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론] 세계는 SMR 경쟁, 한국은 예산 전액 삭감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소형모듈원전(SMR)’ 분야에서 세계 각국의 경쟁적 노력이 치열하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은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를 정의하는 택소노미(Taxonomy)에 넣었고, 지난 21일에는 ‘Net Zero(탄소중립) 산업법’을 통과시키면서 SMR을 비롯한 원자력 산업 지원을 포함했다. 캐나다의 온타리오 전력은 미국 GE와 일본 히타치 합작으로 개발한 SMR인 BWRX-300 건설 계획을 발표하더니 최근엔 3기를 추가로 더 짓기로 했다. 미국 최대의 전력공기업인 TVA도 BWRX-300 도입을 위해 투자에 나섰다.     ■  「 EU·캐나다·미국 등 투자 늘려 여야 합의했는데 민주당 돌변 국내·해외시장 다 포기할 건가 」    시론 탈원전을 선언하고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해오던 스웨덴은 2045년까지 원전 10기를 짓겠다는 드라마틱한 정책 전환을 선언했다. 스웨덴의 원전 사업자인 포툼은 SMR 도입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고, 한국이 개발 중인 혁신형 SMR을 포함했다. 그런데 지난 20일 한국의 거대 야당은 혁신형 SMR 개발 예산 전액을 삭감했다. 세계적인 흐름과 동떨어진 결정이자 탄소중립과 미래 먹거리를 모두 놓치는 잘못된 결정이다.   혁신형 SMR 개발 사업은 국가 과제로 2021년 제10차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정식 제안됐다. 당시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시국이었지만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한 산업계와 원자력학회 등에서 필요성과 기술성을 논의했다. 당시 국회 차원에서도 ‘혁신형 SMR국회 포럼’이 결성됐고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구미을)과 이원욱 민주당 의원(화성을)이 공동의장을 맡는 등 초당적 지지를 받았다.   윤석열 정부는 혁신형 SMR을 국정과제로 확대하고 2028년 설계인증을 취득한 후 2030년대 해외 SMR 시장 및 국내 건설을 겨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혁신형 SMR 사업단이 출범하면서 본격적인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 혼란스러운 정치권에서 여야가 모처럼 의견이 일치돼 합의하고 정권을 넘어 추진된 매우 드문 협치 사례다. 이런 혁신형 SMR 개발을 야당이 판을 뒤엎어서는 안 된다.   야당의 비토에는 최근 불거진 미국 뉴스케일의 SMR 건설이 무산된 것이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 뉴스케일의 최초 SMR은 미국 유타주 전력 시장을 대상으로 추진됐다. 올 초 시행한 경제성 평가에서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보조금을 포함해도 전력 단가가 메가와트시(㎿h)당 89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2년 전보다 50% 넘게 오른 수치다. 유타주의 평균 전력 소매가격이 ㎿h당 88달러이니 경제성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유타주를 겨냥한 초도 원전 건설은 무산됐으나 뉴스케일은 루마니아·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에 대한 수출과 데이터 센터에 필요한 전력 공급용으로 건설 추진을 더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뉴스케일의 수출 대상 잠재국에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뉴스케일이 미국에서는 경제성을 못 맞췄지만, 한국에 짓는다면 사정이 다를 수 있다. 2022년 한국전력의 평균 전력 구매가는 ㎾h 당 155원 수준이었다. 지금도 가스발전은 ㎾h 당 약 221원 선이다. 뉴스케일의 공급가는 보조금 없이 ㎿h당 119달러이니, ㎾h당 154원 내외이다.   한국에 짓는다면 인건비와 원전산업 인프라를 볼 때 미국보다 더 싸게 지을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두산에너빌리티·GS에너지·삼성물산 등 한국의 민간 기업들도 뉴스케일에 많은 투자를 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제작 분야, 삼성물산은 건설 분야, GS에너지는 비록 화력이어도 발전소 운영 경험을 갖고 있다.   뉴스케일이 이들 한국 기업과 연합해 한국 진출을 모색하는 것은 전혀 비현실적인 얘기가 아니다. SMR은 소형이라 자가발전용으로도 안성맞춤이다. 굳이 전력시장을 겨냥하지 않더라도 24시간 전기를 필요로 하는 철강공장, 데이터 센터 등 자가발전이 필요한 민간 기업에 직접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은 혁신형 SMR 개발 예산을 느닷없이 전액 삭감했다. 2028년 설계인증 취득을 위한 심사 신청까지 불과 2년이 남았고 설계 개발에 박차를 가해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예산 삭감은 “개발하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해외시장 진출은커녕 국내시장마저 외국 SMR에 내주지 않으려면 예산을 복원해야 마땅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2023.11.28 00:50

  • [시론] 뒤늦은 코딩 교육, 제대로 하려면…

    강병서 경희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코딩(Coding)은 개인의 미래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다”라며 코딩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지난해 8월 교육부는 2025년부터 코딩 영재교육과 함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코딩을 필수과목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의 코딩 교육은 미국·인도·이스라엘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중국과 비교해도 10년 이상 늦게 출발하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교육부나 교육청의 행보를 보면 답답하다. 코딩 교육 준비를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아 보여서다. 필자는 수년간 코딩 관련 저술과 함께 학부모 및 일반인을 상대로 코딩을 가르쳐 왔다. 그 과정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코딩 교육에 대해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  「 중국·일본보다 10년 늦게 출발 교재·강사 등 준비 상황 미흡 일반 과목 수업 속에 가르쳐야 」    시론 코딩 교육은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려면 영문법을 배워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에는 수십 가지가 있지만, 초·중등에 적합한 언어는 스크래치(Scratch)와 파이선(Python)을 추천하고 싶다.   스크래치는 미국 MIT대학에서 개발해 세계 200여 개국에 70개 언어로 보급돼 있다. 레고 장난감에서 힌트를 얻은 코딩 블록을 쌓으면서 숫자·문자·소리·색깔 등 다양한 자료를 다룰 수 있어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파이선은 공학적으로 개발됐으며 프로그래머들이 가장 선호하는 고급 언어이자 인공지능(AI)을 개발하려는 사람들이 배우는 언어다. 두 언어의 공통점은 세계적으로 활용되며 무료 오픈 소스란 점이다.   코딩 배우기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만들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교육의 목표는 현행 교과과정과 일치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국·영·수와 음악·미술 같은 학과목 시간에 가르쳐야 한다. 예를 들어 수학 시간에 도형을 배우면서 컴퓨터를 활용해 도형을 그리고 면적을 계산한다든지, 음악 시간에 노래와 악기 연주 이외에 작곡도 배우면 유익할 것 같다. 코딩 수업의 목적은 학과목을 이해하고 심화하는 데 있다.   만일 코딩 수업을 별도의 정보 과목으로 인식하면 학부모는 또 다른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혹시 사설 학원에 보내야 하는지 불안해할 수도 있겠다. 아이들이 교과과정에 보조를 맞춰 코딩을 배우게 되면 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코딩 교육은 두 가지 과제를 제기한다. 첫째, 코딩 교재는 어떻게 만들어 보급할 것인가. ▶교재는 배우고 있는 교과서 내용과 일치하는 단어를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학년 수준에 맞는 표준화된 교재를 만들어야 한다. 언어(국어와 외국어)·수학·예술(음악과 미술)·게임·애니메이션 등으로 구분해 만든다.   둘째, 코딩 강사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우선 학교 교사들이 코딩을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수업 시수 문제와 만성적 피로감으로 큰 부담을 줄 것이다. 신중하게 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는 대학생들이 코딩 학점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받게 하면 해결될 것이다. 학부모와 일반인도 대학 평생교육원이나 지역 문화센터에서 배우면 된다. 이들을 정식 또는 방과 후 교사로 활용하면 강사 공급이 원활하게 될 수 있다. 코딩은 마우스를 클릭할 수 있는 사람이 의지만 있다면 배워서 가르칠 수 있다.   영재 몇 명에 의존하는 교육은 공교육의 방향이 아니다. 코딩 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보는 것이다. 이제 공교육을 활성화하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이 수업은 느긋하게 생각하면서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시간이다. 성공과 실패를 통해 강해지고 협업을 통해 공동 프로젝트 완성을 맛보는 기회다. 코딩의 목표는 알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있다. 코딩 공부를 통해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 자존감과 성취감을 얻을 기회가 온 것이다. 이 아름다운 경험은 학교에서만 가능하다.   전략적으로 코딩 교육을 계획하고 실행 방안을 마련하는 기관은 교육부와 교육청이다. 그리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책임자는 각급 학교 교장이다. 관계자들은 코딩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실질적 경험이 요구된다. 새로운 것에 대해 어른들은 두려움을 갖기 쉽지만, 아이들은 경이로움으로 대한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병서 경희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2023.11.24 00:42

  • [시론] 북한의 군사정찰위성과 ‘핵 3축 체계’ 야심

    김홍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초빙연구원·예비역 공군 준장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날 때 든 느낌이다. 당시 많은 전문가는 북한이 ‘만리경 1호’ 위성을 탑재한 ‘천리마-1형’ 로켓 발사에서 두 번이나 실패해 러시아의 위성 및 우주발사체 기술을 이전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21일 3차 발사를 강행했다.   하지만, 필자는 북한이 기술 이전과 발사 성공에서 멈추지 않고 궁극적으로 미국과 러시아와 같은 ‘핵 3축 체계(Nuclear Triad System)’를 구축하는 데 목표를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핵 3축 체계란 지상(ICBM), 해상(SLBM), 공중(이중용도 전투기) 무기체계로 핵무기를 투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  「 김정은, 군사정찰위성 발사 강행 육·해·공 핵무기 투발 수단 노려 대북 억제효과 상쇄될 우려 커져 」    시론 북한은 화성 계열의 중·장거리 미사일(지상)과 북극성 계열의 잠수함 발사 미사일(해상) 등을 통해 핵 2격(Second Strike) 능력 확보에 집착해왔다. 또한 핵무기 소형화를 통해 IL-28과 같이 비록 낡아도 운용 가능한 항공기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왔다. 이 같은 이유로 일부에서는 북한이 제한적이지만 핵 3축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탄탄한 미사일 방어(MD) 능력과 대공방어(AD) 체계를 갖춘 한·미동맹을 상대로 100% 핵무기 사용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을 수 있다는 고민을 북한은 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다급해진 러시아를 통해 한·미동맹의 비대칭 능력인 감시·정찰 체계를 상쇄할 우주 기술을 요구했을 것이다. 아울러 지금껏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어려웠던 새로운 항공기 도입을 통해 마지막 퍼즐인 스텔스 항공기를 이용한 핵무기 투하 능력을 구축하려 혈안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필자가 2017년 합참의 핵·WMD(대량살상무기) 전략과장으로 근무할 무렵, 북한은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당시 필자는 김정은 같은 독재자는 정치적 생존을 위해 이상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지지 세력과 군부 및 인민을 오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즉, 김정은은 러시아의 미사일 체계를 목표로 고체 미사일, 다탄두 ICBM, 우주발사체 등을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미사일 도발에 나설 거라고 필자는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이런 관점을 지지하는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후 북한의 미사일 개발 궤적은 필자의 예상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결국 2021년 8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은이 제시한 ‘5대 국방 과업’과 최근의 대규모 열병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북한의 무기체계는 필자의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음을 증명해줬다.   지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부에 적이 있고, 빈곤으로 인한 인민의 불만이 증대되고 있는 북한에서는 이런 불안 요소를 외부로 돌릴만한 그럴싸한 목표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독재자들처럼 김정은은 인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미국을 굴복시키고 세계를 놀라게 하고 싶은 망상에 무게를 두고 있을 것이다.   핵무기 투하가 가능하도록 개조할 수 있는 러시아의 Su-57S 같은 스텔스 능력 확보는 김정은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상과제일 것이다. 이런 일들은 2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정치적 생존을 위협받는 푸틴에게 북한은 무기 공급을 통해 얼마든지 비밀 거래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을 개연성이 높다. 만약 북한이 우주력 기반 핵 3축 체계 구축에 성공하면 그동안 한·미가 지켜온 항공·우주력을 통한 비대칭 우위 및 억제 효과는 크게 상쇄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억제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따라서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단지 대한민국의 국가안보 문제로 국한해 봐서는 안 된다. 작금의 북한 무기 공급 경향성과 적극성을 고려하면 조만간 전 세계의 문제로 확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미동맹과 국제사회는 이런 점을 간과해 북한에 또 따른 기회의 창을 열어줘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철저하게 대응해 핵 억제 실패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성공 주장은 이런 각도에서 봐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홍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초빙연구원·예비역 공군 준장 

