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셋 코리아] 금융위기 차단 위한 선제적 안정책 마련해야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스위스 크레디스위스(CS) 사태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혼돈에 빠트렸다. 위험 확산 차단과 시장 불안을 덜기 위한 양국 중앙은행 등의 진화 노력은 적극적이었다. 사태를 조기 수습하지 못할 경우 위기가 금융시장 전반으로 전염되고 글로벌 위기로 퍼질 우려가 있는 데다 글로벌 금융 허브 입지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금자 전면 보호와 대규모 자금 지원 등으로 금융시장은 안정되어 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신용도가 낮은 중소 은행을 중심으로 유동성 경색, 추가 부실 불안이 남아있다. 국내 금융시장도 이들 은행과 직접적 거래가 크지 않았음에도 일시적으로 큰 변동성을 경험하였다.     ■  「 은행은 추가 자본 확충 노력하고 엄격한 내부 통제 체계 구축해야 PF 관련 저축은행 유동성 확보를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SVB 사태는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인한 보유 채권의 대규모 손실이 예금 대량 인출(뱅크런)로 이어진 경우다. 특화 은행 비즈니스 모형이 초래한 유동성 위기의 성격이 강하다. 반면 CS의 경우는 수년간의 투자 손실이 누적된 데다 최대 주주가 투자 중단을 선언한 게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여기에 돈세탁 방조, 대규모 리베이트 사건 등 신뢰의 문제가 배후에 자리 잡고 있다.   양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으로 두 은행의 위기가 아직은 양국 금융시장의 시스템 위기나 글로벌 위기로 퍼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 금융시장도 그 영향이 제한적으로 나타났다. 국내 은행들은 두 은행과 자산·부채 구조가 다르고, 유동성·건전성 측면에서도 양호해 일시적 충격에 대응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인플레이션이 기대보다 빨리 안정되지 않고 고금리 상황이 당분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정부와 금융 당국이 불의의 위기 확산 가능성에 대비하여 선제적 금융 안정 대책들을 고려하고 있다.   이번 위기가 글로벌 차원의 위기로 확대되어 국내 금융시장으로 전염되는 시나리오에 대비한 위기 대응 대책(컨틴전시 플랜)이 필요하다. 또 국내에서 유사한 형태의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거시 건전성 차원의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당장의 위기 대응책으로는 국내 은행의 위기 대응 능력을 높이는 게 최우선이다. 돌발적 신용 위기 상황에 대응한 ‘경기 대응 완충 자본’ 등 추가 자본 확충 노력과 함께 대출 부실에 대비한 ‘특별 대손 준비금 제도’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금융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예금자 보호 한도도 경제와 금융자산 성장에 비례하여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외환시장 불안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경상수지 적자 확대와 높아진 금리로 인해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 불안이 외화 자금 조달 경색과 환율 불안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국내 금융기관의 외환 보유 상황과 외화 자금 조달 여건에 대한 모니터링,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글로벌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또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과 관련하여 레고랜드 사태 같은 유동성 경색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저신용 건설사와 고위험 사업장에 투자를 많이 한 지방 저축은행, 부동산신탁사, 캐피털 업체의 관리와 유동성 확보를 위한 추가 채널 확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긴축 기조로 인해 자금 경색이 우려되는 신산업·벤처기업 지원을 위한 모험자본 생태계 육성과 함께 데이터·플랫폼 기반의 혁신금융 성장동력 확충 노력이 꺾이지 않도록 성장 단계별로 차별화된 지원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비슷한 위기가 국내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거시 건전성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먼저 국내 은행들은 복수의 자금 조달 경로 확보와 운용·수익 구조를 다양화하는 사업모델 도입을 통해 위험을 분산하고, 고정 금리 대출 비중 확대 등 대출 채권 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내부 통제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SVB·CS의 내부 통제 부실과 도덕적 해이는 심각했다. 엄격한 내부 통제 체계 재구축과 내부자 거래 사전공시 강화 같은 은행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2023.03.20 00:54

  • [리셋 코리아 포커스] 미·중 기술패권 돌파할 비책은 혁신 스타트업 창업

    이종호(오른쪽 셋째) 과 기 정 통 부 장관이 지난 7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열린 리셋코리아 포커스 좌담회에서 분과위원들과 토론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본격화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하면서 한국 경제에 위기감이 짙어졌다. 설상가상 미국에서 시작한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이어지면서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수출이 급감하면서 무역수지 적자와 성장률 하락 등 곳곳에서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는 어디로 가는 걸까. 각 부처 장·차관과 중앙일보 국가개혁 프로젝트 리셋코리아의 위원들이 정책 현안을 논의하는 리셋코리아 포커스가 지난 7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초청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시대 한국 경제의 갈 길을 물었다.   이 장관은 “연구·개발(R&D)에 기반한 딥테크(deep-tech) 혁신 스타트업 창업이야말로 지금 같은 위기 시대에 한 국가의 다음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해법”이라며 “딥테크 스타트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강소기업으로 성장할 수도 있고, 대기업의 체질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교수 시절 개발한 3차원 반도체 설계 기술인 핀펫 특허로 유명하다. 인텔이 이 장관의 핀펫 특허기술을 썼고, 삼성전자는 이 장관과의 특허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거액의 합의금을 물어야 했다.   이번 리셋코리아 포커스 혁신창업분과 좌담회에는 분과장을 맡은 김경환 성균관대 글로벌창업대학원장을 비롯해 분과위원인 김선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 남민우 다산네트워크 회장, 문미성 경기도 경제과학원 본부장, 박한오 바이오니아 대표, 배중면 KAIST 기계공학과 교수가 참여했다.     ■  「 연구를 미래 먹거리로 이어야 딥테크 창업이 성공확률 높아 창업은 지방 소멸 막는 방법 기술탈취 배상 3배서 더 높여야 」    5년간 딥테크 분야에 15조원 투자 계획   ▶김경환=과기정통부가 추진하고 있는 올해 R&D 투자의 방향에 대해 말해 달라.   ▶이종호=지난 1월 ‘스케일업 투자전략’을 발표했다. R&D의 성과를 높이고 경제가 성장하려면 딥테크 기반의 창업과 스케일업(scale-up)이 중요하다. 대학이나 정부 출연 연구소에서 시작한 실험실 수준의 기술이 제대로 꽃을 피우려면 시작품에서부터 시제품·조달까지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 딥테크 유니콘 기업 창출을 위해 범부처 차원에서 5년간 국가전략기술 등 딥테크 분야에 15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배중면=왜 대학·출연연 창업인가. 창업보다 연구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크다.   ▶이종호=거부감을 이해한다. 좋은 논문을 쓰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국가의 위상과 과학기술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금껏 이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연구한 결과를 가지고 미래 먹거리를 만들 수 있는 쪽으로 가야 한다. R&D에 기반한 딥테크로 창업을 할 경우 경쟁자가 없고, 성공할 확률이 일반 창업보다 훨씬 더 높다.   ▶남민우=연구자들은 대개 창업을 두려워한다. 연구 성과가 창업으로 이어지도록 독려하고, 규제도 풀어줘야 하는데.   ▶이종호=교수나 연구자가 연구성과를 사업화하는 것을 도와주는 문화나 제도가 아직 미흡한 측면이 있다. 평가 시스템도 창업보다 논문·특허 등 실적 위주인 데다, 대학 출연연 내에 기술이전과 창업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조직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교수·학생·연구자들이 창업했다가 실패하더라도 불이익 없이 다시 학교·연구소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창업 관련 제도를 유연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과기정통부는 ‘연구성과확산촉진법’ 제정을 통해 연구자가 연구성과를 가지고 쉽게 창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고 한다.   ‘한국형 아이코어 사업’ 성과 주목   ▶문미성=기술 이전과 사업화 측면에서 연구개발 투자의 성과가 낮다는 비판이 여전히 많다. 과기정통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임무달성 중심의 연구개발성과평가’는 무엇인가.   ▶이종호=임무 중심 R&D는 탄소 중립 등 국가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개발 중심의 R&D를 넘어서 명확한 기한이 있는 임무 목표를 설정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시스템이다. 평가체계 역시 논문·특허 등 산출 지표를 활용해 기술 성과와 효율성 중심으로 등급을 매기던 기존 평가에서 벗어나 연구개발의 목표가 되는 임무의 진행 상황과 달성 가능성을 진단하는 방식이다.   ▶박한오=혁신 창업이 전국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방의 혁신 창업 붐도 중요하다. 수도권 이남은 인재 구하기도 어렵고, 액셀러레이터와 같은 관련 생태계도 너무 부족하다.   ▶이종호=안타까운 현실이다. 지방 소멸이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범부처 차원의 정책 역량을 결집하는 게 필요하다. 전국 19개 연구개발 특구를 통해 지역의 대학·연구소 중심의 창업 촉진과 기업성장을 지원하려고 하고 있다. 지역 스스로도 특화된 과학기술 중장기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김선우=과기정통부는 대학·대학원생들이 공공연구 성과를 활용해 창업해보는 ‘한국형 아이코어 사업’도 진행 중인데.   ▶이종호=2015년부터 최근까지 총 580개 창업 탐색팀이 참여해 이 중 219개 창업 기업이 설립됐다. 누적 고용창출 1481명, 투자유치 3198억원의 성과를 냈다.   ▶최준호=최근 대기업의 스타트업 기술 탈취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종호=현재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하게 되면 3배를 물어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스타트업 입장에서 3배 수준의 징벌적 배상은 약하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측면으론 스타트업들도 이젠 민간 기술 이전 전담조직의 도움을 받는 등 기술에 대한 특허를 잘 이용해 애매하게 당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스타트업이 특허를 잘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  「 ·딥테크(deep tech): 기존에 없던 과학적 발견으로 만들어진 모방이 쉽지 않고, 파급력이 큰 기술.     ·스케일업(scale-up): 스타트업이 기술이나 제품·서비스·생산 등의 규모를 확대하는 것을 의미.   ·유니콘(unicorn): 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이고 창업한 지 10년 이하인 비상장 스타트업. 」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김아영 인턴기자 joonho@joongang.co.kr

    2023.03.15 00:48

  • [리셋 코리아] 저출산 예산, 미래 복지 쪽으로 돌려야

    김진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0.78명을 기록했다. 출생아 수는 전년보다 4.4% 감소하여 25만 명을 밑돌았다. 정부는 효과적 저출산 종합 대책을 새롭게 수립하겠다고 분주하다. 기존 대책 중 효과가 없는 것은 폐기하고, 실효성 위주로 재정립할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 대책이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지난 16년간 약 280조원의 저출산 대응 예산을 쏟아부었고 현재도 매년 40조 원 이상의 예산을 지출하고 있지만 출생아 수는 반 토막이 되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추진해 온 정부 정책이 효과적이지 못한 것은 기존 대책이 안고 있는 문제점 때문이다. 우선, 기존 저출산 정책이 기대와 다르게 효과가 크지 않다. 국내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출산장려금, 양육 지원, 육아 휴직 등의 대책이 출산 증가에 효과가 없거나, 있더라도 최종 자녀 수에는 효과가 미미하다.     ■  「 280조원 썼지만 출산율 급락 노년층 돌볼 젊은층 부담 늘어 미래용 복지예산 따로 챙겨야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또 현금성 지원 대책은 예산 지출 측면에서 효율성이 매우 낮다. 출생아 한 명당 1억원을 주면 연간 출생아 수가 현재 25만 명에서 20%가 늘어나 추가로 5만 명이 더 태어난다고 가정해보자. 예산은 30조원이 드는데, 이는 추가 출생아 한 명당 6억원이 소요된다. 이는 1억원을 받지 않고도 출생했을 25만 명에게도 똑같이 1억원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출산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장려 정책은 젊은 세대의 인식을 왜곡해 출산 의지를 꺾을 수 있다. 출산·육아는 본인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임에도 사회공동체를 위한 행위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출산장려금이 이렇게 적은데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느냐는 2030세대의 질문을 받으면 과연 아이를 낳는 것인지, 낳아주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다.   기존 대책의 한계가 명백하기에 이제는 새로운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저출산 현상이 초래하는 근본 문제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저출산으로 인구 수준이 주는 것은 근본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인구가 적을 때 노동생산성이 낮아지고 경제성장이 늦어진다는 근거는 없다. 중국·인도가 가장 높은 생산성과 성장률을 보이지 않고 있고, 스위스의 1인당 소득이 높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도 인구가 3000만 명밖에 안 되었던 1970년대 초반에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 이 시기의 한국을 되돌아보면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정부 시스템 붕괴를 우려하는 건 지나치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노동시장이 유연하면 임금 조정을 통한 고령 노동의 유입이나 기계설비 증가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저출산 자체보다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하는 젊은 세대가 노령 세대와 비교해 너무 빨리 줄어드는 게 문제다.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가 가져오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다수 복지정책의 부실화다. 소득을 벌고 세금을 내는 젊은 세대의 인구가 복지 혜택을 받는 노령 세대 인구에 비해 크게 줄면 정부 복지정책이 재정수지 악화 문제에 직면한다.   저출산 걱정 이유가 복지정책 부실화라고 한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도 그에 상응하게 수립해야 한다. 효과 없는 기존 저출산 대책을 고수할 일이 아니다. 인구구조 급변에 따른 복지정책 부실화를 완화하는 방법으로 정부가 미래 복지 지출에 필요한 돈을 납세자가 많은 현재 저축해 두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예컨대 국부펀드를 마련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많은 행정적·정치적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매년 저출산 예산의 일부를 국부펀드에 적립해 미래 복지정책 지출 비용으로 사용한다면 더욱 효율적인 재정 운용이 가능할 수 있다.   효과적 정책으로 출산율을 충분히 높일 수만 있다면 이 모든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의 경험은 새로운 정책 방향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저출산에 의한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가 일으키는 복지 재정 문제를 우회적 방법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직접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제는 증거를 기반으로 효율적 정책 수립을 고민할 시기가 됐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진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2023.03.13 01:10

