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읽기] 대만의 변화…미국에 의지할까, 아니 의심할까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폐막하던 지난 13일 서울에선 성균중국연구소 주최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중국을 보는 또 하나의 시각’. 대만국립정치대학의 커우젠원(寇健文)과 왕신셴(王信賢) 등 대만을 대표하는 두 명의 학자가 참석했다. 이들은 올해 중국의 전랑외교(戰狼外交)가 주춤할 것으로 봤다. 중국이 민중 시위와 성장 저하 등 대내적으로 산적한 문제 해결에 정신을 쏟느라 대외적으론 유화 제스처를 취할 것이란 분석이다.   대만해협 파고도 잦아들 것으로 전망했다. 왕후닝(王滬寧)-왕이(王毅)-쑹타오(宋濤)가 철의 3각 구도를 형성해 대만 민심 잡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제왕의 책사’ 왕후닝은 이번에 권력 서열 4위의 정협(政協) 주석이 됐다. 홍콩 사태를 겪으며 중국이 주장하는 ‘한 나라 두 체제(一國兩制)’를 믿지 않게 된 대만인을 상대로 새로운 논리 개발의 임무를 맡게 됐다.   시진핑 3기 중국 정부는 올해 대만을 상대로 같은 문화와 핏줄임을 강조하는 평화 공세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신화사=뉴시스] 외교부장에서 당 외사위원회 판공실 주임이 된 왕이의 역할은? 외부 세력이 대만 문제에 개입하는 걸 막고 국제 사회에 ‘하나의 중국’을 주장해 대만 문제의 국제화를 막는 것이다. 당 대외연락부장에서 내려온 뒤 대만판공실 주임이 된 쑹타오의 주요 임무는 대만 인사와의 교류다. 한 마디로 평화 공세가 예상되는 것이다. 대만 민심은 어떨까? 대만의 ‘21세기 기금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만인의 82%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중국이 침공하면 어떻게 될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대만인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한 것처럼 대만에 무기만 제공하고 말 것이란 대답이 40%에 달했다. 미국이 병력을 보내 대만을 도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10%에 불과했다. 과거 대만에선 미국에 의지해야 한다는 ‘의미론(倚美論)’이 많았다. 그러나 이젠 미국을 의심하는 ‘의미론(疑美論)’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만 민심은 그러면서 내년 1월 총통 선거에서 누가 평화를 가져올 후보인가에 쏠리고 있다.   그러자 집권 민진당이 ‘중국에 대항해 대만을 보호한다(抗中保台)’던 이제까지의 구호를 재빨리 ‘평화로 대만을 보호한다(和平保台)’로 바꿨다. 야당인 국민당도 ‘국방(Defense)’과 ‘대화(Dialogue)’란 ‘쌍D’ 전략을 내놓았다. 미국에 대한 의지에서 의심으로 대만 민심이 바뀌며 중국과의 대화를 통해 평화를 지키려는 분위기가 읽힌다. 꽉 막힌 남북 관계에도 적지 않은 시사를 던진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3.20 00:45

  • [중국읽기] 중국 쌍두 체제의 사망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중국에서 1인자인 공산당 총서기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기율을 강조하며 숙청을 주도한다. 그러나 양(陽)이 있으면 음(陰)이 있게 마련이다. 인자하고 따뜻한 어머니 역할을 하는 이가 있다. 국무원 총리다. 그래서 중국 지도부는 쌍두마차라는 말을 듣는다. 마오쩌둥(毛澤東) 시기엔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있었다.   마오가 이끈 문혁의 광풍 속에서도 저우는 피해 최소화에 안간힘을 썼다. 총리의 권한도 그리 작지는 않았다. 마오의 최강세 시기에도 저우 총리는 경제에 대한 대권은 물론 당내 정보 계통과 외교, 통일전선 업무도 장악하고 있었다. 후야오방(胡耀邦)이 총서기일 때는 자오쯔양(趙紫陽) 총리가 건재해 후지오(胡趙) 체제로 불렸다. 장쩌민(江澤民) 시기엔 걸출한 총리 주룽지(朱鎔基)가 활약해 장주(江朱) 체제라 일컬어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비서’ 출신 말을 듣는 리창(오른쪽)이 지난 11일 시진핑 3기 정부의 총리로 선출됐다. [AFP=연합뉴스] 장쩌민은 1998년 중국을 찾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중 경협 문제는 아예 주룽지와 상의하라는 말까지 했다. 중국에서 ‘경제는 총리가 1인자’인 셈이었다.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때도 마찬가지다. 원자바오 총리가 닳고 닳은 운동화에 해진 점퍼를 입고 민생 현장을 찾는 모습은 많은 중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그게 ‘정치쇼’이든 아니든 말이다. 이렇게 형성된 후원(胡溫) 체제는 굳건했다.   시진핑(習近平)이 집권하자 시리(習李) 체제란 말이 나왔다. 한데 아주 잠깐이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경제 권력의 상당 부분을 시 주석에게 빼앗긴 것이다. 리 총리 관할의 국무원 기구도 시 주석 관할의 당 중앙에 흡수된 게 많았다. 2018년 기구개혁에서 국무원 산하 국가행정학원이 중앙당교에 접수되고 국무원신문판공실 간판은 중앙선전부에 걸렸다. 리 총리의 존재감은 크게 사라졌다. 약체 총리란 평가가 따랐다.   이제 리커창을 대신해 리창(李强) 총리가 탄생했다. 한데 역대 최약체 총리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리창이 시진핑이 저장성(浙江省) 당서기로 있을 때 당 위원회 비서장으로 사실상 집사 역할을 했다. 비서가 뭔가. 주군에게 서비스하는 직업이다. 게다가 이제까지 리창의 출세 뒤를 봐준 건 시 주석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시 주석과 어깨를 나란히 해 권력을 나눌 수 있나. 기대난망의 일이다. 앞으로 총리 관할의 국무원은 당의 일개 ‘판사처’로 전락할 것이란 말이 나온다. 중국 지도부의 투 톱 체제는 안녕을 고하게 됐다. 리커창이 떠나며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이 보고 있다. 푸른 하늘도 눈이 있다(人在干 天在看 蒼天有眼)”고 한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3.13 00:57

  • [중국읽기] 욕만 하면 중국 넘나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지난주 중앙일보의 온라인 중국전문 페이지 ‘더 차이나’에 글 하나가 실렸다. “젊은 중국 박사들, 빅테크 기업 아닌 ‘여기’서 가능성 봤다”는 제목이 붙었다. ‘여기’가 어딘가 보니 ‘농업’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는 순간 댓글이 보인다. “미세먼지나 해결해라. 지구 최대의 민폐국.” 확 깬다. 중국 기사 말미마다 붙는 반중(反中) 내지 혐중(嫌中)의 글이다.   누구는 댓글을 무시하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생각이 다르다. 이 또한 우리 사회의 목소리 중 하나다. 아쉬운 건 그저 중국 욕하는 데 그친다는 점이다. 감정 배설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6년 중국의 사드(THAAD) 보복 이후 보이는 현상이다. 특히 우리 청년 세대의 반중 감정은 유난히 높다. 일각에선 언론 탓을 한다. 우리 언론이 부추긴 결과라는 주장이다. 과연 그런가.   중국의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전인대와 정협 회의)가 지난 4일 베이징에서 정협 회의 개막을 필두로 시작됐다. [중국 바이두 캡처] 우리 청년 세대는 공정과 상식에 민감하다. 한국의 많은 청춘이 중국에 반감을 갖는다는 건 중국이 현재 보여주는 모습이 공정과 상식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걸 뜻한다. 중국발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어떤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한다는 걸 듣지 못했다. 홍콩 시위는 중국의 무자비한 단속으로 사그라졌다. 지난 3년간 지구촌을 쑥대밭으로 만든 코로나19의 경우 적어도 그게 어디서 시작됐는가 하는 기원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폭발적으로 발생한 건 우한이 맞는데도 이에 대해 어떤 미안하다는 말 한 번 들어보지 못했다.   여기에 한복과 김치의 원조까지 중국이라는 주장엔 말문마저 막힌다. 한국에서 반중 정서가 팽배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매력 상실’에 있다. 10여 년 전 후진타오 집권 시기만 해도 중국 하면 ‘발전’ ‘평화’ ‘부상’ 등의 수식어가 따랐다. 한데 이젠 거칠고 공격적이며 이기적이란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느 사이 긍정이 아닌 부정의 아이콘이 됐다. 그러나 이 또한 일시적인 현상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시간이 지나면 중국은 다시 오랜 전통의 미덕을 회복할 것이다.   중요한 건 우리의 자세다. 중국이 싫다고 담만 쌓아선 안 된다. 그럴수록 더욱 중국을 살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국은 실패하기엔 또는 몰락하기엔 너무 큰 나라가 됐다. 중국이 가라앉으면 한국도 딸려 들어갈 위험이 있다. 마침 그제부터 중국의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전인대와 정협 회의)가 시작됐다. 총리 등 중국 지도부 개편이 예정돼 있다. 그런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하게 분석하며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 욕만 하는 것으로 중국을 넘어설 수는 없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3.06 00:39

  • [중국읽기] 중국 신부의 몸값 ‘차이리’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중국 국무원이 최근 내놓은 2023년 중앙 1호 문건이 흥미롭다. 올해 향촌 진흥 정책을 밝힌 것인데, 그 주요 내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차이리(彩禮)’ 관리다. 차이리는 결혼을 앞두고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보내는 재물, 주로 돈을 말한다. ‘21세기판 중국 신부의 몸값’인 셈이다. 얼마나 되길래 문제일까. 연초 장시(江西)성에서 ‘1888만 위안(약 35억6340만원)’의 현금을 차이리로 요구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 중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사회적으로 권장되는 3만 위안과는 천양지차다. 조사에 나선 당국이 해당 글은 날조라고 밝혔지만, 파장은 가라앉지 않는다. 왜? 차이리가 중국 사회의 고질병이 됐기 때문이다. 이태 전 장시성의 한 약혼식에선 차이리로 26만 위안의 현금다발을 식탁 위에 올려놓은 영상이 돌아 화제가 됐다. 2019년엔 빚을 내 얻은 40만 위안을 차이리로 쓰고도 결혼이 성사되지 않자 화가 난 남성이 예비 신부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중국에선 21세기판 중국 신부의 몸값이라 할 차이리(彩禮)가 계속 치솟아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쓰촨성의 한 부모는 최근 미성년인 16세의 딸을 26만 위안의 차이리를 받고 시집보내기로 했다가 딸이 도망치는 등 사회적 비극을 연출했다. 온갖 폐단에도 차이리가 없어지지 않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남녀 성비 불균형이다. 현재 중국엔 남성이 여성보다 4000만 명가량 많다. 한 자녀 정책 이후 남아선호 사상이 빚은 결과다. 20~40세 연령에선 남성이 여성보다 2000만 명 정도 웃돈다.   두 번째는 체면이다. 다른 집 딸은 얼마 받았는데 하며 비교를 하다 보니 차이리는 계속 오른다. 처음엔 혼수 장만용으로 3만~5만 위안 하던 게 이젠 20만~30만 위안은 보통이고 많게는 60만~80만 위안으로 껑충 뛰었다. 세 번째는 신부 측에서 혼인을 계기로 한몫 챙기려 하기 때문이다. 신부 부모가 돈 욕심을 내는 경우도 있고, 신부는 훗날 결혼이 파경을 맞았을 때를 대비해 ‘보험금’ 성격으로 어느 정도 돈을 챙겨 놓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차이리가 비싸지다 보니 농촌 총각의 경우 결혼은 사치가 되고 있다. 특히 장남이 아니면 장가가기는 더 힘들다. 집안 재력을 맏아들 차이리 마련에 쏟아붓다 보니 둘째 아들 몫까지 챙길 여력이 없는 것이다. 차이리 문제는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중국의 남성 4000만이 아내를 얻지 못하니 인구는 더 가파르게 줄어들 전망이다. 아울러 과다 남초(男超) 현상이 빚을 범죄 증가, 나아가 전쟁의 유혹 같은 위험성도 거론된다. 대만과의 긴장 고조에 차이리도 한몫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2.27 00:40

