 50억원을 주기로 했다는 인사 중 한명으로도 거론된다. 2019년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당시 대법원 전원 합의체가 무죄 취지로 판결했을 때 권 전 대법관이 핵심 역할을 한 것에 대한 대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변협은 두 차례 “신청을 자진 철회하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권 전 대법관은 이에 답하지 않았다. 이에 지난달 28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권 전 대법관의 변호사 등록 여부를 외부기관인 등록심사위원회로 회부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검찰이 진행하고 있는 대장동 사건 수사를 두고 정치적 공방이 심하다.  “사업 시행 절차에 불공정 행위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녹취 등 여러 증거가 확보되는 것 같다. 철저히 규명돼야 하고, 그래야만 이 사회를 지탱하는 법치의 근간이 바로 설 수 있다. 국민이 수긍하는 정도까지 수사가 분명히 이뤄져야 한다.”    ━  정치의 사법화 vs 사법의 정치화    헌법재판소에서는 골프 접대 의혹을 받는 이영진 헌법재판관이 계속 재판에 참여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도 진행 중이다.  “헌법재판관은 헌법상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으면 직을 물러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법적인 문제를 떠나 법률가적 양심을 가지고 스스로 처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론 나올 때까지 재판 회피라도 해야 헌재라는 기관에 누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정치적 사건이 검찰과 법원, 헌법재판소에 몰려오면서 사법의 정치화가 문제 되고 있다.  “정치인들 스스로 말하듯이 정치 영역에서 발생하는 일은 정치권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권에서의 리더십이 실종돼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럴수록 사법부는 더욱 중립과 독립을 유지하면서 법치의 기본 골격을 다져야 한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을 위한 법률 지원을 시작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활동이 겹치지 않나.  “세월호 참사 사건 때도 그랬고, 대한변협은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했을 때마다 직접 참여했다. 이번에도 특별위원회에 진상규명, 피해자지원, 제도보완 등 3개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국가 배상을 위한 국가 소송 같은 걸 소속 변호사가 진행하면 유족 대신 변협에서 그 선임비를 지원한다. 재난의 정치적 도구화를 반대하고, 실효성 있는 법률지원을 할 것이다. 민변의 도움을 받는 분들도 우리 위원회에 연락하시면 민변과 대한변협 복수 지원을 받으실 수 있다.” 이종협 대한변호사협회장과 하창우 10·29 이태원 참사 대책특별위원장, 홍지백 생명존중재난안전특위 위원장을 비롯한 특위 위원들이 지난달 28일 오후 용산구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대책특별위원회 출범식 및 기자회견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  재난의 정치적 도구화에 반대     최근 희생자 명단을 유족들 동의 없이 공개한 사례가 있었는데.  “법률지원단에서 위법 여부를 검토 중이다. 개인정보 및 프라이버시권 침해 소지가 크다. 철저히 유족 입장에서 공개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법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심사가 진행 중이다.   “생명권, 재산권과 같은 국민의 권익 보호가 정지되는 게 문제다. 지금의 형사사법 체계는 서구에서조차도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다듬어진 것인데 하루아침에 작전하듯이 바꿔버렸다. 오랜 기간 전문적으로 축적된 수사역량을 갖춘 검찰의 수사권을 갑자기 제한시키면 다른 대안이 있나. 이전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조치 역시 시행 이후에 많은 문제점을 노출됐는데, 검수완박법은 시스템적으로 허점이 더 많다. 경찰 내 법률가적 소양을 갖춘 전문 인력이 충분한지, 수사지연과 범죄의 사장으로 선량한 국민의 권익이 침해당하는 사태는 어떻게 대처할 건지 먼저 판단해야 한다.”    ◇이종엽=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28회(사법연수원 18기)에 합격해 1992~95년 검사 생활을 거쳐 변호사로 개업했다. 인천지방변호사회장을 지냈다. 지난해 2월 51대 대한변호사협회장에 당선돼 내년 2월 임기를 마친다.     문병주 논설위원

    2022.12.09 00:31

  • [문병주의 직격인터뷰] "이태원 참사 명단 공개, 철저하게 유가족 입장에서”

     ━  '트라우마 전문가' 오강섭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문병주 논설위원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희생자 유족과 부상자, 현장을 목격한 사람, 그리고 사고 현장에서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뛰어다녔던 이들 모두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왜 하필 거기에 갔나”라는 식의 말과 글 대신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를 사회가 공유하게 됐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정신적 고통의 파장이 크다. 또한 사회적 트라우마에 관심을 갖고 꾸준한 해결책을 찾는 계기가 됐다.   지난 17일에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ㆍ부상자를 위한 진료연계센터가 문을 열었다.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참여하고 있다. 그가 이사장은 맡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참사 발생 다음 날 참사 현장 영상 유포와 혐오 발언을 하지 말아 달라는 성명을 신속히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22일 강북삼성병원에서 오 교수를 만났다. 이날 참사 유가족들은 처음으로 공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책임 있는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오 교수는 “집회, 추모시설 마련 등 모든 활동은 철저하게 유가족들 입장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물론 모든 국민이 책임을 나눠서 공감력을 발휘해야 사회적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태원의 비극에서 우리 사회는 무엇을 성찰해야 할까. 오강섭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모두가 아픔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  「 최선의 치유법은 국민의 공감, "아직 살 만한 곳" 함께 나눠야 누구나 희생자 될 수 있어… '내 일 아니다'는 생각에 2차 가해   영상·뉴스만으로도 트라우마 겪어, 사회적 불안감 확산 막아야   유족·부상자들의 소통공간 필요… 국가트라우마센터 정비해야 」     ━  SNS의 무분별한 보도 자제해야    유가족들이 처음으로 참사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희생자를 모욕하는 게시글을 온라인에 올린 이들이 재판에 넘겨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번 참사가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인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2차 가해는 누구나 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걸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행위다. ‘왜 내가 낸 세금 희생자들이나 유족들에게 써야 하냐’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교통신호를 지키며 차를 몰거나 보행을 하던 사람이 사고를 당했는데, 왜 그 길을 가다 사고 났느냐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태원 그 길에 있던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기본이 돼야 한다.”  최근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한 논란이 컸고, 아직도 그 명단은 희생자 유족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삭제되고 있다.    “희생당한 사람들은 내 이름을 어떻게 공개하라 하지 말라 얘기할 수가 없다. 그런데 유가족들은 입장 표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가족이 이렇게 안타깝게 죽었는데 애도하기 위해서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할 수 있다. 한데 제3자가 판단하는 건 유가족들을 위해서도, 희생자들을 위해서도 맞지 않는 일이다. 일단 명단을 공개해 놓고 삭제를 원하면 연락하라는 건 이해가 안 되는 행위다.”  명단을 공개한 곳도 언론을 자칭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언론을 향해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해 달라고 요청했다. ‘취재보도 과정에서 피해자 명예와 사생활 등 개인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 관계들과의 미팅에서도 이런 의견을 전달했더니 개인 언론을 자칭하는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제하기 힘들다고 하더라. 사회적 공감대 확산을 통해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지속적인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  “유가족 얘기 들어주는 게 핵심”    추모 공간을 계속 유지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유가족들이나 관련인들은 ‘이 세상이 정말 위험하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멀쩡한 애가 놀러 갔다가 집에 안 들어왔으니까 굉장히 사회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갖게 된다. 그분들한테 아직 사회가 안전하진 않더라도 살만한 곳이라는 위안을 줘야 한다. 추모 공간 역시 그런 의미에서 소통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그 공간을 통해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공식적으로 토로할 수 있다. 정치적 논리를 떠나 유가족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주말마다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트라우마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집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집회에서 사건 당시의 사진들을 노출하는 식의 일은 없어야 한다. 자꾸 아픔을 되새기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부상자나 유가족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일이다. 집회 역시 그 사람들이 얘기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다.”  이번 참사의 경우 현장에 없었던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 불안감이 크다.    “현장에 없었는데 뉴스나 SNS를 통해 참사 관련 소식과 영상을 접해서 느끼는 충격이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고 볼 순 없다. 개인이 느끼는 충격의 차이는 개인마다 다르다. 참혹한 장면을 계속 바라보면 분명히 뇌의 공포 중추를 자극한다. 이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진행될 수 있다.”    ━  오랜 시간 후에도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여부는 어느 시점에 판단할 수 있나.    “대개 1∼3개월 이내에 증상이 생기지만 한참 뒤에 생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 전까지는 경황이 없어 자기를 돌보지 못하다 한참 뒤에 고통이 오는 경우가 있다. 깜짝깜짝 놀란다거나 안 좋은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현상, 불면증과 악몽 증상이 대표적인데 우울해지거나 화를 잘 내게 되기도 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참사 발생 하루도 지나지 않아 영상유포 혐오 발언을 하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어떻게 가능했나.  “세월호 참사 이후에 학회 안에 재난정신건강위원회(위원장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들었다. 참사 이튿날 아침 급하게 연락이 와 성명서를 작성하자고 했다.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도 심리방역지침을 냈었다. 전염병의 창궐도 재난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격리 상황이 발생하고 급속하게 퍼지니 많이 두려워했다.”  사회적 재난에 따른 트라우마에 대처하기 위한 국가적 장치는 어떻게 돼 있나.  “보건복지부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중심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립정신건강센터 안에 국가적으로 트라우마를 다룰 국가트라우마센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각 지역의 담당 사무를 보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는데 상담 등 실무를 맡고 있다. 저 역시 거기에서 활동한 바 있는데, 재난이 발생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이 많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사회적 지원, 그리고 신체적ㆍ정신적 부분을 포괄하는 의료적 지원이 모두 필요한데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현장 정리를 하고 있다. 뉴스1    ━  사회·의료적 재난지원 시스템 빈약     인력 충원만 하면 되나. 구조적인 문제점은 없나.  “국가트라마센터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재난이 자주 생긴다. 코로나19 역시 사회적 재난으로 봐야 한다. 그로 인한 트라우마도 있는데, 마치 이태원 참사처럼 큰 이슈가 생길 때만 트라우마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재난이 생길 때마다 이를 담당하기 위한 하부 센터가 만들어진다. 이제는 재난 지역에 한시적 센터를 만들기보다 정부가 단일적 센터를 구성해 이태원 참사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신체적인 의료 출동팀이 먼저 일단 출동을 하고, 이후 정신과 의사와 사회복지사 등이 참여하는 심리지원팀이 출동해서 조치해 주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역 보건소 차원에서 감당할 수 있는 없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  법률적으로 필요한 보완책은.  “외국의 경우 사법입원이라는 게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심해질 경우 법원에서 입원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인데 현재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대신 권역별 정신응급의료센터를 잘 운영하면 되는데 현재 두 개밖에 없다. 확충 작업을 진행 중인데 잘 안 되고 있다. 일차적으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의료센터를 연결해주는 방식이 확장돼야 한다.”     ━  본인 자신의 노력만으론 한계    희생자 유족이나 부상자를 위해 주변에서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픔에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 공감도 3가지 단계가 있는데 우선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저 사람이 슬프겠다고 하는 생각이다. 같이 슬퍼해 주는 감정적인 공감이 2단계다. 마지막으로 공감적 배려가 필요하다. 각자의 행위나 물질적인 지원이다. 슬퍼하는 친구에게 밥을 산다거나 힘든 사람의 집 청소를 해주는 것도 좋다. 세월호 참사 때도 이런 식을 많이 사람들이 공감하며 아픔을 나눴다. 추모장소의 자원봉사 역시 좋은 공감의 표현이다. 사고는 발생했지만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 줘야 한다. 최선의 치유법이다.”   부상자들이나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권유하고 싶은 트라우마 극복 방법은.  “본인 스스로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정도가 한정돼 있다. 그렇다고 억지로 검사받으라고도 할 수도 없다. 국가트라우마센터 통합심리지원단에 연락해서 자신의 상태에 대해 상담받을 것을 권유 드린다. 어떤 치료가 필요한가 의논해보고 국가의 지원을 받아 치료받으시길 바란다.” 문병주 논설위원

    2022.11.25 00:40

  • [김현예의 직격인터뷰] “이런 일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생각부터 바꿔야”

     ━  이태원 참사 본 일본 안전 전문가 가와구치 교수의 일침   김현예 도쿄 특파원 검은색 테이프로 바닥에 그려진 1㎡의 공간. 그 앞에 선 교수가 말을 토해낸다. “어른 어깨 넓이가 50㎝ 된다고 보고요, 가슴팍 두께가 보통 20㎝라고 가정을 해도, 이 공간에 16명이 서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지난 8일 일본 오사카(大阪) 다카쓰키(高槻)시 간사이(関西)대학에서 가와구치 도시히로(川口寿裕·56) 교수를 만났다.   그는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곤 실험실 바닥에 테이프로 1㎡ 표시를 해뒀다고 했다.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서 군집안전(群集安全) 연구를 해왔던 것인데,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희생돼 연구자로서 뼈아프다”고 했다. 그는 156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 사고의 원인을 “준비 부족”이라고 잘라말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국은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라고도 했다.     ■  「 정치 문제 아닌 준비 부족과 시스템 만들기의 문제 일본은 아카시시 불꽃놀이 사건 계기 군중밀집 사고 연구 경찰, DJ처럼 인파 통솔…경찰 홈피엔 ‘혼잡경비안내서’ 게재 젊은이들 다수 희생…군중사고의 무서움 잊지 말아야 」    밀집 상황이 이뤄지면 얼마만큼의 하중이 인체에 전달되는지를 실제로 실험하는 장치 앞에서 지난 8일 가와구치 교수가 이태원 사고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그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군중 밀집 사고 전문가다. 지난 2001년 일본 아카시(明石)시 불꽃놀이 사건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당시 35살로, 물리학을 전공하던 그에게 원인 규명을 위해 경찰에서 과학적으로 분석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양자 연구를 하던 그는 아카시시 사고를 계기로 연구분야를 바꿨다. 일본은 유아가 대부분인 사망자 11명을 포함해 25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아카시시 사건 조사를 토대로 법을 개정, 혼잡 경비 제도를 갖췄다.   왜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고 보나. “준비 부족이다. 초(超) 밀집상태를 만들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시민으로부터 위험 신고가 접수됐지만 바로 출동하지 않았던 것은 경찰의 판단 미스다. 하지만 경찰이 신고를 받고 그 장소에 갔다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에는 의문이 있다.”   왜 그런가. “경찰이 당시 이태원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미 밀집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갔더라도 인파 분산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기에 전혀 효과가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한국에서는 누구의 책임인가를 놓고 정치 논쟁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주최자가 없더라도 일본이었다면 자치단체와 경찰에 책임을 물었을 것이다. 이번 같은 경우면 서울시, 그리고 지역 경찰이 될 거다. 사전에 준비했어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이 있다고 본다. 문화가 달라서겠지만 (책임자가) 윤석열 대통령이라든가, 장관이란 이야기가 한국에서는 들리는데, 일본이었다면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용산경찰서에서 핼러윈 축제의 위험성을 알고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사고를 몇번이고 되짚어봤지만 사전 준비 문제라고 본다. 미리 계획을 세우고, 당일 경비를 제대로 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정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 만들기의 문제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아카시시 불꽃놀이 사고와 비교하기도 하는데.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밀폐된 공간이다. 이태원도 양측에 건물이 늘어서 있어 좌우로 피할 공간이 전혀 없었다. 두 번째는 일방통행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고 상황을 외부에선 판단하기 어려웠다는 거다. 아카시시 사고 때는 현장에 경비인력이 있었지만, 안쪽이 밀집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해 사람들을 통과시켰다. 이번 이태원에선 경비인력이 보이질 않았던 데다, 사람들이 각자 상황을 판단해 안쪽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전형적인 사고 형태와 닮았다. 그렇기에 경비인력을 사전에 세우고 상황을 판단해 보행자를 통솔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경찰이 몇 명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이야긴가. “몇 명이 있든지 그런 시스템이 없다면 전혀 소용이 없다. 다만, 사고가 일어난 길은 직선 형태로 폭이 3.2m에 길이 40m 정도 되는 곳이다. 사전에 주위를 20m 간격으로 인력을 1명씩 배치하고, 혼잡 상황을 체크해 양측 길 입구에 있는 인력에 연락해 일시적으로라도 보행자를 들이지 않도록 컨트롤하는 형태였다면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다고 본다.”   이번 핼러윈 때 인파가 몰린 시부야에서는 DJ경찰도 나와서 통제를 했는데 일본은 통상 이렇게 하나. “시부야의 핼러윈은 주최자가 없다. 자치단체와 상인이 경찰과 상의해 계획을 세웠다고 알고 있다. DJ경찰은 아카시시 사고 이후 생겨난 것으로 차량 위에서 경찰이 유도를 하는 건데, 사람들이 몰리는 행사에 반드시 나온다. 높은 위치에서 인파 흐름을 보면서 유도하고, 경찰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마이크로 지시를 하는 것이 군중에게 효과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 최근 배우 기무라 타쿠야(木村拓哉)가 참석한 기후(岐阜)시 축제에 46만 명이 몰렸는데, 여기에도 DJ경찰이 나왔다. 일본은 인파가 몰릴 때 항상 기본이 일방통행이다.”   일방통행이 중요하다는 이야긴가. “아카시시 사고 당시 일방통행이 아니었던 것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힌 바 있다. 사고가 난 이태원의 골목은 3.2m 폭인데, 어른 어깨가 약 50㎝라고 한다면, 6명 정도만 지날 수 있는 셈이다. 일방통행이 아니었으니 한쪽으로 3명 정도만 지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이 길을 일방통행으로 해야 했다고 본다.”   요즘 같이 기술이 발전한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는데. “일본의 경우에도 1950년대부터 군중밀집으로 인한 사고는 빈번했다. 1956년 니가타(新潟)현에서 12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러면서 사전에 계획을 세우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하지만 2001년 아카시시에서 큰 사고가 일어나면서 지금까지 일본의 사고 대비는 불충분했다는 뼈저린 반성이 있었고, 철저히 재정비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카시시가 속한 효고(兵庫)현 경찰은 사고 이듬해 ‘혼잡경비 안내서’를 만들어 지금도 누구든 볼 수 있게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안내서는 밀집 사고를 겪은 사람들의 증언으로 시작한다. 효고현 경찰은 각 대학과의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총 120쪽짜리 지침을 만들었다. 군중 유도 시 ‘쉬운 말로, 문장은 짧게, 결론을 앞에 두라’ 같은 내용부터 마이크 사용, 돌발상황 때 어조까지 세세히 기록돼 있다) 이런 영향으로 행사 몇달 전부터 인파의 방향, 규모, 시간대 등을 철저하게 분석한다. 예컨대 길과 길이 합류하는 곳은 위험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진입 금지를 할 것인지, 아니면 한쪽으로만 통행하게 할 것인지 포인트별로 철저하게 분석해 대책을 세우는 형태로 하고 있다.”   다른 이야긴데, 밀집 상황이 됐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인파가 몰릴 때는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쓰러질 수 있는데 이때가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떨어뜨린 물건을 주우려고 구부리거나 해선 안 된다. 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명이라도 넘어지면 연쇄적으로 옆 사람이 잇따라 넘어지는 형태가 될 수 있다.”   이태원 참사로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같이 쓰러지면서 압사하는 경우가 많다. 체중의 2배에 달하는 힘을 가하면 1시간을 넘어도 버틸 수 있지만, 3배 힘을 가한 경우 1시간 정도, 5배의 힘이 더해진 경우에는 10분 정도에 질식사한다는 동물 실험 연구가 있다. 실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65㎏의 사람에게 5배 정도인 300㎏의 힘이 가해지는 경우 10분 정도에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 이태원의 경우 1㎡에 16명 정도, 한명 당 300㎏ 가까운 힘이 더해졌는데, 이 상태로 10~20분 이어지면 질식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사고 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좌우로 이리저리 밀리는데 순간적으로 더 큰 압력이 가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초밀집 상태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스스로 탈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본도 아카시시 사고를 계기로 경비체계에 대한 인식이 극적으로 높아졌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지만 이번 사고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혼잡경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군중 사고의 무서움을 잊지 않아야 한다. 생각부터, 의식부터 철저히 바꿔야 한다. 10대, 20대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들이 희생되지 않았나. 20대 자녀를 둔 아버지 입장으로서도 이번 사고는 정말 가슴 아프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2022.11.11 00:42

  • "못믿을 여론조사, 차라리 발표 금지를" 꼭 따져봐야할 이 숫자 [고정애의 직격인터뷰]

