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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김경숙의 실리콘밸리노트] 실리콘밸리 해고 칼바람과 실버라이닝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3년 전 미국 본사로 옮겨와서 팀원들을 뽑게 되었는데, 그중 한 명은 ‘정말 잘 뽑았다’고 생각한 유능한 친구였다. 그런데 이 친구는 다른 친구들보다 일을 더 잘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기 고용 안정성에 대해 불안해하며 “괜찮냐”고 나에게 물어보곤 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과거 근무했던 직장들의 구조조정으로 본인 뜻과 상관없이 연거푸 회사를 떠나야 했었다. 미국 직장인 2명 중 1명꼴로 구조조정에 의한 해고를 당한다는 데이터를 보니 그 불안이 이해됐다. 이렇게 해고가 흔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해고된 사실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 대형 테크기업 거센 해고 바람 올해 매주 1.5만명 일자리 잃어 테크기업엔 효율 다지는 시간 다른 산업군엔 인재 영입 기회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미국에서는 본인 잘못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해고(fire)와 회사 구조조정에 의한 해고(layoff)를 명확히 구분해서 사용한다. 그리고 이제 2022년과 2023년. 실리콘밸리에는 그야말로 해고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전 세계 거시경제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경영 효율성이 우선시되면서 작년 말 메타(페이스북 모기업)로 시작된 해고 바람은 재무제표가 탄탄하고 현금 보유량도 많아 큰 걱정 없어 보이던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로 이어졌다. 이 기업들은 각각 1만명, 1만 2000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이들에 이어 세일즈포스, 페이팔, 스트라이프, 델 등 중견 기업들도 대량 해고 대열에 참여했다. 미국 해고 데이터(layoffs.fyi)에 따르면 2022년 한해 미국 테크기업에서만 약 16만명의 구조조정 해고가 있었으며, 2023년에는 두 달 동안 약 13만명의 해고가 있었다. 올해 들어 매주 약 1만5000명의 테크 인재들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3월 들어서도 크고 작은 테크 기업들의 추가 해고 발표가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주엔 메타에서 2차로 1만명을 더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더구나 스타트업들의 자금줄로 그동안 실리콘밸리 혁신의 지지대 역할을 해온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여파로 실리콘밸리의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해고 바람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칼바람 속에서도 실리콘밸리를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있다. 일자리 정보와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링크드인(Linkedin.com)에서는 최근 테크기업에서 해고된 사람들이 ‘#layoffs’ ‘#opentowork’처럼 해시태그(#)와 함께 본인 해고 상황을 알리며 일자리 정보를 적극적으로 나누고 있다. 가장 딱한 상황은 비자 문제가 걸려있는 외국인들 경우다. 인도 출신 엔지니어는 “이제 딱 30일 남았다. 30일 안에 다른 직장을 찾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피가 마른다. 일자리 찾는 데 도움 달라”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이 메시지에는 100여개 넘는 댓글이 달리며 모르는 사람들조차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아봐 주고 연결해주고 있다. 구글을 그만둔 직원들의 알럼나이 모임인 ‘Xoogler(주글러)’는 동료들의 지원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주글러에서는 구글의 해고 발표가 나자마자 해고된 1만2000명을 대상으로 마인드 컨트롤과 명상 등의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또 구직자와 구인자를 연결해주는 네트워킹 오프라인 모임도 만들어 발 빠르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차가운 해고 바람 속에서 따뜻한 인간미와 동료애를 느낄 수 있다. 이번 대형 테크기업들의 대량 해고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산업계 간 인재 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실리콘밸리 테크기업들은 높은 연봉과 카페테리아 공짜 식사나 마사지 등의 최고 복지 시설로 고급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큰 테크기업의 대량 해고에 실망한 인재들은 이제 테크 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계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그동안 인재 영입에 목말라 왔던 스타트업이나 다른 산업계에서는 고급 인재 확보에 숨통이 트이는 기회가 된 것이다. 그동안 보지도 못했던 엔지니어들의 이력서가 들어오고 있다고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기쁨의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테크기업들의 대량해고가 이어진 최근 6개월간 미국의 비(非) 테크 기업에서 약 50만명 이상의 인재 채용이 있었다는 데이터가 나오기도 했다. 