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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대 vs 131만대 …'테슬라 쇼크'에 칼 가는 세계 1위 도요타
김현예 도쿄 특파원 ‘전기차 퍼스트’ 다음 달 1일 세계 자동차 회사 1위인 일본 도요타의 제12대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정식 취임하는 사토 고지(佐藤恒治·53)가 지난달 13일 기자회견서 내놓은 화두다. 도요타 가문의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66)가 14년간 맡아온 자리를 잇는 그는 “차세대 전기차(EV)를 기점으로 전기차 퍼스트 발상으로 사업 본연의 자세를 크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사토 고지 사장이 도요타의 새로운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1위 자동차 회사 사장의 위기의식을 놓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기차가 배경에 있다고 보도했다. 도요타는 기존 내연기관 차량과 같은 공정으로 전기차를 생산하려 했는데 이게 벽에 부딪혔다는 분석도 내놨다. 지난해 도요타의 전기차 판매는 약 2만5000대. 연간 약 1000만대를 파는 걸 고려하면 미미한 수치다. 전기차 시장을 개척한 테슬라는 131만대를 팔았다. 그러다 보니 도요타 내부에서도 “테슬라에 배울 게 많다”는 반성이 나온다. 현재 도요타의 목표는 오는 2025년 미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고, 2030년까지 연 350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2035년 렉서스 전 차종을 전기차화한다는 것이다. "테슬라에 배워야" 도요타의 반성 닛산 역시 변화를 맞고 있다. 지난달 6일 닛산은 프랑스 르노가 가진 자사 지분을 43%에서 15%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닛산과 르노 양사가 24년 만에 똑같이 지분을 15%씩 갖게 된다. 르노 지분이 떨어졌지만, 닛산은 돌파구를 다른 쪽에서 찾고 있다. 르노의 신설 전기차 자회사인 암페어(Ampere) 지분 15%를 사들이기로 했다. 닛산이 지분 34%를 보유하고 있는 미쓰비시자동차 역시 이 회사 투자를 검토 중이다. 혼다는 최근 인도 IT(정보기술) 회사와 제휴를 맺는다고 발표했다. 이 제휴를 통해 혼다는 전기차, 자율주행차 같은 차세대 차량 개발에 필요한 2000여명의 기술자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일본 정부 '충전시장' 확장 나서 미국의 테슬라, 중국 전기차 회사 BYD에 뒤졌다는 위기의식에 일본 정부도 나섰다. 일본 정부는 전기차 등에 들어가는 배터리 인재를 오는 2030년까지 3만명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지금보다 4배 규모로 키우겠다는 것인데, 내년부턴 전문 고교에서 배터리 수업도 이뤄질 예정이다. 전기차 시장을 키우기 위해 충전 시장도 넓히기로 했다. 전기차를 사도록 보조금을 줘도 충전 인프라가 없으면 시장이 커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부터 규제를 풀어 오는 2030년까지 전기차 충전 시설을 15만곳으로 늘리기로 했다. 테슬라의 모델3을 5분간 급속충전(250kW)하면 120㎞를 달릴 수 있는데, 이런 고속 충전기를 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도쿄(東京)도는 아예 오는 2025년부터 한국으로 치면 아파트 격인 신축 맨션에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의무화했다. 올해는 기존 맨션에 충전시설을 설치할 경우 지원하는 보조금을 2배로 늘리기로 했다. 도쿄 외에도 지바(千葉) 현, 가나가와(神奈川) 현도 올해부터 보조금을 주기로 했는데, 일본 정부도 국가 차원에서 보조금 확대를 검토 중이다. 혼다가 지난 17일 선보인 전기 오토바이용 충전소. 사진 김현예 일본에선 전기차의 전기 에너지를 활용하는 구상도 속속 나오고 있다. 닛산은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전기차를 충전하는 실증실험을 하고 있다. 많은 전기차를 동시에 충전하면 전력사용이 늘어나는데, 전기료를 줄일 수 있도록 AI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히타치는 닛산과 함께 전기차를 정전 시 비상 엘리베이터 가동에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태풍이나 대지진으로 정전이 발생할 경우 전기차를 활용해 대피소에 비상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단순히 전기차를 이동수단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전기 배터리, 대형 에너지 저장장치(ESS)로 확장해 에너지 시장을 바꿔나가겠다는 얘기다. ■ 구자균 회장 “정부, 에너지 시장 관점서 국가 전략 짜야” 「 지난 17일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에너지 전시회 '도쿄 스마트 그리드 엑스포’에서 구자균(65) LS일렉트릭 회장을 만났다. LS일렉트릭은 이번 전시회에 일본 시장 공략을 위해 전력용 반도체를 활용한 전기차 충전 플랫폼(SST)을 선보였다. 구 회장은 범 LG가로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 구평회 회장의 3남이다.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이 지난 17일 일본 최대 에너지 전시회인 스마트그리드 엑스포에서 전기차 시장이 가져오는 에너지 시장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LS일렉트릭 전기차 충전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전기차는 전기 에너지가 핵심으로 배터리와 충전 시스템까지 포함해 내다봐야 하는 시장이다. 전기차 성장과 함께 글로벌 충전 시장도 2030년까지 6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보다 10배 큰 규모로 기업들에게 엄청난 사업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테슬라가 전기차뿐 아니라 충전 인프라 사업을 시작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요타, 닛산이 뒤늦게 전기차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 재편이 더디다고 일본을 낮게 봐선 안 된다. 그간 산업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빠른 변화를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그간 에너지 저장장치에 관심이 없던 도시바가 이번 전시회에서 내놓은 제품을 보니 ‘조만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도시바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파나소닉도 기억에 남는다. 꼼꼼히 둘러봤는데, 태양광 발전으로 만든 전기 에너지를 에너지 저장장치(ESS)에 모았다가 이를 다시 전기차 충전, 공장 가동에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쓰는 순환형 에너지 실증 사업을 소개했다. 국내에선 화재 우려로 실증 사업을 하기 어려운데, 일본은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일본이 출발은 늦었지만 빠르게 시장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에 필요한 전략은 무엇이라고 보나. 전기차나 배터리에만 집중하고 있는 정부 전략이 아쉽다.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아파트를 비롯해 곳곳에서 충전 스테이션 규모도 커질 전망이지만 정작 특정 시간대에 몰리는 충전 수요로 인해 전력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가 간과하고 있다. 브라운관 TV에서 평판 TV 시장으로 넘어갈 때 LG나 삼성이 일본보다 먼저 디지털 혁신을 해 우리가 세계 TV 시장을 선점했던 경험을 기억할 거다.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가 전기차, 배터리만 볼 것이 아니라 일상이 전기 에너지로 움직이는 '전기화'가 되는 만큼 에너지 관점에서 국가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 ━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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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 반환이 맞지 않을까"…日 교육계 움직임 시작됐다 [김현예의 톡톡일본]
김현예 도쿄 특파원 한·일 관계를 되살려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일본 내 변화의 기운이 일부 감지되는 부분이 있다. ‘약탈 문화재 반환’과 관련해서다. 침략의 역사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던 일본이 학교에서 약탈 문화재 반환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넘어간 한국 문화재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의 일부 고등학교가 지난해부터 문화재 반환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지난해 초엔 일본 규슈대 입시에 약탈 문화재 반환 관련 문제가 출제되는 등 문화재 반환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일 교재에 오른 질문 ‘문화재가 있어야 할 곳?’ 일본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역사종합 교재에 처음으로 약탈 문화재 반환 문제가 실렸다. 2010년 체결된 한일도서협정도 소개돼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일본 교과서와 교재를 만드는 도쿄호레이(東京法令)출판사는 올해 일본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역사종합 교재인 『질문으로 시작하는 역사종합』에 약탈 문화재 반환 문제를 실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이다. 일본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재에 약탈 문화재 반환을 실은 것은 이 출판사가 처음이다. 