    고정애 논설위원 한국 정치에서 여론조사의 위상은 묘하다. 소수점 아래의 변화도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여론조사를 누가 믿느냐”란 불신도 강하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논란이 되곤 한다.    선거 없는 해를 향해 가는, 일종의 소강기인 최근 다시 여론조사가 주목은 받은 건 두 가지 사안이 겹치면서다. 진보 편향의 김어준씨가 세운 여론조사 회사(여론조사꽃)가 중앙선관위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이하 여심위)에 등록된 게 하나라면,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주장이 과반이란 조사 결과를 발표한 신생 업체의 대표가 ‘노무현 청와대 출신’이며 여심위에 등록된 또 다른 여론조사 업체의 대표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게 또 하나다. 불신을 더 키운 셈이 됐다.    ━  6년 8개월 동안 여심위원장 지내    한국통계학회장을 지낸 김영원 숙명여대 교수를 25일 만난 배경이다. 그는 2020년 11월까지 6년 8개월여 여심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먼저 지지율을 소수점 아래까지 보도하는 관행을 지적했다. “일반 독자에게 정확해 보이도록 왜곡시킬 수 있다. 소수점 아래를 논할 정도로 우리나라 여론조사가 정확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나 일본·영국 등 소수점 아래까지 쓰는 나라는 아무 데도 없다”고 했다. 먼저 최근 논란부터 물었다.   김영원 숙명여대 통계학과 교수가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연구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특정 정파에 속한 이들이 여론조사 업계에 발을 들여놓고, 일부라곤 하나 여론조사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정치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람이나 기관이 일반 유권자들에게 공표되는 여론조사를 직접 수행하거나 간여하는 경우 공정성이나 중립성을 해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객관적인 데이터 없이 편향성 여부를 사전에 예단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재 여심위 규정으로는 일정 조건을 만족하는 조사회사의 등록을 막을 순 없다.”    -여심위에 등록된 업체라고 하면 일종의 ‘인증’을 받은 것처럼 여겨진다.  “선거여론조사 기준을 위반하는 조사가 있다면 이는 여론조사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기준도 충족 못 하는, 여론조사로 볼 수 없는 수준의 엉터리 조사라는 것이다. 여심위에 등록돼 있다는 것이 해당 여론조사를 신뢰해도 좋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등록업체만 92개다. 여론조사가 말 그대로 쏟아지는 지경이다.  “사실 2016년 총선에 비해 2020년 총선의 경우 전화 여론조사의 정확성은 높아졌다. 휴대폰 가상번호 제도의 도입이 큰 역할을 했다. 방송 3사의 대선 출구 조사에서 사전투표자에 대한 전화 조사 예측도 매우 정확했다. 현재 수행되는 여론조사 중 제대로 예산을 투입하고 전문성이 있는 조사회사에서 수행한 휴대폰 가상번호를 토대로 한 전화면접 조사는 상당히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심위에 등록된 여론조사라 하더라도 수준 차이가 매우 크다.”    ━  면접조사 방식이 더 믿을 만해    -어느 정도 믿을 만한가.  “몇 개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면접조사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수행하는 기관은 대체로 신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인도 수준 차이를 알아볼 기준이 있다면.  “접촉률과 응답률을 보면 된다. 여론조사에서 대표성이 확보되기 위해선 최종 응답자가 랜덤(random·무작위)하게 선택되는 것이 핵심이다. 접촉률과 응답률이 다른 조사에 비해 떨어진다면 랜덤성이 확보되지 못하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접촉률은 투입된 전화번호 중 전화를 받은 유권자의 비율이고, 응답률은 전화를 받은 사람 중 응답을 마친 비율을 말한다. 이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선례가 있다. 김 교수가 주도한 2017년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전화 조사로, 조사대상자에게 응답을 받을 때까지 13일간 20번까지도 접촉했다. 그 결과 응답률이 50%였다. 김 교수 스스로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전화 여론조사였다”고 평가했다. 당시 정당지지도도 물었는데 그 무렵 여느 조사와는 완연히 달랐다. 일반 전화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도는 50%대였다. 공론조사에선 39.6%였고 ‘지지 정당 없음’도 못지않은 37.2%였다(일반 조사에선 20% 안팎). 지금까지의 정치적 전개를 보면, 어느 쪽이 정확한지 분명하다.    -사실 우리가 응답률이라지만 국제 기준(AAPOR)과는 다르다.  “접촉률 곱하기 응답률 한 게 AAPOR의 응답률이긴 하다. 2014년 여심위원장에 부임해서 보니 공직선거법에 응답률을 밝혀야 한다고만 돼 있고 정의가 없었다. 당시엔 많은 여론조사기관이 AAPOR가 얘기하는 응답률을 제대로 계산할 수준이 안됐다. 그래서 지금의 응답률(AAPOR 기준으론 협조율)부터 쓸 수밖에 없었다. 여심위원장을 6년 넘게 하며 접촉률까지 해놓고 나오는 게 목표였고 거기까지 했다.”   2017년 7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1차 회의에서 김지형 위원장(전 대법관,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당시 공론조사는 응답률이 50%에 달할 정도로 대단히 공들인 조사를 했다. [중앙포토]  ━  국제 기준에 못 미치는 관행     -응답률이 5, 6%라고 해도 국제 기준으로 환산하면 한참 낮은 데.  “AAPOR 기준으로 1%가 안 되는 것도 많다. 사실 미국도 응답률이 상당히 내려와서 6~8%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상번호로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제대로 하는 회사들은 그 수준이 된다. 문제는 ARS(자동응답) 등이 훨씬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그렇다. 김어준씨의 여론조사 회사인 ‘여론조사꽃’이 26일 여심위에 등록한 ARS 조사는 25만 명에 전화를 걸어 1000명이 답한 것이다. 응답률을 3.4%로 적었지만, 국제 기준으론 0.58%에 그친다. 이에 비해 휴대전화 가상번호 면접조사를 하는 전국지표조사(NBS)의 최근 조사는 국제 기준으로도 5.9%였다. 유·무선 전화에 임의 걸기(RDD) 방식으로 조사하는 한국갤럽의 최근 조사도 3.4%였다.    -그래서 전화면접조사와 ARS 조사 신뢰도를 두고 논란이다.  “ARS는 랜덤성을 확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응답률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10만 개를 투입했는데 그중 2만 명이 전화를 받았고(접촉률 20%), 이들 중 1000명만 응답을 했다면(응답률 5%), 결국 투입된 전화번호 개수를 기준으로 보면 100명 중 1명(1%)이 응답을 한 것이다. 결국 이런 방식은 가장 비과학적인 자료 수집 방법에 해당하는, 조사에 참여하길 원하는 사람만 조사에 참여하는 자발적 선택(self-selection)에 의한 조사방식에 가깝다. 여론조사 전화를 기다린 사람만 주로 응답한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 있어서 표본추출 오차보다 편향이 훨씬 더 치명적일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  휴대전화 가상번호 방식 늘려야    그는 “결국 돈과 사람의 문제다. 조사 방법에 따라 신뢰성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며 “일반 유권자가 가장 간단하게 신뢰성을 평가하는 방법은 해당 조사가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간 조사인지 보면 된다”고 했다. 포도주를 잘 모를 때 가격을 보고 좋은 포도주를 고르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곤 “휴대폰 가상번호를 사용한 전화면접 방식이 현재로는 최상의 조사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가상번호를 이용한 전화면접 방식은 1000만원 이상 드는 데 비해 ARS는 300만~4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지금 분위기는 어쩌면 정확한 결과를 얻는 것보단,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더 관심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  “내가 아는 한 조사회사에서 장난치고 그럴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요즘 워낙 조그만 회사들이 많이 생겨서, 거기까진 잘 모르겠다. 다만 여심위의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특정 정파에 유리하게 설문지를 작성하는 경우는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여론조사 담당자가 정치권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거나 편향된 정치 성향을 가지면 의도적으로 편향된 설문지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조사를 직접 주관하거나 담당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  여론조사 통한 공천은 비과학적    -이런데도 여론조사가 정치에 영향을 주고, 심지어 공직 후보를 선출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통계학 전공자로서 여론조사를 토대로 한 공천제도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A, B 후보자의 여론조사 지지율 차이가 작은 경우, 지지율에서 두 후보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통계학적 해석이 허용되어야 하는데 정치권에서는 이런 해석이 통하지 않는다. 각 정당은 다른 마땅한 방안이 없어서 당내 구성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일종의 ‘게임의 룰’로 여론조사를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공천 여론조사의 경우 과학적인 조사 방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제도적으로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  “조사회사의 전문성을 무시하거나 새로운 기법의 도입에 장애가 될 수 있는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이 아니다. 시장에서 평가해 옥석을 가려야 한다. 그러려면 기자들이 해줘야 한다. 조사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완전히 무시해야 한다. 여심위 미등록 조사는 보도하지 말고, 전문지식 없이 응답할 수 없는 주제에 대한 조사 보도도 자제해야 한다. 굳이 기준을 강화한다면 내 생각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접촉률과 응답률을 만족하지 못하는 여론조사는 공표를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들어가면 허술한 조사가 많이 잘려나갈 거다. ”    -일정 수준이라면 어느 정도여야 한다고 보나.   “그건 여심위가 판단할 문제이다.”  학계에선 국제 기준으로 2~3% 선은 돼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 김 교수의 여론조사 제도 개선 제안 「 ①공표 금지 기간(선거 전 6일) 폐지 ·금지하는 건 현역 의원에게 유리 ·‘깜깜이’ 선거(유권자 최종 판단 시점에 정보 차단)   ②접촉률과 응답률에 따른 허용기준 강화와 함께 응답자 인센티브 제공 허용 및 확대   ③휴대전화 가상번호 신청-제공 기간(현재 10일) 단축   ④선거여론조사 이외 주요 정책조사나 공론조사에도 휴대전화 가상번호 사용 허용 ·정당은 언제나 사용 가능. 반면에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 수립 목적의 조사에선 사용 불가 ·어떤 조사까지 가상번호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 시급함     」 고정애 논설위원

    2022.10.28 00:36

  • 이상민 "짬뽕이냐 자장면이냐만 고르는 선거…이러니 투표하겠나" [임종주의 직격인터뷰]

    임종주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 첫 국정감사가 종반을 향해 간다. 경제·안보 복합 위기가 몰아친 올해만큼은 서민의 삶을 먼저 돌봐 달라는 소박한 기대는 여야 대치로 시작부터 뒷전으로 밀렸다. 한국 정치의 분열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해마다 정쟁화하는 국감은 그 한 사례일 뿐이다. 타협과 절충을 통한 합의 도출이라는 민주적 절차는 위태로운 지경이다. 거대 양당 독과점 체제의 산물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양당 기득권 구조를 해체해 정치에도 경쟁의 원리를 도입하자는 의미 있는 시도가 첫발을 뗐다. 국감 첫날 잇단 파행 속에 정치개혁 4개 법안(공직선거법·정당법·국회법·정치자금법개정안)이 여야 의원 20명의 이름으로 발의됐다. 중대선거구제와 다당제 도입, 비례대표 확대가 핵심이다. 법안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중진 이상민 의원(5선,대전 유성을)을 발의 사흘 만에 만났다.  4개의 정치개혁 법안 발의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초선 때만 해도 상대 당 의원과 싸워도 밥 먹고 소주도 한잔했는데 지금은 단절돼 있다"며 "유능한 정치 신인들이 꿈을 펼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록 기자  ━  "두 당 없어졌으면…염증 느끼는 사람 많아"    -선거제 바꾸자는 법안이 처음은 아니지만, 패키지 발의는 이례적이다. “법안 4개를 함께 발의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정치 개혁은 선거구제 하나 바꾼다고 되지 않는다. 양대 정당이 그동안 기득권 내려놓을 의지는 없이 선거에만 써먹으려 한 거다."  -20명이 공동 발의했는데 여야 5당 소속 의원들이 빠짐없이 참여했다. “모든 정파가 다 참여하도록 했다. 넓게, 치우치지 않으려 했고 색깔이나 성향이 있는 분은 오히려 배제했다. 국민의힘에서 이명수·이용호 의원이 선뜻 참여했고, 더불어민주당도 10명 조금 넘게 서명했다. 처음엔 10명도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20명이 됐다. 국민의힘이 좀 더 함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당초 목표는 넘겼다.”  -정치 개혁은 당위론이 크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 반응은 어떤가. “저부터도 과연 실현될까?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해왔다. ‘역사의 진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무수한 시도 끝에 짜인 결과’라는 말을 저는 믿는다. 작은 눈덩이도 굴리고 굴리면 멋진 눈사람이 된다. 양당 가지고는 안 되겠다. 심지어 두 당은 진짜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염증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거대 양당이 민심과는 완전히 거꾸로 가는 행태를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의원은 "거대 양당 체제의 독과점 기득권 구조 고착화로 패거리 정치가 만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경록 기자  ━  강성 팬덤만 있으면 대표도,대선 후보도 돼   -양당 독과점 구조의 문제를 지적했는데, 지금 실상은 어떻다고 보나.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영상에 (비속어) 나오고 하는 데도 아니라고 딱 잡아떼고 (대통령실이) 처음에는 '그게 미국 국회의원이 아니라 한국 야당을 지칭한 것이다'라고 했다가 또 몇 시간 있다가 또 바꾸고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나. 우리 당도 이재명 대표 아닌 다른 사람 같으면 사법 리스크 때문에 (국회의원 선거) 공천도 못 받았을 것이다. 무죄 추정 원칙이 있지만, 논란만으로도 배제되는 상황인데 그냥 되는 거다. 팬덤, 강성 지지층만 있으면 대표가 되고 대선 후보가 된다. 상대는 필요 없다. 패거리 정치 행태 고착화하고 있고 정치인은 이에 편승하고 기생한다." -리더십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는 뜻인가. “지도자가 바뀐다고 해도 현 양당 구조에서는 계속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것이 너무 꿀물 같거든. 지지층 감성만 불러일으키면 대선 후보도 되고 당 대표도 된다. 지금 한국 정치 문화에서 상대를 보고 정치한다는 건 엄청난 용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정감사 때마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도 양당 체제 탓인가. “아무리 좋은 대안을 내놔도 언론이 주목 안 하고 당에서도 주목 안 한다. 당원들이 보내오는 문자는 전부 ‘말로만 정부 비판하지 말고 탄핵해라, 해임 건의해라’ 이런 내용이다.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도 안 될 줄 알면서 한 거다. 그건 뭐냐, 당원들 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해임 건의 받아들이겠나. ‘안 받으면 그만이고’ 그런 식으로 서로 소모품화 시키는 거다.”  -양당 구조의 기반이 된 소선구제는 용도 폐기해야 한다는 결론인가. “소선거구제는 민심을 반영하지도 않고 겨우 몇 퍼센트 앞선 1등이 독식해버리지 않나.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한 표만 많으면 다 가져가고 그런다. 유연하게 하려면 여러 명을 뽑는 다수대표제를 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7일 인터뷰에서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를 위해 고품질 정치 서비스 경쟁을 촉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  짬뽕이냐 자장면이냐만 선택하는 선거   -4개 법안의 핵심 지향점은 뭔가. “정치도 경쟁의 원리가 작동돼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를 위해 고품질 정치 서비스 경쟁을 촉발해 서비스가 좋은 정치 세력이나 정치인은 선택하고, 그렇지 않으면 퇴출해야 한다. 주권자로서 유권자의 권리 행사가 상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선거 때만 유권자가 작동되는데 그것도 강제적 선택이다. 독과점 양자택일 중 짬뽕이냐 자장면이냐 선택하라는 거다. 맛도 없는데도 억지로 꾹꾹 찍어야 하고 그러니까 투표도 안 하고 그러는 거다."  -중대선거구제는 군소정당 난립 등 여러 한계를 갖고 있지 않나. 그래도 중대선거구제로 가야 하는 이유는. “다양한 정치 세력을 등장하게 하려면 비례대표를 확대하거나 중대선거구를 해야 한다. 중대선거구제를 앞세운 것은 국민의힘 쪽에서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타협을 끌어내려고 그런 것이다. 협상하다 보면 얘기가 진전될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는 군소정당 난립할 수 있는데, 다양한 정치 세력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소수의 목소리라도 정치권에 표출돼 타협하고 연합을 끌어내는 발판이 될 수 있어서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운영의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당연히 옳은 말인데 제도의 폐해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그 결함부터 빨리 고치면 운영 수준도 거기에 맞춰 높아질 것이다. 여러 제도가 개선됨으로써 사람들의 의식, 문화 수준도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  의회 구조부터 먼저 바꿔 나가야   -다당제가 대통령 중심제와는 함께 작동하기 어렵다. 선거제 개편은 권력구조 개편과 같이 논의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연히 그렇다. 그러면 좋은데 그럼 또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는 논의로 계속 쳇바퀴 돌게 된다. 권력 구조를 바꾸려면 집권 세력이 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 때도 그랬고 정권을 잡으면 바꾸려고 안 한다. 너무나 힘든 작업이다. 그래서 의회 구조부터 바꿔 나가자는 것이다. 종국적으로는 분권형이 될 것이다. 의회 내에서 분권이 되고 다원화되고 연합 정치가 가능하게 되면 정부도 분권을 안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권력 구조 거버넌스도 그렇게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식 내각제를 지지한다는 뜻인가. "우리에게 가장 맞는 모델은 독일형이다. 연방 대통령이 국가원수가 되고, 대부분 국정은 의회가 맡는다. 의회 권한이 높아지는 데 반감을 갖는 분들이 있는데 오히려 의회 구성이 분권화하면 상당 부분 (우려가) 해소되고 정치 세력들이 타협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우리는 ‘올 오어 낫싱(전부 아니면 전무)’이다. 찬성과 반대만이 능사가 아니라, 협상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게 민주정치 타결의 요체인데 우리는 익숙지가 않다. 100개 중에 하나만 반대해도 100개가 다 안 되는 거다. 100개 중의 하나가 안 되면 90개는 타협해서 되도록 해야지."  -유권자의 지지도 매우 중요하다. 정치인들이 특권을 내려놓는 등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100% 맞는 말이다. 저는 국민이 바란다면 무보수도 괜찮다고 본다. 그러나 양론이 있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뒤죽박죽된다. 논의만 하다가 말 거다. 특권 내려놓는다면서 전용 엘리베이터 없애는 걸 굉장한 일 인양 내세우는 것처럼 전시행정 식이 난무할 것이다. 본질은 사라지고 시간만 허비할 수 있다. 실타래를 끊어야 하는데 어디부터 우선 끊을지 전략적 차원에서 봐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7일 오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지금은 의회구조를 바꾸기 위해 결단할 때"라고 촉구했다. 김경록 기자  ━  지금은 논의할 때가 아니라 결단할 때   -정치개혁을 당사자인 정치권에만 맡기는 게 맞느냐는 의견도 있다. “선거제 개편은 시민단체, 전문가, 학계가 100인 100색이다. 논의만 무성하다. 지금은 결단할 때다.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173명으로 대폭 늘리고 지역구는 중대선거구제로 소수파가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라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혁명적이다. 의정활동 하면서 기득권층의 엄청난 반발을 뚫고 세무사법 개정안(변호사에 세무사 자격 자동 부여 폐지)을 14년 만에 통과되게 한 적도 있다. 무수한 시도가 쌓이면 언젠가 덜컥 이루어질 거라고 본다."  -국회 내 정치개혁특위라는 기구도 있는데, 법안 발의에 직접 나선 계기는. “5선 의원으로서의 책무감과 중압감 때문이다. 당내 쓴소리도 하고 상대 당 비판도 하지만 그저 메아리 없는 외침이다.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라. 오랜 숙고의 결과물이 이번 법안이다. 초선 때만 해도 상대 당 의원과 싸워도 밥 먹고 소주도 한잔하고 그랬다. 지금은 단절돼 있다. 강성 지지자 상대로 패거리 정치만 하는 거다. 제도 개혁 말고 다른 해결 방법은 없다. 유능한 정치 신인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줘야 한다. 국감 직후 전문가 의견 듣고 목소리도 내려고 한다."   ☞중대선거구제  한 선거구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와 달리 선거구당 2명 이상을 선출하는 제도.이 제도가 채택되면 선거구가 통폐합돼 현행보다 넓어지게 된다.   ☞정치개혁 4개 법안 ①공직선거법 개정안(소선거구제→중대선거구제 변경,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②정당법 개정안(정당설립 요건 대폭 완화) ③국회법 개정안(교섭단체요건 20석→10석) ④정치자금법 개정안(소수정당 국고보조금 지원 확대)   ☞정치개혁 4법 발의 의원(20명) 이상민·김종민·박성준·박용진·서동용·어기구·윤영찬·이원욱·장철민·정성호·조승래·조응천 ·홍영표(이상 더불어민주당) 이명수·이용호(이상 국민의힘) 장혜영(정의당) 용혜인(기본소득당) 조정훈(시대전환) 김홍걸 ·양정숙(이상 무소속)     임종주 논설위원

    2022.10.14 00:42

  • "용산 시대는 노무현의 꿈이었다" 돌아온 '盧의 남자' 변양균 [주정완의 직격인터뷰]