  • [중국읽기] 희한한 중국 때리기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지난 15일 인도 육군이 고산지대 활약이 가능한 공격용 헬기 200대를 도입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중국 견제용’이란 평가가 따랐다. 1월엔 인도와 일본이 사상 첫 연합 전투기 훈련을 벌였다. ‘중국을 겨냥한’ 훈련이란 해석이 붙었다. 2020년 6월 인도군과 중국군이 갈완 계곡에서 충돌해 수십 명의 사망자를 낸 이래 양국 관계는 철천지원수처럼 보도된다. 당시 흥분한 인도 군중은 중국제 스마트폰을 부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상화를 짓밟았다.   한데 놀라운 건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이 삼성을 밀어내고 여전히 인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는 또 중국과 군사훈련도 함께한다. 지난해 러시아 주도의 ‘보스톡 2022’ 군사훈련에 인도와 중국이 나란히 참가했다. 최근엔 호주와 중국과의 관계도 묘하다. 호주는 2018년 5G 통신망 사업에서 중국 화웨이의 참여를 배제했고 2020년엔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요구해 중국을 격분시켰다. 호주는 오커스와 쿼드 등 미국 주도의 대중 포위 정책 참여에도 열심이다.   미국 포드 자동차의 짐 팔리 최고 경영자가 중국 CATL과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화가 난 중국은 호주산 와인과 석탄 등 10여 개 제품에 수입 중지 등 보복 조치를 취했다. 양국 관계는 사상 최악으로 묘사됐다. 한데 지난해 호주 정권이 바뀌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해빙 무드다. 중국의 호주산 석탄 수입이 재개됐고 호주산 바닷가재도 곧 중국 식탁 위에 오른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미국의 행보다. 2018년 무역전쟁 이래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사생 결단의 패권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인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옥죄기 위해 동맹국들까지 규합했다.   그러나 최근 미 기업 CEO들의 잇따른 방중 소식이 들린다. 애플과 화이자 CEO들이 내달 ‘중국개발포럼’ 참석을 위해 베이징을 찾는다. 게다가 미 포드 자동차는 최근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CATL과 손잡고 미시간주에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교묘히 우회하는 방법이다. 반면 포드가 우리 SK온과 튀르키예에 세우려던 배터리 합작공장 계획은 무산됐다고 한다.   한국 전기차 업체는 IRA로 인해 1차 피해를 봤다. 이젠 우리 배터리 업체까지 뒤통수를 맞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칫 동맹의 손발은 묶고 미국만 중국과 장사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중국 경제가 방역 완화 후 회복할 것이란 기대 속에 세계 각국이 저마다 중국을 상대로 잇속 챙기기에 나선 모양새다. 우리로선 남이 부는 피리에 넋 놓고 장단만 맞추고 있을 때가 아닌 듯싶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2.20 00:53

  • [중국읽기] 정찰풍선과 초한전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미·중 관계가 풍선과 함께 터지고 말았다. 지난해 말 미·중 정상회담 이후 대화를 모색하던 양국 분위기가 중국의 정찰풍선 피격과 함께 산산조각이 난 모양새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인공위성이 수도 없이 날아다니는 21세기에 중국은 왜 풍선을 띄웠을까. 생각보다 장점이 많다. 제조원가가 낮고 격추돼도 피해가 작으며 한 곳에 장시간 머무르면서 초(超)저궤도의 위성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군사용’이 아닌 ‘민간용’이라 우기며 군사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서다. 배경에 중국의 초한전(超限戰) 개념이 깔려있다. 초한전은 한계를 뛰어넘는 전쟁을 말한다. 1999년 차오량(喬良) 국방대학 교수와 왕샹수이(王湘穗) 베이징항공우주대학 교수가 공동 개발한 개념이다. 미국처럼 강대한 적을 상대할 때는 직접 대결을 피하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략적 환경을 중국에 유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4일 미 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앞바다 상공에서 중국 정찰풍선이 미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사각의 링에서 규칙에 따른 복싱을 하자고 한다면 중국은 두 손은 물론 발길질과 박치기 외에 욕설 등 온몸을 쓰는 길거리 싸움을 하겠다는 것과 비슷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세(勢)다. 궁한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상대가 함부로 덤비면 큰코다칠 것이란 인식을 심어주는 게 필요하다. 나라가 커도 싸움을 좋아하면 망한다(國雖大好戰必亡)는 걸 깨닫게 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 중국은 이후 심리전·여론전·법률전 세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삼전(三戰)전략을 발전시켜 2003년 이를 공식화했다.   이런 배경 하에 2010년부터는 중국의 회색지대(灰色地帶) 전략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전쟁도 평화도 아닌 회색지대의 모호성을 활용해 정치적·외교적·군사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이 남중국해 분쟁에서 종종 활용하는 해양민병대다. 이들은 수백 척의 선단을 구성해 떼로 몰려다니며 상대국을 압박한다. 타국이 이들을 공격하면 ‘민간인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될 우려가 있다. 이번 정찰풍선도 대표적인 중국의 회색지대 전술로 통한다.   ‘기상관측용 민간 비행선’이란 중국의 항변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표나리 국립외교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랜드연구소는 지난해 중국의 회색지대 전술을 77가지의 행위로 세분화했는데, 이 77개 항목 중 30개가 한국에 적용됐거나 적용되고 있다. 중국 관광객을 줄여 한국을 압박하거나 한국 학계 인사에 대한 매수 시도 등을 그런 예로 꼽았다. 우리 머리 위에 뭐가 떠 있나 자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야 하는 세상이 됐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2.13 00:56

  • [중국읽기] 베트남의 중국화?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지난해는 한·중 수교 30년이자 한·베트남 수교 30년의 해였다. 이에 맞춰 지난해 12월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이 한국을 찾았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한데 그는 귀국 한 달여 만인 지난달 중순 전격 사임했다. 그의 측근인 부총리 두 명이 부패 문제에 연루되자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거다.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만은 어렵다. 권력투쟁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베트남 공산당은 서기장과 국가주석, 총리, 국회의장의 4두 마차가 이끄는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서기장은 군권과 당권을 장악하고 국정 전반을 관장한다. 국가주석은 외교와 국방, 총리는 행정, 국회의장은 입법을 관할한다. 한데 베트남 정치에서 정작 중요한 건 남북의 균형이다. 주로 하노이 출신 북방파가 서기장을, 호치민 배경의 남방파가 총리를 맡는다. 현재 서기장인 응우옌 푸 쫑은 1944년 하노이 출생으로 대표적인 북방파다.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모두 3연임에 성공한 공통점을 갖는다. [신화=연합뉴스] 그가 2011년 권좌에 오를 무렵엔 4두 마차 중 북방파는 그 혼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2016년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따라 강력한 부패척결 운동을 벌이며 권력 다지기에 성공했다. “어떤 금지구역도, 어떤 예외도 없다”는 서슬 퍼런 반부패 운동에 10만여 당원이 낙마했다. 여기엔 정치국 위원 출신 4명도 포함됐다. 그 결과 권력 지형이 바뀌었다. 4두 마차 중 남방파는 최근 사임한 응우옌 쑤언 푹 한 사람만 남게 됐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물러난 것이다.   특히 응우옌 푸 쫑은 2021년 1월 ‘특별 후보자’ 형식으로 예외를 인정받아 서기장 3연임에 성공했다. 1975년 베트남전이 끝난 이후 최장수 서기장이다. 지난해 10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3연임에 성공했을 때 가장 먼저 베이징을 찾아 축하한 게 그였다. 시 주석은 답례로 그에게 외국인에 주는 최고 훈장을 수여했다. 두 사람은 투철한 사회주의자로 국유기업 중심의 경제발전 노선을 추구한다는 점도 같다.   부패척결을 내세워 장기집권 가도를 열고 있는 점도 매우 흡사해 일각에선 ‘베트남의 중국화’라는 말이 나온다. 베트남은 지난해 우리가 가장 많은 342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곳이다. 9000여 한국 기업에 20만 한국인이 활동 중이다. 베트남 중부 다낭은 ‘경기도 다낭시’라 불릴 만큼 한국인 발길이 잦다. 아이러니한 건 중국의 환경 변화에 따라 탈(脫)중국에 나선 한국 기업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베트남인데, 최근 베트남의 정치 환경이 중국을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의 변화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2.06 00:31

  • [중국읽기] 중국몽과 중국인구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대표 중국은 지대물박인다(地大物博人多)의 나라다. 땅은 넓고 물산은 풍부하며 사람은 많다는 이야기다. 그런 중국의 전국시대 인구는 2000만 정도로 추산된다. 이후 오랜 세월 5000만 내외를 오가다 명대 6000만을 넘어선 뒤 청대 들어 급증했다. 1724년 1억, 1812년 3억, 1901년엔 4억을 돌파했다. 1949년 신중국 건국 당시 5억4000만을 기록했는데 “인구는 힘”이란 마오쩌둥의 말에 힘입어 1982년엔 10억, 그리고 2019년엔 14억을 넘어섰다.   그러나 영원한 건 없는 모양이다. 2021년 14억1260만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는 85만이 줄었다.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선 것인데 중국 당국의 예상을 9년 앞당긴 결과다. 중국의 인구 감소는 세계사적인 사건이다.   유엔 조사에 따르면 오는 4월 중순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 타이틀은 중국에서 인도로 넘어가게 된다. [AFP=연합뉴스] 크게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상징적인 의미로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이란 타이틀을 상실하게 됐다는 점이다. 유엔에 따르면 오는 4월 중순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이 된다. 중국이 ‘세계 최대의 개발도상국’이라거나 또는 ‘세계 최대의 소비 시장’이란 수식어도 더는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두 번째는 중국이 누려온 ‘인구 보너스’가 상실되며 중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것이란 점이다. 인구 보너스는 흔히 경제활동인구는 많고 고령인구는 적어 노동력이 끊임없이 유입되는 상황에서 저축률이 증가해 경제가 상승하게 되는 걸 일컫는다. 한데 이런 이점을 중국이 더는 챙기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대량의 염가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이라고 자부하던 성장모델 역시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전망이다.   세 번째는 미국을 추월해 세계 넘버원이 되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노동력 감소에 따라 제조강국을 건설해 세계 최강의 중국을 만들겠다는 시진핑의 야심이 한낱 꿈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이와 관련 일본경제연구센터의 지난 3년에 걸친 중국 GDP 예측이 흥미롭다. 2020년 말 이 센터는 중국의 GDP가 2028년이 되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봤다. 2021년엔 그 시기를 2033년으로 늦췄다. 한데 지난해 말 발표에선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국인은 “아직 부자가 되지 않았는데 몸은 이미 늙고 말았다”는 ‘미부선로(未富先老)’라는 말을 탄식처럼 내뱉곤 한다. 한데 이젠 중국이 미국을 넘어설 만큼 아직 강해지지 않았는데 벌써 쇠락의 길에 들어선 게 아닌가 하는 ‘미강선쇠(未强先衰)’의 한탄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대표