도쿄호레이가 내놓은 교재는 고교생들이 배우는 역사종합 교과서를 보충하는 교재로, 가나가와(神奈川) 현의 한 고교가 지난해 이 교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도쿄호레이는 도쿄와 나가노에 본사를 두고 있는 곳으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인 1948년 설립된 중소 출판사다. 교재는 ‘문화재가 있어야 할 곳은?’이란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등 세계 주요 박물관에 문화재를 돌려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는 것을 소개하며 식민지 지배와 문화재 이슈를 거론한다. 눈에 띄는 것은 문화재 불법 거래를 금지한 유네스코 조약(1970년)에 대한 소개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따르면 1970년 협약으로 불리는 이 조약은 전쟁과 식민지 지배, 도난 등을 통한 문화재를 반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도 이 조약에 1983년 가입했다. 교재엔 2021년 프랑스가 과거 식민지였던 서아프리카 문화재를 반환한 사실과 함께 2010년 한·일간 체결된 한일도서협정도 소개했다. 약탈 문화재 반환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을 알린 셈이다. ━ 약 90년 만에 돌아온 조선왕실 서적 일본 역사종합 교재에 처음으로 실린 약탈 문화제 반환 문제가 실렸다. 불법 문화재 반출과 거래를 금지한 유네스코 조약과 함께 오른쪽 하단에 2010년 체결된 한일도서협정을 소개하고 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한일도서협정은 2010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체결한 것으로 이 협정으로 일본 왕실에 있던 조선 왕실의궤 등 약 1200권이 이듬해 한국에 반환됐다. 조선총독부가 1922년 강탈해 일본으로 넘어간 지 약 90년 만의 일이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재는 올 1월 기준 총 22만9655점. 이중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등에 있는 것은 9만5622점으로 전체 해외 유출 문화재의 41%에 달한다. ━ 규슈대 입시에도 ‘약탈 문화재’ 출제 문화재 반환에 대한 인식 변화를 엿볼 수 있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엔 규슈대 입시에도 문화재 반환을 주제로 문제가 출제됐다. ‘런던에 소재한 대영박물관과 미국 뉴욕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세계 주요 박물관 상당수엔 식민지에 있던 유적, 식민지 원주민들로부터 다양한 형태로 가져간 것들이 수장돼 있다’는 설명과 함께 ‘문화재 반환’ 해결 방법을 서술하라는 소논문이 나왔다. 일본 도쿄 우에노에 있는 국립박물관.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동양관으로 이곳엔 한국 문화재 1100여점이 전시돼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이 규슈대 입시문제에 실린 책 『문화재 반환 문제를 생각하다, 부(負)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해서』를 쓴 이가라시 아키라(五十嵐彰)는 “약탈 문화재 반환이 세계적인 흐름인 상황 속에서 일본 역시 이런 흐름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고고학자로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문화재 반환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는 그는 “결국 입시에 출제된다는 것은 학생으로선 앞으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라고 본다”고 말했다. 도쿄 국립박물관에 전시 중인 '오구라 컬렉션'인 신라시대 금제 귀걸이 장식. 사진 도쿄 국립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그는 도쿄(東京) 우에노(上野)에 있는 국립박물관 동양관에 있는 오구라(小倉) 컬렉션 얘기를 꺼냈다. 동양관에 전시된 문화재 중 절반 이상이 오구라 컬렉션일 정도로 오구라 컬렉션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대구에서 사업으로 큰돈을 번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가 수집한 것으로, 사망과 함께 유족들이 1980년대 초 일본 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가야의 금관은 물론 신라 금동관모, 고종의 익선관, 순정효황후 당의 등 1100여 점에 달한다. 이중 일부는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등록돼있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 측에 오구라 컬렉션 반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개인 소유물이라며 이를 거부했었다. ━ “전리품의 도쿄 국립박물관 보관 자체가 문제” 일본에서 약탈 문화재 반환 운동을 하고 있는 고고학자 출신 이가라시 아키라는 처음으로 교재에 문화재 반환이 실린 데 대해 ″반환해야 하는 문화재가 세계는 물론 일본에도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이가라시는 “국립박물관에 있는 오구라 컬렉션으로 불리는 한국 문화재가 왜 이곳에 있는지를 적어야 하며, 또 불법으로 빼앗았기 때문에 적지 못한다면 돌려줘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구라의 메모를 언급했다. 오구라는 1964년 자신이 수집한 문화재의 목록과 함께 기록을 남겼는데, 여기엔 주칠 12각상도 포함돼 있다. 오구라는 ‘건청궁에서 일본인 자객이 민비(명성 황후)를 암살한 뒤 가지고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가라시는 “당시 전리품으로 가져온 이런 것들이 도쿄 국립박물관에 있다는 자체가 문제로 반드시 반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일청구권 협정 당시엔 개인 소유물이라 반환하기 어려웠다면, 이제는 국가인 국립박물관 소유이기 때문에 반환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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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운명"…'이순신 마지막' 찾아냈다, 日서 나고 자란 이 사람 [김현예의 톡톡일본]
■ 「 9만4341점.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 숫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반환작업을 한지 올해로 10년. 많은 문화재가 우리 품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이 지난한 작업 뒤엔 조용히 반환에 일조한 이들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일제강점기 때 사라진 다보탑 돌사자 세 마리가 일본 어디선가 발견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전역을 훑고 다니는 이부터, 발견한 문화재를 고국에 무상으로 기증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마음을 전한다. 」 ━ 이순신 이름에 정신이 번쩍 김현예 도쿄 특파원 지난 9일 오후 교토대(京都大)에서 만난 김문경 교토대 명예교수가 활짝 웃었다. “비과학적인 이야기 같지만 우연은 아닌 것 같다”며 2시간에 걸쳐 공을 들여 설명한 건 ‘대통력(大統曆)’. 대통력은 조선 시대 관에서 금속활자로 찍은 일종의 정부 달력(冊曆)인데, 임진왜란 당시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이 달력을 일기장처럼 사용한 게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를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으로 부른다. 이 달력 일기장이 최근 일본서 발견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문화재 반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김 교수다. 지난 9일 김문경 교토대 명예교수가 자신이 연구하던 교토대 인문학연구소 앞에서 서애 류성룡의 기록이 담긴 달력인 '대통력' 반환 과정을 알려주고 있다. 교토=김현예 특파원 지난 2020년 5월. 교토 고서점조합이 봄 경매 목록을 김 교수에게 보내왔다. 중국 문학을 연구해온 그의 눈에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대통력’이었다. 여기엔 1600년 6월 5일 기록으로 ‘보고에 보니 강항(姜沆·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의병장)이 일본에서 왔다고 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금액은 228만엔(약 2180만원)이었다. 환수된 서애 류성룡의 대통력.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사망하기 직전 모습이 적혀 있는데, 붉은 점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이순신을 일컫는 ‘여해’다. 연합뉴스 선조실록을 찾아보니 같은 내용이 있었다. 관심이 쏠렸지만, 코로나19 봉쇄 상황이라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일 년 뒤인 2021년 가을, 도쿄(東京) 고서점 경매 목록에서 또 같은 책을 발견했다. 이번에도 코로나19로 인해 가보지 못한 채 아는 고서점 주인을 통해 수소문해보니 팔리지 않았다는 답만 들었다. 잊고 지냈던 그 대통력이 다시 눈에 띈 건 지난 4월. 교토에서 봄맞이 고서적 경매가 열려 찾았는데, 책 한 권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앞서 두 차례나 정보를 접했던 대통력이었다. 경매 목록에 없었던 터라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는데 이순신 장군의 자인 여해(汝諧)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초서로 쓰여있었지만 ‘내가 파면됐다는 것을 듣고 여해가 한탄했다’는 문장이 보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순간부터 이 대통력에 나온 일자별 특이 행적과 동선을 외우다시피 머릿속에 담았다. 