     ━  15년 만에 돌아온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윤석열 대통령 경제고문)이 경기도 과천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변 고문은 다음 달 6일부터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한다. 김경록 기자   주정완 논설위원 ‘노무현의 남자’가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고문으로 돌아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각별한 신뢰를 받으며 국정 운영의 중심축을 맡았던 변양균(73) 전 청와대 정책실장(전 기획예산처 장관)이다. 2007년 신정아 사건으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지 15년 만이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기획원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한 변 고문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역대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선 주요 개혁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최전선에서 앞장섰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내가 만나본 관료 가운데 가장 관료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2017년에 펴낸 『경제철학의 전환』이란 책은 윤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정·관계와 경제계 인사들의 주목을 받았다. 다음 달 6일부터는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일화를 중심으로 경제·재정 정책을 설계하고 운영한 경험을 전달한다. 연재에 앞서 이정재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와 함께 변 고문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변양균(가운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경기도 과천 자택에서 이정재(오른쪽)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주정완(왼쪽)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대담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  '노무현의 남자'로 개혁 정책 주도    ━  이번엔 윤 대통령 경제고문 맡아     -윤 대통령의 경제고문을 맡았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지난 대선 때부터 이런저런 요청을 받았다. 당시 윤 후보 캠프에서 외연 확대에 나섰던 시기였다. 나는 정치도 잘 모르고 선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될 거라고 사양했다. 그랬더니 윤 후보와 식사를 같이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이때도 제안을 사양하면서 캠프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자문에는 응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내 책(『경제철학의 전환』)을 두 번이나 줄을 쳐가면서 읽었다는 말을 들었다.”   -이재명 후보 캠프나 더불어민주당에선 연락이 없었나. “없었다. 그쪽에선 『경제철학의 전환』이 보수적 관점에서 쓴 책이라고 본 듯하다. 나로선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쓴 책인데 이념을 따지는 사람들에겐 부담이 된 것 같다.”(※『경제철학의 전환』은 케인스주의 확장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고 조지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았다.)   -대선 이후에는 어떻게 됐나. “한덕수 총리가 후보자 시절에 몇 차례 같이 일하자는 연락을 해왔다. 지난 6월 중순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과 식사를 같이 했다. 식사를 마칠 때쯤 경제고문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대통령과는 무슨 얘기를 했나. “경제 정책의 원칙을 두 가지로 구분해 말씀드렸다. 하나는 자율·경쟁·개방을 기본으로 하는 시장경제, 다른 하나는 국민의 주거·의료·교육 등 기본수요를 충족하는 사회정책이다. 현재 경제가 어렵지만 국민에겐 항상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중장기적 국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도 했다.”   -다른 얘기는 없었나. “미국인 학자(R 태가트 머피)가 쓴 『일본의 굴레』라는 책을 전해드렸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은 어떻게 보나. “아직 평가는 이르다. 현 정부는 경제 정책의 주류에 있던 사람들로 경제팀을 구성했다. 문재인 정부와는 다를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다만 경제 정책에서 고유의 브랜드가 보이지 않는다. 시장경제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건 시스템이지 목표가 될 순 없다.”   -경제 정책의 브랜드는 어떤 게 좋을까. “예를 들어 중산층의 복원과 확대를 생각할 수 있다. 양극화를 다른 말로 바꾸면 중산층이 위축했다는 뜻이다. 중산층을 넓히는 건 재정·금융·복지 등 경제 정책의 전반을 포괄할 수 있다. 특히 ‘나는 중산층이다’란 인식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 각종 설문조사를 보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인식하는 비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국민의 행복도는 낮아지고 불행도가 높아졌다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변양균(오른쪽) 경제고문 위촉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대선 전부터 정책 자문 요청 받아    ━  슘페터식 혁신, 중산층 복원 제안"     -현재 경제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 종합 처방이 필요해 보이는데. “이번에 겪는 경제위기는 여태까지 없던 방식이다. 신냉전 시대에 들어가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어긋나고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는 국제 정세 변화의 영향을 훨씬 크게 받는다. 공급망 문제의 정교한 해결도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구조개혁도 해야 한다. 말 그대로 복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강력한 경제 사령탑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디까지나 경제부총리가 야전 사령관이다. 내부적으로는 치열한 토론을 벌이더라도 대외적으로는 경제부총리가 경제 정책을 주도하는 게 맞다. 대국민 메시지를 낼 때 너무 위기만 강조하는 건 좋지 않다. 우리가 모두 고통을 분담하면 위기를 극복하고 더 좋아질 것이란 희망적인 말도 해야 한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 통과가 쉽지 않다. “야당을 설득하는 노력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정말 열심히 해도 안 됐다면 국민은 법안 통과를 막은 쪽을 나쁘게 본다. 반대로 노력한 쪽은 좋게 봐줄 거다. 여소야대라고 지레 포기하면 안 된다. 때로는 과정이 결과 이상으로 중요하다.”   -현 정부 경제고문을 맡은 것에 대해 문 전 대통령 쪽에선 반응이 어땠나. “문 전 대통령께는 사전에 전화로 말씀드렸다. 정확한 직함이 뭐냐고 물으면서 알겠다고 했다. 권양숙 여사께도 전화를 드렸더니 당연히 찬성이라면서 물어보고 말고 할 것도 아니라고 했다.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란 말씀을 주셨다.”   -윤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했다. “용산 시대는 ‘노무현의 꿈’이었다. 그걸 잘 아는 내 입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은 매우 기쁜 소식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구상에 100% 맞는 건 아니지만 비슷하게 가고 있다.”   변양균(왼쪽)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을 맡았던 2005년 4월 21일 업무보고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며 청와대 회의실로 들어가는 모습. 중앙포토   -청와대에서 너무 급하게 나온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청와대는 서양 영주의 성처럼 높은 곳에서 백성을 내려다보는 자리다. 거기서 나와 시민에게 가까이 다가간 건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프랑스 출신 석학 기 소르망도 민주주의 국가에선 대부분 도시 중심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다며 용산 이전을 높이 평가했다. 예전에 고종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구중궁궐인 경복궁에서 나와 덕수궁으로 옮기지 않았나. 청와대도 구중궁궐이나 마찬가지였다.”   -노 전 대통령이 구상한 용산은 뭐였나. “기본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이 주둔하느냐는 시각이었다. 그게 우방국 군대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굴욕의 역사를 빨리 청산하고 미국 뉴욕의 센트럴 파크보다 더 멋진 공원을 만들려고 했다. 미군 시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나가고 공원 지상에는 건물을 전혀 두지 않는 게 기본 개념이었다.”   -문재인 정부엔 왜 참여하지 않았나. “초기에는 사람을 추천하기도 했다. 경기지사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다. 어느 순간 청와대 민정라인에서 감시 대상에 올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를 물으니 내 이름을 팔아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감시한다는 얘기였다.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후 모든 정책 조언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경제철학의 전환』이란 책을 냈다. 슘페터식 창조적 파괴와 혁신이 경제 정책을 운영하는 데 반영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나. “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시절에 책의 초고를 보내드렸다. 경제 정책에서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말고 중도를 가라는 뜻이었다. 얼마 뒤 캠프 관계자가 연락을 해왔다. 선거 운동에 방해가 되니까 선거가 끝나고 책을 내달라는 얘기였다. 그렇게 했다. 이후 청와대를 시민단체 출신들이 완전히 장악했다. 그중 한두 명은 내 책을 굉장히 배척했다는 말을 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노무현노믹스의 계승이라고 볼 수 있나. “그렇지 않다. 양쪽의 지지자들이 겹치기는 하지만 경제 정책의 접근 방식은 달랐다. 노무현 정신을 경제 쪽에서 보면 굉장히 실용적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지자들의 뜻에 벗어나는 건 하나도 안 했다.”   -이유가 뭘까.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맞붙은 2012년 대선에서 문 전 대통령은 이기는 승부라고 봤는데 졌다. 이후 4년간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정치는 세력이란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결국 세력의 뜻에 어긋나는 일은 아예 하지 않았다. 청와대에 시민단체 출신을 쓰더라도 일부만 해도 되는데 쫙 깔아놓으니 옴짝달싹 못 했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책으로 꼽히는 게 부동산 정책이다. “문 전 대통령의 임기 후반에 통화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부동산 상황이 좋지 않다고 했더니 이제는 공급 대책도 착실히 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공급보다 훨씬 큰 문제가 있는데, 그건 부동산 정책이 이념화한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부유세로 불리는 종합부동산세는 사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종부세 도입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고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부동산 보유세를 국제 기준에서 보면 워낙 낮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국세로 종부세를 부과해 저소득층 지원에 쓰는 건 타당하다고 봤다. 이후 종부세가 부자들에게 징벌적인 세금을 매기는 것처럼 변질했다. 상위 1%였던 종부세 대상도 점점 늘어나 서울 강남권에선 수십%가 됐다. 이러면 부동산 정책이 이념화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다른 분야의 경제 정책은 어떻게 보나. “문재인 정부는 임기의 절반 이상을 코로나19와의 싸움으로 보냈다. 코로나19 대응만 얘기하면 잘했다고 본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 코로나19는 1930년대 대공황 시절과 맞먹는 위기였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을 맞아 반독점 규제, 사회보장 도입 등 수많은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코로나19 위기는 국민의 뜻을 한 곳으로 모아 개혁하기 좋은 기회였는데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7월 4일 청와대에서 변양균(앞줄 오른쪽)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  "노무현이 경제 망쳤다는 건 오해    ━  기본에 충실한 정책, 후반에 성과"     -노무현 정부가 막을 내린 지 14년이 지났다. 지금 다시 노무현을 얘기하려는 이유는. “노무현 정부는 인위적 경기부양을 하지 않은 게 경제를 망친 것처럼 낙인이 찍혀 있다. 지금이라도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잡고 싶다. 일부 부족한 점은 있지만 이념에 휩쓸리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경제 정책을 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성과를 냈다. 반면 김영삼·김대중·이명박 정부를 보면 초기에는 확장 정책을 폈다가 임기 말에는 모두 좋지 않았다.”   -일부에선 ‘노무현을 보수화시킨 관료’라고 평하기도 한다. “노 전 대통령을 보수화시켰다기보다는 그분 덕분에 내 뜻을 펼쳤다고 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념에 찌든 분이 아니다. 내가 건의한 정책 중에는 진보 진영이 싫어할 만한 것도 많았다.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는 지도자는 드물다. 그분도 나를 선택했지만 나도 노무현의 위대함을 선택했다. 춘추전국시대에 비유하면 좋은 군주를 만난 셈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비전 2030’을 내놨다. 당시엔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말도 나온다. “비전 2030은 우리나라 최초의 장기 재원배분 계획이다. 단순히 전망이나 비전이 아니고 국가계획을 수립한 거다. 2020년에는 2005년의 일본 정도는 간다. 2030년이 되면 2005년의 스위스를 따라잡는다. 이게 목표였다. 결과적으로 2020년엔 일본을 1인당 국민총소득(GNI)에서 뒤집었다. 각 분야의 구조개혁 계획도 100가지 정도 들어 있었다. 이런 개혁이 없으면 갈수록 재정부담만 커지고 선진국으로 진입도 못 하고 파탄이 날 수 있다고 했다.”   -당시엔 재원조달 계획을 두고 비판이 많이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론 때문에 도저히 증세를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제일 아쉬운 점이다.”   -신정아 사건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가정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인생에 대해 많이 깨달았다. 다 지나간 얘기다.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2012년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이란 책에선 “법원이 신정아씨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지만 그건 세상과 나의 문제일 뿐”이라며 “그로 인해 대통령과 국정 운영에 누를 끼쳤고 참회조차 못 한 채 그분을 떠나보냈다”고 아쉬움을 밝혔다.)   이정재 전 칼럼니스트, 주정완 논설위원 

    2022.09.30 01:00

  • [신준봉의 직격인터뷰] "정치인들 제 욕심에 눈 멀어 벽을 더듬고 있다"

     ━  안중근 소설 『하얼빈』 출간한 소설가 김훈   신준봉 문화디렉터 광복절을 낀 여름 독서시장의 최강자는 일흔넷 소설가 김훈의 『하얼빈』이었다. 지난달 초 출간 직후부터 한 달 넘게 베스트셀러 정상을 지키고 있다.(교보문고 기준) 선 굵은 소설에 목말랐던 독자들이 다시 한번 그의 문장을 탐한 결과다. 한국인의 마음을 건드리는 안중근 서사라는 점, 문장가 김훈이 학창시절부터 별러 왔던 소재라는 점이 복합 작용했다.   김훈의 안중근은 그의 이전 역사소설과 결이 살짝 다르다. 거대한 세계악에 맞선 개인의 실존적 고독, 김씨는 자신의 이런 클리셰를 반복하기보다 우리가 그간 안중근에서 놓쳤던 부분을 파고들었다. 약동하는 젊음의 안중근, 퍼스널(사적인)한 안중근이다. 특히 소설 후반 절반가량을 이토 히로부미 암살 이후의 검찰 신문 과정, 법정 공방에 할애했다. 제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던 이 땅의 위정자, 근대화와 야만 사이에서 자기모순에 빠졌던 일본 제국주의 설계자들의 몽매도 건드린다.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 안중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김씨는 대면 인터뷰는 극구 사양했다. 대신 충실한 서면 답변을 보내왔다.     ■  「 지난 대선 때 정치의 시궁창 같은 밑바닥 목격…리더십 몰락에 절망 전쟁공포·기후위기·인구절벽·양극화 분열로 한국은 지금 존망 위기 많은 사람 가기 꺼리는 길 나서야 리더, 젊은 세대 정치인 등장해야 한·일 관계, 한국이 세계 속에서 이룬 위상에 걸맞는 태도로 다뤄야 」    출간 직후 한 달 넘게 베스트셀러 1위   소설가 김훈이 소설 『하얼빈』에서 복원한 안중근은 기존 영웅 서사와 차이 난다. 김훈은 작가의 말에서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고 했다. 그 소망대로 대의를 위해 몸을 던지는 안중근의 결단에 집중했다. 중앙포토 서점가의 반응이 뜨겁다. “책 판매량을 미리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출판사에서는 기대감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사구조를 압축해서 빠르게 전개한 점이 읽기에 좋았다는 말을 들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좋은 소설로 추천한 데 대해, 한 방송에 출연해 두렵다고 했는데. “똑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미 다 말했는데 왜 자꾸 묻는지를 되묻고 싶다. 나는 내 작품이 왜 좋은지 이야기하는 말이 모두 두렵다.”   자료 조사를 많이 했을 것 같은데 실제 안중근은 어떤 사람이었나. “안중근의 자서전 『안응칠 역사(歷史)』를 읽어보면, 안중근은 매우 다혈질적이고 활동적이며 감동하기를 잘하는 청년이다. 그가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개발해나가는 모습은 혁명가의 자질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소설에 이토의 덩치가 작아 명중을 걱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115~116쪽) 어떤 근거 기록이 있나. “총을 쏘아서 맞혀야 하는 사람의 실무적인 고민을 드러낸 것이다. 이 실무적 고민은 혁명가의 고민이기도 하다. 방법적이고 실천적인 고민은 혁명가에게나 생활인에게나 소중하다. 총알이 맞아야 혁명이고 생활이고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기록을 보고 쓴 것은 아니다.”   이토는 어느 정도의 인물이었나. “그의 조국 일본을 봉건에서 근대로 전환한 엘리트 중 선두 그룹에 속해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그는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가해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의 틀 안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므로 그가 하얼빈에서 안중근과 만난 운명은 필연적이었다. 이토의 형성기, 전성기, 안중근의 형성기를 모두 소설에 쓰지 못했다. 우선 내 건강에 자신이 없었고, 소설이 너무 길어져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시대사나 인물 평전은 나의 목표가 아니다.”   이토 암살은 강자·약자 세계관에 타격   이토 암살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안중근의 거사가 일본의 조선 합병 정책을 더욱 가속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언설이 논리적 타당성을 구축한다 하더라도 역사의 전개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중근의 거사는 이 세상이 강자와 약자의 이항대립으로 구성된다는 세계관에 타격을 가했다. 인간에게는 강약의 대결과 그 결과인 복속보다 더 높은 지향점이 있다는 것을 인류에게 깨우쳐주었다.”   김훈은 여전히 원고지에 연필로 소설을 쓴다. 『하얼빈』의 육필 원고. [사진 문학동네] 안중근과 천주교의 갈등도 비중 있게 다뤘다. “안중근이 서책을 읽고 학문적 단련을 거쳐서 사상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안중근의 사상은 당면한 현실의 산물이다. 그의 사상은 생활의 바탕 위에 있다. 이 점이 같은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1775~1801)과 안중근(1879~1910)의 다른 점이다. 사상은 순수사유가 아니고 논리정합성이 아니다. 천주교 신앙인인 안중근은 천주교 교리도 자신의 사상 안에서 용해했다. 이것은 교회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독립군 참모중장의 면모는 덜 부각된 느낌인데. “소설을 구상할 때부터 안중근의 전체, 시대 전체를 그려낼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런 큰 구도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다 쓰고 나니,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안중근이 대원들을 이끌고 두만강을 넘어와서 의병 투쟁할 때 일본인 포로를 살려 보내는 대목은 그의 생애에서 매우 심오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그는 인간과 세계 사이의 근본적인 모순에 부딪힌다. 이 대목을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 다만 나의 글이 거대담론으로 흐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여전히 유효   안중근은 한학밖에 배운 바가 없다. 어떻게 동양평화론 같은 개념을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동양평화론은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짜인 학술논문이 아니고, 그 시대 상황 속에서 필연적으로 우러나온 사상이고 구상이다.”   동양평화론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나. “이루기 어려운 이상이지만 인류에게 영원히 유효한 꿈이다. 동양을 일본의 패권 아래 복속시키는 이토의 구상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진보적이었지만, 실현은 불가능해 보였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꿈과 사상은 인류의 역사 전개를 추동해 왔다. 인간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처럼 불온한 꿈을 편드는 것이다.”   안중근에 관해 더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한다면. “안중근이라는 인물 자체보다 메이지유신 전체를 큰 틀에서 이해하는 시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일본이 한국에서 자행한 민족 말살 정책, 잔혹한 통치 행위, 수탈 행위를 중점적으로 가르치지 말고, 일본이 근대를 맞으면서 자기 자신을 전환해가는 격동의 역사가 침략전쟁으로 이어져 가는 과정을 보다 자세하고 정확히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중근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   하얼빈 『하얼빈』을 읽으며 한 나라의 지도자를 생각하게 된다. 지금 화급한 문제라면. “나는 정치 문제를 말할 식견이 없는 사람이지만, 이 사회에서 70년 넘게 살아온 늙은이로서 말하자면 지금 한국의 미래는 번영과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존망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전쟁의 공포, 기후변화, 인구 절벽, 양극화에 의한 내부 분열 그리고 정치적 리더십의 몰락 등은 존망의 위기이다.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다들 제 욕심에 눈멀어서 벽을 더듬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의 시급한 문제는 불평등의 양극화를 완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이다. 다중의 비위를 맞추어가면서 다중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은 지도자의 자질 중에서 가장 낮은 것이다. 12척은 이순신의 자랑이 아니다. 12척은 이순신의 가난이고 불운일 뿐이다. 이순신의 자랑은 12척을 따라나서기가 무서워서 달아나려는 부하들을 설득하고 따르게 해서 데리고 나가는 리더십에 있다. 많은 사람이 가기를 꺼리는 길로 많은 사람을 데리고 갈 수 있는 리더가 한국에는 없는 것 같다. 다들 박수받고 표 나오는 길로만 가고 있다.”   한·일 관계 풀려면 정치가 신뢰 얻어야   정치 왜소화, 정치 퇴행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 이 나라 정치의 시궁창 같은 밑바닥을 보았다. 후보자와 그 배우자, 그 추종자들의 언동은 가히 절망적이었다. 나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힘이 정치 전면에 본격적으로 등장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한·일 관계를 푸는 묘책이 있을까. “한국이 세계 속에서 이룩한 위상에 걸맞은 태도로 이 문제를 다루었으면 한다. 국내에서 반일감정을 증폭시키는 정치 행위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이 문제를 발전적으로 풀어내려면 우선 국내 여론과 민심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방송 인터뷰 등에서 국가에 맞선 개인의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개인이나 기업의 자유 확대를 전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개인(individual)의 영역을 국가가 훼손해서는 자유의 원리를 파괴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고, 자유의 영역을 더욱 확대해야 옳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요즘 갑자기 자유의 이념이 강조되고 있는데, 지난 세월 동안 정치 슬로건으로 변질한 자유의 이념이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학살과 억압과 고문과 추방을 자행했는지를 한국 현대사는 기억하고 있다. 또 경제 이데올로기로 변한 자유의 이념이 약육강식의 이윤 추구와 무한경쟁을 방치함으로써 한 해에 800명이 넘는 산업재해 사망자들이 발생하는 일이 일상화되었고 불평등은 양극화되었다. 이념적 지향성은 중요하지 않고, 그 실제적 적용만이 인간 사회에서 중요한 일이다.”   안중근·이순신은 희망을 창출한 사람   인생을 바꾼 책으로 대학 시절 읽은 이순신 『난중일기』와 안중근 신문조서를 꼽았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대학 시절에 낭만주의 문학을 공부했는데, 『난중일기』와 안중근의 신문조서에는 아무런 ‘낭만’이 없었다. 거기에는 발가벗은 세계의 모습이 있었다. 그 두 권은 문학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청춘을 더욱 크게 흔들었을 것이다. 이순신과 안중근은 희망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영혼 속에서 스스로 희망을 창출해낸 사람이라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희망은 멀리서 빛나는 등대가 아니라, 내 속에서 가물거리는 호롱불이라고 나는 느꼈다. 내 속에 빛이 없다면 어디에 빛이 있겠는가.”   독서 리스트가 달랐을 것 같다. “한평생 눈에 띄는 대로 계통 없이 읽었다. 문학보다 역사, 기록, 보고서, 르포처럼 사실에 바탕한 책을 더 즐겨서 읽었다. 내가 읽은 책들이 지금 나의 정신 속에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은 나의 생애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하얼빈』의 영화화 제안은 아직 없나. “없다.” 신준봉 문화디렉터

    2022.09.16 01:07

  • [서경호의 직격인터뷰] “규제는 감춰진 세금...규제 혁신하면 감세 효과”

    서경호 논설위원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대통령 직속기구로 출범했다. 국무총리실 산하의 민관 합동 기구로 행정부에서 만드는 모든 규제를 미리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예산실의 예산관리처럼 규제개혁이 정부의 상설기능이 됐다. ‘시스템에 의한 규제 개혁’이라는 점에서 국제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종석 민간 규제개혁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베스트셀러 경제학 교과서인 『맨큐의 경제학』을 프린스턴대 동문이자 매제인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와 함께 공동번역했다. 김상선 기자    규개위는 행정규제기본법에 근거한 법정 기구다. 위원장은 총리와 민간위원장이 공동으로 맡는다. 최근 민간 규제개혁위원장에 임명된 김종석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원, 전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를 지난달 29일 만났다. 김 위원장은 한국규제학회 회장을 지냈고, ‘규제’라는 이름이 붙은 이런저런 정부 부처의 위원회에 단골로 참여했다. 특이하게도 김대중·노무현·박근혜 정부에서 세 차례나 민간 규제개혁위원을 맡았다.      ━  규제개혁위에 네 번째 참여 기록    -국회의원은 초선에 그쳤는데, 규개위원은 이번까지 ‘4선’이다.  “그런 셈이다.(웃음) 노무현 정부 때는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돼 직무정지 중이어서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총리)이 임명했다. ‘행정의 달인’ 고건 총리한테 많이 배웠다.”    -새 정부의 규제개혁에서 눈에 띄는 점은.  “규제심판제도가 이전 정부와 차별화된 혁신이다. 이해관계자의 어려움을 소관 부처가 수용하지 않으면 규제심판부가 열린다. 공무원이 규제의 필요성을 입증해야 한다. 소관 부처가 규제심판부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규개위로 올라간다.”    -근데 규제심판부 1호 사건인 대형마트 의무휴무제 심판이 연기됐다. 정부의 규제개혁 의지가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건 아니다. 해결책이 나올 거다. 흑백논리로 푼다, 안 푼다의 문제가 아니라 대화와 소통을 통해 양자에게 모두 이로운 결과가 될 것이다. 규제개혁에는 대통령 지지도가 중요하다. 대통령 지지도가 낮으면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데 거래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  대형마트 의무휴무제 해결책 나올 것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전봇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손톱 밑 가시’처럼, 윤석열 대통령도 규제를 기업의 ‘모래주머니’라고 비판했다. 모두 당선인 시절 나온 표현이다. 정권 초기엔 기세등등하게 규제개혁을 시작하는데 왜 항상 흐지부지되나.    “대통령과 총리는 규제개혁만 하는 분들이 아니다. 다른 국정 현안이 발생하면 규제개혁은 관심권에서 멀어진다. 전임 정부에서 항상 그랬다. 규제개혁은 일과성 개혁이 아니다. 규제라는 저수지의 수질 관리 기능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정권 마지막까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규제를 24시간 감시하는 규제 전담부서가 탄탄해야 한다. 현재 규제개혁만을 본업으로 삼는 최고위직은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고위공무원단 가급)이다. 1급이 아니라 차관급 정도로 직급을 올려서 ‘규제개혁의 차르’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 백악관 소속 예산관리국(OMB)처럼 우리도 규제개혁 전담기구를 강화될 필요가 있다.”      -공무원 조직을 늘리자는 얘기인가.  “정부 조직을 효율화하고 생산성을 높이자는 거니 정부의 비대화로 볼 건 아니다. 청소하기 위해 청소도구를 사는 건 낭비가 아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월 기획재정부 주도로 출범한 정부의 경제 규제혁신 TF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함께 공동 팀장을 맡았다. 한 달 만에 규제개혁위원장이 되면서 물러났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가 후임 TF 공동팀장이 됐다.   김종석 규제개혁위원장이 2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  세금은 국회가 감시, 규제는 통제 안 돼    -TF 첫 회의에서 ‘규제는 감춰진 세금’이라는 말을 했던데.  “간단한 한 줄짜리 규제라도 규제받는 국민 입장에선 돈과 시간, 노력이 들어간다. 사실상의 세금이다. 세금은 그래도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감시하는데, 규제는 공무원 맘대로 절차를 만들어서 집행하니 통제가 안 된다. 국민과 기업의 규제 준수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면 감세 효과를 낼 수 있다. 재정·통화정책은 쓸 만큼 썼다. 규제혁신으로 기업환경이 개선되면 투자와 일자리가 늘고 경제가 활성화한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규제로 인한 비용 상승요인을 없애면 물가 안정에도 도움된다. 이런 점에서 규제혁신은 황금총알(묘방)이다.”    -규제개혁은 기업 민원 해결과 다르다고 했다.    “고비용 저효율 정부규제를 개선하는 것이지, 단순히 기업 민원을 들어주는 게 아니다. 과거엔 경제단체 요구사항을 받아 규제하는 사람이 수용 여부를 결정하고 시혜적 조치를 내리는 상향식 읍소형이었다. 규제 개혁은 시스템 재설계인데, 민원 해결 식으로 하니까 규제개혁이 기업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기업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소비자와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규제혁신을 오해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도 상향식이다.  “그래서 반대했다. 그동안 안 해주던 부처가 허용하겠나. 이해상충이다. 샌드박스를 허용할지 판단은 규제권자가 아닌 곳, 이를테면 총리실 같은 데서 해야 한다.”    ━  성급하게 나온 서울시 반지하 대책    -2020년 12월 ‘규제연구’에 실린 논문 ‘규제개혁 30년: 평가와 과제’에서 ‘한국 규제 문제의 본질은 양보다 질의 문제’라고 썼다.    “한국에서 규제 때문에 기업하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건 규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규제의 품질이 나빠서다. 불량규제가 많다. 법령에 근거하지 않는 규제와 행정 간섭이 많다. 규제의 절차와 기준이 모호하고 포괄적이어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규제가 불투명한 탓에 공무원의 재량권이 많다. 그러니 한국 관청에선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그래서 규제개혁을 체감하기 힘든 건가.    “규제개혁 한다고 하지만 숫자 줄이기에만 집중했다. 규제 내용과 집행에서 불량 저질규제는 남아있고 계속 생기는데 말이다. 이런 게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되는 일은 확실히 되고, 안 되는 일은 절대로 안 되도록 하는 게 기업을 돕는 일이다. 기준과 절차를 현실화해서 지킬 수 있게 만들되, 위반시 철저하게 처벌하는 게 좋다. 무슨 일만 터지면 무조건 빨리 대책을 요구하는 정치권과 시민단체, 언론도 비현실적 규제와 저질 규제 양산에 책임이 있다. 최근 서울시의 반지하 대책이 그렇다. 그게 하루 이틀에 나올 대책인가.”      -수도권 입지 규제 같은 덩어리 규제를 해결 못 하는 것도 문제다.  “원칙 금지, 예외 허용 식의 규제는 바뀌어야 한다. 수도권 입지규제와 관광·의료·교육 등 서비스 산업에 대한 사전적 규제, 우버택시와 에어비앤비 등 플랫폼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의 진화로 생겨난 신산업 규제도 마찬가지다. 현행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불법화했다. 근로자 파견업종 규제도 되는 일만 나열하고 규정에 없으면 원칙적으로 금지다. 민간의 창의성과 다양성이 억제되고 하향평준화를 초래한다. 소수의 잠재적 범법자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국민이 단체기합을 받는 셈이다.”       -수도권 규제는 국가균형발전 정책과도 관련 있다.   “정책 목표를 훼손하자는 게 아니다. 모든 규제는 나름대로 정당한 공익적 목적이 있다. 하지만 기술이 바뀌고 시장도 진화하기 때문에 수단의 적정성은 검토해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는지, 반드시 규제로 해야 하는지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김종석 규제개혁위원장이 2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  낮은 준수율은 규제 만든 관료 책임    -규제의 준수율이 낮다는 점도 지적했다.  “많은 규제가 비현실적인 기준과 절차를 요구하고 있거나 아예 집행할 의사와 능력도 없으면서 명분과 당위론만으로 도입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나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그렇다. 최저임금이 대표적인 비현실 규제다.(최저임금 대상자 가운데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지난해 321만5000명, 전체 근로자의 15.3%에 달했다) 준수율이 낮으면 제도 도입 취지가 퇴색돼 사실상 무규제 상태가 된다. 법 지키는 사람이 바보가 된다. 한국은 준법투쟁이 가능한 나라다. 지킬 수 없는 규제를 만들어 놓고 국민을 탓한다. 낮은 준수율은 규제 생산자인 공무원 책임이다.”    -신고제인데 신고를 받지 않는 식으로 규제하는 경우도 있다.  “허가제를 등록제로 바꾸고 등록제는 신고제로 바꾸면 그게 규제완화라고 했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신고제로 바꿔놓고 신고 수리 안 하면 허가제 아닌가. 같은 규제라도 불확실성을 제거하면 지키기 편하다. 운전면허를 등록제나 신고제로 바꾸자고는 아무도 안 한다. 면허기준이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허가제가 아니라 허가제보다 더 심한 규제라도 그런 건 양질의 규제다.”     -규제개혁위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규제 개혁이 겉돌고 있다고 비판했던데. “정치인과 관료조직의 집단 이기주의가 문제다. 의원입법이나 국회에 올라온 법안들을 보면 규제만능주의와 계획 관치경제의 백화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부 부처는 규제개혁위의 사전심의를 피하기 위해 의원 청부입법으로 우회하기도 하다. 위원회 소속 공무원들의 인력 부족과 전문성 부족도 지적해야겠다.”    김 위원장은 국회의원 시절인 2016년 중요 규제를 포함하는 의원 입법을 할 때 국회입법조사처 등이 작성한 규제영향분석서를 첨부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20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폐기됐다. 그는 “규제개혁은 이념이나 진영의 논리가 아니다”며 “불량규제의 80~90%는 의원 입법에서 나온다. 여야가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라도 규제영향 분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종석 위원장=1955년 서울 출생.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거쳐 1991년부터 홍익대 경영대 교수를 지냈고, 2007년부터 2년간 한국경제연구원장을 맡았다. 2015년 당시 새누리당(지금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정치에 입문, 20대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무위 야당 간사를 맡았다.       김종석 규제개혁위원장이 2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서경호 논설위원