    2023.01.30 01:00

  • [중국읽기] 춘절과 폭죽, 애국주의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중국은 설을 춘절(春節)이라 한다. 과거엔 한 해의 으뜸 날 아침이란 뜻의 원단(元旦)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게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 양력 1월 1일을 원단, 음력 1월 1일을 춘절이라 일컫게 됐다. 춘절이 되면 객지에 나갔던 가족이 다 모인다. 그믐날 밤인 제석(除夕)엔 온 가족이 모여 웃음꽃을 피우며 연야반(年夜飯)을 먹는다. 이때 가장 중요한 먹거리가 교자(餃子)다.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시각이 자시(子時)로, 이 시각에 준비한 음식을 교자(交子)라고 했는데 식(食)이 더해져 교자(餃子)가 됐다.   한데 문제가 있다. 연(年)이라 불리는 악귀가 1년 내내 잠만 자다 그믐날 밤이 되면 배를 채우기 위해 인간 세상에 나타난다. 이 악귀 퇴치에 세 개의 보배가 있다. 홍색과 불빛, 폭음(爆音)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인은 홍색의 대련(對聯)을 써 집에 붙이고 초를 켜 불을 밝히며 폭죽(爆竹)을 터뜨려 악귀 쫓기에 나선다. 폭죽의 중국어 발음 ‘빠오주’는 ‘복을 알린다’는 ‘빠오주(報祝)’와 같기도 하다. 폭죽이 풍속이 된 건 2000년도 넘는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중국인 입국자의 목에 걸린 노란색 카드가 차별로 인식되며 중국 내 반한 감정이 일고 있다. [펑파이 캡처] 그러나 불이 나기 쉽다. 소형 폭죽은 폭음이 100번에서 1000번, 대형은 2000번에서 2만 번에 이른다. 1977년 신장에선 폭죽으로 불이 나 694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중국 당국은 화재 위험 외 대기오염 문제를 들어 폭죽을 금한다. 한데 새해 들어 중국 곳곳에서 폭죽이 터지고 있다. 노자(老子)의 고향이란 허난성 루이(鹿邑)현에선 폭죽 금지에 나섰던 경찰이 봉변을 당했다.   청소년들이 경찰차를 뒤집고 번호판을 떼어내자 군중은 환호했다. 이에 놀란 중국 당국이 올해는 폭죽을 부분적으로 허용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왜? 중국의 민심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지난 3년의 봉쇄와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등 쌓이고 쌓인 민초의 불만이 고의로 폭죽을 터뜨리는 방식으로 공권력에 도전하는 모양새다. 배경엔 지난해 터진 ‘백지 운동’의 저항 정신이 꿈틀거린다.   중국 당국은 과거 인민의 불만을 빠른 경제 성장으로 잠재웠다. 그러나 시진핑 집권 이후 성장세는 줄곧 내림세다. 그래서 나온 게 애국주의 강조다. 중국 외교가 거칠어진 이유다. 이번 코로나 난국을 맞아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침 한국에서 중국인 입국자에 노란 카드를 걸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중국 당국은 한국을 콕 집어 보복 조치를 했고, 중국 언론은 분노의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애국주의로 코로나 난관을 돌파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올 한해 역시 쉽지 않을 한·중 관계가 될 듯하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1.16 00:47

  • [중국읽기] 중국의 색, 홍색 vs 백색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중국의 색(色)은 정색(正色)과 간색(間色)으로 나뉜다. 정색은 적(赤)과 청, 황, 백, 흑의 오색을 말한다. 간색은 서로 다른 정색이 여러 비율로 섞여 이뤄진다.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단연 홍(紅)색이다. 서양에선 홍색이 위험과 급함을 뜻하지만, 중국에선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다. 행운과 경사는 모두 홍색으로 표현한다. 잔치를 여는 식당은 홍색으로 꾸미고 송나라 때부터는 신랑·신부가 홍색 혼례복을 입는 게 풍속이 됐다.   홍색이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기에 아이들에게도 빨간 옷을 입힌다. 설엔 길(吉)하라고 세뱃돈을 홍바오(紅包)에 넣어준다. 근대 정치 운동에서 홍색은 진보와 전위(前衛)의 상징으로 쓰여 공산군은 홍군(紅軍)으로 불렸다. 홍군이 차지한 대륙은 홍색강산(紅色江山)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혁명 2세대는 홍이대(紅二代)라 일컫는다. 또 중국 해커는 홍커(紅客)라 말한다.   지난해 홍색의 중국을 강타한 ‘백지 운동’은 3년간 이어지던 제로 코로나 정책을 바꾸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런 중국에 지난해 말 백(白)색의 도전이 몰아쳤다.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중국인이 A4 흰색 종이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 아무것도 쓴 게 없는 백지였지만 그 뜻을 중국 경찰도 시민도 모두 알았다. “봉쇄가 아닌 자유를 달라”는 무언의 외침이었다. 백색은 고대 중국에서 흉사나 불길, 사람이 죽었음을 상징한다. 흰색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항복이다. 동서양이 비슷하다. 중국에서 패전한 군사는 백의로 갈아입고 투항했다. 2차 세계대전 말 미군이 독일로 진격하자 독일인의 집 창가마다 하얀 침대보가 걸렸다. 저항은 없다는 표시였다.   한데 중국 인민은 이번에 역설적이게도 투항의 색으로 거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무려 3년을 끌던 봉쇄 정책이 풀렸다. 중국 인민 사이엔 이제 “백지 시위가 효과가 있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중국의 의과대학 여러 곳에서 임금과 처우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백지 운동이 중국의 정치적 각성을 불러왔다는 말이 나온다.   사실 흰색은 시작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백(白)은 상형문자다. 일(日)자 위에 한 획을 삐친 것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모습이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 제일 먼저 명령한 게 “빛이 있으라”가 아니었나. 그래도 중국의 바탕색은 뭐니뭐니해도 홍색이다. 이 홍색 바다에 뛰어든 백색 파문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지 아니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게 될지 새해 그 귀추가 주목된다. 징조는 심상치 않다. 연초부터 중국 곳곳에서 금지된 폭죽을 터뜨리며 경찰과 충돌하는 중국 민중의 모습이 잇따라 전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1.09 00:47

  • [중국읽기] 손자와 비밀경찰서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홍콩 특파원으로 부임한 게 홍콩의 중국 반환 3년 전인 1994년이다. 당시 홍콩의 지인으로부터 재미있는 조언을 들었다.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장소를 이용하란 것이다. 그렇지 않은 장소에선 담뱃갑 속 은박지를 계속 만지작거리며 말을 하라고 했다. 왜? 클래식 음악이나 은박지 소리가 도청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홍콩은 스파이가 들끓는 곳이란 이야기다.   기원전 5세기에 쓰인 『손자병법』은 싸움에 이기기 위한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애용된다. 그 마지막 13편은 용간편(用間篇)으로 간첩 사용을 다룬다. 적을 이기려면 반드시 적의 상황부터 알아야 한다. 한데 이는 점괘를 통해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첩자가 필요한데 여기엔 다섯 종류가 있다.   중국의 한국 내 비밀경찰서 운영 의혹을 받는 동방명주의 실소유자 왕하이쥔이 지난달 29일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첫 번째가 향간(鄕間)이다. 적국의 일반인을 포섭해 고정간첩으로 활용한다. 두 번째는 내간(內間). 적국의 관리를 포섭해 첩자로 이용한다. 세 번째는 반간(反間)이다. 적의 간첩을 매수해 이중간첩으로 역이용한다. 네 번째는 사간(死間). 그릇된 정보를 흘리면 아군에 침투한 간첩이 이를 적국에 알려 적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다섯 번째는 생간(生間). 적국의 동향을 정탐한 후 살아 돌아와 보고하게 한다.   싸움에 이기기 위해 이 다섯 가지의 간첩을 동시에 활용한다. 한데 손자가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반간이었다. 탕왕(湯王)이 하(夏)나라를 멸하고 은(殷)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건 하의 신하였던 이윤(伊尹)을 이용했기 때문이고,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멸하고 주(周)나라를 건국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은의 고관 여야(呂牙)를 활용했기 때문이란다.   중국이 한국에서도 비밀경찰서를 운영했고 그곳이 한강변 중식당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며 국내가 발칵 뒤집혔다. 중식당 대표는 억울함을 호소 중이다. 여기서 두 가지를 새겨야 한다. 하나는 중국이 『손자병법』의 나라란 점이다. 중국이 우리 정계와 학계 등 각계를 상대로 광범위한 포섭 활동을 벌였을 가능성은 지극히 크다. 우리의 각성이 절실하다. 지금이라도 중국의 침투 상황을 철저히 파악해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다른 하나는 그렇다고 중국과의 정상적인 교류와 협력 관계마저 마녀사냥처럼 매도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필자는 가본 적 없지만, 문제의 한강변 중식당에서 밥 먹은 것만으로 의심받아서야 되나. 벼룩 잡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다. 간자(間者)를 가려내 안보를 단단히 하는 것과 중국과의 우호 유지란 두 가지 일 모두가 중요한 새해를 맞게 됐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1.02 00:40

  • [중국읽기] 시 주석 ‘몐즈’와 코로나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두 달 전 중국 20차 당 대회의 최대 안건은 시진핑 총서기의 3연임 확정이었지만, 정작 세상의 관심은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폐막식 날 강제 퇴장에 몰렸다. 진상은 아직도 모른다. 그러나 중화권에선 후에 대한 ‘몐즈(面子) 암살’로 보는 견해가 많다. 몐즈, 즉 체면은 중국인이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다. 이로써 후진타오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셈이 됐다.   코로나로 얼룩진 연말 중국에선 이제까지 제로 코로나 정책을 ‘친히 지휘하고 친히 안배하는’ 것으로 선전되던 시진핑 주석의 몐즈 구하기가 한창이다. 초점은 결코 ‘백지 운동’에 밀려 정책을 바꾼 게 아니라는 데 맞춰져 있다. 중국 관방의 논리는 “바이러스는 약해졌고 우리는 강해졌다(病毒弱了 我們强了)”는 것이다. 오미크론 변이의 독성은 낮아진 반면 중국인 위생 의식은 높아진 결과라는 주장인데 글쎄다.   연말 중국에선 “코로나 감염 며칠째인데 증상이 어떻다”는 걸 위챗을 통해 주고 받는 게 일상이 됐다고 한다. [AP=뉴시스] 여기에 코로나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 코로나 사망에 대한 정의(定義)까지 바꾸는 해괴한 일을 벌이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제로 코로나 정책을 바꾼 배경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당 대회에서 시 주석 다음의 서열 2위에 올라 차기 총리를 예약한 리창(李强)이 시진핑을 설득한 결과란 것이다. 리창은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중국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는 걸 피하자는 거다. 리창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가 2023년에 코로나19를 보통의 전염병으로 선포할 공산이 크다. 한데 중국만 이를 중대 전염병이라며 계속 봉쇄 정책을 펴면 세계에서 고립되고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는 논리다.   두 번째는 빨간 불이 켜진 중국 경제 살리기다. 중국 각 지방 정부의 재정은 장기간에 걸친 봉쇄 정책의 충격 탓에 고갈 상태에 빠졌다. 현재 돈을 찍어 간신히 재정 위기를 넘기고 있는데 내년 봄 정식으로 중국 곳간의 열쇠를 넘겨받을 리창 입장에선 식은땀이 나는 상황이란 것이다. 이런 점들이 시 주석의 마음을 움직였지 절대로 백지를 든 시위대에 굴복해 제로 코로나 정책을 바꾼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논리 이면엔 시 주석의 정책은 언제나 무(無)오류라는 입장이 깔려있다. 시 주석의 체면은 조금도 손상될 수 없기에 나오는 행태다. 그러고 보니 중국은 공식적으로 제로 코로나 정책의 포기를 발표한 적이 없다. 이건 무얼 뜻하나. 언제든 상황을 봐 다시 등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전면 봉쇄’라는 유령이 아직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중국의 하늘을 떠돌고 있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2.12.26 00:42