  • [리셋 코리아 포커스] “건보 재정 누수 막되, 소아·분만 등 필수의료는 적극 지원”

    지난달 23일 리셋코리아 건보개혁분과 회의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필권·신영석 위원, 박민수 복지부 2차관, 박은철·권용진·윤태호 위원. 우상조기자 “건강보험 제도가 지속 가능하도록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면서도 중증·응급, 분만, 소아 등 필수의료에는 적극 투자하겠다.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도 구축하겠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2월 23일 열린 리셋코리아 포커스 인터뷰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건강보험 개혁 방향에 대해 밝혔다. 건보 재정 누수를 줄이되 필수 의료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게 핵심이다. 각 부처 장·차관과 리셋코리아 위원들이 정책 현안을 논의하는 리셋코리아 포커스는 올해 두 번째로 건강보험 개혁에 대해 논의했다.     ■  「 재정 누수 잡고 국고 지원 강화 불필요한 의료 수요 제한 필요 소득 다양화 보험료 체계 고민 소아·분만 재정 중립 대상 빼야 」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부는 자기공명영상촬영(MRI)·초음파 검사 건보 적용으로 대표되는 ‘문재인 케어’를 수술대에 올린 상태다. 건보 보장성 강화를 내세운 문 케어 시행 이후 MRI·초음파 검사비는 2018년 1891억원에서 2021년 1조8476억원으로 3년 새 10배가량 뛰었다. 과잉 의료 이용 문제가 심각했다. 신경학적 이상이 없는 단순 두통 환자에 뇌 조영제, 뇌혈관, 특수검사 등 3가지 MRI 촬영을 하고, 소화불량 환자에 복부·심장·초음파 등 6가지 초음파 검사를 하는 등의 사례가 빈발했다. 비급여 진료 급여화에 2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건보 보장률은 2017년 62.7%에서 2021년 64.5%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날 토론에서는 권용진(서울대의대 교수), 김필권(전 국민건강보험공단 기획이사), 박은철(연세대의대 교수), 신영석(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한국보건행정학회 회장), 윤태호(부산대의대 교수) 등 리셋코리아 건보개혁 분과 위원 5명이 묻고 박 차관이 답했다. 위원들은 “향후 4~5년 내 건보 개혁을 서두르지 않으면 포스트 코로나와 고령화가 맞물려 의료 이용량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제도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필권=고령화로 건보 재정 악화가 우려되는데, 국고 지원을 강화해야 하지 않나.   ▶박민수 차관=국민에게 보험료 인상, 기획재정부에 국고 지원 확대를 요구하기에 앞서 보건당국과 보험자(건강보험공단)가 의무를 다해야 한다. 누수를 막는 조치부터 하고 난 뒤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당국 입장에서 국고 지원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도록 노력하겠다.   ▶신영석=불필요한 의료 수요를 어떻게 제한할 수 있을까.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의료급여 제도에서 선택의원제 등을 도입했으나 실효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차관=의료급여 대상자는 질환자 비율이 건보보다 훨씬 높다. 이들은 급여 기준을 바꾼다 해서 병원에 가지 않을 수 없다. 의료급여에서 의료 수요 줄이기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건보 환자의 경우 ‘유도된 수요’가 있는 만큼 지출 제한 정책이 효과를 낼 것이라고 예상한다.   ▶김필권=비급여 부분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박 차관=지출 측면에서 비급여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한다. 다만 과거와 현재의 비급여는 의미가 달라졌다. 과거 의료 보장성이 취약할 때 비급여는 과도한 의료비의 주범이었다. 보장성이 높아진 지금 상황에서는 비급여가 신의료기술 도입과 활용의 장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국민에게 과도한 의료비 부담 요인이 되는 비급여는 정부가 지속해서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신영석=현재 국내 발생 소득 40% 이상이 건보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부과 기반 확대를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박 차관=소득 중심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이 지속해서 추진되고 있지만, 모든 소득에 건보료를 부과할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일시소득보다는 항상소득(정기소득) 중심으로 부과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최근 항상소득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다. 유튜버의 경우 월 몇십만원 수준으로 벌다가 갑자기 인기를 얻어 몇천만원을 벌기도 한다. 이런 소득에 건보료를 어떻게 부과할지 고민이 크다. 다양한 소득 발생 양태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법을 마련해보겠다.   ▶박은철=필수의료를 지원하면서 재정 중립 원칙을 적용할 건가. 소아과나 산부인과는 수요가 줄어 문제가 되는 것이라 수가 가산만으로는 부족하다. 재정 지원 같은 ‘플러스알파(α)’가 들어가야 한다.   ▶박 차관=소아나 분만에는 재정 중립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수가 가산의 형태로 지원하는 방식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소아의료와 관련해 “건강보험이 모자라면 정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바꾸라”고 했다. 정부는 소아나 분만, 외상, 응급 등 필수의료에 추가 투자를 할 계획이다.   ▶권용진=지역 완결형 의료체계를 추진한다는데, 환자의 선택을 어떻게 제한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환자가 서울의 좋은 병원에 가는 걸 막기보다는 서울 병원에서 확진을 받고 나서 지역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는 게 맞지 않을까.   ▶박 차관=모든 질환에 대해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를 추진하는 건 아니다. 일차적으론 심뇌혈관 질환 등 응급질환은 최소한 지역·권역 내에서 골든타임 안에 조치해 생명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의료가 어려워지고 있지만, 시간을 다투는 질환은 권역 내에서 해결될 수 있도록 유지해야 한다. 건보의 행위별 수가제도 아래에서는 인구가 줄면 수입이 줄고, 의료 시설 마련이 어려워진다. 외상이나 응급은 의사들이 항상 대기해야 하는데, 인건비가 비싼 의사가 환자를 보지 않고 365일 대기하기는 쉽지 않다. 구조 개혁을 통해 이런 문제를 손보겠다.   ▶윤태호=민간의료가 다수를 차지하는 현행 의료공급 구조에서 필수의료 강화와 공공정책 수가가 가뜩이나 취약한 공공병원을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박 차관=공공정책 수가는 공공이냐 민간이냐를 구분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그 역할을 하면 보상하겠다는 것이다. 의료체계를 다시 설계하는 관점에서 공공병원이 저소득층 진료와 감염병 대응 등에서 권역 단위의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상체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 이에스더 복지팀장·안은주 인턴기자 etoile@joongang.co.kr

    2023.03.08 00:52

  • [리셋 코리아] 학폭 대책, 피해자·가해자 치유가 우선돼야

    박옥식 한국청소년폭력연구소 소장 학교 폭력 문제는 우리 사회 앞날을 좌우하는 사회적 해결 과제라 할 수 있다. 최근 특권층 아들의 학교 폭력 문제가 우리 사회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리는 가운데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해 다각적인 주장이 펼쳐지고 있다. 정책 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도 들끓고 있다. 학교 폭력은 강자와 약자의 사회적 관계가 스며들기 시작하는 청소년기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부모들의 개입으로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부모들의 법률적 힘과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는 ‘부모 찬스’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부모가 학교 폭력 문제에 개입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 부작용으로 힘 있는 부모를 가진 청소년들이 학교 폭력을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장난으로 치부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반면 ‘부모 찬스’를 누리지 못하는 피해 청소년들은 마음의 병을 얻고 학교·사회 부적응 등으로 이어진다. 심할 경우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  「 교사 중심 피해자 치유 강화하고 피해자 회복 위한 제도 마련해야 가해자 반성과 화해 노력도 중요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학교 폭력 문제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로 인한 자살 사건이 이어지며 1995년 ‘학교 폭력’ 용어가 등장했고, 2004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2011년 학교 폭력으로 인한 대구 권모 군의 자살 사건을 계기로 학교 폭력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이 만들어졌다. 이후 2012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보다 강력한 조치가 마련되면서 학교 폭력이 대폭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2020년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한 심의 의결 기능이 학교에서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되고,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변경되는 등 대폭 개선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학교 폭력 문제는 학교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가정과 사회로 확산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어 근본적 대책 마련이 요청된다. 학교 폭력 대책 수립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큰 사건이 발생하여 사회적 이슈가 되면 그제야 문제를 진단하고 설왕설래하다가 정부의 강력한 대책과 제도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음에도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앞을 내다보고 대비하는 미래지향적 접근이 미흡한 실정이다. 학교 폭력 관련 기관·단체들이 가해자 중심의 선도 대책을 강조해온 것도 문제다. 사건이 벌어지면 뚜렷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가운데 양분된 의견으로 시시비비를 벌이다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이제는 학교 폭력 피해자·가해자 모두가 우리 자녀라는 입장에서 냉철하고도 합리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할 때다. 먼저 학교 폭력 피해자에 대한 치유와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과 함께 효과적인 전문 상담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요즘 가정의 기능 약화로 인해 가정이 담당할 수 없는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고 있으므로 학교와 지역 사회에서의 청소년 보호 역할과 기능이 강조되어야 한다. 특히 학교에서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치유와 회복 기능을 강화해 나가야만 청소년들이 학교 폭력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학교 폭력 피해자들은 학교·사회 생활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인생 전체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므로 학교에서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치유와 회복 기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최근 학교 폭력을 당한 경험을 밝히는 ‘학폭 미투’가 연예계·스포츠계·공직에서 빈번하다. 그때마다 학교 폭력을 당한 지 10년 이상이 지난 이후에도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는 학교 폭력 후유증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가해 청소년의 경우도 실효성 있는 치유와 회복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강력한 처벌과 징계를 통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나 그것만으로는 온전한 대책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 용서와 선처 또한 바람직한 해법이 될 수 없다. 학교 폭력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완전한 화해가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함께 피해자와의 화해를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새롭게 추진되는 학교 폭력 대책은 피해자·가해자 간 양극화되거나 한쪽으로 편향된 대책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피해자·가해자 모두 화해를 통한 치유와 회복을 거쳐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옥식 한국청소년폭력연구소 소장

    2023.03.06 00:51

  • [리셋 코리아] 한국은 나토와 협력 강화해야

    라몬 파체코 파르도 킹스칼리지런던 국제관계학과 교수·브뤼셀자유대 KF-VUB 한국학 석좌교수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지난달 말 한국을 방문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를 위해 한국과 나토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토와의 관계 강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 State, GPS) 구상 아래 한국이 나가고 있는 방향을 보여준다.   윤 대통령이 추진하는 GPS는 필연적으로 한국이 안보·국방 분야에서 미국과 호주·캐나다·일본·유럽과 같은 파트너 국가들과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도록 이끌 것이다.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이슈에서 더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걸 뜻한다. 미·중 전략경쟁과 신냉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시대에 한국이 선택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이해관계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걸 의미한다.     ■  「 전략적 모호성은 유효하지 않아 국제무대에선 분명한 선택 필요 가치 공유하는 국가들 편에 서야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윤 정부는 지난해 12월 ‘자유·평화·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개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GPS를 지향하는 한국의 국익을 실현해 나가고자 하는 포괄적 지역 전략이다. 자유·평화·번영의 비전 아래 포용과 신뢰, 호혜의 원칙을 담고 있으며,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는 구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는 이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협력해야 할 파트너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들은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로 인한 일본과의 역사적 분쟁을 젖혀두고 한국이 비교적 쉽게 협력할 수 있는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이다.   동시에 인도태평양 전략은 다른 국가와의 잠재적 협력은 신뢰와 상호주의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메시지도 분명하다.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서해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ADIZ)에 대한 중국의 공세 강화, 양국 간 가치관 차이를 고려할 때 한국은 안보 분야에서 중국과 협력하기 쉽지 않다. 중국이 한국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너무 많다.   한국의 동맹국 및 파트너들은 다양한 안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과 더욱 긴밀한 협력을 원한다. 남중국해 및 기타 지역에서 중국의 지속적인 공세,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중국·북한·러시아의 사이버 보안 및 기타 위협에 대한 방어 등이 그중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과거 한국은 이러한 문제와 기타 안보 문제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중 분열이 심화하고 한국의 파트너인 미국이 더는 전략적 모호성을 정책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이는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나토의 사례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의 방한 이후 불과 2주 만에 사상 첫 한·나토 군사참모대화가 열렸다. 나토는 지난해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에 이어 오는 7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을 포함해 AP4(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정상을 초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이 더욱 통합됨에 따라 한국과 나토와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질 것이다.   나토는 원칙적으로만 한국과의 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한국산 무기를 구매하고 있다. 한국은 나토의 사이버안보센터 주요 회원국으로서, 특히 북한을 상대하는 데서 한국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 한국 첨단기술 기업들은 나토 회원국들이 차세대 군사 장비를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국의 자산은 나토에 실질적인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이는 중국·북한·러시아 간의 협력이 강화될수록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안보 분야를 포함해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토·미국·유럽도 한국이 중·러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는 비현실적이다. 미국도 향후 여건이 조성되면 중국, 나아가 러시아와도 대화와 관여가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한국은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국익과 가치에 따라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의 편에 설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이러한 과정을 가속하고 있을 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라몬 파체코 파르도 킹스칼리지런던 국제관계학과 교수·브뤼셀자유대 KF-VUB 한국학 석좌교수 