    2022.09.02 01:13

  • "수해 막을 빗물터널 6개 무산…박원순, MB식 토건이라 반대" [장세정의 직격인터뷰]

    장세정 논설위원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 국민 앞에 사과했다. 누적된 인사 실패가 아니라 수도권 물난리 피해에 대한 사과였다. 예로부터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치수 역량이 제왕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던 이유를 새삼 느끼게 했다.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내린 일일 강우량 381.5mm는 근대적인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후 115년 만에 가장 많았다. 서울의 시간당 최고 강우량 141.5mm는 1942년 8월 5일 기록(118.6mm)을 80년 만에 뛰어넘었다. 이처럼 기후변화에 따른 폭우·가뭄·폭염·산불 등 극단적 기상 현상을 뉴노멀로 인식하고, 기존 관행에서 탈피해 획기적인 재난 안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치수 전문가인 배덕효(62) 한국수자원학회장(세종대 총장)과 1995년부터 27년간 현장 행정 경험을 쌓은 김학진(56) 전 서울시 2부시장(홍익대 도시공학과 교수)을 만나 기후위기 시대의 재난 대책 등에 대해 들어봤다. 악수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두 사람은 각종 인프라에 집중 투자했다.[중앙포토] 2019년 7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115년 만의 기록적 폭우 피해가 컸다.    ^배덕효 학회장=이번 수해의 가장 큰 원인은 설계 기준을 초과한 강수량 때문이란 공감대가 있지만, 시설 용량 문제만 얘기해서는 안 된다. 수해를 제대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방재 성능 목표에 따른 시설 확충, 그것을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 전문 인력 양성이 따라야 한다. 홍수 관리를 국가 하천은 환경부가, 지방하천은 지자체가 맡는다. 최근 대부분의 홍수 피해는 지방 하천이나 도시 하천에서 발생한다. 도시에서 빗물이 제대로 배수되지 못해 일어나는 도시 홍수 피해가 잦다. 지자체의 홍수 관리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  ^김학진 전 부시장=인구가 밀집한 서울은 기상 이변을 예상하고 계획적으로 건설한 도시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2011년엔 우면산 산사태 피해가 컸고, 이번에도 강남 지역에서 유사한 피해가 반복돼 안타깝다. 서울의 지형을 보면 저지대도 있고 구릉지도 있어서 단일 시스템으로 도시 홍수에 대응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지자체가 주도권을 갖고 주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지역 맞춤형 통합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배덕효 한국수자원학회장(왼쪽)과 김학진 전 서울시 2부시장이 서울의 맨홀을 살펴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배덕효 한국수자원학회장(왼쪽)과 김학진 전 서울시 2부시장이 수해 대책을 논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강남은 1조4000억원을 투입하고도 또 물난리를 당했다.  ^김=과거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추진한 강남 개발은 낮은 지대를 높이는 지반조성을 한 게 아니고 그대로 둔 상태에서 진행했다. 강남역 일대는 집중호우로 주변의 물이 몰려들면 침수될 수밖에 없는 분지형 구조다. 강남역 일대 배수 처리 용량이 2011년에는 시간당 65mm였는데 85mm로 확대하는 공사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 시간당 100mm가 넘게 내렸다. 그런데 배수 용량을 마냥 늘리기도 어렵다.  ^배=이번 수해를 보면 정책의 일관성이 제일 큰 문제다. 2011년에 서울시가 첨단 수방 구축 기본계획을 세워 34개 취약지구 대책을 세웠다. 7개 지역은 하수 관로와 빗물 펌프장으로는 수해 대응이 어렵다고 판단해 매년 6000억원 정도 투입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선거로 정권이 바뀌고 시장의 생각에 따라 일관되게 추진되지 못하고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빗물 터널이 전지전능한 대책은 아니지만, 달라진 강우 패턴을 반영해 재해에 더 취약한 지역부터 건설해야 한다. 서울시 예산으로 다 할 수 없으면 국토교통부가 좀 나서야 한다.  -일본 도쿄 같은 대심도 빗물 터널은 왜 한 곳에만 건설했나.  ^김=2011년 7월 우면산 산사태 이후 수해 대책의 하나로 (오세훈 당시 시장이) 빗물 터널 7개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는데, 11월에 (보궐 선거에서 박원순으로) 시장이 바뀌었다. 당초 빗물 터널 발표 때는 타당성 조사와 예산 반영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낸 아이디어 차원이었다. 새로 부임한 박 시장이 리뷰했는데, 당시 서울시에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토건 사업으로 보는 부정적 인식이 있었다. 이 때문에 검증 과정이 굉장히 길어져 양천구 신월에만 빗물 터널을 건설했다.  ^배=당시 박원순 시장이 '토건 공화국 반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던 것은 사실이다. 보는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강남은 대표적 부촌 지역이고 양천구 신월동은 서민이 많은 지역이라 우선 시급한 곳을 먼저 추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11년 빗물터널 7곳을 발표했지만 후임 박원순 시장은 1곳에만 건설했다.[중앙포토] ^김=토건 사업 논란 등 정치적 배경이 좀 있었지만, 빗물 터널 사업비를 다른 데로 돌렸다거나 수해 대비 투자가 줄어들었다는 주장은 오해다. 예상 침수 피해 규모를 고려할 때 사업비가 많이 들어가는 빗물 터널 사업이 타당하냐는 반론이 제기됐다. 결국 광화문과 용산·강동 등은 하수관로 개선, 저류조 확충 등 다른 대안 사업으로 진행했다. 강남은 유역 분리 터널 외에 다른 것은 검토하지 않았다. 물론 이번처럼 시간당 10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면 처리 용량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처리 용량을 얼마까지 늘려야 할까.  ^배=지금까지 시설 기준은 강우 빈도 개념으로 했다. 처음에는 10년에 한 번 오는 비에 대비하다가 30년 빈도(시간당 85mm)로 올렸다. 그런데 이런 빈도는 시간에 따라 계속 변하기 마련이니 이제는 방재 성능 목표로 가야 한다. 방재 성능을 무한정 올릴 수는 없겠지만, 예컨대 서울은 앞으로 몇 mm까지는 홍수를 반드시 막겠다는 방재 성능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기존 시설을 한꺼번에 바꾸기 어려운데.  ^배=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는 곳에서 순차적으로 바꿔가면 된다. 새로 건설하는 시설은 서울의 경우 95mm에서 110mm 정도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처럼 하루에 140mm 이상의 비가 내리면 비구조적 대책을 써야 한다. 폭우 피크 때의 유량을 줄일 수 있는 분산형 저류조를 운동장이나 공원 지하에 만드는 것이 방법이다.  -반지하 주택에서 안타까운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다.    ^김=수해 위험에 노출되고 희생되는 사람들은 주로 취약 계층이다. 반지하 주택 중에서 80%가 고지대에 있다면 20% 정도가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저지대에 있다. 반지하에서 수해 피해가 발생했다고 곧바로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발상보다는 반지하 문제를 주거 취약 계층의 주거 대책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순서다.  ^배=서울에만 20만 가구나 되는 반지하를 하루아침에 다 없앨 수는 없다. 오세훈 시장의 대책은 반지하가 주거공간으로 부적합하니 다른 용도로 쓰도록 하겠다는 선언적 의미다. 자기 지역의 집값이 내려간다고 반지하 실태 발표에 거부감을 갖고 있으니 조용히 실태를 조사해 재난에 더 취약한 곳부터 순차적으로 개선하면 된다. 일가족 3명이 숨진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양극화 시대에 맞는 재난 대책은.  ^배=대체로 재난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신림동 반지하에서 사망자가 나왔고 서초동 지하 주차장과 맨홀에서도 사망자가 나왔지만,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로 나눌 일은 아니다. 강남역은 지형적으로 예외적인 곳이고 신림동은 주거지 형태의 문제다. 각각의 원인을 분석해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  ^김=하수관로든 저류조든 재난 시설 기준을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로 나눠서 차별적으로 관리해서는 안 된다. 안전에 더 취약한 지역과 계층에 좀 더 집중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투자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안전을 복지 차원으로 접근할 때가 된 것 같다.  ^김=재난 대비는 국민 복지 차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재난 안전 시스템은 우리 지역 공동체가 유지되도록 하는 기초적인 복지 시스템이다. 국가와 지자체는 그런 차원에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해야 한다. 재난 대비와 예방 투자는 복지 예산처럼 일정하게 의무적으로 이뤄지도록 예산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배=2020년에 자치 분권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 일괄 이양법'이 제정되면서 행정안전부가 도시기반시설 확충에 쓰라고 용도를 지정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예산을 지방에 내려주고 있다. 그러자 홍수가 나지 않는 지자체는 치수 예산은 뒷전이고 도로·상하수도 건설에 예산 대부분을 쓴다. '물 복지' 차원에서 홍수·가뭄 대책에 일정액을 반드시 쓰도록 용도를 정확히 해줘야 한다. 지난 8일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로 차량이 물에 잠긴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대 방향 도로. [뉴스1]  -기후위기에 따른 재난 대응 방향은.  ^배=과거와 달라진 기상 이변은 기후변화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대응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산화탄소를 저감해 지구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후변화를 인정하고 적응하며 사는 것이다. 기후변화 시대엔 1+1은 3도 될 수 있다. 예전보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안전을 위해 지불하겠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김=기후위기 시대에 재난이 반복되는데 우리는 반복해서 금세 잊는다. 이번 물난리도 한 달 못 가서 잊힐 것이다. 재난에 대비한 투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정치인들이 생색내기 어렵다. 그래도 극단적 기상을 상수로 받아들이고 안전의 기초를 다져가야 한다. 대규모 투자 한번하고, 수해 봉사한다며 사진 한번 찍고 끝낼 일이 아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김은송 인턴기자가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2022.08.19 00:57

  • [강주안의 직격 인터뷰] "과거식 거리두기 않는 게 과학적…4차 백신은 맞아야"

     ━  정기석 국가감염병위기대응 자문위원장이 말하는 과학방역   강주안 논설위원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과학방역’을 내걸고 출범한 국가감염병위기대응 자문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이다. 박근혜 정부 때 질병관리본부장으로 메르스 사태 대응을 이끈 감염병 전문가다.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대처에 쓴소리를 많이 했던 그가 정부 방역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공수교대인 셈이다.   최근 코로나19 감염이 급증하며 하루 확진자 수가 10만 명을 넘어서는 상황. 이른바 과학방역의 실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 26일 정 위원장을 만났다.   ■  「 문 정부 비과학 방역 자료 밝혀야 “청와대 방역기획관 조사 필요성”   4차 백신, 사망률 50%가량 줄여 올 11월 감염자 폭증할 가능성도   내년 봄까지 실내 마스크 불가피 원숭이두창은 큰 위협 되지 않아 」    윤석열 정부의 ‘과학 방역’을 주도하는 정기석 국가감염병위기대응 자문위원장은 26일 “위중증률 등이 오르지 않는 한 과거식 거리두기는 안해도 된다”고 말했다. 강주안 기자 문재인 정부 때 코로나19 관련 위원회와 비슷해 보인다. “다르다. 순수 민간 전문가 21명으로 구성됐다. 보건의료 13명과 경제·사회 등 8명이다. 지난 정부의 각종 위원회엔 정부 인사가 참여했다.”   요양병원 면회 제한 등 조치를 자문위가 결정했나. “아니다. 우린 권고를 한다. 오후 9시, 10시에 전부 가게 문을 닫고 4명 이상은 안 된다는 식의 일괄적인 거리두기를 하지 말라고 권고한 거다. 대신 고위험군 보호를 강조했다. 요양병원 면회를 제한하고 PCR 검사를 강화하는 조치는 정부가 한 거다.”   거리두기는 안 해도 되나. “과거식 거리두기는 별 효과가 없다. 대신 의료 시스템을 점검하도록 했다. 응급실 상황판을 새로 만들었다. 예전엔 119가 가도 응급실에 자리가 없었다.”   성급한 ‘위드 코로나’ 부작용   문재인 정부 방역을 많이 비판했다. “학술적인 판단이 중요한 사안인데 지난 정부는 위원회에 이해관계자가 참가하니 정무적 비중이 커졌다. 일부 위원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왜 그랬을까. “다른 목표가 있지 않았을까. 제일 안타까운 게 위드 코로나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위드 코로나 선언을 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가 말렸다. 위중증률과 치명률이 올라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백신도 미흡했고 치료제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환자가 폭증하고 대통령이 호주에서 귀국하면서 위드 코로나를 중단했다. 12월 전후 5주 동안 코로나로 2100명이 사망했다. 또 그만큼이 추가로 초과사망을 했다. 비과학적이고 정무적인 판단의 대표적 사례다.”   당시 여러 문제가 이어졌다. “당시 정부는 병실 준비가 돼 있다고 큰소리쳤다. 실상은 입원을 못 해 초과 사망한 환자가 쏟아져 나올 정도였다. 당시 위중증 이행률이 0.15% 정도였다. 환자가 1만 명 발생하면 15명의 중환자가 반드시 생긴다. 계산이 다 된다. 그런데도 준비를 안 했다. 더 화나는 건 화들짝 놀라 병원에 행정명령을 내리니 2주 만에 해결됐다. 할 수 있는데 안 한 거다. 사망한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한가.”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정부가 설명을 안 하니 모른다. 추측할 따름인데 이듬해 선거를 염두에 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위험성을 모를 수도 있지 않나. “정부는 분명 내가 말한 통계 수치 이상의 자료를 갖고 있다. 그걸 무시한 거다. 분명히 보고는 했을 거다. 회의록 공개가 중요하다. 당시 자문위원회도 열렸을 거다. 지금이라도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백서가 나온다. 메르스 때도 백서가 나왔다. 코로나19는 백서가 10권쯤 나와야 할 사태다. 특히 청와대 방역기획관 쪽과 어떤 얘기가 오갔고 왜 이런 판단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공문이 없다면 그들의 진술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데이터 중심으로 위기관리   과학 방역을 말하지만, 뭐가 다르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근거 중심의 관리다. 위드 코로나를 갈 때 위중증률과 치명률이 올라가는데 그걸 무시할 만한 자료를 내놓는다면 승복한다. 새 정부의 과학 방역은 근거를 중심으로 위기관리를 하겠다는 거다. 오후 9시까지 열 때와 10시까지 열 때의 차이에 대한 자료가 없다. 4명은 되는데 왜 5명은 안 되는지, 지난 정부에서 자료 생산을 안 했다.”   강한 거리두기를 안 하는 것도 과학인가. “4차 백신을 맞으면 치명률과 위중증률이 50%씩 준다. 여기에 팍스로비드 같은 치료제를 쓰면 또 50% 안팎의 치명률 감소가 나타난다. 지난 3월의 하루 확진 60만 명대 상황이 와도 사망 숫자가 확 준다는 얘기다. 이런 무기가 있으니 과거식 거리두기는 안 해도 된다. 자문위원 중 일괄적 거리두기를 하자는 의견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시점에선 마스크 쓰고 손 씻고 불필요한 모임 자제하는 정도의 수칙만 지키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대신 확진자 격리의무 해제는 안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한 거리두기다. 멀쩡한 사람끼리 거리두기를 하는 건 낮은 확률의 보호인데, 환자가 집에 머무는 건 높은 확률의 거리두기다. 이것 역시 보건 의료 쪽의 모든 위원이 찬성했다.”   일괄적 거리두기를 고려하지 않나. “위중증률과 치명률을 계속 보고 있다. 이게 올라가면 조치를 해야 한다. 숫자가 아니라 추세를 봐야 한다. 중환자실 점유율이 80%가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80%가 넘어가면 정체가 생긴다. 사망자가 크게 늘면 비상이다. 치명률 등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고 2주 정도 안 꺾이면 조치가 필요하다.”   4차 백신은 맞아야 하나. “그렇다. 나도 맞을 생각이다. 지난해 11월에 3차 접종을 했는데 올 3월에 확진됐다. 이제 3개월이 지났으니 곧 4차를 맞을 거다.”   예방 효과가 작다는데. “예방은 20%밖에 안 된다. 하지만 사망률을 절반으로 줄인다.”    새로운 백신 11월쯤 나올 듯   오미크론을 예방하는 새 백신이 나온다는데 조금 더 기다리면 어떨까. “BA.5를 예방하는 개량 백신을 맞으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11월은 돼야 나오지 않을까. 지금 맞고 4개월쯤 지나 개량 백신을 맞으면 적당하다.”   40대 이하로 확대할 계획은 있나. “아직 없다. 50세 미만은 걸려도 사망률이 매우 낮다.”   백신이 오히려 위험하다는 우려도 있다. “세계적으로 과학자나 의학자들은 백신의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나 득이 훨씬 크다고 공통으로 말한다.”   정말 현 수준의 조치로 괜찮나. “반론을 펴보겠다. 대다수 사망자가 50살 이상에서 나오는데, 이분들을 집중적으로 보호하면 치명률을 적어도 30%는 줄일 수 있다. 최근의 치명률이 0.06%인데 독감의 치명률을 0.03%로 본다. 집중 보호로 치명률을 낮추면 독감 수준이 된다. 질병관리본부장을 할 때 매년 독감 경보를 내렸다. 사람들은 끄떡도 안 한다. 5월쯤 경보를 해제했는데 관심도 없더라. 취약 계층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   10대 감염자가 부쩍 늘고 있다. “백신 맞은 비율이 낮으니 감염이 잘 된다. 다행인 것은 중증 비율이 높지 않다.”   학교 수업은 가능한가. “그렇다고 본다. 학교가 방역을 제일 정확히 한다. 지난해 교육부 자문을 하며 데이터를 보니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가장 많이 걸린다. 학교를 닫으면 학원에 갈 텐데 그게 더 잘 걸린다.”   현재 어떤 대응에 역점을 두나. “의료 대응체제다. 임신부들이 출산하러 헤매고 투석환자가 갈 곳이 없는 상황이 재발하면 안 된다. 전국적인 상황판을 만들자고 했다. 임신 상태는 10개월 지속하니 예측이 가능하다.”   앞으로 감염 추세가 어떻게 될까. “다행인 것은, 그동안 주기를 보면 이번 달쯤 오미크론 다음 변이(파이)가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나오지 않고 있다. 아직 조심스럽지만 오미크론이 상당히 안정됐다는 관측이 있다.”   BA.5와 BA2.75가 나왔다. 확진자가 얼마나 늘까. “그것도 다 오미크론이다. 하루 30만까지 예측이 나오는데 솔직히 그건 자신이 없다. 사람과 바이러스가 어떻게 움직일지…. 올 11월 전후해 큰 파도가 한 번은 온다고 본다. 올 2~4월에 앓은 사람이 6개월 지나면 면역이 떨어진다. 또 4차 백신을 지금 맞은 사람도 4개월 후인 11월쯤에 효력이 떨어진다.”    치명적 변이 출현 가능성 작아   다시 치명적인 변이가 나타날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빠르고 독성은 낮아지는 쪽으로 가는 게 자연의 법칙이다. 바이러스가 살기 위해서 사람 몸에 들어가는데 사람이 죽으면 바이러스도 죽는다.”   치료제는 변이와 상관없나. “다행히 변이에도 잘 듣는다. (설명을 위해 빨대를 들고 위쪽을 가리키며) 백신은 여기 변이 부분에 작용하는데 (빨대 아래쪽을 가리키며) 치료제는 이 부분에 작용한다. 변이가 생겨도 치료제는 다 들었다.”   실내 마스크는 언제까지 써야 할까. “내년 봄까지는 써야 할 거다. 실외 마스크는 과했다.”   이 와중에 원숭이두창까지 퍼진다. “원숭이두창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본다. 피부에,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에 모를 수 없다. 밀접 접촉으로 주로 옮는다. 우리나라는 모두가 보건의료 시스템에 들어가 있고, 의사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전파하기 때문에 바로 파악된다.” 강주안 논설위원