    2023.11.23 01:00

  • [시론] 마음이 아플 때 기댈 수 있는 나라

    김태종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다중골절된 다리를 문틀에 치인 적이 있었다. 우울증도 앓아 본 사람으로서 그 고통은 다중골절의 물리적 통증 이상이었다고 확언할 수 있다.” 사업가이자 다년간 영국 상원의원으로도 봉직했던 데니스 스티븐슨의 증언이다. 권리 주장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한국의 정신질환 환자와 가족은 소리 없이 고통을 견뎌내고 있다.   2021년에 진행된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의 1.7%가 우울증, 3.1%가 불안장애라는 결과가 나왔다. 유럽에서 우울증의 유병률이 대략 8%, 불안장애는 8%로 알려진 것에 비하면 한국인의 정신건강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일까. 진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내 우울증 유병률을 6.7%로 추정하는 연구 결과도 있는 데다 우울한 기분, 만성적 피로, 불면, 흥미 상실 등 우울증에 수반하는 증상의 수준이 서구 국가에 비해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정신질환이라는 ‘주홍글씨’의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 설문 조사에서조차 솔직한 응답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  「 우울·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 영국은 상담인력만 1만1000명 정신건강에 대한 투자 필수적 」    정신질환자를 위한 변론. [일러스트=김지윤] 정부가 ‘전 국민 마음 투자 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제안한 539억원 규모의 예산안을 지난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여야 합의로 예산결산위원회에 전달했다. 우울과 불안 등 마음에 어려움이 있는 국민을 위한 심리상담 서비스 제공을 확대하고, 향후 5년간 관련 사업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초 체계 구축에도 투자할 것이라 한다.   국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세계 심리학계는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임상 시험을 통해 효과성이 입증된 근거 기반 심리치료 기법을 축적해 왔다. 내담자를 붙잡아 두는 마음과 몸의 기제를 스스로 학습해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지행동치료(CBT)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인지행동 치료는 1주 1회의 세션을 단위로 진행된다. 일상이 힘들 정도의 우울과 불안이 있는 사례의 50% 이상이 10회 미만의 세션으로 정신건강을 되찾게 된다는 결과가 있다. 이런 인지행동 치료 결과에 놀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근거기반 심리치료의 혜택을 한 나라 전체에서 체계적으로 누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미 2010년 이후 영국의 경험을 통해 근거기반 심리치료가 전국 규모의 실제 사업에서도 그대로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이 실증됐다. 영국은 IAPT(Improving Access to Psychotherapy)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근거기반 심리치료를 시행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전문 상담인력 1만1000명을 전국 센터에 배치했고, 고통받는 국민이 무료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재정으로 지원하고 있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세션마다 내담자의 개선 정도를 측정하고 지역센터 단위의 성과를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프로그램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였다는 점도 눈여겨보게 된다.   보건복지부가 제안한 ‘전 국민 마음 투자 지원사업’은 내년부터 2028년까지 5년간 국민의 마음 건강을 지원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상정하고 있다.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는 국민이 나라에 기댈 수 있게 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나, 소중한 예산은 의미 있게 쓰여야 하고 국민이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실효성 있게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신건강 개선을 위한 투자는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최저 수준의 출생률, 실업으로 인한 노동력 손실, 취업자의 생산성 감소, 의료 및 복지 지출의 증가를 완화해 한국사회의 후생을 개선할 수 있다. 영국에 자극받아 후발로 근거기반 심리치료를 제도화한 노르웨이의 평가 결과에 따르면 B/C, 즉 비용 대비 편익의 비율이 1:3.6이나 된다.   누구도 정신건강 문제를 남의 일이라 치부할 수 없다. 유럽 국가의 경우 각종 정신질환을 함께 고려했을 때 평생 유병률이 평균 60%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한국의 평생 유병률은 어느 정도일까. 모처럼 시작되는 의미 있는 사업이 국회 심의를 순조롭게 통과해 좋은 열매를 맺기를 목소리 없이 고통받는 많은 이들과 함께 지켜보고 싶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태종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2023.11.22 00:46

  • [시론]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왜 매번 실패할까

    김민후 세월호 및 사회적 참사 특조위 참여 변호사 대법원은 최근 2014년 세월호 침몰 참사 당시의 해경 지휘부에 사고 책임이 없다고 사건 발생 근 10년 만에 확정판결했다. 문제는 정작 선장이 퇴선 명령을 하지 않고 도망갔다는 것 말고는 해경이 뭘 해야 했는지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서울 이태원 압사 참사도 1년이 지났지만 누가 정확히 어떤 조처를 했어야 159명이 사망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도대체 왜 우리 사회는 이런 상황을 답습할까.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사회 전체가 요동치고 시끄럽다. 집회 및 시위가 봇물 터지듯 하고, 대통령 탄핵 구호와 피켓은 광화문 길거리에 뿌려진다. 수사기관은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누군가를 구속하기 위해 혈안이 되고, 언론은 정신없이 물량 보도에 열중한다.     ■  「 세월호·이태원 참사 책임 불명 정치권의 이권 다툼으로 전락 관료조직은 사건 은폐에 바빠 」    시론 그런데 야단법석 이후에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황당할 따름이다. 소중한 사회적 자산과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쏟은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복기할 필요가 있다. 온 사회를 뒤집어놓는 대형 인명 피해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가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걸 보는 것도 이젠 고통스럽다.   지혜로운 국민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첫째, 참사와 슬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을 간파하고 당당히 배척해야 한다. 어린 생명의 죽음과 유가족의 피눈물이 다른 누군가의 이권창출이자 권력 쟁취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방송에 출연해 사회운동의 일환인지 법적 판단인지 구분하기 힘든 주장을 하는 일부 율사들의 주장도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둘째, 진짜 책임자는 언론에 보이는 고관대작이나 유명인사가 아니라 관료조직 뒤에 조용히 숨어있는 누군가가 아닐지 의심해야 한다. 대통령 친구를 탄핵하겠다고 온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떠들썩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로 “탄핵사유가 없다”고 결정했다.   이런 정치적 이권 다툼의 성격이 짙은 논쟁에 사회적 에너지가 소비되는 동안 정말 책임 있는 관료조직은 감시의 눈을 피해 진실을 조작하고 은폐하기 바빴을 것이다. 여론의 불리함 때문에 조건반사적으로 강력히 대응하는 집권세력도 이들의 가장 큰 우군이다.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하는 건 바로 이 조직 뒤에 숨은 관료주의다.   한 가지 더하면 필자가 지난 10년간 특별법에 따라 만든 조직인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와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뿐만 아니라 대한변협의 이태원 참사 특위에서 활동하며 깨달은 점이 있다. 참사의 진상 규명을 그 자체로서 당위로 받아들이고 목표로 삼는 사람보다 이를 구호로 이용하거나 조직 이기주의를 위해 활용하거나, 반대로 정치적 공격이라고 치부하고 반발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훨씬 더 컸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우리 사회는 그런 세력들에 휘둘렸다. 언론도 국민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참사에 누가 어떤 책임을 얼마나 져야 하는지, 참사의 원인은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함께 하기보다 박근혜를 지지하느냐 문재인을 지지하느냐, 윤석열을 지지하느냐 이재명을 지지하느냐의 정치적 기세 싸움에 휘둘렸다.   선거 승리와 논공행상을 위한 이권 다툼이 참사 진상규명을 집어삼켰다. 필자가 속했던 진상규명 조직에서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목소리 큰 사람들은 진실을 찾는 절차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자신들에게 필요한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   이제 지혜로운 국민은 그런 세력들과 결별해야 한다. 어떤 구호가 내 가족의 생계나 우리 조직과 세력에 도움이 되냐를 먼저 따질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답인지를 찾고자 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시민과 피해자를 현혹하고 혹세무민하는 세력과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 공조직이 책임을 회피하고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신뢰를 되찾기 위한 자정 능력을 갖추는지 감시해야 한다. 누군가의 가슴 아픈 죽음을 평범하게 애도하고 아파하고 공감하는 다수의 국민이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라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목표에 다 같이 눈을 뜨게 될 때 더는 슬프지 않을 수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민후 세월호 및 사회적 참사 특조위 참여 변호사

    2023.11.21 00:41

  • [시론] 우주항공청 설립, 더 지체할 이유 있나

    이주진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한 ‘한·미 우주산업 심포지엄’이 최근 열려 양국의 정부 부처와 다수의 우주기업이 참여했다. 카이한 스페이스, 보이저 스페이스 등 미국의 주요 우주기업들은 한국에서 항공우주산업을 선도하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 등과의 협력 현황과 사업계획 등을 논의했다. 심포지엄 자리에서 한·미 양국 기업들은 우주 분야 미래 협업 방안 등을 논의하며, 향후 글로벌 우주산업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도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기대감을 공유했다.     ■  「 특별법 발의한 지 7개월 지나 그동안 모든 논란과 쟁점 해소 여야 모두 대승적 결단 내려야 」    조용하게 위대하게... 우주강국의 길. [일러스트=김지윤] 이번 심포지엄에서 또 하나의 화두는 대한민국의 ‘우주항공청’(가칭) 설립이었다. 김민식 나라스페이스 테크놀로지 본부장은 우주항공청 설립이 잘 추진돼 한국의 우주산업 자체가 국가 경제의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기업들도 우주항공청 설립에 대한 기대와 환영의 메시지를 전했다. 카이한 스페이스의 시아막 헤사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의 우주항공청 설립을 위한 노력을 응원한다면서 우주항공청을 통해 한국 정부의 우주산업 역량이 더욱 높아지도록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민간 우주정거장을 설립 중인 보이저 스페이스의 에릭 스텔머 부사장도 한국의 기업 수준이 매우 높다고 평가하며 ‘뉴 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한국의 우주항공청 설립 후 민간기업체 참여를 더욱 장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주항공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발의된 지 이미 7개월째다. 그동안 안건조정위원장 선출, 우주항공청의 위상, 인재 채용 특례 조항, 직접 연구개발(R&D) 수행 문제까지 다양한 쟁점이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모든 쟁점을 해소하고 이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법안소위, 전체회의, 법사위 등을 거쳐 마침내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우주항공청 설립을 통해 한·미 양국과 우주기업들의 협력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은 우주 선도국들과 대비해 우주 개발 부문에서 약 30년 이상 뒤늦게 뛰어들었다. 짧은 우주항공 개발 역사에도 이미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독자적인 기술로 1t 이상의 발사체를 우주로 보낼 수 있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7개국 뿐이다. 그러나 최근 인도가 무인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의 달 남극 착륙에 성공하면서 미국·소련(러시아)·중국에 이은 네 번째 달 착륙 국가가 됐다. 이를 보며 한국도 우주 전담 기구를 설립해 본격적인 투자와 활발한 국제 협력이 있었다면 당당히 그만한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든다.   필자는 항공우주연구원 원장 재임 시절인 2009년 제60회 세계우주대회를 대전에서 주최한 적이 있다. 당시 세계 70여 개국에서 140여개 우주기관 및 관련 기업들이 대거 참가해 성대한 우주대회를 치렀다. 이렇게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우주 분야의 급속한 발전을 실감하게 됐다.   우주항공청이 설립되면 중국의 12분의 1, 러시아·프랑스·일본의 5분의 1, 인도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은 한국의 우주개발 예산을 확대할 수 있다. 대통령 소속 국가우주위원회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국방부·외교부·국토교통부 등과 원활하게 협업할 수 있다. 우주항공청이 중심에 서서 기업들의 국제협력을 지원하고 한국의 우주산업을 힘 있게 추진해 나갈 수 있다.   우주항공청은 우주 개발과 연구를 진행 중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및 한국천문연구원을 중심으로 전자통신연구원·기계연구원 등과 동반협력해 우주기술 개발을 더욱 심화시켜 우주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기대되는 것은 민간기업들의 활약이다. 이번 심포지엄에 참가한 나라스페이스 테크놀로지, 루미르, 스페이스맵 등은 우주산업의 핵심인 레이더, 데이터 분석기술 등에서 국제적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우주항공청 설립을 통해 한국도 뉴 스페이스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주항공청 설립을 더는 지체시킬 이유가 없다. 21대 국회가 여야를 떠난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 대한민국 우주항공청이 힘차게 출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주진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2023.11.16 00:52

