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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필향만리] 본립도생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지난번에 살폈듯이 공자의 제자 유자(有子)는 ‘효(孝)’와 ‘제(弟=悌=공경)’가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하면서 근본이 서면 방법은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했다. 아무리 이익사회라지만 이익에만 매몰되지 않고 직장이나 사회의 어른을 내 부모 대하듯이 정성으로 대하고, 내 형제자매와 지내듯이 정답게 지내면 아마 풀리지 않는 일이 없고 날마다 행복할 것이다. 누가 해도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나서서 하는 것이 곧 부모를 대하고 형제와 어울려 사는 자세일 것이다. 그런 삶은 결코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이익으로 되돌아올 텐데 요즈음 사람들은 대개 “왜 내가 그 일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 같다. 작은 편안함을 얻으려다가 큰 보람을 잃는 경우가 많다. 결국 남에겐 각박하고 자신에겐 팍팍한 삶을 살게 된다. 本:근본 본, 立:설 립, 道:길 도, 生:날 생. 근본이 서면 길(방법)이 생긴다. 32x89㎝ 내 발밑부터 잘 살피는 하나와 둘을 소홀히 한 채 허황한 명성과 관심을 얻기 위해 서둘러 아홉이나 열을 하려 한다면 그게 다 근본을 세우지 못한 삶의 행태이다. 삶이 잘 풀릴 리 없다. 근본을 세울 일이다. 청소년 선도 활동을 한다며 어깨띠 두르고 거리로 나서기 전에 내 자식부터 잘 살피는 게 근본을 세우는 삶일 것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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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필향만리] 무본(務本)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공자의 제자 유자(有子)는 근본에 힘써야 함을 힘주어 말했다. 근본이 바로 서야 ‘도(道)’ 즉 ‘살아가는 길(방법)’이 생긴다고 했다(本立而道生). 그렇다면 무엇이 근본일까. 유자는 공자가 늘 주장하는 ‘인(仁)’이 곧 근본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은 한마디로 잘라 설명할 수 없는 폭이 넓은 추상적 개념이다. 이에, 유자는 근본인 ‘인’에 대해 직접 설명하지 않고, 다만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弟=悌:공경 제)하는 것’을 들어 그것이 곧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라는 설명을 했다. 務: 힘쓸 무, 本: 근본 본. 근본에 힘쓰자. 25x67㎝ ‘인’에 대해 사변적 풀이를 하는 것보다 인을 실천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지침으로 ‘효’와 ‘제’를 제시함으로써 스스로 인을 체득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본능적으로 절친한 부모와 자식 사이를 영원히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효’를 실천해야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형제와 자매 사이의 우애 즉 ‘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게 곧 ‘살아가는 길’이다. 불효하는 사람이 부모 아닌 누군가를 향해 ‘충성’을 맹세한다면 과연 믿음을 살 수 있을까. 이미 ‘도(道)’ 즉 ‘살아가는 길’이 막혔거나 아예 없는 사람을 누가 믿겠는가!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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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필향만리] 부지불온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공자는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이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군자란 ‘양심이 살아있는 품격 높은 지식인 지도층’이라고 풀어 말할 수 있다. 군자는 자신의 양심과 좋아하는 바에 따라 행동할 뿐 남이 알아주건 안 알아주건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군자를 자처하면서도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화를 내는 사람이 많다. 공자님 때도 그랬었나 보다. 물론, 사람은 사회적 인정을 받을 때 존재감을 느끼고, 존재감이 곧 행복감의 시작일 수 있다. 특히, 유·소년들은 존재감을 크게 느낄수록 동기유발이 강하여 적극적으로 정진한다. 실은 성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이 있다. 不:아니 불, 知:알지, 慍:성낼 온.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아야 군자. 25x67㎝ 문제는 군자를 자처하면서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며 성을 내는 거짓 군자이다. 행사장 내빈석 자리 배치를 두고 “내 자리가 왜 저 사람보다 뒷자리냐”라며 버럭 화를 내기보다 “괜찮아, 어떤 자리면 어때”라며 이른바 ‘의전’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있는 실무자를 다독이는 고위층이라면 절로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귀빈석에 앉는 게 군자가 아니라, 군자가 앉는 곳이 곧 귀빈석이다. 