    2023.02.28 00:59

  • [리셋 코리아] 우크라이나 전쟁 1년, 한국의 생존전략

    이경수 전 주독일 대사·한국외교협회 부회장 개전 1년째를 맞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대전 종전과 탈냉전 시기를 거쳐 형성된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변곡점이 되었다. 먼저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추구로 국경 불가침의 국제 규범이 무시되고 제국주의 원리가 회귀하였다. 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분쟁·이해 당사자가 될 경우 국제 평화와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유엔 집단안보 체제의 근간이 훼손되었다. 억지력으로만 작동했던 핵무기가 사용 가능성의 영역에 진입함으로써 핵전쟁의 금기도 깨졌다.     ■  「 지역·경제 블록별 각자도생 가속 한국은 자유주의 질서의 수혜자 북핵 위협에 동맹·연대 강화해야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자유주의가 제공한 국제질서 속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세계화의 혜택과 안보를 누려온 온 한국에는 충격이다. 자국 중심주의와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일어난 우크라이나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 혼란,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세계가 서로 얽혀 사투를 벌이는 ‘3차 대전적 상황’을 만들었다. 많은 나라가 강대국 간 경쟁 속에서 어느 한 편에 설 수도, 독자 생존을 모색할 수도 없는 전략적 딜레마에 빠졌다.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가 그 변화를 초래한 원인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세계는 세력 균형, 강대국 간 세력권 분할, 합종연횡, 패권 형성, 전쟁이 작동 원리가 되는 ‘홉스적 자연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념·가치에 따라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 진영이 결집하며, 이해에 따라 지역별·기능별 블록이 다양하게 형성되는 각자도생 양태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자유 세계가 전환적 궤도 수정에 들어선 것은 긍정적 진전이다. 미국은 ‘트럼피즘’과 경제의 상호의존성 속에서도 큰 방향에서 사고와 정책 변화를 꾀하고 있다. 중국이 민주화하거나 국제질서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접고 가치·자유 연대와 동맹 구축을 기초로 규범 기반 국제질서 회복에 나섰다. 독일·프랑스 등은 대화·경협·무역에 의존한 ‘중단 없는 동방정책’과 러시아에 대한 ‘포용적 문화정책’에서 탈피해 하드파워 중심의 ‘시대 전환’을 선언했다. 한국도 북한의 선의에 의존해 핵 무력 완성의 길을 막지 못한 ‘실존적 안보 위기’에 처해 ‘실존적 대응’에 나섰으며, 자유 세계 연대와 자유·평화·번영의 지역 질서에 동참하는 결단을 내렸다.   특수한 지정학적 환경에 처한 한국은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 과정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그 어느 나라보다 명백한 입장과 인식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현실주의 국제정치를 직시하면서 원칙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 안보를 강화하는 길이다.   첫째,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강대국 간 세력권 분할의 피해자로서 그 결과인 분단을 겪고 있다. 한국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야 하는 이유다.   둘째, 소련과 그 후신인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팽창주의 세력이다. 해방 직후 소련군의 한반도 진주와 친소 정권 수립, 북한의 6·25 전쟁 계획 승인과 군사적 지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과거 소련의 한반도 무력 개입의 데자뷔로, 한반도와 접경한 러시아가 유사시 ‘안보 불안’을 이유로 한반도에 개입할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   셋째, 북한의 그릇된 학습 위험성이다. 북한의 지난해 9월 핵무력정책법은 러시아의 2020년 6월 ‘국가 핵전략 기본원칙’을 답습한 핵 독트린이다. 제3국 개입 시 핵 위협을 경고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일 연설은 김정은에게 자신도 결정적 패배나 정권 교체 등 ‘실존적 위협’ 상황에서 핵무기를 선제 사용할 수 있음을 밝힌 동기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향배를 지켜보고 있을 김정은이 러시아의 전술핵 사용이 현실이 될 경우 한반도에서도 핵 단추를 누를 수 있다. 넷째,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문화를 부인하며 자행한 러시아의 침공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역사 영토주의’에 입각한 한반도 연고 주장과 중화주의 욕망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   자유 세계 연대와 한·미 동맹 속에서 안보와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은 전후 국제질서 원리가 만들어 낸 최상의 결과물이다. 이제 다시 시작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형성에 참여하는 것은 또 하나의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한국의 생존 전략이며 비전이 돼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국의 선택은 분명해졌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경수 전주독일대사·한국외교협회 부회장 

    2023.02.20 00:58

  • [리셋 코리아] AI의 안착, 투명한 운용에 달렸다

    오혜연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미국 기업 오픈AI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챗GPT는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통해 사용자의 질문에 답하거나, 문장을 생성하는 등 인간의 언어를 잘 구사하는 모습을 보여 출시 몇 달 만에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와 유사한 수준의 혁신을 보여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 오픈AI의 달리(DALL-E 2) 같은 인공지능(AI) 기술이 지난 몇 년간 꾸준히 공개되었지만 대부분 관련 분야 사람들만 관심을 가졌었다. 구글도 바드(Bard)를 선보이고, 국내 기업들도 출시를 예고하는 등 언어모델 기반 챗봇의 인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 같다.   챗GPT 등 챗봇은 가끔 틀린 말이나 편향된 말을 할 때도 있어 가짜뉴스 확산,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 등 AI 윤리에 대한 염려를 야기한다. 예를 들어 45035이 홀수인지 짝수인지 물어보면 짝수라고 하고, 한국 대통령이 누군지 물어보면 문재인이라고 답한다. (답변할 때 학습 데이터가 2021년에 그치는 한계를 인정한다) 챗GPT나 유사한 언어모델 기술이 각종 시스템에 적용되어 더 널리 확산이 되면 더 많은 사용자에게 틀린 정보를 유포하게 될 위험이 크다.     ■  「 챗봇 편리하나 오남용 우려 나와 AI 가이드라인·법안·교육 만들고 사회안전과 윤리 문제 숙고해야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 테이(Tay)가 나치 옹호 발언을 한 이후 혐오 발언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되어 챗GPT는 노골적 혐오 발언은 하지 않는다. 마약·살인에 관한 질문은 정보를 줄 수 없다고 회피하고, 사형제도의 합당성과 같이 논란이 있는 이슈에 대해서는 간략히 답변하고 사회 안전에 대한 보편적인 문장을 덧붙이는 등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소극적인 답변을 한다.   챗GPT의 이러한 방어적인 필터링은 정확히 어떻게 만들었는지 공개되지 않았고, 이러한 언어모델 기술에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언어모델을 윤리적 문제에 대한 이해나 고려 없이 사용하거나, 악의를 갖고 혐오 표현을 만들어내는 용도로 사용하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MS가 오픈AI에 투자하고 빙 검색엔진과 팀즈·워드 등의 제품에 적용한다는 뉴스는 챗GPT가 단순히 사용자들의 인공지능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생활에 급속히 다가왔음을 뜻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기술의 부정적 영향을 막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최근 AI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유럽연합(EU)을 비롯해 많은 국가에서 방안을 마련하고, 우리 정부도 2022년 11월 인공지능 윤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역부족이다. 가이드라인을 더 구체화하고,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에 지속해서 발맞춰 가는 정부 노력도 필요하지만, AI를 개발하고 제품화하는 기업도 내부적인 검증 과정과 개발자 교육, 사용자와 사회 전체 안전을 우선시하는 문화와 철학이 필요하다. 또 대학을 중심으로 한 교육 기관은 데이터 기반 AI 시대에서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직 정확한 정의도 부족한 AI 윤리의 투명성·신뢰성·책임성 등에 대해 인공지능·법·철학·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관련 기업인과 정부 관련 부서가 모여 토론과 연구를 더 활발히, 신속히, 신중히 해야 한다. 연구자들은 AI의 투명성을 위해 데이터시트, 모델카드 등 어떤 학습 데이터로 어떻게 학습했는지, 어떤 한계가 있는지 공개하는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 챗GPT의 답을 신뢰할 수 있는지 언어모델의 답변에 대해 참조 문헌을 같이 보여주는 것을 요구한다. 금융·의료 등에 쓰이는 AI의 경우 예측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는 것도 가능하다. AI의 학습데이터와 생성된 글·그림에 대한 저작권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다만 이런 연구와 논의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고, 국내에서는 특히 미흡하다.   언어모델의 적절한 활용은 긍정적인 면이 많을 것이다. 챗봇 기술이 제대로 사용되면 우리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쉽게 알려주고, 보고서를 쓸 때 매끈한 글로 정리해 주며, 사람들의 소통을 번역이나 추가 설명으로 도와줄 수 있다. 이런 기술을 빨리 받아들여야 국가와 국민 경쟁력에 촉진제가 될 수 있다. 또 세계적 연구와 논의에 우리 정부·연구자·기업이 같이 참여하는 한편, 구체적 가이드라인·법안·교육체계 등을 갖추어야 한다.   오혜연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2023.02.15 00:53

  • [리셋 코리아] 선거제도 개혁, 또 정당에 맡길 것인가

    이지문 연세대 연구교수·리셋 코리아 시민정치분과 위원 내년 4월 10일 예정인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제안으로 여야 정당뿐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고 있다. 그러나 국회 절대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현 선거제도를 개혁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선거제도의 찬반이나 도입이 아니라, 선거제도 자체를 시민이 참여하는 ‘선거제도 시민총회’ 방식으로 개혁할 것을 제안한다. 이 방식을 제안하는 이유는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정당이나 국회의원이 아니라 유권자인 국민이 단순히 투표 권리만이 아니라 선거제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래야 선거 민주주의로 좁아진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그래도 조금이라도 민주주의 가치에 부합하게 된다.     ■  「 이해관계 걸린 정당은 개혁 주저 시민총회 열어 선거제 결정해야 캐나다·영국 등의 사례 참고할만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2004년 선거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서 79개 선거구마다 남녀 절반씩 200명, 모두 1만5800명을 추첨으로 뽑았다. 지역·성·연령이 보장되도록 조정을 거쳐 선거구마다 남녀 1명씩 158명을 추첨으로 최종 선발했고 원주민 공동체 2명, 임명된 의장까지 161명으로 시민총회를 구성했다.   당시 소선거구제를 채택한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발생하여 2001년 5월 선거에서 57.6%밖에 얻지 못한 자유당이 79개 의석 중 77석을 획득한 반면, 12.4%를 득표한 녹색당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하기도 하였다.   집권당은 새로운 선거제도를 고민하였지만, 자신들이 당선된 선거제도를 현직 의원들이 굳이 바꾸려고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를 의원이 아닌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시민총회에 맡겼다. 거의 1년 동안 운영되면서 선거제도 학습, 공청회를 통한 의견 수렴, 숙의를 통한 선거제도 권고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은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중도 포기는 단 1명, 출석률이 95% 이상이었으며, 시민총회 홈페이지 접속량은 같은 기간 캐나다에서 가장 많을 정도로 주민 관심 역시 높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 이어 2006년 온타리오주에서도 유사한 시민총회를 구성했다. 이들 두 개 주에서 볼 수 있는 선거제도 시민총회 이외에도 헌법 개정이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시민총회 역시 아일랜드·영국·프랑스 등에서 정부와 의회 차원에서 장기간 운용됐다. 이들 사례를 참고하여 우리 실정에 맞는 선거제도개혁 시민총회를 시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내년 4월 선거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 국회 차원에서 시민총회를 올해 4월 안으로 구성해서 5월부터 9월까지 다섯 달 정도 운용해서 권고한 제도를 국회에서 10월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하자. 그러면 내년 총선 6개월 전에 선거제도가 확정됨으로써 정당이나 후보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서 새로운 제도에 맞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캐나다의 주처럼 아예 선거제도를 새로 정하게 하든지, 아니면 정당이나 특정 인원 이상의 서명을 받은 시민사회단체가 제출한 선거제도를 갖고 결정하든지, 시민총회에서 결정한 선거제도를 국회에서 가부 결정을 하는 방식으로 할지, 권고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일지 등 세부 사항은 시민총회 구성 때 결정하면 될 것이다.   정당과 국회는 선거 때만 되면 국민을 찾을 것이 아니라 선거제도 결정부터 국민 참여를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시작은 선거제도 시민총회 구성·운용이 되어야 한다. 반년 가까이 선거제도 논의가 국민이 참여하는 시민총회에서 이루어지고 그 과정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홈페이지를 통해 의견 수렴이 이루어지는 과정 자체가 선거제도와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확산할 수 있으며, 이렇게 결정된 선거제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투표 참여도 적극적일 수 있을 것이다. 선거 당일만 민주주의의 축제로 만들 것이 아니라 선거제도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의 축제가 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지문 연세대 연구교수·리셋 코리아 시민정치분과 위원 