실리콘밸리의 해고가 불투명한 거시경제 전망 때문이 아니라 경쟁 회사들이 하니 우리도 한다는 ‘모방 해고(Copycat Layoffs)’라는 비판도 받지만, 이번 대량 해고가 그동안 ‘사람부터 뽑아놓고 보자’ 식으로 달려왔던 테크기업들이 뒤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은 확실하다. 인재들의 산업간 이동도 의미 있는 일이다. 구름 뒤에 해가 있을 때 구름 가장자리에 나타나는 희망의 실버 라이닝처럼, 테크기업들이 이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효율성을 다져서 더 큰 혁신을 가져오길 기대한다. 또 자리를 옮겨간 테크 인재들이 다른 산업 부문에서 가속할 혁신도 내심 기다려진다.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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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김경숙의 실리콘밸리노트] 다양성 존중은 언어에서부터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이 어우러진 미국에 살면서 포용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늘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다양성 가치를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머리로 생각했다면, 미국에 와서는 다양성의 가치를 매 순간 ‘지금 당장 나의 문제’로 느끼고 있다. 검은 머리 아시아인의 외모로, 여성으로, 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서 다양성을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많다. 최근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친구와 시애틀 여행 중에 주변 현지인(백인)들과 대화한 적이 있다. 늘 그렇듯이 아시아인 외모를 한 우리는 “어디서 왔냐(Where are you from)?”는 질문을 받았다. 미국에 와서 정말 아주 많이 받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라고 대답하면 100이면 100명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원래 출신이 어디인데(Where are you originally from)?”라고 되묻는다. 이는 무례한 질문으로 들릴 수 있다. 그 백인 미국인은 ‘미국인이면 이렇게 생겼을 것이고 영어가 모국어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고, 아시아인 외모 사람은 당연히 외국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야 미국에 온 지 4년 정도밖에 안 됐다지만, 그 한인 친구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미국 사회에서 배제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한다. ■ 「 ‘브라운백 런치’ 속의 흑인 역사 무심코 쓰는 일상의 편견 표현들 성별·인종·문화에 민감해져야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사실 일상에서 편견을 없애고 다양성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는 일은 그런 미국 백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나 자신도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언어 표현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돌아보게 된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 역사가 있는 미국에서는 자칫하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들을 낮추본다고 오해받거나, 남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다. 미국에 온 뒤 얼마 안 돼서 매달 기자들과 공부하는 프레스 이벤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별 생각 없이 자주 쓰던 ‘브라운백 런치(Brown bag lunch)’라는 단어를 써서 ‘브라운백 런치 프레스 미팅’이라고 내부 문서를 작성하고 동료들과 공유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료가 조용히 다가와 ‘브라운백 런치’에는 흑인에게 부정적인 스토리가 있으니 다른 말을 사용하는 게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그런 내용을 전혀 몰랐던 나는 바로 인터넷에서 그 용어에 대해 찾아봤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1960년대 한 대학교 학생들이 브라운백(마트 등에서 샌드위치 등을 싸던 종이) 색깔을 기준으로 흑인의 피부색을 측정해서 파티 입장 허용 여부를 가렸다는 내용을 봤고, 그런 이유에서 ‘브라운백 런치’란 말을 피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브라운백 런치를 ‘런치앤런 (Lunch and Learn)’ 으로 바꾸었다. 이를 계기로 나 자신부터 언어 민감도를 좀 더 높이고, 또 어떤 말이나 표현을 써서는 안 되는지 찾아보게 됐다. 회사 직원들이 모아놓은 ‘포용적인 언어 리스트’와 작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발표한 같은 내용의 리스트를 늘 챙겨보며, 외부로 나가는 공식 문서뿐 아니라 내부 문서도 성별, 인종, 장애인,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표현은 없는지 두 번 세 번 리뷰한다. 가능하면 성별을 굳이 나타내지 않아도 되는 성 중립성 단어들을 사용한다. 남편/아내, 남자/여자친구를 지칭할 때는 partner를 사용하는 식이다.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인 대변인은 spokesman 대신 spokesperson을 쓴다. 장애를 나타내는 단어는 일반 표현에 섞어 쓰지 않는다. 시각 장애를 부정적으로 고착화할 수 있는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 대신에 ‘인지하지 못한 부분’(not knowledgeable)으로 표현한다. 