집으로 돌아와 기록을 비교했다. 류성룡 연보와 대통력에 기록된 주요 행적이 모조리 일치했다. 소장 중이던 류성룡 도록 필체와도 비교했다. 필적전문 지인이 필체가 같다는 의견을 주면서 이 책이 류성룡 선생의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김 교수는 그길로 국외소재문화재단에 연락을 넣었고,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을 기록한 류성룡의 대통력은 그렇게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005년 충무공 김시민(1554∼1592) 장군 공신교서를 일본 고서점상에서 발견해 알린 이도 김 교수다. 경매에 나온 이 책이 알려지면서 국내에 환수 운동이 일었다. 김 교수는 후지스카 치카시(藤塚隣) 전 경성제국대학교 교수가 수집한 추사 김정희 관련 자료를 모아 교토 고려미술관에 기탁하기도 했다. ━ “대통력 반환이 운명인 듯” 김 교수는 일본서 태어나 자랐다. 그의 부친 고향은 전남 해남 문내면 선두리. 울돌목이 있는 바로 그곳이다. 마을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가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강제 철거됐다. 김 교수는 “당시 총독부가 있던 광화문 경복궁 뒤뜰에 비석이 쓰러져 있는 것을 부친이 발견해 미군에 연락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큰아버지께서 지역 분들과 농악대를 조직해 전국 순회를 하면서 돈을 모아 대첩비가 제자리를 찾았고, 비각을 지키는 어르신들 역시 같은 문중”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임진왜란과의 연결점은 또 있다. 금산 전투에서 의병 700명이 1만5000명의 왜군과 맞서 싸우다 모두 전사했는데, 당시 한 분이 김 교수의 조상으로, 그가 21대손이라고 한다. 김 교수는 이를 놓고 “이번 대통력 반환이 운명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웃었다. 그는 “류성룡 종가에서 14권의 대통력을 보유하다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현재 5권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며 “일본 어딘가에서 나머지 대통력이 다시 발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토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미술관. 고 정조문 선생이 일본 전역에서 수집한 우리 문화재 1700여 점이 이곳에 있다. 지난 9일 조선왕조의 백자와 수묵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교토= 김현예 특파원 ━ 묵묵히 힘쓰는 문화재 지킴이들 김 교수처럼 일본에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 문화재 수집과 반환에 묵묵히 힘쓰는 이들이 있다. 도쿄에서 고서점을 운영하는 재일동포 김강원 씨는 올해 ‘백자청화김경온묘지(白磁靑畵金景溫墓誌)’ 등을 직접 사들여 기증했다. 후손들에게 무상으로 돌려줬다. 교토대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고려미술관의 정희두 이사장도 문화재 지킴이로 나서고 있다. 지난 9일 찾아간 이곳에선 ‘조선왕조의 백자와 수묵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정 이사장은 미술관을 세운 고(故) 정조문 씨의 장남이다. 독립운동가 아들로 태어난 정조문 선생은 6세에 일본으로 건너와 막노동을 하다 파칭코로 큰돈을 벌었다. 이후 일본 곳곳에 있던 우리 문화재 1700여 점을 수집해 지난 1988년 미술관을 세웠다. 국보급 유물을 비롯해 흥선대원군 묵란, 유네스코 세계의 기록 유산에 오른 조선통신사 행렬도 등이 이곳에 있다. 부친의 뒤를 이어 혼자서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정 이사장은 “항상 적자 상태인 미술관의 운영 걱정도 크지만 내년 미술관 설립 35주년을 맞아 많은 사람에게 우리 문화재를 알릴 수 있도록 전시회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한편엔 소장품 보수와 관리를 위한 모금함이 마련돼 있었다. 관련기사 이순신 ‘최후의 순간’ 담겼다…유성룡의 달력, 일본서 귀환교토=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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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자판기'는 기본…절에서 '햄버거'도 판다, 일본의 변신 [김현예의 톡톡일본]
김현예 도쿄 특파원 지난 20일 일본 도쿄(東京) 시나가와(品川)구의 한 주택가. 지하철역을 빠져나오자마자 대로변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자판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설치된 자판기는 모두 10여 대. 아이스크림부터 빵, 캐비어에 소고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 ‘한국 반찬’이라고 써 붙인 자판기 두대엔 간장게장과 양념게장, 떡볶이, 김치찜 등 낯익은 음식들이 소개돼 있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자판기 전문점 ‘피퐁(Pippon)’이다. 삼계탕은 1200엔(약 1만1600원), 떡볶이는 880엔(약 8500원)이면 살 수 있는데, 모두 냉동 상태로 판다. 잠시 청소차 들린 나이토 다이스케 (内藤大輔) 사장은 “좁은 공간에서도 무인으로 사업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건 한국음식.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손님들이 출·퇴근길에 많이 산다”고 말했다. 자판기 전문점 피퐁의 나이토 다이스케 사장은 "좁은 공간에서도 무인으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면서 "최근 한국 드라마 유행으로 한국음식이 많이 팔린다"고 전했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 '자판기의 나라' 일본의 변신 단일 국가로 자판기 보유량이 세계 1위인 일본. 이 일본에서 자판기 시장이 변하고 있다. 라면은 물론, 아이스크림, 만두 같은 식품 자판기가 늘어나고 있다. 일본자동판매시스템기계공업회에 따르면 일본 내 자판기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10년만 해도 520만6850대였지만 지난해엔 400만3600대로 줄었다. 음료수 자판기(56.2%)가 전체 시장의 절반이 넘는데, 포화 상태를 지났다는 의미다. 주춤하는 자판기 시장에서 변화를 이끄는 건 그간 관심받지 못했던 식품(1.8%) 분야다. 하마다 유지 KOTRA 오사카 무역관은 “음료수 자판기가 줄고 냉동 자판기가 늘면서, 군고구마나 육수 등 특이한 제품을 파는 자판기가 출현하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케이크, 푸딩에 회까지 변화의 물꼬를 튼 건 코로나다. 사람들이 대면 접촉을 꺼리게 된 데다, 방역대책으로 영업시간마저 줄면서 상점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나이토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건축 관련 사업을 해오다 코로나로 매출이 급감했다. 자판기라면 코로나 걱정 없이 해볼 수 있지 않겠냔 생각에 자판기 사업을 시작했는데, 음료수가 아닌 음식을 택했다. 캐비어는 물론, 소고기, 반찬류까지 뭐든지 팔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나고야(名古屋)의 한 이탈리안 음식점도 올해 들어 가게 앞에 자판기를 설치했다.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냉동 파스타와 피자를 판다. 자판기 설치로 24시간 영업이 가능해지면서 숨통이 트였다. 올들어선 케이크와 푸딩, 회, 불고기까지 파는 곳도 생겨났다. 가나자와(金沢) 시에선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심 지역에 지난 6월 회를 사 먹을 수 있는 자판기를 설치했다. 500엔(약 4800원)에서 2000엔(1만9400원)이면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는데 금세 동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도쿄 최대 재래시장인 우에노 아메요코시장엔 곤충식품 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귀뚜라미 쿠키 4개 들이에 950엔이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 곤충 식품 파는 시장, 햄버거 파는 절…이색 자판기 성업 중 모객을 위한 이색 상품을 파는 곳도 생겨났다. 말하자면 이색 상품을 파는 자판기로 사람들을 불러들이자는 전략이다. 도쿄 우에노(上野)에 있는 도쿄 최대의 재래시장인 아메요코(アメ橫)엔 곤충 식품 자판기가 있다. 귀뚜라미 쿠키부터, 거미인 타란툴라, 전갈까지 식용 곤충을 활용한 제품을 파는데, 이곳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이색 상품 자판기로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을 모으고 있다. 4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히로시마(広島) 한 사찰에선 지난 1월 햄버거 자판기를 설치했다. “어느 절에도 햄버거는 없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는데, 코로나로 발길이 줄어든 방문객을 늘리고 수익금으론 어린이 지원사업을 하기 위한 주지 스님의 아이디어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고령화도 일본 자판기 시장 변화에 한몫을 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올 1월 외국인 포함 거주자 기준 일본 인구는 총 1억2592만8000명. 13년째 줄고 있다. 고령화 속도도 빠른데, 일본 후생노동성은 오는 2025년엔 만 65세 이상의 어르신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0%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면서 일본은 무인 자판기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부 편의점에서는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로봇이 직원 대신 물건 진열을 하기 시작했다. 