    2023.02.06 00:40

  • [리셋 코리아] 북한 무인기 도발과 1968년 ‘1·21 사태’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비가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했었다. 당시 종로서장이던 최규식 총경이 자하문 근방에서 저지하지 않았다면 청와대까지 쳐들어가 박정희 대통령의 신변이 위험할 뻔했다. 55년이 지나 북한 무인기가 용산 대통령실 인근 상공까지 침투했다는 기사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당할 것인지 허탈했다.   1968년은 베트남전쟁 중이었고, 국제 공산당의 연대 투쟁이 벌어지는 시기였다. 김일성은 이 틈을 타 대남 무력투쟁을 선언했다. 4대 군사 노선을 내세우며 “합법 비합법, 폭력 비폭력 모든 수단을 배합한 투쟁을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공비의 기습 침투에 무방비 상태였던 박정희 정부는 즉각 대통령훈령으로 합참에 대간첩대책본부를 설치해 군과 각 정보수사기관을 통합·지휘하도록 했다. 향토예비군제도가 시작됐고, 북한 대응 보복 공격을 위해 중앙정보부에서 실미도 특수군을 양성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  「 북한 도발엔 강력한 대응 효과적 소형무기 탐색·타격 능력 높이고 공격 원점 타격 능력도 강화해야 」    리셋 코리아 하지만 결정적 취약점이 있었다. 우리에겐 선제공격권이 없을 뿐 아니라 보복 공격도 제한을 받았다. 미군이 가진 전시작전통제권이 우리 대응 작전의 손을 묶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쟁도 힘든 판에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원치 않았다. 이틀 뒤 미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함이 북한에 나포됐어도 미국은 보복하지 못했다.   우리 내부 방어력 강화는 가능해도 보복 공격은 불가능했다. 북한이 그해 겨울 삼척·울진 지역에 대규모 게릴라를 침투시켰지만 향토예비군에 발각되었고, 군의 합동작전으로 소탕되었다. 방어력을 강화한 결과 김일성은 게릴라 침투 기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1971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은 “청와대 습격 사건은 좌경맹동분자들의 소행”이라고 변명하고 사과했다. 우리가 강해지면 북한은 수그러든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북한은 이번에 무인기로 기습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북한의 신종 도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과거에서 교훈을 찾자.   첫째, 과거 대통령훈령 같이 군의 통합지휘체계를 갖추고 민관군 합동의 무인기 대처 기구를 두어야 한다. 무인기는 소형이고 고도가 낮아 기존 방식으로는 탐색이 어렵다. 어설프게 대응하면 무기를 장착해 2차 공격을 가할 것이다. 민관군 합동으로 소형 무기의 탐색 능력을 높이고 정확히 타격하는 방어력을 갖추어 북한 기습공격에 대처해야 한다. 우리의 전자기술과 무기 개발 수준으로 북한 무인기를 무력화할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둘째, 북한에 당해야 대책을 세우는 소극적 군사 태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이 왜 핵·미사일 기술을 중동 국가들에 이전하지 못할까. 이스라엘이 ‘눈에는 눈’ 식으로 철저한 보복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알기에 자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북한의 무기 수출을 물샐 틈 없이 감시하고 있다. 북한이 여차하면 무서운 보복을 당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을 것이다. 우리 군도 북한의 공격 원점 타격 능력을 갖추도록 사전에 미군과 협의하여야 한다. 우리도 무인기 보복 공격 능력을 갖추어 김정은이 두려워하는 참수 작전 수준까지 발전시켜야 한다.   셋째, 북한의 절제 없는 미사일 도발로 일본 재무장 빌미를 주었다. 이미 일본의 원점 타격 능력을 미국이 인정하였다. 일본은 이제 전쟁 가능 국가로 한 발씩 가고 있다. 일본의 국비 증강에 가장 민감한 나라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다. 일본은 1, 2차 대전을 치른 경험이 있다. 군비 증강 발동이 걸리면 동북아의 군사력 균형이 깨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일본 방위력이 필요 이상으로 증강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이 일본 국민을 자극하여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전쟁 가능 국가로 가도록 촉구하고 있다. 외교적으로 중국에 동북아 군사 긴장을 조성하는 북한 도발 저지와 평화와 안정 필요성을 촉구하는 기회도 될 것이다. 북한 도발이 어떤 대가를 치를지 북한이 사전에 알도록 경고해야 ‘현대판 1·21사태’를 막을 수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2023.01.30 01:05

  • [리셋 코리아] 딸에게 권력 과시하는 김정은의 초조함

    김형철 한국군사문제연구원장·예비역 공군 중장·리셋 코리아 국방분과 위원 북한은 지난해 40여 회에 걸쳐 65발 이상의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무인기를 한국 영공으로 날려 보냈다. 이런 도발을 벌이는 가운데, 지난해 11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딸 김주애를 화성-17형 장거리 미사일 관련 행사에 대동했다. 새해 첫날에는 어린 딸의 손을 잡고 KN-23으로 추정되는 장비를 둘러보는 모습을 공개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를 “후계 문제와 관련된 정치적 함의가 큰 움직임”이라고 평가하거나, “어버이 수령으로서 권력의 안정과 인민의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려는 상징정치”라고 풀이했다.   필자는 이러한 김정은의 행보를 보면서 몇 해 전 넷플릭스에서 봤던 영화 ‘어느 독재자’가 떠올랐다. 독재국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은 어린 손자와 함께 불 켜진 도시의 야경을 구경하면서 전화 한 통으로 도시의 모든 불을 일제히 껐다가 다시 켜는 행위로 자신이 지닌 권력의 힘을 손자에게 보여준다. 손자는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하면서 전화로 불을 끄라고 명령하자 대통령궁의 불까지 꺼졌고, 다시 켜라는 명령에도 불은 켜지지 않았다. 대신 총성과 폭발음이 울려 퍼진다.     ■  「 핵이 외부 위협 막을 수 있겠지만 헐벗은 주민 마음은 달래지 못해 독재는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어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독재자는 다음날 가족들을 해외로 망명시키고 후계자인 손자와 남아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으나,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는 국민과 도적 때로 변한 군인들로 가득 찬 나라는 혁명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독재자는 간신히 바닷가에 도착하지만 배는 보이지 않고 추격대가 다가오자 하수도관 속에 숨어 있다 체포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는 반군에 의해 처형당한 예멘의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과 하수구에 숨어 있다가 시민군에 생포되어 처형당한 리비아의 철권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연상케 한다.   쿠데타 등으로 권력을 잡은 후 독재정치를 펴다 저항에 부딪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독재자는 그 외에도 상당수 있다. 1965년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콩고의 모부투 세세 세코는 32년간 독재와 축재를 일삼다가 97년 반군에게 축출당하여 모로코에서 죽었다. 68년 쿠데타에 참가하여 79년 이라크의 대통령이 된 사담 후세인은 독재권력을 휘두르다 2003년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침공한 미·영 연합군에 의해 체포되어 2006년 처형되었다. 71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우간다의 이디 아민은 79년까지 집권하면서 50만 명에 달하는 국민을 학살하였다. 그는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탄자니아를 침공하였지만 되려 탄자니아에 패퇴하여 권좌에서 쫓겨난 후 리비아·이라크 등을 떠돌다가 2003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죽었다. 89년 세르비아 대통령으로 선출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보스니아 전쟁과 코소보 전쟁에서 인종청소를 저질러 2000년 권좌에서 물러난 후 전범재판을 받던 중 2006년 감옥에서 사망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민을 무시하고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는 비록 그가 정통성을 지닌 지도자라 할지라도 국민 신임을 잃게 되고, 결국 권좌에서 쫓겨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는 황태자 알렉산드르 3세의 적장자로 태어나 황태손에 책봉되었고, 황태자를 거쳐 1896년 황제에 즉위한 정통성을 지닌 군주였다. 그러나 그는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무시하면서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을 향해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를 낸 ‘피의 일요일’ 사건을 저질렀다. 이 사건은 결국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졌고 권좌에서 쫓겨난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은 모두 1918년에 혁명군에 의해 사살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예로부터 백성은 물이고 통치자는 배에 비유된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성난 물은 배를 가라앉히기도 한다. 한반도 북쪽에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이 언제까지나 백두혈통의 독재에 순종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핵무기로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헐벗고 굶주린 국민의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한다. 어린 딸에게 그가 지닌 권력을 과시해야만 하는 김정은의 행동에서 북한 체제의 종말이 임박했음을 읽을 수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형철 한국군사문제연구원장·예비역 공군 중장·리셋 코리아 국방분과 위원 

    2023.01.16 00:58

  • [리셋 코리아] 미국의 보호무역 회귀, 국제연대로 견제해야

    안호영 전 주미대사, 경남대 석좌교수·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미국 정치학자 에드워드 러트워크는 냉전이 끝날 무렵 “이제 지정학의 시대는 가고, 지경학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최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쓴 뉴욕타임스 칼럼을 읽으면서 30년 전 러트워크의 말이 생각났다. 크루그먼은 미·중 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21조 ‘안보를 이유로 한 무역 제한’을 둘러싼 분쟁에서 미국이 패소했음에도 판정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옹호했다. 그는 자유무역주의를 주창해 온 미국이 이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나쁜 영향을 줄 것이나, 미국의 행동은 옳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WTO가 중요하지만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크루그먼 등 상당수 미국의 여론 주도층은 미국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면서도 법치주의를 지켜나갈 수 있는데도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양분법적 사고를 한다. 이런 미국의 변화는 세 가지 측면에서 걱정스럽다.     ■  「 미국에서 WTO 무시 경향 고조 무역국 한국 등에 악영향 끼쳐 EU 등과 연대, 보호무역 막아야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첫째, 국제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를 만들어 자유무역주의를 주창한 이유는 1차 대전 이후 보호무역주의가 대공황의 충격을 더 깊게 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에 역행하는 것은 국제 경제에 심각한 폐해를 불러올 것이다. 둘째, 미·중 경제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다. 냉전 이후 미·중 경제 연계가 심화해 미국의 중국 견제에도 미·중 경제 디커플링에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 있었는데, 크루그먼의 양분법적 주장은 미·중 경제 디커플링이 예상보다 심각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셋째,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우리 경제는 대표적인 개방 경제이다. 지정학이 미국의 대외 경제 정책을 지배하면 전 세계가 영향을 받지만 우리 경제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첫째, 미국 행정부·의회 등 정책 결정자뿐 아니라 연구소·언론 등 여론 주도층에 대한 정책 대화를 확대해야 한다. 대화의 초점도 경제적 영향뿐 아니라 지정학에 놓을 때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미국의 미·중 관계 학자들은 미국이 만든 ‘규범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와 동맹 체제’는 중국이 따라올 수 없는 강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국제질서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법의 지배’이고, 미국이 이를 지켜나가는 것이 미국의 우위를 지키는 데 중요하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미국 학자가 수긍한다.   둘째, 유사한 생각을 하는 국가 간 공감대를 확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회귀 가능성을 우려하는 많은 국가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 유지에 힘쓰는 국가들과 일치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 캐나다·일본·호주 등이다. 이들은 최근 주요 7개국(G7) 회의, 나토 정상회의 등에 한국을 초청하고, 이들 국가의 고위 관리들은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이들 국가와 WTO의 권능 유지, 보호무역주의 회귀 방지 등을 의제화하고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셋째, 기술 초격차 유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초격차 유지는 경제뿐 아니라 지정학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은 지난해 1월 노동당 8차 전당대회에서 전략 무기는 물론 전술핵 개발을 공언하고, 지난해 9월에는 핵 독트린을 억제력 위주에서 공격 위주로 전환하는 법까지 통과시켰다. 이후 한국에서는 미국 핵우산의 신뢰도에 대한 의구심이 퍼졌다. 북핵 대응 능력 강화를 위해서는 미국 핵우산을 보다 든든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을 확보하는 수단 중 하나가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분야에서 기술 초격차를 유지해 동맹으로서의 한국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8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양자 기술, 차세대 원전, 바이오, 인공지능(AI), 로봇, 우주 항공, 수소 등 12개 전략 기술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 회의에서 ‘기정학’ 표현을 쓰며 기술이 갖는 지정학적 측면을 강조했는데 올바른 문제의식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호영 전 주미대사, 경남대 석좌교수, 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2023.01.09 00:52