  • [중국읽기] 다시 코로나 출발선 선 중국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중국이 난리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일순간에 바꾸면서다. 족쇄 같던 PCR 검사와 무자비한 봉쇄가 사라지자 감염자 폭증과 화장장의 긴 줄이란 새로운 풍경이 생겼다. 코로나가 처음 폭발하던 2020년 초 우한(武漢)의 모습이 재연되는 것 같다. 베이징의 발열 환자는 일주일 새 16배 급증하고, 화장터 12곳은 24시간 가동에도 평소보다 5~7일은 더 기다려야 화장이 가능하다. 무증상 감염자 수치도 발표하지 않기로 해 얼마나 많이 감염됐는지도 알 길이 없다.   중국은 이제서야 코로나와의 전쟁을 새롭게 시작하는 모양새다. 세계가 지난 3년간 겪고 난 것을 지금 시작하는 셈이다. 코로나와의 전쟁 출발선에 다시 선 것이다. 관건은 희생자를 어떻게 최소화하면서 위드 코로나에 안착하느냐다. 이제까지 나온 각종 전망은 불안한 게 많다. 전 중국질병통제센터 부주임 펑즈젠은 이번 사태의 첫 번째 최고조기에 중국인의 60%가 감염될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이 사실상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포기하면서 약국마다 감기약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연합뉴스] 14억 인구 중 8억4000만 명이 감염된다는 이야기다. 현재 전 세계 감염자 숫자인 6억4800만을 훌쩍 뛰어넘는다. 사망자 추정과 관련해선 영국의 정보분석업체 에어피니티가 130만~210만, ‘네이처 의학’이 150만, 저우자퉁 중국 광시질병통제센터장의 200만 등 다양한데 모두 100만 명이 넘는 규모라 아찔하다.   이같이 엄중한 중국의 코로나 상황은 남의 일이 아니다. 코로나가 중국에서 처음 폭발하기도 했지만, 지난 3년간 눌려있던 코로나가 중국에서 다시 분출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어떤 사태를 초래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선 새로운 변이가 나올까 걱정이다. 중국이라는 너른 땅, 세계 최다 인구, 여기에 중국 특색의 위생 상황을 거치며 지금보다 더 강한 독성과 빠른 전파력을 갖춘 변이가 나올지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이번 코로나 사태의 최고조기를 언제 맞을까. 중국 인터넷에선 빅데이터를 앞세운 연구라며 광저우는 이달 24일, 선전은 1월 1일, 상하이는 1월 6일 등의 말이 떠돈다. 그러나 중국의 유명 의학자 장원훙 화산(華山)의원 감염과 주임에 따르면 앞으로 1개월 후 중국은 이번 사태의 정점을 맞을 전망이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春節) 직전이 된다.   자칫 귀성 발길이 의료체계가 약한 중국 농촌에 코로나 재앙을 뿌릴지 우려가 커진다. 중국은 이제야 시험대에 올랐고 시진핑 집권 3기의 운명도 승패가 갈릴 전망이다. 아울러 세계의 코로나 상황도 새로운 시험대에 서게 됐다. 다시 말하지만, 지구촌 코로나는 중국이 끝나야 끝난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2.12.19 00:26

  • [중국읽기] 달라진 중국의 한반도 3원칙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저럴 돈으로 쌀이나 사지.”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의 올해 식량 부족분은 121만톤. 이를 쌀과 옥수수로 나눠 사는 데 약 5500억원이 든다. 북한이 올해 쏴댄 각종 미사일은 63발. 그 비용이 무려 1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 돈을 허공에 날리고 있는 셈이다. 이어지는 생각은 누가 뒷배를 봐주기라도 하나인데 틀리지 않았다. 중국은 2020년 80만톤 등 매년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북한의 유난히 잦은 미사일 도발 배후에도 중국의 달라진 한반도 정책이 있다. 중국은 1992년 한국과 수교한 이래 한반도 3원칙을 고수해 왔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자주적 해결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한반도 3원칙에 변화가 생긴 게 최근 알려졌다. 얼마 전 한국유라시아학회가 주최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 국가, 지역, 국제질서’ 국제학술회의를 통해서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인훙(時殷弘) 중국 인민대 교수가 그 내용의 일부를 밝혔다. 미·중 관계 전문가인 스 교수는 중국 국무원 참사로 외교부에 자문하는 등 중국 외교 정책에 밝다. 그런 스 교수의 발표와 토론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지난해 3월 미 앵커리지에 열린 중·미 고위급 회담 이후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크게 변했다.” 당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양제츠 중국 정치국원이 얼굴을 붉히며 싸웠다.   스 교수는 “중국은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팀을 만들고 있으니 중국도 이에 대항할 팀을 만들기로 했다. 이에 북한과 러시아, 이란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으며 이후 중국 고위층의 의제에서 비핵화 부분이 사라졌다. 중국으로선 비핵화보다 북한과의 우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한국이 아직도 중국의 한반도 정책을 잘 모르는 것 같아 놀랍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달 발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관련해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주문한 게 중국 발표문엔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점이 떠오른다. 당시 시 주석은 오히려 “한국이 남북관계를 개선하라”며 한국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과 같은 발언을 했다. 미·중 갈등 속 진영 구축에 나선 중국이 북한 편들기에 나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비핵화 관련 무슨 역할을 해달라고 하는 건 쇠귀에 경 읽기다. 중국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달라졌다면 우리의 대중 정책도 변해야 한다. 우리 안보를 지키기 위한 조치에서 중국 입장에 대한 고려는 달라진 중국 정책만큼이나 조정되는 게 맞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2.12.12 00:39

  • [중국읽기] ‘3다 선생’ 장쩌민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은 과거 집권 시기 베이징 외교가에서 ‘3다(三多) 선생’으로 불렸다. ‘말과 노래, 영어’ 세 가지를 많이 한다는 뜻이었다. 다변에 노래도 자주 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방중 시 환영 만찬 자리에서 먼저 한 곡 뽑은 뒤 노래에 자신이 없던 김 대통령에 기어이 노래를 시켰을 정도다. DJ는 귀국 보고에서 “다른 건 다 잘했는데 노래는 장 주석을 당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장 주석은 자신이 노래하면 황제가 아니라 보통 사람처럼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또 외빈 중 미·일 두 나라 손님은 꼭 자신이 만나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미국인은 자신이 영어를 잘하니 만나야 하고, 일본 사람은 과거 침략의 역사를 잘 모르니 가르쳐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1996년 7월 한국 언론과의 첫 인터뷰인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의 회견에선 공학도답게 반도체 회로 간극을 언급하는 전문성을 보였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의 추도식이 6일 열린다. 사진은 그가 1997년 홍콩에 도착해 손을 흔드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1998년 중국에 100년 만의 홍수가 닥치자 그는 강(江)과 택(澤) 등 자신의 이름에 물(水)이 너무 많아 생긴 수재가 아니냐며 탄식했다. 굵은 뿔테 안경과 큰 입으로 인해 ‘두꺼비’란 별명도 얻었다. 서민형 리더였던 그의 최대 공헌은 ‘삼개대표(三個代表) 중요사상’ 수립에 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생산력, 문화, 광대 인민의 근본 이익 등 세 가지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광대 인민’에 있다. 인민은 노동자와 농민을 뜻한다. 앞에 수식어 ‘광대’가 들어간 건 ‘자본가’까지 포함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중국 공산당은 예전 타도 대상인 자본가도 끌어안으며 전체 인민의 당인 전민당(全民黨)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에 힘입은 기업가는 창의성을 발휘해 바이두와 알리바바, 텐센트 등 굴지의 민영기업을 일궜다. 중국이 G2 국가로 부상한 원동력이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의 시진핑 시대는 완전히 다르다. 민영기업은 국유기업에 흡수될 처지에 놓였고, 장쩌민 시대의 자유로웠던 공기는 숨 막히는 단속의 시대로 변했다.   그의 추도식이 6일 열린다. 76년 저우언라이 추모대회가 1차 천안문 사태를 낳았고, 1989년 후야오방 사망은 2차 천안문 사태를 촉발했다. 2022년 장의 추도식이 과연 3차 천안문 사태를 낳을 수 있나? 중국 당국의 철통 통제로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최근 중국인이 보이는 거리 시위와 ‘공산당 타도’ 구호는 얼마 전까진 상상할 수 없던 모습이다. 중국 인민의 정치적 각성이 과연 중국 변화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수 있을지 베이징을 주목할 때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2.12.05 00:25

  • [중국읽기] 시진핑 알려면 마오 공부하라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공소사(供銷社)’. 꽤 낯선 단어다. 뜻풀이하면 ‘공급판매사’다. 뭘 공급하고 판매하는 회사인가. 1994년 출판된 『쉽게 찾는 중국 경제용어』를 들춰보니 ‘공소합작사(供銷合作社)’는 ‘농촌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도시에 내다 파는 집체(集體) 소유 형태의 상업조직’이라고 적혀 있다. 농민은 공소사에 가서 농산물을 팔고 생필품을 산다. 또 대출도 여기서 받는다. 농촌에서 생산과 유통, 신용의 삼위일체 역할을 하는 곳으로 농민은 공소사와 유리된 삶을 생각할 수 없다. 마오쩌둥 치하 계획경제 시대의 대표적인 산물로 1950년 7월 처음 등장했다.   이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계획경제가 퇴출당하면서 공소사 역시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완전히 소실되지는 않은 채 명맥만 유지하는 상태였는데 시진핑 집권 3기 들어 화려하게 컴백하고 있다. 시진핑 1기 중반인 2015년부터 부활의 몸짓을 보이더니 2018년 1만 개, 2019년 3만2000개로 급증하는 등 지금은 중국의 농촌을 기본적으로 다 커버할 수준으로 성장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권력 장악의 많은 노하우를 자신의 어릴 적 우상인 마오 쩌둥의 치술에서 찾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 당국은 현대농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공소사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장년층 이상의 중국인이 공소사에 대해 갖는 기억은 씁쓸하다. 공소사 하면 크게 두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첫 번째는 물자 결핍이다. 공소사에서 사야 하는 생필품이 언제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뭐든지 사려면 표(票)가 있어야 했다. 곡식은 양표(糧票), 기름은 유표(油票), 고기는 육표(肉票)가 필요했다. 문제는 표가 있다고 해서 꼭 원하는 걸 살 수 있는 게 아니란 점에 있었다. 이는 두 번째 아픈 추억인 부패로 연결된다. 모두가 바라는 물건은 흔히 당 간부에게 뇌물로 먼저 제공됐다. 또는 점원과의 관시(關係)가 중요했다.   이런 ‘결핍과 부패’, 그리고 계획경제의 대명사와도 같은 공소사 부활에 시진핑은 왜 열을 올리는 걸까. 마오 시대 중국 당국 입장에서 공소사의 가장 큰 역할은 농산물의 계획수매와 계획판매를 통해 농민을 통제하는 데 있었다. 마오의 농촌 장악 수법이다. 3연임에 성공한 시 주석은 후계 구도를 없앤 채 장기집권을 노린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전체 인민의 밥줄을 완벽하게 장악해야 한다. 이 중 5억 농민에 대한 통제를 바로 공소사의 부활을 통해 꾀하고 있다. 시 주석은 치세(治世)의 많은 노하우를 어릴 적 우상인 마오쩌둥의 치술(治術)에서 찾고 있다. 시진핑 집권 3기의 중국이 가고자 하는 길을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부터 차근차근 다시 공부하는 게 순서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2.11.28 00:26