일반 상점에선 사람을 쓰기보다 식권 자판기를 두는 일이 흔해졌다. 야노경제연구소는 “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 AI(인공지능) 기술 발달로 무인점포가 증가하면서 자판기 시장이 완만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지난 9월 한 시민이 일본 긴자역 지하철에 설치돼 있는 과일 자판기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일각에선 자판기를 인구 감소로 대형 마트가 사라지면서 물건 살 곳이 없어진 ‘쇼핑 난민’을 위한 대안으로 보기도 한다.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주임연구원은 “대형 슈퍼가 퇴점한 지역이나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기 힘든 고령자 등 이른바 '쇼핑 난민'에 대한 대책으로 자동판매기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시즈오카(静岡)현엔 소형 슈퍼가 늘어나고 있는데, 냉동 자판기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존 슈퍼 크기의 6분의 1 규모로 어르신들이 많이 걷지 않고도 이용 가능한 데다, 1인분 중심의 식재료를 팔아 호평받고 있다. 김 연구원은 “노동력 부족으로 발권기와 같은 판매기는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라며 “고령화로 치매 어르신이 증가하고 있어 자판기에 통신망 기능을 추가해 치매 어르신 대책으로도 사용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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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몸으로 활력 만든다"…DJ가 노래트는 수제맥주집 진짜 정체 [김현예의 톡톡일본]
김현예 도쿄 특파원 영업 개시 시간인 오전 11시가 되자, 가방을 짊어진 젊은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5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10명이 넘는 손님들이 찾아왔는데, 목욕탕 입구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이도 보였다. 지난달 31일 만난 이곳의 신보 타쿠야(新保卓也) 사장은 “2년 전 내부를 새로 단장하면서 젊은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동네목욕탕이 달라지고 있다. 올해로 창업 90년을 맞은 도쿄 스미다구의 목욕탕 고가네유는 DJ부스에서 음악을 틀어준다. 목욕을 마친 뒤 시원한 수제 맥주도 마실 수 있다. 입소문을 타면서 동네목욕탕에서 젊은층 손님들이 몰려드는 '핫플'로 바뀌었다. 사진 김현예 도쿄 특파원 일본 동네 목욕탕이 최근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목욕하러 가는 곳에서, 경험 중심의 ‘즐기러 가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목욕 문화가 발달해 있는 일본에선 동네 대중목욕탕을 센토(銭湯)라 부른다. 전후 집집마다 목욕탕이 없던 시절, 동네 목욕탕은 마을의 ‘중요 시설’로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위기가 왔다. 동네 목욕탕은 대개 가족 단위로 운영해 왔는데 청소 등 손이 많이 가는 고된 일이다 보니 고령화와 더불어 가업 계승이 어려워진 곳이 많았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새 코로나19가 터지고,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손님도 줄고 연료비 등 비용도 급상승했다. 이름있는 오랜 동네 목욕탕이 폐업한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할 정도로 문 닫는 곳이 늘었다. 실제로 지난 4월 기준 일본 전역에 있는 동네 목욕탕은 총 1865곳. 지난 2년 새 200여 곳이 문을 닫았다. 사가(佐賀)현처럼 동네 목욕탕이 한곳인 동네도 생겨났다. ━ 목욕 마친 뒤 맥주 한 잔 올해로 창업 90년을 맞은 도쿄 스미다구의 고가네유 목욕탕에선 목욕을 마친 뒤 시원한 수제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이 목욕탕의 신보 사장이 지난달 31일 수제 맥주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김현예 도쿄 특파원 고가네유도 그랬다. 경영 악화와 노후화, 가업을 이을 후계자 부재로 폐업 위기에 놓였다. 전통 있는 동네 목욕탕이 폐업한다는 소식을 접하곤, 신보 씨는 2020년 고가네유 인수에 나섰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70년 넘은 동네 목욕탕, 다이고쿠유(大黒湯)를 부모님 대신 운영하고 있던 때였다. “목욕탕은 신분이나 지위, 돈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맨몸으로 들어와 하루 일의 피로를 풀고 내일을 위한 활력을 만드는 곳”이기에 “동네 목욕탕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었다”는 게 인수 이유였다. 하지만 난관에 봉착했다. 코로나로 당연히 영업이 어려웠다. 손님을 다시 끌어오기 위해 시설 단장에 나섰다. 온라인으로 새 단장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에 도전했다. 역사 있는 동네 목욕탕을 되살리는 데 동참하겠다는 젊은이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동네 주민들도 선뜻 돈을 보태겠다고 나섰다. 신보 사장은 “주위에서 힘내라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아이디어를 냈다. ‘목욕할 때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목욕 후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는 것도 좋으니, DJ 부스를 만들고 맥주도 마실 수 있게 하자’는 거였다. 그 길로 DJ 부스를 만들고 목욕탕 이름을 딴 수제 맥주도 들여왔다. 달라진 동네 목욕탕은 입소문을 탔고 동네 주민들뿐만 아니라, 젊은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난해 2월엔 목욕 후, 기분 좋은 노곤함을 즐기면서 자고 싶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목욕탕 위층에 숙박시설도 작게 꾸렸다. 신보 사장은 “목욕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동네 목욕탕이 아닌, 전통을 지키면서도 세상 변화에 적응해 변화해 가는 목욕탕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만화방 도입한 목욕탕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 동네목욕탕이 변신하고 있다. 밤샘 목욕인 '올 나잇' 목욕을 하며 도쿄 스카이트리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한 '노천탕'을 도입한 도쿄 다이고쿠유. 사진 김현예 도쿄특파원 달라지고 있는 곳은 고가네유뿐만이 아니다. 그가 운영하는 다이고쿠유는 동네 목욕탕치곤 희귀한 노천탕을 운영한다. 도쿄 스카이트리를 뜨끈한 탕에서 바라볼 수 있다. 늦은 밤, ‘올 나잇 목욕’도 할 수 있게 하면서 다이고쿠유에도 젊은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일본에선 아예 젊은 청년을 중심으로 전통 있는 동네 목욕탕을 대신 경영해주는 회사도 생겨나고 있다. 니코니코온센이 대표적이다. 옛 풍취는 남기면서 젊은 층이 즐길 수 있도록 동네 목욕탕에 서점을 입점시키거나 만화책을 7000여 권 구비하는 등 ‘즐기는 목욕탕’으로 바꾸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019년 문 닫았던 도쿄 시나가와(品川)구 도쿄요쿠죠(東京浴場)에 2층짜리 책장을 짜 넣고 만화책과 그림책을 진열했다. 한쪽에선 맥주도 판다. 도쿄 신주쿠(新宿)역에서 가까운 코스기유(小杉湯)는 1933년 창업 당시 건물은 살리고 명물 ‘우유탕’ 전통은 지키는 대신, 요가나 필라테스 교실을 열면서 손님을 끌고 있다. 최근엔 국가등록 유형문화재로 선정되기도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처럼 달라지고 있는 동네 목욕탕에 대해 “오락의 장소로서 동네 목욕탕의 매력을 높이려는 움직임으로 도쿄에서 1985년 이후 처음으로 목욕탕 이용자 수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 일본 목욕탕에 '이것' 꼭 있는 까닭 「 일본에서 도쿄 일대의 대중목욕탕에 가면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목욕탕 벽에 그려진 ‘후지산(富士山)’이다. 일본인들에게 영산(靈山)으로 꼽히는 후지산은 어쩌다 목욕탕 벽에 장식됐을까.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후지산이 목욕탕 그림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12년의 일이라고 한다. 도쿄 치요다(千代田)구에 있던 목욕탕인 ‘키카이유’에서 유래됐다. 지금은 사라진 키카이유는 1884년 생겨난 목욕탕이었는데, 1912년 증기선의 보일러를 가져와 목욕탕에서 물을 끓이는데 썼다고 한다. 도쿄 스미다구 고가네유 벽에 그려진 후지산. 후지산 아래에서 태어난 아이가 후지산 밑에서 목욕을 하며 자라나, 장성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후지산 아래에서 목욕을 한다는 이야기가 담겼다. 사진 김현예 도쿄 특파원 목욕탕 주인은 당시 증축을 하면서 벽면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그게 후지산이었다고 한다. 당시 그림을 의뢰 받은 화가의 고향이 후지산 일대로, 이 그림이 인기를 끌면서 도쿄 일대에 유행처럼 번졌다는 것. 1960년대 들어 일본에선 대중 목욕탕이 크게 인기를 누렸는데, 이때는 목욕탕 그림 전문 화가가 존재하기도 했다. 목욕탕이 습해 벽화가 자주 지워지다보니 벌어진 일이었다. 목욕탕 벽화 화가들 사이에서는 ‘하늘 3년, 소나무 10년, 후지산 일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후지산 그림은 생을 걸고 그려야 하는 궁극의 그림으로 꼽혔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후지산 그림도 계절별로 인기가 다른데, 여름 후지산보다 겨울 후지산이 인기가 많다. 」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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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0대가 "쩔어" 한국말로 외친다…쓰시마섬 특별한 학교 [김현예의 톡톡일본]