  • [시론] 시청자 알권리 무시해온 공영방송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자유(Freedom)는 다양한 뜻을 담고 있다. 자유는 우선 간섭받지 않을 권리다. 자유는 또 공적 목적을 실현할 적극적 권리이기도 하다. 언론 자유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간섭받지 않을 권리이기도 하고 공적 목표를 달성할 권리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영방송의 언론 자유는 공동체의 사회적 선(좋음)을 실현하는 자유로 이해됐다. 공영방송은 구성원이 생각하는 공적 목표를 달성하는 도구였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방송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동체의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열정은 넘쳤다. 그러나 무엇이 한국사회가 나아갈 합당한 목표인지에 대한 성찰은 부족했다. 시청자들의 간섭받지 않을 자유는 지켜지지 못했다.       ■  「 정치독립 명분 균형감각 상실 시민보다 구성원들 생각 강요 소통이 아닌 불통의 중심으로 」    시론 그동안 공영방송 자유에 대한 정치적 논의는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는 수준에 머물러 왔다. 돌이켜보면 정치권이 주장하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은 결국 상대 정파의 영향력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공영방송 이사회 인원을 단체 추천으로 대폭 늘리자는 민주당 방송법안(KBS 11명에서 21명, MBC EBS 9명에서 21명으로 증원)이 제대로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동안의 전철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의 요구는 간단하다. 그것은 간섭받지 않을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먼저 지켜 달라는 것이다. 공영방송이 시청자의 알 권리를 제대로 보호해 달라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언론이 되라는 것이다. 편향된 허위 정보에 속지 않도록 제대로 된 뉴스를 보고 싶다는 것이다.     의욕을 앞세우지 말고 지식과 전문성을 높여 달라는 것이다. 정치적 독립성을 방패로 구성원의 생각을 공영방송 뉴스에 임의로 끼워 넣지 말라는 것이다. 시민 각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균형 있는 보도를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는 논의에는 이를 해소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공영방송의 자유는 공영방송 구성원의 자유가 아니다. 공영방송의 자유는 정파적 입장에서 벗어나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봉사하는 자유다. 공영방송은 시민이 맡긴 ‘신탁물’이다. 특정한 목적을 앞세워 공영방송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그 자체가 권위주의일 뿐이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내세우는 불편부당성(Impartiality)은 정치 권력뿐 아니라 공영방송 구성원도 방송을 마음대로 지배하지 못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와 다른 것 같다. 정부의 공영언론 개편 흐름을 보면 신자유주의로 전환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YTN 민영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인수자가 유진그룹으로 정해져 방송통신위원회의 승인심사를 앞두고 있다. TBS 교통방송은 내년부터 정부 지원이 사라진다. 연합뉴스에 대한 정부의 공적지원금은 내년에 무려 80%가 줄어든다.     구체적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KBS도 지배체제가 정해지면 구조 축소가 점쳐진다. 이 모든 것은 공영언론이 시장에서 생존하라는 주문이다. 정치 권력과 구성원의 지배 문제를 시장에서 해결하라는 메시지다. 그러나 사회적 공감은 부족해 보인다.     우선 신자유주의라는 좌표 설정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더 큰 이유는 각자의 선택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신자유주의만으로는 공영방송의 자유가 충분히 달성되기 어렵다. 공영방송의 자유는 간섭받지 않을 자유를 보호하고 나아가 각자가 ‘평등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봉사하는 자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공영방송은 오랜 역사에도 언론 자유의 의미를 정립하지 못했다. 그동안 언론 자유의 중요성은 강조됐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편의적으로 해석했다. 언론 자유에 대한 자의적 해석으로 오늘날 한국의 공영방송은 소통이 아니라 불통의 중심이 됐다.     공영방송이 언론 자유의 의미를 제대로 성찰하지 않고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결국 시민의 자유를 임의로 침해하고 시민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지친 시청자들은 이미 공영방송에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공영방송의 시대적 과제는 정치 권력뿐 아니라 구성원도 시민을 편의적으로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2023.11.15 00:42

  • [시론] ‘메가 서울’이냐 ‘콤팩트 수도권’이냐

    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헨리 포드가 1500만대 이상 팔렸던 자동차 모델 T를 처음 출시했던 것은 1908년이었다. 당시 미국 일반 노동자의 월급 2개월치로 살 수 있었던 T는 자동차 대중화를 앞당겼고, 도시의 교외화를 촉진했다. 수천년간 도보권 크기의 도시 안에 살았던 인류는 포드 덕분에 반경 수십㎞가 넘는 거대도시에서 살 수 있게 됐다.   1960년대 초 프랑스 지리학자 장 고트망은 미국 동부 보스턴-뉴욕-워싱턴 DC를 잇는 축에 당시 미국 인구의 5분의 1이 모여 살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 벨트를 ‘메갈로폴리스’라고 명명했다. 그가 미국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이끈 인큐베이터라고 평가했던 이런 거대도시 지역은 이제 전 세계에 여러 개가 형성됐다.     ■  「 수도권 인구, 한국 전체의 50% 몸집 키운 ‘메가 서울’ 비효율적 구역 확대보다 기능 집중 필요 」    시론 한국의 서울·인천·경기를 합친 수도권도 인구가 2600여 만명으로 불어나 세계적으로도 큰 메갈로폴리스가 됐다. 지난해 전 세계에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도시가 30개를 넘어섰지만, 도시 크기로 영향력과 위상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지난 세기 동안 수도권 집중이 심해진 나라도 많다. 일본은 30% 안팎, 영국과 프랑스는 20% 정도인 데 한국은 2019년 11월 처음 50%를 넘었다. 인구 5000만 이상 국가 중에서 수도권에 인구의 과반이 사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수도권 집중이 심한 국가에서 지방 도시들이 연합해 ‘메가시티’를 만들자는 시도도 있다. 일본의 간사이(關西) 광역연합, 영국의 광역 맨체스터, 한국의 부·울·경 메가시티 등이 그런 사례다. 행정구역 확대보다 효율을 높이고, 기능 집중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꾀하자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수십년간 수도권 집중으로 국가경쟁력을 키우자는 주장과 국토를 균형발전 시키자는 주장이 맞서왔다. 보수와 진보할 것 없이 중앙정부는 대체로 균형발전에 방점을 둔 정책을 추진해왔다. 행정수도, 기업도시, 5+2 광역경제권 등이 그렇게 나왔다. 지방선거 때는 서울·경기·인천을 합쳐서 운영하자는 2006년 당시 김문수 후보의 ‘대수도론’, 서울과 경기를 합치자는 2018년 남경필 후보의 ‘광역 서울도’ 같은 제안이 나왔지만 두 주장은 첫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제기된 ‘메가 서울론’은 기초지자체별로 서울과 통합을 시도하자는 것이어서 광역 연합을 제안했던 기존 두 주장과는 다르다. 기능의 집중과 효율 제고가 아니라 단순한 서울 편입만을 노린 것이라면 격이 떨어진다.   2008년 총선 때의 서울 뉴타운 공약과 비교해야 할 것 같은데, 당시 이슈는 강남·북 균형발전이었다. 뉴타운은 소규모 재개발 대신 광역 재개발을 유도해 학교·공원 등 생활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자는 생각이었다. 원래대로 몇 군데만 시도했다면 성과를 거뒀을 것이다. 결국 총선 공약에 태워지면서 강남·북 균형은 땅값의 균형으로 변질했고, 뉴타운 광풍이 불었다.   지난 세월 추진해온 지역균형발전 결과를 볼 때 전략의 일부 수정은 불가피하지만, 우리가 수도권의 몸집을 키운다고 경쟁력이 올라갈 단계는 지난 것으로 보인다.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연구개발 등 기능을 집중하면서 도시는 콤팩트하고 효율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고, 메가시티의 본질이다.   통행량 때문에 통합이 필요하다면, 맨해튼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뉴저지 주 도시들은 이미 뉴욕시에 편입됐어야 한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이 서울의 5분의 1도 안 되는 파리시를 15분 도시로 더 콤팩트하게 만들려는 시도도 포기하는 게 맞는다. 행정구역은 그대로 두거나 좁히면서도 인근 지자체끼리 연합해 교통·쓰레기 등 각종 현안을 해결하고, 이용률이 낮은 토지의 효율을 살려 콤팩트 도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도시 관리비용도 절감하면서 시민 만족도를 높이는 지름길이요, 영향력 있는 메가시티가 되는 길이다.   서울은 이미 충분히 메가 도시로 성장했다. 지난 세월 동안 난개발된 수도권을 더 콤팩트하게 정비하고, 잘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면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 김포는 인근의 마곡 산단과 고양 테크노밸리 등과 연계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추진할 곳이다. 세계와 한국을 이끌어갈 수 있는 도시들이 또 광풍에 휩쓸릴 것 같아 안타깝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2023.11.14 00:56

  • [시론] 소양강댐 50년과 남북 ‘워터 데탕트’

    이중열 물복지연구소 소장 1973년 10월 15일에 준공된 소양강댐이 올해로 건설 50주년을 맞이했다. 소양강댐과 경부고속도로, 서울지하철 건설은 빈곤 퇴치, 경제성장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의 3대 국책사업 중 하나였다. 1962년부터 1996년까지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5년 단위로 추진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이들 국책 사업에는 국가 예산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321억원이 투입됐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로 들여온 대일청구권 자금이 여기에 활용됐다.   소양강댐은 1960년대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해 꼭 갖춰야 할 사회기반시설(SOC)이었다. 홍수 조절, 용수 공급, 수력 발전 등 다목적댐으로 건설된 소양강댐은 길이 530m, 높이 123m로 총저수용량은 29억㎥ 규모다. 제대로 된 장비도 넉넉한 자본도 부족한 상황에서 어렵사리 건설한 소양강댐은 이수(利水)와 치수(治水)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소양강댐이 없었다면 세계가 인정하는 ‘한강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다.     ■  「 ‘한강의 기적’ 일궈낸 소양강댐 남북 대치로 대형댐 신설 난망 북한강 활용해 윈윈 해법 찾길 」    시론 소양강댐이 수도권 지역에 공급하는 생활·공업·농업 용수는 하루 평균 332만t이다. 1100만 명이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다. 수도권에 공급되는 용수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5%를 차지한다. 이와 함께 연간 353GWh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댐 건설 당시 공사 현장 근로자들을 허기를 채워주던 닭갈비와 막국수는 이제 강원도 춘천을 대표하는 전국구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소양강댐은 호반의 도시 춘천을 상징하며 연간 180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대한민국 근대화의 초석이 된 소양강댐이지만 빛만 남긴 것은 아니다. 춘천시 북산면과 동면, 양구군 양구읍과 남면, 인제군 남면 등 6개면 38개동과 리 일대 817만평의 광범위한 지역이 수몰됐다. 이 지역 주민 4600세대가 수몰되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대규모 토목사업에는 자연환경 훼손과 희생이 뒤따르기 쉽다. 그래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고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소양강댐과 경부고속도로는 국가 경제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신의 한 수’였다. 하지만 소양강댐 이후에는 국토 전체의 이수와 치수에 도움이 될 정책 결단이 나오지 않고 있다.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들어설 삼성전자 공장은 하루 65만t의 산업 용수가, SK하이닉스는 하루 27만5000t(향후에는 57만t)이 필요하다. 하지만 환경부는 “팔당댐 자체에 여유 수량이 많지 않아 취수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는 팔당댐을 통한 용수 공급이 어려워지자 여주보 취수로 계획을 변경했다가 지자체와 갈등으로 1년 6개월간 사업이 지연됐다.   하수처리 재이용 수량은 턱없이 부족하고, 대유량 취수원은 한강 수계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영월댐과 임진강댐은 사회적 합의 불발로 무산됐다. 물 사용량은 앞으로 꾸준히 증가할 것이지만, 이에 대비한 항구적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물 공급은 국가의 기본 의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그린 데탕트(녹색 화해 협력)’ 정책 중 금강산댐(저수량 26억t)과 평화의댐(26억t)을 활용한 ‘워터 데탕트(Water detente)’ 실현이 절실하다. 남북이 북한강 수계의 관리와 보전을 통해 가뭄과 홍수 등 재난을 관리하고, 공유하천 관리로 발생하는 이익을 나누는 윈윈 정책이 필요하다.   금강산댐을 우리 돈으로 리뉴얼하고 제대로 된 발전 설비와 송·배전 인프라를 갖추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북한은 전력 갈증을 일부라도 줄일 수 있고, 한국은 풍부한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신규 댐은 건설하지 않아도 되고, 약 30억t 이상의 용수를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북한강 수계 댐(임남댐~팔당댐 표고 차 240m) 5개 소에서 발전을 통해 연간 10.3억㎾h의 친환경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연중 균일한 방류로 북한강 수계의 수질을 대폭 향상할 수 있다.   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물을 활용해 경색된 남북 관계의 물꼬를 틀 수 있다. 소양강댐과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위대한 결정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듯이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 물로써 물길을 여는 남북 ‘워터 데탕트’ 결단을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중열 물복지연구소 소장 