  • [중국읽기] 491자 한중 정상회담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지난 15일 첫 대면 정상회의는 성공인가, 실패인가. 100점 만점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줘야 하나. 실패나 40점 미만의 과락 운운할 수는 없지만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당초 한중 정상회담이 확정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회담이 개최된 것에 그래도 선방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첫 대면 회담을 가졌다. [중국 신화망 캡처] 나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자위하고 그냥 지나가기엔 현재 처한 한중 관계가 안쓰럽다. 솔직히 윤 대통령이나 시 주석은 당분간 상대 국가를 방문할 의사가 없거나 형편이 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지난 정권의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두 차례나 중국을 방문한 터여서 이번엔 시 주석이 한국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시 주석은 한국의 반중 정서가 강한 상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한국을 방문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번에도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면 한국을 찾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는 궁색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G20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의 경우 지난 16일 하루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는 8486명으로 세계에서 8번째로 감염자가 많이 늘어난 국가다. 방한 조건으로 코로나 상황 운운하는 건 그저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6년 전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사태로 인한 앙금이 가시지 않았기에 한국을 찾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오른쪽)은 지난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미중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이처럼 양국 정상이 서로 먼저 방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은 제3국에서의 만남이다. 한데 이마저 사전에 결정하지 못하고 현지에서 최종적으로 이뤄진 건 양국 고위급 간 소통이 그만큼 매끄럽지 못하다는 걸 말한다. 시 주석이 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쌍방은 전략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 건 바로 이를 두고 한 이야기 같다. 정상회담과 같은 커다란 사안을 미리 확정하지 못할 정도로 한중 관계는 불안 불안한 것이다. 그런 모습은 한중 정상회담을 전하는 중국의 보도 태도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시 주석의 활동 내용을 글과 영상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처리 방식을 통해 중국 당국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4일 순방길에 오른 시 주석은 가장 먼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다자회의 말고도 수십 개의 양자 회담을 소화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은 지난 17일 태국 방콕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중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 신화망 캡처] 우리가 주목할 건 우선 보도 분량이다. 인해전술로 유명한 중국은 먼저 양(量)을 통해 중요성을 강조한다. 시진핑이 처음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되던 해인 2012년 12월 25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사는 ‘중국 고위층의 새로운 진용’이라는 제목 아래 새로 뽑힌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을 소개했는데 시진핑에 대해선 무려 1만 5000자를 할애했다. 2인자인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절반 정도인 8000자, 나머지 서열 3~7위 정치국 상무위원은 3000자에 불과했다. 시 주석은 지난 14일부터 19일까지 인도네시아 G20 정상회의와 태국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19명의 외국 정상과 양자 회담을 가졌다. 보도 분량이 가장 많은 건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인데 기사 작성 시 글자 수를 표시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보니 2868자의 기사에 영상은 10분 51초에 이른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행사 주최국인 태국 및 인도네시아와의 회담으로 각각 1610자와 1172자에 이른다. 네 번째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의 정상 회담으로 1025자의 글에 3분 54초 동안 전파를 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6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회담 내용 공개에 대해 항의하는 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놀라운 건 한중 정상회담 보도가 가장 짧게 처리됐다는 점이다. 491자에 1분 46초다. 500자 미만으로 보도된 건 19개 국가 중 우리가 유일하다. 우리 바로 위 18위는 칠레 대통령과의 회담으로 528자다. 17위는 네덜란드 총리와의 회담으로 543자, 16위는 호주 총리와의 회담으로 552자다.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600자 이상이 넘는다. 영상도 2분 이상을 할애했다. 시진핑이 19개 국가 정상을 만나는 과정에서 한국과의 회담만 500자도 안 되는 가벼운 분량으로 처리했다. 이게 바로 수교 30년을 맞은 한중 관계의 현주소다. 때론 형식이 내용을 압도한다. 중국의 모든 신문에 활자로 찍히고 중국의 모든 TV 전파를 탔을 이 보도는 중국이 세계 각국 중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또 상대하고 있음을 중국 인민에게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은 그래도 막판에 회담을 취소한 수낵 총리의 영국이나 시 주석과 말싸움을 벌인 트뤼도 총리의 캐나다보다는 나은 편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실패나 과락이라 할 수 없겠지만, 결코 성공이나 합격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491자의 한중 정상회담은 그래서 점수로 말한다면 잘해야 49점, 아니면 41점이 아닐까 싶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2022.11.21 00:31

  • [중국읽기] ‘중국식 현대화’가 뭔가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려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집권 3기를 시작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앞으로 5년 동안 어떤 구호를 내세우며 중국을 이끌 건가. 10년 전인 2012년 11월 처음으로 당 총서기에 올랐을 때 시진핑은 ‘중국몽(中國夢)’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2017년 집권 2기를 맞아선 ‘신시대(新時代)’를 외쳤다. 이번 3기의 키워드는 뭔가. 시진핑이 지난달 16일 20차 당 대회 ‘보고’에서 강조한 ‘중국식 현대화’라는 데 이견이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일 베이징을 찾은 하산 탄자니아 대통령에게 “현대화는 서구화의 동의어가 아니다”라며 ‘중국식 현대화’ 홍보에 나섰다. [중국 신화망 캡처] 앞으로 5년 중국과 함께 비즈니스든 뭐든 무슨 일을 도모하려면 중국식 현대화를 모르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식 현대화라는 말은 낯설다. 그러나 그 말이 등장한 건 꽤 오래전이다. 개혁개방 초기인 1979년 3월 덩샤오핑(鄧小平)이 당의 이론공작 회의 석상에서 중국식 현대화라는 말을 처음 썼다고 한다. 이후 사용이 뜸했는데 시진핑이 지난해부터 다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초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해 세계 160여 국가의 500여 정당 대표를 베이징으로 초청한 자리에서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은 중국식 현대화로 인류가 현대화의 길을 찾는데 있어 새로운 공헌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중요 행사 때마다 거론하다가 이번 당 대회 보고에서 중국식 현대화를 미래 5년의 비전으로 제시하며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비교적 상세하게 밝혔다. 시진핑 3기 출범 이후 서방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4일 숄츠 독일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시진핑 주석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식 현대화는 각국 현대화의 공통된 특징에 중국의 국정(國情)에 맞는 중국특색 다섯 가지를 덧붙인 것이다. 그 다섯 가지는 1) 거대한 인구 규모의 현대화 2) 전체 인민 공동부유의 현대화 3)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상호 조화를 이루는 현대화 4)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생하는 현대화 5) 평화발전의 길을 걷는 현대화 등이다. 말은 중국 정치인의 언사가 대개 그렇듯이 모두 비단이다. 중요한 건 그 함의를 제대로 짚어야 한다는 점이다. 시진핑은 이번 당 대회에서 “중국 공산당의 중심 임무는 중국식 현대화를 전면 추진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기의 비전인 ‘중국식 현대화’로 1기의 비전인 ‘중국몽’을 달성한다는 이야기이며, 그런 상태가 바로 2기의 비전인 ‘신시대’인 것이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건 중국식 현대화가 갖는 함의인데 이와 관련 중국 검색엔진인 바이두(百度)에서는 중국식 현대화가 대외적인 관계에서 갖는 함의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내놓고 있다. 서구와의 체제 대결을 위해 중국은 우군 확보 차원에서 아프리카에 각별한 공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일 열린 ‘중국-아프리카 풍성한 수확의 밤’ 행사에서 류위시 중국정부 아프리카사무특별대표가 치사를 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중국식 현대화가 “발전을 촉진하면서도 자신의 독립성을 유지하길 바라는 국가와 민족에 완전히 새로운 선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미래에 중국은 서방의 현대화 모델과는 다른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현대화 발전 모델을 더 성숙하게 만들어 현대화로 나아가는 개발도상국들에 더 많은 중국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이야기다. 이제까지 ‘현대화=서구화’로 인식됐다. 한데 중국은 이제 현대화가 곧 서구화는 아니라고 말한다. 중국식 현대화로 현대화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세계에 공급하겠다는 주장이다. 간단히 말하면 미국 등 서구와 체제 경쟁을 벌이겠다는 이야기다. 이는 그저 중국이 나의 길을 갈 테니 서방은 나를 간섭하지 말라는 수세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앞으로 내 모델이 맞으니 내 모델을 전 세계에 퍼뜨리겠다는 공세적인 입장으로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다. 시진핑 주석은 이미 작업에 나섰다. 지난 3일 중국을 찾은 사미아술루후 하산 탄자니아 대통령에게 중국은 “중국식 현대화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전면적으로 추진할 것이며, 현대화는 서구화의 동의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하산 탄자니아 대통령에게 “현대화는 서구화의 동의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홈피 캡처] 지난달 25일 중국 푸젠(福建)성의 샤먼(厦門)대학교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중국식 현대화 연구원’ 현판식을 가졌다. 샤먼대학 측은 “중국식 현대화의 이론과 실천을 다각도로 연구해 그 의미와 가치를 세계로 확산시키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과거 시진핑 주석이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밝히자 중국 대학 곳곳에 일대일로 연구원이 생겨났던 걸 연상시킨다. 무역전쟁에서 불붙은 미·중 갈등이 기술패권 경쟁을 넘어 앞으로 체제와 이념 경쟁으로 치닫는 미래 5년을 펼칠 전망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2022.11.14 00:30

  • [중국읽기] 시진핑 집권의 세 모델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과연 언제까지 집권할 것인가. 중국 공산당 총서기 3연임에 이어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모두 자신의 사람으로 채워 ‘공산당 1당 지배’를 넘어선 ‘시진핑 1인 천하 시대’를 열었다는 말을 듣는 시 주석의 앞으로 임기가 관심이다. ‘15년+알파(α)’의 임기 중 알파가 도대체 얼마나 될 것이냐의 이야기다. 이 같은 시 주석의 초장기 집권 롤 모델과 관련해 세 명을 생각할 수 있다. 시진핑이 지난 20차 당 대회에서 3연임에 성공한 이후 이제 관심은 그가 과연 언제까지 집권할 것인가에 쏠린다. [연합뉴스] 첫 번째는 시진핑의 우상인 마오쩌둥(毛澤東)이다. 1893년생인 마오는 1935년 준이(遵義)회의를 통해 중국 공산당의 1인자가 된 이래 76년 사망할 때까지 집권했다. 당 주석의 신분으로 은퇴하지 않고 끝까지 권력을 쥐고 있다고 죽음으로써 권력을 내려놓았다. 은퇴가 없이 죽어야 비로소 권좌에서 내려오는 이는 황제다. 그래서인지 마오에겐 ‘황제’라는 말이 따랐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한 것이었기에 그 앞엔 ‘괴물’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괴물 황제’ 마오는 천수를 다한 83세에야 권력에서 물러났다. 두 번째는 덩샤오핑(鄧小平)이다. 덩은 89년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장쩌민(江澤民)에게 물려주며 공식적인 직책은 갖지 않았다. 그러나 93세이던 97년 사망할 때까지 실질적인 중국의 1인자였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나. 87년 열린 중국 공산당 제13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중요한 사안에 관해 덩에게자문을 구할 수 있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같은 결정은 당의 전체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됐다. 마오쩌둥은 1935년 중국 공산당의 1인자가 된 이후 76년 사망할 때까지 41년간 권좌를 지켰다. [중국 바이두 캡처] 덩의 정치적 경험과 지혜가 그 어떤 정치국 상무위원보다 풍부하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자오쯔양(趙紫陽)은 말했다. 자오의 훗날 회고에 따르면 이 13기 1중전회에선 비단 중요한 사안을 덩에게 통보해 자문을 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덩의 집에서 직접 회의를 하며 중대한 문제는 덩이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런 당내 비밀을 자오가 89년 천안문 사태 때 외부에 발설해 훗날 숙청당하는 중요 원인 중의 하나가 됐다. 어찌 됐든덩은 공식적인 직책은 갖지 않은 채 죽을 때까지 권력을 장악한 케이스다. 시진핑 초장기 집권의 세 번째 롤 모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보다 한 살 많은 1952년생이다. 48세이던 2000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22년 동안 러시아의 최고 실력자로 군림 중이다. 헌법을 수정한 결과 2024년에 또다시 대통령 선거에 도전할 수 있다. 러시아 대통령의 한 번 임기는 6년으로 연임이 가능해 산술적으로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이때 푸틴의 나이는 84세가 된다. 덩샤오핑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음에도 죽을 때까지 절대 권력을 누렸다. [중국 바이두 캡처] 시진핑은 중국의 1인자가 된 후 가장 먼저 푸틴을 찾아 “당신과 나는 닮은 데가 참 많다”고 했다. 뭐가 닮았다는 것인가.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보인다. 푸틴이 2036년 84세까지 집권한다면, 시진핑이 2037년 84세까지 집권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시진핑이 22차 당 대회가 열리는 2032년 다섯 번째로 총서기에 선출되면 가능한 일이다.   지난달 19일 홍콩 명보(明報)에 글 하나가 실렸다. 1980년대 덩샤오핑의 영어 통역을 한 가오즈카이(高志凱) 중국 쑤저우(蘇州)대학 교수와의 인터뷰다. 가오는 인터뷰에서 86년의 덩샤오핑은 세계의 중심으로 모든 사람이 중국으로 와 덩을 만나려 했다고 회고했다. 그때 덩의 나이가 82세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초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을 만났을 때 “당신과 나는 닮은 데가 많다”고 말했다. 권력에 대한 강한 의지가 비슷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연합뉴스] 그러면서 가오는 중국이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현대화를 이루는 2035년이 시진핑의 나이 82세가 될 때라고 말했다. 시진핑이 임기 내 대만문제를 해결한다면 중국 역사상의 위인이 돼 앞으로 5년 아니라 더 집권해도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시진핑의 초장기 집권을 향한 바람잡기는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마오와 덩, 푸틴 등 세 명의 롤 모델 중 누구를 가장 선호할까. 아마도 덩이 아닐까 싶다. 이는 아무런 타이틀을 갖지 않고도 절대자로 군림할 수 있는 경우다. 시 주석이 당내 1인자인 ‘핵심’ 지위를 넘어 중국 인민 전체의 지도자를 뜻하는 ‘영수(領袖)’ 지위를 노리는 게 그 방증이다. 시진핑이 ‘인민 영수’ 칭호를 얻게 될 경우 공식적인 당 총서기 지위를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2022.11.07 00:11