김현예 도쿄 특파원 한국과 일본의 국경에 있는 섬, 쓰시마(對馬). 부산과는 약 50㎞ 거리지만, 가장 가까운 일본 규슈 후쿠오카(福岡)와는 약 138㎞ 떨어진 한국과 더 가까운 섬이다. 맑은 날이면 한국의 산과 해안, 집까지 볼 수 있을 정도다. 한국인에겐 대마도란 이름으로 익숙한 이곳에 ‘특별한 일’이 매년 봄 벌어진다. 올해로 20년째 이어지고 있는 ‘쓰시마고 한국어 유학’이다. 인구 2만8000여 명에 불과한 이 섬에 있는 공립학교에 일본 전역에서 매년 봄이면 15살 어린 학생들이 집을 떠나 3년간 유학을 오고 있다. ━ 한국어 가르치니 학생들 찾아왔다 쓰시마고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 학생들이 지난 7월 교실에 모여 한국어로 한국어 공부와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쓰시마고 제공 영상 캡처 고3인 미야노 사미(宮野砂海·18) 군은 나가사키(長崎)가 고향이다. 유학을 결심하게 된 건 순전히 한국어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가 빅뱅 노래를 들려준 게 계기가 됐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제대로’ 배우고 싶어 한국어를 가르치는 쓰시마고에 진학했다. 지난 1905년에 세워진 나가사키 현립 쓰시마고는 ‘욘사마’ 배용준 씨가 출연한 『겨울연가』 붐이 일던 지난 2003년부터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낙도(落島)인 쓰시마에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공립고교 중 별도 학과를 신설해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은 쓰시마고가 유일하다. 이곳에서 7년째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김경아 씨는 “쓰시마가 한국과 가깝고, 역사·문화적으로도 접점이 많아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특색있는 교육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나가사키현립 쓰시마고가 올해 한국어를 가르친지 20년을 맞았다. 쓰시마고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사진 가운데가 이 학교에서 7년째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경아 교사. 사진 쓰시마고 일본어와 영어·수학 시험에 심사위원 앞에서 발표까지 해야 하는 ‘선발시험’을 거쳐 매년 30여 명의 신입생을 뽑는다. 도쿄(東京)나 요코하마(横浜), 오사카(大阪) 등 일본 전역에서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학생들이 찾아온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선 학생을 배려해 연간 세 차례 집을 왕복하는 항공권과 기숙사비도 지원해준다. 한국어 인기가 높아지면서 3년 전부터는 ‘국제문화교류과’로 승격해 운영하고 있다. 김 교사는 “학생들이 K팝과 드라마를 통해 친근해진 한국어를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의욕이 남다르다”고 했다. 현재 전교생 400여 명 가운데, 77명이 매일 1시간씩 한국어를 배운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 성적도 높아, 가장 높은 급수(6급)를 따는 학생들도 상당하다. 매년 10여 명이 한국 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한국 유학생도 많다. 수험생인 미야노 군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대학 입학을 준비 중인데 최근엔 사전 답사 차원에서 서울을 찾아 학교를 둘러봤다. 배우 유승호 씨가 출연한 『복수가 돌아왔다』를 보면서 대사를 따라 하며 한국어를 익혔는데, 지난 3월엔 주일 한국문화원이 개최한 말하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타기도 했다. 일본에서 지난 3월 주일 한국문화원이 개최한 전국 고등학생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은 쓰시마고 마쓰야마 양과 코니시 양. 사진 주일한국문화원 ━ 한국인 관광객 뚝 끊겨 아쉬워 미야노 군은 “한국어로 말하고 싶은데 한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이 없어서 아쉽다”고도 했다. 더러 한국인 관광객이 길을 묻곤 하면 한국어로 길 안내를 해주곤 했는데, 코로나로 관광객이 확 줄면서 기회가 많지 않다고 했다. 코로나 전엔 학교 차원의 관광객 대상 실습 프로젝트도 있었지만 현재는 전무하다. 실제로 쓰시마를 찾는 한국 관광객은 연간 41만 명(지난 2018년 기준)에 달할 정도였지만 요즘엔 코로나로 발길이 뚝 끊긴 상태다. 김 교사는 학생 반응이 좋은 K팝을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 ‘쩔어’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식이다. 김 교사는 “‘쩔어’는 사전엔 없는 단어지만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졸업생들은 한국 관련 기업이나 한국 무역상사나 화장품 회사 등에 취업하고 있다. 그는 “K팝을 계기로 한국어를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이제는 한국 유학을 꿈꾸고,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주일 한국문화원이 일본 도쿄에서 열고 있는 한국어교실인 세종학당 모습. 사진 주일 한국문화원 ━ 한국어 공부, 혐한도 반일도 없다 한국어 인기는 일본 곳곳에서 높아지고 있다. 나가사키(長崎)외국어대는 지난 2009년 스페인어 전공을 없애고 한국어 전공을 신설했다. 이곳 박영규 교수는 “20년 전 ‘욘사마’ 열풍 때와 비교하면 최근 한국어 인기 배경엔 K팝 등 다양한 한국문화가 있다”면서 “이 때문에 한국어를 공부하는 세대가 초등학생 수준으로 어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10대부터 자연스럽게 한국문화를 접하고 한국어를 듣기 시작한 학생들이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본에서의 한국어 바람엔 혐한도 반일도 없다”고 지적했다. “한·일 관계 악화는 정치 문제일 뿐 문화적 측면에선 전례 없는 호기를 누리고 있다”는 설명도 했다. 출판회사인 J리서치의 와다 요시히로(和田圭弘)씨도 “일본 내 유명 대형서점 어학서 판매 순위 200위 안에 한국어가 24권이나 들 정도로 어학서 업계에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영어나 중국어처럼 취업을 위해 공부하기보다 한국 드라마나 음악을 접한 소비자들이 취미 차원에서 집에서 홀로 공부하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출판업계에서 한국어 서적 규모도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6일 일본 도쿄 한 대형서점 한국어 교재 코너. 최근 일본에서의 한국어 공부 인기를 반영하듯 영어 교재 다음으로 많은 어학서가 전시돼 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도쿄에서 주일 한국문화원이 열고 있는 ‘세종학당’ 상황도 비슷하다. 코로나로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멀리 떨어진 오키나와(沖縄)나 홋카이도(北海道)에서도 수강생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7월 기준 전체 수강생은 523명에 달한다. 세종학당 관계자는 “일부 수업의 경우엔 수강 경쟁률이 14대1이 넘어 추첨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전했다. 온라인상에선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독학용’ 콘텐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어 통역사 출신인 유튜버 구라타 토미씨의 콘텐트 중 가장 인기 있는 건 2시간이 넘는 한국어 단어 영상이다. ‘소리’만 나오는 단순 영상인데 누적 조회 수가 130만이 넘었다. 구라타 씨는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잠자기 전에 한국어 소리를 ‘흘려듣기’하는 용도로 이용하면서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 쓰시마섬은 어떤 곳? 「 일본에서도 한국과 가장 가까운 섬이다. 부산에서 약 50㎞ 떨어져 있는데, 배를 이용하면 최대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으며 대마도로 불린다. 산이 많으며 면적은 709.01㎢. 인구는 약 2만8000명이다. 이곳엔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웠던 두 나라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일본측 외교사절로 조선을 다녀간 유학자인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州·1668~1755)는 부산에서 한국어를 배웠다고 전해진다. 그는 쓰시마에 정착했는데 부산에서 익힌 한국어를 기반으로 조선어 입문서 교린수지(交隣須知)를 썼다. 쓰시마에 지금으로 치면 한국어학교인 한어사(韓語司)를 1727년에 열기도 했다. 한어사는 3년 과정으로 이곳에서 배출된 역관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쓰시마섬에 있는 덕혜옹주 결혼기념비. 사진 쓰시마부산사무소 홈페이지 쓰시마는 우리 역사와도 밀접하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조선 해안에서의 왜인들의 약탈이 늘어나자, 세종은 1418년 6월 이종무를 앞세워 대마도 정벌을 하기도 한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선발대가 이곳에서 출발하기도 했고, 조선통신사 일행이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은 곳이 이곳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엔 독립운동가 최익현 선생이 1906년 이곳에 유배됐는데, 이로 인해 쓰시마섬엔 최 선생을 기리는 순국비가 있다. 고종의 딸로 정략결혼을 해야 했던 덕혜옹주(1912∼1989)의 남편 소 다케유키(宗武志)가 쓰시마 출신이다. 이 때문에 쓰시마섬엔 덕혜옹주의 결혼 기념비 등이 남아있다. 한·일 교류도 상당해 400여 명에 달했던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하는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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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엔 "1달러 150엔 가더라도, '나쁜 엔저' 아니다" 근거는? [김현예의 톡톡일본]