    2023.11.10 00:54

  • [시론] 김포의 서울시 편입은 ‘산 넘어 산’

    남재걸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번 가을은 그야말로 ‘정치의 계절’이다. 서울 주변 생활권 도시의 서울 편입, 이른바 ‘메가시티’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내가 사는 주소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을 주는 행정구역 개편 정책에 유권자의 민감도가 만만치 않은 분위기다. 그런데 행정구역도 한정된 경제재의 성격을 가진다. 특정 행정구역을 합치거나 나누거나 하는 과정에서 가격은 달라진다. 그래서 행정구역 개편에는 아주 미묘하고 복잡한 심리전이 숨어있다.   필자는 정치권의 행정구역 개편 논의에 찬성 또는 반대 논리를 주장하기보다 행정구역 개편 정책의 특수성과 가능성에 대해 말해 보려 한다. 지자체 행정구역 개편은 다른 어떤 정책보다도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관련되는 특징이 있다.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 이슈는 940만 서울 시민과 1400만 경기도민이 이해당사자가 된다. 결국 대한민국 인구의 46%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는 거대한 이슈다.     ■  「 총선 전에 터진 메가시티 논쟁 수도권, 소용돌이에 빠질 수도 지방의회, 지역주민 동의 필수 」    시론 행정구역 개편의 결과는 해당 지역 주민의 사회·경제적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 행정구역 개편은 지가와 임대료에 주는 경제적 영향뿐 아니라 사는 곳이 어디냐에 대한 질문을 무시하지 못하는 심리적 요인과도 연관된다. 지역에 대한 정체성이나 자부심, 지역 희소성의 감소, 주변 지역 변화에 대한 호불호, 지방세인 도세나 특·광역시세의 변화와 그에 따른 조정교부금의 증감 등으로 인해 해당 지역뿐 아니라 주변 지역주민에게도 영향을 준다.   행정구역 개편 논의에 대한 주민의 관심 표출 양상은 좀 특이하다. 기존 행정구역 개편 사례를 보면 개편 이슈가 제기된 초기보다 중기, 그리고 결정적 시점이 될수록 주민 내부 갈등이 확대·강화된다는 특징이 발견된다. 예컨대 청주시·청원군의 통합 실패와 성공, 마산·창원·진해시의 통합, 전주시·완주군의 통합 무산 과정에서 그랬다. 행정구역 개편 이슈의 등장 초기에는 말하는 주민이 주도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실화가 가까워졌다고 느끼면 조용했던 주민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그래서 행정구역 개편 정책은 조용한 주민이 누구인지 미리 알고 시작해야 한다.   지방자치법에 명확히 규정된 지자체 행정구역 개편의 법적 절차를 살펴보자. 일차적으로 관계 지방의회의 의견을 듣거나, 해당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주민투표를 시행해 주민 의사를 확인하고, 이차적으로 국회가 법률을 제정하면 된다. 따라서 김포시의 서울 편입과 관련해서는 김포시 의회, 경기도 의회, 서울시 의회가 동의하거나 해당 지역주민의 주민투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경기도 의회와 서울시 의회가 동의할 것인가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때쯤이면 말하지 않고 있던 조용한 주민들이 어느 정도인지를 지역정치인은 충분히 인지하기 때문이다. 조용했던 주민이 많든 적든 그 수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면 지역정치인은 더 신중해진다. 주민투표로 가는 것은 어떨까. 경기도민과 서울시민, 국민의 절반 가까이 투표에 참여하는 형국으로 수도권이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다.   국회가 직접 특별법으로 만들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백번 양보해 지방자치와 주민의 자기 결정성을 무시하는 특별법 제정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국회가 2300만 주민의 동의나 해당 지방의회의 동의를 받지 않은 입법을 할 수 있을 것인가. 1995년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지금까지 지자체 행정구역 개편이 지방의회나 지역주민의 동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없다. 국회의원 과반수가 무모하게 지방자치를 훼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해외사례는 어떠한가. 일부에서 외국의 광역연합을 거론하며 외국도 대도시 확대가 대세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광역연합은 행정구역 개편이 아니라 행정구역은 그대로 두되 서로 연합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만일 수도권 교통이 문제라면 수도권교통만을 담당하는 특별한 지자체, 특별지방자치단체를 만드는 것이다. 영국의 지방정부가 청소나 소방 업무를 공동으로 수행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연합 청소기구’나 ‘연합 소방기구’를 만드는 것은 사례다. 한국의 지방자치법으로도 가능한 방법이다. 가능한 대안을 검토하는 것이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남재걸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 

    2023.11.09 00:46

  • [시론] 비상 대비 ‘국가동원시스템’ 허술하다

    최계명 동국대 비상안전학과 겸임교수·전 행정안전부 비상대비국장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10월 7일)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하마스는 유대교 명절(수코트)이 끝난 직후 안식일 새벽에 로켓포 수천 발을 퍼부으며 기습 침투했다. 이스라엘 민간인 등 1400여 명을 살해하고 220여 명을 인질로 잡아갔다.   이스라엘은 즉각 국가동원령을 발령하고 48시간 이내에 예비군 30만 명과 전쟁물자를 동원했다. 하마스의 거점인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평소 준비한 동원시스템으로 전열을 가다듬으며 가자지구 점령 작전을 펴고 있다.     ■  「 하마스에 기습 당한 이스라엘 동원체제 갖춰 신속하게 반격 ‘국가비상기획위’ 역할 살려야 」    시론 이번에 하마스가 사용한 기습공격 작전은 북한의 대남 공격 전술과 매우 흡사하다. 만약 북한이 도발을 감행한다면 대한민국도 이스라엘처럼 초반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우려가 크다. 문제는 도발 이후에라도 지금의 이스라엘처럼 신속히 동원시스템을 가동해 즉각적인 반격과 궤멸 작전에 나설 수 있을지가 미지수라는 점이다.   전쟁은 많은 병력과 최신 무기를 가졌다고 꼭 이기는 것이 아니다. 적 공격에 대한 주민 대피 및 보호, 주요 생필품 공급, 국가 산업시설 유지, 국민 의지와 단결, 후방 군수지원 능력 등 국가 전체의 응집력에 좌우된다.   예부터 전쟁은 군사적 능력과 함께 비군사 분야의 국가 역량에 의해 결정되는 국가 총력전 양상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결국 이런 요소에 의해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평시 시민 보호를 위한 민방위사령부(HFC), 전시 국민생활안정과 군사작전 지원을 위한 국가 비상경제운영본부(MELACH) 등 비군사 작전을 위한 전담 국가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48시간 이내에 모든 예비전력을 적시에 동원했기 때문에 반격이 가능했고, 민간인 피해도 최소화했다. 반면 하마스는 이러한 비상대비체제를 갖추지 못한 채 기습공격을 감행하는 바람에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다.   만약 북한이 하마스처럼 공격하면 한국도 초기에 군사적 대응은 가능하겠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국가 예비전력 동원 문제, 단전·단수 사태, 생필품 부족, 민간인 구호 등 국민 생활 안정을 위한 비군사적 대응 태세는 지금의 역량으로는 몹시 어려워 보인다. 그만큼 큰 혼란이 예상된다.   이번에 이스라엘이 대응한 것처럼 비상대비라는 정부의 비군사적 대응 태세가 중요하다. 비상 대비는 전쟁발발 시 예비 인력과 물자를 동원해 군사작전을 지원하고, 행정기능과 기간산업을 유지하며, 생필품과 구호물자가 차질없이 공급되도록 하는 중요한 기능이다.   과거 정부에서는 장관급 정부기구인 ‘국가비상기획위원회’가 이 역할과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 정부조직을 개편하면서 이 기구를 해체하는 바람에 지금은 행정안전부의 1개국이 담당한다. 기능과 역할을 급격히 축소해 실질적인 전쟁대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걱정이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우리 정부의 비군사적 전시대비 업무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다음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국가동원 시스템 전반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점검이 필요하다. 국가동원이란 평시 체계를 비상시 긴급체계로 전환해 자원을 운용하는 개념이다. 인력·물자·산업·수송·시설동원 등 방대한 자원을 통제해야 하고 백신 등 311종의 비축물자도 전장에 투입해야 한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은 1968년 1·21 무장공비 침투 사태 직후 ‘국가동원체제연구위원회’를 설치해 국가동원 능력 전반을 점검하고 ‘충무계획’을 최초로 작성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가칭 ‘국가동원연구위원회’를 한시적으로라도 만들어 전반적인 점검에 나서야 한다.   둘째, 궁극적으로는 과거 국가비상기획위원회와 같은 국가 비상대비 조직을 정상적으로 복원해야 한다. 이 조직은 범정부적으로 중앙부처와 지자체를 조정·통제할 수 있는 상급기관으로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통령실이나 총리실 산하 조직으로 편성해야 한다.   북한이 도발한 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전시 비군사 분야 대비업무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국가 조직을 신속히 재정비해 효율적인 총력전 대비 태세를 확립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계명 동국대 비상안전학과 겸임교수·전 행정안전부 비상대비국장

    2023.11.08 01:00

  • [시론] 북·중·러 삼각 연대의 ‘동상이몽’

    신봉섭 광운대 초빙교수·전 주선양 총영사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상포럼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따로 만났지만, 보스토치니 북·러 정상회담 합의를 시 주석이 수용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중·러 정상회담에 배석한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곧바로 평양으로 날아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장시간 대면해 궁금증을 더 키웠다. 컨테이너 1000여 개 분량의 군사 장비와 포탄이 나진항을 통해 러시아로 이송된 정황이 드러난 만큼 그 반대급부로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군사기술을 제공하는 방안이 논의됐을 우려가 크다.     ■  「 북, 러 끌어들여 3자 연대 모색 중, 북·러 밀착에 일부 선 긋기 한·중 소통, 한·중·일 회의 긴요 」    시론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이 보여주듯 북·러 밀착은 동북아 안보 지형의 중대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지렛대 삼아 중국을 끌어당겨 북·중·러 삼각 연대를 모색하려 하는데 문제는 중국이 북·중·러 연대에 가세할 것인가다.   중국은 북·러 접근에 일정 정도 선을 긋고 있다. 고립된 북·러와 함께 신냉전의 프레임에 엮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러 사이에서 전략적 공간을 확보하면서 대미 관계 개선과 북·러 관계 관리를 병행하고자 한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중·러 협력이 북·중·러 연대 강화 포석으로 해석되는 것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북·중·러 삼각 공조의 성패는 중국의 전략적 판단에 달려있다. 하지만 삼자 연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해와 전략적 비전이 서로 다르다. 서로 보완적이기보다 이해상충과 경쟁 요인이 강하다. 다자동맹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작다. 단지 미국의 제재와 압박에 대응하는 공동 입장이 연대의 공간을 만들어 줄 뿐이다.   중·러는 역사적으로 이념 갈등과 국경 충돌 과정에서 소련이 핵 공격을 준비했을 정도로 불신과 대결 위기를 겪었다. 지금의 중·러 관계도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에 맞서 다극화 질서를 구축하려는 공동의 목표에 따른 것일 뿐이다. 중·러 연합군사훈련도 동맹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군사 지원을 거부했고, 지난 3월 모스크바 방문에서 시 주석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위협을 반대했다.   북·중 관계도 겉보기와 달리 순탄하지 않다. 중국은 전략적 자산인 북한 체제의 유지를 바라면서도 북핵이 동북아 안보와 중국의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투 트랙의 이중 접근법이다. 북한도 중국의 관여와 영향력을 경계하면서 ‘의존의 균형’을 통해 경제적 생존을 추구한다. 그래서 북·중 간에는 불신의 뿌리가 깊다. 중국의 대북 지원도 북한의 기대에 못 미친다.   중국은 일대일로 참여국들에 매년 500억~600억 달러를 투입하면서도 대북 투자 또는 인프라 지원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일대일로 프로젝트 대상에도 북한은 빠져 있다. 이번 일대일로 정상포럼에 북한 대표는 보이지 않았다. 정전협정 70주년과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에 각각 평양에 파견된 중국 특사는 홀대받는 분위기였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도 한국은 총리가 참석했지만, 북한은 별도 사절을 보내지 않았다.   이처럼 북·러 밀착과 군사 거래를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은 불편해 보인다.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당연히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으니 조만간 북·러 군사훈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북·중·러 삼자 연합훈련은 차원이 다르다. 미·중 관계에 파탄이 나지 않는 한 중국이 북한의 의도대로 북·중·러 연합훈련에 동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의 전략이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미·일 협력이 북·중·러와 대립 국면으로 고착하지 않도록 협력과 소통에 나서는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북·러 군사협력에서 중국을 떼어놓기 위해 한·중 소통이 중요하다. 둘째, 북·러가 레드 라인을 넘지 못하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한 경고 및 제재 압박을 가동해야 한다. 셋째, 2019년 이후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의를 조속히 재개하고, 시 주석의 방한이 성사되도록 외교력을 모아야 한다.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해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외교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봉섭 광운대 초빙교수·전 주선양 총영사