  • [리셋 코리아] 북한 무인기, 육·해·공군 함께 대응해야

    권명국 전 방공포병사령관·예비역 공군 소장 지난달 26일 북한의 무인기 5대가 우리 영공을 침범해 5시간 동안 서울과 파주, 강화도 상공을 휘저었으나 군은 이를 격추하지 못했다. 군 당국은 “국민 안전을 고려해 적시에 격추 사격을 하지 못하였다는 점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하며 필수 자산을 신속히 획득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전 상태인 우리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해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건설한 군사력이 실제 작전상황이 발생하였음에도 민간 피해 발생 여부를 우선 고려하였다고 발표한 것이다.   ‘방공작전’이란 공중에서 활동하는 유·무인 항공기와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수행하는 탐지, 식별, 경보 발령, 격추에 이르는 모든 과정의 작전 활동이다. 이번 무인기 침범 때 격추 실패에 대한 후속 조치는 다양한 공중 위협을 통합한 국가방공체계 차원의 지휘·전력·부대·병력 등의 군 구조를 정밀 진단한 후에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여야 했다. 그러나 2014년 무인기 발견 당시와 같이 오로지 전력 구조인 무기체계 성능에만 집중하는 우를 반복하고 있다.     ■  「 무기체계 향상만으론 한계 뚜렷 지휘체계 단일화로 전력 극대화   국가방공체계 통합적 운용 필요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국가방공체계는 시간과의 싸움인 적의 항공기·미사일 도발을 실시간으로 탐지하여 육·해·공군과 민방위체계에 전파하고 주한미군 자산을 포함하여 방공작전에 필요한 모든 가용 요소를 조건반사적으로 동시에 통합 운용할 수 있도록 지휘 통일의 원칙이 선행되어야 순간 승리를 달성할 수 있다.   현재 국가방공체계는 대한민국 방공체계의 주력 부대였던 육군 방공포병사령부를 1991년 육군에서 공군으로 이전하고, 3차원의 공중 공간을 2차원 평면과 같이 지역 방공과 국지 방공으로 나누어 군별로 편성·운용한다. 이로 인해 동일 지역 내에 배치된 육·해·공군 방공포병무기의 통합 운용이 곤란하다.   그 결과 육·해·공군이 공통으로 운용하는 방공포병 전력 운용에 필수적인 기본교리 및 작전예규 등의 기초를 제공하였던 합동 방공기능사령부가 없어졌고, 국가방공체계에 대한 우선순위 설정, 동일 임무를 수행하는 타 전력과의 중복성, 작전 운용의 효율성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못한다. 육·해·공군 모두 자군 위주의 상이한 운용교리와 전술예규를 적용하고 독자적 무기체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예산 낭비 요인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높아진 2017년 이후부터는 3축 체계를 국가방공체계의 모든 것으로 인식하고 미사일방어사령부로 개칭하는 등 유·무인 항공기에 대한 대비가 소홀했다. 9·19 남북군사합의 이후에는 전방 지역에서 실제 항공기를 이용한 유·무인 항공기 대응 훈련이 곤란해짐에 따라 복무 기간이 단축된 방공포병 무기운용 요원들의 숙련도가 떨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지역 방공을 담당하는 사단 아래 편제된 방공부대를 제외한 육군 방공여단과 공군 미사일방어사령부의 지휘통제체제를 일원화해야 한다. 향후에는 대한민국 영토에 배치된 모든 방공포병 자산을 통합 지휘하는 한·미 연합방공포병지휘체계로 확대해야 한다. 또 과거 우리 군이 북한의 AN-2기를 확보해 대응 조치 숙달 훈련을 강화했던 사례를 교훈 삼아 다양한 경로에서 북한 무인기와 유사한 무인기를 활용한 대응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무인기 대비책은 무기체계만 다룰 것이 아니라 현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을 생활화하고 지휘체계를 단일화해야 한다. 또 평소 비상 대기, 장비 관리, 불시 작전 준비태세 점검 등을 통한 작전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평화로울 때라도 전쟁을 잊고 지내면 반드시 위태로운 상황이 일어난다’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고 이제는 문제가 터져야만 사후약방문식 땜질 처방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단절하고 근본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국가방공체계 개혁 차원의 맞춤형 대응책이 절실하다.   지금이라도 대통령 직속 ‘국가방공체계 평가 검토 위원회’(가칭)를 한시적으로 설치해 방공포병사령부 공군 이전 이후 30여년 동안 쌓여져온 국가방공체계의 근본 문제를 국방개혁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진단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권명국 전 방공포병사령관·예비역 공군 소장

    2023.01.02 00:58

  • [리셋 코리아] 위기의 대중 교역, 고부가 서비스로 넘어서야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기획재정부는  지난 21일 2023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을 1.6%로 전망했다. 1961년 이후 2% 미만 성장은 4번에 불과하다. 그동안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수출은 경제 회복의 효자 노릇을 해왔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액은 6444억 달러로 중국·미국·독일·네덜란드·일본에 이어 세계 6위를 기록했다. 15년 전만 해도 우리 수출액은 일본의 절반 이하에 불과하였지만, 이제는 일본과 1000억 달러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올해 우리나라 수출 동향을 살펴보면 세계 대부분의 국가·지역에 대해 양호한 수출 실적을 보였다. 하지만 유독 중국과 홍콩에 대해서는 침체와 감소로 일관하는 특징을 보인다. 올해 상반기 대중국 수출은 전체 수출 증가율을 크게 하회하더니, 하반기 이후 마침내 마이너스 실적으로 돌아섰다. 3분기에는 한 자릿수로 수출이 악화하더니 4분기에는 두 자릿수로 감소 폭이 더욱 커졌다. 국제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수입가가 인상되면서 거의 일 년 내내 월별 수입 규모가 두 자릿수로 증가하면서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가 굳어졌다.   대중국 수출은 우리나라 수출의 1등 공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중국 수출 부진이 전체 수출과 무역수지 적자 요인이 되고 있다. 올해 1월에만 해도 134억 달러를 중국에 수출했으나 11월에는 114억 달러로 크게 줄었다.     ■  「 올 한국수출, 중국서 크게 위축 친환경 산업서 협력 가능성 커 의료·패션·교육 등도 진출 유망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대중국 수출 부진은 미국발 경제 분리(디커플링)와 수출 통제 요인과 더불어, 중국의 ‘제로 코로나’ 방역 조치와 쌍순환 전략을 통한 경제 자립화 정책 요인, 고금리와 세계 수요 둔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대중국 수출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게 다수 통상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 이유는 중국을 제조 기반으로 한 글로벌 공급망이 더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통상 프레임이 다자 중심 자유무역체제에서 동맹국 중심 무역체제로 바뀌었다지만, 중국은 우리 경제와 분리될 수 없는 중요한 협력 파트너이다. 그동안 우리의 대중국 수출은 우리 기업의 현지 투자와 연계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중간재용 거래로 인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미국 견제로 중국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지금 우리 정부는 반도체 생산설비 가동에 문제가 없도록 중국과의 긴밀한 외교·통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정부는 장기적으로는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되, 미국의 기술 견제가 적용되지 않는 분야를 중심으로 한·중 산업 협력 구도를 모색해야 한다. 예컨대 친환경 분야는 미·중 간 경쟁이 치열하겠지만, 환경을 중시하는 시대적 조류로 인해 다른 첨단전략 분야보다 직접적 제재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2060 탄소중립 정책에 발맞추어 신재생에너지, 그린 모빌리티, 스마트시티, 스마트팜 등 친환경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친환경 분야에서 양국이 ‘윈-윈’하는 한·중 산업 협력 기반을 민관 합동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미 중국은 범용 상품에 대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었고, 애국주의 소비 경향으로 소비재 시장 진출은 과거보다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우리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소비재와 서비스 분야가 일부 있다. 의료기기·헬스케어 등 실버산업, 영유아 교육과 패션·밀키트·건강식 등 최근 중국 소비 트렌드에 부합하는 품목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과 교역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중국은 세계에서 전자상거래가 가장 활발한 지역이고,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해외 상품 유치에 적극적이다. 중국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국내 제품은 전자상거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중국 수출전략이 될 것이다.   중국은 표준과 인증 등에서  규제가 심한 국가이므로 정부 간 채널을 통해 우리 기업의 애로사항을 적극적으로 해소해 줘야 한다. 중국의 복잡한 표준과 인증제도는 비관세장벽으로 우리 기업의 중국 진출을 막는 걸림돌이 되어 왔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업그레이드해 규제를 합리화하고, 서비스 투자 협상을 통해 중국 시장 접근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2022.12.26 00:50

  • [리셋 코리아] MRI 오남용 억제하면서 필수 의료 강화해야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감염병분과 위원 지금도 전국 어디에선가 응급 수술이 필요한 중증 소아환자, 위중증 응급 환자들은 병상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가 일어나고 있다. 야간에 입원이 필요한 어린이와 보호자는 입원 가능한 병원을 찾느라 당혹해 한다.   왜 그럴까?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필자는 최근 MRI 촬영을 해야 했는데 2개월 후에나 검사 예약을 할 수 있었다. MRI 검사를 아침 7시에 하는 것이 예약 조건이었다. MRI, CT 및 입원 병상 수 지표 모두 OECD 국가 중 1, 2위를 놓치지 않는 우리나라다. 의료시설과 입원 병상이 부족할 리 없다. MRI 등 검사 남용과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진료 쏠림 같은 낭비적 의료전달체계와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들을 개선하여야 하는 이유다.     ■  「 MRI 오남용 등에 건보 재정 악화 2023년 1조4000억원 적자 예상 건보 재정과 보장 간 균형 이뤄야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지난 정부 때 문재인 케어 시행에 따른 MRI, 초음파 검사, 2~3인실 입원료 건보 적용 확대로 MRI 등 검사비는 2018년 1891억원에서 지난해 1조8476억원으로 약 10배 폭증했다. 상급종합병원 연간 진료비 비중은 27.7%(2017년)에서 29.1%(2021년)로 증가했다. 지방과 동네 병·의원의 진료 약화와 상급종합병원 입원 대란은 구조적으로 굳어졌다.   응급 진료와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진료는 위기다. 전국에서 24시간 소아청소년 응급 진료가 가능한 수련병원은 36%, 입원 전담 전문의가 1인 이상 근무하는 곳은 27%에 불과하다. 인천의 한 대학병원은 인력 부족으로 내년 2월까지 소아 입원을 중단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MRI 등 무분별한 검사들은 진료비 오남용과 맞물려 건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해치고 있다. 당장 2023년부터 1조4000억원 적자를 시작으로 건보 적립금 20조원은 2028년 소진될 전망이다. 또 필수 진료 위기는 단기적으로 해소할 수 없는 장기 위기가 될 수 있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9년 80%에서 2020년 74%, 2021년 38%, 2022년 27.5%, 2023년 16.4%로 떨어졌다. 의료 인력 양성·훈련과 실제 배출에는 10년이 소요된다. 국민과 다음 세대와 아이들에게 필수 진료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위기다.   윤석열 정부의 보건복지부는 중증질환과 필수 의료 지원을 강화하면서 건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고 있다. 의료 오남용 억제 등 과감한 건강보험 지출 개혁을 통한 필수의료 보장 확대를 실행 방안으로 제시했다. 복지부는 “과잉 의료 이용을 야기하는 초음파·MRI 등 급여화 항목에 대해 철저히 재평가하겠다”면서 재평가를 통해 누수되는 지출을 줄여 필수 의료나 고가 약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건보 개혁에 대해 부정적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와 참여연대 등은 “OECD 평균 건강 보장률이 80%고 우리는 아직도 65%”라며 건강 보장 확대 없는 문재인 케어 폐지야말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고령화에 따른 노인의료비 증가로 건보 재정 악화가 예상된다. 지난해 90세 이상 초고령 노인이 쓴 진료비는 1조7129억원에 달했다.   난마처럼 얽힌 보건의료 문제점은 특정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균형 잡힌 대안과 장단기 과제의 구분이 중요해 보인다. 단기 과제로는 노인의료비 증가에 대한 건보 재정 안정과 필수 진료 등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의료에 대한 합리적이고 정당한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 필수 진료 제공과 관련해 취약 계층에 대한 두터운 보장도 함께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중요하다.   지난 15일 국민과 함께하는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국민 패널 참여자가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건강보험 재정이 바닥 나서 보험 혜택은 줄이고 보험료는 올린다고 하더라”며 “점점 나이 드는 국민은 병원 비용과 보험료가 걱정되는데 어떻게 되는가?”   국민은 지속가능한 건보 재정과 건강한 의료전달체계를 원한다. 다양한 정책 간 균형과 지속가능성이 핵심이다. 정치적 어젠다에 매몰되어 균형을 잃거나 지속가능성을 약화하는 실수는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감염병분과 위원