  • [중국읽기] 후진타오와 장성택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시진핑(習近平)의 3연임을 확정한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가 끝난 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파장은 아직도 크다. 두 가지 측면에서다. 하나는 탈(脫)중국 또는 중국 버리기인 ‘차이나런’ 현상이다.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경제 감각도 없고 시장경제와는 거리가 먼 시진핑 파벌의 시자쥔(習家軍) 일색으로 구성되며 외자가 빠르게 중국탈출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번 당 대회 최고의 장면으로 꼽히는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폐막식 행사 도중 강제 퇴장 문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당 대회 폐막식에서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의 퇴장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AP=뉴시스] 현재 온 세계가 약 3분여 정도의 후진타오 퇴장 동영상을 돌리고 돌려보며 그 의미를 추적 중이지만 아직 속 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또 어떤 이유로 일어난 것인가. 우선 중국 관영 신화사가 영문 트위터로 밝힌 ‘후의 건강 문제’는 아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퇴장할 때 후의 걸음걸이는 80 고령에 비해서도 비교적 빠른 편이다. 몸이 아팠다면 먼저 주위에 도움을 청하는 후의 제스처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전혀 없다.   후진타오는 몸이 불편해 떠난 게 아닌 건 물론 자발적으로 퇴장한 것도 아니다. 그의 퇴장을 물리적으로 이끈 건 후진타오 수행원이 아니라 시진핑의 수행원이다. 그 젊은 경호원의 완력에 의해 강제로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지고 또 자리를 뜨도록 안내를 받으면서도 다시 자리에 앉으려 고집하는 후진타오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후가 아픈 것도 아니고, 자신의 뜻에 따른 것도 아니라면, 타의에 의한 강제 퇴장이라는 답이 나온다. 적어도 퇴장하도록 유도를 받았다. 그럼 왜 폐막식 행사 도중 후진타오 강제 퇴장이라는 일이 발생했나.   후진타오(오른쪽) 전 중국 국가주석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경호원에 의해 강제로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지고 있다. [AP=연합뉴스] 그것도 이제 막 내외신 기자의 행사장 입장이 허용돼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말이다. 시 주석이 세계적 망신을 자초하기 위해서인가. 아닐 것이다. 미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의 분석처럼 ‘고도로 계획된 상징적 숙청’이라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몇 번이고 반복 연습했을 5년 만의 당 대회, 그리고 그것도 시진핑의 3연임을 결정짓는 어마 무시하게 중요한 당 대회에서 이런 일이 우발적으로 발생할 수는 없다. 하나의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연출된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영문 모르고 출연한 후진타오를 상대로 후의 옆에 앉은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악역을 맡은 듯 보인다. 영상을 보면 후진타오가 안경을 벗은 채 종이 문건을 보는 듯한데 돌연 리잔수가 손을 뻗어 후진타오 손에 있던 종이 문건을 가져간다. 근시인 후는 평상시 안경을 쓰고 있다가 문건의 글씨를 보려면 안경을 벗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앞의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리잔수의 돌발 행동이다. 전 국가주석의 손에 있던 문건을 가져간 뒤 빨간 파일로 문건을 덮는다.   폐막식 중간 퇴장하는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어깨를 치며 무언가 말을 건네고 있다. [AP=뉴시스] 그러면서 무언가 설명을 한다. 마치 지금 이 자리에선 이걸 봐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어이없다는 표정의 후진타오가 도로 문건을 가져가려 하고 리잔수는 이를 뺏기지 않으려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옆에서 이 모습을 신경 쓰며 지켜보고 있던 시진핑이 수행원을 불러 지시를 내린다. 문건을 보려면 밖에 나가서 봐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후진타오도 시진핑이 수행원에게 하는 말을 듣는 표정이다. 중화권에선 이를 두고 시진핑이 후진타오를 모욕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시진핑 자신이 직접 후진타오에게 말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아랫사람을 시켜 조치를 취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연장자이자 전임 국가주석에 대한 존중의 모습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후진타오는 상당히 문건을 보고 싶어하는 눈치다. 시진핑 앞에 있던 문건에까지 손을 뻗다가 시진핑과 경호원에 의해 제지당하는 모습이 나온다. 후는 또 경호원의 완력과 설득에 못 이겨 마지못해 일어서서도 경호원이 들고 있던 문건에 또다시 손을 댄다. 이 때문에 종이 문건에 도대체 어떤 내용이 쓰여 있었는지 큰 궁금증을 자아낸다.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이 퇴장하며 자신의 측근인 리커창 총리의 어깨를 격려하듯 치자 리 총리는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AP=뉴시스] 한 장짜리 종이 문건임을 고려할 때 이튿날 발표될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의 명단이나 정치국 위원 24명의 명단을 적은 게 아닌가 추측된다. 200여 명이 넘는 중앙위원의 이름이 한 페이지에 다 들어가긴 어렵기 때문이다. 한데 왜 이를 후가 보지 못하게 막았나. 일각에선 당초 후에게 알렸던 것과는 다른 인선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즉 후를 속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그렇다면 문건을 아예 후진타오 앞에 놓지 않았을 거란 이야기다. 그보다는 시진핑의 지시에 의해 후진타오가 중도 퇴장하는 모습을 세계에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그런 계기를 만들기 위해 리잔수가 후와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연출하지 않았나 싶다. 자신이 왜 문건을 보지 못하고, 또 왜 자리를 떠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는 후진타오가 빨리 퇴장하지 않고 다시 자리에 앉으려 하는 등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자 리잔수는 손수건을 꺼내 식은땀을 닦는가 하면 직접 자신이 일어나서 후진타오의 퇴장을 이끌려다 옆에 있던 왕후닝(王滬寧)의 제지를 받기도 한다. 배역 소화가 쉽지는 않았던 것이다.   후진타오 집권 시기인 2002년 말부터 10년 동안 중국은 ‘평화 굴기’의 구호 아래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AP=연합뉴스] 당시 폐막식 현장에 있던 소식통에 따르면 후진타오가 떠나며 시진핑을 향해 몇 마디 했는데 그 표정이 상당히 격앙돼 있었다고 한다. 또 그 옆에 있던 자신의 공청단(共靑團) 직계 후배인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어깨를 격려하듯 가볍게 두드렸는데 리커창은 이때 상당히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후진타오 퇴장 당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한 인사의 반응이 있다. 바로 이번 당 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진출이 확정된 것처럼 여겨지던 공청단의 희망 후춘화(胡春華) 상무 부총리의 태도다. 그는 주석단 맨 앞줄에 앉아 있었고 후진타오가 문으로 사라지기 전 끝에서 두 번째 자리에 모습을 보였는데 유일하게 팔짱을 낀 모습으로 몹시 굳은 얼굴이었다. 후진타오 퇴장은 결국 시진핑의 뜻에 따른 강제 퇴장으로 읽힌다. 그러면 이를 통해 시 주석이 보여주고자 한 건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로 보인다. 우선 당내 경고다. 이렇게 회의장에서 끌려나가는 모습을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 바로 그렇다. 2013년 12월 초 북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석상에서 당시 북한 2인자로 통하던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군복 입은 보안요원에 의해 끌려나갔다. 이 사건은 우리는 물론 중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장성택이 북한 내 대표적 친중 인사였기 때문이다.   북한 조선중앙TV는 2013년 12월 9일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인민보안요원들에게 끌려나가는 장면을 보도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당내 간부가 운집한 대형 회의장에서 공개적으로 끌려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리커창의 위축된 움직임을 이해할 만할 것 같다. 공청단의 대부 후진타오가 이처럼 당하는데 나 자신은 안전할까 걱정이 앞설 것이다. 시 주석이 당내 경고에 나선 건 그의 3연임, 그리고 최고 지도부를 자신의 사람으로 채우는 데 대해 당내 반발이 작지 않았던 걸 방증한다. 그런 까닭인지, 이번에 당의 헌법인 당장(黨章)을 수정하면서 시진핑의 당내 핵심지위 확립과 시진핑 사상의 지도적 지위 확립이라는 양개확립(兩個確立)이 당장에 삽입될 것으로 봤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후진타오 강제 퇴장 조치가 보여주는 두 번째 의미는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와의 결별을 세계에 고한 것이다. 후진타오가 어떻게 중국의 1인자가 될 수 있었나. 덩샤오핑이 “꽤 괜찮은 젊은이”라고 평한 한마디가 장쩌민(江澤民) 다음의 지도자로 후진타오를 낙점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중국 정가의 격대지정(隔代指定) 잠규칙을 낳은 배경이다. 그런 후진타오를 외신 기자가 운집한 석상에서 내쳤다는 건 시 주석 자신이 덩샤오핑 노선과 이별한다는 걸 세계에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생전 후진타오를 “꽤 괜찮은 젊은이”라는 칭찬의 말을 통해 장쩌민 다음의 중국 지도자로 낙점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덩의 시대를 특징짓는 게 무언가. 개혁개방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자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시 주석의 집권 3기는 개혁개방과는 거리가 멀고 과거 사회주의의 내음이 물씬 나는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시 주석이 세 번째로 보여주고자 한 건 무엇인가. 이는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인 신경진 기자의 날카로운 관찰이 아니었으면 알기 어려웠을 것 같다. 현장 취재에 나선 신 특파원의 보도에 따르면 후진타오가 자리를 떴는데도 행사 진행요원은 후진타오의 남겨진 찻잔에도 뜨거운 물을 따랐다고 한다.   장쩌민 세력이 시 주석과 거리가 멀어지던 2015년 중국 정가에서 유행한 말이 있다. 인주차량(人走茶凉)이다. 사람이 떠나니 차가 식는구나 하는 뜻이다. 한때 중국을 영도했던 이가 자리를 물려준 뒤 후배에 의해 배척받게 되자 탄식처럼 하던 말로 쓰였다. 한데 후진타오가 떠난 뒤에도 뜨거운 차를 따르게 한 건 어떤 의미인가. 북한에선 끌려나간 장성택이 북한 최고 지도자의 고모부 신분에도 불구하고 며칠 후 처형돼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당시 중국에선 “심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시진핑은 후진타오 빈자리의 찻잔에 뜨거운 물을 따르게 해 사람이 떠나도 차는 계속 따뜻하다는 ‘인주차열(人走茶熱)’을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은 지난 23일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다시 선임돼 집권 3기를 시작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북한에서 일어났던 처형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란 시사와 같다. 대인(大人)의 아량을 보였다고나 할까. 후진타오 퇴장의 비밀은 시간이 흐르면 결국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은 의심할 것 없이 완벽한 시진핑의 시대라는 점이다. 중국이 절대 지도자의 시대를 맞았고, 그 절대자의 생각이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어온 지도자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우리는 깊이 새겨야 한다. 아울러 그런 중국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와 관련해 우리 국내에서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중국은 우리 운명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2022.10.31 00:34