    2023.11.07 00:44

  • [시론] 과학기술에는 국경이 없다

    이우일 서울대 명예교수·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1970년대 중반에 막대한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한 중동 건설 붐을 기억할 것이다. 건설 근로자는 외화 획득의 첨병으로 경제 성장의 밑거름 역할을 했다. KBS ‘가요무대’ 진행자 김동건씨는 요즘도 방송을 시작하며 “멀리 계시는 해외동포, 그리고 해외근로자 여러분, 지난 한 주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을 변함없이 전한다.   화석연료 시대가 저물 것으로 예상되면서 최근 중동 국가들은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한 노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는 ‘포스트 오일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사우디 비전 2030’을 발표하고, 산업구조 다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우디 국빈 방문을 통해 수소 경제, 스마트 시티, 미래형 교통수단 등 미래 지향적 산업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사실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로서 의미가 커 보였다.     ■  「 산업구조 다변화 나선 사우디 과학계도 글로벌 연대 움직임 선도·도전적 연구환경 조성을 」    시론 사우디 국빈 방문 중에 ‘한·사우디 미래기술 파트너십 포럼’이 열렸다. 양국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첨단디지털, 청정에너지, 첨단바이오, 우주 등 미래기술에 대한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이 포럼에 참석하면서 사우디 전문가들이 한국의 과학기술계와 협력하려는 진지한 열의를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디지털 분야에서 네옴시티 프로젝트 같은 디지털 전환 사업에 인공지능(AI), 디지털 트윈, 클라우드 등 한국의 강점 기술을 접목하려고 한국 기업들에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이제 한·사우디 양국은 전통적인 에너지·자원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미래산업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핵심 동반자로 거듭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글로벌 과학기술 연대 시대에 한국 국내 상황은 어떠한가.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중 국제공동연구 비중은 1.9%로 이탈리아(7.1%), 영국(5.3%), 독일(3.4%)보다 매우 낮다. 또한 국제공저 논문 비율은 16.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7.1%)보다 저조한 실정이다. 이는 글로벌 시대에 우리는 아직도 한국 중심의 나 홀로 연구에 머물고 있다는 방증이다. 글로벌 과학계와 연대해 함께 성장하는 과학기술 프레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비효율을 걷어내기 위해 내년도 R&D 예산을 일부 구조조정했지만, 글로벌 과학기술 협력을 위한 R&D 예산은 1조8000억원으로 크게 늘렸다. 과학기술 국제 연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두텁게 지원하기 위한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산 증액에 그치지 말고, 연구 성과의 배분 문제와 같은 공동연구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등 글로벌 R&D 협력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역량을 보유한 연구팀과의 협력은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아야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국제협력 R&D 예산 지원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사우디 격언에 ‘사막을 건너려거든 좋은 친구를 선택하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 과학자들도 ‘우물 안 개구리’에서 탈피해 시야를 넓혀 글로벌 과학자들과 연대함으로써 미래 세대를 함께 키우고 인류의 복지와 삶의 질을 제고하는 데 함께 기여해야 한다.   정부 R&D 예산의 구조조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겁다. 정부는 그동안 R&D 예산이 급격하게 증가한 데 비해 충분한 과제 기획과 연구 설계 준비는 부족해 나눠주기식 과제가 확대됐다는 입장이다. 기초연구와 같이 인력 양성 과정에서 지원하는 소액 과제는 빼고서라도 국책 연구는 R&D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도전성과 혁신성을 진작할 수 있도록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이번에야말로 정부 R&D의 우선순위를 시대 상황에 맞게 재설정하고 R&D 지원 시스템을 본질적으로 보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한-사우디 미래기술 파트너십 포럼에서 윤 대통령은 “국가의 역량은 과학기술 수준에 달려 있고 국가는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교육과 대학의 연구 역량 제고, 그리고 미래 첨단산업 기술에 대한 선행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제는 우리 과학계도 정부의 과학기술 육성 의지를 믿고 선도적이고 도전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지혜를 함께 모아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우일 서울대 명예교수·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2023.11.02 00:46

  • [시론] 미·중의 한국 ‘고공 패싱’에 대비해야

    주재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 반도체 업계에 10월 초 고무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했던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 규제를 번복했다. 이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중국 시안(西安) 낸드 공장과 우시(無錫) D램 공장을 정상 운영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도 뭔가 좀 개운치 않다. 그동안 미국은 미·중 전략 경쟁에서 반도체를 무기로 중국 경제를 옥죄며 효과를 봤는데 이번에 너무 갑자기 파격적으로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의 승리”라는 윤석열 정부의 설명보다 더 큰 무언가를 미국이 노리는 것 같아 불길한 예감이 든다.     ■  「 대선 앞둔 바이든은 경제 걱정 시진핑 주석의 방미에 공 들여 한국, 반도체로 미·중 설득해야 」    시론 주지하듯 미국은 올 초부터 미·중 관계 개선을 모색해왔다. 왜냐하면 중국이 지난 3월 양회(兩會, 전인대와 정협)에서 경제 활동 재개(리오프닝)를 선언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미국은 2021년의 경험, 즉 중국의 ‘제로 코로나’로 얻은 경제적 낙수효과를 떠올린 것 같다. 당시 중국 경제는 전년보다 8.11% 성장했고 세계 경제는 5.87%, 미국은 5.95%, 한국도 4.15%의 성장률을 보였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은 전년보다 145%, 수입은 132% 증가했다.   지난 8월 공화당이 첫 대선후보 토론을 열면서 미국은 대선 정국에 들어갔다. 과거 경험에서 보듯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하려면 내년 1분기와 2분기 미국 경제지표의 대폭적 호전이 절실하지만, 최근 미국 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국가부채는 31조4000억 달러(약 4경원)로 국내총생산(GDP)의 126%를 넘었다. 지난달 정부 셧다운(부분 업무정지) 사태를 간신히 막았지만, 45일이 지난 11월에 유사 사태가 또 벌어질 수도 있다.   중국도 경기회복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성장률을 5% 전후로 신중하게 내다봤는데 1분기 4.5%, 2분기 6.3%, 3분기 4.9% 성장률을 기록해 많은 기관의 7% 예상에 미달했다. 게다가 7월까지 줄곧 상승한 청년실업률이 21%를 넘자 놀란 중국 정부가 이후 통계를 발표하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중국 경제 회복이 어려운 더 큰 이유는 헝다(恒大)와 비구이위안(碧桂園) 등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줄 파산 위기에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이들 기업이 회생하려면 혹독한 개혁이 필요하다.   미·중 경제 회복의 관건은 역시 4차산업 발전이고 핵심은 반도체다. 메모리 반도체는 4차산업의 심장이자 두뇌다. 반도체의 원활한 공급이 핵심이란 의미다. 미국은 비메모리 반도체만 생산하기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4차산업의 발달 속도는 빠르다. 따라서 반도체의 수급이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지난해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제정하는 바람에 중국에서 한국 기업들의 반도체 생산이 어려웠다. 한국기업이 세계시장 수요의 60%를 공급하는데, 그중 40%를 중국에서 생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빠르게 발달하는 4차산업의 반도체 수급을 위해 미국은 중국에서 이들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원활한 반도체 공급은 미국 경제의 원활한 회복뿐 아니라 내년 대선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그러려면 중국 경제의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 이 때문에 미·중 양국은 서로 필요해 손을 잡을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미국이 11월 중순 주최하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에 공을 들인 이유다. 윤석열 정부는 미·중 양국이 손잡고 한국을 ‘패싱’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 우리 기업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 능력을 미·중 양국에 대한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 중국에서 상위 반도체 생산이 가능해졌지만, 중국 국내 판로는 제한될 것이다. 중국 경제 회복을 위한 상위 반도체 공급은 한국에서 제조한 것에 국한하고, 중국 내 공급은 한·미가 공동으로 선정하는 방안을 미국에 제안해야 한다. 정부는 삼성전자의 용인 생산기지가 미국보다 더 신속히 준공되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면 한국 기업의 선도적 위상과 능력에 도전하는 경쟁자가 상당 기간 없을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재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2023.11.01 00:34

  • [시론] 정치적으로 만든 ‘역사 특별법들’

    김형석 역사학자·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 많은 국민의 관심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 쏠렸던 지난달 국회에서 ‘동학 특별법’ 개정안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조용히 통과했다. 그동안 역사 관련 특별법은 1995년 ‘5·18 특별법’을 시작으로 ‘친일반민족행위 특별법’(2004년), ‘동학 특별법’(2004년), ‘과거사 특별법’(2005년), ‘일제 강제동원특별법’ (2007년), ‘제주 4·3사건 특별법’(2021년), ‘여수·순천사건 특별법’(2021년), ‘노근리사건 특별법’(2021년)이 제정됐다. ‘거창사건 특별법’과 ‘근로정신대 특별법’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를 합치면 이른바 ‘10대 역사 특별법’이 된다.     ■  「 최근 ‘동학특별법’ 개정 무리수 보훈 체계 흔들고 공정성 논란 역사를 법으로 재단하면 안 돼 」    시론 역사 특별법에는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보상이 수반되기에 역사 특별법이 양산되면서 문제점도 적지 않게 생긴다. 국가유공자는 원칙적으로 국가보훈부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자격 여부를 정한다. 그런데 5·18 유공자는 특별법에 의해 광주광역시장에게 업무가 위임됐고, 기존의 5·18 유공자가 보증만 하면 공적을 인증해주는 인우(隣友)보증제가 도입됐다. 공정해야 할 유공자 선정이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맡겨진 꼴이다.   이로 인해 5·18 유공자에 대한 불신이 끝없이 제기되고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 투명성을 위해 명단 공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급기야 5·18을 고의로 비방하면 처벌하는 조항까지 신설됐다. 이것이 논란을 일으킨 ‘5·18 역사왜곡처벌법’이다.   그런데 동학 특별법은 아예 소관 부처를 국가보훈부가 아닌 문화체육관광부로 특정했다. 국가의 보훈 체계를 뿌리째 흔드는 결정이다. 조선시대에 발생한 동학 사건 참여자를 대한민국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문제를 놓고 공론화 과정을 거쳤는지 의문이다. 보훈 대상의 범위도 과도하다. 국가유공자는 자녀까지 인정되고, 독립유공자만 3대 손자녀까지인데 동학은 5대 고손자까지 대상이다.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 입법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치적 이해에 따라 만든 역사 특별법의 최대 문제점은 역사 왜곡에 있다. ‘제주 4·3사건 특별법’은 4·3사건에 대해 1947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1948년 4월 3일 소요사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한다.   4·3사건은 1948년 5·10 총선거에 대한 남로당의 반대투쟁으로 일어난 사건이 명백한데도 그보다 1년 전의 3·1절에 발생한 사건을 억지로 소환해 당시 미군정에서 발생한 반제(反帝)운동으로 교묘하게 위장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했던 4·3사건의 역사적 성격이 남북 분단에 저항한 통일 운동으로 돌변했다.   동학은 586 운동권 세력의 역사 인식에서 첫머리를 차지한다. 그들은 동학농민운동-항일 의병-무장독립운동-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지는 역사관으로 이른바 ‘백년전쟁’의 프레임을 만들었다. 지금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부터 대한민국 역사가 출발한 것처럼 전시하고 있다. 지난 정권의 운동권 출신 관장의 유산이다. 그 시절 일본과 무역 분쟁이 일어나자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죽창가’를 소환해 국민의 반일감정을 자극했던 사실도 기억한다.   역사 특별법이 만들어지면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하고 그 보고서가 국가의 공식 기록물로 남겨진다. 대한민국 정사(正史) 편찬의 기본 사료가 된다. 무분별하게 역사를 법으로 만들 때가 아니다. 그동안 정치적으로 제정된 무수한 역사 특별법에 문제점은 없는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요소는 없는지를 재검토할 시점이다. 역사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기술해야 한다.   보훈정책도 정확하게 평가하고 공정하게 시행돼야 한다. 국가유공자 유족은 자녀 중에 1명에게 월 7만원의 수당이 지급된다. 동학농민운동 유족은 지자체가 증손자까지 전원 월 10만원씩 수당을 지급한다. 그런데도 또 다시 특별법을 개정해 대상을 고손자까지로 확대하고 국가에서 중복 지원하려 한다. 국회는 황당한 동학 특별법 개정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형석 역사학자·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