    2022.07.29 00:30

  • [예영준의 직격인터뷰] “어떤 정부도 자국 국민을 추방할 권한은 없다”

     ━  헌법학자 김선택 교수가 보는 북한어민 북송사건   예영준 논설위원 헌법학자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분단국이란 특수 상황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법률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가 채택된 이후 통일에 대비한 법 체계를 연구해 논문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남북 관계에 관련된 법제와 법 적용 문제에 줄곧 관심을 기울여 왔다. 다년간 법무부 통일법무과에서 수행하는 연구활동에 참여하는 동안 북한과의 민사사법 공조에도 관여한 경력이 있다.   김 교수는 2019년 11월 발생한 북한 어민 북송 사건을 헌법 위반이자 정부에 의해 행해진 범법 행위로 규정한다. 현 정부의 재조사로 사건의 진실이 한꺼풀씩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김 교수를 만나 헌법학자로서의 견해를 들어보았다.   ■  「 북한 주민은 ‘잠재적 국민’ 아닌 대한민국의 ‘현재적 국민’ 귀순 진정성이 아니라 돌아갈 의사 있는지 진정성 따졌어야 문 정부, 북송 불가피한 남북간 특별한 사정 있었는지 밝히고 지금이라도 북송 어민 정보 북측에 확인하는 게 정부의 의무 」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어민 북송 사건에 대한 헌법학자로서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우상조 기자 남북 관계 법제를 연구해 온 학자의 입장에서 북송 사건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을 것 같다. “이 사건 보도를 접하는 순간부터 의아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포 당시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왜 그 목선은 해상경계선을 넘나들기를 반복했으며 우리 군은 왜 굳이 공해상으로 나가서까지 나포를 해 왔을까. 이 사건의 경우 왜 해경이 아닌 군이 출동했을까.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 투성이다. 선장의 가혹행위에 대한 선상반란이란 정부 발표도 아직은 규명된 것이 전혀 없는 상태다.”   당시부터 북송은 위헌이란 입장을 밝혀 왔다. “당시 통일부 장관이 국회 외교통일위에 출석해서 ‘북한 주민은 잠재적 국민일 뿐’이라는 말을 했다. 잠재적 국민이기 때문에 귀순의사의 진정성 심사를 거쳐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잠재적 국민’은 써서는 안될 나쁜 표현이다. 명백하게 헌법에 반한다. 누구나 다 알듯이 우리 헌법 제3조에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기돼 있다. 북한 영토까지 포괄해서 대한민국 영토로 간주하는 것이다. 당연히 북한 주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남한에 있든 북한에 있든 다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다. 북한 주민은 ‘잠재적 국민’이 아니라 ‘현재적 국민’이다. 현실적으로 북한 지역에 대한민국의 법이 실행이 안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북 주민이 경계선을 넘고 남한으로 넘어오면 바로 대한민국법이 자동으로 적용된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건은 국민의 생명 안전을 정부가 침해한 사건이다.”   귀순 의사가 진실하지 않아 북송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자의적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탈북자를 북송할 수 있다는 논리인데 큰일 날 일이다. 귀순 의사의 진정성을 따질 것이 아니라 북으로 돌아가고 싶은지의 의사를 물었어야 했다. 그에 반해 돌려보낸 것은 추방이다. 어떤 나라, 어떤 정부도 국가의 구성요소인 자국 국민을 추방할 권한은 없다.”   당시 북송을 결정한 문재인 정부의 논리는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북한 주민을 외국인에 준해 취급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비정치적 중대범죄자에 대해서는 난민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국제법을 원용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에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북한과 북한 주민을 외국에 준하거나 외국인에 준해 법을 적용한 사례가 있긴 하다. 가령, 북한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사람에 대한 의료인 자격 인정 여부에 관한 사례나 또는 외환 거래 등 개별적 사건에서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개별 법률을 유추 적용한 것이지 원칙적인 판례가 아니다. 만일 북한 주민을 외국인으로 간주한다고 해보자. 탈북해서 남쪽으로 오고 싶은 사람을 다 외국인으로 보고 귀환을 시켜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에 들어오는 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다.”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의 예외 규정을 거론하면서 범죄자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근거로 제시하기도 하는데.   “그건 탈북자 보호와 정착 지원 대상을 규정하고 이에 해당되는 사람들에게 정착금과 직업훈련, 교육 등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 법의 보호 대상이 되는 것과 대한민국 국적을 인정받고 말고의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실제 우리나라에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법의 보호대상으로 지정되지 못한 탈북자들도 수십명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처리했어야 했나. “대한민국 국민이니 당연히 대한민국 형사법 체계에 따라 기소하고 재판해서 처벌해야 한다. 그냥 원론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판례가 있다. 북한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한 형사처벌이 수원지방법원 판결로 집행됐다.”   자백만으로 처벌할 수 없어 돌려 보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법에 자백이 자기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는 처벌 못한다고 명문화되어 있다. 그걸 아는 정부가 증거를 찾을 노력은 않고 북한이라는 비인도적인 곳으로 보낸 건 우리의 법치주의를 스스로 부정한 행위다.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째, 그들이 타고 온 목선을 잘 수색하면 그 안에 뭔가 범죄의 증거가 나왔을 것이다. 그 배 유류물을 수거해서 국과수에 맡겨 분석을 했어야 된다. 그런데 정부는 그 목선을 압수수색은커녕 소독을 하고 보냈다. 16명 살인이라는 중대범죄의 증거를 대한민국 정부가 인멸한 것 아닌가. 또 하나는 북한에 요청을 하는 것이다. 공범 1명이 북한에 체포되었다고 하지 않나. 남북간에 사법공조를 한 사례가 없지 않다. 저작권 관련이나 탈북자의 상속 재산 문제 등 민사 분야에 국한되긴 하지만, 내가 법무부와 일하면서 그런 사법공조에도 관여했다. 물론 형사사건에 공조가 이뤄진 적은 없는데, 북한이 협조하지 않고 돌려보내라고 요구할지 모른다. 문제는 정부가 그런 요청조차 하지 않고 서둘러 돌려보냈다는 점이다. 흉악범이라도 재판을 받을 권리 등 형사피의자, 형사피고인, 수형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런데 우리보다 더 형사사법 절차가 가혹한 북한으로 송환해 버렸다. 기본권 침해이자 반인권 행위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북한에 요구해야 할 일이 있는데 빠뜨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일어난 사건인데, 현 정부가 할 일이란 무엇인가. “북송된 탈북자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북한 쪽에 정보 제공을 요구해야 한다. (인터뷰가 이뤄진 다음날 북한에서 처형당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남북간 공식적 정보 제공에 의한 것은 아니다.) 북한의 법치주의 수준이 높지는 않겠지만 검사도 있고 사법부도 있으니까 두 사람이 어떤 재판을 받았고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면 지난 정부의 발표가 맞는지도 확인이 된다. 북한이 협조해 줄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정부는 두 사람을 북송해 줬으니 당연히 확인할 권리가 있다. 정부의 의무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북송에 관여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헌법과 법이 정한 원칙과 절차에 따르지 않았으니 북송 자체가 불법이고 범죄 행위다. 정확히 무슨 범죄인지는 내가 말할 것은 아니지만, 공무원 직무상의 범죄에는 해당될 것이다. 만일 그 혐의에서 벗어나려면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이 특별한 사정이 있었음을 먼저 입증해야 한다. 북한이 어떤 매우 중대한 정치적인 문제가 있어서 이 탈북자들을 송환해 주지 않으면 남북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등, 우리가 흔히 말하는 통치행위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정도만으로는 안된다. 개인적인 추정이지만 사건 당시 그렇게 급박하게 움직인 걸로 봤을 때는 뭔가 특수한 사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이번 사건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국가의 존립 이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남북 관계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국민의 안전과 자유라는 국가의 존립 목적에 우선할 수 없다. 세상에 어느 나라가 자국 국민을 북한으로 떠밀어 보내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 국가의 부작위에 의해 국민 생명이 희생된 것이라면, 강제 북송사건은 국가의 작위에 의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다시는 이런 사건이 재연되지 않도록 상세한 매뉴얼을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예영준 논설위원

    2022.07.22 00:34

  • [서경호의 직격인터뷰] “연착륙으로 가는 통로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  2008년 금융위기 예측했던 신현송 국제결제은행 국장   서경호 논설위원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미국·유럽과 한국 등 전 세계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속도감 있게 금리를 올리고 있다. 지난달 중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1994년 이후 28년 만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 전 세계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인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달 하순 연차보고서를 냈다. 핵심은 고인플레이션이 임박했으며, 인플레이션이 고착하기 전에 각국 중앙은행이 ‘빠르고 결단력 있게(quickly and decisively)’ 행동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수준의 금리 인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BIS는 고인플레가 고착되는 상황을 막으려면 각국 중앙은행이 단기적 고통, 심지어 경기 침체도 감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BIS는 1년 전 2021 연차보고서 제목을 ‘험난한 팬데믹 탈출(A bumpy pandexit)’로 달았다. 그때 보고서 내용처럼 팬데믹 탈출은 고난의 길이었고, 값비싸고 오래갈 생채기를 남겼다.   ■  「 중앙은행이 빠르고 결단력 있게 행동해 임금-물가 동반상승 막아야 재정건전성은 물가 안정에도 핵심, 중앙은행도 관심 가져야 할 과제 2008년 위기는 은행, 지금은 자본시장 취약이 문제 … 거시 운영 잘 해야 한국은 글로벌 시장의 차입국 아닌 채권국, 과도한 공포 느낄 필요없어 」    BIS 조사연구의 총책임자인 신현송 BIS 조사국장에게 최근의 국제금융 흐름과 연차보고서의 내용을 직접 들어봤다. 인터뷰는 화상 대화와 e메일로 진행됐다.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이 최근 스위스 바젤의 BIS 사무실에서 브리핑하는 모습. 신 국장은 “BIS는 중앙은행을 회원으로 하는 국제기구이며, 역사적으로 중앙은행 본연의 임무는 통화를 발행하고 통화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며 “요즘 BIS가 부각되는 이유”라 고 말했다. [사진 국제결제은행] 올해 연차보고서에서 경제주체인 기업과 노동자의 인플레이션 대응이 달라지면서 고인플레이션이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플레 심리가 확산하고 고착화하는 티핑포인트에 가까워지고 있고 이게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이 될 수 있다고 썼다. 한국에서도 대기업과 빅테크를 중심으로 임금 인상폭이 커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심화 메커니즘의 핵심에 임금과 물가의 상호 상승작용이 있다. 일단 경제가 고인플레 국면으로 들어가면, 임금-물가 상승작용이 시작된다. 이렇게 되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비용이 상당히 커진다. 중앙은행은 저인플레에서 고인플레 국면으로 전환되는 것을 우선 막아야 한다. 이런 전환은 급격히 일어나는 만큼 중앙은행이 시의적절하고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 게 특히 중요하다.”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은 없을 것   그래도 현재의 인플레이션 환경이 1970년대 오일쇼크 때보다는 좋다(benign)고 분석했던데. “1973년 석유파동 때는 브레튼우즈 시스템이 붕괴된 지 얼마 안 돼 국제금융제도가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지금은 각국의 통화정책 체계와 금융 질서가 견고해 1970년대식의 스태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는 정책 여지가 넓다. 또 그때에 비해 현재 유가상승폭이 훨씬 작다. 세계경제 구조도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 개선됐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대비 에너지 사용량, 즉 한 단위의 실질 국내총생산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양이 1973년 이후 현재까지 약 40% 정도 줄었다. 석유 의존도도 많이 낮아졌다. 전력발전에 사용되는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예상보다 빨리 하락한 덕분이다.”   그래서 괜찮다는 얘기는 아닐 텐데. “물론이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높은 변동성은 세계 경제 성장에 부담을 주고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연착륙(soft landing)으로 가는 통로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연차보고서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상황에선 가계와 기업부문의 의사결정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주기 전에, 신속하게 인플레이션을 다시 낮은 수준으로 유도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요약하자면, 장기간 지속되는 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실제 일어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위기 후엔 중기적으로 재정여력 확충해야   선진국은 코로나 대응을 위한 재정 투입을 줄이고 정상화하고 있는데, 한국은 뒤늦게 올해 2차 추경에서 수십조원의 자영업자 손실보상을 단행했다. 물가를 잡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BIS 방침에 따라 개별국가에 대한 구체적인 코멘트는 할 수 없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경제위기 또는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정부 지출이 있은 후에는 정부가 중기적으로 재정 여력을 다시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향후 재정·통화정책 정상화를 촉진하는 한 가지 방법은 성장친화적인 투자와 공급 측면의 구조조정을 다시 도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거시정책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   성장친화적인 투자와 공급 측면의 구조개혁은 요즘 한국에서도 강조한다. “기업의 설비투자와 같은 성장친화적 지출과 공급측면의 구조조정 정책은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통화·재정정책을 장기적으로 정상궤도로 돌려놓는 데 도움이 된다. 만약 재정지출 여력이 제한될 경우, 성장친화적인 조세제도 도입도 좋은 방안이다. 교육을 통해 인적자본을 키우고 지속가능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조합을 확보하는 것도 공급측면 구조조정 정책의 예다.”   재정건전성 관련해 선진국과 개도국 입장이 다를 수 있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은 모든 국가들에 중요하지만, 특히 개발도상국, 그중에서도 정부 부채를 중앙은행 발권력을 동원해 매입하려는 유혹에 취약한 나라에 매우 중요한 문제다. 역사적으로 정부 부채를 중앙은행의 화폐 발행을 통해 매입한 국가들은 화폐가치 폭락을 경험했다. 1980년대 부채위기를 겪은 남미국가들이 대표적이다. 중앙은행 본연의 임무인 화폐가치를 지키는 데 실패한 나라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완전히 분리돼 있다는 주장은 틀렸다. 경제가 잘 돌아가는 평시에나 대체로 맞는 주장이다. 한 국가의 재정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중앙은행의 화폐발행을 통해 재정적자를 메꾼다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한 덩어리로 묶인다. 둘 간의 부정적 상호작용이 생겨 인플레이션과 환율 변동으로 화폐가치를 지킬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재정건전성은 물가 안정에도 핵심 사안이며 중앙은행이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하는 문제다.”    변동금리대출 많은 나라, 금리 인상에 취약   한국은 가계부채 걱정이 많다. 1분기 말 현재 1859조원으로 GDP 대비 104.3%에 달한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얘기하겠다. 금융위기 때 태풍의 눈에 있던 선진국은 가계부채를 많이 정리한 반면, 금융위기 충격을 별로 받지 않은 주변국과 개도국은 가계부채가 계속 늘었다. 경기부양 목적으로 미래 소비를 현재로 당겨서 쓴 거다. 이미 부채가 많은 상황에선 정책 효과도 미미할 것이다. 특히 변동금리 주택담보 대출 비중이 큰 나라는 금리 인상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는 세대간 형평성 문제도 있다. 기성세대의 경우 주택가격 상승으로 혜택을 보는 반면, 젊은 세대는 주택 구입을 위해 더 많은 부채를 짊어져야 한다. 이러한 세대간 분열은 단순히 경제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신 국장은 2010년 한국 정부에서 일할 때 당시 추경호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현 경제부총리), 이창용 당시 G20 정상회의준비위원회 기획조정단장(셰르파, 현 한국은행 총재) 등 관료들과 함께 은행 선물환 규제, 외국인 채권 과세, 외환건전성부담금(일명 은행세) 등 외환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주류 경제학계에선 인정하지 않는 생소한 정책이었다. 외환시장 개입 아니냐는 국제금융기구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그랬던 정책이 이제는 글로벌 표준이 됐다. 신 국장은 “금융위기 이후 학계와 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도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면서 이제 거시건전성 정책이 주류가 됐다”고 말했다.   거시건전성 3종 세트는 어떤 의미인가. “경제학에 나오는 차선의 이론(theory of the second best)처럼 규제라는 불완전 요소를 이용해 역시 불완전 요소인 글로벌 유동성의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이 철학적 토대였다.”   요즘 외환시장이 불안하다. 환율이 달러당 1300원을 넘어섰다. ‘3종 세트’가 있으니 괜찮은 건가. “그렇게 단적으로 얘기할 문제는 아니다. 2008년과 지금은 위험요인이 다르다. 그때는 은행부문이 취약해서 3종 세트로 정밀수술을 한 것이다. 지금은 비은행부문인 자본시장이 문제여서 뾰족한 방법은 없다. (한국 얘기라기보다는) 글로벌 시각에서 얘기한 거다.”   방법이 없다니 걱정이다. “거시정책을 튼튼하게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 2010년 이후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차입자가 아니라 채권자로 바뀌었다. 그때보다 근본은 탄탄해졌다. 공포를 느낄 필요는 없다.”   민간의 해외투자 자산이 많아진 만큼 외환보유액의 중요성이 과거보다 덜해졌다는 주장이 있다. “경상수지만 볼 게 아니라 대외자산의 포트폴리오 전체를 봐야 한다. 기관투자가가 해외의 외화표시 채권에 많이 투자하면 단기 차입인 헤징 수요도 커진다. 자본시장에서 장단기 불일치가 없도록 해야 한다. 외환위기 때도 장단기 불일치로 뼈아프게 당하지 않았나. 이같은 만기불일치 문제에 대응하려면 국가의 안전자산인 외환보유액이 절실하다.”   주식·채권값 동반하락, 물가 잡혀야 끝나   최근 주식·채권·코인 등 금융자산 가격이 동시에 급락했다. “2000년 이후 통상 주식과 채권가격이 반대로 움직여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최근 주식과 채권의 동반하락은 특이한 현상이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중요한 거시 위험요소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채권시장은 인플레이션과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에 취약하다. 최근의 달러 강세는 국제 자금시장 상황을 더 경직시켰다. BIS 연구에 따르면 강한 달러는 보다 긴축적인 국제금융시장 여건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암호자산 투자자 입장에서는 지금의 금융시장 상황이 주식-채권-암호자산의 세 가지 악재(triple whammy)가 동시에 터진 것이다. 주식과 채권의 양의 상관관계는 인플레이션이 다시 통제될 때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코인 가격 급락이 지금보다 더 심해지면 코인에 투자한 금융회사의 도산 등으로 이어져 시스템 리스크로 비화할 가능성은 없나. “현재 시점에서 암호화폐 가격의 폭락이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와 같은 금융시스템 전반의 위험을 야기할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향후 탈중앙화 금융(DeFi)이 더욱 보편화되면, DeFi의 취약성이 금융시스템 전체의 안정을 저해하고 나아가 거시경제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신현송 국장 「 1959년 대구 출생.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옥스퍼드대와 런던정경대,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프린스턴대 교수였던 2006년에 2년 뒤 금융위기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고 실제 위기가 터지면서 주목받았다. 2010년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으로 일하며 외환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도입했다. 2014년 국제결제은행(BIS) 경제자문역 겸 조사국장에 임명됐다. 미국·유럽 출신이 아닌 비서구권 학자가 임명된 것은 BIS 역사상 처음이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 서경호 논설위원