    2022.12.19 00:38

  • [리셋 코리아] 육사 옮기고 아파트 짓겠다고?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육군사관학교 석좌교수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화랑대에 있는 육군사관학교를 이전해야 한다는 논의가 무성하다. 그러나 국가 안보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정확한 방향성 없이 주택용 부지 확보, 지역 균형 발전, 다른 사관학교와의 형평성 등 즉물적이고 단순 논리만 등장해 실망이 크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어떤 후보는 육사를 자기 고향인 안동으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했고, 현 대통령의 고향 사람들은 이 기회에 지역에 명소를 하나 더 만들자는 의욕에서 육사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장성 출신 인사는 최근 국방부·합참·육사를 모두 차령산맥 이남으로 이전하여야 한다면서 은근히 다음번 출마를 위한 지역 공약성 포석도 서슴지 않았다. 국가 안보가 작든 크든 이런 이기적인 생각으로 휘둘리면 나라에 큰 해독을 끼치게 된다.     ■  「 화랑대는 뛰어난 간부 양성 터 통합사관학교로 육사 개편해야 통합군 체제에 맞는 인재 필요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현대전은 전후방이 따로 없다. 미사일에 전술핵까지 운영된다면 우리나라 중·남부 지역이 현재의 접경 지역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 또 무기의 위력이 커져서 가급적 군 지휘부나 주요 부대는 분산해야 한다. 한곳에 몰아넣었다 전멸하면 다시 복원하여 반격할 길이 없다. 그래서 선진국에선 주요 부대일수록 분산 배치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지휘부와 별도로 지정생존자라는 이름으로 각료 중 한 사람을 격리해서 남기는 제도까지 운용하지 않는가. 적의 일격으로 지휘부가 절멸되고 전쟁본부가 초토화되어도 국가 통치기구를 온전히 유지해 반격할 수 있게 한 전쟁 논리에서 나온 지혜다. 이런 의미에서 국방부나 육사를 클러스터라는 단순 논리로 다른 기관과 한 곳에 몰아넣으려는 생각은 전쟁 논리에 맞지 않는다.   더욱이 앞으로는 통합군 개념을 고려해야 한다. 육·해·공군으로 분류하는 방식은 1차 대전 이후 전쟁 수단을 고려한 데서 비롯되었다. 현대전은 보병부대가 고지를 점령하고 탱크가 방어 진지를 유린하는 육군, 전함·잠수함이 해양을 주름잡는 해군, 제공권을 장악하는 공군으로만 분류할 수 없다.   전쟁은 이미 다양한 전쟁 수단으로 발전되었다. 지상군·미사일군·우주군·드론군·사이버군·특수전군 등을 따로 독립해 발전시켜야 한다. 어쩌면 AI군도 따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육·해·공군으로 군 예산 자원을 나누는 것은 낭비 요소가 너무 많다. 통합군으로 운영하고 기능에 따라 분류하며 자원을 배분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국방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다양한 전쟁 기술이 전문화하려면 사관학교 교육부터 다양한 전쟁 기술·전략을 통합하고 전문화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사관학교도 통합사관학교로 개편되어야 한다. 육·해·공군이란 구시대적 분류 개념으로 간부를 양성하는 것은 통합군 개념과 다양한 전쟁 원리와 상반된다.   통합군 개념으로 사관학교를 개편하려면 화랑대에 통합사관학교 1·2학년을 두어 통합군 미래 간부들이 긴밀한 전우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3·4학년은 기능에 따라 여러 지역에 분산된 전문과정을 선택하도록 한다. 간부 양성 과정도 전문성과 통합성으로 운영하는 전략 개념과 일치하게 개편하는 것이 미래 국방 개혁과 부합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자면 화랑대의 육사 시설을 더욱 늘리고 교육 과정이나 환경도 통합군 개념으로 바꿔 다양한 기초교육이 가능하도록 개편해야 한다.   화랑대는 역사적·입지적으로 뛰어난 간부 양성 터였다. 아무리 과학기술군으로 무장한다 하더라도 국방력의 근간은 국가의 자주적인 상무 정신에 있다. 역사적 전통을 무시하고 기능만 강조하는 전문 교육은 통합군 전략 개념을 왜소화하고 약화할 것이다. 화랑대에 통합사관학교를 두는 것은 기초교양을 함양한다는 목적에 잘 부합한다.   통합안보시스템을 운영할 간부 양성에 적합하고 이상적 입지 조건을 갖춘 화랑대를 아파트 숲으로 만든다는 것은 관운장의 청룡도를 소 잡는 데 쓰는 격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왕릉과 그 주변 자연환경을 훼손하면서 주택용지로 바꾸려는 생각은 국가 백년대계를 고려하지 않는 근시안적인 국토 이용론에 불과하다. 나라의 미래를 좀더 넓고 깊게 생각하자.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종찬 전국가정보원장·육군사관학교 석좌교수

    2022.12.12 00:35

  • [리셋 코리아] 화물연대, 명분 없는 집단행동 그만둬야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2차대전 이후 민주화 바람을 타고 급성장한 노동조합은 인플레에 따른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수백만 노동자가 참여하는 대규모 파업을 지속했다. 이렇게 시작된 파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정치 파업으로 변질하였고, 급기야 공산당과 좌익세력은 정권 타도와 체제전복을 위한 총파업을 추진했다. 이를 감지한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최고사령부(GHQ) 사령관은 파업 중지를 전격 명령함으로써 총파업은 결행 직전 무산되었다. 1947년 2월 1일 전후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정권에서 있었던 ‘2·1 총파업’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화물연대의 집단운송 거부에 이어 민주노총이 동시다발적 총파업을 예고한 다음, 정부의 파업 철회 권고에도 정치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열흘 넘게 강대강 대치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물류 중단과 교통 대란으로 국민 경제가 심각하게 타격을 받자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데 이어 민·형사상 책임은 물론 안전운임제 폐지까지 경고하면서 노·정 관계가 일촉즉발 위기로 치닫고 있다. 75년 전 일본의 ‘2·1 총파업’을 연상케 한다.     ■  「 화물차주는 개인사업자에 해당 안전운임제 실효성·문제점 따져 원점에서 존폐 여부 재검토해야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이번 화물연대 집단운송 거부는 민·형사적 면책이 되는 파업에 해당하지 않는다. 화물차주는 특정 회사에 종속되어 지휘·감독을 받는 근로자가 아니라 화물차량을 가지고 위·수탁계약에 의해 운송업을 영위하는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화물연대는 형식적으로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에 소속되고 있을 뿐, 노동조합으로서 실질적·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노동조합이 아니다. 따라서 화물연대는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으며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이나 단체행동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의 집단행동이 위법한 경우 이로 인한 손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화물연대가 노동조합이 아니라 하더라고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집단행동을 할 수는 있다. 헌법상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단운송 거부에 동참하지 않는 다른 운송업자들에게 멱살잡이와 계란 투척에 이어 운송 차량에 쇠구슬을 쏘는 등 차량 운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정당화할 수 없다. 집회·결사도 쟁의행위와 마찬가지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실행할 때 면책되는 것이지, 타인의 조업을 방해하거나 위법하게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에는 책임이 따른다.   어떤 이는 화물연대 사태의 책임을 전적으로 정부에 돌리고 있다.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다. 현재 문제가 되는 안전운임제의 도입 배경을 보면 화물차 운전자들의 과로·과적·과속 운행을 금지하기 위해 적정운임을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도입됐다. 하지만 개인사업자 간 운송료 결정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그 자체가 요금 담합으로 자유경쟁과 시장원리에 반한다. 이로 인해 2004년 안전운임제를 도입하면서 운송종사자의 집단적 화물 운송 거부로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는 경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운수종사자에게 업무 복귀를 강제하는 업무개시명령제도를 함께 규정했다. 따라서 운수종사자가 국가의 정당한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하거나 3년 일몰제를 전제로 도입한 안전운임제의 영구 존속과 품목 확대를 요구하는 행위는 명분이 없다.   안전운임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탓에 이를 둘러싼 분쟁은 도입 당시부터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점으로 돌아가 제도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또 하나의 방법은 좀 더 시간을 갖고 안전운임제의 실효성과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다음, 존폐를 판단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양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굴복만을 강요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전가의 보도로 남용하지 말고, 화물연대 등 노동단체는 명분 없는 집단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잦은 파업으로 국민 피로도가 가중되는 가운데 민생을 무시한 총파업은 국민 호응을 받지 못한다. 며칠 전 지하철노조에 이어 철도노조도 예고된 파업을 철회하여 업무에 복귀했고, MZ세대를 중심으로 투쟁적 노동운동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2022.12.05 00:42

  • [리셋 코리아] 한국은 중견국 네트워크 주도할 역량 갖춰

    라몬 파체코 파르도 킹스칼리지런던 국제관계학과 교수·브뤼셀자유대 KF-VUB 한국학 석좌교수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al Power)로 변모하길 원한다. 이를 위한 좋은 출발점이 글로벌 중추 중견국(Pivotal Middle Power)이 되는 것이다. 중견국은 국제질서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의 중간 위치 국가다. 하드파워보다는 소프트파워를 통해 국제 문제를 다자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하고, 인권·환경 등 특정 이슈에서 국제 규범을 수립·이행하는 국가다.   지난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잇따라 한국을 방문했다.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 등 다른 지도자들도 한국을 방문했거나 조만간 한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모하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 등도 서울에서 윤 대통령을 만났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캐나다를 방문해 한·캐나다 수교 60주년을 1년 앞두고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  「 경제적·기술적 역량 갖춘 한국   다른 중견국들이 파트너로 원해 미·중 경쟁 관리 위해서도 필요 」    한국은 다른 중견국들이 파트너가 되길 원하는 인기 있는 중견국이다. 다른 중견국들이 한국을 원하는 까닭은 세 가지다. 먼저, 한국은 현대 지정학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중요한 지역에 있으면서도 매우 독립적인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다. 동아시아는 미·중 경쟁이 분명하게 전개되는 곳이다. 한국은 이 지역에서 존중받는 목소리가 되기 위해 그 위치를 잘 활용해 왔다.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물론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강한 동맹을 맺고 있다. 그러나 역대 한국 정부는 일본보다 독립적인 외교정책을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 부분이 글로벌 문제에서 중요하다.   둘째, 한국은 세계를 주도하는 경제적·기술적·문화적 역량을 갖고 있다. 지난주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무엇보다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반도체 공급망 협력에 우선순위를 뒀다. 빈 살만 왕세자는 그가 추진하는 5000억 달러(약 678조원) 규모의 스마트 도시 네옴시티 건설에 한국의 투자를 희망했다. 최근 폴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중 가장 큰 규모로 한국산 무기를 샀다.   한국의 역량을 또 다른 중견국인 인도네시아와 비교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같은 경제적·군사적·기술적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상대적인 독립성과 강력한 역량은 한국을 매력적인 파트너로 만들고 있다.   셋째, 한국이 논란이 있는 파트너가 아니란 점도 다른 중견국들이 한국과의 협력을 원하는 중요한 이유다. 한국은 강한 민주주의 전통을 가진 국가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은 윤 대통령을 만날 때 고국에서 비난받을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한국은 군사 강국이지만,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공격하겠다고 위협한 적이 없다. 한국은 다양한 세계적 기업들이 있지만, 경제적 헤게모니를 행사하거나 다른 나라들의 경제적 고립을 추구하지 않는다.   한국이 외교정책에서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에서 분명히 이익을 얻고 있는 만큼 한·미 동맹을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은 미·중 경쟁을 관리하고 중국의 커지는 공격성을 제어하는 중견국 네트워크를 개발할 수 있다.   이런 네트워크는 각기 상이한 파트너들이 상이한 방식으로 한국을 보완할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느슨할 수밖에 없다. 호주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한국산 무기들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 인도는 다른 무엇보다 한국의 기술과 투자를 원한다. 영국은 강한 무역·투자 연계와 함께 안보 파트너를 추구한다.   한국이 강점들을 잘 살리고 잠재적 파트너들의 이해를 수용할 때 유연하게 대처한다면 한국이 얻는 이익은 매우 크다. 한국의 광범위한 역량은 한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각각의 파트너들과 협상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글로벌 중추국가로 되는 데는 수많은 방식이 있다. 한국이 이를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는 다른 중견국들이 파트너로 삼고 싶어하는 중견국이 되는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라몬 파체코 파르도 킹스칼리지런던 국제관계학과 교수·브뤼셀자유대 KF-VUB 한국학 석좌교수 