    2023.10.27 00:48

  • [시론] 한국은 백남준에게 무엇을 해줬나

    김홍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전 서울시립미술관장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것이 소원이야. 창신동에.” 서울시립미술관이 2017년 3월 개관한 창신동 백남준기념관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2004년 어느 인터뷰 장면에서 백남준(1932~2006) 선생이 생전에 했던 이 말이다.   백남준기념관은 3000평 넘는 터에 우뚝 솟은 솟을대문이 있어 ‘큰대문집’으로 불리던 창신동 옛집 터에 마련됐다. 한국전쟁을 치르며 건물 대부분이 파손됐으나, 일부 남은 한옥을 2015년 서울시가 매입하고 2016년부터 리모델링해 2017년 개관했다. 이것이 백남준기념관의 짧은 역사다.     ■  「 비디오아트 문 연 ‘세계의 보물’ 창신동 기념관 폐관 소식 충격 서린동 생가보다 상징성 더 커  」    시론 창신동 백남준기념관의 장소적 의미는 그것이 큰 대문의 부잣집이라서가 아니라 그곳에 백남준이 1936년 다섯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14년간 살았다는 점에 있다. 창신동은 전쟁 이후 의류 생산의 본거지가 됐지만, 그 전까지는 세력가들 가택이 들어서고 성북동·낙산·동대문·청계천이 가까운 지리적 요충지였다.   청계천 상가에서 아널드 쇤베르크의 음반을 어렵사리 구했다는 일화가 뒷받침하듯 청소년 백남준은 그곳에서 작가적 창의력과 예술적 비전을 오롯이 키워왔을 것이다. 창신동 옛집이 서린동 생가보다 상징성이 더 크다고 여겨지는 까닭이다.   백남준은 어려서 고국을 떠나 홍콩·일본·독일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하고 국제적인 창작·전시 활동으로 세계적인 ‘남준 팩’이 됐다. 이산·이주·유랑의 현실을 경험한 그에게 민족·인종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예술과 분리될 수 없는 의식의 한 층을 형성했음이 틀림없다. 동양사상에서 미학적 뿌리를 찾고, 한국 전통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는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 바로 정신적 모체가 된 창신동이라는 세 글자가 아니었을까.   백남준기념관이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실함과 함께 운영이 중단되면 그 집은 어떻게 되나 하는 우려로 미술계가 술렁댄다. “생가가 아니기 때문에 건물의 역사적 의미가 크지 않다”는 서울시립미술관의 해명자료는 그것이 어떻게 운영 종료의 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이에 덧붙여 “열악한 전시 환경과 관람객 저조”가 기념관의 문을 닫는 이유가 된다면 아픈 사람은 병을 고치기 전에 죽어야 한다는 궤변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유명인이 태어났거나 잠시 살았거나 학교에 다녔거나 하는 연고를 십분 살려 미술관이나 기념관을 짓고 마을 브랜드로 키워가는 사례를 목격하고 있다. 강원도 양구 군립 박수근미술관(2002년 개관), 충남 홍성 이응로의 집(2011년)에 이어 세종시는 내년에 장욱진기념관 개관을 앞두고 있어 기대를 모은다.   두말할 나위 없이 백남준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화적 아방가르드로서 세계 미술사의 아랫목을 차지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예술과 과학, 미술과 음악의 사잇길에서 ‘경계에 살기’를 유희하는 포스트모던 비저너리(Visionary)이자, 작가·기획자·흥행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만능인이다. 이 점에서 그는 고대와 중세의 문화적 과도기에 고대성과 당대성, 이교와 기독교의 양면가치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예술과 과학을 접목한 만능의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에 비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한국의 문화적 자산이라는 점이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한국에 상륙한 이래 그는 광주비엔날레 창설(1995),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설치(1995)를 주도하면서 한국의 미술문화 선진화에 크게 기여했다. 되돌아보면 그는 명실상부한 ‘한류(K-Wave)’의 선구자였다.   이런 그에게 고국 한국은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그는 한국에서 저평가돼 있다. 외국 친구들은 “너희는 너희 나라 보물을 몰라보냐”며 핀잔을 준다. 이제라도 그에게 무엇인가를 되돌려줘야 한다. 국내외 전시와 연구, 아카이브 구축, 전작 도록 출판, 작품가 정상화 등 할 일이 너무 많다. 그에 대한 사랑과 존경으로 한국이 비디오아트 연구의 메카가 되고, 그가 회귀를 소망했던 창신동이 백남준의 성지가 되도록 힘쓰는 일만이 ‘포스트 백남준’을 위한 보답이 아닐까.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홍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전 서울시립미술관장

    2023.10.26 00:56

  • [시론] 의대 정원 확대, 숫자보다 중요한 것

    임재준 서울대 의대 교수·서울대병원 공공부원장 의과대학 정원 증원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한쪽에서는 의사의 절대 숫자가 많이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전공별·지역별 분포가 문제일 뿐 의사 수는 전혀 모자라지 않다고 맞선다. 지금의 의대 정원 3058명을 유지할 경우 2030년이면 2만5746명이 부족하다는 분석과 2047년에는 1000명당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추월한다는 계산이 혼재한다.   그렇지만 큰 병원조차 영상의학과 의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어느 지방의료원은 신장내과 의사를 구하지 못해 투석실을 폐쇄했다. 당장 의사 구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정부가 의대 정원을 증원할 의지를 밝히자 얼마나 늘려야 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최소 1000명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2000년 의약분업 때 줄인 정원(351명)만 복원해도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지만 숫자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  「 구멍 난 필수·지역의료 챙겨야 지역인재전형 정원부터 증원 의료발전 감안, 5년마다 조정 」    시론 의대 정원을 늘리는 목적은 모든 국민이 체감하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위기 극복이다. 의사만 늘리면 쉽게 모든 것이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정교한 정책이 동반돼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지역별 의료 인력 불균형 문제부터 검토하자. 2022년 통계에 따르면 서울은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종사 의사 수가 4.8명인데, 세종시는 2.0명으로 서울의 절반을 밑돈다. 지방 소재 의대 졸업생들도 정주 여건이 좋은 수도권 근무를 선호한다.   2022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지방에서 성장해 지역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의 지방 근무 비율이 수도권 출신보다 더 높았다. 그러니 지역 의료는 물론 교육과 연구의 중심이 돼야 할 지방 국립의대와 여건이 잘 갖춰진 비수도권 사립 의대를 골라 현재 40% 정도인 지역인재전형에 정원을 추가 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와 함께 지역인재전형 졸업생의 경우 일정 기간 해당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일하게 하는 규정 도입도 꼭 필요하다. 사실 가장 시급한 것은 수년 내에 건립될 수도권 11개 병원(6000병상)의 의료인력 수급 대책이다. 2500명 정도의 의사가 필요하다는 예측이 있는데, 지금도 부족한 지역의료 인력을 흡수한다면 정말 큰 문제다.   ‘소아청소년과 오픈런’과 ‘응급실 뺑뺑이’로 대표되는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의 해결은 더 어렵고, 의대 정원 증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높은 업무 강도, 진료 결과에 대한 과도한 민·형사 책임, 비급여 분야 의사와의 임금 격차 등 복합적 원인의 결과다.   의사 수를 대폭 늘리면 낙수효과로 자연히 필수의료 인력이 충분해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한국 의료 제도의 특성을 고려하면 그럴 가능성은 작다. 설령 낙수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피부·미용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경쟁이 심해 억지로 메스를 잡은 의사에게 우리 아이의 심장 수술을 맡길 수 있을까. 마지못해 응급실을 지키는 의사에게 우리 가족의 위급한 안위를 의지할 수 있을까. 결국 필수의료 인력에 대한 존경과 보상, 삶의 질 개선, 법적 보호 등이 마련돼야 유능한 인재들로 충원할 수 있다.   의대 정원 증원의 규모와 방법에 대한 검토는 이미 소비자 단체를 포함한 다양한 직역 대표들이 참여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의사인력 전문위원회’를 꾸려 진행 중이다.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가 함께 논의하는 ‘의료현안 협의체’도 있다. 2025년 입학 정원 확정까지는 아직 몇 달 시간이 있으니 매일 같이 만나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인공지능·원격의료 등의 기술 발전에 따른 의료 현장의 혁신 가능성을 고려해 5년마다 정원을 재조정하는 방안도 포함하자.   그러나 아무리 정책을 보완해도 외과 의사의 삶이 편하기는 어렵고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수입이 비급여분야 의사보다 나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서울보다 지방에서 일하는 것이 편리하고 윤택할 리도 없다. 정부는 필수·지역의료를 지원하는 과감한 제도를 마련하고, 의사들은 그 바탕 위에서 헌신·봉사하는 것이 유일한 정답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재준 서울대 의대 교수·서울대병원 공공부원장

    2023.10.25 00:35

  • [시론] ‘우주 인터넷 시대’ 멀지 않았다

    강충구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위성통신포럼 집행위원장 세계 인구의 3분의 1은 아직도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처럼 영토가 광활한 국가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모든 곳에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항공기와 선박에서 인터넷 속도는 너무 느리면서도 비용이 적지 않다.   2030년대에 상용화가 예상되는 ‘6G 시대’에는 지상망과 비지상망이 융합된 하나의 네트워크가 구축된다. 모든 공간에서, 전 세계 어디에서든지 초고속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전쟁과 자연재난으로 생존 가능성을 위협받는 지상망과 달리 위성망은 어떤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통신 연결을 제공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  「 지상·비지상망 연결 ‘6G’ 눈앞 스타링크·원웹 등 경쟁 뜨거워 저궤도 통신망 구축 서둘러야 」    [일러스트 김회룡] 무수히 많은 저궤도 위성을 발사해 지구 어느 곳에서도 LTE급 접속이 가능한 초고속 우주 인터넷 시대는 이미 열렸다. 이는 자본·기술·시장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자 화성에 인간이 거주하도록 하겠다는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회장의 원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머스크 회장의 스페이스X는 재사용 가능한 발사체 기술을 통해 위성망 구축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이는 혁신을 주도했다. 이 업체는 위성 5000여 기로 구축한 스타링크(Starlink)를 통해 세계 45개국, 200만 명 가입자를 확보했다. 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그 위력과 전략적 위상을 이미 입증했다.   영국 정부가 참여하는 원웹(OneWeb)은 올해 본격적인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타링크와 원웹은 한국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온라인 유통시장의 공룡으로 불리는 아마존도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최근 2기의 테스트 위성을 발사했다. 향후 몇 년 내에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는 스타링크·원웹 등 해외의 저궤도 위성통신망 사업자들의 각축장이 될 것이다.   6G 시대를 앞두고 저궤도 위성통신망의 전략적 위상과 산업적 비중을 고려한다면 우리도 발 빠르게 대비해야 한다. 6G 시대에는 다양한 공간의 자율주행체에 대한 관제와 새로운 모빌리티 환경이 가능해지기에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가 산업의 새로운 축으로 부상할 것이다.   이런 기술적 파급 효과를 간파한 한국 정부와 산업계도 대응책을 논의하고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 확보와 생태계 조성을 고민해왔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수차례 탈락해 올해 재도전 중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대규모 투자의 효용성만 따지는 인식의 문제다.   즉, 세계 최고 수준의 완벽한 지상망을 이미 구축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저궤도 위성통신망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 반응이 우세하다. 하지만 수천 개의 저궤도 위성군이 조만간 세계를 커버하는 하나의 거대한 통신망을 구축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전 세계로 한국의 시장을 확대하는 기회이자 도전의 출발이 될 것이다.   한국만의 저궤도 위성통신 산업 전략은 무엇인가. 세계로 수출되는 우리 방위산업 시스템의 신경망으로서, 그리고 한국인의 정신과 문화가 전 세계로 거미줄처럼 파고드는 콘텐트 전달 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동통신 강국의 산업 생태계와 대체불가 K콘텐트의 저력을 결집한 범국가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핵심 기술 개발을 통한 저궤도 위성통신 시범망을 구축해 활용성을 검증하고, 민·군 겸용 독자 위성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나아가 한국 주도의 다국적 공동망으로 확장하고, 이를 위한 국제 협력체 결성을 추진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리더십과 공급망을 주도하기 위한 선제적 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에 필요한 연구·개발 기반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디지털 강국으로 성장한 배경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자. 정부 주도의 국산 전전자 교환기(TDX) 개발이 세계 최초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상용화의 기틀이 됐다.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도 정부의 강력한 정책 지원으로 가능했고 그 덕분에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살게 됐다.   미래의 변화는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한국인의 손으로 세계 어디에서도 접속이 가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그 위에서 우리의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 초고속 우주 인터넷 시대의 개막과 함께 우리는 이제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충구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위성통신포럼 집행위원장

