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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의 미래를 묻다] 우리는 아직도 비행기가 어떻게 뜨는지 모른다
박권 고등과학원 교수 비행기가 뜨는 것은 정말 놀랍다. 그런데 더욱더 놀라운 비밀이 있다. 우리는 아직도 비행기가 어떻게 뜨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비행기가 뜨는 현상을 정밀하게 기술할 수 있는 이론이 있다. 바로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Navier-Stokes equation)이다. 그런데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푸는 것은 매우 어렵다. 얼마나 어려운가 하면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푸는 사람에게 100만 달러가 수여되는 상이 제정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2000년 미국 클레이 수학 연구소(Clay Mathematics Institute)는 21세기 인류에 가장 크게 공헌할 수 있는 7가지 수학 문제, 이른바 ‘밀레니엄 문제’를 선정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이 3차원에서 해(解)를 가지는지 증명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는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고는 일반적으로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풀 수 없다. 어떤 것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어떤 것을 당신의 할머니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것을 진정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할머니에게 비행기가 뜨는 원리를 설명할 수 있을까. ■ 「 비행원리, 양력만으론 설명 불가 베르누이 원리와 뉴턴 법칙 얽혀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에 주목 설명 어려운 물리현상 아직 많아 」 에어버스의 초대형 화물기 벨루가 두 대가 프랑스 남서부 툴루즈 블라냐크 공항을 뜨고 내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선, 베르누이 원리가 있다. 이 원리에 따르면, 유체가 빠르게 흐르면 압력이 낮아진다. 베르누이 원리를 이용해 비행기가 뜨는 원리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비행기 날개의 단면은 일반적으로 윗면이 동그랗고 아랫면이 평평하다. 비행기가 앞으로 빠르게 움직이면 비행기 날개를 부딪힌 바람은 위쪽과 아래쪽으로 갈라져 각각 비행기 날개의 윗면과 아랫면을 따라 흐른 후 날개 끝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런데 동그란 윗면을 따라 흐른 바람은 평평한 아랫면을 따라 흐른 바람에 비해 동일한 시간 내에 더 많은 거리를 이동하고 따라서 속도가 더 빠르다. 이제 베르누이 원리에 의하면 날개의 위쪽은 아래쪽보다 압력이 낮아진다. 비행기는 이 압력 차이에 의해서 공중으로 뜨게 된다. 아름답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설명은 완전하지 않다. 비행기는 위아래가 뒤집어져도 날 수 있다. 만약 이 설명이 맞는다면 위아래가 뒤집힌 비행기는 가라앉아야 한다. 다른 설명은 뉴턴의 제3법칙을 이용한다. 뉴턴의 제3 법칙에 따르면,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항상 존재한다. 뉴턴의 제3법칙을 이용해 비행기가 뜨는 원리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비행기가 날 때 일반적으로 비행기 날개는 앞부분이 위쪽으로 약간 들려 있다. 이때 비행기 날개에 부딪힌 공기는 아래쪽으로 밀려 내려간다. 이것은 비행기 날개가 공기에 미치는 작용이다. 이제 뉴턴의 제3법칙에 의하면 공기가 비행기 날개를 위쪽으로 밀어 올리는 반작용이 존재한다. 이 설명은 위아래가 뒤집힌 비행기가 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비행기 날개의 위쪽과 아래쪽 사이에는 실제로 바람의 속도 차이와 압력 차이가 존재한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비행기가 뜨는 진정한 원리는 베르누이 원리와 뉴턴의 제3법칙의 절묘한 조화에 있다. 베르누이 원리와 뉴턴의 제3법칙은 서로 물고 물리며 복잡하게 상호작용한다. 이 복잡한 상황은 필자가 대학생 시절 물리학과 친구들과 벌였던 열띤 논쟁 하나를 생각나게 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베르누이 원리를 막 배운 때로 기억한다. 그때 한 친구가 베르누이 원리에 의하면 움직이는 버스의 창문에서 바람은 항상 밖으로 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버스 밖의 공기는 안의 공기보다 빨리 움직인다. 그렇다면 베르누이 원리에 따라서 버스 밖의 압력이 낮아지고 바람은 버스 밖으로 불어야 한다. 그럴싸하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우리는 흔히 버스 안으로 바람이 부는 것을 경험한다. 게다가 버스 밖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버스 안의 공기는 밖의 공기보다 빨리 움직인다. 그럼 정반대로 바람은 버스 안으로 불어야 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베르누이 원리는 공기의 흐름이 시간에 따라서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에서만 유효하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버스 밖 공기의 흐름은 일정하다. 따라서 베르누이 원리는 버스 안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유효하다. 즉, 바람은 버스 밖으로 불어야 한다. 좋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바람은 버스 안으로도 분다. 