    2022.07.08 00:30

  • [최준호의 직격인터뷰] “누리호 개발 성공하면 장 지진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  누리호 엔진개발 주역 한영민 항공우주연구원 엔진개발부장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발사를 앞두고 일주일 전부터 매일 밤, 발사대에서 엔진이 폭발하는 꿈을 꿨습니다. 2018년 시험 발사 때도, 지난해 10월 첫 발사 때도 그랬습니다. 이번엔 성공하느라 그랬는지, 21일 발사 이틀 전에 폭발하는 꿈을 꾼 게 전부였습니다.”   탱크 같은 인상을 한 남자의 속마음은 여렸다. 그간 새카맣게 타들어갔을 것 같은 얼굴에서 소년 같은 웃음이 피어올랐다.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의 핵심인 액체연료 로켓 개발을 책임져온 한영민(54)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엔진개발부장. 누리호 발사 성공 3일 뒤인 지난달 24일 대전 항공우주연구원에서 만난 그의 얼굴엔 그날의 흥분이 여진처럼 남아 수시로 올라왔다. 2000년 추력 13t의 항우연 첫 액체 과학로켓인 KSR-3를 시작으로 로켓엔진 개발에 몰두해온 지 22년의 세월이다. 한 부장을 만난 곳은 항우연 ‘동(動) 특성 실험실.’ 75t 로켓엔진 4개를 묶은 클러스터링 상태에서 각각의 엔진 연소기를 움직여보는 짐벌링(Gimbaling)을 실험하는 곳이다. 수차례 연소시험을 거쳐 거무스름한 빛을 한 높이 2.9m 거대한 엔진 묶음이 하늘을 보고 뒤집어져 있었다.   ■  「 항우연 입사 후 22년간 로켓 개발 “발사 전날 탑돌이하며 성공 기도” 75t 발사체 개발, 러시아가 도움 줘 미국의 전략물자 통제 푸는게 숙제 」    한국 독자기술로 개발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심장인 로켓엔진을 개발한 한영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엔진개발부장이 지난 달 24일 오후 대전 항우연에서 75t급 액체 로켓엔진 4기가 묶여진 누리호 1단 클러스터링 앞에 섰다. 프리랜서 김성태 발사에 성공한 소감이 궁금하다. “너무 기뻤다. 1, 2단이 올라갈 때만 하더라도 나로우주센터 발사지휘센터(MDC) 안은 긴장감 때문에 개미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발사 879초 뒤 고도 700㎞에서 3단 엔진이 정지되고 성능검증위성이 분리되는 순간, 나를 포함해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서로 껴안고, 손뼉 치고, 울기도 했다. 나도 몰랐는데 녹화 장면을 보니 동료에게 손으로 하트를 크게 그리는 장면까지 나왔다. 나중에 아내가 ‘나한테는 평생 한 번도 안 해주더니 어떻게 직장 사람들에겐 그런 걸 해주느냐’고 핀잔을 줬다. 가족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날이 아닌가 싶다.”   원래 발사는 15일이었다. 두 차례 연기 때 심정이 어땠나. “첫 발사 예정일인 15일은 바람이 너무 강해서 어쩔 수 없이 연기한 거라 담담했다. 다음날 아침 흐린 날씨 속에 조립동에서 다시 누리호를 꺼내는데, 햇빛이 딱 그곳에만 비쳤다.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오늘은 잘 되겠다’고 기대를 했는데, 발사체를 세우고 전기적 신호를 점검하는데 센서 오류 신호가 떴다. 1단 산화제 탱크 센서였다. 1, 2단을 분리해 센서를 고치려면 장마철 지나고, 태풍도 오고 한 두 달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센서 하나 때문에 결국 또 발사를 못 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답답했다. 다음날 회의에서 센서 문제라면 굳이 1, 2단을 분리하지 않고 사람이 점검창 안으로 들어가서 수리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갑자기 분위기가 반전됐다. 실제로 안으로 들어가보니 사람이 충분히 설 수 있는 공간이 돼 센서를 교체할 수 있었다. 그렇게 21일 발사가 최종 결정됐다.”   최종 발사 전날 잠은 제대로 잤나. “나로우주센터 기숙사가 발사장 아래, 조립동에서 700m쯤 떨어진 곳에 있다. 공학을 한 사람이 이러면 안되지만, 조립동을 탑돌이하면서 ‘하느님, 어머님, 부처님 이번 발사는 무사하게 안전하게 꼭 성공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나는 무교지만, 예전에 가톨릭 교회를 다닌 적이 있고, 집사람 쪽은 불교다. 뭐든 기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 밤은 엔진이 폭발하는 꿈도 안 꾸고 잤다.”   엔진이 폭발하는 꿈을 자주 꿨다는 말인가. “2018년 시험발사체 때도 그렇고 지난 1차 발사 때도 그렇고, 발사 일주일 전부터 발사대에서 로켓엔진이 폭발하는 꿈을 매일 꿨다. 이번엔 발사 이틀 전에 한 번 꾸는 정도였다. 엔진이 워낙 고에너지의 장치이다 보니 액체산소와 케로신(연료)이 만나게 되면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난다. 처음 시동 점화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이때 폭발하게 되면 1단뿐 아니라 2, 3단에 채워진 연료와 산화제까지 연쇄 폭발해 정말 큰 데미지를 입는다.” 세계 7대 우주강국 도약의 주역인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Ⅱ)의 심장을 순수 기술로 개발한 한영민 누리호 엔진 개발부장이 24일 오후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75t급 액체연료 엔진 4기가 묶여진 누리호 1단 로켓 엔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김성태/2022.06.24.   실제로 엔진이 폭발한 적이 있었나. “그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지만, 있었다. 2020년 5월 2단 엔진 고공연소시험을 할 때다. 액체산소와 케로신이 나올 때 바로 점화제를 넣어야 하는데, 점화제쪽 필터가 막혀 점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액체산소와 케로신이 많이 나와버렸다. 2단 엔진은 고도 50㎞ 이상 고공에서 연소되는 거라 진공챔버 안에서 시험을 하는데, 폭발이 일어나 엔진과 챔버 설비에 많은 손상을 입었다. 다행히 개발진은 1㎞밖에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안 다쳤다. 미국 스페이스X도 발사 후 2단이 비슷한 원인으로 폭발한 적이 있다. 우리로선 큰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다.”   다른 어려움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그중에서도 외부에서 항우연을 바라보는 불신이 참 힘들었다.  2018년 75t 엔진 1개를 장착한 시험발사체를 쏘아올릴 땐 우리도 ‘이게 잘 날아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많았다. 하물며 외부에서야 어떠했겠나. 국내 우주공학과 교수들도, 또 외국에서도 ‘항우연이 저 엔진을 개발해서 과연 날릴 수 있을까’하는 의심의 시각이 많았다. 교수님들 중에는 ‘항우연이 75t 엔진을 개발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얘기한 사람도 있었다.”   발사체 개발에 러시아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나로호 개발 때 러시아와 우주기술협력 협정도 맺었고, 공식·비공식적으로 러시아의 도움을 많이 받은 게 사실이다. 그 전까지 우리는 발사체 전체를 한 번도 조립해본 적이 없었고, 발사대와 조립동을 지어본 적도 없었다.”   2013년 나로호 발사 후 러시아가 추력 210t의 최신형 앙가라 엔진을 남겨두고 갔는데. “처음엔 지상검증용 발사체(GTV)라 당연히 모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실제 로켓엔진이었다. 솔직히 엔진 개발자 입장에서 욕심이 났다. 앙가라 엔진은 다단연소 사이클 엔진으로는 세계 최고의 엔진이라 ‘넘사벽’이란 생각을 많이 했다. 예전에 러시아에 가 보면 우주 관련 박물관에서나 RD-170이나 180 같은 러시아 우주로켓 엔진을 볼 수 있었다. 연소기 4개가 묶여있는 추력 800t급 엔진이었다.”   누리호 다음 차세대 발사체의 엔진 개발도 담당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차세대 발사체에 들어가는 엔진 추력은 100t으로, 나로호 1단에 쓴 러시아 앙가라 엔진처럼 다단연소 사이클이다. 1단부에 이걸 5개 달고, 2단부에는 10t 엔진 2개를 쓴다. 엔진출력을 40%에서 100%까지 조절하고, 재점화도 할 수 있다. 스페이스X처럼 거꾸로 내려올 수 있는 기본적인 구조를 갖춘 셈이다. 그렇다고 재사용을 목적으로 차세대 발사체를 개발하는 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기술들도 많이 필요하다. 아마도 차세대의 다음 발사체에서는 그런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   나로호에 쓴 앙가라 엔진이 본격적으로 도움이 되겠다. “아직 엔진을 잘라보진 않았다. 로켓 내부에 들어가 엔진 시스템 구성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정도는 했다. 엔진의 사이즈, 밸브 위치, 배관 구성 등 배치도를 파악한 정도다. 하지만 앙가라 엔진은 추력이 200t을 넘는다. 우리 차세대 발사체용 엔진과는 추력이나 압력에서 차이가 크다. 때문에 리버스 엔지니어링(역공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앙가라 엔진이 도움은 되겠지만, 어차피 설계는 우리가 스스로 해야 한다. 이미 기초연구 차원에서 2016년부터 10t급 다단연소 사이클 엔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일본에는 우주로켓 기술을 전수했는데 왜 한국은 안 도와주나. “누리호 개발 당시 75t 엔진 연소기 시험설비가 국내에 없어 러시아는 물론 미국에도 알아봤는데, 미 국무부가 답변을 하지 않았다. 3개월 정도 답변을 기다렸는데, 알아보니 미 국무부가 답변을 하지 않는 건 거절하는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은 우주발사체나 로켓 기술이 다른 나라로 확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은 1970년대에 미국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중국이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동아시아에서 한 나라 정도는 지원해야 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젠 우리도 자력으로 우주로켓을 개발했는데, 미국이 달라지지 않을까. “미국은 도와주지 않았는데 자력으로 발사체를 개발한 나라가 있으면 이너서클로 넣어주는 전례가 있다. 인도가 그랬다. 현재론 한국이 개발한 우주발사체에 미국 부품이 들어간 위성은 쏘아올릴 수 없다. 미국의 전략물자통제 정책 때문이다. 하지만, 인도의 예에서 보듯 미국도 결국 우리나라를 인정해줄 거라 생각한다. 한·미 미사일협정이 저렇게 빨리 풀릴 줄 누가 알았나.” 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2022.07.01 00:32

  • [강남규의 직격인터뷰] “전쟁의 벼랑끝 세계 경제…그 끝은 스태그플레이션”

     ━  세계 최대 헤지펀드 매니저 레이 달리오 회장   강남규 S팀 기자 물가급등, 미·중 패권경쟁, 우크라이나 사태, 미 통화긴축, 성장둔화….. 경제뿐 아니라 사회·정치·군사 리스크가 한꺼번에 소용돌이친다. 증시와 원자재 시장에서 가격이 요동친다. 시장 참여자와 비즈니스 리더, 정책 담당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궁금증을 예견이라도 한듯이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릿지워터어소시에이츠 레이 달리오 회장이 『변화하는 세계질서』를 발표했다. 빠른 셈으로 고수익이나 좇는 헤지펀드 매니저가 재테크 책이 아닌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다룬 책을 썼다. 억만장자(약 21조원)의 지적 허영일까. 이런 경계심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줌(Zoom)으로 그를 단독 인터뷰했다.   ■  「 지배적 세계 리더와 질서 부재로 갈등 수습 못하고 상황 위험해져 경제논리가 수익 결정 않는 대신 정치와 지정학적 변수 중요해져 」    레이 달리오 브릿지워터어소시에이츠 회장은 “경제논리보다 안보와 이념이 우선하는 시대가 시작됐다”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헤지펀드 운용과 국제정치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정치와 경제는 분리할 수 없다. 정치만큼 경제와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없다. 특히 지금은 경제논리가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때가 아니다. 지금은 (대공황이 발생하고 2차대전이 발발한) 1930년대 이후 정치와 지정학적 요인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국제정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하기에 책까지 썼는가. “세계는 전쟁의 벼랑 끝에 서 있다. 절벽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져 있는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전쟁의 벼랑 끝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 앞으로 더 강도 높은 경제제재가 이뤄질 것이고, 주요 나라가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벼랑 끝 시대엔) 다른 쪽에 상처를 입히도록 설계된 활동(경제제재)이 본격화한다. 역사를 보면 각종 경제제재는 전쟁 직전에 일어났다. 그런데 세계는 무기력하다.”   무기력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요즘 세계는 더 이상 하나의 힘에 의해 지배받지 않고 있다. 미·중뿐 아니라 러시아와 유럽도 서로 갈등하고 있다. 지배적인 세계 리더와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유엔(국제연합)은 상황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할지 투표만 하고 있다. 그 바람에 상황은 더 위험해지고 있다. 개인들이 (투자) 계획을 세우려면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변화하는 세계질서』를 보면 달리오 회장이 말한 전쟁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국지전이 아니다. 주요 나라 또는 많은 나라가 얽히고설킨 전쟁이다. 때로는 “통치자가 누구인지, 누가 국가 시스템을 작동하도록 할지를 놓고 한 나라 내부에서 벌이는 내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1980년대 초 미 물가상승률과 기준금리, 다우지수 앞서 정치와 지정학적인 요인이 경제에 우선한다고 말했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면 좋겠다. “지금은 경제논리가 재화와 서비스 이동이나 수익을 결정하는 상황이 아니다. 이전(1980년 이후 30여년 동안)에는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곳으로 돈이 흘렀다.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 덕분에 경쟁력이 높은 나라의 생활 수준이 높아졌다. 다시 말하지만 돈은 이익을 좇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러나 현재는 이념과 정치, 지정학인 요인이 자본 등 자원을 어디에 투자할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경제보다 이념과 정치, 지정학적인 요인이 우선한다는 얘기다. 그 바람에 글로벌 공급망 등이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는 투자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전쟁의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했는데, 역사를 보면 전쟁은 패권의 변곡점일 때가 많았다. 지금이 그런 때인가. “한 나라가 전쟁을 거치며 패권국가로 떠올라 번영한 뒤 쇠퇴한다. 지금은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압도적인 힘과 세계 금의 80%를 보유했다. 지금은 중국의 도전을 받고 있다.”   패권의 출현-번영-쇠퇴가 어떻게 이뤄지는가. “한 나라의 화폐가 기축통화가 되면, 다른 나라들이 기축통화를 보유하는 방식으로 저축하려고 한다. 요즘 한국과 중국 등이 미 국채를 사는 방식으로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패권국에서 부채 증가를 의미한다. 빚이 늘어나는 현상은 쇠퇴기의 세 가지 증상 가운데 첫번째다. 둘째는 내부의 빈부격차가 벌어지며 나타나는 사회·정치적 갈등이다. (패권국 내부의)빈부격차, 갈등, 소통 부재는 항상 더 나쁜 일을 예고했다. 셋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라이벌의 등장이다.”   세 가지 증상을 듣고 보니 지금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떠오른다. “미국이 쇠퇴기에 들어섰지만, 아직 강하다. 신기술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고, 교육 수준도 최고다. 최고의 대학과 리서치 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여전히 달러는 기축 통화다. 반면 여러 분야에서 약해지고 있다. 국가 부채가 심각하다. 중국과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내부 갈등도 심각한 수준이다.”   블룸버그 통신의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달리오 회장의 개인 재산은 161억 달러(약 21조원)에 이른다. 그가 세운 브릿지워터의 자산은 2355억 달러(올해 3월 말 현재)에 이른다. 그는 브릿지워터 회장이면서 최고자산운용책임자(CIO)도 공동으로 맡고 있다.   CIO라는 운용 총괄까지 맡고 있는데, 현재 인플레이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현재 상황이 80년대와 닮았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70년대와 비교하는 게 좋을 듯하다. 그때 주식과 채권 시장은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아주 형편없었다. 멕시코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한 82년 8월 다우지수가 저점을 찍고 반등했다(그래프 참조). 그리고 80년대에 주식과 채권 시장은 호황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인플레이션 상황이 얼마나 이어질까. “베트남 전쟁 등으로 70년대 물가가 크게 뛰었다. 이전에는 물가에 대한 걱정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70년대 들어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렇게 바뀐 패러다임은 약 10년간 지속됐다. 그리고 80년대 초 미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긴축으로 물가가 잡혔다.”   기준금리를 크게 인상했으니 이제 물가가 잡히는 것인가. “중앙은행은 낮은 물가와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지정학적 이유 때문에 인플레이션은 더 심해지고 (투자의) 효율성은 떨어지면서 성장률은 낮아진다. 이런 요인이 작용해 결과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달리오 회장은 통화량 증가만으로 최근 물가 급등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변화하는 세계질서』 등에서 한 나라 내부의 사회·정치적 갈등과 지정학적인 요인 등이 물가를 더 오르게 하고,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저성장-고물가 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플레이션 시대엔 어떤 자산이 유효할까. “(요즘 같은 시대에) 채권은 나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채권이란 자산은 가치가 떨어진다. 정부는 많은 돈을 찍어내 이자율보다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려는 경향이 있다(정부가 부담하는 실질금리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등이 고강도 긴축으로 돌아서고 있다.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통화를 긴축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준금리가 충분히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바람에 채권 보유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따른 손실을 보상받을 만큼 충분한 수익을 얻지 못할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   투자할 나라를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지금은 (고수익보다는) 안전한 투자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는 시기다.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있다. 국가별 차이도 아주 크다. 나는 세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어떤 국가에 투자할지를 결정한다. 첫째, 재정적으로 튼튼한 곳이다. 어느 나라가 수입이 지출보다 큰지, 대차대조표가 튼튼한지를 살펴본다. 둘째, 내부 갈등의 정도다. 내부 갈등이 심한 나라에 투자하면 부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해야 한다.”   셋째 기준은 무엇인가. “전쟁의 위험에 처해있는지, 달리 말해 중립적인지 여부를 살펴본다. 요즘 같은 시대에 중립적인 나라가 괜찮다. 그리고 세 가지 기준 외에 경제의 자립 정도도 살펴본다. (중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자급자족하지 못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최근 채권과 주식 가격이 요동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가 상승을 이끄는 요인(임금·원자재 가격 등)도 변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채권을 처분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주식) 가격에도 반영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다시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악순환).”   ■ 레이 달리오 「 1949년 미국 뉴욕 퀸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재즈 음악가였다. 달리오는 롱아일랜드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 MBA 코스를 마쳤다. 그가 주식에 손을 댄 시기는 12세 때였다. 골프장 캐디로 번 돈으로 주식을 사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고등학교 때 그의 포트폴리오 규모가 수천달러에 이를 정도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장내 트레이더 등으로 일하다 75년 브릿지워터를 세웠다. 젊은 시절 그는 아주 공격적으로 베팅하다 파산하기도 했다. 그는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앞서 개인의 삶과 인생·투자철학을 담은 『원칙(PRINCIPLES)』을 발표했다. 」 강남규 S팀 기자

    2022.06.17 00:32

  • 문희상 "팬덤정치에 쫄아 할말 못한다? 대통령 하면 안된다" [고정애의 직격 인터뷰]

    고정애 논설위원 2년 전 현역 정치에서 물러난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교장이 됐다. 6·15 남북 공동선언 기념일에 맞춰 개교하는 ‘김대중정치학교’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사상·정치·정책·리더십을 가르친다고 한다. 1기생 50명을 선발했다는데 20여 명이 현역 의원이다.       8일 여의도에서 그와 만났다. 개교 준비로 분주한 그는 “이재명 의원이 신청하겠다고 했는데 하지 말라고 했다”라며 웃었다. 정치색을 우려했던 모양이다. 그는 근래 민주당 비대위원장 후보로도 거론됐다. 2012년과 2014년 야당 시절 비대위원장을 맡아 대선 패배 등의 후유증을 성공적으로 수습해내서다. ‘겉은 장비(張飛), 속은 조조(曹操)’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민생과 통합의 김대중·노무현 정신으로 돌아가는 게 민주당 혁신의 알파요,오메가다. 강성 지지자만 국민이라는 생각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했다.그는 DJ의 청와대 정무수석,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8일 여의도에서 “김대중ㆍ노무현 정신으로 돌아가는 게 민주당 혁신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말했다. 그는 15일 개교하는 김대중정치학교 학교장이기도 하다. 김현동 기자   -20년 집권론까지 나왔던 민주당이 연패(連敗)했다. “지자체 선거에서 진 건 대통령 선거에서 졌기 때문이다. 세세하게 따지면 이유가 100가지도 넘겠지만 말이다. 대선에선 왜 졌냐. 그것도 수백 가지 이유가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얘기 안 하는 거 한 가지만 하겠다. 촛불 혁명의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탄핵한 것이다. 그걸 해결하는 방법에 총력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소홀했다. 이명박·박근혜 10년의 모든 것을 지우려고(anything but 이명박·박근혜) 하니 오만과 독선이 됐다. 우리만 옳다는 원칙주의·교조주의적이 됐고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긴 시간을 해서 국민이 지루해했다. 동력을 상실했고 개혁에도 실패했다. 이제 ‘너희들만 개혁해라’가 됐다. 국민을 무섭게 알아야 한다.”   -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강행한 게 패인으로 거론된다.  “검수완박이란 조어(造語)를 추진하는 쪽(민주당)에서도 그 단어를 쓰던 데 말이 안 된다. 검찰개혁의 출발 자체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테마였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하려다 실패해서 검찰에 의해 타살됐다는 자책감 같은 게 나도 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에겐 없겠느냐. 나는 검찰개혁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지지하는 국민이 더 많다고 본다. 지금은 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공안정치’가 다가온다. 검찰총장 시킨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휘하에 똑똑하고 잘난 사람은 전부 검찰 출신일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만 (공직에) 앉힌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검찰 공화국으로 간다. 더 큰 불행의 예고 같다. 발표 때마다 가슴이 섬찟섬찟하다.”   -지방선거 직전에 한 건 문제다.  “그렇게 하면 안 됐다. 잠깐 이기려고 편법을 쓰면, 나도 경험이 있지만(※그도 의장 막바지에 선거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의 강행처리를 도왔다) 불법은 아니지만, 편법은 편법이다. 그걸 쓰는 순간 꼼수가 되고, 꼼수는 국민이 판단한다.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정당의 존립 의미가 없어져 망하는 거다. 그런 수순으로 갔다.”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와 이재명 대선 후보의 인천 계양을 출마도 패인으로 거론된다.  “그건 잘못된 거다. 선거에서 지면 두 가지를 해야 하는데 하나는 성찰이고 하나는 미래에 대한 제시, 즉 변화와 혁신이다. 그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건 책임지는 부분인데 누가 지느냐다. ‘모든 사람이 다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건 ‘모든 사람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Everyone’s friend is nobody’s friend)처럼 아무도 책임을 안 진다는 얘기다. 두 사람이 책임져야 했다. 후보와 당 대표다. 정치하려면 국민에 의해 다시 불리는 날까지, 안 하는 게 제일 좋고, 그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두 가지 착각이 있었다. 대선 끝나자마자 22일 만에 지자체 선거를 했다. 어떻게 돌파해야 하나 하다가 순서를 잃어버렸다. 박빙으로 졌기 때문에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란 말을 만들었다. 한 표를 져도 민주주의에선 지는 거다. 빨리 인정하고 다음 작업으로 가야 했는데 그걸 생략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또 나오니 국민이 헷갈린 거다. 모든 게 그래서 생기는 혼란상이다.”   -이로 인해 친이재명·친문재인 내분이 심하다. 일각에선 분당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분당할 정도의 위기라는 말은 있을 수 있는데 그렇다고 분당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기회는 위기일 때 온다. 최소한도 이번에 집권한 당보다 (민주당이) 훨씬 역사와 전통이 빛나고 뿌리가 깊다. 반드시 집단 지성이 해결해줄 거라고 믿는다. 국민을 믿는다. 당원을 믿는다.”   그는 비대위의 세 사람이 중요하다고 봤다. 전당대회 준비위원장과 평가위원장, 혁신위원장이다. 전대 준비위원장은 공정한 사람, 평가위원장은 이낙연 쪽 사람, 혁신위원장은 이재명 쪽 사람이 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신이 비대위원장 시절 문재인·안철수 사이를 중재하던 방식이다. 그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쟤 책임’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라며 “서로 헐뜯고 해봤자, 난파선 위에서 선장 되면 뭐하나”고 했다.    -이재명 의원이 전대에 나올 거라고 보나. “전적으로 본인 판단에 달렸다. 나한테 물어보면 나는 하지 말라고 그럴 거다. 맞지 않는다. 불려 나올 때까지 참아야 한다. 여기서 너무하면 모든 ‘X 바가지’를 뒤집어써야 된다.”   -나온다면.  “너무 걱정할 게 없다. 나오면 붙어서 국민이 판단한다. 집단지성을 나는 믿는다.”    -박지현 당시 비대위원장이 제기한 586 용퇴론에 대해선 당 안팎의 평가가 엇갈린다.  “그때도 내가 한 말이 있다. 비대위원장의 말 자체는 잘못된 게 하나도 없다. 다만 선거 1주일 전에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세대교체론 자체에 확신이 없는 사람이다. 5·16 쿠데타 직후에 김종필이 만든 말인데 최초에도 실패했다. 강물은 뒷물에 의해 저절로 밀려 나가게 돼 있다. 그 판단은 국민이 하고 역사가 한다. 비대위원장이 아니라.”    2015년 1월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 시절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에서 이희호 여사를 예방하던 모습. [중앙포토] -새 비대위원장도 586의 상징적 인물 중 한 명인 우상호 의원이다. “(웃음)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한 사람이다.”    -민주당 내 586 다음 세대 의원들을 두고도 논란이 있다.  “대의민주주의가 존재하는 헌법상 우리들의 대표다. 그걸 아니라고 하면 대의민주주의 부정이고 의회 무시다.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그렇게 될까 봐 걱정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거기에 빠진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에 대한 혐오감이 있다. 새로운 정치하려면 의회를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대통령이 여당에 오더를 안 내리고, 합의해서 그냥 끌고 가게 하면 그건 멋진 대통령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그랬다. 여야의 합의가 다 나오면 어떤 경우도 다 따랐다. 지금은 정치가 죽기 직전이다.”    -민주당의 강성 팬덤 정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큰데. “나는 팬덤 정치 자체를 비판하지 않는다. 미국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생긴 이래 큰 고민을 한다. 중요한 건 정치인의 태도다. 겁내고 졸아서 할 말, 할 걸 못한다는 건 잘못된 것이다. 정치인이 아니라 정상배다. 앞으로 그런 사람은 대통령 하면 안 된다.”    -170석 야당이란 걸 경험해본 적이 없어 전략적이 될 필요가 있겠다.  “당연하다. 서로 죽기 살기, 승자독식, 편 가르기, 이분법의 정치문화 체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하물며 한 정당의 주류·비주류 간에도 그런 싸움을 하면 되겠나. 상대를 적이 아닌 라이벌, 경쟁자로 봐야 한다. 난 선당후사(先黨後私)란 말을 안 쓴다. 선공후사(先公後私)다. 당보다 앞서는 게 공이다. 여소야대 속에서 야는 더군다나 성숙하고 집권경험이 있는, 5년밖에 못하고 뺏긴 이런 사람들이 통렬한 반성 속에 그걸 해야 한다.”    -후반기 원 구성이 안 되는데, 법사위원장 배분이 걸려있다. “답은 딱 한 가지다. 대화해서 새 합의를 해야 한다. ‘아니 약속했잖아’ 하는데 약속은 국민의힘이 검수완박 때 먼저 깼다. (여당이) 진솔하게 속내를 얘기해야 한다. 그러면 여기도 대신 어느 위원회를 달라, 이렇게 타협이 가능하지 않겠나.”    -박지원 전 대표가 양산에 갔던데,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까. “전혀 아니다. 문 전 대통령의 원칙에 어긋난다. 양산에 가는 사람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간다. 문 전 대통령을 만날 뿐 아니라, 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에게 ‘앞으로 정치적 꿈이 있소’란 차원의 뜻도 있다.”    -윤 대통령에게도 한마디 해달라.  ‘대통령은 국민 통합, 국가경영 두 개로 평가받는데 곱셈(관계)이다. 국민통합이 없으면 국가경영을 아무리 잘하면 뭐하나. 빵점이다. 나는 청와대를 서둘러 나올 때 비판했지만,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에서 벗어난 건 잘한 일이라고 했다. 도어스테핑도 잘한 일이다. 기자들하고 자주 만나는 건 국민과 만나는 거고, 야당과 만나는 건 반대했던 국민을 만나는 거다. (대화)하려면 야당과 해야 한다. 야당과 만나는 건 자기를 지지하지 않았던 50%의 사람들과의 대화다.”   고정애 논설위원