    2023.10.24 01:01

  • [시론] 정전협정 70년과 이산가족의 아픔

    이훈 이북5도위원장 겸 함경북도지사 올해는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70년이 흘렀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미사일위협을 노골화하며 봉건적 세습 정권 유지를 위한 무력 도발로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7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여전히 북녘에 두고 온 고향에 가지 못하고 가족과 친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야 하는 실향민의 현실이 안타깝다.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여 명 중 74%(9만3058명)가 고인이 됐다. 생존자의 85%(3만4341명)가 80대 이상일 정도로 이산가족의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  「 실향민의 85%, 나이 여든 넘어 인권 빠진 북핵 협상 비현실적 북한 내부 변화 이끌 정책 필요 」    시론 생존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하루속히 이산가족의 비극을 해결해야 함에도 김정은 정권의 잇단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이 문제를 논의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산가족 문제는 진영·이념·정치 논리에 따라 다룰 문제가 아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기반해 인도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절박한 현안이다.  이산가족 문제는 더 늦기 전에 다른 어떤 사안보다 우선해서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특히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협력해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가야 한다.   역대 정부는 북핵과 한반도 평화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와 압박 등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상황만 더 악화했다. 물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강력한 대북 제재를 통한 핵 능력 억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억제력은 비핵화를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북5도민들은 인권 이슈를 배제한 핵 협상 접근법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정신과 연결돼 있음을 인식하고 대북 정책을 지혜롭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자유민주적 평화 통일을 향한 일관된 대북 정책이다. 그 키워드가 바로 ‘담대한 구상’과 ‘북한 인권’이다. 윤석열 정부는 역대 정부들과 달리 북한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미 동맹을 대대적으로 강화해 북한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동에는 타협 없이 원칙적으로 대처한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워싱턴 선언’을 통해 북핵에 대비한 확장억제 실행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을 통해 북한의 어떠한 위협에도 압도적 대응 역량을 확보할 것이라는 메시지도 국제사회에 전했다. 이렇게 원칙과 상식에 기반해 일관되게 북핵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면 북한은 결국 대화와 협상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핵 문제의 궁극적 해법은 북한 주민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자각하게 유도해 북한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 스스로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좋고 나쁜지 판단하고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복지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힘을 모아 실질적 지원을 해가야 한다.   북한 주민의 눈과 귀가 열리고, 인권을 개선해 민주화로 나아갈 때 북한 주민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결정을 통한 합의 통일, 즉 평화 통일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오는 22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제41회 대통령기 이북도민 체육대회’가 개최된다. 이번 행사는 880만 이북5도민이 겪고 있는 이산의 아픔을 위로하고 화합과 소통하는 축제의 장이다. 동시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고향 땅을 떠나온 1세대 어르신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고 계승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북5도민 1세대 어르신들은 70여 년 전 6·25전쟁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상황에서 굳센 의지와 성실함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든 주역들이다. 1세대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던 대한민국이 원조를 주는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앞으로도 880만 이북5도민은 자유민주주의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갖고, 철저한 안보 의식을 바탕으로 평화 통일의 대업을 향해 나아가는 데 힘을 모을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훈 이북5도위원장 겸 함경북도지사

    2023.10.19 00:55

  • [시론] 탈북민은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 원장·전 북한인권총연합 상임대표 탈북을 결심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필자도 쥐약 네 봉지를 샀다. 도중에 붙잡히면 무조건 자진(自盡)하려고 했다. 동생들에게도 한 봉지씩 나눠주며 급박한 상황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라고 했다. 북한 주민에게 탈북은 이처럼 목숨을 거는 일이다. 탈북하다 붙잡혀 북한으로 끌려간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북한은 2020년 1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자 일방적인 국경 봉쇄조치로 탈북민의 북송을 중단했다. 그해 2월에는 북한의 파견근로자와 불법체류자의 송환 업무를 잠정 중단한다는 공문을 중국에 보냈다. 하지만 북한 보위부와 중국 공안은 불법체류 탈북민에 대한 공조 수사를 계속해왔다.   그 무렵 중국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전국적 방역 감시망을 설치·가동하고 얼굴 인식 프로그램까지 도입했다. 주민등록 및 이동 통제를 대대적으로 강화했다. 중국에서 주민등록이 없는 탈북민이 색출되고 체포됐다.     ■  「 중국의 탈북민 북송은 인권유린 문 정부 방관, 윤 정부 속수무책 이제라도 재발 방지책 제시해야 」    [일러스트=김지윤]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입국한 탈북 여성 다수는 인신매매로 한족이 사는 농촌이나 유흥업소로 팔려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중국의 많은 유흥업소가 영업정지 되면서 탈북 여성들은 이마저 일자리를 잃었고 신분이 노출돼 대거 체포·구금됐다.   탈북민이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 ‘프리덤 조선’에 따르면 중국 공안은 2020년부터 체포·구금한 북한 여성을 중국 노동교화소 수감자노역장에 집단 배치했다. 극히 적은 인건비만 지급하고 강제노역으로 노동 착취했다.   지난 7월 북한의 코로나19 봉쇄 완화정책으로 북·중 국경에서 인적 왕래가 가능해졌다. 중국 공안당국은 여러 교화소의 강제 노역장에 배치했던 탈북민을 단둥·옌지·투먼 등지에 설치된 임시 구금시설로 집결시켰다. 지난 3년간 불법체류 탈북민을 체포·수사하는 데 들어간 비용과 의료비·식비·숙박비 등을 북한 당국에 청구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못하자 탈북민은 곧바로 송환되지 않았다.   북한 보위부가 지난 7월 송환 절차를 진행하자고 중국 공안에 통보했지만, 중국 측은 송환 비용을 지불하기 전에는 안 된다고 통보했다. 중국 공안은 탈북민의 강제노역에 따른 노동 착취로 이득을 봤고, 이번엔 탈북민 관리 비용을 받아 이득을 또 챙겼다. 지난 8월 말 탈북민 250~300명이 1차로 북송됐고,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자 600여 명을 추가 북송했다.   북한 정권은 강제 북송된 탈북민을 제3 의료원(간염 및 결핵 격리병원)에 수용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8월 1차 송환 탈북민은 함경북도 무산군과 온성군에 준비된 격리시설에 옮겨진 뒤 보위부로 넘겨졌다. 최근 북송된 600여명도 격리시설로 이송됐을 것이다.   북한의 반인륜적 고문과 처형 등 인권 탄압은 널리 알려져 있다. 탈북민의 강제 북송이 얼마나 참혹한 인권유린을 초래할지 뻔하다. 그런데도 난민협약을 위반해 탈북민을 강제 북송한 중국 정부의 반인권적 행태를 개탄한다. 이러고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경기 등 각종 국제 행사를 유치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김정은 정권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해 탈북자 송환에 소극적이었던 문재인 정부의 책임도 작지 않다고 본다. 특히 지난 2019년 11월 문 정부는 배를 타고 한국으로 내려온 탈북 청년 어민 두 명을 흉악범으로 낙인 찍어 비밀리에 강제 북송해 공분을 샀다. 1945년 전에 벌어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현재 진행형인 탈북 여성들의 인신매매와 성범죄 피해에는 침묵한다. 탈북민을 배신자 취급하며 인권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인권에 대한 이중 잣대가 아닌가.   이번 탈북민 600명의 강제 북송 와중에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모습도 실망스럽다. 중국의 북송 움직임이 감지됐고, 북송을 막아달라는 탈북민의 호소가 있었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정부는 중국의 행위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해야 한다.   탈북민은 최상위법인 헌법에서 명시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탈북민의 강제 북송을 막지 못한 것은 국민의 생명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정부의 직무유기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분명한 대책을 제시하기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 원장·전 북한인권총연합 상임대표

    2023.10.18 00:40

  • [시론] 더 성큼 다가온 ‘뉴 스페이스 시대’

    한재흥 KAIST 교수·인공위성연구소장 아제르바이젠 수도 바쿠에서 이달 초 열린 제74회 국제우주대회에 다녀온 전문가는 이구동성으로 새로운 우주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토로했다. 사실 우주 개발과 우주 탐사는 오랫동안 몇몇 우주 강대국 정부기관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재사용 로켓 기술 등으로 발사 비용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우주 접근성이 좋아졌다. 이제는 소기업뿐 아니라 개인도 인공위성을 운용할 수 있는 시대다. 한국에서도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같은 정부출연기관, 우주·방산 분야 KAI뿐만 아니라 여러 신흥 벤처기업도 우주대회에 참가해 특색 있는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국제 공동으로 우주 개발 기회를 모색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도 ‘뉴 스페이스 시대’가 조금씩 열리고 있음을 느낀다.     ■  「 지구촌 벤처기업들 경쟁 가속 우리 목표는 시장점유율 10%   ‘우주항공청’ 신설도 속도내야 」    김지윤 기자 한국은 선진국보다 40여년 늦게 우주 개발에 뛰어들었다. 정부의 우주 분야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2021년 기준 7300억원 정도다. 미국의 1.5%가 되지 않는 적은 수준이지만, 정부가 효과적으로 우주 프로그램을 기획·주도해왔다. 관련 분야 연구자들의 헌신적 노력이 더해져 비교적 짧은 기간에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했다.   지난 5월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누리호는 한국의 우주 기술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 발사체에는 KAIST 인공위성연구소에서 개발한 차세대 소형 위성 2호(‘차소 2호’)가 탑재됐다. 누리호의 도움으로 순탄하게 궤도에 진입한 차소 2호는 현재까지 지구를 2000여 바퀴 돌면서 국내 최초로 개발된 위성용 영상레이더 장비를 활용해 기상 조건과 관계없이 지구 표면을 성공적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고도 500㎞ 정도의 저궤도 위성과 3만6000㎞의 정지궤도 위성뿐 아니라 지난해에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궤도선 다누리호를 달에 보내 운용하고 있다. 우주 탐사 영역을 지구로부터 38만5000㎞ 떨어진 달까지 넓히며 세계 일곱 번째 달 탐사국 반열에 올랐으니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주 선진국들의 우주 패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도 ‘우주항공청’의 조속한 개청을 비롯해 내실 있는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엑스 회장은 국제우주대회에 화상으로 참가해 차세대 발사체 스타십 계획과 화성 개척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10년 후에는 국제우주대회를 화성에서 하자”고 호기롭게 제안해 주목받았다.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는 2030년 전 세계 우주산업 규모가 730여조원이 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한국의 시장점유율을 1%로 매우 낮게 예측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우주기술을 압축 성장시키면서 우주 강소기업 육성 등 민간의 역량 증대보다 당장 국가 안보 소요 등을 충족하기 위해 정부출연연구소 중심의 체계 완성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정부는 2045년까지 우주산업 점유율을 10%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우주산업 강국 도약 및 민간 우주시대 개막을 열기 위한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우주산업 클러스터 삼각체제 구축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우주 분야 핵심 인재들과 인프라가 집적된 대전, 우주로 가는 관문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전남, 그리고 항공우주 분야 체계 종합 기업이 있는 경남 등 3개 지역에 적절한 역할을 부여해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확인된다.   주된 사업 내용으로 민간 발사 서비스 지원을 위한 민간 발사장 구축, 급증하는 소형 위성 개발 소요 대응을 위한 우주환경 시험 시설 확충, 연구 현장 연계형 우주 인재 양성 및 연구 개발을 담고 있다. 지난 8월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로 추진되기로 하면서 사업 진행에 탄력을 받고 있다.   우주 산업은 다른 산업보다 투자 회수 기간이 매우 길고 단기적인 효과가 불확실하다. 이 때문에 예타를 통한 검토에서는 다른 분야 투자보다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예타 면제 추진이라는 시의적절한 결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진행 중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적정성 검토에서 여러 전문가의 건설적 의견을 담아 우주 클러스터 사업이 우주 강국으로 가는 디딤돌을 잘 준비하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재흥 KAIST 교수·인공위성연구소장