군자는 스스로 빛나는 사람인 것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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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필향만리] 열락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우리는 ‘기쁘다’와 ‘즐겁다’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悅(기쁠 열)’은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마음(忄=心)’의 작용으로 인하여 ‘사람(儿=人)’의 ‘입(口)’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빙긋이 벌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로 본다. 독서나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을 때 미소와 함께 찾아오는 희열을 표현한 글자인 것이다. ‘悅’과 ‘說’은 상통하는 글자이다. ‘즐거울 락(樂)’은 대부분 ‘나무받침대(木)’ 위에 ‘큰북(白)’과 ‘작은북(幺)’을 얹혀 놓은 모습을 그린 글자로 본다. 원형의 큰 북 모양이 해서로 변하면서 白자 형태가 되었고, 두 개의 작은 북 모양이 해서에 이르러 幺자 형태로 변했다. ‘樂’자는 원시시대 사람들이 타악기를 두드리며 즐기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인 것이다. 說(悅):기쁠 열, 樂: 즐거울 락. 기쁨과 즐거움. 김병기 작. 26x58㎝ 기쁨은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희열이고, 즐거움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느끼는 쾌락이다. 그래서 공자는 배우고 익혀 안으로부터 깨닫는 ‘학이시습(學而時習)’은 ‘열(悅=說)’로 표현하고, 외지로부터 찾아온 친구를 맞아 즐기는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는 ‘락(樂)’으로 표현하였다. 열(悅)과 락(樂)의 조화가 아름다운 삶이다. 김병기 서예가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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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필향만리] 시습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그것을 무시로 익히면(學而時習)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하셨다.” 『논어』의 첫 구절이다. 우리가 일상으로 사용하는 ‘학습(學習)’은 ‘학이시습(學而時習)’의 줄임말이다. 지식이든, 기술이든, 인성이든, 배운 것을 틈만 나면 내 몸에 익혀 체화(體化)함으로써 새로운 내가 탄생한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습(習)’자에 ‘새의 날개’를 뜻하는 ‘우(羽)’가 붙어 있음에 착안하여 송나라 학자 주희(朱熹)는 습(習)을 ‘어린 새가 수시로 날기 공부에 힘쓰는 것(鳥數飛·조삭비, 數:자주 삭)’을 형상화한 글자로 풀이했다. 시습 오늘날의 ‘학습’은 이것저것 많이 배우는 ‘학’에 치중하고, 그것을 체화하는 ‘습’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짙다. 묻는 대로 답해주는 챗GPT와 요구하는 대로 그려주는 달리(DALL-E)의 출현으로, 이제는 사람이 무턱대고 지식을 쌓거나 과제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새가 즐거이 날기 연습을 하듯 뭔가 하나라도 제대로 내 손과 몸에 익힘으로써 스스로 느끼고 누리는 ‘습(習)’의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챗봇은 챗봇대로 진화하라 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습(習)’을 즐겨야 할 것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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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필향만리] 침착통쾌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우리나라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는 우수한 예술작품에 대해 ‘침착통쾌(沈着痛快)’하다는 평을 해왔다. 침착은 ‘바닥에 달라붙을 정도로 차분하게 가라앉음’을 뜻하고, 통쾌는 ‘들뜰 정도로 기분이 좋음’을 이르는 말이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통쾌한 분위기의 작품을 최고로 여겨온 것이다. ‘침착통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침착하다 보면 통쾌하기는커녕 우울해지기 쉽고, 통쾌하다 보면 들떠 침착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양자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면 좋겠지만, 이 둘을 정반대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아예 양자의 조화를 추구할 마음조차 먹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분망한 현대사회에서는 침착보다는 외적 발산을 통한 통쾌를 추구하는 경향이 더 짙다. 沈:가라앉을 침, 着: 붙을 착, 痛:아플(몹시) 통, 快: 상쾌할 쾌.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도 기분이 몹시 좋음. 김병기 작, 25x100㎝. 이제는 침착한 독서, 명상, 서예 등을 통해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통쾌한 기쁨을 느끼는 삶의 지혜가 필요한 때가 된 것 같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인식이 그렇게 바뀌고 있다. ‘김병기 필향만리’를 통해 많은 분이 ‘침착통쾌’의 지혜를 얻기를 기대한다. 이 연재는 『논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논어』를 보는 필자의 견해에 대한 이설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필향만리는 매주 월·목 연재됩니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