김현예 도쿄 특파원 지난 24일 오전 환전소들이 몰려있는 일본 도쿄(東京) 니시신주쿠(西新宿). 오전 11시에 열리는 환전소 문 앞에 외화를 엔으로 바꾸러 찾아온 사람들이 하나둘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만난 50대 한 남성은 이틀째 환전소를 찾았다고 했다. 여행업에 종사하는 그는 지난 22일 엔화가 장중 한때 1달러에 136엔 후반대에 거래되면서 ‘24년 만의 엔저(円低) 기록을 찍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집에 있는 달러와 유로·위안화까지 모두 들고 다음 날 환전소를 찾았다고 했다. 외국돈을 엔화로 바꾸려는 지인과 동행했는데 집에 있던 1000원짜리 한국 돈까지 가져와 엔화로 환전했다. 지난 24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환전소. 돈을 바꾸기 위해 손님들이 줄을 서있다. 지난 22일 외환시장에서 달러 당 엔화 가치가 24년만의 최저치인 136엔대까지 떨어진 이후 환전소에 달러 등 외화를 들고와 엔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 김현예 도쿄 특파원 니시신주쿠에서 가장 큰 환전소인 인터뱅크를 운영하는 사토 고(佐藤 豪) 대표는 “엔저로 요즘 하루 150~200명의 손님이 집에 있던 외국돈을 가져와 엔화로 바꿔 간다”고 전했다. 전례 없는 엔저가 계속되고 있다. 일본 포털 사이트엔 연관 검색어로 ‘엔저 때 해야 할 것’까지 등장했다. 일본은 이 엔저를 어떻게 바라볼까. 외환위기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에서 외환정책을 총괄하면서 적극적인 외환시장 개입으로 ‘미스터 엔(Mr. Yen)’이란 별칭을 얻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榊原英資) 인도경제연구소 이사장을 지난 21일 만났다.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는 지금의 엔화 가치 하락이 내년 여름까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1달러에 150엔을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 이유로 ‘나 홀로 금융완화’를 계속하고 있는 일본은행을 언급했다. 그는 최장수 총재로 꼽히는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와 옛 대장성 선후배 사이로 친분이 깊다. “구로다 총재가 회의에서 하는 발언 등을 보면 지금 상태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엔저가 지금보다 더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에서 근무하며 1090년대 후반 강력한 외환시장 개입으로 ''미스터 엔'으로 불렸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인도경제연구소 이사장을 지난 21일 도쿄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현예 특파원 그는 ‘나쁜 엔저’라는 지적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엔저 원인이 명확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금의 엔저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일본의 낮은 금리 사이에서 벌어진 금리차 때문일 뿐, ‘일본 매도(日本売り)’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14%에 달하는 엔화 가치 하락이 있었는데 일본 정부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자 “정부 입장에서는 일본 매도도 아니고, 이유가 확실한 엔저이기 때문에 위기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과 미국이 금융정책 차이에서 벌어진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김명중 닛세이 기초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일본 정부가 위기감을 갖지 않는 것은 자신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신감의 가장 큰 배경은 60%대 지지율이다. 일본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집권 여당이 승기를 잡을 것이란 예측이 다수다. 김 연구원은 또 “일본 정부의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하지만, 관료 출신 경제학자나 관료들이 엔저에 대해 긴장감이 없는 것은 ‘일본 정부가 망할 일은 없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엔저로 인해 일본의 한 연구소는 일본이 세계에서 애플 아이폰이 가장 싼 나라가 됐다는 조사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사진은 긴자에 있는 애플 매장. 김현예 특파원 경제평론가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히토츠바시대 명예교수도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지 않는 것은 채무 초과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무제한 국채를 사들이고 있는 일본은행 입장에선 기준금리를 올리면 이자 상환 부담이 늘어나 손해가 커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말 기준 국채 잔액이 1000조엔(약 9700조원)을 넘어섰다. ■ 미스터 엔 "일본은 경기 회복 중" 「 사카키바라 에이스케(榊原英資) 인도경제연구소 이사장은 ‘미스터 엔(Mr. Yen)’으로 불린다. 일본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에서 1990년대 후반 국제금융국장, 재무관(차관급)을 지냈다. 그는 90년대 후반 당시 1달러당 79엔까지 엔화 가치가 치솟자,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과 함께 세계 외환시장에 큰 영향력을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와는 대장성 선후배 사이로 지금껏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구로다 총재에 대해선 “학창 시절에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책을 좋아한 친구”라고 했다. “같이 출장길에 오르면 나는 비행기에서 술을 마시고 잠이드는데, 구로다 총재는 늘 책을 봤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이하 일문일답 90년대 후반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에서 근무하며 강력한 외환시장 개입으로 ''미스터 엔'으로 불렸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인도경제연구소 이사장. 사진 본인 제공 엔화가 얼마나 더 떨어질까요. 150엔대도 최근 언급한 것으로 아는데 지금 상태가 이어진다고 봅니다. 미국이 금융긴축을 하고, 일본이 금융완화를 지속하면요. 구로다 총재가 회의에서도 언급하기도 했고요. (금융완화가)이어지면 엔저가 지금보다 더 진척될테니 150엔이나 150엔을 돌파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예상입니다만. 150엔대까지 엔화 가치가 내려가면 외환위기 수준 아닌가요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미국은 금리인상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하고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 경제가 과열된 상황이고, 조금 인플레가 있으니 금융긴축에 들어간 거라 봅니다. 외부에서 보면 일본이 엔저 위기감이 없어 보입니다. 위기감이 없다고 봅니다. 이유가 확실히 있으니까요. 미국이 금리인상을 하고 있고, 이를테면 ‘일본 매도’가 아니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위기상황이 아니라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판단이라고 봅니다. 나쁜 엔저라는 평가도 있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통화가치 하락은) 일본만 그런 것이 아니고요. 일본과 미국간 금융 정책 차이에 따라 엔저가 되기도 하고 엔고가 되기도 하니까, 나쁜 엔저가 아닙니다. 구로다 총재는 왜 금융완화를 지속하나요. 일본이 경기회복 도중에 있으니, 경기회복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완화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총재의 생각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일본 경제 성장이라는 면에서, 2013년부터 계속 (금융완화) 이어온 것이 일본경제에 있어서는 플러스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일본이 1% 정도 성장을 이어왔는데, 내년부터 내후년까지 2% 정도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예측되고 있습니다. 일본경제는 순조롭게 경기회복을 하고 있고, 디플레이션에서도 벗어나고 있고요. 잃어버린 20년, 30년이라고들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90년대부터 내려왔는데요. 대체로 고도성장기에는 9%, 안정성장기에는 4% 정도인데요. 매년 1% 정도인 것으로 마이너스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일본경제가 성숙해지면서 윤택해졌기 때문에, 성장률이 당연히 낮아지는 것이니까요. 엔저로 인해 외환시장에 98년 때처럼 개입하는 거 아니냐는 관측도 있는데. 급속한 엔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재무상이 말하기도 했는데요, 시장개입은 상당히 어렵다고 봅니다. 특히 달러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미국과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단계에서 어렵다고 봅니다. 