    2023.10.17 00:51

  • [시론] 호스피스 선택권 제한은 위헌적

    윤영호 서울대 기획부총장·한국건강학회 이사장 지난해 6월 안규백 민주당 의원이 의사 조력 자살을 합법화하는 ‘조력 존엄사 법안’을 발의한 것을 계기로 호스피스 완화의료 인프라 확충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유사한 법은 미국·캐나다·호주와 몇몇 유럽국가에서 오래전 합법화됐다. 한국사회에도 웰다잉 공론화와 호스피스 확대 필요성이 커지면서 안 의원의 법안 발의로 이어졌다.   그런데 당시 천주교와 대한의사협회가 즉각 조력 존엄사 입법화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호스피스 지원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조력 존엄사법 도입을 지지하는 여론이 쏟아졌지만, 보건복지부는 “합의에 도달하기 어려워 사회적 갈등이 예상된다”면서 말기 환자들의 고통을 사실상 등한시했다.     ■  「 복지부, 말기 암환자 고통 외면 호스피스 시설 부족 위험 수위     국가 주도로 인프라 확충해야 」    시론 많은 국민이 호스피스 인프라의 절대적인 확대를 요구한 지 오래됐지만, 그동안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관계자들의 호스피스 지원 확대 주장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국민 10명 중 8명이 조력 존엄 입법화에 찬성한다. 이는 천주교·대한의사협회·정부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생긴 비참한 죽음의 현실에 대한 국민적 호소임을 알아야 한다.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이 향상돼 말기 환자들의 호스피스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호스피스를 이용하려면 한 달 이상 대기해야 한다. 가정 호스피스를 받기도 어렵다. 통증 조절 등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은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다.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암 사망자의 23.2%, 전체 사망자 중 6.1%만이 호스피스를 이용했다. 암 이외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증, 만성호흡기부전으로 인한 말기 환자까지 호스피스 대상자를 확대했지만, 수혜자는 1년에 70명 정도에 불과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명시된 다섯 가지 질환 이외에 국민이 호스피스 적용 확대를 희망하는 난치성 유전·신경 질환, 치매, 파킨슨병, 뇌졸중, 심부전 등 다른 질환 환자들은 이용할 수 없다.   의료 소비자인 국민이 호스피스 선택권을 제한받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이자 위헌적이다. 웰다잉의 불평등으로 국민의 행복추구권이 침해되는 현실을 방관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호스피스 선택권 침해 해소를 위한 법적 보장에 대한 의견을 정부와 헌법재판소에 제출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즉시 호스피스 적용 대상자를 확대해야 한다. 환자들은 헌재에 헌법소원이라도 제기해야 한다.   지역별 수요와 불균형을 고려해 호스피스 기관을 신설하고, 호스피스 대상 질병을 확대한다면 죽음의 질을 높이고 의료비도 절감할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분석에 따르면 호스피스 이용으로 1인당 370만원의 건강보험 지출이 감소했다. 2022년 호스피스를 이용한 암 환자 2만198명의 의료비 약 750억원이 절감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와 건보공단이 웰다잉 정책에 선제적으로 투자한다면, 존엄하고 고통 없는 생애 말기를 보장하고 가족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건보 재정을 활용한 ‘웰다잉 문화 기금’을 설치해 호스피스 인프라 구축과 취약계층 말기 환자의 간병비 지원, 연명의료 결정과 호스피스 제도를 홍보하고 광의의 웰다잉 문화 운동을 진행해야 한다.   광의의 웰다잉이란 말기 환자의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연명의료 결정과 호스피스를 확대하고, 유산 기부, 마지막 소원 이루기, 정신적 유산 정리, 생전 장례식 등의 사회·경제적 지원을 통해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국민의 80%, 국회의원의 84%도 찬성한다.   미국은 카터 정부 때부터 매년 11월을 ‘국가 호스피스의 달’로 정했다. 레이건·클린턴·오바마 대통령도 전통을 이어왔다. 2016년 공포된 연명의료 결정법에 따라 한국에서는 10월 둘째 주 토요일이 ‘호스피스의 날’이다. 이날을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이 호스피스를 확대해 국민의 품위 있는 죽음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직접 선언하면 어떨까.   대통령이 말기 환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가족, 의료진 및 자원봉사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내면 좋겠다. 호스피스 선택권을 제한하는 위헌적 상황을 방치하면 ‘안락사 쓰나미’에 직면할 것이다. 정부 대응이 너무 늦지 않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영호 서울대 기획부총장·한국건강학회 이사장

    2023.10.13 01:09

  • [시론] 전국 224개 시·군·구에 영화제만 220개

    김병재 문화자유행동 영화분과 위원 매년 220개 이상의 영화제가 전국에서 열리고 있다. 익히 아는 부산·전주·부천영화제 등 국제영화제부터 일반인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듯한 무주 산골영화제, 목포 국도 1호선 독립영화제, 우리나라 가장 동쪽 영화제도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하는 이런 영화제가 41개이고 전국의 크고 작은 영화제를 합치면 시·군·구 기초지방자치단체 숫자(224개)에 육박한다.   이처럼 영화제가 많은 이유는 가성비가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영화제는 가장 대중적인 문화 콘텐트이고, 인기 배우나 연예인을 초청해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고, 적당한 예산으로 가격 대비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축제로 인식된다.     ■  「 지역마다 앞다퉈 영화제 남발 주민들 외면받아 상당수 폐지 예산낭비 따지는 계기 삼아야 」    [일러스트=김지윤] 영화제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다 보니 부침이 심하다. 평창·제천·강릉·전주·울주 산악 영화제 등은 영화제의 정체성 논란과 예산 문제, 지역민의 무관심 등으로 사라지거나 내홍을 겪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9년에 시작한 평창 영화제는 태동 자체가 정치적인 의도가 있어 보였다. 주로 북한 영화를 한국에 소개하는 등 강원도민의 삶과는 거리가 먼 행사였다. 4년간 세금 84억5000만원이 투입됐지만 편향된 영화인, 그들만의 잔치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같은 강원도에서 열렸던 강릉 영화제도 3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으나 지역 호응이 낮다는 이유 등으로 폐지됐다. 제천 영화제의 경우는 영화제 집행부의 도덕적 해이가 논란이 됐다. 결국 엉터리 회계와 부실 운영으로 혈세가 투입됐다.   역대 정부는 그동안 부산·부천·전주 영화제 등에 지자체 지원과는 별도로 매년 많게는 최대 12억8000만원(2022년 부산영화제)부터 적게는 1000만원(우리나라 가장 동쪽 영화제)까지 모두 53억원 안팎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이런 지원과 영화제 숫자의 폭발적 증가가 한국영화 발전과 지자체 주민의 문화복지에 얼마나 기여해왔지는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부산·전주·부천 등 이른바 ‘빅3 영화제’ 관계자들조차도 국내 영화제가 난립해 이미 포화 상태라고 지적한다.   영화제 전문인력 부족과 계약직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 영화제 밥그릇 싸움에다 지자체와의 갈등, 불안전한 재원 확보 등으로 제살깎아먹기식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최근 영화제 예산이 삭감되자 일부 영화 관련 단체들은 “영화제 지원 축소는 영화 산업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반발한다.   주지하다시피 올해 들어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으로 비상 국면이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은 일찌감치 긴축재정 기조다. 이에 따라 영화진흥위원회 예산도 지난해 1100억을 정점으로 올해 850억으로 줄었고, 2024년엔 734억원으로 축소된다. 영진위 모든 사업에서 40~50% 삭감이 불가피해 보인다.   따라서 영화제들도 각 지자체 지원과 자체 수익사업 확대를 꾀할 수밖에 없다. 영화제 규모부터 줄여야 한다. 나라 전체 기조가 긴축재정으로 가고 있는데 지원금 챙기기 투쟁에 나서는 것이 공감을 얻겠나. 120억원으로 가장 큰 부산영화제의 경우 영진위(국고) 13억 지원에, 부산시가 절반 (60억원)을 지원하고 자체 수익사업으로 영화제를 치르고 있다. 영진위 지원금 중 50%가 삭감되지만 이젠 국고에 기대지 말고 지자체 차원에서 해결하거나 자체 사업으로 해결하는 게 합리적이라 본다.   코로나19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등장으로 영화제의 위상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더 문’ 등의 추석 연휴 극장가 흥행 참패가 말해주듯이 코로나 사태 이후 대중이 모이는 행사에 가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OTT 등장으로 관람 행태도 크게 변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많은 군중이 모이는 영화제에 집착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프랑스·이탈리아에도 적지 않은 영화제가 개최되지만 한국과 비슷한 규모의 나라에서 220개의 영화제가 열린다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 정부 지원금에 손을 벌리기 전에 지역 영화제를 전반적으로 문제점을 점검하는 것이 순서다. 지자체 주민과는 상관없는 영화인들만의 영화제에 이중삼중으로 혈세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병재 문화자유행동 영화분과 위원

    2023.10.12 01:08

  • [시론] 사법부도 빨아들인 ‘정치 블랙홀’

    정용상 동국대 법대 명예교수·전 한국법학교수회장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지난 6일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35년 만에 부결시켜 사법부 수장 공백 상태의 장기화가 우려된다. 앞서 지난달 27일 법원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관련 의혹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대장동과 백현동 및 대북송금 의혹 관련자 24명이 이미 구속된 상황에서 정점에 있는 것으로 의심받는 이 대표에 대한 영장 기각은 법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6년간 김명수 대법원 체제에서 만연했던 사법의 정치화에 따른 산물이 아닌지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의 사법 불신이 더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유창훈 부장판사는 기각 결정문에서 혐의를 입증할 확실한 물증도 없이 심증과 정황증거만으로는 구속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이 공정과 형평을 담보하고 법익 형량의 원칙과 형평성의 원칙에 부합하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차제에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은 개인별 편차가 클 수 있는 단독 판사에게 맡기지 말고 합의제 영장심사제도를 도입하면 좋겠다.     ■  「 법관의 독립성·중립성 흔들려 의석을 무기 삼은 거야의 ‘뗏법’ 법원도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  시론 정치적 찬반 논란이 있어도 이 대표 관련 의혹 사건은 검찰이 신속하게 기소하고, 법원은 신속한 재판을 진행하면 될 일이다. 오래 질질 끌다 보니 마치 이 사건이 특별한 정치 이슈인 것처럼 오해받고 있다. 더군다나 민생을 외면한 채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정치 블랙홀은 바람직하지 않고 비정상적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출범한 김명수 대법원 체제 6년간 사법부의 독립성·중립성이 크게 흔들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정 정파나 이념에 경도된 판사들이 정치 사건에 대해 편향된 재판을 쏟아내는 바람에 어느 기관보다 신뢰받아야 할 사법부를 가장 불신받는 조직으로 만들었다. 특히 조국 일가 비리, 윤미향 비리, 울산시장 선거 비리 등 김명수 사법부의 선택적 재판 지연은 결국 국민의 권리 보호를 소홀히 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정의 수호의 보루인 사법부의 권위를 추락시켰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듯 정치권의 뗏법이 합법과 적법을 몰아내고, ‘법의 지배’인지 ‘법에 의한 지배’인지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법질서가 엉망진창이다. 힘의 논리를 앞세운 거대 야당이 의석수를 무기 삼아 자의적으로 국회를 운영함에 따라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위헌 결정이 나온 ‘대북 전단 금지법’을 비롯한 반헌법적 입법을 남발하고 국무위원 해임건의안과 탄핵 카드로 정치를 실종시키고 있다.   정치는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는 권력작용이지만, 반드시 합법적 절차와 수단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정치는 법을 통해 이뤄지고 정치의 작용은 법의 실행으로 나타난다. 법은 국가 권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지만, 법이 정치권력에 종속되면 법의 규범성보다 사실적 권력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정치 만능이 되고 정치가 불신받게 된다. 말하자면 정치의 불신은 법의 불신으로 이어진다.   정치가 법의 통제를 벗어나거나 법 위에 군림하는 요즘의 정치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국회의원이 법을 우습게 여기고 뗏법을 동원하면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다수파의 전횡으로 일방적·자의적 입법 행위를 자행하는 지금의 국회 모습은 기형적이다.   정치가 법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세상에서 정의는 실현되기 어렵고 불공정과 몰상식만이 독버섯처럼 퍼져갈 뿐이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정치가 법을 복종시키려 하고 뗏법을 앞세워 법치를 무너뜨리는 일그러진 여의도 풍경은 일소해야 한다.   법원은 신속한 재판으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법부가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늑장 재판을 일삼고, 법관이 헌법·법률 및 양심이 아닌 개인적 성향이나 이념 편향성에 따라 튀는 재판으로 사법 불신을 조장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사법의 정치화를 막을 사법부 독립과 사법 개혁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정치에 종속된 사법부는 국민의 권리와 인권을 지키는 사법부로 거듭나야 한다. 진영 논리에 길든 김명수 대법원의 구태에서 벗어나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 법을 무시하는 여의도의 행태가 바뀌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가 응징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용상 동국대 법대 명예교수·전 한국법학교수회장

    2023.10.11 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