    2022.11.28 00:45

  • [리셋 코리아] 지자체가 탈북민 지원에 나서야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최근 탈북민과 관련한 안타까운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에서 탈북 여성이 백골로 발견된 지 며칠 만에 지방 거주 20대 청년이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3년 전 탈북 모자 아사 사건 이후 정부는 탈북민 위기 가구 관리 전담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행한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정부는 지원 시스템 전반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탈북민의 직업 안정성은 일반 국민과 비교할 때 상당히 낮고 평균 소득은 3분의 2 수준이다. 이 결과는 체계적인 조사가 시작된 20여 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 탈북민 건강도 위험 수준이다. 질병 때문에 직장과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경험하고 좌절하곤 한다.     ■  「 고독사·가난 등 탈북민 불행 속출 25개 하나센터로는 지원에 한계 3500개 읍면동이 함께 책임져야 」    kim.jeeyoon@joongang.co.kr ‘먼저 온 통일’로 불리는 탈북민의 삶은 일반인과 다른 부분이 있다. 탈북민 가구의 66.2%는 재북 가족과 친척에게 송금한 적이 있다. 대북 송금은 탈북민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북 송금은 대부분 북측 가족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일반인의 70% 소득 수준임에도 생계 곤란과 치료를 이유로 송금 요청을 받으면 거절하기 어렵다. 자신의 탈북으로 고초를 겪었을 부모·형제들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사채를 빌려서라도 송금하게 된다.   북한 억양 때문에 취업이 좌절되어 생계가 위협받고, 통장 잔고가 없는 기간이 길어지면, 미국·유럽 등으로 재이주를 꿈꾸거나 삶과 희망을 버리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탈북민의 극단 선택과 고독사, 아사 사건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이는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희망을 잃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냉장고에 먹을 것이 없거나 한 줌의 쌀이 없어 죽음을 맞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탈북민들은 쌀이 없어서라기보다는 한국에서 살아갈 희망을 잃었기에 생존을 포기한 것이다. 부모·형제를 두고 목숨까지 걸고 넘어온 한국에서조차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는 데 자존심이 상하고 그런 모습을 감추고 싶은 것이다. 꿈과 희망을 잃은 육신이 사계절이 지난 후 백골로 발견되었다면 인간다운 삶의 필수 요건인 사회적 연결망까지 단절된 것이다.   정부의 지원 노력에도 탈북민은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전문가들은 지원 정책의 전면적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서비스 전달 체계이다. 탈북민 지원정책은 일반 복지·행정 전달 체계와 분리된 별도의 전달 체계를 갖고 있다. 통일부가 전국 25개 하나센터를 통해 3만3000여 탈북민에게 교육과 필요 서비스를 제공한다.   탈북민 사회 적응을 위한 각종 복지·행정서비스는 전국 3500여 읍면동 주민자치센터가 아닌 전국 25개뿐인 하나센터가 전담한다. 하나센터는 경기도·서울 외에는 광역자치단체별로 한 곳이다. 광역시도 거주 전체 탈북민을 단 한 곳의 하나센터가 맡고 있다. 거주지에 사회복지관과 읍면동사무소, 시군구청이 있지만 탈북민은 ‘특별한 국민’으로 간주되어 하나센터에서 별도 서비스를 받는 구조이다.   탈북민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지역 주민이며 시장 군수와 기초의원의 유권자이다. 지역 행정 복지 기관이 책임을 갖고 지원하는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분리 정책은 특별한 보호가 아닌 차별과 고립을 가져올 수도 있다.   전국 읍면동사무소와 시군구청이 지역 주민인 탈북민을 지원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행정안전부가 주무를 맡고 보건복지부 등이 협업하면 탈북민에 대한 복지·행정서비스는 개선될 수 있다. 지방 하부 조직이 없는 통일부가 주무 부처를 맡는 상황에서는 탈북민 거주 임대아파트 단지에 있는 500여 사회복지관은 전문인력과 서비스 제공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탈북민에게 다가갈 수 없게 된다.   탈북민에게 필요한 것은 거주지에서 충족되어야 하고 지역 행정 복지기관과 이웃 주민이 포용적 자세를 가질 때 사각지대는 해소될 수 있다. 탈북민의 이웃은 탈북민 스스로와 지역 주민, 지역 행정기관 모두가 되어야 한다. 탈북민의 적극적인 노력과 합리적 지원정책, 지역사회의 포용력이 어우러져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생활밀착형 지원 방식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2022.11.21 00:34

  • [리셋 코리아] 기후변화 대응이 미래 먹거리다

    나경원 COP27대통령특사, 전 국회의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연설은 에너지가 넘쳤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기후 행동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며 기후 취약국인 작은 섬나라를 돕기 위한 국제금융체계 개편과 금융 지원을 요구하며 기후 정의를 외쳤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기후 선도국 대통령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세계 110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는 시작 전부터 갈등이 많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기후 선도국들이 탄소중립 의무를 이행하는데 어려운 환경이었고, 1000억 달러 출연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각국의 어려운 경제와 강(强)달러는 비관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  「 녹색기술은 모든 산업에서 필요 시장 확대에 더 많은 투자 요구 국제표준의 녹색기술 개발해야 」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이번 COP27의 주제는 ‘이행을 위해 함께(Together for Implementation)’였다. 개도국이고 아프리카 국가인 이집트에서 개최되는 만큼 개도국들의 기후 행동을 위한 선진국의 적극적 노력 요구는 거셌다. 특히 1000억 달러 출연 약속을 공여국들이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은 물론 탄소 배출로 인해 개도국이 입은 손실과 피해에 대해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문제까지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진국들은 모든 국가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이행에 대한 논의를 더 공격적으로 하기 시작하였고, 공여국에 포함되지 않은 한국 등에 대해서는 경제 규모에 맞는 더 많은 기여를 요구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기후 대응에 있어 약간은 얄미운 존재로 보이기 쉽다. 국가 경제 규모에 비해 기여하는 것이 적고, 비교적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중추국가의 외교 비전을 갖고, 국제사회에 더 책임 있는 일원이 되고자 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대외적으로 약속한 2018년 대비 2030년 탄소 감축량을 40%로 정한 도전적 NDC를 수용하고, 과학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그 실행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생존의 문제이자 미래산업의 산실이므로 먹거리의 문제이다. 1992년 유엔 기후변화 협약이 체결된 이후 교토의정서와 파리협정이 채택되며 국제사회는 21세기 말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사실상 지금이 결정적 10년이라고 보고 정부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 5월 다보스 포럼을 찾았을 때도 필립스 최고경영자(CEO) 허튼은 플라스틱 재생을 비롯한 순환경제를 강조하고, 토머스 도닐런 블랙록 투자연구소 의장은 앞으로 직·간접 배출을 넘은 생활 배출에 투자를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은 존 케리 특사를 중심으로 선도국연합(FMC)을 구성해 탄소 배출량이 많은 해운·항공·알루미늄·철강 등 8대 산업에서 저탄소 기술 도입을 촉진하고 시장 규모를 키우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탄소중립을 위한 녹색기술 요구는 전 산업에서 필요하게 되고, 그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으므로 더 빨리, 더 많은 투자가 요구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번 COP에서 산림·해운 등 부문별 이니셔티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린 정부개발원조(ODA) 확대와 개도국의 녹색 전환 지원 의지를 피력했다. 대한민국이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경험을 기초로 개도국과 선진국의 가교 역할을 하기로 했다.   이제 우리도 더는 소극적이어서는 안된다. 국제사회에서 인류 미래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린 ODA 브랜드화는 물론 “녹색기술은 종국적으로 글로벌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말처럼 개도국의 녹색 전환에 앞장서야 한다. 당장은 불편하고 매우 힘든 과제라고 하더라도 탄소중립 목표를 도전적으로 정하고 국제사회의 표준설계에 참여해 우리의 녹색기술 개발과 발전을 견인해야 한다.   기후대응은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오늘 우리의 문제이다. 이념이나 세대가 개입할 문제도 아니다. 기후대응 그랜드 플랜은 물론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자. 당장 우리 집의 난방 온도부터 내리는 노력, 일회용 컵보다는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나경원 COP27대통령특사, 전 국회의원

    2022.11.14 00:34

  • [리셋 코리아] 촉법소년 연령 하향보다 선도가 우선돼야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리셋 코리아 수사구조개혁분과장 법무부는  지난달 26일 형법과 소년법을 개정해 촉법소년 상한 나이를 현행 ‘만 14세 미만’에서 ‘만 13세 미만’으로 한 살 내리는 방안을 포함하는 ‘소년범죄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촉법소년이란 범죄를 저지른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청소년으로, 형사처분 대신 사회봉사나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받는다. 따라서 법 개정이 완료되면 만 13세는 촉법소년에서 제외가 되어 형사처분을 받게 된다.   촉법소년 상한 나이를 낮춘다 해서 이 아이들의 재범을 예방하고 우리 사회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반론이 만만치가 않다. 잔인하고 흉포한 소년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형사처벌 나이를 낮추어 엄벌을 약속하는 방안은 정치가나 공직자들이 뭔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줄 수 있는 쉬운 방법이고, 대중의 분노에 편승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와 학술 자료를 참고해 진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여론몰이식 성급한 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  「 ‘만 13세 미만’으로 한 살 내릴 듯 더 많은 청소년 전과자 만들 수도 다양한 교화 프로그램 마련해야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아동사법제도에서의 아동의 권리에 대한 일반논평’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일반적인 형사책임 최저연령은 14살”이라고 명시하였다. 위원회는 “아동이 심각한 피의자인 경우 형사책임 최저연령을 더 낮게 정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하는 관행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며 “그러한 관행은 일반적으로 대중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경우가 많고 아동의 발달에 대한 합리적 바탕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나라에는 현행 연령 기준의 유지를 권고하였다.   우리나라가 받아들인 형법 체계는 독일과 프랑스의 대륙법 체계이다. 독일에서는 형사미성년자가 14세로 되어 있는데 이를 낮출지 말지를 놓고 30년 이상 학계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14세를 유지하고 있다.   소년 범죄자를 성인 범죄자와 다르게 처리하는 절차를 마련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영국과 미국에서 전개된 소년사법운동을 통해서다. 국가가 모든 국민의 보호자이며, 따라서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자녀를 보호해 줄 수 없는 경우에는 국가가 부모를 대신해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국친사상이 밑바탕에 깔렸다. 일반적으로 청소년은 합리적 사고와 판단에 기초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거나 완성되지 않았으며, 환경과 주위 자극에 쉽게 반응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또 자신의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고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에 대한 완전한 책임을 지기에는 미흡하다.   판단 능력이 미성숙한 소년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교도소에 갔다 오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정체성을 가지게 되고, 사회에 대한 불만이 쌓일 가능성이 커진다. 또 주위 사람들에 의한 사회적 낙인으로 대인관계와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촉법소년 상한 나이를 만14세에서 13세로 낮추면 그만큼 형사처분을 받는 소년 숫자가 늘어나고, 어려서부터 전과를 쌓아 나가는 아이들도 는다. 이들이 상습적 성인 범죄자로 전이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생긴다. 따라서 과연 소년범죄자에 대해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 능사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소년은 성인보다 개선과 행동 변화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러한 소년에 대해 형벌을 과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소년이 교도소에서 나쁜 영향을 받아 범죄 성향을 심화시킬 위험성이 크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소년범죄자의 교화와 선도에 우리 사회의 자원과 노력을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만약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강행한다면 처벌을 받는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더 많은 저연령 전과자들이 양산될 가능성이 있다. 10대 때 범죄 전과가 누적되면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형 범죄자가 늘어나 사회의 선도를 거부할 우려가 크다. 결국 처벌 연령을 낮추는 방안은 미봉책에 불과하고, 청소년들에게 반성과 변화를 유도하는 대책이 절실하다. 촉법소년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선도하고 다양한 교화 프로그램들을 갖추며 사회의 관심과 사랑을 쏟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리셋 코리아 수사구조개혁분과장