예전(1998년)에 재무관으로 있을 때는 미국과 직접 연락을 해서 시장 개입할지를 합의했었습니다. 당시에는 엔고가 지나치다보니, 미국도 대체로 비슷한 의견을 보였기에 개입이 가능했었습니다만, 그때와 지금은 전혀 다르니까요. 구로다 총재는 어떻게 평가하시죠. 구로다 총재와 꽤 친합니다만, 2013년이 취임해서 금융완화를 이어오고 있는데 강력한 금융완화책으로 경기회복을 시키겠다고 한 것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는 잘 했다고 평가합니다. 일본의 물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물가는 약간 상승했는데요. (일본은행이) 2% 정도 목표를 하고 있는데요. 2% 정도의 물가 상승은 문제가 없지만 5~6% 정도 물가가 오르면 문제가 되겠지요. (※ 일본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1% 올랐다. 소비자물가는 지난 4월에 이어 2개월 연속 2%대 상승했다) 일본 경제에 가장 큰 리스크는 뭘까요. 인구감소 부분을 어떻게 하느냐일텐데요. 낮은 출산율을 어떻게 개선할지가 문젭니다. 어려운 일입니다만, 프랑스가 하는 것처럼 자녀가 3인 이상인 경우 보조금을 주거나 교육에 대해 국가가 서포트를 하는 등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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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헬로키티도 만들었다…이제 '동반자 로봇' 꿈꾸는 일본 [김현예의 톡톡일본]
김현예 도쿄특파원 크루아상, 치즈롤, 프렌치토스트…. 문을 들어서자 갓 구워져 나온 고소한 빵 냄새가 풍겨왔다. 지난 12일 오후 3시, 일본 도쿄(東京) 우에노(上野)역 앞에 있는 빵집 안데르센. 여느 빵집과 비슷한 분위기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빵을 아무리 많이 골랐든 손님이 값을 치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채 1분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4년 전 도입한 AI(인공지능) 계산대 ‘베이커리 스캔’ 덕이다. ━ 빵집엔 AI 계산대, AI 음식점에 수확 로봇도 일본 도쿄 우에노역 앞에 있는 빵집 '안데르센'에는 AI 계산기 '베이커리 스캔'(가운데)이 도입돼 있다. 100여 종이 넘는 빵을 인식해 빵이 담긴 쟁반을 올려놓기만 하면 자동으로 계산해준다. 빵 계산에 적용한 AI 기술은 암 세포 연구로 이어지기도 했다. 사진 김현예 도쿄 특파원 이곳에서 파는 빵이 100여 종이 넘다 보니, 손님이 집어온 빵을 분류하고 계산하는 일은 숙달된 점원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야마네 테츠야 점장은 “빵을 담은 쟁반을 올려두기만 하면 자동으로 계산을 해주는 AI 매대를 도입하고는 매장 풍경이 바뀌었다”고 했다. 일본 곳곳에 속속 AI 기술과 로봇이 도입되고 있다. 빵집뿐 아니라 음식점에도 쓰이기 시작했는데, 베이커리 스캐너를 개발한 회사 브레인 관계자는 “같은 빵이라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모양이 다를 수 있는데, 학습을 통해 분류하고 계산을 해주다 보니 일본 내에서 1000대가 팔려나갔다”고 설명했다. 지난달엔 AI 로봇이 음식을 조리해서 직접 가져다주고, 치워주기까지 하는 음식점 'AI 스케이프'가 도쿄에 문을 열기도 했다. 스마트폰으로 카레와 샐러드, 스파게티를 주문할 수 있는데, 가와사키중공업이 운영을 맡고 있다. JR서일본은 철로 작업 등에 로봇을 활용하기 위해 실증작업에 나섰다. 사람 손이 쉽게 닿지 않는 높이에서 작업을 하는 로봇 모습을 지난달 공개하기도 했다. 사진 JR서일본 트위터 영상 캡처. 캐릭터 ‘헬로키티’를 보유하고 있는 산리오는 최근 NTT 동일본과 공동으로 헬로키티 로봇을 개발했다. AI가 키티 목소리를 2시간 정도 학습해 손님 응대를 할 수 있는데, 오는 8월부터 판매에 들어간다. 산업현장의 적용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JR 서일본은 지난 9일 인간형 로봇이 사람 손이 쉽게 닿지 않는 높이의 철도 노선 작업을 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 농업 로봇회사 아그리스트는 사람 대신 수확을 해주는 ‘피망 수확 로봇’을 최근 선보였다. ━ ‘동반자 로봇’ 꿈꾸는 와세다 AI 연구소 일본에선 AI 로봇 개발이 얼마나, 또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을까. 같은 날 도쿄 신주쿠(新宿)에 있는 와세다(早稲田)대 AI 연구소를 찾았다. 와세다대는 세계 최초로 두발로 걷는 실물 크기의 인간형 로봇인 ‘와봇1’(1973년)을 내놓은 이래, 지금껏 로봇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선두주자다. 오가타 테츠야(尾形 哲也) AI연구소장이 공개한 연구소는 일반 가정집처럼 꾸며져 있었다. 로봇 학습을 위해 침실과 화장실, 부엌 등이 재현되어 있다. 사람 키(약 166㎝)만 한 로봇(AIREC) 3대가 이곳에서 20여 명의 연구원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오가타 소장은 지금껏 다양한 로봇에 독자 AI를 도입해 성과를 올렸다. 지난 2015년엔 수십번 학습을 바탕으로 전에 보지 못한 종류의 타올을 개는 로봇 연구에 성공했다. 가루약 조제 로봇 개발도 이뤄냈다. 세계 최초로 인간형 로봇을 선보인 와세다대에서 사람과 함께 하는 '동반자 로봇'을 연구하고 있는 오가타 테츠야 AI연구소장. 오가타 소장 옆에 나란히 서있는 로봇은 최근 계란 요리를 배우고 있다. 키 166cm에 몸무게는 약 150kg.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스스로 판단해 수건을 접거나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다. 사진 김현예 도쿄 특파원 지난해엔 부드러운 지퍼가 달린 가방을 자유자재로 여닫을 수 있는 로봇 연구를 내놨다. 촉각센서가 있는 손으로 물건을 집는데, 옆에서 사람이 뺏으려고 하면 가르쳐 준 적이 없어도 다시 ‘바로 잡아 쥐기’도 할 정도로 학습이 잘 되어 있다. 지난달 초엔 히타치 연구진과 함께 처음 보는 어떤 문이든 자유롭게 여닫는 로봇 연구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를 통해 내놔,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오가타 소장은 “인간과 함께 하는 로봇”, 말하자면 ‘동반자 로봇’을 그리고 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인간형 로봇을 내놓기도 한 일본 로봇 연구의 선구자로 꼽히는 가토 이치로( 加藤一郎·1925~1994) 교수 이야기를 꺼냈다. 학부생이었던 30년 전, ‘학습하는 로봇을 만들고 싶다’고 하자 가토 교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로봇의 지능 보다 인간의 마음을 생각하라.” 오가타 소장은 이후 지금껏 ‘사람을 서포트해주는 로봇’을 향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AI 로봇 활용에 대해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는 “학습을 통해 앞으로 5~10년 안에 팔을 가진 이동형 로봇이 가정에도 쓰이지 않겠냐”며 “중요한 건 로봇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공감대 형성”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혁신을 위해서는 로봇과 AI 기술의 공진화와 사회 수용성 파악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AI가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AI 로봇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제로 사용하느냐가 인간에게 중요하단 의미다. 이 때문에 와세다 연구소엔 과학자만이 아닌 10여 명의 정치·사회·윤리·법률 등 인문·사회·과학자들이 함께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실제로 정책 결정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지, 윤리적인 문제는 없는지 등을 함께 고민하며 연구를 진행하는데, 업계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로 꼽힌다. 그는 “AI는 미국이 강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계속 만들어갈 수 있느냐는 (응용)부분에서 일본이 강점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하드웨어로 불리는 것에 대해 장점이 있는 만큼 새로운 사업, 산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 "인간 마음이 먼저" 오가타 소장 일문일답 「 로봇은 얼마나 가르쳐야 하나요? 문을 여는 로봇의 경우는 100번 정도입니다. 밀어서 열지, 당겨서 열지 등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되거든요. 그러려면 꽤 경험 수치가 필요하게 됩니다. 앞서 지퍼를 여는 로봇의 경우는 30번 정도였어요. 형태를 변형하거나, 아니면 이렇게 휘기도 한다는 걸 가르쳐줘야 합니다. 수건은 크기나 놓는 장소가 바뀌거나 하는 상황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되니까, 로봇이 학습하지 않은 것도 보여주고 해야 대체로 잘 할 수 있게 되거든요. 딥러닝이라고 불리는 학습을 하는 로봇은 대략 적어도 (특정 동작을 학습하기까지) 1만회 정도 걸리거나, 잘 못하는 경우엔 십수만번 정도 해야 해요. 1000번 정도 걸리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 연구소에서는 대체로 십수회에서 100번 정도면 (로봇이 익히는데) 충분합니다. 로봇이 머리가 꽤 좋네요. 수건이나 문열기처럼 태스크(task)는 정해져있습니다. 근데 수십번 학습으로 가능한 건 꽤 희귀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실제 산업에 적용해보자고 하는 제안이 많았어요. 이정도의 지능에, 학습을 통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 로봇의 성능을 올릴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와세다대 AI연구소에서 오가타 테츠야 소장이 연구 중인 로봇과 포즈를 취했다. 양팔로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인간형 로봇이다. 