또한 개발자 용어에서도 포용적 단어를 사용하는데, 예를 들면 허용/비허용을 나타내는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 대신에 허용리스트(allowlist)와 비허용 리스트(denylist)라는 말을 사용한다. 한가지 문화와 인종이 두드러지는 한국 사회에서 50년을 살면서 놓쳤던 부분을 미국에 살면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 시각을 포용하는 일상의 민감도를 높이게 되었다. 내가 소수자로서 나의 나 됨을 존중받고 싶은만큼 우리 주변의 다양한 모습 사람들이 그들 본연의 모습으로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정김경숙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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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김경숙의 실리콘밸리노트] 새해 결심, 올해도 영어!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지역에는 바트(BART, Bay Area Rapid Transit)라고 하는 장거리 전철이 있다. 코로나 이전 평일에는 약 40만명 넘게 이용했다는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분주한 교통시스템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바트 이용 고객의 40%가 집에서는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또 다른 데이터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지역 기술 인재의 약 39%가 해외에서 출생한 사람이라고 한다.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 언어와 문화가 녹아있는 실리콘밸리인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는 생각보다 높은 수치다. 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 (영어)로 일하며 받는 스트레스와 자괴감을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40% 정도가 겪고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안도감도 생긴다. 10명 중 4명은 회의시간에 알아듣지 못한 말에 얼버무리면서 미소로 답했을 것이고, 입을 열기 전에 정확한 표현을 찾기 위해 머리를 부리나케 돌렸을 것이고, 상대방이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할까 싶어 대규모 미팅에서는 손들고 질문하기를 망설였을 것이다. 3년 반전 실리콘밸리로 오기 전까지 나는 30년간의 모든 회사 경력을 한국에서 쌓았다. 대부분 직장인처럼 영어는 늘 뒤통수를 당기는 스트레스였다. ■ 「 다양한 출신들 모인 실리콘밸리 인구의 40%는 비영어가 모국어 직장인의 영원한 스트레스 영어 절실함·꾸준함이 비법 아닌 비법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해도 해도 늘지 않는 것 같거니와(물론 그다지 꾸준히 심각하게 공부하지도 않으면서), 어렸을 때 영어권에서 살았던 친구들이라도 있으면 곧 부러움이 생겼고, 내가 이 나이에 해봤자 얼마나 달라지겠냐는 생각에 쉽게 움츠러들곤 했다. 그러다 마흔살 해, ‘내가 아무리 나이가 많고 혀가 굳었더라도 영어를 원 없이 공부해보자, 그래서 네이티브 영어 하는 사람만큼 돼보는 것을 목표로 한번 가보자’는 꿈을 만들었다. 당시 아태지역 화상 회의에서 7분 동안 음 소거를 해놓고도 이를 모른 채 발표를 했던 엄청나게 큰 실수를 한 이후다. 그 창피함이 인생 영어공부에 불을 댕겼다. 영어 선생님을 구해 시작한 영어 공부는 현재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좋은 영어 콘텐트들이 있는 유튜브는 그 자체가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마감되는 유명 영어학원의 스타 강사들의 강의도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양질의 콘텐트 뿐 아니라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했다. 맘이 맞는 회사 동료들과 그룹을 만들어 같이 공부하면서 좀 더 재미가 붙었다. 또 친구들과 그룹채팅방을 만들어 매일매일 영어표현 한 개씩 올리며 서로 독려했다. 직장인들이 영어를 잘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절실함이다. 영어를 정말 향상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어야 공부를 중단하지 않을 수 있다. 한 달 안에 영어회화 완성, 50일 만에 귀 뚫기 등의 현란한 문구로 혹하게 하는 공부법이 있지만, 영어 공부에 쉽고 빠른 길이란 건 없는 것 같다. 일단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그만큼 얻을 수 있는 게 언어 능력이다. 몇달 전 회사에서 2박3일 행사를 마치고 팀원에게 수고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집에 일찍 가서 쉬어요. 피곤하죠(Go home early, You are tired)’ 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몇 분 후 답장이 왔나 싶어 전화기를 확인하는 순간, 아뿔싸, tired를 fired로 잘못 타이핑을 했던 것이다. 결국 내 메시지는 ‘피곤하죠’가 아니라 ‘당신 해고됐어’였다. 물론 그 친구에게 바로 전화해서 수습을 했다. 최근에는 한 매니저에게 “당신은 팀원들을 참 ‘인간적으로’ 대한다”는 뜻으로 “You are taking care of your teammate as ‘a human’” 이라고 말했다. human은 외계인 혹은 동물에 상대되는 말로서의 인간을 말하기 때문에 이 경우엔 person을 써야 했다. 그 친구는 내 의도를 알기에 “You mean as a person”이라고 웃으면서 넘어갔지만, 속으론 뜨끔했다. 오늘도 이렇게 실수하고 배운다. 내가 영어 오디오북을 일 년에 60여권 정도를 듣고, 매일 두세 시간을 영어공부에 쏟고 있어도 느는 것이 바로바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서너 달 만에 만나는 동료들은 달라진 내 영어를 알아챈다. 올해도 한국 직장인들의 1위 새해 결심이 영어공부라고 한다. 