그 이유는 공기의 흐름이 완전히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 알고 있듯이, 버스의 창문에서 바람의 방향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버스의 창문에서 바람이 어떻게 부는지, 그리고 비행기가 어떻게 뜨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하지만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푸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버스의 창문에서 부는 바람과 비행기가 뜨는 놀라움을 사랑할 수 있다. 당신이 물리학자나 수학자라면 심지어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도 사랑할 수 있다. 비슷하게, 우리는 기계학습을 이해하지 못해도 인공지능이 여는 새로운 미래를 사랑할 수 있으며,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해도 양자컴퓨터의 경이로운 계산 능력을 사랑할 수 있다. 박권 고등과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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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의 미래를 묻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 정말 공상에 불과한 걸까
━ 시간여행의 세계 박권 고등과학원 교수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과거로 갈 수도 있고 미래로 갈 수도 있을 텐데, 유독 과거로 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미래는 궁금할 뿐이지만 과거는 후회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과거로 돌아가 후회하는 일을 새롭게 다시 하는 상상을 해 보았을 것이다. 시간여행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시간 역설이라고 불리는 모순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과거로 가 자신의 할아버지를 죽인다면 나중에 그 사람이 태어나지 않게 되므로 과거로 갈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할아버지가 죽지 않으니 그 사람이 다시 태어나게 되고, 또 그렇다면 그 사람이 과거로 가 다시 할아버지를 죽이는 모순적 상황이 무한히 반복된다. 역설이다. 물론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면 시간 역설은 없다. 하지만 혹시 시간여행이 가능하면서 시간 역설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을까. ■ 「 과거로 시간여행 영화가 많은 이유 후회된 일 돌이키고 싶은 마음 때문 양자역학 세계에선 시간 역행 가능 ‘시간 역행’ 양전자 이용 PET 촬영 」 시간 역설을 해결하기 위하여 미래를 묻다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라면 모름지기 시간 역설을 해결해야 한다. 논의의 편의상 영화에서 다뤄진 시간여행을 ①운명 개조 ②다중 우주 ③시간 고리 ④자기 일관 ⑤시간 역행, 이렇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보자. 우선, 시간여행의 첫 번째 유형인 ‘운명 개조’는 말 그대로 과거로 가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주인공 마티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괴짜 과학자 브라운 박사가 타임머신으로 개조한 자동차 ‘드로리안’에 우연히 타서 1985년에서 1955년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그렇게 과거로 간 마티는 우여곡절 끝에 부모님을 다시 사랑에 빠뜨리는 데 성공하고, 1985년으로 되돌아온 후 활기로 가득 찬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게 된다. 기분 좋은 해피 엔딩이지만 여기 논리적 모순이 있다. 마티의 예전 가족은 어디로 간 것일까. 혹은 마티의 예전 가족은 갑자기 기억을 잃고 활기로 가득 차게 된 것일까. 이 논리적 모순은 시간여행의 두 번째 유형인 ‘다중 우주’에서 해결할 수 있다. 다중 우주는 사실 영화 ‘백 투 더 퓨처 2’의 핵심 아이디어다. 자신의 자식에게 발생할 어떤 불행한 사건을 막기 위해 2015년으로 간 마티는 미래에 온 김에 스포츠 연감을 이용해 큰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을 엿듣고 있던 악당 비프는 몰래 드로리안을 타고 1955년으로 돌아가 젊은 자기 자신에게 스포츠 연감을 넘긴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른 채 1985년으로 되돌아온 마티와 브라운 박사는 원래 1985년하고는 너무나 다른 암울한 1985년을 맞닥뜨리게 된다. 어떻게 된 것일까. 스포츠 연감을 입수한 젊은 비프는 큰돈을 벌어 온갖 나쁜 짓을 하고 그 결과 새로운 1985년은 범죄로 얼룩진 암울한 세상이 된 것이다. 브라운 박사는 이 암울한 세상이 원래 우주에서 파생되어 나온 대안 우주라고 설명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과거를 갈 때마다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는 것이다. 다중 우주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면 시간여행의 세 번째 유형인 ‘시간 고리’가 된다. 이 유형은 어차피 과거로 갈 때마다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므로 아예 주어진 시간 구간을 무한히 반복한다. 시간 고리를 대표하는 영화는 1993년 미국에서 제작된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다(한국 개봉 제목은 ‘사랑의 블랙홀’). 주인공 필 코너스는 미국 피츠버그 지역 방송국의 기상 전문기자다. 필은 매년 펑서토니라는 도시에서 열리는 그라운드호그 데이 축제를 취재한다. 그라운드호그는 땅속에 사는 다람쥣과의 동물인데, 겨울잠에서 깬 후 굴에서 나오다가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보면 다시 겨울잠을 자러 들어간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따라 겨울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 점치는 전통이 생겼는데, 이것이 바로 그라운드호그 데이다. 