사진 김현예 도쿄 특파원 그럼 이 로봇은 사람으로 치면 몇살쯤되는 건가요? 몇살도 아니에요. (웃음) 예를 들면 이 로봇은 식재료를 고르고, 도구를 선택할 수 있어요. 그걸 가르친 것 뿐이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대단한 건, 혼자서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잖아요. 인간은 역시 대단하거든요. 예를 들면, 엄마 뱃속에 있는 몇개월 안된 아기가 엄마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잖아요. 태어나서 얼마되지 않아 아기는 팔다리를 모두 자유롭게 쓰게 되고요. 그런 의미에서 로봇이 다양한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몇살 수준이다라고 하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아요. 인간같은 지능을 가진 로봇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많이 듣는 질문인데요,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엔 무리라고 생각해요. 장기를 두거나 게임을 하는 건 간단히 할 수 있어요. 청소,요리를 하고 집에서 인간을 돕는 여러 일을 하는 로봇은 가능하다고 봐요. 하지만 인간처럼 자기 스스로의 의지를 갖고, 어떤 목적을 같고 상상력을 더해 움직이거나, 자신의 책임감에 대해 이해한다든가 하는 건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 밖에 없지 않을까요. 계산기가 계산을 매우 빨리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부 인간의 태스크를 인간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긴해요.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인터뷰를 봤습니다만. 그런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그 목표까지 어느 정도 성장하고 있어요. 노인이 되면 몸이 약해지니까, 로봇이 도움을 줄 수 있게 되고요. 어린이 교육에 어떻게 로봇이 관여하게 될지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조사가 필요하긴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 대화와 멘탈이 관계되는 것이니까요. 로봇은 물리적으로 인간을 돕는 작업을 하는 존재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보는 문이라도 학습을 통해 자유자재로 문여닫는 AI로봇. 히타치와 와세다대 AI연구소가 연구해 지난달 초 연구성과를 공개했다. 자료 와세다대 AI연구소 로봇과 함께 사는 미래, 어떻게 그려볼 수 있습니까. 많이 예로 드는 것이 스마트폰이에요. 카메라와 게임기, 사전, 지도가 제각각으로 있었는데 이걸 한번에 패키지화해서 모두가 쓸 수 있게 되었잖아요. 로봇도 실제로 산업용 로봇부터 일을 대신해주는 로봇, 펫(pet)과 같은 모양이라든지 다양한 로봇이 있는데요. 이걸 단일화한 형태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소프트웨어가 AI가 되겠고요. 팔을 갖고 있는 모양으로, 가능한 싸게, 간단히 살 수 있으면서, 움직이며 청소나 운송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형태로요. 팔이 있으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우선 처음엔 이런 로봇이 나오겠죠. 상반신(형태)으로 다양한 사람의 일을 돕는 작업에 연구를 집중하고 있는 이유기도 해요. 앞으로 5~10년 사이에 이런 것들이 나온다고 봅니다만. 5년이요? 앞으로 5년쯤이면 이동하면서 운반하는 정도는 나오리라고 봐요. 가정이나 사무실에선 안쓰지만, 지금 순찰이나 경비, 소독, 안내 등에 쓰이는게 이동 로봇이잖아요. 가정에서도 곧 로봇이 쓰이게 될 테고요. 이후 팔이 있는 로봇은 거기서 5년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것도 좀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로봇과 AI학습이 동시에 이뤄질 필요가 있어요. 공진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또 우리 모두가 이해(※오가타 소장이 보여준 자료엔 사회수용성이라고 적혀있었다)해야 한다고 봐요. 사회과학·정치·법률 등 인문과학. 윤리 교수들이 연구조사를 같이 해서 우리 사회에 로봇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로봇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기술 진화와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장님께 로봇이란 어떤 겁니까. 사람마다 정의가 다양하겠지만요, 저는 로봇은 인간을 이해하는 도구라고 봐요. 발달 로보틱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가토 선생님께 단순히 ‘학습하는 로봇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가, “로봇으로 마음을 생각하라”는 말을 들었어요. “인간의 마음을 생각하라”고요. 그때부터 생각이 변했어요. 똑똑하고 도움이 되는 로봇을 만드는 건 당연한 것이고요. 다만 자립해 학습하는 존재는 무엇일까라는 것을 알고 싶다는 부분이 결국 점점 강해졌어요. 딥러닝 덕분에 그간 기초연구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기업으로부터 주목받게 되고, 급속도로 제품화까지 이야기가 이어지고요. 그러면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부분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로봇연구자들이 인간 형태나, 동물 형태로 로봇을 만들고 있는데, 모두 생명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거든요. 오가타 소장 옆에 나란히 서있는 로봇은 최근 계란 요리를 배우고 있다. 키 166cm에 몸무게는 약 150kg.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스스로 판단해 수건을 접거나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다. 사진 김현예 도쿄 특파원 자율주행차 경우 사고에 직면했을 때 AI가 어떤 선택을 할지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란이 있었잖아요. AI가 위험하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사상, 사고를 컨트롤하는 경우에요. SNS로 사람들의 생각을 컨트롤하거나 음모론을 퍼트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어떤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AI가 학습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어요. 또 하나는 AI라고 하면 믿기 쉽잖아요. AI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류의 일은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잘 하고요. AI가 말하는 것을 전부 신용해도 될까요? 가령 판사는 AI의 판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게 될까요. 인간을 판단하거나, 인간을 컨트롤하는 데 AI가 쓰이게 되어버린다면요? 이런 이유로 와세다에서는 인문사회 계열의 교수님들의 도움을 청해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윤리의 문제, 법률적으로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정치학자는 이것을 정책결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등을 우리 연구소에선 중요하게 보고 있어요. 일본은 제조업에 강점이 있어선지 산업현장에 AI 로봇 적용이 빠르게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중국과 비교해 로봇을 이용하는 데 대해서는 꽤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인은 사용할 수 있는 건 금방 써보고 싶어하기도 하고요, 또 새로운 것을 기본적으로 좋아하기도 하니까요. 실제로 딥러닝이 잘 된다면 사업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생겨날테고요. 일본은 또 제조에 강점이 있으니까, 이걸 딥러닝과 합쳐서 새로운 기업, 사회를 만들어 가보자 하는 콘테스트도 있어요. 경쟁하듯 기업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도 해요. 로봇을 상품화할 때 도움을 받았던 스타트업이 있는데, 제가 고문으로 있었거든요. 2016년에는 적은 인원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상장했어요. 로봇은 지금부터라고 봐요. 새 기술에서 기회가 나오니까요. 예전에 일본이 강점을 보인 부분과 합쳐진다면 지금부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경제성장 면에서 본다면 예전 스타일에서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이 저성장을 이어가고 있잖아요. 저는 일본에 크게 변화를 줄 수 있는 계기 중 하나가 AI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들어서 (AI가) 주목받기 시작했고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I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강하죠. 구글이 있고 애플, 페이스북이 있고요. 또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계속 나오고 있고요. 여기에 대적할 수 있는 것중 하나가 말씀하신 실제 응용입니다. 현장에 응용했을 때, 현실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계속 만들어갈 수 있느냐, 이 부분에서 일본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드웨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선 장점이 아직 있으니까요. 이걸 (AI와) 합쳐서 새로운 사업, 산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봐요. 다만, 사회 수용성도 있어야겠고요. 그래서 사회과학 교수님, 인문과학 교수님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