  • [중국읽기] ‘시진핑 시대’에 산다는 것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시진핑(習近平)의 집권 3기 시대가 열렸다. 23일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당의 최고 지도자인 총서기로 다시 선출된 것이다. 이로써 지난 20여 년에 걸쳐 형성됐던 지도자 집권 10년의 관례가 깨졌다. 앞으로 5년 뒤 시진핑이 물러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자신의 사람으로 가득 채웠다. 이는 중국의 권력 이양이 불안정 궤도로 진입하게 됐음을 말한다. 자칫 혼돈 속에 빠질 수 있다. 중국은 어디로 가나. 그런 중국이 우리에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이 같은 중대한 물음과 마주해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게 있다. 시진핑 집권 3기 시대가 열렸다.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전원이 시진핑 사람으로 채워졌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대(時代)’로서의 시진핑 집권기가 무얼 뜻하는지 잘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진핑은 집권 2기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시대를 ‘신시대(新時代)’라 유난히 강조했다. 자신의 사상 이름도 그래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라 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 하려는 것이니 여겼다. 한데 이런 안이한 생각은 시진핑의 야심을 너무 얕보는 것이다. 시진핑이 ‘시대’를 말하는 건 자신의 시대가 앞선 시대와 다르다는 것이다. 앞선 시대란 누구의 시대를 말하나. 전임자인 후진타오(胡錦濤)를 가리키나? 아니면 그보다 앞선 장쩌민(江澤民)? 둘 다 맞고 둘 다 아니기도 하다. 맞는다는 건 후진타오와 장쩌민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맞지 않는다는 건 후와 장을 뛰어넘어 덩샤오핑(鄧小平) 시대까지 아우르는 까닭이다. 시진핑은 놀랍게도 덩샤오핑 시대와의 결별을 말하고 있다. 놀랍다는 건 시진핑이 2012년 총서기 취임 후 처음으로 나간 지방 시찰이 광둥(廣東)성이었고, 그곳에서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하며 개혁개방을 외쳤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데 이제 와서 덩샤오핑과 결별한다고? 틀리지 않아 보인다. 시진핑은 자신을 권좌에 앉힌 장쩌민-쩡칭훙(曾慶紅)의 상하이방(上海幇) 원로세력 또한 내친지 오래다. 늙어서도 물러나지 않고(老而不退), 물러나서도 쉼 없이(退而不休) 정치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며 노인의 정치 간여를 배제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이 이제까지 중국의 발전에 기여한 건 맞지만, 더는 자신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게 시진핑의 판단이다. 그러고 보니 시진핑이 집권 2기 때 ‘신시대’를 외치며 중국이 직면한 ‘모순’이 달라졌다고 말한 게 짚인다. 덩샤오핑 시대의 모순은 생산력이 낙후해 인민의 물질적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의 공장으로 변한 지금은 모순이 달라졌다고 시진핑은 말한다. 인민은 이제 아름다운 생활을 바라지만 그게 충분히 보장되지도 또 지역적으로 균형적이지도 않은 게 모순이라고 밝혔다. 모순이 달라지면 그걸 풀어야 할 해법도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자신은 덩샤오핑과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게 시진핑의 논리다. 이제 시진핑은 집권 3기 들어 자신의 행보를 구체화하고 있다. 중국 20차 당 대회 개막을 사흘 앞둔 지난 13일 베이징 도심의 한 다리에 “독재자 시진핑은 물러가라”는 글을 적은 플래카드가 걸려 충격을 안겼다. [연합뉴스] 이는 엄청난 변화를 뜻한다. 개혁개방 노선을 결정한 1978년 이래의 중국 행보가 바뀐다는 걸 의미한다. 아울러 한중 수교 또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란 커다란 그림 속에 이뤄진 일이었던 만큼 우리와의 관계 역시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우리가 우선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은 수교의 기초가 되기도 했던 경제와 안보의 두 분야다. 먼저 경제와 관련해 중국에 커다란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개혁개방의 수혜를 봤던 민영기업이 속속 퇴장 중이다. 반면 국유기업은 강(强)-강(强)연합에 의해 신(新)국유기업이 탄생하고 있다. 덩샤오핑이 시장경제의 효율을 가져다 쓰기를 바랐다면, 시진핑은 국가 주도의 독점을 강조한다. 계획경제의 냄새가 짙다. 21세기판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로의 회귀란 말을 듣는다. 그런 시진핑 경제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우리로선 그런 중국 경제 상황의 변화를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제까지의 중국 시장 접근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23일 2012년과 2017년에 이어 세 번째로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돼 앞으로 5년 더 중국을 이끌게 됐다. [AP=뉴시스] 다른 하나는 안보 문제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위해 대외적으로 몸을 낮췄다. 흔히 어둠 속에서 조용히 힘을 기른다는 성어 ‘도광양회(韜光養晦)’로 표현된다. 이런 기조 속에서 중국은 주한미군의 존재를 용인했다. 그러나 시진핑은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태평양은 매우 커 미·중 두 나라의 이익을 모두 담을 수 있다”며 태평양 분할론을 제시하는가 하면, 미국의 힘이 쇠퇴하고 중국의 국운이 뻗는 ‘100년에 없을 대변국(百年未有之大變局)’ 시기를 맞았다고 흥분 중이다. 시진핑은 현재 미국과의 갈등에서 겪는 고통은 중국이 세계 최강이 되기 위해 언젠가는 한 번쯤 겪어야 할 성장통(成長痛) 정도로 치부한다. 이 같은 미국과의 대결 구도 속에 북한 비핵화나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에 대한 협조가 이뤄질 리 만무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국의 지역 패권 움직임이 가시화되며 서해에 출몰하는 중국 해군의 숫자가 늘었다. 시진핑 정부의 외교 책임자는“소국은 대국을 따라야 한다”고 압박한다. 수교 30년을 맞은 한중 관계에 먹구름이 가득 몰려오는 형국이다.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가 끝났지만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문제는 이 같은 시진핑 ‘시대’가 이제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 이전 중국엔 두 개의 30년 시대가 있었다. 마오쩌둥 시대와 덩샤오핑 시대(장쩌민과 후진타오 집권 포함)다. 시진핑이 자신의 ‘시대’라 말하는 건 마오와덩을 잇는 세 번째 30년을 가리킨다. 지난 10년 집권에 이어 앞으로 10년 정도 더 권좌를 지키고, 그다음 10년은 수렴청정하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시진핑 시대’는 우리에겐 도전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시진핑의 일거수일투족을 연구하며 우리의 살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2022.10.24 00:34

  • [중국읽기] 중국, 개혁개방서 후퇴하나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중국이 20차 당 대회 이후 거대한 변혁에 직면할 전망이다. 개혁개방(改革開放)의 길을 계속 견지할 것이냐, 아니면 폐관쇄국(閉關鎖國)의 새로운 길을 걷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중국의 여름 정치로 불리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끝난 지난 8월 1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북(北)으로 향했다. 랴오닝(遼寧)성의 랴오선(遼瀋)전투기념관을 찾아 1948년 국공내전(國共內戰)의 분수령을 이루게 한 공산군의 승리를 기렸다. 같은 날 중국의 2인자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남(南)으로 내려갔다. 광둥(廣東)성에서 덩샤오핑(鄧小平) 동상에 헌화하며 개혁개방을 강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월 랴오선전투기념관 시찰 시 옛 인민해방군 전사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한데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리커창은 “개혁개방은 전진해야 한다. 황하(黃河)와 장강(長江)은 역류할 수 없다”고 외쳤는데 중국 관영 매체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후 리커창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혁개방을 외치기 시작했다. 지난달 22일 일본 경제계 대표와 만났을 때, 또 지난달 30일 외국 전문가들에게 ‘중국정부우의상’을 시상하는 자리에서도 개혁개방을 주장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8년 덩샤오핑 시대가 열린 이래 지금까지 계속돼온 중국의 행보다. 그런데 리커창 총리가 이를 반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왜? 개혁개방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 디플로맷의 편집장 새넌티에지는 리커창의 광둥성 방문이 마치 ‘고별 여행’ 같다고 평했다. 또 중국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이 리 총리가 소리치는 ‘개혁개방 계속’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외치는 단말마 같다는 이야기다. 리커창은 그의 전임자인 원자바오(溫家寶)가 임기 말 ‘정치체제 개혁’을 강조했던 걸 떠올리게 한다. 원자바오는 총리로서 집중해야 할 경제 문제 대신 “정치체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문혁(文革)이 다시 발생한다”는 경고음을 발해 당시 뜻 모를 주장을 한다는 핀잔 아닌 핀잔을 받았다. 최근 리커창 모습이 원자바오를 닮은 듯하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 2015년 1월에도 광둥성 선전의 롄화산 공원을 찾아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했다. [중국 중신망 캡처] 중국의 개혁개방은 왜 흔들리나. 중국은 지난 40여 년 동안 줄기차게 개혁개방을 추진했지만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는 개혁개방으로 쌓은 부(富)가 어디로 갔는가 문제다. 국고 대신 민간으로 흘러갔다. 다른 하나는 부의 분배 문제다.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간의 갈등이 커진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건가. 민간에 풀어준 권력을 다시 회수해 나라가 부를 쌓고, 이를 토대로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이루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그래서인가, 지난달 15일 중국 공산당 잡지 ‘구시(求是)’에 실린 시진핑의 글이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일관되게 견지하고 발전시키자’는 제목의 글에서 시진핑은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는 공산당이 인민을 영도해 진행하는 위대한 사회혁명의 성과”라고 주장했다. 문혁 이후 금기시돼온 ‘혁명’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시진핑이 말하는 위대한 사회혁명은 무슨 뜻인가. 한 중공 당사 학자에 따르면 “중국은 20차 당 대회 이후 개혁개방 수정에 나서는데 이 수정 과정이 곧 위대한 사회혁명”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당내 분위기를 염려해 지난달 중순 105세의 원로 쑹핑(宋平)이 개혁개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말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월 16일 랴오닝성 진저우시를 찾아 랴오선전투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이 개혁개방 대신 문을 닫아거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은 지난 8월 ‘폐관쇄국’ 용어에 대한 긍정적인 연구가 나오면서 불거지기도 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중국역사연구원이 ‘명청(明淸)시기폐관쇄국 문제를 새롭게 탐구한다’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폐관은 ‘관폐성문(關閉城門, 성문을 걸어 잠그다)’의 뜻으로 폐관쇄국은 외부와 접촉하지 않는 전형적인 고립주의 정책을 일컫는다. 명과 청을 서구에 뒤처지게 한 결정적 이유로 지목된다.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한데 중국역사연구원의 과제조(課題組)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당시 서방의 식민침략 위협에 직면해 취한 방어적인 자아보호 책략’이라는 것이다. 긍정적 의미를 강조했다. 중국역사연구원이 과제를 받아 수행한 연구라는 말인데 여기엔 여러 배경이 있어 보인다. 중국은 현재 미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 압력에 시달려 각 분야에서 고립되는 상황이다. 중국은 거친 외교인 전랑(戰狼) 외교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편에 서 있다가 서방 각국으로부터도 외면을 받는 상황이다. 또 제로 코로나 방침에 따라 중국에선 엄격한 봉쇄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중국으로선 자의 반타의 반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합리화 차원에서 그 이론적 토대 마련을 위해 명청 시기의 폐관쇄국을 새롭게 해석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8월 16~17일 광둥성 선전 시찰 때 항만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이 개혁개방에서 후퇴한다면 중국 자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파장이 미칠 것이다. 일각에선 중국이 계획경제 시대로 돌아갈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시장경제 도입을 포기하지는 않고 대신 국유기업 강화의 조치가 더욱 거세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아무튼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은 개혁개방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우리 기업이나 국가 모두 중국 공산당 20차 당 대회 이후 중국이 나아가게 될 방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것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2022.10.17 01:00