    2022.11.07 00:19

  • [리셋 코리아] 보훈·요양병원 총괄할 보훈의료원 설립해야

    유근영 중앙보훈병원장·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국가보훈처는 독립·호국·민주 유공자는 물론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헌신한 경찰·소방공무원까지 보훈 대상자로 관리하고 있다. 특히 의무복무 체제에서 남성의 반 이상이 제대 군인인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보훈 영역을 관장하고 있다.   보훈처의 위상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을 어떻게 예우하고 있는가의 척도가 된다. 보훈이 국방이고 국방이 보훈이라 할 수 있다. 숭고한 희생과 공헌에 대한 합당한 예우가 전제가 될 때 국민은 국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훈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은 군인이다. 군인을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를 중심으로 보훈제도가 발전해 왔다. 보훈처에 해당하는 제대군인부는 국방부 다음의 위상이다. 그에 걸맞게 미 보훈병원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의료체계를 갖춰 대통령도 찾는 병원이다. 캐나다·호주 등 전쟁 경험이 있는 주요 선진국의 경우에도 보훈기관을 ‘부(部)’로 조직하고, 걸맞은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다.     ■  「 전국 보훈 인프라 분산·개별 운영 효율적인 보훈 의료 중심체 필요 의료-복지 사업 조직 분리해야 」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싼탓 난티팍히란 태국 보훈청장 등 태국 보훈청 방한단이 지난 6일 중앙보훈병원을 방문했다. 방한단은 중앙보훈병원 내 급성기병원과 재활센터, 보장구센터, 로봇치료실, 수중치료실을 체험하며 의료 기술과 지식 공유·교류를 위한 협력이 강화되기를 희망했다. 이렇듯 보훈병원은 외국 보훈부 장관 등이 전쟁기념관과 함께 방문하는 장소로, 국제 교류·협력이 이루어지는 보훈 외교·소통의 현장이다.   보훈병원은 ‘어제는 당신이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당신을 지켜드리겠습니다’는 모토가 상징하듯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보훈 가족의 심신을 치료하는 곳이다. 보훈병원은 평균 연령 91세인 6만여 6·25 참전 유공자 등 25만명의 국가유공자와 146만명의 보훈 진료 대상자에게 최고 수준의 의료를 제공하는 사명을 안고 있다. 이를 위해 전국 6개 거점 보훈병원, 2개 요양병원, 8개 요양원, 국내 최대 규모의 재활센터, 보장구센터, 첨단 의학연구소 등이 구축되어 있다. 그러나 좋은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음에도 각 시스템의 연계는 느슨하고 비효율적이며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완비된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움직일 보훈 의료 중심체가 필요한 상황이다.   올해 보훈처 국정감사에서 여러 국회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의료사업은 전문성과 복잡성으로 의료를 이해하는 전문가 집단이 운영해야 한다. 현재 보훈복지의료공단이 수행하는 의료사업과 복지사업을 조직적으로 분리하고, 의료사업은 보훈의료원 조직을 설립하여 6개 보훈병원과 2개 요양병원을 총괄 운영하게 해야 한다. 이는 중앙보훈병원과 지방 보훈병원, 요양병원, 500여 개의 위탁병원을 유기적으로 연계시켜 국가유공자가 만족하는 질 높은 보훈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또 보훈병원과 의과대학 간 협약을 맺고 질 높은 교육 수련과 연구 환경을 만들어, 우수 의료진이 국가유공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 유공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월남 참전자의 평균 연령이 75세인 점을 고려하면 향후 10년간 국가 유공자 수가 급격히 감소할 전망이다. 보훈병원은 국가유공자뿐 아니라 제대 군인, 경찰, 소방·법무 공무원 등 국가 사회 기여자와 지역사회를 책임지는 병원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런 시기에 최근 접한 보훈부 격상 추진 소식은 늦었지만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법제화 과정 등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높지만, 국회와 국민의 전폭적 지지와 응원이 있다면 보훈부 격상은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보훈부 승격은 국격에 걸맞은 보훈의료 수준과 보훈병원의 위상·품격을 높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아울러 국가 공공보건 의료체계의 일원으로서 보훈병원이 일류 보훈을 상징하는 최상의 시설과 체계를 갖추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우방국과의 협력과 교류를 통한 명품 외교의 장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근영 중앙보훈병원장·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2022.10.31 00:38

  • [리셋 코리아] 병역특례제도, 시대에 맞게 개혁해야

    홍규덕 전 국방부 국방개혁실장·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방탄소년단(BTS)의 맏형 진이 입영 연기를 취소하고 입대를 발표했고, 나머지 멤버들도 같은 선택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의 팬클럽 아미는 물론 국민 대부분이 진의 결정에 찬사를 보내며 BTS 병역특례 논쟁이 일단락됐다.   인구 절벽으로 인한 병역 자원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병역특례제도를 현재와 같이 유지할 수 없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최정점은 1971년생이다. 당시 태어난 신생아가 104만 명이었다. 이후 신생아가 줄기 시작해 2021년 신생아는 26만 명에 그쳤다. 이중 남성이 절반이라 치면 군에 갈 수 있는 인원이 모두 간다 해도 13만 명을 넘지 않는다.   저출산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인구학자들은 급속한 노령화와 함께 대한민국의 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분석한다.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가 지난해 0.81명에서 지난 2분기 0.75명으로 줄었다. 국가적 위기이자 비상사태다.     ■  「 체육·예술 특기자 특혜 줄이고 과학기술요원 체계적 육성 필요 인재 활용, 동기 부여 고민해야 」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많은 국민이 우리의 병력이 여전히 60만 명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벌써 50만 명으로 줄었고 2030년까지 이 병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2022년 초 발표한 국방부 용역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35년 후반기에는 35만 명으로 줄어든다. 이 경우 현역 자원은 18만 명 정도인데, 급감하는 신생아 수를 고려하면 이마저도 장담하기 어렵다.   군의 존립 자체가 어려운 상황임에도 정치권에서는 병역 기간을 더 줄이고 모병제를 선택하자는 선심성 주장이 반복된다. 병역특례제도도 마찬가지이다. 인구 절벽 상황임을 고려할 때 체육·예술 특기자에 대한 병역특례제도 축소는 불가피하다. 그러한 점에서 BTS 진의 결심은 좋은 선례가 됐다. 다만 젊은 입대자들이 군에서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는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또 첨단 AI 과학 국방 시대에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요원을 군에서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탈피오트는 과학기술 분야 최고의 엘리트 양성 부대로, 사회와 군, 대학과 기업이 어떻게 인재를 양성하고 협업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이다. 이들은 경쟁을 거쳐 입대하지만 탈피오트 출신은 사회 진출이 보장될 정도로 진로를 걱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임무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며 성과를 중시할 뿐, 복장 군기나 내무반 상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찾아보기 힘들다.   러시아도 과학중대를 운영한다. 전 세계 가장 많이 보급된 AK-47 소총도 현역 병사가 만들었다. 러시아는 우수 공대생을 입대시켜 군에서 필요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이 개발한 특허와 기술이 군과 방산업체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17개 중대가 클러스터링을 통해 지적 기술 공동체를 잘 유지하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는 전원이 장교로 임관하고 7년간 복무하도록 특약이 맺어져 있다. 이들이 올해 7년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한다. 다만 이들이 적재적소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들의 사정을 들어보면 우리 군내 조직의 경직성이 심각하다.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과 혁신을 추구하는 문화의 변화가 시급하다.   필자는 포항공대에서 한 학기 동안 공대생을 대상으로 ‘전쟁과 평화’라는 교양강좌를 열었다. 학생들과 해병대 1사단 상승대대를 방문해 수륙양용차를 타고 해변을 지나 바다 진입을 체험했다. 한 학생이 물이 새는 문제와 부력을 유지하기 위한 동력장치 개발에 관심을 표시해 놀란 적이 있다. 군이 젊은 인재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국방 개혁이다.   Z세대에게 봉급을 더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들이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군이 사회와 떨어진 갈라파고스섬 같은 존재가 되어서는 백약이 무효이다. 모든 젊은이가 군에 가게 하되,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와 기회를 찾아주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다. 병역특례제도를 시대적 요구에 맞게 개선하기 위해 명확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규덕 전 국방부 국방개혁실장·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2.10.24 00:36

  • [리셋 코리아] 65세 노인 기준 연령, 점진적으로 올려야

    이태석 KDI 인구구조대응연구팀장 1889년 독일 연금 도입과 1925년 영국 노령연금 도입 때 연금수급연령을 65세로 설정하였다. 이후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노인 연령은 65세가 통용되고 있다.   2000년 이후 주요 선진국에서는 고령자와 관련한 재정 부담이 지속적 증가했음에도 고령자 생활 여건은 개선되지 않고 있지만, 고령자 건강과 근로 능력 개선에 따라 실효적 은퇴 연령을 연장하는 추세다.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130년 이상 통용되어 온 65세 노인연령 기준이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되고 있다. 재정 재원 문제가 심각한 공적연금의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독일은 65세 11개월, 영국·아일랜드는 66세, 스페인 66세 2개월, 네덜란드 66세 7개월, 미국·이탈리아·그리스·아이슬란드 등은 67세로 상향 조정했고, 추가 조정을 논의하고 있다.   주요국의 노인 연령 상향 조정은 지속 가능하고 충분한 노인복지사업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복지사업의 재정 지속가능성과 급여 충분성이 동시에 위협받는 상황에서 성장 둔화에 따라 제한된 재원 내에서 건강 상태와 근로 능력이 좀 더 열악한 고령자에게 정책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제도 개선 노력이라 할 수 있다.     ■  「 고령자 늘어나며 재정부담 증폭 주요국, 공적연금 수급연령 상향 취약계층 노인은 세심히 살펴야 」    일자리 찾는 노인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 구조를 차치하더라도 노인복지사업의 구조적 개편이 불가피하다. 우리나라의 빠른 노인복지사업 지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40% 내외의 노인이 중위소득 절반 이하의 소득을 올리고 있고, 앞으로 이러한 추세의 급격한 반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65세 이상 어르신의 70% 이상에 대해 노인복지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노인 빈곤 문제는 복지 사각지대 문제라기보다 복지 충분성 문제로 해석된다. 노후 소득이 불충분한 분들에 대한 좀 더 효과적인 지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의 약 70%가 생산가능인구에 해당해 주요국 중 가장 생산적인 인구 구조를 보이나 앞으로 40년간 노인 인구가 매우 빠르게 증가해 가장 높은 피부양 인구 부담을 가질 것이다. 건강 개선으로 근로 능력이 향상됐음에도 현재 노인연령 기준에 따라 노인복지정책을 마련할 경우, 향후 노인 인구 급증은 제한된 예산 한도에서 일인당 지원 금액을 더욱 낮출 것이다. 물론 노인 복지 예산 확대를 도모할 수 있으나 예산 확대는 조세 부담 증가를 의미하고, 생산 가능 연령 인구 비중 축소와 절대적 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인당 조세 부담의 급증을 가져올 수 있기에 현실적인 재원 확대 규모는 상당히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장기 세입 증가 둔화 문제와 노인 복지 지원 불충분성 문제에 대응하려면 건강 개선에 따른 고령층 근로 능력 향상을 고려한 노인 연령 상향 조정을 통해 생산 가능 연령 인구 확충과 피부양 고령 인구 축소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노인 연령은 생산가능인구의 연령 상한이며, 피부양 고령 인구의 연령 하한을 동시에 의미한다. 평균적으로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일정 연령 이상 나이가 증가함에 따라 근로 능력과 소득 수준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으며, 일정 나이를 기준으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건강 상태와 근로 능력이 지속해서 개선되는 추세가 발견된다.   건강 상태 개선을 반영하여 좀 더 취약한 정책 대상에 집중해 좀 더 충분한 정책 지원을 마련하고, 상대적으로 근로 능력이 높아진 고령 근로자의 고용 확대를 통한 조세 기반 확충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65세인 노인 기준 연령을 상황 변화에 맞춰 1세 단위로 점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노인연령 조정은 노동시장 등 사회 전반의 조정이 동반될 필요가 있기에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상향 조정의 폭과 시기에 관한 충분한 논의가 요구되고, 이를 통해 구체적 조정 방안을 마련한 이후 초기 고령층 소득 공백 완화를 위한 자구적 노력을 위한 충분한 조정 기간을 부여하고 관련 법·제도적 기반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또 자구적 노력이 어려운 취약계층의 피해를 완화할 수 있도록 구체적 사업 정책 목표와 비용 구조를 고려해 사업별 보완책을 마련하는 정책 노력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태석 KDI 인구구조대응연구팀장

    2022.10.18 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