    2022.06.10 00:30

  • [서경호의 직격인터뷰] 자가주거비·공공요금 반영하면 실제 물가 상승 7%대

     ━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 실증데이터로 보여준 장용성 서울대 교수   서경호 논설위원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설마’ 수준의 걱정이었는데, 올해 들어서 물가와 성장률 통계가 하나둘씩 나오면서 ‘이러다가’ 진짜 올지도, 혹은 사실상 이미 왔을지도 모른다는 ‘S의 공포’가 시장을 짓누른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월 전망보다 0.5%포인트 낮춘 2.5%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9%포인트나 올린 4%로 내다봤다. 어찌 됐건 고물가·저성장의 힘든 시기를 견뎌야 한다.   지난 2월 한국경제학회의 ‘2022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생산, 고용, 물가 관계의 변화’라는 건조한 제목의 논문이 주목받았다.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대학원생 제자 두 명과 쓴 글인데, ‘스태그플레이션이 온다’는 제목으로 기사화됐다. 장 교수를 24일 줌(Zoom)으로, 25일엔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  「 OECD 잘 사는 나라 대부분 반영하는 자가주거비 우리 물가엔 불포함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 억제 … 물가에 시장 상황 제대로 반영 안돼 2000년 이후 한국 필립스곡선 우상향, 고물가와 경기 침체 같이 올 수도 정부가 내세우는 공정·능력주의 제대로 하면 경제 성장에도 도움 될 것 」    25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인터뷰한 장용성 교수는 “이제까지 거시경제를 가르치면서 인플레이션을 간략하게 가르쳤는데 앞으로는 자세히 다뤄야겠다”고 말했다. 최근 30년간 공급망 교란이 없었던데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 덕분에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지냈다. 돈을 아무리 풀어도 괜찮다는 현대화폐이론(MMT)도 이런 환경에서 나왔다. 이제 경제학계는 다시 인플레이션과 고통스럽게 씨름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논문이 어떤 내용인가. “한국과 미국 자료를 이용해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간의 관계를 보니, 한국은 2000년 이후, 미국은 2010년 이후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가 역전돼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필립스 곡선은 영국 경제학자 필립스가 찾아낸 실증 법칙이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의 역관계를 경험적으로 보여준다. 물가를 낮추려면 실업률의 증가(경기 침체)를 감내해야 하고, 반대로 실업률을 줄이려면(경제 성장) 인플레이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정책적 함의가 있다. 곡선의 모양은 음(-)의 기울기, 즉 우하향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1970년대 말 오일 쇼크 때는 고물가에 실업이 늘어나서, 즉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바람에 필립스 곡선이 우상향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됐다. 이게 바로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동시에 덮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우상향하는 필립스 곡선의 의미는. “실업과 물가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가능성과, 반대로 두 가지 목표 중 어느 하나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을 함께 시사한다. 지금의 고물가 상황을 보면 물론 후자다. 코로나19 이후에도 필립스 곡선의 역전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면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있다.”   물가 상승세는 한동안 이어질 것 같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 물가지수가 저평가됐다는 점이다. 지난 3월 기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미국이 8.5%(4월 8.3%), 유로존은 7.4%(4월 7.4%)인 데 비해 한국은 4.1%(4월 4.8%)다. 우리가 비교적 선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물가에는 자가 주거비가 포함돼 있지 않다. 소비자물가지수에 자가 주거비 비중을 포함해 집값과 전·월세 상승을 반영하면 공식 지표보다 인플레이션율이 최대 2%포인트까지 더 오른다.”   물가 선방? 인플레 위협 다른 나라와 비슷   정부가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도 억제하고 있다. “공기업 적자는 결국 국민이 미래에 부담해야 할 세금이다.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영업손실을 보전할 만큼 전기료와 도시가스 요금을 바로 인상하면 물가상승률은 추가로 1%포인트가량 올라간다. 자가 주거비와 공공요금을 제대로 반영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공식통계보다 훨씬 높은 7%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선방한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위협이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얘기다.”   물가 부담이 낮아지는 4분기 이후 공공요금을 올리면 안 되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물가지수는 정부 정책과 민간의 경제활동에 기준이 되는 중요지표다. 시장 상황을 잘 반영해야 한다. 정부의 물가관리 탓에 얼마나 비용을 부담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자가 주거비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잘사는 나라는 대부분 반영한다. 우리도 참고지표라도 활용하는 게 옳다.”   외환위기·금융위기 때와는 달라   환율은 오르고 무역적자도 커졌다. 반면,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정부의 재정 여건은 나빠졌다. 외환위기·금융위기보다 더 걱정이라는 반응도 있다. 외환위기 때는 신흥국만 힘들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어렵고, 금융위기 때는 그래도 물가 걱정은 없었다. 다시 경제 위기가 오나. “동의하지 않는다. 외환위기 때처럼 은행이 무너지고 금융시스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 현상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올랐지만 금융위기 때처럼 달러 가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미 통화 스와프가 필요한 단계는 아니다.”   고용과 생산(경제성장률)의 관계도 분석했던데. “미국에서 1990년 이후 ‘고용 없는 경기회복(Jobless Recovery)’ 양상이 두드러졌다. 정형화된 루틴한 일자리를 자동화 기계가 대체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도 1990년대 이후 경기 회복 국면에서 고용이 함께 회복되지 않는 모습이다. 특이한 건, 미국에 비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용과 실업의 변동성이 매우 작다는 점이다. 미국의 4분의 1 수준이다. 호황이든 불황이든 우리 실업률은 대체로 3~5%로 변화가 크지 않다.”   한국 노동시장 경직 … 불황의 청소효과 없어   왜 그런가. “정부가 고용정책을 잘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더 큰 이유라고 본다. 이혼을 절대로 못 하게 하면 결혼도 안 한다. 고용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미국의 경기순환도 차이가 있다. 1970년 이후 평균 불황기간이 미국은 12개월, 한국은 18개월인데, 평균 호황기간은 미국 65개월, 한국 33개월이다. 미국보다 한국의 불황이 길고 호황이 짧은 건,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불황의 청소효과라고 할 수 있다. 망할 기업은 망해야 인력과 자본 등의 자원이 더 생산성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다.”   장 교수는 특이하게도 서울대 교수로 2004년과 2018년 두 번 부임했다.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를 하다 2003~2004년 미국 리치먼드연방은행 선임 경제학자로 일했다. 2004년 모교인 서울대 경제학부 부교수로 돌아왔다가 2007년 로체스터대 교수로 떠났다. 그즈음 몇 년간 장 교수를 비롯해 서울대 경제학부의 젊은 교수들이 영예롭다는 서울대 교수 자리를 잇달아 박차고 떠나자 서울대 연구 풍토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장 교수는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연구업적 평가의 문제를 지적했다.   “노벨상 학자도 한국 대학 재임용 힘들어”   “한국 대학은 창조적 연구를 적극적으로 장려하지 않는 것 같다. 과학논문 인용색인(SCI)나 사회과학논문 인용색인(SSCI) 등 국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숫자를 중시한다. 노벨상 받은 학자도 한국 대학에선 재임용 못될 것이라는 자조적인 농담이 나올 정도다. 논문 숫자를 채우기 위해 좋은 연구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게재하기 쉬운 학술지에 논문을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식의 상품화와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가 경제 성장의 원동력임을 보여준 내생적 경제성장 모형으로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로머도 한때 로체스터대에서 임용 후 3년간 논문을 한 편밖에 못써 재임용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2년 뒤 ‘홈런’을 쳤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이자 비협조적 게임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시가 한평생 쓴 경제학 논문은 3편뿐이다. 홈런을 치려면 삼진을 많이 당할 수밖에 없다.”   미국 지역연방은행에서 일했다. 미국 경제는 어떤가. “한국보다 고용시장이 좋아 기준금리 인상 여력이 더 있다고 봤다. 주택 경기와 장단기 금리 차를 눈여겨보는데 최근에 선행지수 역할을 하는 주택경기가 꺾이고 있다. 기업의 구인난이 사라졌고 기업 실적도 나빠졌다. 이제까지 주택 경기가 침체하면 거의 불황으로 이어졌다.”   뉴딜 정책의 절반은 실패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테네시강 유역 토목공사로 대표되는 확대 재정정책이 뉴딜의 상징처럼 많이 알려졌는데 실제로 이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다. 저임금·미숙련 일자리만 늘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과점 기업과 노조의 이해를 대변하는 뉴딜 초기의 정책 오류를 폐기하고 시장 경쟁과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을 바꾼 덕분에 경제 체질이 개선되고 대공황 극복에 크게 기여했다는 게 최근의 평가다. 위기 대응을 위해 재정을 늘리더라도 미리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것보다 이미 계획된 사업을 앞당겨 실시하는 게 좋다. 경제 불황이 정부 몸집을 불리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   혈연·지연·학연  깨야 생산성 높아져     한국 경제의 진짜 성장 능력을 보여주는 장기성장률이 1990년대 초 이후 5년마다 1%포인트씩 하락해왔다는 연구(서울대 김세직 교수)가 있다. 예전에 인적자원의 재배치(sorting)가 생산성을 높인다는 주장을 폈는데. “한국처럼 연공서열을 중시하거나 혈연·지연·학연 등 능력 이외의 요인을 따지는 사회는 인적자원의 재배치가 더디고 결국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우리 경제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려면 혈연·지연·학연과 성별을 이유로 재능 있는 사람을 배제하지는 않는지 살펴야 한다. 공정과 능력주의를 내세우는 윤석열 정부가 그 일을 제대로 한다면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 장용성 서울대 교수 「 1966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85학번. 미국 로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미국 리치먼드연방은행에서 선임 이코노미스트를 지냈다. 이질적 경제주체로 이뤄진 일반균형 거시모형 개발·응용으로 유명하다. 201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사전트 뉴욕대 교수가 자신의 대학원 교과서에 장 교수와 김선빈 연세대 교수와의 공동 연구를 소개할 정도다. 지난해 다산경제학상을 받았다. 」 서경호 논설위원

    2022.05.27 00:32

  • [조강수의 직격 인터뷰]검찰권 남용, 정치 통제가 아니라 사법 통제 받게해야

    조강수 논설위원 새 정부 출범을 불과 10여일 앞둔 국회가 극한 대치의 전쟁터로 변질됐다. 여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힘으로 밀어붙이면서다.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고 여당은 위장 탈당, 회기 쪼개기 등의 온갖 꼼수를 동원하고 야당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맞섰다. 국민의힘에 이어 대검도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고 기소권을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준비중이다. 극과 극의 대치는 검수완박에 대한 정반대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됐다.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삼풍아파트 집무실에서 이진강(79)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만났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재수사와 5공 비리 수사를 주도한 검사 출신이다. 보수 성향이지만 진보 변호사들의 지지를 받을 만큼 신망과 균형감각을 갖췄다는 평을 듣는 법조계 원로다. 검수완박의 문제와 해법을 물었다. 이 전 회장은 "갑오경장 때부터 130여년 이어져온 형사사법체계의 대혼란기"라면서 "이럴 때일수록 검찰 수사권이 어디에서 왔는지 등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가 지혜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검찰 수사권 폐지는 사법 통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지 정치 통제의 관점으로 강행하면 국민생활에 엄청난 고통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을 향해선 "검수완박의 수모를 당하게 된 건 검찰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며 검찰권 오·남용의 자제를 주문했다. 이진강 전 대한변협 회장은 지난 26일 인터뷰에서 "검찰 수사권이 오남용돼 개혁이 필요하다면 정치 통제가 아니라 사법 통제 방식이 돼야 한다" 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검수완박 논란의 핵심은.   "여당이 기준점과 출발점을 잘못 잡았다. 수사권의 본질에 입각해 사법 통제 논의를 해야 하는데 정치 권력이 '닥치고 수사권 박탈'을 밀어붙이니까 반발이 극심한 것이다. 사법권에서 파생된 수사권은 범죄 사실을 확인하고 증거를 수집해 범인의 신병을 확보하는 권한을 말한다. 사람의 생명·신체·재산권을 침해할 위험이 뒤따른다. 선진국들은 수사권에 대해 엄격한 사법적 통제를 가한다. 검찰의 수사권이 무소불위이고 오남용이 심각하다면 사법(법원)의 통제하에 두는 게 맞다. 이게 기준이자 원칙이다. 누가 수사권을 갖느냐, 경찰의 수사 능력과 범죄 진압 수준이 어느 정도냐는 그 다음 고려사항이다." -법리적 문제점은.   "헌법 제12조3항, 제16조는 강제 수사시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돼 있다. 1962년 제5차 개헌(제3공화국 헌법) 때 '검사경유 원칙'이 명문화됐다. 이는 단순히 검사의 영장 청구권만을 규정한 게 아니다. 수사권에 대해 1차적 최종적 통제권은 법관에게 있음을 천명하고 준사법기관인 검사가 2차적 사법통제기관으로 사법경찰 관리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경찰이 영장을 신청하면 검사가 반드시 검토한 뒤 청구하라고 사법 통제권을 일부 나눠준 것이다. 따라서 압수·수색영장 청구권 주체를 경찰로 국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검수완박 강행은 사법 통제가 아니라 정치 통제다. 이해 당사자인 검찰과 경찰은 물론이고 사법부·법학계·시민단체·국민을 모두 제쳐 놓고 양당이 모여 형사사법체계를 확 바꾸면서 개혁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정치 통제의 실패 사례는.  "프랑스에선 특수부 검사 업무를 수사판사(예심판사)들이 한다. 30대의 수사 판사가 청소년 6명을 성폭행 혐의로 구속 기소했는데 전부 무죄가 났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이 2010년 사법평의회에 참석해 일장연설을 하며 이 제도 폐지를 추진했다. 수사권이 너무 세다는 정치적 판단도 작용했다. 그러나 부정부패와 비리 개입 소지가 많은 정치 권력은 견제받아야 한다는 각계 각층의 반대로 불발에 그쳤다. 오히려 그가 2019년 뇌물과 독직 행위(판사 매수와 사법방해 )로 기소됐다. 사법부를 신뢰하는 프랑스 국민들은 그걸 보복 수사라고 보지 않았다." 국민의힘 소속 법제사법위원회 유상범 법사위 간사가 28일 국회 소통관에서 '검수완박'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공정한 결정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상선 기자 -6·1 지방선거 관련,선거 범죄 수사에 혼돈이 예상되는데. "떳떳하고 잘못이 없다면 여야 국회의원들이 검찰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공직자 범죄 수사를 못하게 함으로써 '셀프 방탄 입법'이라는 비판을 들을 필요가 있나. 예전엔 국회의원들이 검사를 무서워한다고 했지만 요즘은 검사들이 국회의원을 더 무서워하는 것 아닌가. 공직자 범죄보다 중요한 게 선거범죄다. 선거에 부정이 개입하거나 선거 관리에 중립성이 깨지면 국가 안위가 흔들린다." -수사기관 난립의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수사시스템은 일원화·체계화돼야 한다. 그래야 수사력이 분산되는 부작용을 줄이고 수사의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공수처가 발족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신뢰도와 수사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공수처에 국가수사본부에 중대범죄수사청까지 생기면 수사기관 상호간에 갈등과 문제만 커진다."   -민주당은 '미국 검찰은 수사를 안 한다'며 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가짜뉴스다. 미국 전역에는 연방법원이 94개소 있다. 대통령이 상원의 인준을 받아 연방검사장을 임명하고 검사장은 보조 검사를 임명해 직접 수사 및 기소를 담당케한다. 미국의 변호사 겸 월스트리저널 기자인 제임스 스튜어트가 쓴 『the prosecutors(용기있는 검사들)』에는 연방검사들이 수사팀을 편성해 직접 수사한뒤 대배심(기소배심)에 기소를 요청하기까지의 비화들이 실려있다. 맥도넬 더글라스 항공회사의 증뢰사건 등 5건이 나온다. 2000년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임원들이 미국 연방검사들로부터 반도체 가격담합 혐의로 수사를 받아 옥고를 치르거나 엄청난 벌금을 문 사건도 있다."   -민주당의 강행 이유는.   "민주당은 일관되게 검찰개혁,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 분석가들은 '공포와 광기','문재명(문재인+이재명) 지키기'라는 관측을 쏟아낸다. 그런 저속하거나 나쁜 내면의 의도는 없기를 바란다. 검수완박의 목적에는 검찰총장의 대통령직 점령에 대한 원점 타격의 성격, 다시 말해 대선 불복의 성격도 있는 것 같다. 검찰총장이 임기 못 채우고 나와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는 것 자체도 바람직하지 않은데 당선까지 되니 인정 못한다는 심리 아니겠나. 검찰의 힘의 원천인 수사권을 아예 박탈함으로써 정치 행위와의 연결을 차단하고 유사한 일의 재발을 막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사실 예전에 검찰청법에 '검찰총장은 임기 마치고 난 후 다른 공직 못 맡는다'는 규정이 있었다. 김기수 전 검찰총장이 헌법소원을 제기해 위헌 결정이 나 없어졌다. 윤 당선인 출현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윤 당선인을 키운 게 현 정권 맞나. "조국 사태와 '산 권력' 수사를 여권과 청와대가 수긍하지 못하고 검찰총장이 말 안 들으니 수사권을 다 빼앗겠다고 나섰다가 지금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이른바 '적폐 수사'로 인해 사법권이 무력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전직 대법원장, 엘리트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을 줄줄이 사법처리하면서 검찰은 거칠 게 없어졌다. 이 과정에서 검찰 조직이 망가졌다는 한탄도 나온다."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 통과를 규탄하는 화환이 놓여져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검사 재직 때 느낀 검찰 문제는.  "노태우 정부 때 '범죄와의 전쟁'에 검사를 투입했더니 성과가 좋았다. 문민 정부 들어 12·12, 5·18 사건 수사를 통해 전직 대통령 둘을 사법처리하면서 오만해졌다. 대선자금 수사같은 긍정적 역할도 했는데 긴 안목으로 보면 불신이 쌓였다. 오만은 규범 위배의 씨앗이다. 그동안 검찰권을 오남용한 잘못이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해서는 안 될 수사를 무리하게 별건 수사방식으로 밀어붙여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또 한 편으로는 꼭 해야 할 수사를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포기함으로써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일도 있었다. 무리하게 수사하면 불만이 생기고, 할 걸 안 하면 불신이 생긴다. 검찰은 권한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주어진 권한의 70% 정도만 써도 인정받는 검사가 될 수 있다. 검수완박의 수모를 당하게 된 건 검찰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 -바람직한 검찰개혁 방안은.   "프랑스의 수사판사 제도, 미국의 대배심 제도(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이 다수결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형사 절차)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 수사판사처럼 사건이 발생하면 검찰·경찰을 통합 지휘할 수사의 주재자가 필요하다."   ◇이진강 변호사=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에 당선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대한변호사협회장,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대법원 양형위원장을 지냈다.  조강수 논설위원

    2022.04.29 00:29

  • [김기찬의 직격인터뷰] “노동행정을 운동하듯…시장경직되니 비정규직 늘어”