  • [중국읽기] ‘칠상팔하’ 가고 ‘능상능하’ 온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오는 16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10년 집권의 관례를 깨고 3연임 할 것이란 데는 이견이 없다. 이제 관심은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어떻게 꾸려질지다. 중국 고위층 인사의 기준으로 이제까지 알려진 건 ‘칠상팔하(七上八下)’ 잠규칙(潛規則)이다. 67세까지는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할 수 있지만 68세라면 물러나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데 20년 역사의 이 관례가 올해 깨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고위층 인사에 파란이 일 것이란 이야기다. 왜 이런 말이 나오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고위 당원 인사 기준으로 나이 대신 능력을 따지는 '능상능하' 규정을 적용한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작은 지난 9월 19일이다. 이날 중국 공산당 중앙판공청은 ‘영도간부의능상능하(能上能下) 추진 규정’ 수정안을 발표했다. 당의 고위 간부에 대해 능력에 따라 올리고 내리는 인사를 하겠다는 거다. 이 규정이 처음 만들어진 건 2015년 7월이다. 처음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데 2년 후인 2017년의 19차 당 대회 때 ‘칠상팔하’ 관례에 흠집이 나는 인사가 이뤄지며 관심을 끌었다. 당시 69세의 왕치산(王岐山)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물러났지만, 이듬해 국가부주석으로 발탁된 것이다. 반면 67세의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은 물러날 나이가 아님에도 완전히 은퇴하고 말았다. 당시 소문이 흉흉했다. 리위안차오가 시진핑 사람이 아니라 쫓겨났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런 인사의 배경이 됐던 ‘능상능하’ 규정이 20차 당 대회 개최를 한 달도 남기지 않고 수정된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 핵심은 올리는 데 있지 않고 내리는 데 있다. 당 조직부 관계자가 규정을 설명하면서 “영도간부능상능하의 어려운 점은 내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라며 간부에게 “문제가 있기는 한데 그 정도가 기율이나 법률을 위반한 정도가 아닐 때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한 것이다. 즉 당의 기율이나 법을 위반하지 않았음에도 내쫓고 싶을 때 능력 문제를 따지겠다는 이야기다. 오는 16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가 개막된다. 시진핑이 또 다시 총서기로 선출돼 3연임에 성공할 전망이다. [중국 신화망 캡처] 수정안은 그래서 어느 경우 능력 부족으로 조기 은퇴해야 하는가 경우의 수를 15가지나 제시했다. 제5조에 그 내용이 빼곡히 수록돼 있다. 첫 번째가 정치 능력이 단단하지 못할 때다. 그다음은이상 신념이 동요할 경우다. 이어 투쟁 정신이 강하지 못할 때, 당의 민주집중제 원칙을 위배할 때, 영도능력이 부족할 때, 품행이 단정하지 못할 경우, 배우자나 자녀가 해외로 이주하거나 상업활동에 종사할 때 등 다양하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엉성해 보이지만, 결코 그 그물을 빠져나가지 못한다(天网恢恢疏而不漏)’는 경지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능상능하’ 규정 수정안은 모두 18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제2조엔 능력 있는 자는 올리고(能者上), 우수한 자에겐 상을 주며(優者奬), 변변치 못한 사람은 내리고(庸者下), 열등한 자는 도태시킨다(劣者汰)고 적었다. 4조엔 영도간부 ‘능상능하’ 추진의 중점은 ‘내리는 문제 해결’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5조에 강등과 관련한 15가지 경우를 적시한 것이다. 7조에선 보통 한 달 이내에 간부의 월급과 대우 등을 조정한다고 해 속전속결의 의지도 표시했다. 즉 어떻게 승진시킬까가 아니라 어떻게 은퇴시킬 것인가에 대해 나름 일정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올해 68세인 한정은 ‘칠상팔하’ 잠규칙에 따라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능상능하’ 규정이 적용될 경우 승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합뉴스] 중화권에선 이번 ‘능상능하’ 규정이 타깃으로 하는 대상인 영도간부가 정치국 위원이나 정치국 상무위원 등 고위 당원이라고 보고 있다. 20차 당 대회 지도부 인선을 두고 새로운 인사 기준을 제시한 것인데, 그 잣대가 과거와 같은 ‘칠상팔하’ 잠규칙이 아니라 ‘능상능하’라는 규정임을 알린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당 대회 때 나이가 많아 당연히 퇴진할 것이라 여겨졌던 리잔수(栗戰書, 72세) 전국인대 상무위원장이나 한정(韓正, 68세) 상무 부총리의 거취도 오리무중에 빠지게 됐다. 최근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친 리잔수가 국가부주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장쩌민(江澤民)-쩡칭훙(曾慶紅)의 상하이방(上海幇) 원로세력을 대표하는 한정이 총리로 승진할 가능성 또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올해 67세로 ‘칠상팔하’ 잠규칙을 적용할 때 굳이 퇴진하지 않아도 될 리커창(李克强) 총리나 왕양(汪洋) 정협 주석,왕후닝(王滬寧)정치국 상무위원과 65세인 자오러지(趙樂際) 중앙기율위 서기 중에선 누가 ‘능상능하’ 규정의 희생양이 돼 물러날지 알 수 없게 됐다. 한마디로 고위층 인사가 한 치 앞을 점칠 수 없는 혼돈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인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시 주석의 의중이다.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67세이면 진입 가능하고 68세이면 안 된다는 칠상팔하 잠규칙은 20년 전인 장쩌민 시기 만들어졌다. [중국 바이두 캡처] 시 주석은 이번 5년뿐 아니라 앞으로 10년은 더 집권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1인 체제를 굳힌 시 주석의 뜻에 따라 고위층 인사가 출렁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사실 ‘칠상팔하’도 당시 권력자 장쩌민이 임의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장쩌민은 1997년 15차 당 대회 때 라이벌 차오스(喬石, 1924년생) 당시 전국인대 상무위원장을 축출하기 위해 ‘70세 상한(70歲封頂)’ 규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2002년 16차 당 대회 때는 리루이환(李瑞環, 1934년생) 당시 정협 주석을 내쫓기 위해 ‘칠상팔하’를 고안했다. 이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신시대 건설을 강조하는 시진핑 주석이 장쩌민 때 만들어진 잠규칙에 연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시대에 맞는 인사 규칙인 ‘능상능하’ 규정을 만든 배경이다. 누가 능력이 있고 없고의 판단은 시 주석이 하면 되는 일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시진핑 집권 시기의 고위층 인선은 보다 더 시 주석의 의중을 반영해 이뤄질 것으로 보는 게 맞다. 그리고 그렇게 시 주석의 당내 입지는 더욱 탄탄해지며 3연임 이상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2022.10.10 00:04

  • [중국읽기] 중국의 푸틴 조롱...검려기궁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중국 인터넷 공간에선 침공을 감행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찬사가 넘쳤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정당하다’는 주장을 담은 푸틴의 연설에 중국은 ‘눈물이 난다’며 공감을 표했다. 그런 중국의 태도가 최근 싹 바뀌었다. 러시아와 푸틴을 조롱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러시아는 반드시 진다! 푸틴은 반드시 패배한다!” “특별군사작전이 국가수호 전쟁으로 변한 건 2차 대전 이래 최대 웃음거리” “푸틴을 돕지 말고 중국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 등과 같은 말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의문과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진다. [AP=연합뉴스] 푸틴과 러시아를 비아냥거리는 말 중 중국 시사 평론가 차이선쿤(蔡愼坤)이 했다는 말이 특히 눈에 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을 가히 ‘검려기궁(黔驢技窮)’의 수준이라고 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려기궁은 당(唐)대의 문장가 유종원(柳宗元)이 지은 우화(寓話) 세 편 중 하나인 ‘검지려(黔之驢)’에 나온다. 검(黔)은 중국 구이저우(貴州)성의 별칭이고 려(驢)는 나귀라는 뜻이니 ‘구이저우의 나귀’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우화에 따르면 옛날 구이저우엔 나귀가 없었다. 한데 호기심 많은 한 사람이 나귀를 구이저우로 들여왔는데 특별히 쓸 일이 없게 되자 산 아래에 풀어 놓았다. 이를 본 호랑이가 놀랐다. 처음 보는 데다 몸집도 크고 울음소리도 컸다. 한데 며칠을 살피니 뒷발질만 할 뿐 다른 재주가 없었다. 그 기량을 다 파악한 호랑이는 졸지에 나귀를 덮쳐 잡아먹고 말았다. 여기서 ‘구이저우에 사는 나귀의 재주’란 뜻의 ‘검려지기(黔驢之技)’라는 성어가 나왔다. 쥐꼬리만 한 재주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 보잘것없는 재주가 바닥이 난 걸 ‘검려기궁’이라고 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예비군 동원령을 발표한 직후 러시아 곳곳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호기롭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이 대단한 영웅인 줄 알았는데 별것 아니며, 그 재주가 바닥이 나 망신살이 뻗치게 됐다는 조롱이 중국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선 속이 터질 노릇이다. 우리가 주목할 건 중국의 민심 변화다. 전황이 러시아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며칠이면 우크라이나를 제압할 줄 알았는데 7개월이 지난 이젠 밀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잠잠하던 중국의 여론이 순식간에 바뀐 건 지난달 15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만남 이후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에게 전쟁에 관한 ‘의문과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자 중국의 민심이 돌아섰다. 중국 여론이 개전 초기 러시아를 지지한 건 중·러의 국가 간 관계도 있지만, 그보다도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 사이가 브로맨스로 일컬어질 만큼 끈끈했기 때문이다. 한데 시 주석이 ‘의문과 우려’를 던졌다고 하자 둘의 관계에 틈이 생겼다고 보고 푸틴 조롱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뒤 일주일도 안돼 동원령을 내려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을 꾀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은 이처럼 시진핑 주석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입장이 바뀐다. 중국을 움직이기 위해선 시 주석의 마음부터 잡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중 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THAAD) 갈등도 시 주석의 입장이 누그러져야 풀리지 그 아래 어떤 고위층이 나선다 해도 답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1인 체제의 시 주석 집권 기간 한중 관계의 모든 문제가 이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니 우리로선 시 주석의 일거수일투족 연구에 전력을 다할 필요가 있다. 한편 푸틴 대통령에게 시 주석이 던진 ‘의문과 우려’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의문’은 푸틴이 설명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러시아식 계획에 대해 ‘과연 그렇게 전개될 것인가’라는 ‘의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또 ‘우려’는 ‘전쟁의 장기화’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걱정이 큰 것으로 알려진다. 러시아산 원유나 가스를 헐값에 사는 경제적 이점이 있긴 하지만 유럽을 잃는 전략적 손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러위청 외교부 부부장은 지난 2월 중러 협력엔 ‘한계가 없다’는 발언을 했다가 유럽 국가의 십자 포화를 맞고 광전총국 부국장으로 좌천되고 말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유럽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 지지 모습을 보이는 중국에 격분한 상태다. 미·중 갈등 속 유럽을 잡으려는 중국의 필사적인 노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헛수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럽과 미국이 입을 모아 중국을 비난하는 소재는 지난 2월 시진핑-푸틴 정상회담 이후 나온 중·러 협력엔 ‘한계가 없다’는 러위청(樂玉成) 당시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발언이다. 그는 중·러 협력엔 “한계가 없다(上不封頂). 영원히 발전하는 가운데 종착역은 없고 주유소만 있을 뿐(永遠在路上 沒有終点站 只有加油站)”이라고 말했다가 서방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다. 이에 놀란 중국 당국은 차기 외교부장 1순위로 꼽히던 러위청을 라디오, 방송 담당의 광전총국(廣電總局) 부국장으로 좌천시키고 특사를 보내 유럽 달래기에 나섰으나 아직 이렇다 할 효과는 없다. 그래서인가. 시 주석은 3연임을 확정 지은 10월의 20차 당 대회 이후 11월에 프랑스 등 유럽 각국 정상의 중국 초청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2022.10.03 0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