그러던 필에게 어느 날 그라운드호그 데이가 계속 반복되기 시작한다. 필은 아무리 어떤 일을 해도, 심지어 죽어도 하루가 지나면 언제나 그라운드호그 데이 아침에 눈을 뜨게 된다. 영화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필이 어떻게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지를 잔잔하게 보여준다. 시간 고리는 과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다중 우주는 무수히 많은 새로운 우주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과학적으로 부담이 된다. 혹시 단 하나의 우주에서 시간 역설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을까. 시간여행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유형인 ‘자기 일관’과 ‘시간 역행’은 단 하나의 우주에서 시간 역설을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났다 자기 일관을 대표하는 영화로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있다. 해리 포터와 시리우스 블랙은 ‘디멘터’라는 무서운 악령에게 영혼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된다. 절체절명의 순간, 다행히 어떤 인물이 나타나 강력한 마법을 써서 디멘터를 쫓아낸다. 해리는 그 인물이 자신의 죽은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해리는 목숨을 구했지만, 시리우스는 결국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이때 해리의 스승 덤블도어는 ‘타임 터너’라는 시간여행 장치를 이용해 과거로 돌아가 시리우스를 구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과거로 돌아가 디멘터에 둘러싸인 자신과 시리우스를 목격하는 순간, 해리는 그때 그들을 구한 인물이 바로 해리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은 해리가 과거로 시간여행을 간다는 사실과 딱 맞게 자기 일관적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시간여행의 마지막 유형인 시간 역행은 과거로 가는 과정마저 자기 일관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 역행을 대표하는 영화는 바로 ‘테넷’이다. 영화 테넷에서 주인공은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뒤집음으로써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악당 사토르에 대항하기 위해 ‘시간 협공 작전’을 펼친다. 시간 협공 작전이란 시간에 순행하는 팀과 역행하는 팀이 서로 협동해서 적을 공격하는 전략이다. 시간 협공 작전의 놀라운 점은 다음과 같다. 시간에 역행하는 팀은 미래에서 왔기 때문에 이미 시간 협공 작전의 결과를 알고 있으며, 그 결과를 시간에 순행하는 팀에게 알려 줄 수 있다. 그리고 시간에 순행하는 팀은 시간 협공 작전이 끝난 후 방금 벌어진 시간 협공 작전의 결과를 다시 시간에 역행하는 팀에 알려 줄 수 있다. 순환 논리처럼 느껴지지만 시간 역행은 완벽하게 자기 일관적이다. 시간에 순행하든 역행하든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났기 때문이다. 영화 테넷에는 특히 놀라운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시간에 역행하는 사람이 만들어지는 장면이다. 대부분의 시간여행 영화에서 시간 여행자는 미래에서 과거로 순간적으로 이동한다. 기술적인 문제를 차지하더라도 물리학적으로 이것은 불가능하다.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테넷에서 시간에 역행하는 사람은 시간에 순행하는 사람이 모종의 회전문을 통과하면 만들어진다. 이 장면을 외부 관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회전문에서 시간에 순행하는 사람과 역행하는 사람은 서로 만나서 사라진다. 이 장면은 물리학적으로 놀라울 만큼 정확하다. 양자역학 세계와 시간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시간은 실제로 거꾸로 흐를 수 있다. 반(反)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물질은 시간에 역행하는 물질이다. 물질과 반물질은 서로 만나면 사라진다. 물리학자들은 이것을 쌍소멸이라고 부른다. 쌍소멸이 일어나면 에너지 보존을 위해서 빛이 나온다. 예를 들어, 양전자라는 반물질이 있다. 양자전기역학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양전자는 시간에 역행하는 전자다. 우리의 일상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양전자는 사실 우리에게 매우 유용하다. 요새 암 진단에 자주 쓰이는 이른바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 영어로 짧게 줄여서 PET라는 방법이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PET는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 원소를 몸에 넣은 후, 그 원소가 방출하는 양전자와 주변의 전자가 쌍소멸 하면서 나오는 빛을 측정한다. 참고로, 방사성 원소는 포도당과 같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부분에 흡수되는데, 보통 이런 부분이 바로 암이 자라는 곳이다. 결론적으로 시간은 실제로 거꾸로 흐를 수 있다. 다만, 그러기에 우리가 너무 클 뿐이다. ◆박권=이론 물리학자. 서울대 물리학과 학부를 졸업한 뒤 뉴욕주립대 스토니부룩에서 물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일대와 메릴랜드대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2008년부터 고등과학원의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2007년 고등과학원 학술상, 2017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을 수상했다. 저서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가 있다. 박권 고등과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