     ━  ‘비정규직 제로’ 반대해 퇴출, 김영배 전 경총 부회장의 격정 토로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보름을 갓 넘긴 2017년 5월 26일이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이던 그에겐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악몽”이 시작됐다. 문 대통령을 필두로 정권 핵심부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른바 3단 경고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에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가 작심하고 나섰다. “세금을 쏟아부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임시방편적 처방에 불과하다. 당장은 효과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논란의 본질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가 아니라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숨 쉴 틈도 없이 정권 차원의 압박이 들어왔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경총은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다.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정면으로 쏘아붙였다. 정권 관계자도 “아주 편협한 발상이다” “압박으로 느낄 땐 느껴야 한다”고 가세했다. 그 뒤 경총은 정부에 쓴소리는커녕 정책 건의 한 번 못하고 벙어리 단체로 전락했다. 적폐기관인 양 낙인 찍히며 그를 비롯한 일부는 수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이듬해 초 쓸쓸히 물러났다. 강제 퇴출과 다를 바 없었다.   ■  「 비정규직 제로는 노동시장 질서 훼손한 권력형 시장 교란 정책 소주성, 세금만 잔뜩 걷어 펑펑 써 … 피처럼 돌 돈이 눈 먼 돈 돼 착시 부른 일자리 정책으로 기득권 잔치판 만들고 청년은 소외 ILO 협약 발효로 파업 족쇄 풀려 … 선진국처럼 기업 방어권 줘야 」    그리고 5년. 긴 칩거 생활을 끝내고 중앙일보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김영배 전 경총 부회장이다. 그의 말은 격정적이었고, 거침이 없었다. 관록이 묻어났지만, 걱정과 분노도 읽혔다. 인터뷰가 끝난 뒤 “순화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김영배 전 경총 부회장은 “기득권 노조 중심의 정책이 청년의 희망을 꺾었다”고 말했다. “비판 목소리를 제압하는, 그들끼리의 편(編)민주주의만 통했다”고도 했다. 김경록 기자 퇴임 뒤 어떻게 지냈나. “노사공포럼 공동대표를 맡아 학자들과 가끔 현안 얘기를 나누곤 했지만, 외부 활동을 자제했다. 지금은 중소기업에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비정규직 제로 선언에 대한 당시 김 부회장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 “노동시장의 현실이자 기본인데, 변할 수가 있는가. 비정규직 제로는 심한 갑질이다. 인천공항 내 협력업체는 졸지에 폐업했다. 시장질서를 훼손하는 정책이다. 정권 발, 권력형 시장 교란을 공식화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 5년간 비정규직이 얼마나 폭증했는가. 통계 작성 이후 최대다. 선언한 것과 정반대 아닌가. 노동시장을 왜곡한 결과다. 그런데도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당시 서슬 퍼런 정권 초에 대통령의 구상을 문제 삼은 건 과도한 용기였다는 말도 나왔다. “비정규직 제로 선언이 나오고 경총에 많은 항의가 쏟아졌다. 대응하라는 주문이었다. 나설 곳이 경총밖에 없었다. 문 대통령은 선거 운동 내내 ”넥타이 풀고 얘기하자“며 귀를 열겠다고 했다. 그 약속을 믿었다. 한데 강도 높은 압박과 비판으로 눌렀다. 경제단체는 업계의 고충을 전달하는, 일종의 신경전달망 역할을 한다. 그걸 마비시켰다. 고충을 전달하고, 토론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그들 편에서만 민주주의, 즉 편(編)민주주의였다.”   경영계도 비정규직 양산을 막는 데 노력해야 하지 않는가. “분명 경영계도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를 획일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이 경직되면 비정규직이 크게 증가한다. 정부 주도로 시장을 제어하려 들었던 지난 5년간의 결과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자율성을 어떻게 올리고, 그 속에서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할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   당시 다른 경제단체는 나서지 않았는데. “나설 수가 없는 상황 아니었는가. 오히려 대한상공회의소는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정부 심기를 건드리느냐’며 비난하더라.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어쨌든 대한상의는 현 정부 내내 순탄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경제단체는 그 ‘쓸데없는 소리’를 포기하면 안 된다.”   정부의 압박 뒤 경총도 목소리를 감췄지 않았나. “그랬다. 3단 경고 뒤 최저임금을 16.4%나 확 올리더라. 경영계는 관여도 못 했다. 시장은 안중에도 없다는 게 확실하게 드러났다. 찍소리 못하게 해놓고 마이웨이였다. 경총에선 목소리만 사라진 게 아니라 조직이 흔들렸다. 분열 정도가 아니라 와해 직전까지 갔다. 얼마 전 새 부회장이 부임하면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데,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 주도 성장을 천명하면서 예견됐던 것 아닌가. “소주성? 음주성장이다. 소득을 올리면 경제가 성장한다는데, 소득을 누가 올리나. 그 답부터 해야 한다. 정부가 시장 임금을 정하나. 최저임금 올리고 결국 어떤 일을 했나. 노동시장이 망가지자 일자리안정자금이란, 국가가 기업 근로자의 임금을 대신 주는, 듣도 보도 못한 시장교란 정책까지 동원하지 않았나. 세율을 떨어뜨리면 민간 생산이 늘고, 경제가 활황 하면서 세수가 늘어난다. 레이거노믹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민간이 쓸 돈을 정부가 세금으로 많이 거두면 경제가 성장하나. 효율적 집행이 안 되면서 동맥경화만 심화한다. 민간에 있었으면 피처럼 돌 돈이다. 소주성은 이와 정반대다. 세금을 거두는 게 소주성이다. 돈 거둬서 쓰는 데 엉망진창이다. 개인은 돈을 아끼는데 정부는 그게 없다. 피땀으로 일군 돈을 눈 먼 돈으로 만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걸었다. “정부 주도로 하는 일자리 창출, 더욱이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은 허상이다. 시장이 없다는 얘기, 또는 시장을 보지 않겠다는 얘기 아닌가. 실제로 통계적 착시만 일으켰다. 예산을 퍼부어 나이 든 사람을 대상으로 공공근로 일자리만 만들었다. 그건 노동시장에서 말하는 온전한 일자리가 아니다. 그러니 청년과 같은 취약계층의 고용 문제는 심화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청년이나 저소득 근로계층 같은, 노동시장에 들어오려 하는 사람들을 팽개치는 결과를 낳았다. 그들을 소외시키고 기득권자의 목소리만 듣고 정책을 했다. 기득권 근로자의 잔치판이 벌어졌다. 노동 존중, 노조 중심의 정책이 빚은 사태다. 특히 청년은 가계 경제 속에 숨어있다. 집에 있는 실업자이다 보니 통계에 안 잡힌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기득권 중심의 정책적 성곽을 높게 쌓아 희망을 꺾었다. 청년과 그 부모에게 이렇게 가혹해도 되는가.”   현 정부의 고용정책을 실패로 보는 것 같은데, 그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고용·노동 정책과 행정을 운동으로 보고 일하는 사람이 곳곳에 꽂혀 있다. 청와대부터 정부는 물론 각 지방 촌구석까지 포진해있다. 그 폐해가 심각하다. 아무리 촛불 청구서가 무섭기로서니 이럴 줄은 몰랐다. 기업이 노조에 무릎을 꿇는다. 정부가 방관하고 (노조를) 지원하니 기업으로선 도리가 없다. 이래서야 공장이 돌아가고, 경제가 살고, 일자리가 생기겠는가. 기업 내에서 해결 가능한 게 없다. 예전에는 노동계의 요구가 심할 때는 경총에 반대 요구를 내도록 요청하기도 했다. 정부는 그 뒤에서 조정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균형을 잡아갔다. 조정하는 사람, 즉 정부의 운신 폭을 넓혀줘야 건전해지는데, 그걸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노사관계만 조정이 필요한 게 아니다. 경제와 일자리도 조정이 제대로 이뤄져야 성장한다. 운동하듯 해선 안 된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이 20일 발효된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사업주가 컨트롤할 수 없는 정치·정책·경제 문제로도 파업할 수 있게 된다. 말 그대로 파업 족쇄가 풀린다. 국제사회의 위상이 높아졌으니 협약 비준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노동계의 활동 범위를 확 넓히면서 경영계는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주가 다룰 수 없는 문제로 파업하는데, 왜 생산시설이 멈추고, 공장이 피해를 보아야 하나. 그런데도 이 정부는 그저 문 닫고 참으라고 한다. 파업 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직장 점거를 금지하는 등 방어권을 하나도 안 줬다. 이 또한 운동하듯 밀어붙여서 생긴 일이다. 노동시장에 엄청난 대못을 박은 것이다. 뽑지도 못한다. 비준을 철회하면 국제사회로부터 노동탄압국이란 낙인과 비난이 일 게 자명해서, 그러지도 못한다. 대못을 뽑지 못하면 고통이라도 줄여야 하는데, 방어권이 없으니 답이 없다. 하루빨리 다른 나라처럼 제도를 선진화해야 한다. 경제가 망가진 뒤에야 방어권을 줄 텐가.”   근로기준법이 1980년대에 갇혀 있어 급격하게 변해온 환경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산업현장의 변화 속도는 엄청나다. 기술 진보에 부응하는 제도적 선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노동시장에도 프리랜서가 늘어나는 등 크게 변했다. 이런 변화에 즉각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사적 자치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게 급선무다. 그러려면 근로조건의 최저선을 명시한 근로기준법에 더해 근로계약법이 필연적이다. 당사자 간 계약의 효력을 우선하여 인정하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30년 전부터 제기돼 온 임금체계 개편도 이와 맞물려 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2022.04.15 00:33

  • [강남규의 직격인터뷰] “우크라 전쟁 오래 안 갈듯…푸틴 치명타 입을 수도”

     ━  세계적 전쟁 권위자 로런스 프리드먼 교수   강남규 S팀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 달을 넘어섰다. 뜻밖이다. 우크라이나가 잘 버티고 있다. 러시아는 고전하고 있다. 양쪽의 평화협상도 진행 중이다. 타결되는 듯했으나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결국 장기전으로 가는 것일까? 최후의 승자는 어느 쪽일까? 전쟁 이후 세계는 어떻게 될까? 요즘 비즈니스 리더와 투자자 등이 가장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경제 전문가나 투자 고수 등이 속 시원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이다. 전쟁은 팬데믹처럼 경제 외적인 변수(exogenous variable)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전쟁·전략 전문가인 로런스 프리드먼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 석좌 교수를 줌(Zoom)으로 인터뷰한 이유다. 프리드먼 교수는 『전쟁의 미래』와 『전략의 역사 1, 2』 등을 썼다.   ■  「 1차대전식 소모전은 양측에 부담 푸틴이 유야무야 끝낼 가능성 커   시간 끌수록 러시아 약점만 노출 전쟁 지지한 세력도 큰 상처받아   북한은 세계서 가장 퇴행적인 곳 제재와 당근, 장기적인 전략 필요 」    러시아군 사기·보급 모두 추락   로런스 프리드먼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상태인가.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의 장군들이 처음 세운 작전계획대로 되고 있지 않은 듯한데. “작전계획에 전혀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 푸틴과 그의 장군들은 공격 개시 2~3일 안에 수도인 키이우와 북동부 중심지인 하르키우 등 주요 지역을 점령하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러시아군의 보급과 사기, 무기 상황 등 모든 게 문제투성이다.”   최후의 승자는 어느 쪽일까. “우크라이나 사태는 군사작전으로나 외교 담판으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푸틴이 선뜻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결국 푸틴은 제3의 길을 선택할 전망이다. 바로 시간을 끌어 사태가 유야무야되도록 할 가능성이 있다.”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고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장기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유야무야가 장기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재 우크라이나 시민과 군은 사기가 높다. 반면 러시아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수적으로 우세하다. 우크라이나 주요 거점을 놓고 치열하게 전투가 이어지고 있는 사이 평화협상 등 외교적 움직임도 보인다. 내가 보기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1차대전 참호전처럼 교착상태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모두 경제적으로 힘들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오랜 기간 버티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1차대전은 1914년 7월에 시작됐다. 전쟁 첫해 독일군이 기세 좋게 프랑스 파리 근처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참호를 파고 공방만을 이어가는 교착상태가 1917년까지 이어졌다. 1차대전은 소모전의 대명사다. 병사 900만 명 이상이 숨졌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는 올바른 방향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고 있다. 사진은 우크라이나군이 동부 도시 트로스얀네츠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낸 뒤 28일 시내로 진입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푸틴 축출을 시사했다. 이번 전쟁으로 푸틴이 권좌에서 밀려날까. “우크라이나와 전쟁이 러시아엔 재앙과 같아 푸틴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현재 상황이 러시아군에 너무나 치욕적이다. 러시아군, 그들이 누구인가. 2차대전 때 히틀러 군대를 물리쳤다는 자부심이 강한 세력이다. 푸틴의 권위는 이번 전쟁을 비판하며 거리 시위를 벌이는 러시아 시민뿐만 아니라 전쟁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푸틴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보는 세력에 의해서도 위협받을 수 있다. 다만, 푸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축출될지는 현재 알기 어렵다.”   글로벌 정치지형에서 푸틴의 상대인 바이든이 지금까지 보여준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바이든은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제재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다. 올바른 방향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현재 미 대통령이라면 바이든만큼 푸틴을 압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그 바람에 중국 리더들이 대만 등 이웃을 공격해도 미국이 군대를 직접 파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까. “미국에는 대만보호법이 제정돼 있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 관계다. 미국의 대응이 대만이나 동맹인 한국,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폴란드가 공격받았을 때와 우크라이나 침공받았을 때 다를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동맹이 아니다.”   G2인 미·중이 국제정치뿐 아니라 경제에서도 맞서는 와중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졌다. 이번 전쟁이 주요 강대국 사이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이후 상당 기간 다른 전쟁을 벌이기 어려울 전망이다. 너무나 많은 약점이 노출됐다. 러시아가 더 이상 강대국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중국의 정치인과 군사전략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들이 이번 사태로 얻을 교훈은 ‘아주 손쉽게 이길 수 있는 전쟁도 여차하면 최악의 전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이번 전쟁 주목하는 이유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등으로 러시아 탱크를 효과적으로 부수고 있다. 기갑부대의 무용론이 커지고 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공격 헬기가 등장할 때 탱크는 더 이상 쓸모없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그러나 탱크를 중심으로 한 기갑부대가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공중과 지상 엄호부대의 지원을 받는 진용을 갖춰 기갑부대를 운영했는지가 핵심이다. 러시아는 엄호부대 없이 기갑부대를 앞세우다 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직후 많은 기업이 경제제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러시아에서 철수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최근 30~40년 동안 국제관계에서 유지되온 ‘경제 우선’ 대신 ‘안보 우선’ 트렌드가 힘을 얻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세계화 흐름이 끝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팬데믹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기업인들이 잊고 지낸 전쟁이란 리스크가 되살아났다.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고민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팬데믹 이전까지 글로벌 공급망은 늘 작동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지금은 전염병이나 전쟁 등 비즈니스 리더들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의해 공급망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를 늘 해야 하고, 돈을 들여 대비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제 글로벌 공급망은 고효율-저비용 시스템이 아니다.”   러시아 국민, 푸틴에 등돌릴 수도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제재하고 있다. 이제 러시아가 글로벌 경제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인가. 한국 기업은 전쟁이 빨리 끝나 러시아와 교역을 다시 하고 싶어한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평화협상에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푸틴은 철군 등의 조건으로 제재 해제를 내걸 가능성이 크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제재를 푸는 데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미국은 푸틴을 권좌에서 밀어내기 위해 경제제재를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유럽은 부분적으로 제재해제를 원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산 에너지와 원자재 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제재의 부분적 해제는 가능하다.”   프리드먼 교수는 “미국과 유럽이 경제제재를 이어가면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자존심이 상한 러시아인들이 푸틴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제재가 너무 가혹하면 러시아 국민이 푸틴을 중심으로 뭉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느 정도 고통을 줘야 러시아 국민이 푸틴한테서 멀어질지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의 영역”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험했다. 전략 전문가로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면. “아주 고립적이고 퇴행적인 곳이 북한이다. 당장 북한 내부에서 중대한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변화시킬 카드가 거의 없다. 차라리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북한이 핵을 가졌다는 사실을 한국과 미국이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당근을 제시하는 전략만이 남아 있는 듯하다.”   ■ 로런스 프리드먼 교수 「 전쟁과 군사전략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영국 맨체스터대와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했다. 국제전략연구소(IISS)와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런던대 킹스칼리지 전쟁센터 석좌교수다. 그는 2009년 이라크 전쟁의 공식 조사단으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는 국내에 번역·소개된 『전쟁의 미래』와 『전략의 역사 1·2』 외에도 『전쟁 억지력』 『걸프전』 『전략 연구의 변화』 『냉전』 등이 있다. 프리드먼 교수는 『적들의 선택: 미국이 직면한 중동 세계』로 2009년 뛰어난 논픽션 작품에 주는 라이오넬 겔버상을 받았다. 『전략의 역사』는 2013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에 올랐다. 」 강남규 S팀 기자

    2022.04.01 00:33

  • [장세정의 직격인터뷰]‘대형산불=4월 강원도’ 공식 깨져, 대응도 달라져야

    이우균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가 15일 캠퍼스 임학동산의 약 100년 된 금강송 앞에서 소나무(침엽수)와 참나무(활엽수) 가지를 들고 갈수록 대형화하는 산불의 특성과 대응책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경북 울진, 강원도 삼척·강릉·동해에 걸친 동해안 일대 초대형 산불은 지난 4일 시작돼 비가 내린 지난 13일 오전에 주불(큰불)이 잡혔고 잔불 진화도 마무리 단계다. 하지만 역대 최장(213시간)이란 부끄럽고 안타까운 기록을 남겼다. 이번 산불 영향 구역은 울진·삼척을 합쳐 2만923㏊와 비슷한 시기에 산불이 난 강릉·동해 일대(4000㏊)를 합하면 피해 지역이 서울 면적의 41.2%에 이른다. 역대 최대 규모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갈수록 잦아지고, 피해 규모도 날로 커지는 산불에 대한 근본 대책은 없을까. 화마가 잿더미로 만든 산에는 어떤 나무를 심어 전화위복으로 삼아야 할까. 이우균(61)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를 만나 진단과 대책을 들어봤다.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임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소나무 전문가다. 기후변화학회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이사장으로 있다.   미국·호주·그리스만의 문제 아니야  -위성 사진에 거대한 산불 연기 기둥이 관측됐다.  "매우 안타까웠다. 산림은 공급·지원·조절·문화 등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번에 약 250만㎥의 입목 자원이 소실됐다. 숲속 모든 동식물과 생태계 물질순환이 타격받았다. 정확히 계산을 해 봐야겠지만, 이번 산불로 약 150만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 것으로 추산한다. 산불은 단순히 산에 난 불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 재난(Disaster)이다. 열흘 이상 타는 산불은 고온 건조한 미국·호주·그리스에서만 발생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만큼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게 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온난화로 기온이 1.5℃ 상승한 상태에서 0.5℃가 추가 상승할 경우 산불 피해가 커진다."   -산불 패턴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  "그동안 산불은 3월 말 시작해 4~5월까지 이어졌다면 이번 산불은 3월 초에 발생했다. 거의 한 달이나 앞당겨지고 범위도 전국화하고 있다. '대형산불은 4월, 강원도'라는 등식이 깨졌다. 겨울과 봄으로 이어지는 가뭄과 변화무쌍한 바람이 봄철 산불을 더 많이 일으키고 있다. 최근 10년간 국내에선 매년 평균 약 481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지난 13일 기준으로 293건이 발생, 10년 평균(134건)의 2.2배다. 정권 말이고 대선이 겹친 시점인 데다 이번 산불은 발생 시기와 극단적 기상·환경, 확산 속도와 규모, 진화의 어려움, 장기화 등을 정부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 것 같다. 산불의 패턴 변화에 걸맞은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 "  -산불 대응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앞으로는 산불 예측과 예방을 겨울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4월 5일 식목일을 3월 초·중순으로 앞당기는 것도 방법이다. 산불이 신속확산·대형화·장기화하니 이번 재난을 계기로 원전·LNG기지·저유소 등 국가기간시설 671개소에 대해 산불 발생 위험을 반영해 관리해야 한다. 금강송 군락지에는 활엽수로 방화 수림대(내화수림대)를 조성해야 한다. 산불을 중대 재난으로 인식하고 산림청뿐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것이다. 임업과 산림소유주가 소외되고 배제된 상태의 재난대응 체계는 한계가 있다. 피해당사자인 임업인과 산림 소유주가 참여하는 예방과 방제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경북 울진군 북면 야산에서 지난 4일 산불이 발생하자 초대형 헬기가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산불은 지난 13일 비가 오면서 주불이 잡혔다. 213시간 동안 계속돼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연합뉴스] 여전히 부족한 소방인력과 장비  -산불을 키우는 주요 원인은.  "산불 발생 및 확산의 3요소는 기상·지형·연료다. 지난해 12월에서 지난 2월까지 강수량은 13.3㎜로 평년대비 14.6%에 불과했다. 1973년 이후 최저 강수량이다. 생장 활동을 시작하기 전의 식물은 가뭄 시기에 말라 있어 불에 잘 타는 연료 역할을 한다. 봄철에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지형적 특성에 따른 양간지풍(襄杆之風)이 분다. 국내 산불은 거의 사람이 일으킨 것인데 봄철에 농사와 나들이 활동이 늘어나면서 입산자의 실화가 산불의 33.3%를 차지한다. 가뭄과 바람 등 날씨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사람으로 인한 산불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담배꽁초 등 실화 처벌 수위는 적절한가.  "산림 보호법 제53조에 따르면 타인 소유 산림에 불을 지르면 징역 5년 이상, 15년 이하다. 하지만 실제로 중형을 받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산불이 대형화하고 있고 지역주민은 물론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탄소배출로 이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처벌이 경미하다. 사유림에 함부로 들어가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이란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산불 감시 및 대응 시스템은 충분한가.    "산림청에 따르면 산불감시원 1만2000명을 배치하고 감시카메라(CCTV) 1448대와 드론감시단(32개) 208명을 운영하고 있다. 산림청이 소방헬기 47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13대는 30년 이상 노후 기종이다. 초대형 헬기는 6대뿐이고, 야간 산불 대응을 위한 헬기는 1대뿐이다. 산불전문 예방진화대 9600명, 산불 특수진화대가 435명인데 아직 부족하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산림청뿐만 아니라 지자체별로도 대응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산불·들불 위험 지도 만들어야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  "산림청의 산불위험도 예측모형은 보통 기상인자에 기반해서 이뤄지는데, 넓은 면적에 대해 위험 수준만 예보된다. 그러나 산불은 넓은 곳 중 특정 장소와 시간에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찾아내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산불과 들불이 시작될 수 있는 ‘연료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마을·주택·온실 등의 분포지도를 통해 어느 생활공간이 산불 위험지와 가까운지 파악해 관리할 수 있다. 기상과 지표면 정보를 함께 이용한 진단모형을 만들면 위험도를 구체적인 장소 단위로 예측할 수 있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 정보 등을 통해 사람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 앱을 만들어 구체적인 공간에 시간 단위도 추가된 예보 및 경고시스템이 가능하다."  -불에 소실된 산들을 어떻게 복구할까.  "단기적으로는 산사태와 토사 유출이 일어날 위험이 높으므로 집중호우에 따른 토양유실 등 2차 피해 우려 지역에는 6월 이전에 사방 복구사업을 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산불피해 지역을 경제·생태·경관·환경적 측면에서 가치가 높은 산림으로 복구해야 한다. 정밀 조사를 통해 기후‧토양 등 자연환경과 산림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지역주민과 사유림 소유주(山主) 등과 협의해 복구 수종(樹種)을 선정해야 할 것이다." 이우균 고려대 환경생태공학과 교수가 15일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 교수는 산불 피해를 줄이려면 장기적으로 침엽수를 활엽수로 수종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경록 기자  -소나무가 유달리 산불에 취약한가.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침엽수는 화염 유지 시간이 57.3초, 활엽수는 23.0초다. 대표적 자생 수종인 소나무가 불에 잘 타는 것은 맞지만, 소나무숲이 위치한 기상과 지형 조건에 따라 산불 발생과 확산 패턴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산림청의 조림 및 숲 가꾸기 정책이 소나무 위주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산불 피해를 줄이려면 수종을 다양하게 바꾸되 활엽수로 수종을 갱신할 필요가 있지만, 문제는 토질이다. 산불이 난 곳은 토양이 척박해져 활엽수보다 침엽수가 잘 자란다고 보고되고 있다.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지역에 활엽수를 많이 조림했으나, 20년이 지나고 보니 대부분 죽고 다시 소나무 숲이 된 곳도 있다. 산림청이 활엽수가 잘 자랄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다. 숲 가꾸기를 통해 밀도를 적절히 조절하면 산불 대형화를 막을 수 있다."   산림 관리 잘하면 인센티브 줘야  -산림 관리 행정 체계는 문제없나.  "전체 산림의 67%가 사유림이다. 지번·지적에 근거해 파편적으로 조림과 벌채가 이뤄지고 있다. 하나의 유역에 있는 산림이 소규모로, 수백 또는 수천 개의 지번과 소유주로 쪼개져 있다. 사유지는 산불이 나도 제대로 보상을 못 받으니 권한과 책임을 갖고 관리할 동기 부여가 잘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산림정책이 있어도 현장에서 제대로 산림관리를 할 수 없다. 이제는 최소 유역 또는 지역 단위로 바꿔 관리해야 규모의 경제를 갖춘 산림 경영이 가능하다. 그래야 환경생태적으로 건강하고, 온실가스 흡수 및 저장도 잘하고,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산림을 유지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임업 직불제' 활용이다. 유역 단위의 산림관리와 지역 기여 등을 고려해 인센티브를 주면 좋겠다." 이우균 고려대 환경생태공학과 교수는 1973년 1차 치산녹화계획을 시작한지 50년이 지났으니 향후 50년을 내다보고 미래 우리나라 산림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산림 정책의 개선 방향은.  "박정희 정부 때인 1973년 1차 치산녹화계획을 시작하면서 복구를 위한 속성수 조림, 이후 경제성 있는 수종을 조림해 산림을 푸르게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후 무엇을 위해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부족했다. 우리 산림은 대부분 40~50년생이라 아직은 더 잘 가꾸어야 한다. 수익성, 환경 및 기후변화,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고려해 산림의 미래상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산림관리를 해나가야 한다. 산림 복구 50년 차인 지금은 2단계 미래산림의 모습을 그려야 할 때다. 어떤 나무를 심고, 어떻게 가꿀 것인지 시간과 장소별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이시영 인턴기자가 인터뷰 정리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관련기사[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죄 지은 자들이 검찰 비웃어" "인사 그물 쳐 법원 정치화"[장세정의 직격인터뷰] 힘 세진 중국, 한국을 '우리 아닌 너'로 여기며 충돌"공수처, 여운국 차장도 조회했다" 무차별 통신사찰 자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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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8 0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