언어는 단기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포기하지 않는 꾸준함만이 해답이다. 새해, 다시 한번 영어다.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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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김경숙의 실리콘밸리노트] 리턴 투 오피스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늘 묻는 말이 있다. “요즘 사무실로 출근하시나요?” “얼마나 자주 나가세요?” 대부분은 일주일에 한두 번, 혹은 많게는 네댓 번 사무실로 출근한다고 대답한다. 사무실 근무를 반기는 친구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다. 많은 미국 기업에서는 원격지 근무와 사무실 출근제를 섞어서 하는 하이브리드 근무가 보편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다만 지난 코로나 기간 재택근무 시 침실에서 나오기만 하면 출퇴근이 끝나는 ‘시간 절약의 꿀맛’을 절감한 직원들에게 리턴 투 오피스, 즉 사무실 출근을 독려하는 것이 요즘 미국 회사 경영진들의 고민인 것 같다. 달라진 생활 리듬에 적응하는 것과 동시에 실리콘밸리의 만성 교통체증 스트레스를 매일같이 다시 마주할 정신적 맷집도 길러야 하기에 리턴 투 오피스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 「 코로나19 이후 원격 근무 확산 실리콘밸리, 사무실 출근 고민 회사와 직원 사이 의견 충돌도 유연한 운영, 신뢰감 쌓기 중요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실제로 더퓨처포럼 서베이에 따르면 미국 경영진의 3분의 2는 일주일에 3~5일 사무실 근무를 원한다고 응답했지만, 직원들은 3분의 1만이 사무실 근무를 원한다고 말할 정도로, 경영진과 직원 사이에 상당한 괴리감이 존재한다. 경영진은 사무실 근무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기업문화를 결속하려는 목표가 있고, 직원들은 출퇴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할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또 잘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회사 차원의 생산성 가치와 개인 차원의 효율성 및 유연성 가치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까. 나라마다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구글은 지난해 자율적 오피스 근무제를 시작으로 올해 상반기에 주 3일 사무실 근무와 주 2일 원격 근무라는 하이브리드 근무제가 시작됐다. 물론 직원들은 본인 업무 성격에 따라 100% 원격지 근무 혹은 다른 도시 캠퍼스로의 전근도 지원할 수가 있다. 사무실에서 차로 7분 남짓 거리에 사는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 4일 이상 사무실에 나가서 근무한다. 사무실 출근을 하면 아침과 점심, 커피, 자동차 충전, 운동시설 등이 한 번에 해결되기 때문에 원격 근무할 때보다 훨씬 편리하다. 시차 때문에 회의가 이른 새벽부터 다닥다닥 붙어있는 날은 재택근무가 업무 처리에 유리해 집에서 일한다. 내가 사무실 출근을 진짜 반기는 이유는 회사에서 누리는 복지 혜택이 아니라 동료들을 대면할 수 있어서다. 동료들을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즐거울 뿐 아니라 업무 효율성을 높여준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에 있는 나는 매일같이 여러 부서와 유기적으로 일해야 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많은 일이 다른 팀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원격근무를 하는 경우 15분 혹은 30분짜리의 1대 1 화상미팅을 보통 하루에 10개 이상 하면서 팀 간 조율을 통해 프로젝트를 진척시킨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날은 복도를 지나가다가, 휴게실을 가다가 마주치는 동료들에게 그때그때 궁금할 것을 물어보게 된다. 굳이 1대 1 미팅을 하지 않아도 되어, 미팅 서너 개를 줄일 수 있다. 이런저런 개인적인 얘기를 하다가도 자연스럽게 업무 얘기로 빠지게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나누게 된다. 이런 새로운 아이디어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씨앗이 된다. 직원들은 사무실 출근의 유용성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된다. 나오지 말라고 해도 본인의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또 일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사무실로 나오게 된다. 또한 구글은 1년 중 4주는 어디서나 근무할 수 있는 ‘웍 프롬 애니웨어 (Work from Anywhere)’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세계 여행을 하든 휴양지에 머물든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다면 전 세계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선택권과 자율권을 주고 있다. 최근 나는 지난 한 달을 한국에 머무르면서 ‘웍 프롬 애니웨어’ 기회를 활용했다. 일을 마친 후나 주말에는 자주 못 봤던 가족과 친구를 만날 수 있었고, 그중 한 주는 휴가를 사용해서 지리산 종주도 하고 제주도 일주 도보여행도 다녀왔다. 지난 한 달을 태평양 건너에 있었지만 개인 시간을 보내면서 업무도 알차게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직원들을 믿어주는 회사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졌다. 