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무굴식 사랑이 빚은 거대한 조각, 타지마할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은? 이 뜬금없는 질문에 늘 인도의 타지마할을 꼽는다. 무굴제국의 샤 자한 황제가 황비의 죽음을 애도하며 건설한 묘당 건물이다. 묘당 건설에 국가 재정을 탕진해서 아들의 반란으로 폐위당한 이야기가 더 유명한 사연이다. 그러나 그는 제국을 당시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으로 만들었고, 폐위 시에 인도 중앙은행에 막대한 잔고를 남겼다니 재정 파탄은 반란의 명분에 가까웠다.   이슬람 침략자들은 인도 각지에 크고 작은 술탄왕국들을 세웠고, 16세기에 들어 무굴제국이 이들을 통일했다. 무굴의 황제는 여러 출신의 왕비들과 정략 결혼해 제국의 통치술로 삼았으나 배다른 자식들의 후계 문제는 늘 내란의 원인이었다. 샤 자한 역시 부친 악바르에게 반란을 일으켜 즉위한 인물이다. 여러 황비 중 오직 제3비 뭄타즈 마할을 총애했고 그와 함께할 음택으로 타지마할을 건축하게 된다. 뭄타즈의 죽음 후에는 암군이 되어 강제 퇴위 뒤 이 건물 건너편의 아그라 포트에 구금된 채 최후를 맞았다.   타지마할 정문에서 바라보는 타지마할은 완벽한 비례로 이루어진 건축적 조각품이다. 그림 같은 본당의 실루엣을 4개의 첨탑이 투명한 벽으로 감싸는 것 같다. 이 첨탑들은 본래 모스크에만 세울 수 있었으나 여기서는 오로지 조형적 요소로 쓰였다. 긴 수로를 따라 진입하면 건물 재료인 우윳빛 대리석의 화사함에 눈이 부시고, 양파 돔과 아치형 벽감에 떨어지는 음영 때문에 확연한 입체감을 느끼게 된다. 건물의 거대함과 입체의 섬세함이 동시에 각인된다.   건물에 도달하면 색 대리석을 새겨 넣은 장식 문양들에 감탄하게 된다. 기하학적 식물 문양과 쿠란 구절의 서예들이다. 원래는 갖은 보석으로 벽면을 치장했다니, 지금의 정교함에 화려함까지 더했던 건물이다. 뭄타즈도 이처럼 아름다웠을까? 보는 거리에 따라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명작이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2023.03.20 00:43

  •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로마 제국의 완벽한 하늘, 판테온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로마에 가면 폐허와 유적이 널려 있지만 온전한 로마 건축물은 단 하나뿐이다. ‘모든 신들의 신전’이라는 이름의 판테온이다. 로마는 드넓은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모든 나라의 신앙을 포용했다. 판테온은 팍스 로마나의 모든 신들을 위해 제국의 수도 한복판에 건설한 상징적인 신전이었다.   공화국 로마는 세 명의 실력자가 권력을 나눈 삼두 정치제를 택했지만 결국 내전이 발발했다.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존엄자)가 되어 실질적인 황제정을 시작했다. 그의 오른팔 장군인 아그리파가 기원전 31년 승전 기념물로 판테온을 세웠으니 로마 제국은 이 만신전으로 시작한 것이다. 기원후 125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지금의 건물을 재건했다. 로마 5현제로 꼽히는 그는 제국의 내실을 다지는 데 힘썼고, 판테온은 이를 위한 로마 도시 재건의 중심 프로젝트였다.   공간과 공감 원통형 몸체 위에 반구형 돔 지붕을 올렸다. 외벽에는 어떠한 장식도 일절 없다. 이 투박하고 단순한 겉모습은 기상천외한 내부공간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지름 43.3m의 이 원형 공간은 이후 500여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고 큰 내부 공간이었다. 외부로 뚫린 유일한 창은 천장 정상부의 오큘러스(눈)라 부르는 둥근 천창뿐이다.   해와 달과 별들은 반구형 천구에 박혀있고 천체의 원운동은 곧 천구가 회전하기 때문에 보이는 착시이다. 로마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완벽한 우주론을 판테온에 구현했다. 어두운 실내에 오큘러스를 통해 천상의 햇빛이 비치고 때로 비가 내린다. 무수하게 파진 오목한 사각형 벽감들에 그림자가 생기는데, 태양의 궤적을 따라 음영이 이동해 시간을 느끼게 한다. 사각 벽감들은 무수한 천체이고 그림자의 변화는 곧 천구의 회전 운동이다. 21세기 로마 도시는 지동설의 세계지만 판테온 내부는 여전히 천동설의 우주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2023.03.13 01:12

  •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네모난 달항아리’ 속 공공 광장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강남에 이어 새로운 고층 숲이 돼 가는 용산 지역에 단아한 모습의 아모레퍼시픽 빌딩이 자리 잡고 있다. 화장품 회사의 사옥답게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평을 받는다. 22층이니 결코 낮지는 않지만 40층에 달하는 주변 건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키가 작다. 이 하얀 정육면체의 건물은 좁고 높은 침엽수 숲속에 감추어진 보물상자와 같다.   건축가는 영국 출신의 데이비드 치퍼필드다. 세계 건축계는 그를 고전적 품격과 현대적 감성을 동시에 지닌 대가로 평가한다. 이 건물에도 그리스 신전과 같은 고전적 어휘들, 즉 엄격한 비례와 절제된 형태를 구현했다.   아모레퍼시픽 사옥 그는 조선시대 달항아리에 매료돼 이 건물을 네모난 달항아리로 만들려 했다고 밝혔다. 유리면 위를 알루미늄 루버로 감싼 이중 표면은 백자 달항아리의 투명한 유약과 흰 백토를 연상케 한다. 서양 고전의 뼈대 위에 한국 고전의 피부를 입혔다고 할까.   1층부터 3층까지는 거대한 하나의 공간(사진)이다. 강당과 식당·카페 등 약간의 편의시설들이 모서리에 있지만 대부분은 말 그대로 비어 있는 공간이다. 아모레 스퀘어로 이름 지은 이 실내 광장은 사방에 문을 두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5층 옥상에 조성한 인공 연못이 광장의 천장이 돼 물결 아른거리는 은은한 햇빛이 내부를 밝힌다. 임대료로 치자면 가장 비싼 저층부를 외부의 도시에 완전 개방해 공공 공간으로 바꾸었다.   아모레퍼시픽 빌딩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방문하고 만나고 머무르는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유별난 시설이 있거나 특별한 이벤트를 하는 곳도 아니다. 오로지 완성도 높은 건축과 차분한 품격의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건축가의 참신한 설계 개념과 사적인 공간을 개방한 기업의 배려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2023.03.06 0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