개인의 업무 유연성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과 더불어 리턴 투 오피스를 장려한다면 회사 차원의 생산성과 개인 차원의 효율성은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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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김경숙의 실리콘밸리노트] 가사노동에도 콰이어트 퀴팅을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올여름 MZ세대의 소셜미디어인 틱톡에서 시작된 ‘콰이어트 퀴팅 (quiet quitting)’이 전세계적으로 회자하고 있다. 콰이어트 퀴팅이란 회사 일은 딱 할만큼만 하고 추가적인 노력이나 시간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을 주로 말하는 것이지만, 그 해석은 미국에서도 사람마다 약간씩은 다른 것 같다. 다만 콰이어트 퀴팅을 통해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직장의 일과 개인의 생활에 건강한 경계(boundary)를 설정하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콰이어트 퀴팅은 아주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늘 얘기해 왔던 일과 삶과의 균형 (워라밸)과 궤를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일로부터 ‘콰이어트하게 (조용히)’ 물러날 수 있는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들, 즉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에게 콰이어트 퀴팅은 특정 화이트칼라 직장인들만이 즐길 수 있는 사치 개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일과 병행해 육아와 가사노동을 해야하는 워킹맘이나 워킹대디들에게 있어서 ‘콰이어트 퀴팅’은 더더욱 그림의 떡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장기적으로 육아 및 가사노동과 일을 조화롭게 병행하기 위해 ‘콰이어트 퀴팅’이라는 건강한 경계를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 워킹맘에 쏟아지는 양육부담 나를 위한 시간 확보 노력을 매일 아침 10분 명상 도움돼 체력관리, 최우선 순위 둬야 」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동서양을 떠나 워킹맘에게 있어 자신을 위한 시간을 찾는 것은 힘든 일 같다. 가사나 육아 노동을 파트너와 공동분담하는 것이 좀더 당연시되어 있는 미국에서조차 양육에 대한 역할 기대는 여성(엄마)에 더 쏟아진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10명중 6명의 워킹맘이 파트너보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하고 있으며, 10명중 7명은 아이들 학업이나 과외활동 지원에 파트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워킹맘들에게 가사노동에서의 콰이어트 퀴팅은 어떤 의미일까? 내 경우 이제 아이가 대학원생이라 일선에 선 워킹맘은 아니지만, 내가 워킹맘이었을때 콰이어트 퀴팅,아니 ‘노이지 퀴팅’을 한 경험을 얘기해보고 싶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막 들어갔을 때였다. 아침마다 아이를 깨워서 등교시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벌렁벌렁한 일이다. 잠에서 막 깬 아이를 겨우 세수시키고 식탁 앞에 끌어 앉혀 밥 한 숟가락 떠먹인다. 흐느적대는 아이에게 옷을 입히느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겨우 발라놓은 출근길 화장은 이미 땀으로 번들번들거리고 블라우스 등짝은 젖어버린다. 그리고 아이 책가방을 싸면서 알림장에서 빠진 준비물을 발견하곤 드디어 폭발을 한다. 이렇게 20분의 등교 시간은 부정적 기운과의 싸움이다. 출근 전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버린다. 나는 어느날 이 일을 ‘조용히’ 그만두기로 했다. 아침 시간은 나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대신 퇴근 후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기로 했다. 아침마다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20분 아이 등교로부터 퀴팅을 하니 아침 시간이 이제 다 내 시간이 되었다. 7시에 일어나 회사에 가기까지 2시간이 내 시간이었고, 5시에 일어나면 4시간이 온전한 내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에 나는 운동을 했고 공부를 했다. 물론 함께 사시는 ‘이모님’이 계셔서 할 수 있었던 행운도 있었다. 30년의 직장생활에서 보고 배운 것을 정리하고 나누고싶어 올여름에 책을 하나 냈다.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 책에서 가장 많이 할애한 부분이 체력관리다. 한창 워킹맘으로 있을 때 함께 커리어를 키워가고 있는 여성 동료들이 남성 동료보다 자신의 체력관리에 시간 할애를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직장인으로서의 역할 이외에 엄마· 딸· 며느리 등의 역할을 모두 해야 하는 워킹맘인 경우 자기 몸 관리에 시간을 내는 건 아마도 가장 마지막 일일 것이며, 자신의 몸관리에 드는 시간은 가장 먼저 포기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본인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가정에서도, 또 직장에서도 성공적일 수 있다. 물론 워킹맘에게 가사노동으로부터의 콰이어트 퀴팅은 쉽지 않다. 특히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은 현 육아 상황에서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침마다 10분 명상과 같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작은 실행을 해보면 어떨까 한다. 물론 안다. 워킹맘, 그 어떤 것도 포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럴 땐 서로가 토닥토닥이다.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